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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슈퍼 게르만”…새로운 열강으로 부상/독일통일과 국제질서에의 파장

    ◎경제력 바탕,마르크화 블록 형성할 듯/안보리 상임국 확실… 정치입김도 막강 독일통일로 세계사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2차대전후 지금까지 동서냉전체제와 세계질서는 독일의 분할과 이에 기초한 유럽의 분할에 근거한 것이었다. 때문에 동독의 소멸과 새로운 통일독일의 출현은 독일이 냉전 이후 세계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그리고 새로이 탄생되는 세계질서는 어떤 모습일까에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독일은 지난 1년간 그들의 힘과 영향력을 어떻게 구사할지에 대해서 거의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그것은 거의 전적으로 지금부터의 일이다. 독일통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거대 독일출현이 또 다시 침략의 역사로 이어지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시각과 이제는 독일이 세계경제와 평화에 이바지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으로 나뉘고 있다. 1871년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통일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1933년 히틀러의 나치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점이 우려를 낳는 배경. 즉 통일된 독일은 우세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또 다시 중부유럽 더 나아가 유럽과 전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를 꿈꿀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편 통일독일이 과거와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세계경제발전과 평화유지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도 폭넓게 제기되고 있다. 1ㆍ2차대전 당시 독일은 후발선진공업국으로서 영ㆍ불이 독점하고 있는 제국주의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무력사용이 불가피했지만 이제는 독일도 국제무대에서 상당한 몫을 차지하고 있으며 냉전체제는 무너지고 신질서는 창조되지 않아 독일의 역할에 따라서는 몫을 훨씬 늘릴 수 있을 만큼 국제환경이 바뀌었다. 또 당시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집단안보체제가 확립돼 있기도 하다. 아울러 사회경제적 불안과 건전한 시민사회의 결여가 전체주의 정권출현의 배경이 됐던 것과는 달리 현 독일은 「독일의 유럽」이 아니라 민주화된 「유럽의 독일」로 재탄생 했다는 점도 지적된다. 지난 1년간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주변국의 우려,특히 국경선문제에 민감한 폴란드와 안보이익을 우선시하는 소련에대해 평화유지에 명확한 태도를 취해 온 것도 독일통일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금까지 독일통일이 냉전체제의 종식과 신질서 대두의 신호탄이라고 일컬어져 왔으나 아직 앞으로 창조될 새 국제질서의 모습은 구체적으로 그려진 적은 없다. 따라서 통일독일이 새 국제질서 창조에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는 국내외적 요인과 사회경제적 여건을 쫓아 가늠해 보는 수 밖에 없다. 독일통일은 무엇보다 사회주의권의 패배와 연결되고 있다. 사회주의권내의 모범국가였던 동독이 서독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패배,서독체제의 동으로의 확산을 받아들임으로써 앞으로 사회주의 국가들이 국제정치면에서 약세를 면치 못할 것이 분명하다. 사회주의권의 약세는 소련 내부 개혁과정과 맞물려 유럽내 세력관계의 완전한 기축이동 및 냉전체제하의 동서 균형상태의 절폐를 의미한다. 이미 지난 6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가 군사적 집단안보기구에서 정치기구로 전환한데서 보듯이 동서 군사대결의 시대는 지나갔다. WTO의 최전선국가이자 핵심국가인 동독이빠져나감으로써 WTO는 눈동자를 잃은 셈이 됐으며 이의 반사작용으로서 NATO 또한 목표와 구조의 변화가 불가피 하다. 동독등 동유럽지역으로 부터 소련군이 철수함으로써 독일에 대한 군사적 압력은 크게 덜어지고 집단안보의 필요성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과정에서 독일은 고르바초프의 「유럽공동의 집」구상이나 중립화방안을 거부하고 나토잔류를 선택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안정도 약속함으로써 독일이 앞으로 동서유럽의 교량역할을 수행할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물론 독일의 교량역할 수행에는 경제력의 뒷받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구 8천만,GNP 1조3천억 달러의 경제력은 유럽경제의 기관차로 유럽통합을 가속화시키는 한편 동구의 개방과 때맞춰 중부유럽에 마르크화 경제권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서 블록경쟁시대로부터 평화공존의 시대,다변화시대로 접어듦으로써 개별국가간의 협조가 중요성을 더할 것이며 독일은 우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유럽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독일의 행보를 결정짓는 데는 이밖에 독일내의 정세에 의해서도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은 지난 1년동안 소련의 전승국으로서의 간여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나토잔류 결정을 내려 독자성을 과시해 왔다. 미ㆍ영ㆍ불도 점령국으로서의 권한행사보다는 독일의 주권을 존중하는 자세를 견지해 왔다. 이런 점에서 오는 12월에 치러지는 전독선거는 향후 독일정세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지난 동독선거에서 참패,서독 정치지도에서처럼 균형자로서의 역할을 계속할지 의문시 되는 겐셔 외상의 자민당,서독지역에서 대두 가능성을 키워 온 공화주의 극우세력 등이 얼마나 지지를 획득하느냐,기민당이 걷고 있는 대서양주의(Atlanticism)를 사민당도 계속 수용할 것인가 등등 향후 유럽질서에 영향을 미칠 요소가 많다. 여기에 동독지역은 서독과는 달리 동독이 독일민족의 고유한 문화,진보적 전통 등 긍정적 요소를 계승한 국가라는 민족주의적 정치선전과 반서방 반나토적인 정치선전이 되풀이 돼 왔기 때문에 중립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꽤 남아있는 상태다. 이 모든 요소들이 선거를 통해 보여주는 결과는 독일이 장래에 크든 작든 영향을 줄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독일의 발언권은 벌써부터 높아지고 있다. 이미 소련은 독일을 UN안보리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천거,각국으로부터 긍정적 반응을 얻고 있다. 이미 확보된 국제적 지위,중부유럽을 뒷마당으로 만들 수 있을 만큼 거대한 경제력,45년간 과거와 단절한 채 쌓아온 민주적 기본질서 등 독일이 국제질서의 파괴자라기 보다는 신질서 창조의 주역으로 활동할 배경은 충분히 갖춰져 있다.
  • 새 독일의 탄생(사설)

    1990년 10월3일. 동과 서로 갈라졌던 두 독일의 시대가 마침내 막을 내리고 새롭게 통일된 독일이 탄생한다. 전후 45년,분단 41년 만이다. 한 민족은 한 나라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역사의 증언이 독일에서 실현되는 역사적인 사건이다. 같은 분단운명의 민족으로서 우리는 그들의 통일을 진심으로 경하하며 우리의 통일노력을 기대해 보는 것이다. 독일통일은 분단상태에서도 동서독이 지난 40여년간 교류와 접촉을 꾸준히 계속해온 데서 얻어진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동서독이 분단현실을 인정하고 상호교류에 의한 기반을 단계적으로 조성한 뒤에 거둔 자랑스런 열매다. 양국은 69년 브란트의 동방정책으로 72년 기본조약,73년 유엔 가입,74년 양측 대표부 교환설치 등의 기반을 다져왔다. 이것은 두 나라 국민의 잠재된 통일열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또한 서독의 성숙한 민주주의와 경제력을 배경으로 서방은 물론 소련에 대해서도 신뢰를 주면서 통일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이끌어냈다. 통독은 특히 유럽에 새로운 정치 경제질서를 뜻하고 있다. 냉전상태는 종식되고 새평화시대의 선언을 의미한다. 때문에 새 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좀더 중요한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독일의 앞날이 순탄하리라고만 믿는 것은 아니다. 속도빠른 통일열차에 도취했던 독일국민들은 이제 사회적 심리적 통일이라는 한층 심각한 과제에 부닥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통제체제하에서 동독인들이 겪은 정서적 상처가 서독의 경제시혜만으로 치유될까 하는 문제다. 40%에 이른 동독의 생산성 감소와 내년이면 1백50만명으로 추산되는 동독실업도 또다른 숙제로 남는다. 동독이 서독과 같은 수준에 이르려면 5∼10년이 걸려야 할 것이라는 우려도 이러한 데 기인하고 있다. 주변국가들로부터 나오고 있는 통일독일의 경제적 팽창주의와 게르만 패권주의도 새 독일이 풀어야 하는 과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민족」답게 그들은 통일을 하는 것이다. 통독이 한반도 통일의 교과서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후 냉전체제로 인한 분단운명을 같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독일의 통일을 가능케 한여러 요인이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독일분단이 전쟁을 일으킨 데 대한 죄값이라면 한반도 분단은 「무고한 희생」으로서 독일보다 일찍 해결됐어야 한다는 독일에서의 평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적지 않다. 통독과 관련되는 이 평가를 귀담아 들으면서 최근 한반도 주변에서 일고 있는 여러가지 사태발전을 우리는 고무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국과 소련의 예상보다 빠른 수교발표를 비롯해 한국과 중국간의 관게개선 노력,일본과 북한,미국과 북한간의 접촉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주변정세 속에서 남북한 당사자들이 벌이고 있는 통일노력도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경아시안게임에서 합의발표된 남북한 스포츠교류는 분단감정을 무너뜨리는 데 바람직한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는 16일에는 평양에서 제2차 남북총리회담도 열린다. 동서독이 취해왔던 커뮤니케이션의 확대와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을 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때인 것이다.
  • 유럽중심부에 거듭난 「게르만」

    ◎1990년 10월3일 통일… 새독일의 위상/인구 8천만ㆍGNP 1조3천억불의 부국/향후 10년간 국부 두배로… 「제2기적」 기대 1990년 10월3일 0시. 동서로 갈리어 반세기를 살아온 게르만민족이 45년만에 다시 하나가 되는 역사적 순간이다. 통독은 전후 미소를 축으로 한 냉전체제의 종언이자 새로운 탈냉전시대를 출범시키는 출발이기도 하다. 이제 독일 민족은 지나간 분단의 세월속에 쌓인 한과 고통을 라인강물에 띄워보내고 흑적황 3색의 독일깃발을 다시 유럽 복판에 세우는 환희의 순간을 맞고 있는 것이다. 통독은 유럽,나아가 세계질서의 재편을 불가피하게 하고 있다. 동구와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들의 일당체제붕괴에 이어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와해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으며 NATO의 기능도 군사조직에서 정치조직으로 변모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하나의 유럽」을향한 국제질서 재편작업이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렇다고 통일독일의 장래가 모두 장미빛으로 밝은 것만은 아니다. 아직도 넘어야할 고비가 많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진지 1년도 못돼,그것도 수십만명의 미국과 소련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통독을 실현시킨 패전 독일민족의 능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감회는 실로 착잡하다. 이같은 역사적 순간을 맞아 서울신문은 김진천 파리특파원과 이기백 정치부기자를 역사의 현장에 특파,통독과정을 살펴보고 유럽의 새질서 태동을 점검해 보기로 한다. ▷인구ㆍ영토◁ 통일독일의 인구는 서독의 6천1백만명과 동독의 1천6백60만명을 합해 총 7천7백60만명. 1억명 이상의 10개국과 8천3백만명의 멕시코에 이어 세계 12번째 인구대국. 영토는 서독의 24만8천7백6㎢와 동독의 10만8천3백33㎢를 더한 총 35만7천39㎢로 한반도(22만1천㎢)의 약 1.6배 크기. 2차대전 패전으로 폴란드영토가 된 오데르∼나이세강 동쪽의 실레지아 등 10만3천㎢의 옛독일땅에 대해서는 통일후에도 영토권을 주장하지 않기로 약속된 상태. 수도는 베를린으로 결정됐으나 현재 본에 위치한 행정부가 옮겨갈지 여부는 추후 논의대상이다. 국기ㆍ국가ㆍ국명 등은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는 만큼 서독것을 그대고 쓰되 동독인들의 자존심을 고려한 추후변경여부는 미지수. ▷역사◁ 지난 4세기 발트해연안 및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살았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독일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 됐다. 그러나 독일민족은 중세에 들어서도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분열상태를 지속,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으며 철혈재상인 비스마르크가 등장,1871년 독일제국이 탄생됐다. 제1차대전의 패배로 제정은 무너졌으며 바이마르공화국시대(1919∼1933)로 들아갔으나 소당분립,정쟁격화 등으로 혼란이 계속되던중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히틀러는 게르만 제1주의를 내걸며 사상최대의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으나 1945년 패전으로 독일은 동서독으로 분단의 길을 걷게 됐다. 서독은 동독과 수교한 국가들과는 외교관계를 맺지않는다는 냉전시대의 할슈타인원칙을 표방했었으나 브란트전총리는 지난 1969년 집권한 뒤 동방정책을 표방,상호교류를 확대시켜 오늘의 통일을 이룬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었다. 동서독은 72년 기본조약체결,73년 유엔동시가입,74년 상주대표부 설치를 거쳐 80년대에는 양국정상의 상호방문이 실현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동서 데탕트와 고르바초프의 개방정책,동구권의 민주화열기로 지난 61년 구축됐던 베를린장벽이 철폐됐고 지난 7월 통화통합으로 사실상 통독이 가시화됐다. ▷국내정치◁ 통일과 동시에 동독정부 및 의회는 소멸되며 오는 12월2일 전독총선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현서독정부가 계속 집권한다. 다만 총선전까지 동독지역의 대표성을 인정하기위해 메지에르 총리등 독독 지도자들이 서독 행정부에 무임소장관으로 기용되며 4백명의 동독인민의회의원중 인구비례에 따른 1백44명이 서독연방의회(하원)에 자동진출한다. 전독총선에서는 상원 56석(서독지역 41,동독지역 15)과 하원6백85석(서독지역 5백41,동독지역 1백44)의 임자를 가려 하원의 다수당이 통일독일의 명실상부한 초대 집권당이 된다. 동서독의 집귄기민당을 비롯,사민ㆍ자민당 등은 이미 전독총선에 대비해 정당통합절차를 마쳤다. 지금까지의 여론조사결과를 놓고 볼때 기민당을 주축으로 한 중도우파연정이사민당의 인기도를 훨씬 앞지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통독후 총선까지 2개월 사이에 극심한 경제혼란 등 이변이 없는 한 콜 서독총리의 초대 독일재상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 통독을 가능케 한 주요인이 서독의 경제력 때문이라는 분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만큼 막강한 서독의 경제력은 동독과의 통합으로 더욱 힘을 발휘하여 마르크화의 위력이 유럽을 강타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서독은 지난 89년 총GNP(국민총생산)에서 1조2천억달러를 기록,미국 소련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는 경제대국으로 통일을 계기로 경제전망이 더욱 밝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독은 EC(유럽공동체) 총생산량 가운데 25% 정도를 점유하고 있으나 서독경제력의 10%수준인 동독을 흡수,30%선을 상회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통독은 단순합계로 현상태에서 유럽내 라이벌인 프랑스 영국보다 경제력에서 50∼80%를 능가하게 됐다. 서독은 EC의 대 동구 및 소련교역량 가운데 3분의1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동구권내에서우수한 공업국인 동독을 흡수함으로써 이지역을 기반으로 하게될 경우 대 동구 교역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로 인해 동구는 독일의 영향을 받아 위성국으로 전락할 가능성까지 있는 것으로 점쳐지고 있을 정도이다. 반면 서독은 통독으로 낙후된 동독을 희생시켜야 하는 책임을 맡게되어 통일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서독정부는 지난 5월 1천1백50억마르크(약 7백억달러)의 통일기금을 조성키로 했으나 동독을 서독의 수준으로 상향평준화시키기 위해서는 모두 1조∼2조마르크가 필요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독정부가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집중적으로 동독의 철도 도로 전신 등 기간산업에 투자하고 동독의 실업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하려면 이와 같은 엄청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동독의 8천여 국영기업 가운데 이미 20%가 서독과의 경쟁에서 도태됐으며 30%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또한 서독은 동독의 1백50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를 청산해야 하며 올 하반기에만 3백30억마르크의 예산적자가 예상되는 등 열악한 동독재정을 떠맡아야 할 입장이며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 및 통일에 대한 보답으로 1백80억마르크를 지불키로 되어있다. 그러나 현 동독경제의 상태 및 막대한 투자재원부담이 통독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서독은 지난 88년 7백억달러의 국제수지흑자를 기록하는등 외환보유고 세계 2위의 부국이기 때문에 이러한 재원은 별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고 있으며 대 동독투자로 1백여만명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수 있다는 분석이다. 동독이 90년대를 통해 연평균 7∼8%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현재의 GNP보다 배로 확대돼 제2의 라인강의 기적이 동독에서 만개하게 될 것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분석도 나오고 있다. ▷군사력◁ 서독의 48만8천7백명과 동독의 17만2천명을 합해 통일독일의 총병력은 66만명인 것으로 돼 있지만 민주화이후 동독군의 탈영이 속출해 실제병력수는 이보다 다소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통일독일은 군대를 37만명이하로 유지하고 화생방무기를 생산하거나 보유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상태여서 통일후 절반 가까운 병력감축 조치가 뒤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 “희망과 경계의 통일”… 엇갈린 시각(새 독일 탄생:1)

    ◎「경제ㆍ군사대국」의 강풍이 분다/세계질서 재편의 축으로 부상/6번째 유엔상임국 확실… 영향력 신장/“제국출현” 우려속 “유럽통합 가속” 기대 10월3일 0시. 동서독이 공식 하나로 통일되는 이 시각,독일 전역에는 일제히 폭죽이 터질 것이다. 거리를 메울 시민들은 전통적인 뿔피리를 불어대며 밤이 새도록 게르만민족의 하나됨을 경축할 계획이다. 특히 냉전체제의 상징이었던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문 주변과 운텐 덴 린덴가를 중심으로 2일부터 4일까지 밤낮으로 이어질 통일축제가 벌어져 반세기 분단의 아픔을 씻어버린다. 독일은 지난 7월1일 경제ㆍ사회통합에 이어 동서독이 8월31일 체결한 「통일조약」에 따라 3일 0시에 독일민주공화국(GDRㆍ동독)이 독일연방공화국(FRGㆍ서독) 헌법 제23조에 의해 정치적으로 FRG에 흡수통합 됨으로써 내부적인 통일과정을 모두 마무리 짓게 된다. 이로써 지난 45년동안 사회주의를 추구해온 동독이라는 국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같은 기간동안 시장경제로 힘을 키워온 서독을 모태로 한 통일독일인 「독일연방공화국」이 유럽중심부의 새로운 국가로 등장,유럽의 새 질서를 추구하여 세계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이 발휘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분산되었던 독일의 국력은 통일을 계기로 동유럽을 포함한 유럽 경제권의 중심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12개국으로 구성된 EC내에서 서독은 지난해 총 수출의 30%,자동차 생산의 35%,철강생산량의 26%,발전량의 30%를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대략 25%를 점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다 동독 편입으로 성장잠재력이 가세될 경우 통일독일의 EC내경제점유율은 33∼35%까지 올라가게돼 「경제패권주의」가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같은 독일경제력의 팽창은 EC국가들 뿐만 아니라 동구의 각국에도 기대감과 더불어 우려감을 동시에 갖게 하고 있다. EC국가들은 92년을 목표로 하고 있는 유럽단일시장화에 구동독이 합류함으로써 2차대전 후 지속되어온 동서의 냉전상태가 종식되었고 유럽내에서 동구라는 블록이 와해되었으므로 대유럽통합이라는 궁극의 목표를더욱 조속히 달성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들은 경제초강국 독일로부터 그들의 피폐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한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80년대 중반이래 동구의 민주화물결 이후 이들 국가들은 사회ㆍ정치적으로 커다란 발전을 해왔지만 경제적으로는 더욱 피폐해져 독일의 경제적 지원을 고대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동독국민들의 서독으로의 탈출을 계기로 독일통일이 가속력을 붙게 한 것도 미ㆍ영ㆍ불ㆍ소 등 승전 4개국중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소련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를 승인한 것이 가장 큰 요인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소련은 그동안 콜 서독총리와의 독일통일협상 과정에서 38만여명에 이르는 동독주둔 소련군의 철수비 명목으로 1백20억마르크(76억달러)를 받아내기로 한데 이어 지난주 30억마르크를 추가로 지원받기로 하는등 경제적인 실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분위기다. 소련은 최대의 실리를 추구하기 위해 당초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반대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으로 물러섰으며 결국은 나토가입만을 허용하기에 이르는등 협상과정에서 모든 것을 내주면서 최대한의 실리만을 추구해왔다. 물론 독일이 통일을 이룰 수 있게 된 내부적 원동력은 서독의 민주주의의 실현과 경제적 성공,그리고 국민들의 잠재적인 통일열망 등을 기반으로 해 80년대 초반 폴란드의 자유노조운동에서 싹튼 동구권의 민주화운동이 동구제국에서 연속적으로 일당독재체제를 붕괴시키면서 결국 동독공산당의 몰락에 다다른 것이 큰 계기였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에서 볼때 사회주의가 이상적인 측면이 많긴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비대한 관료조직과 더불어 비현실적인 중앙집중식 계획경제에 의해 너무나 허약하게 무너진다는 교훈을 남겼다. 사회주의국가중 가장 모범적인 국가로 알려졌던 동독의 경우 그동안 생산관리나 품질향상 등 경제의 기초개념보다는 완전고용과 균등배분에만 주력,실업이 전무하다시피 했으나 결국 그것이 모양새만 그럴싸한 허수아비임이 드러났다. 한편 세계대전을 두차례나 저지른 독일의 재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의구심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독일은 이같은 주변국의 우려와 불신을 불식시키기 위해 통일독일이 나토와 EC의 틀안에 남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진정한 EC의 정치적 통합에 기여하겠다는 점을 다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은 오는 3일의 통일에 이어 14일 동독지역에서의 주의회 선거를 실시해 사회주의 국가시절 폐지됐던 5개주 주의회를 다시 만들어 연방정부에 가입하는 한편 오는 12월2일 총선거를 실시해 연방의회(Bundestag)를 구성하는 등 정치일정을 차분히 추진해 나가는데 주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세기 말까지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동독지역 재건에 국력을 총집중 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유력시 되는 헬무트 콜 서독총리가 전승 4개국 수뇌들과 주변국 수뇌들에게 기회있을 때마다 『통일독일이 평화와 자유의 나라가 될 것이며 제4제국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 약속을 지켜 나갈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독일은 EC와 나토,그리고 유럽안보협력회의(CSCE)등 국제협렵체제의 테두리 안에서활동할 것이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6번째 상임이사국으로 가입돼 국제적인 중요한 문제의 결정에 이성적으로 행동할 것으로 보인다. 독일이 상임이사국이 돼야 하는 이유에 대해 소련은 『독일이 다른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세계적인 위기를 조정하는데 동일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통일독일의 국제적인 부상과 책임분담은 이제 마지막 냉전의 산물로 남아 있는 한반도문제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며 그 방향은 긍정적인 쪽일 것이라는 것이 전체적인 평가이다.
  • 유럽은 통독을 필요로 하는가/유럽전문가 토론회

    ◎“통일독일은 유럽평화의 안전판이다”/동구 민족분쟁 해소의 본보기 제공/경제대국으로 「세계의 짐」분담 마땅 동서독의 통일을 앞두고 독일통일과 관련된 유럽전문가들의 대토론회가 유럽주요 언론사들의 공동주관으로 25일 파리에서 열렸다. 「유럽은 독일을 필요로 하는가」「독일 초강국」「외부위협」 등을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에는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이 기조연설을 행한 것을 비롯,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A 야코블레프 소련 대통령보좌관,독일의 대표적 작가 귄터 그라스 등 유럽의 정치ㆍ언론ㆍ문인들이 참석했다. 파리 라 데팡스 소재 커뮤니케이션 센터(CNIT)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독일통일의 긍정적 측면이 주류를 이룬 가운데 일부 참가자들은 과거에 대한 교훈,도덕적 사명감,그리고 경제대국으로서 세계문제에 대한 책임분담 등을 강조하기도 했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기조연설=독일의 완전한 통일은 1년안에 이뤄질 것이며 통일은 강력한 추진력을 가진 「열망」이자 현실화 될 수 밖에 없는 합당성을 지니고 있다. 독일의 통일이 평화적이며 민주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만큼 프랑스는 통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통일이 신속히 이뤄진다면 이는 독일 정치지도자들이 조기통일의 실현을 위해 부딪칠 수 있는 모든 어려움들을 미리 유념했기 때문이다. 통일에는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 있다. 오데르­나이세강의 국경문제,독일주둔 4개국군의 철수방식,생화학 핵무기에 대한 독일의 포기,동독령의 나토 및 EC에 대한 편입 등이며 이들 문제는 논의를 필요로 하고 있다. 또 4+2회담에 폴란드가 참가하는 것은 당연하다. 통일독일이 보다 강하게 되리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크 들로르 EC 집행위원장=나는 독일의 통일을 가장 먼저 지지하고 나선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경제적 팽창주의와 궁극적인 게르만 패권주의의 위험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는게 사실이다. 독일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며 특히 유럽국들을 상대로 무역흑자의 7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은 독일 GNP의 4∼5%에 해당하는 만큼의 재정적자를 초래하는등 많은 어려움을 안겨줄 것이다. 독일의 경제 팽창주의는 다른 유럽국들도 보조를 맞출지 모르지만 계속될 것이며 유럽이 독일통일을 실기하려 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통일독일은 대유럽의 안정요인이다. 또 독일은 더 이상 영토상 권리를 내세우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동구민족주의자들간의 분쟁을 해소하는 데 하나의 본보기로서 작용할 수 있다. ▲발렌틴 팔리네(소련 공산당중앙위 서기)=독일통일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며 유럽과 독일에 대한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 독일통일은 또 「선린」의 차원에서 우방 및 소련과의 관계에 새로운 역사의 장이 열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우리는 독일을 신뢰하고 있으며 이제 냉전은 사라졌다. 오늘날 소련은 종전의 입장을 수정,동구로부터 군사력을 철수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제 유럽 일가내에서의 모든 군사적 고려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소련의 이른바 신사고는 바로 이같은 상황판단에 기초하고 있다. 지금의 세계는 예전과 다르며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유럽에 새로운 질서가 점차적으로 자리를 잡아감에 따라 하나의 경제대국이 출현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독일의 통일은 유럽의 통합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릴 것이며 결과적으로 EC는 통합에 진전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M 클로소프스키(폴란드 상원의원)=독일의 유럽에의 통합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보장이다. 독일통일은 매우 중요하며 콜 서독 총리의 제의는 긍정적인 것들이다. 폴란드는 과거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했던 소련과 마찬가지로 통일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새로운 상황에서의 보장을 위해 독일의 나토 잔류를 지지한다. 또 폴란드는 EC가 독일과 소련사이에 위치한 1억5천만 인구의 중구에도 동일한 정책을 시행해 주기를 희망한다. 이들 중구의 EC통합은 전유럽의 평화와 안정에 대한 보장이 될 것이다. ▲L 스파트(서독 바덴뷔스템베르크주 총리)=통독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광범위한 것임은 자명하다. 따라서 유럽의 장래적 측면에서 기업들에 대한 경기규칙과 재정기준들을 조화시키는게 필요하다. 이러한 규칙들을 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유럽의회를 이용하는 것이다. 환경ㆍ운송ㆍ연구ㆍ정보분야 문제들은 바로 유럽 자신에 의해 해결돼야 하며 이 과정에서 유럽은 역동적(Dynamic)이 될 것이다. 유럽은 또 페만 사태와 같은 사건에 대처하기 위해 공동의 태도를 찾아야 할 것이며 이같은 공동보조는 막강한 것이 될 것이다.
  • 냉전과 탈냉전의 격류속에서/이기탁 연세대교수(서울시론)

    ◎한반도·페만문제 중지 모을 때 한반도는 확실히 냉전과 탈냉전의 골사이에 놓여 있다. 중국의 천안문사태를 보면서 느꼈던 점은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국제환경에서 중국이 어떤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이었다. 그 문제는 역시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환경에 적응할 능력이 모자라는 중국의 민도라는,서양정치 술어에는 없는 단어가 문득 떠올라서였다. 중국의 민도라는 수준과 한계를 절감한 것이다. 사실상 민도라는 단어는 특히 서양사람에게는 설명하기 어려운 정치술어에 속한다. ○새로운 질서 적응해야 한반도가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고비에서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특유한 두가지 문제를 보게 된다. 그 하나가 남북한관계며 또 하나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으로 인한 석유문제라는 문제점이다. 전자는 냉전과 탈냉전에서의 냉전적인 문제이며 후자는 탈냉전이후의 우리 국가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될 탈냉전적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 두가지 국제적인 우리의 시련에서 문제되는 것은 역시 저 천안문사태의 정치적인 민도라는 문제와 연상작용을 피할 수 없다. 확실히 냉전이 시작될 때 사회주의체제의 세계혁명적인 권력을 군사적으로 봉쇄해야 한다는 조지 캐넌의 전제를 결정했을 때의 목적은 사회주의체제의 대내체제가 「변질」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문제되는 한반도문제의 기준은 전후 인민민주주의를 구축했던 북한사회의 대내체제가 과연 변질할 것인가가 문제의 핵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동유럽의 인민민주주의는 거의가 완벽하게 변했다. 서독이 동독을 편입통일하기로 한 10월3일 이후의 독일문제는 냉전의 문제가 아니라 「냉전이후」의 문제에 속하게 된다. 독일민족은 민도라는 각도에서 이를 잘 처리하고 있다. ○결국 석유문제가 본질 그러나 한반도문제를 냉전과 냉전이후라는 관점에서 비교해 볼 때 그 역이라고 보아진다. 우선 북한사회 자체가 변모할 능력이나 의사가 없다는 점이며 더 나아가서 북한이 역으로 남한사회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달려들고 있으며 우리가 이에 말려들고 있다는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사이에서 웃음거리가 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북한의 대남제의에서 남한의 모든 체제적인 법을 고치라는 것이며 이를 옹호하는 한국내의 정치적 호응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문제점은 북한의 대내체제는 추호도 변하려는 징조가 없으며 북한의 체제적인 힘으로 역으로 남한의 대내체제를 변질시키려 하고 있다는 아이러니다. 또 남한의 많은 허점이 있다는 점에는 정치권마저 무관심하다. 정부는 자만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문적인 관점에서 볼 때에는 북한은 동유럽 국가처럼 변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냉전이후적인 성격의 중동문제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관점이다. 중동문제는 곧 우리 산업의 원동력이 되는 석유문제가 그 본질이다. 이미 이 문제는 1981년 전두환­레이건 공동성명서에서 에너지자원에 대한 보장과 합의조항이 있었다. 고전적인 국제문제로서의 중동문제에서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동향을 우리는 냉전시의 과거보다 더욱 주시할 때라고 본다. 아마도 냉전이후의 문제로서 미소관계를 보면몰타 정상회담이후 처음으로 소련의 세계관 변화를 보여주는 일이 되며 미국이 비냉전적인 중동문제를 어떻게 다루어갈 것인가하는 중요한 문제점이기도 한 것이다. 미국이 중동문제를 다루어가는 비냉전적인 방식에 대한 일본의 반응도 흥미롭다. 일단 주춤했지만 일본은 중동에 법을 고쳐서라도 소해정을 파견할 문제를 토의하기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욱이나 한국전쟁때 유엔군의 파견형식이었던 유엔에 의한 집단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비냉전적인 문제에서 한미간의 동맹관계를 어떻게 형성시켜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우리 정부는 그렇게 심각하게 한반도문제나 우리 남한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이번 중동문제라는 비냉전적인 문제를 다루어가는 과정에서 이 문제는 단순한 중동문제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있어서는 장차 한반도문제와도 깊이 관련할 수 있는 여러가지 중요한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비냉전적인 상황과 새로운 문제의 전개에서 문제의 핵심은 우리의 에너지자원을 확보하는 데 어떤 세력과 협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게르만처럼 현명하게 우리는 지금 냉전적인 문제인 남북한관계의 개선이나 비냉전적인 문제인 중동문제라는 이중적인 문제를 안고 냉전과 탈냉전이라는 상황사이를 헤매고 있다. 아마도 해방이후 오늘처럼 높은 지혜와 특히 민족의 지혜를 집약한 정치적 지혜의 수준인 우리의 민도를 우리가 보다 높이 끌어올려야할 때는 없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의 총체적인 민도가 어느 수준인가 하는 것을 게르만민족처럼 발휘해야 할 때라고 보기 때문이다. 남북한관계가 지금처럼 좌절되고 현명하게 처리되지 못하고 새롭게 고전화하는 세계속에서 우리 이익을 현명하게 지킬 줄 알 때만이 좌절이 아닌 우리 민족의 민도를 인정받게되는 것이 아닐까. 또 이러한 민도의 수준의 한반도의 민족통합과정에도 기초가 되는 것이 아닐까.
  • 통일 “「하면된다」는 안되는가”/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재미동포 심재호씨는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아들이다. 지난 87,88년 두차례 북한을 방문하고 「37년 걸린 길」이라는 기행문을 책으로 펴냈다.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남한의 경제력이 북한에 비해 우수하다면 북한의 자존심은 남한과 다름없이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둘이 합치면 천생연분이 된다』『북한 사람들한테 「밖에 사람들에게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라고 전하겠다」고 했더니 무척 좋아했다』 ○통일에는 승패가 없다 어떻게 보면 남북한이 각기 대화에 의해 통일을 추구한다고 할때 제로섬게임,즉 영합의 논리로 승패를 가리자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민족적 동질성을 되찾으면서 다시 하나의 민족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대화이다. 이러한 남북대화에서 어느 한 편이 완전히 플러스가 되게 하거나 어느 한편이 마이너스가 되게 하는 대화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은퇴한 한 노정객에게서 들은 얘기다. 지난 50년대 반공북진 통일정책이 서슬퍼랬을 때였다. 당시 거물정객 낭산 김준연이 어느 주석에서 고담준론끝에 『당장통일이 되는 길이 있는데… 』라며 좌중의 이목을 모았다. 궁금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느 한편이 항복을 하면 되지… 』였다. 우답인지 현답인지 모를 일이지만 평화통일의 「평화」라는 말만 나와도 쇠고랑을 찼을 때였다. 통일논의 자체가 아예 터부였던 시기에 그의 통일론은 만용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사했다. 그의 투철한 반공의식이나 그 풍부한 경륜과 식견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거나 낭산의 이 재담은 대 북한정책에 관한 한 알게 모르게 당시를 지배했던 패배주의에 대한 일침이기도 했다. 이제 남북한의 정치ㆍ군사문제까지 다룰 양쪽 총리회담이 실현되는 단계에 이르렀지만 결국 한반도의 통일논의는 다음 세가지중 하나일 것이다. 첫째 우리의 국력,혹은 저쪽의 그것이 상대보다 몇곱으로 되어 물이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듯이 될때까지 통일논의는 지지부진한 입씨름에 불과할 것이라는 견해다. 둘째 한반도가 통일이 되어도 좋다,혹은 그렇게 돼야한다고 주변의 열강 특히 한반도 유관국들이 인정을 하도록 우리힘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셋째 그들은 결국 남이다. 우리의 일이 우리의 뜻대로 되자면 남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은 그 세가지 견해 모두 통일이 우리민족 지상과제라고 한다면 잠시인들 그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결의의 표명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인지 작금에 걸친 동서독의 급속한 통일과정을 지켜보는 우리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다. 사람들은 유럽의 동서독과 한반도의 남북한이 「분단」에 관한 한 다를 것이 없다고들 한다. 두 경우 다 분단 40여년을 기록했다. 오늘날 통독의 기틀이 된 동방정책은 71년에 시작됐다. 한반도의 남북한이 7ㆍ4공동성명을 낸 것은 72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경제ㆍ사회통합과 국경개방,전독총선,나토 가입이다 해서 통일의 장애요인을 모두 제거했다. 사실상 통일을 이뤘다고 해도 좋다. 왜 이렇게 달라지는가. 저 사람들은 말보다 행동을 앞세웠지만 우리는 말을 앞세우되 행동이 그것을 따르지 못했다. 통일문제에 관한 한 우리들은 입만 열면 통일 통일 하면서도 막상 통일을 위해준비해 놓은 것은 없다. 독일 사람들은 그러나 일관된 행동으로,선전대신 실적으로,감정보다 이성으로 그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동서독을 막론하고 전 게르만민족의 가슴마다에 통일이 이심전심으로 어느 하루인들 메아리 치지 않은날이 없었을 것이다. 양독간 기본조약이 있고 편지 전화가 오가고 경제ㆍ문화적인 동일권이 깨지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런 단계의 초입에도 이르지 못하고 있다. 벌써 18년전 일이다. 남북공동성명이 나오고 남북간에 무언가 될듯이 세상이 떠들썩 했을 때 막상 북한출신 인사들 가운데 불안하고 달갑잖은 표정을 보인 경우가 있다. 통일염원이 뼈에 사무쳤을 그들이 왜 그랬을까. 북쪽을 「믿을 수 없다」는 심정에서 였을 것이다. 워낙 앞뒤가 다른 그들이라 또 언제 어느때 태도가 달라져 「일조유사시」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에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당시 북한측의 남한출신 한 대표는 서울 한복판에서 사뭇 전투적인 목소리로 「김일성주석」을 들먹이고 사회주의 우월성을 선전했다. 실향사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던것이다. 동서독과 남북한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패전은 했지만 그 패전은 동족간의 전쟁이 아니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과거가 없고 한맺힌 증오도 없다. 동족간의 적개심을 갖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상호 비방이나 선동도 없었다. 거기에 자본주의 서독이 사회주의 동독의 경제력을 압도하고도 남았다. 서로가 적개심을 갖지 않은데다 서독이 동독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는데 통합에 반대할 동독인은 한사람도 없는 것이다. ○독일의 19년을 배우자 그 독일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남들 앞에서 싸우지말고 말보다 행동을 먼저하고 무엇보다 서로가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이제 더이상 지난 잘못의 원인을 캐며 서로 잘했다고 나설 것이 아니다. 그 토대위에서 통일 할 수 있다는 각오라면 그 통일작업은 하면 되는 것이다.
  • 한ㆍ소 직통전화 곧 개통/시베리아 광케이블공사 참여도 논의

    ◎소 체신차관 내한 합의 한국과 소련사이에 직통전화가 곧 개통된다. 이우재체신부장관은 19일 방한중인 게르만 코르니예프 소련체신부차관을 만나 양국간 전기통신사업협력문제를 논의한 끝에 한국­소련간 국제자동전화(ISD)회선 개설을 이른 시일내에 실현하기로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코르니예프차관은 양국간의 직통전화회선 개설이 소련측의 국제교환기 용량부족으로 지연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교환기 증설공사가 끝나는 대로 직통회선을 개통시키고자 제의했다. 코르니예프차관은 또 이장관에게 시베리아 광케이블 건설공사에 한국측이 참여해 줄 것과 통신위성개발사업에 양국이 공동으로 참여할 것을 제의했다.
  • 「분쟁요소」제거… 통독 스케줄 순항/서독­파「국경문제」합의의 뜻

    ◎서독,「오데르­나이세 국경선」 인정 확약/국제 정지작업 매듭… 내년 통일 가시화 서독과 폴란드간의 국경문제가 타결됨으로써 연내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는 동ㆍ서독통일작업은 또 하나의 큰 진전을 이뤄냈다.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해 17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2+4회담」(동ㆍ서독+미영불소외무장관 참석)은 현 동독과 폴란드간의 경계인 오데르 나이세 국경을 독일의 통일이후에도 변경없이 그대로 인정한다는 합의를 도출해 냈다. 한쪽 당사자 자격으로 이날 회담에 초청된 크리츠토프 스쿠비스체브스키 폴란드외무장관은 회담결과에 대만족을 표시했으며 다른 참석자들도 역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이날 회담은 또 연내실현을 목표로 추진중인 서독측의 「통독스케줄」을 인정키로 확인했다. 이로써 소련의 「나토속통일」수용조치와 함께 동ㆍ서독통일을 위한 주변정비 작업은 마무리 손질까지 끝냈으며 돌발사태가 없는한 동ㆍ서독의 완전통일이 금년안에 차질없이 실현될 수 있는 국제적 분위기가 마련된 셈이다. 이날 확인된 오데르 나이세국경선은 2차대전직후 포츠담 선언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서 과거 독일땅이었던 포메라니아와 실레시아 등지의 10만3천㎢가 폴란드영토로 편입됨으로써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 특히 당사국인 폴란드는 통독으로 인해 거대독일이 출현할 경우 현영토의 3분의 1이 관련되는 국경문제에 대한 분쟁이 발생될 우려가 크다고 판단,통독작업이 구체화됨에 따라 현국경선의 사전보장조치를 요구해 왔다. 그러나 서독측은 당초 오데르 나이세 국경을 지키겠다는 국제적 약속과 이를 뒷바침할 협정을 체결하자는 폴란드의 요구를 묵살한채 애매한 태도를 보여 왔고 이같은 자세는 폴란드는 물론 통독 자체를 달갑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는 유럽국가들로부터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이같이 국경문제가 통일작업에 방해요소로 부각되자 동서독의회는 지난달 경제ㆍ사회통합 협정을 비준하면서 함께 현 국경을 보장한다는 선언을 채택했다. 아울러 헬무트 콜수상은 기회 있을 때마다 이를 거듭 확인했고 지난번 「2+4회담」에서 프랑스의 제의를 받아들여 폴란드를 초청키로 결정,이번 파리회담에서 양쪽 당사자들의 합의를 바탕으로 통독후에도 오데르 나이세 현 국경선을 보장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 것이다.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비단 폴란드에만 관계되는 사안이 아니다. 이 국경선의 변경은 2차대전 이후에 확정된 유럽전역 각국간의 국경문제에 직결되며 특히 통일독일이 이 문제를 제기할 경우 현 국제질서가 크게 흔들릴 우려를 내포하고 있다. 프랑스ㆍ오스트리아ㆍ소련 등 독일과의 접경국은 물론 여타 유럽국가들이 이 문제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17일의 회담에서 서독측이 현 국경보장 의사를 거듭 확인한 것은 이 문제의 해결없이는 통독작업이 수월치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함께 국제적 약속을 요구하는 폴란드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유럽국가들을 안심시켜 연내 통일을 무리없이 추진하겠다는 의사로 받아들여진다. 16일의 콜­고르바초프회담에서는 「통일독일은 동ㆍ서독과 베를린을 포함한다」라고 확인했지만 17일 파리회담은 이를 더 구체화시켜 국경문제까지 확실하게못박은 셈이다. 이날의 합의에 따라 서독과 폴란드는 국경문제에 대한 협약과 우호친선협정 체결 준비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 국경선 유지에 대한 법적인 지위보장을 위해 협약체결이 필요하다는 폴란드측의 요구에 의한 것이다. 폴란드의 입장에서는 과거 독일 영토인 현 폴란드 땅의 일부에 대한 회복,병합원칙을 담고 있는 서독연방헌법 관련조항이 살아있는한 구두로 하는 약속은 믿을만한게 못된다는 생각인 것이다. 한편 폴란드측은 이번 회담에서 서독측에 대해 2차대전 전쟁 피해 배상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6백만명정도가 희생된 폴란드측의 전쟁피해 배상요구는 그동안 국경문제와 관련하여 두나라간의 현안으로 걸려있는 문제이다. 양국 외무장관사이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정리됐는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서독이 대폴란드 경제원조회담 개최에 합의한 사실 등으로 미루어 보면 이 역시 적절한 타결책이 마련된 것으로 관측된다. 이번 회담에서 서독측이 거론한 과거 독일영토였던 폴란드 땅에 사는 게르만민족 보호요구도 함께 처리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파리회담의 합의사항은 오는 9월12일 모스크바에서 열릴 제4차 「2+4회담」등을 거쳐 보다 구체화된뒤 11월19.20일 파리에서 개최될 예정인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에서 공인되는 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 「통일 독일」의 나토가입(사설)

    소련이 마침내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동의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콜 서독수상과의 정상회담을 끝내고 16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서독과 서방세계의 통일독일 나토가입 주장에 완강히 거부해온 소련의 중요한 태도변화 내지는 양보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 독일 조기통일작업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로써 이미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을 달성한 동ㆍ서독이 오는 12월2일의 동시자유총선을 통해 정치통합의 완전통일을 이루는 길이 순조롭게 되었다. 동ㆍ서독의 통일은 유럽대륙에 거대한 게르만민족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2차대전의 악몽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소련에도 불안한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현상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서유럽은 통일독일을 나토의 테두리속에 묶어둠으로써 거대독일의 탄생이 제기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으며 소련은 거대독일의 나토가입이 소련에제기하는 안보상의 위험을 들어 그것을 반대해 왔다. 이같은 안보상의 위험 외에도 소련은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반대해야 할 이유들이 많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5년간의 개방ㆍ개혁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신사고외교는 동유럽의 상실만 초래했다는 보수파의 비판이 이번 공산당대회에서도 제기되었을 정도다. 소련은 2차대전당시 나치스 독일과의 싸움에서 2천7백만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독을 포함하는 동서유럽의 국경선은 그러한 소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란 것이다. 그것을 이렇다할 대가도 없이 상실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나토 가입반대로 서독과 미국등 서방으로부터 경제지원등의 양보를 최대한으로 받아내려했던 것이다. 콜 서독수상은 이미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결정했으며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1백50억달러의 대소지원을 서방세계에 촉구하고 있다.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에서도 대소 경제지원 원칙이 확인되었으며 그에 앞선나토정상회담에선 소련을 적이 아닌 잠재적인 우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콜총리는 이같은 경제지원 약속과 나토등 서방세계의 대소 인식변화를 기초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회견에서 나토등 서방의 대소 인식변화에 고무되어 반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번 독소 정상회담에서 급부상된 통일독일과 소련간 새 조약 내지는 협정구상도 고르바초프의 결심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이 강화되어 대외문제에 관한 입지가 보다 자유로워진 것도 중요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유럽정세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개에 안도하면서 그것이 한소수교등 아시아와 한반도 정세의 올바른 전개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르바초프 신사고외교에 있어 독일다음에 해결해야 할 중요문제는 세계유일의 냉전유산이 되어버린 한반도 분단문제라 생각한다.
  • 연내 정치통합으로 가는 길(이제 독일은 「하나」:6ㆍ끝)

    ◎4전승국등 이해관계 조정이 과제/대국화 경계… 미ㆍ소,「세력권 묶어두기」고집/파도 국경문제 의구심,새 조약체결 요구/콜,주변국 불안 씻기 분주… 내주 방소땐 거액 차관 『아직 근무수칙이 바뀐게 없기 때문입니다』 「7ㆍ1경제통합조치」를 계기로 용도폐지된 검문소에 소련군초병이 남아 근무하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느껴져 다가가 물어 봤으나 이 병사의 대답은 너무 간단했다. 서베를린과 동독의 포츠담을 이어주는 글리니케다리 검문소의 서방측 검문요원들은 모두 철수했으나 소련군측은 계속해서 근무를 시키고 있었다. 지난달 22일 미ㆍ영ㆍ불ㆍ소등 승전 4개국 외무장관들의 박수를 받으며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체크 포인트 찰리 검문소 자리에도 건물은 없어졌으나 미국의 성조기가 여전히 펄럭이고 있었다. 달라진게 없다는 소련군병사의 얘기나 베를린 하늘에 나부끼고 있는 성조기는 바로 동서독의 통일문제에 얽힌 복잡한 국제관계의 일면을 증명해 주는 것들이다. 경제ㆍ사회통합협정의 발효로 지난 1일부터 실질적인 통일상태를 구현한 양독은 올해안에 완전통일을 이룩한다는 공동목표를 설정해 놓고 마지막 일정인 정치통합작업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다. 금년내에 통일완수를 위한 전독총선을 실시하자는 서독측의 제의에 확답을 피해 오던 동독은 지난 2일 서독측의 요구를 받아 들이면서 오는 12월2일 총선을 실시하자고 제의,해가 가기전에 통일독일이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될 것이 거의 확실해졌다. 그러나 정치통합일정에는 국제관계 조정이라는 필수적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들어 있다. 동서독의 통일문제가 대두되자 유럽 정치지도자들은 『독일민족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일』이라면서 짐짓 관대하고 아량있어 보이는 태도를 나타내며 관여치 않겠다는 말을 해 왔다. 그러나 양독의 통일을 단순한 독일민족 내부문제로만 보는 유럽사람들은 거의 없다. 분단된 동서독이 하나로 합쳐진다는 것은 바로 「거대독일」의 탄생을 의미하며 그것은 국제정치역학의 대변혁을 초래한다는 것이 유럽사람들의 시각이다. 게르만민족의 팽창주의에 숱한 시련을 겪어온 주변 나라들은 단단히 죄였던 고삐가 풀리는 상태로 밖에 볼 수 없는 통독에 환영의 박수만을 보내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에 대해 찬성하고 축하하기는 커녕 분단상태가 가능한 한 더 오래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있다는데 더 솔직한 그들의 심정일 것이다. 동서독의 통일과 관련하여 국제적으로 가장 민감한 부분은 2차대전전승국들과의 관계. 이들의 승인이 없으면 통일국가로서의 독일의 주권회복이 불가능하며 결국 통일은 한낱 꿈에 불과하다는 얘기이다. 미ㆍ영ㆍ불 등 서방 측 전승국들은 통일독일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고 소련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서방측의 입장은 통일독일을 NATO에 묶어 둠으로써 행동의 제약을 가함과 함께 집단통제의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이 빠진 NATO는 종이호랑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이에 비해 소련은 어떤 경우라도 통일독일이 소련의 안보에 위험을 주어서는 안된다는게 기본 입장이며 이의 해결책으로 NATO 및바르샤바 조약기구에의 동시가입 방법을 제의하기로 했었다. 역사의 유물로 밀려난 동서독 국경검문소에 계속해서 근무자를 배치하고 있는 소련은 병사의 말대로 통독문제와 관련하여 아직 결정적인 자세의 전환이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평소 『소련을 무시한 통일은 안할 것』을 강조해온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다음 주중 다시 모스크바를 방문할 예정이다. 이번 그의 방소길에는 이례적으로 테오 바이겔 재무장관이 수행한다. 서방언론들은 『바이겔장관의 가방에는 미국이 알래스카를 살 때 보다는 훨씬 많은 돈이 들어 있을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며칠전 서독정부가 소련에 30억달러의 차관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일방적인 발표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본다면 아마도 본정부는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의 돈을 통일승인의 값으로 소련에 지불하려는 것 같다고 현지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의 NATO 개혁용의 표명이나 이미 정치기구로 탈바꿈하기로 한 바르샤바조약기구의 개혁결정등은 통독을 위한 호재로 작용할 것임이틀림없다. 통독작업 진행과정에서 걸림돌 역할을 해오던 오데르 나이세 국경문제는 지난달 22일 동서독 의회가 『동서독은 현재 또는 미래에 영토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함으로써 일단 표면적으로는 잠잠해 졌다. 그러나 당사국인 폴란드는 조약체결을 희망하고 있는데다 그동안 동서독이 보여온 애매한 태도때문에 주변나라들은 의구심을 풀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밖에도 통독은 결국 동서독간의 「국경선을 변경」하는 것이므로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또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합되므로 해서 동독지역은 자동적으로 EC(유럽공동체)가입효과를 취하게 되지만 동독과 코메콘(동구경제상호원조회의)과의 관계는 미묘한 문제점을 발생시킨다. 이에 대해 현재의 동서독 정부는 의무와 약속을 다할 것을 다짐하고 있으나 통일 뒤 그 약속이 과연 지켜질 것인가에 대해 당사국들이 확신감을 가지고 있는지가 문제이다. 이와 같이 소련을 포함한 전승국들의 입장,주변나라들의 이해와 협조등 국제적인 이해관계의 조정이 앞으로 남은 통독완결작업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 사실상의 통일 독일 탄생(사설)

    독일의 통일이 마침내 확고한 눈앞의 현실로 달성되어 가고있다. 동독의 경제를 서독경제에 흡수시키는 동ㆍ서독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 국가조약」이 1일 정식 발효되었으며 동시에 지난 40여년 동안이나 동ㆍ서 독일과 베를린을 분단시켜온 국경이 완전소멸되었다. 독일인들은 이제 단일경제권에서 같은 화폐를 사용하며 동ㆍ서독을 마음대로 내왕하는 통일국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의 통일인 것이다. 그것이 통일이 아니면 무엇이 통일이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12월 초순으로 예상되는 동ㆍ서독 동시자유총선의 실시와 그 결과에 따라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정치통일의 형식절차 뿐이다. 양독 정치지도자들은 금년내에 완전통일을 달성할 결심이며 그것을 막을 장애요인은 돌발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없는 것 같다. 통일 후의 군사적 지위와 관련,통일 독일의 나토잔류에 대한 소련의 거부도 그렇게 완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ㆍ영ㆍ불ㆍ소 전승 4대국에 분할점령당했던 패전 독일이 49년 동ㆍ서독으로 분단 독립한 이후 40여년 만에 이루어지는 독일의 통일이다. 작년 11월9일 세계를 놀라게한 베를린장벽 붕괴 7개월 만에 달성되는 게르만민족 40년 비원의 통일인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때만 해도 독일의 통일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져 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모든 예상은 빗나가 버리고 독일의 통일은 어느새 우리 눈앞의 현실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여러가지 여건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미소냉전의 희생물로 민주ㆍ공산 대립의 분단국인 우리의 입장에선 그러한 독일의 조기통일 달성을 환영하고 성원을 보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통일에 대한 우리의 감회가 부러움만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한 나라다.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가 먼저일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냉전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통일은 독일쪽에 먼저 오고 있으며 한반도는 오히려 더 얼어붙고만 있는 통탄할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은 문화전통이 다르고 소련의 영향력에도 차이가 있으며 또 개혁중단의 중국이 있다는 등등이 한반도의 통일분위기 조성을 늦게 만드는 이유들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통일에의 의지와 준비면에서 우리가 서독의 경우보다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반성을 떨칠 수 없다. 6ㆍ25를 비롯,북한에 의해 야기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남북한은 그동안 대결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서독은 대결과 갈등속에서도 모든 일에 있어 통일에 대비해 왔음이 최근에 와서 계속 입증되고 있다. 서독 헌법은 제정될 때 이미 통일을 상정한 23조가 마련되었고 통일의 조건인 국민적 동질성 유지를 위한 인적ㆍ물적 교루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TVㆍ라디오방송은 있는 그대로 상호시청되었고 어느 쪽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았다. 서독의 동방외교는 우리의 북방외교보다 20년이 앞선다. 72년에 이미 동ㆍ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다음해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돈으로 통일을 샀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통일에 결정적 수단이 되고 있는 서독의 경제력축적도 따지고 보면 통일에 대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가 왔을때 모든 것을 다 동원한 총체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세계는 물론 그들 자신도 놀라는 급속한 통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독까지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위한 자기부정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독일의 통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초조해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통독의 교훈을 거울삼아 꾸준히 노력하면서 반드시,그리고 멀지않은 장래에 오게 될 것이 틀림없는 기회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 동ㆍ서독 「경제사회 통합」하던 날/베를린=김진천특파원

    ◎“게르만 최고의 날”… 헐린 장벽터엔 환호물결/“마음의 벽도 뚫었다”… 새 독일건설 기대/동베를린 지점엔 자정부터 “환전 인파”/국경표지판ㆍ동독화폐 등 “분단상징”수집 열풍 1일은 드디어 동서독이 하나된 날. 이미 헐려버린 장벽,의미를 상실한 경계선,그리고 새로 이어진 옛길등 분단의 실체를 확인시켜 오던 가시적 장애물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으며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동서독 주민들간의 마음의 장벽이 말끔히 제거됐다는 점이다. ○「자유왕래」실감 사람도 자동차도 강아지도 그냥 넘나든다. 「자유왕래」 바로 그것이며 이제 베를린은 하나,독일은 통일됐다는 사실을 현장확인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동베를린 시가지의 분위기도 종전과는 달리 생동감 있게 느껴지는 것도 활기를 찾은 주민들의 모습 때문인 듯 했다. 브란덴부르크문 근처에서 만난 동베를린 거주 베르너 슈바베씨(67)는 「독일인」이된 오늘을 기념하기 위해 동서쪽으로 나뉘어 살던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이자리에 모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두기로 했다고전하면서 『잘사는 서쪽의 친척들을 부러워만 하던 시절은 지나갔으며 이제는 우리도 넉넉해질 것』이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동베를린 시내에서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같이 민족재결합의 실현에 환희의 표정을 감추지 않았으며 잘사는 나라 서독인이 된 긍지와 밝은 미래에 대한 희망에 넘쳐 있었다. ○45년만에 자유통행 ○…동독측은 동서베를린의 장벽에 설치된 검문소의 철시는 물론 양독사이의 국경선과 서베를린과 동독사이의 장벽검문소,서베를린과 서독을 연결하는 고속도로상의 검문소 등 모든 검문소를 지난 28일부터 철수시켰다. 이같은 조치에 따라 종전 1시간 이상씩 걸리던 각검문소나 국경통과 지점은 30일 일반도로와 마찬가지로 차량소통이 수월하고 자유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동독과 서베를린 사이의 포츠담 검문소의 베르너 니처조장은 『1일부터 실시될 자유통행의 예행연습을 위해 지난 28일부터 검문을 안하고 있다』면서 『1일부터는 검문소직원 5명중 1명만 남기고 모두 다른곳으로 옮길 예정이며 남아있는 1명도 종전과 같은「검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일국민」에 대한 서비스를 위해서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독에서 가장 먼저 환전을 시작한 은행은 서독의 도이치방크 동베를린지점. 도이치방크는 동베를린 중심부인 알렉산더 광장 바로옆 건물에 사무실을 얻어 1일 0시 동베를린지점 개설과 동시에 환전을 개시했다. ○휴일없이 환전업무 도이치방크 동베를린 지점 앞길은 은행이 문을 열기전부터 환전을 하기위해 몰려든 동독인들의 행렬로 꽉 메워졌으며 각국에서 몰려온 보도진들은 역사적인 최초 환전모습을 스케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라이너 그램제 지점장은 『오늘을 위해 15일전부터 준비를 해왔으며 2일 자정까지 48시간 쉬지않고 환전업무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동독의 시중은행인 스파르타카스은행의 90개 지점과 폴크스방크의 20개 지점등 동베를린내 1백10개 은행지점들은 휴무일인 30일에도 은행예금 확인증을 발부하기 위해 정상근무를 했다. ○“고액예금주는 보고” ○…동독 의원들은 거액을 모은 전 공산당 간부들이 화폐개혁으로이익을 챙기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의 하나로 10만마르크 이상의 구좌를 갖고 있는 예금주들의 이름을 보고하도록 국영은행에 요구. 관리들은 동독인들이 서독 마르크를 손에 쥐면 흥청망청 낭비,인플레를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검약을 거듭 당부. ○백화점엔 쇼핑 행렬 ○…역사적인 동서독 경제ㆍ통화통합을 하루 앞둔 30일 동독의 상점들에는 몇시간만 지나면 무용지물이 될 동독 마르크화의 잔여분을 자정이전에 다 소비하려는 동독 주민들로 북적댔다. 동베를린시 중심에 있는 알렉산더 광장에는 주머니에 남은 잔돈을 처분하려는 사람들로 시끌벅적 했으며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과 상인들은 광장 곳곳에 물건을 실어나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또한 거리의 악사들도 쇼핑객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축제분위기를 더욱 돋우기도. ○…동베를린시내 첸트룸 백화점 근처에는 엄청나게 싼 가격에 판매되는 동독제 의류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동쪽」고객맞자 채비 ○…서베를린 백화점과 가게들은 다음주부터 새돈(서독 마르크)을가지고 몰려들 「동쪽」고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만반의 대비. 동독인들은 새돈으로 장난감ㆍ식생활용품을 비롯,컬러TV와 VTR등 전자제품을 주로 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서베를린의 소규모 가게들은 직원들의 휴가까지 미루며 D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일을 기해 동서국경이 철폐됨에 따라 국경에서의 여행자 검문이 사라지게 되는데 경비초소나 장애물 등은 기념물로 보존될 전망. 그런데 국경지대에 설치돼 있던 각종 표지판 가운데 80%가 이미 수집가들에 의해 「도난」당한 상태라고. ○…통화통합으로 동독마르크는 이제 자취를 감추게 됐으나 한편에선 이 화폐에 대한 수집붐이 일고 있다는 소식. 특히 동독 마르크 주화의 경우 외국으로부터 주문이 밀려들고 있는데 풀세트는 한화 2백만원 상당에 거래된다고. ◎동ㆍ서독 통화통합조치 ▲서독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은 2백43억마르크(1백47억달러)에 해당하는 6백t의 지폐 4억장과 7억마르크(4억2천4백달러)에 해당하는 동전 5억개를 동독에 있는 13개 주은행에 수송,동독에서 필요한 초기의 화폐수요는 2백50억마르크(1백51억달러)정도로 예상. ▲동독은 3천여개의 은행 본ㆍ지점과 우체국ㆍ철도역ㆍ관광사 등 7천여개 환전소에 이같은 물량의 서독 마르크화를 배부,1일 9시부터 통화교환. ▲2만5천여명의 직원이 있는 동독 중앙은행은 지난 수주일동안 시민 개개인에 은행구좌를 개설해 주기 위한 작업을 벌여 왔으며 서독 중앙은행은 이같은 작업을 도와주기 위해 2백50명의 자문관을 파견. ▲동독의 경제전환에 따른 경제적 동요를 방지하기 위해 총 1천3백억마르크(7백88억달러)가 제공될 예정. ▲현재 동독에는 약 1백30억 동독 마르크가 유통되고 있는데 7월6일까지만 유통가능.〈AP〉 ◎「통합」을 보는 각국표정/시장경제 적응 낙관 동독/몇년간은 고통 겪어 영국/역사적인 변화 시작 일본/번영의 터전을 마련 서독 ○…로타르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를 포함한 일부 세계 정치지도자들은 30일 오는 1일부터 전격적으로 발효되는 동서독의 경제 및 통화통합이 성공을 거두게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데 마이치레 동독 총리는 이날 함부르크에서 가진 주간지 빌트 암 존타크지 최신호와의 기자회견을 통해 『동서독의 경제통화통합은 성공적으로 수행될 것이다. 나는 동독인들이 시장경제로의 전환에 잘 적응해 나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더글라스 허드 외무장관은 이날 보수당 지지자들에게 행한 연설을 통해 영국은 유럽내에서의 경제통합을 지지하고 있다고 밝히고 독일의 경제통화통합은 『비록 동독인들이 몇년동안은 경제재건의 고통을 겪게 되겠지만 결국에는 성공을 거둘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나카야마 다로(중산태랑) 외무장관도 『동서독 통일 움직임은 대립의 시기로부터 유럽이라는 질서안에서 협조라는 역사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면서 양독의 통화통합을 환영했다. ○…한스 디트리히 겐셔 서독 외무장관은 동독의 할레시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90년 7월1일은 희망과 결단력 있는 행동의 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동독인들이 적극적으로 경제통합에 대처해 나갈 것을 촉구했다. 헬무트 하우스만 서독 경제장관도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도처에 산적해 있지만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사회보장ㆍ환경보호 그리고 번영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서독의 야당 및 노조 지도자들은 경제통합조치로 인해 동독 노동자들이 절망과 곤란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이날 경고했다. ○…미국은 동서 양독간의 경제통합이란 거보가 1일 내딛게 되는 가운데 진행되고 있는 동구권 개편으로 말미암아 그동안 별문제 없었던 외채도입에 새로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고 금융전문가들이 최근 경고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독일 통일이 미국 기업들에게도 새로운 사업기회를 약속하고 있지만 미정부의 입장에서는 외채를 제때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 “물가서 외교까지”… 「보통사람」들과 국정토론

    ◎「국민과의 대화」 2시간34분/사회자없이 진행… 경제정책등 신랄한 질문 쏟아져/치안대책 호소하자 배석한 관계장관 다그치기도 6·29선언 3돌을 맞은 29일 저녁 노태우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 보통사람 1백20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각계 인사 12명과 국정전반에 관해 「국민과의 대화」를 가졌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부터 9시34분까지 2시간34분동안 별도의 사회자없이 직접 사회를 보면서 장바구니 물가에서부터 통일정책에 이르기까지 국정의 모든 분야를 훑어가 일면 축소판 국회같기도 하고 또 일면 도란도란 마을살림을 얘기하는 반상회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노대통령은 토론자들이 질문을 할때면 볼펜으로 열심히 메모를 하는가 하면 이따금 따가운 채찍질문이 나올 때는 왼손으로 가볍게 턱을 받치며 곤혹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다. ○…이날 노대통령은 「발전과 국민통합의 90년대를 향하여」라는 제목의 서두연설을 20분간에 걸쳐 한 뒤 토론자 좌석으로 걸어나와 일일이 악수를 나누고는 『이런 자리는 처음 가지지만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얘기를 기탄없이 해달라』고 주문. 노대통령은 첫 질문자인 곽영훈씨(47·건축가)가 『6·29선언의 청사진대로 민주의 집이 제대로 완성됐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동안의 변화된 국제위상을 설명한 뒤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될 수 없는 것』이라며 최종평가는 역사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 답변. 서경석목사(42·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회 사무총장)가 『정부는 KBS사태도 공권력으로 밀어붙이고 CBS방송에 대해 다시 규제하려든다』며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신랄하게 질문하자 노대통령은 그동안 비민주적인 요소가 있는 법 1백47개 가운데 1백39개가 여소야대 상황속에서 고쳐졌다고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며 선방. 노대통령은 부동산투기 문제에 답변하면서 『얼마전 MBC의 또ㅁ방각하라는 프로를 보았는데 허황된 부동산에 대한 투기심리가 잘 묘사되고 있더라』며 투기근절을 다짐. 서울대 철학과4년에 재학중인 이원영군(22)이 『저는 대학생의 대표는 아니고 아주 평범한 보통대학생가운데 한사람』이라고 말머리를 꺼내자 노대통령은『잘 만났군요. 보통대학생과 보통대통령이 만났으니…』하고 받아 장내는 폭소가 터졌다. 이군이 우리 사회의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자 노대통령은 로마의 역사를 예로 들어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켰을 때 그 국력이 절정에 올랐지만 이를 고비로 멸망의 길로 걸었는데 게르만민족의 이동으로 망했다고 하지만 더 큰 내적인 원인은 바로 도덕성의 타락때문이었다』며 지도층의 수범자세를 강조. 노대통령은 주부 근로자 회사원 일반시민 등이 자리잡은 방청석을 향해 『도덕성 문제에 대해 토론자이외에 말씀하실 분 있으면 해보시지요』라고 요청하는등 여유를 보였으나 질문자는 나오지 않았다. 종업원 38명을 데리고 있는 중소기업인 풍국공업사장 최진식씨(48)가 제조업 분야의 인력난을 호소하자 『요즘 청와대에서는 몇개 공사를 하고 있는데 심지어 청와대공사에도 인부 구하기가 힘든 실정』이라며 공감을 표시. 권인숙양 재판특별검사로 이름을 날린 조영황변호사(49)는 『제가 이 자리에 나온다니까 많은 사람들이 거기 가면 들러리가 된다며 만류했다』면서 『오늘 이 자리가 진정한 대화의 장소가 되어야 저의 입장이 현상유지라도 된다』고 말해 장내는 또 웃음. 노대통령은 지난 85년에 여고를 졸업,서진전자 청주공장 생산진도조장이 된 이미영양(23)이 『여성근로자들이 일을 마치고 밤늦게 돌아갈 때 안심하고 다닐 수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하자 국무위원석에 있는 안응모내무장관에게 『공단주변에 고약한 폭력배들이 날뛰고 있는 상황을 잘 알고 있지요』라고 다그치며 『공단주변의 우선적인 치안확보 계획을 수립해 나에게 보고해 달라』고 즉석 지시. 신한은행대리인 은행원 송선열씨(34)는 질문에 앞서 『가까이에서 보니까 대통령의 귀가 정말 크다』고 말해 좌중을 웃겼고 전교조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휘문고교사 임형재씨(41)는 과열입시 교육비부담 교원의 사기 전교조 등 교육문제에 대해 소나기 질문. 노대통령은 물가얘기를 하면서 『주가가 올라가더라도 대통령한테 고맙다는 소리 한마디 안하면서도 주가가 떨어지면 그렇게 욕이 많이 나와요』라고 말해 장내는 세번째 폭소가 터지기도. 노대통령은 8번째 질문자인 영농후계자 출신 이현복씨(32)가 개인사정을 곁들여 농촌의 어려운 실정을 설명하며 농촌대책에 대해 질문하자 『이군의 말은 나 자신 옛날에 농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가슴을 많이 울려준다』면서 『이번에 호우가 왔는데 수해는 없느냐』고 묻고 이씨가 『보편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다행이군요』라면서 이씨의 질문에 답변. 노대통령은 전세집에 살고 있는 동일재봉사 노조위원장겸 한국노총안산지부 사무국장 김천재씨(38)가 근로자의 주택문제등 어려움을 말하자 근로자주택 건설계획을 설명한 뒤 『50만∼60만원 봉급자가 자기돈 천만원으로 장기저리융자를 받아 집을 마련할 수 있으므로 김위원장도 곧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 노대통령은 12명의 질문자에 대한 답변을 마친 뒤 『오늘 많은 분들의 기탄없는 말씀을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했고 아주 유익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감사의 뜻을 표명하고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얘기를 듣고 만나고 또 여러가지 하시는 일들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 여러분들과 고통도 기쁨도 같이 나누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 노대통령은 이어 『아까 서목사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국민의 뜻을 받드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을 6·29선언 3주년을 맞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다짐한다』고 강조하고 「국민과의 대화」를 마무리. 청와대당국은 대통령과 직접 토론한 인사 12명 가운데 곽영훈씨와 유화선씨 등 2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10명은 KBS·MBC 양 TV사에 추천을 의뢰해 선정. 특히 유씨는 얼마전 신문에서 「국민과의 대화」 예고기사를 보고 청와대대변인실에 전화를 걸어 『내가 그 자리에 나가 꼭 한마디 할 게 있다』며 방청을 간청해 청와대측이 토론자로 선정했다는 후문.〈이경형기자〉
  • 통일기대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1)

    ◎「냉전의 벽」넘어 게르만이 새로 난다/경제ㆍ사회 통합따라 동독 “국가해체”가속/「정치통합」남았지만 「분단아픔」역사속에/「거대국가」출현에 이웃나라선 경계의 눈초리 동서독이 7월1일부터 발효되는 경제ㆍ사회통합을 시작으로 「새로운 유럽 평화질서의 창조」로 의미되는 독일 재통일의 장도에 들어섰다. 타의에 의해 갈라섰던 동서독의 이같은 하나됨은 전후 반세기 가까이 지속돼온 동서 냉전체제의 종언을 알리는 첫 신호이자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 본지는 김진천 파리특파원을 독일에 급파,현재의 뜨거운 통일에의 열정과 그들에게서 배워야할 교훈을 발굴하는 긴급시리즈를 마련했다.〈편집자〉 「통일」,거의 반세기에 걸친 독일 민족의 염원이 드디어 실현된다. 1990년 7월1일­ 남의 뜻에 의해 나뉘어지고 등돌려 살아오던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을 기해 양독간의 경제ㆍ사회통합 협정이 발효됨으로써 실질적으로 다시 하나가 되는 것이다. 민족분단의 비극 45년만에 처음 느끼는 감격이며 베를린 장벽을 쓰러뜨리고 공산정권을 몰아낸지 7개월만에 이룩해낸 쾌거다. 완전통일까지는 아직 정치통합이라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하나로 묶인 양쪽 시민들의 경제ㆍ사회생활에 있어 나머지 순서는 그리 대수로울게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일에의 마지막 수순인 정치통합이 올해안에 실현될 것이 거의 틀림없는 상황이지만 오히려 그때 보다는 양독간에 통일을 위한 공식적인 첫 조치가 취해지는 이날 7월1일을 「통일의 날」로 하자는 성급한 주장이 진한 호소력을 갖는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경제통합은 동독의 경제주권 상실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동독화폐의 가치와 효력이 소멸되고 서독의 마르크화가 단일통화로써 유통되게 된다. 또한 동독에서도 개인의 소유권이 인정되고 자유경쟁ㆍ자유물가 제도가 실시되며 노동ㆍ자본ㆍ상품 및 용역의 수급에 있어서도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특히 이와 같은 통합원칙에 맞지 않거나 사회주의국가 및 사회기반을 형성해 온 동독의 헌법조항들이 사문화된다. 통화통합에 따른 발권은행은 서독의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이며 이 은행은 앞으로 동서독 전체의 통화공급과 여신수준을 총괄한다. 사회통합은 노동3권의 보장,사회복지제도 등 서독이 시행하고 있는 각종 제도를 동독에서도 함께 실시토록 했다. 이번 조치를 동독쪽에서 보면 국가해체작업의 착수를 의미한다. 국가기능의 유지를 보장하고 있는 헌법이 부분적으로 효력을 상실하게 되며 또한 경제주권이 서독에 이양됨과 아울러 각종 사회제도가 서독과 합쳐진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 분야에서 국가로서의 동독은 이미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국가가 사라지는 마당에 종전에 이나라를 지배하던 공산주의 이데올로기가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게됐음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여러차례 민족이 갈라졌고 주변 나라들에 의해 통일을 방해받아온 독일민족으로서는 이번 조치가 45년만의 분단해소 착수라는 단순한 감격과 흥분의 차원을 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금세기안에는 불가능한 것만으로 그리고 1년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동서독의 통일논의가 촉발된 것은 바로사회주의 경제의 몰락과 공산독재정권 압제에서 벗어나려는 지난해 11월의 동독 국민들의 시위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서독의 경제ㆍ사회통합 실현은 독일의 재통일이라는 측면외에 동서의 냉전체제가 실질적으로 끝났음을 알리는 첫 신호음이며 동구개혁의 값진 열매로 치부되고 있다. 전후 냉전시대를 상징해온 베를린 장벽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동독측은 이번 경제ㆍ사회통합조치의 실현에 맞추어 이달들어 지난 61년 베를린장벽 설치로 단절됐던 동서독간의 모든 도로망의 복원작업을 펴왔으며 오는 2일까지는 양독 연결도로를 막고 있는 장애물들이 모두 제거된다.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바로 「경제대국 독일」의 출현을 의미한다. 게르만민족에 의한 피침의 쓰라린 과거의 경험을 안고 있는 이웃나라들은 통독에 따라 다시금 독일민족의 세력 확대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독일의 비대는 자칫 유럽의 세력균형을 흔들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가 유럽통합을 주축으로 한 EC(구주공동체)의 기능 강화를서두르는 것도,폴란드가 국경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속셈도,소련이 통독의 나토 잔류를 반대하는 이유도 모두 거대 독일에 대한 두려움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 동서독 국민들은 이날부터 실질적인 통일을 경험하며 「한나라」로의 완전통일을 향해 다시 남은 걸음을 재촉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ㆍ사회통합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며 양쪽의 지도자나 국민들이 겪게 될 어려움도 만만치가 않다. 이러한 장애요인들을 여하히 극복하느냐가 마지막 남은 통일작업의 수순을 결정하는 가늠자가 될 것이다.〈베를린=김진천특파원〉 □동서독 주요일지 ▲45. 5. 8 나치독일 항복. 미ㆍ소ㆍ영ㆍ불 독일분할통치 ▲48. 4. 소,서베를린 봉쇄 ▲49. 5.23 서독 정부수립 ▲49.10. 7 동독 정부수립 ▲55. 5. 서독,나토가입. 동독,바기구 가입 ▲61. 8.13 동독,베를린장벽 구축 ▲72. 양독,외교관계수립 ▲87. 호네커 동독공산당서기장 첫 서독방문 ▲89. 1. 8 동독인들 대량탈출 시작 ▲89.11. 9 베를린장벽 붕괴. 동독국경 개방선언 ▲90. 2. 6 동독,비공산연립정부출범 ▲90. 2.13 동서독 통화단일화추진합의 ▲90. 3.18 동독총선. 기민당승리 집권 ▲90. 4.23 서독,화폐 1대1교환 동의 ▲90. 5.18 양독,경제ㆍ사회통합협정조인 ▲90. 6.17 동독 국가해체작업 시작 ▲90. 7. 1 동서독 경제ㆍ사회통합 실현
  • 「한일 신시대」 전개의 전제조건 특별기고/이기탁 연세대교수ㆍ정치학

    ◎일본은 아시아의 의구심 떨쳐라/「통석」의 기교론 새질서 개편의 주역 될 수 없어 한일관계는 아시아의 상징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패전 후 처음으로 일본은 일본의 국제적인 지위를 점하려는 전환점에 이르고 있다. 일본은 장기적인 전략이라는 관점에서 아시아정책과 일본의 역할을 가늠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빼앗겼던」 아시아에서 미국이 다시 후퇴를 하게되는 「힘의 공백」을 일본이 메우기 시작하려는 힘의 논리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번 노태우 대통령의 방일은 어떤 의미와 윤곽 속에서는 「도쿄외교」이지 「서울외교」의 성격은 없는 것이다. 유럽이 독일을 중심하여 돌기 시작한다면 아시아가 일본을 중심하여 돌아가게 할 수도 있다는 일본의 새로운 야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연합헌장에는 아직도 엄연히 「적국조항」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중부유럽,즉 「독일의 재등장」은 일본에 깊은 영향과 격려를 주고 있는 것이다. 독일이 고르바초프와 대결하고 타협하여 승부에 이겼다면 이제 일본이 고르바초프를 극동에서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된다. 여기에 일본외교의 전후 대전환점을 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일본외교는 전후 「소련의 위협」을 전제하여 미국과의 동맹을 통하여 「안보무임」을 실천할 수 있었고 오늘날 또 하나의 명치 이래의 일본의 이상인 「부국강병」을 이룩할 수 있었다. 이제 고르바초프를 극동으로 끌어내 「소련의 위협」과 타협할 수 있다면 일본의 전후는 끝나는 것이다. 이는 퇴조하는 미국의 공백을 메우기만 하면 된다는 것과 상쇄되는 일본외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외교의 대아시아정책의 시발점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연설에 「우뢰와 같은 박수」라는 일본의 특징과 성격에서 보듯이 우리는 처음부터 일본외교의 「들러리」를 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가 있다. 이번 방문은 확실히 한일간 외교문제의 의미는 있다. 또한 한일간의 우호관계는 우리에게 있어서 한미동맹과 함께 앞으로도 필수적인 우리외교의 기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번 일본의 노대통령 초청 외교는 단순한 한일간의 외교만의 차원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일본의 대아시아외교의 시발의 일환이라고 깊이 관측해야 한다고 본다. 유럽에서의 대변화 즉 「독일의 통일」과 유럽이 다시 독일을 중심하여 움직이기 시작할 수 있다는 세계적인 차원의 「새로운 질서」에 일본이 참여하고 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하려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독일문제」와 아시아에서의 「일본문제」간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특히 우리입장에서는 명심해야 한다. 일본문제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 대외정책의 하나이다. 다른 아시아국가와 달리 일본에 직접 「식민지」의 노예가 되었었고 또한 앞으로 복잡한 통일을 지향하면서 민족의 진로를 잡아야할 우리의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관계는 깊은 영향을 받게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속의 전후 독일에는 철저한 「비 나치화」정책(Entnazifizierung)으로부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지금도 나치의 범죄가 나타날 때에는 형법의 시효는 없다. 과거에 죄가 없는 독일학생들이 유럽학생들과 모였을 때에독일제국군대의 구호인 「아인 츠바이」(하나 둘) 구호가 농담으로라도 나오면 불쌍하게도 침묵을 지키고 있어야 한다. 이에 반하여 오늘의 일본은 전후 동경재판소의 전범(Class A)으로 구분되어 스가보형무소에 수감됐던 하토야마,기시,이케다,사토가 차례로 출감하여 총리에 올라서서 만든 일본인 것이다. 이점에서 오늘의 아시아에서는 독일문제와는 판이하게 「일본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아시아에서는 대륙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일본문제」가 가려져 있었으나 이제 「일본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또 일본이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문제」는 경제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아시아에서는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국가들은 이제 아시아의 이데올로기문제가 걷히면서 등장하려 하는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정면으로 직면하게 된 것이다. 한국외교는 냉전 하에서는 도리어 「한미동맹」으로 한국전쟁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과의 외교관계를 「균형」시킬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남북한 모두가 일본이라는 파워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진실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동시에 일본에 있어서는 일본외교의 대아시아외교의 첫 시발이며 관문인 「조선반도문제」를 어떻게 시발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의 외교가 아니라 일본의 대내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통석」이라는 일본의 「오도리」춤에서 보는 섬세하면서도 기만적으로 보이는 언어의 기교에서 보듯이 기교로만 끝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오늘날 일본이 아시아의 장에 떳떳한 역할을 갖고 나서려 할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국민의 「가치체계」라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은 경험없이 전후 일본의 대동아공영권을 메워 이를 경영하느라 많은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서 그나마 미국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가치체계」였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아시아를 부분적으로나마 지배하였고 또 우리는 이를 위해서 헌신하여 온 것이다. 반면 일본이 과연 미국과 같은 가치체계를 갖고서 이제 아시아에 접근하려 하고 있는지 한국과 아시아 모두가 깊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이나 아시아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국민이 역사를 반추하고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보아야 한다. 한가지 다시 독일문제와 비교하여 말할 수 있는 것은 행여 제1차세계대전 이후의 게르만의 멘탤러티를 일본국민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이며 아시아의 관찰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 한반도 통일과 미소의 책임(사설)

    세계는 지금 크고 엄청난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 소련에서 비롯된 공산주의체제의 몰락이 가져온 세계질서 재편의 소용돌이다. 전후 45년의 냉전질서가 붕괴되고 미소 화해와 협력의 새 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냉전 질서의 상징인 이 한반도에서만 유독 변화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유럽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동서독통일 노력의 순조로운 진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정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소ㆍ동유럽 민주화 개혁에서 미소해빙을 거쳐 동ㆍ서세계의 화해및 베를린장벽 붕괴,그리고 동서독의 사실상의 통일상태라는 일련의 상황이 일사천리로 전개되었다. 통독의 경우 특히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세계적인 관심이다. 미ㆍ영ㆍ불ㆍ소의 이른바 전승 4대국과 동서독이 참여하는 통독문제 논의 6개국 회의까지 구성이 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한반도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대했고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반도문제에 대한 국제적 내지는 미소의 관심과 노력이 보다 고조되고 강화되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민족과 한반도는 전후 미소냉전 질서의 최대ㆍ최악의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분단은 미소냉전에도 원인의 일단이 있지만 전쟁을 일으킨 게르만민족 자체에 큰 원인과 책임이 있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는 상황이 크게 다르다. 분단의 책임은 주로 미소냉전의 이데올로기 싸움에 있는 것이었다. 죄가 있다면 일제의 식민지였다는 사실밖에 없는 것이다. 그 미소냉전은 해소되고 있고 이데올로기 싸움은 사회주의의 패배로 일단 끝장이 났다. 그리고 동서독의 분단상태는 사실상 이미 해소되었으며 형식적인 통일절차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소냉전의 유산인 남북대결의 분단상태만 완화는 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는 것은 모순이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냉전의 주역으로 한반도분단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소련,특히 소련은 동서독 통일에 대한 관심보다 훨씬 더 큰 관심과 노력을 한반도 통일내지는 긴장완화에 돌려야 할 것이다. 「결자해지」란 말을 거론할 필요도 없이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남북한 당사국 다음으로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은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했으나 북한은 요지부동인 상태이며 온갖 구실을 동원해 대화를 중단시키고 의도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공존 그리고 종국적인 통일분위기 조성을 위해선 미소등의 국제적인 지원노력의 강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주 중 파리에서 개최되는 미소 외무차관급 「아태지역 협의회」에서 한반도의 평화보장책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환영할 움직임이다. 지난 2월10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을 강조한 미소외무장관회담 이후 처음 열리는 실무적 회담이란 점에서 주목되기도 한다. 유엔등에서 한국과의 접촉을 증대시키고 있는 소련의 북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영향력 행사를 촉구하고 싶다. 한반도문제 해결을 위한 미소및 남북한 4국회의라도 구성했으면 한다.
  • “통독 장애물”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유럽의 새 이슈로 부상

    ◎“현국경 유지 보장 못해”… 서독태도에 주변국 초긴장/당사국 파,강력 반발… 영ㆍ불도 헬싱키협약 준수 촉구 헬무트 콜 서독 총리는 25일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통독작업과 관련,현재의 국경선을 변경시킬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콜 총리의 이같은 발언은 유럽의 현 국경선은 불가침이라는 부시 대통령의 언급에 대한 답변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통독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폴란드와 동독간의 현 국경인 오데르­나이세선이 통독이후에도 유지될 것이란 약속을 거부하고 있어 주변국들에게 불안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1백90km의 국경을 동독과 접하고 있으며 과거의 「독일땅」을 그 국경안에 보유하고 있는 폴란드의 우려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 깊은 것이다. 따라서 폴란드는 통독이 이루어지기 전에 국경유지에 대한 보장조치가 취해지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를 구체화하여 동서독과 폴란드간에 오데르­나이세국경선을 지킨다는 평화조약의 체결을정식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대한 서독정부의 자세는 시간이 흐를수록 굳어져가고 있는 느낌이다. 서독정부 대변인은 지난 22일,통독뒤에도 현재의 동독ㆍ폴란드 국경선이 준수될 것이라는 보장은 『통일된 독일의 주권에 속하는 문제』라고 밝혔다.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표명한 서독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폴란드의 평화조약체결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며 2차대전 후 형성된 현재의 유럽국경 질서가 통독후에도 유지되어야 한다는 유럽각국의 주문에 대한 답변을 유보하는 것이다. 국경문제와 관련한 서독정부의 경직된 자세는 이웃 유럽국가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안겨주고 있으며 특히 폴란드에게는 「공포」로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폴란드는 현 국경선유지 문제와 관련,「선보장 후통일」주장과 함께 통독문제를 다루기 위한 관련 당사국 「6자회담」(동서독ㆍ미ㆍ소ㆍ영ㆍ불)에 참여 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폴란드는 이와함께 『양독의 통일은 군사적ㆍ전략적 형평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타데우스 마조비에츠키 총리)며 이 때문에 통독 뒤에도 소련군과 바르샤바조약군이 동독에 주둔해야 되며 통독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폴란드에도 소련군이 계속 남아있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의 오데르­나이세 국경선은 1945년 2차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면서 확정됐다. 소련은 폴란드의 동쪽 렘베르지방을 점령하는 대신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을 경계로 하는 실레지아 및 포메라니아 지방등의 동독 땅을 폴란드에 떼어 주었다. 폴란드에 편입된 동독땅은 넓이가 10여만 ㎢로 남한보다도 크다. 오데르­나이세선 문제는 동독 또는 「통일독일」간의 「옛땅 논쟁」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전후 재편된 국제질서 유지라는 측면에서 주변 유럽국가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랑스ㆍ영국 등 유럽국가들은 유럽의 국경선은 헬싱키협약에 따라 현재대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75년에 열린 유럽안보협력회의의 합의사항 중에는 유럽 국경선의 변경은 협약에 서명한 모든 국가의 합의가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는 내용의 국경불가침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 회의엔 동서유럽 35개국이 참석했으며 폴란드와 함께 동서독이 모두 서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가 「확약 거부」자세를 굳히고 있는 것은 오는 12월에 있을 총선을 염두에 둔 선거전략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잃어버린 옛땅의 회복」을 주장하고 있는 공화당을 비롯한 극우단체들의 지지표를 얻기 위한 헬무트 콜 총리의 작전이라는 것이다. 또한 콜의 입장에서는 폴란드 땅이 돼버린 실레지아 및 포메라니아 지방등 오데르­나이세강 동쪽의 고토에 연고를 둔 실향민들의 염원도 모른체할수 없는 형편이다. 미셀 로카르 프랑스총리는 며칠전 『통독은 유럽사람들에게 희망과 함께 두려움을 안겨주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가 말하는 유럽인들의 두려움은 통독이후 게르만민족의 팽창주의 부활 여부에 대해 「아니다」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는데서 비롯된다고 볼수 있다. 폴란드에서는 최근 자유노조 신문인 가제타를 필두로 하여 언론들이 이 문제를 집중 거론하면서 통독에 대한 경계심을 부추기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한스 디트리히겐셔 서독외무장관은 24일 『오는 3월의 동독총선이 끝난 뒤 서독의회가 오데르­나이세 국경불가침을 선언하는 공동성명을 채택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정부공식 입장과는 다른 견해를 표명하기도 했지만,주변국들이 인정하고 안심할 수 있는 어떤 조치가 있기전에는 오데르­나이세 국경문제는 쾌속으로 진행되고 있는 통독작업의 앞날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인다.
  • 무르익는 “통독의 꿈”/오늘 소­서독 정상회담서 큰 진전 예상

    ◎서독 통일안,주변국 이해와 일치/국경문제등 난제 많아 낙관못해 『동서독의 통일은 오는 3월18일 동독이 자유선거를 치르고 난 직후에 이루어질 것 같다』 이는 9일 브뤼셀에서 독일문제 논의를 위해 긴급소집된 EC(구주공동체) 집행위원회 특별회의에서 내린 결론이다. 불가능하고 먼훗날얘기로만 치부되던 양독의 통일문제가 어느새 시간을 다투는 시급한 현안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판단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며칠동안 통독문제를 둘러싸고 관계당사국들간의 외교접촉이 숨가쁘게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진전속에 주목되는 부분은 소련과 동독의 자세변화이다. 서독정부의 고위소식통은 헬무트 콜총리의 방소를 하루앞둔 9일 『소련이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영역내에서의 통독실현 추진을 위한 대화준비를 갖추고 있다』고 확인했다. 지난해 12월 몰타 미소정상회담때만 해도 통독에 반대의사를 분명히하고 그뒤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의 회담때도 「전후유럽질서의 유지」라는 전제아래 「안되는 방향」으로 몰고가던 소련이 이제 「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즉 지난주 한스모드로브 동독총리와 만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서기장은 통독의 불가피성을 최초로 인정했고 모드로브가 제의한 중립화 통일방안을 거드는 입장이었다. 동독의 경우도 통일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던 중립화문제에서 한발 후퇴,보다 유연한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중립화를 포함한 4단계 통독안을 내놓았던 모드로브총리는 『이는 양독의 미래를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며 하나의 제안에 불과하다고 스스로 주장의 강조를 낮췄다. 통독의 조기실현 가능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이같이 소련과 동독의 자세가 변한데다 서독의 새로운 제안이 미소를 포함한 이해당사국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받고 있는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통독문제와 관련한 소련의 거부반응은 말 할 것이 없이 자국의 안보문제 때문이다. 1ㆍ2차 세계대전에서의 피해를 비롯하여 항상 게르만 민족의 위협에 시달려 동독을 방어용 완충지대로 남겨두고 싶은 소련은 아무런 안정장치 없이 양독의 통일로 또다시 불안에 떨게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그래서 통독을 반대하거나 소극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것이다. 서독측은 새 제안이 이러한 소련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통일된 1개 국가에 양대군사블록 세력이 그대로 존치된다는 좀 복잡한 양상을 띠긴하겠지만 오히려 그러한 상태가 두기구 사이에서 빚어지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에 서독이 내놓은 4단계 10개항의 통독방안이 동서독간 경협증진등 내부통일과정에 중점틀 두었다면 이번 제안은 통독을 위한 국제적 분위기 조성과 외교ㆍ안보ㆍ군사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서독측은 소련에 대한 설득과 아울러 군축회담을 서둘러 끝낼 수 있도록 미국을 포함한 서방동맹국들과의 협조증진노력도 함께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소련내에서도 독일 통일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은 주변나라들 못지 않다. 예고르 리가초프등 보수주의자들은 동독의 서독으로의 흡수통합에 반대하며 급속한 통독논의가 갖는 위험성을 거듭 강조하고있다. 이같은 분위기 속에 고르바초프가 서독의 새 제안에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독일통일의 가능성과 현실(사설)

    소련ㆍ동독 지도자들도 마침내 통독의 불가피성을 인정했다. 고르바초프 소공산당서기장은 『통독의 원칙에 대해선 누구도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고 했으며 모드로브 동독총리는 『통독이 이젠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임을 강력히 시사했다. 소ㆍ동독 지도자들이 이번처럼 분명한 어조로 통독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처음이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분단 독일의 통일을 향한 또 한걸음의 중요한 진전으로 환영할 일이다. 소ㆍ동독 공산당은 그동안 통독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번 일련의 발언은 그러한 입장의 변화를 시사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5월6일에서 3월18일로 앞당겨진 동독 자유총선실시 결정이 중요한 작용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총선은 동독이 처음 경험하는 복수후보의 자유총선이며 자유화분위기 속에서 이렇다할 조직적 준비없이 치러지는 것이다. 중요한 쟁점은 통일문제 뿐일 것이며 통일을 반대하는 후보의 당선은 불가능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고전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통독문제에 대한 부정적 자세는 공산당의 소멸을 가져올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굴복한 전략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소ㆍ동독 공산당 지도자들의 이번 태도변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그것이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한 굴복 내지는 양보라는 측면이라 하겠다. 그동안 독일통일문제의 진전은 항상 내외여건이라든가 상황ㆍ현실의 실질적 변화가 선행된 연후에 뒤이어 이루어지는 경향을 보여왔다. 이번 경우도 예외일 수가 없다. 그리고 이번에 실시되는 총선은 또 하나의 그러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것이며 그것은 또 소ㆍ동독 지도자들은 물론 서독과 미국 기타 서방세계 지도자들로 하여금 통독문제에 대한 새롭고 중요한 양보를 하거나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들지 모르는 것이다. 동ㆍ서독의 통독문제에 대한 접근방법의 특징은 항상 실질적이고 사실적인 진전에 최우선을 두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사실상의 진전을 통한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면서 비생산적 정치선전이나 비난같은 것은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 우리의 경우와는 대단히 대조적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의 동ㆍ서독이 보여주는 「사실상의 통일상태」라 할 수 있다. 그동안의 인적ㆍ물적 교류가 계속 증대되어 온 것은 물론 작년 11월 베를린장벽 제거 및 동독인 서독 자유왕래 실현에 이은 지난 정초부터의 서독인 무비자 동독 자유방문 실현은 동ㆍ서독 분단을 사실상 무의미하게 만들고 있는 형편이다. 정당ㆍ기업간의 교류 및 제휴도 활발하다. 오늘의 이런 상황에서 통독의 최대장애는 미 소 및 동서유럽 각국의 통독에 대한 불안과 경계심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의 통일은 2차대전 후 정해진 새 국경선의 변화를 의미하며 동서유럽 및 소련은 그것이 그들 나라의 국경선 변화를 요구하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동ㆍ서독을 합친 게르만민족의 거대한 제4 독일공화국의 탄생도 주변국들에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공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상태를 심화시키면서 주변국들의 이같은 불안과 경계심을 해소시킬 수 있느냐의 여부가 앞으로 통독달성의 열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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