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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전 15기…49세 사법시험 합격 서재욱씨

    검정고시,10년의 직장생활, 늦깎이 대학생, 졸업 후 시작한 15년간의 사법시험 공부…. 23일 최종합격자가 발표된 제46회 사법시험에 최고령 합격한 서재욱(49)씨의 인생 역정이다. 서씨는 “뒷바라지해준 부인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부산 동아대 법대 84학번인 서씨는 1955년 부산에서 조그만 식당을 하던 부모님의 3남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졸업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1974년 고등학교를 자격을 얻고 작은 중소기업에 취직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 그의 나이는 이미 서른이었다. 그 후로 4년이 지나 본격적인 사법고시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대학을 졸업하던 1989년 처음으로 1차에 합격했다. 그리고 1년 뒤 부인 김정옥(43)씨와 결혼했다. 서씨는 그 뒤로 1차만 7차례 통과했다. 그러는 사이 15년이 지났다. 오늘 그의 기쁨은 지금까지 옆에서 묵묵히 믿어준 부인 김씨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서씨는 “15년 동안 묵묵히 뒷바라지해준 아내에게 고맙다는 말 이외에 할 말이 더 있겠느냐.”며 울먹거렸다. 그가 공부를 하는 동안 서씨와 1남2녀의 생계는 부인 김씨가 책임졌다. 그러나 운영하던 식당마저 IMF 한파를 맞아 2002년 결국 문 닫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서씨는 그해 1차마저 떨어져 좌절에 빠졌다. 그러나 부인 김씨는 정수기와 카드회사 영업사원 등으로 일하며 그를 격려하고 생활을 꾸려나갔다. 서씨는 “솔직히 사회에 대한 큰 뜻을 품었기 때문에 시험공부를 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면서 “앞으로 노동문제나 행정소송 분야의 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한편 이번 사법시험에서는 박재승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장남 성범(28)씨와 이공현 법원행정처 차장의 차남 승규(22)씨, 김목민 서울북부지법원장의 차녀 서원(26)씨가 각각 합격해 부자·부녀 법조인의 길을 걷게 됐다. 또 고 이광일 검사의 장남 인환(22)씨도 부친의 유지를 따르게 됐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성매매 여성2명 아픔딛고 대학 수시합격

    “이제는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지난 18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탈(脫)성매매 여성 쉼터인 ‘휴먼케어센터’에서 조촐한 파티가 열렸다. 센터 내 하성희(23·가명)씨와 성소영(28·가명)씨의 대학합격(수시전형)을 축하하기 위한 것. 내년 봄부터 하씨는 사회복지학을, 성씨는 미용학을 전공하는 ‘05학번 늦깎이 대학생’이 된다. 하씨는 4년전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만 듣고 다방에 취직했다. 이후 여느 성매매여성처럼 빚이 눈덩이처럼 불었고, 결국 ‘성매매여성의 종착지’라는 섬으로 팔려갔다. 이후 손님들과 업주에게 매맞는 상황속에서 가까스로 탈출해 올초 쉼터에 입소했다. “처음에는 빚만 해결되면 빨리 나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쉼터 선생님의 잔소리도 귀찮았죠. 하지만 인근 사회복지관에서 치매 노인들에게 자원봉사를 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몸이 불편한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이 저와는 달랐으니까요.” 이후 하씨는 대학 입학을 결심했고, 쉼터 선생님들의 보살핌 속에서 학원을 다니며 공부를 시작했다. 앞으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성매매여성들과 노인들을 위해 일하는 게 꿈이다. 성씨는 10여년전 가족과의 불화 속에서 가출한 뒤 업소를 전전하다가 올초 도망나왔다. 매일매일 업주와 손님에게 맞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여겼던 성씨는 쉼터에 들어와 ‘공부’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중졸 학력이 전부였던 성씨는 지난 8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11월 대입 원서를 넣었다. “업주와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면 어쩌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죠. 그래도 지금까지 못해본 것들을 지금이라도 다 해볼거예요.”(성씨) “기나긴 세월동안 이런 생활을 몰랐던 게 한스러워요. 잡초같던 제 삶에 생기를 넣어준 분들께 보답하고 싶어요.”(하씨) 후원금 계좌번호는 외환은행 287-22-01062-2(예금주: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2005 전문대 입시] 기계에 소질있는 女 유아교육 잘하는 男

    2005학년도 전문대 입시에서도 대학별로 독자적인 기준에 의한 이색 특별전형을 실시하는 대학이 많다. 모집인원은 모두 2만 5315명으로,149개교는 주간에서 1만 9557명,107개교는 야간에서 5758명을 뽑는다. 동우대와 부산예술대 등 10곳은 백일장 입상자와 창작집 발간자를 선발한다. 대구공업대를 비롯한 9개 대학은 특허, 실용신안, 상표등록 실적이 있는 학생을 뽑는다. 경도대, 백석대 등 55개 대학은 소년·소녀가장을 특별전형 기준으로 삼고 있다. 경남정보대와 경복대 등 38개 대학은 생활보호대상자 자녀,3세대가 함께 모여사는 가족, 환경미화원 자녀,65세 이상 노인, 실직자 자녀를 뽑는다. 강원전문대와 나주대 등 25개대는 소 10마리, 돼지 500마리, 닭 100마리 이상을 키우는 축산농가 자녀나 농·어민 후계자를 특별전형으로 선발한다. 부산정보대와 상지영서대 등 57개 대학은 자영업자나 개인 사업가에게 특별전형 자격을 준다. 순천제일대, 우송정보대 등 7개 대학은 벤처기업 창업자나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구미1대와 성덕대 등 9대 대학은 개인홈페이지 운영자를 대상으로 특별전형을 실시한다. 전업주부를 특별전형 대상으로 하는 대학도 거창전문대와 계명문화대, 한영대 등 39개에 이른다. 가톨릭상지대와 강릉영동대 등 97대 대학은 고교 졸업 후 5년 이상된 경우나 만 30세 이상의 검정고시 출신자 등 만학도를 뽑는다. 경도대, 영남이공대 등 4개 대학은 자동차·기계·전기에 소질이 있는 여학생을, 경북외국어테크노대, 김천과학대 등 11개 대학은 간호나 유아교육에 소질이 있는 남학생을 선발한다. 충청대와 혜천대 등 37개 대학에는 헌혈 참여자나 장기 기증자를 특별전형으로 뽑는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탈북 청소년들이 만든 X-마스 트리

    탈북 청소년들이 만든 X-마스 트리

    지난 3일 광화문 열린마당은 오전부터 20여명의 청소년들로 북적거렸다.4일 오후 2시까지 ‘2004소망트리축제’에 출품할 트리 작품을 마무리지어야 했기 때문이다. 참가한 15개팀은 각자의 상상력을 총 동원해 특이한 모양의 트리들을 만들어 갔다. 볏짚을 이용한 것부터 마네킹, 요구르트 병을 이용한 트리도 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굵고, 가는 철사를 이용한 한반도 모양의 트리다. ●‘통일, 아자!’팀의 소망담은 ‘통일트리’ 눈길 “크리스마스때 트리를 만들고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죠. 아무리 어려운 소원도 다 가능한가요?” 철부지 아이처럼 묻는 열아홉살 고선희 양의 물음에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이번 트리축제에 4명의 친구들과 함께 참가한 고양은 직접 만든 한반도 모양의 트리에 소원을 담은 편지를 정성스레 걸어 뒀다. 평양에 있는 친구들을 만나보고 싶다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에 다니는 이들은 남북통일을 위해 힘내자는 의미로 팀 이름을 ‘통일, 아자!’라고 정했다. 고양은 1995년 부모님과 함께 평양을 떠나 중국을 거쳐 지난 2002년 11월 입국한 ‘탈북 청소년’이다. 그는 한국에서 2년을 보내며 초·중·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올해 이미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와 서강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동시 합격한 예비 대학생이기도 하다. “지난 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어요. 소기의 성과도 거뒀고요.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항상 뭔가 안타깝고 아쉬운 게 있었습니다.” ●보고싶은 사람 보는 게 가장 큰 소원 ‘통일, 아자!’팀의 김혁철(20)군은 2001년 한국에 들어온 ‘탈북 고참’이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에 말도 적은 편이지만 착하기로 소문난 친구다. 특유의 ‘해맑은 미소’는 ‘셋넷학교’ 친구들에게 인기 짱이다. 김군은 ‘통일트리’에 소망을 담은 보랏빛 편지를 걸며 “이곳이 함경북도 만춘”이라고 소개했다. 김군은 부모님, 형, 누나와 함께 1999년 탈북을 감행, 중국에서 2년간 생활하다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고향인 만춘에는 할머니, 작은아버지, 사촌 등 친척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보고싶은 사람을 볼 수 있게 해달라는 소원이 가장 많아요. 결국 통일이 되면 저절로 이뤄지게 되는 것들인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굵은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가는 철사줄로 친친 감기를 5시간째. 처음엔 뭐가 만들어질지 아리송했던게 점차 한반도 모양을 닮아간다. ●“탈북자를 이상한 시선으로 보지 마세요.” ‘통일, 아자!’팀의 대표격인 고양은 최근 ‘탈북자 간첩행위’관련 뉴스 보도를 보며 걱정이 된다고 한다. 경험상 한국의 언론은 일부 이야기를 마치 전체의 이야기인 것처럼 과장한다는 설명이다. “설사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일부일 뿐이에요. 이 일로 선량한 탈북자들까지 의심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통일, 아자!’팀의 작품과 다른 15개 참가팀 그리고 시민들이 직접 나와 만든 트리는 오는 25일 성탄절까지 광화문 열린마당에 전시된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주말화제] ‘캔디소녀’ 서승주씨의 인생

    [주말화제] ‘캔디소녀’ 서승주씨의 인생

    “저는 외롭거나 슬프면 큰 소리로 웃어요. 부딪치고 이겨내야지, 운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미술대학에 합격하고도 등록금이 없어 꿈을 접어야 했던 소녀가 영국으로 건너가 액세서리 노점상을 하며 유럽 최고의 보석디자인학교에 도전하고 있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억척스레 재능을 키워가는 스물다섯 당찬 아가씨 서승주씨.“내 삶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는 그의 ‘캔디’ 같은 인생개척기를 들어봤다. 19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 나눔의 집’에서 만난 서씨는 다음주 노점에 차려놓을 귀고리며 목걸이를 만들고 있었다. 체인과 구슬 등 재료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5년 동안 수공예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갈고닦은 실력”이라는 서씨의 미소 뒤에는 그러나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서씨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6살 때. 큰언니가 백혈병을 앓다 세상을 떠난 것. 전 재산을 7년에 걸쳐 언니의 치료비로 쓴 아버지마저 몇달 뒤 교통사고로 세상을 등졌다. 젊었을 때 눈을 다쳐 시력이 거의 없는 어머니와 남은 가족은 도봉동 판자촌으로 들어갔다. 서씨는 둘째언니(33), 오빠(30)와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지만, 결국 고교를 2년 만에 그만두어야 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소질을 보였던 미술은 포기하지 않았다. 미술학원에 갈 돈이 없던 그는 승부수를 띄웠다. 중학교 성적표를 미술학원에 들고가 “공부 잘 하고 실기도 자신 있다.”면서 “앞으로 학원의 이름을 드높일 테니 그림 공부를 하게 해달라.”고 큰소리쳤다. 그는 1년 동안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으며 그림공부를 한 뒤 검정고시를 거쳐 1999년 S여대 미대에 합격했다. 그러나 300만∼400만원이나 하는 등록금을 낼 돈이 없었다. 미대를 포기한 서씨는 학비가 비교적 싸고 취업이 잘 되는 S보건대 치위생과에 진학했지만,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재능을 살릴 수 있는 수공예 액세서리 노점이었다. ●액세서리 노점 5년만에 1000만원 모아 1999년 여름 수유리 길가에 좌판을 폈다. 새벽시장에서 재료를 구입하고, 낮에 틈틈이 물건을 만들어 저녁 5시부터 11시까지 내다 파는 고단한 일상이 시작됐다. 그는 “액세서리 하나도 손님에게 감동을 주자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손님의 얼굴형에 음양오행을 접목해 부족한 성질을 보충해주는 색깔로 액세서리를 만들어 주었다. 입소문이 나면서 단골이 늘어 한 달에 150만원까지 수입을 올렸다. 형편이 좋아지면서 꿈을 되살렸다. 어학원을 다니며 영국 유학을 계획하기 시작한 것.“네 처지에 무슨 유학이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그는 “나 자신을 아끼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생각에 과감히 도전했다. ●내년 세인트 마틴 보석디자인과 도전 그는 지난해 11월 5년 동안 노점상으로 모은 전 재산 1000만원을 들고 영국행 비행기를 탔다. 학원을 다니면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돈은 3개월 만에 바닥났다. 런던에서 다시 노점을 시작했다. 여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영화 ‘노팅힐’에서 남자주인공 휴 그랜트가 작은 책방을 하던 바로 그 공영시장이다. 새벽 5시부터 줄을 서야 자리를 잡지만, 그가 만든 동양적 분위기의 액세서리는 호평을 받으며 팔려나갔다. 서울에서 하던 대로 ‘사람의 모자라는 성격을 장신구가 보완해 준다.’는 철학을 작품에 담아낸 것이 맞아떨어졌다. 그는 노점에서 생활비를 벌면서 학업을 충분히 이어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보석디자이너를 꿈꾸는 그는 내년 초 세계적인 패션학교 세인트 마틴의 보석디자인과에 도전할 생각이다. ●“내 최대 후원자는 삶에 대한 사랑” 서씨에게 더 이상 시련이라는 단어는 없다. 이달 초 한국에 온 그가 이달 말 출국하기 직전까지 시간을 쪼개 신촌에서 노점을 펼치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는 비행기삯에 보태야 한다는 이유도 있지만, 영국에서 구상한 디자인을 채용한 신작의 반응을 ‘젊음의 거리’에서 확인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서씨는 27일에는 ‘노원 나눔의 집’에서 불우 청소년들과 만남도 약속해 놓았다. 그는 “나 역시 불우한 환경이었기에 그 만남이 너무나 소중하고 기다려진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힘들 때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많다. 나는 소중하다.’고 자기 암시를 걸었다.”면서 “앞으로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안을 주는 보석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장애인 자립운동 이끄는 박찬오 소장

    장애인 자립운동 이끄는 박찬오 소장

    “장애인은 숭배받아야 할 신(神)도, 보호받아야 할 아이도 아닙니다.” 16일 늦은 오후 서울 거여동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5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박찬오(34) 소장은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다른 장애인 상근자들과 함께 바삐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박 소장은 이곳을 장애인 스스로 장애를 극복하고 삶을 개척하는 자립생활운동의 본거지로 만들었다. ●분노가 장애인운동 투신의 계기 박 소장은 지체 2급의 장애인. 선천성 척수장애로 하반신을 못 쓴다.10대 후반까지의 그의 삶은 가난과 무교육이라는 한국 사회 장애인의 고통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어릴 때는 대소변을 혼자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장애가 심했다. 일반 초등학교에서는 받기를 거부했다. 재활학교에 가려고 해도 보모를 고용할 비용이 없었다.‘내년에 보내자’는 부모의 계획은 한해 한해 미뤄졌다. 육체의 장애는 박 소장을 17년 동안이나 골방 안의 침묵에 익숙하게 만들었다. 지난 87년 절망을 딛고 서울 고덕동 서울장애인복지관에 찾아갔지만 복지관에서는 정작 관심이 있었던 컴퓨터 대신 목공예를 가르쳤다.“취업이 안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1년의 과정을 마쳤는데도 직장을 잡을 수 없었다. ‘속았다’는 분노는 그를 복지관 재활과정 동문회이자 최초의 장애인 운동단체인 ‘싹틈이’로 이끌었다. 장애인 운동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89년부터 중·고 검정고시와 대학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학원 수업을 듣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당시는 엘리베이터도 흔치 않던 시절. 수업을 듣기 위해 몇 층을 기어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했다. 결국 94년 삼육대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박 소장은 “많이 울기도 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현해탄을 오간 열애 끝에 일본인과 결혼 대학에 들어간 그는 ‘물 만난 고기’처럼 본격적으로 장애인 운동을 시작했다. 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한 노들야학에서 4년 내내 교사로 일했다. 그는 다른 ‘넓은 길’을 가지 않은 것을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때는 유학을 준비할 만큼 제도권에 편입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요. 그러나 박사나 교수가 되더라도 장애인의 현실은 바뀌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자립생활운동을 처음 시작한 것은 지난 97년. 극단적인 투쟁이 아닌 실현 가능한 대안을 찾다 접하게 됐다. 장애인 복지관인 정립회관에서 시작했다가 지역에 정착하기 위해 지난해 3월 이곳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부인 오노 마리(大野眞理·28)와의 만남도 운동이 인연이 됐다. 지난 2001년 일본의 자립생활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 재단의 도움으로 1년 동안 연수를 갔다가 그녀를 만난 것이다. 현해탄을 오가는 열애 끝에 지난 9월 결혼했다. 박 소장은 “부인은 가장 좋은 친구이자 동지”라면서 “부인이 어학 연수를 마치고 나면 장애인 인권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사회가 장애인에 맞춰 변화돼야 자립생활운동은 말 그대로 장애인이 스스로 중심이 돼 생활해야 한다는 것. 장애인을 시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기존 운동은 장애인의 위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출발했다. 자립생활운동의 전문가는 의사나 가족이 아닌 장애인 자신들이다. “장애인들이 ‘술을 마시고 싶다.’고 하면 일반 보조원은 ‘그러면 안 된다.’는 식이죠. 그러나 자립생활운동 보조원들은 장애인과 함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사회가 장애인을 고치는 게 아니라 장애인에게 맞춰 변해야 합니다.” 그에게 가장 힘든 것은 장애인의 일을 장애인 스스로 외면할 때. 장애를 처음부터 체념하거나 제도권에 편입돼 ‘나와 상관 없다.’는 반응을 보일 때면 온몸에 힘이 빠지곤 한다. 그러나 비장애인들이 장애인 인권 운동에 동참하는 것보다 기쁜 일은 없다. 전국고교생장애인리더대회라는 이름으로 장애 학생들과 비장애 학생들과의 만남을 준비하는 것도 이런 취지에서다. 박 소장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마음의 ‘담’을 허무는 게 장애인 인권 운동의 시작과 끝”이라면서 “평생 즐거운 마음으로 운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게 웃었다. 글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십니까?

    17일 오후 3시30분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실습실. 오는 22일로 예정된 실내건축기능사 자격시험에 대비한 모의시험이 한창 진행중이다. 시험시간 종료를 예고하는 지도 교수의 다그침에 학생 40명의 손놀림이 빨라졌다.5시간안에 원룸의 평면도를 비롯해 투시도, 입면도, 천장도 등 4장을 완성해야 한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모두 도면에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온정신을 쏟고 있었다. 이들의 눈동자는 경기불황을 극복하려는 창업의지로 반짝였다. ●한남직업전문학교 실내디자인과 인기 한남직업전문학교는 서울시가 취약계층을 위해 무료로 운영하는 4개 직업학교 가운데 하나. 비진학 청소년을 위한 직업교육시설이던 이곳은 지난 2002년 만29세의 연령제한이 풀려 만 지금은 15∼55세의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멀티미디어와 미용, 실내디자인, 조리, 컴퓨터애니메이션, 패션디자인 등이 6개월∼1년 과정으로 개설돼 있다. 지원자 가운데 나이, 가족부양여부, 국가유공자 등을 감안해서 선발한다. 경력 3∼4년이 쌓이면 창업이 가능한 실내디자인과는 평균 2∼3대 1의 경쟁률을 보인다. 제도실기를 비롯해 CAD, 포토샵,3D MAX 등이 주교육 과정이다. 교육을 마치면 산업인력관리공단에서 주관하는 실내건축기능사와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이진영 실내디자인과 주임교수는 “학생 가운데 20세 이하는 50%,30대 45%,40대 이상은 5%”라면서 “주간에는 주부, 비진학청소년, 퇴직자 등 다양하며 야간 과정에는 70∼80%가 직장인”이라고 말했다. ●청소년에서 퇴직 가장까지 새삶 설계 학생 가운데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퇴직자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은행이나 기업에서 정년을 마친 뒤 새 삶을 준비하는 은퇴자들이다. 국민은행 지점장으로 은행원생활 32년을 마감한 심영섭(55)씨는 “지난 3년동안 건축회사를 운영하면서 인테리어쪽으로 겸업하기 위해 배우는 중”이라고 밝혔다. 일반 기업에서 퇴직한 이재전(55)씨도 건축회사에 다니는 아들과 동업하기 위해 합류했다. 내수경기 불황을 타개할 새 활로로 인테리어를 택한 사람도 있다. 청담동에서 7년동안 자동차 딜러를 하던 장필선(44·여)씨는 지난해 4월 경기불황으로 영업소를 접었다. 장씨는 “백지상태에서 시작한 탓에 무척 힘들다.”고 말했다. 레저스포츠 강사 김영진(31)씨도 이직을 결정한 경우. 김씨는 “이 과정을 마치면 외삼촌이 운영하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2∼3년 경력을 쌓은 뒤 중국에서 인테리어 사업을 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17세 소녀 조기유학파도 입학 캐나다에서 중학교를 마친 이사벨라(17)양은 건축사인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이곳에 등록했다. 대학 건축학과 진학을 희망하는 이양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는 불편을 피해 새로운 기술을 배우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지난 2월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해 내년 수학능력시험 준비도 병행하고 있다. 구직난에 시달리는 청년실업자에게는 인테리어가 취업을 위한 주특기로 자리잡았다. 지난 2월 모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최모(23·여)씨는 “공무원 시험을 잠시 미루고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기 위해 시작했다.”면서 “6개월 동안 바쁘게 두가지 자격증을 따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밝혔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 [2005 수능] 선택과목 ‘나홀로 교실’ 많아

    [2005 수능] 선택과목 ‘나홀로 교실’ 많아

    7차 교육과정에 따라 선택형 시험이 처음 실시된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는 선택과목별로 ‘나홀로 시험’을 치른 수험생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수험생 1명에 감독관 2명 17일 34개 시험실이 마련된 서울 강남구 도곡동 중대부고의 경우 교실 2곳에서는 수험생 1명씩,1곳에서는 2명이 시험을 치렀다. 처음 시도된 직업 탐구영역의 선택과목 시험에서 시험실 이동에 따른 혼란을 막기 위해 과목별로 수험생이 따로 시험을 치르게 한 것. 상근예비역 근무자로 수능에 재도전한 방경석(21)씨는 “컴퓨터 일반과목을 선택했는데 시험실에 와서야 혼자 시험을 보게 된 것을 알았다.”면서 “감독관은 2명이나 되는데 혼자 시험을 치르려니 어색했다.”고 말했다. 종로구 필운동 배화여고에서도 제2외국어로 유일하게 한문을 선택한 정모(23·여)씨가 혼자 시험을 치렀다. ●30대 뇌성마비 여성과 구족화가의 포부 어려운 신체조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수능에 도전한 수험생들의 의지도 돋보였다. 뇌성마비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른 종로구 경운동 서울경운학교에서는 생후 3개월 만에 뇌성마비 1급 판정을 받고 10년째 왼쪽발로 동양화를 그리고 있는 김경아(37·여)씨가 시험을 치렀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그림 공부를 하고 싶다는 김씨는 “대입검정고시를 통과한 지 3개월밖에 안 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웃었다. 뇌성마비 1급의 장애를 딛고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구족화가 이현정(30·여)씨도 “대학에서 서양화를 깊이있게 공부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실업계 수험생의 고전 강남구 도곡동 중대부고에서 시험을 치른 일부 실업계 수험생은 고전을 면치 못해 획일적인 대입제도의 단면을 드러냈다.S공고 이모(17)군은 “실업계 학생에게는 외국어나 수리 영역이 너무 까다롭다.”면서 “내가 속한 교실에서 32명이 시험을 치렀는데 절반 정도가 한두번 시험지를 훑어보고는 일찌감치 포기한 채 엎드려 잤다.”고 말했다. K공고 신모(17)군은 “외국어영역 50문제 가운데 확신을 갖고 푼 것은 20문제 정도로 평소와 비슷한 수준”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K공고 현모(17)군은 “EBS에서 출제된다고 해도 기본 공부가 어려워 수리 문제를 풀기 힘들었다.”면서 “시험 시작 5분도 되지 않아 20여명이 잠을 자기 시작했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수험생도 많았다.S전자고 고모(18)군은 “EBS로 공부하며 문제집을 모두 풀었는데 EBS보다 쉬웠고 내용도 많이 반영됐다.”면서 “점수가 올라갈 것 같다.”고 신중하게 내다봤다. ●차량추돌로 병원행 ‘불운’ 시험장으로 가다 차량추돌사고로 중상을 입어 시험을 치르지 못한 수험생도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오전 7시30분쯤 경남 진주시 정촌면 예하리 국도에서 사천고 3년 천모(19)군이 운전하는 마티즈 승용차가 길 옆에 서있던 레간자 승용차 등 차량 3대를 차례로 들이받는 바람에 함께 타고 있던 같은 학교 수험생 최모(18)군이 크게 다쳐 고사장이 아닌 병원으로 옮겨졌다. 다행히 허모(18)군은 상처가 가벼워 택시를 타고 고사장으로 가 시험을 치렀다. 수시모집에 합격한 천군은 친구인 최군과 허군을 시험장까지 태워주다 사고를 냈다. ●신풍속 ‘막간휴식’ 언어, 수리, 사회탐구, 과학탐구, 외국어 등 대학 지원때 해당 영역이 필요없는 수험생은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기실에서 휴식하는 것도 새로운 풍경이었다. 자연계 여학생 1153명이 시험을 치른 서울 개포고에서는 1교시 언어영역시간에 7명의 학생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대기실이나 양호실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1교시가 끝난 오전 10시10분 종이 울리자 2교시 수리영역을 치르기 위해 배정된 교실로 들어갔다. 인문계 남학생 1034명이 시험을 치른 서울 경기고에서는 오전 10시40분부터 시작된 2교시 수리영역시간에 23개반 715명의 수험생이 시험을 치르지 않고 감독관 입회하에 각 반에서 대기했다. 유지혜 홍희경 이재훈기자 wisepen@seoul.co.kr
  • 눈물의 골든벨 울린 지관순양

    눈물의 골든벨 울린 지관순양

    지난 7일 오후 텔레비전을 지켜본 사람들은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 감동을 느꼈다. 전국 고교를 순회하며 퀴즈 실력을 겨루는 ‘도전!골든벨’ 프로그램에서 50문제를 모두 맞혀 골든벨을 울린 한 여고생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경기도 파주 문산여고 3학년에 재학 중인 지관순(20)양. 사람들은 골든벨을 울린 지양의 실력에 놀라워하면서도 뒤늦게 알려진 그의 노력에 또 한번 놀랐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초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사교육 한번 받지 않고 꾸준히 실력을 쌓아왔다. 지양은 어떻게 공부했느냐는 질문에 “책을 많이 읽었다.”고만 했다. 지양을 만나 그의 공부 비결을 들어봤다. 지난 10일 만난 지양은 수줍음 많은 여고생이었다. 체구는 작았지만 눈은 항상 뭔가를 생각하는 듯 초롱초롱 반짝였다.“축하한다.”는 말에도 얼굴만 붉히던 지양은 책 이야기가 나오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얘기 보따리를 쏟아냈다. 대뜸 “골든벨을 울린 것도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은 것이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말을 건넨다. 그의 공부법은 누구나 중요성을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꾸준하면서도 엄청난 양의 독서’였다. 지양이 스스로 터득한 독서법은 ‘연계시켜 읽기’였다. 책을 읽다가 관심이 있거나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관련 도서를 찾아서 읽고, 그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은 또 다른 책을 찾아 읽어나가는 식이다. 양서목록에 따라 책을 골라 읽는 여느 학생들과는 달랐다. 그는 “책을 연계해서 읽다 보면 책끼리 서로 연관되고 결국에는 하나의 흐름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의 독서법은 ‘추측하며 읽기’다.“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그 다음 내용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다음에 어떤 내용이 나올지 생각하면서 읽으면 깊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책 읽는 속도도 점차 빨라졌다. 그는 “속독법을 배우진 않았지만 친구들보다 책 읽는 속도가 1.5배는 빠른 것 같다.”면서 “소설의 경우 주인공 이름을 혼동하는 경우는 있지만 내용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전체 흐름을 파악하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했다. 지양이 책을 가까이 하게 된 것은 남들이 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8살 때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갖다준 헌 책을 읽으며 학교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처음에는 전래동화부터 시작했다. 위인전에서 세계 민담, 국내외 장편소설까지, 말 그대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친구들이 학교에 다닐 동안 지양은 책에 빠져들었다. 처음에 버린 헌 책을 모아주던 아버지는 아예 자전거로 파주 시립 도서관에 출퇴근하다시피 하며 책을 실어날랐다. 마을 경로당에 기부된 책들은 모두 지양 차지였다. 초등학생이 읽기에는 무리인 전집류, 역사책도 지양의 손을 거쳐갔다. 지양은 “학교에 다니지 못해 친구들이 없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독서의 세계에 빠진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양이 가장 관심이 많은 분야는 역사다. 역사적 사실이란 게 다 거미줄처럼 연관되고 역사적 흐름을 한 눈에 볼 수 있어서다. 특히 중국사에 관심이 많다. 지양은 “중국 역사와 관련된 웬만한 책은 다 읽었다.”고 덧붙였다. 중국 4대 기서인 삼국지·수호지·서유기·금병매도 중학교 1학년 때 다 읽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은 사극으로 옮아갔다. 아버지와 함께 사극을 보면서 얘기를 나눈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아버지는 사극 한 회가 끝날 때마다 그 다음 얘기를 알려달라고 숙제 아닌 ‘숙제’를 내고, 지양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답을 했다. 또래 아이들이 보통의 드라마에 빠져 있을 때 지양은 점차 사극에 매료됐다. 검정고시로 입학한 중학교에서 그는 ‘교실 한 편에서 조용히 책 읽는 아이’로 통했다. 대신 질문은 많았다. 궁금한 것을 그 자리에서 물어볼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지양은 “평소 조용하다가도 유독 역사 시간만 되면 질문을 하느라 시끄러워졌다.”고 돌이켰다. 현재 고3인 그는 “수능이 다가왔지만 책은 계속 읽는다.”고 했다. 언제 공부하느냐고 물었더니 “공부와 독서가 어떻게 다를 수 있느냐.”는 야무진 반박만 들어야 했다. 지양의 설명인즉 “학교 공부는 학교에서 끝낸다.”고 했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 점심,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공부를 다 끝내고 새벽 1시쯤 잠 들기 전까지 한두 시간씩 책을 읽는다. 현재 그의 성적은 학교에서 최상위권에 속한다. 그는 “언어와 사회탐구는 독서 덕분에 자신 있지만 수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인지 자신이 없다.”고 말했다. 지양은 “친구들이 책을 빌려달라고 할 때 가장 곤혹스럽다.”고 했다.“친구들이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을 알고 집에도 책이 많은 줄 알아요. 하지만 집에는 책을 놓아둘 곳도 없고 책도 별로 없어요. 대부분 더이상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낡은 책이라 이사할 때마다 버렸거든요.” 책을 많이 읽는 지양이지만 독후감은 쓰지 않는다. 대신 심심할 때마다 공책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최근 읽은 책과 읽고 싶은 책 목록을 적는 것이 전부다.“오래된 습관”이라는 지양은 “책 제목을 쓰는 그 자체의 즐거움에 빠져든다.”고 했다. 책을 좋아하지만 정작 서점에는 잘 들르지 않는다.“서점에 가면 사고싶은 책이 너무 많아 갈등만 하다가 돌아오기 때문”이다. 컴퓨터와도 별로 친하지 않다. 종이만의 독특한 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책이 주는 느낌과 부피감, 무게, 종이 냄새, 이런 것들이 그냥 좋아요.” 지양의 꿈은 앞으로 동양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는 것. 이를 위해 앞으로 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할 계획이다.“남들은 배고픈 직업이라고 하는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양의 목소리는 다부졌다. 파주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관순양 아버지 지의준씨-헌책 모아주고 늘 함께 이야기 지양이 어려서부터 책과 가깝게 지내게 된 데는 아버지 지의준(60)씨의 영향이 컸다. 지씨는 “내가 한 일은 책을 읽도록 헌 책을 모아다 준 것과, 얘기를 나눈 것밖에 없다.”고 했다. “5살 때였습니다. 주 기도문을 한 번 외워줬더니 곧바로 혼자 외웠습니다.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시킬 형편은 되지 못했다. 지씨는 퇴행성 관절염으로 어렵게 구한 막노동 일자리를 그만두기 일쑤였고, 어머니 곽계숙(45)씨도 한 쪽 팔이 불편해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가고 싶다는 딸을 달래기 위해 남이 버린 헌 책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함께 있는 동안에는 대화도 많이 나눴습니다.” 지씨는 “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을 물어보게 하고 서로 답을 찾다 보니 나중에는 스스로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서 보더라.”면서 “해준 것은 없는데 혼자서 열심히 공부한 관순이가 대견할 따름”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지양이 골든벨을 울린 데 기뻐하면서도 “사람되는 일보다는 공부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 같다.”며 걱정부터 했다. 공부를 잘 한다고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평소 소신 때문이다. 최근 부쩍 늘어난 주변의 관심도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씨는 “관순이에게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교 자율학습도 고3이 되어서야 담임 교사의 끈질긴 설득 끝에 저녁 7시까지만 시키고 있다. 지양은 대신 집에 돌아가 집안 일은 물론 마을 이웃 일을 돕는다. 지병에 시달리는 이웃 어르신들을 위한 빨래도 관순이의 몫이다. 오리를 기르는 지씨는 자신도 생활보호대상자인데도 사육장에서 나오는 오리알은 몇년 전부터 인근 의료원과 요양소 등지에 수용된 오갈곳 없는 환자들에게 무료로 나눠주고 있다. 지씨는 “관순이가 학자보다는 의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동안 살면서 공부 좀 했다 하는 사람 치고 곡학아세(曲學阿世)하지 않고 제대로 사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세상에 대학생은 많지만 의인은 없습니다. 본인이 공부를 계속하겠다면 막지 않겠지만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봉사하는 삶을 살았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딸에 대한 지씨의 부탁은 여느 부모와는 다른 것이었다. 파주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교사들이 기억하는 관순양-호기심·질문 많은 학생 ‘성실, 책임감, 집중력, 고집’. 교사들이 전하는 지관순양의 모습이다. 지양을 가르쳤던 문산여중·여고 교사들은 한결같이 ‘책임감이 강한 학생’으로 기억했다. 형편이 넉넉하지 못하지만 자신이 맡은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마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현재 담임을 맡고 있는 김진희(33·여) 교사는 “칼 같은 성격 때문인지 자기 관리에도 철저한 것 같다.”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교사인 나도 고집을 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원리·원칙을 중시해 교칙은 물론 스스로 정한 원칙에 어긋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학교 공부에 집안 일까지 도와야 하는 힘겨운 생활일 법도 하지만 전혀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지양의 출석부에는 지난 3년간 개근에 독감으로 딱 한 번 지각한 것이 전부다. 학교 성적은 현재 최상위권이다. 김 교사는 “학교 수업시간이나 자율학습 때에는 소중한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눈빛이 느껴질 정도”라고 말했다. 중학교 2·3학년 담임이었던 이인자(47·여) 교사는 “중학교에 입학할 때만 해도 성적이 하위권에 머물렀지만 해가 바뀔수록 성적이 올라 3학년 때에는 상위권으로 올라섰다.”면서 “뭘 하든지 성실하게 하는 것이 성적 향상의 비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당시 국사를 가르쳤던 이범기(40) 교사는 지양을 ‘질문이 많은 아이’로 떠올렸다. 그는 “보통 학생들은 시험에 나오는지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관순이는 정말 알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묻는 질문을 많이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얘기를 참고로 얘기해주면 수업이 끝난 뒤 찾아와 ‘더 알고 싶은데 어떤 책을 보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다는 것. 이 교사는 “질문이 거의 없는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았고, 무엇보다 역사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무척 많았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파주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14세 요리신동 진희복군, 프랑스요리학교 입학

    14세 요리신동 진희복군, 프랑스요리학교 입학

    “우리 전통 음식을 세계인의 미각에 맞는 음식으로 개발하겠습니다.” 9일 서울 르꼬르동블루-숙명의 프랑스요리 기초과정에 입학한 진희복(14·대전시 서구 복수동)군의 당찬 포부다. 초등학교를 조기졸업했고 이어 중·고교 과정을 최연소로 검정고시를 통과한 진군은 대학 대신 요리학교를 선택했다.“남보다 먼저 조리 기술과 기능을 익히고 시간을 많이 들이면 훌륭한 조리사가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진군은 ‘요리신동’으로 불린다. 지난 2월 양식 조리사,6월엔 술을 만드는 조주사(바텐더) 자격증을 땄다. 요리학원에 다닌지 1년 만이다. 경력을 가진 어른들도 쉽지 않은 자격증이라 1년만의 자격증 취득은 특별하다. 한식 요리사는 이론시험에 합격했고,12월 실기시험을 남겨두고 있다. 앞으로 일식·중식·복 조리사 자격증도 모두 사냥하겠단다. 초보지만 진군의 직업의식은 이미 입증됐다. 요리연습 중 실수로 칼에 손을 벴을 때, 상처가 너무 깊어 걱정하는 강사에게 “어차피 요리사가 되려면 칼과 친구가 돼야 되니까 괜찮아요.”라며 안심시켰을 정도다. 요리 감각이 예술과도 상통하는 듯 진군은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했고, 중국 등에서 30여차례 국악 공연도 했다.2002년 전국학생판소리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판소리보다는 요리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 조리사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진군에겐 부엌을 아예 아들에게 맡긴 어머니 양월모(47)씨가 큰힘이 됐다. 집에 홈바를 차려줬고, 진군은 여기서 ‘만들고 볶고 지지는’ 연습을 했다. 한때 요리유학도 생각했으나 나이가 너무 어려 프랑스나 호주의 대학에서도 입학허가가 나오지 않았다. 학벌 위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대학에 매달릴 때 요리를 선택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무르익어 갈지 주목된다. 글 이기철기자 chuli@seoul.co.kr 사진 강성남기자 snk@seoul.co.kr
  • [삶과 경영 이야기] (33) 김창호 하나코비 사장

    [삶과 경영 이야기] (33) 김창호 하나코비 사장

    2001년 밀폐용기 ‘락앤락’의 인기몰이가 시작됐을 때 우리나라 대다수 주부들은 하나코비를 외국기업으로 생각했다. 락앤락이 국내 밀폐용기 시장을 석권하고 세계 54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지금 외국 주부들은 하나코비를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생각한다. 성공신화의 뒤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경구가 자리한다. 접시, 컵 등 600여가지의 주방용품을 만들던 중소기업에서 밀폐용기 전문기업으로 변신하면서 알짜배기 회사로 거듭났다. 그 덕에 2000년 99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01년 176억원,2002년 490억원으로 뛰었고 지난해에는 1180억원 매출에 210억원의 순익을 올렸다. 락앤락은 LG홈쇼핑에서 3년 연속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로 뽑혔고, 지난해에는 세계 최대 홈쇼핑 QVC(미국)에서 하루 7만세트 판매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달 초에는 중국 웨이하이웨이 공장(연산 5000만달러)에서 세계 각국으로 수출을 시작했다. 김창호(金昶浩·43) 하나코비㈜ 사장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애국자란 소리를 자주 듣는다.‘타파웨어’ ‘러버메이드’ 등 오랫동안 우리나라 가정의 냉장고를 점령했던 외국산 밀폐용기를 몰아내고,‘락앤락’으로 국산의 저력을 보여준 데 대한 애정 어린 찬사다.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포기해야 했던 가난한 대구 소년이 세계시장을 호령하는 강소(强小)기업의 최고경영자가 되기까지 30년 여정을 들어봤다. ●중학교 중퇴 소년,27세에 사장 되다 -“학교 그만두고 돈 벌겠심더.” 1975년 5월 나는 어머니와 여섯 동생을 부여안고 한없이 울고 있었다. 열다섯 나이 중학교 2학년. 목수일을 하던 아버지는 친구와 벌인 사업이 잘못돼 술로 화를 삭이다 7년 전에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 파출부와 과일장사로 근근이 생계를 꾸렸지만 더 이상 배움을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가난은 어머니뿐 아니라 2남5녀의 맏이인 나의 멍에이기도 했다. 학교를 나와 가구공장 목수, 공사장 막노동꾼, 페인트공 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닥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독학으로 중졸·고졸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80년 꿈에 그리던 대학(성균관대 건축공학과) 문턱을 밟을 수 있었다. 합격을 확인한 그날은 75년 5월의 그날처럼 온 집안이 눈물바다가 됐다. 어렵게 되찾은 배움의 길이었지만 젊은 시절의 혈기는 당시의 군부독재를 외면할 수 없었다.82년(3학년) 나는 군 입대와 퇴학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됐다. -“복학하기 전 잠깐만 우리 매장에서 일좀 하지.”85년 제대 직후 당시 국진화공이란 회사를 차려 접시, 공기 등 멜라민 주방용품을 만들던 친척 형이 찾아왔다. 지금 우리 회사 회장인 김준일. 수많은 주방용품의 재고관리를 하면서 기대 밖의 흥미를 느꼈다. 형은 계속 일을 맡아 줄 것을 청했지만 당시 내 관심은 오로지 대학원에 들어가 ‘안전하고 값싼 건물’을 연구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대학원 생활은 오래 못갔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지 못하고 교수들 뒷바라지나 해주어야 하는 숨막히는 분위기.88년 가을 미련없이 대학원을 떠났다. -다시 찾은 국진화공. 영업권 인수방식으로 남대문 직매장을 사들여 나만의 장사를 시작했다. 상호는 ‘남문상사’였고 나는 사장이었다. 하지만 기술과 자금이 달렸던 국진화공은 얼마후 경영난을 겪었고 나는 김준일 사장의 요청으로 국진화공의 기술담당 이사로 들어갔다. 공장을 다시 짓고 찬합, 접시, 숟가락, 젓가락, 욕실용품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도매상과 슈퍼마켓에 내다 팔았다. 우리 상품은 어디서건 인기가 좋았다. 다른 제품보다 가격이 훨씬 비쌌지만 ‘산리브’‘브라운스톤’‘치키버니’‘컬러즈’ 등 우리 브랜드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탄력을 받은 국진화공은 93년부터 다양한 해외전시회 참가를 통해 수출판로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회사이름을 바꾼 것은 이때.1등이 되자는 뜻의 ‘하나’에 ‘협력’을 뜻하는 ‘코-비즈니스’(Co-business)의 머리글자를 붙였다. 한글받침이 없고 단모음으로 구성돼 발음이 쉽고 영문표기(Hanacobi)도 간단했다. -하지만 95년이 되자 하나코비의 에너지는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잘한 상품만 600여가지를 만들다 보니 매출이 연간 100억원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93년부터 미국, 독일, 홍콩 등지에 열심히 수출을 했지만 매출은 연간 100만달러도 안 됐다. 제품종류가 많다 보니 재고관리도 안 됐다. 잉크종류가 1000가지가 넘었고 제품 스티커는 1만 4000가지에 달했다. ●200ℓ×2000만대×20%=8억ℓ -“이대로 가면 몇년 뒤 회사문 닫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성과를 잊고 밀폐용기를 차세대 주력으로 개발해야 합니다.”95년 사장이 된 나는 새로운 미래성장 사업 추진에 나섰다. 당시 타파웨어는 한국에서만 연간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고 있었다. 여닫는 불편함 등 타파웨어의 단점을 극복하면 국내외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경영진은 달가워하지 않았다. 현재 국내 1위를 지키고 있는데 굳이 모험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내 계산은 간단했다.“국내에 보급된 냉장고가 2000만대라고 합니다. 각 냉장고의 평균용량을 200ℓ 정도만 잡아도 무려 40억ℓ에 달합니다. 이를 20%만 차지해도 8억ℓ 시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1ℓ짜리 밀폐용기의 출고가를 1000원만 잡아보세요.8000억원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도전이 시작됐다. 신제품의 형태는 ‘4면 결착형’(4개의 뚜껑 잠금장치로 본체를 밀폐하는 방식)으로 했다. 실험결과 타파웨어 같은 ‘실링형’(Sealing·뚜껑과 본체의 마찰력으로 밀폐하는 방식)보다 밀폐력이나 편리성에서 훨씬 나았다. 하지만 문제는 실제 제작이었다. 우리가 참고할 것이라곤 ‘타도대상’인 타파웨어와 러버메이드밖에 없는데.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뚜껑을 물샐 틈 없이 본체와 결착시키려면 4개 잠금장치의 힌지(Hinge·경첩과 같이 꺾이는 부분)가 완벽해야 했지만 힌지 부분을 조금만 두껍게 해도 잠금장치가 꺾이지 않거나 부러졌고, 약간만 얇으면 찢어져 버렸다. -98년 말,3년간의 고생 끝에 락앤락의 실험제품이 완성됐다. 해답은 0.3㎜의 힌지 두께와 공기의 저항으로 탄성을 유지하는 ‘중공형 실리콘’에 있었다. 타파웨어를 이기기 위해서는 포장도 달라야 했다. 박스 안에 따로따로 담기는 타파웨어와 달리 우리는 마트료슈카(몸통을 열면 겹겹이 같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 목각인형)처럼 작은 용기는 큰 용기 안에, 큰 용기는 더 큰 용기 안에 넣을 수 있게 했다. 이는 나중에 해외수출 때 물류비용을 크게 줄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완벽한 제품이 나오기까지는 98년 실험성공 이후로도 한참이 걸렸다. 락앤락이 2000년에야 시장에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현재 락앤락의 힌지는 300만번을 조작해도 찢어지지 않는다(한국화학시험연구원 인증). 더는 시험해 보지 않았다. 가정에서 30년을 써도 힌지 조작이 10만번이 채 안되기 때문에 300만번 이상은 의미가 없다. ●미국에서의 첫 성공, 매진…매진…매진 -2000년 시장에 내놓기는 했지만 할인점 입점은 쉽지 않았다. 잘 팔리는 타파웨어와 러버메이드가 차지하고 있는 진열대를 보도 듣도 못한 국산제품에 선뜻 내주려는 곳은 없었다. 가까스로 입점한 곳이 서울 반포의 킴스클럽 본점. 그러나 대부분 주부들은 잠금장치가 4개인 것을 보고 만져보기조차 꺼렸다. 여닫기가 귀찮을 것이란 선입관이었다. 월 매출목표 3억원은커녕 3000만원어치도 팔리지 않았다. -그해 4월 홍콩 주방용품 전시회는 락앤락 신화의 출발점이었다. 한 외국 바이어가 우리 제품을 세계 최대 홈쇼핑 방송인 미국 QVC를 통해 팔자며 10만달러의 계약금을 건네왔다. 그러나 그해 8월 바이어는 돌연 계약취소를 알려왔다. 홍콩 전시회에서 락앤락이 인기를 얻은 뒤 30여개 업체가 우리 제품을 베껴 싼값에 내놓는 통에 도저히 가격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미국 방송을 위해 30만달러를 들여 인포머셜(홈쇼핑용 광고방송)까지 찍은 상황에서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바이어에게 QVC 방송건만은 예정대로 진행해 달라고 부탁했다. 대신에 방송으로 생기는 모든 손실은 우리가 물어주기로 했다.‘올인’이었다.2001년 6월 드디어 첫 방송이 나갔다. 대박이었다. 준비한 5000세트가 순식간에 매진됐다. 이 사실이 한국에 전해지자 국내 홈쇼핑사들이 먼저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당시 LG홈쇼핑에서는 방송 9회 연속 매진의 대기록이 세워지기도 했다. -하나코비 마케팅의 힘은 거미줄 같은 영업망에서 나온다. 가능한 한 모든 영업망을 총동원한다. 해외수출은 물론 홈쇼핑, 할인점, 일반총판, 도소매, 인터넷쇼핑몰, 특판사업 등 모든 통로를 활용한다. 특히 각각의 판매비중이 전체매출의 15∼20%씩 분산돼 있어 한 곳이 무너져도 다른 쪽에서 벌충이 가능하다. 극심한 내수침체에 시달려도 올해 매출이 지난해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내수는 줄었지만 수출이 늘었고, 홈쇼핑은 줄었지만 특판이 늘었다. 특히 2만여명에 가까운 주부 서포터스는 우리의 큰 자산이다. -골프를 한번 배워보고 싶다. 비즈니스를 위해서라도.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각 가정의 냉장고 안에 들어찬 락앤락이 아직 우리 목표의 20%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고졸·중퇴가 명문대卒 둔갑…‘짝퉁’ 과외강사

    강사의 학력을 속이고 과외를 알선, 수억원을 챙긴 유명 과외사이트의 운영자와 강사가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27일 학력을 속인 강사를 인터넷을 통해 학부모와 학생에게 소개하고 수수료를 챙긴 과외알선 M사이트 운영자 김모(46)씨와 또다른 과외알선 K사이트를 통해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학력을 연세대 졸업으로 속이고 강사로 활동한 김모(33)씨에 대해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M사이트를 통해 과외교습을 한 신모(33·여)씨 등 강사 12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고졸검정고시 출신이 명문대졸로 사이트 운영자 김씨는 지난해 1월부터 인터넷에 과외 알선사이트를 차려놓고 일간지와 잡지 등에 ‘1대1 방문교육의 혁명’ 등의 광고를 낸 뒤 이를 보고 회원으로 가입한 학생과 학부모에게 학력을 속인 강사를 소개해주고 수수료 명목으로 1억 78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신씨 등은 김씨의 권유를 받고 위조된 학력을 내세워 과외교습을 해 2억 87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조사결과 사이트 운영자 김씨는 “이 정도 학력으로는 강남에서 과외하기 힘드니 알아서 학력을 맞춰주겠다.”고 강사들을 꾀어 대학중퇴, 재적 등의 학력을 서울대, 연세대 등 유명 대학 졸업으로 바꿔 학부모와 학생을 속인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강사 800여명과 학생 3000여명을 모집, 매달 과외비의 30∼90%를 수수료 명목으로 챙겼다. ●“이런 건 시험에 안 나와” 사이트 운영자 김씨는 한달에 600만원씩 받는 고액과외도 알선했으며,‘과목당 월 100만원 이상’을 기준으로 하는 고액과외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입금된 과외비의 금액을 수십만원씩 2∼3차례에 나눠 장부에 기재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일부 강사는 학생들이 어려운 질문을 하면 “이런 문제는 시험에 나오지 않는다.”며 답변을 피하거나 다음 강의시간에 답변을 하기도 했다. 학부모와 학생의 환심을 사기 위해 학용품 등 선물을 제공하거나 수시로 상담을 했으나, 실제 과외를 받은 학생들의 성적은 대부분 향상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허위학력 강사를 고용했던 학부모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서울의 D대 출신인 신씨가 이화여대 수학교육과 출신인 줄 알고 지난 2월부터 한달에 70만원씩 주고 고3인 딸의 과외를 맡겨온 정모(45·여·강남구 도곡동)씨는 “유명사이트라서 믿었는데 속았다는 것을 알고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고액의 알선 수수료를 챙긴 과외사이트 18곳에서 고액과외를 한 강사 38명을 포함, 과외교습 신고를 하지 않은 2976명의 강사 명단을 서울시교육청에 통보하고, 이와 비슷한 영업을 하고 있는 다른 과외알선사이트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깔깔깔]

    ●검정고시 초등학생인 동생과 점심 먹다가 나눈 대화입니다. 동생 : 누나야,검정고시가 뭐야? 나 : 갑자기 웬 검정고시? 동생 : 버스광고판에 붙어 있는 거 봤어. 나 : 아,학교 안 다닌 사람들 그거 보면 졸업 자격이 생기고…. 한참 설명을 늘어 놓으려는데 동생이 말을 중간에서 끊더니 묻더라고요. “아∼ 그런데 왜 검정이지? 분홍은 안되나?” ●궁금합니다 유치원에서 소풍을 갔는데,아이들이 경찰서 옆에 붙어있는 현상 수배범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한 아이가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경찰 아저씨들이 저 사람을 찾고 있어요?” “그렇단다.” 그러자 아이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물었다. “그럼 저 사진 찍을 때는 왜 안 잡았어요?”
  • 올 수능응시 6만여명 줄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오는 11월17일 치르는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원서를 8월31일부터 지난 15일까지 접수한 결과,61만 146명이 접수했다고 16일 밝혔다. 지난해 67만 4154명보다 6만 4008명 줄어든 것이다. 수시모집 확대 등에 따라 재학생 지원자가 4만 602명 줄었고,새로운 수능시험 체제로 인해 재수생과 검정고시 출신 지원자가 2만 3406명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평가원은 분석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자격증 전문 케이블TV 출범

    ●자격증 전문 케이블채널 생활경제TV(SBN·대표 정생균)가 출범한다.생활경제TV는 10일부터 실생활에 유용한 각종 자격증 취득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한다.헤어디자이너 자격증,각종 조리사 자격증,자동차 관련 자격증,컴퓨터 관련 자격증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자격증 취득 과정에서부터 수지침,한자 인증 시험,토익 강좌도 선보인다.또한 공무원,공인중개사,검정고시,전산세무회계,법무사,변리사 등 자격 시험 준비 프로그램도 내보낸다.
  • 조폭으로 돌아간 학생회장

    ‘한번 조폭은 영원한 조폭?’ 전북 지역의 2년제 모 대학 총학생회장 임모(31)씨는 1990년 고교 1학년을 중퇴한 뒤 조직폭력 집단인 ‘이리 배차장파’에 가입,10대시절 일찌감치 범죄단체가입죄로 ‘별’을 달았다.그는 98년 폭력 건으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면서 마음을 고쳐먹었다. 교도소에서 뒤늦게 학업에 열중한 임씨는 2000년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이듬해 출소 후에는 장사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며 조폭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듯 보였다.특별전형으로 대학에도 들어갔다. 만학도 임씨의 성적은 지난해 1학기 학점이 4.5점 만점에 3.98을 기록,35명 중 5위에 오를 정도로 우수했다.학업뿐 아니라 교우관계,학내활동 등 모든 면에서 열심이던 그는 지난해 9월 68%의 높은 지지율로 총학생회장에 선출됐다.불우이웃돕기 등 각종 선행에 적극 나서던 임씨는 어두웠던 과거와 거의 이별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조직’에 대한 미련을 끝내 끊어버리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임씨는 지난해 12월5일 친구인 배차장파 조직원 천모씨가 J파 조직원 유모씨와 다투던 중 흉기에 찔리자,후배들을 움직여 새벽 운동에 나서는 J파 부두목 홍모(36)씨를 집단 난자해 중상을 입혔다.지난 3월 결혼을 앞두고 있던 임씨는 결국 검찰에 쫓기는 몸이 됐고,4월 조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자진출두해 수감됐다.어떻게든 새 삶을 살아보려 했지만 조폭의 마수가 신혼의 단꿈마저 앗아가 버린 것이다. 조직폭력 전담 서울지역 검·경합수부는 경쟁 조직원에 대해 잔혹한 집단폭력을 행사하고,범죄단체를 구성한 혐의 등으로 임씨 등 이리배차장파 일당 13명을 적발,이중 12명을 구속기소했다고 31일 밝혔다.
  • [정가카페] 박근혜대표 홈피100만1번째 방문자와 데이트

    [정가카페] 박근혜대표 홈피100만1번째 방문자와 데이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31일 인터넷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100만 1번째 방문자와 ‘데이트’를 가졌다. 데이트 상대는 최근 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권순호(17)군으로 이날 오후 서울 신촌의 ‘민들레영토(일명 민토)’라는 카페에서 박 대표를 만나 하루를 보냈다. 권군은 박 대표에게 백합꽃다발을 선물했다.이 자리엔 권군의 친구인 송기군과 박설빛나양도 함께 나와 박 대표의 데이트 상대가 3명으로 늘어났다.박 대표는 권군의 합격을 축하한 뒤 “나중에 꿈이 뭐냐.”고 물었으며 권군은 “연예인 매니저”라고 대답했다.이어 권군이 “미니홈피에는 자주 들어오시느냐.”고 묻자 박 대표는 “이제는 아주 습관이 돼서 집에 들어가면 매일 하게 된다.”고 답했다. 박 대표는 이 자리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게 된 이유와 젊은 시절의 회한을 털어놓는 등 진솔한 대화를 이어갔다. 이후 한강 선유도로 자리를 옮겨 간단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여의도 선착장에서 한강유람선을 타며 선상 데이트를 즐긴 뒤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신창원 고졸 검정고시 합격

    청송교도소에 복역중인 무기수 신창원(38)씨가 고입에 이어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30일 경북도교육청과 교도소측에 따르면 신씨가 지난 4월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한 뒤 4개월 만인 이날 발표한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365명) 명단에 이름을 올려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따냈다. 중2 중퇴 학력의 신씨는 교도소에서 평범한 수감생활을 해오다 올들어 ‘공부로 1등을 해보겠다.’며 학업에 전념한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소 관계자는 “신씨가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외부강사의 수업을 듣고 밤낮없이 책과 씨름하는 성실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신씨는 지난 97년 1월 강도치사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 화장실 창문을 뜯고 달아나 2년 6개월 동안 전국을 돌며 강·절도 행각을 벌이다 전남 순천에서 검거됐다. 청송 연합
  • 초등학교 6년과정 3개월만에 끝낸 6살 영재

    초등학교 6년과정 3개월만에 끝낸 6살 영재

    어른도 어렵다는 국가기술자격 시험에 혼자 공부한 여섯살짜리 영재 어린이가 합격해 화제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25일 발표한 정보처리기능사 합격자 가운데 최연소자인 만 6세의 송유근(경기도 구리시)군이 포함된 사실이 30일 뒤늦게 밝혀졌다. 정보처리기능사는 전자계산기 일반과 정보통신 일반,PC운용체제 등 4개 과목의 필기시험과 프로그램 작성 등 2차 실기시험에서 평균 60점 이상을 받아야 합격할 수 있다.그동안 필기와 실기를 연이어 합격한 최종 합격률은 32.6%에 불과할 정도로 청소년은 물론 성인도 취득이 쉽지 않은 자격시험이다. 송군은 영어 듣기와 말하기는 물론,미적분 문제까지 술술 푸는 뛰어난 영재로,이미 매스컴에 여러 번 소개됐던 인물.또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른바 ‘왕따’를 당해 유치원도 그만뒀다.요즘도 하루일과는 인터넷으로 미국 인권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의 영어연설을 들으며 시작한단다.구구단을 외운지 7개월만에 미적분을 풀고,초등학교 6년 과정을 단 3개월만에 끝냈다.이번 기능자격시험 역시 학원도 다니지 않았고 독학으로 공부한지 한 달여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실기도 가정용 컴퓨터를 이용해 혼자 연습한 것으로 알려져 또한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부모는 검정고시를 통해 초등학교를 건너뛰게 하려 했지만 만 12세까지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교육부의 반대에 부딪혀 검정고시 연령제한을 풀어달라는 행정소송까지 냈었다.법원이 “어린이들에게 사회 적응력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의무교육의 취지에 따라 검정고시 연령제한 규정을 둔 것은 정당하며 12살 이전의 검정고시는 불가능하다.”고 판결해 검정고시의 꿈을 접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정가카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정가카페]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자신의 미니홈피 100만 1번째 방문자와 오는 31일 공개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박 대표는 17일 밤 11시48분 미니홈피 게시판에 “100만 1번째 방문자인 권순호(17) 학생의 검정고시 시험이 끝나 31일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는 글을 남겼다. 박 대표는 “세상에서 최고의 데이트가 되도록 많은 의견을 주시라.”면서 “홈피를 개설한 이후 방문자가 많아져 서로의 마음을 읽고 공유할 수 있는 것이 기쁨이었다.”고 ‘팬서비스’도 잊지 않았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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