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검은 옷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목표액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여고생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선정적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온난화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37
  • 전통의상 「걀라비야」·「타란」 서구화물결에 점차 퇴조

    ◎김수정기자 이집트 패션기행/카이로 부유층여성들은 양장으로 멋내/중고교복은 흰 상의·감색 바지… 우리 비슷 「옷은 그 사회의 역사성과 개인의 생각,지위를 대변한다」는 말을 피부로 실감 할 수 있는 나라,또 사회가 개방되는 것과 여성들의 노출이 심해진다는 논리의 예외를 보여주는 나라가 요즘의 이집트다.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은 역사와 관광산업의 발달 등으로 회교권에서는 비교적 국제화되고 여권 또한 신장된 나라 이집트에는 다양한 색감·디자인의 현대의상과 신비로운 분위기의 희고 검은 전통의상이 동시에 물결치고 있다.도시와 시골의 패션풍경이 다르고 부자와 가난한 이,깨친 이와 못깨친 이의 의상이 극명하게 대비를 이루며 모래빛으로 뒤덮인 사막의 나라를 역설적으로 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이 본격적으로 서구식 양장을 입고 패션감각을 키운 것은 지난 19 4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사회개혁을 단행할 즈음이라고 이집트인들은 전한다. 이후 계속되는 개방으로 어깨가 드러난 짧은 치마차림,거의 반라인 웨딩드레스등이 60∼70년대초까지 유행했으나 80년대 들어 다시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그래서 비교적 양장을 즐기는 도시 여성들도 치마길이가 짧거나 폭이 좁은 노출된 옷을 입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집트 의사와 결혼,6년째 카이로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 이정희씨(34)는 『70년대 중동전쟁을 거친뒤 이집트인들은 「가까워진 종말」에 대비,좀더 정숙한 몸가짐을 해야 한다는 종교적 생각을 하게 되면서 옷차림이 보수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도 카이로등 도시 여성들은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흰색과 붉은색등 밝은 원색을 선호한다고 카이로 관광초급대를 졸업한뒤 외국인 관광가이드로 뛰고 있는 아멜 켄드리양(25)은 밝힌다. 이집트에서 도시·농촌을 막론하고 가장 눈에 많이 띄는 옷차림은 전통의상 「걀라비야」에 머리수건을 두른 모습.시골로 갈수록 걀라비야 차림이 많아지며 수도 카이로의 일부 부유 계층은 세계 유명 디자이너의 양장으로 멋을 낸다.남녀공용인 걀라비야는 둥근 목선으로 긴팔,통자루 모양의 원피스드레스로 풍성한 실루엣.이집트 특산의 순면을 소재로 가슴선까지 단추로 앞여밈이 돼 있다.남성은 흰색,여성은 검은색을 주로 입지만 파랑 연두 베이지색과 꽃무늬 등으로 다양하게 염색해 입기도 한다. 걀라비야는 요즘같은 가을에도 낮기온이 섭씨 31도 정도인 아열대 사막건조기후에서 온몸에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며 흡수성·통기성 또한 뛰어난 실용적인 옷이라고 이집트인들은 자랑한다.한벌에 10달러 안팎이면 감촉좋은 걀라비야를 장만 할 수 있다. 남성들은 머리에 흰색의 면으로 된 머리수건을 둘둘 말아 써 햇빛을 가리고 여성들은 「타란」이라는 머리수건을 쓰고 다닌다.눈만 가리고 머리·목 전체를 가리는 경우도 간혹 있으나 대체로 얼굴은 다 드러낸다.여대생이나 직장여성이 많은 도회지에서는 타란을 쓰지 않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검은색과 흰색,꽃무늬가 있는 이 타란은 미용및 종교적 이유와 함께 「정숙한 여인」임을 상대방 남성에게 표현하는 다목적의 얼굴수건이다. 중고교생들은 흰색 상의와 감색·회색 하의로 된 교복을 입는데 디자인이 3∼4가지된다.남학생의 옷은 바지슈트로 「바들라」라고 부르며 여학생은 스커트·블라우스로 된 「타야르」란 교복을 입는데 색깔만 단순할 뿐 우리나라 학생들의 교복과 별 차이가 없다. 현대와 전통,빈과 부,개혁과 보수로 뒤엉킨 이집트 패션의 모습은 바로 5천8백만 인구중 50%가 문맹이며 GNP 1천달러에 머물고 있는 후진성을 벗고 파라오 시대의 영광을 되찾고자 하는 이집트사회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한 지표 역할을 하는 듯 하다.
  • 아테네/에기나섬의 갈매기(아랍서 지중해까지:15)

    ◎설백의 날개끝 에게해 파도 “넘실”/스크루 휘말린 고기 향해 힘차게 내려꽂는 모습에 탄성 절로 그리스인들의 색채감각은 진솔하고 직재적이다.그들은 자신들의 전통이 어디서 비롯되고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깨닫고 생활감각으로서 뿐만 아니라 상징으로서의 그런 주조색을 서슴없이 선택한듯이 보인다.하양과 파랑. ○흰색·파란색 주조 흰색은 말할 것도 없이 햇빛의 그것에서 따 왔을 것이고 바닷물빛에서 끌어온 듯한 푸른 색은 또 거의 코발트 블루에 가깝다.이 두 색깔과 몇몇 보조색이 어울려 풍토와 기질을 특징적으로 드러내면서 비할데없는 미감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벼랑 너머 구릉에 다 붙여 줄지어서서 바람을 견디고 있는 그들 전통가옥의 소쇄한 아름다움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작은 창과 짙은 그늘이 드리운 좁고 긴 출입문의 그 하얀 돌집들이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화면에 나타나기만 하면 아무리 시시한 영상도 일순 밀도가 달라지는 듯하면서 불가사의 한 긴장감을 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이것도 필자의 편애가 일으키는 착각일까.시멘트의 현대식 건물들로 거의 들어차 있다고는 해도 언덕에서 바라보는 아테네시의 전경이 주는 인상 역시 거기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이것은 도장의 문제가 아니라,거기에 조화되는 주위 경관과 사람들의 전통적인 생활인습이 함께 어우러져 제풀에 만들어 내는 색감인 것이다.똑같은 빛깔이라도 가량 시간이라든가 인고라든가 거기 스며밴 그런 요소들의 농담에 따라 그 느낌이 천양지판일 수밖에 없다는 점은 상식이다.흰 벽을 한 집들의 유난한 아름다움은 스페인의 알함브라궁에서 내려다 본 언덕바디의 회교마을이나 그라나다 교외에 있던 민중시인 가르시아 로르카의 작은 2층 유택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느낌이 어딘가 약간씩 달랐던 것도 같다. 아테네 사람들의 그런 색채감각이 더욱 돋보이면서 집약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곳은 아마 피레우스 외향일것이다.거기 정박한 크고 작은 배들의 모습이 그토록 아름다웠던 것이다.대개 하양,파랑,혹은 어쩌다 검정과 주황색 부분채색으로 도장이 된 그 배들은 의젓한 자세로 물속에 닻을 내리고서끊임없이 무슨 사연들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헤일 수 없을만큼 수효가 많다든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해 보인다든가 하는 인상같은 것은 언외에 속한다.그 모습은 진솔하다는 느낌을 너머 탁 트인 호방함까지 곁들이면서 사람을 들뜨게 만들기에 족했다.아토미카호라는 이름의 중간크기 객선에 올라 우리는 지체않고 에기나 섬으로 향했다.이 섬은 에게해와 지중해 연안에 떠 있는 천여개가 넘는 그리스의 섬들 중에서도 한시간 반 남짓의 거리밖에 안되는,아테네에서는 두번째로 가까운 섬이다.하루 일정만 아니었더라면 그리스 역사상 가장 영욕이 심했던 섬의 하나인 크레타이거나 히피와 쟁이들이 우글거린다는 미코노스를 사실 필자는 보고 싶었다.흰 십자가와 굵직한 청색선 다섯개가 단순하게 가로로 죽죽 내질린 그리스 국기가 이제서야 온전히 생기를 되찾은 듯이 몸을 뒤채며 깃대 끝에서 펄럭이고,눈더미를 그대로 쏟아붓는 듯한 물 이랑이 그물 끝에서 그대로 긴 길을 만들면서 따라왔다. ○날개끝엔 검은 점 그 묘하게 생긴 갈매기들은 배가 그렇게 반시간 남짓이나 물살을 가르던 무렵 쯤에 무슨 계시처럼 우리 머리 위로 한두마리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일행들은 어떴는지 몰라도,솔직히 필자는 이번 여행의 시초부터 어딘가 석연찮은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었다.「발길 닿는대로」라고는 했지만 무엇이 여행의 동기였는지 그것부터가 아직도 분명한 가닥이 잡히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후세인이 벌인 하트라 축제에 초청을 받았다든가 신문·잡지에 견문기를 쓰기로 한 일들은 외형상의 구실이나 여건에 지나지 않는다.신선한 이국풍물이니 무슨 중뿔난 문화감각의 개안이니 해도,그렇게 거쳐온 나라들의 식당에 이쑤시개 같은 것이 비치 돼 있었든가 없었든가 하는 그 정도의 심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어찌된 셈인지 아테네에서의 마지막날 밤 예의 이 피레우스항부근에서 커다란 도미찜 하나로 네 사람이 배를 불린 「그레코」라는 식당을 제외하고는,어느 나라에서도 이쑤시개가 비치된 식당은 없었던 것 같아 이런 일도 곤혹스러운 기분에 일조를 한 것 같다.그런 나라 사람들은 그것이 전혀필요치도 않을만큼 이빨들이 모두 짐승처럼 튼튼하다는 말인가,아니면 그들의 그 문화감각이란 것도 아직 외래객의 이빨끝에까지는 못미치는 수준이라는 것인가. 바로 머리 높이에서 날고 있는 새를 바라보면서 필자는 아마 그 비슷한 생각이나 하고 있었을 것이다.가슴이 뽀얗고 설백의 날개 바깥쪽으로는 옅은 회갈색이 스미듯이 번지면서 끄트머리에 검은 점이 악선트처럼 찍혀 있는 놈들인데,우리 연안의 갈매기들보다는 약간 몸통이 작고 좀더 날씬한 것도 같다.활짝 날개를 펴고 움직임을 멈춘 채 바람을 타고 이쪽과 눈을 맞추다 갑자기 사선을 그리며 허공을 가르는 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수효가 불어났다.물이랑이 쉴새없이 소용돌이치는 고물부근에 앉아 있던 일행들이 저도 모르게 몸들을 일으켜세웠다.이놈들이 어디로 사라졌지 하는 순간에도 시야 한쪽으로는 또다른 날개와 부리를 들이밀면서 갈매기들은 정신이 다 멍할 지경으로 십여마리씩이 한꺼번에 들이닥치며 따라오고 있었다. 콸콸대는 파도의 뱃전 너머로는 멀리 보이기 시작한 섬의타는 듯한 주황색 해안선이 그네뛰듯이 오르내리고,그러자 갈매기들은 마치 팔매질을 당한 듯이 제가끔 물 위로 힘차게 내려꽂히기 시작했다.스크루에 휘말린 고기들을 건져올리는 것이다.어떤 그럴듯한 풍경 앞에서도 생각이 나지 않던 「장관」이란 소리가 새들의 그 적나라한 생태 앞에서야 저도 모르게 얼핏 떠오르면서,일행 틈에서는 탄성이 터져나왔다. 『우리를 환영하러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아유 저놈들 참!』 그 어떤 선명한 정경이나 사태도 지나놓고 보면 마치 몽롱한 꿈결같은 법이다.필자는 도리없이 이번 여행의 동기를 다시 한번 제풀에 떠올렸다.결국은 우물속 같은 그 모든 국내사정이나 짓누르는 개인적 스트레스에서 잠시나마 벗어나기 위해 발을 내디딘 격밖에는 되지 않는다.다른 일행들이야 동기가 어떨 값에,그럼에도 무엇이 정말로 문제인가라고 할 때는 「자유」라는 소리 외에는 떠오르는 단어가 또 있을 수도 없었다.그렇다.사람을 찐드기먹이고 옭아매는 그 모든 사정으로부터 훌훌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그런 사정들과 어떻게 긴장을 유지한 채 균형을 잡고 버티어낼 수 있는가 할 때의 그 「자유」였을 것이다.방금 본 갈매기들의 그 생태와 비상은 마치 「자유」라는 막연하기 짝이 없는 그런 개념의 구체적인 실상 아니면 그 현실적인 이행과정의 촉감이거나 이미지처럼 필자의 가슴을 호되게 친 것이다. ○자유의 표상처럼 배가 닿자 선창이 열리고 오토바이에 몸은 얹은 일단의 젊은이들과 선객들이 왁짜하니 섬으로 빠져나갔다.흰색·코발트색·핑크색으로 예쁘게 단장한 타베르나와 카페들은 손님맞을 준비로 부지런히 식탁을 훔치고,인근에서 실습을 왔는지 노란 옷을 입은 유치원 꼬마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병아리처럼 떠들면서 우리 앞을 지나갔다.거대한 잉크병을 그대로 자빠뜨려 엎질러놓은 듯한 모래톱,거기 동화처럼 끌어올려져 몸들을 말리고 있는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배와 보트와 그런 풍경의 아름다움을 새삼 왈가왁부해서 무엇하겠는가.수블라킨가 뭔가 하는 꼬치요리를 점심으로 먹은 것도 같은데 그 미각을 되씹고 탄상할 여유가 있을 리도 없었다.의문이 풀리기 시작한 여행의 동기는 스스로에게 그만큼이나 사뭇 중대한 사건이었다는 것일까.일행과도 헤어져 종아리를 물에 담근 채 한나절이나 멍하니 필자는 그러고 앉아 있었다.누가 뭐래도 이 맑은 바다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에게해에 한번이라도 발을 적셔보기 위해 사실은 이번 여행을 떠나온 것같다」고 썼다가 그 과장이 멋적어 찢어버렸다.방파제 그늘에서 서로 껴안고 있는 남녀의 그림자나,이쪽 끄트머리에서 연방 허리를 굽히면서 한쪽 다리로 물장난을 치고 있는 고독해 보이는 한 이국소년의 모습이 이제는 새삼 감동이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리도 없었다.기념품가게 앞을 어슬렁거리다 말고 필자는 좀전에 먹은 생선요리의 값을 우리돈으로 환산해보았다.아마 7천∼8천원쯤 되었을 것이다.그런 멍청한 상념 속에도 「자유」라는 말의 뉘앙스는 어김없이 그대로 스며배어 있었다.그 때문이었던가,섬을 떠날 무렵에 일행과 길이 엇갈리면서 일어난 그 어처구니없는 실종소동 같은 것은 더구나 언급할만한 것이 못된다.아테네를 뜨던 전날 밤늦게 영화관에서 대한 베르톨루치의 「리틀 부다」의 선선한 감동이 그나마 그때까지 식을 염을 않고 있던 그 들뜬 감정을 다소나마 가라앉혀주었을 뿐이다.
  • 「김 사후 첫방북」 일관광객이 본 “오늘의 북한”

    ◎“가로등 꺼진 「평양의 밤」 전력난 실감”/웃음잃은 주민… 신발 못신은 아이도 많아/강가엔 밤늦게까지 낚시꾼… “부족한 식량 대체” 인상/“승차줄서기 배급행렬 오해” 사진 못찍게 『평양은 활력이 없는 「검은 도시」였다.야윈 북한사람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배어 있었고 해가 저물면 평양은 전깃불이 거의 없는 검은 빛으로 변했다.전체적으로 무거운 침묵속에 싸여 있었다.그 가운데 김정일체제가 정착되고 있는 느낌이었다』김일성 사망후 지난28일 북한을 다녀온 어느 일본 관광객이 말하는 오늘의 북한 모습이다.북한관광이 재개되면서 일본관광단 34명이 지난달 23일부터 5일간 북한의 평양,개성,묘향산,판문점등을 여행했다.그들은 김일성사망후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한 일본사람들이었다.그중 한 일본인이 본 지금의 북한상황을 소개한다. ○한낮 사람·차 드물어 평양의 순안국제공항은 국제공항이라는 말이 사치스러울 정도로 좁았다.공항에는 일본관광객을 제외하고는 별로 사람들이 없었다.평양거리에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아침 저녁 출퇴근시간에는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려 차를 타기가 어려울 정도였으나 낮에는 거의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없었다.자전거와 자동차도 드물었다.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는 일본제거나 벤츠였다. 북한사람들의 모습도 텅빈 평양시내만큼이나 활력이 없었다.평양에서 만난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없었다.그들의 야윈 모습에는 명동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활기찬 삶의 즐거움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깡마른 얼굴과 단조로운 색깔의 지저분한 옷에는 가난이 짙게 배어있었다.평양을 벗어나면 가난은 더욱 심각했다.개성에서 만난 어린이들중에는 신발을 신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다. 강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밤늦게까지 낚시를 하는 어린이들도 있었다.북한에서의 낚시는 취미생활이 아니라 부족한 식료품을 보충하기 위한 절박한 생활의 한 부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평양에는 사람보다 오히려 각종 구호를 적은 간판이나 플래카드가 더 많았다.열심히 일할 것을 촉구하는 구호는 어딜 가나 넘쳐흘렀다.많은 구호는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라 일하지 않는 통제된 사회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듯했다. ○주체사상탑만 불빛 밤이되자 평양은 숨을 멈춘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가로등이 꺼져있는 평양거리는 바로 앞이 안보일 정도로 어둡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평양의 밤은 「역사의 정지」와도 같은 느낌이었다.어두운 평양의 모습은 심각한 전력난을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그 가운데 주체사상탑만이 유령의 불빛처럼 빛나고 있었다. 북한거리에서는 사망한 김일성과 김정일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있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북한에서는 김정일이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것이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다.후계문제와 관련,어떤 이상한 조짐은 느낄 수 없었다.TV·라디오는 김정일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방송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었다.24일 아침 8시 평양방송의 보도도 「군사의 영재이신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의 위대함을 강조했다.김일성의 동상앞에는 지금도 조문객이 많았다. 북한여행은 2명의 감시인과 1명의 통역이 반드시 따라다니는 통제속에 이루어졌다.그들은 ▲불특정다수의 사람들 ▲정복입은 사람 ▲열차안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진을 찍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사진을 찍을 경우 반드시 상대방의 허락을 받고 찍으라고 말했다.그러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모두 피했다. 『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찍으면 안되는가』라고 질문을 하자 통역은 『차를 타기 위해 줄서있는 것을 찍은 후 식량배급을 받기위해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할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식량난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지극히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북한은 관광객의 여행모습을 비디오에 담아 판매하고 있었다.1개당 1만엔.일행중 25명이 비디오를 샀다.25만엔은 북한에서는 적지 않은 돈이다.비디오판매는 북한선전과 함께 외화벌이이기도 한듯하다.북경에서 하루 잔 것을 포함,1주일간의 여행비는 25만7천엔이 들었다. ○8비트 컴퓨터교육 일본인집에서 본 비디오는 북한의 밝고 좋은 면만을 담았다.우리에게 낯익은 어린학생들의 연주모습도 있었다.그들은 평양제1중학교 학생들이었다.연주는 훌륭했다.평양제1중학교는 북한이 자랑하는 「쇼윈도」다.그러나 그 뒷모습은 오늘의 어려운 북한상황을 말해주고 있었다.변소는 수세식이었으나 물이 나오지 않아 대변이 쌓여있었다.휴지도 없고 전기도 꺼져있었다.이때문에 여자관광객들중에는 놀라 뛰어나온 사람도 있었다. 비디오는 컴퓨터교육도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그 컴퓨터는 일본에서 15년전에 쓰던 8비트 사프사 제품이었다.세계를 잇는 정보하이웨이 구상이 현실화되고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정보화사회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정보원시세계」에서 그들은 살고 있었다. ○김 대통령 수시 비난 관광객들은 북한사람들과 직접접촉할 기회가 드물었다.지하철을 탔을때도 같은 칸에는 북한사람들이 한명도 없었으며 레스토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묘향산에 갔을 때 머무른 향산호텔(2백28실)에는 손님이라곤 우리외에는 없는듯 보였다. 안내원들은 관광객들에게도 정치선전을 늘어놓았다.그들은 고려연방제통일안을 강조하며 남한,특히 김영삼대통령을 기회있을 때마다 비난했다. 관광객들에게도 정치선전을 하는 나라.삶의 즐거움을 찾아볼 수 없는 정체된 사회.북한은 이상한 수수께끼의 나라였다. ◎독 외교관이 쓴 「북한인상기」 출간/“평양에 「준전시」 긴장감”/주민에 “남서 침략” 강박관념 주입 북한의 최근 모습을 직접 보고 체험했던 독일외교관이 쓴 북한이야기가 최근 출판돼 관심을 끌고 있다.독일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지는 지난달 30일 평양 독일이익대표부 개설임무를 띠고 91년초 부임,최근까지 근무하다 돌아온 페터 샬러씨의 북한인상기 「북한­김씨부자의 마술적 힘에 의해 조종되는 나라」를 소개했다. 신문은 「장미넝쿨속의 독재국가」 제하의 서평기사에서 외부세계로부터 철저히 폐쇄되어 있는 북한에 대한 보고가 극히 드문 현실로 볼때 공산권사정에 밝은 젊은 외교관이 쓴 이 관찰기록은 가치가 있다고 평했다. 저자는 북경,쿠바 등지에서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북한정권의 선전과 자기과시의 가면을 넘어 북한사회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있으며 북한사회의 깊숙한 구석까지 관찰하고 있다고 신문은 말했다.샬러씨는 이 책에서 북한내부는 냉전의 분위기와 준전시 상황이 지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북한사회는 고도의 전시체제아래 사회전반적인 군사화가 진행되어 있으며 늘 남한이 침략해올지도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주민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는 것. 그는 자신이 부임해서 북한측이 지명해준 현지고용인원을 대하면서 느낀 감정이나 사회이면 등을 묘사하고 있다.또 외교관으로서 북한사회를 접촉하면서 느낀 감정이나 주민생활의 모습,여행을 하면서 보고들은 얘기들을 풍부한 일화로 엮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관찰기록은 단순히 피상적·단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주체사상과 북한의 경제운용상황 등 국가지도이념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실제 사회조직체계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속에 일화들이 녹아들면서 북한이라는 거대한 실체를 나름대로 더듬어내고 있다. 아쉬운 점은 일반주민들과의 접촉이 극히 제한되어 있는 관계로 일방적 관찰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가 주조를 이루고 있을 뿐 주민들과의 가슴을 열어놓은 대화나 의견교환을 통한 깊숙한 북한이야기를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 어쨌거나 샬러씨는 북한정권의 핵심을 설명해주는 것은 개인우상화라고 지적하면서 그 대가로 치르고 있는 극도의 내부적 억압과 대외적 고립이 북한체제가 지속될 수 있는 근간인 동시에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고 진단하고 있다.
  • 다시 유행하는「재키 패션」/5월별세이후 60∼70년대 봄 되살아나

    ◎소매없는 단색원피스·굽낮은 구두 “불티” 재클린 케네디가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뒤 구미패션계에는 재키열풍이 또 한차례 불고 있다. 벌써부터 유명 디자이너와 의류회사들은 재키가 젊은 시절 가을·겨울에 즐겨 입었던 에이라인 스커트,몸에 꽉 죄는 재킷,굽낮은 구두를 올가을 주력상품으로 내놓았다. 이번 여름에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소매없는 단색 원피스도 재키스타일의 하나다. 물론 재클린이 살았을 때도 그를 추종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재키패션붐이 거셌다.60∼70년대초 디자이너와 여성들은 재키의 등장에 주목했으며 여성잡지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최첨단의 의상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는 90년대 와서 다시 재키의 패션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왜일까.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바로 지난 6월호의 잡지들을 이유로 들고 있다.당시 전세계 잡지들이 특집으로 재키의 우아한 모습을 가득 담은 화보들로 지면을 장식했던 것이다.대통령의 부인,재벌의 부인,그리고 나중에는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평생을 화려하게 살다간 재키의 사진들은 현대의 젊은 여성들에게도 충분히 동경의 대상이 됐음직하다.이런 동경이 또 재키와 같은 옷을 입고 싶게 만들기도 했을 터이다. 사실 재키는 화려한 모습 뒤에 이와 얽힌 갖가지 일화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백악관에서 보낸 첫 1년동안 그는 옷과 장신구들을 사들이는데 4만5천4백46달러를 썼다고 한다.당시 대통령으로서 케네디의 보수는 연 10만달러였다.또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인이 되었을 때는 터틀넥 스웨터를 색깔별로 사기 위해 메디슨가의 의상실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는 소문도 있다.또 패션잡지인 보그를 탐독하면서 스스로에게 맞는 의상을 고안해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으며 출판사 재직 당시에는 「러시아의 의상」이라는 책도 펴냈다. 이같은 일화속에서 여성들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재키의 상황에 대한 부러움으로 그와 같은 옷을 입으며 대리만족도 느낄는지도 모른다. 한때 휴먼 섹슈얼 리스판스라는 그룹은 여성들의 재키에 대한 동경을 그대로 드러낸 노래를 발표해 화제를 낳았다.『나는 재키 오나시스가 되고 싶어요/나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싶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같은 여성들의 심리를 재빨리 간파한 디자이너와 의류회사들이 앞다투어 재키옷을 만들어냄으로써 재키유행을 굳히고 있다.캘빈 클라인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에이라인 치마에 같은 색상의 허리위까지 오는 짤막한 재킷,이탈리아 밀라노의 뮤치아 프라다는 브이(V)모양의 큰 깃을 달고 주머니가 큰 코트,도나 카란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꽃분홍색의 옷을 각각 만들어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백화점 등 판매점도 가세했다.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은 올가을 가게 진열대마다 재키스타일의 패션을 전시한다.여성스럽고 우아한 정장스타일의 옷과 함께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장갑,큰 선글라스,스카프,진주 목걸이 등을 총출연시킨다는 계획이다. 캘빈 클라인의 중저가 남성복메이커인 CK는 한술 더 떠 모든 재키는 케네디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판단,케네디가 즐겨 입었던 더블버튼의 블레이저를 신상품으로 내놓았다.
  • 벨벳·사틴/화려한 소재 올가을 유행

    ◎중세 민속풍 낭만적 분위기 연출/재킷·미니스커트 등 발랄한 스타일 개발 붉은 빛이 도는 갈색과 검은 색,회색의 벨벳과 사틴(공단)소재.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질감의 이들 소재를 이용한 옷들이 「중세 민속풍」의 화려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돋우며 올 가을 패션가를 장식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까지 귀족적인 광택과 매끈한 감촉의 특성에 따라 여성의 이브닝드레스나 연회복 등에 주로 쓰여왔던 벨벳과 사틴이 이번 가을에는 조끼나 재킷·원피스·바지등 일상복의 소재로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최근 몇년간 가을 특유의 차분한 분위기를 무색하게 했던 「튀는 」스타일의 의상이 점차 없어지고 낙엽깔린 한적한 공원이나 초저녁 거리에서 나오는 낭만적인 분위기를 올 가을 여성들의 유행 옷차림에서 쉽게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패션전문가들은 지난 2∼3년간의 패션 경향에 대해 『그런지(거지풍)룩과 뉴히피 룩,옷의 바깥과 속을 뒤집어 놓은 듯한 봉제 룩등 대부분 비구조적인 디자인이 지배적이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경향에서 탈피해 전통적인 느낌을 주는 정제된 선의 옷들로 변화되는 것이 올 가을 세계적인 유행경향이다.벨벳소재 의상 같은 부드럽고 여성스러움을 강조한 옷들이 아직까지 꾸준히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겹치기 연출법과 어울려 패션계를 주도할 것이란 전망.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날씨속에서도 포근하고 부드러운 느낌의 벨벳소재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패션거리에 등장할 정도로 강한 유행이 예상되는 벨벳소재는 10여년전 고풍스러움만 강조되던 것과는 달리 밝고 발랄한 느낌의 다양한 소재로 개발돼 응용되고 있다. 특유의 부드러운 광택이 있는 벨벳소재 옷은 백화점 등 여성복 매장을 이미 점유한 가을옷 가운데 여성들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고 있는 품목.이들 옷에 사용된 벨벳은 레이스와 함께 사용해 가공함으로써 속이 비치는 시 스루 룩의「레이스 벨벳」을 비롯,주름을 잡아 구긴 듯한 느낌의「크링클 벨벳」,무늬를 넣은 「프린팅 벨벳」등으로 종류가 다양하다. 사틴소재 역시 부드럽고 윤기있는 표면의 특징을 살려 바지 원피스 등의 옷으로 표현되고 있다. 잔 꽃무늬를 넣고 바이어스처리를 해 편안함을 강조하기도 하고 표면을 은색빛이 나도록 처리하기도 했다.
  • 복식의 특색(백제를 다시본다:25)

    ◎스키타이계 영향… 깃관·장화 즐겨 착용/신분구별 공복제도 고이왕때 제정/왕은 자색도포에 청비단바지 입어 백제의 복식을 알 수 있는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따라서 당시의 복식을 완벽하게 복원할 수도 없다.다만 남아있는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 등에서 나타난 복식관련 유물이 더러 부합되어 복식의 대체적인 윤곽을 어느 정도 계층별로도 파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추세다. 이를테면 AD 501∼522년에 재위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유물은 당시 왕과 왕비의 옷은 물론 장신구가 어떠했는가를 보여준다.특히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는 당시 백제 사신의 옷을 그대로 보여준다.또 「삼국사기」기록은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한 관복을 연상시키거니와 「주서」 「통전」 「북사」 등 중국측 기록은 서민들이 입었을 옷을 짐작케 하고 있다. 한국 고대문화의 원류가 북방문화,즉 스키타이계인 만큼 복식의 경우에도 스키타이계의 영향을 받았다.고대인들은 머리에 삼각형 모자(변형모)와 새깃털로 장식한 관(조우관)을 썼고 좁은 소매에 둔부선까지오는 왼쪽여밈의 저고리와 말을 탈 때의 편리성을 감안하여 좁은 바지를 입었다.상의 위에는 의례용으로 긴저고리를 입기도 했다.허리에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된 띠를 맸고 장화를 신었다.또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의 장신구를 즐겨 착용했다. ○중국 고서화에 전해 백제와 고구려·신라 삼국이 이러한 기본 복식을 이어받고 있다는 사실은 4세기 중국 양나라의 「직공도」에서 잘 나타난다.4∼6세기에 그려진 고구려의 고분벽화도 이를 확인하는 자료라 할 수 있다. 백제 왕의 옷 매무새는 「구당서」 및 「신당서」동이전이 비교적 소상히 전한다.소매가 넓은 자색 두루마기(대수자포)에 청색 비단 바지(청금과)를 입고 가죽띠(소피대)를 맸다는 것이다.또 흑색 가죽신(오혁리)을 신고 김화가 장식된 검은비단관(오라관)을 썼다고 한다. 이 기록을 근거로 한 왕의 옷 매무새에다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장식을 곁들여 보면 아주 찬란하다.자색옷에 꿰매어 붙인 사각형 혹은 오각형의 얇은 금판이 더욱 빛나고 허리에 두른 은제 과대는 위엄을 더했을 것이다.왕비는 물론 왕도 귀고리를 달았고 금동제 신발(금동리)을 신었다.과대는 숫돌 물고기 청동 등의 장식품을 길게 늘어뜨린 아주 화려한 허리띠다.과대는 고구려나 신라의 귀족들도 6세기까지 금·은으로 만들어 사용하였다.백제귀족들도 김과대를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왕의 금동신발은 제사 등 특별한 경우의 의례용 만 아니고 평상 집무복에도 갖춘 신발인지도 모른다.금동신발은 보기와는 달리 딱딱한 신의 안쪽에 헝겊을 대면 충분히 신을 수 있기 때문이다.더욱이 밑바닥에는 뾰족한 스파이크 같은 것이 있어 신기에 불편하지 않다.현재도 일본 신사의 신관들이 금동신발과 같은 모양의 신을 나무로 만들어 신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금동신발·귀걸이도 백제의 공복제도는 고이왕 27년(260년)에 제정됐다.이것은 법흥왕 7년(520년)까지 기다려야 하는 신라 보다 무려 2백60년이나 앞선 것이다.백제의 공복은 관모의 장식,대 및 옷의 색깔로 품계를 구분했다. 관모에는 1∼6품에 한해 은화를 장식했다.그러나 그 아래 품계는 관제는 같았으나 은장식은 없었다.이 은화는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김화와 비슷한 종류일 것으로 추측되는데 새깃털(조)을 금속으로 모방하는 가운데 발전시킨 귀족적인 수식일 것이다.새깃털을 관에 장식하는 습속은 동북아시아 기마민족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구려인들이 즐겨 사용했던데 반해 백제에서는 조배나 제사 때만 사용했다. 띠(대)의 색깔은 1∼7품은 자색,8품은 검은색,9품은 붉은색,10품은 청색,11∼12품은 노란색,13∼16품은 백색을 각각 썼다.「구당서」에 따르면 관인의 옷색깔은 평민과 구별하기 위해 모두 비색(적색)이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삼국사기」와 「통전」에는 6품까지는 자의,11품까지는 비의,16품까지는 청의이며 평인은 자의비의를 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어느 쪽이 옳던 일반백성은 왕의 옷색깔인 자색과 관인의 색을 옷에 사용할 수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양나라의 「직공도」에 나타난 백제의 사신은 아주 화려한 차림새였다.짙은 연두색 장유에 고동색 선을 수구와 옷깃 섶 밑단에 둘렀으며 짙은 연두색 띠를 했다.분홍색 넓은 바지부리에는 주황색 선을 대었고 검은색 장화를 신었다.관은 잘 보이지 않으나 은화를 장식한 관을 끈으로 매어 턱 밑에서 고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 새겨진 신선과 5인의 악사는 백제의 복식을 밝혀줄 또 하나의 결정적인 자료로 부상했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에는 5인의 악사가 생생한 모습으로 부조되어 있다.이들은 관을 쓰지 않고 머리를 길게 땋아서 조선시대 내인의 새앙내리 접듯이 몇 번 접은뒤 댕기로 묶어서 오른편 귀쪽에 붙였다.이 모습은 마치 일본의 아좌태자 양쪽에 서있는 왕자들의 미즈라를 연상시킨다. 이같은 악사의 모습은 소매넓은 자색유와 치마(군)를 입고 장보관(장포관)을 썼다는 「삼국사기」의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또 신선으로 보이는 11개의 인물상도 앞으로의 중요한 연구과제다. ○서민 다·적의 못입어 백제시대의 여자옷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으나 「수서 동이전」은 백제부인은 화장을 하지 않고 머리는 땋아서 늘였는데 출가 전에는 한줄,출가 후에는 2줄로 땋아 머리위에 서렸다고 전한다.여인들은 또 무령왕릉 출토품으로 미루어 볼 때 귀고리 목걸이 팔찌 반지 등 아름다운 장식품을 사용했을 것이다. 여왕은 기본복인 치마 저고리 위에 소매 넓은 포를 입고 띠를 하였다.머리에는 김화로 장식한 관을 썼고 금귀고리와 금·은 팔찌,금·옥·호박·유리구슬로 된 목걸이를 달았다.옷에는 왕과 같이 금판을 꿰매어 붙였다. 무령왕릉 출토품에서 확인된 백제인의 금·은 세공술은 같은 시기 어느나라보다 뛰어나다.이는 곧 백제 의상의 수준 또한 매우 높은 것을 의미한다.장신구는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나 옷은 투박한 경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한나라의 복식문화는 문화전반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백제의 복식은 당대 백제의 금·은 세공술의 위치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이었을 것임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물상의 두발/무령왕릉 동자상도 「우올림머리」/「주악상」과 같아… 특정계층 두발형태 인듯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유리로 만든 한쌍의 동자상이 있다.하나는 반파되었지만 하나는 완전한 모습으로 전한다.높이 2.8㎝인 이 동자상의 허리부분에는 허리에 구멍이 뚫려 줄로 달아매놓았던 것으로 추측된다.이 유물에 대해서는 목걸이 같은 장식물로 쓰여지지 않았겠느냐는 의견과 종교적인 의미를 가졌다는 두가지 설이 나와 있다. 복식사학자들은 대체로 불교관련설,구체적으로 이 동자상이 보살이라는 설에는 회의적이다.왜냐하면 이 동자상이 완벽한 백제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보살을 당시의 바지·저고리를 입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하기는 어렵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동자상의 머리부분이다.얼핏 보면 동자상은 머리카락이 없는 것 같다.보살로 해석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보인다.머리 왼쪽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귀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지난해 부여 능산리에서 발굴된 금동용봉봉래산향로의 5인 주악상도 얼핏 삭발한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머리 오른쪽에 돌출된 부분이 분명히 나타나 있다.5명의 악사에게서 모두 나타나는이 부분은 동자상의 경우보다 훨씬 뚜렷하다.그래서 동자상이나 주악상의 머리모양은 아마도 백제 당시 어떤 계층의 머리형태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이는 향로가 백제에서 만들어졌다는 또다른 확실한 증거가 되기도 한다. 한편 향로에 새겨진 주악상의 주인공들은 성년남자임이 눈으로도 확인이 된다.백제남자의 경우도 미성년과 성년,혹은 기혼과 미혼의 머리모양이 달랐을 것이다.그런데 주악상과 동자상의 머리모양이 같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자상이라고 불리는 유리조각품의 주인공은 동자가 아닌 성인남자일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 반란가담 농민병사도 총들고 “한표”/멕시코 4대선거 이모저모

    ◎투표용지 바닥나 곳곳서 항의소동/마야원주민 16시간 산길걸어 참여 ○…멕시코 유권자들은 21일 아침일찍부터 대통령및 의회선거에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대거 투표소로 몰려들어 투표소에서는 시작 직후부터 투표용지가 바닥나는 사태를 빚었다. 투표를 하지 못한 멕시코시티의 유권자들은 시내 중심가의 한 거리를 가로막고 항의를 하기도 했으며,일부 시민들은 투표용지 배부를 요구하며 선거관리기구인 연방선거연구소(IFE) 정문을 발로 차고 두드리기도 했다. IFE측은 투표용지 부족사태는 주소지를 떠나 있으면서 투표를 원하는 유권자들을 위해 설치된 특별투표소에 3백장씩의 투표용지만을 할당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류판매 금지령 ○…수십년동안 정치문제와 고립된채 남부 치아파스주 외딴 지역에 살고 있는 가난한 마야 인디안 원주민들은 생전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기 위해 무려 16시간동안 산길을 걸어 투표소에 도착하는 열의를 보였다. 농부의 아내인 한 35세 여인은 아기를 데리고 하루전부터 걸어서 투표소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마야 인디안 전통복장차림의 치아파스원주민들과 올해초 반란을 일으켰던 사파티스타 반군은 나란히 줄을 서서 투표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었으며 일부 반군병사들은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총을 내려놓기도 했다. 치아파스주의 가난과 문맹률은 멕시코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는 올해초 일어난 사파티스타 폭동의 주요인이 되기도 했다.사파티스타반군은 선거부정이 밝혀진다면 즉각 정부군에 공격을 가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폭동홍역 씻었다” ○…멕시코에서는 선거일인 21일 자정까지 주류판매를 금지했으나 선거결과를 기다리는 멕시코 국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유권자들은 올초 치아파스주의 폭동과 유력한 대통령후보인 도날도 콜로시오의 암살로 홍역을 치르기도 했지만 마침내 투표소에서 긴줄을 이루며 평화적으로 투표를 하게 됐다며 기뻐했다. ○…멕시코 대통령·의회선거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된 외국 선거참관인들은 일부지역에서 사소한 불법행위가 보고됐으나 선거초반까지는 큰 문제가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평가했다. ○암살 전후보 애도 ○…집권 제도혁명당의 당초 대통령후보이던 도날도 콜로시오가 암살당한 티후아나에서는 많은 지지자들이 투표와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해 투표일인 21일은 동시에 순례일로 변모. 에밀리아 아란구르씨(여)는 이날 찌는 듯한 더위에도 검은 옷을 입고 그의 성소를 방문해 기도를 올리고 눈물을 흘렸는데 『절대 죽어서는 안되는 그에게 투표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토로.
  • 그라나다/알함브라 궁전(아랍서 지중해까지:11)

    ◎스페인 최후의 이슬람궁… 신비 가득/나자리왕조가 13∼14세기 건설… 빼어난 건축술­정교한 세공에 숨막혀 그라나다의 구시가 산타 안나 교회앞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었다. 『알함브라?』 그러자 수염이 텁수룩한 신부님이 긴 소매 속에서 나온 창백한 손으로 언덕길을 가리켰다.세월과 사람들의 발걸음에 닦이어 빤질빤질 윤이 나는 언덕길에서 흘러내리는 빛의 물살이 다리를 휘청거리게 했다.어디서 어떻게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는 알함브라의 신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길 양쪽으로 늘어선 옛날 집들은 지난날의 비밀을 삼킨 채 그 작은 창문들을 조가비처럼 닫고 있었다.오!벽이 익혀온 시간의 열매들이여. 1층의 연쇄상점들 앞을 지나노라니 캐스터네츠소리가 따다따다 귀를 즐겁게 했고,어둠침침한 어느 상점 안에서는 집시풍의 옷을 입은 여인이 부채로 일으킨 바람을 깊숙이 팬 앞가슴 사이로 밀어넣고 있었다. 휘어진 언덕길 끝에 울창한 삼나무숲 사이로 뚫린 또다른 길이 포개질 듯 기다리고 있었다.서늘한 바람이 계곡속에 숨어 있는 여울물소리를 실어왔다.그 소리가 구르는 듯한 기타 선율로 바뀌면서 알함브라의 슬픈 역사에 젖어들게 했다. ○이사벨여왕에 패퇴 알함브라는 「붉다」는 뜻으로 그라나다 동쪽 언덕에 위치한 무어족의 귀족행정도시의 이름이었다고 한다.13세기에 나자리왕조의 시조인 알 아마르가 자신의 왕궁을 그곳에 지음으로써 그것이 찬란한 알함브라역사의 시초가 되었다.주건물의 대부분은 요세프1세(1353∼1391년)와 그의 아들 모하메드 5세시대에 지어졌고,부분장식들은 레콩키스타(7세기부터 이베리아반도에 유입해온 회교도들이 점거하고 있던 국토를 기독교도들이 되찾기 시작한 운동)의 폭풍에 휘말리면서도 계속되었다.미구에 떠나야 할 것을 예감했기에 왕들은 자신들의 자취로서 아름다움을 그 땅에 영원히 심으려 했다. 이사벨여왕과의 싸움에서 패한 최후의 왕 보아부달은 왕궁을 떠나 시에라네바다의 험준한 고갯길에서 궁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한편 이 왕궁을 접수한 기독교도들은 그곳을 예배당으로 활용하는 한편 이사벨여왕의 손자인 카를로스5세는 궁전안에 르네상스양식의 또다른 궁전을 건축했다.이를 두고 그라나다 출신의 명상시인 가르시아 로르카는 「알함브라궁전은 자신의 내부에 카를로스5세가 있음을 느끼지 못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사가 가파라질수록 길은 삼나무숲 깊숙이 파고드는 듯 하더니 갑자기 하늘이 파랗게 열리는 곳에 붉은 성벽과 「심판의 문」이 우뚝 솟아 있었다.말발굽모양의 아치에는 코란 5계명을 나타내는 손가락이 조각되어 있었다. 알히베스광장에 쏟아져내리는 햇빛은 눈부시다 못해 얼어붙는 듯 소름이 끼쳤다.짙은 나무그림자에 돌바닥이 검게 패어 있었다.검은 고양이 한마리가 제 몸보다 더 검은 그림자를 끌고 카를로스5세 궁전 담밑을 따라 모퉁이로 사라졌다. 성채·왕궁·정원·여름별장으로 분리해서 파는 입장권 4장을 샀다.그리고 먼저 궁전의 심장부로 들어가는 첫관문인 메사르홀로 들어섰다.이곳은 기독교도들이 접수한 뒤 예배당으로 활용되면서 기독교식 건축물로 개조되어 본래의 모습이 많이 파괴되었으나 아랍식 문양이 정교하게 세공된 대들보만으로도 그 빼어난 솜씨에 도취되기에 충분했다. 왼쪽의 아치문을 지나 아리야네스(천인화)중정으로 들어갔다.장방형의 긴 못이 중앙에 있는 안달루시안 아랍식 안뜰.속세와 차단된 묵중하고도 투명한 정적이 감돈다.하늘·도금양나무·뜰을 둘러싼 건물의 아치문과 기둥들이 수조의 조용한 물속에 잠겨 행복하고도 덧없는 꿈에 취해 있다.빛과 그늘까지도 그 행복한 꿈에 녹아들어 있다.무엇이 이 꿈꾸는 물의 성채를 침범할 수 있을까.문은 모두 열려 있으나 들어갈 방법을 알지 못하는 세계. ○중앙엔 사자상 분수 왕의 접견실인 대사의 방과 코마레스탑에서 라이온궁전으로 발길을 옮기노라니 등뒤에서 어떤 문이 닫히는 느낌이었다.마치 누군가 되돌아갈 길을 막아버리는 것 같았다. 촛대처럼 가느다란 1백24개의 대리석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장방형 회랑으로 들어섰다.햇빛이 눈을 시리게 하는 뜰의 중앙에 열두마리의 사자에게 둘러싸인 하얀 대리석 분수에서 물줄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이곳은 오직 왕 한사람만 드나들 수 있는 하렘이었다.건물 2층에는왕의 후궁들이 거처했다. 그 옛날 왕족인 아벤세라헤스가문의 한 남자가 하렘의 여자에게 접근한 것이 발각되어 목이 잘린 뒤 그 목이 방의 중앙 분수대 위에 놓여져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사자의 분수대까지 흘러왔다고 한다. 회랑천장의 정치한 세공으로부터 간신히 눈길을 돌려 자매의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숨이 턱 막히는 현란한 아름다움 속에 깊숙이 갇혀버리는 것 같았다.벽을 따라 천장까지 미끄러져 올라간 눈길 끝에는 신기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실 난 이러한 아름다움과의 대면을 두려워해왔다.릴케의 「비가」 중에는 「아름다움이란 우리가 가까스로 견딜 수 있는 무서움의 시작에 불과하므로/우리가 아름다움을 그토록 찬미함은 파멸하리만큼 아름다움이 우리를 멸시하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있다. 파르탈정원을 뒤로 하고 처녀의 탑 앞에 이르른 나는 더이상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회랑에 놓여 있는 의자에 주저앉았다.마음 깊은 곳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여기 이 자리에서 나이팅게일의 노래를 들으며 생을 마감해도 좋으련만…나에게 있어 알함브라와의 만남은 깊은 상처로 남겨졌다.호텔로 터덜터덜 돌아가 다시 너절한 일상과 마주할 일이 버겁기만 했다. 5월3일,지도조차도 던져버리고 혼자서 호텔을 나섰다.알함브라궁전의 코마레스탑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기슭의 하얀 동네를 찾아갈 참이었다.그곳은 아랍인 거주지역으로서 길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어 이방인은 길을 잃기가 십상이라고 한다.일을 저질러보려는 내게 그 미로는 너무나 매혹적인 구실이었다. 택시는 나를 산 니콜라광장에 내려놓고 돌아갔다.조약돌이 다닥다닥 박혀 있는 뜰의 돌벤치에 앉아 관광기념품을 팔고 있는 집시아주머니가 캐스터네츠를 치며 다가왔다.그녀에게서 캐스터네츠 치는 법을 10분쯤 배우고 나서 하나를 샀다. 광장에서 건너다 보이는 알함브라궁전의 전경이 슬프도록 아름다웠다.시에라 네바다산의 눈 덮인 흰 능선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궁전을 감싸고 있었다.서양남자가 광장 한켠에서 이젤을 세워놓고 그 전경을 화폭에 담고 있었다.축대를 걸터듬고 앉아 알함브라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한시간 남짓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친듯이 미로 헤매 니콜라교회를 끼고 오른쪽으로 돌아간 곳에 카르멘이라는 정원을 가진 고급저택이 있었다.우체통구멍으로 들여다본 그 집의 파티오엔 핏빛처럼 붉은 칸나꽃이 가득했다. 벽과 벽 사이의 좁은 미로에서 아랍인의 혼이 스며나와 내 손을 잡아끄는 듯했다.이곳의 옛주민들은 레콩키스타로 그라나다가 기독교인들에게 함락되었을 때 최후까지 저항하여 흰 벽과 돌길이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한다. 방향을 알 수 없을만큼 미로 깊숙이 들어온 듯했다.혼자뿐인 길 위에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려왔다.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다보았다.흑단처럼 검은 머리를 반듯하게 빗어넘기고 검은 진바지에 흰 티셔츠 차림의 여성이 저만큼서 걸어오고 있었다.무심히 바라본 그녀가 지난밤 넵튠이라는 극장식 타블라오에서 만난 플라멩코 무희라는 것을 알아본 순간,나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여러 무희들 중에서 오직 그녀만이 나를 사로잡았다.그녀의 춤에서는 격정과 비애가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폭발하듯 솟구치는가 하면 검으로 자르듯 끊어지며 다시 폭발하고… 어느 순간 나는 저 춤속에 빠져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그것이 그라나다에서 경험한 두번째 마음의 죽음이었다. 그녀가 내 앞에까지 걸어왔다. 『잠깐,당신은 무용수지요』 그녀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저께 당신의 춤을 봤어요.나는 플라멩코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깊이 매혹됐어요.특히 당신의 춤에』 『고맙습니다』 그뿐 우리는 더이상 할 말이 없었다.그녀를 붙잡는 대신 나는 다른 미로 속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얼마쯤 가노라니 마음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몸을 돌이켜 다시 그 장소로 달려가보았으나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사방으로 뚫려 있는 미로 가득히 닫혀 있는 문들뿐이었다.미친듯이 미로를 헤매었으나 나는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눈을 가린 채 손을 맡기고 어디론가 따라가던중 갑자기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왜 그랬을까.하지만 여행이 끝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찾고 있다.그녀의 이름은 스텔라다.
  • 바그다드·암만/고도 바그다드(아랍서 지중해까지:4)

    ◎라시드가엔 압바스왕조 체취 “물씬”/“세계최초 대학” 무스탄시리아 흑벽돌 건물은 정적속에 잠자는듯 「한번 티그리스 강물을 마신 사람은 다시 티그리스로 돌아오게 된다」 바그다드에는 이런 속설이 있다.이것은 그동안 이 도시를 침탈한 많은 정복자들이 자신들의 권토중래를 호언하는 뜻으로 퍼뜨린 말인지,혹은 단순히 바그다드의 매력만을 강조한 말인지 알 수가 없다.바그다드에는 많은 침입자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다.1258년 몽골군의 침략으로 압바스왕조의 화려했던 수도 바그다드는 모조리 불타버렸고 1393년엔 다시 티무르 세력에 의해,1534년엔 오스만 터키군단에 의해 파괴당한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바그다드에 와서 압바스왕조의 화려한 문화를 고스란히 만나겠다는 사람은 분명 실망할 것이다.그러나 바그다드 중심부에 자리잡은 라시드거리에 가보면 압바스시대의 다양한 흔적을 만날수가 있다. 라시드거리는 압바스시대의 건물들과 풍물이 비교적 잘 보존된 유일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1359년 건축된 대상숙(대상숙)칸 마르잔,세계최초의대학이라 일컬어지는 무스탄시리아대학건물,구리 주전자등 전통 생활용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가게들이 몰려있는 바자,그밖에 민속박물관과 14세기에 건축된 모스크도 있다. ○침입자들에 파손 대상숙 칸 마르잔은 1935년 복구되어 한때 박물관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고급레스토랑으로 일반에게 개방되고 있었다.마침 점심때라 이왕이면 유서깊은 식당의 분위기와 맛을 음미하자는 생각으로 칸 마르잔을 찾아 들어갔다.침침한 계단을 내려가니 거대한 극장같은 홀 내부가 나왔다.마치 오늘의 극장식당 같은 구조를 갖고 있었다.식탁은 많은데 손님은 두세팀 뿐이고 머리에 하얀 캡을 쓴 종업원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메뉴를 청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종업원은 친절했고 인내심있게 기다려 주문을 받아갔다.이 식당은 바그다드 명물로 알려져 고위층들사이에는 외국의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도 이용되는 모양이다.그런데 식탁에 오른 까밥과 코르사,채소 샐러드의 맛에는 심오한 역사의 풍취같은 것은 없고 서민들 식당에서맛본 음식들과도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다만 식당내부의 풍경에는 볼거리가 많았다.캐러밴의 숙소이자 거래처로 사용되던 시절에는 1층에 방이 스물두개,2층에 스물세개나 있었다고 한다.악사들이 연주하는 무대도 별도로 있는데 지금도 큰 연회가 있을때에는 음악이 연주된다.이 건물의 역사를 보관하고 알려주는 방이 한쪽 구석에 두개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 대상들이 사용하던 카펫,구리로 만든 촛대와 주전자,복장등이 진열되어 있었다.그러나 대부분 복제품이 분명했다. ○음식점으로 사용 식사를 끝내고 종업원들의 정중한 전송을 받으며 밖으로 나왔는데 햇빛이 유난히 뜨거웠다.칸 마르잔에서는 아마 그곳을 찾아오는 모든 손님에게 귀빈대우를 해주는 모양이다.어쨌거나 기분은 좋았다.식당에서 몇걸음 걷지않았는데 검은 차드르를 둘러 쓴 노파가 앞길을 막고 앉아 두손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이런 모습을 처음 발견한 것은 아니었다.중심가의 큰거리에서는 볼수 없지만 시장골목에서는 구걸하는 사람과 흔히 마주치곤 했다.대부분 여인들이다.이들은 차드르를 썼지만 형식일 뿐 얼굴을 모두 드러내고 있다.처음에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구걸이 허용되나하는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차츰 생각이 바뀌었다.그래도 구걸의 자유가 허용되는걸 보면 아직 이 사회에는 따뜻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수 있었다.상오에 호텔에서 나올때 아리따운 가이드 아가씨가 시내관광에 동행하겠다고 나섰다.여행사 가이드가 아니고 물론 문화부소속 직원이다. 『보여줘야 할 곳과 보여줄 수 없는 곳』이 그들에겐 분명있는 모양이다.보여줄 수 없는 것이 뭘까? 그런 궁금증을 느꼈는데 그 의문 한가지가 풀린 것 같았다.그 아가씨는 차에 좌석이 모자라 동행을 포기하고 말았었다. 시장골목에서 슈하다 다리쪽으로 걸어나오면 유명한 무스탄시리아대학 건물이 있다.입구에는 터번을 쓴 노인이 책상 하나를 놓고 지키고 있었다.이곳은 유료관람으로 입장권을 팔았다.그러나 넓지 않은 뜰에는 손님이 하나도 없고 아치형 출입구가 유난히 많은 흙벽돌건물은 정적속에 잠자고 있었다.이 대학은 압바스왕조 37대 칼리프인 알 무스탄시르 빌라(1226∼1242년)에 의해 세워졌는데 당시엔 코란을 강의하는 신학대학이었으나 지금은 같은 이름으로 이라크 제일의 종합대학이 되어있다.건물도 물론 별도로 지어 사용하고 이곳은 다만 유적으로 남겨놓았을 뿐이었다.바그다드에 처음 왔을때 호텔에서 만났던 전직 주한대사 가잘씨는 동행했던 딸 로라가 바로 유서깊은 무스탄시리아 대학생이라고 우리에게 자랑했다.로라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아가씨였다.그녀는 예쁘고 특히 머리가 우수했는데 내가봤던 누구보다 로라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고 있었다. 라시드거리의 시장에는 없는 물건이 없었다.시장은 넓은 구역을 차지하고 있고 현대식 전자제품 가게에서 전통 향료 가게까지 그 구색도 아주 다양했다.곡물가게에는 쌀과 밀이 가득 쌓여있고 특히 대추야자 열매를 비롯,이름도 알수 없는 여러종류의 열매를 팔고 있는게 흥미로웠다. ○상점엔 손님없어 구두가게의 구두들은 하나같이 검은색 뿐인데 품질은 썩 좋지 않았다.옷가게에 걸린 옷들도 가짓수는 많지만 여행자의 눈을 끌만한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그러나 일차 생활용품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있다는 사실은 조금은 뜻밖이었다.황금사원이 있는 바그다드 북부지역 거리에는 금은방과 고급 잡화점들이 즐비하다.거기에도 금과 은,각종 가죽제품과 안경,의류들이 풍부하게 있었다.특히 금이 많았고 가격도 싼 편이었다.이라크 관리들은 경제봉쇄 4년째 접어들어 경제가 말이 아니라고 침통하게 말했었다.그것은 외교용 엄살이었을까? 시장에 가득 쌓인 곡식과 잡화를 보고 이런 의문을 느꼈다.그러나 자세히 보면 가게와 상인은 많은데 손님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걸 알 수가 있다.검은옷과 차드르를 두른 여인들이 드문드문 가게를 기웃거리고 있는데 물건을 흥정하거나 사는 모습은 보기어렵다.돈이 없는 것이다.이라크는 인플레가 한창인데 그렇다면 그많은 돈은 어디로 갔을까? 그걸 당장 알수 없지만 서민들의 주머니가 비어있다는 증거는 여러곳에서 확인되었다.바빌론 가는 길에 우리를 안내했던 카셉은 자기봉급이 4백20디나르라고 말해줬다.이것은 1달러 조금 넘는 돈이다. 그런가하면 마수르호텔의 나이트클럽에는 3달러짜리 입장권을 여러장 사서 친구와 걸프랜드까지 데려와 1달러짜리 맥주를 맘껏 마셔가며 새벽까지 춤을 추는 젊은이들도 있었다.그들의 거침없고 분방한 행동은 자본주의 사회의 부유한 자제들과 조금도 다를바가 없었다.계급은 어디에나 있다는걸 여기서도 실감할수 있었다. ○이교도 입장 막아 황금사원은 바그다드에 많이 남아있는 여러 모스크가운데서도 독특한 건축양식과 두명의 이맘(회교 고승)이 묻힌 시아파의 성지로 가장 잘 알려진 곳이다.바그다드 북부에 있는 이 사원의 금빛 찬란한 두개의 돔과 네개의 첨탑은 멀리서도 잘 바라다보인다.1515년에 세워진 이 사원에는 무사 알 가딤과 무하마드 알 자와드,이 두명의 이맘의 무덤을 찾는 참배객이 늘 그치지 않는다.우리가 찾아갔던 저녁나절에도 사원입구가 있는 광장에는 사람들이 들끓고 있었다.입장전에 입구 땅바닥에 입을 맞추고 들어가는 열성파도 눈에 띄었다.아무나 들어가는줄만 알고 입구로 다가서는데 흰 터번을 쓴 건장한 중년이 널찍한 손바닥으로 가슴을 막아버린다.이런저런 시비끝에 이교도는 입장사절이란 취지를 전달받았다.회교,특히 시아파가 매우 배타적이란 말은 들었지만 막상 입구에서 거절당하자 그들과 우리사이에 건너 뛸수 없는 높은벽이 가로놓여 있는걸 실감했다.바그다드 주요 일간지인 줄부리아신문의 기자는 호텔로 와서 인터뷰를 청하면서 다짜고짜 물었었다.『바그다드에 오신 목적이 뭡니까?』라고.그때 답변이 궁해 한참 망설였던 기억이 떠올랐다.종교적 일체감을 확인하기 위해? 정치적 동지의 투쟁에 동참하기 위해? 다만 관광만을 즐기려는 목적으로? 그 어느쪽도 물론 아니다.답변은 자연 길어지고 복잡해질 수밖에 없었다.입장을 거부당하고 황금사원을 떠나면서 내 마음은 다시 그때처럼 착잡해졌다.
  • 바그다드·암만/모술의 유적들(아랍서 지중해까지:3)

    ◎3천년전 앗시라아왕국 성터 곳곳에/날개 달린 황소상엔 위엄 서려… 성마티 수도원은 “회교이방지대” 이탈리아 사람들은 언제나 쾌활하고 붙임성이 좋았다.이십여명의 이탈리아인들이 모술 유적 관광길에 줄곧 우리와 동행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즐겁게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그바람에 우리도 잠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암만에서 바그다드로 오는 길에 우리와 동행했던 두명의 독일인에 비하면 이들은 얼마나 쾌활하고 사교적인가? 고고학자라는 독일인들은 시종 음침한 표정으로 자기네 끼리만 쑥덕거리고 이방인과는 좀처럼 대화를 트려고 하지 않았다.버스 한대에 이탈리아인들과 동승해서 상오 열시쯤 호텔을 빠져나갔다.뜨거운 햇빛이 모스크의 하얗고 둥근 지붕 위에서 이글거리고 있었다.비교적 널찍한 고도의 거리에는 차량도 인적도 보이지 않았다.흙으로 견고하게 지은 낮은 건물 처마 밑을 자세히 보면 남루한 아라비아 의상을 걸친 두세사람이 그늘에 숨어앉아 바깥 거리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다.시내를 벗어나 동남쪽으로 40㎞쯤 달려갔을때 황량한 들 가운데 흙벽돌로 제법 높이 세운 벽이 나타났다.주위에 철조망을 둘러놓고 엉성한 출입문도 만들어 놓았다.관리인인 노인이 나와서 커다란 자물통을 끄르고 우리를 울타리 안으로 안내했다.이탈리아인들이 대동한 자국인 가이드가 말했다. 『이곳이 두번째 수도였던 님루드요.니네베에 비하면 제법 볼게 많이 있어요』 ○성벽내부 잘 보존 수도라는 말이 아주 야릇하게 들렸다.흙벽돌 몇장을 쌓아놓은 폐허를 놓고 수도라니.그러나 사르곤왕의 북서궁과 남서궁이 존재했을 때 이곳 성벽이 연장 8㎞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이라크 국내에는 만개의 유적지가 있는 걸로 알려져 있다.모술은 이라크에서도 대표적인 역사유적도시이며 특히 아시리아제국의 네개의 수도들이 티그리스 강을 끼고 도시 근교에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아수르,님루드,니네베,코르사바드등인데 이가운데서도 님루드가 비교적 부조품과 장식들을 충실히 유지하고 있었다.성벽 내부에는 뜻밖에 많은 유적들이 있었다.그것들은 선명하고 완전했으며 이제야 우리는 기원전 천년에 실재했던 왕궁의 위엄을 실감할 수 있었다.왕의 연회장으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터번을 두른 인자한 표정의 석상 둘이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안뜰 한쪽 벽에 부조된 날개 달린 거대한 황소상은 특히 강한 인상을 주었다.거대한 날개는 섬세하고 아름다웠으며 다리의 근육에는 힘이 넘쳤다.짧고 날카로운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가 촘촘하게 기록된 석판들이 여러개 있었다.이 문자가 바로 뒷날 페니키아 문자를 거쳐 지금 쓰이는 알파벳의 시조가 된 문자이다. 성벽 바깥 들에는 비교적 옷을 깨끗하게 입은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놀고 있었다.주변에 인가가 없으므로 이 아이들은 다른 지역에서 소풍을 왔을 것이다.자세히 살펴보니 저쪽 언덕 아래 부모들이 차를 세워놓고 기다리고 있었다.수메르인의 후손들이 삼천년 고도의 유적에 와서 천진난만하게 뛰어놀고 있는 것이다.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빨간 스웨터를 입은 예쁜 소녀는 얼굴을 붉히며 달아난다.간신히 사진 한장을 찍었는데 소녀는 곧 검은 차드르를 둘러쓴 엄마 쪽으로 달려가버렸다.저아이도 멀지않아 차드르로 해맑은 얼굴을 감추고 말겠지.이런 생각을 하자,왠지 마음이 무거워졌다. 「니네베는 거대한 도시이며 이곳을 한번 돌아보는데 사흘이 걸린다」구약의 「요나서」에는 이런 글귀가 나온다.(요즘 쓰는 구약은 니느웨로 표기하고 있다).「요나서」의 요점은 극도로 타락한 니네베를 징벌하기 위해 여호와가 요나를 파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이 기록에 따르면 니네베는 당시 부와 번영의 상징이었다.그러나 우리가 그곳에 갔을 때 니네베는 5m 높이의 성벽 일부와 세개의 성문으로 겨우 지난날의 흔적을 지탱하고 있었다.세개의 성문도 최근 몇년사이에 이라크 문화부의 노력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이곳에도 님루드에서 봤던 것과 아주 흡사한 날개 달린 황소상이 입구를 장식하고 있었다.이것은 그동안 흙속에 묻혀 있던 것으로 1941년 큰 비가 왔을 때 우연히 발견된 것이라고 한다. ○부와 번영의 상징 니네베 성 근처의 잔디가 돋아난 야트막한 언덕에 아주 작은 모스크가 하나 있었다.낮은 담장으로 전면만 둘러친 이 작은 건물은 이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눈길을 끌만한 별다른 특징은 없었다.누군가가 저것이 요나의 무덤이라고 말했다.그제서야 사람들의 눈길이 그곳으로 쏠렸다.「선지자 요나의 모스크」로 이름지어진 이 무덤은 니네베가 발굴되던 1847년 비슷한 시기에 발견되었다.그 무덤을 바라보면서 요나의 전설과 방금 둘러본 니네베 성벽의 선명한 황소상이 함께 연상되었다.니네베를 구하려고 요나는 이곳에 왔으니까 그 무덤이 여기 있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그러나 니네베는 실재했고 요나의 실재는 육안으로 증명된 것이 없다.저 무덤마저 요나의 전설을 증거해주지는 않는다.이것은 예수의 부활만큼이나 내게는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였다. 모술시 교외의 성 마티 수도원으로 가는 길에 버스속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다.이탈리아인들이 노래를 불러대자,우리 쪽 한사람이 갑자기 경쟁심이 생겼는지 사회자격인 이탈리아인 가이드에게 우리 일행중에 칸초네 가수가 있노라고 허풍을 친 것이다.마치 기다렸다는듯 젊은 이탈리아인들이 박수를 치고 괴성을 질러댔다.그바람에 갑자기 칸초네 가수가 된 나는 달리는 버스에 앉아 난생 처음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사실은 이탈리아인들 앞에서 이탈리아말로 노래를 부른다는게 약간 어깨가 으쓱해지는 일이기도 했다.「아름다운 너의 얼굴」­이 노래는 한때 결혼식장에서도 두어차례 부른 경험이 있었다.그리고 이탈리아인들 가운데 제법 아리따운 처녀와 젊은 부인들도 섞여 있었다.이방인 관객들이 환호성을 올렸고 이것을 계기로 아시리아 고토를 여행하다 우연히 합류하게 된 한국인과 이탈리아인들 사이에 이해와 우정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1271년 실크로드를 따라 모술을 방문했던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모술은 거대한 왕국이며 여러 인종들이 살고있다.마호메트를 신앙하는 아랍인들,그밖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다른 종족들이 있다.이들 그리스도 신자들은 로마교회법을 따르지 않는 다른 종파들인데 네스토리우스파,야곱파,아르메니아파가 그것이다.­이 기록을 보더라도 모술 지방에는 회교 뿐 아니라 비록 소수나마 여러 종파의 기독교인들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라크 국내 종교적 분위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믿는 것과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유태인을 증오하는 사담 후세인도 아시리아의 기독교인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고 있으며 그의 심복으로 걸프전 당시 협상창구역을 맡았던 타리크 아지즈도 아시리아계 기독교인이다. ○차드르 착용 안해 깎아지른듯한 높은 산 중턱에 요새처럼 견고하게 지어진 회색건물이 바라다보였다.이것이 서기 4세기에 세워진 마크로우브산의 성 마티 수도원이다.버스가 가까스로 산중턱 수도원 입구까지 기어올라갔다.사람들이 들어가는 길목의 그늘에 앉아 쉬고 있고 노점을 차리고 애세서리나 담배를 파는 여인들도 있었다.이쪽 분위기는 조금 달랐다.차드르를 착용한 여인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다.남자들의 의상도 제멋대로다.모두가 기독교도들인 탓일 것이다.마티 수도원은 야곱파의 본산이며 인근에 메르기란 기독교 마을도 있었다.그 마을을 잠시 방문했을 때 이층집 베란다에서 바깥거리를 바라보는 여인의 멋진 옷차림과 아름다운 자태,그리고 이방인의 시선을 조금도 꺼리지 않는 개방적인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다.수도원 내부에는 예배실과 수많은 방들,그리고 큰 동굴같은 우물도 있었다.많은 방에는 신자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묵고 있었는데 그들은 병자의 쾌유나 소망성취를 기원하러 찾아온 손님들이었다.그 손님들보다 훨씬 많은 동서양의 관광객들이 수도원 마당으로 몰려들어오고 있었다.이곳이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마크로우브산 중턱으로 찾아오는 길이 험하다는 점을 제외하면 수도원 내부에 특별한 볼거리는 없었다.사람들은 이곳이 알라신의 바다에 홀로 떠있는 그리스도의 섬이란 점 때문에 더욱 흥미를 갖는 것이 아닐까? 만약 방문자가 기독교인이라면 특별한 감회를 느끼는건 당연할 것이다.
  • 「자케오네 집」 운영/홍한림·오창환씨댁(훈훈한 우리가정:8)

    ◎헌 생활용품 모아 이웃에 “사랑의 나눔”/자원 재활용에 이웃돕기까지 “일거양득”/“봉사하는 삶이 나이들어 얻은 즐거움이지요”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 성당 맞은 편,쓰다 버리는 생활용품을 모아 필요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알뜰가게 「자케오네 집」.베니어판을 두장 연결해 만든 대문과 바래고 먼지묻은 「자케오네 집」플래카드의 허름한 모습이 첫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홍한림(58)·오창환(61·회사원)씨 부부와 큰 아들 성(28·회사원),작은 아들 웅(25·대학생)4식구가 살고있는 이곳은 쾌적하고 편리함으로 가득한 요즘 사람들의 주거환경과는 거리가 멀다.하지만 성경에 등장하는 자케오처럼 깨끗하고 순박한 마음을 가진 가족들이 사는 「나눔의 집」으로 주변에서 널리 알려진 곳. 남이 쓰다 기증한 옷가지와 신발짝들,가구들이 좁은 안마당에 즐비하고 손질과 분류작업을 거쳐야 하는 옷가지및 잡동사니들이 마루와 각 방에 가득하지만 「그래도 많은 이웃들이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홍씨를 돕고있는 훈훈한 가족의보금자리다. 지난 88년 성당에서 마련한 환경교육프로그램에 참가한뒤 우유팩을 모으는 등 꾸준히 환경운동을 해온 홍씨는 지난해 7월부터 이 알뜰가게를 운영해오고 있다.멀쩡히 쓸 수있는 것을 버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꼭 필요한 사람들도 반드시 있다는 생각에 장소를 물색하던중 현재 살고 있는 이집의 주인이 이집을 임대해 쓰도록 배려해줬고 성당 신부님과 교우들의 도움으로「저케오네 집」을 열게된 것. 양복 한벌에 5천원,구두·바지등은 1천원을 넘지않는다.소문이 퍼지면서 멀리서 소포로 옷가지를 보내오는 사람도 있다.이용하는 사람은 알뜰한 주부나 부랑자,인근 공단 외국인 공원등 다양하다. 홍씨는『간혹 머리도 감지않고 검은 때가 줄줄 흐른 사람들이 집안을 드나들어도 개의치않고 오히려 도와주는 남편과 두아들 없이는 실상 중노동인 이일을 잘 할 수없을 것』이라고 말한다.이사온뒤 마당의 꽃밭을 덮는 일,목재소에서 나무를 구입,옷수납장을 짜는 일도 남편과 두 아들이 직접했다.큰아들은 퇴근후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가구를 치우겠다고 전화를 해주는 이웃이 있으면 찾아가 덩치 큰 가구를 옮겨오는 일을 종종 맡아한다.홍씨가 성당의 봉사자들과 옷을 정리하고 손님들을 맞을때 설거지와 집안청소는 역시 두아들 몫이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적도 한두번이 아니라고 홍씨는 말한다.한번은 매달 이곳을 들르는 부랑자가 와서는 남편이 가장 아끼는 구두를 신고 가버린 일도 있다.『할 수없지 뭐.잘 신겠지하고 허허 웃어버리는 남편과 그렇지 않아도 좁은 방안에 옷가지가 자꾸만 쌓여가도「엄마 일이 자꾸만 늘어난다」고 걱정 할 뿐인 두아들이 너무 고마워요』 「나이들어 얻는 즐거움은 봉사하는 삶에서 찾아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는 영관장교 출신 오창환씨(79년 예편)와『시집와서 오늘까지 성실하고 순수한 마음을 지키는 남편을 존경하고 있습니다』고 고백하는 홍한림씨 가족의 사랑은 각박한 요즘세태를 적셔주는 청량제로 다가온다.
  • 실명제 실시… 맑은 정치의 틀 구축/대선공약 얼마나 이뤄졌나

    ◎두차례 재산공개… 비위공직자 몰아내/금리자유화 시행… 금융 선진화 토대 마련/「하나회」 해체 등 “군 거듭나기” 계기 만들어/정치개혁 입법·물가 3% 유지 등 숙제로 남아 김영삼정부 1년의 대선공약 실천성적표는 과연 몇점일까.앞으로도 4년이 남아 있어 정확한 채점을 하기는 어렵지만 예산의 뒷받침,정부의 추진의지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연역적인 평가는 가능할 것 같다. 김대통령은 대선 때 정치·경제·사회등 제반분야에 걸쳐 77개의 공약을 내걸었다.구체적인 세부사업으로는 모두 1천2백26건이다.이 가운데는 냉엄한 국제환경,현실적 어려움등으로 이미 「공약」이 된 것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장기적인 플랜에 의해 계속 추진되고 있다. 공약을 분야별로 살펴본다. ▷정치◁ 깨끗한 정치풍토조성과 행정개혁이 주요골자다. 깨끗한 정치구현과 관련,김대통령은 『재임중 정치자금을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자신을 포함한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를 단행,공약대로 「윗물맑기운동」을 실천했다.청와대예산부터 줄이고 식단을칼국수로 바꾸는등 솔선수범을 보였다.두차례의 재산공개파동으로 국회의장·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위직인사들이 상당수 옷을 벗었다.비위로 파면·해임·면직된 공무원도 1천3백63명이나 됐다.이는 공직자들의 옳지 못한 부의 축적,특히 「검은 돈」과의 연결고리를 끊었다는 점에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공약대로 부정방지위원회도 설치돼 부패를 조장할 소지가 있는 불합리한 제도를 과감히 수술했다.청와대 앞길과 인왕산 개방,청와대주변 「안가」철거및 시민공원조성,지방청와대의 시민편의시설로의 전환,안기부·기무사의 지방조직 대폭축소등 권위주의잔재도 없앴다.군인사비리및 율곡사업비리 감사를 포함한 성역없는 사정도 같은 맥락이다.감사원의 역할과 기능이 강화된 것도 과거정권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장선거의 95년이내 실시」약속은 여야합의에 의해 구체적인 날짜까지 정해졌고 지방화시대에 맞게 행정구역을 개편하겠다는 공약도 곧 여야협상을 통해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획기적인 행정쇄신을통한 능률행정,즉 「작은 정부」약속은 문화부와 체육부,상공부와 동자부의 통폐합을 비롯해 경제기획원등 부처별 직제축소작업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깨끗한 정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등 정치개혁입법은 지난 1년을 허송세월했고 아직까지 미해결과제로 남아 있다.이와 함께 행정개혁달성을 실현하기에는 관료체제의 벽이 여전히 두껍다.공직사회도 사정태풍의 여진 탓인지 아직까지 「복지불동」이다.무엇보다 정치권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경제◁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건전한 정치풍토와 경제질서조성을 명분으로 내건 실명제는 바람직한 금융질서의 정착,무자료거래의 여지축소,유통질서의 선진화,기업경영혁신운동의 확산에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2단계 금리자유화를 시행,금융질서의 정상화와 사회형평의 제고를 위한 토대도 마련했다. 자율경제정책으로 불리는 행정규제완화도 새정부 출범직후 발족된 행정쇄신위원회를 통해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그동안 세차례에 걸쳐 모두 2백45건의 과제를 선정,이 가운데 2백20건은 완료되고 나머지 25건은 올 3월까지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경제활성화정책과 관련,30대대기업의 업종전문화를 이뤄냈고 도로·항만시설등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을 위한 민자유치촉진법을 입법예고하는등 대기업의 투자확대를 적극유도하고 있다.민자유치촉진법은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예정이다.중소기업지원에 대해서도 경상경비절감분과 중소기업구조조정기금 1조8천억원을 지원키로 했고 자금난완화를 위해 법인세·소득세의 20∼40% 경감,긴급자금 1조9천억원 지원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또 신농정은 UR파고를 극복하기 위해 청와대에 농수산수석실을 신설했고 대통령직속 자문기관인 농어촌발전위원회도 이미 설치돼 종합적인 청사진을 마련하고 있다.농지거래에 관한 규제도 완화됐고 농어촌정비법도 이번 임시국회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땅값은 지난해 1∼9월에 5.9%가 하락,부동산투기근절의 이정표를 세웠다.노사관계에 있어서도 지난해 1백44건의 분규가 발생,전년도의 2백35건에 비해 크게 줄었다.또 지난해 무역수지가 4년만에 흑자로 돌아서 흑자경제시대를 열겠다는 공약을 달성했다. 다만 지난해 물가인상률이 5.8%였고 올해도 6%를 웃돌 것으로 예상돼 「물가를 2년안에 3%수준으로 안정시킨다」는 공약은 이미 한계를 넘었다.금리 한자리수 실현과 은행문턱을 낮춘다는 것도 현실과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쌀개방을 안하겠다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다. ▷사회·문화등 기타◁ 더불어 잘사는 건강한 사회,입시지옥해소와 인간중심의 교육을 위한 개혁,여성이 존중되는 평등사회의 실현으로 요약된다.하지만 건강한 사회와 관련된 공약은 성격상 단시일안에 이뤄지기 힘들다.특히 최대이슈인 맑은 물공급대책은 낙동강오염사태로 강한 불신마저 받고 있다.교육개혁도 마찬가지다.교육재정을 98년까지 GNP대비 5%로 끌어올리고 사학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약속도 장기적인 플랜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분수령이 된 주요사건들에 대한 역사적 성격을 규명한 것과 93년을 「민족사복원의 원년」으로 정해 민족사적 정통성을 확립한 것은 문민정부이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현직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의 4·19묘역 참배,광주문제해결을 위한 특별담화등은 전자와 관련된 것이고 구총독부청사 철거,임시정부요인들의 유해봉환,범국민적 광복50주년 기념사업등은 후자에 해당되는 사항들이다. 군내 부조리일소와 「하나회」해체등 군인사개혁을 통해 군이 거듭나는 계기를 만들었다. 지역·계층간 갈등해소를 위한 국민대화합조치도 실천됐다.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등 4만1천1백81명에 대한 사면복권,공안사범 5천5백66명의 특별가석방,법령·제도개선을 통한 5백만여명의 전과말소,2백30명의 지명수배해제및 자수자 1백2명에 대한 관용,전교조 해직교사의 복직,학생운동 관련 제적생의 재입학허용(85개대 2천46명)등 화합조치를 단행했다.
  • 전위 디자이너 홍미화/국내 첫 패션쇼

    ◎광목등 소재 한복 새이미지 창출/원초적인 선함·자연의 순수함 드러내/“상가같은 실내장식” 묘한 분위기 연출 지난 7월 프랑스 파리 벤센느숲속에서 야외 패션발표회를 개최,아방가르드적 신예패션인으로 세계패션계의 주목을 끌었던 디자이너 홍미화(38)씨가 17일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에서 국내에서의 첫 패션쇼를 가졌다. 이날 패션쇼는 백열등이 듬성듬성 켜진 허름한 창고같은 전시공간과 그 바닥에 깔려진 광목천,대나무로 얼기설기 세운 기둥위에 달린 한지로 만든 등등 마치 상가집같은 분위기의 실내장식이 연출돼 참석자들의 흥미를 끌었다. 이날 홍씨가 발표한 옷은 모두 65점.소창 옥양목 광목 거즈등의 소박한 듯 묘한 분위기를 내는 우리 전통의 소재를 이용,흰색이 주는 순수함을 한복선의 이미지가 드러나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응용해 보였다.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 아름다운 옷」「형식을 탈피,마음이 가장 편한 상태로 입어서 즐길 수 있는 옷」을 진정한 「옷」으로 본다는 홍씨가 추구하는 패션감각이 드러난 작품들이 중심. 자신의 브랜드마크인 천사모습의 인장과 눈물자욱을 모델들의 얼굴과 몸등에 찍고 흘러내린 머리카락 위의 거즈 장식물과 이름을 적은 부적같은 종이등으로 옷의 이미지 완성을 위한 총체적인 시도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홍씨는 부드러운 느낌의 거즈로 드레스와 베일을,투박한 삼베에 주름을 넣어 유연함도 동시에 느낄수 있는 바지와 치마수트를 만들어냈다.색상은 흰색을 주조로 고운 흙색과 베이지 카키·검은색을 주요 색상으로 썼다. 특히 화관을 연상하는 커다란 모자와 함께 연출한 풍성한 웨딩드레스와 이브닝드레스등은 한국적인 선과 중국풍,인도풍의 다양한 민속적인 특징이 드러난 작품들로 갈채를 받았다. 옷 발표회를 지켜본 코오롱 패션산업연구원의 이호정씨(이학박사)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부담되는 전위적인 요소가 강한게 사실이나 인간의 원초적인 선함과 자연이 갖는 순수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품임에는 틀림없다』는 평가를 내리고 홍씨의 이번 옷발표회에서 나타난 전위성은 세계에서 인정받을 만한 수준이라고말했다. 대구출신으로 경북여고와 계명대(공업미술 전공)를 졸업한뒤 국제복장학원과 일본 문화복장학원을 마친 홍씨의 주요 활동무대는 일본도쿄.지난 7월의 파리진출로 고지노 준코,이세이미야케등을 잇는 동양의 뛰어난 디자이너라는 평가를 현지언론으로부터 받기도 했다.국내에서는 지난 86년부터 최근까지 (주)데코「텔리그라프 바이 홍미화」라는 상표로 자신의 이름이 나가는 서구형 계약제 디자이너로 패션업계에서 주목을 받아왔다.홍씨는 자신의 디자인사무실 「홍크리에이션」을 최근 서울로 옮기고 이번 패션쇼를 계기로 내년 봄 국내브랜드매장을 낼 예정이다.
  • 위도 주민들의 인간애/박홍기 사회부기자(현장)

    ◎이웃잃은 슬픔딛고 생존자 돌보기 “한마음” 『이럴때 일수록 우리가 마음을 다잡아야지요.숨진 우리 이웃도 이웃이지만 객지사람들을 돌보는데 더 신경써야지요』 흐르는 눈물을 흠칠줄도 모르고 10일 밤늦게까지 실려오는 생존자들을 돌보는 위도주민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았다. 성난 파도에 1백여명의 자식과 친지,친구들을 잃은 위도 주민들은 그 누구에게도 맡겨지거나 할당된 몫은 없었지만 「해야할 일」을 스스로 찾아내 이리뛰고 저리뛰었다. 일요일에다 날씨가 나빠 집에 있던 주민들은 이날 상오10시10분쯤 위도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제히 포구로 뛰쳐나갔다. 동국호·일성호등 40여척의 마을배가 곧바로 검은파도를 맞으며 구조에 나섰고 나머지 주민들은 이들 구조선박이 도착할 때에 대비,재빠르게 각종 장비등을 모아 환자수송등에 대비했다. 구조된 생존자들은 18t급 어선 종국호(선장 이종훈·42)에 실려 파장금포구에 닿았다. 구조선이 들어오자 주민들은 배에 뛰어들어 생존자들을 가까운 「동굴식당」과 집등으로 옮겨 따뜻한 물로 씻겨주고 옷을 갈아 입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위급환자들에 대해서 보건의 유현씨(28)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인공호흡을 실시하고 응급처치를 해나갔다. 생존자는 주민들의 집으로 사체는 구 어민회관으로 옮겨졌다. 『저 놈의 파도는 삽시간에 숱한 생명을 빼앗고도 사그러들줄 몰랐습니다』인명구조작업을 끝내고 돌아올 답진호선장 정갑권씨(48)는 삽시간에 2백여명이 승선한 훼리호를 삼킨 파도를 원망하며 『좀더 많은 사람들을 구해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고 한탄했다. 이들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구조된 윤영원씨(39)는 『바다속에서 추위와 힘에 겨워 실신상태였으나 깨어나보니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면서 『살아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다』고 울먹였다. 밤새 환자들을 돌보고 사체들을 정리한 주민들은 11일 아침이 되자 다시 침몰한 선체인양작업에 참여할 준비에 나섰다.흡사 잘짜여진 각본에 따라 연출되는 민방위훈련 같은 모습이었다.
  • 기로에 선 공직자/김행수(데스크시각)

    정기국회에서 국정감사가 시작될 무렵이면 의원들은 연중 최대의 호황을 맞게 되고 특히 추석이 임박해서는 엄청난 떡값이 오가는 등 흥청망청이었다. 그뿐이랴.예산심의와 연계하여 갖가지 이권에 개입하기 일쑤였고 속된말로 한건씩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 되면 한밑천 잡는다고 생각해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당선에만 열을 올렸다. ○좋은시절 옛애기로 이같은 정치풍토속에서 공직이 곧 치부라는 등식이 생겨나 사회는 부정부패로 얼룩졌으며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에 대한 국민의 불신풍조는 날로 더해 갔다. 이는 먼옛날의 얘기가 아니다.불과 1년전 아니 몇개월전의 일이다. 그 좋은 시절(?)이 이젠 꿈도 꿀수없는 상상의 시간으로 묻혀가고 있다. 공직자의 재산등록과 공개,실명제실시,그리고 정치관계법 개정이 전공직사회의 흐트러지고 비뚤어진 의식과 행동을 다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윤리를 바로세우고 깨끗한 공직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실시된 공직자 재산공개를 재산형성과정의 부도덕성이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노출되기 시작하고 있다.서울의 강남은 물론 제주나 용인등 투기지역에 왜 그토록 많은 공직자가 땅을 갖고 있는지 떳떳하지 못한 재산을 축소하기 위해 급매하는 공직자는 왜 그리 많은지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정확한 실사결과가 나와보아야 알겠지만 많은 의원들이나 행정·사법부의 상당수 공직자들이 징계등의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재산누락등으로 이미 민자당의원 2명이 거의 쫓겨나듯 당을 떠났고 상당수의원이 경고를 받았는가 하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과 검찰총수가 옷을 벗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또 20일에는 경찰청장이 돌연 사의를 표하기도 해 곧 닥칠 공직사정의 예고편을 보는 듯 하다. 벌써부터 관·정가에선 상당수의원과 차관급 공직자가 어떤 형태로든 사퇴 등의 징계를 받을 것으로 보여 그 윤곽이 드러나는 월말부턴 상당한 파문이 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재산공개로 인한 도덕성에 곁들여 실명제실시로 의원들의 활동과 의식은 크게 제약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권의 돈흐름이 유리그릇을 보듯 할터이니 감히 검은 돈이 유입될리 없을 것이다.설사 검은 돈을 만지는 경우가 있다 해도 후환이 두려워 함부로 쓰지 못하는 상황에 이를 것이다. 적고 많음의 차이는 있어도 의원들의 월평균 지출액은 1천여만원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정치자금이란 이름으로 청탁구별없이 끌어들여 사용해온 정치인들이 이제 어떻게 처신하고 어떻게 선거구를 관리해야 하는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한마디로 실명제에 체질화하지 못하면 정치를 폐업할수 밖에 없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공직사정의 예고편 지금 국회는 정치관계법 개정을 서두르고 있다. 선거비용이 법정한도액을 최고 20배이상 초과하는 정치풍토하에서 진정한 선거문화가 정착될수 없다는 취지에서 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됐을 경우 가차없이 당선무효시켜 과거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생각을 분명히 고쳐놓겠다는 강한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공직자의 재산공개,실명제실시,정치관계법개정등 청렴정치를 위한 좋은 제도를 마련한다 해도 거듭나고자 하는 정치인의 의식전환이 없이는 소기의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돈만드는 기술자」「투기의 명수」라는 달갑지 않은 꼬리를 떼내고 깨끗한 정치인상을 확립할 때만이 진정 부정부패로 얼룩진 이땅의 정치풍토는 개혁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이땅의 전공직자는 분명 선택의 시점에 서 있다. ○깨끗한 정치 계기로 비록 가난하지만 명예를 위해 깨끗한 공직의 길을 걸을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의 지난날을 반성,공직사회를 떠날것인지 둘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그의 저서 목민심서에서 『청렴은 목민관의 본무며 모든 선의 근원이며 덕의 바탕이니 청렴하지 않고서는 능히 목민관이 될수 없다』고 갈파했다. 공직자들의 재산공개 파문이 확산되고 있는 요즘 그 의미가 다시 한번 되새겨진다.
  • “구시대 청산” 곳곳에 신선한 충격/김영삼정부 6개월 분야별 업적

    김영삼대통령 문민정부의 지난 6개월은 구시대의 청산과 새로운 가치·질서의 확립이라는 2가지 흐름으로 요약할 수 있다.이는 개혁이라는 한마디로 통칭되고 있으며 개혁은 시대적 대의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았다.권위주의가 타파되는 대신 개방의 기운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문민정부 6개월의 성과를 정치·경제·사회등 분야별로 점검해 본다. ◎정치/윗물 맑기 본격화… 깨끗한 정치 구현 정치권은 우선적인 개혁의 대상이었다.그리고 선도세력이기도 하다.공직사회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이미 여러차례 호된 시련을 겪었다.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재산등록·공개,금융실명제의 실시는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앞으로도 몇차례의 크나큰 파문이 예고되기도 한다. 새정부 출범이후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대한 개혁은 「윗물 맑기 운동」에 의해 이루어졌다.이는 개혁의 최우선 당면과제였던 부정부패척결,국가기강 확립과 맥을 같이했다.고위공직자 재산공개에 뒤이은 사정작업에 의해 구체화됐다. 김대통령은 취임 직후 재산을 스스로 공개했고 정치자금을 단 한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이는 결과적으로 엄청난 개혁과 변화를 몰고온 사전조치였다. 새로 임명됐던 각료를 포함,무수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들이 옷을 벗었다.직무상의 비리와 관련,수많은 전·현직 공직자들이 처벌을 받았다. 율곡사업과 평화의 댐 건설의혹을 포함,사회 각분야의 누적된 비리에 대한 척결작업이 줄을 이었다. 군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군 수뇌부에 대한 전격적인 인사조치를 통해 하나회라는 핵심인맥과 관련됐던 정치군인들이 철저히 배제됐다.군을 정치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단계적으로 강구되기 시작했다. 같은 흐름으로 과거사에 대한 재조명 작업이 이루어졌다.12·12가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적 사건」으로 규정된 데 이어 4·19와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새로운 평가가 내려졌다.상해 임시정부선열 5위의 유해를 봉환하고 구조선총독부와 관저건물을 철거키로 하는 등 민족정기 회복을 위한 조치도 병행됐다. 그러나 파문도 크다보니 정치권에서는 인치·법치 논쟁까지 벌어지기도 했다.개혁이 통치권자의 의지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정치실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높았다.정치권으로서는 정경유착의 단절에 따른 정치자금조달이 큰 문제였다. 다행히 이른바 기득권층의 금단현상은 서서히 약화돼 가는 듯한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스스로 개혁에 앞서 가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정치권은 깨끗한 정치구현을 위한 제도마련 작업에 착수한 상태이다. 새정부의 향후 과제라고 할 수 있는 아래로부터의 개혁,법과 제도에 의한 개혁을 위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돼 가고 있는 것이다. ◎경제/자리잡는 실명제… 신경제 구체화 개혁 6개월은 우리 경제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먼저 경제에 대한 정부와 기업,가계등 경제 주체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었다.6공 때까지의 흥청망청한 분위기가 사라졌다.아직 「다시 뛰는 분위기」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지만 과소비에 대한 반성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정부는 단기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인 신경제 1백일 계획(3월22일∼6월30일)과 과감한 제도개혁을 목표로 한 신경제 5개년 계획(7월1일∼97년말)을 차례로 시행했다.이같이 중·장기 경제정책을 병행한 것은 우리 경제가 구조적인 중병을 앓아왔다는 반성에 기초한다.1회용 대증요법보다는 병의 원인인 환부를 도려내 활력을 되찾기 위한 것이 「신경제」 개혁의 골자인 셈이다. 금융실명제의 전격 단행은 경제개혁을 위한 「혁명」이나 다름 없다.5,6공 정권은 금융실명제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놓고도 두 차례나 시행하지 못했었다. 실명제로 지하에서 얼굴을 드러낼 돈은 30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지난 해 우리나라 국내 총생산이 2백32조원임을 감안하면 13% 수준이다.이 엄청난 자금이 세척을 통해 산업자금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경제는 정치와는 달리 「빨리 끓지도·식지도」 않는 속성을 갖는다.우리 경제는 아직 지표상으로 회복된 상태가 아니다.수출증가율이 7월 이래 다소 높아졌지만 상반기 평균 증가율에 미치지 못했다.경상수지는 다시 악화됐고 실업률은 6년만의 최고치인 3.2%에 이르렀다. 개혁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도 아니다.대기업의 투자심리가 아직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개혁의지와 사정태풍이 투자를 가로 막는 결과를 빚기도 했다.또 실명제로 성장·물가·국제수지등 정부가 잡아놓은 올해 거시경제 목표가 당초 기대에 훨씬 못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때문에 신경제 5개년 계획에서 설정한 「총량지표 전망」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실명제의 부작용이 예상했던 것보다 심한 것은 아니며 신경제의 궤도를 수정해야 할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개혁은 곪은 곳을 수술하는 작업이다.아프고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따라서 경제적 성과를 당장 눈앞의 경제 지표로 연결짓는 것은 성급하다.좀더 차분히 지켜 보면서 구조적·제도적 모순을 바로 잡아 우리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는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사회/각계 비리척결로 자정바람 도출 6개월동안 숨가쁘게 몰아친 개혁의 성과와 영향이 가장 두드러지게 표출된 분야가 사회부문이다. 과거 권위주의시대에 관행처럼 묵인되어왔던 우리사회 곳곳에 도사리고 있던 각종 비리가 성역없이 척결됨으로써 개혁의 체감지수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군·검찰·재벌총수등 이전 같으면 접근이 어려웠던 권력 상층부의 비리에 대해서도 예외없는 단호한 법의 적용을 강조,공권력집행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했다. 이 때문에 사정 대상자 선별과정에 대한 시비와 지나친 과거 들추기식 개혁이라는 일부의 지적이 있었음에도 불구,새정부의 개혁작업이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기틀을 제공했다. 특히 검찰은 발빠른 개혁뒷받침 수사는 갖가지 비리척결에 크게 기여했고 사법부와 변협등 사회 각 부문에 걸쳐 자정과 개혁의 목소리를 이끌어 내는 전기가 됐다고 볼 수 있다. 군인사비리사건을 시작으로 율곡사업 비리사건·정보사 민간인테러사건등으로 이어진 군관련 비리에 대한 수사는 문민시대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동안 역대 군사정권아래서 군은 사실상 성역으로 치부돼 비리가 있어도 손도대지 못한채 묻혀 지나가기가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3개월 가까이 진행됐던 슬롯머신업계의 비리에 대한 수사는 검은돈과 권력층과의 유착고리를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었다고 볼수있다. 더욱이 이 사건으로 6공의 정계실력자로 군림했던 박철언의원뿐만 아니라 그동안 또 하나의 성역으로 간주돼온 검찰조직의 수뇌부들이 구속·퇴진되는 사태까지 이어져 공직자들의 윤리의식을 되돌아 보는 기회가 됐다는 점도 의미를 부여 할 수 있다. 아울러 일부 대기업 총수들과 변호사들의 비윤리적 불법행위등이 드러나 우리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뼈저린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서울지법 소장판사들의 사법부 개혁 요구에서 비롯한 사법부의 개혁 몸짓과 변협의 자정 노력·각 사회단체들의 광범위한 개혁 동참 움직임은 이같은 정부의 단호한 개혁작업에 대한 각계·각층의 화답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는 부정부패가 원천적으로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제도의 정착과 국민의 의식전환을 위한 개혁작업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 새정부의 개혁활동을 지켜본 국민들의 한결 같은 기대이다.
  • 장마뒤 집안손질/이부자리 햇볕에 연이틀 말리도록

    ◎옷장·서랍 활짝열어 환기 충분히 시키고/싱크대속 묵은 곰팡이 식초로 제거해야 장마가 끝나고나면 집안에 각종 곤충이 나돌고 구석구석 곰팡이가 끼는등 습기로 인한 피해가 늘어난다.따라서 이부자리와 옷가지는 내다가 햇볕에 말리고 옷장과 화장실 부엌등은 통풍을 시켜 집안에 남아있는 장마철의 눅눅하고 끈적끈적한 잔해를 털어버려야 한다. 이부자리는 장마철 수분을 머금으면 눅눅할뿐 아니라 곰팡이나 진드기의 온상이 돼 그대로두면 면역이 약한 어린이들은 설사와 비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햇볕이 좋은날을 선택,이틀정도 연속적으로 말려 일광소독을 하되 시간은 햇볕이 가장 강한 상오 11시∼하오 3시사이를 택하고 이부자리가 보송보송 해지면 나무막대기로 두드려 먼지와 진드기등을 말끔히 털어낸다.그리고 더 깨끗하게 하려면 막대기로 먼지를 턴후 진공청소기나 헤어드라이어를 이용,구석구석까지 더 말려준다.의류중 장마철중 군데군데 곰팡이가 낀 옷은 일단 세탁을 해서 햇볕에 말리고 그렇지 않은 옷은 햇볕을 쪼이도록하나 곰팡이가 많이나는 가죽옷은 그늘에서 말려야한다. 옷장과 수납장은 안에 들어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 먼지를 없애고 스프레이를 이용,가구의 옆면과 바닥에 소독용 에탄올을 뿌린후 장롱문과 서랍을 모두 활짝 열어 충분히 환기를 시킨다.가구도 한번쯤 잘 닦아주는것이 좋다.원목가구는 메리야스나 울등 부드러운 천으로,등가구나 대나무가구는 청소기로 틈새에 낀 먼지를 제거한후 통풍이 잘되는곳에서 말리거나 선풍기를 이용해 습기찬 부분을 꼼꼼히 말려준다.니스·페인트·옻칠을 한 칠기가구는 먼지를 턴후 비누걸레 물걸레 마른걸레의 순으로 손질하되 오동나무 가구는 물을 대면 얼룩이 지므로 윤기만 내도록 한다. 화장실엔 소독용 에탄올 스프레이를 수시로 뿌려두는것이 좋다.특히 때가 끼기 쉬운 변기와 바닥,물탱크 표면이나 바닥,슬리퍼 바닥등에 에탄올을 뿌려 미끌미끌한 물때를 벗겨내고 화장지로 닦으면 살균도 되고 퀴퀴한 냄새도 사라진다.또 바닥과 벽면 타일사이에는 때가 많이 끼게 마련이므로 못쓰는 칫솔로 말끔히 닦아낸다. 부엌은 가스레인지와 환풍기에 벌레가 생기기 쉽다.이곳은 더러움이 덜할땐 미지근한 물에 주방용세제를 풀어 걸레를 꼭짜서 닦은다음 뜨거운 걸레로 세제 찌꺼기를 닦아낸다.기름때가 찌들었을때는 전용 클리너를 사용하거나 에탄올을 좀 진하게 묻힌 걸레로 닦아내면 묵은때가 말끔하게 없어진다. 싱크속의 곰팡이는 마른행주에 식초를 찍어서 닦으면 간단히 해결된다.오염과 검은때가 심한 경우엔 먼저 물로 때를 닦아낸다음 소독용 에탄올을 뿌리면 곰팡이가 없어지고 나중에도 잘 생기지 않는다.단 스테인리스제 싱크대는 염소이온에 약하므로 염소계 표백제를 이용해 닦을때는 재빨리 닦아내도록 한다.
  • 연탄금석(외언내언)

    50년대까지만 해도 겨울을 나는데 세가지 중요한게 있었다.양식과 반양식인 김장과 장작더미였다.마당에 장작평이나 쌓아놓은 집이면 남들의 부러움을 샀다.그 장작이 60년대 들면서는 연탄으로 갈음된다.땔감의 혁명이었다.생각컨대 산림녹화도 이 연탄의 보급으로써 가능했다고 할일이다.산의 나무를 땔감으로서는 필요없게 만들었던 것이니 말이다.산림녹화의 공로는 새까만 연탄한테 돌려야 한다. 세상사에서 일방적으로 이익만 주는일이란 없다.이익되는일의 그늘에는 그에 못지않은 불이익이 도사린다.연탄도 그렇다.겨울을 따뜻이 날수있게 하는것은 좋았지만 장작과는 달리 검은 사신을 더불고 다녔기때문이다.대충 한해에 연탄가스 중독사고자는 약1백만명에 이르고 그중 약4천명 정도씩이 죽어갔다.그뿐이 아니다.요행히 죽지않고 회복이 된다해도 5명 가운데 2명꼴로 언어장애등의 후유증에 시달린다.대단한 인재라 하지않을수 없다.그동안 중독사고의 원흉인 일산화탄소를 제거해보려 했으나 별효과를 보여준바는 없다. 그래도 겨울로 다가서면 이 연탄을 들여놔야 마음이 놓이는것은 장작때와 다를게 없었다.동네에는 연탄소매상이 있고 거기 배달원도 딸린다.그들은 직업상 옷하며 얼굴이 까말수밖에 없다.『우람한 몸집에/시꺼먼 구레나룻이 너무나 인상적인/우리마을 16통3반 반장 송만호씨/그는 한때 월남전을 누빈 용사였지만/지금은 조그만 연탄가게 주인이다…』.조동화시인의 「연탄배달부를 노래함」은 이렇게 시작된다.그의 시심은 연탄배달부가 쌓아두고간 연탄을 「꽃봉오리」로 표현한다.『아궁이마다 귤빛 환한 꽃으로 피어나/우리들의 시린 등을 녹여준다』고 덧붙인다. 이제 그 연탄의 시대도 가고있다.서울의 경우 86년까지만 해도 연탄사용가구는 85.4%였는데 계속 줄어드는 추세속에서 올해는 30%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그자리를 LNG,LPG가 메워나간다.연탄은 우리들 성장시대의 땔감이었는가.
  • 성역없는 척결… 부패구조 “와해”/사정태풍에 누가 쓸려갔나

    ◎재산공개로 장­차관·의원 10여명 침몰/과감한 군숙정… 현역장성 19명 옷벗겨/슬롯머신수사 확대 전망… 「대상자」 더 늘어날듯 김영삼정부의 출범은 이 사회의 부정부패 구조를 밑뿌리부터 뒤흔드는 격변을 예고하는 출발점이었다. 2월25일 취임사에서 김대통령이 「부정부패척결」을 제1의 당면과제로 제시할 때만 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과거 정권들이 정통성결여를 위장하기 위해 흔히 내걸었던 민심무마용 사정 이상을 예상하지 않았다. 그러나 취임 이틀 후 스스로 재산을 공개하고 3월4일 정치자금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장차관 국회의원의 재산공개로 넘어가고 금융계,교육계,군·검찰로 줄줄이 이어지는 사정의 메들리는 과거와 비교할때 양과 질에서 차원을 달리했다. ○과거완 차원 달라 이 과정에서 재산공개나 사정작업이 초법적이라거나 일부 정치인에 대한 사법처리가 정치보복이라거나 문민독재를 우려하는 등의 소리가 없지 않았으나 김대통령이 즐겨 인용하는 「국민들의 90%이상이 개혁을 지지한다」는 분위기에 묻혀 지나가고있다. 이러한 사정의 태풍속에 과거 권력과 돈·명예를 한꺼번에 누리던 숱한 유명인사들이 무대에서 사라져 갔다. 새 정부의 부정부패에 대한 성역없는 척결은 3월초에 모습을 보였다. 김상철신임서울시장의 그린벨트 무단형질변경이 드러났고 박량실보사부장관의 부동산투기도 드러났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박희태법무장관이 미국국적으로 딸을 대학에 특례입학시킨 것이 드러났다. 이들은 곧 물러나야 했다. 이와함께 허재영건설부장관도 축재과정이 문제가 돼 퇴진했다. 재산공개의 파문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결국 조규일농림수산부차관등 5명의 차관급 공직자의 옷을 벗기고 유학성·김문기·김재순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해야 했으며 박준규국회의장은 의장직을 사퇴해야 했다.박의장은 또 임춘원의원과 탈당,정치적 파국을 맞았고 탈당을 거부한 정동호의원도 막판에 당을 떠났다. 집권여당내 권력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재산공개 파문의 뒤안길에는 민주당의 이동근의원이 잡지광고비리사건으로 구속돼 사정에 여야가 없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김시장등이 물러나던 3월8일 바로 그날 새 정부는 세인의 의표를 찌르는 또 하나의 인사를 단행했다.김진영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보안사령관이 전격 교체됐다.이들은 금전적 비리등에 연루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날 하나회등을 중심으로 군에 깊이 뿌리를 드리웠던 정치군인들과 비리연루자에 대한 숙정의 시발이었다. 군에 대한 사정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김대통령은 5월 24일에는 이필섭합참의장·김진선2군사령관 안병호전수방사령관·박종규56사단장등을 각각 하나회와 12·12사태등과 관련해 강제전역시켰고 김철우해군참모총장도 인사비리로 물러나게 됐다.이로써 현역장성 19명이 옷을 벗었고 그 사이에 하나회와 12·12사태와 관련된 영관장교 19명이 전보 또는 전역조치됐다. 이에 앞서 4월 22일에는 김종호전해군참모총장이 재직시 인사비리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 ○「하나회」 장성 교체 이어 25일 무렵에는 정용후전공군참모총장과 조기엽전해병대사령관등이 인사비리로 수사를 받기 시작했다.물론 정전공군참모총장의 수사는 차세대주력전투기 선정물의와 관련된 보복수사라는 일부 여론도 있었으나 이재돈해병소장등 해공군 장군과 영관급 장교들이 13명이 연달아 구속되거나 수사를 받게 되면서 그대로 묻혀버렸다. 사정의 거센 물결은 금융계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3월19일 김준협신탁은행장이 대출비리와 관련해 돌연 사표를 내면서 금융계에 대한 사정바람을 예고했다. 김행장의 사임과 때를 같이 해 감사원이 13개 시중은행과 10개 지방은행에 대한 감사에 들어갔다. ○금융계비리 감사 그 뒤 강병건전강원은행장등 4명이 4월말 구속되고 비슷한 시기에 안영모동화은행장이 비자금 조성과 관련,구속됐다.안행장 사건은 곧 정치권으로 비화돼 김종인·이원조의원의 구속 및 의원직 사퇴로 연결돼 나갔다. 또 기업체로부터 돈을 받고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금융비리를 저지른 장기오은행감독원부원장등 3명이 감사원 감사에 걸려 해임됐으며 명의식축협회장등 6명이 공사발주 및 임원급 인사를 둘러싸고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거나 조사를 받았다. 창군이래 가장 파격적인 인사를 겪은 군 못지 않게 사정 칼날 앞에 철퇴를 맞은 곳은 검찰. 검찰은 슬롯머신업자 정덕진으로부터 돈을 받은 이유로 현직 고검장이 구속되는 유례없는 「사변」을 치렀다. ○입시부정 큰 충격 구속된 이건개대전고검장이외에도 신건법무차관과 전재기법무연수원장이 옷을 벗었다. 엄삼탁병무청장도 슬롯머신관계로 옷을 벗었고 이에 대한 수사가 정·관·언론등으로 확대될 전망이어서 앞으로 검은 돈과 연결된 부정부패의 인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새 정부의 비리 척결과정에서 가장 국민들을 실망시킨 곳은 단연 교육계가 으뜸이다. 교육계는 경원대·전문대 입시부정사건을 비롯,추계예대·호남대·동아대·경기대등에서 줄줄이 부정입학사례가 드러나고 개혁실세로 일컬어지던 집권당의 사무총장이 하루 아침에 실 끊어진 연처럼 날라갔으며 급기야는 교육부가 그동안 공개하지 않던 사학에 대한 감사결과를 모두 내놓게 만들었다. 교육부는 또 김종억장학관과 김광옥장학사가 입시출제요원으로 들어가 답안지를 몰래 빼돌려 학부모에게 팔아온 것으로 드러나 엄청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거점타격식 진행” 교육계의 비리로 1백명에 육박하는 교수·교육부 직원·교직원·학부모·학생등이 형사처벌되는 진기록이 세워졌으며 정부수립후 한 부처에서 국장급 11명 가운데 10명이 자리바꿈을 하고 3분의 2에 달하는 서기관과 사무관이 한꺼번에 인사이동되는 사상 초유의 일도 벌어졌다. 이밖에 내무부·경찰등에서도 사정 한파가 매섭게 몰아쳐 뇌물을 받은 천기호치안감등 고위공직자들이 구속되거나 해임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사정의 칼날이 여기서 멈출 것이라고는 장담키 어렵다. 얼마전 개혁실세인 모장관은 『사정은 거점타격식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타격을 받은 거점이 몇 개나 되는가』라고 되물어 아직 사정의 격랑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 부정의 상징 「주홍빛」소재 미 소설 눈길 끈다

    ◎호손의 「주홍글자」이후 문학속에 자주 등장/존 치버 「…이삿짐 트럭」·로빈슨「…유혹」 소개 「감옥문이 활짝 열리자 큰 칼을 찬 검은 그림자 같은 하급관리 뒤로 생후 3개월쯤 돼 보이는 아기를 팔안에 안은 젊은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그녀의 검은 옷 가슴팍에는 주홍빛 헝겊에 황금빛 수실로 에이(A)자가 화려하게 수놓아져 있다」 19세기 미국문학을 대표하는 나타니엘 호손의 소설 「주홍글자」의 첫부분이다.주홍빛(Scarlet).간음을 뜻하는 의미와 함께 「불륜」의 뉘앙스가 짙은 열정을,그리고 음산한 기운이 비치는 밝음을 상징하는 단어이다.그동안 이 용어가 문학작품속에 빈번히 등장한 것은 이같은 의미의 복합성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주홍빛」의 상징적 의미를 소재로 한 미국 소설들이 잇따라 번역돼 눈길을 끌고있다.미국작가 존 치버(1912∼1982)의 「주홍빛 이삿짐 트럭」과 록사나 로빈슨의 「주홍빛 유혹」이 그것이다.앞의 작품이 자신과 세계의 한계를 깨달으면서 방랑의 진정한 슬픔을 감추기 위한 금빛 주홍이라면 뒤의작품은 잔잔한 일상에 파고드는 감정의 외출을 유인하는 소설「주홍글자」의 그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읽어낼 수 있는 단편이어서 읽는 묘미가 남다르다. 「이 시대가 낳은 탁월한 이야기꾼」이라는 찬사를 받고있는 치버의 단편「주홍빛 이삿짐 트럭」은 상처받기 쉬운 인물들을 통해 단순한 사회풍자나 향수속으로 도피하기보다 자기 세대의 고통스럽고 복잡한 믿을 정직하게 다루고 있다.미국 동부의 부유한 B시로 잘 생기고 점잖아 보이는 피치스와 지지부부가 찰리네 옆집으로 이사온다.지지는 술만 마시면 겉모습과는 딴판으로 주위사람들을 불쾌하게 할 정도로 행패를 부려 점점 고립된다.8년동안 여덟번을 이사한 경력을 갖고 있는 지지부부는 결국 10개월만에 또 다른곳으로 이사간다. 어느날 찰리는 아내와 아이들을 멀리 보내고 혼자 남은 지지를 찾는다.그는 엉치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휠체어도 아닌 유모차신세를 지고 있다.지지를 만나고 돌아온 날 저녁 찰리는 그로부터 도움을 청하는 전화를 받는다.그러나 이런 저런 핑계를 들어 요청을 거절한다.양심에 가책을 느낀 찰리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애쓰다 알콜중독자로 전락하고 점차 냉소적으로 변해간다.결국 실직하고 지지부부처럼 금빛나는 주홍빛 이삿짐 트럭을 타고 떠돌기 시작한다. 한편 록사나 로빈슨의 「주홍빛 유혹」은 지루한 일상속에서 자유의 확대라는 미명아래 갑자기 찾아든 유혹을 떨쳐버리려는 한 여자의 이야기이다.변호사 남편을 둔 리사는 불륜의 정사를 마치고 도둑고양이처럼 여자의 집을 나서는 한 남자를 길에서 만난다.그때 리자 눈에 남자 뒤편으로 생생하고 강렬하며 화려한 주홍색이 잡힌다.심상지 않은 기운이 리자를 감싼 것이다.그러다 7년전 사랑했던 남자로부터 뜻하지 않던 전화가 걸려오면서 파장이 커져간다.남편에게 전화얘기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리자는 남편이 파티에서 만난 한 여류작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것을 보고 분노에 휩싸인다.남편이 잠든새 작가의 명함을 찢어버린다.남편과 아내 리자 두사람에게 잠시 일어났던 주홍빛 순간들은 그녀의 이같은 행위로 분노와 함께 사그러든다. 두 작품속에 등장하는「주홍빛」은 주홍색 스펙트럼선상의 양끝을 달리는 듯 유사하면서 매우 상이하다.그러나 금지된 것을 희구토록 만드는 주홍빛 흥분은 빛깔의 명암만큼 정도의 차이가 있을뿐이다.이들 두 작품에는 모험과 죄의식,위험에도 불구하고 고귀하고 긴요한 가치를 위해 모든 것을 감수케하는 힘이 내재돼있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