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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르카 불태우고 수염 밀고…IS에 분노한 민간인들

    부르카 불태우고 수염 밀고…IS에 분노한 민간인들

    수니파 무장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핵심 근거지인 시리아 락까에서 해방된 일부 민간인이 부르카를 불태우고 수염을 밀어버림으로써 IS에 대한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영국 일간 미러닷컴 등 외신은 23일(현지시간) 최근 인민수비대(YPG)가 유튜브에 공개한 영상 하나를 소개했다. 이 영상에는 IS로부터 자유를 되찾은 락까 시민들이 나오는데 IS에게 붙잡혀 그간 겪은 고초와 가족을 잃은 슬픔, 그리고 IS에 대한 강한 분노를 내비친다. 한 여성은 어린 아들의 어깨를 붙잡고 울면서 “IS가 우리 집에 박격포를 쏴 불이 나 남편과 아버지가 사망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성은 쓰고 있던 부르카를 벗고 울면서 “내게 라이터를 달라”면서 “내가 이것을 불태워 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또 다른 여성이 “부르카를 불태우자!”고 소리쳤다. 이는 IS가 여성은 옷 위에 검은색 긴 로브를 걸치고 얼굴에는 부르카를 써야 한다고 제정한 복장 규정에 정면으로 맞서 저항을 표현한 것이다. 이후 여성들은 걸치고 있던 부르카를 벗어 바닥에 모은 뒤 거기에 불을 질렀다. 또 어떤 여성은 “알라가 그들(IS)을 불태워버릴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아버지를 불태웠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다른 여성은 “알라는 그들의 심장을 불태울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 아들이 기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들을 죽였다”면서 “그들은 우리가 아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것을 일주일 동안이나 막았다”고 말했다. 반면 일부 남성은 이발사에게 자신의 수염을 밀게 했다. 그는 “모든 수염을 잘라라”면서 “IS를 괴롭히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잘라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이발사가 동의하자 그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한편 이들 락까 시민을 구조한 군부대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리아의 쿠르드족 민병대 세력인 인민수호대(YPG)가 주축인 시리아민주군(SDF)으로 알려졌다. 사진=YPG PRESS OFFICE/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사우디 발칵 뒤집은 ‘미니스커트 여성’ 끝내 경찰에 체포

    사우디 발칵 뒤집은 ‘미니스커트 여성’ 끝내 경찰에 체포

    여성의 옷차림을 엄격하게 규제하는 사우디아라비아(사우디)에서 한 여성이 짧은 치마를 입고 유적과 사막을 활보하는 동영상이 사우디 안에서 논란이 됐다. 결국 사우디 경찰은 이 여성을 찾아 체포했다고 18일(현지시간) 밝혔다. 사우디 리야드 주 경찰의 파와즈 마이만 대변인은 현지 일간 오카즈에 “정숙하게 옷을 입지 않은 여성이 나오는 동영상 속 장본인을 검거해 신문하고 있다”면서 “동영상의 배경인 유적지에 남성 보호자(마흐람)와 함께 갔다고 자백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대변인은 “그러나 이 여성은 해당 동영상이 게시된 스냅챗의 계정이 자신의 것이라고 인정했지만 이 동영상을 올리지는 않았다고 부인했다”고 설명했다. 사우디 안에서 논란이 된 영상은 지난 15일 스냅챗의 ‘모델 쿨루드’라는 계정에 올라왔다. 영상에는 한 여성이 사우디 나즈드 주 사막과 길거리 등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담겨있고 이동 중 차 안에서 촬영한 ‘셀카’에는 얼굴도 정면으로 나온다. BBC는 이 여성이 ‘쿨루드’라는 이름의 모델이라고 보도한 적이 있다. 특히 이 여성이 사우디가 봤을 때 ’과감한 패션‘으로 돌아다닌 나즈드 주는 강경한 이슬람 원리주의 사상인 ‘와하비즘’이 시작된 곳이다. 엄격한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는 사우디에서 여성은 외출할 때 아바야(검은색 통옷)와 머리에 검은 히잡을 써야 한다. 이 영상은 트위터 등 여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퍼지며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사우디의 법을 어긴 이 여성을 구속해야 한다는 의견과 복장의 자유를 주장하는 행위가 범죄가 돼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6초 영상이 불붙인 논쟁’… 사우디 여성의 미니스커트

    ‘6초 영상이 불붙인 논쟁’… 사우디 여성의 미니스커트

    짧은 치마와 상의를 입은 여성의 뒷모습을 담은 6초 분량의 영상 한 편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격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영국 BBC 등 해외 언론의 17일자 보도에 따르면 사진 속 주인공은 쿨루드라는 이름의 여성으로, 최근 자신의 SNS에 올린 영상 한 편으로 경찰의 ‘조사 대상’이 됐다. 사우디 여성들의 공식 ‘드레스 코드’를 어겼다는 것이 그 이유다. 사우디 여성들은 외출할 때 ‘아바야’를 착용하는 것이 의무다. 아바야는 아랍인들이 옷 위에 두르는 긴 천으로, 히잡의 한 종류다. 얼굴과 손발을 제외하고 온몸을 가리는 검은 망토 형태로 이뤄져 있다. 지난 주말, 이 영상이 올라온 뒤 사우디 내부에서는 찬반 논쟁이 들끓었다. 쿨루드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는 의견과, 그녀에게 마음대로 옷을 입을 수 있는 자유를 줘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이 여성에 대한 처벌 여부가 더욱 화젯거리로 떠오른 것은 최근 사우디가 미래발전계획인 ‘사우디 비전 2030’과도 연관이 있다. 모하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자가 이끄는 비전2030은 사우디의 사회와 경제 전반을 폭넓게 점검해 석유 수출 의존도를 낮추는 동시에, 사우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을 높이는 것이 주된 목표다. 현지의 한 네티즌은 “만약 그녀가 공공장소에서 짧은 치마를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된다면, 비전2030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쿨루드를 옹호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가 사우디를 방문했을 당시, 멜라니아가 아바야를 착용하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며, 쿨루드에게도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 “사우디에서는 아바야를 착용하는 것이 법률이므로 이를 어겨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다. 사우디 정부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7일, 이 여성을 소환해 공식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아바야를 입지 않았다가 적발된 여성들에게는 감옥행이 선고됐지만, 비전2030을 추진 중인 사우디 정부가 이번에는 어떤 처벌을 내릴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미술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 중 하나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그림이 갑자기 유명작가의 그림으로 밝혀져 ‘일확천금’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나 관료들도 그림이 갖는 문화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거나 재벌들을 옥죄기 위해 그림, 미술품을 생각한다. 범죄영화를 가장한 코미디 스릴러영화라 할 수 있는 ‘모데카이’(2015)도 미술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영화라는 점에서 동서의 그림에 관한 생각은 같은지도 모르겠다.영화는 스페인의 거장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내용이다. 그림보다는 가볍고 능청스러운 주인공 모데카이를 연기하는 조니 뎁의 활약이 돋보이는 코미디물이다.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술품은 임자를 제대로 만났을 때 예술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천박하고 계산적인 인간을 만나면 미술품은 당장에 세속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고색으로, 시간의 흔적이 담긴 표면 효과만 남게 된다. 즉 현재의 지위를 기호화해서 지금의 지위와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시각적 지위 증거로 사용될 뿐이다. 모데카이는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영화 제목이다. 그는 영국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스스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았다고 여기며 미술품 수집을 즐긴다. 하지만 이미 몰락해 재정은 파탄이 났고 대저택은 오늘내일 경매로 넘어갈 형편이다. 그는 그저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렸지만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전설 속 그림 ‘웰링턴의 공작부인’이 복원 도중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전부나 다름없다. 모데카이는 얄밉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400년 전 소설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에 집중했다면 모데카이는 풍자를 빙자한 재미에만 더 매진하고 있다. 영화는 5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래 소설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통찰력 있는 비유와 묘사가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았으나 영화는 글쎄다.영화에 나오는 ‘웰링턴의 공작부인’은 영화를 위해 화가 샐리 드레이에게 주문해 만들어진 가공의 그림이다. 그는 고야의 유명한 ’옷 입은 마하’(1803)를 바탕으로 고야풍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고야의 진품 역시 영화 속 ‘웰링턴의 공작부인’만큼 사연이 많다는 사실이다. 고야는 ‘옷 입은 마하’를 그리기 3년 전인 1800년 ‘옷 벗은 마하’를 그렸다. 스페인의 실세였던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에 의해 그린 그림인데 당시는 공식적으로 누드화를 금하던 시기였다. 여성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은 신성 모독 논란을 일으켰고, “마하에게 옷을 입히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고야는 원그림을 고치는 대신 ‘옷 입은 마하’를 새로 그렸지만 1813년, 마하 연작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통해 압수당하기도 했다.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다.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의 전통을 이어 세 명의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고전적 의미의 대가이자 주제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의미를 해체한 최초의 근대적 예술가였다. 32세에 궁정화가가 되기 전 고야의 작품들은 산뜻하고 밝았다. 말년에 들어 소위 ‘검은 그림’을 그린다. 그의 머릿속 환상과 악몽들이 드러난 것은 그가 청력을 잃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나서였다. 그 후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침공으로 민족의식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가 시대적인 자각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찾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권력자들의 초상화로 명예를 얻었으나 스스로 “인간의 과오와 악덕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판화집 ‘카프리초스’(변덕)를 발간해 계몽주의자가 되었다. 성직자를 조롱하거나 외설적인 마녀 그림이 문제가 되자 재빨리 판화집을 회수하고 판매 중지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에 조국 스페인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프랑스는 스페인을 침략해 페르난도 7세를 폐위하고, 나폴레옹의 형 조세프를 호세 1세로 즉위시켰다. 하지만 곧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이 들어와 페르난도 7세를 복위시키는 등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반도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고야는 출중한 실력 또는 처세술로 여전히 궁정화가로 일했다. 그는 호세 1세의 초상화를 그려 1811년 훈장을 받았다. 하나 웰링턴 공작이 마드리드에 입성하자 호세 1세의 얼굴을 웰링턴으로 고쳐 바쳤다. ‘비리의 고발자, 정의의 투사’라는 고야의 이미지는 이런 행적 때문에 기회주의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부르봉왕조, 종교재판소,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를 위해 일했고 어느 쪽으로부터도 피해받은 바 없다. 물론 훌륭한 예술가라고 모두 철저하게 대의를 따를 수는 없지만 예술가들이 혁명적인 경우는 대개 예술에 한한다. 특히 고야를 혁명적 인물로 만들어준, 민중의 항거와 권력에 의한 학살을 고발하는 그림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도 알고 보면 1814년에 그려졌다. 즉 프랑스 점령기가 아니라 그들이 물러가고 페르난도 7세가 복위하기 직전, 화가의 친프랑스 행적에 대해 의심이 가해질 무렵 그려졌기 때문에 그 저항의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스페인 반도전쟁의 도화선이 된 ‘1808년 5월 2일의 봉기’ 즉 ‘도스 데 마요 봉기’와 짝을 이루는 이 그림에서 고야는 보통사람들을 영웅적 순교자 내지는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자로 이상화시켜 혁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구엘 감보리노가 1813년 제작한 판화를 차용한 것으로,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아무튼 고야의 삶을 돌아보면 사람의 삶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해도 표리부동함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 박근혜 첫 정식재판 종료…박근혜·최순실, 18개 혐의 전면 부인(종합)

    박근혜 첫 정식재판 종료…박근혜·최순실, 18개 혐의 전면 부인(종합)

    23일 오전 10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김세윤) 심리로 열린 자신의 첫 정식 재판에 출석했다. 이날 재판은 오후 1시쯤이 돼서 끝났다.박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재판에 출석하며 구치소에서 구입한 큰 집게핀으로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를 했으나 재임 시절보다는 다소 초췌한 모습을 보였다. 얼굴 인상은 약간 부은 듯한 느낌도 줬다. 구속 수감 후 53일 만에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박 전 대통령이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에 도착해 호송차에서 내릴 때 앞모습은 올림머리를 하던 예전과 거의 같았다. 뒷모습도 머리 형태는 비슷했지만 큰 집게핀이 꽂혀 있는 것이 달랐다. 박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구입한 검은색 집게핀으로 머리를 틀어올려 약식으로 올림머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옆에는 검은색으로 된 큰 똑딱이 핀이 3개 꽂혀 있었다. 구치소에서는 금속 재질로 된 실핀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눈에 띄게 큰 핀을 꽂은 것으로 보인다. 머리 모양은 평소 보이던 것과 비슷하게 단장했지만,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정에서 초췌한 모습을 보였다. 눈가가 약간 부은 듯한 얼굴이었고, 긴장한 듯 시종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옷차림은 재임 당시 공식 석상에 나설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남색 재킷과 정장 바지 차림이었지만, 재판 내내 기운이 없는 기색으로 재판장 쪽을 향했으며 한두 차례 한숨을 내쉬거나 목이 타는 듯 물을 들이켰다. 이 밖에도 머리카락 군데군데 새치가 보이고 화장기가 없어 단장을 하지 못하는 미결 수용자의 신분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박 전 대통령은 “박근혜 피고인, 직업이 어떻게 됩니까”라는 김 부장판사의 질문에 일어서서 “무직입니다”라고 짧게 답했다. 주소를 묻는 말엔 “강남구 삼성동…”, 생년월일이 1952년 2월 2일이 맞느냐는 말엔 “그렇다”고 했다. 이는 재판 시작 전 신원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에게 국민참여재판 의사가 있는지도 물었으나 그는 일어서서 마이크를 잡고 “원하지 않습니다”고 답한 뒤 다시 착석했다. 이날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검찰이 언론기사 등 불충분한 증거로 뇌물죄를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뇌물죄에 대한) 상당수 증거가 대부분 언론기사로 돼 있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검찰이 언론기사를 형사사건 증거로 제출했는지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돈 봉투 만찬 사건으로 법무부와 대검찰청이 (특수본 검사들을) 감찰하고 있다”며 “이 사건의 논리를 검찰에 적용하면 사건 당사자들에 대해 ‘부정처사 후 수뢰죄’로 얼마든지 기소 가능하다는 게 본 변호인의 의견”이라고 했다. 최순실씨 측 이경재 변호사도 “최씨 등을 고발한 시민단체는 제가 뉴스를 보니 얼마 전에 일어난 검찰 돈 봉투 사건을 ‘뇌물수수·공여’ 혐의로 고발했다”며 “이 자리에도 특수본 부장검사가 두 명이 있다”고 거들었다. 박 전 대통령은 이날 재판에서 삼성 등 대기업에서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 검찰의 공소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도 직접 “변호인과 입장이 같다”며 18개 혐의를 전부 부인했다.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 및 대기업 출연금을 받았다는 뇌물수수 혐의 동기가 없으며 ▲최순실과 언제 어디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공모관계에 대한 설명이 없으며 ▲형사사건으로서 증거관계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검찰 공소장엔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어떻게 공모해서 삼성에서 돈을 받았는지 설명이 빠져 있다”며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검찰이 최씨와 박 전 대통령을 ‘경제 공동체’로 보고 최씨가 뇌물을 받은 것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 혐의를 적용했으면서 구체적인 모의 과정, 범행 과정에 대한 설명은 빠졌다는 주장이다. 박 전 대통령과 나란히 피고인석에 선 최순실씨는 “40여년 지켜본 박 전 대통령을 재판정에 나오게 한 제가 죄인”이라고 울먹이며 통탄했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이나 이런 범죄를 했다고 보지 않는다. 검찰이 몰고 가는 형태라고 생각한다”며 “이 재판이 정말 진정으로 박 전 대통령의 허물을 벗겨주고, 나라를 위해 살아온 대통령으로 남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저나 박 전 대통령이 한 게 아니고 박원오(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란 사람이 한 일이고, 삼성 말이나 차도 다 삼성 소유”라며 “삼성 합병과 뇌물로 엮어 가는 건 무리한 행위”라고 검찰을 비판했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사건 재판을 병합 심리로 함께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재판부는 “특검이 기소해 진행 중인 최씨 재판과 병합하겠다”며 “기소한 주체가 일반 검사건 특별검사건 합쳐서 심리할 법률적인 근거가 충분하고 과거에도 특검과 검찰이 각각 기소한 사건을 하나로 병합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실적인 면을 봐도 공소사실이 완전히 일치하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를 따로 심리하면 중복되는 증인을 소환해서 이중으로 들어야 하고, 불필요하게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런웨이 조선] 패딩솜은 속에, 홑겹옷은 겉에…한복 맵시 살리는 누비 스타일

    [런웨이 조선] 패딩솜은 속에, 홑겹옷은 겉에…한복 맵시 살리는 누비 스타일

    ‘같은 옷 다른 느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볼 때가 종종 있다. 같은 옷이라도 누가 입었는지, 어떻게 입었는지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는 얘기다. 체형과 피부색, 머리색, 분위기에 따라 같은 옷이라도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전통시대 사람들도 비슷한 옷을 입었지만 각기 다르게 보이는 것은 그때도 자기에게 맞는 스타일을 만들어 입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한복과 다양한 치장으로 멋을 냈다 하지만 조선시대 남성들은 심플한 한복으로 어떻게 스타일을 표현했을까? 비슷한 옷이지만 착장의 기술에 멋내기 포인트가 있다.조선시대 남성들은 기본적으로 바지저고리를 입었다. 여기에 포를 덧입으면 예의를 차린 옷이 된다. 우리나라 옷은 기본적으로 계절에 민감하다. 팔다리를 감싸 추위를 막고 앞섶을 열어 더위를 이겼다. 이러한 형태를 전개합임형(前開合栣型) 또는 카프탄(caftan)형이라고 한다. 추울 때는 깊이 여며 허리에 띠를 매고 더울 때는 앞을 열어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한다. 계절의 변화에 최적화된 형태이다. 그렇지만 여밈만으로 추위를 이겨 내긴 어려웠다. 이때는 우리가 패딩을 입듯이 솜옷을 입었다. 하지만 솜옷은 따뜻한 대신 투박하다. 솜의 두께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지만 솜옷으로 맵시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추위는 막으면서 세련된 느낌을 주는 방법이 필요했다. 바느질 솜씨 좋은 조선 사람들이 찾아낸 방법은 바로 누비이다. 누비는 두 겹의 옷감을 겹쳐 2~3땀씩 직선으로 바느질을 해 옷감이 따로 놀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침선기법이다. 이때 솜을 넣기도 하고 옷감만 덧대어 바느질하기도 한다.중요한 것은 솜의 두께와 누빔의 간격이다. 조끼나 배자를 만들 것인지, 긴 포(겉옷)를 만들 것인지, 도포 안에 받쳐 입을 것인지, 상체를 커 보이게 할 것인지 등을 고려하고 누비의 간격이나 두께를 정하고 다양한 종류의 스트라이프를 만들어 디자인에 반영했다. 누비는 공력이 많이 들어가는 옷이다. 그러니 일반 옷보다 훨씬 비쌌다. 누비의 스트라이프 무늬는 세련미까지 주어 겉옷으로 입어 자랑할 만했다. 하지만 전통시대 남성들은 아무리 비싼 누비옷이라 할지라도 솜옷을 겉옷으로 입지 않았다. 솜옷을 겉에 입는 것은 스타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추위를 막기 위해 솜옷을 속에 입고, 겉에는 홑겹의 옷을 입어 오히려 맵시를 살렸다. 또 다른 방법은 옷감의 재질에 따라 옷의 순서를 정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옷 잘 입기로 소문난 사람들 중에 별감이 있다. 이들은 옷 색깔부터 눈에 확 띈다. 모두 검은색 갓을 쓸 때 이들은 노란색의 초립(草笠)을 쓴다. 그리고 흰색의 바지와 저고리 대신 보라색의 누비저고리에 외올뜨기 누비바지를 입고 그 위에 양색 비단을 누벼 만들거나 털로 만든 배자를 입는다. 다양한 색깔과 소재를 이용하는 안목이 돋보인다. 배자뿐만이 아니다. 배자 위에는 도포와 창의를 입는데 숙초(熟綃)로 만든 홍의를 겉에 입고 생초(生綃)로 만든 창의를 안에 받쳐 입는다. 생초는 섬유를 가공해 부드럽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올이 꼿꼿하여 실 자체에 힘이 있다. 옷을 만들면 선이 빳빳하게 살아 있어 기상을 드러내기 좋다. 그에 반해 숙초는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장점이 있다. 올이 살아 있는 생초를 안에 입고 흐르는 듯 부드러운 숙초를 겉에 입으면 생생하고 부드러운 맵시를 둘 다 살릴 수 있다. 별감의 복색은 일반인들과는 다르다. 그러나 그들의 옷 입는 방식은 일반인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흰색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대부들은 별감처럼 누비 배자를 입고 그 위에 흰색의 포를 입었다. 여기까지는 스타일을 표현하기에 단조롭다고 느낄 수 있다. 그래서 허리를 중심으로 매고 있는 주머니, 허리띠, 선추 등의 끈목을 활용해 스타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남성들의 주머니는 양쪽으로 귀가 나온 것처럼 생겼다고 해 귀주머니라고 한다. 여기에 나비매듭, 도래매듭, 파리매듭, 별매듭을 색색으로 꿰어 차니 주머니와 함께 매듭 끈이 바지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허리띠도 마찬가지이다. 천으로 만든 포백대는 실제 바지를 묶거나 모자를 고정시킬 때 사용한다. 그러나 커다란 도포 위에 묶는 허리띠는 실용적인 목적보다는 장식이라고 볼 수 있다. 가늘고 둥근 세조대를 비롯해 굵고 둥근 동다회, 넓고 납작한 광다회, 오색사로 짠 교대가 있다. 길이가 무려 4m에 달한다. 누구라도 한 번 묶어서는 땅에 끌릴 수밖에 없다. 이 허리끈으로 두 번 이상 감은 다음 매듭이 풀리지 않게 한 가닥을 고리처럼 만들되 허리끈이 포의 밑단보다 길게 늘어지지 않게 맨다. 그래야 허리끈의 양쪽 끝에 달린 딸기술이 흔들리며 생동감을 준다.바지저고리, 도포 등은 대체로 크고 단순한 의복이다. 그러나 착장의 기술로 스타일을 만들고 선을 살렸다. 아무리 비싼 솜옷, 누비옷이라도 품위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속으로 감추고 주머니와 허리띠만으로도 단순한 옷에 포인트를 살려 스타일을 만들었다. 결코 과하지 않으면서 멋을 아는 진정한 멋쟁이의 차림새가 바로 이것이다.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강풍 타고 덮친 불덩이… “24일된 아들만 안고 탈출”

    강풍 타고 덮친 불덩이… “24일된 아들만 안고 탈출”

    강릉 가옥 33채 잿더미로 “모든 걸 잃었다” 주민들 울상 27시간 만에 진화됐다 재발 재난문자 발송 안 해 원성도“집도 살림살이도 모두 잿더미로 변해 살아갈 길이 막막합니다.” 황금연휴 막바지인 6, 7일 강원 강릉, 삼척과 경북 상주, 영덕 등 전국 곳곳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나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다. 지난 6일 오후 3시 32분쯤 성산면 어흘리 인근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잦아든 7일 강릉의 도시 곳곳에는 매캐한 연기와 검은 먼지가 남아 있었다. 특히 가옥 33채가 불에 탄 대관령 아래 첫 산골마을인 강릉 관음리, 위촌리, 어흘리, 홍제동 주민들은 산불에 모든 것을 잃고 시름에 빠졌다. 마을의 집 8채가 불에 탄 관음1리 주민들은 까맣게 탄 뒷산 아름드리 소나무 군락지와 무너진 흙담 속에 기왓장만 뒹구는 집터를 망연자실 바라볼 뿐이다. 유동희(79· 관음1리) 할아버지는 “집채만 한 불덩어리들이 강풍을 타고 날아와 집을 덮치는 바람에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몸만 겨우 빠져나왔다”면서 “평생을 일궈 온 삶터가 산불에 한순간 잿더미로 변해 희망이 없다”고 울상을 지었다. 같은 마을 송두헌(82) 할아버지도 “불길을 피해 소고삐를 풀어 주고 허둥지둥 피했다 아침에 다시 집을 찾았더니 집과 모든 게 잿더미로 변해 있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어려운 사연도 이어졌다.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대피한 한 어머니는 “이번 화재로 집이 전부 타버렸습니다. 생후 24일 남아가 있는데 혹시 안 쓰는 아이 옷이나 용품 등이 있다면 주실 수 있느냐”며 도움을 요청해 안타까움을 샀다. 친정집에 아이를 낳으러 왔다 이런 피해를 당했다. 강릉 산불은 27시간 만인 7일 오후 6시 소멸된 듯 했지만 강풍으로 재발했다. 삼척 산불은 워낙 산세가 험해 지상 인력 투입이 어려운 데다 강풍이 불어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편 국민안전처와 강원도는 산불이 발생 이후 강릉 시민들에게 어떤 재난 문자도 보내지 않아 원성을 사고 있다. 발화 지점에서 7㎞가량이나 떨어진 시내까지 뿌연 연기와 재까지 날아들었지만 아무런 알림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국민안전처 관계자는 “강릉이나 강원도에서 재난문자를 요청하지 않아 발송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원도 측은 “강릉 산불이 100㏊ 이상 규모의 ‘대형산불’이 아니어서 문자 송출이 애매했다”고 해명했다. 강릉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이번엔 기내서 승객 난투극…아수라장 된 美 LA행 항공기 (영상)

    이번엔 기내서 승객 난투극…아수라장 된 美 LA행 항공기 (영상)

    일본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국제공항으로 향하는 전일본항공(ANA) 여객기 기내에서 남자 승객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졌다.뉴욕데일리 등 미국 언론은 2일(현지시간)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LA행 항공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기내 난투극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빨간색 셔츠를 입은 남성이 객실 복도에 서 있다가 좌석 안쪽에 서 있는 검은색 반팔티를 입은 남성과 시비가 붙었다. 이윽고 둘은 좌석을 사이에 두고 서로 끌어당기며 마구 주먹을 퍼부어댔다. 난투 중 검은 반팔티의 남성은 “누가 좀 도와 달라. 이 자식은 미쳤다”고 소리쳤고, 빨간 셔츠의 남성은 욕설과 함께 “아무도 오지 않는다”면서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검은 반팔티 남성도 이에 대응했다. 항공기 여성 승무원이 중간에서 중재하려고 애썼고, 싸움이 잦아들자 빨간 셔츠의 남성은 중간 통로로 향했다. 그의 옷은 뒤쪽이 반쯤 찢어진 상태였다. 남성 승무원이 흥분한 이 남성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는 모습도 영상에 담겼다. 주변 상황은 아수라장이었다. 놀란 어린 아이가 울어대고 ‘스톱’을 외치는 여성 승객의 비명이 들린다. 기내 안내방송이 나오고 상황이 진정된 듯 보였다. 하지만 난투극은 끝난 게 아니었다. 분이 풀리지 않은 듯 다시 돌아온 빨간 셔츠 남성이 검은 반팔티 남성을 도발했다. 빨간 셔츠 남성이 공격하려 하자 검은 반팔티 남성이 이를 막았고, 상황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뒤따라온 여성 승무원이 싸움을 말리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둘은 몇 번 더 주먹질을 교환했다. 기내 승객들 입에선 비명이 나왔다. 난투극이 왜 벌어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싸움 장면을 촬영한 승객에게도 두 남성 중 한 명이 시비를 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빨간 셔츠를 입은 44세 남성은 기내에서 끌려 나와 폭행 혐의로 체포됐다. 전일본항공 관계자는 “항공기가 예정시간보다 2시간 지연 출발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인류가 처음 그림 그릴 때부터 사용 기독교 등장으로 ‘부정적 의미’ 전락 근대 거치며 고급·매혹의 상징으로 시대 색채 변화, 문화 생명력 뜻해 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 지음/윤영삼 옮김/위즈덤하우스/580쪽/1만 8000원20세기 패션을 주도한 디자이너들은 검은색을 찬양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검은색이 당신을 강타한다”고 했고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검은색에 관한 책도 쓸 수 있을 만큼 검은색을 사랑한다”고 했다. 시대의 색을 화폭에 옮겨 유행을 이끈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 칭송했고 ‘빛의 화가’ 카바라조의 그림은 16세기 말부터 유럽 전역을 휩쓴 검은색 유행의 정점이었다. 검은색만큼 정반대의 극단을 모두 치닫는 색은 없다. 죽음, 슬픔, 우울, 악의 상징이었다가 권력, 부, 매혹, 신성, 세련미, 화려함, 성실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검은색의 위치와 상징, 의미는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다양하게 변주됐다.존 하비 케임브리지 이매뉴얼 칼리지 종신석학교수는 이런 ‘블랙의 여정’을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탐색해 나간다. 시대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검은색이 어떤 사회적, 정치적, 미학적 도구가 되었는지 짚어나가는 그의 치밀한 진술은 방대하지만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지적 체험을 선사한다. 검은색은 인류사의 초기부터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했다. 인류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부터 등장한다. 1만 7000여년 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 중앙 벽면에 그려진 거대한 암소는 우아한 검은빛으로 휘감겨 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거래하던 사치품에도 검은 머리카락 등 검은색이 빠지지 않았다.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남녀는 모두 눈 주위를 검은 화장먹으로 치장했다. 염료, 잉크, 물감 등으로 사용할 검은 안료를 만드는 방법은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거의 다 발견됐다고 전해진다.검은색이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한 것은 기독교의 등장으로 여겨진다. 고대 인류에게 검은색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로마인에게도 검은색은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관능적인 색이었다. 전쟁과 재복을 관장하는 불교의 신 마하칼라가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암흑을 의미한다는 것, 마하칼라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음식과 재물을 담당하는 칠복신 가운데 하나인 다이코쿠텐이 됐다는 것, 아즈텍 신화의 신 익스틀릴톤(검은 꼬마라는 뜻)이 지친 아이들을 편히 잠들게 해 주는 치유와 회복의 신이라는 것 등이 검은색에 인류가 부여한 풍요와 긍정성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만신 숭배가 유일신 숭배로 바뀌며 검은색의 가치도 근본적으로 전복된다. 기독교에서 ‘죄의 검은색’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며 검은색엔 웅장함, 모호함, 불길함, 절망, 악, 신 등 고대에 없던 개념들이 깃들게 됐다. 피부색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던 과거와 달리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 혐오, 차별 등이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영혼의 죄악이 검은색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반인들의 일상복에 서서히 검은색이 들어온다. 아랍의 검은옷 전통은 스페인의 검은색 유행을 이끌었다. 스페인의 매혹적인 검은색은 16세기 후반 신대륙에서 실어온 황금빛 전리품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통해 17세기 초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는 그야말로 ‘검은색의 시대’였다. 프록코트, 벨벳드레스, 이륜마차, 굴뚝청소부 등 모든 것이 검었다. 와인도 검은 병에 담겨 나올 정도였다. 1926년 코코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이전 200여년간의 의복 트렌드를 완전히 뒤엎은 ‘파격’이자 지금까지 여성들을 사로잡은 ‘매혹’이 됐다.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보석상점 앞에서 진열대를 구경하는 첫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검은색이 갖는 위상을 압축한다. 죽음, 공포, 부정을 뜻하던 검은색이 차츰 신념, 예술, 사회적 삶의 구조 속으로 스며드는 이런 변화를 두고 저자는 “검은색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시대마다 선호하는 색깔의 팔레트가 변하는 데는 거대한 주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부흥과 몰락, 종교적 계시의 변화, 전쟁과 질병, 기술의 변화, 경제적 호황과 불황, 사회 계급의 변화, 혁명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렇게 시대의 색이 바뀐다는 느리고 거대한 리듬은 분열된 사회에도 통합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 문화만의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추상화가 이마누엘 사이츠는 칠흑 바탕 위에 청록색, 바다색, 자색으로 그린 자신의 추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미 검은 하늘은 검은 수평선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눈은 깊은 검은색 안에서 길을 잃는다. 상상은 어둠을 뚫고 돌진한다.” 비옥한 어둠에서 늘 무언가 솟아나듯, 검은색의 이야기는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퍼블릭 詩IN] 환각의 뼈

    [퍼블릭 詩IN] 환각의 뼈

    안개를 뚫고 지나가는 짐승의 속을 들여다본다. 쉬지 않고 검색대를 지나가는 가방들 사각 모니터 속엔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짐승이 웅크려 있다 환각의 뼈를 찾는다. 날뛰는 가방은 없다 요행과 흥정한 위장술은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황갈색의 환으로 또는 캡슐에 들어 있는 휘어진 뼈들 강을 건너는 누우 무리가 만나는 악어의 포진은 가장 치밀한 검색대다 붉은 줄기들은 뚫고 나오면서도 껴입은 여러 겹의 옷 짐승들의 계절은 언제나 숨길 것이 많은 겨울이다 검은 가죽을 해부한다. 고삐를 잡은 손에서 벗어나려 하지만 한 뼘 뒤척임도 허락되지 않은 밀랍에 들어 옆으로 누운 짐승을 흰 장갑이 끄집어낸다. 저항하던 환각의 뼈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짐승을 키운 심장이 발악한다. 뼈 없는 가죽가방이 손에서 풀려난다. 컨베이어벨트로 혹은 안개 속으로 지나가는 짐승의 뱃속은 투명하다 안개가 짙어지는 동안 가변 모서리가 모니터를 문진한다.진서윤 (관세청 창원세관 진해비즈니스센터 주무관) 2013 경남신문 신춘문예 등단, 진해문인협회·경남문인협회 회원, ‘포에지 창원’ 동인
  • 러시아 지하철 폭발 테러…‘중앙아 출신 20대 남성’ 자폭 추정

    러시아 지하철 폭발 테러…‘중앙아 출신 20대 남성’ 자폭 추정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지하철에서 3일(현지시간) 발생한 테러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20대 자폭 테러범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현지 통신인 인테르팍스 통신은 수사당국 소식통을 인용해 지하철 폭탄 테러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23세 남성이 저지른 자폭 테러로 추정된다고 4일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폭발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잔해들에 대한 조사 결과 자폭 테러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러나 최종 결론은 시신에 대한 유전자 감식 뒤에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자폭 테러 용의자는 러시아에서 활동이 금지된 과격 이슬람 단체 소속으로 알려졌다. 그는 폭발물을 배낭에 넣어 지하철로 갖고 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검은 옷을 입고 객차에 탑승한 사진이 지하철 CCTV 카메라에 찍혀 테러 용의자로 지목받은 남성은 스스로 현지 경찰에 찾아와 결백을 주장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3일(현지시간) 오후 2시 40분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센나야 플로샤디역 테흐놀로기 체스키 인스티투트역 사이 구간을 운행하던 지하철 객차 안에서 사제 폭발장치가 터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최소 10여 명이 숨지고 40여명이 다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모든 날이 안 좋았다…사진으로 돌아본 박근혜 4년

    모든 날이 안 좋았다…사진으로 돌아본 박근혜 4년

    헌정 사상 첫 정당 해산 결정, 그리고 첫 대통령 탄핵 인용. 박근혜 정부 4년이 우리 헌정사에 남긴 기록이다.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라던 박 전 대통령 측의 슬로건은 결국 박 전 대통령 개인과 최순실의 꿈만 이루어지는 나라였다. 지난 대선부터 ‘민간인 박근혜’의 검찰 소환 조사까지 주요 사건을 사진으로 돌아봤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18대 대선,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당선2012년 12월 19일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가 51.6%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당시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 박 후보의 유력 대항마인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를 조직적으로 비방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경찰은 12월 16일 3차 대선 후보 TV토론회가 끝난 직후인 밤 11시에 “혐의가 없다”는 취지로 중간 수사결과를 기습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이 사건은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드러났다. ●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간첩 사건, 결국 국정원의 조작으로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을 앞두고 있던 2013년 1월 21.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를 통해 탈북한 서울시 공무원이 간첩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보도했다. 피의자는 탈북자 출신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씨로, 국가정보원은 유씨가 간첩이라며 체포했고 검찰 또한 유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국정원이 유씨를 간첩으로 몰아가기 위해 관련 증거를 조작한 사실이 드러났고, 검찰이 국정원의 증거 조작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의 조선족 협력자와 국정원 소속 과장이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결국 유씨의 간첩 혐의는 2015년 10월 29일 무죄가 확정됐다.● 박근혜, 제 18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다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에도 제 18대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는 2013년 2월 25일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김학의 법무부 차관 성접대 파문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법조계의 관심사는 새 대통령의 첫 검찰총장이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김학의 대전고검장을 낙점했다는 평이 우세했다.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대통령 입맛에 맞게 임명하지 못하도록 법을 바꿔 실제 검찰총장에는 채동욱 당시 서울고검장이 임명됐다. 법조계에서는 채 총장 임명 직후부터 채 총장의 임기가 길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박 대통령과 코드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방증하듯 총장 후보에서 낙마한 김 전 대전고검장은 사법연수원 동기(14기)인 채 총장이 임명됐음에도 검찰 관례에 따라 검찰을 떠나지 않았고, 박 전 대통령도 김 전 고검장을 법무부 차관으로 중용했다.하지만 차기 김 전 법무차관은 같은 해 3월 한 건설업자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확산되면서 공직에서 물러났다. ●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이미 대선 직전 일부 정황이 포착 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 정황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했다. 검찰은 2013년 3월 18일 서울중앙지검에 특별수사팀을 구성했고, 처음 사건을 맡았던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현 국민의당 의원)은 “국정원 수사에 윗선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이후 특별수사팀은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 등 국정원이 조직적으로 선거 및 국내 정치에 관여했다며 관련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 국정원 수사 방패 채동욱, 조선일보 ‘혼외자’ 보도로 물러나다‘살아있는 권력’과 국가정보기관을 상대로한 검찰 특별수사팀의 든든한 방패는 채동욱 검찰총장이었다. 하지만 그런 채 총장도 조선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무너졌다. 조선일보는 2013년 9월 6일자 1면에 ‘채동욱 검찰총장 혼외자’ 의혹을 보도했다.이에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채 총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했고 결국 채 총장은 13일 검찰총장직에서 물러났다. 검찰은 채 총장이 물러난 이후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수사하던 윤석열 특별수사팀장도 교체했고, 윤 팀장은 이후 국정감사에서 조영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의 수사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 사망 295실종 9명...대한민국을 절망케 한 세월호 참사탑승자 476명. 사망 295명, 실종 9명. 채 꽃피지도 못한 단원고 2학년 학생 등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차디찬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침몰했다. 2014년 4월 16일 수요일이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에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은 미용사를 불러 머리 손질을 한 것으로 확인됐고, 세월호는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의 인양 반대 및 사고 진상조사 반대에 부딪히다 최근 인양에 속도가 붙고 있다.● 통합진보당, 헌정 사상 처음으로 해산2000년 1월 창당한 민주노동당을 모체로 한 통합진보당은 옛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이런 통진당은 결국 박근혜 정부 때인 2014년 12월 19일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법재판소 심리를 통해 해산이 결정됐다. 당시 법무부는 통합진보당 전체가 종북화되어 북한의 대남전략에 따라 움직이는 당이 되었다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헌재에 위헌정당해산심판을 청구했고, 헌재는 찬성 8대 반대 1(김이수 재판관) 의견으로 해산을 결정했다. ● 정권 뒤흔든 성완종 리스트2015년 4월 9일 옛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출신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 사건이 정치권을 뒤흔들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정부 지원금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억울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연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 전 회장의 자살로 일단락 되는 듯했던 수사는 숨진 성 전 회장의 옷 안에서 유력 정치인의 이름과 현금 등의 액수가 적힌 메모지, 그리고 생전 육성 폭로 내용이 공개되면서 ‘성완종 리스트 로비’ 수사로 확대됐다.해당 메모지에는 김기춘·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정복 인천시장, 홍준표 경남도지사, 홍문종 자유한국당 의원, 서병수 시장으로 추정되는 ‘부산시장’, 이병기 당시 비서실장과, 이완구 당시 국무총리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 사망자 속출 속 ‘연출’ 논란 낳은 메르스 사태 2015년 5월 20일 중동 국가 바레인을 다녀온 한 국민이 중동호흡기 질환(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이른바 ‘중동 독감’이 한반도에 상륙했다. 첫 확진자를 시작으로 사싱살 메르스 종식이 선언된 7월 28일까지 36명이 숨졌다.이 과정에서 서울대병원을 방문한 박 대통령의 배경에 ‘살려야 한다’는 문구가 붙은 사진이 공개되면서 청와대의 연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연출 논란과 관련해 서울대병원 내부에서는 청와대 관계자의 연출이 있었다는 증언이 나왔지만, 서울대병원 측은 이를 부인했다. ● 교육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교육부는 2015년 10월 12일 한국사 국정 교과서 발행 계획을 공식 발표하고, 각종 진통 끝에 2017년 1월 31일 최종본을 공개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 미화 등 집필 전부터 제기됐던 우려가 현실로 확인되면서 실제 학교 채택률 0%를 기록하며 폐기될 처지에 놓였다. ● 피해 할머니들 무시한 한일 위안부 합의 강행2015년 12월 28일 한·일 양국은 위안부 문제 합의안을 타결했으며 이는 ‘불가역적’(되돌릴 수 없는) 합의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이는 양국 정부의 일방적인 합의로, 실제 피해 당사자인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다수는 여전히 이 합의안은 무효라고 반발하고 있다. ● 16년의 노력도 물거품…문 닫은 개성공단박근혜 정부는 2016년 2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응,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2000년 현대아산과 북한의 공업지구 개발에 관한 합의서 채택으로 시작된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적인 공동 사업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현재 개성공단에 입주 했던 기업은 거리로 내몰려 생계의 절박함을 호소하고 있다. ● 국민 사찰 일상화…세계 최장시간 필리버스터참여 의원 38명, 총 의사발언 시간 8일 27분(192시간 27분). 2016년 2월 23일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이 추진하던 테러방지법 국회 통과를 막기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가 진행됐다. 당시 여당이던 새누리당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한 법안이라며 이를 추진했고, 야당은 이를 일상적인 국민 사찰은 물론, 정치적 탄압을 위한 법안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야당의 필리버스터가 끝난 3월 2일 밤 새누리당 단독 표결로 통과됐다. ● 무용론 속 사드 배치 결정미군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사드·THAAD) 한반도 배치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14년 주한미군의 요청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핵 및 미사일 발사 위협에서 한반도를 방어할 수 있다는 게 미군의 논리였으며, 박근혜 정부들어 논의가 급속화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사드는 북한과 남한의 거리와 미사일 발사 각도상 무용지물이며, 사드 배치를 위한 레이더 기지가 인근 지역 주민의 건강을 위협하게 될 것 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거센 반발에도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7월 8일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공식 발표했다. ● 경찰 과잉진압 논란…백남기 농민 사망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에 참여한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이 직사로 살수한 고압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다. 백씨는 의식을 잃은채 무려 317일이나 병상에 누워있다 지난해 9월 25일 숨을 거뒀다. 경찰의 과잉 진압 논란이 제기됐고, 경찰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무리하게 시신 부검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리한 법정 공방 끝에 부검은 무산됐고, 고(故) 백남기씨의 장례식은 같은해 11월 5일에서야 진행됐다. ● 분노한 민심, 촛불로 타오르다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 사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분노한 민심이 거리로 나오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29일을 시작으로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의 주요 광장과 거리에서는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는 3번째 집회에서 100만명을 넘었고, 대통령 탄핵안 가결 2주 전인 지난해 12월 3일 6차 집회에서는 전국 230만명이 넘는 인원이 참여,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쳤다. ● 국회, 대통령 박근혜의 직무를 정지시키다퇴장 1명, 찬성 234표, 반대 56표, 무효 7표. ‘1234567’이라는 숫자 조합을 남기며 지난해 12월 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됐다. 국회는 연이은 언론의 박 전 대통령의 권력 사유화와 최순실의 국정농당, 특검 수사로 드러난 범죄 혐의에 따라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의결했다. 표결 당시 퇴장한 사람은 친박계 좌장격인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이다. ●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헌정 첫 대통령 탄핵“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21분. 대를 이은 대통령이자, 대한민국 첫 여성 대통령의 직무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분 새롭게 쓰였다. 박한철 전임 소장의 퇴임으로 8명의 헌법재판관이 진행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은 박 전 대통령이 헌법을 위반했으며, 대통령으로서 헌법 수호의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 ‘피의자 박근혜’ 21시간 검찰 조사대통령직 파면 후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간 ‘민간인’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적용된 혐의는 뇌물수수를 비롯해 직권남용과 공무상 비밀누설 등 무려 13개. 이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는 오전 9시 24분에 시작돼 같은 날 밤 11시 40분 쯤에 끝났지만, 박 전 대통령 측이 조서를 거듭 검토하면서 22일 오전 6시 54분까지 이어졌다. 박 전 대통령 측은 혐의를 모두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강예원 “배우도 불안한 비정규직 100% 공감하며 찍었죠”

    강예원 “배우도 불안한 비정규직 100% 공감하며 찍었죠”

    “배우라는 직업도 비정규직이잖아요. 행복지수보다는 사회에 대한 불안감, 공포감이 높아요. 동생도 비정규직 경험이 있어서 100% 공감하며 찍었죠.”오는 16일 개봉하는 ‘비정규직 특수요원’(감독 김덕수)은 사회적 이슈에 코미디와 액션을 버무린 작품이다. 강예원(37)은 특수요원 장영실을 연기한다. 검은 슈트에 선글라스, 멋들어진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처음엔 만년 알바 인생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겪으며 따 놓은 자격증만 30여개. 서른다섯에 국가안보국으로부터 덜컥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하는 일은 댓글 알바 수준이다. 정리해고 1순위에 오른 영실에게 상사인 박 차장(조재윤)은 달콤한 제안을 한다. 보이스피싱으로 털린 국가 예산 5억원을 되찾아 오면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악물고 보이스피싱 조직의 상담원으로 취업한 영실은 같은 곳에 위장 잠입한 열혈 여형사 나정안(한채아)을 만나 좌충우돌 공조수사를 벌이게 된다. 순제작비 18억원의 작은 영화다. 대작들과 비교하면 아쉬운 부분이 분명 있다. 하지만 남성 중심의 작품이 차고 넘치는 요즘 극장가에 여성 콤비는 신선, 그 자체다. 브로맨스 부럽지 않은 강예원과 한채아의 호흡도 돋보인다. 강예원은 못 알아볼 정도로 크게 다른 외양을 바탕으로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는다. 얼굴을 반쯤 가린 금테 안경에 폭탄 맞은 듯한 곱슬머리, 소매가 늘어진 옷 등 거의 변장 수준이다. 망가짐의 정도로 따지면 역대 최고다.“이전에 연기했던 어눌한 캐릭터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답을 좀처럼 찾지 못했는데 겉모습을 바꾸니까 연기가 나오더라고요.” 죽기 전까지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강예원은 배우가 마냥 즐거운 직업은 아니라고 했다. “영화 작업은 고통스러워요. 뭘 잘 모르고 룰루랄라 찍었던 ‘해운대’ 때를 제외하곤 그랬어요. 책임져야 할 게 많아지고 점점 예민하게 되죠. 시간순으로 촬영하는 게 아니라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니까 감정은 물론 의상. 메이크업, 목소리 톤까지 제대로 연결시키려면 온갖 신경을 써야죠. 평소에도 여유를 즐기기보다는 그림을 그리고 가구를 만드는 등 좀처럼 손을 멈추지 않아요. 누가 억지로 시켜서 그러는 것은 아닌데 저는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주변에선 너 정도면 그렇게까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러냐고 하지만 편하게 마음먹기가 쉽지 않네요.” 그럼에도 연기를 고집스럽게 이어 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질리다가도 바로 그리워지는 게 연기죠. 애증인 것 같아요. 한 편씩 끝낼 때마다 정신줄이 얇아지기도 하지만 중심을 잃지 않으려는 힘이 조금씩 붙어 가는 걸 느끼죠. 캐릭터에 대해 밑그림을 그리고 디테일을 채워 나가는 건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에요. 그렇게 내공을 쌓다 보면 자신감도 늘고요. 사실 제가 힘들다고는 이야기하는데 힘들지 않은 작업은 잘못된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겠죠.” 해마다 적어도 한두 편의 작품은 꾸준히 소화하고 있다. ‘해운대’, ‘퀵’ 등 큰 작품에도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내 연애의 기억’, ‘날 보러와요’, ‘트릭’ 등 개성 넘치는 작은 영화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여건이 썩 좋은 것은 아니더라도 결과가 나왔을 때 나름의 뿌듯함이 있어서다. “가끔은 선배들에게 업혀 가고 싶기도 해요. 이번 작품을 끝내고는 (박)중훈이 오빠, (설)경구 오빠, (차)태현이 오빠에게 전화를 걸어 작은 역이라도 좋으니 작품 좀 같이 하자고 푸념했어요. 하하하. 제 방식대로 걷고는 있는데 꾸준히 가다 보면 해가 뜨겠죠. 집요하게 욕심내며 살아서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가만히 있는데 다른 사람이 만들어 주지는 않거든요.” 예능 재미에도 푹 빠져 있다. 최근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에 합류했다. “예능의 좋은 점이 아이, 어르신 할 것 없이 저를 예뻐해 준다는 거예요. 제가 지나갈 때 바라보는 눈빛, 온도가 달라요. 따뜻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기운들이 느껴지죠. 특히 ‘슬램덩크’는 소모되는 느낌을 주지 않고 제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아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고요 속 풍요… 네 섬에 가고 싶다

    고요 속 풍요… 네 섬에 가고 싶다

    고흥 가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소록도가 목적지다. 학생 자녀가 있는 경우 우주센터가 있는 나로도 일대가 추가되는 정도다. 그러니 주변의 수많은 경관들은 일별할 틈도 없이 지나치게 된다. 특히 작은 섬들이 그렇다. 고흥 주변 ‘섬 속의 섬’을 추렸다.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랄 만큼, 궁극의 적요 속에 머물 수 있는 곳들이다.●폐허도 예술로 만들다… 미술 섬 꿈꾸는 연홍도 연홍도는 거금도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이다. 섬의 모양새가 바다에 뜬 연(鳶)과 같다 해서 연홍도다. 50여 가구 80여명이 사는 작디 작은 섬이다. 연홍도는 미술섬을 꿈 꾼다. 주민들이 나서 집 담장을 벽화로 장식했고, 섬 곳곳에 작은 조형물도 세웠다. 선창가 집은 사진박물관으로 변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내놓은 추억의 사진들이 박물관을 채우고 있다. 흉물처럼 남아 있던 김 가공 공장 역시 예술작품으로 탈바꿈했다. 섬 남쪽 끝에서 북쪽 끝을 잇는 둘레길도 만들어졌다. 가장 큰 자랑거리는 섬마을 미술관이다. 선착장을 지나 해안선을 따라가다 보면 동백나무 무성한 해수욕장이 나온다. 그 오른쪽으로 ‘연홍미술관’이 서 있다. 화가 선호남씨(55)가 폐교된 금산초등학교 연홍분교장을 2006년 미술관으로 조성한 것이다. 하지만 2012년 태풍 ‘볼라벤’이 섬을 휩쓸면서 미술관도 폐허가 됐다. 연홍미술관은 지금 예술의 옷을 다시 입는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오는 4월 7일 ‘섬 여는 날’에 맞춰 재개관할 예정이다. 연홍도는 거금도 서쪽 끝 신양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5분이면 닿는다. 완도 쪽의 금당도 등 아름다운 섬들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엄마같은 득량만… 드넓은 갯벌 품은 우도 고흥 사람들에게 어머니 품 같은 바다가 득량만이다. 온갖 갯것들을 아낌없이 내준다. 우도는 그 득량만의 안쪽 깊숙한 곳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고흥군에서 벌인 ‘관광테마의 섬’ 개발사업 이후 ‘가족의 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우도는 남양면 중산리의 길이 1.2㎞ 노둣길을 통해 뭍과 연결돼 있다. 노둣길은 하루 두 번, 썰물 때 열린다. 소형 차량은 오갈 수 있지만, 큰 차는 다소 버겁다. 물때표(www.badatime.com/s-235-0.html)를 확인하고 가는 것이 필수다. 노둣길 양옆으로는 드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올 만큼 서정적인 갯벌이다. 한 주민에 따르면 “예전에 이곳에서 캔 굴이 말도 모더게(못하게) 좋았”단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갯것들을 캐며 살아가고 있다. 3㎞ 정도의 해안선을 따라 일주도로가 조성돼 있다. 남도 바다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산책로다. 반짝이는 갯벌과 그 너머의 회색빛 바다가 눈부시다. 섬 주변으로는 구렁섬과 각도 등 무인도들이 별처럼 떠 있다. 섬 가운데엔 전망대도 세웠다. 여기서 맞는 저물녘 풍경이 아름답다. 고흥 10경 가운데 하나인 ‘중산 일몰’이 바로 이 바다에서 펼쳐진다.●비밀의 정원에 오세요… 꽃향·쑥향 향긋한 애도 ‘쑥섬’이라 불리는 애도(艾島)는 전남도 제1호 민간정원이다. 덜 알려진 민간 부문의 정원을 발굴해 지역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려는 프로그램의 첫 번째 대상인 셈이다. 애도는 나도로항 바로 맞은편에 있다. 딱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별칭에서 보듯 섬엔 쑥이 많이 자란다. 해안선 길이는 3.2㎞ 정도. 스무명 남짓한 주민이 깃들어 산다. 규모는 작아도 볼거리는 제법 풍성하다. 동백, 후박나무 등 난대림이 울창한 당숲, 사연 많은 바위들, 등대길 등이 섬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핵심 볼거리는 ‘쑥섬정원’이다. 한 부부와 마을 공동체가 16년 동안 애면글면 가꾼 비밀의 정원이다. 거제 외도의 식물원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고 단아한 꽃들과 만날 수 있다. 봄이 되면 ‘사랑의 돌담길 걷기’ ‘내 화분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전망 좋은 카페에서 문화공연 등도 열릴 터다. 애도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은 올 연말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애도의 들머리인 나로도항은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삼치 파시’로 유명한 항구였다. 지금은 예전만 못해도, 삼치의 본향답게 숙성된 삼치를 맛볼 수 있는 업소들이 선창 주변에 늘어서 있다.●팔영대교 휙 넘어가면… 검은 돌 반짝이는 적금도 영남면 우천리 갯가에 서면 바다 위로 긴 다리 하나가 걸개그림처럼 떠 있다. 지난해 말 개통된 팔영대교다. 고흥에서도 빼어난 해안 풍경으로 이름난 영남면이니 다리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이야 더 말할 게 없다. 팔영대교를 날 듯이 넘어가면 적금도다. ‘쌓을 적’(積) 자에 ‘쇠 금‘()자를 쓴다니 마을 주민들의 살림살이가 예부터 퍽 요족했던 모양이다. 엄밀히 따지면 적금도는 여수시 화정면에 딸린 섬이다. 하지만 생활여건은 고흥에 가깝다. 여기에 팔영대교까지 개통됐으니 사실상 고흥에 딸린 섬이라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다. 뭍으로 가는 다리가 놓였지만 적금도 주민들은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다. 섬을 오가는 외지인들도 덩달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흥과 여수 사이 섬들에선 지금 교량공사가 한창이다. 모두 11개의 다리가 놓이고 나면 고흥과 여수는 하나로 연결된다. 팔영대교는 그중 첫 번째 다리다. 관광객이라야 한 해 몇 명에 불과했던 적금도지만 머잖아 뭍의 습속이 밀려들면 섬 문화도 많이 달라질 터다. 적금도 길이는 남북 2.5㎞ 정도다. 해안가에는 검은 자갈이 햇살에 반짝인다.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 가방 ●쁘띠프랑스 11일부터 피노키오 1500회 축제 쁘띠프랑스가 11일~4월 16일 마리오네트 ‘피노키오’ 인형극 1500회 공연 기념 축제를 연다. 2013년 10월 시작된 ‘피노키오’ 인형극은 국내 최초의 마리오네트 인형극이다. 짧은 인형극을 직접 만들어보는 ‘기뇰 체험’, 마리오네트 인형을 직접 조정하는 ‘마리오네트 조종 체험’ ‘유럽 동화 의상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오르골 시연, 마리오네트 댄스 퍼포먼스 등 무료 공연들도 펼쳐진다. ●새달 1일 청양 고운식물원서 새우란 전시회 ‘새우란·광릉요강꽃 전시회’가 4월 1일~5월 16일 충남 청양 고운식물원에서 열린다. 금새우란, 신안새우란, 한라새우란 등 국내 자생 새우란과 중국, 일본 등에서 수집된 희귀 새우란 150여종이 전시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1급 식물인 광릉요강꽃도 함께 선보일 예정이다. 고운식물원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식물보전기관으로 37㏊에 이르는 숲 전체가 다양한 테마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용 시간은 오전 8시~오후 6시다. (041)943-6245. ●16일부터 에버랜드 튤립축제에버랜드 튤립 축제가 16일~4월 23일 열린다. 튤립, 수선화 등 100여 종, 120만 송이의 봄꽃이 에버랜드를 수놓는다. 하나의 꽃잎에서 두 가지 색상을 보이는 30여 종의 튤립 신품종과 ‘도베르만’ 등 희귀 튤립 품종을 만날 수 있다. 브라질 리우 등 세계적인 카니발의 열정을 담은 ‘카니발 판타지 퍼레이드 시즌2’와 멀티미디어 불꽃쇼 ‘주크박스 <더 뮤지컬>’ 등 대표 공연들도 31일부터 다시 시작된다.
  • 김한솔, 유튜브서 “아버지 살해됐다”

    김한솔, 유튜브서 “아버지 살해됐다”

    韓 정보당국 “김한솔 맞다”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로 추정되는 인물이 8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등장해 “아버지가 며칠 전에 살해당했다”고 주장했다. 한국 정보당국은 “동영상 속 인물은 김한솔이 맞다”고 밝혔다. 김정남 피살 이후 행방이 묘연하던 김한솔의 근황이 공개된 것은 처음이다. ‘천리마민방위’라는 단체가 이날 올린 40초 분량의 동영상에서 김한솔은 영어로 “내 이름은 김한솔이며 북한의 김씨(김일성) 일가의 일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김한솔은 자신의 북한 공무여행용(외교관용) 여권을 직접 카메라에 비추었으나 모자이크 처리돼 이름과 여권 번호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한솔은 또 “지금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있으며 우리는 곧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한솔은 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으며 가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미소를 짓기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추모하듯 검은 옷을 입은 점도 눈길을 끌었다. 김한솔이 아버지의 죽음을 ‘며칠 전’(a few days ago)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에서 해당 동영상은 지난달 13일 김정남이 암살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동영상을 게재한 천리마민방위가 어떤 곳인지는 자세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홈페이지에 “(북한) 탈출을 원하시는 분은 우리가 지켜 드리겠다”고 밝혔다는 점에서 탈북을 돕는 단체로 추정된다. 통일부는 “알고 있지 않은 단체”라고 말했다. 천리마민방위는 “김정남 피살 이후 그 가족에게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이 왔고 그들을 안전한 곳으로 직접 이동시켰다”고 했다. 또 “긴급한 시기에 한 가족의 인도적 대피를 후원한 네덜란드, 중국, 미국 정부와 한 무명의 정부에 감사를 표한다”고 덧붙였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김한솔은 그동안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진 마카오를 벗어나 가족과 함께 제3국으로 도피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체는 김한솔의 신변 노출을 고려한 듯 자세한 소재지를 언급하지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김한솔의 신변과 관련해 “정보 사항이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김정남 암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한솔이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을 확인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에 대한 신원 확인과 시신 인계를 위해 김한솔에게 말레이시아 입국을 요구했으나, 김한솔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김정남 아들 김한솔, 스스로 모습 드러낸 이유…영상에 의미심장한 발언

    김정남 아들 김한솔, 스스로 모습 드러낸 이유…영상에 의미심장한 발언

    지난달 13일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이 8일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면서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 이유에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김한솔이 안전이 확보된 상태에서 죽은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김한솔은 영상에서 “내 아버지는 며칠 전에 피살됐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김정남이 피살된 뒤 마카오에서 생활해 온 김한솔을 비롯한 그의 가족은 자취를 감췄다. 일부에선 김한솔도 김정은이 잠재적 위협으로 여길 만한 ‘백두혈통’의 일원이라는 점에서 신변에 이상이 생긴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북한으로선 어떻게든 김한솔의 신병을 확보해 시신이 김정남이라는 점이 사실로 확인되는 상황을 피하려고 했을 가능성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김한솔이 유튜브에 등장한 것은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신했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안전이 확보되지 못한 상황에서는 섣불리 나서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한솔이 영상에서 “내 아버지는 며칠 전에 피살됐다”고 말한 점에 비춰 촬영은 지난달 중하순쯤 이뤄졌고 안전이 확보되자 이번에 게시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8일 연합뉴스가 확인한 이 영상은 ‘천리마 민방위’가 7일에 게시한 것으로 나오지만, 영상을 올린 장소에 따라 시차가 있을 수 있다. “내 아버지는 며칠 전에 피살됐다”는 김한솔의 발언은 짧은 문장 속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이 김정남 피살사건을 ‘공화국 공민의 쇼크사’라며 발뺌하는 상황에서, 김정남의 아들이 직접 피살자의 신원을 확인하고 살해됐음을 ‘증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신변 안전때문에 직접 아버지의 시신을 확인하고 인수하기 위해 말레이시아를 방문하지는 못하지만, 신세대 답게 인터넷을 이용해 간접적으로나마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억울함을 풀기 위해 나선 것 아니냐는 것이다. 영상에서 김한솔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상중’이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선 김한솔이 유튜브를 통해 ‘망명하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 것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한솔이 각국 정보기관의 눈을 피해 철저히 몸을 숨겼다는 가정하에 그와 접촉할 수 있는 포인트를 제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고전으로 여는 아침] 민주주의와 절차적 정의/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고전으로 여는 아침] 민주주의와 절차적 정의/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가 취해야 할 글쓰기와 언행에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강조했다. 바탕이 되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꾸미는 형식과 문체를 제대로 갖춰야 더욱 빛난다는 뜻에서다. 이는 본질이 절차와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서구 논리학과 변론술에도 중요하게 여겨졌다. 또 재판에서 실체와 절차의 조응은 절대적 필요조건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에서 살펴볼 유사 사례는 없을까. 있다. 기원전 406년 소아시아 연안에서 벌어진 아르기누사이 해전에 대한 재판의 오류는 절차적 정의가 무너질 때 초래되는 비극적 상황을 웅변한다. 크세노폰(BC 430?~355)의 ‘헬레니카’를 보자. 스파르타와 아테네가 격돌한 아르기누사이 해전에서 아테네는 25척의 파괴를 입었지만, 적함 70척을 격파하는 대승을 거둔다. 그 와중에 아테네 해군은 아군의 난파한 배와 선원들을 구하러 47척의 구조대를 보냈다. 그런데 폭풍이 불어 그들은 구조 작전을 완수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민회에서 참전 장군들을 비난하자 장군들은 민회에 편지를 보내 파도가 높아 구조하지 못한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하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민중을 설득하려 했다. 그러자 테라메라스는 민중을 동원해 위계를 꾸몄다. 그는 군중을 바다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친척으로 가장시켜, 검은 옷을 입고 머리카락을 완전히 민 채로 축제에 참가하도록 해 유족의 슬픔을 민중 전체의 분노로 확산시켰다. 나아가 칼릭세노스로 하여금 민회에서 장군들을 일괄 표결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충동질하게 했다. 당시 민회에 안건 회부할 결정권을 가진 협의회는 민중들의 소동과 협박에 겁에 질려 일괄 표결에 찬성했다. 마침 그날 협의회 위원이던 소크라테스(BC 470~399)만 일괄 표결은 위법하다며 반대했다. 칸노노스 법에 따르면 기소된 사건은 개인별로 죄의 유무 판단, 고발인의 비난, 피고의 해명을 차례로 듣고 표결해야 했다. 에우립톨레모스도 적법 절차에 따라 개별 표결을 주장했지만 무시당했다. 결국 참전 장군 8명 중 소환에 응했던 6명은 억울하게 처형되었다. 아테네군은 9명의 선출직 장군으로 구성된다. 요즘으로 치면 참모총장과 군사령관이 민중의 광기에 한꺼번에 사형당한 셈이다. 적법 절차를 무시한 민중의 조작과 선동이 불러온 전무후무한 참극이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아테네인들은 자신들의 중대한 죄악을 깨달았다. 과거 민중을 현혹했던 사람들은 민중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달아나야 했다. 그런들 무고한 장군들의 원혼을 어찌 달랠까. 어떠한 의사결정 과정에서든 의분이 앞서 자율성이란 이름 아래 합리적 절차가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위헌과 위법 여부를 다투는 중대한 재판에서랴. 박경귀 국민대통합위원회 국민통합기획단장
  •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대피방송 없었다, 사이렌도 뒤늦게 울려”

    동탄 메타폴리스 화재…“대피방송 없었다, 사이렌도 뒤늦게 울려”

    4일 오전 11시쯤 경기 화성시 동탄 메타폴리스 4층짜리 부속 상가 건물에서 불이 나 4명이 숨졌다. 이날 화재사고 당시 건물 안에 있었던 시민들 중 일부가 “대피 방송이나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고 증언했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나오고 있다. 상당 수의 시민들은 사이렌도 화재가 발생한 뒤 한참이 지나서야 울렸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사고 당시 건물 내 소아과에 있었다던 네티즌 ‘ran****’은 동탄지역 온라인 카페에 “4개월 갓 된 아기 예방접종 중이었다. 선생님과 접종 후 상담 중이었고 갑자기 밖에서 펑펑 소리가 들렸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네티즌은 “그리고 사람들 비명이 들렸고 간호사 한 분이 뛰어들어와 ‘밖에서 불이 났다. 빨리 나가셔야 한다’란 말을 듣고 아기를 안고 뛰쳐나왔다”며 “이미 밖은 검은 연기가 퍼지고 있었고 계속 ‘퍽퍽’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이어 “수액을 매단 채 뛰어나온 신 분도 있었고 어떤 아기는 내복만 입은 채로 나와 밖에서 옷을 챙겨 입혔다”며 “이런 긴박했던 무서웠던 상황에 경고음, 대피방송은 듣지 못했다. 대피를 돕는 사람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는 주장은 더 나왔다. 다른 네티즌 ‘rol*****’는 ‘아침에 메타에 있었다’는 글에서 “자녀들은 영화관에 보내고 신랑과 근처에 있는데 처음엔 ‘긴급상황이라며 주차된 차량을 빼라’는 방송이 세 번 나왔다”며 “10분 정도 후 직원분이 불났다고 대피하라고 하더라”고 증언했다. 이어 “(아이들이 있는) 4층으로 무작정 뛰어 영화관 직원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했더니 ‘불 다 잡았다. 걱정말라’고 하면서 (영화관에 있는 아이들을) 데려가려면 데려가고 말려면 말란 식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또 “애들 데리러 들어가는 그 몇 초 사이 직원들끼리 그때서야 우왕좌왕했고, 애들 데리고 나오려니까 그때야 사이렌이 울리고 있더라”며 “아이들 데리고 나올 땐 3층까지 연기가 다 들어차 숨쉬기도 거북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건물 내 엘리베이터에 화재 연기와 함께 수 분간 갇혔지만, 그때에도 경보음을 듣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네티즌 ‘rub*****’는 “10시 58분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이는 게임을 한다고 핸드폰을 하고 있었고 (불이 난) 3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진짜 상상할 수 없는 새카만, 눈앞도 안 보이는 연기가 영화처럼 들어오면서 엘리베이터가 순간 멈췄다”고 전했다. 이어 “밖은 암흑천지, 코앞도, 내가 안고 있는 아이도 안 보였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며 “같이 탄 아저씨가 발 빠르게 비상벨 누르고 손으로 문을 닫으려고 한순간 다시 엘리베이터가 작동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1층으로 내려오면서 엘리베이터 내에 가득 찬 연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1층에 내려와 보니 아직도 쇼핑몰 음악이 나오고 경보는 그때까지도 안 울렸다”며 “6분간 3층에 갇혀 있다가 나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규철 특검보 패션까지 화제 ‘코트왕’…머플러까지 완벽

    이규철 특검보 패션까지 화제 ‘코트왕’…머플러까지 완벽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53·사법연수원 22기)가 뛰어난 패션감각으로 ‘코트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함에 있어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중요하지만 정의실현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했다”는 말을 남겨 더욱 유명해졌다. 국내 사법 당국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은 극히 드물다. 이 특검보는 다양한 색상의 슬림핏 코트에 머플러, 넥타이, 가방을 조화롭게 매치했다. 매번 코트 색상에 어울리는 머플러와 넥타이를 선택해 감탄을 자아냈다. 이 특검보의 패션에 빠지지 않고 등장한 카멜 색상의 가죽 브리프 케이스는 최근 검은색 가죽 토트백으로 바뀌었다. 아내가 싸준 듯한 도시락 가방까지 눈길을 끌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이규철 특검보 패션센스 후덜덜. 와이프가 옷을 잘 입히네”, “코트의 왕이라더라”, “특검보 자체가 옷 잘 입는 것 같아” 등의 댓글이 올라왔다. ‘엠엘비파크’에는 “옷 입는 게 거의 패션 회사 CEO급”, “중년이 저렇게 멋있으면 더 눈길이 가죠”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한편 제3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규철 특검보는 ▲대전지방법원 논산지원 판사 ▲서울지방법원 판사 ▲서울고등법원 판사 2008년 춘천지방법원 원주지원 지원장 등을 거쳤다. 2010년 명예퇴직한 뒤 서울중앙지법 조정위원, 국세청 법령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고 GS건설, 삼성물산 등 여러 기업에서 법률고문을 맡거나 소송 업무를 수행했다. 조세법 관련 분야에 정통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영수 특검과는 법무법인 대륙아주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인연을 맺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밸러스트 - 문은강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밸러스트 - 문은강

    지구 지표 생물의 총 무게 중 25프로는 개미다. 자신의 무게의 50배 이상을 들 수 있는 이 생물이야말로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근원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아직까지 별 탈 없이 자전하고 있는 지구의 비밀은 이 25프로의 개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엄지로 짓눌러도 꾸역꾸역 살아내는 개미와 당신은 닮아 있다. 어슴푸레하고 고요한 세상 속에서 나는 한없이 가벼워짐을 느낀다. 걱정이다. 개미굴처럼 깊숙하게 숨어 있는 당신의 집이. 당신이. 집은 퀴퀴한 냄새로 가득하다. 때 낀 수저와 밥그릇이 흐트러져 있다. 오래되고 요란한 살림살이 속에 파묻힌 당신이, 그곳에 누워 있다. 자그만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당신은 유충 같다. 당신의 미간엔 잔뜩 주름이 가 있다. 그 언저리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당신이 눈을 번쩍 뜬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리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쉰다. 밖은 아직 어둡다. 당신은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을 켠다. 새벽 뉴스가 한창이다. 당신은 합죽한 입을 우물거리며 뉴스를 바라본다. 당신의 굽은 등이 곧 천장에 닿을 것만 같다. 당신은 찬밥을 꺼내 보리차를 부어 숟가락으로 뒤적인다. 합죽한 입으로 밥알을 몇 번 오물거리곤 단번에 삼킨다. 당신은 음식물을 온전히 씹지 못한다. 아내는 그것을 유난히 안타까워했다. 언젠가 치과에 가자는 아내의 손을 떼어내며 당신은 한사코 싫다 말했다. “내는 틀니 안 한다. 그거 하면 불편해서 맘 편히 먹지도 몬한다더라.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으면 된다. 그게 훨씬 편하다.” “어머니 그거 요즘은 얼마 하지도 않아요. 그냥 저랑 같이 가서 하세요. 고기도 씹어 드시고 하셔야죠.” 아내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여자는 한참을 옥신각신했다. 불필요한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처리해야 할 업무는 항상 산더미였다. 아내가 불러 간신히 빠져나온 점심시간이었다. 오랜만에 당신과 점심을 함께 하자는 아내의 말이 퍽 고맙게 느껴져 나온 자리였지만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거참, 어머니가 하고 싶으신 대로 그냥 해드려.” 그때 당신의 뭉툭한 손톱은 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당신은 국물을 몇 번 떠먹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침 식사를 마친 당신은 민경에게 전화를 건다. “민경아 아무래도 이상타. 느 오빠한테 전화 함 해봐라.” 수화기 너머의 민경은 짜증을 낸다. 당신은 아랑곳 않고 소리를 지른다.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몸도 으슬으슬하니 춥고 정신도 사나운 것이 불안타 안카나.” 새벽부터 전화해 오빠 타령을 하는 당신이 민경은 못마땅한 모양이다. 한참이나 지속되던 말싸움은 엄마 때문에 이 서방 깼다는 민경의 말 한마디에 곧바로 끝이 난다. “이 서방 아침 잘 챙겨 묵여라. 나가 일하는 사람은 뱃속이 든든해야 한다.” 당신은 사위의 아침 식사를 걱정하며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서둘러 옷을 챙겨 입는다. 머플러로 얼굴을 꽁꽁 감싸고 허리끈으로 바지를 바싹 조인다. 그 위에 무명으로 만든 전대를 찬다. 전대를 열자 정돈되지 않은 천 원짜리들이 불쑥 튀어 나온다. 그것을 집어 들고 침을 묻혀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두이, 서이….” 몇 번이나 다시 세어보고선 전대 안으로 다시 돈을 집어넣는다. 이불맡에 있는 소쿠리를 집어 든다. 아침이 오고 있다. “사람이 많이 죽었대요.” 자줏빛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옷가게 여자가 당신의 곁에 와 재잘댄다. 당신이 바닥에 돗자리를 깔자 여자는 더욱 바싹 다가온다. 당신의 소쿠리에는 더덕과 뭉툭한 과도가 들어 있다. 당신은 더덕을 꺼내 과도로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더덕에서 나오는 진득한 진물은 손톱을 금방 새까맣게 물들인다. 여자는 호들갑스럽게 뉴스의 내용에 관해 떠든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 사람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노. 치아라.” 더덕을 깎는 당신의 손길이 분주해진다. “장사나 할 것이지. 쓸데없이 와가 뭐라 해쌌노.” 당신의 시선은 더덕을 향해 있다. 당신의 핀잔에 여자는 머쓱하다는 듯 홀로 중얼거리더니 옷가게 안으로 쏙 들어간다. 당신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여자는 옷가게에서 좌판대를 꺼내 물건을 밖에 진열시킨다. 죄다 유행이 지난 옷들뿐이다. 반짝이는 외투에 호피무늬 스커트, 형광색의 레깅스까지 진열하고 나서야 여자는 손을 탁탁 털고 기지개를 켠다. 당신은 여자를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젓는다. 하얀 속살을 드러낸 더덕은 소쿠리에 곱게 누워 있다. 꼭 발가벗은 갓난아이 같다, 당신은 껍질 벗은 더덕을 두고선 민경과 닮았다며 웃어대곤 했다. 더덕의 뽀얀 속살이 민경의 살갗과 닮았다는 것이었다. 민경이 속을 썩일 때마다 당신은 ‘아가 태어날 때 내가 바빠 제대로 옷도 몬 입혀 주고 만날 발가벗겨 놓고 있어서 그런다’며 오히려 민경을 두둔했다. 열아홉의 민경이 덩치 큰 남자 손을 잡고 찾아와 임신했노라고 말하던 순간에도 당신은 더덕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민경은 비장한 표정으로 ‘우리 결혼할 거야’라고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제야 당신은 과도를 내려놓았다. 거리는 한산했다. 옷가게의 여자만이 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은 고개를 들어 민경과 남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곤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치아라. 느그 때문에 손님 안 온다.” 민경은 그날의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곤 했다. 마치 한 편의 시트콤 같던 민경의 사담을 들을 때마다 그날의 거리를 상상해 보았다. 결혼할 사람이라며 아내를 처음 소개하던 날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를 것이다. 당신은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몇 번이고 고맙다 말했다. 아내는 난감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우석이 참말로 좋은 아다. 내 아들이라 하는 말 아니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신랑이 될끼다.” 당신은 아내의 손을 연신 쓰다듬었다. 본격적인 출근 시간이 되자 거리는 인파로 북적인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의 모퉁이에 당신만이 유일하게 멈춰 있다. 구둣발이 금방이라도 소쿠리를 치고 지나갈 것만 같다. 당신이 앉은 자리에서는 모든 것이 거대하게 보인다. 아주 조그만 개미 같은 당신은 지나는 사람들의 발밑에서 묵묵하게 장삿거리를 정리한다. 그러다 문득 분주한 손짓을 멈추고 멍하니 구두들을 바라본다. 앞코가 동그란 구두, 뾰족한 구두, 헤진 구두, 흙투성이의 구두. 저마다의 구두들. 당신은 코를 한번 훌쩍인다. 언젠가 당신에게 정장과 구두를 선물 받은 적 있다. “옷가게 동상한테 비싸게 산 거잉게 오래오래 입그라.” 당신은 거칠한 손바닥으로 내 볼을 쓰다듬었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대단타 하드라. 우석이 이리 턱하니 좋은 회사 취직했다고.” 그즈음 당신과 나의 거리에는 과연 어떤 단어가 놓여야 할지 몰랐다. 당신은 엄마와 어머니의 경계선에 놓여 있었다. 선택한 방법은 당신에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었다. 의식적으로 당신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당신을 생각하면 마음 한켠에서 느껴지는 묵직함이 나를 괴롭게 했다. “미안타. 고맙다.” 당신은 정장 입은 내 모습을 보고 한참을 글썽였다. 당신은 더덕을 깎다가 과도에 손을 벤다. 손가락 위로 동그랗게 맺히는 핏방울을 입으로 쪽쪽 빤다. 거리의 구두굽 소리가 잦아들 즈음 당신은 벌떡 일어난다. 더덕이 들어 있는 소쿠리를 살짝 밀어 놓고 옷가게로 성큼 들어간다. 나이가 지긋한 손님이 옷을 고르고 있다. 당신은 계산대에 있는 전화기에 손을 뻗는다. 여자는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당신에게로 쪼르르 달려온다. “형님 지금 손님 있으니까 이따가 와서 전화기 쓰셔. 응?” 당신은 여자의 말에 대답도 않은 채 수화기를 든다. 익숙한 번호를 재빠르게 누르고 통화 연결음을 듣는다. 찰나에 당신의 표정은 수십 번 바뀐다. ‘연결이 되지 않아….’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인 음성을 듣고 당신은 한숨을 내쉰다. 여자는 당신의 눈치를 보며 손님에게 다른 옷을 권한다. 당신은 다시 수화기를 들어 민경에게 전화를 건다. 민경이 전화를 받자 당신의 얼굴에는 화색이 돈다. “오빠한테 전화했나?” 당신은 소리를 빽 지른다. 덕분에 옷가게의 여자와 손님은 깜짝 놀라 당신을 쳐다본다. 당신은 간절한 표정으로 민경의 대답을 기다린다. 한참 뒤 당신은 계산대가 놓인 탁상을 쾅 친다. “그라믄 새언니한테다 전화해 봐야 할 것 아니가. 얼른 전화하그라. 집에만 박혀가 암것도 안 하믄서 그거 하나 몬하나.” 당신이 씩씩거리자 손님은 집어 들었던 옷을 슬그머니 내려놓고 밖으로 나간다. 민경과 당신은 한참이나 말다툼을 한다. 민경이 먼저 전화를 끊자 당신은 수화기를 거칠게 내려놓는다. “형님 손님 있을 때는 이렇게 불쑥불쑥 들어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형님 때문에 그나마도 없던 손님 다 나가겠네.” 여자는 씩씩거리며 팔짱을 낀다. “여기가 뭐 백화점이나? 길거리에서 옷장사하믄서 손님, 손님 따지게.” 당신은 여자에게 역정을 내며 밖으로 나온다. 찬 바람이 당신의 품으로 파고든다. 당신은 옷섶을 여미고 당신의 자리로 터벅터벅 돌아간다. 밸러스트. ‘와 뱃일을 하려 하느냐’는 당신의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이었다. 출항할 때 항만에서 탱크에 바닷물을 채우고 다른 항구에 도착해선 물을 버리는 이 무게중심 유지 장치는 당신과 민경을 떠올리게 했다. 내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가 늘어날수록 당신과 민경의 무게는 조금 더 가벼워졌고, 당신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나는 가벼워졌다. 적정량의 무게를 유지해야만 나아갈 수 있는 선박처럼 우리는 살아왔다. 서로의 무게를 나눠 가지면서 말이다. 당신의 남편이 죽던 날, 당신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민경은 당신의 등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다. 당신은 이를 악물고 화장장으로 들어갔다. 당신은 남편이 재로 변하는 과정을 눈도 돌리지 않고 집요하게 응시했다. 당신의 입술은 너무나도 팽팽해서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우석이 민경이 내가 잘 키울 것이다. 번듯하게 키울 것이다.” 당신의 손바닥에는 땀이 흥건했다. 아침잠이 많았던 당신이 새벽부터 일어나 거리로 나섰던 것은 그날 했던 말을 책임지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민경은 고작 다섯 살이었다. 제대로 옷도 챙겨 입지 못하던 민경은 껍질 벗겨진 더덕처럼 방 안에 남겨졌다. 옷장에는 소매가 누렇게 변한 옷가지들이 가득이었다. 당신이 거리에서 팔아가는 채소의 가짓수가 늘어갈수록 우리는 나이를 먹었다. 학부모 참관 수업이라도 있는 날이면 잠을 참아가며 당신을 기다리곤 했다. 당신을 마주하는 날보다 기다리는 날이 더 잦았다. 대학 합격 통보를 받았을 때도 어김없이 늦는 당신에게 편지를 써놓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머리맡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시선에 눈을 떴다. “우석아 기계 배우는 곳으로 가그라.” 당신은 거슬거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에서, 떨리는 손끝에서, 붉어진 귓불에서 당신의 마음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더 공부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은 나오고 싶었다. 어린 민경은 당신의 품에 파고들며 어리광을 피웠다. 당신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을 기다렸다. 언젠가 보았던 당신의 팽팽한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과 민경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선박용 구조물을 생산하는 하청회사에 취직했다.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뜨내기를 챙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악착같이 일해야 했다. 밤낮없이 일했다. 아마 당신도 이런 마음으로 일했으리라. 때문에 당신에게 힘들다는 내색은 하지 않았다. 원청업체에서 구조물 하자를 핑계로 납품을 거부했을 때, 그것이 오롯이 회사에서 가장 어렸던 내 탓으로 돌아왔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른 채 사장에게 고개를 숙였을 때, 처음으로 당신이 원망스러웠다. 홀로 포장마차에 앉아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당신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대문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달빛에 비친 당신 얼굴은 참 많이 늙어 있었다. “와 인자 오노. 뭐 이리 술은 마셨노.” 당신은 비틀대는 내 손을 잡아끌며 잔소리를 했다. 오랜만에 마주한 당신의 온기에 목구멍에서 무언가가 울컥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 기계 만지는 거 싫어.” 울음이 터졌다. “엄마….” 한번 내보인 감정은 걷잡을 수 없이 밖으로 꾸역꾸역 터져 나왔다. 아이처럼 당신의 품에 안겨 울었다. 당신은 등을 가만히 쓸어내렸다. 쌀쌀한 밤바람을 핑계로 당신에게 오랫동안 엉겨 붙어 있었다. “불쌍한 내 새끼. 우짜면 좋노. 우짜면 좋아.” 당신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아마 당신은 울고 있었을 것이다. 후에 번듯한 선박 회사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신은 거리 한복판에서 춤을 췄다. “보소. 우리 우석이가, 우리 아들이, 그 좋은 회사 들어갔다 안하요. 보소. 동네사람들 보소.” 당신은 우스꽝스럽게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옷가게 여자는 그날의 당신을 설명하며 깔깔댔었다. “우석아 나는 그때처럼 네 어머니의 가벼운 표정을 본 적이 없어. 몸짓도 표정도 깃털 같아서 저 위로 날아가 버릴 것만 같았다니까.” 소쿠리가 거리에서 나뒹군다. 당신은 재빠르게 소쿠리를 집어 든다. 생면의 남자가 커다란 천막을 치고 있다. 당신의 돗자리와 방석은 한쪽에 처박혀 있다. 당신은 돗자리를 집어 들어 탁탁 턴다. 흙먼지가 우수수 떨어진다. 당신은 천막 쪽으로 다가간다. 천막 안에는 커다란 탁자가 놓여 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네댓 명의 여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탁자에는 커피포트와 커피믹스, 종이컵이 그득하다. 당신은 그들에게 다가간다. 당신을 발견한 여자는 환하게 웃으며 반긴다. “차 한 잔 하세요.” 여자는 종이컵에 녹차 티백을 넣어 당신에게 건넨다. 당신은 컵을 밀어낸다. “여기서 뭐하는 거요? 여기는 내가 장사하는 덴데. 고새에 남의 물건 치워뿔고 뭐하는 거요.” 여자가 물끄러미 당신을 건너다본다. 당신과 여자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색하게 얽힌다. 여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누군가를 불러 귓속말로 속삭인다. 그들은 서로 무언가 이야기하더니 구석에서 박스를 정리하고 있는 한 남자에게 다가간다. 남자는 여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듣고 당신에게로 다가온다. 당신은 소쿠리를 안고 매섭게 남자를 쏘아본다. 남자는 자신을 장 집사라고 소개하며 정중하게 허리를 구부려 당신과 눈을 맞춘다. “장 집사고 뭐고 난 모르는 일이고 여기는 내 자리요. 이거 다 치우고 비켜주소.” 당신은 장 집사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그는 난처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리고 당신을 후미진 자리로 끌고 간다. “이거 죄송해서 어쩌죠. 여기에서 장사하시는 줄도 모르고 이렇게 천막을 쳐 버렸네요. 어머니께서 양해해 주시고 오늘만….” “없기는 뭐가 없대요. 내가 떡하니 돗자리도 펴놓고 더덕에 소쿠리도 놓고 장사하고 있었구만.” 당신은 나뒹구는 돗자리를 가리키며 언성을 높인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당신과 장 집사를 번갈아 쳐다본다. 장 집사는 얼굴을 찌푸린다. 그는 당신이 무슨 말인가를 더 해주기를 기다린다는 듯 말없이 당신을 바라본다. 당신은 합죽한 입을 앙 다물고 그를 응시한다. 그는 한숨을 푹 쉰다.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는 여기서 어머님이 장사하시는 줄 상상도 못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이렇게 이미 천막도 치고 있고 테이블도 옮겨 놓았답니다.” 장 집사는 당신의 손에 들려 있는 소쿠리를 흘긋 보며 웃음을 짓는다. “어머니 짐은 이 소쿠리뿐이시잖아요. 어머니께서 양해 좀 해주세요.” 그는 인자하게 웃으며 당신의 소쿠리에 손을 올린다. 당신은 그의 손을 확 쳐내고 소쿠리를 자신의 품에 더 세게 끌어안는다. “나는 여기서 몇 년을 앉아 물건 팔았소. 여기는 내 자리란 말이요. 갑자기 와서 이것저것 놓는다고 이 자리가 댁 자리가 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요.” 거리를 오가던 몇몇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수군거린다. 장 집사는 발을 동동 구르며 당신의 귀에 대고 작게 속삭인다. “어머님 이 자리에서 허가받고 장사하시는 거 아니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저희는 절대 못 움직여요.” 당신은 장 집사를 거칠게 밀어낸다. “동네 사람들 여기 보소.” 당신이 고래고래 목청을 높이자 여자들이 다가와 당신을 말린다. 옷가게 여자가 깜짝 놀라 뛰쳐나온다. 당신은 더욱 크게 소리를 지른다. 옷가게 여자는 당신의 등을 때리며 우선 들어가자고 소매를 잡아끈다. 주변의 여자들도 당신의 등을 은근히 떠민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진정하세요.” 한 여자가 당신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당신은 어깨를 휙 젖힌다. 덕분에 당신의 품에 있던 소쿠리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소쿠리 안에 있던 더덕들이 바닥에 나뒹군다. 당신은 재빨리 몸을 숙여 더덕들을 소쿠리에 담는다. 옷가게의 여자는 당신을 따라 땅에 떨어진 더덕을 손으로 급하게 움켜쥐고는 억지로 당신을 자신의 가게 안으로 들여보낸다. “형님도 참. 좋게 이야기하시지. 거기서 그렇게 역정을 내시면 어떡해요.” 옷가게 여자는 당신에게 물을 건넨다. 당신은 단박에 그것을 들이켜고 숨을 몰아쉰다. 한참이나 씩씩거리던 당신은 바닥에 놓인 소쿠리를 내려다본다. 정갈하게 누워 있던 더덕들이 마구잡이로 흩어져 있다. 당신은 더덕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 정리한다. 여자는 당신을 보며 한숨을 쉰다. “오늘은 여기서 그냥 장사 접고 들어가요. 요즘 감기 기운도 있으시담서.” 당신은 아무 대답 않고 가만히 소쿠리만 바라보고 있다. “아유 암튼 고집은.” 여자는 고개를 젓는다. 한참의 정적이 지속된다. 여자는 못 견디겠다는 듯 리모컨을 들어 텔레비전의 볼륨을 높인다. 뉴스가 한창이다. 뉴스에서는 어제 발생한 사고 현장을 보여주고 있다. 여자는 몸을 감싸며 혀를 찬다. “불쌍해서 어째.” 당신도 고개를 들어 텔레비전을 바라본다. 사망자 명단이 하단에 천천히 지나간다. 옷가게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당신과 여자는 동시에 그곳을 바라본다. 장 집사가 한 손 가득 과자와 음료수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죄송해서요. 저희가 본의 아니게 피해를 드렸으니 용서해 주십사 하고 왔습니다.” 장 집사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과자와 음료수를 당신에게 내민다. 당신은 고개를 돌린다. 눈치를 보던 여자가 멋쩍게 웃으며 그것들을 받아 든다. “어유 감사해요. 잘 먹을게요.” 여자가 당신 의 등을 쿡 찌른다. 당신은 여전히 뚱한 표정으로앉아 있다. 장 집사는 난처하다는 표정으로 괜스레 옷가게 안을 두리번거린다. ‘참으로 애석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텔레비전 속 앵커는 사무적으로 비통함을 토하고 있다. “정말 슬픈 일이죠.” 장 집사는 텔레비전을 가리키며 말한다. 당신은 그를 쏘아본다. “저희는 어제 일어난 사건 때문에 이렇게 모였답니다. 기도드리고 찬송도 하려고요. 모든 슬픔의 무게는 함께 나누어야 더욱 가벼워지는 법이지요. 사람은 저마다 짊어질 수 있는 무게의 양이 한정되어 있답니다. 너무 무거워지면 버티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저희는 그 짐을 나누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왜 내 자리에서 하냔 말이요.” 당신은 장 집사에게 삿대질을 한다. “어머니의 자녀분께 저런 안타까운 일이 생겼다고 생각해 보세요. 부디 어머니의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당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지금 뭐라 했노.” 당신은 쩌렁쩌렁하게 고함을 지른다. 장 집사와 옷가게 여자의 눈이 동그래진다. “내 자식들한테 저런 일이 와 생기노. 와 생기냔 말이다.” 당신은 소쿠리에 있는 더덕을 꺼내 장 집사에게 던진다. 장 집사는 놀란 얼굴로 당신 팔을 부여잡는다. 당신은 더덕을 내려놓고 온 힘을 다해 그의 등을 때린다. “썩 꺼져라. 나쁜 놈의 새끼. 꺼져라.” 당신은 바닥에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장 집사는 어찌할 바 모르는 표정으로 당신을 바라만 본다. 옷가게의 여자는 장 집사의 등을 떠밀며 밖으로 내보낸다. 당신의 쪼글한 얼굴이 금방 눈물범벅이 된다. “이게 뭔 난리래.” 옷가게의 여자는 혼자 중얼거리며 휴지를 찾는다. 당신은 바닥에 앉아 어린아이처럼 앙앙 울고 있다. 조용히 당신의 곁에 앉아 당신의 눈물을 닦는다. 당신은 내가 온 줄도 모르고 미동 없이 울고만 있다. 이따금 점점 늙어가는 당신의 죽음에 대해 그려보곤 했다. 그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그건 당신의 죽음과는 상관없는 일일 것이다. 회사에서 바쁘게 업무를 처리하는 와중일 수도 있고 아내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도중일 수도 있다. 당신의 죽음을 상상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언젠가 다가올 일이었다. 당신의 죽음이 필연적이라면 평화롭게 이루어졌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너부러진 더덕처럼 거리에서 쓰러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것이 당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신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었다. 손을 부여잡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미처 하지 못했던 말들. 목구멍 안에서만 맴돌던 이야기를. 당신과 나의 거리에서는 부끄러웠던 문장을. 우리의 마지막에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찬송가가 울린다. 당신은 눈을 감고 찬송가를 듣는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들. 아픔은 모두 털어내시고 부디 주 안에서 평안하소서. 마이크를 잡은 장 집사가 소리친다. 여기저기서 ‘아멘’ 하는 소리가 들린다. “내는 인자 집에 갈란다.” 당신은 소쿠리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옷가게 여자도 당신을 따라 일어난다. “이제 좀 진정이 된대요? 아이고 오늘 형님 때문에 놀라 자빠지겠네.” 옷가게 여자는 당신 손을 잡고 말한다. “형님도 나이도 드셨고. 우석이랑 민경이도 자기 앞가림 다 하고 있고. 인자 장사는 쉬엄쉬엄 해요. 뭣하러 그렇게 목숨 걸고 하신데요.” “그러게 말이다.” 당신은 옷가게의 유리를 통해 비친 거리를 바라본다. “내도 모르겠다. 아새끼들 데리고 살아보겠다고 길거리에 나왔는데 인자는 내가 나와서 뭐라도 안 하고 있으면 불안해 몬 살겠더라.” 전화벨이 울린다. 옷가게 여자가 손을 뻗는다. “여보세요.” 찬송가는 더욱 크게 흘러나온다. 주위는 어둠에 잠기고 검은 그림자 걷히고. 당신이 옷가게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자 여자가 황급히 잡는다. “형님, 민경이에요.” 여자의 표정이 불안하다. 당신은 재빨리 수화기에 귀를 댄다. “아야 엄마다. 뭔 일이고.” 당신은 소리를 내지른다. 우리는 오직 주 안에서 평안하리라. 찬송가 소리에 민경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지 당신은 더욱 귀를 수화기에 바짝 가져다 댄다. 민경은 흐느끼고 있다. 당신은 놀라 무슨 일이냐며 민경에게 재차 묻는다. 민경의 흐느낌이 더욱 거세진다. “민경아 아가 울지 말고 말해 봐라. 응? 와 우노. 와 우는 거고.” 당신은 민경을 달래듯이 말한다. 주의 영광 내게 비추어 주소서. “아야 나가서 저놈들 좀 조용히 하라 캐라. 정신 사나워서 살긋나.” 당신은 옷가게 여자에게 말한다. 여자는 어찌할 바 모르고 문 앞에서 발만 동동 구른다. “민경아 아침부터 전화해서 엄마가 짜증내서 그라는 거지? 뭔 일 있는 거 아니고 어매 때문에 그러는 기지? 그래서 우는 기지?” 당신의 꺼슬꺼슬한 목소리가 갈라진다. 민경이 겨우 입을 뗀다. 당신의 동공은 점점 커진다. 주는 귀를 기울이사 다 듣고 계시네. 당신은 민경에게 재차 다시 말해 보라며 다그친다. 민경은 뭉개진 단어들과 함께 흐느낀다. “아니다.” 당신은 중얼거린다.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당신은 울고 있는 민경을 뒤로 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뭐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다. 그럴 리가 없다.” 당신은 허겁지겁 가게 문을 나선다. 당신의 발에 더덕이 들어 있던 소쿠리가 차인다. 옷가게 바닥으로 더덕이 흩어진다. 당신은 그것을 주워 담을 생각도 없이 밖으로 뛰쳐나간다. 당신의 자리에는 낯선 사람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있다. 당신은 거리의 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다. 방향감각을 상실한 사람처럼. 장 집사가 당신을 발견하고 재빨리 눈을 피한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통행에 방해가 되는 당신을 거칠게 밀치며 지나간다. 그제야 당신은 정신이 드는 듯 어딘가를 향해 몸을 튼다. 주의 얼굴 뵈올 때 나의 영혼 기쁘다. 당신의 등 뒤로 찬송가가 울려 퍼진다. “그럴 리가 없다. 그라믄 안 되는 일이다. 하늘이 그라믄 안 된다. 세상 사람들한테는 다 그래도, 우리 우석이한테는, 그 아한테는, 그 불쌍한 거한테는 그라믄 안 된다.” 당신의 신발 한 짝이 벗겨져 나뒹군다. 바람이 분다. 거침없는 바람이 분다. 바람이 몸을 떠민다. 그러나 더 이상 당신을 따라갈 수 없다. 때아닌 진눈깨비가 흩날린다. 눈이 내리고 있었구나. 나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아직 추워질 때가 아닌데. 당신은 달린다. 흩날리는 눈발 사이로 당신은 달린다. 눈송이는 당신의 뒷모습을 지워나간다. 당신이 지나간 자리에는 신발 한 짝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신발 속에는 어느새 차가운 공기가 가득 차 있다. 당신의 신발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당신의 한쪽 발이 걱정스럽다. 당장이라도 신발을 주워 들어 당신께 건네고 싶다. 그러나 손은 닿고 싶은 곳, 그 언저리만을 천천히 맴돌 뿐이다. 살아남아 있는 당신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맴돈다. 지친 영혼이여 부디 평안히 쉬소서. 찬송가는 점점 옅어진다.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도 지워지고 당신이 서 있던 거리 풍경도 점점이 뒤로 물러난다. 흩어진 풍경 사이로 눈발이 분말처럼 반짝인다. 결국 마지막까지 못난 아들이라 죄송하다. 왜 이리도 가벼운 것인가. 당신이 떠나버린 내 몸의 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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