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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을 수 있는 ‘아라비안 신부 모형’ 10억짜리 케익

    먹을 수 있는 ‘아라비안 신부 모형’ 10억짜리 케익

    일생에 한 번 입어 본다는 웨딩드레스. 그것도 1천개의 진주와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특별한 의상. 이 정도로 소개하면 왠지 유명 연예인이나 재력가의 딸 혹은 손녀가 입을 법한 의상으로 생각된다. 가격으로만 따져도 10억원 이상 육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의상은 누구도 입을 수 없다. 1천 개의 계란과 20킬로그램 이상 나가는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먹는 케익’이기 때문이다. 지난 8일(현지시각) 외신 선(Sun)은 영국 유명 패션 디자이너인 데비 윈햄(Debbie Wingham·36)이란 여성이 만든 아라비안 신부 모습의 실물 사이즈 케익을 소개했다. 1미터 80센티미터 높이의 이 작품은 두바이 한 결혼쇼를 위해 의뢰 받아 제작됐다. 보기만 아름답고 멋진 것이 아니다. 실제 고급 재료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전체 의상은 특유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 50킬로그램의 퐁당으로 덮혀 있으며 손으로 일일이 만든 5천개의 꽃과 진주들이 주된 장식으로 사용됐다. 이 둘 다 먹을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굽는 데만 10일이 걸렸다고 한다.데비는 이 분야에서 매우 유명 인사다. 5억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케이크를 만든 기록도 가지고 있다. 이 신부 모형 케익은 그녀가 만든 케익 중 가장 높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결혼쇼를 찾은 사람들마다 “이 신부 케익은 너무나 우아하고 그 소재가 매우 사실적이라 먹을 수 있다는 게 믿기 힘들 정도”라고 말한다.그녀는 지난해 150억원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신발 한 켤레를 만들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검은색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드레스와 빨간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아바야(abaya:아랍인들이 옷 위에 두르는 긴 천)를 만든 화력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단골 고객들도 화려하다. 케이티 페리(Katy Perry), 케이트 윈슬렛(Kate Winslet), 저스틴 비버(Justin Bieber)와 드레이크(Drake) 등 영화배우부터 가수까지 다양한 슈퍼스타들이 그녀를 찾는다고 한다. 사진·영상=Ruptly/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문경근 기자의 서울&평양 리포트] 수백명이 화려한 수입품 차림…전체주의 소속감 강조

    [문경근 기자의 서울&평양 리포트] 수백명이 화려한 수입품 차림…전체주의 소속감 강조

    검정색 털모자, 검정색 외투, 핑크색 넥타이, 흰색 셔츠, 검정색 양복, 검정색 구두, 자색 캐리어. 이는 지난 5일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마련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 공연을 위해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로 입경한 북측 선발대 23명 가운데 남성들의 단체복 모습이다. 지난 6일에는 북한 평양역에서 남한으로 출발하는 예술단 여성단원들은 목과 소매에 검은색 털이 달린 선홍색 외투에 검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굽이 높은 검은색 부츠와 빨간색 캐리어를 끌던 것과는 같은 듯 다른 면이었다. 북한 대표단의 의복 일체를 획일적으로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은 항상 관심거리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개인의 개성보다 사회·집단·국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전체주의 성격이 강한 북한의 특성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북한에서는 전체주의를 강조하면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선동 구호를 사회 전반에 확산시키고 있다. 이런 흐트럼 없고 잘 짜여진 것을 내부에서 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보여주고 싶은 것은 북한 당국의 심리라고 탈북민들을 입을 모았다. 애초 단체복이란 개념이 일체감,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한 것이기에 북한으로서는 ‘전체주의’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명이다. 2014년 탈북한 박모(44)씨는 “북한은 외부에서 자신들이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많이 신경쓴다”면서 “일종의 ‘허장성세’인데 ‘우리는 이렇게 잘 짜여져 있어서, 자본주의나 기타 불온한 것들이 들어올 틈이 없다’는 것을 선전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허장성세’도 요즘 같은 상황이면 숨가쁘게 느껴진다는 것이 최근 대북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경제가 파탄나고 외화가 바닥을 치면서 보여주기식으로 허비할 수 있는 자금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우방들에게서 막대한 원조를 받아왔다. 또 석탄 등 지하 자원의 수출과 해외노동자 파견, 해외식당 등 공식 무역과 각종 미사일 판매와 위조 달러, 가짜 술·담배들을 밀매하며 외화를 벌었다. 그러나 6차까지 이어진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붓형 김정남 암살,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망 등으로 사실상 이전과 180도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국제사회는 북한을 서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옥죄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예술단 구성원들에게 거금을 들여 단체복을 입히고 유랑오듯 남한으로 악단을 보내는 것은 요즘과 같은 살인적인 추위에 굶주림으로 고생하는 북한 주민들에게는 분통 터지는 일이라는 게 탈북민들의 증언이다.  2012년 탈북한 김모(38)씨는 “예술단 단원들이 입고 온 단체복은 보기에 고급 원단처럼 보이는데, 만들기는 평양에 있는 봉화총국 피복회사와 같은 곳에서 만들 수는 있어도 원단은 대부분 수입”이라면서 “방한하는 수백명이 착용할 원단과 캐리어, 구두 등을 수입하려면 수십만 달러로는 모자를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 조모(34)씨도 “그 정도의 금액이라면 인구 70만명 정도인 함경북도 청진시 주민들의 2~3일치 옥수수를 살수 있다”며 “북한이 이렇듯 체제선전에 쓸 돈이 있으면 주민들 생계를 걱정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제 구호단체 케어(CARE) 인터내셔널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북한은 전체 주민의 70%에 해당하는 1800만 명이 충분한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고 북한 주민 5명 가운데 2명은 영양결핍 상태라고 밝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북한이 남한에게 대규모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예술단을 비롯한 대표단을 파견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북한이 올림픽 이후 인도적 사안과 경제 협력을 명분으로 대규모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mk5227@seoul.co.kr
  • 서지현 검사 “자살까지 생각…여자·아내·엄마로서 8년간 극심한 고통”

    서지현 검사 “자살까지 생각…여자·아내·엄마로서 8년간 극심한 고통”

    처음엔 귀를 의심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29일 JTBC 뉴스룸에서 검찰 내부 통신망에 고위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여 검사를 언급했습니다. 뭐 여기까지는 전날 하루종일 인터넷에서 보도된 내용이어서 별로 귀담아 듣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손 앵커는 “잠시 뒤 글을 올린 당사자를 스튜디오로 직접 모시겠다”고 했습니다. 이어진 뉴스 클립에서 기자는 여 검사의 실명을 밝혔습니다.짧은 보도 후 정말 뉴스룸에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등장했습니다. 두 눈을 믿기 어려웠습니다.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는 익명으로 보도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성씨를 밝히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A씨, B씨 등 영문 이니셜로 처리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엘리트 조직인 검찰사회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 그 피해 당사자가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생방송 카메라 앞에 서다니요. 놀라움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서 검사의 폭로는 한 줄 한 줄이 충격적이었고, 머릿기사 감이었습니다. 여자 친구들이 모인 단체 카톡방(카카오톡 메신저)에서 따르릉 따르릉 계속 알람이 울려댔습니다. “서 검사 봤냐. 충격적이다. 용감하다. 대단하다”는 반응, 가해자인 검찰 간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욕이 잇따랐습니다. 차분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이면서도 하고자 하는 말을 또박또박 전달하는 서 검사의 모습에 가슴 한켠이 뻐근해졌습니다. 누가 봐도 그는 어디 나서길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분명했습니다. 그런 그가 시청률 높은 저녁 뉴스 프로그램에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갈등했을까요. 서 검사가 지난 26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렸다는 글을 두 번 정독했습니다. ‘나는 소망합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글입니다. 앞부분은 이미 많은 언론에서 보도되었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부분은 ‘첨부 3’에 있던 글입니다. 5챕터로 나뉜 글은 서 검사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자전 소설입니다. 화자는 ‘나’가 아니라 3인칭인 ‘여자’입니다. 객관적으로 쓰려 노력한 티가 역력했지만 억울하고 분통하고 절절한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너무 속상했습니다.여자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지난 8년을 버틴 그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여자이자 누군가의 아내이자 누군가의 엄마로 10년간 사회생활을 한 저는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에게 격한 공감을 느끼며 머리 속으로 수도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글을 읽었습니다. 서 검사가 쓴 글은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시작합니다. 1972년생인 서 검사는 책을 덮은 뒤 “나보다 10년이나 어려도 여전히 비슷비슷하게 살아가고 있구나. 끔찍한 출산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이런 고통을 대물림할 딸을 낳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안도했다고 적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또 10년이 지나도 이 세상이 변하기는 글렀다”고도요. “개새끼.” 익숙해진 욕이 그의 입에서 자연스레 튀어나왔습니다. 욕을 해봤자 ‘거지같은 놈’이 전부였던 그가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모든 일을 참아내기 어려웠던 겁니다. “이 모든 게 다 그 개새끼 때문”이라고 여자는 되뇌었습니다. “일주일 이상 그 놈 얼굴이 계속 뉴스를 도배했다. 쥐새끼 같은 놈, 언젠간 터질 줄 알았어.”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의 직속라인으로 승승장구하던 안태근 전 검사(전 법무부 검찰국장)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서 검사는 머리를 가눌 수 없을 만큼 뱅글뱅글 도는 어지러움을 느껴 일주일간 병가를 내고 입원했다고 적었습니다. 안 전 검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서 검사는 8년간 극심한 신체적 심적 고통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불면증이 대표적이었습니다. “아무리 밀어내도 떠오르는 그 놈의 그 눈빛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수시로 가슴이 조여오고 누웠다가 발딱발딱 일어나고 피가 발바닥에서부터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심한 스트레스에 둘째 아이까지 유산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장자연, 성완종, 그런 이름들이 떠올랐다. ‘죽어봤자 밝혀지는 것도 없는데’라고 너무 가볍게 그들을 입에 올렸던 탓일까. 그 놈은 너무 강하고 여자는 아무런 힘이 없는 것이 내내 너무 분했다. 진실을 밝히 위해서는 목숨을 던지는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수도 없이 그녀의 머리를 뒤흔든 생각이었다.”‘그 일’이 있었던 2010년 10월 30일 토요일의 구체적인 상황도 적혀 있습니다. 서 검사에게 악몽과 같았던, 그러나 또렷한 현실이었던 그 날의 기억을 읽어 내려가자니 분통이 치밀었습니다. 서 검사는 왜 그날 자신이 그런 선택을 했는지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적었습니다. 그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데 8년이 걸렸다고도 했죠. 미혼인 여자 동기의 부친상 장례식장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콘서트에 갈 작정이었지만 약속이 어긋났고 서 검사는 장례식장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때마침 검은 옷을 입은 터였습니다. 잠시 앉았다 일어날 요량이었으나 갑자기 이귀남 법무부 장관이 수행 검사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술에 취한 ‘그 놈’이 자꾸 어깨를 기대어 왔습니다. 서 검사는 저항 없이 누군가가 팔꿈치를 찔러서, 그 자리에 앉은 자신을 깊이 책망했습니다. “허리에 스멀스멀한 감촉이 느껴졌다. 그 놈의 손이었다. 땅을 짚다 잘못 닿았겠지.” 서 검사는 처음에는 부인하려 애썼습니다. 그 놈과 간격을 넓히려 했지만 그 놈 손이 따라와 어느새 엉덩이를 더듬고 있었습니다. 서 검사는 환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게다가 바로 옆에 장관이 있는데 상식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웃고 떠드는 사람들 속에 이건 환상 아니면 환각이었다.” 너무 큰 충격에 현실이 아닐거라고 부인하던 서 검사는 화장실에서 정신을 차리려 애썼습니다. 그리고 아이 생각에 눈을 번쩍 떴습니다. 제가 울컥 터진 부분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부모님 두분이 모두 떠산 뒤 여자가 살아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아이였다.” 아이를 돌봐 줄 일가 친척이 없어 보모, 이른바 ‘이모님’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자신의 처지가 떠올랐습니다. “어떤 이모님은 애를 데리고 담배 연기 자욱한 불법 도박장에 다녔고, 누구는 석달간 아이에게 맨밥만 먹였다. 알러지가 있는 약을 정량의 5배 이상 들이부어 쇼크로 아이를 잃을 뻔 했다.” 그러면서 서 검사는 “친정 엄마 없이 애 키우면서 회사 다니는 여자는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여자다. 나는 최소 3개는 팔아먹었나보다”라고 자조했습니다. 성추행 사건 이후 자신을 향한 책망은 남편과 돌아가신 부모님께 옮겨갔습니다. 아내 이야기를 들은 서 검사의 남편은 감정의 동요 없이 고소 같은 것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감당하지 못 하겠다고 한 쪽은 서 검사였습니다. 이런 일의 피해자는 결국 피해자였기 때문입니다. ‘검찰 고위 간부 A에게 성추행당한 여 검사 B’라는 이야기가 퍼지면 B가 누구인지가 가장 첨예한 관심사가 될 게 뻔하고 결국 같이 일하기 꺼려지는 존재가 되는 게 예상 가능한 결말이니까요. 서 검사는 “이 땅에 살아남으려면 어떠한 불의도 참지 말라고, 세상과 타협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지 않은 아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책망의 화살은 다시 그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밝은 색의 옷과 치마를 좋아했던 서 검사는 어느 샌가 검은색 바지만 입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치마가 조금만 짧아도, 옷의 색상이 조금만 밝아도 ‘네가 이러니 그런 꼴을 당했지’ 어디선가 수근대며 여자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파마도 언제 했는 지 모르겠다.” 실제 29일 뉴스룸에 출연한 서 검사는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서 검사가 겪은 성폭력은 2010년의 그날 단 하루가 아니었습니다. 성추행과 성희롱은 일상다반사였습니다. 여성이라서 겪는 모든 차별을 견뎌야 했습니다. 여 검사에게 검찰사회는 전쟁터였습니다. 분통하지만 대부분 여성들이 일자리에서 겪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몸 담고 있는 상명하복의 구질구질한 문화가 뿌리 깊은 언론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서 검사는 임관 이틀 전 회식자리에서 난데 없는 공격을 받았습니다. “해병대 출신인 부장은 술 안 먹는 검사는 검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대생(이화여대 졸업생)을 싫어한다. 나는 여검사를 싫어한다. 너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다 갖췄으니 완전 악연 중에 악연이다. 너 같이 생긴 애치고 검사 오래 하는 애 못 봤다.” “올해부턴 여검사가 백명이 넘었다. 우리 회사 앞날이 큰일이다.” “검사는 너처럼 공주 같으면 안 된다” “여성은 남성의 50프로다. 인정 받으려면 2배 이상 더 열심히 해야 한다” “야, 너는 여자 애가 무슨 발목이 그렇게 굵으냐. 여자는 자고로 발목이 가늘어야 한다.” 화딱지 나는 이런 말들이 모두 공부 깨나 해서 어려운 사법고시를 치르고 높은 자리에 오른 분들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 믿겨 지시나요? 수시로 음담패설을 늘어놓고, 노래방에서 부르스를 추자며 손을 내밀고, 회식자리에서 손을 주물러 대고, 잊지 못할 밤을 만들어 줄테니 나랑 자자고 추파를 던지는 역겨운 일들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단 검찰사회가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서 검사의 글은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라는 씁쓸한 말로 끝을 맺습니다. 조금 전 카톡방 알람이 하나 울렸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관련 검색어 1위다. 과연 뭐가 바뀔까” 17년 지기 친구의 말입니다. 엘리트 여 검사가 모자이크 없이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변조하지 않은 목소리로 당당히 성추행을 고백했습니다. 무엇이라도 바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에 서명을 하든, 촛불을 들고 ‘미투 집회’에 나가든 행동해야 합니다. “딸을 낳아서 얼마나 다행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울산 새마을금고 강도 치밀한 범행…어수룩한 도주에 결국 덜미 

    울산 새마을금고 강도 치밀한 범행…어수룩한 도주에 결국 덜미 

    강도 범행 6시반만에 거제서 검거···모텔서 샤워하려다경찰 강탈금 모두 회수회···강도범, 한푼도 써 보지 못해 18일 오전 울산 동구 일산새마을금고 방어지점에서 현금 1억 1000만여원을 털어 달아난 강도가 범행 6시간 30분 만에 거제에서 검거됐다. 강도범 김모(49)씨는 금고를 털기 위한 범행은 치밀하게 준비했으나 도주 과정이 허수룩해 강탈금을 한 푼도 써 보지도 못하고 붙잡혔다.울산 동부경찰서는 이날 방어지점에서 출근하는 직원(49)을 위협해 약 현금 1억 1천만원을 빼앗아 달아난 김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범행 후 즉시 그랜저 승용차로 타고 경남 거제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한 경찰은 거제경찰에 공조수사를 요청했다. 거제경찰은 울산에서 넘겨받은 용의차량 번호를 추적하던 도중 오전 10시 30분쯤 해당 차량이 거제로 들어온 사실을 확인했다. CCTV 설치가 많은 도로를 이용한 탓에 강도는 결국 덜미를 잡히게 됐다. 경찰의 공조가 힘을 발휘했다. 경찰은 김씨가 옥포동의 한 모텔에 투숙한 사실을 확인하고, 현장을 덮쳐 오후 2시 30분쯤 A씨를 검거했다. 긴장이 풀린 김씨는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있었다. 경찰에 저항했으나 이내 제압됐다. 김씨는 경찰에게 “내가 어떻게 추적이 됐나”고 물었다고 전한다.모텔에 있던 검은 가방에는 현금이 모두 그대로 들어있었다. 김씨는 경찰에서 “생활고 때문에 범행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거제의 조선업체 하청업체 등에서 일했던 A씨는 거제의 지리를 잘 알기 때문에 울산에서 범행 직후 거제로 이동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앞서 김씨는 오전 7시11분쯤 방어지점 뒷문 근처 화장실에 40여분간 숨어 있다가 아침에 처음 출근하는 남자 직원을 흉기로 위협해 뒷문으로 들어와 돈을 빼앗아 달아났다. 금고에서 5만원권 6000만원과 1만원권 5000만원 등 현금 1억 1000만원가량의 현금을 가방에 담았다. 범행을 끝내기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인근에 세워둔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갔다. 이후 오토바이에 붙은 청테이프를 떼고, 그랜저 승용차로 갈아탄 뒤 곧장 경남 거제로 향했다. 김씨의 강도 행각은 번개처럼 빨랐으로 경찰의 공조 수사가 더 빨랐다. 이기철 기자 chuli@seoul.co.kr  
  • ‘솔’ 너와 서있는 공간

    ‘솔’ 너와 서있는 공간

    서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숲이 있습니다. 나무 사이를 지나온 바람은 객의 몸을 씻고 마음까지 헹궈냅니다. 충남 아산의 봉곡사 솔숲이 꼭 그랬습니다. 500여 그루의 토종 소나무들이 이리저리 얽혀 자라는 곳입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습니다. 명자깨나 날리는 숲에 견주면 그저 ‘경량급’ 정도일 겁니다. 하지만 숲이 전하는 향기는 어느 숲에 뒤지지 않을 만큼 짙고 청량합니다.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도 않습니다. 두 시간가량 차를 몰아가면 만날 수 있지요. 이웃한 여러 명소들에 온천까지 곁들이면 아마 겨울 나들이 코스로 제격일 겁니다.빼어난 솔숲이다. 소나무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한 그루 한 그루의 형태는 제각각이어도 여럿이 어우러져 독특한 리듬의 풍경을 만들어 낸다. 한 세기 전쯤 이 숲을 지나 봉곡사로 들어갔던 젊은 승려 만공(1870~1946)도, 굶주리는 백성들을 위한 농사법을 궁리하며 눈 내린 새벽길을 올랐던 젊은 실학자 정약용(1762~1836)도 이 솔숲처럼 빼어났을 것이다. 붉은 수피의 소나무들은 이리저리 굽었다. 솔숲 사이로 난 길도 나무들처럼 구불구불하다. 휘고 구부러졌다는 건 그만큼 너그러워졌다는 뜻일 터다. 삼나무처럼 쭉쭉 뻗은 나무들이 이룬 숲에 견줘 조형미는 떨어져도 외려 편안한 느낌은 더하다. 소나무 가지 위엔 밤새 내린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눈은 주변의 어지러운 풍경들을 덮고 지운다. 그 덕에 수묵담채화 같은 담백한 풍경이 숲에 펼쳐져 있다. 숲의 소나무들은 하나같이 둥치에 상처를 안고 있다.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동원된 항공기들의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한 흔적이다. 나무가 상처 치유를 위해 분비하는 송진을 얻기 위해 일부러 깊은 상처를 낸 셈이다. 그 고된 작업에 동원된 사람들도 필경 조선인이었을 터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나무들이 얼마나 모진 세월을 겪었는지 저 검은 상처가 일러주는 듯하다.봉곡사 솔숲은 토종 소나무들이 이룬 천연림이다. 아산시청 등에 따르면 소나무의 평균 높이는 15m가량, 수령은 100여년 정도다. 비슷한 크기의 소나무 500여 그루가 700m 남짓한 숲길에 빼곡하다. 우리나라 숲은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파괴됐다. 현재 숲의 80%가량은 1960년대 산림녹화 사업을 거쳐 조성됐다고 한다. 그러니 이런 토종 솔숲이 여태 살아남았다는 것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 솔숲은 ‘봉곡사 천년의 숲길’이라고도 불린다. 인근의 갈매봉, 장군봉 등으로 오르려는 등산객들은 이 솔숲을 들머리 삼아 산행에 나선다. 솔숲의 끝은 봉곡사다. 봉수산(鳳首山), 그러니까 봉황의 머리 아래 깃든 절집엔 만공 스님과 다산 정약용의 체취가 남아 있다. 조선 말기의 선승인 만공 스님은 23세 때 봉곡사로 왔다.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가 돌아가는 곳은 어딘가)를 화두로 참선한 스님은 2년간의 수행 뒤 홀연히 깨달음을 얻었다. 그 오도송(悟道頌)이 바로 우주는 한 송이 꽃과 같다는 ‘세계일화’(世界一花)다. 솔숲을 오르다 보면 봉곡사 못 미처 만공탑과 만난다. 만공 스님을 기리는 탑이다. 만공탑 꼭대기에 음각된 ‘世界一花’는 만공 스님의 친필이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은 1795년 겨울 정3품에서 종6품으로 강등된 뒤 이 절집을 찾았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넷. 한창 삶의 기초를 세울 나이(이립·而立)였다. 당시 그는 봉곡사 경내의 ‘ㅁ’자 요사채에서 머물며 실학자 13명을 모아 성호 이익의 문집을 정리하는 강학회를 열흘간 열었다고 한다. 모인 이들 대개가 젊은 실학자였던 만큼 새로 접한 서양의 과학을 이용해 더 많은 수확을 낼 농사법 등을 궁리하지 않았을까 싶다.이웃한 설화산 자락에도 명소가 깃들어 있다. 남서쪽엔 외암민속마을, 북동쪽엔 맹씨행단이 각각 터를 잡았다. 외암민속마을은 예안 이씨 집성촌이다. 기와집과 초가집 등 전통가옥 60여 채가 돌담을 따라 옹기종기 모여 있다. 대표적인 고택으로는 건재고택과 참판댁 등이 꼽힌다. 주민들이 살고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아름다운 돌담 너머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앞내’라 불리는 실개천를 건너면 곧 마을이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돌담이다. 돌담은 막돌을 규칙 없이 쌓은 형태다. 이를 ‘허튼층쌓기’라고 부른다. 집집이 쌓은 담장 길이를 죄다 더하면 무려 5㎞에 달한다고 한다. 마을 전체가 돌담에 쌓인 셈이다. 집집마다 울을 이룬 담장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마을 곳곳으로 객들을 이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올해 3월 2일) 앞뒤로 달집태우기 등의 전통 행사도 연다.맹씨행단(孟氏杏壇)은 말 그대로 ‘맹씨가 사는 은행나무 단이 있는 집’이란 뜻이다. 조선 초의 청백리였던 고불 맹사성(1360~1438)의 옛집을 일컫는 이름이다. 우리나라 살림집 가운데 가장 오래된 모습을 간직한 곳으로 사적 109호다. 본래 고려 말의 최영 장군이 낙향해 살다, 자신의 손녀사위였던 맹사성에게 물려줬다고 한다. 두 칸의 대청을 두고 좌우로 세 칸씩 온돌방을 배치한 ‘H’자형의 건축 형태와 밖을 내다보는 데에만 쓰던 ‘눈꼽재기창’ 등이 인상적이다. 본채 외에도 사당으로 쓰인 세덕사, 맹사성과 황희, 권진 등 3명의 정승이 각각 3그루씩 9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구괴정 등이 남아 있다. 본채 옆의 600년 묵은 은행나무 두 그루 역시 맹사성이 심었다고 한다.이웃한 평촌리의 석조약사여래입상(보물 536호)도 찾아볼 만하다. 고려시대 세워진 석불상이다. 키가 1장 6척(4.8m)에 달해 형태상 장육불상으로 분류된다. 문화재청 누리집은 좌우대칭으로 규칙적인 옷주름, 짧은 목과 움츠린 듯한 어깨, 꼿꼿이 서 있는 자세 등의 형식미를 근거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상은 미끈하고 말끔하다. 맵시 있는 자태도 일품이지만 잔잔한 미소 역시 방금 전에 지은 듯하다. 대체 어디서 수백년 세월을 건너온 흔적을 찾아야 할지 모를 정도다. 공세리 성당은 계절을 따지지 말고 찾아야 하는 아산의 명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힌다. 특히 겨울철 눈이 내릴 때 성모상 앞에 서면 자신의 온갖 허물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정의 마무리는 아산호다. 호수 위를 건너온 시리고 찬 바람이 헝클어진 정신을 퍼뜩 일깨운다. 엄혹한 계절을 이겨내는 철새들의 강인함을 목격하는 것도 좋고, 아산만과 서해대교 너머로 지는 붉은 해를 감상하는 맛도 일품이다. 아산호는 평택호로도 불린다. 충북의 충주호(청풍호)와 마찬가지로 평택과 아산 등 두 지자체가 이름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글 사진 아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41) →가는 길: 공세리성당, 아산호 등은 아산 북쪽, 봉곡사와 외암마을, 맹씨행단 등은 남쪽에 붙어 있다. 묶어서 돌아야 보다 효율적으로 볼 수 있다. 봉곡사나 외암마을 등만 보겠다면 기차로 갈 수도 있다. 아산온천역에서 봉곡사, 외암마을 등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아산은 온천 도시다. 조선 시대 온천 행궁이 있던 온양온천, 충남도 1호 보양 온천인 도고온천, 게르마늄 온천인 아산온천 등 이름난 온천 지구만 세 곳이다. 세 온천이 각기 다른 지역에 있는 만큼 여정이 끝나는 지역의 온천을 찾아 피로를 풀어도 좋겠다. →맛집 : 공세뜰두부집(533-1545)은 집에서 만든 두부를 내는 집이다. 두부 요리도 맛깔스럽지만 무엇보다 두부를 큼직하게 썰어 넣고 칼칼하게 끓여 내는 김치찌개가 일품이다. 청국장도 별미다. 아산 공세리성당 앞에 있다. 지중해 마을은 지중해풍의 건물들이 밀집된 곳이다. 맛집 등 다양한 상가들이 거리를 형성하고 있다. 먹고 사진 찍기 좋은 장소다. 아산호 주변에 해물칼국수를 내는 집들이 많다. 저물녘에 찾으면 아산만 너머로 지는 해를 볼 수 있다.
  • 제천 화재 유일하게 작동된 비상벨마저 늦게 울렸다

    “옥상으로 피하던 중 소리 들어” 건물주는 불리한 진술 회피 중 “은폐 말라” 유족, 법적 대응 나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의 소방안전시설 가운데 유일하게 작동된 것으로 알려진 비상벨마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뒤늦게 울린 것으로 전해졌다.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21일 화재 참사 당시 사실상 정상 작동한 건물 내 소방안전시설은 없었던 셈이다. 28일 생존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생존자가 탈출할 때까지 비상벨을 듣지 못했거나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대피하던 도중에 들었다. 연기나 열을 통해 비상상황을 감지한 뒤 울리는 비상벨이 제 역할을 못했다는 얘기다. 화재 당일 오후 3시 53분쯤 4층 사우나에 있다가 탈출한 한모(61)씨는 서울신문 기자에게 “불이 났다는 소리를 듣고 탈의실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니 검은 연기가 올라오고 있었다”며 “벗고 있던 옷을 다시 입은 뒤 주 계단을 통해 옥상 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그제야 비상벨 소리가 들렸다”고 말했다. 화재 당일 손자와 함께 1, 2층 계단에서 여성 15명의 탈출을 도운 이모(69)씨는 “건물을 빠져나올 때까지 비상벨은 울리지 않았다”며 “당시는 1층에서 시작된 불이 주 출입구 쪽을 통해 2층을 위협하던 때”라고 했다. 이씨와 함께 있던 손자의 진술도 일치한다. 경찰의 화재 사건 수사는 난항을 겪고 있다. 구속된 건물주 이모(53)씨가 묵비권을 행사하는 데다 발화 지점에서 작업해 화재 원인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물 관리인 김모(51)씨의 구속 영장이 기각됐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된 이후 이씨가 입을 열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은 회피하고 있다”며 “추가로 다른 증거들을 확보해 화재 원인을 규명토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수사를 보완해 김씨의 영장을 다시 신청할 방침이다. 또한 화재 현장에서 탈출한 2층 여탕 카운터 직원과 여탕 세신사에 대한 조사 여부도 검토 중이다. 또한 최초 신고 시간보다 이르게는 50분 전부터 1층 천장 내부에서 불이 나기 시작해 연소하고 있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최초 신고보다 28분 전에 1층 천장에 난 불을 끄려고 했던 사람을 봤다는 목격자도 나왔다. 이번 사건 유족들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상임위원 출신이 포함된 대한변호사협회 생명존중재난안전특별위원회에 법률 자문을 맡기기로 하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유족대책본부는 “소방관들이 비상구에 진입하지 못한 이유 등이 명확치 않아 답답한데, 경찰은 화인을 밝히는 데만 주력하고 있다”며 “이번 화재를 개인적 사건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 사전 인허가 문제부터 다뤄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편 유족들에게는 사회재난 구호금과 주민 성금, 보험금 등이 지원된다. 사망자의 경우 가구주는 1000만원, 가구원은 500만원을 지원받는다. 제천 이천열·남인우 기자 sky@seoul.co.kr
  • 태연 교통사고 목격자 “조수석에 반려견 있었다” 사고와 연관성은?

    태연 교통사고 목격자 “조수석에 반려견 있었다” 사고와 연관성은?

    걸그룹 소녀시대 태연이 28일 교통사고를 내며 사고 경위와 사고 후 상황 등에 대해 많은 말들이 나오고 있다. 태연은 이날 오후 8시께 벤츠 차량을 몰고 서울 강남구 지하철 7호선 학동역에서 논현역 방향으로 주행하다 앞서가던 K5 택시를 들이받았다. 이 충격으로 K5 택시는 그 앞의 아우디 차량과 다시 추돌했다. 이 사고로 택시 승객 2명과 아우디 운전자 1명 등 3명이 다쳐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이들은 외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음주측정 결과 태연은 술을 마시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으며 소속사 SM 엔터테인먼트 측은 “태연이 운전 부주의로 사고를 냈다”고 설명했다. 이날 한 매체에 따르면 당시 교통사고 현장에 있던 목격자는 “태연의 차 안 조수석에 검은색 푸들이 (줄에) 묶여있지 않은 채로 옷 같은 것에 덮여 있었다”고 주장했다. 태연은 ‘진저’라는 이름의 검은색 푸들을 키우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경찰서 측은 “태연의 반려견과 이번 교통사고의 연관성은 아직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사고 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사고 처리 과정에서 구급대원들과 경찰들이 가해자인 태연을 먼저 챙겼다는 주장 등이 제기되며 논란이 되고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너도? 나도!” 연일 품절 대박난 ‘평창 롱패딩’ 얼마나 좋길래

    “너도? 나도!” 연일 품절 대박난 ‘평창 롱패딩’ 얼마나 좋길래

    오리털보다 가볍고 따뜻한 구스다운, 합리적 가격도 한몫서울역, 인천국제공항 등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구매 가능…비자카드, 현금만 결제 주의 “‘평창 롱패딩’ 언제쯤 입고 되나요? 주문 예약되나요?”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라이선스 상품 중 하나인 ‘구스롱다운점퍼(평창 롱패딩)’이 가격 대비 품질이 우수하다는 입소문을 타면서 완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품절된 롱패딩을 언제쯤,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16일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 따르면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상품인 ‘평창 롱패딩’ 가격은 14만 9000원이다. 거위털 충전재(솜털 80%, 깃털 20%)를 사용한 평창 롱패딩은 검은색, 흰색, 회색 등 총 세 가지 색상으로 출시됐다.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슬로건인 ‘하나 된 열정(Passion. Connected)’은 옷 뒷부분과 왼쪽 팔 위치에 붙어 있다. 평창 롱패딩인 벤치파카는 주로 운동 선수들이 경기 중간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벤치에서 입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 기장의 패딩을 의미한다. 현재까지 평창 구스다운은 1만장이 판매됐다. 아동용 구스다운도 2000장이 모두 매진됐다. 이러한 인기 요인으로는 리얼 구스다운으로 만들어져 보온성이 우수하고 롱패딩이지만 오리털보다 가벼운 구스다운으로 만들어져 경량성이 뛰어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또 구스다운 충전재임에도 합리적인 가격도 한몫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평창 롱패딩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서 10만원대 패딩 점퍼치고 가격 대비 성능의 비율을 뜻하는 “가성비가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현재 일시 품절된 상태다. 일부 중고거래사이트에서는 정가보다 3만~4만원 비싼 가격에 평창 롱패딩을 구한다는 글들이 올라올 정도다. 평창올림픽 공식 스토어 홈페이지에 “언제쯤 평창 롱패딩을 다시 구할 수 있느냐”는 소비자들의 문의가 3000건 넘게 빗발쳤다. 공식 스토어 측은 “16~17일 재입고 예정”이라는 답했다. 평창 롱패딩을 공식 판매했던 인터넷 쇼핑몰 엘롯데는 오프라인 매장에서 빠른 속도로 판매돼 온라인에서는 이틀 전부터 상품을 아예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오프라인 매장인 롯데백화점에서도 입고되자마자 품절이 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평창동계올림픽 공식 스폰서로 이 제품을 독점 판매하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대회 공식 온라인 스토어에서도 구매가 가능하다. 오프라인에서는 주로 롯데백화점과 아웃렛, 서울역, 인천공항과 김포공항, 제주공항에서 살 수 있다. 비자카드와 현금으로만 결제할 수 있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40년 화업의 ‘청년 작가’ 인간 소외·실존을 묻다

    40년 화업의 ‘청년 작가’ 인간 소외·실존을 묻다

     40여년 화업을 이어 온 중견 작가 오원배(64)의 관심은 늘 인간 소외와 실존의 문제였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고정돼 있지 않다. 대학 시절이던 1970년대에는 가면이나 탈을 쓴 인간의 이미지를 주로 작품에 담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엔 거친 표현으로 인간의 모습을 형상화했고 귀국 후 모교(동국대)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후반 이후엔 중성화된 생명체 시리즈로 인간의 소외를 대변했다. 1990년대에 그는 암울한 도심 풍경과 그 안에서 배회하는 유령 시리즈를 선보였다. 2000년대 들어 거칢과 부드러움이 대비되는 ‘이중적 풍경’ 시리즈가 이어진다. 머리엔 흰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청년 못지않은 열정으로 창작혼을 불태우고 변화를 거듭해 온 그를 사람들은 ‘청년작가’라고 부른다.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OCI미술관에서 2일부터 열리는 초대 개인전에 그가 펼칠 회화 세계는 그 수식어가 절대 과장이 아님을 보여 준다. 32m에 이르는 대작 회화를 비롯해 800호, 500호 등 압도적인 크기의 작품들로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에 대해 단호한 진단을 내린다.  “현대 사회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가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과학과 기술이 우리 삶을 편리하게 해 주긴 하지만 잉여노동력은 어떻게 할 것인지, 인간이 지닌 고유의 가치를 어떻게 지켜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거리를 안겨 주지요.”  전시장 1층의 벽면을 감싼 32m 길이의 작품 ‘무제’에는 전체주의 병영이나 산업현장에 유폐된 듯한 군상들이 그려져 있다. 복제된 듯 비슷하게 생긴 인물들은 옷도 걸치지 않았다. 거대한 파이프와 가스통, 담벼락 아래에서 위축된 모습으로 기계보다 더 기계적인 몸짓을 하고 있다. 인간 개인에 집중했던 그의 시선은 집단으로 초점을 옮긴 듯하다. 오 작가는 “개인의 힘으로 기계와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단적으로 대응하지만 기계가 인간을 대체한 결과 집단 속 개성은 사라지고, 기계화된 채 살아가는 것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루마리처럼 긴 작품을 한 데 대해 그는 “서사적인 내용이어서 화폭 하나에 담을 수 없었다”면서 “꼬박 6개월이 넘게 걸렸다”고 말했다. 공간을 분석하고 작업하면서 실제 벽에 설치된 소화전과 환기용 닥트, 비상등까지도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긴 그림의 맞은편에 걸린 작품의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검은 바탕에 브론즈 빛깔로 그려진 인조인간들, 혹은 로봇들이 오히려 환희에 찬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는 “집단화된 인간의 통제된 신체를 인조인간의 자율성과 대비해 보면서 과연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해 본 것”이라고 말했다.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면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삭막하고 무덤덤한 풍경들만 보인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계단, 온기 하나 없는 공장의 철골 구조, 감시의 눈초리가 살벌하게 느껴지는 형무소 담벼락 등. 적막한 풍경들은 기계적 시스템과 인간의 도구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향해 균질한 톤으로 꿰어진다.  3층에는 작가가 꾸준히 그려 온 드로잉 37점이 걸렸다. 엄청난 에너지를 풍기는 대작들이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드로잉을 통해 보여 준다. 그는 평상시 생활하는 곳곳에서 마주치는 주변 인물과 소소한 사건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섬세한 감성으로 포착해 드로잉 북에 옮긴다. 그는 “삶의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과 단상들을 일기를 적듯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이미지화한 것들”이라며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만 화가에게는 보는 만큼 알게 된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다”며 웃었다. 전시는 12월 23일까지. 12월 9일 오후 4시에는 작가와의 대화가 진행된다.  글·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직접 만든 지도에 지역 민심 ‘빼곡’… 태국 국민 사로잡은 건 돈 아닌 도덕

    검소한 생활로 온 국민 존경 서거 직전까지 민심 귀기울여 왕실모독죄·군부와 공생 ‘그늘’ 태국 방콕의 교통 체증은 듣던 대로 대단했다. 택시기사는 신호 대기로 설 때마다 스마트폰의 온라인 메신저창을 만지작거렸다. 본능적으로 안전벨트를 조여 맨 뒤 화면을 흘깃 훔쳐봤다. 푸미폰 아둔야뎃 전 태국 국왕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택시기사는 친구에게서 받은 그 동영상을 다른 친구들에게 전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문득 깨달았다. 방콕 시내 곳곳에 걸려 있는 푸미폰 전 국왕의 수많은 초상화보다 훨씬 더 많은 태국인 한 명 한 명의 가슴속에 국왕이 남아 있었다.지난해 10월 13일 푸미폰 전 국왕이 서거한 뒤 그의 사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태국인들의 모습은 태국 밖의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부나 왕실로부터 강요받거나 세뇌당한 것 아니냐는 의심은 충분히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22일부터 사흘간 방콕에서 만난 태국인들은 진심으로 국왕을 존경하고 있었다. 흔히 재위 70년간 이어진 전 국민적 존경과 사랑의 근원에 대해 태국인들을 먹고살게 해준 ‘로열 프로젝트’를 꼽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따로 있었다. 그는 태국인들에게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몸소 가르쳐 준 ‘도덕적 롤모델’이었다. 22일 방콕 중심지 수쿰빗 근처에 있는 퀸 시리낏 컨벤션센터에서는 책 엑스포가 열리고 있었다. 행사장 한편에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푸미폰 전 국왕에 대한 책을 무료로 받으려는 사람들이었다. 800명 한정이라 사람들은 번호표를 미리 받기 위해 줄을 섰다고 했다. 이 중 한 명인 나리폰 프라콩쌉(44·회사원)은 검은 옷에 검은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는 국왕에 대해 묻자 “왕의 서거 소식을 TV에서 봤을 때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면서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태국에는 자발적으로 조직된 왕의 팬클럽이 있다. 나도 활동하고 있다. 왕의 일정을 체크하고 따라가기도 했다”면서 “그분은 나의 아이돌”이라고 말했다. 나리폰 말고도 푸미폰 전 국왕을 추모하는 사람들은 그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훌륭했는지 앞다퉈 말한다. 첫 번째로 손꼽히는 것이 국왕의 성실함이다. 태국인들은 국왕이 전국을 직접 돌아다니며 만든 지도를 기억한다. 국왕은 이 지도를 색깔별로 다르게 표시해 지역별로 제각각인 요구사항을 알기 쉽게 정리했다. 그는 서거하기 직전까지 지도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두 번째는 검소함이다. 국왕은 막대한 부를 쌓아 놓고도 직접 발명한 치약 짜는 도구로 인해 납작해진 치약을 사용하고, 평범한 중산층 주택으로 보이는 소박한 별장에 머물렀다. 국왕의 세 번째 미덕은 겸손함. ‘로열 프로젝트’가 한창이던 시절 벽지의 노인과도 손을 잡으며 스스럼없이 얘기했고, 요란한 의전을 좋아하는 정치인들과 달리 젊은 시절 직접 지프를 몰고 다녔다. 푸미폰 전 국왕은 자신이 모범이 돼 태국인들에게 이상적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24일 방콕 서쪽 나콘파톰에 있는 마히돈대학에서 만난 인권과평화연구소 나파랏 크란라타나수트 강사는 “국왕은 모든 면에서 나의 롤모델”이라고 말한다. 그는 “왕은 서거 전 ‘우리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일을 멈추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가르쳐준 대로 국가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왕을 제대로 추모하는 방식”이라고 강조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태국의 평균 수명(2015년 기준)은 74.9세. 즉 현재 대부분의 태국인들에게 70년간 왕좌에 앉았던 국왕의 서거는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라의 아버지로 추앙받았던 존재다. 태국인들은 길을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자신의 이름을 프레디로 소개한 한 남성(37)은 “특히나 노인 세대에서는 앞으로 우리는 누구의 뒤를 따라가야 할지, 태국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푸미폰 전 국왕의 장남으로 지난해 12월 국왕으로 즉위한 마하 와치랄롱꼰(65)이 화려한 여성 편력과 잦은 외유 등 아버지와는 사뭇 다른 성정이어서 태국인들의 걱정은 더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언급하면 ‘왕실 모독죄’로 큰 곤욕을 치르기 때문에 아무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왕실 모독죄는 완벽한 듯 보이는 푸미폰 전 국왕이 남긴 어두운 유산이기도 하다. 국왕은 재위 시절 일어난 19차례의 쿠데타 중 왕실에 충성하는 세력의 쿠데타는 승인하고 그렇지 않으면 승인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 군부 세력이 정당성을 얻기 위한 명분으로 ‘왕실 보호’를 내세우는 탓에 왕실과 군의 ‘암묵적 공생 관계’가 태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왕실 모독죄가 두려워 이런 비판을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왕실 모독죄를 적용하는 나라 중 하나인 태국은 국왕에 대한 모독죄 혐의가 입증되면 최대 1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태국정치 전공)는 “태국의 일부 비판적 지식인들은 왕실이 군의 후원을 받으며 정치에 관여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원래 입헌군주제의 취지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태국 민주주의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고 전했다. 방콕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도심 곳곳 목줄 없는 맹견…중국도 골칫거리

    도심 곳곳 목줄 없는 맹견…중국도 골칫거리

    중국 베이징 차오양취에 거주하는 한국인 한모(37)씨는 지난 2015년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 돼 올해로 3년 째 베이징에 거주해오고 있다. 시간이 제법 지났지만 여전히 적응하기 어려운 중국인의 특성이 한 가지 있다. 매일 엘리베이터 내에서 마주치는 목줄 없는 대형견의 존재다. 특히 대형견 중에서도 맹견에 속하는 도사견, 핏불테리어 등을 목줄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풀어 놓고 산책시키는 중국인 견주들과 산책 도중에도 갑작스럽게 싸움이 붙곤하는 대형견들의 존재는 한씨가 적응하기 어려운 점 중 하나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최근 중국인의 경제 수준이 크게 향상되면서 집 안에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시장이 확대를 거듭하고 있는 모양새다. 중국은 지난 2015년을 기점으로 국내 애완동물 시장의 규모가 16조 6505억 원을 넘어섰다. 이후에도 매년 30% 이상 고공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중국국가통계국이 집계한 ‘애완동물산업과 행동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20년 중국의 애완동물 시장의 규모는 최대 35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현지에서는 애완동물 관련 산업을 가리켜 ‘불황 없는 미래 산업’이라고 지칭할 정도다. 지난해 상하이 일대에서 개최된 ‘중국 국제 펫페어’에서는 행사에 참여한 이들이 애완동물의 옷과 물품 등을 구매하는데 하루 평균 약 18만 원을 소비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이 같은 애완동물 시장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외출 시 목줄 착용, 배변 후 청소 등 견주 문화는 ‘제자리 걸음’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중국 베이징 하이덴취에 거주하는 한국인 유학생 정모(29)씨는 “지난해 말 처음 중국에 온 이후 인도 곳곳에 그대로 방치된 애완견의 배변 등이 몹시 불쾌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인도에 방치된 배변물의 존재도 불쾌하지만, 엘리베이터와 ATM 기기 박스 등 밀폐공간에서 애완견이 배변한 것을 그대로 방치하는 견주들의 존재는 더욱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때문에 목줄 또는 입마개 없이 도로를 활보하는 대형견에게 물려 피해를 입는 사례가 종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달 광둥성 광저우 백운구 일대에서 목줄없이 거리를 활보하던 대형견이 3세 여아를 무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4세 딸을 데리고 귀가하던 피해 부모 류씨는 “갑자기 큰 개들이 골목에서 우르르 뛰어나왔고, 곧장 이들 무리를 피했다”면서도 “체구가 작은 딸의 종아리를 문 맹견은 아이를 놓지 않아 실랑이를 벌였다. 현재도 아이는 맹견에게 물린 끔찍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행히 피해 당시 길을 가던 40대 남성의 도움으로 맹견으로부터 아이를 구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 류씨의 자녀는 사건 발생 직후 곧장 인근 대형병원으로 옮겨졌으며, 해당 사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공안은 맹견과 견주의 소재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백운구 담당 공안국 관계자는 “문제를 일으킨 대형견은 등에 검은 반점이 있는 독일산 사냥개”라면서 “목줄과 입마개 등을 하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도록 방치한 견주에게 피해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문제의 맹견과 견주를 적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국민 찾아가 경청, 유혈사태 막은 카리스마… 외유내강 리더십

    국민 찾아가 경청, 유혈사태 막은 카리스마… 외유내강 리더십

    ‘군림하되 다스리지 않는다.’ 입헌군주제 국가 국왕의 불문율이다. 푸미폰 아둔야뎃 전 태국 국왕은 이 선을 넘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13일 서거했으나 지금도 태국 전반에 정치·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과 높은 인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푸미폰 전 국왕의 장례식을 사흘 앞둔 23일 방콕. 장례식장이 열릴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 주변은 흡사 거대한 장례식장 같았다. 이글이글 내리쬐는 햇볕에도 아랑곳없이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예행연습을 위해 거리 한편에 마련된 국왕의 추모소에 금색 제기를 바치고 경례를 했다. 왕궁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는 검은 옷을 입은 추모객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이날은 쭐랄롱꼰의 날로 공휴일이어서 추모 인파가 더욱 많았다. 푸미폰 전 국왕의 장례식이 치러질 왕궁과 에메랄드 사원으로 가까이 갈수록 추모의 열기는 더해 갔다. 길거리에서는 노란색 조화(弔花)와 국왕의 젊은 시절 모습이 담긴 엽서를 팔고 있었다. 사람들은 왕궁 근처 건물 외벽에 줄줄이 놓인 국왕의 벽화 앞에서 연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왕궁은 지난 1일부터 출입이 금지돼 외국에서 온 여행객들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태국인들은 신청서를 쓰고 신분증을 제시하면 왕궁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자신의 이름을 디아라고 소개한 한 여성은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왕이었던 분의 가는 길을 배웅해 드리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우리는 시암(태국의 옛 지명)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정의(正義)로 여기고 지배할 것이다.” 1950년 5월 5일 열린 대관식에서 푸미폰 전 국왕이 한 말이다.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그는 시리낏 왕비와 함께 전국 방방곡곡의 오지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곤궁함에 귀를 기울였다. 푸미폰 전 국왕이 땅에 앉거나 몸을 낮춰 백성들과 대화하는 장면은 주로 그때의 것들이다. 낮은 곳으로 임하는 그의 인간미는 태국 국민들의 마음을 얻었다. 이것이 푸미폰 전 국왕의 리더십의 바탕이다. ‘나라의 아버지’로 불린 그는 1932년 입헌군주제가 공포된 이후 아버지와 형을 거치며 땅에 떨어진 왕실의 권위를 회복했다. 나라 곳곳을 직접 돌아보며 느낀 점을 토대로 푸미폰 전 국왕은 대대적인 국가 개발에 착수한다. 1951년 시작돼 50년 이상 지속된 ‘로열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태국 정부의 기록에 따르면 푸미폰 전 국왕은 농업, 환경, 공공보건, 수자원 관리, 통신 등 8개 분야에서 4000개 이상의 개발사업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6개의 국왕개발연구센터를 설치해 연구와 조사를 수행하기도 했다. 푸미폰 전 국왕은 이 로열 프로젝트에 자신의 돈을 쏟아부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산족 프로젝트다. 태국의 고산지대에는 소수민족들이 부락을 이뤄 살고 있다. 수확물이랄 게 없는 고산지대에서 유일한 수입원은 양귀비를 길러 아편을 생산하는 것이었다. 고산족들이 밀집한 치앙라이 지역은 마약의 소굴이기도 했다. 푸미폰 전 국왕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편 대신 차와 커피를 재배하게 했다. 왕실의 끊임없는 지원에 힘입어 치앙라이 지역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고, 고산족들은 특산물을 재배하는 어엿한 농민이 됐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푸미폰 전 국왕은 1988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고, 2006년에는 유엔으로부터 제1회 ‘인간개발 평생업적상’도 받았다. 정치적으로 보면 로열 프로젝트는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1957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왕권주의자 사릿 타나랏은 자신이 일으킨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푸미폰 전 국왕과 왕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사활을 건다. 국왕의 생일을 아버지의 날로, 왕비의 생일을 어머니의 날로 지정하는 한편 산업화로 인한 도농 격차로 빈곤에 허덕이던 지방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 로열 프로젝트를 후원한 것이다. 푸미폰 리더십의 세 번째 요인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결정적인 힘을 발휘한 중재자로서의 역할이다. 푸미폰 전 국왕은 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적절한 시기에 개입해 정치 지형의 흐름을 바꿔 놓곤 했다. 흔히 꼽히는 사례가 1973년과 1992년 태국에서 일어난 대규모 유혈 사태다. 1973년 타놈 끼띠카쫀 정부의 군부독재에 반대해 전국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고 군의 대규모 진압 작전으로 시위대에 사상자가 다수 발생하자 푸미폰 전 국왕은 왕궁의 문을 열어 시위대에게 쉴 곳을 마련해 줬다. 푸미폰 전 국왕의 이런 제스처로 타놈 총리는 독재자로 낙인찍혀 망명해야 했다. 1992년에도 수친다 크라프라윤 정부의 독재에 항거해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푸미폰 전 국왕은 민주화 세력인 참롱 스리무앙과 수친다를 동시에 왕궁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꿇어앉은 상태에서 국왕의 훈시를 들었고, 그 자리에서 모든 상황이 종결됐다. 푸미폰 리더십을 완성하는 원천은 태국의 불교 신앙일 수 있다. 불심 깊은 국민들을 상대로 국왕에게 부처의 이미지를 투영시킴으로써 푸미폰 전 국왕의 ‘자애로운 군주’ 이미지가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입헌군주제가 도입된 뒤 아버지 마히돈 국왕과 형인 아난타 국왕을 거치는 동안 태국은 급진적인 정치인과 야심 찬 군에 의해 분할되며 왕실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군과 엘리트 정치인들은 약한 왕권을 원했고, 이에 맞서 왕실주의자들과 푸미폰 전 국왕은 왕실을 불교 신앙의 보호자라고 강조하며 왕권 강화의 근거로 삼았다. 물론 아무에게나 부처의 이미지가 투영되지는 않는다. 그의 형이나 부친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였고, 다른 불교 국가의 국왕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현대사회에선 푸미폰 전 국왕만이 가능했다. 방콕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메디컬 라운지] 성묘객 노리는 진드기…맨살을 보여주지 말라

    벌초와 성묘, 등산 등으로 야외활동이 잦아지는 가을에는 ‘진드기 매개 감염병’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SFTS)은 ‘작은소피참진드기’에 물려 생기는 감염병으로 치사율이 높다. SFTS에 감염되면 1~2주 뒤에 38도 이상의 고열과 구토, 설사, 백혈구·혈소판 감소 등의 증상이 나타나고 증세가 심해지면 죽을 수도 있다. # SFTS 감염 사망자 244% 증가 24일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SFTS 환자는 지난해와 비교해 121% 늘었고 사망자는 244%나 증가했다. 지난 8월 31일 기준 환자 수는 139명, 사망자는 31명에 이른다. 주의해야 할 진드기 매개 감염병으로는 ‘쓰쓰가무시증’도 있다. 쓰쓰가무시증은 경남, 전남, 전북, 충남 등 남서부 지역에서 주로 서식하는 ‘털진드기’ 유충에 의해 발병한다. 해마다 9월 말에서 11월 말 사이에 전체 환자의 90% 이상이 발생한다. 쓰쓰가무시증은 1~3주의 잠복기 뒤 고열, 오한, 근육통, 발진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털진드기 유충에 물린 부위에 검은 딱지가 생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서서히 회복되지만 일부 환자는 장기 기능부전증, 쇼크, 호흡부전, 신부전 등의 합병증으로 죽는다. # 진드기에게 물리지 않는 게 최선 쓰쓰가무시증에는 효과적인 항생제가 있지만 SFTS는 바이러스에 의해 발병하기 때문에 치료제가 없다. 따라서 SFTS는 증상에 따라 대증요법으로 치료한다. 송제은 일산백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재 쓰쓰가무시병과 SFTS에 효과적인 백신이 없기 때문에 진드기에 물리지 않게 주의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법”이라고 말했다. 진드기 매개 감염병을 예방하려면 작업복과 일상복을 구분해 입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어쩔 수 없이 풀숲으로 들어가야 한다면 팔을 가릴 수 있는 상의와 긴 바지, 모자, 목수건, 토시, 장갑, 양말 등을 꼼꼼하게 챙겨 입어야 한다. 벌초 등의 작업을 할 때는 소매를 단단하게 여미고 바지는 양말 안쪽으로 집어넣는 것이 좋다. 진드기 기피제를 쓰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풀밭에 옷 벗어두거나 눕지 않기 또 풀밭 위에 옷을 벗어두거나 눕지 말아야 한다. 가급적 돗자리를 펴서 앉고 쓴 돗자리는 세척한 뒤 햇볕에 말리면 진드기에 물리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풀밭에서 용변을 보거나 등산로를 벗어난 산길을 다니지 않는 것이 좋다. 장시간의 야외 작업을 한 뒤에는 옷을 털고 반드시 세탁해야 한다. 만약 야외 활동을 한 뒤 고열과 두통 등 감기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거나 진드기에 물린 자국을 발견하면 즉시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아야 한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3년만에 세월호 떠나는 조은화·허다윤양

    3년만에 세월호 떠나는 조은화·허다윤양

    세월호 안에서 3년 만에 수습된 단원고 조은화·허다윤 양의 유골이 많은 이들의 배웅 속에 23일 목포 신항을 떠났다.안개가 잔뜩 낀 이날 오전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수색 현장 작업자들은 작업 시작을 늦추고 세월호 앞에 나란히 서서 은화 양과 다윤 양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작업자들은 운구차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묵념하며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가길 기원했다. 미 수습자인 남현철 군 어머니와 양승진 교사 부인 유백형씨, 권재근씨 친형(권혁규 군 큰아버지) 권오복 씨도 한쪽에서 조용히 아이들이 떠나는 길을 바라봤다. 지난 3년 반 동안의 고통과 아픔을 헤아리기에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운구차는 천천히 세월호가 놓여 있는 목포 신항을 한 바퀴 돌고 북문으로 나왔다. 북문 밖에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세월호 유가족과 수녀, 시민들이 아이들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허다윤양 아버지 허흥환씨와 어머니 박은미씨는 멈추지 않는 눈물로 인사를 대신했다. 한 유가족은 다윤양 운구차 조수석 창문 사이로 흰 국화꽃을 건네자 소리 없이 눈물만 흘리던 박씨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조은화 양 아버지 조남성씨와 어머니 이금희씨도 눈물 자국을 채 지우지 못한 얼굴로 그동안 도움을 준 시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씨의 손에는 아직 완성하지 못한 뜨개질 감이 있었다. 이씨는 추위를 많이 타던 딸을 위해 관 바닥에 깔아줄 연분홍색 ‘털실 이불’을 만들어주려고 지난 주말부터 틈날 때마다 뜨개질을 해왔다. 이씨는 “나는 서울 도착할 때까지 내내 뜨개질만 해야 한다. 한 타래도 안 남았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다. 은화·다윤 양의 유골은 서울의 한 대학병원으로 옮겨지며 이날 오후 2시 30분부터 24일까지 이틀간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이별식을 한다. 가족들은 애초 공개된 장소에서 장례나 추모식을 하는 것은 남은 미 수습자 가족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미 수습자 수습을 위해 힘써준 국민에게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자 실내에서 이별식을 하기로 했다. 이별식 후에는 단원고에 들러 작별을 고하고 다른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든 평택 서호 공원에 안치할 예정이다. 세월호 미 수습자 9명 중 은화·다윤 양과 이영숙씨, 단원고 교사 고창석씨의 유해 일부만 수습됐다. 현재는 단원고 남현철·박영인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혁규군 부자 등 5명의 유해를 수색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 여름 강변의 크리스마스

    한 여름 강변의 크리스마스

    쿠알라룸푸르 서쪽을 흐르는 셀랑고르 강변에 쿠알라셀랑고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세계적인 반딧불이 서식지로 알려진 곳이다. 쿠알라셀랑고르에서 반딧불이 관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은 대략 두 곳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캄풍쿠안탄 반딧불이 공원이다. 쿠알라룸푸르의 여행사들이 운영하는 대부분의 당일치기 반딧불이 관찰 프로그램이 이 공원을 무대로 열린다.이번 여정에서 찾은 곳은 ‘셀랑고르 반딧불이 리조트’다. 캄풍쿠안탄 공원과 직선거리는 가깝지만 강이 가로막은 탓에 실제 거리는 자동차로 20여분 남짓 떨어져 있다. 캄풍쿠안 반딧불이 공원에 견줘 이 일대의 강은 폭이 넓고 유속도 빠르다. 노를 저어 이동하는 캄풍쿠안탄 공원과 달리 셀랑고르 리조트에선 동력선을 이용해 돌아본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해가 지기 전까지 쿠알라셀랑고르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시간을 보낸다. 가장 인상적인 곳은 셀랑고르 강변 마을이다. 낡은 수상 가옥과 어선 등이 어지러이 어우러져 있다. 여행자들이 마트에 들러 기념품을 사거나, 저녁 요기를 하는 곳도 이 마을이다. 저물녘이면 강 너머로 멋들어진 해넘이 풍경이 펼쳐진다. ‘원숭이 사원’으로 불리는 부킷 말라와티도 이곳에 있다. 어둠이 황톳빛 강물 위로 내려앉으면 반딧불이 여정이 시작된다. 셀랑고르강을 에워싼 맹그로브 숲이 녀석들의 축제장이다. 사실 캄풍쿠안탄 반딧불이 공원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셀랑고르 강 일대는 예부터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반딧불이가 서식하는 곳 중 하나였다. 하지만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반딧불이는 삶의 터전을 조금씩 잃었고 사람들의 눈에서도 멀어졌다. 반딧불이가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온 건 2011년부터다. 한 기업과 지방 정부가 힘을 합해 서식지 재건에 나섰다. 반딧불이가 살 나무를 심고, 달팽이 등 먹이도 풀어놓았다. 오늘날 우리가 수많은 반딧불이를 다시 보게 된 건 바로 이 재생 프로젝트 덕이다.고요를 실은 배가 검은 강물 위를 흐른다. 배가 강물을 헤치며 나아갈 때마다 맹그로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초록빛으로 빛난다. 반딧불이 쇼가 시작된 것이다. 나무 전체가 작은 LED 전구로 장식된 듯하다. 이 모습을 두고 호사가들은 ‘한여름 밤의 크리스마스트리’라며 치켜세우기도 한다. 카메라를 들이대 보지만 눈으로 보는 것만큼 담기지 않는다. 사람의 눈이 가진 조절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제아무리 고가의 카메라라도 주변 기기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한 무용지물에 불과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반딧불이는 주로 수컷이 불을 밝힌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서다. 수컷의 몸 길이는 겨우 6㎜ 정도. 암컷은 더 작다. 나무 한 그루마다 수십, 수백마리의 반딧불이가 매달려 있다. 상상해 보시라. 이런 나무들이 셀랑고르강을 따라 수㎞에 걸쳐 이어져 있다. 작은 벌레가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빛의 쇼다. 현지 관계자들은 오후 8~9시 사이에 반딧불이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고 했다. 대개의 반딧불이 관찰 프로그램도 이 시간에 맞춰 진행된다. 반딧불이가 서서히 불을 밝힐 무렵 모기들도 피를 찾아 나선다. 어찌나 극성인지 모기기피제 정도로는 녀석들의 흡혈 본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바투 동굴 역시 쿠알라룸푸르 근교의 관광 명소다. 일종의 힌두교 성지로, 동굴 내부 전체가 힌두교 사원으로 조성됐다. 동굴 초입에 서면 거대한 황금빛 동상이 객을 맞는다. 힌두교 전쟁과 승리의 신인 무루간이다. 얼추 43m에 달하는 거대한 동상을 지나면 272개의 계단이 나온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계단이 초입부터 여행자의 김을 뺀다. 272개의 계단은 인간이 평생 지을 수 있는 죄의 숫자를 뜻한다고 한다.계단 주변엔 게잡이 원숭이들이 많다. 우리의 길고양이를 보는 듯하다. 원숭이들은 관광객들이 주는 음식을 받아먹으며 살아간다. 그러니 대부분의 원숭이들이 야생성을 잃은 건 당연한 결과다. 몇 해 전엔 유해 조수로 지정돼 수많은 게잡이 원숭이들이 살처분됐다고 한다. ‘죄 많은’ 인간의 곁에 머문 대가가 처참하다. 동굴 초입에 매달린 종유석이 인상적이다. 악마의 이빨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거대한 공동이 나온다. 규모가 어지간한 초등학교 운동장보다 넓은 듯하다. 동굴 천장엔 크고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곳으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하늘을 향해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다. 꼭 화산 분화구를 보는 듯하다. 그 아래로 힌두교의 여러 신을 조각한 제단이 세워져 있다. 바투 동굴은 3개의 주요 동굴로 이뤄져 있다. 사원동굴의 규모가 가장 크다. 동굴 내부에 종유석 등 다양한 형태의 동굴 생성물들이 있다. 사원동굴 옆은 갤러리 동굴이다. 다양한 힌두신 상과 힌두 신화를 그린 벽화로 장식됐다. 수많은 동굴 생물이 서식하는 다크동굴(Dark Cave)도 이채롭다. 글 사진 쿠알라셀랑고르·쿠알라룸푸르(말레이시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여행수첩 →가는 길:제주항공에서 ‘밸류 얼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밸류 얼라이언스는 저비용항공사(LCC)들의 동맹체다. 일반 항공사의 항공 동맹에 대응하는 개념이다. 현재 제주항공을 포함해 8개국의 LCC가 밸류 얼라이언스에 가입돼 있다. 밸류 얼라이언스의 가장 큰 장점은 취항지 확대다. LCC들 간 결합으로 취항지가 확 늘어났다. 예컨대 제주항공 취항지가 아니더라도 동맹체에 가입한 항공사의 취항 노선을 활용해 어디든 갈 수 있다. 대형 항공기 도입 없이 장거리 노선 취항 효과를 본 셈이다. 이는 요즘 여행자들 사이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다구간 여행’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물수제비 뜨듯 여러 국가를 돌아보며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LCC 간 결합이니만큼 출발, 도착지를 달리 해도 비용 부담은 크지 않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필리핀 마닐라를 거쳐 간다. 비행 스케줄을 잘 활용하면 알뜰하게 두 나라를 돌아볼 수 있다. 다만 주로 밤 시간을 이용해야 해 여정의 효율성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인터라인’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밸류 얼라이언스의 부족한 부분을 촘촘하게 메울 수 있다. ‘인터라인’은 발권 대행 협약을 뜻한다. 제주항공은 현재 국영항공사인 캄보디아 앙코르항공, 태국의 국적사인 방콕에어웨이스 등과 인터라인 협약을 맺고 있다. →음식:나시르막은 우리의 비빔밥 비슷한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식이다. 코코넛밀크 등으로 지은 쌀밥에 양념 멸치, 삶은 달걀, 볶은 땅콩, 오이 등을 넣고 삼발이라 불리는 매운 양념에 비벼 먹는다. 우리 입맛에 제법 잘 맞는다. →렌트:차를 빌렸을 경우 주차에 특히 유의해야 한다. 이포의 경우 주차증을 인근 상점에서 사다 차량 안에 비치해야 한다. 주차증은 즉석 복권처럼 긁는 방식이다. 주차 시점과 출차 시점을 정확히 지켜야 과태료를 물지 않는다. →통행료:고속도로 통행료는 카드로 낸다. 편의점 등에서 ‘터치 앤 고’ 카드(20링깃)를 산 뒤 적당한 금액을 충전해서 쓴다. 톨게이트에서도 충전할 수 있다. 이포까지는 편도 30링깃, 셀랑고르까지는 편도 15링깃 정도다. 1링깃은 270원 정도다. →전기:말레이시아의 콘센트는 3점식이다. 요즘은 우리와 비슷한 2점식 콘센트를 함께 설치해 둔 곳들이 많다. →기온:캐머런 하이랜드는 낮에도 기온이 20도 아래로 내려간다. 긴팔 옷을 준비해 가는 게 좋다. →요금:캄풍쿠안탄 반딧불이 공원은 배 한 척당(4인 기준) 53링깃이다. 셀랑고르 반딧불이 리조트는 1인당 16링깃을 받는다.
  • [퍼블릭 詩IN] 참나무와 주름버섯

    [퍼블릭 詩IN] 참나무와 주름버섯

    시들음병에도 끄떡없이 50년을 살아온 참나무를 벌목꾼이 베어 버렸다. 나무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겨울을 참아내더니 결국에는 말라 버렸다. 참나무 썩은 등걸에서 주름버섯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버섯은 나무를 빨리 썩게 만든다. 썩은 나무들은 또 다른 거름이 되어 청설모도 주워 먹지 않은 도토리에 싹을 틔운다. 겨울의 무서운 추위에 나뭇가지들이 말라붙었다. 말라붙은 앙상한 나뭇가지를 꽉 부여잡고 있는 썩은 고치 하나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빈 껍데기인 줄 알고 툭 쳤더니 그 속에서 한겹한겹 옷을 벗으며 나비가 탈출을 준비하고 있다. 시내도로를 지나던 검은 차 한 대가 고양이를 쳤다. 무서운 타이어의 무게에 짓눌려버린 내장이 제 살갗을 빠져나왔다. 고양이의 피가 눌어붙은 도로에 햇빛이 내려앉았다. 그곳을 지나던 굶주린 까마귀가 썩어가는 내장을 제 뱃속에 쓸어담고선 펄쩍펄쩍 날아오른다. 모든 썩은 것들에는 생명이 있다. 누구도 심지 않은 썩은 나무등걸에 으레 주름버섯이 자라는 것처럼. 주름버섯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죽은 듯 봄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생명은 계절의 순환처럼 이어진다. 봄이 온다는 것을 몰라도 겨울이 지나면 으레 봄이 온다. 봄은 겨울 속에 숨어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썩은 것의 아픔은 봄이 겨울을 밀어낸 힘으로 사라진다.안윤미 (대구시 달성군 현풍면 실무관)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 붉은 물결’…한국 vs 이란, 관중들로 가득 차

    서울월드컵경기장 ‘6만 붉은 물결’…한국 vs 이란, 관중들로 가득 차

    오랜만에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붉은 물결로 가득 메워졌다. 31일 한국 축구의 명운이 걸린 이란과 2018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는 ‘붉은 물결’이 넘실거렸다.이란과 경기가 열린 이날 오후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는 6만명에 달하는 관중들로 가득 차 이날 매치의 높은 관심을 반영했다. A매치에 6만명 이상의 관중이 들어찬 건 2013년 10월 12일 브라질과의 친선경기(당시 입장 관중 6만 5308명)가 마지막이다. 아직 정확한 집계가 되지 않았지만, 이날 관중이 6만 명을 넘으면 4년 만으로 역대 21번째가 된다.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상암은 크게 붐볐다. 인근 도로에는 차들이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혼잡을 이뤘고, 주차장에는 차들이 긴 행렬을 이뤘다. 오후 6시 30분부터 들어선 관중들은 입구에서 나눠준 붉은 티셔츠로 갈아입고 한 손에는 붉은 클래퍼(짝짝이)를 들고 경기장을 채워나갔다. ‘붉은 물결’은 한국 대표팀이 몸을 풀기 위해 경기 시작 1시간 전 그라운드로 나오자 큰 함성으로 맞았다. 이란 대표팀에는 야유를 보내며 주눅이 들게 했다. 선수들이 한 명 한 명 소개될 때에는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힘찬 박수로 격려했다. 경기 시작 전 이미 상암벌은 붉은 물결로 가득 찼다. 경기장을 떠나갈 듯한 함성으로 심판의 휘슬조차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마침내 경기 시작을 알리는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붉은 물결은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대표팀에 힘을 불어넣었다. 신태용 대표팀 감독이 “아자디 스타디움에 갔을 때 모든 사람이 검은색 옷을 입고 와서 살벌하지 않았나…”면서 “붉은 물결에 놀라게 해주겠다”고 이란전 홍보 영상에서 언급한 그대로였다. 이날 붉은 물결은 지난해 10월 11일 테헤란 아자디 스타디움에서 열렸던 원정 경기에서의 ‘검은 물결’과는 완전 대비를 이뤘다. 당시 아자디 스타디움에는 8만명에 달하는 관중이 입장했다. 하나같이 검은 셔츠를 입고 들어와 검은 물결을 이뤘다. 이날 이란 응원단은 4층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300명에 가까운 이란 응원단은 자국 국기를 들고 힘찬 응원을 벌였지만, 붉은 함성에 묻혔다. 만일의 충돌에 대비해 경찰 병력도 배치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성폭행 무죄, 무고도 무죄… ‘협박용 신고’ 키웠다

    성폭행 무죄, 무고도 무죄… ‘협박용 신고’ 키웠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엉덩이를 만지고 도망갔어요. 빨리 와 주세요.”지난달 2일 0시 15분 서울 서초경찰서에 성추행 사건 신고가 접수됐다. 범행 장소는 지난해 5월 ‘묻지 마 살인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역 인근의 남녀 공용 화장실이었다. 신고자인 20대 여성 A씨는 한 상가의 점장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는 흰색 옷을 입고 있었다. 경찰이 “신고 내용과 다르지 않으냐”고 묻자 A씨는 돌연 사복을 입은 경찰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했다.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인한 결과 A씨가 머물렀던 그 시각에 화장실에 드나든 사람은 없었다. 경찰은 A씨의 신고가 명백한 무고죄에 해당하지만 ‘취중 착각’이라고 보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선량한 사람을 가해자로 모는 ‘무고 범죄’가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9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무고죄’ 발생 건수는 3617건으로 집계됐다. 2012년 2734건에서 5년 사이 32.3% 증가한 수치다. 무고죄는 10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에 속한다. 그러나 실제 실형을 선고받는 사례가 적다 보니 ‘생사람 잡기식’의 악의적인 허위 고소가 잇따르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와 함께 ‘없는 죄’라는 이유로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종결짓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발생한 성범죄 사건 가운데 ‘혐의 없음’ 처분 비율은 36.1%로 전체 사건의 ‘혐의 없음’ 처분 비율 25.5%보다 10.6% 포인트 높았다. 지난 4월 20대 여성 B씨는 “클럽에서 만난 같은 또래 남자한테 강간당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CCTV 영상에는 B씨가 적극적으로 남성의 몸을 끌어안고 서울 서초동의 한 모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B씨는 잠자리를 한 다음날 아침 남자가 먼저 떠나버린 것에 화가 나 “성폭행을 당했다”고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됐다. 경찰은 B씨를 ‘혐의 없음’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지난해 8월 20대 여성 C씨도 한 남성의 집에서 강제로 성관계를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조사 결과 합의하에 이뤄졌던 것으로 파악됐다. C씨는 남성과의 마찰로 허위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B씨와 C씨에 대해서는 모두 무고죄가 성립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혐의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지다 보니 사건 처리가 흐지부지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무고 혐의가 적용되는 허위 신고는 ‘협박용’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고죄 성립 범위를 두고 논란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특히 성범죄 관련 무고죄의 범위를 넓히면 피해자들이 신고하기를 주저하게 돼 범죄가 은폐될 우려가 있다. 반면 무고죄를 보수적으로 적용하면 ‘아님 말고식’ 신고가 빈발해 선의의 피해자가 다량 양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혜리 기자 hyerily@seoul.co.kr
  • “불이야옹~ 일어냐옹~” 반려묘 덕에 목숨 구한 일가족

    “불이야옹~ 일어냐옹~” 반려묘 덕에 목숨 구한 일가족

    지난 1일 밤 6명의 자녀를 둔 에밀리와 제리코 가족은 비극에 휩쓸렸다. 온가족이 잠든 야심한 밤에 집에서 불이 났던 것이다. 가구나 옷, 또는 장난감까지 모두 불타버렸지만, 생후 7개월부터 10세까지 6명의 자녀와 반려동물들까지 모두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집에 사는 고양이 ‘루나’의 헌신적인 활약 덕분이었다. 이날 이 집의 가장 제리코는 야근 때문에 집을 비우고 있었고, 에밀리와 아이들은 거실에서 자고 있었다. 그런데 에밀리가 새벽에 눈을 뜰 수 있었던 것은 검은 고양이 루나가 자신의 다리를 깨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그녀는 루나가 또 먹잇감을 잡아서 자신에게 보여주려고 자신을 깨웠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눈을 뜨면 먹잇감을 보고 놀라 시끄러워질 수 있기에 에밀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루나의 먹잇감이 아닌 불이 난 집이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아이들이 거실에 모여 있던 것이나 루나가 초기에 깨워준 덕분에 가족 모두는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평소 루나가 먹잇감을 붙잡고는 에밀리에게 보여주는 ‘사냥의 달묘’였던 것이 가족 모두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후 가족들은 인근 집으로 대피했다. 현장에는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불행하게도 집은 완전히 불타버렸다. 헤럴드선에 따르면, 가족은 음식과 의류, 생필품 등의 제공을 적십자로부터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제리코의 동생 부부가 사는 집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밀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화재 사고로 집을 잃었음에도 매일 즐겁게 살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공개하고 있다. 한편 에밀리는 친구의 도움으로 고펀드미를 통해 집을 마련하기 위한 기부금을 모으고 있다. 2만 달러(약 2200만 원)를 목표로 현재까지 6일 만에 2900달러(약 320만원)가 모인 상황이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테러당한’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테러당한’ 아트 테러리스트, 뱅크시

    길을 걷다 보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은 간판이고 외국은 담이나 축대, 건물 외벽에 빼곡한 소위 그라피티(Graffiti)라 부르는 낙서다. 세계 어디에서나 낙서는 혐오의 대상이고 이를 허용하는 나라는 없다. 대개 경범죄로 처벌한다. 하지만 낙서는 사회구성원들의 정치, 사회, 문화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욕구를 발산하는 욕망과 저항의 분출구로서 기능한다. 때문에 처벌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처벌을 피하는 스릴 때문에 오히려 낙서가 조장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한다.낙서를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의 개방성과 비례한다. 열린 사회일수록 반사회적이며 비도덕적인 행위로 취급받던 낙서가 하나의 예술행위로 간주된다. ‘누구나, 모든 것이 예술가와 예술이 될 수 있다’는 현대미술의 넉넉함에 기반한다. 키스 해링(1958~1990)이 낙서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고, 뉴욕의 뒷골목과 지하철을 전전하며 낙서를 하던 화가 바스키아(1960~1988)는 ‘검은 피카소’로 대접받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세속적인 성공과 거리를 둔 채 낙서를 통해 세상을 풍자하고 약자들을 위무하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있고, 그 중심에 뱅크시가 있다. 영화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2010)는 뱅크시를 비롯한 길거리 화가들의 비밀스러운 작업과정을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영화다.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를 유쾌하게 표현한 뱅크시의 작품들은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잠자는 양심을 깨웠다. 그가 단순한 낙서화가가 아닌 예술가로 대접받는 이유다.그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다. 얼굴을 본 사람도 없다. 단지 영국 브리스틀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활동했다는 정도만 알려졌을 뿐이다.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그는 20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의 한 창고에서 ‘가까스로 적법한’(Barely Legal)이란 전시를 통해 일약 스타작가로 떠올랐다. 편견 가득한 세상 사람들에게 ‘엿’을 먹이는 작품을 선보여 선풍을 일으켰고, 거리예술이 미술시장의 신상품 목록에 이름을 올리는 데 기여했다. 거리예술가들의 작품이 고가에 거래되고 밤새 도둑처럼 그린 그림이 있는 벽이 뜯기는 일까지 발생하면서 뱅크시는 거리예술과 미술시장이 엉뚱한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그는 미술시장의 왜곡된 생태를 보여 줄 요량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라고 동료 작가 티에리에게 먼저 권유했고, 이렇게 시작된 것이 바로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다. 티에리가 처음 수많은 거리예술가를 찍은 테이프를 가지고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결과는 엉망진창. 결국 뱅크시가 직접 카메라를 들고 티에리를 주인공 삼아 작품을 완성했다. 다큐 속에서 티에리는 예명을 ’미스터 브레인워시’(Mr. Brainwash), 즉 세뇌라고 붙이고 첫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Life is beautiful·2008)를 연다. 무명인 그의 개인전은 대성공을 거둔다. 첫날 4000명이 몰려들어 전시 기간은 당초보다 3개월 늘어났고, 총관람객이 5만명에 이르렀다. 성공 비결은 미술시장의 성공 공식을 충실히 따랐다는 것. 작품의 질과 상관없이 최대한 ‘알릴 것을 알린’ 홍보 전략 덕택이었다. 전시에 대한 뱅크시의 짧은 논평은 티에리의 개인전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이 됐고, LA의 영향력 있는 주간지 표지에 전시 소식이 실린 것도 주효했다. 다큐는 옷 장수에 불과했던 티에리가 자신의 삶과 미술시장을 전복시키는 악동 예술가가 되어 돈방석에 오르는 과정을 보여 주며, 성공에 관한 허상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뱅크시가 이름을 알린 것은 1990년쯤부터다. 고향 브리스틀에서 그라피티 아티스트 그룹(DryBreadZ Crew·DBZ)의 일원으로 출발했다. 유명세를 얻은 것은 1999년 경찰들에게 화염병을 던지는 테디베어를 그린 브리스틀 마일드 서드 웨스트의 벽화였다. 매니저로 작품의 판권을 넘겨받은 스티브 라자리데스를 만난 뱅크시는 2000년부터 거리예술에 더욱 효과적이고 시간이 절약되는 스텐실 기법을 사용한다. 이는 원하는 그림의 모양을 종이에 그려 오려 낸 뒤 벽에 붙인 채 에어브러시 등으로 물감을 분사하거나 찍어 넣어 표현하는 기법으로 특히 같은 이미지나 모양을 반복해서 빨리 제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후 그는 더욱 인상적이고 유머러스한 작품을 선보이는데 특히 2005년 8월 팔레스타인을 여행하면서 이스라엘 서안 지구의 9개 벽에 남긴 작품은 모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반전, 반소비주의,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반권위주의, 무정부주의, 허무주의, 실존주의 등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메시지는 물론 탐욕, 빈곤, 위선, 지루함, 절망, 부조리, 소외 같은 주제도 망라한다. 벽화의 등장인물은 늘 세상의 더러운 곳에서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 쥐나 침팬지를 비롯해 경찰, 군인, 어린이들이다. 낙서를 저항의 수단이자 예술로 끌어올린 그는 공권력을 비웃듯 아무렇지도 않게 낙서를 하고 유유히 사라져 ‘게릴라 아티스트’라고도 불린다. 유명인사가 되면서 불법 취급받던 그의 낙서에 대해 보존 운동이 일어나고 가격이 올라가면서 기존의 미술을 조롱하던 거리예술의 처치가 매우 곤란해졌다. 미술계의 허위의식과 배금주의를 비웃던 게릴라들이 자본의 울타리 안에서 정규군으로 재편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영화의 제목을 미술관 구조에서 따온 이유가 다 있다. 한껏 교양적인 전시라고 포장은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 미술관 출구 직전에 위치한 선물 가게에서 기념품을 사도록 강요받는, 미술시장의 상업성을 비튼 것이다. 세상을 향한 조롱과 날 선 비판이 담긴 작품을 남기고 게릴라처럼 사라지는 거리화가들은 예술이라는 절대가치를 비웃기 때문에 ‘아트 테러리스트’라고도 불린다. 여전히 언더그라운드를 지향하는 그를 비웃듯 세상은 그의 작품을 사고팔면서 그의 정신에 ‘테러를 가하고’ 있다. 그의 저항은 자부심과 자괴감의 중간 또는 언더와 오버의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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