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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안녕, 롱패딩/박록삼 논설위원

    [길섶에서] 안녕, 롱패딩/박록삼 논설위원

    바람은 여전히 차지만 한강은 더이상 얼지 않는다. 성급한 여인네들은 벌써 검은 비닐봉지 들고 한강변에 쭈그려 앉아 삐죽거리는 쑥을 찾아 나섰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는 것은 세상 불변의 진리일진대 이번 겨울은 유독 길었다. 봄이 오기는 오려나 싶었다. 롱패딩을 3년 전 처음 입었다. 이불을 온몸에 싸매고 다니는 듯 거추장스러웠지만 이내 그 따뜻함에 푹 빠졌고 길들여졌다. 한겨울에도 동네 슈퍼마켓 정도는 반팔 옷에 반바지만 입고도 우습게 다니던 시절이 언젠가 싶었다. 그리고 겨울 내내 차마 벗지 못했다. 양복을 입어도 롱패딩, 청바지를 입어도 롱패딩 패션으로 일관했다. 긴 겨울이 저물어 감에도 롱패딩 없이 바깥 출입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봄이다. 새해에 세운 계획과 결심이 흐려질 즈음 찾아온 봄은 또 다른 새 출발을 재촉한다. 봄 시샘 추위야 한두 번 찾아오겠지만 롱패딩에 갇혀 있어서는 곤란할 테다. 들판으로 나가 새봄맞이 할 때다.
  • 女운전자만 골라서 ‘툭’…마트서 고의 사고낸 남성

    女운전자만 골라서 ‘툭’…마트서 고의 사고낸 남성

    청주의 한 마트 주차장에서 여성 운전자를 골라 고의 보행자 사고를 내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통해 포착됐다. 13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성 상대 사기 주의하세요’라는 글과 함께 영상이 올라왔다. 제보자가 올린 영상에는 주차장 CCTV 영상이 담겼다. 영상에는 검은 옷을 입고 통화하듯 휴대전화를 귀에 댄 한 남성이 마트를 빠져나가는 두 대의 차량 인근에서 배회하고 있다. 흰색 차량이 먼저 빠져나가자 검은색 차량은 후진하다 잠시 정차했다. 흰색 차량이 완전히 빠져나간 것을 본 검은색 차량은 천천히 후진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남성은 슬금슬금 검은색 차량에 다가가기 시작했다. 이후 검은색 차량 뒤 쪽으로 가서 차량과 부딪혔다. 차량은 깜짝 놀란 듯 잠시 멈췄다. 남성은 차량을 슬쩍 쳐다본 뒤 다시 돌아와 조수석 창문을 두드리고 항의했다.제보자는 “청주에서 한 남성이 후진등 켜진 차량 운전자가 여성인 걸 확인하더니 차량이 후진할 때 전화기 들고 걸으며 고의 충돌했다. 충돌 후에는 여성 운전자에게 따졌다”고 전했다. 이어 “이런 사고 시 절대 현금으로 합의하거나 보험 접수해주지 말고 경찰 신고 후에 CCTV 확보해야 한다”며 “경찰과 법원은 이런 고의 사고 사기꾼들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찰이 ‘대인 사고니 보험 접수해주세요’ 또는 없던 일로 처리해서 계속 이런 사기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우연한 사고인 것처럼 연기한 남성을 본 네티즌은 “고의로 스치고선 돈 달라는 게 말이 되냐”, “아직도 저런 짓 하는 사람이 있네”, “강한 처벌 필요하다” 등 반응을 보였다.
  •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체조합시다/김사사 [서울신문 2023 신춘문예 - 소설]

    이것은 아시아나 스포츠 상설 매장에서 산 트램펄린. 공중부양. 수양은 뛰고 있다. 흔들리고 있다. 조금씩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다. 전시제품이므로 모서리 변색 있음. 그러나 탄력 좋음. 아시아나 아저씨는 이것이 아주 튼튼한 물건이라고 말했고 정말 그렇게 생겼으니 괜찮겠다 싶지만 수양은 어쩔 수 없이 좀 무서워진다. 그녀는 변색한 트램펄린 모서리를 손톱으로 살살 긁으면서 물었다. 아저씨. 만약 부러지면 어떻게 할 건지? 그건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요 아가씨…. 맞는 말이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가기 전에 튼튼하고 단단한 물건들을 생각하며 오십 분씩 뛰었다. 붉은 벽돌과 철제 의자 강화유리로 된 창문 그리고 칼…. 트램펄린 앞에는 높이 백칠십 센티미터짜리 거울이 있고 수양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하며 열심히 뛴다. 이것은 은근히 땀이 나는 일이므로 겨울에는 얇은 반소매 티셔츠만 입고 뛰어야 하고 여름에는 다 벗고 뛰어야 한다. 뛰어오를 때는 정말로 공중부양하는 기분이지만 그것은 기분일 뿐이고 어쨌든 떨어지는 일이다. 수양이 영양제나 선크림이나 치약이나 칫솔이 아니라 칼을 파는 이유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무서워서라도 사 준다는 말이다…. 수양은 칼 판매상이다. * 수양은 택기와 알고 지낸 지 꽤 되었고 택기의 사육장에 가 본 적도 있다. 사육장은 동굴처럼 길고 캄캄해서 거기에 무엇이 있기는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고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수양이 택기야 저렇게 하면 토끼가 살 수 있냐 너무 어둡지 않냐 물었을 때 택기는 원래 조명을 켜 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왜 어두운 거니 묻자 기주가 깜박한 거라고도 했다. 사육장 입구에는 파란색 파라솔이 있었고 그 아래로 작은 탁자와 바퀴 달린 접이식 침대, 플라스틱 의자를 두었다. 의자에는 헐렁한 러닝셔츠와 익은 노른자색 사부 반바지를 입은 사람이 늘어져 있었는데, 수양은 그 사람이 말로만 듣던 기주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택기의 둔하고 쓸모없는 동생 기주. 네가 바로 기주다. 기주는 고개를 뒤로 기울인 채 눈을 감은 모습이었고 무릎 위로 까만 총이 놓여 있었다. 택기야 저거 진짜 총이냐. 비비탄총이지. 그렇구나 난 또. 정오를 지나던 때였으므로 하늘을 향한 기주의 얼굴은 서서히 달궈지는 중이었다. 그늘을 벗어난 얼굴 위로 노랗고 깨끗한 햇빛이 일렁거렸으니 기주는 잘 먹고 잘 자라는 중인 아이처럼 보였다. 스포츠머리에다 늘 하얀 두건을 쓰는 택기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수양은 기주의 뺨 위로 조심스레 검지를 얹었고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따듯함을 느꼈다. 택기가 토끼 한 마리를 잡아 사육장 밖으로 걸어 나왔을 때, 그의 표정은 중요한 약속을 앞둔 사람처럼 신중하고 뻣뻣했다. 기주는 그때까지도 절대 깨지 않았으므로 수양은 택기야 기주가 졸고 있어… 하고 작게 속삭였다. 택기는 기주가 졸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잿빛 토끼는 몸집이 컸다. 그냥 큰 게 아니라 아주 컸다. 택기는 자이언트 토끼라고 말했다. 크고 따듯하고 순한걸. 택기야 이 토끼는 정말로 순하다고. 털에 파묻힌 토끼의 눈이 마름모 모양이었기 때문에 수양은 토끼의 미간을 마름모꼴로 문질렀다. 몸집이 큰 것과는 별개로 토끼는 부드럽고 무른 표피를 가져서 조금만 세게 쥐면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수양이 토끼도 우는가 어떻게 우는가 기억이 나지 않네 하자 택기는 토끼를 가리켜 커서 문제다, 크고 소리도 없어서 문제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게 왜 문제야. 커야 더 좋지. 너는 토끼로 요리하는 요리사니까 커야 좋은 거지. 개새끼들이 도망을 간다고. 토끼는 개새끼가 될 수 없었지만 택기는 달리 부를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도망을 간다니 탈출한다는 것인가. 어떻게 탈출해. 이렇게 큰데. 크기가 이런데. 가끔 유연한 토끼들이 있다고 해도 토끼는 액체가 아니므로 수양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택기가 하는 탕집은 사육장과 마주 보고 있고 탕집 주방 쪽창은 사육장 입구를 향해 나 있었다. 택기는 하얀 두건을 쓰고 방수 앞치마를 두른 모습으로 탕을 끓인다. 매일 그렇게 한다. 그러다 보면 택기의 몸에서는 아주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데 그래도 수양은 택기의 냄새에 대해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택기가 한참 탕을 끓이다가 쪽창을 쳐다보면 토끼 두어 마리가 잔디밭에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어떤 때는 택기와 단번에 얼굴이 마주치고 어떤 때는 뒷모습이 보이지만, 뒤돌아 있던 놈도 언젠가 택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되어 있고 그러다가 산으로 사라진다고 했다. 택기는 개새끼들이 사람을 놀릴 줄 안다고 싫어했다. 사실 토끼는 번식이 빠른 동물이라서 두어 마리가 없어진다고 문제 되는 것은 아니었는데 택기는 기주더러 탈출하는 놈들을 되는 대로 잡아내라고 거기에 앉혀 두었다. 기주는 그동안 뭔가를 잡아낸 적이 없다. 쟤는 아무것도 못 잡아. 택기가 말했다. 기주는 여태껏 바닥에만 비비탄을 쏘아 댔기 때문에 기주가 앉은 부근으로는 잔디가 자라지 않았고 살짝 젖은 토양이 드러났다. * 수양은 이제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지만 원래는 여기저기에서 잘 팔고 다녔다. 모르는 집의 문을 두드리고 칼 세트를 재빠르게 보여 준 뒤 현관에 걸터앉아서 800방짜리 숫돌에다 느릿느릿하게 칼을 갈고 이것 보세요 참 쉽지요 하는 일을 잘했다. 배낭에 챙긴 A4 용지 다발 중 한 장을 꺼낸 뒤에 막 갈아 낸 칼로 비스듬히 잘라 내고 한번 해 보세요 정말 부드럽고 예리하지요 하는 일도 잘했다. 가끔은 몇 달 전에 팔았던 집에 가서 또 팔아 내고 이번에는 업그레이드되었으니 다르다고 거짓말하는 일도. 그런 일을 못 하게 된 것은 어느 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의 집에 갔기 때문인데, 그가 원로 마술사였다는 소문이 있다. 그는 특히 손도 대지 않고 멀리 있는 폭죽을 터뜨리는 마술을 잘했는데 그것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좋은 게 없어서 터뜨리고 터뜨리다 귀가 먹었다고 했다. 어쨌든 수양은 원로 마술사쯤은 상대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수양이 아무리 이것 보세요 이것 보세요 해도 칼을 제대로 보지 않았고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수양은 그날 처음으로 지구대에 가 보았는데, 눈썹이 짙고 목소리가 큰 박 순경은 그냥 말하는 것이지만 소리 지르는 것처럼 들리는 볼륨으로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당신은 당신이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알 필요가 있어요 알아야 해요 하며 조금은 간절한 표정으로 수양의 손을 꼭 붙잡았다. 박 순경의 손바닥이 참 축축해서 수양은 이 사람 겁이 많은 사람이잖아 생각했고 앞으로는 그런 식으로 칼 파는 일을 그만두고 싶어졌다. 그래도 수양은 칼 파는 데 재능이 있었고 다른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므로 지구대를 나와 집으로 돌아가서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하지 하며 트램펄린을 뛰었다. 뒤통수가 팽팽하게 조여드는 느낌이 들자 수양은 앞으로도 트램펄린 타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멈추고 싶지 않았으나 나중에는 기운이 빠져서 잠들었다. 다음 날에는 오전 다섯 시에 잠에서 깼다. 잠 없는 노인들이나 일찍 나가는 공장 사람들한테는 그만큼 이른 시간에 찾아가서 칼을 파는 수밖에 없었으니 수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 노력하는 편이었는데 그것이 그만 몸에 익어 버린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땀을 조금 흘렸다. 날이 점점 더워져서 그랬다. 수양은 택기가 토끼탕을 잘 끓인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택기가 만든 탕을 먹어 본 적이 없고 그때까지 택기의 얼굴을 본 적도 없었지만, 오가는 길에 택기의 탕집을 자주 보았고 거기에는 늘 사람이 많았으니 그런 집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국도가 있고 작은 산도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그 작은 산이 국내 100대 명산 중 칠십 번째나 팔십 번째쯤 되었다. 수양은 그 산이 얼마나 명산인지 궁금했다. 지구대에 다녀온 다음 날, 수양은 일찍 일어나게 되었으니 산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싱크대에서 미지근한 물로 얼굴을 씻어 낸 뒤 밖으로 나가 아주 천천히 걸었다. 그녀는 무척 여유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차분한 음악을 듣고 따뜻한 차를 끓여 마신 뒤에 산책하기를 즐기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기 때문에 몸을 앞뒤로 조금씩 흔들어 가며 걸을 수 있도록 신경 썼다. 수양은 칼을 팔러 갈 때 주로 흰옷을 입었는데, 가장 친절하고 상냥해 보이면서도 미묘하게 위협적인 색깔이 바로 흰색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제 그런 식으로 칼을 팔지 않게 되었으나 자연스레 흰 옷을 골라 입었다는 사실이 좀 웃겼다. 어디서 자꾸만 하나둘하나둘하나둘하나둘 하고 조금도 쉬지 않고 구호를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수양은 곧 택기의 탕집 앞 잔디밭에 다다랐고 거기에서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열을 맞춰 잔뜩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저건… 새천년 체조잖아. 수양은 원래 칼을 잘 파는 사람이었지만 그날처럼 칼을 많이 팔아 본 적은 없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구호는 알맞게 외치는데 동작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 사람들이 체조를 끝내고 명산이라는 산을 탄다고 우르르 사라졌을 때, 수양은 생각을 하자 생각을 해, 하며 걷던 길을 다시 걸었고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로 들어섰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는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는 만두를 팔았는데 택기의 탕집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사가 잘됐다. 여기까지 따라오기는 했으나 산을 타기 싫은 아이들이 김밥과 만두를 먹고 있었고 산 타는 사람들만 노리는 일명 등산객 전문 린치족들이 교복을 꼬박꼬박 챙겨 입은 모습으로 담배를 계산하는 중이었다. 수양은 매운맛 만두를 사서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에 자리에 앉았다. 김이 나는 만두를 젓가락으로 조금씩 잘라 먹으며 산을 타는 사람들에게 칼을 팔아야겠어 하고 중얼거렸다. 김밥과 만두를 먹던 아이들에게 혹시 칼을 사겠니 물었지만 아이들은 무시했고 김밥에서 빼낸 단무지만 계속해서 찔러 댔다. 수양은 왠지 섭섭해져서 입을 쩝쩝 다셨다. 그래 역시 어른들에게 팔아야겠지…. 수양은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던 사람들이 내려올 때까지 만두를 야금야금 베어 먹다가 벽걸이형 선풍기의 약풍을 맞으며 졸았다. 그러곤 결국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데 무려 여섯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저렇게 작은 산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기에 그만큼이나 걸린단 말인가. 알 수 없었지만 알고 싶지도 않았다. 수양은 사람들이 손바닥을 짝짝 부딪치며 내려와서는 곧장 택기의 탕집으로 향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집으로 달려가서 칼 세트와 함께 A4 용지가 든 배낭을 챙겼는데, 그 사람들 앞에서는 종이를 자르는 시범 따위 보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그런 것들을 챙기지 않았다. 택기의 탕집 앞에는 하얀 두건을 쓰고 분홍색 방수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서 있었다. 그것이 바로 택기였다. 택기는 탕집 입구로 들어서려는 수양을 붙잡았다. 탕을 드시려면 예약을 하셔야 하는데요. 저는 탕 먹으러 온 사람 아니거든요. 그런 음식은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럼 왜 들어갑니까? 칼을 좀 팔고 싶어서요. 택기가 수양의 팔뚝을 가볍게 내려놓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을 때 수양은 이 사람이 설마 나를 좋아하게 되었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택기의 손바닥이 너무 두꺼웠고 반짝거리는 그의 분홍색 앞치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그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길 바랐다. 탕이 싫으면 뭘 좋아하시죠. 택기가 물었다. 저는 감자튀김을 좋아해요. 수양이 대답했다. 산을 좀 타 봤다 하는 사람들은 주로 택기의 탕집에 모인다. 수양이 테이블 여러 개를 이어 붙인 곳으로 다가가서 제 칼을 좀 보시겠어요 하면 어어 그렇지 봐야지 하는 사람들이었다. 수양의 칼은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었고 일주일에 두어 번 방영하는 홈쇼핑 식칼과 유사한 모양새였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수양이 칼을 꺼내 들 때마다 마술을 본 것처럼 좋아했다. 제 칼을 좀 사시겠어요 하면 당연히 사 줘야지 이걸로 기필코 그놈을 죽이고 말리라 그런데 아가씨는 누군가? 하는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모두 칼을 사게 되어 있다. 수양은 매일 아침 몸을 앞뒤로 흔들며 산책하게 되었다. 하나둘하나둘하나둘 체조하는 사람들을 지켜본 뒤 명산 앞에 있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조금 식은 만두를 먹었고 할 일이 없어지면 린치족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려 했다. 그들은 늘 길쭉한 막대 모양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중얼거렸다. 그게 어떤 말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택기는 수양의 칼을 사지 않았지만 매일 웃는 얼굴 모양의 동그란 감자튀김을 내 주었고 수양은 그것을 천천히 먹어 치웠다. * 기주야 너는 왜 토끼를 잡지 못하니. 수양은 매일 택기의 탕집에서 칼을 팔게 되었으므로 기주의 얼굴도 매일 보았다. 택기는 두피부터 손등과 발가락까지 온몸에 땀이 많은 편이었는데 기주는 그렇지 않았다. 기주는 파라솔 아래 탁자 앞에서 밥을 먹고 침대나 플라스틱 의자에서 잠을 자거나 휴식을 취하고 하여튼 그런 식으로 종일 바깥에 있지만 가까이 다가가도 바짝 마른 풀 냄새나 무언가를 태우는 냄새 같은 것만이 났다. 밥을 먹고 나서는 바닥에다 비비탄총을 쏘고 종아리나 팔뚝 주위로 부채질을 조금 하다가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를 한참 붙잡고 있었는데 빈칸을 모두 채우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수양은 접이식 침대 위에 누워서 천천히 복식호흡을 했다. 언젠가 그것이 송장 자세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에 아주 편안해진다. 너는 왜 토끼를 못 잡냐고. 몰라. 그걸 왜 몰라, 보고 있는데 왜 몰라. 그냥 잠깐 눈을 감았는데 밖으로 나와 있었어, 저기에 서 있었어. 토끼를 왜 좋아하나. 누가? 여기 오는 사람들이. 정력에도 좋고 건강에도 좋대. 토끼는 조루라던데?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일간 신문에서 오려 낸 스도쿠가 바람에 날아가도 기주와 수양은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내일은 또 다른 스도쿠가 배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주는 공중에서 나부끼는 스도쿠 종이를 보며 이마를 조금 구겼고 모든 것이 무게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심장은 아주 미세하게 왼쪽으로 치우친 상태이므로 무게중심도 왼쪽에 있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모두의 왼쪽 엉덩이는 조금 더 눌려 있고 작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왼쪽으로 살짝 돌아앉게 되어 있다고. 안 그래도 사람이라면 모두 그런 편인데, 기주는 특히 자신이 왼쪽으로 조금씩 돌아앉는 상상만 해도 본능처럼 왼쪽으로 이끌리고 그래서 자꾸만 왼쪽을 주시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토끼들은 하필 오른쪽에서만 출몰하고 그런 이유로 도저히 놈들을 발견할 수가 없다고. 그렇지만 기주가 신경을 써서 오른쪽으로 돌아앉아 보아도 변하는 건 없었다. 어떻게 해도 토끼들은 탈출하고 기주는 밥을 먹고 있었거나 스도쿠를 풀고 있었거나 눈을 감고 있었거나 무게중심 때문이었거나 무슨 무슨 이유로 토끼를 발견하지 못했다. 뒤늦게 산 쪽으로 멀어지는 토끼를 발견하고 아아아아 토끼가 나타났다 지금은 멀어지는 중이다 하고 소리를 지르면 택기가 뛰어나오지만 이미 모든 게 사라지고 난 뒤였다. 수양은 사라진 토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 전에 살아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졌다. 이만큼이나 사라졌으면 이미 산에는 토끼가 천지일 텐데 산을 타는 사람들은 자꾸만 택기의 탕집에 와서 토끼탕을 먹었고 산을 타다 토끼를 본 사람은 없다고 하니 저녁에는 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수양은 보이지가 않네 여기로 좀 와 봐라 이리 좀 와라 하며 산을 오르다 페도라를 만났는데, 그가 페도라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페도라는 까맣고 큰 페도라를 쓰고 있었고 걸친 옷이 없었다. 아주 깊은 페도라여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페도라는 줄무늬 사각팬티만 입은 모습으로 큰 소나무를 껴안고 있었는데 팔이 긴 편이어서 편안하고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 같았다. 수양이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서 만난 린치족들을 떠올리며 옷까지 모두 벗겨 가다니 정말 답도 없는 놈들이로군, 하자 페도라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산을 타고 또 탔지요. 그러다 보니 점점 더워져서 옷을 한 꺼풀씩 벗었고 이것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벗을 때마다 길을 잃는 기분이더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는 했다만 뭐라고 했던가요…. 페도라는 여기에서 말을 멈추고 목을 가다듬더니 얇고 연약한 목소리를 내었다. 우리는 아주 건강해 너무 건강해 우리는 내일이 없는 사람이에요 하면서 나를 지나쳤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외우는 일은 잘해서 말이죠. 밤이 되니 추워져서 나무를 안고 싶었습니다. 그는 손가락을 세워 모자와 팬티를 가리켰다. 이건 제 자존심이라 남겨 두었습니다. * 택기의 손은 두껍다. 손등은 거칠지만 손바닥은 부드러워서 영 이상한 손이다. 수양은 택기가 탕집 안에서 날카로운 칼을 다루다 그 손까지 어떻게 해 버리는 건 아닌가 가끔 생각하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산을 타고 온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때까지 쉴 새 없이 떠들기 때문에 괴로울 만큼 시끄럽고 그것은 모두 택기의 탕집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므로 택기는 자주 지치고 늘어진다. 늘어진 택기는 수양의 집에서 잠을 잔다. 택기의 탕집과 택기와 기주가 사는 집은 아주 가까이 붙어 있는데도 택기는 가끔 수양의 집에서 자겠다고 성가시게 굴고 징징거리다 결국 그렇게 했다. 수양은 이제 칼 가는 시범을 보일 필요가 없지만 습관처럼 칼 가는 연습을 하고 트램펄린을 탔다. 그만 타. 왜. 나 머리가 아파. 이것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고. 수양이 칼을 갈고 있으면 택기가 조용히 옆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허공에다 수양과 같은 동작으로 칼을 갈아 보고 바보 같은 표정을 짓는다. 요리하는 택기는 두건을 쓰는 데다 표정도 굳어 있으니 어느 폭력배의 막내쯤으로 보이는데, 이럴 때는 바보 같은 표정을 지으니 정말 바보 같았다. 그러다가 너무 집중하면 택기의 작은 입술이 동그랗게 벌어지고 침이 떨어진다. 수양은 그때마다 택기의 목에 하얀 수건을 매 주었다. 아무리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도 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수건을 매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택기는 칼 가는 시늉을 한참 하고 나서 미끄러지듯 바닥에 드러눕는다. 택기야 내일은 몇 마리나 잡냐. 아마 스물세 마리. 그렇구나 바쁘겠다. 택기와 수양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가까이 붙어 잔 적이 많고 그러다 보니 서로에게 바로 오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러면 수양은 아무래도 칼 있는 집에서 하는 건 좀 그렇지, 하고 택기에게 말을 걸고 택기는 나도 방금 개새끼들 잡고 와서 좀, 이라고 대답한 뒤 눈을 감았다. 기주 말로는 자기 몸은 왼쪽이 더 무겁대. 걔는 원래 헛소리를 잘해. 나 어제 페도라를 봤어. 어디서 파는데. 아니 페도라 쓴 사람 봤다고. 어디서 봤는데. 산에서. 산에서 그런 걸 왜 쓰고 있어. 내가 박 순경을 불렀어. 박 순경은 왜. 데려가 줄 것 같아서 불렀어, 진짜 데려가더라. 택기는 새벽 일찍 일어나서 토끼를 잡아야 하고 수양은 흔들흔들 걷는 산책을 해야 하므로 그때쯤이면 수양이 이제 자자, 하고 그들은 잠을 잤다. 그런데 그날따라 택기가 수양의 팔뚝에 얼굴을 비벼 댔고 수양은 그것이 아주 뜨겁게 느껴졌기 때문에 택기의 얼굴이 언제부터 뜨거웠는지 궁금해졌다. 택기야 너는 왜 요리를 잘하냐. 사실 택기는 요리를 썩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탕집은 택기의 고모가 소유하던 것이었는데, 그녀는 매일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잠자리에 들기 전 택기와 기주의 얼굴을 조심스레 붙잡고 볼 키스를 해 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당시의 택기는 이미 어른이었고 그런 일이 시들했지만 어린 기주는 그 시간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고모는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생활력이 강했으나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으므로 종일 동물을 관리하고 탕을 끓이는 일을 견딜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이제는 정말 견딜 수 없겠다고 느낄 때마다 탕집을 찾는 사람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고모는 하루하루 침실 방문을 잠그고 우는 일을 반복했으며 아주 먼 곳에 사는 친구와 긴 통화를 이어 가다 결국은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데, 수양은 도대체 그 고모가 어디로 떠났다는 것인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말이 되냐. 말이 안 될 건 뭐지 나는 거짓말을 안 하는데. 택기가 말했다. 택기와 기주는 그녀가 아주 먼 곳에 있다던 친구를 찾아간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모로부터 딱 한 번 받은 엽서에는 그런 소식이 적혀 있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니 하는 식의 시답잖은 안부와 함께 탕을 맛있게 끓이는 조리법이 정갈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보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고모는 택기 앞으로 분홍색 방수 앞치마가 담긴 택배를 보냈다. 멀리 있는 곳에서 모텔 장사를 시작했으며 경치가 좋다는 내용의 쪽지를 함께 남기곤 연락이 닿지 않았으므로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밤마다 전화를 걸었던 누군가가 정말로 있었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고모가 보낸 엽서 앞면에는 어떤 지역의 문화재 사진이 크게 붙어 있었는데 기주는 택기 몰래 그곳으로 찾아가기 위해 짐을 꾸렸다가 들킨 적이 있다. 어쨌든 택기는 돈 때문에 요리사가 되었고 자꾸자꾸 토끼를 잡고 자꾸자꾸 탕을 끓이다 보면 다 잘하게 되어 있다고도 말했다. 실망이야. 대대로 내려오는 명장 집안인 줄 알았는데. 택기는 이제 내가 명장이 되겠어 하고 속삭였다. * 수양은 아침 식사로 매운 컵라면을 먹은 뒤 집을 나섰다. 그날따라 날이 무척 더웠다. 이상하게도 수양은 배가 아주 헛헛한 기분이었고 뜨겁기도 해서, 어쩐지 저녁이 되면 배가 몹시 고파지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원한 게 먹고 싶다 차갑고 시원한 게, 하며 걸었다. 탕집 앞에서는 하나둘하나둘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대신 몸을 꼭 죄는 회색 양복을 입은 페도라가 서 있었다. 그는 양손을 주먹 쥔 채 정면을 바라보았다. 산 타는 사람들은 구호를 외치는 대신 바둑판처럼 깔끔한 간격을 유지하며 페도라를 마주 보았다. 그 속에서 러닝셔츠를 입은 기주의 뒷모습이 함께 보였다. 바닥에 놓인 시디플레이어에서 노래 전주가 흐르자 수양은 트로트잖아, 했고 가장 뒤에 서 있던 짧은 파마머리 여자가 뒤돌아 이건 샹송이야 아가씨, 하고 단호하게 속삭인 뒤 고개를 돌렸다. 페도라는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데 정말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가 오른손을 올려 가슴 부근을 꼭 쥐더니 툭 하고 가볍게 무릎을 꺾어 쓰러지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가 똑같은 모션을 했다. 왼쪽 가슴 위로 손을 얹고 살며시 주먹을 쥔 뒤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바짝 서 있던 잔디가 푹푹 꺼지는 소리가 얕게 들렸다. 움직임 없이 서 있는 것은 수양과 탕집 입구에서 담배를 피우던 택기뿐이었다. 페도라는 곧바로 일어나 정자세를 취했는데 그 과정이 너무나 유연하고 부드러웠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를 따라 할 수 없었다. 그런 일은 노래가 끝날 때까지 반복되었고 사람들은 산을 타기 위해 흩어졌으며 페도라는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잰걸음으로 멀어졌다. 수양은 그날 밤에 페도라를 다시 만났다. 그는 기주와 함께 접이식 침대에 앉아서 사육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페도라는 페도라를 쓰지 않은 채였고 품이 큰 티셔츠와 반바지에 납작한 가죽 슬리퍼를 신었다. 얼굴 끝이 뾰족한 데다 길쭉하고 마른 몸을 가지고 있어서 물 위에서 흔들리는 수생식물 같은 모습이었다. 침대 옆 의자에는 박 순경이 등을 둥그렇게 말고 앉아 기주의 스도쿠를 대신 채우고 있었다. 수양은 그 모습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저것이 진짜인가 생각했다. 날이 더웠으므로 휴게소에 들러 과일과 빙과류를 사 오던 길이었고 기주가 수양을 발견하고서 손을 흔들었기 때문에 그들 넷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기주야 택기는 어디 있냐. 사육장에. 또 토끼 잡으러 갔냐. 그래야 내일 팔지. 그렇긴 하지. 수양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들었다. 페도라가 수양에게 수양씨 반갑습니다 하자 수양이 네 페도라씨, 하고 대답했다. 페도라씨와 박 순경님은 왜 여기에 있나요. 저는 지금 박 순경의 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요. 그날부터요. 수양은 페도라의 어조에서 어느 해안지역을 떠올렸으나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다. 기주는 수양에게 페도라가 극장에서 일했다고 일러 주었고 수양은 배우이시군요, 하며 페도라를 바라보았다. 페도라는 그렇다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닌 것도 같다고 대답했다. 박 순경은 수양의 노란 장바구니에서 크림 맛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더니 수양의 칼로 참외를 깎아 탁자 위에 한 조각씩 올려 두었다. 모두 참외를 아작아작 씹어 먹었다. 박 순경은 시간 간격을 두고 참외 다섯 개를 깎아 냈는데, 넷은 그것을 모조리 해치웠다. 탁자 한쪽에 쌓인 참외 껍질이 아주 얇게 깎인 모양새여서 박 순경은 그런 일에 소질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페도라는 수양이 페도라씨, 하고 부를 때마다 턱 끝을 당기며 조금씩 새는 웃음을 참았다. 한때 자신이 그런 별명으로 불렸다고 했다. 그래서 배우라고요 아니라고요. 극장은 극장인데 영화를 보여 주는 극장은 아니고요…. 카바레라고 더 많이 부르던데요…. 그러면 가수인가 보군요. 그것도 애매한 것이 나는 노래에도 소질이 있었지만 다른 것을 조금 더…. 페도라는 관광지에 있는 관광 카바레 출신으로, 밤무대 가수를 노렸으나 실력이 그만큼은 되지 못해서 코미디와 차력을 하다가 나중에는 가수 뒤에서 춤을 추는 댄서가 되었다. 그는 주로 샹송 가수의 뒤편에서 팔다리를 부드럽게 흔들며 흐느적거리는, 춤이라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춤을 추었다. 노래의 분위기에 맞춰 페도라를 쓰고 실크 셔츠를 입었으므로 전체적으로 잠들기 직전인 사람이 몽롱한 정신으로 침실이나 거실을 슥슥 걸어 대는 느낌이었다. 샹송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것과는 별개로 카바레에서 잘 통하는 장르는 아니었으니 샹송을 부르던 여자 가수와 페도라가 무대에 올라가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체로 에이급 무대가 시작되기 전에 잠깐 세워지거나 펑크 난 공연을 메우기 위해 급조하는 식이었다. 원형 무대를 둘러싸고 앉거나 서거나 춤추거나 하며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이미 정신이 나간 상태여서 이런저런 욕을 하고 술이나 음식 던지기를 좋아했으며 샹송 가수와 페도라에게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짧은 공연을 마치면 유령처럼 사라지던 샹송 가수와 페도라가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게 된 것은 어느 날 페도라가 춤을 추다 크게 미끄러졌기 때문이었다. 그의 춤에는 정교함이나 정신 집중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았으니 그는 늘 언제쯤 이따위 춤을 그만두게 될 것인가 골몰하며 춤을 추었다. 그 일은 다만 페도라의 정신이 다른 데 있었고 밑창이 닳아 본드 칠을 한 그의 구두가 미끄러운 무대 바닥을 견디지 못해 생긴 불상사였을 뿐이지만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페도라가 마치 허공에서 날아온 강렬한 펀치를 맞고 쓰러진 사연 있고 가련한 남자로 보였다. 그가 쓰러져 있는 동안 샹송 가수는 엉덩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클라이맥스를 불렀다. 샹송 가수는 주로 앙리코 마시아스의 ‘추억의 솔렌자라’를 불렀는데 그것은 프랑스의 민요를 빌려 만들어진 노래였고 그날 샹송 가수가 부르던 노래 역시 그것이었다. 아무래도 민요라는 것이 공동체적이면서도 신비스러운 것이라… 라고 페도라는 덧붙였다. 그 노래는 세계적으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인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사람들은 들어 보지도 못했을 곳이 솔렌자라였지만 어느새 솔렌자라는 모두에게 추억의 솔렌자라가 되어 있었다. 페도라가 쓰러지자 사람들이 무대를 주시하기 시작했고 이내 샹송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흥얼거렸다. 무대 아래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안내요원은 두 손을 입가로 모은 뒤 야 이 새끼야 계속해, 계속하라고. 멈추지 마!라고 외쳤다. 안내요원과 페도라는 가끔 함께 술을 마신 적이 있다. 그가 주춤거리며 일어서자 누군가 휘파람을 불었고 누군가는 소리를 질렀다. 그날부터 샹송 가수와 페도라는 ‘덜떨어진 듀오’로 불리며 완벽한 B급이 되었다. 페도라는 완벽한 B급이 된 이후로 춤을 그만두고 마임을 했다. 주된 특기는 역시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것이었고 그중에서도 ‘화살 맞는 남자’를 가장 잘했다. 어떤 식으로 화살을 맞게 되는지는 매번 달라졌기 때문에 ‘덜떨어진 듀오’가 무대에 오르면 페도라는 먼저 무대 앞으로 한 발짝 나서서 말했다. 오늘은 도망치다 화살을 맞는 소년입니다 이번에는 사랑하는 사람 대신 화살을 맞는 남자입니다 하는 식이었다. 페도라는 관광 카바레의 유명 인사가 되어서 ‘덜떨어진 듀오’가 아닌 ‘페도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카바레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이미 페도라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어떤 이유로 화살을 맞는 콘셉트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어졌다. 무엇보다 페도라 역시 그 일을 자꾸만 반복하다 보니 정말로 자신이 화살을 수없이 맞아 본 가슴 아픈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화살을 맞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일어나느냐였는데, 사람들은 원하는 것이 많았다. 화살을 맞고 쓰러진 뒤에 재빨리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자세였다. 그 외에도 아주 천천히 일어나거나 몸을 조금씩 굴려 일어나거나 하는 많은 방식이 있었다. 화살을 맞는 모습이 리얼하게 느껴지는 것보다도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는 일이 중요했다. 크고 동그란 무대를 둘러싼 사람들은 무대 앞 바리케이드에 달라붙어 페도라를 향해 다트를 던지는 듯한 가벼운 자세로 툭툭 한 손을 뻗거나 활시위를 당기는 척했고 그러면 페도라는 타이밍을 노려 바닥으로 주저앉아야 했다. 일어나! 일어나! 일어나! 사람들이 외치는 순간 알맞은 자세로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다. 어느 틈에 관광 카바레 포스터에는 깊고 검은 페도라를 쓰고 하관만을 드러낸 페도라가 매력적으로 미소 짓는 측면 모습이 들어섰다. 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페도라는 무조건 일어난다’였다. 사람들이 ‘화살 맞는 남자’를 원한 것은 물론이고 페도라 역시 그런 일에 사로잡혔으므로, 그는 넉넉한 실크 셔츠 대신 흰색 쫄쫄이만을 입고 무대에 서게 되었다. 쫄쫄이는 페도라가 자세를 달리할 때마다 미세하게 꿈틀거리는 근육을 치밀하게 보여 주었다. 무대 조명 아래에서 길쭉하고 마른 페도라는 석고상처럼 보였다. 페도라는 그날 아침 택기의 탕집 앞에서 ‘화살 맞는 남자’를 시도할 때 입은 양복이 박 순경의 것이라고 했다. 가장 작은 사이즈를 찾느라고 고생했습니다. 그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기주는 페도라를 향해 떼돈을 벌었냐고 물었다. 물론 그렇지요. 페도라가 답했다. 페도라가 점차 이름을 알리면서 샹송 가수는 잊히게 되었다. 그녀는 카바레에서 완전히 떠나기로 한 날 분장실로 페도라를 불러내었고 그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자다가 화살이나 맞아라…. 그는 그날의 분장실과 샹송 가수를 상기하며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끝내줬지요. 그는 잠시간 굉장한 화살을 맞은 기분을, 그것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화살이라는 기분을 온몸으로 느꼈고 ‘페도라’로 사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는 이제 밝은 낮부터 일하는 직업을 얻고 싶어졌으므로 골목길에 커피숍을 차렸는데, 그곳은 분명 커피숍으로 시작했으나 나중에는 또 다른 카바레가 돼 버리고 말았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종종 무리 지어 커피숍에 들렀다. 그들은 테이블에 앉아 페도라가 내린 커피를 음미하고 얌전히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반복하다 어느새 에이프런을 두른 바리스타 페도라의 구역을 침범했고, 손수 커피를 내려 마신 뒤 커피값과 팁을 금고에 채워 넣기 시작했다. 장소는 달라졌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페도라는 또다시 화살 맞는 남자가 되어서 쓰러졌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카바레의 단골들은 매일 아침 일찍 경직된 얼굴로 찾아와서 페도라의 쇼를 관람한 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하고 돌아갔다. 커피숍을 접고 책 대여점과 노래 연습장을 차례로 열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끝으로 번 돈을 모두 까먹은 페도라가 백화점 주차요원이 되었을 때는 그가 들고 있던 주홍색 경광봉마저 화살이 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도망쳤고 그렇게 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그들은 아주 캄캄한 시간까지 파라솔 아래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줄곧 무덥고 눅눅했다. 페도라의 이마에서 땀이 죽죽 흘러내려 턱 끝에 매달렸다. 기주는 비비탄총을 매만졌고 수양은 사육장 천장에 달린 노란 조명을 바라봤다. 박 순경이 수양씨 아직도 칼을 파신다고요, 하고 물었다. 정말 이상하시네 나한테 왜 자꾸 그러세요. 수양은 억울한 기분으로 되물었다. 저 사실 산을 잘 탑니다. 순경님이 산을 잘 타는데 나더러 어쩌라고요. 저도 린치족이었습니다. 뭐라고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박 순경은 코끝을 조금 긁적이다 또다시 수양의 장바구니를 뒤적였다. 이제는 깎아 먹을 참외도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날씨가 참 덥네요 같은 말만 몇 번 더 했다. * 페도라는 매일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나타났고 사람들은 새천년 체조를 하는 대신 화살 맞는 사람들이 되어 갔다. 쓰러졌다 일어나는 순간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모두 흥분한 모습으로 크게 숨 쉬었다. 방수 앞치마를 두른 택기도 종종 수양과 나란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주로 산 타는 사람들 한복판에서 왼쪽 가슴을 그러쥐고 쓰러지는 기주를 구경했다. 택기야 기주가 제일 열심인 거 아냐. 쟤가 얼마나 땀이 없는데 저렇게 축축해지다니. 택기는 가만히 기주를 보다 사육장으로 걸어 들어가서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시디플레이어의 노래는 한 시간가량 반복 재생되었으므로 사람들은 한 시간 동안 화살 맞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수양은 이른 오전마다 택기의 탕집 앞에 서서 기주와 페도라를 번갈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다. 그런 뒤에는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갔다. 페도라는 일이 끝난 후에 시디플레이어를 챙겨 신속하게 걸었다. 아무래도 박 순경과 함께 아침을 먹기 위한 속도일 거라고 수양은 생각했다. 페도라의 ‘화살 맞는 남자’가 또다시 유명해지자 화살 맞는 사람이 되겠다는 이들은 끊임없이 늘어났다. ‘화살 맞는 산악 동호회’ 슬로건이 걸린 전세버스가 페도라를 찾아온 날에는 분반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먼저 맞는 조와 나중에 맞는 조로 나뉘었다. 그날의 페도라는 이전보다 땀을 많이 흘렸고 모든 일을 마친 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쪽으로 걸어가는 수양을 불러 세웠다. 수양씨, 칼을 파는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다 알면서 왜 그러세요. 페도라가 입가를 우물우물 달싹였다. 나를 죽여 주십시오…. 수양은 그 순간 몹시 울고 싶어졌다. 나는 칼 파는 사람이지 칼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하고 말한 뒤 침을 삼켰다. 잘 알고 있습니다. 페도라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깊게 미소 지었다. 수양은 바로 그 미소가 한때 관광 카바레 포스터 속에 자리했던 그의 모습임을 알 수 있었다. 수양씨, 나는 이제 평생 이렇게 살게 되었습니다. 페도라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졌다. 페도라의 속도가 아주 느렸기 때문에, 수양은 그의 크기가 도저히 작아지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시 걸었고 ‘명산 앞 간이 휴게소’에 앉아 만두를 베어 먹다 다리를 덜덜 떠는 린치족과 눈이 마주쳤다. 이봐, 한가하면 우리랑 놀지 그래? 우리는 꽤 괜찮은 사람들이라고. 나는 칼 파는 사람이다…. 어쩌라고! 크게 외친 린치족이 도망쳤다. 흐트러진 플라스틱 의자를 보던 수양은 애매한 기분이 되어서 린치족의 목소리를 되새겼다. * 페도라가 자취를 감춘 어느 아침에도 시디플레이어는 잔디밭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산 타는 사람들과 기주는 화살 맞는 사람이 되기 위해 착실히 열을 맞췄다. 기주가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을 때 택기가 사육장 밖으로 뛰어나왔다. 수양은 사육장 바깥으로 몸을 내민 잿빛 토끼를 단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너는 그때 그 토끼구나. 너는 지금까지 계속 거기에 있었구나…. 잿빛 토끼 뒤로 몇 마리의 토끼들이 튀어나와 잔디밭 위에 선 사람들 사이를 헤집었다. 빠르고 부드러운 움직임이었다. 오랫동안 화살 맞기를 훈련한 기주는 교묘한 움직임으로 발밑의 토끼를 피할 수 있었으므로, 끊임없이 화살을 맞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정면을 바라보는 자세를 취했다. 사람들은 이리저리 고꾸라지다 분산되었다. 몇몇이 토끼를 잡기 위해 두 손을 죄며 바닥 가까이 몸을 숙였고 토끼는 매끄러운 몸짓으로 벗어났다. 택기가 기주의 비비탄총을 손에 들었지만 비비탄이 다 떨어져 틱틱 소리만 났다. 제법 많이 사라진 토끼 때문에 택기는 한동안 탕집 문을 닫았다. 박 순경은 꽤 오랜 시간 페도라를 찾다 ‘명산 앞 간이 휴게소’ CCTV에 찍힌 그의 마지막 흔적을 확인한 뒤 조용해졌다. 화면 속에 무엇이 있었는지는 끝내 말하지 않았다. 기주야 너는 이제 화살을 맞지 않니. 나는 이제 다 해냈어. 화살 맞는 사람들은 드문드문 찾아오다 발길을 끊었다. 페도라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그에 대한 모든 것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수양은 이제 페도라의 옆얼굴이나 자세, 목소리와 같은 것들을 묘연한 실루엣만으로 떠올렸다. 그러고는 택기와 잠을 자거나 트램펄린을 타거나 칼을 갈았다. 깰 생각 없이 느슨하고 풀어진 얼굴로 잠을 자는 기주의 뺨 위로, 수양은 그들이 아주 처음 만난 날처럼 손가락을 얹었다가 뗐다. 박 순경은 새로 마련한 자신의 과도로 참외를 깎았다. 그는 매일 누군가 내버려 둔 스도쿠를 채워 넣는 데 몰두했는데, 어떤 날에는 작은 탄성과 함께 저기에 토끼가, 하며 잔디밭 어딘가를 가리켰다. 저건 진짜 토끼야, 진짜다. 작게 속삭인 수양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러나 방수 앞치마를 한쪽 어깨에 걸친 택기가 탕집 처마 아래에 서서 그곳을 바라보기만 했으므로 수양은 걸음을 멈추었다.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들레헴의 별/미술평론가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베들레헴의 별/미술평론가

    성모 마리아가 허물어진 외양간에서 세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있다. 늙은 요셉도 마리아 옆에서 동방박사를 맞고 있다. 세 동방박사는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따라 길을 떠났고 별이 멈춘 데서 어머니와 갓난아기를 발견했다. 이들은 아기에게 예물을 바치고 경배했다. 중세 이래 동방박사는 인생의 세 시기를 상징하고, 세계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존재로 생각됐다. 성모 앞에 무릎을 꿇은 붉은 옷의 노인은 서구를 상징한다. 돌 위에는 금화가 가득 든 그릇이 놓여 있다. 짙은 수염의 중년 남자는 이슬람 지역을 대표한다. 붉은 벨벳 모자를 쓰고 모피로 가장자리를 댄 코트를 입었다. 시종이 유황이 든 컵을 건네주고 있다. 오른쪽 거무스름한 젊은이는 아프리카 지역을 대표한다. 금실로 짠 문양이 있는 붉은 옷 위에 녹색 외투, 손에는 몰약 단지를 들었다. 이 그림은 교회 제단화였지만 지금은 당대 모습을 읽을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동방박사가 걸친 호화로운 옷과 소지한 물건은 화가가 살던 플랑드르 지역의 물질적 풍요를 말해 준다. 이 시대의 서구인들은 이슬람, 아프리카 세계와의 교류가 잦았지만, 인종차별 개념은 아직 없었다. 인종차별이 사회적으로 노골화된 것은 17세기 노예무역이 시작된 후부터다. 인간을 가축처럼 매매하고 부리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검은 피부를 지닌 사람들을 열등한 종족으로 낙인찍은 것이다. 뚫린 벽 너머로 플랑드르식 가옥과 전원이 보인다. 나무에 푸른 잎이 무성하다. 성경에 예수 탄생과 동방박사 얘기는 있지만, 날짜나 날씨에 대한 언급은 없다. 전통적으로 동방정교회는 12월 25일에, 서구 기독교는 1월 6일에 동방박사의 방문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전근대 화가는 소재 선택의 자유가 없었고,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그림을 그렸다. 소재는 성서나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온 일화, 왕의 행적, 초상화 정도로 한정돼 있었다. 주문자는 자기가 돈을 댄 그림이 경쟁자가 돈을 댄 다른 그림보다 그럴싸하기를 원했으므로 화가는 이미 누차 다루어진 소재를 조금씩 변형해 작품을 제작했다. 그래서 전근대 회화는 얼핏 보면 다 그게 그거 같지만, 뜯어보면 숨은그림찾기처럼 재미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 ‘제주음식점대표 살해’ 피의자 모두 구속....주범은 주민증도 도용해 배를 탔다

    ‘제주음식점대표 살해’ 피의자 모두 구속....주범은 주민증도 도용해 배를 탔다

    제주 유명 음식점 대표 살인사건의 피의자 3명 모두 구속됐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20일 주범 김씨과 주범 아내 이씨는 살인 혐의, 피해자와 가까운 지인 박씨는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리고 제주지방법원은 이날 오후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제주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6일 제주 유명 음식점을 운영해 온 50대 여성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붙잡힌 50대 남성 김모씨로부터 “미리 갈아입을 옷과 신발을 챙겨갔다”는 진술을 받아냈다. 범행 당일인 지난 16일 제주시 오라동 범행 장소 입구 등에서 찍힌 폐쇄회로(CC)TV를 보면 김씨는 계획범행의 모습이 찍혔다. 이 영상을 보면 모자와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김씨의 한 손에 지그재그 무늬가 그려진 종이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런데 3시간 뒤 집을 빠져 나오는 영상을 보면 다시 가방을 들고 있는 모습이 찍혔다. 살해현장을 빠져나올때도 너무나 태연하게 나와 걸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김씨는 범행 직후 갖고 나온 피해자 휴대전화를 인근 다리 밑에 던져 버리고, 택시를 타고 용담 해안도로에 내려 챙겨온 신발과 옷을 모두 갈아 입었다. 이어 다시 택시를 타고 제주동문재래시장 인근에서 하차했으며 택시 요금은 모두 현금으로 지불한 것으로 확인됐다. 피해자 주거지 인근 다리 밑에 버린 휴대전화는 경찰이 수거해 본청이 포렌식 조사하고 있다. 휴대전화가 망가진 상태여서 복구가 가능할 지는 불투명하다. 김씨는 복잡한 시장 안을 10여 분간 배회하다가 대기하던 아내 이모씨의 차를 타고 제주항으로 가 차량을 완도행 배편에 싣고 제주도를 벗어났다. 특히 김씨 부부는 지난 15일과 16일 제주로 오가는 배편을 끊었을 당시 아내 이씨는 본인의 주민등록증을 사용했지만, 김씨의 경우 다른 사람 신분증을 도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여객선 승선권 구매를 아내 이씨가 담당한 점 등으로 미뤄 이씨를 공범으로 보고 있다. 범행 이튿날인 17일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를 통해 김씨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동선을 추적했다. 김씨 신원을 특정한 결정적인 단서는 아내 이씨의 SUV 차량이었다. 경찰은 차량 번호를 추적해 명의자를 확인하고 수사망을 좁혀 19일 거주지인 경남 양산에서 김씨 부부를 검거했다. 김씨는 살인 혐의를 인정한 상태다. 경찰은 특히 숨진 여성과 가까운 관계였던 박씨가 지난 8월부터 피해자와 금전 문제로 자주 다투고, 김씨에게 비밀번호를 알려준 점으로 미뤄 박씨가 재산을 노리고 범행을 사주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한편 1차 현장 감식에서는 범행에 사용됐던 둔기 등에서 주범 지문이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과수에 보내 정밀 감식을 하고 있다. 경찰은 주범이 주거지에 들어갔을 당시 끼고 있던 장갑을 벗지 않은 채 범행을 벌여 지문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선한 손길로 칼바람에도 5시간… 국밥 한술이면 싹~[나를 살리는 밥심]

    가장 낮은 곳으로 가장 선한 손길로 칼바람에도 5시간… 국밥 한술이면 싹~[나를 살리는 밥심]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서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이 연말을 알리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첫날을 따라가 봤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서울 명동 거리에서 사라졌던 검은색 구세군 코트도 다시 돌아왔습니다.●돌아가며 ‘냄비’ 지켜야… 한 달여 혼밥 한파가 찾아온 지난 1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 앞. 긴 검정 코트에 검정 모자를 쓴 수십명이 보였다. 모자에 쓰인 글자는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이날부터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까지 명동, 잠실역, 삼성역에서 자선냄비를 알리는 종을 울릴 구세군사관대학원대(석사과정) 학생사관들도 무리에 섞여 있었다. 기자가 이날 동행한 학생사관 5명은 한 팀이 돼 명동을 시작으로 일주일마다 지역을 바꿔 가며 기부를 독려하는 자원봉사에 나섰다. 예전이라면 시청광장에서 장갑과 종을 나눠 주는 시종식 이후 함께 점심을 먹고 한 달간의 각오를 되새기겠지만 코로나19로 이런 자리는 없어졌다. 대신 나눠 준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남겨 놓고 따로 식사하기로 했다. 봉사를 지도하는 윤주석 구세군사관대학원대 교수는 “12월엔 기숙사 아침 식탁에도 소고기뭇국이나 곰국 같은 뜨끈한 국물이 나온다”면서 “밖에서 오랜 시간 버텨야 하다 보니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당가는 직장인들과 연말 쇼핑을 하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 10여분을 돌아본 뒤에야 두세 명씩 나눠 앉을 자리를 겨우 찾았다. 기자와 함께 앉은 황성혜(40)씨는 “한 팀이어도 돌아가면서 냄비를 지켜야 하다 보니 한 달 동안 ‘혼밥’을 각오해야 한다”면서 “오늘은 첫날이라 그래도 같이 먹어서 좋다”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았다. 황씨는 고향인 부산에서도 구세군 자선냄비를 지키는 자원봉사를 했지만 서울에선 처음이라고 했다.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코트에도 따로 누비를 하며 단단히 대비했다. 밖으로 나서자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12월 첫날인데도 서울 낮 최고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명동은 지하철 역사 등 실내가 아닌 야외에 자선냄비를 설치해 고된 지역으로 꼽힌다. 윤 교수는 “두 시간씩 할 수 있을까”라며 팀원들을 돌아봤다. 이에 함보라(37)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승합차 트렁크에서 빨간색 강철 냄비가 든 가방을 꺼내 들더니 망설이지 않고 명동성당 앞과 명동예술극장 앞 사거리로 향했다. 함씨는 “미리 답사를 했다”고 말했다. 장비들이 꽤 묵직한 탓에 과거에는 사전 답사를 하면서 냄비를 지탱하는 삼각대를 맡길 상가를 찾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가게에 점주가 아닌 단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만 있어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명동 거리는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10곳 중 1곳꼴로 가게가 공실이었다.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는 주위가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그늘이 졌고 바람도 더 세게 불었다. 2시간마다 교대하는 대신 1시간 30분씩 바꾸기로 했다. 첫 타자로 나선 송혁성(39)씨는 처음에는 우리은행 앞에 자리를 잡았다가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예술극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씨의 손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트리로 향했던 행인들의 눈길이 빨간색 자선냄비로 쏠리기 시작했다.●외국인 관광객들도 온정의 손길 “구세군 자선냄비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작은 힘이 어려운 이웃에게 큰 힘이 됩니다.” 첫 기부자는 부모님과 부산에서 온 엄서진(9)양. 아버지가 쥐여 준 2000원을 들고 뛰어온 엄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명동을 찾은 신예은(16)씨도 “호떡을 사 먹고 남은 돈”이라며 1000원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냄비에 넣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오랜만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온정의 손길을 보탰다. 일본 나라현에 사는 재일교포 3세 신준우(77)씨와 노계순(73)씨 부부도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노씨는 “나는 ‘메이드 인 재팬’이지만 한국인”이라며 “한국 뉴스를 자주 보니까 구세군 자선냄비를 잘 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씨는 “몇 년 사이에 한국은 완전히 카드 사회가 됐는데 남대문시장을 가기 전에 마침 환전을 해서 다행”이라며 “사람을 돕는 것 자체로 큰 행복이 아니냐”고 했다.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도 있었다. 명동성당 앞에서 기부한 유모(50)씨는 “어릴 때 냄비를 봤던 생각이 나서 소액이지만 기부했다”고 말했다. 백발의 남성은 “우리가 젊었을 때부터 (자선냄비가) 있었는데 그때는 노느라 바빴다”면서 “금액이 뭐가 중요하겠냐”며 조용히 돈을 넣고 발길을 재촉했다. 인파는 점차 늘었지만 자선냄비를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자 손발이 얼얼해졌다. 기자는 급히 수면 양말을 사서 신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황씨와 함씨는 종을 들지 않은 손을 계속 접었다 피고 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몸을 녹였다. 그때 종이 가방을 든 두 명이 자선냄비 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이 주머니에서 접힌 지폐 뭉치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5만원 두 장, 1만원 두 장…. 1000원짜리 지폐를 찾는가 싶더니 5만원 두 장을 냄비 속에 쑥 집어넣었다. 가진 돈 12만원 중 10만원을 기부한 것이다. 이윤정(47)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 때부터 그 해 처음 만난 자선냄비에 가진 돈의 80~90%를 내고 있다”면서 “특히 연말에는 모두가 따뜻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영업 방해된다는 노점상들 고함도 예기치 못한 상황도 벌어졌다. 오후 3시 30분쯤부터 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붕어빵, 핫도그 등을 파는 노점으로 가득 찼다. 사전 답사를 낮에 했기에 야간에 주로 영업하는 노점을 미처 알 수 없었다. “같이 먹고살아야지 어떡하냐”며 옆자리를 내주는 상인도, “구세군에 왜 여기에 있냐”며 고함을 지르는 상인도 있었다. 결국 팀원들이 회의한 끝에 사거리 중앙에서 약 20m 떨어진 우리은행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씨는 “상인들의 생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면서 “실내에서는 종도 더 작은 걸 쓴다”고 말했다. 연말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명동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변했기에 자선 모금을 하기엔 녹록지 않게 됐다. 하지만 처음 자선냄비가 시작된 곳인 만큼 지난해를 빼곤 늘 검은 코트를 입은 학생사관들이 이곳을 지켰다.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을 돕는 거리 모금이 위축됐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 2019년 27억 500만원이던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은 2020년 18억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2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 13일까지 거리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었다. ●팬데믹으로 기부 위축됐다 회복 뚜렷 꼬박 5시간을 길에서 보낸 뒤 교대 시간에 명동교자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소회를 나눴다. 두툼한 현금 봉투나 금반지를 냄비에 넣었다는 일화가 세간에 회자하지만 이날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은 조금 달랐다. 캄보디아에서 지난 2월 한국에 왔다는 학생사관 소완메따(33)는 “긴장한 탓에 어깨도 굳고 양말에 구멍도 났지만 이렇게 힘을 보탤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면서 “예전에는 왜 더 넉넉한 사람이 더 기부를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한 어린이가 동전을 여러 개 꺼내더니 그중 가장 큰 500원을 골라서 냈는데 놀랍고 고마웠다”고 했다. 오후 8시까지 기부는 계속됐다. 길거리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선하고 가세요. 추운 겨울날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 주세요. 사랑의 자선냄비입니다.”
  • 연말 알리는 구세군 자선냄비…한파는 뜨끈한 국물로 날렸다

    연말 알리는 구세군 자선냄비…한파는 뜨끈한 국물로 날렸다

    일상에 균열이 생겨도, 예기치 못한 일로 무너져 내려도 먹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 눈물 속에서 먹던 음식이 ‘솔푸드’로 기억되기를, 살기 위해 억지로 먹은 밥이 일상을 되찾는 먼 훗날 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우리는 오늘도 밥심으로 삽니다. 서울신문이 연말을 알리는 구세군 자선냄비의 첫날을 따라가 봤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해 서울 명동 거리에서 사라졌던 검은색 구세군 코트도 다시 돌아왔습니다. 한파가 찾아온 지난 1일 서울 중구 시청광장 앞. 긴 검정 코트에 검정 모자를 쓴 수십명이 보였다. 모자에 쓰인 글자는 ‘구세군’(The Salvation Army). 이날부터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까지 명동, 잠실역, 삼성역에서 자선냄비를 알리는 종을 울릴 구세군사관대학원대(석사과정) 학생사관들도 무리에 섞여 있었다. 기자가 이날 동행한 학생사관 5명은 한 팀이 돼 명동을 시작으로 일주일마다 지역을 바꿔 가며 기부를 독려하는 자원봉사에 나섰다. 예전이라면 시청광장에서 장갑과 종을 나눠 주는 시종식 이후 함께 점심을 먹고 한 달간의 각오를 되새기겠지만 코로나19로 이런 자리는 없어졌다. 대신 나눠 준 샌드위치를 간식으로 남겨 놓고 따로 식사하기로 했다. 봉사를 지도하는 윤주석 구세군사관대학원대 교수는 “12월엔 기숙사 아침 식탁에도 소고기뭇국이나 곰국 같은 뜨끈한 국물이 나온다”면서 “밖에서 오랜 시간 버텨야 하다 보니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찾은 롯데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당가는 직장인들과 연말 쇼핑을 하러 온 시민들로 붐볐다. 10여분을 돌아본 뒤에야 두세 명씩 나눠 앉을 자리를 겨우 찾았다. 기자와 함께 앉은 황성혜(40)씨는 “한 팀이어도 돌아가면서 냄비를 지켜야 하다 보니 한 달 동안 ‘혼밥’을 각오해야 한다”면서 “오늘은 첫날이라 그래도 같이 먹어서 좋다”며 콩나물국에 밥을 말았다. 황씨는 고향인 부산에서도 구세군 자선냄비를 지키는 자원봉사를 했지만 서울에선 처음이라고 했다. 옷을 여러 겹 껴입고, 코트에도 따로 누비를 하며 단단히 대비했다. 밖으로 나서자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12월 첫날인데도 서울 낮 최고기온이 영하 1.2도까지 떨어졌다. 명동은 지하철 역사 등 실내가 아닌 야외에 자선냄비를 설치해 고된 지역으로 꼽힌다. 윤 교수는 “두 시간씩 할 수 있을까”라며 팀원들을 돌아봤다. 이에 함보라(37)씨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승합차 트렁크에서 빨간색 강철 냄비가 든 가방을 꺼내 들더니 망설이지 않고 명동성당 앞과 명동예술극장 앞 사거리로 향했다. 함씨는 “미리 답사를 했다”고 말했다. 장비들이 꽤 묵직한 탓에 과거에는 사전 답사를 하면서 냄비를 지탱하는 삼각대를 맡길 상가를 찾곤 했다. 하지만 요즘은 대부분 가게에 점주가 아닌 단시간 일하는 아르바이트생만 있어 부탁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명동 거리는 활기를 되찾고 있지만 10곳 중 1곳꼴로 가게가 공실이었다. 명동예술극장 앞 거리는 주위가 높은 건물로 둘러싸여 그늘이 졌고 바람도 더 세게 불었다. 2시간 교대 대신 1시간 30분씩 바꾸기로 했다. 첫 타자로 나선 송혁성(39)씨는 처음에는 우리은행 앞에 자리를 잡았다가 대형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예술극장 앞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씨의 손에서 맑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하자 트리로 향했던 행인들의 눈길이 빨간색 자선냄비로 쏠리기 시작했다. “구세군 자선냄비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웁시다. 여러분의 작은 힘이 어려운 이웃에게 큰 힘이 됩니다.” 첫 기부자는 부모님과 부산에서 온 엄서진(9)양. 아버지가 쥐여 준 2000원을 들고 뛰어온 엄양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친구들과 명동을 찾은 신예은(16)씨도 “호떡을 사 먹고 남은 돈”이라며 1000원짜리 지폐를 지갑에서 꺼내 냄비에 넣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오랜만에 한국 여행을 왔다가 온정의 손길을 보탰다. 일본 나라현에 사는 재일교포 3세 신준우(77)씨와 노계순(73)씨 부부도 3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노씨는 “나는 ‘메이드 인 재팬’이지만 한국인”이라며 “한국 뉴스를 자주 보니까 구세군 자선냄비를 잘 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신씨는 “몇 년 사이에 한국은 완전히 카드 사회가 됐는데 남대문시장을 가기 전에 마침 환전을 해서 다행”이라며 “사람을 돕는 것 자체로 큰 행복이 아니냐”고 했다. 추억을 되새기는 이들도 있었다. 명동성당 앞에서 기부한 유모(50)씨는 “어릴 때 냄비를 봤던 생각이 나서 소액이지만 기부했다”고 말했다. 백발의 남성은 “우리가 젊었을 때부터 (자선냄비가) 있었는데 그때는 노느라 바빴다”면서 “금액이 뭐가 중요하겠냐”며 조용히 돈을 넣고 발길을 재촉했다. 인파는 점차 늘었지만 자선냄비를 찾는 이는 많지 않았다. 30분이 지나자 손발이 얼얼해졌다. 기자는 급히 수면 양말을 사서 신었지만 자원봉사자들은 계속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황씨와 함씨는 종을 들지 않은 손을 계속 접었다 피고 발을 조금씩 움직이며 몸을 녹였다. 그때 종이 가방을 든 두 명이 자선냄비 쪽으로 다가왔다. 한 명이 주머니에서 접힌 지폐 뭉치를 꺼내 세기 시작했다. 5만원 두 장, 1만원 두 장…. 1000원짜리 지폐를 찾는가 싶더니 5만원 두 장을 냄비 속에 쑥 집어넣었다. 가진 돈 12만원 중 10만원을 기부한 것이다. 이윤정(47)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돈을 벌 때부터 그 해 처음 만난 자선냄비에 가진 돈의 80~90%를 내고 있다”면서 “특히 연말에는 모두가 따뜻하게 보내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도 벌어졌다. 오후 3시 30분쯤부터 노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거리는 순식간에 붕어빵, 핫도그 등을 파는 노점으로 가득 찼다. 사전 답사를 낮에 했기에 야간에 주로 영업하는 노점을 미처 알 수 없었다. “같이 먹고살아야지 어떡하냐”며 옆자리를 내주는 상인도, “구세군에 왜 여기에 있냐”며 고함을 지르는 상인도 있었다. 결국 팀원들이 회의한 끝에 사거리 중앙에서 약 20m 떨어진 우리은행 앞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송씨는 “상인들의 생업이기 때문에 최대한 손해를 끼치면 안 된다”면서 “실내에서는 종도 더 작은 걸 쓴다”고 말했다. 연말이면 누구나 가고 싶어 하던 명동은 이제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지로 변했기에 자선 모금을 하기엔 녹록지 않게 됐다. 하지만 처음 자선냄비가 시작된 곳인 만큼 지난해를 빼곤 늘 검은 코트를 입은 학생사관들이 이곳을 지켰다. 최근 2년 동안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을 돕는 거리 모금이 위축됐지만 점차 나아지고 있다. 2019년 27억 500만원이던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모금액은 2020년 18억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2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 13일까지 거리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1% 늘었다.꼬박 5시간을 길에서 보낸 뒤 교대 시간에 명동교자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며 소회를 나눴다. 두툼한 현금 봉투나 금반지를 냄비에 넣었다는 일화가 세간에 회자하지만 이날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은 조금 달랐다. 캄보디아에서 지난 2월 한국에 왔다는 학생사관 소완메따(33)는 “긴장한 탓에 어깨도 굳고 양말에 구멍도 났지만 이렇게 힘을 보탤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일”이라면서 “예전에는 왜 더 넉넉한 사람이 더 기부를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젠 금액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한 어린이가 동전을 여러 개 꺼내더니 그중 가장 큰 500원을 골라서 냈는데 놀랍고 고마웠다”고 했다. 오후 8시까지 기부는 계속됐다. 길거리에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선하고 가세요. 추운 겨울날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 주세요. 사랑의 자선냄비입니다.”
  • “황희찬, 왜 브라톱 입고 뛰나요?”…EPTS, ‘브라톱’ 오해 순간

    “황희찬, 왜 브라톱 입고 뛰나요?”…EPTS, ‘브라톱’ 오해 순간

    ‘역전골’ 넣고 세레머니한 황희찬주심은 ‘옐로카드’ 꺼냈다특이한 모양 검은 나일론 조끼 ‘눈길’전자 성능 추적 시스템(EPTS)으로 알려져 포르투갈전 결승골의 주인공 황희찬(26·울버햄프턴)이 골망을 흔든 뒤 옐로 카드를 받았다. 국제축구연맹(FIFA)는 2004년부터 경기시간 관리를 위해 상의 탈의 세리머니 시 옐로카드를 받는 규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3일 0시(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포르투갈과 2022 카타르월드컵 H조 조별리그 최종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터진 황희찬의 결승골에 힘입어 2-1 역전승을 거뒀다. 이날 황희찬은 후반 21분 이재성과 교체 투입됐다. 황희찬은 부상으로 앞선 조별리그 2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음에도 황희찬은 투혼을 발휘했고, 후반 추가 시간 손흥민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망을 흔들었다. 황희찬은 결승골을 터뜨린 뒤 유니폼 상의를 벗고 관중석을 향해 달려갔다. 이 모습을 본 주심은 황희찬에게 다가가 옐로카드를 꺼내들었다. 황희찬은 2018년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에서도 상의를 탈의하는 골 세리머니를 했다가 경고를 받은 바 있다. 당시 안정환 MBC 해설위원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빨리 옷을 입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그러나 이날 세리머니에 대해서는 “뭐 (경고) 받아도 돼요. 상관없습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황희찬 조끼는 ‘전자 성능 추적 시스템(EPTS)’…위치 추적까지 가능 이때 황희찬이 입고 있던 특이한 모양의 검은 나일론 조끼가 눈길을 끌었다. 경기 후 온라인상에는 “황희찬이 입고 있는 나일론 조끼는 뭘까요?”, “왜 상의를 벗었을까”, “황희찬, 왜 브라톱 입고 뛰나요?”, “건강 조끼인 줄”등 반응이 나왔다. 황희찬이 착용하고 있는 나일론 조끼는 전자 성능 추적 시스템(EPTS)으로 불리는 웨어러블 기기다. EPTS에는 위치 추적 장치(GPS) 수신기, 자이로스코프(회전 운동 측정 센서), 가속도 센서, 심박 센서 등 각종 장비와 센서가 탑재돼 있다. 감독과 코치진들은 EPTS를 통해 400가지 데이터를 얻어 선수 투입과 전략 구성 등에 반영한다. 이는 삼성전자 ‘갤럭시워치’와 애플 ‘애플워치’에도 적용된 센서들이다. GPS 수신기는 선수들의 활동량과 범위를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이 수신기는 자동차 리모콘키 모양을 하고 있어 부착된 웨어러블 장비를 착용하면 등이 불룩하게 튀어나온다. 또 자이로스코프 센서는 선수들의 자세 변화를 파악한다. 가속도 센서는 축구 선수들 스프린트의 거리와 횟수, 지속 시간과 경로 등 데이터를 수십, 분석한다. 특히 경기력 향상뿐만 아니라 피로로 인한 부상이나 심장 이상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할 수도 있다.EPTS는 축구뿐 아니라 다른 스포츠에서도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선수 컨디션을 개인의 감각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명확하게 수치·계량화할 수 있어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EPTS는 스포츠테크 시장에서 가장 각광 받는 분야로도 꼽힌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마켓앤마켓 자료를 보면 지난해 82억 달러(10조 6764억원)인 EPTS 시장은 5년 뒤인 2026년 165억 달러(21조 483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에서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대표팀이 훈련 과정에서 처음 EPTS를 도입했다.한편 이날 황희찬은 경기 뒤 인터뷰에서 “1, 2차전에서 경기에 못 나와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동료들이 뛰는 걸 보면서 정말 눈물이 많이 나왔던 것 같다”며 “이제야 도움이 돼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결승골에 대해 “흥민이 형이 오늘은 네가 하나를 만들 것이다, 너를 믿고 있다고 했다”며 “흥민이 형이 드리블하는 것을 보고 (기회가) 온다는 확신이 있었다. 매우 좋은 패스여서 쉽게 넣을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 대표팀은 6일 오전 4시 도하에 있는 974스타디움에서 G조 1위 브라질을 상대로 8강 진출에 도전한다.
  • “김주애 패딩 맞나요?”…北 길거리 여성들 패션 보니

    “김주애 패딩 맞나요?”…北 길거리 여성들 패션 보니

    최근 대외적으로 처음 공개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둘째 딸 김주애가 화제가 되면서 그가 당시 입었던 패딩 점퍼가 북한에서 유행이다. 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 6면에 롱 패딩을 착용한 북한 여성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이는 지난달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를 현지 지도하는 자리에서 첫 등장한 김주애가 입은 흰색 패딩 차림과 흡사하다.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패딩 자체가 고급스럽고 누구나 입어보고 싶은 옷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로망하는 옷을 입었다는 사실이 북한에서 좀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김주애는 이후 아버지와 ICBM 개발·발사 공로자와 기념사진 촬영 행사에 동행했을 때는 과거 어머니와 유사하게 고급스러운 모피를 덧댄 검은 코트와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했다. 북한에서 모피 코트와 패딩은 다소 가격대가 있는 제품이다. 정보 당국에 따르면 2009년 결혼한 김정은은 슬하에 세 자녀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 태어난 첫째는 아들, 2013년 태어난 둘째가 이번에 등장한 김주애라는 것이다. 셋째의 경우 성별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2017년 태어난 것으로 파악된다.“김주애 공개 이유? 가장 외모 뛰어나서…애정도 큰 듯”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일본 아사히신문 외교전문기자는 지난달 3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딸의 모습을 또다시 등장시킨 북한의 노림수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김씨 일가를 영국이나 일본 왕실 같은 권위 있는 왕조로 만들고 싶다는 의도가 있다”고 밝혔다. 마키노 기자는 “김정은의 경우 선대와 달리 권력투쟁을 경험하지 않고 최고 지도자가 됐는데, 최고지도자가 된 근본은 세습과 백두산 혈통밖에 없다”며 “특히 요즘에는 ‘열린 왕실’이 세계적인 흐름이기 때문에 김정은도 딸을 공개하면서 세계 왕실과 똑같은 권위나 격이 있다고 강조하려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북한이 과거에도 영국이나 일본 왕실을 따랐던 적이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20년 전에 북한이 일본과 영국 같은 왕실의 자료를 모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북한은 1967년 유일사상체계, 1972년 주체사상을 각각 도입하고 최고지도자 신격화를 진행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매체들이 김주애를 두고 ‘존귀하신 자제분’이라 칭한 것에 대해서는 “북한이 공식 보도에서 존칭을 쓰는 건 최고지도자의 가족, 즉 로열패밀리밖에 없다”며 “이것도 일본 황실에 대한 보도를 참고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둘째만 모습을 드러낸 점에 대해 “외모가 가장 뛰어난 자식을 고른 결과라고 할 수도 있고, (김주애가) 부모님의 큰 애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면서도 “적어도 현시점에서 김주애가 후계자로 육성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일각에서 제기되는 후계자설에 선을 그었다.
  • 국가애도기간 노래 거부…이찬원 ‘폭언 봉변’ 무대 다시

    국가애도기간 노래 거부…이찬원 ‘폭언 봉변’ 무대 다시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맞지만, 노래는 하지 않는다. 행사장에서 함성 및 박수는 자제해주길 바란다.” 가수 이찬원이 자신이 초대가수로 초청된 행사장에서 “이태원 참사에 따른 국가애도기간이라 노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봉변을 당했던 그 무대로 다시 향한다. 이찬원은 지난달 30일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열린 제1회 테마파크 소풍 가을 대축제에 참석했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열린 행사에서 이찬원은 “현재 국가애도기간이라 노래는 할 수 없다. 정말 죄송하다”고 관객에 양해를 구했다. 검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이찬원은 “지난 밤 안타까운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다”며 “좋은 공연을 선사하기로 약속을 드렸으나 신나는 노래를 즐기기에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적절치 않다는 판단 하에 (노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부 관객이 야유를 퍼부으며 분위기가 급속히 악화됐고, 한 남성은 무대에서 내려온 이찬원에게 다가가 폭언을 내뱉었다. 이 과정에서 이찬원 매니저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등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찬원 소속사 측은 “행사 주최 측과 이미 노래를 하지 않기로 조율을 끝낸 상황이었다”라며 “관객 항의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9일 다시 무대에 오르기로 이찬원은 다시 그 무대를 찾아 노래를 부르고 오기로 했다. 이찬원 측은 9일 오후 논란이 됐던 그 무대에 다시 서기로 결정했다. 이와 관련 연예기자 출신 이진호는 “이찬원의 화순행은 본인의 결단”이라며 “소속사에 이유를 물었더니 ‘과정이 어떻게 됐건 노래를 못 불렀다. 국가애도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팬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한번 가는 게 도의적으로 맞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이진호는 “(이찬원이) 다시 화순으로 가는 것은 대단한 부분이다. 경제적 이익을 놓고 봤을 때 정말 놀라운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소속사는 안전상 문제에 대해 행사 주최 측에 다시 얘기했다고 한다. 행사비를 받지 않고 오직 팬들을 위해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소속사도 이찬원의 결정에 매우 놀랐다”고 전했다.
  • 박은빈, 처음 보는 무표정 출국…검은 옷차림

    박은빈, 처음 보는 무표정 출국…검은 옷차림

    핼러윈데이를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사망했다. 오는 5일까지 국가애도기간인 가운데,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대세가 된 배우 박은빈이 검은색 옷을 입고 출국하며 애도했다. 박은빈은 4일 ‘2022 PARK EUN-BIN Asia Fan Meeting Tour-EUN-BIN NOTE : BINKAN In Manila’ 일정 참석 차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태국 방콕으로 출국했다. 태국 팬들을 만나기 위해 가는 길이었지만, 박은빈은 평소처럼 밝게 웃지 않았다. 검은색 상하의와 같은 색의 운동화를 신고 수수한 모습으로 나타난 박은빈은 현장에 있던 취재진과 팬에게 목례한 후 공항으로 바로 들어갔다.
  • 유실물만 1.5t… 주인 잃은 휴대전화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유실물만 1.5t… 주인 잃은 휴대전화는 여전히 울리고 있었다

    이태원 압사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센터에는 짝을 잃은 신발과 피 묻은 티셔츠, 망가진 안경 등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 주는 유실물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옷과 가방에는 신발에 밟힌 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흰색 운동화와 반팔 티셔츠는 피로 물들어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 줬다. 용산경찰서는 사고 당시 이태원 일대에서 가방 124개와 옷 258벌, 신발 256켤레, 신발 66짝, 전자제품 등 기타 물품 156개까지 총 1.5t가량을 수습해 유실물센터에 진열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유실물센터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바닥과 책상에 나열된 유실물을 둘러보며 유품과 소지품을 찾아갔다. 주인을 잃은 휴대전화에서는 여전히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40분쯤 젊은 남성과 여성 두 명과 함께 유실물센터에 들어선 중년 부부는 옷가지가 나열된 바닥을 뒤적이다 익숙한 물건을 찾았다. 이내 검은색 정장 재킷을 주워든 중년 여성은 “이거 맞는 것 같은데. 이거 맨날 입던 거잖아”라고 말하며 옷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온 중년 남성 역시 안경을 벗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유실물 중에서는 자주색 꽃 장식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화려한 치마와 드라큘라 망토, 만두 장식이 올려져 있는 모자 등 익살스러운 핼러윈 의상뿐 아니라 캐릭터 모자를 쓰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오후 3시 30분쯤 눈물을 흘리며 유실물센터로 들어온 여성은 “남자친구의 물건”이라며 휴대전화 속 사진과 유실물을 대조하다 신발 한 켤레를 경찰이 가져다 준 흰색 상자에 담았다. 이어 회색 후드티를 집어든 여성은 옷을 품에 안고 한참 동안 흐느꼈다. 중환자실에 있는 20대 남성의 신발을 찾으러 온 어머니와 형은 “30분 정도 심정지가 왔다가 누군가 발견해서 심폐소생술을 했고 다행히 심장은 뛰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라며 “‘현장에서 통제가 더 잘 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생존자들 역시 사고 당시의 충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실물센터에 있는 소지품을 찾아갔다. 인파 아래쪽에 깔려 있다 구출된 장모(21)씨는 “친구와 함께 사람들에 휩쓸려 사고가 일어난 골목으로 갔는데, 누군가 ‘어어’ 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쓰러졌다”며 “주변 상인들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구해 주려 했지만 너무 꽉 껴서 빠지지 않았고 주변에서 정신을 잃지 말라고 물을 계속 뿌려줬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저를 빼주려고 하면서 ‘가방 잡지 말고 손을 놔라. 안 그러면 죽는다’고 해서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살아나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희생된 분들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털어놨다. 이날 오후 5시까지 찾아간 유실물은 34점이다. 경찰은 오는 6일 오후 6시까지 유실물센터를 운영한다.
  • 즐거운 사진 옆엔 피 묻은 신발···유실물센터가 보여주는 참혹했던 이태원

    즐거운 사진 옆엔 피 묻은 신발···유실물센터가 보여주는 참혹했던 이태원

    6일까지 이태원 참사 유실물센터 운영가방, 신발 등 사고 현장서 1.5t 수거“이거 맨날 입던 거잖아” 가족 오열웃는 얼굴 사진 한 켠엔 피묻은 신발이태원 압사 참사 나흘째인 1일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유실물센터에는 짝을 잃은 신발과 피 묻은 티셔츠, 망가진 안경 등 당시 급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유실물이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 옷과 가방에는 신발에 밟힌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흰색 운동화와 반팔 티셔츠는 피로 물들어 사고 당시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줬다. 용산경찰서는 사고 당시 이태원 일대에서 가방 124개와 옷 258벌, 신발 256켤레, 신발 66짝, 전자제품 등 기타 물품 156개까지 총 1.5t가량을 수습해 유실물센터에 진열했다.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유실물센터를 찾아와 조심스럽게 바닥과 책상에 나열된 유실물을 둘러보며 유품과 소지품을 찾아갔다. 주인을 잃은 휴대전화에서는 여전히 벨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이날 오후 1시 40분쯤 젊은 남성과 여성 두 명과 함께 유실물센터에 들어선 중년 부부는 옷가지가 나열돼 있는 바닥을 뒤적이다 익숙한 물건을 찾았다. 이내 검은색 정장 재킷을 주워든 중년 여성은 옷을 살펴보다 “이거 맞는 것 같은데. 이거 맨날 입던 거잖아”라고 말하며 옷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함께 온 중년 남성 역시 안경을 벗고 연신 눈물을 훔쳤다. 유실물 중에서는 자주색 꽃 장식이 군데군데 달려 있는 화려한 치마와 드라큘라 망토, 만두 장식이 올려져 있는 모자 등 익살스러운 핼러윈 의상뿐 아니라 캐릭터 모자를 쓰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있었다. 오후 3시 30분쯤 눈물을 흘리며 유실물센터로 들어온 여성은 “남자친구의 물건”이라며 휴대전화 속 사진과 유실물을 대조하다 신발 한 켤레를 경찰이 가져다 준 흰색 상자에 담았다. 이어 회색 후드티를 집어든 여성은 옷을 품에 안고 한참 동안 흐느꼈다.중환자실에 있는 20대 남성의 신발을 찾으러 온 어머니와 형은 “30분 정도 심정지가 왔다가 누군가 발견해서 심폐소생술을 했고 다행히 심장은 뛰지만 의식은 없는 상태”라며 “‘현장에서 통제가 더 잘 됐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생존자들 역시 사고 당시의 충격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유실물센터를 찾아 소지품을 찾아갔다. 인파 아래쪽에 깔려 있다 구출된 장모(21)씨는 “친구와 함께 사람들에 휩쓸려 사고가 일어난 골목으로 갔는데, 누군가 ‘어어’ 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람들이 쓰러졌다”며 “주변 상인들이 겨드랑이에 손을 넣고 구해주려고 했지만 너무 꽉 껴서 빠지지 않았고 주변에서 정신을 잃지 말라고 물을 계속 뿌려줬다”고 돌아봤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와 가방을 들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뒤에서 저를 빼주려고 하면서 ‘가방 잡지 말고 손을 놔라. 안 그러면 죽는다’고 해서 가방을 잃어버렸다”며 “살아나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희생된 분들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안 좋다”고 털어놨다. 이날 오후 5시까지 찾아간 유실물은 34점이다. 경찰은 오는 6일 오후 6시까지 유실물센터를 운영한다.
  • 무솔리니 ‘로마진군’ 100년…伊 지지자들, 행진하며 ‘파시스트 경례’

    무솔리니 ‘로마진군’ 100년…伊 지지자들, 행진하며 ‘파시스트 경례’

    이탈리아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지자 수천 명이 파시즘 정권을 일으킨 ‘로마 진군’ 100주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를 벌였다. 로마 진군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이끈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전위활동대 검은셔츠단이 1922년 일으킨 무혈 쿠데타다. 당시 검은셔츠단 5000명은 네 방향에서 로마로 진입, 무솔리니가 3일 만에 권력을 장악하면서 파시스트 정권이 성립하는 계기가 됐다.30일(현지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현지 경찰은 이날 무솔리니 출생지이자 가족 묘가 있는 에밀리아로마냐의 작은 언덕 마을 프레다피오에서 군중 약 2000명이 행진했다고 밝혔다. 반면 주최 측은 4000명 이상이 모였다고 주장했다. 무솔리니 묘는 매년 방문객 수만 명이 찾는 곳 중 하나다. 그러나 행진에 참여한 사람들은 ‘여자 무솔리니’로 불리는 극우 조르자 멜로니(45) 신임 총리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등 이전과 다른 분위기를 보였다.퍼레이드 주최자 미르코 산타렐리는 안사 통신에 “만일 루시퍼(악마)가 이탈리아에서 좌파를 물리쳤다면 난 루시퍼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멜로니 정부가 들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깃발과 거대한 이탈리아 국기를 들고 행진하는 군중은 무솔리니의 악명 높은 검은셔츠단에 동의를 표하듯 검은색 옷을 입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걸었다. 주최 측이 하지 말라고 지시했음에도 군중 일부는 오른팔을 들어 파시스트식 경례를 하기도 했다.무솔리니의 증손녀 오르솔라 무솔리니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국가가 원하고 우리가 절대 실망하지 않은 지도자(무솔리니)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우리는 여기 있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동생 비토리아와 함께 이번 행진에 참석했다.   이탈리아를 파시스트 정권으로 이끈 무솔리니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45년 4월 파르티잔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군중에 훼손된 뒤 밀라노 광장에 매달려졌다. 오늘날 이탈리아 법은 파시즘에 대한 사과 또는 정당화를 금지하고 있지만, 이는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탈리아 전역에 그를 뜻하는 일두체(II Duce·지도자)가 곳곳에 새겨져 있고 그의 초상화는 일부 정부 부처 벽에 여전히 결려 있다. 올해 ‘로마 진군’ 100주년은 극우 정당으로 신파시즘적 뿌리의 ‘이탈리아의 형제들’을 이끄는 멜로니 정부의 새 시작과 맞물려 있다. 멜로니 총리는 다만 무솔리니 정권과 거리를 두려 해왔다. 그는 “비민주적인 정권에 대해 동정심을 느낀 적이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1938년 유대인에게서 권리를 빼앗기 시작한 파시즘 인종법은 이탈리아 역사상 최저점”이라고 비판했다. 프레다피오는 1944년 10월 28일 나치 및 파시스트 세력으로부터의 마을 해방을 축하하기 위한 반파시스트 집회가 열린 곳이기도 하다.
  • “이태원 참사, 노래할 수 없다” 이찬원…관객 폭언 봉변

    “이태원 참사, 노래할 수 없다” 이찬원…관객 폭언 봉변

    가수 이찬원이 이태원 참사에 따른 국가애도기간이라 노래할 수 없다고 말했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이찬원은 30일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열린 제1회 테마파크 소풍 가을 대축제에 참석했다. 이태원 참사 다음 날 열린 행사에서 이찬원은 “현재 국가애도기간이라 노래는 할 수 없다. 정말 죄송하다”고 관객에 양해를 구했다. 애도의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이찬원은 “지난 밤 안타까운 이태원 압사 사고가 있었다”며 “좋은 공연을 선사하기로 약속을 드렸으나 신나는 노래를 즐기기에는 시기가 시기인지라 적절치 않다는 판단 하에 (노래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찬원 측은 앞서 팬카페를 통해서도 “행사에 참석하는 것은 맞지만, 노래는 하지 않는다. 행사장에서 함성 및 박수는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한 바가 있다.관객은 이 같은 이찬원의 결정을 박수로 응원했다. 하지만 일부 관객이 야유를 퍼부으며 분위기가 급속히 악화했다. 특히 한 남성은 무대에서 내려온 이찬원에게 다가가 폭언을 내뱉었다. 이 과정에서 이찬원 매니저의 멱살을 잡고 밀치는 등 몸싸움까지 벌였다. 이에 대해 이찬원 소속사 측은 31일 “행사 주최 측과 이미 노래를 하지 않기로 조율을 끝낸 상황이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관객 항의가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며 진화에 나섰다.지난 29일 밤 이태원 해밀턴 호텔 인근 골목에서는 핼러윈을 즐기러 나온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형 압사 참사가 발생했다. 31일 오전 6시 현재까지 확인된 사상자는 사망자 154명, 부상자 149명 등 총 303명이다. 전날 오후 11시 기준 286명보다 17명 증가했다. 사망자 중 153명의 신원확인은 완료된 상태이며 나머지 1명에 대한 신원확인 작업이 진행 중이다. 부상자 가운데 중상자는 33명, 경상자는 116명이다. 중상자는 36명에서 3명 줄었고, 경상자는 96명에서 10명 증가했다. 사망자 수는 변동이 없다. 사상자에는 외국인도 포함됐다. 외교부는 30일 오후 9시 기준 이태원 참사로 인한 외국인 사망자는 14개국 26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란 5명, 중국 4명, 러시아 4명, 미국 2명, 일본 2명, 프랑스·호주·노르웨이·오스트리아·베트남·태국·카자흐스탄·우즈벡·스리랑카 각 1명씩이다.
  • [핵잼 사이언스] 1살 나이에 미라가 된 귀족 아기…사인은 비타민 D 결핍

    [핵잼 사이언스] 1살 나이에 미라가 된 귀족 아기…사인은 비타민 D 결핍

    불과 1살 남짓에 미라가 된 귀족 가문 출신 아기의 사인이 400년 만에 밝혀졌다. 최근 독일 뮌헨-보겐하우젠 아카데미 클리닉 병리학 연구팀은 아기 미라를 CT(컴퓨터단층촬영)를 통한 가상 부검을 실시한 결과 사망 시기와 사인, 신분 등을 밝혀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아기 미라는 과거 오스트리아 빌트베르그 성 지하실에서 발견됐다. 이 지하실에는 오래 전 숨진 가족 구성원들이 정교하게 장식된 금속 관에 안치돼 있었는데, 이중 유일하게 표시가 없는 나무 관에서 발견된 것이 바로 이 아기 미라였다.이번에 연구팀은 아기 미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CT 등 첨단 기술로 분석한 결과 사망 시 나이가 생후 12~16개월 임을 밝혀냈다. 또한 연구팀은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를 분석해 아기 미라가 남자이고 검은 머리카락이며 나이에 비해 과체중인 사실도 확인했다. 특히 어린 나이에 생을 다한 미라의 사인도 드러났다. 연구팀은 뼈를 분석해 아기가 비타민 D 결핍 시 나타나는 구루병을 앓았으며 이는 폐렴으로 이어졌다고 결론지었다. 연구를 이끈 안드레아스 네를리히 교수는 "폐렴이 직접적인 사인이 될 수 있지만 그보다 영양결핍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면서 "비만과 심각한 비타민 결핍은 평소 잘 먹지만 거의 완전한 햇빛 노출 부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르네상스 시대 귀족은 피부를 하얗게 하기 위해 햇빛 노출을 피했는데 이는 아기도 마찬가지였다"고 덧붙였다.그렇다면 이 아기 미라는 과연 누구일까? 이에대해 연구팀은 17세기 귀족 가문인 슈타르헴베르크 백작 중 한 사람의 아들로 추측했으며 이중 1625년 혹은 1626년 사망한 레이차드 빌헬름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네를리히 교수는 "아기 미라가 입었던 옷을 분석한 결과 값비싼 실크로 만든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면서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1550~1635년 사이에 묻힌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어 "당시 슬픔에 빠진 가족은 일부러 아기를 이름이 같은 그의 할아버지 옆에 묻었다"고 덧붙였다.       
  • 가성비 투어, 함께갈래?

    가성비 투어, 함께갈래?

    고물가 시대다. 코로나가 몰고온 후폭풍이다. 주머니 사정은 날로 팍팍해져도 여행은 포기할 수 없다. 이럴 땐 그저 ‘짠내투어’가 최고다. 수박에 소금 뿌리면 더 달콤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알뜰 여행자를 위해 가성비 높은 여행지 몇 곳을 모았다.●검은 그랜드캐니언을 걷는다-강원 철원 한탄강주상절리길 철원의 한탄강 주상절리는 유네스코에 등재된 지질 명소다. 용암이 흐르며 만든 협곡이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검은색 버전’이라 할 만큼 독특한 비경을 펼쳐낸다. 한탄강주상절리길은 이 검은 협곡 안에 조성된 걷기길이다. 바위 절벽 중턱에 낸 잔도를 걸으며 화산활동이 만든 한탄강 일대의 독특한 지형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 길이는 3.6㎞다. 교량 13개, 스카이 전망대 3곳, 전망쉼터 10곳을 조성해 전망과 스릴을 만끽하고 각자 체력에 맞게 걷기와 휴식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출입구는 순담, 드르니 등 두 곳이다. 각자 접근이 수월한 곳을 들머리 삼으면 된다. 출발지로 돌아가려면 평일엔 택시, 주말엔 무료 셔틀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입장료(어린이 3000원~어른 1만원) 가운데 절반은 철원사랑상품권으로 되돌려 준다. 입장 시간은 오전 9시~오후 4시이며 동절기(12월 1일~이듬해 2월 28일)에는 오후 3시에 마감한다. 순담매표소 인근의 고석정 주변에 대규모 꽃밭이 조성됐다. 함께 돌아볼 만하다.●만 원짜리 두 장의 행복-충북 제천 가스트로 투어 제천시관광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제천 가스트로 투어’는 저렴한 비용으로 높은 만족도를 기대할 수 있는 미식 프로그램이다. 1만 9900원에 5가지 맛을 즐기며 제천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다. 제천의 명물 빨간오뎅과 ‘덩실분식’ 찹쌀떡, 약초를 넣은 약선 음식까지 제천의 식문화를 고루 만난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A코스는 찹쌀떡을 시작으로 하얀민들레비빔밥, 막국수, 샌드위치, 빨간오뎅 순서로 맛본다. B코스는 황기소불고기를 먹은 뒤 막국수, 승검초단자와 한방차, 빨간오뎅, 수제 맥주를 차례로 즐긴다. 수제 맥주가 포함된 B코스는 젊은층이 많이 찾는다. 참가 인원은 4~20명이고 예약제로 운영된다. A·B코스 가격은 동일하다. 4인이 제천을 여행할 경우, 토박이 기사가 안내하는 관광택시를 이용하면 효율적이다. 5시간 동안 1인당 1만 2500원으로 제천 곳곳을 누빈다.●‘마음은 부자’ 되는 소박한 산골 여행-전북 남원 지리산둘레길 월평마을~매동마을 남원 월평마을과 매동마을을 잇는 지리산둘레길은 산골의 가을 풍경과 주민의 소박한 삶이 만나는 곳이다. 지리산둘레길 인월~금계 구간(3코스)에 속했다. 길은 남천을 따라 흐르다 숲과 고개 넘어 다시 마을과 이어진다. 월평에서 매동마을까지 느리게 걸어 4시간 남짓 걸린다. 임진왜란의 사연이 서린 중군마을, 물 맑은 수성대 등이 둘레길에 담긴다. 배너미재를 넘으면 숲길이 끝나고, 지리산을 병풍 삼아 장항마을 당산 소나무가 서 있다. 매동마을은 지리산둘레길 여행자가 묵어 가는 대표 마을이다. 민박에 머무는 데 4만~6만원 선(2인 기준), 산나물이 푸짐한 식사가 7000~8000원이다. ‘백만 불짜리’ 풍경과 할머니가 내주는 막걸리, 대추와 사탕 한 줌, 함박웃음이 곁들여진다. 소박한 산골 여행에 마음은 지리산처럼 넉넉한 부자가 된다.●바다 위 보랏빛 섬 여행-전남 신안 퍼플섬 신안 퍼플섬은 안좌도의 부속 섬인 반월도와 박지도를 통틀어 부르는 이름이다. 마을 지붕부터 도로, 휴지통, 식당 그릇까지 보랏빛 일색이다. 보라색 해상보행교가 안좌도와 반월도, 박지도를 잇는다. 안좌~반월 간 문브릿지 380m, 반월~박지 간 퍼플교 915m, 박지~안좌 간 퍼플교 547m다. 보행교만 따라 걸어도 족히 30분은 걸린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를 즐기려면 만조에 맞춰 가는 것이 좋다. 간조에는 보행교 아래로 너른 갯벌이 펼쳐진다. 섬에 아기자기한 포토 존과 해안일주도로가 조성됐고 마을호텔과 식당도 있다. 보라색 옷이나 신발, 모자 등을 착용하면 입장료(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1000원)가 면제된다.●입장료·주차비 없는 ‘한국관광의 별’-경남 창원 우포늪 우포늪은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국내 최대 규모의 내륙 습지다. 2014년엔 ‘한국 관광의 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도 입장료와 주차비가 없다. 우포늪생태관에서 진행하는 에코누리 프로그램을 꼼꼼히 챙기면 더 실속 있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우포늪생태체험장과 창녕박물관 역시 무료다. 우포잠자리나라는 우포늪에 서식하는 잠자리 등 다양한 곤충에 대해 배우는 체험 학습관이다. 입장료 50%는 창녕사랑상품권으로 돌려준다. 토끼먹이체험장, 산토끼동요관, 레일썰매장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갖춘 산토끼노래동산은 저렴한 입장료(1000~2000원)로 종일 시간을 보내기 좋다.●지갑이 얇아도 괜찮아!-‘가성비’ 넘치는 부산 시장 투어 대도시 부산에서도 1만원이면 배를 든든히 채우고 쇼핑까지 즐길 수 있다. 국제시장은 각종 생필품부터 조명, 원단, 인테리어 소품 등 다양한 물품을 취급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국제시장’ 촬영지인 ‘꽃분이네’, 값싸고 푸짐하게 한 끼를 맛볼 수 있는 ‘실비거리’도 놓쳐선 안 된다. 국제시장 맞은편의 부평깡통시장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각종 식재료를 비롯해 의류, 잡화, 수입품이 주를 이룬다. 전국 최초로 개장한 부평깡통야시장에서는 밤늦도록 갖가지 주전부리가 맛있는 냄새를 풍긴다. 바다에 접한 자갈치시장은 펄떡이는 활어와 싱싱한 수산물이 가득하다. 시장 투어 시 온누리상품권이나 제로페이(모바일)를 사용하면 할인 혜택이 있다.
  • ‘강도 피해’ 주호민 그날… “불치병 자식 있다며 6억 요구”

    ‘강도 피해’ 주호민 그날… “불치병 자식 있다며 6억 요구”

    웹툰작가인 주호민씨가 자택에 침입한 강도에게 상해를 입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가운데 주씨가 해당 사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주씨는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치 채널에서 생방송을 통해 “5개월 전에 저희 집에 강도가 들었다”면서 “굳이 알릴 일인가 싶어서 말을 안 했는데 기사가 떴더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기사에는 웹툰작가 A씨로 나오는데, 누가 읽어도 나다. 나 밖에 없다”고 웃으면서 “주변에서 저 아니냐고 물어보길래 맞다고 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더 많은 사람들한테 (연락오기 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카페에 글을 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씨는 “지금으로부터 다섯 달 전이다”며 그날의 일을 자세히 밝혔다. 그는 “저는 평소처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면서 “아내와 아이들은 잠에서 덜 깬 상황이었다. 저는 부엌에서 냉동 고등어를 해동시키면서 뒷마당과 이어진 문을 열었는데, 방충망이 확 열리더니 누가 들어왔다”고 회상했다. 주씨는 “(남자는) 검은 배낭을 메고 흉기를 들고 왔다. 흉기의 길이는 12cm, 등산용 나이프 같았다”면서 “저는 너무 놀라서 뒤로 자빠졌다. 강도는 자빠진 제 위에 올라타서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고 설명했다. 너무 놀란 주씨는 머릿속으로 ‘몰래카메라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주씨는 “너무 비현실적이었다”면서 “사실 그 상황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미 손을 베였다. 무의식적으로 그걸 막았던지 잡았던지 한 것 같다”고 밝혔다. 주씨는 “강도 아저씨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주더라. 읽어보니까 자기 자식이 불치병에 걸려서 미국에서 치료해야 한다고 하더라”라면서 “6억원이 넘게 필요하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 돈이 없어서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대화를 시도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본인은) 찌를 생각이 없었는데 제가 피를 흘려서 당황한 게 눈에서 느껴졌다. 그래서 말을 하면 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 때까지는 불치병에 걸렸다는 걸 믿었기 때문”이라면서 “그 사이에 아내가 깨서 경찰에 신고를 해놨더라. 경찰 열분이 테이저건을 들고 와서 바로 진압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찰 조사에서 강도의 거짓말이 드러났다. 자식이 불치병에 걸려 치료비가 필요하다는 것은 거짓말이었다. 주씨는 “경찰서에 조서를 쓰러 갔는데, 형사님이 알려주시길 불치병 있는 자식이 있다는 게 거짓이었고, 주식 투자해서 진 빚이었더라”며 “저는 진짜로 도와줄 생각도 있었는데, 그때는 좀 화가 나더라”고 말했다. 이어 “비록 불치병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8살 된 아이가 있는데 정작 아빠가 왜 집에 못 오는지를 모르고 있더라. 아무래도 용서를 해줘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어서 합의해줬다”며 합의해 준 이유를 전했다. 주씨는 “죄명이 강도상해인데, 원래 징역 7년이 나오는 중죄”라면서 “그런데 합의한 것 때문인지 1심에서 3년 6개월로 감형이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주호민은 보안업체의 일처리를 지적했다. 그는 “아무런 사후 조치가 없다. 아침이라 경보는 꺼져있었는데, 사후에 보강하는 것도 없었다”면서 “경찰이 CCTV 자료를 요청하니까 저보고 직접 USB를 준비하라고 하더라. 각성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주호민은 “지금도 흉터는 크게 남아있다. 다행히 신경을 다치지는 않아서 기능은 문제가 없는데, 비가 오면 손목이 욱씬거린다”면서 “다행히 아이들은 상황을 보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 로프 타고 자택 침입…“치밀한 범행 준비”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 신진우)는 지난달 30일 강도상해 혐의로 기소된 A(39)씨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지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주식투자를 하다 실패하자 유명 웹툰작가 주씨에게서 돈을 뺏기로 결심했다. A씨는 지난 5월 유튜브 영상과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주씨의 집 주소를 알아낸 뒤 마당으로 침입했다. 그는 범행 며칠 전 사전 답사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흉기와 검은색 옷, 복면 등을 구매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A씨는 집 앞에서 주씨가 나타나길 기다리다가 이튿날 새벽 옥상 철제 펜스에 로프를 묶어 타고 내려오는 방법으로 자택에 침입했다. A씨는 아침을 준비하던 주씨에게 칼을 휘둘러 손목 등에 약 2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혔다. A씨는 6억 3000만원을 요구했지만, 주씨 아내의 신고로 경찰에 체포됐다. 재판부는 “A씨가 사전에 유명인인 피해자의 주거지를 알아내고 침입 방법을 미리 강구해 두는 등 계획적이고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면서도 “피해자가 A씨와 합의해 처벌을 원하지 않고 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 “머리 차선에 걸치고 일자로 누워”…8차선 도로서 잠든 남성

    “머리 차선에 걸치고 일자로 누워”…8차선 도로서 잠든 남성

    한밤 중 8차선 도로에 누워 잠든 남성이 발견돼 경찰이 출동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는 “도로에서 주무시는 미친 분”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이 게재됐다. 글쓴이 A씨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검은 옷을 입은 남성이 도로에 주차된 대형 트럭들 사이에 누워 있다. 이 남성의 머리는 차선에 걸쳐져 있고, 도로와 구분하기 힘든 검은색 옷을 입고 있어 자칫하면 인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A씨는 “8차선 길인데 머리를 차선에 걸치고 자고 있었다”며 “길을 막고 경찰을 불러서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누구 인생 망치려고 이렇게 자는지”라고 비난했다. 해당 글에 “술 취한 건가요?”라는 댓글이 달리자 작성자는 “그런 것 같다. 경찰이 흔들어 깨우니까 꾸물꾸물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처럼 술에 취해 도로에서 잠들거나 늦은 밤 무단횡단하는 등 운전자의 시야가 제한된 상태에서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보행자를 두고 ‘스텔스 보행자’라고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전국에서 발생한 ‘스텔스 보행자 사고’는 251건이었다. 이런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해마다 20~4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김건희 여사 ‘망사 모자’ 논란에…대통령실 “英왕실 요청”

    김건희 여사 ‘망사 모자’ 논란에…대통령실 “英왕실 요청”

    윤 대통령과 함께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의 ‘망사 베일(면사포) 모자’를 둘러싼 논란에 대해 대통령실이 “영국 왕실의 요청이었다”라고 반박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9일(현지시간) 영국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엄수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장례식에 김건희 여사와 함께 참석했다. 당시 김건희 여사는 장례식 의상으로 망사포가 검정 모자를 착용했다. 검정 망사포는 김 여사의 얼굴 일부를 가리고 있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해당 모자는 왕가 인사나 남편을 잃은 당사자(미망인)만 착용하는 게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또 격식을 중시하는 영국 왕실에 결례를 끼쳤다는 주장도 했다. 노영희 변호사는 김 여사의 장례 패션에 대해 “망사 모자를 포함, 검은색 상복을 세 번이나 갈아입으신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조문은 패싱? 패션쇼가 무색하다”라고 꼬집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1일 여러 언론을 통해 “영국 왕실은 장례식에 참석하는 영부인의 드레스 코드로 검은 모자를 착용해 줄 것을 당부하는 내용을 담은 공문을 보냈다. 이에 김 여사가 검은색 구두와 여성 정장에 망사 베일을 두른 모자를 착용한 것”이라고 밝혔다.“애도용 베일은 장례복장의 핵심” 본래 베일은 남편을 보낸 미망인이나 유가족이 슬픔에 북받쳐 많이 울어 퉁퉁 부은 눈을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관행에서 비롯됐다. 장례미사에서는 김건희 여사 뿐만 아니라, 자이르 볼소나로 브라질 대통령 부인 미셸리 볼소나로 여사도 챙이 달린 검은색 망사 베일을 착용했다. 미국 언론 폭스뉴스와 영국의 인디펜던트는 “왕실 여성의 경우 장례식 당일에 따라야 하는 복장 규정에는 검은색 옷과 검은색 베일을 착용하도록 돼 있다”며 “애도용 베일이라고 하는 검은색 베일은 영국 왕실 장례복장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왕족은 검은 베일을 착용했고, 미국의 재클린 케네디가 남편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과 장례 행렬에서 검은색 베일을 쓴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매체는 “현대에는 왕족만 검은 베일을 착용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진혜원 부부장검사는 “검은 망사가 왕족들만 착용하는 관행이라거나, 미망인이 남편의 장례식에서 착용하는 관행이라는 잘못된 정보가 많다”며 “패션 디자이너 다프네 귀네스가 2010년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처럼, 검은 베일은 아무나 착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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