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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소환 SK에 불똥?… ‘최태원 사면 대가’ 수사 특검에 촉각

    12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 소환되자 SK그룹도 수사 확대 가능성 등을 주시하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특검팀이 2015년 8월 최태원 회장의 사면 과정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화살을 정조준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검은 2015년 8월 10일 복역 중이던 SK 최태원 회장과 김영태 SK 부회장(당시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의 접견에서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한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내용을 검토 중이다. 특검은 ‘왕 회장’은 박 대통령, ‘귀국’은 사면, ‘숙제’는 그에 따른 대가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교도소 접견은 녹음되기 때문에 최 회장과 김 부회장이 민감한 대화를 은어로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김 부회장과 접견한 사흘 뒤인 8월 13일 사면이 결정됐다. SK하이닉스는 사면 직후 46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특검은 사면의 대가성과 관련해 ‘숙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인 의미의 투자·고용 확대 관련 당부일 수도 있는 만큼 확대 해석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특검은 또 SK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111억원을 낸 만큼 최 회장의 사면이 이와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 측은 “최 회장이 사면받을 당시에는 미르·K스포츠재단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전혀 연관이 없다”며 “그해 8월 10일 사면심사 위원회가 개최됐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최 회장이 사면 대상이라는 점이 알려진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녹취록 대화에 대해서는 “당시 광복절 특사가 경제살리기 차원에서 진행된 것인 만큼 최 회장과 SK그룹은 경제활성화 차원에서 투자·채용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책임감을 의미하는 대화”라고 해명했다. 최 회장도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사면 대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을 기부한 게 아니냐는 추궁에 대해 “대가성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출연한 적은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한편, SK텔레콤은 2019년까지 11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겠다고 11일 발표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도 올해 3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고, SK하이닉스도 6~7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SK가 최 회장에 대한 특검 수사 확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잇따라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SK는 “계열사의 투자 계획은 특검 수사와 전혀 관계가 없다”며 “지난해 6월 확대경영회의 이후 변화와 혁신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왔고 이에 따라 각 계열사가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왕 회장이 귀국 결정, 숙제를 내줬다”..., 특검 은어 확보

    “왕 회장이 귀국 결정, 숙제를 내줬다”..., 특검 은어 확보

    “왕 회장은 朴, 귀국은 사면, 숙제는 사면 대가” 특검, 2015년 최태원 접견 녹취록 주목 초긴장 SK, 최태원 사면 거래 대가성 부인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함에 따라 SK그룹도 긴장하는 모습이다. 최태원 회장이 2015년 8월 사면되는 과정에 ‘수상한 거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특검팀이 본격적으로 화살을 겨눌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특검은 김영태 SK 부회장(당시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 2015년 8월 10일 복역 중이던 SK 최태원 회장과의 접견에서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한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내용을 검토 중이다. 여기서 ‘왕 회장’은 박 대통령, ‘귀국’은 사면, ‘숙제’는 사면 대가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특검은 보고 있다. 교도소 접견은 녹음되기 때문에 최 회장과 김 부회장이 민감한 대화를 은어로 주고받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최 회장은 김 부회장과의 접견 사흘 뒤인 8월 13일 사면이 결정됐다. SK하이닉스는 사면 직후 46조원 규모의 반도체 공장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특검은 사면의 대가성과 관련해 ‘숙제’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적인 의미의 투자·고용 확대 관련 당부일 수도 있는 만큼 확대 해석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특검은 또 SK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 111억원을 낸 만큼 사면이 이와 연관성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SK 측은 “최 회장이 사면받을 당시에는 미르·K스포츠재단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전혀 연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CES] 원통형·눈사람형·타이어형… AI 비서 채용공고 연내 뜹니다

    [CES] 원통형·눈사람형·타이어형… AI 비서 채용공고 연내 뜹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5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세계가전전시회(CES) 2017’의 총전시면적은 20만 4386㎡에 달하는데, 넓어서 천만다행이다. 비좁은 곳에 가전업체들을 몰아넣었다면, 올해 대참사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 아마 기업 관계자들은 저마다 “허브로봇”, “알렉사”, “쿠리”, “올리”, “에그”를 외칠테고 전시장 곳곳에서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어요”, “날씨가 좋네요”란 대꾸가 엉키며 쏟아졌을지 모른다. 이같이 엉뚱한 상상을 부를 정도로 올해 CES엔 유독 인공지능(AI) 비서인 ‘홈 로봇’이 대거 등장했다. LG전자의 허브로봇, 아마존의 알렉사, 보쉬가 출자한 벤처 메이필드의 쿠리, 영국 스타트업 이모텍의 올리, 파나소닉의 에그 등이 주인공이다. 그러고 보니 삼성이 지난해 첫선을 보인 뒤 올해 개량한 사물인터넷(IoT) 냉장고 ‘패밀리허브 2.0’에도 음성인식 기능이 탑재됐으니, 냉장고까지 대답 대열에 합류했을 수도 있다. ●아마존 ‘알렉사’ 이정표인 동시에 극복 대상 AI 비서의 원조 격인 아마존의 알렉사는 AI 비서의 ‘이정표’인 동시에 ‘극복 대상’이 됐다. CES에 AI 비서를 새롭게 출품한 기업들은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받았다. 신제품이 알렉사만큼 ‘비서’ 역할을 잘하는지, 또 신제품이 알렉사와 얼마나 차별화된 기능을 갖췄는지 등 양면적인 질문이었다. 알렉사와 같은 제품을 낼 수도, 알렉사를 외면할 수도 없었던 기업들은 일단 AI 비서의 외형을 한 단계 진화시켰다. 원통형 스피커 형태인 알렉스처럼 가전을 제어하고, 일정을 알려주고, 선곡하는 기능을 수행하지만 보다 더 감성적인 디자인을 채택하거나 AI 비서 스스로 움직이게 만들며 차별화를 꾀했다. 로봇이라고 불릴 만한 눈사람 모양 디자인을 가장 먼저 채택한 홈 로봇은 ‘쿠리’이다. 마이크, 듀얼 스피커, 카메라를 탑재한 쿠리는 집을 돌아다니다 배터리가 방전되면 스스로 충전 장소를 찾는다. 이동 중 장애물을 피하는 능력도 갖췄다. 내년 3월쯤 시판될 예정으로 미국에서 699달러에 사전 주문이 시작됐다. 역시 눈사람 모양인 LG 허브로봇도 가전, 조명 등을 제어하는 AI 비서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말을 걸면 LCD 디스플레이로 된 얼굴 표정을 바꿔가며 반응하고, 잠자리 동화를 들려주기도 한다. 허브로봇을 축소한 ‘미니 허브로봇’도 있어 거실엔 허브로봇을, 방마다 미니로봇을 둘 수 있다. 이모텍의 올리는 검은색 타이어 모습이다. “웨이크업”이란 명령어로 올리를 깨우면, 원통 부분이 움직여 반응한다. 말 그대로 달걀 모양인 에그는 가전 제어 등을 위해 작동을 시작하기 전 새가 알을 쪼고 나오듯 윗부분이 분리된다. 가전업체마다 AI 비서를 출시하고, 다양하게 감성적인 디자인을 채택하는 이유는 AI 비서를 ‘판매할 시기’가 눈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실제 CES에서 홈 로봇을 소개한 기업들은 모두 올해 중 시판 방침을 밝혔다. 여러 데이터를 쌓으며 학습하는 딥러닝 방식으로 역량을 키워가는 홈 로봇의 속성 탓에 빨리 시장에 내놓고 사용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게 AI 비서 혹은 홈 로봇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믿음이 퍼지며 출시를 서두르는 측면도 있다. 실제 LG와 레노버는 알렉사를 자사의 홈 로봇에 채택했는데, 알렉사가 2014년 12월 에코란 이름으로 출시된 뒤 다양한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며 성능을 갈고닦았다는 신뢰가 제휴의 바탕이 됐다. ●현대차, 기존 차량 개조한 자율주행 선보여 자율주행차 상용화 역시 완성차 업체들에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BMW와 도요타는 미국 디트로이트 모터쇼 개막 사흘 전인 4일(현지시간) 라스베이거스 만달레나베이에서 열린 CES 기자간담회에서 자율주행 콘셉트카 신차를 공개하기도 했다. BMW는 반도체 업체인 인텔, 모빌아이 등과 함께 자율주행차 ‘BMW i 인사이드퓨처’ 콘셉트카 내부를 공개했는데, 차 속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볼 수 있도록 내부를 설계했다. 운전석 오른편 내부엔 ‘BMW 홀로액티브 터치 시스템’이 탑재돼 화면을 손가락으로 터치하지 않고도 3D로 주행 정보를 조작할 수 있게 했다. 도요타는 문까지 완전한 외관을 갖춘 자율주행 콘셉트카 ‘유이’(愛i)를 공개했다. 보브 카터 도요타 수석 부사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미래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경험에 초점을 맞춰 유이를 개발했다”며 ‘감성적 접근’을 했음을 차별화 지점으로 설명했다. 유이는 운전자와 접촉한 뒤 운전자의 혈압이나 감정 상태를 진단하고, 주행하며 습득한 주변 정보를 운전자가 파악하기 쉽게 앞유리에 표시해 주는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장착했다. 뒤 범퍼를 화면처럼 활용해, 왼쪽 깜빡이를 켜면 깜빡이 점등과 함께 뒤 범퍼에 ‘좌회전합니다’란 내용의 글씨가 새겨졌다. 도요타와 BMW가 콘셉트카를 통해 자율주행차가 도입될 때 달라질 미래상을 보여줬다면, 현대차와 부품업체인 델파이는 기존 차량을 개조해 자율주행하는 솔루션을 CES에서 선보였다. BMW와 현대차 모두 2030년을 자율주행차 상용화 시기로 전망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경제 새 길을 가자] 빠른 실행·열린 소통… 골리앗 삼성, 다윗 스타트업에게 배운다

    [경제 새 길을 가자] 빠른 실행·열린 소통… 골리앗 삼성, 다윗 스타트업에게 배운다

    지난달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멘로파크시(市)의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하드웨어 기술 분야에서 혁신을 주도하는 SSIC는 지난해 9월 완공된 삼성전자 DS(부품)부문 미주 총괄 신사옥에 입주해 있다. ‘ㄷ자’ 모양 건물에 줄지어 붙은 푸른 유리창이 삼성의 상징인 반도체를 떠올리게 한다. 한창 일할 시간인 오후 3시, 유독 한 공간이 시끌벅적하다. 1층에 있는 휴게실 ‘칠존’이다. 문을 열어 보니 파티가 한창이다. 출산을 앞둔 임신부 직원을 위한 ‘베이비 샤워’(출산 환영 파티)다. 한쪽에는 탁구를 치는 무리가 있다. 휴게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검은 커튼을 드리운 수면실이 나타난다. ‘슬립 팟’이라고 부르는 의자형 침대가 있다. 남을 의식하지 않고 낮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식힐 수 있다. SSIC 직원들은 지난달부터 ‘삼성 앳 퍼스트’(제1의 삼성)로 출근한다. ‘삼성 미주총괄 사옥’이라는 멋없는 이름 대신 사내 공모를 통해 회사 애칭을 정했다. 정보기술(IT) 공룡기업은 실리콘밸리 사옥 이름에 한껏 힘을 준다. 구글플렉스, 애플의 인피니트 루프, 페이스북의 해커웨이처럼 말이다. 직원들은 이제야 ‘글로벌 삼성’에 걸맞은 애칭이 생겼다며 반기는 분위기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TV와 스마트폰을 파는 덩치 큰 삼성전자는 지난 3월, 돌연 ‘작은 기업’으로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조직문화를 싹 고쳐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실행하고 열린 소통을 지향하며 지속적으로 혁신하겠다는 ‘스타트업 삼성 컬처혁신’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층층시하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고 과장, 차장처럼 연차 낮은 직원이 임원을 이끄는 팀장을 맡도록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했다. 업무 효율을 위해 습관적인 야근을 줄이고 자유로운 휴가를 보장하는 내용도 포함했다. 실리콘밸리는 삼성이 스타트업 문화를 받아들이는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삼성전자는 이곳에 SSIC와 더불어 미주 연구센터(SRA)와 글로벌혁신센터(GIC)를 삼각 편대로 운영한다. IT 혁신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유망한 스타트업과 교류하며 미래 핵심기술과 인력, 문화를 흡수하려는 것이다. 브랜든 김 GIC 상무는 “삼성처럼 큰 기업이 경쟁사가 아닌 작은 스타트업에서 배우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은 글로벌 업계에서도 흔한 일이 아니다”면서 “직원들에게 혁신적인 새 규칙을 강요하기보다는 스타트업과 함께 일할 기회를 늘려서 변화를 자연스레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SSIC와 GIC의 주요 역할 중 하나는 미래 기술을 확보한 스타트업을 삼성 본사 인력에 소개해 협력 방안을 찾아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미국 현지 스타트업 정신과 일하는 방식이 본사 쪽으로 흘러들어 간다는 얘기다. 삼성전자에서 시작된 조직 혁신은 삼성그룹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고위 임원들은 지난 4월 기업문화를 배우러 삼성전자 실리콘밸리 거점을 찾아 이런 전망에 힘을 실었다. 글 사진 멘로파크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씨줄날줄] 삼성·LG의 반세기 전자전/정기홍 논설위원

    “구 회장, 우리도 전자사업 할라꼬 하네.”(이병철 삼성 회장) “(전자사업이) 남으니까 할라꼬 하제.”(구인회 LG 회장) 1968년 말, 두 회장이 야외에서 담소를 나누던 중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 언급에 구 회장이 벌컥 화를 냈다. 동석했던 이 회장의 장남 맹희씨는 자신이 쓴 ‘묻어둔 이야기’에서 당시 어색했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동향(경남)에다 사돈(구 회장 3남-이 회장의 차녀) 간인 둘의 관계는 이후 틀어졌다. 구 회장은 이어 장남 자경(현 LG 명예회장)씨를 불러 “그쪽에서 그래 하겠다면 우짜것노. 자식을 주고받은 처지인데. 나도 (삼성의) 설탕 사업을 할락하면 못할 거 있나. 하지만 사돈이 하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을 끼다”라고 못박았다. 삼성의 전자사업 진출 과정엔 곡절이 많았다. 전자사업의 진출이 구체화되자 당시 금성사(현 LG전자)를 중심으로 업계의 반대가 심했다. 설상가상으로 박정희 대통령과 이 회장 간의 사이도 원만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박 대통령을 집요하게 설득한 끝에 1969년 삼성산요전기를 만들고, 1970년에 삼성NEC를 설립했다. 맹희씨의 얘기다. “아버지께서 전자와 자동차를 놓고 저울질했고, 전자는 생산품 1g당 부가가치가 17원인데 자동차는 3원 조금 넘는다며 전자를 택했다”고 전했다. 일반사업은 삼성이 1938년 삼성상회(현 삼성물산)를, LG가 1947년 락희화학공업(LG화학)을 세워 9년 앞섰지만 전자사업은 LG(1958년)가 삼성(1969년)보다 11년을 앞섰다. 금성사는 1959년에 국내 첫 라디오를 생산했고 냉장고, 흑백TV 등 대부분의 품목에서 ‘국산 1호’를 기록했다. 삼성의 ‘전자 2등’은 오래갔다. 1972년 들어서야 흑백TV를 독자 생산한다. 하지만 ‘이코노TV’가 인기몰이를 하며 단번에 LG를 위협했다. 반도체와 ‘애니콜 휴대전화 신화’로 큰돈을 번 것은 그다음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엊그제 독일 가전전시회에 참가한 LG전자의 간부 연구원이 삼성전자의 가전 매장에서 세탁기 도어의 연결부(힌지)를 힘줘 눌러 파손해 구설수에 올랐다. LG 측이 문제의 4대를 사면서 해프닝으로 마무리됐다. 삼성 측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입장이다. 조금 과한 느낌이지만 업계에 따르면 연구원들의 경쟁사 매장 점검은 종종 있다고 한다. 두 기업은 단순한 외형 규모를 차치하고 ‘세계 최강’의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맞수였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전자업계 아성이던 일본의 소니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누가 예견했겠나. 전자사업 진입을 놓고 다투었던 두 선대 회장은 세상을 떠났다. 세월도 반세기가 흘렀다. 아이들은 다투면서 크고, 기업도 맞수와 싸우며 진화한다고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보석의 여왕 다이아몬드, 실험실 주름잡다

    다이아몬드만큼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이 또 있을까. ‘변치 않는 영원함’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는 희소성과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보석으로 그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다이아몬드는 땅속에서 얻어지는 모든 종류의 암석 중 가장 단단하다. 이 때문에 금강석(剛石)으로 불린다. 다이아몬드는 끊임없는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많이 발견되는 다이아몬드 원석은 유리에 가까운 조그마한 돌조각에 불과하다. 이를 찾아내고 연마해 순수한 다이아몬드로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시간과 희생이 뒤따른다. 또 독재자들이 내전을 벌이고, 주민들을 무참히 살육하면서 얻은 다이아몬드에 ‘블러디 다이아몬드’(피묻은 다이아몬드)라는 참혹한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보석의 왕인 다이아몬드가 최근 실험실에서도 인기다. 물론 반지로 만들어 끼거나 프러포즈를 하기 위해서는 아니다. 다이아몬드는 지하 200㎞ 이상의 뜨거운 맨틀에서 10억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만들어진다. 이때의 온도는 최소 1500도 이상, 압력은 50kb로 성인남자 4000명의 무게로 밟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맨틀의 마그마가 갑자기 솟아오르면서 킴벌라이트(화산암)에 담겨 지상에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면 이를 캐내는 것이다. 이렇게 전 세계에서 발견되는 다이아몬드는 연간 1억 3000만 캐럿 정도다. 1캐럿의 다이아몬드를 캐내기 위해서는 1500t의 흙을 파내야 한다. ◆매년 인조 다이아 10만㎏ 생산 다이아몬드는 순수한 탄소덩어리다. 탄소 원자들이 전자를 공유하면서 만들어진 정사면체가 연결된 형태다. 물론 탄소가 모였다고 모두 다이아몬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탄소가 평면 6각형으로 결합되면 새까만 흑연이 된다. 가장 단단한 다이아몬드와 잘 부러지는 약한 물질의 대명사인 흑연이 실제로는 같은 족보를 갖고 있는 셈이다. 이 밖에 차세대 반도체소자로 각광받고 있는 그래핀이나 탄소 원자 60개가 축구공 모양으로 결합된 ‘풀러렌’, 속이 빈 긴 대롱 모양인 탄소 나노튜브 역시 모두 탄소만으로 이뤄진 물질이다. 이처럼 탄소라는 같은 원소로 만들어졌지만, 성질은 전혀 다른 물질들을 동소체(同素體)라고 부른다. ◆감정사도 속을 만큼 감쪽같아 과학사에 다이아몬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중세 유럽이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실험실에서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만들기 위한 ‘연금술’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마술 등 과학적 근거가 없는 방법들이 난무하는 와중에 일부 과학자들은 오늘날 화학과 물리학의 토대가 되는 발견도 우연찮게 얻었다. 예를 들어 1772년 앙톤 라부아지에는 다이아몬드를 높은 온도로 가열하면 검은 흑연을 거쳐 아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점을 발견해 냈다. 800도 이상에서는 다이아몬드를 구성하고 있는 탄소가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면 연소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다이아몬드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강도’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한 물질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다이아몬드를 자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다이아몬드뿐이었다. 이 때문에 각종 공업용 물질의 가공에 보석용으로 쓸 수 없는 공업용 다이아몬드가 대거 사용되기 시작했고, 특히 2차 세계대전 당시 무기 등 군수물자 생산을 위해 다이아몬드 수요가 급증하고 관련 산업이 급성장했다. 다이아몬드를 실험실에서 만들어 내려는 오랜 노력 역시 결실을 맺고 있다. 자유롭게 고온과 고압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천연 다이아몬드와 똑같은 인조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인조 다이아몬드의 가격은 점차 낮아지고 있고, 감정사들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정교해졌다. 일각에서는 성분과 모양이 똑같기 때문에 ‘인조’가 아닌 ‘양식’ 다이아몬드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자연이 수십억년에 걸쳐 해낸 일을, 이제 사람은 불과 며칠 만에 더 훌륭하게 해낼 수 있게 된 셈이다. ◆최근엔 스마트폰 등 필수부품으로 물리적인 경도로만 주목받아 온 다이아몬드는 최근 ‘실험실의 여왕’으로 주목받고 있다. 나노(1㎚=10억분의1m) 과학이 각광받으면서 다이아몬드의 새로운 장점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특히 최근 미국 아르곤 국립연구소에서 발표된 실험 결과는 다이아몬드의 가치를 대폭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르곤 연구소의 아니루아 수먼트 박사는 다이아몬드를 나노 단위로 쪼개 얇은 필름을 만들어 특성을 조사했다. 그 결과 다이아몬드 필름은 열 발생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특징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마트폰, 노트북 등 휴대용 전자기기가 급속도로 발달하면서 학계는 물론 기업들은 ‘더 작은’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소형화는 ‘열 병목현상’으로 불리는 현상으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 상태다. 전자의 이동은 열을 만들어 내는데, 부품이 점점 작아질수록 열은 좁은 면적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결국 소형 전자제품은 대형 전자제품에 비해 열이 더 많이 발생해 부품의 오작동을 일으키거나 손상을 입게 되는 문제가 있다. 수먼트 박사팀의 연구는 다이아몬드 필름이 열을 급격히 줄이면서 전체적인 제품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수머트 박사는 “다이아몬드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온도는 800도에 이르지만, 반도체에 사용할 경우 최고 온도는 400도를 넘지 않는다.”면서 “다이아몬드 필름을 활용해 새로운 반도체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르곤 연구소 연구진은 이와 함께 다이아몬드 필름과 질화갈륨을 조합해 고성능 발광 다이오드(LED)를 만들었다. 그 결과 다이아몬드 필름을 조합하는 것만으로도 얇은 LED의 전반적인 온도가 획기적으로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아몬드 필름이 전자학계와 기업들의 고민을 풀어주고 있는 것이다. 전자제품을 만들기 위해 땅을 파야 할 필요는 없다. 인조 다이아몬드 생산량은 매년 10만㎏이 넘는다. 다이아몬드가 선망의 대상이 아닌, 우리 주변의 필수적인 소재로 취급받을 날이 멀지 않았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성큼’

    꿈의 신소재 그래핀 상용화 ‘성큼’

    20세기 과학기술과 산업 발전을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은 석유였다. 막대한 매장량과 무한에 가까운 용도를 자랑하는 석유는 ‘검은 황금’이라 불릴 정도로 각광을 받았다. 자동차 등 교통수단부터 냉·난방용 연료, 전기 발전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삶은 석유 위에서 이뤄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용해도 줄어들 것 같지 않던 석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또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 등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불명예까지 떠안으며 ‘퇴출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석유의 뒤를 이을 ‘새로운 황금’은 무엇일까. 현재 가장 유력시되는 대상은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도 않았던 물질 ‘그래핀’이다. 전문가들은 그래핀이 상용화되면 우리의 생활상이 통째로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연구성과가 쏟아지고, 대학과 연구소는 물론 각 기업들까지 사활을 걸고 있는 그래핀은 과연 무엇일까. ‘꿈의 신소재’라는 영광스러운 호칭을 받을 가치가 있는 것일까. 그래핀의 시작은 초라했다. 하지만 기발했다. 2004년 10월 과학저널 ‘사이언스’에는 영국 맨체스터대 안드레 가임 교수와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의 논문이 게재됐다. “탄소 원자 한층으로 된 막을 얻어냈다.”는 내용보다 더 관심을 모은 것은 이 막을 얻어낸 방법이었다. 이들은 흑연 덩어리를 셀로판테이프에 붙였다 떼어내기를 반복한 후 기판에 문지르는 것만으로 목적을 달성했다. 같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 원자현미경이나 복잡한 합성 등을 고민하던 과학자들은 ‘콜럼버스의 달걀’에 비견될 만한 가임 교수팀의 시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디지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시도된 이들의 ‘첨단 아날로그’ 실험은 결국 2010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이라는 영예로 보상받았다. 흑연을 뜻하는 ‘그래파이트’(graphite)와 탄소 이중결합을 가진 분자를 뜻하는 접미사 ‘-ene’을 합해 이름지어진 ‘그래핀’(graphene)은 두께가 0.35㎚(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할 정도로 얇다. 그러나 그래핀은 단순한 얇은 막이 아니다. 화학적, 물리적 특성이 기존 물질과는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는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우선, 그래핀은 상온에서 단위면적당 전선으로 널리 쓰이는 구리보다 약 100배나 많은 전류를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전달할 수 있다. 이는 그래핀 위에서 전하를 운반하는 전자의 질량이 0에 가깝게 되면서 저항을 없애 전류의 이동속도가 무한대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강도와 신축성도 탁월하다. 그래핀은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다. 또 탄소가 그물처럼 연결된 벌집 구조를 갖고 있어 공간적 여유가 많다. 그래핀은 빛의 98%를 통과시킬 정도로 투명하고, 다른 물질과 결합하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물질을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플라스틱에 0.1%의 그래핀을 넣으면 내열성이 30% 늘어나고, 1%를 섞으면 전기가 통하는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실험을 통해 입증됐다. 이 같은 특성 덕분에 그래핀은 실리콘 반도체를 대체할 가장 강력한 소재이자 휘는 디스플레이나 전자종이, 입는 컴퓨터, 각종 전극 소자 등에도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빠른 속도와 더 큰 용량, 더 작은 크기 등 ‘발전’을 의미하는 모든 조건을 그래핀을 통해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면에서 기존 재료의 한계를 뛰어넘는 그래핀이지만, ‘꿈의 신소재’라는 꼬리표를 떼고 현실 생활에 진입하기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금까지 발표된 그래핀의 가능성은 아직 실험실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최근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잇따라 발표되면서 당초 10~20년 후로 예상됐던 상용화 시기가 계속 앞당겨지고 있다. 특히 한국은 그래핀 상용화 연구에서 세계에서 가장 앞선 나라로 평가된다. 한국 연구진이 발표한 그래핀 관련 연구성과는 올해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이종훈 울산과기대 교수는 대면적 그래핀의 결정구조와 입자 배열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물리적 성질을 세계 최초로 규명해 상용화 장벽을 낮췄고, 김필립 컬럼비아대 교수와 김근수 세종대 교수 연구팀은 그래핀에 다른 물질이 들어갈 때 성질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밝혀냈다. 박장웅 울산과기대 교수는 그래핀을 재료로 전자회로 전체를 한번에 통째로 합성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하는가 하면, 조병진 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상용화 공정에 그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래핀 전극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조 교수팀의 연구 성과는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고민하고 있는 ‘차세대 20나노급 반도체’ 개발의 핵심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상용화의 척도로 볼 수 있는 특허출원 역시 급증세다. 국내 그래핀 관련 특허는 2005년에 3건, 2006년에 6건에 불과했지만 2007년 23건, 2008년 44건에 이어 2009년에는 무려 203건이 출원됐다. 홍병희 서울대 교수는 “그래핀이 가장 많이 사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반도체 산업의 강자들이 한국에 많다는 것이 가장 큰 강점”이라며 “기초연구와 함께 산업화 연구를 진행한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빼돌린 삼성기술 AMK서도 샜다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을 빼내 경쟁업체에 넘겼던 미국계 반도체 장비업체 AM의 한국법인 AMK가 내부 기술 유출 문제로도 수사를 받은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한찬식)는 4일 AMK 직원 3~4명이 반도체 장비 설계도 등 내부 핵심 기술자료를 빼돌린 뒤 동종의 다른 업체를 세워 영업한 혐의를 포착, 수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장비개발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은 2008년 반도체 제조장비 설계도면과 핵심부품 제작도 등을 담은 파일을 USB 메모리 등에 담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AM이 독점적인 장비공급 업체여서 비싼 가격을 요구한다는 점에 착안, 빼돌린 자료를 토대로 별도의 장비회사를 차린 뒤 삼성전자 등에 싼 값에 공급하겠다고 제안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서울동부지검은 삼성전자 반도체 기술 95건을 빼돌려 이 가운데 13건을 경쟁업체인 하이닉스에 넘긴 혐의로 AM 및 AMK 관계자 10명을 기소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국내기업 담합] 동남아 휴양지서 비밀회의… 007작전 방불

    [국내기업 담합] 동남아 휴양지서 비밀회의… 007작전 방불

    기업 간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손님은 왕’이 현실화된다. 한푼이라도 더 싸고 조금이라도 더 나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과정에서 소비자의 이익과 편익은 커지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들이 경쟁을 마다하고 뒤에서 은밀히 벌이는 검은 거래 ‘담합’은 시장경제 최대의 적으로 불린다.최근 국내 담합적발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은 당국의 감시활동이 강화된 데도 이유가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관행에서 깨어나지 않는 기업들과 이를 유도하는 후진적인 국내 문화 탓이다. 담합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업계 담합 담당자들의 모임은 ‘007작전’을 방불케 한다. 홍콩, 방콕, 파타야 등 휴양지의 고급호텔에서 비즈니스 미팅, 골프 회동을 가장해 회의를 벌인다. ‘AAA’와 같은 작전명이 붙고 회사 이름도 영문약자를 써서 외부에서는 절대로 알 수 없게 한다. 해당 직원이 바뀌어도 업계의 검은 거래는 죽 유지된다. 후임자에게 철저하게 관련 내용이 인수인계되기 때문이다. 실적을 높일 욕심에 개인 차원에서 담합에 뛰어들기도 한다. 회사 내부사람조차 모르게 하려고 유선전화나 회사 이메일 계정을 안 쓰는 것은 기본. 심지어 외국인으로 가장해 이메일 계정을 만들기도 한다. 우리나라가 주요 20개국(G20) 모임의 의장국까지 됐으면서도 담합에 관한 한 여전히 후진국인 것은 복합적인 요인들이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나라는 담합에 연루된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 수위가 외국에 비해 턱없이 낮다. 우리나라에서는 담합을 적발해도 담합으로 얻은 매출액의 10%까지만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지만 유럽은 전 세계 매출액의 10%를 추징한다. 개인에 대한 처벌도 우리나라는 미미하다. 징역 3년이나 벌금 2억원이 담합 제재의 상한선이다. 미국은 징역형이 최대 10년이며 멕시코는 임금의 3만배, 독일은 100만유로(약 17억원), 캐나다는 1000만 캐나다달러(약 109억원)까지 벌금을 물린다. 브라질은 담합에 직간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경영자에 대해 회사가 물어야 하는 과징금의 50%까지 부과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담합이 적발되면 향후 5년간 어떤 기업도 경영할 수 없다. 심영섭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회사에 책임을 물어도 담합이 뿌리뽑히지 않기 때문에 주요 선진국들은 담합을 저지른 개인에 대한 처벌 강도를 대폭 강화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담합 주도자들을 감옥에 보내면서 상당한 성과를 봤다. 과거 고속성장 시대의 인식틀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큰 이유다. 이황 고려대 법대 교수는 “외국 기업들은 담합을 범죄로 인식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상생협력으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과거 수출입국(輸出立國)의 유산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경상 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과거 해외시장 개척 과정에서 정부와 기업, 동일 업종 간 협력이 중요했기 때문에 투자규모, 생산량, 가격 등이 자연스럽게 논의됐다.”면서 “그 관행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담합 처벌을 통해 긍정적인 변화를 맞은 사례다. 하이닉스는 2007년 반도체 D램 가격 담합으로 미 법무부에서 1억 8500만달러의 과징금을 부과받고 임원 4명이 각각 25만달러의 벌금과 5~8개월의 징역살이를 해야 했다. 이후 담합 방지를 위한 자율준수 프로그램이 가동됐다. 경쟁업체를 만나러 가면 내부 보고절차를 밟고 규정에 위배되는 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점검하는 문화가 정착됐다. 수시로 관련 교육이 실시됐고 영업 담당 직원들에 대한 감시제도도 마련됐다. 손상수 하이닉스 부장은 “유럽은 수입 바나나 업체들의 날씨정보 교환조차도 담합의 증거로 채택할 정도로 감시가 철저하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담합에 대한 거부감이 최고경영자들부터 말단직원까지 확고히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잇단 의혹에 곤혹스런 효성그룹

    하이닉스 인수, 비자금 수사 발표, 미국 부동산 편법매입 의혹…. ●하이닉스 분할매입땐 비용3조↓ 하이닉스반도체 인수 의향서를 제출한 뒤부터 효성그룹이 연일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다. 주식 분할매입의 경우 1조원, 전량매각의 경우 4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점쳐지는 하이닉스 인수건이 가려질 정도이다. 검찰의 비자금 수사에 대해 축소수사 의혹이 제기된 데 이어 9일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효성 사장이 2006년 말 미국에서 고급 빌라 2채를 편법으로 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오너일가가 거명되거나 연상되는 뉴스거리가 계속 나오고 있는 셈이다. 조 사장의 미국 빌라 편법매입 의혹은 재미 프리랜서 안치용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를 통해 제기했다. 담당 등기소 서류를 검색한 결과 조 사장이 2006년 10월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소재 리조트 ‘란초우 발렌시아빌라’ 근처의 빌라 2채를 동시에 사들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조회장 장남 美 빌라2채 샀다” 안씨는 전날 조 사장이 2002년 8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해변의 고급 빌라 1채를 450만달러에 샀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조 사장이 효성아메리카에 주소를 둔 ‘펠리칸 포인트 프라퍼티즈 LLC’로 매입한 콘도를 인수받는 식으로 매입계약을 체결했다는 데 있다. 조 사장이 개인의 주택구입 한도액 30만달러를 넘는 해외 부동산을 매입, 당시 현행법을 어겼다는 지적이다. 빌라 매입액의 출처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야당 “검찰 재수사 촉구” 서울중앙지검은 “조 사장의 미국 주택 구입 의혹은 최근 종결한 효성 비자금 수사와는 전혀 관계없는 일”이라면서도 “의혹을 제기한 사이트와 언론 보도 내용 등을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재보선을 앞둔 국감을 진행하고 있어 이슈에 민감해진 야당도 검찰 재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돈 기업이라는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잇따라 터지는 의혹에 효성은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비자금 수사와는 관계없다고 한 마당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효성이 회장사를 맡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회도 말을 아끼기는 마찬가지다. 전경련 관계자는 “효성의 문제일 뿐 전경련과 연결시킬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당신 회사 도메인 안녕하십니까

    당신 회사 도메인 안녕하십니까

    디지털사진 인화 전문업체인 스냅스(옛 디시인사이드피큐)의 김모 사장이 주주들로부터 도메인(인터넷 주소)을 무단점유한 혐의(배임)로 검찰에 고소돼 인터넷 ‘도메인 분쟁’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기업 도메인 사장 명의 등록 ‘마찰’ 23일 업계에 따르면 디시인사이드피큐 주주들은 회사 도메인을 ‘dcinsidephoto.com’에서 ‘snaps.co.kr(snaps.kr)’로 바꾸는 과정에서 김 사장이 개인 명의로 도메인 등록을 했다며 안양경찰서에 고소했다. 경찰은 검찰에 무혐의 의견서를 제출했지만 수원지검은 기업 도메인이 과연 사장 개인의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면밀히 알아 보기 위해 사건을 안양지청에 내려 보내 재수사하도록 했다. 주주들은 소장에서 “김 사장이 ‘스냅스’로 회사 브랜드를 바꿀 것을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고, 회사 차원에서 도메인도 snaps로 바꾸기 위해 신규등록을 예약했지만, 김 사장이 회사 명의의 등록 작업을 중단시킨 뒤 자신 명의로 등록했다.”면서 “사장이 도메인의 소유권을 취득하면 개인적인 이익을 취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이미 경찰에서 무혐의로 결론났다.”면서 “무고 혐의로 맞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넷에서 ‘기업의 얼굴’인 도메인을 둘러싼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도메인 등록 기관인 한국인터넷진흥원 산하 인터넷주소분쟁 조정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도메인 분쟁 상담 및 조정신청 건수가 2005년 525건에서 2008년 996건으로 급증했다. 디시인사이드피큐처럼 조정위원회를 거치고 않고 바로 법적 소송으로 가는 경우까지 합치면 분쟁 건수는 훨씬 많다. ●美 반도체업체도 개인에 빼앗겨 분쟁 유형은 대부분 도메인을 선점한 뒤 해당기업에 돈을 요구하거나, 도메인 관리 담당직원이나 공동 창업자, 홈페이지 제작 대행업체가 개인 명의로 도메인을 등록해 놓고 회사가 커지면 돈을 요구하는 경우다. 미국의 유명 반도체 업체 실리콘랩(나스닥 시가총액 12억달러)도 최근 사용 연장 신청을 하지 않아 개인에게 도메인을 빼앗겨 전미중재연맹(NAF)에 분쟁 조정 신청을 냈다. 인터넷진흥원 관계자는 “도메인 등록을 다른 사람에게 의뢰하지 말고, 회사는 반드시 법인 명의로 등록해야 하며, 등록 이후에도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한국의 대표기업] 제일모직

    [한국의 대표기업] 제일모직

    우리나라 경제개발에 삼성이 주역이었다면 삼성의 중심에는 제일모직이 있다.1950∼60년대 섬유산업이 국내 경제성장을 견인하면서 제일모직이 오늘날 삼성의 원동력이 됐다.1970년대 이후 섬유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고,1990년대부터는 그룹의 중심축이 삼성전자로 옮겨갔지만 제일모직은 여전히 건재하다. 패션, 화학·전자소재 등 신사업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직물·패션에서 화학·전자소재로 제일모직은 빈폴, 갤럭시 등 국내 매출 1위의 패션 브랜드를 여럿 거느린 ‘패션 명가’다. 그러나 전자제품이 입는 옷도 많이 만든다. 휴대전화, 디지털TV, 냉장고, 세탁기 등 정보통신(IT)과 가전제품의 플라스틱 외장 케이스가 그것이다. 전문용어로는 ‘하우징(housing)’이라고 부른다. 제일모직 하우징 기술은 삼성전자 IT·가전제품의 선명한 색상과 잘빠진 디자인으로 실현된다. 지난해 세계 LCD TV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한 ‘보르도TV’ 등 삼성전자의 디지털 TV를 눈여겨 보라. 다른 제품에 비해 표면의 광택이 뛰어나고 검은색이 더 짙을 뿐만 아니라 잘 긁히지도 않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제일모직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내(耐)스크래치 ABS 수지’의 공이 적지 않다. 모니터용 난연ABS 수지와 냉장고용 압출ABS 수지는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다. 제일모직에서 매출 비중이 큰 화학소재 제품들이다. 제일모직의 지난해 매출은 3조 1124억원이다. 이 가운데 60% 이상이 패션 부문이 아닌 화학소재(49.8%)와 전자소재(14.2%)에서 나왔다. 본업이던 직물 비중은 매출의 5%도 안 된다. 1980년 이후 성장 동력이 됐던 패션 부문도 직물을 포함해 매출의 35.9% 수준이다. 제일모직은 1954년 9월15일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삼성물산을 통해 번 돈 가운데 자본금 1억환을 들여 세운 양복지(양복 원료)회사다.1956년 6월 섬유사의 한 획을 그은 양복지 ‘골덴텍스’를 개발하면서 사업이 일사천리로 확대됐다.1950∼60년대 섬유산업은 지금의 IT나 반도체 이상으로 국가 경제성장을 견인한 주력업종이었다. 제일모직은 삼성이 다른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 자본을 대고 인력을 지원하는 등 오늘날 삼성그룹 발전의 실질적 모태가 됐다.1980년 이후부터는 패션사업에 손을 댔다.1993년 삼성패션연구소를 설립했고,1999년엔 삼성물산의 에스에스패션을 가져왔다. 갤럭시 등 유명 브랜드를 만들어 국내 1위 패션 업체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 세계 1위 기업으로 가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1989년과 1994년 화학소재와 전자소재산업에 각각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등 그룹사의 핵심 부품 제공도 가능해졌다. 지금은 매출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신성장동력이 됐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삼성전자 등 그룹사의 발전이 제일모직 사업다각화의 기반이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그룹사 대상 매출은 4684억원이다. 하지만 그는 “해외수출 비중이 계속 커지고 있어 전체 매출에서 그룹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사업 초기보다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의 경쟁력 강화는 과제 잘나가는 화학·전자소재와 달리 직물을 포함한 패션 부문의 지난해 매출(1조 1189억원)은 전년보다 150억원가량 줄었다. 특히 화학소재와 전자소재 부문의 매출 중 수출 비중은 각각 80%와 70%로 높은 반면 패션 부문의 수출 비중은 2%에 그쳤다. 패션부문은 2005년 매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덩치를 키웠으나 최근 몇년 사이 국내 패션 업계가 부진을 겪으면서 동반 정체 상태다. 그러나 패션 부문은 여전히 제일모직의 핵심 사업이다. 고부가가치 창출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건희 회장의 둘째딸인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가 패션부문 기획담당 임원으로 있다. 이 상무는 패션 부문의 중장기 비전 수립을 담당한다. 빈폴, 갤럭시, 로가디스 등 주력 브랜드의 명품화와 신규 브랜드의 개발을 통해 국내 선두로서의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세계 일류 패션 기업으로 거듭난다는 계획이다. 제일모직측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성장이 가능하도록 연구개발(R&D) 부문을 꾸준히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해외 채용설명회를 정기적으로 주관하고 국내 이공계 우수대학의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을 지원하는 등 세계적으로 우수한 인력을 발굴하는 데 총력을 쏟고 있다.”며 “패션 및 화학·전자소재 등 각 부문에서 고부가 제품 개발을 통해 해외시장을 확대하겠다.”밝혔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생산라인 이틀내 복구해도 500억 피해

    생산라인 이틀내 복구해도 500억 피해

    1년 365일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하는 게 ‘생명’인 반도체공장이 멈춰섰다는 점에서 삼성전자는 3일 초비상이 걸렸다. 사고 원인 등 미심쩍은 대목도 적지 않다. 문책 인사도 불가피해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원시 사고’ 정전 왜 났나 삼성전자측은 “과부하”라고 해명했다. 과부하로 배전반에 불꽃(스파크)이 일면서 순식간에 K2지역 전체가 정전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정량을 유지하는 반도체 생산라인에 갑자기 과부하가 걸렸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안된다. 삼성측은 전력 공급 이상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국전력측은 “경기 신수원 변전소에서 삼성전자 K1,K2 두 개 지역에 전원을 공급하는데 전원 공급의 문제였다면 K1 지역은 왜 멀쩡했겠느냐.”며 펄쩍 뛰었다. 한전은 기기 노후 가능성을 제기했다. 노후 변압기를 삼성이 제때 교체하지 않아 사고가 났을지 모른다는 추론이다. ●한달 전 정전 예고편 있었다 지난달 12일 D램 등을 생산하는 K1 지역에서 정전 직전까지 가는 ‘일촉즉발’의 사고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15초 가량 전압이 갑자기 급격히 떨어진 것이다. 기흥공장측은 “워낙 짧은 순간이어서 피해 규모는 금액 산출이 어려울 정도로 미미했다.”고 밝혔다. 사고 당시 소문이 돌았으나 삼성이 워낙 쉬쉬하는 바람에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문제는 이미 이 때 변압기의 이상이 감지됐음에도 사후 조치를 소홀히 했다는 데 있다. 철저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만 뒤따랐어도 ‘정전’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더욱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정전 사고가 대규모 라인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삼성은 정전 등에 대비해 비상대책을 세워두고 있다고 누누이 자랑해 왔다. 삼성전자측은 “전기가 나갈 때를 대비해 비상 전력을 확보해 놓았고 이번에도 정전 즉시 이를 가동했으나 양이 충분치 않아 핵심시설과 안전시설을 가동하는 데 그쳤다.”고 해명했다. 장비는 보호했으나 라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설명이다. ●윤종용 부회장 “이틀이면 완전 복구” 정전 당시 라인에 투입됐던 웨이퍼는 불량이 확실시돼 전량 폐기해야 한다. 삼성전자측은 “이를 감안해도 피해액은 최대 500억원”이라고 추산했다. 사고가 나자 기흥공장으로 즉각 달려가 복구 작업을 지휘한 윤종용 부회장은 “일요일(5일)까지는 라인이 정상화될 것”이라며 “믿기지 않으면 월요일(6일)에 기흥공장을 언론에 개방할 수도 있다.”고 장담했다. 일각에서는 공장 외부까지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는 점에서 생산라인의 오염 가능성도 제기한다. 김지수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생산라인의 온도·습도·무균 상태 등을 다시 최적화시키는데 한달까지 걸릴 수 있다.”면서 “최악의 경우 7000억원의 매출 손실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황창규 사장 거취 주목 일각에서는 이번 사고로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 사장의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는 관측도 제기한다. 확실한 것은 하이닉스반도체와 일본 도시바 등 낸드 플래시 경쟁업체들의 반사이익이다. 가뜩이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최근 낸드 가격이 치솟기 때문이다. 안미현 김효섭기자 hyun@seoul.co.kr
  • 아인슈타인 덕에 필름없이 ‘찰칵’

    아인슈타인 덕에 필름없이 ‘찰칵’

    이제 디지털 사진은 더 이상 새로운 문화가 아니다. 누구나 휴대전화를 꺼내 버튼 하나만 누르면 간단히 사진이 찍힌다. 많은 이들의 가방이나 핸드백 속에도 최첨단 기능의 디지털 카메라가 들어있다. 그런데 디지털 카메라는 어떤 원리로 필름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일까. 또 카메라 렌즈를 얼굴 위에서 비스듬히 바짝 대고 찍으면 ‘얼짱’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이른바 ‘폰카’,‘디카’를 둘러싼 과학적 지식에 대해 살펴보자. ●디카, 아인슈타인의 ‘광전효과’이용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와 마찬가지로 광학 메커니즘을 이용한다. 렌즈, 조리개, 셔터 등 구조도 같다. 다만 필름이 아닌 CCD(Charge Coupled Device)로 영상 이미지를 포착하는 점이 다르다. 필름 카메라가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필름을 사용한다면 디지털 카메라는 반도체 이미지 센서를 이용한다. CCD는 손톱만한 크기의 반도체 소자다. 빛을 받으면 전자를 내놓는 성질을 갖고 있다. 이렇게 생성된 전자는 전기적 신호로 바뀐 뒤 다시 디지털 신호로 변환돼 플래시 메모리와 같은 저장장치에 기록된다. CCD와 같이 빛을 전기 신호로 바꾸는 원리는 아인슈타인이 정립했다.‘광전효과’라는 것인데, 금속에 전자기파(빛)를 쪼이면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을 일컫는다. 아인슈타인은 빛은 파동이 아니라 ‘일정한 에너지를 지닌 알갱이’로 구성돼 있다고 가정해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증명했다. CCD는 화소(畵素) 수만큼 이미지 센서가 붙어 있다.500만 화소라면 CCD안에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된 이미지 센서 500만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각각의 화소에는 극소형의 렌즈들이 붙어 있어 들어오는 빛을 모은다. 그런데 이미지 센서는 색상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센서 위에 빛의 삼원색인 빨강, 파랑, 녹색을 선택적으로 통과시키는 필터가 붙어 있다. 빛 색깔별로 구분한 뒤 합성해 실제 피사체와 같은 이미지 정보를 얻어낸다.TV 화면의 작은 화소가 빨강, 파랑, 녹색 빛을 조합해 영상을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다. ●‘얼짱’만드는 광각렌즈 30도 이상 얼굴 위로 렌즈를 기울인다. 눈을 지긋이 치켜 뜬다. 얼굴은 약간 오른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인다…. 이른바 ‘얼짱’이 되기 위한 촬영기술이다. 얼굴이 둥글넓적하거나 살이 많아도 연예인마냥 예쁘고 잘생겨 보이게 찍을 수 있다. 정면 얼굴보다 눈이 훨씬 커 보이고 얼굴도 갸름하게 나온다. 코도 더 부각돼 보인다. 이는 렌즈의 ‘광각’효과 때문이다. 대부분의 휴대전화 카메라나 디지털 카메라는 대부분 화각이 넓은 광각 렌즈가 달려 있다. 화각이 넓다는 것은 화면폭이 넓어 한번에 많은 피사체를 담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광각렌즈는 피사체의 크기와 거리감을 늘리는 효과가 있다. 원근감이 강조된다. 즉, 렌즈와 가까운 물체는 보다 크게, 먼 물체는 보다 작게 나타낸다. 때문에 디지털 카메라를 얼굴 위 눈 높이에서 가까이 대면 눈은 커보이게 된다. 눈과 가까운 위치의 코도 상대적으로 더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반면 상대적으로 거리가 먼 턱선은 가늘어 보이게 된다. 볼살도 줄어 보이면서 계란형에 가까운 얼굴로 찍히게 된다. ●‘번쩍’후 ‘충혈된 눈’ 생기는 이유 화려한 밤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웬걸…‘번쩍’하는 플래시 때문인지 화면 속 사람들의 눈이 죄다 뻘겋게 충혈된 귀신처럼 나왔다.‘레드아이’, 즉 적목현상이다. 사람의 동공은 밝은 곳에서는 축소되고 어두운 곳에서는 확대된다. 적목현상은 밤에 동공속 망막에 자리잡고 있는 혈관이 플래시 빛에 반사돼 카메라에 찍히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적목현상은 카메라와 플래시가 가까울수록, 카메라와 찍히는 사람간의 거리가 멀수록 잘 일어난다. 상대적으로 눈동자가 검은 동양인보다는 파란 눈동자의 외국인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특히 사람에 비해 동공 자체가 큰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에서는 더 잘 관찰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녹색공간] 한민족의 생명줄 한강이 위험하다/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 교수

    요즘 한강의 심기가 매우 불편하다.2300만 수도권 시민들에게 생명을 이어주는 물을 공급해 주는데도 일부 사람들이 경제가 우선이라며 엄청난 양의 공업용수와 100여가지 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반도체 공장을 한강 상류에 짓자고 단체 삭발을 하고 떼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강은 많이 오염돼 예전의 한강이 아니다. 더욱이 올해는 겨울이 다 지났는데 한 번 얼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 한강은 겨울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었지만 우린 한강이 살아있다고 생각했다. 한강이 화가 나면 큰 홍수를 가져온다고 믿었고 그래서 한강에 함부로 쓰레기를 던지지 않았고 오줌도 누지 않았다. 추억 속 행주나루터의 겨울은 눈보라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득히 멀리 빙평선이 얼음세상과 하늘나라를 맺어주고 점묘파 화가의 붓놀림처럼 흰 눈이 세상이라는 캔버스에다 분주히 붓질을 하며 순백의 설경을 그려 나갔다. 화공의 터치가 점점 열정적으로 빨라지면서 날이 저물면 대지를 매섭게 저미는 북풍이 밤새 눈보라와 함께 추위를 몰고 왔다. 다음 날 아침 어둠이 걷히면 언제 소동을 피웠느냐는 듯 바람은 조용해지고 신비로운 은세계가 펼쳐졌다.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 부근으로 떨어지고 한낮 최고 기온조차 영하에 머무는 추위가 며칠간 계속되면 한강이 가장자리부터 얼어들어갔다. 강이 얼어붙으면 이제 악동들의 놀이터가 엄청 넓어졌다. 큰 돌로 얼음을 내리쳐 ‘쿠르릉’ 하는 소리만 들어도 얼음의 두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에서 자치기나 축구를 하던 구릿빛 낯에 눈이 반짝이던 아이들은 놀이터를 한없이 넓은 언강으로 옮겨와 종일 썰매타고 연 날리며 해가는 줄도 모르고 놀았다. 겨울이 깊어져 30㎝가 넘는 두터운 얼음이 강을 채우면 강물 때문에 못 가보던 강 건너 방화산까지 썰매를 타고 건너가 낟가리에 쥐불을 싸놓고 도망오기도 하고 멀리 북쪽으로 오리쯤 가면 지금 일산 신도시 근처에 있던 방말섬이란 큰 무인도를 탐험하러 가기도 했다. 그곳엔 용처럼 큰 구렁이가 산다는 이야기가 들려서 우리에겐 공포의 섬이자 호기심의 섬이기도 했다. 섬의 버드나무 숲을 헤매며 지난 장마에 떠내려 온 정구공과 돛단배를 깎을 수 있는 솔피를 줍다가도 해가 서산에 걸리면 서둘러 섬을 빠져 나왔다. 가끔 귀신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들려 도망치듯 섬을 빠져나오다 보면 언강은 쩌렁쩌렁대며 울어댔다. 지난 여름 홍수때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원혼이 우는 것이 아닐까 소름이 오싹오싹 끼쳤다. 그러나 이 소리는 사실 서해바다의 밀물이 얼음 속에서 부딪쳐 나는 소리였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로 한강의 기적과 함께 사람들의 손길을 타면서 한강은 거품이 이는 검은 물결로 변했고 더 이상 꽁꽁 얼지도 않는다. 겨울에 잡히던 1급수에만 사는 빙어는 물론 겨울 매운탕거리로 최고였던 배가사리나 쏘가리도 사라졌다. 점차 직강하천으로 바뀌면서 유량이 많아지자 모래섬이던 방말섬은 어느 해 장마철에 휩쓸려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려 이젠 어린 시절 전설의 섬으로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얼마 전 한강에서 어린 시절 함께 놀던 옛 친구였던 한 어부를 만났는데 몇 년 전부터 귀한 황복이 다시 잡힌다고 한다. 이제 죽었던 한강이 다시 살아나려 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그런데 다시 한강 상류에 맹독성 화학물질을 사용하고 수만명 도시 규모의 하수를 내뿜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허가한다면 다른 공장들도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한강을 망가뜨릴 것이 뻔하다. 보수적인 분위기를 틈타 기업과 경제단체, 그리고 이들의 지원을 받는 정치가나 학자들이 법은 물론이고 교과서까지 기업에 유리하게 바꾸려고 준동하고 있다. 다시 살아나려는 우리 한민족의 생명줄 한강을 지키기 위해 이젠 서울시민들이 나서야 할 때이다. 이기영 호서대 식품미생물학 교수
  • 亞증시 연일 추락

    亞증시 연일 추락

    |파리 이종수·도쿄 이춘규·베이징 이지운특파원, 서울 이두걸기자|중국발(發) 주가 폭락 쇼크와 미국 경제의 하강에 대한 우려로 아시아 증시가 1일 일제히 동반 하락세를 보였다. ●유럽증시도 3일째 하락세 유럽 증시 역시 ‘검은 화요일’ 여진이 3일째 이어졌다.1일 상승 출발한 유럽 주요 국가의 지수가 하락세로 반전하면서 낙폭이 커지는 등 시장 동요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미국 경제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증폭되고 있는 세계 금융시장의 혼란세가 언제 진정될지 주목된다. 1일 상하이종합지수는 전날보다 2.91%(83.88포인트) 떨어진 2797.19로 장을 마쳤다. 상하이A주가지수는 2.91%(87.99포인트) 내린 2937.76으로 마감했다. 선전종합지수도 235.35포인트 하락한 7804.35로 장을 마쳤다. 홍콩의 항생주가지수도 1.55%(304.91포인트) 떨어진 19346.60으로 끝났다. 지난 27일 10년 만의 최대 폭인 8.84% 떨어지며 세계 증시의 도미노 폭락을 주도했던 중국 증시의 상하이지수는 전날 3.94% 반등하며 충격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이날 다시 추락하면서 불안감을 더했다. 중국 증시불안은 유동성 과잉과 그동안 큰 폭으로 상승한 데 따른 차익매물 출회, 금리인상 등 긴축 가능성 때문으로 보인다. 증시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에 거품 논란이 재연되면서 한동안 조정을 거칠 것으로 보고 있다. ●도쿄증시 3일 연속 하락 이날 도쿄증시에서 닛케이평균지수는 전날보다 0.86%인 150.61포인트가 하락해 1만 7453.51을 기록,3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도쿄증시의 3일 연속 하락은 2006년 11월15∼20일(휴장일 제외 4일 속락) 이후 처음이다. 이날도 장중 한때 30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타이완증시도 반도체와 LCD 관련주들이 하락하면서 급락 흐름에 동참했다. 타이완증시의 가권지수는 이날 전날보다 2.83%(223.29포인트) 급락한 7678.67로 마감했다. 영국 런던 FTSE지수는 1일에는 상승 출발했지만 오후 2시를 지나면서 1.5%로 폭락이 커졌다. 프랑스 파리의 CAC40지수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1일 오전 한때 0.52% 오르는 등 반등 조짐을 보였으나 다시 하락세로 반전, 낙폭이 2%대로 커지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DAX 지수도 하락세가 이어졌다. 세계 증시의 동반하락과 미국 경기의 침체에 대한 우려가 수그러지지 않으면서 한국 주식시장의 향후 움직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국내 증시 전문가들은 중국 주식시장의 연이은 급락으로 국내 증시의 조정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진국 증시의 동반 하락이 국내 증시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증시 당분간 조정 국면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중국 증시의 하락세는 그동안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이며, 하락세가 일시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국내 증시도 이달 내내 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taein@seoul.co.kr
  • 이천시공무원 ‘리본 시위’

    정부의 하이닉스 이천공장 증설 불허 방침에 항의하는 이천 주민들의 항의시위에 자치단체 공무원들까지 가세했다.청주시는 청주시대로 최종결정을 유보한 정부측에 유감을 표시했다. 12일 경기도 이천시에 따르면 지역 사회단체들로 구성된 ‘규제 개선을 위한 이천시 범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이천 공설운동장에서 주민 1만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하이닉스반도체 공장증설 관철을 위한 범시민 궐기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12일에도 시내중심가인 창전동을 중심으로 시내 곳곳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등 항의집회를 가졌다.이날부터는 이천시 전 공무원들이 주민과 합세해 `정부는 국가성장동력산업에 손대지 마라.´는 글귀가 새겨진 검은색 리본을 착용하고 근무에 임하고 있다. 이 리본은 시가 궐기대회 당일인 11일 자체 제작한 것으로, 12일 아침 시청사를 비롯한 전 읍·면·동 직원들에게 배포됐다.이 때문에 비록 공무원들이 궐기대회 현장에는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한편 청주시는 “정부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하이닉스 이천공장 불가 입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수도권 공장 증설 불허 방침을 밝혔다.”면서 ”산자부가 최종 결정 시기를 늦춘 것은 유감”이라고 밝혔다.청주지역 시민단체도 “정부는 눈치를 보지 말라.”며 하이닉스 공장의 청주 증설을 촉구했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한덕수 韓·美FTA 체결지원위원장 인터뷰

    한덕수 韓·美FTA 체결지원위원장 인터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여부가 국민적 핫 이슈로 부각된 요즘,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11일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한·미 FTA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57)가 바로 그다. 통상산업부 차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무조정실장 등 그동안의 화려한 경력이 말해주듯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통상전문가다. 그래서 통상문제에 대한 그의 향후 역할에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 광복절인 15일 오후 늦게 광화문의 외교통상부 6층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영국의 경제잡지인 이코노미스트에 특집(2001년 9월27일자)으로 게재된 분석 기사를 읽고 있었다.FTA와 관련해 반대론자들의 주장과 이에 대한 답변이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돼 있는 기사라고 설명했다. 최근 다시 꺼내 읽고 있는데, 이번이 세번째라고 했다. 부총리를 그만둔 뒤 위원장으로 임명받기전 잠깐 쉬면서 ‘칼의 노래’를 다시 읽었고,‘미스 사이공’,‘맘마미아’‘지킬 앤 하이드’ 등 뮤지컬과 영화 ‘괴물’을 봤다고 한다. “정말 대단합디다. 관람석이 꽉 차는 걸 보고 우리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이렇게 높구나 하는 생각에 놀랐습니다. 노래도 잘하고, 연기도 실감나게 하고, 스토리도 재미있고, 촬영 기법도 대단하고…. 한류가 아시아에 이어 유럽쪽으로 퍼지고 있다는 게 너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현상을 보는 순간 한·미 FTA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갖게 됐습니다. 능력 있는 민족 아닙니까. 너무 축소 지향적이고 내부 지향적인 사고를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패배주의적인 시각에서 탈피해 자신감을 갖고 뛰면 한·미 FTA 체결의 결실은 분명 맺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한 위원장은 문화 얘기로 한·미 FTA의 화두를 먼저 꺼냈다. 경제부총리에서 ‘FTA 홍보대사’로 직함이 바뀐 것 같다는 조크에 “굳이 말한다면 ‘제2의 성장동력발굴 지원팀장’ 정도로 하면 어떻겠느냐.”며 FTA 체결이 성장동력 확보의 출발점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위원회의 구체적인 활동에 관심이 많은데. -현재 FTA 협상은 협상을 담당하는 통상교섭본부, 해당 업종 등의 피해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하는 경제부처 등이 있다. 위원회는 이들이 제대로 일할수 있도록 국민·국회·언론·각 이해당사자 등을 상대로 설득과 협조를 요청하는 게 주된 업무다. 이 가운데 사실(fact)에 대한 오해를 푸는 게 급선무다. 잘못 알려진 게 너무 많다. 한·미 FTA를 체결하면 상당수 업종이 죽을 쑤고, 근로자 등 고용이 불안하다고 잘못 알려져 있다. 적어도 제조 업종은 미국에 비해 불리한 것이 없다. 다만 섬유 업종이라고 하더라도 제품·직물·원사·방적 등 부문별로 득실은 또다를 수 있다. ▶개방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이 너무 깊은데. -예를 들어 유통시장의 경우 이마트가 이나마 성장한 것도 선진 유통업체와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월마트·카르푸 등 외국 유통업체가 한국에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해 철수하지 않았는가. 1988년 우리가 물질 특허를 인정했을 때 국내 제약회사들이 다 망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지금은 국내 제약업체가 10여개의 독자적인 물질 특허를 보유할 정도로 경쟁력을 확보했다.99년 수입선 다변화 제도를 통해 일본 등에서 전자제품 등의 수입을 제한하던 것을 풀었는데, 지금은 반도체 등 국내 전자부문이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개방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재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는다고 다른 곳도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세계적인 추세를 외면해서는 안된다. 외국의 사례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싱가포르·홍콩 등은 개방을 통해 지금 국가경쟁력을 톱클래스로 올려놓았다. 중국도 70년대 후반 국민들을 제대로 못먹여 살렸으나,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잡으면 된다)의 실용주의 철학으로 지금은 10%대의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시장경제와 개방에 따른 결과다. ▶협상 과정에 대한 공개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는데. -가능한 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FTA특위)와는 모든 정보를 공유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민감한 부분은 협상이 끝날 때까지 비공개를 요청할 것이다. 협상이 끝난 이후 본서류는 공개하되, 구체적인 협상진행 과정 등이 담긴 자료는 3년 동안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당초 미국은 10년을 비공개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3년으로 주장해 관철시켰다. ▶중국이 농산물시장 양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는데, 미국과 먼저 해야 하는 이유는. -언론보도와는 달리 중국이 구체적인 안(案)을 제시해 오지 않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이 세계시장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수입 규모는 연간 1조 7000억달러 가량 된다. 일본 중국 등 아시안 국가 전체가 수입하는 규모보다 훨씬 많다. 중국보다 미국의 시장성이 훨씬 좋다는 얘기다. 특히 우리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추격이 만만찮다. 중국과 겨루려면 산업구조가 고도화돼야 한다. 농업은 막대한 타격이 우려된다. 그래서 미국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한 뒤 중국과 하겠다는 2단계 전략을 갖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이 한·미 FTA의 장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업종 상황을 보면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에서는 손해볼 게 없다는 게 각종 자료를 통해 이미 입증된 상태다. 제조업은 우리가 비교 우위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한·미 FTA가 체결되면 해당 업체들의 수출 물량이 늘어나게 되고, 동시에 경쟁력도 향상된다. 이렇게 되면 근로자가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일은 없다고 본다. 장사가 잘되는데 왜 구조조정을 하겠는가. 서비스 부문에서는 우리쪽이 경쟁력이 뒤떨어지지만, 우리쪽에 투자가 들어오는 긍정적인 효과가 생긴다. 고용창출의 효과로 이어진다. 통상 외국기업이 들어오면 전체 직원의 95% 가량을 내국인을 고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컨설팅·법무지원·회계 등 각 분야에서 고용이 늘어나게 된다. 농업 부문도 쌀을 제외하면 해볼 만하다. 예를 들어 전남 함평에는 한우고기 브랜드를 독자적으로 개발해 롯데백화점 등 73개 업체에 독점 공급하고 있다. 경남 하동에는 연소득 1억원대의 영농 고소득자 112명을 키우겠다는 농촌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농업에도 잘만하면 ‘블루오션(Blue Ocean)’이 있다는 얘기다. 현재 농업경영자의 60%가 60세를 넘었다. 농산물 개방유예기간을 10∼15년으로 잡는다면 이들은 70세가 넘는다. 따라서 후계자를 키우고 본인들의 노후를 위한 복지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농업의 경쟁력 향상에 정부가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FTA가 이념적 논쟁에 휩싸여 있는데. -FTA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만 바라봐야 한다. 국익을 위한 것이냐가 중요하다. 교조적인 시각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체제의 우월은 이미 끝났고, 영국 노동당도 세계가 변했다고 선언하지 않았나. 미국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을 반대했던 민주당이 도입했던 사례 등이 이를 말해 준다. ▶정부의 협상력이 떨어진다는 우려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가 산업자원부 장관을 만났는데,“한국 정부의 FTA 협정문은 일류급이고 터프(공격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독자적인 협정문을 만들어 제출한 나라는 한국을 포함해 몇나라밖에 안된다고 얘기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의 협상 능력은 향상되고 있다.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3차 협상 등에서 개성공단 부문도 논의하나. -개성공단 부문은 역외가공의 형식으로 우리에게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싱가포르·아세안(ASEAN) 등과 FTA를 체결할때 이 부문을 모두 포함시켰다. 그러나 한·미 FTA에서 개성공단 문제는 경제적인 측면만으로는 풀기 어렵다.6자 회담 참가 등 북한이 국제적인 신뢰를 얻지 않으면 쉽지 않을 수 있다. 미국측도 급한 것부터 하자고 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논의 시기를 조율하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이 개방을 받아들이는 자세는. -개방을 한다고 하면 겁부터 내는 패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덩치가 큰 미국과 하면 우리가 손해를 본다는 막연한 피해 의식이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 우리는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고,12위의 무역대국이다.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 하고, 세계와 어울려야 한다. 그리고 세계 최강국과 경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공해 왔다. 민족적인 잠재력도 대단하다. 한·미 FTA를 체결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들이 잘 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계화·고령화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2의 성장동력을 찾는 전략으로 개방을 택할 수밖에 없다. 세계화의 효과를 극대화해서 생산성을 올려야 한다. 무역과 투자의 규모를 늘리고, 돈·사람·기술이 들어오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에 대해 정책적인 배려는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사회안전망을 갖추지 않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되는 시장경제와 개방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美 구글본사 탐방기] 우주선같은 사무실에 ‘구글러의 자유’ 가득

    [美 구글본사 탐방기] 우주선같은 사무실에 ‘구글러의 자유’ 가득

    |마운틴뷰(미국 캘리포니아주) 안동환특파원|‘가로 9㎝’·‘세로 0.5㎝’의 검색창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 명제야말로 BI(Before Internet)와 AI(After Internet) 시대를 극명하게 가르는 ‘진화’일 것이다. 1998년 9월 캘리포니아의 한 차고에서 설립된 뒤 역사상 가장 빠른 성장 신화를 이룬 구글.8년 만에 전 세계 검색엔진 점유율 42.3%, 시가 총액 1300억달러(약 130조원)로 반도체의 ‘공룡 기업’ 인텔(약 127조원)마저 제쳤다. 지난 7일 저녁 9시30분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구글 플렉스’로 불리는 미국 본사를 취재했다. 늦은 시간에도 환하게 불을 밝힌 건물마다 꽤 많은 구글러(googler·구글 직원을 가리키는 말)로 분주했다. 기자는 1시간30분가량 머물면서 24시간 운영되는 구글 내부의 생생한 야근 풍경도 훑어볼 수 있었다. ●전 세계 구글 접속량 24시간 스크린 메인 건물 1층에서 기자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초대형 LCD 화면. 검은 화면속에는 3D 입체 형태의 지구가 360도 회전하고 있다. 각 대륙·국가마다 여러 색깔의 빛줄기가 우주를 향해 솟구친다. 빛줄기를 이루는 점 하나 하나가 나타내는 건 전 세계의 구글 접속량. 작은 점 하나는 1000명에 해당된다.110개국의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는 서버 컴퓨터만 1만 5000여대. 네티즌들이 컴퓨터에 입력하는 검색어는 실시간으로 화면에 나타난다. 전 세계 구글의 접속량을 한눈에 보여주는 최첨단 그래픽 기술인 것이다. 한창 업무 시간인 한국에서도 수많은 빛줄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한국의 한 연예인 이름이 화면에 떴다 사라진다. 미국 구글 본사에 자신의 이름이 뜨고 있다는 사실을 그 연예인은 알까. 구글 관계자는 “이따금 북한에서도 빛줄기가 나타난다.”면서 “북한의 접속량은 작은 점 하나 수준,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거대한 놀이터…‘구글=자유로움’ 구글의 명물 가운데 하나인 대형 ‘화이트 보드´. 어지럽게 쓰여진 암호 같은 글자들이 낙서처럼 보였다. 구글의 주력 상품으로 떠오른 G메일과 뉴스 서비스의 초기 모델도 이 칠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구글러들은 회사를 ‘캠퍼스’라고 부른다. 거대한 건물 밖에서 물론 식사를 할 수도 있다. 마치 피크닉을 온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내부에는 헬스클럽, 당구장, 이발소, 세탁소, 치과, 마사지실, 직원 자녀들의 놀이방까지 갖춰져 있다. 완벽하게 일에만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의 개성이 한껏 묻어난다. 우주선 내부를 닮은 공간에는 구글 로고가 새겨진 개인 장비, 정체를 알 수 없는 장난감까지 널브러져 있다. 회의실은 사방이 투명한 창으로 공개돼 있다. 천장엔 구글 로고의 색깔과 같은 파랑, 빨강, 초록색 풍선이 떠다닌다. 넥타이와 정장 차림의 구글러는 찾아보기 어렵다. 청바지와 티셔츠, 스니커스에 자유로운 분위기. 회사가 왜 캠퍼스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초창기 배고팠던 기억이 세계적 사원식당을 만들다 각 건물에는 뷔페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를 제공하는 사원식당이 있다. 늦은 시각인데도 많은 직원들이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루 세끼 식사와 대형 냉장고에 든 음료수, 맥주는 모두 무료. 사원 식당은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의 배고픈 시절이 투영된 공간이다. 구글 초창기, 매일 밤샘 작업을 하던 두 창업자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배고픔. 식당은 ‘잘 먹어야 일도 잘한다.’는 창업자의 생각이 고스란히 반영된 공간이다. 한해 식당 예산만 700만달러(약 70억원).1주일 동안 소비되는 쇠고기는 2t이나 된다. 식단 재료는 모두 유기농이다. 한국, 태국, 이탈리아, 일본 요리까지 회사가 채용한 100여명의 요리사가 6000여명의 직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요리사들은 매년 구글 직원이 심사위원이 되는 ‘요리경연대회’를 통해 공개 채용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지난 20일자 특집판에서 “혁신과 창조의 주역이 소수에서 다수로 옮겨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타임 도서비평가 레브 그로스먼은 “지적재산권의 가치는 ‘얼마나 소수가 갖고 있느냐.’에서 ‘얼마나 많은 다수가 공유하고 있느냐.’로 바뀌었다.”고 지적한다. 구글이 꼭 닮아 있는 모습이다. sunstory@seoul.co.kr ■ 한국인 첫 구글 웹마스터 황정목씨 |마운틴뷰 안동환특파원|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의 ‘인터내셔널 웹마스터’에 한국인이 올랐다.6000여명의 전 직원 가운데 웹마스터는 단 1명뿐이다. 한국계 미국인 황정목(27·미국명 데니스 황)씨는 지난해 11월 웹마스터로 승진했다. 스탠퍼드 3학년생으로 2000년 시간제 ‘보조 웹마스터’로 입사한 지 5년 만에 책임자가 됐다. 그는 전 세계 110개국에 서비스되는 구글 홈페이지를 디자인하고 인터넷 기업실적 공개를 총괄한다.12명의 직원을 둔 황씨는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권한과 예산과 장비를 독자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황씨는 스탠퍼드에서 순수미술과 컴퓨터를 전공했다. 그가 한국의 3·1절과 광복절 등 각국의 주요 기념일에 맞춰 선보인 ‘구글 로고’는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마니아들은 그의 디자인을 ‘구글 두들(google doodle·구글 낙서)’로 부른다. 그는 “기계적 계산이 주된 기능인 검색엔진에도 사용자가 공감할 수 있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구현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황씨는 요즘도 1주일에 하루 이틀은 회사에서 밤샘을 한다. 돈보다 스스로 즐길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구글 입사로 이어졌다. 구글 본사는 올해 한국지사 설립을 위한 인력 채용 등 한국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한국형 서비스를 전담할 ‘연구·개발(R&D)센터’를 세운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황씨는 “구글은 기계적 순수를 지향하는 검색엔진”이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검색 문화가 구글의 이상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정보를 보기 좋다는 이유로 인위적으로 가공하고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은 구글이 지향하는 ‘기계적 순수’와는 거리가 멀다는 설명이다. 황씨는 “첫 페이지를 장식한 많은 배너 광고와 ‘지식 검색’으로 대표되는 검색 형태는 정보 왜곡의 가능성을 많이 안고 있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를 통해 한국 시장을 바라보는 구글 내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다. 황씨는 “미국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자란 곳은 한국이며 스스로도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황정목이라는 이름이 좋다.”고 말한다. 경기도 과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황씨가 당시 공책에 그렸던 습작들을 아직도 책상 서랍에 간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sunstory@seoul.co.kr ■ “너보다 똑똑한 사람을 뽑아라” |마운틴뷰 안동환특파원|구글의 신입사원 채용에는 ‘불문율’이 있다.“당신보다 똑똑한 사람을 뽑아라.”구글 채용위원회의 지침이기도 하다.A급 직원이 자신과 비슷한 A급이나 A-급 직원을 뽑는 하향 평준화의 ‘동종교배’를 막기 위한 조치이다. ‘오일러 수(e)의 첫 열자리 소수.com’ 2004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인근 산 마테오에서 실리콘밸리까지 연결된 101번 도로에 ‘의문의 광고판’이 세워졌다. 광고판의 수학 문제는 18세기 스위스 수학자 오일러가 만든 끝이 없는 무한수를 가리킨다. 인터넷에 정답을 입력하다 보면 구글의 신입직원 채용 홈페이지에 도달한다. 구글만의 이색적인 신입사원 채용 공고이다. 구글 직원은 현재 6000여명.1년 전의 두배다. 지난해 하루에 10명꼴로 뽑은 셈이다. 오는 5월 미국 UC버클리 MBA를 졸업하는 정기현(33)씨. 그는 지난해 3월 이후 10차례나 구글 채용위원회와 인터뷰를 했다. 그들이 정씨에게 던진 질문은 단 한 가지.“구글을 위해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최종 인터뷰에서 15분 분량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그동안 연구했던 구글의 주력상품과 연계한 비즈니스 모델을 발표했다. 정씨는 지난 1월 입사를 통보받았다.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을 제공받는 팀장급이다. 현재 구글에서 일하는 한국계 직원은 10여명 안팎. 국적과 성별은 가리지 않는다. 구글은 전 세계 59개 대학의 석·박사 취득자를 추적, 인재 채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웹마스터 황정목씨는 “구글 이사들을 보면 잘 알려지지 않은 대학 출신들이 많다.”면서 “구글에서 펼칠 수 있는 자신만의 능력이 있다면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sunstor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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