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검은색
    2025-09-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937
  • 여성 및 암컷 동물 출입금지… ‘금녀의 산’ 아시나요?

    여성 및 암컷 동물 출입금지… ‘금녀의 산’ 아시나요?

    여성, 아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암컷이라면 동물마저도 출입할 수 없는 ‘금녀의 산’을 아시나요? 그리스 북부에 자리잡은 아토스 산(Mount Athos)은 그리스 아테네 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영적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자치권을 누려온 이곳은 아토스 산 자치구로 명명됐으며, 2000명이 넘는 수도사와 수십 곳의 수도원이 있어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토스 산이 여성과 아이는 물론이고, 동물 중에서도 암컷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데, 이처럼 ‘금녀의 산’이 된 이유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사도 요한과 함께 여행을 하던 중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아토스 산에 잠시 내리게 된다. 아토스 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께 이 산을 가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에 하느님은 아토스 산을 낙원으로 주겠다는 응답을 내렸으며, 성모 마리아만을 위한 이 땅에는 그 어떤 여성도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 이후 1060년 콘스탄틴 마노마코스 황제는 이곳에 여성이 출입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아토스 산이 모든 여성이나 아이 또는 암컷에게만 금지된 땅은 아니다. 일반인이 거주하거나 잠시 들르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그리스 정교회와 종교적 신념이 부합하지 않은 사람은 남성이라 해도 들어갈 수 없다. 설사 아토스 산 내 수도원이나 마을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수도사가 아니라면 반드시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한다. 비록 여성은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이 신비로운 산의 모습은 ‘남성 사진작가’들을 통해 틈틈이 공개되고 있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검은색 옷을 입은 수도사나 한가로이 산을 오가는 가축들의 모습은 수천 년간 이곳이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를 알게 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SUV의 DNA’ 볼보 S60 크로스컨트리

    ‘SUV의 DNA’ 볼보 S60 크로스컨트리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은 당초 도시가 아닌 산길이나 험로를 주행하기 알맞게 고안된 차종이다. 지상고를 높여 장애물이 많은 길을 지날 때도 차량의 손상을 최소화하고 적재공간을 늘려 실용성을 높인 게 SUV 차종이다. 볼보는 이러한 SUV의 특징을 기존 모델에 접목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차가 ‘크로스컨트리’다. 볼보자동차코리아는 지난해 각 모델을 기반으로 한 크로스컨트리V40, 크로스컨트리S60을 출시했다. 이 중 S60을 기반으로 가장 최근인 지난해 10월 출시된 크로스컨트리(S60)는 그중에서도 유별나고 독특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세단인 S60에 지상고를 높여 얼핏 보면 세단이고 달리 보면 SUV다. 실물로 본 크로스컨트리(S60)는 사진 속 모습보다 더 특이했다. 차체는 분명 세단인데 하단부는 높다란 SUV였다. 매끈한 세단보다는 날렵한 SUV에 가까웠다. 무광의 검은색 휠도 크로스컨트리(S60)의 차별성을 더했다. 운전석에 앉으니 기존 S60과의 차이점은 더 분명했다. 시야가 높으니 도심에서 운전의 편의성이 강화됐다. 내부 인테리어와 볼보만이 가지고 있는 주행성은 그대로였다. 북유럽 스타일의 원목 재질 중심의 간결한 내부 인테리어는 복잡한 최근 신차들의 복잡한 센터페시아(운전석 계기판과 조수석 글로브 박스의 중간 부분)가 싫은 운전자들에게는 제격일 듯싶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묵직하고 힘 있게 치고 나가는 볼보 특유의 가속성도 그대로 느껴졌다. 크로스컨트리(S60)는 2.0ℓ 직렬 4기통 트윈 터보 디젤 엔진이 적용돼 최고출력 190마력을 낸다. SUV에 부족하지 않은 힘을 가졌음에도 상대적으로 높은 15.3㎞/ℓ의 복합연비도 크로스컨트리(S60)만이 가진 장점이다. 볼보자동차코리아가 크로스컨트리(S60)를 출시하며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도 전례가 없던 와일드 세단”이라고 설명한 게 허언(虛言)은 아니었다. 다만 SUV도 아니고 세단도 아닌 ‘생소한’ 차가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을지는 미지수다. 볼보 크로스컨트리(S60)의 가격은 4970만원(부가세 포함) 이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여성 및 암컷 동물 출입금지…그리스 ‘금녀의 산’ 아시나요?

    여성 및 암컷 동물 출입금지…그리스 ‘금녀의 산’ 아시나요?

    여성, 아이는 물론이고 심지어 암컷이라면 동물마저도 출입할 수 없는 ‘금녀의 산’을 아시나요? 그리스 북부에 자리잡은 아토스 산(Mount Athos)은 그리스 아테네 대주교를 수장으로 하는 그리스 정교회의 영적 중심지로 알려져 있다. 비잔틴 시대부터 자치권을 누려온 이곳은 아토스 산 자치구로 명명됐으며, 2000명이 넘는 수도사와 수십 곳의 수도원이 있어 ‘성스러운 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토스 산이 여성과 아이는 물론이고, 동물 중에서도 암컷의 출입은 엄격하게 금지돼 있는데, 이처럼 ‘금녀의 산’이 된 이유와 관련한 전설이 있다.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는 사도 요한과 함께 여행을 하던 중 바다에서 큰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 아토스 산에 잠시 내리게 된다. 아토스 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한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께 이 산을 가지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렸다. 이에 하느님은 아토스 산을 낙원으로 주겠다는 응답을 내렸으며, 성모 마리아만을 위한 이 땅에는 그 어떤 여성도 발을 들일 수 없게 됐다. 이후 1060년 콘스탄틴 마노마코스 황제는 이곳에 여성이 출입하는 것을 법으로 금했으며, 이는 현재까지 매우 엄격하게 지켜지고 있다. 아토스 산이 모든 여성이나 아이 또는 암컷에게만 금지된 땅은 아니다. 일반인이 거주하거나 잠시 들르기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그리스 정교회와 종교적 신념이 부합하지 않은 사람은 남성이라 해도 들어갈 수 없다. 설사 아토스 산 내 수도원이나 마을에 들어간다 할지라도 수도사가 아니라면 반드시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한다. 비록 여성은 출입이 불가능하지만 이 신비로운 산의 모습은 ‘남성 사진작가’들을 통해 틈틈이 공개되고 있다. 수염을 길게 기르고 검은색 옷을 입은 수도사나 한가로이 산을 오가는 가축들의 모습은 수천 년간 이곳이 얼마나 평화로웠는지를 알게 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아르헨서 ‘아르마딜로 닮은 거대 동물’ 화석 발견

    아르헨서 ‘아르마딜로 닮은 거대 동물’ 화석 발견

    최근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지름 1m에 달하는 거대한 화석이 발견돼 화제를 일으켰다. 크리스마스였던 지난 달 25일(현지시간) 발견된 이 화석은 거대하고 둥근 형태의 특징을 보여 발견자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이 공룡알로 착각해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를 본 전문가들은 과거 아르헨티나는 물론 남미 일대에 서식했던 아르마딜로를 닮은 거대 동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약 40km 거리에 있는 카를로스 스페가찌니(Carlos Spegazzini) 강변. 발견자의 아내 레이나 코로넬은 “물체는 진흙에 덮여 있었고 검은색 비늘 무늬가 있어 이를 본 남편은 공룡 알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견자인 호세 안토니오 니에바스는 현지 방송사인 토도 노티시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분적으로 진흙을 뒤집어쓴 둥근 물체를 발견해 호기심에 그 주변을 파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찍은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발견된 물체는 공룡 알이 아닌 글립토돈트(glyptodont)의 껍질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지 고생물학자인 알레한드로 크라마즈(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 국립 자연과학박물관 소속)는 “수천 년 전 멸종한 글립토돈트의 화석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는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글립토돈트는 오늘날 아르마딜로를 닮은 거대한 동물로, 거대하고 둥근 껍질을 갖고 있으며, 무게는 최대 1톤, 몸길이는 최대 3m에 달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가운데), 위키피디아(CC BY-SA 3.0, Hunada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2016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핀 캐리(pin carry)-김현경

    각각의 플레이어들이 감당할 수 있는 볼링공의 무게는 다르다. 몸무게의 10분의 1 정도 되는 볼링공을 선택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완력에 자신이 있다면 더 무거운 공도 괜찮다. 볼이 무거울수록 흔들림은 적고, 파괴력은 더 커진다. 오빠는 자신의 체중에 비해 다소 무거운 공을 사용하곤 했다. 그 16파운드짜리 볼링공이 65킬로그램밖에 되지 않는 오빠에게 실제로 버거웠는지, 아니면 적절한 무게였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서 오빠의 동영상을 반복해서 되돌려 보았다. 유튜브 검색 창에서 오빠의 이름과 ‘볼링’이라는 단어를 함께 치면 열 개가 넘는 동영상이 뜬다. Y시장배 아마추어 볼링 대회의 결승전 영상, 그리고 형식이 ‘제일볼링장’이라는 태그를 달아 업로드한 짧은 영상들로, 대부분 볼링공을 던지고 있는 오빠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이따금 스트라이크를 치고 나면, 뒤로 돌아 허공을 향해 두 주먹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모습이 짤막하게 잡히기도 했다.  기차가 속도를 줄이자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풍경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커다란 모형 볼링핀을 지붕 위에 얹은 ‘제일볼링장’ 간판도 보였다. 나는 객차의 출입문을 향해 트렁크 바퀴를 천천히 굴리며 걸어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낡고 찌든 구두가 맨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오래된 구두로, 십여 년 전 그를 쫓아낸 오빠가 아버지의 외투와 함께 마당으로 내던졌던 그 구두였다. 앞코가 해지고, 뒤꿈치가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낡은 갈색 구두의 원래 모습이 얼마나 날렵했는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당신은 아바이도 아이다. 한 번만 더 내 눈에 띄만 우리 둘 다 제 명에 몬 삽니데이. 살아생전에 서로 보는 일 없도록 하입시더!” 오빠는 커다란 전정가위를 손에 든 채로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내가 있는 한, 이 집에 그 종자가 발을 디디 놓는 일은 없을 끼다. 엄마도 맞고 산 세월은 이제 잊으이소. 열일곱 살의 오빠는 짐짓 근엄하게 말했다. 자신이 지키고 있는 한 아버지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우리를 안심시켰던 오빠의 말은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하지만 오빠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고, 아버지는 십 년 만에 나타나 러닝셔츠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거실에 선 채로 나를 맞고 있었다. 닳을 대로 닳은 구두만큼이나 아버지의 몰골은 비참했다. 몸피가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정수리의 머리카락은 다 빠져 휑뎅그렁했다. 게다가 새카만 피부와 깡마른 팔다리, 그리고 볼록한 배는 아프리카의 기아를 연상시켰다. 기세등등했던 예전의 모습을 모두 잃어버린 채 젓가락 같은 팔로 러닝셔츠 안의 배를 긁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는 흠칫 놀라 한 걸음 물러섰다.  “왔나? 밥은? 너거 엄마는 밭에 갔다. 덥은데 어서 들와서 선풍기 바람 쫌 쐐라.” 약간 새된 소리가 섞인 음성은 그대로였다.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딸을 맞는 듯 다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건네고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버지는 이 집에 발을 들여놓을 자격이 없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내한테도, 거…걸리가 있다 카더라. 나도 다 들었는 말이 있다.” “걸리고, 권리고 간에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없어요. 이게 어떤 집인데!” 나는 악을 쓰며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하지 않고 저벅저벅 걸어서 현관과 맞닿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내 방이었다. 고향을 떠나고 나서야 갖게 된 내 방. 그가 방 안으로 사라지고 나서야 내가 신발조차 벗지 않고 현관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현관에 놓인 그의 구두를 집어 들어 마당으로 던져 버렸다.  냉장고에는 자양강장제 열 병이 두 개씩 나란히 줄을 지은 채 놓여 있었다. 각성 효과가 있다는 자양강장제를 물처럼 마시던 오빠가 세상을 뜬 지도 이 년이 지났지만, 엄마는 냉장실 가장 잘 보이는 선반에 갈색 병에 담긴 드링크를 열 병씩 정리해 놓는 습관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다. 오빠는 매일 아침 자양강장제를 마시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젊은 날의 선택’이라는 광고로 유명한 노란색 드링크제를 양쪽 점퍼 주머니에 불룩하게 넣은 채로 출근하던 그의 뒷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사고가 났던 날, 오빠가 몰던 트럭 조수석 바닥에는 빈 드링크제 병이 스무 개 남짓 뒹굴고 있었다. 오빠는 졸릴 때마다 자양강장제를 마시면 힘이 난다고 했다. 오빠는 자주 졸려했고, 늘 피곤해했다. 일상생활에서도 깜박깜박하는 일이 잦아서 소변을 본 후 변기 커버를 위로 젖혀 놓고 물도 내리지 않은 채, 화장실에서 그냥 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나는 그를 대신해 물을 내리면서 자양강장 드링크제처럼 샛노란 오빠의 오줌이, 거품을 일으키며 변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곤 했다. 오빠 방에 들고 온 짐을 풀었다. 책상에 놓인 액자 속 오빠는 머리카락을 노랗게 탈색한 채 경직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유분방한 헤어스타일과는 어울리지 않게 심각한 표정을 담은 이 사진이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사진 액자 옆에는 두 개의 볼링핀이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볼링핀 모양의 트로피다. 한 개는 2.0리터짜리 생수 병 크기 정도로 크고, 나머지 하나는 막걸리 병만 했다. 오빠가 냉장 트럭에 가득 싣고 다니던 막걸리 말이다. 오빠는 이 지역에서 소문난 아마추어 볼링 선수였다. 그와 한판 붙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까지 원정을 오기도 했었다는 건 오빠가 죽고 나서야 알았다. 빈소에서 문상객들이 늘어놓는 오빠의 무용담을, 나는 상복을 입고 빈청에 앉아 참담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오빠의 사인은 졸음 운전이 불러일으킨 사고로 인한 심박정지였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선산IC 인근에서 서울 방면으로 시속 130㎞로 달리던 K주류회사의 냉장 트럭이 오전 6시 40분경 가드레일을 들이받았고,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보도가 전파를 탈 만큼 큰 사고였다, 새벽부터 출근해 냉장 트럭을 몰고 전국 각지로 막걸리를 배달하다가 사고를 당했으므로 그의 죽음은 당연히 업무상 재해에 해당했다. 사고 전날에도 오빠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고, 사고 당일에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출근했다. 그러나 회사는 오빠가 죽기 전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쳤다는 사실을 문제 삼았다. 나는 엄마에게 절대 회사가 원하는 대로 합의서 따위에 도장을 찍어 주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엄마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는 오빠의 회사 사람들이 찾아와 현란하게 혀를 휘두를 때에도 엄마가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이다. 나는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엄마의 곁을 지켰다. 문도 열어 줘서는 안 된다는 회사 사람들을 집에 들이고, 오빠가 즐겨 마시던 드링크제를 그들에게 내놓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엄마를 때리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렸다.  오빠가 그날 밤 12시까지 볼링을 치지 않았더라면…. 회사는 이런 가정을 내놓고 우리를 괴롭혔다. 과한 취미생활이 화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나는 오빠를 대신해 회사와 싸웠다. 회사의 주장이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강변하면서도 새로운 가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라 괴로웠다. 그날 아침 내가 오빠에게 전화라도 한 통 했더라면 그런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오빠가 그날 새벽에 뜨거운 국과 밥을 먹고 나간 것이 오히려 졸음 운전의 이유가 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싫다는 오빠에게 한사코 아침을 먹여 보낸 것을 후회했다. 만약 내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내 한 학기 등록금은 당시 식구들이 살던 고향집의 연세(年貰)보다 비쌌다. 머릿속에서 새로운 가정이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커다란 대바늘이 심장을 깊게 찔러 대는 느낌이었다. 오빠의 죽음을 곱씹을 때마다 튀어나오는 가정들과 후회는 바늘 끝처럼 날카롭고 좁았다가 때로는 큰 파도처럼 밀려와 삶 전체를 부정하고 휘저어 버렸다. 아버지가 반듯한 가장이었다면, 엄마가 좀 더 야무지게 우리 남매를 건사할 줄 알았더라면, 오빠는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장례식장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위로의 말은 엄마에게 잘해야 한다는 소리였다. 이웃들과 몇 안 되는 친척들은 동공이 초점을 잃고 실성한 사람처럼 빈소를 지키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나더러, 이제 너그 엄마한테 남은 사람은 인숙이 니밖에 없다고 말했다. 친척들은 혹시라도 자신에게 일말의 부담이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경계심을 감추고 살아남은 내 책임을 강조했다. 나 역시 하나뿐인 오빠를 잃었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했다. 슬픔 이전에 책임이라는 단어가 목구멍에 와 박히면서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 더구나 촌각을 다투면서 처리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오빠의 시신을 확인하고, 경찰을 면담하고, 장례 절차를 결정하는 것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내 동창이자 오빠의 친한 후배였던 형식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곤란한 일이 더 많았을 것이다. 인호 행님은 내한테도 친행님이나 다름없다. 형식은 삼일 내내 장례식장에 머무르며 우리를 도왔다. 형식은 주변의 선후배들에게 오빠의 부고를 알렸고, 생각보다 늘어나는 조문객을 맞으려 술과 음식을 추가로 주문했다. 나를 대신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음식을 나르며 조문객들을 대접했고, 장례 행렬 맨 앞에서 오빠의 영정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장례 기간 내내 내 시선을 피해 의아한 마음이 들게 했다.  오빠의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화장터 앞마당으로 나를 따로 불러 오빠가 남긴 보험금이 있다는 사실을 전해 준 것도 형식이었다.  “장례 다 치아고 말해 줄라 캤는데 행님을 저래 불구디에 보내디리고 나이 인자 말해도 되겠다 싶어서. 볼링동호회에 보험설계사 하시는 행님이 계시거덩. 그 행님한테 인호 행님이 얼마 전에 보험 하나를 들었다. 그기 정확히 말하만, 무슨 내기를 해가꼬 20만 원 정도 인호 행님이 땄는데 그거를 보험 행님이 돈으로 안 주고 인호 행님 이름으로 종신보험을 들어뿌맀다 이기라. 첫 달 보험료 대납해 줬다 카민서. 두 달도 안 된 일인기라. 그걸로 그 보험 행님이랑 인호 행님이 싸우고 억수로 난리 났는데, 일이 이래 되고 보이 이런 거를 불행 중 다행이라 캐야 되는 긴지…. 사람 운명이라 카는 기 참… 얄궂다.” 형식은 끝까지 내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나와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길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화장터에서 나는 매캐한 냄새와 형식의 담배 냄새가 섞여 공중으로 흩날려졌다.   오빠가 내 이름으로 남긴 보험금이 꽤 된다는 소문이 퍼지자 이웃들은 그래도 이제 인숙이네는 걱정 없겠다는 말을 대놓고 했다. 동네 사람들은 아들 죽은 보험금으로 포도밭을 사고 새로 집을 지었다며 수군거렸다.  돈으로 위로할 수 있는 죽음이란 없다. 오빠의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서 그를 잃은 슬픔이 가시는 것은 아니었다. 위로받기 위해 그 돈을 받은 것 또한 아니었다. 오빠는 죽으면서 보험금을 내 앞으로 남겼고, 우리는 오빠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항상 가난했다. 오빠는 가난하게 자라, 가난하게 살다가 갔고, 우리에게 적지 않은 돈을 남겼다. 보험금 5억과 회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1억, 6억이란 돈은, 남은 사람들이 더 이상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돈이었다.  남의 집 농사일을 도와주고 품삯을 받으며 살던 엄마의 소원은 자기 명의의 땅과 집을 가지는 것이었다. 내 소원은 학교 앞에 원룸이라도 하나 얻고, 돈 걱정 없이 대학을 다니는 것이었다. 오빠는 형식처럼 볼링장 아들로 태어나 볼링을 실컷 치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가 굳어지는 엄마의 표정을 보고 농담이라며 유난스럽게 웃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꿈은 나와 엄마의 소원을 이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세 사람의 소원은 모두 이루어진 셈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중 그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 고시원을 전전하다가 처음으로 내 공간으로 마련한 8평짜리 오피스텔은 아늑했다. 뜨거운 물을 가장 센 수압으로 오래도록 틀어 놓고 머리를 감다가,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는 스스로에게 흠칫 놀라 벌거벗은 몸으로 주위를 둘러본 적이 있다. 나는 이 집에서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되뇌면서 괜히 주눅이 들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볼링을 몰랐더라면, 형식과 어울리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어쩌면 지금과는 다른 현실이 펼쳐지지 않았을까 하는 원망은 지금도 떨치기 어렵다. 장례가 끝난 후, 오빠의 유품을 정리하다가 휴대전화에 남겨진 형식의 메시지들을 읽으며 나는 호흡이 가빠졌다. 형식은 거의 매일 밤 오빠를 자기네 볼링장으로 불러냈다.  행님 오늘 제가 3 대 3 죽이는 멤버들로 조 짜놨습니더. 판돈이 꽤 커예. 이거는 진짜 빅 매치라요. 컨디션 조절 잘하고 오시이소. 드링크 시원하게 해 놓고 기다리께예. 오빠의 휴대전화를 들고 읍내에 있는 형식의 볼링장으로 달려갔다. 볼링장 입구의 커피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를 보자마자 따귀를 올려붙였다. 형식이 놓친 종이컵에 담긴 커피가 바닥에 쏟아졌다.  “으. 뜨거버라! 니 미친 거 아이가.”  대답도 없이 볼링 레인 앞에 놓인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볼링공을 들고 성큼성큼 걸어가 볼링장 입구의 유리문을 향해 힘껏 던졌다. 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야, 이형식. 너 어떻게 우리한테 이럴 수가 있어?” “머라카노. 니 뭐 잘몬 쳐 묵었나.” “너는 왜 이렇게 멀쩡해? 우리 오빠를 노름에 끌어들여 죽게 해 놓고,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냐고!” 나는 형식이 가슴팍과 어깨를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질렀다.  “아이다, 그런 기 아이고. 니가 무슨 오해가 있는 갑는데, 행님은 노름을 하신 기 아이고… 그거는 그냥 친목 도모다. 그라이깐 여기 볼링동호회 회원들끼리 재미로 했던 내기인기라.” “그래? 그럼 이 얘기 경찰서 가서 한 번 해 볼까. 매일 밤 판돈이 백만 원에서 이백만 원씩 오가는 볼링 게임이 내기인지 도박인지 말이야.” “니 말 다했나? 니 그래 말하만 나는 뭐 할 말 없을 줄 아나. 그래도 해…행님이 우리캉 볼링을 칬기 때문에 그 보험을 들게 된 기지. 동네 사람들이 다 칸다. 너거 집은 행님 죽어 가꼬, 그나마 남은 사람들이 살게 됐다꼬. 6억이 뭐 누구 집 아 이름이가?” 나는 형식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다시 레인 앞에 놓인 볼링공 하나를 들어 카운터 방향으로 던졌다. 형식이 자리를 비운 카운터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둔탁하게 볼링공이 떨어지고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곧장 볼링장 밖으로 나와 버렸다. 뒤통수에 대고 거칠게 욕을 하는 형식에게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은 채 입구에 잘게 부서져 있는 유리 조각을 밟으면서 그곳을 빠져나왔다.   밭에서 돌아온 엄마의 바지 자락은 흙투성이였다. 엄마는 입구에 더러운 몸뻬 바지와 토시를 허물처럼 벗어 두고, 반팔 셔츠와 팬티만 입은 채로 거실을 가로질러 욕실로 들어갔다. 못 본 사이 살이 더 빠졌는지 팬티조차 몸뻬처럼 헐렁했다. 엄마는 팬티를 발목까지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욕실 바닥에 소변을 보았다. 욕실 문도 닫지 않고 수채 구멍에 오줌을 누는 엄마의 엉덩이를 나는 얼굴을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변기가 아닌 수채 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소변을 보는 엄마의 버릇은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았다. 나는 이기 편한데 우짜겠노. 엄마는 늘 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입안에서 삼키듯이 말했다. 학창 시절, 매일 아침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욕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지린내에 숨이 막혔다. 변기 물 내리는 것을 자주 깜빡하는 오빠도 지긋지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꼭 서울로 대학을 가야겠냐고 묻는 오빠의 질문에 나는 간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학기 등록금만 마련해 달라고, 그다음에는 어떻게든 내가 알아서 해 보겠다며 겨우 오빠를 설득했다. 오빠에게도 집을 떠날 기회가 있었다. 공고 3학년 때 수원에 있는 반도체 공장에 취직이 되었지만 오빠는 고민 끝에 입사를 포기했다. 아들을 멀리 보내기 싫어했던 엄마의 만류 탓이 컸다. 대신 오빠는 집에서 멀지 않은 막걸리 공장에 취직했다.  “인숙아, 오빠야가 볼링부인 거 알제? 오빠야가 볼링 칠 때 제일 어려븐 기 뭐꼬 카만 스페어(spare) 처리다. 한 번에 스트라이크를 못 시키만 두 번째 공 떤질 때 나머지를 다 넘가야 되거덩. 최고 골치 아픈 기 뭐꼬 카만 핀이 몇 개 남지도 안해 가꼬 뚝뚝 떨어지가 있을 때인 기라. 그거를 스플릿(split)이라 카거덩. 양쪽 끝에 핀이 이래 두 개 뚝 떨어져 있으면 결국 한 개를 내삐릴 수빢에 없더라 카이. 그라이깐, 식구끼리는 서로 붙어 살아야 처리가 쉽다. 뭐 이런 말이다.”  오빠가 한창 볼링에 빠져들던 시기였다. 오빠는 모든 것을 볼링과 연결시켜 이야기하려 들었고, 볼링에 대해 이야기할 때만 환하게 웃었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그때부터 굳게 다짐했다. 처치 곤란한 스페어, 그래서 포기해야 하는 스페어가 아니라, 아예 다른 레인에 스스로를 세워 보겠다고. 나는 일부러 사투리를 쓰지 않았고, 친구를 깊게 사귀지도 않았다. 이 좁은 동네를 떠나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가서 온전한 나로 새롭게 살아 보고 싶었다.  아버지가 들고 온 유리단지 속에는 수백 마리의 굼벵이가 서로 몸이 뒤엉긴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지금 뭐하자는 거예요? 이런 게 어디서 났어요?” “어데서 났기는? 샀지. 읍내 건강원에 외상 잽히가 샀다. 읍에 나갈 일 있으만 그 집에 돈 쫌 갖다 주라. 구하기 힘든 기라꼬 억수로 생색내더라. 이따가 너거 엄마 오만 이거 씻거가 한 번 찌놓으라 캐라.” “아니, 대체 뭘 믿고 외상을 줘요?” “내 믿꼬 줬겠나? 인숙이 니 인자 부자됐다꼬 소문이 자자하더라.”  “그래서, 좋으세요?” “누가 좋다 카더나. 사람들이 그칸다 카는 기지. 나도 참 기가 차가 말도 안 나온다.” 아버지는 유리단지를 손에 든 채 계속 만지작거렸다. 나는 투명한 단지 표면에 희뿌옇게 찍힌 손자국을 보면서 미간을 찡그렸다.  “얼마를 원해요? 그때 말한 권리라는 게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세요?” “35다.”  “당장 필요한 용돈 말고요. 얼마를 주면, 이 집에서 나가겠느냐고 물은 겁니다. 많이는 못 줘요. 우리 이제 돈 없어요. 엄마도 농협에 빚내서 비료 사고 농사지어요.” “35만 워이 아이라 35키로. 그기 지끔 내 몸무게다.” 예전의 그는 36인치 사이즈 바지를 입을 정도로 체격이 좋았다. “걱정 마라. 오래 안 있는다. 나도 곧 인호 저트로 갈 끼다.” 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죽을 병에 걸렸다는 말도 엄살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는 무슨 병인지 묻지 않았다. “그러면서 약은 왜 구해다 먹어요? 무슨 염치로 이래!” “하루를 살아도 쫌 덜 아프까 싶어가 칸다. 내가 이거 한 빙 사 묵는 것도 아깝나? 인호 글마가 살아 있었으만, 내를 이래 멸시하지는 않았을 끼다. 적어도 다 죽어 가는 아바이한테 이래 하는 거는 갱우가 아이라 카이!”  아버지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소리쳤다. 우윳빛 투명한 몸체에 붙은 검은색 대가리를 뒤흔들며 유리벽을 타고 있는 굼벵이들처럼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오빠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말아요. 오빠가 어떻게 살다가 죽었는지 알기나 해요?” 더 독한 말로 쏘아 주려는데, 아버지가 갑자기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았다. 놀라 엉거주춤 팔을 뻗었다. 그는 내 손을 뿌리치고 욕실로 달려갔다. 푸른색 타일이 깔린 욕실 바닥에 검붉고 끈적끈적한 피가 흩뿌려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러닝셔츠 앞섶을 붉은 피로 흥건하게 적신 아버지가 욕실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자, 나는 바지를 무릎까지 걷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물을 세게 틀어서 바닥의 끈적끈적한 핏자국을 지우다 말고, 나는 쪼그려 앉아 울었다. 오빠였더라면 아버지를 다시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오빠가 돌아와 어서 이 스페어들을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방으로 들어가 옷장 문을 열었다. 오빠의 방에는 그가 쓰던 물건과 옷가지 들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내가 갖다 버린 오빠의 유품들을 엄마는 모두 다시 주워 왔다. 오빠가 입던 옷들 사이로 얼굴을 파묻어 보았다. 오빠에게서 늘 나던 냄새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담배 냄새와 시큼한 막걸리 냄새가 섞여서 나던 찌든 내가 좀약 냄새와 함께 코끝에 돌았다. 외투 주머니에서는 따스한 온기마저 전해졌다. 오빠의 점퍼 주머니에 하나하나 손을 넣어 보다가 손바닥 크기의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수첩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볼링에 관한 메모밖에 없었다. PVC 재질의 수첩 커버에는 ‘제일볼링장 이용권’이 스무 장 남짓 끼워져 있었다.  책상에 앉아 수첩을 첫 장부터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수첩은 각 장마다 오빠가 치른 게임에 관한 기록으로 채워져 있었다. 오빠는 자신이 얻은 점수와 딴 돈 혹은 잃은 돈을 먼저 기록하고, 그날 컨디션과 치러 낸 게임의 보완점들을 짤막하게 적어 놓았다. 돈을 잃은 날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작은 액수라도 잃은 날이면, 처리하지 못한 스페어의 위치와 공의 각도까지 그려 가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려 들었다. 나는 모르는 볼링 용어를 인터넷 검색 창에서 찾아보면서까지 오빠의 게임을 내 나름대로 복기해 보려 애썼다. 오빠는 파워모션 볼링을 선호했다. 5스텝의 순서로 빠르게 어프로치 라인을 통과해 공의 스피드와 파워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오빠는 되도록 1회 차 투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을 공략해 성공시켜야 한다고 수첩에 써 놓았다. 스페어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오빠가 정신력이 강한 선수는 아니었던 듯하다. 첫 투구에서 스트라이크를 성공하지 못하면, 2회 차 투구에서는 미스가 잦았다. 그럼에도 그의 에버리지가 높은 수준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더블(두 번 연속 스트라이크)과 터키(세 번 연속 스트라이크)를 심심치 않게 보여 줄 정도로 스트라이크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수첩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인 ‘일타열피!’라는 문구는 계산할 줄 모르는 오빠의 삶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막걸리 상자를 들 때에도 오빠는 남들처럼 한 상자씩 드는 게 아니라 두세 상자를 한꺼번에 겹쳐 옮기곤 했다. 상가에 조문 온 회사 동료들은 남들보다 일 처리가 빨랐던 오빠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게 일을 허겁지겁 끝내고 그가 달려간 곳은 볼링장이었다…. 오빠는 볼링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는 것은,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그것에 매달릴 각오가 필요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그 무엇도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다.  아침 느지막이 거실로 나가자 엄마는 집에 없고, 아버지의 방문 앞에는 빈 죽 그릇이 놓인 개다리소반이 나와 있었다. 나는 늦은 아침을 먹고 읍내의 볼링장으로 나갔다. 카운터 앞에서 쿠폰을 내밀자, 형식은 두 눈이 동그레져서 물었다. “니 이거 어데서 났노?” “이 쿠폰 너네 볼링장 꺼 맞지? 240 사이즈로 줘.” 나는 대답 대신 건조한 목소리로 내 할 말만 늘어놓았다. 형식은 순순히 볼링화를 꺼내 주었다. 푸른색 쿠폰 한 장을 내고 하루 종일 볼링을 쳤다. 쿠폰 한 장당 한 게임을 이용할 수 있다는 규칙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다섯 게임에서 열 게임은 족히 쳤다. 신발 대여료도 따로 내지 않았다. 형식은 그런 내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평일 낮 시간의 볼링장은 한산했다. 오빠의 옆에서 구경한 적은 있었지만, 직접 볼링을 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부러 볼링공을 세게 바닥에 던지듯 굴렸다. 레인 위로 볼링공을 떨어뜨릴 때마다 쿵 하는 소리가 나며 발끝에 진동이 와 닿았다. 미치광이 같으니라고. 이게 뭐라고, 수첩에 공부를 해 가면서까지 쳐. 대단한 박사 나셨어. 그 시간에 집에 일찍 와서 잠이나 잤어야지. 나더러 걱정 말라고 자기가 다 책임진다고 하더니, 결국 이렇게 나한테 다 떠넘기고 혼자 떠났나. 공은 레인 옆의 도랑같이 생긴 회색 거터 속으로 들어가 떼굴떼굴 굴러가기 일쑤였다.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형식이 슬그머니 옆에 다가와 이죽거렸다.  “그래 가꼬 바닥이 뿌사지겠나. 더 씨기 쾅쾅 떤지 뿌라. 아이고 답답아래이. 그래 하는 기 아이고….” 형식이 내 손과 어깨를 붙들고 볼링공 잡은 자세를 교정시켜 주려 했다. 나는 볼링공을 손에 든 채로 형식을 노려보았다. 순간 형식은 움찔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카운터로 돌아갔다. 오일이 덧발라져 번들거리는 레인 위로 나는 폭탄을 던지듯 공을 던졌다. 오빠에게 등록금을 부쳐 달라고 했던 내 발등을 볼링공으로 찧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옆 레인에서는 교복을 입은 학생 무리들이 시끄럽게 순서를 바꿔 가며 볼링을 치고 있었다. 볼링공이 굴러가 핀에 부딪칠 때마다 그들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깔깔 웃어 댔다.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리를 정리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카운터에 신발을 반납하며 힐끗 학생들의 전광판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들은 10프레임이 아니라 12프레임으로 게임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나는 형식에게 시비조로 말을 붙였다.  “쟤네들은 왜 열 번이 아니라 열두 번씩 쳐? 내가 쿠폰 손님이라고 홀대하는 거야?”  형식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니는 여어가 노래방맨치로 사장이 뽀나스 프레임 더 주고 싶으만 줄 수 있고 그런 덴 줄 아나? 그기 아이라 쟈들은 10회 차 떤질 때 스트라이크를 해 가꼬, 뽀나스 프레임을 받은 기다.” “보너스?”  “하긴, 니는 맨날 개판 치는 점수만 받아 가꼬 그런 기 있는 줄또 몰랐겠지. 인호 행님이 진짜 뽀나스 게임의 명수였는데…. 10회 차를 스트라이크 때리 가꼬 두 번 더 뽀나스 투구를 받아 뿌리민 당해 낼 사람이 없었제.” 형식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그때 저 행님은 진짜 운빨 쥑인다 생각했거덩. 스트라이크를 치도 우째 저 순간에 딱 성공시키민서 뽀나스 투구를 받아 가까. 행님이 내한테 자주 했던 말이 인생 끝까지 가봐야 안다꼬, 두고 봐라 늘 그캤는데….” 오빠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더 볼링의 운에 집착했는지도 모르겠다. 탁월한 실력에 운까지 따라 준다고 치켜세워 주는 주변 사람들의 부추김이 졸린 눈을 부비며 공을 던지게 하는 힘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빨간색 팬티와 체크무늬 양말을 신은 날이 제일 점수가 좋다며 속옷과 양말 색깔까지 메모해 놓은 오빠의 수첩을 떠올리며 나는 한숨을 쉬었다.  볼링공이 처음부터 끝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굴러가는 경우는 드물다. 공이 휘어지는 지점인 후킹 포인트까지 계산에 넣어야 완벽한 스트라이크를 이뤄 낼 수 있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오빠는 언젠가는 인생의 훅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그러나 오빠가 펼치던 인생이란 게임은 너무 빨리 끝나 버렸다. 보너스는커녕 주어진 프레임의 점수 칸을 제대로 채워 보지도 못한 채 종료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버지를 앞세우고 포도밭을 향해 걸었다. 포도송이를 종이 포장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그 집은 너거 아이라도 일손 안 많나. 오늘 우리도 해야 되는데, 우짜노. 내일은 약 치야 되는 날인데…. 오늘은 꼭 우리 밭에 와 줘야 된다꼬 내가 말 안 하더나…. 어데, 내 말은 그기 아이고….”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자 엄마는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전화를 해대고 있었다. 약속을 어긴 건 상대방인 것 같은데, 엄마는 화를 내지도 못하고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쩔쩔맸다. 오기로 했던 이들은 엄마와 함께 조를 짜서 인근의 과수원과 비닐하우스로 일당 벌이를 다니던 아주머니들로, 오빠의 장례식장에 달려와 가장 큰 목소리로 곡을 해 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엄마가 포도밭을 사면서 그들의 태도는 묘하게 변해 갔다. 유월 초순, 포도알이 새파랗게 영글 즈음이면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 줘야 하는데 시기를 놓치면 병충해나 햇빛, 농약으로 포도가 상할 수 있다. 답답한 마음에 내가 도울 테니 남한테 아쉬운 소리하지 말라며 큰소리를 쳤다. 방 안에 틀어박혀 숨죽이고 있던 아버지도 눈치를 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아버지나 나나 밭일을 안 해 봤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보다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다만 온몸에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운 게 문제였다. 나는 엄마와 예닐곱 걸음 떨어져 혼자 일했고, 아버지는 엄마와 한 조를 이루어 일했다. 아버지가 포도송이를 종이로 감싸면 엄마가 옆에서 그 위를 철끈으로 묶었다. 너무 쫄리게 묶으만 안 된다 카이, 포도도 숨을 쉬이야제. 엄마가 종이를 건네주면서 하는 말에 불현듯 기억하기조차 싫은 오빠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입관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피투성이로 병원에 실려 왔을 때와는 달리 깨끗한 모습으로 분까지 바르고 누워 있는 오빠의 모습은 차라리 편안해 보였다. 사고 직후 끔찍한 모습을 보지 못했던 엄마는 오빠를 쓰다듬으면서 통곡을 했다. 그리고 장례사를 붙들고 염해 놓은 오빠를 가리키며 애원하듯 말했다. “우리 아는 답답은 거 싫어하는데, 너무 꽉 쫄라 놨다. 옷도 찡기는 거 싫다 캐가 내가 맨날 한 치수 큰 걸로 사주고 캤는데…. 어차피 태울 꺼 아이가. 쪼매만 풀어 주만 안 되겠나. 우리 인호는 저래 답답은 거 싫어한다 안 카능교.” 목구멍에서 넘어온 뜨거운 기운을 억지로 삼키고 있는데, 아버지와 엄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지난 삼십여 년간 아무 탈도 없이 서로 의지하면서 산 금슬 좋은 부부인 양, 같은 포도송이를 붙든 채 도란거리는 그들의 모습에 허망한 생각마저 몰려왔다. 엄마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내려와 있는 내가 한심했다.  “니는 와 하필이믄 포도밭을 샀노. 쪼매난 하우스 같은 거를 샀으만 차라리 좀 핀하고 나슬 낀데.” “우리 인호가 포도를 제일 안 좋아했능교. 맨날 넘우 밭에서 얻어 가꼬 알매이 쪼매난 것만 믹인 기 계속 마음에 걸린다. 제사상에 제일 큰 걸로 올리 줄라꼬 그캤제.”  오빠 이야기가 나오자 엄마는 별안간 땅바닥에 주저앉아 꺽꺽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속 깊은 곳에서 토해 내는, 비명에 가까운 울음이었다. 한편으로, 별안간이라는 표현을 쓰기에는 철퍼덕 주저앉아 우는 품새가 너무나 익숙하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했다. 어쩌면 엄마는 목 놓아 울기 위해서 이 밭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차라리 속 시원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웅얼거리면서 속의 말을 삼키던 엄마였다. 이렇게 울기라도 해야 썩은 포도알처럼 문드러진 가슴속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리지 않겠는가. 주변은 고요했다.  아버지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니 와 이카노. 일나 봐라. 동네 사램들이 들으만 머라카겠노. 내가 니 뭐 우째 했는 줄 알겠다. 동네 우사시럽구로.” 그는 진땀을 흘리며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의 팔을 붙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아버지의 팔뚝은 엄마의 절반에 못 미칠 정도로 앙상했다. 엄마를 일으키려던 아버지가 오히려 휘청거리면서 흙바닥에 넘어졌다. 아버지는 스스로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지 거칠게 숨을 내쉬면서 네 발 짐승처럼 엎드려 있었다. 나는 눈을 찡그린 채, 쓰고 있던 선캡을 벗어 얼굴에 부채질을 했다. 포도나무의 높이가 낮아 똑바로 서지도 못하고, 허리를 숙인 엉거주춤한 자세로 연신 부채질만 해댈 뿐이었다. 숨이 막히게 더웠다. 엄마의 울음소리가 조금씩 잦아지고 있을 무렵 아버지가 땅바닥에 카악하고 가래침을 뱉었다. 길고 끈적끈적한 가래침이 끊어지지 않고, 그의 아랫입술에서 덜렁거렸다.   오빠는 죽기 전날까지 도박판을 벌였다. 수첩을 절반쯤 넘기다가 나는 게임일지의 패턴이 이상하게 변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생의 막바지에 빠져 있었던 게임은 단순히 볼링 에버리지를 얼마나 많이 내는지를 다투는 게 아니라 누가 점수를 제일 적게 내는지로 승부를 겨루는 게임이었다. 그렇다고 공을 레인 옆의 거터 구역에 빠뜨려서도 안 되었다. 핀 스폿까지 공을 굴리되, 가장 적게 핀을 쓰러뜨리는 자가 돈을 따갔다는 점에서 실력보다는 운이 더 중요한 투전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빠의 공은 킹핀과 헤드핀을 아슬아슬하게 잘 비켜나가 많은 수의 핀을 남겼다. 형식의 말에 따르면, 점수를 많이 내는 오빠를 견제하기 위해 점수를 적게 내는 사람이 승자가 되도록 룰을 바꾼 것이었는데, 오빠는 의외로 빨리 새로운 게임에 적응했다. 투구 자세와 쓰던 볼을 바꾼 효과가 컸다. 5스텝 대신 4스텝, 평소 쓰던 16파운드의 볼 대신 13파운드 볼을 쓴다. 거친 필체로 채워진 오빠의 메모는 꼼꼼했고 진중했다. 배치도까지 그려 놓고, 검은색으로 표시된 10번 핀 하나만 안정적으로 아웃시키기 위한 공의 동선을 짰다. ‘훅 볼’이라고 동그라미 쳐진 단어 옆에는 별모양 그림이 여러 개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곧게 전진시키다가 핀 앞에서 오른쪽 바깥으로 볼의 커브를 유도해서 10번 핀을 날리는 전략이었다.   ⓻ ⓼ ⑨ ❿   ⓸ ⓹ ⓺ ↱    ⓶ ⓷ ↗     ⓵ ↗      ↱      ↑ ‘뉴 게임’이라고 이름 붙인 그 게임의 판돈은 날이 갈수록 더 커지고 있었고, 그에 비례해 메모에 담긴 욕망의 크기도 기묘하게 불어났다. 사고 즈음의 오빠는 팬티 한 장을 갈아입는 데에도 예민하게 굴어 엄마가 애인이 생겼냐고 물어볼 정도였다. 게임 한 판에 한 달치 월급이 오갔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른 핀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헤드핀(1번 핀)과 킹핀(5번 핀)을 비켜 지나가 단 하나의 핀만 깨끗하게 날려야 한다고 휘갈겨 놓은, 낯부끄러울 정도로 진지하고 치열한 메모로 빼곡하게 채워진 그 수첩을 나는 마당으로 들고 나와 오빠가 남긴 잡동사니와 함께 불태웠다. 맞춤법도 제대로 몰라서 ‘핀 캐리를 경게하자.’라고 빨간 글씨로 강조해 놓은 오빠의 흔적을 나는 볼품없는 물건을 버리듯 내팽개쳤다. 내 서울살이를 지탱했던 것이 오빠가 쓰러뜨리지 않은 스페어스(spares)라는 걸 잊고 싶었다. 까맣게 내려앉은 잿더미를 발로 밟고 침을 퉤퉤 뱉었다. 수첩에서 빼낸 몇 장의 쿠폰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화가 치솟으면서 무언가 던지고 부숴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볼링장에 갔다. 이 집에서 머무른 대부분의 시간이 그런 나날이었다. 마지막 남은 쿠폰을 내고 벤치에 앉아 볼링화를 갈아 신으며, 나는 심호흡을 했다. 마지막으로, 가장 점수를 적게 내는 볼링을 쳐 보기로 했다.  오른쪽 끝의 10번 핀을 노리고 던졌더니 볼링공은 손에서 떨어지는 족족 레인 밖으로 굴러가기 바빴다. 한 번은 10번 핀에 공이 닿긴 닿았는데, 스치기만 했는지 핀이 살짝 기우뚱하는 데 그치고 오뚝이처럼 말짱하게 섰다.  “으이고, 속 터지 죽겠네. 니는 우째 핀을 맞차 놓고도 점수를 못 내노? 이거 끼고 한번 해봐라.” 형식이 볼링 아대라며 낯선 장비를 내밀었다. 광택이 나는 단단한 재질로 이루어진 붉은 아대는 아이언맨의 갑옷 같았다.  “핀이 맞으만 머하노. 손모가지에 히마리가 없어 가꼬, 핀이 쓰러지지를 안 하는데. 이거 차고 한 번 해 봐라. 훨씬 더 힘이 잘 들어갈 끼다.” 나는 웅얼거리듯 작게 말했다. “딱 하나만 아웃시키고 싶어. 아주 깨끗하게.” 형식은 내 팔에 억지로 아대를 채우느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한 번에 다 되는 기 아이다. 첨부터 우째 깨끗하이 다 처리하겠노. 부담 가질 필요 엄따. 공짜로 주는 거 아이다. 빌리주는 기다. 신발하고 같이 반납하만 된다.” 단단한 아대를 착용하자 팔목부터 팔꿈치까지 깁스를 한 느낌이었다. 공의 구멍에 손가락을 끼우고 천천히 스텝을 밟았다. 확실히 공이 뻗어 가는 기세가 이전보다 좋았다. 10번 핀을 향해 스트레이트로 나아가던 공이 핀 스폿 앞에서 갑자기 왼쪽으로 휘어지면서 1번 헤드 핀을 정확하게 때렸다. 헤드 핀이 넘어지면서 킹 핀을 때렸고, 또 킹 핀이 주변의 핀들을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였다. “브라보! 내가 말 안 하더나. 아대 끼면 힘을 팍 받아 갖고 점수가 더 나올 끼라고. 이야, 핀 캐리 직이네. 일단 공을 쌔리삤다 카만 저런 반발력으로 핀 캐리가 나와 줘야 속이 씨원해진다 카이. 아대가 완전 임자 만났는 갑다.” 형식은 박수를 쳐 가면서까지 너스레를 떨었다. 스트라이크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손끝에 얼얼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이상한 희열을 불러일으켰다. 공에 맞은 핀이 튀어 오르는 순간, 핀과 핀끼리 부딪치며 내는 소리의 경쾌함이 내 몸마저 가볍게 만들어 버리는 느낌이었다. 나는 쓰러진 핀들이 쓸려져 나가고 새로운 열 개의 핀으로 리셋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얼한 손끝과 팔을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아대를 어루만졌다.  볼링핀 간 중심에서 중심 사이의 거리는 30.48㎝이다. 각각 떨어져 있지만 완전히 독립적으로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무너지는 순간에는 서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다. 도망가려 해 봤자, 강한 힘이 덮쳐 버리면 결국 한꺼번에 무너지게 마련이다.  반환구가 방금 전 내가 던졌던 10파운드짜리 남색 공을 뱉어 냈다. 오일이 표면 곳곳에 묻은 공을 헝겊으로 닦으며 오빠를 생각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힘껏 굴려도 결국 같은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이 볼링공처럼 매일 새벽 수백 상자의 막걸리를 싣고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낯선 도시까지 가 닿았다가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오빠의 삶이 이제야 묵직하게 다가왔다. 퇴근 후 지친 몸으로 무거운 볼링공을 던지며 그가 얻어 내고 싶었던 보너스는 무엇인지 나는 계속 외면하려 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그것을 더 고통스럽게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마 그 대가일 것이다.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벤치에 앉은 형식과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희뿌옇게 펼쳐진 눈앞에는 다시 제자리를 찾은 열 개의 볼링핀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서 있었다. 넘어진 핀이든 남은 핀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두 쓸려 나가고, 새로운 프레임이 시작된다. 그것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게임의 법칙이었다. 나는 보너스 프레임에 선 기분으로 허벅지에 힘을 준 채 볼링공에 세 손가락을 끼우고 어프로치 라인에 섰다.
  • [2016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잠자는 도시의 아빠 -홍유진

    [2016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잠자는 도시의 아빠 -홍유진

    “엄마! 아빠가 또 안 일어나요!” 수리는 소파 위에 이상한 자세로 몸이 꺾여 있는 아빠를 보며 소리쳤습니다. 부엌에서 일하던 엄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습니다. “이런, 또 고장 났니? 요즘 점점 더 자주 그러네. 건전지는 갈아 끼워 봤어?” “지금 해 볼게요!” 수리는 건전지 두 개를 가져와 아빠의 귀에 꽂고는, 리모컨의 빨간 버튼을 눌렀습니다. 아빠의 귓가에는 ‘파직’ 하고 전기가 피어올랐지만, 그럼에도 아빠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심장에 대고 해 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수리는 또다시 엄마한테 소리칠까 하다가, 문득 재밌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빠를 살리는 거야!’ 수리는 의사놀이를 하기로 마음먹고는, 몸이 꺾여 있는 아빠를 소파에 가지런히 눕혔습니다. 아빠는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 같아 보였습니다. ‘아니, 왕자라고 해야 맞을까?’라고 생각하던 수리는 곰곰이 고민해 본 끝에 ‘역시 아빠는 왕자는 아니야’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수리는 전에 아빠가 사 준 의사놀이 장난감 세트를 거실로 옮겨 왔습니다. 아빠의 회사 가방 같은 검은색 가방을 여니, 온갖 수술용 도구들이 튀어나왔습니다. 물론 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 도구들이었지만요. “이 환자는 아주 위독한 상태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할 수도 있어! 간호사, 여기 메스!” 수리는 의학 드라마에서 본 대사를 따라 하며 1인 2역을 했습니다. 원래는 아빠가 의사였고 수리는 그 옆에서 수술을 돕는 간호사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습니다. 수리는 심장이 두근두근거렸습니다. 의사는 전부터 꼭 해 보고 싶었던 역할이었지만, 그동안엔 전혀 해 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아빠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수술용품들을 만져 보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리는 왠지 아빠가 의사 역할을 뺏기기 싫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수리는 조심스럽게 플라스틱 칼을 집어 아빠의 와이셔츠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장난감 청진기를 가슴에 갖다 대고 조용히 심장 소리를 들어 보았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청진기가 장난감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진짜로 아무런 소리도 안 나는 건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수리에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습니다. 수리는 다음으로 집게로 살을 꼬집고는, 고무줄을 이용해 심장박동 측정기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러고는 숨이 멎은 환자한테 하는 전기 충격을 흉내 내어 보았지만, 아빠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아침밥을 다 차린 엄마는 그제야 기억이 났는지,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아빠는 아직도 안 일어났니?” “네. 건전지도 바꿔 봤는데, 안 돼요.” “저런, 빨리 의사 선생님한테 가서 고쳐 달라고 해야겠구나.”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늘 아침 식사는 아빠 없이 둘이서 하게 되었지만, 수리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집에 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소파 위에서 거대한 로봇처럼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수리와 엄마는 아빠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갔습니다. 잠시 신호에 걸려 횡단보도에 멈춰 서 있는 동안, 수리의 눈에는 여기저기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요즘 들어 사람들은 길을 잘 걷다가도 갑자기 픽픽 쓰러져 버리곤 했습니다. 엄마는 차 앞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향해 짜증스럽게 말했습니다. “아휴, 바빠 죽겠는데 왜 하필 여기서 기절한담!” 하지만 다들 경적만 빵빵 울려 댈 뿐, 아무도 차에서 나와 남자를 일으켜 주지는 않았습니다. 길거리를 걷던 사람들도 모두 관심이 없는 듯 남자를 스쳐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차들이 계속 밀려서 빵빵거리자, 환경미화원 아저씨가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쯧쯧, 젊은 사람이 벌써 이러면 쓰나.”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마치 쓰레기를 치우듯 남자를 일으켜 빗자루와 함께 끌고 갔습니다. 수리는 아저씨가 어딘가에 전화를 거는 것을 차창 너머로 끝까지 지켜보았습니다. 병원에 도착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눈을 뜬 채 실려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들 아빠와 같은 사람들인 모양이었습니다. 그중에서는 마치 뭔가를 말하려다 멈춘 것처럼 입을 벌리고, 허공에 손을 뻗은 채 굳어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수리는 그 사람이 뭘 말하려고 했던 걸까 궁금해하며 엄마와 함께 아빠를 부축했습니다. 아빠의 몸은 마치 딱딱한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아빠의 상태를 보자마자, 피곤한 듯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오늘만 해도 꽤 많은 환자들이 이곳에 다녀간 모양이었습니다. 엄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조곤조곤 자기 할 말을 꺼내 놓았습니다. “이이가 갑자기 안 일어나요. 요즘 들어 자주 쓰러지긴 했지만, 건전지만 갈아 끼우면 멀쩡했는데…이젠 그마저도 안 통하네요.” 엄마의 말에 의사는 가까이 다가와 아빠를 진단했습니다. 수리는 다음에 의사놀이를 할 때 좀 더 실감나게 하기 위해 선생님의 모습을 집중해서 관찰했습니다. “기면증(주: 참을 수 없게 잠이 오는 증상)이 많이 진행된 상태입니다. 이제 웬만한 자극으로는 깨어나지도 못할 겁니다.” 그 말에 엄마는 당황하며 물었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죠? 이이는 당장 내일부터 회사를 나가야 한다고요!” “그렇다면 특별히 특급 건전지 하나를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이건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만, 자주 사용할수록 내성이 생기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아마 나중엔 그 어떤 건전지도 듣지 않을 겁니다. 특히 환자가 깨어날 의지가 없으면 더 힘들 거고요.” 엄마는 표정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럼 이제 이이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건가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예 몸 자체를 새것으로 바꿔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오래되거나 낡은 부품들은 교체하기가 어렵습니다. 노화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 아니겠습니까? 괜히 수술하다가 잘못되면 다신 못 깨어날 위험이 큽니다. 그냥 앞으로 집에서 잘 돌봐 주시고, 평소에 심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자극을 많이 주시면 될 겁니다.” 의사 선생님은 난처한 듯 말했지만, 수리의 눈에는 그저 귀찮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집에 돌봐야 할 아이가 한 명 더 늘었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습니다. 아빠가 아이가 되어 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수리는 웃음이 나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엄마는 슈퍼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매운 음식들을 잔뜩 사 왔습니다. 혹시나 아빠가 잠에 빠지려고 할 때 매운 걸로 자극을 주면 수명이 늘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수리도 그 사이, 자신이 좋아하는 단 과자들을 몰래 쇼핑카에 숨겼습니다. 그렇게 집에 오자마자, 수리는 특급 건전지를 꺼내 아빠의 심장에 갖다 댔습니다. 건전지가 닿자마자, 아빠는 마치 불이 들어온 로봇처럼 눈을 번쩍 떴습니다. 엄마는 그제야 만족하며 말했습니다. “다행히 비싼 거라 효과는 좋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머리를 긁적이는 아빠에게 엄마는 다짜고짜 매운 음식을 내밀었습니다. “이거 드세요. 당신 내일 회사도 나가야 되잖아요.” 그 말에 아빠는 잠시 멈칫하더니, 얌전히 음식을 받아먹기 시작했습니다. 그 옆에서 수리도 단 초콜릿과 과자를 입안에 집어넣었습니다. 온몸에서 힘이 나는 게, 마치 건전지를 씹어 먹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편,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습니다. “요즘 길거리에 아무런 이유 없이 쓰러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마치 몸이 방전된 것처럼 축 처지는 증상인데요, 일에 지친 사람일수록 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뉴스 앵커는 그런 사람들을 ‘자극인간’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런 의욕 없이 집에만 누워 있거나, 자극 없이는 살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수리는 아직 어려서 건전지를 몸에 사용해 본 적이 없었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도 몸이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빠는 다음 날부터 또다시 회사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빠는 늘 집에 들어오면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회사에 갔다 오면 멍하게 소파 앞에 앉아 TV를 봤는데, 가끔 보면 눈을 뜬 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습니다. 수리는 방으로 들어와 그동안 밀린 숙제를 했습니다. 이제 내일부터는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게 되는데, 미리 예습을 해 둬야만 따라가기가 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방에서 공부하고 있었을까, 문득 방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빠는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들뜬 목소리로 수리에게 물었습니다. “수리야, 아빠랑 이번 주말에 놀이공원 갈까?” 그 말에 수리는 심드렁하게 대꾸했습니다. “아빠, 죄송하지만 저 바빠요. 다음 주부터는 학원을 네 군데나 다닌단 말이에요.” “그러니…미안하구나, 아빠가 눈치가 없었네. 하하.” 아빠는 멋쩍게 웃으며 방을 나갔습니다. 수리는 ‘아빠가 많이 심심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수리는 아빠가 다시 잠들면 그때는 더 완벽하게 의사놀이를 할 거라고 다짐했습니다. 차라리 아빠가 빨리 잠들었으면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습니다. 아빠는 깨어 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가 더 재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빠는 부엌에는 전혀 가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부엌에 누군가가 침입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리의 집에는 총 3개의 방이 있었습니다. 엄마 방, 수리 방, 그리고 아빠 방인 거실. 아빠는 다시 거실의 TV 앞에 앉았지만, 문득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TV에서는 오늘은 어떤 연예인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둥 이젠 대수롭지도 않은 이야기들만 줄줄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TV를 보다가 눈을 뜬 채 또다시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한참이 지났을까, 소파 옆으로 다가온 엄마는 아빠를 보며 깜짝 놀랐습니다. “아이쿠야, 벌써 약발이 떨어진 거야?” 엄마는 아빠를 소파에 눕히며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느새 수리도 기다렸다는 듯 방에서 의사놀이 세트를 들고 나왔습니다. 엄마가 수리에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오늘은 그냥 이렇게 내버려 두는 게 좋을 것 같구나. 내일 아침에 아빠를 깨우도록 하자.” “네!” 수리는 장난감을 늘어놓으며 씩씩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본 엄마가 못마땅하게 말했습니다. “수리야, 공부해야지.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니잖니. 아빠랑 같이 놀 나이도 지났고.” 엄마의 말에 수리는 시무룩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장난감 세트를 그대로 들고 방으로 들어갔지만, 문득 아빠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아빠의 눈엔 초점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슬퍼 보였습니다. 수리는 그대로 문을 닫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특급 건전지를 사용해 강제로 아빠를 잠에서 깨웠습니다. 아빠는 단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회사로 나갔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아빠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집으로 오다가 길바닥에 쓰러지기라도 한 것일까요? 엄마와 수리는 급하게 밖으로 나와 아빠를 찾았지만, 아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핸드폰으로도 연락해 보았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위치 추적을 해 보니, 핸드폰은 중국에 있다고 떴습니다. 아빠는 마치 미아가 되어 버린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물품보관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핸드폰이 아닌, 아빠를 찾아가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품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아빠는 얼굴과 옷이 지저분해져 있었는데, 엄마는 손수건으로 대충 얼굴을 닦아 주고는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수리는 집에 오자마자 특급 건전지를 아빠의 심장에 갖다 대었지만, 아빠는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이제 완전히 고장 난 기계 같았습니다. 엄마는 걱정하며 말했습니다. “이제 이것도 듣지 않나 보다.” 엄마는 안타까워하며 아빠를 소파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아빠는 그 모습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리네 가족은 그것에 익숙해졌습니다. 학원에서 밤늦게 끝나 집에 돌아온 수리는 여전히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의 몸을 만져 보았습니다. 마치 금속의 로봇처럼 아빠의 몸은 차갑고 딱딱했습니다. 수리는 문득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다시 떠올랐습니다. 그 동화에서는 잠든 공주님에게 뽀뽀를 하면 공주님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수리는 아빠에게 뽀뽀를 해 보았지만, 아빠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쳇, 역시 동화는 다 가짜야.” 수리는 시시한 듯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문득 하품이 나왔습니다. 자동차가 빵빵거리는 소리, 지하철 소리, 그릇이 딸각거리는 소리, 개가 짖는 소리…. 갑자기 도시의 모든 소음들이 귓가에 자장가처럼 들려왔습니다. “어? 갑자기 왜 이렇게 졸리지…?” 수리는 방에 도착하기도 전에 문턱에 기대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 [2016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의 질주: -김지윤

    1. 속도에의 욕망과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던 근대적 속도가 낯설고 경이로웠던 시절에, 속도는 삶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듯했고, 그 가능성의 마력에 매혹된 도시의 길들은 질주하는 기계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매혹이 그렇듯, 익숙해진 후에는 무뎌짐과 권태가 찾아든다. 이제 빠른 것들은 도처에 흔하게 넘쳐나고 현대가 ‘속도의 시대’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더 빠른 것’을 계속 갈구해 왔다. 급기야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빛보다 빠른 통신망을 이루어내는 데에 이르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빨라진 것일까? 사실 ‘속도’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간과해 온 진실이 숨겨져 있다. 속도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대인들은 줄곧 커다란 대가를 치러왔다. ‘움직임’을 상실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는 대신, 인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안에 부동자세로 앉은 채, 혹은 컴퓨터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옮겨질’ 뿐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귀청이 먹먹하게 울부짖는 바람의 저항에 맞서 속력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아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속도를 내는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속도가 주는 고통과 환희의 감각을 날카롭게 느끼고 견디며, 거센 바람 소리로 현재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이동하는 ‘탈것’ 안에 안전하게 앉아서 닫힌 창문 밖으로 내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그 일그러짐이 심하면 심할수록, 지나쳐가는 대상들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 풍경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속도의 체험으로부터 사실상 단절된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풍경들은 개별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속도에 안전하게 ‘탑승’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착해야 하는 지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수많은 길목들은 소거된다. 이원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 2007)는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서 시인은 속도와 질주에 대한 끈질기고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서는 가장 큰 모티프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얼핏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속도 제조기’로 느껴지는 오토바이에는 과연 다른 교통수단들과 무언가 차이를 만드는 점이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를 타는 행위 자체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사실 매우 모순적인 존재다. 기계의 속도를 빌려 질주하면서도 강렬한 신체적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올리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기울어져야 하는데 그때마다 탑승자는 온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는 다른 ‘탈것’들과 달리 길이 아닌 데서도 달릴 수 있다. 자유롭게 길을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수많은 길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 시 속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1968년생인 이원 시인은 청년기에 사이버 문화를 접한 소위 ‘모니터킨트’ 1세대에 속한다. 80년대 도입되어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길을 열어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유년기와 디지털 청년기의 간극을 몸소 느낀 최초의 세대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은 어떤 내면적 딜레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형성해 준 유년기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청년기 사이의 간극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시적 언어에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까. 오토바이의 모순성은 바로 그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겹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겹침의 힘으로 인해 모든 장소를 사실상 ‘무장소’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의 무감각성과 획일화에 대항하여 느낌과 의미, 그리고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이 시대의 문학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 할 수 있을 ‘시’가 어떤 응전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광속도의 디지털문명 속에 살면서 느리게 곱씹어 읽어야 하는 빈 여백투성이인 시를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지. 이 글은 바로 그런 기대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 ‘길 없음’과 찾을 수 없는 ‘나’ 일단 이 시집 제목의 ‘오토바이’ 앞에 붙어 있는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눈길이 간다. 그냥 가벼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가 ‘가볍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튼튼하고 무겁고 길에 잘 붙어 있을수록 안전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볍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이 시집의 오토바이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바람결에 떠다니는 가랑잎만큼이나 위태롭다. 오토바이는 금방이라도 길을 벗어날 듯 불안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위기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이원의 시세계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바로 전 시집인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문학과 지성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에서 ‘길’에 대한 인식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길’에 사막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모래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길이 만들어질 수 없다. 사막에서 끝없이 부는 바람은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모래로 인해 사막은 끊임없이 다른 지형으로 변모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하는 행위로 많은 것들을 클릭하고, ‘세계를 연속 클릭’하기까지 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그리고 수많은 클릭의 맨 끝에, 화자는 결국 ‘나를 클릭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꼭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클릭’을 한다.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 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분 검색하는 과정이 무한한 하이퍼링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하이퍼텍스트를 참조해야만 한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는 착각처럼 나를 찾으려는 욕망은 곧 실현될 것만 같지만, 점점 더 퍼져나가 무수한 파편이 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색어와 연관어를 따라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처음의 검색어와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한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계속 생명체처럼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없다는 것, 또한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을 아무런 방법도, 지도도 없고 어떤 검색 엔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처럼 클릭함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클릭할수록 나는 ‘편재’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원 시인의 코기토가 디지털문명의 사유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로 변주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결론이 결국 ‘부재’에서 끝났다면 이 시는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 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모든 부재는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 사람의 존재감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백이 필요해진다. 주체의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워져야 한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 그러므로 매 순간 다시 삼켜야 할 제 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의 몸이 바로 나이며”라는 시 구절은 이런 과정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가 ‘없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적 불안을 동반하는 것처럼 이원 시에서의 ‘길’은 대부분 갑자기 끊기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 ‘길 없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이 존재를 찾으려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것처럼, 계속해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길은 건너가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길을 건너가려면 길에 매달리고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앞까지 온 길은 거울 앞에서 접촉 불량 회로처럼 끊어졌다.” “내가 일어서자 거울 밖으로 나갈 노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녹슬고 구겨진 길들” 방금 나열한 구절들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의 수록시 ‘모니터, 캔산소, 거울’에 언급된 ‘길’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원 시에서 길들은 대개 이렇게 위태위태하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길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된다. 이 시집 속에 나오는 길들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지뢰밭과 같고,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사막과 같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3. 휘발되는 불빛들 사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 시집의 많은 주인공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그들은 폭주족, 오토바이 배달부, 퀵서비스맨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는 데서도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토바이는 다른 모든 탈것들과 차별화된다. 폭주족들이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뒤따라 달려오던 한 무리의 폭주족들은 끊어진 길 속으로 빠진다/ 끈적끈적한 괴성과 경적이 함께 묻힌다/ 봄밤이 눈물처럼 반짝이다 마른다 매몰의 시간을 잘 아는/ 길은 금방 아문다/ 시간의 만다라로 타오르며 폭주족들은/ 길을 꿀꺽꿀꺽 삼키며 달린다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이 히드라처럼 꿈틀거린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 ‘폭주족들’ 부분 그 다음 시의 제목이 ‘영웅’이고 역시 폭주족을 다루고 있듯, 폭주하는 이 오토바이족들은 ‘영웅’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운 길에서 불안을 딛고 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라는 소재는 빛을 발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대부분의 교통수단들에게는 도로, 철로나 항로와 같이 정해지고 계산된 길 안에서 안전하게 달릴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오프로드를 달림으로써 규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지지만, 수동적으로 길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것이 폭주족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이 도약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전력을 다해 내질렀던 ‘괴성’ 같은 그의 시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매몰의 시간’이다. 하지만 ‘길은 금방 아문다’. 폭주족들은 길 안에 매몰되어서 그 길을 삼켜버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낳는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도가 절망스럽다는 것을 표현한다. 끝없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계속 갈라지고 갈림길들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로가 된다.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미로화되면서 결국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텅 빈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이 지점에서 폭주족은 ‘왜 질주하는가?’란 질문에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시집의 다른 시 ‘주유소의 밤’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차들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라는 이 시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휘발되는 것이 ‘불빛’임을 보여 준다. 불빛은 길을 길답게 만드는 존재다. 길이 길일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도착’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전진하려면 길이 그쪽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의 물질성이 사라진 곳에서 물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이들은 별빛에 의지했다. 길이 사라진 데서도 별빛은 오롯이 빛나며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별빛이 만드는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길이 된 것이다. 소위 ‘전자사막’인 도시의 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불빛’이다. 신호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라이트 등이 만드는 불빛은 도시의 밤길을 길답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시인은 이 불빛이 항구한 것이 아니라 ‘잠깐만 빛나는’, 즉 ‘휘발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 역시 휘발되는 것이다. 언젠가 깨고 마는 꿈처럼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질주의 이유가 있다. 휘발되어버릴 꿈, 비전을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하므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길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모든 ‘탈것’들은 그 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상당수의 폭주족들은 질주하다 ‘벽’을 만나고 결국은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폭주족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고. 시체가 불타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몸을 씻으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강이다. 숭고한 구도의 마음으로 이 성스럽고 절망스러운, 찰나의 불빛을 따라 길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인간은 ‘영웅’이 된다. 시 ‘영웅’에서 낡은 오토바이 위의 시적화자는 ‘무서운 속도로’ ‘철가방을 싣고’ 달린다. 이 철가방은 그의 순수한 염원과 욕망을 표상한다. 그의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이 은색’이고,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으로 상징되는 거짓되지 않은 절실한 욕망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불에 오그라든 자국’을 숨김없이 노출한다. ‘배달’은 곧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에 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시간 안에 달려가려고 애쓴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라는 구절은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짜장면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현실원칙’인 셈이지만 중력을 이탈해버리면 아예 자유로워진다.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이 중심이 된다면 짜장면이 어느 쪽으로 쏠리든 상관없다. 그래서 ‘영웅’은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라고 내뱉는다. 오토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현장성이다.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토바이는 반드시 맨몸으로 타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온몸, 전 생을 지금 이 순간에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게 되는 것이다. 지제크의 책 제목과 같이 ‘삐딱하게 보기’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제크는 이 책에서 ‘비스듬한 왜상적 응시’로만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응시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세상이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와야 한다.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라고 시적화자는 말한다. 비정상의 영역, 삐딱한 시선의 세상은 진지한 현실원칙들을 위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 ‘삐딱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허용하는 가치들에서 비껴나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아야 볼 수 있는 저 ‘불빛’은 견고한 어둠에 가끔 생기는 균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현실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실재계’에서 오는 것이다. ‘영웅’ 폭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반짝이는 찰나의 불빛이 가리키는 희미한 저곳을 향해 폭주하여 달려가며, 자신을 땅에 붙들어 놓았던 현실원칙인 ‘중력’을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비장해진다.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 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 지점에 이르면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의미가 없다. 도착할 수 없음이 너무 명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질주이며 도약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진행”이다. ‘한 남자가 간다’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만 텅 빈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짐을 욕망하므로 끝없는 현재로서 질주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텅 비어야 한다. 4.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원 시에서 없음, 허공의 이미지는 매우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없음’이 절실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은 그 욕망에 자신을 전부 맡김으로써 폭주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높이다 보면, 공중의 허공으로 몸을 날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벼워진다. 속도가 줄 수 있는 쾌감은 마치 탈중력의 상태와 같은 지극한 가벼움이다. 노자는 유와 무의 관계를 통해 생명성을 강조했다. 특히 ‘무’와 ‘허’(虛)는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자는 바퀴의 가운데를 가리켜 ‘무의 쓰임’이라고 하고 바퀴는 바퀴살이 꽂혀 있는 ‘가운데의 없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한쪽 눈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내 몸속의 신이 깔고 누워 있던/ 죽음을 엿본 죄다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은 내게서 파내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모르므로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낯선 얼굴을 매달고 라면을 먹는다/ 낯선 얼굴도 입을 오물거린다 그 입에서도 고소한 스프 냄새가 난다/ 햇빛들이 창 속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부딪쳐 멈출 곳이 없는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얼굴이 달라붙는다’ 부분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어야 끊임없는 추구가 가능하고, 영원히 지연되는 미완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채워짐’은 욕망의 끝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엿본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의 눈이 파내진 것은, 삶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끝나버렸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는다. 도려낸 눈구멍의 빈자리를 드러낸 채 그는 광야에서 계속 걸어간다. 이 시에서도 시적화자는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결핍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빈 곳’은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요인이다. 그는 계속 살아가려고 라면을 먹는다. 삶이란 무한한 진행이므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장소인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또한 상징적 의미에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줄지 않아야만 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을 난다 울음 속에서 살을/ 쏙쏙 빼먹으며 난다 활짝 열어놓은 안이 불룩하다/ 보여주지 않는 안이 팽팽하다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위태로워 반짝인다 공기들이 비닐봉지의 천수관음으로 붙어간다/ 비닐봉지가 잉잉거린다 바람의 안쪽이 맥박처럼 터진다 천수관음이 된 비닐봉지에/ 시간의 모서리가 닳는다 사라지는 자리가 쌉싸름하다/ 그렁그렁하다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 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 둥근 것은 뜨겁다 비닐봉지가 허공을/ 오므린다 허공이 주렁주렁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비닐봉지가 난다’ 전문 비닐봉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가벼울 수 있고, ‘살을 쏙쏙 빼먹으며’ ‘맥박처럼 터진’ 등의 표현에서 보듯 생명력을 충전하며, 터질 듯 생동감 있게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시 ‘비닐봉지가 난다’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두 편 모두에서 비닐봉지가 등장한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에 나오는 것은 ‘검은’ 비닐봉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색이라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그런데 이 시는 바로 이어서 ‘위태로워 반짝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는 분명 위태롭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다. 그럼에도 이 비닐봉지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짝 열어’ 놓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림, 이 균열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불빛이 있기 때문에 이 비닐봉지에는 빛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이다. 이원 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어둠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눈앞을 가리는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 시 ‘길’에서 ‘어둠이 길들을 천천히 멍석처럼 말아갑니다’라고 노래했듯 길을 없애고 ‘세계를 닫는’ 어둠,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는 ‘밤’으로 묘사된 그런 어둠-이기도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회귀하기를 꿈꾸는 자궁의 어둠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궁에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 필연적으로 분열을 겪어야 한다. 일체의 분열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나, 자궁 속의 어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은 회귀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원의 다른 시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 ‘어둠’에 관한 어떤 처연한 광경을 보여 준다. 아기는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 안에서 아기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여기에서 ‘검어지는’ 것은 자궁의 어둠과는 다르다. 절망적이고 견고한 어둠 속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검은색’이다. 이에 반해 자궁의 어둠은 어둠이되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서 어둡지만 환한 곳이다. 그런데 어둠이 환하다면 과연 완전한 어둠이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라는 시 구절처럼 환함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자궁의 어둠은 불완전해진다. 어둠이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어둠인 것이다. 자궁에는 항상 산도(産道)라는 입구가 있고 ‘열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언젠가 열릴 것이거나 언젠가 열렸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회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시간에 머물러 있기에 절망적이다. 자궁은 여전히 열린 틈새로 ‘환한 집’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돌아가거나 닿을 수는 없다. 다시 시 ‘비닐봉지가 난다’로 돌아가 보자. 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이 비닐봉지는, 어쩌면 아기를 밀어낸 후 텅 비어 있는 자궁과 같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는 비닐봉지의 안은 ‘저 너머의’ 세상이기에 그 안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인은 비닐봉지가 ‘천수관음’이 된다고 말한다. 천수관음의 천수천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을 천개의 눈으로 보고, 천개의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수관음의 세상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유토피아 그 자체이며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저 너머’이므로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서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수관음의 ‘천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는 표현은 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연상시킨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이 ‘一圓’은 가운데가 빈 허공이기도 하다. 허공을 나는 비닐봉지는 그 자체가 공(空)인 것이다. 반면에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의 비닐봉지는 비어 있지 않고 오렌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겁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여자가 순간 봉지를 놓치고 만다. 아마도 꼭꼭 묶여져 있었을 비닐봉지는 여자가 손에서 놓지 않는 현실원칙이며 생명체를 살게 하는 음식은 그 현실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오렌지 하나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다. 묶여져 있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가 나오려면, 비닐봉지는 분명 터져 버렸을 것이다. 터진 틈새로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집요하게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렌지의 그림자는 나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오렌지는 필사적으로 굴러가지만, 그림자는 오렌지를 붙들고 여자는 터진 비닐봉지의 틈새를 알아차린다. 이 균열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봉합할 것인가. 균열을 감수한다면, ‘위태로운 반짝’임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 반짝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그녀를 현실로부터 일탈하게 하여, 어쩌면 미치게 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도 위태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멈추어 있기를 선택한다.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 시인이 직접 주석을 달아 놓은 바와 같이 매트릭스는 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결국 매트리스로 회귀하려는 오렌지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오렌지는 땅바닥을 굴러 매트리스까지 가지 못하고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의 시의 결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날아가는, 중심을 이탈한, 가벼워진 것들에는 그림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철망 같은 제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광화문에서’) 있으면 결코 가벼움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림자를 떼어내어 버리고, 온전한 ‘텅 빔’이 되어서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이 되어 질주하는 것이 주체의 소망이다. 이 시집에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시적 화자들의 질주는 영웅적이라고 간주되며, 한계를 넘어가는 위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는 것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없음’은 에너지의 새로운 분출로 다시 시작하려는 근본적인 의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함으로써 탄생한 ‘공백’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5. 흔들리면서 ‘저 너머를 향해’ 가기 자아의 안락과 현실에의 순응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이 맹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그 너머의 금지된 희열을 향한 충동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된다. 충동은 현실적인 삶이 부과한 경계 너머의 실재를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캉은 모든 충동을 ‘죽음충동’이라 보기도 했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죽음, ‘무’의 상태로 되돌려 공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창조의 의지인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은 어떤 세기말적 징후로 가득해 있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느낌, 어떤 ‘파국’이 도래하였다는 감각은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고지향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나타났다. 거대담론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일종의 자폐성을 띤 2000년대 시는 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 가득 찼다. 2007년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혼잣말 같은 메모장과 일기장 밖 현실 세상으로 나온 존재가 새로운 시작을 꾀하려 하는 모색의 지점을 보여준다. 방향이 없는 곳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저 너머로 넘어가려는 이 시집의 역동성은, 끊긴 길 앞에서 멈추어 정체되어 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속되는 디지털화, 인문학의 위기와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문학의 종언’이 이야기되는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더 처절하게 고민하려는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원의 2000년대 시집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원의 시편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했던 시인의 ‘모니터킨트 1세대’라는 특징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위 한국형 ‘X세대’의 맏형 격인 세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시점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출생한 문학인들이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던 것은 탈냉전에 접어들며 가치의 혼란과 부재, 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90년대 한국문단에 새 흐름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장정일, 유하의 경우와 같이 60년대 이후 출생 시인들은 소비사회, 매스컴과 테크놀로지 등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새롭고 첨예한 감각을 보여 주었다. 1968년생이며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고 96년에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출간한 이원 시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년기를 보내며 정체성을 형성해 갔던 시기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과 소비사회에 대한 매우 예민한 반응 역시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난 최근의 젊은 세대처럼 태생적인 디지털문화에서 자라나지 않은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 ‘초기 X세대’들은 디지털을 ‘학습한’ 세대이면서도, 처음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기본을 만들었던 세대라는 약간 이중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은 이원 시에도 일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이 전자제품과 사이버문화를 광범위하게 시의 직접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찰하는 방식은 비교적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자아의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디지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신의 몸처럼 편안히 여기는 최근 세대들에 비해 때때로 불편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디지털 문명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인식은 전망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시를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 역시 ‘길 없음’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이원의 비유를 빌리자면 ‘가벼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다. 의미에 도달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서 간신히 앞으로, 점점 전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2010년대에 도달하여 출간한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시인의 말은 뼈저리다.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시인은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시를 마치는 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시집에 등장하는 무수한 ‘오토바이를 탄 이들’은 바로 이 결핍 때문에 달린다. 그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어차피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은 달리는 것, 그 자체이고 현재를 사는 지금 이 순간, 질주와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인 것이다. 불가능성 때문에 추구는 더 집요해지고, 시 ‘영웅’의 화자처럼 ‘온몸이 데는’ 것도 불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서커스에서 불타오르는 원형의 가운데를 뛰어넘는 오토바이 묘기와 같다. 이 불타는 허공으로 뛰어드는 묘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단지 통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삶은 지속되어야만 하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질주한다. 온몸을 걸고, 온 생이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정해진 길로 달리며 획일화된 ‘무장소’에서 체험을 상실하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달리,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그 속성들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결핍 속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속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해지는 삶, 그 강도 높은 삶의 기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 도착하리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너머’에 닿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또 오토바이 위에서 속력을 높이는 이원 시 속 화자들처럼, 끝없이 의미에 ‘미끄러지는’ 언어들로 계속 행간에 발을 헛디디면서도 이 미끄럽고 위태위태한 길을 속도로 넘어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맴돌기만 할 뿐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달려간다면 길은 끊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터이다. 어차피 삶은 여정 위에 있다.
  • 아르헨서 지름 1m 공룡알 발견?

    아르헨서 지름 1m 공룡알 발견?

    크리스마스인 지난 25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에서 지름 1m에 달하는 거대한 화석이 발견돼 화제를 일으켰다. 거대한 둥근 형태의 특징을 보여 발견자 가족은 물론 많은 사람이 공룡알로 착각해 더 큰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이를 본 전문가들은 과거 아르헨티나는 물론 남미 일대에 서식했던 아르마딜로를 닮은 거대 동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화석이 발견된 지역은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남쪽으로 약 40km 거리에 있는 카를로스 스페가찌니(Carlos Spegazzini) 강변. 발견자의 아내 레이나 코로넬은 “물체는 진흙에 덮여 있었고 검은색 비늘 무늬가 있어 이를 본 남편은 공룡 알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발견자인 호세 안토니오 니에바스는 현지 방송사인 토도 노티시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분적으로 진흙을 뒤집어쓴 둥근 물체를 발견해 호기심에 그 주변을 파봤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 찍은 사진을 분석한 전문가들은 발견된 물체는 공룡 알이 아닌 글립토돈트(glyptodont)의 껍질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지 고생물학자인 알레한드로 크라마즈(베르나르디노 리바다비아 국립 자연과학박물관 소속)는 “수천 년 전 멸종한 글립토돈트의 화석이 이 지역에서 발견된 사례는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고 설명했다. 글립토돈트는 오늘날 아르마딜로를 닮은 거대한 동물로, 거대하고 둥근 껍질을 갖고 있으며, 무게는 최대 1톤, 몸길이는 최대 3m에 달했다. 사진=ⓒAFPBBNEWS=NEWS1(위, 가운데), 위키피디아(CC BY-SA 3.0, Hunadam)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민중궐기 ‘경찰버스 방화범’ 구속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달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복면을 쓰고 경찰버스 의자에 불을 붙인 화물연대 소속 구미지회장 이모(46)씨를 특수공무집행방해와 현존자동차방화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29일 밝혔다. 경찰은 버스 지붕 위에 올라 있는 경찰관에게 의자와 돌을 던진 것으로 드러난 화물연대 포항지회 소속 노조원 김모(40)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는 지난달 14일 오후 6시 15분쯤 서울 종로구청 사거리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버스에 올라 뒷좌석을 뜯어낸 뒤 경찰버스 밖으로 던져 의자 시트에 불을 붙인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또 경찰관들을 향해 돌멩이를 15차례, 부러진 각목을 3차례 던지기도 했다. 이씨는 범행 당시 검은색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어 특정이 어려웠다. 경찰은 주변 폐쇄회로(CC)TV 300여대를 샅샅이 살펴본 결과 이씨가 구미에서 올라온 버스에 탑승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2015 연구결산] ‘알쏭달쏭한 반려동물’ 고양이의 모든 것

    [2015 연구결산] ‘알쏭달쏭한 반려동물’ 고양이의 모든 것

    견공(犬公)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오래된 반려동물로 사랑받아온 고양이. 그러나 고양이는 의외로 과학적인 연구로도 밝혀진 것이 많지 않은 수수께끼 같은 동물이다. 특히나 고양이는 개처럼 길들여지지 않는데 이는 개가 인간과 3만년 이상을 함께 해온 반면 고양이의 반려역사는 ‘고작’ 수천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양이의 진화가 야생과 인간사회의 중간 단계에 있다고 분석한다.   2015년 한해 고양이를 주제로 한 세계 각국 연구팀이 발표한 논문들을 정리해봤다. 1. 고양이는 왜 박스 안에 있는 것을 좋아할까?  지난 2월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학 수의학 연구팀은 박스 안 고양이의 스트레스 지수 분석을 통해 고양이가 ‘대응기제’(對應機制)로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박스를 활용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다소 생소한 단어인 대응기제는 주변의 위협이나 위험등에 처할 때 이에 대처하는 반응을 말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고양이는 박스를 일종의 대피소이자 안식처로 여기는 것. 위트레흐트대학 수의학 박사 클라우디아 빈크는 “고양이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는 장소로 여겨 본능적으로 박스에 끌리는 것”이라면서 “하루 18시간~20시간을 자는 입장에서 고양이에게 자신을 숨기는 박스같은 장소는 필수적”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고양이가 꼭 박스만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몸을 적절히 숨길 수만 있다면 박스는 물론 쇼핑백, 서랍, 심지어 주전자 안에도 들어간다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 그러나 이와는 다른 주장도 있다. 일부 동물학자들은 고양이의 '박스 사랑'이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이론을 내놓고 있다. 정답은 고양이만 알고있다.   2. 고양이는 후각보다 시각에 의지해 먹이를 찾는다 지난 2월 영국 링컨대 동물학 연구팀은 고양이는 후각보다 시각을 더 지배적으로 사용한다는 연구결과를 내놔 관심을 끌었다. 일반적으로 개와 더불어 고양이 역시 후각이 발달해 이 능력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지배적인 감각이 후각보다 시각이라는 점은 다소 의외의 결과다. 연구팀에 따르면 고양이의 후각 능력은 개에는 못미치지만 인간에 비해 14배나 뛰어나며 청력 또한 좋다. 그러나 날카로운 눈을 가진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인간보다 시력이 좋지는 않다. 고양이는 대체로 흐릿한 모습으로 사물을 인식하며 6m 앞 밖에 보지 못하는 ‘근시’ 다. 또한 인간이 다양한 색상을 인식하는 반면 고양이는 파란색과 노란색 등 몇가지 색깔 만으로 세상을 본다. 그러나 우리가 갖지 못한 고양이 만의 장점도 있다. 고양이는 커다란 각막과 망막 뒤 쪽에 있는 타페텀(tapetum)이라는 반사층 덕분에 인간보다 어두침침한 빛을 6~8배나 잘 인식한다. 특히 인간이 180도의 시야를 가진 반면 고양이는 이보다 더 큰 200도로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        3. ‘고양이 목숨은 9개’ 비결은 바로 비타민D 서양 속담에 ‘고양이 목숨은 9개’라는 말이 있다. 고양이가 궁지에서 탈출해 위기를 극복하는 능력이 강하다는 뜻이다. 지난 6월 영국 에든버러대 소속 왕립수의과대학 연구팀은 ‘고양이의 목숨이 9개’일 수 있는 비결은 비타민D라고 밝혔다. 비타민D 수치가 높은 덕분에 극심한 상처나 질병에도 살아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 연구팀은 교내 동물병원에 입원중인 생명이 위독한 고양이들을 대상으로 혈액검사를 실시한 결과, 일명 ‘태양비타민’이라고 부르는 비타민D 수치가 높은 고양이들은 그렇지 않은 고양이에 비해 30일 가량을 더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비타민D는 어류나 달걀 노른자위 등에 풍부하며, 사람의 경우 햇볕에 피부가 노출됐을 때에만 생성된다. 반면 고양이는 비타민D가 포함된 음식을 통해서도 영양 흡수가 가능하다는 차이가 있다. 4. 왜 고양이는 개와 달리 주인을 ‘개무시’ 할까? 지난 9월 영국 링컨대학 동물행동전문가인 다니엘 밀스 교수 연구팀은 고양이가 왜 개보다 더 독립적인지를 분석한 논문을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적으로 느끼듯 개는 주인을 잘 따르고 충성심을 보이는데 반해 고양이는 주인을 ‘개무시’ 하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은 고양이의 이같은 특징을 분석하기 위해 일명 ‘낯선 상황 테스트’(SST)를 실시했다. 이 방법은 주로 유아를 여러 상황에 두고 그 반응을 지켜보는 테스트로, 연구팀은 20마리의 집고양이들을 낯선 환경에 주인, 처음 보는 사람, 홀로 놓고 그 반응을 관찰했다. 이같은 실험에서 보통 개는 주인과 더 밀착하려는 행동을 보인다. 이는 개의 경우 주인을 (자신을 보호해주는) 안전한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또한 개는 처음보는 사람이나 홀로 있을 때 크게 짖거나 수동적인 행동을 보이는 격리불안(separation anxiety) 증세를 보인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어떨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고양이는 주인이 없어도 격리불안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환경에 주인과 함께 있을 때 더 크게 우는 행동을 보였는데 연구팀은 이를 격리불안 증세가 아닌 불만의 표시로 해석했다. 연구를 이끈 밀스 교수는 “개에게 있어서 주인은 안전지대를 대표하는 존재”라면서 “이에반해 고양이는 낯선 환경에 스스로 대처하며 더욱 자주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양이의 이같은 특성은 ‘외로운 헌터’의 피(본성)가 아직도 흐르기 때문”이라면서 “자신을 보호해주는 주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것” 이라고 덧붙였다. 5. 고양이 털 색깔에 따라 ‘공격성’ 다르다 지난 10월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수의학과 연구팀은 1274명의 고양이 주인들을 대상으로 자기 고양이의 공격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털 색깔에 따라 고양이들의 공격성 정도가 현저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엘리자베스 스텔로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미국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삼색털 고양이(calico cat)는 유독 공격적’이라는 속설의 진위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이번 연구를 진행했다. 삼색털 고양이란 흰색을 주요 바탕으로 하여 다른 색상의 털 두 종류가 함께 나는 고양이를 말한다. 두 종류의 얼룩 색상은 검은색과 주황색이 대부분이다. 삼색털 고양이는 거의 다 암컷인데, 얼룩에 해당하는 색상들이 X염색체에 의해 발현되기 때문. 수컷이 삼색털을 가지고 태어난 경우 이는 유전자 이상에 의한 것이며 이 고양이들은 대부분 불임증을 가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1274명의 고양이 주인들에게 자기 고양이가 하루 중 상황별로 내비치는 공격성의 수준을 점수를 매겨 표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암컷 삼색털 고양이, 흑백 얼룩고양이, 회색·흰색 얼룩고양이 등이 ‘상대적으로 인간에게 보다 공격적’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더 나아가 상황별 고양이들의 공격행동을 분석해보면 흑백 얼룩고양이들의 경우 손으로 들거나 만질 때, 회색·흰색 얼룩고양이들은 동물병원에 데려갈 때에 특히 공격적이었다고 연구팀은 전했다. 연구팀은 특히 삼색털 고양이들의 경우 일상 속 인간과 접촉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공격적 행동을 취할 확률이 높았다며, 따라서 이 종류의 고양이들이 “다른 고양이들에 비해 월등히 인간에게 적대적”이라고 결론내렸다. 반면 상대적으로 공격성이 적고 친화력이 높은 고양이는 검정, 회색, 흰색 고양이나 범무늬 고양이(tabby cat) 등이었다. 6. ‘와장창!’ 왜 고양이는 물건을 쓰러뜨릴까? ‘와장창!’ 소리에 거실로 나가면 어김없이 깨진 화병. 그 옆에는 고양이가 당신을 멀뚱히 쳐다본다. 이를 성가신 장난으로 치부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지난 9일(현지시간) 고양이가 왜 이런 파괴적인 행동을 보이는지를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소개했다. 고양이의 이런 파괴적인 행동은 사냥과 같은 동물적인 본능이 아니라 바로 당신에게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국의 유명 동물병원인 ‘더 캣 프렉티스’(The Cat Practice)의 에릭 도거티 박사는 “우리가 개를 길들이는 것과 달리 고양이는 생존에 있어 인간의 도움이 필요없다”면서 “고양이들은 인간에게 배가 고프거나 아프다는 것을 말하는 등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우리를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고양이가 실제로 사냥을 할 때는 테이블 위나 선반 위에 가만히 있는 물건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방바닥을 가로지르는 작고 빠른 대상을 쫓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대전서 총기 추정 차량 습격… 원한 관계 있던 용의자 추적

    서 있던 차량 문을 열고 들어와 총기로 추정되는 도구로 운전자에게 부상을 입히고 달아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25일 오후 11시 45분쯤 대전 유성구 봉명동의 한 도로에 주차돼 있던 승용차에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고 마스크를 쓴 괴한이 차량 뒷문을 열고 침입했다. 괴한은 운전석에 있던 A(38)씨를 총으로 보이는 도구로 공격한 뒤 도주했다. A씨는 총알 파편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어깨 근처에 박혀 병원에서 입원치료 중이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조수석에 있던 여성 동승자가 다치지 않았고, 빼앗아간 금품도 없는 점으로 미뤄 원한을 가진 면식범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들이 총으로 쐈다고 진술하고 있고, 상처가 총상으로 보여 범인이 총을 사용한 것 같다”라며 “현장 인근 폐쇄회로(CC)TV영상을 분석, 용의자를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 몸에서 제거한 파편에 대한 분석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오바마 ‘병품삼아’ 찰칵… “대통령은 등산중”

    오바마 ‘병품삼아’ 찰칵… “대통령은 등산중”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고 있는 가운데, 예고없이 등산에 나선 모습이 시민과 관광객에게 포착됐다. 오바마가 찾은 곳은 하와이 명소 중 하나인 코코헤드 분화구로, 상당한 난이도의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친구와 가족 등을 대동하고 등산을 시작한 오바마는 검은색 반팔 티셔츠와 청색의 야구모자 등 편안한 차림이었으며, 힘든 코스에도 불구하고 만면에 웃음이 가득하다. 허핑턴포스트에 따르면 오바마는 함께 산을 오르는 사람들과 격식없이 대화를 나누거나 손인사를 했으며, 크리스마스를 포함해 즐거운 연휴가 되길 바란다는 인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성 관광객은 자신의 SNS에 오바마를 ‘병풍’ 삼아 찍은 셀프카메라 사진을 올리기도 했는데, 사진 속 오바마는 다른 관광객들과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평범한 모습이다. 언뜻 보면 그저 산을 타는 중년의 남성으로 보일 정도다. 이밖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오바마를 직접 목격했다는 ‘인증샷’을 올렸다. 한 남성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포즈를 취해준 오바마에게 “(팬)서비스에 감사한다”고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오전 10시 이전에 코코헤드 분화구에 도착해 등산을 마친 오바마는 현재도 하와이에 머물고 있다. 2주간의 하와이 휴가를 받은 오바마가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골프장이었으며, 다음달 2일까지 하와이 카일루아 해변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낸 뒤 워싱턴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크리스마스 맞이 절도?…산타옷 입은 황당 강도

    크리스마스 맞이 절도?…산타옷 입은 황당 강도

    산타 복장을 입은 채로 음식점에서 돈을 갈취한 강도가 등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의 23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칼로 무장한 이 ‘산타 강도’는 19일 오전 10시 30분 경 더비셔 카운티 얼프레턴 시의 한 KFC 매장에 나타나 현금을 갈취한 뒤 도주했다.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더비셔 카운티 경찰은 당시 상황을 촬영한 약 2분 길이의 폐쇄회로카메라(CCTV) 영상을 23일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범인이 매장의 드라이브스루 창문을 뛰어넘어 침입하는 모습을 먼저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범인은 건물 안쪽 사무실로 들어가 직원을 칼로 위협하여 금고의 돈을 자신의 가방에 옮겨 담도록 명령한 뒤 빼앗은 돈을 들고 유유히 사라진다. 당시 해당 매장은 영업을 시작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며, 다행히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직원들은 범인이 엉뚱하게도 산타 복장을 하고 있었던 탓에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매장 직원은 “당시 일했던 동료들은 아직까지 겁에 질린 상태”라며 “범인이 칼을 꺼내기 전까지만 해도 동료들은 그 상황이 일종의 장난인 것으로 착각했다”고 전했다. 경찰에 따르면 범인은 검은색 스타킹 혹은 타이즈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범행을 자행했으며, 이 때문에 인종이나 상세한 인상착의는 아직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증언을 통해 용의자가 약 170㎝의 신장에 다부진 체격이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추적 전문팀과 경찰견 등을 동원해 검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이들은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 그 겨울…탐욕을 벗다

    그 겨울…탐욕을 벗다

    올겨울 따뜻하면서도 화려한 스타일을 연출하고 싶을 때 ‘퍼’(동물의 털로 만든 옷)만큼 제격인 소재는 없을 것 같다. 고급스러운 모피 코트 하나 가지는 게 어머니세대 부(富)의 상징이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 커다란 모피 코트를 입고 다니면 부유한 느낌이 아니라 동물 학대로 손가락질받기 바쁘다. 토끼털 코트 1벌을 만드는 데 30마리의 토끼가 이용되고 밍크 코트 1벌에 밍크 55~200마리가 필요하다. 모피 코트 1벌을 위해 수많은 동물들이 희생되는 탓에 모피 코트에 대한 선호도가 예전만큼은 아니다. ●채식주의 빗댄 ‘비건 패션’ 대세로 떠올라 이 때문에 ‘페이크 퍼’(인조 털)나 ‘페이크 레더’(인조 가죽) 등을 이용한 ‘비건 패션’이 착한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있다. 비건 패션이란 채식주의자(비건)처럼 동물을 이용하지 않고 최대한 느낌을 살려낸 것을 말한다. 비건 패션은 오리털이나 거위털을 이용한 다운 패딩도 거부한다. 20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비건 패션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대표적으로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패션업계에서 친환경주의자이자 동물애호가로 유명하다. 그가 만든 옷과 가방, 신발 등에는 동물의 가죽이나 털이 사용되지 않는다. 이번 겨울 컬렉션에 등장한 스텔라 매카트니의 대표 핸드백인 팔라벨라백은 동물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인조 가죽과 털을 이용했다. ●진짜 모피와 달리 다양한 색 연출·물세탁 가능 페이크 퍼는 동물의 털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 외에도 소재 활용이 자유롭고 진짜 모피와 달리 물세탁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LF의 여성 편집형 리테일 브랜드 앳코너는 올겨울 페이크 퍼 제품군의 물량을 전년 대비 10배가량 늘렸다. 이수진 앳코너 디자인실장은 “페이크 퍼의 가장 큰 장점은 진짜 모피에서는 할 수 없는 다양한 색상을 활용해 염색 가공이 쉽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페이크 퍼를 활용해 만든 코트만이 페이크 퍼 패션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말자. 페이크 퍼를 캐주얼하게 입는 게 요즘 스타일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여성복 ‘구호’는 올겨울 실제 밍크 느낌의 페이크 퍼 외에도 무스탕 느낌의 캐주얼한 페이크 퍼 상품을 출시했다. 또 에잇세컨즈는 페이크 퍼 소재를 활용한 복숭아 빛깔의 스웨트셔츠를 선보였다. 페이크 퍼 전문 쇼핑몰 몰리올리의 김진선 디자인실장은 “퍼 코트같이 부담스러운 패션은 사라져 가고 있다”면서 “페이크 퍼 재킷에 캐주얼한 데님이나 레깅스를 입고 스니커즈를 신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칼라·소매 등 부분 처리 제품으로 스타일 UP 페이크 퍼 스타일을 처음 시도할 때 칼라나 소매 부위에 부분적으로 퍼 처리가 된 스타일의 제품을 골라도 좋다. 크게 튀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이 아니면서도 칼라나 소매 부위에 덧댄 페이크 퍼가 주는 개성 덕분에 멋스럽게 연출하기 좋다. 페이크 퍼로 만든 옷이 부담스럽다면 페이크 퍼를 활용한 액세서리에 도전해도 좋을 듯하다. 예를 들어 퍼 슬리퍼, 퍼 클러치백 같은 것들이다. 특히 퍼 클러치백은 겨울철 어둡고 칙칙한 느낌을 주는 검은색 코트에 포인트를 줄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이다. 이 실장은 “요즘 출시되는 퍼 클러치백은 대체로 화사한 색상이 많아 딱딱한 옷차림뿐만 아니라 청바지 등의 캐주얼 복장에도 활용할 수 있다”고 추천했다. ●모발처럼 광택·염색 드러나는 게 좋은 제품 질 좋은 페이크 퍼를 고르는 법은 간단하다. 김 실장은 “페이크 퍼를 사람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조언했다. 찰랑찰랑하고 윤기가 나며 염색이 매끄러운 모발이 건강하고 아름다워 보이듯 페이크 퍼 역시 광택과 염색, 부드러움 등이 표면에 잘 드러나는 게 좋은 제품이라는 이야기다. 페이크 퍼의 관리는 까다롭지 않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신소재 R&D팀 이정훈 책임은 페이크 퍼 구입 후 처음에는 드라이하고 나중에 물세탁을 한 뒤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말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책임은 “페이크 퍼의 모발은 보통 아크릴로 만들어지는데 염착성(천 등에 물이 드는 것)이 다소 떨어지는 성분이므로 햇빛에 말리면 색의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소재 자체에 탄성과 회복력이 있으므로 모발이 눌리거나 엉킨 부분은 툭툭 털어 브러시로 빗어 주면 원래 형태로 복원된다. 다만 모발 기장이 긴 제품일수록 털 빠짐이 잘 일어난다. 이 때문에 이런 제품은 찬물에 중성세제를 이용해 손세탁하거나 세탁기의 울코스로 단독 세탁 하는 게 좋다. 또 평소 입었을 때 먼지가 달라붙거나 모발들이 엉키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뒤집어서 자주 털어 주고 브러시로 빗질해 주면 오랫동안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7200만원짜리 모피코트 사줘!”…대로변서 몸싸움 부부

    “7200만원짜리 모피코트 사줘!”…대로변서 몸싸움 부부

    차가 쌩쌩 달리는 한 대로변에서 중년으로 보이는 남녀가 격한 몸싸움을 벌였다. 언뜻보면 흔한 교통사고 현장의 한 장면처럼 보이지만 두 사람은 남남이 아닌 부부였다. 게다가 이들 부부가 싸운 이유가 고가의 모피코트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더욱 황당함을 안기고 있다. 중국 현지 지역언론인 랴오션완바의 보도에 따르면 중국판 SNS인 웨이보에 올라온 사진 수 장은 푸른색 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과 그의 남편이 하얼빈시의 대로변에서 큰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담고 있다. 당시 두 사람은 차들이 다니는 도로 한복판에서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목격자들에 따르면 아내는 남편에게 40만 위안, 한화로 약 7200만원에 달하는 검은담비 모피코트를 사달라고 협박 아닌 협박을 늘어놓고 있었다. 아내는 남편의 차량을 온 몸으로 가로막은 채 큰소리를 냈고, 이에 남편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아내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악다구니를 썼고, 두 사람은 멱살을 잡으며 몸싸움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두 사람이 싸운 장소는 대형 쇼핑몰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고, 이를 보도한 현지 언론은 “남편이 인근 쇼핑몰에서 고가의 모피코트를 사주지 않자 격분한 아내가 소동을 벌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도로를 ‘점령’한 채 철없는 다툼을 벌인 두 사람의 모습은 행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뒤 인터넷 게시판과 SNS에 올리면서 화젯거리로 떠올랐다. 한편 사건 속 여성이 원했던 모피코트의 소재인 검은담비는 모피코트 제작에 주로 사용되는 족제비과 동물이다. 세계 3대모피동물인 검은담비의 검은색 모피는 최고급품으로 손꼽히며, 이 때문에 검은담비는 멸종위기종 리스트에 올랐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하역작업 방해하던 깡패 한 방에 큰 대자로...

    하역작업 방해하던 깡패 한 방에 큰 대자로...

    하역 작업 방해하던 깡패의 낭패보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혔다. 영국 동영상 공유사이트 ‘라이브릭’(Liveleak.com)이 소개한 영상에는 미국의 한 도롯가에서 트럭에서 박스를 하역 중인 모습이 담겨 있다. 상의를 벗은 한 흑인남성이 트럭으로 다가가 일하고 있는 남성들을 방해한다. 남성의 계속된 방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건을 내리는 데 열중인 남성들. 마침내 흑인남성은 트럭에서 물건을 내려 가게로 옮기려던 남성의 박스를 내친다. 곧이어 트럭 위 검은색 상의 차림의 덩치 큰 사내가 내려와 흑인남성과 싸움을 시작한다. 남성은 흑인남성을 단번에 제압해 얼굴에 주먹을 날린다. 남성의 주먹에 맞은 흑인남성이 넉아웃된다. 잠시 뒤, 한 남성이 다가가 남성을 살피며 깨운다. 남성이 가까스로 바닥에서 일어선다. 사진·영상= KDN TUBE youtube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우주를 보다] 화성 표면서 부는 ‘회오리 바람’ 포착

    [우주를 보다] 화성 표면서 부는 ‘회오리 바람’ 포착

    화성 표면에서 회오리 바람이 부는 모습이 화성정찰위성(MRO)에 탑재된 고해상도 카메라(HiRISE·High Resolution Imaging Science Experiment)에 포착됐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의 북반구에 존재하는 태양계 최대의 협곡 마리네리스 지역에서 포착된 모래바람 모습을 공개했다. 잘 알려진대로 화성에서도 영화 '마션'에 나오는 장면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분다. 이같은 사실은 사구(砂丘)가 이동한 모습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됐으나 이번 MRO의 촬영처럼 바람 자체의 움직임을 직접 포착한 사진은 많지않다. 공개된 사진 속 동그랗게 보이는 모습이 바로 화성의 모래바람으로 작은 토네이도 형태를 띈다는 것이 NASA의 설명. 행성과학자 폴 가이슬러 박사는 "촬영된 모래바람 중 큰 것은 대략 100m 정도의 지름"이라면서 "전체적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은 토네이도 같은 바람을 통해 화성의 사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NASA 측은 MRO외에도 메이븐(MAVEN)과 마스 오디세이(Mars Odyssey)가 궤도를 돌며 화성을 탐사 중에 있다. 이중 화성 표면 모습을 생생히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큐리오시티(Curiosity)와 오퍼튜니티(Opportunity)다. 특히 얼마 전에도 큐리오시티는 샤프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한 검은색 모래언덕인 배그놀드의 모습을 촬영해 공개한 바 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전인미답의 화성 모래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또한 확대된 모래 사진에는 일정한 크기의 고운 알갱이가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이 담겨있어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사진=NASA/JPL-Caltech/University of Arizona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우주를 보다] 달에서 본 선명한 ‘푸른 지구’

    [우주를 보다] 달에서 본 선명한 ‘푸른 지구’

    NASA ‘달정찰궤도선’(LRO)이 촬영한 ‘블루마블’ 결정판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놀랍도록 선명한 ‘블루마블’의 결정판을 18일(현지시간) 공개했다. 블루마블이란 ‘푸른 구슬’이란 뜻으로, 태양빛이 전체를 비춘 상태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은 일컫는 별명이다. 이런 사진이 처음으로 촬영된 사례는 지난 1972년 12월 7일, 아폴로 17호의 한 우주비행사가 당시 지구에서 4만 5000km 떨어진 곳에서 찍은 것이다. 그 사진은 고유명사를 뜻하는 ‘더’(The)를 붙여 ‘더 블루마블’(the blue marble. 사진 아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번에 공개된 최신판 블루마블은 지금까지의 어떤 블루마블보다 뛰어난 선명도를 자랑한다. NASA의 ‘달정찰궤도선’(LRO)이 최근 달 궤도에서 최상의 위치에 도달했을 때 이 사진을 찍은 결과, 이처럼 놀라운 이미지를 얻게 된 것이다. 푸른 바다와 육지, 그리고 흰 구름들이 어우러진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지구의 전체 모습이 크레이터 물결처럼 굽이치는 달의 검은색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광경이다. 우주에서 저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이 있을까 싶을 만큼 감동을 자아내게 하는 장면이다. NASA의 LRO 프로젝트 부팀장인 노아 페트로 박사는 “정말 놀라운 이미지”라면서 “이번 사진은 43년 전 아폴로 17호 승무원 해리슨 슈미트가 찍었던 유명한 블루마블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했다. 당시 블루마블은 아프리카 대륙의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주어 사람들을 경탄시켰다. 이번에 공개된 블루마블을 보면, 사진 윗부분에는 갈색의 사하라 사막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아라비아 반도의 모습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남아메리카 대륙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이 사진 왼쪽에 보인다. 시선을 달 표면으로 돌리면, 멀리 동쪽의 물결치는 구릉지 뒤에 보이는 검은 그늘은 콤프턴 크레이터다. 이 이미지는 지난 10월 12일 달정찰궤도선(LRO)이 달의 뒷면 고도 134km에서 짝은 일련의 이미지들을 합성해 만든 것이다. LRO는 2009년 6월 18일에 발사되었으며, 달 궤도를 돌면서 탑재한 7기의 정밀탐사기기로 달에 관한 중용한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있다. 이 궤도선은 하루에 12번씩 달 지평선위로 떠오르는 지구 돋이를 보고 있다. 사진=NASA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아하! 우주] 화성 표면서 부는 ‘회오리 바람’ 포착

    [아하! 우주] 화성 표면서 부는 ‘회오리 바람’ 포착

    화성 표면에서 회오리 바람이 부는 모습이 화성정찰위성(MRO)에 탑재된 고해상도 카메라(HiRISE·High Resolution Imaging Science Experiment)에 포착됐다.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화성의 북반구에 존재하는 태양계 최대의 협곡 마리네리스 지역에서 포착된 모래바람 모습을 공개했다. 잘 알려진대로 화성에서도 영화 '마션'에 나오는 장면처럼 강력하지는 않지만 바람이 분다. 이같은 사실은 사구(砂丘)가 이동한 모습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됐으나 이번 MRO의 촬영처럼 바람 자체의 움직임을 직접 포착한 사진은 많지않다. 공개된 사진 속 동그랗게 보이는 모습이 바로 화성의 모래바람으로 작은 토네이도 형태를 띈다는 것이 NASA의 설명. 행성과학자 폴 가이슬러 박사는 "촬영된 모래바람 중 큰 것은 대략 100m 정도의 지름"이라면서 "전체적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린 도넛 모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작은 토네이도 같은 바람을 통해 화성의 사구가 살아있는 것처럼 이동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NASA 측은 MRO외에도 메이븐(MAVEN)과 마스 오디세이(Mars Odyssey)가 궤도를 돌며 화성을 탐사 중에 있다. 이중 화성 표면 모습을 생생히 우리에게 전달해주는 것이 바로 큐리오시티(Curiosity)와 오퍼튜니티(Opportunity)다. 특히 얼마 전에도 큐리오시티는 샤프산 북서쪽 자락에 위치한 검은색 모래언덕인 배그놀드의 모습을 촬영해 공개한 바 있다. 공개된 사진을 보면 전인미답의 화성 모래는 지구와 마찬가지로 물결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또한 확대된 모래 사진에는 일정한 크기의 고운 알갱이가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모습이 담겨있어 경외감마저 자아낸다. 사진=NASA/JPL-Caltech/University of Arizona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숨 막히는 포즈’ 애비 클랜시, 란제리 영상 공개

    ‘숨 막히는 포즈’ 애비 클랜시, 란제리 영상 공개

    영국 러브(LOVE) 매거진의 ‘2015 어드벤트 캘린더(advent calendar)’ 열여섯 번째 주인공이 공개됐다. 러브 매거진은 16일(현지시간) 자사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어드벤트 캘린더 열여섯 번째 주인공인 모델 애비 클랜시의 매력이 담긴 영상을 게재했다. 공개된 영상 속 에비 클랜시는 검은색 속옷을 입은 채 매혹적인 포즈를 취한다. 러브 매거진은 지난해에 이어 독자들을 위해 어드벤트 캘린더 서비스를 시작했다. 어드벤트 캘린더는 12월 한달 동안 매일 한 장씩 보는 기념 달력을 뜻한다. 올해 어드벤트 캘린더는 미국 모델 켄달 제너를 시작으로 지지 하디드, 캐나다 출신 여배우 패멀라 앤더슨, 영국의 유명 방송인 캐롤린 플랙 등이 뒤를 이었다. 한편, 애비 클랜시는 영국의 축구선수 피터 크라우치의 아내이자 모델이다. 사진 영상=LOVE Magazine 영상팀 seoultv@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