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검은색
    2025-08-28
    검색기록 지우기
  • 테이
    2025-08-28
    검색기록 지우기
  • 이별
    2025-08-28
    검색기록 지우기
  • 투표
    2025-08-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6,920
  • 빨라진 펜… 아날로그·디지털 자유롭게 오가는 삼성 노트북 ‘펜S’

    빨라진 펜… 아날로그·디지털 자유롭게 오가는 삼성 노트북 ‘펜S’

    반응속도 2배 향상·펜팁도 3종류로 다양 텍스트 변환 인식률 높아…무게는 상당삼성전자가 최근 출시한 신제품 노트북 ‘펜S’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제품이다. 지난달 20일부터 일주일간 써 본 펜S는 노트북과 태블릿PC 두 개의 모드를 지원하는 ‘컨버터블 노트북’으로 펜의 역할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번 제품엔 펜의 반응 속도를 2배 향상시켰고, 펜촉에 해당하는 팁을 3종류로 다양화했다. 펜을 써보기 위해 탑재된 앱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삼성노트’를 사용해 봤다. 펜이 닿은 궤적을 따라 선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는데, 시간차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전문가 영역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반응 속도만 놓고 보면 실제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 종류로 제공되는 펜팁은 아날로그 감성을 더 살려 줬다. 제품에 동봉된 도구로 기본 흰색 펜팁을 뽑아 내고 검은색 팁을 끼워 써 보니 미끄러짐이 없이 약간 빡빡한 듯한 필기감이 느껴졌다. 손글씨를 쓰거나 스케치를 하기에 적절해 보였다. 회색 팁은 부드럽게 잘 미끄러지는 재질이었다. 수채화를 그릴 때처럼 터치를 많이 하는 작업에 적당하다. 태블릿 모드에서 회원 가입이나 로그인을 하기 위해 이메일 주소나 아이디,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도 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손으로 쓰면 바로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되는 앱이 자동 실행되기 때문이다. 인식률이 매우 높아서 어지간한 악필이 아니면 큰 문제 없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단어 단위로 인식·변환하는 속도가 빠르진 않아서 긴 글을 쉬지 않고 쓰기엔 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품 무게는 상당하다. 15형 제품을 써 봤는데 태블릿PC로 쓰기엔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뒤로 접어서 손에 들면 키보드가 눌릴 수밖에 없다. 태블릿 모드에서 키보드가 동작하진 않지만, 버튼이 계속 눌리는 느낌은 사용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살살 놔주세요’ 주사 무서워도 얌전히 발 내민 천사견

    ‘살살 놔주세요’ 주사 무서워도 얌전히 발 내민 천사견

    주인을 잘 따르고 온순한 성격으로 ‘천사견’이라 불리는 리트리버가 공포의 주사 앞에서도 여지없이 ‘천사견’의 면모를 보였다. 최근 유튜브 채널 ‘RM videos’는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용감하게 주사를 맞는 리트리버 영상을 소개했다. 영상에는 동물 병원을 찾은 검은색 털의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주인의 말에 스스로 진찰대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강아지는 병원이 무서운 듯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본다. 이어 수의사가 주사를 놓기 위해 강아지의 발을 잡아 든다. 강아지는 걱정이 가득한 표정에도 순순히 발을 내준다. 다가올 주사의 공포에 강아지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자, 수의사는 괜찮다는 뜻으로 강아지의 얼굴에 뽀뽀를 해준다. 수의사가 따끔한 주삿바늘을 발에 꽂지만, 강아지는 조금의 몸부림도 치지 않고 얌전하게 주사를 맞는다. 혹시나 강아지가 발버둥 칠까 발을 꼭 잡고 있던 간호사는 얌전하게 주사를 맞는 강아지를 귀여워하며 뽀뽀한다. 수의사 역시 씩씩하고 순한 강아지가 기특한 듯 연신 뽀뽀를 해준다. 사진·영상=RM videos/유튜브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2019 서울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앙상블/채기성

    사실 경희를 만나려고 만난 것은 아니었다. 내가 먼저 경희를 봤다면 나는 아마도 버스에 타지 않았을 것이다. 나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J가 그녀의 어머니를 논현동 게장 집으로 퇴근 시간에 맞춰 모셔 오지 않았더라면 굳이 몸을 구겨 가며 버스를 탈 일도 없었을 것이다. 경희를 만나고 나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체 탓에 긴 행렬로 이어진 차들 사이를 뚫고 버스는 간신히 일 차선으로 빠져나와 정류장 쪽으로 겨우 몸을 돌렸다. 출입문 앞 쪽까지 가득 찬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며 몸을 늘어뜨리고 천천히 기어 오는 버스를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일찍 나오지 그랬어.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내 문자에 대한 J의 회신에도 한숨이 생략된 것처럼 느껴졌다.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보다 도로 쪽에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붙어 섰다. 버스 앞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입구까지 막아서 있는 사람들을 어깨로 밀어내며 올랐다. 내 바로 뒤에서 어깨로 등을 떠밀던 한 남자는 문이 닫히지 않자 결국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남자의 낭패한 표정이 나에게는 왠지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버스 문이 겨우 닫혔다. 수많은 사람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몰려들었지만 선택받은 사람은 나 혼자였다. 근래 들어 가장 운이 좋은 순간이었다.다음 정거장에서 앞쪽으로 몇 사람이 내리면서 문이 열렸다. 출입구 난간에 서 있던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치고 버스 안쪽으로 올라섰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좁은 버스 출입구로 몰려들었지만 탈 수 있는 사람은 몇 사람 없었다. 출입구 쪽의 사람들에게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거기에는 퇴근 때보다 더 짙어진 어둠이 있었다. 버스 안의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무표정하게 저마다의 핸드폰을 보며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버스 창에 반사되어 보였다. 차례로 사람들을 훑어보다 버스 중간 즈음에서 나처럼 창밖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낮은 조도의 등 아래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경희였다. 오래전부터 나에게 닿아 있었던 것 같은 무거운 시선. 사람들을 비집고 버스에 탈 때부터 나를 알아봤을 것 같은 시선. 아니면 그전부터. 우리가 서로 보지 않았던 시절부터 그래 왔다고 하더라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경희의 무겁고 오래된 시선에 사로잡혀 나는 자리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표정한 사람들의 흔들림을 사이에 두고, 경희와 나는 창을 통해 비친 서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었다. 앞으로 내려도 되죠?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한 여성이 기사 쪽을 향해 몸을 치켜세웠다. 버스 기사는 대답이 없었다. 버스 앞쪽으로 끼어들어 미적거리는 차량 때문에 예민해졌는지 기사는 후미 등을 반복해서 껐다가 켜 댔다. 버스 기사는 앞쪽 출입문은 되도록 열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앞쪽으로 내리는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을 열어 줄 수밖에 없었다. 기껏해야 한두 명 탈 수 있는 공간이라도 타기 위해 정류장에 있던 사람들이 몰리면서 어깨로, 등으로, 자기 곁에 있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버스 기사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뒷문을 먼저 열어 사람들을 그쪽으로 유도한 다음 앞문을 열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뒤쪽이든 앞쪽이든 누군가 탈 만한 공간은 없었다. 일단 버스 앞쪽 난간에 매달린 다음, 문이 닫힐 수 있도록 까치발을 하고 몸을 앞으로 밀어대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위험하다는 기사의 만류로 내려설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타겠다며 몸을 구겨 넣다가 버스를 출발조차 못 하게 만들었던 나를 경희가 봤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에 열이 올랐다. 고개를 쭉 뻗어서 경희가 있는 쪽을 보려고 했지만 그렇게 해서는 경희를 볼 수 없었다. 다시 창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 움직이지 않고 내게로 향해 있는 경희의 시선이 머물러 있었다. * 경희를 마지막으로 봤던 것은 그녀가 독일로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는데, 그날은 그녀의 생일이었다. 나는 경희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먼저 연락하지는 않았다. 매년 경희의 생일을 챙겨 온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때만큼은 그녀의 생일을 챙길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연락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경희였다. 독일로 떠나기 전에 꼭 나를 보고 떠나야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러마 했다. 신용카드 연체 독촉 전화와 문자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출을 해야 한다는 것도 부담이 됐다. 수개월간 회사의 급여가 체납된 끝에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밀린 임금과 퇴직금이 언제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었다. 한동안 내지 못했던 월세 비용과 저축, 보험, 통신 요금의 더미에 묻혀 나는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억지로 그 더미를 뚫고 나가 경희를 만나 웃으며 생일을 챙겨 줄 수 있을 만한 여력이 전혀 없던 것이었다. 그녀를 만나는 시간만큼이나 연체된 카드 대금이 불어날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돈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커피 한 잔은 사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비참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내가 살게.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먹고 나서 경희가 보통 그렇게 얘기하면 나는, 배우가 무슨 돈이 있어, 하고는 늘 그렇듯이 그녀보다 한발 앞서 호기롭게 계산을 하고는 했다. 정말 유명한 배우가 되면, 그때야말로 나를 잊지 말고. 그리고 내가 다짐하듯이 경희의 눈을 보며 얘기하면, 보통 그녀는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명한 배우라는 말이 낯간지럽다는 듯이. 오늘은 내가 살게. 경희가 그렇게 말하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나서야 나는 옷을 챙겨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늘 만나던 홍대입구 8번 출구에서 만나 경의선 숲길 쪽으로 걸어가면서 경희는 딱히 어디를 가자거나 뭘 먹고 싶다고 선뜻 말하지 않았다. 둘이 자주 가던,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듣기에 괜찮고, 또 무엇보다도 술이며 안주가 그리 비싸지 않은 익숙한 곳 몇 군데를 얘기해 봤지만 경희는 하나같이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면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와인을 마시고 싶어. 그럼 어디? 뭘 하고 싶은데. 그렇게 물으려던 참이었다. 와인. 경희를 따라 입 밖으로 뱉어진 단어의 모음 두 개가 허공에서 공허하게 떠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두 개의 원 안으로 와인이 무한대로 부어지고 있는 게 떠올려졌다. 경희와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함께 와인을 마셔 본 적이 없었다. 가자, 안 그래도 생일인데. 그건 비싸잖아. 사실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건 결국 나에게 향한 말일 뿐, 경희에게 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희가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가지 않을 수는 없어 나는 그렇게 하자고 말했다.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와인과 곁들여져 나올 샐러드와 안주 같은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복잡해졌다. 내가 낼게. 와인을 다 마시고 나서 자리를 뜰 때 경희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그저 작은 위안이 되었다. 경희가 그 말을 할 때면 아주 단호하고, 무엇보다 진짜 멋있어 보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좋아 보인다며 경희가 앞장서 들어간 곳은 이층짜리 주택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었다. 그냥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건물 앞에 주차된 차들은 거의 대형 수입차 세단이었다. 광택이 도는 창문 안쪽으로 와인을 마시며 앞에 앉은 남자를 그윽이 바라보는 여자가 보였다. 푸른색을 띠는 롱 드롭 귀걸이가 여자가 웃을 때마다 흔들렸다. 거기 안쪽에 있는 여자와 양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쩐지 다른 세상의 사람들 같았는데 그래서 그 안쪽으로 들어간다는 게 여간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진짜인 사람들은 저기에 있는데, 여기에 어울리는 사람들은 저기 있는데, 그 사람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사람처럼 스스로 여겨져서 그랬다. 와인을 좋아하는 줄 몰랐네. 경희는 그 말을 듣고 나를 한 번 쳐다보더니 옷가지들을 풀지 않고 걸치고 있던 머플러를 더 조여 맸다. 춥기도 하고. 와인을 마시면 몸이 좀 따뜻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말하고 경희는 익살스럽게 웃었다. 마음도. 그 말과 동시에 머금고 있던 웃음이 바람에 꺼진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그 순간, 경희의 표정은 차갑고, 두 눈은 아래쪽 어딘가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일 것이라고 나는 직감했지만 그에 대해서 바로 묻지는 않았다. 경희는 나와 대화 중에도 반복해서 몇 번쯤 웃다가 다시 떠오르는 생각을 제어하지 못하겠는지 허공에 떠 있는 생각들을 겨냥한 채 눈을 겨눴다. 경희는 내가 한 말을 자주 놓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반복해서 물었다. 경희와 나 사이의 대화들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계속 어긋나고 있었다. 딱히 서로에게 닿을 만한 대화가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그건 우리가 서로에 대해서 내적 요구가 가장 큰 마음속의 것들을 꺼내 놓지 않았기 때문에 빚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경희가 와인 한 병을 더 마시자고 하기 전에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고, 경희는 와인을 마실 때마다 잔을 비웠다. 처음에는 와인 잔에 반쯤 따르던 나도 양을 삼분의 일로 줄였다. 와인의 건조한 습기가 그녀의 입술에 붙어 입술 틈 사이로 갈라졌다. 깊숙이 몸 안으로 채워 넣을 것이 필요한 사람처럼 경희는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잔으로 담은 붉은색 와인을 몸속으로 들이부었다. 미처 저어할 틈도 없이 경희는 추가로 와인을 주문했다. 경희처럼 단번에 와인을 마셔 버려도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그곳을 나올 때 경희보다 앞서 나오면서 신용카드로 결제한 금액이 이십오만 원쯤이었는데, 내가 낼게, 라고 경희가 나선 것은 아니었다.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이 정도쯤 괜찮아. 내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했다. 평소보다 돈을 더 많이 쓴 게 아니냐며 한 번쯤 얘기해 줄 수는 없는 것일까. 나도 위로받고 싶다고. 와인을 마시는 내내 대화가 엇갈린 경희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마음속에서 웅얼거렸다. 내가 힘들 때도 타인을 챙겨야 한다는 모순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있었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우리는 만난 적이 없었다. * 팔꿈치로 등을 짓이기는 듯이 세게 문질렀다가 신경질적으로 툭툭 치는 사람은 내 뒤에 서있던 중년의 여성이었다. 등을 마주 보고 서 있었는데 등을 찌르듯이 뾰족한 팔꿈치로 계속 찔러서 나는 최대한 여자의 등과 멀어지려 앞쪽으로 몸을 바짝 당기고는, 등을 활자로 폈다. 상대적으로 배가 앞쪽으로 들이밀어지는 바람에 이번에는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흘겨봤다. 배를 살짝 집어넣자 다시 여자의 팔꿈치 찌르기가 계속됐다. 내가 앞쪽으로 바짝 다가설수록, 그렇게 해서 생긴 빈 공간을 여자가 오히려 좁혀오는 것 같았다. 앞 남자는 몸이 닿는 게 싫은지 어깨춤으로 나를 살짝 밀쳐냈다. 하는 수 없이 활자로 핀 등을 일자로 세우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의 날카롭고 뾰족한 팔꿈치와 닿았다. 왜 자꾸 밀고 그러냐는 여자의 거친 음성과 얼굴이 동시에 나에게 쏟아졌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내 쪽을 쳐다봤다. 저도 계속 밀려서요. 여자에게 따지려 들면 더 싸움이 날까 봐 나는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싸가지가 없긴. 여자는 그렇게 자기 말만 하고는 몸을 획 돌렸다. 결국 그 말을 타인, 상대방에게 던지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 의도한 사람처럼 여자는 그 말을 던지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여자의 팔을 붙잡고 지금 뭐라고 한 거냐며 따지며 물었을 텐데 나는 일부러 평정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저 뒤쪽의 경희도 여기를, 지금 나를 보고 있을 것이었다. 여자의 신경질적인 목소리와 방어하는 내 목소리를 들었을 것이었다. 버스에 탈 때부터, 여자가 팔꿈치로 나를 찌르고, 싸가지 없다는 말을 듣고 있는 순간까지 전부 그대로를 경희는 다 보고 있는 것이었다. 경희와 친구로 지내면서 보여 준 적이 없었던 민낯의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만 있는 것 같았다. 버스에 타지 말았어야 한다니까. 나를 탓하는 목소리가 뇌에서 진동 주파처럼 반복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거기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아주머니. 경희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방금 뒤에 있는 남자한테 소리 지르신 아주머니요. 차들이 밖으로 늘어서 있었다. 옆 차선으로 옮기려는 차들이 켠 주황색 방향지시등이 깜빡이고, 좁은 틈 사이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거나 끼어드는 차선을 막아서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헤드라이트 불빛과 뒤섞여 흔들리고 있었다. 여자는 사람들로 가려진 버스 뒤쪽을 고개를 돌려가며 목소리의 주인을 찾았다. 뭐야, 누구야. 방금 전의 격앙된 목소리보다 누그러진 신중한 목소리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런 사람 아니라구요, 아주머니 옆에 있는 남자. 싸가지 없는 사람 아니에요. 김이 서리기 시작한 창 위로 희미하게 얹힌 도로의 풍경이 캔버스에서 흘러내린 물감들이 아무렇게나 뒤섞여 만들어 낸 그림 같았다. 경희의 목소리가 내게는 비현실적으로 들렸기 때문인지 바로 앞의 풍경도 아득하게 느껴졌다. 뭐야, 누구야. 누군데 그래 지금. 여자는 연신 뒤쪽을 쳐다보다가 목소리를 높여 외쳤다. 아줌마, 이제 조용히 좀 하세요. 여자 앞쪽에 앉아 있던 중년의 남자가 여자를 향해 말했다. 아니, 내가 괜히 그래요? 여자가 정색을 하고 남자를 내려 봤는데 동시에 여자의 목소리가 버스 기사의 욕설에 묻혔다. 버스 기사는 이제는 참기 힘들다는 듯이 운전석 옆의 창문을 열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버스 앞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싸가지 없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경희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의 고개와 시선이 다시 버스 뒤쪽으로 향했다. 경희의 그 말이 귓속에서 울리더니 가슴으로 내려와 울렸다. * 경희와 만나지 않고 지내던 시간 동안 나는 딱 한번 그녀의 연극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며 한번 보러 오라는 문자를 받고 나서였다. 경희가 독일로 떠난 이후 연락이 뜸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그녀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이후에도 몇 번쯤 경희가 먼저 연락을 해 왔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들어간 직장에서의 일이 절실하기도 했고, 그만큼 일상과 일과 중에는 일보다 중요한 일을 만들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책상 한쪽에서 진동으로 울리고 있는 휴대폰 액정 화면 위에 경희라는 이름이 몇 번인가 떠 있었고,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려놓은 채 나는 그것을 무심하게 지켜보았다. 진동이 그치고 이름이 사라진 자리에 매번 무표정한 내 얼굴 표정이 비쳐 보였다. 다시 전화가 오면 받아야겠다고, 아마도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았다. 그러나 경희가 두 번 연속으로 전화를 하는 일은 없었다. 경희에게 연락도 없이 소극장으로 향한 건, 한 번도 그녀가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시작할 만큼 간절히 원하던 뮤지컬을 떠나 갑작스럽게 다른 장르의 무대로 간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연극 무대에 선 경희가 어떤 모습인지 멀리서 한 번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나는 애써 그녀의 변화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독일로 그녀가 떠난 뒤로 내게 몇 번이나 연락했는지, 언제 연락했는지를 모두 세고 있었던 것처럼 노력해도 지워지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를 내릴 때, 누군가 뒤에서 손으로 등을 짚을 때, 차를 운전하다가 커브를 돌 때 같은 평범한 순간들의 틈을 타고 떠올려지는 기억들이었다. 나랑 사귀자. 농담이라며 경희가 무심코 던진 말이 한동안 얼마나 나를 들뜨게 했는지, 처음 뮤지컬 무대에 선 그녀를 단순히 객석에서 바라보던 일이 그렇게나 떨릴 만한 일이었는지를 재차 묻는 것 같은 기억들이었다. 기억들은 금세 사라졌다가 다시 불현듯 나타났다. 그래서 경희와 멀어지기 위해서는 갖고 있던 기억들이 완전히 소진되어 떠올릴 거리가 없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한때 삶의 중심과 사건들을 나누고 공유했던 경희와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상할 것도 없었다. 어떤 시절 속에 존재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관계의 인과와 고리가 있는 것일 뿐이고, 우리는 지금 막 그 인과를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라고. 완전히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그 힘에 저항하는 관습과 기억의 뜨거운 층위를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경희의 연극을 보러 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이었다. 연극 무대에 선 경희를 확인하면 끝내 그 층위를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내가 그 기억들의 저항에 설득되었기 때문이었다. 중년 남자의 독백으로 시작된 연극의 삼분의 일이 지나갈 무렵까지도 경희는 무대에서 보이지 않았다. 진한 화장을 하고 등장한 중년 남자의 딸이 경희일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중년 남자의 내연 관계인 직장 후배도 아니었다. 극의 중반 즈음을 지나서 등장한 중년 여성이 경희였다. 앞서 등장한 여성들이 모두 경희가 아닐까 생각했던 탓인지 중년의 여성으로 나타난 경희가 뜻밖에도 낯설게 느껴졌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이게 분장을 한 이유도 있겠지만 그동안 경희가 뮤지컬에서 맡아 왔던 역할들에 비하면 지나치게 정적으로 보였다. 정돈되지 않은 머리와 유행이 지난 옷들을 차려입은 그 역할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중년의 역할은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적정하게 소화해 낼 수 있는 게 아니냐며, 연극이 끝난 후에 찾아가 경희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 나이가 되면 말이야, 표현하지 않으려 해도 연기가 자연스러워질 텐데 굳이 왜. 나는 경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거기까지 떠올리다가 멈췄다. 넌 내 말을 들은 적이 없지. 정작 내가 경희에게 하고 싶던 말은 그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실은 그 말 안에 내가 경희를 미워하는 감정이 얼마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 감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을 때, 이상하게도 경희가 독백을 할 때마다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일부러 무대 뒤편으로 자리를 잡아 놓기도 했고, 소극장이지만 그래도 무대 조명이 밝아서 어두운 객석의 사람들을 쉽게 알아보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경희의 시선이 내게로 고정되어 있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경희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 그때 혹시 말없이 소극장을 찾아가 공연을 보고 있던 나를 경희가 알아봤는지, 그리고 그녀가 뮤지컬에서 연극무대로 전향한 이유 중에 어떤 것을 먼저 물어볼지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경희네가 했던 연극 공연을 보러 갔었다고, 차라리 그렇게 말을 시작하는 편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경희는 알아, 혹은 그랬어? 그렇게 둘 중에 하나로 대답하고,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는 먼저 알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 그렇게 다시 관계가 시작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145번 버스는 여전히 천천히 이동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정체가 심한 신사동 고개에서부터 가로수길 입구를 거쳐 신사동 사거리 쪽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신사동 고개에서 정차했다가 출발한 버스는 그나마 정체가 덜한 좌회전 차선으로 옮겨 갔다가, 신사역이 가까워오자 사 차선에서 일 차선으로 한 번에 가로질러 갔다. 그사이 각 차선에 겹쳐 있던 차들 몇 대가 신경질적으로 클랙슨을 울려 댔다. 버스 기사의 거친 운전을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자리에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사람들 모두 금요일 퇴근길의 정체가 지겨운 표정이었다. 이번 정류장에 내리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과 앉으려는 사람, 내리기 쉽도록 문 옆으로 가 있으려는 사람들이 뒤섞이는 동안 사람들에게 밀려났는지 경희의 모습은 창에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느릿하게 가는 동안 나는 자주 버스 뒤편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등과 머리 사이 틈새 어딘가에 경희가 목에 두른 파란색과 검은색 도트 무늬가 새겨진 스카프가 보이는 것도 같았다. 버스는 신사역 정류장 바로 앞에 차를 대지 못하고,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 정차한 상태에서 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앞 뒤 문 밖으로 쏟아져 내렸다. 나는 내리려는 사람들을 먼저 비집고 들어가 버스 뒤편으로 향했다. 이제는 텅 비다시피 한 버스를 아무리 찾고 둘러봐도, 경희는 없었다. * 아마도 신사역에 도착하기 전이나 아니면 그보다 전 정류장에 내렸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혹 다른 사람을 경희로 착각한 것이 아니었는지 의심도 해 보았지만 그건 분명히 아니었다. 그렇게 깊고 말간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경희밖에 없었다. 화가 렘브란트는 자신의 연대기에 따라 자화상을 그려 냈는데, 청년기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모습은 비록 달라졌어도 눈빛만큼은 그대로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는 사라져도 눈빛만큼은 영겁의 시간을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나는 한눈에 경희의 눈빛을 알아볼 수 있었다. 경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고 해도 눈빛 하나로 그녀를 구분해 낼 자신이 있었다. 그녀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버스 창을 통해서였지만 서로를 알아보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랬으므로 버스에서 내려 신사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집에 도착해서도, 날이 지나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하며 일상을 살아가면서도, 그녀가 있었으나 사라졌던 자리와 음성을 지우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있었다. 몇 번쯤 핸드폰을 들고 경희의 연락처를 훑다가 말고, 통화 버튼을 누르려다 멈추고를 반복했다. 갑자기 사라진 그녀에게 집중되는 생각의 관성이 오히려 나 자신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경희를 만나기 이전으로 그저, 돌아가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그녀와 연결된 세계에 살고 머물게 될 것이었다. 그녀와 단절된 삶으로서의 세계. 그것이 내가 원하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그날의 일을 기억 속에서 정리하기로 했다. 버스에서의 만남과 기억에 욕심을 내지 않기로 했다. 버스에서 경희가 사라진 이유도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마음먹은 대로 경희가 정리가 된 적은 없었다. 삶의 어디선가 경희는 꼭 뛰쳐나오는 것이었다. 145번 버스에서처럼. 전우영씨죠. 굵고 낮은 목소리 톤을 가진 한 남자의 전화를 받은 것은 내가 어느 정도 경희에 관한 일을 어느 정도 잊고 있을 때였다. 회사 연수원에서 승진자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받다가 밀려오는 졸음 때문에 잠깐 교육장을 나와 라운지 의자에 몸을 기대고 있던 때였다. 그렇습니다만. 차경희씨의 오랜 친구라고 들었습니다. 남자의 입에서 경희의 이름이 불려졌을 때, 그녀를 생각지 않고 지내던 시간들은 금세 증발되고, 애써 한쪽에 치워 놓고 쌓아 두려 했던 경희의 기억들이 눈앞으로 함몰되어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음성에서 느껴진 알 수 없이 무겁고 감당하지 못할 어떤 예감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남자가 전한 것은 경희의 죽음이었다. 그저 한번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우영씨가 가장 친했던 친구라고 해서요. 마지막에 경희는 우영씨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지만요. 제가 대신이나마 한번 만나 뵈어야 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남자의 무거운 목소리는 내 무의식의 심연보다 깊어 그곳에서 나를 끌어내리는 소리 같았다. 온 힘을 다해 끌어내리는 목소리. 반드시 나를 만나야만 한다는 의지와 무게로 나의 목을 끌어안는 목소리였다. 그건 그래서 남자의 목소리라기보다 내 목소리인 것 같았다. 남자를 통해서라도 경희를 알아내야만 한다는 목소리. 그런데 혹시, 전화를 주신 분은 누구시죠. 아, 제 소개를 하지 않았네요. 남자가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다듬었다. 경희의 소식이 믿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섣불리 어떤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남자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반쯤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다. 저는 김재철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굵은 톤으로 지금까지의 조심스러운 말투와 다르게 기운차게 자신을 소개했다. 남자의 이름이 상당히 낯익다는 생각이 들어 기억 속 어딘가 존재하는지 떠올려 보고 있었는데, 남자가 이어 꺼낸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가 누구인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경희와 같은 배우였습니다. 뮤지컬을 오래 같이 했습니다.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나는 남자를 만나지 않았다. 남자의 얘기를 듣고, 동창들이나 친구들을 수소문해 경희가 안치되어 있는 납골당을 찾아갔다. 그리고 근 한 달 동안 계속 술을 마셨는데 그때마다 경희에 대한 모든 사소한 기억까지 기억해 내려고 애를 썼다. 경희에 대한 기억을 꺼내면 꺼낼수록 그 기억들의 중심에는 어떤 죄책감이 놓여 있었다. 그녀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기억들을 끊어 내려 했던 죄책감을 희석시키고자 나는 끊임없이 그녀의 기억들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이상했던 것은, 오 개월 전에 이미 떠난 그녀가 어떻게 불과 이 개월 전에 버스 안에서 나를 마주칠 수 있느냐는 점이었다. 나는 술을 마시면서도, 출근을 하면서도 서류 더미 위로 떠올려지는 그 물음에 대해 제대로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본 것은 경희, 차경희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남자에게 먼저 연락을 한 것은 그 일에 대해 한 번쯤 말해 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본 것이 경희에 대한 일종의 환영이었는지, 아니면 착시였는지, 혹은 다른 무엇인지 알아보고 싶어서였다. 고백하자면 내가 그녀에게 갖게 된 어떤 죄책감이 버스 안에서의 기억과 강하게 밀착되어 내게서 한시도 떨어져 나가지 않고 있음이 괴로워서였다. 남자는 예상대로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경희가 했던 한 뮤지컬 공연에서 수도 없이 그녀를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리던 상대 남자 배우. 남자는 그때처럼 팔 근육이 여전히 우람했다. 콧수염뿐이었던 수염이 턱 밑까지 깊고 거칠게 길러져 있었다. 더 달라진 게 있다면 한데 묵어 허리까지 내렸던 긴 머리를 잘라내 버린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들어 올리기 쉽도록 해야 한다며 경희 스스로 다이어트와 금식을 하면서 몸무게를 조절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분명히 버스 안에 있었던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남자는 경희가 버스 안에 있었던 게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버스에 없었던 게 아니구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어긋난 겁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어요. 과거의 시간에 놓여 있던 어떤 순간의 지형이 어긋나거나 뒤틀려서 현재의 시간 어딘가에 다시 배치가 된 겁니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우영씨가 본 건 경희가 맞아요. 그럼, 시간의 잘못된 인과다? 그렇다기보다 찢어 붙이기 같은 거죠. 저쪽 시간에서 잘못 끼워진 시간이 현재의 어떤 시간에 다시 조합된 거예요. 껴 맞춰진 거죠. 그런들 어쩔 수가 없어요. 그건, 시간이 하는 일이니까. 깨진 거울의 한쪽 면에 새 거울 조각을 맞추듯이. 가급적 오류를 그런 방식으로 해결해 가면서, 되도록 완벽한 시간성을 구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그러나 모든 것들을 통제할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러니 우영씨가 본 건 그와 같은 통제에서 벗어난 시간의 왜곡으로 일어난 일이다, 이겁니다. 이 세상에 없는데도 나타날 수 있는? 내가 반문하자 남자는 한쪽 눈으로 윙크를 하며 한 손으로는 엄지와 검지를 ㄴ자로 만들어 나를 쏘는 흉내를 냈다. 쿨. 언제나 만날 수 있다 이 말입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경희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언젠가부터 그림자처럼 그녀 곁에 붙어있는 남자가 같이 떠올려졌다. 그 남자에 대해 아직도야? 그렇게 물으면 경희는 다른 얘기를 하고 싶어 했다. 왜 대답을 안 해? 그렇게 다시 경희에게 물으며 본론으로 돌아가면, 네가 싫어하잖아. 경희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 깊고 비어 있는 눈빛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런 대화는 경희와 만날 때마다 반복이 됐다. 나 역시 경희가 싫어할 것을 알면서도 그게, 매번 집요하게 그 남자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 뭐? 취기가 볼에 붉게 오른 경희의 오른쪽 눈가가 엷게 떨렸다. 이런 얘기를 더 이상 주고받고 싶어 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 사람 만나러 가지 말라고, 독일에. 독일로 떠나기 전 만났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그래서, 내가 잔인하게 느껴졌다. 언제까지 아내가 있는 사람을 만날 건데, 너. 그래도 그 정도는 늘 경희에게 하는 얘기였으니 어쩌면 거기까지만 말하고 멈췄어도 괜찮을 법했다. 경희는 내가 연이어 던진 말을 듣고 감정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것 같았다. 너는 그 사람의 아내까지 망치려는 거야. 그때, 경희에게 그렇게 소리치며 화를 내고 짜증스럽게 말한 게, 오랜 실직 상태로 지쳐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분노였는지, 아니면 정말 경희가 나의 상태와 상관없이 자신의 생일만 챙기려 드는 것 같다고 여긴 것 때문이었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내가 오랫동안 그녀의 편이 돼주기보다 조언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며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었고, 어쩌면 경희는 내가 자신을 혐오스럽게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녀에게 실망하며 마음을 닫아 버리려 노력했던 나와 달리, 이제는 세상에 없는 경희에 대해서도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말하는 남자에게서 나는 어떤 종류의 패배감을 느꼈는데, 자세히 그 감정을 살펴보니 더 깊은 안쪽에는 경희에 대한 부채의 감정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나를 실망스럽게 쳐다보는 것 같은 경희의 얼굴처럼. * 경희는 그즈음 자주 뮤지컬계를 떠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 그럴 때마다 그렇게 사랑하는 뮤지컬을 떠날 수 있겠냐고 농담조로 말하면 경희는 별 말없이 허공을 쳐다보고는 했다. 그제야 그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있다는 듯이. 더 큰 박수를 받는 건 주연급뿐이잖아. 그래서 경희가 그렇게 덜컥 그 얘기를 꺼냈을 때, 정말 그녀에게 뮤지컬에 대한 권태로움이 심각하게 찾아왔구나 싶었다. 경희는 수년째 뮤지컬 무대에서 코러스와 춤을 뒷받침하는 앙상블 역할을 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자랑스러워했기 때문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출연 배우들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에 박수를 받는 주연의 뒷모습을 같은 무대에서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황홀하다고 했던 그녀였다. 주연에게 기립 박수를 치는 사람들 중의 하나에 불과한 것처럼 경희가 말했을 때, 경희에게는 뮤지컬을 더 이상 할 수 있는 어떤 동력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주연을 맡는 사람은 따로 있더라고. 경희의 그 말이 내게는 인생에서 자신이 주인공이 될 일은 없는 것 같다고 토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자조 섞인 말투로 뮤지컬을 떠나야 하는 이유들을 말하던 끝에, 경희는 그 남자, 김재철이라는 사람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그는 최근에 막을 내린 뮤지컬에서 경희의 파트너 역할을 했던 남자 배우라고 했다. 경희의 뮤지컬을 빠지지 않고 보던 나에게도 익숙한 남자 배우였다. 한데 묶은 긴 머리와 양 팔의 근육을 드러낸 화려한 의상을 입고 경희와 호흡을 맞추던 강한 인상의 그를 나도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무대에서 경희를 몇 번씩이나 어깨 위로 들어 올리고, 경희의 두 손만을 잡고 몸을 쭉 뻗은 경희를 회전시키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소화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남자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은 서울 공연이 끝나고 시작한 지방 투어 때, 회식이 끝나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기 전, 자신에게 입맞춤을 하고 난 다음에야 알았다고 했다.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마음을 돌리기에는 그때는 이미 늦었었다고 경희는 고백했다. 경희는 남자의 아내가, 그 공연을 주최한 뮤지컬 회사의 안무가라는 사실은 남자와 조금 더 깊은 관계로 발전한 후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남자의 아내가 보는 앞에서 경희는 매일 남자와 공연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묘해. 경희는 남자와 남자의 아내 앞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순간을 그렇게 묘사했다. 미쳤어?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지르듯이 경희에게 소리를 질렀다. 나를 의심하는 눈초리로 바라보는 아내와 나를 부서질 정도로 사랑하는 남자 사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거잖아. 그런 셋을 단원들이 바라보고 있고 말이야. 너와 남자의 관계를 단원들이 알아? 아내도? 알고 있는 것 같아. 경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내가 이 극의 주인공이야. * 경희가 뮤지컬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된 것이 한정된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뮤지컬에 대한 권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남자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경희를 버스에서 마주쳤을 때, 나는 먼저 그 이유를 묻고 싶었었다. 사실 나는 경희가 뮤지컬을 떠난 이유보다 남자와의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지를 묻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걸 더 궁금해할 것이라는 것을 경희는 아마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버스에서 사라진 걸까. 나는 오래 경희의 곁에 머물러 있었지만, 생각해 보니 그녀의 편에 서있던 순간들은 많지 않았다. 내가 경희에게 던지고 싶던 질문들은 그래서 수거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더 이상 경희에게 닿지 말아야 할 것들이었다. 퇴근 시간 무렵 145번을 탈 때면, 발뒤꿈치를 들고 버스 안쪽을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가만히 서서 고개만 돌려가며 사람들 사이 틈으로만 봐서는 경희를 찾아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어 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 됐다. 경희를 다시 만난다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함께 춤을 춰야겠다고 생각했다. 버스 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내 편을 들어 주는 경희의 목소리가 가끔 환영처럼 들렸다.
  •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 세계사 유례없는 민중 주도 임정… 3·1운동 뒤 연해주 첫 ‘깃발’

    <1부>새 역사 임시정부의 형성 ①러시아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우리는 헌법 전문을 통해 우리나라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임시정부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통해 해방을 맞게 됐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대한민국 임정은 1919년 여러 정부가 하나로 합쳐져 세워진 뒤 끝없는 갈등과 내분으로 수차례 해체 위기를 맞았다. ‘식물정부’로 전락해 명맥만 유지하던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임정은 우리 역사 최초로 근대국가 수립을 선포하고 27년간 외교 노력과 전쟁을 병행한 독립 운동의 총괄체였다. 왕족이나 정부 계승자도 아닌 이들이 민중의 뜻으로 임시정부를 세워 30년 가까이 제국주의 국가와 투쟁한 것은 세계사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서울신문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에 있는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추적하며 임정의 역사와 인물, 이슈 등을 망라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년’을 1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역사 탐구에는 김원봉(1898~1958년)과 김산(1905∼1938년), 조봉암(1898∼1959년) 평전을 쓴 이원규(72) 작가와 독립운동가 김연방(1881~1919년)의 증손자 김주용(53) 원광대 한중관계연구원 교수가 함께했다.●신한촌碑, 고려인 독립운동 중심지 일깨워 지난달 초 러시아 프리모르스키(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강추위가 몰려왔다. 서울보다 기온이 10도 가까이 낮았다. 기자를 안내한 교포2세 권세라(27) 가이드는 “그래도 여기는 연해주 다른 도시보다는 따뜻한 편”이라며 “러시아에는 ‘40도 이하 술은 술이 아니다. (영하) 40도가 안 되는 추위는 추위가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다”며 웃었다. 공항에서 남부 루스키섬 쪽으로 50여분쯤 달리자 시내 외곽 라게르산 비탈에 도착했다. 검은색 철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에 직사각형 모양 5m짜리 기둥 3개와 네모난 돌 8개가 놓여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이 묶어 놓은 태극기와 노란 리본도 눈에 들어왔다. 신한촌 기념탑이었다. 3개의 기둥은 우리 민족과 친근한 숫자인 3을 형상화한 것이다. 8개의 돌은 조선 8도를 상징한다.1911년 러시아 당국은 페스트 창궐을 명분 삼아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있던 고려인 마을 구(舊)개척리를 철거했다. 한인들은 이곳으로 거처를 옮겨 ‘새로운 한국’이라는 뜻의 신한촌을 세웠다. 1919년 3월 17일 우리 민족이 세운 첫 임시정부인 대한국민의회가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한때 1만명이 넘는 고려인이 여기에 살았지만 1937년 이오시프 비사리오노비치 스탈린(1878~1953년)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키면서 마을을 모두 파괴했다. 지금은 기념비만이 이곳이 연해주 고려인 독립운동의 구심지였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3·1운동은 세계 각지에 임시정부 설립을 촉발했다. 독립선언서 첫 구절에 “이제 우리는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한다”고 밝히면서 여기저기서 뜻있는 이들이 주권 기관을 세워 이를 정당화하고자 한 것이다.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춘 곳은 러시아 대한국민의회(노령정부)와 중국 대한민국임시정부(상하이 정부), 서울의 한성 임시정부 등 세 곳이었다.●전로한족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1917년 3월 러시아에서 사회주의정부 수립을 위한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났다. 300년 넘게 러시아를 지배한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졌다. 혁명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년)은 열강의 제국주의 책동을 비난하며 “약소 민족의 자결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연해주 고려인들은 희망에 부풀었다. 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일본이 패배하면 우리도 반제국주의 흐름에 힘입어 독립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였다. 같은 해 5월 문창범(1870~1938년)과 최재형(1860~1920년)이 중심이 돼 니콜스크우수리스크(현 우수리스크)에서 ‘전로한족중앙총회’를 열었다. 러시아 전역의 한인을 대표하는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의미다.이들은 1919년 3·1운동을 준비하면서 2월 25일 중국 간도 지역 동포들과 함께 총회를 열었다. 이때 이름을 ‘대한국민의회’로 바꾸고 연해주와 간도를 기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선언했다. 의회 의장에 문창범을 선출하고 외교부장 최재형, 군무총장 리동휘(1873~1935년) 등을 임명했다. 공식 선포는 20일쯤 뒤인 3월 17일에 이뤄졌는데, 이는 3·1운동과 궤를 맞추려는 의도였다. 대한국민의회는 ‘노서아(러시아) 영토에 있던 임시정부’라는 뜻으로 ‘노령정부’라고도 한다. 러시아혁명의 영향으로 국가 기능을 한 곳에 모아 집행하는 소비에트제를 채택했다. 단시일 내에 일본에 대한 무장투쟁에 나서고자 정부 조직 과정을 다수 생략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대한국민의회는 정부 선포 직후 각국 영사관에 전문을 보내 일본 제국주의와의 혈전(血戰)을 선언했다. 간도 뤄쯔거우(나자구)에 군사 훈련소도 마련했다. 신한촌 옛터에서 이원규 작가는 “전 세계 임시정부의 최종 목표는 독립 전쟁으로 영토를 되찾아 새 정부를 수립하는 것이다. 노령정부는 이런 임정의 본령을 구현할 최적지에 있었다”고 평했다.다만 이 정부는 상하이·한성 정부와 달리 별도의 헌법을 발표하지 않아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지 못했다. 고려인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유산계급인 원호인(러시아 귀화자)들이 무산계급인 여호인(미귀화자)들을 차별해 한인 사회가 둘로 쪼개지는 발단이 되기도 했다.●러·韓 어느 곳에도 최재형 추모비 하나 없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북쪽으로 100㎞가량 떨어진 우수리스크. 발해성 등 2개의 성터가 있다고 해서 예로부터 우리 민족이 ‘쌍성자’로 부르던 곳이다. 민가가 즐비한 볼로다르스카야 38번지에 가자 단정히 정돈된 최재형 생가가 나타났다. 추운 날씨에도 러시아 인부들이 기념관으로 리모델링하느라 내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 집은 그가 1919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살던 곳이다. 권 가이드는 “최재형을 빼놓고 러시아 한인 독립운동사를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그럼에도 아직 한국이나 러시아 어느 곳에도 추모비 하나 세워지지 않아 안타깝다”고 전했다.노령정부 태동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을 들자면 단연 ‘연해주의 대통령’으로 불리던 최재형이 꼽힌다. 안중근(1879~1910년)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1841~1909년)를 저격할 수 있게 8연발 브라우닝식 권총을 건넨 인물이다.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조선 최초의 근대인’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으로 재조명될 가치가 충분하다.1860년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였던 아버지 최형백과 기생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났다. 9살이던 1869년 가족들이 배고픔과 학정을 이기지 못하고 크라스키노(연추)의 한인마을 ‘지신허’로 이주했다. 11살 때 “밥만 축낸다”는 형수의 구박에 집을 뛰쳐나왔다가 포시에트라는 작은 항구에서 러시아 선장 부부를 만났다. 이들은 최재형을 친아들처럼 보살폈다. 그는 이 부부와 전 세계를 항해하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서양문명을 체험했다.1877년 블라디보스토크로 돌아온 최재형은 군수업자로 변신해 성공을 거뒀다. 당시 이 지역 노동자 한 사람의 급여가 월 10~15루블 정도였는데, 그는 포시에트항을 근거지로 여러 사업을 벌여 매달 1만루블 이상을 벌었다. 거부가 되자 그는 자신을 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고국을 돕고자 발벗고 나섰다. 1909년 10월 안 의사의 하얼빈역 저격을 도운 것이 대표적이다. 최재형의 막내딸인 엘리자베트 표트로브나의 회고록에는 “안중근은 아버지와 함께 거사를 준비했고 실행 전 우리 집에 기거하며 사격 연습도 했다”고 전했다. 그는 연해주 한인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 ‘페치카’(러시아식 난로)라는 애칭도 얻었다.●전 재산 독립에 쓰고… 日 헌병대에 총살당해 그의 말년은 비참했다. 일본은 1920년 4월 러시아혁명 세력을 제압한다는 명분으로 연해주에 상륙해 대대적인 체포·학살에 나섰다. 조선 독립에 전 재산을 쓰고 어렵게 살던 최재형은 우수리스크 볼로다르스카야의 자택에서 일본군에게 체포돼 4월 5일 처형됐다. 63세였다. 당시 막내딸이 아버지에게 “뒷문으로 도망가라”고 여러 차례 애원했지만 가족들이 고초를 겪을까봐 담담히 앞문으로 나갔다고 한다. 죽음을 맞으러 발걸음을 내딛던 그의 마음은 얼마나 무겁고 외로웠을까. 블라디보스토크·바라바시·우수리스크·크라스키노(러시아)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바비큐 안에 한 움큼 넣기도, 호주 콘서트 ‘오렌지색 알약’ 주의보

    바비큐 안에 한 움큼 넣기도, 호주 콘서트 ‘오렌지색 알약’ 주의보

    호주의 콘서트광(狂) 조슈아 탬(22)이 29일(이하 현지시간) 뉴사우스웨일즈(NSW)주에서 개최된 실락원 페스티벌 도중 약물 과다 복용이 의심돼 병원으로 옮겨진 뒤 숨졌다. 탬의 사인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와 다른 둘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약물 성분”을 든 다음 몸에 심각한 이상을 겪었다고 경찰은 전했다. 세 사람이 이 페스티벌 참가자들에게 약물을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남성은 각자 적어도 80알의 MDMA 알약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이 약을 소지한 50명을 사법처리했다. 치킨 바비큐 안에 이 약을 한 움큼 집어넣어 복용한 사례도 있었다. MDMA 성분은 환각제로 쓰이는 엑스타시의 주성분으로 다른 화학성분과 섞어 복용한다. 보통 삼키거나 코로 들이마시는 MDMA 파우더와는 구분된다. 지난 9월 이후 이 주에서 음악 축제와 관련해 약물 탓에 숨진 사람만 4명이 됐다. 이에 따라 10월 NSW주는 누군가를 살해할 목적으로 이 약을 공급하는 사람을 최대 25년 징역형에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입법했다. 빅토리아주를 비롯해 4개 주를 돌며 공연을 펼치는 폴스 페스티벌 주최측은 콘서트를 열심히 찾아다니는 이들에게 오렌지색 알약을 복용할 때 특별히 주의해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은 특히 이 약들을 치킨 바비큐 속에 넣거나 베지마이트(이스트로 만든, 검은색 잼 비슷한 것으로 빵에 발라 먹음) 통 속에 넣을 때 각별히 유의하라고 주문했다. 글래디스 베레지클리안 주지사는 9월 두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또다른 데프콘(Defqon) 1 페스티벌을 셧다운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또 약물 실험이 사람들로 하여금 위험 성분에 접근하도록 부추긴다며 이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양의 탈을 쓴 돼지?…곱슬곱슬 털 가진 만갈리차 화제

    양의 탈을 쓴 돼지?…곱슬곱슬 털 가진 만갈리차 화제

    얼핏 보면 살찐 양 같지만, 사실은 돼지다. 지난 2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양털처럼 곱슬곱슬한 털을 가진 돼지 ‘만갈리차’에 대해 소개했다. 스코틀랜드 소도시 인버네스의 보울리 근처에서 돼지를 기르고 있는 짐 만은 만갈리차의 ‘털’이 스코틀랜드의 겨울나기에 더할나위 없는 ‘맞춤형 수트’라고 말했다. 자작나무 시럽을 만들고 있는 짐 만은 자작나무 근처의 고사리들을 없애기 위한 친환경적 방법으로 만갈리차를 이용하고 있다. 그는 “만갈리차는 멀리서 보면 양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영락없는 돼지”라며 웃었다.헝가리를 대표하는 동물인 ‘만갈리차’는 금색 또는 검은색의 곱슬곱슬한 털로 뒤덮여 있다. 양의 털과 비슷해 종종 양과 돼지의 교배종이라는 오해를 받는다. 그러나 만갈리차는 멧돼지과의 포유류이며 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그저 ‘털 달린 돼지’일 뿐이다. 데일리메일은 “만갈리차는 19세기 중반 루마니아 살론타, 헝가리 바코니 등지에서 서식한 헝가리 토종 멧돼지와, 세르비아의 슈마디아 멧돼지 같은 유럽산 멧돼지의 교배로 번식했다”고 보도했다. 만갈리차는 목초지 풀이나 감자, 호박 등을 주식으로 한다. 지방이 많고 살코기가 적어 현대에 들어 대체품종에 밀려났다. 그러나 최근에는 헝가리 농민 단체의 노력으로 그 개체 수가 조금씩 늘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아날로그 감성 느끼게 하는 반응속도와 필기감

    아날로그 감성 느끼게 하는 반응속도와 필기감

    삼성전자가 지난 14일 출시한 신제품 노트북 ‘펜S’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제품이다. 지난 20일부터 일주일 간 써 본 제품은 노트북과 태블릿PC 두 개의 모드를 지원하는 ‘컨버터블 노트북’으로, 펜의 역할을 최대한 끌어올렸다는 걸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번 제품엔 펜의 반응속도를 2배 향상시켰고, 펜촉에 해당하는 팁을 3종류로 다양화했다.펜을 써보기 위해, 탑재된 앱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삼성노트’를 사용해 봤다. 펜이 닿은 궤적을 따라 선이 즉각적으로 나타났는데 그 시간차는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터 같은 전문가 영역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반응 속도만 놓고 보면 실제 연필이나 펜으로 종이에 그리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세 종류로 제공되는 펜팁은 아날로그 감성을 더 살려줬다. 제품에 동봉된 도구로 기본 흰색 펜팁을 뽑아 내고 검은색 팁을 끼워 써보니, 미끄러짐이 없이 약간 빡빡한 듯한 필기감이 느껴졌다. 손글씨를 쓰거나 스케치를 하기에 적절해 보였다. 회색 팁은 부드럽게 잘 미끄러지는 재질이었다. 수채화를 그릴 때처럼 터치를 많이 하는 작업에 적당하다. 태블릿 모드에서 회원가입이나 로그인을 하기 위해 이메일 주소나 아이디, 비밀번호를 입력할 때도 펜을 이용할 수 있었다. 손으로 쓰면 바로 디지털 텍스트로 변환되는 앱이 자동실행되기 때문이다. 인식률이 매우 높아서 어지간한 악필이 아니면 큰 문제 없이 쓸 수 있겠다 싶었다. 다만 단어 단위로 인식·변환하는 속도가 빠르진 않아서 긴 글을 쉬지 않고 쓰기엔 좀 불편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품 무게는 상당하다. 15형 제품을 써봤는데 태블릿PC로 쓰기엔 다소 불편함이 있었다. 무게도 무게지만, 뒤로 접어서 손에 들면 키보드가 눌릴 수밖에 없다. 태블릿 모드에서 키보드가 동작하진 않지만, 버튼이 계속 눌리는 느낌은 사용자에 따라 불편할 수 있을 것 같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6·25 승리는 125년전 태어난 마오쩌둥 업적?

    6·25 승리는 125년전 태어난 마오쩌둥 업적?

    지난 26일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의 125번째 생일로 그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에는 수천 명이 몰려 거인의 탄생을 기렸다.관영 글로벌타임스는 27일 마오의 공과 과에 대한 양론이 있지만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은 중국의 경제발전 뒤에는 그의 업적이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마오의 생일을 맞아 중국 최고 명문대학인 베이징대에서 기념행사를 열려던 베이징대 극좌 사회주의운동 단체 소속 학생 한명은 교내에서 사복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8일 개혁개방 40주년 축하 연설에서 마오 주석은 중국이 현재의 발전 성과를 이룰 수 있는 정치적 근본 여건을 닦았다고 밝혔다. 2013년 시 주석은 개혁개방 이전의 역사적 시기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상하이 푸단대의 판용펑 교수는 “마오의 유산을 중국의 개혁개방 성공과 단절시키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며 “6개의 케이크를 먹고 나서 배가 부르다고 해서 다른 5개는 불필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 학자들은 한반도에서 세계 최강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에 대해 승리하고 전략적 핵 억제능력을 갖추게 된 것도 마오의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전쟁은 1841년 아편전쟁 이후 처음으로 중국이 서방 세력에 대해 군사적 승리를 거둔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앙당교의 쑤웨이 교수는 “1980년대 외국 투자자들이 중국 농촌에 와서 모든 농부들이 신문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중국에 투자하기로 결심했다”며 “인도도 중국만큼 인구 대국이지만 중국인과 같은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며 문맹률을 낮춘 것은 마오의 업적”이라고 강조했다. 사오산을 찾은 중국인들은 마오 시대 학교 제복을 갖춰 입고 홍색깃발을 들었다. 베이징 톈안먼 광장의 마오 주석 기념관도 평소 오후에는 개관을 안 했지만 이날 오전 8~11시 30분, 오후 2~4시 개장해 참관객을 맞았다. 마오 주석 기념관을 찾은 리(65)는 “마오 주석 시절에는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순수했다”며 “지금은 훨씬 살기 좋아졌지만 사회는 복잡해져서 나 같은 노인들은 마오 시절을 그리워한다”고 털어놓았다. 한편 체포된 베이징대 학생은 마르크스주의 단체 대표인 추잔쉬안으로 7∼8명의 사복 경찰에 붙잡혀 검은색 승용차에 태워졌다. 다만 추자쉬안의 체포에도 베이징의 마르크스주의자 학생들은 모처에서 ‘플래시몹’ 이벤트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학생들은 마오쩌둥의 고향인 후난성 사오산까지 가서 혁명가를 부르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 쑤 교수는 시계를 돌려 마오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극좌 마오이스트들에 대해 “그들은 주류가 아니다”라며 “극좌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주장은 주류 사회의 흐름과 중국 정부에 대해 반대하는 정치적 목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후퇴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국회 찾은 김용균씨 어머니 “법 통과 안되면 우리 아들 또 죽는다”

    국회 찾은 김용균씨 어머니 “법 통과 안되면 우리 아들 또 죽는다”

    “우리 아들이 죽은 건 위험의 외주화, 국가에서 만든 법규 때문입니다.”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업체 직원으로 작업 도중 사망한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 씨가 24일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으로 불리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회의실을 직접 방문해 법 개정을 요청했다. 그러나 김씨의 호소에도 고용노동소위는 여야 이견으로 진통을 겪다 결국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소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정부 개정안을 중심으로 논의해 가고 있다”며 “의견은 많이 좁혀졌고 다시 쟁점사항을 고민한 뒤 회의를 하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야는 위험한 작업의 도급금지 문제를 놓고 첨예한 입장 차를 보였다. 경영계에서는 과잉 규제라고 반발하고 있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도급금지 부분을 두고 조금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작업 중지권에 대해서는 “포괄적으로 위임하지 말고 화재, 폭발, 추락, 붕괴 등으로 예시해서 구체적인 것을 대통령령으로 위임하자고 했다”고 덧붙였다. 같은 당 한정애 의원은 “배달 노동자 등 보호 대상 노동자 범위 확대와 원청 책임 강화 원칙에는 합의됐다”고 밝혔다. 여야는 26일 고용노동소위를 다시 열어 산안법 개정안을 심의한 뒤 27일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비록 이날 고용노동소위에서 산안법 개정안 의결이 미뤄졌지만 여야가 어느 정도 합의를 이뤄낼 수 있었던 데는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씨의 절박한 호소가 주효했다. 김씨는 이날 늦은 오후까지 고용노동소위가 진행되는 회의실 앞을 초조하게 지켰다. 검은색 패딩을 입은 김씨는 이날 오전 10시 소위 회의 시작 직전 회의실을 찾아 “법을 제대로 만들어 우리 아들같이 당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김씨는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저번에 상가에 오셔서 이 법을 잘해 주신다고 약속했으니 믿어 보겠다”고 호소했다. 김씨는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만나서도 “나라 기업이라면 시청이나 동사무소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장이니까 어느 기업보다 나을 줄 알았는데 너무 열악해 처참했다”며 “아들이 억울하게 죽은 것은 정부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울먹였다. 그는 “실상을 모르는 국민이 너무 많다, 알았다면 누구도 그런 곳에 자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며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우리 아들이 또 죽는다”고 호소했다. 이 대표는 김씨에게 “26일 정부와 다시 협의해서 가능한 한 빨리 법 개정을 하겠다”고 위로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정의당을 찾은 김씨에게 “올해 국정감사 때 한전산업개발에서 와서 죽지 않고 일하게만 해달라고 했는데 그 신호를 우리가 책임감 있게 받아들였다면 용균이를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자책이 된다”고 사과했다. 유가족 측은 소위가 끝난 뒤 “마지막까지 지켜보겠다”며 “또 다른 용준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회 밖에서는 산안법 개정안 연내 통과를 촉구하는 전문가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은 “안전보건이 제대로 보장돼야 기업 생산성도 나아질 수 있다”며 “산안법 개정안의 모든 내용이 통과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설원, 그 속을 달리다…오로라, 그 아래 서다

    설원, 그 속을 달리다…오로라, 그 아래 서다

    한겨울 노르웨이 북부 지역을 여행했다. 북극의 유목민인 사미족의 텐트에서 하룻밤을 청했고 대구잡이 낚시를 했다. 혹등고래의 꼬리를 쫓아 노르웨이해를 항해하기도 했다. 물론 오로라도 만났다.노르웨이 여행의 시작은 허스키 사파리였다. 오슬로에 도착하자마자 국내선을 갈아타고 알타라는 도시로 갔고 시 외곽에 자리한 개썰매 사파리 캠프로 향했다. 캠프에 도착하자 그곳에 있던 50여 마리의 썰매 개들이 여행자를 반기기라도 하는 듯 일제히 짖어대기 시작했다. 개썰매 사파리는 시베리안 허스키 여섯 마리가 끄는 썰매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프로그램으로 참가자가 직접 드라이버로 나서 썰매를 운전해볼 수 있다. ●허스키 썰매로 질주하는 눈부신 설원 사파리를 안내해 줄 리더인 터키 출신의 머셔 밀라가 썰매개 하나하나를 소개시켜 주었다. 썰매개들의 리더인 파슈는 보기에도 듬직했다. 그 뒤로 쫑긋한 귀가 예쁜 어셔, 장난꾸러기 매튜, 검은색 털이 매력적인 브라키, 푸른눈의 디키, 약간은 수줍어하는 리바이 등이 서 있었다. 개들은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작은 고추가 매운 법. 밀라는 파슈팀이 노르웨이 개썰매 대회에서 3연속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베테랑 중에서도 베테랑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손은 반드시 썰매 위에 얹어 두고 있어야 한다.’ ‘속도를 늦추고 싶을 때는 썰매 바닥에 달린 브레이크를 지그시 누르면 된다.’ ‘정지할 때는 브레이크 위에 두 발을 딛고 체중을 실으면 된다.’ 썰매 운전을 위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후 출발. 나무에 묶어 놓은 견인줄을 푼 후 눈 위에 깊숙이 박아 놓은 앵커를 뽑아내자 썰매는 빠른 속도로 튕겨나갔다. 미끄러지듯 설원을 질주하는 썰매. 시속 15~20㎞로 달리지만 체감속도는 제법 빠르다. 눈 덮인 숲속 나무 사이를 달릴 때는 손잡이를 잡은 두 손에 저절로 힘이 들어갔다. 두 사람을 태운 썰매는 무게만 해도 150㎏ 가까이 나가지만 오르막길에도 속도가 전혀 줄지 않는다.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썰매 날과 몸통은 나무 특유의 탄성 덕분에 울퉁불퉁한 노면의 굴곡과 충격을 흡수했다.10여 분 정도가 지나자 썰매 몰기에 익숙해졌다. 앞 썰매와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 위해 잠시 한눈을 팔면 이내 썰매가 기우뚱했다. 밀라는 가끔씩 뒤돌아보며 “어텐션!”이라고 주의를 줬다. 허스키들은 달리는 동안에도 목이 마르면 머리를 숙여 노면의 눈을 입과 혓바닥으로 핥아 먹으며 목을 축였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숲을 오르내리기를 반복하자 사방으로 시야가 확 트인 들판이 나타났다. 온 세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설원, 그 위로 펼쳐지는 푸르고 푸른 하늘.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내달리는 기분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좋았다. ●시르케네스 얼음 구덩이 속에서 킹크랩 잡이 시르케네스는 러시아 국경과 마주한 노르웨이 동북부의 항구도시다. 오슬로에서 약 2414㎞ 떨어져 있다. 러시아와 인접한 스토르스코그 국경은 넘기만 하면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이민이 가능해 난민이 자전거를 타고 심심찮게 넘어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도시의 표지판과 상점 간판도 러시아어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시르케네스를 찾은 이유는 킹크랩 사파리 때문이다. 얼어붙은 피요르드에 구멍을 내고 킹크랩을 잡아올리는 일종의 얼음낚시다. 킹크랩이 서식하고 있는 곳까지 가는 방법은 배를 타고 가는 것과 스노모빌을 이용해서 가는 방법이 있는데, 영하 20도의 추위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바다가 얼어붙은 까닭에 배를 타고 나가는 건 불가능하다. 낚시 포인트까지는 30~40분 정도 스노모빌을 타고 나가야 한다. 여행사에 사무실에 도착하면 우선 든든한 방한복과 방한장화, 방한장갑과 털모자로 중무장을 한다. 노르웨이에 도착해서는 가는 곳마다 방한옷을 입으니 어느덧 익숙하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스노모빌의 찬바람을 견디려면 중무장은 반드시 필요하다.사파리라고는 하지만 물속으로 직접 들어가 킹크랩을 잡는 것은 아니다. 얼음 구덩이 속에 가둬놓은 킹크랩 그물을 걷어올려 직접 만져보고 맛보는 체험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킹크랩이라고 해서 영덕대게쯤으로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친다. 직접 보는 킹크랩은 크기가 엄청나다. 다리 하나가 닭다리보다 더 크다. 조금 과장하면 거의 돼지족발 크기다. 가이드는 얼음을 깨고 킹크랩을 꺼낸 후 킹크랩의 생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킹크랩 해체쇼’를 보여준다. 사파리의 하이라이트는 킹크랩 시식. 잡은 킹크랩을 스노모빌에 싣고 먹을 수 있는 산장으로 이동하는데, 약 20분 정도의 짧은 거리이긴 하지만 스노모빌을 타고 북극의 얼어붙은 바다 위를 질주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것이 아니다. 통나무로 지어진 산장은 얇은 옷만 입고 있어도 충분할 정도로 따뜻하다. 준비된 커피와 차를 마시고 있다 보면 킹크랩이 등장한다. 아이 팔뚝만 한 다리가 접시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다. 가위로 껍질을 잘라내면 담백하면서도 짭짤한 맛의 게살이 가득 차 있다. 한국에서는 젓가락으로 조심조심 발라먹던 게살을 이곳에서는 닭다리 뜯듯 베어 먹는다. 한입 크게 베어 물면 달콤한 육즙과 향긋한 향이 가득 찬다.●오로라 도시 트롬쇠… 유목부족 사미족과 함께 트롬쇠는 북유럽의 파리라고 불린다. 노르웨이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이며 북위 66.5도에 위치한 지구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도시기도 하다.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노르웨이 정부가 대피해 임시정부를 꾸렸던 곳이다. 트롬쇠는 오로라 도시로도 불리는데, 연중 200일 이상 오로라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맑고 오로라 빛이 강할 경우 시내에서도 볼 수 있다. 트롬쇠에서는 사미족의 생활을 체험했고 대구낚시를 나갔다. 사미족은 북극권 지역에서 살아온 유목부족으로 노르웨이와 스웨덴, 핀란드, 러시아에 걸쳐 거주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거주하는 사미족은 약 6만~10만 명 정도인데, 아직도 순록 사육과 어업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고 한다. 영화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크리스토프가 사미족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대구낚시는 요트를 타고 해볼 수 있다. 낚싯대를 드리우면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5㎏이 넘는 대구가 올라온다. 그 자리에서 대가리는 잘라 버리고 몸통 만으로 수프를 만들어 먹는다. 트롬쇠는 혹등고래가 많이 서식하는 곳이기도 한데 낚시를 하다 보면 심심찮게 혹등고래를 만날 수도 있다. 대구낚시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미니밴 운전사가 ‘노던 라이트’하며 손가락으로 바다 너머를 가리켰다. 오로라였다. 초록의 희미한 빛이 수평선 위로 길게 펼쳐지고 있었다. 공터에 차를 세우고 바다를 바라보았다. 사진에서 보던 현란하고 화려한 모양으로 너울거리는 오로라는 아니었지만 감탄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했다. 오로라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동쪽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번져갔고 수평선 위에서 나타났다가 어느새 머리 꼭대기 위로 올라가 있곤 했다. 오로라 아래에서 브라질 이과수폭포의 굉음을 떠올렸고, 벌룬을 타고 항해한 터키 카파도키아의 새벽과 모래바람 속에서 신비롭게 서 있었던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생각했다. 자연이 펼쳐보이는 압도적인 풍경 앞에서 나는 숨이 턱 막혔고 소름이 돋곤 했다.●요트에서 낚시… 5분도 안돼 5㎏ 넘는 대구가 올라와 간혹 어떤 이는 저런 풍경 따위가 뭐냐고 묻는다. 10분만 봐도 지루해지는 게 풍경 아니냐고 말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일단 경험해 보라고 말해주는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여행에서 경험했던 엄청나고 압도적인 공간감이, 내 삶을 뒤바꿀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마음의 어느 부분을 다소 넓혀주었던 것은 사실이다. 집과 도서관과 홍대 거리, 몇몇 카페와 식당, 마트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내게 여행 중에 만난 ‘비현실적인 현실’은 뭔가 숨 쉴 틈을 마련해주었다. 기회가 된다면, 한번쯤 숨이 막힐 만큼 거대한 ‘자연의 규모’ 앞에 서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경험은 분명, 좁디좁은 생활의 틈바구니 속에서 우리의 내부에 몇 평 무(無)의 공간을 마련해줄 테니까. 어쨌든 오늘은 오로라 아래에 섰고, 세월이 지나도 오늘의 풍경만은 기억 속에 퇴색하지 않고 남아 쓸쓸하고 공허한 생을 위로해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 한쪽이 약간은 편해졌다. 글 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여행수첩 →한국에서 노르웨이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터키 이스탄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핀란드 헬싱키, 덴마크 코펜하겐 등을 경유해야 한다. 도쿄나 베이징에서 스칸디나비아항공(SAS)을 타면 코펜하겐을 경유해 오슬로로 갈 수 있다. 오슬로에서 트롬쇠까지는 비행기로 약 2시간. 노르웨이 북부는 산악지대가 많아 육상교통보다 항공편이 잘 연결돼 있다. 노르웨이 북부에서는 겨울이면 오후 3시면 깜깜해진다. 오로라를 사진에 담으려면 삼각대는 필수다. 최소 5초 이상 노출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통화 단위는 크로네이고 물가는 비싼 편. 1크로네가 200원가량인데 작은 햄버거 세트도 1만원을 훌쩍 넘는다. 노르웨이 관광청 홈페이지(visitnorway.com) 참조. 오로라 투어는 성인 1인당 20만~60만원. 허스키 사파리는 어른 1시간 코스에 성인 25만원 선.
  • ‘2018 KPMA’ 청하, 팬심 사로잡는 눈웃음 ‘러블리 하트’

    ‘2018 KPMA’ 청하, 팬심 사로잡는 눈웃음 ‘러블리 하트’

    ‘2018 KPMA’ 청하가 시크한 매력을 선보였다.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는 ‘2018 대한민국 대중음악 시상식(2018 KOREA POPULAR MUSIC AWARDS, 이하 ‘2018 KPMA’)’가 열렸다. 이날 청하는 레드카펫 행사에 참석했다.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청하는 손가락 하트 포즈를 취하며 사랑스러운 매력을 뽐냈다. 한편, 청하는 오는 2019년 1월 2일 컴백할 예정이다. 사진=뉴스1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의식 찾는 아이들… “애들은?” 깨어나자 친구 안부부터 물었다

    의식 찾는 아이들… “애들은?” 깨어나자 친구 안부부터 물었다

    3명 시신 서울로 운구… “조용히 가족장” 교사들 침통함 속 가장 먼저 빈소 찾아 의료진 “부상 학생들 뇌손상 가능성 친구들 상태 알면 충격… 서울 이송 검토” “주말에 알바 미팅 한다고 들떴었는데” 의식 찾은 도군 부모, 착잡한 심경 토로 1명 추가로 의식 회복… 2명은 중태19일 강릉 펜션 사고로 숨진 서울 대성고 학생 3명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연세장례식장에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벽력같은 소식에 밤새 오열한 유가족들은 극도의 슬픔에 잠겼다. 강릉 고려병원과 강릉아산병원에 안치돼 있었던 3명의 시신은 이날 오후 늦게 2대의 소방헬기로 서울로 옮겨졌다. 유족들은 빈소에 도착해 조문객을 맞을 준비를 했다. 검은색 옷차림을 한 교사들이 가장 먼저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았다. 장례식장 측은 빈소 앞 복도에 경호인력을 배치해 유족과 조문객 출입만 허용했다. 유족의 뜻에 따라 빈소 위치를 안내하는 내부 전광판과 인터넷 홈페이지 ‘고인 검색’ 페이지에 학생과 유족의 이름을 게재하지 않았다.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이날 강릉에서 “우리는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는 방식으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보내겠다. 왜곡된 사실을 유포하거나 실명을 거론하거나 아이들 사진을 올리는 등 과도한 관심을 자제해 달라”고 언론에 당부했다. 부상 학생 7명 중 5명이 치료를 받고 있는 강릉아산병원의 분위기도 침통했다. 전날 밤 의료진으로부터 아이들 상태를 설명받은 학부모들은 뇌손상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에 충격에 빠져 잠도 제대로 못 이룬 것으로 전해졌다.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길 정도로 병세가 호전된 도모(18)군은 전날 부모를 만난 자리에서 “애들은?”이라며 친구들의 안부부터 물었다고 한다. 아버지 도안구(47)씨는 “이번 여행을 다녀온 뒤 선생님과 대학 입시(정시) 상담을 할 계획이었다”면서 “게임을 좋아했던 아들이 진로를 놓고 고민하는 것 같아 유튜버가 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권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아들이 이번 주말에 (결혼식 뷔페) 서빙 알바 미팅을 한다고 들떠 있었는데 사고를 당했다”고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강희동 강릉아산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장은 “어제 깬 학생(도군)은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면서 “친구들 상태를 알면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울로 병원을 옮기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늘 추가로 깨어난 학생도 물을 마실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부상 학생 7명 중 2명이 의식을 회복했다. 병원 측은 “학생 한 명이 더 의식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명령에 약간 반응하고 발성을 조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강릉아산병원에 입원한 나머지 2명은 더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다.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 두 학생은 여전히 중태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차용성 전문의는 “뇌와 심장, 콩팥, 폐, 근육 등 다양한 장기 손상을 보여 약물과 수액 치료로 안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도삽관과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고, 저체온 치료를 위해 인공호흡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며 “현재로선 치료나 회복이 어떤 단계인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릉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강릉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신청만 하면 학생끼리 체험학습…수능 끝난 고3들 ‘안전 사각지대’

    신청만 하면 학생끼리 체험학습…수능 끝난 고3들 ‘안전 사각지대’

    “서울 주요대 노릴만큼 공부 잘했는데…” 자사고 지정 취소 갈등에 사고까지 침통“어려운 수험생활이 겨우 끝났는데….” 고3 학생 10명이 개인체험학습을 떠났다가 3명이 숨지는 등 참변을 당한 서울 은평구 대성고는 18일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후 학교는 검은색 철제 교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문 틈으로는 분주하게 오가는 교사들이 눈에 띄었다. 대성고 교감 등 일부 교사가 학교에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고, 교장을 비롯한 일부 교사들은 곧장 사고 수습을 위해 강원도 강릉 현장으로 이동했다. 서울교육청 등에 따르면 김모(18·사망)군 등 피해 학생 10명은 문과반 학생들로 수능과 기말고사를 치르고, 수능 성적표까지 받은 뒤 학교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해 지난 17일 강릉으로 떠났다. 체험학습은 24일까지 예정돼 있었다. 학생들은 반은 다르지만 친한 사이로 전해졌다. 대성고는 이번 주를 3학년 대상 ‘교외체험활동 주간’으로 운영 중이었다.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은 체험학습을 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오전 수업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고 앞 한 상점 주인은 “매년 3학년들은 수능 이후에 개별적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것으로 안다”면서 “뉴스에서 이름이 나온 아이들 중엔 우리 가게에서 문제집을 자주 사 간 아이도 있는데 다들 공부를 잘했다”고 말했다. 사고 사망자 중 한 명이 다녔다는 수학학원 강사는 “공부를 잘해서 이른바 서울 주요대 합격을 노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 교사들에 따르면 수능 이후 고3 학사 과정은 변칙 운영된다. 대입 당락을 가를 수능·내신·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등 요소가 모두 결정돼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교마다 영화 관람, 대학 탐방 등 단체 프로그램을 짜 진행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원한다면 개인체험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경기권의 한 고교 교사는 “고3 학생들은 학교에 잡아 둬도 딱히 할 일이 없는 데다 개인체험학습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신청만 하면 대부분 허가를 내준다”면서 “수능 이후 학생들끼리 어울리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은 매년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각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친한 친구들이 모여 함께 강릉으로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성고는 19~21일 휴업 할 예정이다. 대성고는 자율형사립고이지만 올해 서울교육청이 학교 측 요청을 받아들여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면서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반고 전환 결정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신청만 하면 학생끼리 체험합습…수능 끝난 고3들 ‘안전 사각지대’

    신청만 하면 학생끼리 체험합습…수능 끝난 고3들 ‘안전 사각지대’

    “어려운 수험생활이 겨우 끝났는데….” 고3 학생 10명이 개인체험학습을 떠났다가 3명이 숨지는 등 참변을 당한 서울 은평구 대성고는 18일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사고 소식이 알려진 이날 오후 학교는 검은색 철제 교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문 틈으로는 분주하게 오가는 교사들이 눈에 띄었다. 대성고 교감 등 일부 교사가 학교에 모여 긴급 회의를 열었고, 교장을 비롯한 일부 교사들은 곧장 사고 수습을 위해 강원도 강릉 현장으로 이동했다. 피해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며 늦은 밤까지 머물렀던 3학년 교실에는 아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이 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이날 기말고사를 보고 오전 10시쯤 하교했다. 침통한 학교…“수능 뒤 개인체험활동 떠났다가 참변” 서울교육청 등에 따르면 김모(18·사망)군 등 피해 학생 10명은 문과반 학생들로 수능과 기말고사를 치르고, 수능 성적표까지 받은 뒤 학교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해 지난 17일 강릉으로 떠났다. 체험학습은 24일까지 예정돼 있었다. 고3 2학기 기말고사는 대입에 반영되지 않기에 수능이 끝난 직후 형식적으로 치러진다. 학생들은 반은 다르지만 친한 사이로 전해졌다. 대성고는 이번 주를 3학년 대상 ‘교외체험활동 주간’으로 운영 중이었다. 체험학습을 신청한 학생은 체험학습을 가고 나머지 학생들은 학교에 나와 오전 수업만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성고 앞 한 상점 주인은 “매년 3학년들은 수능 이후에 개별적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것으로 안다”면서 “뉴스에서 이름이 나온 아이들 중엔 우리 가게에서 문제집을 자주 사 간 아이도 있는데 다들 공부를 잘했다”고 말했다. 사고 사망자 중 한 명이 다녔다는 수학학원 강사는 “공부를 잘해서 이른바 서울 주요대 합격을 노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 교사들에 따르면 수능 이후 고3 학사 과정은 변칙 운영된다. 대입 당락을 가를 수능·내신·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등 요소가 모두 결정돼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교마다 영화 관람, 대학 탐방 등 단체 프로그램을 짜 진행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원한다면 개인체험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개인체험학습이란 학생 1명이 직접 계획을 세운 뒤 학교장의 사전허가를 받아 현장 견학, 답사, 문화·직업체험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체험학습을 갈 때 보통 교사가 동행하지는 않는다. 경기권의 한 고교 교사는 “고3 학생들은 학교에 잡아 둬도 딱히 할 일이 없는 데다 개인체험학습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신청만 하면 대부분 허가를 내준다”면서 “수능 이후 학생들끼리 어울리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은 매년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각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친한 친구들이 모여 함께 강릉으로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성고는 자율형사립고이지만 올해 서울교육청이 학교 측 요청을 받아들여 자사고 지정을 취소하면서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반고 전환 결정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공부 열심히했던 아이들…수험생활 겨우 끝났는데”

    “공부 열심히했던 아이들…수험생활 겨우 끝났는데”

    고3들 수능 뒤 허가받고 개인체험학습“올해 자사고 지정 취소에 사고까지 침통”“어려운 수험생활이 겨우 끝났는데….” 학생 10명이 개인체험학습을 떠났다가 3명이 숨지는 등 참변을 당한 서울 은평구 대성고는 18일 무거운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취재진이 이날 오후 4시쯤 방문한 학교는 굳게 닫힌 검은색 철제 교문 사이로 분주하게 오가는 교사들이 눈에 띄었다. 피해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 준비를 하며 늦은 밤까지 머물렀던 3학년 교실에는 아무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이 학교 1·2학년 학생들은 이날 기말고사를 보고 오전 11시쯤 일찌감치 하교했다. 김모(18·사망)군 등 피해 학생 10명은 모두 문과반 학생들로 수능과 기말고사를 모두 치른 뒤 학교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해 강원 강릉으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3 2학기 기말고사는 대입에 반영되지 않기에 수능이 끝난 직후 형식적으로 치러진다. 대성고 앞에서 오랜 기간 장사했다는 한 문방구 주인은 “매년 3학년들은 수능 이후에 개별적으로 체험학습을 가는 것으로 안다”면서 “뉴스에서 이름이 나온 아이들 중엔 우리 가게에서 문제집을 자주 사간 아이도 있는데 다들 공부를 잘했다”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에 따르면 수능 이후 고3의 학사과정은 변칙적으로 운영된다. 대입 당락을 가를 수능·내신·학교생활기록부 기록 등 요소가 모두 결정돼 학생들을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고교마다 영화관람, 대학탐방 등 단체 프로그램을 짜 진행하기도 하는데 학생들이 원한다면 개인체험학습을 떠나기도 한다. 개인체험학습이란 학생 1명이 직접 계획을 세운 뒤 학교장의 사전허가를 받아 현장 견학, 답사, 문화·직업체험 등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개인학습을 갈 때 보통 교사가 동행하지는 않는다. 경기권의 한 고교 교사는 “고3 학생들은 학교에 잡아둬도 딱히 할 일이 없는데다 개인체험학습은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 신청만 하면 대부분 허가를 내준다”면서 “수능 이후 학생들끼리 어울리다가 사고를 당하는 일은 매년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학생들이 각자 개인체험학습을 신청한 뒤 친한 친구들이 모여 함께 강릉으로 떠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이날 오후 사망한 학생들이 안치된 강릉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대성고는 자율형사립고이지만 올해 서울교육청이 학교 측 요청을 받아들여 자사고 지정 취소를 하면서 일반고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일부 학생과 학부모들은 일반고 전환 결정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내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한 해를 보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우주를 보다] 태양의 속살…탐사선이 보낸 역대 최근접 이미지

    [우주를 보다] 태양의 속살…탐사선이 보낸 역대 최근접 이미지

    지난 8월 발사된 미국항공우주국(이하 NASA)의 태양 탐사선인 파커태양탐사선이 처음으로 데이터와 이미지를 전송해왔다. 이번에 공개된 이미지는 지금까지 공개된 태양의 이미지 중 가장 근접한 거리인, 태양 표면에서 2710만㎞ 떨어진 상공에서 촬영한 것이다. 참고로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대략 1억 5000만㎞이며, 이전까지 태양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거리는 4374만㎞였다. 파커태양탐사선은 본체에 장착된 태양탐사선 광역이미저(WISPR)를 이용해 태양을 근거리에서 촬영했으며, 코로나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나아가 태양이 우리 행성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는 미션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사진의 왼쪽에서는 코로나 스트리머(Coronal streamer)가 분출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코로나 스트리머는 코로나의 질량방출 활동을 의미하며, 코로나를 분출하면서 태양물질을 우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사진의 중앙에 마치 밝게 빛나는 별처럼 보이는 것은 수성이다. 수성 옆으로 보이는 검은색 반점들은 파커태양탐사선이 보낸 이미지를 보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NASA는 설명했다. NASA는 지난 13일 홈페이지를 통해 NASA의 또 다른 태양탐사선인 스테레오 A(STEREO-A)가 태양에 근접한 파커탐사선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추가로 공개했다. 짧은 영상 속에서 밝게 빛나며 움직이는 것이 파커탐사선의 모습이다. 파커태양탐사선이 미션을 시작한 지 약 4개월 만에 첫 사진을 보내온 만큼, 전문가들은 이 탐사선이 더 많은 ‘태양의 비밀’을 알려줄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파커태양탐사선은 향후 7년간 태양의 상층 대기의 코로나로 진입한 뒤 태양궤도를 24차례 돌 예정이다. 이때 탐사선과 태양 간의 거리는 위 이미지가 촬영된 거리보다 훨씬 가까운 600만㎞까지 줄어든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토] ‘시선강탈 볼륨’ 루이

    [포토] ‘시선강탈 볼륨’ 루이

    그룹 H.U.B 루이가 환상적인 몸매를 뽐냈다. 루이는 10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여러분. 제가 베트남에 있는 줄 알았지? 난 한국에 있지롱”이라는 내용의 글과 함께 사진 여러 장을 게재했다. 공개된 사진 속에는 야외 수영장에서 분홍색 비키니를 착용한 루이의 모습이 담겼다. 볼륨감 넘치는 보디 라인과 화려한 이목구비가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검은색 쇼트 팬츠로 남다른 각선미를 드러내기도 했다. 새하얀 피부와 쭉 뻗은 쇄골 라인, 탄탄한 허벅지가 눈길을 끌었다. 한편, 루이가 속한 그룹 H.U.B는 지난달 9일 디지털 싱글 앨범 ‘피날레(Finale)’를 발매했다. 스포츠서울
  • “죽음 내모는 검찰 수사 즉각 중단” 성토장 된 이재수 빈소

    “죽음 내모는 검찰 수사 즉각 중단” 성토장 된 이재수 빈소

    “우리한테 물어봐야 좋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어요.” 9일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의 초등학교 선배라는 이는 “이 전 사령관이 어떤 분이었냐”는 질문에 손사래를 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아는 이 전 사령관은 교과서처럼 반듯한 모습이었기에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인재였고, 정이 많았으며, 의리가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앞서 세월호 유족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 전 사령관은 지난 7일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군복을 입고 베레모를 쓴 예비역 지휘관 한모(53)씨는 장례식장 로비에 멍하니 있다가 “침통하다”고 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군에는 공이 아닌 질책이 쏟아진다는 말을 하곤 한다”며 “어쩔 수 없는 숙명 같기도 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식장 지하 2층에 마련된 이 전 사령관의 빈소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는 검은색 ‘근조기’ 10개가 줄지어 있었다. 이 중 6개는 국회의원이 보낸 것이었다. 김진태, 박인숙, 원유철, 주호영, 윤상현, 백승주 자유한국당 의원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보수 정치인들은 전날에 이어 빈소에 방문하며 정치적 발언을 이어 갔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표는 “검찰이 요즘 하는 것을 보면 주구(사냥할 때 부리는 개)를 넘어서 광견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예전에도 하명수사는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하지는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정치보복을 중단시킬 것”이라며 “죽음으로 내모는 검찰의 수사 방식도 즉각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과 김진태 의원 등도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를 비판했다. 전날에는 황교안 전 국무총리 등이 빈소를 찾아 검찰 수사를 비난했다. 이 전 사령관은 현직이던 2014년 6·4 지방선거 등을 앞둔 상황에서 세월호 유족 동향을 사찰하도록 지시한 혐의 등을 받아 왔다. 검찰은 이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은 지난 3일 “구속 사유나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여수 거북선대교 아래서 20대 여성 2명 숨진 채 발견

    여수 거북선대교 아래서 20대 여성 2명 숨진 채 발견

    여수해양경찰서가 9일 여수 거북선대교 아래 해상에서 20대 추정 여성 변사체 2구를 수습해 수사 중이다. 여수해경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22분쯤 여수시 종화동 H 조선소 드라이도크 앞 해상에서 사람으로 보이는 검은색 물체가 있다며 조선소에 근무하는 최모(49) 씨가 발견 여수해경에 신고했다. 여수해경은 경비함정과 해경구조대, 봉산해경파출소 구조정을 급파했다. 현장에 도착한 봉산해경파출소 구조정 확인 결과 변사체는 A씨(여·23· 울산)와 B씨(여·23·대구)로 알려졌다. 이들에게서 별다른 외상은 없었으며, 부패는 진행되지 않는 상태였다. 해경 관계자는 “변사체 2구를 수습하고 여수 소재 병원 영안실에 안치시켰다”며 “인근 CC-TV와 목격자, 유가족 등을 상대로 디지털포렌식의 과학수사 방식을 통해 정확한 사망·사고 경위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여수해경은 인근 해안가와 항포구에 변사자 관련 소지품 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서해청 소속 항공기와 경비함정, 경찰관 등을 동원해 주변 일대를 전방위 수색하고 있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강아지 보호하려 캥거루에 맞선 남성

    강아지 보호하려 캥거루에 맞선 남성

    한 남성이 자신의 반려견이 캥거루에게 위협받자 용감하게 맞섰다. 최근 브리 투헤이라는 여성은 소셜미디어에 자신의 아빠가 캥거루와 싸우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은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 벤디고의 가족 소유지인 제방 근처에서 6일 촬영됐다. 브리는 당시 아빠와 반려견들과 함께 산책에 나섰다가 캥거루를 마주치고 영상을 찍었다. 영상은 캥거루 한 마리가 검은색 민소매를 입은 남성에게 위협적으로 뛰어오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촬영 중이던 브리는 아빠를 향해 “캥거루가 다가오고 있어요!”라며 소리쳤고, 남성은 즉시 방어 자세를 취한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있던 남성은 다른 손으로 캥거루의 가슴을 때렸고, 그 순간 캥거루 역시 폴짝 뛰어올라 두 발로 남성의 배를 찬다. 캥거루의 발차기에 남성이 넘어지자 반려견들은 캥거루에게 달려들었고, 남성은 다친 곳이 없는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난다. 브리는 “우리는 제방 근처를 산책 중이었는데, 캥거루가 강아지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강아지들이 캥거루에게 익사 당할까 봐 무서웠다”면서 “아빠는 강아지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들었고 캥거루의 공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해당 영상은 소셜미디어에 공개된 후 10만 명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많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사진·영상=Video Break/유튜브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