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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소록도’

    [손원천 기자의 호모나들이쿠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소록도’

    소록도가 앓고 있습니다. 개발의 압력도 거세지만 그보다 문화재급 옛 건물들이 허물어져 가는 게 더 문제입니다. 한센인들이 거주하던 마을 몇몇은 이미 흔적 없이 사라졌고 서생리 등 그나마 남은 자취마저 생멸이 경각에 달려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즐겨 찾을 곳을 소개해야 하는 본연의 직무와 동떨어진 소록도 안쪽을 낱낱이 보여드리는 건 이 때문입니다. 시나브로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을 서둘러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지요. 그러니 이번 여정은 국민들이 아직 가볼 수 없는, 그러나 국민들의 관심이 모여야 할 곳을 전한다는 의미만 갖습니다.먼저 전남 고흥 소록도의 발자취부터 살핍니다. 소록도 한센인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인 1916년 자혜의원이 들어서면서 시작됩니다. 현 국립소록도병원의 전신이지요. 자혜의원 주변으로는 한센인들이 거주했던 병사(病舍)들이 하나둘 들어서게 됩니다. 여기가 서생리 일대입니다. 이후 전국적으로 수많은 한센인들이 수용되기 시작하면서 한센인 마을도 급속도로 확장됩니다. 1933년부터 시작된 확장공사로 자혜의원은 현재의 국립소록도병원 자리로 이주하게 됐고 한센인 마을도 남, 북 병사에서 9개 마을로 확대됩니다. ●병에 대한 무지·공포에 유린당한 인권 현재 일반인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소록도 초입의 수탄장 일대와 관사 지대, 소록도병원 주변 정도입니다. 수탄장은 한센인 부모와 ‘미감아’(한센병에 감염되지 않은 아동이란 뜻)들이 눈물로 상봉하던 장소입니다. 한센인 부모와 아이들은 정해진 시간에 각각 도로 양쪽 끝에 서서 마주 보기만 했다지요. 아이들은 바람을 등지고 섰고, 부모들은 그 반대편에 섰습니다. 미구에 발생할지도 모를 전염을 우려한 조치였다고 합니다. 소록도 병원 주변에도 명소들이 많습니다. 한센인들을 동원해 조성한 중앙공원, 일제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됐던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67호) 등이 남아 있습니다. 한센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병의 대물림을 우려해 단종(정관수술)과 낙태를 강요당했습니다. 우리가 한센인들에 대해 죄책감을 갖는 것도 이 대목 때문일 겁니다. 병에 무지해 막연한 공포를 갖고 있었다고는 해도 그 지독했던 인권유린과 탄압은 결코 설명될 수 없습니다. 나을 수 있고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제대로 알리지 않은 일부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무지와 편견으로 거대한 벽을 쌓았던 우리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습니다. 지난 2013년에 보건복지부 등이 밝힌 한센인 피해 진상조사 결과를 보면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6462명의 한센인들이 살해당하거나 강제노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피해 외에도 공학(共學) 반대운동 등 거대한 차별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지요. 하지만 우리는 여태 우리가 벌인 일들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사과의 뜻을 밝혔을 뿐이지요.●애환 담긴 간장공장 허물고 기념관으로 관사지대는 병사지대 건너편에 있습니다. 말 그대로 한센인을 돌보던 병원 직원 등 정상인들이 생활하던 공간입니다. 저 유명한 ‘소록도 할매’, 그러니까 오스트리아 출신의 간호사 마리아네 스퇴거(83)와 마르가레트 피사레크(82)가 1962년부터 머물던 집도 관사지대 초입에 있습니다. 소박하고 단아한 두 ‘할매’의 집을 지나면 소록도 선착장이 나옵니다. 소록대교가 놓이기 전까지 바깥세상과 소록도를 이어 주던 공간입니다. 당시 운항하던 행정선과 철부선 등이 여태 남아 있습니다. 선착장 뒤는 2층 건물을 짓는 신축 공사장입니다. ‘소록도 할매’들의 기념관이라고 합니다. 건물을 짓는 명분은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그간의 경위를 짚어 보면 그리 개운하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건물이 들어서는 자리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옛 간장공장 건물이 있었다고 하지요. 한센인의 애환이 담긴 기억의 집을 허물고 자신들의 기념관을 짓는다는 걸 두 할매들은 반길까요. 게다가 훗날 소록도를 찾는 우리 후손 역시 ‘이 자리에 간장공장이 있었다’는 사실만 전해 들어야 하잖습니까. 무엇보다 할매들께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지 못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그걸 굳이 끄집어내는 게 감사의 뜻일까요. 이 신축 건물을 보자면 이제 여러 사람의 합리적인 생각을 모으고 정당한 방법으로 소록도를 기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때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이제 소록도 안쪽을 살펴볼 차례입니다. 외부인 출입금지 시점을 지나 조붓한 언덕을 몇 번 오르내리면 서생리 자혜의원(지방문화재자료 238호) 건물과 만납니다. 소록도의 역사가 시작된 곳입니다. 하지만 병원의 문을 열면 감회는 곧 실망으로 바뀝니다. 복원 작업을 거쳤다는 내부는 시골의 버스 대합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이쯤 되면 복원이 아니라 개악으로 보입니다. 자혜병원 아래로는 한센인 병사가 여러 채 이어집니다. 소록도에서 가장 먼저 들어선 병사도 이 마을에 있습니다. 마을 아래는 바다입니다. 지금이야 아름답지만, 유배 생활을 하는 한센인들에게도 어디 그랬으려고요. 아마 절벽 같은 바다였을 겁니다.●3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된 한센인 병사 병사 건물들은 다소 낯설게 느껴집니다. 우리의 가옥 양식과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기와가 특히 그렇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데려온 연와공에게 기술을 전수받아 한센인들이 직접 만들었다고 합니다. 기와는 사각형의 평탄한 모습입니다. 우리 전통 기와처럼 물결치는 모양새가 아닙니다. 건축 양식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또한 차차 연구돼야 할 부분일 겁니다. 몇몇 건물은 강관 파이프들이 외관을 감싸고 있습니다. 소록도병원의 의뢰를 받아 성균건축도시설계원이 진행한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의 결과물입니다. 보존사업을 이끈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는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큰 부분만 보강하면서 가능하면 기와 한 장, 벽돌 한 무더기도 그대로 뒀다”고 했습니다. 뭔가를 덧대고 개선을 운운할 단계가 아니라는 거지요. 조 교수의 말처럼 지금은 보존이 시급한 때입니다. 굵은 나무들이 건물을 휘감고 있습니다. 그 서슬에 낡은 벽과 담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자혜병원 왼쪽 언덕엔 옛 목욕탕과 이발소 건물이 남아 있습니다. ‘소록도 할매들’이 고국에 읍소해 지원받은 돈으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이발소 건물에 서면 남해 바다가 창문 자리 가득 채워집니다. 말 그대로 ‘오션 뷰’지만 당시 한센인들에겐 아마 그림의 떡보다 못했을 겁니다. 한센인 병사들의 건물로서의 ‘법적 지위’는 등록 말소된 폐가입니다. 쉽게 말해 아무것도 아니란 거지요. 1920년대 세워진 이후 1990년대까지 한센인들이 거주했으니 이후 30년 가까이 폐가로 방치된 셈입니다. 감금실, 안치실 등은 그나마 등록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병사 건물은 다릅니다. 보호받을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습니다. 지금도 소록도병원의 많지 않은 관리 예산으로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는 형편입니다. 우리의 역량이 시험받아야 할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생각됩니다. 시민사회의 지원이든, 나라의 지원이든 보존을 위한 역량이 모여야 합니다. 조 교수는 영국의 사상가 존 러스킨의 말을 빌려 “집은 기억”이라고 했습니다. 집이 허물어지면 기억도 사라집니다. 그 자리에 회한만 남겠지요. 그러니 한센인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은 그들이 머물던 집의 보존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겁니다. 서생리에서 서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걷기 좋은 길이 있습니다. 소록도 성당 측에서 치유의 길로 조성해 일반에 공개하려던 곳입니다. 더 오래전에는 한센인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가려던 탈출의 길이었고, 이들을 잡기 위한 추격의 길이기도 했지요. 담긴 내력은 슬퍼도 길은 아름답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급하지 않고, 주변의 숲 그늘도 퍽 깊은 편입니다. 죄지은 한센인들을 구속했던 교도소(옛 순천교도소 소록도지소)가 이 길 끝에 있습니다.●오마도 간척사업은 ‘좌절·분노의 장소’ 정말 아름다운 길은 구북리에서 신새마을 사이에 숨어 있습니다. 한 굽이 돌 때마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길입니다. 오래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곰솔들이 더없이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소록도의 상징인 사슴을 만난 것도 이 언저리였습니다. 1992년쯤 경기 호법의 한 농장에서 기증했다는 사슴입니다. 소록도에 터를 잡은 녀석들은 번식을 거듭해 지금은 주민 텃밭과 야생화를 해치는 애물단지가 됐습니다. 그래도 큰 말썽 없이 그럭저럭 어울려 사는 듯합니다. 동생리 쪽에도 허물어져 가는 병사가 몇 채 있습니다. 소록도 병사성당(등록문화재 659호), 녹산초등학교 등 시간이 켜켜이 쌓인 건물들도 제법 많습니다. 붉은 벽돌이 인상적인 소록도갱생원 식량창고(등록문화재 70호), 1937년 세워진 소록도 등대(등록문화재 72호) 등도 이 마을에서 멀지 않습니다. 소록도를 둘러본 뒤엔 오마간척지로 가야 합니다. 우리가 한센인들에게 깊은 좌절과 분노를 안겨줬던 장소지요. 1962~64년 소록도의 한센인은 고흥 도양면의 다섯 섬을 잇는 ‘오마도 간척사업’ 공사에 동원됐습니다. 사업이 완료되면 간척한 토지를 나눠 주겠다는 달콤한 약속도 받았지요. 하지만 약속과 달리 한센인들은 간척사업 중도에 손을 떼야 했고, 이후 어떤 보상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한센인들의 아픔을 기억하는 기념물이 오마간척지 언덕에 조성돼 있습니다. angler@seoul.co.kr
  • ‘사드 반대’ 분신 조영삼씨 숨져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며 지난 19일 분신한 ‘독일 망명객’ 조영삼(58)씨가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20일 숨졌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이날 “유족 의견을 중심으로 검시관, 과학수사팀, 병원 측 의견을 들어 부검이 필요한지를 판단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씨는 전날 오후 4시 10분쯤 마포구 상암동 한 건물 내 18층 야외 테라스에서 인화물질을 몸에 뿌리고 불을 붙여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뒤 병원으로 옮겨졌다. 경남 밀양에 사는 조씨는 분신 당시 “사드 가고 평화 오라. 문재인 정부는 성공해야 한다”고 외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문재인 정부가 성공해야 우리나라의 미래가 있다’는 제목의 글이 적힌 종이 4장도 남겼다. 조씨는 비전향 장기수였다가 북한으로 간 이인모(1993년 북송·2007년 사망)씨로부터 1995년 2월 초청 엽서를 받고 밀입북해 그해 8월 11일부터 9월 6일까지 북한에 머물렀다. 조씨는 이후 독일로 돌아가 체류하다가 2012년 귀국하면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고 2014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이 확정됐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호랑이에 놀란 원숭이…심장마비로 떼죽음

    호랑이에 놀란 원숭이…심장마비로 떼죽음

    최근 인도에서 원숭이 십여 마리가 한꺼번에 죽은 채 발견돼 전염병 또는 독극물 살포 의혹이 제기됐지만, 부검에 참여한 수의사들이 사인을 모두 심장마비라고 밝혀 논란이 일고 있다.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인도 언론에 따르면, 지난 4일(현지시간) 인도 우타르프라데시주(州) 라킴푸르케리에 있는 모함디 숲 공터에서 야생 원숭이 12마리가 떼로 죽어있는 것을 지역 산림 공무원들이 발견했다. 당시 한 공무원이 그 모습을 찍어 공개했다. 산림 당국은 처음에 이들 원숭이가 떼죽음을 당한 것을 두고 인근 주민이 농작물을 지키려 독살한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이후 당국의 의뢰를 받은 지역 동물병원의 수의사들은 부검에서 이들 원숭이 모두가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실을 확인했다고 관계자는 밝혔다. 이에 대해 저명한 수의사 산지브 쿠마르 박사는 “검시 조서를 확인한 결과 원숭이들의 사인은 심장마비로 나와 있었다”면서 “원숭이들이 발견된 곳은 호랑이들이 자주 지나다니는 곳으로, 원숭이들은 호랑이의 포효 소리에 놀라 죽었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마을 주민들 역시 해당 지역에서 호랑이들을 종종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한 주민은 이들 원숭이가 죽었을 무렵 호랑이가 포효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또다른 야생동물 전문가들은 야생 원숭이들이 집단으로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다는 것에 의혹을 제기하며 이들 원숭이는 전염병에 걸렸거나 독극물에 중독돼 한꺼번에 죽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수의사 브리젠드라 싱 박사는 “야생 원숭이가 이런 식으로 죽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가장 예민한 동물로 알려진 블랙 벅(인도 영양)들은 간혹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지만 이들도 호랑이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죽지 않는다”면서 “이들 원숭이는 모두 어떤 전염병에 걸렸거나 중독돼 죽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유튜브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시에라리온 산사태… 1000여명 사망·실종

    시에라리온 산사태… 1000여명 사망·실종

    서아프리카 최빈국 시에라리온에서 폭우에 따른 대규모 산사태로 사망·실종자 수가 1000여명에 이르는 대형 참사가 벌어졌다. 2차 재해와 전염병 등으로 추가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이번 산사태가 최근 20년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재해 중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BBC 등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전날 이른 오전 수도 프리타운 인근 리젠트 지역에서 집중 호우로 이 일대의 한 산비탈이 붕괴하면서 빈민가 수백 가구가 순식간에 흙더미에 매몰됐다. 당일에만 시신 300여구가 발견됐고 시신 수습 작업이 계속되면서 사망자 수는 400여명까지 늘어났다. 현장 수석검시관 세네 둠부야는 “시신을 500구 이상 수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600여명은 실종돼 희생자 수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사고 당시 잠을 자고 있던 주민들이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흙더미에 깔린 터라 복구작업이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산비탈에서 흘러내린 토사로 마을은 순식간에 ‘생지옥’으로 변했다. 계속된 폭우로 강이 범람해 인근 지역은 물바다가 됐고, 가족을 잃은 시민 수백명이 흙탕물을 뒤집어쓴 채 물위를 떠다니는 시신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바라보거나 울부짖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아들과 조카가 실종됐다는 이사투 카마라는 “진흙이 물과 함께 빠르게 밀려들어 내 아들은 탈출하지 못했다”며 “집을 포함해 모든 것을 잃었고 왜 우리가 저주받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했다.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16일부터 22일까지를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조·복구 장비도 턱없이 부족해 자원봉사자들이 맨손으로 흙더미를 파내 생존자를 구조하거나 시신을 꺼내고 있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구호단체들은 그치지 않는 폭우와 열악한 배수시설로 인해 추가 재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장티푸스나 세균성 이질, 콜레라와 같은 수인성 전염병이 퍼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국이 사고 당시 폭우경보도 발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져 가고 있다. 1961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시에라리온은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지속된 내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인구 600만명의 소국이다. 2014년에는 1만명 이상이 에볼라 바이러스에 감염돼 수천명이 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다이아몬드 생산국이지만 그 수익금이 전쟁과 인명 살상 비용으로 충당돼 ‘피의 다이아몬드’ 국가라고 불리기도 한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시에라리온 산사태, 사망·실종 1000여명…아프리카 최악의 참사

    시에라리온 산사태, 사망·실종 1000여명…아프리카 최악의 참사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집중호우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 현재까지 약 400명이 숨지고 6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자 수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시에라리온의 현지 검시소는 산사태가 발생한 프리타운 인근 리젠트 지역에서 시신 약 400구를 수습했다고 15일 밝혔다. 전날 프리타운 인근 리젠트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앞서 외신에서는 300여명이 숨지고 600여명이 실종됐다는 보도가 나왔으나 시신 수습 작업이 계속되면서 사망자가 늘었다.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리젠트 사고 현장을 찾아 “이 나라는 지금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국제사회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현장 수석검시관 세네 둠부야는 로이터 통신에 “수색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400구의 시신을 찾았다. 500구 이상을 수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번 산사태는 최근 20년간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재해 중 최악의 참사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유엔은 시에라리온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 규모를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인성 전염병의 발발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현재 시에라리온 사태에 대한 긴급대책이 실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유엔 지역 사무소가 시에라리온 정부를 도와 구조작업에 참여하고 있다며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부상자들에게 의료지원을 제공하는 한편 생존자들에게 식량과 물, 담요 등을 지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시에라리온 산사태 “현재 시신 400구 수습” 처참한 현장

    시에라리온 산사태 “현재 시신 400구 수습” 처참한 현장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폭우에 이은 대규모 산사태로 15일(현지시간) 현재 시신 약 400구를 수습했다고 현지 검시소 측이 밝혔다. 현장 수석검시관 세네 둠부야는 로이터 통신에 “수색이 진행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거의 400구의 시신을 찾았다. 500구 이상을 수습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전날 프리타운 인근 리젠트 산이 무너져 내리면서 앞서 외신에서는 300여 명이 숨지고 600여 명이 실종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어니스트 바이 코로마 시에라리온 대통령은 리젠트 사고 현장을 찾아 “이 나라는 지금 긴급한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국제사회에 긴급구호를 요청했다. 이번 산사태는 최근 몇 년간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재해 중 최악의 참사가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암살 배후 파헤치지 못한 기자의 늦은 참회록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수차례 응징해 안두희의 ‘천적’으로 불렸던 권중희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였다. 그는 1970년대 말 이화여대 앞 로터리에서 조그만 기원을 운영했다. 바둑에 한창 재미를 붙일 때라 기원을 자주 찾았는데 말수가 적으면서도 인정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문에 그가 1992년 안두희를 폭행한 뒤 경찰에 잡혔을 때 평범했던 ‘기원 아저씨’를 떠올리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렸다. 그의 눈빛은 예전과는 달리 날카롭게 변해 있었다.그는 “안두희가 미국으로의 이민을 시도하고 있다”는 신문 기사를 읽은 뒤 13년에 걸친 ‘추적자’의 여정을 시작했다. 어릴 적 ‘백범일지’를 읽은 뒤 김구를 흠모하기는 했지만, 먹고살기도 힘든 판이어서 백범 암살에 관한 진상 규명은 ‘거창한’ 사람들이나 국가기관이 해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기관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한 그는 1983년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홀로 안두희 추적·응징에 나섰다. 민족지도자를 시해했음에도 곧바로 사면을 받고 군 납품업체를 운영해 큰 돈을 번 뒤 군 사단장의 신임 인사를 받을 정도로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비로소 ‘임자’가 등장한 것이다. 권중희는 집요한 추적 끝에 마침내 1992년 9월 23일 안두희로부터 ‘김구 암살의 배후는 이승만’이라는 진술을 받아냈다. 이전까지 안두희는 “김구 암살은 개인 소신에 의한 것으로 배후는 전혀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권중희가 당시 기자에게 전해준 안두희의 진술은 다음과 같다.“1949년 6월 20일(백범 암살 6일 전) 부대 안에 있는데 장은산 포병사령관실로 오라는 전갈이 왔다. 가보니 육군본부에서 나온 중위인지 대위인지 위관급 장교가 와 있었는데 장 사령관은 계급이 훨씬 높은데도 굽실거렸다.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의 연락장교 같았다. 경례를 붙였더니 그는 “총장 각하께서 부르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타고온 지프차를 타고 삼각지에 있는 육군본부 참모총장실로 갔더니 채 총장과 신성모 국방장관이 함께 있었다. 신 장관은 날 보더니 “아, 자네가 포병 사격대회에서 관측장교상을 받은 안 소위지”라고 했다. 그 뒤 채 총장과 신 장관이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다가 불쑥 경무대 얘기를 꺼냈다. 채병덕이 “경무대 구경이나 갈까 한다”고 하자 신성모는 “마침 나도 보고할 게 있는데 같이 가자”고 말했다. 그러고는 나에게도 같이 갈 것을 권했다. 그것이 연극이라는 것을 내가 능히 감지할 정도였다.(안두희를 경무대에 데려가기로 맞춰놓고 실제 안두희 앞에서는 우연히 경무대 얘기가 나온 것처럼 각본을 짜놓았다는 의미) 경무대에 가니 미리 연락해 두었는지 비서가 맞이했으며 곧바로 대통령 접견실로 안내됐다. 신 장관이 “각하, 포병 사격대회에서 상을 받은 안두희 소위입니다”라고 소개하니까 이 대통령은 내 손을 잡으며 “장관으로부터 자네 얘기 많이 들었다”며 정겹게 말했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더니 진중한 투로 “높은 사람이 시키는대로 말 잘 들어라”라고 말했다. 나에게 높은 사람이란 지휘계통인 장은산 포병사령관, 채병덕 참모총장 등으로 받아들여졌다. 이후에도 이승만으로부터 김구 제거를 의미하는 듯한 말을 2∼3차례 들은 뒤 20∼30분 정도 있다가 나왔다. 그 당시 높은 사람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지시했다. ‘대충 언질만 주고 알아서 하라’는 식이었다. 경무대에서 나오니 퇴근 무렵이었다. 다시 부대로 가서 장은산 사령관에게 보고했더니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거봐 내 말이 맞지”라고 했다. 경무대에 다녀온 뒤 김구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다. 장은산은 내가 막상 암살 결행을 못하자 ‘배후에 거물이 있으니 안심해도 된다’며 여러 차례 회유했다. 결국 “내 말이 맞지”라는 장은산의 말은 “내 말대로 거물이 있지”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대통령이 일개 소위를 직접 만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안두희의 육성 녹음(8시간 분량)이 동반된 이 증언은 백범 암살사를 다시 쓰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나 결정타가 되지 못했다. 안두희가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어 “권중희의 폭행에 의한 허위 자백”이라고 번복했기 때문이다. 권중희는 1995년 기자에게 위의 안두희 진술 내용을 전해주면서 “내가 진술을 받을 당시 처음에 안두희를 때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안두희는 한번 말문이 터지자 묻지도 않은 말까지 자연스럽게 진술했다”면서 “경무대 접견실 배치도와 접대받은 차 종류 등 안두희가 당시 정황을 설명한 대목은 실제 겪지 않고서는 도저히 꾸며낼 수 없을 정도로 구체적”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이후 인천 신흥동 안두희 자택을 찾아 진술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는 부인도 시인도 하지 않아 결국 기사화하지 못했다. 워낙 큰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 안두희의 뚜렷한 진술이 필요했지만 끝내 얻어내지 못한 것이다. 안두희는 결국 1996년 10월 자택에서 권중희 추종자인 박기서에 의해 몽둥이로 살해됐다. 안두희의 빈소에는 단 한 명의 조문객도 찾지 않았다. 그의 후처인 김모씨만이 검시 때 잠깐 모습을 비췄을 뿐이다. 권중희는 뜻밖에도 안두희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그는 “안두희에게 보약을 먹여서라도 오래 살게 해 역사적 진실을 끝까지 파헤쳐야 했는데…”라고 말했다. 권중희는 안두희가 살해된 뒤에도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안두희를 추적하는 동안 조금 있던 재산을 모두 탕진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농장의 소우리를 개조해 만든 단칸방에서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로 어렵게 지내다 2007년 11월 세상을 떠났다(향년 71세, 본관 안동). 타계하기 3년 전 서울신문사를 찾았을 때 기자가 차비나 하라며 돈을 조금 건넸더니 “늘 이렇게 남에게 신세를 끼치니…”라며 수줍어하던 것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기자는 권중희 타계 후 부채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가 보여준 치열함의 반쯤이라도 기자정신을 지녔더라면 진실 규명에 조금이라도 더 다가설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자책 때문이다. 기자가 권중희로부터 들은 안두희의 증언을 22년만에 공개하는 것은 김구 암살 배후에 대한 진상규명이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조바심 때문이다. 세상에는 권중희를 돈키호테나 테러범 쯤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기자는 그를 진정한 ‘의인(義人)’으로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일관되게 백범 암살사 규명에 진력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역사에 남을 큰 죄를 짓고도 교만하게 살아온 안두희에게 “죄를 지으면 이렇게 괴롭구나”라는 사실을 유일하게 깨우쳐 준 사람이다. 권중희는 지난날 기자에게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까지 설치됐는데 왜 이승만 백범 암살 개입설에는 무관심한지 모르겠다”면서 “아직 진실을 알만한 사람들이 일부 생존해 있으므로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도 이승만 김구 암살 개입설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문재인정부 들어 성역 없는 과거사 진상규명을 다짐하고 있다. 아직도 ‘갈 길이 먼’ 백범 암살 배후 진상규명을 도외시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직무 유기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9·11 테러 16년이 흘렀지만 1641명째 시신 신원 밝혀내

    9·11 테러 16년이 흘렀지만 1641명째 시신 신원 밝혀내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6년이 흘렀는데 7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시의 의료 검시관은 1641명째 희생자의 신원을 밝혀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세월호가 3년 가까이 바다 속에 있었을 때 일부에서는 뭐하려고 인양하느냐고 했지만 미국인들은 16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억물한 희생자의 신원을 밝혀내기 위해 뼛조각들을 모으고 대조하고 확인하는 데 엄청난 돈과 시간을 쓰고 있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은 275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제 60% 정도 신원 파악을 마친 셈이다. DNA 확인 작업으로 남성이란 사실과 기타 신원을 증명할 만한 증거들을 확보한 결과겠지만 시 당국은 유족의 요청을 받아들여 정확한 신원과 확인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사실 이날 발표가 있기까지 지난 2015년 3월부터 무려 2년 4개월 넘게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남성의 신원은 뉴욕 수석의료검시관사무소가 2001년 확보한 DNA 샘플을 재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이제 신원을 계속 확인해야 하는 주검은 1112명으로 줄었다. 온전한 시신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건물 붕괴와 화재 여파로 발생한 열, 박테리아, 화학물질 등이 신원 확인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뼛조각 등 부분 유해 2만 1900개 이상을 분석하고 연결하는 작업이라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러나 올해 초 더욱 민감해진 DNA 분석 기법을 도입한 것이 이번 희생자 신원 확인에 도움이 됐다고 검시관실은 설명했다. 당시 두 대의 비행기가 뉴욕시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에 충돌하고 다른 두 대가 버지니아주와 펜실베이니아주의 펜타곤 건물을 공격해 3000명 가까운 이들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다쳤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세계적 록밴드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세계적 록밴드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미국의 세계적 록밴드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41)이 미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팔로스 버디스 에스테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LA 카운티 검시소가 20일(현지시간) 밝혔다. 검시소와 경찰은 “자살로 보인다”고 밝혔다.  베닝턴의 시신은 이날 오전 9시쯤 발견됐다. 미 연예매체 TMZ는 베닝턴이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베닝턴은 최근 몇 년간 약물·알코올 중독과 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닝턴은 어린 시절 주변 인물들로부터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심적 고통을 호소해왔으며, 과거 자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전해졌다.  1996년 남성 6인조로 결성된 린킨파크는 2000년 공식 데뷔 앨범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를 발표, 1500만장 이상을 팔아치우는 등 전 세계에서 600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크리스 코넬 따라 자살? ‘그의 생일에..’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크리스 코넬 따라 자살? ‘그의 생일에..’

    미국의 세계적인 록밴드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사망한 가운데 그가 절친한 동료인 크리스 코넬을 따라 자살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현지 매체들은 20일(현지시각)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41)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TMZ는 베닝턴이 LA 카운티 팔로스 버디스 에스테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밝혔으나 경찰은 공식적으로 자살이라고 확인하지 않고 있다. 다수 현지 매체들은 두 달 전 자살한 크리스 코넬이 체스터 베닝턴에게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있다. 체스터 베닝턴이 사망한 날은 크리스 코넬의 생일이기도 하다. 크리스 코넬은 지난 5월 18일(한국시간) 호텔에서 사망했다. 당시 크리스 코넬 사망은 ‘급사’로 보도되며 많은 이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사망 원인을 규명하겠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러나 다음날 크리스 코넬 사망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코넬의 목에서 흔적을 발견했다. 사망 원인은 자살로 보인다”고 했고, 시신을 부검한 검시관도 호텔 욕실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고 전했다. 당시 체스터 베닝턴은 크리스 코넬 장례식에 참석해 추모글을 쓰기도 하고, 추모곡으로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를 불렀다. 린킨파크 멤버 마이크 시노다는 뉴스를 확인하고 “큰 충격과 아픔을 받았다. 그건 사실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공식 성명서가 나올 것이다”는 내용을 트위터에 올렸다. 린킨 파크의 레이블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측은 성명서에서 “체스터 베닝턴은 특별한 재능과 카리스마의 작가, 거대한 마음과 배려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의 가족과 밴드 동료와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는 전세계 팬들을 대표해, 영원히 체스터 베닝턴을 사랑하고 영원히 그리울 것이다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1996년 남성 6인조로 결성된 린킨파크는 2000년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를 발표했다. 이 데뷔 앨범은 15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고 전 세계에서 6천만 장 이상 판매되는 등 많은 음악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세 차례 내한공연을 펼친 바 있다.연예팀 seoulen@seoul.co.kr
  •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전세계 팬 충격’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자택서 숨진 채 발견 ‘전세계 팬 충격’

    미국의 세계적인 록밴드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충격을 안겼다.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검시소가 20일(현지시간) 린킨파크(LINKIN PARK)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41)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현지 연예매체 TMZ는 베닝턴이 LA 카운티 팔로스 버디스 에스테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검시소와 경찰은 자살 여부에 대해 확인하지 않고 있다. 베닝턴의 시신은 이날 오전 9시께 발견됐다. 베닝턴은 최근 몇 년간 약물·알코올 중독과 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닝턴은 어린 시절 주변 인물들로부터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심적 고통을 호소해왔으며, 과거 자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현지 매체들은 전했다. 베닝턴은 2006년 탈린다 벤틀리와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며, 전처와의 사이에도 세 자녀가 있다.1996년 남성 6인조로 결성된 린킨파크는 2000년 공식 데뷔 앨범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를 발표하면서 세계 팝계의 주목을 받았다. 린킨파크에는 한국계 미국인 조셉 한이 멤버로 활약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간 세 차례 내한공한을 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영원히 그리울 것”

    린킨파크 보컬 체스터 베닝턴 사망 “영원히 그리울 것”

    세계적인 미국의 록밴드 린킨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41)이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미 로스앤젤레스(LA) 카운티 검시소는 20일(현지시간) 이같은 사실을 알렸지만 자살 여부에 대해서는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베닝턴의 시신은 이날 오전 9시쯤 발견됐다. 미 연예매체 TMZ는 베닝턴이 LA 카운티 팔로스 버디스 에스테이츠에 있는 자택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고 보도했다. 베닝턴은 최근 몇 년간 약물·알코올 중독과 싸워온 것으로 알려졌다. 베닝턴은 어린 시절 주변 인물들로부터 학대받은 기억 때문에 심적 고통을 호소해왔으며, 과거 자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고 미 연예매체들은 전했다. 1976년 애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경찰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모의 이혼 등으로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베닝턴은 2006년 탈린다 벤틀리와 결혼해 슬하에 세 자녀를 뒀으며, 전처와의 사이에도 세 자녀가 있다. 그의 SNS에는 가족의 사진과 함께 “새로운 날 중요한 주제에 집중, 사랑해”라는 글이 올라와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베닝턴은 올해 5월 자살한 그룹 사운드가든 보컬 크리스 코넬의 절친한 친구로 코넬이 자살했을 때 추모 글을 쓰기도 했다. 베닝턴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코넬의 53번째 생일이다.1996년 남성 6인조로 결성된 린킨파크는 2000년 공식 데뷔 앨범 ‘하이브리드 씨어리(Hybrid Theory)’를 발표하면서 세계 팝계의 주목을 받았다. 린킨파크는 데뷔 앨범이 1500만 장 이상 팔린 것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6000만 장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데뷔 앨범에 수록된 싱글 ‘크롤링(Crawling)’으로 2002년 그래미 최우수 하드록 퍼포먼스 상을, 2006년엔 래퍼 제이지와 손잡고 만든 ‘넘(Numb)’으로 그래미 최우수 랩·송 콜라보레이션 상을 받는 등 그래미상을 두 차례 수상했다. 2009년에는 영화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 주제가로 ‘뉴 디바이드(New Divide)’를 제작해 인기를 끌었다. 린킨파크는 3년간의 공백을 깨고 올해 정규 6집 ‘더 헌팅 파티(THE HUNTING PARTY)’를 발매했다. 린킨파크에는 한국계 미국인 조셉 한이 멤버로 활약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세 차례 내한공한을 했으며 2011년 서울 올림픽공원 공연 때는 ‘태극기 퍼포먼스’로 눈길을 끌기도 했다. 린킨 파크의 레이블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 측은 성명서에서 “체스터 베닝턴은 특별한 재능과 카리스마의 작가, 거대한 마음과 배려의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그의 가족과 밴드 동료와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기도한다. 워너 브라더스 레코드는 전세계 팬들을 대표해, 영원히 체스터 베닝턴을 사랑하고 영원히 그리울 것이다는 말을 전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남편 죽은 뒤 시동생과 사랑에 빠진 여성

    남편 죽은 뒤 시동생과 사랑에 빠진 여성

    아내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큰 충격에 빠졌지만 두 달 후, 남편의 동생과 새로운 연을 이어가게 됐다. 11일(현지시간) 영국 미러,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셋 웰링턴에 거주하는 애슐리 머렐(33)의 사연을 공개했다. 애슐리와 남편 마이키(36)는 2007년에 만나 3년 후 결혼에 골인했다. 마이키는 애슐리의 딸 모르건(14)의 아빠가 되었고, 부부는 2013년 쌍둥이 마이키 주니어와 리사를 가졌다. 평소 자식사랑이 끔찍했던 아빠 마이키는 아이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장시간 일했다. 가족들을 무척 사랑했던 그는 자신이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아이들에게 모두 주고 싶어했다. 척추 관절염으로 건강이 빠르게 악화돼도 스스로 몰아붙여 일했고, 쉬는 날엔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휴식을 취할 겨를이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난 5월 16일도 마찬가지였다. 일주일 내내 하루 평균 16시간 동안 일한 마이키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채 밤 늦게 집에 돌아왔고, 그런 남편을 보는 것이 안쓰러우면서도 참을 수 없었던 애슐리는 격한 논쟁을 벌였다. 남편이 필요 이상으로 일하는 게 염려되었지만 그녀는 화가 나서 진심과 다른 말을 내뱉으며 '소파에 가서 자라'고 그를 내쳤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보니 남편은 소파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변해 있었다. 검시 결과 그는 잠을 자다 질식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오랫동안 과도한 노동을 통해 누적된 피로가 그를 다른 세상으로 데리고 간 것이다. 애슐리는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기 시작했다. 14살 딸에게 “아빠가 죽었다”며 “마이키가 죽었다”며 거리로 달려나와 비명을 지르며 절규했다. 그녀는 이웃의 부축을 받아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구급대원이 남편의 죽음을 확인했음에도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애슐리는 깨달았다. 남편이 7월 3일 결혼기념일을 맞아 자신을 프라하로 데려가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시간외 근무를 해왔다는 사실을. 매년 가족들이 디즈니랜드를 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장시간 노동 덕분이었다. 그녀는 “마이키를 소파에 자도록 만든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고 죄책감을 많이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남편의 사망은 애슐리 삶의 관점을 전부 뒤바꿔놓았고, 인생이 너무도 짧고 빠르게 흘러간다는 교훈도 일러주었다. 그리고 현재 애슐리는 슬픔을 함께 극복하며 자신을 지지해준 마이키의 동생 크리스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다. 한 친구는 “크리스와 애슐리는 많은 일들을 겪어왔고 위로나 도움이 필요할 때 서로를 위해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며 “이상하긴 하지만 인생을 살다보면 너무나 끔찍한 일, 반대로 정말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들은 함께여서 정말 행복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데일리메일, 미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북한산 인수봉 낙뢰사고…암벽 등반하던 60대 여성 숨져

    북한산 인수봉 낙뢰사고…암벽 등반하던 60대 여성 숨져

    지난 9일 오후 4시 30분쯤 경기도 고양시 북한산 인수봉 정상 인근에서 A(60·여)씨가 낙뢰에 맞는 사고가 발생했다.A씨는 헬기로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다. 사고 당시 A씨는 동료 4명과 암벽 등반을 하다 바위에 앉아 쉬던 중 갑자기 친 번개에 변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최근 암벽 등반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한 달에 한 번꼴로 등반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같은 장소에 있던 동료들도 감전 증세를 보였으나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검시 결과 몸에서 벼락에 맞아 감전된 흔적이 발견됐다”며 “당시 구체적 상황에 대해서는 추가 조사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웜비어 장례식 여자친구 알렉스 “소울메이트 잃었다”

    웜비어 장례식 여자친구 알렉스 “소울메이트 잃었다”

    북한에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송환된 뒤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22)의 장례식이 22일 오전 9시 그가 졸업한 오하이오 주 신시내티 와이오밍고등학교에서 시민장으로 엄수된다.웜비어의 장례식은 공개적으로 진행됐지만 언론에서는 공개되지 않을 에정이다. 50명의 자원봉사자들은 웜비어가 다녔던 학교에서 묘지로 가는 길을 흰색과 푸른색 리본으로 장식했다.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됐을 당시 그의 여자친구였던 알렉스 바고니스는 그의 죽음에 대해 “소울메이트를 잃었다”고 슬퍼했다. 웜비어의 지인들은 그가 스마트하고, 상냥하고, 스포츠를 잘 했고, 인기가 있던 학생으로 기억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웜비어가 식중독균의 일종인 보툴리누스에 감염된 후 수면제를 복용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의료진은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뇌 조직이 광범위하게 손상된 것을 확인했다”고 말해 그의 가족은 웜비어가 북한의 고문과 학대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검시 당국은 웜비어를 부검해 20일 저녁이나 21일께 예비 조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유가족의 반대에 따라 시신과 의료 기록 분석을 통해 사인을 밝히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웜비어 가족 “부검 않겠다”…사망 원인 미궁에 빠지나

    북한에 17개월간 억류됐다가 혼수상태로 풀려난 지 엿새 만인 19일 사망한 미국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가족들이 웜비어의 부검에 반대해 정확한 사인 규명이 어렵게 됐다. 미국에서는 웜비어의 사망을 둘러싸고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정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웜비어 등 억류된 외국인을 “국내법과 국제기준을 준수해 대우하고 있다”고 주장해 논란이 일 전망이다. 오하이오주 해밀턴 카운티 검시관실은 20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웜비어 가족들의 요청으로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으며 시신 외부만을 검사했다”고 밝혔다. 당초 검시관실은 웜비어를 부검해 20일 저녁이나 21일쯤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하려 했으나 시신과 의료 기록 분석을 통해 사인을 밝히기로 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웜비어의 장례식은 22일 오전 그가 학창 시절을 보낸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와이오밍 고등학교에서 진행된다. 가족들이 왜 부검에 반대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웜비어의 사인 규명은 그가 억류됐을 당시 식중독균의 일종인 보툴리누스에 감염돼 수면제를 먹고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북한 측 주장의 진위를 밝혀 줄 수 있어 중요하다. 신시내티 메디컬센터 의료진은 지난 15일 “웜비어의 뇌에서 광범위한 손상이 발견됐고, 지난해 4월부터 혼수 상태에 빠졌을 것”이라며 “보툴리누스에 감염됐다는 어떤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웜비어의 혼수상태를 유발한 원인이 약물 과다 복용이나 목 조르기, 고문 등에 대한 알레르기 반응일 가능성이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이와 관련, 한대성 제네바 유엔 주재 북한대사는 이날 로이터 인터뷰에서 억류자 문제에 대해 “우리는 국내법과 국제기준에 따라 행동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날 “오토에게 일어난 일은 완전히 치욕스러운 일”이라며 “웜비어를 집에 더 일찍 데려왔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전임 오바마 정부를 겨냥하는 발언을 하면서 웜비어 사망은 전·현직 대통령의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 웜비어는 오바마 정부의 임기 마지막 해인 지난해 1월 북한에 억류됐다. 이에 오바마 전 대통령 측 대변인인 네드 프라이스는 성명을 통해 “오바마 정부에서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외국에 억류된 미국인들의 석방을 보장하는 것이었다”며 “오바마 정부 동안 북한에 구금돼 있던 최소 10명의 미국인이 석방됐다”고 반박했다. 한편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한반도 정세 불안에 대한 우려 때문에 미국인들이 북한과 가까운 평창에서 열리는 내년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를 꺼려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예를 들면 올림픽 중계방송을 해 온 NBC유니버설이 광고주들에게 올림픽 티켓과 현지 관광 등 프로그램을 제공해 왔지만 내년에는 평창 대신 다른 곳으로 초청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아들 시신이라도 찾겠다” 호주 부모, 10년 만에 결실

    “아들 시신이라도 찾겠다” 호주 부모, 10년 만에 결실

    실종된 아들의 시신이라도 찾으려는 호주 부모의 노력이 10년 만에 끝을 맺었다.아들의 유해 발견을 위해 그동안 부부는 아들 암매장 추정 지역을 삽으로 파헤치고 현상금 약 2억원을 내걸었다. 살인 용의자와 직접 대면하고 그에게 ‘면책권’까지 줬다. 호주 언론은 1일 약 10년 전 시드니 도심에서 실종된 매튜 레베손(당시 20세)으로 추정되는 유해가 전날 오후 시드니 남쪽의 국립공원에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실종된 지 9년 8개월 8일 만이다. 경찰은 최종 확인에는 더 시간이 필요하다면서도 ‘발견된 유해가 매튜와 거의 일치한다’고 말했다. 매튜는 지난 2007년 9월, 시드니 시내 한 나이트클럽을 나선 뒤 실종됐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인물인 친구 마이클 앳킨스(53)가 살인혐의로 기소됐지만, 2009년 무죄로 풀려났다. 실종된 매튜를 찾겠다는 부부와 경찰의 노력은 계속됐다. 부부의 동의 아래 이례적으로 이미 살인죄를 피한 앳킨스와의 면책 협상마저 동원됐다. 매튜의 죽음과 관련한 연관성을 극구 부인했던 앳킨스에겐 검시관 앞의 증언을 이유로 추가로 기소되지 않는다는 면책 혜택이 부여됐다. 위증죄가 문제가 되자 부모는 다시 아들의 시신 위치를 찾을 결정적인 단서를 알려준다면 위증죄도 면책될 수 있도록 했다. 앳킨스는 결국 지난해 11월 매튜가 암매장된 위치를 털어놓았다. 경찰은 장비를 동원해 샅샅이 뒤졌으나 찾지 못했다. 지난 1월 재수사에도 성과는 없었다. 열흘 전 시작된 3번째 발굴에서 마침내 매튜로 추정되는 유해가 나왔다. 지난해 11월에 뒤진 곳 인근인 등산로 주변 나무 아래였다. 매튜의 아버지 마크는 “우리의 목표는 아들을 집으로 데려와 영면하도록 하는 것이었다”며 “다른 아들들이 형제를 찾는 일을 계속할 필요가 없게 됐다”라고 시드니모닝헤럴드에 인터뷰했다. 마크는 또 앳킨스가 뒤늦게 매튜가 사라진 다음 날 아침 철물점에서 곡괭이와 테이프를 샀다고 실토한 데 대해 “(앳킨스가) 결국 자유의 몸이 돼야 한다. 그것은 법에 따른 것이고, 우리가 받아들인 것”이라고 했다. 죽는 날까지 아들을 찾겠다고 밝혀온 어머니 파예는 “이 일을 더 일찍 끝낼 수 있었다”며 앳킨스가 너무 늦게 입을 열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필리핀 세부서 40대 한국인 남성 피격 사망…“집에서 악취가”

    필리핀 세부서 40대 한국인 남성 피격 사망…“집에서 악취가”

    필리핀에서 40대 한국인 남성이 총기에 피살된 채 발견돼 필리핀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외교부 당국자는 21일 “지난 20일 오후 16시 40분 필리핀 세부 라푸라푸시 소재 자택에서 우리 국민이 총기에 의해 피살된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피해자 집에서 나는 악취를 맡은 이웃 주민이 창문을 통해 내부를 살펴보다 사망자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시점은 2~3일 전으로 추정된다. 이 당국자는 이어 “주필리핀세부분관은 20일 저녁 사건을 인지한 즉시 담당 영사와 코리안데스크 담당관을 함께 현장에 파견, 필리핀 경찰의 시신검시 및 사건 현장 1차 조사에 직접 참여했다”고 덧붙였다. 우리 경찰청 감식전문가 3명이 이날 저녁 현장에 파견돼 현장 감식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번 사건이 타살로 최종 결론나면 올해 필리핀내 우리 국민의 첫번째 피살 사건이 된다. 우리 국민의 필리핀내 피살 사망자는 2015년 11명, 2016년 9명이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크리스 코넬, 호텔 욕실서 숨진 채 발견..美언론 “자살 추정”

    크리스 코넬, 호텔 욕실서 숨진 채 발견..美언론 “자살 추정”

    인기 록밴드 사운드 가든 리드 보컬 크리스 코넬(52)이 숨진 채 발견돼 충격을 안겼다. 지난 18일(현지 시각) 미국 주요 언론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 코넬은 미국 디트로이트 공연 직후 호텔 내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크리스 코넬은 디트로이트 공연 직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록의 도시 디트로이트에 왔다”고 밝힌 바 있다. 보도에 따르면 크리스 코넬의 시신을 부검한 검시관은 “코넬이 디트로이트 투어 공연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욕실에서 목을 매 사망했다”며 “부검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경찰은 코넬의 사망을 자살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시애틀 출신인 고 크리스 코넬은 지난 1984년 사운드 가든을 결성, 1990년대 초반 인기 록 그룹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진 = 연합 연예팀 seoulen@seoul.co.kr
  • 美고등학생, 에너지음료 등 카페인 과다섭취 사망

    美고등학생, 에너지음료 등 카페인 과다섭취 사망

    미국의 한 16세 고등학생이 짧은 시간 내에 카페인을 과다 섭취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 15일(이하 현지시간) NBC뉴스 등 현지언론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스프링힐 고등학교에 다니던 데이비스 알렌 크라이프(16)가 카페인 과다섭취로 숨졌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번 사건은 졸음을 쫓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는 물론 카페인 알약까지 먹는 국내 청소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아 경종을 울리고 있다. 사건은 지난달 26일 데이비스가 교실에서 수업 중 갑자기 쓰러지면서 시작됐다. 이에 데이비스는 곧바로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곧 숨졌다. 이후 현지 경찰은 가족병력이 없고 평소 건강했던 데이비스의 사인 확인에 들어갔고 지난 15일 그 결과를 발표했다. 검시관 게리 와츠는 "데이비스의 사인은 카페인으로 인한 부정맥으로 불규칙적인 심장박동이 확인됐다"면서 "이번 사례처럼 한꺼번에 카페인을 과다섭취하게 되면 심장에 무리를 줄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소년들은 가급적 카페인 음료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권고했다. 보도에 따르면 사망 당일 데이비스는 2시간 동안 대용량 마운틴 듀, 맥도날드의 라떼, 에너지 드링크를 마신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성인의 카페인 1일 섭취 권장량은 400mg, 임산부는 300㎎ 이하, 어린이와 청소년은 체중 1㎏당 2.5㎎ 이하다. 곧 몸무게가 50kg인 청소년을 기준으로 보면 하루에 125㎎ 이상의 카페인을 섭취하면 해롭다는 의미로 에너지음료 한 캔만 마셔도 이를 넘어선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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