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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해외유전 개발에 적극 나서야

    이라크 전쟁이 발발 3주 만에 미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마감되었다.군사작전 수준에 불과한 전쟁이었지만,이 전쟁은 국제 석유질서에 의미있는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0년 걸프전을 계기로 국제 석유질서는 산유국-소비국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다.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을 목격한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중동 산유국들은 석유소비국들에 안정적인 석유공급을 약속하였고,미국 등 석유소비국들은 산유국들에 안보를 제공하였다.즉 석유와 안보의 교환을 통한 협력관계가 1990년대 국제 석유질서의 특징이었다. 이번 이라크전을 계기로 국제 석유질서는 석유 소비국 주도로 변화할 것이다.우선 세계 제2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이라크가 본격적인 석유생산을 시작하면 국제유가는 상당히 하락하여 소비국에 유리할 것이다.그리고 세계 석유공급을 조절하여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OPEC도,이라크 생산 재개와 그 처리를 두고 내분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 그 힘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또 미국이 이번 전쟁 처리를 통해 중동 산유국의 통치 엘리트들이석유산업을 장악한 현실을 바꿀 작정이어서 산유국 입지가 약화될 것이다.이런 점들은 석유 소비국 지위가 상대적으로 강화될 것임을 예고한다. 새로운 국제 석유질서 창출 과정에서 우리 경제는 저유가의 이익을 누릴 것이다.우리 경제는 지난 30년간 석유를 주력 에너지원으로 사용하여,이제 하루 209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하는 세계 6위의 소비대국이 되었다.국제유가 하락은 우리 경제에 청신호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이런 단편적인 이익을 향유하는 데 그치지 말고,우리나라 석유안보를 강화하고 석유산업을 고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우리 경제는 석유소비 증가에 발맞춰 석유안보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석유공급 위기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 비축유를 보유하여 선진국과 같은 방어적 능력을 갖추었고,국제 석유산업 정보 수집 능력도 상당히 향상되어 석유공급 위기의 조기 감지 능력도 보유했다.따라서 금번 이라크전 기간 중 석유정보 전달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우리나라 석유안보 장치 중 가장 허약한 부분을꼽으라면,석유개발을 통한 석유공급 능력이라고 하겠다.우리 정도의 석유 소비국은 대부분 국내외 석유개발을 통하여 튼실한 원유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실례로 이번 전쟁을 반대한 프랑스에서는 자국 석유회사인 토탈 피나엘프(Total FinaElf)가 전체 소비량의 71%인 하루 145만배럴을 세계 각지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베트남 등지에서 대형 유전을 발견하여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기는 하였지만,해외 원유생산이 전체 소비의 2.7%에 불과하다.이 정도 규모로는 석유위기가 닥쳤을 때 믿을 만한 대체 공급원 구실을 적절히 수행할 수 없으며,평상시에도 공급불안에 대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소비국 주도의 국제 석유질서는 이런 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우선 국제유가 하락으로 유전의 자산가치가 하락할 것이며,그렇게 되면 유전을 과거보다 싼 가격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산유국들은 저유가에 살아남기 위해서 생산량을 늘리기를 바랄 것이며,국제 석유회사들을 적극 유치해 이를 달성하려 할 것이다.이런 환경은 우리경제가 해외에서 유전을 개발하여 선진국형 석유산업 구조로 고도화하는 호기를 제공할 것이다.과거 80년대 중반에도 이와 유사한 환경이 조성되었지만 우리 경제는 이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하였다.이제 다시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지혜를 모아 변화하는 국제 석유질서에 적극 동참하여야 할 것이다. 이 억 수 한국석유공사 사장
  • 탈북2명 美청문회 증언 내용/ “北, 이란에 무기팔고 원유 구입”

    |워싱턴 백문일특파원|2명의 탈북자가 20일(현지시간) 미 상원 청문회에서 각각 증언한 북한의 마약 밀매와 미사일 개발·수출 실태 내용을 요약한다. ●북한의 마약 커넥션(전 북한 고위관리) 1998년 남한으로 망명하기 이전까지 북한 정부에서 15년간 일했다.북한은 1970년대 말부터 함경도와 양강도 등의 산간지대에서 비밀리에 마약을 생산,밀매했다.아편을 대대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부터다.당시 김일성이 함경도 연사군에서 아편을 재배해 외화를 벌어들이라고 지시했다. 이후 함북 연사군,무산군,온성군,회령 등지의 협동농장에서 아편을 재배,헤로인 등을 만들었다.일반 주민들이 모르게 아편꽃을 ‘백도라지’로 불렀다.1997년 말에는 협동농장마다 10정보씩 아편을 재배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아편을 수확해 함북 청진시 나남구역에 있는 제약공장에서 마약을 만들었다.태국에서 데려온 7∼8명의 마약 전문 제조업자들이 참여했다.중앙 정부의 통제와 감독아래 진행됐으며 평양 근교에도 마약을 생산하는 공장이 있다고 들었다.무력성 보위국 산하의 현역군인들이 경계를 선다. 북한은 헤로인과 필로폰을 생산한다.한달에 1t씩 만들며 헤로인은 330g짜리 태국산으로,필로폰은 1㎏짜리 국적불명으로 포장된다. 마약시장이 커지자 북한은 현재 일본 야쿠자,러시아 마피아 등의 국제 범죄조직과 결탁,마약 밀매를 조직적으로 벌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커넥션(가명 이복구·전 북한 미사일 기술자)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자강도 미사일 공장에서 유도장치의 부품 생산을 담당했다.청년전기연합기업소 산하 소공장 가운데 603,604 분공장을 맡은 기술과장이었다.이곳에선 전자제품을 만들며 미사일 유도장치의 생산과 조립,개발에 관련된 일을 했다. 1989년 여름에는 5명의 다른 기사들과 이란에 가서 미사일 유도차량 발사실험을 했다.남포항에서 출발했으나 15일 동안 선창에서 외부와 차단됐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도착지에서 아랍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사일 유도차량에 탑승,20분간 전파를 발송했다.미사일 발사체는 다른 곳에 있어 직접 보지 못했다. 평양에 돌아온 뒤 김철만 제2경제분과위원장이 “이란에 갔다오느라 수고많았다.”고 해 처음 알았다.당시 연형묵 총리가 이란에 미사일 유도장치를 팔고 22만t의 원유를 받아 왔다. 이후 미사일 유도장치 생산이 본격화했으며 여러해에 걸쳐 아랍국에 팔았다.이란이 아닌 다른 아랍권에 판 중장거리 미사일 중 일부가 걸프전에서 사용되기도 했다. mip@
  • 국제 플러스 / 美 프랭크스 사령관 전범혐의 피소

    |브뤼셀 AFP 특약|이라크전 희생자 가족들이 13일 이라크전을 지휘한 토미 프랭크스 미 중부군 사령관을 전쟁범죄 혐의로 벨기에 법정에 제소할 것이라고 담당 변호사가 12일 밝혔다.원고중에는 미군의 오폭으로 사망한 아랍권 위성방송 알 자지라TV 기자의 미망인도 포함돼 있다. 앞서 지난 3월 이라크인 7명이 91년 걸프전 당시 지휘선상에 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콜린 파월 국무장관,딕 체니 부통령,노먼 슈워츠코프 퇴역 육군장군 등을 제소한 바 있다.이에 대해 미국은 정치적인 의도라고 일축하며 벨기에의 전범소송 허용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이에 따라 벨기에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외국인을 제한하는 등 ‘보편적 사법권’을 일부 개정했다.
  • 꼬인 美경제 풀리나

    지난 3월 우리나라 경상수지 적자폭이 환란이후 최대인데다 산업활동 동향이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경제 지표들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어 지나친 비관론을 경계하는 소리도 높다.무엇보다 ‘세계 경제성장 엔진’인 미국경제의 회복전망을 밝게 해 주는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으며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또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 등 정보통신(IT)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민간경제연구소인 컨퍼런스 보드는 4월 소비자신뢰지수가 81로 전월 61.4에서 19.6포인트 급등했다고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밝혔다.20포인트에 가까운 상승폭은 걸프전 직후인 1991년 3월 이후 가장 큰 것일 뿐 아니라 앞서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70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앞서 25일 발표됐던 미시건대학의 소비자신뢰지수 역시 전월 77.6보다 크게 오른 86을 기록했다. 미국 노동부가 같은날 발표한 1·4분기 노동비용(임금·건강보험·유급휴가 등) 상승률도 1.3%로 크게 뛴 것으로 나타났다.지난해4분기 상승률 0.7%의 2배에 육박하는 것으로 당초 전문가들은 0.8% 상승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었다. 앞서 지난주 말 미국 상무부는 3월 신규주택 판매가 전월보다 7.3%나 급등한 101만 2000채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3월 내구재 주문도 당초 예상치인 -0.5%를 크게 뛰어넘는 2% 증가를 기록했다.전월에는 1.5%가 감소했었다. 오는 6일로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인하나 긍정적인 경제전망이 발표될 경우 미국경제는 더욱 강한 상승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하락도 청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29일 국제유가는 원유시장의 재고가 당분간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6일째 하락세를 이어갔다. 뉴욕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 중질유(WTI) 6월물은 전일보다 배럴당 25센트(1%)가 내린 25.24달러에 거래돼 지난해 11월13일 이후 최저 시세를 기록했다.중동산 두바이유도 배럴당 56센트 떨어진 22.43달러를 기록했다. 주요 IT업체의 1분기 매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8% 높은 78억4000만달러였으며 인텔은 당초 예상치를 넘는 67억5000만달러였다. 전문가들은 특히 소비자신뢰와 노동비용 지표의 호전은 미국경제의 핵심인 소비가 계속 탄력을 받을 것임을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UBS워버그증권 제임스 오설리반 연구원은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가 적어도 하나는 제거된 셈”이라면서 “향후 가계지출이 더 늘어날 전망”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 상무는 “미국경제의 긍정적인 지표들이 잇따라 발표될 것으로 보이는데다 하반기 기업들의 IT(정보기술)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여 미국경제의 회복세가 본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블룸버그통신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경제전문가들은 미국의 5월 실업률은 지난달의 5.8%보다도 0.1% 포인트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하는 등 미국 경제의 변수는 여전하다.미국 노동부가 2일 발표하는 고용 동향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들이 4월에도 고용 인원을 5만 8000명 줄여 3개월 연속 인력 감축을 단행함에 따라 올들어 고용 감소 규모가 3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됐다. 또 주요 반도체 가격이 작년 11월 최고점에 달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어 IT경기의 회복이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어 경기향방은 조금 더 두고봐야 할 것같다. 김태균기자 windsea@
  • 이라크부총리 아지즈 자수 / “후세인 행방·WMD조사 활기”

    국제사회에서 이라크의 얼굴 역할을 해왔던 타리크 아지즈(사진·67) 전 부총리가 24일(현지시간) 바그다드에서 미군에 자수했다.미 중부군사령부의 데니 브로우즈 대변인은 아지즈 전 부총리의 신병을 확보,구금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로써 바그다드 함락 직전 감쪽같이 ‘증발’했던 사담 후세인 정권의 지도부들 가운데 미군의 지명수배자 명단에 오른 55명 중 12명이 체포됐거나 자수했다.아지즈는 지명도에 비해 지명 수배자명단의 순위가 43위이고 연합군이 돌리고 있는 수배인물카드에는 ‘8 스페이드’이지만 미군이 신병을 확보한 인물 중에선 최고 거물급이다. 이어 25일에는 55명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이라크 정보기관의 고위관리였던 파루크 히자지가 체포됐다.튀니지와 터키 주재 이라크 대사도 지냈던 히자지는 테러조직 알 카에다가 테러캠프를 운영하던 아프가니스탄의 칸다하르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만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아지즈가 행방이 묘연한 후세인의 생사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또 이라크전쟁의직접적인 이유가 된 대량살상무기의 은둔장소 내지,최소한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의 존재 여부라도 확인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후세인 정권의 ‘돈줄’과 소문으로만 나돌던 지하 벙커 등 비밀 정부건물에 대한 정보도 갖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 언론에 따르면 아지즈는 지난 23일 한 사람을 통해 미군측에 자수 의사와 함께 자수시 자신의 처리방향에 대해 타진해왔다.하루 뒤인 24일 밤 바그다드의 미군에 자수,조사를 받고 있다.전범으로 재판에 회부하지 않겠다는 밀약이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어쨌든 지난달 19일 미군의 이라크 공격 하루 전까지도 미군에 포로로 잡히느니 죽음을 택하겠다고 공언했던 그가 왜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 궁금증을 낳는다. 아지즈는 후세인 정권에서 최고위직에 오른 기독교인이다.91년 걸프전 이후 12년간 후세인을 대신해 전세계에 이라크의 입장을 유창하고 품위있는 영어로 발표,국제사회에서 유명해졌다.91년 이래 부총리로 재직한 그는 미국과 유엔의 비난이 제기될 때마다 이라크의 반박입장을 발표했다. 이라크·이란전쟁이 한창이던 83년 외무장관에 임명된 그는 서방이 이라크를 지원토록 외교력을 발휘하기도 했다.그러나 정책결정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유명세에 비해 권한이 약했던 것은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출신도,이슬람교도도 아니며 기독교도 집안출신이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지즈의 자수로 세인의 관심은 원점으로 돌아왔다.후세인과 두 아들은 살아 있을까.살아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을까? 하지만 아지즈가 궁금증을 풀어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균미기자 kmkim@
  • [외교관 통신] 요르단국민 “친미외교 안도”

    이라크전이 사실상 끝났다.전쟁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예상보다 전쟁이 빨리 끝나 이곳 요르단 사람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이라크 사태에 대한 요르단 정부의 공식입장은 이라크와 관련된 모든 문제는 이라크와 유엔이 평화적 수단·방법으로 해결해야 하고,미국주도의 대이라크 군사공격을 반대하며,미군의 요르단 주둔 내지 요르단 영공 통과는 절대 불허한다는 것이었다.요르단 국민들도 다른 아랍인들과 마찬가지로 한결같이 미국의 이라크 군사공격을 격렬히 규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요르단 정부는 ‘균형외교’의 모토 아래 대 미국 외교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요르단은 미국으로부터 연간 5억달러 이상의 원조를 받고 있고,연 15∼17회 미군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고 있다.수백명의 요르단 군인이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다.미국은 요르단의 최대 교역국이며 지난해 요르단의 대미 수출은 80%증가했다.국왕은 99년 2월 취임 이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5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고,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도 수시로 만나는 등 미·영 양국지도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전쟁발발후 며칠간 반미시위 미국과의 이러한 특수관계로 전쟁이 가까워지자 미군의 요르단 기지 사용설,미군 주둔설이 국민들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고 정부의 공식반응은 ‘부인’으로 일관했다.이라크전이 발발하자 세계 모든 이목이 이라크 남부와 북부전선에 쏠리고 있는 사이 이라크 서부전선이 순식간에 연합군에 의해 장악되고,한밤의 암만 상공이 항공기의 굉음으로 가득차자,미군의 요르단 발진설,영공통과 허가설이 대두되었다.정부는 국왕까지 나서서 사실무근이며 절대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강력 부인했다. 그리고 며칠 후 미국은 이라크 전쟁으로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 요르단을 구조하기 위해 10억달러를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요르단의 2002년도 GDP가 90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액수의 지원이다. 중동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석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요르단은 국내 원유소비 전량을 이라크로부터 공급받아왔다.반은 무상으로,반은 국제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받아왔으나 이라크전이 발발하면 원유공급은 완전히 끊기게 된다.41세의 젊은 압둘라 국왕은 대체원유 확보를 위해 사우디,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 산유국을 뻔질나게 돌아다녔다.걸프전 당시 앙금이 가시지 않았던 이들 국가의 반응은 냉담했으나 결국 요르단에 원유를 공급해 주기로 약속했다.미국의 설득이 있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추측이다. 전쟁 발발 후 며칠간 미국의 대이라크 공격을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그러나 시위는 공권력의 통제 범위 내에 있었고 예상보다 과격하지도 않았다.미군주둔설을 따지는 목소리도 그리 크지 않아 보였다.정부는 공식적인 논평을 가능한 한 자제하려 했고,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한해 억제된 표현으로 주로 이라크 국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였다. ●정부선 이라크 외교관 3명 추방 전쟁 개시 3일 후 요르단 정부는 아랍국가로서는 최초로 암만에 주재하는 이라크 외교관 3명을 추방했다.미국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요르단·이라크 양국간 문제로 이들 3명이 외교관으로서의본연의 임무를 벗어나는 행위를 하였다는 것이 정부설명이다. 요르단은 우리 남한만한 땅덩어리에 변변한 부존자원 하나 없이 이스라엘과 이라크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여있는 나라다.이들에게 외교는 생존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외교는 선택을 강요한다.걸프전 때 이라크를 선택해 서방국가,걸프국가와의 관계 복원에 힘들었던 요르단.이번 이라크전에서는 분명 다른 선택을 한 것 같다.요르단 국민들의 표정에서 정부가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금창록 駐요르단 1등서기관 ●금창록(琴昌祿·38)외시 25기.서울대 독문학과,기획조사과,국제기구과,중구과,주 독일 대사관 2등 서기관.
  • 1차걸프전 실종 美해군 조종사 “스파이커 대위를 찾아라”

    |워싱턴 백문일특파원|“전장터에서 죽은 줄 알았던 남편이 돌아오지만 아내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면.그것도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와…” 영화속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비극의 주인공은 12년전 걸프전 첫날 야간공습에서 실종된 미 해군 소속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스파이커’. ●걸프전 첫날 야간공습중 실종 미군은 그해 공중 폭발에서 스파이커가 즉사했다고 발표했으나 10년이 지난 2001년 1월에 ‘임무중 실종’,다시 지난해에는 ‘실종/전쟁포로(POW)’로 병역기록을 바꿨다.정보당국도 그가 사망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혀,그가 전투기에서 탈출했을지 모른다는 그간의 소문을 공식 확인했다.살아있다면 44세. 그럼에도 그의 행방은 묘연해 세간의 기억에서 잊혀지는 듯했다.그러나 이라크전이 끝나고 미군이 스파이커 대위를 찾으라는 특명을 내리자 미 언론의 초점은 후세인 못지않게 스파이커의 생사 여부에 쏠리고 있다.정보당국도 후세인 정권이 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을 것으로 분석,머지않아 그의 행적이 드러날 전망이다. ●부인은 동료조종사와 재혼 플로리다주립대에서 만나 1983년 스파이커와 결혼한 조애너는 어린 자녀들을 위해 남편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였다.아이들에게 아버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갔다고 말했다.다행히 남편의 친구들이 따뜻이 대해줬고 특히 가장 친했던 동료 조종사 앨버트 해리스가 아버지 역할을 대신했다. 남편이 실종된 지 18개월만에 조애너는 해리스와 재혼했다.그들은 두명의 자녀를 더 뒀고 모두 스파이커-해리스라는 성을 붙였다.그러나 스파이커의 죽음에 의심이 가는 새로운 정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1995년 스파이커가 탔던 비행기 잔해가 이라크 사막에서 발견됐다.국방부는 국제적십자사와 현장을 찾아 조종석의 일부와 스파이커의 비행복을 발견했다.그러나 사막에서 4년간 버려졌다는 흔적이 발견되지 않아 스파이커가 탈출했을 가능성을 높였다.미국인 조종사를 다른 곳에서 봤다는 정보가 입수됐으나 입증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1999년 이라크 망명자는 미국인 조종사를 자신이 직접 바그다드로데려갔다는 정보를 제공했다.스파이커의 사진까지 정확히 짚어냈으며 거짓말 탐지기 검사도 통과했다.급기야 2001년 중앙정보국(CIA)은 미 상원에 스파이커가 전쟁포로로 살아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mip@
  • 유엔제재 따른 이라크 실태/ 식량난 극심… 어린이 30% 영양실조

    이라크는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10년 이상 유엔의 군사 및 경제제재를 받아 왔다.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자 유엔 안보리는 90년 8월 이라크 제재조치에 대한 첫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후 7차례에 걸쳐 결의안을 채택,제재조치의 강도를 높여 나갔다. ▲식품·의약품을 제외한 모든 상품 및 물자의 금수조치 ▲이라크 해상과 항공 봉쇄 ▲해외에 있는 모든 이라크 자산 동결 ▲쿠르드 반군 거점인 이라크 북부지역과 시아파 이슬람반군 근거지인 남부지역에 이라크 ‘비행금지구역’ 선포 등이 걸프전 이후 지금까지 시행된 이라크 제재의 주요 내용이다. 특히 전면적인 교역 금지는 식량의 75%를 수입에 의존했던 이라크에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조치였다.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에 따르면 현재 이라크 어린이의 25% 정도가 저체중아로 태어나고 5세 미만 어린이의 약 30%가 영양실조에 시달릴 만큼 식량난이 심각하다.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영양실조,탈수,곱사 등의 질병으로 사망하는 어린이도 매달 수천명에 이른다.또한 콜레라와 소아마비가 만연하고 있다.이라크는 지난 2000년 경제제재로 인한 사망자가 129만 5000여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52만명이 5살 이하의 어린이라고 밝힌 바 있다.유니세프도 이라크의 유아사망률이 10년 전에 비해 2배로 증가했다며 적절한 조치가 있었다면 10년 동안 최소 50만명의 어린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모든 경제활동을 제한한 조치로 이라크는 20년이라는 시간을 잃게 됐다.이라크 주요 도시의 사회기반시설들은 70∼80년대 그대로다.고속도로 등 대규모 기반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관리부실로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식수와 전력공급 상황도 열악한 형편이다.또 이라크로의 직항로가 폐쇄돼 인접국 요르단 암만에서 바그다드를 가는 데도 10시간 이상이 걸린다. 결국 유엔제재로 죄없는 이라크 국민들만 후세인 정권의 폭정과 경제고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됐다.그동안 국제인권단체 등은 비인도적 조치라며 제재 완화 혹은 폐지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이같은 비난으로 유엔은 지난 96년 인도적 차원에서 식량·의약품 구입을 위한 석유수출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석유식량계획’을 도입하기도 했다.하지만 미국이 이라크 무장해제를 명목으로 강경입장을 고수,제재조치 완화를 위한 논의는 번번히 무산됐다. 강혜승기자 1fineday@
  • 무너진 후세인 / 아랍경제 4000억弗 피해 유엔, 이라크전 여파 분석

    |베이루트 연합|이라크 전쟁은 아랍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해 약 4000억달러에 달하는 생산성이 저하되고 200만명의 일자리를 앗아가는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고 유엔 산하기구가 14일 전망했다.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이사회(ESCWA)의 메르밧 탈라위 사무국장은 이날 베이루트에서 열린 이사회 22차 총회에 참석해 중동이 지난 50년간 분쟁과 갈등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지적했다. 탈라위 국장은 지난 91년 걸프전이 터진 후 지금까지 중동이 입은 피해가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약 6000억달러에 달한다면서 이번에 터진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4000억달러의 피해가 더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그러나 이라크전 피해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난 90년대 이후 중동에서 400만∼500만명이 취업 기회를 박탈당했다면서 이번 전쟁으로 인해 그 숫자가 600만∼700만명으로 늘어날 것 같다고 내다봤다.
  • [열린세상] 전쟁과 언론,그리고 문화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이번 이라크 전쟁에서 언론이 어떤 역할을 했는가에 대한 분석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특히 CNN과 알자지라 방송이 두 전쟁당사국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여,그 두 방송의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여타 언론들이 결국 언론 심리전에 이용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어떤 네트워크에나 대개 집중도가 높은 ‘허브’가 있고,허브가 있는 구조에서 정보든 병균이든 그 확산 속도가 훨씬 빠르다.비록 이번 전쟁에서는 지난번 걸프전 때와 달리 ‘알자지라’라는 이슬람권 방송도 CNN과 함께 어느 정도 주목을 받기는 했으나,전쟁 전부터 전세계적 통신망의 허브 역할을 해 온 CNN이 전쟁에서 특정 국가를 대변하여 자국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편파적인 내용을 내보낼 경우,전 세계 사람들은 순식간에 편파적 시각을 갖게 된다. 이번 이라크 전쟁과 그 보도를 보면서,이제까지 언론은 진실만을 보도한다고 믿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문을 갖게 되었다.간혹 전혀 반대되는 내용을 보도하는 두 방송을 지켜보면서,어느 한 쪽은 분명히 사실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하게 되고,언론이 전쟁에 이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전쟁은 갈등의 일종으로,국가간 갈등 해결의 최후 수단이다.갈등을 힘으로 해결하느냐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하느냐 하는 데는 국가간의 문화 차이도 큰 몫을 담당한다.네덜란드의 학자 호프슈테드에 따르면,남성적 문화로 분류되는 국가는 자기주장적이며 성취를 중요시하고 강자와 동일시하며,자국 GNP의 절대적 수준에 관계없이 군비지출에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반면에 여성적 문화로 분류되는 국가는 자기주장보다 겸손을,성취보다 관계를 더 중요시하며,약자에 공감하고,자국 GNP 중 해외원조에 사용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이탈리아,일본이 모두 남성적 국가였고,포클랜드 섬을 사이에 두고 싸웠던 영국과 아르헨티나도 남성적 국가였다.이번 전쟁에 관여한 미국과 이라크,영국이 모두 남성적 국가다.일본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집단주의적’,권위주의적이고 불확실성을 회피하려는 성향이 크지만,유독 남성성 차원에서만큼은 한국과 정반대인 남성적 문화로 분류된다. 국가간의 협상에서도 여성적 국가가 손해를 볼 가능성이 많다.여성적 국가는 ‘이번에 이쪽에서 양보하면 다음에 저쪽에서 양보하겠지’라는 생각으로 양보하면,남성적 국가는 ‘역시 내 힘이 강하니까 굴복하는군’ 하며 다음에도 역시 힘으로 굴복시키려 하기 때문에 양보를 얻어내기 어렵다. 언론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알고,언론을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경향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언론은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일 중에 어떤 부분에 조명을 비출 것인지를 결정하는 조명기구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그렇게 조명받은 부분의 목소리를 실제보다 더 확대시켜 주는 확성기의 역할을 한다.전쟁 당사국,또는 갈등 당사자들은 자기 편의 목소리에 더 조명이 비추어지기를 희망하고,자기 편의 목소리가 더 크게 알려지기를 원하므로 언론을 이용하려고 한다. 크고 작은 갈등들이 편재해 있는 다양화된 사회 속에서 언론은 중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갈등 해결에 언론을 이용하려는이해집단이나 전쟁 전략으로 언론을 이용하려는 전쟁 당사국들의 의도에 이끌려 다니지 않도록,언론 자체의 사명과 소신을 가지고 중심을 지켜야 한다. 정보의 원천을 다원화하면서,수많은 매체에서 쏟아지는 정보 중 어느 것이 값진 정보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허브’에 해당하는 매체의 정보라고 해서 무조건 믿어서도 안 되고,반드시 다른 정보 원천을 통해 검증되어야 한다.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다른 매체를 통해 편하게 얻을 수 있는 간접 정보보다는 언론에서 소외되기 쉬운 곳까지 직접 발로 뛰어 얻은 정보가 훨씬 더 값진 정보라는 사실이다. 나 은 영 서강대 교수 신문방송학
  • 무너진 후세인 / “총성 멎으면 ‘파월시대’ 열린다”

    |뉴욕 연합|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미국 외교ㆍ안보 정책은 전쟁을 주장해 승리로 이끈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이끄는 행정부내 강경파의 주도로 넘어가리라는 것이 일반적인 예측이다. 그러나 13일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강경파의 주도로 북한,이란 등을 상대로 한 ‘다음 공격목표’ 찾기보다는 콜린 파월 미국 국무장관 주도로 화합의 외교에 주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타임스와 인터뷰한 고위 관리는 “이상하게 보일지 몰라도 이라크에서 마지막 총성이 멎는 대로 ‘파월 장관의 시대’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의 예상과 달리 미국이 외교중시 정책을 펼 것이라는 전망은 미국 정치와 유럽과의 동맹관계,군사적 측면에 관한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고 타임스는 설명했다.우선 정치 측면에서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도 승전의 정치적 가치가 덧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91년 걸프전에서 승리하고도 경제부진으로 재선에 실패했다. 유럽과의 동맹관계를 복원해야 할 필요성도 지적할 수 있다.부시 대통령의 보좌진 가운데 다수는 부시 대통령이 기후변화협약 교토의정서 탈퇴나 탄도탄 요격미사일(ABM) 협정 파기 후와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 후에도 훼손된 외교관계의 치유책 마련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도 미군은 이라크 전쟁후 다른 대결을 펼 여유가 없다. 소집된 예비역들은 돌려보내야 하고 폭탄은 상당량이 고갈됐다.이라크의 전후 통치와 재건에도 장기간 대규모의 미군 주둔이 예상된다.
  • 무너진 후세인 / 국립박물관 무차별 약탈 고대유물 17만여점 증발

    |바그다드 연합|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유물들을 소장해온 이라크 국립박물관이 무차별적인 약탈로 빈 껍데기만 남았다. 이라크 지역에서 번성했던 고대 문명과 바빌로니아·수메르·아시리아 등 고대왕국의 유물 17만여 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박물관 내부에는 전시관의 깨진 유리와 부서진 도자기 조각만 을씨년스럽게 나뒹굴고 있다. ●함무라비 법전도 위험 7000여년 전의 이 지역 역사를 증거해줄 유물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지난 10일 바그다드가 연합군에 함락된 이후 약탈자들은 정부 청사와 대형 상점들뿐 아니라 박물관에도 몰려들어 닥치는 대로 보물들을 들어냈다. 들고갈 수 있는 것은 모두 약탈의 대상이 됐다.황금 사발,황금 잔,장례식에 쓰이는 가면 등 값을 매길 수 없는 귀중한 유물들이 모두 들려나갔다.일부는 손수레를 끌고 와서 고대 왕국의 보물뿐 아니라 고대문자가 새겨진 점토판도 실어내갔다. 지난 수일간의 약탈로 박물관은 그야말로 텅 비어버렸다.이라크 박물관측은 전쟁에 대비해 비밀리에 상당량의전시물을 지하창고로 옮겨놓았으나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애틀랜타에 있는 에모리대 중동역사 전문가인 고든 뉴비 교수는 이라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유물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함무라비법전 서판이라고 말했다. 가장 오래된 법전 중의 하나인 함무라비법전 서판이 약탈이 행해지던 당시 박물관 내부에 있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한국대사관도 털려 이라크 주재 외교공관들의 전쟁 피해가 잇따르는 가운데 바드다드 시내 한국대사관도 포격과 약탈을 당한 것으로 13일 확인됐다. 바그다드 시내 자드리야구의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3층짜리 한국대사관 건물 벽에는 포격으로 직경 15㎝가 넘는 구멍이 뚫리는 등 3개의 포탄 자국이 났고 창문에도 수십 개의 총탄 구멍이 남았다. 또 건물 유리창이 거의 전파됐고 가구와 사무집기 등도 대부분 약탈되거나 파괴됐으며 대사관 건물 내부에는 부서진 집기와 서류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대사관 정원의 일부 나무들도 손상됐다. 한국과 이라크간의 외교관계는 1990년 1월 걸프전을 계기로 일시 중단됐으며, 현재 외교업무는 요르단 주재 대사관이 대행하고 있다.
  • [이라크전이 남긴 것](2)첨단전의 위력

    이번 이라크전쟁은 예상보다 훨씬 빨리 끝났고 훨씬 적은 피해를 내며 전쟁에 대한 종전의 개념을 바꾸게 만들었다.전쟁으로 인한 인명피해와 참화를 완전히 막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이번 전쟁은 보여주었다.이에 따라 앞으로 세계 전쟁교본도 새롭게 고쳐질 것으로 보인다. ●오폭 피해는 예상보다 적어 미국은 92년 1차 걸프전 때와 마찬가지로 목표물에 대한 집중 공습으로 전쟁을 시작했다.그러나 1차 걸프전 때 초정밀유도 폭탄이 전체 투하폭탄의 10%에 그친 것과 달리 이번 전쟁에서는 그 비율이 거의 90%에 달했다.또 정확성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목표물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GPS(지구위치추적시스템) 기술의 발달과 이라크군의 정황을 수집한 특수부대의 활동이 정확도를 높이는데 기여했다.이는 불필요한 희생을 최소화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물론 이라크 북부에서 60여명의 쿠르드족 병사 사상을 부른 것을 포함해 민간인 거주지역에 미사일이 떨어지는 등 오폭에 의한 피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볼 때 매우 정확한 조준공격을 통해 이라크군에 큰 타격을 가했다고 할 수 있다.이는 이라크군의 전의를 꺾어 미군이 당초 가장 두려워했던 시가전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전쟁 발발 초기에만 해도 미 언론들은 미군의 전략을 집중 성토했다.압도적 병력을 동원했던 1차 걸프전 때와 달리 충분한 병력을 동원하지 않았다며 미군의 피해가 커지고 전쟁이 오래 갈 것을 우려했다. ●병력수보다 火力이 승리 좌우 미 지상군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장만 한 채 바그다드 포위·압박을 목표로 신속하게 바그다드로 진격했다.포위된 상태에서 미군이 가하는 선택적인 공격의 정확도는 이라크군의 사기를 처음부터 무너뜨렸다. 이라크군이 전쟁 발발 전부터 전력면에서 상대할 수 없는 미국과의 전쟁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도 있다.실제로 이라크 공화국수비대의 한 장교는 영국 BBC에 이라크군 대부분이 전쟁이 시작된 뒤 매일 도망칠 궁리만 했다고 밝혔다.그는 또 이라크군은 자신들의 가족과 재산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시가전을 원치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그러나 첨단무기의 위력과 내부 봉기를 유도하는 선전전에 이라크군이 자멸했다는 것이 이번 전쟁에 대한 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라고 미 전사연구가들은 말한다.1차 걸프전 때만 해도 병력 수의 압도가 필요했지만 병력 수에 관계없이 전쟁장비의 압도만으로도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음을 이번 전쟁은 보여주었다. 유세진기자 yujin@
  • 무너진 후세인 / 후세인 동상조각 인터넷 경매

    |워싱턴 외신| 미·영 연합군의 바그다드 점령으로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그는 역사적 사건들을 찾는 이들에게 최고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10일 인터넷 경매사이트 e베이에서는 후세인의 초상이 그려진 지폐 등 무려 2000여종이 넘는 후세인 관련 상품이 판매되고 있다. 경매사이트에서 나온 후세인 관련 품목 가운데는 후세인의 얼굴과 ‘미친 후세인’이란 문구가 그려진 화장실용 두루마리 화장지에서부터 바그다드에서 부서진 그의 동상 조각까지 포함돼 있다. 후세인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사진 한 장도 현재 1000달러에 매물로 나와 앞으로 6일간 경매가 진행된다. 인터넷 도메인 ‘빌어먹을 사담(www.DamnSaddam.com)’도 750달러에 매물로 경매에 나왔지만 아직 주인이 결정되지는 않았다.지난 91년 걸프전에 참전한 미국인 중 일부는 이라크 화폐를 경매에 내놓고 흥정을 벌이고 있다.후세인의 초상이 그려진 100디나르 지폐는 ‘후세인 사망 후에는 가치가 더욱 올라갈 것’이라는 문구에 힘입어 63달러의 입찰가를 기록했다.
  • 무너진 후세인 / 美·英 임시방송국 개설 선무방송

    이라크의 새 정부 구성준비에 돌입한 미국과 영국이 10일(현지시간)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을 시작했다.‘자유를 향하여(Toward Freedom)’라는 방송국을 개국,조지 W 부시(사진) 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직접 이라크국민을 상대로 한 연설을 방송한 것이다. 그동안 이라크 지도부의 선전내용이 방송됐던 이라크 국영TV 주파수로 방송된 이 연설에서 부시 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여러분의 국가에 가져왔던 악몽이 곧 끝날 것”이라며 “이라크 정부,여러분의 국가의 미래는 곧 여러분에게 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는 여러분들이 모든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평화롭고 민주적인 정부를 건설하는 것을 도울 것”이라며 “그 다음 우리 군대는 이라크를 떠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블레어 영국 총리는 91년 걸프전 때처럼 후세인이 다시 권좌로 돌아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평화롭고 부유한 이라크는 영국이나 미국,유엔이 아니라 여러분,이라크 국민들에 의해 운영될 것”이라고 강조했다.그는 연합군은 “친구이며 해방자일 뿐정복자는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자유를 향하여’는 앞으로 하루 5시간씩 아랍어로 뉴스와 신문보도,저명한 학자와의 인터뷰는 물론 원조기구 접촉방법,소규모 게릴라전이 발생했을 때 대응방법 등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도 제공할 계획이다. 미 국방부가 프로그램 작성을 책임지며 이중 1시간은 영국 외무부가 담당한다. 전경하기자 lark3@
  • 무너진 후세인 / 럼즈펠드 승리선언前 8대과제 제시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9일 국방부에서 리처드 마이어스 합참의장과 함께 기자회견을 갖고 사담 후세인의 지배는 거의 끝났지만 미군이 본국으로 귀환하기 위해서는 후세인의 행방 확인과 미군 전쟁포로 구출,북부 유전 장악,불법 대량살상무기 확인 등 8개 과제를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럼즈펠드 장관은 무엇보다도 후세인과 그의 두 아들,정부 고위 관료들을 생포하거나 생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91년 걸프전 이후 생존해 있는 사람들을 포함한 미군 전쟁포로들을 구출하는 것과 북부 유전지대를 안전하게 장악하는 일도 우선 과제로 꼽혔다.미군은 지금까지 7명이 전쟁포로로 이라크군에 붙잡혔고 11명이 실종됐다. 그는 이어 ▲후세인 정권의 (대량살상)무기 제조 프로그램과 이에 관여한 과학자들의 소재 파악 ▲이라크 내에서 아직 활동중인 테러리스트의 생포 또는 사살 ▲집권 바트당 간부들에 대한 기록,무기 은신처 확인 등을 통한 후세인 추종세력 해체도 승리 선언 전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들었다. 이라크 정보기관 및 보안기관,민병대 조직 등에 대한 자료 확보와 귀환한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과 협력해 이라크 과도정부를 수립하는 일도 중요한 남은 과제로 꼽혔다. 익명의 백악관 고위관계자는 승리 선언 전 해결해야 할 임무목록이 작성된 것은 없다며 럼즈펠드 장관이 제시한 임무가 완수되기 전에 언제든지 종전을 선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균미기자 kmkim@
  • 이라크전 / 전문가 진단

    이라크전이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다.종전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마무리되고,전후 이라크 지역 관리는 어떤 형태로 이뤄질 것이냐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전문가 시각을 정리한다.이와 함께 이라크전 이후 최대 현안으로 떠오를 북한핵 문제 전망과 해법에 대해서도 국내 전문가와 정부 고위당국자의 견해를 싣는다. 종전 국면 이라크戰 분석 ●황병무 국방대학교 교수 바그다드는 패닉상태일 것이다.수도가 점령당한 상태에서 주민들은 굉장히 헷갈리는 상태에 빠져 있다는 얘기다. 이라크의 최정예 공화국수비대가 특별히 궤멸된 것 같지 않은데,저항 의지도 전혀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혹시 티크리트 지역으로 이미 병력을 옮겨 놓고 그곳에서 결사항전을 하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 시간 이후 미·영 연합군의 입장에서는 가장 시급한 문제가 질서회복이 될 것이다.예컨대 연합군측에서는 주민들로부터 환영받는 ‘이슈’를 만들려고 할 것이다.연합군은 전쟁이 마무리돼 감에 따라 이라크측의 ‘무조건적인 항복’을 이끌어내기 위한 협상에 들어갈 것이다.국가 주권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후세인을 대신해 다른 사람이 협상을 맡게 될 것이 분명하다.후세인이 살아있다 하더라도 그는 ‘전범’으로 처리될 수밖에 없다. 다만 종전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지역적으로 게릴라 형태의 전쟁은 상당 기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전후 이라크 관리에 있어서는 연합군이 유엔의 이름을 반드시 빌리려고 할 것이다.군정을 거쳐 친미성향의 과도정부를 만든 뒤 선거라는 형태를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김재두 국방연구원 연구위원 현재의 전황을 놓고 전쟁의 마침표를 찍기에는 다소 꺼림칙하다.지금 전황을 놓고 볼 때 후세인의 생사여부와 함께 바그다드 구시가지의 전황도 중요하다.연합군쪽에서는 바그다드 구시가지 소탕작전을 하지 않은 상태이다.하지만 이곳에 대해 소탕작전을 할 경우 엄청난 피해가 우려된다.연합군이 이 지역에서 장갑차나 탱크를 동원해 무력시위를 하면서도 적극적인 소탕작전은 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따라서 연합군측은 구시가지에 대한 소탕작전을 포기한 채 전격적으로 종전 선언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전후 이라크 관리를 위해 미측은 연구기관을 통해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아버지 부시가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베이커가 소장으로 있는 베이커연구소가 대표적이다.이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전후 관리는 3단계로 나뉘어진다.1단계는 2개월간의 군정으로 시작한다.이어 24개월간 유엔과 미군정의 자문관이 관리를 공동으로 담당한 뒤 이라크에 넘겨지게 된다.전후 이라크 처리과정의 포커스는 석유자원에 맞춰질 가능성이 가장 크다.이를테면 유정 지분권에 대한 매각문제가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대두될 것이다. 특히 연합군측은 종전 과정에서는 유엔의 참여를 기피하겠지만 전후 관리과정에서는 명분 축적을 위해 유엔을 자문관의 형태로라도 반드시 끌어들이려 할 것이다. |도쿄 황성기특파원|미국의 이라크공격은 ‘위협에 대한 선제공격론’에 기초한 미국의 새 안보이론을 실천에 옮긴 첫 전쟁으로서 “신속성,정밀성,정보중시 등 압도적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개념의 전쟁’”이라고 도쿄신문이 10일 전문가들의 의견을 인용,분석했다.3월20일 개전 때 미,영군 병력은 28만 5000명으로 이는 1991년의 걸프전 때 다국적군이 50여만명이었던 데 비하면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지상군만 따지면 약 3분의1이다.걸프전 때 미군은 압도적 전력을 투입한다는 콜린 파월 합참의장의 이론을 바탕으로 약 5주간 공중폭격을 계속한 뒤 지상군을 투입했다.이번에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은 병력 숫자보다 기동력을 중시해 신속하게 수도 바그다드로 진격했다. 이런 전술을 지탱한 것이 무적의 군사기술이다.먼저 정확히 표적을 노리는 정밀유도탄으로 수많은 군사목표를 집중 폭격,적의 전의를 상실시켰다.이라크전은 처음부터 정보,선전전의 측면이 강했다.미국은 이를 최대한 활용해 승자가 됐다. marry01@ 이라크 전후 ‘北核' 전망 ●남성욱 고려대 교수 후세인 정권의 몰락으로 북한이 느끼는 불안감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일 것이다.“유엔 헌장도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막지 못했다.이는 미국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한다해도 전쟁을 못막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 북 외무성 성명으로 볼때 북한은 불가침조약 체결을 전제로 북·미 양자대화만 고수하던 기존 입장에서 좀더 탄력적인 대응을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남측 정부가 5월11일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정점으로 북측이 주장해온 ‘남북공조’보다는 ‘한·미공조’를 우위에 놓을 것이 확실하다는 점도 협상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다.중·러와 긴밀히 외교채널을 가동하고,남북대화에도 접근해올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이라크전으로 미국의 힘을 실감했다.또 유엔 안보리의 역할이 무의미하다는 점에서 형식에 얽매이기보다는,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겠다는 실용적인 정책,즉 명분보다 실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바그다드가 함락된 날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 정권을 인정하겠다고 한 것은 미국도 한결 여유로운 대북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미국은 항상 사용 가능한 칼이 있음을 과시한 마당에 굳이 칼을 뺄 필요는 없다고 볼 것이다. ●홍관희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라크 전이종전국면을 맞으면서 북한쪽으로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다행히 한·미 양국의 정책담당자들이 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고 거듭 강조하는 등 분위기는 좋아지고 있다.우리의 이라크 파병 결정이 미국 지도부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 것으로 본다.미국은 우리가 내부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국회에서 압도적으로 파병을 결정했다는 결과를 중요시 하고 있다. 북핵 문제는 일단 다자의 틀에서 논의될 것으로 본다.부시 행정부는 클린턴 전 정부의 미·북 직접해결방식이 실패했다고 본다.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만들어 북한에 경수로를 만들어주고 있지만 98년부터 우라늄 농축을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향후 대북 정책은 채찍과 당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본다.우리가 선의를 갖고 북한을 대하는데도 북한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계속한다면 대북지원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북한은 지금도 우리와는 군사적인 문제나 평화체제 구축 문제를 협의하려 하지 않는다.미국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는 데만 관심을 갖고 있다.북한이 순리적으로 대응하면 당근책을 쓰고,반대로 북한이 계속 다른 뜻을 갖고 나오면 채찍도 사용해야 한다.북한의 의도만 너무 의식하지 말고 우리가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통일부 고위 당국자 “여러분이 반팔 차림을 하기 전에 남북대화는 재개될 겁니다.” 1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당국자는 이라크전 이후 북한 핵 문제 해결과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먼저 다자회담을 통한 북한 핵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 북한이 조금씩 접근해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물론 북·미간 양자대화 해결이라는 북한의 ‘레토릭’에는 변화가 없다.그러나 최근 중국의 변화를 예로 들었다.“중국의 관변 학자들이 최근 다자해결 방식에 대해 관심있는 발언을 하고 있다.”고 소개한 뒤 “이는 중국 정부가 북한의 변화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일단 중단’상태인 남북관계와 관련,북한 핵 문제의 다자틀 논의와 별개로 남북간 현안을 다루기 위해 곧 재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지난달과 이달 초 잇따라 공식회담을무산시킨 것은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과 한·미 군사훈련 때문이었다면서 “이라크 전이 매듭지어지고 한반도 주변 긴장이 완화되면 남북 양측이 적절한 명분을 통해 대화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도운기자 dawn@
  • 무너진 후세인 / 이라크 재건 어떻게 / 인프라 10년간 5백억弗 소요

    이라크 전쟁이 종결을 향해 한발씩 다가가면서 전후 이라크 재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라크 전후 재건사업은 인도적 지원과 전쟁으로 파괴된 기반시설의 복구 등으로 이뤄진다.이는 길게 보면 세계 제2위의 매장량을 자랑하는 이라크석유 개발 이권과 이라크 경제에 대한 지배력 확보로 이어지며 결국에는 세계 경제질서 재편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복구자금 G7서 분담 계획 경제 전문가들은 사회시설 재건과 부채 탕감 등 전후에 소요되는 비용이 전쟁 자체에 드는 비용을 웃돌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미국 정책연구소인 전략 및 예산 연구센터(CSBA)는 전후 이라크를 안정시키는 데 드는 비용은 주둔군의 규모와 전쟁으로 인한 시설 피해 정도 등에 따라 5년간 1050억∼498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전쟁으로 부서진 도로와 공공건물 등 인프라 건설에만 앞으로 10년간 500억달러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미국은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라크 경제의 피해 규모를 평가하기를 원하고 있으며 전후 복구자금은 서방선진 7개국(G-7)에서 모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이라크가 경제 제재를 받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라크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고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유엔의 참여가 필수적이다.세계은행이나 IMF도 경제제재 하에서는 어떤 도움도 줄 수 없다. ●유엔 경제제재 해제 필요 뉴욕 타임스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제재를 받는 이라크가 정상적인 경제 활동을 위해 꼭 필요한 제재 해제만 하더라도 안보리의 또 다른 결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유엔 지도자들은 이라크 전후 문제에 대해 유엔이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마크 몰러치 브라운 유엔개발계획(UNDP) 사무총장은 “유엔 안보리의 새로운 결의가 없다면 미국 주도의 점령군은 아무 권리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 배상·실업문제 등 과제 산적 그러나 이라크는 사담 후세인이 집권한 지난 20년간 수 차례의 전쟁과 유엔 경제제재 등으로 일인당 국내총생산(GDP)이 70% 감소할 정도로 피폐한상태다.거의 모든 경제가 국가 통제 아래 있어 산업경쟁력도 취약하다.인구의 41%가 14세 이하여서 일자리 창출도 당면과제다. 실업률은 25%에 이른다.이라크 정부의 채무는 걸프전 전쟁배상금을 포함해 940억달러에 이른다.모두 새 정부가 풀어야 할 과제들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무너진 후세인 /권좌 빼앗긴 후세인 생애/ 첨단무기에 붕괴된 ‘철권24년’

    미·영 연합군이 10일(이하 한국시간)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완전 점령함에 따라 1979년 이라크 대통령에 오른 사담 후세인의 24년 철권통치도 막을 내리게 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범아랍권 지도자’를 꿈꾸며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대량 살상은 물론 각종 극단적인 조치들을 서슴지 않았던 그는 결국 ‘인류의 적’으로 지목돼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명성과 권력에 대한 끈질긴 갈망을 버리지 않았던 후세인의 삶은 한마디로 도발과 극단의 연속이었다. ●쿠데타 집권… 한때 진보정책 추진 1937년 4월28일 바그다드 북쪽 중앙 이라크의 시골마을인 티크리트에서 태어난 후세인은 10대 때 바그다드로 옮겨가 아랍바트사회당에 가입하면서 이라크 정치세계에 발을 들였다. 이라크 총리의 암살을 시도,이집트로 도피하는 등 시련의 시기를 거쳐 63년 2월 이라크로 돌아왔지만 64년 다시 투옥됐다.옥중에서 바트당 부총재로 선출된 그는 67년 탈옥,이듬해 쿠데타를 일으켜 같은 바트당원이자 그의 사촌인 아흐메드 하산 알-바크르가 이라크의 새 지도자로 등극하게 됐다. 혁명지휘위원회(RCC)부의장을 맡은 사담은 사실상 권력의 2인자였으며,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많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진행했다. 이라크 내 석유회사들의 국유화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병원시설을 개선시키고,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했으며,국가적인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추진했다.또 이라크 사회간접시설 확충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외딴 지역에 전기와 깨끗한 식수를 공급하고 도로를 개설하는 등 개혁적인 정책을 통해 민심 획득에 성공했다. ●대통령 취임뒤 정적 처형 오랜 시간에 걸쳐 권력을 다진 후세인은 1979년 대통령으로 취임했다.알 바크르는 질병을 이유로 하야한다고 발표됐다. 후세인은 취임행사가 녹화되고 있는 가운데 고위급 인사들이 가득한 회의실에서 현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음모를 적발했다고 말하고 가담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66명이 잡혀갔고 22명은 즉시 처형됐다. 그는 이어 400명의 바트당원을 처형하고 당을 재정비했다.본인의 권력기반을 강화하고,정적들의 힘을 약화시키며,자신에게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화학무기등 사용 대량살상 자신의 체제에 반대하는 시아파를 지원한다는 이유 등을 들어 1980년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이라크와 이란 국경 부근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소한 충돌에서 비롯된 전쟁은 8년간 계속됐으며 이라크인 50만명과 이란인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뒤 끝났다. 유엔 발표에 따르면 사담 후세인은 1986년 이라크 군대에게 이페릿 같은 독가스와 신경가스를 이란병사들에게 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어 1988년에는 이라크 북부에서 반항하던 쿠르드족 거주지역에 군사공격을 감행했다. 미 국무부는 화학무기 살포,대규모 사형집행 등을 통해 5만∼10만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비밀경찰 동원 언론·국민 통제 80년대 이란과의 전쟁에서 후퇴하고 1991년 걸프전에서는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에게 패한 뒤 사담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빈번히 일어났고,이라크는 오랫동안 유엔의 경제제재조치를 받아왔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사담 후세인은 여전히 이라크에서 강력한 권력을 유지했다.비밀경찰이 국민들을 감시했으며 후세인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경우 가차없는 처벌을 가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후세인은 자신의 이미지를 잘 유지하기 위해 철저한 이미지 관리와 선전을 이용했다.그는 대중들 앞에서 절대 노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노안으로 돋보기 없이는 글을 읽을 수 없어도 그는 대중 앞에서 안경 쓴 모습을 보이지 않았으며 TV카메라도 허리디스크 이상으로 절뚝거리는 그의 걷는 모습을 절대 방영하지 못했다. ●비리폭로땐 가족까지 총살 항상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던 그는 일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그는 밤에 비밀 장소에서 4∼5시간만 자고 모든 음식은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준비되고 검사를 거치도록 했다. 많은 적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가족들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사담의 사위 중 2명은 95년 이라크를떠나 이라크 정부가 화학무기,생물학무기,핵무기 프로그램에 대한 증거를 숨기고 있다고 서방 국가에 말했다. 이런 행동을 너그러이 용서해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다시 이라크로 돌아왔던 그들은 결국 총살 당했다. 함혜리기자 lotus@ ■후세인 이라크 통치 일지 ▲1979년 △7월16일=사담 후세인 이라크 혁명지휘위원회(RCC) 부의장 이라크대통령 취임,집권 바트당서기장 겸 혁명지휘위원회 의장취임 ▲1980년 △3월18일=4년간의 위임통치를 위한 헌법승인 △9월22일=이란·이라크전 발발 ▲1981년 △6월7일=이스라엘 공군 오시라크 핵원자로 공격(바빌론작전) ▲1988년 △3월17∼18일=이란을 지지하는 쿠르드족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으로 5000여명 사망△8월20일=이란·이라크전쟁 종료 ▲1990년 △8월2일=이라크군 쿠웨이트 침공 ▲1991년 △1월17일=미국주도 이라크 공격(사막의 폭풍작전)△2월28일=이라크전 종료 ▲1995년 △10월15일=79년 취임이후 첫 국민투표서 99.96% 지지 획득 ▲1998년 △12월16∼19일=미국 이라크에 500여발의 미사일 공격 ▲2002년 △10월15일=7년 임기 대통령에 100%투표와 100%지지로 당선 ▲2003년 △3월20일=미·영연합군 공격시작 △4월9일=미군,바그다드 함락
  • 부시의 전쟁 /지휘부 조준공습·바그다드 기습진격 “전쟁사 유례없는 작전”

    “세계사에서 유례없는 공세였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가 이라크전에서 연합군의 전략을 재조명한 8일자 특집기사에서 뽑은 헤드라인이다.서방언론 가운데 비교적 조심스럽게 전황을 보도해온 신문으로서는 이례적이었다. 이처럼 미군이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까지 밀고들어가자 ‘충격과 공포’작전 등 연합군의 전술이 작전면에서 재평가받고 있다.개전 초반 연합군측은 몇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군사전문가들로부터 ‘지나친 낙관론으로 안이하게 대비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러나 7일 미군이 바그다드 심장부에서 후세인의 동상을 부수는 상징적 전과를 올리면서 찌푸렸던 연합군측 지휘부의 얼굴이 다시 펴졌다.장기전에 대한 우려가 걷히면서 ‘그것 봐라.’는 듯이 의기양양해하고 있다.제프 훈 영국 국방장관이 “후세인 정권의 종말이 다가오고,이라크인들 앞에 더 나은 미래가 펼쳐지고 있다.”고 밝힌 데서도 감지되는 분위기다. ●충격과 공포,유연함이 어우러져 미 중부사령부를 취재하는 마크 니컬슨 파이낸셜 타임스 전문기자는 연합군측의 속전속결 전략의 핵심개념을 ‘충격과 공포,그리고 유연성’으로 요약했다.이 세가지 특징적 전술로,아군이든 적군이든 희생자를 최소화한다는 당초 목표가 결과적으로 어느 정도 충족됐다는 것이다.물론 작전 성공의 대전제는 이라크군에 비해 압도적인 화력과 최첨단 정밀무기의 투입이었다.이같은 하드웨어를 바탕으로 한 연합군측의 작전을 외신을 통한 서방전문가들의 입을 빌려 ‘복기’해 본다, ●1단계-‘충격과 공포’(Shock & Awe)작전 정밀한 조준 폭격과 공습으로 이라크 수뇌부의 지휘능력을 마비시키는 한편 이라크군의 전의를 상실케 하려는 수순이었다.개전 이후 6일 동안 이라크의 주요 목표물을 향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600기를 발사하고 정밀유도폭탄 4300개 이상을 투하한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특히 이 과정에서 연합군측이 이른바 ‘후세인 대통령 목베기’전술을 꾀했다.개전 당일인 지난달 20일 토마호크 미사일과 ‘벙커 버스터’ 폭탄으로 바그다드의 이라크 지도부 벙커를 정밀 폭격한 사실이 그것이다. 이로 인해 당시 후세인 대통령과 측근 인사 수명이 사상을 당했는지를 놓고 아직도 의견이 부분하다.분명한 것은 이후 이라크군의 통제능력이 상당히 허물어졌다는 사실이다. ●2단계-바그다드 진격작전 연합군이 가장 비판을 많이 받았던 전략이다.기계화부대의 탁월한 기동력으로 전광석화같이 바그다드로 향한다는 작전이 한때 차질을 빚은 것이다. 연합군의 긴 보급로의 허리를 치고 빠지는 이라크군의 기습과,민간인으로 위장해 거짓 투항하는 ‘사담 페다인’ 민병대의 게릴라전이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난 것이다.설상가상으로 바스라 등지에서 은근히 기대했던 시아파의 민중봉기도 일어나지 않았다.연합군측 수뇌부는 시아파가 1차 걸프전 때 들고 일어났다가 연합군의 방치로 후세인 정권의 잔혹한 보복을 받았다는 점을 계산에 넣지 못한 점을 자인해야 했다. 특히 지난달 29일 이라크측의 차량 자살공격으로 미군 4명이 죽으면서 연합군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그러나 연합군은 속공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후방의 중간요충지를 굳이 완전 접수하지 않은 채 미 보병3사단등을 바그다드로 진격시킨 것이다. ●3단계-바그다드 함락작전 바그다드를 공략하면서 연합군측의 임기응변이 주효하기 시작했다.당초 작전개념에 포함됐던 ‘유연성’ 개념이 효력을 나타낸 셈이다. 포위 후 단계적 공략작전에서 기습적 진공으로 작전을 바꾼 것이다.바그다드 일시 진입 후 회군하는 6일의 무력시위에서 이라크군의 저항이 의외로 약하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이 과정에서 일등공신은 웬만한 사격에 견딜 수 있는 에이브럼스 탱크와 브래들리 장갑차만이 아니었다.초반의 충격과 공포 작전이 뒤늦게 빛을 발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 평가인 듯하다. 구본영기자 kb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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