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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부활하는 군국주의/강동형 논설위원

    [씨줄날줄] 부활하는 군국주의/강동형 논설위원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군국주의 논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시청한 사람이라면 태양의 후예를 군국주의와 결부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군인과 군인정신을 소재로 다루었다고 군국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군국주의는 군사력 증강을 우선시하고, 국민 생활에서 전쟁 준비나 정책을 중시하는 이념이다.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군국주의를 지향한 대표적인 나라다. 일본에서는 21세기에도 ‘군국주의 유전자’가 죽지 않고 꿈틀대고 있다. 군국주의 일본은 1946년 발효된 평화헌법에 따라 어떠한 무력이나 교전권도 없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1950년 한국전쟁을 계기로 경찰예비대를, 2년 뒤에는 이를 보안대로, 또 2년 뒤에는 자위대로 명칭을 변경했다. 걸프전과 9·11 테러 이후 분쟁 지역 개입도 가능해졌다. 일본은 아직도 성이 차지 않은 것 같다. 아사히신문은 그제 아베 정권이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왕을 국가원수의 지위로 격상하고, 자위대를 명실상부한 육·해·군 국군으로 변경하는 두 번째 시도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정권은 2012년 군국주의를 부활하는 개헌안을 들고나와 주변국을 긴장시켰다. 전문에 ‘천황을 모시고’를 삽입하고, 전쟁 포기 조항을 개정했으며 긴급사태 선언에 관한 내용을 넣었다. 과거와 다른 점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 맞춰 중의원을 해산한 뒤 동시선거를 실시해 개헌선을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복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왕과 군국주의 부활이 맥을 같이한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안보에도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이미 아시아에서 중국과 맞서는 군사대국이다. 최첨단 무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위대 병력만 25만명이나 된다. 자위대 명칭을 사용하나, 일본 국군으로 변경하나 알맹이는 다를 게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천황을 모시고 국방군을 가진 일본’은 차원이 다르다. 일본의 우경화는 더욱 속도를 내고 강대국들과 군비경쟁도 벌여 나갈 것이다. 독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무력 개입 가능성도 커진다. 주한 미군의 역할도 축소되고, 남북 통일도 지체되는 등 여러 가지 변화도 예상할 수 있다. 우리로서는 아베 정권의 군국주의화를 막을 방도가 딱히 없다.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건 일본의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일본에는 군국주의 부활을 외치는 사람이 있지만 반대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군국주의의 꿈을 포기하도록 주변국과 공조 외교를 벌여 일본을 압박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외에도 중국과 러시아 등 다자간 안보협력을 제안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화는 ‘태양의 후예’의 논란처럼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군국주의가 부활하기 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강동형 논설위원 yunbin@seoul.co.kr
  • [김현회의 축구싶냐] “일본은 야구나 하라” 24년 전 통쾌한 기억

    [김현회의 축구싶냐] “일본은 야구나 하라” 24년 전 통쾌한 기억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올림픽 축구대표팀이 마침내 '8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웠다.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을 겸해 카타르에서 열리고 있는 2016 AFC U-23 챔피언십에 출전 중인 한국은 4강에서 카타르를 3-1로 이기고 감격적인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다가올 결승 상대가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일본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한일전을 앞두고 24년 전 통쾌했던 그 순간을 다시 한 번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한국의 이번 경기 필승을 바라면서 시간을 24년 전인 1992년으로 되돌려 보려 한다. 모든 게 불리했던 1992년 아시아 예선1964년 도쿄올림픽 이후 한국 축구는 단 한 번도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나서지 못했다. 안방에서 열린 1988년 서울올림픽에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출전했을 뿐 유독 올림픽 무대와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그래서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을 준비하는 한국 축구의 각오는 비장했다. 1964년 이후 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자는 열망이 강했다. 바이에른 뮌헨과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을 이끌었던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디트마르 크라머 감독을 모셔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대한축구협회는 크라머 감독과 함께 칼브 체력 담당 코치, 보버 물리치료사에게만 무려 5억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며 올림픽 본선 진출에 대한 꿈을 키워나갔다. 크라머를 총감독으로 내세우고 감독에 김삼락, 코치에 김호곤을 선임하며 동서양 축구를 접목하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다. 하지만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은 쉽지 않았다. 아시아 최종예선 시작 직전 188cm의 장신 공격수 정우영이 부상을 당해 엔트리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한국을 비롯해 쿠웨이트와 바레인, 카타르, 중국, 일본 등 6개국이 풀리그를 치러 상위 세 팀에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이 돌아가는 방식이었지만 중동 심판이 대거 배정되는 등 분위기도 좋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게 크라머 총감독과 김삼락 감독이 이끄는 한국 선수들은 1992년 1월 13일 격전지인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 도착한 한국은 황당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한국의 첫 경기 상대인 쿠웨이트 주축 미드필더 파와즈 알 아마드가 아시아 1차예선 인도와의 경기에서 폭력적인 행동으로 무기한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당한 상황이었는데 아시아축구연맹(AFC)이 돌연 알 아마드의 징계를 풀어 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측에서 항의를 하자 돌아오는 답은 이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결정 사항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 팀들이 “공식 문서를 보여달라”고 하자 “조만간 증빙 자료를 보여주겠다”고 핑계를 댈 뿐이었다.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오일 머니'의 위력을 새삼 절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알 아마드와 함께 1차 예선에서 경고 누적으로 최종 예선 첫 경기 결장이 불가피했던 바레인 주축 수비수 라작 아바스도 흐지부지 징계가 풀려 동아시아팀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졌다. 중동의 ‘오일 머니’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의심만 할 수 있었을 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알 아마드가 결장한다고 믿고 그에 대해 대비를 전혀 하지 못했던 한국으로서는 발등이 불이 떨어진 셈이었다. 이임생과 이문석 등 수비수들은 알 아마드가 나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가 부랴부랴 그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일본 감독의 도발에 자존심 상한 한국올림픽을 향한 다른 팀들의 열망도 우리에겐 큰 부담이었다. 카타르는 브라질 출신 감독을 선임한 뒤 무려 7년 동안 조직력을 키워왔고 중국은 1차예선에서 51득점 1실점이라는 압도적인 성적을 내며 막강 전력을 뽐냈다. 이에 반해 한국은 1990년 12월 팀을 구성해 13개월간 조직력을 맞춘 게 전부였다. 한국은 33차례 평가전을 치러 23승 3무 7패 85득점 22실점의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이는 필리핀 등 약체들과의 승부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에 크라머 총감독을 비롯한 독일인 코치진과 김삼락 감독 등 한국인 코치진들 사이의 불화도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전승, 혹은 3승 2무로 올림픽에 가겠다”고 장담했다. 한국의 첫 상대 쿠웨이트와는 역대 전적에서 6승 3무 6패의 호각세를 유지하고 있어 부담은 더 컸다. 더군다나 쿠웨이트는 걸프전이 발발하자 선수들을 영국에서 소집해 6개월 동안 합숙훈련을 하며 매주 두 경기씩을 치러 프로팀 이상의 조직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또한 최종예선 바로 직전 10만 달러를 들여 노르웨이를 말레이시아로 초청해 평가전을 치르는 등 ‘오일 머니’를 앞세워 본선 진출에 대한 야심을 불태우고 있었다. 모든 면에서 한국은 불리했고 심지어 여기에 ‘에이스’인 서정원(고려대)은 발등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도 아니었다. 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1992년 1월 18일 쿠웨이트와의 대망의 첫 경기가 열렸다. 하지만 전승을 노리던 한국은 전반 10분 만에 알리에게 선취골을 허용하고 말았고 이후 파상 공세를 펼치며 추격에 나서 전반 30분 노정윤(고려대)이 통렬한 동점골을 뽑아냈다. 서정원이 헤딩으로 연결한 슈팅이 골키퍼를 맞고 흐르자 노정윤이 이를 다시 골문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6분 최악의 순간을 맞게 됐다. 이임생(고려대)이 거친 플레이로 퇴장을 당한 것이다. 10명으로 싸우게 된 한국은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고 여기에 조정현(대구대) 또한 부상으로 교체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1차예선에서 경고를 받았던 김귀화(대우)도 이날 경기에서 경고를 받아 다음 경기에 나서지 못하게 됐다. 심지어 이임생은 다이렉트 퇴장으로 세 경기 출장 정지라는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됐다. 결국 한국은 쿠웨이트와의 첫 경기에서 1-1 무승부에 그치고 말았다. 오히려 후반 막판 쿠웨이트가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공세를 취하지 못한 게 다행일 정도였다. 사흘 뒤 열린 바레인과의 두 번째 경기에서 노정윤의 결승골에 힘입어 가까스로 1-0 승리를 따냈지만 이날 경기에서 한국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였다. 두 경기 연속골을 기록한 노정윤은 후반 30분 만에 근육 경련을 일으키며 김기남(중앙대)과 교체되기도 했다. 이 모습을 본 일본 요코하마 감독은 이런 말로 한국에 도발했다. “붉은 유니폼은 분명 한국의 것인데 그 안의 선수들은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 일본 감독의 도발에 한국은 치욕을 느꼈지만 한국 선수들의 플레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건 사실이었다. 카타르전 충격패, 그리고 운명의 한일전일본 감독의 도발에 자존심이 바닥까지 떨어진 한국은 세 번째 경기에서는 완전히 추락하고 말았다. 경기 전부터 한국팀의 조직력은 이미 깨져 있었다. 발등 부상으로 고전하고 있던 서정원의 투입을 놓고 김삼락 감독을 비롯한 한국인 코치들과 크라머 총감독을 비롯한 독일인 코치진들의 의견이 대립했기 때문이다. 1승 1무를 기록하며 위기에 놓인 한국은 세 번째 경기인 카타르전에서 부상 중인 서정원을 무리하게 투입해 곽경근(고려대)과의 투톱을 형성했지만 점유율을 카타르에 완벽히 내주며 농락당했고 결국 전반 39분 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파헤드의 슛이 수비를 맞고 하르자 이를 무바라크가 가볍게 골로 연결한 것이었다. 후반 2분 카타르는 압둘라가 퇴장 당했지만 이후 강력한 수비를 앞세워 이 골을 지켜냈고 한국은 결국 0-1로 카타르에게 패하고 말았다. 충격적인 패배였다. 1985년 이후 네 차례 경기에서 카타르를 상대로 3승 1무의 절대 우위를 점하던 한국이 7년 만에 카타르에 패했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위해 10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부었고 여기에 독일인 지도자 영입에만 5억 원 가까운 돈을 썼던 한국으로서는 비난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한국인 지도자들과 독일인 지도자들의 갈등도 점화됐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걱정은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점이었다. 1승 1무 1패를 기록한 한국은 다음 경기에서 패하면 무조건 탈락하는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됐다. 그런데 다음 상대는 하필 일본이었다. 일본 역시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이후 무려 24년 만의 본선 진출을 노리고 있었는데 한국과 일본이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게 된 셈이었다. 당시 세 경기를 마친 상황에서 카타르가 3전 전승을 기록 중이었고 중국이 2승 1패로 그 뒤를 따랐다.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1승 1무 1패를 기록하고 있었지만 한국은 골득실에서 일본에 크게 뒤져 있는 상황이었다. 일본이 바레인을 6-1로 대파하며 골득실에서 +4를 유지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의 골득실은 0이었다. 한국이 일본에 지면 무조건 탈락이었고 비길 경우에도 상황이 극도로 불리했다. 마지막 경기에서 한국은 중국을 상대하는 반면 일본은 이미 사실상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낸 카타르와 경기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카타르가 일본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은 일본전에서 무조건 이겨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노정윤의 근육 경련을 보고 한 번 한국에 도발했던 일본 요코하마 감독은 한국전을 앞두고도 독설을 쏟아냈다. “일본이 올림픽 본선 무대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한국 정도야 잡아야 되지 않겠느냐. 후반전에만 들어가면 발이 굳어버리는 한국을 이겨 대성공을 거두겠다. 한국은 이제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각종 악재가 겹친 한국팀을 흔드는 심리전의 쐐기를 박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 발언은 오히려 한국 선수들을 자극했다. 김삼락 감독은 일본전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이기지 못하면 감독직이고 뭐고 축구계를 떠나겠다. 무조건 이긴다.” 1960년대 일본 대표팀을 지도해 한일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크라머 총감독도 이번에는 한발 물러섰다. 작전과 선수 기용 등 전권을 김삼락 감독에게 위임한 것이다. “김삼락 감독이 한국인의 정신력만 일깨워 준다면 틀림없이 한국이 이길 것이다.” 김삼락 감독의 통쾌한 한마디, “일본은 야구나 하라”28년 만에 자력으로 올림픽 본선 진출을 꿈꾸는 한국과 24년 만의 올림픽 본선 티켓을 노리는 일본이 하필이면 이 운명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여기에 한국 축구의 자존심을 긁어내린 일본 감독의 발언 때문에 이 한일전은 그 어떤 한일전보다도 더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은 고민 끝에 부상으로 정상 컨디션이 아닌 서정원을 선발 명단에서 빼고 김인완(경희대)과 곽경근 투톱을 내세우기로 했다. 김삼락 감독의 모험이었다. 일본은 바레인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미우라 후미다케를 비롯해 지노 타키유 등 정예 멤버를 총출동시켰다. 김삼락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이런 말을 하며 한 번 더 각오를 다졌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고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1992년 1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메르데카 국립경기장에서 마침내 운명의 한일전이 펼쳐졌다. 하지만 무승부만 거둬도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놓이는 일본은 경기가 시작되자 탄탄한 수비를 앞세워 골문을 틀어 막았다. 한국 입장에서는 답답한 경기였다. 전반 5분 만에 김인완이 날린 슈팅이 상대 수비를 맞고 골문 밖으로 흘러가는 등 여러 차례 슈팅을 시도하고도 득점으로 연결하지 못하면서 시간을 점점 흘러갔다. 후반 들어서도 한국은 총공세를 펼쳤지만 일본의 수비에 모두 막히고 말았다. 후반 13분에는 노정윤이 날린 슈팅이 상대 골키퍼의 선방에 걸렸고 후반 17분 김병수의 슈팅 또한 골문을 살짝 빗나가고 말았다. 이렇게 시간은 점점 90분을 향해 갔다. 한국이 원치 않는 무승부로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경기장의 선수들과 김삼락 감독, 관중은 물론 텔레비전을 통해 이 모습을 지켜본 모든 이들 역시 다들 시계만 들여다보고 있던 그 순간, 믿기지 않는 장면이 연출됐다. 후반 44분 왼쪽 코너 부근에서 김귀화가 올린 공을 이문석(인천대)이 헤딩으로 연결하자 김병수가 침착하게 왼발슛으로 일본 골문을 가른 것이다. 극적인 결승골이었다. 일본 감독에 따르면 “후반전에만 들어가면 발이 굳어버린다는 한국”이 후반 막판 드라마를 쓴 것이다. 김병수는 완호하며 동료들과 부둥켜 안았고 일본 선수들은 그대로 그라운드에 나뒹굴었다. 올림픽 본선 진출을 놓고 벌인 운명의 한일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1-0으로 짜릿하게 꺾고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순간이었다. 당시 승리는 승점 2점, 무승부는 승점 1점이었는데 일본이 한국에 지면서 마지막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도 승점이 5점밖에 되지 않아 사실상 탈락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김삼락 감독은 흥분한 듯 입을 열었다. 경기 전부터 한국을 향해 연이어 도발을 해온 일본 감독에 대한 응수였다. “정신력의 승리였습니다. 일본 요코하마 감독이 한국을 종이호랑이로 혹평한 데 대해 실력으로 한국 축구의 우월성을 다시 입증해 통쾌합니다. 선수들에게 오늘 일본에만은 절대 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고 저 역시 일본에 지면 축구계를 떠난다는 비장한 각오로 임했습니다. 일본은 축구를 그만두고 인기 있는 야구나 하는 게 좋겠네요. ” 이 장면은 전파를 타고 그대로 안방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전달됐다. 일본 감독의 도발을 실력으로 이겨냈고 통쾌한 말로 한 번 더 이기는 순간이었다. 일본을 잡고 기사회생한 한국은 마지막 경기에서 중국을 3-1로 제압하고 마침내 28년 만의 올림픽 본선 자력 진출의 꿈을 이뤄냈다. 한일전의 역사는 내일도 계속된다한국 선수들에 대한 전국적인 성원도 이어졌다.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도 성과지만 수 차례 도발한 일본을, 그것도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그것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결승골을 넣어 이겼다는 게 너무나도 통쾌했기 때문이다. 1992년 2월 1일 서울역 측은 설날을 앞두고 올림픽 대표 선수들이 미리 기차표를 예매하지 못한 고향에 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급하게 열차 표 6장을 대한축구협회 측에 보내기도 했다. 한국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 자동 출전한 이후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하며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자력으로 진출하는 등 이번 2016 리우올림픽까지 무려 8회 연속 출전하는 세계 최초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이 역사적인 기록의 시작은 바로 한일전 김병수의 짜릿한 결승골부터였고 “일본은 야구나 하라”던 김삼락 감독의 통쾌한 발언부터였다. 이제 한국은 내일(30일) 일본과 2016 리우올림픽 아시아 예선을 겸한 2016 AFC U-23 챔피언십 결승을 치른다. 이미 올림픽 출전을 확정지은 상황이지만 일본과의 자존심 싸움은 여전하다. 24년 전 이때쯤 열린 한일전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통쾌한 발언까지 쏟아냈던 좋은 기억을 되살려 또 한 번 멋진 승리가 우리와 함께 하길 응원한다. 또한 1992년 당시 김삼락 감독과 함께 했던 선수 중 한 명이었던 신태용은 이번 올림픽 대표팀의 수장이 돼 다시 일본을 만나게 됐다. 신태용 감독 또한 일본전을 앞두고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일본에는 개인적으로 단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 과거 그의 발언까지도 화제가 되고 있다. K리그 MVP를 수상하고 J리그에 거액의 이적 제안을 받았던 그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었다. “K리그 MVP는 J리그에 가지 않는다.” 더군다나 이번 한일전을 앞두고 황희찬(잘츠부르크)이 “위안부 이야기를 접했다. 일본전은 무조건 이기고 싶다”고 밝히자 일본 측에서 “한국이 또 다시 정치적인 문제를 들먹이고 있다. 미개하다”고 응수할 만큼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 싸움은 팽팽하다. 통쾌했던 24년 전 그 말을 새기면서 이번에도 한국 축구가 일본 축구를 꼭 이겨줬으면 한다. “일본은 축구 그만두고 야구나 하라. 아, 그런데 야구도 우리가 이겨버렸네.” 축구 칼럼니스트 김현회 footballavenue@nate.com 사진=대한축구협회
  • [열린세상] 엑스밴드 레이더를 중국은 두려워한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엑스밴드 레이더를 중국은 두려워한다/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엑스밴드란 말은 무엇일까? 북한이 4회에 걸쳐 핵실험을 하고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 즉 1998년 8월 31일의 대포동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 어려운 낱말은 어느새 우리 일상 속에 매우 낯익게 다가와 있다. 엑스밴드는 8000에서 1만 2000㎒의 장거리 주파수 대역(帶域)을 지칭하는 말로 먼 거리의 이동 중 물체를 탐지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함의 레이더도 900~1200㎞까지 탐지할 수 있지만 특정 장소의 정밀 탐지는 레이더 출력 에너지를 한 곳으로 모아 200㎞ 정도에 머무르기 때문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 직후부터 탐지하려면 엑스밴드 레이더의 도움이 절실하다. 미국은 본토와 동맹국을 향하는 상대방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 엑스밴드 레이더를 본국 이외 이스라엘·터키 등의 국가에 배치하고 있는데 2006년 9월 일본 아오모리현 샤리키(車力) 지역에 배치된 엑스밴드 레이더는 북한 미사일이 하와이와 알래스카 방향으로 발사될 때를 탐지하기 위해서다. 미국령 괌을 향해 발사되는 북한 미사일을 탐지하기 위해서는 2014년 일본 교토 부근에 엑스밴드 레이더를 배치해 하와이에 배치된 레이더와 연동, 북한 미사일 발사를 발사 직후부터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다. 미국의 엑스밴드 레이더가 외국 영토 내 2곳에 배치된 나라는 일본뿐이다. 그만큼 북한 미사일을 경계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중국 견제가 더 큰 목표다. 하와이에 거점을 두고 태평양에 떠 있는 석유 시추선 모양새를 지닌 세계 최대의 해상 배치 엑스밴드 레이더는 약 4000㎞ 거리의 야구공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이니 미국의 미사일 방어 능력은 시간이 흐를수록 막강해지고 있다. 그 증거로 미국의 미사일 요격 성공률은 걸프전쟁 때의 10%대에서 80% 이상으로 높아지고 있다. 성공률이 높아지는 배경에는 상대방 미사일을 직격으로 맞히는 키네틱 미사일 기술의 발달과 엑스밴드 레이더 출현 덕택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하고 지나온 길을 되짚어 보면 가까운 장래에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어 한국 내의 사드(THADD), 즉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배치 논의도 재검토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국 내에 사드가 배치된다면 중국이 가장 곤혹스러워할 부분은 사드 구성 요건의 핵심인 요격 미사일보다 엑스밴드 레이더가 한국 서해안에 배치되는 것이다. 백령도나 평택, 오산 등에 배치된다면 탐지 거리가 1000~1800㎞에 이르러 북한은 물론 중국 동해안의 상하이, 톈진, 다롄에 배치돼 있는 미사일 기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게 된다. 중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결합하는 상황을 막지 못하게 되면 미국은 그 빌미로 한국 내에 엑스밴드 레이더의 설치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탄두가 일본 열도를 넘어 태평양으로 날아가자 10년에 걸쳐 사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미국의 엑스밴드 레이더는 일본 내 두 곳 샤리키와 교토에 배치했으나 요격 미사일은 바다에 떠다니는 기존의 콩고급 이지스함을 1척당 개조비용 3400억원을 들여 SM3 미사일을 장착했다. SM3 미사일은 상대방 미사일을 우주 공간에서 10t 무게의 트럭이 시속 966㎞ 속도로 직격하는 것과 유사한 파괴력을 갖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까지 속수무책으로 맞닥뜨려 있는 한국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중국이다. 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북한의 핵 개발을 저지할 국가는 중국이기에 4회에 걸친 북한 핵 개발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엑스밴드 레이더의 한국 내 배치는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백척간두에 서 있는 마당에 중국에 더이상 저자세로 응대할 수는 없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실험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 [北 4차 핵실험 이후] 핵폭탄 등 무기 31t 탑재…3000㎞ 떨어진 곳서 北 지휘시설 타격 가능

    [北 4차 핵실험 이후] 핵폭탄 등 무기 31t 탑재…3000㎞ 떨어진 곳서 北 지휘시설 타격 가능

    북한의 핵실험 나흘 만인 10일 괌 엔더슨 기지를 떠나 한반도 상공을 시위 비행한 B52는 ‘하늘을 나는 요새’라 불리는 미군의 대형 장거리 전략 폭격기다. 미군의 B52 등 전략 폭격기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함께 미국 본토와 동맹국이 핵 공격을 당했을 때 이를 보복하는 ‘핵 보복무기 3대 축’에 해당한다. B52는 최대 상승고도가 약 16.8㎞에 달해 고고도 침투가 가능하며 최대 항속거리는 1만 6000㎞로 6400㎞ 이상의 거리를 날아가 단독 폭격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올 수 있다. 길이 48m, 너비 56.4m, 무게 221.35t인 대형 폭격기 B52는 핵폭탄을 포함한 최대 31t의 폭탄을 싣고 ‘융단 폭격’을 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기체로 평가된다. B52는 사거리 200㎞인 AGM69 공대지 핵미사일(SRAM)과 사거리 2500~3000㎞인 공중발사 순항미사일, 지하시설 파괴용 벙커버스터(GBU57) 등 재래식 폭탄 35발과 순항미사일 12발 등을 탑재할 수 있다. 그중 사거리 2500㎞인 AGM86 공중발사 순항미사일과 사거리 3000㎞인 AGM129 핵탄두 스텔스 순항미사일은 목표물 타격 정확도가 100m 이내로 북한의 지상 지휘부시설을 원거리에서 타격 가능하다. 1952년 첫 비행을 한 B52는 원래 핵폭탄만 탑재했지만 이후 순항미사일과 재래식 폭탄 등을 운영할 수 있도록 개량됐다. 1991년 걸프전에서는 미국 본토를 이륙한 B52 편대가 총 1624회의 임무 출격을 통해 2만 5700t에 달하는 7만 2000발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열린세상] 프랑스여, 테러리스트가 원하는 것을 주지 말라/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열린세상] 프랑스여, 테러리스트가 원하는 것을 주지 말라/조성호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

    지난 13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 사건은 상당한 후폭풍을 낳고 있다. 우선 유럽연합 국가 간에 철저한 국경 검문을 시행하는 방향으로 ‘솅겐 조약’이 개정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조약 폐기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변화는 이민자들에 대한 프랑스의 관용정책이 후퇴할 조짐이 역력하다는 점이다. 세 번째 변화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에서의 이슬람 혐오주의의 급속한 확산이다. 이러한 변화는 모두 ‘다양성 속의 통합’이라는 유럽연합의 근본 가치의 상당한 후퇴를 의미한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는 이슬람국가(IS)에 대한 프랑스의 전쟁 돌입에 있다. 테러 직후 IS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고 연일 공습을 감행하고 있는 프랑스는 항공모함 샤를드골호를 시리아 연안에 배치해 전력을 세 배 이상 강화했다. 여기에 러시아와 미국 등 열강의 화력이 보태져 IS는 그야말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형국에 처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프랑스의 조치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사정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IS에 대한 서방세계의 공습은 상당한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 보복이 광범위해질수록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의 양산은 불가피해지는데, 이는 IS를 서방세계의 무차별 공격의 피해자 위치에 서게 할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IS에 대한 이슬람 세계의 광범위한 동정론이 일게 돼 IS는 자신의 세력을 결속하고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설령 이번 전쟁을 통해 IS가 와해된다 하더라도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가 IS로 대치됐듯이 또 다른 더욱더 극렬한 테러 집단을 만들어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프랑스를 비롯한 서방세계를 더욱더 곤혹스럽게 만들 것이다. 2차 세계대전에서 대략 6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대부분 민간인이었다. 걸프전쟁에서도 대부분의 사상자는 이라크 군사들이 아니라 인구 밀집 지역의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이었다. 9·11 테러 이후의 대규모 테러 전쟁, 즉 미국과 동맹국들의 아프가니스탄 폭격과 침공에서조차도 군인들보다 민간인이 더 많이 희생됐다. 이것이 테러와의 전쟁이 지니는 궁극적 자가당착이다. 올해 6월 3일 파리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 참석한 미 국무부 부장관 토니 블링컨은 ‘이슬람국가 격퇴를 위한 국제전선’ 출범 후 1만여명의 IS 병사가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함께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 수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프랑스의 역사는 1789년 시작된 프랑스대혁명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의 절대적 가치, 그리고 민권의 중요성을 세계 만방에 전파했다는 점은 프랑스대혁명의 위대한 유산이다. 하지만 자코뱅당이 장악했던 혁명 정부가 행했던 공포정치는 테러와의 전쟁에 나선 프랑스 정부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뼈아픈 역사다. 자코뱅당의 공안위원회 위원장 로베스 피에르는 1년 사이에 1만 7000명을 단두대로 처형했고, 반정부 운동의 중심지였던 어느 한 지방을 진압했을 때에는 한꺼번에 무려 25만명을 학살했다고 한다. 혁명으로 인한 혼란을 수습한다는 명분으로 반혁명 세력을 무자비하고 철저하게 처형했던 것이다. “인권을 억압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일, 그것은 자비입니다. 그런 자들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야만입니다. 폭군의 잔인함은 그저 잔인함일 뿐이지만 공화국의 잔인함은 미덕입니다.” 로베스 피에르가 자신의 공포정치를 정당화하면서 했던 말이다. 자유를 위해 자유를 없애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무고한 시민의 희생에 대한 보복으로 또 다른 무고한 시민의 희생을 정당화하지는 말아야 한다. 악의 뿌리는 뽑되 선량한 사람들이 같이 뿌리 뽑히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이슬람국가는 자신들을 비웃는 우리를 비웃을 것이다. 프랑스여, 테러리스트가 원하는 것을 주지 말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달라. 진정한 문명인과 야만적 파괴자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지를 온 인류에게 보여 달라.
  • [부고] ‘40년 사우디 외무장관’ 사우드

    40년간 외무장관을 지내 ‘세계 최장수 외무장관’ 타이틀을 가진 사우드 빈 파이잘 빈 압둘라지즈 알사우드(일명 사우드 알파이잘) 전 사우디아라비아 장관이 9일 미국에서 별세했다. 75세. 3대 국왕 파이잘의 셋째 아들인 사우드 전 장관은 1940년 태어나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75년 외무장관을 겸임하던 부왕이 암살당하자 후임 국왕 칼리드에 의해 외무장관으로 임명됐다. 고인은 지난 4월 건강 문제로 외무장관직에서 물러났다. 아랍 지역의 격변기에 외무장관을 맡았던 고인은 1970~80년대 레바논내전, 아랍과 이스라엘 평화협정, 1990년 걸프전쟁과 2003년 이라크 전쟁 등에 아랍 현대사를 써내려 갔다. 또 재임 40년 동안 조용한 외교로 사우디의 ‘아랍 맹주’ 지위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견실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노숙 귀순’을 둘러싼 의혹들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노숙 귀순’을 둘러싼 의혹들

    지난 15일 아침, 중부전선 경계를 담당하고 있는 강원도 화천의 제15보병사단의 전방초소(GP : Guard Post) 앞에서 앳된 얼굴의 북한군 1명이 발견됐다. 이 병사는 함경남도 함흥에 있던 부대에서 탈영해 약 8일에 걸쳐 무려 200여 km를 이동해 강원도 화천의 우리 측 15사단 지역에 도착했다. 국가정보원과 군, 기무사 등 관계당국 전문가로 구성된 합동심문조의 조사 결과 이 병사는 15일 아침 7시 55분경에 우리 초병에게 발견되기 하루 전인 14일 야간에 군사분계선(MDL)에서 약 500m 가량 떨어진 언덕에서 노숙한 뒤 북한군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지나 우리 측 GP 상황실 4m 앞까지 접근하기 전까지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았다. 군 경력이 오래 되었거나 특수부대 출신도 아닌 19살의 어린 병사가 함경남도에서 강원도까지 어떻게 감시망을 뚫고 우리 측 초소 코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던 것일까? ▲ 어떻게 넘어왔나?...탈출 행적 의문투성이 귀순 병사는 자신이 함흥에 있는 제7군단 예하 부대에서 대좌 계급의 보위군관 운전병으로 복무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대의 실세 중의 실세인 보위군관의 운전병이었는데 고참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그의 탈북 동기부터 의문스럽지만, 약 일주일간의 탈출 행적 역시 의문 투성이다. 이 병사가 근무했던 부대는 보위부장이 대좌 계급인 군단 직할 기갑여단이나 직할 경보병여단의 보위부장 운전병이었으며, 근무 지역은 함흥시 남서쪽 지역에 있는 동흥산 일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일 부대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면 함흥과 강원도 원산을 잇는 7번 국도를 타고 남하해 원산시와 고산군 일대를 지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병사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그리 길지 않았을 것이다. 차량 성능과 연료 문제 때문이다. 북한군이 대좌급 군관에게 지급하는 차량은 러시아제 우아즈(UAZ)-469 사륜구동차량 또는 이를 모방한 소위 ‘북경호’, ‘갱생호’ 등이다. 이 차량은 2,500cc급 휘발유 차량인데 연비가 5~6km/l에 불과해 장거리 주행이 어렵다. 또한 북한군은 전시 체제가 아니라면 탈영이나 반란 등을 우려해 전투장비나 차량에 연료를 가득 채우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병사는 함흥에서 탈출해 남쪽의 신상노동지구나 정평읍 일대에 차량을 버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병사는 일주일동안 제대로 된 보급도 없이 험준한 산악지형을 헤치며 일주일 만에 150여km를 이동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키 163cm, 54kg의 왜소한 병사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감시망을 뚫고 하루 평균 20~30km씩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까? 참고로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의 남침 속도는 하루에 10km, 걸프전 당시 다국적군 기갑부대의 진격 속도는 하루 평균 16km 수준이었으며, 우리 특전사는 천리행군 훈련 시 하루 평균 44km를 걷고 녹초가 된다. 그런데 이 병사는 수십 개의 검문 초소가 있는 200km에 달하는 길을 7일 만에 넘어 왔다. 한 가지 또 의심해 보아야 하는 것은 이 병사가 이용한 탈출 루트이다. 거주이전 및 여행의 자유가 없는 북한은 각 도로마다 거미줄처럼 설치되어 있는 초소에서 계급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이동 인원을 검문한다. 탈영한 병사가 함흥에서 화천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정평읍과 고원읍, 문천시와 원산시, 고산군과 창도군을 지나야 한다. 이를 행정구역 경계선에는 어김없이 초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 초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당에서 발급하는 여행증명서 또는 출장증명서, 전연지구 여행증명서 또는 전연지구 출장증명서, 도내 여행증명서 등이 필요하다. 이 병사는 검문 인원에게 “약초를 캐러 왔다”고 둘러댄 것으로 전해졌지만, 이 경우 함경남도에서 강원도로 넘어오는데 필요한 출장증명서와 도내 여행증명서, 휴전선으로부터 40km 이내 지역 통행을 위한 전연지구 출장증명서를 반드시 소지하고 있어야만 검문 통과가 가능했겠지만, 이 병사는 그러한 증명서 없이 화천까지 내려왔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탈출 시기’이다. 이 병사가 근무했던 함흥 지역은 최근 김정은이 머물고 있는 함경남도 락원군과 20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고, 일명 ‘요덕 수용소’라 불리는 ‘제15호 관리소’와도 20km 가량 떨어진 곳이다. 요덕수용소 일대는 정치범들의 탈출을 막기 위해 인근 도로와 능선에 몇 겹의 초소와 감시 시설이 설치된 곳이어서 과거부터 경계가 삼엄하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함흥 일대 역시 김정은이 방문하는 ‘1호 행사’를 앞두고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호위사령부와 인민보안성 요원들이 대거 배치되어 평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강력한 경비 체제를 구축해 놓았을 것이다. 평소에도 경계가 삼엄한 지역을, 더욱이 김정은이 방문해서 경비가 더욱 강화되었을 지역을 우리나라의 이등병에 해당하는 하전사가 혼자서 통과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북한의 주민 감시체제와 김정은 외곽 경호 체제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이 귀순 병사는 함흥이 아닌 휴전선 인근 부대에서 탈영했거나 복무했던 부대가 경보병여단이나 군단 정찰대대와 같은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계당국은 이 부분에 대해 면밀하게 조사할 필요가 있다. ▲ 경계 작전은 ‘양호’, 장비 성능은 ‘실패’ 북한군 병사 귀순 사건이 발생하자 정치권과 여론은 “2012년의 노크 귀순 충격이 다시 떠오른다”면서 15사단의 경계 작전 실패에 대해 성토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15사단 경계 작전 책임자들은 얼마나 큰 징계를 받아야 할까? 이번에 북한군 하전사가 귀순한 GP는 군사분계선(MDL)과 가장 가까운 최전방 감시초소다. 평시 휴전선 일대의 북한군 움직임을 감시하고, 전시에는 생존을 사실상 포기하고 밀려오는 적과 집중포격을 맞으며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 임무다. 이 때문에 GP는 마치 중세 요새처럼 만들어진다. 원활한 감시를 위해 인근 고지에서 가장 높은 고지, 이른바 ‘감제고지’에 꼭대기에 설치되며, 10m 안팎의 콘크리트 벽과 비슷한 높이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초소에 관측용 창은 있지만 창문은 없으며, 유사시 사격을 위해 작은 총안구만 설치되어 있다. 과거에는 GP 근무자들이 각 초소와 감시창을 통해 육안으로 전방을 감시했으나, 최근에는 기술 발전에 힘입어 첨단 감시 장비들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이번에 귀순 사건이 발생한 GP에도 최신형 열상감시장비(TOD : Thermal Observation Device)인 TAS-815K가 설치되어 있었다. TOD는 이름 그대로 열을 통해 물체를 탐지하는 장비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또는 물체는 각각 고유한 적외선 복사에너지를 방출한다. 이 점에 착안, 적외선을 감지해 이를 이미지화하여 모니터에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TOD이다. TOD가 배치되어 있다면 이론상 달빛이 없는 칠흑같은 무월광 상태에서도 감시가 가능하지만, 현실은 이론이나 카탈로그 데이터와는 거리가 좀 멀다. 장비 제조업체가 발표하는 카탈로그 데이터에 기재된 탐지거리는 통상 사막과 같이 습도가 대단히 낮은 환경에서의 측정 결과인 경우가 많다. 문제는 습도가 대단히 높거나 안개가 발생한 지역에서는 열영상 장비의 탐지 가능거리나 해상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TOD 장비는 인체나 물체가 방출하는 적외선 에너지를 탐지하는 장비인데, 안개가 끼거나 습도가 높아질 경우 대기 중의 수중기가 적외선 파장을 흡수하거나 산란시키기 때문에 탐지거리는 급격하게 짧아진다. 특히 36.5도의 체온을 갖는 인체가 방출하는 적외선 파장대는 8~14㎛ 대역인데, 일반적인 열영상장비가 사용하는 장파장 적외선(LWIR : Long-wave Infrared) 카메라는 8~12㎛ 대역에서 습도에 의한 파장 소실 또는 산란이 가장 심하게 발생한다. 비가 오거나 안개가 심하게 끼는 날에는 사람을 탐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3~5㎛ 파장대를 사용하는 중파장 적외선(MWIR : Mid-wave Infrared) 카메라가 등장했지만, 카메라에 들어가는 감지기와 냉각기의 성능이 더 고성능이 요구되므로 LWIR 카메라에 비해 가격과 운용 유지비가 대단히 비싸기 때문에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우리 군이 대량으로 배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점은 TOD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군이 최근 서북도서에 전력화한 스파이크(Spike) NLOS(Non Line Of Sight) 미사일 역시 여러 유도옵션 가운데 영상 적외선(Image Infrared) 유도방식은 해당 지역의 잦은 해무로 인해 사용하지 못하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 높은 습도는 장파장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는 장비의 공통된 취약점인 것이다. 귀순 사건이 발생한 화천군 노동리 소재 GP 전방에는 남대천이 흐르고 있었고, 이 때문에 평소에도 안개가 자주 발생했는데, 14일 8시 30분경부터 안개가 끼기 시작해 자정 무렵에는 TOD로 전방을 관측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안개가 심했다. 여기에 녹음기(綠陰期)인 6월에는 GP 전방의 수풀 성장 속도가 빨라 사람 키만 한 풀숲이 우거지기 때문에 이러한 지형에 안개까지 자욱했다면 육안이나 TOD를 이용한 인원 탐지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러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열영상 감시장비 외에 전파를 사용하는 대인레이더 운용의 필요성도 제기되지만, 현재 우리 군이 운용하고 있는 대인레이더 RASIT-E는 성능이 떨어지고, 이스라엘이나 영국의 신형 대인레이더인 RPS-42나 B400 등은 TOD 장비 가격의 3~6배에 달하기 때문에 현재 예산 사정으로는 GP에 대량 배치하는 것이 어렵다. 문제는 군 복무기간 단축과 병력 부족 심화로 인해 전방 지역 경계 작전의 무인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투자가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병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병력이 빠진 자리를 장비가 완벽하게 대체하지 못한다면 ‘노크 귀순’, '노숙 귀순‘과 같은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발생할 것이다. 이일우 군사통신원(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기고] 인도 코끼리 등에 올라타라/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기고] 인도 코끼리 등에 올라타라/조충제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18~19일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다. 1993년 9월 나라시마 라오가 인도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후 22년 만이다. 물론 그사이 만모한 싱 총리가 두 번 우리나라를 방문했지만 주요20개국(G20) 정상회담, 핵안보 정상회담 등과 연계된 것이었다. 그동안 인도의 위상은 놀랄 만큼 높아졌다. 1990년대 초 인도는 중동 파견 근로자의 송금으로 외환을 충당했다. 그러다 걸프전 발발로 외환보유고가 11억 달러까지 곤두박질치면서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를 요청했다. 그런 인도와 오늘날 인도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다. 외환보유고는 3500억 달러를 넘어서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이다. 경제 규모는 인도가 우리를 추월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우리나라가 1조 5000억 달러를 돌파하지 못한 사이 인도는 2조 달러를 돌파했다. 올해부터 인도가 중국 경제성장률을 추월하면 우리나라와의 경제 규모 격차는 더욱 확대된다. 10년 후 인도의 경제 규모는 오늘날 중국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본격적으로 달리는 인도에 올라타야 한다. 중국의 성장 속도가 주춤한 상황에서 인도만큼 빠른 속도로 성장할 거대 시장은 없다. 우리 입장에서 인도와의 경제협력 강화는 과거 중국과 그랬던 것처럼 선택이 아닌 숙명이다. 경제협력 환경도 급격하게 개선되고 있다. 라구람 라잔 인도중앙은행 총재 취임 이후 거시경제 건전성이 보다 강화됐고, 국제 유가 하락이라는 호재까지 유지되고 있다. 여기에다 강력한 실행력으로 구자라트를 ‘인도의 중국’으로 급성장시킨 모디 총리가 친기업·고성장 정책 즉 ‘모디노믹스’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촉이 빠른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미 인도로 몰려들고 있다. 올 1월까지 모디 총리 집권 10개월간 외국인 투자는 36% 급증한 255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보다 10배 이상을 인도에 투자하는 일본은 모디 총리 취임 직후 가장 먼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약 1500㎞에 달하는 델리-뭄바이 산업회랑 사업을 주도하며 신칸센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인도 내 일본 기업 전용 공단은 이미 가동 중인 5개 이외 추가 개발을 진행 중이고, 6개 스마트시티 개발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일본 공무원과 인도 공무원이 한 팀을 이뤄 일본·인도 경제 협력을 지원하는 ‘재팬 플러스’를 인도 상무부에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일본·인도 간의 정상회담이 1년에 거의 두 차례씩 정례적으로 개최되고, 양국 경제 및 산업 관련 부처 차관들로 구성된 소위 코어그룹 회의가 지난해 신설됐다. 우리는 이대로 가면 달리는 인도에 올라타기는커녕 놓치기 십상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도 유리한 점이 많다. 승용차, 가전제품, 휴대전화 등 우리 대기업 제품들이 점유율 1~2위를 유지할 정도로 우리 제품, 브랜드,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고 선호도가 좋다. 모디 총리가 주도하는 제조업 육성 정책인 ‘메이커 인 인디아’에 가장 적합한 파트너가 우리나라임은 서로 공유된 인식이다. 모디 총리의 방한이 양국의 장점을 극대화해 경제 협력의 폭과 깊이가 훨씬 확대되고, 양국 간 정상회담이 정례적으로 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여성 인신매매 전담” 충격적 진실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여성 인신매매 전담” 충격적 진실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여성 인신매매 전담” 충격적 진실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델타 포스는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의 첫 기습 지상작전으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대원 32명이 사망했다. 라미 압델 라만 SOHR 소장은 “미군의 작전으로 사망한 IS 대원 32명 중에는 4명의 간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석유와 재무를 담당하는 고위 지도자 아부 사야프 외에 IS 국방차관격의 지도자, IS 홍보 담당 간부 등이 사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부 사야프는 IS의 군사작전 지휘와 함께 석유·가스 밀매 등 재정문제를 담당해 온 고위 지도자로, IS의 주요한 ‘돈줄’이 석유밀매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사망은 IS에 적잖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그의 아내인 음 사야프 역시 IS 조직원으로, 각종 테러행위 가담은 물론이고 인신매매에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날 작전 현장에서 노예로 잡혀 있던 소수계 야지디족 출신 젊은 여성 1명을 구출했다. 이번 작전과정에서 아부 사야프와 더불어 IS 조직원도 사살됐으며 미군의 희생은 전혀 없었다. 카터 장관은 “이번 작전 중 사망하거나 부상한 미군은 없다”면서 “이번 작전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어디서든 도피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거듭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인신매매 담당” 작전 당시 상황은?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인신매매 담당” 작전 당시 상황은?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생포 아내 “인신매매 담당” 작전 당시 상황은?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델타 포스는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의 첫 기습 지상작전으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대원 32명이 사망했다. 라미 압델 라만 SOHR 소장은 “미군의 작전으로 사망한 IS 대원 32명 중에는 4명의 간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석유와 재무를 담당하는 고위 지도자 아부 사야프 외에 IS 국방차관격의 지도자, IS 홍보 담당 간부 등이 사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부 사야프는 IS의 군사작전 지휘와 함께 석유·가스 밀매 등 재정문제를 담당해 온 고위 지도자로, IS의 주요한 ‘돈줄’이 석유밀매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사망은 IS에 적잖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그의 아내인 음 사야프 역시 IS 조직원으로, 각종 테러행위 가담은 물론이고 인신매매에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날 작전 현장에서 노예로 잡혀 있던 소수계 야지디족 출신 젊은 여성 1명을 구출했다. 이번 작전과정에서 아부 사야프와 더불어 IS 조직원도 사살됐으며 미군의 희생은 전혀 없었다. 카터 장관은 “이번 작전 중 사망하거나 부상한 미군은 없다”면서 “이번 작전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어디서든 도피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거듭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는 생포해 구금 중…인질구출은 실패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는 생포해 구금 중…인질구출은 실패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는 생포해 구금 중…인질구출은 실패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IS 격퇴 첫 지상작전… 델타포스, 베일의 ‘IS 금고지기’ 사살

    美, IS 격퇴 첫 지상작전… 델타포스, 베일의 ‘IS 금고지기’ 사살

    주변이 칠흑같이 깜깜한 15일 밤(현지시간) 시리아 동부의 전략 요충지인 알아므르. 시리아 락까와 이라크 국경 사이에 자리한 이곳에 이라크 기지에서 출발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 대원 수십명이 헬기 블랙호크와 최신형 수직이착륙기 오스프리에 나눠 타고 도착했다. 대원들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아부 사야프가 머무는 건물로 들이닥쳤다. 이들은 총을 쏘며 저항하는 국방차관급 지도자 등 간부 4명을 포함해 IS 조직원 30여명을 살해하고 여자와 아이를 방패 삼아 저항하는 사야프를 조준 사살했다. 사야프의 부인 움 사야프를 생포해 이튿날 새벽 모두 무사히 귀환했다. 전광석화 같은 작전은 몇 시간 만에 종료됐다. ●美 사상자 한명도 없이 몇 시간 만에 무사 귀환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마무리된 이날 작전은 미군 특수부대가 IS를 상대로 성공을 거둔 첫 지상전이다. 미군이 인질 구출을 위해 특수부대를 투입한 적은 있지만 IS 격퇴와 지도자 사살을 위해 특수부대를 동원한 것은 처음이다. IS의 거점에서 한 작전이라 위험성이 높았다. 애슈턴 카터 미 국방부 장관은 16일 성명에서 “백안관의 승인 아래 어젯밤 미군 특수부대가 시리아 동부에서 작전을 수행했다”고 공개했다. 생포된 사야프의 아내는 이라크 미군 기지에 수감된 상태다. 사야프는 ‘검을 찬 사람’이라는 뜻이다. 본명은 나빌 사딕 아부 살레 알자부리다. IS의 최고재무책임자(CFO) 격으로 석유·가스 밀매 등 재정 등을 담당한다. ‘ISIS: 테러집단의 내부’를 저술한 마이클 바이스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사야프는 조직 내부에서도 존재를 잘 모를 만큼 베일에 싸인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작전으로 미국이 IS의 ‘돈줄’에 관한 정보를 거머쥐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우스플로리다대의 데릭 하비 교수는 “미군이 입수한 사야프의 비밀 장부에는 해외 수니파 기부자들 명단과 터키, 레바논의 관련 기업 정보, 은행 거래 내역, 밀입국 네트워크 등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델타포스는 잔뜩 구겨진 체면을 되살렸다. 공식 명칭인 ‘전투적응단’(CAG)보다 제식명인 ‘육군 특전단 제1파견대-델타’로 더 유명한 이 부대는 미군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1977년 발족 이후 베네수엘라 여객기 인질 구출 작전,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가니스탄 침공 등 주요 작전에서 수십 차례 굵직한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지난해 7월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미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 구출 작전과 올 1월 요르단 공군 조종사 및 이탈리아 여성 인질 2명 구출 작전에서 IS의 저항 탓에 잇따라 실패하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美 내에서 ‘지상군 투입’ 논란 다시 불거질 듯 이번 작전으로 미국에선 지상군 투입 논란이 다시 불거질 조짐이 보인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압박에도 전면적 지상군 투입에는 반대해 왔다. 이번 작전은 전면적인 지상군 투입과 거리가 있으며 미 정부가 공개한 제한적 지상전 구상의 일환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 생포…델타포스 vs 네이비씰 비교해보니 ‘대박’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 생포…델타포스 vs 네이비씰 비교해보니 ‘대박’

    IS 고위 지도자 사살, 아내 생포…델타포스 vs 네이비씰 비교해보니 ‘대박’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델타 포스는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미군 특수부대의 첫 기습 지상작전으로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조직인 ‘이슬람국가’(IS) 대원 32명이 사망했다. 라미 압델 라만 SOHR 소장은 “미군의 작전으로 사망한 IS 대원 32명 중에는 4명의 간부가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석유와 재무를 담당하는 고위 지도자 아부 사야프 외에 IS 국방차관격의 지도자, IS 홍보 담당 간부 등이 사살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부 사야프는 IS의 군사작전 지휘와 함께 석유·가스 밀매 등 재정문제를 담당해 온 고위 지도자로, IS의 주요한 ‘돈줄’이 석유밀매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의 사망은 IS에 적잖은 타격이 될 전망이다. 그의 아내인 음 사야프 역시 IS 조직원으로, 각종 테러행위 가담은 물론이고 인신매매에 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은 이날 작전 현장에서 노예로 잡혀 있던 소수계 야지디족 출신 젊은 여성 1명을 구출했다. 이번 작전과정에서 아부 사야프와 더불어 IS 조직원도 사살됐으며 미군의 희생은 전혀 없었다. 카터 장관은 “이번 작전 중 사망하거나 부상한 미군은 없다”면서 “이번 작전은 미국과 미국의 동맹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에게는 어디서든 도피처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 정부의 단호한 입장을 거듭 환기시켜 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 ‘네비비씰’(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명예 회복’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명예 회복’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명예 회복’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아내는 체포해 구금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아내는 체포해 구금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IS 고위 지도자 사살…아내는 체포해 구금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명예 회복’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명예 회복’

    IS 고위 지도자 사살, 美 특수부대 ‘델타포스’… ‘명예 회복’ IS 고위 지도자 사살, 델타포스 16일(현지시간) 시리아 동부 지역에서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 고위 지도자인 아부 사야프를 사살하고 그의 아내를 체포한 미군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합동특수전사령부(JSOC)의 핵심 전력이다. 국방부의 공식 명칭으로는 전투적응단(CAG)으로 불리지만 육군 특전단 제1 파견대- 델타라는 제식명을 따 델타 포스로 더 잘 알려져있다. 오사마 빈 라덴 제거로 유명해진 해군 특전단 6팀(SEAL Team Six)과 함께 JSOC 특수임무대(SMU)의 양대 축의 하나인 델타포스는 지난 1977년 11월 발족돼 지금까지 온갖 종류의 전쟁과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델타포스는 직접 작전을 수행하는 3개 제대와 지원대를 포함해 800∼1000명 규모로, JSOC 예하부대 중 가장 크다. 통상 5년 이상의 군 경력자 중 지원자를 대상으로 엄격한 체력과 지적 능력 및 심리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부대원들이 다시 6개월 동안 저격술, 폭파술, 차량도피술, 요인경호술 등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하고도 최종 검정을 거쳐야 요원으로서 첫발을 내딛게 된다. 대부분 육군 특전단(그린베레)과 레인저 출신인 요원들은 성공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 등 관련기관에서 위탁교육을 받으며 전문기술을 다지기도 한다. 델타 포스는 창설자 찰스 백위드 대령이 영국 공수특전단(SAS)에서 위탁교육을 받은 경험 때문에 편제, 훈련 등에서 SAS와 유사하다. 델타 포스는 실패로 끝난 이란 인질 구출 작전(1980년)에서부터 그레나다 침공, 걸프전, 보스니아 내전, 아프간 침공과 대 테러전에 이르기까지 수십 차례 각종 비밀작전을 수행해 미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자리매김했다. 델타 포스는 지난해 7월 IS 세력의 중심지인 시리아 동부 락까에 억류된 제임스 폴리 기자 등 미국인 인질 구출 작전과 올 1월 이탈리아 여성 인질 두 명과 요르단 공군 조종사 한 명 등 세 명의 인질 구출 작전 과정에서 IS의 격렬한 저항 때문에 고배를 맛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작전 성공으로 그동안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나마 회복한 셈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25년간 130개국 돌며 ‘야생 무역상’ 자처한 전권열씨

    그는 뭐든 파는 사람이다. 1990년 부산의 태광CMC란 주문자 상표 부착(OEM) 운동화업체에 취직한 것을 시작으로 무역업체 6~7군데를 거치며 해외영업 담당으로 일했다. 5년여 전부터는 프리랜서 무역 중계 및 컨설턴트 일을 하며 2012년 ‘나는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았다’를 펴낸 전권열(50)씨. ‘야생 무역상’을 자처하며 블로그 ‘지구촌 보부상 개성상인’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외 생산 및 수출업체의 해외영업과 마케팅, 바이어 발굴, 오더 수주 등을 하니 쉽게 말해 오퍼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지도를 펼쳤을 때 안 가본 나라를 꼽기가 더 쉬울 그는 파푸아뉴기니의 식인종 추장에게 운동화를 팔고 아프리카에 뻥튀기 기계도 팔았다. 지난달 17일 서울역의 공항철도 탑승 게이트 앞에서 만났는데 열흘 넘게 동남아와 피지를 방문한다고 했다. 피지에는 슬리퍼에 문양을 새기는 기술이 없어 전사지(轉寫紙·도기나 양철에 인쇄할때 쓰는 인쇄화지)를 팔러 간다고 했다. →지금까지 몇 개국을 다녀왔고, 앞으로 여행 계획은 -3년 전 책을 쓰면서 꼽아보고 최근 기억을 더 더듬으니 비행기 경유지를 포함해 130여개국 300여개 도시를 가봤다. 전 세계에 200여개국이 있으니까 그래도 안 가본 나라가 70여개국은 되는 셈이다. 이제 업무적으로 새로운 나라를 갈 일은 없을 것 같고, 관광 삼아 가보고 싶은 곳으로는 카리브해의 벨리즈, 마틴 제도나 중유럽의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 등을 꼽고 있다.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골똘히 쳐다본 기억이 있나. -딱 그렇게 한 적은 없지만, 사회와 부도 및 지리 과목에 꽤 흥미가 있어 여러 나라의 수도를 거의 다 외울 정도였고, 세계지도도 어느 정도 그릴 줄 알았던 것 같다. →첫 출장을 1990년 뮌헨으로 떠난 것으로 아는데. -그때 모스크바와 암스테르담, 취리히, 뮌헨, 스트라스부르를 다녀왔는데 직항이 없어 매번 비행기를 갈아탔다. 떠날 때는 옛소련과 서독이었는데 귀국할 때와 얼마 안 있어 각각 러시아와 독일로 바뀌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비행기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을 텐데 재미있는 일은. -일주일에 시베리아를 두 차례 왕복한 적이 있다. 영국과 벨기에를 다녀왔다가 귀국한 뒤 이틀 만에 다시 독일과 터키를 다녀왔다. 또 하루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등 3개국과 암스테르담,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뮌헨 등을 여행한 적도 있다. 그리고 유럽에서 업무를 보고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 들러 일 보고, 태평양 건너 일본에서 일 보고 귀국했는데 일주일에 지구를 한 바퀴 돌았다. 비행기 탑승한 것만 35시간 걸렸더라. →위험한 고비도 많았을 텐데. -나이지리아 라고스에서 납치도 당해봤고, 강도들을 만나 날치기도 당해서 중요한 서류와 돈이 든 가방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강도 칼에 손도 찔려 봤다(그러면서 그는 오른손의 흉터 자국과 왼손의 관절 부위가 기묘하게 휘어진 것을 보여줬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급한 일 보려다 독사에게 물려 큰일 날 뻔한 적도 있다. →어떤 상품들을 얼마만큼이나 팔았나. -직장 다닐 때는 회사의 데이터로, 그 뒤엔 무역중계 파트너의 데이터로 넘어가기 때문에 정확한 수량과 액수를 산정하기 어렵다. 돈을 제대로 못 받은 적은 없지 않지만 내 실수로 다니던 직장이나 거래하는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적은 없다고 자부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거래는. -남태평양 섬나라의 식인 부족과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맨발에 운동화를 신겨줬던 일이 특이하다면 특이하다. 뻥튀기 기계도 아프리카 나라들에 팔았는데 적은 곡물로 많은 양의 식량을 만들어 식량 개선에 일조했다고 자부한다. 아프리카 시장에 꽃장판과 앙골라칫솔, 물통과 비닐봉지를 판매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경남 합천 출신인데도 전남 무안과 목포, 전북 군산에 인맥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장사꾼이 어딘들 못 가겠나. 지구촌 어디라도 주소만 있으면 찾아다녔다. 국내에서 군 단위로는 울릉군 외에는 거의 다 가본 것으로 기억한다. 전 세계에 인적 네트워크가 풍부한데, 국내는 그러지 못하다면 균형이 어그러지는 것 아닌가? →책에 윤윤수 휠라코리아 회장과의 인연도 상세히 쓰셨던데. -첫 직장에서 휠라 제품의 생산 및 수출 담당으로 일할 때 휠라코리아의 전신인 라인실업 대표로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서울 본사 직원이 6~7명, 부산사무소에 5~6명 일했는데 지금은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키우셨다. 지금도 윤 회장은 “나도 마흔여덟에 시작했어. 지금도 늦지 않았어. 해봐”라고 말씀하시며 “뭐 도울 일 없어?”라고 물어봐 주신다. 각자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내 마음의 멘토로 여겨왔다. 정말로 자랑스럽고 늘 존경한다. →그런 오랜 경험과 지혜를 코트라 같은 곳에서 활용하지 못하나 아쉬움이 드는데. -우리나라 무역을 대표하는 정부기관이 저처럼 해외 틈새시장만 파고든 사람을 활용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일류 대학 출신에 대기업 영업맨들이 다 차지하고 있을 텐데 저처럼 지방대학 출신에 중소기업, 소상공인의 경험을 활용하기 어렵다. 몇몇 무역 관련 기관과 중소기업의 중장년 해외비즈니스 전문가 특채에 응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우리 기업들은 능력과 경력을 따지지 않는 풍토가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미련을 접고, 보람 있게 일하고 있다. →그렇게 고생했으니 큰 기업에 들어가 적당히 편하게 사는 꿈도 있을 텐데. -아무리 돈 많은 회장님도 혼자 사막이나 정글에 못 가지만, 난 세상 어디든 갈 수 있고 회사나 상사의 눈치 보지 않고 소신껏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인맥을 형성하는 비결은. -직장 다닐 때 알게 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필요한 사람을 계속 연결시키다 보니 거미줄처럼 퍼져 나갔다. 보통 해외바이어를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지는데 난 다르다. 비즈니스이건 아니건 수시로 안부 주고받고, 성탄절에 카드나 연하장 보내고 평소 개인적인 일로도 상부상조한다. 세계 어디에서나 돈 잃고 갈 곳 없어도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는 분명 갖고 있다. 그는 늘 ‘길 위의 사람’이지만 첫 출장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권의 여권을 모두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꼼꼼한 사람이다. 여행에 관해 기록된 것들을 보내달라고 했더니 항공권과 버스, 열차, 배 등의 티켓 사진을 보냈는데 모두 42개나 됐다. 동전 사진 파일만 73개, 지폐 사진 파일만 151개나 됐다. 가이드북과 기념책자, 그림엽서 등도 일일이 모아 사진으로 찍어 놓았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 많은 자료를 어떻게 다 모았나. -사람들이 굉장히 활달한 성품인 줄 아는데 군에 입대하기 전만 해도 대단히 내성적이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니 적극적으로 바뀌더라. 본래 성격대로 플로피디스켓부터 시작해 컴팩트디스크를 거쳐 지금은 메모리칩까지, 업무 데이터는 물론 여러 나라를 방문한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자료들을 모두 갖고 있다.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글쎄, 탐내는 이들이 과연 있을까? →한때 우리 경제를 떠받쳤던 상인 정신이 스멀스멀 사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전 여전히 농사도 많이 짓고 제조업도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테크노, 정보기술(IT) 산업이 발달하면서 컴퓨터, 인터넷, 게임 등은 발달되는데 정작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산업들은 정체된 것 같아 안타까웠다. 요즘 젊은이들은 은근과 끈기도 부족하고 힘든 일은 아예 엄두를 못 내고, 사회생활에 적응력도 떨어져 기업에서는 경력자를 선호하고 그러다 보니 취업이 어렵다는 뉴스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대통령마저 나라가 텅 비어도 좋으니 청년들이 중동에라도 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현장을 많이 다녀본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말은 쉽지만 실천은 어렵다는 것이다. 국내의 좋은 환경에서도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이 부지기수인데, 특히 기후와 모든 것이 열악한 중동이라면 글쎄, 많이 어렵다고 본다. →가장 힘들게 한 출장지, 비즈니스 파트너는. -미주지역과 아시아, 중동, 아프리카 시장을 주로 다녔는데 가장 힘든 곳이 중동이었다. 가장 난감했던 비즈니스 파트너는 의외로 미주지역과 중국인데 사람을 실망시키고 농락하는 일들이 빈번해서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신문 인터넷 홈페이지(www.seoul.co.kr)에 이를 상세히 다룬 별도 기사 게재합니다.>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인격을 판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만날 때 원칙이라면. -개인적인 만남일 때는 날 최대한 상세하게 소개하고 비즈니스로 만날 때는 간단명료하게 한다. 상대의 말은 늘 적극적으로, 전부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언어는 장벽이 되지 않나? 나라별 고객 응대법은. -생활용어는 현지어로 쓰고 비즈니스는 영어로만 하는데 영어의 발음도 북미, 중남미, 아프리카, 유럽, 중동, 아시아, 남태평양에서 제각기 다르게 쓴다. 아랍 상인을 대할 때는 유치원생, 초등학생 대하듯이 해야 되고, 터키 상인은 생각보다 냉정하니까 신중을 기해야 한다. 남미상인은 다혈질이라 인내력이 필요하고, 중국 상인은 이기적이면서도 뭐라도 다 해줄 것처럼 과장하는 일이 많으니까 꼼꼼하게 대하는 것이 좋다. →지금까지의 삶, 후회하지 않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시골에서 유년을 보내고 오랜 세월 샐러리맨으로 살아 금전적으로 부유하지 않지만, 특별히 남들보다 많이 외국을 돌아다니고, 많이 보고, 듣고, 느끼고 여러 나라의 소중한 인연과 친구들이 있는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큰 재산이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꼭 팔아보고 싶다는 게 있는지. -배운 거라곤 외국에 장사한 것밖에 없으니까 그것을 밑천으로 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것이다. 아직도 갈 곳도 많고 볼 것도 많으며 뭔가를 팔 곳도 무궁무진하다. 걸어다니는 데 이상이 없을 때까지, 유행가 가사대로 ‘걸어서 하늘까지’는 아니더라도, 비행기나 자동차 타고 걸어서 지구촌 전부는 가봐야 되지 않겠나. 다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해도 지금까지 해온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아프리카와 중동에 가서 곱슬머리를 쉽게 펼 수 있는 고데기를 팔고 싶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25년 동안 135개국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아온 전권열(50)씨는 가장 장사하기 까다로운 지역으로 아랍권을 손꼽았다. 다음은 10년 넘게 아랍권에서 비즈니스를 하면서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은 전씨가 정리한 체험담.    1. 알고 떠나야 후회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제일 특이한 국가, 아랍국은 입국할 때부터 힘겹지만, 그만큼 보람이 있다.  제일 어렵고 골치 아프게 입국 심사를 하는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인데, 특히 수도인 리야드의 국제공항은 더욱 까다롭다. 이곳에서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입국장으로 뛰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입국 수속을 위한 대기에만 2~4시간 걸리기 때문이다.  여권과 비자 심사에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동남아시아에서 들어오는 노동자들이 엄청 많다. 그래서 리야드를 경유해 국내선으로 갈아 타려면 비행기를 놓치기 일쑤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는 미국인이 1순위다. 미국 여권만 가지고 있으면 입국 심사도 수월하게 지나간다. 걸프전 때 나라를 구해줬기 때문이란다.  우리 국민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우선 국내에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현지의 거래처나 지인으로부터 초청장을 받아 주한 사우디대사관에 접수하면 대사관에서 확인을 거친 뒤 비자를 발급해준다.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한국대사관에서는 최소 일주일은 기본이다. 중국이나 다른 대사관처럼 수수료를 많이 내면 빨리 발급 해주는 ‘특급’도 없다.  그나마 요르단과 쿠웨이트는 공항에서 입국 수속할 때 수수료 20여 달러를 주고 비자피 확인증만 받으면 입국할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국내에서 비자를 받든지, 현지 거래처를 통해 호텔 도착 비자를 미리 발급받아야 했지만, 지금은 단기 방문은 무비자로 가능하다.  이스라엘은 비자를 별도 용지(보통 A4)에 받아서 방문해야 한다. 그리고 입국 심사 때에는 여권에 스탬프를 찍지 않으며, 일반 용지로 된 비자에 확인을 해준다.  여행자가 이스라엘의 적대국인 아랍국을 방문할 때 여권에 이스라엘 방문 비자나 입국 스탬프가 있으면 입국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여행자를 배려하는 차원이라고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공기 여승무원은 전부가 개방적인 모로코, 레바논, 이집트 등의 여성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입국할 때, 수년 전에는 사우디아항공만 이용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에미레이트항공이나 여러 항공사가 가세하면서 입국하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제다, 담맘으로도 노선이 생겨 비즈니스 여행자들이 많이 편리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찾는 외국인 대다수는 비즈니스맨이거나 노동자들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특별히 여행할 만한 곳이 없어서다.  언젠가 싱가포르에서 제다행 사우디아항공을 이용했을 때였다. 입국자가 리야드보다 적다는 점 때문이었는데 비행기가 제다까지 가지 않고, 제다행 승객에게 리야드에서 내려서 다른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 타라고 말했다. 독점항공사의 횡포이자 승객들에 대한 서비스는 0점이고, 모든 일정은 항공사 마음대로였다.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리야드에 내려서 악몽 같은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아 다시 국내선 터미널로 이동, 제다행 수속을 밟고 어렵사리 국내선으로 갈아 탔다.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니 방문 절차가 까다로운 국가를 수월하게 방문하는 요령이 생기더라.  언젠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기 위해 마닐라에서 비행기를 갈아 탔는데 내 자리에 여자 승객들이 죽 앉아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도, 해명도 없이 눈만 끔뻑이면서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항의하니까 승무원이 오더니 제멋대로 날 다른 좌석으로 지정하고는 가버렸다. 아랍의 특성상 여성들이 남성들과 함께 좌석에 앉을 수 없다면, 티케팅할 때 미리 여자 승객들끼리 앉도록 배정하면 될텐데, 이건 열차도 버스도 아니고 엄연히 국제선 비행기인데 승객들을 불편하게 하면 되느냐 싶었다.    2. 비행기 뒤쪽 커튼이 쳐진 뒤에서는  아랍의 비행기를 타보면 가장 뒤쪽에 기도하는 장소를 만들어놓고 커튼을 쳐놓은 곳이 있다. 그곳에서 옷도 갈아 입고 이슬람 성지인 메카를 향해 기도 시간이 되면 하나둘씩 기도한다. 이륙한 뒤나 착륙하기 전에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안내방송을 하는데, 아랍 항공기는 제일 먼저 “신을 위하여, 신을 위한, 신에 의해” 안전한 항로가 되기를 기원하는 말부터 한다. 정말로 종교에 심취해 살아가는 것 같다.  아랍국에서 택시를 이용할 때는 미터기를 사용하든 말든 목적지를 말하고 미리 요금을 협의한 뒤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어느 정도 길을 알아둬야 한다. 그래야 택시기사가 엉뚱한 길로 가거나 돌아가는 일이 없다.  아랍국 중에 방문하거나 생활하기가 그나마 자유로운 나라들은 아랍에미리트, 바레인, 요르단, 레바논, 이집트, 모로코 정도다. 반면에 정치적으로 폐쇄된 사회여서 불편한 나라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쿠웨이트, 이란 등이므로 이곳을 방문할 때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아랍의 화장실은 정말 깔끔하다. 일단 들어가면 양변기 옆에 세면기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남자 소변기 옆에는 샤워기 같은 것이 있다. 좌변기 옆에 있는 것은 여성용 비데다. 그리고 소변기 옆의 샤워기는 남성용 세정기다. 무슬림 남녀들은 소변을 본 뒤 반드시 아래를 씻는다. 이런 것이 없다면 주전자에 물을 담아서라도 씻는다. 그것이 이슬람의 성스러움과 신에 대한 예의라고 하니 이해하자. 단, 공공장소 심지어 국제공항 화장실에도 화장지가 없으니 꼭 미리 준비해야 한다.    3.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아랍국 거래처들과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약속 시간을 어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잘 모르는 사람은 짜증이 날 일이지만, 그들의 순수성을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된다.  상대방이 약속 시간을 어겨도 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소기의 비지니스 목적을 이룰 수 있을니까.  아랍인의 시간 개념은 코리안 타임과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 속이 터질지도 모른다. 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10년 이상 아랍 상인들과 비즈니스를 했더니 많이 여유로워졌다.  아랍국에서는 열차도 항상 늦는다. 3~4시간 늦는 것은 예사다. 그런데도 승객들은 불평 한 마디 없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태연하게 신문이나 잡지를 읽는다. 또한 비즈니스 서류를 접수해서 다시 돌아오는 데 빠르면 보름이고 한 달 이상 걸리는 것이 보통이다.  아랍인들은 오랫동안 유목민이었기 때문에 시간을 중시하지 않는다. 또 대다수 무슬림은 다섯 차례 기도 시간을 기준으로 약속을 정한다. 기도 시간은 새벽 4시 반, 정오, 오후 3시 반, 저녁 6시 반, 8시쯤인데 확실히 지킨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과 일할 때는 가급적 이 시간을 피해야 한다. 미팅을 하다가도 기도 시간이 되면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나갔다가 20여분 뒤에나 돌아오기 마련이다.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갔다 와서도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란 식이다.  이들의 시간 개념은 ‘부크라’(내일), ‘인샬라’(신의 뜻대로)’로 함축된다. 오더 수주나 대금 결제가 내일 가능한지 물으면 정확하게 대답하는 법이 없고 항상 ‘인샬라’라고 답한다. 약속한 시간에 나타나지 않거나 아예 약속 자체를 깨고도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뭐라고 할라치면 ‘마알레쉬’(개의치 말라)라고 한마디 할 뿐이다.  이 말은 상당히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말이지만, 불성실한 행동의 책임을 전가하는 말로 즐겨 쓰인다. ‘부크라’는 내일이 아닌 다음 주, 다음 달, 내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관공서나 거래처에 좀 늦게 방문하면, 아랍인들은 내일 오라고 말한다. ‘바덴’은 나중에, 다음에란 뜻이지만, 진짜 의미는 “지금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아랍국 상인들과의 협상은 인내력 테스트나 마찬가지다. 한 바이어와 상담할 때에도 같은 장소를 몇 번씩 왔다 갔다 해야 한다. 그러니 하루에 여러 군데와 상담할 수가 없다. 따라서 아랍국 바이어들과 상담 약속을 할 경우엔 하루나 이틀에 한 업체로 제한해야 할 것이다.    4. 그래도 아랍 비즈니스는 재미있다. 왜?  사막 지역의 나라에서는 대부분 오후 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오침 시간이 있다. 관공서를 포함한 모든 사무실이 그 시간에 문을 닫는다. 대신 오침 시간이 끝나는 오후 6시부터 밤늦게, 보통 11시까지 일한다.  아랍국 상인들과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때는 바디 랭귀지를 잘 살펴야 한다. 아랍인은 애매한 것들은 말로 하기보다 제스처로 표현하는 습관을 갖고 있다.  가볍게 고개를 상하로 끄덕이며 동시에 눈을 끔벅이는 것은 긍정의 뜻이다. 눈썹을 치켜 세우며 입술을 오므리고 혀를 잇몸 가까이 대고 혀 차는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머리를 위로 약간 쳐들면 부정의 뜻이다.  아랍국 상인들은 질보다 양이 먼저다. 그들은 실제로 그만큼 주문하지도 않으면서, 수량이 얼마나 되냐고 물으면 무조건 컨테이너 단위로 대답한다. 그러면 수출업자가 가격을 싸게 주지 않을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에 현혹되면 안 된다. 싸게 가격을 내놓으면 또 내려달라고 덤빈다.  결제 조건이나 가격도 꼼꼼히 따진 뒤에 결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달콤한 말에 넘어가 요구하는 대로 계약한 뒤 신용장을 받으면, 바이어가 유리한 조항들로만 가득할 것이다. 바이어가 마음에 안 들거나 수출자가 따지면 바로 계약을 취소하고 다른 거래처와 계약해 버린다.  그러니 아랍 상인들은 유치원생 다루듯이 살살 어르고 칭찬하면서 온갖 말로 유혹해야 한다. 세계에서 제일 비즈니스하기 까다로운 것이 아랍인이라고 하지만, 거래를 하다 보면 그들보다 쉬운 거래처가 없다고 여기게 될 것이다.  한번은 아랍 상인과 가격 문제로 신경전을 벌인 적이 있다. 내 상황에서는 단가를 5센트 인상해야 그나마 조금 남을 형편인데, 아랍 바이어는 막무가내였다. 몇 번이나 설득해도 안 되자 내 말대로 계약하면 지금 현금 200달러를 줄테니 아이한테 과자나 사주라고 했다. 그랬더니 덥석 돈을 받고는 5센트를 올려주었다. 사실 5센트를 인상하면 500달러가 남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200달러를 주었으니 300달러가 남는 흥정이었다.  이처럼 아랍인들은 단순하다. 그 점을 잘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 바이어들에겐 그런 식으로 할 필요도 없거니와, 아예 그런 시도는 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5.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아랍식 관용어들  아랍인들은 장난스럽고 허물없는 것처럼 보이는데, 자칫 잘못하면 말재간에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비즈니스 상담은 대부분 영어로 진행하지만, 간혹 아랍어가 필요할 때도 있다. 능숙하게는 못하더라도 기본적인 말은 익혀두어야 한다.  아랍에서는 애정 섞인 표현으로 사람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하비비(habibi)’란 말이 있는데, 연장자가 아랫사람을 친밀하게 부르는 말이다.  원래는 이성간에 사용하는 말이다. 같은 식으로 ‘이브니(ibni)’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본래 뜻은 ‘나의 아들’이다. 동년배끼리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농담할 때나 비아냥 거릴 때다. 반면에 ‘야 왈라드’라는 말은 ‘꼬마야’라는 뜻으로 길거리의 신문팔이 아이를 부를 때 쓴다고 한다.  무슬림들의 인사는 꽤나 길다. 상대의 인사말보다 더 나은 인사로 하든지, 적어도 동등한 수준에서 응답해야 한다. 이를테면 ‘싸바훌 카이리(아침 인사 : 안녕하세요?)’란 말이 있는데, ‘카이리’는 행운, 안녕을 뜻한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표현이 ‘누르(빛)’이기 때문에 대답으로 ‘싸바한 누르’라고 말하거나 그와 동등한 말로 답해야 한다.  아랍국 무슬림들끼리 만나면 ‘앗쌀라무알라이쿰(안녕하세요?)’이라고 인사하고 ‘와 알라이쿠뭇 쌀람’이라 고 대답하는데, 원래 뜻은 ‘평화가 그대에게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헤어질 때 ‘마앗 쌀라마(안녕히 가세요)’도 무사히 갔다 오라는 뜻이 담겨 있다. 대답은 ‘일랄리까(만날 때까지)’다.  이름 앞에 ‘야 우스타즈(sir)’라고 덧붙이는 것은 대학교수나 변호사, 문인들에게 쓴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에게는 ‘독토르’, 정부 고위직에게는 ‘앗사아아다’라고 붙여준다. 일반적으로 존경을 표시하는 말에는 ‘하드리탁(adritak)’, 부인에게는 ‘야 마담’, 잘 모르는 이에게는 ‘야 아크(yaa ‘akh)’라고 한다.  공손하고 예의바른 표현으로는 ‘라우 싸마흐트(실례합니다만)’, ‘민 바아드 아므락(허락하시면)’, ‘타팟달(앉으세요, 들어오세요, 먼저 하세요, 그렇게 하십시오, 드십시오)’ ‘알라히 칼릭’ ‘알라히야 호파작’(신이 지켜주시기를) 등이 있다. 이 밖에 흔히 쓰이는 말로 ‘꾸워이스’(좋다, 건강하다), ‘마아쉬’(천천히), ‘슈웨이야’(조금),‘맙쑤뜨’(기쁘다, 만족한다), ‘슈크란’(감사합니다) 등이 있다.
  • 007 ‘지뢰 제거 면허’ 받았다

    007 ‘지뢰 제거 면허’ 받았다

    ‘007 제임스 본드’가 이번엔 지뢰제거의 특명을 받았다.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은 영국 배우 대니얼 크레이그(47)가 유엔 지뢰제거 초대 특사로 임명됐다고 14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위촉식에서 “영화에서 본드는 살인면허를 지녔지만 이제는 유엔특사로서 구명면허를 부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크레이그는 “지뢰제거를 위한 유엔의 첫 특사로 임명돼 영광”이라면서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 총장이 “내가 유엔 8대 사무총장이라 ‘008’로도 통한다”고 농담을 던지자 크레이그는 “영화사에 부탁해 008로 공식 임명하겠다”고 화답했다. 무차별적인 지뢰 살포로 인해 무고한 인명 피해가 늘어나자 국제사회는 1997년 모든 대인지뢰의 생산·사용·비축·이동을 금지하고 이미 매설된 지뢰는 제거한다는 내용의 오타와협약을 만들어 162개국을 가입시켰다. 오타와협약의 밑바탕이 된 지뢰금지 운동을 벌인 미국 사회운동가 조지 윌리엄스는 협약이 발효된 1999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협약에 따라 유엔은 지뢰 제거 활동을 벌여왔고 지난해에만 40만개의 지뢰를 없앴다. 우리나라는 북한과의 대치상황을 이유로 협약가입을 거부한 상태다. 미국 역시 1991년 걸프전 이후 대인지뢰를 사용하진 않지만 한국에서 대인지뢰를 사용한다는 점 때문에 가입을 거부했다. 크레이그 특사의 임기는 3년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우디 왕자의 급이 다른 ‘방산비리 레전드’

    [이일우의 밀리터리 talk] 사우디 왕자의 급이 다른 ‘방산비리 레전드’

    국제적 규모의 대규모 종교전쟁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예멘 사태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전투기 100대와 15만 명 이상의 지상군을 투입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의 군사력에 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최대 우방국이자 풍부한 오일 머니로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의 무기를 사들이는 것으로 유명한 중동의 부국(富國)이다. 특히 왕족들 가운데 소위 말하는 ‘군사 마니아’가 많아 좋다는 무기는 국적 불문하고 도입하기로 유명하다. 미국제 M60A1과 프랑스제 AMX-30 전차를 쓰다가 걸프전 이후 미국제 M1 전차가 좋다는 평가가 나오자 곧바로 M1A1과 M1A2 전차를 구매했고, 프랑스제 라파예트급 스텔스 호위함이 멋지다고 여기에 오리지널보다 더 강력한 옵션을 장착해서 들여오기도 했다. 전투기는 미국제 F-15부터 유럽제 유로파이터와 토네이도까지 좋다는 전투기는 닥치는 대로 사들였고, 최근에는 중국제 전투기 구매도 추진하고 있다. 국제무기시장에서 워낙 손이 큰 고객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쯤 되면 세계 각국의 방산업체들이 사우디를 잡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할 만도 하지만 사우디는 국제무기시장에서 ‘글로벌 호갱’ 취급을 받고 있다. -같은 무기 다른 가격 우리나라가 외국에서 전투기를 구매한다고 가정해보자. 공군에서 소요를 제기하면 합동참모본부에서 이를 검토하고 국방부 승인을 거쳐 방위사업청이 입찰공고를 낸다. 여러 나라의 전투기 제조사들이 제안서를 제출하고 입찰 가격을 써내면 방위사업청은 몇 달에 걸쳐 전투기의 성능과 제안서에 나온 절충교역 조건,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기종을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한다. 여러 조건 가운데 가격은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전투기를 파려는 업체들은 가급적 마진을 줄이고 최대한 낮은 가격을 써 내야 한다. 경쟁 입찰을 거친 무기 도입 방식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일반화되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에는 좀 다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는 전제왕정 국가이다. 국왕이 군 최고통수권자이며, 국방장관과 각 군 총사령관 등 군 수뇌부는 모두 왕족이 독식한다. ‘당이 결정하면 우리는 한다’는 북한의 구호처럼 국왕이나 왕족이 어떤 무기를 사야겠다고 결심했으면 그것으로 의사결정과정은 끝이다. 지난 2011년 압둘라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 국왕은 미국으로부터 무려 600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구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294억 달러는 F-15SA 전투기 84대를 신규 구매하고 70대의 F-15S 전투기를 개량하는 비용이었고, 나머지 300억 달러는 AH-64D 아파치 공격헬기 70대와 UH-60M 블랙호크 헬기 72대, AH-6 리틀버드 헬기 36대 등 180여 대의 헬기를 구입하는 비용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 가격은 정상적인 가격이었을까?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F-15SA 전투기 신규생산 기체 가격은 비슷한 시기 같은 기종을 도입한 우리나라나 싱가포르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대당 1억 3천만 달러 정도에 형성되어 있었다. 기존의 전투기 72대를 개량하는 사업 역시 레이더와 전자장비, 엔진을 모두 뜯어내고 새로 교체한다 하더라도 대당 1억 달러를 넘을 수가 없다. 84대 신규 기체 도입에 72대 개량이라면 아무리 많이 잡아봐야 200억 달러 정도면 충분하지만 사우디는 294억 달러에 계약을 체결했다. 나머지 94억 달러는 어디 갔을까? 최근 최신형 아파치인 AH-64E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대당 약 5,100만 달러 수준에 36대를 도입했다. 예비 엔진과 롱보우 레이더, 무장을 얼마나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지만, 풀옵션에 향후 수십 년치 예비 부품까지 도입하더라도 대당 8,000만 달러는 넘는 경우는 없었다. UH-60M 헬기도 최근 대만이 ‘중국 변수’라는 문제 때문에 5,500만 달러라는 바가지를 쓰기는 했지만 대당 1,800~2,500만 달러 수준에 판매되고 있으며, 소형 헬기인 AH-6i는 대당 1,300만 달러 같은 계열인 훈련용 MD530 헬기는 1,000만 달러를 넘지 않기 때문에 이들 헬기 도입 비용은 향후 수십 년치 수리부속 등 풀옵션 가격으로 산정하더라도 150억 달러를 넘을 수가 없다. 사우디가 헬기 구입에 300억 달러를 쏟아 부었으니 나머지 150억 달러는 누구의 주머니로 들어간 것일까? -권력과 돈으로 비리도 덮는 나라 사우디아라비아가 무기를 도입할 때는 거의 매번 거액의 리베이트 이야기가 오고갔고, 그들이 도입하는 무기의 가격은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동일 무기 구입 가격보다 언제나 비쌌다. 하지만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사우디아라비아군의 무기 도입 사업 비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거의 없었다. 비리에 대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무기도입 사업은 언제나 왕실이 개입했고, 전제왕정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감히 왕실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이러한 대규모 무기도입 사업은 재무부를 통해 집행되는 정식 예산이 아니라 석유 판매 대금으로 조성되는 특별 회계 예산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별도의 회계 감사가 없어 얼마나 많은 돈이 어디로 어떻게 쓰이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석유 판매대금을 이용한 정부 회계 외 거래는 일명 ‘야마마 사업(Al-Yamama Project)'라 불리는데, 이 야마마 사업을 통해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챙긴 인물이 있었다. 20년 넘게 주미대사를 지내며 ’아랍의 키신저‘라 불렸던 반다르 빈 술탄(Bandar bin Sultan) 왕자였다. 반다르 왕자는 1985년 당시 영국 최대의 무기업체인 BAE와 사상 최대 규모의 무기 도입 계약을 성사시켰다. 당시로서는 최신형이었던 토네이도(Tornado) 전투기 72대와 호크(Hawk) 훈련기 30대 등 항공기 100여 대 등을 무려 430억 파운드(약 70조 원)에 구매하는 사업이었다. 반다르 왕자는 이 사업을 중개해주는 대가로 BAE로부터 천문학적인 리베이트를 받았다. BAE는 3개월에 한 번씩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로 된 2개의 계좌에 3,000만 파운드를 송금했고, 이러한 분할 송금은 약 10여 년에 걸쳐 이루어졌다. BAE가 반다르 왕자에게 지급한 리베이트는 약 10억 파운드, 우리 돈 약 1조 7,000억 원 규모였다. 리베이트가 송금된 계좌는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대사관 명의였지만 반다르 왕자는 이 계좌를 개인 개좌로 이용했고, 리베이트로 받은 돈 일부로 에어버스 A340 전용기를 구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이었다. 영국 중대비리조사청(SFO : Serious Fraud Office)이 관련 의혹에 대한 첩보를 입수하고 2004년부터 조사에 착수한 것이었다. 중대비리조사청은 약 2년여 간의 조사에서 BAE와 반다르 왕자 사이의 검은 거래에 대한 증거를 대량으로 확보하고,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반다르 왕자와 사우디 왕실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뒤지기 시작했다. 영국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비리를 캐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즉각 영국정부에 항의하면서 “수사를 중단시키지 않으면 현재 협상 중인 유로파이터 전투기 구매 협상을 취소하고 프랑스 전투기를 구매하겠다”며 으름장을 놨다. 결국 토니 블레어 총리는 2006년 12월 법무장관을 불러 수사를 중단할 것을 지시했고, 수사팀은 해체됐다. 하지만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외압에 굴복해 수사를 중단시킨 정부의 결정에 격분한 검사와 수사관들이 그동안 수집했던 자료들을 런던의 한 식당 앞 쓰레기통에 던져 놓고 이 사실을 유력 일간지인 ‘가디언’지에 제보한 것이었다. 이 자료들은 문서 32,000페이지, 녹음테이프 81개 등 방대한 양이었다. BAE와 반다르 왕자의 지저분한 거래는 대서특필되었고, 사우디 왕실은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 찍혀 전 세계인의 비웃음을 샀다. 사우디아라비아 왕실은 “왕실의 명예가 실추됐다”면서 가디언지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들을 내놓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가디언지 뿐만 아니라 BBC 방송까지 반다르 왕자의 비리를 다룬 특집 보도를 연달아 터트리면서 토니 블레어 총리는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야당인 보수당은 외압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고, 2008년 4월 영국 고등법원은 “중대비리조사청이 유럽 최대의 방위산업체인 BAE에 대한 비리 의혹 수사를 중단한 것은 불법이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느 누구든 사법권 행사를 방해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국익이냐 정의냐 문제를 놓고 치열한 법정 공방이 이어졌다. 이 법정공방은 당시 진행 중이던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도입 사업에도 영향을 끼쳤는데, 이 법정 공방 덕분에 BAE와 사우디아라비아는 극도로 몸을 사렸고, 이 때문에 사우디 공군은 창설 이래 사실상 처음으로 ‘제값주고’ 전투기를 도입할 수 있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입한 유로파이터 전투기의 가격은 대당 약 1억 달러였다. 사우디 공군은 도입계약 사실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이번 거래에서 단 한 푼의 뇌물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물론 해당 거래는 깨끗했을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기종을 구매했던 다른 나라보다 더 싸게 구입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사우디 왕실은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도입에서 생긴 ‘손실’을 다른 곳에서 챙길 수 있었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전투기 72대를 구매한지 불과 5년도 채 되지 않아 신형 전투기 도입 사업을 또 시작한 것이었다. 이 전투기 도입 사업이 앞서 언급했던 300억 달러 규모의 F-15SA 도입 사업이었다. 사실 사우디아라비아 공군은 F-15 계열 193대와 유로파이터 타이푼 72대, 토네이도 ADV 24대 등 300여 대의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려 84대나 되는 F-15SA를 추가로 도입할 필요가 없었다. 더욱이 72대의 최신형 전투기를 구매한지 몇 년이 채 되지 않아 구매선을 바꿔 정상 가격의 2배 이상의 돈을 주고 전투기를 구매한다는 것은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고쳐 매는 격’이다. 소신과 패기로 뭉쳤던 영국 중대비리조사청 검사들이 정치적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초대형 방산비리 사건을 세상에 알린 것처럼 미국에도 이번 사우디의 ‘이상한 무기 거래’를 파헤칠 검사들이 있을까? 이일우 군사 통신원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 [오늘의 눈] 당신은 과연 영웅입니까?/오상도 국제부 기자

    [오늘의 눈] 당신은 과연 영웅입니까?/오상도 국제부 기자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엑스맨, 헐크, 토르…. 영화 속에는 언제나 “세상을 악에서 구원한다”는 고귀한 명분을 지닌 영웅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역설적이게도 제2차 세계대전이나 베트남전, 걸프전 등 격변기에 발맞춰 탄생했다. 뒤집어 보면 나치, 베트콩, 이라크, 북한 등에 맞서 싸우는 미국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전쟁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전 세계의 평화를 수호하는, 그래서 미국이 주도하는 ‘팍스아메리카나’의 현시(顯示)라면 쉽게 이해가 될 듯하다. 단연 눈에 띄는 존재는 슈퍼맨이다. 그는 언제나 단정하고 명료하다. 파란색 상하의에 붉은색 망토, 가슴에 새겨진 시뻘건 에스(S) 자 문양까지 모든 것이 권선징악의 이분법적 논리에 충실하다. 어떤 흐트러짐도 없이 마치 신앙처럼 미국적 행동 방식을 추종한다. 1938년 미국의 코믹 북에서 탄생한 이 슈퍼히어로가 70년 넘게 장수한 이유다. 이런 슈퍼히어로들이 정형화의 틀을 깨고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스스로 병적 공포심에 사로잡힌 배트맨과 선악을 오가며 고뇌하는 스파이더맨은 만화가 아닌 영화 속에서 훗날 새롭게 만들어진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약물 중독에 빠져 여색을 탐하는 아이언맨에 이르러서는 자유분방한 영웅의 탄생을 알렸다. 여기에 시즌8까지 이어온 미국 드라마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은 괴짜에 가깝다. 한쪽 다리를 절면서 약물에 의존하는 정신병자를 닮은 독특한 캐릭터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공통의 가치를 추구한다. 설령 상대방이 악당이라도 먼저 공격하지 않는다. 또 세상의 혼란을 피하려 노력한다. 보통 사람들의 영웅적 투쟁으로 이야기의 서사 구조가 옮아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지루하게 영웅 이야기를 늘어놓은 이유는 단순하다.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소영웅주의에 물든 그들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다. 종종 그들의 외침이나 주장은 귀를 솔깃하게 만들지만 뚜껑을 열어 보면 또 다른 권력욕이 만들어 낸, 현실과 괴리된 주장이 다반사다 ‘지하디 존’으로 불리는 무함마드 엠와지를 살펴보자. 그는 이슬람국가(IS)의 참수 동영상에 어김없이 등장해 서양인 인질들을 무참히 살해한 장본인이다. 쿠웨이트계 영국인 2세인 엠와지가 주류 사회에서 받아 온 핍박과 고통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IS에 가담한 뒤 “비로소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고 고백할 만큼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 소중한 가족을 떠나 시리아의 IS 본거지로 향하는 유럽의 10대 청소년들은 또 어떤가. 얼마 전 터키 국경을 넘어 IS에 가담한 한국인 10대 김모군도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모두 영웅이 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소영웅주의의 희생자다. 불행히도 한 명 더 거론할 사람이 생겼다. 지난 5일 흉기로 주한 미국 대사를 공격해 전 세계 외신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김기종씨다. 이웃으로부터 ‘돈키호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이 외골수 민족주의자는 여지껏 자신의 돌출 행동을 ‘옳은 일’이나 ‘거사’ 정도로 치부하고 있을지 모른다. 진정 되묻고 싶다. 당신은 영웅입니까. sd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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