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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NA MOLINARI(패션가 산책)

    안나 몰리나리는 이탈리아 남부의 카프리에서 태어난 디자이너다.미술을 전공했다.부모가 경영하는 니트의류회사에서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77년 남편인 타라비니와 함께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을 가진 블루마린(BLUMARINE)을 밀라노의 쇼룸에서 발표하면서 패션세계에 진출한다. 80년에는 이탈리아의 베스트 디자이너상인 모디트상을,81년에는 이탈리아 황금사자상을 받았다.90년 파리 국제의상전에서는 그해 최고의 엘레강스 스타일인 더 베스트상을 받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87년에는 6∼16세를 대상으로 하는 귀엽고 율동적인 미스 블루마린과 보다 캐주얼한 라인이 강조되는 블루마린 폴리즈를 선보였다. 블루마린에 자신감을 얻어 95년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안나 몰리나리를 퍼스트라인으로 하고 기존의 블루마린을 세컨드라인으로 나눴다.안나 몰리나리는 블루마린보다 20%쯤 비싸다.주 연령층도 다르다.블루마린은 20대 중반∼30대 중반,안나 몰리나리는 30대를 각각 주 고객층으로 한다. 로맨틱하며 섹시한 게 안나 몰리나리의 이상적인 여성관이라고 한다.이러한 여성관은 안나 몰리나리의 컨셉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부드럽고 화려한 컬러로 가득차 있고 여성적인 섹시함을 잃지 않는 게 주된 컨셉이다.안나 몰리나리를 상징하는 아름다운 붉은 장미가 중요한 모티브로 보여진다. 몸에 붙는 작고 귀여운 니트 가디간,7부 소매의 가벼운 캐시미어 스웨터,부클레 소재의 니트 드레스,다리를 가늘게 보이게 하는 스판소재 스트레이트 팬츠도 선보이고 있다.60년대풍의 정장과 코트까지 나온다. 안나 몰리나리는 이탈리아에 400여곳의 판매망을 갖추고 있다.전세계적으로는 700여곳에 달한다.지난해부터 태창트레이딩(02­511­5891)이 수입해 국내에서도 판매된다.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에 매장이 있다.
  • “캐릭터로 변해 음성채팅 즐겨요”/유니텔 「유니채트」 서비스

    ◎인사하기·화내기·웃기 등 다양한 동작 가능/2.5차원 그래픽 대화방… 속도는 문자채팅 글로만 주고받던 PC통신 채팅을 2.5차원 가상공간에서 애니메이션과 음성을 결합한 멀티미디어 형식으로 즐길 수 있는 서비스가 선을 보였다. 삼성데이터시스템(SDS)은 최근 자사 PC통신 유니텔을 통해 기존 채팅에 애니메이션 기법과 음성합성기능을 합친 「유니채트」서비스를 시작했다. 유니채트는 이용자가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와 2.5차원의 그래픽 입체공간 대화방을 선택해 대화를 나누는 서비스로 동작과 감정을 애니메이션과 음향효과를 통해 전달할 수 있다.또 SDS가 개발한 음성합성기 매직보이스를 통해 대화내용을 음성으로 바꿔 실시간으로 주고받을수 있다.가상공간을 2차원과 3차원의 중간형태인 2.5차원으로 구성한 것은 3차원 그래픽채팅이 속도가 느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덕분에 유니채트는 문자채팅과 같은 속도로 즐길수 있다는 것이 회사측 설명이다. 이 서비스는 최고 2천명까지 동시에 이용할 수 있으며 대화방은 수백개까지 만들수 있다.한 대화방의 이용자는 10명으로 제한돼 있다.캐릭터는 마우스나 키보드 조작을 통해 걷기,말하기,화내기,졸기,웃기,인사 등 다양한 동작이 가능하다.대화내용은 만화책처럼 캐릭터의 머리위에 나타난다. SDS 관계자는 『유니채트의 2.5차원 가상공간안에는 옥외광고와 같은 동화상 광고판이 있으며,이 가상공간 전체를 광고로 활용할 수 있어 새로운 광고매체의 기능을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가상공간은 동호회 등의 각종 메뉴를 3차원형태로 구성하는데 응용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채팅에는 유니채트와 다이렉트­X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며 음성을 들으려면 추가로 매직보이스를 설치해야 한다.이 소프트웨어들은 유니텔 자료실에 들어가면 다운로드할 수 있다. 유니채트를 즐기려면 유니텔 아무 화면에서나 직접명령어 「GO UNICHAT」를 입력하거나 초기화면의 「엔터테인먼트」→「게임」→「UNICHAT」순으로 이동하면 된다.
  • 이리에 아키라 마이니치신문 기고(해외논단)

    ◎경제대국화는 일 장래 불행초래 할수도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것이 반드시 일본의 장래에 유익한가.이 물음에 대해 미 하버드대의 이리에 아키라(입강소)교수는 최근 마이니치신문 기고를 통해 과거의 경험을 예로 들며 강대국화는 일본의 장래에 오히려 불행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다음은 그의 기고문 「경제대국으로부터 비대국으로」의 요지. 20세기의 막이 오를 때 일본은 대국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러·일 전쟁의 승리에 따라 자타가 공인하는 대국으로 출현해 그 뒤 세계대전으로부터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제1의 강국으로 군림하게 됐다.이 강대국을 「위협」으로 받아들인 구미 열강과,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구하는 아시아 제국민들의 반항에 부딪혀 20세기 중엽에 일본은 일시적으로 약소국이 되고 말았다.그러나 1960년대가 되자 이번에는 경제대국으로 변모해 불과 10수년만에 경제면에서 초대국으로 볼 수 있도록 성장했다. 경제적인 대국이 군사적인 대국으로 변모,20세기 전반의 역사를 되풀이하지는 않을까라는 우려가 일본 안팎에서 들린다.동시에 최근 일본 정치 경제의 침체와 불황은 또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기도 하다. 경기의 불안과 거액의 부채,관료제도의 파탄,약체화한 정당정치,여기에 더해 인구가 고령화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사회 코스트가 무겁게 돼 일본은 경제대국으로서의 원기를 잃은 듯하다.하물며 정치대국,군사대국 등을 추구할 여유도 없는 것 같다.20세기의 종반에 들어 초대국으로서의 자신감과 실적을 회복한 듯이 보이는 미국과 이제부터 초대국으로 자타가 공인할 중국의 틈에 끼여 일본은 도저히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21세기의 아시아·태평양을 말할 때면 미국과 중국에 초점이 맞춰지는 형국이다.불과 몇년전까지 「일본의 도전」이라든가 「일본의 위협」 등을 열심히 말하던 식자들도 지금은 관심이 일본을 지나쳐 넘어가 중국과 동남아시아,남아시아로 향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초대국은 커녕 일본이 「보통의 대국」 또는 그 이하로 돼 버릴지도 모른다는 비관론자도 있다.그러나 비관하는 것이 반드시 타당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앞서 걸어온 대국의 길이 파멸에의 길이었던 것처럼 경제대국의 길이 스무스하게 되지 않는 것은 눈에 보인다.20세기 전반처럼 자국 및 이웃나라에 상처를 입히면서 소국으로 되고 말기보다는 보다 건설적인 방법으로 비대국화에의 길을 찾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대국이라는 지위와 위신에 구애되기 보다는 비대국이면서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사람들이 보다 충실한 생활을 보낼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선결과제가 아닐까. 원래 대국이라든가 초대국이라고 하는 지위는 국제정치·경제를 파악하는 하나의 시각에 불과하다.「대국의 흥망」이라는 개념이 인기를 모아 미국 다음의 초대국은 어느 나라일까라고 하는 논의가 이뤄지고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견해는 종래에도 현실의 세계를 왜곡해 전해주는 것이었고 이제부터의 세계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기 어렵다.국제사회에 존재하는 것은 대국뿐만이 아니라는 점,때로는 나라뿐만이 아니라는 초보적인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이라고 하는대국이 충돌할 것인가 협조할 것인가는 모든 사람들의 커다란 관심사이다.그러나 미국과 중국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다른 나라들의 시민이며 그들의 사물을 보는 견해인 것이다.그리고 그들의 사물을 보는 견해를 결정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며 더욱이 국가의 지위도 아니다. 러·일 전쟁 직후 한 학자는 「승리의 비애」라는 논문을 발표,전쟁에 이긴 일본이 대국이 됐다고 해서 일본인으로서 반드시 좋은 국제환경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경고했다.20세기의 종말에 가까워지고 있는 지금 일본의 현상을 이 학자는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하다.〈정리=강석진 도쿄특파원〉
  • 김영진씨 둘째아들 해광군의 탈북기/우리가족 로정의 일기 전문:Ⅰ

    ◎“탈북=지도자 배신” 생각들어 갈등/농촌일손 가들랴 폐품 모으랴… 공부시간 몇이나/기차안서 굶주려 사람 보고 “누구때문” 울분 22일 귀순한 김영진씨 일가의 탈북기록인 김씨의 둘째아들 해광군의 「우리가족 로정의 일기」는 우리 맞춤법에 틀리거나 낯선 북한용어도 있지만 생생한 분위기를 전하기 위해 원문을 그대로 살려 게재했습니다. 나는 애어린 14살 아이이지만 살길을 찾아떠나가는 노정을 기록하여 어느때에 이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며 북조선 나의 동무들이 이 글을 볼 수 있을까 손꼽아 기다리며 한자 두자 일기로 적고저 한다.내가 살던 고향 집 앞에는 들판,뒷산 옆에는 4월,5월이 되면 과수나무들이 흰색옷을 입는듯 만발한 꽃으로 봄을 알리는 배나무들이 지켜섰습니다. 아름다운 내고향과 정다운 동무들을 버리고 나는 왜 떠나야 했는지,…. 그것는 배고픔에 못이겨서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무상교육 무상배려가 좋은데 내가 일년에 공부하는 시간이 도대체 몇날,몇시간이 되었던가. 북조선에서는 한창 배울 나이에 공부를 배우는 시간보다 농촌자원에 동원했고 폐철모우기 폐유리모우기 폐고무 폐동 등등,모우기를 하루도 그칠날이 없으니 그런것이 어디에 있으량 하는수없이 나의 동무들은 선생님의 성화에 못이겨 공장,농장 주민의 것을 훔치지 않으면 안되었다. 결국 그것이 도리어 나라에 좋은일 한다는 것이 학생들에게 도적질을 배워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우리 학급 인원은 42명이다. 거기서 학교에 오는 동무들은 하루에 절반밖게 못온다.절반숫자의 동무들은 왜 학교에 오지 못하였던가? 그것은 참기어려운 배고픔때문이다. 나는 정말 배우고 싶은 심정이다.어디로 가야 배움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1996년3월18일 월요일 날씨 맑음 이날은 정든고향,정다운 동무들과 이별하고 3월19일 기차를 타고 함경북도 무산군으로 향하였다. 기차에 오른 사람들은 왜 이다지도 많은지? 이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목적으로 집을 떠나 다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었다. 침침컴컴한 기차에 올라서니 사람들이 밀고당기고 힘내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넘어질듯 하였다. ◇1996년3월20일 수요일 이날도 기차안에서 무대기였다.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사람들이 서로 붐비면서 자기보따리를 찾는 사람,아이들이 배고파 우는소리,여성들이 신경질적으로 아우성치는 소리에 기차간은 그야말로 난장판 수라장이었다. 더욱이 내가 목격한 것은 굶주림에 시달려 숨을 방금 지울듯한 한 청년이 기차한막판에 누워 있었다. 그누구도 그사람을 동정과 위안해주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끝내 그사람은 굶주림에 못이겨 숨을 거두고 말았다.그때 나는 어린 마음에도 처참한 참상을 보고 울분을 금할수 없었다.나는 처음으로 어린 나이에 내눈으로 직접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다. 나는 학교에서 공산주의 도덕교양을 받을때 웃사람을 존경하고 아래 사람을 사랑하며 곤란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교양을 받은 나로서 아직도 그참상은 나의 눈앞에 생생이 나마있다. 어째서 이 비참한 참상,한 인간의 운명을 보고도 모르는 척 하는가? 아직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다. 과연 누구탓이며 누구 때문인가? ◇1996년 3월21일 목요일 지루함을 느끼면서 타고온 기차는어느덧 끝내 목적지 무산읍에 도착하였다. 이날은 마을이 서글퍼서 인지 하늘 그름을 뭉게뭉게 나의 마음을 쓸쓸하게 한다. 목적지인 외할머니네 집에 들어서니 할머니는 없었고 누나가 우리를 맞이하였다. 무산에서는 외할머니네 생활처지는 내고향의 생활처지와 다름이 없었다. 피곤한 나머지 나는 할머니가 들어서 오시는줄도 모르고 잠에 골아 떨어졌다. ◇1996년 3월22일 금요일 날씨(맑음) 아침 새벽에 나는 잠결에 할머니와 어머니 간에 말씀하는것을 들으니 먹을것이 없어 풀뿌리로 끼니를 채우며 겨우 장사를 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너희들이 또왔으니 반가움대신 근심이 된다고 걱정하는것이 였다.나는 비롯 나어린 마음이지만 또다시 마음속 충격을 받았다. ◇1996년 3월23일 토요일 맑음 아침에 깨여나 보니 벌써 할머니는 장사를 나가고 없었다.나의 아버지니와 어머니는 한숨을 쉬며 무슨 토론을 하고있었다.그때나는 무슨 내용인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앞으로 우리들의 살길을 찾는 심정에서 모데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였다. 나는 아버지어머니한테 묻고 싶었지만 어른들의 말에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을 강냉이 뿌리로 만든 국수로 대충끼니를 하고 우리 온가족은 두만강 구멍을 나갔다. 두만강 기슭을 따라 얼마쯤 내려가니 유달리 화려한 집이 두만강 건너에 있었다. 후에 알아보니 그집은 남조선 사람들이 와서 지은집이라고 하였다. 나는 이때에 믿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되여 남조선 사람이 자기 나라도 아닌 중국땅에 와서 훌륭한 집을 지을수 있는가고 생각하여 나는 이사실을 알고 싶었지만 부모님한테 선듯 묻지 않았다. 이때 아버지께서 하는 말씀이 이제는 더는 북조선에서 살길이 막막하여 더는 살수없으니 너희들이 보다시피 할머니에 집도 생활이 구차하며 하루하루끼니를 이어가는 형편인데 너희들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묻는 것이었다. 이때 나는 아버지에게 정확한 대답을 올리지 못했다.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길은 다만 남조선에 가야만이 너희들은 공부도 마음대로 할수있고 마음놓고 배불리 먹을수도 있고 희망의 날개를 펼칠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였다. 이때 나는 아버지가 나라를 배반하고 친애하는 지도자품을 떠나자고 여기로 데리고 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이때 나는 나의 아버지이지만은 나쁜 사람이 아닌가고 생각되어 내 생각대로 절대로 친애하는 지도자 선생님품을 떠나서는 살수 없다고 아버지께 말씀올리었다. 이때 나의 형님 누나는 이구동성으로 나의 말을 찬성하였다.우리 행동을 보신 아버지께서는 먼 남쪽하늘만 쳐다보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였다. 침묵을 지키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중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너희들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는가? 우리는 집도없고 재산도 다 팔고 할머니를 크게 믿고 왔댔는데 보다시피 할머니네 집 신세역시 구차하여 먹을것이 없어 하루살이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우리까지 어떻게 같이 있겠는가고 하였다. 어머니 말을 듣고 우리 형님은 우리를 데리고 한쪽에 가서 말을 좀 하자고 하였다. 나의 형님은 우리보고 너희 생각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고 물어보는 것이였다. 이때 나와 누나는 한결같이 우리는 절대로 지도자동지품을 떠날수 없다고 말하였다. 우리 형제 사이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때 아버지께서는 우리들의 침묵을 깨뜨리면서 하는 말씀이 너희들은 지도자 동지품이 좋다고 하지만 우리 온집안을 거처하여 먹여 살릴수가 없을 뿐만아니라 아버지는 이제는 고향으로 갈래야 갈수가 없는 몸이라고 말하였다.내가 왜서인가고 물으니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몇년전부터 남조선 방송을 들으면서 남조선은 자유세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씀하시었다. 또한 15명을 조직하여 북조선정치는 불모순 정치며 남조선정치는 자유정치라는 것을 선전하던중에 아버지는 노출되어 갈 수 없는 문제라고 알기싶게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이때 형님은 잘돼도 우리아버지 못돼도 우리아버지인데 아버지 뜻을 따르자고 말하였다. 나는 이때 생각이 많았다. 하나는 나의 아버지이고 하나는 조국의 품이었다. 이 갈림길에서 나의 심정은 아버지와 이별하고 싶지 않고 친애하는 지도자선생님의 품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현실은 하나의 길만 선택하여야 했다.하지만 현실은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기본 선차적 문제로 생각할때 아버지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 상에서는 그리 달갑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 아버지께서는 명령하다싶이 요구성을 높여 무조건 남조선으로 가야만이 삶의 길이라는 것을 결심하면서 너희들은 꼭 부모들의 의향대로 움직이라고 강박하는 것이었다.아버지께서 결심하신 그날 저녁 밤10시부터 중국도강준비에 들어갔다. 음력 2월6일이라 조각달은 지고 두만강 기슭옆에 캄캄한 밤 아버지를 따라 두만강 기슭에 가깝게 접근하였다.은밀히 접근하여 새벽2시까지 정찰하면서 보호병 움직임,조명등,불바침의 시간적으로 하산하여 아버지께서 명령을 내리시었다. 우리 자식들을 생각하는 부모님들은 우리를 꼭 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백포로 우리를 위장시켜 한치 한치 두만강을 도강하기 시작했다. 끝내 새벽 3시30분에 성공하여 중국땅을 밟게 되었다. ◇1996년 3월 24일 일요일(맑음) 이날은 유달리 날씨도 쨍쨍하게 맑은 날씨였고 하늘도 우리를 도와주는듯 기분이 상쾌하게 날씨가 맑았다. 새벽4시에 중국 조과향에도착하여 산에 오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눈을 피해 50도가량인 벼랑급한 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산에 오르자니 급한 벼랑에서 아차 한발 실수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아슬아슬한 벼락산이었다.이때에 어린 여자의 몸으로 산을 오르는 나의 누나는 기진맥진하여 겨우 형님의 도움을 받으며 산등성이에 올라 섰을때 새벽 6시30분이 되었다. 마을에서는 집집마다 아침식사 준비에 굴뚝에서 연기들이 뭉게뭉게 하늘로 오르고 있었다. 그때 나의 정든 고향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강건너 북조선을 바라보았다. 이때 어머니께서는 사람들이 볼수없는 산에 좀더 들어가 불을 피우고 아침식사를 하자고 하는 말에 우리는 발길을 돌렸다. 또다시 우리 일행은 지친 발길을 돌리며 눈이 무릎까지 오는 북쪽 산으로 향했다. 1시간쯤 눈길을 걸어 나무가 우거진 깊은산에 불을 피울장소를 찾았다. 우리들은 불을 피우고 젖은옷을 말리며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물이 없어 눈을 녹이며 물을 만들어 먹었다.식사를 끝낸후 피곤에 몰려 나도 모르게 잠에 떨어져 꿈나라로 갔다. 꿈속에서 나의 동무들이 나를 보고 나라를 배반한 변절자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꿈을 꾸고 있을때 어머니께서 나를 깨우는 바람에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때 나무하러온 조선족 중국부부가 올라오고 있었다.그들이 하는 말이 북조선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물어볼때 우리 온가족은 어쩔바를 몰라 몹시 당황하였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자기는 나쁜사람이 아니라고 하며 북조선 생활정황을 잘알고 있으니 우리를 동정하여 말하면서 자기 집으로 내려가자고 하였다.우리는 중국집에 들어섰을때 나는 아주 놀라며 이집은 중국에서 제일 부유한 부자 집이 아닌가고 생각하였다. 집에 들어서니 한눈에 안겨오는 것이 냉동기 텔레비전 재봉기 등 가정품들이 일제히 꾸려져 있었다. 나는 이집 주인님이 여기에서는 이밖에 고깃국을 정상적으로 먹는다고 할때 크게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이때 어머니께서는 이것이 사실인가 믿어지지 않는다고 다시 물어보시었다. 주인은 웃으며 중국은 개방이후 발전되어 백성들의 생활이 보다시피 좋다고,집집마다 생활형편이 모두가 이정도는 된다고 하면서 우리집은 보통 생활이라고 말하였다. 나는 중국땅을 처음 밟았을때 중국에서 사는 조선족 부부가 나에게 준 첫인상은 정말로 내가 상상도 하지못한 인상이었으며 자연적으로 중국과 조선을 대비해 보지 않으면 안될 정도였다. 중국땅에 처음와서 만난 사람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산에서 나무를 해다 불을 때어 온실관리를 하고 있는 집이다. 밤11시가 되도록 주인님의 말을 들으니 정국정황을 다소나마 알게 되었다. 집주인은 우리에게 중국 낡은 옷이지만 조선옷과 바꾸어 입혀주면서 화룡현까지 갈 차비를 주어 우리일행은 버스를 타고 화룡까지 수월히 오게 되었다. ◇1996년 3월 25일 월요일 (맑음) 화룡시에 들어서니 북조선에서 볼수없는 휘황하고 유명한 시장거리,사람마다 웃음이 가득찬 거리,생기발랄하고 환희가 넘치는 얼굴들.그모든 모습들.없는것없이 차려놓은 시장과 과일류,복장류,당가루류 등등 없는 것없이 그득히 차려놓는 시장거리 그야말로 영화의 한장면을 펼쳐 놓은듯 하였다. ◇1996년 3월26일 화요일 (흐림) 우리일행은 노비가 떨어지며 화룡시에서부터는 도보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다. 상오 9시30분부터 걷기 시작한것이 어찌 피곤하고 힘들던지 저녁 10시에 서성명함에 도착하였다.한밤중에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 오니 잠자리가 근심이 되어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한집에 들어가 길가는 손님이니 하룻밤 쉬고 가자고 애원하고 사정하였다.첫집에서는 안되고 열집만에 애원하던중 11번째 집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여 밥도 주고 잠도 잘수 있게 되었다. ◇1996년 3월27일 수요일 우리일행은 도보로 걸어서 연길시내에 도착하였다. 연길시내에 들어서 아버지에게 물어보니 한국사람만 만나면 도움을 받는다고 하여 한국사람을 찾았다. 한국 대사관에 전화를 하려고 공동전화 하는 곳에 가니 한아주머니가 우리를 보고 북조선에서 오지 않았는가 하며 자초지종을 물으며 반갑게 대하는 것이었다.그는 북한에 오빠가 있다고 하며 북한실정을 물어 우리는 북한생활 형편을 말하며 우리는 망명자가 아니라,중국에 친척방문왔다고하였다. 박아주머니는 우리는 북조선돈 3천원을 가지고 중국돈도 바꾸어주어 90원을 생활에 보탰다. ◇1996년 3월 28일 목요일 연길시 장백공사 리화의 김래삼아저씨네 집에서 하루 묵게 되었다. 이집은 채소농사를 하며 살아가는 집이었다. 우리를 반갑게 대해주면서 하는말이 어째서 온 가정이 한창 공부시킬 나이에 아이들까지 데리고 먼길을 떠나왔는가? 하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흑룡강 오상현에서 빚에 시달려 빚재촉에 못견디어 살수없어 연변에 친척을 찾아온다고 말하였다. 살수없이 연변에 친척 찾아 온다고 말하였다. (이말은 로라를 처음 만났던 부부가 이렇게 알려 주었다)
  • 설국과 남국의 정취 어우러진 제주/한라산 눈꽃축제 15일 팡파르

    ◎어리목 중심 천와새일대서 새달 6일까지/자연설 슬로프 4∼8㎞… 스키어들 “흥미진진”/눈썰매 경연·횃불행진 등 볼거리도 다양 지난주 초 눈이 그야말로 펑펑 쏟아진 한라산은 지금 온통 순백의 나라이다.아래쪽은 남국,위쪽은 설국의 정취가 한껏 어우러진 남한 최고봉(1천950m) 한라산에서 자연설 스키의 묘미를 만끽해보자.그리고 여유가 있다면 성산일출봉 등 제주 십경의 이국적 정취와 삼다(바람 돌 여자)·삼무(대문 거지 도둑)의 후한 인심을 맛보는 것도 운치를 배가시킬 것이다. 천혜의 절경에다가 겨울이면 풍부한 적설량을 자랑하는 한라산의 눈꽃축제가 오는 15일부터 2월6일까지 23일동안 한라산 서쪽 어리목을 중심으로 윗세오름 1100고지 천왕사 일대에서 성대하게 베풀어진다. 이번 행사에는 특히 눈이 많으면서도 인공 스키장이 한군데도 없는 한라산의 자연설을 이용한 산악스키대회가 처음 열려 스키어들의 구미를 잔뜩 당기게 하는 것을 비롯,스노우보드 경연대회,눈썰매 경연대회,눈꽃 트래킹 및 설원등반(눈길 걷기),스키학교 개설,눈얼음조각 경연대회,눈꽃 난장풍물,설원 레크리에이션,설원 사진 및 비디오촬영,설원패션쇼 등 다채로운 눈꽃 행사가 벌어지며 전야제 개막행사로 제주 전통민속무용,횃불행진 및 불꽃놀이,기원제(만설제),줄다리기 및 윷놀이 겨루기 한마당 등의 행사가 열려 풍부한 볼거리도 제공한다. 한라산 눈꽃 축제는 제주도가 주관하며 제주 뭉치이벤트사(22­7542)와 서울 WIN&WIN이벤트사(3474­2848)가 주관한다. 이들 단체는 한라산이 자연설 스키를 타기에 과연 적합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지난주 사전 답사를 벌여 「OK」 판정을 내렸다. WIN&WIN이벤트사의 장수빈 기획실장은 『한라산에는 지금 많은 곳은 2m까지의 눈이 쌓여 적설량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또 어리목 일대의 경사지에는 잔나무들이 모두 눈에 덮여 있는데다가 큰 나무들이 많지 않아 장애물이 별로 없어 4∼8㎞의 자연 슬로프를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눈꽃 축제가 열리는 기간동안에는 한라산 서쪽의 제2횡단도로의 차량통행이 통제돼 스키와 설원 트래킹에 안성맞춤이다. ▷한라산 산악스키◁경연 15일부터 26일까지 윗세오름∼만세동산∼사제비동산 2.5㎞ 구간에서 예선을 벌인 뒤 27일 결선대회를 연다.장비를 빌려주는 곳이 없으므로 직접 가져가야 한다. ▷스노우보드 경연◁ 26일 만세동산∼등반로 350m 구간에서 열린다. ▷트래킹 및 눈길 걷기◁ 15일부터 26일까지 어리목 윗세오름 영실 어승생 1100고지 등 5개 코스에서 벌어지며 참가자들을 위해 제주시내에서 영실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눈썰매 경연◁ 15일부터 27일까지 천왕사 만세동산 윗세오름 일대에서 진행된다. ▷스키학교◁ 15일부터 2월6일까지 영실 윗세오름 등에서 1일 5시간씩 전문강사가 지도한다.
  • 모로코 도시 페스(세계 문화유산 순례:18)

    ◎1천년이 한결같은 알라의 성채/13세기 건물·의상… 성문안은 완벽한 중세/사원 700개… 8천여개 뒷골목은 ‘미로’/2∼3층자리 돌집 촘촘… 따가운 햇살 차단/북아프리카 최대 캐로우윈사원은 걸작 전세계에 수많은 문화유산들이 남아있지만 특정한 건축물이나 기념물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통틀어 보존해야할 하나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예는 흔치않다.아프리카의 북서단에 위치한 모로코왕국의 3번째 도시 페스는 바로 도시 전체가 지난 81년 유네스코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스페인의 마드리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남쪽으로 지브롤터해협을 넘어 2시간여만에 마침내 검은대륙 아프리카의 모로코에 도착했다.모로코의 카사블랑카 공항에서 기차로 북동쪽으로 5시간여 달려 내륙으로 150여㎞ 떨어진 곳에 페스는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페스로 찾아가는 여행은 이런 공간적인 이동의 의미가 아니라 과거를 찾아가는 「시간여행」이었다.1천여년전 북아프리카를 풍미해던 이드리시드 칼리프왕조사대의 건축물과 거리,사람들이 고스란히 그곳에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인구 50만명의 페스는 아틀라스산맥에서 발원해 도시 한가운데를 완만하게 흐르는 페스강 양안을 따라 자리잡은 우리의 김천크기의 도시였다.강 서안에 위치한 구시가지 「페스 엘 발」은 거대한 띠를 두른 듯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그곳이 바로 시간여행의 목적지이다.수백개의 크고작은 회교사원(모스크)들과 사원의 탑(미나레트)들이 촘촘히 솟아있고 현대식 건물은 한채도 보이지 않는 완벽한 중세도시의 모습이었다. ○수도승·베일차림의 사람들 9세기초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과 북부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이주해온 회교도들은 이곳에 마을을 건설한 이래 1천년을 줄곧 자신들의 유일신 알라를 섬기며 살아왔다.11세기말 번성을 거듭하던 알모라비드왕조는 왕도이던 이 도시의 외곽에 높이 7∼8m의 돌벽을 쌓고 견고한 알라의 성채를 만들었다.페스의 사람들은 어디서나 알라의 모스크바 보이는 곳에 자기들의 집을 지었다.그러다보니 성안에는 모두 700개가 넘는 모스크와 미나레트가 세워졌다.그때 지어진 건물이 모두 10만채가넘는다.성안 사람들은 어디서건 이 미나레트에서 하루에 5번씩 기도시간을 알리는 무에진의 외침소리만 나오면 일손을 멈추고 알라에게 기도를 올렸다. 성내로 통하는 출입문은 모두 14곳.성문은 전면이 청색,후면이 녹색의 타일로 장식된 전형적인 안달루시아 양식의 아치문이다.자동차는 물론 자전거까지,모든 바퀴달린 것들은 성문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유일한 운반수단은 노새와 나귀.성문밖 넓은 광장에는 갖가지 물건들을 파는 야시장이 형성돼 있고 봇짐을 등에지거나 나귀 등에 짐을 실은 사람들이 성문을 드나들고 있다. 성문안을 들어서면 곧바로 한낮인데도 어두컴컴한 골목길로 접어들게 된다.2∼3층으로 된 돌집들이 두사람이 비켜갈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줄지어 서있어 햇빛이 길바닥까지 들지 않는다.스레인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건축양식과 같은 양식으로 아프리카의 뜨거운 햇살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좁은 골목길을 만든 것이다.이 좁은 골목길을 사람들이 쉴새없이 오간다.사람들의 차림새도 그야말로 13세기의 모습 그대로인듯하다.남자들은 중세의 수도승 복장처럼 고깔모자가 달린 원피스의 두루마기차림이고 여인들은 잘라방이라고 부르는 긴 원피스에 머리에는 베일을 둘렀다.사람들의 행렬은 짐실은 나귀가 지나갈때마다 흐트러졌다 디시 모였다 하며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대 2만5천명 수용규모 그 좁은 골목길의 길가에는 역시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온갖 상인들이 줄지어 쭈그리고 앉아 행인들과 흥정을 벌인다.멜론,달걀,올리브열매,오렌지 등과 신발,옷 등 생필품에서 식용비둘기,닭장속에 가두어둔 닭까지 실로 다양하다.성안 도시 전체를 수없이 가로지르는 뒷골목의 미로들은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정확한 통계도 없지만 안내인은 골목길의 수가 모두 8천90개에 이른다고 했다. 이 미로들 곳곳에 「소크」래고 불리는 갖가지 전문상점거리가 자리잡고 있다.이곳은 안달루시아를 통과하는 유럽루트와 튀니지를 통해 아랍세계로 가는 2개 대상로의 교차점이었다.사하라 이남에서 오는 수많은 물품들이 이곳을 통해 유럽과 중동으로보내졌던 것이다.수많은 「소크」들이 그래서 생겨났다.보석시장,옷감시장,약재시장,빵가게 거리 등 각종 상점들이 곳곳에 떼지어 모여있다.한 약재가게 주인은 가게의 약재수가 모두 950종이라고 소개했다.사람몸이 앓는 병중에서 이 집의 약재로 고치지 못할 병은 없다고 그는 자랑했다.심지어 에이즈까지도. 이 상점거리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탄네르공장(무두공장).수백평되는 이층집 옥상에 시멘트로 만든 가로세로 2m의 네모반듯한 방들이 수십개 늘어서 있고 그 안에서 남자 일꾼들이 가죽염색일에 몰두하고 있다.각 시멘트방마다 붉고 푸른 형형색색의 염색약물이 담겨있고 허리께까지 오는 그 약물안에서 모두들 땀을 흘리고 있다.그러나 비위가 약한 여행객이라면 지구상에 몇남지 않은 이 전래의 무두질 공장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해야 할 것이다.동물가죽 썩는 냄새와 오물냄새가 뒤섞여 그야말로 형언하기 힘든 악취가 일대에 진동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현세의 삶을 지탱해주는 것은 이 「짧디짧은」이승을 지나면 영원히 끝나지않을 알라신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는 믿음이다.그래서 이들은 힘을 모아 모스크를 짓고 알라를 경배한다.그렇게 해서 세워진 것이 북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회교사원이라는 캐로우윈 모스크이다.802년 조그만 성소로 시작된 이 모스크는 1135년 알모라비드왕조때 증축돼 무려 370개의 기둥과 19개의 지붕,그리고 각 지붕밑에 각각 21개씩의 아치들이 줄지어 늘어선 초대형 걸작물이 됐다.모스크의 전체면적이 1만㎡에 이르고 한꺼번에 2만5천명이 예배를 올릴수 있다. 왕도로서 부와 명성을 누리던 이 도시는 그러나 1912년 프랑스가 모로코를 점령하고 수도를 라바트로 옮겨가면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그리고 1956년 독립한 뒤에도 한번 빼앗긴 왕도의 명성을 다시는 되찾지 못했다.부유한 페스인들은 점차 성을 떠나 성밖의 공기좋고 물맑은 곳으로 거처를 옮겨갔다. ○곳곳에 전문상점거리 「소크」 어떤 도시도 세월의 풍상을 이겨낼 수 없는 법.1천년 이상을 버텨온 페스의 건물과 도로들은 사하라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에 깎이고 보수유지가 제대로안된 탓 등으로 최근 급속히 쇠락해지고 있다.유네스코가 발벗고 나서 보존작업을 벌이지만 재원조달 등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손을 대려면 주민들을 성밖으로 이주시킨 다음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데 언제 어떻게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은 전혀 서있지가 못하다. 이런 현세적인 고민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시간여행」의 저편 13세기를 사는 페스인들은 나귀 등에 실려 흔들리는 짐과 함께 뒷골목의 미로속을 무심히 오가고 있었다.
  • 청소년 연극 새장을 연다

    ◎정지승씨 등 20대 4명 고교시절 꿈 무대에/자비로 「색시공」 13일 첫 공연/“방황하는 청소년들에 대화의 장 제공” 척박한 청소년 문화의 토양에 땀으로 물을 대는 젊은이들이 있다. 9일 상오 9시 서울 관악구 청소년회관의 1층 공연장.4명의 젊은이들이 13일 막을 올리는 청소년극 「색시공」의 막바지 연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현대사회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꼬집은 블랙코미디로 청소년에 맞게 새로 꾸몄다. 서울 관악구 광신고등학교 연극반 동기들인 정지승(21),이학기(21),김재원씨(21),후배 성현철씨(20).모두들 연극을 좋아해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연극반에 가입,함께 무대에 섰던 동지들이다. 이들이 청소년을 위한 연극을 올리기로 뜻을 모은 것은 고교 시절.연극공부를 위해 연극 공연장을 자주 찾으면서 또래를 위한 연극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나이가 들어 서로 다른 길에 있더라도 언젠가 청소년 전용극장을 세우고 청소년을 위한 극을 올려보자』고 결의했다는 설명이다. 고교를 졸업하면서 각자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정씨와 성씨는 아동·기성 극단에 적을 두었고,이씨는 자동차경보기판매원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김씨는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요원할 것 같던 이들의 꿈은 처음 생각보다 20여년 앞당겨져 실행됐다.지난해 7월 함께 여행하면서 『고등학교를 방문해 시청각실에서 공연하더라도 지금 한번 해보자』고 중지를 모은 것이다. 배우가 적다 보니 우선 2인극을 골랐다.공연 무대는 관악구청 청소년회관으로 정했다.자신들이 자란 동네에서 후배들을 위해 공연한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기뻤다. 당장 연습을 시작했다.각자가 일들로 바쁘다보니 함께 모인다는 것이 수월치 않았다.하지만 사회초년병인 이들에겐 경제적인 어려움이 더 큰 문제였다.공연장사용료·무대제작비 등 1백여만원을 자비로 충당해 마련했다.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매년 한편이라도 무대에 올리겠다는 것이 이들의 각오다. 정씨는 『신림동 「녹두거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나이 어린 후배들이 방황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하고 『연극을 통해 이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연극을 접하는 기회를 마련해주고 싶었다』면서 활짝 웃었다. 공연은 13일 하오 3시,7시.서울 관악구 신림동 관악청소년회관.876­0636
  • 가는곳마다 환대·선물공세/탈북 김경호씨 일가 두번째 서울나들이

    ◎거평프레야·잠실 롯데월드 등 3곳 둘러봐 북한을 탈출한 김경호씨(62)일가족 등 16명이 지난 14일에 이어 27일 두번째 서울 나들이를 했다. 김씨 등은 동대문구 거평프레야 도매센터와 지하철 교대역 근처 가우디매장,잠실 롯데월드 등 3곳을 차례로 둘러봤다. 시민들의 따뜻한 환대와 선물도 듬뿍 받았다. 임신 8개월째인 김씨의 넷째딸 명순씨(28)는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유에 따라 나들이에서 빠졌다. 경희대의료원에서 중풍 한방치료를 받고 있는 김씨는 여전히 말하는 것을 어려워했으나,휠체어 없이 혼자 걸어다닐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한 관계자는 『한방치료 결과 김씨가 3번이나 중풍을 앓았던 환자로 볼 수 없을 만큼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면서 『요즘은 걷기 등 가벼운 운동을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 일행이 첫번째로 찾은 거평프레야도매센터(대표이사 김종근)는 김충진군(6)과 김충심양(3),박현철군(9),박봄양(5),김금혁군(3) 등 김씨의 친·외손주 5명에게 장남감 세트를 선물했다.출산을 앞둔 명순씨에게는 갖가지출산용품을 주었다. 한복점인 대영실크의 이권호 사장(36)은 김경호·최현실씨(57)부부에게 한복 1벌씩을 기증했으며,다른 매장들도 김씨 일행에게 의류 등 크고 작은 선물공세를 펼쳤다. 이어 방문한 가우디매장은 김씨 부부를 비롯한 성인 귀순자 12명에게 무스탕 1벌씩을 내놓았다.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은 롯데월드는 어린이들 뿐만 아니라 각종 놀이시설을 처음 대하는 어른들에게도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들이 일정을 끝낸 이들은 강남구 대치동 고박사냉면집에서 11·12대 국회의원을 홍우준씨(72)와 아들인 홍문종 국회의원(신한국당·경기 의정부)부자가 마련한 점심식사에 참석했다.
  • 100회 부산시민 걷기대회

    ◎서울신문 주최,문정수 시장 등 5천여명 참석 서울신문 부산지사와 KBS 부산방송총국이 공동 주최한 「부산시민 걷기대회」 100회 기념 걷기행사가 17일 상오 영도구 태종대공원 순환도로에서 열렸다. 이날 걷기대회는 상오 11시 태종대공원입구 광장에서 문정수 부산시장,도종윤 부산시의회의장,안명필 아시아게임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을 비롯,시민 학생 등 5천여명이 참석했다. 걷기대회는 100회 기념행사 및 경과보고에 이어 참석자들이 태종대공원 순환도로 4.3㎞를 따라 걸으면서 진행됐다. 주최측은 참가자에게 기념 볼펜 등을 배부했다. VTR·TV·낚싯대·자전거 등 150여개의 상품을 공개추첨을 통해 나눠줬다. 한편 서울신문 부산지사는 이날 동호스포츠(주),국제아피스,(주)윈다,(주)세정,(주)코리아나화장품,한국보이스카우트 및 걸스카우트 부산연맹,부산시 생활체육협의회,KAFA에어로빅협회 등에 걷기대회 100회를 기념하는 감사패를 전달했다.
  • 「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개회사·기조연설·오찬연설

    ◎서울신문 창간51돌 제2회 국제포럼 서울신문은 18일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20층)에서 창간 51주년을 기념하는 「제2회 서울신문 국제포럼」을 열었다.다음은 포럼에서 있은 권오기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의 기조연설,박관용 국회통일외무위원장의 오찬연설,손주환 서울신문 사장의 개회사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개회사/한반도문제 접근 새 패러다임 필요/북 위기 진단·주변국 역할 진지한 토론을 최근의 남북한 관계와 한반도 문제에서는 두 가지의 추세가 확연히 드러남을 알 수 있다. 먼저 남북한 관계를 보면 한국정부는 당국과 민간단체 차원의 대화나 접촉을 계속해서 모색하고 있는 반면,북한측은 남한 당국을 철저히 배제한채 당국과 민간을 이간시키고 실리만 노리는 민간차원의 교류 내지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남북문제 세계화 모색 다음으로 한반도 문제의 세계화 또는 국제화를 들 수 있다.남북한간 모든 문제를 남북한을 축으로 하되,한반도 주변 정세와 유관국가들의 역학관계에 따라 합리적인 다자주의 원칙아래 접근하는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 문제와 남북한 관계의 접근에 있어서는 새로운 인식과 패러다임(paradigm)이 필요하다.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한반도 문제의 세계화」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기존의 남북한 당사자 원칙에 융통성을 두어 남북한과 미국및 중국등 4개국이 모여 평화정착의 돌파구를 모색한다는 것이다. ○북 체제일탈현상 심화 현재 북한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에 재해까지 겹쳐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 지자 망명과 탈북이 빈발하면서 체제일탈현상이 점차 확산되고 북한이 멀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이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갑자기 무너질 것이라는 위급론에서부터 그렇게 쉽게 붕괴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엇갈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오늘 이 자리에서는 여기에 대한 설득력있고 객관적인 분석이 제시되리라 기대한다. ○평화속 통일 추구해야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역사적인 4자회담이 제안된지 어언 반년이 지났지만 북한은 아무 답변없이 시간만 끌고 있다.4자회담이 한반도평화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북한의 태도변화가 필수적이다.이번 포럼이 북한의 위기상황에 대한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한국과 주변4강이 어떻게 협력하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생산적인 자리가 되기 바란다. ◎권오기 통일부총리 기조연설/북,무장공비 관련 납득할 조치를/평화·협력 통해서만 체제인정 이룰수 있어 최근 발생한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은 한반도의 현실을 극명하게 말해준다.이 사건에 이어 도리어 보복을 위협하고 양민을 학살한 만행은 우리국민을 분노케하고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의장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의 심각성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정전협정의 준수와 남북간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이번 사태가 한반도만이 아니라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에 직결되고 나아가 전세계의 앞날에도 심대한 영향을 줄수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서 여전히 반목과 대결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바로 북한의 어려움에서 비롯된다.북한은 현재 국제적 고립,경제난 등 대내외적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체제위기를 대남적대전략을 통해 타개하려 하고 있다.이는 잘못된 선택이다.북한은 생존전략을 바꾸어야한다.북한의 안정은 「평화와 협력」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있다. 잘못에는 대가가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다.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명백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한 도발행위가 마치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할 수는 없다.더욱이 북측이 백배,천배 보복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는 국민의 신변안전을 중시하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북한의 분명한 태도변화가 있을때까지 일방시혜적이거나 교섭에 의하지 않는 대북지원은 재고할 것이다.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이를 지킬 의지와 힘이 있어야 한다.정부는 안보태세를 종합적으로 재점검,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이다. 4자회담은 한반도에서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이다.아울러 4자회담의 성사는 북한이 안정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한반도의 평화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4자회담 개최의 당위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박관용 국회통외위장 오찬연설/대북정책 전국민 컨센서스 절실/독일식 아닌 한국식 통일방안 마련돼야 현재 북한은 정권수립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다.김일성이 사망한지 2년 3개월여가 되는 현재까지 권력승계를 마무리짓지 못하고 이른바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다.동구공산권의 붕괴가 몰고온 엄청난 체제적 충격과 외교적 고립을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전반적인 체제불안정 요인들이 확대되고 있고 주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을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다.7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 북한경제는 80년대말 구공산권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지면서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어 90년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특히식량과 에너지사정은 심각한 상태이다.이미 배급제도도 일부 붕괴되기 시작했고 농민시장이 확대되고 있다.체제이완과 사회일탈 현상이 빈발하여 탈북자가 늘고있고 군부가 정국을 주도,위기관리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이러한 경제붕괴는 김정일정권의 붕괴,정치체제의 붕괴,국가의 붕괴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어느때보다 우리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된다.가장 시급한 과제는 북한의 급격한 붕괴를 막고 한반도에서 평화를 확고히 보장하는 것이다.우리 모두가 유의해야 할 사항은 대북정책의 기초는 여야는 물론 전국민의 컨센서스를 이룩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독일의 경우는 여야를 막론하고 자유와 평화를 통일에 앞선 정책으로 채택했다.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정책이 아니라 서쪽의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고 이를 동쪽으로 확산시키자는 정책이었다.우리도 독일처럼 상호교류는 없었더라도 한국의 건강한 사회는 강한 흡인력을 갖게 될 것이다.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한 때이다.독일식 통일이 아닌 「한국적 통일방안」이어야 한다.우리의 실정과 남북한의 역사적 배경에 맞는 단계적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 태국 아유타야(세계 문화유산 순례:8)

    ◎불탄 왕시·목잘린 불상… 「장엄한 폐허」/무자비한 버마군 약탈·파괴 흔적 그대로/14세기 동서무역 중심 아유타야왕국 수도/“참행에 신체변화” 불상은 하나같이 여체닮아 수코타이가 태국문화의 뿌리를 상징한다면 아유타야는 굵은 줄기라 할 만하다.수코타이왕국에서 싹튼 태국문화는 아유타야왕국(1350∼1767)때 번성했다.그 나라 수도가 방콕 북쪽 72㎞쯤에 있는 아유타야였다.강 세줄기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이 소도시에는 지금도 옛날 영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곳곳에 널려 있다. 수코타이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유타야의 중심부에는 벽으로 둘러싸인 왕궁단지가 자리잡았다.그곳에 들어서면 바로 왕사 「프라 시 산펫」이 있다.산펫은 그야말로 「장엄한 폐허」였다.불에 타 시커멓게 변한 체디(불탑)들,바닥에 뒹구는 붉은 벽돌들.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못 없는 불상들이었다.경내를 다 둘러보아도 얼굴 있는 부처님은 두엇에 불과했다.미소짓지 않는 불상,팔다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불상을 보노라니 가슴이 저렸다.이처럼 철저한 파괴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크메르제국이 샴족에게 쫓겨 앙코르를 버리고 달아났듯이 아유타야왕국은 이웃 버마군에게 멸망당했다.아유타야를 점령한 버마군은 산펫을 무자비하게 깨부수고 보물을 약탈했다.당시 이곳에는 1백70㎏의 금을 입힌 불상이 있었는데 이 금을 녹이고자 불을 질러 사원을 불바다로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더라도 같은 불교도인 버마군이 불상의 목을 자른 까닭은 무엇일까. 그나마 우뚝 솟은 거대한 체디 3기가 마음을 위로한다.왕들의 유해를 모셨다는 이 체디에는 사방에 계단이 있다.올라가보았더니 널길(선도)입구는 붉은 벽돌로 막아놓았다.사방을 내려다보고 유네스코가 「아유타야의 폐허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다」고 한 이유를 터득할 만했다.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역시 사람이 저지른 파기와 약탈이었다. 왕궁단지를 나와 정문앞 「비하라 프라 몽콘보핏」에 들렀다.1956년 복원했다는 몽콘보핏은 사원이라기보다는 예불당에 속한다.그 안팎은 신도로 붐볐다.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사람들은 향과 초를 불상앞에피워놓고 연신 절을 하거나 또는 산통을 흔들며 갖가지 형태로 소원을 빈다.본당에는 태국에서 가장 크다는 청동좌불상이 자리잡았다.왕국 멸망때 버마군에게 약탈당했다가 절을 복원하면서 돌려받은 이 청동상은 마치 은진미륵이 앉아 있는 듯 거대하다. 화교의 절 「왓 프라차오 파난초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온통 한자로 뒤덮인(태국인은 한자를 상용하지 않는다) 이 절에는 크고 작은 불상이 워낙 많아 사람이 꽉 차도 불상의 수효에는 미치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주불은 앉은 키 19m인 좌상으로 온몸에 금을 입혀 휘황찬란하다.아유타야시민이 가장 존경한다는 이 불상이 1325년쯤 조성됐으니 파난초엥은 아유타야왕국보다 역사가 오랜 셈이다. 특이한 것은 불상이 하나같이 여체를 닮아 가슴은 봉긋하고 허리는 가늘다는 점이다.그렇다고 불상의 성을 따질 필요는 물론 없다.『수행을 많이 하면 그같은 신체적 변화가 온다』는 이 절 스님의 설명을 듣고 나면 누구나 의문이 풀릴 것이다. 아유타야에는 이밖에도 ▲프레스코벽화와 정교한 조각기둥들이 볼만한 「왓 수완다람」 ▲2.5㎏의 황금염주를 꼭대기에 얹은 80m 높이의 「체디 푸카오통」 ▲작은 앙코르 와트인 「왓 차이왓타나람」등 명소가 많았다.아유타야유적은 폐허가 된 곳이건 온전히 남거나 복원된 곳이건 모두 장엄했다.그 이유는 간단하다.당시 아유타야는 세계무역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동서무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이곳에는 영국·네덜란드·포르투갈등 서양배를 비롯해 중국·인도·아랍·일본배가 들락거렸다.무역선은 샴만(타이만)으로 들어와 차오프라야강을 거슬러 아유타야에 진입했다.역사가들은 그때 아유타야가 런던·파리보다 더 큰 도시였으리라고 추정한다. 아유타야시 남쪽을 흐르는 차오프라야강가로 나갔다.아유타야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은 오늘도 흐른다.1시간남짓 물끄러미 바라보는 동안 많은 배가 물길을 따라 오갔다.쇳덩어리를 가득 실은 바지선이 지나간 뒤를 「통통통」소리를 내며 유람선이 따라간다.언제부터인가 고개를 내밀고 이방인을 쳐다보던 새끼악어는 눈길이 마주치자 냉큼 머리를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강은 오늘도 흐른다. ◎여행가이드/방콕서 버스·열차 수시로/체증심해 자전거관광 편리 아유타야는 방콕에서 육로로 1시간 거리이므로 방콕에 있으면서 하루쯤 시간을 내 관광할 만하다.에어컨버스와 열차편이 시간마다 있다.다만 교통체증이 심해 여유 있게 계획을 짜야 한다.아유타야시내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유적지간 거리가 걷기에는 멀고,그렇다고 꼭 차를 타야 할 만큼 멀지도 않기 때문.자전거대여점이 많이 있다.수코타이관광도 마찬가지. 특색 있는 관광으로는 선상유람이 있다.방콕에서 배를 타고 차오프라야강줄기를 따라 아유타야로 가 그곳에서도 뱃길로 유적지를 돈다.식사·음료를 제공한다.흠이라면 값이 비싸고(3만5천원쯤),유적지를 몇군데밖에 못본다는 점.유명호텔에서 매일 상오8시 출발한다.
  • 「발압력 측정장치」 국내 첫선

    ◎포항공개 정민근 교수팀 발 접촉 변화 분석/신발·침대·각종 의공제품 제작에 활용 가능 「발압력 측정장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됐다.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정민근 교수팀이 만든 이 장치의 이름은 「FOOT PAS(Pressure Analysis System)」. 걷기나 달리기를 할때 압력측정센서를 이용,수직반발력이 발의 표면에 분포되는 형태를 파악할 수 있는 체압측정장치 시스템이다. 발바닥이 지면에 닿아서 떨어질때까지 시간경과에 따른 최대압력의 변화와 접촉면적의 변화를 측정할 수 있다. 독일제품 EMED 등 비슷한 외국 시스템의 가격이 4천만∼5천만원대인데 반해 국내기술로 개발한 「FOOT PAS」는 1천만∼1천5백만원으로 훨씬 저렴하다. 발바닥이나 신발 밑창에 나타나는 압력분포의 형태를 2차원의 등압색상으로 표시하거나 3차원의 입체 궤적선으로 나타낼 수 있다. 예컨대 압력을 많이 받는 부분은 진한 색깔로 표시되며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궤적도 화면에 나타난다. 접촉시간과 부위별로 세분된 데이터는 컴퓨터로 전송해서 분석할 수 있고 컴퓨터에서 처리한 결과를 프린터를 이용하여 출력할 수 있다. 발이 받는 압력을 부위별로 세밀하게 분석하면 발이 편안한 구두를 만드는데 이용할 수 있다. 또 허리·무릎 등에 압력센서를 부착해 얻은 압력분포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체에 가장 편안한 자동차시트나 침대,각종 의공제품을 제작할 수 있다.
  • 중형구형 이후 전·노씨 움직임

    ◎전씨 소설 「대망」·노씨 바둑책 “탐독”/둘다 식사 깨끗이 비우고 걷기운동/선풍기 반입 안돼 한낮 샤워·부채질 검찰의 구형 이후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은 별다른 내색 없이 구형전과 마찬가지로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전피고인의 부인 이순자씨와 노피고인의 부인 김옥숙씨를 비롯,가족들은 구형이후 잇따라 안양교도소와 서울구치소를 찾고 있다. 사형구형을 받은 전피고인은 7일 하오3시30분쯤 부인 이씨와 며느리를 면회했다.6일 상오에는 재국·재용·재만씨 등 세아들과 사위 윤상현씨를 면담,20여분동안 대화를 나눴다. 가정문제 등 일상적인 얘기를 나눴다고 교도소 관계자는 전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전씨는 법정에서 돌아온 5일 비교적 평온한 모습으로 10분가량 불경을 암송했으며 구형전과 다름 없이 저녁식사를 평소처럼 남김 없이 먹었다』고 밝혔다. 전피고인은 7일 아침5시45분쯤 일어나 조금 걷는 것으로 운동을 대신했다.나머지 시간은 독서를 했다. 구형 전부터 읽어온 일본 봉건시대 영웅들의 내용을 담은 소설 「대망」을 읽고 있다. 노피고인도 비슷한 일과를 보냈다. 7일 하오2시40분쯤 부인 김씨와 박영훈 비서실장을 만났다.이에 앞서 상오10시쯤 아들 재헌씨와 최석립 전 청와대 경호실장 등 5명이 다녀갔다. 법정에서 돌아온 지난 5일 저녁 노피고인은 저녁식사를 한 뒤 바둑책 등을 읽다 하오9시부터 10여분동안 걷기운동을 하고 10시쯤 취침했다. 노피고인은 7일에는 평소처럼 상오6시에 일어났다.아침식사도 깨끗이 비웠다. 교도소에는 선풍기의 반입이 금지돼 전·노피고인은 7일에도 부채로 더위를 식히다 한낮에는 1∼2차례 샤워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 신한은행 신화:2(테마가 있는 경제기행:14)

    ◎“꿈에서도 미소를…”/직원들 90도 인사… 금융계 “회오리”/여행원 잠결에 전화받고도 “감사합니다” 연발/고객위주 영업 첫 도입… 백화점 직원까지 견학 미소가 몸에 밴 대표적인 직업인들로 흔히 항공기의 스튜디어스들을 꼽는다.관찰력이 강한 사람들은 스튜디어스들이 기내에서 늘 미소를 띄고 있는듯 하지만 좌석과 좌석을 옮겨가는 1초쯤 되는 짧은 시간,미소를 풀고 휴식을 취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접대를 위한 미소는 노동이다. 81년 9월 신한금융개발 주식회사로 출발한 신한은행 창립 준비팀은 82년 4월 여직원 4명을 선발하며 은행설립 준비절차를 밟아 나갔다.신보금씨(현 신한은행 인재개발부 대리)등 4명의 여직원들에게 떨어진 첫 업무는 친절연습과 미소짓기였다고 한다. 이희건 신한은행 회장이 이사장으로 있던 대판흥은(현 관서흥은) 여직원들의 조언을 받아가며 『안녕하세요.어서오세요.안녕히 가세요』를 반복했다.90도 굽혀 인사하기,미소짓기,걷기 연습 등에만 3개월을 보냈다. 신대리는 『거울을 보며 화장할 때에도 웃는연습을 해 집안에서는 머리가 이상해진 게 아닌지 의심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어느날 새벽 2시쯤 잠결에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고도 「신한은행의 신보금입니다」라고 말한뒤 전화를 끊을 때에는 「감사합니다」라는 말까지 했다』 꿈속에서도 미소를 잃지않도록 하는 것이 친절연습의 목표였다.김세창 초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도 인사와 걷기연습에 빠지지 않았다. 82년 7월7일.신한은행이 서울의 명동지점과 서대문지점,대구지점 3곳만 갖고 단출하게 문을 연 날이지만 우리나라 금융계와 재계에 커다란 충격을 준 날로 기록된다.고객이 들어올 때마다 『어서 오십시오』라며 고개를 90도 숙이며 인사하는 신한은행의 직원들.은행 직원들의 인사에 깜짝 놀라 은행문밖으로 다시 나갔다가 마음을 진정시켜 들어오는 손님들이 많을 정도로 신한은행의 친절운동은 당시 은행가로서는 파격이었다. 요즘은 은행 문턱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그 때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이었다.커미션(수수료)은 둘째치고 대출받는게 특혜로 여겨졌던 때라 은행직원들이 고객들에게인사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당시 가장 친절하다는 평을 받았던 백화점의 직원까지 신한은행의 창구를 찾아 견학을 했다. 신한은행은 이렇게 처음부터 화제를 몰고왔다.홍성균 이사는 『창구 응대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특별히 홍보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다른 은행들이 창구에서 손님을 기다릴 때인 80년대 중반부터 신한은행은 우량업체나 개인들을 찾아 대출해주는 대출세일을 본격적으로 시도한다.요즘은 모든 은행장들이 거리에서 예금유치 켐페인을 하는 것이 유행처럼 돼있지만 신한은행은 초대 행장부터 그랬다. 일본은행에서 배운 고객위주의 영업이 이때부터 한국 금융가에 도입된 것이다.91년 8월에는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상가가 밀집된 지역의 점포를 중심으로 동전교환기 전동차를 운영했다.상인들이 동전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대출세일,발로 뛰는 적극적인 신한은행의 모습을 엿볼수 있는 사례다.현재는 40여 지점에서 운영중이다.미소짓기,인사하기에서 시작되는 친절운동은 고객위주의 영업으로 발전되고,다시 고객에 대한 서비스 강화로 일관된 흐름을 형성함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시중은행들은 90년대 들어 점포별 독립채산체를 실시하지만 신한은행은 이미 84년부터 실시했다.너무 실적에 얽매여 부작용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한은행의 높은 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게 한 주요인이다.〈곽태헌 기자〉
  • 홈쇼핑 히트상품

    ◎마케팅이나 브랜드 지명도 보다 상품의 질·개성이 판매 좌우 마케팅이나 브랜드 지명도보다는 상품의 품질이나 개성이 판매를 좌우하는 홈쇼핑의 히트상품은 어떤 것들일까.케이블 TV 홈쇼핑 채널인 하이쇼핑(채널 45)의 올 상반기 히트상품은 가정 가전용품 자동차용품 등이 주류를 이뤘다. 상반기 판매한 1만여 품목중 판매량기준으로 선정한 히트상품 10선에는 가정용품 4종,자동차 용품 3종,가전제품,스포츠 용품,유아용품이 각각 1종씩 뽑혔다. 1위는 유리코팅제,차체 보호도장제,김·성에방지제,차표면 코팅광택제 4가지로 구성된 「자동차코팅세트」.방송중 물건이 동날만큼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자동차 코팅의 모든 것을 책임진다.3만6천원. 2위는 해외에서 먼저 알아준 원적외선 만능 조리기인 「원적외선 오븐 조리기」.영양손실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도 최단 시간내에 통닭,피자 등을 척척 만든다.삶거나 데치는 것도 가능하다.중소기업인 이멕스가 제조,소비자가의 절반값인 14만원에 시판중이다. 요리의 기본은 채썰기.「만능슬라이서」가 히트상품 3위에 올랐다.세가지 굵기의 슬라이서와 양면부품을 사용,어떤 형태의 채도 썰수있다.옵션 포함해서 4만3천원. 강력한 음이온을 발생,에어컨과 히터 냄새를 없애주는 「플라잉 음이온공기정화기」가 4위 상품에 뽑혔다.승용차내의 담배연기,먼지,찌든냄새를 없애고 신선하고 쾌적한 공기를 채워준다.3만5천원. 5위는 천천히 밟아만 주면 근력이 생기는 「미니스테퍼」.높낮이와 운동량 조절이 가능해 걷기운동으로 심폐지구력과 하체근력을 키워준다.4만3천원. 불쾌한 정전기는 이제 그만.히트상품 6위에 선정된 정전기 흡수·제거기능을 가진 「펜텔 정전기 제거 키홀더」.승용차 문,TV·PC 모니터 등을 만지기전에 대고 있거나 몸에 지니고 있으면 1∼2초만에 정전기를 없애준다.야간에 자동차 도어키를 비춰주는 라이트기능도 있다.2만5천6백원. 막힌 곳은 내가.7위에 오른 순관 배수관 세척제 「매직 펀치」.수압을 이용,순간적으로 막힌 곳을 뚫기 때문에 배수관 교체필요가 없다.캔은 반복사용할 수 있으며 6회 사용분 2개가 한세트다.3만2천원. 엄마도 좋고 아기도 좋아.8위에 오른 「뉴본스 아기 기저귀」의 선전문구다.두께가 얇지만 2중 흡수층과 샘방지 처리가 된 팬티형 기저귀로 2백개들이로 판매한다.다른 제품에 비해 개당 50원은 싸다는 평. 9위 상품은 기저귀가 아무리 많아도 널 수 있는 「실용세탁건조대」.40벌 이상의 세탁물을 동시에 말릴 수 있다.녹색과 핑크색 2종이 있으며 값은 2만8천원. 건강한 눈을 위한 자연의 빛을 제공하는 「하이눈 인버터 스탠드」가 마지막을 장식했다.자연광에 가까운 3파장 램프와 인버터형 회로를 채택한 시력보호영 스탠드로 원적외선을 방출해 신진대사를 촉진한다고 선전된다.명성전자 제품으로 6만2천원.〈박희준 기자〉
  • 바람의 세기/순 우리만 12종 “눈길”/기상청,공식용어로

    ◎실바람­연기조금 날리는 상태/된바람­우산받기 힘겨운 지경/싹쓸바람­태풍중심의 최대 풍속 18일 밤부터 태풍 「이브」의 간접 영향으로 부산을 비롯한 영남 남해안 지방과 동해 일부 지방에 초속 15m의 강풍이 불었다.이 정도 바람이면 나무 전체가 흔들리고 바람을 마주하고 걷기가 어렵다.기상대의 공식용어로는 「센바람」에 해당한다. 기상대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분류한 바람의 종류는 모두 12가지.모두 순 우리말이다.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뷰포트 표」에 따랐다. 가장 약한 바람은 「실바람」이다.연기는 조금 날리지만 풍향계는 움직이지 않는 초속 0.3∼1.5m의 바람이다. 다음은 「남실바람」.초속 3.3m 정도까지로 바람이 부는 것을 얼굴로 느낄 수 있고 나뭇잎도 살랑거린다. 깃발이 휘날리는 초속 3.4∼5.4m의 바람은 「산들바람」이다. 이보다 한단계 위인 「건들바람」은 먼지를 날리고 종이 조각을 날아가게 한다.초속 7.9m까지다. 초속 13.8m까지의 바람에는 전선이 울리고 우산을 받기가 힘에 겹다.「된바람」이다.이보다 강한 바람이「센바람」이다. 초속 17.2∼20.7m의 바람은 「큰 바람」이다.작은 나무 가지가 꺾이고 5m 이상의 파도가 인다. 「노대바람」은 초속 28·4m까지의 강풍으로 나무가 뿌리채로 뽑힌다. 가장 센 바람은 이름도 살벌한 「싹쓸바람」.태풍 중심의 최대풍속이 이에 해당한다.〈김경운 기자〉
  • “옐친,걷기도 힘들어 보여”/미 기자가 본 건강상태

    ◎얼굴 창백하고 체중도 많이 빠진듯/지난 4월 클린턴과 회동때와 대조적 와병설이 나돌고 있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앨 고어 미국 부통령과의 회담을 직접 지켜본 로이터 통신 기자는 옐친의 건강상태가 뚜렷이 나빠졌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의 백악관 출입기자인 로렌스 맥킬런은 지난 4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회담할 당시 옐친의 모습은 매우 정력적이었으나 16일 회담장에 나타난 그는 걷기조차 힘들어 보였다고 말했다. 15일로 예정됐던 두사람의 회담이 갑작스런 옐친 대통령의 휴가로 인해 하루 연기된 뒤 옐친의 건강문제가 새롭게 부각된 상황에서,그는 회담장 출입이 허용된 두명의 미국기자중 한명으로 이 회담을 직접 지켜본뒤 회담장 분위기와 옐친의 건강에 대한 느낌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옐친이 묵고 있는 요양소에는 흰 유니폼을 입은 많은 직원들이 있었으며,마치 사무실과 병원이 혼합된 듯한 느낌을 주었다. 취재진은 사진을 찍기위해 마련된 3층의 한 방으로 안내됐는데 65세의 옐친은 그곳에 양팔을 옆에 바짝 붙인채 마치군인처럼 긴장한 상태로 혼자 서 있었다. 바닥을 보며 걷고 있는 그의 모습은 걸음걸이에 특별히 집중을 하는 것이 명백해 보였는데 아마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려는 것 같았다. 이날 옐친이 가장 생기있어 보인 때는 고어가 그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의 승리를 축하할 때였다. 고어는 회담이 끝난 뒤 옐친의 건강문제에 대한 질문에 심각한 상태가 아닌 것처럼 말하려 애썼다.그러나 옐친의 건강에 대한 의문은 좀처럼 사그러들것 같지 않다.〈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 유족들 희생자 부르며 빗속 오열/「삼풍」 1주기 추모식 이모저모

    ◎인간띠 만들어 부실공사 추방 촉구/돌풍으로 씻김굿 등 일부행사 취소 건국이래 최대의 참사로 기록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1주년을 맞아 지난 29일 하오 사고현장과 서울교대 등에서는 하루종일 장마비가 내리는 가운데 추모식과 각종 추모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성수대교 남단 진입로에서 1천여명의 유족과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맑은사회 안전사회 만들기 시민대회」로 시작. 사전행사로 기획된 풍물패의 씻김굿이 취소될 만큼 돌풍이 몰아치고 굵은 빗방울이 쏟아졌음에도 유가족들이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아 오열하자 대회장은 시종 숙연한 분위기. ○…대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성수대교에서 삼풍백화점까지 6㎞구간에 걸쳐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부실공사 추방 캠페인을 전개. 삼풍추모준비위원회 심영규회장은 『부실공사의 상징적 현장인 두 곳을 연계해 그날의 교훈을 다시 한번 되새기고 생명존중의 사회를 만들자는 의미』라고 설명. ○…하오 4시40분쯤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에 도착한 걷기대회 참석자들은 백화점 주변 1㎞가량을 손을 맞잡고 에워싸는 「생명존중 사회를 위한 인간띠」를 연출하며 부실공사 추방을 다짐. ○…사고 당시 실종자 가족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에서도 삼풍참사 1주기 추모위원회와 「자유학교를 준비하는 모임 물꼬」가 1천여명의 어린이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혼제를 거행. 행사장에는 「부자가 왜 건물이 한꺼번에 무너지도록 지었을까요.내가 어른이 되면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을 거예요」 등 초등학생들이 어른들을 「꾸짖는」 글 1백여편이 전시돼 눈길.〈박용현 기자〉
  • 관상동맥 경화증 뱃살 빼면 쉽게 치료

    ◎연세의대 내분비내과­심장내과 팀 임상연구/엄격한 식사조절·운동요법 병행/혈압·콜레스테롭 현저하게 감소/인슐린분비 줄고 혈관은 넓어져 복부비만에 따른 인슐린저항성이 관상동맥경화증의 원인으로 지목돼왔다.국내에서 최근 이를 입증하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엄격한 식사요법과 규칙적인 운동요법으로 복부비만을 개선하여 인슐린저항성을 감소시켜 관상동맥경화증을 호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관상동맥경화증은 발병초기에 3분의 2가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데다 고비를 넘겨도 항상 재발의 위험이 있고,40대이상 성인 급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연구결과는 관상동맥경화증환자의 관심을 끌 것으로 보인다. 연세의대 내분비내과 허갑범 교수와 심장내과 조승연 교수팀은 지금까지 관상동맥경화의 위험인자로 여겨져온 흡연·고혈압·고지혈증·당뇨병·정신적 스트레스·비만 외에 최근 의학계에서 복부비만에 따른 인슐린저항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소위 대사성증후군(X증후군)이 계속 거론되고 있는 데 착안해 연구를 시작했다.이들은 관상동맥경화증환자를 대상으로 발생이나 진행에 인슐린저항성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임상연구로 입증해냈다. 연구팀은 협심증을 앓고 있는 14명의 환자중 7명은 1년동안 엄격한 식사조절(1일 총열량 1천8백㎈,체중 60㎏기준,지방섭취량 총열량의 15%미만)과 운동요법(1일 걷기운동 40분,금연절주포함)을 시행하고,나머지 7명은 일반적인 식사요법만을 시행하여그 결과를 1년후 대조한 결과 연구대상군은 평균체중이 66㎏에서 61㎏으로,허리엉덩이의 둘레는 0.96에서 0.93으로 현저하게 감소하였으나 대조군에서는 변화가 없었다는 것. 또 연구대상군에서는 수축기 혈압이 평균 1백50㎜Hg에서 1백19㎜Hg로,혈청 콜레스테롤은 평균 2백11㎎%에서 1백73㎎%로,동맥경화와 관계가 깊은 저밀도 콜레스테롤도 평균 1백43㎎%에서 1백15㎎%로 현저하게 감소하였으며,경구 당부하에 따른 인슐린분비도 현저히 떨어져 복부비만의 감소로 인슐린저항성이 개선된 것을 볼 수 있었으나 대조군에서는 별변화가 없었다. 연구팀은 이 같은 결과로 볼 때 관상동맥경화증환자 치료는 약물이나 수술요법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반드시 엄격한 식사와 운동요법을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당뇨병학회지 6월호에 실렸다.〈고현석 기자〉
  • 「마약퇴치 부산시민 걷기대회」

    ◎“온 국민 힘모아 「백색공포」 퇴치” 다짐/부산시장·시민·학생 등 5천명 참석/부산역 광장서 출발… 3.5㎞ 가두홍보 서울신문사·스포츠서울과 한국방송공사(KBS) 부산방송총국이 공동주최한 「96마약퇴치 국민대회겸 95회 부산시민걷기대회」가 16일 상오 11시 부산역광장에서 열렸다. 유엔(UN)이 정한 세계 마약류퇴치의 날(오는 26일)을 앞두고 열린 이날 대회에는 문정수 부산시장,송정호 부산지검장,이필우 부산지방경찰청장,박광수 부산본부세관장과 본사 이동화 상무이사를 비롯 부산시,부산시약사회,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부산지부,한국보이스카우트연맹,한국걸스카우트연맹,한국에어로빅협회,선화여상등 10개 사회단체회원 및 청소년·시민·학생등 5천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행사는 마약류퇴치기념식에 이어 마약퇴치 결의를 다지는 부산시민걷기대회를 갖고 참석자들이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까지 거리행진을 벌이면서 시민들에게 마약과 약물류 오·남용에 대한 주의를 촉구했다. 본사 손주환사장을 대리한 이상무는 대회사에서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문 마약류퇴치 성공국가,마약류 안전국가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난 몇년동안 국제마약유통의 중간경유지에서 소비지역으로 바뀌면서 마약류사범이 크게 늘고있다』며 『자신과 가정,사회를 병들게 하는 마약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감시하고 중독자의 재활과 치료를 돕는데 모두 힘을 합하자』고 말했다. 문시장은 기념사에서 『마약사범들은 주로 술집등을 무대로 피로회복과 숙취제거 신경성질환등에 잘듣는 명약으로 유혹한다』며 『미래의 주인공인 어린 청소년들사이에도 본드등 유해화학물질이 성행하고 있어 강력하고 지속적인 퇴치할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념식이 끝난뒤 참석자들은 선화여상 취주악대의 연주에 맞춰 동구 범일동 성남초등학교까지 3.5㎞구간을 행진한뒤 참석자 전원에게 기념품을 나눠줬다.또 추첨을 통해 VTR·TV·자전거등을 경품으로 선물했다. 대회에 앞서 한국에어로빅협회소속 에어로빅시범단은 20여분동안 화려한 율동의 에어로빅시범을 보여 참석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이기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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