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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대문구 29일부터 구민의 날 행사

    서대문구(구청장 李政奎)는 구민의 날(11월 3일)을 맞아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한다. 29일 오후 2시 문화체육회관 3층 대강당에서 열리는 생활체조 경연대회를시작으로 30일 오후 2시부터는 안산공원에서 소년소녀가장 및 결식아동 가을풍경 그림그리기가 마련되고,오후 5시부터는 문화체육회관 대강당에서 김자경오페라단이 출연해 우리 가곡과 오페라 아리아의 선율을 들려준다.31일에는 구민가족걷기대회가 개최된다. 김재순기자 fi
  • 이봉주 왼발부상… 올림픽金‘초비상’

    ‘한국 마라톤의 기둥’ 이봉주(29·코오롱·사진)가 훈련중 심각한 부상을당해 내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 목표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은 29일 “이봉주가 8월말부터 한달동안 호주 시드니에서가진 전지훈련중 왼발 부상을 당했다”며 “소속팀인 코오롱은 참가 예정이던 11월 뉴욕마라톤 등 올해의 모든 국제대회에 이봉주를 출전시키지 않기로했다”고 밝혔다. 정봉수 코오롱감독도 “진단 결과 왼발 복숭아뼈 아래의인대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난 5일 정밀검사에서 뼈조각이 발견돼재활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깁스를 풀고 가벼운 걷기운동을 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코오롱은 이봉주를 푹 쉬게 한 뒤 내년부터 올림픽을 대비한 훈련에 합류시킬 방침이다. 한편 이봉주를 치료해온 이경태 을지병원 족부클리닉 과장은 “현재 상태로는 수술을 하는 게 좋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후유증이 우려돼 메스를 대기 어렵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
  • 중구 10월1일 구민의 날, 각종 문화행사 풍성

    서울 중구(구청장 金東一)가 구민의 날을 제정,10월 1일부터 10일까지 다양한 주민축제를 마련한다. 지난 1943년 중구라는 명칭을 사용한 이래 처음으로 갖는 구민의 날 행사다. 구민의 날 제정과 관련,구는 그동안 신당동과 중림동이 편입돼 현재의 행정구역이 확정된 75년 ‘10월 1일’안과 일제때인 43년 경성부 안에 중구가 생긴 ‘6월 10일’안,숭례문 건립일인 1396년 ‘3월 4일’안 등 세가지를 놓고몇차례 여론조사를 거치는 등 고심해오다 최근 10월 1일을 구민의 날로 확정했다. 첫날인 1일에는 남산골 한옥마을에서 널뛰기 투호던지기 제기차기 떡메치기도자기빚기 등 전통놀이와 문화행사가 마련되고, 2일은 동국대 운동장에서‘중구민 한가족 체육대회’가 열린다. 이어 노인장기대회(5일 구민회관),‘우리집 맛자랑 경연대회’(6일 구청 강당),‘어린이 글짓기·그림그리기 대회’및 ‘주부백일장’(7일 남산),‘장충단제’(8일 장충공원),‘중구민 한가족 걷기대회’(10일 남산) 등이 개최된다. 김재순기자 fidelis@
  • [외언내언] 교수 떠나는 서울대

    서울대 수학과와 물리학과의 젊은 교수 두명이 사표를 내고 이달 초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고등과학원으로 자리를 옮겼다.“연구에 전념할 시간이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이 서울대 조교수와 부교수 신분을 버리고 고등과학원의 3년 계약직 연구교수 신분으로 옮겨간 이유다. 이 소식은 신선함과 함께 착잡한 느낌을 아울러 갖게 한다.신선한 느낌이드는 것은 ‘서울대 교수’라는 직함이 보장하는 명예와 안정등 여러 이점을 과감히 버리고 학자로서의 길을 충실히 걷기로 한 결단이 아름답기 때문이다.한국의 대학 교수들은 자기 전공분야의 연구실적으로 실력과 권위를 인정받기보다 어느 대학 교수인가에 따라 다른 평가를 받는 것이 서글픈 우리 현실이다. 한편 착잡한 느낌은 두 교수가 새삼 일깨워준 우리 대학현실에서 비롯된다. 이들이 서울대에서 맡은 강의는 주당 6시간,즉 한 학기에 두 과목이었다.미국의 명문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연구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갖도록 한 학기에 한 과목만 맡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탠퍼드 대학의 한 한국인 교수는 “지난 1년간 자정 이전에 집에 들어간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대학에 비하면 서울대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서울대 이외의 국립대학 교수들은 주당 9시간씩 강의하며 사립대학에서는 10시간이 넘는 경우도 많다.올해부터 일부 명문 사립대학이 서울대와 같은 주당 6시간 기준을세웠지만 실제로는 9∼12시간 강의를 맡는 교수들이 있다.대학 교수들이 강의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겨 연구할 시간이 기본적으로 모자라는 것이다. 우리 교수들의 국제적 학문연구 수준이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비판에 교수 사회가 볼멘 소리로 불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이 불평을 잠재우려면 교수 숫자를 늘려야 하는데 교수당 학생수가 미국(15명) 일본(18명) 독일(12명)에 비해 두배가 넘어(36.6명) 이 문제까지 해결하자면 재정적으로 큰 부담이 된다. 두 교수는 연구시간 부족 이외도 지나치게 복잡한 연구비 신청절차,터무니없이 낮은 보수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우리 대학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거점이 되려면 이런 문제점들도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특히 서울대는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지원하는 ‘두뇌한국(BK) 21’사업의 중점 지원대상으로 연구중심대학을 표방하고 있다.이 대학에서 연구할 시간 부족과 대학행정의 관료주의 때문에 교수가 떠나간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다.모든 교수가 연구만 할 수는 없겠지만 뜻있는 교수들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그런 여건이,학문연구에 도움 되지 않는 외부활동에 몰두하거나 보직에 연연하는 정치적 교수나 게으른 교수들을 위한 것이 아님은물론이다. 임영숙 논설위원
  • 노인들 적당한 운동은 ‘불로초’

    70대 노인들은 어느 정도의 운동을 해야 적당할까.장년기까지만 해도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이때가 되면 몸을 사리고 운동에 소홀해지기 쉽다.하지만70대에 들어서도 그 이전 못지 않게 운동량을 유지하는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울산대의대 서울중앙병원 스포츠의학센터 진영수 교수는 “노년기에 운동량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라며 “운동 강도는 줄여야 하지만운동횟수 등은 오히려 조금씩 늘리는게 체력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성균관대의대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과 박원하 교수도 “노년기에는 체력저하와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이를 최소한으로 늦추기 위해 운동의중요성이 젊었을 때보다 훨씬 더 커진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70대 이상 노인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적정 운동량은 얼마나될까.최근 진영수 교수팀이 70,80대 노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결과는이러한 궁금증을 푸는데 참고가 된다. 연구팀은 노인들의 적정 운동량을 조사하기 위해 70,80대 고령 여성 30명을 대상으로 자체 개발한 ‘유연체조’를 실시했다.1회당 40분씩주 3회3개월간 실시한 결과,허리둘레가 평균 6cm,엉덩이 둘레는 2cm 줄었으며, 체지방도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노인들의 건강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허리유연성이 4cm(허리를 굽혔을 때 손끝이 내려가는 거리),좌우악력(쥐는 힘)이 3kg,배근력(허리힘)이5kg 증가했다.건강 유지에 중요한 제지방 체중(지방을 뺀 근육의 무게)은 0. 9kg 늘었다.고령임에도 운동에 따른 부작용은 전혀 없었다. 이에 반해 운동을 전혀 하지 않은 그룹(30명)과 주당 1회만 실시한 그룹의노인들은 건강체력에 관계되는 유연성,배근력,심폐기능 등이 감소했으며 제지방 체중도 줄었다.이러한 결과는 70대 이상 노인들도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주 3회 이상 운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또 이정도 운동은고령임에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진교수는 유연체조를 대신할 만한 운동으로 수중체조와 산책,빨리걷기,요가 등을 권한다.이러한 운동은 유연체조보다는 운동강도가 비교적 세지만 상해 위험이 적고운동량 조절이 쉬운 것들이다. 수중체조와 산책은 1회에 20∼40분,빨리걷기는 20분,요가는 30분 정도씩 주 3회 이상 실시하는게 적당하다.완만하고 길지 않은 코스의 가벼운 등산도좋다.하지만 가파른 코스의 등산이나 테니스,배드민턴,달리기 등은 운동효과는 높지만 관절손상이나 골절 등 위험이 따르기 때문에 삼가는 것이 좋다. 임창용기자 sdragon@
  • [21세기 내고장 역점사업](33회)-김제시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전북 김제시는 우리나라 도작(稻作·벼농사) 문화의발상지다.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벽골제’도 바로 이 지역에 있다. 21세기를 앞둔 김제의 시정 목표는 ‘풍요롭고 희망찬 김제 건설’이다.농도(農都)의 잇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것이 시 발전전략 중 하나다. 시는 올 가을 추수철인 10월8∼10일 사흘동안 시내 및 벽골제 일원에서 ‘제1회 지평선 축제’를 개최한다.드넓은 평야 때문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수 있는 지리적인 특성을 살려 훌륭한 지역문화 축제를 만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제의 지리적 여건 논 2만3,852여㏊에 연간 쌀 생산량만 12만7,000여t에 이른다.단위 시·군으로는 전국 최대 곡창지대다.들녘에 나가면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장관’을 어디서나 쉽게 만날수 있다.물론 서해안을 끼고 있는진봉면의 심포항에 가면 널따란 개펄과 함께 펼쳐지는 수평선도 볼수 있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함께 관찰할수 있다는 것이 김제의 특징이기도 하다.부량면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인 벽골제와 수리 민속 유물 전시관이있다.전시관에는 농경사회의 삶을 읽을수 있는 여러 유물들과 벼농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수리시설의 변천 과정,둑을 쌓고 물을 가둔 벽골제 축조과정 등이 전시되고 있다. ■지평선 축제 ‘하늘과 땅이 만나는 오직 한 곳,김제로 오세요’ 시는 전국 유일의 비경인 ‘지평선’을 주제로 한 이번 축제를 전국적인 문화행사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또 전국 최고의 품질을 자랑하는 김제쌀도 이번 기회에 전국 최고의 브랜드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해 나갈 방침이다.이같은 의도에 따라 다양한 행사가 마련됐다. 우선 행사 첫날 개막식에서는 품질이 좋은 쌀을 임금에게 바치는 ‘우수 쌀 진상식’을 갖고 풍년을 기원하며 정월 대보름에 행해진 ‘입석 줄다리기놀이’가 재현된다.또 행사 참가자들이 옛날을 회상하며 황금 벌판을 걷는‘지평선 논길 걷기’가 펼쳐지고 농사와 관련된 소,농부,농기구 등의 형상물과 짚을 이용한 조형물을 제작 전시하는 야외 조형전이 열린다. 행사 이튿날엔 한국방송공사의 전국노래자랑공연과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허수아비 만들기 대회,연날리기 대회도 열린다.또 벽골제 특설무대에서는 ‘지평선 위에 젊음과 자유가 펼쳐진다’는 주제의 도내 대학생과 일반 가수들의 노래와 춤 공연이 열린다. 행사 마직막 날엔 출향 인사와 시민,관광객들이 함께 참여하는 ‘철인(농민) 5종 경기’가 펼쳐진다.새끼줄 빨리 꼬기,쌀가마 들고 달리기,볏짚 많이나르기,이엉 엮기,용마름 엮기 등 농촌에서 자주 하는 작업 5가지를 소재로신종 운동경기를 만든 것. 또 백합으로 유명한 심포항에서는 조개축제가 열려 가장 큰 조개를 캔 참가자에게는 푸짐한 상품을 준다.망둥어 낚시로 유명한 만경대교 부근에서는 가장 큰 망둥어를 잡은 강태공을 뽑아 시상한다. 행사기간 내내 옹기와 대장간의 농기구 제작 과정 시연은 물론 짚을 이용한 공예품의 전시 판매도 이뤄진다. 또 황금 벌판을 전통 우마차를 타고 달릴수 있도록 우마차 여행을 실시하고 공중에서 넓은 평야를 관찰할수 있도록대형 열기구도 설치해 관광객들에게 ‘탈 거리’를 제공한다. 연인들이 함께걷다가 사랑이 맺어졌다는 전설이 깃든 벽골제 제방의 ‘단야로’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개방된다.김제예술회관에서는 이지역 출신으로 근대 국내 서도계를 이끈 관촌 조진우,강암 송성용 선생 등을 기리는‘김제 서예 300년전’이 열린다. ■김제쌀 브랜드화 추진 시는 전국 최대 곡창에다 최고의 미질을 자랑하면서도 지역 쌀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역 쌀의 고유상표가 너무 많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금만’,‘고래실 쌀’,‘벽골제 쌀’ 등은모두 김제쌀을 상징하는 고유상표이다.시의 조사에 따르면 김제쌀의 고유상표는 총 26종이나 돼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혼란만 주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시는 지역 쌀의 공동상표를 ‘김제특미 지평선’으로 정했다.시는 특히 이번 축제를 통해 김제쌀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구축해 나가기로 했다. 전주 조승진기자 redtrain@*곽인희 김제시장 인터뷰 “선조들의 정신문화와 물질문화를 이번 축제를 통해 담아내겠습니다” 곽인희(郭仁熙) 김제시장은 요즘 ‘지평선 축제’준비에 여념이 없다.곡창인 김제를 널리 알리고 김제쌀의 성가를 높이는데 이번이 매우 좋은 기회라고 믿고 있다. 축제의 이름인 ‘지평선’도 바로 그가 내놓은 아이디어다.그는 “전통과 현재,미래가 조화를 이루는 축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지평선을 테마로 지역축제를 한다는 것이 다소 이채로운데. 김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수 있는 국내 최대 곡창지대이다.종전의 축제는 시민의 날 위주의 행사로 단순히 먹고 마시고 노는 일과성 분위기 때문에 축제의 독창성이 부족했다.지평선 축제는 추수감사제 성격에 역사적 전통성도 갖고 있어 지역사회 통합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김제시의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곡창인 김제는 기본적으로 농업도시의 여건을 갖추고 있다.그러나 지리적으로 호남선 철도와 호남고속도로,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남으로써 내륙과 해안을 잇는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21세기 환황해경제권 시대의 중심도시로 급부상할 요건도 갖추고 있다.따라서 농업과 기타 산업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도시를만들어야 한다. ■전국적인 곡창 이미지와는 달리 김제쌀에 대한 선호도는 그리 높지 않은것 같은데. 김제쌀의 품질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그러나 잘못 알려진 부분이 많다. 심지어는 양질의 김제쌀이 유통과정에서 다른 지역 쌀로 둔갑하는 어처구니없는 사례까지 나타났다.원인을 찾아보니 우리 지역 쌀의 상표가 너무 많은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최근 김제쌀의 고유상표도 별도로 정했다.‘김제쌀 제값받기 운동’도 적극 벌이고 있다. 행사 기간엔 김제쌀을 5㎏ 단위로 소포장해 축제 현장에서 외지인들에게 판매할 계획이다.약간의 시일이 지나면 김제쌀이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끌 것으로 확신한다. 김제 조승진기자
  • 인간형 로봇 국내1호 탄생

    인간과 유사한 오감(五感)과 판단능력을 갖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일을 할수 있는 지능형 휴먼로봇이 국내에서 처음 탄생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휴먼로봇연구센터는 KIST-2000 연구프로그램의하나로 94년부터 80억원의 연구비를 투입해 사람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을결합한 4각(脚) 보행 휴먼로봇 시스템을 개발,최종 완성모델 ‘센토’(CENTAUR)를 29일 공개했다.‘센토’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에서 따왔다. 휴먼로봇 1호 ‘센토’(키 160㎝,몸무게 150㎏)는 시각과 청각 기능을 갖는머리부,손가락 세개가 달린 손을 장착한 두개의 팔,네개의 다리로 됐으며 어린아이 정도의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 청각기능을 갖는 음성인식장치,사람 턱의 움직임을 닮은 음성발생장치,인공피부 센서 등 사람의 복잡한 감각기능이 최대로 구현됐다. 센토는 이날 블록쌓기,장미 선사하기,톱질하기,걷기,자기소개,역기 들기 등의 시범을 보였다. 함혜리기자 lotus@
  • [대한매일을 읽고] 富의 공정분배 적극적 방안 모색을

    ‘집중분석 빈부격차’(대한매일 26일자 5면)에서 부유층의 그릇된 소비행태는 평범한 서민들에게 허탈감을 주기에 충분했다.한달 내내 아침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까지 일해 봐야 부유층이 걸치는 평상복 한 벌 수준도 되지않는다니 찜통 더위에 아침부터 땀흘리고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애처롭기만 하다. 외환위기이후 중산층의 살림살이는 점점 쪼그라들고 있지만 소위 가진 사람들은 더욱 부자가 되었다니 입맛이 쓰다.부자들에게서 세금을 더 걷기 위하여 마련된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왜 사라졌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이번 기회에 부유층의 잘못된 소비행태를 지적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것이 바람직할 것이다.무엇보다도 부의 공정한 분배,즉 열심히 일한 자에게기회가 주어지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박경순[모니터·주부]
  • 이상민등 실직가장돕기 걷기대회 참가

    프로농구 현대의 이상민 추승균 조성원 등 3명은 4일 경기도 구리시에서 열린 저소득 실직가장돕기 사랑의 걷기대회에 참가했다.가수 안상수씨가 기획한 이번 행사에는 1,500여명이 참가했으며 이상민 등은 출연료 200만원을 기금으로 전달했다.
  • 「남북한 西海 교전」조업중 어민 당시 증언

    - “북쪽서 갑자기 총성 울려” 15일 오전 연평도 서북쪽 교전해역 근처에서 조업을 하던 꽃게잡이배 경주호 선장 이승만(李承晩·46)씨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디서 조업을 하고 있었나. 8일전 연평도 서쪽 14㎞쯤에 쳐놓은 그물이 북쪽으로 좀 떠내려가 조업제한구역 북쪽에서 조업을 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 8시 40분쯤 그물을 찾아 걷기 시작했다.작업을 시작한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때 갑자기 북쪽에서 “쿵쿵,드르륵”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이상하다 싶어 서둘러 그물을 걷는데 무전기로 “긴급사태 발생,모두 가까운 항포구로 귀환하라”는 전갈을 받았다. 교전과 관련해 목격한 것은. 작업을 급히 중단하고 연평도로 돌아오는데,북쪽에서 우리 군함이 총격을받은 듯 배 뒷부분에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우리 배 옆을 지나갔다.피해가 있는 듯 제 속력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불안하지 않았나. 선원들이 모두 공포에 떨었다.군함들이 북쪽으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에 보지 못하던 1,000t이 넘을 것 같은 큰 군함들도 많았다. 연평도 전영우기자 ywchun@
  • 이사람…日 무사시노市 도로정비과 사와타씨

    “한국 공무원들의 근면성에 놀랐습니다.하지만 안전문제에는 소홀히 대처하는 것 같아 또 한번 놀랐습니다” 지난 4월 1일부터 강동구에서 파견근무중인 일본 도쿄도(都) 무사시노시(市)의 도로정비과 주임 사와타 구라기치(澤田 倉吉·45·사진)씨는 파견근무두달 동안 관찰한 서울시 공무원들의 근면성을 높이 평가했다. 일본에서 25년 동안 공직생활을 했던 사와타씨는 특히 우리나라 공무원들의 가족적인 분위기와 퇴근시간 후에도 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 공무원들이 안전에 관한 문제를 대충대충 처리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본에서도 도로정비과에 근무했던 사와타씨는 우리나라의 보도가 울퉁불퉁해서 시민들이 걷기에 아주 불편하다고 덧붙였다. 또 무사시노시의 경우 인구의 1%가 공무원인 데 비해 강동구는 공무원이 0. 3%에도 미치지 못해 행정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사와타씨는 이와 함께 우리 공무원들이 일본에 비해 서비스 정신이 뒤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행정은 그 자체가 서비스라고 생각합니다.행정서비스가 좋아야 시민들이그 보답으로 세금을 내는 것이지요.행정 서비스가 나쁘면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 급료가 줄어들게 됩니다.그래서 일본의 공무원들은 공무원이기 이전에 서비스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게임을 보고 한국에 관심을 갖게돼 한국에 관한 책을 많이 읽는 등 한국을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는 6개월 동안 파견근무하면서 한국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했다.한편 사와타씨는 행정서비스의 질이 좋아지려면 공무원의 급료가 봉급생활자중에서 중간 정도는 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김용수기자
  • 5·18 민주화운동 추모행사 다채

    - 전남도청앞에 시민 3,000여명 운집 성지순례 통해 그날의 정신 되새겨 5·18민주화운동 19주년을 이틀 앞둔 16일 역사의 현장인 전남도청 앞과 5·18묘지 등에서 민주영령을 추모하고 그날의 정신을 되새기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이날 오전 시민걷기대회에 참가한 1,000여명은 5·18의 시발점이 된 전남대를 출발,광주역∼광주일고∼광주천∼광주공원에 이르는 4㎞를 걸으며 역사의 현장을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오후 2시 도청 앞에서는 3,000여명의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5·18 정신계승 국민대회’가 열려 민중항쟁을 주제로 다룬 문화공연과 거리행진이이어졌다. 특히 전국의 실업자 300여명과 대학생 150여명은 도청 앞에서 성지순례단출정식을 갖고 역사의 현장을 찾는 거리행진에 동참했다. 운정동 5·18묘지에서는 영령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5·18 민주영령천도제’와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이 참배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한편 이날 5·18행사위원회 초청으로 광주에 온 스리랑카,동티모르,태국 등 동아시아권 국가폭력 피해자단체 관계자 7명이 묘역과 도청앞 등 역사의 현장을 둘러봤다. 광주 남기창기자 kcnam@
  • ‘5·18’ 19주년 한달간 기념행사

    ‘인권신장' ‘민족화합' ‘실업극복' 을 주제로 한 5·18민중항쟁 19주년 기념행사가 1일부터 한달간 광주·전남 일원에서 열린다.주요행사 일정은 다음과 같다. ▲헌혈운동(1∼21일,5·18구속자회) ▲5월 Y포럼(13일 오후 2시,광주 YWCA·YMCA) ▲전국대학생 5·18성지순례(15∼16일,광주YMCA) ▲5월 전국청년문화제(15∼16일,광주YMCA) ▲실업극복 및 공동체사회를 위한 토론회(15일 오후 1∼3시,광주 한국고로시멘트 문화센터) ▲시민걷기대회(16일 오전 10시,전남대∼광주공원) ▲5·18정신계승 국민대회(16일 오후 2시∼4시30분,전남도청앞) ▲5·18경축공연(16일 오후 7시,광주시 문예회관) ▲5·18영령 천혼천도법회(16일 오후 2시,5·18묘지) ▲추모기도회 및 기념예배(17일,5·18묘지) ▲추모제(17일 오전 10시,5·18묘지) ▲전야제(17일 오후 7시,금남로 일원) ▲5월문학제 및 전국문학인대회(21일 오후 5∼8시,광주YWCA) ▲‘5·18민중항쟁과 미국' 토론회(22일 오후 3시,가톨릭센터) ▲도청앞 노제(27일 오전 7시)
  • 날마다 축제… 흥겨운 5월

    가정의 달인 5월의 서울은 온통 축제와 문화이벤트,행사들로 뒤덮인다.서울시와 각 구청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다양하고 알찬 문화예술 행사를 대부분 무료나 저가로 마련, 가족단위의 향유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시는 내·외국인들이 다시 찾고 싶은 서울을 만들기 위해 경복궁 광화문 대학로 명동 등 4대문안 역사·문화 탐방로를 중심으로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한다. 종묘공원 국악정에서는 ‘전통연회의 장’이 열려 사물놀이,택견,민요공연이 펼쳐지고 돈화문에서는 ‘궁중생활의 장’을 통해 수문장 연출극과 상황극 ‘금군’을 선보인다.또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는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강강수월래 및 전래동요 등 우리 문화와 놀이를 배우는 ‘문화체험의 장’이 마련된다.‘젊은 향연의 장’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록·포크송 콘서트가,‘세계민속의 장’ 정동로타리에서는 외국어대의 12개 나라 민속공연 등이 열린다. 시는 이밖에 5월 한달동안 다양한 청소년대상 이벤트를 펼치며 각 자치구들도 구민의날 등을 맞아 풍성한 축제행사를 주민들에게 선사한다. 성북구는 개청 50주년을 맞아 4일부터 11일까지를 ‘아리랑 축제’ 기간으로 정하고 선잠제 봉행과 무료영화상영,기념공연,체육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한다. 관악구는 1일 구민의 날을 맞아 관악산 1,2광장에서 관악산제와 철쭉아가씨 선발대회,구민노래자랑 등으로 짜여진 ‘관악산 철쭉제’를 갖는다. 강남구도 1,2일 이틀간 로데오거리 일원에서 ‘압구정문화축제’를 열며 종로구는 3일부터 9일까지 구민의날 행사를 갖는다. 이밖에 서초구는 2일 구민걷기대회를,강서구는 각 동별 경로잔치를,중랑구는 14일 구민의날 행사를 각각 치른다.
  • 美연출가 로버트 윌슨 초청 서울연극제 개막작품 오디션

    참가작품의 경연 형식을 없앤 ‘제23회 서울연극제’의 개막 작품인 ‘바다의 여인’(헨리 입센 원작·수잔 손탁 각색)에 출연할 배우들이 확정되었다. 지난 20일 방한한 미국 연출가 로버트 윌슨은 21일 공개 오디션을 통해 6명의 기성 배우를 뽑았다.주인공은 전무송 윤석화 김철리 장두이 방은진 김윤진. 윌슨은 기자 간담회에서 “이들의 경력보다는 동작과 텍스트를 중심으로 테스트해 뽑았다”면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말했다.이어 “연극 연습은 스탠딩부터 시작한다고 할만큼 무대에서 똑바로 서는 것이 어렵다”면서‘서기’와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극협회가 ‘세계적 페스티벌’을 내걸고 개막무대 연출가로 초청한 윌슨은 다양한 실험극으로 세계에서 인정받는 거물.연극 무용 오페라 등의 개별장르를 부정하고 기존 장르에다 건축·미술 등 시각예술을 가미한 복합적인작품활동으로 호평을 받았다. 그는 오디션 소감을 묻자 “한국 배우는 내면적이다”면서 “예를 들어 어떤 동작을 따라하라고 주문하면 동작은 보지않고 자기 머리 속에 나름대로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밝혔다.이는 어릴적부터 댄스나안무에 훈련되어 있는 미국 배우의 외향적 분위기와는 다르다고 평가했다. 연극제가 처음 도입한 예술감독직을 맡은 임진책씨는 “그동안 연극제가 세계의 흐름에는 둔감하여 집안 잔치에 머물렀다”면서 “윌슨과 같은 세계 일류의 연출가를 초청하여 명실상부한 세계적 잔치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극제는 오는 9월1일 ‘바다의 여인’을 시작으로 음악 마임 무용 등다양한 장르를 대폭 수용하여 10월17일까지 대학로에서 열린다. 이종수기자
  • 오늘의 행사

    ◆오늘‘유채꽃 국제걷기대회’한국체육진흥회(화장 宣相圭)는 24∼25일 제주 서귀포시 일원에서 2002년 월드컵 개최 성공을 기원하는 ‘제1회 유채꽃 국제걷기 대회’를 연다.
  • 전주천·삼천둔치 유채꽃 100리길‘희망의 꽃밭’

    어떤 역경 속에서도 꽃을 바라보면 힘이 솟는다.그래서 희망은 가난한 사람에겐 양식이다. 전북 전주시 전주천과 삼천 둔치에는 유채꽃이 지천으로 널려있다.왕복 100리 길이다.초록과 노란물감을 풀어놓은 듯 한 하천 연변에는 가족,친구 연인들이 이야기 꽃을 피운다.어느덧 마음이 푸근해지고 고통과 절망은 눈녹듯이사라진다. 전주 둔치의 유채꽃에는IMF의 애환이 서려 있다.공공근로사업의 일환으로조성된 것이기 때문이다.지난해 9월 실직자들은 쓰린 마음을 접어두고 둔치에서 땅을 다지고 돌을 골랐다.잡초를 뽑고 다가올 봄에 희망의 싹이 트기를기원하면서 씨를 뿌렸다. 홍수로 둔치까지 물이 넘쳐나고 추위가 엄습하는 등 시련이 몰려왔다.그러나 그 어떤 시련도 꽃을 피우겠다는 시민들의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시청에“내가 뿌린 꽃씨가 비에 떠내려 가지 않았으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치는 등 시민들의 관심은 온통 꽃에 가 있었다.유채꽃은 이러한 바람을 저버리지 않았다.땅속에서 굳게 뿌리내림을 한 뒤 언땅을 뚫고 싹을 틔웠다. 유채꽃은 요염하게 저만치 혼자있기 보다는 무리지어 핀다.서로가 서로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유채꽃은 희망과 버팀목의메시지만 전해준 것은 아니다. 전주시는 앞으로 범죄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기대한다.청소년들의 탈선의장소였던 둔치가 꽃밭으로 변했기 때문이다.현명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지만어진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물가에 꽃마저 피었으니 더 이상 둔치는 버려진땅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는 다음달 9일까지 이 곳에서 유채꽃 축제를 벌인다.아마추어 사진촬영대회,유채꽃길 걷기 대회,자전거 대회,뮤직 페스티벌 등을 펼친다. 전주 임태순기자
  • [부활절 특집]“예수의 부활생명 나눠 민족위기 극복”

    4일은 부활절이다.부활절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을 축하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가 가장 중히 여기는 축일이다.부활절을 맞아 국제대학생선교회(C.C.C) 원로 디렉터인 김준곤(金俊坤·75)목사로 부터 부활절의 의미와 부활절을 맞는자세 등을 들어보았다. ▒부활이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데 요즘 일반인에게는 물론 일부기독교인조차도 이를 관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 않은 것같습니다.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공적이면서도 증인과 증거를 내세울 수 있는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믿는 자들은 결코 그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4가지 진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4가지 증명이란? 먼저 진리가 거짓에 승리한 것을 증명합니다.그리고 선이 악에 승리한 것을 입증하고 있고,사랑이 증오를 극복하고 승리한 것을 입증합니다.마지막으로 생명이 죽음에 승리한 것을증거하고 있습니다.때문에 부활을 단순히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다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특히 IMF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생명을 나누는 일입니다.이 부활생명이 우리 국민들 마음속에 역사할 때 우리 민족이 처한 총체적위기는 극복될 것입니다. ▒부활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요. 부활은 더 이상 기독교인들에게만 의미있는 일이 아닙니다.십자가에 매달렸던 예수께서 다시 부활하신 것은 우리들에게 메시지를 전해주려는 뜻이었습니다.사랑과 화해,희생,봉사,나눔,섬김의 메시지이지요.그리고 절망에서 소망을 볼수 있도록 해줬습니다.오늘날 세계가 봉착한 인종문제나 종교갈등,도덕적 타락은 물론 우리의 남북문제나 지역감정,노사,빈부,세대간,계층간 갈등문제 등 첨예한 대립을 보이는 문제들은 이같은 예수님의 부활의 메시지속에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가난하고 고통받는,소외된 자들이 부활의 축복을 받을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굶주리는 북녘동포들을 도와주고 우리사회에 만연된 문제를 풀기 위해 특히 믿는 자들이 불씨가 돼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운동을 펼쳐야 할 것입니다.또 살벌한 사회분위기를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분위기로 바꿔가야 할 것입니다.이를 위해 하나님과의 관계,자기 자신과의 관계,타인과의 관계,자연과의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그렇게 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신앙문제나 도덕적 타락,자연환경의 파괴문제에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아서 특별히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우리는 현재 남북통일의 강가,21세기의 강가에 서 있습니다.우리는 새로운천년을 현재와 같은 상태에서 맞이해서는 안됩니다.우리 사회는 물론 세계가 처한 위기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믿는 자들이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십자가의 신앙과 부활의 능력으로 이웃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21세기를후손들에게 존경받는 유산으로 남겨주기 위해서는 더욱 그렇죠.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부활 메시지를 사랑과 화해와 도덕의 부활로 맞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는김목사는 올해 초 3일동안 여의도에서 금식기도회를 개최,여기서 모아진 1억원의 헌금을 결식아동돕기에 쓰는 등 몸소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오고 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사우스웨스턴 침례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80년 복음화성회 대회장,84년 세계교회기도성회 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현재 기독교21세기운동 한국대표,한국대학생선교회 총재를 맡고 있다.저서로 ‘예수칼럼’ ‘영원한 생명언어’ ‘김준곤 문설집’(전6권)등이 있다. 朴燦 - 부활절 교리와 풍습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 교리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지 3일째 되는 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며 그리스도가 이렇게 죽음을 정복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죄와 죽음·악마’를 물리친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게 되리라는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활절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로 성탄절과 함께 그리스도교회의주요축일이다.영어이름 ‘Easter’의 기원은 정확히 알수 없으나 8세기 앵글로색슨족의 사제인 비드는 앵글로색슨족이 숭배하는 봄의 여신 ‘에오스터(Eostre)’에서 파생된 것이라고 했다. 매년 날짜가 바뀌는 절기가 실린 교회력 전체가 부활절 날짜에 따르고 있어 한 해 예배를 위한 전례력도 부활절을 중심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부활절은그리스도교에서 1년중 가장 중심이 되는 절기이다. ▒부활절의 날짜 서방 그리스도인들은 춘분(3월21일경) 무렵이나 춘분 다음만월(滿月 부활절 달)이 지난 후 첫번째 일요일을 부활절로 기념한다.그러나 만월이 일요일인 경우 다음 일요일이 부활절이 된다.따라서 부활절은 대개3월 22일과 4월 25일 사이가 된다. 부활절 날짜를 산출하는 방법은 8세기까지 기독교 여러 분파에서 많은 논쟁을 거친 끝에 결정됐다.그러나 동방정교회에서는 다른 계산법을 따라 서방교회와 일치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1주나 4주,5주 후에 해당된다. ▒종교의식 부활절 전야예배는 2세기경 기독교 예배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할무렵 주일성찬에 앞서 성서를 읽고 ‘시편’을 노래하는 주말 전야예배에서비롯됐다.예배순서는 ‘새로운 불의 강복’ ‘부활절 촛불점화’ ‘성구봉독’ ‘세례반 강복’ ‘세례’ ‘부활절 미사’ 등으로 이루어진다. 새벽예배는 주로 개신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부활절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이 ‘부활의 영광’을 보여준다는 믿음에서 시작됐다.미국 펜실베이니아베들레헴에서 시작된 새벽예배는 이제는 미국 전역으로 퍼져 초교파적으로열리는데 TV와 라디오로 중계될 정도로 관심이 높다. ▒부활절의 관습 유럽인들의 고대의식과 상징 표현에서 전래된 것이 많지만그중에서도 새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계란나누기’는 전 세계에 퍼져있는 관습이다.‘계란나누기’는 십자군전쟁에서 유래했다.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십자군부대로 출정한 남편을 가진 한 여인이 고향을 떠나 방황하던중 자신을 정착하게 해준 마을 이웃들의 따뜻한 정에 대한 감사표시로 계란을 삶아 줬는데 바로 그 날이 부활절 날이었다.그녀는 그 계란으로 전쟁에서 돌아와 자신을 찾아 헤매던 남편을 만나게 됐는데이후 매년 부활절이면 부부는 계란에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를 써서 사람들에게 선물했고이것이 부활절에 계란을 나누는 유래가 됐다고 한다. 朴燦- 부활절 한국에 정착하기까지 1885년 부활절 아침,외국선교사들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이후 한국 개신교회는 일제하에서도 교파별,지역별 연합예배를 갖고 ‘민족의 부활’을위해 기도했다.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부활절 연합예배는 1947년 조선기독교연합회가 서울남산에서 1만5,000명의 기독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가진 것이 처음이다. 한국전쟁 중에는 피난지 부산에서 고통받는 민중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도록 역할을 했으나 4.19 혁명을 거치면서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그러나 1962년부터 10년동안은 정치적 상황과 연합예배에 대한 개신교내 교파간 입장 차이로 분열된 가운데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기도 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가맹교단과 비가맹교단이 각각 남산과 덕수궁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렸던 것. 70년대 유신체체하에서도 분열과 갈등을 겪었다.그러나 75년부터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보수와 진보교단이 연합하여 예배를 갖다 96년부터는 장충체육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갖고 있다. 한편 지난 90년부터는 남북교회간에도 부활절 축하 메시지를 나누어 오고 있다. 朴燦- 개신교 오늘 138개지역 연합예배 4일은 기독교 최대의 경축일인 부활절이다.이날은 우리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죽은지 3일만에 다시 살아난 날.20세기의마지막 부활절을 맞아 개신교 가톨릭 성공회 등 기독교계 교단은 부활절 연합예배,예수부활 대축일 미사 등을 통해 부활의 기쁨과 함께 그리스도의 부활에 담긴 참뜻을 새겼다. 개신교는 오전 5시30분 서울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예년과 같이 연합예배를 올렸다.부활절 연합예배는 수많은 교파와 교단으로 나뉘어 있는 개신교계가 이를 초월해 함께 하는 유일한 행사.올해는 예장통합과 합동,감리교 등을 비롯한 30여개 주요 교단들이 참여했다. 장충체육관에서는 이날 0시부터 철야기도회에 이어 오전 4시30분 목회자와신학생들을 중심으로 신앙간증과 찬양,기도회로 시작,5시30분부터 1만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한 가운데연합예배가 거행됐다. 길자연(예장합동 총회장·왕성교회 당회장)부활절 연합예배 대회장의 사회로 시작된 연합예배는 강만원 기장 총회장의 기도와 김삼환 명성교회 담임목사의 설교,이경운 예장대신 총회장,김재룡 예성 총회장의 축도 순으로 이어졌다. 연합예배위원회는 이에 앞서 지난 3월27일부터 일주일동안 ‘남산 걷기대회’‘찬양 대축제’‘민족화합을 위한 한국교회 지도자 회개기도회’‘십자가 대행진’등 갖가지 축하행사를 펼쳐 부활절의 의미를 되새겼다. 가톨릭도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각 교구별로 4일 정오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예수부활 대축일 미사’를 올린다.가톨릭은 부활절 일주일전부터 시작되는 성주간(Holy Week)의 전례에 따라 성(聖)목요일 성유축성 미사,성금요일주님 수난예식에 이어 토요일 오후 8시부터 9시30분까지 성토요일 부활 성야미사를 드렸다. 성공회도 4일 오전 11시 서울 정동의 대한성공회 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150개 성당에서 ‘부활 대미사’를 올린다.성공회는 고난주간(성주간)동안 매일 예식을 올렸다.월화 수요일은 미사와 함께 기도,신앙강화에 힘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금요일에는 수난예식,토요일 오후 7시 중심예식인 부활밤 예절을 드렸다. 한편 기독교 신자들은 사순절에서 부활절까지 40여일동안 매일 정해진 시간 성경을 읽으며 자기근신의 시간,기도,묵상의 시간을 가졌다.기간중 특별금식과 단식을 하면서 이를 통해 모아진 헌금은 불우이웃을 위해 쓴다.성공회도 사순절 기간동안 금식을 권장하면서 신자들에게 미리 주어진 극기헌금함에 모인 동전등 헌금을 불우이웃과 북한동포돕기에 쓸 계획인데 지난해는 동전으로만 4,000여만원을 모았다고 밝혔다. 朴燦
  • 새달 전국 138곳서 부활절 연합예배

    성탄절과 함께 기독교계 최대의 축제일인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가 오는 4월4일 상오 5시30분 서울 중구 장충동 장충체육관을 비롯한 전국 138개 지역에서 일제히 열린다. 99부활절 연합예배위원회(대회장 길자연 목사)는 “IMF로 나라가 고난에 빠진 상황 하에서 치르는 올해 부활절 예배는 노숙자와 실직자들에게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을 전해주는 한편 새로운 천년을 앞둔 마지막 해라는 점에서 어느 해보다 성대하고 다채롭게 치를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활의 기쁨을 민족의 소망으로’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열릴 올해 연합예배는 예년과 달리 3일 자정부터 철야 회개기도로 시작,4일 새벽 4시30분목회자와 신학생이 참여하는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지난 27일 실직자를 돕기 위한 ‘사랑의 남산 걷기대회’를 펼친데 이어 30일 오후에는 서울 서초구 양재동 횃불선교센터에서 부활절 기념‘찬양대축제’를 개최했다. 4월1일 오전 11시에는 서울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영진(국민회의) 김덕룡의원(한나라당)등 크리스찬 정치지도자들과 지덕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등 개신교 지도자 1,000여명을 초청,‘한국교회 지도자초청 민족화합회개기도회’를 가지며 이어 4월2일 오후 2시에는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언덕에 올라 못 박히는 장면을 재현하는 ‘십자가 대행진’이 펼쳐진다. 이 재현행사에는 예수역을 맡은 정선일 집사를 비롯해 20여명의 연예인들이 덕수궁을 출발,남대문과 신세계백화점을 거쳐 남산순환로를 따라 분수대까지 고난의 행진을 한다.십자가 고행에는 정집사와 함께 가나안농군학교 김평일 장로,지덕 목사,김영진 김덕룡의원을 비롯,농민 학생 근로자 교육자 실직자 등 각계를 대표한 33명이 200∼300여m씩 교대로 참여한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의 군상(30)

    ◆前한성은행장 韓相龍2,3년전 평소 알고 지내는 고서점에서 일제말기에 출간된‘창남수장(暢楠壽章)’이라는 문집 한 권을 구입한 적이 있다. 문집 이름에 ‘수(壽)’자가 들어간 것은 흔히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기념하여 만든 것이 보통이다. 일제 당시 환갑잔치에 문집까지 낼 정도라면 고관대작이나 후학이 많은 거유(巨儒) 정도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이 문집 역시 그런 정도로 생각하고 첫 장을 넘겨 보니 당시 미나미(南次郞)총독의 축하 휘호가 나타나더니 뒤 이어 일본인 육군대장의 글씨와 궁내부대신을 지낸 민병석(閔丙奭)의 서문이 곁들여져 있었다. 다시 축하시 모음란에는 당대의 명사들이자 유명한 친일파들이 대거 운집해있었다.황족 친일파인 윤덕영(尹德榮)·좌옹 윤치호(尹致昊)·후작 이항구(李恒九·李完用 아들)·중추원 참의 김사연(金思演)·은행가 민규식(閔奎植)등등. 이런 수준의 인물들이 문집 주인공의 환갑잔치를 위해 시를 보낼 정도였다면 그의 수준·성향도 짐작이 간다.알고 보니 문집의 주인공은 일제당시 경제계의 대표적인 친일파였던 한상룡(韓相龍·1880∼?)이었다. 한때 ‘조선 금융계의 황제’로 불렸던 한상룡은 1880년 규장각 부제학 출신 한관수(韓觀洙)의 3남으로 태어났다.17세때 관립외국어학교 입학을 계기로 신학문에 눈뜬 그는 미국유학을 위해 일본으로 밀항을 하였으나 외숙 이윤용(李允用)의 주선으로 대신 사립 성성(成城)학교에 입학(1899년)하면서군인의 길을 택하였다. 이듬해 그는 한국정부의 관비유학생으로 선발되었으나 장티프스로 학업을중단하고 1901년 귀국하였다.귀국후 그는 사립 중교의숙(中橋義塾)의 영어교사로 일하다가 이 해 경부철도 기공식에서 고종의 종형인 이재완(李載完)의영어통역을 담당한 것이 인연이 돼 공직(평식원 총무과장)의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의 공직생활은 그리 길지 않았다.그는 자신을 둘러싼 ‘좋은 여건’을 배경으로 야심을 키워가고 있었다.당시로선 근대문물에 대한 견문과 영어·일어 구사능력을 갖춘 인재였던데다 그의 뒤에는 당대 제일의 권력자인두 외숙(이윤용·이완용 형제)이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903년 12월 그는 한성은행(漢城銀行) 총무 취임을 계기로 금융계와 인연을 맺게 된다.‘한일병합’ 직후인 1910년 9월 이 은행의 전무취체역으로 취임한 그는 일제당국에 로비를 하여 당시 조선인 합방공로자에게 지급한 은사공채(恩賜公債)를 흡수,자본금을 300만원으로 10배나 증자하면서 비약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한성은행이 조선 귀족들의 은행이라는 소문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며 3·1의거 당시 민중들의 표적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이 무렵 그는 40여년 동안 일본 제일은행의 최고책임자로서 일본 재계의 거두로 군림해온 시부자와(澁澤榮一)를 우상으로 숭배하고 있었다. 그는 정치에서는 이토(伊藤博文),경제에서는 시부자와,건설에서는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目賀田種太郞)를 ‘조선에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3대 은인’이라고 하면서,특히 시부자와에 대해서는 ‘일본은 물론 동양에서 공전 절후의 위인’이라고 극찬하였다.그는 시부자와의 좌우명 ‘일생일업(一生一業)’을 자신의 좌우명으로 삼기까지 했다.그가 대부분의 친일파들 처럼 정계로 나아가지 않고 실업계로 진출한 것은 시부자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일제가 매국에 가담한 친일파들에게 준 공채를 토대로 발전을 도모한 한성은행은 1923년 그가 두취(頭取,현 은행장)로 취임한 직후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관동대지진의 여파에 이어 영업부진·경영악화가 계속됐다.이듬해 총독부는 이 은행을 정리대상으로 지목하였으며 28년 마침내 조선식산은행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의 한성은행인가,한성은행의 나인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에 있었으며 ‘한성은행에서 나고,자라고 그로써 거기에서 죽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한성은행을 잃게 되자 그는 병석에 눕고 말았다.식민지 예속자본의 말로는 바로 이런 것이었다. 이밖에도 그는 한성은행 재직시절 금융계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하여 조선내 각종 기업·회사 설립에 중개자로 참여하였는데 실권은 전혀 가지지 못한채 명목상의 감투만 여럿 쓰고 있었다.이런 그를 두고 정신문화연구원 김경일 교수는 “‘한상룡의 경력은 반도 재계사의 축도(縮圖)’라는 표현처럼그는 제국주의 권력과 식민지 예속경제 사이에서 일종의 브로커 역할을 했던 정상배”였다고 평가했다.금융계에 평생을 바치고자 했던 그의 포부는 한성은행의 경영권 양도와 뒤이어 신탁회사 운영에서 배제되면서 날개를 접고 말았다. 한편 그의 친일이 겉으로 표면화되기 시작한 것은 그가 한성은행에서 물러나 사회활동을 본격 시작하면서 부터라고 할 수 있다.우선 그는 조선에 업적(?)을 남긴 주요 일본인들의 동상·기념비 건립을 시작으로 친일대열에 본격 합류하였다. 첫 사업은 통감부시절 재정고문을 지낸 메가타의 동상을 제작,1929년 10월파고다공원(현 탑골공원)에서 제막식을 가졌으며,이 해 12월에는 이토(伊藤博文)기념회의 조선측 발기인 총대를 맡기도 했다.33년 2월에는 평소 자신이 숭배해온 시부자와의 기념비 건립을 추진,12월 장충단에서 제막식을 가졌는데 이는 전적으로 한상룡의 발의와 주동에 의한 것이었다. 또 35년 5월에는 ‘조선개화의 은인이자 일한합병의 공로자’인 데라우치(寺內正毅)의 동상건설회 발기인 및 실행위원으로 참여하여 총독부 청사내홀 우측에 그의 동상을 건립하였으며,이듬해 2월 소위 ‘2·26사건’으로 사이토(齋藤實) 전조선총독이 사망하자 부민관에서 추도회를 개최하고 39년 4월 그의 동상을 총독부 청사내 홀 좌측에 건립하였다.이밖에도 그는 러일전쟁 당시 한국주재 일본공사 하야시(林權助),정무총감 출신의 시모오카(下岡忠治) 등의 동상건립에 참여하면서 식민통치자들의 업적 찬양에 열을 올렸다. 한편 한상룡이 군국주의 일제통치하에서 40여년간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보다 군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한성은행에서 물러난 후 그는 군부관련 분야에서 두드러진 활약상을 보였다.31년 일제의 만주침략 이후 조선내 각지를 돌면서 강연·담화 등을 통해 그는 일제의 침략전쟁을 옹호하였다. 또 33년 4월 경성국방의회에 발기인으로 참가한 것을 비롯해 조선국방의회연합회 설립준비위원 및 감사(34.4),조선국방비행기헌납회 고문(34.12),해군협회 조선본부 창립위원(35.4)등을 맡아 활동하였다.37년7월 중일전쟁 발발 직전에는 관동군사령부 사무촉탁(칙임관 대우,근무기간 37.7.1∼40.7.1)으로 임명돼 군사령부를 방문,조선실업구락부 및 자신의 명의로 국방헌금을 하였다. 당시 그는 후방 전쟁지원단체인 경기도군사후원연맹 부회장이자 경성군사후원연맹 고문으로 있으면서 ‘애국금차회’ 창립을 주도,조선여성들에게 전쟁물자로 노리개 금붙이마저 내놓으라고 강요하였다.41년 태평양전쟁 개전으로일제의 인력·물자동원이 거세지자 그는 이 역시 전면에 나서서 협력하였다. 특히 43년 징병제가 실시되자 그는 ‘훌륭한 군인이 되자’라는 글에서 “반도에 불타는 애국심과 적성(赤誠)으로 말미암아 드디어 약진 반도의 통치사상에 획기적인 징병제도가 실시되었다”며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의 ‘총알받이’로 내모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27년 중추원 참의(칙임관 대우)에 첫 임명된 이래 해방 때까지 그는 만18년 4개월동안 줄곧 중추원의 참의·고문을 지냈다.해방 1년전인 44년 4월 그는 윤치호·박중양(朴重陽·중추원 참의)·이진호(李軫鎬·총독부학무국장)·이기용(李琦鎔·황족·백작) 등과 함께 일본 귀족원 의원에 선임됐는데 마지막까지 일제에 협력한 결과이자 끝까지 일제에 끌려다닌 형상이라고도 할 수있겠다. 그는 한성은행 경영권 양도를 비롯해 일제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의도적 배제를 당했지만 그 때마다 변신과 일관된 친일노선으로 버텨냈다.한마디로 일제하 그의 생존논리는 철저한 예속과 굴종이었다.그를 ‘친일 예속 자본가의 전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해방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鄭雲鉉 jwh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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