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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삼각산 품에 안긴 효자마을… ‘응팔’ ‘둘리’ 덕에 더 정겹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4회 삼각산과 쌍문동’ 편이 지난 18일 쌍문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쌍문역 3번 출구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정현 가옥에서 ‘분지’의 작가 남정현(87)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참가자들이 미래유산의 현장이자 작가의 집필 모습을 직접 둘러볼 수 있도록 집안까지 개방했다. 2016년 방영 당시 20%대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인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무대 쌍문시장과 감포면옥을 기웃거리면서 식지 않는 드라마의 여운을 느꼈다. 함석헌기념관에서 반독재 민주운동가 함석헌 선생의 씨알사상을 곱새겼다. 기념관은 선생이 만년에 6년간 살던 집을 개조한 서울미래유산이다. ‘아기공룡 둘리’의 고향을 증명하는 둘리뮤지엄을 거쳐 덕성여대에서 투어를 마무리했다. 덕성여대 캠퍼스에는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연과학대, 예술대, 중앙도서관이 서울미래유산 목록에 올라 있다. 삼각산을 품은 3채의 붉은 벽돌 건물이 눈부셨다. 서울도시문화지도사 김은선 해설사가 쌍문동의 어제와 오늘을 열정적으로 들려줬다.오늘의 북서울을 이루는 도봉구와 강북구는 한성부 동부 숭신방에 포함된 성저십리(성 밖 십리) 지역이며, 노원구와 중랑구 일부는 경기 양주에 속했다. 도봉구 쌍문동은 경기 양주군 노해면 쌍문리였다. 노해면은 일제강점기 노원과 해등촌을 합쳐 만든 의미 없는 합성 지명이다. 쌍문동이라는 지명은 효자 계성을 기리기 위해 세운 두 개의 효자문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지역 내 효문중·고교도 효자마을이라는 지역정체성을 강조하려고 지었다. 2007년 쌍문동이라는 지명이 촌스럽다고 하여 효문동으로 변경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주민투표에서 부결됐다고 한다. 쌍문동은 서울과 강원도~함경도 동북지방을 잇는 길목에 위치했다. 조선시대 한양과 전국을 연결하는 10개의 큰 길이 있었다. 한양~의주 간 1070리길이 의주1대로라면 한양~경흥 간 2110리길은 경흥2대로였다. 이 길을 통해 함경도의 북어와 땔감과 약재가 유입됐고, 함흥차사와 김종서의 여진정벌군이 오갔다. 서울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주요 간선도로의 경유지와 거리, 경유 지역을 정리한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중 정리고(程里考)에 따르면 경흥대로는 동대문에서 15리 떨어진 수유현과 32리길 누원을 지나 금화현~금성현~영흥부~함흥부~북청부~길주목~회령부~경원부~경흥을 거쳐 최북단 서수라까지 장장 2190리길이 이어졌다.동북방을 오가는 길의 한양 쪽 마지막 쉼터는 안암동 보제원이었고 다음 쉼터인 누원점(다락원)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북서울 일대에 역이나 여관은 없었다. 관원이나 상인은 보제원이나 다락원에서 서울을 들고나는 마지막 여정을 챙겼다. 북서울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라기보다 물품과 봉수(熢燧)가 지나가는 곳이었다. 조선 후기 누원점에는 난전 단속을 피하려는 서울상인들이 진을 친 동북방 제일 큰 시장이 열렸다. 정조6년(1782년) “어상이 왕래하는 요충지 누원점의 매점매석이 심해 백성들에게 피해를 끼친다”라는 내용의 보고서가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재의 지하철 1호선과 7호선 환승역 도봉산역이 누원점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서울창포원과 평화문화진지(대전차방호벽), 다락원체육공원, 서울YMCA다락원캠프장 등이 옛 영화를 말해 준다. 북서울 일대는 고려 남경(南京)의 후보지였다. 고려 숙종(1101년) 때 오늘의 서울지역에 남경을 설치하려고 후보지를 물색한 결과 노원, 해촌, 용산, 북촌 일대가 꼽혔다. 고려사에 “노원역, 해촌, 용산 등에 나아가서 산수를 살펴봤으나 도성을 건설하기에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삼각산 면악의 남쪽은 산형과 수세가 옛 문서와 부합되니…도성을 건설하기를 청합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상계주공아파트가 들어선 노원은 마들평야라고 불리던 노원역 일대이고, 해촌은 창동 일대이며, 면악의 남쪽은 경복궁 뒤 청와대 지역이다. 조선의 도읍지는 고려 남경 터를 계승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북서울에는 경흥대로 노선을 흡수한 경원선 등 세 갈래의 철도궤도가 부설됐다. 1910년 착공, 1914년에 개통된 경원선은 용산역을 출발해 왕십리~청량리~창동~의정부를 거쳐 원산까지 223㎞를 달렸다. 경춘선과 금강산철도도 건설됐다. 기차역이 생긴 창동은 서울교외 관광중심지로 발돋움했다. 봄에는 우이동 벚꽃놀이, 가을에는 도봉산 망월사 단풍놀이가 유행하면서 우이동 관앵(觀櫻)열차와 망월사 하이킹열차가 각각 운행했다. 경성역에서 창동역까지 50분 거리여서 한적한 시골동네에 관광 인파가 북적였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서울 너른 들에는 전재민과 피란민을 수용하기 위한 난민수용소, 이주정착촌, 저소득층 임시거주지가 집중 조성됐다. 1970~80년대 들어 도봉지구와 창동지구에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되고 상계·중계·창동지구의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면서 아파트 숲으로 빠르게 변해 갔다. 인구가 폭증하면서 1973년 성북구에서 도봉구가 분구한 데 이어 1988년 노원구, 1995년 강북구가 따로 살림을 차렸다. 노원구 중계동 ‘104마을’은 1967년 도심개발 당시 철거민들의 집단이주 정착지 흔적이다. 1985~1987년 세상을 놀라게 한 상계동 철거민 투쟁은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무허가주택 세입자들이 재개발사업자와 건설사, 가옥주인 조합원들과 충돌한 도시빈민 투쟁사로 기록됐다. 삼각산은 서울의 뼈대를 이루는 조상산(祖上山)이다. 백운대·인수봉·만경대를 이루는 ‘세 개의 신령한 뿔’이 삼각산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산을 북한산이라고 부른다. 조선 말까지 멀쩡하던 지명을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가 ‘북한산 유적조사보고서’를 조선총독부에 제출하면서 지명이 변경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83년 영문도 모르는 정부가 삼각산을 포함한 서울 북쪽지역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한 게 결정타였다. 삼각산을 북한산이라고 지칭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삼각산은 산의 이름이지만, 북한산은 산의 이름이 아니라 땅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서울의 옛 지명 한양(漢陽)은 7세기 신라 때부터 이 지역의 지명인 한산(漢山)이라는 땅의 남쪽, 한강(漢江)이라는 강의 북쪽에 있는 양지바른 지역이라는 뜻이다. 이를 풍수지리학에서는 ‘산남수북지’(山南水北地)라고 풀이한다. 북한산이란 한산의 북쪽 지역을 이르고, 남한산이란 한산의 남쪽 지역을 이른다. 산 이름 삼각산을 제쳐 두고 지역 이름을 부르는 것은 산의 영험함과 정기의 상실을 초래한다.삼각산 깊고 너른 품에 안긴 쌍문동은 효자마을이라는 정체성에, ‘아기공룡 둘리’ 애니메이션과 ‘응답하라 1988’ 드라마로 명성을 얻었다. 1983년 쌍문동에 살던 김수정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둘리는 쌍문동을 넘어 도봉구의 마스코트가 됐다. 지역의 대표 캐릭터답게 둘리뮤지엄, 둘리스토리공원, 둘리미니어처공원이 건립됐다. 거리와 역, 버스정류장, 담벼락엔 온통 둘리 그림과 조형물로 채워졌다. 우이천변엔 둘리가 발견된 곳 표지판도 세워졌다. 도봉구는 2011년 만화주인공 고길동씨와 둘리를 구성원으로 하는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했다. 2015년 11월 6일부터 2016년 1월 16일까지 tvN에서 방영된 ‘응답하라’ 시리즈의 3번째 후속작 ‘응답하라 1988’은 조용한 동네 쌍문동을 다시 화제의 전면으로 불러냈다. “너무 잘살지도 못살지도 않는 동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정겨운 이름 때문에 드라마 무대로 쌍문동을 캐스팅했다”고 담당PD는 말했다. 만약 2007년 효문동으로 동명을 바꿨더라면 드라마의 무대가 되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세 개의 뿔’ 삼각산의 기운이 쌍문동의 뒤를 받치는 듯하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미래유산 톡톡] 남정현 가옥~함석헌기념관~덕성여대 캠퍼스 잇는 ‘문화역사관광벨트’

    [미래유산 톡톡] 남정현 가옥~함석헌기념관~덕성여대 캠퍼스 잇는 ‘문화역사관광벨트’

    서울의 끝자락에 위치한 쌍문동은 골목골목 알면 알수록 정이 가는 동네다. 이곳을 배경으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제작한 신원호 PD가 “20~30년 전 서울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편안한 동네”라고 말한 것처럼 곳곳에 아담한 빨간 벽돌 주택과 소나무가 뻗어 자라는 담장 없는 집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87세의 작가 남정현 선생이 1966년부터 사는 가옥도 막다른 골목의 2층 집이었다. 당시 초가집 네 채밖에 없었지만 한눈에 들어오는 삼각산의 봉우리가 마음에 들어 이곳에 자리잡았다고 했다. 우리 민족이 착한 심성을 지녔다고 생각하는 작가야말로 온갖 고난에도 착한 마음을 잃지 않고 사람에 대한 애정이 넘쳐나는 한국인이라고 여겨졌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로 유명해진 감포면옥은 1972년부터 이곳에 터를 잡았다. 드라마 속 라미란 여사가 리마인드 웨딩을 했던 공간은 그대로였지만 입식으로 바뀐 식탁이 약간은 낯설었다. 설립일과 오래된 외관을 보면 미래유산으로 지정되기에 충분한 역사성을 지닌 듯하다. 도봉구는 2017년에 문학예술교육특구로 지정됐는데 서울미래유산 9곳과 문화역사관광벨트가 기여를 했다. 함석헌기념관은 문화역사관광벨트의 시작점이다. ‘한국의 간디’라 불릴 만큼 민권운동과 민주화운동에 평생을 바친 선생의 뜻을 기려 지금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과 여러 생애주기를 흡수하는 문학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효자마을과 문학마을인 쌍문동에는 덕성여대가 자리잡고 있다. 1972년 김수근 건축가에 의해 설계된 자연과학대학은 단풍나무 묘목원의 유래를 훼손시키지 않고 비엔나숲으로 남겨놓은 건축가의 배려가 돋보이는 장소다. 여러 드라마와 광고의 단골이 되고 있다. 드라마 ‘도깨비’의 배경이 된 중앙도서관도 1984년 설계작이다. 이 건물들은 김수근 건축가의 캠퍼스시리즈를 10여년에 걸친 시간 차를 두고 잘 보여 준다. 1979년 건축협회상을 수상하고 2013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김은선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연구원
  •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 만든 이오 밍 페이 102세 나이로 사망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의 설계자로 알려진 건축가 이오 밍 페이(I.M.페이)가 세상을 떠났다. 102세. 뉴욕타임스(NYT)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중 한 명인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페이가 숨을 거뒀다고 그의 아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돌과 콘크리트, 유리, 강철 등을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의 건축을 즐겨 만드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건축가로 알려져 있다. 1917년 4월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이는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건축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48년 뉴욕의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4년 미국 국적을 취득한 그는 이듬해 자신의 회사를 차렸다.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1963),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1964), 뉴욕 실버 타워(1967) 등의 설계를 맡으며 1983년 건축계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를 비롯해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등은 지역의 랜드마크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페이는 건축에 있어 “시간의 시험에 맞서는 것”을 가장 중요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NYT는 그가 남긴 빌딩은 어느 것도 “촌스럽다”거나 “전통적이다”는 평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생전 그는 대한제국 황실과도 인연을 맺을 것으로 전해진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는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했다. 이구는 이곳에서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사진들] 루브르 피라미드 설계한 이오 밍 페이 타계, 대한제국과도 인연

    프랑스 파리의 자랑인 루브르 박물관 앞 유리 피라미드를 설계한 중국 출신 건축가 이오 밍 페이(貝聿銘)가 10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미국 일간 USA투데이는 16일(현지시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건축가 가운데 한 명인 고인이 간밤에 숨을 거뒀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NYT)에 건축 비평을 기고하는 폴 골드버거가 고인 아들 리 청 페이에게 문의했고, 리 청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확인했다고 고인의 회사 공보 담당이 USA투데이에게 밝혔다. 영면한 장소와 사인은 알려지지 않았다. 대한제국 황실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의 아들 이구 씨가 1953년 미국으로 유학을 가 MIT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후 페이의 회사에 취직한 것이다. 이구 씨가 배우자인 독일계 미국인인 줄리아 리를 만나 결혼한 것도 페이의 회사에서였다. 대학 동문들은 이구 씨와 페이를 헷갈려 했고 이구 씨가 대한제국 황손이라고 말했을 때 농담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으며 처음에는 줄리아도 페이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페이는 이구 씨가 정말로 황손이란 사실을 확인하고 정말 깜짝 놀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본명보다 이니셜이 들어간 ‘I M 페이’로 더 잘 알려진 그는 1917년 중국 광저우에서 유명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나 1935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와 하버드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2차 세계대전 때는 미국 정부의 연구자로 활동했다. 1948년 뉴욕 부동산업자 윌리엄 제켄도르프에게 고용돼 빌딩 설계의 감리를 맡았다. 1955년 자신의 회사를 차린 페이는 1960년대 들어 뉴욕 킵스 베이 플라자, 필라델피아 소사이어티 힐 타워, 뉴욕 실버 타워 등의 설계를 맡으며 이름을 드날렸다. 1983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도 받았다. 심사 평은 “가장 아름다운 내부 공간과 외부 형태를 금세기에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설계한 대표적인 건축물이 루브르 유리 피라미드와 미국 워싱턴 국립미술관 동관, 클리블랜드 로큰롤 명예의 전당, 홍콩 중국은행 타워, 미국 댈러스 시청, 일본 미호 뮤지엄 등이다. 말년에도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뮤지엄을 설계했는데 그는 특히 이슬람 건축 양식을 매우 좋아했고 아이디어의 원천으로 삼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모더니즘 최후의 건축가‘로 불리는 페이는 자신이 설계한 박물관, 호텔, 학교 등에서 ‘빛에 대한 경외’를 바탕으로 정밀한 기하학적 구조와 추상미를 보여줬다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다. 그는 생전에 “건축은 실용적인 예술이라고 믿는다. 예술이 되려면 필요성에 근거해 지어져야만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미국에서 건축학을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들을 위한 장학기금을 만들어 일인당 10만 달러씩 나눠주고 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공공건축물 매년 4900동 세우는데…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한국

    공공건축물 매년 4900동 세우는데… 가이드라인조차 없는 한국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다. 극빈국이던 반세기 전과 달리 세계적인 가전제품·조선·자동차를 ‘메이드 인 코리아’로 수출하는 경제대국이자 세계인이 한국어 가사로 케이팝을 즐길 만큼 문화강국의 나라가 됐다.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이 있다. 건축 분야 종사자로서 우리나라의 건축·도시 경관을 볼 때마다 아쉬움이 크다. 국민의 높아진 눈높이를 쫓아가지 못하는 수준 낮은 디자인과 조악한 품질의 건축물들이 여전히 지어지고 있다. 수천억원까지의 세금이 들어가는 공공 건축물들은 기획력 부재로 인해 매번 논란에 휩싸이고, 소규모 건축물들은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발생할까. 관련이 전혀 없어 보이는 사례들이지만 이면에는 공통점이 있다. 건축 행정의 전문성 부재가 바로 그것이다.공공건축물은 매년 4900동 이상이 건립된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전국에 20만 4905동이 산재해 있다. 또한 2017년 한 해에만 공공에서 계약한 건축공사비가 16조 9877억원이다. 공공건축물은 우리 생활과 밀접하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므로 초기부터 예산 낭비를 줄이면서도 장기적으로 운영 및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기획하고 접근해야 한다.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 등 졸속 추진 우려 2005년 서울시는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를 짓기 위해 해외 유명 건축가의 안을 낙점했다. 그러나 현실성이 부족하면서도 난이도 높은 설계안을 뽑아 놓은 까닭에 설계비와 공사비가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어서 결국 계약이 파기됐다. 이후 여러 번의 현상 설계 공모 끝에 국내 건축가의 안을 토대로 건물을 실제로 짓기 위한 2년간의 도면 제작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상급식 주민투표 등으로 서울시장이 교체되면서 다시 예산 낭비 사례로 지목돼 중단됐다. 설계비와 운영경비를 합한 276억여원은 그대로 매몰 비용이 됐다. 서울시 대형 공공건축물 프로젝트의 수난사는 노들섬뿐만이 아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는 800억원이었던 초기 예산이 8년 만에 6배가 넘는 5000억원의 공사비로 불어났다. 서울시청사는 업무 공간 부족을 이유로 신청사를 지었지만, 여전히 공간이 부족해 별관 등으로 행정 공간이 나뉘었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 과거 세빛둥둥섬으로 불렸던 세빛섬은 1400억원을 들이고도 8년간 개장이 미루어졌다. 모두 세밀한 기획력과 장기적인 운영 방식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에 근거해 졸속으로 추진됐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017년 완공된 서울역사 앞의 ‘서울로’나 얼마 전 발표된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충분히 협의하고 시민들과 소통하기보다는 특정인들이 중심이 돼 속전속결로 진행되는 느낌이 강하다. 예산 낭비를 줄이고 공공건축물의 기획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건축행정의 전문성 확보가 더욱 절실하다. ●‘3000억 규모’ 설계 지침서가 고작 A4 8장 정부세종청사는 도농복합도시인 세종시에 있는 만큼 주변과의 조화를 꾀한다는 마스터플랜에 따라 전체가 저층으로 계획됐다. 그런데 새로 들어설 행정안전부 청사가 혼자 불쑥 솟아오른 고층 건물 형태였음에도 선정이 되자 심사위원장이 사퇴하고 심사위원 구성의 발주처 편향성 등이 논란이 돼 심사의 불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이보다 더 아쉬운 것은 정부에서 제시하는 3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4만평 규모의 공공건축물 설계 지침서 분량이 ‘A4 사이즈로 8장’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지어지는 공공건축물 대다수에서 벌어지는 공통된 사항이기도 하다. 종합적인 성능 확보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세부적인 요구 사항이 없다 보니 막상 건물이 완공돼도 성능이 미흡하거나 사용자가 쓰기에 부족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미국의 GSA(General Services Administration)는 공공건축물 발주를 포함해 공공 물자를 조달하는 우리의 조달청에 해당한다. 여기에서 발간하는 공공건축물 가이드라인(PBS-P100·Facilities Standards For The Public Buildings Service)을 보면 3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다. 가이드라인으로 공공건축물의 건축, 구조, 소방, 설비, 전기, 방재, 열환경 등의 기준은 물론 사람이 없는 기계·전기설비실의 온도 및 습도, (층고가 높은) 아트리움의 유지 관리용 통로 설치, 각종 인테리어 자재들의 부위별 보증 수명 연한, 심지어 고용 여직원 수에 따른 수유용 공간의 숫자까지 상세하게 기입해 놓고 명확하게 기준 이상을 넘도록 요구하고 있다. 이는 신축뿐 아니라 기존 공공건축물의 수리, 현대화, 심지어 리스 시에도 적용하도록 사실상 의무화함으로써 공공건축물 자체의 기본적인 성능과 품질 확보가 최우선 목표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적어도 과도한 디자인적 요소 탓에 역설적으로 공공건축물로서의 기본 성능이 저하되거나 사용자의 불편을 초래하는 일은 처음부터 발생하지 않도록 준비한다. 한국은 상당수 공공 청사들이 유리로 된 대형 아트리움 로비를 계획했음에도 정작 이를 청소 및 유지 관리할 방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거나, 열효율을 고려하지 않아 여름에는 찜통이고 겨울에는 춥다. 그리고 청소조차 쉽지 않다. 한미의 이런 가이드라인 차이 때문에 한국의 청사는 애물단지 공간으로 전락해 버리는 것이다.●상도 유치원 사건, 담당 허가권자 ‘구멍’ 그대로 공공건축물에만 건축 행정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독·다가구·다세대 및 소형상가 등 연면적 700㎡ 이하의 소규모 건축물 비중은 착공 현황 기준(2011~2015년)으로 한 해 평균 20여만건 중 89.8%를 차지한다. 그런데도 소규모 건축물에 대한 종합적인 관리와 품질 확보 체계 수립은 그동안 소홀히 했다. ‘상도 유치원’ 사례가 그렇다. 유치원 측이 6개월 동안 전문가의 의견을 전달하면서까지 여러 번의 안전 대책을 요구했지만,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가 결국 붕괴했는데, 이는 담당 허가권자의 비전문성을 여실히 드러낸 경우다. 따라서 시민의 안전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지자체 건축물 허가권자들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직접 도면 검토 대신 외부 전문가 심의제 남발 미국의 ‘플랜체크제도’는 인허가권자나 관청(DBS·Department of Building Safety)이 건축 허가 전 모든 도면에 대해 건물 관련 법규, 화재 규정 등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만큼 최종적인 책임 또한 허가 관청이 지도록 돼 있다. 한국은 허가권자의 전문성이 확보되지 않다 보니 직접 도면 검토를 하는 대신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결정을 유도하는 심의제도를 남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민간 건축사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 건물의 사용 승인을 하기 전 지역의 건축사가 대신 현장 조사를 하는, 이른바 ‘업무대행’ 제도 역시 개선돼야 한다. 이미 지역에서 늘 마주칠 수밖에 없는 건축사끼리의 ‘봐주기식 관행’이 존재하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업무 대행 건축사로서 현장을 방문하더라도 상대측 건축사 또한 언젠가 내 현장에 업무 대행으로 방문할지 모른다. 이 때문에 설령 허가 내용과 다르게 불법 시공했음을 알게 되더라도 이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 건축 선진국들은 원칙적으로 건축 전문가인 허가권자가 직접 현장에 나가서 허가 내용과 동일한지 검사 후 사용 승인을 내주기 때문에 봐주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본은 공사가 진행 중인 시기(중간 검사)와 공사가 마무리된 최종 시기(완료 검사)에 각각 방문하게 하여 불법적인 공간 확장 시도를 초기부터 막는다. ●日 프리츠커상 최다 기록 뒤엔 전문성 극대화 얼마 전 건축계의 노벨상격인 프리츠커상을 일본 건축가가 또다시 수상했다. 일본은 역대 최다 수상국이 됐다. 표면적인 수상 성적뿐만 아니라 일본의 건축 및 도시 경관을 보면 우수한 디자인과 높은 시공 품질이 결합된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렇게 일본이 건축 선진국이 된 배경에는 건축 행정력의 전문성 극대화가 있다. 일본 건축 기준법에는 건축 담당 공무원을 기본적으로 ‘건축주사’로 규정하고 이와 함께 위반 건축물을 단속하는 건축 감시원 등의 역할을 명확히 한다. 각각의 관련 공무원은 건축사 출신이거나 건축 전문가이도록 의무적인 조건을 달아 두었다. 건축사 숫자만 우리의 50배가 넘는 110만명에 육박하는 풍부한 인적 자원을 바탕으로 건축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문화된 건축 행정력을 토대로 불필요한 규제를 줄이고, 예측 가능한 허가 제도를 만들며, 현장 방문 검사를 통한 위반 건축물 단속과 함께 건축물의 종합적인 안전관리체계 수립 및 수준 높은 공공건축물을 기획한다. ●현재 10%에 불과한 건축사 합격률 더 높여야 최근 들어 ‘지역 건축 안전 센터 설립·공공건축 사업계획 사전검토 의무화·공공 건축가 제도 도입’ 등을 통해 행정의 건축 전문성 확보를 위한 다각적이고도 거시적인 노력이 시작됐다. 그러나 수많은 소규모 및 민간 건축물들에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는 미시적인 건축 행정력의 전문성은 여전히 미흡한 편이다. 각 지방자치단체가 건축행정의 전문성을 확보하려면 건축사를 비롯한 건축 전문가 출신인 공무원의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 또 현재 10%에 불과한 건축사 합격률도 더 높여 일정한 기준 이상이라면 건축사 자격을 부여해야 한다. 그래야 건축·도시 경관을 풍요롭게 가꿀 수 있다.■이양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소장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한화건설, 종합건축사사무소디자인캠프문박디엠피, 엔이이디 건축사사무소 등을 거쳐 현재 엘리펀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로 있다. 단독주택 설계 및 감리를 전문으로, 통합서비스를 제공해 단독주택 시장의 신뢰도를 높이려고 노력한다.
  • 윤석화 “가슴 아프지만 흔적만으로 충분…언젠가 또다른 ‘정미소’ 꿈꾼다”

    윤석화 “가슴 아프지만 흔적만으로 충분…언젠가 또다른 ‘정미소’ 꿈꾼다”

    “언젠가 시골의 진짜 정미소를 ‘정미소’로 만들어 연극을 올리는 꿈을 꿉니다.” 2002년 개관한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가 다음달 11~22일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을 마지막으로 폐관한다. 극장을 운영해 온 배우 윤석화(63)는 이날 정미소에서 가진 제작발표회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제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 작품으로) 흔적을 남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정미소는 윤석화와 건축가 장윤구가 목욕탕으로 쓰던 건물을 개·보수해 만든 190여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정미소에서 쌀을 찧어내듯 예술을 피워내겠다’는 의미로 극장 이름을 지어 실험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려 연극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경영난에 시달리다 결국 폐관을 결정했다. 윤석화는 “이제 건물이 매각돼 다시 (작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어떻게 해도 손익분기점이 맞지 않았다. 제가 공연에 서며 관리는 할 수 있었지만, 늘 적자였다”고 말했다. 이날 제작발표회는 정미소의 마지막을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했다. 답변 도중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던 윤석화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젊은 후배를 후원해 주는 ‘정미소 프로젝트’가 있었다”면서 “관객은 많이 없었지만, 진정 연극정신이 살아 있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젊은 후배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 때 보람이 있었다”고 소회했다. 이어 “이쯤에서 저는 ‘페이드아웃’하는 게 가슴 아프지만 할 만큼 했다고 스스로 위안한다”고 덧붙였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영국의 극작가 고 아널드 웨스커의 원작으로, 1992년 연극계 대부 임영웅 연출로 소극장 산울림에서 세계 초연한 작품이다. 윤석화는 당시 초연 때 전석 기립박수를 받았던 경험을 연기 인생의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을 정도로 애착이 있다. 딸이 어른이 되고 있음을 느끼는 40대 미혼모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초연 때와 달리 이번 작품에서는 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연에는 ‘레드’, ‘빌리 엘리어트’ 등을 연출한 김태훈 연출과 과거 윤석화의 음반 작업에 참여한 음악감독 최재광이 함께한다. 김태훈 연출은 “40대의 한 어머니가 딸에게 편지를 쓰면서 얽혔던 인생의 실타래가 풀리고,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고 소개했다. 한편 윤석화는 이번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2020년 하반기쯤 영국에서 공연한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남순건의 과학의 눈] 노트르담 대성당의 비밀

    [남순건의 과학의 눈] 노트르담 대성당의 비밀

    900년 가까이 온갖 전란에도 굳건히 버티던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에 지난달 15일 큰 화재가 났다.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실되는 것을 뉴스로 접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큰 슬픔에 잠겼다. 파리에 가 본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렀을 노트르담 대성당은 서쪽에 매우 화려한 입구가 있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스테인글라스 창들과 높은 천장이 있는 실내 분위기에 압도돼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성스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공간이다. 그뿐만 아니라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고딕식 높은 첨탑들은 하늘을 향한 믿음의 표현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구석구석 작은 조각들은 스토리텔링의 매개체로서 멋진 역할을 하고 있다. 사실 노트르담 대성당에는 12세기 초 등장한 고딕 양식에 필요한 당시의 과학기술이 집대성되어 있다. 높다란 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벽을 높게 쌓아야 하는데 돌이나 벽돌로 높이려면 벽이 두꺼워질 수밖에 없다. 또 어둑한 실내에 빛이 들어오게 곳곳에 유리창을 만들다 보면 벽은 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쌓아 놓은 돌의 특성상 누르는 힘에는 강하지만 옆으로 밀리면 쉽게 무너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벽날개’라는 독특한 구조가 등장했다.초기 고딕 건축물에서는 벽이 옆으로 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벽의 외부에 기둥을 덧댄 부벽을 만들어 구조를 튼튼하게 했다. 그러나 부벽을 만들다 보면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가로막히게 되어 스테인글라스의 효과가 떨어진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부벽을 건물의 벽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면 된다. 이때 벽과 부벽들을 연결하는 공중에 있는 아치형 날개들로 벽을 버티게 한 것이다. 그리고 부벽 위에 뾰족한 탑들을 올려놓아 멋을 더한 것이다. 당시의 건축가들은 이러한 구조를 시행착오로 찾았을 것이고 아치형 날개의 모양도 현대 건축공학에서와 같이 정확한 수학계산에 의한 것이 아닌 많은 실패를 한 후에 쌓인 경험에 의해서 완성했을 것이다. 멋진 문화 유산을 감상할 때 흔히 놓치는 것이 이 같은 숨은 과학 기술들이다. 벽날개 공법으로 지어진 수많은 고딕 성당들은 르네상스 시대로 넘어가면서 15세기 초 브루넬레스키에 의해 완성된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거대한 돔 구조로 바뀌게 된다. 역학적으로 안정된 돔 구조가 만들어 내는 웅장함은 이후에 계속돼 바티칸의 성베드로 성당이나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에도 적용됐다. 20세기 초 도입된 철근 콘크리트 기법은 마천루를 가능하게 하고 인간의 삶의 행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현대 과학기술에서 사용되는 각종 수식과 기법들은 사실 인류의 오랜 경험의 집약체이다. 컴컴한 동굴 속에서 두려움에 떨던 인간이 중력을 이겨 내는 구조물을 만들고 나아가 원자의 세계를 이해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 수학식이다. 아마도 이런 지혜를 구비문학 방식으로 전달하려 한다면 적어도 수백년 동안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집약된 지식의 전달 체계를 갖추어 자연을 극복한 인간의 노력이야말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비밀의 일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국 전통 건축을 이야기할 때는 숨어 있는 과학기술이 아닌 `장인 정신’만 강조된다. 누구에게나 객관화할 수 없는 기술이라면 그것은 비과학적이고 인류의 진정한 유산이 될 수 없을 것이다.
  • 노트르담 지붕에 조명탑? 불꽃? 온실?...프랑스인은 불쾌

    노트르담 지붕에 조명탑? 불꽃? 온실?...프랑스인은 불쾌

    불꽃에 온실, 조명탑 등 다양한 건축안 나와…프랑스인 55% “옛날 모습이 좋다”지난달 15일 화재로 무너져 내린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첨탑 재건과 관련해 창의적인 설계 방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가 지난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재건 설계를 국제 현상공모에 부치겠다고 밝히면서 첨탑 자체를 다른 디자인으로 세워야 하는지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데 따른 것이다. 뉴욕타임스(NYT)와 영국 디자인전문매체 디진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세계 각지의 건축가들이 제안한 첨탑 재건 구상안을 소개했다. 프랑스의 차세대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마티외 르아뇌르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불길이 타오르는 모습을 형상화한 300피트(약 91m) 높이의 ‘불꽃’이라는 제목의 이미지를 올린 뒤 ‘영원한 불꽃’이라고 명명했다. 탄소섬유 재질의 이 탑을 금빛으로 도금해 화재가 대성당 지붕을 휩쓸던 모습을 형상화하겠다는 아이디어다.르아뇌르는 NYT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19세기에 만들어졌던 첨탑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강조하려 이런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냈지만 그 뒤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됐다”면서 “불꽃은 성경에도 등장하는 강력한 상징 아니냐”고 말했다. 슬로바키아 디자인회사 비즘 아틀리의 건축가 미칼 코박은 ‘조명탑’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첨탑이 있던 자리에 하늘로 치솟은 조명탑을 세우고, 야간에 흰 빛줄기를 하늘로 쏘아 올리자는 제안이다. 그는 “이는 잃어버린 영혼을 위한 등대”가 될 것이라며 “첨탑을 통해 하늘에 닿으려는 소망을 표출했던 중세 고딕 건축가들의 목표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브라질 건축가인 알렉상드르 판토치는 대성당의 지붕과 첨탑을 모두 종교적 색채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재건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벨기에 출신 건축가 뱅상 칼보는 성당 지붕을 특수 크리스털 유리로 바꾸는 구상안을 발표했다. 크리스털 유리로 첨탑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확보하고 빛을 흡수해 얻은 에너지를 활용한다는 계획이다.러시아 모스크바 건축학교에서 강의하는 알렉스 네로브냐는 고딕 양식 첨탑을 다시 세우고 그 주변을 다이아몬드 형태의 지붕으로 둘러싸는 아이디어를 냈다. 파리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NAB는 성당 옥상을 온실로 바꾸고 화재에서 살아남은 18만 마리의 벌들을 수용할 양봉장을 설계하는 방안을 발표했다.필리프 총리는 지난달 노트르담 대성당의 첨탑 재건 설계를 국제 현상공모에 부치겠다고 밝히면서 첨탑 자체를 다른 디자인으로 만들어 세워야 하는지 묻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지 일간지 르피가로가 지난 9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프랑스 국민 55%는 첨탑을 화재 이전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놓아야 한다고 답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와우! 과학] 곰만한 덩치가진 ‘자이언트 비버’는 왜 멸종됐을까?

    [와우! 과학] 곰만한 덩치가진 ‘자이언트 비버’는 왜 멸종됐을까?

    동물세계에서 최고로 꼽는 '건축가'가 있다면 바로 비버다. 하천 등지에 서식하는 비버는 이빨로 나무를 잘라와 돌, 진흙 등으로 자신 만의 댐을 만들고 그 중간에 자신의 보금자리를 마련한다.   지금의 비버는 몸길이 60∼70cm 정도로 작고 귀여운 모습이지만 1만 년 전에는 놀랍게도 곰만한 크기의 거대한 '자이언트 비버'도 존재했다. 최근 캐나다 웨스턴 대학 연구팀은 자이언트 비버의 멸종위기를 밝힌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Scientific Report) 최신호에 발표했다. 몸무게가 무려 100㎏이 훌쩍 넘는 자이언트 비버는 약 260만 년 출현해 1만 1700년 전 신생대 가장 마지막 단계인 플라이스토세에 멸종됐다. 거대 포유류인 매머드와 비슷한 시기 같은 길을 걸은 셈이다.관련 학자들 사이에서의 관심은 자이언트 비버의 멸종 이유다. 대부분 기후변화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번에 연구팀은 과학적으로 이를 풀어냈다. 연구팀은 과거 발굴된 자이언트 비버의 화석화된 이빨과 뼈에 있는 질소와 탄소의 동위원소를 분석해 식단을 알아냈다. 그 결과 지금의 비버가 나무를 갉아먹는 것과는 달리 자이언트 비버는 수생식물을 먹은 것으로 확인됐다.이는 곧 자이언트 비버 멸종 원인의 단서로 이어진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난 후 기후가 훨씬 건조해지면서 점점 먹을 것을 구하기 힘들어진 것. 이는 현재의 비버 능력과 대비된다. 조상뻘인 자이언트 비버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된 반면 비버는 특유의 건축능력으로 자신이 살만한 습지 서식지를 직접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논문 저자인 테사 플린트 연구원은 "자이언트 비버가 나무를 베거나 먹었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면서 "자이언트 비버는 현재의 비버같은 생태계 엔지니어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이언트 비버와 비버는 오랜 시간 북미에서 함께 공존했는데 건축 능력의 차이가 운명을 바꾼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천변풍경·성북동 비둘기… ‘저항의 아지트’에 깃든 예향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회 성북동 편이 5월의 첫 주말인 지난 4일 성북동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 평화의 소녀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작곡가 채동선이 살던 집~시인 김광섭 집터~시인 조지훈 집터를 차례로 돌고 돌아 석가탄신일을 일주일 앞두고 화려한 연등의 숲을 이루는 길상사에서 시인 백석과 자야의 연가를 떠올렸다. 이어 소설가 이태준의 수연산방~시인 한용운의 심우장~소설가 박태원 집터로 이어지는 코스를 2시간여 동안 더듬었다. 송재민 해설사가 서울미래유산 투어에 첫선을 보였다.성북동은 근현대 문학과 예술의 고향 같은 동네다. 수많은 문인, 예술가가 이곳에 깃들였다. 시인 한용운·김일엽·김기진·김광섭·조지훈·백석의 집터와 사랑이 남았고 소설가 염상섭·이태준·박태원·조정래가 살면서 주옥같은 작품을 창작했다. 작곡가 채동선·윤이상과 화가 김용준·김기창·김환기·박래현·변종하·김향안의 예향이 진동한다. 오세창, 이홍근, 전형필, 최순우, 임종국의 생애가 남았다. 어쩌다 이다지 지독한 문예의 혼이 성북동에 깃들었을까.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북쪽 큰 문 숙정문과 동쪽 작은 문 혜화문 구간 밖 첫 동네 성북동은 누에치기의 풍요를 기원하는 선잠단이 있는 엄숙한 공간으로 역사에 등장한다. 선잠단은 종묘와 사직, 선농단과 더불어 왕실의 주요 제례공간이다. 태종 때 단을 쌓았고, 왕비들이 찾아와서 선잠제향을 지내던 곳이다. 선잠단 옛 터는 복원 중이고, 선잠박물관이 이를 기리고 있다.성북동은 영조 때 도성을 지키는 어영청 소속 군사들에게 논과 밭을 나눠준 북둔(북쪽 진지)이기도 했다. 그러나 숲이 우거지고 계곡이 깊어서 농사를 짓기 어려워지자 주민들에게 생포목을 삶아 표백하는 일과 메주를 쑤는 일을 줘 생계를 도왔다. 서울역사박물관에 있는 ‘성북동포백훈조계완문절목’이라는 책자에 포백(베나 비단)과 훈조(메주)를 관아에 바치던 계(조직)의 운영방식과 노동조건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오늘날 마전터와 ‘메주소리가 북적북적 한다’고 해 붙여진 북정마을 지명의 기원이다. 성안 사람들에게 내다 팔 목적으로 복숭아와 자두를 심었는데 18세기 후반 ‘북둔도화’(北屯桃花)라는 말이 회자할 정도로 도화가 만발, 시인문객과 상춘객의 발걸음이 들끓었다. 이때부터 조선 3대 정원 중 하나로 꼽히는 성락원(城樂園) 같은 별서가 들어섰다. 성락원이라는 이름은 ‘도성의 풍광을 즐기는 동산’이라는 뜻이다. 대개의 별서가 성 안에서 성 밖을 내다보지만 성락원은 거꾸로 성 밖에서 성 안을 들여다보는 특이한 지역성을 갖고 있다. 일제강점기가 절정을 이룬 1930년대 성북동에 근대 문예의 새벽이 활짝 열렸다. 작곡가 채동선이 1931년 가장 먼저 성북동에 자리잡았고, 만해 한용운이 1933년 심우장에 거주했으며, 상허 이태준이 수연산방을 신축하면서 문단의 기린아들로 결성된 구인회의 회동이 잦았다. 성북동에 살던 오성 장승업의 맥을 이은 문인화가 김용준이 노시산방(옛 수향산방, 현 수월암)으로 이사 온 건 1934년의 일이다. 음악가-시인-소설가-화가의 순으로 성북동 예술가마을에 입주한 셈이다. 성북동을 찾은 문인, 예술가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민족주의와 저항성이 유독 강한 게 특징이다. 도성을 등진 성북동의 지형에서 연유한 것인지도 모른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예술가들이 도성을 떠나 도성 밖으로 피신한 격이다. 만해의 심우장은 아예 도성을 등지고 집을 지었는데, 왜놈의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고 한다. 마치 빼앗긴 나라의 수도 밖으로 망명한 사람들 같았다.성북동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3·1만세 당시 한용운은 독립선언서의 공약삼장을 썼고, 오세창은 독립선언서 인쇄·배포의 총책임자였다. 성락원을 별궁으로 쓴 의친왕 이강도 끝까지 항일의지를 버리지 않은 왕조의 자존심이었다. 임시정부가 이강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할 정도였다. 일본 게이오대학 유학생 염상섭은 비록 불발에 그쳤지만 오사카 독립선언대회의 독립선언서 작성자였다. 1924년 5월 4일자 시대일보에는 ‘성북동에 둔 의열단 근거’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릴 정도로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집결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사건의 주인공 이길용 동아일보 기자도 한용운, 전형필, 이태준과 교류한 뼛속까지 성북사람이었다. 만해가 만년을 보낸 심우장은 ‘조선 유일의 조선 땅’이라고 일컬어졌다. 성북동은 저항의 아지트였다. 이 중 오세창-전형필-최순우는 문화보국의 기치 아래 성북동에 모인 삼총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사립미술관 간송미술관(보화각, 북단장)을 선잠단이 있던 북단에 세워 일본과 외국으로 팔려 나가는 우리 문화재 5000여점을 지켰다. 국립박물관에 버금가는 소장목록을 자랑한다. 간송미술관 길 건너 간송의 스승 오세창 집터와 간송의 평생 동지였던 미술사학자 최순우의 옛집이 지척이었다. 오세창의 소장품을 보관했고 사후 부인이 살았던 성북동 128번지 옛집은 허물어 사라졌지만, 바로 옆 최순우 옛집은 2002년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보존되고 있다. 민족문학의 주류를 형성한 ‘구인회’와 문예지 ‘문장’ 그리고 청록파가 성북동에서 탄생했다. 저항의식을 품은 문화예술인들이 대거 성북동으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성북동이 식민지문학을 벗어나 한국적인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대안 문화공간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33년 결성된 구인회는 이태준을 좌장으로 정지용, 이효석, 김기림, 김유정, 이상, 박태원 등 이름 그대로 아홉 명의 예술가가 이태준의 집 수연산방을 근거지로 활동한 순수문학 단체였다. 구인회 주도로 발간된 문장을 통해 청록파’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등단했는데 해방 후 조지훈의 성북동 집 방우산장에 모여 발간한 시집 ‘청록집’에서 딴 이름이다. 조지훈은 수필 ‘방우산장기’에서 자신이 기거했던 모든 집을 방우산장이라고 지칭하면서 “마음속으로 소를 한 마리 키우면 직접 키우지 않아도 소를 키우는 것과 다름없다”는 뜻에서 붙였다고 설명했다. 조정래는 덕수교회 옆에 살면서 장편 대하소설 ‘한강’을 썼다. 우리나라의 선구적 작곡가 중 한 명인 채동선은 성북동에서 살면서 모두 12편의 가곡을 작곡했는데 그중 8편이 정지용의 시를 가사로 사용했다. 가곡 ‘고향’은 당대 지식인들의 최고 인기곡이었다. 월북한 정지용의 고향이 금지곡이 되면서 채동선의 곡은 이은상의 ‘그리워’, 박화목의 ‘망향’이라는 다른 가사가 붙여져 불렸다. 세계적인 음악가의 반열에 오른 윤이상도 1953년부터 4년여 조지훈의 집 개울 건너편에 살았다. 조지훈의 시 ‘고풍의상’과 박목월의 ‘나그네’에 곡을 붙였다. 김기창과 김환기, 국내 동양화와 서양화의 양대 거두 모두 성북동 사람이었다. 1913년 동년배인 두 사람은 나란히 성북동에 보금자리를 꾸몄다. 운보 김기창은 동반자 우향 박래현과 함께 살던 집 이름을 운보의 ‘운’과 우향의 ‘우’를 각각 따서 지었다. 운우미술관이다. 한국 추상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수화 김환기가 이상의 전 부인 변동림(김향안으로 개명)과 살림을 차린 곳이 수향산방이다. 수화의 ‘수’와 향안의 ‘향’을 따 수향산방이라고 불렀다. 본래 문인화가 김용준의 집이었는데 늙은 감나무가 있다고 해 이태준이 노시산방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곳이다. 집터는 흔적도 없고 수월암으로 변했다. 또 한 명의 서양화단의 거목 변종하도 말년을 성북동에서 보냈다. 그의 작업실은 석은 변종하기념미술관이 됐다. 김환기는 친구 김광섭의 ‘저녁에’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을 인용한 동명의 그림을 남겼다. ‘성북동 비둘기’를 발표한 시인 김광섭은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라고 터전을 잃은 성북동 비둘기의 상실을 노래했다. 이 작품으로 성북동을 대표하게 된 시인이 1961년부터 1967년까지 살았던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집은 빌라로 변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남긴 시인 백석은 연인 자야(김영한)와의 사랑을 맺지 못했고 성북동과도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러나 자야가 ‘무소유’의 법정 스님에게 시주한 길상사를 통해 영겁의 인연과 불멸의 사랑을 이어 갔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 다음 일정: 제3회 창신동 ■ 일시 및 집결장소: 5월 11일(토) 오전 10시 동대문역 7번 출구 앞 ■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떻게 복원될까…특수 크리스털에 양봉장도

    노트르담 대성당은 어떻게 복원될까…특수 크리스털에 양봉장도

    기후변화에 대비한 수중도시 프로젝트 등 미래형 건축으로 유명한 벨기에 출신 건축가 뱅상 칼보가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 시안을 내놓았다. 재건안에는 성당 지붕을 특수 크리스털 유리로 바꾸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데일리메일 등 영국언론은 7일(현지시간) 칼보가 친환경에 초점을 맞춘 혁신적인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안을 제안했다고 보도했다.칼보는 전소된 성당 첨탑을 특수 크리스털 유리로 재건해 에너지 자급자족을 가능하게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태양열 에너지를 이용해 매년 21톤의 과일과 채소를 재배할 수 있는 정원도 설계했다. 칼보의 시안대로라면 노트르담 대성당은 앞으로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해 남는 에너지를 인근 건물에 재분배할 수 있다.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15일(현지시간)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재건안을 국제 공개 경쟁에 부쳤으며, 칼보는 자신의 설계안을 이 공개경쟁에 제출했다. 그는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재건 시안은 어떻게 하면 가톨릭의 미래와 이 시대의 인간 지능을 건축적으로 집약시킬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또 어떻게 하면 프랑스의 현대사는 물론 과학, 예술, 영성의 역사까지 담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칼보는 “노트르담 대성당을 과거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지향적으로 재건하는 방안이 필요했다”고 덧붙였다.칼보의 시안에는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꼭대기에 있던 상징적인 수탉 동상을 예전의 위치로 복원시키되, 겨울에는 뜨거운 공기를 저장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을 유입시키는 열 완충 공간을 마련하는 계획이 담겨 있다. 칼보는 “화재 다음 날 잔해 속에서 발견된 수탉 조각상은 다시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맨 꼭대기에 올라 왕관을 쓸 것”이라며 “수탉은 가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주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칼보 외에도 건축가 니콜라스 압델카데르가 이끄는 파리 건축사무소 ‘스튜디오 NAB’ 역시 노트르담 대성당 첨탑 재건 시안을 제출했다. 이들은 성당 옥상을 거대한 온실로 바꾸고, 첨탑 대신 화재에서 살아남은 18만 마리의 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양봉장을 설계하는 방안을 고안했다. 85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며 ‘파리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한 노트르담 대성당은 지난 4월 15일 오후 6시 50분 발생한 대형 화재로 첨탑과 지붕이 소실됐다. 프랑스를 상징하는 문화유산의 화재 소식에 전 세계에서 하루 만에 1조 원이 넘는 성금이 모이기도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에 최대 4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프랑스 정부는 2024년 파리올림픽 개최 전에 복원을 마치겠다는 방침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금요칼럼] 집과 가구/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집과 가구/황두진 건축가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다. 집이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 삶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언뜻 들으면 맞는 이야기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비슷한 말들도 많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차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혹은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등이다. 식도락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 같으면 ‘뭘 먹고 마시는지 보면 그 사람을 안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은 대부분 단정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타인을 평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과연 누가 만든 말일까. 아마도 해당 분야 종사자, 적어도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도 성립한다고 하겠다. 집은 특별한 존재다. 자기 맘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은 정말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닭장, 콘크리트 정글, 혹은 국민 기숙사라고 종종 비하되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사람은 아파트에 산다. 누군가 나타나, ‘이곳에 살고 있는 걸 보니 당신은 이런 사람이군요’ 한다면 이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집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라’고 하거나 ‘그냥 나에게 주어진 상황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즉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집에 사느냐는 사람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판단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어떤 곳에 그냥 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이야기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마트에 서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이 알고 보니 삶의 성찰을 담은 심오한 책의 저자일 수 있다. 심지어 단지 그때 시간이 없었을 뿐인 진지한 식도락가일지도 모른다. 옷은 허름하게 입고 다니는데 음악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취향도 좋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다른 면에 있어서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한가. 그러니 ‘무엇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란 그 대상을 잘 알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기 관점을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다. 정말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아니 그 이전에 삶을 잘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이야기를 한 가지 하자면 바로 가구에 대한 것이다. 가능한 한 이른 나이부터 자기 가구를 하나씩 장만하고 모으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생기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평생 쓸 수 있는 근사한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을 사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미감과 품질의 물건을 사용하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스탠드 조명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귀중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안목과 지혜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 된다.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의 즐거움을 한번 알게 되면 세상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훨씬 더 신중해진다. 자기의 손때가 묻은 물건만큼 사람에게 편안한 만족감을 주는 것은 없다. 젊은 시절에 조금 무리해서 어렵게 장만한 좋은 의자나 책상 등은 평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사를 하게 되는데, 집과 달리 가구는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가구를 잘 갖추고 있으면 어디에서 살건 자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성껏 모은 가구들은 그다음 세대도 반가워하며 기꺼이 물려받을 것이다. 이렇게 취향은 문화로 이어지고 개인의 삶은 역사가 된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가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집보다는 가구가 사람의 분신에 더 가깝다. 여전히 속단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 블루보틀이 뭐길래…‘성수동 1호점’ 새벽부터 장사진

    블루보틀이 뭐길래…‘성수동 1호점’ 새벽부터 장사진

    한국 진출설 나온지 1년 6개월 만 상륙 미국의 프리미엄 커피전문점 브랜드 ‘블루보틀’이 마침내 한국에 상륙했다. 블루보틀은 3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한국 1호점’을 냈다. 2017년 말 한국 진출설이 처음으로 제기된 이후 약 1년 6개월 만이다. 1호점 앞에는 이날 새벽부터 손님들로 북적였다. 문을 여는 시간은 오전 8시였지만 6시가 되기 전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전 7시에는 무려 50명이 장사진을 이뤄 블루보틀의 높은 인기를 실감케 했다. 1호 손님의 영광은 0시 25분부터 7시간 30분 넘게 기다린 이난희(23)씨와 전경은(24)씨가 차지했다.빨간 벽돌 건물에 들어선 블루보틀 성수점은 일본 건축가 조 나가사카가 설계했다. 커피를 볶는 로스터리를 비롯해 바리스타 교육과 시음회를 할 수 있는 트레이닝 랩도 갖췄다. 손님들은 누구나 외부에서 블루보틀의 로스터리를 구경할 수 있다. 또 1층 도로에 인접한 창문은 커다란 통유리로 돼 있어 행인들도 매장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블루보틀 관계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커피의 맛이란 커피뿐만 아니라 따뜻한 환대와 공간이 주는 기분까지 포함한다”면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맞추고자 노력했다”고 소개했다.매장 내 꽃 장식은 국내 플로리스트 김형학씨가 ‘따뜻한 미니멀리즘’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었다. 빵 메뉴는 제빵업체 ‘메종엠모’와 협업했다. 성수점 매장은 지하 1층과 1층 2개 층을 사용한다. 1층에는 로스터리가 자리하며, 손님이 사용하는 공간은 지하 1층이다. 블루보틀 관계자는 “지하 좌석 수는 80∼90석이지만, 공간은 꽤 넓은 편”이라면서 “지역과 상생하자는 의미에서 성수동의 분위기를 잘 살린 본래 건물에 손을 많이 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개점 첫날 직원들은 새벽부터 손님맞이 준비를 했다. 블루보틀은 개점에 앞서 채용 사이트를 통해 한국인 바리스타 20명을 새로 뽑았다.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는 5000원, 라테는 6100원이다. 에스프레소 기준 미국 3.5달러(약 4075원), 일본 450엔(약 4698원)과 비교하면 비슷한 수준이다. 블루보틀 관계자는 “외국 매장의 가격에 세금이 포함돼 있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실제 고객이 내는 돈은 미국·일본과 비슷할 것”이라면서 “더 많은 한국 소비자에게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자는 취지로 가격을 책정했다”고 말했다. 블루보틀은 성수점 개점을 기념해 ‘서울 토트백’·‘블루보틀 글라스 머그’ 등 다양한 기념상품도 내놨다. 2호점은 종로구 삼청동에 들어설 예정이다. 이영준 기자 the@seoul.co.kr
  • 사무라이 건축가의 승부

    사무라이 건축가의 승부

    트레이닝복을 입고 공터에서 운동을 하는 노인이 있다. 몸놀림이 꽤 날렵하다. 고등학생 때 권투 선수로 활약했다고 하는데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여전히 승리욕 넘치는 눈빛을 가진 남자, 바로 안도 다다오다. 그는 창조적 근육과 육체적 근육을 같이 단련해야 한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야 남이 만든 훌륭한 건축물을 보고 그걸 넘어서겠다는 용기를 갖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치열한 승부일 수밖에요.” 이 말을 듣고 보니 안도에게 왜 ‘사무라이 건축가’라는 별칭이 붙었는지 알겠다. 어떤 일에서나 남보다 나아야 하고, 모든 일에 쓸모가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의 무사도(미야모토 무사시의 책 ‘오륜서’ 중)라고 하니까. 그런 그의 건축을 보기 위해 꼭 외국으로 나갈 필요는 없다. 한국에도 안도의 설계로 지어진 건축물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제주의 본태박물관, 원주의 뮤지엄 산, 서울의 JCC 등이 그렇다. 그의 건축물에는 공통점이 있다. 콘크리트가 빛(예: 빛의 교회), 물(예: 물의 절)과 미학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당신은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르겠다. 인공인 콘크리트가 어떻게 자연인 빛, 물과 아름답게 공존한단 말인가. 그런데 정말 안도는 콘크리트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다. 이제는 그의 인장이 된 노출 콘크리트 공법인 콘크리트의 물성 자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통해서다. 따지고 보면 콘크리트 역시 모래, 자갈 등 자연물을 섞어 만든 재료다. 응용만 잘하면 얼마든지 콘크리트와 빛, 물이 어우러지도록 배치할 수 있을 테다. 문제는 ‘잘’하는 게 누구에게나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모두가 해 낼 수 없는 그것을 해 냈다는 점에서 안도는 특별하다. ‘성공 비결이 무엇일까?’ 이런 물음의 답을 찾으려고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있을 듯싶다. 안도 스스로는 독학과 답사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그는 학교에서 건축을 배운 적이 없다. 공업고등학교 기계과 졸업생이었던 안도는 혼자 건축을 공부했고, 세계 각지의 유명 건축물을 찾아다니며 그곳의 장소성을 체험했다. 분명 이것이 그의 독보적인 스타일을 완성하는 바탕이 됐으리라. 하지만 이는 안도가 늘 고독한 길을 걸어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건축과 권투가 비슷하다고 말한다. 아무에게도 도움받지 않은 채 홀로서기를 해야 해서다. 안도는 “‘이 기회를 놓치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매 작업마다 안간힘을 다했다”(책 ‘나, 건축가 안도 타다오’ 중)고 쓰고 있다. 여든 살을 바라보는 지금도 그는 터프하게 작업한다. 한데 사무라이 타입이 아닌 나는 (젊은 시절에는 손발이 먼저 튀어 나갔다는) 안도 같은 상사 밑에서 하루도 버텨 낼 자신이 없다. 그의 건축물에 감동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는 그에게서 ‘항상 위로 나아가려는 마음가짐’만 가려 배우고 싶다. 혈혈단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상승을 추구하는 글의 건축을 꿈꾸면서. 허희 문학평론가·영화칼럼니스트
  • 섬세한 연출 빛나는 ‘흩어진 밤’ 볼까 베니스가 인정한 ‘더 리버’에 빠질까

    섬세한 연출 빛나는 ‘흩어진 밤’ 볼까 베니스가 인정한 ‘더 리버’에 빠질까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 스무 번째 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세계 각국 영화인들의 창의적인 실험 정신을 지원해 온 전주국제영화제는 올해 ‘영화, 표현의 해방구’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새달 2일부터 11일까지 전주 일대에서 열리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는 총 53개국 275편의 작품이 소개된다. 프로그래머들에게 놓치지 말고 봐야 할 추천작을 들어봤다.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의 추천작 중에는 한국 감독들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 눈에 띈다.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김솔·이지형 감독의 ‘흩어진 밤’은 부모의 이혼을 목전에 둔 한 가정의 이야기를 열 살 아이 수민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김 프로그래머는 “후손을 양육하는 고통과 보람이라는 어른의 책임이 방기되는 현실이 아이의 눈으로 생생하게 증언된다”면서 “영화가 끝나도 수민 역을 맡은 어린 배우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쉽게 가시지 않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 프로그래머가 더불어 추천한 ‘이타미 준의 바다’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국인의 정체성을 늘 마음에 품고 산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본명 유동룡·1937~2011)의 삶을 주변 사람의 회상과 그가 지은 건축물을 통해 되새긴다. 장병원 프로그래머는 세계의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월드시네마스케이프 섹션에서 추천작을 선정했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감독상을 수상한 ‘더 리버’는 ‘하모니 레슨’(2013), ‘상처받은 천사’(2016)에 이은 에미르 바이가진 감독의 3부작이다. 메마른 황야의 외딴 집에서 엄한 아버지의 계율에 순응하며 살던 오형제 앞에 도시에서 사는 사촌이 찾아오면서 일어나는 파문을 조명한다. 급진적인 작품을 소개하는 프런트라인 섹션의 ‘블론드 애니멀’ 역시 추천작이다. 전직 텔레비전 시트콤 스타 파비앵이 술에 절어 살던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젊은 군인 요니와 함께 떠난 여정을 그린다. 4대3 비율의 화면에 파비앵의 초현실주의적인 여정이 현란하며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진다. 문성경 프로그래머는 지난 20년간 전주국제영화제와 비전을 공유한 작가들을 조명하는 특별 기획 ‘뉴트로 전주’ 섹션에서 ‘죽기에는 어려’와 ‘로호’를 골랐다. 칠레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 도밍가 소토마요르 카스티요가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죽기에는 어려’는 1990년 칠레에 민주주의가 피어나기 시작할 무렵 공동체 속에서 성장하는 여주인공과 또래의 인물들을 담아 냈다. 지난해 산세바스티안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 촬영상, 남우주연상 등 3관왕을 차지한 벤하민 나이스타트 감독의 ‘로호’는 197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의 조용한 지방 도시의 한 식당에서 한 이방인이 뚜렷한 이유 없이 유명 변호사 클라우디오를 비방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국토ㆍ건설 신산업 분야, 여성인재 발굴 방법은

    국토ㆍ건설 신산업 분야, 여성인재 발굴 방법은

    4차 산업혁명의 미래형 신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는 ‘스마트시티’, ‘제로에너지 건축’, ‘건설자동화’ 등 국토ㆍ건설 분야의 유능한 여성인재 발굴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은 1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국토ㆍ건설 분야 대표자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번 간담회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한 국토ㆍ건설 신산업 분야 여성인재 발굴?육성과 더불어, 해당 분야 여성대표성을 제고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해 말 현재 건설 분야 여성인재풀은 3589명이 등재됐지만, 건축물ㆍ건축정책, 건설기술, 도시계획 등 유관분야 정부위원회의 여성위원 비중 확대 등을 위해 신산업분야 여성인재 현황 파악 및 추가 발굴이 필요한 실정이다. 이에 유관기관 및 직능ㆍ학술단체들이 한자리에 모여 국토ㆍ건설 신산업 분야의 여성인력 현황을 점검하고, 여성인재풀 확충을 위한 상호 협력 방안과 여성인재풀의 활용 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장현숙 회장을 비롯해, 대한여성건축사회 류행희 수석부회장, 한국여성건설인협회 김애주 부회장, 대한건축사협회 강계숙 여성위원장, 대한건축학회 박성신 여성위원장, 한국건설기술인협회 복원준 회원본부장 등 국토ㆍ건설 분야 대표자들이 참석하여 여성인재 발굴ㆍ육성을 위한 실천방안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양평원 관계자는 “사회 각 분야에 남성과 여성이 균형적으로 참여해 정책결정과정에 성평등 관점이 강화되면, 사회 전반의 성평등 실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며 “국토ㆍ건설 신산업 분야에서의 여성인재 발굴 및 여성대표성을 높일 수 있도록 관련기관 및 학계ㆍ산업계의 동참과 연대가 필요하다”라고 바람을 전했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공공건축물도 ‘세련되고 아름답게’ 짓는다

    도시재생 사업 공공건축가 의무 지정 3기 신도시는 지역별 특색 맞춰 조성 공공건축 설계비 1억원 미만도 공모 주민센터, 도서관 등 공공건축물이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디자인에서 벗어나 세련되고 편리한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전국 약 21만동에 달하는 공공건축물이 성냥갑처럼 비슷하게 지어져 도시 미관과 지역 특색을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이를 위해 정부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에 공공건축가를 의무 지정하고, 공공건축물 설계 절차를 개선한다. 남양주·하남·인천 등에 조성되는 3기 신도시에 마스터플래너(MP) 도입을 검토하는 것 역시 과거 도시 계획과 차별화를 두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아파트 단지만 빼곡히 들어서 있는 베드타운이 아니라 각 지역 특색에 맞춰 생활밀착형 사회간접자본(SOC)을 집중 투자하겠다는 취지다. 국토교통부는 18일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공공건축 디자인 개선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공공건축물은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자주 이용하는 주민센터, 도서관, 학교, 국·공립 어린이집, 보건소 등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노후 주거지 500곳을 선정해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도시재생 뉴딜 사업의 모든 사업지에 공공건축가를 의무 지정하도록 했다. 공공건축가는 중앙행정기관장 또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위촉하는 민간 전문가로 도시 건축물의 건축계획 수립, 설계지침 작성에 참여한다. 또 현재 서울시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총괄건축가 제도가 전국으로 확산되도록 다음달부터 총괄·공공건축가 인건비 지원 시범사업을 실시한다. 총괄건축가는 지역 내 주요 건축·도시 정책을 자문하는 건축가다. 그동안 가격 위주로 선정했던 공공건축 설계공모 절차도 개선된다. 설계공모 실시 대상을 현재 설계비 2억원(공사비 50억원 규모) 이상에서 내년부터 설계비 1억원(공사비 23억원 규모) 이상으로 확대한다. 1억원 미만에 대해서도 가격입찰 대신 간이공모 등을 도입한다. 단 한번이라도 비리로 적발된 경우에는 심사위원 자격을 영구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해 투명성을 강화한다. 비전문가는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지 못하도록 할 계획이다. 부처 간 협업도 강화한다. 국토부의 도시재생 뉴딜 사업뿐 아니라 교육부의 학교공간혁신,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산어촌개발,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300 등 주요 사업에 공공건축물 디자인 개선 작업이 집중된다. 박선호 국토부 제1차관은 “국민의 세금을 통해 조성한 공공건축물을 아름답고 편리한 디자인으로 조성하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지고 도시 미관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승효상 “재개발식 도시재생은 위험…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승효상 “재개발식 도시재생은 위험…설계 절차 혁명적으로 바꿔야”

    “도시는 생물체와 같아서 늘 변한다. 따라서 늘 재생해야 한다.” 국가 건축정책을 총괄하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승효상 위원장은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이로재 건축사무소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목표를 두고 추진하는 도시재생은 재개발 방식과 다를 바가 없어 굉장히 위험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승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부터 서울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까지 각종 국가 건축정책에 사령탑 역할을 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18일 발표한 공공건축 디자인 개선방안도 주도했다. 승 위원장은 “하급의 저질 건축으로 생산됐던 제도를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며 “설계업무 절차를 혁명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새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를 위해 이순신장군·세종대왕상의 이전을 검토하는 데 대해서는 “이순신장군상은 수십년 동안 있었고 광화문 광장의 남단에 위치해 광장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세종대왕상은 세종문화회관 옆 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공공건축 디자인을 개선해야 하는가. “건축은 우리 삶의 방식과 깊은 연관이 있다. 단순히 예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삶이 진보되기 위해선 반드시 바꿔야 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행복지수로 따지면 아직 선진국에 못 미친다. 국제연합(UN)에서 행복지수에 관한 통계를 낸다. 기준이 10가지 정도인데 반 이상이 건축이나 도시환경과 관련됐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건축도시 환경이 행복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어떤 건축들을, 어떻게 바꿔야 하나. “우리 삶은 한 나라, 또는 한 도시의 랜드마크 또는 기념비와는 별로 관계가 없다. 살면서 남산서울타워를 한 번 밖에 가본적이 없으니까 내 삶과 관계가 없는 것이다. 집을 나가면 만나는 골목길처럼 아주 익숙한 환경들은 우리 삶과 관련이 있다. 매일 우리 기분을 좌우한다. 이런 것들을 일상적인 건축이라고 한다. 동사무소, 유치원, 파출소 등이 공공건축의 중요한 요소지만, 작기 때문에 무시돼 왔다. 좋은 건물은 좋은 건축가가 설계하는게 마땅하다. 그동안 조달청이 발주하면 설계비를 가장 싸게 써내는 사람에게 돌아갔다. 설계를 싸게 낸 사람은 좋은 건축을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하급 건축, 저질의 건축으로 생산됐다. 이제는 고칠 때가 됐다.” -굵직한 대형 사회간접자본(SOC)에서 생활SOC 중심으로 바뀌는 흐름에 동의하는가. “지난 수십년간 국가 건설산업은 토목, 혹은 굵직한 인프라 투자를 많이 해왔다. 지금은 충분할 정도다. 외형으로 보더라도 토목 인프라는 어지간히 갖춰진 형편이다. 이제는 발주 물량을 보더라도 건축 물량이 많아졌다.”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역임했다. 가장 불편했던 점은 무엇인가. “관습이 제일 불편했다. 토건 위주의 행정 체제가 아주 강건하다. 그게 아니라고 설득하는 게 제일 힘들었다. 대형이 아닌 작은 사업들에 더 많은 관심을 쏟으니 그러한 사업들으로 인해 이익을 보던 업체들과의 관계가 악화됐다. 예를들어 개발업자나 건설업자 등이다. 이들과 전부 ‘적’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넘어가야 할 장애였고 심정적으로는 개의치 않았다.” -공공건축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수 있는가. “건축설계 사업으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많다. 종래의 큰 사업은 대기업들이 가져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공건축은 소상공인이 가져가는 것이니까 훨씬 더 생활밀착형 이익을 가져가는 셈이다.” -현재 정부의 도시재생 뉴딜사업을 평가하자면. “도시재생을 재개발하듯 하면 결과는 망할 것이 뻔하다. 그런식으로 하면 안된다고 원론적으로 이야기를 해왔다. 지금도 우려되는 바가 없는 게 아니다. 우선 시한을 두면 안된다. ‘몇 년안에 끝내자’라는 방식은 실패로 가는 첩경이다. 지금의 방식은 굉장히 위험하다. 도시는 생물체 같아 늘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재생을 해야 한다. 어느 한 기간 동안만 재생하고 그다음에 재생을 하지 않으면 도시를 죽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도시는 하드웨어만 있는 게 아니라 사는 사람들이 있다. 주민들이 어떻게 변화되는 지 과정을 지켜봐야 한다. 그러면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대처를 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시간이 굉장이 많이 걸린다. 이번에 (사업이) 끝나면 이제는 도시재생이 없다는 식의 목표 설정은 굉장히 위험하다. 재생의 기본적인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전주 한옥마을은 상업화, 대형화로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옥마을에서 개인에게 직접적인 비용을 지원했는데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했다. 한옥을 지으면 돈을 보수해주는 방식은 타락시킬 염려가 굉장히 크다. 공공시설이 부족하거나 길이 낙후된 곳을 조정해주면 스스로 (주민들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자율적으로 환경을 스스로 바꾸게 해야한다. 그래야 자기 것에 애착이 가고 공공과 긴밀하게 소통하려고 한다. 개인에게 돈을 지원해주면 도덕적 타락이 금방 따른다. 그것은 마약을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는. “콜롬비아의 메데인이다. 원래 범죄율이 90%로 치솟던 곳이다. 마약으로 유명했다. 이 험악한 도시에 도시재생이란 방법을 꺼냈다. 빈민 마을에 작은 공공시설을 하나씩 지어줬다. 도서관, 어린이 놀이터 등을 지었더니 처음에 주민들이 뜨악하더니 곧 아이들이 놀기 시작했다. 범죄율이 10년 사이에 20% 이하로 떨어졌다. 어마어마한 도시재생의 성공 사례다. 이런 방법을 도시 침술이라고 부른다. 자극을 줘서 주변이 되살아나고 생기가 돌게 하는 것이다. 우리 도시재생도 그 방법을 써야 한다.” -도시재생에는 젠트리피케이션(둥지내몰림) 우려가 잇따른다. “공공에서 아주 전략적으로 개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공공에서 개인 영역이 아닌 공공 역역만 건드려야 한다. 광장, 길, 도로 등이 대한 디자인의 질을 높여주고 동시에 시설물을 공공화를 시키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개인에 대해 직접적으로 지원하면 위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가격이 오르면 경제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된다. 임대료만 부추긴다. 따라서 세입자로 살고 있던 사람들을 위한 장치를 공공에서 만들어줘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짓거나 공공시설을 중간 중간 포섭해서 전체적인 지가나 건물 임대료를 낮출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건축을 위해서 어떤 예산을 늘려야 하는가. “건축에는 세 가지 단계가 있다. 발주와 설계, 허가, 짓는 단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 단계 다 후진적 수준이다. 발주는 싸게 써내는 사람에게 준다. 건축사 면허라는 것은 허가를 면해주는 것이다. 국가에서 자격증(라이센스)를 주면 알아서 설계하라는 것이다. 의사자격증과 같은 성격인데 의사는 수술을 할때마다 허가를 받는 게 아니지 않는가. 건축사는 설계할 때마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책임을 지기 싫어하는 공무원은 심의제도를 만들었다. 어떤 건물을 허가받으려면 최소한 35개의 심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심의를 담당하는 이들은 대부분 실무를 잘 모르고 책임도 없다. 그 과정에서 설계가 폄훼당하고 오독되고 왜곡되기 마련이다. 또 설계와 감리를 분리한다.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아기를 기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후진적인 건축에서 좋은 건축이 나오기가 만무하다. 세 단계를 정말 혁명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고쳐야 하나. “우리나라 공공건축의 설계 발주는 대부분의 지자체가 조달청에 발주한다. 심사를 익명으로 하면 부정부패가 반드시 개입되기 마련이다. 서양에서는 심사위원이 누구라고 공고할 때 발표한다. 그러면 이 심사위원의 성향을 생각하면서 사람들이 응모한다. 공개돼 있으니까 절대 부정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익명성 뒤에 숨어서 비리 부정이 횡횡하고 있다. 이처럼 서양의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따라만 하면 된다. -용산 미군기지 건축물 활용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실시한 결과 전체 975동 중 81동은 존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역사적 가치 때문인가. “우리 설계팀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세웠다. 생태 복원, 역사보존, 도시 복원 등이다. 975개 건물 중 아주 소중한 것도 있지만, 정말 형편없는 게 대부분이다. 난개발이 돼 있다. 그런 것을 두고 생태를 복원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가치 있는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 사라지는 건물도 그 건물이 있었다고 하는 사실을 기억하게 만드는 장치를 둬야 한다. 용산 미군기지는 대단한 땅이다. 옛날에는 서울의 변두리였지만 지금은 서울의 중앙에 있다. 저는 국방부가 거기 있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국방부도 옮겨야 한다. 세계 어느나라 도시 한복판에 국방부가 있는 도시가 없다.” -청와대 관저 이전을 주장한다. “집무실은 광화문으로 안 나오겠다고 청와대에서 이야기를 했고, 관저는 이전을 해야 한다. 관저에 한번 가봤는데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 건축 구조가 그렇다. 빛도 잘 안통하고, 환기도 잘 안 된다. 오래 살면 정신·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결단코 좋아질 까닭이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의 건강을 위해서도 관저는 옮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집무실은 옮기고 안 옮기고 가 중요한 게 아니다. 청와대 본관이 있는 북악산 기슭이 역사 이래로 국민에게 내줘본 적이 없다. 전부 권력자가 잡았던 공간이다. 우리가 광화문에서 대모를 하면 그쪽을 보고 한다. 방향성이 있다. 중요하는 것은 국민에게 내어주라는 것이다. 서울의 축이고 대한민국의 상징 축이다. 이런 주축을 권력과 비권력,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를 떠나서 온전히 국민의 축으로 만들자는 게 제 주장이다.” -우리는 왜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같은 자산을 갖지 못했나. “그동안의 공공건축 등은 그동안 턴키방식(일괄수주계약)를 해왔다. 건설회사와 시공 회사와 설계 회사가 한 팀이 돼서 들어오라는 것이다. 이건 마치 변호사와 검사가 한팀으로 법정에 들어오라는 것과 같다. 검사와 변호사가 서로 견제를 해야지 한 팀이 돼면 어떻게 되겠나. 많은 부정부패가 있을 수밖에 없다. 건축설계사무소는 돈이 없다. 시공회사가 돈이 많으니까 시공사가 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제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건축가라고 하는데 공공시설을 설계해본 적이 없다. 불륜의 장소라고 생각해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서울의 특징을 어떻게 살려야 하나. “서울은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달리 독특한 성질이 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하며 서울에 5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다. 1000년 이상 존재했고, 600년 이상 한나라의 수도로 역사가 있다. 산수가 있는 도시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단에 위치한 중요 도시며, 1000만 인구가 산다. 이 도시를 합한 것은 서울밖에 없다. 서울의 정체성이다. 다른 도시는 대부분 평지다. 서울은 산이 있어 지형마다 다 다르다. 파리나 뉴욕은 도시 설계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데 서울은 다 다른 원칙을 적용해야한다. 사대문 안은 전혀 다른 풍경을 갖고 있다. ‘메가 시티’(megacity)가 아닌 ‘메타 시티’(metacity)적 방법으로 불린다. 서울은 더 이상 확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서로의 커뮤니티 내에서 연결이 필요하다. 잠실은 산도 없고 이미 롯데월드타워가 들어서 있어 마천루의 도시처럼 만들어도 된다. 하지만 서대문 안은 건물을 지어선 안 된다. 지금이라도 건물을 지으면 안 된다. 세계에서 엄청나게 많은 도시 가봤는데 서울만큼 잠재력이 많은 도시가 없다.” -광화문광장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중요한 공간인데 세계 최대의 중앙 분리대처럼 돼있다. 누구나 쉽게 가야 하는데 지금 광장은 목숨 걸고 건너가야 한다. 기념비적 광장이지 일상적 광장이 아니다. 기념비적 광장에서 일상의 광장으로 바꾸자는 게 서울시에서 하는 것이고 제가 적극 찬성하고 도와주고 있다.” -광화문 광장 동상 논란이 있다. “현상 공모에서 좋은 안을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수십년동안 있었고 광화문 광장의 남단에 위치해 광장에 영향을 안 준다. 세종대왕 동상은 한 가운데 있고 너무 주변을 압도할 듯이 서 있다. 장소를 옮기면 좋겠다고 하는 게 제 개인적인 생각이다. 만들 때부터 문제가 많았다 세종문화회관 옆 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교통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교통은 늘 무책이 상책이다. 광화문 광장은 차도나 보도를 전부 같은 자료를 써서 필요할 때 차를 다니게 하면 된다. 서양의 보행전용도로는 대부분 아침엔 차가 다니도록 한다. 오후엔 사람만 다니게 한다. 일부분 한두개 차선은 열어둘 수도 있다. 그런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을지면옥 철거 논란이 있었다. “을지로 일대가 고통받는 것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만들어진 개발계획 때문이다. 세운상가 주변에 엄청난 개발계획을 세우고 법제화를 시켜놔 박원순 서울시장에게 넘겼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고통받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도시재생의 방법으로 추진할 것이다.” -세종시에 대한 평가는. “세종시는 맨 처음에 만들 때 추진위원회 위원이었다. 처음엔 성공적이라고 생각했다. 가운데를 비우고 환상형으로 평등한 도시 구조다. 작년에 처음 가봤는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새로운 도시를 계획했는데 흔히 보던 도시다. 주된 원인은 옛날 방식 그대로인 아파트 때문이었다. 도시는 아파트가 풍경을 좌지우지한다. 3기 신도시를 만든다고 하는데 옛날 방식대로 하면 큰일난다. 전반적으로 방법을 바꿔야 한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김수근 등 천재 건축가들이 국가의 손을 빌려 올리려던 ‘유토피아’

    김수근 등 천재 건축가들이 국가의 손을 빌려 올리려던 ‘유토피아’

    1972년 4월 서울신문에 실린 한 편의 글. 시가지에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보행자들의 낙원 서울을 그렸다. 사대문과 성곽은 모두 복원됐고, 이렇게 구획된 시내에는 자전거와 공공으로 운영되는 시속 20㎞ 미만의 전기차만 다닌다. 글의 제목은 ‘도시 디자인 환상곡’. 글쓴이는 한국이 낳은 천재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새달 26일까지 지난해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국제건축전 한국관 전시 ‘국가 아방가르드 유령’을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선보인다. 박성태(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 예술감독, 최춘웅(서울대 교수), 박정현(마티 편집장), 정다영(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 공동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에서는 1960년대 한국 개발 체제의 싱크탱크이자 김수근 등 당시 한국 최고 건축가들이 집결한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이하 기공)의 작업에 주목했다. 기공은 한강연안개발,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등 현대 한국을 형성하는 개발계획을 주도했지만 아카이브는 거의 구축되지 못했다. 전시는 실체가 온전하게 밝혀지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한국 건축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공의 유산을 ‘유령’으로 설정하고 이러한 상황 자체를 전시의 조건으로 활용했다. 전시장 1층에서는 기공의 건축가들이 꿈꾸었으나 미처 실현되지 못한 프로젝트를 담은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전시에서 생산된 비평적 이야기를 담은 ‘도래하는 아카이브’를 선보인다. 정지돈 소설가는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70’의 안내원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들 사이에서 홍일점으로 사진에 남은 인물 ‘정태순’에 천착,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를 써내려 갔다. 2층에서는 기공의 부재하는 아카이브를 참조한 젊은 건축가들의 작업이 이어진다. 김성우는 세운상가를, 최춘웅은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건축 스튜디오 ‘바래’는 한국무역박람회를 재해석하는 식이다. 천재 건축가들이 국가의 손을 빌려 지어 올리려던 유토피아와 실패, 그리고 후대에 이르러 이들의 꿈을 재가공한 후배 건축가들의 비전을 볼 수 있는 전시다. 지난해 전시 당시 영국 ‘가디언’에서는 ‘흥미로운 전시’, 미국 ‘아키텍처럴 다이제스트’는 ‘한국 건축과 정부의 긴장감이 돋보인 전시’였다고 평했다. 베니스에서 164일의 전시 기간 동안 약 15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첨탑 ‘수탉 청동’ 잿더미서 극적 발견… ‘16개 조각상’도 구사일생

    90m 높이 첨탑 붕괴 때 사라진 청동상 佛 건축연맹회장이 폐허 뒤지다 찾아내 가시면류관·장미 창 3개·오르간도 무사 첨탑 16개 조각상 나흘 전 옮겨 살아남아 드니 유물 등 예술품 5~10% 훼손 추정 일부 성물은 곧 루브르 박물관으로 이송프랑스 파리의 상징 노트르담대성당의 첨탑 끝을 장식했던 수탉 청동조상이 화재 폐기물 더미에서 기적적으로 발견됐다. 첨탑과 목조 지붕이 화마에 무너지면서 첨탑 안에 보관돼 온 주느비에브 성녀와 드니 성인의 유골 등 유물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추측되지만, 수탉 청동조상을 포함해 파이프 8000개로 만든 15세기 파이프 오르간, 가시면류관·성 십자가 등 가톨릭 성물, 원형 스테인드글라스 ‘장미창’ 3개, 프랑스 왕 루이 9세가 착용한 튜닉(상의) 등 대부분의 역사적 명물이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현지시간)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 등에 따르면 노트르담대성당이 소장한 역사적 명물 가운데 수탉 청동조상이 잿더미 속에서 극적으로 회수됐다. 이 청동조상은 성당 지붕 위 첨탑 상단에 설치돼 90m 높이에서 파리 시내를 굽어보고 있었다. 첨탑이 붕괴되면서 청동조상도 함께 사라진 것으로 추정됐었지만 프랑스 건축연맹 자크 샤뉘 회장이 화재 현장 폐허 더미를 뒤지던 중 극적으로 발견했다. 수탉은 프랑스의 국가적 상징이다. 샤뉘 회장은 대체로 온전한 모습의 조각상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올리며 “믿을 수 없다”고 감격했다. 수탉 청동조상은 프랑스 혁명 이후 노트르담대성당 첨탑을 복원한 건축가 비올레 르 뒤크의 작품으로 1935년 10월 당시 파리교구 대주교이던 베르디에 추기경에 의해 ‘영적 피뢰침’으로 첨탑 끝에 설치됐다.예수의 12사도와 4명의 신약성서 복음서 저자를 상징하는 16개 조각상은 160년간 성당 첨탑을 장식해 왔으나 화재 발생 불과 나흘 전 복원작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옮겨진 덕분에 운좋게 살아남은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화재 초기 소방관들이 옮겨 놓은 가시면류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썼던 것으로 알려져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보물이다. 황금으로 만들어진 나뭇가지를 원형의 다발에 엮은 것으로 원래 예루살렘에 있었으나 6세기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고 1238년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구입해 파리로 가져왔다. 노트르담대성당의 기념비적 유물인 대형 파이프 오르간도 다행히 심한 손상 없이 회수됐다. 다만, 프랑스 당국은 이번 화재로 무너진 첨탑 안에 1935년부터 보관돼 온 드니 성인과 주느비에브 성녀의 유골·머리카락·치아 등이 포함된 유물은 여전히 수색 중이다. 1630년부터 1707년까지 매해 5월 초 봉헌된 50개 그림(더 메이스) 가운데 화재 당시 성당에 전시돼 있던 13개 그림은 화재 진압을 위해 뿌려진 물에 의해 일부 손상돼 복구가 필요하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막심 큐뮤넬 종교유산관측소 사무총장은 “이번 화재로 대성당 예술품의 5~10%는 훼손됐을 것”이라고 평가했다.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 속을 헤치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 가시면류관 등을 구해낸 영웅들도 주목을 받고 있다. 파리소방서 사제로 복무 중인 장마크 푸르니에 신부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 유물을 꺼내기 위해 소방대원과 시민이 힘을 합쳐 만든 ‘인간 사슬’ 선봉에 섰다. 이들의 헌신 덕분에 화염을 피한 성물과 유물 일부는 파리시청에 안전하게 보관돼 있으며, 곧 루브르박물관으로 이송될 계획이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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