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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자연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자연 주제… 국내외 작가 70여점 오늘 인스타그램 라이브 선공개짙푸른 바다에 섬들이 떠 있다. 그중 일부는 진짜가 아니다. 대나무와 그물망으로 엮은 섬 모양의 구조물이 섞여 있다. 홍콩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룹 맵 오피스의 영상 작품 ‘유령 섬’(2019)의 한 장면이다. 작가 로랑 구티에레즈와 건축가 발레리 폭트패로 구성된 맵 오피스는 사진, 회화, 설치, 공연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해 비판적 시각의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유령 섬’은 바다에 버려진 쓰레기를 수거해 이를 재활용한 구조물을 세우는 설치 작업을 통해 인간의 무분별한 행동으로 인한 해양 생태계 파괴의 심각성을 일깨운다.핀란드 출신 작가 에이샤 리사 아틸라의 영상 작품 ‘수평-바카수오라’(2011)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직설적으로 보여 준다. 작가는 가문비나무의 실제 크기를 온전한 형태로 담기 위해 6개 모니터를 수직이 아닌 수평으로 연결했다. 나무라는 자연의 한 부분을 기록하는 일조차 인간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 줌으로써 자연과 공생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드러낸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자연을 주제로 한 국내외 작가 17명의 작품 70여점을 모은 기획전 ‘수평의 축’을 선보인다. 자연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양한 접근방식을 대지(자연)라는 수평선 위에 일종의 축(axis) 세우기로 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제목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미술관 휴관이 지속되면서 이번 전시도 온라인으로 먼저 공개한다. 양옥금 학예연구사가 진행하는 전시 투어를 16일 오후 4시 인스타그램 라이브로 선보이고 이어 미술관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 등에 영상을 게시한다. 전시는 맵 오피스와 에이샤 리사 아틸라의 작품 등 미술관이 최근 수집한 국제미술 소장품을 중심으로 ‘부분의 전체’, ‘현상의 부피’, ‘장소의 이면’ 등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국내 미술관에선 처음 공개되는 테레시타 페르난데즈의 ‘어두운 땅’(2019), 소장 20년 만에 재공개되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의 ‘파고들다’(1988) 등이 눈길을 끈다. 스페인의 해안 군사지대를 촬영한 로랑 그라소의 ‘무성영화’(2010)는 평온해 보이는 해안 풍경과 그 주변을 둘러싼 군사시설의 대비를 통해 풍경 이면의 역사를 되짚는다. 올라퍼 엘리아슨, 제니퍼 스타인캠프, 한스 한케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 작가로는 박기원, 바이런 킴, 김세진, 원성원, 한성필이 참여한다. 박기원의 ‘넓이’(2008) 시리즈는 사계절을 주제로 한 연작이다. 전시는 5월 중순까지 예정돼 있지만 재개관 일정에 따라 유동적이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다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주거 문제의 해결을 위해 유럽 도시들은 외곽 신도시에 우리와 같은 단지형 아파트를 급작스럽게 짓기 시작했다. 단위가구가 결합해 건물이 되고, 주거동이 모여 단지가 만들어지는 단순 반복과 확장의 과정이다. 마치 공장 생산품처럼. 이런 시스템은 단기간 대량 공급으로 주거 문제를 해소할 수는 있었지만 내적으로는 함께 사는 도시 공동체를 파괴하고, 외적으로는 주변 도시와 부조화해 단절되는 심각한 부작용을 유발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도시와 환경, 공유와 소통을 고려한 도시의 집합주거 유형에 대한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앙리 시리아니의 유전자 유럽에서 도시 집합주거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질 때 그 중심에 있던 대표적인 건축가가 프랑스의 앙리 시리아니다. 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그는 1965년 프랑스로 건너와 A.U.A. 등에서 일했다. 1976년부터 독자적인 건축 활동을 시작한 시리아니는 페루에서 참여했던 저가형 집합주거 프로젝트의 경험과 실천이론인 ‘도시 단편론’을 기반으로 새로운 주거 모델을 연구했다. 저가형 집합주거를 위해 근대 집합주거의 특징인 ‘반복과 규격화’라는 장점을 수용하면서 전통도시의 장점인 장소성, 주변과의 조화 그리고 단지의 편안함을 동시에 구현하고자 했다. 도시 단편론은 근대 이상도시 실현의 문제점과 과거 전통도시의 한계성을 파악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찾는 실천적 연구였다. 이 개념이 적용된 그의 프로젝트는 ‘누아지-2’, ‘생드니 아파트’, ‘에브리-2 아파트단지’, ‘베르시 주거단지’ 등이다. 그가 실현한 주거단지의 특징은 구도시 공간의 특성인 가로, 광장, 정원을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공간 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구도심 재개발 아파트뿐만 아니라 신도시 계획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적용해 과거와 현재의 도시 풍경을 단절 없이 연결했다. 미국 건축이론가 케네스 프램턴은 시리아니의 도시 단편론과 건축물을 근대 집합주거 유형을 기존 도시와 접목하려는 새로운 모색이라는 점에서 높게 평가했다. 시리아니는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의 사상과 이론 그리고 건축 어휘를 평생 따랐지만, 도시와 집합주거에 대한 이론과 사상에서는 그 결을 달리하며 선명한 자기 생각을 펼쳤다.르코르뷔지에가 혁신을 위한 기념비적인 건축을 추구했다면, 시리아니는 시대적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건축의 본질인 공간을 탐구하고 그것을 실천했던 건축가였다. 그는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거창한 개념에 집중하기보다는 삶의 근본을 이루는 건축의 중요성과 도시 분위기 형성에 주목했다. 이러한 생각은 그가 설계한 주거공간에서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지나치게 멋을 부리거나 과도하게 표현하지 않으면서도 풍요로운 공간을 구성하고, 평범하고 저렴한 재료로 공간의 질을 높여 격조 있는 집을 만들었다. 제한된 면적과 공사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임대주택 프로젝트에서도 이러한 의지가 잘 드러나는데, 사용자가 10평 크기의 집을 12평처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게 계획했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입구와 홀, 복도는 풍요로운 분위기를 내면서 입주자들의 자존감을 높여 줬다. 물론 그가 집합주거만 설계한 건축가는 아니다. 말년에 준공한 페론의 ‘1차 세계대전 전쟁박물관’과 아를의 ‘고대 유적박물관’에서 빛과 동선으로 만들어 낸 장면은 현대건축이 지닌 자유로운 공간의 진수를 보여 준다. 시리아니는 미래의 건축을 담보하는 교육자다. 1977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스 건축 8대학(파리 벨빌 건축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지금도 페루에서 건축교육자들을 길러 내고 있다. 특히 건축 8대학에서 에디트 지라, 클로드 비에, 로랑 살로몽, 로랑 보두앵 등 프랑스 건축가들과 함께 만든 우노 스튜디오는 교육을 통해 시대를 대변하는 보편적 건축, 미학을 교육하고 사회의 저변을 넓히는 건축교육의 모델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시리아니는 근현대건축의 본질인 공간의 가치, 건축가의 소양을 중점적으로 교육했다. 그의 건축 특성처럼 스타 건축가를 만들기보다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시민과 같이 이 시대의 일꾼으로서 최소한의 소양을 갖춘 건축가를 양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바우하우스 교육 목표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그 당시 우노 스튜디오에는 그의 건축교육 방법과 철학에 매료돼 전 세계에서 학생들이 모여들었고, 특히 한국 유학생이 많았다. 아마도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한 시절을 보냈던 학생들의 건축에 대한 목마름 때문인 듯하다. 현재 시리아니의 제자들은 한국 건축계의 리더로 활동하고 있으며, 건축교육자로서 파리에서 경험했던 그의 교육 방법론을 국내 대학에 접목해 다음 세대의 건축가를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시리아니는 국립박물관 공모전 심사와 강연을 위해 세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인 대부분이 살아가는 아파트와 그런 문화 속에서 지어진 제자들의 건축물이었다. 그는 단순 반복으로 만들어진 강남의 고가 아파트단지를 보고 개탄했다. 세계적인 자동차와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 국가에서 살아가는 주거의 질은 개도국의 모습이라고 질타했다. 그리고 그날 옛 제자들과 만난 장소는 파리 우노 스튜디오의 강의실이 됐다.●건축이 삶과 관계 맺고 그 안에 들이는 방법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 나는 ‘두물머리 주택’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매년 한 채 정도의 집을 지었다. 주택설계는 사소한 것까지 고민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사무실 운영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건축이 시작된 근원적인 장소이고, 삶과 가장 밀접한 고민을 풀어 가야 하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또 건축가의 사유의 변화가 선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초기 몇 채의 주택을 짓고 난 후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우리나라의 환경과 몸에 맞지 않고 삶에 녹아들지 않음을 느꼈다. 이후의 작업은 땅을 읽고 풍경을 들이는 방식이나 건축이 우리 삶과 관계 맺고 그 안에 들이는 방법에 더 밀착돼 관찰하고 탐구하는 과정이었다.첫 번째 작업인 ‘두물머리 주택’은 건축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현장에서 직접 접목되는 과정이었다. 중심 생각은 경사진 대지에서 땅과의 관계를 통해 동선을 따라 장면을 만들고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주변 풍경을 담는 것이었다. ‘자운당’은 유학 시절 매료됐던 ‘백색의 건축’에서 벗어나 다른 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주된 관심이었다. 그 작업을 통해 주택에서의 복층 거실이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체감했다. 강화도에 있는 ‘동검리주택’은 은퇴하신 고3 담임 선생님의 집이다. 노년의 삶을 고려해 층고를 낮추고 기복이 심한 대지에 대비되는 수평의 집을 계획했다. 전면 창을 통해 시각적으로 내외부의 경계를 없애 원시 자연을 경험하게 했다. 그런데 공간적으로 매우 풍요롭고 극적인 장면이 때로는 일상의 편안함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극적인 경관을 가진 집은 오히려 외부 풍경을 절제해 담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그 이후 작업이 계속 이어진 판교 신도시 주택단지는 단기간 주거 유형과 구축법에 관한 다양한 탐구를 가능하게 한 건축 실험실이 됐다. 덕분에 유사한 크기와 비슷한 대지 조건에서도 매번 다양한 재료의 물성, 크고 작은 치수, 시공 방식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부분 밀집 지역에서 거주성을 확보하기 위해 마당을 품고 대지 경계를 따라 채를 놓는 내향적인 집을 계획했다. 집으로 둘러싸인 마당은 하늘로 열려 빛과 바람, 자연의 변화무쌍한 풍경을 담고 내부 공간에 표정과 생기를 불어넣었다. 모든 집은 우리나라 기후에서 주어진 지형과 조건에 대해 고심해서 내린 나름의 결론이었고, 생산 방법과 재료에 대한 경험을 쌓아 보완했다. 특히 입주 후 사는 모습을 보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초기 주택에서 벽을 자르고 접고 띄우고, 천장을 낮추고 높이고 기울여 눈에 띄는 다양한 변화에 집중했다면, 경험이 쌓이면서 가장 일상적이고 드러나지 않는 것, 편하고 쉬운 것, 특별하지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설계 시 중요하게 여겼던 부분이 생활에서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간과했던 부분이 크게 드러나는 것을 경험하면서 구체적인 작업의 방식이 변화했고 변화할 것이다. ●작은 차이가 만드는 큰 변화 졸업 설계 발표 후 시리아니는 마지막 당부와 덕담을 건넸다. ‘배우고 학습한 모든 것을 잊어라.’ 그때는 지나쳤던 말들이 지금은 그 의미가 크게 와닿는다. 그동안 나는 시리아니와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에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고 비평적 시각을 가졌다. 오히려 루이스 칸, 알바 알토, 루이스 바라간 등 다른 색깔의 건축에 심취했다. 그리고 주변 가까이 있는 것들에 발을 딛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시리아니의 가르침은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시리아니와 르코르뷔지에의 후예가 되기보다는 고루한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일이었다. 건축에 대한 나의 생각은 항상 변화한다. 새로운 생각은 작은 실행이 되고, 축적된 경험은 다시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생각은 언제나 다른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의 시도가 지금은 새로운 해법이 되지만 다음 작업에선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절대적인 진리나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작은 차이가 변화를 만들 뿐이다. 나도 한 학기가 끝날 때 제자들에게 선현의 구절인 ‘배움의 방법은 동화하는 것에 있고 앎의 방법은 잊어버리는 것에 있다’는 글귀를 전한다. 시리아니의 유전자가 나를 거쳐 다음 세대에 전해지길 기대하며, 우리 도시가 좀더 좋은 장소로 거듭나길 기대하며. 건축가 정재헌(경희대 교수)
  • 구로구 ‘키움센터’ 집중 지원구 선정

    서울 구로구가 2020년 서울시 우리동네키움센터 집중 지원구에 선정됐다고 2일 밝혔다. 지난해 우리동네키움센터의 성공적인 설치 및 운영, 구로형 온종일돌봄센터 운영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구로구는 올해 우리동네키움센터 확충 사업에 모두 62억원을 투입해 11곳을 추가로 연다는 계획이다. 새롭게 여는 키움센터는 돌봄 수요가 많은 학교 인근 공공시설 또는 임차공간에 마련된다. 서울시의 공간 선정 심사를 거쳐 이달 중 구체적인 장소가 결정될 예정이다. 구는 공간이 확보되는 대로 마을건축가를 활용해 본격적인 시설 확충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편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만 6~12세의 방과후 돌봄을 책임지기 위해 서울시가 자치구와 함께 추진하는 사업이다. 학교가 끝난 뒤 초등학생에게 안전한 놀이 및 학습공간을 제공해 맞벌이가정 등에 양육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돕는다. 서울시가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공모에서는 돌봄 체계의 선도적인 모델 구축을 위해 정책 추진 의지, 지원 적정성, 실현 가능성, 성과 확산성 등을 토대로 평가했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이번 기회를 통해 구로형 아이돌봄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구축해 아이들이 행복하고 부모가 안심하는 돌봄 환경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최만진의 도시탐구]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인 자동차 문화

    [최만진의 도시탐구] 코로나19 사태의 원인인 자동차 문화

    전염병 사태로 외부와 봉쇄된 유럽의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등의 도시 정황은 눈을 의심케 한다. 사람들로 가득 찼던 거리나 광장이 활기를 잃어버리고 텅 빈 채로 나둥그러져 있어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이처럼 쥐 죽은 듯 조용한 광경을 이탈리아 건축가 안토니오 산텔리아(1888∼1916)가 다시 살아나 봤다면 아연실색했을 것이다. 그는 현대 도시가 매우 역동적이며 떠들썩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1914년 발표한 ‘미래주의’ 건축선언은 이런 생각을 고스란히 담았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이 사조는 기계주의와 공업주의에 바탕을 둔 새로운 도시 경향이었다. 우선 건축물과 시설물엔 현대적 재료인 콘크리트와 철골을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이를 통해 고층의 마천루가 가득히 들어선 도시를 꿈꿨고, 기계나 자동차의 힘과 속도를 나타내는 날카로운 직선적 요소를 강조했다. 수직동선인 엘리베이터와 컨베이어벨트 같은 수평동선의 브리지를 주된 디자인 요소로 추가하기도 했다. 도시 내 도로는 기계의 복합성을 상징하는 다층구조를 가지도록 했다. 지면 위는 물론이고 고가나 지하 구조로 된 입체형 고속 교통순환체계를 만들어 자동차 같은 동력기관이 쌩쌩 달리도록 계획했다. 이로써 자동차와 비행기 등의 고도화된 산업화 시대의 정신을 전면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이는 기존에 이탈리아에 있었던 사람을 중시하는 전통적 인본주의 사고를 완전히 제거한 것이었다. 거기에다 자연적 요소마저 배척해 순수한 인공적 사회를 구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너무나 진보적인 아이디어여서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개인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사해 짧은 생을 마감함으로써 현실에서 구현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는 곧바로 1920년대에 시작된 모더니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건축은 산텔리아를 대변하기라도 하듯 전 세계의 도시들을 자동차와 콘크리트 중심으로 만들어 갔고, 지금까지 거대한 기계도시들을 수없이 양산했다. 이러한 발전 양상은 많은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대규모 재난 발생 등의 우려를 낳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가장 대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듯하다. 다층화된 도시공간과 빼곡히 들어선 고층건물 내에서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증식돼 현대 과학 및 기술 문명을 비웃어 버렸다. 출퇴근은 물론이고 간단하게 콜라 한 병을 사기 위해서도 차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 도시구조 속에서 자동차의 속도만큼 감염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화를 가능하게 한 최고의 문명이기인 비행기는 소리보다 더 빠르게 국경 너머로 바이러스를 실어 날라 전 세계와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사는 도시를 마냥 요란하게 쏘다니도록 만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자연을 도외시한 인공 지상주의를 사정없이 질타하고 있다. 그리고 사람, 도시, 국가가 때로는 천천히 다가가야 하고 필요한 만큼의 거리 두기를 해야 함을 코로나19는 강력히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사회적 거리 2미터, 또 다른 의미

    [한필원의 골목길 통신] 사회적 거리 2미터, 또 다른 의미

    코로나19 사태가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방역 당국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사람 사이의 거리를 기침할 때 침방울이 튀는 범위인 2미터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손 씻기와 함께 이것이 새로운 바이러스의 전파를 줄이는 데 가장 효과적인 예방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 말 그대로 사람들 사이에 친밀감은 줄어들고 거리감이 커져 사회적 관계가 크게 위축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사람들 사이의 거리 2미터는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 정도를 벌리면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 어려워지지는 않을까. 이에 답하는 데는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의 연구가 도움이 된다. 물론 자기 신체로 접근하는 것을 통제하려는 성향이 우리보다 강한 북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임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그는 사람들이 대인관계에서 보통 사용하는 거리를 친밀한 거리, 개인적 거리, 사회적 거리, 공적인 거리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각각의 구체적인 치수는 46센티미터 이하, 30센티미터~1.2미터, 1.2~3.6미터, 3.6~7.5미터라고 한다. 이 가운데 사회적 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대부분의 공적인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거리를 말한다. 사회적 거리를 다시 가까운 부분, 곧 1.2~2.1미터 범위와 먼 부분, 곧 2.1~3.6미터 범위로 나눌 때 그것들의 의미는 서로 다르다. 전자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서로 유지하는 거리이며 사회적 모임에서 흔히 관찰되는 거리다. 이 범위에서는 말과 표정이 명확하게 전달돼 의사소통이 매우 효과적으로 일어난다. 그래서 건축가들은 공공장소에서 좌석을 배열할 때 가능하면 사람들의 머리 사이 거리가 이 범위에 오도록 설계하려고 한다. 후자, 곧 사회적 거리의 먼 부분은 좀더 공식적인 관계, 그리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흔히 사용되는 거리다. 회사에서 직원이 사장에게 이야기할 때 흔히 이 거리를 유지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건축가들은 개인 사무실을 설계할 때 방문자를 이 거리에서 응대하도록 치수를 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 상대방을 무시해도 결례가 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할까. 대체로 3미터 이상 거리가 있을 때 방문자를 못 본 척하고 자신의 일을 계속해도 무례하게 생각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사람이 정면이 아니라 한쪽으로 비켜 서 있다면 더욱 그렇다. 홀은 이렇게 서로에 대해 개입이 일어나지 않는 거리를 공적인 거리라고 정의했다. 그 치수는 3.6~7.5미터인데, 사람들이 서로 이 정도 거리를 두면 사회적 관계 맺기가 어려워진다. 낯선 사람에게도 인사하는 북미 사람들도 이 거리에서는 아는 사람이 있어도 멈추거나 인사를 나누지 않고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공적 거리의 먼 부분, 곧 7미터 정도의 거리는 대중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주위에 확보하는 경우가 많다. 홀의 연구에 따르면 2미터 정도 ‘사회적 거리’를 확보하는 것은 사회적 소통 혹은 관계 형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은 북미보다 사회적 공간의 밀도가 높아서 음식점 등 대부분의 사회적 공간에서 그 거리를 유지하고 사람들을 만나기는 어렵다. 4인용 테이블의 폭이 대개 60~90센티미터이니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사회적 거리는 북미 사람들의 절반밖에 안 되는 셈이다. 그러니 최근 강조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2미터로 유지하면 우리의 사회적 관계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하루빨리 이 감염병 사태가 진정돼 우리 나름의 사회적 거리를 되찾고 한동안 못다 한 사회적 소통을 마음껏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 [금요칼럼] 손 씻기/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손 씻기/황두진 건축가

    손 씻기의 한자어는 세수(洗手)다. 그런데 사전에는 ‘손이나 얼굴을 씻음’이라고 나오고 실제로도 그렇게 사용된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라는 문장은 단순히 손만 씻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당연히 얼굴도 씻은 것이다. 얼굴을 씻다 보면 결국 손도 씻게 돼 그렇게 된 것일까. ‘얼굴을 씻는다’는 의미를 따로 강조할 때는 ‘세안’이라는 한자어를 쓴다. 그런데 ‘세안’의 우리말인 ‘얼굴 씻기’라는 표현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단어들 간의 생존경쟁, 제법 오묘하지 않은가. 같은 한자 문화권인 일본은 어떨까. 일본인 지인에게 물어보니, 그들은 화장실이라는 의미로 ‘오테아라이’(お手洗)라는 단어를 주로 쓰는데 이것은 원래 신사 입구의 손 씻는 시설인 ‘미타라이’(御手洗)에서 온 말이다. 즉 화장실은 볼일도 보지만, 그리고 화장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손을 씻는 장소라는 것이다. 이러한 그들의 전통적 위생관념이 지금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행보를 보여 주는 일본 방역통계의 이면에서 과연 어떤 변수로 작용하고 있을까. 매우 궁금하지만 물론 알 길은 없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혼란 속에 개인위생 차원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마스크 쓰기, 그리고 손 씻기다. 그중에서도 손 씻기는 이 상황이 지나가고 난 이후에도 이전에 비해 매우 강력한 사회적 의미를 지니게 될 듯하다. 지금까지의 손 씻기란 화장실이라는 가려진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매우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이렇다 할 강제력도 없는, 그래서 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상당히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행위였다. 그러나 앞으로의 손 씻기는 일종의 공공적 행위가 될지 모른다. 그 결과로 손 씻는 장소가 아예 화장실 밖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근대건축가로 일컬어지는 르코르뷔지에는 1929년 파리 교외에 빌라 사보아라는 주택을 설계한다. 이 단독 주택은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시대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는 걸작 중의 걸작이다. 1층의 곡선 유리벽은 자동차의 회전 반경을 고려한 것이었고 2층에는 전통적인 수직적 창문이 아닌, 길게 옆으로 찢어진 가로 창이 주변 풍경을 집안 깊숙한 곳까지 끌어들였다. 그의 방대한 작품 연보에서도 이 집은 매우 독보적인 지위를 갖는다. 그런데 이 집의 1층, 즉 현관 안쪽의 로비에 이상한 것이 놓여 있다. 화장실 안에 있어야 할 세면대가 밖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설계했을까. 여기에 대해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바로 전염병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1918년, 그러니까 제1차 세계대전 도중에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이 발생했다.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상 발생지는 미국 시카고였다. 이 독감의 피해는 그야말로 광범위했다. 당시 세계 인구의 3~5%에 해당하는 5000만명에서 1억명 정도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도 한다. 심지어 한반도에서도 피해자가 발생해 지금도 ‘무오년 독감’이라 불린다. 14세기의 흑사병과 더불어 역사상 최악의 전염병으로 꼽히는 이 스페인 독감 덕에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이 앞당겨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덕분에 방역에 대한 인류의 경험과 지식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건축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결과 ‘집에 들어오면 일단 손을 씻는다’는 생각이 빌라 사보아 현관 로비의 세면대를 낳았다는 것이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 비슷한 상황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공공장소, 건물의 로비, 주택의 현관처럼 공개된 곳에 손 씻는 곳이 마련되고 ‘손은 남들이 보는 데서 씻는다’는 생각,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압력이 생겨날 것이다. 손을 대지 않고 문을 열고 닫는 방식 또한 앞으로 더욱 보편화될 것이다. 인류는 이렇게 역경을 통해 배우고 또 다른 단계를 향해 나아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 경기 남양주에 도심형 단독주택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 본격 분양 중

    경기 남양주에 도심형 단독주택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 본격 분양 중

    더블유건설은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 홍보관을 지난 6일 그랜드오픈 하고 본격적인 분양에 돌입해 계약 일정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 115세대 규모로 들어서는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는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만을 살려 스마트한 관리, 철저한 보안서비스로 개인 라이프스탈일의 공간 배치로 소비자의 주거니즈를 반영할 계획이다. 더블유건설에 따르면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는 남양주 최대 규모인 도심형 단독주택으로 각각의 테마를 지닌 5개 타입으로 구성된다. 지하1층~지상3층으로 설계되며 1층과 2층은 분리형 ’올림공간‘ 구조인 테마형 단독주택 115세대다. 전 세대를 계단식으로 배치해 풍부한 채광과 조망을 누릴 수 있으며 각 세대별 넉넉한 주차 공간과 개인정원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저층세대의 옥상을 테라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돼 단독주택의 쾌적성과 아파트의 편리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는 공동주택 등 집합시설처럼 대지지분이 아닌 100% 개인토지소유(전용면적)다. 진접신도시와 인접한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는 대로변에 위치해 진입이 용이하며 2021년 개통(예정)되는 지하철 진접역을 이용하여 서울 진입이 용이하다. 이와 함께 단지 앞 150m 지점에 버스정류장, 광역버스정류장이 위치해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구리, 강변, 잠실, 강남, 상봉, 청량, 노원 등 서울로의 이동이 편리하다. 남양주 3기 신도시로 선정된 왕숙신도시의 자족시설과 교통환경 개선으로 진접, 오남의 직간접적인 기대효과가 상승될 것으로 보이며, 47번 국도를 통해 진접지구 및 인근지역으로 이동이 편리하고, 진접~내촌간 고속도로가 개통 예정(2020년 3월)이며, 별내~진접 연장선 공사가 2021년 5월 개통 예정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한편, ‘삼부르네상스 바움펠리제’ 홍보관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에 마련돼 있다. 건축가 이현욱소장의 설계와 무궁화신탁의 자금관리, 1군 시공사인 삼부토건(주)이 시공예정이며 준공은 2022년 2월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난의 시기… 예술은 희망의 나침반”

    “고난의 시기… 예술은 희망의 나침반”

    ‘빛의 화가’라 불리는 팔순 신부화려한 색채·동양적 여백 구현 독창적 추상회화유럽인 매료 스테인드글라스 세계 38곳 전시“우리 마음속 바이러스도 경계 격리의 시간을 성찰 시간으로”“이달 초 한국에 들어올 때 프랑스 지인들이 전부 만류하더군요. 오히려 더 용기를 냈습니다. 전시회에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더라도 이런 고난의 시기에 희망의 나침반을 들고 와야겠다 생각했지요.” 짧은 머리카락 가득 하얗게 서리가 내린 팔순의 김인중 신부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빛의 화가’라는 별명에 잘 어울리는 밝은 웃음이었다. 서울대 미대와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파리로 건너가 도미니크수도회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50년 동안 프랑스에서 구도자와 예술가의 길을 병행해 온 ‘사제 화가’다.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개막한 화업 60년 회고전 ‘빛의 꿈’을 위해 방한했다.개막 전날 전시장에서 만난 김 신부는 “코로나19도 조심해야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바이러스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의 불행에 아랑곳없이 나의 행복만 탐하는 이기심과 질투심 등을 영혼을 좀먹는 악성 바이러스 사례로 꼽았다. “격리의 시간을 각자 성찰의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한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신의 뜻이 무엇인지 되새겨야 한다.” 김 신부는 화려한 색채로 빛의 본질에 천착하는 동시에 동양적 여백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독창적인 추상회화로 서양인들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와 유럽의 저명한 평론가들은 샤갈, 피카소, 로스코 같은 거장과 비교할 만큼 그의 예술 세계를 높이 평가한다. 영국 미술사가인 웬디 베켓 수녀는 “만일 천사들이 그림을 그린다면 틀림없이 김인중의 그림과 같을 것”이라고 극찬했다.프랑스 대혁명 이후 전시회가 열리지 않던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2003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의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특히 김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스위스, 아일랜드, 이탈리아 등 세계 38곳에 설치될 정도로 독보적이다. 성화가 아닌 비구상 형태로 제작한 스테인드글라스는 종교와 국경을 초월해 영적인 깊은 울림과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스위스 건축가 마리오 보타가 설계한 프랑스 에브리 대성당, 프랑스 고딕건축을 대표하는 샤르트르 대성당 등이 그의 작품을 택했다. 지난해 프랑스 남동부 소도시 베종라로멘의 주교성당 에도 스테인드글라스 19점을 설치했다. 국내에선 대전 동구 자양동 성당(2009)과 용인 신봉동 성당(2019)에서 김 신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충남 부여가 고향인 김 신부가 그림을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다. 동창인 이종상 화백과 미술반에서 그림을 배웠는데 “누가 봐도 내가 제일 못 그렸다”며 웃었다. 그는 “어릴 때는 전혀 미술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서예 실력이 뛰어났던 아버지와 색채 감각이 남달랐던 어머니에게서 예술적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 같다”고 회고했다. 대학원 졸업 후 신학교에서 미술교사를 하면서 사제에 대한 꿈을 품게 됐다. 그 꿈을 이루려 1969년 스위스로 유학을 떠났고, 파리 도미니크수도회와 연이 닿아 1974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수도회에서 기도와 묵상, 그림을 그리는 수도 사제의 길을 걸어왔다. 이번 회고전에는 1960년대부터 최근까지 회화 100점, 도자 15점, 스테인드글라스 5점 등 120여점이 전시된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출간한 ‘시편’도 때맞춰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구약성서 시편 150구절마다 그의 작품을 한 점씩 실은 화집이다. 그는 “30년 전 파리에서 작은 전시회를 했을 때 유대인 예닐곱명이 와서 ‘당신 그림 앞에선 기도를 할 수 있겠다’며 눈물을 글썽인 적이 있다. 이 책이 종교 간 갈등을 허무는 데 작은 도움이라도 된다면 이제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전시는 4월 4일까지 열린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굴곡졌던 어제…혼란스런 오늘…다시 세운 내일

    굴곡졌던 어제…혼란스런 오늘…다시 세운 내일

    ‘세운상가’라고 부르는 7동의 건물들이 멈춰 선 열차와 같이 서울 도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건립 때는 ‘동양 최대’의 복합쇼핑센터로 위용을 자랑했지만, 이내 도시 경관을 해치는 철거 대상 흉물이 됐다가 이제는 노후 지역을 되살리는 도시재생의 핵심이 됐다. 반세기가 넘은 이 건물의 극적인 과거는 곧 수도 서울의 역사였고, 앞으로의 운명은 곧 현대 도시의 미래이기도 하다.●‘불도저 시장’ 시대의 빛과 그림자 세운상가가 위치한 일대는 조선시대에 ‘남촌’이라 하여 중산층들의 한옥이 밀집한 주거지역이었다. 상인과 수공업자의 상점과 주택, 통역이나 의원 같은 전문직들의 터전이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3월 미국은 344기 전폭기로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도시의 40%를 불태웠다. 일제는 일본 본토는 물론 식민지 경성에도 대대적인 ‘소개공지’를 급히 조성했다. 밀집된 도심 지역을 강제 철거해 화재가 번지지 않도록 대규모 빈터를 만드는 일종의 청야작전이었다. 이때의 많은 소개공지들은 이후 율곡로, 흥인문로, 의주로 등 서울의 간선도로가 됐다. 가장 핵심적인 곳은 종묘 앞부터 필동까지 훗날 세운상가가 서게 된 소개공지다. 마치 두발 가운데를 박박 밀어 버린 것처럼 도심의 희괴한 빈터가 갑자기 생겨났다. 소개공지 조성 두 달 후 일제의 항복으로 전쟁은 끝났고, 해방 후 ‘광로3호선’이라는 소개 도로로 방치됐다. 6·25 이후 혼란기에 피난민들이 몰려들어 소개 도로 위에 무허가 판자촌을 형성했다. 종묘 일대는 ‘종삼’이라 하여 국내 대표적인 집창촌이 됐고, 광로3호선 판자촌까지 그 판도가 확장됐다. 불량과 불결, 성매매와 각종 불법이 횡행하는 최악의 슬럼이 됐다. 1966년 김현옥 당시 서울시장은 부임 일주일 만에 광로3호선 도로 정비에 착수한다. 무허가는 강제 철거하고, 이미 불하했던 민간 토지를 비싼 값에 되사는 무리도 불사했다. 6월에 계획을 세우고 8월에 철거를 마쳐 그에게는 ‘불도저시장’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순식간에 서울시는 폭 50m, 길이 893m, 넓이 4만 4650㎡의 도심 내 거대한 땅을 얻게 됐다. 이 땅의 개발에 대해 당대의 건축가 김수근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주상복합과 공중보행로 등 환상적인 개념들을 제안했고, 곧바로 계획에 착수해 세운상가가 탄생하게 된다. 김 전 시장은 ‘돌격 건설’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수많은 도시정비와 개발 사업을 벌였다. 청계천을 비롯한 곳곳의 무허가촌을 철거하고 경기도 광주(현 성남시)와 양주(현 상계동)에 철거민 이주촌을 조성했다. 도심 고가도로와 강변도로를 건설하고 한강종합개발계획을 세워 여의도와 강남 일대의 대대적인 개발을 시작했다. 4년 남짓 재임 기간 내내 대담한 계획과 무리한 건설을 밀어붙였다. 1971년 6개월 만에 완공한 와우시민아파트가 준공한 지 석 달 만에 붕괴돼 34명의 사망자를 냈고 결국 그 책임으로 사임하게 된다. 세운상가는 김현옥 시대의 공과를 동시에 안고 있는 도시건축 유산으로 남게 됐다.●환상적인 이상과 비루한 실현 도쿄예술대학원생이던 김수근(1931~1986)은 서른 살인 1960년 남산 국회의사당 현상 설계에 1등으로 당선돼 금의환향한다. 비록 5·16쿠데타로 의사당 건립 계획은 무산됐으나, 김종필을 비롯한 쿠데타 주역들과 친분을 쌓게 된다. 30대 약관으로 워커힐호텔, 세계반공연맹(현 남산자유센터), KIST 본관 등 국책 건축들을 도맡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세운상가 설계를 맡긴 김 전 시장 역시 수송부대장 출신의 군부 실세였다. 김수근은 세운상가를 상가와 사무소, 주택과 호텔, 학교와 우체국 등이 어우러진 ‘도시 속의 도시’로 만들고 싶었다. 종로~청계천~을지로~마른내길~퇴계로 사이에 놓인 4개 블록의 대지 형상을 따라 블록당 2동씩 총 8동의 기다란 건물군을 계획했다. 지면보다 7.5m 높은 곳에 콘크리트 데크를 설치해 인공 대지를 만들고 그 위에 상가 건물을 세운다. 5층부터 아파트를 건설해 주택을 도시 위에 띄운다. 1층 전체를 차도와 주차장으로 조성해 차량과 보행을 수직적으로 분리한다. 인공 데크에 마련된 보행로는 각 블록을 모두 연결해 ‘공중보행길’로 만들었다. 이러한 건축 개념들은 모더니즘의 도시론과 1950년대 팀텐그룹의 건축론에 뿌리를 둔 국제적이고 첨단적인 내용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44달러였던 시절 세운상가에 소요되는 건설비는 44억원으로 그해 서울시 예산의 3분의1이었다. 이 막대한 재원을 민간 건설 자본에 떠맡길 수밖에 없었다.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들이 각 동을 쪼개 맡았다. 건물 이름도 대림상가, 삼풍상가, 진양상가 등 건설사 이름을 따라 붙였다. 민간 자본은 최대 면적 건설과 최대 이윤 추구에 몰두했다. 1층은 분양가가 가장 높은 곳, 양쪽 1차선 차로만 남기고 모두 밀집된 상점들을 배치했다. 상점, 차로, 주차장, 보행로가 혼재된 어둡고 복잡한 곳이 되고 말았다. 에스컬레이터 없는 인공 데크는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어 보행을 어렵게 했다. 서로 다른 건설사들은 그나마 계획된 연결 육교마저 없애 버렸다. 계획의 핵심인 공중보행길은 애초부터 불구로 태어났다. 계획했던 학교나 우체국은 아예 건설되지 않아 공공성은 사라졌다. 이상적 설계와 현실적 건설 사이의 갭이 너무나도 컸다.●슬럼에서 다시 살아나는 문화 발신 열차로 그래도 준공 후 문을 연 백화점식 상가들은 ‘세계 제1의 쇼핑센터’로 각광을 받았다. 풍전호텔 나이트클럽과 분식센터는 장안 청춘들의 ‘최애’ 유흥장이었다. 한때 아시아 최대의 전자상가로 위용을 떨쳤고, “미사일도 만들 수 있다”는 첨단 기술의 집합소이기도 했다. 아파트는 연예인, 교수, 의사들의 인기를 끌었고, 진양상가에는 95명의 국회의원 사무실도 입주했다. 그러나 1970년대 신세계, 미도파, 롯데 등 백화점들의 명동상권에 고급 시장을 넘겨주고, 1980년대에는 용산전자상가에 전자상권의 주도권도 빼앗겼다. 치명적인 것은 세운상가와 동시에 추진된 강남 개발이었다. 명문 고교들을 이전하는 유인책까지 쓴 강남은 이내 고급 아파트촌이 됐고, 세운상가는 서민 아파트로 전락했다. 두 달 설계와 1년 시공으로 조산한 이 거대 건축군은 태생부터 부실했다. 설상가상으로 서울시의 중구난방식 개발 전략의 피해가 고스란히 세운상가 몫이 됐다. “도시의 흐름을 단절하는 흉물”로 전락한 세운상가는 서울시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다.2008년 오세훈 전 시장이 발표한 세운 재정비 촉진계획은 낡고 추해진 세운상가에 내린 사망 선고였다. 세운상가를 모두 철거하고 주변 지역은 초고층지구로 재개발한다는 계획이었다. 실제로 종묘 앞 현대상가를 철거해 공원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세운상가 건설이 무모했다면 철거 계획은 황당했다. 이미 도시 환경의 일부가 된 건축 유산을 지워 버리는 반문화적 발상이었다. 도심 제조업과 유통업의 싹을 자르는 비경제적 계획이었다. 여러 반대에 부딪혀 철거 작업이 지지부진하면서 세운상가는 더 급속히 슬럼이 됐다. 2014년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를 존치하고 재생시키겠다는 ‘다시-세운 프로젝트’를 발표했고, 현재 2단계 계획을 실현 중이다. 세운상가의 문제는 건축가, 시공자, 시정부 3자가 모두 책임져야 할 업보다. 건축가는 자기 낭만에 홀려서 비현실적 계획을 세웠고, 시공자는 이윤 추구에만 급급해 저급한 욕망 덩이를 낳았다. 가장 큰 책임은 서울시에 있다. 애초부터 즉흥적으로 임신했지만, 그래도 낳았으면 잘 키워야 했다. 그러나 마음은 용산이나 강남으로 떠나 없애야 할 골칫덩어리로 취급했다. 이제 마음을 바꿔 죽어 가는 자식을 돌보기 시작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소생의 치료법은 가해의 역순이다. 우선 현실적인 재생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공간의 품질과 공공성을 높이도록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일관된 도시재생의 정책을 지속해야 한다. 세운상가는 대체 불가한 입지를 가지고 있다. 가깝게는 을지로 일대의 도시제조업과 문화산업의 생태계에 속해 있다. 그 너머로 연극의 대학로, 미술의 인사동, 영화의 충무로 등과 닿아 있다. 문화예술과 지식산업이라는 21세기적 발전을 위한 잠재력을 넘치게 가진 곳이다. 이들 잠재력만 활용해도 세운상가는 첨단 문화를 발신하며 도시를 끌고 달리는 중후한 기관차가 될 것이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박상구 서울시의원, ‘2019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 수상

    박상구 서울시의원, ‘2019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 수상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소속 박상구 의원(더불어민주당, 강서1)은 지난 2월 17일 ‘2019 서울시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9 서울시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은 지방의회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 강화를 위해 매년 행정사무감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의정활동에 귀감이 되는 우수의원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시상식 없이 상장만 전달됐다. 박 의원은 시민을 위한 보금자리 정책에 주목하며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임대정책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분양정책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한 서울시 공공건축가 구성이 건축사 위주로만 구성돼 기술사를 비롯한 현장 실무전문가의 참여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는 등 주거문제에 현실성있는 접근으로 정책을 펼쳐왔다. 박 의원은 “이번 수상은 지방의회의 발전을 위해 더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라는 서울시민의 뜻이라 생각한다”며 “행정사무감사 기간 동안 지적했던 사안들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입법, 정책, 예산 등 분야별로 꼼꼼히 챙겨 나가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종무 서울시의원, ‘2019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 수상

    김종무 서울시의원, ‘2019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상’ 수상

    서울시의회 김종무 의원(더불어민주당, 강동2)이 지난 2월 17일 ‘2019 서울시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으로 선정됐다. ‘2019 서울시 행정사무감사 우수의원’은 지방의회의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 강화를 위해 매년 행정사무감사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해 의정활동에 귀감이 되는 우수의원을 선정하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시상식 없이 상장만 전달됐다.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에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는 김 의원은 2019년 행정사무감사에서 지역 활성화를 위해 시작된 도시재생사업과 마을건축가 제도가 도입 취지와 달리 행정 편의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지역 주민이 중심이 되는 정책 운영 방안을 제시했다. 또 서울주택도시공사의 불법하도급 사건에 대한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등 서울시 및 산하기관의 행정업무 전반에 대한 날카로운 감시·감독을 실시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김 의원은 “주민의 입장에서 서울시의 정책 운영 실태를 점검하고 바로잡고자 했던 노력을 인정받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지역 주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수상소감을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한 伊 유명 건축가, 코로나19로 사망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 설계한 伊 유명 건축가, 코로나19로 사망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가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을 설계하기도 한 비토리오 그레고티가 15일(현지시간) 코로나19에 의한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고 현지언론들과 외신이 일제히 보도했다. 향년 92세. 이탈리아 유력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AGI통신 그리고 AFP통신 등에 따르면, 비토리오 그레고티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밀라노의 한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급성 폐렴으로 사망했다.생전 그레고티가 맡았던 건축물 설계로는 올림픽 주경기장 외에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이 개최된 수도 제노바의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와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이 2002년부터 2004년까지 리모델링 중에 공연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어진 초현대적 건축물 ‘아르친볼디 오페라극장’ 등이 있다. 또 중국 상하이 주택가와 포르투갈 벨렘 문화센터, 프랑스 프로방스대극장 등도 그의 대표작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레고티의 사망 소식에 이탈리아의 또다른 유명 건축가 스테파노 보에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탈리아 문화의 이야기를 창조한 세계적 건축 대가”라면서 “정말 큰 슬픔”이라는 글을 올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한편 그레고티의 부인 마리아나 마자도 밀라노의 같은 병원에 입원하고 있지만 그 이유는 밝히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공공건축물 품질 관리 첫단추부터... 서울시 지자체 최초 ‘공공건축지원센터’ 운영

    서울시가 미술관, 복지관, 체육센터 등 공공건축물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건축의 초기 단계를 관장하는 전담 기관을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운영한다. 서울시는 이달부터 도시공간개선단 내에 ‘서울시 지역 공공건축지원센터’를 설치, 운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지원센터는 공공건축물 사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토대가 되는 건축기획 분야를 전담한다. 시, 자치구, 사업소가 발주하는 각종 공공건축물 사업에 대해 사업 필요성 검토, 사업계획서 사전 검토, 발주 방식 및 디자인 관리 등을 맡는다. 특히 그동안 국가 공공건축지원센터에서 전담했던 공공건축물 사업계획 사전 검토를 서울시도 수행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의 특성이나 현황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면밀한 검토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시는 내다봤다. 서울시 각 사업부서, 자치구, 산하기관은 공공건축물 사업계획에 대한 사전 검토를 서울시 지역 공공건축지원센터에 의뢰할 수 있다. 한편 서울시는 공공건축사업에 대한 전문성 부족, 지원 체계 부실로 인한 품질 저하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11년 공공건축가 제도 마련을 시작으로 서울시 총괄건축가, 설계공모제도 운영 등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인정받아 지난달 24일 전국 최초로 국토교통부로부터 서울시 지역 공공건축지원센터 지정 승인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김태형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장은 “공공건축물 관련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체계적인 기획 업무를 수행해 지역주민의 삶의 질과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건축물을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춤추지만 편안하다…새롭지만 자유롭다

    춤추지만 편안하다…새롭지만 자유롭다

    나는 프랭크 게리 선생의 건축을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내 스타일은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히 혹은 일부러,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그의 작업에 노출되면서 친숙해졌다. 그의 이름은 구찌처럼 일종의 잘나가는 유명 브랜드이고, 미국의 심슨쇼에 등장하기도 한, 일반인도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는 특별한 존재다. 그는 자유롭고, 율동하면서도, 서로 충돌하는 형태들을 통해 사뭇 경직되고 딱딱한 현대건축으로부터 해방감을 주었다. 동시에 그는 건축을 통해 ‘어떤 감정’(E_MOTION: 마음을 움직이는)을 불러일으키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그의 건축물은 직접 방문했을 때 느끼게 되는 ‘따뜻함’이 있다.●딱딱한 현대건축에 해방감을 주다 게리의 작업을 보고 마치 쓰레기통에 던져진 구겨진 종이 더미 같다고 놀려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언뜻 그럴싸한 표현이라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은 절반도 안 맞는 이야기다. 일례로 뉴욕에 지은 고층건물의 경우 껍데기는 복잡한 파도의 형상을 띠어 엄청 비싸고 시공이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슷한 규모의 직각 건물 공사비와 별반 차이가 없는 건물로 발표돼 있다. 왜일까? 다름이 아니라 컴맹인 게리 선생은 모순적으로 ‘카티아’(CATIA)라는 아주 복잡한 형태를 쉽게 요리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오래전부터 써 오고 있고, 복잡한 건축을 효과적이고 경제적으로 짓기에 적합하도록 발전시키고 있는 주인공이다. 동료 건축가인 장 누벨 등에게도 적극적으로 공유했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내가 대학 다닐 때는 포스트모더니즘은 유행 끝자락이었고, 대학원에 들어설 무렵에는 해체주의가 한창이었다. 어느 날 건축 잡지를 보는데 거대한 망원경을 닮은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또 미술관 외벽에는 실제 비행기가 매달려 있기도 했다. 참 이상한 건축가를 처음으로 대면한 것이었다. 바로 프랭크 게리였다. 동시대의 엄청 유명했던 건축가 안도 다다오의 ‘사시미 미니멀리즘’에 잠시 경도돼 있던 나에게 강렬한 대척점에서 자극이 됐음은 분명하다. 그러곤 별로 크게 와닿지 않는 대형 건축가로 스쳐 지나갔다. 한참 세월이 지난 후 전 세계는 게리의 빌바오 미술관을 보고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으며, 단순히 건축뉴스가 아닌 지역경제를 살려내는 ‘빌바오 이펙트’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내면서, 전 세계 문화계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건축가로서 그는 나에게 다시 다가왔다.내가 게리 선생의 사무실을 방문한 적이 없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진을 통해서 혹은 들은 얘기를 통해서 판단해 보면, 게리 사무실은 수없이 많은 모형 작업을 통해서 설계하는 공간을 미리 살펴보는 것 같다. 나도 미국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무조건 모형 작업을 위주로 했고, 도면을 제출하는 데는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도면보다는 모형이 훨씬 건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때문이다. 게리의 건축물처럼 형태가 구불구불한 3차원의 충돌체인 경우는 특히 그림으로 표현하기엔 너무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게리 사무실에선 ‘트라이얼 앤드 에러’ 방식으로 마구 해보고 또 해보는 방식을 통해 원하는 지점에 다다르는 매우 감각적인 방식을 취하고 있고, 그런 감각적인 형태를 비교적 저렴하게 시공하기 위해 컴퓨터 기술이 적극 개입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조각가의 작업방식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실제로 그는 주변에 많은 예술가들을 친구로 두고 있다고 한다. 게리 선생의 형태를 애써 무시하고, 평면을 잘 응시해 보면 주변의 일반적인 모더니스트들과 그렇게 다르진 않다. 이는 그가 주변의 맥락을 잘 살피고, 도시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간을 설계한다는 말이니 그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나는 하고 있는 거다. 즉 껍데기만 보면 정신 사납지만, 게리는 건축 본연의 영역들에 대해서 매우 성실하게 임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조각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기능을 하는 제대로 된 건축인 것이다.●90세 넘은 나이에도 멈추지 않는 열정 90세 넘은 노인인 게리는 최근 방송에 나와서 밝히기를 자기는 아직도 제일 일찍 사무실에 나오고 가장 늦게 퇴근한다고 한다. 그가 하지 않은 말에 대해 상상해 보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싶다. “너무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서, 어떻게 멈추어야 할지 몰라서 계속 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스케치한 것들을 바탕으로, 주변 사람들이 수없이 다양한 가능성의 모형 제작 및 실험을 통해 건축화하고, 그것을 보는 것 자체의 재미가 매우 쏠쏠하다. 이렇게 재미있는 놀이가 어디 있겠나. 낙서가 모형과 도면으로 변하고 그것이 자본과 인력을 통해서 건물이 되고, 또한 도시의 일원이 되면서 활력을 주니 이보다 더 큰 즐거움이 있겠는가?” 어찌 됐건 나는, 그의 열정이 놀라울 따름이다. 게리의 건물 중에 몇몇을 우연히 무계획적으로 방문하게 됐는데, 그중 내 마음에 남는 몇 건물을 소개해 보고자 한다. 우선 몇 년 전 체코 프라하를 들렀다가 이른 새벽에 블타바강 주변을 산책하던 중 갑작스럽게, 그리고 놀랍게 게리 선생의 춤추는 집 건물과 맞닥뜨리게 됐다. 수없이 이미 사진을 보아 왔지만, 신기하게도 실물이 훨씬 멋있었다. 외부조명이 비추는 덕에 건물의 율동감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고, 알려진 이름처럼 정말로 춤을 추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게다가 놀랍게도 주변 건물과 꽤나 잘 어울렸다. 게리 선생의 작업치곤 작은 건물이지만 역시 의외의 즐거움을 주는 건물이다.호주 시드니에서 건축가 친구와 같이 가본 ‘브라운 페이퍼백’이라는 별명을 가진 대학 건물도, 멀리서 볼 때부터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정말 구멍이 뽕뽕 뚫린 종이봉투같이 보였지만 가까이 가보니 복잡한 외벽 모조리 벽돌로 돼 있어서 다시 한 번 놀랐고, 안에 들어가 보니 아주 거대한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학생이 창턱에 앉아서 책을 읽는 장면, 과장된 스케일의 나무 부재들 등이 매우 온화하고 편안한 기분을 들게 해 주었다. 미국 MIT에 있는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생물학연구소 율동복합체는 매우 복잡하며 규모가 크다. 내부는 그에 걸맞게 엄청 다양한 스케일의 공간과 빛의 연출로 이루어져 있고, 여기서는 특히 흔한 말로 ‘혼자 편하게 짱 박힐’ 수 있는 공간들로 넘쳐났다. 난간을 포함해 모두 다 구불구불 개성을 뽐내고 있었고, 직각이라고는 찾아보기가 힘들었다.●통제받지 않은 자유로운 에너지가 깃들어 그렇다! 게리의 건물은 분명 편안함을 주는 부분이 크다. 통제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가 그 공간 안에 녹아 있다.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디즈니 홀은 겉에서만 관람했는데, 내 기준에선 게리의 작업 중에 제일 멋있는 건물인 것 같다. 재료를 한 가지로 통일해서 복잡한 형태들의 군집이 잘 정리됐고, 형태의 율동성도 아주 적당한 선들에서 절제돼 있어 균형이 아주 잘 잡힌 건물로 보인다. 나는 분명 게리보다 한술 더 뜨는 사람이다. 더 제멋대로이고, 일상에서 그리고 건축과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곳에서 영감을 받고, 찾아오는 의뢰인으로부터도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좋게 이야기하면 건축에 대한 경계가 별로 없는 사람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틀 없는 건설노동자 같은 사람이다. 최근에는 아마추어 건축가와 그들이 지은 놀랍고도 엉성한, 혹은 치밀한 집들을 경험한 덕분에 더더욱 건축의 경계에 대한 생각이 더 흐물흐물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2000년에 사무실을 오픈했으니 벌써 20년차다. 그동안 대략 50여채의 건물을 지었고, 또 대략 그 두 배 정도의 계획안을 하지 않았나 싶다. 스페인 투우가 인상적이었다는 의뢰인 덕에 건물에 뿔을 달아 보기도 하고(락있수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건물을 지어 달라는 의뢰인의 욕망 덕분에 우주오리가 탄생하기도 했다(사실 나는 바람에 날리는 여인의 머리와 머리칼을 상징하려 했지만…). 전생에 드라큘라였다고 하는 의뢰인에게는 ‘드라큘라의 성’(상상사진관)을 선물했다. 영화 ‘투문정션’에 깊은 감동(?)을 받은 의뢰인 덕에 영화 제목과 동일한 건물도 탄생했다.●건축, 무한한 가능성을 품다 평소 그리던 그림들이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국립현대미술관에 영구 소장되는 행운을 맞이하기도 했고, 최근엔 무유기라는 새로운 협동체의 디자인 디렉터로 2020 두바이엑스포 한국관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했다. 대학원 설계수업 발표 때 많은 일이 벌어지곤 했는데, 우선 내가 제작한 거대하고 벌건 모형 앞에 서면 왠지 설명하기가 싫어졌다. 모형이 이미 스스로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했고, 설명은 대체로 오해를 낳는다고 믿었었다. 말의 차원을 넘어서 무언가를, 하물며 작은 감동이라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간혹 짧게 한마디씩 하곤 했다. “아이 원투 겟 어크로스 섬 이모션스 스루 아키텍처.” 이런 말을 하고 나면, 크리틱으로 온 미술계 쪽 인사는 나를 무척 옹호하고 칭찬했으며, 기존 건축계 인사들은 매우 비판적이면서 불편해했다. 결국 나는 스스로 관객이 돼 버리고, 그 두 분야의 인사들끼리 언쟁을 나누는 장면을 바라보곤 했다. 나는 건축가(?)로서 건축이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고 생각하고, 최고의 걸작을 짓는다는 마음보단 항상 새롭고, 신선하며, 재미있으면서 따뜻하고, 순간 숙연함의 영역을 엿볼 수 있는 가능성의 충만체로서 미완의 건축을 바라보고 있다. 온 세상을 건축이라는 꼬치에 꽂아 조금씩 야금야금 하고 있는 것이다. 흔히들 건축가는 50대에 성숙한다는 말이 있는데, 성숙까지는 바라지 않지만 초심자처럼 항상 설렘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 ‘오춘기 소년’처럼 말이다. 건축가 문훈
  • 정재웅 서울시의원 발의 「서울특별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 조례」 제정안 시의회 본회의 통과

    정재웅 서울시의원 발의 「서울특별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 조례」 제정안 시의회 본회의 통과

    서울시의회 도시계획관리위원회 정재웅 의원(더불어민주당·영등포3)이 발의한 「서울특별시 건축서비스산업 진흥 조례」제정안이 6일 본회의에서 의결됐다. 이로써 건축서비스산업*의 기반 강화와 서울시 공공건축물의 공공성 및 디자인 품격 증진에 기여할 전망이다. *건축물과 공간환경 조성에 요구되는 연구, 자문, 기획, 계획, 분석, 개발, 설계, 감리, 안전성 검토, 건설관리, 유지관리, 감정 등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조례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건축서비스산업 진흥에 필요한 전문 인력 양성과 역량 있는 건축가에 대한 지원근거를 마련하고, 시장 방침에 따라 운영해온 설계공모 관련 기준을 제도화하여 법적 안정성을 높였다. 또한「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개정으로 공공건축의 건축기획, 건축기획의 사전검토 및 심의 등이 의무화됨에 따라, 공공건축 사업에 대한 사전검토 기능을 전담하는 공공건축지원센터의 설치근거를 마련하고 건축기획에 관한 심의 및 자문을 담당하는 공공건축심의위원회의 기능을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정재웅 의원은 “「건축서비스산업 진흥법」의 개정 사항을 서울시 여건에 맞게 조례에 반영하고 건축서비스산업 기반 강화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자 노력했다.”라며 “공공건축물은 주민의 삶과 밀접한 지역 자산인 만큼 기획 단계부터 공공성과 디자인, 사업 효율성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공공건축물의 품격을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쓰레기통에서 나온 ‘9.11테러’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

    쓰레기통에서 나온 ‘9.11테러’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

    쓰레기통에서 나온 세계무역센터(월드트레이드센터)의 설계도 일부가 거액에 판매되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폭스뉴스는 9.11테러로 붕괴된 세계무역센터의 최초 개장 당시 설계도가 공개됐다고 보도했다. 도면은 지금까지 판매된 세계무역센터 설계도 중 가장 방대한 양이다. 설계도는 1973년 세계무역센터 최초 개장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조셉 솔로몬이라는 남성의 것으로, 2018년 한 골동품 수집가가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970년대 건설업계 불황으로 뉴욕을 떠난 솔로몬이 콜로라도 덴버로 거주지를 옮기면서 설계도를 기념 삼아 들고 갔다고 전했다. 솔로몬은 콜로라도에서 건축업을 계속하다 2017년 11월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이듬해 5월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던 딸이 설계도를 발견했지만 그 가치를 알지 못했고, 설계도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그대로 소각장에 갈 운명이었던 설계도는 그러나 현지 골동품 수집가가 발견해 다시 빛을 발했다. 골동품 수집가는 도면에 그려진 쌍둥이 빌딩을 보고 세계무역센터의 설계도임을 알아차렸고, 지역 전당포 운영자에게 설계도를 판매했다. 전당포 주인은 이 설계도를 다시 희귀서점에 위탁판매 방식으로 넘겼고, 5일 도서전에서 일반에 공개됐다. 500개 이상의 설계안이 포함된 도면의 가격은 25만 달러, 우리 돈 약 2억9775만 원에 책정됐다. 9.11테러 추모 박물관 역시 세계무역센터 전체 설계도를 보유하고 있지 않으며, 과거 판매된 설계도 역시 1993년 폭탄 테러 이후 재건된 건물의 설계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이번에 공개된 설계도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으로 현지언론은 전망하고 있다.솔로몬의 딸은 “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다 차고 안 낡은 상자에서 여러 설계도를 발견했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난 아버지의 유품이 고가에 판매돼 다소 억울할 법도 했지만 그녀는 “세계무역센터 건설은 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아버지의 공헌이 인정받는 것 같다”라고 기뻐했다. 1964년 공모를 통해 채택된 일본계 미국인 건축가 야마사키 미노루의 설계안으로 건설된 세계무역센터는 1970년 12월과 이듬해 7월 110층짜리 쌍둥이 빌딩 완공 후 1973년 4월 정식 개장했다. 1993년 2월 한 차례 폭탄테러로 1000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며, 2001년 9월 11일에는 테러단체가 납치한 항공기 2대가 돌진해 수천 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참사 후 완전히 철거된 세계무역센터는 2014년 1월 재개장됐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코로나 확산에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 개막 연기

    코로나 확산에 베네치아비엔날레 건축전 개막 연기

    코로나19 확산에 세계 최대 건축축제인 베네치아비엔날레 국제건축전 개막도 미뤄졌다. 베네치아비엔날레는 5일 홈페이지를 통해 국제건축전 개막을 5월 23일에서 8월 29일로 연기한다고 밝혔다. 폐막은 11월 29일 그대로여서 개최 기간이 당초 예정보다 절반 줄었다. 베네치아비엔날레 측은 “세계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예방책으로 이동을 제한하면서 참가자 이동과 작품 운송이 어려워졌다”며 “전 대륙 60여개국에서 참가하는 국제 전시회를 완벽하게 준비하기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베네치아비엔날레가 열리는 이탈리아는 코로나19가 급속히 퍼지면서 비상이 걸렸다. 이탈리아 보건당국은 4일 오후 6시(현지시간) 기준 전국 누적 확진자 수가 3089명, 사망자가 107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확진자 증가 수가 빠르고, 사망자는 중국 다음으로 많다. 1895년 시작된 베네치아비엔날레는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 예술제다. 홀수 해에 미술전, 짝수 해는 건축전이 열린다. 올해 건축전은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 ?� 주제로 건축가 하심 사르키가 총감독을 맡았으며, 한국관 예술감독으로 신혜원 로컬디자인 대표가 선정됐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젖먹이 아들 안고 대학입학시험 치른 페루 학생 당당히 합격

    젖먹이 아들 안고 대학입학시험 치른 페루 학생 당당히 합격

    "아기까지 있는데 공부할 수 있겠어?" 그녀가 이런 말을 들으면 코웃음을 칠지 모르겠다. 젖먹이 아들을 안고 대학입학시험을 치른 페루의 여성이 당당히 합격, 대학생이 됐다. 세사르바예호 대학이 아들과 함께 입학시험을 치른 카를라 멘데스(23)의 건축학과 입학을 허가했다고 현지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입학허가 통지를 받아든 멘데스는 "멋진 전문인이 되는 게 꿈"이라며 "이젠 앞만 보고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멘데스는 지난달 26일 실시된 세사르바예호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했다. 페루 전국에서 이 대학 입학시험에 응시한 학생은 모두 2만5000여 명이었다. 하지만 시험을 치르는 멘데스에겐 동행이 있었다. 4개월 전 태어난 젖먹이 아들이다. 멘데스는 아기를 봐줄 사람이 없자 아기를 데리고 시험장을 찾았다. 엄마가 중요한 시험을 치르고 있는 걸 눈치챈 것일까. 시험시간 내내 아기는 보채지 않고 곤히 잠을 잤다. 멘데스는 그런 아들을 한 손에 안고 시험을 치렀다. 그녀가 화제가 된 건 감독관이 사진을 찍어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면서다. 사진에 '좋아요'가 빗발치면서 페루 전역에서 그녀를 응원하는 메시지가 쇄도했다. 응원에 부응하듯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멘데스는 인터뷰에서 "성공적인 건축가가 되기 위해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딛은 것뿐"이라며 대학에선 더욱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말했다. "아기를 키우면서 어려운 건축학 공부를 하려면 벅차지 않을까?"라는 질문에 그는 "아기가 있다는 게 공부에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오히려 아들이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고 했다. 뒤늦게 대입의 꿈을 꾸게 된 데 대해선 "아이에게 보다 낳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멋진 전문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준 건 바로 아들"이라며 웃어 보였다. 멘데스는 이달부터 세사르바예호 대학 침보테 캠퍼스에서 꿈꾸던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사진=안디나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우리 의뢰인은 지구”… 건축계 노벨상 받은 두 아일랜드 여성

    “우리 의뢰인은 지구”… 건축계 노벨상 받은 두 아일랜드 여성

    40년간 동업… 휴식 공간 세심히 살려‘건축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두 명의 아일랜드 출신 여성 건축가에게 돌아갔다. 여성 공동 수상은 프리츠커 사상 처음이며, 아일랜드 건축가로서도 처음이다. AFP통신에 따르면 프리츠커상 심사위원회는 3일(현지시간) 이본 파렐(69)과 셸리 맥나마라(68)를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 심사위원단은 “전통적으로 남성 중심적인 건축계에 우뚝 선 선구자들이며, 전문가로서 훌륭한 길을 구축해 다른 이들의 지침이 됐다”고 평가했다. 앞서 이 상을 탄 여성 건축가는 2004년 이라크 출신 자하 하디드, 2010년 일본 건축가 세지마 가즈요(남성 1명과 공동 수상), 2017년 스페인 건축가 카르메 피헴(남성 2명과 공동 수상) 등이 있다.파렐과 맥나마라는 거대한 콘크리트로 빚어낸 압도적인 구조 속에서도 사람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전망대와 휴식 공간 등 세심한 ‘디테일’이 살아 있는 건축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두 사람은 1974년 처음 만나 40여년간 아일랜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페루 등에서 다수의 교육용 건물과 공공시설을 건축했다. 이들은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세계 건축 축제에서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보코니대학 건축물로 올해의 세계건축상을 받으면서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이들은 총감독을 맡은 2018년 제16회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우리는 지구를 의뢰인으로 본다. 이는 오래 이어지는 책임을 수반한다”고 자신들의 건축 철학을 설명한 바 있다. 또 “우리는 사람들의 요구와 꿈을 현실로 변환하는 사람”이라며 건축가를 번역가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단순해지니 풍요롭구나, 자유로우니 예술이구나

    단순해지니 풍요롭구나, 자유로우니 예술이구나

    >>> 단순한 볼륨(SIMPLE VOLUME) 철근 콘크리트로만 빚어진 현대 건축물이었을 뿐인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17개의 작품이 등재될 만치 20세기를 풍미했던 거장 건축가 르코르뷔지에가 한국을 방문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명확하다. 복잡함에 주저하지 말고 단순함에 도달하라.” 그리고 “건축은 빛 아래의 단순한 볼륨들을 숙련되고 정확하게 그리고 장엄하게 모으는 작업이다”라고. 그의 핵심적 건축 개념을 다룬 저서 ‘새로운 건축을 향하여’ (Vers une architecture, 1923)에서 줄곧 단순성에 대한 가치를 언급했고, 오늘날 한국 도시 또한 당시에 그가 접했던 유럽의 도시들과 유사한 혼돈의 아픔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스위스에서 세계 건축의 중심이던 프랑스 파리로 올라온 르코르뷔지에가 새로운 건축을 시작할 즈음인 20세기 초, 현란한 도시 파리와 장식적 빈에 만연돼 있던 비본질적 형상에 대한 실망감은, 그로 하여금 인류 문명의 본향 아크로폴리스 하얀 대리석의 지고한 순수 볼륨을 찾아 떠나게 했다. 초기 건축 작업을 대표하는 파리 근교 사보아 저택의 하얀 사각 박스와 최초의 아파트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거친 콘크리트 상자에서 일관되게 추구하려 했던 것도 바로 그 순수한 형상에 대한 절박함이다. 단순한 큐빅 형상의 고전적 파르테논신전 아래에 무릎 꿇은 르코르뷔지에가 추구하던 그 가치에 내가 오롯이 공감한 이후부터, 그렇게 건축을 시작하려는 나의 생각은 한 번도 흔들림이 없다. 플라토닉한 입체는 항상 그것을 대면하는 이들에게 강한 첫인상과 감동을 준다. 그리고 어떻게 그 형상을 잘 구축하고 또 효과적으로 유지하느냐 하는 것은 유사 이래 역량 있는 대부분 건축가들의 일관된 목표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단순한 볼륨에 대한 모색은 건축적 감동을 유발하려는 내 설계 과정에서 항상 우선적인 태도가 된다.이렇듯 나의 첫 번째 건축은 대전의 한 복잡한 도시 골목길 안쪽에 위치한 목양교회라는 소담스러운 콘크리트 볼륨에서 시작됐다. 100평의 대지에 최대 건폐율로 60평 남짓의 건축면적 위에 놓인 사각의 단순한 볼륨, 비록 작지만 고상하고 견고하며, 도심 건축이 갖춰야 할 콘텍스트를 소중히 여긴 작업이었다. 비록 협소한 골목길에 소박하게 건축됐으나 외부 도시를 향해서는 새로운 질서를 부여하는 나름의 위엄을 지니고 있다. 수년 후, 신도시 광명에서는 최초 목양교회보다 다섯 배나 큰 용적의 건물을 설계하게 됐지만 단순한 볼륨의 가치를 그대로 견지하면서 발전시키는 선에서 설계했다. 늘샘교회는 4개의 서로 다른 입면을 제시하면서도 단순한 큐브를 지키려 애쓴 작업이었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럽게 전개되는 통상적 한국 신도시 개발 현장 속에서도, 순수한 볼륨을 구축하는 일이 내게는 여전히 절실한 가치였다. 신도시에서 스트리트 월을 명료하게 유지하기 위해 건축물 모서리가 뭉개지지 않도록 힘썼다. 늘샘교회는 주변의 가로와 학교와 주거와 공원을 향해 단순하면서도 유기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한 볼륨에 길이가 부가되고, 비례가 달라질 때 그 건축물의 개성은 드러난다”라는 르코르뷔지에의 교훈에 따라 숲속의 작은 전원형 푸른마을교회를 길고 나지막한 콘크리트 상자로 만들었다. 과천의 한 와인 수입상 사옥인 뱅루즈에서도 단순한 상자형 볼륨으로 시작된 건축물의 길이가 기대 이상으로 길게 늘여질 때, 색다른 개성을 지니게 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단순한 볼륨의 가치는 르코르뷔지에와 나의 건축에 있어서 알파요, 오메가이다. >>> 자유로운 공간(PLAN LIBRE) 르코르뷔지에가 현대 건축계를 향해 언급했던 ‘새로운 건축의 다섯 가지 사항’ 즉 ①전경을 무한하게 열어주는 수평창 ②습윤한 땅으로부터 바닥을 분리한 필로티 ③녹지를 지반의 속박에서 푼 옥상정원 ④외피를 구조체로부터 독립시킨 자유로운 입면 ⑤기능의 그리드 체계를 허문 자유 평면, 이 다섯 개념 정리들 모두 인간을 속박하는 것들로부터 해방시키고자 그가 제시한 새로운 건축적 태도들이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사항이 바로 ‘자유로운 평면’(Plan Libre) 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른 사항들은 형태와 구조로부터의 자유를 설명하고 있지만, 자유 평면만은 건축에서의 기능적 자유와 풍요로운 공간 세계를 열어 주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도시적 질서와 처음 감동을 유발하는 형상으로서 단순하게 구축된 볼륨은 반대급부로 내부에서의 풍성함을 요청받게 된다. 아마도 절제된 볼륨 속에서도 인간 본성이 기대하는 다채로움과 풍요를 공급받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효율적인 그리드 체계 속에만 갇혀 있기보다 그 구조적 틀 사이를 가로지르는 자유로운 평면 계획은 인간을 배려하는 역동적 공간과 넉넉함으로 나타난다. 이런 내면적 자유와 풍요가 밖으로 적절히 표현될 때, 비로소 볼륨에서의 파사드 깊이와 형상의 개성은 면면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상자이지만 목양교회에서는 빛과 대리석 벽면의 조화로 내적 감흥을 유발했고, 늘샘교회는 기울어진 바닥과 전경에 대해 반응하는 실내 변화로 공간의 풍성함을 자아내려 했다. 그러나 순수한 볼륨과 단순한 구성만으로 건축적 풍요를 표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더 풍요로운 건축에 이르려면, 자유롭고 역동적일 뿐 아니라 시간의 개념까지를 공간에 부가하는 경지로 진전해 나가야 하는데, 이는 자유로운 평면을 맘껏 구사할 수 있을 경우에나 가능한 일이다. 빌라 사보아의 경우 일견 가볍게 들린 단순한 상자처럼 보이나 자유로운 평면의 개념이 맘껏 발휘되는 내부를 갖춘 장엄한 저택이랄 수 있다. 그리드 구조체계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누리며, 3개 층을 수직으로 계단이 휘감아 오르고, 경사로가 시간과 빛 가득한 공간을 가로지르며, 방과 거실과 정원은 서로 열려 있어서, 끝없이 펼쳐지는 창 밖의 전경을 어디서나 누릴 수 있다. 그의 또 다른 거대 상자 샹디가르의 국회의사당에서는 그야말로 자유로운 평면의 심포니를 경험할 수 있다. 이는 거친 콘크리트가 빚어내는 건축예술 행위가 얼마나 웅장하고 자유로우며, 동시에 가볍고도 풍요로우며 관대할 수 있는가를 잘 증명해 주는 결과다. 실용성과 순수, 경제성과 절제, 봉사와 헌신의 시기를 거치면서, 나에게도 최근 보다 더 복합적이고 여유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할 만한 규모의 프로젝트가 주어졌다. 부산의 온천천변의 섬처럼 생긴 대지에 부전 글로컬비전센터라고 불리는 기독교 복합시설을 제안하게 됐다. 이름 그대로 지역과 세계, 교회와 이웃, 자연과 도시로 관통하는 가치를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자유평면의 개념이 적극 구사돼야 했다. 또한 방어적 성채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 거대한 콘크리트 볼륨은 공중으로 들리며, 그 아래로 소통의 공간이 활성화된다. 전층의 기둥 라인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지만, 각 층이 한 번도 같은 형상으로 중복되지 않는 평면의 자유로움을 구사한다. 이는 지반 층을 자유롭게 해방하면서 동시에 ‘들린 건축, 열린 가치’의 건축개념을 이 땅에 소개하는 뚜렷한 이정표가 됐다.>>> 숭고함(NOBLESSE) 르코르뷔지에에게 자유로운 공간 획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가는 그의 최고 걸작이라 불리는 롱샹의 노트르담 뒤오성당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완전히 자유로운 조형과 공간을 획득하기 위해서 아예 그리드의 구조체계를 내부공간 속에서 지워버렸던 것 같다. 이렇게 맘껏 자유를 구가하는 작은 채플 속에서 마침내 그는 풍성한 조형과 감동적 공간, 그리고 숭고한 예술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내게 있어서 자유로운 공간 연출에 대한 노력은 한국 최초의 교회인 신축 새문안교회 평면에서 뚜렷이 드러나고 있다. 단순한 볼륨과 자유로운 평면의 근원적 건축 작업 위에 덧대어 도시와 외부공간의 가치, 또한 하늘을 경외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공공성과 추상적 상징들을 새문안교회 작업에서 모색하려 했다. 이는 기능과 효율에 우선권을 두었던 그간의 실용성과 합리적 작업의 경계를 돌파하려는 내 건축적 여정의 중대한 전환점이 됐다. 새문안교회에서 보듯이, 내외부 공간을 자유로이 활성화하고, 그로부터 유래하는 형상을 통해 건축이 베푸는 상징과 인간성의 풍요를 드러낼 수 있다면, 종교적 인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구태나 효율성에만 집착하는 전통주의와 기능주의적 건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을거라 기대했다.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열고, 대로로부터 수평으로 깊숙이 물러선 파사드는 하늘과 이웃에게로 열린 문이요, 도심의 넉넉한 공공의 마당이다. 광화문으로까지 연결되는 자유로운 로비 홀은 세속과 거룩함을 구분하던 수도원적 교회건축의 인습을 벗어나서, 이제는 서로 교류하고 상생하는 미래 교회의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처럼 형언할 수 없는 건축의 풍성함은 그 속에서 삶으로 참여하고, 함께 누리며, 감격하는 자들에게 베푸는 신의 은총이 아닐까. 그리고 나는 마치 동일한 모국어를 쓰는 것처럼 르코르뷔지에가 추구한 단순성에서 시작해 공간을 자유롭게 조성하고, 그 속에 인간적 삶의 풍요를 충만하게 하는 숭고함의 건축을 추구해 가려 한다. 그가 건축에 대해 한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면서. “정신적 숭고함의 상태와 질서, 그리고 사색과 조화를 통해, 인간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바로 건축 예술이다.” 건축가 이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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