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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

    거대한 공간에 거장들의 작품이 놓여 있다. 관람객은 작가 이름과 제목, 제작 연도 등을 적어 놓은 명제표의 글씨를 들여다보고 재빨리 다음 작품으로 발길을 돌린다. 맘에 드는 작품을 만나면 행여 작품이 다칠까 눈에 힘을 주고 서 있는 안내원들을 피해 열심히 셔터를 누르기 바쁘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으레 떠오르는 풍경이다. 하지만 모든 미술관이 다 그런 건 아니다. 독특한 운영철학으로 새로운 미술관 개념을 제시하며 관람객을 사로잡는 미술관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독일 서북부의 소도시 노이스(Neuss)에 있는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미술 전문지 ‘아트 뉴스’가 선정한 ‘세계의 숨겨진 미술관 톱10’에 오를 만큼 미술 마니아, 특히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첫손가락으로 꼽는 곳이다. 뒤셀도르프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에 위치한 노이스는 냉전시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로켓기지가 있던 군사지역이었다. 인젤 홈브로이히는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관과 거리가 멀다. 드넓은 벌판 한가운데 200년 가까이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광활한 자연 속에 작지만 개성 있는 건물들로 이뤄진 독특한 형식이다. 드문드문 들어선 건물에 작품들이 놓여 있지만 작품을 설명하는 명제표도, 설명판도 없다. 매표소와 사무동 근무자들 외에 안내원이나 지키는 사람도 없다. 관람객들은 산책하듯이 건물과 건물을 옮겨 다니면서 자연과 예술작품을 감상하면 그뿐이다.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선입견 없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자연과 예술이 하나가 되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게 인젤 홈브로이히의 미술관 운영철학”이라고 미술관재단 대외홍보팀의 타티아나 킴멜은 설명했다. 인젤은 독일어로 ‘섬’이라는 뜻이다. 1987년 문을 연 이곳은 9대1의 법칙, 즉 자연 90%에 건물 10%의 비율을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다. 킴멜은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고 명상하듯이 예술에 동화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며 가을의 인젤 홈브로이히가 특히 아름답다고 소개했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을 구상한 이는 뒤셀도르프 지역에서 부동산개발업을 하는 미술품 컬렉터 칼 하인리히 뮐러(1936~2007)다. 뮐러는 1982년 라인강 지류인 라인-에르푸트 강에 둘러싸여 섬처럼 생긴 늪지와 그 옆의 벌판을 사들여 자신이 세계를 돌며 수집한 예술품들을 기존 미술관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여 줄 미술관을 짓기로 한다. 권위 의식에 사로잡혀 점점 거대해지는 현대 미술관에 강한 거부감을 느낀 그는 자연과 예술이 공존하는 공간, 미술관 문턱을 허문 열린 미술관을 원했다.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특히 그와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조각가 에르빈 헤리히와 아나톨 헤르츠펠트, 화가 고타르트 그라우브너가 직접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헤리히는 대부분의 건물을 확장된 조각의 개념으로 설계했고, 아나톨은 작업실을 꾸미고 자연환경에 어울리는 조각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라우브너는 전체 콘셉트와 전시공간 디자인을 맡았고 지난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곳에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독일 출신의 조각가이자 건축가인 올리버 크루제가 디자인한 테이블과 의자로 꾸며진 메인 건물을 가로질러 나오자 온통 초록빛 세상이다. 나무 그늘에서는 야외학습 나온 학생들이 진지하게 설명을 듣고 있다. 미술관에선 한 달에 한 차례 예술가의 안내를 받아 함께 관람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인젤 홈브로이히의 자연과 예술을 제대로 느끼려면 혼자 천천히 사색하며 다녀야 한다”는 킴멜의 충고대로 혼자서 지도를 들고 미술관 체험에 나섰다. 원래 반나절 정도 여유 있게 봐야 하지만 2시간 동안 한 바퀴 돌고 점심시간 즈음 카페테리아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카페테리아는 주변 농가에서 생산한 싱싱한 과일, 달걀, 우유, 잡곡 빵, 잼 등 건강한 음식들을 관람객에게 무료로 제공한다. 역시 뮐러의 구상에 포함된 것이었다. 언덕에 위치한 미술관 입구에서 20㏊ 넓이의 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넓은 초원에 적벽돌로 지어진 건물이 드문드문 보인다. 숲을 이루는 대부분의 나무가 미술관 설계 당시에 식재됐다니 더욱 놀라웠다. 계단을 내려와 연못과 늪을 지나고 풀밭 사이로 난 산책로를 걷다 보니 들풀과 야생화들이 햇살을 머금고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늪지의 날벌레를 보고 야생오리가 꿱꿱거리니 산새가 짹짹하고 참견을 한다. 야생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멋진 정원은 독일 출신 환경건축가 코르테가 설계했다. 15개의 건축물 중 처음 마주하는 갤러리는 탑을 뜻하는 ‘Turm’이라는 이름을 가진 조각 건축물이다. 투박한 탑처럼 생긴 벽돌 건물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온통 흰색일 뿐 아무것도 없다. 작은 소리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텅 빈 공간에 햇살이 조용히 내리쪼이고 있다. 건물을 설계한 헤리히는 외부 조건이나 건물의 역할을 염두에 두지 않고 단지 조각적인 개념으로 구조물을 설계했다. 그런 다음 벽돌과 다른 재료들을 사용해 조각의 개념을 확대시켰다. 조각 속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체험하면서 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은 자연히 사라진다. ‘미로’라는 뜻의 라비린트 파비옹은 인젤 홈브로이히의 주요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천장에서 따스한 자연광이 비치는 전시실에는 코린트, 피카비아, 그라우브너 등 유럽 출신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고대 크메르와 중국 한·당·명시대의 도자기 등 골동품, 마오리족 도구들과 나란히 놓여 있다. 유명 작가의 서양미술, 진귀한 동양의 고미술이 분명한데 작품 설명은 없다. 하지만 시공을 넘어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감동을 주는 예술의 가치가 더욱 빛을 발하는 듯했다. 헤리히가 설계한 건물들은 얼핏 보면 비슷해 보이지만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고 그에 걸맞은 이름을 갖고 있다. 헤리히의 미니멀한 대리석 조각을 전시하고 있는 곳은 ‘호에 갤러리’, 다도이쓰의 대형 작품이 전시된 곳은 다도이쓰 갤러리, 렘브란트와 세잔의 데생과 수채화를 전시한 곳은 ‘달팽이’ 등이다. 주요 소장품을 전시한 대갤러리 ‘열두개의 방이 있는 집’에는 이브 클랭, 호안 미로, 말레비치, 장 아르프 등 유명 작가의 작품이 수두룩한데 역시 아무런 설명도, 안내원도 없다. 전시와 작품에 대한 정보 제공 대신 관람객의 자유로운 해석과 반응을 유도하는 의도인 것이다. 오솔길을 걷다가 숲 속에 설치된 작품을 손보고 있던 조각가 아나톨을 만났다. 맘씨 좋은 수다쟁이 할아버지 아나톨은 “인젤 홈브로이히는 자연과 예술작품, 그리고 자신이 새로운 방식으로 교감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곳”이라고 답했다. 인젤 홈브로이히 바로 옆에 있던 나토 로켓기지와 군사시설들이 1993년 미국과 소련 간의 군비(軍備) 축소 협약에 따라 폐쇄되자 뮐러는 이곳을 사들여 예술가들의 아틀리에와 주거 공간, 미술관, 음악당 등으로 이뤄진 복합문화단지를 조성했다. 개발의 손이 미치지 않는 외진 곳에 있는 땅을 멋진 자연 속 미술관으로 가꾼 뮐러는 자신이 구상했던 미술관이 성공을 거두자 수집품과 미술관 전체를 노이스시에 기증했다. 개인의 노력보단 공공의 힘으로 더 좋은 지속 가능한 미술관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현재 이곳의 소유권과 운영은 노이스시 칼 하인리히 뮐러 재단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후원으로 설립된 홈브로이히 재단이 맡고 있다. 뮐러는 인젤 홈브로이히의 야트막한 언덕에 자신이 심은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잠들어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줌 인 서울] 가리봉 ‘슬럼’ 딛고 도시 재생 꿈꾸다

    [줌 인 서울] 가리봉 ‘슬럼’ 딛고 도시 재생 꿈꾸다

    뉴타운 지정 뒤 개발 중단으로 슬럼화된 구로구 가리봉지구에 다문화가정과 공존하는 도시재생사업이 추진된다. 서울시는 가리봉 균형발전촉진지구 지정을 해제하고 주민 주도의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다고 16일 밝혔다. 서울 35개 뉴타운 사업구역 중 지구 전체가 해제되기는 종로 창신·숭인지구에 이어 두 번째다.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됐지만 주민 갈등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사업이 표류를 거듭하다 지난 2월 사업시행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포기하면서 결국 이같은 수순을 밟았다. 시는 이달 주민공람 등 행정예고에 이어 11월 재정비심의를 거쳐 지정을 최종 해제한다. 시는 가리봉동 인구 중 30%가 중국동포인 점을 고려, 이들과 내국인의 화합을 꾀하고 치안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중국동포시장과 연변거리는 시설 현대화를 통해 차이나타운처럼 명소로 거듭날 수 있게 지원한다. 또 가리봉동이 구로·가산디지털단지 사이에 있는 특성을 살려 정보기술(IT) 관련 청년 창업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게 지원하고, 벌집촌은 공공건축가를 투입해 1970년대 여성근로자들의 열악한 환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과 디지털단지 근로자들이 입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 등으로 개선한다. 주택개량 자금을 지원하고, 골목길 보안등과 폐쇄회로(CC)TV 등 치안시설도 늘린다. 하지만 한쪽에선 가리봉지구 도시재생사업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낸다. 중국동포가 거주 인구의 30%를 넘고, 이에 따라 건물 불법 증·개축이 많아 도로 등 기반시설 설치 과정에서 보상 등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시 관계자도 “불법으로 건물을 쪼개 임대해 살고 있는 경우 이전 보상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토지·건물주의 70%가 외지인이라는 점도 문제다. 한 업체 관계자는 “수익 전망이 불투명한 도시재생의 경우 집주인들이 자기 돈을 들여 건물을 수리하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나토 로켓발사기지에 들어선 랑엔재단 미술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나토 로켓발사기지에 들어선 랑엔재단 미술관

    인젤 홈브로이히에서 1㎞ 거리에 있는 ‘로켓발사기지 홈브로이히’는 용도가 바뀌는 공공시설물의 재개발 성공 사례로 눈길을 끈다. 40㏊가 넘는 광활한 로켓발사기지의 군사시설들이 화가의 아틀리에, 시인과 소설가의 창작 스튜디오, 과학자들의 연구실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인공위성에서도 감지되지 않는다는 벙커와 격납고, 감시탑 들은 예전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며 냉전시대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제2의 인젤 홈브로이히 프로젝트로 불리는 로켓발사기지 곳곳에는 칠리다, 니시카와, 크루제 등 쟁쟁한 아티스트의 환경조각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또한 드넓은 부지 곳곳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랑엔재단 미술관 외에 인젤 홈브로이히의 건축물을 설계한 헤리히의 도서관과 루시오 폰타나의 작업실,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건축가의 집 등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물은 안도 다다오의 랑엔재단 미술관이다. 이곳의 자연을 살린 미술관을 지어 달라는 뮐러의 의뢰를 받은 안도 다다오는 낮은 언덕, 아치형 인공호수, 유리와 콘크리트로 된 기다란 직사각형 건물에 같은 재질로 된 입방체 건물이 45도로 박혀 있는 전시관으로 구성된 미술관을 디자인했다. 1979년 스위스의 아스코나에 미술관을 세운 빅토르와 마리안 랑엔 부부는 자연과 건축, 미술관이 조화로운 미술관을 다시 짓기 위해 장소를 물색 중이었다. 이들은 인젤 홈브로이히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2001년 안도 다다오의 디자인대로 미술관을 건립·운영할 재단의 설립에 큰 재산을 기부했다. 대자연 속에 들어선 젠 스타일의 미술관 콘셉트가 그들이 1950년대부터 소장해 온 일본 고(古)미술품 500여점과 300여점의 현대미술품을 전시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마리안 여사는 매주 공사 현장을 방문해 미술관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그녀는 안타깝게도 미술관 개관 7개월 전 지병으로 타계했다. 2004년 9월에 개관한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술관에 대한 찬사는 끊이지 않는다. 담을 지나 들어가면 잔잔한 인공호수가 보이고 그 뒤로 미니멀 스타일의 심플한 미술관 건물이 마치 물에 떠 있는 것처럼 신비롭게 보인다. 전시관은 안도의 특기인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육면체의 건물을 유리와 강철로 된 구조물로 덧씌워 놓은 구조다. 기온차가 많은 바깥 날씨의 영향을 덜 받게 하면서 태양광을 사철 만끽하며 건물 안에서도 바깥 풍경을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미사일기지의 노출을 막아 주던 흙 둔덕은 지금은 랑엔재단 미술관의 예술적인 공간과 외부를 구분 짓는 역할을 한다. 미술관 건물은 외부에서 보기엔 단층이지만 내부는 전체 3층으로 구성돼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배치했다. 유럽에선 보기 드문 12~19세기 일본 미술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은 앤디 워홀, 막스 베크만, 안젤름 키퍼 등 20세기 서구미술의 주요 작가들 작품과 21세기 최신 미술 경향을 소개하는 기획전으로 독일 북서부 지역의 대표적 문화 명소가 되고 있다. lotus@seoul.co.kr
  • 해외여행 | 치앙라이Chiang Rai- 메콩의 물결은 유유히 흐른다

    해외여행 | 치앙라이Chiang Rai- 메콩의 물결은 유유히 흐른다

    메콩은 깊고 넓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흙빛의 물결은 치앙라이를 여행하는 내내 훅훅 끼치는 흙냄새를 남겼다. 태국의 북쪽 꼭대기, 라오스와 미얀마를 마주보고 있는 치앙라이에서 갓 꺼진 아편의 불씨와 오래도록 남을 란나왕조의 흔적을 돌아봤다. 야수를 잠재운 시간 뒤뚱뒤뚱, 차는 꼬불거리는 산길을 한참 올라갔다. 언덕을 넘을 때마다 반대편으로 가지런히 열을 이룬 차밭이 펼쳐졌다가 끊기고 다시 펼쳐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작은 집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깊은 산골에는 원주민들의 마을이 있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이곳은 차이니즈 빌리지Chinese Village로 중국인 후손들이 모여 사는 도이 매 사롱Doi Mae Salong이다. 하교하는 아이들이 재잘대는 중국어가 아니더라도 집집에, 가로등 사이에 걸린 붉은 등에서 충분히 이곳이 중국인 마을임을 알 수 있었다. 과거 공산당에 밀려 장제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타이완에 자리를 잡았을 때, 그중 일부가 공산당들을 피하기 위해 접근이 쉽지 않은 이곳까지 내려왔다는 것이다. 중국 공산당과 싸우다 사망한 두안 장군의 묘The Tomb of Gcn Duan가 옹기종기 내려앉은 마을을 보살피듯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기념품이나 약재 등을 팔거나 농업에 종사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나가길 꿈꾼다. 태국의 주요 관광지에서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마을에는 나이가 지긋한 어른과 아주 어린 아이들만이 남아 있다. 차이니즈 빌리지를 둘러싼 산에서는 대부분 차를 경작한다. 이곳에는 근방에서 가장 큰 차 공장이 있는데 101티플랜테이션101 Tea Plantation이 바로 그곳이다. 크기만 무려 200에이커에 달한다. 아침 일찍 차밭에 들어서면 싱긋싱긋한 이파리들 사이로 차 냄새가 자욱하다. 숲의 대부분이 차밭으로 경작되기 때문에 어디에서나 골짜기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 이곳의 매력 포인트다. 사실 치앙라이 하면 아편의 이미지가 끈질기게 따라다닌 것이 사실이다. 아편이 생산되고, 그 아편이 금으로 바뀌는 곳이어서 악명 높은 ‘골든 트라이앵글’이라는 이름이 붙었었다. 암적인 거래가 횡행하던 이곳을 바꿔 놓은 것은 태국 국왕의 어머니, 스리나가린드라Srinagarindra 여사. 1983년 도이퉁 디벨롭먼트 프로젝트Doi Tung Development Project를 통해 아편 생산을 전면 금지하고 양귀비를 기르던 지역에 농작물들을 재배하게 했다. 그녀가 이곳을 사랑한 흔적을 보고 싶다면 1996년 사망하기 직전까지 약 7년 동안 머물렀던 도이 퉁 로열 빌라Doi Tung Royal Villa를 찾아가야 한다. 1년 내내 꽃이 가득한 스위스식 정원, 매 패 루앙 가든Mae Fah Luang Garden은 사랑의 결정체다. 아편의 주요 통로였던 지역에 만들어진 이 정원은 아편 재배가 금지되고 할 일이 없어진 마을 사람들에게 직업을 주는 공간이 됐고, 스리나가린드라 여사가 사망한 뒤에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게 됐다 그녀가 없음에도 이곳은 여전히 정성스러운 손길로 꾸며지고 있었다. 분주한 정원사들은 강물을 언덕 꼭대기까지 끌어올려 더운 열기에 식물이 죽지 않도록 보살피고, 3개월마다 정원의 꽃을 새로 심는다. 여행자들은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정갈하고 소박하게 살았던 그녀의 성을 둘러본다. 역사의 풍랑을 온몸에 새기다 아편에 얽힌 이곳의 역사를 몰랐더라면 메콩강을 마주했을 때, 그 감흥이 덜 했을지도 모른다. 멀리서 흘러와 멀리로 흘러가고 있는 흙빛 물결은 그 역사만큼 혼탁했다. 관광객들을 태운 작은 보트들이 물길을 따라 미얀마와 라오스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곳에는 국경이 있어서 검사를 거치고 주변 나라로 넘어간다. 여행자들에게는 3~4시간 정도 라오스 땅을 밟을 수 있는 관광 프로그램도 있다. 보트가 메콩강의 흙탕물을 밀어내며 달린다. “왼쪽 빨간 지붕 카지노가 있는 곳은 미얀마, 오른쪽 노란 지붕이 있는 곳은 라오스입니다. 국경을 오가면서 아편을 사고 팔고, 그리고 카지노에서 ‘돈세탁’을 해서 돌아갔지요.” 가이드의 설명이 시뮬레이션처럼 펼쳐졌다. 겨우 40년 전의 역사, 어딘가에서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역사였다. 아편에 취한 사람들이나 그로 인해 일어난 전쟁을 생각하면 아편의 주 생산지였던 이곳에 역사 깊은 120여 개의 불교 사원이 있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향로에 빽빽하게 침향을 꽂는 불심 깊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골든 트라이앵글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의 위쪽에 있는 왓 프라 탓 푸 카오Wat Phra That Phu Khao 사원에는 점을 쳐주는 불상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다. 소원을 빈 뒤 불상을 들어올렸을 때 가볍게 들리면 일이 잘 풀리고, 무겁게 들리면 일이 힘들게 풀린단다. 무겁게 들린 건 그렇다손 치더라도 막대통을 흔들어 나오는 숫자에 적힌 점괘를 보다가 무너지고 말았다. ‘앞으로 악재가 계속 겹치며,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나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엉터리’ 불자로서 절이라도 올리려고 했는데 비참한 마음에 그냥 나오고 말았다. 태국어를 할 줄 모르니 여행하는 내내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태국 북부는 사투리가 심하단다. 서울과 부산의 차이와 비슷하다. 치앙라이가 방콕에서 북쪽으로 780km 거리에 자리해 지리적으로 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과거 치앙라이를 주축으로 독립적인 란나왕조Lanna Kingdom가 번성했던 것도 하나의 이유다. 그래서 이곳에는 ‘란나스타일’이 있다. 건축물 꼭대기에 마치 칼이 꽂힌 것처럼 깃이 달린 것이 대표적인 란나스타일. 치앙라이에 속해 있는 치앙센Chiang Saen에서는 뒤섞인 이 지역의 역사를 훔쳐볼 수 있다. 13세기경 왕 센후King Sean Phu에 의해 란나왕국이 발생한 지역인 치앙센은 긴 벽돌담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부처의 유골 일부가 있다는 왓 파삭Wat Pa Sak 사원은 수백년 된 티크나무 숲 가운데 고고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벽돌 바닥만 남은 사원은 수세기를 거치며 부식되고 손실된 흔적이 절절하게 남아 있었지만 오히려 그 덕에 끝없이 상상력을 펼치게 되는 곳이었다. 수코타이, 란나, 미얀마의 건축양식이 오묘하게 결합되어 있는 탑은 돌아보는 동안 수많은 표정을 보여 줬다. 허물어진 벽을 등지고 앉은 부처상은 어떠랴. 이곳저곳 상처가 많은 얼굴에서 고단함이 느껴졌지만 제단 앞, 갓 마른 촛농이 떨어진 것을 보아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부처라는 것을 가늠할 수 있었다. 다시, 새로운 물결 그 무엇보다 치앙라이에서 유명한 것은 왓 롱쿤Wat Rong Khun이다. 흰색 건물로 화이트 템플Whith Temple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는 이 사원은 태국의 건축가인 찰럼차이Chalermchai가 1998년부터 만들기 시작한 곳.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옥에서 구해 달라’고 말하는 꿈을 꾼 뒤로 만들기 시작했단다. 지옥을 표현한 조형물들 사이로 찬란하게 빛을 받고 있는 왓 롱쿤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하다. 흰색과 함께, 유리를 사용한 덕에 말 그대로 ‘환하고 빛나는’ 모습이다. 사원 건축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한쪽에 마련된 기념품가게의 수익으로 사원을 계속 증축해 나가는 중으로 언제 끝날지는 오로지 찰럼차이의 마음에 달렸다. 메인이 되는 사원은 거의 마무리가 됐지만 주변 건물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사실 지금은 완공보다는 보수가 중요한 시점이다. 작년 치앙라이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에 탑의 꼭대기가 부러지고 건물에도 부분부분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방식을 깨고 새로운 방식을 창조하는 찰럼차이가 있다면, 동물의 뼈와 가죽을 모으며 과거를 수집하는 타완 두체니Thawan Duchanee도 있다. 블랙 하우스Black House라 불리는 반 담Baan Dam을 만든 예술가다. 이름처럼 검은색의 건물에 온갖 동물들의 뼈와 가죽을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수집품들과 검은색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형언하기 힘들다. 죽음 사이를 걸어다니고 있으니 시간이 멈출 것처럼 으스스하다. 하지만 호기심이 동하는 건 더욱 어쩔 수 없었다. 수십 미터의 뱀가죽을 따라서 입구가 되는 건물을 지나가자 각각의 테마를 가진 건물 몇 채가 나타났다. 버팔로의 뿔과 가죽으로 만든 의자, 동물의 털이 살아있는 가죽으로 장식한 테이블 등등. 원시와 야만의 흔적들은 가끔 경악스러운 단말마로 이어졌지만 그것은 결국 인간이 만든 흔적이었다. 글·사진 차민경 기자 취재협조 태국관광청 www.visitthailand.or.kr ▶travel info AIRLINE 치앙라이로 가는 직항편이 없어서 방콕이나 치앙마이를 경유해 가야 한다. 타이항공은 인천에서 방콕까지 매일 2~4편의 직항편을 운항하고 있고, 방콕에서 치앙라이까지는 하루 3편의 직항이 뜬다. 인천에서 방콕까지는 약 6시간이, 방콕에서 치앙라이까지는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HOTEL 메콩강의 진수를 느끼다 더 임페리얼 골든 트라이앵글 리조트The Imperial Golden Triangle Resort 최고급 리조트를 상상한다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리조트를 추천하는 이유는 치앙라이에서 골든 트라이앵글을 조망할 수 있는 완벽한 위치에 자리해 있기 때문이다. 왼쪽으로는 미얀마가, 오른쪽으로는 라오스가 보일 뿐더러 록강Ruak River이 메콩강과 합류되는 지점이 바로 정면에 위치한다. 테라스에 서서 좌우로 펼쳐지는 메콩강을 보면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풍경이 마음속에 새겨질 것. 특히 레스토랑 테라스를 놓치지 말길. 가격도 합리적이다. 조식 포함 1,600바트(약 5만원)부터. 222 Golden Triangle, Chiang Saen, Chiang Rai 57150 Thailand +66 (0) 5378-4001 www.imperialhotels.com 차밭 위의 신선처럼 매 사롱 플라워 힐즈 리조트Mae Salong Flower Hills Resort 깊은 차밭 한가운데, 산등성이에서 피어 오르는 안개가 내려다보이는 리조트가 있다. 높은 산을 깎아 만든 사롱 플라워 힐즈 리조트는 도이 매 사롱 지역에 자리해 있다. 정면으로 여러 겹 굽이진 산허리가 펼쳐져 있고, 가까운 언덕에서는 사람들이 차를 재배한다. 숲 속에서 평안한 휴식을 갖길 원한다면 이곳이 마음에 들 것이다. 950바트(약 3만원)부터. 779 Moo 1 Doi Mae Salong,Mae Fah Luang,Chiang Rai 053-765-495-7 www.maesalongflowerhills.com TEMPLE 매혹될 수밖에 없는 영롱함 에메랄드부처Emerald Buddha 1434년, 치앙라이에 있는 왓 프라 깨오Wat Phra Kaew 사원의 파고다에 번개가 쳤다. 그 자리에 있던 불상이 번개를 맞고 일부분이 깨졌는데 안쪽에서 초록빛이 나더란다. 살살 겉을 둘러싼 것을 깨 보니 부처상이 옥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보통 에메랄드부처라고 부르지만 에메랄드색이 나는 옥 부처가 발견된 것. 당시 발견된 불상은 라오스 루앙프라방, 치앙마이, 비엔티안 등을 순회하고 있으며 현재는 방콕에 있다. 왓 프라 깨오 사원에서는 이 불상이 발견된 것을 기념해 그와 비슷하게 만든 옥 불상을 따로 전시하고 있다. 19 Moo 1, Tambol Wiang, Ampur Muang, Chiang Rai 57000 Thailand +66 (0) 5371-1385 www.watphrakaew-chiangrai.com MUSEUM 오감으로 체험하는 공포 아편박물관Hall of Opium 골든 트라이앵글이 아편의 생산지로 악명을 떨쳤고 중국에서는 아편전쟁이 일어나기도 했으며 전세계 곳곳에서 마약 카르텔이 활동하는 것을 안다고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에게 아편은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편과의 한판 승부를 벌였던 이곳 치앙라이에는 일반 사람들과 관광객들에게 아편의 무서움을 알려주기 위한 박물관이 만들어져 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아편 중독을 표현한 긴 동굴을 지나게 된다. 전시관은 각종 시각, 음향 효과로 아편의 공포를 실감하게 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박물관을 다 돌고 나오면 ‘정말 마약은 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이 절로 나오게 된다고. Golden Triangle Park, Chiang Saen, Chiang Rai, Thailand 053 784 444-6
  • 예술과 기술의 벽 허물기…옷에 달린 호신용 카메라, 손짓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예술과 기술의 벽 허물기…옷에 달린 호신용 카메라, 손짓으로 연주하는 피아노

    예술과 과학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다소 낯설고 닮지 않은 듯 보이는 두 장르는 원래 중세까지 한 몸이었다. 이를 방증하는 인물이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 과학자요 수학자이기에 앞서 예술성을 겸비한 건축가, 조각가, 화가로 추앙받았다. 역설적으로 극도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추구하는 현대의 학문은 점차 하나로 통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세상이 다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인물에 주목하는 이유다. 다음달 17일까지 서울 금천구 독산동 금천예술공장에서 이어지는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4’ 페스티벌은 예술과 기술의 벽을 허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행사가 열리는 금천예술공장의 이력부터 독특하다. 주변 소규모 공업사와 의류공장들이 말해주듯 이곳은 대규모 인쇄공장을 개조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2010년부터 열린 행사는 원래 아이디어 공모전 형태였으나 올해부터 페스티벌로 몸집을 불렸다. 7개국 22개팀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전시에 등장하는 작품들은 영화 ‘해리포터’나 ‘스타워즈’ 등에 등장할 법하다. 신승백·김용훈의 호신용 재킷인 ‘아포시마틱 재킷’에는 단추 크기만 한 카메라가 수십 개가 달려 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재킷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카메라가 주변을 360도로 촬영해 미리 설정해 둔 웹으로 전송한다. 재킷에 달린 카메라 중 대부분은 실제로는 작동하지 않는 ‘가짜’이지만 언제든 기록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날려 스스로를 보호하는 셈이다. 김정환의 피아노 작품 ‘이미지-무브먼트’는 손짓으로 연주할 수 있는 피아노다. 옥쟁반에 구슬이 굴러가듯 유려하게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지만 능력이 부족한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허공에 대고 가볍게 손을 움직이면 1∼2m가량 떨어진 실제 피아노는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건반이 눌리며 자연스럽게 소리를 만들어낸다. 프랑스 작가 조니 르메르시에는 손으로 그린 일본 후지산의 풍경에 빛을 투사해 일본의 민간 설화를 추상적으로 표현한다. 대상물의 표면에 영상을 투사해 변화를 주는 ‘프로젝션 매핑’ 기술이 이용된 작품이다. 양숙현은 워크숍을 통해 관객과 함께 몸에 장착 가능한 웨어러블 신시사이저를 만들었다. 장치가 달린 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움직이면 악기로 변하는 식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하는 행사는 동시대 미디어 문화와 네트워크를 유연하게 공유하자는 뜻에서 마련됐다. 행사를 기획한 손미미 예술감독은 “예술사 안에서의 전통적 비평이나 미술관에서 벌어지는 감상 방법이 아니라 관객이 좀 더 감각적으로 해석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악기와 음악의 재발견…해부학적으로 뜯어보고 사회학적으로 살펴보고

    악기와 음악의 재발견…해부학적으로 뜯어보고 사회학적으로 살펴보고

    각기 다른 크기의 톱니바퀴가 테이블 위에 배열돼 있다. 톱니바퀴를 회전시키는 속도에 따라 다른 음계와 음파를 내며 묘하게 어울리는 음계가 만들어진다.(‘톤휠 테이블·왼쪽’) 전선이 복잡하게 얽힌 구형 구조물에 흰색 공기주머니와 센서들이 달려 있다. 센서를 손으로 가리면 공기주머니가 부풀어 오르며 오르간처럼 소리를 낸다.(‘빛이볼·오른쪽’) 작곡가와 건축학도가 만든 이 ‘악기’들은 과연 악기일까? 15일부터 17일까지 밤 9시 50분에 방송되는 EBS 다큐프라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3부작은 누구나 봐왔지만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 없던 악기를 새롭게 발견한다. 악기들을 해부학적으로 뜯어보고, 악기들의 앙상블을 사회학적으로 살펴보며 악기의 미래까지 그려본다.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2012년 ‘다큐프라임-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를 연출한 백경석 PD의 음악 다큐멘터리 후속작이다. 백 PD는 “피아노, 바이올린 등 서양 악기들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새롭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했다”면서 “음악의 매개인 악기에 대한 사유를 넓히자는 취지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악기 장인과 음악 전문가, 각계의 아티스트들이 머리를 맞대는 동안 시간은 1년 이상, 제작비는 3억원 이상 투입됐다. 1부 ‘악기들의 무덤’은 죽은 악기들이 장인들의 손을 거쳐 되살아나는 과정을 담는다. 강원도의 한 창고에 버려진 고장난 악기들을 악기 장인들이 손수 되살리고, 이어 연주자들이 손에 쥐며 작은 음악회가 열린다. 2부 ‘악기가 악기를 만났을 때’는 정경영 한양대 음대 교수와 함께 악기들의 만남을 인문·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편성론, 악곡론, 해석, 조율 등 음악의 모든 지식이 총동원되며 동요에서부터 현대음악까지 모든 음악의 합주를 찾아다닌다. 수많은 명연주의 향연이 정 교수의 사고 과정을 따라 판타지 영화를 보듯 펼쳐진다. 이어 3부 ‘이것도 악기일까요?’에서는 각계 아티스트들이 모여 새로운 악기 만들기에 도전한다. 권병준 사운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미술가, 작곡가, 건축가, 조경전문가 등이 모여 3D 프린팅 기술과 기계공학적, 전기공학적, 건축학적 아이디어가 접목된다. ‘물방울 피아노’ ‘권총 실로폰’ ‘액션 기타’ 등 신개념 악기들이 탄생된다. 이들의 작업은 ‘이악(이것도 악기일까요)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다음달 열리는 ‘또 다른 달 또 다른 생’(10월 9~10일 서울 LIG아트홀)과 ‘싸구려 인조인간의 노랫말’(10월 24일 부산 LIG아트홀) 공연에서 합동 작업의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50여개 수용소 추모·교육 공간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50여개 수용소 추모·교육 공간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독일은 전쟁이 끝나고 나서 다양한 방법으로 2차대전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나타냈다. 말에서 그치지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조치들이 이어졌다. 그 한 가지가 남아 있는 수용 시설이나 관련 시설을 추모와 교육의 공간으로 바꿔 피해자인 유대인과 가해자인 독일인의 후손들이 역사를 정확하게 보고 판단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독일 전역에는 50개가 넘는 유대인 수용소 추모관 및 관련 박물관이 건립돼 있다. 시내 한가운데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과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은 진심으로 속죄하고 미래 세대가 바른 역사의식을 갖도록 노력하는 독일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브란덴부르크 문 남쪽으로 5분 거리에 있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은 6000여평에 달하는 대규모 부지에 관처럼 생긴 2711개의 콘크리트 추모비가 세워져 있는 장소다. 미국인 건축가 피터 아이젠먼이 설계하고 2004년 완공된 이곳은 과거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평균 무게 8t에 달하는 콘크리트 추모비들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줄지어 서 있어 공동묘지를 마주하는 듯 비장함을 안겨준다. 베를린의 심장부에 이 의미 있는 장소가 생기기까지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는 것 역시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다. 통일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대규모 추모시설 건설을 주장한 사람은 저널리스트인 레아 로스와 역사학자 에버하르트 예켈이다. 베를린이 포츠다머광장을 중심으로 급속한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던 1990년대 초반이었다. 유대인박물관이 논란을 거듭하며 건설되던 때다. 이미 유사한 시설이 많은 상황에서 대규모의 유대인 추모시설을 세울 바에야 그 돈을 복지에 사용하라는 반대론자들이 많았다. 예켈은 반대하는 이들을 향해 “새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이야말로 역사 앞에서 진실하고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격렬한 논쟁을 거친 끝에 정부와 의회는 홀로코스트 추모공원 건설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독일 정부는 성명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을 추모하는 시설을 통일독일의 수도에 건립하는 것은 독일은 물론 세계가 이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함이다. 이것이 우리가 담당해야 할 역사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추모공원이 자리한 곳은 과거 히틀러의 최측근이었던 나치 선동가 괴벨스의 집무실이 있었던 곳이다. 1994년 현상설계가 진행돼 아이젠먼이 선택됐다. ‘테러의 지형학’으로 번역할 수 있는 테러의 토포그라피 박물관(Topographie des Terrors)은 1933~1945년 나치 비밀경찰 게슈타포, 나치 친위대 슈츠슈타펠(SS), 제국 중앙보안국의 헤드쿼터가 있던 자리에 있다. 히틀러 치하의 베를린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던 곳이었다. 과거 프린츠 알프레히트 거리로 불리던 니더크리슈너로에 있는 이곳은 2차 대전 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됐고, 일부에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면서 오랜 세월 폐쇄됐었다. 유대인들에게 큰 공포를 안겼던 장소가 조심스럽게 역사의 전면으로 등장한 것은 42년이 지난 1987년. 베를린시 수립 750년을 맞은 행사의 일환으로 당시 고문실로 쓰였던 지하실을 개방했다. 1989년 동서독 학자들의 공동 연구를 토대로 그 일부에 나치의 범죄를 기록한 야외 전시실이 마련됐고 2년 뒤에는 이곳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재단도 설립됐다. 그 위쪽으로 건축가 페터 춤토르의 설계로 2010년 완공된 박물관에서는 각종 학술행사와 전시회가 열린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베를린 유대인박물관

    나치의 광적인 반(反)유대주의는 600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하는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20세기 역사에서 인류가 가장 부끄럽게 여기는 참혹한 범죄에 대해 가해자인 독일은 다양한 방식으로 참회를 계속해 오고 있다. 베를린 유대인박물관은 과거에 대한 독일인들의 속죄의 뜻을 담은 대표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건축적 의미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모으는 장소다. 2001년 9월 정식 개관에 앞서 비어 있는 상태에서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방문객이 찾았고, 지금은 베를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방문지로 꼽힐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명소다. 린덴스트라세 14번지에 있는 이 박물관은 독일의 유대인들이 떠안아야 했던 참담한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이 왜 중요한 가치인지, 올바른 역사의식이란 무엇인지를 일깨워 준다. 말없이 서 있을 뿐인 건물이 이런 철학적이고 어려운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비극적 역사의 무게감과 엄숙함을 시각적, 공간적 언어로 완벽하게 표현한 건축가는 다니엘 리베스킨트다. 폴란드 유대계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그가 설계한 포스트모던 양식의 건축물은 외형과 외부 장식, 내부 디자인의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복잡하고 심오하고 무거운 철학적 개념들을 담고 있다. 리베스킨트는 2001년 9·11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추모공원 ‘그라운드 제로’의 마스터플랜 설계자로 세계적 명성을 확인한 바 있다. 하지만 유대인박물관 설계공모전이 열린 1989년까지만 해도 그는 실현 불가능한 건축 설계와 드로잉을 하는 ‘언빌트’ 건축가로 알려졌었다. 이스라엘에서 음악을 공부한 뒤 미국과 영국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음악을 드로잉의 모티브로 삼기도 하고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비정형의 드로잉을 통해 자신의 건축 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름을 알렸다. 상상력 가득한 그가 첫 번째로 도전한 설계 공모전이 베를린의 유대인박물관이다.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유대인박물관은 전형적인 박물관과는 시작부터 다르다. 티타늄과 아연 합금으로 뒤덮인 이 건축물에는 입구가 없다. ‘리베스킨트 빌딩’이라고 불리는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바로 옆에 있는 올드 빌딩, 즉 베를린박물관 건물을 통해야 한다. 바로크양식의 베를린박물관은 과거에 프로이센의 법원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정원 쪽으로 탁 트인 휴식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지그재그로 된 강철재와 유리로 된 천장을 얹은 ‘유리정원’은 2007년 리베스킨트의 설계로 완성됐다. 기념품 판매소 앞쪽으로 계단실이 있다. 60도로 급격하게 경사진 이 계단을 내려가면 긴 복도가 나오고 어느덧 유대인박물관의 전시 공간에 도착하게 된다. 박물관 안내를 해 준 독일인 가이드 카르스텐 크리거는 “유리정원은 18세기에 지어진 베를린박물관 건물과 21세기에 지어진 포스트모던 양식의 유대인박물관 건물을 공간적으로 이어주는 역할을 하고, 급격한 경사에 이어지는 긴 복도는 방문객들이 시간여행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건축적 장치”라고 설명했다. 박물관 건물은 나치의 대학살로 희생된 수백만 유대인의 비극적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치들로 가득하다. 건물의 지그재그형 구조는 유대인의 표식인 ‘다윗의 별’이 부러진 모양이다. 그 모양은 조감도로 봤을 때 확연히 나타나지만 건물 내부를 관람하는 동안에는 미로처럼 끝없이 흩어지는 좁다란 복도와 어디쯤인지 가늠할 수 없는 야릇한 공간감으로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다. 리베스킨트는 건물 청사진을 발표할 때 박물관을 ‘선(線) 사이’라고 명명했었다. “사고와 조직, 관계에서 어긋나는 두개의 선을 표현하고자 했다. 똑바로 뻗어 있는 하나의 선은 수많은 조각으로 날카롭게 부서지고, 다른 하나는 우여곡절이 많지만 정체성을 이어 가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를 상징하는 선이다.”(리베스킨트, 1998) 박물관의 외벽과 창문, 그리고 내부에는 무수히 그어진 날카로운 선들이 교차한다. 금속 외벽의 차가움과 난도질당한 듯 잘라진 선들은 보기에도 섬뜩하고 긴장감을 높인다. 무의미해 보이는 선들은 마구잡이로 그어진 게 아니다. 2차 대전 전에 베를린에서 살았던 독일인과 유대인 유명 인사들의 거주지를 연결해 얻어낸 매트릭스다. 리베스킨트가 이 건축물의 구조적 요소로 택한 기본 개념은 ‘공백’(void)이다. 단절된 역사, 사람들이 떠난 자리, 재가 돼 버린 인간성 등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종류의 공백이 건물 곳곳에서 실물로, 느낌으로 다가온다. 2층 구석에 있는 ‘공백의 기억’은 공백을 극단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공간이다. 노출 콘크리트 벽이 높이 서 있는 기다란 공간은 원래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설계된 것인데 지금은 바닥에 이스라엘의 조각가 메나슈 카디슈만(1932~)의 작품 ‘샬레헤트’(낙엽이라는 뜻의 히브리어)가 설치돼 있다. 쇠로 만든 얼굴 조각 1만개가 바닥에 깔려 있다. 각기 다른 크기에 다른 표정인데 그 표정은 한결같이 불행과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사람들이 그 위를 지나가면 쇠로 만든 얼굴들이 서로 부딪치며 삐거덕삐거덕 괴상한 소리를 낸다. 감옥에서 인간성을 말살당한 채 죽음을 기다리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상상하게 된다. 박물관의 미로들은 세 개의 축을 따라 유대인이 처했던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도록 관람객을 이끈다. 30도의 완만한 경사로 올라가는 긴 복도는 ‘연속성의 축’이다. 기나긴 베를린의 역사는 미로처럼 계속되다가 무질서하게 갈라진 좁고 긴 공간들과 함께 사라진다. 마치 유대인들이 어느 순간 도시에서 사라졌던 것처럼. 또 다른 축은 ‘방랑의 축’이다. 그 끝에 있는 문을 열고 나가면 ‘추방의 정원’이 있다. 12도의 경사로 비스듬히 세워진 49개의 콘크리트 기둥 사이를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은 방향감각을 잃고 만다. 독일에서 추방당해 불안한 마음으로 낯선 땅에 도착한 유대인들이 느꼈던 심정을 표현하고자 했던 리베스킨트는 이곳이 ‘역사에서의 조난’을 상징한다고 표현했다.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알지 못하는 천진한 아이들은 기둥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돌아다닌다. 콘크리트 기둥 위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러시안졸참나무가 심어져 있다. 마지막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축’을 남기고 독일인 가이드는 “백 마디 설명을 듣는 것보다 직접 느껴 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는 총총 사라졌다. 그 이유를 곧 알게 됐다. 복도에 설치된 장에는 비참하게 학살당한 사람들이 지녔던 물건들이 추억과 함께 전시돼 있고 좁은 복도 끝에는 무거운 철문이 있다.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홀로코스트 타워’다. 묵직한 철문이 쿵 소리를 내며 닫히는 순간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20m 높이의 노출 콘크리트 탑은 출구도 없고 창문도 없다. 절대 어둠에 놓인 공간을 밝히는 것이라곤 천장 쪽으로 살짝 열린 창을 통해 들어오는 가느다란 광선이 전부다. 평상시에는 이 창문을 통해 박물관 뒤편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도 들린다고 한다. 자유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 상상하게 된다. 어디에도 갈 수 없는 복도, 벽에 가로막힌 계단들을 지나면서 유대인들의 상처와 분노, 고통, 그리고 비틀린 역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베를린 연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베를린 연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요즘 신문에 연재하고 있는 미술관건축기행 취재차 지난달 베를린을 찾았다. 2005년 독일 통일 15년 특집기획 취재를 한 이후 9년 만에 찾은 베를린은 도시에서 풍기는 분위기부터 확 달라져 있었다. 예전의 동베를린 지역을 찾았을 때 무언가 공허하고 암울한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알렉산더 광장에 있는 한 맥주집에서 우연히 만나 인터뷰한 동독 출신 근로자는 “자유를 누리게 된 것은 좋다. 하지만 높은 실업률과 예전에는 없던 보육비 부담, 서독과의 경제적 격차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분단 시절이 그리울 때가 많다”는 말을 했었다. 그런가 하면 통일 비용 부담으로 독일 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자 옛 서독지역 사람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4명 중 1명은 베를린 장벽의 복원을 원했을 정도다. 장벽이 무너진 지 25년째를 맞은 2014년의 베를린은 그야말로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베를린 장벽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됐던 포츠다머 광장은 최첨단 시설을 갖춘 초고층 빌딩들이 숲을 이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쟁쟁한 건축가들이 ‘최고’의 자존심을 걸고 그려낸 독특한 스카이라인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광장에서 장벽의 흔적이라곤 선을 따라 바닥에 박아 놓은 벽돌에서 겨우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카페와 클럽이 줄지어 들어선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은 멋지게 차려입고 밤 나들이 나온 젊은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즐겁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분단의 상처를 묻는 것은 난센스였다. 며칠간 머물면서 베를린이 통일 독일의 수도에 머물지 않을 것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다른 유럽국가들이 재정 적자로 허덕이는 것과는 달리 경제는 튼실하고, 정치적으로도 안정된 상태에서 유럽의 리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허황된 생각은 아니리라. 이런 변화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다. 독일 정부는 그동안 끈기 있고 치밀하게 인적, 물적, 재정적 투자를 지속했다. 정말 놀랍고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동시에 과거를 복원해 나가는 대목이었다. 정갈하게 다듬어진 대로변으로 2차 대전으로 파괴됐다가 통일 이후 수년에 걸쳐 세심하게 복원된 역사적인 건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전쟁으로 소중한 문화재가 파괴되는 가슴 아픈 현장을 목격했던 이들은 되살릴 수 있는 것이라면 벽돌 한 장, 총탄의 흔적, 유대인 학살과 같은 섬뜩하고 부끄러운 역사의 한 장면도 놓치지 않았다. 문화적 전통, 그들이 아끼고 사랑하던 문화재를 포함하는 과거는 분단으로 멀어졌던 독일인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매개체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오랜 세월 다른 이념과 체제 아래 살았던 양 진영이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길은 같은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한반도가 통일된 후 25년이 지나면 어떤 모습이 펼쳐질지 잠시 상상해 봤다. 어떤 식으로든 통일을 이룬 후 이념적 통합과 사회·문화적 통합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지 생각하니 괜스레 어깨가 무거웠다. 어찌됐든 희생과 노력 없이 통일 대박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lotus@seoul.co.kr
  • 못 ‘3만개’로 완성한 마릴린 먼로 초상화

    못 ‘3만개’로 완성한 마릴린 먼로 초상화

    망치와 못만으로 캔버스 유화에 뒤처지지 않는 정밀한 초상화를 완성해낸 한 영국 아티스트의 작품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미국 ABC 계열 뉴욕 지역 방송국 WABC-TV는 영국인 아티스트 데이비드 포스터가 못과 망치만으로 완성한 유명 인물들의 놀라운 초상화를 26일(현지시간) 소개했다. 아기를 안고 있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관능적인 눈빛과 표정 그리고 붉은색 입술까지 재현된 마릴린 먼로, 존 레논-폴 매카트니-조지 해리슨-링고 스타로 이어지는 비틀즈 4인방에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FC의 미드필더 스티븐 제라드에 이르기까지 세계적 유명인사의 얼굴이 정밀히 표현된 해당 초상화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놀라움을 선사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작품들이 붓과 캔버스가 아닌 망치와 못으로 완성된 작품들이라는 점이다. 작품 1개당 평균 못 3만개가 소요된 이 작품들은 모두 잉글랜드 북서부 체셔 카운티 월링턴에 위치한 아티스트 데이비드 포스터(52)의 작업실에서 완성됐다. 정확한 설계도면을 연상하게 하는 포스터만의 독특한 작업방식은 지난 20년 간 축적된 그의 건축설계 경력에서 비롯됐다. 잘나가던 건축가였던 포스터는 3년 전 49세 때 허리디스크 악화로 불가피하게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치료 후에도 여전히 왼쪽 다리와 허리 근육 통증이 남아있지만 오히려 현재 ‘못 예술’을 구성해낼 수 있는 예술 창작력을 얻게 된 계기가 됐다고 포스터는 밝히고 있다. 통상 작품 모티브가 될 재현 사진을 보며 못을 박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그의 작업방식은 작품완성까지 평균 3주 정도 소요된다. 그의 못 그림은 온라인상에서 상당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데 최근 자국인 영국은 물론 미국, 벨기에 심지어 파키스탄에서까지 구매 주문이 들어와 작품을 판매한 바 있다. 한편, 포스터의 작품은 평균 2만 파운드~4만 파운드(약 3,360만원~6,720만원)사이에 판매되며 내달 런던 그레이엄 파인 아트 갤러리(Graham Fine Art Gallery in London)에서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다.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부고]

    ●김영진(전 서울신문 윤전부 과장)씨 별세 24일 인천의료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32)580-6662 ●최정욱(국민일보 사회2부 차장)씨 별세 25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11시 (02)2227-7560 ●이강우(통일부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씨 모친상 25일 좋은부산요양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51)319-9444 ●홍희표(전 부산롯데호텔 대표이사)씨 별세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30분 (02)3010-2236 ●손장순(소설가·한양대 명예교수)씨 별세 최희승(미국 거주·건축가)씨 모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40분 (02)3010-2292 ●정열(전 산업은행 국제금융부장)씨 별세 교화(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씨 부친상 송모헌(레드덕 부사장)정병권(메가UT 대표교수)씨 장인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2258-5940 ●김광수(미국 거주)광현(전 코스콤 사장)광민(미국 거주)씨 부친상 연빈(전 트루릴리전 이사)씨 조부상 25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30분 (02)2258-5940 ●성창현(현대증권 방배지점장)정광희(종근당 상무)정종하(효성 상무)서우석(유로탑인터내셔널 대표)이병재(FMC코리아 과장)씨 장인상 25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30분 (02)2650-2743 ●정재현(SK C&C 부사장)철현(서울아산병원 흉부외과장)씨 모친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2)3010-2230
  • [열린세상] 제로에너지 하우스 ‘목조주택’/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제로에너지 하우스 ‘목조주택’/윤영균 국립산림과학원장

    “푹푹 찌는 더위에는 은행이 최고지!” 이제 더 이상 이런 시대는 지나갔다. 이건 정말 ‘옛날 옛적에’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올 법한 말이다. 지금은 정부가 나서서 여름 실내 적정 온도를 26℃로 맞추도록 하는 시대다. 전기에너지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일차적으로는 유한한 에너지의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지만 나아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이다. 이제 기후변화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가 생활하는 집, 회사, 학교 등 건물은 그야말로 에너지를 잡아먹는 거대한 괴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건물은 산업, 수송 부문과 함께 3대 에너지 다소비 분야다. 아파트의 경우 냉난방이나 급탕 등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연간 130㎾h/㎡에 달한다. 이는 100㎡ 면적의 주택에서 매년 1800ℓ(드럼통 9개)의 등유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2020년에는 건물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건물의 신축을 줄이고 있다. 독일의 경우 연간 15㎾h/㎡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패시브(Passive) 하우스를 짓고 있다. 이는 벽, 지붕, 창호 등의 단열 성능을 강화해 외부로 빠져나가는 에너지를 최소화한 것이다. 또한 내년부터 새로 짓는 모든 건물에 대해서도 패시브 하우스 수준의 에너지 절감 기능을 갖추도록 법제화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2020년까지 건물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 대비 27% 줄인다는 계획 아래 패시브 하우스로 신축 또는 리모델링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그렇다면 제로에너지 하우스는 무엇인가. 건물이 패시브 시스템을 갖춰 에너지 손실을 최소화한 후 태양광, 수소연료전지 등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고, 지열 및 태양열은 난방과 온수 등에 사용하는 것이다. 즉 집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함으로써 에너지와 탄소 배출을 ‘제로(Zero)화’하는 ‘100% 에너지 자급자족형’ 주택인 것이다. 그러면 제로에너지 하우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건물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재료부터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야 한다. 많은 국내외 사례와 연구 결과처럼 제로에너지 하우스에 가장 적합한 구조로 목구조, 즉 목조주택을 꼽고 있다. 이는 건축에 사용되는 목재를 생산, 가공할 때 소비되는 에너지가 철강의 0.6%에 불과하고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양 또한 현저히 적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연구 결과, 목재로 지은 건물은 같은 규모의 철근콘크리트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52% 줄었다. 이뿐만 아니라 목재는 나무가 자라면서 대기 중에서 흡수한 이산화탄소를 자기 몸속에 탄소 형태로 저장하고 이를 사용하는 기간 내내 유지하고 있다. 또 열전도율이 콘크리트의 10분의1, 철강의 300분의1 정도로 매우 낮아 단열 성능이 높다. 또한 대기 중 수분을 조절해 최적의 실내습도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목재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자연스러운 목재 무늬 또한 심리적, 시각적 안정감을 준다. 북미와 유럽에서는 혁신적인 연구 개발을 통해 신기술과 디자인을 목조주택에 적용하고 있고, 새로운 공학목재를 개발해서 철근콘크리트, 철강재와 함께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주택도 짓고 있다. 이미 런던과 멜버른 등에서는 10층 이상의 고층 목조아파트를 선보였다. 최근 캐나다 건축가 마이클 그린(Michael Green)은 30층 목조아파트의 설계를 마치고 시공을 앞두고 있다. 전 세계가 목조주택의 높이와 규모 제한을 극복하고 이를 현실화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11일 캐나다 퀘벡에서는 세계목조건축대회(WCTE 2014)가 열렸다.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과 북미 국가들은 목조건축을 다양하게 실행해 왔다. 아직 우리의 기술과 인식은 많이 부족하지만 다행히 국립산림과학원에서 2018년 세계대회를 서울에서 유치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아이스홀도 우리 기술, 우리 목재로 짓게 될 것이다. 에너지가 들어가지 않아도 편하고 쾌적한 집,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집, 나아가 지구 환경에 해를 끼치지 않는 집을 원한다면 제로에너지 하우스 ‘목조주택’을 선택하는 것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것이다.
  • 가을, 미술 품으로

    가을, 미술 품으로

    추석 명절을 앞둔 가을 화단에 풍성한 미술 축제가 잇따라 열린다. 1만점 가까운 작품을 쏟아내며 서울과 부산, 광주, 창원 등지에서 미술 관람객의 발길을 끌어모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20주년을 맞은 제10회 광주비엔날레는 다음달 4일 막을 올려 11월 9일까지 광주비엔날레전시관과 광주시립미술관, 중외공원 일대에서 펼쳐진다. 세계 3대 비엔날레 진입을 노리는 행사는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큐레이터인 제시카 모건이 총감독을 맡았다. ‘터전을 불태우라’(Burning Down the House)는 주제 아래 87억원의 예산을 투입, 20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매체의 다양성에 신경 썼다”는 모건 총감독의 말처럼 참여 작가들은 건축가, 영화감독, 무용가, 패션 디자이너, 공연 예술가 등으로 구성됐다. 39개국 106개팀(115명)의 작가들 중 90%는 이번에 처음으로 광주비엔날레를 찾는다. 2013 베니스비엔날레 영국관 대표작가인 제러미 델러(영국), 현대 미술계의 센세이션이라 불리는 얼스 피셔(스위스), 설치미술가인 코닐리아 파커(영국), 불평등과 규범을 다양한 매체로 탐구해 온 로만 온다크(슬로바키아) 등이 눈에 띈다. 또 누보 레알리즘의 선두주자였던 이브 클라인(프랑스),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인 댄 플래빈(미국) 등 현대미술의 대가들도 작품을 통해 관객과 조우한다. 아시아 작가들 가운데는 류사오둥(중국), 테쓰야 이시다(일본), 로델 타파야(필리핀) 등 아시아 역사와 변화상을 반영하는 작가들이 대거 참여한다. 제8회 부산비엔날레도 추석 연휴 직후인 다음달 20일 개막해 11월 22일까지 부산시립미술관과 광안리해수욕장 일대에서 이어진다. 후발주자로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던 부산비엔날레는 올해 창설 13주년을 맞아 30개국 160명의 작가가 작품 380여점을 전시한다. 주제는 ‘세상 속에 거주하기’(Inhabiting the world). 프랑스의 독립큐레이터인 올리비에 케플렝 전시감독이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그냥 살아갈 것인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의지를 갖고 살아갈 것이냐는 비엔날레의 주제를 ‘추상·운동, 우주, 건축적 공간, 정체성, 동물성, 역사·사회, 자연·경관’ 등 7개 섹션으로 풀어낸다. 총예산은 42억원. 두 비엔날레는 미술 전시 외에 학술행사, 국제교류행사, 시민참여 행사 등의 부대 행사도 마련했다. 공교롭게도 양대 비엔날레는 올해 개막까지 큰 내홍을 겪었다. 작품 전시 여부와 전시 감독 선정 등을 놓고 잡음이 끊이지 않아 운영상의 폐쇄성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이 과정에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대표이사와 오광수 부산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이 개인적인 이유로 사퇴 의사를 표명하거나 물러났다. 양대 비엔날레 외에 중소 규모의 비엔날레들도 관객을 찾아온다. ‘달그림자’가 주제인 제2회 창원조각비엔날레는 다음달 25일부터 11월 9일까지 경남 창원시 일대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마산합포구 돝섬에 국한됐던 1회 때와 달리 전시 장소를 돝섬과 마산항 중앙부두, 창원시립문신미술관 등으로 확대했고, 11개국 42개팀이 참여한다. 대구에서도 다음달 12일부터 10월 19일까지 ‘사진의 기억’을 주제로 사진비엔날레가 열린다. 스페인 출신 알레한드로 카스테요테가 감독이 기획한 전시에는 페루와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18개국 30여명의 작가가 명함을 내민다. 제8회 미디어시티서울도 다음달 1일 개막해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펼쳐진다. 미디어 아트의 최신 경향을 보여주는 전시는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인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이 총감독을 맡았다. 최원준과 양혜규, 민정기, 배영환, 다무라 유이치로(일본), 딘큐레(베트남), 오티 위다사리(인도네시아) 등 10여개국 30여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올해 주제는 ‘귀신·간첩·할머니’. 다음달 25일부터 5일간 서울 코엑스에서 진행되는 국내 최대 그림장터인 제13회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도 관심을 모은다. 미국, 일본 등 16개국, 186개 화랑이 참여해 국내외 작가 1500여명의 작품 4500여점을 전시·판매한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극락전 등 국보·보물 14점 보유…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명인·명물을 찾아서] 극락전 등 국보·보물 14점 보유… 2018년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경북 안동의 천년고찰 봉정사(鳳停寺)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추진되면서부터다. 오랜 역사와 전통, 아름다운 건축미를 자랑하는 봉정사는 영국 여왕의 방문과 영화를 통해 세계인들로부터 주목받은 바 있다. 문화재청, 대한불교조계종, 안동시는 2018년까지 봉정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를 위해 최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준비에 들어갔다. 2017년까지 등재를 위한 연구와 조사, 국내외 학술대회를 열어 유네스코 현지 실사를 마칠 계획이다. 봉정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인 전통사찰의 위상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사상·의식·생활·문화 등을 잘 계승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전해진다. 의상이 영주 부석사에서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그 봉황이 내려앉은 곳에 절을 세웠다는 설화가 있다.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갔다는 봉정사는 국보와 보물로 가득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을 비롯해 대웅전(국보 제311호), 화엄강당(보물 제448호), 고금당(보물 제449호), 대웅전 후불탱화(보물 제1614호),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 문화재를 무려 14점 보유하고 있다. 특히 극락전은 가공석 및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겹처마로 구성, 매우 간결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가다. 기둥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마찬가지로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다. 과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부석사의 무량수전이었다. 그러나 1972년 봉정사 극락전을 해체, 수리하는 과정에서 지붕 서까래를 건 도리에서 ‘1368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무량수전의 중수 시기보다 8년 앞섰다. 이로써 봉정사 극락전이 최고의 목조 건축물로 학계 인정을 받게 됐다. 봉정사는 1999년 4월 21일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다녀가면서 유명해졌다.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다”는 여왕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여왕은 봉정사 극락전을 둘러보고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나무 조각이 주위 경관과 잘 어울린다”며 감탄했다. 이어 방명록에 ‘조용한 산사 봉정사에서 한국의 봄을 맞다’라는 글귀를 남겨 봉정사에 스토리를 더했다. 여왕은 극락전 앞에서 돌멩이 하나를 주워 돌탑에 쌓고 “돌탑을 쌓았으니 복을 많이 받겠다”며 환하게 웃음 짓기도 했다. 사찰 입구 솔 숲길은 여왕이 다녀간 길이라고 해서 ‘퀸스로드’로 이름 붙여졌다. 봉정사 관계자는 “여왕이 봉정사를 방문한 직후 평일 1000여명, 주말과 휴일 2000~3000명의 관광객이 몰린 것을 시작으로 지금도 국내외에서 꾸준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대웅전 오른편의 가파른 언덕에 자리 잡은 영산암은 한국 영화사에 길이 빛날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년 배용균 감독), ‘동승’(2003년 주경중 감독)이 촬영된 곳으로 유명하다. 여유롭게 퇴락을 즐기는, 곱게 늙어 가는 절집의 자연주의 미학에 세계인이 공감한 바로 그 현장이다. 특히 ‘달마가 동쪽으로’는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그랑프리인 황금표범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산암은 바위 속에 자라는 소나무가 일품이다. 사찰이라기보다 사대부가의 아름다운 정원처럼 뛰어난 미를 갖춰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가까이서도 아름답지만 멀리서 바라보면 더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 같은 절집이다. 어느 건축가는 영산암을 놓고 “축복이며 신비”라고 격찬했다. 가을이면 봉정사 일대는 온통 샛노란 국화꽃 세상으로 변한다. 서후면 금계리에서 봉정사까지 8㎞ 구간은 각양각색의 국화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때맞춰 ‘봉정사 국화 대향연’도 열려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김재교(57) 안동시 문화예술과장은 “봉정사는 우리나라 목조 건축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 주는 대표적 건축물로 건축사적 가치뿐만 아니라 종교사와 문화사적으로도 높은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며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말했다. 글 사진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뉴스 플러스]

    국가직 7급 필기시험 점수 공개 안전행정부는 지난달 26일 실시한 국가직 7급 공채 필기시험 점수와 개인별로 적용된 가산점을 21일부터 닷새간 사이버국가고시센터(http://gosi.kr)에 공개한다. 본인의 점수를 확인한 뒤 예상점수와 차이가 있다면 24일부터 이틀간 사이버센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안행부는 이의를 제기한 응시자의 답안지를 재확인한 뒤 다음달 1일 성적을 재공개한다. 필기시험 성적 사전공개는 올해 9급 공채에 처음 도입됐다. 지방에서도 원산지관리사 시험 관세청이 그동안 서울에서만 시행하던 원산지관리사 자격시험을 서울과 대전, 제주 지역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오는 23일 실시되는 제12회 시험부터 적용한다. 시험장 확대로 지방 거주 수험생들의 시간적·경제적 부담이 줄어들게 됐다. 또 사전교육을 이수해야 시험을 응시할 수 있었던 ‘사전교육의무제’도 폐지했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에 따라 2010년 도입된 원산지관리사는 국가공인 자격으로 현재 1701명이 배출됐다. 2018 세계목조건축대회 유치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이 목조건축 분야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대회인 ‘2018 세계목조건축대회(WCTE)를 유치했다. WCTE는 세계 40개국, 800명 이상의 목조건축 전문가와 건축가, 목재산업계 관계자가 참석한다. 산림과학원은 지난 11일부터 4일간 캐나다 퀘벡에서 열린 WCTE 2014 대회에 참가해 호주·중국 등과 유치경쟁을 벌였다. 지난 6월 유치의향서를 제출하고 학술대회 기간 최종 심사가 이뤄졌다.
  • “미술관 관람 품위 있게”

    “미술관 관람 품위 있게”

    1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미술관 관람예절 캠페인 ‘뮤지엄 매너’ 선포식에서 정형민(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이정재(왼쪽에서 세 번째), 미술관 설계자인 민현준(오른쪽에서 세 번째) 건축가 등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獨 베를린 신국립미술관

    ■ 線…씨줄날줄 엮듯 절제와 균형의 미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세계적인 스타 건축가들의 각축장이나 다름없다. 특히 전쟁으로 인해 완전히 폐허가 됐던 포츠다머광장 주변은 1991년 수립된 종합개발계획에 렌조 피아노, 리처드 로저스, 헬무트 얀 등 유명 건축가들이 참여해 21세기 최첨단 도시의 이미지를 상징하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형성했다. 그런데 이들 최첨단 빌딩을 제압하고 베를린에서 최고로 꼽히는 건축물이 있으니 바로 현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의 신국립미술관이다. 엄격하리만치 단순한 구조,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경이로운 비율, 주변의 풍광까지 끌어들인 우아함 등 1968년 완공된 이 미술관이 지닌 궁극의 아름다움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빛나는 모습으로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2차 대전 후 베를린이 동서로 갈라지면서 박물관섬 등 유서깊은 건물들이 모두 동베를린에 편입되자 서쪽은 상대적으로 빈약한 문화시설을 보완하기 위해 과거 왕실의 사냥터에서 공원으로 바뀐 티어가르텐 남쪽에 문화포럼 단지를 조성했다. 전쟁과 분단으로 상처입은 시민들에게 예술을 통해 위안을 주는 일이 시급하기도 했고 동독 지역의 역사적 건물과 비교할 수 없도록 모더니즘 건축의 걸작들을 세운다는 계획이었다. 우선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전용극장인 필하모니홀이 한스 샤룬의 설계로 1960~63년 지어졌다. 다음으로 서베를린에 남겨진 19세기 회화작품과 20세기 걸작들을 전시하기 위한 새 미술관 건물이 필요했다. 베를린시에서는 이 임무를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세계적 명성을 쌓은 미스 반데어로에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미스 반데어로에(1889~1969)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 르 코르뷔지에(1887~1965)와 더불어 모더니즘 건축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건물은 1968년 완공됐고 동베를린에 있는 국립미술관과 구별하기 위해 신국립미술관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다. 결과적으로 미스 반데어로에의 생애 마지막 작품이 된 미술관에는 그가 일생동안 일관되게 추구해 온 건축 철학과 기술력이 총집결돼 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절제되고, 수평과 수직의 아름다운 균형이 시적이며, 많은 것을 담아 보일 수 있는 거대한 공간. 신고전주의 건축의 엄격한 질서와 단순함을 철과 유리를 통해 표현한 이 미술관은 미스 반데어로에가 미국 망명 30년 만에 모국에 남긴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20세기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히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평을 듣는다. ■ 明…빛을 담은 유리상자, 소통의 공간 건물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크기의 유리로 사방의 벽을 이룬 정방형 홀 위에 묵직한 강철 평지붕을 얹은 모양이 인상적이다. 기단 위에 널따란 테라스를 만들고 그 한가운데에 정방형 유리 상자를 세운 형상이다. 강철로 된 가로·세로 65m 길이의 사각 평지붕을 각 면에서 두 개씩 8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을 뿐 건물 내부에는 기둥이 없다. 유리 상자의 벽은 강철지붕의 추녀 끝에서 7.2m 안으로 후퇴시켜 놓았다. 기자의 신국립미술관 취재에 동행한 재독 건축가 신이도씨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기단이 있고 지붕을 기둥이 떠받치며 기둥과 유리벽 사이를 따라 길을 만든 것 등 현대적인 건축물이지만 고대의 신전과 철저하게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도 단순하고 절제된 외형이 강철의 무게감을 상쇄시키는 구조적 완벽함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포츠다머 대로에서 보면 기단 위에 지어진 단층 건물 같지만 완면한 경사지에 들어선 미술관은 2개 층으로 이뤄져 있다. 당초 구상이 국립회화관과 베를린시립 20세기미술관 등 두 곳의 미술관에 있는 수집품을 통합한 미술관을 짓는 것이었기 때문에 전시공간을 크게 특별기획전시와 소장품의 기획전이 열리는 공간으로 구분해 놓았다. 특별 전시를 위한 1층의 대형 전시공간의 내부는 기둥이 없이 좌우대칭으로 매끈하다. 이는 미스 반데어로에의 작품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이다. 천장은 8.4m로 높아서 거대한 공간이 필요한 설치미술 등 기획전시가 가능하다. 사방이 유리로 개방되어 있어 자연광을 최대한 받아들이며 외부와도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느낌이 든다. 단단한 직사각형 지붕 아래로 실내조명이 들어오면 내부가 투명하게 들여다보여 신전의 성스러움까지 느껴진다. 지하층은 상설전시실과 기획전시실로 구성되는데 전시실의 한쪽 면은 외부 조각공원과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완만한 경사를 살려 내부에 자연광과 외부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차경(借景)을 시도했다. ■ 合…전쟁의 상처 씻은 동·서 화합 컬렉션 신국립미술관에서는 20세기 현대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야외 테라스에 설치한 알렉산더 콜더의 조형물을 비롯해 로베르 들로네, 파울 클레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회화작품들은 물론 바우하우스 작가들과 사실주의, 표현주의 등 독일 현대미술 컬렉션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전쟁으로 파괴된 세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오토 딕스와 게오르게 그로스, 막스 베크만 등 정치적으로 민감했던 시기에 활동한 독일 현대미술 거장들의 대표작들을 소장하고 있다. 여기에 동베를린 국립미술관에 있던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오토 뮬러, 카를 슈미트로틀루프, 에리히 헤켈 등 독일 표현주의 작가들의 걸작들과 베르너 튀브케, 베른하르트 하이지그 등과 같은 분단시절 동독지역서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이 더해지면서 독자적인 소장품 리스트를 자랑하고 있다. 글 사진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예술이 오고가는 플랫폼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예술이 오고가는 플랫폼

    요즘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 등 장르를 불문하고 현대미술의 최신 동향을 가장 빨리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베를린을 꼽는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수십년간 침잠했던 베를린이 그간의 공백을 순식간에 만회하고 세계 현대미술의 메카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다양한 예술의 흐름을 소화하는 전시공간이 풍부하다는 점이다. 함부르거반호프 현대미술관은 현대 미술계에서 베를린의 위상을 끌어올린 국제적 명소로 꼽힌다. 1847년 후기 르네상스양식으로 지어진 3층 규모의 건물 함부르거반호프는 이름 그대로 함부르크기차역이었다. 1880년대 말까지 함부르크와 베를린을 오가던 기차가 머물던 역은 2차 대전 이전까지 교통박물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2차 대전 때 일부가 파괴되고 바로 옆으로 장벽이 설치되면서 수십년 동안 폐허로 방치됐다. 그러던 중 베를린탄생 750주년을 맞은 1987년 베를린시에서 일부를 복구해 ‘베를린으로의 여행’이라는 전시를 열었고 이어 이듬해엔 스위스의 큐레이터 헤럴드 제먼이 ‘무시간’이라는 현대미술 전시를 기획했다. 대규모의 폐허공간이 현대미술과 이루는 조화는 세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고 새로운 쓰임새를 발견한 베를린의회는 함부르거반호프를 공식적인 현대미술관으로 사용하기로 1989년 합의했다. 통일과 함께 미술관 개축작업이 탄력을 받아 7년간의 긴 공사 끝에 1996년 지금의 미술관으로 개관했다. 개축작업을 맡은 건축가 요제프 파울 클라이후에스는 기존 역사의 철골구조를 그대로 살려 거대한 중앙전시실로 만들고 양옆 동서쪽으로는 창고 건물을 날개처럼 연결해 전시장 및 수장고를 설치했다. 국립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1960년대 이후 작품들이 이전해 왔고 수준 높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소장한 개인 컬렉터 에리히 막스가 장기 대여 형식으로 자신의 소장품을 내놓았다. 요제프 보이스, 사이 톰블리, 로버트 라우션버그, 앤디 워홀, 엔조 쿠치, 제프 쿤스, 브루스 나우먼 등 아방가르드, 미니멀리즘, 미국 포스트모던, 독일 신표현주의, 신야수파 등 주요 미술운동의 대가들의 작품을 총망라했다. 여기에 베를린 국립미술관에서 대여한 백남준, 존 케이지,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이 가세해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현대미술 명소로 단번에 떠올랐다. 함부르거반호프의 브리타 슈미츠 오베르쿠스토딘 수석 큐레이터는 “신국립미술관이 있기는 하지만 늘어나는 소장품과 새롭고 실험적인 현대미술을 소화하기엔 역부족이었는데 함부르거반호프가 개관하면서 최신 미술계의 흐름을 보여 주는 전시장으로서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 내고 있다”면서 “과거에 여행객들을 실어날랐던 기차역이었던 것처럼 끝없이 변화하는 ‘바로 지금의 예술’이 오고 가는 곳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lotus@seoul.co.kr
  •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함혜리 선임기자의 미술관 건축기행] 건축가 ‘미스 반 데어 로에’는…

    ‘적을수록 풍요롭다’(Less is more)는 명언과 ‘보편적 공간’(Universal space)의 개념으로 유명한 20세기의 대표 건축가. 1886년 아헨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석공업 가게에서 일하며 미술교육을 받아 지역 디자인 회사에서 근무하다 베를린으로 이주했다. 1908~1912년 페터 베렌스의 스튜디오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며 건축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건축은 그것이 속한 문화의 의미와 중요성과 소통한다고 생각했던 그는 위대한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에 대해 독학하며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의 성격과 본질이 무엇인지를 탐구했다. 고대 그리스 건축의 단순함과 완벽한 비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며 평생의 건축철학으로 삼는다. 대학 학위는 없지만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건축적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는 1921년 사무용 고층건물의 설계경기에서 ‘전면이 유리로 된 다면체의 마천루’라는 매력적인 설계안을 내놓으며 극적으로 등장했다. 베를린의 문화엘리트들과 어울리며 건축에 전념하기로 하면서 자기 이름을 개명했다. 원래 이름은 마리아 루트비히 미하엘 미스였지만 1922년부터 ‘반데어’와 어머니의 처녀적 성 ‘로에’를 붙였다. 흔히 미스(Mies)라고 부르는 그의 길고 희안한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미스는 극적인 명확성과 단순성으로 나타나는 모더니즘 건축으로 특징지어지는 선구적인 프로젝트 연작을 내놓으며 진보적인 디자인잡지 ‘G’, 모더니스트 건축단체인 데어 링에도 참여했다.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의 독일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박람회 이후 분해됐다 1988년 재건축)과 1930년 체코 브르노에 빌라 투겐트하트로 선풍을 일으켰고 바우하우스 디자인학교의 교장을 맡아 모더니즘 건축과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기능적으로 발전시킨다. 하지만 1933년 바우하우스가 폐교되고 점점 심해지는 나치의 압박을 견디다 못해 1938년 훗날 일리노이 공대가 되는 시카고 아머 공대의 초빙을 받아 미국으로 이민했다. 아머 공대 건축대학 학장을 맡아 미국의 현대건축 교육 발전에도 기여하는 한편 일리노이 공대 크라운홀,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판스워드 주택 등 기능과 구조, 경제성과 미학적 측면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건축물을 다수 지었다. 건축가 필립 존슨과 공동으로 작업한 뉴욕 맨해튼의 시그램 빌딩(1958년)은 치밀하게 계산된 비례미가 절정을 이루며 철과 유리를 사용한 커튼월 건축의 가장 유명한 사례로 꼽힌다.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을 완공한 지 1년 뒤인 1969년 시카고에서 숨을 거뒀다. lotus@seoul.co.kr
  • [주말 하이라이트]

    ■SBS 스페셜(SBS 일요일 밤 11시 15분) 2014년 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각 분야를 대표하는 전문가들과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화가 김정헌과 임옥상, 사학자 안병욱과 윤용이, 건축가 승효상과 조재원, 소설가 은희경 등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 7인이다. 유홍준을 필두로 길고 긴 여정을 지나온 그들은 일본 교토와 아스카, 나라, 그리고 규슈를 누비면서 찾은 ‘일본 속의 한국’을 드디어 공개한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열정과 입담, 필력으로 ‘유홍준표 답사’를 만들어 온 유홍준. 문화라는 거울을 통해, 그리고 잊힌 역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을 이으려는 뜻깊은 여정을 함께한다. ■가족끼리 왜 이래(KBS2 토요일 밤 7시 55분) 아버지 차순봉의 뒤치다꺼리를 받으며 시작된 차씨 삼남매의 하루는 여느 때와 다름없다. 게다가 오늘이 아버지 순봉의 생일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자식은 하나도 없다. 한편 12년 전 물에 빠진 달봉의 목숨을 구해 준 서울은 먼 훗날 결혼하자고 손가락을 걸었던 달봉과의 장난스러운 약속만 믿고 서울로 올라온다. ■삼총사(tvN 일요일 밤 9시) 달향은 무과시험에 합격하자 첫사랑 윤서와 혼인하기 위해 한양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달향은 자신들을 ‘삼총사’라 칭하는 소현세자와 그의 호위무사 허승포, 그리고 안민서라는 범상치 않은 무술 고수들을 만난다. 연암 박지원이 자금성의 서고에서 ‘박달향 회고록’이라는 낡은 책을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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