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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선 가득한 세상에 던지는 ‘인생 화두’

    위선 가득한 세상에 던지는 ‘인생 화두’

    새빨간 책 표지부터 심상찮다. 하긴 울다가 웃으면 ‘거기’에 털이 난다며 스스로 ‘항문발모형’ 문학을 지향한 작가가 쓴 책이기에 더욱 그렇다. 작가는 ‘갈 데까지 간다.’며 흡사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돈키호테를 자처한다. 아예 B급 취향의 독자를 추구한다고 공언까지 한다. 그는 어쩌면 문학계의 ‘싸이’인지도 모른다. 2012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최민석(35)의 장편소설 ‘능력자’(민음사 펴냄)가 출간됐다. 2010년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해 보여준 능청스럽고 유머러스한 화법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을 단박에 읽게 만드는 힘이다.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연봉을 챙기는 ‘엄친아’나 ‘엄친딸’이라면, 다소 불편할 만한 작가의 화법은 시종일관 책 속에서 싱싱한 활어회처럼 펄떡인다. 소설은 승자만 떠올리며 ‘능력자’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땀흘리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한다.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너무나 당연하지만 종종 무시되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야설을 쓰며 연명하는 삼류작가 ‘남루한’과 왕년의 세계 챔피언인 미치광이 복서 ‘공평수’가 빚어내는 추락과 회복의 롤러코스터가 이야기의 중심 축이다. 주인공 남루한은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문예지로 등단했으나 작가로서 자의식이 없다. 신인 무명작가로서, 오로지 먹고살기 위해 선배로부터 중고생이 읽는 야설을 써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순수문학이란 표현으로도 부족해 청순문학을 추구하던 남루한은, 잠시 망설이다 수락한다. 그의 청순문학 소설집은 2년 뒤에나 나올 수 있는 데다, 당장 통장의 잔고는 달랑 3320원. 작가는 “문예지를 끼고 있는 출판사들이 문예지에 발표한 소설들만 인정하는 풍토를 조성하고…그 카르텔에 끼지 못한 출판사들이 내는 책을…‘상업 소설’로 격하시키기 위한 것 아닙니까.”(16쪽)라며 문학계에 일침을 가한다. 출판사가 판단하는 소설의 ‘작품성’이야말로 작가들을 통제하기 위한 정치적 술수라고 꼬집는다. 주인공은 결국 ‘소희’라는 가상의 여주인공을 앞세워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발기로 괴로워하는’, 중고생이나 읽는 야설을 쓴다. 남루한의 아버지는 전국구 주먹인 ‘남강호’. 아버지를 따르던 협잡꾼, 사기꾼, 건달, 약쟁이, 운동선수 가운데 공평수란 미치광이 복서가 찾아온다. 세계 챔피언이었으나 지금은 “매미가 바로 우주 에너지의 근원”이라고 주장하며 정체불명의 파동에너지 스티커를 팔고 있다. 그런 공평수가 남루한에게 자서전 대필을 부탁한 뒤 나직이 중얼거린다. “피땀 흘려 챔피언이 된 나조차, 무능력하기 그지없잖아…끝없는 자기학대, 그래서 자신이 자기 삶의 주인인지 노예인지 알 수조차 없는 상태…”(188쪽) 남루한은 ‘몰락한 세계 챔피언의 처절한 말로’를 주제로 잡고, 자서전 대필로 목돈이나 챙기자며 공평수를 얕잡아본다. 하지만 일은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공평수의 재기를 향한 도전, 삶의 진정성에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동화되어 간다. 남루한은 공평수가 링에 다시 서고 싶었던 것처럼, 다시 글이 쓰고 싶어진다. “달렸다. 땀이 났다. 눈물이 났다. 물을, 마셨다. 다시 노트북을 열고 퇴고를 시작했다…영원한 나의 챔피언이 그랬던 것처럼.”(220쪽) 멸종한 티라노사우루스만 못한 처지의 왕년의 챔피언에게서 ‘삶의 근육에 다시 긴장을 주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발견한 것이다. 소설가 백가흠은 “허위와 위선적 사고로 가득한 이 세상의 그늘에 내려앉은 환한 햇빛 같은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콩나물 전도사’ 한재섭 목사의 콩나물 희망 프로젝트

    ‘콩나물 전도사’ 한재섭 목사의 콩나물 희망 프로젝트

     왕성한 전도를 펼치고 있는 한재섭 목사가 매주 목요일 서대문 바위샘교회에서 조경 수익금으로 65세 이상 노인 1000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직접 키운 콩나물도 나눠주고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그는 오래 전부터 콩나물과 함께 해 ‘콩나물 전도사’로 불린다.  한 목사의 ‘콩나물 전도사’란 별칭에는 남다른 이면이 있다. 충남 홍성의 바닷가에서 12대 독자 집안의 장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때 비행 청소년들과 어울리면서 싸움만 하는 건달 생활을 했다. 365일을 술을 마시면서 방탕한 세월을 보낸 것.  그러던 중 88서울올림픽이 한창일 때 큰 사고를 쳤다. 홍성시내 가장 큰 상가에서 술을 마시면서 담배 불씨를 잘못 처리해 큰 화재가 난 것. 그는 방화죄로 감옥살이를 했다. 후회의 날이 지속되면서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삶과 만난 후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이때부터 작지만 자신보다 더 어렵고 소외받는 계층을 위해 살아야 겠다는 결심을 했다.  한 목사는 “어렵고 힘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할 수만 있다면 행복하다.”면서 “이들이 잘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하고 생계를 지원하는 ‘천국의 동산’ 복지재단을 설립하는 것이 또하나의 꿈”이라고 말했다. 그는 콩나물을 선물하면서 전도한 이야기를 묶은 ‘천국을 콩나물시루로 만드는 콩나물 전도법’이란 책도 썼다. (031)719-0108.  정기홍 기자 hong@seoul.co.kr  
  •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창수-이 사나이의 순정, 짓밟힌다

    [부산국제영화제서 만난 주목할 만한 작품] 창수-이 사나이의 순정, 짓밟힌다

    창수는 다른 사람의 옥살이를 대신하고 돈을 받는 인천 차이나타운 삼류 건달이다. 서른을 훌쩍 넘긴 건달이지만, 아직 수총각이다. 어느 날 밤길을 걷던 창수 앞에 고급 승용차가 멈춰 선다. 차에서 내린 도석은 미연을 끌어내려 마구 주먹질을 한다. 창수는 말려보려 했지만, 외려 한방에 나가떨어진다. 외모만 봐선 말도 섞지 않을 법한 둘의 짧은 동거는 그렇게 시작된다. 사랑에 빠진 창수는 반지를 사서 미연에게 청혼을 하려 한다. 하지만, 집에 와보니 미연은 이미 숨진 채 침대에 누워 있다. 알고 보니 여자는 전국구 조폭 두목의 애인이면서 조직의 2인자인 도석과도 얽힌 터. 경찰과 조폭들의 추적을 동시에 받게 된 창수는 생애 처음으로 자신만의 의지로 행동을 결심한다. 제17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섹션에 초대된 ‘창수’는 시나리오 단계에서 많은 남자배우가 탐냈던 영화다. 평생 하류인생을 살던 삼류 건달이 사랑에 빠지고, 그 여자를 위해 전국구 조폭과 10여 년에 걸쳐 외로운 대결을 펼친다는 영화의 얼개는 구식 누아르의 느낌이지만, 충분히 매력적이기 때문. 창수 역을 임창정이 차지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충무로는 반신반의했다.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색즉시공’ 등 수많은 영화에서 임창정은 코믹연기의 황제로 군림했다. 그러나 웬걸, 스크린 속 임창정은 영락없는 창수였다. “감히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나보다 뛰어난 연기자는 많지만, 창수를 나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던 임창정의 언급은 빈말이 아니었다. 주먹솜씨는 건달치곤 수준 이하. 하지만, 친동생처럼 아끼는 동료 건달 상태(정성화)와 사랑하는 미연(손은서) 앞에서 무슨 일이든 해결할 것처럼 허풍 떠는 창수에게선 짙은 연민이 묻어난다. 표정과 목소리의 울림만으로 임창정은 창수로 다시 태어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기시감이 들었을 수도 있다. ‘파이란’(2001)이 떠오를 것이다. 평생을 비루하게 살아온 인천의 삼류 양아치 강재(최민식)가 한 여인(장바이즈)의 사랑을 깨달은 뒤 조직 보스의 뜻을 거슬러 새로운 인생을 결심한다는 기본 얼개는 ‘창수’와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창수’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늦깎이 신인 이덕희 감독은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을 보좌했던 조감독 출신이다. 부산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주말 영화]

    [주말 영화]

    ●벅스 라이프(EBS 일요일 오후 2시 30분) 발명가 개미 플릭은 전통을 중시하는 개미 왕국에 살면서 언제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것만 만들어 낸다. 그나마도 실패작으로 끝나니 다른 개미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이번에도 탈곡기를 만들어 개미 왕국의 수확량 증대에 기여해 보려 했으나 오히려 다른 개미들이 애써 모아 놓은 곡식 더미를 몽땅 물속에 빠뜨리고 만다. 매년 추수철이면 호퍼가 이끄는 메뚜기 떼가 몰려와서 개미들이 열심히 모아 놓은 곡식의 대부분을 진탕 먹어치우곤 했다. 힘세고 날렵한 메뚜기들의 위협에 개미들은 곡식을 꼬박꼬박 상납해 왔다. 그런 그들에게 줄 곡식을 플릭이 몽땅 잃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호퍼의 신경을 긁는 바람에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며, 마지막 잎이 떨어지기 전까지 예년의 두 배에 달하는 식량을 모아 놓으라는 호퍼의 명령이 떨어진다. 한편 여왕 계승을 앞둔 아타 공주는 말썽쟁이 플릭이 차라리 없는 게 도와주는 거라 생각하여 개미 왕국 너머 메뚜기들을 물리칠 전사 벌레를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 특선 독립영화관-슈퍼스타(KBS1 토요일 밤 12시 55분) 내일의 슈퍼스타를 꿈꾸는 두 남자의 못 말리는 2박 3일이 시작된다. 별 볼일 없는 옥탑방 백수 진수는 4년째 영화감독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그간 두 편의 작품이 캐스팅과 투자 단계에서 무산되었고, 이제 막 세 번째 시나리오를 탈고한 후 투자 결정이라는 고단한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조감독 시절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된 건달전문 단역 배우 태욱이 진수를 찾아온다. 그는 어울리지도 않는 블랙 세단을 타고 와 우리도 영화인이니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자고 제안하고, 진수는 태욱의 강권에 못 이겨 부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모처럼만의 가벼운 설렘과 흥분도 잠시. 상황은 자꾸만 꼬여 가고, 씁쓸한 해프닝이 2박 3일 동안 연속적으로 펼쳐진다. ●스텔스(OBS 토요일 밤 11시 25분) 가까운 미래, 개인이 아닌 국가를 목표로 한 국제테러 방지를 위해 극비리에 무기개발에 착수했던 국방부. 관제센터의 통제가 불가능할 경우 스스로의 감정과 판단에 의해 독자적인 임무 수행이 가능한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에 성공한다. 새로운 무인전폭기 스텔스가 실전 배치되자 최정예 스텔스 파일럿 부대가 헨리, 벤, 카라로 구성되면서 어느 때보다 심한 긴장감에 휩싸인다. 한편 악천후 속 극비 임무를 수행하던 스텔스기는 돌발상황을 겪은 이후 점차 통제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든다. 인간에 대한 의심으로 정비조차 거부하던 스텔스는 급기야 독자적인 상황판단으로 목표를 정하고 무차별 폭격을 감행한다. 그렇게 아군에서 가장 강력한 적으로 변해버린 스텔스기를 상대로 최정예 3인 편대의 처절한 저항이 펼쳐지는데….
  •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김문이 만난사람] 소리인생 75년…‘배뱅이굿’ 무형문화재 이은관 옹

    거침이 없다. 결코 쉬는 일도 없다. 남성의 바리톤 같은 저음에서 여성의 소프라노 목소리까지 시공을 뛰어넘으며 우리 가락을 잘도 버무려 낸다. 때로는 웃음과 슬픔, 때로는 깊은 곳에 묻혀진 회한을 꺼내 달래고 어루만진다. 희로애락, 그 가슴을 후벼파고 쥐어짜기도 한다. 95살, 5년 후에는 100살이 된다. 서도소리 명인 이은관(중요무형문화재 29호) 선생은 우리나라에서 ‘배뱅이굿’을 가장 잘 부른다. 현재까지 ‘배뱅이굿’에 관한 한 그를 따를 자가 없는 명창이다. 그 나이에도 여전히 제자를 가르치고 매달 4~5회씩 공연을 하는 등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대문 주변에 위치한 ‘이은관 민요교실’을 찾았다. 이 선생은 제자 전옥희(배뱅이굿 이수자)씨와 함께 앉아 다음 공연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가 다리가 조금 불편해서 일어서지 못해 미안하다.”며 앉은 채로 반긴다. 빨간 티셔츠에 짙은 회색 상의 차림이어서 그런지 한복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오늘은 한복을 집에 두고 왔으니 뭐 어때. 이런 모습도 좋지 않아요?”라며 사진 촬영에 응했다. 대신 장구를 잡더니 공연 때 하는 것처럼 배뱅이굿 중 한토막을 즉석에서 흥겹게 읊어댄다. “옛날 서울 장안에 이 정승 김 정승 최 정승 삼 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아들 딸이 없어서 명산 대찰에 불공을 드려서 아들 딸 좀 낳아 보겠다고 삼 부인 삼 정승이 명산 대찰을 찾아가는데 삼 부인이 그냥 매일같이 아들 딸 낳게 해 달라고 빌고 정성을 드렸더니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삼 부인이 아마 그달부터 뱃속에 뭐 하나씩 생겼던가 봐요. 하루는 말이요. 삼 부인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서 꿈 야기판이 벌어졌어요. 제일 먼저 이 정승 부인께서 한마디 해보이는데 아이고 난 저번에 꿈을 꾸었는데 그저 꿈에 하얀 백발 노인이 머리달비 한쌍을 주길래 그 달비 받아서 치마폭에다 배배 틀어연 꿈을 꾸었는데 어찌 그런지 요즘은 그저 머리가 자끈자끈 아픈게 그저 시큼털털한 개살구나 한 그릇 먹었으면 좋겠어~” 이 선생은 “이제 그만 됐습니다.”라고 할 때까지 한 호흡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나간다. 10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도대체 그런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여 건강에 대한 얘기부터 나왔다. 이 선생의 웃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해맑고 환하다. 그 자체만 해도 건강 유지 방법 중 하나이다. “나 말이오? 건강하죠. 그러니까 이때까장 노래부르잖아요. 전화 목소리는 잘 안들리고 가끔 다리가 아파서 걷는 것을 조심하고 있어요.” 병원에 입원한 적은 한번도 없으며 다만 건강검진을 위해 3일 정도 입원한 적이 있다고 옆에 있던 제자가 거들었다. 그렇다면 75년의 소리인생을 살아오면서 지금도 무대를 휘어잡는 진짜 건강비결은 무엇일까. “나는 말이에요. 생활이 규칙적이죠. 식사를 하루에 다섯 번 해요. 먹고 싶을 때 조금씩 다섯 번을 먹는 습관이 있어요. 소식이지요. 하루 세 끼가 아니라 다섯 끼이기 때문에 혼자서 해먹지요. 기본 반찬은 며느리가 갖다 주는데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동네 슈퍼에 가서 미리 사놨다가 혼자 요리를 해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선생의 자택은 서울 황학동이다. 사업을 하는 아들 부부가 2층에서 살고 이 선생은 아래층에 혼자 산다. 주로 어떤 음식을 좋아할까. “원래 고기를 좋아해요. 소고기도 좋아하는데 돼지고기 사다가 김치에다 라면을 넣고 끓여 먹으면 아주 맛있어요. 그래저래 고기는 한 달에 20일 이상 먹는 편이지. 소식으로 여러 번 먹고, 또 고기를 자주 먹는 그런 습관이 30년이 넘었어요. 요즘에는 잠을 잘 자요. 낮이건 밤이건 자고 싶을 때 1시간이나 3시간씩 여러 번 잠을 자요. 밤에 자다가 일어나 출출하면 돼지고기를 넣은 김치찌개도 해 먹고 다시 자고 아주 편해요. 잠이 안 오면 악보 그리고 작사하고, 심심할 시간이 전혀 없어요(웃음).” 그는 지금도 작사 작곡을 한다. 세상에 드러내놓지 않는 자작곡(신민요와 민속민요)만 100여편에 이른다. 또 색소폰, 전자오르간, 아코디언 등 서양악기는 물론이고 피리, 가야금 등 대부분의 국악기도 다룬다. 이 선생의 말대로 ‘심심할 틈’이 도저히 없다. 올해는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있을까. 이 선생은 “나는 잘 몰라요. 우리 제자한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한다. 옆에 있던 제자 전씨가 얼른 얘기한다. “10월 9일 소월아트홀(서울 행당동)에서 공연이 있어요. 제자들과 함께하는 무대이지요. 그리고 10월 16일 밀양에서 있고, 연말까지 10회 정도 공연을 할 예정입니다. 선생님(이은관)의 열정은 정말 대단해요. 지금도 한 달에 큰 행사만 2~3회 정도 합니다.” 화제를 옛날 얘기로 돌렸다. 어떻게 소리를 하게 됐는지 궁금했다. 이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신불출(만담가이자 연극인)의 ‘대머리 영감’이나 ‘엉터리’, ‘견우직녀’, ‘홍길동’ 같은 ‘유성기’를 동네 사랑방에서 어른들과 함께 들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농부였던 부친이 노래를 잘 불렀다고 회고한다. “아버님 따라 밭에도 가고 산에도 갔지요. 그때마다 아버님이 ‘나무하러 가세 나무하러 가세, 상상 마루에 올라가세’ 하는 산타령을 지게 작대기로 장단을 맞추면서 아주 잘 불렀어요. 내가 그걸 따라 부를 때마다 흥이 납디다. 아마 내 노래 소질은 아버님을 닮은 것 같아요.” 초등학교 시절 배운 ‘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라는 창가,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 등의 동요를 불러 학예회에서 우등상을 받기도 했다. 17살 때 강원도 철원극장에서 콩쿠르가 열렸다. 주위의 권유에 못이겨 출전해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일등상을 받았다. “그때 상을 받는 바람에 얼씨구나 하고 좋아했지요. 이젠 노래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로 갔어요. 왜냐하면 서울에는 방송국도 있고, 서울에 가면 출세하는 줄 알았지요. 결국 어떻게 해서 경성방송국에 출연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서 더욱 우쭐했지 뭡니까. 고향에 다시 갔더니 여기저기에서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하더군요.” 하지만 그는 노래실력을 탐탁잖게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황해도 황주에 있는 이인수 명창에게 찾아가 배뱅이굿과 서도소리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했다. 이에 대해 그는 “3개월 동안 스승님 집에서 먹고 자고 하며 노래를 배웠는데 아주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셨다.”면서 “재담이 아주 길고 다양하셨다.”고 술회한다. 이후 이 선생은 서울로 다시 와 조선가무단에서 유랑극단 생활을 했다. 이때 특유의 높고 고운 소리의 구성진 창법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배뱅이굿 1인자라는 얘기를 들었다. 원래 배뱅이굿은 굿이 아니라고 이 선생은 강조한다. 남도의 판소리처럼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소리로 풀어내는 1인 창극이라는 설명이다. 다시 말해 탁발 나온 상좌중과 사랑에 빠진 정승의 딸 배뱅이가 상사병을 앓다 죽자 부모가 딸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팔도에서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데 건달 청년이 거짓 무당 행세로 횡재한다는 줄거리다. ‘배뱅이굿’은 경쾌하고 장조가 많은 특징이 있으며 이 선생이 이런 장단을 처음으로 정립했다.1984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는 슬하에 6남매를 두었다. 16살 차이 나는 맏딸만 먼저 세상을 떠났다. 가족 얘기가 나오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진다. “소학교 시절이었지요. 하루는 부모님이 결혼하라고 해서 선을 보러 말타고 20리를 갔습니다. 얼굴도 제대로 못봤는데 방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신부 목소리가 아주 곱더군요. 아이 셋 낳고 먼저 갔습니다. 내가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못 시켰어요. 그게 한이 됐지요. 출세하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고 나중에 돈이 생기니까 ‘공부값’으로 자식들한데 얼마씩 주었습니다.” 그는 가족들과 매년 초 한 번씩 정기적으로 만난다. 증손자까지 모두 20여명이라며 웃는다. 다복하지 않으냐는 표정이다.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꿈이 있기 마련이다. “5년만 있으면 100살입니다. 남은 인생 잘 마무리해야지요. 뒤돌아보면 부모님 속을 많이 썩였고 먼저 세상을 떠난 처가 생각납니다. 내가 제자를 많이 받아들이는 것도 그런 한이 있어서 그래요. 정신이 또렷할 때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나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제자를 키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민속악도 그냥 소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악보를 보고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터뷰를 마치며 일어섰더니 “추석 잘 보내시고 일어나지 못해 미안해요.”라며 파안대소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은관 옹은 고교시절 마을 콩쿠르서 1등 후 소리공부…‘배뱅이굿’은 이인수 명창에게 배워 1917년 11월 27일 강원도 이천에서 8형제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보통학교를 나온 뒤 철원고등학교 시절 마을 콩쿠르대회에 나가 ‘창부타령’과 ‘사설난봉가’를 불러 1등을 차지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서울과 황해도를 오가며 본격적인 소리공부를 했다. 14살 때 4살 연상과 결혼했지만 떠돌이생활로 소리인생을 시작했다. ‘배뱅이굿’과 ‘서도명창’은 황해도 황주에서 스승 이인수 명창에게 배웠다. 1957년 양주남 감독의 영화 ‘배뱅이굿’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1984년 배뱅이굿으로 중요무형문화재 29호로 지정받았다. 2002년 제9회 방일영국악상, 1990년 보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지금도 한 달 평균 큰 행사만 2~3회를 치를 만큼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슬하에 6남매를 두었으며 서울 황학동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다.
  •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전남 고흥 거금도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전남 고흥 거금도

    남도에 가서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흥에서 힘자랑 말라는 겁니다. 갯바람 맞고, 갯것 먹으며 자란 고흥 사내들의 골격이 하나같이 단단하고 힘 또한 장사라는 뜻일 테지요. 여기서 ‘고흥’은 구체적으로 거금도(居島)를 뜻한다는 게 현지인들의 대체적인 인식입니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김일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건장한 사내의 너른 가슴팍을 닮은 섬, 그곳에서 마주하는 풍경 또한 거칠고 호방합니다.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나고 자란 곳 전남 고흥이 장사의 고장으로 알려지게 된 데에는 씨름으로 명성을 얻었던 배경이 깔려 있다. 고흥은 전북 완주의 봉동읍과 더불어 씨름으로 유명했다. 특히 거금도 출신의 사내들이 곧잘 돋보이는 성적을 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1960~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박치기왕’ 김일(1929~2006)이다. 184㎝의 거구였던 김일은 어렸을 때 부터 근동의 씨름판을 휩쓸었을 만큼 이름난 씨름꾼이었다고 한다. 거구의 씨름장사들이 즐비하니, 외지의 건달들이 고흥땅에서 기를 펴기도 쉽지 않았을 터. 고흥에서 힘자랑 말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게다. 이처럼 김일을 빼고 거금도를 말할 수는 없다. 김일의 제자인 백종호(65) 김일기념체육관장은 “전국의 섬 가운데 거금도에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온 것도 오로지 (김일) 선생님의 공”이라고 했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반칙왕’(2000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선생님을 불러 ‘임자의 희망이 뭐냐’고 물었는데,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답했다.”며 “이후 ‘청와대 지령 8호’로 거금도에 전기 시설이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거금도에 들면 우선 김일기념체육관에 들를 일이다. 그런데 기념관치고는 다소 옹색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영웅에 대한 후세의 대접이 참 각박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김일이 누군가. 너나없이 곤궁했던 시절, 박치기 한 방으로 국민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줬던 인물이다. 하지만 기념체육관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흔적이란 동상 하나와 낡은 사진이 전부다. 그나마 동상은 6척 장신이었던 김일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작고,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조차 구겨지고 변색됐다. 백 관장은 “방송사 등이 보관하고 있는 경기 장면 등을 상영하려 해도 천문학적인 저작권료 때문에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기념관에 영상 자료 등을 기부하는 것을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회 공헌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아쉽기만 한 대목이다. 김일기념체육관 바로 앞엔 김일의 생가와 그가 잠든 묘, 그리고 기념비 등이 어우러진 공간이 조성돼 있다. 그런데 이곳엔 뜻밖에도 김일이 아닌, 진돗개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흥군청의 마이수 관광기획계장은 “김일 선수가 박치기왕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 개”라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군인들의 겨울 방한복으로 흔히 개가죽이 쓰였다. 당시 김일 선수가 기르던 개도 일본 순사에 의해 공출로 끌려갔는데, 1시간여 만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일본 순사가 들이닥쳤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김일은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박치기로 일본 순사를 들이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견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그의 가슴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 올랐고,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러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김일의 당시 심정은 그가 직접 썼다는 동상 비문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거구의 사내 가슴속에 지켜주지 못한 진돗개 한 마리가 50년 넘게 들어 있었던 게다. ●늘씬한 거금대교 따라 느릿느릿 걸어볼까 거금도는 멀다. 전남의 끝자락 고흥에서도 몇 발짝 더 내려가야 한다. 지난해 거금대교가 놓여지면서 사실상 뭍이 됐다. 그 덕에 소요시간이 상당히 줄긴 했으나, 그래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거금도에 이르는 첫 관문은 거금대교다. 소록대교와 소록도를 딛고 나면 곧바로 만난다. 개통 이후 거금도의 최고 명물 자리를 단단히 꿰찬 다리다. 거금대교는 늘씬하다. 높이 168m의 주탑 두 개가 케이블로 상판을 받친 형태를 하고 있다. 총연장은 6.67㎞. 육상 구간을 빼면 바다를 건너는 교각 구간은 2㎞ 남짓 된다. 거금대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도교가 따로 마련돼 있다는 거다. 다리 상판이 2층으로 돼 있는데, 차량들은 위층의 도로를 내달리고, 아래층은 보행자와 자전거가 느릿느릿 지난다. 다리를 통째로 차지하고 걷는 맛이 각별하다. 다리를 걷다 보면 양쪽의 바다가 죄다 눈에 들어 온다. 거북섬 너머로 고깃배들이 지나고, 상·하화도 앞바다엔 물비늘이 현란하다. 다리가 놓여지지 않았다면 절대 엿볼 수 없을 풍경들이다. 다리를 왕복하는 데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를 빌려 타면 시간은 더 줄어 든다. 다리 끝자락, 그러니까 거금도 초입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 준다. 마이수 관광기획계장은 “현재 자전거가 30대가량 운용되고 있는데, 올 10월쯤 추가로 20대를 더 들여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걸개그림 같은 풍경을 내건 해안도로 거금도에 들면 먼저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일주도로에 오르는 게 순서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여정은 다도해의 풍광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구간을 현지에선 ‘고흥 해안 풍경구간’이라 부른다. 이 길에 들면 그네들 표현처럼 ‘미쳐불 만한’ 풍경이 이어진다. 굽이도는 길 따라 파란 바다와 섬 풍경이 번갈아 펼쳐진다. 구간의 들머리인 옥룡마을 버스 정류장은 반드시 들를 것. 발 아래로 너른 남쪽 바다가 풍경화처럼 매달린다. 전국의 버스 정류장 가운데 이만한 경치를 가진 곳도 드물지 싶다. 이 구간의 절정은 오천항이다. 27번 국도의 종점인 포구다. 제법 큰 갯마을과 그 앞에 떠 있는 섬들이 어우러져 넉넉한 섬 풍경을 그려낸다. 오천항 초입엔 ‘공룡알 해변’이 있다. 수박만 한 크기의 갯돌들이 뒹구는 해안이다. 둥근 갯돌을 흔히 ‘몽돌’이라 부르는데, 거금도 사람들은 이를 ‘공룡알’이라 부른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있다. 용두봉(418m)과 적대봉(592m) 사이를 지나는 지방도로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풍경 또한 ‘미쳐불’ 정도다. 파성재에서 송광암 이정표를 따라 산자락을 타고 가면 거금도와 고흥반도의 남쪽 해안, 그리고 완도의 금당도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데, 딱 걸개그림이다. 거금도 가운데 우뚝 솟은 적대봉은 최고의 풍경 전망대로 꼽힌다. 해발 592m로 제법 높지만, 주차장이 있는 파성재에서 출발하면 왕복 2시간에 돌아볼 수 있다. ‘섬 속의 섬’ 연홍도도 가볼 만하다. 거금도에서 배로 5분이면 닿는다. 글 사진 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에서 다시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순천에 내려서서 여수박람회장 이정표를 따라 가다 새로 난 영암~순천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벌교 나들목으로 나와 고흥방면으로 가다 녹동·거금대교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다소 복잡하지만 고속도로 표지판이 잘돼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잘 곳 거금도 한옥민박(282-5327)은 너른 바다를 마당 삼은 집. 공룡알 해변이 코앞인 하얀파도 펜션(844-1232)과 익금해변 쪽 아마존모텔(842-4117)도 깔끔한 편이다. →맛집 녹동항 내 영성횟집은 장어통탕을 잘한다. 835-5303. 도화면 중앙식당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굴을 껍질째 삶은 피굴 등 토속음식이 곁들여진다. 832-7757.
  • 믿지 못할 ‘中企 수출상담회’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개최하는 중소기업 수출상담회에 ‘가짜 바이어’가 기승을 부려 많은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 철석같이 수입을 약속하고는 시제품만 챙기고 사라지거나, 수출계약을 미끼로 실컷 접대를 받은 뒤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친환경 생활용품 업체 대표 김모씨는 지난달 13~14일 대전시·충남도·한국무역협회가 공동으로 연 수출상담회에 참가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자기를 무역상이라고 소개한 일본인이 구체적인 주문 물량까지 제시하며 “시제품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김씨는 부랴부랴 시제품을 만들고 설명서까지 일본어로 번역해 일본에 보냈다. 하지만 제품을 부치고 나서 통 연락이 되지 않아 알아보니 해당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기업이었다. 김씨는 “관에서 주관하는 수출상담회에 가짜 바이어가 웬 말이냐.”면서 “행사를 유치하려고 아무나 데려와 바이어라고 소개하는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업체들 “피해 입어도 하소연 못해” 지난달 4일 대전시와 충남·충북 중소기업청이 공동 주관한 해외 바이어 초청행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생활용품 제조업체 대표 홍모씨는 말레이시아에서 온 무역상과 상담을 했다. 이 무역상은 대규모 수출계약을 하겠다며 서둘러 계약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홍씨는 그에게 온갖 정성을 쏟으며 ‘올인’을 했다. 그러는 바람에 다른 상담은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다. 하지만 그 바이어는 얼마후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그는 “구매 의사가 전혀 없는 건달들에 당했다.”면서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하소연할 곳도 없다.”고 말했다. 한 수출업체 관계자는 “한국에서 비행기표와 호텔비를 다 지원해 주니까 구매력도, 구매의사도 없는 사람들이 너도나도 수출상담회 참가 신청을 한다고 들었다.”면서 “한국 기업들로부터 공짜로 샘플 제품을 얻어다가 자기 나라로 가져가 되파는 일도 있다.”고 전했다. 이렇게 골탕을 먹으면서도 중소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수출상담회에 참가하고 있다. 지자체나 중기청이 개최하는 행사를 거부했다가 나중에 받을 불이익이 두려워서다. 한 중소 제조업체 대표는 “실익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지만 겨우 구색만 갖춰 참가한 게 세 번째”라며 고개를 저었다. ●지자체 실적에만 급급… 준비 부족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자체 등이 생색 내고 행사실적을 올리는 데 급급해 준비 없이 마구잡이로 행사를 열기 때문이다. 수출상담회에 참가하는 바이어가 적정 자격을 갖춘 곳인지 제대로 확인도 않고 불러들인다. 충남도 국제통상과 관계자는 “한국 수출상담회에 참가하는 해외 바이어들이 많다보니 문제 있는 사람들도 섞여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코트라 중소기업협력과 관계자도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 수출상담회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시인했다. 그는 “유럽의 경우 행사가 열리기 6개월 전까지 해외 바이어에 대한 검증을 완료하지만 우리는 주최기관에서 2~3개월 전에야 검증 요청을 해오기 때문에 시간이 없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현지인을 포함해 3~5명에 불과한 해외 무역관 인력이 그 짧은 기간 동안 무수한 바이어를 일일이 검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산촌농부 변신 이계진 前 아나운서

    [김문이 만난사람] 산촌농부 변신 이계진 前 아나운서

    ‘자 이제 돌아가자/고향산천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지금까지 정신을 육체의 노예로 삼아온 것을/어찌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 도연명의 ‘귀거래사’에 나오는 첫 대목이다. 이뿐만 아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헤르만 헤세의 ‘전원생활 이야기’, 타샤 튜터의 ‘정원’ 등에도 ‘귀거래사’와 같은 ‘돌아감’의 행복을 진솔하게 다루고 있다. 천상병 시인도 ‘나 이제 돌아가리라~’로 ‘귀천’을 읊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귀(歸) 철학’ 속에 살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터. ‘국영수’로 정신없이 치열하게 세상을 살다가 결국 ‘예체능’을 택하듯이 말이다. 이계진(66) 전 아나운서. 얼마 전 방송을 통해 1996년부터 산촌생활을 한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됐다. 물론 아나운서를 그만두고 재선 국회의원과 강원도지사 출마 등 정치활동을 했지만 이때에도 개인생활의 주거는 산촌이었다. 따라서 산촌생활은 올해로 꼭 16년째인 셈이다. 최근에는 세속과의 인연을 아예 단절하고 시골 농부로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아가고 있다. 직접 밭을 갈고, 씨 뿌리고, 퇴비 주고, 땀 흘려 수확하는 행복에 푹 빠져 있는 것. 지난 13일 낮 경기도 한 산촌에 사는 이씨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자신의 집 주소가 알려지면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일부러 세상 시름 잊기 위해 조용한 곳을 찾아왔기 때문이란다. 이씨의 집에 도착하자 그는 “옥수수는 금방 찐 것이 맛있어요. 제가 직접 농사를 지은 것입니다.어서 드세요.”라고 활짝 웃으면서 권했다. 그러면서 방울 토마토를 꺼낸다.“이것도 직접 기른 것입니다. 제가 주스 만드는 솜씨를 보여드리지요.”라고 하면서 야외 살강 쪽으로 간다. 허름한 청바지 차림에 밀집모자를 쓴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마당에는 365일 걸려 있다는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고 바로 옆에 오래된 산벚나무가 있었다. 그 아래에서 옥수수와 토마토 주스를 마시면서 얘기를 나눴다. ●직접 기른 옥수수·방울토마토로 손님 맞아 “집 주변으로 쭈욱 밭이 연결돼 있습니다. 대부분 자갈밭인데 흙을 구해다가 50㎝정도 두께로 덮고 농사를 지었지요. 그러느라 처음에는 고생 좀 했습니다. 지금은 여러 농작물이 잘 자라 보람을 느끼고 있지요.”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집과 마당, 밭을 포함 모두 5610㎡(1700평)이다. 그 넓은 밭을 어떻게 혼자 일구고 농사일을 할까. 궁금해하자 “경운기 등 필요한 농기계를 다 장만했지요. 또 ‘건농회’라고 있습니다. ‘건달 농민 모임’을 줄인 말입니다. 교장선생님, 무역회사 사장, 건축사 등 이른바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로 모임이 결성됐는데 그분들과 함께 농사를 짓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해준다. 거침없이 나오는 말이 프로 농군이다. “감자는 대개 장마가 지기 전인 하지 무렵에 캡니다. 고구마는 지금 막 크기 시작했는데 며칠 전 멧돼지들이 습격해 싹쓸이하고 가버렸습니다. 주로 밤에 공격을 하는데 진돗개 한 마리가 이들을 저지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밤에 잠 들려고 하면 개 짖는 소리에 랜턴을 들고 진돗개를 응원하러 나가 보지만 멧돼지들이 워낙 동작이 빨라서 말입니다.” 이씨는 주변 농가들도 대부분 그런 피해를 입는다고 했다. 서울에서는 뱀이나 멧돼지 한 마리만 나타나도 큰 뉴스거리로 취급하지만 여기에서는 밤마다 나타나는데도 아무런 뉴스가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며칠 전에는 집 앞마당에 독사, 능구렁이, 꽃뱀 세마리가 나타나 잡았단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들은 동물을 함부로 잡지 말라고 주장하지만 인간을 공격하는 동물들을 그냥 나둘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가 현재 재배하는 농작물들은 어떤 것일까. “많습니다. 고추, 가지, 토마토, 옥수수, 호박, 참외, 파, 오이, 상추, 쑥갓, 토란, 고구마, 그리고 올해 새로 심은 인디언 감자까지 포함해 20여가지는 되지요. 다 잘 자라지는 않습니다. 농약을 안 쓰니 전멸하는 경우도 있지요. 하지만 말없는 흙에서, 식물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는 농약에 관한 오해와 진실을 잠시 얘기한다. 프로 농부인 경우 최고 품질의 농작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기 때문에 농약을 안 칠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과실인 경우 더욱 그러하다는 것. 다만 시장에 출하하기 7일전까지만 농약을 치면 광분해와 수분해를 거쳐 농약성분이 없어지는 것을 간과하는 경우가 있다고 지적한다. “제가 16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서 저농약 농법을 한 번 정도 해 봤지요. 완전 무농약은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옥수수, 고구마, 호박, 부추, 토란, 상추 등은 농약을 안 쳐도 잘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배추는 새끼 때 살짝 한 번 (농약을) 쳐 주면 되구요.” 그가 맨처음 산골에 왔을 때 주위에서는 왜 왔을까 많이 의아해했단다. 잘 나가는 아나운서가 땅을 사서 값이 오르면 팔고 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투기로 생각했다는 것. 그러나 지금은 정다운 마을 주민이 됐다. 농법을 가르쳐주는 청년도 있고 경조사때 초청하는 이웃들이 많아졌다. 산토끼 잡았으니 먹으러 오라는 연락이 오면 막걸리 몇병 사들고 가서 같이 웃고 즐긴다. 화제를 바꿨다. 그는 법정스님을 인생의 스승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어떤 까닭일까. “오래 전 집사람이 가족들과 함께 송광사 수련회를 간 적이 있었지요. 이때 처음 인연이 됐습니다. 이후 길상사 창건할 때에도 만났고 제가 여기 집을 지을 때도 오시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농사를 지을 때 비닐을 쓰지 말라고 했습니다. 흙에도 미생물이 있는데 비닐농법을 하면 죽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농사를 지을 때 비닐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적게 쓰고 덜 쓴다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저는 법정스님의 유발상좌(삭발하지 않고 은사스님을 따르며 불법을 행하는 사람)이지요. 다비식때에도 그런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법정스님이 생전에 권한 소로의 ‘월든’이나 타샤의 ‘정원’도 유발상좌가 되면서 읽었고 산골행을 결심한 것도 이때였다고 술회했다. 법정스님한테 계를 받았고 법명은 향적(香積)이다. “원래 제 집사람이 건강이 안 좋았는데 여기 와서 많이 좋아졌습니다. 저는 농사일을 노동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운동으로 여기고 있지요. ‘이땅은 당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종합병원’이고 ‘당신의 두 팔과 다리는 명의’라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즐겁게 농사일을 합니다. 숲속의 삶은 곧 어지러운 세상의 삶을 정리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없어지고 선한 생각이 저절로 생겨나지요.” 그의 앞마당에는 조그마한 개울이 있다. 봄이 되면 개구리며 도룡뇽 수천마리가 ‘봄의 왈츠’를 노래한다. 이씨는 행여나 도룡뇽 알이 잘못될까봐 개울 물길을 이리저리 살피며 자연스럽게 잘 성장하도록 도와준다. 그는 밭 가장자리에 해바라기를 많이 심었다. 왜 그랬을까. “해바라기의 진실을 혹시 아세요. 흔히 해바라기라고 하면 권력이나 또 어떤 곳의 눈치를 보는 아부의 상징이라고 하잖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해바라기는 자기가 태어난 곳만 항상 바라보는 우직함이 있지요. 동쪽을 바라보며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동쪽만 바라봅니다. 아부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지요.” ●태어난 방향만 바라보는 우직한 해바라기 사랑 인터뷰가 거의 끝날 무렵 아랫마을에 도토리묵 음식을 잘하는 곳이 있는데 간단히 식사하자고 권했다. 그리하여 장소를 옮겼다. 안주와 시원한 막걸리가 나왔다.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하면서 궁금했던 것 한 가지를 물었다. 그는 고려대 국문학과 재학 중 학군단(ROTC) 훈련과정을 모두 마치고 임관 직전 불가통보를 받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처음 밝히는 내용이라고 했다. “임관할 때에는 신체검사를 받습니다. 그런데 결핵환자이니 돌아가라고 하더군요. 멀쩡한 폐가 왜 결핵이지 의아해 하면서 이젠 군대도 못 가겠구나 생각했지요. 대학 졸업후 국어교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군 입대 통지서가 왔어요. 신체검사를 다시 했습니다. 그런데 결핵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등병으로 군에 입대해 병장으로 만기 제대를 했습니다. 제대후 KBS 아나운서로 입사해 일하던 어느 날 고려대 학군단장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한번 보자고 해서 만났더니 당시 학군단장이 대학 4학년 때 데모대열에 합류한 사실 때문에 일부러 결핵 판정을 내렸다고 하더군요. 참으로 어이없더군요. 어쨌거나 지금은 ROTC 8기 동기모임에도 나가고 병장 제대 모임에도 나갑니다(웃음).” 그와의 술잔이 길어졌다. 우주와 자연, 영화와 문학 등에 대해 질펀하게 대화를 나눴다. 헤어지면서 그는 “낭만인을 만나 오랜만에 대취했다.”며 먼 길 잘 살펴가라고 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이계진 前 아나운서는 고교 국어교사 재직하다 입대→KBS 시작 30년간 방송진행→2004~2010년 재선의원 의정활동 1946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65년 청소년 시절까지 고향에서 자랐다. 원주고를 나와 1970년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ROTC 훈련을 모두 마쳤으나 임관 직전 불가 통보를 받고 원주 대성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있던 중 일반 병으로 입대, 1974년 병장으로 만기제대했다. 군복무 중 KBS 아나운서 시험에 합격해 1992년까지 KBS에서 일했고 이후 SBS 아나운서로 2년동안 지내다가 프리랜서로 일했다. 30년동안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11시에 만납시다’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연예가 중계’ ‘한밤의 TV연예’ ‘체험 삶의 현장’ ‘TV내무반 신고합니다’ 등으로 인기를 얻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는 재선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했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가 됐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이계진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솔베이지 노래’ 등이 있다. 2010년에는 ‘주말농부 이계진의 산촌일기’를 펴냈다.
  • 윤제문 “캐릭터가 재밌어요, 단독주연도 맘에 들고요 으흐흐허허”

    윤제문 “캐릭터가 재밌어요, 단독주연도 맘에 들고요 으흐흐허허”

    할리우드 키드는 아니었다. 배우를 꿈꾼 적도 없었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지도 않았다. 전투 방위 시절 동기와 함께 문성근·강신일이 주연한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본 게 연기에 대한 ‘첫 경험’이었다. 감동했지만, 한걸음에 극단에 들어간 건 또 아니다. 제대하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스물다섯 살(1995년)에 산울림 소극장 연출부로 들어갔다. 1996년 연희단거리패의 젊은 연극인 훈련과정인 우리극연구소 3기로 몸담았고,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이라는 이탈리아 번역극으로 데뷔했다. 당시 관객은 딱 3명뿐이었다. 17년 세월이 흘렀다. 최근 1~2년 동안 충무로(영화)와 여의도(방송)에서 몇 손 안에 꼽힐 만큼 바쁜 몸이 됐다. 드라마 ‘마이더스’(2011) ‘뿌리깊은 나무’(2011) ‘더 킹 투하츠’(2012), 영화 ‘평양성’(2010) ‘퀵’(2011) 등에서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강렬한 눈빛만큼이나 짙은 인상을 남겼다. 배우 윤제문(42)의 얘기다. 그런데 12일 개봉하는 ‘나는 공무원이다’에서 윤제문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캐릭터를 연기했다. 조폭 중간보스, 비밀조직의 수장, 재벌 2세를 연기했던 그가 마포구청 7급 10호봉 공무원 한대희 역을 맡았다. 눈에 가득 찬 독기는 사라졌다. ‘삼성전자 임원도 부럽지 않다’며 삶과 직업에 200% 만족하는 남자다. 심지어 귀엽기까지 하다. 그러던 그가 본의 아니게 인디밴드 멤버들과 동거를 시작하면서 숨겨진 음악 본능(?)을 드러낸다는 게 영화의 얼개다. 구자홍 감독이 그에게 시나리오를 건넨 건 지난해 2월. 당시 그는 ‘마이더스’와 연극 ‘아트’ 공연까지 겹쳐 눈코 뜰 새 없었다. 5~6년 전 둘 다 친분이 있던 어어부프로젝트(장영규·백현진) 등 인디 뮤지션과의 술자리에서 안면을 텄다. 마포구민이란 인연까지 겹쳐 형, 동생으로 지냈다(2004년 구 감독의 데뷔작 ‘마지막 늑대’ 오디션에서 윤제문은 물을 먹었다. 하지만, 구 감독은 그런 기억은 없다고 주장했다). 밤 11시쯤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수락했다. “캐릭터가 재밌었다. 단독주연이란 점도 마음에 들었다. 으흐흐허허.” 옆에 앉은 구 감독이 거들었다. “지금껏 안 해봤던 역할을 연기하는 신선함, 재미를 느꼈을 것이다. 감독으로서도 다른 감독이 뽑아내지 못한 윤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즐거움이 컸다. 창작의 원동력이 됐다.” 한 달 반 동안 20회 차로 끝낼 만큼 빡빡한 일정 탓에 육체적 고통은 어느 때보다 컸다. “드라마는 이미 하고 있었고, 연극은 약속했던 거라 안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딱 하루 영화 촬영을 펑크냈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어느 작품에도 피해를 안 줬다. 물론, 다시는 그렇게 스케줄을 잡지 않아야겠다는 교훈도 얻었다. 아흐흐흐.” 호흡을 맞춘 배우들은 인디밴드 멤버로 나오는 20대 초반의 연기경력이 일천한 후배들. 부담과 책임감이 어깨를 짓눌렀을 법하다. “부담과 책임감은 있었는데 촬영하면서 정말 신났다. 놀 듯이 즐겼다. 다른 작품에선 감독이 연기 지시를 하면 ‘네~’ 한마디로 끝내는 게 내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왠지 욕심이 났다. 현장에서 적극적인 의견을 제시했고, 감독과 조율했다.” 구 감독은 “내가 만든 콘티가 뭉개지는 건데 결과적으로 윤 배우의 아이디어로 영화의 명장면들이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연을 많이 하다 보니 항상 원톱에게 양보만 하던 사람이다. 그를 두고 ‘신 스틸러’(주연 못지않은 주목을 받는 조연)라고들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딱 자기 몫을 해낼 뿐이지 저 놈(주연)보다 튀어야지란 생각을 하는 친구가 아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나선 거다. 다른 배우들의 애드립과는 차원이 다른 얘기”라고 덧붙였다. 극 중에서 윤제문은 인디밴드 ‘삼삼은구’의 땜질용 베이시스트로 투입돼 한껏 리듬감 넘치는 운지(運指)를 뽐낸다. 영화에서는 리더 겸 기타리스트 성준이 속성으로 윤제문에게 베이스 기타 과외를 하는데, 실은 윤제문이 그 장면의 연기지도를 했다고 한다. 고교 시절 통기타와 클래식 기타를 섭렵한 것은 물론, 수년 전 어어부밴드의 장영규에게 베이스기타 과외를 4~5번 받기도 했단다. 그는 “음악에 매력을 느끼는데 재능은 전혀 없는 것 같다.”면서도 “기타도 더 잘 치고 싶고, 배워보고도 싶다. 그런데 마음만 있다.”고 웃었다. 한때 그에게는 건달(혹은 조폭) 전문배우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우아한 세계’가 끝날 무렵 조폭 전문배우란 말을 들었다. 이건 아니다 싶더라. 듣기 싫더라. 그 이후론 건달 역으로 나오는 시나리오는 모두 거절했다.” 하지만, 더는 윤제문에게 꼬리표가 남아있지 않다. “괴물 같은 배우”(임필성 감독) “송강호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구자홍 감독) 같은 평가에 대해 고개를 저을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연극판에서 영화판으로 넘어온 많은 배우가 코믹, 감초 혹은 조폭 이미지가 고착되면서 만년 조연에 머무는 것과 달리 그는 스스로 껍질을 깨고 원톱이 어색하지 않은 단계에 올라섰다. 17년차 배우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일지 궁금했다. 그는 “삶의 수단일 수도, 목적일 수도 있겠다. 백수 시절 돈도 벌고 재미도 있는 일을 찾아다녔는데 제대로 찾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대선 후보자와 국제 통찰력/이기철 국제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대선 후보자와 국제 통찰력/이기철 국제부 부장급

    #1.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 데 싸우지 않으면 즉, 화친하자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짓이다(洋夷侵犯 非戰卽和 主和賣國).” 흥선대원군이 병인·신미양요 승리 이후 서울 종로 네거리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 세운 척화비 내용 일부다. 집권 이전 대원군은 안동 김씨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건달들과 어울리며 구걸을 서슴지 않는 파락호 생활을 했다. 서민과 생활하며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1863년 둘째 아들이 12살에 왕위에 오르자 그는 조선 최고의 실력자가 됐다. 당쟁의 근거지였던 서원을 철폐했고, 60년 세도정치에 가렸던 왕권의 위엄을 되찾고자 경복궁을 재건하는 등 국내문제 개혁에 치중했다. 긴박했던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권력 기반 약화를 우려해서다. 반면 중국은 1840년, 일본은 1854년 개방했다. 조선은 1860년대 프랑스·미국 등에 의한 통상교섭 즉, 개방 요청이 잇따랐지만 대원군은 빗장을 걸어잠갔다. #2. 원나라의 억압에 100여년간 신음하던 14세기 고려. 12살 때 원나라 연경에서 10년 볼모 생활을 했던 왕전은 1351년 고려로 돌아와 31대 공민왕이 됐다. 몽고 풍속을 없애고, 고려 조정 안팎을 장악했던 기씨 일족을 비롯한 친원세력을 제거했다. 내정을 간섭하던 쌍성총관부를 폐지해 자립 왕조로 다시 태어났고, 원나라에 빼앗겼던 서북면과 동북면 일대의 영토를 되찾았다. 세계를 호령한 원나라지만 남쪽에서 무서운 기세로 일어난 홍건적에 정신이 팔렸다는 공민왕의 국제적 통찰력이 없으면 펼 수 없는 정책들이었다. 홍건적은 얼마 후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지도자 주원장은 명나라를 세웠다. #3. “일본이 다음해(1592년)에 조선의 땅을 빌려 명나라를 정복하려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조선 조정에 올라왔다. 보고서는 묵살당하고, 이를 보고한 관리는 파직당했다. 왜의 동태가 수상하다는 보고는 수시로 올라왔다. 대마도 도주 소 요시토시는 조선 조정에 몇 차례 전쟁 발발을 경고했다. 전쟁에 휘말리기 싫었던 그는 증거로 소총 2자루도 갖다줬고, 조선의 눈으로 일본의 정세를 보라고 통신사 파견도 요청했다. 통신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의 보고는 엇갈렸다. 부산포에 살던 일본인들은 모두 철수하면서 전쟁 분위기가 완연했다. 국제정세에서 듣고 싶었던 것만 들었던 선조는 명나라를 향해 피란갔고, 경복궁은 불탔다. 선조가 최강국인 줄 알았던 명나라는 몇년 지나지 않아 지도에서 사라졌고, 조선은 전란으로 쑥대밭이 됐다. 과거 최고 지도자가 국제적 통찰력이나 감각이 없을 때와 있을 때의 우리의 판도가 달라진 대표적 사례들이다. 지금은 실시간으로 국제 소식이 전해지는 개방된 세계여서 국제문제 대처에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불과 9년 전인 2003년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파병을 두고 국론이 첨예하게 갈렸다. 이라크전 소식은 실시간으로 들어왔지만 국가 지도자들은 강 건너 불보듯했다. 지금 다시 그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국제적 이목이 집중된 이란 핵프로그램에 대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겉돌았다는 것이 최근의 외신 보도다. 미국이 이란 핵시설에 대해 군사적 타격에 나서면서 한국에 동참을 요청하면 우리는 나서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란 핵프로그램의 해결방식은 북한 핵문제에 대해 국제사회의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우리에겐 더욱 중요한 문제로 와 닿는다. 또 최근 법 개정을 통해 핵무장의 길을 연 일본에 대해서는 우리 정부의 말마따나 ‘예의주시’만 하면 될 일인가. 일본이 당장은 아니겠지만 현재의 관료와 정치인이 모두 바뀐 다음에는 핵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다. 중국, 북한에 이어 일본의 핵무장 여지는 동북아의 핵 도미노 우려를 가중시킨다. 6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 나서려는 이들에게서 우리를 옥죌 수도 있는 국제 문제에 대한 말도 듣고 싶다. chuli@seoul.co.kr
  • ‘미쓰고’ 주연 고현정 “시사 때 눈물났죠…함께 고생한 생각나서”

    ‘미쓰고’ 주연 고현정 “시사 때 눈물났죠…함께 고생한 생각나서”

    2011년 5월 충무로의 뜨거운 관심 속에 ‘미스고 프로젝트’가 크랭크인됐다. 동국대 연극영화과에서 함께 단편영화를 찍던 90학번 정범식 감독, 장소정 (영화제작사) 도로시 대표, 그리고 배우 고현정이 20년 만에 의기투합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전체 분량의 30%쯤이 끝난 8월 초 부산 촬영이 중단됐다. 공식 해명은 쏟아진 비 때문이었다. 곧이어 감독이 바뀌었는데, 정 감독의 건강악화가 교체 사유라고 제작사 측은 밝혔다. 결국 ‘달마야 놀자’(2001)의 박철관 감독이 바통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는 완성됐다. 그 사이 제목은 ‘미쓰고’로 바뀌었다. 영화는 공황장애를 앓는 천수로(고현정)가 수상한 수녀의 심부름을 하다가 500억원짜리 마약·위조지폐 범죄 조직의 다툼에 휘말리면서 인생이 뒤바뀌는 소동극이다. 범죄 스릴러와 코미디를 버무린 영국 감독 가이 리치의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스’ ‘스내치’를 떠올리면 될 듯하다. 고현정을 원톱으로 내세우고 성동일, 이문식, 유해진, 고창석, 박신양 등 입이 벌어질 만한 캐스팅을 했다. 그럼에도 영화의 완성도는 후한 점수를 받기에는 엉성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선덕여왕’의 미실, ‘대물’의 서혜림 등 카리스마 여걸을 도맡던 고현정과 건달, 악역 전문이던 유해진의 변신은 주목할 만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20일 서울 사간동 카페에서 고현정을 만났다. CF 촬영과 토크쇼 ‘고쇼’의 준비 탓에 지쳐 보였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 그래도 트레이드 마크인 ‘물광 피부’는 명불허전이었다. 고현정은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선 강한 역할만 들어오는 나의 18~19살 때를 기억하는 친구들이라 이런 역을 제안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의 결혼(1995년) 못지않게 시끄러웠던 이혼(2003년). 이후 2005년 드라마 ‘봄날’로 복귀한 고현정의 연기 인생 2막은 ‘선덕여왕’ ‘대물’ 등 ‘갑’(甲)의 위치에 선 강한 캐릭터가 주를 이뤘다. 고현정은 “다시 일을 시작할 무렵 만난 분들은 날 어른으로 대했다. 그런데 난 어른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결혼과 이혼, 아이도 낳았지만 서툴고 미숙하고 불안했다. 물론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딴에는 재벌집에도 갔다가 오고 이혼도 했으니 센 듯 보이는 게 세상 사람들의 예상치에 맞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설명했다. ‘미쓰고’의 천수로 캐릭터는 관객은 물론 본인에게도 어색했다. “소리를 마구 질러대는 강한 역할을 할 땐 살아왔던 경험에서 도움받을 수 있다. 천수로는 전혀 그런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너무 오버하지 않도록 경계했다. 자칫 공황장애를 앓는 분들에게 잘못된 선입견을 덧씌우는 건 옳지 않기 때문이다.”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특히 감독 교체 과정에서 소문이 무성했기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을 터. 질문을 받고도 한참 침묵을 지키던 고현정은 “마음고생은 내가 가장 덜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카메라 감독을 비롯해 이 영화로 입봉하는 스태프들이 많았다. 위기가 왔을 때 그분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나. 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개봉하는 게 맞다. 좌초돼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개봉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시사 때는 집중할 수 없었다고 했다. “눈물이 앞을 가렸다. 박 감독과 스태프들 생각도 나고, 8개월가량을 부산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찍은 순간들이 스쳐 갔다.”고 털어놓았다. ‘미쓰고’는 그의 첫 번째 상업 영화다. ‘해변의 여인’(2006), ‘잘 알지도 못하면서’(2008), ‘여배우들’(2009)은 저예산으로 제작된 소규모 개봉 영화였다. 흥행 부담도 있을 법했다. 영화의 순제작비는 53억원. 프린트 수급과 홍보마케팅 비용(P&A)을 포함한 총제작비는 70억원을 웃돈다. 200만명이 영화를 봐야 손익분기점(BEP)에 도달한다. 관객 숫자를 점쳐 달라는 질문에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난 그런 건 진짜 모르겠다.”며 배시시 웃었다. 이어 “제작자(장소정 대표)가 친구여서 더더욱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고현정, 역시 영화는 안돼.’란 소리만 듣고 넘어가면 그뿐이다. 하지만 투자·제작사엔 잔인한 일이다. 또한 이름 없이 고생한 스태프들도 있다. 그래서 책임감도 느껴진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 연기 외에도 TV 토크쇼와 영화전문지의 인터뷰어(객원기자)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어떤 일이 가장 재밌냐고 물었다. 손가락 끝을 물어뜯고 한참 생각했다. “다 재밌다고 해야 하는 건가? 솔직히 재밌는 일이 하나도 없다. 다 힘들다.”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 “사소한 일까지 관심받고 질문을 당하는 게 고맙고 즐거운 일이다. 내가 이 자리에 강제로 있는 게 아니다. 못해서 난리를 칠 때도 있었다. 다 원했던 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뭐든 ‘싫어, 싫어’가 입에 붙어 버린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역지사지의 상황을 경험해 보는 인터뷰어 일은 흥미롭다. 그러고 보니 그 일이 가장 즐거운 것 같다.”며 웃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씨줄날줄] ‘의원 무노동 무임금’ /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2001년 봄. 이만섭 당시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단의 북유럽국 방문을 취재할 때였다. 의회정치의 모범국인 핀란드·노르웨이의 의회 건물은 뜻밖에 수수했다. 웅장하기 그지없는 여의도 의사당에 익숙했던 기자에겐 퍽 인상적이었다. 19대 국회가 법정 개원일(6월 5일)을 넘기고도 언제 열릴지 감감무소식이다. 호화판 시비 속에 제2의원회관까지 지어놓고 의원들은 하릴없이 세월만 보내고 있는 꼴이다. 그래도 한가닥 염치는 남아 있는가 싶었다. 여당이 ‘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도입을 공언할 때까지는. 그러나 이마저도 자칫 구두선으로 끝날 판이다. 새누리당이 6대 쇄신안 중의 하나로 내놓은 이 방안에 대해 야권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반론이 제기되면서다. 사실 우리 의원들의 특권은 선진국 기준으로도 과도하다. 헌법상 3권분립 취지에 따른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은 그렇다 치자. 국유 철도 및 비행기·선박 무료 이용 등 크고 작은 특혜가 200가지가 넘는다. 한 의회 전문가가 “선진국 중에서도 한국처럼 의원에게 운전기사 역할을 하는 비서관까지 지원되는 나라는 거의 없다.”고 했을 때 기자는 반신반의했다. 며칠 전 미국 상무부 장관이 손수 운전 중 교통사고를 냈다는 소식을 접할 때까지는…. 물론 의정활동을 제대로만 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국민 입장에서도 의원 1인당 연간 최소 5억원이라는 예산이 아깝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법안 발의권을 의회가 쥐고 있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7명의 보좌진을 거느린 우리 의원들의 평균 입법 건수를 보라.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상황에서 정부 발의 안건을 감안해도 생산성은 바닥이다. 더욱이 정기국회 이외에 짝수 달마다 임시국회를 열도록 돼 있으나 헛바퀴만 돌리기 일쑤다. 그런데도 여당의 ‘무노동 무임금’ 추진을 민주통합당 당직자들이 “인기영합적 구호”라고 폄훼하며 낯 두꺼운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은 논외로 치자. 새누리당의 일부 의원들이 반대 논거로 내놓은 ‘강의 준비론’도 가관이다. 즉, “교수의 강의만 노동이 아니라 강의를 준비하는 시간도 노동시간”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정활동 준비는 비회기인 홀수 달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회기 중에도 외유나 골프 등으로 ‘날건달 체질’을 버리지 못하는 의원들을 숱하게 보아온 터다. 19대 의원들은 선량(選良)이 아니라 한량(閑良)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면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든지, 국민의 혈세를 반납하든지 택일해야 한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드라마 드림하이 속 송삼동 아닙니다…‘슈퍼스타’ 꿈꾸는 진짜배우 송삼동!

    드라마 드림하이 속 송삼동 아닙니다…‘슈퍼스타’ 꿈꾸는 진짜배우 송삼동!

    송삼동이란 이름을 드라마 ‘드림하이 1’(2011)에서 김수현이 맡은 배역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게다. 그런데 독립영화(혹은 저예산영화)를 챙겨보는 관객이라면 고개를 가로저을 터. 1000만원의 제작비로 1억 7000여만원(누적관객 2만 5000여명)을 거둬들인 ‘낮술’(2008)의 찌질남 혁진, 파격적인 퀴어 영화 ‘REC’(2011)의 영준 등 출연작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가 송삼동(32)이다. ‘슈퍼스타’(7일 개봉)는 14편에 이르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3번째로 극장에 걸린 영화다. 번번이 투자단계에서 작품이 엎어지는 4년째 예비감독 진수와 건달 전문 배우 태욱이 부산영화제에서 보낸 2박 3일을 그렸다. →‘슈퍼스타’는 2010년 부산영화제 공식리셉션과 상영관 등에서 게릴라식으로 찍었다. 일반적 현장과 달라 어려움도 컸을 텐데. -안성기 선배님과 김동호 부산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님이 나오는 리셉션장면은 실제 상황이다. 다른 분은 턱시도를 입고 있는데 우리만 행색이 꾀죄죄했다. 화려한 파티에 덩그러니 놓인 느낌이 드니까 주인공의 심리처럼 위축됐다. 당시에는 김정태 선배도 지금처럼 ‘대세’는 아니었으니까, 촬영을 지켜보는 영화 관계자나 행인들도 무슨 일인가 싶었을 거다(웃음). →입봉을 준비하는 감독 역할에 몰입하는 게 어렵지 않던가. -독립영화를 오래 했기 때문에 감독들 사정이나 감정은 잘 알고 있다. 영화인 술자리에 가더라도 막상 아는 사람은 한둘이다. 그 사람이 옆 테이블에 잠깐 가면 할 말도 없고, 뻘쭘한 영화 속 진수의 모습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이 송삼동을 인지한 건 ‘낮술’을 보고서다. 전까지 ‘슈퍼스타’의 주인공처럼 곡절이 많았을 것 같다. -2005년말 복학(경희대 환경공학과)했다. 남들은 군대 갔다 와서 복학하면 정신을 차린다는데 난 달랐다. 아버지 목도장을 위조해서 자퇴서를 냈다. 집안이 뒤집혔다.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배우를 꿈꾼 것도 아닌데 차라리 휴학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성격상 비빌 언덕이 있으면 돌아갔을 거다. 앞으로 나갈 일만 남겨둬야 했다. 독립영화 구인사이트를 통해 단편 2~3개를 찍고서 만난 작품이 ‘낮술’이다. →‘낮술’이 화제작이었기 때문에 이곳저곳에서 출연 제안도 있었을 법한데. -10명 중 9명은 그렇게 생각하더라(웃음). 딱 광고 한편 찍었다. 핑크색 스키복을 입은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 아저씨의 뒤태에 반해 쫓아가다 실체를 알고 황당해하는 남자가 나다. 평생 가장 큰돈을 만졌다. 300만원쯤 되더라. 이후 대학로에서 연극을 했다. ‘강풀의 바보’에서 바보 역할, ‘칼의 노래’에서 이순신과 선조 역할을 했다. →배우 경력 7년차다. 경제적 압박으로 그만둘 생각은 안 해봤나. -독립영화에서 내 경력과 나이라면 하루에 5만원 정도다. 7년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홍대 근처의 옥탑방에 사는데 나보다 키가 큰 사람은 천정에 머리가 부딪혀 살기 힘들거다. 그만둘 생각을 왜 안 했겠나. 올 초에도 심각하게 고민했다. 고용부에서 지원하는 제빵, 꽃꽂이 같은 국비직업교육 상담도 받았다. 다행인지 상담자가 불친절했다. 이건 아니구나 싶더라. →지금도 아르바이트를 하나. -언제 작품에 들어갈지 모르니 정규직이 아니라 단발성 일을 해야 한다. (인터뷰 전날인 8일) 어제도 이화여대 앞에서 무료잡지를 나눠주는 일을 했다. 운 좋게도 시간당 1만원에 하루 4시간씩, 이틀 하는 일을 건졌다. →요즘 고민은 뭔가. -내가 추구하는 건 자연스러운 연기다. 그런데 한국영화에선 코미디이든 건달이든 센 캐릭터들이 많다. 자연스러운 연기는 장점일 수 있지만, 단점일 수도 있다.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때까지 과도기를 어떻게 버티느냐가 관건이다. 많은 젊은 배우들이 연기를 포기한다. 나보다 연기를 잘하는 친구도 수두룩하다. 대부분 경제적 이유다. 그래도 난 어떻게든 버틸 거다. 지인들한테 ‘연기 관두고 (고향집 근처인) 창원여고 앞에서 떡볶이 장사나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속으론 한 번도 성공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웃음). →송삼동에게 연기란 어떤 의미인가. -‘타짜’에서 백윤식 선생님이 ‘혼이 담긴 구라’란 대사를 한다. 연기란 ‘혼이 담긴 거짓’ 아닐까. 그 캐릭터와 100% 합일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그 사람으로 보이도록 ‘척’할 뿐이다. 물론, 혼이 담기지 않으면 그냥 거짓이다. →곧 상업영화도 찍는다던데. -다음 달 임순례 감독의 ‘남쪽으로 튀어’에 들어간다. 지금껏 출연한 상업영화 중 비중이 가장 크다. 스물 몇 장면쯤 나온다. 물론 그중 절반은 ‘권순경 참다못해 앞으로 나온다’는 식의 대사 없는 장면이다. →‘드림하이’ 때문에 곤란(방영당시 송삼동의 싸이월드 방명록에는 ‘왜 송삼동인 척하느냐.’는 식의 악성 댓글이 넘쳐났다)을 겪었던데, 예명을 쓸 생각은 안 해봤나. -잠깐 스트레스도 받고 작가님을 원망도 했다. 석 삼(三)에 동녁 동(東), 즉 동쪽에서 해가 세 번 뜨니까 살아가면서 세 차례 크게 빛을 본다는 의미다. 흠… 그런데 내가 출연한 영화 3편이 극장에 개봉한다는 뜻이면 어떻게 하지?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뮤지컬 무대 올해도 K팝가수 천하

    뮤지컬 무대 올해도 K팝가수 천하

    한류를 일군 K팝 가수들의 강세가 올해도 뮤지컬 시장에서 이어지고 있다. 2010년, ‘JYJ’의 김준수가 뮤지컬 스타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한 뮤지컬 ‘모차르트’의 2012년 7월 앙코르 무대에선 그를 대신해 비스트의 리드보컬 장현승이 주인공 모차르트 역을 맡는다. 지난해 ‘포미닛’ 현아와 ‘트러블메이커’로 활동하며 큰 인기를 얻은 장현승은 데뷔 초부터 연기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지녔고, 뮤지컬 무대를 통해 꿈을 이루게 됐다는 후문이다. 모차르트의 연인 콘스탄체 역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 ‘금발이 너무해’ ‘미녀는 괴로워’ 등에서 힘있는 목소리로 열연하며 뮤지컬계의 디바로 우뚝 선 S.E.S 출신 바다(본명 최성희)가 나선다. 오는 6월 10일부터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 ‘시카고’에선 가수 아이비가 과거 최정원, 옥주현 등 톱스타들이 맡았던 주인공 ‘록시 하트’ 역으로 변신한다. 록시는 애인에게 배신당하지만 섹시한 매력이 넘치는 여성으로, 2010년 ‘키스 미 케이트’로 성공적인 뮤지컬 배우 신고식을 치른 아이비가 처음 맡는 뮤지컬 주인공이다. 가수 인순이 또한 ‘시카고’에서 뮤지컬 배우 최정원과 함께 벨마 켈리 역을 맡아 열연한다. 사실 뮤지컬 시장에서 가수들의 활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부터 30년 이상 경력의 가수들까지, 뮤지컬 무대에서 다양한 끼를 발산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 무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캐치 미 이프 유 캔’에서는 슈퍼주니어 규현이 주인공 프랭크 역으로 열연 중이다. 그의 연인 브렌다 역은 ‘소녀시대’의 멤버 써니가 맡아 호평을 받고 있다. 지방 공연 중인 뮤지컬 ‘셜록홈즈 : 앤더슨가의 비밀’에선 가수 테이가 한 여자를 사랑하는 앤더슨 가의 쌍둥이 형제, ‘거친 남자’ 아담과 ‘부드러운 남자’ 에릭 등 1인 2역을 담당하고 있다. 가수 출신으로 뮤지컬 무대에서 단단한 입지를 굳힌 경우는 최근 막을 내린 뮤지컬 ‘엘리자벳’ ‘아이다’ ‘시카고’ ‘아가씨와 건달’등 에서 팔색조 같은 모습을 뽐낸 옥주현과 뮤지컬 ‘모차르트’ ‘엘리자벳’ 등에서 무서운 티켓 파워를 과시한 ‘JYJ’의 김준수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뮤지컬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과 가창력, 무대 장악력 등으로 여러 제작사의 러브콜을 받을 만큼 입지를 굳혔다. 일부 뮤지컬 배우들이 인지도 상승과 연기 스펙트럼을 쌓기 위해 방송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사이, 가수들의 뮤지컬 행보는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주말 영화]

    ●역전의 명수(OBS 토요일 밤 11시 25분) 2분 17초 먼저 태어난 명수(정준호·왼쪽), 그리고 그 뒤에 태어난 현수는 일란성 쌍둥이다. 이미 중학교 때 학교를 깨끗이 정리한 1등 건달 명수는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현수에게 늘 억울하게 당한다. 게다가 쌍둥이 동생의 부탁으로 체면을 구기면서 여자 문제 뒤처리까지 해줬더니 이번에는 엄마가 현수 대신 군대에 가란다. 안 가도 되는 군대였지만 하는 수 없이 명수는 엄마 때문에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제대하니 건달 시절 저질렀던 실수가 명수의 발목을 잡는다. 별 수 없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온 명수. 이번에는 동생의 죄를 뒤집어쓰고 다시 별을 하나 더 달아야 할 판이다. 이렇게 현수의 대타 인생을 살면서 꼬이고 꼬이는 명수는 자꾸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기분이다. 한편 미모의 여인 순희가 명수에게 접근해 온다. 명수는 무작정 그녀를 따라나서긴 했지만 그녀의 차 안에서 권총을 발견한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온 지 두 시간밖에 안 된 명수에게 그녀는 은행을 털자고 제안한다. ●독립영화관-카타리나의 사랑과 자유(KBS1 토요일 밤 1시) 1930년대 멕시코의 푸에블라에 살던 카타리나는 장군 안드레의 구애에 떠밀리듯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장군의 외도를 목격하게 되면서 결혼 생활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한다. 안드레는 카타리나를 경제적으로 풍족하게 해줬지만 신문에 나오는 안드레의 부정과 범죄에 대한 이야기들은 카타리나를 괴롭힌다. 그러나 안드레의 정치적 입지는 높아져 가고 카타리나 역시 정치인 아내로서의 삶에 익숙해져 간다. 때로는 남편을 설득해 옳은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를 힘으로 장악하려는 남편을 말리기에 카타리나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러던 중 카타리나는 아버지를 잃어 실의에 빠지게 되고 그때 만난 젊은 지휘자 카를로스와 사랑에 빠진다. ●말아톤(EBS 일요일 밤 11시) 초원이는 얼룩말과 초코파이를 좋아하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다. 겉보기에는 다른 또래 아이들과 다를 게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초원이는 자폐증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게 되고 엄마 경숙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그러나 경숙은 초원이가 달리기에서만큼은 정상인보다도 월등한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한다. 달릴 때만큼은 남들과 다르지 않은 아들의 모습에 희망을 갖고 꾸준히 훈련시킨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초원이는 20살 청년이 되었지만 지능은 여전히 5살 수준에 머물러 있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어대고 음악만 나오면 아무데서나 특유의 막춤을 선보이기 일쑤니 어딜 가든 초원이가 있는 곳은 시끄러워지게 마련인데….
  • “신라시대 남자기생 그 도발적 캐릭터… 나부터 끌리고 말았죠”

    “신라시대 남자기생 그 도발적 캐릭터… 나부터 끌리고 말았죠”

    ‘신라시대에 진성여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남자 기생이 있었다?’ 독특하고 도발적인 발상에서 시작된 신선한 공연이 올봄 관객들을 찾아간다. 신라시대 남자 기생들의 이야기, 뮤지컬 ‘풍월주’가 바로 그것. 작품은 신라시대 남자 기생들이 높은 신분의 여성들을 접대하는 ‘운루’를 배경으로 한다. 운루에서 각자 사연을 품고 생활하는 남자 기생을 ‘풍월주’(風月主)라 부른다. 운루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풍월주인 ‘열’은 핏빛 개혁을 한 ‘진성여왕’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운루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사담’을 향해 있다. 소재가 독특해서인지 몰라도 풍월주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은 상당하다. 본 공연 전 프리뷰 공연 8회차의 티켓 2400장이 오픈 5분 만에 전석 매진됐을 정도다.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떠오른 창작 뮤지컬 ‘풍월주’에서 주인공 ‘열’ 역을 맡은 배우 성두섭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 봤다. 성두섭은 풍월주 대본을 받자마자 ‘이건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원래 계약 직전까지 간 다른 작품이 있었지만, 풍월주의 대본을 읽게 되면서 풍월주 ‘열’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됐다고. “다른 작품 제안을 거절하면서까지 풍월주를 하고 싶었어요. 남자 기생이라는 캐릭터가 너무 신선했고, 열의 사랑이야기가 가슴 아팠거든요.” ●“남녀 모두에게 매력적인 모습 전달” 그가 맡은 ‘열’은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사랑받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그래서 성두섭은 요즘 고민이 크다고 했다. 관객들에게 열이 왜 남자와 여자 양쪽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만큼 매력적인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죽을 거 같아요.”라며 웃었다. 그가 분석한 열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릴 줄 아는 인물이란다. 그는 “최고 권력의 자리에 있지만 상처가 있는 진성여왕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사담이라는 오랜 친구와 깊은 우정이자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바로 열이란 인물이에요. 매력적이죠.”라며 특유의 환한 웃음을 지었다. 성두섭은 그간 꾸준히 뮤지컬 작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왔다. 2005년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로 데뷔한 그는 뮤지컬 ‘그리스’(2007년),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2007년), ‘김종욱 찾기’(2008년), ‘내마음의 풍금’(2009년), ‘빨래’(2010~2011년), ‘늑대의 유혹’, 연극 ‘옥탑방 고양이’ 등에 출연하며 쉴새 없이 달려온 것. ●“아버지 덕에 중학생 때 방황 대신 댄스 몰입” 지금의 성두섭이 있기까지는 아버지의 지지와 응원의 힘이 컸다.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서울에서 경기도 부천으로 갑자기 전학을 갔다. 다소 방황할 뻔했던 그 시기 아버지가 지역 신문에 조그마하게 난 복지회관의 중학생 댄스팀 오디션 공고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 길로 복지회관으로 달려가 오디션을 봤고, 합격해 전국대회까지 나가는 수준급 댄서가 됐다. 그때의 무대 경험 등이 밑바탕이 돼 그는 연예인들을 많이 배출하기로 유명한 서울예술대학 연극영화과에 수능 없이 100% 실기로 합격했다. 재수생 시절, 연기학원에서 만난 친구 3명과 함께 입학시험을 봤는데 홀로 붙게 됐다고. 그때 함께 시험 본 친구들 가운데 2명이 tvN 코미디 빅리그의 ‘따지남’ 개그맨 윤진영, 김필수이다. 그는 “사실 대학에 안 가려고 했는데, 진영이랑 필수가 연기하려면 서울예대를 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얼떨결에 시험 보러 갔다가 저만 합격해 엄청 미안했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면접시험에서 특기 하나 준비하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무대 위에서 갈고닦은 춤 실력과 각종 개인기로 심사위원들에게 그를 알린 게 합격의 비결이란다. 하지만 이 모든 성과의 출발은 아버지의 지지와 응원 덕분이었다는 게 성두섭의 설명이다. 성두섭의 아버지는 지금도 개인 블로그와 트위터 등을 통해 아들의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할 정도로 열성적이다. ●“영화·드라마서도 활동하고 싶어” 그는 대학 생활을 1년 정도밖에 누리지 못했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휴학했고, 프로 공연 무대에 조금씩 서게 되면서 제때 복학하지 못해 제적된 상태라고. 하지만 짧은 대학생활을 통해 그는 뮤지컬 배우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신입생 시절 학교 선배들의 뮤지컬 ‘페임’ 무대를 보면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노라 다짐했다고. “강태을 선배 주연의 ‘페임’ 공연을 보고 가슴이 뛰었죠. 제가 좋아하는 춤과 노래, 연기를 모두 할 수 있는 게 바로 뮤지컬이더라고요.” 그는 지금 배우로서 무대에 서는 생활이 아주 행복하단다. 뮤지컬 무대는 물론이고 영화와 드라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성두섭의 변화가 기대된다. 한편 뮤지컬 ‘풍월주’는 5월 4일부터 7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에서 공연된다. 4만~5만원. 1577-3363.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26일 TV 하이라이트]

    ●과학카페(KBS1 밤 11시 40분) 세 아이의 엄마인 박은영씨. 4일은 집에서 근무하고 하루만 동대문구청에 나가서 일한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난해 12월부터 구청의 정보통신망을 통해 업무를 하는 재택근무 덕분이다. 바쁜 직장 생활 때문에 양육과 집안일에는 신경 쓰기 어려웠지만 이제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져 진짜 엄마가 됐는데…. ●TV소설 복희누나(KBS2 오전 9시) 금주는 복희라도 병만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덕천 양조장 인수에 대한 심수창의 집착을 이해하기 어려운 영표(최우석). 양조장을 살리겠다는 복희에게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송병만은 술 담그는 과정을 대강 적어 건넨다. 한편 복희는 양조장에 무단으로 침입한 건달패와 시비가 붙는다. ●메디컬 스토리 닥터스(MBC 오후 6시 50분) 고혈압, 당뇨, 흡연과 마찬가지로 코골이 역시 혈관 질환의 대표적인 위험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작년 12월 심장 혈관이 좁아져 수술을 받은 문복임씨. 그녀는 20대 때부터 불면증에 시달렸다. 검사 결과 심각한 수면무호흡증으로 진단됐다. 과연 치료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나에게 적합한 치료법은 무엇일까. ●생활의 달인(SBS 밤 8시 50분) 다양한 재료, 가지각색의 요리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별난 간식들. 한·중·일의 눈과 입을 사로잡는 이색 간식들을 공개한다. 통감자를 얇게 저미는 기술로 잘라내 바로 튀겨내는 한국 김순기씨의 회오리 감자부터 중국의 휘날리는 빵의 달인 오웨이와 일본 화과자의 고수인 20년 경력의 기타무라까지 만나본다. ●헬스 투데이(EBS 오전 6시) 생활 요가 첫 번째 시간을 맞아 요가의 기본인 호흡법을 체계적으로 다루어 숨을 제대로 쉬는 것만으로도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내용을 준비했다. 올바른 호흡을 통해 체내의 노폐물을 내보내고 혈압을 안정시키며 감정을 정화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상황별 호흡법을 생활화하여 보다 건강한 하루를 만끽해본다. ●명불허전(OBS 밤 10시) 스포츠 해설가 허구연은 어린 시절부터 야구 선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부상을 당해 해설위원으로 변신했다. 그는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면서 한국야구 발전뿐 아니라 세계에 야구를 보급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또한 9구단, 독립팀 창단과 관련해 공헌을 했다고 전한다. 그동안 차마 밝힐 수 없었던 그의 공은 과연 무엇일까.
  • [23일 TV 하이라이트]

    ●아비정전(KBS1 밤 12시 20분) 마음 둘 곳 없어 방황하는 아비(장궈룽)는 전형적인 건달이다. 그는 본능적인 사랑만 추구한다. 아비는 축구장 매점에서 일하는 수리진에게 접근해 특유의 감언이설로 꼬드긴다. 순진한 수리진은 결혼을 생각하지만, 아비에게 한마디로 거절당하고 발길을 끊는다. 한편 거리를 순시하던 경찰이 수리진을 만나게 된다. ●VJ 특공대(KBS2 밤 9시 55분) 싸고 푸짐하고 맛좋은 대학가의 대단한 맛집들의 총 집합이다. 경기도 안성의 한 대학교 앞 맛집은 돼지 한 마리를 통으로 해체하여 항정살, 목살 등 각종 부위를 4~5인용 기준으로 2만 5000원에 먹을 수 있다. 여기에 학생우대 5000원을 할인받고 나면, 2만원에 두루두루 배 터지는 만찬을 즐길 수 있다고 하는데…. ●위험한 여자(MBC 오전 7시 50분) 지원은 중국 지사로 가지 않기로 하고, 유라와 함께 작은아버지를 만난다. 유라는 지원의 작은아버지의 완강한 반대에 낙담한다. 강 회장은 도희를 불러들여 동민의 결혼은 절대 안 된다고 다시 못박는다. 그러나 도희는 자신이 동민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한편 동민은 강 회장에게 중대한 결심을 이야기한다. ●궁금한 이야기 Y(SBS 밤 8시 50분) 강남경찰서 유치관리계로 날아든 한 통의 편지. 발신자는 청송교도소에 수감 중인 수감번호 3394번, 34살의 남기석씨다. 편지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절도, 사기, 공문서 위조 등 갖가지 죄목으로 이미 12년 6개월째 수용생활 중인 남씨. 그가 보낸 편지에는 2살 때 헤어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담겨져 있었다. ●헤어드레서(EBS 밤 12시 5분) 고도비만인 카티는 남편과 헤어지고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직업소개소에서 헤어드레서로 일을 소개받지만, 미장원 원장은 카티를 보고 아름다움을 다루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외모라며 퇴짜를 놓는다. 카티는 새로운 직업을 찾느니 창업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자신만의 미용실을 차리기 위한 카티의 고군분투가 시작된다. ●박종호의 오페라 글라스(OBS 낮 12시 10분) 오페라 해설가이자 정신과 전문의인 박종호. 그가 최고의 예술가 베르디의 ‘가면무도회’에서 왕의 암살 뒤에 숨겨진 비련의 이야기를 통해 오페라 이면에 있는 인간의 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또한 그의 해설과 함께 소프라노 김은주, 테너 이정원 등이 실제 오페라 속의 장면들을 선보인다.
  • [주말 영화]

    ●라카와나 블루스(KBS2 토요일 밤 12시 15분) 벤 산티아고 허드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라카와나 블루스’. 뉴욕 라카와나 왓슨가 32번지에는 유모 혹은 엄마로 통하는 레이철이 운영하는 하숙집이 있다. 레이철은 오갈 데 없이 내몰린 흑인들에게 손을 내밀고 그들을 도우며 살아간다. 어린 루벤은 부모가 이혼한 후, 엄마 에일린이 생활비를 벌려고 웨이트리스 일을 하게 되면서 하숙집 방에 혼자 방치된다. 이를 보다 못한 레이철은 에일린을 설득해 루벤을 돌봐 주기로 한다. 엄마가 멀리 떠나 버린 후에도 루벤에겐 레이철이 있어 전혀 슬프지 않다. 레이철의 하숙집에는 모두 사연이 있는 흑인들이 모여 있었다. 루벤은 이들을 통해 인종차별의 아픈 과거와 전쟁이 남긴 상처, 연인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른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을 배워 나간다. 한편 어른이 된 루벤은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지만 레이철의 사랑 덕분에 사람들이 진정한 공동체의 울타리를 마련했음을 느끼게 된다. ●맨발의 청춘(EBS 일요일 밤 11시) 건달인 신두수는 거리에서 깡패에게 핸드백을 빼앗기게 된 여대생 요안나를 구해준다. 요안나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러 두수의 아파트에 찾아오고, 신분 차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빠져든다. 대사의 딸인 요안나는 레슬링장에서 첫 데이트를 하며 난생 처음 어머니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험을 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던 두수는 요안나가 즐겨듣는 클래식을 들어 보거나, 잠들기 전 성경책을 읽어 보며 자신을 변화시켜 간다. 요안나는 두수에 대한 마음이 깊어지면서 두수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안한다. 하지만 취직을 부탁하기 위해 요안나의 어머니 친구와 만난 자리에서 두수는 모욕을 당하게 된다. 자신의 처지를 깨닫게 된 두수는 위악적인 태도로 요안나에게 거리를 두게 된다. ●강철중: 공공의 적 1-1(OBS 토요일 밤 11시 15분) 강동서 강력반 꼴통 형사 강철중.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닌다. 하지만 15년차 형사생활에 남은 거라곤 달랑 전셋집 한 칸이 전부다. 형사라는 직업 때문에 은행에서 전세금 대출받는 것도 여의치 않다. 잘해야 본전, 잘못하면 사망 혹은 큰 장애를 입을 수 있는 힘든 형사 생활에 넌더리가 난 그는 급기야 사표를 제출한다. 때마침 한 고등학교에서 터진 살인사건 때문에 그의 사표 수리는 미뤄지고, 이번 사건만 해결하면 퇴직금을 주겠다는 반장의 회유에 말려들어 귀찮은 사건 현장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살인사건은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죽은 학생의 지문이 얼마 전 강동서 담당에서 일어난 도축장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에 남은 지문과 같다는 사실을 밝혀내는데….
  • [영화프리뷰] ‘크로니클’

    [영화프리뷰] ‘크로니클’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샘 레이미 감독의 영화 ‘스파이더맨’(2002)에서 주인공 피터 파커의 삼촌이 숨을 거두며 한 말이다. 원해서 초능력을 갖게 된 건 아니더라도, 힘을 가진 이상 책임을 느끼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설적으로 준비되지 못한 자에게 초능력이 주어질 때 치명적인 독(毒)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미드 ‘히어로즈’의 사일러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세계평화나 정의실현 따위에는 관심 없는 사일러처럼 상처받고 비뚤어진 영혼에 초능력을 주면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다. 고교생 앤드루는 사촌 맷을 빼면 마땅히 속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다. 투병 중인 어머니와 툭하면 주먹을 휘두르는 주정꾼 아버지가 가족의 전부. 어느 날 외딴 농장에서 열린 파티에 간 앤드루와 맷, 스티브는 함몰된 땅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발광물체를 발견한다. 그날 이후 작은 변화가 생긴다. 손짓으로 원하는 대로 물건을 움직이고, 포크로 손등을 힘껏 찔러도 다치지 않는다. 초능력을 얻은 소년들은 처음에는 낄낄대며 장난친다. 별생각 없이 친 장난으로 다른 사람을 죽일 뻔한 이유로 소년들은 당황한다. 하지만 한번 선을 넘기가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문제도 아니다. 가장 빠른 속도로 초능력을 익힌 앤드루가 공격적인 본능을 드러내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다면. 슈퍼맨 같은 슈퍼히어로처럼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싶은 이들도 있을 게다. 하지만 10대라면 다르지 않을까. 평소 괴롭히던 동네 건달이나 학교 일진을 두들겨 패주거나 구름 위에서 축구를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자연스럽다. 소년들의 판타지를 28세의 신예 조시 트랭크 감독은 고교 동창 맥스 랜디스(각본)와 함께 ‘크로니클’(15일개봉)로 만들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가장 먼저 달려든 20세기폭스 사에 트랭크는 “나를 감독으로 채용해야 대본을 살 수 있다.”는 당찬 조건을 내걸었다. 형식적으로 ‘크로니클’은 ‘블레어위치’(1999) ‘파라노멀액티비티’(2007)처럼 실재 기록이 담긴 테이프를 누군가가 발견해 다시 관객에게 보여주는 척하는 이른바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방식을 취했다. 캠코더를 분신처럼 지니던 앤드루가 염력으로 카메라를 허공에 띄워놓고 조작할 수 있다는 설정으로 나름대로 리얼리티를 얻었다. 카메라를 통해서만 세상과 소통하는 앤드루의 모습은 유튜브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세대 관객들과 통하는 지점이다. 트랭크 감독은 “별다른 설명이나 묘사가 필요없는 이런 영화가 나타날 때가 됐고, 누군가가 찍은 장면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관객은 영화가 재미있다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120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짜릿한 시각적 쾌감을 구현한 이 영화는 북미에서는 지난달 3일 개봉했다. 유튜브에 예고편이 공개되자 800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화제를 모으더니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전 세계 흥행수익은 이미 1억 달러를 돌파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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