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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란법 본회의 통과] “부정청탁 개념 모호… 명확성·과잉금지 원칙 위배” 우려 고조

    [김영란법 본회의 통과] “부정청탁 개념 모호… 명확성·과잉금지 원칙 위배” 우려 고조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법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위헌 논란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은 위헌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수정했다지만 위헌 소지는 여전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3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김영란법은 법안이 규정한 부정청탁의 개념이 모호해 명확성 원칙에 어긋나고, 직무 관련성과 대가성이 없는 금품수수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어 과잉 금지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품수수와 처벌에 관한 규정이 구체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고 적용 대상이 너무 넓다”며 “이런 경우 사법자 재량 범위가 커져 사법자가 입법권을 갖는 형태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국회의원과 공무원 등의 공공기관 종사자뿐 아니라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까지 포함하는 정무위안이 유지된 데 따른 비판도 나온다. 박찬종 변호사는 “당초 입법 취지대로 공직자에게 초점을 맞췄어야 한다”며 “언론과 교육계까지 확대하는 바람에 처벌 대상자가 너무 많아져 법이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고, 자칫하면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적용 범위를 어떻게 조절하느냐 등 운용의 문제를 염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적용 대상이 모든 친인척에서 배우자로 줄어들어 위헌 시비는 크게 제기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규제의 대상이 되는 행위가 명료하지 않아 적용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게 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때 신고를 의무화한 부분은 ‘불고지죄’ 부활로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가족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된다. 재경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안이 정치적으로 통과됐다”며 “법이 규율하는 것은 최소한의 도덕인데, 김영란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위헌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던 간통죄도 위헌 결정이 나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법안 통과도 어렵지만 폐지는 훨씬 힘든데 김영란법 통과 이후가 더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씨줄날줄] 암살/문소영 논설위원

    암살(暗殺)은 특정인을 비합법적으로 살해하는 행위다. 정치·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을 정치·종교·사상적인 이유를 들어 손쉽게 제거하는 방법이 암살이다. 개인적 보복이라기보다 특정한 조직이나 권력자들과 연계된 경우가 허다하다. 영어로 암살(assassination)의 어원은 마약 하시시(hashish)를 복용한 사람을 가리키는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1세기 말 하산 사바바가 페르시아에서 비밀결사 아사신파(派)를 만들고 결사대원에게 하시시를 먹여 국왕과 요인들을 암살하게 했고, 12세기 십자군을 통해 유럽에 알려졌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에 암살이 많았다. 특히 독재 국가에서는 암살로 독재자가 정적을 제거하기도 했고, 역으로 독재자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기도 했다. 선진국에서도 암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 미국에서 1865년 노예해방을 위해 남북전쟁을 불사한 링컨 대통령이, 1963년엔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됐다. 식민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암살도 있었다. 안중근은 1909년 중국 하얼빈역에서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 일본 전 총리를 암살했다. 한반도로 시선을 돌리면 고려 말 조선 건국을 도모하던 이성계 등의 무리는 고려의 충신 정몽주를 개성 선죽교에서 암살했다. 조선시대 수양대군은 조카인 단종에게서 왕권을 빼앗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으로 영의정 김종서 등을 암살하는 ‘계유정난’을 일으켰다. 1945년 해방된 뒤 좌우 이념 갈등이 격화되는 과정에서 언론인 송진우가 1945년 12월에, 몽양 여운형이 1947년 7월 암살됐고, 백범 김구는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 뒤인 1949년 6월 피격됐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 사망한 사상계의 발행인 장준하 역시 타살이자 암살로 최근 드러났다. 세계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암살은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이다. 이 암살은 초기 예상과 달리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한두 달 사이에 영국·프랑스·러시아가 한 편이 된 ‘삼국협상’과 오스트리아·독일·이탈리아가 ‘삼국동맹’으로 맞서 전쟁을 벌인 탓이다. 1918년 전쟁이 끝날 때까지 약 1000만명이 죽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인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가 지난달 27일 크렘린궁 인근에서 피살돼 러시아와 유럽이 들끓고 있다. 암살설이 파다하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밑에서 제1부총리를 지낸 넴초프는 피살되던 날 라디오 방송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광적이고 공격적인 유혈 정책으로 러시아가 위기에 빠졌다”면서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 푸틴을 비판하다가 암살된 야당 인사나 언론인, 고위 공직자들이 적지 않다. 이번 일로 푸틴 체제가 더 공고화될지, 발밑에서 붕괴가 시작될지 잘 지켜봐야 한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10년마다 2.6일 빨리 찾아오는 봄

    10년마다 2.6일 빨리 찾아오는 봄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봄 시작일이 지난 37년간 열흘 정도 당겨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1일 기상청에 따르면 권재일 기상청 예보국 연구원과 최영은 건국대 지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대한지리학회지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앙상블 경험적 모드 분해법을 이용한 우리나라 봄 시작일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1974년부터 2011년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43개 지점의 일평균기온 자료를 토대로 ‘봄 시작일’을 분석했다. 기상학적으로 봄 시작일은 ‘일평균 기온이 섭씨 5도 이상으로 올라가 다시 떨어지지 않는 날’을 뜻한다. 연구기간 중 우리나라의 평균 봄 시작일은 3월 11일로 조사됐다. 위도와 고도가 높을수록, 해안에서 내륙으로 갈수록 봄이 더디게 찾아왔다. 가장 빨리 봄이 시작된 지역은 부산(2월 18일)이고 대관령(4월 9일)은 그보다 최대 50일 늦게 봄이 시작됐다. 봄 시작일은 10년당 2.6일, 연구 대상 기간인 37년간 열흘 정도 앞당겨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된 1980년대 후반 이후 변화 속도가 가팔랐다. 변화는 남해안과 동해안 지역에서 뚜렷했고 내륙과 서해안 지역에서는 비교적 더뎠다. 부산의 봄 시작일은 10년당 5.4일이 빨라져 37년간 약 21일이나 차이를 보였다. 연구진은 봄 시작일이 당겨진 원인과 관련, “지구 온난화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실제 지구 평균기온이 상승한 해에는 우리나라 봄 시작일도 빨라졌다. 또 시베리아 고기압의 세력이 약해지거나 북반구에 존재하는 추운 공기의 소용돌이가 수십일 또는 수십년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인 ‘북극진동’이 약할 때 봄이 앞당겨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도시화의 영향도 컸다. 권 연구원은 “학문적인 의미 못지않게 봄꽃 축제나 관광산업 등 ‘봄이 언제 시작되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 관련 산업에 이번 연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3·1절 인터뷰] “祖父는 日 쉰들러… 조선 청년을 동지로 생각하고 변론 앞장”

    1919년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2·8 독립선언은 재일(在日) 조선인 유학생들이 제국의 심장인 도쿄 한복판에서 독립을 요구한 사건이다. 이 사건의 뒤에는 ‘일본의 쉰들러’라고 불리는 한 일본인 변호사의 조력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후세 다쓰지(1880~1953). 이 사건으로 기소된 9명의 조선인을 위해 변호에 나서는 등 식민지 시대 많은 조선인을 도운 이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후세 변호사는 2004년 일본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기도 했다. 지난 25일 후세 변호사의 외손자인 오이시 스스무(80)를 만나 2·8 독립선언 사건 당시의 상황과 후세 변호사의 치열했던 삶에 대해 들었다. 1980~2008년 출판사 일본평론사의 사장·회장을 역임한 오이시는 2010년 한국에도 번역 출판된 ‘후세 다쓰지와 조선’을 비롯해 4권의 책을 펴내는 등 할아버지의 삶을 알리는 데 앞장서왔다. →후세 변호사가 2·8 독립선언 사건을 맡게 된 계기는. -할아버지는 항소심부터 관여했다. 기소된 한국인 유학생의 친구가 찾아와서 사건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중국과 조선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더군다나 유학생들의 행동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맡게 된 것 같다. 2·8 독립선언은 나도 감동할 정도로 훌륭하다. 학생들은 어두운 역사에서 맨 처음 떨쳐 일어난 사람들이다. 할아버지는 2·8 독립선언에서 유학생들이 대한제국의 부활이 아닌 민주주의를 주창하는 것에 주목했다. 거기에 동조해 그들을 동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2·8 독립선언은 어떻게 일어나게 됐나. -그해 음력 정월은 2월 1일이었다. 8일의 독립선언은 새해 축하를 끝낸 조선인 유학생들이 체포를 각오하고 감행한 것이었다. 학생들은 특별고등경찰(일본 구 경찰 중 정치·사상 관계를 담당)의 주목 대상이었다. 촘촘한 감시망을 뚫고 그들은 그날 오전 한글, 영어, 일어로 쓰여진 독립선언문을 몰래 각국 대사관과 신문사, 학자 등에게 보냈다. 오후 2시 간다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 모여 독립을 선언했다. 경찰에 의해 즉시 해산됐고 체포자가 나왔다. 독립선언문을 만들어 뿌린 것이 출판물의 인쇄·발행·배포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출판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후세 변호사가 사건을 맡았을 때의 상황은. -재판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8일 체포돼 10일 기소, 15일 1심 판결, 3월 21일 항소심 판결, 6월 26일 상고심 판결이 나왔다.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상고심까지 끝난 것이다. 당시 조선에서 반일 사건의 처리는 길게 끌수록 통치에 악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대개 즉결 처리했다. 기소된 9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내란예비죄가 아니라 출판법으로 기소된 것도 그 때문이다. 할아버지가 항소심에 관여하기 전 1심을 담당한 두 명의 변호사는 ‘국헌 문란이기 때문에 유죄를 인정하지만 젊은이들이니 집행유예를 부탁한다’, ‘조선은 일본에 합병됐기 때문에 이들의 행위는 일본이라는 본가의 행랑방을 빼앗은 정도다. 그렇다고 일본의 국체가 붕괴되는 일은 없다’며 감형을 호소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대체 조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며 그들을 나무랐다. 할아버지는 당국의 온정을 바란 것이 아니라 2·8 독립선언을 한 청년들의 생각을 존중하며 조선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919년 일본은 러시아 소비에트 정권에 붙잡힌 체코군을 구출한다는 명목으로 시베리아를 침공했다. 당시 할아버지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 논리를 역이용해 “체코의 독립을 도왔던 일본이 왜 조선의 독립은 돕지 않는가”라고 검사에게 질문하며 피고인석과 방청석을 열광케 했다고 한다. →조선인과 대만인 등 식민 치하의 국민들을 도우면서 후세 변호사는 두 번의 변호사 자격 박탈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이유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 아닐까. 할아버지는 기독교(그리스 정교) 세례도 받았지만 그전에 중국 묵자를 공부했다. 묵자의 사상은 한마디로 사랑이다. 이웃의 아픔은 곧 자신의 아픔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할아버지의 주변에서 가장 아파하는 사람이 우연히도 조선인이었던 것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일방적으로 조선인을 도운 것은 아니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조선인이 당시에 매우 귀했던 우유를 공짜로 넣어주거나, 집마다 1명씩 차출되는 방공훈련을 할아버지 대신 해준 사람도 있다. 할아버지와 조선인 간에는 마음의 이어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2009년 다큐멘터리도 제작됐지만 아직 후세 변호사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동의한다. 할아버지가 좌익이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 나도 여든 살이다. 나처럼 할아버지가 한 일을 후세에 전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일본의 전전, 전후에 대한 역사가 제대로 평가된다면 자연스럽게 할아버지가 한 일도 평가받지 않을까 기대할 뿐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아직도 식민 지배와 관련된 청산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어려운 문제다.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전체의 틀을 보지 않고 위안부나 강제연행 같은 개별 문제를 놓고 무엇이 사실인지 일일이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틀리기 쉽다. 더 큰 틀에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으면 (식민지배와 관련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 -일본의 식민 지배, 아니 그 이전에 청일전쟁이 끝난 뒤 명성황후 시해부터 시작된 역사에 대한 사죄나 배상이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다. 1965년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서 경제협력이나 무상지원이 실시됐지만 그런 정치적인 조치 말고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사죄나 배상은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이것이 일본이 독일과 다른 점이라고 본다. 그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한국인은 용서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 사진 가마쿠라(가나가와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3·1절 앞두고 대한민국 훈장을 만나다

    3·1절 앞두고 대한민국 훈장을 만나다

    박근혜 대통령, 26년간 전국 노래자랑을 지켜온 방송인 송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산소탱크’ 박지성 선수,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를 구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석해균 선장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언뜻 보면 나이와 성별, 직업 등이 달라 공통점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이분들의 가슴에는 모두 제가 달려 있습니다. 국가와 사회 발전에 노력한 유공자만 받을 수 있는, 제 이름은 ‘훈장’입니다. 3·1절을 앞두고 저를 찾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 고향은 경북 경산 갑제동 한국조폐공사 화폐본부입니다. 지폐와 동전을 찍어내는 곳 아니냐고요? 맞습니다. 부의 상징인 돈과 명예의 상징인 훈장을 한곳에서 만든다니 좀 의외죠. 그래도 이곳에 쌓여 있는 수많은 현금을 다 줘도 저를 살 수는 없으니까 제가 돈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故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나라 위해 일 한 뒤 받겠다”… 관례 깨고 퇴임 때 받아 화폐본부에는 1985년 이사 왔습니다. 이전에는 배지 등을 제작하는 민간업체 ‘정일사’에서 만들어 정부에 납품했는데요. 제 몸통에 용접으로 붙였던 고리가 종종 떨어지는 등 건강에 문제가 생겼거든요. 그래서 고향을 떠나 저를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조폐공사로 짐을 쌌죠. 제가 태어나기까지는 30번이나 손을 거쳐야 합니다. 지폐나 동전처럼 생산 과정이 기계화되지 않아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만들어야 하니까요. 우선 99.99%의 순은을 965도 이상에서 2시간 동안 녹여 은괴를 만듭니다. 은괴를 기계로 눌러 은판이 되면 훈장 모양을 찍습니다. 어렸을 때 먹었던 추억의 ‘뽑기’처럼 훈장 모양만 남기고 나머지 부분을 떼어내는 ‘타발 과정’이 이어집니다. 이어 빨간색 등 여러 색상의 옷을 입히는 ‘칠보’와 광택으로 멋을 낸 뒤 순금으로 도금하고 조립·포장을 거치면 완성입니다. 제 형제는 모두 56명입니다.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훈장 등 12종으로 각각 1~5등급으로 나뉩니다. 다만 훈장 중에서 최고의 훈격을 갖는 무궁화대훈장에는 등급이 없습니다. 무궁화대훈장은 우리나라 대통령과 우방국의 원수, 배우자에게 수여합니다. 은으로 만드는 다른 훈장과 달리 순금으로도 제작됩니다. 루비 4개와 자수정 36개도 들어갑니다. 대통령은 취임할 때 받는 것이 그동안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나라를 위해 일하기도 전에 훈장부터 받는 것은 잘못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습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잘하고 받겠다”는 뜻에서 이 관례를 깼지요. 이명박 전 대통령도 같은 의미에서 퇴임 직전에 훈장을 받았습니다. ●‘최고의 훈격’ 무궁화대훈장만 순금 제작… 남성용 3071만원, 여성용 1951만원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저를 가슴에 달았는데요. 역대 대통령이 받았던 훈장과는 다릅니다. 무궁화대훈장은 남성용과 여성용으로 나뉩니다. 들어가는 금도 남성용 717g, 여성용 455.4g으로 차이가 납니다. 저를 목에 걸고, 어깨에 두르고, 가슴에도 달아야 하기 때문에 남녀의 체격을 고려한 것입니다. 역대 대통령은 영부인 훈장까지 2개씩 받았지만 박 대통령은 여성용 1개만 받았습니다. 제 몸값은 ‘국가 기밀’이라고 하는데요. 그래도 얘기하자면 일반적으로 20만~100만원입니다. 5등급에서 1등급으로 높아질수록 재료인 은이 많이 들어가서 몸값이 비싸집니다. 무궁화대훈장은 27일 국내 금 시세(1g당 4만 2832원)로 보면 남성용 3071만원, 여성용 1951만원입니다. 훈장이라는 제 이름과 이미지 탓에 주로 공무원, 군인 등만 받는다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저는 산업, 문화, 체육, 과학기술 등 우리 사회의 각 분야에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공을 세운 분들께 수여됩니다. 최근에도 2012년 ‘강남스타일’로 전 세계에 ‘케이팝’(KPop)을 널리 알린 가수 싸이가 옥관 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전 국민의 심장을 뛰게 했던 2002년 월드컵에서 태극전사를 4강으로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에게도 체육훈장 청룡장이 전달됐습니다. ●공무원연금 개혁 후폭풍에 명퇴 공무원 급증… 작년 수훈자 2만여명 일반 국민이 직접 수상자를 추천할 수도 있습니다. 2011년부터 우리 사회의 숨은 유공자를 찾아내기 위한 ‘국민추천포상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요. 첫해에는 영화 ‘울지마 톤즈’로 알려진 고 이태석 신부에게 국민훈장 무궁화장이 수여됐고, 지난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정부보조금 등으로 모은 재산 1억 2000만원을 불우학생 장학금으로 기부한 김군자(88) 할머니가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습니다. 작년에는 김 할머니를 포함해 총 2만 1669명이 훈장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인구(5042만명) 기준으로 국민의 0.03%만 가질 수 있는 영예죠. 지난 5년간 연평균 수상자는 1만 5700명인 데 반해 지난해 수훈자가 크게 늘어난 이유는 정부의 공무원연금 개혁 추진에 따른 후폭풍 때문입니다. 명예퇴직한 공무원이 1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72%나 늘었거든요. 재직 기간이 33년 이상인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원, 별정우체국 직원에게 주는 근정훈장과 군인·군무원에게 수여하는 보국훈장이 대거 나갔습니다. 화폐본부 훈장과에서는 지난해처럼 일이 몰린 적이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뒤 처음이라고 하네요. 열심히 일하고 훌륭한 분들에게 훈장을 주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라 사정이 안 좋을 때 수훈자가 늘어나는 것은 다소 씁쓸합니다. 경산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30년 장인’ 배연창 작업과장 “천안함 용사 위해 만들 때 가슴 먹먹…그런 훈장은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조폐공사 화폐본부 훈장과에는 저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하는 직원 10명이 있습니다. 이 중 배연창(57) 작업과장은 지난 30년간 저만 만들어온 최고의 장인으로 꼽힙니다. 고 김대중 대통령부터 4명의 대통령에게 수여한 ‘무궁화대훈장’도 배 과장의 손을 거쳤습니다. 하지만 배 과장의 기억에 가장 남는 훈장은 2010년 3월 천안함 46용사를 위해 만든 ‘화랑 무공훈장’이라고 합니다. 무공훈장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전사자에게 주로 수여돼 그동안 6·25 전쟁 전사자들의 유골이 발굴되면 가끔씩 만들곤 했습니다. 배 과장은 “훈장을 만들면서 가장 가슴이 메이고 숙연한 마음이었다”면서 “앞으로 이런 훈장을 다시 만들지 않는 대한민국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 [잊혀진 3·1절] “물려받은 건 가난뿐… 원망 많았지만 그래도 존경합니다”

    [잊혀진 3·1절] “물려받은 건 가난뿐… 원망 많았지만 그래도 존경합니다”

    “무명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이란 게 평탄할 리 있겠습니까만, 그래도 항상 자랑스럽습니다.” 3·1절을 앞두고 27일 서울 성북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석주(石洲) 이상룡(1858~1932) 선생의 증손자 이범증(71)씨는 “증조부님의 행적이야말로 요즘 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아니겠냐”고 말했다. 석주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내각수반)을 지냈다. 경북 안동 유림명문가의 99칸짜리 대저택(임청각·보물 182호)에서 태어난 이 선생은 국운이 기울자 모든 기득권을 버린 채 1911년 만주로 떠났고, 전 재산을 다 바쳐 서간도에 독립군기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학계 평가에 비해 그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씨는 “증조부를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독립운동가들이 많다”며 안타까워했다. 독립운동의 길은 가족들에게도 험난했다. 이 선생이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임청각과 토지 등을 다 팔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집안에 한 명이라도 독립운동을 하면 가문이 망한다고 했는데 우리 집안은 삼 대가 했다”며 “광복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난뿐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씨는 이 선생의 3형제와 아들, 손자, 조카들까지 모두 독립운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7남매 중 막내인 이씨는 형제 중 유일하게 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워낙 가난했기 때문에 부모님이 자녀들을 돌볼 틈이 없었다”면서 “그나마 혼자 대학을 나올 수 있었던 건 제일 늦게 태어난 덕분”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학창시절 소풍이나 수학여행은 커녕 대학 시절에도 친구 자취방에서 얹혀 지내며 스스로 학비를 댔다.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30년 넘게 교사 생활을 하다 2007년 퇴직했다. 서울 중앙중 교장을 맡았던 마지막 8년 동안에는 3·1절이 되면 학교 홈페이지에 특별한 훈화글을 남겼다. 이씨는 “‘선열들은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고 만세를 불렀다’는 글귀를 매번 썼다”면서 “개인주의가 심화된 세대인 만큼 학생들이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본받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비서장 등을 지냈고 1962년 건국훈장을 받은 동암(東岩) 차리석(1881~1945) 선생의 아들 차영조(71)씨의 유년도 크게 다르지 않다. 차씨는 “아버지가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 9일 과로로 쓰러져 돌아가셨다”며 “어머니는 그때부터 충무로에서 사과궤짝 위에 양담배를 올려놓고 장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양담배 판매가 불법이었지만 젊은 여자가 자식을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었으니 어머니는 매일 단속을 당해도 다음날 좌판을 벌였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차씨는 광복 이후 정부가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위한 별다른 지원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당시 정부는 친일파에게는 거꾸로 면죄부를 주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보호해 주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돈과 먹을 것을 달라는 게 아니라 스스로 살아가게끔 교육이라도 시켜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전혀 도움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13세 때 어머니가 중풍으로 쓰러진 뒤부터는 ‘아이스께끼’ 장사, 여관 심부름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차씨는 병원 갈 돈이 없어 어머니를 제대로 치료할 수 없었던 때, 처음 아버지를 원망했다고 했다. 그는 “어머니는 배고프게 살면서도 항상 ‘아버지는 훌륭한 독립운동가’라고 강조했다”면서도 “유년시절엔 많이 원망했다”고 고백했다. 전력검침원과 건설노동자로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그는 1977년부터 홀로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사업회 일을 시작했다. 차씨는 “2019년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데 그때까지 국내에 임시정부 기념관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전했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지난 26일부터 이상룡·차리석 선생 등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 인물 열전 60권을 전시하고 있다. 홍선표 독립기념관 연구위원은 “공적이 뚜렷하지만 국민에게 낯선 이름들을 소개하는 이번 사업을 계기로 독립운동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3·1절 인터뷰] 일본인 첫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3·1절 인터뷰] 일본인 첫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받아

    ‘민중과 함께 살고, 민중을 위해 죽다.’ 후세 다쓰지 변호사의 묘비명은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보여준다. 후세 변호사는 제국주의의 광풍이 휘몰아친 20세기 초 일본에서 식민 치하의 조선인을 비롯한 약자들의 편에 서온 양심적 지식인이었다. 그는 1880년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농가에서 태어났다. 1902년 메이지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22세에 사법관 시보(검사)가 됐다. 그러나 생활고 때문에 자식과 동반자살을 시도했다 미수에 그친 어머니를 살인미수로 기소해야 하는 현실을 보며 회의를 느끼고 임관 1년도 안 돼 사임했다. 1904년 변호사로 개업한 그는 1906년 도쿄시 전철요금의 인상을 반대하는 시민대회가 발단이 된 소요사건의 변호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쌀 소동사건(1918년), 가마이시 광산·아시오 동산·야하타 제철소 파업사건(1919년) 등 굵직한 노동 사건의 변호를 맡았다. 후세 변호사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의 희생자인 조선인들을 앞장서 변호하는 한편 인간적인 연대도 이어갔다. 한·일 강제합병 다음해인 1911년 ‘조선의 독립운동에 경의를 표함’이라는 글을 발표했고, 1923년 관동대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조선인 학살사건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조선의 한 언론에 이를 사죄하는 글을 보내기도 했다. 그는 암울한 제국주의하에서 온몸으로 항거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인권변호사, 사회운동가로서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두 번의 변호사 자격 박탈과 두 번의 투옥을 경험했다. 1945년 패전 이후 변호사 자격을 회복한 뒤에는 재일 한국인과 관련된 변호를 도맡았고 1946년에는 해방된 한국을 위해 ‘조선건국 헌법초안’을 작성하기도 했다. 2001년부터 한국에서 그에 대한 서훈 추진이 이뤄져 2004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족장 수여가 결정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인사]

    ■서울신문 △체육부 선임기자 임병선△사진부 선임기자 강성남△산업부 차장 주현진 ■교육부 △경기도 제2부교육감 문병선△대학정책과장 신문규△세종시교육청 최병만◇부이사관 승진△학생복지정책과장 강병구△학교생활문화과장 오성배△진로교육정책과장 최승복 ■문화체육관광부 ◇고위공무원 승진△국장급 국외직무훈련 파견 전병극 ■보건복지부 △복지급여조사담당관 김충환△UN ESCAP 파견 근무 현수엽△응급의료과장 임호근△기초생활보장과장 박재만△공공의료과장 황의수△홍보기획담당관 윤병철△국립서울병원 총무과장 유재섭△오송생명과학단지지원센터 지원총괄팀장 윤보영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 황보국△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 최기동 ■국민안전처 ◇국장급 승진△재난복구정책관 임종철△재난대응정책관 윤용선△해양오염방제국장 김형만△국방대 교육훈련 파견 이승우◇국장급 전보△안전총괄기획관 김동현△생활안전정책관 최복수◇과장급 신규 임용△재난보험과장 변지석 ■법제처 △경제법제국장 김형수△법령정보정책관 이상희◇부이사관 파견△중앙공무원교육원 안상현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정보과장 이임식△국무조정실 직무파견 김성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부사장 박영준 ■극지연구소 △미래전략실장 진동민△남극세종과학기지 제29차월동연구대장 최한구△남극장보고과학기지 제3차월동연구대장 한승우 ■생명보험협회 ◇부서장 <승진>△소비자제도부장 김인호△호남지역본부장 박병권<전보>△기획부장 강성규△전략지원부장 신영선△판매제도부장 김홍중△시장자율관리부장 지정훈△사회공헌센터장 장승록△감사실장 박경미△수도권지역본부장 조대연△중부지역본부장 윤상△대구지부장 이우승 ■MBC ◇기획국△국장 이은우△부국장 박종형◇관계회사국△부국장 피용선△자회사부장 이상옥◇경영지원국△국장 송병희△부국장(인사부장 겸임) 오영근◇편성국△국장 김도인△부국장 홍상운◇라디오국△국장 노혁진△라디오제작1부장 유경민◇보도본부△통일방송연구소장 신강균◇보도국△국장 최기화△부국장 지윤태△취재센터장 오정환△편집1센터장 홍기백<부장>△경제 배선영△사회1 김소영△사회2 허무호△전국 김태진△문화레저 도인태△정보과학 조문기△국제 박상후△기획취재 임영서△뉴스데스크편집 김경태△뉴스투데이편집 금기종◇예능본부△예능본부장 김엽△예능1국장 이흥우△예능1국 제작2부장 전진수△예능2국장 사화경△예능2국 부국장 김구산◇실장△사회공헌 홍곤표△논설위원 송재우◇국장△시사제작국 정연국△스포츠국 정용준◇경인지사△지사장 한기현△부국장(인천총국장·고양의정부총국장 겸임) 김석창 ■아시아투데이 △임원실 부사장 이상호 ■서울대 △수의과대학장 김재홍△수의과대학 부학장 한호재△치의학대학원 학생부원장 노상호△기록관장 김태웅△서울대/포스코스포츠센터장 김선진 ■서울시립대 △대학원장 유광수△공과대학장(과학기술대학원장 겸임) 권원태△인문대학장(교육대학원장 겸임) 서도식△자연과학대학장(자연과학연구소장 겸임) 김규성△도시과학대학장(도시과학대학원장 겸임) 서순탁△예술체육대학장 김설향△디자인전문대학원장 정상근△교무처장 한문섭△입학처장 김대환△학생처장(대학보건소장 겸임) 김현성△기획처장 안성제△연구처장(산학협력단장 겸임) 김인철△서울시민대학장(교육혁신본부장 겸임) 남기범△중앙도서관장 최기호△전산정보원장 김진석△국제교육원장 강명구 ■건국대 ◇서울캠퍼스△법학전문대학원장(법과대학장 겸임) 권종호△생명환경과학대학장 원종필△창업지원단장 강민형△인재개발센터장(공공인재육성센터-일우헌센터장 겸임) 김영봉◇글로컬캠퍼스△미디어커뮤니케이션대학장 이성훈△공공인재대학장 박상진△교양교육원장(언어교육원장 겸임) 이용우△미래지식교육원장(보육교사교육원장 겸임) 소순창 ■부국증권 ◇임원 승진△전무이사 김지우 ■알리안츠생명 △영업부문대표(CSO) 이상용
  • 순수한 욕망, 뜨거운 눈빛… 영화 ‘순수의 시대’로 돌아온 연기파 배우 신하균

    순수한 욕망, 뜨거운 눈빛… 영화 ‘순수의 시대’로 돌아온 연기파 배우 신하균

    학창 시절 인상을 잔뜩 쓰고 있는 제임스 딘의 고독한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던 소년. 친구들과 함께 영화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였던 그는 영화배우를 꿈꿨고, 20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 배우 중 한 명이 됐다. 팬들은 ‘연기의 신’이라는 뜻에서 그의 이름을 비틀어 ‘하균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바로 연기파 배우 신하균(41)이다. 지난 25일 만난 그는 이 별명에 대해 “너무 민망하다. 제발 그 단어만은 쓰지 말라”며 웃으며 손사래 쳤다. 그가 새로 들고 나온 영화 ‘순수의 시대’(새달 5일 개봉)는 그의 필모그래피 중 가장 파격적인 작품이다. 데뷔 이후 첫 사극인 데다 멜로 및 액션 연기의 폭도 가장 크다. 그가 맡은 장군 김민재는 자신의 사랑을 순수하게 지키는 인물로 4차원의 엉뚱한 캐릭터나 광기 어린 사이코패스 등 기존의 역할과도 거리가 멀다. “뭔가 가득 차 있거나 완벽한 인간에게는 매력을 잘 못 느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딘가 결핍되고 안쓰러워 보이는 캐릭터를 많이 맡았죠. 저 역시 그렇고요. 이번에 맡은 김민재는 제 나이에 표현할 수 있는 역할이고 무엇보다 트라우마가 있는 남자가 사랑의 감정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이 가장 좋았어요.” 영화 ‘순수의 시대’는 조선 건국 초기인 1398년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 이방원이 정도전 등 반대파를 숙청하고 권력을 손에 넣은 제1차 왕자의 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정도전의 사위인 김민재와 정도전의 외손자이자 태조의 딸 경순공주의 남편인 김진(강하늘) 등 허구의 캐릭터를 더해 야망으로 혼탁한 시대를 거스르는 한 남자의 순수함을 그렸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인간의 욕망을 다루는 영화는 멜로에 좀 더 방점을 찍은 분위기다. 권력의 핵심에 있는 듯하지만 정작 자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에 휩싸인 김민재는 어머니를 닮은 기녀 가희(강한나)에게 흔들려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허망한 눈빛으로 전장을 바라보는 장면만 봐도 민재는 출세를 위해 달려온 사람은 아니에요. 현실에서 사랑에 올인하는 것은 드물지만 출구 없는 삶을 살고 있는 민재의 상황이 충분히 이해됐어요. 원초적인 욕망을 좇는 시대에 민재는 자신이 믿는 순수한 욕망을 추구한 거죠.”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한국판 ‘색, 계’로 불렸던 만큼 노출과 베드신이 많이 등장한다. 평소 운동을 즐기는 편이 아니라는 그는 7개월가량 운동 및 식이 조절을 통해 체지방을 27%까지 낮췄다. “체력과 지구력이 떨어져 촬영장에서 불쑥불쑥 신경질이 나기도 했죠. 하지만 민재가 안쓰러워 보였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더 컸어요. 노출이 민망하지만 영화를 위해서라면 더한 것이라도 해야죠. 민재가 대사 표현을 잘하지 않는 데다 정사 장면에도 각각의 콘셉트가 있어 ‘몸의 대화’로만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요.” 군 제대 후 연극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한 그는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순수한 이미지로 대중적 인기를 얻은 뒤 ‘복수는 나의 것’에서 순수하지만 광기 어린 유괴범, ‘지구를 지켜라’에서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힌 엉뚱한 청년, ‘예의없는 것들’에서 벙어리 킬러 등을 맡았다. ‘브레인’ ‘미스터백’ 등의 최근 드라마에서는 까칠하고 개성 있는 캐릭터로 변신했다. “늘 새로움을 줄 수 있는 이야기와 캐릭터, 장르에 주안점을 두고 작품을 고릅니다. 특히 영화적 상상력이 풍부한 역할을 좋아하는 편이죠. 하지만 ‘지구를 지켜라’ 때는 캐릭터가 너무나 독특한 나머지 연기에 스트레스를 받아 살이 80㎏ 가까이 찌기도 했었어요.(웃음)” 철두철미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플라모델 조립을 좋아하고 만화 탐독을 즐기는 아기자기한 취미를 가졌다. 스타보다 배우를 꿈꿔 온 그의 연기 철학은 ‘전달자’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다. “연기란 정해진 틀대로 되는 것이 아니잖아요. 작품마다 진심을 담고, 인물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그려내려고 노력하죠. 관객들이 항상 배우 신하균의 1년 뒤, 5년 뒤 모습을 궁금해했으면 좋겠어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단순한 테러리스트인가… 무슬림 이상주의자인가… “IS가 궁금해” 이슬람 서적 봇물

    단순한 테러리스트인가… 무슬림 이상주의자인가… “IS가 궁금해” 이슬람 서적 봇물

    무자비한 인질 참수와 화형, 이슬람을 비하한 만평가를 향한 무차별 총격 등 자극적인 테러와 폭력으로 전 세계의 공분을 사고 있는 과격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지난달 시리아 접경지역인 터키 킬리스에서 잠적한 김모(18)군이 IS에 가담해 훈련 중인 것으로 확인되면서 IS의 실체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이에 맞춰 출판가에서는 이슬람 무장세력의 출현 배경과 활동 목적, 분쟁과 갈등으로 점철된 이슬람 세계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서적들이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최근 출간된 ‘이슬람 불사조’(글항아리)는 IS의 정체와 그들이 궁극적으로 목표하고 있는 ‘칼리프 국가’ 건설의 전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칼리프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계자 혹은 대리인으로 선발된 이슬람제국 최고통치자를 가리킨다. 저자인 로레타 나폴레오니는 이탈리아 출신의 테러리즘 전문가로 특히 테러조직의 자금 루트에 정통하다. 일본에서 지난 1월 번역 출간돼 종합 베스트셀러 10위권에 올랐던 책은 IS가 중동의 오래된 종파 대립, 아랍민족주의와 서구의 갈등, 칼리프에 대한 해석 문제, 천연자원 쟁탈, 아랍 보수 왕정과 강대국들의 대리전쟁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얽혀 파생된 결과물이라는 점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는 “IS는 단순한 과격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칼리프 국가 건설을 꿈꾸는 국가(지향적) 세력”이라며 “이상적인 무슬림 국가, 즉 현대판 칼리프 국가의 부활은 IS 구성원들에게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속력을 제공한다”고 진단했다. 저자에 따르면 IS 탄생의 역사적 근원은 서구 제국주의의 중동 분할 공작인 사이크스피코협정(19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며, 따라서 이들은 유대인이 이스라엘을 건국한 것처럼 예언자 무함마드의 권위를 이어받는 칼리프의 이름으로 국경선을 다시 긋는 ‘현대 중동의 재탄생’을 기획하고 있다. 20년간 테러집단의 재정 흐름을 분석해 온 저자는 IS를 세계화와 최신 테크놀로지에 의해 성장한 준(準)국가로 바라보며, 특히 경제력과 사회 인프라를 정치 주권보다 우선시한 조직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강성민 글항아리 대표는 “친서방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테러경제학에 초점을 맞춰 IS의 실체를 보여 줄 수 있는 책”이라며 “이슬람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이슬람 총서’ 시리즈로 10여권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사는 이슬람 근대성과 자유주의 및 과격분자들의 기만성을 다룬 슬라보이 지제크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 프랑스 여기자의 지하드 잠입 취재기 ‘지하디스트가 되어라’,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이슬람 파시즘’ 등을 연이어 출간할 계획이다. 저명한 과학 저널리스트인 니콜라스 웨이드의 ‘종교유전자’(아카넷)는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과 전쟁을 일삼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지게 된 연원을 파헤치는 책이다. 현직 언론인인 정의길 국제 전문기자가 쓴 ‘이슬람 전사의 탄생’(한겨레출판)은 현대 이슬람주의의 탄생에서 IS까지 지난 35년간 이슬람권에서 벌어진 일들을 분쟁을 중심으로 세밀하게 담아냈다. 그런가 하면 무슬림의 시각에서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본 만화도 출간됐다. ‘미래의 아랍인’(휴머니스트)은 독재자 카다피 치하의 리비아와 하페즈 알아사드 치하의 시리아에서 유년기를 보낸 작가 리아드 사투프의 자전적 그래픽노블이다. 지난달 프랑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만화축제인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의 대상 수상작이다. 30여년 전으로 돌아간 작가는 어떤 편견도 갖지 않은 순진한 소년의 눈으로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아랍 내부의 풍경을 담아낸다. 책은 특히 시리아 수니파 집안 출신으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리아드의 아버지를 통해 과도기적 상황에 놓인 당시 아랍의 위선과 허위를 고발한다. 무슬림이지만 돼지고기를 먹고 기도도 하지 않는 아버지는 종교적 제약에서 벗어나야 한다면서도 아들에겐 쿠란을 외우게 한다. 서구 자본주의를 배척하는 듯하면서도 고급 외제차를 동경하는 그는 당시 아랍의 과도기적 상황을 고스란히 체화한 인물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만큼 뜨겁지 않다. 휴머니스트의 위원석 교양만화주간은 “객관적인 시각을 제공할 수 있는 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중동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려는 독자들이 적은 편”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부고]

    ●정연대(코스콤 사장)박철성(법무사)씨 장모상 25일 제천 제일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043)651-5102 ●박창조(예스트론 대표)창백(우진화성 대표)의진(금곡초 교사)씨 부친상 김미려(영파여고 교사)씨 시부상 이성호(사업)변재상(미래에셋증권 사장)씨 장인상 25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8시 (02)3010-2262 ●강종철(전남도청 홍보기획담당)씨 장인상 25일 해남 국제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061)536-4494 ●이준영(전 청주시장)씨 별세 24일 충북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10시 30분 (043)269-7211 ●김병량(전 성남시장)씨 별세 25일 분당서울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31)787-1503 ●태정호(전 우원개발 대표)씨 부친상 김동규(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장)씨 장인상 25일 건국대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30분 (02)2030-7909 ●차용범(부산 벡스코 상임감사)순옥(전 정심라이온스클럽 회장)씨 모친상 25일 부산의료원, 발인 27일 오전 7시 (051)607-2651 ●김윤환(고려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씨 별세 주일(한국기술교육대 산업경영학부 교수)소영(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숙이(김숙이의원 원장)씨 부친상 허구연(MBC 야구발전위원회 위원장)최광현(중앙의원 원장)씨 장인상 이희진(HR디자인연구소 대표)씨 시부상 25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927-4404 ●김학문(전 문경시장)씨 별세 장윤자씨 남편상 형기(강원대 건축공학과 교수)현숙(양천구 구립신나는어린이집 원장)영기(사업)씨 부친상 황윤억(에이치링크 사장)씨 장인상 25일 문경장례식장, 발인 28일 오전 8시 (054)555-7000
  • 전문가 10인이 진단하는 금감원 진웅섭號의 100일

    전문가 10인이 진단하는 금감원 진웅섭號의 100일

    26일은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의 취임 100일이다. 진 원장은 사석에서 “일하다 보니 시간만 갔다. 그래서 말할 소감도 없다”고 한다. 일부 전문가들은 “존재감이 너무 미미해 100일이 됐는지도 몰랐다”고 평가한다. 아예 “학계나 언론에서 주목받은 적이 없어 관심 대상도 아니고, 임기를 채울 수 있을지도 의문”(김상조 한성대 교수)이라는 신랄한 비난도 나온다. 그래도 “학벌·스펙보다는 실력 위주 인사로 혁신을 유도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경제·금융 전문가 10인에게 진웅섭호의 100일을 들어 봤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금감원이 금융위원회와 큰 충돌 없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측면은 바람직하다고 봤다. 하지만 ‘윗선’(금융위)과 코드를 너무 맞춘 탓에 금감원만의 ‘영역’을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전임자의 방향성을 유지하는 점은 정책 연속성 측면에서 효율적이지만 문제는 감독 철학의 부재”라며 “기술금융 ‘줄세우기’ 등 정부의 금융 정책을 견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안에 따라 감독기관 수장으로서 독립적인 시각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도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융합)는 비대면 금융거래라 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금감원은 핀테크 정책에 대한 건전한 비판 없이 진입 규제 완화만 강조하는 등 금융위의 방향만 맹목적으로 따라가고 있다”고 일갈했다. 김상봉 한성대 공공행정학부 교수는 “금감원이 핀테크 정책에서 해야 할 일은 규제장치 및 감독 규정을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진 원장은 “현 시점에서 어느 한쪽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는 건 성급한 판단이 될 수 있다”면서 “감독 당국은 사회적 공론을 통해 제도가 결정됐을 때 이를 빠르고 원활히 접합시킬 수 있도록 저변을 까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진 원장이 직접 브리핑까지 했던 ‘금융사 종합검사 점진적 폐지’에 대한 우려도 높다. 진 원장은 지난 3일 가진 첫 기자간담회에서 “관행적인 금융사 검사를 점차 없애 자율성을 보장하되 문제가 있는 부분을 미리 선별 검사하겠다”고 공언했다. “‘인증검사’를 ‘사후검사’로 전환해 금융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방향은 바람직하다”(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과 교수는 “상시 검사로 경영 실태를 다 파악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책상에 앉아 기업이 주는 자료만 받아 부실 징후를 살필 수 있는지, 그런 전문 인력이 충분히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어떤 부분을 상시 감시할 것인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상시 감사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김동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지적도 있다. 김홍범 교수는 “(검사 폐지가 성공하려면) 금감원장이 금융 관련 사고가 터졌을 때 ‘피’(관련자 처벌) 묻히기 싫어하는 조직 분위기를 바꾸고 정치적 외풍을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사에 대해선 우호적 반응이 많았다. 강명헌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학벌타파 등 참신한 인사 구성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김동환 위원도 “전문성을 우선에 뒀다는 점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면서 “단, 금융계에 연륜과 노하우가 쌓인 노장에 대한 배려는 생각해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안원경 인턴기자 cocang43@seoul.co.kr
  • 성취감 낮아진 공직사회

    성취감 낮아진 공직사회

    공직자 스스로 업무 수행 능력이 민간 기업에 견줘 빼어나다고 응답한 비율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23일 한국행정연구원 임성근 박사에 따르면 이런 답변은 지난해 51.4%로 절반을 조금 웃돌았다. 2013년엔 12.7% 포인트 높은 64.1%였다. 중앙부처와 17개 광역자치단체, 지방공무원 일반직을 대상으로 2013년 2013명, 지난해 2020명 설문한 결과다. 아주 부정적이라는 응답은 2013년 6.3%에서 지난해 6.8%로 오히려 상승했다. 반면 자신의 전문성에 대해 ‘높다’는 응답은 2013년 64.9%에서 지난해엔 48.3%로 주저앉았다. 부정적인 응답은 2013년 5.3%에서 지난해 9.8%, 보통이라는 응답은 29.8%에서 1년 새 41.9%로 치솟았다. 업무에 대한 흥미를 묻는 항목에선 ‘긍정’ 답변이 2013년 61.9%에서 지난해 54.6%로 내려갔다. 성취감이 떨어진 데 따른 것이다. 업무 성과의 장애 요인으로는 13.8%가 부족한 담당 인력, 12.4%가 부서 간 협조 불충분, 10.8%가 일·가정 양립을 위한 지원 부족을 꼽았다. 2014년 조사에선 수시로 변하는 업무 우선순위(9.7%), 잦은 인사이동으로 인한 전문성 부족(9.6%), 상하·동료 간 원활한 의사소통 부족(9.3%), 복잡한 업무 처리 절차(8.1%), 비합리적인 업무 마감 기한(6.0%), 권한 부족(5.1%) 순이었다. 1위는 2013년과 같지만 부서 간 비협조가 1년 전(6위)에 비해 네 계단이나 뛰었다는 게 이채롭다. 보수 적정성에 대한 설문 결과는 더욱 심각하다. ‘부정’ 응답이 2013년 59.0%에서 지난해 68.6%로 높아진 반면 ‘보통’ 응답은 33.0%에서 26.6%로, ‘긍정’ 응답은 7.9%에서 4.8%로 곤두박질쳤다. 그러나 이직할 의향은 줄어들어 대비되는 태도를 보였다. 일터를 옮길지에 대해 부정한 비율은 2013년 39.5%에서 지난해 41.5%로, 긍정한 응답은 29.4%에서 26.4%로 바뀌었다. 임 박사는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출 수 있도록 공무원의 인식을 중심으로 공직사회 현주소를 돌아보고 제도적 보완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혁신처는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바람직한 공무원상 재정립’ 포럼을 행정연구원과 공동으로 개최한다. 중앙 및 지자체 공무원, 일반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임 박사에 이어 하미승 건국대 교수가 ‘공직사회 발전 방향-시대 흐름과 국민 눈높이에 맞는 변화 모색’, 이근주 이화여대 교수가 ‘바람직한 공무원상-어떻게 찾고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최문기 서원대 교수가 ‘바람직한 공직자상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으로 발제에 나선다. 아울러 신용일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수의 사회로 ‘한국 공무원의 역할 재정립 및 공직가치 명확화와 제도적 확보 방안’에 대해 대토론을 벌인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건선이 심혈관계 질환 발병 위험 높인다”

    “건선이 심혈관계 질환 발병 위험 높인다”

     건선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건국대병원 피부과 최용범(사진) 교수는 건선이 동맥 경직도(BSI)를 증가시키는 위험인자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3일 밝혔다.   동맥 경직도란 동맥 혈관의 섬유화 정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동맥경화증이 심하다고 보면 된다. 동맥경화증은 혈관의 중간층에서 섬유화가 진행되면서 혈관의 탄성이 줄고 딱딱해지는 질환이다. 이 때문에 혈관이 좁아지면서 혈액순환 장애와 고혈압을 초래할 뿐 아니라 심장근육이 두꺼워지는 심장비대 현상과 뇌졸중·뇌경색 등 심장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최용범 교수는 건국대병원 피부과를 찾은 건선 환자 54명과 일반인 대조군 60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건선이 심장혈관 질환의 독립적인 위험인자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두 집단의 성별과 연령(건선환자군 41.8살±12.9살, 대조군 39.3살±11.5살), 비만 정도(BMI 지수, 건선 환자군 23.6+3.6, 대조군 22.8+2.8)를 조사한 결과, 두 집단이 비슷했다.  이를 근거로 연구팀은 고해상도의 경동맥 심장 초음파를 이용해 동맥 경직도와 동맥 내중막 두께(cIMT)를 측정했다.  동맥경직도와 동맥 내증막 두께는 죽상동맥경화증의 진행 정도를 알 수 있는 표지자다. 죽상동맥경화증은 동맥경화증과 죽상경화증을 합한 용어로, 죽상경화증은 혈관 가장 안쪽인 내막에 콜레스테롤이 침착하고, 세포가 증식하면서 둥글게 솟아오르는 죽종과 함께 주변 부위에 단단한 섬유막이 형성되면서 혈관이 좁아지는 병이다. 동맥이 딱딱하게 굳는 동맥경화증과 함께 심혈관 질환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그 결과, 건선환자 군의 동맥경직도는 8.15+3.72로, 일반인 대조군의 5.85+2.05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선 환자군의 동맥 내증막 두께는 0.56+0.14㎜로, 대조군의 0.53+0.08㎜에 비해 다소 높았으나 차이는 크지 않았다. 이 연구 결과는 심혈관분야 국제학술지인 ‘혈관학(ANGIOLOGY)’ 최근호에 게재됐다.  최용범 교수는 “피부과 질환인 건선이 비만과 고혈압, 당뇨 등 주요 위험인자와 상관없이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연구”라며 “특히 건선이 동맥경직도의 직접적인 위험 요소인 만큼 건선을 치료할 때는 동맥경화 정도도 함께 확인해 환자의 심장질환 발병 위험을 조기에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건선은 붉은 색의 반점이나 판 형태의 발진과 함께 표면에 은백색의 비늘이 있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주로 팔꿈치와 무릎, 엉덩이, 두피와 손톱, 발톱 등에 잘 생긴다.  심재억 의학전문기자 jeshim@seoul.co.kr
  • ‘순수의 시대’ 장혁 강하늘의 파격 베드신 19금 예고편

    ‘순수의 시대’ 장혁 강하늘의 파격 베드신 19금 예고편

    영화 ‘순수의 시대’ 2차 예고편과 캐릭터 포스터가 공개됐다. ‘순수의 시대’는 왕좌와 권력을 향한 욕망이 뒤엉켰던 1398년 ‘왕자의 난’ 중심에 있던 난세의 세 남자, 장군 김민재(신하균)와 왕자 이방원(장혁), 왕의 사위 진(강하늘) 그리고 그들을 매혹한 기녀 가희(강한나)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이번에 공개된 2차 예고편은 전장에서 혈투를 벌이는 장군 김민재와 침상에서 격렬한 정사를 나누는 왕자 이방원의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또 화려한 액션 신들을 통해 인물들간의 대결구도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순수의 시대’는 한국판 ‘색, 계’로 입소문이 나면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상황. 이번 예고편에 드러난 장혁과 강하늘의 파격적인 베드신은 영화에 대한 궁금증을 더한다. 예고편과 함께 공개된 포스터는 정도전의 사위이자 외적을 막아낸 총사령관 김민재 역의 신하균과 아버지 이성계를 도와 조선 건국에 힘썼으나 세자 책봉에서 제외된 비운의 왕자 이방원 역의 장혁, 또 김민재의 아들이자 원치 않는 왕의 사위 자리에 오른 진 역의 강하늘과 매혹적인 기생 역의 강한나까지 각각의 캐릭터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영화 ‘블라인드’를 연출한 안상훈 감독의 신작 ‘순수의 시대’는 오는 3월 5일 개봉된다. 사진·영상=CJ엔터테인먼트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대법관 공석 사태 2년 7개월 만에 재연… 법조계 “공백 막게 추천제 대폭 손봐야”

    대법관 공석 사태 2년 7개월 만에 재연… 법조계 “공백 막게 추천제 대폭 손봐야”

    박상옥(59·사법연수원 11기)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무산된 가운데 17일 신영철(61·8기) 대법관이 퇴임함에 따라 대법원은 또다시 대법관 공석 사태를 맞게 됐다.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여야 갈등으로 뒷전으로 밀린 데다 야당은 ‘불가 입장’을 굳힌 상태라 대법관 공석 사태가 자칫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2012년 7월 김병화 후보자 사퇴로 최장 117일간 대법관 공석 사태가 이어진 이후 2년 7개월 만이다. 15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지난 11일 예정됐던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무산된 뒤 여전히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은 검찰 출신인 박 후보자가 초임 검사 시절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에 참여해 사건 축소, 은폐에 동조했다며 인사청문회를 전면 거부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반복되는 대법관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추천제도를 대폭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대법원장을 제외한 12명의 대법관이 3개의 소부를 구성해 한 해 약 3만 6000건의 사건을 다루는 대법원은 당장 17일부터 11명이 사건을 처리하게 된다. 4명의 대법관이 참여하는 소부는 3명 이상이면 일단 운영할 수는 있다. 다만 신 대법관의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동안 나머지 11명이 신 대법관이 주심으로 처리해 온 사건을 나눠서 담당하게 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지금도 과부하 상태인 대법관의 업무량이 더욱 늘어나게 된다”며 “충실한 상고심 판단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기존 판례를 변경하거나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건을 심리하는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대법관 13명 전원의 3분의2 이상 출석 요건을 두고 있어 1명이 없어도 진행할 수는 있지만 대법원은 다양한 의견 수렴을 위해 1명이라도 공석일 경우에는 전원합의체를 열지 않았다. 앞서 대법원은 2012년 7월 검찰 출신인 안대희 대법관 후임으로 임명 제청된 김병화 후보자가 각종 의혹이 제기된 끝에 자진 사퇴하는 과정에서 26일 동안 대법관 8명 체제로, 4개월간 11명 체제로 운영되기도 했다. 2011년 말에는 김용덕·박보영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까지 마치고도 국회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여당 강행 처리와 관련해 파행을 거듭하면서 이듬해 1월까지 40여일간 공백 사태가 있었다. 각종 의혹 제기와 여야 힘겨루기로 공백 사태가 빚어진 것은 최고 사법기관의 하나인 헌법재판소도 예외는 아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반복되는 공백 사태의 원인으로 추천 과정의 폐쇄성을 꼽는다. 대법관의 경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정부 의중에 맞게 구성되는 데다 이들이 대법원장에게 최종 후보군을 추천할 때까지 언론은 물론 법조단체에서도 사전 검증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법관 후보 지명 과정이 너무 비민주적이고 비밀스럽게 이뤄지니까 사전에 검증이 안 되는 사태가 반복되는 것”이라면서 “박 후보자의 경우 추천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났다면 추천위의 심사 대상이 되기 전에 걸러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정도전이 ‘조선의 지식인’이 안 된 이유는

    정도전이 ‘조선의 지식인’이 안 된 이유는

    조선의 지식계보학/최연식 지음/옥당/336쪽/1만 6000원 조선시대의 지식인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조선시대에는 지식인을 대외적으로 공인하는 ‘문묘 종사’라는 구체적인 기준이 존재했다. 조선에는 수준 높은 학문과 비판 정신을 겸비한 지식인이 많았지만 문묘에 종사된 이는 단 15명뿐이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으로 최근 ‘정도전 열풍’을 몰고 왔던 정도전은 문묘종사 성현의 목록에 포함돼 있지 않지만 조선 개국에 반대했던 고려의 충신 정몽주는 문묘종사 목록에 포함돼 있다. ‘조선인의 지식계보학’은 조선의 지식인 15명이 문묘에 종사되는 과정을 통해 지식인 국가 공인 과정에서 벌어진 치열한 권력 전쟁을 파헤치고 있다. 책은 정도전과 정몽주의 차이를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정치 권력 싸움에서 패배한 정도전에게는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조차 허락되지 않았으며 고려인 정몽주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조선 지식계보의 기원으로 탄생했다”고 말이다. 이처럼 이 책에서는 정도전과 정몽주를 비롯해 이황, 이이, 김굉필, 조광조 등 조선의 지식인 대상자 선정 과정을 들여다보며 조선 권력 정치의 속살을 파헤친다. 저자는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관찬 사료뿐만 아니라 개인 문집을 광범위하게 활용해 다양한 시각으로 인물을 분석했다. 조선 성리학의 계보가 순수한 학문적 기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권력과 지식인 사이 정치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결국 역사는 승자의 기록임을 에둘러 주장한다. 이 같은 계보를 탄생시킨 당대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현대 사회의 진정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를 마련한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못 배운 내가 가난을 물려준답니다

    못 배운 내가 가난을 물려준답니다

    부모의 교육·소득 수준 차이가 자녀들의 취업 뒤 임금 격차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필선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13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주최 제10회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부모의 교육, 소득 수준이 자녀의 고교, 대학 진학뿐 아니라 노동시장 성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04년 중학교 3학년이던 2000명의 한국교육고용패널을 2013년까지 10년 동안 추적조사한 결과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고교 진학의 유형부터 달라졌다.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의 경우 일반고와 특목고 진학률이 89.1%였지만, 1분위는 51.0%에 그쳤다. 소득 1분위 부모의 자녀 47.5%가 실업계 고교로 진학한 반면, 5분위는 10.9%에 불과했다.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대학 진학보다는 실업계고 진학을 통해 노동시장에 바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또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고등학교 성적이 높았다.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인 부모를 둔 학생의 고1 성적 1~2등급 비율은 16.2%, 3~4등급 비율은 49.3%였다. 반대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고졸 미만인 경우 1~2등급 비율이 3.3%에 그쳤다. 최 교수는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교육성과를 높이기 위한 투자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구 소득과 4년제 대학진학률도 비례했다. 소득 5분위 가정 자녀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68.7%고, 1분위는 30.4%로 조사됐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자녀의 대입 수학능력시험 결과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자녀의 수능성적 1~2등급 비율이 20.8%였지만, 고졸 미만인 부모의 자녀들은 1~2등급이 0.8%에 불과했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자녀의 취업 뒤 임금에도 영향을 줬다. 소득 4~5분위 자녀의 평균임금은 163만원, 1~3분위 그룹은 150여만원이었다. 또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자녀의 평균 임금은 179만원이었지만, 고졸 미만의 경우 145만원으로 조사됐다. 최 교수는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자녀의 교육에 대한 투자와 성과에 차이를 가져 오는 것”이라며 “세대 간 소득 이동성이 제약되고 사회계층이 세습화될 가능성이 커져 ‘개천에서 용이 나올’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뒤집어보는 팔레스타인

    뒤집어보는 팔레스타인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 우스키 아키라 지음/김윤정 옮김/글항아리/351쪽/1만 6000원 ‘지구촌 최고의 화약고’, ‘국제 분쟁지역의 최전방’…. 끝 모를 갈등과 일촉즉발의 충돌 위협이 상존하는 팔레스타인. 이곳은 정확한 위치며 점유의 권리 연원이나 증거조차 따질 수 없는 땅이다. 얽히고설킨 민족·정치·종교·국제관계 탓에 그 누구도 문제 해결을 선뜻 주도할 수 없는 ‘수수께끼의 땅’이 돼 버렸다. 최근 극성을 부리는 ‘이슬람국가’(IS)의 혼돈처럼 말이다. 팔레스타인은 정녕 ‘헤어날 수 없는 수렁’인가.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난관에 봉착해 해결 조짐이 보이지 않을 때 일차적으로 문제의 현상을 먼저 꼼꼼히 들여다보라고 권한다.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알고 매듭 실마리를 찾으라는 본질 탐색의 강조다. 최근 국제관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팔레스타인 문제도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흐름이 번지고 있다. 그 방식의 전환은 바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의 탐색과 그릇된 인식의 전환에 맞닿아 있기도 하다. ‘세계사 속 팔레스타인 문제’는 그 흐름에 맞춰 팔레스타인 문제에 접근한 입문서로 다가온다. 아랍어를 공부하다가 중동 문제에 흥미를 느껴 중동·팔레스타인 문제에 천착해 사는 일본여대 문학부 교수가 문제의 본질을 보자고 호소하다시피 써낸 팔레스타인 전문서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문제라면 늘 종교를 그 중심에 놓고 생각하기 일쑤다. 유일신교끼리의, 다시 말하면 이슬람교와 기독교, 혹은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갈등 점철이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문제의 출발은 사실상 종교와는 무관하다는 식의 접근이 책에선 도드라진다. 팔레스타인 인식을 뿌리째 흔들어 씻어 내는 역발상의 축적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팔레스타인은 로마시대의 호칭을 아랍어 식으로 발음한 ‘필라스틴’(필라스틴 사람의 땅)에서 유래한 말이다. 유대교도는 같은 땅을 히브리어 성서에 따라 ‘에레츠 이스라엘’(이스라엘의 땅)이라고 부른다. 명칭부터가 유럽과 서방에 기운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팔레스타인 안에는 세 유일신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다. 그 예루살렘을 포함해 팔레스타인에는 아랍어를 쓰는 유대교인·기독교인의 여러 종파가 공존해 살고 있었다. 신약성경에 사마리아인으로 등장하는 사마리아파 유대교도가 아랍어를 쓰는 유대교인이다. 동방교회라 불리는 종파는 아랍어를 쓰는 기독교도로 분류된다. 이 사실은 팔레스타인과 관련해 통념처럼 굳어진 아랍인과 유대인의 종교 간, 민족 간 대립이 성서시대 이후 2000년 동안 반복된 숙명의 대립이 아님을 입증한다. 지금의 통념은 근대 민족주의 사상에서 비롯됐고 이스라엘 건국 후 유대교도 대이주로 아랍세계의 유대교도 사회가 소멸해 고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서방세계가 유대인을 보는 시선도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시 풀어야 할 중요한 요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기독교 세계의 서방국가들은 기본적으로 유대인들을 ‘예수를 죽인 장본인’으로 여긴다. 오랫동안 지속된 그 ‘예수 살인’의 인식은 유대인들이 두고두고 겪어야 했던 수난의 큰 원인인 셈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 때도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주적인 무슬림(이슬람교도)과 내통하는 불구대천의 원수로 여겨 유대교도를 박해했다. 차곡차곡 쌓인 유대인 박해는 지금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크나큰 앙금이다. 유럽 패권 아래에서 만들어진 ‘근대세계 시스템’의 출발에도 처음부터 이슬람 세계의 패권에 대항하면서 유대교도를 박해하려는 의식이 내재돼 있었다고 저자는 분명히 지적한다. 오랫동안 받은 차별을 되갚아 주겠다는 듯 비유대계 시민을 차별하는 유대인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한다. 왜 유대교도가 유럽 기독교 사회에서 박해를 받았는지, 기독교와 이슬람은 유대교에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를 살핀 저자는 1880년대 제국주의 시대부터 2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팔레스타인 문제가 서구 강대국에 이용당했던 역사를 결정적인 팩트 위주로 설명한다. 그 구슬을 꿰면 역시 팔레스타인 문제의 통념을 바꾸자는 ‘사실 직시’와 ‘발상의 전환’으로 결정된다. 아랍어의 ‘살람’과 히브리어의 ‘샬롬’ 모두 평화를 뜻하는 말이지만 어떤 편에 서느냐에 따라 그 평화의 방향은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 그 해결의 단초는 이런 측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근대에 발생했던 모든 문제가 뒤엉켜 생긴 게 팔레스타인 문제이기에 이것은 19세기 이후 근대적 국민국가와 국제정치가 지녀야 할 본연의 모습을 묻는 문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유공자 후손 처우 실태

    [격동의 한·일 70년] 독립유공자 후손 처우 실태

    정부는 올해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아 국정과제의 하나로 ‘명예로운 보훈’을 채택했다. 하지만 정부의 보훈정책은 친일 잔재 청산과 ‘광복’보다는 한·미 동맹 강화나 6·25 참전 등 ‘분단’ 극복과 안보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는 평가다. 12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보훈 대상자는 지난해 12월 31일 기준으로 모두 242만 2727명이고 이 중 독립유공자(순국선열·애국지사) 관련 대상자는 6만 6190명이다. 생존 독립유공자(애국지사)는 88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6만 6102명은 배우자와 자식 등 돌아가신 애국지사의 유가족이다. 보훈처는 생존 독립유공자에게 훈격에 따라 매달 97만 3000원에서 490만 8000원의 보상금을 지급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 후손이다. 특히 사망한 유공자의 유족(배우자 포함)은 대통령 표창(52만 2000원)부터 건국훈장 1~3등급(217만 4000원)까지 매달 훈격에 따라 다른 보상금을 지급받는다. 그러나 유가족 중 실제 보상금을 지급받은 인원은 지난해 연인원 기준 5786명이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양승만(1990년 사망)씨의 다섯째 딸 양옥모(74) 할머니는 해방 당시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를 놓쳐 중국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양씨는 2011년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아버지가 받은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에 따른 유공자 월 보상금 120여만원은 중국에 있는 언니가 받고, 본인은 매달 기초노령연금 2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 박근영 독립유공자유족회 사무총장은 “중국에서 독립운동한 선조를 따라 살다 한국으로 온 사람이 1300여명 정도 되지만 한국에 기반이 없어 여자들은 주로 식당이나 가정집 파출부, 남자는 노가다 판을 전전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밝혔다. 보상금을 지급받은 유족 5786명 중에서도 건국훈장보다 등급이 낮은 건국포장이나 대통령 표창 대상자 1883명(32.5%)은 월 보상금이 52만 2000원~91만 6000원 수준으로 생계비로는 부족하다는 평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준 의원실이 보훈처로부터 제공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한 달간 독립유공자와 후손에 대한 보훈액수 총액은 65억 873만여원으로 나타났다. 보훈처는 현실적으로 모든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훈처 관계자는 “보상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유족에게도 영주귀국자에 대한 국내 정착금과 유족의 의료비 혜택, 취업 가점 등으로 수혜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훈처는 지난해까지 독립유공자가 1945년 8월 15일 이후 사망한 경우 손자녀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부터 최초 등록 당시 자녀까지 모두 사망해 유족 가운데 보상금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경우 손자녀 중 1명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그러나 정부의 올해 보훈 예산은 5조 2108억원(세출예산 4조 4674억원+기금예산 7434억원)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3조 6041억원은 보훈 심사와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 상이용사 등 포함)의 보상비용으로 투입된다. 이 밖에 의료·교육 등 보훈복지가 5971억원, 보훈선양사업 예산이 607억원이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사업 기금은 605억원이다. 이에 따라 보훈 예산 확보와 이명박 정부 시절 차관급 기관으로 격하된 보훈처의 위상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숨겨진 해외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 대한 발굴 노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안성호(충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보훈학회장은 “80세가 넘는 해외 6·25 참전 군인도 매년 초대하는데 중국 만주나 연해주 등 해외에 생존한 독립유공자도 적극 발굴하고 신경 써야 할 시점”이라고 밝혔다. 친일 행위자가 여전히 국립묘지에 독립유공자와 나란히 안장되는 현실도 풀기 어려운 과제다. 일본군으로 복무했던 반민족 행위자들이 6·25전쟁 등을 통해 국가 수호 공헌자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박 사무총장은 “월남 파병자나 6·25 참전자는 봉급을 받으면서 국가에 기여했지만 독립운동한 사람들은 자기 재산을 써 가면서 국가에 기여했다”며 “친일파의 후손은 잘살고 해외로 뿔뿔이 흩어진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여전히 소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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