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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일 + 나치’ 에키타이 안의 두 겹 그림자

    ‘친일 + 나치’ 에키타이 안의 두 겹 그림자

    안익태 케이스/이해영 지음/삼인/228쪽/1만 5000원‘유럽에서 명성을 떨친 걸출한 한국인 작곡가 겸 지휘자’.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1906~1965)에겐 이 같은 칭송의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하지만 친일 행각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친일 인사로 낙인찍혔고,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친일 인명사전에도 이름이 올랐다. 그 안익태는 미국에서 ‘애국가’를 발표한 직후 한 기고문을 통해 이렇게 당부했다. “대한국 애국가를 부르실 때는 애국가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서 애국적 정신으로 활기 있게 장엄하게 부르시되 결코 속히 부르지 마십시오.”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추적해 온 이해영 한신대 국제학부 교수가 쓴 ‘안익태 케이스’는 안익태의 또 다른 면모를 들춰내고 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을 나치에 부역한 비(非)애국인으로 확대해 충격적이다. 책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가장 중요한 국가 상징 가운데 하나인 애국가, 그중에서도 안익태의 애국가에 대한 것이며 안익태의 전기는 아니다.” 그 말대로 저자는 먼저 안익태 작품의 궤적을 훑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강천성악’(하늘에서 내려온 음악·1959년)은 일본 아악 선율을 서양악기로 편곡해 2차 세계대전 중 선전용으로 연주한 ‘에텐라쿠’의 개작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만주국 환상곡’은 1942년 일본 괴뢰국가인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음악회를 위해 만든 작품이다. 슬프게도 지금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는 ‘만주국 환상곡’의 피날레 부분이다. 안익태는 친일 부역의 산물인 ‘만주국 환상곡’ 악보를 1944년 파리 해방 직전 스페인으로 도주하면서 폐기했다. 이후 1938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처음 연주된 곡을 개작해 만든 게 ‘한국 환상곡’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분명히 말한다. “매국의 도구로 재활용하다 그것을 다시 애국이라 주장하면서 그 중간 과정을 없었던 것처럼 우긴다면 그것이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안익태를 ‘민족적 자랑’의 대상에서 ‘매국’의 인사로 끌어내린 결정적 계기는 10년 전 발견된 만주국 건국 10주년 축하연주회 영상이다. 1942년 9월 베를린에서 열린 이 연주회에서 안익태는 지휘를 하고 있다. 책에는 종전 안익태가 갖고 있던 이미지 전복의 충격을 훨씬 뛰어넘는 증거들이 넘쳐난다. 그 두 축은 바로 1938년 주베를린 만주국 공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해 1945년 7월까지 독일에 머물렀던 에하라 고이치, 그리고 나치 국가조직 독일협회와 안익태의 관계 및 활약상이다.에하라 고이치는 명목상 참사관이지만 사실상 일본의 유럽 첩보망 총책이었다. 미국전략정보국(OSS) 문서는 한결같이 그를 ‘일본의 유럽 첩보망 독일 책임자’로 명기하고 있다. 안익태가 작곡한 ‘만주국 환상곡’의 작사가이기도 했던 에하라 고이치. 안익태는 베를린 그의 집에서 2년 반 동안 단순히 묵어 살기만 했을까. 저자는 안익태가 그의 집에서 기거한 시점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대일, 대추축국에 선전포고를 한 1941년 12월이었음을 지적한다. 독일협회와 안익태의 관계는 더 충격적이다. 이 협회가 민간단체로 위장된 나치의 국가조직이었음을 들춰낸 저자는 에하라 고이치와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인 이름으로 활약했던 안익태의 가장 강력한 스폰서였다고 못박는다. 실제로 안익태는 에하라의 베를린 자택에 머물면서 1944년 히틀러 생일기념으로 파리에서 열린 ‘베토벤 페스티벌’을 비롯해 일본 동맹국과 독일 점령국·우방국 스페인에서만 30여 차례 공연했다. 안익태는 어떻게 당시 막강한 위세를 갖고 있던 일본제국, 나치 독일 정책과 동떨어진 채 순수한 사랑의 음악을 만들고 지휘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그 물음에 답하는 대신 나치 선전총책 괴벨스 주도로 조직된 독일제국음악원의 안익태 회원증을 제시하고 있다. 유일의 조선 출신 제국음악원 회원이었던 안익태의 회원증 오른쪽 하단에는 ‘정치적 관점에서 흠결이 될 만한 사항 없음’이라는 문구가 스팸프로 찍혀 있다. “안익태 애국가의 치명적 흠결은 그 선율이나 가사에 있지 않다. 그것을 지은 사람에게 있다. 만든 이가 최소한 애국적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의 이 말에 동의한다면 결국 비애국적 인사가 만든 애국가를 계속 쓸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저자는 그 대응 방법을 네 가지로 요약한다. 그냥 모른 체하거나 문제 있지만 통일될 때까지 그냥 사용하기, 기존 애국가를 계속 쓰면서 제2의 애국가 만들기, 국가제정위원회를 구성해 가사·곡 공모하기다. 그리고 이런 말을 남긴다. “선택은 결국 우리의 몫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금요칼럼] 가장 강력한 개성/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가장 강력한 개성/황두진 건축가

    미국 남부 버지니아주에는 샬러츠빌이라는, 인구가 5만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가 있다. 2017년 8월 극우인종주의자들의 폭력사태로 도시의 명성에 손상이 가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국의 대표적 역사도시의 하나다. 미국 건국기 대통령 중 세 명이 이 도시에 살았으며 그중 한 명인 토머스 제퍼슨은 건축가이기도 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두 건물, 즉 자택인 몬티첼로와 버니지아 대학은 198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바도 있다. 미국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샬러츠빌을 그냥 지나칠 수 없고, 당연히 시내 중심가는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몇 년 전 이 도시를 방문했을 때 중심 가로인 이스트 메인스트리트의 카페에 앉아 이 매력적인 거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한 가지 의문이 있었다. 이 거리에서 샬러츠빌만의 개성은 어떤 것일까? 무엇이 이 거리를 매력적으로 만들고 있을까? 1762년에 세워진 도시이므로 역사는 250년 남짓, 그리 오래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시간의 두께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그런데 생각보다 유서 깊은 건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적어도 고색창연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미국 역사와 관련된 유명한 사람이나 사건을 기리는 기념물이 여기저기 있기는 했지만 그 존재감은 크지 않았다. 거리의 상점이나 가게들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도시와 역사를 함께한 것같은, 소위 미국식 노포(老鋪)들이 없지 않았으나, 대부분은 그냥 어디에 가나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공정무역상점 같은 글로벌 체인점도 있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역사적 분위기에 흠뻑 빠져들 정도가 아니어서 실망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매력 있는 거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하나 얻었다는 느낌이었다. 지역만의 고유한 개성은 사실 그다지 많이 있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지나치면 민속촌 분위기가 날 뿐, 살아 있는 도시의 느낌이 사라져 버린다. 이 도시의 매력은 오히려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들에 있었다. 일단 엄청난 키의 가로수가 두 줄로 서 있었다. ‘길에 큰 가로수가 있어서 싫어’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동차는 이면도로로 다니고 거리는 철저하게 보행자 전용이었다. 이 역시 ‘자동차가 없는 거리는 싫어’라고 할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거리며 건물이 모두 깨끗했다. 바닥의 보도블록도 전혀 울퉁불퉁하지 않고 아주 정갈하게 깔려 있었다. 건물이나 간판의 재료나 색상, 디자인은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전체적으로 통일감이 있었다. 이 점이 중요했다.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사람이 세심하게 조율하고 배려한 결과다. 이런 것들은 굳이 역사에 관심이 없어도, 굳이 샬러츠빌에 관심이 없어도 누구나 경험하면 좋아한다. 즉 보편의 힘이다. ‘역사 도시 샬러츠빌’의 매력은 알고 보면 이러한 기반 위에 만들어지고 있었다. 진짜 역사의 흔적은 기대보다 많지 않았지만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림짐작이지만 이러한 보편성과 개성의 비율은 8:2 정도만 되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개성’, ‘우리 도시만의 이야기’, ‘특성화 전략’ 같은 용어가 난무하지만, 의외로 진정한 경쟁력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것을 잘 다룰 때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작은 도시에서 대학의 존재는 천군만마와도 같다. 샬러츠빌도 버지니아 대학이라는 명문의 덕을 크게 보고 있다. 그러나 대학이 있어도 도시 외곽에 따로 떨어져 있으면 시너지를 기대하기 어렵다. 도시와 한몸이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보편이고 상식이다. 이런 것들을 잘하면 일단 기본은 된다. 하지만 보편의 기반이 약하면 그 위에 아무리 개성을 더해도 결국 지속되지 못한다. 보편은 가장 강력한 개성이다.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44)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롯데그룹 계열사 CEO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44)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롯데그룹 계열사 CEO

    강희태 사장, 냉철한 분석력이 장점하석주 사장, 기획전문가로 최대실적 김정환 사장 호텔경력 37년의 베테랑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어려운 시기를 마주할 때 마다 미래 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위기를 타파하고 새로운 성장기회를 맞이해왔다. 지난해에는 올해부터 5년간 국내외 전 사업부문에 걸쳐 50조원을 투자하고 7만명을 고용하겠다는 투자 고용계획도 발표했다. 롯데는 그룹의 양대 성장축인 유통과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국내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회사들로 우뚝 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달성여부는 CEO들의 손에 달려 있다.  민명기(58) 롯데제과 부사장은 대원고와 고려대 농업경제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 롯데제과 인도 법인장과 2012년 해외전략부문장을 역임하며, 글로벌 경영 능력을 인정 받았다. 2013년 건과영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롯데제과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조경수(59) 롯데푸드 부사장은 부산남고, 동아대 경제학과, 서강대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롯데제과에서 마케팅 실무 책임자로 자일리톨 껌 성공신화를 썼다. 롯데삼강(현 롯데푸드)에서 마케팅 임원, 식품영업 임원, 유가공 사업을 하는 파스퇴르 사업본부장 등을 거쳤다. 2017년부터는 HMR과 육가공 등을 담당하는 홈푸드사업본부장을 맡아왔다.  음료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해왔던 이영구(57) 롯데칠성음료 음료BG 부사장은 풍부한 현장경험을 바탕으로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중대부고와 숭실대 산업공학과를 나왔다.  강희태(60) 롯데백화점 사장은 쇼핑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롯데쇼핑은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슈퍼 등 자체 사업뿐만 아니라 롯데하이마트 등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강 사장은 중앙고,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백화점에서만 30년 이상 근무하다 2017년 사장으로 승진하며 롯데쇼핑 대표로도 선임됐다. 냉철한 분석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 강 사장은 패션사업을 전담하는 통합법인을 만들고 게임 등 콘텐츠와 관련한 전문관을 열어 정체를 겪고 있는 백화점의 활로를 찾고 있다.  올해 초 선임된 문영표(57) 롯데마트 부사장은 최근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던 마트 사업의 활력을 불어 넣을 구원투수로 발탁됐다. 대구 심인고와 영남대 섬유공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인도네시아법인장, 2011년 동남아본부장을 거쳐 2014년 국내로 복귀해 전략, 상품, 영업 등 주요 본부장직을 역임했다. 지난해에는 물류회사인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신동빈 회장이 문 대표에게 롯데마트의 지휘봉을 맡긴 데는 동남아 시장에서의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는 후문이다.  이완신(59) 롯데홈쇼핑 부사장은 롯데백화점 본점장, 마케팅부문장 등 주요 직책을 두루 거친 유통 전문가다. 2017년 롯데홈쇼핑 대표를 맡아 영업이익을 전년도와 비교해 40% 이상 늘렸다. 문일고와 고려대를 졸업한 후 연세대 경영학 석사, 건국대 경영학 박사과정을 마쳐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추진력에 화통한 성격으로 ‘형님 리더십’을 발휘한다.  올해 롯데케미칼의 새로운 수장이 된 임병연(55) 부사장은 풍생고와 서울대와 대학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 화학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호남석유화학과 KP케미칼에서 연구, 신규사업, 기획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2012년 롯데미래전략센터(현 롯데미래전략연구소)장을 맡았다가 2014년 정책본부 비전전략실장으로 그룹에 복귀했다. 롯데의 해외사업과 인수·합병(M&A) 등을 총괄해왔으며, 2017년에는 가치경영실장을 맡았다. 용장과 덕장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를 듣는다. 2009년 정책본부 국제실 근무 당시 국제실장이었던 황각규 부회장을 보좌하는 등 측근으로 알려져 있다.  하석주(61) 롯데건설 사장은 용문고와 단국대 회계학과를 나온 뒤 고려대 회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롯데그룹 기획조정실을 거쳐 롯데건설 경영지원본부장, 주택사업본부장을 역임하는 등 사업과 관리를 두루 경험한 기획전문가이다. 현장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지만 2017년 롯데건설 대표이사로 취임한 이후 2년연속 사상최대 실적을 달성하고 있다.  김정환(62) 롯데호텔 사장은 37년 호텔 경력을 지닌 베테랑 전문경영인이다. 2017년 롯데호텔 대표로 부임한 뒤 불요불급한 업무 축소, 스마트 업무처리를 강조하고 있다. 부산 동래고와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  이갑(57) 롯데면세점 부사장은 롯데백화점에서 영업·상품·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정책본부 운영2팀장으로 근무하며 유통사 전반에 대한 안목을 쌓았다. 2016년부터 대홍기획 대표에 재직했다. 여의도고와 고려대 사회학과 출신이다.  선우영(53) 롭스(LoHB‘s) 상무는 업계 안팎의 관심과 기대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 최초의 여성 최고경영자다. 이화여고와 연세대 식생활학과를 졸업했다. 대우전자 공채로 입사, 1998년 하이마트로 옮긴 선우 상무는 롯데하이마트에서 생활가전, 상품관리 및 온라인부문을 거쳐 지난해 롭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선우 대표는 롯데그룹 유통계열사의 인프라를 적극 활용, 부임 2년 차인 올해 본격적으로 시너지를 낸다는 각오다. 롯데슈퍼뿐만 아니라 롯데하이마트와도 연계, 새로운 형태의 매장을 고객들에게 선보인다는 포부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단독] 靑, 3·1절 김정은 서울 답방 추진한다

    [단독] 靑, 3·1절 김정은 서울 답방 추진한다

    金 안되면 고위급 대표단 초청 검토 평화 가속화·관계 진전 동력 살리기 북·미정상회담 개최 일정 ‘최대 변수’청와대가 올해 3·1절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고, 그를 위한 실무적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6일 “문 대통령이 ‘선(先) 2차 북·미 정상회담-후(後) 답방’ 프로세스를 밝힌 만큼 북·미 회담 일정이 최대 변수지만, 3·1절 답방이 이뤄진다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문이라는 의미에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는 역사적 무게를 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함께 3·1절 기념식에 선다면 답방 자체도 역사상 처음이지만 3·1절에 양 정상이 함께 기념사를 밝히는 것도 초유의 일이란 점에서 의미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강조하고 지난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켰다. 정상회담 당시 3·1운동 공동기념 구상을 적극 설득한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 북한도 ‘3·1 민중봉기’로 부르며 역사적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청와대로선 북·미 관계와 남북대화의 보폭을 맞춘다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지만, 남북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고 불가역적 평화 기반을 다지려면 답방의 동력이 소실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답방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아직까지 남북 간 구체적 협의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17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워싱턴행 등 최근 무르익는 북·미 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답방 추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3·1절 답방 성사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맞물려 있다. 북한의 제한적 대남·대미관계 인력풀, 특히 의전·경호에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미 회담과 답방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2월 중순 이후라면 답방도 늦춰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관계자는 “북·미 회담이 늦춰져 3·1절 답방이 여의치 않더라도 ‘플랜B’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내려온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단독] 청와대, 3·1절 김정은 답방 추진…“역사적 무게감 높인다”

    [단독] 청와대, 3·1절 김정은 답방 추진…“역사적 무게감 높인다”

    청와대가 올해 3·1절을 계기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공동으로 기념하고, 그를 위한 실무적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16일 “문 대통령이 ‘선(先) 2차 북·미 정상회담-후(後) 답방’ 프로세스를 밝힌 만큼 북·미 회담 일정이 최대 변수지만, 3·1절 답방이 이뤄진다면 북한 최고지도자의 첫 방문이라는 의미에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한다는 역사적 무게를 더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북 정상이 함께 3·1절 기념식에 선다면 답방 자체도 역사상 처음이지만 3·1절에 양 정상이 함께 기념사를 밝히는 것도 초유의 일이란 점에서 의미가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강조하고 지난해 대통령 직속기구로 100주년 기념사업회를 출범시켰다. 정상회담 당시 3·1운동 공동기념 구상을 적극 설득한 것도 문 대통령이었다. 북한도 ‘3·1 민중봉기’로 부르며 역사적인 날로 기념하고 있다. 청와대로선 북·미 관계와 남북대화의 보폭을 맞춘다는 대전제에는 변화가 없지만, 남북관계를 한 단계 진전시키고 불가역적 평화 기반을 다지려면 답방의 동력이 소실돼서는 안된다는 판단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답방은 그 자체로 남북관계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대전환의 계기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위원장도 지난달 30일 친서에서 답방이 이뤄지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상황을 주시하면서 서울을 방문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아직까지 남북 간 구체적 협의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는 17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의 워싱턴행 등 최근 무르익는 북·미 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답방 추진을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3·1절 답방 성사 여부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과 맞물려 있다. 북한의 제한적 대남·대미관계 인력풀, 특히 의전·경호에 어느 때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북·미 회담과 답방을 동시에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북·미 정상회담이 2월 중순 이후라면 답방도 늦춰질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 관계자는 “북·미회담이 늦춰져 3·1절 답방이 여의치 않더라도 ‘플랜B’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급 대표단이 내려온다면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전우용 “손혜원 투기 의도 있었다면 내게 자랑했겠느냐”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그 친인척들이 전남 목포시 근대역사문화공간 내의 건물을 투기목적으로 사들였다는 의혹과 관련해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16일 “투기꾼들은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며 손 의원의 투기 의혹을 부인했다. 전우용씨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취지의 긴 글을 게재했다. 전씨는 이 글에서 “재작년에 손혜원 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다. 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다”며 “(손 의원이)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밝혔다. 전씨는 또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전씨는 이어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이다”며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한다”고 주장했다.다음은 전우용씨의 페이스북 글 전문이다. 1999년 서울 을지로에 있던 국도극장이 헐렸습니다. 국도극장은 일제강점기인 1936년 황금정(黃金町= 현재의 을지로)에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황금좌(黃金座)를 1948년에 개칭한 극장이었습니다. 건축사적으로 아주 가치가 높은 건물이어서 많은 사람 - 특히 건축학자, 역사학자, 문화재전문가 - 들이 철거에 반대했으나 건물을 매입한 사람은 철거 반대 여론이 확산할까 봐 서둘러 허물어버렸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보존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이 본격화하여 2001년 ‘등록문화재 제도’가 만들어졌습니다. 당시에도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흔적을 다 지워야 한다는 사람이 많았으나, 식민지 폭정을 함께 겪은 집단 기억이 현대 한국인의 ‘정체성’ 일부를 구성하는 이상, 그 ‘기억의 요소들’을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전문가들 사이에 폭넓은 동의를 얻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종로구 계동에 있던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가 헐렸습니다. 본래 일제강점기 마포 거부 임종상이 지은 저택이었는데, 해방 직후에는 건국준비위원회 청사로 사용됐습니다. 이 건물이 헐리기 몇 해 전, 고 송남헌 선생의 안내로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습니다. 여운형 선생의 집무실이 어느 방이었으며, 회의실은 어디였는지 등에 관해 들은 기억이 생생한데, 게다가 아주 튼튼하게 잘 지은 건물이어서 무너질 기미도 전혀 없었는데, 갑자기 사라진 걸 보니 마음 한구석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건국준비위원회 청사조차 보존하지 못하면서 광복 몇 주년 운운하는 게 참담했습니다. 만약 임시정부 청사가 서울에 있었다면, 진즉에 사라졌을 겁니다. 한 나라에서 역사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아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개발 이익을 얻기 위해 역사적 건물을 함부로 파괴하는 나라에서, 역사는 아주 하찮은 비중만을 점할 뿐입니다.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 이후,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많은 건물이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대개는 국공유 건물이었습니다. 절대다수의 개인 건물주는 ‘사유재산권’이 침해될까 봐 문화재 등록을 거부했습니다. 아무리 문화재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도, 소유자의 동의 없이는 등록문화재로 정할 수 없었습니다. 일단 등록된 건물이라도 소유주가 원하면 해제할 수밖에 없었고요. 이런 제도적 맹점을 악용하는 악덕 건물주도 있었습니다. 재개발 지구 내에 오래된 건물을 소유한 사람이 자기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해서 지정되면, 재개발 사업 전체가 중단됩니다. 소유자는 조합 측과 협상해서 건물값을 ‘아주 비싸게’ 받기로 약속한 다음에 등록해제를 요구합니다. 등록문화재 제도가 ‘알박기’ 용도로 변질되는 거죠. 이런 사례도 있었으나, 일단 자기 소유 건물이 등록문화재가 되면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기 때문에 건물주들은 등록을 회피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손혜원 의원이 목포의 오래된 골목과 필지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건 진즉에 알았습니다. 재작년에 손의원과 함께 페북 라이브로 목포의 역사 얘기도 했었죠. 이번에 문제가 된 건물에 대해서도 그때 직접 얘기를 들었습니다. “목포의 역사를 지우려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추진 중인데, 그걸 막고 싶다. 마침 폐가로 방치된 건물 하나가 있는데, 누가 사서 헐어버리면 골목 전체를 지킬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내 조카더러 시집갈 때 주려고 했던 돈 미리 줄 테니 사서 들어가 살라고 했다.” 등등. 만약 그에게 투기 의도가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이 사실을 자랑하듯 얘기하진 않았을 겁니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는 일에는 입 다물고 있는 게 현명한 선택이란 걸 너무나 잘 압니다. 하지만 연고도 없는 지역의 역사 경관을 살려 보겠다고 제 돈 들여 애쓰는 사람조차 변호하지 못하면 이 나라의 역사 경관이 건설업자들과 투기꾼들에 의해 소멸해 버리고 말 거라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자기 소유지와 건물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는 것이 이익인지 손해인지는, 건물주들이 잘 압니다. 문화재 지정 공고가 나기 전에 구역 내 소유 건물을 팔아치우거나 헐어버리는 건, 투기꾼은 물론 보통 건물주의 ‘상식’입니다. 투기꾼들은 자기 소유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는 걸 아주 싫어합니다. 그들은 문화재 가치가 있는 동산만 사지, 부동산은 안 삽니다. 그래서 도시 재생 사업 지구 내 문화재 가치가 있는 건물은 공공이 사들여 민간에 임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등록문화재 내부와 외관의 1/4은 현상변경 신고 없이 임의로 개조할 수 있습니다. 용도에도 특별한 제한이 없습니다.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람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건 문화재청이 권장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이용해야 건물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SBS는 손의원이 해당 건물에 ‘문화재 가� ?� 있다는 걸 알고 자기 조카 명의로 사들였으며, 건물을 함부로 개조하여 오히려 건물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식으로 보도했습니다. 등록문화재 제도와 그에 대한 건물주들의 대응을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빡 속을 만한 내용입니다. SBS 취재진이 등록문화재 제도와 도시재생사업, 부동산 투기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몰랐다면 너무 불성실하게 취재한 셈이고, 알고도 이랬다면 그 진짜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습니다. ---------- ps. 저는 오래된 필지를 뭉개고 건물들을 헐어내는 것보다는 그걸 보존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어야, 도시의 역사가 보존된다고 봅니다. 물론 토건업자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ps.2. 옛 건국준비위원회 청사 건물의 소유주는 모 재벌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가 이 기념비적 건물을 헐었을 때, 이 행위를 비난한 ‘언론’은 단 한 곳도 없었습니다. 귀중한 역사 유산을 헐어버리는 행위에는 침묵하고 보존하려는 행위를 비난하는 언론이 다수인 한, 한국은 ‘역사와 단절된 땅’이 될 겁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불영어’ 대비, 5월 전 수능영어 1~2등급 목표 세워라

    ‘불영어’ 대비, 5월 전 수능영어 1~2등급 목표 세워라

    15개 주요 대학 정시 선발 10% 늘려 대학 70% 수시 선발… 내신 대비 필수 논술, 기출 문제·최저 기준 모두 준비 6차례 모의고사, 등급 외 백분위 중요각 대학의 정시 모집 합격생 발표만을 남긴 2019학년도 대학 입시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하지만 올 3월 고교 3학년 생활을 시작해야 하는 고2 학생들에게는 지금부터가 대입의 시작이다. 고2까지 기초를 쌓는 과정이었다면 고3은 본격적인 ‘실전 대입’의 시기다. 향후 1년 수험 생활을 효과적으로 보내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팁들을 소개한다. ●2020학년도 대입, 달라진 점을 파악하라 올해 대입은 전년인 2019학년도 대입과 큰 틀에서는 변화가 없지만 수험생 입장에서 유념해야 할 변화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주요 15개 대학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위주 정시 선발 인원이 전년 대비 증가한다. 그동안 수시 선발 인원을 꾸준히 확대해 온 주요 대학들은 정시 확대에 대한 여론을 일부 받아들여 2020학년도 대입부터 정시 선발 인원을 소폭 확대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이화여대·서강대·성균관대·한양대·중앙대·경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건국대·동국대·홍익대·숙명여대 15개 대학의 수능 위주 선발 인원은 1만 4261명으로 2019학년도 수능 선발 인원 1만2895명 대비 10.5% 늘었다. 대신 재수생을 제외한 고3 수험생 숫자는 전년 57만 661명에서 51만 241명으로 약 6만명가량 줄었다. 재수생 비중이 높아져 수능 위주의 정시 경쟁률도 올라간다는 뜻이다. 2020학년도에는 연세대가 논술 전형 수능최저 등급을 폐지한다. 따라서 수능 점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학생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시를 노리는 상위권 학생들은 염두해 둬야 한다. ●수시, 내신 등급·목표 대학 맞는 전략 짜야 학교 내신이 2등급 이내인 학생들은 수시 합격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남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2020학년도에 수능 위주 전형의 비중이 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전체 대학의 70% 이상이 수시로 학생을 선발한다. 마지막까지 내신 관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내신 3~4등급 이하 학생들 중 주요 상위권 대학을 목표로 한다면 3월부터 시작하는 모의고사에 집중해 수능 준비에 비중을 두는 것이 좋다. 논술의 경우 각 대학마다 출제 경향과 난이도가 다르기 때문에 본인이 목표로 하는 대학과 학과의 기출 문제를 미리 파악해 두면 도움이 된다. 막연하게 논술을 준비하는 것보다 본인에게 필요한 준비에 집중해 효율을 높이도록 한다. 다만 수능최저학력 기준이 우선이기 때문에 논술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이전에 본인이 수능최저학력 기준에 맞추는 게 불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수능 준비를 우선순위에 둬야 한다. 내신은 최상위권이지만 상대적으로 수능에 자신이 없는 학생이라면 학기 초부터 학생부 교과전형과 학생부 종합전형을 목표로 두고 이에 필요한 ‘스펙’을 쌓는 데 집중한다면 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시, 연습도 실전처럼 정시만을 목표로 하는 것은 위험하지만 정시 전형에서 대입 승부를 보겠다는 학생들에게는 3·4·6·7·9·10월 총 6차례 실시하는 모의고사가 수능 전 실전 감각을 기를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각 모의고사 출제 범위에 대한 학습을 확실히 해 둔 상태에서 수능을 치른다는 생각으로 실전처럼 모의고사를 준비하는 게 좋다. 특히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두 차례(6·9월) 모의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해당 평가는 그해 수능 출제 경향을 예측할 수 있는 자료로도 활용되기 때문에 다른 모의고사에 비해 더 집중해서 준비해야 한다. 정시 준비 수험생들에게 영어 대비는 빠를수록 좋다. 특히 2019학년도 수능에서는 영어가 절대평가임에도 상당히 어렵게 출제됐기 때문에 5월 전에 안정적으로 1~2등급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세워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모의고사를 보면서 등급 향상에만 연연하는 것보다는 백분위 점수도 함께 신경 써야 한다. 같은 등급이라도 3등급 초반이냐 후반이냐에 따라 정시 지원 가능 대학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아무런 준비 없이 고3을 맞이한다면 교실에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달라진 분위기나 압박감에 당황해 수험 생활의 초반을 그냥 보낼 수 있다”면서 “새 학기가 시작하기 전 내신이나 수능 등 본인이 어느 분야에 자신이 있고 강점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해 자신에게 맞는 맞춤형 전략을 미리 짜 놓고 수험 생활을 시작한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일제와 나치 독일의 나팔수였다”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일제와 나치 독일의 나팔수였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 ‘안익태 케이스’ 출간안익태가 기거한 日정보총책 ‘에하라’ 주목한국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1906∼1965)의 친일 행적을 지적해온 정치학자 이해영 한신대 교수가 안익태의 유럽 활동을 분석한 신간 ‘안익태 케이스’를 펴냈다. 이 책에서는 그는 “안익태가 나치 독일의 나팔수”라고 주장했다. 평양에서 태어난 안익태는 1921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음악 공부를 하고 1938년 무렵 유럽에 진출한 당대에 드문 서양 음악가였다. 재미 한인단체가 발행한 신문인 ‘신한민보’에 따르면 안익태는 1935년 12월 28일 한인예배당에서 심혈을 경주해 창작한 애국가의 새 곡조를 연주했다. 안익태는 애국가 멜로디를 ‘한국 환상곡’ 4악장에 사용하기도 했다. 이후 안익태는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고 국립묘지에 묻혔으나, 2000년대 이후 각종 자료를 통해 일제에 부역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됐다. 2015년 안익태가 1941년 일본 명절에 일왕의 시대가 영원하기를 바라는 곡인 ‘기미가요’를 피아노로 연주했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찾아낸 저자는 신간에서 이 글을 쓴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1896∼1969)에 주목한다. 에하라는 동경제대를 졸업하고 1932년 만주국 건국 이후 하얼빈 부시장을 지낸 뒤 1938년 주베를린 만주국 공사관 참사관으로 부임해 1945년 7월까지 독일에 머물렀다. 저자는 독일의 한국학자 프랑크 호프만이 발굴한 미 육군 유럽사령부 정보국 문건을 통해 에하라의 실체를 설명한다. 미 육군이 독일과 일본 전직 정보 장교의 진술을 기록한 해당 문건은 “에하라는 주독 일본 정보기관의 총책이었다. 그는 주폴란드 정보기관과 공동 작전을 수행했다”고 명시했다. 참사관이라는 직위는 에하라가 내건 위장된 타이틀이며, 실제로는 그가 일본 정보기관의 독일 총책이었다는 것이 저자 생각이다.문제는 저자가 ‘에키타이 안’으로 지칭하는 안익태가 에하라 집에서 함께 살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에하라는 “안 군이 나에게 상담을 받고자 찾아왔다”며 “독소전쟁이 시작되던 해부터 베를린에서 그와 함께 살게 됐다”고 회고했다. 저자는 “안익태는 에하라의 특수 공작원이거나 그의 중요한 다른 무엇이거나 아니면 둘 다일지 모른다”는 호프만의 주장을 받아들인뒤 “에키타이 안이 에하라의 집에서 빠르면 1941년 말부터 1944년 4월 초까지 거의 2년 반 가까이 기식했다는 사실은 안익태가 에하라의 ‘스페셜 에이전트’라는 강한 심증”이라고 강조한다. 이어 1944년 독일이 점령한 상태였던 프랑스에서 공연한 안익태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에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에키타이 안은 대일본제국과 나치 독일의 고급 나팔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에키타이 안이 고급 프로파간디스트로서 용역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고, 그 대가로 여전히 그 전모를 알 수 없는 수많은 편익을 수수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비판한다. 안익태가 친일뿐만 아니라 나치 독일을 위해서도 활동했다는 주장을 펼친 저자는 이제 애국가에 대해 재고할 때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안익태 애국가의 치명적 흠결은 그 선율이나 가사가 아닌 그것을 지은 사람에 있다”며 “애국가를 만든 이는 최소한 ‘애국적’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고려 국왕 머물던 ‘왕립호텔’… 경사지에 지은 입체적 건축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고려 국왕 머물던 ‘왕립호텔’… 경사지에 지은 입체적 건축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사학자인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이 새해를 맞아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을 시작합니다. 전통 건축의 과거를 통해 내일을 바라보는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 김 총장이 직접 ‘시간여행’의 가이드로 나섭니다. 첫 번째 주제는 고려 행궁(行宮)의 원형이 담긴 경기 파주 ‘혜음원’입니다.●도둑 소굴에서 행궁으로 지난해는 고려 건국 1100주년이었고 국립중앙박물관은 ‘대고려전’을 개최 중이다. 474년 동안이나 건재했으며, 활발한 대외 무역으로 ‘코리아’의 어원이 되었던 고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은 고려청자와 금속활자, 그리고 팔만대장경 정도다. 뒤이은 조선 왕조가 고려의 기록을 지워버렸던 탓도 있고, 주요 문화유산들이 북한 땅 개성에 밀집돼 깊은 연구가 불가능한 까닭도 컸다. 지난 천 년의 마지막 해, 1999년에 경기 파주의 후미진 경사지에서 낯익은 글자를 새긴 기와 한 조각을 발견했다. ‘惠陰院’이란 글자였는데, 바로 이곳이 학계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혜음원 터였다. 이후 10여차례의 발굴 정비작업을 거쳐 최근 웅장한 전모를 드러낸 이곳은 고려시대의 큰 사원터이며, 국왕이 행차해 머물던 행궁터였다. 고려는 국가적 도로망을 개척했고, 곳곳에 교통시설인 ‘역’과 숙박시설인 ‘원’을 운영했다. 종종 원과 함께 불교 사찰을 세워 운영을 맡겼는데, 이를 묶어 ‘사원’이라 불렀다. 혜음원을 때에 따라 혜음사라 부르는 까닭이다. 혜음원은 남경 개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려는 태조 왕건의 고향인 개성에 수도를 두어 ‘개경’으로, 옛 고구려의 평양을 ‘서경’으로, 그리고 신라의 경주를 ‘동경’으로 삼아 ‘초기 삼경제’를 운영했다. 중기에 들어 동경 대신 지금의 서울을 ‘남경’으로 삼아 ‘중기 삼경제’를 시행했다. 1104년에 남경에 궁궐을 짓고 1129년에 서경에 대화궁을 새로 지었다. 국왕은 세 수도를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세 궁궐에 일정 기간 머무는 순주제를 시행할 수 있었다. 삼경제와 순주제는 황제국의 예법이었다. 개경과 남경 사이는 새벽에 출발해서 부지런히 걸어도 도중에 하룻밤을 묵어야 하는 거리이다. 혜음원은 개경에서 남쪽 50㎞, 남경에서 북쪽 20㎞ 지점이며 큰 고개인 혜음령 바로 아래 위치한다. 이곳에서 숙박하고 이튿날 혜음령을 넘으면 남경에 닿는 최적의 요지였다. 당시 이 일대는 “산이 깊고 수풀이 무성해 호랑이가 떼로 몰려다니고, 도적들이 숨었다 떼로 나타나 사람들을 해친다”고 할 만큼 험한 곳이었다. 이에 행인들은 동행자를 모으고 무기를 들고 고개를 넘었는데, 그래도 1년에 수백 명이 살해당한다는 과장(?) 보고도 있었다. 1120년, 묘향산의 승려 백여 명이 비용을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2년 만에 사찰과 여관의 복합체인 ‘사원’을 완성했다. 1차 완공 직후, 국왕의 남경 순행에 이용하려고 행궁 증축을 시작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혜음원신창기’에 자세하게 실려 있는데, 당대의 대 문장가 김부식이 쓴 글이다. 이 무렵 고려 조정은 묘청 등의 서경파와 김부식 등의 개경파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아마도 남경 개발은 서경천도론을 외치는 서경파에 대한 견제책이 아니었을까. 혜음원 건립은 신도시 남경을 발전시킬 필수적인 기간 사업이었다. 민생을 명분으로 창건했지만 결국 행궁을 건립해 국왕의 남경 순행을 도모하기 위한 다각적인 포석이었다. 그 결과 “개암나무 숲이 변하여 아늑한 절이 되었고, 무서운 길이 평탄한 길로 바뀌었다. (사원과 행궁은) 아름다워서 가히 볼만하다”고 자찬했다.●경사지 건축의 유기적 미학 혜음원과 더불어 남한에 남겨진 몇몇 고려시대 건축지들이 발굴돼 왔다. 팔만대장경을 제작 보관했던 강화의 선원사터, 삼별초 항쟁지였던 진도의 용장산성 궁궐터, 고려 법상종의 최대 사찰인 원주의 법천사터가 대표적이다. 또한 남북 공동 발굴조사가 진행 중인 개성의 고려 정궁, 만월대도 꼽아야 한다. 이들은 모두 경사지에 자리잡은 대규모 건물군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중국에서 발전한 동아시아의 건축 제도는 평지 입지를 전제로 만들어진 모델이었다. 남북 중심축을 설정하고 그 위에 주요 건물들을 세우고, 좌우 대칭으로 부속 공간들을 만든다. 중심과 대칭, 기하학적 구성 등은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상징하는 디자인이며 평면 위에서 쉽게 완성할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의 궁궐이나 대형사찰, 심지어 신라의 궁궐과 사찰들도 평지 위에 세운 까닭이다. 그러나 확인된 고려 궁궐이나 대형사찰은 모두 경사지에 자리잡았다. 만월대뿐 아니라 평양 대화궁과 피난 궁궐인 강화 고려궁터도 급한 경사지다. 경사지에 건물을 세우려면 대지를 여러 개의 좁고 긴 수평 단들로 나누어야 한다. 만월대는 적어도 15단 이상, 용장산성 궁궐은 10개의 수평 단으로 조성했다. 혜음원 역시 9개의 좁고 옆으로 긴 단 위에 30여동의 건물을 세웠다. 평지의 건축과 달리 경사지 건축에서는 중심과 대칭 등 기하학적 질서를 구현하기 어렵다. 그 대신 높낮이가 다른 여러 건물들의 조화와 긴장감, 지형을 따라 전개되는 극적인 구성들이 돋보인다. 이러한 유기적 질서의 전통은 조선시대 창덕궁에도 전해졌다. 평지에 자리한 경복궁이 기하학적 질서를 따랐다면, 경사지에 조성한 창덕궁은 유기적 질서가 살아 있다. 자연 지형을 이용한 유기적 질서야말로 고려가 창조한 한국적 전통이고, 그래서 창덕궁을 가장 한국적인 현존 궁궐로 평가한다. 혜음원은 이 입체적인 건축에 더해 또 하나의 질서를 부여했다. 물을 강력한 조경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경사지 건축에서 배수 체계는 매우 중요하다. 잘못하면 한쪽으로 물이 넘쳐 건물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혜음원은 건물과 건물 사이 곳곳에 크고 작은 연못을 만들었고, 이들을 길고 굽은 배수로로 연결하고 있다. 고여 있던 물이 배수로를 따라 흐르고, 곳곳에 만든 작은 폭포에서 떨어진다. 고인 물의 거울효과, 떨어지는 물의 음향효과가 대단했을 것이다. 넓고 큰 배수로 때문에 곳곳에 다리와 뜬 계단을 설치했다. 전성기 혜음원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재건해 본다. 수십 동의 크고 작은 건물들이 10여개의 마당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고, 높고 낮은 지붕들이 대조를 이루며 입체적인 실루엣을 이룬다. 객원과 사찰, 행궁이라는 복합 용도에 맞추어 담장이 곳곳에 경계를 이루고, 또 여러 개의 문들이 통로를 이룬다. 수직적으로 높고 낮음뿐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막힘과 뚫림이 연속된다. 바닥의 연못과 수로에는 물이 흐르고, 여기저기서 물보라를 튀기는 작은 폭포 소리들이 들린다. 경사지의 건축은 이처럼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환상적이다.●처음의 정신으로 돌아가다 고려는 어떤 나라였나. 남북으로 분열된 중국 대륙의 국제적 상황을 이용해 그들과 대등한 외교를 벌이며, 황제의 나라를 자임했던 정치 조직체였다. 남경 건설과 순주제 실시는 그 자부심의 발로였다. 상업을 장려해 국내 유통은 물론 중국을 넘어선 지역과도 활발하게 교역했던 경제 공동체였다. 상업 활동을 위해 도로와 역원을 정비했고, 혜음원은 그 대표적인 시설이었다. 처음에는 객원과 사찰을, 그 뒤에 행궁을 지은 것은 고려 사회의 우선순위가 정치보다 경제였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 고려는 실질적 사고에 충만하고 전문 기술을 숭상했던 실용적 사회였다. 여러 분야의 연구 개발이 활발해, 원산지인 송의 청자보다 한 차원 높은 고려청자를 만들었고 목판 인쇄의 한계를 뛰어넘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건축 분야 역시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 무량수전을 예로 들자. 깊은 소백산 오지에 있는 무량수전은 결코 고려의 대표작이 아니라 흔한 지방 건축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 정교한 아름다움을 넘어설 현존 건물은 없다. 역설적으로 지방 건축이 이러할진대, 대표작들이 즐비했을 개경의 건축은 어떤 수준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고려의 건축가들은 산지가 대부분인 이 땅의 잠재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어려운 경사지에 입체적인 건축을 실현할 지식과 능력이 있었다. 비록 고려의 건물들은 다 사라지고 터만 남았지만, 남겨진 석단과 초석만으로도 충분하다. 혜음원 현장에 가 보시라. 크고 작은, 높고 낮은 석단들로 조합된 대지에서 이미 건축적 운율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곳곳의 연못과 배수로, 계단과 작은 다리들이 얼마나 치밀하게 짜여 있는지, 고려 건축가들의 과학적 사고와 계획 능력을 실감할 수 있다. 고려의 건축은 거의 모든 지상 건물은 사라지고 기단과 초석의 흔적만 남은 폐허들이다. 완성된 건축물에서 최종의 생각을 읽는다면, 고려의 폐허에선 1000년 전 고려인들의 처음 생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바로 이곳에서 그들의 자부심과 창조력과 실용정신을 만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자
  • “정기후원 해지요청 합니다” 케어 안락사 논란에 뿔난 후원자들

    “정기후원 해지요청 합니다” 케어 안락사 논란에 뿔난 후원자들

    동물권단체 케어가 구조된 개들 일부를 ‘안락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후원자들이 ‘정기후원을 해지 요청’ 통해 배신감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11일 박소연 대표의 ‘안락사’ 지시사실이 전 직원의 폭로를 통해 드러났다. 식용농장과 번식장, 투견장에서 구조된 개 중 최근 4년간 박 대표의 지시로 안락사 된 개는 200여 마리다. 그중에는 임신한 어미개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케어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 등에는 ‘정기후원 해지요청’과 비판의 글이 이어졌다. 한 후원자는 “몇 년간 후원해왔는데 너무 화가 난다”며 “케어가 지금까지 후원자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비정상적으로 운영되었다면, 이는 분명하게 밝혀서 도려내고 투명하게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4년간 정기후원을 했다고 밝힌 한 후원자는 “조금이나마 금전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어서 학생 때부터 용돈을 받아 후원했다. 애들을 살리고 싶은데, 내가 못하니까, 고마워서”라며 “그런데 애들 죽이는데 (내가) 일조한 건가”라며 케어의 민낯에 실망과 분노를 드러냈다. 일부 회원들은 박 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박 대표는 사퇴하시고, 남은 직원들은 끝까지 현재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을 지켜달라”며 “남아있는 수백 마리 동물들을 좀 생각하고 비판하자”고 호소했다. 케어 직원들은 지난 12일 오후 2시 광화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케어 직원도 속인 박 대표는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들은 “케어의 ‘안락사 없는 보호소’는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며 “많은 결정이 대표의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이뤄지는 시스템에서 직원들은 안락사와 같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듣지 못한 채 근무했다”고 주장했다. 직원연대는 “도움을 주시던 분들이 분노하고 있겠지만, 동물들을 잊지 않고 함께 해달라”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대표의 사퇴를 포함한 케어의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소연 대표는 과거에도 동물 안락사로 논란이 된 바 있다. 2006년 경기 구리시와 남양주시로부터 보호소를 위탁 운영하며 일부 동물을 안락사시킨 것이다. 또 2011년에는 건국대 수의과대학에 실험동물을 기증하기 위해 보호하던 개를 안락사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았다. 동물보호법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는’ 안락사는 불법이다. 현행법상 치료 목적이거나 사람에게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동물을 죽이는 행위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된다. 케어의 대규모 안락사 폭로 사태는 한동안 논란이 지속될 전망이다. 한편, 동물권 단체 케어는 2002년 8월 ‘동물사랑실천협회’로 출발해 2015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회원들의 회비와 온라인성금 등 연간 후원금만 20억 규모로 알려졌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무죄추정 벗어난 현대판 멍석말이 vs 국민 알권리 위한 취재 충돌 방지선

    무죄추정 벗어난 현대판 멍석말이 vs 국민 알권리 위한 취재 충돌 방지선

    지난 11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검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치면서 포토라인의 필요성과 법적 근거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일부 고위 법관들은 피의자 의사에 반하는 포토라인 설치가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포토라인이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취재진과의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12일 개인 블로그에 ‘이제 포토라인 악습도 걷어내자’는 글을 올렸다. 그는 포토라인을 두고 “국민의 알 권리를 구실로 유죄 심증을 퍼뜨려 무죄추정의 원칙을 허무는 야만적 행위, 현대판 멍석말이”라고 지적했다. 또 “포토라인에 서고 안 서고를 검찰이 자의적으로 선별할 권한은 누가 부여했나”고 되물었다. 이숙연 서울고법 판사도 지난달 언론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피의자에게도 명예가 있고 지켜야 할 가족이 있다”면서 “법률 규정에도 없는 절차와 행위로 새롭게 업보를 쌓을 이유는 없지 않나”고 비판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토라인은 공인에 대한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관행”이라면서 “피의자가 포토라인에서의 촬영을 거부하더라도 강제할 수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도 “포토라인이 없다면 소환되는 피의자가 현장에서 수십명의 기자들과 충돌하면서 혼란이 빚어질 것”이라면서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혼란을 막기 위해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포토라인이 명확한 법적 근거나 설치 기준 없이 운영된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법무부 훈령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에 따르면 ‘공적 인물인 피의자 소환 사실이 알려져 촬영 경쟁으로 인한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검찰청 부지 내 촬영을 허가하는 것을 제외하면 포토라인 설치를 금지할 수 있다. 그러나 훈령은 행정규칙으로서 내부적인 효력만 있고 법적인 강제성은 없다. 검찰 관계자들도 “포토라인은 검찰이 아닌 언론사에서 설치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15일 ‘포토라인,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한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피해자 식별 안 돼도 처벌해야… 포르노 합법화는 논리적 비약”

    [나는 너의 야동이 아니다] “피해자 식별 안 돼도 처벌해야… 포르노 합법화는 논리적 비약”

    서울신문이 5회에 걸쳐 ‘난 너의 야동이 아니다’를 연재한 건 변화를 촉구하고 싶어서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의 신음소리는 깊지만, 자성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따르면 가해자들의 재범 비율과 촬영물의 유포 비율은 늘어만 간다.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감행하는 피해자가 적지 않지만 이들을 어떻게 치유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더디기만 하다. 서울신문은 김현아 법무법인 GL 변호사, 최종상 경찰청 사이버수사과장,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 대표와 함께 해법을 모색했다. 임주형 탐사기획부 기자가 좌담을 진행했다.고통 →피해자들이 자살을 결심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이유는. 윤김 교수 우리 사회엔 남성 중심적이고 이중적인 성규범이 존재한다. 남성에게 성경험은 우월함을 뜻하지만 여성에게 성경험은 순결과 온전성이 박탈된 것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피해자들에게 사회는 ‘○○녀’ 등 온갖 낙인을 붙이고 손가락질을 한다.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 피해자들은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을 탓한다. 때론 내가 사라지면 끝날 일이라는 잘못된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서 대표 영상을 본 많은 사람들이 되레 피해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한 피해자도 있다. 이런 사회적 낙인 때문에 대다수의 피해자들이 사회에서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정신적 고통뿐만 아니라 경제적 고립까지 겪으며 고통이 배가된다. 김 변호사 촬영 피해자들은 누군가가 내 영상을 가지고 있고 언제 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고 살아간다. 실제 유포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고통 역시 촬영물이 유포된 피해자만큼이나 극심하다. 신고 →피해자들의 경찰 신고 비율이 낮은 이유는. 서 대표 증거가 충분해도 삭제만 해 달라고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조사나 재판 과정에서 가족이나 직장 동료에게 알려질까 두려워서다. 자칫 문란한 여성이란 낙인으로 사회에서 격리될 거란 공포심 때문이다. 김 변호사 불법 촬영물의 존재가 피해자가 신고하지 못하게 하거나 재판 과정에서 합의하도록 압박하는 수단이 된다. 불법 촬영물이 존재하면 언제든 재유포가 가능하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압수수색을 한다고 해도 어디에 어떻게 숨겨뒀을지 모르는 일이다. 법원이 피해 영상물 삭제 명령을 할 수 있게 법 개정을 해야 한다. 법원이 삭제 명령을 했는데도 영상이 발견되거나 재유포를 하면 바로 처벌이 가능하다. 소송에서도 피해자가 유리하다. 윤김 교수 가해자 처벌이 너무 약하다.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는 징역이 선고되는 비율도 낮고, 벌금형도 300만원 이하가 대부분이다.처벌 →성폭력 처벌법 14조 ‘카메라 등 이용 촬영죄’ 개정에 대한 평가는. 서 대표 일부 형량이 강화됐고, 피해자 스스로 촬영했어도 동의 없이 유포한 경우에 처벌할 수 있게 한 것 등은 긍정적이다. 다만 피해 촬영물을 방치한 유통 플랫폼 처벌 조항이 명시되지 않은 게 아쉽다. 불법 유통 시장을 없애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 변호사 유포 범죄의 형량이 더 강화됐어야 한다. 피해 촬영물은 언제든 재유포될 수 있고, 한 번 퍼지면 완벽한 피해 복구는 불가능에 가깝다. 벌금형을 없애고 무조건 징역형으로 가야 한다고 본다. 프로필 사진에 음란물을 합성하고 편집하는 속칭 지인능욕을 처벌할 조항도 필요하다. 윤김 교수 얼굴 식별이 안 돼도 피해자가 자신이라고 하는 경우에도 처벌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최근 일간베스트 저장소에 여자친구의 몸 사진을 올리는 일명 여친 인증 사건이 있었지만 처벌은 못하는 형국이다. 최 과장 웹하드나 음란사이트 운영자를 처벌할 때 구체적 피해상황이 나오지 않으면 강한 처벌이 어렵다. 그래서 성폭력 처벌법 대신 보통 정보통신망법상 음란물 유포 혐의가 적용된다. 이러면 형량이 ‘1년 이하 징역 혹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너무 낮다. 긴급체포 요건도 아니고 대부분 구속조차 안 된다. 이렇다 보니 수사 중에도 사이트 운영을 이어 가며 수익을 내는 가해자도 많다. 벌금형을 받고 재범을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형량을 높여야 한다.해법 →범람하는 불법 촬영물과 웹하드 카르텔 문제의 해법은. 최 과장 경찰이 지난해 특별 단속을 통해 웹하드 40개 업체 운영자 53명을 검거하고 6명을 구속했다. 올해도 관계 부처들과 함께 2차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형사 처벌뿐만 아니라 웹하드 과태료 부과와 등록 취소 등 행정제재, 불법 음란물 삭제 통보, 불법 수입에 대한 세금 징수 등 종합적 제재가 가능할 것이다. 서 대표 웹하드 카르텔을 무너뜨리려면 관계 부처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웹하드의 생살여탈권을 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그간 자신의 역할을 방기해 왔다. 모바일 웹하드는 아예 사각지대다. 빨리 모바일에도 필터링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3년 전에 나왔지만 업계 반발 등을 이유로 지금까지 미뤄 왔다. 윤김 교수 필터링 업체가 웹하드 업체와 결탁돼 있다는 의혹도 계속해서 나왔다. 제대로 필터링하지 않은 회사는 이익을 환수할 수 있도록 법제화해야 한다고 본다. 김 변호사 웹하드 카르텔 문제는 이미 미국에서도 문제가 됐다. 필터링 업자가 불법사이트를 운영하다 걸렸고, 운영자에게는 징역 18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리 음란물을 뿌려도 법정형이 최대 5년밖에 안 된다. 처벌 강화가 절실하다.피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퍼지는 피해 영상물을 줄이려면. 김 변호사 삭제가 가장 어려운 건 국내법 적용이 안 되는 해외에 서버를 둔 음란 사이트다. 하지만 최근 경찰이 해외 공조수사를 강화해 적극적으로 단속을 하고 있다. 최 과장 미국 국토안보부 수사국(HSI)과 협력해 미국에 서버를 둔 한국 음란 사이트 84곳의 운영자 인적 정보를 받을 예정이다. 통상 운영자가 검거되면 대부분은 사이트를 폐쇄한다. 하지만 검거 이후에도 사이트가 계속 운영된다면 아예 접속 자체를 막는 방식을 쓰고 있다. 물론 우회 접속할 수도 있어서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사람들의 접속이 줄어 범죄 수익이 줄면 사이트 운영이 어려워지지 않겠나. 윤김 교수 시민단체인 한사성이 초국가적 피해 촬영물 삭제를 위한 국제연대체 구축에 나선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미국에서도 음란사이트 운영자 처벌이 가능하도록 현지 피해자 지원 단체와 교류 중인 것으로 안다. 그런데 왜 정작 정부 차원의 노력은 없을까. 예컨대 피해 영상물을 원천 봉쇄하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일부 국가가 아닌 전 세계가 공유해야 실효성이 높아질 것이다. 서 대표 언론에서도 풍선효과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마치 불법 촬영물이 영영 사라지지 않고 욕망이 옮겨 가는 방식으로 유지된다는 가해자들의 주장을 공고하게 만드는 위험한 단어다. 삭제 작업을 해 보면 영상이 단속에 따라 다른 플랫폼으로 옮겨 간다기보다 이미 모든 플랫폼에 퍼져 있었던 경우가 많다. 초기에 집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풍선효과처럼 비쳐질 뿐이다. 윤김 교수 일각에서 풍선효과로 내세우는 주장 중 하나가 상업 음란물(포르노) 합법화다. 포르노를 불법으로 막으니 풍선효과로 불법 촬영물 등이 판친다는 것이다. 하지만 논리적 비약이다. 불법 촬영물을 보는 사람들은 포르노는 조작이지만 불법 촬영물은 실제이고 희소성도 있다고 말한다. 결국 포르노가 합법화돼도 불법 촬영물 수요는 줄지 않을 것이다. 삐뚤어진 욕망을 사회적으로 용인하지 말아야 한다.지원 →피해자 어떻게 지원해야 하나. 김 변호사 지금까지 피해자들이 디지털 장의사 등 사설 업체에 큰돈을 들여 영상을 직접 삭제해 왔지만 폐단이 너무 많다. 정부와 시민단체 중심의 삭제 지원이 중요하다. 지난해 여성가족부 산하에 피해 촬영물 삭제를 중점적으로 지원하는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가 생겼다. 하지만 전담 인력이 16명으로 너무 적다. 예산 확보와 인력 충원이 절실한데도 디지털 성범죄 대응을 위해 책정됐던 26억 4500만원의 예산이 국회에서 통째로 삭감됐다. 매우 유감스럽다. 심각한 상황을 국회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도우려는 의지는 있는지 의문이다. 서 대표 정부의 삭제 작업에서 간소화됐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 청소년 피해자의 경우 부모의 확인 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가족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선이 필요하다. 최 과장 피해자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유포된 촬영물의 빠른 삭제와 차단이다. 사이트 운영자가 삭제 요청을 무시하면 경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 심의를 요청하고 방심위 결정에 따라 방통위가 삭제 명령을 내린다. 이 과정을 빠르게 하기 위해 최근 실시간으로 경찰과 방심위가 심의 요청을 하고 결과를 받는 시스템도 만들었다. 복귀 →피해자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로 복귀할 수 있을까. 윤김 교수 결국 여성이 피해를 입었어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를 바꿔야 한다. 인식 개선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성폭력 특례법 14조 1항의 처벌 근거 중 하나가 피해자에게 성적 수치심을 줬는지 여부다. 하지만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이 수치심이 됐을 때 피해자는 부끄러움에 숨는 존재가 된다. 피해자가 느껴야 할 감정은 수치심이 아니라 성적 불쾌감이다. 그럴 때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가서 싸우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 김 변호사 윤김 교수 말처럼 피해자의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가해 행위 자체가 침해 행위라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구속 요건도 그렇게 변화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성폭력 문제를 교육할 때도 마찬가지다. 단순한 수치심이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게 아니라 이런 가해 행위가 심각한 범죄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 개선이 이뤄져야 피해자들이 사회로 나올 수 있다. 최 과장 가해자로부터 지속적인 유포 협박을 당하거나 고소 이후 보복 가해에 대한 공포심으로 외부로 나서지 못하는 피해자도 많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신변 불안을 호소하면 스마트워치를 제공하고 순찰 실시, 필요한 경우 동행하는 등 피해자가 안정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도록 더 노력할 것이다. 탐사기획부 tamsa@seoul.co.kr
  • 애국지사 박영관 선생 생가·공적비 국가현충시설 지정

    전북폭발단사건의 주역 박영관 선생의 생가 등이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돼 관리된다. 전북 고창군은 무장면에 있는 애국지사 송와 박영관(1899∼1975) 선생의 생가와 공적비가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됐다고 11일 밝혔다. 박영관 선생은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고창 무장읍내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독립운동 군자금을 모아 상해 임시정부로 전달한 독립운동가다. 일제의 ‘동양척식 이리지� � 습격을 모의하다 발각돼 모진 고문을 받기도 했다.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친 공을 인정받아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현충시설로 지정되면 국가가 관리비, 보수비 등을 지원한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부고]

    ●송병원(가천길재단 비서실장)씨 부친상 이상재(세명ENC이사) 문일현(건국공영 대표이사) 유달영(라메르 여성병원장)씨 장인상 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2258-5940 ●노철규(한화생명 투자사업본부장) 은희(도당고등학교 교사)씨 부친상 최영권(하나은행 증권운용부 팀장) 곽상원(CJ ENM 부장)씨 장인상 8일 이대 목동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2650-5121 ●서귀원(서울디엠씨 그룹 회장)씨 장인상 8일 광주 서구 VIP장례타운, 발인 10일 오전 9시 (062)521-4444 ●손상호(한국금융연구원장) 상영(정보통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씨 모친상 8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0일 오전 (02)3010-2000 ●유인기(제천경찰서)씨 부친상 박태희(중앙일보 산업2팀 기자)씨 장인상 임경한(제천시청)씨 시부상 충북 제천 제일장례식장, 발인 10일 오전 (043)645-4114
  •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정치·경제·교육 균등이 기초…모두가 평등한 사회 꿈꾸다

    [문화재에 깃든 100년 전 그날] 정치·경제·교육 균등이 기초…모두가 평등한 사회 꿈꾸다

    “우리나라는 우리 민족이 반만년래로 공동한 언문과 국토와 주권과 경제와 문화를 가지고 공동한 민족정기를 길러온 우리끼리로서 형성하고 단결한 고정적 집단의 최고 조직임.”대한민국임시정부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사상가인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작성한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등록문화재 제740호)의 첫 구절이다. 우리나라 헌법의 뿌리라고 불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은 대한민국이 단일한 언어와 국토, 주권, 경제, 문화를 가진 민족국가임을 명시한 것을 시작으로 광복 후 임시정부가 건설할 민족국가에 대한 구체적인 건설 계획을 담았다. 임시정부 수립에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광복 직후까지 주요 지도자로 활동한 조소앙은 광복 이후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한국전쟁 때 납북됐다. 국한문을 섞어서 적은 건국강령 초안은 가로 27.1㎝, 세로 36.9㎝ 크기의 원고지 10장 분량이다. 민족국가 건설의 당위성과 원칙을 밝힌 총강(總綱), 독립운동의 과제와 방법을 명시한 복국(復國), 건국 단계에서 실행할 구체적인 정책을 언급한 건국(建國) 등 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조소앙이 창안한 ‘삼균주의’(三均主義)가 기반이 됐다. 정치·경제·교육의 균등을 기초로 한 균등사회를 건설해 국민 전체가 평등한 생활을 누릴 수 있는 이상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천명하고 있다. 조소앙이 기초한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원안대로 통과됐고, 1948년 제헌헌법의 기본적이 바탕이 됐다. 조소앙이 직접 붓으로 작성한 이 문서는 여러 군데 줄을 긋거나 지우고 다시 고쳐 쓴 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가 얼마나 고심하며 글을 작성했는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종이 바깥 부분에 일부 손상이 있지만 내용은 손상 없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돼 있다. 조소앙의 손자이자 조소앙기념사업회 위원장인 조인래씨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와 설계 이후 해야 할 일들을 담은 건국강령은 ‘헌법의 꽃’과도 마찬가지”라고 자평했다. 그는 이어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혁명을 이룰 때도 그랬듯이 지난날 우리가 외쳤던 가장 뜨거운 단어가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이 아니겠나”라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정신과 열망이 담긴 이 문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이어령 교수 “암 앓고 있지만 방사선·항암 치료 받지 않는다”

    이어령 교수 “암 앓고 있지만 방사선·항암 치료 받지 않는다”

    이어령(87)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암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어령 교수는 7일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내가 병을 가진 걸 정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의사가 내게 ‘암입니다’라고 했을 때 ‘철렁’하는 느낌은 있었다”며 “방사선 치료도, 항암 치료도 받지 않는다. 석 달 혹은 여섯 달마다 병원에 가서 건강 체크만 할 뿐이다”라고 근황을 전했다. 1934년생으로 알려진 이 교수는 자신의 나이에 대해 “실제 한국 나이는 올해 87세다. 호적에 이름이 뒤늦게 올라갔다”고 말했다. 그는 ‘투병(鬪病)’이란 용어를 대신 ‘친병(親病)’이라고 부른다며 “의사가 ‘당신 암이야’ 이랬을 때 나는 받아들였다. 육체도 나의 일부니까. 암과 싸우는 대신 병을 관찰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호적상 1934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 교수는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에 들어가 1956년 졸업했다. 이후 1960년 같은 대학 대학원 문학석사, 1987년에는 단국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19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했고, 같은 해 잡지 ‘문학예술’에 ‘현대시의 환위와 한계’와 ‘비유법논고(攷)’가 추천돼 정식으로 등단했다. 등단 뒤 ‘화전민 지역’, ‘신화 없는 민족’, ‘카타르시스 문학론’ 등의 평론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저항의 문학’을 기치로 한 전후 세대의 이론적 기수로 등장한 그는 당대의 비평가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춘수 등과 함께 현대평론가협회 동인으로 활약했다. 경기고 교사, 단국대 전임강사, 이화여대 교수, ‘문학사상’ 주간 등을 역임했다. 1990년에는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맡아 기반을 닦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인은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전 건국대 교수다. 서울 종로구에 이어령의 ‘령’과 강인숙의 ‘인’을 딴 영인문학관을 운영 중이다. 강 전 교수는 관장을 맡고 있다. 대표적 무신론자였던 이 교수는 딸인 고(故) 이민아 목사의 ‘기적’을 계기로 2007년 기독교를 믿게 됐다. 당시 갑상선암이 재발하고 망막박리로 실명까지 했던 딸은 “남은 평생을 당신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이 교수의 기도 후 놀랍게도 7개월 만에 다시 ‘빛’을 보게 됐다. 그는 이 같은 경험을 2010년 펴낸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 자세히 소개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123억 자선단체에 기부”…어느 구두쇠의 유언 화제

    “123억 자선단체에 기부”…어느 구두쇠의 유언 화제

    생전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했던 한 남성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1100만 달러(약 123억 원)에 달하는 모든 재산을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최근 AP통신과 BBC뉴스 등 외신은 지난해 초 만 63세 나이로 사망한 앨런 나이먼의 숨겨진 선행을 소개했다. 미국 워싱턴주(州) 시애틀에 살며 워싱턴 사회보건국에서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나이먼은 동료들 사이에서 지독한 구두쇠로 유명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구멍 뚫린 구두를 테이프로 고쳐 신었고 폐점 직전 식료품 가게에 들려 할인품을 구매했으며 심지어 친한 친구와 식사할 때조차 저렴한 패스트푸드점을 이용했다. 또한 그는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시간 외에도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몇 개 더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무려 1100만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모아뒀고 이를 불우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여러 자선단체에 모두 기부하는 유언을 남겼던 것이다. 전직 은행원이었던 그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수백만 달러의 유산을 잘 운용해 자산을 크게 불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었지만, 처음부터 지독한 구두쇠는 아니였다. 자동차를 좋아해 스포츠카를 사는 등 자신을 위해 돈을 쓰기도 했지만, 2013년을 기준으로 그의 인생은 크게 바뀌고 말았다. 그에게는 발달 장애가 있는 친형이 있었는데 형이 그만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그는 근검절약을 실천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그는 그때부터 조금씩 여러 자선단체에 기부금을 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기부금이 불우한 아동들을 돕는 자선단체들에게 한정돼 있다는 점에서 한 친구는 “아무래도 장애가 있는 형과 함께 자란 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기부금을 받은 자선단체는 총 6곳으로 모두 워싱턴주 안에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은 곳은 약물 중독에 빠진 여성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을 지원하는 단체인 ‘PICC’(Pediatric Interim Care Center)로 250만 달러로 밝혀졌다. 이 단체가 이처럼 많은 기부금을 받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부는 차입금 상환과 병원에서 영유아를 이송하는 데 필요한 차량 구매에 쓰였다. 그다음으로 90만 달러나 되는 기부금을 받은 곳은 고아를 지원하는 트리하우스라는 이름의 자선단체다. 이 단체의 한 담당자는 그의 갑작스러운 기부에 놀랐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그는 그전에도 수백 달러를 기부해 왔지만 우리는 유언장 속에 90만 달러를 기부한다는 내용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사진=AP 연합뉴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태연 임정 요인 유해 98년 만에 고국 품으로

    김태연 임정 요인 유해 98년 만에 고국 품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의정원 의원이자 무장 항일투쟁 단체인 구국모험단을 이끌었던 김태연 지사(1891∼1921)의 유해가 98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전망이다. 중국 소식통은 3일 최근 중국 정부가 김 지사의 유해를 한국에 봉환할 수 있다는 뜻을 알려왔다고 밝혔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김 지사의 유해 송환을 위해 끈질기게 노력한 데다 올해가 상하이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인 까닭에 중국 정부도 봉환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상하이에서 활동하다 숨진 독립운동가들은 당시 임시정부 청사에서 멀지 않은 징안쓰루의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 그러나 이 묘지가 상하이 도심 재개발로 사라지면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는 수차례 이장을 거쳐 신해혁명을 이끌었던 쑨원의 부인 쑹칭링 능원의 한쪽 구석에 자리 잡은 외국인 묘역 만국공묘로 옮겨졌다. 한·중 수교가 이뤄지면서 이곳에 있던 임정 2대 대통령 박은식 선생과 신규식·노백린·김인전·안태국·윤현진·오영선 지사 등의 유해가 한국으로 봉환됐지만 직계 후손이 없던 김 지사의 유해는 만국공묘에 남아 있다. 현재 김 지사의 묘역에는 아무 설명 없이 알파벳으로 ‘TAI Y KIM’이라고만 적혀 있다. 그는 3·1운동 직후인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여운형 등과 함께 상해대한인거류민단을 조직했으며 1920년에는 구국모험단 참모부장을 맡아 군자금 모집, 폭탄 등 무기 구입, 일본 관청 파괴 및 일본 관리 암살 등 무장 투쟁을 전개했다. 1921년 임시정부가 세운 교육기관인 인성학교의 교장을 맡아 교육 사업에도 나섰지만 그해 병으로 서른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우리 정부는 1995년 김 지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아더왕 vs 아더왕

    아더왕 vs 아더왕

    ‘아더 왕의 전설’을 소재로 한 대형 뮤지컬이 연이어 한국에서 흥행 대결을 펼친다. 프랑스 뮤지컬 ‘킹아더’(왼쪽)와 국내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오른쪽)가 주인공이다.영국 건국 신화를 담고 있는 아더왕과 원탁의 기사 이야기는 문학은 물론 영화나 애니메이션, 드라마, 게임 등의 소재로 수없이 재창조된 대표적인 판타지 콘텐츠다.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한 대규모 전투신 등은 관객에게 시각적 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2015년 파리에서 초연된 ‘킹아더’는 프랑스 뮤지컬계의 거장 프로듀서 도브 아티아의 최신작이다. 유럽 팝음악을 연상하게 하는 현대적 색채의 음악과 곡예적 안무, 화려한 무대의상 등을 자랑한다. 아메리칸발레시어터 출신으로 유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연출가 겸 안무가인 줄리아노 페파리니가 공동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파리 공연 실황이 ‘아더왕의 전설’이라는 본래 제목으로 영화관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제작사 알앤디웍스는 ‘킹아더’의 오리지널 공연을 본 뒤 2017년부터 한국 초연 준비에 나섰다. 2016년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진행되는 이번 공연은 3~6월 서울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무대에서 볼 수 있다.뮤지컬 ‘엑스칼리버’는 EMK뮤지컬컴퍼니가 ‘마타하리’, ‘웃는남자’에 이어 세 번째로 내놓은 창작 뮤지컬이다. EMK뮤지컬컴퍼니는 2014년 ‘아더-엑스칼리버’라는 제목으로 스위스에서 초연된 작품의 판권을 확보해 대본과 음악 등을 모두 새롭게 창작해 무대에 올린다. 이름도 대중에게 익숙하게 전설의 검 ‘엑스칼리버’로 바꿨다. 스위스 세인트 갈렌 극장에서 초연된 작품은 음악과 전투신 연출 등은 호평을 받았지만, 예측가능한 줄거리 등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작품에는 국내에도 친숙한 해외 뮤지컬 제작진이 의기투합했다. ‘마타하리’, ‘데스노트’ 등의 극작가 아이반 멘첼이 대본을 쓰고 영국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 출신의 스티븐 레인이 연출을 맡았다. 또 ‘지킬앤하이드’, ‘웃는남자’ 등의 작곡자로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프랭크 와일드혼이 음악을 맡았다. 그는 앞서 스위스 프로덕션의 ‘아더-엑스칼리버’에도 참여한 원작자다. 와일드혼은 “‘엑스칼리버’의 음악은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중심으로 한 켈틱 음악의 뚜렷한 색깔을 담았다”며 “지금껏 한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작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엑스칼리버’의 첫 무대는 오는 6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1964년 지은 서울 옛 공군사관학교 교회, 문화재 된다

    1964년 지은 서울 옛 공군사관학교 교회, 문화재 된다

    1964년 건립된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가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2일 건축가 최창규가 설계한 동작구 보라매공원 내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현재 전시 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로 쓰이고 있는 이 교회는 삼각형의 외관과 수직성을 강조한 내부 공간이 돋보이는 건축물이다. 당시 일반적인 교회 건축 형식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건축 기법이 사용됐다. 공군사관학교(충북 청주)의 옛터인 보라매공원에 남아 있는 유일한 흔적으로 역사적 가치도 인정받았다. 더불어 문화재청은 제헌헌법의 뿌리이자 기초로 평가되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했다.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은 독립운동가 조소앙(본명 조용은·1887∼1958)이 삼균주의(三均主義)에 입각해 독립운동과 건국 방침을 국한문 혼용으로 적은 친필 문서다. 조소앙이 주창한 삼균주의는 개인·민족·국가 간 균등과 정치·경제·교육 균등을 통해 이상 사회를 건설하자는 이론이다. 건국강령은 1941년 11월 28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일부 수정을 거쳐 통과됐다. 임시정부가 광복 이후 어떠한 국가를 세우려 했는지 알려 주는 유물이자 조소앙이 고심하며 고친 흔적이 남아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 1956년에 건립한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은 등록문화재 제741호가 됐다. 학교 내 중심이 되는 건물로, 고대 그리스식 기둥과 삼각형 박공벽을 사용한 서양 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이다. 한국적 요소인 태극과 무궁화 문양을 가미한 점이 특징이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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