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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교과서 ‘이승만·박정희 독재’ 평가 줄이고 단편적 사실만 서술

    국정교과서 ‘이승만·박정희 독재’ 평가 줄이고 단편적 사실만 서술

    교육부는 28일 공개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에서 역대 정부의 독재를 사실대로 서술하고 경제 성장의 성과와 한계를 균형있게 서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독재 정부’에 대한 평가는 거의 포함되지 않았으며, 경제성장의 한계 역시 추상적으로 설명하는데 그쳐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국정교과서에 제기된 ‘독재 미화 서술’ 논란을 의식한 듯 ‘사실대로’ 서술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반공체제와 이승만의 장기집권’ 꼭지에서는 이승만 정부에 대해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나열했다. 그러나 평가는 마지막에 ‘이승만 정부의 독재로 인해 대한민국의 자유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었다’는 언급이 전부다. ‘사실 위주’의 서술 태도는 유신 체제에 대한 서술에서도 비슷하다. 유신 체제의 경과와 긴급조치권, 국민투표 부의권, 국회해산권 등 막강한 권력이 부여됐다는 점을 서술했지만 평가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대통령의 권력을 강화한 독재체제였다’가 전부다. 유신 체제에 대한 시각 자료도 싣지 않았다. 이는 유신헌법에 대해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강화하고 헌법 위에 군림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천재교육 검정교과서)을 지적한 교과서보다 후퇴한 서술이다. 유신헌법이 초헌법적이었다는 점은 주석에서 ‘유신헌법에 규정된 긴급조치권이 초헌법적 권한을 포함하고 있다’는 내용이 전부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 설명에서는 마치 국가 안보를 위해 비상사태 선포가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1971년 12월 반공을 강조하며 정권을 유지하던 박정희 정부는 국가 안보를 최우선시하며 “일체의 사회불안을 용납하지 않는다”라는 담화를 발표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265쪽)라고 서술한 부분이다. 5.16은 ‘군사 정변’으로 표현했다. 검정교과서들도 대부분 ‘군사정변’으로 표현했으나 일부(천재교육)에서는 ‘쿠데타’라는 표현도 병행해 사용했다. 천재교육 교과서는 5.16 군사정변에 대해 ‘민주화를 지향한 4.19 혁명 정신이 사실상 부정되었다’라는 평가와 함께 군복을 입은 박정희의 사진을 함께 실었다. 국정교과서에서는 사진 자료로 서울 도심에 나타난 (쿠데타) 주도 세력의 탱크 모습을 실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빚어진 각종 문제점에 대해서는 검정교과서가 ‘성과보다 부작용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지적하며 국정교과서에서는 성과와 한계를 균형 있게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실제 서술은 검정교과서와는 반대로 성과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고속성장의 그늘’과 ‘산업재해와 환경 문제’ 꼭지를 통해 ‘경제성장의 주역이었던 노동자들이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 등 열악한 조건 속에 일해야 했고 근로기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을 서술했다. 정부와 기업인이 노동운동을 억압했다는 표현도 들어갔다. 그러나 국정교과서 내용은 전태일 분신사건, 정부의 도시 빈민층 강제 이주, 농민의 희생 등에 대해 ’뭉뚱그려‘ 추상적으로만 언급하고 세부 항목은 사진 자료로 대신했을 뿐이다. 수출 주도형 경제개발 정책에 대해서도 국정교과서는 긍정적인 면만을 서술했다. 지나친 외자 도입으로 인한 상환 부담으로 국가 경제에 부담을 주고 수출에 의존한 결과 일본과 미국 등 대외의존도가 크게 심화했다는 문제점(금성출판사)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국정교과서는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 한 페이지를 할애했다. ‘신군부가 계엄군을 광주에 투입해 과잉 진압하자 가혹한 진압에 맞서 시민과 학생들이 저항했다’고 표현해 신군부가 충돌을 야기한 주체라는 점을 밝혔다. 시민의 피해상에 대해서는 ‘계엄군의 발포로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고’, ‘5월 27일 계엄군이 대규모 군대를 투입해 전남도청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고 서술했다. 검정교과서들은 또 공수부대 투입과 전차 동원,시위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까지 무차별적으로 폭행하는 등 신군부 세력의 폭력성과 비민주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지만 국정교과서는 ‘과잉진압’, ‘가혹한 진압’ 등으로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이렇게 국정교과서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에 대한 평가와 친일 관련 서술이 줄어든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대다수 시민단체들이 반발했다. 대표적인 보수단체들은 ‘노 코멘트’로 일관하는 등 평가를 유보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 등 485개 단체가 모인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28일 낮 2시 30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 역사교과서를 ‘박근혜에 의한 박정희를 위한 효도 교과서’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5·16 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권 시절을 다룬 단원 제목이 ‘냉전 시기 권위주의 정치체제와 경제·사회 발전’으로 정해진 것부터가 독재에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라고 지적했다. 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한 데 대해서도 “‘건국절’을 사실상 교과서에 못 박은 것”이라며 “교육부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며 친일 독재를 미화하는 뉴라이트의 농단에 놀아났다”고 성토했다. 이들은 “박근혜표 국정교과서는 교과서라는 이름을 달기에도 민망한 원고 뭉치”라며 “비공개와 ‘복면 집필’로 일관한 집필과정 자체도 절차적 정당성이 없었다”며 교과서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단체들은 신중한 입장을 견지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교과서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고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해서 (당장) 논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도 “우리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단체로 국정교과서에 동조한 적 없다”며 공개된 국정교과서에 대해 ‘노코멘트’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 강조하고 北체제 비판 서술 대폭 보강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하며 건국 과정의 정당성을 강조한 점과 북한에 대한 부정적 서술을 강화한 점이다. 특히 북한 체제 비판과 관련한 내용은 분량 면에서도 현행 교과서 보다 배 이상으로 늘었고 기술도 상당히 구체적이다. 특히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해 ‘뉴라이트’의 시각을 반영, 우편향 논란을 촉발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뉴라이트란 2000년대 들어 ‘새로운 보수’를 지향한다며 등장한 세력으로, 그동안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해왔다. 또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대해 ‘대한민국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총 7개 단원으로 구성된 고교 한국사에서 현대사 부분은 제일 마지막인 ‘대한민국의 발전과 현대 세계의 변화’에 등장한다. 국정 한국사 교과서는 250쪽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소주제에서 ‘제헌 헌법에 따라 국회에서 이승만과 이시영이 각각 대통령과 부통령에 선출되었고, 광복군 지도자 이범석을 국무총리로 하는 내각이 조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구성됨으로써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이 수립되었다’고 기술했다. 현행 검정교과서에 ‘이승만 대통령은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천재교육 308쪽), ‘이승만 대통령은 곧바로 내각을 조직하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국내외에 선포하였다’(금성출판사 370쪽) 등 ‘정부 수립’이라고 돼 있는 표현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친 것이다. 대한민국 수립 혹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도 국정과 현행 검정은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우선 현행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이라는 소단원에서 ‘총선거에는 김구, 김규식 등 남북 협상에 참여한 정치 세력이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불참하였다. 좌익 세력도 제주도를 비롯하여 전국 각지에서 단독 선거 반대 운동을 벌였다’(천재교육 308쪽),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를 결정하자 좌익 세력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단독 선거 반대 투쟁이 일어났다’(비상교육 351쪽) 등의 혼란상이 묘사돼 있으나 국정 교과서에는 포함돼 있지 않다. 현행 교과서에는 정부 수립을 전후한 진영 간 갈등 사례도 별도 소주제로 등장한다. 이 가운데 제주 4·3 사건에 대해 현행 교과서는 ‘1948년 4월 3일 제주도에서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주도 아래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미군정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후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과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수만 명의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천재 309쪽), ‘이승만 정부는 군인과 경찰, 우익 단체들을 동원하여 대규모 진압 작전을 벌였다.진압과정에서 2만 5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희생되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다’(금성출판사 369쪽) 등 비교적 상세한 기술과 함께 수만명의 제주도민 피해, 이승만 정부의 무력 진압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에는 ‘1948년 4월 3일에는 5·10 총선거를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1953년까지 지속된 군경과 무장대 간의 무력 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제주도 주민들까지 희생되었다. 이로 인해 제주도에서는 총선거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하였다’(250쪽)라고만 짧게 기술했다. 여수·순천 10·29 사건에 대한 서술도 뉘앙스 차이를 보인다. 검정교과서는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에서 일어난 무장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여수와 순천에 주둔 중이던 국군을 파견하려 했다. 이때 부대 내에 있던 좌익 세력들이 제주도 출동 반대,통일 정부 수립 등의 구호를 내세우며 반란을 일으켰다. 정부는 여수·순천 지역의 반란을 진압하는 동시에,군대 내 좌익 세력을 몰아내는 숙군 작업을 강화하였다. 1948년에는 좌익 세력의 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려는 의도 아래 국가 보안법을 제정하였고, 이듬해에는 국민보도연맹을 조직하였다’(천재 309쪽)고 썼다. 하지만 국정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 직후인 1948년 10월 19일 여수에 주둔하고 있던 국군 제14연대 내 좌익 세력이 제주도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반란을 일으켜 여수·순천 지역을 점령하였다. 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란군을 진압하였다’(250쪽)라고 기술했다. 6·25 발발 당시의 서술과 관련해 현행 검정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도선을 넘어 기습 남침하였다. 3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이 피난길에 올랐다’(천재 313쪽), ‘인민군은 1950년 6월25일 남침을 강행하였다’(금성 378쪽)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은 38선 전역에서 불법적으로 기습 남침하였다. 북한군은 치밀하게 준비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불과 3일만에 서울을 점령하였고 7월말에는 낙동강까지 밀고 내려왔다’(254쪽)고 서술, ‘불법적인 기습 남침’을 강조했다. 6·25 전쟁의 피해와 영향을 서술한 부분에서도 시각 차이가 드러난다. 현행 교과서는 ‘전쟁으로 민족 공동체 의식이 약해졌으며 서로 불신하고 적대하는 감정이 깊어지는 가운데 한반도의 분단 체제가 더욱 공고해져 갔다…전쟁 이후 반공은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가 되었으며 정부는 국가 보안법을 개정하고 반공 교육을 강화하였다’(천재 314쪽), ‘각지에서 발생한 민간인 희생은 이후 남북한 주민이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되고 더 나아가 분단이 굳어지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금성 381쪽) 등 민간인 피해나 그로 인한 분단 고착화 등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전선이 오르내리는 동안 좌우 이념 대립은 더욱 격화되었는데, 특히 북한이 강압적으로 시행한 점령지 정책은 많은 반발을 샀다. 전쟁을 통해 국민들이 경험한 공산주의 실상은 전후 한국 사회에서 반공 이념이 자리잡게 된 배경이 되었다’(256쪽)고 기술, 이승만 정부의 반공주의 배경을 설명하는 데 방점을 뒀다. 국정 교과서는 ‘북한의 3대 세습 독재 체제와 남북한 관계’라는 별도 소단원 아래 김일성 독재 체제의 구축, 3대 세습 체제 형성, 탈북자와 인권·이산가족 문제, 북핵 위기와 북한의 대남 도발,평화 통일의 노력 등 5개 주제를 자세히 기술했다. 4페이지 분량으로 현행 교과서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난 분량이다. 김일성 독재 체제 구축과 3대 세습 체제 형성까지의 기술 역시 현행 교과서는 약 8줄에 불과하지만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를 할애해 김일성이 권력을 장악해 나간 과정, 3대 세습 체제 형성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김일성은 소련파와 연안파 등 반대파들을 차례로 제거하여 1인 독재 권력을 강화하였다’ ‘중소 이념 분쟁을 이용하여 사상, 정치, 경제, 군사, 외교에서 주체를 명분으로 내세워 수령 독재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분야별 자주 노선 주장들을 1960년대 후반부터 주체사상으로 집대성하면서 김일성 독재를 이념적으로 정당화하였다’ ‘장남인 김정일을 후계자로 최종 선정함으로써 유례가 없는 부자 세습 체제를 구축하였다’ ‘유일사상 체계확립 10대 원칙을 세우고 김일성을 신격화하기 위한 우상화 정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였다’ 등의 서술이 대표적이다. 북한 인권에 대한 비판적 기술도 상당히 늘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언론과 종교 활동 제한, 여행 거주 이전의 자유 억압,정치범 수용소 운영, 공개 처형 등의 인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천재 356쪽) 정도로 언급했다. 금성교과서의 경우 ‘북한은 ’우리식 인권‘을 내세우며 개인의 자유보다는 전체 조직을 위한 공민의 의무를 강조하고 물질적 보장이 인권의 가치로서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등 북한이 인권을 제한하는 이유를 북한 입장에서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 교과서는 한 페이지에 걸쳐 북한의 인권 탄압, 반인륜적 통치 방식, 유엔의 북한 인권 결의안 채택 등을 자세히 소개했다. 또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기술 외에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서는 ‘2010년 3월26일 서해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한국 해군의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공격을 받아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2010년 11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으로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고 상세히 기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광복회 이사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일’ 세글자로 하면 ‘건국절’”

    광복회 이사 “국정교과서 ‘대한민국 수립일’ 세글자로 하면 ‘건국절’”

    ‘친일·독재 미화’ 및 ‘건국절’ 논란을 초래한 중·고교 국정 역사교과서(이하 국정교과서)의 현장검토본이 28일 공개될 예정이다. 앞서 지난 25일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편찬기준을 공개했다. 국정교과서는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이라고 기술했다. 이에 광복회의 김능진 이사는 “‘대한민국 수립일’ 일곱 글자를 세 글자로 하면 그냥 ‘건국절’”이라면서 “이 정도를 수십억 국가 예산을 써서, 그동안 머리 짜내서 한 게 고작 이건지 묻고 싶다”고 국정교과서를 강하게 비판했다. 독립운동가 김병우 선생의 손자이자 독립기념관장을 지낸 김능진 광복회 이사는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집필위원도 비밀, 집필자도 비밀. 뭐 이런 경우가 있나 싶거든요. 결국은 자기들 일방적인 주장대로 교과서를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술했다고 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김 이사는 “교육부 입장이라는 것도 지능지수가 영리한 개보다도 못한 사람들이 쓴 입장이다, 무슨 코미디도 아니고요. 똑같이 건국절 사관을 수용한 말을 해 놓고 아니라 그러면 말이 안 되는 거죠”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기술이 들어간 이유로 “결국은 ‘뉴라이트’ 생각이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임시정부를 부정하게 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김 이사는 “많은 독립투사들이 세상 떠나실 때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면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이유로 제시했다. “만약에 (19)48년이 우리 건국일이었으면 그전에 나라가 없잖아요. 그러면 예를 들면 아무리 친일한 사람들도 그전의 친일행적은 묻혀지고 건국공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없는데, 왜 우리 독립투사들이 대한민국 만세라고 부르며 돌아가셨을까요. 한마디로 이것은 모든 그런 행적들이 묻히는 일이 되는 거죠.” 결국 건국절 논란의 배경에는 친일파 청산 문제가 깔려있다는 것이 김 이사의 설명이다. 김 이사는 “(교육부가 공개한) 편찬기준만 봐서도 광복회 입장은 일단 (국정교과서) 수용불가”라면서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거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에요. 지금까지 ‘역사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수년 동안 끌어왔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 후퇴할 수 없죠. 그래서 저희도 지금 해를 두고 이 문제를 가지고 여러 번 건의도 하고 사정도 하고 또 만나서 항의도 하고 했었어요”라고 전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국정 역사교과서, 학교에 선택권을 주자

    서울행정법원의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 공개 판결에 따라 지난 25일 공개된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에 따르면 ‘대한민국 수립과정’을 설명하면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한다고 표현하도록 했다. 아울러 고등학교 한국사편찬기준에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 수립과정’을 파악하도록 하는 기준도 제시됐다. 이를 고려하면 ‘대한민국 정부수립과정’을 ‘대한민국 수립과정’으로 기술함으로써 1948년 8월 15일이 대한민국 수립이 완성된 날, 이른바 건국절이라는 해석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의 역사 해석과 기술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국정 교과서가 갖는 권위에 통일된 역사 해석을 심어 줘 역사를 왜곡시킬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학자들의 논리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역사교과서에 기술된 내용보다는 국정이라는 권위를 가진 교과서를 통해 통일된 역사 해석을 가르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헌법 31조 4항은 교육의 자주성, 전문성, 정치적 중립성 등을 규정하고 있다. 교육이 행정기관과 정치권력에 의해 침해받아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역사 교육의 목적은 단편적인 역사적 지식을 심어 주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 주는 데 있다. 찬양 또는 반대 일변도의 역사관이 아니라 다양하고, 비판적인 해석이 수반돼야 올바른 역사관이 형성될 수 있다. 최근 한국교총 등 보수 단체에서도 국정화에 반대하고 나섰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 관련 교수 561명도 반대 성명을 냈다. 20대 국회 들어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법안만 8개나 상정됐다. 청와대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국정이란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정부 주도의 국정 역사교과서 일원화 방침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광범위한 반대 여론을 고려해 교육부는 역사교과서 현장본을 공개한 뒤 내년 3월부터 일선 학교에 적용하는 방안과 시범학교에 지정해 일부 적용하는 방안, 검정 교과서와 혼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등 후퇴하는 모습이다. 새 학기부터 일선 학교에 적용하거나 시범 실시하는 방안은 혼란만 키울 뿐 바람직하지 않다. 시행을 유보하거나 국정과 검정 교과서를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바란다. 학교에 선택권을 주는 것은 교과서를 쓰도록 강요하지 않고 일단 보고 판단해 보라는 뜻에서 절충적인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정통성 회복” vs “친일 면죄부”

    “대한민국 수립 표현은 정통성 회복” vs “친일 면죄부”

    교육부 장관 “독립투사 폄하 없다” “헌법에 명시된 임정 법통 계승해 수립됐음을 명확히 서술했을 뿐” 400여개 시민단체 일제히 반발 “친일파를 건국 공로자로 만들어 ‘건국절 사관’ 집필… 폐기하라” 내년 신학기 국정 역사교과서 일괄 채택을 추진하던 교육부와 청와대가 27일 “현장의 의견을 들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 일선 학교 채택 여부는 28일 교과서 검토본 공개 이후의 여론 흐름에 따라 갈릴 것으로 전망된다. 국정 역사교과서의 내용과 관련해 가장 큰 쟁점으로 떠오른 대목은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다. 교육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진보와 보수 간의 치열한 갈등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수립’ 표현 6년 만에 ‘국가 수립’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 수립’ 표현에 대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분명히 밝히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시정부를 부정하고 친일 건국 세력을 미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헌법에 명시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해 대한민국이 수립됐음을 명확히 서술했다”며 “독립투사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일제 친일 행위를 미화할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 25일 공개된 편찬 기준에서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는 성취 기준을 제시해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을 확정했다. 다만 편찬 방향으로 ‘대한민국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했음을 서술한다’고 제시했다. 다만 ‘건국일’이나 ‘건국절’이란 용어는 교과서에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기념일 형태로 표기하려면 공휴일 지정 등 법제화가 잇따라야 한다. 1차 교육과정이 적용된 1956년부터 2007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기 전인 2010년까지는 교과서에는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기재됐다. 그러다 2010년부터 검정교과서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표현이 사용됐다. 6년 만에 ‘대한민국 수립’으로 또다시 바뀌는 셈이다. 이 부총리는 “기존 검정교과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됐으며, 북한에서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고 연이어 서술해(함으로써 오히려)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400여개의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네트워크’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정교과서에 반영된 ‘건국절’론은 학계 정설에 배치되며 헌법 정신에도 어긋나는 주장”이라면서 “‘건국절 사관’에 입각해 집필한 국정교과서를 당장 폐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진오 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는 “1948년을 건국으로 정하면 친일파들은 ‘건국의 공로자’가 된다”며 “1948년 건국 주장은 친일에 뿌리를 둔 이들이 친일파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의도”라고 강조했다. ●이준식 부총리 오늘 대국민 담화 발표 한편 교육부는 28일 오후 전용 웹사이트에서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을 이북(e-Book) 형태로 공개한다. 공개 시점에 맞춰 이 부총리가 정부서울청사에서 현장검토본의 취지를 설명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집필진 47명의 명단도 이날 공개된다. 다음달 23일까지는 현장검토본 공개와 함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검토본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 다음달 중순 토론회를 거쳐 교과서 집필진과 편찬심의위원들이 온라인과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검토하고 교과서 반영 여부를 결정한다. 의견이 반영된 최종본은 내년 1월 공개된다. 편찬심의위원 16명 명단도 이때 함께 공개된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 주장한 적 없어”

    “이승만 대통령도 건국 주장한 적 없어”

    “48년 건국 주장은 독립운동 부정 행위” 임시정부 활동 과정 인물 중심 기술 홍진 등 잘 알려지지 않은 지도자 소개 “이승만 대통령조차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건국이라고 한 적이 없어요. 당시 속기록 어디에도 건국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대통령이 살아 돌아온다면 자신을 건국 대통령으로 부르며, 건국절을 제정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기가 막힌다고 할 겁니다.” 국내 독립운동 가운데 대한민국임시정부사에 천착해 온 대표적 학자인 한시준 단국대 교수가 우리 정부의 역사적 뿌리와 주요 지도자들을 조명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역사공간)을 내놓았다. 한 교수는 지난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국정교과서 검토본 공개를 앞두고 역사학자로서 두고 볼 수 없었다”고 책을 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정부가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에서 ‘정부’를 빼고 ‘대한민국 수립일’로 교과서에 기술하는 것은 결국 건국절을 반영하는 것으로 우리 독립운동 역사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책을 통해 ‘역사의 정의(正義)’라는 화두를 던진다. “돌아갈 몫이 마땅히 받아야 할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 그게 역사의 정의라는 설명이다. 법적·역사적 근거가 없는 ‘건국절’ 관련 기술은 조국과 민족을 배반하고 일제에 협력했던 반민족행위자들을 건국의 공로자로 둔갑시키고,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한 임시정부의 존재를 부정하려는 의도로 ‘역사의 정의’가 아니라는 의미다. 책은 임시정부의 탄생부터 혼란, 사상적 기반, 무장투쟁 등을 인물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중에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주석 김구, 도산 안창호뿐 아니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들도 있다. 1919년 3·1 독립선언 직후 국내에 ‘한성정부’를 세우고 임시정부 국무령을 지낸 홍진(1877~1946·본명 홍면희)부터 이론가로 ‘삼균주의’를 창안한 조소앙(1887~1958), 대한제국 군인 출신으로 만주 독립군, 광복군에서도 활동한 ‘서안총사령부 총사령’ 황학수(1879~1953) 등은 한 교수의 펜을 통해 ‘민족 지도자’로 오롯이 복원됐다. 근현대 정치사에서 임시정부는 ‘정치적 통합의 역사’이기도 하다. 1919년 3·1 독립선언 후 국내외에 수립된 임시정부는 모두 8개. 그중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9월 11일 국내 한성정부와 연해주 대한국민의회 등 세 정부의 통합을 통해 유일한 정부가 된다. 한성정부를 정통으로, 대한민국 국호와 대통령 중심제가 확립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이 미국에서의 ‘위임통치’를 주장하며, 이는 우리 헌정사에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을 낳는 시발점이 된다. 국무총리인 이동휘가 이 대통령에 대해 “독립정신이 불철저한 썩은 대가리”라고 공격한 게 이때였다. 1925년 3월 임시의정원(임시국회)은 ‘임시대통령 이승만탄핵안’을 통과시킨다. 탄핵심판서에는 ‘국가 총책임자인 이 대통령이 정부 행정과 재무를 방해하고, 대한민국임시헌법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며 국정을 방해했다”고 기록된다. 이승만이 상하이에서 대통령직을 수행한 건 전체 임기 5년 6개월 중 6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우리 역사상 첫 국민주권 정부인 임시정부의 정통성이 결코 손상될 수 없다”며 “대한민국 정부가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법률 제53호)을 반포하면서 왜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했겠느냐. 임시정부와 대한민국 정부 모두 개천절을 통해 우리 민족이 반만년 전부터 국가를 건립했다는 걸 세계에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신문이 개천절을 ‘건국기념일’로 불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도자가 권력으로 역사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건 착각이에요. 그 권력이 무너지는 순간 강압으로 기록한 역사가 휴지조각이 될 줄은 모르는 거죠. 후대 역사가들은 현 정부를 ‘대한민국 역사를 거꾸로 돌리고 후퇴시킨’ 정부로 기록할 겁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1948년 대한민국 수립’ 기재… 뉴라이트 ‘건국절’ 개념 사실상 수용

    ‘1948년 대한민국 수립’ 기재… 뉴라이트 ‘건국절’ 개념 사실상 수용

    5·16 ‘군사 정변’ 표현 그대로 사용 경제성장 시기별 서술로 늘어날 듯 北 3대 세습 비판·인권 심각성 담아 천안함 피격·연평도 포격 피해 기술 교육부가 오는 28일 공개할 국정 역사교과서에는 기존의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재될 전망이다. 뉴라이트 진영에서 주장했던 ‘건국절’ 개념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진보와 보수 간의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5·16은 종전처럼 ‘군사정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민주화 운동’과 함께 ‘경제성장’에 대한 기술도 강화된다. 교육부는 60쪽 분량의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을 25일 공개했다. 편찬 기준은 교과서 집필 시 유의사항을 담은 이른바 ‘집필 가이드라인’이다. 교육부는 이날 공개한 ‘2015 개정교육과정에 따른 역사과 교과용 도서 편찬 기준(안)’에서 ‘역사적 사실을 오류 없이 서술할 수 있도록 학계의 최신 학설을 충실히 소개해야 하며, 편향성을 지양하도록 서술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가장 첨예한 논란이 된 대한민국 건국 시기와 관련해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편찬 기준에는 ‘대한민국의 수립과 6·25 전쟁의 전개 과정을 파악한다’는 성취기준이 나온다. 편찬 방향으로는 ‘대한민국 수립 과정을 설명하고 대한민국이 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신과 법통을 계승했음을 서술한다’고 표현했다. 고등학교 한국사 편찬 기준에서도 ‘8·15 광복 이후 전개된 대한민국의 수립 과정을 파악한다’는 성취 기준을 제시해 ‘대한민국 수립’으로 동일하게 기술하게 된다. 경제 성장 서술은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 주도의 경제 개발 계획을 기반으로 이룩한 경제 발전의 과정과 그 성과를 시기별로 서술(고등학교 기준)한다. 오늘날 세계적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사실을 서술하도록 했다. 5·16과 관련해서는 미화될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종전과 마찬가지로 ‘군사 정변’이라는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 북한과 관련해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비판하고 핵과 인권, 북한 이탈 주민 문제 등 최근 북한 동향의 심각성에 관해서도 서술하도록 했다. 천안함 피격 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 등도 내용과 함께 피해상도 기술하도록 했다. 독도 문제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허구성과 일본의 역사 왜곡 실태·문제점 등을 지적했다. 독도가 우리의 고유 영토로서 분쟁 대상 지역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밝히도록 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전시체제하에서 일제가 펼친 억압 정책을 징용, 징병,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등의 사례를 조사해 파악한다’는 성취 기준을 내세웠다. 교육부는 애초 오는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과 함께 편찬 기준도 발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의원들이 법원에서 집필 기준 공개 판결을 내린 만큼 바로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이날 편찬 기준을 전격적으로 공개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정청래 “진짜 기름장어 국민외면당 대표”…박지원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전 의원은 24일 트위터를 통해 “박지원은 노태우다”라면서 “제3지대로 다모이자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을 하자는 거다. 문재인 세력만 빼고 온갖 잡탕 다 끌어들여 친일부패연합당 만들자는 것. 김대중 빼고 다 모이자던 노태우 역할을 박지원이 하자는 거다. 진짜 기름장어는 국민외면당 박지원 대표”라고 비난했다. 그는 “박지원 대표와 전화로 언쟁을 좀 했습니다”라면서 “NLL대화록 대선부정, 건국절, 국정교과서를 앞장서 주장한 박근혜정권 부역자 김무성과 합치는 것은 제2의 3당야합이라는 제입장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대화내용은 한때 동료선배임을 감안해 공개하지는 않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박지원과 김무성의 시랑, 물불 안가리는 두사람의 불장난. 촛불로 막읍시다”라고 촉구했다. 전병헌 전 의원도 블로그를 통해 “정치권 일부에서 탄핵을 (비박+야3당)으로 추진하자는 일부 정치권 주장은 민심을 벗어난 것”이라며 “탄핵은 야3당 공조로 추진하고 새누리에게는 ‘요구’할 문제이지 부탁하거나 설득할 문제가 아닙니다. 친박이든 비박이든 새누리에 면죄부를 발급할 권한은 정치권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오직 국민의 권한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박지원 위원장은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험난한 고개를 넘으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고 넘어야 합니다. 반공주의자 처칠 수상은 스탈린과 손을 잡고 히틀러와 싸워 이겼습니다”라면서 “무소속 포함 야당 의석은 172석,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서는 최소 28석, 안전하게 가려면 40석 정도의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가 필요합니다. 탄핵안은 가결시켜야지 부결되면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만 줍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또한 “누가 새누리 비박과 통합한다고 했나요”라면서 “저는 국민의당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우리당에 입당한다면 함께 할 수도 있지만 총선 민의로 확인된 국민의당 외의 제3지대론은 반대한다 했습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저는 또 선 총리 후 탄핵도 보류하고 3야 공조 및 비박과 탄핵을 추진하자 했습니다. 우상호 대표도 새누리당 의원들을 접촉 설득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들도 찬성합니다”라면서 “개헌도, 선 총리 선출도 반대하고 탄핵을 위한 새누리당 의원들의 표를 얻는 것을 구걸하는 것으로 필요없다고 하는 일부 과격한 주장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벌떼처럼 저를 공격하지만 겨울의 벌떼는 맥이 없습니다”라고 강하게 말했다.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의 버티기가 계속되며 우리 모두 큰 스트레스 속에 힘든 시간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자꾸 까칠해지고 화를 못참는 일이 많아집니다”라면서 “친박을 제외하곤 서로 조금만 더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며 너그럽게 관용하며 차이를 잠시 뒤로 미뤄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화합을 당부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말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건국절 논란 등 여러 가지 역사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한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 덕에 지금의 삶을 누리고 있는데요. ‘누군가’ 역사를 흔드는 요즘, 우리의 역사를 피와 눈물로 일궈낸 순국선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획·제작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말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한일 합의, 건국절 논란 등 여러 가지 역사 문제들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한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 덕에 존재하고 있는데요. 과거를 가벼이 여기는 요즘, 우리의 역사를 피와 눈물로 쟁취해낸 순국선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획·제작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카드뉴스] 역사를 창조하는 민족에겐 미래는 없다

    “영토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있어도 역사를 잃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남긴 말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역사 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한일 합의, 건국절 논란 등 여러 가지 역사 문제들이 끊이질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국권회복을 위해 투쟁한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 덕에 존재하고 있는데요. 과거를 가벼이 여기는 요즘, 우리의 역사를 피와 눈물로 쟁취해낸 순국선열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기획·제작 김민지 기자 mingk@seoul.co.kr
  • 보수 교육계도 반대하는 국정교과서… 교육부 “예정대로 28일 공개” 강행

    보수 교육계도 반대하는 국정교과서… 교육부 “예정대로 28일 공개” 강행

    ‘최순실 사태’ 속 반대 여론 커져… 정부 내서도 “미루거나 폐기를” 공개를 2주 앞둔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교육부는 일단 예정대로 오는 28일 현장공개본을 내놓고 내년 신학기부터 중·고교에 배포할 예정이지만 보수 교육계는 물론 교육부 내부에서도 “미루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국 102개 대학 역사·역사교육 교수 561명은 15일 서울 종로 흥사단 본부에서 성명서를 내고 국정 역사교과서 폐기를 주장했다. 역사를 가르치는 학과가 설치된 대학 대부분이 동참한, 역대 최대 규모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를 비롯한 교수들은 “국가권력을 동원해 만든 단일한 역사교과서를 전국 중·고교생에게 강요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남은 2주 동안은 물론 교과서가 나오고서도 시민단체, 학부모와 함께 불복종 운동을 벌이겠다고 덧붙였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단체들의 반대 목소리는 지난해 11월 정부가 국정화 확정 발표 이후부터 이어졌지만,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맞물리면서 힘을 받는 모습이다. 앞서 초·중·고교 2000여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규모 역사교사 모임인 ‘전국역사모임’은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최소한의 상식을 벗어난 극소수 사람들이 농단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보수 교육계도 반대 의견을 보이면서 교육부를 ‘사면초가’로 몰아넣고 있다. 보수 교원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지난 12일 “친일·독재 미화, 건국절 제정 등 교육현장 여론과 배치되는 방향으로 역사교과서가 제작되면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총은 지난해 10월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과정을 통해 올바른 역사교육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지지 의견을 냈지만 방향을 선회했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반대하는 이들은 교과서를 폐기하더라도 교육 현장에는 큰 혼란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부분고시를 통해 국정교과서를 폐기하고 2017년까지 쓰기로 돼 있던 원래 검정교과서를 활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금용한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 추진단장(학교정책실장)은 이런 목소리에 대해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본을 예정대로 공개하고 집필진도 함께 공개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코너에 몰린 교육부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도 나온다. 교육부의 한 관계자는 “현재 상황에서 국정 역사교과서 공개가 교육부에 큰 부담이 되고 후폭풍도 만만찮을 것”이라고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국정교과서 뉴라이트 ‘건국절’ 삽입 강행…교육부 “비판 납득 어렵다”

    국정교과서 뉴라이트 ‘건국절’ 삽입 강행…교육부 “비판 납득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 역사교과서에 뉴라이트 사관의 ‘건국절’ 삽입을 강행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28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다음 달 28일 공개되는 국정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단원에는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일부에서는 ‘대한민국 수립’이라고 쓰면 건국절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사관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새로운 교과서에는 기존 검정 교과서보다 임시정부에 대해 더욱 자세하고 충실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강변했다. 지난 24일 국방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 “1944년 일본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1945년 광복군에서 활동했다”며 ‘만주군 장교’였던 박정희를 ‘독립군’으로 둔갑시키기도 했다. 앞서 한국독립유공자협회, 광복군동지회, 민족대표33인유족회, 임정기념사업회 등 180여개 독립운동유관단체들은 지난달 6일 ‘건국절반대 독립운동단체연합회’를 결성하고 성명을 통해 건국절 법제화를 추진할 경우 향후 모든 독립운동 기념식에 불참하고 건국공로훈장을 반납하는 등 결사반대투쟁을 벌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들은 “건국절 제정 논란에 숨어있는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음모는 친일 반민족행위자 처단을 하지 못한 해방정국에서 정부수립에 대거 참여한 친일민족반역자들을 건국유공자로 만들어 민족반역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역사 쿠데타로 이것은 있을 수 없는 폭거”라고 질타하기도 했다. 야권도 박 대통령이 국민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실에서 만든 친일미화 국정교과서는 절대로 학생들에게 배포할 수 없다며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아들아,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아들아,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땀맘 먹지말고 죽으라.” 죽음을 앞둔 아들의 수의(壽衣)를 마름질하는 어미의 마음을 어찌 필설(筆舌)로 나타낼 수 있으랴! 아들 응칠(應七·안중근의 아명)의 사형소식을 접한 조마리아 여사(1862~1927)는 안중근의 동생인 안정근과 안공근의 구설(口說)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전했다. '땀맘'을 먹지 말고 죽는 길이 어미가 원하는 길임을. 참으로 모진 어미다. 구설 내용은 당시 만주일일신문 1910년 2월 13일자 기사로 보도되었고, 지금까지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1909년 3월 26일 오전 10시 4분, 조선의 초대 통감 이토 히로부미(1841~1909)를 저격한 안중근(安重根·1879~1910) 의사는 어머니가 보낸 수의를 입고 그렇게 뤼순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세상을 하직하였다. 이렇듯 조선의 독립은 힘들었다. 결국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히로히토(1901~1989)의 항복 선언을 통해 광복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이미 만주벌판 불던 칼바람이란 칼바람은 다 맞아오던 조선 독립 운동가들에게는 외세에 의한 해방이 마냥 기뻐할 수만 없는 노릇이었다. 독립운동에 버금가는 또 다른 힘겨움을 예고하였기 때문에 일본천황의 항복선언은 두 눈이 얼얼해질 정도로 기뻤지만, 시간은 매웠다. 아쉬웠다. 우리 힘으로도 할 수 있었다고 믿었다. 이런 가슴 시린 조국 독립의 기억을 전시한 곳이 있다. 바로 천안의 독립기념관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대한문(大漢門 ) 앞뜰 가득 울려 퍼지던 3.1 운동의 눈물소리부터 이토 히로부미의 심장을 맞추고 외쳤던 안중근 의사의 ‘코레아! 우라! (Корея! Ура! 대한! 만세!)’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또한 눈보라 폭염 헤치며 항일독립운동의 한길을 걸어온 선대들이 건국절 운운하는 이들에게 내려치는 준엄한 꾸짖음에 정신이 번쩍 들 수 있다. ● 한반도의 얼을 담다! “말로만 듣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왔는데, 정말 좋습니다. 모든 전시물들도 훌륭하고, 특히 우리 아이들에게는 귀한 체험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독립기념관을 가족과 함께 방문한 이무일(45·한의사)씨는 연신 전시물들을 보고 감탄을 쏟아냈다. 실제로 천안 목천읍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은 세계의 어느 독립기념관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구성면이나 전시물의 수준, 규모 등 이 정도면 과히 한 국가의 독립을 기념할 만한 자격은 될 듯 하다. 독립기념관의 건립 계획 시초는 1982년이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사건을 계기로 하여 1982년 8월 28일 독립기념관 건립 결정이 발표되었다. 이후 각계 대표 55명으로 구성된 ‘독립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만들어져 전국 각지에서 모인 성금 500억을 기반으로 건립되었다. 원래 1986년 8월 15일 개관 예정이었으나 개관 11일 전에 전기화재가 발생하여 우여곡절 끝에 다음해인 1987년 8월 15일에 문을 열었다. 입구에는 민족의 비상을 표현한 '겨레의 탑'이 있어 하늘로 날아 오르는 민족의 기상을 표현하였다. 독립기념관 본관은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만들었는데 동양 최대 규모의 기와집으로 맞배지붕으로 모양을 마무리 하여 웅장함을 드러내고 있다. 본관에 들어서면 시계방향으로 제 1전시관에서 제 7전시관과 입체영상관이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관은 그 자체로도 규모가 있고 전시물들도 알차서 실제 모든 전시관을 다 보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 제 1전시관에서 제 7전시관까지 감동으로 우선 제 1 전시관의 경우 ‘겨레의 뿌리’라는 전시관명에 걸맞게 선사시대 고인돌부터 거북선까지 모형을 위주로 실감나는 전시물을 배치하였다. 제 2 전시관은 186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 주로 일제 침탈시기의 기록을 전시하였다. 이 곳에서 을사늑약 전문과 형무소 체험을 할 수 있다. 제 3 전시관은 구한말 국권회복 운동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안중근 의사의 유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제 4 전시관의 경우 일제강점기 우리 겨레 최대 독립운동인 3.1 운동을 다루고 있다. 제 5 전시관은 일제강점기 시절 주로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제 6 전시관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제 7전시관은 일제 침탈 시기 각지에서 일어났던 독립 운동에 대해 그리고 있다. 이 외에 입체 영상관에서는 민족 의식을 고취할 수 있는 여러 영상물들이 제공되어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다. 뿐만 아니라 독립기념관은 다양한 특별전시들이 마련되어 있어 매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도 늘 색다른 전시공간을 제공하여 우리 겨레의 얼을 느끼게 한다. 또한 6.4m에 달하는 ‘광개토대왕릉비’가 있어 과거 선조들의 기상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전시관 이외에도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야외 캠핑장으로 인기가 있다. 특히 단풍나무길이 조성되어 조선총독부부재전시공원에서 통일염원의 동산 입구까지 약 4㎞에 걸쳐 아늑한 산책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미니열차. 어린이방, 해설사 관람 안내 등 가족 단위 관람객들에게는 최적의 휴식 공간 및 문화 공간을 내어주고 있다. <독립기념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독립기념관이라는 명칭에서 유래하는 무언가 무거운 주제의식에 버거워할 필요는 없다. 정말 볼만하고 가 볼만한 곳이다. 추천한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이라면 필수 방문 코스. 혹은 연세 지긋하신 분들은 언제나 눈물짓는 전시물 하나는 발견한다. 3. 시설환경은 어떠한가? -바로 이 지점이다. 한 마디로 훌륭하다. 특히 여름철 캠핑장은 가족 단위 관광객들에게 추천 1순위!! 4. 관람시간은 많이 걸리나? -가볍게 오후 반 나절 대강 보려고 한다면 기념관을 나설 때 아쉬움이 가득할 것이다. 제 1 전시관하나가 작은 박물관 규모라고 생각하면 된다.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5. 독립기념관에서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하는 공간은? -전시관들만 보지 말고 주변에 잘 정리된 숲길이다. 원래 독립기념관 주변은 풍광이 수려한 곳이어서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산책을 꼭 해보길 바란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독립기념관 http://www.i815.or.kr/kr/ 7. 입장료와 기타 관광지정보는? -고맙게도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일(공휴일 정상개관). 주차료는 소형 2000원, 대형 3000원.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을까? -독립기념관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변에 상록리조트와 남산 중앙시장 등이 볼 만하다.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체험은? -전시물들이 워낙 방대해서 독립기념관만큼은 꼭 해설투어를 들어야 한다. 독립기념관 홈페이지에서 온라인으로 예약할 수 있다.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독립기념관은 말 그대로 민족의 얼과 혼이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을 느껴보는 것도 여행의 진정한 맛이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한용운·백석·윤중식 족적 따라 걸으면 예향이 ‘물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한용운·백석·윤중식 족적 따라 걸으면 예향이 ‘물씬’

    서울미래유산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까. 미래유산은 서울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 기억이나 감성 대상이면 모두 가능하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미 평가받은 문화재일 경우에는 미래유산에서 제외한다. 즉 국가나 서울시 지정문화재·등록문화재로 선정되지 않은 유·무형 자산 중에서 서울 시민이 공감하는 동시에 미래세대에 전승할 가치가 있는 게 주된 대상이다. 건축물, 장소, 경관, 인물은 물론 서울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현저하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선정 가능한 셈이다. 서울시는 이렇게 선정한 미래유산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신문·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오는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이 가능하다.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성북구 성북동 지역 답사를 위해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 할머니 한 분이 딸의 부축을 받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서촌에서 오셨다는 주복희(74) 할머니다. 날씨가 무더워 걷기에 다소 무리가 아닌지 물으니 손사래를 치신다. “매일 인왕산 산책로를 두 시간가량 걷기 때문에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 맑은 눈매의 주 할머니 곁에서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딸 이수영(46)씨도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답사는 이씨가 신청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일흔넷 할머니가 답사를 나오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에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됐다. 나중에 물어보기로 마음먹고 문향(文香)의 거리 성북동 답사를 시작했다. 성북동 답사 코스는 시인 백석, 조지훈, 정지용, 이은상, 소설가 이태준, 이효석 등 근현대 문학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족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만해 한용운, 혜곡 최순우, 법정 스님 등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이웃과 살 비비며 살았던 집터를 둘러볼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미술가들의 집도 대거 운집해 있어 예향(藝香)이 물씬 풍기는 지역이다. 성북동 쪽에는 높은 담을 가진 집들이 많다. 서울의 전통적인 부촌 1번지로 지금도 재벌 총수들과 권력층이 많이 산다. ‘힘 있는’(?) 구민이 많이 사는 관계로 성북구는 구청, 문화원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비교적 잘 보존한 지역으로 꼽힌다. 시인·소설가 문향 가득한 골목길문화유산 잘 보존된 지역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가로공원이 나온다. 이곳에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최헌수(50·대한약사회 국장)씨는 “항일운동가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마주친, 분노의 주먹을 움켜쥔 맨발의 소녀상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며 “최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건국절 논란은 일제강점기 질곡을 살아온 선조들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로공원에서 첫 방문지인 최순우 옛집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자 나폴레옹 과자점이 있다. 1968년 삼선교에서 문을 열었다가 20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미래유산은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한성대입구 사거리를 지켰다. 1972년 설립된 한성대보다 형님뻘이다. 나폴레옹 과자점 옆 골목으로 들어가 영양탕으로 유명한 정주집을 지나서 뒤편으로 가면 서울미래유산인 성북동 ‘국시집’을 만날 수 있다. 1969년 개업해 같은 장소에서 2대째 이어오는 안동식 칼국수 전문 식당이다. 한우사골로 우려낸 육수가 일품인데 그 때문에 국수치곤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안동식 성북동 ‘국시집’김영삼 前대통령이 자주 찾던 곳 다시 나폴레옹 과자점으로 와서 조금만 오르면 골목 안쪽에 ‘최순우 옛집’ 이정표가 보인다. 이 집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68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개발 과정에서 사라질 뻔한 것을 시민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문화유산기금을 모금해 사들여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관리하고 있다. 이날 해설을 맡은 한선영(46·여) 서울미래유산 해설사는 “관이 아닌 민간 차원의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 해설사를 도와 진행을 맡은 박광규(55) 해설사는 “집의 담벼락만 봐도 시대적 특성을 알 수 있다”며 이동 중에 깨알 같은 팁을 준다.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시 ‘승무’로 유명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집터가 나온다. 누군가 표지석을 세웠는데 승무를 하는 비구니 모습과 시가 적혀 있다. 경북 영양 출신인 조지훈에게 30년을 살다 간 성북동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발길을 조금 옮기자 선잠단지가 나온다. 선잠단은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선 정종 2년(1400년)에 설치된 제단이다. 한 해설사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이후 잠신의 신위는 사직단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라며 “발굴 작업으로 인해 문을 잠갔고 곳곳이 파헤쳐져 있어 어수선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들르진 않았지만 성북구에는 가옥 형태의 서울미래유산이 제법 된다. 특히 이들의 공통점은 화가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서양 미술 도입에 선구적 역할을 한 화가 윤중식이 생전에 거주했던 가옥, 1965년 이후 반세기 이상을 버텨 온 서세옥 화가의 가옥은 정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주택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화가 변종하의 집은 시적인 정서에 한국적인 이미지 결합을 추구해 온 화가가 생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동소문 2가 일대 한옥밀집 지역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은 1936년 돈암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우리나라 근대기 주택유형 가운데 하나로 보존가치가 있다. 서양 미술 도입 선도 윤중식 옛집화가들 집 미래유산 많아 답사단은 성북지역 최대 규모 서울미래유산인 길상사에 다다랐다. 한 해설사는 ‘길이 고운 절집’이라는 책자를 낼 정도로 사찰에 전문성이 있다. 이날도 길상사 구석구석에 담긴 내력과 이야기를 술술 잘도 풀어냈다. 길상사는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1997년 창건됐다. 원래는 삼청각(서울미래유산), 오진암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손꼽혔던 대원각이었다. 1951년 무렵 기생 김영한(필명 자야)씨가 일제강점기에 ‘청암장’이라 불리던 별장을 매입해 1980년대 말까지 대원각을 운영했다. 시인 백석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그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19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한 해설사는 “김영한은 10년간 끈질기게 법정 스님을 설득해 마침내 1997년 길상사를 세웠다”며 “요정이라는 세속의 때를 벗고 선방(禪房)으로 거룩하게 재탄생한 의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최돈선 시인이 길상사에서 합류했다. 지난 3월 한강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강화까지 3년 계획으로 걷는 ‘한강수야’ 대장정을 시작한 그다. 시인은 “한 달에 한 번 탐사에 나서는 한강수야 답사도 언젠가는 서울미래유산답사단과 만날 수 있겠다”며 “길상사는 법륜 스님 법문 때 와 봤는데 사부대중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출발 때 인사를 나눴던 주 할머니를 찾았다. 길상사에 이르려면 제법 오르막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노구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저 멀리 경내를 찬찬히 뜯어보는 주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한 표정이 가득하다. 심우장을 가기 전에 작심하고 주 할머니에게 길상사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주 할머니 입에선 뜻밖의 답이 나왔다. “실은 제가 김 보살님(김영한) 수양딸 노릇을 했지요. 10대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있으면서 김 보살님이 아프면 미음도 끓여 주고 식사도 챙겼어요.” 주 할머니에 따르면 조모와 김씨의 친분이 두터웠다. 이 때문에 자신과도 인연이 닿았고, 김씨가 자신을 수양딸로 삼아 “결혼하면 집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 할머니의 조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두 집안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공증되지 않은 구두로 이뤄진 약속은 공중으로 휘발되고 말았지만, 주 할머니는 “김 보살님을 살아생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지금 이 자리가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길상사는 주 할머니에게 기억의 박물관이자 추억의 마중물이다. 백석 연인 ‘자야’ 수양딸 답사 나와길상사 경내서 만감 교차 답사단은 상허 이태준이 월북 전까지 머물며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수연산방과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을 둘러봤다. 심우장은 만해가 1933년 지은 것으로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심우장에서 나와 오른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북정마을과 서울 성곽길로 이어진다. 애초 이 일대와 삼청각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날이 더워 코스를 줄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복자사랑 피정의 집이다. 원래 명칭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 집이다. 1953년 자생적으로 설립된 한국의 첫 방인 남자수도회다. 건축물은 1954년 짓기 시작해 1959년 완공된 근대 절충주의 양식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건물 외벽에 성모상을 비롯해 순교 성인상 등 13개 부조가 붙어 있다. 한 해설사는 “부조는 원형 보존을 위해 따로 보관하고 있고 모조품을 부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상 잦은 해외출장으로 외국인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할 일이 많다는 김유림(40·넥스나인 대표)씨는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곳이 많았는데 우리 역사나 문화를 좀더 깊이 알았더라면 외국 손님들에게 설명을 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조선시대 한 문인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그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며 “무더위 속에서 1만 5000보를 걸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아쉬워했다. 답사를 마친 후 답사단 일부는 서울미래유산인 장수마을을 지나 서울 성곽길을 걸어 낙산공원을 거쳐 동대문으로 내려갔다. 한성대 입구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길이 빠르게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첫날 행보로 본 더민주 추미애 대표의 ‘내일’

    첫날 행보로 본 더민주 추미애 대표의 ‘내일’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신임 대표의 첫날 키워드는 ‘통합’이었다. 추 대표는 29일 대표 취임 이후 첫 공식 일정으로 서울 국립현충원에서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물론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까지 참배했다. 추 대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이념이나 철학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국가원수로서 지나온 그분들의 흔적은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 역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더민주 지도부의 박정희·이승만 묘역 참배가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해 2·8전대 직후 두 전직 대통령 묘소를 참배했을 때만 해도 최고위원 전원이 참배를 거부하는 등 찬반이 들끓었다. 반면 이날 지도부 전원이 참석했다. 추 대표는 참배 뒤 건국절 논란을 겨냥해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적통 임시정부를 부정하려고 한다”면서 “역사를 정권논리에 따라 만지려 해선 안 된다”며 박근혜 정부를 비판했다. 여야 지도부와 잇따라 상견례도 가졌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는 7분 만에 끝났다. 이 대표는 추 대표를 보자 손을 꼭 잡으면서 ‘58년 개띠’ 동갑내기라는 보도를 거론한 뒤 “저보다 12년 먼저 국회의원이 됐다. 국회의원으로서 대선배를 넘어 왕선배님”이라고 치켜세웠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치를 시작한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20여분간 비공개 면담까지 했다. 추 대표가 “김 대통령의 마지막 유언이 ‘꼭 통합해라’였다. 대통령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읽을 줄 아는 박 대표이신 만큼 국민께 희망드리는 장정이 시작돼야 할 것 같다”고 말하자, 박 대표는 “처음부터 한 방 먹인다”며 웃었다. 당직 인선도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사무총장에 3선 안규백(서울 동대문갑), 정책위의장에 3선 윤호중(경기 구리) 의원을 임명했다. 둘 다 1988년 당직자로 정치권에 입문했고, 안 신임 사무총장은 ‘조직·전략’, 윤 신임 정책위의장은 ‘정책’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친문으로 분류되는 윤 정책위의장을 제외하면 계파색이 옅은 편이다. 추 대표는 이날 오후 취임 후 첫 현장방문으로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방문했다. 추 대표는 “최고위원 한 분이 전담해 세월호 대책을 맡도록 하겠다. 국민의당, 정의당과도 3당 공조를 통해 국회 대책을 세우기로 했다”며 세월호 특조위 기한 연장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 중인 ‘예은이 아빠’ 유경근 집행위원장에게 단식을 멈춰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추 대표는 전대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책임론’을 놓고 진실게임을 벌였던 김종인 전 대표와도 관계 회복에 나섰다. 추 대표는 “(28일 전화를 드려) 너무 고생하셨다. 조만간 만나뵙고 좋은 말씀 주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대표님도 그렇게 하시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조기 게양’ 오늘은 경술국치 106주년···‘나라 잃은 설움 잊지 말자’

    ‘조기 게양’ 오늘은 경술국치 106주년···‘나라 잃은 설움 잊지 말자’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는 계기가 된 ‘경술국치’ 106주년을 맞아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추념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경술국치는 1910년 8월 29일 일제가 대한제국의 국권을 강탈했음을 공포한 날이다. 치욕스러운 날이라는 의미에서 경술국치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일제는 한일합방, 한일합병, 한일병합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날 낮 1시 서울 남산 통감관저터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 피해자를 기리는 ‘기억의 터’가 제막된다. 통감관저터는 1910년 8월 22일 조선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을사늑약’을 체결한 곳이다. 이 일로 실질적 통치권을 잃었던 대한제국은 일본 제국에 편입되었고 일제강점기가 시작됐다. 기억의 터는 지난해부터 서울시와 ‘기억의 터’ 추진위원회가 준비해오다 이번 경술국치일에 제막이 결정됐다. 제막식에는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박원순 서울시장, 최영희 기억의 터 추진위원장 등 120여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항일 독립운동가 단체인 ‘광복회’는 이날 오전 11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106주년 경술국치일 상기 행사’를 진행한다. 광복회 서울·경기·인천지부 회원 70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30분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경술국치 추념식을 하고 찬 죽을 먹으며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질 예정이다. 찬 죽을 먹는 것은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운 선열들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이외에도 광복회 각 시‧도지부 주최로 광주와 청주, 안동 등 10여개 지역에서도 동시에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행사는 경술국치일 약사보고, 개식사, 추념사, 만세삼창 순으로 진행된다. 박유철 광복회 회장은 “일본의 우경화와 역사 왜곡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건국절 제정 논란으로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이라며 “국치일 추념식 및 조기게양을 통해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은 71주년 광복절 축사에서 “(올해는) 건국 68주년”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한 발 더 나아가 새누리당은 건국절을 법제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광복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1919년 3·1운동 직후 임시정부가 ‘대한민국 수립’을 선포하고, 1948년 정식 정부가 수립돼 그 정통성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역사의 정설”이라며 “대한민국 국호를 처음 쓴 1919년 4월 13일을 대한민국의 생일로 정하면 왜 안 되는가”라고 반박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오늘의 눈] 추경 합의에도 씁쓸한 이유/송수연 정치부 기자

    [오늘의 눈] 추경 합의에도 씁쓸한 이유/송수연 정치부 기자

    “낙동강에 보가 8개 있는데 5t 배가 보를 넘어갈 수 있습니까.”(국민의당 이상돈 의원) “‘배를 차에 싣고 이리저리 다닐 수 있게 한번 설계를 해 봐라’ 주문해 놓았습니다.”(윤성규 환경부 장관) 지난 11일 추가경정예산안 심사를 위해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의 한 장면. 환경부는 이번 추경안에 낙동강 상류의 담수생물자원 조사를 위한 5t급 연구용 배를 건조한다는 명목으로 7억 9200만원을 편성했다. 이 의원이 낙동강이 4대강 사업으로 8개의 보로 가로막혀 있는데 배가 지나다닐 수 없지 않으냐고 묻자 윤 장관이 5t 배를 보마다 차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변한 것이다. 이 의원은 기가 막힌 듯 이날 회의에서 “참 이거, 누가 들으면 만화 같은 얘기 아닌가요”라고 실소했다. 하지만 관련 예산은 결국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환노위 소속 한 의원은 “낙동강에 어떤 생물자원이 있는지도 모르겠거니와 배를 댈 계류장과 배를 이동시킬 대형 트럭 등에 대한 예산은 또 따로 편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7억원 정도는 추경 규모에 비해 얼마 안 되는 액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이런 예산들이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여야가 진통 끝에 추경안 본회의 처리에 합의했지만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서울신문이 지난 24~25일 두 차례에 걸쳐 추경안 심사를 마친 상임위 회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애초 취지와는 맞지 않는 사업 예산이 수두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홍보성 예산이 일자리 예산으로 둔갑하고, 제대로 된 계획 없이 이름만 그럴듯한 예산이 적지 않았다. 이 와중에 여야 의원들은 추경에도 ‘제 지역구 예산 끼워 넣기’ 행태를 반복했다. 야당의 한 보좌관은 “이렇게 엉망일 줄 알았으면 차라리 추경 통과가 안 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이번 11조원 규모의 추경이 일자리와 구조조정, 민생을 위한 추경이라고 강조하며 빠른 시일 내에 통과돼야 한다고 읍소하고, 야당 의원들이 국민의 혈세를 함부로 쓸 수 없다고 강조한 게 무색한 상황이다. 일명 ‘서별관회의(조선·해운 구조조정) 청문회’ 증인 협상 결렬로 8일 만에 재개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부실 심사에 대한 우려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야당 의원 일부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문제, 건국절 논란 등 정치 현안으로 질의 시간 대부분을 할애하기도 했다. 정치권 관계자는 “예결위는 추경 심사를 위해 열린 것이 아니냐”면서 “아무리 중요한 현안이라도 예결위는 예결위 목적에 맞게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야가 서별관 청문회를 추진하는 이유는 제대로 된 원인 규명 없이는 막대한 세금을 쓸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청문회를 위한 증인 협상으로 부족한 시간 탓에 졸속, 부실 추경 심사가 이뤄졌다면 본말전도가 아닐 수 없다. 여야는 30일 본회의에서 추경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가뜩이나 ‘지각 추경’이라는 지적이 많다. 어렵게 마련한 국민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songsy@seoul.co.kr
  •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열린세상] 대한민국은 언제 건국되었나/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대한민국 건국 시기를 두고 논쟁이 일고 있다. 단순히 시기를 둘러싼 논쟁이 아니라 독립운동사에 대한 인식 문제가 바탕에 깔려 있는 문제다. 1919년 4월 11일 임시의정원은 ‘대한민국 임시헌장(법)’을 반포했다. 전문격인 ‘선포문’은 “한성(漢城·서울)에 기의(起義)한 지 삼십유일(三十有日)에 평화적 독립을 300여주(州)에 광복하고…임시헌장을 선포하노라”라고 밝혔다. 1919년 3·1혁명이 일어난 지 30여일 후에 상하이에서 임시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이때 ‘선서문’도 발표했는데 “(대한)민국 원년(1919) 3월 1일 아(我) 대한민족(大韓民族)이 독립을 선언”했다고 천명했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은 독립을 선언했고, 그에 따라 4월 11일 정부를 수립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서문’은 “국토광복과 방기확국(邦基確國·나라의 토대를 확실히 세움)의 대사명을 과(果·달성)하기를 자(玆·이)에 선서하노라”라고 해서 국토를 되찾아 나라의 기초를 확실히 세우는 것이 ‘대사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패망함으로써 이 대사명은 완성됐다. 그래서 1948년 7월 17일 제정한 제헌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고 규정했다.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이 아니라 1919년 3·1혁명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고, 1948년에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했다는 것이다. 1987년 개정한 현행 헌법도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이를 명시했다. 일제강점기 일왕 척살에 나섰던 이봉창 의사의 ‘선서문’ 날짜는 “대한민국 13년(1931년) 12월 30일”이고, 윤봉길 의사의 선서문 날짜도 “대한민국 14년(1932년) 4월 26일”이다. 이런 독립전쟁을 계승해 1948년 8월 15일 드디어 ‘망명’의 딱지를 떼고 ‘환국정부’를 수립했던 것이다. 1948년 6월 26일 제헌국회에서 진헌식 의원은 “대한민국은 3·1혁명 투쟁을 통하여 조성된 국호이며 이 역사적 광영을 가진 국호야말로 대내적으로는 민족 통일의 기초가 되고, 대외적으로는 민족 투쟁의 긍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복 후 초대 법무장관 이인도 “(1948년) 8월 15일 이전에도 대한민국이 있었다”고 말한 것처럼 1919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것은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동의하는 개념이었다. 이를 미국과 비교해 보자. 미국은 1776년 7월 4일 필라델피아에 13개 주 대표들이 모여서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서’를 선포했다. 그 후 1783년 9월 3일 파리조약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승인받았고, 연방의회를 구성한 후 1789년 4월 30일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하는 연방정부를 수립했다. 미국의 건국절은 언제일까? 독립을 선언한 1776년 7월 4일이다. 1919년의 임시의정원은 각 지방 인민의 대표의원으로 조직됐는데, 인구 30만명에 1인의 의원을 선출했다. 경기·경상·충청·전라·함경·평안도는 6인씩이었고, 강원·황해는 3인씩이었다. 중국·러시아·미국 교포들에게도 3명씩의 의원을 배정했다.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고, 2조는 “대한민국은 임시정부가 임시의정원의 결의에 의하여 차(此)를 통치함”이었다. 임시헌장 1, 2조는 왕정이었던 ‘대한제국’이 민주공화정인 ‘대한민국’으로 발전했음을 선포한 것이었다. 1948년의 제헌국회 개회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라고 두 차례나 ‘국가’가 아니라 ‘정부’를 수립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아프리카의 여타 신생독립국들처럼 1948년 건국된 것이 아니다. 수천 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나라를 잠시 일제에 빼앗겼다가 되찾은 것이다. 작금의 건국절 운운은 독립운동사를 말살하고 친일파들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사고 있다. 1948년 건국절 제정 시도는 대한민국 헌법과 독립운동사를 부정하고, 선열을 모독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는 것으로 백해무익하다. 즉각 중단돼야 마땅하다.
  • 유일호 “추경 땐 성장률 0.2%P 상승”

    유일호 “추경 땐 성장률 0.2%P 상승”

    여야가 추가경정예산안 본회의 처리에 합의함에 따라 국회는 26일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열어 추경안 심의를 재개했다. 추경안 심사가 늦어진 만큼 여야는 이날 속도감 있게 심의를 진행했지만 야당 소속 의원 일부는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사퇴 문제, 건국절 논란 등 정치 현안 문제에 질의 시간의 대부분을 할애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예결특위 종합정책질의에 출석해 추경안 지연 처리에 따른 문제점과 관련, “지방자치단체들이 사전 대비를 해 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조금 늦었지만 국회가 통과시키는 대로 나름 독려해 신속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 부총리는 추경으로 인한 경제성장률 상승효과에 대해 “정확히 0.2% 포인트 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누리과정(만 3~5세 보육사업) 재원 문제와 관련해 ‘기재부 차원의 방안이 있느냐’는 국민의당 김광수 의원의 질의에는 “특별회계를 별도로 하나 신설해 교육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누리과정 재원 문제는 제도를 바꿔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데 정부도 동의한다”면서 “내년부터 누리과정 예산은 5자 협의체를 통해 제도 개선을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강석진 의원은 “현재 실업자들은 바로 취업할 수 있는 대책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고, 더민주 박홍근 의원은 “(추경은) 경기 부양이 목적인데 세수를 늘리는 방안, 증세를 검토하지 않고 이런 땜질식 처방이 마땅한지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황교안 국무총리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열흘째 단식 중인데 알고 계시냐”는 김현미 위원장의 질문에 “어디에 계시냐. 관련 보고를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기획재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어 홍기택·강만수·민유성 전 산업은행장 등을 포함한 46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을 채택하는 ‘조선·해운 구조조정 연석 청문회’ 실시계획서를 의결했다. 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최경환 새누리당 의원과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전날 여야 3당 원내대표 합의에 따라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았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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