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거창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부산항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휴가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사망자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 환송
    2026-08-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554
  • 파리 라 빌레트 공원(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28·끝)

    ◎과학·문화·오락기능 갖춘 “미래공원”/미완성 형태 「폴리」는 도시인 갈등·개체화 상징/「지오드」 외부는 반사유리… 신비로운 우주 재현 건축은 사회의 문화가 가시화되는 중요한 물리적 요소이기 때문에 한 사회의 미래를 향한 진취성은 동시대에 건축되고 있는 건축물의 형태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이러한 관점에서 건축답사는 전통 건축을 통하여 그 사회의 지나간 역사를 접할 수 있어 흥미롭지만,현대 새로이 건축되고 있는 건물들을 통해 한 사회의 진취성과 미래관을 엿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도살장·가축시장 자리 파리는 잘 보존되어 있는 고 건축을 통해 문화적 역사에 대한 깊은 감동을 자아내는 도시임과 동시에,한편으로는 탄탄한 문화유산 위에 정체되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를 향해 용솟음 치고 있는 문화에너지가 현대건축의 형태를 통해 강하게 표출되고 있어 또한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이다.여기서 소개하는 라 빌레트 공원은 1970년대말에 시작된 미래형 도시 만들기의 일환으로 대통령이 직접주관한 파리 7대 건축 과제 중의 하나이다.「21세기형 도시 공원」이라는 세계 최초의 주제를 내걸고 계획된 이 공원은 현대 도시공원의 새로운 모형을 제시하고 있어 건축적 의의가 높다. 이 공원은 복잡한 도시생활로부터 피난처를 제공하는 19세기적인 공원에서 탈피해 현대 도시공원은 복합적이고 다양한 도시형태의 연장이어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선언하였다.따라서 음악과 미술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창출의 장소와 교육의 장소,또한 오락의 장소를 한데 마련하여 미래형 복합 도시 공원을 제시하고 있다.이 공원을 처음 대하면 다차원적인 도시인들의 특성이 그대로 공원속에 연장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진정 현대 도시민들의 생활장소임을 실감케 한다.더욱이 과학과 문화,오락 등 서로 다른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설들이 제각기 혁신적인 건축양식으로 표출되고 있어 세계적인 현대 건축의 명소가 되고 있기도 하다. 파리 동북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이 공원은 원래 파리의 모든 분수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1812년에 판 운하가 흐르던곳으로 도살장과 가축시장이 있었던 곳이다.1979년에 미래세대를 위한 과학박물관 설립이 검토되기 시작하여 1982년부터 과학과 음악센터를 함께 갖춘 복합공원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검토되었다.그당시 파리의 가장 큰 공원보다도 1.5배나 큰 1백36헥타르의 대규모 공원부지는 저소득층 도시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성공적인 도심공원으로 개발하기에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그러나 유아부터 노년까지 모든 연령층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과학 문화 오락을 위한 장르별 박물관 공연장 호텔 아파트 목욕시설 다양한 식당등 다기능의 시설을 포함한 말 그대로 복합공원이라는 특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새로운 개념의 건축형태 도입으로 공원의 개장과 함께 세계 건축계의 주목을 또한번 파리로 집중시키는 성공을 거두었다. ○국제공모전 통해 탄생 가장 먼저 검토된 2백70m 길이와 1백10m 폭의 국립과학 및 산업박물관은 「지오드」라 불리는 구형 오디토리움과 함께 이 공원을 상징하는 주요시설이 되고 있다.특히 6천4백33개의삼각체의 연결로 완벽한 구형을 이루고 있는 「지오드」는 내부에 과학 입체영상을 위한 1천㎡의 반원형 화면이 설치되어 있으며 외부 마감이 은색 반사유리로 되어 있어 하늘과 주변환경이 반사돼 신비로운 우주를 재현하고 있는 듯하여 이곳을 찾는 차세대 젊은이들이 우주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도록 한다. 그 외에도 대중음악 연주장과 지붕만 덮인 2만㎡ 넓이의 가축 경매장을 개조한 「그랜드 홀」이라 불리는 다목적용 전시실이 마련되어 각종 행사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또한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 건축가 뽀르잠박이 설계한 음악센터는 파리 국립음악원과 음악 박물관,연주홀 등을 포함하고 있으며,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현대 건축 형태를 구사하고 있어 미래 지향적인 공원단지임을 다시 한번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공원에서 가장 강한 시각적 자극을 부여하는 것은 용도와 기능과 전통 기하학적인 형태를 거부하며 서 있는 「폴리」라 불리는 공원 전체에 반복되며 서 있는 강렬한 빨강으로 채색된 작은 건축 구조물이다.중세 정원의 정자를 현대적인 개념으로 재구축하여 「폴리」라 명칭하고 있는 소규모의 구조물은 1백20m의 일정한 간격으로 길이,폭,높이가 일정하게 10m 규격인 입방체로 공원전체에 35개의 점이 찍혀 있듯이 설계되어 있다.그러나 모든 「폴리」는 기능이 구체적으로 부여되지 않으며,형태 또한 모두 다르다.어떤 구조물은 카페로 사용될 수 있고,일부는 공원 조망대로 사용되거나,용도를 사용자가 시시각각 부여할 수 있기도 하고,용도 없는 단순 구조물로 남아 있을 수도 있다.형태 또한 기존의 조형적 질서를 부인하며 쓰러지듯 건축되어 있거나,완성을 거부하듯 미완성의 형태로 남아 있다.이 작은 건축물은 반맥락성,반역사성,반자연성을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제각기 개성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다기능의 시설들이 공원 군데 군데 산재하여 계획되지 않은 듯한 인상을 주는 미래형 도시 공원은 제각기 다른 형태를 지닌 35개의 「폴리」의 출현으로 다시 한번 분열된다.이것은 통일성을 거부하며 나타나고있는 현대 도시의 다원적인 갈등과 대립을 표현함과 동시에 중앙집중적인 위계성,안정성을 부인하고 단편화와 개체화를 한층 더 강조하고 있는 현대 도시의 내면이 해학적으로 표현된 듯하다. 이러한 혁신적인 건축 형태는 1983년 라 빌레트 공원 재개발을 위한 국제 공모전을 통해 탄생되었다.36개국이 출품한 4백71개의 작품 중 스위스 태생으로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건축가 버나드 츄미의 설계안이 당선되었다.츄미는 21세기 도시형 공원이라는 주제를 대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불연속적인 건물을 계획하여 조화보다는 심리적 분리를 표현하여 현대의 시대성을 표명하고자 하였다.설계자는 거창한 구조물이란 이미 구시대적이 유물이라는 판단으로 이를 부정하고 그에 대한 반명제로 환경에 대한 해체주의 개념을 택하였고,프랑스는 이러한 실험정신을 미래 도시환경 속에 실현 가능토록 하였다. ○해체주의 모태 건물 라 빌레트 공원의 「폴리」는 건축 분야에 해체주의적 양식이 태동하는 계기가 된 1988년 뉴욕 현대미술관의 해체주의적 건축전에 출품되어전세계의 건축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게 하였고,해체주의적 건축양식을 낳게 한 모태 건물로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작품으로 남아 있다.이렇듯 라 빌레트 공원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주관한 파리의 모든 건축물은 국제 설계 공모전을 통하여 세계 건축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수 있는 미래 지향적 형태를 낳게 하여 현대 건축사의 한 장을 장식할 뿐만 아니라 파리의 도시건축에 역사적 흔적을 하나하나 더해 가고 있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파리의 현대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대부분 권위를 의식하는 공공성을 띠고 있는 건축물이지만,기존의 구태의연하고,권위주의적이며,보수적인 형태는 지양하고 미래 지향적 건축이 선택되고 있다는 점이다.이렇듯 파리의 현대 건축을 대하면,전통을 존중하며 역사를 지켜 나가되 진취적 문화관이 도시의 공공 건축 환경에 시각적으로 표출될 수 있어야만 진정으로 구태의연한 답습을 과감히 떨치고 차세대를 위한 진일보한 미래사회로 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보게 된다.
  • “내 표밭 어찌되나”득실 저울질/「선거구 조정」초조한 총선주자들

    ◎부산 강서­북 송두호 의원­정형근씨 경합… 세대교체 관심/인천 중­강화 서정화 의원­이경재씨 「야성옹진」 줄다리기/보성­화순 유준상 의원­한영애씨 교통정리 최대 고민 선거구 재조정 대상이 될 지역구 국회의원,공천 및 출마 희망자간 내부 신경전이 뜨겁다. 협상 결과 통·폐합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구 7만5천이하 지역구에서는 공천관문이 좁아지는 데다,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표밭구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신한국당◁ ○…부산 강서(7만4천)는 신한국당에서 북구(27만2천명)와 통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따라서 송두호의원(강서)과 정형근위원장(북구)의 공천경합이 불가피해졌다.송의원도 김영삼대통령과 경남고 동기이나 안기부 출신의 정위원장도 세대교체 차원에서 최근 발탁된 YS계라는 점에서 만만치 않다. 강서를 희망했던 홍인 길전총무수석은 남구갑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소문이어서 허재홍의원이 긴장하고 있다.부산 중구(7만)가 동구와 통합될 가능성이 커지자 중구의 정상천의원은 동구 출마를 위해 개각때 물러난 한리헌전경제수석을 맞아 당혹해 하는 눈치다.한전수석도 넓어진 선거구에서 지역기반이 만만치 않은 허삼수의원 및 지명도가 높은 노무현전의원과 맞붙어야 하는 부담이 커졌다. ○…강화군(7만)의 경우 통합선거법이 군·구 등 행정구역내 일부 면이나 동을 타 선거구에 떼어붙이지 못하도록한 원칙을 깨고 「예외」로 인천의 서구지역 일부를 떼어 붙인다는 당 협상팀의 방침이 시비를 촉발하고 있다.인천 서구의 조영장의원에게는 야 성향이 강한 공단지역을 강화에 떼어넘길 기회가 되지만 강화의 이경재 위원장이 가만 있을리 없다.같은 인천앞 바다의 섬지역 옹진군(1만4천)을 강화에 붙여주면 예외라는 편법없이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더욱이 협상주역인 중·동구(14만)의 서정화 원내총무가 여 성향의 옹진군을 끌어가려 예외를 인정하는 협상을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이에 서총무는 옹진군의 모든 섬들이 뱃길로 인천과 연결돼 생활권은 강화가 아닌 인천이라고 반박,귀추가 주목된다. 강원 태백(6만7천)은 인근 정선(6만5천)과 통합이 확실하다.태백의 유승승,정선의 박우병의원은 올초 선거구협상 때 각각 선거구를 독립된 상태로 보존하는데 공조를 폈지만 이제 하나의 선거구를 놓고 제로섬 게임을 하게 됐다. ○…경남 합천(7만2천)도 거창(7만4천)과 통합될 가능성이 높아져 합천의 권해옥,거창의 이강두의원 간에 신경전이 붙고 있다.경북 예천(6만9천)이 문경·점촌과 합쳐질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예천의 번형식의원측은 이승무의원의 문경·점촌에서 12대때 당선된 경험 등을 내세우며 연고권을 주장하고 있다. ▷야권◁ ○…국민회의의 텃밭인 전남에서 7만명 미만인 선거구는 장흥(이영권)영암(유인학)신안(한화갑)등 3곳이다.장흥은 동교동 가신출신인 전국구 김옥두의원이 오래 전부터 노리던 곳으로 「물갈이」 및 선거구 조정과 맞물려 이해가 첨예하게 상충되는 곳이다. 영암은 나주(김장곤)나 함평(김인곤)과의 통합이 거론되고 있으나 대상지역의 의원들은 극구 반대하고 있다.신안은 해남·진도(김봉호)중 인구수가 4만8천여명인 진도와의 통합이 제기됐으나 한의원은 민주당에 잔류한 박석무의원의 무안을 바라고 있다. ○…7만∼7만5천명인 선거구는 보성(유준상)과 화순(한영애 위원장)으로 상호 통·폐합이 거론됐으나 4선인 유의원과 김대중총재의 신임이 두터운 한위원장 사이에 국민회의의 선택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밖에 7만5천∼10만명인 선거구는 전북의 고창(정균환),부안(이희천),임실·순창(박정훈),전남의 곡성·구례(양성철 위원장),무안(임종기 위원장)등이지만 지금으로선 신한국당의 하한선 10만명에 펄쩍뛰는 수준이다. ○…자민련의 경우 7만명 미만의 선거구는 충북 옥천(박준병)뿐으로 예전처럼 보은·영동과의 통·폐합이 제기되고 있다.7만∼7만5천명인 선거구는 충남 금산(정태영)과 경북 울진(이학원)이다.금산은 지역적으로 논산(김범명)과의 통합이 불가피하나 신한국당에서 이적해 온 김의원과의 조정이 쉽지 않다.경북 울진도 청송·영덕(문태준위원장)이나 영양·봉화(조춘영 위원장)와 조정해야 하나 모두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은 7만5천명 미만인 선거구가 전남 화순(홍기훈)뿐인 데다 홍의원도 경기 고양을에서의 출마를 고려하고 있어 선거구 조정의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다.
  • 개인 내면고백 작품이 주류/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품 경향

    ◎소설­신변잡기 위주… 치열한 작가정신 부족/시­해외동포 많이 응모… 뛰어난 작품 다수/평론­젊은작가에 초점/시조­대부분 완성도 높아 거대 서사가 물러난 자리를 채운 개인적 내면고백. 90년대 이래 문학전반에 걸쳐 일반화한 이같은 경향은 올 서울신문 신춘문예 응모작들에도 반영됐다.PC통신 교신용어를 도입한 듯한 첨단언어,대담한 성적표현,해외를 배경으로 한 이국취향 등이 두드러졌으나 소재에 걸맞는 형상화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았다. 소설은 독서체험과 글쓰기의 평준화에 힘입은듯 대부분의 응모작들이 형식·구성·문장 등에서 최소한의 기본기를 보여주고 있었다.그러나 그 가운데 선뜻 손이 가는 제대로 된 작품은 많지 않았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중평.소재에서는 사회공동체 문제에 대한 가치지향적 접근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삶의 일상적 측면에 현미경을 가져다 대는 작은 얘기들이 주류를 이뤘다.하지만 이같은 변화는 치열성과 개성적인 감각이 뒷받침되지 않아 범박한 신변잡기로 떨어지곤 했다. 시의 경우 해외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하나의 흐름을 이룰 정도로 늘었고 중국·미국 등지에서 보낸 재외 한인들의 작품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언어해체의 실험이나 산문시 유행 등도 여전했다.무명씨의 베스트셀러 시집에서 영향받은 듯한 소녀취향의 감상이나 속으로 익혀내지 못한 키치적 가벼움은 여전히 뛰어넘어야 할 과제로 지적됐다.하지만 올해 시부문엔 긴장감과 탄탄한 언어조탁을 겸비한 수작들이 꽤 눈에 띄었다는 평이다. 거창한 일반론이나 목적의식 등이 사라진 것은 문학평론도 마찬가지.대신 작품론이나 작가론,그 중에서도 신경숙·윤대녕 등 젊은 작가에 초점을 맞춘 응모작이 늘었다. 올해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는 상당한 수준에 이른 완성도 높은 작품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편수가 오히려 줄어 위기에 처한 장르 자체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신춘문예는 교과서적인 노련미를 보는 곳이 아니다.말 그대로 출발선상에 설 신인을 발굴하는 경연장이다.따라서 어설프더라도 패기있는 실험정신,기존문단에 문제를 던지는 신선함,이를 녹여내려는 끈기와 치열함이 높은점수를 받는다.이렇게 봤을 때 올 신춘문예는 새로운 문학 환경변화에 덤비기는 하면서도 꼭 집어낼 말을 찾지 못해 허둥대는 문단의 풍경을 어느정도 되비치고 있다는 게 전반적인 심사평이다.
  • 감사원 총장 노우섭씨/감사위원 심동진씨/정부 임명

    정부는 16일 감사원 사무총장(차관급)에 노우섭 감사원 제1사무차장을 승진,임명했다. 또 임기가 끝난 김문환 감사위원(차관급) 후임에 신동진 감사원 사무총장을 임명했다. ◎노우섭 감사원 사무총장/미·호 유학한 국제조세통 행정고시 5회 출신으로 27년동안 감사원의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기획통.경남 거창 출신으로 부산고를 나온 감사원내 대표적인 PK(부산·경남)인사.미국과 호주에 유학한 국제조세통으로 감사원의 세계화 추진에 적격이라는 평. ▲경남 거창·53세 ▲서울대법대▲호주 뉴캐슬대학원 ▲감사원 제도담당관 ▲감사교육실장 ▲제1사무차장 ▲장경숙여사(49)와 1남3녀. ◎신동진 감사위원/판단력 뛰어난 정통 감사인 지난 61년 감사원의 전신인 감찰위원회에 투신한 뒤 34년 동안 외길인생을 살아온 정통 감사인.감사이론에 밝고 판단력이 뛰어나다는 평.업무를 처리하는 데는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직원들과는 거리감없이 대화하는 소탈한 성격.배타적인 감사원 분위기와는 달리 외부인사들과의 교류 폭도 넓은 편. ▲경기 남양주·60세 ▲성균관대법대 ▲연세대행정대학원 ▲감사원 사무총장 ▲부인 김난귀여사(57)와 2남1녀.
  • 박완서씨 자전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출간

    ◎20대에 겪은 6·25체험기/젊은시절 특유의 호기심으로 전쟁 묘사 소설가 박완서씨가 스무살 무렵의 6·25 체험을 담은 자전적 장편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웅진출판에서 펴냈다. 민족공동체정서 심층에 아물지 않은 상처를 남긴 이 전쟁은 두고두고 소설의 재료가 되어왔지만 이 작품이 비추는 전쟁의 공간은 어느것보다 독특하다.살상과 이데올로기대립에서 비롯된 비참과 곤궁을 얘기하면서도 지은이의 목소리가 시종 생명에 대한 경탄과 탄력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인민군한테 밥 한끼 지어줬다고 작은아버지가 사형당하고,다리에 관통상을 입은 오빠가 이렇다 할 치료 한번 못받아 어머니 곁에서 죽어나가는 가족사의 비극을 그리면서도 지은이는 전쟁이나 이념에 대해 거창하게 비판하지 않는다.대신 웃음이 터질 정도로 능청스럽게 시치미를 떼며 치사할 수밖에 없던 당시 가족의 절박한 사정을 툭툭 털어놓는다.그러면서 정신적 충격과 외상을 수습한다. 이것은 소설의 화자가 스무살을 갓 넘긴 대학물 먹은 처녀라는 사정과도 관련이있다.세상 돌아가는 꼴이 아무리 험악해도 젊은이 특유의 호기심과 삶에 대한 사랑은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었던 것.하루는 국군에게 버림받아 인민위원회 일을 보고 또 하루는 인민군에 쫓겨 향토방위대에 출근한다.전쟁통에 썩어가는 오빠 시체를 암매장하듯 치워버린 한밤,둘러앉은 식구는 「단지 쉬어버릴까 봐」 팥죽 한솥을 해치우곤 서로에 대한 증오심으로 속을 앓는다.그런 와중에도 철딱서니 없는 지은이는 빌로도치마가 입고 싶고,달콤한 초콜릿이 넘친다는 피엑스를 구경하고 싶다. 싱싱하게 살아 숨쉬는 젊음의 목소리로 이 책은 험담한 상황을 오히려 익살맞게 만들지만 이같은 발랄한 젊음과의 대비 속에 전쟁의 비극은 오히려 더 뚜렷하고 사실적으로 떠오른다. 유년시절을 다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의 후속편 격인 이 소설에 이어 작가는 장년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또 다른 책으로 자전 3부작을 완결할 계획이다.
  • 거창사건 관련자 명예회복 특별법 이번 회기 처리키로/당·정

    정부와 신한국당은 12일 사법적 판결을 거쳐 이미 군의 과오로 확인된 「거창양민학살 사건」 관련자들에 대해 국민화합 차원에서 명예회복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당정은 이날 김용태 내무장관과 김기배 국회내무위원장,유흥수 제1정조위원장등이 참석한 가운데 내무당정회의를 열어 「거창사건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이번 정기국회 회기내에 처리키로 확정했다. 당정은 이와함께 거창사건 희생자 유족의 합동묘역 관리비용으로 10억여원의 예산을 확보,묘비단장과 위령제례 및 위령탑 건립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이 특별조치법안은 지난 93년 이강두의원(거창)등 당시 민자당 소속 의원 21명의 의원입법으로 국회에 제출돼 현재 내무위 법안심사 소위에 계류중이다.
  • 영장 청구 5시간만에 발부/검찰·법원·안양교도소 주변

    ◎수사관 9명 한밤 합천 급파… 상오 수감 계획/전씨 안양교도소 구금 결정… 긴급 시설 점검 12·12 및 5·18 특별수사본부는 2일 전두환 전대통령이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하자 곧바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집행에 나서는 등 강경 분위기 일색이었다. ○…전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이날 하오 6시10분쯤 서울지법 당직실에 접수됐으며 수감장소는 안양교도소,영장의 유효기간은 12월31일까지로 기재. 구속영장이 접수되자 곧바로 심리에 들어간 형사 항소3부 신흥철판사는 『대통령이든 누구든 법 앞에서는 평등한 만큼 원칙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고 짤막하게 소감을 피력. ○…신판사는 이날 검찰이 청구한지 5시간10여분만인 하오 11시23분쯤 전씨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한 뒤 기자들과 만나 『당직 판사로서 원칙에 따라 영장을 발부했다』고만 밝혔다. 신판사는 영장발부 사유에 대해 『12·12가 군사반란인지 여부에 대해 전씨는 답변서를 통해 「합수부의 정당한 직무수행이었다」고 범행을 부인한 바 있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판단했다』고 설명. ○‥검찰이 영장에 첨부한 「12·12사건 수사기록」은 1만5천여쪽에 커다란 보자기로 5뭉치나 되는 방대한 분량. 24권으로 이루어진 수사기록은 「정승화 내란방조건(공판기록)」(11번째권),「피의자 대법원재판기록」(16〃),「김재규 등 내란사건기록」(21권〃) 등으로 구성됐으며 6번째권에는 허삼수·성환옥·이종민·최석립·이상상·송응섭·정동호·구창회·이학봉·고명승·장기오·최세창씨 등 12·12사건 피고소·고발인들의 진술조서가 포함. ○…3일 0시쯤 3대의 승용차에 나눠타고 전씨가 머무르고 있는 경남 합천으로 급파된 압송팀 9명은 내려가자 마자 전씨에게 구속영장을 보여주고 곧바로 집행,빠르면 3일 상오 안으로 안양교도소에 수감시킨다는 계획. 검찰은 압송 과정에서 생길수 있는 물리적 충돌 등 만약의 사태에도 대비,경남 합천 관할 창원지검 거창지청에 협조를 요청하는 한편 현지 주민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데도 상당한 신경을 쓰는 모습. 한편 이종찬 본부장은 이날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12·12 사건 첫 방문조사와 관련,『수사기밀이므로 절대 밝힐수 없다』고 했으나 「노씨가 진술을 성실히 했나」라는 물음에 『오늘 조사에서 진술을 좀 받았다』고 말해 노씨가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았거나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음을 암시. ○…최환 서울지검장은 3일 0시5분쯤 기자실에 잠깐 들러 『당초 검찰은 전씨를 밤샘조사한 뒤 다음날 귀가시키고 5·18특별법 제정등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에 사법처리할 계획이었다』면서 검찰의 전격적인 사전구속영장 발부는 순전히 전씨의 선택에 따른 것이었다고 설명. 최검사장은 이날 『그분(전두환씨)으로 봐서는 검찰의 소환을 받고 2일 낮에 나오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는데…』라고 말문을 연뒤 『김기수 검찰총장과 내가 전씨의 변호인인 이양우 변호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검찰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했었다』고 설명. ○…이날 안양교도소는 미결수사동 중 독거실을 선정,난방장치 등 소내 시설을 긴급 점검하는 등 33년 교도소 역사 이래 최고의 거물급 인사인 전씨의 수감에 대비. 교도소측은 『감방은 1평에서 4평까지다양하나 방의 크기가 정확한 등급으로 나눠지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전씨의 경우 3평 가량의 독거실에 수감될 것』이라고 설명. 교도소 직원들은 『과거 이철희씨 등 거물급을 다룬 경험은 있지만 전직 대통령은 처음이라 처우에 고심하고 있다』면서 『교도원 인력이 부족해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노씨 처럼 3명이 한조를 이뤄 3교대로 24시간 밀착 계호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 안양교도소는 서울구치소와 달리 난방시설이 전혀 돼 있지 않으며,매트리스외에 수감자가 요청할 경우 담요와 이불이 3장까지 지급되고 특별한 경우 조그마한 보온물통이 지급된다. ○…검찰은 상오 9시 전씨의 성명 발표를 듣고 하오 11시까지 일체 향후 대책을 밝히지 않다가 기자들의 질문이 빗발치자 11시30분쯤 간략한 브리핑을 통해 노씨에 대한 조사계획만을 공개. 이 때까지만 해도 이날은 노씨에 대한 조사로 끝날 것 같은 분위기였으나 하오 2시쯤 추가 브리핑 계획이 알려지면서 분위기가 급전.
  • 와다 하루키 도쿄대 교수 아사히신문 기고(해외논단)

    ◎“일본은 「합방조약」 원천무효 인정하라” 일본의 에토 다카미(강등륭미) 전총무청장관 망언파동속에 도쿄대학의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교수(러시아·한국사 전공)는 14일 아사히(조일)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문제의 한·일 합방조약은 강제적으로 체결됐기 때문에 당초부터 무효라는 한국측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실적 해결책이라고 주장했다.그의 칼럼을 요약한다. 일본은 전후50년 국회결의에서 식민지 지배와 아시아국가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것을 인정하고 반성의 뜻을 나타냈다.일본은 그렇게한 이상 일·한 합병조약 성격에 관한 일·한 기본조약 제2조의 해석을 수정하여 양국간에 해석이 엇갈리는 부분을 통일할 필요가 있으며 그것은 가능한 일이다. 1965년 체결된 일·한조약 제2조는 1910년 체결된 합병조약의 무효를 선언하고 있다.한국측은 협상과정에서 조약전문에 「일본제국주의의 과오」에 대해 언급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측이 거부했기 때문에 제2조가 역사에 관한 유일한 조항이 됐다.그러한 애매한 표현 때문에 그후 합방조약의무효 시점을 둘러싼 양국의 해석차이가 문제되어왔다. 한국측은 강제적으로 체결된 조약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무효라고 주장해왔다.식민지지배는 불법·부당한 침략이었다는 것이다.일본측은 그러나 조약은 정당하게 체결되어 유효했으며 한국이 독립한 1948년 8월15일부로 무효라고 주장해왔다.식민지지배는 합의에 의한 합법적인 통치였다는 논리다.당시 일본정부내에는 한국통치에 대한 반성·사죄의 감정은 없었다. 한국과 일본의 이러한 해석의 대립은 조약협상과정에서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그러나 교섭이 너무 오래 걸리며 한·일 양국은 협상타결을 우선하고 문제의 조항은 양측이 자신의 주장대로 해석한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았다.그 결과 양국은 과거창산에 있어서 정반대의 인식을 가져왔으며 그러한 현상은 30년간 계속돼왔다.그러한 상황속에서 양국민이 공통의 역사인식을 가질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하지만 서로 다른 역사인식을 갖는 현상을 하루빨리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한 현상의 청산을 서두르지 않으면 안되는 또하나의 이유는 일본과 북한의 국교정상화교섭이 시작됐기 때문이다.지금 회담의 재개를 기다리고 있는 양국 국교정상화교섭은 최종적으로는 일·한조약과 같은 형태로 결론날 것으로 보인다.양조약에는 당연히 정합성이 있어야 한다.그렇기때문에 일·한조약에 대한 해석이 통일되지않은 상황에서 일본과 북한이 국교정상화교섭을 마무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일·한합방조약의 성격과 관련,최근 합병조약의 전제가 되는 19 05년의 을사보호조약은 한국측대표가 위협속에 조인했기 때문에 조약으로서 무효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그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일본의 보호국이 되어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일본정부의 중개가 없으면 국제조약을 체결할 수 없게 됐다.일본정부는 한국이 일본의 방침에 따르는가를 감독하기위해 통감을 파견했다. 일본정부가 합병을 결정하고 통감부를 통해 당시 이완용 총리로 하여금 조약에 따라 합병에 동의하도록 요구했다.이총리는 그러한 통감의 명령에 따를수밖에 없었다.그러한 조약체결에는 어떠한 대등성도 없고 자유의사의 여지도 없었다. 합병조약은 당시의 세계에서는 열강에 의해 유효하다고 인정되어 일본에 의한 한국합병은 승인됐다.당시 일본정부는 그 조약이 유효하다는 전제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오늘날 되돌아보면 한민족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체결된 합병조약에 따른 일본의 한국합병과 식민지지배는 어떤 의미로도 합법화·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그러한 의미에서 조약은 처음부터 무효라고 말할수 있다.일본은 문제의 제2조 해석을 한국측의 해석대로 통일하는 것이 유일한 현실적인 해결의 길이다.
  • 빨치산의 최후(새로 쓰는 한국현대사:41)

    ◎지리산 본거지로 군사시설 파괴·후방 교란/휴전협정뒤 숙청·토벌로 조직 “지리멸렬” 1953년 7월27일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휴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한국전쟁은 일단 마무리 됐다.그러나 남한 곳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흔히 빨치산 또는 유격대로 알려진 대한민국에서는 「공비」라 부른 공산주의자 무장집단과의 전투가 끝나지 않은 것이다.이 「전선없는 전쟁」은 1956년까지 계속됐다. 남한에서 빨치산은 한국전쟁 전부터 활동 했다.처음에는 남로당 출신이 주축을 이뤘지만 1949년 3월 북한이 간부들을 파견,빨치산부대를 직접 지휘케 하면서 빨치산은 정규군에 버금가는 체계를 갖추게 됐다.이는 물론 전쟁을 일으키기에 앞서 남한내 공산당 조직을 재가동,전쟁 때 국군의 배후를 공격하기 위한 조치였다. ○「남한 민중봉기」 염두 이어 전쟁 직전인 50년 6월 북한은 남한 각 도에 「정치공작대」5∼6명씩과 일부 무장병력을 다시 침투시켰다.6월10일 김달삼이 이끄는 유격대 2백50여명이 경북 청도 운문산에 유격구를 마련하는 임무를 띠고남하했다.24일에는 남도부를 사령관으로 한 766군부대(7백66명으로 구성)가 해군 함정을 이용,포항 쪽으로 상륙했다.같은 날 또 다른 유격대 2백50여명이 강원도 동해안으로 침투했다.이 부대들은 뒷날 북한 정규군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었다. 개전 다음날인 6월26일 김일성 군사위원회 위원장은 평양방송을 통해 「해방전쟁」승리를 위해 남한 주민들은 총궐기해야 한다고 호소했다.특히 「남반부 남녀 빨치산」에는 더욱 강력한 주문을 했다.곧 『해방구를 확대·창설해 적의 배후를 공격,소탕하라』고 촉구했다.구체적으로는 『적의 참모부를 습격하고 철도·도로·교량과 전신·전화선등을 절단,파괴하고 도처에서 반역자를 처단하며 인민위원회를 복구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민중봉기」를 염두에 둔 김일성의 이같은 요구는 당시 남한실정을 전혀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었다.김일성의 기대에 찬 독촉이 쉴새없이 방송됐지만 어느 곳에서도 민중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전쟁이 일어나면 남한에서 20만 지하당원들이 민중을 이끌고 호응할 것』이라는 박헌영의 호언장담은 무산됐다. 물론 일부 지방에서는 빨치산의 파괴활동이 벌어졌다.가장 널리 알려진 빨치산부대인 지리산 이현상부대는 8월10일 대구 주변인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미군통신부대를 기습,미군 20여명을 살상하고 무전기 14대,소총 20정을 빼앗아갔다.이들은 8월25일에는 경남 거창 미군사령부를 습격,1백여명의 인명피해를 낸 뒤 탱크 3대,화물차 30여대를 부쉈다.9월6일에는 경북 청도에서 북한군과 합동작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밖에 경남 백운산유격대,경북의 배철이 지휘한 유격대,전남 빨치산,남해안유격대들이 미 공군기지를 점령하거나 경찰과 전투를 벌였고 마을 청년들을 끌고가 빨치산에 편입시키기도 했다.또 북한군 점령지역에 인민위원회를 조직할 때는 적극 나서 북에서 내려온 공산당원들을 도왔다. 하지만 이같은 활동은 전쟁 흐름에 영향을 미치기에는 보잘 것 없는 수준이었다.박헌영·김일성의 기대와는 달리 빨치산은 민중과 괴리돼 있어 힘을 쓰지 못했다.게다가 전쟁전 한국정부가 꾸준히 소탕작전을 벌여 기본조직을무너뜨린 것이 빨치산 세력약화에 결정적 요소가 됐다. 빨치산은 유엔군의 총반격으로 북한군이 밀리면서 뿌리잘린 풀잎처럼 역사의 틈바구니를 떠돈다.북한군이 38선 이북으로 쫓겨간 10월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 군사위원회는 남한 각 지방당 조직에 『(북한군의)조직적인 후퇴를 보장하기 위해 각 도당이 책임지고 유격대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다.김일성도 이틀 뒤 방송에서 전세가 불리해 「전략적으로」후퇴하니 빨치산은 뒤에서 유엔군의 발목을 잡아 북진 속도를 늦추라고 강조했다.이를 위해 ▲당을 지하당으로 개편할 것 ▲유엔군이 이용할만한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군사시설은 파괴할 것 ▲입산경험자와 입산이 가능한 자는 산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남강원도로 후퇴할 것등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빨치산은 지역별로 유격대를 재편성,산악지대에 들어갔다.이들은 나중에 완전 소탕될 때까지 산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한」처절한 투쟁을 벌여야만 했다.당시 입산자들은 민청원·자위대원등 남로당 계열과 북에서 파견한 내무서원·정치보위부원·정치공작대원이 대부분이고 후퇴하지 못한 북한군도 적잖게 끼어 있었다. ○이승엽 당정 총 지휘 북한군이 후퇴하자 지리산 이현상 부대는 잠시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달아나는 북한군을 따라 북으로 갔다.1950년 11월 강원도 평강군 후평리에는 이현상부대를 비롯해 다른 곳에서 도망해온 빨치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이곳에는 당시 남한내 당·정을 총지휘한 이승엽이 기다리고 있었다.이승엽은 이곳에 모인 빨치산으로 「남조선인민유격대」를 조직해 이현상을 부대장으로,여운철을 정치위원으로 삼았다.이때 새로 편성된 이현상부대는 직속부대원 1백50여명 말고도 승리사단 4백여명,혁명지대 1백여명,인민여단 1백50여명등으로 구성됐다. 이현상 부대는 지리산을 본거지로 정하고 남하했다.먼저 태백산맥을 타고 1950년 12월 말쯤 충북 단양에 이르러 문경경찰서를 기습하는등 유격전을 벌였다.다시 속리산을 거쳐 덕유산에 이르러서는 남한내 6개 도당 대표자회의를 소집했다.이 자리에서 빨치산은남부군을 결성,통일된 지휘체제를 구성했다.이현상이 총사령관을,이영회가 부사령관을 맡았다. 이후 빨치산은 북한 노동당의 지시에 따라 남부군을 해체하고 6개 유격지대 체제로 바꾸는등 여러차례 조직개편을 했다.또 북한에서 지도부와 북한군을 남파하는등 안간힘을 썼고 가끔 경찰서·열차를 습격하지만 큰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38선 일대에서 전선이 고착된 1951년 11월 말 한국 정부는 토벌전투사령부를 전북 남원에 설치,빨치산 소탕에 적극 나서 영호남 일대 빨치산은 치명타를 입고 지리산으로 모여들었다.이후 거듭되는 토벌작전에 몰린 빨치산은 「보급투쟁」이란 명목으로 산간마을에서 생필품을 약탈하는 것으로 겨우 명맥을 이어갔다. ○지도자 대부분 피살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은 남한내 빨치산에겐 사형선고와 같았다.박헌영·이승엽을 비롯한 남로당계 간부들이 대부분 숙청되면서 빨치산은 북한정권에서 버림받게 된다.휴전협정에서도 빨치산의 지위에 관한 규정은 전혀 없어 이들에게는 북으로 돌아갈 길마저 막혔다. 1953년 4월 북한 노동당의 남로당계 숙청계획에 따라 남부군 총사령관 이현상은 평당원으로 강등됐다.8월에는 이현상이 지리산 빗장골에서 토벌대에 사살됐다.54년 초 김지회·이영회부대가 각각 전멸당하고 빨치산의 마지막 지도자 남도부가 대구에서 체포돼 남한 빨치산은 사실상 소멸됐다.한국정부의 기록에는 1954∼5년에도 「공비 출현,소탕」사실이 가끔 등장한다. 1956년 7월13일 전북 정읍에서 「공비 1명 사살,2명 생포」를 끝으로 빨치산은 정부기록에서 사라졌다. 빨치산은 조선노동당의 혁명전략 계획에 따라 조직돼 활동한 집단이었다.이들의 투쟁은 민족사에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못했다.결국 빨치산은 공산주의가 이 땅에 남긴 역사적 범죄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그러나 빨치산이 남긴 상처는 아직도 우리 사회에 여러 형태로 잠복해 남아 있다. ◎「빨치산 신문」 한국전중 10여종 발행/남부군 「승리의 길」 등 타블로이드판 지면 대부분 전투원 선동­선무 할애 우리 학계의 빨치산 연구는 매우 미약하다.그동안 「빨치산」이란 말조차 금기처럼 여겨온 사회 분위기에 비추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관련자료는 이우태씨(필명 이태)의 「남부군」을 비롯한 수기 3∼4종에 불과하다. 이같은 현실에서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워싱턴 미국립공문서 보존관리국(NARA)에서 빨치산이 한국전쟁 발발이후 간행한 신문 10여종을 찾아냈다.국내 처음으로 공개되는 이 빨치산신문들은 그들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따라서 학계는 이 신문들이 빨치산연구에 큰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조선인민유격대 남부군」이 1951년 5월5일자로 발행한 「승리의 길」10호는 타블로이드판 한장에 양면으로 기사를 실었다.앞면 머리기사는 「총사령관 로명선」이 쓴 「5·1절을 맞으면서」란 논설.『5월1일은 전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력량과 국제적 단결을 시위하는 날』이란 의미 부여와 함께 그 내력을 소개하고 『남부군 전체 군무자 동무들』의 분발을 촉구했다.또 신문 사고의 형태로 『남부군 산하 각부대들이 3월21일부터 4월14일까지 수안보·칠성·청천·봉화·립석을 공격하여 이를 해방시켰다』고 전했다.아울러 「적 사살 1백25명,부상 30명,포로 48명,각종 무기 37정,탄약 2천2백37발」등의 전과를 올렸다고 보도했다. 1951년 11월23일자 「승리의 길」27호에는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진술한 김일성의 보고를 실었다. 이밖에 빨치산 신문들은 많은 지면을 전투원 선동에 할애 했다.즉 『용감하고 귀중한 빨치산들이여,적들의 지휘처와 참모부를 기습 소탕하며 기동력을 마비시키는 투쟁을 더욱 과감히 전개하라』『리승만의 반동적 지방의회선거를 철저히 파탄 분쇄하자』는 등으로 채웠다.이따금 이명제의 서사시 「정복되지 않은 사람들」(29호)따위 문학작품이나 감상문,외신,전투실기,정찰기,여순병란 회고기등도 실었다.
  • 경남대 「6·27」 당선 동문 “축하” 잔치

    ◎도지사·광역­기초의원 등 109명 “영예”/어제 모교서… 지역 인사 등 2백명 참석 「6·27」 4대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1백9명의 동문을 축하하는 「95 지자체 당선자 경남대 동문 축하연」이 30일 경남대학교 본관 앞 광장에서 당선자를 비롯,지역 인사 등 2백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열렸다. 경남대학교(총장 박재규),경남대 총동창회(회장 최장락 변호사),경남대 경영대학원 총동창회(회장 윤한도 전 경남지사)가 공동으로 마련한 축하연에는 김혁규 경남지사를 비롯,공민배 창원시장,강태훈 남제주 군수 등 단체장 10명과 광역의원 23명,기초의원 74명,교육위원 2명 등이 참석했다. 또 지역 출신 김호일 의원,고금석 마산시 교육장,최원두 경남매일 사장,김인태 동남일보 회장,김재만 마산의료원장,장권현 변호사 등도 자리를 함께 했다. 한편 축하연에서는 김 지사,공 창원시장,강 남제주군수,김인규 마산시장,이상조 밀양시장,고동주 통영시장,하일청 사천시장,조상도 거제시장,이갑영 고성군수,정주환 거창군수 등 10명의 단체장과 김광수 마산시의회의장,김영도 창원시의회의장,정봉균 함양군의회의장,조수제 함안군의회의장,유경식 부산 북구의회의장,박판도 경남도의원 등 5명의 지방의원이 학교 명예를 빛내 공로패를 받았다.
  • 단풍 지리산 새달 13일 절정/설악 10일…중남부 하순께“장관”

    ◎기온 급강비 대비 방풍 재킷 갖춰야 가을여행의 백미 「단풍 산행」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전국의 명산마다 만산홍엽의 아름다운 자태를 만끽하려는 단풍 인파로 물결을 이루게 된다. ○예년보다 고운 빛깔 기상청은 올 단풍 시기가 예년보다 2∼3일 빠르며 강수량이 적고 일교차가 큰 전형적인 가을 날씨를 보여 올 단풍이 유난히 고운 빛깔을 띨 것으로 내다봤다. 따라서 이미 산봉오리가 붉게 타오른 설악산 등 북부지역은 다음달 중순, 속리산·내장산 등 중·남부지역은 하순에서 11월초까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절정을 이룰 전망이다. 전국 대부분의 유명산이 단풍의 명소지만 이들 명산 안에서도 특히 아름다운 계곡을 골라 짧은 일정으로 찾아 보는 것도 좋다. 단풍철 산행은 기온변화가 심하고 일몰 뒤 기온이 급강하므로 방풍 재킷 등 보온 장구를 반드시 갖추고 일몰전 하산하는 것이 상식이다. ○가족관광 “안성맞춤” ▷월악산(1097m) 송계계곡◁ 충북 제원군에 위치한 국립공원. 단풍 절정기는 다음달 16일쯤이다. 서남쪽 한수면 송계리 송계계곡은 월악산에서도 가장 단풍이 아름다운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승용차를 이용하는 일반 관광객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용이 승천했다는 와룡대를 비롯,신라시대 8공주가 목욕재계하고 국운을 빌었다는 팔랑소,제2금강이라 불리는 망폭대와 월광폭포,물과 숲이 정아한 자연대가 유명하다. ▷가야산(1430m) 홍류동계곡◁ 경남합천과 거창군을 둘러싸고 있는 국립공원으로 해인사 입구의 홍류동 계곡이 단풍의 으뜸이다. 다음달 21일쯤 절정을 이룬다. 가을단풍이 붉게 타오르면 계곡 물도 붉은 빛으로 흐른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주위의 천년 노송과 함께 10여리에 걸쳐 비경을 이루고 있다. 신라말 학자 최치원의 시가 새겨진 「치원대」와 그가 바둑을 두었다는 「농산정」이 있으며 3대 사찰의 하나인 해인사도 함께 찾아야 할 곳이다. ○산홍·수홍·인홍 만끽 ▷지리산(1915m) 피아골◁ 전남 구례,경남 함양·산청군 등에 두루 걸쳐있는 국립공원 1호. 워낙 규모가 크고 코스가 다양해 10여차례 찾아야 진면목을 알수 있는 곳이다. 다음달 13일이 절정. 피아골은 단풍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 온 산이 붉게 물들어 산홍이고 단풍이 맑은 물에 비쳐 수홍,경치를 바라보는 사람도 붉게 물드니 인홍이라 하여 「3홍」으로 불린다.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 중턱에서 발원,연곡사에서 계곡을 따라 2㎞쯤 오르는 길목이다. 이와함께 단풍 관광의 메카인 설악산의 외설악 비선대와 천불동계곡,내설악 백담사에 이르는 코스가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명소다.
  • 세대교체­등권­경륜론 격돌 전망/정기국회 주요 쟁점 분석

    ◎선거법·한은법 개정안 처리 “첨예 대립”/쌀협상 등 대북한정책 혼선 논란일듯 11일 개회되는 제1백77회 정기국회에는 처리돼야 할 법안만도 1백75개에 이르는데다 「신4당체제」의 경쟁력을 시험할 뜨거운 이슈들이 산적해 있다. ▲의원비리 및 선거사범 수사=새정치국민회의 최락도 의원 구속 및 박은태 의원의 비리수사,아·태재단 헌금설 등으로 촉발된 정치권에 대한 「표적사정」 시비는 국민회의가 의사일정과 연계한다는 방침이어서 초반 파란 가능성마저 예고하고 있다. 국민회의측은 당장 최의원 구속취소를 요구하는 석방결의안을 11일 제출할 예정이며 이를 처리하기 위한 별도의 본회의를 요구하고 있다.민주당과 자민련도 국민회의에 보조를 맞춘다는 입장이나 민자당은 석방안을 부결시킨다는 방침이어서 총무회담에서 본회의 일정이 합의된다 해도 처리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더구나 미국에 머무르고 있던 박은대의원이 귀국하면 그에 대한 구속동의안 처리문제까지 겹쳐 여야 갈등이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교육위원 후보들의 아·태재단 헌금문제에 대한 검찰수사에 맞서 국민회의가 전직대통령 비자금설을 유포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을 변호사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여야가 물고 물리는 「부메랑 현상」을 예고하고 있다.또한 2백31명의 지방선거사범과 시·도지사 당선자 5명을 포함,5백97건의 선거비용 불법사용에 대한 수사도 시비의 대상이 될 전망이다. ▲세대교체 문제=민자당과 민주당의 「3김시대 청산」을 기치로 한 세대교체 주장은 국민회의측의 「지역등권론」 및 「비교우위론」,자민련측의 「국정 경륜론」 등과 맞부딪쳐 뜨거운 논란이 예상된다. ▲선거법개정 및 지자제개선=대통령 및 정무직공무원·지방자치단체장 등의 선거운동 허용을 추진하려는 민자당과 이를 「관권선거 음모」로 규정,반대하는 야당 사이에 선거법개정을 놓고 충돌 가능성도 높다.민자당은 4대 지방선거의 정당공천 배제문제와 동시선거의 분리실시 등도 지방자치특위 등에서 본격 거론할 태세다.민자당은 또 여론의 질타를 받은 충북 보은·옥천·영동의 선거구를 재조정할 방침인데다 여야 내부에서 중·대선거구론이 제기되고 있는 시점이어서 선거구 문제를 둘러싼 신경전도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 지폐유출사건 및 세법개정 문제=사상 초유의 한은 지폐유출사건을 정부의 국정수행 능력의 문제로 연결시키려는 야당의 공세가 거세지는 한편 한은 독립문제와 직결된 한은법 개정문제가 새로운 국면에서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여기에 정부가 채권·CD·CP·개발신탁 등 금융상품을 종합과세대상에서 배제키로 했던 방침을 나흘만에 뒤집은 것과 관련,야당은 물론 여당의 인책공세가 거셀 전망이다. ▲대북한 정책=북한에 대한 쌀지원,우성호 및 안승운목사 납북사건 등과 관련한 정부의 협상력 부재 시비가 11일 콸라룸푸르에서 열리는 경수로공급협상 및 27일 북경에서 열리는 3차 남북당국자회담 등을 계기로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특히 북한 쌀지원협상 과정에서 나타난 교섭창구의 이원화문제,이면계약 여부 등을 놓고 정부의 북한정책 기조에 대한 여야의 강도높은 추궁이 계속될 전망이다. ▲민간단체 지원문제=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를 비롯,자유총연맹,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 등에 대해 민자당이 각각 20억원 이상의 기금지원을 정부에 요구,정부의 「관변단체 지원 중단」 방침을 번복토록 한 것도 여야의 첨예한 논쟁거리다.야 3당은 이를 「관권선거 음모」로 규정하고 있다. ▲12·12 및 5·18 수사=12·12 및 5·18 관련자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은 야당의 검찰총장 국회출석요구,「5·18특별법」제정 및 특별검사제 도입 주장 등과 맞물려 논란을 빚을 전망이다. ▲추곡·예산안처리 등=올 추곡수매규모는 WTO 이행계획서에 따라 정부의 지원이 제한을 받음으로써 9백60만섬에 그칠 전망이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농민표를 의식한 여야 정당들의 최대한 지원 주장으로 막판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지난해보다 14.9%증액돼 63조에 이르는 예산안의 규모 및 배분을 둘러싼 여야의 줄다리기도 수해복구를 위한 추가경정예산안편성 등과 더불어 논란거리다.이밖에 재연조짐을 보이고 있는 한·약분쟁 및 주한미군 방위비분담문제,삼풍백화점 붕괴참사에 따른 정부의 안전관리대책,경기 양극화속의 중소기업 부도문제 등도 여야의 뜨거운 정책경쟁을 기다리고 있다. ◎정기국회 처리예정 1백75개 법안 정부와 민자당이 올 정기국회에서 처리할 1백75개의 법안은 다음과 같다. ▷정부입법◁ ▲원격영상재판에 관한 특례법(제) ▲마약류 불법거래에 관한 특례법(제) ▲어음법(개) ▲수표법(개) ▲공탁법(개) ▲등기특별회계법(개) ▲민사조정법(개) ▲집달관법(개) ▲호적법(개) ▲변호사법(개) ▲각급 법원의 설치와 관할구역에 관한 법률(개) ▲통신비밀보호법(개) ▲형법(개) ▲형사소송법(개) ▲상법(개) ▲각급 법원판사등 정원법(개) ▲검사정원법(개) ▲행정심판법(개) ▲정보공개법(개) ▲공무원연금법(개) ▲기금관리기본법(개) ▲조세감면규제법(개) ▲세무사법(개) ▲교육세법(개) ▲소득세법(개) ▲법인세법(개) ▲부가가치세법(개) ▲주세법(개) ▲교통세법(개) ▲국제거래의 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제) ▲관세법(개) ▲관세사법(개) ▲선물거래법(제) ▲종합금융회사에 관한 법률(제) ▲예금자보호법(제) ▲근로자의주거안정과 목돈마련지원에 관한 법률(개) ▲신용관리기금법(개) ▲외국화관리법(개) ▲증권투자신탁업법(개) ▲공인회계사법(개) ▲물품관리법(개) ▲인삼협동조합법(개) ▲한국개발연구원법(개) ▲통계법(개) ▲담배사업법(개) ▲한국조폐공사법(개) ▲금융감독원법(제) ▲은행법(개) ▲증권거래법(개) ▲보험업법(개) ▲소비자보호법(개)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개) ▲한국국제협력단법(개) ▲국제협력요원에 관한법률(개) ▲영해법(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법(개) ▲외무공무원법(개) ▲농어촌주택개량촉진법(제) ▲지방자치법(개) ▲온천법(개) ▲자연공원법(개) ▲지방세법(개) ▲소방공무원법(개) ▲풍수해대책법(개) ▲전당포영업법(개) ▲미성년자보호법(개) ▲사격 및 사격장단속법(개) ▲총포 도검 화약류등 단속법(개) ▲용역경비업법(개) ▲군인복지기금법(개) ▲국방군사시설사업에 관한 법률(개) ▲사관학교설치법(개) ▲국방대학원 설치법(개) ▲군인사법(개) ▲군무원인사법(개) ▲교육공무원법(개)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개)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개) ▲사학진흥재단법(개) ▲청소년유해간행물의 유통규제에 관한 법률(제) ▲영화진흥법(제) ▲제14회 아시아경기대회지원특별법(제) ▲청소년기본법(개) ▲문화예술진흥법(개) ▲공연법(개) ▲저작권법(개) ▲문화재보호법(개) ▲방송법(개) ▲사회단체신고에 관한법률(폐지) ▲종합유선방송법(폐지) ▲농약관리법(개) ▲식물방역법(개) ▲종자산업법(제) ▲인삼산업법(제) ▲농촌진흥법(개) ▲낚시객 어선이용법(제) ▲수산업법(개) ▲수산물검사법(개) ▲임업진흥촉진법(제) ▲비료관리법(개) ▲낙농진흥법(개) ▲농지개량조합법(제) ▲국제영업활동지원법(제) ▲폐광지역개발지원특별법(제) ▲환경친화적 산업구조 전환촉진법(제) ▲석유사업법(개) ▲공업발전법(개) ▲방문판매등에 관한 법률(개)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개) ▲중소기업 진흥 및 제품구매촉진법(개) ▲중소기업 창업지원법(개) ▲조선산업 정상적 경쟁조건에 관한 법(제) ▲염관리법(개) ▲특허법(개) ▲상표법(개) ▲의장법(개) ▲실용신안법(개) ▲한국종합화학공업주식회사법(폐지) ▲전산망보급확장과 이용촉진법(개) ▲유선방송관리법(개) ▲소프트웨어 개발촉진법(개)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개) ▲과학기술진흥법(개) ▲과학관 육성법(개) ▲기상업무법(개) ▲한국체신공사법(제) ▲대기환경보전법(개) ▲수질환경보전법(개) ▲환경기술개발 및 지원 법(개) ▲환경오염피해분쟁조정법(개) ▲해양오염방지법(개) ▲근로자파견사업의 적정 운영 및 파견근로자보호법(제) ▲공인노무사법(개) ▲기능대학법(개) ▲정신보건법(제) ▲사회보장기본법(제) ▲사회복지공동모금법(제) ▲의료분쟁조정법(제) ▲보건의료기술진흥법(제) ▲식품위생법(개) ▲공중위생법(개) ▲보건소법(개) ▲국가유공자등 단체설립에 관한법(개) ▲전문건설공제조합법(개) ▲유통단지개발촉진법(제) ▲시설물안전관리 특별법(개) ▲건설업법(개) ▲건설관리기술법(개) ▲건축법(개) ▲주택건설촉진법(개) ▲자동차관리법(개) ▲한국해운조합법(개) ▲도로법(개) ▲화물유통촉진법(개) ▲산업입지개발법(개) ▲지가공시 및 토지 평가법(개) ▲토지개발공사법(개) ▲도시계획법(개) ▲자동차운수사업법(개) ▲도시교통정비촉진법(개) ▲도시철도법(개) ▲해운법(개) ▷의원입법◁ ▲거창사건관련자 명예회복 특별조사법(제) ▲주민투표법(제) ▲기부금품 모집금지법(개) ▲공익자원봉사진흥법(제) ▲민간운동지원법(제) ▲교육법(개) ▲학교용지확보 특별법(제) ▲교육환경개선특별회계법(제)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개) ▲식품 및 의약품 안전관리법(개) ▲국가유공자예우법(개) ▲독립유공자 예우법(개) ▲고엽제후유증의 환자 진료등에 관한 법률(개)
  • 1·4후퇴뒤 혼란정국(새로 쓰는 한국현대사:34)

    ◎거창학살­국민방위군 사건 잇달아 발생/이 대통령,국회와 마찰… 대통령 직선 추진 한국전쟁은 1951년 새해가 밝으면서 개전 2년째를 맞았다.미 공군은 설날에도 전폭기 편대들을 전선과 북한지역 깊숙이 발진시켰다.그리고 8백12회의 출격을 설날에 기록했다.전선은 남쪽으로 크게 밀려나 38도선 부근에 와 있었다.중공군의 한국전 개입은 전선이 압록강 한·만국경에 고착될 것으로 기대한 한국민의 희망을 깡그리 앗아갔던 것이다. 정부는 1월3일 임시수도를 부산으로 결정하고 다음날 서울을 비웠다.전해 9·28수복으로 환도했던 정부의 공식 서울 철수를 역사는 1·4후퇴로 기록하고 있다.서울시민 30만명이 피란길에 오른 가운데 5일에는 중공군 선발대가 한강을 건너 영등포까지 진출했다.주문진,홍천,양평,수원을 잇는 제2방어선도 곧 무너졌다.유엔군은 7일 오산을 포기해 버렸다. ○양민희생자 6백명 그 2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경남 거창에서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다.공비토벌에 나섰던 육군 제11사단 9연대 제3대대가 2월11·12일에 거창군 신원면에서 저지른 이 사건의 희생자는 6백명이나 되었다.이유는 공비와 내통했다는 것이었는 데 일일전과 보고는 주민 희생자수를 1백87명으로 기록했다.국회가 이를 문제시하고 4월7일 현지조사에 나섰다가 공비로 가장한 군의 공격을 받고 철수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도 벌어졌다.주동자들은 구속되어 군법회의에서 실형을 받았다.그러나 모두 1년안에 풀려났다. 이 사건을 축소 은폐한 국방부 장관 신성모는 5월7일 해임되었다.그의 해임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거창 사건말고 새로 불거져나온 국민방위군 사건이 더 크게 작용했다.이 사건은 51년1월 국민방위군 집단후송과 수용과정에서 고개를 들었다.국민방위군 설치법에 따라 제2국민병에 해당하는 17∼40살의 장정들을 방위군에 편입시켜 경북지역 각 교육대에 수용했다.이를 계기로 방위군 고위 간부들이 막대한 돈과 물자를 빼돌렸다.그 부정규모는 당시 화폐 24억원,양곡 5만2천섬에 달했다. 국회는 4월30일 방위군 해산을 결의했다.이에따라 5월12일 방위군이 공식 해산되었으나 장정들의 귀향조치는 3월중순부터 이루어졌다.사건이 확대되고 희생자가 날로 늘어나자 정부는 진상조사에 나서 김윤근 사령관을 구속했다.다른 간부 5명과 함께 군법회의에 회부된 그는 사형선고를 받았다.사형이 선고된 5명의 방위군 간부들에 대해서는 8월13일 대구 근교에서 총살이 집행되었다.숱한 청장년을 헐벗게 하고 굶긴 건국이래 최대의 비리는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방위군 간부 5명 총살 1951년의 이 두 사건은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 임기 내내 따라붙은 불명예였을 뿐 아니라 정적들로부터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특히 거창사건 주동자 가운데 김종원의 경우 뒷날 경찰총수인 치안국장으로 기용했다는 사실은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도덕성을 문제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이 사건들은 이기붕을 권력의 주변으로 끌어들인 결과를 가져왔다.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신성모 후임의 국방장관으로 임명했던 것이다.이를 단초로 이승만 대통령을 핵으로 한 권력의 인맥이 새롭게 발전할 것이라는 장래를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이기붕 기용에 앞서 거창사건의 책임을 물어 조병옥 내무장관,김준연 법무장관의 권고사직을 4월24일과 25일에 전격 수리했다.대통령은 조병옥을 오랫동안 못마땅하게 여겼다.당시 대통령의 업무일지에는 1951년1월 서울에서 내려온 이후 조병옥은 내무부가 있는 대구보다는 부산에 더 많이 머물러 있다고 기록했다.그 이유는 정치적 책략을 동원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그리고 대통령을 찾아오는 일이 없고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게 고작이라는 불만도 곁들였다. 조병옥은 사퇴서를 보내놓고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그래서 4월24일자 대통령 업무일지는 「조병옥은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굳혔고 대통령에 반대해서 싸울 것」이라는 기록을 남겼다.주한 미국대사 무치오는 조병옥의 사표수리를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항의했다.이를놓고 이승만 대통령 쪽에서는 미국이 다음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 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고 무치오가 새로운 내무장관을 장면과 같은 온건한 인물로 꼽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장면에게는 이미 국무총리직이 수임되어 있었다.장면은 사실상 주미대사로 워싱턴에 더 머물기를 희망했다.그럼에도 이승만은 새해들어 그의 소환을 결심하고 1월5일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이시영 부통령이 5월9일 「시위」에 앉아 소찬을 먹는 격에 지나지 못했기 때문에 물러난다」는 서한을 신익희 국회의장 앞으로 전달했다.이와 더불어 부통령직 사임서를 피란국회에 보냈다.사임서가 국회에서 반려되는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본인의 고사로 3일후 국회 본회의가 이를 수리했다.국회는 두 차례의 보궐선거끝에 5월16일 김성수를 부통령으로 뽑았다.그 역시 잔여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1952년 정치파동의 와중에 전격 사임해 버렸다. ○개헌 결심…자유당 창당 한반도를 아비규환의 전쟁으로 몰아붙인 그 6월이 또 다가왔다.4월11일 전격해임된 맥아더장군에 이어 리지웨이장군이 이끄는 유엔군은 6월19일 철원,김화,평강으로 이어지는 철의 삼각지대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러나 중공군은 금성지구 한국군 2군단 전면에서 춘계공세 이래 최대의 공격을 개시했다.공산군은 4월22일 제1차 춘계공세 이후 6월17일까지 21만5천9백명의 병력손실을 입었다.그럼에도 유엔군사령부는 아직 대공세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승만은 계속 국회와 부딪쳤다.일반적 여론은 국회가 대통령을 간선으로 선출할 경우 그가 대통령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었다.그래서 헌법개정을 결심했다.8월15일 그의 신당구상은 11월19일 자유당 창당으로 실현되었다.자유당 창당 이전인 10월17일 국무회의는 대통령 직선과 양원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을 의결하고 11월20일 이를 국회에 제출했다. ◎미 「알렉시스 존슨 파일」/미,한국전중 “기독교도 구출” 논의/전쟁 확산→한반도 포기상황 전제/북한측 박해 밝혀져 인권차원 거론 미국은 한국전쟁이 확산되어 한반도를 포기할 경우 한국민 가운데 기독교인들을 구출하는 문제를 토의한 것으로 밝혀졌다.이는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워싱턴 미 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NARA)에서 입수한 「알렉시스 존슨(Alexis Johnson)파일」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같은 기독교인 구출문제에 대한 논의는 1951년 11월2일에 작성한 미 국무성 회의비망록에 들어있다.회의에는 미 국무성 극동국의 러스크,동북 아시아과의 맥 크러킨이 참석했다.이는 미국 장로교인 트류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당시 미국은 다른 종교가 거의 들어오지 않는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이 문제가 자연스럽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특히 한국전쟁 이전에 북한 공산권 치하에서 기독교인들이 큰 박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유엔군 북진에서 드러나 더욱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전쟁 이전 북한의 기독교는 다른 종교에 비해 철저하게 말살되었다.가톨릭의 경우 함경남도 덕원 면속구의 피해는 컸다.1945년 민족해방 이후 1949년 5월9일 이후 수도원은 몰수 당했다.사우어 주교를 비롯한 많은 신부와 수사,수녀들이 고난속에서 순교했음이 밝혀졌다.개신교에서도 많은 순교자를 냈다는 사실이 서방에 전해짐으로써 기독교인들의 구출은 인권 차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민 기독교인 구출은 한국에 살고있는 미국 민간인 철수작전과 더불어 제기되었다.한국전쟁 발발 당시인 1950년 서울은 물론 대전이 예상이외에 빨리 북한군에 점령되어 미국의 민간인들이 포로로 취급받은 데 따른 대비책으로 미 민간인 철수는 심도있게 논의됐다.그러니까 이 비망록을 작성할 당시도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가 불투명했다는 추론이 나올 수 있다. 알렉시스 존슨은 1930년대 후반 한국에도 살았던 외교관으로 이승만이 미국에 망명해 있던 시절 그와 절친한 관계를 유지했던 인물이다.한때 미 국무성 극동아시아과에서 영향력을 가진 관리로 활약했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일일일선운동을 생각해 본다(박갑천 칼럼)

    국민학교때의 교장선생님이 생각난다.자그만 몸집의 전형적 일본사람.그는 어느날의 조회에서 일일일선운동을 역설했다.하루에 좋은일 하나씩만 해나가자는 말이었다.멀쩡한 자기돈 1전짜리를 가지고 교장실에 들어가 운동장에서 주웠노라고 했던 「거짓말선행」이 민주스러워진다. 그는 어쩌면 고대로마의 황제 티투스의 행적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른다.인두세·통행세등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거둬들이다가 나중에는 공중변소세까지 받자고한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영바람을 눌렀던 사람이다.그가 아버지 뒤를 이어받자마자 곧 저 유명한 베수비오화산 폭발이 일어난다.이때 헌신적으로 구제와 뒷수습에 나섬으로써 그는 국민들의 경모를 받는다. 이 티투스황제의 생활철학이 일일일선이었다.그는 국민을 위해 혹은 인류를 위해 이바지할수 있는 일을 하루 하나씩만이라도 해나가자고 마음먹었다.또 그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도 기울였다.그러나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어떤날 그런 뜻이 펴지지 않았다고 생각되었을때 그는 측근을 돌아보면서 이렇게 푸념했다고 전해진다.『아미키,디엠 페르디디(Amici,diem perdidi:친구여,오늘을 헛되이 보냈구나)』 「명심보감」을 펼치면 그 첫머리 계선편에 다음과 같은 귀절이 나온다.『하루라도 착한 일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한 마음이 스스로 싹터 일어나느니라』 그러기 때문에 날마다 착한 마음을 일으키라는 뜻이다.말하자면 일일일선운동의 탯줄을 이루는 말이었다고도 하겠다.그것은 바로 「하늘이 복으로써 갚는」(천보지이복)길을 여는 일이기도 하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에서 피어난 자원봉사하며 헌혈의 물결은 일일일선 아닌 십선·백선의 마음들이었다.설사 그런 재난의 현장에까지 마음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서분서분한 마음들을 가꾸어 나갔으면 한다.굳이「거창한 선행」만을 생각할 일은 아니다.거리에서 쓰레기 하나 줍는 일이나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도 선행이라 못할 것이 없다.「명심보감」의 가르침 그대로 그러한 선의는 염의없고 주접스런 마음을 누르는데로 이어진다는 점이 중요하다. 선을 행하면서 선임을 의식할때 벌써 선에서 멀어진다는 말은 지나치게 철학적이다.선을 의식하는 선이라도 얼마나 목마르게 기다려지는 오늘의 각박함인가.「자그만 선 하루 4천만가지」의 우리사회에는 명지바람이 불어올 것이다.
  • 오스트리아(세계화 외국에선)

    ◎몸에 밴 친절­서비스 정신/관광객 80% 2번이상 찾아/음악가·왕가유적 연계 탐방코스 인기/“스키·사이틀 등 스포츠 천국” 적극 홍보 지난해 오스트리아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천7백83만명.6백50만명에 불과한 적은 인구에 걸맞지않게 당당히 세계5위의 관광대국이다.외국인 관광객들로부터 벌어들인 외화소득만 연간 1천7백억 오스트리아 실링(약 13조원).국내총생산중 차지하는 비중이 8%로,인접국인 스위스(4%)의 두배다.무역수지 만년 적자를 보전,경상수지를 흑자로 만드는 효자산업이 바로 관광인 것이다.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출생지이자 베토벤 등 무수한 음악가들이 생활한 음악의 나라,중세유럽을 휘저었던 합스부르크왕가 등 찬란한 문화유적,스키의 천국,수려한 경치,좋은 기후조건 등 오스트리아에는 물려받은 훌륭한 관광자원이 많다.정치적 안정과,빈 등의 상주 국제기구를 통한 국제행사 유치노력도 한몫 거든다.그러나 오스트리아의 관광대국 유지비결은 관광산업 종사자의 서비스정신을 바탕으로 한 친절과 체계적인 관광사업 개발및 홍보에 있다. 오스트리아 관광청 한국홍보자문역인 최춘자씨는 『오스트리아에서는 길가 카페에서 커피를 나르는 직원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자부심에서 우러난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봉사한다』고 강조한다.그래서 관광객중에는 오스트리아를 가장 친절한 나라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고,한번 왔던 사람은 또 찾게 된다.방문횟수가 두번이상인 관광객이 80%에 육박한다. 지난 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을 맞아 음악회 등 각종 기념행사를 벌였고,내년에는 국호제정 1천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와 함께 합스부르크 왕가를 초점으로 한 66곳의 유적탐방을 부각시킬 계획인 것을 비롯,가능한 모든 것을 관광에 연계시켜 붐조성을 시도한다.관광산업 육성이 거창한 구호로서 추진되는 것이 아니라,일상화돼 있다.전세계 1백여곳의 관광청 해외사무소를 통해 매년 새로운 홍보자료를 해당국 언어로 발간,배포하는등 홍보노력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64·76년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인스부르크를 중심으로 외국인 스키회원제를 운영하는 등 스키명소의 이점을 최대한살린다.여름·겨울철에 몰리는 관광객을 계절적으로 다양화시키기 위해 다뉴브강변을 포함,1만㎞의 자전거 도로를 갖춰 사이클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을 위시,하이킹 등산 골프 테니스 등 스포츠활동을 중심으로 한 비시즌 관광 활성화 노력도 기울여 효과를 거두고 있다.9개주중 인스부르크가 포함된 티롤주(38%)와 잘츠부르크주(20%)의 관광객 비중이 높지만,역사적 소도시 14곳 방문 프로그램 등을 통해 여타 지역 관광개발 노력도 아끼지 않는다.차량 이용 입국자가 70% 이상이고,독일인이 절반을 넘는다. 그러나 지난해는 93년에 비해 외국인 관광객수및 수입면에서 2.3% 감소한 불운한 해였다.지중해 해변과 아마존 등 경쟁지에 관광객을 많이 빼았겼다.또 오스트리아 실링이 올들어서만 달러대비 10%나 평가절상되는 강세를 보이는 바람에 입국자는 줄고 출국자는 늘었다. 아시아·태평양권이 급부상하면서 날로 치열해지는 국제관광경쟁시대를 맞아 항공편 이용자및 여름철 관광객 유치를 늘리는 일이 오스트리아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 대북 쌀추가지원은 국민합의로/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답변

    ◎「문서변조」 선거이용 음모 속속 드러나/「경수로 건설」 우리 중심역할 고수할것 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속개,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통해 대북 쌀지원,외교문서 변조사건,한·미·일 관계,군전력증강 등 현안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따졌다. ▷대북 쌀지원◁ ○…북한의 씨 아펙스호에 대한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과 관련,박명환 의원(민자당)과 김진영 의원(자민련)은 『주권이요 명예이자 자존심이고 생존권의 상징인 태극기를 하강당한채 인공기만을 게양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장준익 의원(민주당)은 『태극기를 게양않는다는 합의는 누구의 훈령에 의해서인지,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인지,북한 총리급 이상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이유는 뭔지 밝혀라』고 요구했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쌀 수송과정에서 국민에게 많은 걱정을 끼친 데 대해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하고 『초기에 여러 부처가 함께 관여하다 보니 혼선으로 인한 것』이라고 원인을 설명했다. 나부총리는『사건 뒤 북경회담에서 서명한 당국자 직함과 이름이 적힌 사과문을 전달받았다』면서 『북한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쌀 지원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쌀지원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해 박명환 의원과 김기도 의원(민자당)은 『지난 84년 수재 때 북한이 쌀 5만섬을 보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기했는데 우리는 22배나 많은 양을 얼굴도 없는 「민짜포대」로 보냈다』고 지적한 뒤 국회동의를 거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김충조 의원(민주당)은 『지난해말 통일원이 국제선명회에게는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을 들어 쌀지원을 불허해 놓고 갑자기 바뀐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졌다. 이종찬 의원(민주당)은 『경수로 문제로 미국과 북한협상에 끌려다니더니 쌀제공문제마저 일본과 북한협상에 끌려다니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강두 의원(민자당)은 『44년전 인민군에게 쌀 등을 약탈당한 것이 부역이라며 거창양민 학살 사건을 아직도 방치하고 있다』면서 역사적 재조명을 요구했다.김사성 의원(민자당)은 『남북 쌀회담은 출발부터가 잘못됐다』며 통일원이 이를 주도할 것을 주문했다. 이홍구 국무총리는 『추가지원 여부는 상황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탄력적인 대응방침을 밝힌 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외국쌀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부총리는 『쌀회담 초기 남북한 접촉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북측의 비공개회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앞으로는 보다 공개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북 경로지원◁ ○…박명환 의원은 『경수로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향후 10년간 해마다 3천억원의 자금을 염출해야 한다』면서 자금규모에 대한 면밀한 분석및 장단기 대책수립과 함께 국회의 사전동의를 거칠 것을 요구했다. 장준익 의원은 『경수로건설비용은 미국이 우리보다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데도 우리 정부가 전체 건설비의 75%인 30억달러 이상을 부담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전략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강두 의원은 『정부는 우리의 중심적 역할이 확보됐다고 하지만 지난 6·13 북­미간 합의문의 표현은 애매하다』고 지적하고 『첫 단계인 건설부지 조사에서 과연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지 분명히 밝혀라』고 요구했다. 이총리는 『우리의 중심적 역할을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공외무부장관은 우리의 재정부담과 관련,『관계법령의 규정에 따라 국회에서 소정의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문서 변조사건◁ ○…김진영 의원과 김충조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명예실추를 초래하고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더욱이 외무부장관이 국회의원을 고발하는 등 삼류급의 행위를 연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정보관리를 위한 상설기구 구성과 공노명 외무부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반면 이강두 의원은 『외교문서 조차 변조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음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 외교의 대외공신력 실추와 명예훼손사태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고 대책을 물었다. 정몽준 의원(무소속)은 『외무부가 감정적인 대응으로 마치 정치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외무부장관은 『외무부가 문서 원본의 파기와 대체를 해당공관에 지시하고 최승진씨를 회유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 뒤 『최승진씨의 귀국을 조속히 실현시켜 검찰의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면 외무부와 전체 외무부 직원의 명예가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답변했다. ▷한·미·일관계◁ ○…대미관계에서 불평등문제와 관련,김진영 의원은 『지난 90년부터 92년 8월 사이에 주한미군 범죄자는 2천8백70명인데 재판권행사사례는 고작 30명』이라고 한미행정협정의 전면개정을 요구했다. 장준익 의원은 『북한은 30여기의 스커드미사일을 실천배치하고 있는 데도 미국은 한국의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규제하고 미사일기술통제기구(MTCR)가입을 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총리는 『한미간의 특수한 협조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구속수사권,한국인 고용원 노사문제,환경관련조항 등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제기했다』고 말했다. ○…대일관계에 대해 김기도 의원은 『일본은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고 일본의 역사인식에 불만이 많은 중국조차도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측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정몽준 의원은 『일본은 최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일본 국회에서의 종전 50주년 결의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일본의 핵무장 의혹과 일본 극우세력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 지를 따졌다. 이총리는 『북한에 대한 일본의 쌀지원은 남북관계를 고려,한일간 긴밀한 협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히고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일협정을 재검토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거만한 할리우드 스타들/김종면 문화부 기자(오늘의 눈)

    대중스타의 약속은 깨뜨리기 위해 존재하는가.23일 하오9시30분 서울 논현동에 위치한 양식당 플래닛 할리우드에서 열린 미국 액션배우 브루스 윌리스의 기자회견은 거센 항의로부터 시작됐다.영화「다이하드3」의 국내개봉(6월10일)을 앞두고 열린 이날 회견의 주인공이 사과 한마디없이 두시간이나 늦게 여유만만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TV시리즈 「블루문 특급」의 탐정이나 영화 「다이하드」의 정의파형사 존 맥클레인 이미지로만 브루스 윌리스를 기억하는 팬들에게 이날 밤 그가 보인 행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러나 더욱 안타까운 것은 상품가치 있는 외국배우나 감독등을 억지 춘향격으로 끌어들여 영화홍보에 이용하려는 영화사측의 지나친 저자세가 이들의 왜곡된 스타의식을 한층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올 상반기에만도 톰 크루즈,레오스 카락스,바네사 파라디등 많은 외국스타와 감독들이 「인터뷰아닌 인터뷰」를 하고 돌아갔다.영화홍보를 위해 왔음에도 불구,이들은 하나같이 팬들이 진정 알고 싶어하는 개인생활에 관한 질문은 고사하고 심지어 영화에 관한 질문까지도 애써 피하려하는등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보도용 사진을 찍기 위해서도 몇차례 실랑이를 벌여야하는 것이 다반사다. 이들을 데려오는 영화사측은 『그동안 유명배우들이 가까운 도쿄 등지까지만 왔다가 돌아가는게 보통이었는데 한국까지 들르게 한 것만해도 어디냐』며 거창하게 「국력신장론」까지 들먹인다.하지만 단발적인 홍보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들의 온갖 투정을 다 들어주며 막대한 비용을 들이는 영화수입사측의 태도는 어느 면에선 「문화적 매판행위」로까지 비쳐져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해외스타의 얼굴을 내세워 눈앞의 단기효과를 올리는데만 급급한 우리 영화수입사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말이다.영화사들이 이같은 얄팍한 상업주의에서 벗어나 보다 장기적인 투자에 힘쓸때 더이상 외국배우 모시기 추태는 없을 것이며 우리 영화의 경쟁력도 강화될 것이다. 스타의 사회적 유형가운데 하나로 「좋은 동료」(Good Joe)형 이란게 있다.모든 이들과 잘 어울리며 친절하고 약자에게는 관대하지만 권위에 젖은 사람이나 속물주의자들에겐 단호한,존 웨인이나 윌리암 홀덴,팻 분 등과 같은 타입의 배우들이 요즘 새삼스레 그리워진다.
  • 법질서의식/어릴때부터 질서지키기 생활화(세계화 이렇게 하자:13)

    ◎“서둘면 손해” 학교·가정서 엄격히 교육/위반자 법적 규제­국민편익시설 확충 병행을 선진경제국들의 모임인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기초질서 위반사범을 벌금을 물려가며 주기적으로 단속하는 나라는 아직 없다.우리나라가 곧 회원국으로 가입하면 이 기구의 「유일한」 기초질서 위반사범을 단속하는 나라가 되는 셈이다.세계 13위의 무역국,세계 17위의 1인당 국민소득(GNP)을 자랑하고 유엔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려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초질서 위반사범이란 거리에 침을 뱉거나 휴지·담배꽁초를 마구 버리는,또 차도를 무단 횡단하는 등 선진시민이면 반드시 지켜야할 기본질서를 위반하는 사람을 일컫는다.질서의식이 철저히 생활화 되어있는 선진 시민들의 눈으로 보면 이를 경찰력으로 단속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의 질서의식 부재를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서울경찰청이 지난 8일부터 13일까지 6일동안 3만5백51명의 경찰력을 동원,단속을 벌인 결과 모두 3만4천9백99건의 기초질서위반사범이 적발됐다.하루에 5천8백33명의 시민이 망신을 당하고 벌금을 문 것이다. ○후진성의 극치 달려 이를 4월의 단속결과와 비교하면 전체 단속건수는 2천2백건,하루평균 단속건수는 3백67건이나 늘어난 수치다.비록 단속경찰관의 수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그만큼 어기고 있는 시민이 어디엔가는 항상 있다는 반증이다. 질서의식에 대한 우리의 현주소는 경제규모에 맞지않게 아직은 후진국형에 가깝다.당연히 지켜야 할 줄서기,뇌물 안주기,휴지 안버리기,술마시고 고성방가 안하기,무단횡단금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지는게 없다. 법질서 측면에서 후진성의 극치는 무질서한 도로교통이다.도로가 혼잡하든,안하든 조그마한 접촉사고만 났다하면 도로 한복판에 차를 세워놓고 핏대를 올려가며 멱살을 잡고 싸우기 일쑤다. 그 뿐이 아니다.남들이 길게 직진차선에 줄을 서고 있는데 좌회전 차선으로 달려와 끝에서 얌체같이 살짝 끼어들고,앞차에 밀려 도저히 교차로를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인데도 파란불이라고 꾸역꾸역 밀어붙여 교차로를뒤엉키게 하는 모습은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도심의 풍경이다.경찰이 지난 4월1일부터 기초질서 위반사범에 대한 벌금을 크게 올렸으나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상아탑 조차도 엉망 서울경찰청 방범부장 김형진(58) 경무관은 『엄격한 법질서 가꾸기의 출발은 학교와 도로다』라고 말하고 『단속을 해보면 우리사회의 법질서 지키기는 개인적인 각성을 통해 고쳐져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법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공존의 이유에서다.전문가들은 너와 내가 어우러져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않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엄격한 법질서 지키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화여대 사회학과 김동일 교수는 『우리사회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급격히 바뀌면서 물질적인 토대는 크게 향상되었으나 의식구조 변화가 제대로 뒤따르지 못했다』고 분석하고 『이 간격이 기초질서 의식 결여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법질서 지키기는 엄밀히 따지면 단속대상이 아니라 의식의 문제라는 사회학적 진단이다. 단속이 거의 없는 선진사회에서 거리에 함부로 침을 뱉거나 휴지·담배꽁초를 버리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외국 폭력영화에서나 차도를 무단 횡단하지,실제 생활에선 차량 접촉사고가 났더라도 서로 집전화번호와 보험사전화번호를 교환한뒤 가볍게 헤어지는게 예사다. 그들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질서지키기가 생활화되어 있는 까닭이다. 서울대 법대 최종고 교수는 『미국에서는 유치원이나 국민학교에서 조차 학교급식 시간에 새치기를 하다 들키는 학생이 있으면 그날 점심을 굶긴다』고 전하고 『그러나 우리는 지성의 산실인 대학에서 마저 식당 등 공공장소에서의 무질서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고 개탄했다. ○「빨리빨리병」이 문제 이는 교육과정에서 질서교육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는 증거다.또 가정에서도 남보다 앞서기 위해 저지르는 질서파괴 행위를 철저히 나무라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둔다.나아가 우리사회가 나보다 먼저 와 줄을 선 사람의 노력과 권리를 깡그리 깔아뭉개는 도덕성과 양심부재의 「조급문화」의 사회임을 말해주고 있다. 서점에서 책을 사 하루만에 읽고 독후감을 써와야되고,한달이 아니고 월요일에 내야 할 국민학교 2학년의 토요일 숙제가 「민족공동체 의식함양」을 주제로 한 5분가량의 거창한 연설문이라면 그것은 이만 저만한 불합리가 아니다.이런 식의 교육을 받으니 법질서에 대한 의식이 싹틀 턱이 없다. 최 교수는 『법질서 의식은 성인이 된 뒤의 교육이나 규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하고 『유아기부터 질서중심의 가치관을 심어주고 생활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함으로써 터득하게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찌보면 최근 우리사회의 잇단 대형사고도 이같은 질서중심의 가치관이 없고,법질서의 공정한 집행이 이뤄지지 않은데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열번 조여야되는 나사를 정확히 열번 조였더라면 막을 수 있는 사고들이었다. 교통개발연구원 도시교통연구실 김수철 실장은 『질서위반자에 대한 엄한 법적 규제와 이러한 위반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민의 편익을 증대하는 두가지 방안이 병행되어야 우리사회의 질서의식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기초장 후보 8명/민자,추가 발표

    민자당은 22일 8명의 기초자치단체장후보를 추가로 발표했다. 민자당은 이로써 이날까지 전국 2백30개 기초단체장 가운데 1백85곳의 후보를 확정했다. ◇서울 ▲종로 이두학(71·구의회의장) ◇부산 ▲남구 성재영(50·시의원) ◇광주 ▲동구 이광현(60·전 동구청장) ◇경기 ▲김포 임순기(62·전 김포읍장) ◇경남 ▲진주 백승두(55·전 진주시장) ▲진해 김병노(52·도지부부위원장) ▲통영 고동주(59·전 통영부시장) ▲거창 최준학(65·전거창부군수)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