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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EO칼럼] 명품은 마지막 2% /김인 삼성 SDS사장

    [CEO칼럼] 명품은 마지막 2% /김인 삼성 SDS사장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는 이렇게 첫 문장을 시작한다. 불어판 출간을 기념하는 인터뷰 자리에서 저자는 소설의 첫 머리를 ‘∼ 꽃이 피었다.’로 할지,‘∼ 꽃은 피었다.’로 할지를 놓고 며칠간 고민했다는 소회를 밝혔었다.‘꽃이 피었다.’고 하면 객관적인 사실을 말하는 듯하고,‘꽃은 피었다.’고 하면 주관적인 정서를 투사하는 듯하여 조사(助詞) 하나 때문에 무척이나 고심했다는 것이다. 마치 시 한 편에 쓰일 글자 하나를 놓고 밀칠 퇴(推)로 할지, 두드릴 고(敲)로 할지를 고심하며 길을 걷다가 고을 원님의 행차와 부딪쳤다는 중국 당나라 때 ‘퇴고(推敲)’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글자 하나 가지고 뭘 그리 유난을 떠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울이는 작가들의 치열하고 세심한 노력은 상상을 불허한다. 헤밍웨이는 그의 대표작 ‘노인과 바다’를 수백 번도 넘게 고쳐썼다고 한다. 투르게네프는 원고 초안을 서랍에 넣어 두고 석 달에 한 번씩 꺼내 수정했다고 한다. 옛 중국의 한 시인은 자신이 지은 글을 문설주에 붙여 놓고, 들며 나며 그 글을 읽고 고치는 일을 반복했다고 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들의 관심은 크고 거창한 것만을 찾으려는 경향이 커진 듯하다. 그럴 듯한 주제에만 매달리고,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완벽하게 마무리하려는 노력이 상대적으로 소홀해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시원스럽고 폼 나게 구도를 잡아 일을 시작하지만 제대로 끝마치지 못하고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는 경우도 많이 목격한다. 하나하나 치열하게 따져보고 세심하게 챙겨보는 것을 사소한 것에 신경쓰는 쫀쫀함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에서도 며칠 밤낮을 고생하며 준비한 프로젝트를 작은 실수 하나로 그르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한 위험 요소 하나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조직 전체의 신뢰감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은 미리 챙기고 검토해 보았다면 충분히 방지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오늘날 대부분 산업에서 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빨라 어제의 경쟁우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한 기술 그 자체만으로 경쟁자의 진입을 저지할 장벽을 갖추는 것이 매우 어렵고, 전략 또한 금세 모방의 대상이 되고 말아 거시적인 면에서 경쟁자와 큰 차별을 느끼게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의 승패는 결국 누가 더 고객의 요구사항을 세심하게 잘 파악하고, 꼼꼼하게 관리하며, 더 완벽한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흔한 말로 마지막 2%의 세심함과 노력이 성패를 정하고, 결과를 가름하는 것이다. 건축 분야에서는 ‘신은 디테일 속에 있다(God is in the Detail).’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다. 즉 거창한 구도와 설계, 엄청난 규모의 시공을 통해 이뤄지는 건축물을 최종적으로 완성하는 힘은 건물 전체에 스며 있는 세심함과 마무리 노력에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한 번에 한 걸음씩밖에는 움직일 수 없다. 열정은 열정대로 폭발시키면서도 ‘대충대충’ ‘적당적당’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이 맡은 일을 꼼꼼하게 살펴보도록 하자. 그래서 세심함과 치열함으로 맡은 바 분야에서 명품(名品)을 만들어 가는 진정한 프로페셔널의 모습을 갖춰나가자. 김인 삼성 SDS사장
  • [이경형칼럼] 짝짓기 잘해 정권 잡는다?

    [이경형칼럼] 짝짓기 잘해 정권 잡는다?

    내년 대통령선거가 363일 앞으로 다가왔다. 새해는 현행 권력 구조인 ‘87헌법’체제 출범 20년을 맞는 해로, 그동안 시행한 4차례의 대선 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대통령 선거 문화를 형성해야 할 시기다. 1987년의 대선은 ‘1노3김’경쟁이었다. 노태우(TK), 김영삼(PK), 김대중(호남), 김종필(충청)의 4자 경쟁은 철저한 인적·지역적 분할 구도였다. 노태우 후보는 3김을 분할하는 전략으로 당선되었다.1992년은 김영삼(YS)의 김대중(DJ)호남 포위 전략이 주효했다. 이른바 3당 합당이라는 야합 짝짓기의 성공이었다. 1997년은 DJ+JP(김종필)연합 소위 호남·충청의 DJP 짝짓기의 결과로 ‘국민의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반독재 투쟁·진보 노선의 DJ와 개발 독재의 주체·보수 노선의 JP가 권력분점이라는 밀실 협상으로 짝짓기를 하여 정권을 잡았다. 지금의 노무현 정부도 노선·색깔이 서로 다른 노무현과 정몽준이 일단 짝짓기로 연대한 뒤, 여론조사 주사위로 단일화에 성공, 참여정부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지금까지의 대선 경쟁과 정권 쟁취 과정은 한마디로 정치 공학적 게임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대권 후보들이 내세운 국가 운영 철학이나 지도 이념 등은 선거 벽보용에 그쳤다. 지역 분할 전략 혹은 절묘한 짝짓기 등 정치 술수와 고도의 선거 계략을 구사함으로써 정권을 잡았다. 겉으로는 거창한 국가 비전과 정책 노선과 공약을 내걸고 국민들에게 표를 호소하지만, 막판에 가서는 정강이고 정책이고 관계없이 오로지 표 계산에 따른 짝짓기를 통해 대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야바위 같은 짝짓기를 무슨 ‘정책 연합’으로 포장하여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지만 실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앞으로 각 당마다 무수한 ‘잠룡’들이 수면 위로 오르면서 과거 한나라당의 ‘9룡 경선’을 방불케 하는 이벤트들이 속출할 것이다. 이들 주자들 가운데는 향후 당내 혹은 정권 내 지분을 사전에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경선에 나서거나 대권에 도전하는 이들도 적잖이 있을 것이다. 기존 정당의 경선자들은 지난 4년간 소속 정당이 뭘 잘못했는지를 솔직히 밝히는 자기 성찰적 고백부터 하고 출사표를 던져야 한다. 신장 개업하는 정당이라면 콘텐츠가 기성 정당과 왜 달라야 하고, 어떻게 다른지부터 설명해야 한다. 과연 언제까지 ‘정치9단’들과 그 아류들이 벌이는 도박판 같은 선거 문화를 지속해야 하나. 이벤트성 정치 집회와 바람몰이식 세(勢)과시, 상대방에 대한 네커티브 선전으로 유권자들을 현혹시키는 짓은 그만두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은 적어도 2010년대 한국의 국가발전 비전과 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를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한다. 정정당당하고 명분 있는 경쟁을 벌여야 한다. 유권자들도 각 후보들의 국가운영 철학과 지도자로서 자질을 꼼꼼히 살펴서 한 표를 행사해야 한다. 찍고 나서 손가락을 아무리 원망한들, 대통령 임기 5년이 줄어들지 않는다. 그래서 그 나라 정권의 수준은 국민의 선거 문화 수준과 높이를 같이하는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비록 승자가 권력의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게임 같은 요소가 있다 하더라도 품격있는 경쟁, 논리가 있는 경쟁으로 이뤄져야 한다. 차기 정권의 향배가 천박한 득표 전술과 명분 없는 합종연횡으로 결정된다면 21세기 한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본사 고문 khlee@seoul.co.kr
  • 전북도, 유령회사와 골프단지 추진 말썽

    전북도와 순창군이 부도와 세금 체납으로 폐업 처리된 ‘유령회사’와 2800억원대의 대규모 골프산업 클러스터 조성 사업을 추진해온 사실이 드러나 파문이 일고 있다. 전북도는 지난 10월 골프용품 생산·판매업체 (주)랭스필드와 전주대학교, 순창군이 공동으로 2800억원을 투입, 순창군에 골프장과 골프용품 생산단지, 골프연구소 등이 들어서는 100만평 규모의 골프단지조성사업 협약을 맺었다. 협약에서 랭스필드는 외부 투자자를 유치해 사업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로 했으며 도와 순창군은 행정지원 및 기업유치를, 전주대학교는 연구소 설립을 각각 맡기로 했다. 그러나 이 업체는 2001년 부도가 난 뒤 이듬해 국세청으로부터 직권 폐업된 것으로 밝혀졌다. 국세청 홈페이지에 공시된 체납액만 21억 6200만원이고 전체 체납액은 43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도와 순창군 등은 실체도 없는 유령회사에 사업의 핵심 역할을 맡기고 그동안 일을 추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 회사의 사업주 양모씨는 지난 2004년 차명으로 아이랭스필드(주)로 상호를 바꿔어 법인을 설립했으나 자본금이 겨우 5억원에 지나지 않고 대규모 투자사업을 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새로운 법인 대표이사로 장인의 이름을 올려놓고 자신은 이사로 등재하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양씨가 골프장 건설에 필요한 부지 가운데 일부만 매입하고 인접해 있는 국·공유지를 헐값에 사들여 골프장을 건설하기 위해 거창한 사업계획을 발표했고, 자치단체는 이에 동조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순창군 골프장 건설 저지 대책위원회’는 20일 “도와 순창군이 일개 골프사업자에 현혹돼 최소한의 사전 점검도 없이 일을 추진하면서 주민갈등과 불신을 확산시키고 있다.”며 도민들에 대한 사과와 사업 철회를 요구했다. 한편 전북도는 “이 회사의 사장이 이후 5억원의 자본금을 들여 다른 상호로 새로운 회사를 설립, 영업을 하고 있는 만큼 큰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도 관계자는 “문제점을 알고 있었지만 이 회사 및 경영자의 노하우와 열정, 기술력을 높이 평가해 사업 주체로 결정했다.”며 “이 업체는 별도의 법인을 구성, 투자자를 모집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만큼 자본금 규모 등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도심 해돋이도 장관”

    “도심 해돋이도 장관”

    2007년 첫날을 특별하게 맞고 싶다고 거창하게 준비할 필요도, 먼 곳을 찾아 집을 나설 것도 없다. 멀지 않은 곳에 자치구들이 마련한 신년맞이 행사가 준비돼 있다. 정해년(丁亥年) 1월1일의 일출시간이 오전 7시40분쯤으로 예상되므로 오전 6시30분∼7시 사이에 시작되는 행사에 가서 공연도 즐기고, 해돋이도 보면서 활기차게 새해를 시작해 보자. ●억새풀 위로 돋는 새해 마포구(구청장 심영섭)는 억새풀이 만발한 자연생태공원인 하늘공원에서 풍성한 새해맞이 행사를 마련했다. 새벽 6시30분부터 1시간30분 동안 사물놀이 공연, 관현악 합주, 신년 덕담, 새해인사 등이 이어진다. 희망찬 새해의 첫 태양이 떠오르면 소망을 적은 2007개의 풍선을 날려보내고, 고르예술단의 대북 공연 등 웅장한 퍼포먼스도 준비했다. 식전에는 서예가가 직접 가훈을 써주고, 황금돼지 모양을 한 대형판에 희망메시지를 적어 붙이는 행사도 열릴 예정이다. ●서울에서 가장 먼저 뜨는 해 광진구(구청장 정송학)는 서울에서 가장 먼저 해가 떠오른다는 아차산에서 해맞이 축제를 준비했다. 한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명소이기도 한 아차산 팔각정 근처에서 소원성취 이벤트, 희망의 공연 등을 선사한다. 진입로에는 희망의 문, 고구려벽화 사신도 얼음 조각상, 청사초롱 길 밝히기 등을 마련했다. 또 전자바이올린 연주, 구립여성합창단 축가 등 공연이 이어진다. 등산로 곳곳에 따뜻한 보리차, 토정비결보기 같은 다양한 코너가 있다. ●민족혼이 담긴 삼각산에서 강북구(구청장 김현풍)는 삼각산에서 새로운 희망과 자긍심을 높이는 행사를 준비했다. 대동문과 동장대 사이 해발 607m의 시단봉에서 열리는 해맞이 행사에는 신년 기원제례와 기원문 낭독, 삼각산 풍물패의 공연 등이 잇따라 진행된다. 구립 실버합창단이 축가를 부르고, 만사형통의 기원을 담아 마음껏 소리를 지르는 시간도 갖는다. 또 송액영복(送厄迎福·액을 쫓고 복을 받아들인다)을 기원하는 200개의 연을 날리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건강도 챙기세요 서초구(구청장 박성중)는 청계산에서 ‘해맞이 걷기대회 행사’를 연다. 원터마을 굴다리 입구(미륵당 옆)∼제1약수터∼원터약수터∼깔딱고개∼헬기장∼굴다리 입구로 돌아오는 5㎞ 코스로, 오복 중 하나인 건강을 기원하는 소박한 자리다. 해뜨는 시간 즈음에는 산 정상 헬기장에 도착해 덕담을 나누며 새해소망을 기원하고, 기념촬영의 시간도 갖는다. 원터마을 입구에서 청계산 상가번영회가 주관하는 ‘사랑의 음식장터’를 열고, 판매수익을 불우이웃 성금으로 낼 예정이다. 건강도 높이고, 불우이웃도 도우며 한해를 시작하는 좋은 기회다. ●전망 좋은 곳 50선 거창한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조용히 새해 새 다짐을 하는 것도 의미있다. 서울시가 선정한 조망명소 50곳 중 한강, 시내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좋은 곳을 찾아보자. 종로구의 북악팔각정은 계절마다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북한산을 감상할 수 있다. 눈 덮인 산과 탁 트인 시내를 바라보며 새 희망을 품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용산구 한남동 매봉산은 남산도시자연공원, 북악산 등 서울 서북권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 광진구 아차산과 중랑구 용마산·봉화산 등에서는 한강 경관, 서울시내 경관뿐만 아니라 구리시까지 볼 수 있다. 성동구 응봉산 팔각정도 서울숲과 6개의 한강다리, 일출과 중랑천 철새 도래지가 보이는 명소 중의 하나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문화마당] 천년을 사는 기술/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프랑스는 역시 유별난 나라다. 하릴없는 사람들이 모여 ‘새해 반대 전선’을 결성하고 거리 행진을 계획하고 있다고 해서, 해당 웹사이트를 찾아가 보았더니 과연 “2007년의 통과를 적극 저지하라”고 동참을 촉구하는 슬로건이 자못 거창하다. 어이없는 장난이라고 치부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거기에 엄숙한 어조를 들이댄다면, 지난 시대의 삶과 이 시대의 삶이 공존하고 살인적인 경쟁과 넘쳐나는 정보로 혼란한 세계에서 개개인들이 더 이상 외부의 시간질서에 기대지 않고 자기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안고 살려 한다는 식의 철학적 해석이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다. 따지고 보면 헛된 해석이 아니다.‘느림’ 또는 ‘느린 삶’을 표방하는 이런저런 교훈적 주장들이 사실 이 철학을 울타리로 삼는다. 세상의 공적 시간 질서를 거부하고 자신의 개인적 시간 속에서 삶을 기획하려는 태도가 사회적 반항의 표지로 나타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벌써 한 세기 반 전에, 보들레르는 ‘악의 꽃’의 시 ‘키 작은 노파들’에서, 군인들이 군악을 연주하는 공원 한 구석에 떨어져 앉은 한 노파를 이렇게 예찬한다.“아직도 꼿꼿하고 늠름하고, 단정함이 무언지 아는 그 여자는/저 씩씩한 군가를 목마른 듯 들이마시니/그 눈은 이따금 늙은 수리의 눈처럼 열리고/그 대리석 이마는 월계관을 얹기에 알맞은 품새네!” 척추가 내려앉아 키가 작아진 노파들은 이미 자본주의가 삶의 거의 유일한 형식으로 자리잡은 시대에 그 치열한 경쟁을 더는 따라가지 못하고 줄밖으로 물러서 있지만, 그렇게 물러서 있기에 세상의 분주한 발걸음이,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진보의 신화가 얼마나 공허한 것인지 살펴볼 기회를 얻는다. 승리하는 것은 그녀들이라는 보들레르의 암시는 조금 과장된 것이겠으나, 그녀들은 적어도 자기를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전설 속의 인물들이나 역사가 희미해진 시대의 인물들은 그 수명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한다. 단군은 1908년을 살고 신선이 되었으며, 노아는 950세를 누렸고, 삼장을 도와 천축국에 경을 얻으러 갔던 손오공으로 말한다면 석가여래의 법력에 눌려 오악의 암괴 아래 갇혀 있던 세월만 해도 500년이다. 그들의 삶이 특별했다고 하기보다는 계산방식이 특별했다고 해야 할까. 이를테면, 생명과 정신의 윤회를 믿는다면, 그 윤회 속에서 전생의 기억이 오롯이 보존되기만 한다면, 우리 같은 범인들의 나이도 천 년의 세월로 계산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저 긴 수명의 전설은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 ‘모멘토’ 같은 우리 시대에 만들어낸 이야기에 비추어 볼 때 더 좋은 설명을 얻는 것이 아닐까. ‘모멘토’의 주인공은 자기 아내가 살해된 날 이후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이다. 그는 자신이 알게 된 것을 잊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메모를 해야 하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겨 기억을 대신하려 하나 그 기록들은 연결되지 않는다. 그에게 10분 저쪽의 시간은 이미 기억이 지워진 전생과 같다. 그가 50년을 살건 60년을 살건 그 자아의 일관성은 10분의 한계를 넘지 못한다. 그의 수명은 10분이다. 그러나 이 10분 사내의 삶은 우리들이 지금 영위하고 있는 삶의 알레고리일 뿐이다.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에 얼굴을 처박고 있는 우리의 삶은 일주일전이 벌써 전생이다. 그러고 보면 윤회도 일종의 기술이다. 나의 먼 기억과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지금 이 삶에 끌어들이고 운동하게 하여 이 시간에 깊이와 넓이를 주는 어떤 기술. 이제 전시기간이 이틀쯤 남은 만 레이의 전시회도 찾아가 보고, 요네하라 마리의 가슴 아픈 논픽션 ‘프라하의 소녀시대’ 같은 책도 찾아 읽고, 가난한 먼 친척의 안부도 챙기고, 조류독감으로 키우던 가축을 죽여야 하는 사람들의 애달픔도 생각해 보고, 그렇게 해서 우리는 또 하나의 삶을 살고, 그렇게 해서 우리도 천 년을 산다.2007년이 온다고 겁날 것은 없다. 황현산 문학평론가 고려대 불문과 교수
  • [김석의 Let’s wine] 동료·친구들과 마실땐…

    [김석의 Let’s wine] 동료·친구들과 마실땐…

    와인 파티를 떠올리면 흔히 고급 와인들, 화려한 촛대, 고급스러운 식기들, 풀세팅된 테이블 등이 떠오른다. 그러나 굳이 와인 파티라고 해서 그리 거창할 필요가 없다. 편한 사람들끼리 오붓하게 모여 와인과 안주, 그리고 도란도란 이야기가 곁들여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파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함께 모여 와인을 마실 자리만 마련된다면 와인 파티는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모임이라고 할 수 있다. 와인 파티 준비의 첫번째 단계는 파티의 주역인 와인 고르기. 정해진 룰은 없다. 입맛을 돋우게 할 식전주, 샴페인,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 디저트 와인에 속하는 포트 와인 등이 있지만, 순서대로 이 모두를 갖출 필요는 없다. 파티의 목적이나 성격에 따라 충분히 생략해도 되고, 화이트나 레드 한 가지 와인만으로 파티를 이끌어 나가도 된다. 파티 참가자들이 한 병씩 가져오도록 하는 것도 좋다. 요즘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방법으로, 다양한 종류의 와인을 맛볼 수 있으며 가져온 와인에 대한 간략한 정보교환도 할 수 있어 여러모로 효율적이다. 이외에도 와인의 향을 담고 색을 보여주는 와인 잔을 준비해야 한다. 글라스 개수는 1인당 그날 마실 와인의 종류만큼 준비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적어도 1인당 2개 이상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안주는 집에서 간단하게 준비할 수 있는 것으로 마련한다.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안주는 역시 치즈. 간편하게 준비할 수 있는 장점뿐 아니라 단백질 성분이 알코올 해독에도 도움을 준다. 크래커에 연어 등을 얹은 ‘카나페’도 훌륭한 와인파티 안주. 날치알을 곁들인 석화나 쇠고기 등심 스테이크도 집에서 쉽게 만들 수 있다. # 동료들과 마실땐… 회사 회식의 경우 와인의 맛이나 종류는 크게 의미가 없다. 이것저것 다양한 와인을 맛보는 것보다 간단하게 레드와인 한 종류와 화이트와인 한 종류씩 여러 병을 준비하는 게 좋다. 레드와인은 1만∼2만원대의 신대륙 와인(칼로로시 레드 상그리아, 폴링스타, 와일드바인)으로, 화이트와인은 이탈리아산 2만∼3만원대 와인(산타마게리타 피노그리지오)이 무난하며 깔끔한 맛으로 식욕을 돋워준다. # 친구들과 마실땐… 사람들과 편하고 기분 좋게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자리이므로 분위기만 업시켜줄 수 있는 저알코올도수의 와인이 잘 어울린다. 깊고 진한 맛의 유럽와인보다 와인을 처음 접해보는 이들도 쉽게 마실 수 있는 신대륙 레드와인(트리오, 트라피체 버라이탈 등)이나 아이스바인(블루넌 아이스바인), 그리고 소테른(지네스테 소테른)처럼 달콤한 화이트와인이나 로제와인(터닝리프 화이트진판델), 스파클링 와인(타츠 브륏, 폴로저 브륏)이 제격이다. 한국주류수입협회 와인총괄 부회장 (금양인터내셔널 상무)
  • 거창군, 면지역 초·중교 무상급식

    경남 거창군은 내년부터 관내 면지역 초·중학생 1200여명에 대해 무상급식을 실시한다고 11일 밝혔다. 군은 이를 위해 최근 학교급식 조례를 개정했다. 이에 앞서 도내서는 처음으로 조례를 제정, 학교급식에 우수 농산물을 사용토록 하고 지난해 식재료비 2억원을 지원했다. 군은 학교급식의 질적 개선과 우리 농산물이 학교급식에 사용될 수 있도록 전국 최초로 학교간 식재료의 공동구매와 공동식단을 시범운영, 지난달 청와대와 농림부로부터 우수사례로 선정됐다. 강석진 거창군수는 “지역의 우수한 농산물을 학교급식 식재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학교급식의 질 향상은 물론 농가의 소득증대와도 직결된다.”며 “학교급식의 질을 높이는 것이 농촌을 살리는 계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거창군은 연간 282억여원에 달하는 지방세 수입 중 15%가 넘는 43억원을 교육부문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장학재단 출연 및 급식비 지원, 초·중학교 원어민 교사 배치, 방과 후 학교운영 대응투자 등에 소요된다.거창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군립박물관이 국립을 눌렀다

    군립박물관이 국립을 눌렀다

    한적한 농촌지역인 경북 고령이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신비의 왕국’ 대가야(42∼562년)의 수도 고령의 역사와 문화를 관람하려는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심에 대가야박물관이 있다. 이곳은 군립 박물관이면서도 연간 관람객 수가 웬만한 국립박물관을 앞지른다. 11일 고령군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대가야박물관을 찾은 전체 관람객은 20만 3684명(외국인 1439명 포함)으로 집계됐다. 이는 같은 시기 가야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박물관인 김해박물관 18만 6789명보다 1만 6895명, 진주박물관 18만 6305명보다 1만 7379명이 많다. 특히 규모와 시설면에서 비슷한 거창군립박물관 3만 726명과 창녕공립박물관 2만 4129명에 비하면 6∼8배가 많은 셈이다. 2000년 10월 문을 연 가야박물관은 그해 관람객 2만 5000여명이던 것이 매년 증가해 지난달 말까지 122만 9243명이 찾았다. 이로 인한 지역홍보는 물론 직·간접적 효과가 엄청나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관람수입 4억 6000여만원에다 딸기 등 농특산물 판매액 등을 합하면 수십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처럼 대가야박물관이 관광객들로부터 큰 인기를 끄는 것은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국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대가야의 찬란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이 곳에서 한눈에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읍 지산리에 자리한 대가야박물관은 대가야왕릉전시관과 대가야역사관, 우륵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다. 대가야왕릉전시관(연면적 300여평)은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순장묘이자 최대 규모인 지산동 44호분을 원형 그대로 복제, 재현하고 있다. 무덤 외곽으로는 출토 유물과 고분의 순장 유형, 대가야의 토기·말갖춤·무기, 갑옷과 투구 등의 사진물이 전시됐다. 대가야의 역사,44호분의 성격, 역사적 의의 등을 담은 영상물 코너도 마련됐다. 대가야역사관(연면적 1000여평)은 금관·장신구·마구·무기류 등 대가야의 진품 유물 2000여점이 전시돼 있다. 또 대가야 토기의 시대적 변천과 고분 축조과정, 토기 및 철기의 제작과정을 재현한 모형 등이 전시돼 있어 대가야 문화의 우수성을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륵박물관은 가야 말기의 악성(樂聖)으로 가야금을 만든 우륵과 가야금에 대한 자료가 풍부하게 전시돼 있다. 박물관은 ▲악성 우륵 ▲가야의 혼을 지킨 우륵 ▲민족의 악기 가야금 ▲우륵의 후예 등 다섯 가지 주제로 꾸며져 있다. 가야금과 우륵의 생애를 밝혀 주는 영상물 2편, 가야금과 양금을 연주해 볼 수 있는 체험장도 마련돼 있다. 이태근 고령군수는 “대가야박물관이 다른 박물관과 차별화된 역사전문박물관으로 각급 학교의 수학여행, 문화유적 답사, 어린이 현장체험학습 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면서 “앞으로 가야 고분 200여기가 있는 지산동 고분군(사적 제79호) 등 각종 문화재와 연계해 고령을 문화유적 테마 관광지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고령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요리로 스타일과 파티 즐긴다

    라이프 스타일 케이블TV인 올리브 네트워크가 연말을 맞이해 ‘스타일’과 ‘파티’라는 소재로 기획 프로그램 두편을 방송한다. 8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1시에 방송되는 ‘변정민의 스타일 퀴진’은 ‘요리로 스타일을 즐긴다’라는 요리 프로그램이다. 요리를 한다는 게 단순히 음식을 만든다는 개념을 뛰어 넘은 지는 이미 오래다. 또 최근 요리는 건강을 지키고 아름다운 생활을 유지하면서 가족·친구와의 즐거운 대화 수단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신세대 주부들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요리를 즐기고 싶어 한다. 그래서 변정민의 스타일 퀴진은 진행자 변정민이 사연에 채택된 시청자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음식과 테이블 세팅 등을 추천해주고 함께 만들어 보는 시간이다.첫번째 식단은 남편을 위한 밀라노식 미네스트로네와 조개 페스토소스의 링귀네, 후식으로는 커피 그라니타이다. 제목 만큼이나 어려워 보이는 요리가 너무 쉽게 느껴지면서 따라 만들어 보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또 14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 방송되는 ‘도승원의 리빙레시피 파티 에디션’은 거창하고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파티를 누구나 집에서 쉽고 편하게 할 수 있는 새로운 비법을 알려준다. 진행자 도승원은 지난해 방송한 ‘올리브 네트워크’의 심플리 스페셜 이후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인기 푸드 스타일리스트.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파티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는 푸드 레서피와 이에 어울리는 세련된 파티 데코레이션을 선보인다.시청자들은 도승원의 지도에 따라 결혼기념일, 생일,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파티 등을 집에서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방법부터 배우게 된다.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문화마당] ‘영향력’있는 허구속 인물들/여건종 숙명여대 영문학과 교수

    최근 미국에서는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허구속 인물의 순위가 발표된 책이 출간되어 화제가 되었다. 책의 제목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101명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신화와 전설과 TV와 영화의 인물들이 어떻게 우리 사회를 형성하고, 우리의 행동을 변화시켰으며 역사의 진로를 설정했는가?”라는 거창한 부제가 달려 있다. 서구 문화권을 중심으로 선정된 것이어서 더러는 처음 듣는 이름들도 있으나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이름들이 이 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했다. 전직 의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과학 기술 저술가인 저자들은 각각의 리스트에 선정이유를 밝히는 짧은 에세이를 수록하고 있는데,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숫자, 그리고 영향이 얼마나 깊었는가가 선정 기준이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상 인물 리스트에서 1위의 영광은 미국의 담배회사 필립 모리스의 말보로 담배 광고에 등장하는 말보로 맨이 차지했다. 수상 이유는 전세계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암으로 사망하게 한, 지난 200여 년간 가장 악명 높은 살인자라는 것이다.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채 담배를 물고 거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는 이 사나이 중의 사나이의 모습에서 이상적 남성의 전형을 찾은 많은 남자들이 그 대가로 일찍 이 세상을 하직했다.2위를 차지한 빅 브라더는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정치적 전체주의의 상징이다. 선정이유는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정치체제에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유와 풍요를 상징하는 신자유주의의 중심, 미국과 빅 브라더의 친연성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풍자이다. 오늘의 미국 사회가 시장 전체주의의 징후를 보인다는 점에서 이 풍자는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로 들린다. 그것은 이 책이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미국사람들의 호사가적 관심을 넘어서 어떤 종류의 문명비판을 지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산타 클로스는 매년 4·4분기 미국 경제를 지배한 공로로 4위에 올랐고, 인형 바비(43위)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미의 기준을 세운 죄로, 안데르센의 미운 오리 새끼(55위)는 아름다움을 인간의 가장 고귀한 속성으로 강조함으로써 인류의 99%에게 모욕을 준 죄로, 신데렐라(26위)는 이혼이 보편화된 시대에 계모들을 멸시하고 사람들을 마법에 의존하게 만든 죄로 선정의 영광을 안았다. 사람들은 흔히 이야기가 현실을 모방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현실이 이야기를 모방한다. 이야기가 먼저 있고 현실은 그것을 모델로 구성된다. 우리는 이야기라는 틀을 통해서만 현실을 보고 알 수 있다. 이 이야기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살고 있다. 정신 분석학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어떤 충동과 욕망과 에너지의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생물적 존재를 정치적·문화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이야기 속의 인물들을 닮고 싶고, 그것이 되고 싶은 욕망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자아 이상이라고 불렀다. 이 자아 이상과 닮아 가는 과정에서 태어나는 것이 ‘나’라는 존재이다.‘나’는 수많은 자아 이상들이 축적되어 형성되는 어떤 것이다. 우리는 이 자아 이상을 만났을 때 환호에 차서 소리친다.“저것이 바로 나구나.”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역동적인 과정, 하나의 축복이다. 따라서 이야기와 그 안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우리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상징적 자원이다. 말보로 맨은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죽어가게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목숨을 걸고 담배를 피우게 만든 말보로 맨의 그 흡인력을 인정한다. 우리에게는 이야기가 있고 그 안에는 멋있고 재미있는 인물들이 살고 있다. 다시 한 번 삶을 긍정해 본다. 여건종 숙명여대 영문학과 교수
  • [CEO칼럼] 연말 기부문화/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CEO칼럼] 연말 기부문화/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벽에 걸린 달력의 맨 앞장을 뜯어낸 지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단 한 장만 남아 있다. 시간의 흐름이 빠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올해 초 새해를 맞으면서 여러 계획을 세웠으나 실천을 얼마나 했는지 또 얼마나 달성했는지 반추해 보면 부끄러움이 앞선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우리 모두가 실천해야 하는 계획이 하나 있다. 바로 이웃사랑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더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치열한 경쟁시대를 헤쳐나가기 바쁜 현대인들에게 12월은 한번쯤 주변과 뒤를 돌아 볼 수 있는 기간이다. 얼마전 뉴스에서 어린 시절 일제에 위안부로 끌려갔다 귀국한 뒤 평생 고생을 하신 한 할머니가 생활지원 기금을 모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액수도 컸지만 본인도 어려운데 똑똑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가진 것을 모두 내놓은 것이 국민의 가슴에 큰 감동을 줬다. 사실 우리나라에도 기부문화가 정착돼 가고 있지만 아직 국민의 43%가 기부를 해본 경험이 없을 정도로 개인차원의 기부는 아주 적다. 그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기부를 하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점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이는 기부란 부자들만 하는 거창한 행위로 여기는 분위기와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이 모르도록 하라.’는 선행(善行) 비밀주의를 너무 의식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기부는 한술의 밥이 모여 한 그릇이 되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이 거액의 기부를 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자신의 사정에 맞게 기부를 한다면 더욱 의미있다. 또 이것은 사회통합에도 큰 기여를 한다. 이제는 선행 비밀주의보다는 선행 알리기를 통해 주변인도 적극 동참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실제로 온라인에서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노출하며 후원하고 있다. 얼마 전 필자의 회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온라인 기부 사이트에서 지난 1년간 활동한 회원들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실명 후원(63%)이 비실명 후원(37%)보다 2배를 차지할 정도로 훨씬 많다. 이 보고서의 내용 가운데 흥미로운 것은 실명 기부자 남성 네티즌(68%)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또 후원자의 연령대는 36∼45세가 51%로 가장 많았다.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하는 연령층의 남성들이 열심히 온라인 기부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드러내건 드러내고 싶지 않건, 또 큰 금액이건 아니건 언제 어디서나 기부 활동을 할 수 있는 온라인 기부의 유용성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청 앞 광장에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지난 2000년부터 매년 연말에 설치되는 사랑의 온도탑은 그해 목표액의 1%가 모금될 때마다 1도씩 온도가 올라가 목표액이 달성되면 맨 꼭대기인 100도를 가리키게 되는 상징물이다. 추운 겨울이지만 이웃사랑으로 온도를 높여 나가자는 독려용 상징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제 시청앞 광장에만 사랑의 온도계를 만들지 말고 각자의 책상 앞에 사랑의 온도계를 만들어 자신의 목표액을 달성하기 위해 하루에 1도씩 온도를 올리는 것이 어떨까. 이렇게 된다면 머지않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겨울을 맞는 국가가 될 것이다. 성낙양 야후코리아 사장
  • 어둠 속의 희망/리베커 쏘울닛 지음

    1963년 강대국들의 제한적 핵실험 금지조약을 이끌어낸 여성들은 한때 비를 맞으며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하는 본인들의 모습이 바보 같고 부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몇년 뒤 주목받는 반핵문제 활동가가 된 벤저민 스팍 박사는 작은 무리의 여성이 비를 맞으며 시위하는 모습을 보고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고백했다. 한국뿐아니라 세계 진보진영은 현재 암중모색 중이다. 리베커 쏘울닛이 쓴 ‘어둠 속의 희망’(창비 펴냄)은 말그대로 출구를 찾지 못한 변혁 운동가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책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희망이 거창하진 않다. 서두에는 버지니아 울프의 “미래는 어두운데, 내 생각에는 이것이 대체로 미래가 띨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이다.”란 일기를 소개하고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희망을 품는다면 세상이 바뀐다는 것이다. 소련이 사라지고, 인터넷이 출현하고, 정치범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대통령이 되는 세상을 수십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미래뿐아니라 현재마저 어두워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세상은 인간이 꾸는 꿈에 따라 변한다는 것이, 현장운동가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온 저자의 주장이다. 대학 시절부터 환경, 반핵, 인권운동에 열렬히 참여했던 저자는 “우리가 꿈을 실현하려는 희망을 품으면 세상은 우리 상상을 넘어서는 뜻밖의 가능성을 열어준다.”고 말한다. 희망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막연한 낙관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의 희망 찾기 노력은 미국의 진보진영이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성공으로 참담한 쓴맛을 맛본 뒤 나온 것이기에 값지다. 저자는 안일하게 절망하기보다 미래에 희망이란 패를 걸고 도박을 하며 운동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자고 한다. 때문에 1990년대 후반 영국에서 떠들썩했던 ‘거리 되찾기’ 운동을 주목한다. 해학적인 계급 투쟁은 고속도로 건설로 나무가 잘려 나가고 지역사회가 파괴되는 것을 막았다. 고가도로에서 떠들썩한 레이브 음악을 틀고 거리파티를 열었다. 콘크리트에 구멍을 뚫고 나무도 심었다. 권위주의적 위계질서와 정치권력의 쟁취 대신 주체적 자발성과 분방한 창의성을 중시하는 것이 변혁운동의 새로운 양상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후세인의 단죄를 요구하면서도 이라크 전쟁은 반대하듯 이분법을 거부하는 것도 이 시대 운동진영의 새로운 덕목이라고 쏘울닛은 덧붙였다.1만 2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오늘의 눈] 국민눈높이 못맞추는 고객만족행정/조덕현 공공정책부 차장

    지난해와 올해 한때 정부 안팎에서 ‘고객만족행정’이 유행했다. 가장 활발했던 곳이 행정자치부였다. 민원인을 대상으로 고객만족도를 조사했고, 직원들의 전화받는 태도를 조사해 공개도 했다. 고객만족행정팀까지 만들었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 외부의 큰 상을 받았다. 성과를 널리 알리기 위해 정부중앙청사 외벽에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대형 플래카드도 내걸었다. 고객만족행정은 혁신차원에서 대부분의 기관으로 확산됐다. 아울러 개인과 기관평가의 자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이런 요란한(?)기류는 많은 부처에서 광풍처럼 휘몰아치다 요즘은 조용해진 것 같다. 공무원들의 움직임도 예전과 다르다. 정부 부처를 자주 출입하던 한 민원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청사를 방문하면 담당 공무원이 복도까지 나와 인사하며 민원인에게 신경썼으나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고 아쉬워했다. 실제로 최근 종합부동산세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전국이 종합부동산세 문제로 시끌벅적해지면서 국민들 사이에 종합부동산세를 징수해 어디에 쓰는지 관심이 커졌다. 징수한 액수가 얼마이고, 자치단체별로 얼마나 보내져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행자부 해당 부서에 문의를 했더니 한결같이 “공개 못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각 자치단체에 보낸 금액이 공개되면 적게 받은 자치단체에서 문제를 제기해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한참 설득했지만, 관계자의 반응은 냉담했다. 고객마인드는 고사하고 공급자 위주의 사고로 똘똘 무장해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참여정부가 강조해온 ‘홍보마인드’나 ‘국민의 알권리’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국민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기자가 요구하기 전에 브리핑하는 모습이 훨씬 좋았을 것이다. 일반 국민들은 거창한 것에서 정부혁신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실망하고, 또한 만족감을 느낀다. 그게 체감할 수 있는 고객만족행정이 아닐까. 민원인을 만나는 공무원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면 ‘고객만족에 거는 기대’는 접는 것이 좋지 않을까. 조덕현 공공정책부 차장 hyoun@seoul.co.kr
  • [부고]

    ●나명현(금융감독원 공보실 국장)중현(국민은행 여신관리센터 차장)씨 부친상 권상훈(곡성 조리과학고 교장)박길수(전 한국통신 충남본부)윤등섭(여수시청 해양항만정책과)최기종(영암중 교사)씨 빙부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3410-6919 ●김수용(전 연세대 원주의대 학장)수익(코트라 부사장)씨 모친상 이근호(대제통상 대표)한경일(전 중부 〃)전희영(부광약품 감사팀장)씨 빙모상 23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3410-6901 ●이용찬(금융감독원 제재심의실장)씨 부친상 23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5일 오전 8시 (062)250-4407 ●노형식(신영증권 금융상품팀장)성호(사업)씨 부친상 23일 서울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02)2072-2014 ●김근섭(자영업)원섭(〃)한섭(〃)종섭(금융감독원 수석검사역)씨 모친상 22일 경기도 안양 중앙성당 영안실, 발인 24일 오전 7시40분 (031)444-2619 ●손건(방화신경외과 원장)씨 별세 성원(노뜨미디어 이사)씨 부친상 나인국(조은이비인후과 원장)권성대(메트로병원 비뇨기과 과장)박용지(방화정형외과 원장)씨 빙부상 23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2)2650-2741 ●이홍구(삼호레미콘 이사)성구(창업메카 이사)씨 부친상 이은예(육군사관학교 인행처 군무원담당사)씨 시부상 23일 을지병원, 발인 25일 오전 8시 016-326-4643 ●김순호(김순호회계사무소 대표)씨 상배 태진(아이퍼시픽파트너스 이사)예진(거창고 교사)씨 모친상 박형규(박형규한의원 원장)씨 빙모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9시 (02)3010-2291 ●박길선(파이프인파이프통상 상무)씨 부친상 박찬묵(세양ENC 대표)씨 빙부상 2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3010-2263 ●황해준(사업)현준(LG전자 CS그룹 차장)씨 모친상 권석광(현대증권 자양동지점 대리)씨 빙모상 23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927-4404
  • [공연리뷰] 서푼짜리 오페라

    [공연리뷰] 서푼짜리 오페라

    “어, 브레히트도 재밌네.” 올해 서거 50주기를 맞은 독일 극작가 베를톨트 브레히트는 현대 유럽연극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다. 하지만 일반 관객에겐 줄곧 난해하고 지루하다는 오해(?)를 받아왔다.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중인 음악극 ‘서푼짜리 오페라’는 서사극이나 소외효과 같은 거창한 이론에 주눅든 관객의 어깨를 단번에 펴게 하는 작품이다. 브레히트의 신랄한 사회풍자와 쿠르드 바일의 흥겨운 음악이 절묘하게 맞물려 풍성한 연극적 재미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영국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1728년)를 토대로 19세기 영국 런던 뒷골목에서 벌어지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걸인들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악덕 사업가, 칼잡이 조폭 두목, 뇌물에 눈먼 경찰 등 과장되게 희화화시킨 인물들이 등장해 한바탕 소동극을 벌인다. 브레히트가 창단한 독일 베를린앙상블 출신의 연출가 홀거 테슈케는 원작의 시공간적 배경을 현대의 아시아 도시로 옮겨놓았다. 빈민가 다리 밑을 형상화한 세트에 서울 도심 고층건물과 고가도로를 배경영상으로 활용한 무대는 이질적인 듯하면서 묘한 조화를 이뤄낸다. 귀족들의 오페라에 반기를 들고 대중적인 오페라를 만들고자 했던 바일의 음악은 한정림의 편곡을 거치며 한층 흥겹고 유쾌한 리듬으로 변모해 관객의 귀를 사로잡는다. 뮤지컬에 가까울 정도로 음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연극배우들이 부르는 아마추어적인 노래가 오히려 전체적인 극의 분위기에 더 잘 어울렸다. 오디션에서 선발된 16명의 배우들은 근래 보기 드물게 잘 짜인 앙상블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정형화된 몸짓과 말투로 칼잡이 두목 매키역을 훌륭하게 소화해 낸 지현준과 시종일관 대단한 에너지를 발휘한 폴리역의 김태희가 돋보였다.12월3일까지.(02)580-13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20&30] 이태백 끝 또다른 절규 시작

    [20&30] 이태백 끝 또다른 절규 시작

    고시(考試)가 따로 없는 시대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든 학교 나와 직장을 잡기만 한다면 그 자체로 옛날 장원급제라도 한 듯한 축하와 찬사를 받는다. 거기다 한참 나이 먹은 뒤까지 안정적으로 몸 담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남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원하는 일자리를 잡은 2030, 그들이 전하는 입사 전후의 얘기를 들어보자. ■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여전… 인생 로드맵 스스로 짜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지원서를 쓰고, 왜 떨어졌는지조차 알 수 없어 답답했었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영어시험 토익 900점대, 스페인어 모국어 수준, 대안학교 어린이 경제교육 강의…. 완벽해 보이는 경쟁력의 소유자 최지희(여·24)씨에게도 대기업 입사가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여러 차례 탈락의 쓴 맛을 본 끝에 결국 취업문을 열 수 있었던 것은 평소 맺었던 ‘지독한 인연’ 때문이었다. “KTF와 2000년 여름 고객으로 처음 만나,2004년 소비자 모니터 개념의 ‘모바일 퓨처리스트’로 활동하고,2005년 인턴으로 또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안에서 KTF가 어떤 일터인지,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곳인지 배웠던 경험은 막상 취업이 닥쳤을 때 이 회사, 저 회사를 뒤져 내미는 평범한 정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었죠.” 그는 “평소 ‘좋은 기업’을 선정해 꾸준히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보는 게 좋은 전략”이라면서 “요즘 기업들은 20대 젊은이들과 다방면으로 끊임 없이 소통하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신입사원 채용전형에 면접 진행요원으로 나간 최씨는 ‘구직자’일 때 보지 못했던 점이 눈에 들어왔다고 한다. 지나치게 튀려 하기보다는 더불어 함께 할 때 빛이 나는 지원자들이 눈에 띈다는 것.“면접에서 ‘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개성 강한 요즘 젊은이들은 튀는 부분은 대개 하나씩 갖고 있게 마련이죠. 혼자서 지나치게 튀려는 사람보다 면접장 밖에서 자기 조원들을 챙기거나, 조원들의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먼저 말을 건네는 사람들을 눈여겨 보게 되더라고요.” 구직자들이 범하기 쉬운 또 하나의 오류는 원하는 회사에 들어와도 사회 생활에 대한 로드맵이 자동적으로 그려질 줄 안다는 것이라고 최씨는 덧붙였다. 그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취업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회사는 가야할 길까지 정해 주지는 않습니다. 내년부터는 저의 소속인 인재교육 분야에서 활동하는 선배님들을 다양하게 만나 제가 나아가야 할 길을 좀 더 진지하게 궁리해 볼 계획입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눈앞의 취직턱보다 적성궁합 우선 고려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누구나 선생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선 ‘행복한 선생님’이 될 수는 없겠죠.” 교사가 되려는 사람들에게는 당장 눈 앞에 가로놓인 ‘임용시험’의 벽은 까마득히 높아 보인다. 비교적 취직이 잘 되는 전자공학을 포기하고 대학에 다시 들어가 선생님의 꿈을 이룬 박성섭(30)씨는 선생님으로서 행복을 결정지은 요인은 적성이라고 강조한다. “군대에서 야학 선생님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제대하자마자 야학에서 아주머니들을 가르쳤는데 ‘선생님처럼 잘 가르치는 분 처음 봤다.’는 말을 듣고 이거다 싶었죠.” 적성에 맞는 길을 찾은 박씨는 앞뒤 재지 않고 달려 들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다시 봐 같은 학교 물리교육과로 재입학했다.3학년 때 결혼하고,4학년 때 아빠가 된 뒤 하루 빨리 교사가 돼야겠다는 절실함이 더욱 강해졌다. 박씨는 같은 과 11명 중에서 6등으로 졸업했을 만큼 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과에서 1등을 해도 붙기 어렵다는 서울지역 중등 임용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합격의 기쁨보다 더욱 컸던 것은 이제 드디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됐다는 성취감이었다. 하루 중 가장 행복한 때가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농구하는 시간이라는 박씨는 “놀면서 돈 버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수업에 들어가기 전 선생님들은 딱 두 부류로 갈립니다.‘어이구, 또 수업이야.’라면서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즐거운 표정을 짓는 분들이 있죠. 임용시험은 적성을 테스트하지 않지만 정작 교사로 생활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인 것 같아요.” 박씨는 “공부는 오히려 잘못하던 사람이 오히려 선생님을 더 잘 할 것 같다.”면서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별로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모른다고 하면 ‘나도 몰랐다.’면서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그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서재희기자 s123@seoul.co.kr ■ 사시합격=부와 명예? 새로운 도전 기회일 뿐 이준석(31)씨는 법무법인 광장의 새내기 변호사다.2003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사법연수원을 거쳐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1년쯤 됐다. 갓 변호사 세계에 뛰어든 그에게 이 직업은 ‘위기이자 기회’로 보인다.“사법시험에 합격해도 예전처럼 부와 권력이 저절로 따라오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위기이고, 개인이 좀 더 노력하면 과거보다 더 큰 부와 권력,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기회라 할 수 있죠.” 2000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이 변호사는 부와 명예가 보장된 의사의 길을 버리고 사법시험 도전을 결심했다. 인생의 큰 방향 전환에 대해 뭔가 거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지만 그는 “적성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6년 동안 누군가 시켜서 어려운 공부를 했지만 적성이 맞지 않아 끊임 없이 방황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법시험 공부를 시작한 3년 동안은 단 한 차례의 흔들림이나 망설임도 없었다. 그는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한번쯤 법과 자신의 적성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사법시험 합격 1000명 시대에 접어들면서 법조인의 희소가치가 많이 떨어졌어요. 예전처럼 법조인이 무조건 존경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에서라도 자신이 법률과 얼마나 궁합이 맞는지 반드시 따져봐야 합니다.”그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 자신이 가진 법률적 지식을 활용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굳게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아직도 변호사들에게는 큰 힘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도 변호사 배지를 달기 전에는 변호사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잘 몰랐다고 한다. 그저 서민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최상급 기득권층으로만 어렴풋이 인식해 왔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당연히 변호사에 대해서도 ‘사법시험=부와 명예’라는 공식을 막연하게 떠올렸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주변에서 퇴출되는 변호사들이 많아지면서, 끊임 없는 자기계발과 자기혁신 없이는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도태된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지켜봤다. “사법시험 합격은 절대 결승점이 아닙니다. 자기와 사회를 향한 새로운 도전의 발판일 뿐입니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톱니바퀴 같은 공무원 생활 자기계발로 극복 “공무원이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조각일 뿐이란 생각이 들면 실망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한 조각이 없으면 톱니가 돌아가지 않게 되죠.” 지난해 100대1의 경쟁률을 훌쩍 넘은 서울시 지방공무원(9급) 시험에 합격해 현재 용산구청에서 근무하고 있는 최지영(28·여)씨는 ‘톱니론(論)’이 공무원 생활의 핵심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만 보면 초라해지지만 전체로 생각하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겠지만 처음엔 단순 반복적인 일이 전부입니다. 공무원은 그런 과정이 더 길고요. 그런데 시험에 붙기 전 공무원에 대한 기대치가 워낙 높아서인지 그런 일들이 주어지면 실망하고 곧잘 회의에 빠지게 됩니다.” 입사 초기 이런 슬럼프를 겪은 최씨는 주변의 유능한 선배들을 보면서 어려움을 이겨냈다고 한다. 물론 ‘복지부동’이나 ‘철밥통’이란 별명이 어울릴만한 공무원도 일부 있지만, 대다수 선배 공무원들은 자기 계발에 적지 않은 노력을 하고 있다. “‘세상에 멋있는 직업은 없다. 다만 그 일을 멋있게 만드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문구가 공무원에게 딱 맞는 것 같아요. 공무원의 자기계발은 곧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직결 되잖아요. 자신을 위한 노력이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 된다는 점을 잘 활용하면 멋진 공무원이 될 수 있겠죠.” 지금 이렇게 생각하는 최씨도 사실 처음엔 공무원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에 도전하게 된 것은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했다고 솔직히 말한다.“한번쯤은 ‘청렴’과 ‘봉사’를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해요.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잣대는 가혹할 정도로 엄격하거든요.”최씨는 요즘처럼 자기 주장이 뚜렷하고 다양한 욕구를 쏟아내는 민원인들을 상대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시험 공부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이런 자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새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배우로 전향(轉向)한 프로레슬러

    배우로 전향(轉向)한 프로레슬러

    배우되려고 체중을 15㎏이나 줄였단다. 「프로·레슬링」 64연도 「라이트·헤비」급 한국 「챔피언」이었던 홍덕명(洪德明·27·「링·네임」은 유도탄). 예명을 나신일(羅信一)이라고 한 이 신인배우는 85㎏의 몸무게를 70㎏으로 「날씬」하게 줄이는데 성공 했다지만 아직은 그렇게 「날씬」하지만은 않다. 젖가슴이 처녀의 그것보다 탐스럽다. 손발을 움직일 때마다 주먹같은 근육덩이가 용틀임을 했다. 고등학교(大東商高) 때부터 육체미(肉體美) 선수로 뽑혔고 66연도에는 「미스터·중앙대학(中央大學)」이었다니까 그의 남성미(男性美)는 새삼 소개할 필요도 없겠다. 온 몸에서 힘이 터져나올 것같은 억센 육체미,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느끼게 하는 몸매다. 그래도 대학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운동이라면 「레슬링」, 역도, 미식축구, 「스케이팅」, 수영등 만능선수지만 『마음은 항상 연기생활에』 있었단다. 권투도 개인지도를 받았지만 반쯤은 연기생활을 위한 수련이었다고 말하고있다. 나신일의 이력을 들춰보면 이 말도 어느정도 수긍이 간다. 그는 국민학교 3학년 때 KBS 어린이극회에 들어간 것을 깃점으로 10년 가까이 연기생활과 관련을 맺어왔다. 중대(中大) 연극「서클」에서는 10여개의 연극에 출연했고 『맥베드』에서는 주역을 맡아 국립극장 무대에 섰다. 68년 12월엔 극단 「가교(架橋)」의 한 「멤버」로 「새뮈얼·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YMCA강당에서 한국 처음으로 공연한 관록도 있다. 어느틈에 운동과 연극을 겸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에 나신일은 『연기는 공부였고 운동은 취미 겸 부업이었다』고 답변했다. 자신을 직업적인 「스포츠맨」으로 생각하기는 싫다고 덧붙였다. 억센 체구에 비해 「마스크」가 풍기는 인상은 상당히 여성적이다. 얼굴만으로는 우락부락한 운동선수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데가 있다. 「유도탄」이란 「링·네임」을 가지고 관객에게 보여준 「스피디」한 파괴력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얼굴만으로는 알 수 없다. 그가 주연하게 된 영화는 김수용(金洙容)감독의 「홈·드라머」 『남자(男子)는 괴로와』란 작품이다. 남정임(南貞姙)의 남편역인데 처가살이 하는 남자의 괴로운 일면을 그리게 된다. 제작사는 남정임을 「데뷔」시킨 연방(聯邦)영화사. 영화사가 다시 김수용감독을 기용하여 남정임 상대역의 나신일을 뽑았다는 건 우연 이상의 연관성이 있다. 연방(聯邦)의 대표 주동진(朱東振)씨는 『남정임급의 남자「스타」를 꼭 만들어 놓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여자 주연급은 그런대로 몇사람 있지만 남자(男子)신인은 성장이 어려운 영화풍토 속에서 나신일에게 거는 기대는 자못 큰 것 같다. 영화기획자로 손꼽히는 최춘지씨(崔春芝·연방전무)는 나신일을 남정임·김수용과 묶어놓은 이유도 이런데 있다고 귀띔했다. 더욱 거창한 것은 나신일의 영화계 「데뷔」이면이다. 중앙대(中央大)총장 임영신(任永信)씨, 중앙대 연극영화과 주임교수 양광남(楊廣南)씨, 극작가 이근삼(李根三)씨 등이 나신일의 배후에서 그를 돕고 있다. 공개경쟁을 거치지 않고 직접 「픽·업」된 이유도 이들 세 사람의 추천을 그대로 받아들인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3월6일 『남자는 괴로와』의 촬영을 시작한 김수용감독은 『신인답지않게 연기를 알고 있다. 기초가 돼있으니까 「톱·스타」되는 건 시간문제』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땅에서 태어나 평북(平北) 선천(宣川)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국민학교 때부터 서울서 성장. 아버지는 6·25전 연극에 관계했던 홍정양(洪定陽)씨.3男6女의 맏이인데 『결혼은 「톱·스타」가 된 뒤에나 생각하겠다』고. [선데이서울 70년 3월 22일호 제3권 12호 통권 제 77호]
  • 한국증권금융 사장 이두형씨

    한국증권금융은 10일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사장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이두형 열린우리당 수석 전문위원을 새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출했다.이 사장은 경남 거창 출신으로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22회)에 합격한 뒤 재무부를 거쳐 1998년부터 금융감독위원회에서 근무해 왔다.
  •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박성중 서초구청장

    [우리구 구청장 궁금하시죠] 박성중 서초구청장

    “꿈이 있어야 미래가 있지 않겠습니까.” 취임 5개월째에 접어드는 박성중 서초구청장은 서초구의 비전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물 안 개구리식 사고를 거부했다. 더이상 국내에서 경쟁하지 않겠다고 했다. 앞으로는 세계 유수 도시와 경쟁하겠다는 포부다. 박 구청장이 그리는 서초구의 미래는 ‘세계 초일류 도시’다. ●‘고객행정’의 감동 “우선 고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요.” 박 구청장은 ‘고객행정’을 강조했다. 국제 도시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이 바로 고객 위주의 행정이었다는 그는 구청장이 되자 행정 쇄신에 주력하고 있다. 공급자 위주였던 행정 서비스를 고객 중심으로 바꾸는 작업이다. 대표적인 일이 바로 ‘OK민원센터’다. 요즘은 구청을 여러 번 방문하지 않고 한번에 민원을 해결하는 원스톱민원센터가 대세지만, 현재 준비 중인 OK센터는 차원이 다르다. 박 구청장은 “지금까지는 민원인이 공무원을 찾아 다녔다면,OK센터에서는 공무원이 민원인을 찾아 다니게 된다.”며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민원이 접수되면 관련 부서의 공무원을 모두 불러내 한자리에서 처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화민원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청에 전화하면 이곳저곳으로 전화를 돌려 같은 말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라며 “앞으로는 처음 전화를 받은 직원이 담당자를 찾아 담당자가 민원인에게 연락하도록 하겠다.”고 했다.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인 셈이다. ●‘경영 행정’의 효율성 박 구청장은 또 “이제는 행정에도 경영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행정 조직의 슬림화를 추진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동사무소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지만 유비쿼터스 시대에선 모든 행정이 무인시스템으로 전환될 것이다. 지금부터 조정을 해야 한다.”고 했다. 동사무소 통폐합을 추진하는 이유다. 그는 또 허투루 예산이 새나가는 ‘돈 먹는 하마’들을 색출해 비용을 절감하는 작업에도 착수했다고 했다. 현재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문화사업에도 경영 마인드가 적용됐다. 그는 “관내에 예술의전당이 있지만 부족한 점이 있어 뮤지컬이나 B보이 전용극장 등을 만들어 서초를 신한류의 중심지로 키우겠다.”고 덧붙였다. ●‘세계행정’의 중심 서초구의 행정목표가 세계행정인 만큼 도시계획도 거창하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첨단 R&D센터를 유치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면동에는 IT,BT 등 최첨단 연구단지를 개발하고, 양재·내곡지역은 바이오 화훼단지로 조성할 계획이다. 또 서초구 전체를 문화사업의 메카로 육성하기 위해 관련 단체와 협의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서초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긴 하지만 먹고 자는 소비중심의 도시라는 한계가 있다.”면서 “10년,20년 후를 내다보기 위해서는 미래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시민의식의 성숙을 강조했다. 박 구청장은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봤는데 선진국과 그렇지 못한 나라의 극명한 차이는 바로 자원봉사 수준에서 드러난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서초구를 진정한 세계 도시로 키우기 위해 여론지도층을 중심으로 자원봉사를 확대하는 등 모든 면에서 일류 도시로서의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박 구청장은 “서초로 이사 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글 강혜승기자 1fineday@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출생 1958 경남 남해 ▲학력 서울대 행정학 석사, 성균관대 도시행정학 박사 ▲약력 행시 23회, 서울시 행정과장·교통기획과장, 대통령비서실 민정행정비서실 행정관, 서울시 공보관·도쿄사무소장·시정기획관, 서초구 부구청장 ▲가족 김미화씨와 2녀 ▲종교 없음 ▲주량 소주 1병 ▲기호음식 모든 음식 ▲좌우명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선행을 하면 반드시 복이 오고 악을 행하면 재앙이 돌아오는 것이 하늘의 법이다) ▲애창곡 허공
  • 보고펀드 ‘BC카드 인수’ 무산

    보고펀드 ‘BC카드 인수’ 무산

    ‘한국형 론스타’를 꿈꾸던 보고펀드의 BC카드 인수가 무산됐다. 이에 따라 외국자본에 대항하는 ‘토종펀드’를 육성한다는 거창한 구호도 물거품이 됐다.BC카드 인수는 보고펀드가 경쟁력 있는 대형 펀드로 클 수 있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등 비씨카드의 주요 출자 은행들은 6일 “BC카드를 보고펀드에 매각하는 것을 포기했다.”면서 “다른 외국계 펀드들이 인수 의사를 밝히고 있지만 전혀 팔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지분 매각 MOU기간 연장 않기로 출자 은행 고위 관계자는 “구속됐던 보고펀드의 변양호 대표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보고펀드에 출자하기로 했던 출자약정금까지 ‘특혜 의혹’을 받는 마당에 더 이상 협상을 진행시킬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이와 관련,BC카드 지분을 가장 많이 보유한 우리은행(27.65%)은 지난달 보고펀드와의 주식 양수도 계약을 위한 업무협약(MOU)의 기간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비씨카드는 1982년 5개 시중은행이 카드사업 진출에 따른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동 출자해 설립됐으며, 현재는 11개 은행이 99%의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비씨카드는 지분 분포와 관계없이 모든 출자 은행들에 카드발급, 대금결제, 가맹점 모집 및 관리, 국제카드 업무 등을 대행해 준다. 보고펀드는 애초 주당 6만원 선에서 비씨카드를 인수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보고펀드의 책임자인 변 대표가 구속되고, 펀드 출자 약정액에 대한 특혜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수 가능성은 점차 희박해졌다. ●호주계은행 매입 제의도 거절 이 과정에서 막대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호주의 매쿼리·오퍼튜니티즈와 주로 외국계 자본으로 구성된 MBK파트너스가 “6만원보다 훨씬 비싼 값으로 인수할 의향이 있다.”며 출자 은행들에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출자 은행들은 “비싼 값에 팔면 당장은 수익에 도움이 되나 신용카드 영업을 위한 제반 시스템을 다시 구축해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BC카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 결국 처음부터 돈만 보고 매각을 결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변 전 대표가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출신이고,BC카드 사장도 관례적으로 재경부 출신이 차지해 왔다.”면서 “출자 은행들이 보고펀드로의 매각을 흔쾌히 결정한 것은 보고펀드를 필두로 토종펀드를 키우려는 ‘윗선(재경부)’의 의중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은행 스스로의 판단에 의한 매각 결정이 아니었던 만큼 보고펀드가 아니라면 다른 투자자에게 매각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금감원·검찰 지나친 간섭 못마땅” 보고펀드의 비씨카드 인수 무산으로 토종펀드를 활성화시켜 국내 금융회사들의 투자은행(IB) 역량을 강화하려던 정부의 의지도 일단 꺾이게 됐다. 국내 사모펀드(PEF)가 닻을 올린 지 2년이 됐지만 보고펀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펀드들이 아직 첫 걸음도 못 떼고 있는 실정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PEF의 평균 출자 약정금액은 1800억원에 불과하며, 실제 투자금액은 평균 100억원도 안 된다. 투자 내용도 기업 가치 제고 및 인수·합병(M&A)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전략적 투자가 아닌, 전략적 투자의 부족한 자금을 메워주는 재무적 투자다. 국내 PEF 관계자는 “토종 사모펀드들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경험과 노하우 부족도 원인이지만 외부의 지나친 간섭도 한몫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감사원과 검찰이 뚜렷한 혐의가 없어도 무조건 불러 조사하고, 금감원은 사사건건 통제하려고 한다.”면서 “국내 사모펀드 사이에서는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제발 외국계 펀드처럼 간섭만 하지 말아 달라.’는 하소연도 들린다.”고 강조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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