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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 이제라도 코로나 초기상황 투명하게 공개해야...바이든, 견제 이어갈 것”

    “中, 이제라도 코로나 초기상황 투명하게 공개해야...바이든, 견제 이어갈 것”

    지난해 미국과 중국은 수교 이후 사상 최악의 갈등 상황을 빚었다. 무역전쟁으로 시작해 코로나19 책임론, 홍콩, 대만 문제 등 전방위로 충돌해 두 나라가 완전히 갈라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그렇다면 새해 중국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중국 런민대 국제관계학원 마더융(48) 교수를 만났다. 그는 “모든 전문가가 나 같은 생각을 가진 건 아니다. 중국 전체의 의견인 양 일반화하지 말아 달라”는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서울대 정치학과 외국인 1호 박사’이자 ‘중국인 첫 한국 정치학 박사’로 유명한 대표적 지한파 학자다.中 대표적 지한파 마더융 런민대 교수(2)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시작해서 코로나19로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를 한다면. “2020년은 아주 특별했다. 중국인 모두가 감염병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했다. 1000만명에 달하는 후베이성 우한 시민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도시 봉쇄로 70일 넘게 갇혀 있었고 일부는 가족을 잃어 고통 받았다. 간접적인 영향도 상당했다. 무엇보다 경제적 피해가 컸다. 저소득층 실업 문제도 심각해져 사회의 모순이 더욱 도드라졌다. 중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 늘었고 언론이나 인터넷 등에서 의견 충돌도 잦아졌다. 정치 발전과 경제 성장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비대칭 구조’가 심해졌다. 종합적으로 볼 때 ‘낙관적이지 않은 한 해’였다.” -중국은 바이러스 사태를 빠르게 막아냈지만 서구세계를 중심으로 ‘반중정서 확산’이라는 숙제도 안게 됐다. “미국 등 여러 나라의 ‘중국 때리기’는 바이러스 방역 실패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중국에 떠넘기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중국이 억울하게 음해를 당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중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처음 생겨났을 때 당국이 이를 신속히 공개하고 최대한 투명하게 대응했다면 좋았겠지만, 당시 책임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문책에 대한 두려움 탓에 이를 감췄다. 이런 경향은 중국을 맹비난하는 미국에서도 똑같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감염병 확산 초기 대처에 실패해 사태를 키우자 중국에 잘못을 전가했다. 세상에는 자신의 잘못을 남에게 넘기지 않고 책임감있게 대처하려는 이들도 있다. 의사 리원량(1986~2020)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인물은 극히 예외적이고 소수다. -중국이 다수 국가의 반감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바이러스 발생 초기 상황을 국제사회에 공개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전문가에게 조사를 맡겨야 한다. 투명한 공개와 객관적인 대응이 핵심이다. 다만 안타깝게도 중국 정부는 그런 행동을 취하고 있지 않다. 일부 중국 외교관이나 언론 매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 유래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의 태도는 중국의 이미지에 마이너스만 된다. ‘전랑외교’(늑대외교)가 중국의 외교적 위상을 악화시킨다. 자신의 관점을 상대방에게 억지로 주입하려고 해서다.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일 지 여부는 신경쓰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 지지의 기반인) 민중에게 ‘우리는 이렇게 강하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라도 중국 외교 당국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역지사지 입장에서 생각해봐야 한다.” -앞으로 예상되는 중국의 어려움은 무엇이 있을까. “국내적으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국의 압박으로 수출 여건이 악화되고 있지만 중국의 내수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 외국 기업들도 (중국 내 임금 상승 등으로) 인도나 베트남 등으로 빠져 나가고 있다. 실업 문제가 불거지면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대외적으로는 미국과 동맹이나 파트너 국가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유럽연합(EU)과 캐나다, 호주, 한국, 일본 등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 대만 문제도 난관에 부딪혔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대만이 독립을 추구하자 중국 내부에서 “무력을 써서라도 양안(중국과 대만) 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여러 문제가 얽히고 설켜 매우 복잡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 -올해 1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 미중관계는 어떻게 될까. “2017년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중국을 적으로 보는 태도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성격에서 기인한 돌발 행동들은 미국 사회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바이든의 당선으로 튀틀린 현 상황이 어느 정도 정상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트럼프보다 훨씬 더 유연하게 중국 문제를 다룰 것이다. 양국 정부 간 소통이 많아지고 오해도 줄여갈 수 있다고 본다. 경제나 학술 등 정치 이외 분야의 교류도 재개될 것이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트럼프 행정부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지는 못할 것이다. 미국의 달라진 분위기를 바이든 행정부가 거스르기는 힘들다. 중국에 견제 기조를 계속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글 사진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단독] 황운하 ‘김영란법’ 위반 의혹…“3인 밥값, 경제인이 지불”

    [단독] 황운하 ‘김영란법’ 위반 의혹…“3인 밥값, 경제인이 지불”

    더불어민주당 황운하(대전 중구) 의원이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저녁 식사로 ‘식당 5인 이상 모임 금지’ 방역수칙 위반 논란을 낳은데 이어 당시 동석한 경제인이 밥값을 다 지불해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위반 의혹까지 불거지고 있다. 5일 서울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황 의원은 지난달 26일 오후 선거구 내 한 횟집에서 염홍철 전 대전시장, 대전 택시 관련 조합 이사장 A씨 등 3명이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식사가 끝난 뒤 A 이사장이 3명의 밥값으로 모두 16만원 안팎을 지불했다. 서울신문이 이날 황 의원에게 이 부분을 묻자 “세 사람 밥값이 15만 몇천원 나와 A 이사장이 다 냈고, 내 몫으로 A 이사장에게 현금 5만원을 건넸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황 의원은 2018년 3월 ‘청와대 하명수사’ 논란이 불거진 울산지방청장 때도 협력단체 관계자들과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져 물의를 빚자 “내 라운딩 비용을 내려고 계산대에 가니 이미 협력단체 관계자가 계산한 상태였다”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상의 없이 계산한 것을 경고하고 15만원 가량을 현금으로 줬다”고 해명했었다. 황 의원은 A 이사장 등과 가진 저녁 모임과 관련해 이날 “식사 모임에서 한 사람이 카드결제하고 나머지 동석자가 자기 몫을 회비 성격으로 정산하는 건 매우 통상적”이라는 추가 해명을 내놓은 뒤 “아니면 말고식의 의혹 보도는 심대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A 이사장의 해명을 듣기 위해 전화와 문자로 연락을 시도했으나 아직은 답변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시민들은 황 의원의 해명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눈치다. 중구 태평동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주민 김모(50)씨는 “밥값이 수백만원에 이르는 것도 아니고, 지역 유지라는 이들이 합쳐봐야 10만원 좀 넘게 나온 것을 나눠서 내는 게 아직은 일반적인 밥자리 문화는 아닌 것으로 안다”면서 “더구나 어떤 경제인이 ‘갑’인 국회의원한테, 그것도 추접하게 5만원을 밥값으로 받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김씨는 이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애먼 식당만 피해를 본다”고 비난했다. 김영란법은 시행령에 ‘공직자는 사교, 의례 등 목적으로 제공되는 음식물(식사·다과·주류·음료 등) 수수 한도를 3만원으로 책정’하고 이를 위반하면 2~5배 과태료 처분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공무원이 위반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고 기록이 남아 인사상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개별 카드결제 등 근거를 남기기도 한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국회의원도 청탁금지 대상자로 규정한다. ‘식당 5이 이상 모임 금지’ 방역수칙 위반 논란을 불러온 문제의 황 의원 식사 자리는 닷새 뒤인 지난달 31일 A 이사장과 염 전 시장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드러났다. 음성이 나와 오는 9일까지 자가격리 중인 황 의원은 “3인 식사가 맞고 5인 이상 사적 모임이 아니다”며 “옆 테이블에서 식사한 3명 중 한 명이 염 전 시장과 친분이 있고, 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로 일행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방역 수칙을 어기면 식당 주인은 300만원 이하, 이용자는 1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는다 대전 중구청이 현장 조사 후 ▲두 팀의 입장 시간이 다르다 ▲메뉴가 다르고 밥값도 따로 결제했다 ▲테이블이 1m 이상 떨어지고 중간에 칸막이가 있었다 등을 이유로 위반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6명 일행’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코로나 검사 부드럽게 해라” 난동에 검사자 극단적 시도까지…영장 기각

    “코로나 검사 부드럽게 해라” 난동에 검사자 극단적 시도까지…영장 기각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하는 의료진에게 욕설하는 등 난동을 부린 60대 남성이 불구속 상태로 경찰 조사를 받는다. 5일 경찰에 따르면 전날 60대 A씨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연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고 주거지가 일정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A씨는 지난달 16일 오후 1시 50분쯤 서울 강남구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면봉으로 검체 채취를 하던 의료지원 간호사 B(32)씨에게 “부드럽게 하라”며 욕설을 하고 앞에 있던 투명 아크릴 벽을 주먹으로 여러 차례 내리친 혐의(의료법 위반·모욕)를 받는다. 당시 아크릴 벽이 깨지지는 않았다. 의료진과 수검자가 있는 공간을 분리하는 이 벽이 파손되면 코로나19 전파가 일어날 수 있고 선별진료소도 운영이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었다. A씨는 경찰이 출동하자 혐의를 부인하며 도주했다가 곧 붙잡혔다. 그는 우선 2주간 자가격리를 마치고 다시 수사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 중 난데없이 욕설을 들은 간호사 B씨는 큰 충격을 입고 사건 직후 두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B씨는 열흘가량 안정을 취한 뒤 지난달 26일부터 다시 강남구보건소로 출근하고 있다. B씨는 “경찰이 엄정히 수사해 줬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업무가 고된데 사건 이후 60대로 보이는 남성만 봐도 불안해져서 너무 힘들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엄마한테 얘기했으니 자고 가라” 운동부 코치가 제자 성폭행

    “엄마한테 얘기했으니 자고 가라” 운동부 코치가 제자 성폭행

    진로 상담 해준다며 집으로 유인해미성년자 성폭행한 고등학교 코치법원,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선고 제자를 성폭행한 전북의 한 고등학교 운동부 코치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주지법 제12형사부(부장 김유랑)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위계 등 간음) 혐의로 기소된 A(36)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280시간의 사회봉사와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 5년 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A씨는 지난해 2월 17일 밤에 자신의 집에서 제자 B(17)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원 등에 따르면 A씨는 B양에게 “진로 고민에 대해 상담해 주겠다”며 같이 자신의 집에 가자고 제안했다. A씨는 B양을 자신의 집으로 오게 하기 위해 B양의 휴대전화를 가지고 귀가했다. 결국 B양은 A씨의 집에 갔고 진로 고민 상담을 하다 같이 술을 마셨다. 이후 B양이 집에 가려고 하자 A씨는 “어머니에게 연락해두었으니 자고 가라”며 거짓말했다. 이에 속은 B양은 집에서 잠이 들었고 그 틈을 노려 A씨는 B양을 성폭행했다. 당시 A씨는 해당 고등학교 운동부의 감독 부재로 감독 대행업무를 수행하면서 운동부 학생들의 시합 출전, 선수선발 등 선수훈련 전반에 관한 사항과 대학 진학과 관련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였다. 조사결과 A씨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범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는 “운동부 코치인 피고인이 진로 고민 상담을 해주겠다는 핑계로 미성년자인 피해자를 자신의 주거지로 데려가 위력으로 간음한 것은 그 죄질이 상당히 불량한 점, 피해자가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보이는 점은 불리한 정상이다”면서 “다만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을 뉘우치며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는 점, 피해자 측에 3000만원 지급하고 원만히 합의해 피해자 측의 처벌불원서가 수사기관에 제출된 점 등을 종합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이승우 ‘마음의 부력’ 이상문학상 대상

    이승우 ‘마음의 부력’ 이상문학상 대상

    올해 제44회 이상문학상 대상으로 이승우(62) 작가의 소설 ‘마음의 부력’이 선정됐다. 이상문학상 주관사인 문학사상사는 4일 “인물 내면에 대한 정밀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로 단편소설 양식의 전형”이라며 “일상적 소재와 내용임에도 깊은 감동을 불어넣는 이야기와 그 구성의 완결성을 높이 평가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마음의 부력’은 죽은 형과 동생을 착각하는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 온 기독교적 세계관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1981년 ‘한국문학’ 신인상에 ‘에리직톤의 초상’이 당선돼 등단한 이승우 작가는 장편소설 ‘생의 이면’, ‘식물들의 사생활’ 등을 냈다. 우수작으로는 ‘97의 세계’(박형서)와 ‘블랙홀’(윤성희),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장은진), ‘아버지가 되어주오’(천운영), ‘야夜심한 연극반’(한지수)이 뽑혔다. 이상문학상은 지난해 1월 ‘수상작 저작권 3년 양도’ 등을 둘러싼 불공정 계약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상자를 발표하지 못했다. 문학사상사는 논란에 공식 사과하고 계약조건을 수정했다. 대상 상금은 5000만원이고 우수작 재수록료는 각 500만원이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솅커 “앞으로 고향 갈 때 연차 휴가 안 써도 되는 시대 올 것”

    솅커 “앞으로 고향 갈 때 연차 휴가 안 써도 되는 시대 올 것”

    원격근무로 어디서든 업무 병행 가능결과물로만 평가… 직장 내 편견 줄어내성적인 사람들 가치 더 인정받을 것 온라인 교육 활용하면 이직에도 도움“당신의 보스(상사)에게 ‘먼 곳에 사는 부모님을 뵈러 가야 해 며칠 연차 쓰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옵니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금융예측가인 제이슨 솅커 프레스티지이코노믹스 회장은 지난 3일 서울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종식돼도 원격 근무 등이 일상에 자리잡아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등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인류는 결코 ‘2019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솅커가 예상하는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의 자유로운 활용이다. 원격 근무 덕에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씩 들여 힘들게 출퇴근할 필요가 없어진다. 덕분에 회사 동료와의 불필요한 상호작용은 줄고, 가족이나 멀리 사는 지인과의 소통은 활발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원격 근무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덜 구애받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외지에 사는 자녀들이 은퇴 부모의 집에서 몇 주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업무를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격 근무가 대세로 자리잡으면 직장 안에서 마주해야 했던 편견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컨대 내성적인 사람은 과거보다 가치를 더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솅커는 “젠더(성) 때문에 차별당하거나 외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능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며 “직장 상사나 동료들은 내가 어떻게 (업무 성과를 포장해) 말하는지 보고 평가하는 대신 이메일을 통한 결과물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격 근무 활성화는 집을 선택하는 기준도 바꾼다. 직주근접(직장과 집이 가까운 것)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비싸고 답답한 도심 주거지보다 큰 집이나 앞마당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작은 도시나 교외 지역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국 외곽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솅커는 “미국에서는 이미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임대료가 30%나 떨어진 반면 텍사스 오스틴 같은 외곽 지역의 집값은 15~30% 올랐다”며 “지난해부터 미국 전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향후 몇 년 동안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교육의 활성화에도 주목해야 한다. 솅커는 “미래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잘 배우고 받아들이는 게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며 “온라인 교육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기회를 주는데 이를 통해 일하면서도 새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뒤 직장을 얻으면 이후에는 특별히 교육받지 않는 전통적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솅커의 생각이다. 솅커는 직업을 찾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데이터 과학, 경제학 그리고 통계학에 관심을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또 데이터나 정보통신기술(ICT), 헬스케어(건강관리) 영역의 장래가 밝다고 전망했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연구개발의 계획 관리업무)의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솅커는 “업무나 사람 간 관계가 원격화할수록 모든 과정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율해 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며 “이는 상품관리나 프로그램 관리, 일반 프로젝트 관리 등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윤건영 “사면 논란 그만…야당, 李-朴 한통속 현기증 날 지경”(종합)

    윤건영 “사면 논란 그만…야당, 李-朴 한통속 현기증 날 지경”(종합)

    “당은 분명히 입장 정리했다”“사면은 이낙연 소신, 文과 엮지 마라”“대통령 끌어들이는 뻔한 정치적 속셈 비겁”이낙연 “사면은 국민통합 위한 제 충정”양승조 “국민통합 위해 사면? 어불성설”野 “잔인·비겁, 대통령이 직접 밝혀라”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출신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4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론에 대해 “사면 논란은 이제 그만 했으면 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꼽히는 윤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에서 “정치인으로서 가지는 소신은 존중돼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은 당의 입장을 분명히 정리했다”며 당 안팎의 논란 확산을 경계했다. 이어 야당을 향해 “여당 대표의 소신을 대통령과 엮는, ‘개인적 추정’으로 대통령을 끌어들이려는 행태는 정치적 속셈이 너무 뻔한 것 아니냐”면서 “비겁한 행태는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野, 무죄라며 李·朴과 한통속임을 당당히 말하는 모습에 현기증 날 지경” 또 “국민의힘은 먼저 자신들이 방조했던 국정농단과 범죄행위에 대해 반성부터 해야 한다”면서 “무죄를 주장하는데 무슨 반성이냐고 전직 대통령과 한통속임을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에 현기증마저 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윤 의원은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코로나 위기 극복”이라면서 “잠시 신호에 걸려 멈췄지만, ‘방민경’(방역, 민생, 경제)을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전날 민주당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에 반성과 사과라는 조건을 달고 나선 데 대해 비겁하고 잔인한 정치 행태라며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날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을 제기하고 민주당 지도부가 긴급 회의를 통해 ‘당사자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입장을 밝힌 데 대해 “사면을 두고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野 “민주당, 정말 비겁하고 잔인”“조건부 운운, 비겁한 정치인 전형” 주호영 “반성하면 사면? 이낙연 장난치지 마”박대출 “李, 지지율 하락에 승부 걸려다 포기” 주 원내대표는 이날 언론에 “무죄를 주장하고 정치적으로 재판을 받는 사람에게 반성하라는 말이 무슨 말인가. 말이 안 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사면론을 제기한 민주당 이낙연 대표를 향해 “이것 하나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면 당 대표 자격이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배준영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전직 대통령들의 사면 문제를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는 모습이 과연 정상인가”라며 민주당과 이낙연 대표를 성토했다. 특히 옛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계 의원들은 이 대표를 향해 “비겁한 정치인”, “벌써 레임덕” 등 원색적 표현을 동원해 비난을 퍼부었다. 박대출 의원은 “애초 본인의 지지세 하락에 승부수로 이용해보려다가 포기한 것”이라며 “이제 와서 전직 대통령들에게 공을 떠넘기는 것은 정말 비겁하고 잔인한 처사”라고 말했다. 권성동 의원은 “발언 철회도 아니고, 조건부를 운운한 것은 비겁한 정치인의 전형”이라고 했고, 장제원 의원은 “중차대한 사면 문제를 던졌다가 당내 반발에 다시 주워 담는 모습이 가관이다. 벌써 레임덕이 온 것이냐”고 쏘아붙였다.이재오 “반성 조건? 시중 잡범들에나”안철수 “文이 직접 사면 생각 밝혀야”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이날 라디오방송에 출연해 사면에 ‘당사자의 반성’을 조건으로 달자 “시중의 잡범들에게나 하는 얘기”라면서 “(수감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인·강도나 잡범도 아니고, 한 나라의 정권을 담당했던 전직 대통령들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당사자들 입장에선 2년, 3년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면서 “사면에 찬성을 택하느냐, 반대를 택하느냐는 것은 사면권자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지적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이날 사면과 관련해 “대통령이 직접 본인의 생각을 국민 앞에 밝히는 게 정도”라면서 “사면은 대통령의 권한”이라고 밝혔다. 그는 “사면은 선거 목적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국민 통합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낙연 “李-朴 사면 건의는 제 충정”“국민통합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야” 1일에도 “적절한 시기에 文에 건의”“당이 좀더 적극적 역할해야” 앞서 이 대표는 지난 1일 언론에 “적절한 시기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면서 “지지층의 찬반을 떠나서 건의하려고 한다. 국민 통합을 위한 큰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는 문 대통령이 일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로, 이 문제를 적절한 때에 풀어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앞으로 당이 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전날에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 건의와 관련, “국민통합을 이뤄내야 한다는 제 오랜 충정을 말씀드린 것”이라면서 “정치 또한 반목과 대결의 진영정치를 뛰어넘어 국민통합을 이루는 정치로 발전해가야 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일단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려보겠다”며 청와대와 사전 교감에 대해 “그런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표의 이런 발언은 오는 14일 대법원의 재상고심 선고 이후 당사자인 박 전 대통령의 입장과 국민 여론을 보고 문 대통령에게 사면을 건의할지 여부를 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됐다.민주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 반성 중요” “촛불정신 받들어 개혁·통합 추진”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는 전날 긴급 비공개 회동을 열어 이 대표의 사면 건의를 논의했지만 “이 문제는 국민 공감대와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면서 “앞으로 국민과 당원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사실상 이 대표의 사면 논의가 거절됐다. 이어 “최고위는 촛불정신을 받들어 개혁과 통합을 함께 추진한다는 데에 공감했다”고 최인호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전했다. 여야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에 밀려 지지부진한 지지율이 이어지는데 대한 승부수를 던졌으나 자충수라는 해석까지 나왔다. 민주당 내에서는 이 대표의 사면론을 두고 ‘국민통합을 위한 용단’이라는 입장과 ‘문 대통령을 배신한 것’이라는 친문 강경파의 반대론이 맞서고 있다. 4선이자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의원과 정청래 의원은 이 대표의 사면론에 공개적으로 비판적인 입장을 표출했다. 양승조 “국민 통합 위해 사면? 어불성설” 양승조 충남지사는 이날 이낙연 대표의 사면 제안에 반대 입장을 밝혔다. 양 지사는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한다고 국민 통합이 이뤄지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이 결단을 내리시겠지만, 사면을 위해선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통령은 형이 확정되지 않았고, 이 전 대통령은 대법원 선고 이후 여전히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며 반대 이유를 들었다. 이어 “국민 통합을 위해 전직 대통령을 사면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며 “통합을 위해선 차라리 사회 양극화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더 필요하다”고 꼬집었다.이재명, 2017년 3월 6대 과제로“박근혜 국정농단 사면불가 방침 천명” 어제 “촛불, 기득권 벽 모두 무너뜨리란 명령” 최근 차기 대선주자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를 앞서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전날 이 대표가 꺼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에 대해 “나까지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사면권을 지닌 대통령께 부담을 드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명확한 입장 발표를 유보했다. 이 지사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론에 대해 “말씀드리지 않는 것을 양해해달라”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촛불은 불의한 정치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 강고한 기득권의 벽을 모두 무너뜨리라는 명령”이라고 밝혔다. 이 지사는 2017년 3월 ‘선(先) 청산, 후(後) 통합의 원칙 등 촛불혁명 완수를 위한 6대 과제’를 제안하며 “적폐청산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 등 국정농단 세력에 대한 사면불가 방침을 공동 천명하자”고 말했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으로 명칭 변경

    경기남부지방경찰청, 경기남부경찰청으로 명칭 변경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자치경찰제 시행을 앞두고 경기남부경찰청으로 거듭난다. 경기남부경찰청은 4일 1991년 경기지방경찰청으로 개청해 2016년 3월 경기남부와 경기북부로 분리된 후 4년여 만에 다시 이름을 바꾸고 정문 현판을 교체했다. 이번 명칭 변경은 자치경찰제와 국가수사본부 신설 등을 골자로 하는 개정 경찰법 시행에 따라 이뤄졌다. ‘지방’ 명칭 삭제는 국가경찰사무 외에 자치경찰사무까지 수행한다는 취지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오는 7월 1일부터 본격 시행되는 자치경찰제에 앞서 ‘자치경찰부장’을 신설하고 그 아래에 생활안전과,교통과,여성청소년과를 배치했다. 또 ‘자치경찰 실무추진단’을 편성해 ‘경기도 자치경찰 전담TF’와 함께 자치경찰위원회 출범,조례 재·개정 등 준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국가수사본부 출범에 따라 ‘강력범죄수사대’,‘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를 신설했으며 보안·외사 등으로 분산됐던 수사 기능도 수사부로 일원화했다. 경기남부경찰청과 산하 경찰서에는 ‘수사심사관’이 배치돼 사건 종결 및 영장 신청의 적정성 등을 살필 예정이다. ‘112종합상황실’은 ‘112치안종합상황실’로 확대·개편해 사건·사고 대응력을 높일 방침이다. 한편,김원준 경기남부경찰청장은 취임 첫날인 이날 성범죄 전력자 조두순 주거지 인근을 찾아 재범방지를 위한 경찰의 특별방범촬동을 점검했다. 이날 김 청장은 주거지 인근 경찰초소를 찾아 현장 근무자들을 격려하고, CCTV, 비상벨 등 방범시설을 둘러봤다. 김 청장은 “조두순 출소에 따른 주민 치안 불안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고향갈 때 휴가 안 써도 되는 시대 온다”

    “고향갈 때 휴가 안 써도 되는 시대 온다”

    유명 미래학자·금융예측가 제이슨 솅커 인터뷰“코로나19 팬데믹 종식돼도 원격 근무 등 일상화동료와 불필요한 소통 줄고 가족과 시간은 늘어비대면 근무로 성격·성별에 따른 편견도 개선될 듯“미국에서는 뉴욕 집값 떨어지고 교외 집값 올라”“당신의 보스(상사)에게 ‘먼 곳에 사는 부모님 뵈러 가야해서 며칠 연차 쓰겠다’는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옵니다.” 미국의 저명한 미래학자이자 금융예측가인 제이슨 솅커(사진) 프레스티지이코노믹스 회장은 지난 3일 서울신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종식돼도 원격 근무 등이 일상에 자리잡아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등이 크게 변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그는 “인류는 결코 ‘2019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말했다. 솅커가 예상하는 가장 큰 변화는 시간의 자유로운 활용이다. 원격 근무 덕에 자동차나 대중교통을 타고 1시간씩 들여 힘들게 출퇴근할 필요가 없어진다. 덕분에 회사 동료와의 불필요한 상호작용은 줄고, 가족이나 멀리 사는 지인과의 소통은 활발해질 것이라는 얘측이다. 그는 “원격 근무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덜 구애받고 시간을 유동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외지에 사는 자녀들이 은퇴 부모의 집에서 함께 몇 주동안 시간을 보내며 업무를 병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원격 근무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 직장 안에서 마주해야 했던 편견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예컨대 내성적인 사람은 과거보다 가치를 더 인정받을 가능성이 있다. 솅커는 “젠더(성) 때문에 차별당하거나 외향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다른 능력마저 인정받지 못하던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며 “직장 상사나 동료들은 내가 어떻게 (업무 성과를 포장해) 말하는지 보고 평가하는 대신 이메일을 통한 결과물로 평가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원격 근무 활성화는 집을 선택하는 기준도 바꾼다. 직주근접(직장과 집이 가까운 것)을 선호하던 사람들이 비싸고 답답한 도심 주거지보다 큰집이나 앞마당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작은 도시나 교외 지역을 찾는 경향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결국 외각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더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솅커는 “미국에서는 이미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 임대료가 30%나 떨어진 반면 텍사스 오스틴 같은 외곽 지역의 집값은 15~30% 올랐다”며 “지난해부터 미국 전 지역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향후 몇 년 동안 그럴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나라마다 상황이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온라인 교육의 활성화도 주목해야 한다. 솅커는 “미래 사회에서는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을 잘 배우고 받아들이는 게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며 “온라인 교육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배울 기회를 주는데 이를 통해 일하면서도 새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초중고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하고, 졸업 뒤 직장을 얻으면 이후에는 특별히 교육받지 않는 전통적 시스템이 달라질 것이라는 게 솅커의 생각이다. 솅커는 직업을 찾거나 이직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라면 데이터 과학, 경제학 그리고 통계학에 관심을 두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또 데이터나 정보통신기술(ICT)이나 헬스케어(건강 관리) 영역의 장래가 밝다고 전망했다.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연구·개발의 계획 관리업무) 역할이 한층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솅커는 “업무나 사람 간 관계가 원격화할수록 모든 과정이 제대로 처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조율해주는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며 “이는 상품관리나 프로그램 관리, 일반 프로젝트 관리 등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윤연정 기자 yj2gaze@seoul.co.kr
  • 트럼프vs주정부…백신접종 속도 늦자 “네 탓”

    트럼프vs주정부…백신접종 속도 늦자 “네 탓”

    트럼프 “백신 각 주에 빠르게 줬다” 책임 회피앞서 롬니 “백신접종 종합계획 없어” 정부 비난WP “지친 지역병원 대신 중앙정부 직접 나서야”작년 ‘마스크 등 방역물품 책임공방’ 재연 지적도미국 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예상보다 크게 늦어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론이 불거지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도 현장의 혼란을 주 정부 탓으로 돌렸다. 지난해 중순 코로나19 확산으로 산소호흡기·마스크 등 방역물품 공급을 둘러싸고 중앙정부와 주정부 간에 벌어지던 ‘네탓 공방’이 재연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백신은 각 주들이 접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빨리 연방정부에 의해 주들에 전달되고 있다”고 썼다. 접종속도가 늦어지는 것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주 정부의 잘못이라는 취지다. 이날 트윗은 공화당 밋 롬니 상원의원이 지난 1일 성명에서 “연방정부 차원에서 포괄적인 백신 접종 계획이 마련돼 각 주에 모델로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도 없고, 용납할 수도 없다”고 비판한 것에 대한 반박으로 읽힌다. 당시 롬니 의원은 “코로나19 백신의 신속한 개발은 미 국립보건원(NIH)과 식품의약국(FDA), 제약 업계 전문가들의 공”이라며 “하지만 백신의 개발과 달리 백신 접종 그 자체는 뒤처지고 있다”고 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도 롬니 의원과 같은 맥락의 칼럼을 싣고 이날까지 코로나19 백신 1310만개가 각 주에 배포됐고 이중 32.1%(약 420만개)만이 투여됐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리더십 부재 탓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까지 2000만회분 접종이 트럼프 행정부의 목표였던 점을 감안하면 5분의1 정도만 달성한 셈이다. 이어 “이미 코로나19 대응에 지친 병원 의료진 대신 중앙정부가 의학과·간호학과 학생이나 은퇴한 의사·간호사들을 모집하고, 지역 사회에 예방접종 센터를 조성해야 했다”며 “주사를 맞는 건 몇 초지만 접종 서류작업에 긴 시간이 소요되니 이를 능률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플로리다·테네시·텍사스주 등에서 고령자에게 백신을 접종키로 하자 고령층이 길게 줄을 서는 등 혼란이 커지고 있다고 이날 전했다. 가장 먼저 65세 이상 노인에게 백신을 접종키로 한 플로리다주에서는 당국이 선착순 접종을 허용하면서 백신을 맞으려 노숙을 하는 이들도 나오고 있다. 텍사스주 휴스턴시는 전화 예약 센터를 열었다가 25만여통이 폭주해 시스템이 마비됐다. WP는 플로리다주의 한 70대 노인이 184번이나 보건 당국에 전화해 통화에 성공했지만,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고 바로 끊어야 했다고 전했다. 현장의 혼란과 트럼프 대통령의 책임 미루기는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되던 지난해 중순에도 있었다. 주지사들은 당시 지방정부들이 서로 경쟁하며 마스크와 산소호흡기 쟁탈전을 벌이도록 해서는 안 된다며, 국가적인 위기가 닥쳤을 때는 연방정부의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그 때도 ‘각 주에 충분한 양의 방역물품을 공급했다’며 맞섰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반성하면 사면?…MB·朴 측근들 격앙 “시중 잡범이냐”(종합)

    반성하면 사면?…MB·朴 측근들 격앙 “시중 잡범이냐”(종합)

    더불어민주당이 이낙연 대표가 꺼내든 ‘사면론’에 ‘당사자 사과’를 조건으로 내세우자 당사자인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주변에서 격앙된 반응이 쏟아졌다. 사면론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반성을 조건으로 내세운 데 반발하는 입장이 있는가하면 사면론을 제기한 배경에 정치적 노림수가 있다며 반발했다. 특히 사면 결정권을 쥐고 있는 측에서 당사자에게 공을 넘기는 것은 전례가 없는 어불성설이라는 비판도 나오면서 14일 예정된 박 전 대통령의 최종심 선고를 앞두고 여론을 ‘간보기’하는 것 아니냐는 불쾌감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사면 검토 자체에 대해선 환영하면서도 “(반성을 전제로 한 사면 주장은) 시중의 잡범들에게나 하는 얘기”라며 반발했다.그는 “당사자들 입장에선 2년, 3년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며 “대법원 판결은 판결이고, 정치적 보복에 대한 억울함은 (별개)”라고 했다. 그러면서 사면을 단행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며 “(사면을 둘러싸고)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지 않나. 결국 찬성을 택하느냐, 반대를 택하느냐는 것은 사면권자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현 의원도 이날 같은 프로그램에서 전직 대통령들을 ‘노리개’ 취급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사과, 반성 운운은 웃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본인 또한 수감 직전까지도 “진실은 가둘 수 없다”며 재판 결과를 수용하지 않고 있어서 반성이나 사과에 나설 가능성은 더욱 낮아 보인다. 박 전 대통령 측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연합뉴스에 따르면 옛 친박(친박근혜)계 좌장으로 불렸던 서청원 전 의원은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데 이제 와서 당사자들에게 반성문을 쓰라고 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아주 비도덕적인 요구”라며 유감을 표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의원도 “벼랑 끝에 몰린 지지율 반전을 위해 정치화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라며 “정권만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거듭 희생물로 삼는 정치 쇼는 자제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그는 “이낙연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필요할 때 넣었다 뺐다 하는 지갑 속 카드로 보나”라고 되물었다. 다만 두 전직 대통령 모두 고령에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이에 대한 주변의 우려가 깊어 사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도 있는 관측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징역 17년형 확정으로 재수감된 후 현재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박 전 대통령은 내주 선고를 앞두고 구속수감 상태에서 최근 주 2회 통원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조두순 때문에 방범 강화됐지만...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조두순 때문에 방범 강화됐지만...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68) 출소에 맞춰 안산시의 방범망이 촘촘해졌지만 이를 바라보는 주민들은 씁쓸하기만 하다. 성범죄자 1명 때문에 안산시의 이미지가 실추됨은 물론 방범시설 설치및 유지 관리에 적지 않은 혈세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4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안산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안산시내 방범 CCTV는 3869대로 1년간 247대가 늘어났다. 조두순 자택 근처에는 20여대가 더 설치될 예정이다. 또 올해 ‘안산 도시안전망 고도화 민자사업’이 추진돼 전체 방범 CCTV 가운데 3523대가 신형으로 교체되고 3795대가 추가 설치된다. 사업은 민간투자로 455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뒤 10년에 걸쳐 시가 갚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시는 이밖에 1억7000여만원을 들여 조두순의 거주지 반경 1.2㎞ 구간을 안심길로 조성한다. 태양광조명 1670개와 고효율 LED등 200개, 로고젝트 9개 등이 설치된다. 조두순 감시를 위한 인력도 대거 투입됐다. 법무부는 전담 보호관찰관을 지정, 조두순을 24시간 밀착 감독하고 매일 불시점검에 나선다. 주 4회 이상 대면으로 준수사항 이행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안산단원경찰서는 여성청소년과 강력팀 5명 등을 특별대응팀으로 지정했다. 경찰은 또 지난달 11일부터 그의 주거지 인근에 방범초소를 설치하고 순찰차 2대를 동원해 순찰을 이어오고 있다. 방범초소에는 경찰관들이 1조당 8명으로 조를 나눠 교대 근무 중이다. 안산시도 무도실무관급 6명을 추가 채용하고 총 12명의 청원경찰을 24시간 배치했다. 조두순 거주지 인근에 사는 주민 김모(59)씨는 “70세를 바라보는 성범죄자 1명 때문에 안산이 벌집 쑤셔놓은 것 같다”면서 “안산지역 방범망 확충을 위해 많은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조두순이 안산에 거주하지 않아도 이렇게까지 했을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안산시 관계자는 “조두순 때문에 모든 비용이 투입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로 인해 촉발됐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시민 불안감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 차원에서 할수 있는 모든 대책은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산단원경찰서 관계자는 ““지난 한달간 관할 지역에서 발생한 폭력과 절도 등 5대 범죄 신고 건수는 384건으로 전년도 같은기간 646건보다 40.6% 감소했다”면서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격상 등으로 유동인구가 감소한데다 조두순 출소이후 방범망이 확충된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박근혜 복심’ 이정현 “사면론, 朴 희생물 삼는 정치쇼”

    ‘박근혜 복심’ 이정현 “사면론, 朴 희생물 삼는 정치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전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던진 ‘사면론’에 대해 ‘정치 쇼’로 규정했다. 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정현 전 의원은 사면론에 대해 “극한의 처지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을 두고 벼랑 끝에 몰린 지지율 반전을 위해 정치화하는 극악무도한 짓”이라며 “정권만을 위해 박 전 대통령을 거듭 희생물로 삼는 정치 쇼는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낙연 대표와 문재인 대통령은 박 전 대통령 사면을 필요할 때 넣었다 뺐다 하는 지갑 속 카드로 보나”라고 되물었다. 이 전 의원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서도 이낙연 대표를 향해 “(대권주자) 지지율이 역전되니 화합 메시지를 실어 정국 돌파용으로 사면을 던져본 것이라면 유치하다”고 비난했다.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은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사면 건의 자체는 환영하면서도 여권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반성을 조건을 내세운 데 대해 “시중의 잡범들에게나 하는 얘기”라며 “당사자들 입장에선 2년, 3년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고 반발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이재오 “반성해야 사면? 잡범 아니다…감옥 산 것만도 억울”

    이재오 “반성해야 사면? 잡범 아니다…감옥 산 것만도 억울”

    이명박 전 대통령 측근인 이재오 국민의힘 상임고문이 ‘전직 대통령 사면론’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이 ‘당사자의 반성’을 조건으로 내세우자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당사자들 입장에선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재오 고문은 4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이) 살인·강도나 잡범도 아니고, 한 나라의 정권을 담당했던 전직 대통령들 아니냐”며 “(반성을 전제로 한 사면 주장은) 시중의 잡범들에게나 하는 얘기”라고 비난했다. 그는 “당사자들 입장에선 2년, 3년 감옥에서 산 것만 해도 억울한데, 내보내 주려면 곱게 내보내 주는 거지 무슨 소리냐”며 “대법원 판결은 판결이고, 정치적 보복에 대한 억울함은 (별개)”라고 했다. 사면을 단행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며 “(사면을 둘러싸고) 찬성도 있고, 반대도 있지 않나. 결국 찬성을 택하느냐, 반대를 택하느냐는 것은 사면권자의 정치적 결단”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당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에 대해 이재오 고문은 “잘한 결단”이라고 평가하면서도 “(이낙연 대표는)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는 사람”이라며 이낙연 대표가 사면론을 제기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과 교감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경북지역 서원·향교·서당 8곳 보물 지정

    경북도의 서원·향교·서당 8곳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경북도는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 경주향교 명륜당, 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 구미 금오서원 정학당, 구미 금오서원 상현묘 등 8곳이 보물로 지정됐다고 3일 밝혔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 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은 서당 건축물이 보물로 지정된 첫 사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서원과 향교 문화재들은 절제·간결·소박으로 대변되는 유교문화를 건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또 역사성이 잘 담겨 있고, 건축물의 역사도 기록물로 잘 남아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전국의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이다. 서당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둔 사림과 백성이 중심이 돼 마을을 단위로 설립한 사립학교로, 조선 중기 이후 유교적 사회 체계가 강화되면서 전국에 설치됐다. 경주향교는 경북 내 향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나주향교와 함께 우리나라 향교 건물 배치 표본으로 꼽힌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건축물로 벽체 없이 전체가 개방돼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은 퇴계 이황 선생이 말년인 1561년에 강학을 위해 마련한 건축물이다. 설계도인 ‘옥사도자’(屋舍圖子)에는 도산서당 건축에 대한 치수와 이유, 진행 상황 등이 기록돼 있어 서당건축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 병산서원 만대루·경주향교 명륜당 등 8곳 보물 승격

    경북지역 서원·향교·서당 8곳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됐다. 경북도는 상주향교 대성전·동무·서무,경주향교 명륜당,경주향교 동무·서무·신삼문,구미 금오서원 정학당,구미 금오서원 상현묘 등 8곳이 보물로 지정됐다고 3일 밝혔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안동 도산서원 농운정사도 포함됐다. 이 가운데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은 서당 건축물이 보물로 지정된 첫 사례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서원과 향교 문화재들은 절제·간결·소박으로 대변되는 유교문화를 건축적으로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역사성이 잘 담겨 있고 공간구성 위계성이 보이며 건축 이력이 기록물로 잘 남아 있다. 서원은 조선시대 향촌에 근거지를 둔 사림이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설립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전국의 각 지방에 설립된 관립 교육기관이다. 서당은 조선시대 향촌 사회에 생활 근거를 둔 사림과 백성이 중심이 돼 마을을 단위로 설립한 사립학교로,조선 중기 이후 유교적 사회 체계가 강화되면서 전국에 설치됐다. 경주향교는 경북 내 향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나주향교와 함께 우리나라 향교 건물 배치 표본으로 꼽힌다. 안동 병산서원 만대루는 정면 7칸,측면 2칸의 중층 누각 건축물로 벽체 없이 전체가 개방돼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 도산서당은 퇴계 이황 선생이 말년인 1561년에 강학을 위해 마련한 건축물이다.설계도인 ‘옥사도자(屋舍圖子)’에는 도산서당 건축에 대한 치수,이유,진행 상황 등이 기록돼 서당건축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95세에도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제갈삼 전 교수, “좌우명은 ‘잔심’”

    95세에도 피아노 건반 두드리는 제갈삼 전 교수, “좌우명은 ‘잔심’”

    “피아노와 난 하나지, 이것 없으면 어찌 살겠어?” 만 96세로 국내 최고령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제갈삼 전 부산대 교수. BBC 코리아는 지난달 초 부산 자택에서 만난 제갈 교수의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 잡혔지만 피아노 건반을 가르는 손가락은 가볍고 경쾌하기만 했다고 지난달 26일 전했다. 제갈 교수는 일제 강점기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대구사범학교(5년제 중고등 교육기관)에 진학해 14세 때 피아노 특기생으로 뽑혔다. 10대 시절 큰 형이 가난한 이들을 돕기 위해 야학을 세웠는데 누나가 음악 교사로 피아노를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계기가 됐다.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야. 어느날 누님이 하얀 한복을 입고 야학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는 거야. 그게 내 눈에 천사로 보였어, 천사…. 내가 피아노를 하게 된 동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제갈 교수는 사범학교 졸업 후 19세 때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음악교사 생활을 시작했는데 한국전쟁이 터졌다. 청년이면 누구라도 길을 걷다가 강제로 징집되는 시기였다. “책 사려고 부산 거리로 나왔는데, 딱 잡혀버린 거야. 잡혀갈건데 옆에서 어떤 이가 날 보고 ‘선생님!’하고 부르는 거야. 그러니까 경찰관이 ‘뭐? 이분이 너 선생님이야?’한 거지. 그래서 내가 살았다. 그때 교사는 살려줬다고….” 제갈 교수는 부산여중, 경남여고에서 음악교사를 하다가 부산대 음악학과 교수로 1991년 정년 퇴임했다. 그 뒤에도 크고 작은 무대에 서는 등 지금껏 연주를 쉬지 않고 있다. 시력이 좋지 않아 악보는 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의 손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다. “일일이 생각해서 하는 게 아니고 손이 다 외우고 있어. 희한해요, 이게. 젊은 시절 열심히 해놓은 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지난해 9월 부인과 사별하고 기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오후 피아노 연습은 빼먹지 않는다. ‘꾸준히 하는 마음’이 그를 지치지 않게 한다고 했다. “잔심(殘心)이란 말이 있어요. 사전을 찾아보니까 이건 꾸준히 하는 마음을 뜻해요. 내가 피아노를 꾸준히 치는 것도 잔심이야. 이 말이 참 좋지.” 지난해 7월 11일 제갈 교수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최고령 기네스 음악회’를 연 것이다. 1946년 악보 대신 건반을 두드리며 작곡한 독주곡 ‘감각적인 환상곡(판타지아 센티멘탈)’과 베토벤의 피아노소나타 ‘월광’ 전 악장을 연주했다. 제자인 소프라노 김유섬(창원대 교수)이 스승이 동료 문학 교사로 교유했던 고 김춘수 시인의 시에 선율을 붙인 가곡 ‘네가 가던 그날은’과 한하운 시인의 시에 선율을 입힌 ‘보리피리’를 들려줬다. 100세에 단순히 피아노 연주를 한 기록은 있지만, 음악가가 자신의 이름으로 90대에 음악회를 개최한 건 폴란드 출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외에는 없었다. 루빈스타인은 95세이던 1982년 세상을 떠났다. 기네스 등재는 진행 중이다. 그는 “내가 할 수 있으면 해보자, 이런 마음에서 한 것이지 뭔가 도전 의식을 가지고 한 것은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쳤다. “무리해서 뭔가 도전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매일 피아노 치는 이유는 그거예요. 이렇게 기회가 허락하면 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 자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힘이 돼요.” 제갈 교수는 자신의 연주가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젊은이들에게는 다음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주변 상황이 어려워지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지. 그래도 기본은 ‘큰 힘을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라’는 것 말고는 없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시시콜콜] 중국 최고부자 마윈의 수난

    [시시콜콜] 중국 최고부자 마윈의 수난

    중국 최고의 부자로 꼽히는 마윈(馬雲·57) 알리바바 창업자에게 2020년은 악몽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뉴욕증시(NYSE)에 상장된 알리바바의 시가총액은 불과 한달 사이 2574억 달러(약 281조 원)나 증발했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알리바바 주가 역시 지난해 12월 28일 전 거래일 대비 7%가 넘는 큰 폭의 하락을 했다. 마윈 회장 본인의 자산 역시 한때 620억 달러를 기록했으나 포브스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지난 해 연말 574억 달러로, 46억 달러가 줄었다. 알리바바 마윈 전회장의 수난은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上海) 와이탄 금융서밋 기조연설에서 비롯됐다. 이날 서밋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최측근인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의 이강(易綱) 총재 등 중국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실세들이 초청돼 객석에 앉아있었다. 당시 마윈 전회장은 이들의 면전에서 “위대한 혁신가들은 감독(監督)을 두려워 하진 않지만, 뒤떨어진 감독은 무서워한다”며 “기차역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공항을 관리할 수 없듯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미래를 관리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 금융 당국이 안보와 위험 방지 등 이유를 내세워 지나치게 억압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날 이후 마윈 전회장은 고행 길로 접어들었다. 일주일 후인 11월 2일 저녁 중국증권감독위원회는 공식 웹사이트에 “오늘 중국 인민은행과 은행보험감독위원회, 증권감독위원회, 국가외환관리국이 마윈 알리바바 전 회장과 진센둥 앤트그룹 회장, 후샤오밍 앤트그룹 CEO(최고경영자)와 ‘위에탄(約談·면담)’하는 자리를 가졌다”는 공개했다. 이 면담에서 질책을 받은 마윈은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회의 때 언급된 내용을 최대한 실행하겠다. 당국의 관리감독 조치를 잘 따르며, 경제·민생 발전에 기여하는데 노력하겠다”며 일종의 ‘공개 사과문’을 내놓아야했다. 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노기는 풀리지 않았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연말 알리바바의 핀테크 기업 앤트그룹의 세계 최대규모의 기업공개(IPO) 3일 전dp “주요 이슈가 남아있다”며 무기한 연기시켰다. 홍콩ㆍ상하이 증시를 통한 345억 달러(약 39조 1500억원)의 자금유입이 무산된 것이다. 이런 중국 정부의 압박에 굴복한 마윈은 심지어 “그룹 일부를 국유화해도 좋다”고 무릎을 꿇었지만 중국 당국은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마윈에게 ‘쓴 맛’을 보도록 한 인물은 중국 최고 권력자인 시 주석이라는 게 공통된 견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10월 24일의 연설 내용을 보고받은 시 주석이 격노해 직접 IPO 중단을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에 밉보인 결과 마윈의 본거지인 알리바바 그룹마저 흔들리고 있다. 2021년에도 마윈 회장의 수난이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연우의 재밌는 일기쓰기 기계/김상화

    “이번에는 머리에 연두색 리본을 달고 있는 우리 연우가 나와서 읽어 볼래?”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연우는 수업 시간에 곧잘 손을 들어 발표를 했지만 일기를 읽는 시간에는 아직 한 번도 발표를 한 적이 없습니다. 일기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담임 선생님은 일기 검사를 하지는 않습니다. 대신 일주일에 세 번 아이들이 스스로 발표하게 했습니다. 4학년이 되고 나서 연우의 일기를 본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꼬박꼬박 숙제도 잘하는 연우가 일기를 쓰지 않을 리는 없을 텐데 왜 발표를 하지 않는지 궁금했습니다. 선생님은 11월이 되어도 발표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이 연우에게 발표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연우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지만 드디어 그날이 왔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선생님이 연우의 이름을 불렀을 때, 연우는 땋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머뭇거렸습니다. “일기 썼지?” “네, 썼어요.” “그럼 나와서 읽어 봐. 쓴 걸 그대로 읽기만 하면 돼.” 연우는 일기를 쓰긴 했지만 발표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스스로 부끄러운 모습을 꺼내서 보여 주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쭈뼛쭈뼛 앞으로 나가서 겨우 어제의 일기를 읽었습니다. “11월 11일 수요일. 낮에 공부를 좀 하다가 소파에 누워 있었는데, 누워 있으니 잠이 조금씩 왔다. 누워서 이제 무슨 공부가 남았지 하고 생각해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연우의 일기는 딱 두 줄뿐이었습니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계속 읽어.” “다 읽었어요.” 아이들이 ‘와하하하’ 하고 큰 소리로 웃으니 연우는 부끄러웠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 연우는 선생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그거 봐, 그냥 읽기만 하면 된다고 하더니, 그게 아니잖아.’ 선생님은 연우의 원망을 들으셨는지 더 원망스러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연우는 내일 다시 일기 발표를 하도록 하렴.” 이어서 연우의 단짝인 아연이가 손을 들어서 세계 명작 동화 읽는 것처럼 일기를 아주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연우와 집으로 가는 길에 아연이는 일기를 잘 써서 칭찬받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일기에 거짓말도 조금 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 “별로 재미가 없었던 일도 모두 재미있었다고 쓰는 거야.” 아연이는 속삭였습니다. “사실 거짓말은 아니야. 재미없었지만 재미있었다고 상상하는 거야. 맛없을 때도 맛있다고 상상하는 거야.” “쳇, 그게 뭐야. 거짓말이나 마찬가지잖아. 일기를 쓰기 위해서 맛도 없는 걸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우웩, 토할 것 같아.” 연우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보여 주어야 하는 일기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듣는 사람들 생각도 해 주어야 하니까요. 연우는 예쁜 새 일기장을 사서 오늘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에게 전화기를 빌렸습니다. 연우에게도 전화기가 있습니다. 그건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인데 개통을 하지 않아서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만 톡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연우는 아연이의 스마트폰으로 회사에 계신 엄마에게 전화했습니다. “엄마, 나 새 일기장 사게 돈 좀.” “아우, 연우야.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내일 체크카드에 입금해 줄게. 엄마 지금 회의 들어가야 하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알았지?” 연우는 엄마가 정신이 없다는 말을 돈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냥 쓰던 일기장에 계속 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연우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바쁜 엄마를 귀찮게 하지 않기 위해서요. 아연이에게 지고 싶지 않았지만, 일기를 잘 쓰기 위해서 꼭 새 일기장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았습니다. 연우는 오늘이 끝나기 전에 일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을 하루 종일 잊지 않았습니다. 오늘만큼은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랐지만 금방 밤이 되어 버렸습니다. “연우, 이제 티브이 그만 보고 방에 들어가거라.” 아빠가 설거지하다가 말씀하셨습니다. 시계를 보니 벌써 아홉 시 반이었습니다. 이제 오늘이 끝난 걸까요? 오늘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연우가 일기를 써야 할 시간이라는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재미난 일기를 쓰기 위해서 뭔가 사건이 벌어져야 했지만 너무 늦은 시각이어서 이제 새로운 사건을 일으키기란 어려웠습니다. 늦은 밤 학교에 다시 갈 수도 없고 어디로 놀러갈 수도 없었습니다. ‘도둑님이시여, 제발 우리 집에 와 주세요.’ 연우는 이런 나쁜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늘 있었던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일은 내일 일기를 발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막상 이 일을 일기로 쓰려니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연우가 텔레비전을 끄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일기 쓰는 거 잊지 말구.” 아빠가 고무장갑을 벗으며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만 하지 않았어도 괜찮았을 텐데 연우는 그만 방문을 쾅 닫고 말았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말똥말똥 일기장을 쳐다보았습니다. 한숨을 쉬며 양손을 턱에 괴고 생각했습니다. ‘일기를 대신 써 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연필을 너무 세게 쥐는 바람에 연필심이 탁 부러졌는데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전화가 안 되는 스마트폰을 떠올린 것입니다. 전화는 안 되지만 와이파이만 되면 자동완성 기능이 작동됩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기능으로 일기를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오빠가 쓰던 기계이기 때문에 스마트폰은 오빠가 쓰던 말들을 아주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뭔가 흘리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오빠는 스마트폰을 초기화해 놓지 않고 자기가 쓰던 흔적을 남겨 놓았습니다. 친구들과 톡을 할 때에도 연우는 오빠가 쓰던 스마트폰 자동완성 기능의 재미를 톡톡히 보았습니다. 연우는 이 자동완성 기능이 일기를 쓰는 기계가 되어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스마트폰의 메모장을 열어 아무 글자나 썼습니다. ‘신’이라는 글자를 입력하자 이 기계는 자기 마음대로 말을 만들어 내기 시작합니다. “신, 이시여, 제발, 저에게, 힘을, 주세요, 꼭.” 연우는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11월 12일.” 스마트폰은 11월과 12일만 쓰는데도 13, 14 이러면서 자동완성 기능으로 어서 일기를 써 주고 싶어서 안달복달 난리였습니다.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목요일을 쓰려고 ‘모’까지 썼을 때, ‘모기’, ‘목요일’, ‘목소리’라고 자동완성 기능이 세 낱말을 띄워 주었습니다. 그중에서 연우는 ‘목요일’이 맞다는 것을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스마트하긴 하지만…, 많이 똑똑하지는 않아. 그러니까 내가 잘 골라 주어야 해.” 그래도 다른 자동완성 기능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습니다. ‘ㅋ’ 하면 다른 자동완성 기계들은 ‘ㅋㅋㅋㅋ’밖에 모르지만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오빠가 쓰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빠가 쓰던 말들을 많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겨우 날짜와 요일만 썼을 뿐인데도 연우는 가슴이 두근두근했습니다. ‘오늘’이라고 쓰자 ‘오늘은’, ‘오늘도’ 하고 보기를 내 주었습니다.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라고 쓰자 ‘선생님께서’라고 자동완성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내 이름을’이라고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불렀다’와 ‘외쳤다’ 두 가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맞습니다, 선생님은 분명 연우의 이름을 부른 게 아니라 외쳤습니다. 그건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거든요. 하지만 연우의 귀에만 그렇게 들렸을 뿐이라는 걸 연우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우는 이렇게 썼습니다. “선생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천둥소리만큼이나 크게 들렸다.” 연우의 일기쓰기 기계는 가끔 연우와 대화를 하기도 했습니다. 연우가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쓰면 “어떻게 써야 할지 다 알겠다”라고 뜹니다. 연우가 ‘모르겠어’를 지우고 ‘알겠어’라고 쓰면, “나도”라고 대답합니다. 막막함 속에서도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것밖에 못 썼어?’라고 쓰려고 ‘못’을 썼을 때 일기쓰기 기계는 ‘못이 박이도록’, ‘못지않다’, ‘못뽑이집게벌레’, ‘망치’를 보여 주었습니다. ‘선생님이 이것밖에 못 썼냐고 말씀하셨을 때, 못 말고 망치 썼다고 대답할걸 그랬어.’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던’이라고 쓰려고 했는데 연우의 손가락이 조금 굵어서일까 ‘던’ 대신 ‘단’을 치고 말았습니다. ‘그동안 일기를 쓰지 못했단’이라는 말은 바로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라는 말로 바뀌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일이 생겼습니다. 연우는 자동완성 일기쓰기 기계와 함께 오늘의 일기를 썼습니다. 한 낱말을 쓰면 다른 낱말이 이어지고, 그걸 일기에 쓰면 또 다른 말을 알게 되고, 또 새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끝말잇기처럼 계속 말들이 생겨났습니다. 연우는 방 안에서 혼자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안 자니? 엄마가 아이스크림 사왔다. 나와서 아이스크림 먹어라.” “네.” 연우는 대답하고 나서도 발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음 글이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했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까지 쓰고 멈추었습니다. ‘돈’이라는 글자를 쓰자마자 바로 ‘돈 돈 돈’이라고 변했기 때문입니다. ‘돈 돈’ 두 글자를 지우자마자 바로 또 ‘돈’은 자동으로 ‘돈 돈 돈’ 하고 변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이런 문장이 되어 버리고 말았는데 다음 문장은 더 재미있었습니다. “엄마가 돈 돈 돈이 없다고 내일 체크카드에 돈 돈 돈 입금해 준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연우의 일기는 이렇게 되었습니다. 11월 12일 목요일 오늘도 일기를 읽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께서 나를 불렀을 때, 너무 무서워서 천둥소리처럼 크게 내 이름을 외치는 것같이 들렸다. 일기를 다 읽었을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이것밖에 못 썼어?” 나는 못을 쓰지 않았는데, 선생님은 왜 못 썼다고 하시면서 망치처럼 내 마음을 때릴까? 나는 못이 아닌데, 그동안 왜 일기를 쓰지 못했단 말인가! 일기를 쓸 수 있는데도 두 줄밖에 쓰지 않았던 이유는 노력을 안 해서 그랬던 거다. 새 일기장을 사려고 엄마에게 돈 돈 돈을 달라고 했지만, 새 일기장이 아니라도 새 마음으로 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오늘부터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다음 날, 연우는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도 전에 손을 들어 일기 발표를 했습니다. 선생님은 연우에게 못을 쓰지 않았는데 못 썼다고 말해서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하루 만에 일기가 풍년이 들었다며 칭찬도 해 주셨습니다. 친구들에게 박수도 받았습니다. 쉬는 시간에 아연이가 연우에게 뛰어왔습니다. 아연이는 연우에게 귓속말로 물었습니다. “내 말 맞지? 거짓말 아주 조금 섞어서 쓰니까 진짜 잘 써지지?” “무슨 거짓말?” 연우는 잠깐 생각하다가 아연이가 어제 일기에 쓰려고 맛없는 것도 맛있다고 상상한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아연이는 연우가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다는 말이 진짜일 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아, 정말 재밌어졌다는 말? 그거 거짓말 아닌데?” “쥐꼬리만큼도?” “응.” “손톱만큼도?” 아연이가 자꾸 물으니까 연우는 일기 쓰는 일이 정말 재미있어졌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연우가 말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밤에는 맘이 바뀔지도 몰라. 하지만 어제는 분명히 진짜였어.” 연우와 아연이는 둘이 함께 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신춘문예 희곡 당선작] 블랙(ABOUT THE DARK)/우솔미

    등장인물 수용 29세/ 벽을 허무는 집주인 이리 30세/벽을 허무는 집주인의 친구옥형(노파) 88세/벽이 허물어지는 집 아랫집 거주자 때2017년 어느 가을 곳수용의 집 무대 벽이 있다. 벽의 좁은 면이 관객을 향하고 있다. 벽을 가운데 두고 하수로 붉은 조명, 상수로는 햇살 같은 밝은 조명. 붉은 조명은 빌라 주민들이 삼삼오오 돈을 모아 만든 ‘특수학교 설립 반대’ 현수막의 붉은 천에 빛이 투과된 것이다. 무대 뒤쪽, 현관문이 벽과 같은 방향으로 있고 문과 이어지는 계단은 불투명한 박스와 닿는다. 박스는 사람 하나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옥형의 집이다. 옥형은 수용의 집 아래층에 사는 노파이지만, 우리가 만드는 것이 무대이니만큼 상상력을 발휘하여 수용의 집보다 위에 있다고 약속하자. 공업용 마스크를 낀 수용 하수 등장. 낡은 후드와 트레이닝 바지 차림의 수용은 어딘가 무기력해 보이지만 분무기와 김장비닐을 든 손에는 비장함이 은근하게 뿜어져 나온다. 수용, 비닐을 바닥에 깐다. 아주 꼼꼼히. 그사이 이리, 상수 등장. 붉은 천을 허리와 목에 두르고 양손에 커다란 망치를 하나씩 끌고 온다. 옆이 트인 롱스커트 사이로 보이는 다리와 팔뚝의 타투들과 붉은 천, 망치의 조화는 길거리 행위 예술가를 연상시킨다. 이리 (붉은 방을 둘러보며 기운을 한껏 느껴본다) 느껴져. 느껴져, 느껴져! 느낌이 팍! 온다, 와. 수용 … 이리 딱이야, 딱. 아주 먹고 죽기 딱이야. (손을 까딱거리며 허공에서 술잔을 넘긴다) 뭐랄까, 아주 옥보단스러워. 수용 일조권을 침해받는 참혹한 현장이야. 전혀 옥보단스럽지 않아. 이리 하루만 빌려줘라. 네가 우리 집에 가서 자. 수용 얼마 줄 건데. 이리 얘 봐라. 무슨 돈을 달래. 서울 살더니 양아치 다 됐다. 수용 나 원래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이리 서울시장은 뿌듯하겠어. 서울시민이 이렇게 우정보다 돈이 먼저인 양아치라서. 수용 (가만히 생각에 빠져든다) 뿌듯하기보다는 머리 아프지 않을까. 네 말대로 서울에 살면 돈만 밝히는 양아치가 되면, 서울시민은 곧 양아치란 말인데. 이 많은 양아치들을 다 관리하려면 시장은 최고의 양아치가 해야겠네. 이리 하여튼. 또 이상하게 진지해지지. 으, 진지충. 헛소리는 됐고, 하루만 빌려줘. 수용 (마스크를 하나 주며) 네 룸메 코 골아서 싫어. 이리 오랜만에 나비랑 오붓하게 시간 좀 보내 보자. 수용 나비? 이리 말 안 했나. 애인. 뉴 원. 수용 그새? 울고불고할 땐 언제고. 체력도 좋다. 이리 능력이 좋은 거지. 수용, 비닐을 다 깔고 일어서는데 비틀 이리 (곰곰이) 체력도 좋긴 해야겠다. 하여튼, 진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하루만 빌려줘. 어? 알겠지? 수용 너 오늘 우리 집에 왜 왔어? 이리 네가 오라며 새끼야. 수용 내가 왜 오라고 했어? 이리 하, 진짜 장난치나. (가만 돌이켜보다 손에 망치를 보고) 아… 벽…! 수용 그래, 오늘이면 옥보단도 안녕인데. 뭘 자꾸 빌려 달래. 수용, 마스크를 끼고 벽 앞에 선다. 이리 진짜 하게? 수용, 이리에게 마스크 하나를 주고 망치 하나를 받는다. 심호흡. 수용, 벽을 내리친다. 엄청난 진동과 소음 그리고 뿌옇게 이는 먼지. 삭막함이 감돈다. 수용, 다시 벽을 내리치려는데 이리 말린다. 이리 야, 잠깐만. 수용 왜? 이리 아니, 아랫집에서 올라오겠어. 진동이 장난 아닌데? 수용 아랫집만 올라 오냐. 엄청 커다란 직사각형 박스 하나에 벽을 댄 게 다인데. 다 쫓아오겠지. 이리 그냥 저번처럼 해. (몸에 두르고 있던 붉은 천을 흔들며) 두 번 했는데 세 번은 쉽지. 수용 세 번짼 수선비를 청구하겠대. 이리 얼만데, 얼마면 되는데. 누나가 해결해 줄게. 멀쩡한 벽을 허무는 것보다는 수선비가 낫지 않냐. 수용 빛 없이 사는 삶을 네가 알아? 숲세권 남향에 사는 네가 빛이 없어서 사람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기분을 알 리가 없지. 머리랑 마음이 건조해지다 못해 바스러지는 기분이야. 이리 빛이 많아야 바싹바싹 마르지 없는데 왜 말라. 그냥 문을 열어 놓고 살던가. 수용 문이라는 건, 열고 닫으라고 있는 거야. 그게 문의 역할이지. 한 번 열면 언젠간 닫아야 제 역할을 다하는 거라고. 닫히지 않는 문은 문이 아니지. 그럴 바엔 없는 게 나아. 이리 그럼 창문을 만들자. 수용 (벽을 치며) 만들고 있잖아. 엄청 커다란. 창틀도 없고 유리판도 필요 없는 실용적인 창문. 이리 극단적인 놈. 수용 뭐든 확실한 게 좋잖아. 수용, 다시 벽을 허물기 시작 이리 어떻게 세상이 모 아니면 도, 흑 아니면 백으로 굴러가. 너 그거 강박이야. 괜히 바짝바짝 마르는 게 아니라고. 그래도 뭐 마른 장작이 잘 탄다더라. (쿵) 수용 이렇게 살다 죽겠지 뭐. 이리 무모한 놈. (쿵) 수용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나는 자살할 것 같아. 이리 또 데드타임! 웬일로 그냥 넘어가나 했다. 수용 데드타임? 이리 그래, 너 죽는다는 소리 하는 거. 수용 왜 사람들은 이름 짓길 좋아할까. 이리 언젠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며. 수용 엄밀히 말하면 병이긴 하지. 내 죽음의 원인은 내 안에 우울이니까. 있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대. 말이 돼?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세상을 그렇게 살아질 수가 있는 건가. 이리 오늘은 아니지? 수용 뭐가? 이리 데드타임. 수용 오늘은 벽을 허물어야지. 그때, 관리실 방송. 수용과 이리, 방송이 나오는 천장을 가만 본다. 방송 아아, 관리실에서 알려드립니다. 잠시 후 2시부터 특수학교 설립 반대 관련 7차 회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회의 후 시위가 바로 시작되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모든 주민들은 2시, 아니 정정하겠습니다. 1시 50분까지 늦지 않게 관리실로…. 수용 다 저기 가느라 벽이 무너지는지, 빌라가 무너지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신경도 안 써. 그러니까 오늘 끝내야 돼. 수용, 다시 망치질을 시작하고 이리, 소음과 먼지 속에서 분무기로 물을 뿌려 먼지를 잠재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이리, 수용의 얼굴에 물을 뿌린다. 수용 야! 이리 바싹바싹 마른다길래. 그때, 무대에 노파 등장. 노파가 있는 곳은 수용과 이리가 있는 공간과 다른 공간.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나오는 노파는 명절에 자식이 사준 듯한 빳빳한 꽃무늬 재킷에 펑퍼짐한 배바지를 입고 낡은 크로스백을 맨 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무대를 둘러 계단으로 향한다. 이리 (창밖을 보다) 야, 근데 저기에 아랫집 할머니는 없는 것 같다? 수용 네가 아랫집을 알아? 이리 오다가다 몇 번. 그 할머니가 좀 인상적이잖아.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고 해야 되나? 직설적이면서 약간 자기 방어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게 꽤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았겠다 싶지. 괜히 과거를 상상하게 만들잖아. 수용 순수는 무슨. 그냥 괴팍한 할머니야.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척만 하는 딱 옛날 사람. 이리 와우. 노인 혐오야? 수용 무슨 내가 그런 몰상식한 사람이야? 이건 정당한 혐오야. 이리 (웃음이 터진다) 세상에 정당한 혐오도 있어? 수용, 상의를 걷어 올리자 시퍼런 멍이 배에 크게 있다. 이리 그래, 언젠가 너 맞을 것 같더라. 수용 야. 이리 누구야, 누가 이랬어. 남의 집 귀한 자식을…. 왜 맞고 다니냐 너는, 속상하게. 수용 정제되지 않은 순수함을 갖고 계신 분. 이리 할머니한테? 이게 할머니가 만든 멍이라고? 수용 어. 이리 역시 호기심을 자극한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지팡이에 겨우 의지해서 걷는 할머니가… 또 네가 싹수없게 굴었지. 수용 내 싸가지도 가릴 건 가려. 이리 근데 진짜 왜 그런 건데? 수용 이름 석 자 부탁한 대가야. 이리, 한쪽에 놓인 빈 서명지를 들어 본다. 이리 자가인가? 수용 뭐? 이리 아니, 그 정도로 반대하는 거 보면. 강경한 표현이잖아. 수용 강경한 정도가 아니라 말 그대로 폭력적이지. 이리 너무 텅 비었다. 나라도 서명 해줄까? 학교 설립 찬성해. 수용 너는 우리 구민이 아니라서 소용없어. 빌라 주민들의 소란스러운 소리. 장애학교 반대 시위가 시작됐다. 이리 서명이라는 게 굉장히 순수한 방식이야. 동시에 직설적이기도 해. 굉장히 너답다. 수용 내가 순수하고 직설적이라고? 이리 나 이사 올까? 그럼 나도 지역구민 되잖아. 수용 됐어. 이리 나도 해본 말이다 뭐. 수용 불편과 불만을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행동을 해야 해소되는 건 맞지. 그게 옳은 방향이야. 하지만… 그 사람들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지만, 과연 옳은 방향인가 의문을 던질 수는 있잖아. 저 사람들 제대로 가고 있는 걸까. 어떻게 확신하고 있는 거지. 저 확신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건데. 나는 그게 무지라고 생각해. 그사이, 노파 집 앞에 도착해 가방을 뒤지고 깜빡깜빡하는 현관 비밀번호를 적어 놓은 노트를 찾는다. 이옥형이라 커다랗게 적힌 노트를 꺼내는데 노트 사이에서 날이 시퍼런 과도가 뚝! 떨어진다. 떨어진 건 작은 과도지만 운석이 떨어진 듯한 소리와 진동이 무대를 흔든다. 수용과 이리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하고 잠시 사이. 노파가 과도를 주워 넣는 그사이, 무대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노파 천천히 과도를 집어넣고 비밀번호를 확인하곤 집으로 들어간다. 밖에 소리가 무대를 환기하고 이리 (창밖을 보곤) 열정적이네. 그래도 생각해 보면 너무 비난만 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해. (수용의 시선을 느끼고) 야, 레이저 나오겠다. 분명히 말하는데 옹호하는 거 아니야. 그냥 공감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 감정이입을 해보자는 거지. 사실 그렇잖아. 누가 좋아해,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말도 있고. 수용 부동산이 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집값이 떨어진다는 가설은 무지에서 시작된 삐뚤어진 믿음이야. 수용, 망치질을 시작한다. 이리 그래 좋아, 뭐가 됐든. 그 믿음이 아틀라스처럼 세상을 지탱하고 있잖아. 저 자리가 원래 학교 부지란 이유 말고 다른 이유는 뭔데. 학군 빵빵한 동네가 지하철로 네 정거장만 가면 되잖아. 그렇게 멀지도 않아. 공사부지 맞은편은 곱창에 포차, 막걸리 온갖 술집이 줄 서 있더만. 워싱턴 노래방 간판이 애들 하굣길을 밝혀 주겠지. 이 동네보다는 그 동네가 백 번 나아. 안 그래? 수용 …. 이리 기시감 들지 않아? 수용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리 한국전쟁 이후 국가적으로 밀고 있는 꽤 전통적인 방식인데. 그놈의 낙수효과야말로 삐뚤어진 믿음 아니야?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하는 뿌리 깊은 믿음. 네 말대로 무지에서 비롯된 거지. 될 놈만 건지고 나머지는 버리겠다는 걸 그럴듯하게 이름 붙여서 포장을 해요. 항상 그럴듯해 보이는 게 사람 눈 돌아가게 만들잖아. 난 그놈의 낙수효과가 대한민국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해. 수용 가부장제의 근본이라 생각하기도 하고. 이리 야 너. 짜식, 평소에 내 말을 아주 허투루 듣는 건 아니었구나. 수용 그럼. 귀는 문이 아니잖아. 닫히질 않아. 이리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수용 가끔은 닫혔으면 좋겠지만…. 이리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건 중요해. 근데 이 망할 놈의 세상은 밑 빠진 독이라서 어딘가는 새게 되어 있잖아. 수용 왜 날 봐. 계속해. 이리 성장이 제1의 명분이 되는 시대는 흘러가고 있어. 이젠 희생의 이유도 살펴봐야 할 때가 왔다는 거지.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은 있어야 한다는 말이야. 수용 애들만으로는 부족한 거야? 이리 뭐가? 수용 아이들이 배울 곳이 필요하다. 이걸로는 최소한의 납득과 보상으로 부족해? 이리 무엇보다 중요하지 수용 꼭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도 인류애적인 충만함을, 정신적인 보상을 얻을 수도 있어. 안 그래? 이리 …. 수용 왜 아무 말도 안 해? 이리 것도 능력이야. 한 번에 양쪽을. 수용 양쪽을 뭐. 이리 아냐. (쿵) 이리 하여튼 지금은 어떤 이유도 저 사람들한텐 먹히지 않을 수도 있어. (쿵) 이리 (밖을 보며) 한껏 쫄아 있으니까. 나는 저 사람들의 확신이 무지에서 나온 게 아니라 이번에도 버려질 거란 공포에서 나왔다고 봐. (쿵) 수용 시끄럽지? 수용, 음악을 튼다. life is killing - type O negative 수용 소음에는 락이지. 소음은 음악소리에 묻히고 뿌연 먼지 사이로 둘, 망치질. 벽을 타고 온 진동이 노파의 아크릴 박스를 사정없이 흔든다. 노파, 공포에 질린 비명이 락에 묻히고 노파의 사정과는 별개로 망치질을 하는 수용과 이리의 모습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등록금 인상에 반대 시위를 하는 프랑스 청년들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하고 어느 삭막한 공사장의 인부 같아 보이기도 하다. 일순간 음악이 멈추고 노파가 있는 불투명 박스에 조명 노파 아주 발광을 허네! 수용, 노래를 멈춘다. 이리 왜? 수용 뭐라고 하지 않았어? 이리 아니. 수용 (귀를 파며) 아닌가. 이리 살살해, 스윙에 감정이 실렸다. 누구 생각해? 수용 여럿 (쾅) 생각하지. 이리, 분무기로 먼지를 잠재운다. 수용 사람들이 타격감에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 복싱이나 야구공 치는 것처럼. 아무래도 난 때리고 (쾅) 던지고 (쾅) 치고 박으면서 (쾅) 스트레스 푸는 거엔, 적합한 사람이 아닌 것 같아. 수용, 손목을 턴다. 이리 (덥다. 옷을 펄럭) 너도 참, 손목 아프단 말을 장황하게 한다. 수용 (보곤) 옷 빌려줄까? 이리 아니, 됐어. 수용 먼지 엄청 붙었네. 이리 블랙이 적나라하지. 수용 하나 가져다줄게. 이리 아냐, 됐어. 수용 아냐 가져다줄게. 이리 아니 괜찮아. 수용 불편해 보여. 가져다줄게. 이리 진짜 괜찮다고. 수용 나도 진짜 괜찮아. 이리 아니. 괜찮다니까? 수용 왜 화를 내. 이리 화를 낸 게 아니라. 됐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으니까. 크게 얘기 해준 거지. 수용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이리 남자들 종족 특성이야? 왜 노를 못 알아듣지? 강요하지 마. 수용 내가 언제 강요를 했다고 그래. 이리 방금. 수용 그냥 물어본 거잖아. 불편해 보이니까. 이리 필요 없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일곱 번째로 말해줄게. 됐어. 필요 없어. 난 이 옷이 좋아. 불편하든 더러워지든 이미 나랑 한몸이라고. 네가 신경 쓸 거 아니란 거지. 알겠어? 수용 그래. 그럼. 이리, 망치질 이리 넌. 매사에 모든 걸 통제해야 속이 시원해? 왜 그래? (쾅) 이리 무지에서 나온 삐뚤어진 믿음? 웃기네. 야, 이름 짓기 좋아하는 건 나보다 네가 더해. 벽을 마구 치며 쏟아낼 대로 쏟아낸 이리, 숨을 고르고 이내 머쓱해진다. 수용 …. 이리 야. 미안하다. 수용 …. 이리 미안하다고. 수용 어. 이리 된 거지? 수용 …. 이리 미안해. 너도 알잖아. 내가 한 번씩 예민해지는 거. 수용 한 번씩이 아니잖아. 항상 예민해. 이리 항상은 아니지. 수용 맞아. 그리고 네가 알아둬야 할 게 있는데, 나도 너 못지않게 예민해. 난 화장실에 앉아서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 없어. 잘 때도 먹을 때도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서 미쳐버릴 것 같아. 어쩌면 이미 미쳐버린 걸지도 모르지. 차라리 미쳐버렸으면 좋겠다 싶어. 그게 더 확실하잖아. 어중간하게 미쳐 있는 것보단 명백한 환자가 되는 게 낫지. 이리 무슨 그런 말이 있냐. 수용 나는 그렇다고. 정상도 아니고 비정상도 아닌 경계에 서서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은 기분을 네가 알아? 이리 알지. 내가 여자 좋아하는 걸 알았을 때 그랬지. 수용 … 말이 나와서 말인데. 어머니한테 커밍아웃 언제 할 거야? 이리 갑자기 그 말이 왜 나와? 확실한 건 네 인생만,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수용 말이 나올 만하니까 하는 거야. 성 서방 밥은 잘 먹고 다녀? 불쑥불쑥 연락 올 때마다 무시도 못하고 답장도 못하고 얼마나 난감한 줄 알아? 3년이야. 이사 도와준 대가가 이렇게 부담스럽고 죄책감 드는 건 줄 알았음 도와 달라고도 안 했지. 커밍아웃을 하느냐 마느냐는 네 선택이지만 나까지 죄책감 들게 만들지는 말아 주라. 이리 … 말을 하지 그랬냐. 둘 다 입 꾹 다물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수용 나는 그렇다 쳐도 너희 어머니는 아니었을걸. 네가 보기에 내가 무모하고 강박적으로 보이겠지만 내가 볼 때 넌 무책임하게 도망만 다니는 걸로 보여. 시간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 그냥 유예시킬 뿐이지. 편한 선택은 그만할 때도 됐잖아? 이리 내가 편하게 사는 것 같아? 수용 최소한 네 멋대로 사는 걸로는 보여. 이리 진짜 멋대로 사는 게 누군데. 세상이 어떻게 모 아니면 도로 돌아가. 불가능한 걸 바라면서 이게 왜 불가능하지 왜 이렇게 안 되지, 사람들이 왜 서명을 안 해 주지. 하루라도 징징거리는 걸 멈추고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는지 궁금해하긴 해봤어? 아니지. 네가 생각할 때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니까. 안 그래? 그렇게 결론지었잖아. 왜? 그게 쉽고 편하니까. 수용 그래! 맞아! 왜냐고? 누구나 배울 권리가 있으니까! 이리 정신적 보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 누가 아니래? 수용 아니라잖아! 그러니까 저러지. 수용과 이리 사이에 침묵이 잠시 흐른다. 이리 내 말 듣긴 했니? 수용 내 귀는 문이 아니니까. 이리 칸트도 너보단 융통성 있을 거야. 알지 칸트? 골방에 틀어박혀서 글만 쓰던 외톨이. 제발 사람 좀 만나. 글로 배우지 말고. 그러다가 너도 청혼 승낙만 7년 고민하는 수가 있어. 결혼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 쓰면서. 수용 … 내내 날 그렇게 생각했어? 이리 언제부터 내 생각이 중요했냐. 넌 너 이외의 사람들은 다 멍청하고 덜떨어졌다고 생각하잖아. 수용 내가 언제. 이리 자신을 한 번 돌아봐. 수용 … 그만 가주라. 이리 왜 도와 달라며. 아, 그래서 불렀니? 옛말에 무식한 놈이 힘세다고 이런 일엔 내가 나서야지. 수용 됐어, 가. 네 도움 필요 없어. 이리 정말? 수용 그래. 이리 후회 안 하지? 수용 그래! 정말 진짜로 필요 없어. 이리 그래 그럼! 이리, 돌아갈 채비 하는데 초인종 소리. 수용, 현관으로 가(계단의 문이 아닌 객석을 향해) 손님을 확인하는데 이리 간다 수용, 이리를 잡고 숨을 죽인다. 이리 왜? 문 두드리는 소리 이리 놔. 수용 (속삭이듯) 아랫집. 이리 이런 게 자승자박이란 거다. 이리, 문으로 향하고 수용 어디 가. 이리 가라며. 수용 할머니 가면 가. 이리 벽은 허물면서 저깟 문은 하나 못 여냐. 수용 그게 아니라. 손에 뭐가 있어. 이리 뭐? 수용 몰라. 뾰족하고 날카로운 걸 쥐고 있어. 송곳이나 드라이버 같아. 이리, 현관(객석을 향해)으로 가 보면 커다란 스크린에 할머니의 모습이 뜬다. 모니터로 보이는 노파는 인터폰 렌즈에 왜곡된 모습이다. 괴이하고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리 진짜네…. 수용 잘못하다간 오늘 피 보겠어. 이리 피는 무슨. 수용 말했잖아 전형적인 옛날 사람이라고. 이리 나도 난데 너 너무 고정관념으로 뚤뚤 뭉친 거 아니냐. 그냥 할머니야.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라고. 수용 네가 안 맞아 봐서 그래! 이리 쫄았구만. 수용 … 얼마나 아픈데. 이리, 다시 현관으로 가 동태를 살피곤 이리 안 가시네…. 수용 그냥 없는 척하자. 층간소음에 살인도 난다잖아. 이리 그 난리를 쳤는데 없는 척이 돼? 수용 해보고 말해. 왜 안 해보고 그래? 이리 넌 이상한 데서 긍정적이다? 수용 넌 남 일에만 용기를 내잖아. 이리 그래, 알겠어. 집주인 마음대로 해. 말 그대로 집주인이 주인이니까. 이리, 가방을 대충 던지곤 의자에 털썩 앉는다. 가만 보던 수용은 멀찍이 떨어진 바닥에 앉는다. 이리 왜 바닥에 앉아? 수용 왜. 이리 지금 눈치 주냐. 수용 그건 무슨 피해망상이야. 이리 네가 나중에 또 뭐라고 할까 봐 그러지. 불만 있을 땐 말 안 하고 한참 지나서 말하잖아. 수용 내가 쌓아 두는 게 아니라 네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거지. 이리 실수가 실순지 어떻게 알아, 말을 안 하는데. 수용 어떻게 몰라? 이리 넌 아니? 수용 당연하지. 내가 네 입장이었으면. 이리 그런 가정은 하지 말자. 넌 내가 아니잖아. 나도 네가 아니고. 수용 상식에 대한 얘기야. 이리 이젠 내가 상식도 없다? 수용 (난감하지만 거짓말을 할 순 없지) 가끔. 이리 너한테 난 대체 뭐냐? 수용 친구. 이리 원래 친구한테 이래? 아님 나한테만 이래? 수용 내가 뭘…. 이리 방금! 수용 조용히 해. 이리 내가 상식이 없다며 아까는 정상 아니라고 하더니 넌 상식도 없고 정상도 아닌 애랑 왜 친구 하냐. 노파 (문 쿵쿵) 안에 없어? 있지? 수용 가끔 그렇다고. 왜 이렇게 발끈해? 나도 가끔은 상식 없이 굴어. 이리 정말 박수를 보낸다. 노파 있네. 문 좀 열어봐, 총각! 이리 저 할머니 말귀 어두운 거 맞아? 별로 크게 말 안 하는데 다 들어. 수용 그래 내가 미안하다. 미안해. 이리 아이고, 엎드려 절 받기다. 수용 그래, 그것도 내가 미안해. 이리 할머니 아니었음 절대 안 했을 말이지.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용, 무릎을 꿇는다. 이리 뭐하냐? 수용 미안. 이리 일어나…! 수용이 일어나지 않자 이리도 같이 무릎 꿇고 이리 뭐 하자는 거야. 수용 네 방식대로 사과하잖아. 이리 이게 무슨 내 방식이야. 수용 날 감정적으로 굴복시키고 싶어 하잖아. 이리 날 그런 쓰레기로 봤어? 수용 내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질 않잖아. 이리 그건 맞는데. 수용 그것 봐. 이리, 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수용의 행동에 머리가 터질 듯하다. 이리 나중에 하자. 제자리걸음이야. 차라리 저쪽을 선택할래. 수용, 이리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이리 뭐해…! 수용 가지 마. 이리 왜 이래, 얘가…! 수용 이대로 나갔다가 무슨 일을 당할 줄 알고! 이리 하지 마. 기분 되게 이상해. 두 사람 잠시 실랑이를 벌인다. 그 순간 노파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춘다. 두 사람 문을 가만 바라보고 노파, 집 안 소리를 듣기 위해 문에 귀를 대 본다. 이리 봐, 조용해졌어. 수용 안 갈 거지? 이리 어! 수용, 이리를 놓아 준다. 이리, 문으로 향하니 수용은 움찔거리고 이리 안 가! 이리, 문에 귀를 대 본다. 수용 (조심스레) 갔어? 이리 (속삭이며) 몰라. 노파 이봐! 이리, 화들짝 놀라 되돌아온다. 수용 거 봐. 이리 오늘 무슨 날이냐. 미치겠네. 벽하고 말하는 것 같아. 수용 나 말하는 거야? 이리 총체적으로 다. 노파, 문틈에 종이 한 장을 끼워 놓고 돌아간다. 수용 내가 벽이면, 나도 이렇게 부숴버릴 거야? 이리 부수는 건 네 아이디어잖아. 귀찮게 뭐 하러 그래. 나였음 그냥 이사 갔어. 수용 … 지금 절교 선언한 거야? 이리 아니. 뭐래 정말. 지금 벽 얘기하던 거 아니었어? 수용 그래, 벽 얘기하고 있었지. 네가 벽이랑 얘기하는 것 같다며. 이리 아니, 내가 말한 벽은 이 벽이고, 나라면 그냥 이사를 갔을 거라고! 네가 말한 벽은 그러니까 너고 네가 벽이라면 나는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그냥 문을 하나 내든가 창문을 하나 뚫든가 어? 뭐가 이렇게 어렵지. 울어? 이리, 적잖이 당황스럽다. (이쯤 노파는 자리를 뜨고) 수용 …. 이리 미안해. 수용 네가 왜 사과하는데? 이리 내가 남자 눈물에 약하잖아.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넌 왜 우는데. 무슨 일 있어? 오늘이 그날은 아니지? 아까 분명히 아니라고 했다? 수용 무슨 날. 이리 데드타임. 수용 아니야. 그냥…. 조기 갱년기 같아. 이리 이제 스물아홉이 웃기네. 수용 아예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니지. 요즘 애들 사춘기 일찍 온다며. 아니면 비타민D 부족 우울증이든가. 모르겠어. 세상에 거대한 벽이 느껴져. 이리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고? 수용 너도 그래? 이리 생리 전 증후군이 딱 그래. 너도 정신적 생리하니? 수용 장난치지 마. (사이) 나는 그냥 햇빛을 보며 살고 싶어.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이리 내가 아까 했던 말은…. 수용 동구에 특수학교 설립이 2012년에 결정됐어. 근데 어떻게 된 줄 알아? 예정대로라면 올해 3월에 개교를 해야 했거든? 근데 아직 벽돌 한 장 못 얹었어. 여기는 그렇게 되면 안 되는데…. 희망이 안 보여…. 이리 희용소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지. 수용 희용소? 이리 희망, 용기, 소망. 희용소. 수용 (한숨) 오늘은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 이리 장난치는 거 아냐. (잠시 생각을 고른다) 사랑이 눈에 보이니? 느끼는 거지. 사람을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사소해. 아주 작은 떨림이면 충분하거든? 나는 내가 처음 좋아했던 애를 떠올리면 지금도 손끝이 떨려. 심장은 말할 것도 없지. 여기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파동이니까. 내가 그 애랑 잘되지 않았다고 해서 걜 사랑하지 않게 되는 걸까? 내 첫사랑은 지독한 이성애자고 나는 더 지독한 레즈비언이라서 영원히 평행선에 설 수밖에 없지만, 걘 여전히 내 첫사랑이야. 결과가 본질을 대변하지 않는다고. 희망도 똑같아. 느끼는 거지. 수용 그러면 더 확실하네. 왜냐면 내가 요 근래 느끼고 있는 건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뿐이거든. 이리 진동을 만들고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 네가 심장인가 보지, 네가 망치인 거야. 아까 망치질해 봐서 알잖아. 망치질하는 놈 손목은 아 나는 거라고. 그래서 네가 지금 힘들고 또 뭐냐, 절망과 인류에 대한 혐오를 느끼는 거야. 누군가는 네가 만든 진동을 느끼고 있어. 수용 … 희망사항이다. 이리 최소한 나는 느껴.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마. 이리, 수용의 곁으로 가 가만 안아 준다. 수용, 이리의 어깨에 머리를 가만 기댄다. 이리의 서툰 위로가 마음에 닿는다. 수용 내가 여자가 되면 날 사랑해 줄래? 이리 무슨 소리야. 수용 몰라, 그냥 튀어나왔어. 이리 난 널 사랑해. 네가 나에게 주는 스트레스와 삶의 충만함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겠어. 수용 스트레스는 알겠는데 삶의 충만함은 뭐야? 내가 너한테 그런 걸 줘? 이리 응. 수용 …. 수용, 쿵쾅쿵쾅 뛰는 심장을 느끼며 일어서 문으로 향한다. 이리 왜? 수용 좀 덥지 않아? 난 좀 덥네. 이리 열게? 수용 어. 열어드리게. 이리 이제 안 무서워? 수용 아니. 어. 아니. 내가 언제 무서워했다고 그러냐. 그냥, 혼란스러웠던 거지…. 가신 것 같기도 하고. 아직 계시면 나한테 정말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걸 테니까…. 이리 갑자기 용감해졌네. 수용 도와주겠지 뭐…. 이리, 그런 수용을 보며 미소 짓고 수용, 머쓱하게 돌아서며 현관문(계단에 있는 문)을 연다. 무대 위 작은 무대, 노파는 종이 한 장을 날려 보낸다. 종이는 수용 앞으로 떨어진다. 특수학교 설립 찬성 서명서다. 이리 뭐가 적혀 있는데? 수용과 이리, 적힌 글을 보고 내가 배움이 짧아 글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되어 늦게나마 표를 줍니다. 내 이름 석 자가 좋은 일에 쓰여 참 기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아프게 해서 미안합니다. 이웃사촌 김옥형. 옥형이 있는 아래를 본다. 글쓰기 연습을 하는 옥형의 모습에서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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