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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언내언

    오늘의 김포군은 옛날의 김포현에 양천현·통진현을 병합하여 이루어진 고을. 지금은 양천·통진이 면이름으로서 남아 있다. ◆한강을 낀 이 고을은 예나 이제나 오곡백과 풍성한 곳. 『올해 벼농사는 풍작이로세/어촌에 밤등불이 깜박거리네/남강에 가을물도 줄었다 하니/농어도 게도 그물질할 만하겠지』. 조선조 초기의 학자 사가 서거정이 읊은 통진팔영 가운데 격안어화. 평화로웠던 시절의 풍요로운 가을풍경이 눈에 선해진다. 맞은편 뭍인 파주군 교하면쪽을 사이에 두고 뜬 고깃배의 불이 어둠을 사르며 깜박였던 것이겠지. 풍작인 쌀은 그 때도 기름기 잘잘 흐르는 것이었으리라. ◆무주의 구천동으로는 전국의 뱀이 모인다고 한다. 영광의 법성포로는 전국의 조기가 모여든다고도 하고. 뱀이나 조기가 스스로 모여드는 건 아니다. 그곳 뱀이나 조기가 유명하다 하니 사람들이 가지고 가는 것. 그래서 그 곳에서 난 것인양 「유명품」으로 둔갑시킨다. 그와 똑같이 김포로도 다른 고장의 쌀이 실려 나갔다. 서사가시대 이전부터 이름난 「김포쌀」로 둔갑시키기 위하여. 그렇게 해서 팔린 사이비 김포쌀이 7천여 가마라 한다. ◆밝혀진 것이 그렇지 사실은 더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목해야 할 통탄스러운 사실은 그 「짓」을 「김포농협」이 했다는 것. 김포 농민을 위하는 짓이었을는지는 모르나 이건 누워 침뱉기 바로 그것이다. 명성높은 그 얼굴에 얼룩이 지는 것 아닌가. 신용과 신뢰를 간판삼아야 할 공공기관 농협의 짓이라는 데에 아연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믿음이란 거울의 유리와 같다고 「일기」의 아미엘은 말한다. 한번 금이 가면 원래대로 하나가 되지는 않기 때문. 그 신용의 실추와 「불신사회에의 일조」가 속인 짓보다 더 고약하고 큰 문제다. ◆소비자도 너무 김포쌀이네 경기미네 할 일만은 아니다. 생산량의 한계가 뻔한 것 아닌가. 다른 고장 쌀이라 하여 쌀이 아닌 것도 아니고. 명성만을 쫓는 소비풍조에도 성찰은 가해져야 옳다.
  • 북경아시아드 「D­31」… 장충식 우리 선수단장(안녕하십니까)

    ◎“27억 아시아축제에 한국이미지 심겠다”/“3백일작전 마무리… 종합 2위 따낼 터/남북한 대결엔 페어플레이 펼쳐야죠”/“인기종목 선호현상 팽배… 대학 체육교육 각성해야” 【대담:김종일체육부장】 「단결 우의 진보」를 슬로건으로 내건 27억 아시아인의 대축제인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이 한달 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9월22일 팡파르를 울리고 막을 올릴 북경아시아드는 11억 인구의 대국 중국이 2천년대 도약의 전기로 삼기 위해 6년여동안 심혈을 기울여온 행사로 규모면에서 최대라는 점과 예측불허의 순위다툼,8년 만의 남북한 재회이외에 대회기간중 펼쳐질 한국의 북방외교 등 경기안팎으로 그 어느 대회보다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특히 답보상태에 있는 남북한관계에 돌파구를 여는 계기가 대회기간중 마련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낳고 있다. 6백68명의 대규모 우리 선수단을 이끌 단장으로 남북 체육회담 수석대표를 지낸 장충식단국대총장(59)이 전격발탁돼 이같은 기대를 더욱 부풀게 하고 있다. ○금메달 60∼65개 예상 서울사대 재학시절 럭비선수로 활약했으며 지난 65년 대한배드민턴협회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은 후 스키·축구·태권도·농구·테니스 등 5개 종목 대학연맹회장과 네차례에 걸쳐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단장을 역임했던 장단장은 이번 대회에 한국의 종합 2위 고수라는 대임과 함께 남북 체육교류 전기마련이라는 또다른 짐을 지고 있어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결단식을 20여일 남겨놓고 출전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장단장을 만나 보았다. ­단장의 대임을 맡으신 지 한달이 넘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아직 선수단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아 단장으로 행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선수촌을 자주 찾아 감독·코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이번 북경대회의 특징과 의의는. ▲중국의 입장에서 보면 1949년 정권수립이후 자국에서 열리는 최대의 국제스포츠행사입니다. 중국은 이번 대회를 전기로 지난해 6·4 천안문유혈사태로 실추된 대외이미지를 제고하고 2천년대 올림픽유치의 기반을 확고히 다진다는 의욕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도 그동안 개별적 교류가 있었기는 하지만 미수교국인 중국에 대규모 선수단과 예술단·관광단이 간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또 8년 만에 남북한 스포츠발전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요. ­당초 이번 대회에는 처음으로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38개 회원국 모두가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의 페르시아만 사태로 쿠웨이트를 지지하는 아랍국가들이 대회보이콧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봄니다. 페르시아만 사태 자체가 각국의 중재노력으로 더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같고 중국에서도 아랍국들을 상대로 활발한 교섭을 벌일 것이므로 1∼2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정대로 참가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대회판도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7개 정식종목에 걸린 금메달 3백8개중 홈팀 중국이 약 절반인 1백40∼1백45개를 가져가고 나머지를 놓고 우리와 북한 일본이 각축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이 60∼65개,일본이 50∼60개,북한이 30개 정도를 따내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한국의 종합 2위 고수를 확신하십니까. ▲낙관은 어렵지만 턱걸이라도 2위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 때의 성적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부담감이 있는데다 우리가 유리한 태권도등이 빠져 불리해졌지만 일본의 전력도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목조정도 중국에는 유리하지만 우리와 일본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장단장은 일본이 포상금제까지 도입하며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어 힘든 싸움이 될테지만 우리가 구기,유도를 제외한 투기,양궁 사격 등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우세한 입장이고 북한은 정신적으로는 부담이 되지만 경쟁상대는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북한도 대규모선수단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전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아직은 불확실하나 선수단 5백명을 포함,응원단까지 2천여명을 파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의 배나 되는 1백20명의 예술단을 파견하는 것이 이채롭습니다. 레슬링 사격체조 탁구 육상 중·장거리 등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복싱에서는 거의 모든 체급에서 우리와 결승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컨디션 조절에 노력 ­지난 86년 서울서 열린 제10회 아시안게임에서는 우리가 중국에 금메달 1개 차로 선두를 내주었습니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이번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금메달 65개가 중국의 1백45개와는 너무 차이가 크며 이는 나중에 성적이 나쁠 경우를 예상해 목표를 줄인 것이라는 말도 없지 않은데요. ▲86때는 홈의 이점도 있었고 육상에서 예상외의 메달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에서는 육상 수영 사격 등 금메달이 많이 걸린 기초종목에서 고전이 예상됩니다. 사격에서만 어느 정도 기대를 걸 수 있는 입장입니다. 장단장은 우리가 기초종목에서 열세인 것은 소득이 향상되면서 프로스포츠 선호현상이 팽배,야구·축구 등에 우수한 선수가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진단하고 인기종목만 육성,파행적 발전에 한몫을 하고 있는 대학스포츠가 각성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선수단의 훈련과사기는 어떻습니까. ▲86·88 양대회를 치르느라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부담을 주고 일부 선수들은 너무 혹사시킨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88이후 종목별로 부분적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졌으나 은퇴한 선수들과의 기량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현재 지난해부터 실시해온 「3백일 작전」의 훈련이 마무리단계에 있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도록 세심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북경대회에서는 남북한이 82년 뉴델리대회이후 8년 만에 다시 만납니다. 한국이 86년 아시안게임 2위,88년 올림픽에서 세계 4위까지 한 마당에 북한과 메달경쟁에 집착,과열경쟁을 벌이는 것보다는 한민족으로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분위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아무리 형제끼리라도 경기자체는 양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승부에만 집착해 더티플레이를 해서는 안되겠지요. 관중들이 보더라도 친화의 정이 흐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게 페러플레이에 전념하겠습니다. 그는 남북이 스포츠에서나마 적대감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응원단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고베 유니버시아드 때도 남북한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했으나 조총련과 민단으로 갈린 응원전으로 분열상을 노출시키고 말았다면서 북경에서는 이러한 일이 없도록 우리 응원단에 남북한팀 모두를 고르게 응원,민족의 동일성을 과시해 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장단장의 발탁에 대해 북경에서의 남북 체육회담 재개를 위한 포석이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남북 체육회담은 이번 대회 단일팀 구성을 위한 것이었으며 기본 10개항까지 합의했었으나 끝내 결렬되고 말았고 그 이후 북한과의 어떠한 접촉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동서독이 사실상 통일됨으로써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게 된 남북한이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까지 제각각 출전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며 이를위해 최소한 남북 체육교류를 빠른 시일내 실현시켜야 한다고 봅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북한도 제3국에서의 교류정도는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을 갖고 있습니다. ○북한단장과는 구면 ­남북한체육교류를 위한 구체적 복안은. ▲국민들의 기대가 크다는 점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급한 발언으로 결국 국민을 실망시키는 꼴이 돼선 안된다고 생각하므로 당국과 체육계의 의견을 수렴해 인내를 갖고 추진할 방침입니다.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단일팀 구성 제의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대회기간중에는 어차피 선수단들간의 활발한 접촉이 이뤄지겠지요. 지난번 북경에서 열렸던 다이너스티컵 축구대회때도 남북한이 부드러운 관계를 맺었지 않습니까. 또 북한단장으로 오는 김유순 북한NOC위원장과는 로잔체육회담등에서 몇차례 만난 적이 있어 얘기가 잘 통할 겁니다. 경평축구전 재개등 구체적 카드는 마련되지 않았으나 남북관계의 전체적인 흐름이 호전되면 적극적인 제안도 가능할 것입니다. ­국제대회 단장을 너무 자주 맡으신다는 말과 함께 임원구성에 대해서도 구설수가 없지 않은데. ▲유니버시아드단장을 네차례나 맡았던 것은 대회자체가 일반인이 단장을 맡기에는 거북스러운 점이 있기 때문에 대학교수중에 고르다보니 그렇게 된 것으로 알고 있고 특히 88서울올림픽 성공개최를 위한 스포츠외교차원에서 중용된 것입니다. 제가 원했던 것이 아닙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마디 협의도 없이 단장·본부임원을 동시에 발표하는 바람에 무척 당황했었고 스승인 김성집선수촌장을 부단장으로 선임해 도저히 못가겠다고 고사했었으나 남북한 체육교류·북방외교 등이 얽혀있어 끝내 거부하지 못했습니다. 스포츠는 봉사에서 시작,봉사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를 끝으로 스포츠계에서 떠나 대학스포츠 육성지원에만 헌신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단장으로서 강조하시는 점과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은. ▲선수단 모두가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 규칙이 깨지면 불화가 생깁니다. 또 선수단 모두가 86·88의 주역이었던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 “24시간 핵 정찰” 미 비행편대 해체

    ◎소의 기습공격 대비,29년 연속 체공/재정난·신 데탕트에 밀려 작전 중단 핵전쟁 지휘장비를 탑재하고 29년5개월간 연속적으로 하늘에 떠있던 미공군의 「최후의 날」 비행편대가 미국의 재정압박과 미소 해빙에 밀려 지난주 지상으로 하강했다. 펜타곤은 이 비행대의 체공활동이 「상시」에서 「수시」로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부시대통령이 고위보좌관들과의 협의를 거쳐 결정한 이 방침은 지난 6월29일 오마하의 오푸트 공군기지에 있는 SAC(전략 공군사령부)에 전달됐다. 이 비행대는 SAC사령관이 지휘한 중부 미국 상공에서의 작전을 끝으로 지난 24일 하오 2시28분 오푸트 기지에 착륙,29년 연속 체공 비행에 막을 내렸다. 「거울」이라는 암호명을 가진 이 편대의 작전은 한마디로 냉전의 산물이다. 이 비행대가 처음 이륙한 것은 미소의 대결 속에 베를린에 장벽이 구축된 해인 1961년 2월3일이었다. 이후 미공군은 이 편대 가운데 최소한 1대는 늘 하늘에 떠있도록 했다. 작년 12월 펜타곤은 경비절감을 위해 「거울」편대 소속 항공기 12대에 대한비행근무 해제를 건의했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이 요청은 소련의 동구 민주화 허용여부를 세계가 지켜보고 있는 마당에 잘못된 신호를 보낼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거부됐다. 미 군부가 작성한 「지구 최후의 날」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 비행편대는 「공격이후 지휘통제체제」로 알려져 있다. 다시말해 SAC의 지하사령부가 소련의 미사일 기습공격으로 파괴됐을 경우 이 비행기들이 SAC의 공중사령부로서 전세계의 미군을 통제,성공적인 보복공격을 가하도록 돼있다. 보잉 707기를 개조한 이 비행기들은 미 북서부 일대의 지상 사일로에 있는 모든 핵 장착 미니트맨 미사일및 MX 대륙간 탄도탄을 발사할 수 있다. 이 비행편대에는 항공기 1대마다 SAC 장성 1명이 반드시 탑승하도록 돼있다. 소련의 기습공격에 의해 미국의 대통령 부통령 국방장관 SAC 지휘벙커 등이 사망하거나 고립됐을 경우 미 핵전력에 대한 통제의 일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은 91년에 1천8백만달러,92년에 2천3백만달러의 예산을 절약시켜줄 「거울」비행대의 비행축소가 「유비무환」의 이완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다. SAC의 한 대변인은 『이번 결정은 소련의 핵,또는 재래식 공격 기도를 미국이 개량된 첩보위성과 다른 탐지체제를 통해 사전에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청천벽력같은 기습을 감행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 「산업구조 조정」 꾸준히 추진/요즘의 우리경제 동향을 보고

    ◎물가 안정ㆍ수출 촉진등 단기목표에 너무 집착 말길 경제를 보는 시각은 단면적이어서는 안된다. 오늘의 경제 모습은 어제와 내일을 연결하는 흐름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86∼88년 3년 연속 12%를 넘는 고성장 중에서도 큰 폭의 경상수지흑자를 기록했던 우리 경제는 지난 해에 들어서면서 심상치 않은 증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소위 「경제난국」 혹은 「경제위기」의식이 대두된 것은 단순히 성장률이 7% 이하로 떨어진 그 자체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 수준의 성장은 아직도 세계적인 우등생이 되기에 족하며 실업이 크게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경제 위기의식의 근저를 이루고 있는 중요한 하나는 수출부진과 그 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에 있었던 것 같다. 85년 가을 이후 일본이나 대만은 우리보다 더 큰 폭으로 환율이 절상되었으나 우리가 지난해 기록했던 바와 같은 5%를 넘는 수출물량의 감소를 경험하지는 않았다. 더 말할 것 없이 민주화를 계기로 한 과도한 임금인상이 환율절상에 가세하여 수출경쟁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킨데 기인한 것이다.문제는 쉽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데 있었다. 저마다 주장하는 자기몫 찾기가 과연 진정될 것인지,기술개발과 설비투자를 바탕으로 얼마나 빠른 수출구조조정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인지 시계는 극히 흐리기만 했다. 스스로의 투자 「마인드」 저상을 볼모로 「재테크」에 열심인채 으레 그래왔듯 정부지원만을 요구하는 기업가들은 도무지 미덥지가 못했다. 금년에 들어서는 노사분규와 임금인상요구가 크게 완화되는가 했으나 집세를 비롯한 물가불안이 서민생활을 압박하고 있다. 그간의 임금상승이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근로시간의 감축과 근로윤리의 해이는 노동생산성의 저조를 가져와 물가를 더욱 부추겼다. 금융실명제 유보와 토지공개념도입을 비웃는 듯한 증시침체와 집세ㆍ땅값의 상승은 정부정책의 일관성과 신뢰감을 크게 손상시켰다. 근로자ㆍ기업가ㆍ정부,그 누구도 이제까지 이룩한 경제기적의 일역이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수출이 한두해 부진하고 인플레가 두자리 숫자가 된다고 무슨 큰일날 일이냐고 반문하는 이도 없지 않다. 지나치게 높은 우리경제의 수출비중을 낮춘 계기가 되어 오히려 다행이 아니냐는 이야기다. 그러나 상품수출의 GNP비중이 87년 36%에서 불과 3년사이에 28% 수준으로 하락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스런 조정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수출능력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산업효율의 「바로미터」이며 거시정책의 왜곡여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따라서 수출과 내수가 균형적인 성장을 보일때만 건실한 경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가불안을 경계해야 하는 것은 70년대 후반의 경험으로 자명하다 하겠다. 인플레는 저축을 위축시키고 가진자를 중심으로 인플레 이익추구에 혈안이 되게한다. 통상환율은 고평가되어 수출경쟁력이 약화되는 가운데 금융의 긴축과 완화가 반복되면서 성장잠재력은 잠식된다. 우리 경제가 당면한 이들 도전과 명제를 염두에 둘때 최근의 경제는 과연 어떠한가. 소비와 건설이 과열기미를 보이면서 상반기중 10% 수준의 성장이 예상되는 가운데 수출이 다소나마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4월까지만도 전년수준을 유지하던 명목수출이 5∼6월에는 5% 가까운 증가세로 반전되었다. 그러나 이 두달간 수출신용장 증가는 1%미만에 그치고 있어 수출이 분명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가는 어떤가. 금년 5개월간 6.7%가 상승했던 소비자물가는 6월에는 0.6%의 상승에 그쳐 상반기중 7.4%의 인플레를 기록했다. 6월중 물가상승의 둔화 역시 계절적 요인에다 일반미ㆍ육류 등에 대한 정부의 수급대책에 힘입은 바 커서 인플레 기세가 분명히 꺾였다고 보기는 이른 것 같다. 이렇게 볼때 물가안정에 역점을 두면서 우리 산업의 구조조정을 지원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현재의 정책기조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월의 종합대책에서도 기술개발과 제조업 설비투자의 촉진을 통한 수출의 구조적 경쟁력 회복에 우선순위가 주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하반기 경제운용에서 물가안정에 역점을 두고 소비와 건설 등 과열을 보이고 있는 내수의 안정을 도모하는 것은 바른 방향이다. 다만 지나치게 목표에 집착하여 경제에 주름살을 지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물가를 한자리수에 묶어 두겠다는 것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표명으로 인플레 심리를 진정시키는데는 다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인플레는 상당분이 과거 1∼2년간에 축적되어온 물가압력이 현재화되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 압력을 물리적인 힘으로 막는 것은 조만간 더 큰 힘으로의 반동을 예상하게 할 뿐이다. 통화ㆍ재정ㆍ환율 등 거시정책도 단기적인 물가안정에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 금융시장 상황을 도외시한 무리한 통화긴축은 모처럼 살아나는 기업투자를 위축시키고 불건전한 금융관행만 조장할 뿐 아니라 물가안정 효과는 긴 시차를 두고서야 나타난다. 재정도 그 나름의 기능을 외면한 채 언제까지 통화환수만 강요할 수는 없다. 물가안정만을 겨냥하여 환율을 왜곡시킬 수 없음은 더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서둔다고 반드시 될 일이 아니다. 적어도 2년 정도의 기간을 설정하여 모든 거시ㆍ미시 정책수단을 일관되게 동원하는 접근방법이 필요하다. 부문별로 과욕을 버리고 현실적이고 무리가적은 범위내에서 목표를 설정함으로써 국민들의 신뢰와 협조를 얻을 수가 있다. 금년 첫 4개월에도 근로자들의 실제 임금은 22%가 상승했다. 오늘의 물가불안은 결국 우리들 모두의 분에 넘는 자기몫 요구의 결과이다. 경제팀,그것도 불과 몇달전에 출범한 경제팀에게만 책임을 지울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가 다소나마 호전되어 가는 모습을 보이는 이 때에 근로자ㆍ농민ㆍ기업가ㆍ소비자ㆍ정부 모두의 자제와 분발과 새로운 의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하겠다.
  • 사실상의 통일 독일 탄생(사설)

    독일의 통일이 마침내 확고한 눈앞의 현실로 달성되어 가고있다. 동독의 경제를 서독경제에 흡수시키는 동ㆍ서독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 국가조약」이 1일 정식 발효되었으며 동시에 지난 40여년 동안이나 동ㆍ서 독일과 베를린을 분단시켜온 국경이 완전소멸되었다. 독일인들은 이제 단일경제권에서 같은 화폐를 사용하며 동ㆍ서독을 마음대로 내왕하는 통일국민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상의 통일인 것이다. 그것이 통일이 아니면 무엇이 통일이겠는가. 이제 남은 것은 12월 초순으로 예상되는 동ㆍ서독 동시자유총선의 실시와 그 결과에 따라 통일정부를 구성하는 정치통일의 형식절차 뿐이다. 양독 정치지도자들은 금년내에 완전통일을 달성할 결심이며 그것을 막을 장애요인은 돌발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없는 것 같다. 통일 후의 군사적 지위와 관련,통일 독일의 나토잔류에 대한 소련의 거부도 그렇게 완강해 보이지는 않는다. 미ㆍ영ㆍ불ㆍ소 전승 4대국에 분할점령당했던 패전 독일이 49년 동ㆍ서독으로 분단 독립한 이후 40여년 만에 이루어지는 독일의 통일이다. 작년 11월9일 세계를 놀라게한 베를린장벽 붕괴 7개월 만에 달성되는 게르만민족 40년 비원의 통일인 것이다. 베를린장벽의 붕괴때만 해도 독일의 통일이 이처럼 빨리 이루어져 가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 모든 예상은 빗나가 버리고 독일의 통일은 어느새 우리 눈앞의 현실로 굳어져 버린 것이다. 여러가지 여건이 다르다고는 하지만 같은 미소냉전의 희생물로 민주ㆍ공산 대립의 분단국인 우리의 입장에선 그러한 독일의 조기통일 달성을 환영하고 성원을 보내면서 동시에 그 과정을 특별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통일에 대한 우리의 감회가 부러움만으로 끝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이 우리 한반도에서도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고 패전한 나라다. 통일이 된다면 한반도가 먼저일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분단의 원인을 제공한 냉전의 얼음이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통일은 독일쪽에 먼저 오고 있으며 한반도는 오히려 더 얼어붙고만 있는 통탄할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동족상잔의 전쟁이 있었고 아시아와 유럽은 문화전통이 다르고 소련의 영향력에도 차이가 있으며 또 개혁중단의 중국이 있다는 등등이 한반도의 통일분위기 조성을 늦게 만드는 이유들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통일에의 의지와 준비면에서 우리가 서독의 경우보다 부족했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아닌가 하는 반성을 떨칠 수 없다. 6ㆍ25를 비롯,북한에 의해 야기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남북한은 그동안 대결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동서독은 대결과 갈등속에서도 모든 일에 있어 통일에 대비해 왔음이 최근에 와서 계속 입증되고 있다. 서독 헌법은 제정될 때 이미 통일을 상정한 23조가 마련되었고 통일의 조건인 국민적 동질성 유지를 위한 인적ㆍ물적 교루가 꾸준히 이루어져 왔다. TVㆍ라디오방송은 있는 그대로 상호시청되었고 어느 쪽도 정치목적에 이용하지 않았다. 서독의 동방외교는 우리의 북방외교보다 20년이 앞선다. 72년에 이미 동ㆍ서독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다음해 유엔 동시가입이 이루어졌다. 돈으로 통일을 샀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통일에 결정적 수단이 되고 있는 서독의 경제력축적도 따지고 보면 통일에 대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기회가 왔을때 모든 것을 다 동원한 총체적 노력을 경주하면서 세계는 물론 그들 자신도 놀라는 급속한 통일을 이루어내고 있는 것이다. 동독까지 통일이라는 민족적 대의를 위한 자기부정의 희생을 감수하고 있다. 우리는 이 독일의 통일에서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깨달아야 할 것이다. 초조해하거나 서두를 필요는 없다. 통독의 교훈을 거울삼아 꾸준히 노력하면서 반드시,그리고 멀지않은 장래에 오게 될 것이 틀림없는 기회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 오늘도 찾지못한 그날의 전우이름 소위「김○○의묘」6ㆍ25를 말한다

    ◎예비역 준장 황규만씨의 「안타까운 40년」/안강지구 배속뒤 첫 전투서 산화/묘비에 이름 못새겨 한으로 남아/현충일ㆍ추석날엔 동작동 찾아 「무언의 대화」 25일은 민족상잔의 비극을 불렀던 6ㆍ25동란 40주년이 되는 날. 이날을 하루 앞둔 24일상오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서는 색다른 행사 하나가 있었다. 동쪽 제2묘역에 있던 한 무명용사의 비석을 들어내고 새 비석을 세운 일이었다. 그 비석에는 「육군소위 김 의묘」라고 새겨있었다. 묘비번호 1659호인 이 묘비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5만여 순국영령들의 묘비 가운데 이제 단하나뿐인 이름없는 묘비이다. 『국립묘지관리소측에서 묘비의 좌대를 모두 교체한다기에 양해를 얻어 김소위 묘의 비석과 좌대를 바꾸고 상석도 새로 놓게 됐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인의 완전한 이름을 새겨넣지 못해 죄스러울 따름입니다』 6ㆍ25때 눈앞에서 숨져간 이름모를 전우의 시신을 거두었다가 이곳에 안장시켜 지금껏 지켜온 예비역육군준장 황규만씨(60ㆍ범양상선부회장)는 「김」자뒤에 남은 빈칸을 못내 아쉬워했다. 황씨와 이 묘비의 주인 「김소위」와의 생사를 뛰어넘은 전우애가 시작된 것은 6ㆍ25가 터진지 석달째인 50년 8월 경북 안강지구전투의 한 격전장에서였다. 10기생으로 육사에 입학했다가 1년만에 전쟁을 만난 황씨는 수도사단 제26연대 2중대 1소대장으로 적에게 빼앗긴 경북 월성군 도음산 385고지의 탈환 임무를 띠고 고지 남쪽 능선밑에 참호를 파고 진을 펴고 있었다. 연일 공방전이 벌어졌고 8월27일 새벽무렵 적의 대공세가 시작됐다. 상오7시쯤 1연대 소속의 1개 소대가 지원을 왔다. 20살 안팎의 신입소대장은 황소위에게 평안도사투리로 『시흥보병학교 갑종간부 1기생이 김소위』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두 소대장이 인사를 나눈지 5분남짓 지났을까…. 김소위는 『지형정찰을 하겠다』면서 참호밖으로 나갔다. 순간 1백여m 거리에서 대치하고 있던 적들은 사정없이 기관총을 쏘아댔고 김소위는 머리에 총탄을 맞고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 그에게는 손거울 하나와 몇가지 소지품밖에 신원을 알수있는 아무런 유품이 없었다. 황소위는 급한대로 소총대검으로 이웃 소나무등걸밑을 파고 김소위의 시신을 묻은 뒤 돌하나를 얹어놓고는 퇴각해야만 했다. 황씨가 김소위를 다시 찾은것은 14년의 세월이 지난 64년5월. 종전후 줄곧 전방부대근무로 눈코 뜰새없이 바빴던 황씨는 그해 대령으로 승진하면서 어느정도 여유가 생기자 그동안 한시도 잊지 못했던 「그날의 전우」를 찾아 나섰다. 위생병 3명과 함께 지도를 펴들고 온종일 어슴프레한 기억을 더듬은 끝에 황씨는 마침내 경북 월성군 강동면 단구리 기계북쪽 340고지의 한 능선에서 그 소나무와 그 돌을 찾아냈다. 황씨는 곧 육군참모총장에게 청원을 했고 같은달 27일 「김소위」를 국립묘지(당시 국군묘지)에 안장할수 있었다. 김소위의 나머지 이름 두자를 알아내기 위해 「6ㆍ25전사자 명부」를 일일이 찾아보는 등 할수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어디에서도 당시 안강지구전투에서 전사한 제1연대소속 「김소위」는 찾을 수가 없었다. 황씨는 그때부터 「김소위」의 유일한 유족이자 친구가 돼 「김소위의 묘」를 돌보기 시작했다. 황씨는 한해도 거르지 않고 설날과 현충일ㆍ추석날에 어김없이 「김소위」를 찾아 참배했으며 마음이 울적할때면 이곳에 와 이름없는 옛 전우와 「영혼의 대화」를 나누며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죽은 뒤에도 김소위와 나란히 누워 인연을 이어 나가는게 소원』이라는 황씨는 자신의 직접 만든 전우의 새 묘비를 어루만지며 눈시울을 붉혔다.
  • 도덕성과 폭력화의 함수관계/이수성 서울대 법대교수(세평)

    ◎권위ㆍ물질주의가 독버섯 키운다 폭력사건의 증인으로 법원에서 증언을 마치고 나오던 시민이 증언내용에 앙심을 품은 조직폭력배에 의해 피살되었다는 소식은 세인의 가슴을 전율케 한다. 경찰과 검찰은 이를 공권력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고 현장 가담자와 배후조직의 체포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사건이 주는 충격은 비단 국가의 사법활동의 수행을 현저히 곤란하게 했다는 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백주에 법원 앞길에서 공공연히 폭력이 행사될 정도로 조직폭력의 활동영역이 넓어지고 활동수법이 대담ㆍ흉포해졌다는 점이다. 이들 조직이 단순한 범죄조직이 아니라 회사까지 차려 활동을 수행해온 기업형 폭력조직이라는 점에서 놀라움을 더해주고 있다. 거기다 이들이 주로 청부폭력과 이권개입에 관련한 폭력을 널리 자행해 왔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귀중한 인명의 가치를 금전적 이익을 위해 언제든지 희생시킬 자세가 되어 있다는 점이다. ○향락업소가 폭력 온상 그런데 이번 사건을 저지른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폭력조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에도 범죄형 조직이 활개를 쳐왔지만 80년대 이후의 폭력조직은 이전과 질량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과거의 폭력조직이 일부 유흥가를 중심으로 한 범죄에 국한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은 관권의 손길이 미치지 않을 정도로 그 활동영역이 확장되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80년대에 본격화된 향략산업의 팽창은 조직폭력이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 준 셈이 되었다. 향략산업의 번창은 조직폭력의 물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성범죄ㆍ마약범죄와 같은 향락성 범죄를 조장해 온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조직폭력의 질적ㆍ양적 팽창과 함께 주목할 것은 청소년들이 폭력의 하부성원으로 대거 유입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가정과 학교에서 밀려난 청소년들은 일종의 반발심리로서 폭력집단에 편입되어 적극적인 역할을 추구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청소년들은 도덕적으로 무방비한 상태에서,이들 폭력조직의 가치와 역할을 이상적 모델로 수용하게 되는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청소년이 우리 사회의 거울이자 미래의 주역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점을 던져주고 있다. ○지도층부터 반성해야 현금에 있어서 조직폭력의 범람은 우리사회의 급격한 근대화 과정에 따른 병리현상의 일환으로 보여질 수 있다. 그동안 산업화의 결과로 먹고 살만큼은 되었지만,그 대가로 우리 사회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량 위주의 성장을 추구하는 가운데 도덕적ㆍ정신적 가치는 급격히 황폐화되었고,상호부조와 양보의 미덕 대신 오로지 경쟁과 승리의 추구만이 전부가 되어 버렸다. 과정이야 어쨌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사고방식이 전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폭력과 물신숭배가 이 사회의 으뜸가는 지배가치로 자리잡았다.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폭력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 하에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너무나 쉽사리 유린되어 진다. 이 점에서 특히 이제까지의 권위주의적 국가활동에 대한 반성이 요청되어 진다. 역대의 권위주의 정권들은 폭력과 금권의유용성과 우월성을 온 국민앞에 과시해 왔다. 이들은 양심에 입각하여 성실하게 살아가려는 자의 생활철학을 비웃고,국민의 양식과 인격을 부패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도층의 언행이 어떤 도덕적 힘을 가질 수 없음은 오히려 당연하다. 경제적 지도층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의 재산은 창조적ㆍ적극적 생산활동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여지기 보다는,권력과의 유착과 토지투기와 같은 불건전한 수단에 기인된 것으로 인식되어지고있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의 재산은 건전한 노동의 산물로 자연스럽게 비쳐지지 않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은 결과로 보여지는 경향이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있는 자에게는 끝없는 탐욕과 낭비를,없는 자에게는 한과 분노를 유발시켜 오고 있는 것이다. 나쁜 짓을 해서 교도소에 들어간 범죄자의 마음 속에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잘못된 법 관념이 일견 타당한 것으로 인식되는 풍토하에서 온전한 법질서는 이미 기대될 수 없다. 폭력과 물신숭배의 사고방식이 팽배한 사회풍토에서,부와 권력의 합리적인 취득절차가 종종 무시되어 온 사회풍토에서 조직폭력은 기세를 더할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유흥과 향락적 분위기의 범람,청소년의 인격과 정서를 함양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미비,이러한 요인들은 조직폭력을 위한 여건을 제공하기에 부족한 점이 없다. 물론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으로 범죄피해자와 증인보호를 위한 제도적 대책 마련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의 증인살해사건이 기업형 조직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폭력집단의 범죄양상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본다면 조직폭력집단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절실한 과제로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법질서 강화와 소송절차상의 개선조치로 갈수록 대담ㆍ흉포해져가는 조직폭력을 근절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더이상 가질 수 없다. 엄형주의의 실험은 그동안의 법집행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 각종 특별형법과 사회보호법상의 가중규정도 모자라 더욱 가중처벌을 기도하는 것은 중세 국가로의 회귀를 주창하는 바와 다를 바 없다. ○사회환경의 정화 시급 위대한형벌학자인 베카리아의 표현대로,국가의 형벌이 잔혹해질 수록 범죄자의 잔혹성은 그에 비례하여 더욱 증폭된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앞으로의 과제는 조직폭력과 같은 반사회적ㆍ반인도적 범죄가 서식하기 용이한 사회환경자체를 개선하는 일일 것이다. 여기에는 조직성원들의 철저한 검거와 단속,자금원과 무기의 통제도 포함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지도력의 회복을 위한 자기쇄신의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전반에 만연해 있는 폭력과 물신숭배의 문화풍토를 보다 인간중심적이고 합리적 절차가 존중되는 사회로 가꾸어 가는 공동의 노력일 것이다.
  • 전경 대학시설 파괴 말썽/「사복」1백여명 숭실대 연이틀 진입

    ◎본관 유리창 1백장 부숴 24일 하오5시50분쯤 서울 상도동 숭실대 앞길에서 이학교 학생 5백여명의 가두시위를 막고있던 서울 노량진경찰서와 서울시경 기동대소속 사복전경 1백50여명이 학생들을 붙잡기 위해 학교안으로 들어가 1시간30분동안 쇠파이프와 돌로 본관건물인 과학관 1층 유리창 80여장과 2∼3층 20여장등 모두 1백여장을 부쉈다. 이들은 또 1층 현관안으로 들어가 특수유리로 된 대형현관 유리창과 대형거울및 벽시계등 내부기물을 마구 부쉈다. 경찰은 이날 하오3시쯤부터 학생들이 화염병시위 혐의로 지난22일 학교정문앞에서 연행된 양재동군(21ㆍ전자공학과2년)의 석방을 요구하며 정문밖으로 1백여m쯤 몰려나가 화염병과 돌등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자 최루탄을 쏘고 돌을 던지며 2시간동안 맞서다 하오5시50분쯤 학생들을 뒤쫓아 학교로 들어갔다. 지난23일 하오7시쯤에도 학생들의 가두시위를 막던 사복전경 1백여명이 대학안으로 들어가 쇠파이프와 돌로 과학관1층 유리창 10여장을 부쉈다.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20분쯤 노량진경찰서 학원반소속 경찰관 3명이 지난3월22일 학교밖에서 화염병시위를 벌이다 사진채증에 걸린 양재동군을 교문앞에서 백운파출소로 데려가는 것을 뒤쫓아 갔었다. 이에대해 경찰은 『화염병 투척학생을 붙잡으러 교내로 들어갔던 전경들이 본관건물앞에서 학생회관에 있는 학생들과 대치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던진 돌멩이가 전경 뒤쪽에 있는 본관건물에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진 것』이라고 밝혔다.
  • 고교생,이웃교서 또 난동/동료학생 폭행보복/각목휘둘러 유리등 파손

    ◎하동 진서고생 15명 【하동연합】 19일 하오7시쯤 경남 하동군 옥종면 청룡리 옥종고교(교장 이성인ㆍ57)에 인근 진양군 수곡면 진서고교생 15명이 자기 학교 학생이 옥종고교생에게 폭행당한데 불만을 품고 몰려와 각목과 쇠파이프 등을 휘둘러 현관 대형 유리창 3장,소형유리창 25장,대형 거울 2장 등을 깨뜨리며 10여분동안 소란을 피운뒤 달아났다. 학생들은 이날 하오3시쯤 옥종고 운동장에서 있은 친선 축구시합 도중 자기학교학생 1명이 술을 먹고 담배를 피우다 옥종고생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학교에 돌아와 듣고는 보복하기로 하고 4시간후에 다시 나타나 소란을 피웠다.
  • KBS가족에 서한/최공보처

    최병렬공보처장관은 7일 「KBS가족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정부는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을 원만하게 해결함으로써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한편 이번 일을 거울삼아 KBS가 전보다 튼튼하고 더욱 민주적으로 커갈 수 있도록 모든 뒷받침을 다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 「대세 전환」인가 「일시반등」인가/「주가폭락 하룻만의 폭등」배경

    ◎「투자심리 불안」반영… 장중등락폭 55포인트/“자생력 상실”증시 떠받칠 획기적 조치 시급 증시의 밑둥에 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려는 것인가. 다 썩은 나무인양 금방이라도 푹 고꾸라져버릴 것만 같던 주식시장이 대폭락 하룻만에 훤칠한 상승세의 줄기를 위로 올곧게 치켜들었다. 27일 종합주가지수는 22.75포인트 뛰어올라 7백48.86을 마크,7백50대에 육박했다. 하루전인 26일 주가는 증시사상 최대폭인 28.96포인트나 떨어져 7백50대에서 그대로 7백20대로 곤두박질해 증권파동이 필연적인 귀결일 듯 싶었다. 상한가 종목은 물론 상승종목 하나 없었던 장세였고 증시의 기저에서 생기란 생기는 죄다 빨려나가 버렸다는 것이 대다수의 결론이었다. 증시에 새싹을 키워낼 수액이 몇방울이라도 고여 있으리라고 짐직하는 것은 대폭락 앞에서 창백해지지 않는 투자자를 찾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속수무책으로 상실했던 주가지수의 능선을 다음날 즉시 8할 가까이 되찾았다. 이날의 상승세는 과연 증시기저에서 솟구친 것인가. 혹 이 힘찬 반등은 폭락장 후에 「으레껏」생겨나는 현상으로 수액이나 생기하곤 무관한 기술적인 모양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 27일의 폭등장세를 대폭락이 만들어낸 「빛좋은」그림자일 수도 있다는 지적이 드물지 않다. 상승세에 발동을 걸고 추진시킨 힘을 찾자면 증시 「내」보다는 「외」가 더 올바른 방향이라는 것이다. 주가가 저절로 오르지 못하고 바깥바람에 쐬어서 둥둥 떠올랐다는 견해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경제부처장관들과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고무된 투자자가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근기에 대해서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는 없지만 대형상승세의 즉각적인 후속으로 주가가 만회된 점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증시사상 미증유의 하락이 기록된 지 하룻만에 그기억을 애써 잊어버리고자 한다면 너무 성급하다고 하겠다. 26일의 주가대폭락은 대국적 견지에서 살펴본 지수동향이나 추세 면으로 논리적일 수 있으나 반면 주가의 하락추세 그 자체는 상식적인 궤적이었다고 볼 수 없었다. 증시침체 시발점인 지난해 4월부터 그해 연말 대폭락까지는 등락이 심한 반면 올들어 주가의 움직임은 이에비해 보다 단일한 선을 그렸다. 하락일변도 였다고 말할수 있으며 이같은 경향은 이달들어 더욱 심해 26일 대폭락까지 포함,21일장 가운데 9번이나 최저지수가 연달아 바꿔쳐 졌다. 그 반면 경제적 상황은 침체성격을 확실하게 탈피하지 못했지만 금년이 작년에 비해 여러면에서 개선되었다고 통틀어 말한대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거기다 증시와 관련된 사항으로서 금융실명제나 경제정책의 성향등이 증시우호적으로 급변했다고 할 수 있다. 주가 움직임이 상식적인 선의 반대방향을 쫓는 것인데 이에 대한 설명으로 두가지를 꼽을 수 있다. 그 첫째는 최근의 주가 하락추세는 바닥권 을 향한 험난한 도정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상승반전의 대세전환은 바닥권 추락의 과정을 필수적으로 겪어야 하며 바닥이 가까운 만큼 그 추락의 양상은 상식 「논외」가 되는 경향이 있다는 말. 또 하나의 시각은 경제적 반영으로선 약간 비틀린 상인 주가이지만 그 반영의 대상을 사회전반으로 확대시켜볼 때는 아주 정직한 거울이 된다는 이야기다. 즉 우리 사회전반에 걸쳐 얕든 깊든간에 배어들고 있는 불안심리가 여지없이 전달됐다는 것. 이는 단순히 대형제조업체의 노사분규나 공영방송의 파업이란 시사적인 사건에 기인한다기 보다는 사회의 저류를 흐르는 기운이 그렇다는 것으로 정부당국에 대한 불신이 이것을 강화시켜 왔다. 시중자금의 흐름을 왜곡시키는 부동산투기의 실제 크기도 문제지만 이에대해 사람들이 무작정 품고 있는 의식 또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27일의 급등세가 오로지 증시부양책에 대한 기대,정부의 재정적 지원 가능성에서 나왔다면 기술적 반등국면에도 못미치는 단기에 끝날 수도 있다. 이날 상승세는 좋은 결과를 이루긴 했으나 그 장중의 과정이나 내면의 힘이 결코 안정되어 있다고 할 수 없다. 등락폭이 28포인트에 가깝고 지수의 전행정이 무려 55포인트를 오르내렸다는 사실은 상승ㆍ회복에도 불구,「불안」이 깃들여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증시부양 구호 이전에 이것과 싸워야 한다.〈김재영기자〉
  • 노사분규 확산을 우려한다(사설)

    산업현장이 제발 조용했으면 하는 것은 국민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특히 지난해 노사간의 엄청난 소용돌이를 겪고 나서 더욱더 절실히 느끼게 되는 소망이기도 하다. 지난해 우리는 아시아 10개국 가운데서 경제성장률 6.7%로 5위를 기록했다. 이는 85년의 2위,86년 1위,87년 2위,88년 1위였던 선두주자시대에 비할 때 서글픈 후퇴였다. 그것이 산업현장의 몸살이라는 자업자득의 결과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국제적인 평가도 「승천하는 용」에서 「지렁이」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것을 알고 있는 국민들은 그러기에 더욱더 산업현장의 평화정착을 열망해 왔음이 사실이다. 그 열망에 부응하고 또 지난해를 거울 삼는 듯,올해의 노사분규는 크게 줄어 들었다. 엊그제까지의 노사분규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길 때 6분의1 수준이었고 쟁의발생 신고건수도 5분의1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뿐이 아니다. 참가자 수는 지난해에 비해 10분의 1정도에 머물렀는가 하면 해결률은 90%에 이르러 산업평화가 정착해 간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이 모두가 반가운현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터에 KBS사태라는 악재가 터져 나오고 이어 대형산업체인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기아자동차 노조의 경우는 파업안이 부결됨으로써 정상조업에 들어갔으나 불씨가 아주 가라앉은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주목되는 것은 마창노련등의 쟁의 동조태세이며 더구나 재야 노동단체등에서 「노동절」을 주장하는 5월1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기까지 하다. 만에 하나 분위기가 확산쪽으로 기울면 어쩌나 하는 우려를 지우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실망과 분노만을 안겨주어 오고 있다. 자기들 내부의 문제에 휘말려 무엇하나 제대로 해내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민생치안은 말이 아니다. 큰소리를 쳤건만 흉포한 사건은 잇따르고 있는 것이 현실 아닌가. 이런 판국에 다시 산업현장에서 마저 불협화음이 확산된다면 국민들은 더욱더 불안의 사면초가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대목이 더 걱정되는 일이다. 계속되는 주가의 하락도 정치ㆍ사회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은 것 아니겠는가. 노는 노대로 사는 사대로 다 주장의 근거와 정당성은 있다. 그런데 그 「정당성」과 「정당성」이 맞부딪칠 때는 양자간에 상처만 남는다는 것을 우리는 요 몇해사이 경험해 온다. 그 경험으로해서 서로가 자제하고 양보한 결과가 올해의 「노사분규 격감」이다. 이 바람직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부 노사가 감정과 힘을 내세우는 듯한 작금의 양상이 국민들을 불안케 하고 있는 것이다. 자제하고 호양하라는 얘기는 이제 분규현장의 당사자들에게는 고전적 공자 말씀일 뿐이다. 그러나 힘에 의지하지 말라는 말만은,다중의 힘을 생각하는 노나 공권력의 힘을 생각하는 사 양쪽에 대고 해 두고자 한다. 힘에 의지하면 또다른 힘을 불러들이고 만다. 그래서 힘이 부딪치는 소리에 본질은 멀어져 간다. 나중에는 지엽문제에 힘겨루기를 하게 되고 생채기의 골만 깊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고가품은 일본등 선진국에 뺏기고 저가품은 신흥국들에 뺏김으로써 수출시장의 전망은 어둡다. 힘을 합해도 난국뚫기가 천야만야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또 집안 싸움을 벌인다면 어찌 되겠는가. 이래서는 안된다. 지난해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된다.
  • 가짜약품과 약사행위(사설)

    거울 뒤편에 바르는 납과 알루미늄가루까지 칠한 가짜 우황청심환 30만개가 한 사기꾼에 의해 시중에 판매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를 잡아 구속했다는 것만으로 우리를 위안시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먹지 않았더라도 이 직접적 유해 공업 안료의 부작용은 마치 살인 사건을 보듯 우리의 등골에 충격을 준다. 그러므로 또 우리의 의약품 관리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라는 반복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우황청심환 같은 대량소비적,유통상품적 약품의 횡행은 특별히 약에 약한 우리 복용자들의 남용습성에 연유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역시 유통이 자유로운 구조와 어떤 약의 선택이 실제 약효와 관계없이 상시로 쓰일 수 있다는 국민적 행태는 바로 약품행정의 문제영역일 수밖에 없다. 부정의약ㆍ화장품들의 단속작업을 하고 있지 않은 것도 물론 아니다. 금주초만 해도 보사부는 1ㆍ4분기 동안 1천5백여개의 약품을 검사하여 함량미달 20개품목을 적발했고,또 이중 11개 품목에 대해 제조허가 취소 및 제조정지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이 아직은 약사행정의 엄격성이나 또는 약에 대한 객관적 신뢰도를 더욱 높여가는 데까지 영향을 주고 있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약의 사용에서 국민들은 언제나 함량미달이라는 일상적 이미지에 따라 약의 과용을 대단치 않게 느끼고 있고 또 국내상표에의 불신에 의해 외국상표를 무조건 선호한다는 약 사용태도를 가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바로 약사행정은 약품관리에 있어 철저한 엄격성을 공지시킬 수 있을만큼 확고히 할 필요가 있고 이 엄격성을 통해 약의 적정한 사용을 국민에게 계몽시킬 책임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상은 여전히 행정적 엄포는 있지만 가시화되지는 않고 있다. 이달초만 해도 보사부는 불량약품이 한품목만 적발돼도 모든 생산품을 검사하고 세무사찰까지 병행하여 아예 업체자체가 존속을 못하도록 하겠다는 그야말로 기대해 볼만한 의약품 품질대책을 마련했다. 그러나 이 초강경대응이 실제로 현실화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국민이란 드물 것이다. 그동안의 약사사범 뒤처리가 언제나 유야무야 되어왔기 때문이다. 불량약품은 곧 생명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결과를 가져오지만 그러나 약효의 측정이 즉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에 의해 결정적인 평가는 언제나 유보되어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는 사후보다 사전의 약품관리체계가 더 철저히 이루어져야 할 것임을 권고한다. 많은 제도를 외국의 것으로부터 전용하기를 즐기면서도 왜 약사행정에 있어서는 미국의 FDA(식품ㆍ약품관리청)제도를 옮겨오지 않는 지 모르겠다. 이 제도가 만일 행정기구축소라는 원칙에 걸린다면 그 원칙에 의해서도 다른 기구를 줄여서라도 오히려 먼저 만드는 게 옳은 선택일 것이다. 제도개편등 관리체계의 정립이외에도 우리의 약사용습성에 관한 계몽적 운동도 해야만 한다. 의약품이야말로 이의 국산화 장려를 근거로 적당한 약효유예 부분을 주어서도 안되고 이들 약효와 부작용에 대한 명시가 더 분명하게 커져야 마땅하다. 이런 과정속에서만 가짜 약품이 설 자리를 실제로 잃게 되는 것이다.
  • 목적의식이 앞선 도식적 드라마/“첫공개”북한영화「참된심정」을 보고

    북한의 극영화가 분단45년만에 처음으로 일반 공개되었다. 고조되는 통일에의 염원과 함께 북한의 실정을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알고싶어하는 우리의 목마름을 축여주는 좋은 계기가 된다는 의미에서 자못 기대가 컸었다. 말할것도없이 영화는 시대와 사회를 비춰주는 거울이다. 시각에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영화는 그동안 폐쇄적 장막에 가려있던 북한의 모습을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예상보다 수준낮아 그러나 첫번째로 공개된 작품 「참된심정」은 우리의 기대를 채워주기에는 훨씬 미진했다는 느낌이다. 우선 작품으로서의 수준이 예상한 것보다 낮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목적의식이 선행한 도식적 드라마투르기에서 우리가 진정 알고싶어했던 북한의 꾸밈없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북한의 「왕재산 창작단」에서 제작했다는 「참된 심정」은 남한의 50년대 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몽영화이다. ○계몽영화틀 못벗어 한 시골의 협동조합농장의 처녀 분조장 순심이 냉습지 농토개량운동에 과감히 뛰어들면서 제방을 쌓기위한 암석을 이웃채석장 마을에서 얻어오기까지의 고난극복의 과정이 중점적으로 묘사되고있다. 자막에 보면 「임당」이라는 단편소설의 영화화라는 전제가 있는데 가냘픈 처녀 순심의 투철한 정신무장과 일신을 돌보지않는 헌신을 거쳐 영예로운 노동당의 당원증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곁들여놓았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는 두가지의 뚜렷한 목적의식이 설정되어있다. 그 하나는 노동당의 당원증을 획득하기위해서는 얼마만큼 피나는 노력을 쏟아야하느냐며 또 하나는 주민들을 기꺼이 노동현장에 몰아넣는 교조주의가 이야기의 저변에 깔려있다. 순심의 헌신적인 모습과는 대조적인 인물로 트랙터의 운전사 철수의 다소 이기적행동을 병행묘사하고는 있으나 이 두사람의 대비가 드라마의 갈등을 낳지않는것도 이야기가 따분해진 이유의 하나이다. 이야기 진행과정에서 순심이 철수에게 인간적 호감을 느끼는듯한 분위기를 가볍게 심어놓았으나 드라마 발전에는 끝내 애정따위에는 관심이없어 김이빠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는 갈등ㆍ반전 등 드라마의 필수적요소들이 배제된채 안일한 예정조화적 도식으로 일관하여 작품으로서 ○기법도 초기단계에 의 생명을 불어 넣지 못했다. 기법면에서도 영화의 초보적단계에서 머물고있는듯이 보인다. 거의 카메라를 고정시킨 상태에서 대상을 시간서열적으로 포착하는 평면적이며 설명적인 작극술은 영상적 표현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군데군데 주제가인듯한 감상적 노래를 평면적으로 삽입하고있는데 영상표현과 맞물리지 않은채 노래만으로 겉돌고 있을뿐이다. 이런종류의 영화가 북한사람들에게 보편적인 감상거리로 영합될 수 있다면 그것은 영화감상의 안목이 아주 저수준에 머물고있음을 말해준다. 우리가 은근히 기대했던 사회주의리얼리즘의 경향은 추호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현실을 변형하고 인간을 작위적인 틀에 가두는 반리얼리즘이 눈에 거슬리게 부각되고 있었다. 다만 이 영화가 형성하는 유일한 공감대는 남이나 북이나 막론하고 우리농촌에서 점철되는 소박하고 따사로운 인정풍경이었다. 순심은 우리농촌에서 흔히 보는 평범하고 순박한 쳐녀의 모습그대로이다. 그녀는 그 순진함,순박함으로 말미암아 체제에 순종하고 주어진 환경을 열심히 살고있을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넘은 민족의 동질성을 보는듯싶었다. 그러나 이영화 한편으로 북한영화의 수준을 가늠할 수 없는것은 말할나위없다. 현재 북한에서는 꽤 수준높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들린다. 이번을 시작으로 매달 한번씩 북한의 극영화가 일반공개된다고한다. ○소박한 농촌엔 공감 이를 계기로 남북의 영화가 공식적으로 활발히 교류되기를 바라는 마음간절하다. 작품의 우열을 떠나,체제의 벽을 넘어 같은 민족이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영화를 통해 민족이 동질성을 회복함으로써 통일의 염원을 더욱 앞당길 수 있기때문이다.
  • 뚜껑 여는 개각… 감 잡기에 부산/“누가 될까”… 술렁이는 관정가

    ◎청와대 “정중동”… 통보 이미 끝난 듯/민자의원 입각 예상보다 소폭 전망/조 부총리등 경제팀,주변 정리에 고별 간담도 ◇…일괄사표를 제출하기 위해 강영훈국무총리 주재로 16일 하오 5시 정부종합청사 국무회의실에서 열린 임시국무위원간담회는 시종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외유중인 최호중외무ㆍ공사졸업식에 참석한 이상훈국방장관을 제외한 참석자 24명이 양식에 따라 사표를 써 강총리에게 제출하고 17분만에 종료. 이날 간담회에서 강총리는 7∼8분동안 국무위원들이 그동안 소임을 다해 국정을 이끌어 준 데 대해 노고를 치하한 뒤 조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게 「한 말씀」을 권하자 조부총리는 『1년3개월이 됐는데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고 노태우대통령과 강총리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언. 강총리는 이날 간담회에서 사표제출을 받은 뒤 『헤어지게 돼 섭섭하다』며 울먹여 한때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간담회가 끝난 뒤 최병렬공보처장관은 기자실에 들러 사표 일괄제출 배경에 대해 『집권중반을 맞은 노대통령이 새내각의 구성으로 국정을 쇄신하는 계기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한 뒤 『개각발표는 17일 상오 11시∼낮 12시에 할 것같다』면서 『그동안 보도가 많이 나가 정작 발표를 할 때는 성거울 것같다』고 조크. 관련차관급등 일반배석자 없이 진행된 이날 간담회가 끝나기 직전 내각의 일괄사표를 제출받은 강총리는 자신의 사표와 함께 김용래총무처장관에 전달. 내각의 일괄사표 제출사실은 이날 하오 늦게 지방에 내려가 있는 청와대비서진을 통해 노대통령에게 전달됐다는 후문. 한편 이날 국무위원간담회에는 국무총리의 임명제청권대상자가 아닌 국가보훈처장,비상기획위원장,서울시장 등은 참석치 않았으나 현홍주법제처장은 이들과는 달리 참석,사표를 써 다른 자리로 이동할 것이라는 관측을 뒷받침. ◇…17일 단행될 예정인 대폭적인 개각을 앞두고 청와대와 행정 각 부처는 16일 개각준비와 마지막 하마평등으로 부산한 움직임. 노태우대통령은 이날 저녁 일부 입각대상자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입각사실을 통보했다고. 노태우대통령의 개각구성과 인선작업에 동원된 정구영청와대민정수석은 16일 하오까지 청와대 본관을 오르내렸으나 평소보다 일찍 퇴청해 노대통령의 낙점이 이미 끝난 상태임을 시사. 청와대비서실은 홍성철비서실장이 통일원장관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이북출신이고 이북5도민회장을 지냈으며 민족통일중앙협의회 의장으로 통일문제에 생소하지 않을 뿐 아니라 과거에도 김용식ㆍ박동진씨 등 거물급이 장관을 맡은 전례가 있다는 점이 감안됐다는 분석. 홍실장후임으로 알려진 노재봉특보는 청와대로 들어갈 때부터 이미 중용이 예상됐고 노특보후임으로 거명된 이홍구통일원장관은 재임중의 「성적」과 원만한 성격 그리고 학식이 모두 평가됐으며 경제수석에 내정된 김종인보사장관은 노대통령이 민정당 대표위원때 경제참모를 지낸 데다 호남출신이란 점이 감안됐다고. ◇…개각시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날 정부 각 부처에서는 개각과 관련된 갖가지 관측으로 직원들이 거의 일손을 놓아 행정공백상태를 연출. 이날 하오 5시의 임시국무위원간담회는 15일 밤 10시쯤청와대에서 연락받은 강영훈총리 지시에 의해 갑자기 결정돼 국무위원들에게는 16일 상오 6시부터 6시30분 사이에 소집을 통보. 강총리는 이날 상오 8시55분 평상시와 같이 정부종합청사 9층 집무실에 등청,곧바로 이진비서실장과 안치순행정조정실장으로부터 일상보고를 받은 뒤 임시국무위원간담회 소집과 관련한 준비사항을 지시. 이 자리에서 강총리는 임시국무위원간담회 일정이 각료들에게 전달되기도 전에 언론에 미리 알려진 데에 대해 측근들에게 가벼운 「질책」을 했다는 후문. ◇…민자당 인사들은 개각이 임박하자 입각가능의원들을 거명하며 인선의 향방에 관심을 모으고 있으나 예상보다 당인사의 내각진출폭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 박준병사무총장은 『당인사가 다수 기용될 여지가 크지 않은 것같다』고 말했고 박철언정무1장관도 『당에서 소수가 입각할 것으로 안다』고 전망. 이에따라 당초 당소속의원중 6∼7명(민정계 3,민주계 2,공화계 1명)이 입각하리란 예상과 달리 5∼6명(민정계 2∼3명,민주계 2,공화계 1)정도가 각료로 발탁되지 않겠느냐는 관측. 이중 이승윤의원의 부총리 기용은 확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의원은 16일 전날까지 기용가능성을 부인하던 태도를 바꿔 『통보받았느냐』 『축하한다』는 인사에 웃음으로 응수. 민주계에서는 할당된 2자리의 3배수를 올렸는 데 김정수ㆍ강보성의원에게 낙점이 된 것 같다는 관측. 공화계에서는 최각규ㆍ이희일의원중 1명이 입각할 것으로 보이며 이날 김종필최고위원이 이희일의원의 기용가능성이 보다 높음을 시사해 이의원이 동자부장관을 맡게 되리란 관측이 대두. ◇…조순경제팀의 전면교체를 포함한 대폭개각이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경제기획원ㆍ재무ㆍ상공부 등 주요 경제부처는 퇴임장관들의 주변 정리와 신임 물망에 오른 인사들의 성향 파악 등 개각얘기로 온통 술렁. 조부총리는 이날 상오 기자들과 고별간담회를 가졌으나 개각과 관련한 사항이나 퇴임후 계획 등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함구로 일관. 그러나 퇴임후 당분간 휴식을 취하면서 88년 자신의 입각으로 중단했던 「한국경제론」(가칭)의 한글및 영어판 집필작업을 마무리지을 것이라고 기획원 관계자가 전언. 토지공개념ㆍ금융실명제 등 제도개혁 추진과정에서 조부총리와 호흡을 맞추어온 핵심부서 관계자들은 이번 개각이 조순경제팀에 대한 인책성격으로 비춰지자 『이제 개혁의 시대가 거하고 성장의 시대가 래하도다』라는 농담으로 담담한 심경을 표출시키기도. 기획원내에는 민자당 이승윤의원이 부총리로 취임해올 경우 그의 성향에 비추어 성장위주정책으로의 정책기조 변화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이번 개각에서 경질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는 내무부ㆍ교통부ㆍ보사부 등 3개 부처장관은 이날 상오 각기 평소와는 다소 다른 모습으로 일과를 시작. 내무부의 경우 김태호장관은 평소처럼 상오 8시50분에 간부회의를 주재한 뒤 상오 11시에는 경찰병원으로 가 강도와 격투하다 다친 서울 중부경철서 형사과장 신만근경정과 데모진압과정에서 부상한 전경들을 문병. 김창근교통부장관은 간부회의도 생략하고 조용히 집무실을 지켜 내무장관과는 크게 대조적. 이날 상오 C모국장이 업무보고차장관실에 들렀을 때 김장관은 『엊저녁에 대통령을 만나봤다. 다른 몇몇 장관들도 언질을 받은 것으로 안다』고 귀띔.
  •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지금 50대 이상 사람들에겐 옛날 동무들이 있다. 그러나 그 이하 세대사람들에겐 동무가 아닌 친구가 있을 뿐이다. 6ㆍ25동족 전쟁 이후 남쪽에서는 「동무들」이 사라졌고 북쪽에선 동무들이 늘어난 대신 동무가 아니면 모두가 적이고 반동이었다. 북한에선 지금도 아무나 보고 동무라고 부르는 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시아버지동무,아저씨동무,위원장ㆍ부장동무 식으로…. 그러나 북한에서 그런 일은 없다. 해방 후 혼란기엔 아닌 게 아니라 그들 식으로 악덕지주니 반동 부르주아니 해서 무자비하게 매도하는 와중에서 여맹완장을 걸친 며느리가 시아버지 동무라고 부른 일도 있다. 그것은 그러나 기존사회의 가치관과 도덕규범을 무조건 거부하고 모조리 때려부수는 것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고 착각한 「동무들」의 난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직까지도 북한에 대한 우리들의 인식은 이 정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들 평균적인 한국인은 북한이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해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는가. 북한에 관한한 적어도 서울은 가장 정확한 정보와 해석능력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실상 우리들은 그렇지 못하다. 그쪽의 부분적인 실태를 갖고 본질로 이해하려 한다거나 크게는 그들 변화의 전술적 측면을 전략적 전모로 보려 한다거나 그들 모두가 홍 아니면 전인 것으로 파악하는 잘못을 더러 저지르기도 한다. 남북문제에 관한 오류의 함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남북한 관계를 얘기할 즈음 거의 모두들 첫밗에 상호 신뢰의 결여라거나 지나친 경쟁관계를 들고 나온다. 그건 사실이다. 우선 판문점을 봐도 그렇다. 그곳은 남북한 대치의 상징이자 상호 불신의 현장이며 가장 현재적인 경쟁터이기도 하다. 양쪽의 입씨름이 그러하고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장 탁자 위에 꽂인 유엔기와 저쪽의 인공기의 높이가 또한 그러하다. 지난 53년 정전회담이 열릴 때마다 양쪽의 기가 서로 경쟁적으로 높아지던 끝에 드디어 천장에까지 닿을 듯하자 이 문제만으로 양쪽이 타협을 벌여 지금의 똑같은 높이가 됐다. 휴전선 북방한계선 안쪽엔 기정동이 있고 남방한계선 안쪽엔 대성동이 있다. 두 마을 어귀에 각기높이 솟은 국기게양대도 비슷한 사연을 갖고 있다. 1천8백여m 상거하는 두마을의 국기 게양대가 서로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높아지다가 끝내 남쪽마을 대성동쪽에서 포기하자 기정동쪽 것이 조금 높아진 채로 이제는 동양 최고의 높이를 자랑한다는 것이다. 대치상태인 남과 북의 오기와 치기가 대충 이러하다. 5년 전인가 어떤 통계는 우리가 스포츠에서 반드시 이겨야 할 팀으로 북한이 44%이고 일본(31%) 소련(14%) 미국(8%) 중국(3%)의 순으로 반응했다. 모르면 몰라도 저쪽의 통계도 거꾸로 이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 작년 10월 싱가포르에서 열렸던 월드컵예선에서 남북한 팀은 아주 협조적이고 우호적이었다. 세월이 그만큼 흐른 것이다. 불신과 경쟁은 다시 말해 마음의 거리를 뜻한다. 오고 가는 마음가짐의 부족과 이해의 결여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가 팀스피리트 훈련을 방어훈련이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북한쪽은 믿으려 하지 않는다. 콘크리트장벽론,남침용 제4땅굴도 그래서 나오게 된다. 개인과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가간에도 상대방에 대한 행동은 상대방의 자신에 대한 인식과 이해의 누적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남북한간의 상호인식은 냉전의 소산인 영상론(MIRROR IMAGE)의 형태로 시작됐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영상처럼 상반된다. 남북한 쌍방은 서로가 서로를 잘못 이해한다고 하면서 스스로는 냉전적 사고의 틀 속에서 거꾸로 된 영상으로 상대방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동질성의 추구보다 이질성 확인의 시각이 두드러졌고 감정의 골은 깊어만진 것이다. 우리의 대북인식도 마찬가지다. 북한은 이제 우리에게 있어 화합과 공존의 대상이지 증오와 파괴의 대상만일 수는 없다. 대결상대로서의 북한과 화합상대로서의 북한을 정확히 인식하면서 그들과의 관계에서 그들을 완전히 압도하겠다는 제로섬(영합)게임식 접근을 지양해야 한다. 상용성을 될수록 넓혀 인식의 거리,마음의 거리를 좁혀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 당국자들,특히 그 주석 김일성은 이것을 알아야 한다. 즉 그가 교조적으로 신봉하고 「주체적」으로 수정했다는 마르크스주의는 이제 서서히 모습을 감춰간다는 사실 말이다. 생각해보면 유럽에서 태어난 마르크스주의 혁명의 불꽃은 유럽의 변경이라고 일컬어지던 러시아에서 꽃을 피우고 4반세기 후에는 그 자신도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동양의 전제적 은둔국인 중국으로 비화했다. 또 그 4반세기 후에는 아시아의 또다른 변경인 인도차이나 반도의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로 번졌다. 그러나 적잖은 세월,숱한 실험을 거친 사회주의 혁명의 붉은 실은 여기서 끊어지고 말았다. 이제 역사는 한바퀴 돌아 그 시계바늘은 이번에는 좌에서 우로 역회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의 하나의 순수한 사회사상이었던 것으로 역사교과서에 남으려 하고 있다. 북쪽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결국 이것 밖에 없다. 남과 북,서울과 평양은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다시 마주앉아야 한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이 따뜻한 봄날에 동무들과 판문점에 가 보고자 할 것이다. 그곳에서 대성동과 기정동을 굽어본 후 다시 마주앉아 이젠 남의 얘기일랑 제쳐놓고 우리들의 얘기 좀 해보자. 따뜻한 봄날에 판문점에서 마주앉아 동무처럼 친구처럼 우리들의 얘기보따리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 증시의 안정(사설)

    최근 증시에 주가폭락 파동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4월이래 11개월째 장기침체를 보여온 증시가 이제는 최악의 폭락사태를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위기감은 주가지수가 8백30에서 8백50선 사이를 오가면서 고조되고 있고 3월에 들어서는 8백선이 붕괴되지 않느냐는 불길한 장세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8백선이 무너지면 증권파동이 불가피하고 증시의 규모로 보아 그 파동이 경제위기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증시의 현재 상황은 이처럼 전체 국민경제에 중대한 변수가 되고 있는데도 증시를 부양시킬 수 있는 묘책을 찾지 못한 채 증시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재무부는 지난해 12월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증시부양책을 발표한 후 5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증시에 투입했다. 그러나 이 막대한 자금이 증시안정에 기여하지 못하고 큰손들의 주식투자자금 회수와 증시 이탈을 돕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이 있다. 증시안정대책이 결국 무위로 끝나면서 증시의 불확실성이 한층 더 가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어떤 증시부양대책으로도 증시를 살릴 수 없다는 비관적 견해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증시침체의 근본적인 원인이 경기침체에 기인되기 때문에 독자적인 증시대책으로 증시를 안정시킬 수 없다는 논리이다. 증시를 경제의 거울이라고 표현하듯이 사실상 경기와 증시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국내 증시는 침체된 경기뿐이 아니고 노사분규와 정치의 불안정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복합증후군에 의하여 침체되었기 때문에 그 처방 역시 증시대책적 차원이 아닌 경제정책적 차원에서 모색되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이를테면 외적 불안요인인 경기침체ㆍ부동산투기ㆍ물가불안ㆍ노사분규ㆍ정치의 불안정 등이 제거되어야 한다. 특히 증시와 대체관계에 있는 부동산시장에 투기열풍이 일게 되면 증시는 더욱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부동산투기가 재연되지 않도록 지속적인 정책개발이 있어야 한다. 증시의 외적 불안요인의 제거와 함께 경기를 부양시키는 것만이 궁극적인 증시부양대책이 된다. 일본이 63년부터 65년까지 우리와 똑같은 증시의 장기 침체국면을 맞았었다. 이때 일본정부가 증시에 대한 자금지원등 조치를 취했으나 별다른 효험을 보지 못했다. 결국 경기부양조치에 의하여 경제가 회복되면서 증권시장의 여건이 호전되었던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론 외적 요인이 증시침체의 주요 요인이지만 시장 내적 요인도 간과할 수가 없다. 시장에서 수급불균형현상이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며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있는 기관투자가들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게 시급하다. 기금및 연금에 기관투자가의 자격을 부여하는 것을 비롯하여 주식보유조합등 현재 증권당국이 검토하고 있는 조치를 하루빨리 시행해야 할 것이다. 또한가지 증시의 불안요인이 되고 있는 금융실명제 가운데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주식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문제에 대한 정부방침을 구체적으로 빨리 밝혀야 한다. 아울러 증시에 참여하고 있는 투자가들도 투매를 자제하는 한편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증시파동만을 막아야 할 것이다.
  • 불붙은 총선… 뜨거운 일본열도/여야영수 5인 어제 TV공개토론

    ◎소비세등 싸고 격렬한 설전/과반확보 노려 정책ㆍ비전 제시에 주력 여/정경유착 맹공… 동북아 평화문제 거론 야 일본의 제39회 중의원 총선거가 3일 공고됨에 따라 일본 열도는 투표일인 18일(일요일)까지 15일간 총선열기에 휩싸이게 됐다. 2일 현재 각 매스컴의 집계에 따르면 이번 총선거에는 전국 1백30개 선거구에서 9백49명의 입후보자가 출마,5백12석의 의석을 둘러싸고 열전을 벌일 전망이다. 이번 입후보 예정자수는 지난 86년 7월 선거때의 8백38명 보다 1백여명이나 더 많은 것이어서 선거열기는 그만큼 더 뜨거울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선에서는 소비세,정치개혁,외교ㆍ방위,경제정책을 쟁점으로 집권 자민당이 의석의 과반수인 2백57석을 확보할 것인가 아니면 지난해 7월 참의원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여야역전」이 실현될 것인가가 최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이번 선거는 특히 여야당의 연립정권 또는 야당만의 연합정권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점과 동서냉전 구조의 붕괴와 미ㆍ일 경제마찰이 심각화되고 있는 내외정세의 격변속에 일본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라는 「21세기를 향한 일본의 진로」를 선택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런 의미에서 2일 하오 2시부터 3시간동안 도쿄지요다구(천대전구) 우치사이와이초(내행정) 일본 프레스 센터에서 벌어진 여야 5당 당수의 격렬한 토론은 이번 선거전의 행방을 좌우할 전초전으로,나아가 야당의 정권담당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로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 토론회는 각 정당이 진행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일본 기자클럽에 주최를 의뢰해 이루어졌으며 사회도 기자클럽 이사장인 미즈가미 다데야(수상건야) 요미우리(독매)신문사 전무가 맡았다. 이날 토론에 나선 가이후(해부) 자민,도이(토정) 사회,이시다(석전) 공명, 후하(불파) 공산,나가스에(영말) 민사 등 5당 당수는 정치개혁ㆍ소비세ㆍ체제선택ㆍ미일관계 등을 테마로 초반부터 격론을 벌였다. 이번 총선거의 정책상 최대 쟁점인 소비세 문제에 대해 가이후 총리는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필요한 세제』라는 관점에서 식료품의 소매단계에서의 비과세를 중심으로 한 수정안에 대해 이해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대해 소비세법 폐지 자체에 보조를 맞추고 있는 야당측은 선거후 임시국회에 폐지관련 9개 법안을 재상정시킬 방침임을 밝히면서도 사회당과 공명ㆍ민사당 사이에 무조건 폐지가 능사가 아니라 공평세제를 위한 개혁안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의 감각의 차이를 나타냈다. 도이 사회당 위원장은 『이번 선거는 일본에서 진정한 민주정치가 가능할 것인가의 여부를 시험하는 중요한 계기』라고 주장하고 『자민당 정치는 소비세법 제정 실시,리크루트 사건에서 보여주는 바와같이 거짓말을 식은 죽먹듯하는 정치였다』며 자민당을 맹공했다. 그는 또 『자민당이 경제단체에 대해 3백억엔의 정치헌금을 요청했다는 사실도 국민의 정치불신을 유발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의 질문은 오카무라(강촌) NHK 해설위원과 여성 저널리스트인 아리마(유마) 전 아사히(조일)신문 기자가 번갈아 맡아 했다. 격변하는 세계속에 일본은 어떻게 대응해야할 것인가에 대해 가이후 총리는 『몰타 미ㆍ소정상회담 이후 세계정세는 단순히 냉전구조의 붕괴라는 단계를 넘어 동ㆍ서가 대화에서 협력하는 시대로 접어 들었다』고 지적하고 『일본은 21세기가 전쟁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아도 되는 안정된 세기가 되도록 하는데 적극 참여하겠다』고 강조했다. 도이 사회당 위원장도 『어제 부시 미 대통령이 연두교서 연설을 끝낸뒤 소련의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직통전화로 대화하는 뉴스를 보고 냉전은 끝났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밝히고 『가이후 총리가 연초 유럽 방문성과를 신문에 광고하는 것은 국민세금을 오용하는 것』이라며 가이후 총리를 비난했다. 도이 위원장은 특히 『가이후 총리가 유럽정세에 관해서는 소신을 표명한바 있으나 아시아ㆍ태평양지역의 평화공존을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고 반문하고 『미ㆍ소ㆍ중ㆍ캐나다ㆍ일본과 남북한이 참여하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 평화보장기구를 구성해야 한다』고 제의했다. 이날 토론에서 나가스에 민사당 위원장도 한반도의 평화안정이 세계정세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일본에서의 각 정당당수 토론회는 이번이 3번째이다. 첫번째는 이케다(지전) 총리시절인 60년 11월12일,두번째는 다나카(전중) 총리시절인 72년 11월20일 개최됐으나 이때는 다나카 총리는 나서지 않고 미키 다케오(삼목무부) 부총리가 참석했다. 이날 NHK를 비롯한 각 TV는 이 토론회를 전부 생중계,일본 국민의 이번 선거에 대한 관심을 대변했다.
  • 외언내언

    오랜만의 강추위속에 설 연휴를 맞는다. . 주의 입고 토끼털 귀싸개를 하고 손을 호호 불며 종일 세배 다닌 세대들은 그 설 추위를 회상한다. ◆오늘이 곧 섣달 그믐날. 이날 밤은 잠을 자서는 안된다. 방ㆍ다락ㆍ마루ㆍ부엌은 말할 것 없고 심지어 외양간ㆍ측간(변소)까지 훤하게 불을 밝히고서. 이를 수세라 한다. 잠을 자면 눈썹이 세어진다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겁을 준다. 깜박 졸다가 깨우는 바람에 놀라 눈을 떠 거울을 보면 눈썹이 세어 있는게 아니던가. 어른들이 밀가루나 쌀가루를 묻혀 놨기 때문. 엉엉 울었던 추억을 갖는 사람들은 차츰 줄어가고 있다. ◆이날 밤 궁중에서의 악귀 내쫓는 구나행사는 관상감에서 주장한다. 성현의 「용재총화」(권1)에 따르면 창덕궁과 창경궁의 뜰에서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악귀를 쫓는다는 방상씨(방상시)는 곰의 가죽을 쓰고 십이신을 몰아낸다. 그 행사가 자못 요란했던 듯. 민간에서도 이를 모방하여 방매귀 행사를 했던 것으로 적어 놓고 있다. 하지만 이젠 그 습속들을 잃은지 오래다. ◆날이 새면 세배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누던 것이 우리의 풍속. 웃어른께는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고 하며 아랫사람에게는 생남하라느니 과거에 합격하라느니 했다. 그믐날 밤에 못잤으니 이날 밤은 아이들도 자야 한다. 그래서 한자로 야광귀라고도 쓰는 앙괭이 귀신을 등장시킨 걸까. 앙괭이는 아이들 신을 신어 보고 맞으면 신고 가는데 그 신의 임자는 한해 운수가 나쁘다. 아이들은 이날 밤 신을 감춘 다음 불을 끄고 잔다. 마루에는 체를 걸어놓고서. 찾아온 앙괭이는 쳇구멍 세느라고 신 훔칠 일도 잊는다. ◆2천만명의 민족 대이동이 있으리라는 이번 설 연휴. 겨레의 절반이 움직인다는 뜻이다. 육당 최남선은 설이란 조심하며 삼가는 날(신일)이라 했던 것인데… 춥고 미끄러운 「교통 전쟁」의 끝이 우울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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