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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 라데팡스 「그랜드 아치」(세계의 명소/걸작건축 감상:4)

    ◎현대판 개선문… 「세계를 향한 창」 상징/중심부 뻥 뚫린 6면체인류 상호교류 표방/건물 표면은 “커뮤니케이션의 대명사” 반도체 칩 모양으로 꾸며 건축은 사회문화를 비춰보는 거울이다.한 사회의 시대적 이념·경제·생활문화·기술 등이 함축되어 건축 환경에 그대로 표현되기 때문이다.현존하는 건축물이든,건축물의 흔적이든 건축 기행을 통해 시대상·문화상을 읽어 가는 것은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우리를 비춰볼 수 있듯이,그 속에서 나와 우리와 또한 문화를 비춰볼 수 있어 매우 소중한 경험이 된다.역사 속의 주요 사건의 무대가 되었던 건축을 대하면 인류의 삶의 흔적을 바라보며 시간속에서 나와 이 시대를 생각해 보게 한다.외국의 민속적인 고유성을 지닌 일련의 건축물을 대할 때는 이국적 정취에 한껏 빠져 일상에서 일탈한 자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인간의 능력에 대해 감탄을 쏟지 않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대할 때는 무엇이 그토록 신비로운 힘을 솟아나게 했는지 무한한 능력에 저절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그리고 아기자기한 손길이 표현된 인간의 따뜻한 정서를 전달하는 일상적 건축은 그 공간속에서 인간의 진실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세계의 곳곳에서 나름대로의 분위기를 간직하며 인류의 역사와 함께 공존하는 이 모든 형태의 건축물에 대한 경험을 나는 매우 소중히 여긴다.그중에서도 프랑스 수도 파리 근교에 있는 그랜드 아치는 프랑스의 현대적 문화 가치관과 세계관을 깊이 느낄 수 있어 매우 흥미로운 명소라 생각한다. 1989년에 완공된 그랜드 아치는 금세기 현대 건축의 걸작품으로 상호교류를 통한 「인류의 승리」를 표명하는 현대판 개선문으로 전세계의 건축가들로부터 사랑 받을 뿐 아니라 파리를 찾는 관광객들이 빠뜨리지 못할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금세기 최대 걸작품 그랜드 아치는 역사적 건축물로 가득찬 파리의 현대적 도시 기능을 위해 개발된 수도권 서쪽 신도시인 라 데팡스에 위치하고 있다.인접 파리와는 대조적으로 현대건축물이 군집해 있는 이곳은 파리 중심부에서 고속전철로 10여분 거리에 있어 파리의 업무지구로 여겨지는 곳이다.그곳에서도 그랜드 아치가 서 있는 지점은 파리 내의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들과 일직선상에 있어 위치가 상징하는 의미가 깊다. 파리가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도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도시 계획의 우수함에 기인한다.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하고,다양한 역사적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으며 관광객들이 가장 가볼만한 명소들이 위치해 있는 가로는 파리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동서로 일직선상으로 뻗어나가 도시의 강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이 가로는 동쪽에서는 루브르 궁전의 정원에서 시작한다.서쪽을 향해 따라가면 일직선상에 1789년 프랑스 대혁명으로 루이 16세를 비롯해 1천명 넘는 사람들이 이곳의 단두대에서 처형 당하였고 현재는 파리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물인 이집트의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콩코드광장에 도달한다.이곳을 지나 서쪽으로 계속되는 가로는 세계 패션의 중심인 샹젤리제 거리로 확장되고 연속해서 나폴레옹의 승전을 기념하는 개선문이 있는 샤를 드골 광장으로 이어진다.이러한 파리의 강한 「역사적 축」의 서쪽 끝은 현대도시라 데팡스의 그랜드 아치에서 현재는 종결된다.이렇듯 파리의 역사적 도시축선상에 또 한 장의 역사를 펼치고 있는 이 건축물은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도시축을 확인함과 동시에 종결하고,시간의 진행 속에서 미래를 향한 시작을 알리는 장소적 의미가 있다. ○정보화시대 상징물 성당이 기독교 문화의 상징이며,궁전이 제왕의 권력의 상징이듯,현대 정보화 시대의 상징물을 구축하겠다는 미테랑 대통령의 야심에 찬 건축 정책에 따라 그랜드 아치는 「국제 커무니케이션 센터」로 설계되었다.중심부가 뻥 뚫린 육면체 형태는 프랑스 미래의 세대들에게 21세기에 나아갈 비전을 제시하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뚫린 부분은 「세계를 향한 창」을 의미하고 양측 프레임은 개선문의 현대적 표현이다.그랜드 아치의 거대한 뚫림은 프랑스는 세계를 향해 창을 활짝 열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이 창을 통해 외부의 세계는 내부로 유입되고,열려있는 창을 통해 서로간의 사랑의 세레나데를 교환하자고 손짓하는 듯,이 건물의 광장에 들어서면 열려있는 창으로 강렬히 빨려 들어 가게 됨을 느낀다.전세계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이 거대한 뚫림 속에 떠있는 「구름」형상의 하이테크 구조물 아래서 서로 만나고,서로의 언어·관습·종교 등을 배우고,서로 이해하고 나아가 이 시대에 유발된 상호간의 불신과 오해를 없애고,교류를 통한 「인류의 승리」라는 메시지를 이 「현대판 개선문」을 설계한 건축가는 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건물의 표면은 금세기 커뮤니케이션의 대명사로 일컬을 수 있는 반도체 칩을 추상적으로 상징하고 있다.그러나 이러한 미래 지향적 이상향을 전달하는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는 역사 속에서 발견한다.루브르 궁전과 정원의 규모와 동일하게 입방체의 가로와 세로는 1백5m이다.전체 높이는 1백10m로 뚫린 창의 높이는 노트르담 성당을 연상할 수 있는 기념비적 높이며,폭은 샹젤리제 거리를 연상하게 하는 넓이인 점은 기존의 문화 유산에 대한 깊은 사랑의 표현일 것이다.더욱이 건물의 축은 샹젤리제 거리의 축에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루브르 궁전과 동일하게 일직선의 도시축에 대해 6도30분 기울어져 배치되어,역사에 대한 겸손함과 미래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듯하다.또한 관광객을 위한 전망대와 전시실이 있는 최상부로 바로 연결되는 전망 엘리베이터가 주는 노출된 기계미는 에펠탑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임을 느끼게한다.이 건물을 대하면 멀리 동쪽으로 마주하는 파리의 주요한 역사적 산물들이 우측으로 비스듬히 바라보이는 현대건축 기술의 모태인 에펠탑의 기술이념을 끌어안고,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단순화되어 다시 태어나 있는 듯 하다. 새로운 프랑스를 열어갈 다짐으로 파리의 역사적 축 위에 세위진 이 기념비적 건축물이 국제설계경기를 통하여 각 나라에서 출품된 4백24작품 중 덴마크의 건축가 스프렉켈센의 설계안으로 건축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바가 크다.이것은 파리는 21세기를 향해 이미 프랑스인만의 도시가 아닌 국제화된 도시임을 다시 한번 세계인들에게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덴마크 건축가 설계 더욱이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금세기 걸작품이 탄생되기까지는 장구한 기간에 걸친 준비 작업이 있었다는 점이다.파리의 서쪽으로 향한 도시축의 연장은 1931년 처음으로 검토되었고,1958년부터 라 데팡스는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하였다.그러나 「데팡스의 머리」라는 가칭으로 진행되어온 현재의 그랜드 아치 건축 부지에 들어설 건물은 1970년초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하여,그후 3명의 대통령에 의한 3번의 설계 경기를 거쳐 마침내 미테랑 정부에 들어와서 20여년간의 준비기간을 마무리하고 「인류의 승리문」으로 건축 되었다.그리고 현재 이 건물의 양측 사무동은 프랑스 교통부와 환경부가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미래의 세대들에게,또한 세계인들에게 길이 기억될 건출물을 탄생시키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신중한 검토를 거치는 프랑스인들의 건축관은 오랜 세월을 두고 길이 보존되고 있는 파리의 건축물들이 주는 교훈 때문이라 생각된다.한번 건축된 건물은 잠깐 쓰고 폐기시키는 자동차나 생활용품과는 달리 긴 역사를 두고 후세에 문화적 유산으로 전해지고,축적되어 그 사회의 문화적 깊이를 더해준다.시간을 두고 신중히 진행되어온 그랜드 아치와 라데팡스 신도시 계획을 바라보면 신속히 계획되고,지어지고,길지 않아 허물어지고,따라서 얄팍해져 가기만 하는 우리의 건축문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 뚜렷한 증거·적용법규 없어 불가피/이원종 전시장 귀가 배경

    ◎공직사회 사기문제등도 고려한듯/수사는 계속… 재소환 가능성 희박 지난 3일 검찰에 소환된 이원종 전서울시장이 30시간동안 조사를 받은뒤 4일 하오 7시40분쯤 풀려났다. 신광옥 수사본부장은 이날 밤 이 전시장을 석방하기전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이 전시장을 일단 귀가조치시키고 참고인 조사등을 통해 시장으로서의 구체적인 과실 유무를 확인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으나 앞으로 이 전시장이 검찰에 재소환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혐의를 인정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법리문제」 또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전시장에게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았던 직무유기및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법리문제는 검찰내부에서 조차 이견이 많아 가장 골머리를 앓았던 대목이다. 검찰은 당초 이 전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공무원들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하면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었다.이미 구속된 동부건설사업소 직원과 서울시 전·현직 도로시설과장등에게는 직무유기죄가 적용됐다. 검찰은 서울시 도로·교량등 주요 시설물 관리감독의 실무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신영 전도로국장에게도 직무유기죄를 적용할 것을 검토했으나 직무유기죄의 구성요건이 워낙 까다로워 이 죄목 대신 형량이 비교적 가벼운 「허위공문서작성혐의」를 씌웠다. 실무총책임자에게도 이 죄를 적용할 수 없었던 만큼 시정의 최고책임자인 이 전시장에게 직무유기죄를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아래 생각해 낸 것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였다. 검찰은 이를 위해 전통적인 과실이론에 비해 「과실책임」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일본의 「감독과실 책임론」과 독일의 「보장인적 지위론」등 외국의 학설과 판례등을 정밀분석한 결과 이 전시장에게 「업과상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잠정결론을 내리고 이 전시장을 소환하기에 이르렀었다. 검찰의 이같은 이론구성은 그러나 이 전시장의 일관된 반론에 힘없이 무너졌다.그는 자신의 혐의를 캐기 위한 검찰의 신문에 조목 조목 반박,결백을 입증했다. 검찰은 이 전시장이 시장으로 있는 동안 한강교량의 안전한 유지관리를 위해 시정의 책임자로서 나름대로 세부적인 계획을 세워 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설명했다. 다시말해 그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다. 검찰이 이 전시장을 조기에 귀가조치한 배경에는 이같은 법리문제와 함께 공무원의 사기문제 등 여러 요인들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사고가 났을 경우 이런 식으로 최고 책임자가 처벌받는다면 앞으로 나쁜 선례가 돼 공무원들의 「복지부동」·「무사안일」풍조는 더욱 기승하고 사기는 저하될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관가에 벌써부터 맴돌았었다. ▷일문일답◁ ◎검찰신문에 있는 사실대로 답변/지도감독 소홀했던 점 후회 막심 30여시간 동안 검찰의 조사를 받은뒤 귀가조치된 이 전서울시장은 초췌한 기색이 역력했으나 검찰청사를 떠나기 앞서 5분여동안 기자들의 질문에 차분하게 답했다. ­현재의 소감은. ▲국민들에게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뿐이다. 밤새도록 검찰의 엄한 추궁을 받으면서 느낀 점이 많았다.특히 공직생활 기간동안 스스로 지도감독을불충분히 한 점에 대해 후회를 많이 했다. ­신문내용은 주로 어떤 점이었나. ▲서울시장이 져야 할 여러가지 책임문제등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신문을 받았으며 나는 있는 사실 그대로 답변했다. ­소환되기 전 검찰청에 다녀와서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는데 그때 풀려날 것을 예상하고 있었나. ▲언제든 집으로는 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이다. ­잠은 제대로 자면서 신문을 받았나.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서울시민과 국민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몸둘 바를 모르겠다.이번 기회를 거울삼아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과 대한민국을 더욱 사랑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서울시의 기술적인 관리분야에 대해서는 인사권을 포함,우명규 당시 부시장에게 모든 것을 위임했다는 지적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시정의 모든 책임은 시장에게 있다.인사권은 기관장의 절대권한에 속하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성수대교 손상보고」를 비롯해 동부건설사업소로부터 여러차례 올라온 보고내용을 알고 있었나. ▲….
  • 깜짝 아이디어/「94 우수발명품」 한자리에

    ◎163점 9일까지 KOEX전시… 64점 시상/접는 자전거/1∼2초내 접고 펼수 있어 운반편리/주레기/음식쓰레기 분쇄… 건조상태로 배출/언어교정기/발성입모양 거울에 비춰 발음교정 올해 국내의 우수 발명품들을 보여주는 「94 전국 우수발명품 전시회」가 3일 안광구 특허청장,김상하 대한상의회장,이수웅 대한변리사협회장,하상남 한국여성발명가협회장,신석균 발명가대표 등 내외인사 1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장 제4전시실에서 개막됐다. 특허청 주최,한국발명특허협회 주관으로 오는 9일까지 계속될 전시회에는 개인 발명가들의 작품에서부터 유명 기업들의 새로운 발명및 신기술 개발품등 모두 1백63점이 선을 보였다. 특허청은 이들 출품작 가운데 기술성과 기업화 가능성,경제적 기여도,창작성 등을 기준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대통령상 1점을 비롯,국무총리상,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사무총장상 각 1점 등 모두 64점을 선정,시상한다. 눈길을 끄는 발명품들을 알아본다. ◇자전거용 절첩식 핸들=자전거 핸들을 상·하방향 원터치로 1∼2초만에 접고 펼수 있도록 고안됐다.비탈길 주행시에도 핸들을 간단히 절반 하향조절하면 경기용 자전거처럼 변해 운전시 힘이 덜들고 편리하다.또 보관시에도 바퀴가 겹치게 접을 수 있다.박종일씨 작품. ◇멜로디 훌라후프=훌라후프 내부에 멜로디 발생장치를 끼워 허리에 대고 돌릴 때 7곡의 음악이 나오도록 돼 있다.스위치 덮개를 젖히고 전원스위치와 누름스위치를 작동하면 음악이 3초동안 반복해서 나와 재미있게 운동을 즐길 수 있다.부영상사 출품. ◇무선화재 경보장치 겸용 랜턴=무선송신기를 랜턴에 부착해 화재발생시 이를 무선으로 송신하고 수신기로 화재를 초기단계에서 감지할 수 있다.정전시 랜턴기능은 물론 부엌에서 밥을 태우더라도 이를 감지,경보신호를 보내준다.동양라이트 출품. ◇달걀프라이 자동판매기=아침을 굶는 직장인들이 많다는 점에 착안,만들어졌다.동전을 넣고 선택단추를 누르면 수초안에 노른자까지 잘 익혀진 프라이가 접시에 담겨 나온다.작동시 달걀껍질은 내부 이송기에 의해 위생적으로 회수된다.한국산업기계출품. ◇주레기=주방에서 나오는 음식쓰레기를 위생적으로 처리하는 장치.통안에 음식쓰레기를 부으면 분쇄와 압착탈수,건조의 과정을 거쳐 자동배출되고 더러운 물은 여과장치를 통해 나온다.음식점이나 가정에서 사용하면 음식쓰레기에 의한 환경오염을 방지할 수 있다.(주)태영 출품. ◇언어교정기=입의 긴장을 눈으로 전환시켜 소리의 막힘을 부드럽게 이완시켜 주어 말을 더듬는 어린이나 성인들에게 효과가 크다.빨강·초록·노랑빛의 발광 다이오드에 따라 반복 발성훈련을 하도록 만들어졌다.발광 다이오드 아래쪽 거울에는 교정자의 입모양을 비춰 시각에 의해 정확한 모음발음을 하도록 돼있다.국제언어학원 출품.
  • 한국바둑 신예기사들 부진/한·중·일 대결

    ◎일본에 지고 중국에 힘겨운 승리 한국의 바둑신예들이 일본에 참패하고 중국에 힘겨운 승리를 거둬 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차세대 「반상의 제왕」을 점치게 될 좋은 기회로 팬들의 관심을 모은 한·일 및 한·중간의 신예대결에서 「신4인방」을 앞세운 한국은 종합성적에서 일본과 11승16패,중국과는 7승5패를 기록했다. 지난 17,19일 이틀간 홍익동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3차례의 「한·일신예바둑대항전」에서 한국의 이성재초단(17)만이 3승을 올렸을 뿐 기대를 모은 최명훈3단(19)과 이상훈2단(19)은 2승1패,윤성현5단(19)은 1승2패로 부진했다. 그 반면 일본은 유학생 조선진8단(24)이 3승1패(불참자로 인해 대국수 증가),야마다6단 3승,미무라7단 2승1패로 기대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뒀다.게다가 일본은 신예최강 유키7단과 유학기사로 최근 일본 천원전 도전권을 따낸 관계로 유시훈6단(24)이 불참한 가운데 거둔 성적이어서 한국의 부진은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여류기사들도 윤영선초단(17)만이 3전 전승을 거뒀으나 이영신초단(17),이지현초단(15),김민희초단(15),강승희초단(14)등이 졸전을 펼친 끝에 4승8패로 완패했다. 한편 「신4인방」과 「4소룡」의 대결로 관심을 모은 지난 28,30일 「제1회 한·중신예바둑대항전」에서 한국은 중국과 1회전을 팽팽한 접전끝에 3승3패 동률로 끝낸 뒤 2회전에서 4승2패를 기록,종합 7승5패로 우승을 차지했다. 윤성현5단과 이상훈2단은 힘겹게 2승을 기록,우승의 주역이 된 반면 최명훈3단,양건2단,김영삼초단(20)은 1승1패,대일본전에서 3승을 따낸 이성재2단은 2패를 당해 기복을 보였다. 그러나 「중국의 이창호」 상호6단(18)은 김영삼초단과 최명훈3단을 모두 불계승으로 가볍게 제압,세계바둑계의 「요주의인물」임을 다시한번 입증했다. 바둑전문가들은 『신예들의 이번 부진은 그동안 기량이 크게 향상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그릇된 자신감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신예들은 이번 대회를 거울삼아 최강한국의 명성을 이어나가도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며 분발을 촉구했다.
  • 동국대 보직교수 전원사퇴/교수폭행사건/학생2명 제적·5명 무기정학

    동국대의 민병천 총장을 제외한 보직교수 29명은 교내에서 발생한 학생들의 교수폭행사건과 관련,인성교육 부재와 교수로서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미에서 학교측에 보직사퇴서를 제출했다. 민총장은 3일 보직교수들의 사퇴서를 재단측에 일괄제출할 예정이다. 학교측은 이날 『보직교수들이 사퇴서를 제출하게 된 것은 학생들에게 도덕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학교명예를 크게 실추시킨 책임을 통감,자발적으로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반교수들도 이날 하오 전체교수회의를 열고 교단과 종단·학부모에게 드리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교수들은 사과문에서 『평소 학생들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을 베풀지 못한 점을 깊이 반성한다』며 『앞으로 교수일동은 이 사건을 거울삼아 격동의 시대에 진정한 교육의 길이 무엇인지를 냉철히 모색해 교육의 본질인 사랑과 질책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학교측은 이에 앞서 이날 상오10시 송석구 부총장등 교무위원 24명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교무위원회를 열고 폭행에 주도적으로 가담한 국문학과 3학년양승일·강선규군등 2명을 제적조치하고 단순가담자로 밝혀진 같은 학과 2학년 김모군등 나머지 5명에 대해서는 무기정학조치를 내렸다. 한편 이 대학 국문과 학생 50여명은 이날 상오10시 본관앞 불상근처에서 같은 학과 학생들이 선학과 최모교수를 구타한 행위를 참회하는 집회를 열어 「교수님 머리숙여 사죄합니다」 「학교의 건학이념을 존중하겠습니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고 불상을 향해 1백8배를 하며 반성의 뜻을 표시했다. 또 교수폭행 국문학과 3학년생 10여명은 긴급교무회의가 열린 본관 2층 회의실앞 복도에서 무릎을 꿇고 동료학생들의 잘못을 사죄했다.
  • 청량리경찰서 직원/명심보감 통해 “도덕성회복” 실천

    ◎서장이 사비 털어 1천부 배포/대민업무·복무확립에도 일조 『우리의 고전 한편을 끝까지 읽는다는 사실만으로도 평생 남을 재산이 될겁니다』 서울 청량리경찰서 천사령서장(52)은 소속 직원들에게 우리 고전인 명심보감을 통해 온고지신을 실천하도록 권고,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도덕성회복운동이 경찰서내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화제. 천서장은 7월 1백여쪽짜리 2권으로 된 명심보감 1천부를 사비를 들여 구입,전·의경과 순경급 이하 전직원들에게 나눠주고 매일 1쪽 이상씩 익히도록 했다.한달에 한번씩 시험도 치른다. 9월 처음 치렀던 평가시험에서는 전·의경과 순경등 3백여명이 응시,이 가운데 90점이상을 받은 의경 60명이 특별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천서장은 좁게는 보람찬 생활과 동료간 우애를 길러주고 넓게는 충효정신을 높이는 도덕성을 확립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 명심보감은 고려때 어린이 학습을 위해 중국 고전속의 금언·명구를 모아 만든 책이다.글자 그대로 「마음을 맑게 하는 보물과 같은 거울」이 될만한인생지침을 담고있다. 천서장의 구상으로 공직자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중점적으로 재편집한 명심보감은 전편에 걸쳐 뜻이 풀이되어 있고 쪽마다 직접 써가면서 연습할 수 있도록 뒷면이 빈칸으로 되어있다. 취지에 호응한 때문인지,아니면 천서장의 극성스러움 탓인지 전·의경과 순경들은 쉬는 시간에도 책을 손에서 떼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라고 한다. 몇몇 직원은 이 책 말고도 아예 자세한 해설이 담긴 책을 따로 사서 음과 훈을 정확히 새겨가며 익힐 만큼 열성이다. 천서장은 『쉬는 시간이면 텔레비전를 보며 소일하던 전·의경들이 차분히 펜을 들고 공부를 하게됐고 몸가짐이나 말씨가 부드러워지는 등 예상했던 것 이상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요즘 명심보감 학습의 효과를 듣고서 고려대등 여러 학교에서 『교재를 구할 수 있느냐』는 전화가 쇄도하자 매우 흐믓해 하는 표정이다.
  • 지방세정 개혁의 결의(사설)

    내무부가 밝힌 지방세정쇄신책의 배경은 주먹구구식으로 방만하게 운영되어오던 세정을 과감히 수술해 빨리 정상화·전문화·체계화시켜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있다.내년부터 시작되는 지방화시대를 앞두고 날로 높아가는 지방세정의 비중을 적절히 수용하겠다는 적극적인 대안제시로도 이해된다. 인천시 북구청 세금횡령사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시점에서 서둘러 마련된 내무부의 지방세정혁신방안은 오히려 지방세정이 그동안 얼마나 낙후·방치되어왔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감사원과 검찰에 의한 정밀조사가 앞으로 완결되면 지방세의 비리가 낱낱이 밝혀지겠지만 이쯤에서 장·단기의 확실한 대안이 제시되었다는 것은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85년 대비 94년 세수가 국세 4백99%,지방세 6백83%인데서 보듯 국세에 비한 지방세의 세수신장률은 급속히 높아가고 있다.94년기준 국세와 지방세의 80.2 대 19.8의 비율은 일본의 예(64.6 대 35.4)에서 보듯 지방자치시대가 본격화되면서 확대증가될 수밖에 없다.국세징수업무에 버금가는 지방세의제도적 장치정비가 시급하다.그동안 연간 징수액이 12조원에 이르는 지방세를 거두는 종사자는 겨우 4천3백여명으로 징수체제마저 초보적 행정기능속에서 이루어져 왔다.특히 내년부터 지방시대를 맞는 지역주민의 개발및 복지향상에의 기대와 욕구충족을 위한 지방세정의 획기적 혁신은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내무부가 마련한 「10대개혁과제」는 인천사건의 교훈을 거울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취득세나 등록세의 경우 취득금액과 과세시가표준액 사이의 격차에 따르는 공무원의 비위여지,등기전 신고납부에 따르는 법무사의 비위행위개입 소지등의 문제점을 과감히 시정하고 15종으로 복잡하게 돼 있는 지방세를 유사세종간의 통폐합을 통해 단순화함으로써 세제의 투명성을 높이려 했다는 점등이 그것이다. 실무차원을 다룰 「지방세정개혁기획단」이 내년에 설치되고 징수업무가 전산화되며 부과와 징수가 분리되는등 틀이 바뀐다 해도 적절한 인적 자원의 효율적 관리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국세업무를 위해서는 수십명의 박사가 포진된 조세연구원과연간 2백50명 정원의 세무대학운영,또 해마다 5천명에 이르는 세무공무원교육원 교육이 실시되고 있다.지방세정의 경우 그것이 전무하다는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그나마 한정된 자리와 비전문인력의 종사,진급적체로 인한 우수인력확보 불가능등 지방세정이 안고 있는 문제의 과감한 쇄신은 한시도 늦춰서는 안될 과제다. 「지방행정 50년사에 오욕을 남기고 국민의 불신을 초래한」 인천 북구 세무비리사건이 혁명적인 지방세정개혁정착의 결정적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마지 않는다.
  • 양화나루/나루터:중(서울 6백년만상:63)

    ◎한강 첫 관문… 삼남 물산 집산지/김포·강화 길목 군사요충지… 「제진」 주둔/천주교신자 8천명 처형당한 “순교성지” 서울 마포구 합정동과 영등포구 양평동을 잇는 양화진은 지금의 양화대교북단과 당산철교북단 사이의 절두산 아래에 있었다. 당시 도성을 빠져나온 사람들을 김포·강화로 이어주던 양화진은 나루터 바로 위쪽의 잠두봉과 강 건너편의 선유봉,또 이 봉우리를 돌아나가는 한강의 돛단배 모습이 한폭의 그림을 연상케 할 정도로 그 경치가 빼어났다.『기내의 경치로는 한강에서 제일인데 누대가 높이 구름을 막고 물이 푸르러 거울이 뜬 모양 같으며 물산이 번성하여 옷의 옷깃과 같이 중요한 부분이다』라고 「동국여지승람」은 양화진을 묘사한다. 당대의 내로라 하는 문인들은 양화나루를 찾아 시문을 남겼다.문인 강희맹의 「양화답설」과 진경산수화의 거목 겸제 정선의 양화진그림이 그러하다. 양화나루는 서강나루·마포나루·노들나루등과 마찬가지로 뱃길을 이용,삼남에서 올라오는 각종 물산의 집산지였다.특히 한강하류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첫 관문으로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이에따라 양화나루에는 나라에 바쳐지는 세곡이라든가 여러가지 물자를 보관하는 광흥창과 조선조 3등급에 해당하는 병영인 「제진」이 있었다. 양화나루가 한강의 하류에 있던 관계로 이 일대에서는 고래가 잡히기도 했다.이수광의 「지봉유설」에는 「머리 뒤에 코가 있고 길이가 한길이나 되는 이름모를 하얀 생선이 잡혀 구경거리가 됐다」고 기록한다.여기에서 하얀 생선은 돌고래로 추정된다.실제로 1922년에는 6척가량 되는 고래가 한강에서 잡혀 이를 한강인도교변에 묻어주어 이곳을 고래무덤이라고 불렀다. 평화롭기만 하던 양화나루는 대원군이 집권하면서부터 사건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대원군은 고종 3년(1866) 봄 양이로 물들여진 산하를 서학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면서 8천명이 넘는 천주교신자를 당시 잠두봉에서 처형했다.잠두봉이라는 이름은 봉우리모양이 누에가 머리를 든 것 같다는 것에서 유래됐다.잠두봉은 이후 천주교신자들의 머리가 잘려 나갔다고 해서 절두산으로고쳐 불렀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절두산에 들어선 절두산기념관은 1966년 병인순교 1백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순례성당과 성인 27위의 유해를 모신 지하묘가 있다.지난 84년5월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한국방문 첫날 이곳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천주교의 순교성지로 서울의 명소가 됐다.또 연산군 때는 생육신의 한사람인 남효온이 부관참시를 당했고 고종때 갑신정변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상해로 건너간 뒤 살해된 풍운아 김옥균의 시신이 도착한 곳도 양화진이다. 특히 중국은 김옥균의 시신을 송환할 때 조정에 김의 시신에 더 이상 형벌을 가하지 말도록 했으나 조정은 이를 묵살하고 대역부도옥균이라는 커다란 깃발을 내걸고 김옥균을 이곳에다 효수했다. 임오군란 뒤 청과 일본 상인들이 이곳에 가게를 벌이고 장사를 해 외국인들이 붐비던 교통과 상업의 중심지이던 양화나루.지금 이곳은 김포공항을 통해 들어오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지날 정도로 서울의 관문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좋은부모·바른아이」 비디오 제작

    ◎“부모 정성없인 자녀교육 불가능” 일깨워/가족일요등산 등 모범가정 사례 등 소개 『아이는 어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로 바른아이 뒤에는 반드시 바른부모가 있다』 이는 한국여성개발원(원장 김정자)이 부모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구체적인 역할과 실천모습을 담은 30분짜리 비디오물 「좋은부모·바른아이」를 완성,최근 가진 시사회에서 참석자들이 내린 결론으로 나이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겐 자녀교육의 중요성과 그 책임감을 깨우쳐 주었다. 최근 8개월에 걸쳐 「좋은부모·바른아이」를 제작했다는 여성개발원의 전숙희 책임연구원은 『요사이 강도 살인 강간 등 끔찍한 사건들을 저지르고 붙잡힌 범인들마다 한결같이 부모를 원망하는 얘기를 했다』는 사실을 상기 시킨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대다수 부모들은 자녀교육의 어려움을 새삼 실감했을 것이라고 지적 한다. 이에대해 이대 김재은교수는 작품을 통해 『이런 추세가 부모들이 그 역할과 책임을 스스로 하지 않고 아이의 발달을 남에게 떠맡기고 돈으로 때우려는데서 만연하게 된 것』이라고 지적한후 자녀교육은 어머니 아버지가 함께 관심을 갖고 정성을 기울일때 온전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좋은부모·바른아이」는 그밖에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소개되며 아이를 바르게 기르기 위해 피곤하고 바쁜 일상을 쪼개 일요일마다 등산을 하고,엄마·아버지가 함께 청소와 요리를 하며,박물관이나 공연장을 찾아 분위기를 새롭게 하는 등 노력하는 부모들의 사례를 가정탐방 형식으로 담아 소개하기도 했다. 여성개발원이 만든 영상물은 개발원 시청각교재실 및 15개 시·도청과 여성회관 등을 통해 구입(1만원)하거나 대여(2천원)해 볼 수 있다.
  • 컴퓨터 신체측정기 개발/「맞춤복같은 기성복」 양산 길터

    ◎즉석에서 소비자 치수따라 손쉽게 수정/미 TCT사 연구팀 레비 스트라우스와 JC.페니등 미국의 1백여 유명유통및 패션업체가 컨소시엄형태로 설립한 연구개발회사 「텍스타일 클로딩 테크놀로지」(TCT)가 최근 기성복을 맞춤복처럼 생산할 수있는 신기술을 개발,관심을 모으고 있다. TCT는 최근 신체스캐너(Boddy Scanner)라는 전자장비를 개발,각종 크기의 마네킹을 기준으로 재단,가공함으로써 소비자들의 인체구조에 꼭 맞지 않는 기존 기성복의 문제점을 해결해 기성복업계는 물론 의류업계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TCT가 올해말쯤 선보일 예정인 이장비는 의류매장을 찾는 소비자가 전자장치와 거울이 설치된 특수한 방에 들어가면 소비자의 신체를 3차원에서 자동측정하는 장치로서 소비자는 디자인만 선택하게 되면 맞춤복과 같은 기성복을 구입할 수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 장비는 또 소비자가 주문한 옷을 입었을 때의 모습을 컴퓨터화면을 통해 즉시 보여줄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비자는 한번 측정한 치수를 보관했다가 다른 옷을 구입할 때도 다시 사용할 수있는 이점도 가지도 있다. 의류메이커의 입장에서도 표준마네킹과 소비자 신체간 차이점만 파악,기성복의 일부분만 수정해주면 되기 때문에 주문생산에 따른 번거로움을 그만큼 줄일 수있어 생산원가 부담이 크게 늘어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돼 앞으로 실용화될 경우 패션업계에 일대 혁명이 불 것으로 전망된다.
  • 김정일이 외화관람계층 분류(북한 이모저모)

    ○당간부용·안전부용·평양시민용으로 ○…북한 김정일은 자신이 본 모든 외국영화의 관람대상과 범위를 직접 선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평양에서 발행된 「조선문화예술론」에 의하면 김정일은 입수된 모든 외국영화를 감상한 후 ▲당간부용 ▲국가보위부 및 사회안전부용 ▲평양시민용 ▲일반주민용등으로 나눠 관람을 지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외국영화 수집광으로 알려진 김정일은 세계각국의 영화필름 수천편을 소장하고 있으며 해외공관 및 대외무역 종사자 등을 통해 연간 약 6백여편의 외국영화를 사들이고 있다고. ○기원전 12C 쇠거울 발견/평양송석리 돌곽무덤서 ○…북한은 최근 평양에서 기원전 12세기에 만들어진 쇠거울을 발굴했다고 주장. 이 쇠거울은 평양시 강동군 송석리 1호 돌곽무덤에서 사람뼈와 함께 발굴됐는데,크기는 직경 15㎝,두께 0.5㎝의 둥근 모양에 앞면은 매끈하고 뒷면에는 1개의 꼭지가 붙어있다고 노동신문 최근호는 보도. 이 신문은 사람뼈의 절대연대 측정치가 3천1백4년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하고 이로미루어 한반도에선 기원전 12세기부터 철기를 만들어 썼다는 것을 실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 ○“뒷굽 높아야 건강·미용에 좋다”/잡지 천리마/여중생때부터 적극 권장 ○…북한은 최근 여성들의 몸매를 아름답게 하고 건강에도 좋다는 이유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을 것을 적극 권장. 평양에서 발간되는 월간대중잡지 「천리마」 최근호는 북한의 신발공장에서 굽 높이가 30㎜에서 80㎜에 이르는 여러가지 신발들이 생산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을 때의 좋은 점을 소개.이 잡지는 신는 시기는 중학교때부터가 적절하다고 주장하면서 그 이유는 발뼈와 발근육이 완전히 자라지 않아 뼈마디와 힘살이 그에 맞게 발달되므로 몸매가 고와지고,성인이 된 다음 굽이 높은 신발을 신어도 큰 불편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시. ○“청바지는 미국깡패들 옷”/김정일 한마디에 단속나서 ○…북한 당국은 최근 청바지 착용을 더욱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고. 북한에서는 지난 89년 여름에 열린 평양축전때 청바지가 소개된 이후 청소년들이 가장 입어보고 싶어하는 옷으로 꼽히고 있을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나 청바지 착용이 비사회적인 현상으로 비쳐지면서 지난해 8월부터 착용에 제동이 걸렸던 것.청바지착용이 금지된 것은 지난해 여름 김정일이 평양시찰도중 몸에 꽉끼는 청바지를 입고가는 여성을 보고 『조선사람의 풍모가 없다.청바지는 미국의 깡패옷인데 조선사람들이 입어서야 되느냐』고 한마디한 때부터인데 요즈음은 단속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 ○강성산·김용순 수업차관/각급학교 새학년 개학식 ○…북한은 1일 전국의 각급 학교에서 일제히 개학모임을 갖고 새학년도 첫 수업을 시작. 북한은 우리와 달리 9월부터 새학년이 시작되는데 이날 개학식에는 총리 강성산을 비롯,당비서인 계응태·황장엽·김기남·서관희,김용순과 부총리 장철 등 당정고위 간부들이 각각 참석했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특히 김정일이 40여년전 재학한 바 있는 평양 제4인민학교에는 강성산·장철·박남기(평양시 행정경제위원장) 등이 찾아가 첫 수업을 참관하고 교직원들과 함께 학교시설들을 둘러보는 등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 조기 한자교육의 병폐/오동춘 시인·외솔회 사무국장(굄돌)

    신해년 봄 스승의 날을 맞아 「수레의 두 바퀴를 부모라치면/이끌어 주시는 분 우리 선생님/그 은혜 두고두고 어찌 잊으랴/그 수고 무엇으로 거둬들이랴/스승의 가르침은 사랑의 손길」이라는 자신의 붓글씨를 액자로 만들어 내게 선물한 삼십대 후반의 제자가 엄마가 되어 남매를 데리고 여름방학중에 나를 찾아왔다. 반가웠다. 제자는 남매의 교육이야기로 부산했다. 국민학교 2학년인 아들이 아침 자습시간에 하루 한자 배우는 한자공부를 아주 싫어한다고 했다. 좀 쉬운 한자는 뜻도 모르고 쓴다기보다,그려가는 실정이지만 어려운 한자는 아예 팽개치고 밖에 나가 태평하게 뛰어 논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에게도 자주 야단을 맞기때문에 한자숙제는 거의 엄마가 대신해 준다고 했다. 어려운 한자공부는 북한처럼 중학교에 가서 배워도 늦지 않을텐데 왜 갑자기 국민학교에서 한자학습으로 시간낭비를 많이 하는지 알수 없다고 말했다. 5학년인 딸도 한달 배운 한자를 물어보면 다 잊어버리고 몇자밖에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자는 우리는 정자,중국은 간체자(예:개→견),일본은 약자(예:의→예)등의 동양문화권의 세나라가 글자꼴이나 뜻과 소리가 다 다른 것이다. 이런 고통의 한자를 눈부신 과학시대에 착하고 귀여운 우리 어린이에게 억지로 가르쳐야 옳단 말인가. 제자의 아들은 「방실방실」의 짓시늉말로 짧은 글짓기를 시켜보니 「아가가 방실방실 웃습니다」라고 금방 글을 짓는다. 우리집에서 놀다간 제자가의 아들은 집에 돌아가 생활일기도 잘 썼다는 것이다. 일기내용에 순진한 분,존경스런 분 등의 기발한 표현이 쓰여 있어서 그 가운데 「순진한 분」의 뜻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전쟁을 모르는 착한 분」으로 대답했다고 한다. 엄마는 아들의 글솜씨,말솜씨에 놀랐다는 것이다. 영국시인 워즈워드는 그의 시 「무지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했다. 어른의 거울인 우리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고통의 한자를 강요하는 죄악을 저지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존경받는 스승다운 스승이 되어야 할 것 아닌가.
  • “일 동대사의 「진보」는 신라유물”

    ◎고대 최재석명예교수,논문통해 주장/유물 담은 궤짝의 일식명칭 분석… 제작국 유추/일본서기에도 신라서 사들인 기록 남아 일본 나라(나양)의 동대사 정창원은 엄청난 명품을 소장한 고대문화유물의 보고.AD 756년 천왕 쇼무(성무)가 세상을 뜬 뒤 49재일에 왕후 고메이(광명)가 이 절에 바친 이른바 진보로 불리는 유물들이 특히 유명하다.일본 학계는 그동안 이들 유물의 출처를 당이나 일본 자체생산품으로 해석해왔다.그러나 정창원 소장의 진보는 거의가 신라에서 제작되었다는 반론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이같은 반론을 제기한 학자는 최재석박사(고려대 명예교수).그는 최근 발표한 「일본 정창원 소장품의 제작국」이라는 논문에서 동대사 노사나불 불전에 바친 유물목록 헌물장을 통해 유물의 성격을 규명했다.발원내용과 연관시켜 「국가진보장」으로도 호칭되는 이 헌물장 안에는 7백여점의 값진 유물목록이 들어 있다.헌물장에 나타난 유물은 쇼무가 생전에 즐겨 입었던 가사를 비롯,악기·무기·무구·거울·병풍 등으로 정창원 소장품의 주류를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는 먼저 이들 유물을 넣은 궤짝을 가지고 진보를 만든 나라가 어딘가를 밝히는데 초점을 맞추었다.헌물 당시(AD 756년)의 시기를 약간 비켜 진보내용을 적은 「폭량장」에 의하면 유물을 담은 궤짝을 한궤로 기록했음을 밝혀냈다.더러 신궤라고도 적었는데,일본에서는 한과 신은 모두 가라(Kara)로 호칭되기 때문에 신라의 궤짝으로 풀이했다.그리고 정창원의 각종 궤짝과 상자를 잠근 자물쇠가 통일신라의 유물인 경주 안압지 출토품과 형태가 똑 같다는데도 눈길을 주었다. 이와 더불어 각종 진보들이 궤짝에 담기 전에 자루에 먼저 넣었기 때문에 자루의 천을 여러 기록들을 통해 면밀히 살폈다.최박사는 그동안 일본인 학자 구로가와(흑천진뢰)등이 내놓은 고구려비단(고구려금)이라는 견해와 일본 여러 절의 헌물장 내용을 종합,진보를 넣은 자루는 고구려에서 직조한 비단으로 결론을 내렸다.그러면서 고구려가 생산한 비단은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명품(삼국지,후한서,구당서)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단지 신라가 통일을 실현한이후에도 비단 생산지는 고구려 옛땅이었던 탓에 계속 고려금(고구려비단)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최박사는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인 정창원소장의 진보가 당시 신라 물품이라는 당위성을 일본사서 「일본서기」와 「속일본서기」에서 찾았다.그 이유는 천왕 쇼무가 죽기 이전시기에 해당하는 AD 671∼706년까지 신라사신이 7차례에 걸쳐 일본에 온 것으로 기록한 이들 사서는 그때마다 사들인 금은보화와 무기류,미술공예품의 명세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박사는 당시 왕실을 주축으로 사들인 이들 신라물품의 일부가 정창원소장 진보라는 주장을 폈다. 그럼에도 정창원 진보를 당이나 자국(일본)의 것으로 해석하는 일본학계의 시각은 오류라는 것이 최박사의 견해.신라사신편이 아니고는 진보를 구입할수 없다는 사실은 당시 보잘것 없는 일본 조선술및 항해술에서도 나타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황해의 해상권을 장악한 통일신라의 위치를 보면 더 명백해진다는 것이다.그리고 당에 파견한 일본조공사들은 실제 당으로부터 하대를 받아 진귀한 물품을 사올수 없는 처지였다는 것을 역사기록과 연관시켰다.
  • 제천의식(백제를 다시본다:24)

    ◎능산리 금동향로 출토지는 제사터/건물규모 크고 고분 이웃… 사직 추정/송산리 개로왕 가묘도 제사터인듯 우리 민족은 까마득한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는 마음에서 제천의식을 베풀었다.옛 기록에 나오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모두 제천의식이다.특히 국가형태가 완전히 갖추어지면서 국가경영과 관련이 있는 제례가 제도화하는 가운데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생겨났다.이와 더불어 여느 민간사회에는 마을 주민들의 무병안령,다산과 풍요,풍어 등을 기원하는 제사터가 마련되었을 것이다. ○흔적 찾기 어려워 그러나 오늘날 백제강역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제사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유적을 대하기는 쉽지가 않다.이런 상황에서 최근 김동용봉봉래산향로가 출토된 바 있는 충남 부여 능산리 유적이 제사터였다는 국립부여 박물관의 발굴조사결과가 나왔다.이 능산리 유적은 충남 공주 송산리 개로왕의 가묘(1988년 문화재연구소 발굴),전북 부안 변산반도의 죽막동유적(1994년 국립 전주박물관 발굴)과 함께 몇 안되는 백제제사유적으로 떠올랐다. 금동용봉봉래산향로는 출토상황으로 보아 분명히 백제멸망과 관련이 있거니와,제사유적으로 본건물터는 바로 앞에 자리한 능산리고분군(사적14호)과도 결코 무관치 않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이 자리에 세웠던 당초의 건물은 능들을 수호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던 곳이나,나라의 태평을 기원한 사직자리일 가능성이 많다.능이 아주 가까운 지역에 건물을 세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한다.여기서 거두어들인 기와조각이 엄청난 분량이고 보면 건물규모도 대단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금동향로가 나온 능산리유적 건물배치상황을 통해 유사한 다른 유적 하나를 연상하게 된다.그것은 바로 고구려 고토인 중국(만주)길림성 집안현 국내성 밖의 동대자 제사유적(사직)이다.고국양왕 때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제사유적에서는 능산리유적과의 유사성이 찾아진다.백제의 출자가 고구려에서부터인 것은 이미 건국신화나 역사사실을 통해 알려졌고,고고학적 유물들도 이를 입증한다. ○고구려 유적과 흡사 그러나이 능산리유적 건물터가 고구려 동대자 제사유적과 유사하다는 것은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다만 금동향로와 건물터의 관계와 중요성한 것이다. 충남 공주 송산리에서 발굴된 방단계단형무덤도 일종의 제사터로 볼 수 있는 유적이다.서울 송파구 석촌동 계단식돌무지무덤과 흡사하여 한성시대 백제계 무덤으로 추정되기는 하나 제사유적을 겸한 가묘로 보인다.백제 개로왕은 AD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한성백제(BC18년∼AD475년)를 빼앗기고 죽음을 당한다.그 아들 문주왕은 부왕의 시신을 얻지못한채 웅진(공주)으로 천도하면서 일단 가묘로 만든 것이 송산리의 방단계단형무덤이 아닌가 한다.그러나 이 가묘는 개로왕을 위한 제사터 구실을 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백제의 제사유적을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다룰 전북 부안군 죽막동 제사유적은 변산반도 해안절벽에 자리잡고 있다.국립전주박물관이 발굴한 이 유적에서는 구멍이 뚫린 원판(유공원판)과 구리거울(동경),활석으로 모방한 갑옷,굽은옥(곡옥),쇠칼,동물을 형상화한 토제품이 출토되었다.이 유적을 발굴한 국립전주박물관은 죽막동 제사유적은 AD 5세기를 전후로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죽막동 제사유적은 일본 오키노시마(충도)노천유적과 거의 비슷한 조건을 갖추어 주목을 끈다.부안 죽막동은 섬은 아니지만,해안가 절벽에 위치했다는 입지가 우선 비슷한 것이다.유적 형성시기는 부안 죽막동 유적에 비해 훨씬 늦은 AD 7∼8세기경으로 밝혀졌다.그럼에도 출토유물 성격도 비슷한 내용을 보여 백제의 영향을 받은 유적으로 보고 있다. 오키노시마는 일본 규슈(구주)와 한반도 사이의 현해탄 망망대해 속의 섬이다.둘레는 약4㎞이고 해발 2백43m의 산이 우뚝 서있다.절해고도인데다 지형마저 험준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상주하지는 않지만,여러 시대의 제사유적이 분포되었다.야요이(미생)시대로 부터 고훈(고분)시대를 거쳐 나라(나양)시대에 이르는 제사유적이 밀집되었다.그래서 사람들은 이 오키노시마를 「바다의 정창원」이니,「섬으로 된 정창원」따위의 호칭을 붙였다. 이 섬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화 이전의 에도(강호)시대부터다.그러나 본격적인 고고학 조사는 지난 1953년부터 이루어졌다.현재까지 23개소의 유적이 조사되었다.오키노시마 출토유물로는 굽은옥,철제무기류,토기,활석제 사용품 등이 있다.이들 유물은 거의가 바위 끝자락에 만들어 놓은 제사유적에서 출토되었다.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을 좀 장황하게 설명한 감이 없지 않다.그럴만한 이유가 있는데,그것은 오키노시마 제사유적은 일본에서 가장 일찍 나타나는 제사유적인 동시에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데 자리잡았다는 점이다.더 설명을 곁들이자면 오키노시마 유적은 우리 부안의 죽막동유적을 원형으로 삼아 백제를 비롯한 한반도의 유물을 수용했다는 사실도 포함될 것이다. 어떻든 한반도계의 유물이 오키노시마에서 나오는 것은 이른바 도래인과도 결부시켜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이고,더 흥미로운 것은 고대인의 정신세계 마저도 정확하게 반영시켰다는 점이다.갑옷을 모방한 활석제 제사용품이 부안 죽막동유적 출토품과 같다는 것은 앞에서 이야기한 바 있지만,오키노시마 출토의 김동제용두도 경북 풍기와 강원도 양양 출토품과 거의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다. ○가야유물도 나와 그리고 우리 가야고토의 여러 고분에서 흔히 출토되는 말띠드리개가 오키노시마에서도 나오고 있다.오키노시마가 극히 좁은 섬이라는 현실을 고려하면,실제 말을 타는 기마용 말갖춤(마구)의 일부라기 보다는 제의용으로 쓰였을 것이다.말갖춤 장식에 불과한 말갖춤까지도 신성시한 당시 오키노시마의 풍속을 엿보는 듯 하다.이렇듯 한반도의 문화는 현해탄 가운데 섬들을 징검다리로 삼아 일본열도로 흘러들어간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몇몇 백제의 제사유적을 살펴보았다.현재 뚜렷하게 나타난 유적이 3개소에 불과하지만,더 발견 될 수도 있다.이와 더불어 유적연구가 진전된다면 유적의 성격은 물론 백제인들의 기층심성에 깔린 제례의식이 어떠했는가를 어느 정도 규명할 수도 있을 것이다.특히 국가의 사직이나 종묘와 같은 제사유적이 민족의 정신적 구심력을 형성하는데 공헌한 역할론도 제기될 것으로 기대해본다. ◎제사의식/나라의 평안·풍년 등 기원/하늘·땅 등 자연물이나 조상숭배 고대인들은 우주 자연의 모든 현상에 대해 경이로움을 느꼈다.그래서 이들 현상을 초월자 또는 절대적 존재로 상정하고 평안을 기원하거나 혹은 감사하는 천제나 제사 의식을 행했던 것으로 믿어진다.이 외경의 대상은 때로는 하늘 땅 해 달 혹은 자연물이 되기도 했다.우리 민족은 아주 먼 옛날부터 하늘을 공경하여 제천의식을 올리고 농경이 시작된 뒤로는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옛 기록에 나타나 있는 부여의 영고,고구려의 동맹,예의 무천 등이 그것이다.이 의식는 뒷날 조상 숭배사상과 합치되어 조상을 추모하고 자손의 번영,친족 사이의 화목을 도모하는 행사로 발전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막상 제사유적이라고 부를 만한 유적은 오늘날에도 지방 곳곳에 남아있는 서낭당이나 장승,당산을 제외하면 현존하는 숫자는 적은 편이다.선사시대의 제사 유적으로는 울주 반구대와 천전리(국보 147호),고령 양전동(보물 605호),흥해 칠포리,포항 인비동,영천 봉수리,영주 가흥리,여수 오림동,남원 대곡리 등의 암각화가 남아 있다. 역사시대는 백제 유적을 제외하면 통일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제주 용담동 유적(1992년 제주대박물관 발굴)과 수신동굴,그리고 동대자유적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고구려의 옛 수도인 국내성(지금의 집안)동쪽에 위치한 수신 유적은 「후한서」와 「삼국지」에 고구려 왕이 10월에 동맹을 올리던 동국대혈로 불리고 있다. 동대자 유적은 1958년 중국 길림성박물관에 의해 국내성 밖 5백m 지점에서 발견됐다.발굴 결과 이곳은 고구려 중기(18대 고국양왕 9년 또는 광개토왕 2년,392년)에 속하는 「국사」라는 사직과 종묘의 제사유적으로 밝혀진 바 있다.
  • 논문집「금석문으로 본 백제」발간/소진철 원광대교수(저자와의 대화)

    ◎“5∼6세기에 위는 백제의 속국”/대왕 자처 백제왕의 아들·동생이 위 통치/무령왕,일 국보 우전팔번경·칠지도 하역 일본의 국보인 「우전팔번경」과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을 새로 해석,서기 5∼6세기의 백제­위 관계를 규명한 원광대 소진철교수(정치학·64)가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아 최근 논문집 「김석문으로 본 백제 무령왕의 세계」를 냈다. 일본어 번역본이 함께 실린 이 책의 논문 4편은 발표될 때마다 사학계,특히 일본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왜가 그 당시 한반도 남부를 다스렸다」는 그들의 주장을 부정한 것은 물론 나아가 왜가 백제의 속국임을 밝혔기 때문이다. 소교수의 학설은 ▲당시 백제는 왕이 「대왕」을 자처할만큼 대국이었다 ▲백제왕은 자신의 동생 또는 아들을 왜에 보내 통치케 했다 ▲그들에게 통치권을 상징하는 신물로 준 것이 구리거울(우번팔번경)과 칼(칠지도)이다 ▲어려서 「왜왕 무」로 있다 백제로 귀국,왕위에 오른 이가 무령왕이다 라는 4가지로 요약된다. 그는 『내 학설의 중심에는 항상 무령왕이 존재한다.71년 무령왕릉에서 왕의 지석이 나오면서 백제·왜 관계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가 생겼다』고 말했다.즉 지석의 내용 중에 왕의 이름을 「사마」로 표기하고,백제왕이 「대왕」임을 밝힌 부분이 감춰졌던 고대사 풀이의 열쇠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소교수는 국내 학계에서 거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우번팔번경」의 명문에 「사마」 「대왕년」등의 똑같은 문구가 들어있는데 착안,연구한 끝에 이 구리거울이 무령왕이 취임기념으로 왜의 계체왕에게 하사한 것임을 밝혀냈다. 또 이를 바탕으로 한일 사학계에 의론이 분분한 「칠지도」의 명문에 대해서도 『이는 「대왕」인 백제왕이 휘왕(제후국의 왕)인 왜왕 「지」에게 하사한 것』이라는 새로운 학설을 제시했다. 소교수는 한걸음 더 나아가 중국 송서에 기록된 「위 무왕의 상표문」을 분석해 『무는 어려서 아버지 개로왕에 의해 일본 땅으로 보내진 「사마」이며,그는 장성한 뒤 백제로 돌아와 25대 무령왕으로 등극했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학설은 「무왕」등 중국 역사책에 기록된「위오왕」을 천황계보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던 일본 사학계에 큰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소교수는 『논문을 발표할 때마다 일역해 주요 사학자 1백여명에게 보냈더니 긍정적인 답장이 예상외로 많이 왔다』고 밝히고 『일본 학계가 기존의 학설을 쉽게 포기하지는 않겠지만 결국 그들의 연구에 토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등고시 출신으로 20년간 직업외교관 생활을 한 정치학 박사인 소교수는 고대사를 연구하게 된 이유를 『한학을 하는 집안에서 자라 한문을 어느정도 아는데다 나이가 들다 보니 자연히 우리의 뿌리에 관심이 높아져서』라고 밝혔다. 또 국내의 사서나 국내 학자들의 논문을 거의 인용하지 않은데 대해 『국내에서 이 부분에 대한 연구가 별로 축적돼 있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일본 학자들을 겨냥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에는 아직도 실체가 규명되지 않은 한반도계 유물들이 많이 남아 있으므로 이를 통해 백제를 포함한 고대 한민족 국가와 왜의 관계를 보다 명확히 해명하는데 힘쓰겠다』고말했다.
  • 부도덕이 체질화된 「운동권」(사설)

    운동권 연루자를 우리는 한때 「양심수」라고도 불렀다.비록 범법은 했지만 그들에게는 지향하는바 고상한 뜻이 있고 굽히지 못할 의지가 있다는 뜻으로 보통 파렴치범과 구별하려는 것이었다.그러나 오늘의 운동권들의 행태는 그 호칭을 의미없게 한다. 최근의 잇단 현상만 가지고도 운동권세력의 도덕성에 결정적인 회응를 느끼게 된다.이른바 김일성분향소만 해도 격식 갖춰 「빈소」를 차려놓고 집단으로 추모의식을 지내놓고도 여론이 나빠지자 「조작설」을 들고나왔다.공안당국이 올가미를 씌우려고 그렇게 꾸며놓았다는 것이다.그들의 「조작의 조작」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모양이 사나워진 것은 그들을 덮어놓고 지지하는 편향적인 일부 야당의원들이었다.이런 의미없는 온정주의가 그들의 무법성을 조장한다. 짐작컨대 아마 전시대에도 이런 유사한 일은 있었을 것이다.투쟁중에 궁지에 몰리면 반격삼아 「조작설의 조작」같은 것을 전술전략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그러나 그때는 집권층 또한 도덕적 정당성에 하자가 많았으므로 도덕성을 방어무기로 하기에는 운동권보다 우위를 점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민주화된 사회의 거울에는 운동권의 잘못된 행태도 확실하게 비치게 되었다.프락치로 오인당한 시민의 구타치사사건도 비슷한 일이 전에도 있었다.그때도 「프락치」는 아니었다.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다.학원의 정보를 수집하는 기능의 부서를 개편해서 오히려 정보부족이 문제가 될 지경이다.주변을 배회한다는 죄만으로 시민을 잡아다가 마구 때려서 죽음에 이르게 한 학생들의 행동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않는다.설사 그가 「프락치」라고 해도 대학생같은 지성이 린치를 가해 치사에 이르게 한 짓은 용서받을 수 없다. 아무데서나 아무시간에나 표를 요구하다가 안된다고 기차를 멈춰세우고 그냥 올라타는 짓을 운동권학생집단이 또한번 했다.기차를 세우는 일이 이제 운동권의 상습행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부도덕성이 체질화한 단면이 여기서도 드러난다. 우리가 슬픈 것은 운동권의 이런 행태들의 배후에서 북의 조종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인권,가난,부패등 내부적 모순을 숨기기 위해 적반하장의 역공을 취하는 그들의 상습술책과 학생들의 그것이 너무도 같다. 분명한 것은 지난 날에는 가려졌지만 이제는 이런 파렴치성 범법이 가려지지 않는다는 점이다.그러므로 승산도 없다.이런 체질이 운동권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 끝은 뻔하다.아무 곳에도 아무 사회에도 도움이 안되는 「버려진 세력들」로 낙오되는 운명밖에 예상되지 않는다.그 심각성에 대해 한번 진지한 반성을 해보도록 하라.
  • 낙천적인 스페인사람들/마드리드(아랍서 지중해까지:10)

    ◎돈키호테 후예들 거리마다 북적/“내일을 걱정하는 자는 이방인”…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흥청 스페인식 상상력?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야를 투구로,빗자루를 창으로 삼아 불의와 대적하는 기사(돈키호테). 아리아를 부르는 앵무새,탬버린에 맞추어 황금달걀을 백개나 낳는 암탉,사람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원숭이,기분나쁜 추억을 잊게 해주는 찜질약,먹으면 보기 싫은 사람을 눈에 안 보이게 하는 물약 등을 잔뜩 싣고 마콘도마을에 나타난 집시들(백년동안의 고독). 연인이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두 사람의 결혼케이크를 만드는 티타,그녀가 케이크반죽 속에 떨어뜨린 눈물 때문에,케이크를 먹고 난 모든 하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구토를 한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여자의 얼굴은 옆모습과 앞모습이 어우러져 있고,유방은 옷 밖으로 튀어나와 목덜미에 붙어 있다.무릎을 포갠 한쪽 다리는 치마이자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의 다리이기도 하다(피카소). 멀리 하얀 바다와 깎아지른 단애가 있고,돌상자에 뿌리를 박은 죽은 나뭇가지에 시계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돌상자모서리에 걸려 있는 또다른 시계는 지금도 계속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중이다(달리). ○스페인 부의 집결지 이들이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초현실적 세계인식.스페인에 가면 일부러 무엇을 보려고 애쓰지 않고,스페인식 상상력을 몸으로 느껴본다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방법까지도 이미 스페인 자신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야의 판화 중에는,두 눈을 가린 백작부인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기의 왼손을 사기꾼같은 남자에게 내맡기고 있는 그림이 있다.음흉한 속셈을 간신히 감추고 있는 남자에 반해,그의 떨거지들은 그녀의 미래가 송두리째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해 짓꿎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야는 그녀의 도도한 모험에 대해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있다. ­그녀는 「예」라고 말한다.그리고 자신의 손을 낯선 사람에게 내맡긴다. 오후 다섯시에도 햇빛은 베일 듯 강렬했다.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로 가는 길이었다.길 양쪽에 즐비한 상점들은 마드리드가 스페인 부의 집결지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고급상품들이 진열된 진열장 앞엔 행인들의 발이 줄줄이 묶여 있었고,매장 안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마침 걸치고 있는 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참이어서 여성용 의류상점으로 들어갔다.소매없는 셔츠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입어보는 데는 적지않게 시간이 걸렸다.거침없이 어깨와 팔을 드러내놓고 거리로 나오니 태양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인생의 즐거움 만끽 「아하!」여행중 내내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저절로 벙싯 열렸다.벼랑끝까지 따라가보리라.눈을 가리고 모험을 할 바에는 스페인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남은 문제는 무엇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느냐였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맞았다. ­친구여,스페인에서는 날 찾지 마라.몸은 곁에 있어도 마음은…아니,몸도 마음도 연기처럼 증발해버리더라도 부디 찾지 말기를. 그들은 시무룩하게 내 행색을 흘겨보았다. 푸에르타 델 솔은 끝이 빤한 아주 작은 광장이었다.그곳을 중심으로 10개의 방사선 도로가 뻗어나가는 까닭에 턱없이 사람들이 붐빈다는 것 외에 그럴싸한 입상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시민들이 약속을 할 때 징표가 된다는 마드리드의 문장인 곰상이나 시계탑조차도 인파에 묻혀버린 모양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비비고 있는데,벽을 쌓듯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꿈꾸듯 나른한 선율이 흘러나왔다.「아랑페이스 협주곡」「알함브라의 추억」.오래전부터 내 마음을 길 위로 이끈 선율이었다. 그들은 플루트·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3인조 악사들이었다.그밖에 굶주림과 외로움을 함께 해온 개가 있었다.기타 케이스에 떨어져 있는 두 장의 지폐와 몇닢의 동전들이 부끄러울 지경으로,연주는 진지했고,그 선율은 순수했다.선율에서 묻어나는 집시의 우수가 해 저무는 들녘쪽을 가리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집에 있는 플루트를 들고 저들을 따라나서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뿐이었다.일행들은 저만큼 마요르광장쪽으로 가고 있었다. 펠리페3세가 1617∼1619년 사이에 완성한이 광장은 사방이 4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세번이나 화재가 발생해 개조를 한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옛날에는 왕가의 의식과 종교재판의 화형식이 이곳에서 행해졌고,그후엔 투우와 야외연극,성인식,정당대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도 널리 쓰여왔다고 한다. 광장에선 네덜란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높이 뜬 노란 애드벌룬이 중앙에 있는 펠리페3세의 동상을 내려다보며 축제의 현수막을 펄럭였고,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천막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꽃씨와 구근을 파는가 하면,통나무로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한편에선 6인조 밴드가 네덜란드 민속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광장 둘레에 즐비한 카페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며 축제를 멀찍이서 바라보았고,다른 한편에선 거리의 화가들이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무료하게 앉아 있는 화가에게로 다가갔다. 『1960년대만 해도 스페인은 서부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언제부터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가』 『1975년 프랑코체제가 무너진 이후 스페인엔 자유선거,자유시장,자유언론이 가능해졌다.이제 당신은 이 도시 어디에서도 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메손에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얘기하기를 즐긴다고 하는데,그러고도 어떻게 다음날 일을 할 수 있는가』 『일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대화·음식·가족·우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우리는 하루를 두번 산다.낮과 밤의 생활.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의 생각이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려 빈 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이 가진 가장 큰 컵으로 맥주를 시켰다.광장을 둘러보고 돌아온 K가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맥주잔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너 그거 다 마실 수 있어?』 『그럼.그리고 또 마실 건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도시의 각 가정에선 여인들이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을 법했다.라벤더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듯했다. 그런데 내 앞엔 무슨 건수가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동료는 내가 다 못마실 맥주에돈을 낭비하는 것마저 아까워하는 판이었다. 일행들이 아르고 데 쿠치예로스거리에 있는 「엘 쿠치」레스토랑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 오늘밤은 이곳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밤새도록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마셔보면 어떨까요?』 ○카페 빈자리 없어 나는 일행들의 염려를 묵살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이름을 늘어놓았다.생야채 혼합 샐러드,흰 강남콩과 생소시지,왕새우 철판구이,오징어튀김,정어리 소금절임,가다랭이 토마토졸임,석류소스를 친 피망구이,어패류와 고기를 함께 익힌 밥,그리고 맥주 10병이었다.밤새도록 먹기 위한 나의 이 과도한 주문은,『그걸 어떻게 다 먹으려고 그래?』하는 핀잔과 함께 대폭 수정되었다. 일을 좀 저질러보려고 몸살을 아무리 앓아도,분별력 있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매우 간소한 우리의 식탁 옆에서는 마드리드의 젊은이들이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유쾌한 담소에 여념이 없었다.그런데도 웨이트리스는 연방 그들의 자리로 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퇴근후 바를 순회하는 사람들이 카운터에 선 채로 올리브를 안주삼아 가볍게 한잔씩 하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예」라고 대답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음에도,손을 잡아줄 그 무엇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았다.그것은 분별력 있는 동료들 탓이기보다,그림 속의 백작부인처럼 눈을 가리지 않은 내 탓인지 몰랐다.나 자신의 분별력이 결코 눈을 감지 못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나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 문화재의 파수꾼/김용한(굄돌)

    여름방학을 이용해 자녀들과 함께 박물관이나 유적지를 찾아나서는 가족들이 적지않다.요즘 박물관들은 냉방시설도 잘 되어 있고 유적지 또한 아름답고 시원한 풍광을 지니고 있어서 가족들과 함께 찾는 것도 무더위를 식히는 피서법 중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훌륭한 유물들을 대할 때마다 우리는 역사의 긴 시간대를 넘어 아직까지 생생한 숨결과 그 자태를 간직하고 있는 모습에 적이 감탄하게 된다.그러나 그 뒷면에 무수한 노력과 땀흘린 이들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는 쉽지 않다. 몇주전 공무로 인해 여러지역의 박물관으로 출장가는 길에 짬을 내 몇몇 발굴현장을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올 여름의 더위는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그늘 한점 없고 숨조차 쉬기 어려운 지열을 받으면서 묵묵히 우리의 역사를 캐고 있는 발굴관계자와 젊은 고고학도들을 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밖에 없었다. 보존과학자 또한 문화유산을 지키는 파수꾼이다.보통 우리는 문화재들이 수많은 세월의 풍상을 겪고 오늘에까지 전해지는 까닭에 앞으로도 이대로 지속되리라 생각하기 쉽다.그러나 유물은 매장된 상태이든 박물관에 고이 전시되어 있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손상을 입게 된다.그래서 문화재의 병을 치료하고 숨결을 불어넣어주는 문화재의사라 불리는 보존과학자들의 손길은 늘 바쁘다. 문화재의 가치는 현대의 기술력으로도 재현할 수 없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데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하찮아 보이는 토기 한 조각에도 이 땅에 터잡고 살던 선조들의 삶과 역사를 전해주는 정보가 담긴 「역사의 거울」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우리 세대는 문화유산의 최종상속자가 아니라 후손들에게 이어주어야 하는 전달자에 불과하다.오늘도 우리의 문화재를 지키고자 많은 이들이 남 모르는 땀을 흘리고 있기에 우리의 전통과 문화유산은 계속 이어져나갈 수 있는 것이다.
  • 학생운동 방향 대전환 예고/20여개대,새 운동조직 추진 의미

    ◎한총련 과격노선 지지기반 상실/학내문제 주력 「순수파」 입지 강화 대학가 학생운동권의 세력판도에 변화가 일고 있다. 민주화와 다양성이라는 90년대의 사회조류와 최근 김일성사망에 따른 조문파동과 주사파학생에 대한 각계의 비판이 잇따르면서 학생운동권에도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동안 80년대 전대협의 맥을 이어 한총련이 주도권을 장악해온 학생운동권에 경실련학생회에 이어 「21세기연대모임」이 도전장을 냄으로써 정립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실련학생회와 「21세기모임」의 주장과 논조는 지금껏 학생운동이 정치투쟁양상에 편향돼온 것에서 벗어나 통일및 평화적 투쟁등을 내세우는 개혁·탈정치경향을 보여 주목된다. 특히 이같은 탈정치바람은 최근 대학총장들이 총장직선제의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고 주사파학생을 비판한 사실과 맞물려 대학가의 양축인 교수사회와 학생사회가 획일적인 사고및 행동양식에서 탈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고 있다. 그렇다고 「21세기연대」와 경실련학생회 모임을 한총련과 노선을 전면 달리하는 학생들의 모임으로 규정하기에는 아직 이른 느낌이다. 이들의 세력이 아직 한총련처럼 전국적인 연대조직을 갖지 못하고 참여학생수 또한 적어 이들의 전략·전술상 한총련과의 결별을 선언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총학생회는 28일 『한총련의 운동노선에 반대,서울대·연세대·이화여대·상명여대등 전국 20여개 대학과 새로운 전국적인 학생운동조직을 결성키로 했다』고 선언했다. 즉 지난해 총학생회장선거에서 나타난 「생활진보대중정치대학생연합」 「진보정치대학생연합」 「진보학생연합」등 이른바 21세기학생모임인 3개 조직을 세력화한다는 것. 이에 앞서 경실련대학생회는 26일 서울대·연세대등 30여개 대학에 한총련과 주사파운동권을 비난하는 대자보를 붙이며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처럼 이들이 운동권의 패권을 쥔 한총련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은 무엇보다 한총련이 지난해 5월 출범이후 낡은 주체사상에 입각,「북한의 연방제통일방안수용」 「국가보안법철폐」등 이념투쟁과 정치투쟁에 집착하는 바람에 학생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자성에 따른 것이다.게다가 한총련이 김일성사망이후 조문단파견과 파출소습격등 과격폭력시위방식에 매달려 시민및 학생들로부터 지지기반을 잃은 것을 기회로 그 입지를 강화하자는 의도로 볼 수 있다. 「21세기연대」는 대다수 개혁·평화세력에 공감을 받는 학생통일운동의 쇄신과 학생회활동·교육여건등 현실적인 학내문제해결에 주력하는 온건·합리적인 방향으로 학생운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나 아직 한총련의 권위에 밀려 전국적인 조직결성까지는 이뤄내지 못하고 있으며 모임의 연대를 방학중 한시적인 활동으로 규정하고 있어 성패여부는 좀더 기다려봐야 할 일이다.내달 3일 열리는 발족식에 과연 얼마나 많은 대학이 참여할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이들의 연대가 학생운동 주도권장악여부를 가리는 오는 10∼11월의 각대학 총학생회장선거를 겨냥한 것이라는 당국의 분석이어서 올 2학기 대학가에는 학생운동노선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한층 뜨거울 전망이다.
  • “공무원 하복 일제·군정잔재 여전”

    ◎패션 평론가 김청씨,남방셔츠·새마을복 비판/남방셔츠/2차대전때 일본군의 여름 군복/새마을복/일 국민복 변형… 5공때 즐겨 착용 『옷차림은 그 사람의 삶의 거울이며 크게는 한 시대의 사회상을 그려내는 거울이기도 합니다.한 국가 공무원들의 복장이 정치체제의 성격,국민에 대한 서비스 정도를 알게하는 가늠자란 사실은 당연한 것이지요』 계간 「패션문화」 발행인이며 패션평론가인 김청씨(54)는 공무원들이 남방셔츠를 많이 입는 여름철만 되면 할말이 많다고 한다.TV를 통해 입은 모습이 많이 보이는 남방셔츠가 「새마을복」과 함께 일제와 군부정권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옷이기 때문이다. 『남방셔츠란 2차대전때 일본군들이 남방의 여러섬에서 여름철 군복으로 입었던 셔츠입니다.문민시대에 들어선 지금도 정부관리들이 모내기나 가뭄피해를 입은 농촌에 격려차 나갈때 권위적이고 군부 냄새가 나는 남방셔츠나 새마을복을 입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일하기 좋은 밝은 색의 스포츠의류나 캐주얼의류가 시중에 많이 나와있는데 말입니다』김씨는 광복이후 오늘까지 정치인과 관리들의 옷차림변화를 보면 정치세태의 변화와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있다고 말한다.즉 46년 중앙청 총독부 관리들에게 훈시하는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식 아이비스타일의 색코트를 입은 반면,일제 티를 못벗었던 당시 관리들은 일제시대 군복이었다는 설명.또 5·16군사쿠데타후 2공화국때는 군복이,3공화국때는 일제 국민복을 살짝 변형한 재건복이 주로 입혀졌다는 사실을 들고있다. 『국민복의 특징인 목을 높이 감싸는 스탠(Soutien)칼라에서 미군의 전투복(배틀재킷)의 스포츠칼라로 바뀌고 5개이던 앞단추가 4개로,덧주머니가 조금 덜 불룩해 진것이 재건복이죠.이 재건복 착용은 전두환대통령때에도 이어졌는데 새마을복으로 이름이 바뀌어 남방셔츠위에 걸쳐 입었습니다』 6공화국 노태우대통령시기 「일하는 분위기를 진작하기위해」여름이면 남방셔츠 위에 양복을 입거나 새마을복을 껴입는 형태가 흔했는데 최근에도 상급관료들의 노타이 차림시 흔히 볼 수있는 스타일이라고 김씨는 말한다. 김씨는 대민 봉사체제가 자리 잡힌 나라의 공무원들은 예의를 갖춘 옷을 입는다며 노타이 차림의 남방셔츠를 입거나 「굳이 공무원임을 나타내는 새마을복」을 입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한다. 『유니폼이 꼭 필요하다면 친절한 이미지의 심미적인 옷으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국민은 손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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