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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건물사이에 낀 황당한 대형트럭, 원인은?

    두 건물 사이에 낀 13톤 대형트럭 사진이 영국 데일리 메일에 보도돼 웃음을 주고 있다. 신원이 공개되지 않은 이 트럭운전사는 이안 크랭크 음료수 회사의 직원으로 영국 서머셋 주(州) 브루톤의 작은 마을 편의점에 음료수를 배달하기위해 주차할 곳을 찾는 중이었다. 내비게이션을 너무 맹신한 트럭운전사는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대로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골목 끝으로 갈수록 공간이 좁아져 측면거울을 접으면서 운전석 부분은 통과했으나 트럭 몸체가 끼이면서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경사진 골목에서 후진도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진입과정에서 오래된 건물의 측면이 손상되어 더 큰 손해가 우려되기도 했다. 결국 트럭운전사는 밤새 트럭을 지켜야 했고, 다음날 구조대 팀이 출동해 6시간 만에 트럭을 골목에서 빼냈다. 이 상황을 목격한 이웃 주민 마이크 크리포드는 “무슨 생각으로 트럭을 이 골목으로 몰고 들어왔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음료수 회사 사장인 이안 크랭크는 “내비게이션만 믿고 운전 했다는데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며, 결국 트럭운전사에게 임시 정직 처분을 내렸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김경태 tvbodaga@hanmail.net
  • 中시민들 외면했던 ‘뺑소니 아기’ 결국 세상 떠나

    中시민들 외면했던 ‘뺑소니 아기’ 결국 세상 떠나

    차에 치인 뒤에도 시민들의 외면으로 거리에 방치돼 있다 뒤늦게 병원으로 옮겨 치료중이었던 2살 아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중국 현지매체들은 속보로 “유에유에가 21일 오전 0시 32분 숨을 거두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유에유에는 지난 13일 광둥성 포산에서 승합차에 뺑소니를 당한 뒤 길바닥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러나 중상을 당한 아이를 지나가던 시민 17명이 그대로 방치했고, 심지어 뒤따르던 차량은 쓰러진 아기를 다시 치고 달아나 중국은 물론 전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이같은 소식은 중국 사회전역에서 큰 파장을 몰고 왔다. ‘남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중국인들의 오불관언(吾不關焉) 행태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이후 아기를 도우려는 모금의 손길이 빗발쳤으나 결국 아이는 세상의 손길을 외면했다. 현지 네티즌들은 “천국의 냉정함이 없는 생활은 지금보다 더 행복하고 즐거울 것이다. 우리는 너의 이름을 잊지 않겠다.” 고 밝히며 아이의 명복을 빌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사기 완역 김원중 교수

    [김문이 만난사람] 국내 최초 사기 완역 김원중 교수

    누구나 한번쯤 자신한테 물어봤음 직한 얘기다.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라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보면서 자문자답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서 누구는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여 잠시 먼 엣날의 편지 한통을 감상해 보자. ‘대체로 문왕(文王)은 갇힌 몸이 되어 주역을 풀이했으며 공자는 (진나라와 채나라에서) 고난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습니다. 또 손자는 발이 잘리고 나서 ‘손자병법’을 지었습니다.(중략)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그것을 명산에 감추어 영원히 전하게 하고 다른 한편은 수도에 두어 후세에 성인군자의 살핌을 기다리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전날의 욕됨을 씻고자 하며 이제는 1만번 도륙을 당해도 어찌 후회할 수 있겠습니까.’ 사마천은 궁형(宮刑·거세)을 당한 치욕을 견디며 ‘사기’(史記)라는 불후의 명작을 저술했다. 그가 대작을 탈고할 무렵 친구 임안(任安)에게 보낸 서신 ‘보임서경서’(報任少卿書)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사마천은 임안에게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번씩 끊어지는 듯하고 집 안에 있으면 갑자기 망연자실하고 집 밖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합니다. 매번 이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땀이 등줄기를 흘러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라고 구구절절한 마음을 전했다. 궁형이라는 치욕을 받고 살아가는 데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면서 자신이 ‘사기’를 지은 목적과 존재의 이유를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이 편지는 최근 출간된 ‘사기 서’(민음사 펴냄)에 자세하게 실려 있다. 김원중(48·건양대 중문학) 교수는 지난주 ‘사기 서’에 이어 ‘사기 표’를 펴냄으로써 16년 만에 국내 처음으로 ‘사기’ 130편을 완역해 낸 주인공이다. 그는 1995년 ‘사기’ 번역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99년 ‘사기 열전’을 시작으로 2005년 ‘사기 본기’, 2010년 ‘사기 세가’ 등에 이어 이번에 ‘사기 서’와 ‘사기 표’를 동시에 출간했다. 말이 ‘표’지 400쪽에 이른다. 모두 합치면 40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서’는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천문학 등에 관한 이론과 역사를 다루고 있으며 ‘표’는 인물과 사건 등을 연대별로 자세하게 정리했다. 특히 ‘서’에는 ‘사람이란 진실로 한번 죽지만 어떤 경우는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경우에는 기러기 터럭보다 가벼우니 그것을 다루는 방향이 다른 까닭입니다. ’ 등 주옥같은 글들과 함께 치욕의 종류 11단계를 열거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전설의 인물인 황제(黃帝)에서부터 당대 한나라까지의 역사를 정리한 ‘사기’는 2년 전 일본에서 처음 완역됐다. 하지만 이때는 공동집필이어서 개인이 완역해 낸 것은 세계에서 김 교수가 유일한 셈이다. 중국에서는 아직까지 ‘표’가 현대어로 번역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표’의 서문만 번역됐었다. 지난 1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신사동 ‘민음사’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신문과 방송 등 언론매체에서 인터뷰를 요청해 와 지방(건양대)과 서울을 오가느라 바쁘지 않으냐고 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사기’의 완역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그동안 ‘표’는 단 한줄도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완역이라는 말이 있을 수가 없었죠. 단순논리로 보면 ‘표’의 번역이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저의 중국 고전번역에 있어 하나의 분기점이 될 의미있는 책이지요. 중국 이십사사(二十四史)의 정수인 ‘삼국지’와 ‘사기’를 20여년에 걸쳐 세계 최초로 모두 완역하는 기나긴 노정 가운데 ‘표’ 번역은 가장 힘겹고 상당한 인내를 요하는 고통스러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인류의 위대한 고전을 완성한 사마천의 고단한 삶, 치열한 창작열을 떠올리며 박차를 가했습니다.” 또한 그는 ‘표’를 번역하면서 ‘사기’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중요하고 중국 상고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는 사명감에 번역 작업에 채찍을 가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촌철살인의 필치가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역사를 꿰뚫는 사마천의 안목이 응축된 명작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단다. 그만큼 사기 번역에 간단치 않은 열정을 두었음을 의미했다. “사마천이 그토록 고심하고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표’는 사마천보다 90년 뒤에 활동한 역사가인 후한(後漢)의 반고(班固)가 한서(漢書)에서 계승 발전시켰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후 대부분의 역사서에서 ‘표’ 부분을 다룬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표라는 방식을 다루지 않았다는 점은 그만큼 연표를 작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방대한 분량의 ‘사기’를 어떤 식으로 번역했을까. “16년 동안 매일 밤 10시에 잠들고 새벽 2~3시에 일어나 번역을 했습니다. 주말과 방학은 물론 명절 때도 오후에는 연구실로 출근했습니다. 웬만한 약속은 잡지도 않았고요. 그저 ‘사기’에 푹 빠져 지낸 세월이었습니다. 아시겠지만 사마천이라는 인물이 아주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가장 치욕적인 형벌인 궁형을 당하고 모진 삶을 견뎌내면서 살아 숨쉬는 인간과 권력에 대한 경전인 ‘사기’를 완성했으니 말입니다. ‘사기’ 안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잠재력을 지닌 역사의 주인공들이지요.” 김 교수는 번역 과정에서 중국 백화문(구어체로 쉽게 쓴 글)으로 쓰여진 책은 참고하지 않았다. 고전 원문을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중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학창시절 유명한 문학평론가들의 글을 수백편씩 읽어가면서 되도록 쉽고 뜻이 잘 전달되도록 노력했다고 말한다. “중국 역사의 원형이지만 동아시아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기’를 한글세대인 중학교 2학년도 읽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번 완역을 하면서 때늦은 감이 있지만 폭넓게 접할 수 있도록 해서 나름대로 의미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지요. 고생은 했지만 사마천의 치욕과 감정, 문학적 표현과 행간의 의미를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사기’만이 가지고 있는 특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관뚜껑을 닫을 때까지 인간을 논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사기’에는 주류와 비주류가 없습니다.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 있고 배울 점이 많습니다. ‘사기’만 한 인간학적 교과서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양에는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있다고 하지만 소품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사기’에 보면 ‘태산은 한줌의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세세한 물결을 가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큰일을 하려면 작은 인재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이러한 내용들이 담긴 스토리텔링의 보물 창고가 바로 ‘사기’이지요.” 김 교수는 스스로 사마천을 자신의 멘토라고 칭했다. 궁형을 당하면서도 후세에 남기고자 했던 그 마음, 그 정열이 가슴 깊이 새겨지는 까닭이다. 하여 재평가 작업 차원에서 번역 일을 했단다. 사기를 읽는 사람에게 어떤 대목을 권하고 싶은지 물었다. “토끼를 잡고 난 후에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의 고사로 유명한 한신에 대한 묘사에서 사마천의 감정을 느꼈습니다. 한 고조 유방의 첫 부인으로 다른 부인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우고 벙어리가 되는 약을 먹여 돼지우리에 살도록 만든 여태후의 본기를 번역할 때 가장 섬뜩했습니다. 여태후는 동양 최초의 여제가 아닙니까. 아주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사마천은 어떤 인물일까. “역사를 안다는 것은 인생을 두배로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역사 속의 인물은 거듭해서 등장하며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고통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꿰뚫어 본 사마천은 냉정한 역사의 잣대로 인물을 재단하거나 서릿발 같은 말로 단죄하는가 하면 때로는 감성적인 언어로 인물을 감싸며 인간 그 자체를 탐색해 나갑니다. 사마천이라는 사성(史聖)을 만나 그의 대작을 한글로 복원하는 일은 저한테는 무한한 행복이었습니다.” 김 교수는 중국 고전에 지속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겠다고 했다. ‘사기’에 이어 노자, 장자 등 주요 고전의 원문을 찾아 번역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학자가 할 일이 그런 것 아니냐며 웃는다.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원중 건양대 교수는… 충북 보은에서 출생했다. 충남대 중문과와 동대학원을 거쳐 성균관대 중문과에서 중국 고전문학 이론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이완 중앙연구원 중국문철연구소의 방문 학자와 타이완 사범대학 국문연구소의 방문 교수를 역임한 뒤 현재 충남 논산 건양대에서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중국문화학회 부회장, 한국중어중문학회 편집위원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천년의 강의-사마천의 생각경영법’(공저) ‘중국문화사’ ‘중국문학이론의 세계’ ‘통찰력 사전’ ‘중국 문화의 이해’ 등이 있다. 편저서로는 ‘고사성어 백과사전’ ‘허사대사전’ ‘허사소사전’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사기 본기’ ‘사기 열전’ ‘사기 서’ ‘사기 세가’ ‘정사 삼국지’ ‘당시’ ‘송시’ ‘손자병법’ ‘정관정요’ 등이 있다. ‘위진현학가의 자연관의 사유체계와 문론가에 끼친 영향’ 등 30여편의 학술 논문도 발표했다. 2010년 제1회 건양대 학술우수연구자상을 수상했다.
  • [커버스토리-월가의 99%시위] 자본주의 부정 아닌 승자독식 시스템 거부

    월가의 반(反)자본주의 시위는 자본주의의 부정이 아닌 따뜻한 모습의 자본주의가 탄생하길 바라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현재 전문가들이 진단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핵심은 ‘국가의 귀환’으로 요약된다. 탈규제와 시장 만능주의를 지향했던 신자유주의가 2008년 금융 위기 등 많은 부작용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민간경제에 양적으로 개입해 소비를 늘리는 1950~60년대 케인스학파의 논리와는 다르다. 시장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부가 공정한 분배를 위해 조율하고 개입하는 형태를 의미한다. 부(富)가 1%에 집중될 정도의 양극화를 미리 방지하고 금융 자본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갖는 것이다. 사실 자본주의는 그간 수없이 진화를 거듭해 왔다.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의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1930년대 불황을 통해 국가가 민간경제에 개입해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는 케인스식 자본주의로 전환됐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1970년대 국가 개입의 실패가 가시화되면서 시장의 복권이 시작됐다. 이렇게 등장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는 복지를 강조하는 모습으로 조금씩 보완되면서 발전했다. ●“정부는 공정분배 개입하라”… 99%의 반발 하지만 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자본주의는 독주 때문에 진화의 기회를 잃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현실적이지만 모두를 품는 이상적인 면이 부족해 사회주의에서 사회보장제도 등을 배워 보완했다.”면서 “하지만 자본주의는 승자 독식(시장만능주의) 시스템 때문에 기존 20%대80%의 사회가 1%대99%의 사회로 갔다고 대중은 믿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를 하는 대중이 시장체제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왜 너희만 잘 먹고 잘사느냐고 반발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역시 현재의 상황을 기존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포스트 신자유주의 자본주의’로 옮겨 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금융 자본의 영향력은 커졌지만 통제 수단이 없고 사회 양극화가 커진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권의 높은 임금이 비판받는 이유는 긴 시간 동안 기술 개발 등을 하면서 꾸준하게 노력한 결과로 이득을 창출한 게 아니고, 한 번의 선택에 따라 큰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면서 “결국 상품 교환 관계나 임금 계약 형태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금융 의존도 줄이고 규제 강화해야 강석훈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의 역할이 커지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의 케인스식 수정자본주의는 아닐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금융 부문 의존도를 줄이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동의는 이미 이뤄진 것 같다.”면서 “하지만 재정이 불안해 정부가 통화정책으로 개입할 여지가 줄었기 때문에 양적완화 등의 방식보다 공정한 분배를 위한 역할이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경주·임주형기자 kdlrudwn@seoul.co.kr
  • 지식인 눈에 비친 장자의 정신세계

    ‘나는 장자다:왕멍, 장자와 즐기다’는 삶의 질곡과 압박, 일상의 굴레와 번쇄를 어떻게 대하고 넘어서야 할지를 대면하게 한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깜깜한 어둠을 건너야 했던 한 지식인이 장자를 어떻게 보고 체득하고 있는지를 이 책은 절절하게 보여준다. 가슴과 경험을 통해 장자의 마음을 가지고 독립적인 지성과 자존을 지키려 했던 난세 한 지식인의 독백이며, 인생 독본이라고나 할까. 지은이 왕멍(77)은 해마다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는 중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지식인. ‘신중국’ 건립 이후 정치 풍파를 한 몸으로 겪은 그는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공산당 중앙위원과 문화부 장관을 지냈다. 1957년 우파로 찍혀 9년 동안 강제 노동으로 목숨을 부지해야 했고, 16년 동안 신장 지역에 쫓겨 가 있기도 했다. 지은이는 “장자는 인간 내면의 초탈과 해방을 얻는 방법인 소요(逍遙)에 이르는 길을 이야기했다.”면서 “장자를 음미하려면 소요에 대한 그의 생각과 환상에서 풍기는 독특한 멋과 분위기를 먼저 음미하라.”고 권한다. 왕멍은 경쟁과 분쟁이 갖고 있는 변화의 힘을 긍정하면서도 장자가 경쟁과 분쟁이 갖는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하고 있음에 주목했다. 끊임없는 진보의 과정 속에 다른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인간 행동을 수정하고 균형을 맞추고 절제하는 데 (장자의 주장이) 도움이 됐다.”고 평했다. 또 장자가 만물의 상대성과 갖가지 현상의 무의미함, 허무함을 깨닫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장자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노자와 장자도 한쪽 이치만을 이야기했다.”는 비판도 담았다. 저자는 “담담하고 고요하며 적막하고 허무하고 무위한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고 천하의 분쟁과 소란을 ‘마른 고목과 식은 재처럼 대하는 것’을 더더욱 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반문한다. 그리고 “인간과 문화의 황당함과 잔혹함, 일방적인 행동을 반성하고 방향을 바꾸어 사람의 마음과 욕망, 사람들이 말하는 문화가 아닌 하늘(자연)의 뜻에 따라가야 한다.”고 장자의 말을 빌려 답한다. 지은이는 장자가 남다른 상상을 통해 무궁함과 영원함, 출중함에 다가갈 수 있는 정신 확장의 계기를 찾았다고 평했다. 대붕의 날갯짓과 같은 장자의 드넓은 기세와 기백, 몸의 길이가 수천리에 달하는 대어 ‘곤’과 같은 거침없는 종횡무진, 난감한 세상사에 대한 통달과 훌훌 털고 떠날 수 있는 초연함, 장엄하면서도 다채로운 기상. 이는 굴욕과 억압을 견뎌 온 왕멍 자신의 거울이었다. “나는 장자다.”란 그의 외침은 궁핍한 시대를 사는 지식인들의 주문이기도 했다.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딱딱한 어린이 교육은 그만!] 뮤지컬 보며 식습관 고쳐요

    [딱딱한 어린이 교육은 그만!] 뮤지컬 보며 식습관 고쳐요

    어린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게 도와주는 요정들의 나라 ‘소나랜드’. 평화롭던 이곳에는 어느 날 큰 걱정거리가 생긴다. 어린이들의 키가 작아지고 점점 뚱뚱해진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요정나라의 체면이 땅에 떨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흑기사’와 소나 아저씨, 아줌마는 식습관 나쁜 어린이들을 ‘뚱뚱이 괴물’로 만드는 게 마법사의 짓이란 걸 알고 나쁜 식습관을 고쳐주기 위해 나선다. 어린이들의 건강한 식습관 형성을 위한 영양 뮤지컬의 줄거리는 이렇다. 용산구 보건소는 11~12일 이틀간 용산아트홀 대극장 미르에서 관내 어린이집 아동 2000여명을 초대해 ‘소나랜드의 흑기사’를 공연한다.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춘 작품을 보고 즐기며 자연스럽게 올바른 식습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작중 ‘초롱이’와 ‘우람이’는 심한 편식에 패스트푸드를 좋아하는 등 ‘엉망진창’ 식습관을 가진 어린이다. 결국 건강까지 해치자 나쁜 마법사가 나타나 아이들을 성(城)으로 데려가려 한다. 하지만 깜짝 등장한 흑기사가 마법사를 물리치고 어린이들에게 다시는 마법사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올바른 식습관을 전수한다. 관람객들은 이 과정에서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사의 중요성, 영양소가 하는 일 등을 저절로 깨우친다. 공연은 양일 오전 10시와 11시부터 각 50분씩, 모두 4회 열린다. 보건소는 지난해 소나랜드를 배경으로 담배, 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영양 뮤지컬 ‘건강 삼총사의 약속’을 공연했다. 2회 공연 1000명 목표에 1500여명이 몰리는 등 어린이와 학부모 호응이 커 횟수를 늘렸다. 보건소 관계자는 “잘못된 식습관은 자라서는 고치기 힘들다.”며 “어린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영양 교육에 접근해 바른 식습관을 몸에 익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요 보건소는 같은 취지에서 어린이집 방문 교육, 보건소 견학, 영양 보드 게임, 뚱뚱이·날씬이 거울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9)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49)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

    나무의 살림살이는 사람살이를 닮았다. 숲 속에서 말없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사는 듯하지만, 제가끔 스스로에게 주어진 생명의 몫을 다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도 그렇고,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서로에게 자리를 내주며 배려하는 모습도 영락없다. 그중에서도 나무들이 숲의 균형을 이루며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은 사람살이를 닮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사람이 나무에게서 배워야 하는 지혜인지 모른다. 이를테면 여러 그루의 나무가 붙어서 자라는 경우에 그들은 놀랍게도 서로 어울리며 마치 한 그루인 것같은 모습을 지어낸다. 그게 나무들이 살아가는 지혜다. 다툼이 끊이지 않는 사람살이에서 꼭 배워야 할 생명의 이치다. ●장수황씨 가문의 기개와 너그러움 상징 경북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에서 특이한 모습으로 자라난 탱자나무 한 쌍을 바라볼 때에도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대개의 탱자나무가 생울타리로 심어지는 것과 달리 이 탱자나무는 정원 한가운데에서 한 가문의 상징처럼 자란 독특한 나무다. 바로 경상북도 기념물 제135호인 문경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다. “지금은 갈아엎었지만, 옛날에는 이 탱자나무 앞에 연못이 있었어요. 선조께서 집안 환경을 조성하면서 연못 가장자리에 탱자나무를 심어 키웠지요.” 종택 지킴이인 장수황씨 소윤공파 종친회 황문주(75) 회장은 이 탱자나무가 집안에서 대대로 정성 들여 키운 나무라고 강조한다. 무려 400살을 넘긴 노거수다. 나이만으로도 인천 강화도 갑곶리와 사기리의 천연기념물 탱자나무와 맞먹는다. 종택 사랑채 앞마당 한쪽에 근사한 자태로 서 있는 탱자나무는 얼핏 보면 한 그루의 나무처럼 보인다. 게다가 탱자나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곧게 뻗어오른 중심 줄기나 사방으로 넓게 펼친 가지 모두가 빼어날 정도로 아름답다. 가까이 다가서기 전에는 일쑤 탱자나무임을 모르고 지나치게 된다. 이 즈음에는 나뭇가지에 한가득 맺힌 노란 탱자 열매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나마 탱자나무임을 알아볼 수 있다. 물론 탱자뿐 아니라, 가지마다 서슬이 퍼렇게 돋아난 억센 가시도 여느 탱자나무와 다름이 없다. 마침 방금 전에 찾아왔을 듯한 어느 나그네가 저절로 떨어진 탱자 열매들을 주워서 돌무지처럼 쌓아두었다. ●400년 세월의 상처를 스스로 치유 바짝 붙어서 자라난 한 쌍의 탱자나무가 완벽한 한 그루처럼 보이는 탱자나무의 생김새를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보면 놀라움은 배가 된다. 얽히고설킨 나뭇가지들이 어느 쪽 나무에서 뻗어 나왔는지를 일일이 살펴보는 건 불가능하지만, 내남없이 자란 두 그루의 탱자나무는 마치 거울을 보고 마주선 것처럼 대칭을 이뤘다. 한 그루의 잘생긴 나무 모습을 이루며 자라기 위해 나무들은 오랜 세월 동안 곁의 나무를 배려하며 가지를 뻗었다. 다른 나무가 막고 선 쪽으로 가지를 뻗지 않은 건 나무들의 생존 전략이었다. 경쟁과 배려가 담긴 두 그루의 조화로운 어울림은 필경 모든 생명들이 닮아가야 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다. “나무 뒤쪽의 사당, 숙청사 대문 앞에 낮은 키의 나무들이 여럿 있었지요. 그 나무들이 잘 자라지 않고 어지럽기만 해서, 아예 깨끗하게 비워두기로 한 거죠.” 황 회장은 최근 들어 바뀐 주변의 모습을 일일이 짚어 가며 설명한다. 안채와 사랑채 보수도 마치고, 예전과 달리 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한때 종택의 유물 도난 사건 탓에 대문을 닫아걸었던 때와 달라진 모습이다. 원하는 사람들을 이 고택에서 머무를 수 있도록 개방할 준비도 마쳤다고 한다. “나무가 좀 약해졌어요. 1999년에 지방기념물로 지정하면서, 썩어 구멍난 줄기 중간 부분을 외과수술로 막아 주었는데, 그게 오히려 나무에게는 방해였던 거죠. 나무들은요, 자기 상처는 자기 스스로 이겨내거든요. 강제로 치료한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죠.” 400년이라는 긴 세월의 풍파가 지어낸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며 살아온 나무다. 섣불리 닿은 사람의 손길이 오히려 나무의 건강을 약화시켰다는 게 황 회장의 생각이다. 하지만 여전히 탱자나무로서 더할 나위 없이 크고 아름다운 자태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다른 나라에서조차 탱자나무를 이처럼 정원 한가운데에 조경수로 심어 키우는 곳은 흔치 않다. 지체 높은 가문의 상징이 되어 대를 이어 보살핌을 받으며 정원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나무라는 건 더 그렇다. ●서로를 배려하면 공생의 지혜 터득 장수황씨 종택 탱자나무는 두 그루가 어우러지면서 7m 높이까지 자랐고, 줄기 둘레는 두 그루 모두 2m 가까이 된다. 가지 퍼짐은 더 놀랍다. 두 그루가 한데 뭉쳐서 사방으로 10m가 훨씬 넘게 퍼졌다. 굵은 줄기가 솟아오른 뒤에 한 그루에서는 3개의 가지가, 다른 한 그루에서는 4개의 가지가 굵직하게 나와 제가끔 주어진 공간을 촘촘히 활용하며 빈틈을 남기지 않았다. 필경 모든 나무들에게는 가지를 펼칠 만큼의 공간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공간이 배려되지 않은 상태로 바짝 붙어서 자라려면 어쩔 수 없다. 서로에게 조금씩 양보해야만 공생할 수 있다. 상대를 상처내며 홀로 일어서려 한다면, 결국 둘 다 죽음에 들게 되는 게 모든 생명의 이치다. 한 쌍의 탱자나무가 가문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건 단지 크고 오래된 나무라서가 아니다. 그보다는 공존과 공생의 지혜를 온몸으로 가르쳐 주는 나무이기 때문이리라. 나무가 살아있는 곳은 바로 조선의 명재상 황희 정승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장수황씨 종택이다. 글 사진 문경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하리 460-6:중부내륙고속도로의 점촌함창나들목으로 나가서 2㎞ 남짓 가면 문경시청을 찾아갈 수 있다. 시청에서 동북쪽으로 가면 문경시 동쪽을 흐르는 영강에 이른다. 영강대교를 건너면 산양산업단지가 나오는데, 단지를 지나자마자 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2.5㎞쯤 가면 국도 59호선과 이어지는 봉정삼거리다. 좌회전하여 북쪽으로 4㎞ 가서 직진하면 산북면 주민센터를 지나서 왼편으로 장수황씨 종택이 있다. 나무는 종택 앞마당에 있다.
  • [5일 TV 하이라이트]

    ●인간극장(KBS1 오전 7시 50분) 늘씬한 몸과 단정한 얼굴, 여심을 울리는 꽃미남 동호씨는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는 1급 시각 장애인이다. 파릇한 스무 살의 어느 날, 벼락처럼 선고받은 희귀병 ‘레버씨시신경위축증’에 걸리고 만다. 1년 만에 양쪽 시력을 모두 잃어 갔고 제대로 된 젊음을 채 누리지 못한 이십대 청년은 절망과 포기부터 배워야 했는데…. ●TV특강(KBS2 밤 12시 25분) 누가 이런 상상을 해서 지었을까, 하필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자문해 본 적이 있을까. 그동안 우리가 접근하기에는 어려웠던 ‘건축’을 생활 속에 스며든 상식으로 설명한다. ‘TV특강’에서는 매일매일 건축물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우리가 잘 모르고 지나갔던 건축에 대한 궁금증을 사진을 곁들여 흥미롭게 풀어본다. ●하이킥! 짧은 다리의 역습(MBC 밤 7시 45분) 빚쟁이 때문에 문 앞에도 나가지 못하는 내상은 답답하기만 하다. 가족들마저 다 나가 버리고 집에 혼자 남겨진 내상. 너무 심심한 내상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놀기 시작하며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 간다. 한편 여자끼리 살다 갑자기 줄리엔과 함께 살게 된 하선은 이래저래 불편한 점이 많기만 하다. ●쥬블스(SBS 오후 4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 그곳은 바로 신비로운 쥬블스 월드다. 쥬블스 월드에는 다양하고 기상천외한 마을들이 있다. 그중 거대한 캔디 공장은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고, 그것을 여러가지 맛의 캔디에 첨가하는 곳이다. 그러면 캔디들은 ‘쥬블스’라 불리는 새로운 생명체로 탄생한다. 과연 ‘쥬블스’에서는 오늘 어떤 신나는 일이 생길까. ●공부의 왕도(EBS 밤 12시 5분) 고등학생의 하루 평균 공부시간은 10시간 47분이다. 그러나 실기와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예체능계 학생들에게는 10시간도 모자란다. 그런데 여기 시간의 한계를 넘어 각고의 노력 끝에 두 방면에서 모두 성공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피아노전공 1학년 김보영양이 있다. 그녀의 공책에는 어떤 비밀이 있을지 함께한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10분) 1970년대 국내외 농구경기에서 활약하며 한국농구의 발판을 만든 김동광, 1980년대 최초로 오빠부대와 넥타이부대를 만들어낸 이충희, 1990년대 농구계의 르네상스를 이루며 농구의 대중화를 꽃피운 우지원. ‘나는 전설이다’에서는 농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 농구의 역사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한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사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습니다. KBS 02-781-1800 MBC 02-780-0015 SBS 02-2113-3190 OBS 032-670-5000 EBS 02-526-2000 서울신문STV 02-777-6466
  • ‘이상 다음의 근대인’ 평론가 김현 문학전시관 가보니…

    ‘이상 다음의 근대인’ 평론가 김현 문학전시관 가보니…

    평론은 문학 작품을 쓰지 못한 자의 자존심의 발로로 여겨졌다. 하지만 문학평론가 김현(1942~1990)은 아름다운 문체와 감수성 넘치는 글로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그의 매혹적인 문장은 ‘김현체’로 명명되었다. 그의 고향 전남 목포에서 4·19 세대이자 한글 세대로 한국 문학 비평의 새 장을 연 김현을 기리는 문학 전시관이 30일 개관했다. 김현은 진도에서 태어났는데 부친이 목포에서 구세 약국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두면서 목포를 실질적인 고향으로 삼게 된다. ‘김현 문학 전시관’은 목포 출신 문학인 김우진, 박화성, 차범석 전시관이 있는 목포의 갓바위 문화타운에 터를 잡았다. 목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시관에 들어서니 어린 시절 김현이 가르며 뛰어다녔던 바닷바람 내음이 코끝을 간질인다. 김현이 꿈꾼 것은 ‘억압 없는 사회, 억압하지 않는 문학’이었으며 그는 평생 이를 실천했다. 김현 문학 전시관에는 그의 육필 원고, 동료 문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평소 아끼던 문구류,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 책상과 컴퓨터 등 그간 유족들이 보관해오던 유품 300여점이 곱게 전시되어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를 위해 김병익, 김주연과 함께 ‘문지4K’로 불리며 현재 김현문학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김현 20주기에 맞춰 유품을 전달한 바 있다. 김 교수는 “세상을 떠난 김현의 문학 정신을 전시관에 살려 놓은 느낌”이라며 “거울 등으로 김현 비평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7살에 진도국민학교에 입학한 김현은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목포 북교국민학교로 전학한다. 목포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경복고로 전학하여 친형과 함께 서울에서 생활했다. 김광남이란 본명 대신 김현이란 필명을 사용한 것은 스무 살인 1962년 ‘자유문학’ 평론 부문에 ‘나르시스 시론’이 당선되면서다. 같은 해 김승옥, 최하림과 함께 소설 동인지 ‘산문시대’도 창간했는데, 동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곳이 수산시장 옆 목포 오거리의 한 허름한 다방이었다. 김현은 글 실력뿐 아니라 술 실력으로도 유명했는데, ‘산문시대’를 계속 발행하면서 술 실력이 늘고 사람을 ‘조직’하는 역량도 발휘되었다. 김현과 함께 ‘한국문학사’를 쓴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그를 “이상(李箱) 다음의 근대인”이라고 말했다. 30대의 김현은 1977년 서울 구반포 삼거리의 반포치킨이 문을 열었을 때부터 여기서 동료, 제자, 문인들과 어울려 자주 술을 마셨다. 아직도 영업 중인 반포치킨은 공지영 작가를 비롯한 많은 문인의 추억의 장소이기도 하다. 문학 전시관 개관식과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 정과리 연세대 교수는 김현이 목포로 이사해 ‘독서 소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목포는 김현에게 사회이자 규범과 규칙으로 이루어진 제도였다.”고 설명했다. 목포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고령화사회 2제] 백화점 경품에 연금 등장

    시대를 비출 수 있는 거울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제 백화점 경품도 이 반열에 오른 듯하다. 평균 수명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는 가운데 유통업계에서 최초로 ‘연금’이 경품으로 등장해 화제다. 롯데백화점은 가을 정기세일을 맞아 30일~다음 달 30일 ‘연금 경품’ 행사를 진행한다고 29일 밝혔다. 백화점 측은 “고령인구가 증가하면서 경제난으로 노후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있음을 최근 출시된 연금복권의 인기에서 볼 수 있었다.”며 “이에 착안해 향후 안정적인 삶을 도모할 수 있는 연금을 경품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 백화점은 아파트, 소원성취, 우주여행 등을 경품으로 내건 바 있다. 연금은 총 3억 6000만원짜리로 당첨자 1명은 원하는 시기부터 10년 동안 매월 300만원씩 받을 수 있다. 롯데백화점 전국 36개점(영플라자, 아웃렛 포함) 사은 행사장에서 진행되며, 구매 여부에 관계없이 롯데카드나 롯데멤버스카드를 소지한 방문 고객에 한해 하루 한번 응모할 수 있다. 총 100만장의 응모권은 점포별로 한정 수량으로 배분되고 수량이 소진되면 행사는 자동으로 마감된다. 당첨자는 11월 3일 오전 11시 본점 1층 정문 앞에서 추첨하며 이튿날 롯데백화점 홈페이지(www.lotteshopping.com/)에도 고지한다. 롯데백화점 마케팅 부문장 정승인 상무는 “최근 경기불안으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고객들의 큰 호응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지금&여기] 가을은 가을이다/조태성 문화부 기자

    [지금&여기] 가을은 가을이다/조태성 문화부 기자

    이놈 영악하다. 8개월째 접어든 아들놈 쿠나(태명) 말이다. 누워만 지낼 때는 은근한 살인미소를 보냈다. 이 정도면 살살 녹아서 안을 법도 한데, 라는 신호다. 앉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팔 벌리기가 추가됐다. 겨드랑이에 손 집어 넣어 어서 안아 올리지 않고 뭣하느냐는 호통이다. 기어다니기 시작하더니 이젠 무릎 위로 오르려 한다. 이래도 안 안아줄거야, 라는 무력시위다. 이놈 까다롭다. 예전엔 조금만 신기해도 까르르 웃었다. 한여름 쥘부채 펴는 소리에, 멧돼지에 빙의된 아빠의 짐승 콧소리에 숨 넘어가도록 웃어댔다. 그랬던 녀석이 요즘엔 통 무반응이다. 까르르 소리 한번 듣기 위해 재롱은 아기가 아니라 부모가 피워야 한다. 몸치 엄마는 몹쓸 춤사위를 흔들어대느라, 뱃살 두꺼운 아빠는 그네 태워주느라 땀 뻘뻘이다. 왜 이리 신기하고 좋을까 싶었는데 답은 엉뚱하게도 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찾았다. 부모가 아기 모습에 껌뻑 숨 넘어가는 것은, 아기의 모습에서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자신의 아기 시절을 떠올린다는 대목에 숨이 잠시 멎었다. 부모가 아기의 거울이 아니라, 아기가 부모의 거울이란 소리다. 쿠나 녀석에 폭 빠져지냈던 나에게 그제서야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손주 녀석 봐준다고 부산에서 오신 어머니. 그러고 보니 계속 안아달라고 영악하게 굴고, 조금 더 자기를 즐겁게 해보라며 콧대가 한없이 높아진 요놈 때문에 언젠가부터 한쪽 다리를 약하게 저셨다. 무거운 놈 들었다 놨다 하다 한순간 다리에서 뭔가 뜨끔하더란다. 소설가 김연수의 글귀 하나 떠오른다. “딴 생각에 빠진 아들 앞에서 평생 말해야만 하는 몫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말하는 것처럼 말할 때, 부모님은 외롭게 말하고 있는 중이라고.” 나에게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어머니를, 난 얼마나 외롭게 했을까. 오늘은 어머니 앞에 앉아 묵묵히 그 얘기를 들어야겠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니 문득, 가을은 가을이다. cho1904@seoul.co.kr
  • 봉소아(bonsoir) 마담(3)=「스마일」의 박수연 마담

    봉소아(bonsoir) 마담(3)=「스마일」의 박수연 마담

     살롱이란 일반적인 객실 또는 응접실을 뜻한다. 프랑스에서는 사교적인 집이나 미술전람회 같은 것을 여는 장소를 살롱이라고도 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별다른 뜻없이 그저 술집으로 통한다. 칵테일 하우스나 스카치 코너 등과 함께 마담의 얼굴이 그대로 간판이 되는 살롱가 마담을 찾아 『봉소아(bonsoir)-』  서울 중(中)구 북창(北倉)동 11의 2. 조선호텔에서 덕수궁(德壽宮)쪽으로 가다가 왼편으로 두번째 골목.  살롱「스마일」의 마담은 박수연(朴洙蓮·30)씨.『위치는 괜찮은데 주변이 좀 지저분하지요? 일부러 찾아주시는 손님들에게 정말 미안해요』  몸에 밀착된 까만 롱 드레스가 무척 어울린다.  갸름한 얼굴에 시원한 눈매, 퍽 상냥스럽고 맑은 인상이다.  그렇게 뛰어난 미인이랄 것까진 없지만 누구에게나 포근한 친근감을 느끼게 해 줄 그런 얼굴이다.『「스마일」이 문을 연 것은 작년 5월이지만, 제가 맡은 것은 금년 2월부터예요』  원 주인 최우택(崔禹澤·52·대한요식협회 살롱분과위원장)씨가 경영하던 것을 동업 형식으로 맡았다고 한다.  『자본이 모자라서 실내장치도 남들처럼 화려하게 꾸미지를 못했어요』  그렇게 말하는 박(朴)마담의 얼굴에 장식되는 웃음처럼「스마일」의 내부는 사실 소박할이(하리)만큼 꾸밈이 없다.  야트막한 칸막이로 가려진 8개의 독실, 카운터에 마련된 4개의 의자, 4인용 테이블 한 세트, 카운터에는 양주병과 양주잔이 진열돼 있고 꽃무늬 커튼이 벽을 가렸을 뿐, 그 흔한 외국영화배우의 사진 한장도 걸려 있지 않다.  꾸밈없는 살롱「스마일」의 실내, 그 속에서 오히려 주인 마담의 소박한 취미와 인간성이 엿보이는 것 같았다.  그 흔한 속눈썹도, 아이섀도라든가 하는 시퍼런 눈 화장도 박(朴)마담의 얼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너무 초라하지요?』  하기야「스마일」을 찾는 손님이 모두 소박한 것을 좋아하지만은 않을 테니까, 때로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손님이『살롱이란 게 뭐 이래, 시시하게-』한마디쯤 불평을 늘어 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朴) 마담이「스마일」을 맡은 지 5개월 동안 아직은 한번도 그런 손님을 만나지 못했다고.  『술장사를 해 본 경험도 없고 남자를 대하는 솜씨도 없어요. 아마 마담 치고는 3등 마담일 거예요』  하루 매상고의 7할이 외상이라는 설명을 듣고 보니, 3등 마담이라는 자평(自評)도 어느 면에서는 옳을 지 모르겠다.  『다른 가게에서는 기껏해야 3,4할이 외상이라는데 저는 그렇게 안돼요』  외상이 많다 보니 자연히 손님은 단골이 대부분이고, 그러다 보니 술 마시러 오기보다 박(朴)마담과 잡담하러 온 손님이 더 많다고 한다.  『그래도 다 점잖으셔서 지난친 농담도 별로 없어요. 게다가 친한 손님은 제가 아기 엄마라는 걸 아시거든요』  전북 고창(高敞)이 고향인 박(朴)마담은 그곳에서 학교를 마치고 20살때 서울로 왔다.  어느 개인회사에 경리직원으로 3년 가량 근무하다가 부모의 권유로 결혼, 지금은 아기 엄마지만 남편과는 별거 중.  『그 이상은 묻지 마세요』꾸밈없는 웃음이 또한번 스쳐간다.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그 웃음은 한결같은 것인지, 결코 명랑하지 못한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도 처음과 다름없는 밝은 웃음이 가볍게 스치곤 한다.  12명의 호스테스를 거느리고 있는 박(朴)마담은 그들의 몸가짐에 대해서도 자신의 그것 만큼이나 신경을 쓰고 있단다.  『사실은 무리한 일인 줄 알아요. 젊은 여자들이 어디 그렇게 남자들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쉬운가요』  그래도 젊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수긍할만한 논리다.  박(朴) 마담은 그러한 자기의 신조를 종업원 아가씨들이 가끔 못 알아줄 때가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그 아가씨와의 인연을 끊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요구를 하는 손님에게는「나는 뚜장이가 아닙니다」라고 분명히 말해주지요』  상당히 매서운 얘기를 하면서도 얼굴에는 예의 그 소박한 웃음이 또 살짝 스친다.  박(朴) 마담은 살롱「스마일」의 특징을 이렇게 소개했다.  『호스테스 차지를 절대로 따로 받지 않습니다. 다만 손님이 개인적으로 주시는 팁은 인정하지만 1천5백원에서 2천원을 넘지 못하게 합니다』  부당하게 주고 받는 팁이라는 것 때문에 술집 간판이 떨어지고 올라가고 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믿어주셔도 좋고 안 믿어주셔도 좋습니다만 술값 바가지는 절대로 없읍(습)니다. 술집에서 마시는 술값이라는 게 처음부터 쌀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집을 찾는 손님에게 터무니 없는 바가지를 씌워서 골탕먹일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말을 마치고 맥주 한 모금을 마신 박(朴) 마담은 뒤늦게 생각이 나선지『그렇다고 다른 집에서는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 마디 한 마디에 빈 틈이 없다. 1시간 가깝게 얘기하는 동안 다른 방에서 마담을 찾는다는 전갈이 수없이 있었다.  『죄송합니다. 이제 그만 일어서 봐야겠어요. 자주 좀 들러주세요』  또한번 꾸밈없는 웃음을 보여 주며 박(朴)마담은 롱 드레스의 앞자락을 살며시 치켜들고 일어섰다.<재(宰)> [선데이서울 73년 8월5일 제6권 31호 통권 제251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공간과 조화·소통하는 작품 고민… 전통·첨단 공존 세계적 수도 표현”

    “공간과 조화·소통하는 작품 고민… 전통·첨단 공존 세계적 수도 표현”

    “다른 분들 작품도 아주 좋았는데, 제 작품이 좀 더 공간과 조화를 이루지 않았나 싶습니다.” 현대설치작가 전수천(64) 한국예술종합대학 교수는 20일 작품 ‘메타서사-서벌’(조감도)이 서울시 신청사 공공미술 당선작으로 결정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자평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설치작가인 전 교수는 서울시가 지난 5월 ‘지명경쟁작가 선정위원회’에서 선정한 국내 유명 작가 7명 중 한 명으로 신청사에 들어갈 공공미술 작품을 만들었다. 지난 8월 말 시민 선호도 조사를 거쳐 지난 2일 최종 당선작으로 결정됐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경쟁에는 강영민, 문경원, ‘뮌’(김민선&최문선), 안종연, 육근병, 이상진 등의 작가가 참여했다. 메타서사-서벌에서 서벌은 수도를 뜻하는 말로, 다시 말해 ‘대서사 서울’이란 뜻이다. 작품은 길이 50m에 높이 27.5m의 녹색식물이 벽을 가득 채운 에코플라자 로비에 설치된다. 전 작가의 작품은 이 위압적인 공간에 눌리지 않도록 크기를 길이 40m, 높이 24m로 확대했다. 크기만 생각하면 압도적일 것 같지만 작품을 구성하는 형태는 물방울, 공기방울, 빗방울을 연상시키는 직경 30~50㎝의 우윳빛 반투명 방울들이다. 이 방울이 방울방울 나선형으로 하늘거린다. 전 교수는 “많게는 백제의 수도로 2000년, 적게는 조선의 수도로 700년 된 한반도의 중심을 역사와 전통, 첨단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수도로 표현했다.”면서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터치하고, 교감하고, 소통하는 ‘열린 작품’”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청사를 찾는 시민들이 컴퓨터에서 자신의 소원이나 잡담을 올리면, 그 문자들이 대형 발광다이오드(LED) 파이프를 타고 올라가도록 했다. 재미를 주고, 신문고 같은 역할도 기대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로 연결된 로비와 2, 3층 등에 대형 LED 파이프가 휘감아 돌아가도록 한 것도 서울과 대한민국의 역동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좋은 작가들이 많이 참여해서 포기할까 했는데, 서울의 상징인 청사에 모든 시민들이 보고 즐기는 예술품을 설치할 수 있으면 얼마나 즐거울까 생각해서 석 달 동안 밤잠을 설치며 만들었다.”면서 “내년 4월에 완성되며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올해 정년을 맞는 전 교수는 “당선이 올해 개인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고 덧붙였다. 글 사진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Canada West & East ③Je T’aime Que´bec

    Canada West & East ③Je T’aime Que´bec

    퀘벡시티의 중심가 외벽에는 ‘젬므 퀘벡 파르스크J’aim Que′bec parce que…(나는 퀘벡을 좋아한다. 왜냐하면…)’라는 글귀와 함께 퀘벡시민들이 퀘벡을 좋아하는 이유가 말풍선으로 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퀘벡 사랑은 배타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울타리를 낮게 치고서 타지의 여행자를 언제 어디서나 너그러이 반겼다. 유럽인도 캐나다인도 아닌 ‘경계인’으로 살아온 세월이 그들에게 관용을 가르쳤을 터. 퀘벡시티와 사랑에 빠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거리마다 흐르는 음악에 이끌려 무작정 걷다 보면 치열했던 역사의 흔적을 우연히 만날 수 있다. 또 부티크한 매력이 ‘철철’ 넘쳐 여행 내내 심장이 뛸 것이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캐나다관광청 02-733-7741, kr.canada.travel 1 퀘벡 프레스코 벽화 앞에서 거리의 악사가 연주하는 기타 소리가 흘러 나왔다 2 퀘벡시티 관광은 플라스 다름에서 시작된다. 플라스 다름 주변에는 주요 관광지가 몰려 있다 3 트레조르 거리에서 만난 핑거 페인팅 화가 패트릭 콜리떼씨는 퀘벡시티를 그림으로 그린다 4 생장 게이트 앞에서 만난 노만드 펠레티어씨가 구슬픈 색소폰 음악을 들려 주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Artistique 예술가의 꿈이 피어나다 퀘벡시티 중앙에서 길을 헤매던 찰나, 산책 중이던 노인이 길을 알려 주었다. 몇분 후 그는 가던 길을 멈추고 다시 뛰어와서는 “생장 거리Rue Saint Jean를 잊지 마라!”며 한 번 더 어깨를 두드리고 사라졌다. 노인의 말대로 생장 거리로 접어드니 여행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퀘벡시티의 한쪽 길목인 생장 게이트Sanit Jean Gate에 들어서자 색소폰 소리가 발길을 사로잡았다. 색소폰의 주인은 노만드 펠레티어Normand Pelletier. 나란히 진열된 6개의 앨범 표지에는 퀘벡시티의 주요 명소에 서서 연주하는 그가 서 있다. 음악교사였던 펠레티어씨는 음악이 좋은 나머지, 교실 밖을 떠나 거리에 정착하고 말았다. 노래를 신청하라 채근하기에 앨범 수록곡 중 하나인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을 부탁했다. ‘And so I came to see him. To listen for a while(그를 보기 위해 왔어요. 잠시 동안 노래를 듣기 위해)’라는 노래 가사처럼 퀘벡시티는 거리 악사를 보기 위해, 노래를 듣기 위해 여행을 해도 좋을 정도로 음악이 끊이지 않는다. 생장 게이트에서 색소폰이 울려 퍼진 것처럼 요새 박물관Muse′e de Fort 인근에서는 키보드 소리가, 다름 광장Place d’Armes과 퀘벡 프레스코 벽화La Fresque des Que′becois 앞에서는 기타 소리가 새어 나왔다. 퀘벡시티에는 어디를 가나 ‘예술감’이 충만했다. 퀘벡시티는 여름이 특히 압권이다. 매년 여름이면 음악 축제가 열리는데 축제 기간 동안 도시 전체가 공연장이 되기 때문이다. 올해 여름 축제는 지난 7월7일부터 17일까지 열렸고 엘튼 존과 메탈리카 등 유명 가수가 이곳을 찾았다. 퀘벡시티가 400주년을 맞이한 2008년에는 폴 매카트니와 퀘벡 출신의 셀린 디옹이 퀘벡시티의 전장공원Parc des Champs de Bataille에서 공연을 했다. 두 공연에 몰린 관중 수를 합하면 퀘벡시티 인구 수에 가깝다고 하니, 음악을 향한 이들의 열정이 얼마나 뜨거운지 짐작이 간다. 축제 기간을 놓친 것이 다소 서운했지만 무료 재즈공연이 있었기에 위로가 됐다. 무료 재즈공연은 클라렌동 호텔Clarendong Ho^tel 1층에서 매주 목, 금, 토요일(4~11월 목요일 제외) 밤 9시부터 12시까지 열린다. 1870년대 지어진 이 호텔은 퀘벡시티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샤토 프롱트낙 호텔Cha^teau Frontenac Ho^tel보다 나이가 많다. 호텔 로비에는 재밌는 사진첩이 놓여져 있는데 사진첩에는 1870년대 당시 호텔에 묵었던 손님들이 가져온 호텔의 옛날 사진과 기사들이 스크랩돼 있다. 공연이 열리는 1층 홀에서는 맥주나 와인도 판매한다. 간단한 맥주 한 잔과 그윽한 재즈에 몸을 맡기는 순간 퀘벡의 밤은 일시정지된다. 예술의 한 축이 음악이라면 다른 한 축은 미술이다. 재즈가 흐르는 클라렌동 호텔에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생탄 거리Rue de Sainte-Anne가 나온다. 한눈에 봐도 알 만한 유명 인물의 캐리커처가 지나가는 여행자를 지켜보고 있어 찾기 쉽다. 거리의 미술가가 세워 둔 이젤에 가려 살짝살짝 보이는 샤또 프롱트낙의 수줍은 모습은 위풍당당한 정면 모습과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뽐낸다. 직선으로 뻗은 거리가 캐리커처로 메워져 있다면, 생장 길 방향으로 펼쳐진 좁은 트레조르 거리Rue du Tre′sor에는 풍경화, 동판화 등이 걸려 있다. 퀘벡시티를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있던 패트릭 콜리떼Patrick Collette씨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핑거 페인팅 화가인 그는 손가락으로 한 땀 한 땀 그림을 그렸고, 그림 속에는 샤또 프롱트낙, 플라스 다름 등 퀘벡시티의 주요 명소가 판박이처럼 옮겨와 있었다. 캐나다 뉴 브런즈윅주가 고향이라는 콜리테씨는 여행 중 퀘벡시티에 반해 아예 이곳에 정착해 버렸다. 작품 설명 내내 문화와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에 힘을 주어 말하던 그. 퀘벡시티를 주제로 출발한 작품 세계는 사회와 정치를 풍자하는 그림으로 더 넓게 뻗어 나가고 있었다. T clip. 퀘벡, 1년 365일 축제로 들썩들썩 퀘벡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축제’를 놓쳐서는 안 된다. 퀘벡에는 크고 작은 축제가 자주 열려 별도의 액티비티를 즐기지 않고도 특별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여름 퀘벡의 여름은 음악으로 물든다. 퀘벡시티의 서머 페스티벌Quebec Summer Festival, 몬트리올의 재즈 페스티벌Montreal Jazz Festival 동안에는 내노라하는 뮤지션의 공연, 흥미로운 부대행사가 도시 곳곳에서 열린다. 재즈 페스티벌은 내년 6월28일부터 7월7일로 예정돼 있다. www.montrealjazzfest.com 겨울 58회를 맞이하는 퀘벡 윈터 카니발Quebec Winter Crnival이 내년 1월27일부터 2월12일까지 추운 캐나다의 겨울을 뜨겁게 달군다. 눈 퍼레이드, 눈조각 경연대회, 카누 경기, 개썰매 경주 등 다양한 볼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축제의 마스코트인 산타클로스 모자를 쓴 눈사람은 좋은 사람이라는 뜻의 ‘본옴므’. www.carnaval.qc.ca Historique 퀘벡의 역사가 박힌 길 혹자는 퀘벡시티를 일컬어 ‘거만하지 않은 파리’라 했다. 유럽 여행을 마치고 퀘벡시티를 여행 중이라던 한 일본인도 “퀘벡시티는 유럽과 빼닮았지만 유럽보다 청초하고 무엇보다 성심이 곱다”고 말했다. 교역을 발판 삼아 힘을 떨치던 유럽 강대국의 기 싸움 속에 퀘벡은 이중의 상처를 입었다. 완벽한 프랑스인도 영국인도 될 수 없었던 그들은 이제 캐나다인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퀘벡 분리주의자들은 영국 왕실의 퀘벡주 방문에 반대시위를 하는 등 퀘벡의 과거사는 지금까지도 힘을 미친다. 길게 이어진 총독의 산책로Governor’s Walk를 지나 전장공원에 이르면 퀘벡의 지나간 역사가 압축적으로 빠르게 밀려온다. 샤토 프롱트낙 호텔을 지나면 세인트 로렌스 강변 언덕길의 산책로가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테라스 뒤프렝Terrace Dufferin이다. 전망 좋은 테라스 뒤프렝은 바로 총독의 산책로와 이어진다. 고즈넉한 강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시타델과 22연대 박물관을 만날 수 있고 산책로의 끝에 전장공원이 기다린다. 1,700년 초기, 세인트 로렌스강에는 프랑스의 식민주의가 흘렀다. 당시 원주민의 땅이었던 퀘벡을 탐험가 사뮤엘 드 샹플랭Samuel de Champlain은 새로운 프랑스로 만들고자 했고 프랑스인들을 하나 둘 이주시켰다. 누벨 프랑스의 수도가 된 퀘벡은 근대주의의 흐름에 편입되면서 유럽 강대국의 싸움으로 그들의 역사를 채우게 된다. 사뮤엘 드 샹플랭의 동상은 지금 다름 광장에서 퀘벡시티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나 영원한 국가는 없듯이 사뮤엘 드 샹플랭이 세운 퀘벡도 1759년 몽캄Moncalm 장군이 이끄는 영국군에 의해 함락되고 영국령이 됐다. 시타델의 남쪽으로 걸어 산책을 마무리하면 아브라함 평원Plain of Abraham으로 불리는 전장공원이 나오는데 바로 이곳이 두 나라가 싸웠던 터다. 치열했던 전쟁의 흔적은 온데 간데 없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운동 중인 노인, 형형색색의 레깅스를 신고서 무리지어 지나가는 청춘남녀들이 공원을 메우고 있다. 전장공원으로 넘어오는 계단 아래쪽의 한쪽 벽에는 ‘퀘벡 리브레QUE′BEC LIBRE’라는 글씨가 그래피티로 새겨져 있었다. 자유LIBRE 라는 단어는 퀘벡의 정서를 한마디로 함축한다. 캐나다 연방으로부터 끊임없이 독립하려 했던 퀘벡은 끝내 독립하지 못했지만 과거 프랑스의 정서와 언어를 그대로 유지하며 그들의 과거를 잊지 않고 있다. 퀘벡 사람들은 영어와 불어를 대개 동시에 쓸 수 있지만 불어가 그들의 주 언어다. 퀘벡인의 불어는 옛것을 그대로 고수한 탓에 프랑스식 불어와는 큰 괴리가 있다. 퀘벡의 차량 번호판을 유심히 살펴보면 ‘나는 기억한다Je me souviens’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것은 패전 후 그들을 두고 사라진 프랑스를 향해 띄우는 일종의 편지인지도 모른다. 또한 언제든지 다시 자유를 노래할 수 있다는 절치부심하는 그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복잡한 계보 속에 형성된 퀘벡의 매력은 끊임없이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다. T clip. 캐나다의 원주민을 찾아서 웬다트Wendat 원주민 박물관 유럽의 식민지가 되기 이전, 퀘벡을 포함한 캐나다는 원주민의 땅이었다. 몽모랑시 폭포Montmorency Falls 인근에서 만난 초등학생들은 인디언 복장을 한 채 야외 수업에 참가하고 있었다. 인디언 차림으로 연극을 하던 아이들은 아주 오래 전 조상이었던 원주민을 떠올리며 지금의 퀘벡과 캐나다를 몸소 배운다고 했다. 퀘백 원주민들의 역사를 보기 위해서는 퀘벡시티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웬다트 원주민 박물관을 가야 한다. 1960년대 원주민들은 퀘벡시티 근교 웬다케Wendake에 정착해 살았다. 웬다트 원주민 박물관은 당시 원주민의 의식주를 완벽하게 재현해 두었다. 한국의 민속 박물관과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가이드 투어를 신청하면 영어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소 575, Stanislas Koska, Wendake, Que′bec, GOA 4VO 입장료 가이드 투어 12캐나다달러 문의 418-0842-4308 홈페이지 www.huron-wendat.qc.ca 1 세인트 로렌스 강이 펼쳐진 총독의 산책로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2 웬다트 원주민 박물관은 방문자를 위해 인디언 전통 춤을 보여준다 3 영국과 프랑스의 치열했던 전쟁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지금 전장공원에는 사람들의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4 샤토 프롱트낙 호텔 뒤편에는 산책하기 좋은 테라스 뒤프랭이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Boutique 행복을 부르는 아기자기함 퀘벡시티를 돌아보고 나면 “부티크Boutique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퀘벡시티의 아기자기하고 독특한 부티크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Hotel 친절한 빅토리아 마누아르 호텔 “봉주르Bonjour 메이 아이 헬프 유May I help you?” 빅토리아 마누아르 호텔에 들어서면 처음 듣는 말이다. 이 호텔의 직원들은 커다란 캐리어를 끙끙 옮기는 여행객에게 다가와 미소부터 보낸다. 직원의 친절 덕분인지 호텔은 더없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호텔의 버나드Bernard씨와 마죠렌 드 사Marjolaine De Sa매니저는 한국인과 인연이 많고 유머감각이 넘친다. 호텔을 찾는다면 두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 보길 바란다. 시설은 유명 호텔의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부티크 호텔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또한 호텔의 전체적인 색감이 갈색톤이라 상당히 클래식하다. 미로처럼 연결된 통로는 혼자 걸으면 다소 으슥하지만 대저택의 주인이 된 듯한 묘한 기시감도 든다. 주소 44, Co^te du Palais, Vieux-Que´bec, G1R 4H8 문의 1-800-463-6283 홈페이지 www.manoir-victoria.com Shop 독특한 기념품을 원한다면 빅토리아 마누아르 호텔의 입구에서 왼쪽으로 뻗은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유럽을 옮겨 놓은 듯한 부티크숍이 많은 폴 거리Rue Paul로 갈 수 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티크숍은 113번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우베르Ouvert다. ‘Open’이라는 뜻의 우베르는 에코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가게다. 러시아 마트료시카 인형을 연상케 하는 귀여운 모양의 캐릭터가 거울, 옷 등으로 재탄생해 있다. 수제품이라 가격은 높은 편. 우베르의 이웃 가게인 117번 사본리Savonnerie는 염소 우유로 만든 비누를 판매한다. 염소 우유 비누는 사람의 피부 산도와 가장 비슷해 아토피 환자의 치료용으로도 좋다고 한다. 우베르Ouvert 명함 케이스 18캐나다달러, 가방 22캐나다달러, 거울 120캐나다달러 사본리Savonnerie 비누 하나 기준, 5캐나다달러 Street 퀘벡시티의 대표 거리 쁘띠 샹플랭 쁘띠 샹플랭 거리Rue du Petit-Champlain는 퀘벡시티 여행자라면 꼭 한번 들르는 장소다. 이 거리는 어퍼 타운Upper Town 언덕과 로어 타운Lower Town이 연결되는 일명 ‘목 부러지는 계단Escalier Casse Cou’에서 시작된다. 곳곳에 탄성을 자아내는 가게, 식당, 카페 등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다. 사진 찍기 좋은 퀘벡의 프레스코 벽화La Fresque des Que´becois와도 가깝다. 또한 어퍼타운과 로어타운을 손쉽게 연결하는 케이블카 푸니쿨라Funicular도 있으니 한번쯤 타보는 것도 좋겠다. 주소 61, rue du Petit-Champlain Que´bec G1K 4H5 홈페이지 www.quartierpetitchamplain.com Market 저렴한 메이플 시럽과 와인 사세요 현명한 여행자는 ‘시장’에 간다. 현지 시장에 가면 삶의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을 뿐더러 저렴하고 괜찮은 아이템을 살 수 있다. 부티크숍 거리 맞은편에도 퀘벡시티 현지인들이 찾는 구항구 시장Marche´ du Vieux-Port이 있다. 시장 뒤편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 쇼핑에 지친 여행자에게 휴식을 준다. 메이플 시럽은 플라스틱, 유리, 철 등 다양한 소재의 통에 담겨 판매되고 있다. 모양도 와인, 단풍잎 등 다양하고 예뻐 선물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무엇보다 가격이 참 착하다, 메이플시럽은 중심가의 가게 물품보다 최소 1캐나다달러 이상 저렴하다. 메이플은 버터, 잼, 주스 등으로도 만들어져 있고,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 곳곳에서 시식도 가능하니 구입 전에는 먼저 맛볼 것을 권한다. 주소 160, Quai St-Andre Que´bec G1K 3Y2 홈페이지 www.marchevieuxport.com Bus 단돈 1캐나다달러로 퀘벡 한바퀴 퀘벡시티는 도보로 둘러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아담하다. 그러나 주요 관광지가 밀집된 플라스 다름의 주변 지역을 조금 벗어나고 싶다면 에콜로 버스를 한번 타보자. 장난감 버스처럼 생긴 자그마한 이 버스는 퀘벡시티의 주요 지점만을 콕 집어낸다. 주요 관광지 앞에 에콜로 버스 정거장을 알리는 스탠드형 팻말이 세워져 있다. 팻말에 적힌 시간에 맞춰 버스에 타면 된다. 주요 정거장 주의회 의사당, 생장 게이트, 클라렌동 호텔, 구항구 시장 시간 새벽 5시~다음날 새벽 1시(정거장 앞에 버스 도착 시간이 기록돼 있으니 참고할 것) 요금 1캐나다달러 1 관광하기 좋은 곳에 들어선 빅토리아 마누아르 호텔의 외관 2 빅토리아 마누아르 호텔의 버나드씨와 마죠렌 드 사 매니저. 유머감각이 철철 넘쳐 투숙객을 항상 기분좋게 만든다 3 아늑한 분위기의 스탠다드 룸 4 거리에서 만난 꼬마는 자신이 만든 상자 TV에서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냈다 5 쁘티 샹플랭 거리는 부티크함의 끝을 보여준다 7 수제품을 파는 부티크숍 우베르의 입구 6, 8 우베르의 내부, 마트료시카 인형을 연상케 하는 물건들이 많이 보인다 9 현지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구항구 시장 10 독특한 용기에 담겨있는 메이플 시럽들 11 구항구시장 뒤편의 정경 T clip. 퀘벡시티 돋보기 퀘벡 퀘벡시티를 퀘벡주 전체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러나 퀘벡시티는 퀘벡의 주도일 뿐이다. 퀘벡의 가장 번화한 도시는 올림픽으로 잘 알려진 몬트리올. 몬트리올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나지만, 성곽으로 둘러싸인 퀘벡시티는 아늑하고 소박한 멋이 있다. 퀘벡시티는 2008년 탄생 400주년을 맞이하기도 했다. 퀘벡주는 퀘벡시티를 중심으로 흐르는 세인트 로렌스강을 끼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미국과 바로 접해 있다. 미국과 가깝다는 장점 때문에 퀘벡과 미국을 한번에 여행할 수도 있다. 항공 퀘벡시티로 바로 갈 수 있는 직항편은 없지만 퀘벡시티로 가는 다양한 경유편이 있다. 대한항공, 에어캐나다가 대표적이며 지난해 새로 취항한 델타항공의 인천-디트로이트 직항편을 이용해도 좋다. ①대한항공 인천→토론토→퀘벡시티 ②델타항공 인천→미국 디트로이트→퀘벡시티 ③에어캐나다 인천→밴쿠버→토론토→퀘벡시티, 인천→밴쿠버→몬트리올→퀘벡시티 기차 비아레일을 이용하면 몬트리올 등 퀘벡시티의 인근 도시로 기차여행을 떠날 수 있다. 기차역은 구 시가지 성벽 북쪽의 VIA팔레역. 450 rue de la Gare du Palais Que′bec, G1K 3X2 언어 퀘벡에는 PFKLe Poulet Frit du Kentucky가 있다. 패스트푸드점의 대명사인 KFCKentucky Fried Chicken의 프랑스식 표현이다. 17세기 개척 초기 퀘벡에는 프랑스계 사람들이 많이 이주했고 지금도 누벨 프랑스 시대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정작 프랑스 사람들은 퀘벡에서 통용되는 불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퀘벡인들이 쓰는 언어가 고대 프랑스어에 가깝기 때문이라고 한다. 퀘벡시티 사람들의 대화를 들어보면 참 재밌다. 한 사람이 불어로 말을 하고 상대방은 영어로 대답하는 경우도 있다. 불어를 주로 쓰지만 영어도 함께 사용해 간단한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없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24) ‘월든’의 헨리 데이비드 소로

    법정 스님이 가장 사랑했다는 책, ‘월든’! 우리는 흔히 그 책을 나이 지긋한 은자의 기록으로 생각한다. 그러다 막상 책을 펼치면 도처에서 마주치는 신랄한 풍자와 전투적 문체 때문에 깜짝 놀란다. 그러나 이상할 건 없다. 우리가 ‘월든’에서 만나는 주인공은 높은 이상과 패기만만한 열정 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던 불과 스물여덟의 젊은 청년이기 때문이다. 고작 2년 동안의 숲 생활로 ‘월든’을 쓰고, 단 하루의 감옥 경험으로 ‘시민불복종’을 썼던 자. 그러나 단 두 권의 이 책들로 전 세계에 지울 수 없는 영향을 끼친 사람. 바로 헨리 데이비드 소로! (1817~1862) ●스물여덟살 청년의 독립선언 19세기 초 미국, 하느님의 영광은 자본주의의 영광이 되었다. 고작 인구 2000명 정도의 작은 마을에서조차 사람들은 “호수에서 헤엄을 치거나 그 물을 마시는 대신 호수의 물을 수도관으로 마을까지 끌어와 설거지를 할 생각”이나 하고, 철도는 “귀가 찢어질 듯 비명 소리를 마을 구석구석까지 울리고” 있었다. 또한 사람들은 각종 ‘비즈니스’를 통해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디언의 땅 콩코드에서 나고 자란 소로. 어디에서나 인디언의 기억과 전통이 배어 있는 부싯돌과 화살촉을 발견할 수 있던 평원에서 여섯 살부터 암소를 몰고 맨발로 쏘다닌 소로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어리석거나 부질없는 일이었다. 왜 야생딸기를 직접 먹는 대신에 사람들은 딸기를 사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동분서주해야 한다는 말인가.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아무 것도 원하지 않는 것 아닐까. 그런 산발적 질문을 체계적 사유로, 나아가 글쓰기로 인도한 것은 소위 ‘초월주의 운동’을 통해 미국의 문예부흥을 이끈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성, 랄프 에머슨이었다. 물론 누구에게나 직업이 필요하다. 소로 스스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직업’으로 자기 자신을 학교 교사, 가정교사, 측량기사, 정원사, 농부, 페인트공, 목수, 석공, 날품팔이 일꾼, 연필 제조업자, 사포 제조업자, 작가 또는 삼류시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소로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나 자신을 가장 나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야생자연에 대한 탐구를 유일한 ‘비즈니스’로, 산책을 유일한 ‘직업’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게 살자! 1845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 모든 사람들이 축포와 성조기로 ‘미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며 찬양하던 그날, 소로는 신이나 돈 혹은 국가가 아니라 완전한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기 위해 숲으로 간다. 스물여덟의 독립 선언! 그리고 ‘가장 단순한 삶’에 대한 위대한 실험이 시작된다. “내가 숲 속으로 들어간 이유는 깨어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삶은 정말로 소중하다. 그리고 가능한 한 체념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나는 깊이 있는 삶을 통해 삶의 정수를 모두 빨아들이고, 굵직한 낫질로 삶이 아닌 모든 것들을 짧게 베어버리고 삶을 극한으로 몰아세워, 최소한의 조건만 갖춘 강인한 스파르타식 삶을 살고 싶었다.” 그가 월든 숲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의 거처인 오두막을 손수 짓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혼자, 가끔씩은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다락방과 벽장이 갖춰져 있는 오두막을 완성했다. 오두막에 쓴 비용은 단돈 28달러. 그리고 침대 하나, 식탁 하나, 책상 하나, 의자 셋, 거울 하나,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국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나이프와 포크 두벌, 접시 세 개, 컵 하나, 스푼 하나, 기름단지 하나, 당밀단지 하나와 램프가 그의 전 살림목록이었다. ●삶의 목적은 삶, 그 자체이다 그의 눈에 사람들이 필수품이라 생각하는 물건들은 언제나 “너무” 많았다. 그걸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스스로 자신의 노예감독관이 되어 쉴 새 없이 일을 하고, 쉴 새 없이 물건을 구입하러 다닌다. 비교적 작은 시골마을 콩코드에서도 그랬다. 농부들이 집을 장만하게 되면 부유해지기보다 더 빈곤해진다. 그가 집의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집이 그의 주인이 된다. 오우, 가련한 하우스 푸어들! 삶의 모든 곁가지들을 들어내자.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게 살자. 먹는 것은 쌀과 거칠게 간 옥수수 가루와 감자가 전부였으나, 필요하다면 숲에서 잘 익은 월귤을 따서 먹을 수 있었다. 다소 거칠지만 실용적인 옷을 입고 살면 입는 데는 거의 돈이 들지 않았다. 살고 있는 집은 어찌나 단출한지 집안 청소를 위해서는 모든 가구를 밖에 내놓고 오두막에 물을 뿌려 박박 닦은 후, 햇볕과 바람에 집을 말리기만 하면 청소 끝이었다. 그리고 산책과 노동! 매일 아침 숲을 산책하고 모든 관목과 야생 열매와 새와 동물들, 그리고 호수의 변화를 관찰했다. 그리고 땅을 갈아 콩, 감자를 심고 가꿨다. 첫해의 수익은 고작 8달러뿐이었지만 상관없었다. 돈이 더 필요하면 그때마다 마을에서 날품을 팔면 그뿐이었다. 대신 더 많은 시간, 더 많은 느낌, 더 많은 감정, 더 많은 만족감을 얻었다. 점점 더 생활의 달인이 되어가는 소로. 그는 걷고, 뛰고, 수영하고, 배를 젓는 데 전문가였고, 거리와 높이를 발과 눈으로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으며, 무게를 손으로 정확히 달 수 있었다. 심지어 커다란 통 속에 있는 연필을 한 번에 열두 개씩 꼬박꼬박 집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척도-되기! 동시에 점점 더 신비해지는 소로. 그는 어떤 사냥개보다도 더 냄새를 잘 맡을 수 있었고, 인디언처럼 땅에 귀를 대지 않고서도 먼 곳의 희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부시맨-되기! 이제 숲 속의 오두막은 그의 거처일 뿐 아니라 숲 속의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의 거처가 된다. 두 해 후 소로는 월든을 떠난다. 물론 오두막에서의 삶은 자족적이고 충만하였다. 그러나 소로에게 오두막은 마치 외투나 모자 같은 것이었다. 언제나 입을 수도 있고 벗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그가 진정으로 원한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이 때에 맞춰 무르익는 것! 완전히 무르익은 곡식이 열매를 맺고, 완전히 자란 나무의 열매가 떨어지듯, 그렇게 자신의 삶의 완벽한 자연스러움을 얻는 것. 그것이 소로가 원하는 절대자유, 어떤 공리적 목적도 없는 일체무위의 삶이었다. 소로는 집으로 돌아온다. 자기가 머무는 곳이 자연이 되길 바라면서. ●나는 정부의 통치를 거부한다 1846년 미국은 멕시코 전쟁을 통해 단 1500만 달러로 텍사스, 뉴멕시코, 캘리포니아를 양도받았다. 많은 미국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 전쟁을 지지하였다. 물론 대부분이 노예제도 지지자였다. 소로는 다른 많은 당대의 개혁가들처럼 이런 상황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물질적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존엄을 짓밟는 이런 전쟁과 노예제도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말로 하는 반대 이상의 것이 필요했다. 소로의 선택은? 세금납부 거부! 소로는 6년간 인두세를 내지 않았고 결국 체포되고 투옥된다. 단 하루 동안! (소로의 동의 없이 가족이 세금을 납부했기 때문에 소로는 하루만에 풀려난다) 그리고 감옥에서 더 절실히 깨닫는다. 감옥 안에는 국가가 없으며 감옥은 결코 자유로운 정신을 가둘 수 없다고. 소로는 면회를 온 에머슨이 “자네, 왜 그곳에 있는가?”라고 묻자 “선생님은 왜 밖에 계십니까?”라고 응수한다. 그리고 그는 그 하루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시민불복종’을 집필한다. 그가 생각하기에 국가란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들이 상호 공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만든 ‘편의적인 체제’이다. 그런데 그런 편의적인 체제가 갑자기 ‘다수결’의 원칙을 내세워 부당한 질서에 모두를 굴복시키려 한다면? 그때 ‘저항’은 의무이다. 생명을 걸고서라도 그 부당한 국가의 작동을 멈추게 해야 한다. 누가? 바로 내가! 1859년 노예해방론자인 존 브라운이 노예를 도망시키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에 직면했을 때 존 브라운을 옹호하는 첫 번째 공개강연을 한 것도 소로였다. 아마 소로는 존 브라운을 실질적으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소유한 생명력과 힘을 자신의 의지대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떤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의에 가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게 소로의 생각이었다. 월든을 떠나 온 후 소로는 주로 글쓰기와 강연을 하면서 살았다. 물론 생계를 위한 측량기사의 일을 꾸준히 하면서 말이다. 살아 생전, 두 권의 책이 출판되었으나 자비 출판한 첫 책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은 초판 1000권 중 700권이 반납되었다. ‘월든’ 역시 그가 살았을 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여전히 소로는 간결하고 평화롭게 일상을 살았다. 너무 일찍 찾아온 병마 때문에 마흔여섯의 나이에 세상을 떴지만 “회한은 없었다.” 어떤 것들은 끝마치는 것이 당연히 더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12년간 주로 편지로 소로와 교류했던 신학자 해리슨 블레이크는 소로가 죽은 지 30년 가까이 지난 후에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때때로 그의 편지를 다시 읽어보곤 한다. 그의 글을 거듭 읽으면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내기도 하고, 전보다 더 강력한 가르침을 받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여전히 개봉되지 않았고, 아직 나에게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으며, 어쩌면 내가 죽기 전까지는 도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 서신들은 거기에 담긴 진정한 가르침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에게 발송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소로의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의 부박한 일상 속에서 ‘월든’을 발견할 수 있을까. 각자 물을 일이다. 이희경 문탁네트워크 연구원
  • 48세 데미 무어, 반라 셀카 사진으로 논란 자초

    48세 데미 무어, 반라 셀카 사진으로 논란 자초

    50세를 눈앞에 둔 할리우드 미녀 스타 데미 무어(48)가 포플리스 차림으로 찍은 셀카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12일 미국 대중지 뉴욕 데일리 뉴스에 따르면 무어는 자신의 자택 욕실에서 휴대폰으로 찍은 세미 누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300만 팔로워들에게 욕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상반신 나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데미 무어가 자신의 세미 누드 사진을 트위터에 올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비키니를 입고 찍은 셀카 사진을 올려 이목을 끌었었다. 뉴욕 데일리 뉴스는 세 아이의 어머니인 그녀가 이번에도 아름다운 몸매로 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그녀의 토플리스 사진에 대해 누리꾼들의 반응이 시큰둥하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사를 다룬 신문 사이트에는 나이를 무색케하는 몸매에 대한 찬사 못쟎게 “존경받은 엄마가 할 짓인가?”, “내 머리 위로 무어가 앓고 있는 5가지 성격장애 질환이 덜거덕거린다.”는 등 부정적인 댓글도 많았다. 한편 얼마전 데미 무어의 15세 연하 남편인 꽃미남 스타 애쉬튼 커처(33)도 알몸 사진으로 화제를 모았었다. 인기 시트콤 ‘두 남자와 2분의 1(Two and a Half Men)’의 새 주인공으로 나서는 커처가 홍보 차원에서 알몸을 드러낸 셈이다. 사진=데미 무어 트위터 서울신문 나우뉴스 nownews@seoul.co.kr
  • [사설] 사교육 부추기는 강남·분당 중학 수학시험

    사교육 바람이 다른 지역보다도 유별나다는 서울 강남과 경기 분당의 일부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문제를 출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운동단체인 ‘사교육 걱정없는 세상’과 민주당 김춘진 의원실이 서울 강남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구 등 서울·경기지역의 사교육 과열지구 6곳에 있는 중학교의 수학문제를 분석한 결과다. 18개 중학교의 지난 1학기 수학 기말고사 시험지를 분석한 결과 14개교(78%)에서 고교 1~2학년 교육과정의 문제가 출제됐다. 특히 분당 S중학교는 1학년 수학시험문제 중 4문제(18%)가 고교 2학년 수준의 문제인 것으로 파악됐다. 1~2년도 아닌 4년을 앞선 학습이 있어야 제대로 풀 수 있는 문제가 나온 셈이다. 강남 W중학교는 3학년 수학시험문제 중 3문제(15%)가 고교 2학년 수준이었다. 강남 C중학교의 경우 25개 문제 중 24개가 난이도 ‘상’으로 분류됐다. 중학교 수학시험이 학교에서 제대로 배운 학생도 풀기 버거울 정도로 출제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교사의 무책임이 도를 넘은 것이다.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다 보니 요즘 적지 않은 학생들은 수학 선행학습을 하고 있다. 선행학습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것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과 판단에 맡길 일이지만, 실제 학교에서 제대로 배우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은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6개월~1년도 아니고 2~4년이나 앞설 정도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은 학생들을 학원이나 개인과외로 사실상 내모는 꼴이다. 사교육을 없애는 데 노력해야 할 학교에서 사교육을 부추기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물가가 치솟는 등 경제사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녀를 제대로 학원에 보낼 여유가 없는 중산층과 서민층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교육당국은 지나친 선행학습을 부추기지 않도록 관리 및 감독을 보다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 [길섶에서] 낯빛/최용규 논설위원

    술이 해코지를 한 걸까. 집에서 혼자 술 마시는 사람을 이해 못하던 내가 언제부터인가 ‘이해 못할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열흘 전쯤일 게다. 잠도 안 오고 해서 맥주 세 깡통을 단숨에 비우고 아침에 일어났는데 뱃속이 전과 같지 않았다. ‘그거 아세요? 병원 갈 정도는 아닌데 왠지 찝찝하고 기분 나쁘게 아프다는 거.’ 딱 그런 상태였다. 곧 좋아지겠지 했는데 하루, 이틀…1주일째 이어진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남들은 “얼굴 좋아졌어.”라는데 정반대다. 거울에 비친 낯빛이 별로다. 원인은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술? 아니다. 절제력 부족이 술보다 나빴다. 저녁에 자주 찾는 대형마트, 동네 슈퍼에 가서도 막걸리, 맥주를 애써 외면한다. 이해 못할 사람의 함정에서 빠져나와야겠다. 신경써야 할 일은 섭생도 마찬가지다. 한동안 차를 갖고 다닐 수 없게 됐지만 전철역까지 걷기로 했다. 출근길 월계역까지 걷는 10여분간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바람을 맞는다. 모레가 백로. 한낮 노염(炎)을 비키면 걷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 “1人 32役… 남편이 준 최고의 선물 매번 아이 낳는 심정이죠”

    “1人 32役… 남편이 준 최고의 선물 매번 아이 낳는 심정이죠”

    1인 32역의 연극은 어떤 느낌일까. 56년째 무대 인생을 걷는 배우 김성녀(61)의 연극 ‘벽 속의 요정’을 직접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벽 속의 요정’은 한국전쟁 직후 40여년 동안 벽 속에 숨어 딸의 성장을 지켜본 아버지, 아버지가 죽은 줄만 알았던 다섯 살 순덕이가 숙녀로 커가면서 늘 대화를 나누던 벽 속의 요정이 아버지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 1인극이다. 부녀 간의 애틋한 사랑, 그리고 가난과 남편의 부재 속에서도 가정을 지켜온 어머니 등 가족의 뜨거운 사랑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작품을 보다 보면 서른두 가지 배역을 요리조리 잘 조리하는 김성녀의 연기력에 먼저 놀라고, 탄탄한 스토리에 두 번 놀라고, 극이 주는 감동에 세 번 놀란다. 그래서일까. 매회 공연 때마다 기립박수가 쏟아진다. ‘벽 속의 요정’이 김성녀라는 배우를 통해 관객을 만난 지 벌써 올해로 7년째다. 팔색조 같은 배우 김성녀를 지난 1일 공연장인 서울 대학로 PMC자유소극장에서 만났다. 2005년 초연 당시 10년간 ‘벽 속의 요정’으로 살겠다고 선언한 김성녀. 한데 올해 초 90을 바라보는 노()배우 백성희·장민호 선생의 ‘3월의 눈’을 본 뒤 생각이 바뀌었단다. 배우생활을 지나치게 나이로 제한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그녀는 앞으로 매년 이 작품에 도전할 생각이다. “제가 대중적으로 알려진 건 마당놀이잖아요. 극단 ‘미추’ 대표(손진책·현 국립극단 예술감독)의 마누라였기 때문에 제 이름을 내건 연극을 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2005년에 송승환 PMC 대표가 울고 싶을 때 뺨 때려준 격으로 여배우 1인극 시리즈를 시작하는 바람에 ‘벽 속의 요정’을 만날 수 있었지요. 그 이후로 연극, 뮤지컬 무대에 더 많이 설 수 있었고요. 제겐 무척 남다른 작품입니다.” ‘벽 속의 요정’ 연출가는 남편 손진책(64)이다. 초연 때부터 부부는 연출가와 여주인공으로 함께하고 있다. “공연 준비하면서 많이 싸웠어요. 손 감독이 ‘연기를 그렇게 하지 마라. 연기가 삼류다’라며 어찌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던지…. 나 또한 말을 안 듣게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안 되겠다 싶어 스태프들 전부 불러 공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서 연습을 했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두 사람은 부부 사이를 넘어 예술적 동지이자 우군이다. 연출 욕심이 유별난 손 감독이 2005년 ‘벽 속의 요정’ 연출을 맡은 것은 그해 결혼 30주년을 맞아서였다. 연출가의 영향력은 되도록 최소화하고 1인 32역의 배우, 김성녀를 돋보이게 작품을 만들었다. 그녀도 ‘벽 속의 요정’은 남편이 자신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초연 때 참 많이 울었어요. 제 생각엔 남편도 ‘벽 속의 요정’이에요. 연극이란 벽 속에 갇혀 있죠. 인생에서 한 부분에 갇혀 사는 사람,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받는 영향 등에 대해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 작품은 제게 여러모로 선물이에요.” 7년째 같은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녀이지만 공연을 앞두고는 늘 긴장의 연속이란다. “1인 32역에 대사도 많다 보니 모든 에너지를 작품에 쏟아부어요. 매번 아이를 낳는 심정이죠.” 분장실 거울 한편에 공연 날짜가 기록된 달력이 붙어 있다. 날짜마다 동그라미(O), 세모(△) 표시가 돼 있었다. 간혹 엑스(X)자도 보였다. “매일 실수를 해요. 7년째 하는 공연이지만 1, 2막 모두 완벽하게 한 공연은 서너번밖에 안 돼요. 대사를 틀리지 않은 날은 별(★)표, 대사를 틀리면 동그라미, 마음에 안든 날은 세모 등으로 표시하면서 매일 저 자신을 점검하죠.”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2005년 첫 공연 때였어요. 순덕 엄마가 ‘살아 있는 남편 제사를 지낼 수 없다. 교회를 다니겠다’라는 대사를 해요. 근데 400여명의 관객이 폭소를 터뜨리는 거예요. 평소 연습 때 스태프들이 아무도 웃지 않았기에 혹시 뭔가 실수한 건가 싶어 당황했죠. 머릿속이 하얗게 되며 다음 대사가 전혀 생각이 안 나는 거예요. 결국 저도 웃으면서 무대를 두 바퀴 돌았죠. 1인극이다 보니 대사를 까먹어도 상대방이 대처해주는 게 없어 아찔할 때가 많아요.” ‘벽 속의 요정’을 통해 그녀는 수많은 관객을 만났다. 그 가운데 극 중 소녀와 이름이 같았던 순덕이란 팬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나서 순덕이란 분이 제게 울면서 오셨어요. 살기가 너무 어려워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는데 공연을 본 뒤 희망을 얻었다며 고마워 하더라고요. 한 2년간 늘 공연장에 그분이 오셨어요. 지금도 그분이 어떻게 사시는지 문득문득 궁금해요.” 연극을 본 뒤 ‘배우 김성녀의 미학’이란 블로그를 운영 중인 광팬도 있단다. 그녀는 오는 11월 김정옥(79) 연출가의 데뷔 50주년 기념작이자 100번째 작품인 연극 ‘흑인 창녀의 노래’를 통해 또 한번 변신을 꾀할 예정이다. ‘벽 속의 요정’은 오는 25일 막을 내린다. 5만원. (02)745-8289. 글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열린세상] 사람의 탐욕과 유좌지기/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열린세상] 사람의 탐욕과 유좌지기/박광철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사람의 탐욕은 마음속에서 하고자 또는 얻고자 하는 욕심을 인내해야 하는 한계선을 넘어설 때 나타난다. 이것이 지나치면 사람으로서 본래의 품성을 잃고 동물처럼 본능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 탐욕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람은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서 태생적으로 욕심이라는 근원적 기운을 갖고 있다. 욕심의 실체는 우주 만물의 변화를 야기하는 동력이자 마음 의지로서 삶을 주관하는 기운이다. 욕심은 이상적 마음 의지와 현실적 능력 사이에서 접점을 찾아가면서 다스려 나갈 수밖에 없다. 욕심을 다스리지 못하면 탐욕으로 전이된다. 우리의 태양계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풀벌레조차 자기 몫이 있고 이런 무수히 많은 역할이 모여 세상의 균형을 이루며 다시 변화를 일으킨다. 이 역할이 바로 각각의 그릇이요 능력의 크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욕심이 그릇에 채워지고 넘친다면 이미 그것은 능력 밖의 일이며 자기의 소관 범위를 벗어난 타인의 몫이다. 만일 누군가 더 많은 욕심을 내려면, 기존의 자기 그릇을 깨고 다시 그릇을 키운 다음 또 채우기를 거듭해야 한다.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임금이 된 후 스승인 무학대사로부터 사람은 태어날 때 정해지는 사주팔자에 따라 행로가 사실상 결정된다는 설명을 듣고 자기와 똑같은 사주팔자를 가진 사람들을 모두 찾아오라고 지시한다. 이윽고 이성계와 사주팔자가 같은 한 사람을 찾았고, 이성계는 그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소와 돼지를 잡는 백정이란다. 어이가 없어 무학대사에게 물으니 “두분의 팔자가 칼로써 다스리는 기운은 같지만 한분은 지혜의 칼로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의 그릇이고 다른 한분은 무쇠의 칼로 짐승을 다스리는 능력의 그릇이니 다스림의 목적은 같지만 능력이 달라 가는 길이 다른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각자의 그릇 크기 안에서 욕심이 어떻게 다르게 완성돼 나타나는지를 시사하는 얘기다. 유좌지기(宥坐之器)란 순자의 유좌편에 나오는 말로, 노나라 환공이 항상 오른쪽에 두고 마음의 거울처럼 보았던 그릇이다. 이 그릇은 속이 비면 기울고 가득 차면 엎어지며 알맞게 채우면 똑바로 서 있기 때문에 환공 스스로 항상 욕심이 자기 능력에 비추어 지나치거나 부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곁에 두고 평상심을 다스릴 때마다 보았던 의기(儀器)이다. 조선시대 개성상인이었던 임상옥도 자신의 재물에 대한 무한의 욕심을 경계하기 위하여 아무리 술을 채워도 넘치지 아니하는 계영배(戒盈杯)라는 술잔을 곁에 두고 본분을 잊지 않으려고 애썼다. 돈 버는 욕심이 인생의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라는 점을 알고 능력이 만들어 주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상인으로서 바른 길이 무엇인지를 고심할 때마다 보았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국민들이 그룹이나 대기업을 쳐다보는 시각이 따뜻하지 않다.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도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 새로운 동력의 그릇을 키우기 위한 재투자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축적한 재화는 이미 천문학적인 수치에 이르며 갖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속도까지 붙어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한없이 부의 편중이 심화되고 있다. 조세라는 수단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배분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말은 무색해졌다. 장사꾼은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오직 이익만을 좇지만, 사업가는 회사라는 법인을 경영하는 기업가로 적어도 윤리적 규범 안에서 이익을 추구하고 있어 두 개념은 구별된다. 여기서 사업가에게 부여된 윤리라는 덕목은 승자의 독식이 아니라 나눔의 미덕을 말한다. 독식은 이미 그릇을 채우고 넘친 상태로, 다른 자의 몫까지 움켜쥐고도 배고픔을 호소하는 탐욕이기 때문에 허무한 신기루와 같다. 거창하게 기부금을 내어 재단법인을 만든다고 시끄럽지만 그것은 나눔의 양보가 아니라 그들만의 새로운 울타리가 하나 더 만들어지는 것에 불과함을 우리는 많이 보아 왔다. 늦었지만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작은 나눔부터라도 시작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 나서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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