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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리우드 SF화제작-윌 스미스 주연 ‘아이, 로봇’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기다렸다는 듯 극장가를 ‘공습’한다.여름휴가의 절정을 이룰 29일과 30일 시간차 공격에 들어가는 SF화제작 두편,‘아이,로봇(I,Robot)’과 ‘반 헬싱(Van Helsing)’.할리우드의 막강 물량공세가 빛나는 두 영화는 그러나 감상포인트는 달리 찍는다.‘아이,로봇’이 기계문명의 음울한 미래를 진지하게 경고했다면,‘반 헬싱’은 시대를 초월한 액션팬터지를 특수효과로 떠들썩하게 녹여냈다.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는 더 이상 뜬구름 잡는 예측이 아닐 것이다.그리 머지 않은 2035년.택배 박스를 들고 도심을 활보하고 바에서 주문을 받거나 ‘주인님’을 깎듯이 섬기며 집안일을 대신하는 로봇,최신형 로봇을 얻기 위해 복권을 긁는 시민들. ‘아이,로봇’은 이런 예견가능한 미래의 ‘그림’들을 펼쳐보이며 운을 뗀다.우주여행을 권유하고 개인용 로봇의 기능을 업그레이드하라는 광고에 귀기울이는 미래의 시민들은 완전히 딴세상을 사는 듯하다. 이런 설정들 위로 영화는 이질적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던져놓는다.시카고 경찰 스프너(윌 스미스).2004년제 ‘골동품’ 운동화를 고집하는 그는 인간이 로봇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세태에 불만이 많다.그런 스프너에게 미스터리 사건이 맡겨진다.최신형 로봇 NS-5 출시를 하루 앞두고 NS시리즈의 창시자이자 로봇공학계의 거물인 래닝 박사가 자살한 것.박사의 자살에 석연찮은 구석을 발견한 그는 세계적 로봇제작사 US-로보틱스 사장 로렌스(브루스 그린우드)를 의심한다. 액션물의 재미요소로 동원한 소재들은 익숙하다.로봇을 끔찍히도 경계하는 스프너와는 달리 US-로보틱스의 잘 나가는 로봇 심리학자 수전(브리짓 모나한) 박사는 로봇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여성 캐릭터.판이한 남녀 주인공의 캐릭터가 충돌과 화해를 거듭하는 사이 의문사의 진상이 조금씩 드러난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영화는 차가운 금속성 화면으로 구체화했다.US-로보틱스사의 창고에 가득찬 합금로봇 행렬,살인로봇을 찾아 그 사이를 혼자 헤매는 스프너,신형 로봇들이 구형 로봇들을 폐기처분하는 장면이나 용도폐기돼 무더기로 널부러진 고철 로봇 등은 소름돋는 공포감을 자아낸다.로봇이 스스로 진화해서 인간의 감정을 흉내낼 수도,그들이 인간을 역공할 수도 있다는 가정들도 섬짓하긴 마찬가지.기계문명의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경고하는 데 영화는,‘인격’을 부여받지 못해 고뇌하는 로봇인간을 주요캐릭터로 동원하기도 했다.래닝 박사의 죽음과 연루된 로봇 ‘서니’는 인간의 감정까지 닮고 싶어 “나는 뭐지?”“나는 특별하다.”를 외치며 폐기처분되길 거부한다. 속이 광케이블로 꽉찬 로봇인간이 인격을 꿈꾸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A.I.’와 많이 오버랩된다.하지만 ‘합금’ 소재로 ‘체온’을 이끌어내는 장기자랑에서는 이 영화가 한수 아래인 듯하다.“인간끼리 죽이던 옛날이 그립겠지?” 등의 직설적 대사들이 경고 이상의 찡한 연민을 끌어내지는 못했다.‘크로우’‘다크시티’ 등으로 미래사회를 그려온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대기업 “거물급 법조인을 모셔라”

    대기업들이 거물급 변호사 영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참여정부들어 대선자금 문제와 재벌개혁 문제로 각종 송사에 연루되면서 파워 있는 법조인들의 ‘도움’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해진 탓으로 해석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출신의 간판스타이던 이종왕(54) 변호사를 지난 19일 영입하고 나선 삼성그룹이다.이 변호사의 경우 지난 99년말 ‘옷로비 의혹사건’수사 중 박주선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과 갈등을 빚다 검찰을 떠난 이후 줄곧 재벌들과 관련된 재판에서 변호인을 맡아왔다.SK그룹의 분식회계사건,대북송금의혹사건,LG및 현대차그룹의 대선 비자금사건 등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했다. 이 변호사의 공식직함은 상임 법률고문 겸 법무실장으로 대기업에서 일하는 변호사로서는 처음으로 사장급 예우를 받는다. 삼성그룹의 경우 삼성전자의 20여명에 이르는 매머드 법무팀 외에도 계열사별로 1∼5명씩으로 구성된 법무팀 진용을 갖추고 있다. 최근 삼성중공업은 수원지방검찰청 출신인 이명규 검사를 법무실장(상무)으로 임명했고,유승엽 서울중앙지검 총무부 검사도 이달 1일자로 삼성그룹 법무팀으로 자리를 옮겼다.삼성의 이같은 ‘법조인 챙기기’는 경영 활동에 대한 법률지원외에 에버랜드와 삼성카드의 법률 위반 여부 등 현안에 대한 유리한 환경 조성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일각에서는 지난달 말 손길승 SK회장이 실형 3년을 선고받는 등 강경해진 사법부의 분위기에 대한 ‘대응책’마련 차원이라는 얘기도 있다. SK그룹은 지난 6월 사장직속의 윤리경영실을 신설하면서 김준호(47) 서울고검 부장검사를 부사장급으로 영입하는 등 법무조직을 강화했다.최태원 SK(주)회장의 신일고,고려대 3년 선배인 김 검사는 최 회장이 직접 나서서 챙겼다는 후문이다. 이밖에 LG그룹은 서울지법 판사 출신인 김상헌 부사장이 법무팀장을 맡고 있고,코오롱그룹에서는 박순용 전 검찰총장이 그룹 고문 변호사 등으로 활동하는 등 유력 법조인들이 대거 재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광숙 김경두기자 bori@seoul.co.kr
  • 단체장 “예비신청 않겠다”

    주민들이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 청원서를 낸 7개 시·군(10개 지역)의 시장과 군수들이 원전시설 건립 예비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19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5월중 원전시설 유치 주민청원서를 제출한 인천 강화군 등 7개 시·군의 시장과 군수들은 한결같이 “지금으로선 예비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지방자체단체장들이 9월15일까지 예비신청을 하지 않으면 건립후보지는 지난해 이미 신청한 전북 부안군 위도만 남게 된다. 부안군은 지난 비공식 주민투표에서 유치반대 의견이 높았기 때문에 올해 안에 부지 선정을 끝내려는 정부 계획에 차질이 우려된다. 원전시설 유치는 주민 청원(700명)에 이어 자치단체장의 예비신청과 주민투표를 거친 뒤 본신청을 할 수 있다. 때문에 예비신청이 안되면 주민투표 자체도 불가능해진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유전적 간질증세 있지만 정신 또렷”

    [희대의 증오살인 충격] “유전적 간질증세 있지만 정신 또렷”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수사를 맡은 서울경찰청 강대원 기동수사대장과의 일문일답이다. 검거 경위는. -지난 15일 기동수사대(기수대) 형사가 보도방 운영자로부터 마사지 아가씨가 나갔는데 안 들어온 지 보름이 됐다는 실종 신고를 받고 예의 주시하던 중 같은 날 새벽 2시쯤 동일한 보도방 운영자로부터 또다시 실종신고가 와 출동해 4시50분쯤 검거했다. 조사 중 탈출했다는데. -유영철의 뒷모습이 지난해 혜화동 살인사건 용의자와 유사해 추궁했다.그 결과 헤화동과 삼성동 살인사건의 장본인이라고 스스로 말했다.이어 보도방 아가씨까지 살해했다고 진술해 재조사가 시작됐다.이 과정에서 유영철이 간질 증세를 보여 포승과 수갑을 풀어줬다.그런데 잠시 방심한 틈을 타 15일 11시40분께 도주했다.당시 3층에 조사관 12명이 있었지만 계단을 통해 1층 정문으로 도망갔다. 노인을 살해할 때 흉기는. -증거물인 흉기는 유영철이 직접 만들었다.흉기는 어제 피묻은 가방과 함께 유영철의 원룸 인근 쓰레기 장에서 발견했다.흉기에 혈흔도 남아 있다. 유영철의 정신상태는. -유전적으로 간질 증세가 있다.그러나 정신은 또렷하고 본인 말로는 IQ도 140이 넘는다고 한다. 검거 당시 용의자의 반응은. -도주한 유영철을 재검거했을 때 압수한 가방 안에는 수면제 360알이 있었다.인천에 가서 자살을 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부유층에서 여성으로 바꾼 이유는. -자세한 얘기는 못들었다.전화방으로 만난 한 여자를 좋아했는데 2∼3개월 정도는 거의 동거하다시피 했다.유영철은 전과자인 데다 직업이 없고 간질증세가 있다는 이유로 변절당했다.이후 보도방 여성들을 불러 살해했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계기인지는 모르겠다. 암매장 시체는 모두 토막냈나. -그렇다.처음에는 칼과 톱을 사용했지만 이후로는 칼 하나로도 충분히 시체를 절단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시신을 절단하면 운반이 용이하고 타인의 눈에도 띄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 이 같이 시신을 절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또 발견된 시신 10구에는 모두 지문을 없앴다. 시신 11구의 신원확인은. -9건은 확인했다.1건은 유영철의 진술로 이름만 파악했다.다른 1건은 지문도 없어 DNA조사를 해야 한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메트로 탐방-우리署 명물]수사2계 김대진 순경

    [메트로 탐방-우리署 명물]수사2계 김대진 순경

    강력반·수사계 등 일선 형사들의 별명에는 유난히 진돗개,불독,도베르만 등 맹견을 빗댄 것이 많다.‘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집요함을 드러내는 데 이들 만큼 효과적인 비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천경찰서 수사2계 김대진(30) 순경은 진짜 ‘진돗개’다.그의 고향은 전남 진도.이름 끝자인 ‘진’자도 진돗개 ‘진(珍)’자를 쓴 토박이다.그는 지난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운동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유력 정당의 후보 등 3명을 구속하고 8명을 불구속했다.‘진돗개 형사’ 특유의 집념과 끈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실마리는 유력 후보자가 산악회에서 동책(각 동마다 선거운동을 하는 책임자)들에게 금품이 전달했다는 첩보.탐문 끝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지만 선거운동에 사용된 컴퓨터와 회계장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텅빈 사무실에 남은 유일한 단서는 100ℓ짜리 대형 쓰레기 봉투.3∼5㎜ 크기로 국수발처럼 파쇄된 문서 조각들만 가득차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잔뜩 들고 경찰서로 돌아온 그는 10시간 동안 산산조각난 문서와 씨름을 했다.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원에 나선 그는 다음날 동틀무렵 동책 명단과 금액이 적힌 장부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그가 복원한 조각 장부는 검찰에서 당당히 증거물로 채택됐고 이 사건으로 서울경찰청장 표창을 수상했다.1997년 10월 경찰에 입문한 김 순경은 수사2계의 막둥이이지만,표창만 15차례 받았을 만큼 신세대답지 않은 노련미를 인정받고 있다.스스로 ‘수사’가 특기이자 취미라고 말할 정도이다.그의 ‘수사 노하우’ 제1항은 ‘수사는 서류로 말한다.’는 것.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로 분장한 영화배우 송강호와 대조적 인물로 나온 서울형사 ‘김상경 스타일’이다.직감이 아닌 기록과 증거로 승부한다. 김 순경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고 법정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내가 수사한 기록은 완벽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수사 노하우 제2항은 자신의 가장 큰 재산으로 내세우는 집요함이다. 그는 ‘전문 수사관’을 꿈꾸고 있다.국내에서는 불과 1∼2명만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면수사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국내외 서적을 틈틈이 탐독하지만 관련 서적이 많지 않고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아쉽다. 김 순경은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최면수사가 국내에는 크게 활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아직은 수사단서를 제공하는 초급 수준이지만 과학적인 데이터와 분석력을 갖춘 국내 최면수사의 1인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메트로 탐방-우리署 명물]수사2계 김대진 순경

    강력반·수사계 등 일선 형사들의 별명에는 유난히 진돗개,불독,도베르만 등 맹견을 빗댄 것이 많다.‘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다.’는 집요함을 드러내는 데 이들 만큼 효과적인 비유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천경찰서 수사2계 김대진(30) 순경은 진짜 ‘진돗개’다.그의 고향은 전남 진도.이름 끝자인 ‘진’자도 진돗개 ‘진(珍)’자를 쓴 토박이다.그는 지난 4월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운동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유력 정당의 후보 등 3명을 구속하고 8명을 불구속했다.‘진돗개 형사’ 특유의 집념과 끈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다. 실마리는 유력 후보자가 산악회에서 동책(각 동마다 선거운동을 하는 책임자)들에게 금품이 전달했다는 첩보.탐문 끝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지만 선거운동에 사용된 컴퓨터와 회계장부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텅빈 사무실에 남은 유일한 단서는 100ℓ짜리 대형 쓰레기 봉투.3∼5㎜ 크기로 국수발처럼 파쇄된 문서 조각들만 가득차 있었다. 쓰레기 더미를 잔뜩 들고 경찰서로 돌아온 그는 10시간 동안 산산조각난 문서와 씨름을 했다.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복원에 나선 그는 다음날 동틀무렵 동책 명단과 금액이 적힌 장부를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그가 복원한 조각 장부는 검찰에서 당당히 증거물로 채택됐고 이 사건으로 서울경찰청장 표창을 수상했다.1997년 10월 경찰에 입문한 김 순경은 수사2계의 막둥이이지만,표창만 15차례 받았을 만큼 신세대답지 않은 노련미를 인정받고 있다.스스로 ‘수사’가 특기이자 취미라고 말할 정도이다.그의 ‘수사 노하우’ 제1항은 ‘수사는 서류로 말한다.’는 것.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형사로 분장한 영화배우 송강호와 대조적 인물로 나온 서울형사 ‘김상경 스타일’이다.직감이 아닌 기록과 증거로 승부한다. 김 순경은 “검찰에 사건을 송치하고 법정에서 형이 확정될 때까지 내가 수사한 기록은 완벽하다는 말을 듣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수사 노하우 제2항은 자신의 가장 큰 재산으로 내세우는 집요함이다. 그는 ‘전문 수사관’을 꿈꾸고 있다.국내에서는 불과 1∼2명만이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면수사 분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국내외 서적을 틈틈이 탐독하지만 관련 서적이 많지 않고 전문 교육기관이 없어 아쉽다. 김 순경은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최면수사가 국내에는 크게 활용되지 않고 있다.”면서 “아직은 수사단서를 제공하는 초급 수준이지만 과학적인 데이터와 분석력을 갖춘 국내 최면수사의 1인자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총쏘며 협박-자료 훔쳐” 의문사조사 공방

    “총쏘며 협박-자료 훔쳐” 의문사조사 공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현역 군인이 군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던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권총을 발사하며 협박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하지만 국방부는 “당시 쏜 총은 가스총이었으며 공포탄이었다.”면서 “오히려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가택을 침입한 데다 자료도 훔쳐갔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끼리 의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뒤로 한 채 볼썽사납게 폭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의문사위,“권총 쏘며 위협” 의문사위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 출신인 인길연(현 국방부 검찰수사관) 상사가 지난 2월 허원근 일병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던 박종덕 조사3과장 등 조사관 2명에게 권총 한 발을 쏘며 위협하고 수갑을 채웠다고 밝혔다.또 총성과 수갑을 채우는 소리 등 당시 상황이 녹음된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의문사위는 지난 2월26일 인 상사가 허 일병의 타살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구에 있는 인 상사의 집을 찾아가 부인의 동의 아래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또 당시 외출중이던 인 상사는 1시간쯤 뒤 대구 망우공원 부근에서 조사관들을 만나 자료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며 허공에 총을 쏜 뒤 수갑을 채웠다고 덧붙였다. ●국방부,“가스총이었다” 반박 박 과장은 “나중에 권총 사진을 보니 쏜 총이 리볼버형 권총이었다.”면서 “분명히 가스총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의문사위는 이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지켜본 뒤 고발 등의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인 상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아내가 혼자 있는 집에 불법으로 침입,아내를 밀치고 폭행한 뒤 자료를 훔쳐갔다.”고 의문사위의 주장을 부인했다.또 “당시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으며,조사관들을 만나 주거침입과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통보하고 수갑을 채우려 했으나 멱살을 잡기에 공중을 향해 가스총을 한 발 쐈다.”고 주장했다. 인 상사는 지난 2월26일 오후 10시쯤 “당시 조사관이 ‘이 기회에 옷을 벗으라.내가 국가인권위원회 4급 공무원으로 특채시켜 주겠다.그 정도 능력은 있다.열린우리당 대구 간부 C씨가 K대 선배인데 함께 해결하면 내가 청와대에 들어갈 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이어 “이후 면담과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 조사관으로부터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당신 죽어.두고 보자.’며 협박을 당했다.”고 말했다.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본인을 수 차례 협박·회유했고 주거 무단 침입,자료갈취 및 폭행을 했기 때문에 명예훼손과 민·형사상 모든 법적인 대응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의문사위와 인 상사,자료 공방도 치열 의문사위는 5월7일 인 상사로부터 라면 1상자 분량의 서류자료를 제출받았으나,인 상사가 “국방부 특조단 조사시 녹취한 참고인 진술 녹취 테이프와 디스켓 등은 파기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인 상사는 “보관한 자료는 특조단 조사 전에 개인적으로 검토했던 자료”라면서 “자살과 타살부분 모두를 검토 비교했으며 특히 타살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해 공개시 파문이 일 수 있어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은 지난 1984년 4월2일 오후 1시20분쯤 육군 모 사단 GOP 철책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국방부는 당시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들은 타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1기 의문사위에서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사망은 인정했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없어 기각됐다.국방부는 이와 관련,지난 2002년 8∼12월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의문사위가 허 일병 사건의 결론을 날조·조작했다.”고 반박했다.2기 의문사위에서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지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오늘의 눈] 덕적도 주민들의 후회/김학준 수도권부 기자

    며칠전 인천시 옹진군 덕적도로 취재를 갔다 왔다.묘하게도 10년전 이슈가 됐던 핵폐기장(원전수거물관리센터) 문제로 섬 사람들이 속삭거리고 있었다.지난날과 같이 공식적이고 격정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술좌석 등에서의 탄식은 섬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1994년 당시 주민들은 정부가 인근 섬 굴업도에 핵폐기장 유치를 추진하자 강력 반대해 무산시켰다.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이 일손도 놓은 채 반대운동에 나섰다.마치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섬이 망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상당수 주민들의 상황인식은 정반대였다. 한 촌로는 “그것(핵폐기장)을 잡았어야 마을이 발전할 수 있었는데 일이 이상하게 돼 버렸어.”라고 탄식했다.다른 주민은 “핵폐기장에서 사고나는 것이 멀쩡한 비행기 떨어지는 것보다 어렵다는데 그때는 환경단체들이 핵폐기장이 들어서면 곧 죽을 것 같이 떠들기에….”라고 말끝을 흐렸다.한 주민은 “반대가 직업인 환경단체에 녹았다.”는 말까지 했다. 아쉬움은 장년층에서 두드러진다.대체로 지난날 30대로 반대운동의 선봉에 섰던 사람들이다.이같은 ‘반전’은 섬의 낙후와 무관치 않은 듯하다.어자원 고갈로 어업은 예전만 못하고 관광수익마저 한철에 불과해 주민들의 주머니는 점점 가벼워져 간다.인근 강화군 주문도,볼음도 주민들이 섬발전을 꾀한다며 당국에 핵폐기장 유치를 신청한 것에도 자극을 받았음직하다. 이 와중에 주민투표로 핵폐기장 유치를 무산시킨 전북 부안 주민들이 오버랩되는 것은 왜일까.핵폐기장 문제에 관한 한 과정과 결과가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하지만 그곳의 여건은 덕적도와 달라 그들이 10년 후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다만 덕적도라는 ‘거울’에 비춰 앞으로 또다시 근거가 애매한 논리에 의해 국가 전체의 이익도,주민들의 이익도 물거품이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김학준 수도권부 기자 kimhj@seoul.co.kr˝
  • “총쏘며 협박-자료 훔쳐” 의문사조사 공방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현역 군인이 군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던 의문사위 조사관들에게 권총을 발사하며 협박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하지만 국방부는 “당시 쏜 총은 가스총이었으며 공포탄이었다.”면서 “오히려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자료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가택을 침입한 데다 자료도 훔쳐갔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국가기관끼리 의문사에 대한 진실 규명을 뒤로 한 채 볼썽사납게 폭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마저 일고 있다. ●의문사위,“권총 쏘며 위협” 의문사위는 12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방부 특별진상조사단 출신인 인길연(현 국방부 검찰수사관) 상사가 지난 2월 허원근 일병의 의문사 사건을 조사하던 박종덕 조사3과장 등 조사관 2명에게 권총 한 발을 쏘며 위협하고 수갑을 채웠다고 밝혔다.또 총성과 수갑을 채우는 소리 등 당시 상황이 녹음된 테이프를 증거물로 제시했다. 의문사위는 지난 2월26일 인 상사가 허 일병의 타살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대구에 있는 인 상사의 집을 찾아가 부인의 동의 아래 자료를 확보했다고 말했다.또 당시 외출중이던 인 상사는 1시간쯤 뒤 대구 망우공원 부근에서 조사관들을 만나 자료를 되돌려 줄 것을 요구하며 허공에 총을 쏜 뒤 수갑을 채웠다고 덧붙였다. ●국방부,“가스총이었다” 반박 박 과장은 “나중에 권총 사진을 보니 쏜 총이 리볼버형 권총이었다.”면서 “분명히 가스총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의문사위는 이 사건에 대해 국방부가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지켜본 뒤 고발 등의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인 상사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아내가 혼자 있는 집에 불법으로 침입,아내를 밀치고 폭행한 뒤 자료를 훔쳐갔다.”고 의문사위의 주장을 부인했다.또 “당시 경찰에 이 사실을 신고했으며,조사관들을 만나 주거침입과 절도 현행범으로 체포한다고 통보하고 수갑을 채우려 했으나 멱살을 잡기에 공중을 향해 가스총을 한 발 쐈다.”고 주장했다. 인 상사는 지난 2월26일 오후 10시쯤 “당시 조사관이 ‘이 기회에 옷을 벗으라.내가 국가인권위원회 4급 공무원으로 특채시켜 주겠다.그 정도 능력은 있다.열린우리당 대구 간부 C씨가 K대 선배인데 함께 해결하면 내가 청와대에 들어갈 때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고 밝혔다.이어 “이후 면담과 휴대전화 음성메시지·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 조사관으로부터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당신 죽어.두고 보자.’며 협박을 당했다.”고 말했다. 인 상사는 “의문사위 조사관들이 본인을 수 차례 협박·회유했고 주거 무단 침입,자료갈취 및 폭행을 했기 때문에 명예훼손과 민·형사상 모든 법적인 대응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의문사위와 인 상사,자료 공방도 치열 의문사위는 5월7일 인 상사로부터 라면 1상자 분량의 서류자료를 제출받았으나,인 상사가 “국방부 특조단 조사시 녹취한 참고인 진술 녹취 테이프와 디스켓 등은 파기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인 상사는 “보관한 자료는 특조단 조사 전에 개인적으로 검토했던 자료”라면서 “자살과 타살부분 모두를 검토 비교했으며 특히 타살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해 공개시 파문이 일 수 있어 공개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허원근 일병 사건 허원근 일병은 지난 1984년 4월2일 오후 1시20분쯤 육군 모 사단 GOP 철책근무지 전방소대 폐유류고 뒤에서 가슴에 2발,머리에 1발의 총상을 입고 변사체로 발견됐다.국방부는 당시 자살로 결론을 내렸지만 유가족들은 타살 의혹을 계속 제기했다. 1기 의문사위에서는 위법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사망은 인정했지만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없어 기각됐다.국방부는 이와 관련,지난 2002년 8∼12월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의문사위가 허 일병 사건의 결론을 날조·조작했다.”고 반박했다.2기 의문사위에서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지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 도둑고양이덫 빌려줍니다

    서울 광진구(구청장 정영섭) 골목골목에 속칭 ‘바께스’(양동이)가 등장하고,중랑구(구청장 문병권)에는 대형 ‘덫’이 놓이게 된다. 도심 한복판에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이 물건들은 최근 급속히 늘고 있는 도둑 고양이들의 횡포(?)에 맞서기 위한 톡톡 튀는 아이디어 행정으로 주목받고 있다. 중랑구는 최근 주택가 등지에서 쓰레기봉투를 훼손하는 등 주변환경을 해치고 있는 도둑 고양이를 퇴치하기 위해 ‘포획틀’을 무료로 대여한다고 9일 밝혔다. 각 동별로 배치되는 포획틀은 주민들의 요청이 있을 경우 최대 2주간 대여할 수 있으며,사용 후 각 동사무소에 반납하면 된다.또 붙잡힌 고양이는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031-867-9119)에 연락하면 인계할 수 있다. 문 구청장은 “고양이는 마땅한 천적이 없어 기하급수적으로 번식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주민들에게 공포감과 불쾌감 등을 유발하고 있는 골칫거리”라면서 “다만 덫으로 인한 안전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02)490-3365. 광진구는 다음달부터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있는 단독주택과 소규모 음식점 등에 음식물 쓰레기를 담을 수 있는 빨간색 양동이 1만 2000개를 배포한다고 이날 밝혔다. 지금까지는 전용봉투에 담아 배출하면 됐지만,도둑 고양이들이 봉투를 훼손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자 이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양동이는 주택의 경우 8가구를 기준으로 1개,음식점은 업소당 1개를 각각 지급한다.대상지역은 중곡1·3동과 노유1·2동,자양3동,군자동 등 6개동이다. 특히 양동이는 물기를 제거할 수 있도록 안쪽에 거물망이 있고,바닥에는 물기를 뺄 수 있는 마개가 달린 구멍도 뚫려 있다. 정 구청장은 “무단투기를 예방하기 위해 양동이에 주소 또는 음식점 이름 등을 기재,실명배출제를 실시할 계획”이라면서 “또 수거되는 음식물 쓰레기는 농·축산가의 사료나 퇴비 등으로 재활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02)450-1375.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1)바닷가 절집 해남 ‘미황사’

    습관처럼 땅끝으로 간다.먼 해남의 땅끝으로 가야지 왠지 본격적인 바다가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사실 나로서는 ‘땅의 끝’이라는 ‘육지 중심적 사고’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땅끝이 아니라 바다로 진출한 곶(串)이기 때문이다.육지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기도 하기 때문에 시작과 끝을 따로 생각하기는 어렵다. 땅끝의 남도 바닷길을 가다가 ‘엉뚱하게’ 산 속으로 들어가 본다.바다 대신에 역설적으로 산에서부터 출발하려는 것이니,해중산인(海中山人)의 속깊음을 미황사에서 확인해보려 함이다.바다와 육지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不二)의 뜻깊은 변증의 세계가 미황사에서 펼쳐지고 있다. 땅끝이 국토의 남쪽 끝이라면 미황사는 육지 절집의 최남단이다.미황사는 남도에서 바다로 가는 매혹의 길목 풍경을 가장 잘 껴안고 있다.동백나무숲,장중한 부도밭,기암절벽이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達摩山),그리하여 ‘호남의 금강산’으로까지 불린다.그 무엇보다 미황사 대웅보전 기둥 주춧돌을 잊지 못하리라.주춧돌의 게딱지와 거북이를 생각하는 탓이다.왜 바다에 사는 게와 거북이를 양각으로 새겨놓았을까. 문제는 달마산에 오르면 풀린다.남해가 한 눈에 들어온다.예의 땅끝은 물론이거니와 완도와 진도,그네들 섬에 딸린 조도군도를 위시한 자잘한 다도해의 ‘호수’들,심지어 날씨에 따라서는 한라산 봉우리까지 잡힌다.그 산자락에 미황사가 안겨있으니,산이 바다를 안고 바다가 산을 품은 격이다. 달마산에서 맞이하는 다도해 낙조는 또한 무엇에 비할 것인가.어느 석수쟁이가 있어 불현듯 게와 거북이를 새겨놓았으리라.왜 그랬을까.숙종 18년(1692)에 민암(閔,1634∼1692)이 지은 미황사사적비(美黃寺事蹟碑)를 보자.‘신라 경덕왕 8년 8월12일,홀연 돌로 만든 배 한 척이 달마산 아래 사자포구에 와 닿았다.하늘에서 들리는 음악인 듯 범패소리가 배 안에서 계속 들려오기에 어부들이 가까이 가 살펴보려고 하자 배는 문득 멀어져버렸다.소식을 들은 의조화상(義照和尙)이 향도 100명과 함께 해안가에 가 기도를 올리자 돌배가 뭍에 닿았는데,금옷 입은 사람이 노를 잡고 서있었으며,경전과 불상이 가득하였다.또한 배 안에 있던 검은돌이 벌어지며 검은 소 한 마리가 나타났다.이날 밤 의조화상이 꿈을 꾸었는데 금옷 입은 자가 말하기를,나는 본디 우전국(優 國:인도)의 왕으로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며 경상(經像)을 모실 곳을 구하다 달마산 꼭대기에 일만 분의 부처님이 나타난 것을 보고 이곳으로 찾아왔노라.경전을 소에 싣고 가다보면 소가 누워서 일어나지 않는 곳이 있을 터이니,그곳이 곧 경전을 안치할 만한 장소라.이에 의조화상이 소에 경을 싣고 가는데,산골짜기에 이르러 소가 크게 울며 죽었다.소가 누워 죽은 그 골짜기에 미황사를 짓고 상을 봉안하였다.’ 미황사의 ‘미’는 소의 울음소리에서 취한 글자요,‘황’은 사람의 색에서 취한 것이라 하였으니,사적비의 연기설화와 절집 이름이 일치한다.그런데 비문에 이르기를,당시 돌에서 나온 소며 금옷입은 사람 이야기 따위는 허황하고 망연하여 세상의 귀로는 믿기 어려운 일이라 하였다.그러나 연대의 고증을 그저 추측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패엽경과 탱화 등이 있어 완연하게 밝힐 수 있다고 하였다. ●대웅전은 부처님 모시고 온 배 사적비가 세워진 조선후기까지 남아있던 이들 증거물은 불행히도 현존하지 않는다.그러나 대웅전의 우물천장에 범어(梵語)로 쓰여져 있으며,인도에서 경상을 실어 보낸 배가 이곳에 도착하였다는 데서 국제적 해상교류의 느낌이 전해진다.완도 청해진이 지척이니 이 일대 해상세력들의 서원(誓願)으로 미황사가 창건됐음직하다.사찰 창건에 필요한 주요 물자들도 해상에서 들여왔고,미황사 창건에 당대 해상세력들의 직·간접적 지원과 참여도 있었을 것이다. 주지 금강스님은 미황사 연기설화(緣起說話)를 반야용선(般若龍船)으로 해석하였거니와 건축학자 양상현(순천향대)도 같은 입장이다.대웅전 주춧돌에 게와 거북이 노닐고 있으니 주춧돌과 그 아래의 기단은 바다를 상징한다.대웅보전은 바다 위에 떠있는 배가 되는 것이다. 바닷길로 부처님을 모시고 온 배를 상징함이다.바다 절집의 압권은 부도밭이다.서편의 아름다운 동백숲 길을 따라 10분 정도를 들어가면 달마산을 배경으로 부도와 탑비가 모셔져 있다.남쪽과 서쪽 부도밭 2개다.곳곳에 장엄된 부도 조각에는 서남해의 해산물과 우리 국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식물들을 문양의장으로 채용하고 있다. 게와 물고기,거북이,심지어 다리를 꼰 오리,방아찧는 토끼에 이르기까지 자유분방한 장엄으로 가득차 있다.엄정하고 단아할 뿐더러 소박하기까지 하여 일면 초라해 보이기까지 하는 조선후기 부도양식에서 이처럼 ‘장난치듯’ 민화풍 풍속의 세계관을 펼치고 있음은 미술사적 전환을 암시한다.문화사적으로도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작은 혁명’을 성취하고 있는 중이다.유독 해산물이 자주 등장함은 연기설화와 더불어 미황사가 바다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암시한다. 부도밭의 주인공들은 서산(西山)대사의 제자들.서산은 임란 후 자신의 의발(衣鉢)을 저 멀리 남쪽 해남 대둔사(대흥사)에 전수한다.그로부터 서산의 법맥은 강진의 만덕사,해남의 대둔사와 미황사로 그 영향력이 확대되어 간다.이렇게 해서 미황사는 서산의 후예들이 남도불교를 일으킨 진흥지가 되었고,이 부도들이 당대의 역사를 웅변해 준다. 조선 후기에만 3번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뤄졌으나 30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다만 부도군만이 오롯이 자취로 남아있다. 재미있는 것은 부도밭의 주인공들이 대개 인근 해변이나 섬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는 점.7대 종사 연담(蓮潭)은 수륙도장(水陸道場)을 개설하였는 바,바다에 인접한 미황사의 특성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둔사 8대종사 운봉(雲峰)은 가끔씩 섬으로 숨어들어가 자신의 초가집 암자에 야은(野隱)이라는 편액을 걸고 살기도 하였다.금하(錦河)는 장산도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고기를 잡을라치면 살 수 있는 것을 골라 물 속에 넣어 살려주었다고 한다.즉원(卽圓)은 정조 18년(1794)에 궁복도(弓福島)에 있는 암자에서 열반에 들었다. 부도에 유난히 해산물이 많음은 부도의 주인공들이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로 되돌아 갔음을 암시한다.천진난만한 물고기와 거북이,게 그림에서 흡사 이중섭이 제주도 피란시절에 그렸던 그림이 떠오른다.지고의 경지에 이르면 이렇듯 천진한 어린이들 세계로 빠져드는 것일까.장난치듯 새겨놓은 해산물에서 바다 냄새가 달마산 자락까지 배어있음을 감지한다. ●장난치듯 새겨놓은 부도조각 바다는 늘 인자한 것만은 아니다.120여년 전 해남 출신 주지 혼허(渾虛)와 40여명의 스님들이 바다에서 몰살당한 전설도 전해진다.중창불사를 위한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로 향하다 조난당해 젊은 스님들이 모두 수장되고 말았다.그후 절은 폐사되다시피 몰락의 길을 걷는다.지금도 사하촌(寺下村) 사람들은 비바람이 을씨년스러운 날이면 ‘미황사 스님들 군고치듯한다.’고 한다.인근 송지면 산정리의 농기에는 삿갓 쓴 스님들이 거북을 타고 있는 그림이 전해진다. 땅끝으로 가는 길을 잠시 접고 미황사에 머물 수밖에 없는 소이는 이와 같음이다.바다가 산을 벗하고,산이 바다를 벗하여 산중에 반야용선을 들여놓았고,게와 거북이와 물고기를 풀어놓았음이랴.지금은 남도의 끝자락으로 불리지만,청해진을 필두로 동북아를 주름잡던 해상세력의 근거지가 이 일대였으니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이란 말이 실감난다.달마산에서 ‘왜 달마란 이름이 남쪽으로 왔는가.’를 통속적으로 묻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것이니,‘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듯 이미 남송(南宋) 사람들에게도 달마산은 영험한 도량으로 알려져 있었음직하다.1281년 겨울에 남송의 배가 표류하여 근역에 당도하였을 때,달마산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그 이름만 듣고도 멀리 공경할 뿐인데,그대들은 이곳에서 생장했으니 부럽고 부럽도다.이 산은 참으로 달마대사가 상주할 땅이다.’고 하였다. 신라시대는 물론이고 고려시대까지도 국제 해상교류의 중심처였음을 설명함과 아울러 달마산의 국제적 위상까지 설명해 줌에랴. ‘택리지’에 이르길,해남 근역들은 모두 살기에 부적당하고 하였다.그러나 육지 중심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적 전환을 고려한다면,그 언설을 전면적으로 승인하기는 곤란하리라.더군다나 바다가 절집에서 숨쉬는 풍경을 보노라면 바다와 육지를 가르는 불이(不二)를 도저히 용인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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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전센터 유치 청원 10곳 정부, 부지 예비조사 착수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유치 청원서를 제출한 전북 군산시 옥도면 등 10곳에 대한 부지 적합성 조사가 23일부터 시작됐다. 산업자원부는 이날 “10개 지역중 지방자치단체장이 일찌감치 적합성 조사를 요청한 군산시의 옥도면과 소룡동 등 2곳을 시작으로 23일부터 물리탐사를 벌여 활성단층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이사람] 최초 파월 한국군 사령관 채명신 예비역 중장

    “한국정부는 월남정부의 요청에 의해서 전투부대를 파병하게 됐고,본관이 주월한국군 부대를 지휘하게 되었음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바입니다.앞으로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훌륭한 자유 월남국민과 군인들에게 최상의 경의를 표하면서 상호의 이해와 유대친선을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여하한 희생이라도 무릅쓰고 끝까지 싸울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1965년 8월21일.건군이후 최초의 파월 한국군 사령관인 채명신 소장은 베트남 사이공의 탄손누트공항에 첫발을 내디뎠다.40살의 채 사령관은 떨리는 목소리로 도착성명을 낭독했다.동시에 영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 타전됐다.우리나라에도 시골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전달됐다. 이 역사적인 도착성명으로 파병논란은 가라앉는 분위기였다.전장으로 나간 ‘한국의 아들들’의 안전이 최우선 관심사였다.대부분 농촌의 아들이었기에 부모들은 논밭에 나갈 때마다 고물 라디오라도 꼭 챙겼다.땡볕에서 김을 매다가도 뉴스시간만 되면 나무 그늘로 잠시 옮겨 행여나 정글의 소식이 나올까봐 귀를 기울였다.그뿐이랴.밤마다 그 어머니들은 정한수를 떠놓고 아들의 안전과 무사귀국을 빌었다. 이후 4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오는 8월 초 자이툰부대장인 황의돈 소장이 이라크의 북부 아르빌 현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도착성명서를 낭독할 것이다.채 전 사령관이 그랬던 것처럼…. 백전노장 채 전 사령관은 최근 자이툰부대를 몇차례 방문,아들 손자뻘의 파병 장병들에게 애정어린 주문을 했다.그는 베트남과 동티모르 등에 파견됐던 여러 선배들을 예로 들면서 자긍심을 갖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라크에 가면 현지 어린이들을 친절하게 대해줘야 한다는 충고까지 했다.축구공과 캔디 등의 과자,노트와 볼펜 등을 선물하면서 아이들과 가까이 지내라고 했다.또 시간이 날 때마다 축구경기도 함께 하고 태권도를 가르켜주면 자연스럽게 어른들과도 친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라크 파병은 한·미동맹의 약속” 지난 17일 비가 오는 날이었다.채 전 사령관이 살고 있는 서울 동부이촌동의 자택을 찾았다.작년 여름 40년 동안 정들었던 후암동 자택을 처분하고 이곳으로 이사왔단다. 그의 나이가 팔순에 가까웠지만 우리나라의 군사(軍史)를 훤히 꿸 정도로 기억력이 넘쳐났다.요즘에는 스스로가 젊어지려고 가끔씩 면바지와 남방 등 캐주얼차림으로 외출한다.그는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회 회장’과 ‘베트남참전전우회 회장’을 맡아 일주일에 3,4일은 재향군인회관으로 출근한다. 그는 ‘이라크파병’과 ‘주한미군철수’ 등 최근 안보상황의 변화와 관련,“모든 것을 ‘전쟁억지’라는 대전제를 밑바탕에 깔고 나머지 일들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이 깨져서는 결코 안 됩니다.전현직 미군 장성들을 만날 때마다 신뢰성이 그전보다 떨어진다는 느낌을 자주 접합니다.동맹을 지키는 약속 때문에 이라크에 파병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신의에 금이 가지 시작하면 동맹관계도 소원해집니다.” ●“6·25 전야 군 지휘부의 댄스파티” 채 전 사령관은 “최근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6·25는 미군의 북침으로 시작됐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참으로 한심하다.미군은 이미 1년전에 장비 하나 남기지 않고 다들 철수해버린 상황이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면서 6.25전야에 있었던 우리 군 지휘부의 댄스파티 상황을 잠시 전했다. (…서울 용산의 육본 장교클럽.토요일 저녁을 맞아 서울 지역 각군 사령부의 고급장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전방의 연대장과 사단장도 초청됐다.댄스파티가 시작되고 다들 거나하게 술을 마셨다.파티는 25일 새벽 2시까지 계속됐다.다들 곯아 떨어졌다.전선은 추풍낙엽으로 계속 무너졌으나 명령을 받고 내릴 지휘관이 없었다.채병덕 육군총장의 공관에도 북한의 남침을 보고하려는 벨이 울렸지만 부관은 ‘총장 각하가 술에 많이 취해 깨울 수가 없다.’는 대답만 반복했다.신성모 국방장관 공관도 마찬가지였다.보좌관은 ‘일요일에는 어떤 전화도 받지 못한다.’는 대답만 되풀이했다.적 탱크가 25일 아침 11시 포천까지 들어와서야 다들 실감했을 정도였다.) 6.25때 그는 한국군 최초의 유격대 대장을 맡았다.인민군복을 입고 적 후방에 투입,고급 정보를 캐는 일이었다.그가 이끈 요원은 363명으로 80년대 후반 공개된 이른바 ‘백골병단’을 말한다.그는 이때 빨치산의 거물 길원팔 중장과 육박전 끝에 생포하기도 했다.길원팔은 김일성이 허리춤에 찼던 ‘떼떼권총’까지 직접 선물을 줄 정도의 인물이었다.길원팔은 채 전 사령관이 건네준 권총으로 자결했다. ●“박정희이어 박근혜도 정치유혹” ‘채명신 장군’하면 영원한 무인으로 평가받는다.6.25와 월남전에서의 활약상이 우선 그렇다.특히 그는 5·16때 이른바 혁명주체세력으로 급부상했다.5사단장 시절 휘하 병력을 이끌고 동대문 근처까지 진출,박정희 소장을 도왔다. 이때 그는 박정희 소장에게 “개인의 군대가 아니다.국가를 구한다는 일념으로 다들 뭉쳐 이렇게 출동했다.”고 말했다.이후 박정희 대통령은 그에게 3차례에 걸쳐 자신을 도와 정치를 같이 하자고 했지만 군복이 더 좋다면서 과감히 돌아섰다.주월사령관으로 떠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세월이 지난 뒤인 얼마전 박근혜씨가 찾아와 당의 주요 직책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에도 그는 무인으로 남고 싶다며 거절했다. 그는 황해도 곡산에서 태어났다.평양사범을 나와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1947년 월남했다.48년 육사를 졸업한 뒤 5·16때 잠시 외도한 것 외에는 평생 군인의 길을 걸었다.그는 예편과 동시 외교관의 길을 걷다가 미국 하버드대와 버클리대,일본의 게이오대(慶應大) 등에서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6월이면 기억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무척 많습니다.” 김문기자 km@seoul.co.kr˝
  • 원산지 표시위반 형량하한제 추진

    ‘불량 만두’ 파동과 관련,식품위생법을 위반한 범죄에 이어 수입 농산물을 국산으로 속여 판매한 범죄에도 ‘형량하한제’ 도입이 추진된다. 농림부 김주수 차관은 1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6월 원산지 표시 위반 사범에 대한 형량을 강화했으나 실제 법정에선 처벌 수위가 낮아 단속의 실효성이 없다.”면서 “농산물품질관리법을 개정해 형량하한제를 도입하는 등 벌칙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농림부는 또 법 위반 사범의 증거물품만 압류,폐기하고 있으나 법 개정을 통해 유통물량도 회수할 수 있도록 회수명령제도 도입하기로 했다.상습 위반자에 대해선 즉시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고,신고자 포상금도 10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농림부는 오는 8월까지 단속인력을 최대한 동원해 콩나물,채소 등의 잔류농약 위반,닭고기 등의 항생물질 잔류 위반,수입김치·급식 재료·육류의 원산지 표시 위반에 대해 집중 단속키로 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재보궐선거 낮은 투표율… 지방자치 흔들

    지방선거의 낮은 투표율이 주민참여 정치의 중대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앞으로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단체장,지방의원 등 대표를 뽑는 선거 외에도 주민들이 지역현안을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주민투표제’와 선출직을 탄핵하는 ‘주민소환제’가 도입되는데,주민참여가 낮으면 소수의 의견이 다수의 의견으로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당장 오는 7월30일부터 주민투표제가 시행돼 지역현안을 투표로 결정하게 되면 자칫 지역간 갈등이나 집단간 의견대립으로 갈려 다수의 무관심 속에 ‘목소리 큰 소수’가 엉뚱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재·보궐선거 투표율 대부분 30% 미만 역대 재·보궐 선거의 투표율을 보면 정말 우려할 만하다.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에 비해 지방선거,특히 재·보궐선거는 투표율이 매우 낮다.최근 실시된 재·보선 투표율은 34.2%(지난해 10월30일),29.5%(지난해 4월24일),29.6%(2002년 8월8일),28.2%(2001년 4월26일 ) 등이다. 이번의 28.5%까지 포함하면 2000년 이후 치러진 7차례의 재·보궐 선거 가운데 5차례가 30% 미만의 투표율을 보였다.1997년 대선(80.7%),1998년 지방선거(52.7%),17대 국회의원 선거(60.6%) 등과 비교해도 차이가 너무 크다.전문가들은 이처럼 낮은 투표율 속에 주민투표제와 주민소송제,주민소환제 등이 도입되면 제대로 정착될지 걱정한다. 주민투표제는 주민들이 지역의 정책이나 현안을 결정토록 하는 제도로,많은 주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위도 원전수거물관리시설(원전센터) 유치와 제주도의 자치도 전환 등 지역의 민감한 사안들을 투표로 결정해야 한다.아직 법제화되지는 않았지만,단체장 등 선출직을 탄핵하는 ‘주민소환제’도 다수의 무관심 속에 소수의 의사로 강행될 소지도 다분하다. ●전문가들,“심각하다” 이에 대해 행정자치부 권혁인 지방자치국장은 “투표율이 낮은 것도 심각한 문제지만,주민투표제는 투표권자의 3분의1 이상이 참여할 때 효력이 생기도록 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주민소환제를 도입하면 비슷한 규정을 둬 왜곡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주용학(행정학 박사) 전문위원은 “주민의 참여 부족으로 잘못된 단체장이나 대표를 뽑고,잘못된 선택을 하면 결국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면서 “투표를 하지 않으면 외국처럼 벌금(세금)을 물리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정원(행정학과) 명지대 교수도 “주민 참여도가 낮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라며 “중요한 현안일수록 전체적인 의견을 수렴하도록 노력해야 하는데,주민투표제나 주민소환제가 도입된 뒤에도 소수의 참여로 정책결정이 이뤄지면 큰일”이라고 우려했다.김익식(경실련 지방자치위원장) 경기대 교수는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선진국에서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며,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선거방식·날짜·홍보방법·유권자 유인방법 등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면서 “주민투표제 도입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우려되지만,당장은 개선책이 없는 만큼 일단 시행하면서 부작용을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폴리시 메이커] 조석 산자부 원전사업지원단장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의 유치 사업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야 하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산업자원부 조석(趙石·47) 원전사업지원단장(국장급)은 4일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사업은 18년 묵은 국가의 숙원 사업을 해결하는 동시에 투명한 절차를 통해 주민과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구해야 하는 힘겨운 일”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지난해 전북 부안군의 유치작업 실패를 염두에 둔 말이다.그만큼 그의 각오는 남다르다. 조 단장은 “처음에 이희범 장관께서 이 일을 맡아 잘 해보라고 지시했을 때 덜컥 겁이 났지만 ‘그래 내가 아니면 누가 이 일을 말끔하게 처리할 것인가.’라고 스스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고 말했다.그는 이 장관이 23년간의 공직 경력을 살펴보고 자신을 지명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 단장은 1981년 행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한 뒤 통상담당관,공보과장,청와대 파견,총무과장 등을 거쳤다.대부분이 이해당사자들과 교섭하거나 타협이 필요한 조정 업무다. 그는 “정책을 추진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혜택을 입는 층도 있지만 직·간접의 크고 작은 피해를 주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그러나 피해를 얼마나 적게,얼마나 원만하게 해결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름하는 척도”라고 강조했다.즉 “정책 시행에 착수한다고 해서 일이 성공했다고 단정지어선 안 된다.”고 자신의 ‘공직 철학’을 밝혔다.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사업은 지난해 부안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충남 안면도,인천 굴업도,경북 울진 등에서도 유치하려다 실패한 적이 있다.지난해 부안에서는 주민 갈등 끝에 큰 상처를 남겼으나 주민투표라는 민주적 절차를 낳았다.지난달 31일까지 전국 7개 지역 10곳에서 유치신청이 접수됐다.오는 9월15일까지 자치단체장이 주민의견을 모아 예비신청을 하게 되는 절차가 진행중이다.조 국장은 현재 정치권과 시민단체들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있다. 조 단장은 부안의 유치실패 원인에 대해 “민선 자치단체장의 의견이 곧 주민의 뜻이라고 판단했고,법률적으로도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던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이 때문에 그럴 뜻은 추호도 없었지만 주민들에게 정부와 사업자가 오만하게 비쳐졌을 것”이라고 사과를 구했다.그는 “우리나라는 지난해 자동차와 반도체를 수출해 벌어들인 돈을 에너지를 수입(380억달러)하는 데 다 썼을 정도로 에너지 해외의존도가 97%에 달한다.”면서 원전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어 “원자력은 값싸고 효율성이 높지만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밖에 없는 만큼 전기를 쓰는 국민이라면 모두가 책임을 분담해야 한다.”면서 협조를 당부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강화 서도면, 위도 전철 밟나

    강화군 서도면 주민들이 원전센터 유치를 신청한 가운데 유치를 반대하는 주민과 환경단체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2일 인천시에 따르면 서도면 주민 643명중 34%인 219명은 최근 원전센터(일명 원전수거물 관리시설) 유치서명을 해 산업자원부에 제출했다. 유치를 희망하는 주민들은 “정부가 안전성을 보장한 만큼 집중 투자될 3000억원의 예산을 발판으로 지역발전과 주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민 김모(53)씨는 “국가의 에너지정책에 기여하고 소득증대와 지역발전을 위해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원전센터 유치를 택했다.”고 밝혔다. 유치서명운동을 주도한 차해남(63)씨는 “지금은 주민 중 일부가 반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시설의 안전성 등 원전센터 전반에 대한 이해를 얻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반대의 목소리와 갈등도 만만치 않다.민통선 구역인 볼음도와 아차도는 전체 주민 288명 중 60%가 넘는 185명이 서명에 동의했으나 면소재지인 주문도는 355명 중 10%도 안 되는 34명만이 찬성했다. 주문도 주민 박모(49)씨는 “마을회의에서 주민들이 핵폐기물에 대한 위험성과 후손들에게 황폐한 환경을 물려줄 수 없다는 인식을 같이해 반대하기로 뜻을 모았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도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다.가톨릭환경연대,녹색연합,환경운동연합 등 인천지역 환경단체는 성명을 통해 “원전센터 유치는 서도면 주민만의 선택이 아닌 260만 인천시민 전체의 문제”라며 “산자부의 핵폐기장 유치공모와 일부 주민의 유치 청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강화시민연대 남궁호삼(49)씨는 “단순히 경제성만을 고려해 천혜의 환경을 파괴하려는 의도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반대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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