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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인성 “내가 게이?…루머는 루머일 뿐”

    조인성 “내가 게이?…루머는 루머일 뿐”

    영화 ‘비열한 거리’ 이후 2년 만에 ‘쌍화점’으로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조인성이 “게이설 루머 때문에 ‘쌍화점’을 안할 이유가 없었다.”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16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쌍화점’(감독 유하ㆍ제작 오퍼스 픽쳐스)의 언론시사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인성은 “제 모든 것을 잘 보셨는지 모르겠다. 노출 장면 때문에 좀 민망하긴 하지만 모든 걸 걸고 찍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은 조인성과 주진모의 동성애 장면이나 조인성과 송지효의 베드 신은 생각했던 이상으로 파격적이었다. 특히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조인성과 주진모의 진한 키스장면과 베드신은 영화의 수위를 높이기에 충분했고 조인성은 뒤태 전라 노출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첫 베드신이었던 만큼 두 배우와의 연기가 모두 힘들었다는 조인성은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고 감정을 중요시하는 장면이었기 때문에 행위보다는 감정을 제대로 뽑아내는 것이 힘들었다.”고 연기의 어려움을 전했다. 이어 항간에 떠돌던 게이설에 대해서는 조인성은 웃으며 “제 정체성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다. 루머는 루머일 뿐이다.”며 “그 루머 때문에 이런 좋은 작품을 안할 이유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조인성은 고려 말 왕의 총애를 받는 호위무사 홍림 역할을 맡아 성숙한 연기와 파격적인 노출로 눈길을 끌었다. 처음 도전하는 사극연기를 위해 촬영이 시작되기 전 수개월 전부터 승마와 거문고, 무술을 연마했다는 조인성은 대부분의 액션신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한편 원나라의 억압을 받고 있던 고려 말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주진모 분)과 그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 원나라 출신의 왕후(송지효 분)의 사랑과 배신, 음모를 그린 ‘쌍화점’은 12월 30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사진=유혜정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첫사극’ 조인성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컸다”

    ‘첫사극’ 조인성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 컸다”

    배우 조인성이 영화 ‘비열한 거리’ 이후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다. 25일 오전 서울 장충동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영화 ‘쌍화점’(감독 유하ㆍ제작 오퍼스 픽쳐스)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조인성은 첫 사극 연기에 도전한 소감을 전했다. 개봉 전부터 송지효의 노출신 등으로 화제를 모은 영화인만큼 제작보고회 현장에는 1시간 전부터 취재진이 몰려 영화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조인성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첫 사극 연기인데 낯선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컸다.”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이어 “현대적인 작품들을 많이 해서인지 분장이나 의상이 나랑 어울릴까라는 생각과 시대극인 만큼 대사체가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럴때마다 (유하)감독님이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조인성은 고려 말 왕의 총애를 받는 호위무사 홍림 역할을 맡아 파격적인 노출과 혼신을 다한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처음 도전하는 사극연기를 위해 촬영이 시작되기 전 수개월 전부터 승마와 거문고, 무술을 연마했다는 조인성은 대부분의 액션신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한편 원나라의 억압을 받고 있던 고려 말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주진모 분)과 그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 원나라 출신의 왕후(송지효 분)의 사랑과 배신, 음모를 그린 ‘쌍화점’은 12월 30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인성 “‘쌍화점’은 내안의 틀을 깬 작품”

    조인성 “‘쌍화점’은 내안의 틀을 깬 작품”

    영화 ‘쌍화점’을 통해 2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조인성이 “‘쌍화점’은 내 안의 틀을 깨게 한 작품”이라며 영화에 출연한 소감을 전했다. 25일 오전 서울 장충동 소피텔 엠버서더 호텔에서 열린 영화 ‘쌍화점’(감독 유하ㆍ제작 오퍼스 픽쳐스)의 제작보고회에 참석한 조인성은 “전작인 ‘비열한 거리’에서 만났던 유하 감독님은 스승 같은 존재다. 항상 내가 생각하고 있는 생각의 틀을 깨라고 말씀하셨다. 감독님의 말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깨기 위해 선택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이 작품이 어떻게 비춰질지 모르지만 앞으로 내가 연기할 수 있는 동안에 어떤 알을 하나 깰 수 있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화 속에서 조인성은 고려 말 왕의 총애를 받는 호위무사 홍림 역할을 맡아 파격적인 노출과 혼신을 다한 열연을 펼친다.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서는 “홍림을 햄릿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극 중 액션장면이 많이 등장하는데 각을 살리기 위해 신경을 많이 썼다.”고 전했다. 처음 도전하는 사극연기를 위해 촬영이 시작되기 전 수개월 전부터 승마와 거문고, 무술을 연마했다는 조인성은 대부분의 액션신도 대역 없이 소화해냈다. 한편 원나라의 억압을 받고 있던 고려 말 왕권을 강화하려는 왕(주진모 분)과 그의 호위무사 홍림(조인성 분), 원나라 출신의 왕후(송지효 분)의 사랑과 배신, 음모를 그린 ‘쌍화점’은 12월 30일 개봉한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3) 기방의 난투극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3) 기방의 난투극

    신윤복의 ‘기방의 난투극’을 보자. 붉은 옷이 선명한 사내는 대전별감이다. 대전별감이 기방을 운영하는 기부(妓夫)라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대문 앞에는 기생이 담뱃대를 물고 있다. 자, 그러면 그림이 이해가 되는가? 그림 중앙에는 한 사내가 웃통을 벗었다가 이제 옷을 다시 챙겨 입고 있는 중이다. 약간 거만한, 여유 있는 표정이다. 그런데 웃통은 왜 벗었단 말인가? 왼쪽을 보자. 대전별감 옆에 맨상투 바람으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사내가 있다. 입술에는 피까지 묻어 있다. 피는 또 어인 일인가. 정리하자면, 중앙의 웃통을 벗은 사내와 이 젊은 친구는 시비가 붙어 난투극을 벌였던 바, 웃통 벗은 사내의 일방적 승리로 끝난 것이다. 맞은 자가 포도청에 고소라도 하겠다면서 씩씩거리자, 대전별감은 좋은 게 좋다고 말리고 있는 참이다. 이제 그림의 맨 오른쪽을 보자. 한 사내가 쪼그리고 앉았는데, 얼굴은 술에 취해 벌겋고 옷은 흙투성이다. 이 사내 역시 맨땅에 나뒹굴었던 것이다. 이 사내는 대우와 양태가 분리된 갓을 줍고 있다. 당연히 얻어맞는 자기 친구의 것이다. 그림 맨 왼쪽의 멀쩡한 사내와 중앙의 웃통을 벗은 사내가 한 패고, 얻어맞은 사내와 갓을 줍고 있는 사내가 한 패다. 이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하실 것이다. 왜 좋은 술을 먹고 싸움질인가? ●양반들 기방출입 소문날까 발길 꺼려 기방을 다루면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방에는 점잖은 양반들은 드나들지 않았다. 다만 양반 중에서도 무반(武班)은 예외였다. 무반으로 출세하려면 세상 물정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포도대장 자리는 출세하는 무반이 거치는 자리인데, 이 자리는 도둑을 잡는 것이 임무라, 세속의 물정을 모르고는 임무 수행이 어렵다. 때문에 무반가(武班家)에서는 자제가 기방에 드나드는 것을 금하지 않았다고 한다. 무반을 제외한 양반이 기방에 드나드는 것은 다소 복잡한 이유가 있다. 과거에 합격하여 출세하려면, 무엇보다 세평(世評)이 좋아야 한다. 젊은 날 기방 출입을 했다든가, 아무 기생하고 놀아났다든가 하는 소문이 나면, 뒷날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아 좋은 벼슬에 나가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몸조심 차원에서 기방에 드나들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결정적인 것은 아니다. 양반가에서도 내놓은 자식은 출입이 무상하였다. 다만 출입할 때 어느 양반가 도련님이라 하지 않고 어떤 대갓집 청지기라고 하여야만 출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구차하게 기방에 드나들 필요가 있었을까? 과거에 합격해서 좋은 벼슬을 하게 되면, 기생을 불러 즐길 수가 있으니 말이다. 한데 양반이 기방에 드나들지 않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돈이 있고, 자신의 의지(?)만 있으면 대한민국에서 가지 못할 술집, 유흥장이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기방은 나름대로의 유구한 규칙과 전통이 있어서 여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가고 싶어도 기방 대문 안으로 발을 들이 밀 수가 없었다. 도대체 그 규칙이란 무엇인가. 18세기 후반의 문인인 강이천(姜彛天)은 서울을 읊은 한시 ‘한경사(漢京詞)´를 103수나 썼는데, 그 중 한 수를 감상하자. “처마 끝 버드나무에 지등(紙燈) 내걸고/ 술독들 술이 갓 괴어오르니 마음도 무르녹네/ 좌중에 사람을 마주치면/ 성명은 통하지 않고 ‘평안호’ 묻노라”(紙燈掛柳出端, 百甕新 滿意. 試向坐中逢着處, 不通姓名問平安) 여기서 키포인트는 “‘평안호’ 묻는다.”는 말이다. 이 말은 기방에 처음 들어설 때 먼저 와 있던 고객들에게 건네는 말이다. 이 말을 건넨 다음 앉아 있는 기생에게는 ‘무사한가.’라고 말한다. 이처럼 기방에는 독특한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익숙하지 않으면 주먹이 오가고 싸움이 벌어졌다. 그림 ‘기방의 풍경’ 아래쪽에서 두 사내가 멱살을 쥐고 싸우는 것도 기방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었던 것이다. 이제 기방에 들어가는 방식을 좀 꼼꼼히 살펴보자. 처음 들어갈 때는 이렇게 시작한다. “들어가자.” 선입객 “두루……”(들어오라는 뜻이니, 하인만 있으면 ‘드롭시오’라고 한다) “평안호?” 선입객 “평안호?” “무사한가?” 기생 “평안합시오?” 이게 처음 기방에 들어갈 때의 대화다. 처음 들어가는 사람이 “들어가자”라고 하면, 먼저 와 있던 사람은 “두루…”라고 한다. 들어오라는 허락인 셈이다. 만약 그 자리에 기생이 없고 심부름하는 하인만 있다면, “두롭시오”라고 말한다. ‘두루’란 말을 듣고 나면 들어서는 사람은 “평안호”라고 하는데, 먼저 와 있는 사람에게 하는 “평안하신가?”란 뜻의 인사다. 그 다음 기생을 보고, “무사한가?”라고 말한다. “그동안 아무 일 없이 잘 지냈는가?”라는 뜻이다. 기생은 이 말에 “평안합시오?”라고 답한다. 기방에서 노는 종목이야 빤하다. 기생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술을 마시는 것은 당연지사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기생에게 거문고나 가야금을 뜯으라 하기도 하고, 또 노래를 시키기도 한다. 여기에도 일정한 법도가 있다. 예컨대 기생에게 노래를 시킬 때는 반드시 합석했던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때는 반드시 “좌중에 통할 말 있소.”라고 운을 떼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좌중에 통할 말 있소.” “무슨 말이오?” “주인 기생 소리 들읍시다.” “좋은 말이오. 같이 들읍시다.” “여보게.” “네.” “시조 부르게.” “네.” 기생이 시조 한 장을 부른다. 그러면 이번에는 객이 이렇게 말한다. “시조 청한 친구한테 통할 말 있소.” “네. 무슨 말이오.” “나머지 시조는 두었다 듣는 청 좀 합시다.” “청 듣다뿐이오. 여보게.” “네.” “친구가 청을 하시니 나머지 시조는 이담에나 오거든 하라기 전에 하렷다.” “네.” “수구했네.”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혹 시비가 일어날까 두려워해서이다. “나는 노래가 듣기 싫은데 왜 노래를 시켰나?” 하면서 걸고넘어지는 사람이 있으면 곤란해지는 것이다. ●기생에게 노래 청할 때 합석자들 동의 구하는 게 법도 이렇게 논 뒤에 기생을 데리고 “그동안 더 예뻐졌구나, 누가 핥아주지?” 등의 실없는 소리를 하고 나오는데, 여기에도 인사법이 있다. 즉 돌아서며 “뵙시다” “보세”라고 하는데, 앞의 말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뒤의 말은 기생에게 하는 말이다. 물론 답은 기다리지 않는다. 이 외에도 허다한 기방의 법도가 있어서, 말을 잘 듣지 않는 기생을 혼내는 법도 있고, 남과 시비 붙는 법도 있었다고 한다. 양반들이 기방에 드나들지 않는 것은 이처럼 까다롭게 여겨질 정도로 복잡한 기방의 법도 때문이었다. 혹 법도에 맞지 않게 굴다가 지체가 낮은 대전별감이나 포교 따위에게 변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의 기방은 20세기 초 기녀제도가 없어지고, 기생조합인 권번(券番)이 생기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런 법도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것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TV 사극이나 영화를 보면, 종종 기방이 등장하는데 무엇을 보고 그렇게 재현했는지 알 길이 없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과거 요정이라는 것을 생각해서 그렇게 만든 것도 같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기방 같은 것은 워낙 시시한 문제라서 아무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사소한 것도 잘 챙겨서 정확하게 아는 것이 또한 제대로 된 공부 하는 모습이 아닐까. 그냥 해 보는 소리다. 심각하게 듣지 마시기를!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김민선 “노출? 숨을거였으면 시작도 안했다”

    김민선 “노출? 숨을거였으면 시작도 안했다”

    김민선은 달변가다. 정해진 같은 시간을 인터뷰를 해도 다른 배우들보다 2~3배는 쓸만한 코멘트가 쏟아져 나오니 말이다. 그것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대답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담은 솔직한 이야기다. 이런 영리한 배우 김민선이 영화 ‘미인도’의 신윤복으로 다시 태어났다. 게다가 여배우에게 부담이 될법한 과감한 노출신도 거뜬히 해냈다. 23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민선은 촬영이 끝나 개봉을 앞둔 지금도 신윤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을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 그를 만나 쉴새 없는 수다를 나눴다. # 신윤복은 내게 운명이었다! 김민선은 “시나리오를 받는 순간부터 이건 운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통해서 신윤복이라는 인물을 밖으로 끄집어 내 관객들에게 많은 걸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는 말로 이번 영화를 선택한 배경을 설명했다. “시나리오가 맘에 든다고 해서 그 작품이 내 것이 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목 빠지게 기다리는 것도 너무 바보 같았죠. 그래서 캐스팅 전부터 신윤복이 되기 위해 준비했어요.” 김민선은 캐스팅이 확정 되기 전부터 신윤복으로 태어나기 위해 그림에서 승마, 거문고까지 배울 수 있는 것은 모두 배웠다. 그러다 캐스팅이 안됐으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물으니 웃으며 “노력을 했는데도 안됐으면 어쩔 수 없는 거지만 노력도 안 했는데 캐스팅이 안됐으면 제 자신한테 너무 실망했을 것”이라고 딱 잘라 말한다. 김민선은 예고편을 통해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 속 전라신에 대해서도 같은 맥락으로 설명했다. “우리 영화에서 노출이라는 것은 아주 중요한 부분이였고 신윤복이 여자로 돌아가기 위한 과정이기 때문에 내 역할에 필요한 부분이었다.”고 강조했다. # 노출? 숨을 거였으면 시작도 안했다! 노출에만 쏟아진 시선이 내심 서운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관객들의 관심도 못 받고 지나가 버리면 그만큼 아쉬운 것도 없는 것 같다.”고 되레 관심을 받는 것에 고마워한다. “여배우로서 노출신 부담이 없었다면 거짓말일거예요. 하지만 숨을 거였으면 처음부터 시작도 안했어요. 전윤수 감독님은 물론 스테프분들 모두를 100% 믿었기 때문에 노출에 대한 부담감이 없어졌죠.” 감독과 배우들, 스테프들 세 박자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해 촬영 내내 너무 즐거웠다는 김민선은 이번 영화를 통해 10년 동안 짊어지고 있던 무게를 떨쳐버렸다고 털어놓았다. “연기하는 10년 동안 너무 많은 걸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것 같아요. 사실 매번 작품을 할 때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지만 그게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무거운 짐들을 비워버렸어요.” 하지만 결국 배우를 평가하는 것은 캐릭터에 얼마나 몰입했느냐는 것. 그는 신윤복이 여자였다는 상상력에서 출발한 영화 속 신윤복을 어떻게 소화해냈을까. “예인에 대한 영화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배우로서 꼭 도전해 볼만한 역할이었죠. 나를 통해 신윤복이라는 인물을 다시 깨워내고 싶었어요. 흔하지 않은 이야기였기에 배우로서 도전해보고 싶었고 더 많은 걸 배우고 깨달았던 것 같아요.” # 문근영과 비교? 부담감 같은 건 없어요! 이어 드라마에서 동일인물로 연기중인 문근영과의 비교에 대해서도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문근영 씨와 비교예요. 하지만 음식이 재료가 같다고 해서 똑같은 맛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소재만 같을 분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보여줄 수 있는 것도 다른 두 배우이기 때문에 부담감 같은 건 절대 없어요.” 이번 영화로 배우로서 변신이 가능할 거라고 믿느냐는 질문에 “마음을 다 비웠기 때문에 또 다시 무엇인가를 시작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 같다. 30살에 내 옷을 입었고 사이즈도 알았기 때문에 다른 옷도 잘 고를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아직은 성공의 길로만 가고 싶지 않아요. 매번 작품을 하면서 하나씩 배웠고 얻었기 때문에 후회는 없어요. 앞으로도 어떤 작품을 선택하든 하나라도 얻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도전하고 싶어요.”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Metro] 북촌문화센터 전통작품 발표회

    서울시는 25일 종로구 계동 북촌문화센터에서 전통문화작품 발표회를 갖는다. 북촌문화센터 강사와 수강생, 북촌 전통공방 운영자들이 출품한 민화, 서예, 자수, 한지·매듭 공예 등 10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품을 판매하는 행사도 함께 열린다. 수익금 일부는 장애 어린이들의 북촌문화체험 행사비로 활용된다. 오후 3시부터는 태평무와 가야금병창, 어우동 공연, 거문고 연주 등 다채로운 축하공연과 전통다례 시연 행사를 열어 문화체험의 자리도 마련한다.서울시는 이 행사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월 넷째 주 토요일에 정기적으로 열리는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거문고의 매력에 빠져 보세요”

    거문고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 음악회 ‘거문고에 담긴 시가악무(詩歌樂舞)’가 서울남산국악당에서 22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에 펼쳐진다.8일에는 국립국악관현악단 단원인 오경자씨가 ‘신쾌동 거문고 산조’를 선보이고,15일에는 경기도립국악단 단원인 조경선씨가 ‘백낙준 거문고 산조’와 ‘임석윤 거문고 산조’를 들려준다. 마지막 날인 22일에는 영남대 김선옥 겸임교수가 ‘한갑득 거문고 산조’를 연주할 예정이다.
  •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사현금(四絃琴·거문고)을 퉁기는 신선과 불춤을 추는 신선 사이에서 요고(腰鼓·장구)를 두른 신선이 북두칠성을 배경으로 하늘 나라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중국 지안(集安)의 오회분 4호묘에 그려진 북두칠성의 그림이다. 고대 조상들이 하늘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혼연일체를 추구하던 상상력이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책이 나왔다.‘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김일권 지음, 고즈윈 펴냄)는 옛 선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천문 연구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문의 역사와 문화를 시대별로 분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교수인 지은이는 고인돌 등에 새겨진 고구려식 북극성 천문도, 고려시대 천문에 대한 북한의 보고서,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의 발굴자료, 중국 천문자료 등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내 천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우리 역사 속의 별자리를 살핀다. 역사에 투영된 별자리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숱한 이야깃거리가 내장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가 단지 어린 시절 상상의 날개를 펴던 ‘낭만의 자리’가 아니라 시대상과 문화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의 자리’라는 것. 별은 같은 곳에 한결같이 뜨는데 시대별로 다르게 보는 것은, 같은 별자리라도 시대에 따라 모양이나 갯수가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시대에 각광받던 별자리가 후대에는 쇠퇴하는 대신 다른 사상적·사회적 배경을 업고 등장한 별자리가 새롭게 주목받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먼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에 주목한다. 신라 첨성대를 제외하고는 삼국시대 별자리 유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구려처럼 다양하고 선명한 별자리 그림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황해도 안악3호분에 최초의 천장 별자리 벽화가 나타나고 다채로운 별자리를 간직한 평남 남포시 덕흥리 고분은 오행성의 그림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지안 오회분 4호묘는 북극3성의 5방위 별자리 체계가 등장, 별자리 관측에 대한 고구려의 천문학 수준을 가늠케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수준 높은 별자리 관측이 조선에 와서 맥이 끊긴 까닭은 뭘까. 지은이는 무엇보다 제천의례 혁파에서 찾는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태조 원년(1392) 조박 등이 ‘원구(圓丘)는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절이니, 이를 폐지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성리학적 질서를 숭상한 조선은 중국의 천자만이 하늘의 별자리를 독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책은 고대 한국의 별자리 그림이 중국의 별자리 그림과 다르다는 견해도 내놓는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화권이지만 별자리에 대해서는 다르게 인식했다. 한국은 북극성 별자리를 ‘북극삼성(北極三星)’으로 바라본 데 비해 중국은 ‘천극사성(天極四星)’ 혹은 ‘북극오성(北極五星)’으로 간주했다. 별자리 만큼은 중국의 시각에서 벗어나 고구려의 독자적인 관점이 정립된 셈이다. 별자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2만 8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도시 얼굴 가꾸기] 전통미 깃든 목간판 ‘화룡점정’

    [도시 얼굴 가꾸기] 전통미 깃든 목간판 ‘화룡점정’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사람이 고무신을 신었다면 ‘불협화음’이 아닐 수 없다. 양복에는 구두가 제격이고, 고무신은 한복에 어울린다. 같은 맥락에서 공공시설물도 그것이 위치하는 공간과의 조화가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공공디자인이 강조된다. 공공시설물의 하나로 간주되는 간판 역시 공간과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필수요소이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 사례를 통해 그 의미를 짚어봤다. ●전통, 공간을 깨우는 힘 청기와와 솟을대문 등이 낯설지 않은 한옥마을은 방문객들의 눈요기를 위해 ‘껍데기’만 복원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전통을 재창조한 주거지이다. 앞서 전주시는 1977년 이곳을 한옥보존미관지구로 지정,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조할 수 없도록 제한했다. 때문에 주민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면서 차츰 슬럼화가 진행됐다. 이에 시는 1999년 전통문화특구로 재지정, 본격적인 정비작업에 돌입했다. 건물의 겉모양은 전통 양식을 따랐으나, 내부는 현대식으로 설계됐다.2002년에는 한옥보전지원조례도 제정, 주민들이 한옥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전체 700여채의 건물 가운데 90% 이상이 한옥으로 변모했고, 마을을 찾는 방문객 수는 연간 10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건물이 바뀌자,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한옥마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태조로’는 2002년, 동서를 연결하는 ‘은행로’는 올 초 가로정비사업을 마무리했다. 이중 은행로의 경우 무미건조한 아스팔트 도로를 정감이 느껴지는 돌길로 전환했고, 길 옆에는 실개천까지 조성했다. 태조로도 가로수 주변에 화초를 심은 ‘한뼘 화단’ 등의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간판정비, 공간과의 조화 죽어 있던 공간이 새롭게 깨어나자, 태조로·은행로 1㎞ 구간에는 공방과 전통찻집, 음식점, 전통체험·전시관 등 70여개 업소가 줄지어 들어섰다. 임채준 전주시 한옥마을담당은 “처음에는 별다른 제한 없이 간판을 내걸자, 한옥마을 전체의 이미지를 저해하는 옥에 티가 됐다.”면서 “때문에 올 초부터 간판 정비에 착수, 현재 50% 정도 바뀐 상황”이라고 말했다. 간판 정비는 철저히 공간과의 조화를 염두에 두고 진행되고 있다. 한옥은 구조상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연속성이 떨어진다.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기 쉽지 않다. 때문에 업소마다 가로형과 돌출형 등 간판을 2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다만 간판이 건물에 비해 ‘배보다 큰 배꼽’이 되지 않도록 가로형 간판의 경우 지붕 크기의 50% 미만으로, 돌출형 간판은 처마 안쪽에 위치하도록 제한했다. 또 땅에 기둥을 박은 지주형 간판을 전면 금지해 모두 철거하고 있다. 또 간판 재질은 한옥에 어울리는 목재가 주로 쓰이고, 다양한 디자인의 목간판은 장인의 손을 거친다. 이곳에서 목간판을 제작하는 공방인 ‘목우헌’을 운영하는 김종연씨는 전통목침 관련 대한민국 기능전승자이기도 하다. 김씨는 “간판의 글자체도 전문가의 작품 글씨에서부터 해당 업소 주인이 직접 쓴 글씨에 이르는 다양한 요구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판박이 간판’ 원천봉쇄 이처럼 한옥마을에서는 간판의 재질·형태·디자인 등을 다양화했기 때문에 같은 모양의 간판을 찾아볼 수 없다. 새로 제작하는 간판은 기존 간판과 반드시 차이를 둬야 한다. 특히 올해부터 새로 설치되는 간판에 대해서는 도시계획·건축·한옥보수·디자인·사학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한옥보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치고 있다. 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비로소 간판을 내걸 수 있다. 하지만 위원회는 지난달 처음으로 신규 간판 4건에 대해 심의한 결과, 모두 ‘퇴짜’를 놓았을 정도로 심의를 엄격하게 진행한다. 임채준 한옥 담당은 “한옥마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디자인이어야 간판은 물론, 공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건축 심의보다 까다롭게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주시는 또 상업 간판은 물론, 안내표지판 등 공공 간판 개선에도 나섰다. 공공 간판에 대한 디자인 공모를 통해 한복의 옷소매와 쇳대, 방패연·가야금·거문고 등 전통적인 소재를 활용하기로 확정했다. 공공 간판에 대한 교체작업은 올해 말이면 마무리될 예정이다. 글·사진 전주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4회 한국교육대상 시상식

    한국교직원공제회(이사장 이종서)는 14일 서울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제4회 한국교육대상’ 시상식을 가졌다.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대상=위인환(전남 장흥관산초 교사)▲유아부문=권영옥(강원 공립단설새봄유치원 원장)▲특수교육부문=송정순(부천상록학교 교사)▲초등부문=김주호(충남 대평초 교사)▲중등부문=유해열(경기 운암중 교사) 나미정(경기 여주자영농고 교사)▲대학부문=김세권(부경대 교수)▲교육행정부문=임춘근(경상남도교육청 총무과장)
  • 매주 수·금·토 남산서 국악공연

    서울 남산국악당은 13일 우리 국악과 전통 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산의 국악여정’ 프로그램을 마련,6월까지 공연한다고 밝혔다. 매주 수요일 오후 7시30분에는 전통 무용의 진수를 만날 수 있는 ‘남산, 우리춤 나들이’ 공연이 펼쳐진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인 숭의여대 무용과 손경순 교수, 한국무용협회 부이사장인 인천시립대 무용과 이은주 교수 등 7명이 전통무용의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매주 금요일 오후 7시30분에는 이홍근, 윤형욱, 황세원, 안은경, 김성민, 이석주 등이 출연해 피리 연주를 펼친다. 국악평론가 윤중강씨의 해설 속에 젊은 피리 연주자들의 무대를 즐길 수 있다. 오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에는 국악실내악단인 ‘정가악회’가 출연해 거문고 등 현악기 위주의 우리 가락 연주를 선보인다.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63)현존 最古 거문고 ‘탁영금’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63)현존 最古 거문고 ‘탁영금’

    거문고는 친숙한 악기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거문고 음악과 가까워지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연주하는 악기라기보다는, 스스로 성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는 선비의 분신(分身)이었다는 이 악기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겠지요. 거문고는 명주실로 꼰 여섯개의 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선율을 타는 것은 둘째 줄인 유현(遊絃)과 셋째 줄인 대현(大絃)이지요. 유현은 맑고 부드러운 소리가 나지만, 굵고 투박한 대현은 그저 손가락으로 뜯어서는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습니다. 해죽(海竹)으로 만든 술대로 힘차게 내리쳐야 특유의 깊이 있는 소리가 울려나오지요. 거문고는 당연히 현악기이지만, 음색은 그래서 타악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아마추어가 제대로 연주해 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물 957호… 국립대구박물관서 전시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풍류를 아는 선비 치고 거문고를 가까이 두지 않은 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흩어질 때 거문고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한 음씩 짚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집중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지요. 물론 거문고를 가까이 둔다고 해서 연주 실력까지 출중했다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저 담백하게 소리의 여운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마음의 귀 정도만 갖추고 있다면 족했겠지요. 탁영금(濯纓琴)도 기개있는 선비의 친구로 역할을 해낸 거문고입니다.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1464∼1498년)이 타던 것이지요. 탁영의 후손이 물려받은 이 거문고는 보물 제957호로 지정되어, 지금은 국립대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탁영금은 남아있는 거문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김일손이 27세이던 1490년(성종 21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요. 악기의 윗단 복판에는 ‘濯纓琴(탁영금)’이라는 글자가 오목새김되어 있지요. 탁영이 세상을 떠난 뒤 옥강이라는 선비가 탁영의 거문고라는 사실을 밝혀놓으면서 함께 새겨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탁영금은 김일손의 손때가 묻은 거문고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눈길을 끄는 존재가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김일손은 무오사화(戊午士禍)의 대표적인 희생자였지요.1498년(연산군 4년) 그를 비롯한 신진사류가 유자광을 중심으로 한 훈구파에 화를 입은 사건입니다. 고향인 경상도 청도에 머물던 김일손은 의금부에서 관헌들이 체포하러 오자 “지금 내가 잡혀가는 것이 사초(史草)에서 비롯되었다면 반드시 큰 옥(獄)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견했다고 하지요. 무오사화를 史禍(사화)로 부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때 김일손·권오복·권경유 세 사신(史臣)이 대역죄로 몰려 온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능치처사(陵遲處死)를 당했는데, 김일손의 나이 만 34세였습니다. ●100년된 나무 문짝 직접 구해 만들어 김일손이 남긴 ‘탁영집’에는 거문고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는 자신이 탈 거문고를 자신이 직접 구한 나무로 만들고 싶어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노파의 집에서 좋은 재료를 얻게 되었는데, 바로 문짝이었지요. 노파에게 문짝이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를 물었더니,“근 백년 된 것인데 문 한짝과 지도리는 망가져서 이미 땔감이 되었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나머지 문짝으로 거문고를 만들어 타니 소리가 맑았는데, 밑바닥에는 문으로 쓰이던 때의 못 구멍 세 개가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하지요. 이후 김일손이 유능한 젊은 문신들에게 독서에 전념할 수 있도록 여가를 주는 사가독서(賜暇讀書)에 들어있는 동안 권오복과 나눈 대화내용에는 이런 것도 있습니다.‘그림으로 그려놓은 학은 욕심이 없으니, 나는 거문고에 학의 그림을 그려 넣어 욕심없는 부류를 따르겠다.’고 말하고는 거문고에 학을 그려넣게 했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탁영금에는 학이 그려져 있습니다. ●스트라디바리의 걸작보다 일찍 ‘탄생´ 탁영금은 악기이지만, 역사에 구체적인 흔적을 뚜렷이 남긴 젊은 선비의 기개가 담긴 정신적 문화유산이기도 합니다. 가장 훌륭한 바이올린을 남겼다는 이탈리아의 현악기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년)의 걸작보다 훨씬 일찍 만들어졌고, 그것들이 범접하지 못할 스토리를 담고 있는 악기를 바로 우리가 갖고 있습니다. dcsuh@seoul.co.kr
  •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시대 ‘여민락’ 되살린다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권제, 정인지, 안지 등에게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내용으로 하는 노래를 짓도록 한다. 바로 ‘용비어천가’이다. 그렇게 지어진 ‘용비어천가’의 한시(漢詩) 초장과 2∼4장, 그리고 마지막 125장을 관현악 선율에 얹은 것이 ‘여민락(與民樂)’이다. ‘여민락’은 세종 29년(1447년)부터 연례악으로 연주되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노래가 분리되어 오늘날에는 가사가 없는 기악곡으로 전해지고 있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세종시대처럼 노래와 기악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되살려 17일 오후 7시30분 예악당에서 첫 선을 보인다. ‘여민락’의 가사가 ‘용비어천가’였다는 것은 기록에만 남아있을 뿐 악보가 남아있지 않아 원래형태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전승되는 음악을 살리되 현대에 맞게 재창작하는 것 또한 국립국악원의 할 일이라는 생각에서 ‘용비어천가’의 음운을 살려 가사가 있는 ‘여민락’을 새로 짰다고 한다. ‘여민락’은 선율이 유려하고 화평하여 조선시대를 통틀어서 으뜸가는 명곡으로 꼽힌다. 전체 연주시간이 1시간 35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정악단이 ‘여민락’을 연주하는 것은 1996년 이후 12년 만이다. 가사를 얹은 ‘여민락’ 연주는 당연히 처음이다. ‘여민락’은 꿋꿋한 피리 선율이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등 대규모 관현악 편성을 이끌고 가는 유장한 가락이 특징이다. 본래 10장이었으나, 지금은 7장만 전해진다.1∼3장은 느리게,4∼7장은 빠르게 연주된다. 정악단은 지난해 한양대 권오성 명예교수와 황준연 서울대 교수 등 5명의 전문가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어떤 가사를 어떤 장에 실을 것인지 논의했다. 그 결과 ‘용비어천가’ 125장의 가사를 발췌하여 가사로 옮겨도 좋겠다고 뜻을 모았다고 한다. 정악단은 이렇게 ‘여민락´ 7장의 노래와 선율이 함께하는 ‘여민락’을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연습하기 시작했다.4월에 들어서는 오전, 오후로 ‘여민락’을 맹연습하고 있다. 김한승 정악단 예술감독은 “6개월이 넘도록 연습에 열중한 결과 단원들 모두 암보로 연주할 수 있을 만큼 몸에 익혔다.”면서 “남은 기간에는 새로운 ‘여민락’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여민락’은 각 장이 모두 본장과 여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음이란 각 장을 마무리하여 여민다는 의미가 있다. 여음에서 피리와 해금은 ‘쇠는 가락’이라 하여 전체 악기의 선율보다 한 옥타브 높게 연주한다. 각 파트에서 한 두 사람이 대표주자로 이 역할을 맡는데, 멀리서 아련히 들려오는 듯한 ‘쇠는 가락’이 ‘여민락’을 더욱 풍성하고 화려한 음악으로 만드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한다.‘여민락’ 감상의 중요한 ‘포인트’이다.8000원∼1만원.(02)580-33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농업선진화 전략 토론회

    농업선진화 전략 토론회

    한국조직학회(회장 이창원 한성대 교수)는 2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교육문화회관 거문고홀에서 ‘농업환경 변화에 따른 농업’이라는 주제로 농업선진화 전략 토론회를 개최한다.
  • [부고] 무형문화재 ‘구례향제줄풍류’ 보유자 김정애씨

    [부고] 무형문화재 ‘구례향제줄풍류’ 보유자 김정애씨

    중요무형문화재 ‘구례향제줄풍류’의 보유자인 김정애 씨가 24일 오전 2시30분 지병으로 별세했다.71세.1938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통 가·무·악 분야에서 두루 높은 경지를 보여 준 보기 드문 예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인은 1960년대 포항 조지중·고등학교 교사를 역임한 이후 진주시립무용단 단무장 등으로 전통 가·무·악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암이 발병한 1987년부터는 기악에만 전념하다 1996년 거문고 연주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됐다. 구례향제줄풍류는 전남 구례에서 전승되는 향토색 짙은 실내악으로 거문고, 가야금, 양금을 주축으로 대금, 해금, 단소, 장고가 편성되기도 한다. 유족은 남편인 김문대 전 생초종합고 교감과 김종록 휴렛팩커드 차장 등 1남 3녀. 빈소는 경남 진주시 제일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6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진주시 나동 천주교공원묘지.(055)750-71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원각사 100돌’ 1년내내 공연

    ‘원각사 100돌’ 1년내내 공연

    원각사는 지금의 서울 광화문 새문안교회 자리에서 판소리와 창극, 그리고 새로운 형태의 연극을 올린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극장이다.1902년 협률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는데,1906년 문을 닫은 뒤 1908년 7월 이인직·박정동·김상천이 건물을 빌리고 내부를 수리해 극장을 만들었다. 정동극장은 원각사의 옛 터전에서 가까운 서울 중구 정동에서 ‘원각사의 복원’이라는 이념으로 1995년 출범했다. 이 극장의 마당에 원각사를 중심으로 ‘근대 5명창의 한 사람’으로 창극 활성화에 앞장섰던 이동백의 동상이 세워진 것도 이 때문이다. 정동극장이 원각사 설립 100돌을 맞아 연중기획으로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갖는 것은 ‘원각사의 적자(嫡子)’라는 정체성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싶다는 의도일 것이다. 정동극장의 원각사 기념무대는 1월과 6월,10월에 집중적으로 펼쳐진다. 이달 ‘정동명인뎐’에 이어 6월에는 젊은 감각을 가진 새로운 시대의 전통예술인들 4명을 선정하여 예술세계를 집중적으로 소개하는 ‘아트 프런티어’,10월에는 원각사 설립 주역의 한 사람인 이인직이 자신의 1908년작 신소설을 바탕으로 공연한 ‘은세계’를 무대에 올린다. 손진책이 연출을 맡아 현재 완전히 새로운 감각의 ‘은세계’를 창조하는 작업에 한창이다. ‘정동명인뎐’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 14명을 포함한 80명의 명인·명창·명무가 참여한 가운데 11일 막을 열어 26일까지 열리는 ‘작은 극장의 큰 무대’이다. ‘창극의 탄생’을 주제로 삼은 11∼12일은 판소리 다섯마당과 입체창 ‘수궁가’, 그리고 ‘흥보가’와 ‘심청가’의 한 대목을 인간문화재급 명창들의 소리로 즐길 수 있다. ‘춘향가’와 ‘심청가’의 인간문화재 성우향과 성창순,‘흥보가’와 ‘수궁가’ 보유자 박송희와 남해성, 그리고 ‘적벽가’의 보유자인 송순섭과 보유자 후보 김일구가 이틀 동안 나누어 출연하는 초특급 무대이다. 왕기석과 유수정, 김학용, 정미정, 임향님 등 차세대를 이끌고 갈 명창도 대거 등장한다. 18∼19일은 ‘안팎의 우리 춤’이다. 김주홍과 노름마치의 ‘비나리’에 이어 고성오광대의 인간문화재 이윤석의 ‘덧뵈기 춤’과 ‘밀양백중놀이’ 보유자 하용부의 ‘밀양북춤’이 펼쳐진다. 채상묵과 임이조, 윤미라, 김운선 등 대표적인 춤꾼들이 망라됐다. ‘소리와 악기’를 주제로 삼은 25∼26일은 명인들의 산조와 각 지방의 토속적인 소리들이 어우러진다. 인간문화재 문재숙과 이생각, 김영재가 각각 보유하고 있는 가야금산조와 대금산조, 거문고산조를 들려준다. 서도소리 인간문화재 이은관의 ‘배뱅이굿’과 경기민요 보유자 이춘희의 ‘긴아리랑’, 김영임의 강원소리, 최경만의 ‘호적풍류’ 등도 마련된다. 피날레는 이광수와 한국민족원의 비나리가 장식한다. 오후 7시30분.2만∼3만원.(02)751-1500.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美전문지 선정 ‘올해의 우주사진’ TOP10은?

    올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우주 사진에는 무엇이 있을까?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내셔널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은 올해 1년간 가장 경이롭고 신비한 우주사진들 중 관심을 끌었던 10장의 이미지(top10 space pictures 2007)를 선정했다. 이 사진 목록에는 스피처 우주망원경(Spitzer Space Telescope)과 허블망원경이 찍은 은하계의 크고 작은 다양한 행성들과 과학 현상을 생동감있게 설명하는 그래픽 이미지등이 실려있다. 다음은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선정한 올해의 우주 사진 10. 1. 우주의 눈 ‘나선성운’(Helix nebula) 지난 2월 미국 우주항공국 NASA의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적외선 이미지로 거대한 눈을 연상케 해 ‘우주의 눈’이라는 별칭을 갖고있다. 눈 중앙의 붉은색 부분은 별이 죽을 때 내뿜는 마지막 가스층이다. 2. 별을 탄생시키는 ‘창조기둥’(Pillars of Creation) 신생별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한다는 창조기둥. 수소가스와 먼지들로 이루어져 별들이 탄생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확대된 사진 속 기둥들은 동굴의 석순처럼 생겼으며 고밀도의 수소로 차있다. 왼쪽의 가장 높은 기둥은 바닥에서 꼭대기까지 약 1광년 (9조4670억7782만㎞)만큼 떨어진 거리이다. 삽입된 확대 이미지는 지난 1995년 허블망원경이 포착한 것. 3. 죽어가는 아름다운 별 ‘백색왜성’ 지난 2월 허블망원경이 ‘환상적인’ 별의 죽음을 포착했다. 가운데 하얀색 부분은 왜성(white dwarf·항성으로서 청년기, 장년기의 별을 지칭)이라 불리는 별로 항성진화 마지막 단계에서 표면층 물질을 행성상성운(거문고 자리·큰 곰자리가 대표적으로 은하계 내의 가스성운 중 비교적 작은 원형인 것)으로 방출한 뒤 남은 물질들이 축퇴하여 형성되었다. 4. 경이로운 중성자별의 춤 지난 6월 NASA의 로시 X선 타이밍 익스플로러(Rossi X-ray Timing Explorer) 위성에 의해 포착되었다. 중성자별(중성자의 축퇴압이 중력과 균형잡혀 있는 초고밀도의 별)의 한 단면을 포착했다. 5. 화성의 새로운 사진 물의 흔적을 보여주는 화성의 ‘대수층’(지하수를 함유한 지층)사진이다. 지난 2월 과학잡지 ‘사이언스 저널’을 통해 공개된 이 이미지는 화성을 표면을 따라 흐르는 띠가 생생히 묘사됐다는 반응이다. 6. 자기장이 강한 별 ’마그네타’(Magnetar) 마그네타의 폭발장면이다. 마그네타가 달과 같은 거리에 있다면 지구상의 신용카드가 전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마그네타는 0.1초 동안 태양이 10만 년간 내뿜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를 감마선으로 방출한다. 감마선은 가장 강력한 전자기파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7.토성의 위성 가운데 하나인 ‘타이탄’의 호수 NASA와 유럽우주기구 ESA가 공동개발한 호이겐스(Huygens) 탐사용로켓이 토성의 달 타이탄(Titan)의 호수를 떠다니고 있는 사진이다. 호수는 메탄·에탄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이곳에 외계 생물체와 같은 유기물이 생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과학자들의 추측이 있었다. 8. 태양계 묘사한 그래픽 사진 지난 5월 과학전문지 ‘사이언스 저널’이 이용한 데이타로 그래픽이 태양계의 원리를 묘사하고있다. 9. 목성의 오로라 지난 3월 NASA에 의해 포착된 것으로 목성의 보라색 양 극관이 오로라이다. 오로라는 전자나 양성자가 대기와 충돌하면서 발광하는 현상으로 오로라가 폭발적으로 활동할 때는 그 부근에서 강한 자기가 흐른다. 10. 남쪽하늘로 떨어지는 ‘수퍼브라이트’ 혜성 호주출신의 우주비행사 로버트 맥넛(Robert McNaught)이 호주 뉴 사우스 웨일스(New South Wales)의 관측대에서 지난 8월 처음으로 발견한 혜성이다.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장혼이 한평생 설계했던 행복한 집 이이엄

    중인들이 인왕산 언저리에 모여 살자, 아들들도 어려서부터 서당에서 같이 글공부를 하며 친구가 되었고, 장성해서 전문직을 얻은 뒤에도 함께 모여 시를 짓거나 인생을 이야기했다. 그 가운데 많은 친구들은 집도 이웃에 지어 한평생을 같이 살았다. 인왕산에서 중인 자제들을 가르쳤던 장혼은 오랫동안 집터를 물색하다가, 마음에 드는 위치에 헌집이 나오자 일단 구입해 놓았다. 그리고나서 다시 오랫동안 비용을 마련해 집을 지었다. 크지는 않지만 작지도 않은 집, 마음맞는 친구들이 함께 있으면 초가 삼간도 넓은 집이었다. 면앙정 송순도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삼간 지어내니”라고 시조를 읊었는데, 집터를 장만해 놓고 아침 저녁 마음 속으로 설계하는 동안 그는 너무나 행복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헌 집을 사다 인왕산에는 골짜기가 많아 무계동에는 안평대군이 무계정사를 지어 왕자와 사대부들이 모여 시와 그림을 즐겼고, 청풍계에는 김상용이 태고정을 지어 그의 후손인 노론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 나라를 걱정했으며, 옥류동에는 중인 천수경이 송석원을 지어 위항시인들이 모여들었다. 천수경의 친구 장혼도 친구 따라 인왕산 자락에 집을 지으려고 대지를 물색하다가, 옥류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버려진 헌집을 찾아냈다. 그는 인왕산 옥류동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했다. “등 뒤로는 푸른 절벽의 늙은 소나무가 멀리 바라보이고, 앞쪽으로는 도성의 즐비한 집들이 빼곡하게 내려다보인다. 그 가운데로 맑은 시내물이 흘러가는데, 꼬리는 큰 시내에 서려 있고, 머리는 산골짜기에 닿아 있다. 졸졸졸 맑게 흐르는 물소리가 옥구슬이 울리고 거문고와 축(?)을 울리는 듯하다가, 비라도 올라치면 백 갈래로 물길이 나뉘어 내달려서 제법 볼 만하다. 물줄기가 모인 곳을 젖히고 들어가면 좌우의 숲이 빽빽하게 모여 있고, 그 위에 개와 닭이 숨어 살며, 그 사이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옥류동은 넓지만 수레가 지나다닐 정도는 아니고, 깊숙하지만 낮거나 습하지 않았다. 고요하면서 상쾌하였다. 그런데 그 땅이 성곽 사이에 끼여 있고 시장바닥에 섞여 있어,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별로 아끼지는 않았다.” 그가 말한 옥류동은 명승지이면서도 시장바닥에 가까워,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동네이다. 경복궁 옆에 있어 장안을 굽어보면서도 숲으로 가리워진 동네, 옥류동(玉流洞)이라는 이름 그대로 물 흐르는 소리가 옥구슬 구르는 소리같이 들리는 골짜기지만 개와 닭 소리가 들리는 동네이다. 낮거나 습하지 않아 사람이 집 짓고 살기에 알맞았지만, 일부러 대지를 구입해 집을 지을 정도로 애착을 가지지는 않았던 동네이다. 지금은 옥류천이 복개되어 옛모습을 찾을 수 없지만, 옥인동 자락의 형세는 그대로이다. “옥류동의 길이 끝나가는 산발치에 오래 전부터 버려진 아무개의 집이 있었다. 집은 비좁고 누추했지만, 옥류동의 아름다움이 이곳에 모여 있었다. 잡초를 뽑아내고 막힌 곳을 없애자, 집터가 10무(畝·300여평) 남짓 되었다. 집 앞에는 지름이 한 자 반 되는 우물이 있는데, 깊이도 한 자 반이고, 둘레는 그의 세 갑절쯤 되었다. 바위를 갈라 샘을 뚫자, 갈라진 틈으로 샘물이 솟아났다. 물맛은 달고도 차가웠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 우물에서 너댓 걸음 떨어진 곳에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여러 사람이 앉을 만했다.” 중인들은 전문직을 지녔기에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살 수 없었다. 도심에 가까우면서도 아름다운 바위 사이로 시냇물이 흐르는 옥류동은 시인이 살기에 가장 알맞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영의정 김수항이 지은 청휘각을 비롯한 여러 누각들이 세워져 있었지만, 한쪽에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헌 집도 있었다. 집터는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주변의 경치를 한눈에 즐길 수 있는 곳인데다, 열댓 명이 앉을 만한 너럭바위까지 있어 시 짓는 친구들이 모여 놀기에도 좋았다. ●여러 해 동안 마음 속으로 설계하고 꽃과 나무를 심다 “집값을 물으니 겨우 50관(貫)이라 그 땅부터 사 놓고는, 지형을 따라 몇 개의 담을 두른 집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기와와 백토 장식을 하지 않고, 기둥과 용마루를 크게 하지 않는다. 푸른 홰나무 한 그루를 문 앞에 심어 그늘을 드리우게 하고, 벽오동 한 그루를 사랑채에 심어 서쪽으로 달빛을 받아들이며, 포도넝쿨이 사랑채의 옆을 덮어 햇볕을 가리게 한다.(줄임) 앵두나무는 안채의 서남쪽 모퉁이를 빙 둘러 심으며, 그 너머에 복숭아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사과나무와 능금나무, 잣나무, 밤나무를 차례로 심고, 옥수수는 마른 땅에 심는다. 오이 한 뙈기, 동과 한 뙈기, 파 한 고랑을 동쪽 담장의 동편에 섞어 가꾸고, 아욱과 갓, 차조기는 집 남쪽에 구획을 지어 가로 세로로 심는다. 무와 배추는 집의 서쪽에 심되, 두둑을 만들어 양쪽을 갈라 놓는다. 가지는 채마밭 곁에 모종을 내어 심는데 자줏빛이다. 참외와 호박은 사방 울타리에 뻗어, 여러 나무들을 타고 오르게 한다.” 그가 그린 집은 호화주택이 아니라 작은 집이다. 기와도 얹지 않고, 백토도 바르지 않았다. 그 대신에 자기가 좋아하는 꽃과 채소를 심었으며, 햇볕과 달빛, 비와 바람이 차례로 그의 집을 찾아들게 하였다. 그가 짓는 집은 남에게 팔려고 짓는 집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살려고 짓는 집이다. 그는 집을 짓기 전부터 마음속으로는 이미 그 집에 들어가 살았다.“꽃이 피면 그 꽃을 보고, 나무가 무성해지면 그 아래서 쉬었으며, 열매가 달리면 따 먹고, 채소가 익으면 삶아 먹었다.” 그는 마음속으로 집을 다 짓고 나자, 그 집에서 즐길 계획까지 구체적으로 세웠다. ●책 읽고 노래 부르며 천명을 따르면 그만인 것을 “손님이 오면 술상을 차리게 하고 시를 읊으면 그만이다. 흥이 도도해지면 휘파람 불고 노래를 부르면 그만이다. 배가 고프면 내 밥을 먹으면 그만이고, 목이 마르면 내 우물의 물을 마시면 그만이다. 추위와 더위에 따라 내 옷을 입으면 그만이고, 해가 지면 내 집에서 쉬면 그만이다. 비오는 아침과 눈 내리는 낮, 저녁의 석양과 새벽의 달빛, 이같이 그윽한 삶의 신선 같은 정취를 바깥세상 사람들에게 말해주기 어렵고, 말해주어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는 계속 “그만(而已)”이라는 표현을 즐겨 쓰더니,“나의 천명을 따르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 집 편액을 이이엄(而已)이라 했다(聽吾天而已,故扁吾以而已)”고 설명했다. 그의 집 이름이 ‘이이엄’이 된 것은 당나라 시인 한퇴지의 시에서 “허물어진 집 세 칸이면 그만(破屋三間而已)”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그는 꿈속의 집을 짓는 비용으로 300관을 계산했는데,“자나깨나 고심한 지 십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평생지(平生志)´라는 제목의 이 글을 쓸 때까지 그는 이 집을 짓지 못했지만, 그 집에서 살 계획은 여러 차례 밝혔다. 오래 된 거문고에서 옥도장과 인주에 이르기까지 “맑은 소용품 80종(淸供八十種)”을 선정해 놓았고, 사서삼경, 역사서, 이야기책, 시집, 의서, 연애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맑은 책 100부(淸寶一百部)”를 선정해 놓았다. ●인왕산을 백배로 즐기다 인왕산은 하나이고, 그가 사들인 땅은 10무 밖에 안되었지만, 그는 인왕산을 백배로 즐겼다. 그가 꼽은 “맑은 경치 열가지(淸景十段)”는 지난주에 소개한 옥계십경(玉溪十景)과 대부분 겹치니, 자신이 인왕산에서 찾아낸 열 가지 아름다움을 옥계사 동인들과 공유한 셈이다.“작은 언덕의 닭과 개” “골짜기 안의 채마밭”에서 사람 사는 모습을 찾아냈고,“밤낮 쉬지 않고 흐르는 샘물” “흐렸다 맑았다 하는 산기운”에서 자연의 움직임을 찾아냈다.“벼랑에 어린 가벼운 이내”에서 아침의 아름다움을,“푸른 봉우리에 비치는 저녁노을”에서 저녁의 아름다움을 찾아냈다. 우리나라 어느 마을에서나 눈에 띄는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며 즐겁게 살았다. 30세 이전에 ‘평생지´를 써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집을 설계했던 그는 자기 뜻대로 삼간 집에 만족하며 살았다.“그의 집이 비바람을 가리지 못했으므로 남들은 그가 가진 것 없음을 비웃었지만” 그 자신은 69세 되던 해 입춘절에 “굶주림과 배부름, 추위와 더위, 죽음과 삶, 재앙과 복은 운명을 따르면 그만이다(聽之命而已)”라고 자부한 뒤, 이듬해에 세상을 떠났다.‘오양생(悟養生)´이라는 글 마지막 줄에 “이이엄주인이 스스로 짓다.”고 끝맺었으니,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생계획을 세운 그대로, 인왕산 자락에서 늘 만족하며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중인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류재원 네번째 해금독주회 개최

    해금연주자 류재원이 21일 오후 7시30분 국립국악원 우면당에서 네번째 독주회를 갖는다. ‘허튼가락 그리고 無思 Style(무사 스타일)´로 이름붙인 이번 독주회에서 류재원은 한주환류 대금산조를 임재원과 신쾌동류 거문고산조를 이형환과 각각 병주한다. 작곡가 안현정에게 위촉한 해금중주를 위한 ‘달빛 흐르는 소리’를 초연하고, 지영희류 해금산조는 무사스트링스와 합주한다.(02)563-8626.
  • [Local] 남원 국악 성지 문 열어

    판소리와 농악 등 국악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악 성지가 1일 전북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서 문을 열었다. 남원은 동편제 판소리의 발상지이자 춘향가와 흥부가가 나온 무대로 국악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다. 국악 성지는 7만여㎡에 판소리, 농악, 기악, 전통무용 등 4개 전시관에 400여점의 유품과 유물이 전시됐다. 또 국악 체험장, 수련장을 비롯, 소리꾼들의 득음을 돕기 위해 동굴 모양으로 지어진 독공장(3개)도 마련됐다. 여기다 판소리의 가왕으로 불리는 송흥록 명창, 거문고의 달인 옥보고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도 있다. 남원시 관계자는 “국악 성지에서는 국악 대중화를 위해 일반인 국악체험과 예비 국악인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국악 정기공연과 경진대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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