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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첫 전통예술분야 공연 2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첫 전통예술분야 공연 2제

    로미오와 줄리엣 전통악기와 만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우리의 전통악기인 해금 등으로 재해석한 음악극 ‘해미오와 금이에’가 초연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 창작산실이 선보이는 첫 전통예술분야 공연이다. 오는 18~1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해미오와 금이에’는 그동안 연극, 영화, 뮤지컬, 오페라 등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된 로미오와 줄리엣을 전통 악곡으로 재변주했다. 비극적 사랑의 선율을 해금과 가야금, 아쟁 등 전통 악기로 표현하고, 현대 무용과 셰익스피어 특유의 대사가 버무려진다. 시대적 배경을 현재로 옮겨와 배우의 의상과 대사 모두 현대적으로 전환해 극의 몰입도를 높였다. 90분간 진행되는 음악극은 1막 절화, 2막 다른 이름의 장미, 3막 달빛에 취한 연인들, 4막 하얀 어둠, 5막 불행의 별, 6막 바람 없는 천지, 7막 꽃이 피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해금연주자인 양경숙 서울대 국악과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았고, 국내 해금연주의 디바로 꼽히는 김애라가 음악감독으로 호흡을 맞췄다. 특히 막마다 피아노 등 서양악기와 조화를 이룬 해금연주자 75명의 합주곡과 해금 24중주 등이 백미로 꼽힌다.거문고 명인 허윤정 시공간을 넘나들다 또 다른 창작산실 초연작인 거문고 명인 허윤정의 ‘거문고 스페이스’도 다음달 3~5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선보인다. 수많은 실들이 짜여진 무대 장치 위에 프로젝션 맵핑을 펼쳐 우주적 공간미를 느끼며, 거문고의 자연 음향과 이에 반응하는 미디어아트를 한 무대에서 맛볼 수 있도록 한 실험극이다. 거문고 현(絃)을 무대 위에 형상화해 시공을 넘나드는 듯한 공간감과 원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연출했다. 허윤정은 유럽 재즈 시장에 진출해 국악 한류를 이끌고 있는 거문고 명인으로, 지난해 10월 유럽 재즈 레이블 액트(ACT)에서 ‘마스크 댄스’ 음반을 발표한 바 있다. 문예위 창작산실 프로젝트 관계자는 “두 작품 모두 전통예술의 현대적 재창작을 모토로, 대중적인 공감과 새로운 경향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창작산실 지원사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08년부터 실행해오던 창작팩토리를 문예위가 2014년 이어받아 장르별 우수 창작 레퍼토리를 선정해 창작부터 유통까지 지원하는 사업으로, 전통예술분야는 지난해 신설돼 이번에 처음 무대에 오르게 됐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이리향제줄풍류 명예보유자 김규수씨 별세

    이리향제줄풍류 명예보유자 김규수씨 별세

    국가무형문화재 제83-2호 이리향제줄풍류 명예보유자인 김규수씨가 11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93세. 이리향제줄풍류는 전북 익산(옛 이리) 지역에서 전해오는 기악곡으로 가야금, 거문고, 양금, 단소, 해금, 대금, 피리, 장구 등 8개 악기로 연주하는 기악곡이다. 고인은 가야금과 거문고를 배운 뒤 1970년부터 고(故) 강낙승 선생에게 이리향제줄풍류를 사사했다. 1972년 이리정악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면서 이리향제줄풍류의 보전과 전승에 힘써 1989년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훈했다. 이후 고인은 2003년에 이리향제줄풍류 보유자, 2014년에 명예보유자가 됐다. 유족으로는 3남 3녀가 있으며 빈소는 경기 군포시 용호성당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13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전북 부안군 주산면 선영. (031)395-3900.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이영애x송승헌 ‘사임당’ 첫방, 알고보면 더 재밌다 ‘관전포인트 넷’

    이영애x송승헌 ‘사임당’ 첫방, 알고보면 더 재밌다 ‘관전포인트 넷’

    ‘사임당, 빛의 일기’가 첫방을 앞두고 있다. ‘사임당, 빛의 일기’은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태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이영애 분) 일기에 얽힌 비밀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풀어내는 퓨전사극이다. 일기 속에 숨겨진 천재화가 사임당의 불꽃같은 삶과 ‘조선판 개츠비’ 이겸(송승헌 분)과의 불멸의 인연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낼 예정. 제작단계부터 많은 시청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작품인만큼 ‘사임당’을 더욱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관전 포인트를 꼽아봤다. #13년 만에 안방극장을 찾은 이영애와 ‘조선판 개츠비’ 송승헌 이영애가 안방극장을 찾은 것은 ‘대장금’ 이후 무려 13년 만의 일이다. 고심 끝에 고른 ‘사임당’이라는 작품에서 이영애는 사임당과 서지윤이라는 1인 2역으로 폭 넓은 연기를 선보일 예정. 지난 17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윤상호 PD와 박은령 작가가 “이영애는 사임당 그 자체”라고 입을 모아 칭찬할 정도로 사임당과 높은 싱크로율을 자랑한다. 여기에 송승헌의 연기 변신도 주목할 포인트. 사극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배우 중 하나인 송승헌이 불꽃같은 삶을 산 ‘조선판 개츠비’ 이겸을 통해 이전과는 180도 다른 매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며 풀어낸, 누구도 몰랐던 사임당의 이야기 1,2회 연속 방송으로 휘몰아칠 ‘사임당’은 첫 회부터 강력한 사건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전임교수를 꿈꾸던 시간강사 서지윤이 이태리에서 찾은 자신의 모습과 꼭 닮은 미인도와 사임당의 일기를 매개로 운명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타임슬립’이라는 코드를 차용하고는 있지만 여타의 작품에서 등장한 ‘타임슬립’과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단순히 시간적인 이동이나 과거의 인물이 현대로 오는 형태의 판타지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진 퓨전 사극이다. 특히 그동안 ‘율곡 이이’의 어머니이자 현모양처로 인식해왔던 것에서 탈피해 ‘워킹맘’과 ‘천재적 예술가’로서의 면모를 부각했다. ‘사임당’은 여자로, 예술가로 시대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던 여자 사임당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이영애 역시 “‘사임당’이라는 작품으로 우리가 정해놓은 이미지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과정이 재미있었다”며 “과거나 지금이나 엄마로서의 고민은 같다. 그리고 사랑 이야기에서 오는 설렘이 있다. 보시면서 다양한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하며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오윤아, 김해숙 부터 신예 박혜수, 양세종까지. 드라마 이끄는 명품 캐스팅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펼쳐지는 방대한 이야기의 곳곳에 연기력과 내공을 모두 갖춘 역대급 명품 배우들이 포진하고 있다. 우선 과거 조선시대에는 신예 박혜수와 양세종이 어린 사임당과 어린 이겸으로 분해 극 초반을 이끈다. 두 사람은 신선하고 풋풋한 매력으로 국민 첫사랑 커플 등극을 예고한다. 양세종은 현대 분량에서 사임당의 일기와 금강산도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시간강사 이영애의 조력자 한상현으로 1인2역까지 소화하며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이겸과 대립관계를 이루는 민치형 역의 최철호와 치형의 부인인 휘음당 최씨를 맡은 오윤아가 극에 팽팽한 긴장감을 더한다. 여기에 사임당의 운명을 결정지은 아버지이자 문신 신명화 역에 최일화가 캐스팅 되었으며, 남편 이원수 역에 윤다훈이 출연한다. 현대에서는 서지윤의 시어머니로 출연하는 김해숙과 한국미술사학회장인 민정학 역의 최종환, 선관장 김미경이 이번에는 과연 어떤 연기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이경진, 박준면, 이해영, 홍석천 등 내공있는 명품 배우들이 연기 열전을 펼친다. #눈을 뗄 수 없는 영상미와 섬세한 연출 ‘사임당’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아내기 위해 1년여의 촬영 기간 동안 전국을 돌아다닌 것은 물론 이태리의 이국적인 풍광까지 담아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또한 당대 천재 화가 사임당을 다룬 만큼, 한복 고증을 비롯해 한국 전통 예술을 그려내는데 있어 고심을 거듭했다. 시대 배경을 무시한 의상으로 시청자들의 지적을 받았던 사극이 적지 않았기에 ‘사임당’은 더욱 철저하게 시대 고증에 힘썼다. 또한 작품을 위해 한 달 여 배운 이영애의 그림 솜씨와 송승헌의 거문고, 그림, 글씨 등에도 주목할 만하다. 휘음당 최씨를 연기하는 오윤아 역시 그림과 한국무용을 드라마 안에서 펼쳐 보일 예정이다. 100% 사전제작으로 더욱 완성도를 높인 ‘사임당, 빛의 일기’는 26일 목요일 밤 10시 1,2회 연속방송으로 시청자들을 만난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사임당’ 송승헌, ‘조선판 개츠비’ 이겸 스틸만 봐도 “여심 흔들”

    ‘사임당’ 송승헌, ‘조선판 개츠비’ 이겸 스틸만 봐도 “여심 흔들”

    26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SBS 수목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연출 윤상호, 극본 박은령) 속 송승헌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사임당’은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태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이영애 분) 일기에 얽힌 비밀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풀어내는 퓨전사극이다. 일기 속에 숨겨진 천재화가 사임당의 불꽃같은 삶과 ‘조선판 개츠비’ 이겸(송승헌 분)과의 불멸의 인연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 예상을 깨고 정통 사극이 아닌 퓨전사극으로 제작돼 궁금증과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4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송승헌의 출연 확정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했던 ‘사임당’은 그 동안 공개한 캐릭터 포스터, 티저 영상만으로도 송승헌의 압도적인 연기 변신에 대한 기대를 이끌어낸 바 있다. 여기에 이겸 캐릭터의 다채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스틸컷이 공개되면서 송승헌이 펼쳐낼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 올리고 있다. 송승헌이 연기하는 이겸은 어린 시절 사임당과의 운명적 만남을 시작으로 평생 그녀만을 마음에 품고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바치는 ‘조선판 개츠비’. 사임당과 사랑을 넘어 예술로 공명하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술혼으로 가득 찬 자유영혼의 소유자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신념으로 절대 군주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불꽃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그림, 글씨, 거문고, 춤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조선의 르네상스맨이자 자유로운 천재 예술가로, 카리스마부터 광기, 절절한 순애보, 당찬 기개까지 다채롭고 신비로운 매력을 선보이게 된다. 공개된 사진 속 송승헌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광기어린 눈빛으로 한 여인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에 이끌려 들어갈 듯한 강력한 흡입력으로 보는 이들까지 숨죽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생생한 눈빛은 그림을 향한 무서운 몰입도와 예술을 향한 집념, 자유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고, 또 다른 사진에서 드러난 한층 더 깊어진 눈매는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어딘지 모르게 아련함이 아로새겨진 분위기는 송승헌이 그려낼 애틋한 순애보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송승헌이 창조하는 이겸. 평생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꿈을 간직한 사임당과 펼쳐낼 불멸의 인연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임당’ 제작관계자는 “송승헌이 표현해낼 이겸이란 인물은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의 소유자. 사임당을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와 광기어린 자유영혼 이겸을 선굵게 그려낼 송승헌의 하드캐리 기대해도 좋다”라고 전했다. ‘사임당’은 ‘푸른 바다의 전설’ 후속으로 SBS 수목드라마 황금 라인업을 이어간다. 오는 26일 목요일 밤 10시 SBS에서 1,2회가 연속 방송된다. 사진제공=그룹에이트, 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최상의 명예는 어디서 오는가

    [유쾌한 꼰대씨 송복이 말하는 나, 우리, 대한민국] 최상의 명예는 어디서 오는가

    아주 중요한 가치임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별로 익숙지 않은 말이 있다. 바로 위신(威信)이다. 위신은 영어로 ‘prestige’라 하는데, 한때 우리나라 사회학자들은 이를 위세(威勢)라 번역해 썼다. 위세는 위압(威壓)과 권세(權勢)의 준말로 prestige와는 거리가 먼 말이다. prestige는 위엄과 신망 혹은 권위와 덕망을 나타내는 우리말의 위신에 오차 없이 그대로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말에서 위신은 오래전부터 써오긴 했지만 일상 생활상의 용어였고 권력·재산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희소가치라는 개념은 없었다. 그러나 서구에서는 진작부터 권력(power), 재산(property)과 함께 위신(prestige)을 3p의 하나로 해서 사람이면 누구나 예외 없이 추구하는 사회적 희소가치로 생각해 왔다. 권력과 재산은 공기나 물처럼 그 양이 풍부하지 않음으로써 희소가치가 있다. 더구나 다른 누군가가 차지하면 내 권력, 내 재산은 싹 줄어든다. 그래서 권력과 재산은 언제나 사회적 쟁투를 유발하는 희소성을 띈다. 그렇다면 위신도 그러한가이다. 권력·재산에 비교될 만큼 사람들이 모두 열렬히 추구하는 희소가치냐이다. 권력과 재산은 갖지 못하거나 적게 가지면 불평하고 분심을 품고 많이 가진 자를 시의하고 규탄한다. 그리고 강한 차등감과 열등감, 심지어는 모멸감까지 느낀다. 문제는 위신도 그러하냐이다. 남에게 덜 존경받거나 전혀 존경받지 못한다 해서 분개하고 그리고 자기에게 명예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싸움을 벌이고, 반대로 존경받는 사람을 질시하거나 혐오하고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그들을 깎아내리거나 매장하려고 하느냐이다. 위신에 관한 한 권력·재산과 달리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남으로부터의 존경이나 사랑, 명예 혹은 좋은 평판 등의 위신은 재산·권력만큼 소망하지도 갈망하지도 않는다. 위신이 떨어졌을 경우에도 권좌에서 물러난 사람만큼 비애를 느끼거나 재산이 축난 사람들처럼 안달하거나 밤잠을 못 이루는 것도 아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힘만 있으면 되고 돈만 있으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다수를 차지하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고 삶이다. # 위신의 희소가치 추구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권력보다, 재산보다 명예를 더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위신의 추락을 죽음보다 더 혐오하고 더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통 사회에서는 군자(君子)라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러하다. 논어(語)에서는 “군자는 죽은 후 이름이 높이 칭송되지 않을까를 두려워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고 했다. 맹자(孟子)도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 왕좌도 능히 사양한다”(好名之人 能讓千乘之國)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극히 소수다.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권력이나 재산보다 명예·위신을 추구한다. 이 사람들이 바로 도덕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고 도덕적 지표가 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발자취는 언제나 깨끗하다. 권력과 재산을 가지면 ‘높은 이름’도 따라오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큰 권력이 많은 재산에 상응해 이름도 따라간다. 최상의 권력, 최고의 부를 가진 사람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존경이 따르는 이름, 높은 인격과 덕망, 도덕적 존엄이 함께하는 이름은 권력·재산과는 별개의 것이다. ‘참으로 훌륭하다’ ‘참으로 자랑스럽다’ 하는 이름은 권력·재산 없이도 얼마든지 갖는다. 이완용(李完用)은 권력과 재산을 가졌지만 ‘이름’을 갖지 못했다. 그 ‘이름’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이름, 오명(汚名)일 뿐이다. 김시습(時習)은 권력도 재산도 갖지 못했지만 훌륭한 이름을 남겼다. 대개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이완용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이 아무리 주어져도 김시습이 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위신은 권력·재산과는 판이하게 다르고 극히 소수의 사람,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추구하고 가질 수 있는 가치다. 이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역사에서는 이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 지금도 여전히 그 수는 잘 불어나지 않는다. 그것이 동양권 중에서도 중국과 한국의 공통점이다. 사회적 희소가치로서의 위신을 세우려 하는 사람이 드물고 드문 것만큼 존경받는 사람, 존경받는 집단, 존경받는 계급을 찾기도 어렵다. 사회적 희소가치로서의 ‘위신’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생소한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 선진국일수록 ‘존경·명예·감동의 이름’ 많아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위신을 세우고 위신을 가질 수 있느냐이다. 위신의 핵심은 존경과 명예다. 우선 존경을 받아야 한다. 존경을 받으려면 인격적으로 신망이 두텁고 도덕적이어야 한다. 부도덕한 명예가 없고 존경받지 않는 명예가 있을 수 없다. 예컨대 권력자가 권력을 획득해 가는 과정이나 권좌에 앉아 있을 때의 행적이 비도덕적일 때, 그들의 의식, 그들의 행태가 거짓과 술수로 가득 차 있을 때, 그들은 결코 위신을 세울 수 없다. 아무도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를 축적해가는 과정이나 부를 관리해가는 과정 또한 도덕성과 투명성에서 벗어나 있을 때, 그 부가 아무리 커도 사람들은 지탄한다. 인격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도덕적으로 인정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높으나 높은 지위의 탑(塔)도, 크나큰 부의 성(城)도 위신이 없으면 그 탑, 그 성만으로는 명예가 되지 못한다. 이는 학자 문인 사상가 교육자 종교가의 경우도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의 업적, 밖으로 드러난 그들의 지위만으로는 명예가 되지 않는다. 그들의 인격, 그들의 도덕적 행적이 위신으로 구현될 때 비로소 사람들은 감동하고 존경한다. 심지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사람도 수상과 함께 세인들의 지탄을 받고 그리고 세인들로부터 잊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누가 일본의 어느 총리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기억하는가. 누가 이스라엘의 어느 총리, 팔레스타인의 어느 지도자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고 생각이나 하는가. 한때 그들의 이름이 아무리 드러나도 그들의 행적, 그들의 인격이 위신으로 연결되지 않는 한 사람들은 감동하지 않는다. 감동이 없는 것만큼 명성도 빨리 잊혀진다. 위신이 권력·재산과 다르게 사회적 희소가치가 되는 또 하나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 감동(感動)이다. 그 감동은 흔히 말하는 대로 심금(心琴)을 울리는 감동이다. 심금은 마음의 거문고다. 이 마음의 거문고는 ‘감동’이라는 자극을 받으면 반드시 운다. 그것은 그들의 인격, 그들의 행적이 위신으로 구현될 때다. 권력자의 권력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재산가의 재산 또한 그 자체만으로는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학자 문인 사상가들 또한 그들의 말만으로는 결코 감동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오직 위신으로 구현될 때만이 사람들은 감동한다. 그래서 위신과 존경, 위신과 명예, 위신과 감동은 둘이 아니요 하나다. 그것은 둘이면서 오로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된다. 그러나 이 위신은 소수의 가치다. 어느 사회 없이 위신을 가진 사람 수는 많지 않다. 그것은 권력과 재산 가진 사람 수가 많지 않은 것과 같다. 설혹 그렇다 해도 어떤 사회는 상대적으로 훨씬 많이 가지고 있고 어떤 사회는 훨씬 적게 가지고 있다. 그것이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른다. 선진사회일수록 명예로운 이름- 명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바로 위신이라는 희소가치를 가진 사람이 많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일수록 전기물(傳記物) 또한 많다. 그 전기물은 위신 높은 사람들의 인격과 행적을 기록한 책이다. 그런 사회일수록 젊은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전기물을 읽으며 감동에 차서 자란다. 그렇게 해서 젊은이들 또한 그런 감동적인 행적과 인격을 쌓을 이상을 드높이 갖는다. 그 전기물들이 그들 젊은이들에게 후진국 젊은이들과는 다른 숭고한 이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연세대 명예교수
  • ‘사임당’ 송승헌 스틸 공개, 시선 압도하는 아우라 ‘조선판 개츠비’

    ‘사임당’ 송승헌 스틸 공개, 시선 압도하는 아우라 ‘조선판 개츠비’

    ‘사임당, 빛의 일기’ 속 송승헌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푸른 바다의 전설’ 후속으로 오는 26일 첫 방송을 앞두고 있는 SBS 수목 스페셜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연출 윤상호, 극본 박은령) 측은 11일 송승헌의 첫 스틸을 공개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사임당’은 한국미술사를 전공한 시간강사 서지윤(이영애 분)이 이태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사임당(이영애 분) 일기에 얽힌 비밀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풀어내는 퓨전사극이다. 일기 속에 숨겨진 천재화가 사임당의 불꽃같은 삶과 ‘조선판 개츠비’ 이겸(송승헌 분)과의 불멸의 인연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그려낸 작품. 예상을 깨고 정통 사극이 아닌 퓨전사극으로 제작돼 궁금증과 기대감을 한층 높이고 있다. 4년 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하는 송승헌의 출연 확정만으로도 호기심과 기대를 자극했던 ‘사임당’은 그 동안 공개한 캐릭터 포스터, 티저 영상만으로도 송승헌의 압도적인 연기 변신에 대한 기대를 이끌어낸 바 있다. 여기에 이겸 캐릭터의 다채로운 매력을 엿볼 수 있는 스틸컷이 공개되면서 송승헌이 펼쳐낼 연기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끌어 올리고 있다. 송승헌이 연기하는 이겸은 어린 시절 사임당과의 운명적 만남을 시작으로 평생 그녀만을 마음에 품고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바치는 ‘조선판 개츠비’. 사임당과 사랑을 넘어 예술로 공명하는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술혼으로 가득 찬 자유영혼의 소유자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올곧은 신념으로 절대 군주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는 불꽃같은 삶을 산 인물이다. 그림, 글씨, 거문고, 춤 어느 것 하나 못하는 것이 없는 조선의 르네상스맨이자 자유로운 천재 예술가로, 카리스마부터 광기, 절절한 순애보, 당찬 기개까지 다채롭고 신비로운 매력을 선보이게 된다. 공개된 사진 속 송승헌은 무엇인가에 홀린 듯 광기어린 눈빛으로 한 여인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에 이끌려 들어갈 듯한 강력한 흡입력으로 보는 이들까지 숨죽이게 만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듯한 생생한 눈빛은 그림을 향한 무서운 몰입도와 예술을 향한 집념, 자유 그 자체를 표현하고 있고, 또 다른 사진에서 드러난 한층 더 깊어진 눈매는 여심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어딘지 모르게 아련함이 아로새겨진 분위기는 송승헌이 그려낼 애틋한 순애보에 대한 기대치를 높인다. 송승헌이 창조하는 이겸. 평생 함께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꿈을 간직한 사임당과 펼쳐낼 불멸의 인연이 어떻게 그려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사임당’ 제작관계자는 “송승헌이 표현해낼 이겸이란 인물은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채로운 매력의 소유자. 사임당을 향한 지고지순한 순애보와 광기어린 자유영혼 이겸을 선굵게 그려낼 송승헌의 하드캐리 기대해도 좋다”라고 전했다. 한편 ‘사임당’은 ‘푸른 바다의 전설’ 후속으로 SBS 수목드라마 황금 라인업을 이어간다. 오는 26일 목요일 밤 10시 SBS에서 첫 방송된다. 사진제공=그룹에이트, 엠퍼러엔터테인먼트코리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23가지 산조에 취하리

    산조는 거듭되는 긴장과 이완, 계속 바뀌는 속도 등으로 극적인 재미를 주는 음악이다. 그만큼 연주자의 견고한 내공이 중요한 산조를 총망라해 들을 수 있는 공연이 펼쳐진다. 내년 1월 3일부터 2월 23일까지 서울돈화문국악당 공연장에서 열리는 ‘수어지교2-산조’다. 이번 무대에서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피리, 해금, 아쟁 등 여섯 가지 악기의 서로 다른 서너 가지 유파를 모은 23가지 산조를 감상할 수 있다. 아쟁 산조의 시초인 한일섭의 손자 한림이 ‘팔현가’로 첫 공연의 문을 열고 진윤경이 이충선류 피리 산조와 피리 시나위로 매듭을 짓는다. 악기 줄의 떨림 하나, 연주자의 숨소리 하나까지 세심하게 잡아내는 자연음향 공연장 서울돈화문국악당에서 듣는 맛도 새록새록 느껴진다. 5000~2만원. (02)3210-7001~2.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조선시대 ‘판소리 매니지먼트’ 어떻게 꽃피웠을까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조선시대 ‘판소리 매니지먼트’ 어떻게 꽃피웠을까

    전북 고창이 가진 문화적 유산이 적지 않지만 읍내로 한정하면 읍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고창읍성은 단종 원년(1453) 왜구의 침입을 막고자 쌓은 석성(石城)이다. 1684m에 이르는 성곽이 잘 보존되고 있는 데다 내부의 고창현 관아도 단계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그런데 고창읍성 밖을 돌아보면 일대는 마치 동리 신재효(1812~1884)를 기리는 거대한 기념물 같다. 그의 옛집을 중심으로 동리국악당, 고창판소리박물관, 판소리전수관, 고창문화의전당이 에워싸고 있다. 관아 복원조차 동리와의 연관성이 우선시되고 있는 듯하다. 아전의 사무공간인 작청(作廳) 복원이 그렇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아전이었다고 한다. 신재효는 ‘춘향가’를 비롯한 판소리 여섯 마당을 개작하고 판소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 이론가이자 연출가였다. 나아가 소리꾼을 양성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소리판의 최대 패트런이었다. 그의 ‘광대 매니지먼트’는 오늘날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의 연예인 발굴 및 교육, 유통 등 종합 관리 시스템을 연상케 한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신재효의 옛집은 아호를 따서 동리정사(桐里精舍)라고 불린다. 동리의 옛집이라고 하지만 정면 6칸의 사랑채만 남았다. 초가지붕의 사랑채는 요즘 감각으로는 조촐하지만, 그 시절에는 이것만으로도 작은 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철종 1년(1850)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는 신재효의 사랑채는 광무 3년(1899) 동리의 아들이 고쳐 지었다고 한다.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고창경찰서 부속 건물로 쓰이기도 했다. 지금 사랑채는 작은 마당에 있어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동리가 광대들의 패트런으로 한창 명성을 날리던 시절에도 이런 모습은 아니었을 것이다. 동리의 집안은 대대로 고창과 무장의 경주인(京主人)이었다. 서울에 머물며 지방관이 올라오면 접대하고 보호하는 책임을 졌다. 그러다 동리의 아버지 신광흡이 1808년을 전후해 상당한 독점적 지위를 누린 관약국을 고창현으로부터 허가받아 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재효의 옛집은 고창읍성의 정문 공북루를 나서자마자 나타나는데, 그런 위치에 집을 지었다는 것도 동리 집안이 이 고을에서 차지하고 있던 위상을 보여 준다. 고창판소리박물관에는 신재효와 교유하던 서호생(西湖生)이 동리의 옛집을 둘러보고 묘사한 여섯폭 병풍이 남아 있다. ‘작은 집이 있고, 정자가 있고, 다락도 있고, 배도 있고, 시도 있고, 그림도 있고, 노래도 있고, 거문고도 있는데, 그 가운데 내가 있어 흰수염 날리며 분수를 알고 족한 줄 안다’는 화제시(畵題詩)가 보인다. 이기화 전 고창문화원장이 재구성한 풍경은 좀더 구체적이다. ‘관아 입구 통로 쪽에는 열네 칸 줄행랑을 지어 위엄을 갖추었고, 서쪽 안채와의 사이 넓은 마당 가운데 큰 동산을 지어 중심을 삼고…사랑채의 서쪽에는 동쪽에서 끌어들인 시냇물 줄기에 연방죽을 파고 그 위에 연당을 지어 전원생활을 상징하였으며, 연당을 지나 서쪽으로 시냇물을 따라가면 안채와 사랑채의 사잇문을 지나 안채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 같은 신재효 옛집의 구조는 ‘동리가 광대를 후원하여 판소리 음악교육기관을 설립해서 운영했을 뿐 아니라 공동생활권을 형성하여 판소리 전문교육을 실시했다’는 학계의 연구 결과에도 부합한다. 우선 사랑채는 서재이고, 소리꾼을 지도한 장소이자 공연장이었다. 퇴마루를 가진 두 개의 안방과 대청, 건넌방은 판소리를 지도하는 공간으로 쓰다가 필요할 때 네 짝의 미서기문을 열어젖히면 적지 않은 청중이 모일 수 있는 널찍한 공연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열네 칸 줄행랑 당연히 합숙소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재효 시절의 집터는 1만 3000㎡(약 4000평)에 이르렀다고 한다. 사랑채 북쪽 경찰서가 들어섰던 판소리박물관 정원과 판소리박물관 본관 및 미술관 자리도 모두 집터라는 것이다. 그러니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고는 해도 옛 모습을 되찾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동리 옛집 복원은 건축물이라는 유형유산의 복원이자 당대의 판소리 문화라는 무형유산의 복원이라는 특수성을 갖고 있다. 신재효의 옛집뿐 아니라 동리의 ‘판소리 매니지먼트’가 이 집에서 어떻게 의도되고 실천될 수 있었는지까지 복원해야 할 것이다. dcsuh@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낙원상가…쇠락과 번성 사이를 흐르는 선율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낙원상가…쇠락과 번성 사이를 흐르는 선율

    “그렇게 하고 싶어하던 음악하고 사니까 행복하냐구… 진짜루 궁금해서 그래… 행복하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대사다. 밤무대와 카바레를 전전하는 4인조 밴드의 삶을 보여주는 감독의 메시지는 역설적으로 우울하다. 한때 그들도 '음악'을 통해 세상을 품을 수 있는 '낙원(樂園)'을 꿈꾸었을 것이다. 종로구 낙원동에서. 정확한 주소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낙원동 284-6번지 낙원악기상가이지만 그냥 ‘탑골공원’ 옆쯤으로 퉁쳐도 얼추 누구든 찾아가기 쉬운 자리에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월남참전전우회’ 새겨진 붉은 색 등산조끼차림의 군복입은 늙은 섹스폰 연주자가 힘겹게 내뱉는 ‘사랑밖에 난 몰라’를 들을 수도 있다. 혹은 폭염 속에서도 검은 가죽 재킷으로 온 몸을 감싼, 열정의 홍대 인디 록 밴드들의 달뜬 미소도 만날 수 있다. 세대(世代)는 음악을 통해, 악기를 통해 낙원동에서 이어진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악기상점, 낙원악기상가이다. ●조선후기 여흥문화가 있던 자리 그대로 애당초 이곳에는 '악사'(樂士)들이 모여들 수 밖에 없었다. 지리적으로 낙원동, 인사동, 익선동은 조선시대부터 온갖 기방(妓房)들이 들어서 있던 곳이니 거문고나 가야금 둘러멘 가객(歌客)들이 늘상 북적대던 곳이었다. 더구나 조선의 법궁(法宮·임금이 거주하는 곳)이었던 창덕궁, 운현궁 주변에 머물던 한량이나 다름없던 고관대작(高官大爵)들과 그들의 망나니같은 막내 아들 한 명 쯤이, 분명 피맛골 배나무집 뒷방 사는 기생 치맛폭에서 아비 얼굴에 똥칠했다는 일화쯤이야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닌 동네였다. 또한 조선 팔도 온갖 뇌물과 진상품을 들고 궁궐 앞 서성이던, 현감(縣監)자리 하나 추렴하려는, 마음 삐뚜름한 지방 부호(富戶)들의 대기 장소이기도 하였다. 조선의 밤은 이곳에서 열리고 닫혔다. 사실 낙원상가가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건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실제 낙원상가는 1968년에 올려졌고, 이보다 앞서 바로 옆동네 세운전자상가가 1967년에 만들어진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였다. 이 세운상가에는 당시의 부자들이나 고위공무원들이 거주하였고, 낙원상가는 기존의 낙원동에 있던 낙원시장의 대체부지로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세운상가와는 달리 낙원상가는 실용적 목적에 기반을 둔 건축물이어서 격벽(隔璧)이 많지 않아 쇼핑객들의 동선이 사통팔달(四通八達) 다 뚫려 편한 느낌이다. 처음부터 이곳에 악기점들이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원래 낙원상가는 양품점, 즉 의류상가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원래 1960년대부터 피맛골, 종로2가 주변에 당시 음악다방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미8군에서 활동하던 밴드들의 영향으로 젊은 층의 악기 수요가 일어나던 시기였다. 이에 종묘 주변과 종로2가, 3가에 풍금이나 피아노, 기타 등을 판매하는 점포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한국대중음악의 1세대이자, 기타문화를 불러일으킨 ‘트윈폴리오’가 데뷔한 ‘세시봉’도 원래 이곳 종로2가에도 있다가 인근 서린동으로 옮겨 간 당대 최고의 음악다방이었다. 그러다 1979년 서울시의 탑골공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종로 2가와 종묘주변에 몰려있던 악기점들이 대거 낙원상가 안으로 이주하게 된다. 진정한 낙원악기상가의 시작이다. ●낙원악기상가의 전성기와 암흑기를 거쳐 문화거리로 1982년 1월 6일 자정,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낙원악기상가는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다. 아시안게임, 올림픽과 더불어 밤문화시설(?)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남으로써 전국 각지에 라이브 밴드 수요가 빗발치게 된다. 바로 이 인력 및 악기 수요를 다 맞추어내는 공간이 낙원악기상가였다. 낙원상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1980년대 후반에는 건반 연주자가, 드럼 연주법을 점포 주인에게 반나절 배워 봉고 타고 동두천으로 성남으로 다녔다고 한다. 한 달 후 뭉칫돈 들고 헐레벌레 뛰어와 맘에 넣어둔 야마하(YAMAHA) 건반을 사들고 가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한다. 낙원상가는 악기판매점이었고, 단기속성 음악학원이었고, 유흥업소와 연주자들을 이어주는 직업소개소였으며, 급전 돌리는 전당포였다. 꿈만 같던 시절이었다. 1997년 IMF의 직격탄은 낙원상가가 다 맞았다. 말 그대로 신기하게도 한 사람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으니, 육이오 피난 시절에도 사람은 보였다는데 갑자기 모든 시간이 끊긴 듯 하였다. 수천 만원짜리 그랜드 피아노가 고작 수 백만원에 몸을 낮추어 팔아도 이를 싣고 갈 트럭을 못 구할 정도였으니 눈물 한 번 단단히 흘린 시절이었다. 다행히도 2000년대 들어서 교회 CCM 찬양 밴드의 지속적인 등장, 각종 대학교의 실용음악학과의 개설, 그리고 클럽문화로 인한 인디밴드의 결성 등으로 낙원악기상가는 비록 예전만 못할지라도 다시금 부활의 문턱에 들어서고 있다. 현재 서울시는 창덕궁 앞 재생계획을 발표하여 2018년까지 200억원 사업비를 들여 낙원상가주변을 궁중문화와 대중음악 중심인 근현대 문화지대로 재편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상가 옥상에 공원과 상설무대를 만들어 명실상부한 한국 음악의 중심지로 낙원악기상가의 모습을 바꿀 예정이다. <낙원악기상가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일반인에게는 ‘꼭’이라는 부사는 빼도 된다. 하지만, 음악에 관심이 있거나, 관련 업종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방문지가 될 것은 분명하다. 2. 교통편은 어때? -탑골공원 뒤에 있다. 5호선 종로3가역 5번 출구가 가장 가깝다. 3. 인근 편의시설, 주차장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 -왠만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을 추천한다. 자동차로 이동할 경우 없던 종교라도 하나 믿고 들어가는 것이 낫다. 출, 퇴근 시간이나 주말의 경우 무조건 대중교통을 이용하길 바란다. 4. 주변에 맛집은 있나? -낙원상가 주변는 예로부터 낙원떡집 거리를 비롯한 진정한 먹거리의 천국이다. 특히 종로 5가쪽으로 펼쳐지는 포장마차촌은 종로 뒷골목의 운치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5. 직원이나 주변 상인들은 친절한가? - 친절하다. 다른 곳보다는 악기나 음악을 다루는 분들이어서 기본적으로 상냥한 편이다. 참고로, 이곳 매장 직원들 앞에서 연주 실력 뽐내지는 말기를. 유명 그룹 프로 연주자들도 한 수 가르침을 받고 가는 고수(高手)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6. 운영시간은? - 평일, 토요일 9시~20시/ 토요일 일부매장 오픈/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쉬는 가게가 많음. 7. 이 곳에서 가장 감탄하는 점은 어떤 것? -악기의 가격과 종류들. 전 세계 희귀한 악기들도 많이 볼 수 있다. 8. 홈페이지 주소와 도움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곳은? -전화 (02)743-6131/ 팩스(02)743-7070/ 홈페이지 www.enakwon.com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낙원떡집 거리. 운현궁, 종묘, 인사동 거리 외 종로 구석구석.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원악기상가는 관광지가 아닌 건강한 생계의 공간이다. 단지, 이곳을 여행지로만 방문한다면 약간은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악기산업의 메카라는 사실 하나는 기억하고 방문하자.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아가야, 국악 듣고 건강하게 태어나렴

    아가야, 국악 듣고 건강하게 태어나렴

    우리 음악과 춤, 먹거리로 태교를 돕는 특별한 태교 음악회가 마련됐다. 오는 28일 오후 3시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열리는 국악태교음악회 ‘엄마가 된다는 것에 대한 감사’다. 국악이 태교에 좋다는 건 옛 문헌에도 나온다. 1800년(정조 24년) 사주당 이씨(師朱堂 李氏)가 태교에 관해 쓴 책 ‘태교신기’(胎敎新記)에는 ‘시를 읽고 글을 읽으며 거문고나 비파를 타게 해 임신부의 귀에 들려줘야 한다’고 기록돼 있다. 공연은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선 국립국악원 정악단이 영원한 생명을 기원하는 ‘수제천’과 천년만년 행복을 기도하는 ‘천년만세’를, 2부에선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이 아름다운 선율로 구성된 창작국악 ‘아이보개’와 ‘세상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들려준다. 국악 연주와 함께 임신부와 태아 건강에 좋은 궁중음식 조리법도 소개한다. 마지막 무대는 생명력 넘치는 화려한 무용으로 꾸며진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이 꽃 중의 왕이자 위엄과 품위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꺾으며 각종 궁중연회 때 췄던 궁중무용 ‘가인전목단’과 새 생명이 태동하는 듯 화사한 부채로 화려한 움직임을 선사하는 ‘부채춤’을 선보인다. 선물 증정 이벤트도 진행된다. 객석 추첨으로 35명에게 고급 담요, 분유, 로션, 크림 등을 제공하고 관람 후기 공모를 통해 우수작 2명을 선정, 유모차와 놀이방 매트를 지급한다. 국립국악원은 “느릿한 박자와 차분한 선율, 아름다운 율동 등이 임신부의 정서 안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석 1만원. (02)580-3300.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퇴계가 사랑한 기생…그의 순애보

    두향의 남자, 퇴계의 여자 중국 개화기의 대표적인 사상가 양계초(梁啓超)가 “아득하셔라, 이부자(李夫子) 님이시여”라며 거리낌없이 성인이라 칭한 퇴계 이황. 이 근엄 무쌍한 도학자에게 실로 가슴 아픈 러브 스토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그것도 이팔 청춘 한창때가 아니라, 불혹(不惑)을 훌쩍 넘긴 나이에 맞닥뜨렸던 가슴 아픈 사랑이었다. 그 상대 여성은 그럼 누구였던가? 되도록이면 팩트에만 근거하여 퇴계의 러브 스토리를 재구성해보도록 하자. 내가 더듬어본 자료에 의하면, 퇴계의 사랑과 그 상대 여성이 일반에게 알려진 계기는 정비석의 '명기열전'인 것으로 보인다. 그가 두향(杜香)이라는 단양 기생과 퇴계 사이에 있었던 러브 스토리를 소설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단양기 두향’편을 씀으로써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 단양에 두향이라는 명기의 슬픈 사랑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을 정비석이 안 것은 오래 전의 일이었지만, 그 상대 남자가 누구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작가가 단양에 내려갈 때마다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자료를 뒤져봤지만, 종내 그들의 사연을 알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고서를 뒤적이다가 우연찮게 두향의 무덤에 관한 한시 두 수를 발견하게 된다. 그중 한 수는 조선 후기에 우리나라에 고구마를 처음으로 전파시킨 이광려(李匡呂)라는 실학자의 작품으로, 그가 두향묘를 참배하고 지은 시라 한다. 孤墳臨官道 국도변에 외로운 무덤 하나 頹沙暎紅萼 물가 모래에 어리는 붉은 꽃 杜香名盡時 두향이란 이름 잊혀질 때야 仙臺石應落 강선대 바위도 사라지리라 이로써 ‘두향’이 ‘전설’이 아니라 ‘실화’임을 확신할 수 있었을 뿐더러, 시편에서 풍기는 가락으로 보아 두 사람의 사랑이 예사롭지 않은 거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니면, 한낱 기생의 무덤을 두고 대시인들이 이런 시를 남겼을 리 만무한 노릇 아닌가. 그뿐 아니다. 400년도 더된 무덤이 아직까지도 보존되고 있어, 한때 이 무덤을 찾은 노산 이은상이 다음과 같은 소회를 그의 기행문 속에 남겼던 것이다. '내 비록 풍류랑은 아닐망정, 그 무덤 앞에 꽃 한 송이 못 놓고 가는 것이 어떻게나 서운한지 모르겠다.' 이 무덤의 주인 두향의 남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우연찮은 기회에 마침내 ‘그 남자’를 알아내게 됐는데, 정말 이럴 수가? 입이 딱 벌어지는 사실이었다. 작가가 전하는 전말은 다음과 같다. 퇴계학 관련자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안동 도산서원으로 내려가던 중 기차가 단양을 지날 때, 작가가 단양 명기 두향의 남자를 몇 해째나 찾아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노라고 푸념처럼 말하자, 동행하던 한문학자 이가원(李家源) 교수가 불쑥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두향의 상대 남자는 바로 퇴계 아니오.” 이 교수는 퇴계학의 권위일 뿐 아니라 퇴계 14대 후손이기도 하다. 어찌 믿지 못하리오. 알고 보니 이미 오래 전부터 퇴계 문중에서 두향묘를 관리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교수 역시 몇 년 전에 두향묘를 찾아, 무덤 한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나 있는 걸 보고는 마을 사람에게 베어달라고 하면서 돈까지 주고 왔다는 것이다. 이로써 퇴계와 두향과의 관계는 의심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정비석은 안동에서 올라오던 길에 우정 단양에서 내려 강선암 아래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의 묘를 주민의 도움으로 찾았다. 과연 무덤 한가운데는 이가원 교수가 말한 대로 소나무 그루터기 하나가 박혀 있었다. 의심할 바 없는 퇴계의 여자 두향의 묘였다. 작가는 한 길 넘는 쑥대밭 속에 누워 있는 두향에 대해 창연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어 주머니돈을 털어 촌민에게 건네며 표석 하나만이라도 세워달라는 부탁을 하고는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매화, 시, 음률로 맺어지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온 것은 명종 3년(1548년) 정월, 그의 나이 48살 때였다. 그때 단양 관기인 두향의 나이는 18살, 30년이란 세월이 두 사람 사이를 흐르고 있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유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세 가지였다. 첫째가 매화, 둘째가 시, 셋째가 음률이었다. 퇴계는 대철학자이지만, 동시에 빼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매화를 깊이 사랑하여 생전에 백 수가 넘는 매화시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매화시만으로 ‘매화시첩’을 만들기도 한, 그야말로 매화 마니아였다. 아래의 시는 그가 얼마나 감각적인 시인인가를 한눈에 보여주는 가작이다. 步躡中庭月趁人 뜰을 거닐으니 달이 사람 좇아오네 梅邊行遼幾回巡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돌았던고 夜深坐久渾忘起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나길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 꽃내음 옷에 스미고 그림자 몸에 가득하네 또한 퇴계는 일종의 음악론인 ‘금보가(琴譜歌)’를 쓰기도 할 만큼 음률에도 밝았다. 그렇다면 두향이 사정은 어떤가? 일단 미모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미인급에는 못 미치는 듯하지만, 아주 귀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양매(養梅)와 거문고의 고수였던 것이다. 게다가 시에도 밝았다. 그러니 퇴계와 두향은 유효 거리 내에서는 언제든지 화학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 원소와 다름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당시 퇴계는 두 번째 부인 권씨를 잃은 지 2년이 지난 홀아비 신세였음에랴. 퇴계가 두향을 만났을 때는 권씨가 세상을 떠난 지 이태가 지난 뒤였다. 이래저래 활성 기체 같았던 두 남녀의 첫 얽힘에 대해서는 상상으로나 그려볼 수 있을 뿐, 어차피 기록은 없다. 그러나 매화와 음률, 시 등으로 두 사람이 30년 세월과 신분을 훌쩍 뛰어넘어 서로에게 침잠했을 거라고 짐작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하다. 교양과 기예, 재능과 학문을 갖춘 젊은 여인의 향기 속에 퇴계는 속절없이 빠져들었을 것이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양매의 고수인 두향이 집에서 애지중지 키우던 30년 묵은 백매와 청매 두 분(盆)을 퇴계의 거처에 옮겨두었다고 한다. 퇴계가 특히 매화를 혹애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 백매와 청매는 참으로 기품 높은 나무로, 고수는 서로 한눈에 알아본다고, 퇴계는 한눈에 그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챘을 것이다. 그 무렵 매화를 읊은 퇴계의 시가 여러 편 전하는데, 다음의 시가 두향의 매화를 보고 지은 것으로 보인다. 獨倚山窓夜色寒 홀로 산창에 기대니 밤기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 매화나무 가지 끝에 둥근 달이 걸렸구나 不須更喚微風至 구태여 소슬바람 다시 불러 무엇하리 自有淸香滿院間 맑은 향기 저절로 온 뜰에 가득한데 퇴계는 두향이 어린 나이임에도 깊은 인품과 내명(內明)한 자질을 지닌 여인임을 알고는 여러 번 감탄했다고 한다. 더욱이 퇴계는 남녀상열지사에 대해서는 상당히 열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청상이 된 며느리를 재혼하라면서 친정으로 돌려보내기까지 한 휴머니스트였다. 단양은 벽지이지만 산수가 빼어나기로 이름 높은 고장이다. 예로부터 단양에 부임해오는 원님들은 모두 울며 왔다가 울며 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올 때는 궁벽한 곳으로 간다고 눈물짓지만 갈 때는 아름다운 고장을 떠나기 못내 아쉬워 운다는 것이다. 명승으로 꼽히는 곳을 들자면, 먼저 정도전의 전설이 얽혀 있는 도담삼봉을 비롯해, 석문(石門), 사인암(舍人巖), 상·중·하선암(下仙岩), 구담봉(龜潭峰) 그리고 옥순봉(玉筍峰) 등 팔경을 앞세울 수 있고, 그밖에도 기암괴석, 옥류가 곳곳에 널려 있다. 퇴계와 두향은 이 절경들을 둘러보면서 꿈결 같은 생의 한때를 보냈을 것이다. 지금 흔히 말하는 ‘단양팔경’은 퇴계의 아이디어로, 그때 두향과 같이 다니면서 퇴계가 스스로 이름 붙이고 정한 것이다. 그렇다고 퇴계가 공무를 뒤로 하고 매양 놀기만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성(誠)’이라면 둘째 가기 서러워할 퇴계 아니던가. 그는 단양이 물이 많은 고장임에도 자주 가뭄이 들어 백성들이 굶주린다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최초로 물을 가두는 보를 쌓는 등, 뛰어난 치적을 올린 지방관이었다. 이 보가 생긴 이후로 단양에서는 굶는 사람이 없어졌다 한다. 지금 충주호를 보면 4백 년 전 퇴계의 선견지명을 능히 알 수 있다. 이 보의 이름은 복도소(複道沼)라고 한다. 이 보가 완공되었을 때 퇴계는 준공기념으로 ‘복도별업(複道別業)’이라는 네 글자를 크게 써서 부근의 바위에 새기게 했는데, 그 각자는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또 남아 있는 퇴계의 글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퇴계가 아침마다 세수를 한 곳에 새겨져 있는 ‘탁오대(濯吾臺)’ 세 글자다. 퇴계와 두향은 특히 남한강 가 강선대(降仙臺) 위에서 자주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노닐었다. 강선대는 백 명이 올라가 놀 수 있을 만큼 너른 너럭바위로, 지금은 충주호에 잠겨 있지만, 갈수기에는 가끔 그 모습을 물 위로 드러내기도 한다. 두 사람은 단양팔경 속을 거닐며 그렇게 여름을 보내고 가을을 맞았다. 그러나 퇴계와 두향의 단양 시절은 가을이 미처 다 가기도 전인 시월에 갑자기 막이 내린다. 불과 아홉 달 만에 두 사람이 헤어지게 된 것은 퇴계의 넷째 형 이해(李瀣)가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하게 된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형이 자기의 직속상사로 온 것이다. 공사가 엄격했던 퇴계는 이를 피하기 위해 인근 고을인 경상도 풍기 군수로 옮겨가게 되었다. 두향과의 이별은 피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짧은 인연 뒤에 찾아온 갑작스런 이별은 두 사람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감정이 얼마나 절절했을 것인가는 미루어 짐작할 수밖엔 없다. 단양을 떠날 때 퇴계의 짐은 책 두어 궤짝과 괴석(怪石) 두 개뿐이었다고 한다. 단양을 떠나 한 나절쯤 가면 풍기와의 경계인 죽령에 이른다. 두 사람은 아마 거기에서 작별한 듯하다. 그리고 그로부터 21년 후 퇴계가 70살로 눈을 감을 때까지 두 번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 편지 왕래는 있었던 모양이다. 두향에게 보낸 다음의 시를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黃卷中間對聖賢 옛 책 속에서 성현을 만나보며 虛明一室坐超然 빈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梅窓又見春消息 매화 핀 창으로 봄소식 다시 보니 莫向瑤琴嘆絶絃 거문고 마주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 퇴계의 나이 52세 되는 해(1552년)의 작품이다. 그러니까 두향과 헤어진 지 4년째 봄을 맞아 쓴 시이다. 시문의 끝 구절에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 한탄 마라"는 두향의 마음을 위로하는 내용임이 분명해 보인다. 두향은 이 시 한 편을 받고 평생을 거문고 가락에 실어 노래로 불렀으리라. 퇴계와 헤어진 후 두향은 기적에서 몸을 빼내 이듬해 봄, 강선대가 눈 아래 굽어보이는 적성산 기슭에 움집을 짓고는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을 두 번씩이나 보낸 두향이 이 초당을 떠나게 된 것은 퇴계의 부음을 들었을 때였다. 두향은 바로 집을 나서 죽령을 넘어가는 험란한 200릿길을 단신으로 걸어 나흘 만에 안동 도산서당이 있는 도산면 토계리에 도착했다. 그러나 빈소에는 찾아가지 못하고 멀리 상가가 보이는 산기슭에서 소복한 차림으로 망곡하며 하룻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두향과 헤어진 후 퇴계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풍기군수를 일년 남짓한 퇴계는 병을 이유로 사직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조정에서는 계속 퇴계를 불러, 부제학, 공조판서,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지만, 이미 벼슬에는 뜻이 없는데다 병약한 퇴계는 번번이 사직서를 내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평생 동안 사직서를 쓴 것만도 80여 회나 된다고 한다. 말년엔 안동에 서당을 지어 은거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의 학문적 성취는 대개 두향과의 이별 이후인 50대~60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는 자연과 학문 속에서 위안을 찾으며 살아갔던 것으로 보인다. 인근의 명산인 청량산을 특히 자주 찾았고, 때로는 며칠씩 산에 있다가 내려오기도 했다. 교과서에 실리기도 한 그의 명시조 '청량산 육륙봉'은 그래서 태어난 것이다. 청량산 육륙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 백구야 헌사하랴 못 믿을손 도화로다 도화야 떠지지 마라 어주자 알까 하노라 퇴계에게 또 하나의 큰 위안은 매화였다. 죽을 때까지 매화를 가까이하며 뜰에도 심고 방안에서도 가꾸던 퇴계는 마치 매화 대하기를 사람 대하듯 했다고 한다. 매선(梅仙)이라 하기도 하고 매형(梅兄)이라 부르기도 했다. 병으로 몰골이 심히 초췌할 때엔 매화 보기가 부끄러우니 다른 방으로 옮기라고도 했다. 세상을 떠날 때 퇴계의 마지막 말은 자신이 사랑하던 매화를 보며 ‘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저물녘이 되자 누워 있던 자리를 정리하게 한 후, 제자들이 일으켜 앉히자 앉은 채로 숨을 거두었다. 1570년 음력 12월, 향년 70세.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죽기 전 퇴계가 손수 지어놓은 묘비명 끝 구절은 다음과 같은 글이었다. 근심 속에 낙이 있었고, 즐거움 속에 근심이 있었네(憂中有樂 樂中有憂) 조화를 좇아 사라짐이여, 다시 무엇을 구하리오(乘化歸盡 復何求兮) 이보다 더 아름답고 완벽한 종결이 있을까. 강선대 위 초막으로 돌아온 두향은 이듬해 봄 거문고와 서책 등을 모두 태운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퇴계의 뒤를 따랐다. 자료에 따라서는 강물에 뛰어들었다고도 하고 부자차를 끓여 마시고 죽었다고도 하는데,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후자가 아닐까 싶다. 깔끔한 성품의 두향이 강물에 빠진 시신을 수습하는 폐를 남에게 끼치고 싶진 않았으리라. 유언은 그녀가 생전 퇴계와 노닐었던 강선대 아래에 묻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무덤은 전 충주호가 생겨나면서 수몰을 피해 200m쯤 위로 묘가 옮겨졌다. 두향이 죽은 뒤 퇴계의 제자인 이산해가 해마다 제사를 지내주었고 한다. 지금도 퇴계의 후손들과 유학자들은 퇴계의 제례를 지내고 나면 충북 단양의 강선대로 와 두향의 묘를 참배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두향을 향한 퇴계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그의 시 한 편을 읽는 것으로 퇴계와 두향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前身應是明月 내 전생은 응당 밝은 달이었으리 幾生修到梅花 몇 생애나 더 닦아야 매화가 될까. 글·사진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이주의 문화 레시피] 클래식·국악

    [이주의 문화 레시피] 클래식·국악

    ●피아니스트 선우예권 ‘프로코피예프 X 전쟁소나타’ 프로코피예프의 대표적인 피아노 소나타 6~8번, 일명 ‘전쟁소나타 3부작’ 전곡을 들려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러시아에서 작곡된 곡들로, 전시 분위기를 반영하는 듯 거침없는 리듬과 불협화음들이 격렬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낸다. 선우예권은 1시간 반에 걸쳐 강렬한 무대를 선보일 예정. 8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전석 4만원. (02)6303-1977. ●박순아 가야금-산조(散調), 성금연류 음악의 뿌리를 알아야 내일을 향할 수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그동안 갈고닦은 산조의 전 바탕을 처음으로 들려준다. 박순아는 한국음악앙상블 ‘바람곶’, 음악그룹 ‘비빙’, 한·중·일 거문고 앙상블 ‘KOTOHIME’ 등을 통해 독보적인 가야금 연주를 선보여 왔다. 11일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전석 1만원. (02)703-6599.
  • 서울대 ‘거문고 명인’ 허윤정 교수 임용

    서울대 ‘거문고 명인’ 허윤정 교수 임용

    ‘국악 한류’를 이끄는 거문고 명인 허윤정(48)씨가 이번 학기 서울대 국악과 교수로 강단에 선다. 서울대는 꾸준한 창작 활동을 하며 거문고의 세계화를 이끈 공을 인정해 허씨를 교수로 임용했다고 2일 밝혔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한갑득류 거문고산조 이수자인 그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 부수석을 지낸 뒤 연주 생활의 대부분을 독주자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서울대 국악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전통과 창작의 경계를 넘나들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新국토기행] 춘향의 고장 남원… 광한루엔 연인들의 ‘사랑가’ 한 자락

    전북 남원시는 예로부터 ‘천부지지 옥야백리’(天府之地 沃野百里)라고 했다. 천부지지는 하늘이 고을을 정해준 땅이라는 뜻이고 옥야백리는 넓고 비옥한 들판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의미다. 살기 좋은 곳으로 유명했던 것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전북 5소경의 하나로, 고려시대는 남원부로, 조선시대에는 남원도호부로 전라도와 경상도를 아우르는 중요한 위치였다. 전북의 동남권으로 소백산맥과 노령산맥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동으로는 경남 하동, 남으로는 전남 구례, 북동부는 경남 함양과 인접해 있다. 춘향전의 무대로 역사의 숨결이 담긴 문화유산이 풍부하고 먹거리도 풍성하다. 국립공원 제1호인 지리산을 끼고 있어 경관이 수려하다. 신명 나는 우리 가락 동편제의 본향이기도 하다. 현재 행정구역은 23개 읍·면·동(1읍 15면 7동)으로 구성돼 있고 인구는 8만 5000명이다. 볼거리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지리산 지리산은 남한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산이다.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해발 1915.4m의 천황봉을 중심으로 총면적이 440.4㎢이다. 능선의 길이가 동서로 40㎞에 이르는 거대한 산악군을 형성한다. 높이 1500m 이상 봉우리가 18개, 1000m 이상 봉우리는 40개나 된다. 큰 산줄기는 15개, 아름다운 골짜기가 20여개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피아골, 뱀사골, 칠선, 한신 등 4대 계곡은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국보와 보물을 간직한 대사찰과 수많은 암자가 지리산 자락에 안겨 있다. 화엄사, 쌍계사, 연곡사, 실상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많은 암자가 남아 있다. 문화재는 화엄사 각황전 앞 석등(국보 12호)을 비롯한 국보 8점, 보물 56점이 있다. 800여종의 식물이 분포하고 400여종의 동물이 서식한다. 천연기념물은 반달가슴곰(329호), 수달(330호), 하늘다람쥐(328호) 등이다. 지리산의 절경은 필설로 다하기 힘들다. 무수히 많은 비경이 사시사철 펼쳐진다. 지리산 둘레길은 3개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전북 남원시, 경남 함양·산청·하동군, 전남 구례군)에 걸쳐 있는 274㎞의 장거리 도보길이다. 정겨운 숲길, 논두렁길, 마을길을 환형으로 연결한다. 남원시에는 둘레길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는 4개 구간이 있다. ●춘향전 배경·한국 대표 누각 광한루원 남원은 춘향의 고향이자 춘향전의 발상지다. 광한루원은 춘향전의 배경이 된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원이다. 명승 제33호. 경회루, 촉석루,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4대 누각에 들어갈 만큼 만듦새가 뛰어나다.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닮고자 하는 생각을 표현해 낸 정원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지상에 건설했다. 하늘나라 월궁을 광한루라 했고 그 아래 천상의 은하수를 상징하는 호수와 오작교를 놓았다. 오작교는 견우와 직녀의 전설이 깃든 아름다운 돌다리다.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삼신산을 연못 가운데 조성했다. 전체적인 구성이 천체우주를 상징한다. 인간이 천상의 세계를 꿈꾸며 달나라를 즐기려고 지었다는 완월정을 비롯해 춘향사당, 춘향관, 월매집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그네 등 전통놀이 체험장도 다양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남원 상징물·위락시설 모인 관광단지 한국관광공사가 남원의 모든 상징물과 위락시설을 모아 놓은 종합관광단지다. 남원시 어현동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테마파크, 춘향문화예술회관, 국립민속국악원, 남원향토박물관 등 문화시설이 들어서 있다. 춘향테마파크는 춘향전의 스토리를 따라 5개의 장으로 꾸몄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 세트장도 이곳에 있다. 단심정에서는 남원시를 모두 조망할 수 있다. 숙박업소와 음식점도 잘 갖춰져 있다. ●천년 고찰 실상사와 중요 역사 유적들 남원은 역사를 품 안에 가득 채울 수 있는 여행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민족정신이 응집된 역사의 고장이다. 천년 고찰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년)에 창건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종 사찰이다. 백장암 삼층석탑(국보 제10호)을 비롯한 국가지정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1만명의 넋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비와 피바위, 유구한 세월을 버티며 그 옛날 영화를 말해주려 하는 만복사지는 빼놓지 말아야 할 유적이다. 이 밖에도 용담사 석불입상, 대복사 동종, 선원사 칠조여래좌상 등 많은 유적이 보존돼 있다. ●정겨운 우리 가락 울리는 동편제 본향 우리 가락과 관련된 볼거리도 풍부하다. ‘남원 가서 소리 자랑하지 말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다. 남원은 국악을 낳고 소리를 키운 고장이기 때문이다.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동편제 본향으로 국악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즐길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악성 옥보고는 지리산에서 거문고를 완성했다. 조선시대 가왕 칭호를 받은 송흥록의 생가도 보존돼 있다. 송흥록은 민속음악 가운데 가장 느린 진양조를 응용해 극적이면서 예술적인 판소리를 완성했다. 지방무형문화재 류명철씨의 전라좌도 남원농악관과 국립민속국악원이 있어 어딜 가나 정겨운 우리 가락과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최명희의 장편 소설 ‘혼불’의 배경이 된 남원시 사매면 ‘혼불문학관’도 문학기행 코스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먹거리 ●‘가을 보양식 으뜸’ 얼큰 구수한 추어탕 남원 먹거리의 으뜸은 추어탕이다. 광한루원 주변에 추어탕거리가 형성될 정도로 유명한 토속 음식이다. 남원 추어탕이 유명한 것은 섬진강 지류인 요천 등 청정 하천 곳곳에서 미꾸라지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추수가 끝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잡아 시래기와 토란대를 넣고 끓여 먹은 전통음식이다. 추어탕을 전국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새집’ 등이 각기 다른 조리법과 맛을 보여준다. 추어탕은 가을 미꾸라지를 최고로 친다. 미꾸라지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가을이면 몸속에 영양분을 가득 저장하기 때문이다. 여름 더위에 지친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추운 겨울을 든든하게 버틸 힘을 주는 보양식으로 통한다. 남원 추어탕은 미꾸라지와 시래기 등으로만 시원하고 구수한 맛을 낸다. 된장, 들깨 불린 물, 다진 양념을 넣어 걸쭉하게 끓인다. 미꾸라지는 길이가 짧고 몸통이 동글동글한 ‘동글이’를 고집한다. 맛이 좋고 비린내가 적다. 지리산 고랭지에서 재배되는 추어탕 전용 무청도 남원 추어탕의 맛을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입맛에 따라 향신료인 제피가루(초피가루)를 뿌려 먹는 것도 특징이다. 추어튀김, 추어숙회도 유명하다. ●‘탱글탱글 감칠맛’ 흑돼지 버크셔K 남원에서 생산되는 흑돼지는 ‘버크셔K’라는 특별한 품종이다. 미국계 버크셔 품종을 들여와 한국 기후에 맞게 육종했다. 2004년 미국에서 유전자원을 도입·개량해 국제식량기구(FAO)에 새로운 품종으로 등재했다. 해발 500m 고랭지에서 기르기 때문에 일반 돼지보다 육질이 부드러우면서 씹는 맛이 고소하다. 탱글탱글한 육질에 부드럽게 녹는 듯 씹히는 비계의 식감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낸다. 백색 돼지와 달리 근섬유의 단면적이 작으면서 수가 많아 촉촉하면서 탄력 있는 식감을 주고 감칠맛이 뛰어나다. 비계도 다른 돼지에 비해 수분이 20% 정도 적고 불포화지방산이 많아 부드럽고 잡내가 없다. 운봉읍 등 4개 읍·면 흑돼지 사육농가들이 생산하고 있다. 농가들은 엄격한 품질 관리를 위해 법인을 설립하고 공동출하, 공동판매를 하고 있다. 관광산업과 연계시켜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킨다는 계획이다. ●‘지리산 나물 풍성’ 한정식·산채정식 남원은 예로부터 음식이 발달한 맛의 고장이다. 지리산을 끼고 있어 다양한 산채가 연중 생산되고 남해안에서 건져 올린 생선류도 전라선을 타고 곧바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한정식은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30여 가지의 반찬이 상을 가득 채운다. 고기와 생선은 물론 나물류가 다양하다. 무·배추·파·고들빼기, 물김치 등 여러 종류의 김치와 꼬막, 새조개, 굴 등 다양한 어패류가 상에 오른다.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얇게 저며 석쇠에 구운 숯불구이가 유명하다. 산채정식은 지리산에서 채취한 향기로운 산나물이 주재료다. 고사리, 취, 미나리, 도라지, 뽕잎, 시래기, 명이, 쑥부쟁이, 곰취, 곤드레, 비비추, 원추리, 땅두릅, 엄나물, 두릅 등을 데치고 말려 고소하게 볶아낸다. 남원시 근교는 물론 지리산 자락인 주천면 고기리 일대에 산채정식 집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건배 전통주 ‘황진이’ ‘황진이’는 각종 주류 품평회에서 크고 작은 상을 휩쓴 전통주다. 지리산 자락 농가에서 빚어 오던 오미자 약주를 발굴 계승한 순수 발효주다. 2006년 남북정상회담 건배주, 2007년 전통주품평회 대상, 2007년 제1회 대한민국주류품평회 금상, 2013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대상 등 화려한 수상 이력을 자랑한다. 청정지역에서 무농약으로 재배한 오미자와 산수유를 쌀과 누룩으로 발효시켜 빚는다. 깊고 풍부한 맛, 환상의 붉은색이 조화를 이뤄 남녀 모두가 즐겨 찾는 남원의 대표 전통주로 통한다. 남원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우주를 보다] 신비로운 ‘우주 행성의 오로라’를 보다

    [우주를 보다] 신비로운 ‘우주 행성의 오로라’를 보다

    너풀너풀 하늘에 날리는 모습 때문에 ‘천상의 커튼’이라고도 불리는 현상이 있다. 바로 ‘새벽’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우로라’(Aurora)에서 유래한 오로라다. 오로라는 태양표면 폭발로 우주공간으로부터 날아온 전기 입자가 지구자기(地球磁氣) 변화에 의해 고도 100∼500 km 상공에서 대기 중 산소분자와 충돌해서 생기는 방전현상이다.  북반구와 남반구 고위도 지방에서 주로 목격돼 극광(極光)이라 불리기도 하는 오로라는 흥미롭게도 지구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우주의 행성에는 그 원인이 조금씩 다르나 각각 아름답게 빛을 뽐내는 오로라가 존재한다. - 목성의 오로라  지난 6월 말 미 항공우주국(NASA)은 허블우주망원경으로 촬영한 목성의 오로라를 공개했다. NASA의 목성탐사선 주노 도착에 앞서 공개한 이 사진은 지구보다 수백 배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목성 오로라의 모습이 담겨있다. 지구의 오로라가 태양풍의 영향으로 발생하는 것과 달리 목성의 오로라는 이 뿐 아니라 강력한 가스 자기장과 위성인 이오로부터 나온 입자까지 포함돼 발생한다. - 신비의 행성 토성의 오로라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는 토성에도 오로라가 있다. 토성의 오로라 역시 태양에서 방출된 입자가 자기권 꼬리(자기권이 태양풍의 압력을 받아 길게 뻗어 있는 부분)와 충돌하면서 발생한다. - 갈색왜성의 오로라 1년 전 미국 칼텍 공대 등 공동연구팀은 지구에서 약 18광년 떨어진 거문고자리의 갈색 왜성(LSR J1835)에서 오로라를 발견했다. 이 오로라는 지구 극지방의 오로라보다 100만배, 목성에서 발견되는 오로라보다는 1만 배 더 강하다. (사진은 그래픽 이미지)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배우·셰프까지… ‘여우락’ 벽을 허물다

    배우·셰프까지… ‘여우락’ 벽을 허물다

    한국 전통음악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국악 대중화에 기여해 온 국립극장의 ‘여우락(樂) 페스티벌’이 다음달 8일부터 30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린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여우락’은 ‘여기 우리 음악(樂)이 있다’의 줄임말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우리 음악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2010년 시작 이래 한국 전통음악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목시켜 해마다 새로운 우리 음악을 선보여 왔다. ‘여우락’ 제작 총감독을 맡은 손혜리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사장은 7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키워드는 ‘다른 시선’(Different Angles)으로, 클래식 음악가, 배우, 셰프, 대중 가수 등 다양한 영역의 인물들이 전면에 나선다”며 “우리 음악을 바라보고, 느끼고, 해석하는 각기 다른 시선을 통해 한국 음악이 어떤 어법으로 표현될 수 있고 어떻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줄 것”이라고 소개했다. 손 이사장은 기획자·제작자로 주로 활동했으며, 페스티벌 총감독을 맡은 건 처음이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은 “예술가들이 시도하는 새로운 예술을 통해 예술가들의 마음속에 끓고 있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용기를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우락’은 총 4개 주제 아래 11개 공연으로 구성된다. 4개 주제는 4개의 시선을 의미한다. ‘레전드’ 테마에선 장르의 벽을 허문 국악·재즈 크로스오버 1세대인 대금 연주자 이생강과 재즈 피아니스트 신관웅을 비롯해 해금·거문고 명인 김영재 등 거장들의 시선으로 우리 음악을 조명한다. ‘디퍼런트’ 테마에선 배우 조재현·황석정, 피아니스트 박종훈·조윤성, 셰프 장진우, 가수 송창식, 지휘자 최수열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인 이들이 해석하는 한국음악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디스커버리’ 테마에선 소리꾼 이희문과 재즈밴드 프렐류드, 작곡가 김백찬과 박경훈 등이 새롭게 재발견한 한국음악을 접할 수 있다. ‘넥스트’ 테마에선 ‘여우락’이 주목하는 떠오르는 뮤지션들을 통해 한국음악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이생강은 “국악 저변 확대를 위해 다른 장르 음악과 함께한 지 20년이 넘었다”며 “우리 음악은 세계 어느 나라 음악과도 접목할 수 있다는 걸 보여 줄 것”이라고 말했다. 신관웅은 “처음 국악과 재즈를 접목했을 때 국악기로 가요를 연주하는 걸 천박스럽게 여기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당시 좋은 시도였고 이런 시도는 계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석 3만원. (02)2280-4114~6.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생명의 窓] 오동 꽃/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오동 꽃/이재무 시인

    나도 누구나처럼 사계 가운데 봄을, 그 속의 오월을 좋아하고 즐긴다. 과연 계절의 여왕답게 오월의 하늘은 높고 밝은 가운데 햇살은 갓 찧어 낸 떡쌀처럼 눈부시게 곱고 부드러워 바라만 보아도 현기가 인다. 연초록의 광휘가 일순간 들것이 되어 몸과 마음을 들어 올린다. 꽃은 피어 열흘을 붉지만 초록은 지치도록 푸르게 살면서 날마다 새로운 그늘을 지상으로 흘려보낸다.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그늘을 나는 사랑한다. 오월 수목들에서 흘러나오는 그늘은 더욱 푸르고 싱싱하다. 어찌 초록뿐이랴. 오월에 피어나는 꽃들은 그 자태가 얼마나 곱고 아름다운가. 꽃들은 저마다 고유한 빛깔과 향기로 은은하고 화려하고 찬란하다. 등꽃, 붓꽃, 찔레꽃, 엉겅퀴 꽃, 오동 꽃, 작약,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 등속. 나는 오월의 꽃들을 모두 좋아하지만 특히 오동꽃을 더 선호하고 아끼는 편이다. 내가 오동 꽃에 유난스레 애착을 부리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없지 않다. 오동나무가 피우는 꽃이기 때문이다. 오동나무는 참으로 쓸모가 많은 나무이다. 아시다시피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 수 있고 거문고가 되었다가 관이 되어 죽음을 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 어릴 적 동네 어귀엔 참나무와 함께 오동나무가 많았다. 늦봄과 여름날의 등하교 때에 나는 자주, 길가에 서 있던, 은밀한 동무였던 오동나무의 그 커다란 잎사귀들이 드리운 그늘에 들어가 더위 먹은 책가방을 쉬게 하였다. 나는 그 나무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비밀들을 털어놓았고 억울하고 분한 일이 있을 때는 그 품에 안겨 어깨를 들썩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 해 큰비가 내려 저수지 둑이 터진 날 예의 오동나무가 몸을 감추었다. 이별의 쓰라린 경험을 최초로 안겨 준 오동나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실의에 젖어 지내야 했다. 그랬던 오동나무는 지금은 내 몸속에 뿌리를 내려 바람 불면 바람 분다고 날 저물면 날 저문다고 마음의 현 여섯 줄을 크게 울린다. 또 바람 드센 도심의 거리에서 동무들과 헤어져 홀로 골목을 돌아올 때는 저만큼 우뚝 멈춰 서서 그 큰 잎사귀들을 흔들어 댄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흔들어 댄다. 나이 들어 춘사를 겪고 난 후 상심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던 어느 해의 봄날도 이마에 꽃들을 가득 매단 채 오동나무가 나를 찾아왔다. 그즈음 나는 은밀하게 방에 들어가 수년을 살다가 죽어 버린 사련을 봉지에 담아 치우고 있었다. 내게서 시를 밀어내고 걸핏하면 수면 장애를 일으키던 애련을 나는 참지 못하고 조금씩 죽여 왔던 것이다. 시름시름 앓으면서도 삼 줄기처럼 질긴 목숨의 끈이, 밑 터진 봉지가 한순간 우수수 내용물을 쏟아냈을 때처럼 마침내 옭아맨 매듭을 풀어 버렸을 때, 내가 살던 아파트 베란다 밖 오동나무가 꽃을 피우고 있었다. 오동나무 속에는 얼마나 많은, 구성진 가락과 음표들이 살고 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오동나무를 마주 대하거나 떠올리고 있으면 부지불식간 들끓는 소음의 부유물이 가라앉는다. 기골이 장대한 데다 과묵한 그에게서 나는 참 많은 이야기를 듣는다. 구업 짓지 말라는 것과 떠나온 것들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과 인과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른다는 것을 옹알옹알 저만 알아듣는 소리로 조근조근 솥뚜껑처럼 굵은 이파리들 아래로 무겁게 떨어뜨린다. 마음이 갈피 없이 흔들릴 때 나는 오동나무와 꽃을 보러 가거나 떠올린다. 내가 오동나무와 꽃을 특별하게 좋아하는 것은 두꺼운 추억과 더불어 성찰의 한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운 톱5…色, 形에 매혹되다​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운 톱5…色, 形에 매혹되다​

    성운이란 한마디로 별 먼지다. 수소, 헬륨 등 별을 만드는 여러 원소들의 가스 집단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이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가듯이 별들은 이 성운에서 태어나서 생애를 마친 뒤 제 몸을 해체해 다시 성운으로 돌아간다. 따라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천체들, 곧 별과 은하, 성단과 블랙홀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운에서 태어난 것들이다. 모든 천체들의 모태가 곧 성운인 셈이다. 빅뱅 직후의 우주에는 수소​와 약간의 헬륨으로 이루어진 원시 구름으로 가득 찼다. 여기서 별들이 태어나고 은하가 만들어졌으므로 성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성서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logos)'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이 나오는데, 천문학자들이 그 '말씀'이 바로 수소였다고 주장한다. ​ 어쨌든 별들을 만들고 별들이 생을 마치고 폭발해서 만들어내는 이 성운들은 그 현란한 색채와 기이한 형태로 우주의 최고 볼거리를 제공한다. 성운의 빛나는 상황이나 형태에 따라 행성상 성운, 산광성운, 암흑성운, 타원성운, 나선성운, 불규칙 성운으로 구별하기도 하는데, 아름다움과 매혹적인 형태를 자랑하는 성운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운으로 꼽히고 있는 '톱 5'를 소개한다. ​1. ​독수리 성운 아름다운 성운의 첫 자리를 차지하는 독수리성운(Eagle Nebula, M16)은 유명한 혜성 사냥꾼인 프랑스의 샤를 메시에가 1764년에 발견했다. 여름철 남쪽 하늘 은하수 가운데 뱀자리의 꼬리 부분에 있는 이 성운은 붉은색을 띠고 있다. 성운의 폭은 무려 70광년. 빛의 속도로도 70년을 가야 될 정도로 엄청난 스케일이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잡은 이 성운의 모습을 보면, 성운 중심부에 길이 4광년(약 40조km)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 먼지 기둥 속에서 별이 무리지어 태어나는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성운 기둥을 창조의 기둥(Pillars of Creation)이라 한다. 지구로부터 약 6500광년이라는 거리에 있다. 2. 게 성운 황소자리 방향으로 지구로부터 약 6290광년 거리에 있는 초신성 잔해다. 성운 중심에는 지름 30km에 달하는 중성자별인 펄서가 존재하며 1초에 30.2회 자전하면서 전자기파를 방출한다. 게의 등딱지처럼 생겼다고 해 이름 붙여진 게성운은 지름 약 5광년으로, 1731년 영국 아마추어 천문학자 존 베비스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이후 1758년 프랑스 천문학자 샤를 메시에가 게성운을 시작으로 성운과 성단을 109개로 정리한 ‘메시에 목록’을 만들었는데, 이 게성운에 목록의 첫 번째라는 뜻으로 ‘M1’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게성운은 별의 진화 마지막 단계인 초신성이 폭발해 만들어진 초신성 잔해이다. 천문학자들은 게성운이 언제 생성됐는지까지 기록을 통해 밝혀냈다. 중국 기록은 송나라 때 연대기인 ‘송사천문지’(宋史天文誌)에 나와 있는데 “1054년 여름 남동쪽에 낯선 별이 나타났는데 불그스름한 빛깔로 금성보다 밝았으며 23일 동안은 대낮에도 볼 수 있었다. 그 후 차츰 어두워졌으며 1056년 봄 소멸했다”고 쓰여 있다. 당시 초신성 폭발은 중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일본, 터키, 그리고 인디언의 기록에도 남아 있다.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화이트 메사 동굴과 나바호산에는 오늘날 미 남서부 지역에 사는 원주민인 푸에블로 족의 선조들이 그린 벽화가 남아 있다. 천문학자들은 이 벽화에 그려진 초승달을 이용해 초신성이 1054년 7월 5일쯤 폭발했다는 것까지 계산해냈다. ​3. 모래시계 성운 파리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이다. 모래시계를 닮아서 이름이 붙어졌다. 이 천체의 명칭은 보통 MyCn18로 불린다. 별의 수명이 거의 다 끝난 적색거성 단계에서, 별의 외피층이 강력한 항성풍으로 방출되어 만들어진 성운이다. 모래시계 같은 형태가 된 것은 내부의 빠른 항성풍이 중심부의 농밀한 성운을 외부로 밀어냈기 때문이다. 거리는 약 8000광년. '행성상 성운'이라는 용어는 1780년대에 영국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이 고안한 것으로,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았을 때 행성처럼 보인다고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거문고자리성운, 여우자리 아령형성운, 큰곰자리 부엉이성운 등이 대표적인 행성상 성운이다. 행성상 성운의 수명은 수만 년 정도로, 보통 수십억 년에 이르는 별의 수명에 비추어볼 때 비교적 짧게 지속되는 현상이다. 성운의 지름은 0.1 또는 1광년 정도이고, 중심별은 자외선을 내는 고온(10만℃ 정도)의 별이 많다. 4. 나비 성운 M2-9로 불리는 나비성운은 뱀주인자리에 있는 행성상 성운이다. 모양이 나비의 날개처럼 생겨서 나비성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양 날개 형태는 각각 별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제트가 만들어낸 것이며, 중심별은 쌍성으로 각각 한 개의 행성상 성운을 형성했다. 1947년에 미국 천문학자 루돌프 민코프스키가 발견했으며, 거리는 지구로부터 약 2100 광년 떨어져 있다. 1990년대에 허블 우주망원경이 M2-9를 보다 선명하게 찍었다. 중심부 쌍성 구성원 중 주인별은 상당량의 질량을 우주로 방출한 뒤 백색왜성으로 쭈그러들고 있다. 5. 고양이눈 성운 용자리에 있는 이 행성상 성운은 지금까지 알려진 성운 중 구조가 매우 복잡한 성운의 하나로, 1786년 영국 천문학자이자 천왕성 발견자인 윌리엄 허셜이 발견했다. 허블 망원경을 이용한 고해상도 촬영을 통해 매듭, 제트, 거품, 원호 모양 등의 주목할 만한 구조들이 발견되었다. 고양이 눈의 중심에는 밝고 뜨거운 항성이 있는데, 이 별은 약 1000년 전에 자신의 겉 표면을 우주공간으로 날려버린 후 이런 아름다운 성운을 형성했다. 이밖에도 오리온 성운 등 아름다운 성운들이 우주 도처에 늘려 있으니, ​밤하늘 성운 여행에 한번 나서보는 것도 재미있는 우주 체험이 될 것이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옛것과 현대가 함께 숨 쉬네, 울산 너른 품에서

    울산 하면 각종 공업단지와 조선소 등의 산업 시설을 퍼뜩 떠올리기 마련이다. 물론 울산 쪽만 보면 그렇다. 한데 울산시의 70%를 차지하는 울주는 조금 다르다. 예부터 이어져 오던 독 짓는 방식을 여태 고수하는 옹기마을이 있고, 비구니 스님들의 오래된 도량에선 청아한 풍경 소리가 울려 나온다. 반구대 암각화 등 그보다 더 오래된 선인들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말쑥한 현대와 푸석거리는 옛것이 함께 숨을 쉰다고 할까. ‘숨을 쉬는 그릇’ 옹기. 우리의 독특한 음식 저장 용기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이야 김치냉장고 등 현대 기술에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몇 가지 불편함만 해결된다면 사실 냉장고 대신 선택하고 싶은 것이 옹기다. 표면의 구멍을 통해 ‘숨을 쉬는’ 옹기 특유의 장점은 현대 기술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옹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얼추 보름 이상 시간이 걸린다. 좋은 재료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물레와 흙을 다루는 옹기장이의 정교한 손기술이 필수적이다. 표면을 다듬는 것에만 ‘아씨부채질’과 ‘두번부채질’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이후 전통 가마에서 1200도가 넘는 뜨거운 불에 9일 밤낮을 구운 뒤 4일 동안 식힌다. 요즘엔 고온의 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 굽는 과정이 예전보다 꽤 단축됐다. 바로 이 과정에서 옹기의 생명이라 할 공기구멍, 이른바 ‘기공’이 표면에 만들어진다. 깨끗한 공기는 들여보내고, 빗물 등의 침투는 막는다. 김치 등의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불순물이나 소금쩍(소금기가 허옇게 엉긴 것) 등은 숨구멍을 통해 옹기 밖으로 배출시킨다. 어디 최첨단 원단으로 만든 아웃도어 의류의 기능이 이만 할까. 우리 선조들은 이미 1000년 전에 이 같은 기술을 실생활에 적용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외고산 옹기마을이 처음 형성된 건 50여년 전이다. 1950년대 후반 경북 영덕에서 옹기공장을 운영하던 고 허덕만 장인이 한국전쟁 이후 이 지역으로 옮겨 오면서 옹기마을의 역사가 시작됐다. 운도 따랐다. 이웃한 부산에 피란민이 몰려들면서 옹기 수요가 급증했다. 원료 확보가 쉽고 유통은 원활했으니 마을이 불길처럼 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이후 외고산 옹기마을은 한국 옹기시장의 50%를 책임지는 최대 공급처로 발돋움했다. 그런데 왜 하필 울주였을까. 허덕만 장인의 제자인 배영화 장인은 “따뜻한 기온과 옹기의 재료가 되는 흙,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족한 것” 등을 요인으로 꼽았다. 옹기는 기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흙반죽으로 모양을 만들 때 기온이 영상 3도 아래로 내려가면 형태가 깨진다. 서울 경기 등 겨울이 길고 혹독한 곳에선 겨우내 작업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울주는 다르다. 겨울에도 영하권으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다. 게다가 운송수단이 발달하면서 옹기 제작의 원료인 흙이나 땔감으로 쓸 나무에 대한 걱정도 사라졌다. 사실 오래전엔 ‘옹기마을’이란 것이 없었다. 땔나무와 흙이 소진되면 다른 곳을 찾아 이동해야 했다. 그게 옹기장이들의 숙명이었다. 이젠 달라졌다. ‘명성’을 좇아 흙과 땔감이 몰려드니 말이다. 요즘도 7명의 외고산 옹기장인들은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만든다. 숙련된 이라도 오랜 시간 땀을 쏟아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그 과정을 옹기마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기는 옹기부터 작은 장식용 옹기까지, 그야말로 옹기의 모든 것과 마주할 수 있다. 그 덕에 마을 전체가 거대한 장독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마을 뒤엔 옹기박물관이 들어섰다. 국내 최대 규모의 옹기 등 전국의 재래식 옹기와 세계 각국의 옹기를 만날 수 있다. 8일까지 마을 곳곳에서 ‘울산옹기축제’도 열린다. 옹기 제작 과정에 참여하거나 직접 옹기를 만드는 등 다양한 체험 위주로 진행된다. 울주까지 와서 간월재(900m)를 둘러보지 않을 수 없다. 간월재는 이른바 ‘영남알프스’의 하나다. 신불산(1159m)과 간월산(1068m)의 능선이 내려와 만난 자리다. 원래 억새 명소로 명자깨나 날리는 곳인데, 진달래 피는 봄 풍경도 제법 빼어나다. 특히 기온차가 큰 간절기엔 구름이 파도치듯 언양 읍내를 휘감아 도는 장관과 종종 마주할 수 있다. 간월재는 우리나라에도 빙하기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마지막 빙하기였던 신생대 홍적세(12만 5000년 전) 동안 간월산과 신불산을 덮고 있던 빙하가 무게를 견디지 못해 거대한 돌들과 함께 산 아래로 이동했고, 그 과정에서 ‘V’자 형태의 급경사의 계곡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빙하와 함께 내려온 큰 바위들은 미아석(표이석), 이른바 ‘집 잃은 돌’을 남긴다. 신불산과 간월산에서 작천정에 이르는 동안 유난히 자갈더미와 미아석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간월재 아래로 내려오면 곧 석남사다. 비구니 도량으로 이름 높은 절집이다. 일주문에서 절집까지는 숲길이 펼쳐져 있다. 숲은 깊다. 굴참나무, 소나무 등 노거수들이 우거졌다. 거리는 700m 정도. 늙은 나무들 사이를 자박자박 걷다보면 산소 알갱이가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든다. 대웅전 앞의 3층 석탑이 웅장하다. 임진왜란 때 무너진 대석탑 자리에 1973년 스리랑카에서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셔 오면서 개축한 것이다. 강선당 뒤로 난 작은 길을 따라 올라가면 부도가 나온다. 예서 가람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가지산을 짓쳐올라가는 신록과 절집 지붕의 진회색 기와들이 그럴싸하게 어우러진다. 이제 바다를 둘러볼 차례다. 방어진항 끝자락의 슬도(瑟島)를 찾아간다. 모래가 굳은 사암으로 형성된 작은 섬이다. 원래 무인도였으나 최근 도로가 놓이면서 뭍이 됐다. 슬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재밌다. 섬 주변 바위마다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데, 이 위로 파도가 칠 때면 촤르륵 촤르륵~ 거문고 뜯는 소리가 난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이를 슬도명파(瑟島鳴波)라 부른다. 슬도는 최근까지도 옛 풍경이 많이 남아 있던 곳이다. 거대 도시의 외곽 치고 뜻밖에 소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투박한 돌을 쌓아 만든 예전 방파제며, 슬도 뒤편 성끝마을 언덕 위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이 그랬다. 마을 앞바다는 현대미포조선소의 거대한 선박들로 막혀 있지만, 되레 그 탓에 더 안온한 느낌을 받곤 했다. 도로가 놓인 뒤로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조형물이 들어서고, 낡은 집들은 깔끔한 건물로 빠르게 대체되는 중이다. 깔끔하고 번듯해졌지만, 그게 나은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낚시를 즐기는 이라면 낚싯대 한 대 챙겨 가시길. 방파제 뒤에 놓인 데크 위에서 바람 한 점 맞지 않고 편안하게 낚시를 즐길 수 있다. 글 사진 울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지역번호 052) → 가는 길: 울주와 울산으로 나눠 돌아보는 게 효율적이다. 울주 쪽 간월재는 대구부산고속도로 밀양 나들목으로 나와 울산 방면 24번 국도로 갈아탄 뒤 금곡교차로에서 우회전, 아불삼거리에서 우회전, 이어 배내사거리에서 좌회전해 파래소 유스호스텔 앞까지 가면 된다. 석남사와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각석 등을 돌아보는 것으로 동선을 짠다. 석남사 264-8900. 외고산옹기마을은 부산울산고속도로 청량나들목으로 나와 14번 국도를 따라가면 된다. 간월재와 서생포왜성, 간절곶 등의 명소를 함께 돌아본다. 울산옹기박물관 229-7961. 슬도와 방어진, 대왕암공원, 장생포고래박물관 등은 울산 동쪽에 있다. → 맛집:간월재가 있는 언양은 불고기로 이름났다. 언양 읍내 외곽에 맛집들이 몰려 있다. 다만 유명한 만큼 지갑 털릴 각오는 해야 한다. 공중파 방송에 자주 이름을 올렸다는 한 식당의 경우 3인분 이상만 팔기도 한다. 울산 쪽도 비슷하다. 국내 소득수준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하는 지역이어선지 음식값이 녹록지 않다. 슬도의 한 식당의 경우 회와 각종 코스 요리를 포함해 1인 3만 5000원이다. 2인 이상만 판매하니 7만원이 기본인 셈이다. → 잘 곳: 석남사, 등억리 온천단지 등에 깔끔한 숙소가 많다. 가격도 ‘착한’ 편이다. 어린이가 포함된 가족 단위 여행객은 간월재 입구의 펜션을 찾는 게 좋겠다. 주중 5만~7만원 선이다.
  • [이주의 문화 레시피] 국악·무용

    [이주의 문화 레시피] 국악·무용

    ●김준영 거문고 연주회 ‘잇다’ 거문고 연주자 김준영이 자신이 직접 작곡한 곡들과 벨라루스 민요까지 거문고의 현재를 보여주는 연주를 선보인다. 16일 오후 4시 중요무형문화재전수회관 민속극장 풍류. 1만원. 1544.1555. ●국립무용단 ‘향연’ 전통춤의 대가 조흥동이 안무를 짜고 정구호가 연출한 작품으로 12개의 전통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우리의 멋을 전한다. 16~19일 국립극장 해오름 무대. 2만~7만원. (02)2280-4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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