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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화시대의 조건/최경국 대신증권 사장(굄돌)

    세상이 참으로 급변하는 것 같다.얼마전만 해도 지방에 가면 서울의 소식을 묻곤 한적도 있었다.이제는 교통의 발달로 전국은 일일 생활권으로 변하게 됐고 통신도 발달하여 전국 어디서나 똑같은 시간에 뉴스를 접하게 됐다.어떻게 보면 서울과 지방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오히려 지방의 좋은 점이 더 부각되는 듯하다.경제규모 및 교육의 수준도 서울과 지방이 동등한 수준으로 진행되는 필연적인 과정을 걷고 있다.진실된 지방화시대가 가까운 듯 하다.그러면 앞으로 도래하는 지방화시대의 필수요건은 무엇인가. 먼저 지방경제의 활성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지방경제의 성장이 향후 지방재정을 튼튼하게 하며 국토의 균형적 발전을 이루게 되기 때문이다.그런데 요즈음 신문지상에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한국은행에서 매월 발표하는 어음부도율이 서울은 정체된 반면 지방은 점차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또한 각 금융권에서 발표하는 예금유치 실적을 보면 지방보다 서울의 예금증가율이 더 큰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당장 필자가 몸담고 있는 증권시장만 보더라도 주식매매 증가율이 지방보다 서울이 더욱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활성화 되어야 마땅한 지방경제가 점차 위축되는 듯 하다.물론 일부 지방의 부도율이 높에 나타난 것은 한계업종,한계기업이 그 지역에 몰려 있어서 그러하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상황은 현재 우리의 경제정책이 산업구조를 고도화 시켜나가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한계기업의 퇴출을 유도하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다.즉 경제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효율적인 자원의 재분배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일지 모르지만 지방경제가 위축되는 것을 보면 득보다 실이 더 많다.지방경제 활성화가 국가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되며 나아가서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이젠 각계각층의 지방경제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증가되어야 할 때인 것 같다.
  • 가평에 제2꽃동네 세운다

    ◎음성 수용 한계… 1,500명에 새 안식처/부지 1만5천평 복지타운 내년 완공 음성꽃동네에 이은 제2의 꽃동네가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 1만5천여평의 부지에 세워진다. 가평꽃동네는 지난 76년부터 전국의 오갈데 없는 부랑아와 무의탁노인·장애자들을 위한 요람이 되어온 충북 음성꽃동네가 늘어나는 수용자를 더이상 수용할 수 없게 되어 내년 1차 완공을 예정으로 지난4일 기공됐다.가평꽃동네는 4백40명 수용규모의 부랑인시설과 정신요양원을 비롯,노인요양원·장애자요양원·병원·연수원등을 갖춘 종합복지타운으로 모두 1천5백여명에게 재활의 보금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지난85년 한 독지가가 기증한 땅을 밑거름으로 추진된 가평꽃동네는 42만명에 달하는 전국 각지 후원자들의 성금과 국고지원금으로 운영된다.현재 운영되고 있는 음성꽃동네는 천주교 꽃동네자매회등 수도자 2백여명의 헌신적인 봉사와 설립자 오웅진신부의 노력에 의해 2천여명의 의지할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오신부는 『가평꽃동네건설로 현재 포화상태에 다다른 음성꽃동네의 수용난을 다소 해소할 수 있어 다행스럽다』면서『점차 늘어나는 이들을 제대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전국에 4∼5곳의 꽃동네가 더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 재원확보/“지역문화 발전의 밑거름”

    ◎지자제 1년… 문화원연·유네스코 공동 국제학술회의/중앙위주 지원하는 배분방법 개선/지방세로 전환되는 교육세 활용을 지방자치제실시 1년을 넘긴 시점에서 지역문화의 활성화방안을 모색하는 국제학술대회가 1일부터 3일까지 서울 라마다 올림피아호텔에서 열리고 있다. 창립30주년을 맞은 한국문화원연합회(회장 이옥동)가 유네스코한국위원회(사무총장 정희채)와 공동으로 마련한 이번 학술대회는 국내외 문화관련자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문화에 기여하는 문화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특히 이번 대회에는 주최측의 의뢰로 정홍익교수(서울대)와 정규훈국학연구소장이 전국의 문화예술인·행정가·후원인·교육자등 7백94명을 상대로 한 「지역문화의 현황과 전망」설문조사결과가 발표돼 토론을 위한 구체적인 근거자료로 제시됐다. 설문조사에서도 지적됐듯이 문화재원의 확충(28.1%)과 문화시설확보(22.7%)등 재정이야말로 지역문화발전의 선행과제이며 최대의 관심사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한편 오연천교수(서울대)가 「지방문화재원의 확충방안」이라는 논문에서 지방문화예술재원과 문예진흥기금의 확충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오교수는 이논문에서 지방문화예술재정의 문제는 ▲중앙·지방정부의 문화예술분야에 대한 공공지출의 필요성인식부족에 따른 영세한 예산 ▲여러 갈래로 분산된 재원의 지원체계와 배급제적·기계적 배분방식 ▲지방문화예술재원집행의 비효율성 ▲지방자치단체의 자체재원 조달방법 미흡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이에따라 문화예술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해 목적세나 사용자부담금등 특별재원 조달설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지방정부의 재원조달방법으로 일반회계 총규모 또는 지방세수입·자체수입등을 기준으로 한 표준지침비율제시와 지방문화예술사업과 관련,수익자부담원칙의 활용범위확대,지방공기업 수익의 일정비율을 문화예술에 배정토록하는 규정마련,그리고 교육지자제실시와 더불어 현행 국세에서 지방세로의 전환이 구상되고 있는 교육세 재원의 일부를 지방문화재원으로 수용하는 방안등이 검토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문예진흥기금 확충방안으로 특별소비세의 과세대상에 「특정장소에의 입장」과 「유흥음식행위」를 포함시켜 문화예술진흥관련 재원을 조달하고 이밖에 상업광고에 대한 「광고세」,복사기·녹음기등 복제행위에 대한 과세등을 고려해봄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공익자금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현재 한국방송광고공사의 정관에 의해 결정되는 문예진흥기금에 대한 배분비율을 문예진흥기금법이나 방송광고공사법등 상위법에 법정화하는것도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지역문화진흥을 위한 재정」이외에 「지역문화단체의 효율적 운영」,「문화향수층의 공동체적 참여방안」,「지역문화활동 프로그램의 개발」등 4개주제로 나눠 진행됐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신규식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기리기 위해 서울신문사와 국가보훈처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예관(예관) 신규식선생이 선정됐다.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된 신규식선생이 한·중수교 시점에서 재조명된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선생은 단순한 독립운동가로서가 아니라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을 접목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력배양·민중계몽운동·경제적 자립기반 확충등 총체적 운동을 치열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신규식선생의 43세 짧은 생애를 되새겨 본다. ◎상해 임정수립 주역… 중국승인 얻어내/한·일 합방 직후 망명… 12년간 항일운동 매진/신해혁명 참여… 손문정부와 연계투쟁 길터/22년 임정분열에 통분,병석에서 25일간 단식… 43세로 생 마감 신규식선생이 남긴 명저 「한국혼」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음이 죽어버린 것보다 더 큰 슬픔이 없고,망국의 원인은 이 마음이 죽은 탓이다.…우리의 마음이 곧 대한의 혼이다.다 함께 대한의 혼을 보배로 여겨 소멸되지 않게하여 먼저 각자 자기의 마음을 구해 죽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 글에 담긴 선생의 철학은 목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소신찬 행동으로 이어진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 사이 망국의 한을 온몸과 마음 바쳐 투쟁으로 승화시킨 신규식선생의 웅변이 지금 이 시대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은 무엇을 뜻하는가.우리의 독립이 진정한 의미의 독립이라 할지라도,나라가 남과 북으로 갈라진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것인가. ○충북 문의서 출생 신규식선생은 1880년 1월13일 충북 문의군(현재 청원군)에서 중추원 의관을 역임한 신용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채호 신백우와 함께 「산동삼재」라고 불렸다. 17세때 신학문에 뜻을 세우고 상경,관립한어학교를 거쳐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하여 무덕을 쌓게 되었다.신동으로 불리며 한학등 구학문에 능통하고 문학에도 탁월한 자질을 지녔지만 기울어가는 국권을 회복하는 길은 오직 국력배양에 있다고 생각했다. ○을사년 순국기도 1905년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육군참위로서 지방군대와 연계,대일항전을 계획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3도 유생들이 조약 철회를 상소하고,장지연은 황성신문에 피를 토하듯 「시일야 방성대곡」을 썼다.민영환 조병세 홍만식등은 자결했다. 민심이 가마솥 끓듯 펄펄 끓을 때였다.청년장교 신규식은 계동·가회동·운니동등의 솟을대문들을 골라 몽둥이로 후려치며 미친듯 소리 질렀다. 『을사오적들은 나오너라!』 신규식은 호랑이라도 잡을 듯 거리를 쏘다녔지만 역부족이었다.운니동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는 자신이 한낱 미약한 존재였음을 확인했을 뿐이다. 사흘을 문걸어 잠그고 굶었다.그리고 결론을 내렸다.민영환등의 순국은 소극적 행동이 아니라 적극적 투쟁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죽음은 거름의 역할을 하는 것­내한몸 거름이 되어 무수한 열매를 맺을수 있다면 여한이 없겠다』(「한국혼」 참조·26살 신규식의 이같은 생각은 그러나 후일 「치욕을 알면 피로써 죽음을 할 수 있고,치욕을 씻으려면 피로써 씻어야 한다」는 투쟁적 신념으로 바뀐다) 신규식은 독약을 마셨으나 문을 부수고 들어온 가족들에 의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그러나 약기운이 번진 오른쪽 눈은 시신경을 다쳐 애꾸가 되었다.거울을 들여다 본 신규식은 냉소를 지었다. 『애꾸,그렇다.이 애꾸눈으로 왜놈들을 흘겨보기로 하자.어찌 나 한사람만의 상처이겠는가.우리민족의 비극적 상징이다』 이때부터 청년 신규식은 흘겨볼 예(예)자,볼 관(관)자­예관으로 자호를 삼아 끝까지 사용했다. 문동학원·덕남사숙의 설립 또는 지원,중동학교장 취임,공업전습소생들을 중심으로한 「공업연구회」조직,월간 「공업계」창간,윤치성 민대식등 퇴역장교를 규합한 황성광업주식회사 설립·운영,민족종교인 대종교에의 입교,분원자기공장의 설립과 고려자기 재현운동…등등이 선생의 무서운 행동력을 입증한다. 그러나 1910년 「보호」라는 양의 탈을 쓰고있던 일제는 본색을 드러냈다.경술국치가 그것이다.우리나라는 통째로 그들의 입속으로 삼켜졌다. 선생은 다시한번 자결을 생각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1911년 상해로 망명,운명할 때까지 12년여 동안 위대한 업적을 남기게 된다. 첫째는 당시세계정세를 능동적으로 이용하면서 독립운동의 2대 조류인 외교중심론과 무장투쟁론이라는 두가지 운동노선을 접목시켰다는 점이다.혁명가적 열정과 선각자적 혜안을 함께 갖춘 선생은 중국혁명동맹회에 가입,송교인 진기미 손문등과 교류하며 중국신해혁명에 외국인으로 참여하여 나중 중국국민당정부와의 항일연계투쟁의 기틀을 마련했다. 1911년 여름 어느날 선생은 손문과 함께 자리를 했다. 『예관선생이 우리 동맹회를 도와주시니 참으로 장한 일이십니다』 『바로 중국혁명운동이 한국독립에 직결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역사적으로 볼 때 양국 사이는 순치(순치)의 관계였습니다만 중국은 우리를 속국시한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혁명이념으로 볼 때 과거 우리에게 진 묵은 빚을 청산해주리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과연 듣던대로 훌륭한 논객이요.애국자이십니다』 선생과 손문의 혁명적 동지애는 변함없이 지속됐다.이 우정을 바탕으로 선생은 손문의 도움을 얻어 많은 우리 젊은이들을 적성에 따라 교육시켰다. ○3·1운동을 점화 둘째는 3·1독립운동과 상해임정수립의 주춧돌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선생은 1917년 조소앙 박용만등 13명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선포한 「대동단결선언」을 통해 핀란드 폴란드등 당시 피압박민족의 독립을 열거하며 이는 좋은 징조이므로 우리나라도 통일된 최고기관 즉 정부의 조직필요성을 역설했다.또 국내와 일본등에 동지들을 밀파,2·8독립선언에 영향을 끼쳤다. 1919년 3·1운동이 터졌고 상해에서 선생은 프랑스 조계내에 독립임시사무소를 개설,정부수립을 추진했다.(언론인이며 3·1운동 민족대표 33인중 한명인 오세창은 『3·1운동은 예관에 의해 점화되었다』고 단언하고 있으며 당시 일경비밀정보도 『…이 소요를 유발시킨 데에는 상해거주 불령선인들의 선동에 크게 힘입었다』고 쓰고 있다) 상해임정도 수립되었고 5월에는 손문등 중국광동정부로부터 국가승인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정부수립후 고질적 파벌의식과 지방색·출세욕 등이 뒤엉켜 1921년4월 이후 임정은 혼란에 빠져들었다.선생은 병원에 누워 의정원 회의참석을 거부했다.4월10일 소위 「재미파」이승만이 내각수반이 되었다. 이듬해까지 병석에 누운 선생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한국인들이 단합되지 않는 것을 통탄하면서 25일동안이나 불식·불언·불약을 고집했다. 이튿날인 1922년9월25일.선생은 마지막 남은 숨을 호흡단절법으로 끊고 이승을 버렸다. 『정부…정부…』 희미한 소리가 숨을 거두는 그의 목에서 새어나왔다.단식 25일만에 처음 나온 말은 선생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다.그 말은 70년이 지난 지금 이 시대에도 남아있을 유언이 아닐는지…. ◎독립운동에 외교적으로 크게 공헌/역사적 평가/신승하 고려대교수·동양사 예관 신규식은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상 알려져있는 것보다 숨겨져있는 공이 많은 분이다.특히 중국에서 한국임시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고 또한 중국정부나 중국인들로부터 중국에서 우리나라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은 분이다.그런데 불행하게도 1922년 43세의 젊은 나이로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그 평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분이다. 구한말 애국계몽운동때부터 구국자강을 위하여 실업과 교육밖에 없다는 신념아래 학교를 세우고 또한 우리나라에선 제일 먼저 실업전문잡지인 「공업계」를 발간하였다.그러나 나라를 잃게 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상해에서 중국혁명당 인사들과 접촉하고 동맹회에 가입하였다.그리고 중국이 잘되어야만 우리나라도 잘될수 있다는 생각아래 그들과 함께 신해혁명에 참가하여 이후 중국 혁명당인들과의 교류가 더욱 밀접하게 될 수 있었다. 그는 인재의 양성이 절실하다 보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하여 학교를 세웠으며 또한 중국인의 무관학교는 물론 일반 학교에도 입학을 주선하고 심지어 외국유학까지 보냈다.그리고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고 선전하기 위하여 진단이란 잡지를 상해에서 발간하였다. 1921년에 손문이 광주에서 광동호법정부를 수립하자 한국임시정부 의정원은 그를 전권사절로 파견하였다.그리하여 한국임시정부가 호법정부의 승인을 받고 중국의 각 군사학교에서 한국학생의 수용을 허가받아 이후 황포군관학교 광동대학 등에 한국 젊은이들이 많이 입학되었으며 이들은 독립운동의 기간이 되었다. 따라서 신규식의 평가는 단순한 독립운동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 한걸음 앞서 독립운동을 위한 또 이를 전개하는 과정가운데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공헌이 있었음을 높게 사야 할 것이다.
  • 미 교수의 주말여행/최재필 명지대교수·건축학(굄돌)

    한 나라의 문화와 주택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이론정립으로 유명한 미국의 라포포트 교수가 국제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 중이다.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그에게는 여러군데에서 강연초청이 쇄도했고,결국 회의 개막일보다 닷새 먼저 온 그는 강연회와 환영만찬의 빡빡한 일정에 묶이게 되었다.그런데도 이 육십노인은 짬이 나는대로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들쳐메고는 우리나라 전통주택 답사에 나서는 것이었다. 지난 일요일도 예외는 아니었다.앞선 사흘간의 격무(?)에도 불구하고 그는 쉴 생각이 전혀 없었고,결국 우리 젊은 교수들 몇이서 그와 함께 온양의 외암리라는 전통주거 마을에 다녀왔다.육십여호의 잘 보존된 기와집과 초가집이 산자락에 모여 있는 마을이었다.3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라포포트 교수는 땀을 뻘뻘 흘리며 마을 구속구석을 돌아보았고,연신 「멋지다」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그를 감탄케한 우리의 문화유산에 우리는 자랑스러움을 느끼기도 했지만 우리의 마음은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그날 저녁 서울로 돌아갈 일이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었다.온양으로 내려올 때 이미 우리 일행은 일요일 행락차량에 밀려 3시간을 고속도로와 국도에서 허비했고,올라갈 때는 훨씬 더 오래 걸릴 터였다. 해거름에 온양을 출발한 우리는 끝도 없이 밀리는 차량행렬 속에 갇힌채 속수무책이었고,라포포트 교수는 「놀랍다」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었다.좋게 표현해서 「놀랍다」이지 「한심하다」라는 것이 그의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이다.그가 지니고 돌아갈 한국의 인상은 아름다운 전통한옥 마을이 아니고 주차장이 되어버린 고속도로가 될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우리네 교통문제에 무슨 기발한 해결책이 없을까.라포포트 교수가 어느 풍자만화에서 보았다는대로 고속도로 위에 오갈데 없이 꽉 막힌 차량을 그대로 둔 채 콘크리트로 덮어버리고 그위로 다시 차를 다니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일 수밖에는 없는 것일까.
  • 평화통일의 마지막 외적장애 제거/노 대통령 특별담화

    ◎북한도 민족대화합의 길로 나오길 노태우대통령은 24일 한중수교에 즈음한 담화문을 발표,『두나라의 수교는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물인 동북아시아 냉전체제의 종식을 예고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갖고 있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향한 마지막 외적 장애가 제거되었다는 민족사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중국정부는 수교공동성명에서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하여 빠른 시일안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고 지적하고 『나는 한 중수교가 남북한 당면문제의 해결과 관계발전,나아가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안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 중 두나라는 수교합의와 더불어 양국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두나라 정상사이에 회담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면서 『이에따라 나는 양상곤 중국국가주석의 초청으로 가까운 시일안에 중국을 공식 방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한 중수교와 그에따른 국제환경의 변화가 민족 통일실현의 값진밑거름이 되도록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노력해 나가겠다』고 다짐하고 『북한당국도 이 시대 역사의 대세에 호응하여 평화와 화해,진정한 민족대화합의 길로 하루빨리 나오기를 충심으로 기원한다』고 촉구했다.
  • 동북아 냉전체제 종식 공영시대로/노 대통령 한·중수교 담화문/요지

    ◎평등·호혜의 선린우호관계 재확립/핵문제 해결 등 남북관계 도움 기대 저는 오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안정과 공영에 커다란 진전이 이루어졌음을 국민 여러분에게 알려드리려 합니다.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은 오늘을 기해 오랜 비정상적 관계를 청산하고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습니다. 북경을 방문중인 이상옥외무장관과 전기침중국외교부장이 오늘 아침 두나라의 수교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했습니다. 두나라는 유엔헌장의 원칙들과 주권과 영토보전의 상호존중,상호 불가침,상호내정불간섭,평등과 호혜,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에 입각하여 항구적인 선린우호협력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우리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정부를 중국의 유일 합법정부로 승인하며,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한국과 중국 두나라는 수교합의와 더불어 양국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하여 두나라 정상사이에 회담이 필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했습니다.이에따라 저는 양상곤중국국가주석의 초청으로 가까운 시일안에 중화인민공화국을 공식방문할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 두나라는 역사적 지리적으로,또 문화적으로 수천년동안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깊은 유대속에서 선린우호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러나 20세기 들어 일제의 침략,냉전체제와 한반도의 분단,중국의 내전,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매우 불행한 역사로 두나라는 1세기 가까이 공식수교가없이 부자연스럽게 지내왔습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정착을 추구하는 공통의 이해위에서 이루어진 두나라의 수교는 냉전시대의 마지막 유물인 동북아시아 냉전체제의 종식을 예고하는 세계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또한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향한 마지막 외적 장애가 제거되었다는 민족사적 의미도 있습니다. 두나라 사이의 수교와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은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이며,그동안 쌓아온 실질적인 교류를 더욱 확대하게 될 것입니다. 지난해 두나라의 물적 교류는 58억달러에 이르렀으며,올해는 1백억달러를돌파할 것으로 보입니다. 두나라의 인적왕래도 작년 한햇동안 10만명에 이르렀으며,올해는 15만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두나라의 교류확대를 통해 양국 국민이 얻는 호혜협력의 이득은 매우 클 것입니다. 저는 이번 한국과 중국의 수교로 제가 대통령취임사와 7·7선언을 통해 국민여러분에게 약속드린 북방정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짓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수교회담에서는 한·중관계의 발전방안 뿐 아니라 북한의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역할에 관해서도 폭넓은 논의가 있었습니다.중국측의 반응은 매우 긍정적이고 고무적이었습니다. 중국정부는 수교 공동성명에서 한반도가 한민족에 의하여 빠른 시일안에 평화적으로 통일되는 것을 지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혀왔습니다.저는 한·중 수교가 남북한 당면문제의 해결과 관계발전,나아가서 한반도의 평화적 안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중국과의 수교로 우리와 대만사이의 공식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일입니다.이는 중국정부가 예외없이 적용하고 있는 「하나의 중국」원칙과 국제정치의 현실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이기는 하나,우리가 그동안 대만과 맺어온 우호관계를 생각할때 몹시 안타깝고 마음 무거운 일입니다. 우리는 과거 우리의 항일독립운동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시기에 당시의 중국정부와 중국국민으로부터 많은 우호적 도움을 받은 점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와 대만 사이에 발전되어 온 민간차원의 교류협력 관계 또한 우리로서는 매우 소중한 것들입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정부는 중국과의 수교협상과정에서 우리와 대만과의 실질관계가 될 수 있으면 손상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했으며 공식관계가 단절된 후에도 최상의 비공식관계를 유지하겠다는 우리의 뜻을 분명히 전달했습니다. 한·중 관계가 정상화됨으로써 이제 우리겨레의 평화적 통일을 막는 모든 외적장애가 극복되었습니다.이제 우리 앞에는 분단의 역사를 마감할 민족사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중수교와 그에 따른 국제환경의 변화가 민족통일 실현의 값진 밑거름이 되도록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노력해 나가고자 합니다. 북한당국도 이 시대 역사의 대세에 호응하는 평화와 화해,그리고 진정한 민족대화합의 길로 하루 빨리 동참해 나오기를 충심으로 기원합니다.
  • 베풀줄 아는 삶/김재기 주택은행장(굄돌)

    우리들의 삶은 남과 어울려 살아갈 때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오늘날과 같이 전문화되고 산업화된 사회에서는 직장 동료나 상사 그리고 이웃들과의 협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들의 주변을 살펴보면 이러한 협조관계를 잊어버리고 자기가족,연고 또는 소속을 위주로 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어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가는 훈훈한 인정이 아쉽다. 생각해 보면 삶을 산다는 것은 곧 이와같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기주의를 버리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도 큰 일과 보람있는 일들을 해낸 이들은 대부분 남에게 도움을 줄 줄 아는 의로운 사람들이었음을 우리들은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과 페니실링의 발견자인 알렉산더 플레밍의 얘기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처칠이 어린 시절 하루는 템스강변에서 놀다가 물에 빠진 일이 있었다.허우적거리며 사람살리라고 소리치는 어린 아이를 보며 주변에 있던다른 사람들은 머뭇거리고만 있었다.그런데 지나치던 한 사람이 용감하게 물에 뛰어들어 아이를 구해냈다.그가 바로 플레밍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처칠의 할아버지는 플레밍에게 보답할 생각으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이때 플레밍은 오랜 사양 끝에 의학을 공부해서 더 많은 생명들을 구하고 싶다는 말을 했고 처칠의 할아버지는 학자금과 연구비를 지원해서 플레밍으로 하여금 인류에 공헌하는 페니실린 발견의 밑거름이 되었다. 플레밍은 어떤 이익을 바라서 처칠을 구했던 것은 아니며 처칠의 할아버지 또한 목적을 가지고 플레밍을 지원하였던 것은 아니었다.다만 순수한 마음으로 남을 돕는다는 의로운 행동들이 처칠과 플레밍이라는 세계적인 두 인물을 만들어낸 것이다. 남에게 은혜를 베푼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도와준다면 한말밖에 안 되는 곡식이라도 만섬 못지않다는 채근담의 구절처럼 이제 우리도 조건없이 베풀줄 아는 삶을 가꾸어 가야 하겠다.
  • 외언내언

    『나보기가 역겨워/가실□에는/말업시 고히 보내드리우리다/영변에 약산/진달내□/아름□다 가실길에 □리우리다/가시는 거름거름/노힌 그□츨/삽분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나보기가 역겨워/가실□에는/죽어도 아니눈물 흘니우리다』◆1925년에 상재한 「진달내□」에 실려있는 김소월의 「진달래꽃」 전문이다.1922년 7월의 「개벽」(25호)에 실린 「원전」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는 것.가령 2련만 해도 그렇다.원전은 『영변엔약산/그 진달내□을/한아름 □다 가실길에 □리우리다』로 되어 있다.3련 또한 차이를 보이는데 책으로 묶으면서 추교를 거쳤음은 당연한 일.지금은 맞춤법을 고친 것이 입입에 애송되고 있다.◆가장 한국적인 정서를 노래한 시인이라고 말하여지는 소월 김정식.그의 시에는 한국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향수가 어린다.한국혼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사람인 그는 어느 나라에서 빌어온 입상에도 기대어서기를 수긍치 못하고 입상없는 조국의 중압으로 후퇴한 것입니다…』.미당서정주시인은 그의 「소월론」에서그를 가리켜 한국적 시상과 시심과 시정을 지니고 살다간 시인이라고 평하고 있다.◆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는 김소월의 「진달래꽃」인 것으로 나타난다.이는 KBS와 미디어 리서치가 공동조사한 결과로서 나온 것.사실,교육받은 한국사람으로서 이 시를 읽어보지 않고 소년소녀기를 넘긴 사람은 없다 할 것이다.이별이란 소재에다가 한국의 산야에 널려있는 꽃 진달래와 그것도 평안도 사람답게 약산의 것을 짜넣어 발그족족 물들인 시심.한국사람이면 그 향기에 취한다.◆그 다음을 잇는 것이 「서시」(윤동주),「님의 침묵(한용운),「사슴」(노천명)의 순.그 또한 심금을 울리는 시들이다.그런데…,어찧다 「영변의 핵」이 시심에 흠집을 내고 있는 것인고.
  • 초중고 53%가 도서관 없다/열람석 1백석이 대부분/교육부 조사

    ◎장서도 학생 1명당 3권뿐 전국 초·중·고교중 도서관을 갖고 있는 학교가 절반도 되지 않아 도서관 건립이 시급한 실정이다. 학교도서관의 보유서적도 학생 1인당 3권밖에 되지 않아 도서관 신축과 함께 장서확충도 절실한 것으로 밝혀졌다. 17일 교육부가 집계한 「학교도서관 및 보유도서현황」에 따르면 전국의 1만3백96개 초·중·고교중 도서관을 갖고 있는 학교는 47%에 불과한 4천8백93교밖에 되지 않고 열람석도 1백석 규모가 대부분이어서 도서관당 학생수는 1천8백81명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도서관당 학생수는 스웨덴의 2백21명(84년기준)의 8.5배,미국 4백44명(88년기준)의 4.3배,일본 5백34명(87년기준)의 3.4배에 해당하는 것으로 브라질의 2천1백4명(84년기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또 학생들이 학교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보유서적도 학생 1인당 3권꼴로 스웨덴의 34권,미국의 18권,일본의 14권등에 비해 적은 것으로 밝혀졌다. 학생 1인당 보유서적을 학교별로보면 국민학교가 3.4권,중학교 2.7권,고등학교 3.7권으로 독서욕구가 가장 강한 중학생이 책을 빌려보기가 더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독서교육시설의 부족은 전인교육의 밑거름이 되는 독서교육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도서관련 예산은 해마다 교육 총예산(92년도 8조2천억원)의 0.066%(92년도 58억원)에 불과해 획기적인 대책마련이 없는한 개선될 수 없다는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교육부 한 관계자는 『창의력과 탐구력 계발을 교육목표로 개편된 새 교육과정(95학년도 적용)과 통합교과 과정에서 출제되는 94학년도 새 대학입시의 수학능력시험 준비과정에서 큰 차질이 예상된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학교도서관의 보유서적을 늘리기 위해서는 ▲출판사로부터 재고도서를 기증 받는 방법 ▲선배나 동창회 등의 협조로 문고를 설치하는 방법 ▲낙도·벽지어린이들에게 도서보내기운동 등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마라톤의 빛나는 금자탑(사설)

    얼마나 장하고 통쾌한 일인가.황영조선수가 두손을 번쩍들고 테이프를 끊는순간,7만여관중은 모두 일어서 박수를 보냈고 밤잠을 설쳐가며 이 모습을 지켜본 우리국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렸다.한국의 남자 마라톤이 드디어 세계를 제패한 것이다.올해 22살의 이 자랑스런 한국의 아들은 일본선수와 종반까지 치열한 선두 레이스를 펼치다 막바지 고비에서 앞으로 뛰쳐나갔고 그 여세를 몰아 힘차게 질주,금메달고지를 정복했다. 36년 베를린올림픽마라톤에서 손기정선수가 우승한 이후 한국인으로는 두번째의 금메달리스트이며 태극기를 달고는 처음으로 올림픽을 제패한 영광의 주인공이다. 손기정선수는 세계 신기록을 세우면서 당당하게 우승했지만 일장기를 가슴에 달았었고 이 때문에 당시 2천만 우리겨레는 나라 잃은 슬픔에 가슴을 쳐야 했다.한국은 광복이후 48년 런던대회부터 태극기를 앞세우고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마라톤에서는 단 하나의 메달도 따내지 못했다.이같은 한을 황영조선수는 말끔하게 씻어 주었다.그러나 황영조의 승리는 그만의 영광이아니다. 우리국민 모두의 것이며 우리 민족의 저력이 상징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생각한다.우리사회는 지금 정치·경제·사회 각분야에서 자학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모든 면에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국민정서가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이것을 외국언론들은 「사치한 불평」이라고 지적하면서 의아해하고 있다. 그런의미에서 마라톤금메달은 귀중한 교훈이 되어야 한다.단순한 스포츠의 승리가 아니라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출이며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밝은 앞날을 비쳐주는 조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모두가 값진 것이지만 마라톤금메달은 그중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다.올림픽자체가 마라톤에서 시작됐고 인간능력의 한계에 도전하는 가장 힘든 경기이기 때문이다.그래서 마라톤을 「올림픽의 꽃」이라고 부른다. 이 경기는 자만이나 방심을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또 조그마한 실수도 용서받지 못한다.끊임없는 노력,엄격한 자기통제,한순간도 흐트러지지않는 페이스조절,절대절명의 위기를 이겨내는 불같은 투지가 일치되어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황영조선수는 이 모든 것을 해냈기 때문에 정상에 올랐다.그러나 그 승리의 뒤안길에는 동료선수들의 숨은 공이 있었다.무리한 페이스인줄 잘 알면서도 일본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앞서 달리다 뒤로 처진 김완기선수와 김재용선수의 희생정신이 승리의 밑거름이 된 것이다. 마라톤을 끝으로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막을 내렸다.이제 우리는 마라톤의 승전보와 더불어 조용히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같다.현실에 대한 불만보다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되찾아야 한다. 마라톤금메달의 교훈이 우리사회전체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국민 모두가 자긍심을 갖고 확인된 저력을 고양시켜나가야 할 것이다.
  • 노태우대통령시대의 한국민주주의/카네기위원회 학술회의 중계

    ◎「6·29선언」으로 민주화길 열고 한반도통일의 디딤돌 놓다/권위주의 청산… 언론자유 급신장/여당사상 첫 후보경선,정치발전 기틀 마련/자율·개방화 촉진… 경제내실 다져/고임·고물가,시장원리 따른 불가피한 진통 미국의 권위있는 「윤리와 국제문제에 관한 카네기위원회」(회장 로버트 J 마이어스)가 「노태우대통령 시대의 한국민주주의」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22일 뉴욕 맨해턴의 메릴하우스에서 열린 이 학술회의에는 미국측에서 제임스 릴리 미국방부 안보담당차관보와 학계의 데이비드 I 스타인 버그 조지타운대 교수등 한국문제를 다루는 주요 인사들이 다수 참석했으며 한국측에서는 유종하 주유엔대사와 김달중 연세대교수 한승수 전상공장관등이 참가했다.상오 9시부터 하오6시까지 계속된 이날 학술회의는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에 자유민주주의 제도를 뿌리내리게한 확실한 업적을 남겼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그의 공적을 한국의 정치발전사에 길이 남게 될것이라고 평가했다.이날 주제발표를 한 주요 인사들의 발표요지를 정리해 본다. ○한국민주발전의 역사적 고찰 ◇개스턴 J시거(조지 워싱턴대 아시아연구특별교수·전미국무부차관보)=전통적으로 우호관계를 유지해온 한미관계는 1987년 이후 보다 더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다.그것은 6·29선언 이후 미국이 그동안 기대해 왔던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착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87년초 당시 미국무부 차관보로서 한국과 관련해 나의 관심은 북한으로부터 위협이 있는한 미국의 대한방위공약은 확고하다는 점과 87년 말로 예정된 대통령선거가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져서 한국에 문민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점을 확실히 해 두는 것이었다. 곧이어 본인은 한국을 방문하게 됐는데 서울에 머무는 동안 당시 노태우후보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때 본인은 노후보가 민주화의 필요성에 확신을 갖고 있는 훌륭한 지도자라는 강력한 인상을 받았다. 한국은 경제적 기적에 이어 정치적 기적을 이루어 낸 보기 드문 나라중 하나다.그러나 경제적 기적에서 정치적 기적을 성취해 내는 과정에서 획기적 계기는 6·29선언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인권문제에 눈부신 개선이 있었고 언론의 자유가 만개했다.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중 가장 기억해야 할것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던 고르바초프 당시 소연방 대통령과 가진 한소정상회담이다.소연방이 지금 붕괴됐다고 해도 이 한소정상회담이 남긴 역사적 의미는 잊혀져서는 안될 것이다. 지난 5년간 노대통령 지도 아래 추진된 한국에서의 민주화 경험은 민주주의가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한국민주화 장래 ◇로버트 J 마이어스(카네기위원회 회장)=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4월18일자 사설에서 『임기를 몇달 남겨놓고 있는 노태우대통령은 이제 그가 추진한 한국의 민주화 작업을 마무리할 더없는 기회를 맞고 있다.재선을 추구할 수 없는 노대통령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해 정부를 이양하고 남북통일을 향한 길목을 열었다는 점만으로도 이미 한국역사상 보기 드문 위치를 확보했다』고 논평했다. 이 사설이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노대통령이 한국의 민주발전과 남북통일에 하나의 커다란 표석을 세웠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그가 이룩한 업적과 그가 잡은 역사의 방향은 앞으로도 한국의 정치발전 과정에 계속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지금 사회전반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듯하다.급속한 자유화와 개방의 물결 속에서 얼마간 혼란을 겪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경쟁국가들로부터 이례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는 계속될 것이고 경제적 어려움도 끝내는 한국인 스스로 극복하고 말 것으로 확신한다. 세계의 지도자들은 잘한 일이거나 못한 일이거나 간에 그들이 이룩한 한 두가지의 업적으로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된다.장개석은 국민당 기치아래 중국을 통일한 업적으로,모택동은 똑 같은 땅덩이 위에 사회주의 국가를 세운 것으로,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동서독을 통일한 공로자로 역사의 평가를 받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노대통령은 한국의 역사 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인물로 역사의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그의 6·29선언은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속도로 한국이 민주화를 이룩하는데 공헌했다.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을 해낸 적절한 인물이다. ○오늘의 한국민주주의 ◇데이비드 I스타인버그(조지타운대 교수)=1987년 6·29선언은 한국정치사에서 매우 중요한 결정적 변화를 가져 오게한 이른바 「노태우시대」의 시작이다. 6·29선언은 한국의 정치자유화를 촉진시킨 결정적 요인 이었을뿐 아니라 당시 거리에 즐비했던 젊은이들의 데모사태를 잠재우게 한 정치인으로서의 일대 결단이었다.또한 이 선언은 전통적으로 타협을 경멸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사회에서 타협을 통한 위대한 결단이었다고 말할수 있다. 한국은 여러면에서 민주화를 향한 중요한 발전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최근 행정부로부터 사법부가 독립하고 있다는 징후가 눈에 띄고 있다.또 여당이 국회에서 과반수선을 유지하면서 국회가 참으로 정치의 무대가 될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는 높은 교육열로 정치의 유동성이 크게 높아졌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일부에서는 노대통령에게 강력한 지도력을 주문했지만 노대통령이 만일 그랬었다면 그는 또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그의 인내심은 한국의 민주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공화국하에 한국민주주의 ◇김달중(연세대교수)=6·29선언이 한국민주화에 남긴 가장 큰 성과는 우리 헌정사에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또 하나의 공적은 6·29선언이 권력을 종적인 구조로부터 횡적인 분산구조로 변화시켰다. 이를 통해 사회의 자율화와 개방화가 촉진됐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한국민주화의 가장 대표적인 것중의 하나는 언론의 자유라 할 수 있다.지금 한국언론에서는 세칭 「성역」이란게 없어졌다.대통령이 거침없이 비판되고 심지어는 만화에서까지 희화화 되고 있다. 사법제도에 개혁이 있었고 개인의 권리보호를 위한 각종 법률이 개정됐다.정치의 자유화와 사회의 다양화는 제6공화국 시대에서 이룩된 가장 큰 발전이다. 그러나 아직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무엇보다 정당의 비민주적 운영은 앞으로 개선 돼야할 대단히 중요한 부문으로 남아 있다.정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는 집권당인 민자당만이 아니라 야당인 민주당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과거와 달라진 것중 하나는 민자당이 사상 처음으로 지난 4월 당의 대통령후보를 당내 경선을 통해 선출해 냈다는 사실이다.이종찬후보가 경선사퇴를 선언하긴 했지만 민자당의 이번 시도는 당내 민주화에 하나의 큰 발전으로 평가될 수 있다.검찰과 경찰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하는 문제도 남은 과제이다.더 넓게는 교육분야와 민간경제 분야에서의 자율화 촉진도 중요한 일이다. 지난 5년동안 노정부는 권위주의 잔재를 없애는 일뿐 아니라 경제적 진전과 함께 정치적 발전을 이룩하는 공적을 남겼다. 전통적으로 상황이 달라 비교가 적절치는 않지만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추진된 필리핀과 한국에서의 결과는 사뭇 다르다.아키노 정권의 민주개혁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아키노정권을 이어받아 새로 대통령이 된 라모스는 앞으로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계속 도전을 받을 것이 확실하지만 노대통령은 민주개혁과 통일문제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기고 청와대를 떠나게 됐다. ○민주·경제발전의 역사적조망 ◇한승수(전 상공장관)=6·29선언이후 자유화 개방화 조치는 경제부문에서도 노조설립,민간부문의 자율화,대외개방을 이루었고 저임금,자원집중관리,수출드라이브정책에 큰 변화를 초래했다. 고임금 고소비 현상으로 인한 물가인상,무역적자로 한국경제 전도에 우려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크게 보아서는 자유경제의 기본질서인 시장원리로의 복귀에 따른 불가피한 고통이라고 본다.이것은 6·29선언이 민주화를 이뤄 정치적 내실을 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과 같이 경제적인 면에서도 내실을 다져 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 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로버트 원(미 한국경제연구소 회장)=노태우대통령의 성공은 그동안 한국이 성취한 경제발전이 밑거름이 됐다. 산업화는 무엇보다 통신시설의 확대,지식의 보급,도시화,사회안정 그리고 중산층의 확대라는 결과를 초래했다.이런 것들은 모두 민주정부를 지지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한 예로 한국의 전화보급률은 지난 10년동안 4배나 증가했는데 이는 국민상호간 정보교환을 돕고 정치조직망을 형성하게 했다.이것들이 바로 권위주의의 붕괴를 유도하고 민주화를 촉진했다. 사회의 민주화가 단기적으로 보면 적어도 경제면에서는 비효율적으로 작용 할수도 있다.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민주화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지역내 지도적 국가가 됐으며 세계무역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확보했다.더 나아가 한국은 국제적으로도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88년의 올림픽유치가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민주국가와 산업국가를 동시에 성취하는데 상호작용을 해왔다.거듭 말하지만 한국의 성공적인 변화는 앞서 지적한 전제조건들의 성숙에서 힘입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정부는 경제개발 6차5개년계획을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 상당부분 수정한바 있다.92∼96년간에 걸쳐 추진될 7차5개년계획은 점증하는 사회 경제적 요구와 민주화를 위해 더 많은 것을 고려하고 있다. 비록 어려움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노정부 5년동안의 시책은 한국이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가는데 의문의 여지없이 크게 공헌했다.
  • 서울대 증축공사장 식당아줌마의“큰뜻”/대학발전기금 500만원 기탁

    ◎조연희여사/“기초과학 잘 모르지만 「기초」 튼튼히 하고자…”/부군 사업실패뒤 온갖 궂은일/“서울대서 번돈 서울대에 쓸뿐”/두아들 대학 못보낸 한 푼듯 눈물 온갖 풍상을 겪으며 억척스럽게 살아온 50대여인이 공사판에서 인부들을 상대로 밥을 해주며 어렵사리 모아온 5백만원의 거금을 대학발전 기금으로 내놓았다. 서울대 정밀기계 설계연구소 신축공사장에서 인부식당을 운영하는 조연희씨(56·관악구 신림10동328)이다. 9일 하오 4시 서울대 총장실에서 김종운총장에게 지난해 9월부터 식당을 운영하며 한푼 두푼 모아온 5백만원의 수익금 전액을 기초과학지원을 위한 대학발전 기금으로 전달한 조씨는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오히려 쑥스러워 했다. 『무어 그리 대단한 일인가요.서울대에서 번 돈을 서울대에 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조씨는 이같은 말만을 되풀이해 오히려 보는 이들을 더 크게 감동시켰다. 조씨가 서울대에 기금을 내기로 마음먹은 것은 지난달 중순. 지난해 9월부터 서울대 신축공사장에서 30여명의 인부들과 교직원등을 위해 허름한 판자집 식당에서 식사와 막걸리 등을 판매하면서 교직원 등으로부터 서울대가 의외로 기초과학 육성기금조성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어깨너머로 들으면서부터였다. 『건설현장에서 기초가 튼튼해야 공사가 잘되는 것을 많이 보아 왔어요.무식한 아낙네가 기초과학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만 저의 조그만 보탬이 대학발전의 기초가 되는 곳에 쓰였으면 좋겠어요』 조씨가 이날 내놓은 5백만원은 부자들에게는 하잘것없는 액수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참으로 남모르는 고통과 한이 서려있는 돈이다. 조씨는 지난 89년까지만해도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조그만 식품가게를 운영하며 공무원인 남편과 슬하의 5남매와 함께 단란한 가정을 꾸며왔다. 그러나 남편이 사업에 손을 댔다가 실패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버린뒤 신림동의 자그마한 전세방에서 시어머니와 5남매를 혼자 부양해야만 했다.하루하루 끼니를 잇기 위해 파출부며 봉제공장일·봉투붙이기등 온갖 궂은 일을 닥치는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어려운 생활때문에 결국 식당일을 돕고있는 두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못한 한도 안아야 했다.그래서 조씨는 이날 『비록 몇푼 안되는 돈이지만 훌륭한 인재들을 길러내는데 보탬이 된다면 내자식이 잘된 것같은 위안으로 삼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기금을 전달받은 김종운총장은 『조씨의 정성은 수십억원을 기증한 어느 부자의 마음보다 값진 것』이라면서 『조씨의 조그만 정성이 우리나라 대학 기초과학육성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거듭거듭 고마워 했다. 조씨는 이 일말고도 그동안 서울 노량진,수색지역및 경기도 안양에 사는 무의탁 할머니 3명을 부모처럼 모시며 달마다 찾아가 연탄과 쌀을 사드리는 등 보이지 않는 선행도 베풀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 교수들이 마련한 「제자의 날」/박희순기자 사회1부(현장)

    ◎「스승의 날」 화답행사로 가슴 열어 『스승과 제자와의 관계를 장기판에 비유하면 장군과 멍군과같은 사이로 볼수 있지요.서로를 확인하는 가운데 발전적인 방향을 모색할수 있다는 뜻입니다』 『선생님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데는 저희들의 편협된 아집이 크게 작용한것 같습니다』 5일하오 5시 한국외국어대 교직원식당. 1백여평 남짓한 식당에는 방금 강의를 마치고 나온 이 대학행정학과교수 6명과 학생등 1백여명이 모처럼 마음의 벽을 터놓고 사제의 정을 나누었다. 행정학과 교수들이 해마다 학생들의 주관으로 열려온 「스승의날」행사와 사은회등 크고 작은 자리에 보답하는 뜻으로 준비한 「제자의 날」행사였다. 『인간적인 교분을 쌓는데뿐만 아니라 평소 행동에 있어서도 모범적인 학생이 되어달라』고 당부하는 안병만교수의 인사말에 이어 『교수와 학생의 관계가 순수한 사제관계가 아닌 거래관계로 보이는 것이 우리교육의 풍토』라면서 『스승은 제자에게 애정을 갖고 가르치고 제자는 스승을 섬기는 이같은 행사가 우리사회 전체에확산되기를 바란다』는 나충수과회장의 답사가 끝나자 우뢰같은 박수와 함께 환호성이 식당안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주머니를 털어 준비한 맥주와 수박등을 들면서 넌센스 퀴즈등이 이어지는 행사에 열중했다. 평소 애지중지해온 만년필 넥타이 선글라스등을 경품으로 내놓았고 이행사에 맞춰 지난 1년동안 틈틈이 공동집필하거나 번역한 저서와 역서등도 학과문고로 기증했다. 성주풀이,뱃노래등으로 이어지는 「얼소리」서클단원의 흥겨운 민요가락이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행사는 절정을 이루었다. 이마와 콧등에 땀방울이 맺힌 송휘섭군(2년)은 『과별체육대회나 동문의 밤등 그동안 참여했던 행사등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았다』면서 『오늘 모임이 교수님들과 학생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을 어느정도 허무는 계기가 된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김인철교수는『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학생들과 원칙론을 강조하는 교수들이 흉금을 터놓을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도 뜻이 깊다』면서 오늘의 조그만 모임이 인간적인 사제관계를 정립하는 밑거름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 초선의원들의 신선한 다짐/양승현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고향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3채나 되는 부호네 장손이 국회의원에 출마했다.그러나 주위의 기대도 아랑곳없이 두차례나 내리 낙선했다.떨어질때마다 열두칸집 주인은 다른사람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동네 어른들이 이런 얘기를 했다.『뭐 당선만 되면 되찾을수 있을텐데…』 국회의원에 대한 기자의 인식은 「돈을 많이 벌수 있는 화려한 사람」으로 출발했다. 그로부터 꼭 30년이 지난 엊그제 「정치와 검은돈」­그 유착관계를 끊겠다는 초선의원들의 결의가 있었다. 민주당의 재야출신 초선의원 12명이 3일 국회에서 깨끗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 조성을 위한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다. 당선만 되면 팔아치운 집까지 보란듯이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선량에 대한 그 희미한 기억으로는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다.더구나 13대국회는 수서비리,뇌물외유,뇌물수수등으로 크게 어지러웠고 국민들의 실망도 어느때보다 컸던 사실에 비춰보면 「정치도 후퇴만 하는 것은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갖게 했다. 사실 낙선해 패가망신한 선량 후보도 수없이 보아왔지만,금배지를 단뒤 고급승용차에 비서를 대동하고 지역구를 누비는 국회의원도 많이 보아왔던게 그 동안의 정치현실이었다. 국회의원은 화려함과는 달리 본봉과 수당을 합친 세비 3백67만원에다 본봉을 기준으로 한 7백50%의 보너스,그리고 약간의 후원회비가 고작이다.여기에서 세금,연금,국회내 경조사비를 빼고나면 연간 순수입은 약 4천5백만원쯤 된다는 게 초선의원들의 설명이다. 이 정도의 수입을 가지고 각종 경조사에 화환과 금일봉을 전달하고 달력·연하장을 돌린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도 모두들 그렇게 해왔다. 그러기에 이번 초선의원들의 자정 결의가 새로움을 더해준다. 그러나 이들이 결의문에서도 밝혔듯이 국민의 이해와 적극적인 협조없이는 불가능하다.아직도 의원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당연하다는 유권자들의 관행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같은 결의를 한 것은 큰 용기라고 볼 수 있다. 결과가 드러나게될 4년뒤 국민의 현명한 선택과 모처럼의 「신풍」이 모든 의원들에게 확산돼 정치개혁의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우리사회 전체의 도덕성회복의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 당정비 주내 완료… 대선장정 “시동”

    ◎민자,체제 어떻게 강화하고 있나/무소속영입 곧 매듭… 개원협상 채비/“이번 대선은 정책싸움”… 민생정책 개발 역점/JC문제는 상황따라 세갈래 대응 여야가 모두 대통령후보를 확정하고 후보 체제로 당을 전환함에 따라 대선정국을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있다. 민자당은 김영삼대통령후보를 선출한 이후 즉시 당4역을 교체한데 이어 27일에는 중하위당직 인선을 마무리지을 계획이다. 또 이번주내 무소속 영입작업의 마무리및 국회직인선까지 완료,체제를 완전 정비한 상태에서 개원국회에 대비할 예정이다. 이같이 민자당이 당체제 정비를 서두르고 있는것은 명실상부하게 개원국회에서의 여야대화를 주도하고 이를 대선정국에까지 이어나가겠다는 전략에 기인하고 있다. 민자당은 14대국회초반과 대선정국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당내결속을 통한 체제정비가 최우선과제라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민자당은 대통령후보 경선과정에서 흐트러진 당전열을 재정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활발한 민생정책을 개발·보완해 정권재창출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현재 민자당이 우선적으로 역점을 두고 있는 대목은 당내화합을 통한 체제정비이다. 이미 민자당은 범여권결속작업을 가시화한데 이어 당4역의 조기 인선을 통해 당내결속의 일단을 표출했다. 김영삼대통령후보 체제로 전환한 이래 최초의 고위당직인사는 서울을 대표하는 김영구사무총장,대구·경북의 김용태원내총무,호남의 황인성정책위의장을 기용함으로써 명실공히 계파를 초월하고 지역적편차를 해소하려는 노력을 보인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공화계출신의 김용채의원을 정무제1장관에 발탁함으로써 인선에 있어서도 더이상 계파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당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27일 있을 중하위당직인선과 관련해서도 김사무총장은 『이제 당내 계파가 없어진 만큼 인물위주·능력위주의 인사가 기용될 것』이라고 밝혀 민자당이 고질적인 당내계파지분 싸움에서 탈피했음을 입증했다. 김사무총장은 또 경선과정에서 빚어진 당사무처요원들의 균열해소책과 관련해서도 『사무처요원들이 계파적갈등과 전국구 배정소외등불만이 많았던 사실을 인정한다』면서 『사무처 분위기쇄신과 처우개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함으로써 대선실무팀으로 전환될 사무처요원들의 단합을 유도해나가고 있다. 그러나 민자당의 체제정비와 당내결속과정에서의 가장큰 걸림돌은 경선에 나섰던 이종찬의원문제이다. 현재로선 무소속영입과 범여권결속작업과 함께 당의 화합을 위해서는 이의원문제도 대승적 차원에서 포용하자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이다. 이의원문제와 관련해서는 당지도부는 3가지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는것같다. 첫째는 이의원이 경선과정에 승복하고 당의 결속대열에 동참할 경우 포용한다는 것이다. 둘째,이의원이 새정치모임을 계속하며 당내 세확보를 병행하는 어정쩡한 태도를 보일 경우,당내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비해 이의원과 지지세력을 분리하는데 주력한다는 것이다.이미 이의원진영에 동참했던 박태준최고위원·박철언의원등이 경선에 승복하고 이의원과 제한적인 동지애를 나누고 있는 것은 이와관련한 주요변화로 볼수 있다. 셋째는 이의원이 적극적인 당내투쟁을 벌이며 폭탄선언등을 통해 해당행위를 계속할 경우 지체없이 당기위를 열어 조기에 제명조치,더이상 당이 후유증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여하튼 이의원 징계문제는 이의원자신의 선택에 달려있다는 것이 민자당지도부의 생각인듯 하다. 특히 민자당은 대선정국주도및 정권재창출을 위해서는 더이상 당이 당내갈등과 소모적인 정치적 이슈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민자당이 대통령후보 경선이 끝나자 마자 정부부처장과 당정책팀이 대규모 참석한 환경관련 당정회의를 개최한 것이나 두차례의 지방자치관련 당정회의를 주도한 것은 당이 민생정국을 주도하겠다는 뜻을 보여준 것이다. 민자당은 계속해서 교통문제·남북문제·물가 등 경제문제·치안문제 등 시급한 사안들에 대한 당정회의와 정책토론회등을 활발히 벌여 명실상부하게 일하는 정당의 모습으로 탈바꿈할 계획으로 있다. 민자당이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연기를 당정합의로 모색하고 있는 점도 정치공세에 휘말리지 않고 사회적 여건과 민생에바탕한 정국운영을 주도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 민자당은 당내결속·당체제정비→무소속대폭영입·원내안정세력확보→개원국회에서의 여야대화주도권확보→민생국회·민생정국으로의 전환→정책대결을 통해 대선정국에서 주도권을 잡고 정권재창출의 결의를 확고히 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여류시인 시집출간 바람/허순위·천양희씨등 5명 4월이후 잇따라

    ◎모두 90년대 시단주류인 내면시경향 보여 여성시인들의 시집출간이 잇따르고 있다.지난 4월부터 5월에 걸쳐 잇따라 나온 일군의 여성시인의 시집들은 가물었던 문학의 대지에 단비처럼 새로운 문학적 움을 싹틔우고 있다. 허순위씨(37)의 시집 「말라가는 희망」(고려원간)이 출간된 것을 필두로 4월에는 천양희씨(50)의 「하루치의 희망」(청하간),김추인씨(45)의 「벽으로부터의 외출」(둥지간)이 잇따라 선보였다.허수경(27)·이진명씨(37)도 5월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간)「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민음사간)등의 시집을 각각 펴낼 예정으로 있어 이같은 여성시인들의 시작업 「결실맺기」는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이미 출간됐거나 앞으로 출간될 이들 여성시인의 시집들은 90년대 들어 시단의 주요한 흐름인 내면화의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인간의 내면에 천착하는 이른바 「내면시」는 뚜렷한 표적을 잃고 방황하는 90년대 시단 현실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먼저 허수경의 「혼자 가는 먼 집」은 「내면화」라는 측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집이다.허씨는 88년 낸 첫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서 민중적 정서에 기대어 사회적 발언을 해온 민중시 계열의 시인군에 속했었다. 직접적인 대사회적 발언과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고독과 단절 등에 대한 개인적 자각을 기초로 사랑을 갈구하고 있는 이번 시집은 따라서 첫시집 이후 그의 내면화의 궤적을 충실히 담고 있는 기록인 셈이다.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불우」「상처」「슬픔」「세월」「사랑」같은 것들이다.이같은 단어들이 환기시키는 통속적 정서를 바탕으로 그는 한의 가락을 만들어 나가지만 끝내 통속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그가 실연당한 여자처럼 집요하게 찾아헤매는 「사랑」이란 기실은 어떤 사회적 희원이 치환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진명의 시집 「밤에 용서라는…」은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이라는 정조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허수경과는 대조적인 시세계를 일구어낸다.인간관계의 단절이나 삶의 고단함에서 연유된 분노와 절망에 대해 허씨가 소리쳐 갈구하는 「사랑」으로 대결하려 한다면 이씨는 그 분노와 절망을 자아의 내면으로 수렴하여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삭여내는 한층 내면화한 모습을 보여준다.결국 삶을 용서하고 포용하고 조용히 껴안음으로써 삶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그의 시들은 조용하고 깊은 내면화과정을 통해 종교적 경건성과 향기마저 획득하고 있다. 허순위씨의 「말라가는 희망」은 내면화의 심도가 다소 지나친 경우에 속한다.허순위씨의 시들은 육체적 상실의 이미지와 맞닿아 있으며 결핍과 어둠의 정서가 주조를 이룬다.자신의 육체의 소멸까지도 지향할 정도로 시인은 껍데기속으로 움츠러드는 달팽이처럼 세계와의 관련을 거부하고 있다.끝내 세계와의 화해적 모색에 이르지 못하는 그의 시들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시적 표출로 일관되고 있다. 천양희씨는 이번 시집 「하루치의 희망」을 개인의 문제를 사회의 문제로 확대하는 계기로 삼고있다. 그렇지만 관조하는 태도를 잃지 않으며 대상을 자신의 내면으로 끌어들여 세상과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고 있다. 김추인씨의 시집 「벽으로부터의 외출」은 이전 시와의 관련에서 보다 명백히 파악될 수 있다. 이번 시집에서는 이전 시집 「광화문 네거리는 안개주의보」에서 보였던 사회에 대한 일방적인 부정적 시선은 초극되고 있는데 이는 시인이 내면에 침잠하여 삶의 진실을 터득함으로써 자신을 비우는 삶의 방법을 체득한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 「백범암살 재조명」 계기 책출간·연구모임 잇따라

    ◎“친일청산” 학계논의 활발/친일파 인명사전·역사강좌 등장/“일시적관심 아닌 현대사정립 계기로” 지적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사건 배후에 친일경력을 지닌 지배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친일청산에 대해 학계는 물론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백범의 일생과 친일문제를 다룬 책들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있고 재야사학자 고 임종국씨가 정리한 친일관련자료집 「친일파 인명사전」「임종국전집」「친일파총사」등이 잇따라 발간될 예정이며 이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잡지가 발간되고 시민역사강좌가 열린다. 역사문제연구소(소장 이리화)는 오는 23일부터 6월4일까지 연구소 강연실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이라는 주제로 한국사교실를 개최한다.매주 목요일 하오 7시에 열리는 한국사교실은 모두 7차례에 걸쳐 친일파집단의 형태를 유형별로 나눠 대표적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오는 23일 서중석교수(성균관대)의 「친일파를 다시 본다­친일파·민족반역자에 대한 역사적 평가」라는 제목의 강의로 시작되는 이번 「친일파강좌」는 이리화소장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매국노의 오명­이완용·송병준」,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친일을 애국으로 착각한 지식인들­이광수·최남선」,박현채교수(조선대)의 「비행기를 헌납한 친일기업인들­박흥식·문명기」,미술평론가 윤범모씨의 「일제를 위해 붓을 잡은 화가들­김기창·김은호」,강정숙씨(영남대 강사)의 「이땅의 아들 딸을 전쟁터로 몰아낸 여성명사들­김활란·모윤숙」,그리고 방기중연구실장의「8·15이후의 친일파집단­이승만정권을 떠받친 경찰·관료·지식인들」순서로 진행된다. 서중석교수는 『근·현대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친일파의 문제를 항상 걸림돌이 되어왔다』고 전제하고 『해방을 맞은지도 반세기가 되어가는 시점에서 과거사에 대한 처벌보다는 잘잘못을 학문적으로 정확히 분석하고 특히 이들이 친일행위를 하게 된 동기와 배경및 구체적인 과정을 규명해내는 일은 현대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길』이라면서 이번강좌의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그동안 일본문제를 자주 다뤄온 격월간지 「순국」도 이와같은 맥락에서 3·4월호에 「한국현대사를 움직인 친일군상」이라는 특집을 실고 친일문인과 친일교육계인사,친일화가·음악가·영화인 그리고 언론인등으로 분야를 나눠 친일파문제를 다루고 있다. 지난 2월말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가 주최한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열린 3·1절기념학술심포지엄에서도 친일파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됐는데 이 자리에서 참석자들은 친일파문제를 비롯,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평화적 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는데 의견을 모으고 연구에 박차를 가할 것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친일파연구는 친일파의 대명사격인 이완용이라는 인물을 분석해놓은 논문 한편 없을 정도로 아직은 미진한 상태이다. 이에대해 서중석교수는 『현재 학계의 연구가 초보단계에 머물러있지만 관련자료도 풍부하고 연구의 필요성에 인식이 모아져 일단 연구만 시작되면 해방전후 우리 현대사에 대한 종합적인 연구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연구와 함께 최근 정신대문제와 MBC­TV에서 방영되고 있는 「분노의 왕국」등을 둘러싼 한일양국간의 외교적인 갈등,일본의 재무장·군사대국화의도의 표면화,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배후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등이 맞물리면서 고조된 친일파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은 일시적인 호기심의 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과거청산의 계기가 되어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 계간 「외국문학」,국내유입 1백돌 특집

    ◎“서구문학수용 창조의 밑거름돼야”/맹목적추종 말고 주체적으로 소화를/전문적 번역요원 양성도 시급한 과제 한국문학의 역사에서 외국문학의 존재는 무엇이었으며 바람직한 관계는 어떤 것인가. 서구문학이 국내에 이식된지 1세기가 다가오면서 국내에 서구문학을 소개하는데 활발한 역할을 해온 계간 「외국문학」이 외국문학수용의 역사와 문제점을 밝히는 특집 「돌이켜보는 외국문학과 우리 문화」를 마련,눈길을 끌고 있다. 이 특집에 실린 글 「외국문학의 수용과 수용」에서 박이문교수(포항공대)는 『싫건 좋건 지난 약 반세기 동안에 걸쳐 우리는 외국문학을 수용해왔으며 아직도 그러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밝히고 『우리가 외국문학에서 아직도 배울게 많은 이상 외국문학의 수용은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우리 고유한 문학작품의 창조와 독특한 문학이론 창조에 이바지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외국문학 수용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이를 받아들여 주체적으로 소화시키는 우리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 박교수는 외국문학을 올바로 수용할 수 있는 전제조건으로 우리의 주체를 확실히 의식하고 우리의 전통을 정확히 파악하는 작업과 외국문학을 우선 정확하게 이해하고 소개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이같은 시각에서 그는 정치적·이념적·민족주의적·문학적인 어떠한 근거에서건 외국문학에 대한 폐쇄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며 개방적 태도를 취함에 있어서는 외국문학을 단순히 소개·연구하는 「수용」의 차원이나 외국문학을 모방·주장하는 「수용」의 차원이 아닌 상황에 따라 외국문학을 적절히 원용하는 「수용」의 차원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편 우리의 서구문학수용과정이 수식화와 과학화라는 근대성의 획득·초극과 맥락을 일치함에 주목한 김윤식교수(서울대)는 「우리 근대문학연구의 한 방향성」이란 논문에서 임화에서 김동리·조연현에 이르는 문학론의 고찰을 통해 한국 근대문학사가 서구로부터 이식된 근대성을 초극하여 서서히 잃었던 주체를 회복해가는 과정임을 밝히고 있다. 한편 직접적인 외국문학의 번역수용작업에대해 고찰한 강두식교수(서울대)는 논문 「독일문학의 수용과 그 비판」에서 『우리가 반드시 수용할 필요를 느낄만한 중요한 외국문학작품들이 아직도 번역이 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그 원인으로 출판사의 얄팍한 이윤욕을 비롯,우리의 무계획한 외국문학수용태도,전문적인 번역자의 부족,출판인들의 전문가적 지식의 부족 등을 들었다.외국문학수용에 있어 외국어에 대한 깊은 소양뿐만 아니라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문학적인 자질을 갖춘 번역자가 요구된다는 강교수는 『번역가의 전문적인 양성과 그들의 전문적인 직능을 인정하고 대우하는 사회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 총선여파… 경제정책 혼선 우려/여세 부상에 경제부처·재계 촉각세워

    ◎“대재벌기업정책등 차질 예상”/경제부처/“국민당,현대 떠나 공당역할을”/재계 14대총선결과 일반적인 예상과는 달리 민자당이 과반의석 확보에 실패함에 따라 앞으로 경제운용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재벌·정당 역할구분 필요” ○…과천의 경제부처들은 총선이후 예상되는 정국의 불투명과 정치권 판도의 재편에 따라 정치권으로부터 새로운 요구분출 등으로 자칫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하거나 기존의 경제정책기조에 혼선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특히 이번 총선은 경제여건이 악화된 가운데 치러져 지난 4년간의 물가불안·주택가격상승·수출부진·국제수지적자 등의 경제현안들이 주요이슈로 부각됨에 따라 다가올 대선에 대비,이같은 경제현안에 대한 설득력 있는 처방을 제시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특히 국민당의 원내진출은 재벌의 정치참여라는 악선례를 남겼으며 앞으로 재벌과 정당간의 명확한 역할구분이 필요해졌다는 것이 경제부처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여신관리제도 등 재벌의 경제력집중 완화를 위한 각종 규제와 같은 대재벌기업정책의 집행에 상당한 차질이 예견된다』면서 『재무위나 경과위등 국회의 주요 경제관련 상임위에서도 재벌성토일변도인 종래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질것』이라고 전망했다. 과천청사 주변에는 민자당의 총선패배 원인이 경제실정에 있다는 지적이 제기됨에 따라 조만간 경제부처 장관들에 대한 개각이 있을 것이라는 풍문이 나돌아 주목되고 있다. ○다른 재벌도 연대가능성 ○…재계는 국민당의 급부상에 따른 손익계산이 분주하다.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단체와 재벌그룹들은 국민당의 원내교섭단체구성에 따라 앞으로 정부의 재벌에 대한 여신관리,업종전문화등의 제재조치가 누그러질 것이며 기업의 입장이 정책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성급한 예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기간중 현대측과 대립상을 노출했던 대우등 일부 재벌그룹들은 국민당의 세력확대에 따라 피해를 받게 될 가능성에 긴장하면서,국민당은 특정기업의 활동을 억제하는 사당이 아닌 올바른 공당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또한 국민당은 현대그룹과 관계를 끊고 공당으로서 정치에 전념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과 국민당은 분리되어야 한다』면서 『총선을 통해 분열된 재계가 단합해 경제난국을 해결하는 밑거름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주영씨의 정치참여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밝혔던 대우그룹의 한 관계자는 『국민당은 현대그룹과의 연결고리를 끊고 모든것을 공정하게 하는 올바른 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면서 『특정기업에 불이익을 준다면 공당으로 볼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그룹의 관계자도 『국민당이 현대그룹만을 생각한다면 다른 재벌그룹들이 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그룹선 안도의 한숨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이 기대이상의 의석을 차지하자 집중적인 지원에 나섰던 현대그룹 임직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향후 국민당과 현대그룹의 관계를 냉정하게 재정립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창업주의 정당이기 때문에 결사적으로 국민당을 지원했으나 이제는 국민당과 명확한 선을 긋고 기업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면서 『그러나 선거 분위기로 해이해진 임직원들이 제 자리를 찾으려면 다소 시간이 걸리지 않겠느냐』며 선거 후유증을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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