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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나무를 보며/안윤정 디자이너(굄돌)

    아이들이 늦었던 나는 욕심스럽게도 행복이라는 꿈나무를 세그루나 가졌다.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큰그루 한나는 톡톡 튀는 개성과 강한 자존심을 가졌으며 둘째그루 딸 리나는 미술을 전공하여 엄마와 같은 일을 하겠다고 자신하며 셋째 그루 한휘는 21세기 첨단과학자의 꿈을 꾼다.나는 나의 일과 함께 남편과 세그루의 꿈나무에게 필요한 양분과 밑거름을 공급하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그러나 우리가 자라던 시대와 지금은 교육환경도 사회환경도 가치관도 너무나 다르다. 우리는 열심히 하고 순종하는 것을 미덕으로 알았으나 지금 21세기 꿈나무들은 부모들의 특별한 교육열과 튀는 개성 때문에 이기심과 자만심에 도취되기 쉽다.우리의 꿈나무들은 지식에 못지않는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모든 사람들과의 교류를 편안하게 하기를 바란다.또한 사람이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 아닌 자연을 두려워하고 보호하여 생태계의 위협을 막는 의무를 지켜주기를 원한다. 그동안 너무나 이기적인 삶들이 자연을 이토록 황폐케 하지 않았나 생각되기 때문이다.우리의 꿈나무들은 너무나 빨리 변하는 시간에 서있다.그들이 보다 올바른 판단과 바른 가치관으로 곧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우리모두의 희망이며 거기에 중요한 것은 사랑과 봉사와 이해이다. 따라서 나는 더 큰 사랑과 봉사를 그들에게 실천하고 보여주어야 한다.일을 하는 엄마들은 더욱더 자녀에게 관심을 쏟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모자라는 부분이 있다.오늘도 바쁜 일정중에서 나의 작은 꿈나무들이 미래에 커다란 거목이 되기를 바라며 나자신이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야 할까 생각할때 숙연해지고 겸손히 기도하게 된다.우리가 이 세상에서 얻고 성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감사하고 사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미래의 꿈나무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 고속철 경주통과 문제점 없다/박유광 고속전철공단 이사장

    ◎형산강따라 건설하면 문화재 훼손 거의 안돼 오는 2002년이면 서울∼부산간을 2시간대에 주파하는 최고시속 3백㎞의 「탄환 열차」가 우리 국토를 한나절 생활권에서 반나절 시대로 바꿔 놓게 된다. 지난 70년 7월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돼 「하루 생활권 시대」가 열린지 30년만에 레일을 타고 달리는 시간의 혁명이 이룩되는 것이다. 한국고속철도건설공단은 예정대로 서울∼대전 구간이 오는 99년 우선 개통되면 고속철도의 안전성을 감안,평균시속 240㎞ 정도로 운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서울∼부산간 경부축은 우리나라 인구의 71%,국민총생산의 75%가 집결돼 있는 간선축이다.이러한 국토의 동맥이 최근 고속도로의 포화상태와 맞물려 수송지연으로 인한 연간 손실이 1조원을 넘어서고 있는게 현실이다. 경부고속철도의 건설은 바로 이러한 교통문제를 해소하고 경제의 밑거름이 될 물류비용을 최소화하여 수출주도형인 우리 경제의 산업경쟁력을 높이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 경주역사 문제를 두고 문화계 및 학계에서는 경주노선에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어 당초 계획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우선 현재 계획중인 경주노선과 역사 위치는 그동안 공청회,문화재 지표조사 등에서 나타난 것과 같이 경주지역의 문화재 훼손을 최소한으로 하고 오히려 문화재를 최대한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입지선정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둘째,경주지역의 문화재를 가장 많이 훼손하고 있는 기존의 국철 동해남부선(안압지,신문왕릉,사천왕사지 등 통과)을 경주 남산 앞으로 이전,고속철도 역사와 연계하려면 현 노선 외의 대안이 없다. 일제가 민족정기를 말살하고자 했던 신라통일의 호국사찰인 사천왕사를 복원하는 것은 단순한 경주시민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임무이며 지난번 중앙청 건물을 철거하기로 한 것과 똑같은 취지에서 국철의 이설작업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셋째,일부에서 주장하는 건천노선 대안은 환경영향평가,문화재 정밀조사,용지 보상,실시설계 등 최소 3년의 공기지연으로 이자부담만도 1조8천억원과 기타 운임손실 등 약 4조원의 추가자금 부담이 발생한다. 이것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거나 승객요금으로 전가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우게 된다. 넷째,이 노선은 동국대 옆의 3.5㎞ 지하터널 남쪽으로 형산강 서쪽의 제방을 따라가기 때문에 문화재 파손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북녘 들은 68년 경주시가 경지정리를 할 당시 문화재 발굴을 끝냈으며 발견된 유적·유물은 한점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뒷받침해준다.또 형산강변은 지형적으로 하천범람과 신라시대에 배가 드나들었을 정도로 방치된 땅이었기 때문에 문화재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섯째,장래 효율적인 수송체계를 위해 경주∼포항,경주∼울산간 철도의 복선전철화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때 경주역의 통합운영이 필수적인데 이를 위하여는 현노선과 역사위치가 최선의 대안이다. 현재 울산 100만,포항 50만,경주 28만 등 소위 환동해권의 인구는 약 300만명에 이르고 연간 경주관광객 670만을 포함한 환동해권 방문객은 1,600만명에 달하고 있다.또 경주경유 방침이 결정된 시점이 5년이 지났고 현 계획노선이 확정된지도 3년이 지나 철도건설을 위한 모든 준비가 완료단계에 와 있다.최근 정부방침으로 발표된 바와 같이 경주를 경유하되 문화재 보호를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여 빨리 건설작업이 진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최근의 아테네 중심부의 지하철 건설,92년 완공된 스페인 고속철도 건설 당시의 문화유적지인 코르도바 관통의 예에서 보듯이 이제는 매장 문화재를 묻힌 그대로 보존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발굴」「기록정리」「전시」하는 추세다.현재 계획된 노선은 문화재 훼손의 가능성이나 적극적인 문화재 보호면에서 최선의 대안이다.
  • 나웅배 부총리 제2차 「한중미래 포럼」 축사

    ◎“「한중 상생」은 동북아 번영의 원동력”/북한개방·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긴밀 협조를 나웅배 통일부총리는 22일 저녁 경주 힐튼호텔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중국인민외교학회가 공동으로 주관한 「제2차 한·중 미래 포럼」 개막리셉션에 참석,「동북아시아의 미래와 한·중관계」라는 주제로 축사를 했다.연설내용을 간추려본다. 오늘날 국제사회는 세계화의 조류속에서 정치·경제적인 대변혁의 물결을 타고 근본적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개방과 협력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거역하고서는 어느 국가도 생존 그 자체가 어렵게 된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이러한 변화속에서 동북아는 세계 어느지역보다도 큰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가장 역동적인 발전을 거듭함으로써 역사의 새로운 중심무대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역내 평화와 안정의 유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평화와 안정의 토대 없이는 무한경쟁에 따른 갈등과 긴장관계를 올바로 해소할 수 없으며,화해협력의 실현 가능성 또한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상황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등 동북아의 중심국가들에게 평화와 공동번영의 동북아를 함께 가꾸어 나가야 할 무거운 책임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아직도 냉전의 잔재가 청산되지 못한채,정세 또한 유동적이고 불투명한 것이 현실입니다. 특히 북한의 핵무기개발과 정전협정체제 무력화 기도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서,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어떠한 경우에도 반드시 저지되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정부는 북한 핵문제를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경주해 왔습니다. 우리 정부가 북한에 대한 경수로 건설을 지원하고 있는 것도 평화유지에 근본목적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대북 경수로 지원을 원만히 추진해 나감으로써 현재와 미래는 물론이고 북한의 과거 핵활동에 대한 투명성이 반드시 확보되도록 노력을 다해 나갈 것입니다. 나는 그간 중국을 비롯한 역내 국가들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하여 우리에게 보여준 지지와 협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함께 평화에 대한 또 하나의 도전은 지난 40여년간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시켜온 정전협정 체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평화에 대한 도전은 우리에게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한 새로운 평화체제 구축노력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노력의 일환으로 우리 정부는 금년 8·15광복 50주년 대통령 경축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기본원칙을 제시하였습니다. 첫째,한반도 평화체제 구축문제는 반드시 남북 당사자간에 협의·해결되어야 합니다. 둘째,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남북당사자간의 평화체제 구축노력에 대한 관련국가들의 협조와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셋째,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울 위해서는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비롯한 모든 남북간의 합의사항이 성실히 이행되어야 합니다. 북한은 현재 고립과 대결의 노선을 고수하느냐,아니면 개방과 협력의 세계조류에 동참하느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결코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는 것을 원치 않으며,오히려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동참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북한을 개방·개혁의 세계사적 흐름에 적극 동참해 나오도록 유도하는 일은 한반도에서 냉전의 잔재를 청산하고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같은 의지와 노력에 대한 역내 국가들,특히 중국의 아낌없는 지지와 협조가 동북아시아의 희망찬 미래 건설의 비전을 현실화시키는데 소중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중국은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우리와 두터운 역사적 유대관계를 맺어온 가장 가까운 「이웃사촌」입니다. 특히 지난 92년에 이루어진 한·중수교 이후 양국관계는 다방면에 걸쳐서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습니다.이제 한국은 중국의 6대 교역국이자,7번째 투자국이 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경제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의 증대는 사회·문화·교육분야의 교류협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경제의 세계화 추세와 아시아·태평양시대의 도래는 한·중간의 긴밀한 협력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습니다. 양국은 무한한 발전 잠재력과 함께 인력과 자원,자본과 기술,발전경험 등 모든 면에서 상호 보완적인 협력과 제휴를 통해 서로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해 3월말 김영삼대통령께서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강조하신 바 있듯이,서로 돕고 서로 보완해서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상생의 시대」를 활짝 열어나가야 합니다. 한·중간의 「상생관계」는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의 굳건한 기반이 될 것이며,나아가 새로운 태평양시대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 자전거 도둑(영화탄생 100년/감동의 명화)

    ◎고달픈 민중의 삶 생생히 묘사/출연자 전원 배우아닌 아마추어 이채 해거름의 러시아워로 어수선한 로마의 거리.노동자풍의 사나이가 힘 없이 걷고 있는 데 그 옆을 어린소년이 따르고 있다.아버지와 그의 아들이다.울먹이듯 찌푸리는 아버지의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는 소년의 눈빛에는 가눌 수 없는 안타까움이 서려있다.이윽고 부자간의 측은한 뒷모습은 귀가를 서두르는 사람들로 붐비는 황혼의 땅거미속으로 사라져간다. 이탈리아 네오 리얼리즘의 명작「자전거 도둑」(감독 비토리오 데 시카)의 라스트 신이다. 40여년전 피란지 부산의 한 극장에서 우연히 이 영화를 보게된 나는 화상이 사라지고 불이 켜진 다음에도 멍청하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내팽개치듯 구원 없는 암담한 현실에 전율적인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물론 내가 받은 충격은 이 마지막 장면만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영화의 이야기는 생계의 유일한 수단인 자전거를 도둑맞은 사나이가 끝내 남의 자전거를 훔치려다 붙잡히는 엄청난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 어설픈 도둑질이 곧 발각되어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갖은 수모를 겪는 사나이의 억울하고 분한 심정이 뼈저린 고통을 낳고,이내 암담한 절망감으로 이어지는 격정의 내면순환이 라스트 신에 응집돼 강렬한 충격을 안겨준 것이다. 오랜 실직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나이는 간신히 일자리를 얻게 되는 데 자전거를 갖는 것이 필수조건이었다.마누라는 집안의 침대시트를 모조리 걷어내 전당포에 맡기고 빚에 저당잡힌 자전거를 찾아온다.그러나 온 가족의 기쁨속에 일을 시작한 첫날 그 소중한 자전거를 도둑맞는다.사나이는 잃어버린 자전거를 찾아 미친듯이 거리 구석구석을 뒤지며 헤맨다.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은 이같이 단조롭고 절박한 과정을 아무런 보탬이나 주관적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 카메라의 눈을 통해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다만 전후 황폐한 로마의 거리표정과 고달픈 민중들의 삶의 현장이 생생하게 병행 묘사된다.현실의 한 단면이 아니라 현실이 빚는 총체적 상황속에서 개인이 대처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응시하는 네오 리얼리즘의 특징을 절묘하게 구상화시킨 작품이다.네오 리얼리즘의 지도자 추자레 자바티니가 각본을 썼고 출연자 모두 배우가 아닌 아마추어를 기용했다는 사실도 이 영화의 놓칠 수 없는 특색중 하나다. 돌이켜 보면 내가 최초로 쓴 영화에 관한 글은 「자전거 도둑」을 중심으로한 데 시카론이었다.내게 있어 「자전거 도둑」은 영화예술의 위대한 표현성에 눈뜨게 해준 스승 같은 영화다.
  • 담배 「조세주권」 7년만에 찾았다/한미 담배협상 타결의 함축

    ◎담배세제 권한 자율행사로 불평등 소지 없애/소비세 50% 인상 가능… 3년후엔 부가세 도입 담배의 조세주권이 7년만에 돌아왔다.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가서명된 한·미간 담배양해록 개정합의문은 그동안 담배소비세를 둘러싸고 벌여온 양국간 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담배의 조세주권을 한국이 갖기로」 결론지었다. 이번 양해록 개정협상은 조세주권 회복과 불평등조항 삭제 등 여러면에서 외교적 성과로 평가된다. 우선 담배정책을 변경할 때 일일이 미국과 협상을 해야했던 번거로움의 소지를 없애고,정부가 담배세제의 권한을 자율행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 담배양해록은 88년 우리가 대미흑자를 구가하던 시절,미국의 「강압」에 못이겨 체결한 불평등협약이다.말이 양해록이지 갑당 4백60원인 담배소비세뿐아니라 담배광고(잡지광고 연간 1백20회 제한)와 판매(담배견본판매 허용)정책까지 미국과 협의해야 하는 독소조항이 담겨있었다.미국산 담배를 국산과 동등대우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려해도 협상을 해야 했다. 이번협상으로 담배소비세를 내년부터 최고 50%까지(이후엔 자율인상) 올릴 수 있고,3년 뒤에는 부가가치세도 도입할 수 있게 됐다.기존 종량세에다 종가세(부가가치세)까지 붙일 수 있게 된 것이다.미국은 저급술과 저급담배의 유통방지 차원에서 종량세가 바람직하고,국제적인 추세라며 버텨 협상이 한때 결렬위기로까지 갔었다. 세계무역기구(WTO)정신에 따라 무차별원칙을 강조하는 쪽으로 골격이 잡힌 점도 성과다.담배광고나 판매규제를 내국민대우 범위에서 우리가 자율결정키로 한 것이 그것이다.따라서 미국산 담배도 9월1일부터 발효되는 국민건강증진법상의 광고 및 판촉규제를 받게 됐다. 이번 담배협상의 타결은 외교노력과 국민여론에 힘입은 바 크다.양해록이 독소조항을 담은 불평등 조약이라는 국내의 비판여론이 미국 조야에 전달됐고 외교채널을 통한 정부의 협상타결 촉구가 밑거름이 됐다.주한 레이니대사는 국내의 반미여론을 본국에 보고,국무부가 무역대표부(USTR)에 압력을 행사토록 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민건강증진법의 9월 발효라는 배수진에다 담배를 마약으로 규정한 클린턴의 「담배전쟁」도 타결에 물론 일조를 했다.그러나 정부가 담배관련 법령을 개정할 때 사전에 입법내용을 미국에 통보키로 한 것은 사전통지라는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미국의 새로운 정책개입으로 보여 「옥에 티」다. *용어해설:「양해록」(Record Of Understanding)은 이해당사국간 통상 차원의 합의로 국회비준의 절차를 거치진 않지만 외교적으론 합의내용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국회비준을 거쳐야 하는 국가간 협정보다 법적효력은 약하나 합의이행을 위한 약속이라는 점에서 구속력은 강하다.
  • 장백현의 아침(압록강 2천리:1)

    ◎백두산 병사봉 아래서 압록강 발원…/백두산 자락 오솔길엔 아픔드리 나무숲/상류에 163개 작은 섬… 92개는 북한 소유 서울신문은 광복 50주년을 맞아 압록강유역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 민족의 삶을 진솔하게 그린 「압록강 2천리」를 중국 연변 조선족 작가 유연산씨의 집필로 주 1회씩 연재합니다.서울신문 사진부 김명국기자와 동행한 작가는 민족의 개척정신이 면면히 이어진 이른바 서간도땅 압록강유역을 굽이굽이 누비면서 소수민족으로 살아온 동포들의 애환을 소설보다 흥미롭게 엮어나갈 것입니다.그리고 압록강의 대안북한땅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가지 못하는 산하의 모습과 북녘 사람들의 근황을 듣고 본대로 전할 예정입니다.특히 압록강유역은 고구려가 발흥한데 이어 발해가 기상을 떨친 우리 고대국가의 강역이었다는 점에서 역사기행 성격도 지닌 시리즈가 될 것입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정부 소재지 연길에서 장백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중국 동북의 대지를 박차고 막 솟아오른 8월의 태양과 동행한 버스가 백두산 자락이 드리우기 시작한 안도현 이도백하에 이르자 벌써 한낮이 기울었다.갑자기 해를 가린 아름드리 나무그늘로 하여 길은 저녁나절 처럼 어둠침침했다.백두산의 그 많은 나무 가운데 미인이라는 홍송과 백송,사시나무가 어우러진 산자락에는 만화방초가 피어났다. 여름날 백두산 숲길은 참으로 아름다웠다.얼마를 달렸을까,종종걸음을 치듯 골짜기를 흘러내려온 물이 신작로 곁을 따라 철철 넘치듯 모여들었다.압록강 윗물을 만난 것이다.불타는 석양이 미인송의 아름다운 자태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 해거름녘이었다.터덜거리는 버스가 달려 내려갈수록 물빛깔은 푸르름을 더했다.녹음이 짙을대로 한창 짙게 물들어버린 나무 그림자가 수면과 기묘하게 조화되었다. ○홍·백송 어우러 장관 그제서야 압록이라는 의미를 깊이 깨달았다.압록강의 물빛이 오리머리 빛과 같이 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수색여압연)란 말을….「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그리고 「사기」나 「한서를 보면 압록강을 패수,염난수,청수라고 불렀다.고구려에서는 청하라고도 했고 중국에선 얄루장으로 부른다.어떻든 이 국경의 강은 여러 이름을 가지고 있다. 장백조선족자치현의 현정부 소재지 장백진에는 좀 늦은 저녁시간에 도착했다.여관에서 저녁밥상을 물리고 미리 약속한 김학현(60)선생을 만났다.그는 길림성 장백조선족자치현 문화관장으로 근무중인데 변계조사조의 일원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그러니까 김선생은 중국과 북한 사이에 체결한 변계조약(변계조약·국경조약)에 따라 1963년에 실시한 경계조사에 참여했던 것이다. 국경에 관한 이야기를 밤이 늦도록 나누었다.그러나 백두산 천지 아래서부터 시작된 국경조사와 거기에 얽힌 사연은 다음기회로 미룰 수 밖에 없다.그 이유는 김선생의 말을 들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여름 장마로 길 끊겨 『백두산 국경비는 천지서남쪽 바로 아래에 있디요.맨 위에서 부터 일련번호를 매겨 내려오는데,1호가 3개,2호가 2개고 나머지 5호까지는 각각 1개씩을 세웠댔습니다.그러니끼리 모두 8개의 국경비가 있다 이 말입네다.그 국경비가 있는 백두산을 가자면 중국쪽 초소는 물론 조선(북한)쪽 초소도 지나가야 하디요.그런데 올 여름 장마에 길이 다가 떠내려가서리 지금은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이요.도로가 복구되면 안내할테니 좀 기다리시라요.실사구시라고 현장을 안보고 백두산 국경을 어떻게 쓰겠습네까?』 그래서 백두산 국경선 답사는 일단 뒤로 미루었다.자동차를 타지않고 높디높은 백두산,그것도 국경 고산지대를 도보로 등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김선생에게 뒷날 백두산 국경비답사에 동행해줄 것을 부탁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다.물길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장백진에 기왕 도착했으니 이곳에 우선 관심을 두기로 작정을 댄 것이다.올라가지 못할 나무 바라보지도 말라고 했던가.길이 떠내려가 못 오를 산을 포기하고 우선 이곳의 압록강 답사에 신경을 쏟기로 했다. 압록강은 널리 알려진대로 백두산 최고봉인 병사봉아래 남동쪽에서 발원한다.처음에는 작은 시냇물을 형성하여 흐르다가 가림천과 오시천이 합수하면서 물길이 넓어진다.그러니까 장백진은 물길이 넓어진 압록강변에 자리했다.압록강은 장백진을 지나면 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버린다.그러면서 얼마를 흐르면 수력발전으로 유명한 장진강과 허천강을 만나는 것이다. ○강넘어 북한땅 함남 장백진을 지나가는 압록강 길이는 2백57㎞에 이른다.6백리가 좀 넘는 길이인데,압록강 전체 길이의 3분의1에 약간 못미친다.변계조사에 참여한 김선생에 따르면 장백현을 통과하는 압록강 상류 수계에는 섬과 사주가 1백63개나 된다고 한다.그 가운데 중국에 들어온 것이 71개이고 나머지 92개는 북한에 귀속되었다는 것이다.이렇듯 수계를 통한 국경개념이 뚜렷해지면서 웃어넘길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는 것이 김선생의 귀띔이다. 『강에 있는 섬들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만들 때가 더러 있습네다.자기 나라 땅이거니 하고 무심히 발을 디뎠다가 기절초풍을 하는 수가 있디요.내 한족 친구 한 사람은 일생에 딱 한번 외국땅을 밟았는데 그것이 압록강 조선(북한)수계에 들어간 섬이었댔습니다.무심히 섬에 올랐더니 옥수수를 따던 조선사람들이 어서 돌아가라고 손짓발짓을 해서 도망쳐 나왔다고 합데다.국경은 그만큼 무서울 때가 있고,자칫 잘못하면 죄인이 되기도 하디요』 김선생과 밤 늦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그런데도 새벽에 해발 2백80m가 되는 탑산에 오를 요량으로 일찍 일어났다.탑산에 오르고 나서 장백현에서,아니 좀 더 시야를 넓히면 백두산에서 뜨는 아침해를 맞았다.새벽 어스름이 걷힌 압록강이 확연하게 시야로 들어왔다.그리고 강 건너로 옛 함경남도 땅인 북한의 양강도 혜산진시가지와 그 뒷산 멀리에 펼쳐진 개마고원의 옹기종기한 묏부리들이 보였다.
  • 중소기업 발전이 대기업 밑거름이다(사설)

    ◎김영삼 대통령의 재계 당부 영세개인사업자를 비롯한 중소기업 지원대책이 시급하다.이들 기업의 경영난은 날이 갈수록 심화돼 부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중소도시 상공업체의 어려움이 가중됨에 따라 지방경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기 자금및 인력난 심각해 올해 경제성장 전망치가 9%로 매우 높고 실업률도 가장 낮은 1.8%로 완전고용수준에 가까운 전반적인 호황의 그늘속에 주로 경공업분야인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이러한 경기의 양극화현상에 더해 요즘들어서는 4천억계좌설과 금융소득종합과세등의 영향으로 자금시장 경색기미가 보임에 따라 중소기업자금난은 더욱 심각해지고 연쇄부도와 파산이 잇따르고 있다.이미 올 상반기 6개월동안에 만도 6천5백60개업체가 폐업한 것으로 관계당국에 의해 집계됐으며 이는 지난 93년 한햇동안의 4천3백75개,94년 4천9백48개와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난 규모인 것이다. 때문에 김영삼 대통령이 9일 30대 재벌기업총수들과 오찬을 같이한 자리에서 중소기업에 대한 대기업의 지원 및 협력을 당부하고 중소기업지원 특별법의 제정을 경제부처에 지시한 것은 이들 기업이 처한 경제현실의 심각성을 더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특히 김대통령이 『기존의 정책이나 제도의 틀을 뛰어넘는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모든 정부기관은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우리 경제발전사에 신기원을 그을수 있을 정도의 실효성이 뚜렷한 방안을 기필코 마련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정부기관의 발상전환 필요 실제로 지금까지 수많은 중소기업지원대책이 선을 보였지만 이렇다 할 두드러진 성과를 나타낸 것은 드문 실정이다.더욱이 대기업들이 자율과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내세워 중소기업영역을 침범하는 사례가 많아졌고 대기업주도의 수입물량 급증으로 국내 중소기업들의 생산제품은 설땅을 잃어가는 추세에 있음을 지나쳐선 안될 것이다.게다가 인력 스카우트에 의한 구인난은 물론 어음결제기간의 장기화에 따른 자금난등 대기업 횡포나 비협력이 빚어내는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한두가지가 아닌 것이다. ○중기 튼튼해야 경제 자생력 따라서 우리는 지난날의 고도성장과정에서 많은 특혜를 받고 커온 대기업들이 그동안 상대적으로 소외돼온 중소기업에 대해 공존의식을 바탕으로 협력과 지원을 강화,전체국민경제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이 본분을 다하는 자세임을 강조한다.중소기업에 발행하는 어음결제기한을 크게 줄이는 한편 될수있는 한 현금·수표결제 비율을 늘려주도록 당부한다.중소기업이 국민경제의 기초가 되는 자생적 생산기반이며 이들이 활력을 유지해야만 대기업은 물론 전체산업이 급변하는 해외경제에 순발력 있게 대처하면서 세계화와 제2의 도약을 이뤄낼 수 있음을 대기업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또 중소기업의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특별기금의 설립이 필요함을 강조하며 이들 기업이 물품대전으로 받는 진성상업어음은 금융기관의 여신규제대상에서 제외시켜 운전자금조달이 쉬워지게끔 뒷받침해줄 것도 촉구한다.각종 부품등 자본재의 국산화를 통한 국제수지개선을 위해 이를 생산하는 중소기업에 기술개발 등의 각종 손비한도를 확대,비과세 범위를 넓혀주고 법인·소득세율을 인하하는 세제상 지원대책도 있어야 할 것이다. ○중기위한 특별기금 설립을 아울러 금융당국은 성장가능성이 있는 업체에 대해선 담보위주의 대출관행에서 벗어나 신용대출을 늘려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한 지역신용보증조합 등의 설립도 추진토록 촉구한다.인력난 해소를 위해 대도시 아파트형 공장건설을 통해 노령층과 주부인력을 활용하는 것도 생각해볼 대책인 것이다. 이와함께 우리는 정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으로 청(청)단위의 중소기업 전담기구 신설도 적극 검토해 볼 것을 정부측에 당부하고 싶다.
  • 「4천억 계좌」 내각차원 규명 주시/「비자금파문」처리 청와대입장

    ◎“조사 관여하면 「객관성 훼손」 초래” 우려/의혹불식 안될경우 정치적 대응 가능성 김영삼대통령은 여름 휴가에서 돌아와 정상집무를 시작한 7일 전직대통령의 비자금설 파문에 대해 일체 공식 언급을 않았다. 한 고위관계자는 『그 문제는 총리실이 주관해 정부차원에서 처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비자금설 파문의 담당 비서실이랄 수 있는 민정수석실은 김영수 수석과 몇몇 비서관이 이날부터 휴가에 들어갔다. 청와대가 비자금설 파문에서 한걸음 물러서 있는 모습을 보이는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국민 여론을 감안할때 정부 차원에서 확실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내각이 중심이 되어 검찰 등 「공신력있는 정부 기관」의 조사가 먼저 이루어진 뒤 정치적으로 추가 대응이 필요한지를 결정하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다. 정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청와대나 민자당이 끼어드는 것은 자칫 객관성을 훼손하는 것 아니냐는 인상을 줄 우려도 있다. 이홍구 국무총리도 이번 사태만큼은 내각이 책임지고 전말을 규명하겠다는 뜻을 청와대측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이와 관련,김대통령은 7일 상오 이총리로부터 신임총무처장관 임명제청을 받는 자리에서 비자금설 파문에 대한 정부의 종합대책도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청와대측이 내각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수방관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사태의 전말을 면밀히 검토하고 향후 파장을 분석하고 있다. 청와대는 기본적으로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의 비자금설 언급을 「실언」으로 파악하고 있다.저녁 술자리에서 『취중에라도 책임있는 각료로서 해서는 안될 말을 했다』는 것이다.그리고 일부 얘기는 와전되고 덧붙여져 보도돼 문제가 더욱 커졌다는 설명이다. 서전장관의 발언과 관련,최근 보도된 내용중 관심의 초점은 두 부분이다. 첫째는 서전장관이 4천억원 비자금의 실명화방안을 한이헌 경제수석과 추경석 국세청장에게 문의했는지 여부다. 한수석과 추청장은 『서전장관으로부터 그런 문의를 전혀 받은 바 없다』고 펄쩍 뛰고 있다.서전장관이 문제발언을 했던 주석에 있었던 기자들 사이에서도 명확히그런 발언이 있었는지에 대해 엇갈리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 과연 누가 서전장관에게 4천억 비자금설을 전했느냐는 부분도 관심거리다.만약 전직대통령의 핵심측근이라면 사안은 간단치 않다.비자금설이 사실일 개연성이 높아진다.그러나 서전장관과 가까운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서전장관에게 소문을 전한 이는 일반이 잘 모르는 기업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청와대측은 이러한 정황은 물론 비자금 존재여부까지도 내각 차원에서 철저히 규명되고 국민들에게 설득력있게 설명되길 바라고 있다.오는 10일 북경 남북당국자회담,8·15,8·25 등 중요 정치행사 일정들을 감안할 때도 파문의 조기수습이 바람직하다.문제는 아무리 애써 진상을 밝혀낸다 한들 사안의 성격상 국민들에게 한점의 의혹도 남기지 않는 수사나 진상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점이며 이것이 정부에 부담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검찰 「4천억 계좌설」조사 전망/“실명전환 타진 누가했나”관심의 초점/“시중의 루머 전달”진술땐 조사 난관에 검찰이 7일 전직대통령의 4천억원대 가·차명계좌 보유설에 대한 조사에 본격착수,조만간 진상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이 사건 조사기관으로 최종낙점된 것은 검찰과 함께 조사기관으로 거론돼온 감사원이나 은행감독원·국세청 등은 조사권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들 기관이 설령 조사결과를 발표한다 하더라도 검찰에 비해 「공신력」이 떨어지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검찰은 이날 하오까지만 해도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맡을 생각도 없고 상부로부터 그같은 방침을 통보받은 적도 없다』고 검찰수사설을 완강히 부인했다.이 때문에 검찰수사설을 흘린 총리실과 「힘겨루기」양상을 벌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날밤 안우만 법무부장관이 검찰에 조사를 지시함에 따라 검찰은 좋든 싫든 「뜨거운 감자」를 떠맡게 됐다. 검찰이 이번 사건에 유난히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은 조사결과 「득」보다 「실」이 훨씬 크다는 자체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우선 이번 조사가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이 사석에서 한 발언에 초점이 맞춰지는등 「해명성」조사에 그칠 공산이 큰데다 조사를 마치더라도 그대로 수그러들지 않고 「수사미흡」등을 들어 야권에서 재수사를 촉구하는 등 「여진」이 계속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검찰은 ▲서전장관의 발언경위 및 진위여부 ▲전직대통령의 가·차명계좌 보유여부 등 두 갈래 수사방향을 잡고 있다. 검찰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수사의 조기종결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서전장관이 파문직후 『단순한 시중루머를 술자리에서 말한 것에 불과하다』고 밝혔듯이 검찰에서도 똑같은 주장을 펼 경우 더 이상의 수사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검찰은 먼저 서전장관을 상대로 발언의 경위 및 진위여부를 캘 것으로 보인다.서전장관도 검찰수사에 협조할 의사를 이미 밝힌 바 있어 빠르면 8일중 그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서전장관이라기보다는 서전장관에게 4천억원대 가·차명계좌 보유설을 알려준 뒤 실명전환의사를 타진한 「제3의 인물」임에 틀림없다.그가 「누구」이냐에 따라 이 사건은「일파만파」의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제3의 인물이 전직대통령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의 인물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그가 시중에서 나도는 얘기를 재미삼아 서전장관에게 전달했다 하더라도 발언의 무게는 배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검찰은 이에 따라 「제3의 인물」을 찾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서전장관 주변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탐문수사도 병행할 방침이다. 검찰은 어쨌든 주사위가 던져진 만큼 한점 의혹없이 진상을 밝히겠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 ◎노 전대통령 발언 내용/“공인이 책임못질 말 해도 되나”/“아무리 잘참는 나지만 이번엔 안되겠다” 노태우 전대통령이 7일 하오 「전직대통령 4천억원 가·차명계좌설」에 대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노전대통령은 이날 하오 7시30분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특별강연차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기에 앞서 『있을 수 없는 명예훼손을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4천억원 비자금설을 부인하며 공개적으로 울분을 토했다.노전대통령은 귀빈실에서 강영훈·현승종 전국무총리,서동권 전안기부장,정해창 전대통령비서실장,김종인 전경제수석,이상희 전내무부장관,노건일 전교통부장관,정구영 전검찰총장등의 출영인사를 받는 자리에서 이같은 심경을 토로했다. 『구설수가 나돌아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고 말문을 연 노전대통령은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누구나 자유롭게 얘기할 수는 있으나 명색이 공인이 책임질 수 없는 얘기로 (남을) 상처내고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느냐』고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을 겨냥했다. 노전대통령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이 사태에 대해 꼭 (진상을) 밝혀야 하고 밝히겠다』는 대목에서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여러분도 아다시피 내가 재임때 얼마나 참았나.퇴임뒤에도 동네북처럼 얻어 맞으면서도 나라발전의 밑거름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다참았다.그러나 이런 고약한 일에는 세계에서 제일 잘 참는 나도 참을 수 없다』 그는 격앙된 목소리로 이번 비자금설 파문으로 자신의 명예가 더없이 손상됐음을 강조했다. 노전대통령은 이어『세상이 이렇게 시끄럽게 개인의 명예와 나라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면 누가 이익을 보겠는가』하고 반문한뒤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밖에 이익을 볼 사람이 없다』는 말로 인사말을 끝냈다. 보도진이 몇마디 질문을 하려 하자 노전대통령은 『내가 누구냐.어떻게 대통령이 되고 어떻게 퇴임했는데.나라망신을 당한 이런 일에 여러분은 기쁜가.누구라도 이런 소문으로 이렇게 되는건 창피스런 일이다』는 말로 질문을 막았다. 하와이에 머무는 기간인 8일은 김여사의 회갑이며 12일은 노전대통령의 64회 생일.노전대통령부부는 20일 귀국할 예정이다. ◎여 “진상 밝혀야”/야,국조 또 요구/「4천억 계좌」관련 「전직대통령 거액의 가·차명 은행계좌설」에 대해 야당이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하면서 국회 국정조사와 특별검사제 도입을 요구,여야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전직대통령 한명과 발언 당사자인 서석재 전총무처장관을 형사고발하고 장외투쟁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는등 대여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파문은 상당기간지속될 전망이다. 민자당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에서 『전직대통령들이 4천억원의 가·차명계좌를 갖고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저웁가 조속히 조사를 마무리,발언내용의 진위와 대리인의 존재여부 등에 대해 국민에게 진사을 밝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이에 비해 가칭 「새정치국민회의」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비자금관련 특별대책위를 열고 전직대통령의 한명과 서전장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뇜루수수)과 변호사법위반 혐의 등으로 각각 검찰에 고발하기로 햇다.아울러 검찰에 대해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에 데한 재수사를 요구했다. 민주당도 이날 총재단 회의를 열어 검찰수사와 국정조사권 발동을 거듭 촉구하고 이를 위해 가두집회 등 장외투쟁도 적극 추진하기로 했다.
  • 사라진 미풍양속(두만강 7백리:18)

    ◎홍살문 자리에 문혁열사 기념비가…/문혁이후­“토호열신 타도”… 사찰·성황당 등 불태워/「모택동 선집」·곡괭이·삽을 결혼예물로/개방바람 타고 최근 기우제·농악놀이 되살아나 두만강 양안 마을마다에는 혁명열사 및 혁명전적기념비가 전망좋은 자리에 서 있다.이와는 반대로 그 많고도 많았던 민족 전통풍물은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이를테면 혁명을 당해 사라진 것이다.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 혁명열사비는 제법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왜냐하면 일제가 조선민족의 혈맥을 끊는답시고 쇠말뚝을 박았던 산혈에 세웠기 때문이다.그러나 화룡시 노과진 죽림촌의 열사비는 자리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다.산언덕에 세운 이 기념비 자리는 본래가 마을 어귀에 있었던 홍살문 자리여서 찜찜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종교를 미신 행위로 이 홍살문은 마을 사람들이 고사를 지내는 한 처소였다고 한다.해마다 음력 10월 초순이면 찰떡을 메로 치고 돼지를 잡아 홍살문 앞에 한상 차려놓고 단군성인께 치성을 드렸다.다음해에도 제발 풍년이 들게해달라고 넙죽넙죽 절들을 했다.치성이 끝나면 제물을 집집이 나누어 창호지에 싸다가 곡식더미 속에 묻었다.그리고 나서 다음날에 가서야 음식을 먹었다. 그래서 홍살문에 얽힌 사연도 많다.한국전쟁 당시 강건너 북한에 사는 안흥국이라는 사람은 홍살문 치성에 참석했다가 떡을 가져다 볏가리에 묻어두었다.그날 마침 미군 비행기가 떼로 날아와 폭격을 해댔다.그 때 벽가리에도 폭탄 파편이 튀었는데,공교롭게도 찰떡에 파편이 박혀 화재를 면했다는 것이다.하지만 홍살문이 없어진지 이미 오래되었다.마을 노인들의 아쉬운 마음이야 아직도 남아있지만…. 노인들에게는 홍살문 뿐아니라 여러 가지의 민족풍속이 머릿속에 살아있다.그저 생생한 추억으로만 남은 민속을 놀아보지 못 하는 한을 오래도록 지닌 사람들이 오늘날 조선족 노인들이다.젊은이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되지 못하지만 노인들은 두고두고 말한다. 『어디 홍살문에만 제사했나….국사당에도 치성을 드렸다.가뭄이 들면 돼지잡아 피를 뿌리고 비를 달라고 기도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비가 안와도 기우제를 지내면 마음이 놓였다 이기야.기우제를 지낼때 과부들은 옷을 훌렁훌렁 벗어내치고 알몸에 물을 뿌리면서 통곡을 해댔디.더러워서라도 하늘이 비를 내릴 것이라고 기런거야』 민족들 가슴에 묻어온 수천년 전래의 풍속이 저의 다 없어졌다.세 차례 혁명에 철퇴를 너무도 세게 맞아 풍비박산이 났다.민족의 전통풍속은 1947년 이른바 토호열신을 타도하는 운동에서 첫뺨을 얻어 맞았다.오늘날 화룡시 덕화진 구역 선경대에는 1885년 하홍락 스님이 지은 절이 있었다.그 후에 불에 탄 것을 1940년 강원도에서 황정숙이라는 비구니가 불상과 종을 가지고 와 절을 복구하고 칠성사라고 불렀다.해마다 초파일이면 이웃 촌민들이 떡을 치고 감주를 빚어와 칠성사에서 불공을 드렸다. ○족보까지 태워 없애 그러다 1947년 정부가 불교를 미신행위로 몰아붙였다.그것도 반동적이라는 명목으로….그 때에 군중이 동원되어 절에 불을 질렀다.절간에서 쫓겨난 그 비구니 소식을 아는 사람은 없다.절의 종은 신흥동학교로 떼어가 오랫동안 학교종으로 썼다. 두만강연안의 수십개 마을을 편답하는 동안 용정시 삼합진 북흥촌에서 성황당 나무 두 그루를 보았다.1958년 반우파투쟁때 성황당 나무를 닥치는대로 잘라버린 터여서 그것은 참으로 요행이었다.원래는 마을에 네 그루였으나 허수라는 사람이 두 그루는 찍어다 화목으로 썼다.반우파투쟁 이후에 이 나무들에는 왼새끼나 창호지 가닥 대신에 포탄피가 매달렸다.종을 대신한 포탄피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으는데 이용되었다. 문화대혁명은 모든 전통을 더욱 깡그리 말살해버렸다.상두를 불살라 사람이 죽어서도 덜컹거리는 수레에 실려나갔다.닭을 풀어놓아 묘자리를 잡는 일도 어림없게 되었다.부자간에도 갈라져 「자산계급혈통론」이 나오고 족보까지 태우는 풍파가 일어났다.결혼 때 주고 받는 예단도 「모택동선집」이 제일이요,남자에게 주는 예물은 곡괭이나 삽이었다. 결혼식날 신부는 치마 저고리 대신에 당시 유행하던 군복을 입었다.잔칫상에 개떡이 올라 옛날 지주집 머슴 살던 때를 회상하기 일쑤였다.그래서 잔칫날 대성통곡하는 소리가 들렸다.어떤 신부는결혼식날 새벽에 망태에다 집징승 똥을 거름으로 담아왔대서 당원으로 발탁되었다.농악놀이에 돌리는 상모가 공산당 영도력을 부정하는 몸짓으로 해석되어 농악을 복고주위로 낙인 찍어버리기도 했다. 더욱 한심한 것은 친척관계가 엉망으로 변한 것이다.연변에서는 한 때 할아버지는 아바이,할머니는 아매로 불렀다.그러니 외가나 다른 노인들이라고 별수가 없어서 아바이와 아매로 통했다. 아버지 나이를 기준으로 백부는 맏아바이,백모는 맏아매였다.이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말하는 아바이·아매와 혼동을 가져왔다.또 아버지 나이를 기준으로 그 아래 친인척을 죄다 아주바이,아주머니로 호칭되었다.그러나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대로 둔 것을 보면 지금도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전통풍속이나 신앙을 뿌리째 말리지는 못했다.1958년 부동골에 극산병이 돌아다닐 때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쌀을 모아 떡을 치고 돼지를 잡아 치성을 올렸다.문화대혁명 당시 우리 고향 화룡시 서성진 북대촌에 투쟁을 맞은 비구니가 살았는데,어렸던 내가 아프기만 하면 어머니께서 그 비구니를 찾아가곤 했다는 것이다. ○정치투쟁에서 해방 개혁개방 이후는 구질구질한 정치투쟁에서 해방되어 이제 하고 싶은 일은 하게 되었다.지난해 여름 심한 가뭄이 연변지역에 들자 두만강 연안 용연동에서 기우제를 지냈다.이 때 상화촌 과부 몇이 알몸으로 두만강에 들어가 옛날 사람들이 하던대로 통곡을 하면서 몸을 씻었다.화룡시 용성향 봉산동 마을 옆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어린이들이 자주 생명을 잃자 실로 오랜만에 마을에 솟대를 세웠다. 1938년 경상도에서 집단으로 이주해와 안도현에 자리잡은 신툰의 노인들은 마을에 농악을 보급시켰다.그래서 신툰농악은 지금 조선족의 한떨기 꽃으로 피어나는 참이다.지난해 선경대가 길림성관광지로 개발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북두칠성 절이 복구될 것이라는 소식이다.옥으로 만든 불상은 벌써 옛 절자리에 먼저 안치해 놓았다. 어떤 풍속을 미신으로 매도만 해서는 안된다.전통적 관습으로 마음에 자리잡은 공동체 삶의 한 부분이다.그것은 때로 위로가 되고 신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민족의 단합요소로도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 격전의 현장(“열전” 6·27선거/D­2일)

    ◎서울 구로구청장/민자 「경험」 대 민주 「경력」 대결 구로 구청장을 향해 뛰는 후보들은 모두 4명이다. 민자당 김익수 후보(62)와 민주당 박원철 후보(61)는 각각 우세를,자민련 여범구 후보(57)와 무소속 안경달 후보(52)는 백중세를 주장하고 있다. 민자당의 김후보측은 『초반에는 인지도가 낮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선거공보가 각 가정에 배달된 이후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며 말단 서기보에서 출발,구로구 총무국장·부구청장·서울지하철공사 감사 등 32년의 다양한 행정경험을 부각시키고 있다. 특히 ▲지역경제 활성화 ▲주거환경 개선 등 7가지의 공약이 유권자들로부터 실현 가능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판단,「인물과 정책 알리기」에 힘쓰고 있다. 민주당의 박후보는 민자·자민련·무소속 후보가 과거 민자당에 몸담았던 탓에 여권표가 분산될 것으로 예상하며 유권자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호남표의 지지를 기대하고 있다. 외무 및 사법 고시 합격 이후 공무원·외교관·판사·변호사·야당 인권위원 등의 다양한 경력을 자랑하며 ▲고급패션타운 건설 ▲환경오염 업체 이전 등을 통한 「새로운 이미지의 구로 건설」을 외치고 있다. 자민련의 여후보는 서울시 의원과 구로신문사 사장을 지내며 어느 누구보다 지역의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며 ▲수도권 서남부의 성장거점으로 개발 ▲공단과 연계한 상업도시 개발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른 후보들보다 능란한 말솜씨로 동 단위로 돌며 10∼20분씩 반짝유세로 득표활동을 한다. 구로시장에서 이불 가게를 하며 구로구 새마을 지회장을 지낸 무소속 안후보는 새마을 지도자와 부녀회원들의 지지를 기대하며 시장통과 주택가를 누비며 다른 3후보를 추격 중이다. ◎전남 여천시장/확실한 강자없이 8명 대혼전 전남 여천시장 선거에는 8명의 후보가 난립했으나 아직껏 뚜렷하게 우열이 가려지지 않은,전남 최고의 격전지다.3강·3중·2약이 일반론이지만 확실한 강자는 없다.따라서 당락도 박빙의 차이로 판가름 날 전망이다. 민자당의 정성환 후보(60·전 여천 부시장),민주당의 정채호 후보(46·고려상호신용금고 대표)가 상대적으로 탄탄한 당조직과 인맥을 기반으로,무소속 허영문 후보(51·시의회 의장)는 4년의 의정활동과 민주당에 대한 반발표를 기대하며 선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민자 정후보는 『아내가 최근 교직을 사직하고 연설원으로 나서는 등 가족과 친인척이 총동원됐다』며 토박이로서의 학연과 오랜 공직 생활로 쌓은 친분을 밑거름으로 동분서주하고 있다. 민주 정후보는 『공천과정의 갈등을 조기에 수습해 전열이 빨리 정비됐다』며 전남요트협회 회장과 수산대 총동창회 부회장 등의 직함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무소속 허후보는 『원만한 의정활동과 월내동 이주대책 위원장으로서의 활약을 고려할 때 공단에 기대를 걸고 있다』며 승리를 자신한다. 무소속 서광식 후보(60·주삼동장),주봉선 후보(64·삼일동장)도 『동장 시절 끈끈한 인연을 맺은 수백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열심히 도와 주고 있다』며 표밭을 누빈다. 이태주(48·여천 새마을금고 대표),조길환(43·여수 수산대교수),주형근(45·민주당 연수위원)후보들도 『동문과 제자들의 후원이 만만치 않다』며『40대의 참신성과 젊음을 앞세워 부동표를 잡는다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승부에 집착한다. 유권자는 모두 4만6천9백27명으로 최근 새 주거지역으로 각광받는 쌍봉동 유권자(1만4천5백53명)의 향배가 당락을 좌우할 전망이다.
  • 남북관계 개선 주춧돌 놓았다/북경 쌀회담 타결의미

    ◎분단이래 최대규모… 대화돌파구 마련/북 체면 포용한 우리측 협상자세 주효 북경 남북 쌀회담의 타결은 장기적으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일구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북한에 대한 쌀제공은 대내외적으로 체제우월성을 선전해온 북한당국의 체면이 걸려 있었다는 점에서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대북 쌀지원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성사됐다.이는 일차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 마련을 염두에 둔 우리측의 적극적인 자세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의 절박한 식량난이야말로 이번 쌀회담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알파요 오메가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80년대 후반이후 누적된 곡물생산 부진으로 올들어 「하루 두끼먹기운동」등 주민들에 대한 내핍 강요로는 버틸 수 없는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외화부족과 대외 신용도의 추락으로 외미도입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로 인해 북한의 올 한해 곡물부족분은 무려 2백6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5월말 현재 북한은 해외로부터 절대 식량부족분의 10% 밖에 도입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후문이다. 이같은 한계상황 때문에 북측도 어쩔 수 없이 남한쌀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물론 우리측이 이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당국의 입장을 대국적으로 이해하는 자세를 취한 것도 협상 타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우리측이 육로수송이 바람직하다는 당초 입장을 접어 두고 북측이 요구한 해로수송에 합의해 줬다.나아가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북한의 무연탄과 맞바꾸는 민간차원의 구상무역에 동의한 것도 역시 북한의 체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쌀지원과 관련해 일단 우리측은 전반적인 남북간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그렇다고 해서 당장 남북 당국간 전면적인 대화무드로 연결되는 등 남북간 관계개선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마련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남북분단 이래 최대규모의 협력이라는 결실을 남겼다.지난 84년 북측이 우리측에 수재물자를,91년에는 우리측이 북측에 쌀을 보낸 선례는 있으나 규모 면에서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에 대북 쌀지원이 성사됨으로써 적어도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튼튼한 주춧돌은 놓여 졌다고 볼 수 있다.이같은 관측은 북측이 나포한 우성호 선원들을 조만간 돌려 보내느냐에 따라 일차로 진위가 검증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같은 가시적 조치가 1단계 대북 쌀제공 이후 우리측의 추가 곡물제공으로 이어질 경우 남북관계는 일단 순풍을 맞게 될 전망이다.이번 회담에서 쌀과 관련한 공식 합의문 이외에 양측이 남북대화와 관련한 이면 합의를 맺었다면 그같은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북경 쌀회담장 주변 표정/합의문 작성주체 싸고 막판 진통/“21일 새벽 중대발표” 흘러나와 긴장 ○…대북한 쌀제공을 위한 남북한 회담은 4일째 우리측 대표단이 머물고 있는 북경 서북쪽의 샹그릴라호텔 2층 연회장에서 관계자외엔 출입을 엄금한 채 비밀리에 마라톤회의로 진행. 양측 대표 16명은 이날 상오 조어대 주변에 있는 신대도호텔로 장소를 옮겼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다시 샹그릴라로 이동해 밤늦도록 회의를 벌였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샹그릴라호텔 입구에선 공안(경찰)과 호텔안내원들이 TV카메라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고 회의장인 2층 연회장 입구 등에서도 관계자외 제3자의 접근을 막는 등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려는 모습. 이날 진행된 회의에서 양측은 20일 원칙을 합의해 놓고도 구체적인 시행사항에 걸려 난항을 겪고 있다고 회담장 주변의 한 관계자가 전언.양측 대표단은 합의문의 작성 주체,쌀의 하역장,인도 시기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북한측은 계속 이번 쌀회담이 민간 성격의 접촉이지 결코 정부 사이의 접촉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한편 우리측 대표단의 이름이 등재돼 있는 샹그릴라호텔 23층에는 외부 전화는 물론 노크에도 응답을 않고 있으며 호텔 주차장에 주중한국대사관 소유의 검은색 소나타 한대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차해 있는 모습.한 호텔관계자는 한국대표단은 다른 층에 방을 빌려놓고 모임을 갖고 있다고 귀띔. ○…이날 하오7시40분무렵 회담장인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오던 북한대표단 일행 3명은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던 국내보도진과 한차례 실랑이를 벌이기도. 이들은 촬영하던 TV촬영기자의 카메라를 밀치며 『왜 무례하게 사전허가도 없이 사진을 찍나,기자들이 회담을 방해한다.통일하러 왔는데 왜 이러느냐,남조선기자들은 도덕도 없느냐』며 고함을 지르기도. 모두 가슴에 큰 김일성배지를 단 이들은 회의가 잘 됐느냐는 질문에 『잘되길 바란다.끝난뒤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20일 하오10시쯤 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1층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이미 합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빠르면 2∼3시간내로 발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이미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등 대표는 호텔을 떠났다.실무진에서 문안작성을 하고 있다.발표가 있을것에 대비,발표장으로 쓸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말하는등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 □남북 쌀관련 일지 ▲59년9월=북,사라호태풍 이재민에게 쌀3만섬 등 제공용의 표명 ▲62년1월=북,풍랑만난 남한 어민에 쌀등 지원 제의 ▲67년1월=김일성 매년 쌀2백만섬,전력 10억 kwh등 대남 제공용의 밝힘 ▲77년1월=남,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대북식량제공 용의표명 ▲84년9월=북적,쌀5만섬 등 대남 수재물자 제공 ▲90년7월=「사랑의 쌀」8백t(1만가마)북한 반출 ▲91년4월=남 천지무역상사와 북 금강산 국제무역개발회사,쌀 직교역 합의 ▲95년3월7일=김영삼 대통령,베를린 외교3단체 연설중 대북곡물제공 용의표명 ▲95년5월15일=김영삼 대통령,IPI서울총회 개회연설중 곡물지원 용의표명 ▲95년5월25일=북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일본방문중 남한쌀 수용의사 표명 ▲95년5월26일=나웅배 부총리,조건없는 곡물지원 제안 ▲95년6월6일=송영대 통일원차관,북측에 공식적 회신 촉구 ▲95년6월12일=김영삼 대통령,재차 조건없는 쌀제공의사 발표 ▲95년6월17일=남북차관급 쌀회담 북경개최
  • “강군만이 이땅에 평화 보장”/김 대통령 군부대 방문 스케치

    ◎“6·25 전몰장병 숭고한 희생이 번영 밑거름”/미 「오그래디 구출작전」 예로 들며 해병 격려/비상벨 직접 눌러 공군 비상출동태세 점검 김영삼 대통령은 6·25발발 45주년을 앞두고 15일 육·해·공군 각급 부대를 순시,훈련과 경계 임무에 전념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새벽 중부전선 육군 ○○부대에 도착,연병장에서 장병들과 20여분 동안 구보로 아침운동을 한 뒤 사병식당에서 조찬을 함께 하면서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국토방위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6·25는 이 땅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전쟁이며 수많은 전몰장병과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이처럼 자유와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됐다』고 강조한 뒤 『우리가 힘이 있을 때만이 북한 및 주변국가가 우리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통령은 『여러분들의 사기넘친 행동은 내 자신 학도의용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고 『장병들의 구릿빛 얼굴을 보면 거제 바다에서 뛰놀던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을 보는 것같아 정다움을 느낀다』고 회고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부대 하사관 관사를 둘러보고 자녀교육 등 전방지역 군인가족들의 생활에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뒤 『장병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김대통령은 또 전차부대 훈련장을 방문,훈련상황을 지켜본 뒤 『정예강군만이 이땅에 진정한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도높은 훈련,고도의 전술연마를 당부했으며 훈련후 환호하는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 ○…김대통령은 이어 헬기편으로 공군○○부대에 도착,직접 비상벨을 눌러 비상출동태세를 점검하고 기동시범을 참관한 뒤 『완벽한 영공방위태세를 확립하라』고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공군부대를 출발,경기 남부지역으로 이전한 해병대사령부를 처음으로 방문,현황을 보고받고 장병들과 오찬. 김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최근 미 해병특공대가 보스니아에서 피격된 미공군 F­16 전투기 조종사 스콧 오그라디대위 구출작전을 벌인 것을 예로 들면서 국경을 초월,「귀신잡는 해병」의 전통계승을 강조했다. 김대통령은 오찬에 배석한 해병 영웅 고 이인호 소령(월남전에서 전사)의 아들 현역 해병 이제욱 대위에게 각별한 관심을 표시하기도.
  • 기초과학에 우선 투자를/한민구 서울대교수·전기공학과(일요일아침에)

    공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공학과 사회의 발전과는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산업이 발전하고 국가 경제가 융성해지고 국민생활이 윤택해지려면 지금보다 그리고 다른 나라보다 좋은 기술과 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제이다.제도는 문화와 사회의 여러 요소를 반영하기 때문에 매우 느리게 개선되어가게 마련이며,또 급격히 바꾸어도 곤란하다.따라서 기술을 발전시키는 것은 보다 윤택한 사회를 만드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이다.기술이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는 학문이 공학이다. 사회발전의 핵심인 기술,즉 공학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고 과거와는 달리 국내에서 필요한 기술은 국내에서 개발하여 기술자립을 이루자는 것이 얻어진 방침이다.이를 실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제 이견이 있다.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할 것인가,또는 응용공학 연구를 지원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제품을 만들어서 이익을 얻는 것을 사과를 따는 것에 비유해 보자.과거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에 입장료를 내고들어가거나 몰래 들어가서 돈주고 산 사다리나 가위로 사과를 따서 팔았다.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우선 과수원에 몰래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벌금 때문에,또한 지위때문에 엄두도 못낸다.다음으로 기술로열티인 입장료도 올랐다.어떤 과수원은 돈을 준대도 싫다고 한다.용케 과수원에 들어가서도 문제다.제작 장비나 부품인 사디리나 가위값도 올랐고 더러는 안 판다고 한다.대학강사로 발령받느니 대학을 설립하는게 빠르겠다는 인문계 박사학위자의 푸념처럼 과수원 차리는게 더 나을 수도 있다.또 앞으로는 그래야 할 것이다.과수원 차리기는 쉬운가? 말할 필요도 없이 외롭고 괴로운 길이다.땅의 성분을 조사하고 거름을 주어서 기름지게 하고 좋은 씨앗을 뿌려서 열매를 따기까지 몇년을 가꿔야 한다.열매가 잘 열렸다고 성공한 것이냐 하면 꼭 그렇지 않다.수입농산물이 헐값에 들어오면 소비자의 식성이 그새 바뀌어 버리면 헛농사를 지은 것이다. 연구로부터 제품생산까지는 1차산업이다.농업이나 어업과 다를 바가 없다.처음 하는 연구라면 1차산업이다.그러나 같은 또는 관련된 제품의 연구라면 더이상 1차산업이 아니고 선진국의 산업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우리나라에서는 과수원을 차린 예가 극히 드물다.반도체 메모리나 자동차가 비슷한 예중의 하나이나 아직도 많은 기술과 부품,제작장비를 수입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모든 분야에서 기술자립을 이루어야 하겠지만 이것은 모든 농축산물·수산물을 생산하는 인력 및 장비·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므로 이는 불가능하다.우리나라의 재정능력과 인력·기술에는 한계가 있다.결국 어떤 과일·어떤 제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연구·인력은 무엇인가를 따지고 지원을 하게 된다.이것이 현재 국가적인 연구프로젝트인 G7 프로젝트이다. 우리나라 제품이 외국에서 받는 비판중의 하나가 전체적인 성능은 좋으나 사소한 결함이 있으며 극히 우수한 성능이 없다는 것이다.세계 최고의 제품이기 위해서는 아주 사소한 결점도 허용해서는 안된다.이런 사소한 결점을 보완하려면 여러분야의 연구결과가 총괄적으로 묶여야 한다.즉,문제의식이 뚜렷한연구는 값어치가 있고 즉시 활용된다. 기초과학 연구를 지원할 것인가,응용공학 연구를 지원할 것인가 하는 물음은 어리석은 것이다.요컨대 우리 형편에서 쓸모가 있느냐 없느냐,투자의 효용가치가 어떠하냐에 지원의 여부가 결정되어야 한다.응용공학은 비교적 효용가치가 쉽게 판정되지만 기초과학은 그렇지 못하다.그러나 응용공학에서 연구개발을 필요로 하는 기초과학 분야는 효용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수년내에 활용될 기초과학연구는 수십년 이후에 활용될 기초과학연구보다는 우선적으로 지원되어야 한다.
  • 호국의 넋 기려…/어제 제40회 현충일 추념식 엄수

    ◎동작동 국립묘지 참배객 줄이어 제40회 현충일인 6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넋을 기리는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현충일 추념식은 이날 상오 10시 이홍구 국무총리·황낙주 국회의장·윤관 대법원장 등 3부요인과 전몰군경 유족,시민 등 2천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립묘지 현충탑 앞뜰에서 국가보훈처주관으로 엄수됐다. 이 총리는 이날 추념사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만큼 자유와 번영을 누리며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순국선열과 전몰호국용사들을 비롯한 국가유공자의 성스러운 희생이 밑거름이 됐기 때문』이라고 호국영령의 애국정신을 기렸다. 한편 이른 새벽부터 손에 꽃을 든 참배객들이 몰리기 시작해 이날 하룻동안 동작동 국립묘지에는 참배객 20여만명이 다녀갔다. 이날 상오 10시30분쯤에는 지난 83년 2월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북한 공군대위 출신 이웅평 중령(41·공군대학 교관) 등 귀순자 30여명이 국립묘지를 참배,눈길을 끌었다.
  • 황창평 보훈처장에 듣는다(국정 어떻게 돼갑니까)

    ◎「보훈의 달」 짚어본 복지정책/“2천세대 「국가유공자 복지타운」 건립”/재중·러 독립지사후손 모국정착 지원/고엽제 「후유의증」 환자까지 보상·치료/동­서해안·제주 등 4곳에 보훈가족 휴양시설 □대담=황병의 정치부장 올해는 광복 50주년이자 한국전 발발 45주년이 되는 해다.그 의미만큼이나 우리는 자세와 각오를 새롭게 다져야 할 상황을 맞고 있다.경제개발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고 앞뒤 가리지 않던 단계에서 벗어나 통일에 대비하고 세계중심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시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의미를 다시 한번 차분히 되새김으로써 이들의 나라사랑정신을 국가통합의 구심점으로 승화시키는 일이 국가의 주요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새 분위기 조성 시급 사실 일제에 항거해 희생한 독립유공자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몸바친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접은 미국등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대만에 비해서도 크게 낙후돼 있다. 미국은 참전용사모임인 재향군인회가 미국내 최대 압력단체이며 대만도 국가유공자들이 시민으로부터 최대의 경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국가유공자들은 단순히 물질적으로 「돌봐줘야 하는 대상」으로 치부되기 일쑤였고 그 결과 국가유공자 후손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활지원등을 「빈곤층에 대한 그 것」으로 여겨 신분을 오히려 감추는 현상까지도 빚어졌다. 호국보훈의 개념을 한차원 발전시켜 나라사랑 정신을 국가 중심 이념으로 승화시키는 기수역을 맡은 황창평 국가보훈처장.대공일선에서 30여년 근무한 황 처장은 호국보훈의 개념을 새롭게 정립하는데 제격이라는 평이다. 황 처장은 4일 대담에서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이 과거에 비해 크게 높아졌지만 국민들 사이에 희생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지면서 각종 이기주의가 분출,국가안보와 사회불안이 크게 우려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보훈은 국가의 뿌리라는 점에서 보훈대상자들이 당장 미국처럼 자랑스럽게 예우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분위기만은 조성하자는 게 보훈정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이틀후면 현충일입니다.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국가유공자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부터 말씀해 주시죠. ▲먼저 우리나라 국가유공자 수는 18만가구 1백만명에 이릅니다.일제∼6·25∼월남전까지의 유공자와 그 외 공상자들이지요.이 가운데 6·25관련 유공자가 5만가구로 가장 많습니다.이들은 아직도 전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습니다.오늘 우리가 이만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이들 유공자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됐습니다.이 점에서 국가유공자와 가족을 보살피고 예우하는 일은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가유공자들은 순직이나 전사·전상등으로 경제적 능력을 상실,생활이 무척 어려운게 현실 아닌가요. ▲70년대 중반부터 보훈가족의 생활안정과 자립지원을 위해 보상금을 비롯해 교육·주택·취업등의 지원을 해 오고 있습니다.그 결과 지난해말 보훈대상자의 월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1백31만원보다 35% 많은 1백77만원에 이르고 있습니다.또 주택보급률도 일반국민의 79.8%보다 6.4%포인트 높은 86.2%에 이르고 있지요.대부분 보훈가족들은 어느정도 자립의 기틀을 마련한 셈입니다.또 현재 한달에 35만원씩 주고 있는 기본연금을 올해와 내년에 12%씩 올려 97년에는 매달 45만원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독립유공자나 6·25참전용사들은 오랜 세월이 흐른 만큼 대부분 노령화돼 있지 않은가요. ○8백60세대분 착공 ▲보훈대상자 평균연령은 61세에 이르고 있습니다.독립유공자의 경우 본인은 74세이고 유족은 65세이며 6·25대상자는 66세이지요.따라서 각종 노인성질환과 전상으로 인한 만성질환자가 많습니다.국가는 이들의 쾌적한 노후생활을 위해 수도권과 부산·대전·대구·광주등 대도시에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고령자 주거시설로 2천세대 규모의「복지타운」을 연차적으로 건립할 계획입니다.이미 수원에 8백60세대분 휴양시설이 착공됐지요.또 보훈가족용으로 동해·서해안과 제주도등 4곳에 휴양시설을 지으려 하고 있습니다. ­참전군인과 관련해서는 월남전 고엽제피해자문제가 현안인데 정부의 대책은. ▲고엽제문제를 보면 월남전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셈입니다.현재 고엽제환자로 검진받은 사람은 4천3백25명이며 이 가운데 14%인 5백96명이 후유증환자로 판정됐고 39%인 1천6백69명은 「후유의증」환자로 판정돼 무료진료를 받고 있습니다.말초신경병등 고엽제후유증으로 선정된 10개 질병에 대해서는 보훈병원의 판정에 따라 전상자와 같이 한달에 35만∼1백50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그러나 문제는 후유증으로 의심되는 후유의증환자입니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대 보건대학원에서 고엽제역학조사를 진행중이므로 결과가 나오는대로 해결책을 마련할 것입니다.역학조사결과 후유의증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범위가 확정되는대로 보상이나 치료를 해줄 생각입니다.또한 생계가 어려운 후유의증환자를 위해 현재 국회에 상정돼 있는 고엽제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생활조정수당을 지급할 계획입니다. ­국내 생존 유공자에 대한 처우도 중요하지만 보훈의 특성상 선열을 잘 모시는 일도 중요할 텐데요. ▲맞습니다.올해는 광복 50주년으로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일이 중요합니다.정부는 이를 위해 올광복절에는 아직까지 서훈을 받지 못한 1천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새로 포상하고 국외안장 선열 유해를 국내로 이장하는 봉환식을 대대적으로 펼칠 계획입니다.또 중국과 러시아에 흩어진 미확인 선열묘소에 대한 실태조사도 실시합니다.이와 함께 국외거주 독립유공자 후손 3백여명을 초청,발전된 우리나라의 모습을 보여줄 계획입니다.특히 이준열사가 순국한 네덜란드 헤이그시의 구드용호텔을 매입,기념관으로 개조하고 8월5일쯤 유럽한민족제전을 개최,유럽교포의 정신적 구심점으로 삼을 예정입니다. ○미확인 선열묘 조사 ­해외안장 애국선열 가운데 가장 관심사는 안중근의사의 유해가 안장된 곳을 찾는 일입니다.진척이 있습니까. ▲지난 77년부터 국제적십자사를 통해 안 의사 묘소를 찾아왔으며 최근 한중 수교이후 안 의사가 순국한 여순감옥자리를 찾아 수소문했지만 뚜렷한 진전이 아직 없습니다.정확한 묘소위치를 믿기 위해 중국과 일본의 관계자료를 모두 수집,분석하는 중입니다. ­그동안 해외에서 생활한 독립유공자후손들이 국내정착을 희망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중국과 러시아지역에는 독립유공자나 그 후손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이들은 그동안 인도적 차원에서 친지등의 초청에 따라 일부 국내정착했지만 후손들 가운데 모국정착희망자가 많아 현재 이들에 대한 정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이들이 영주귀국을 희망하면 본인이나 가족 1명에 한해 3천만원의 정착금을 주고 있습니다.취업이나 대부지원도 있고 의료보호등도 실시하고 있습니다.현재 영주귀국한 중국거주 교포는 11가구 39명에 이릅니다. ◎미 「한국전 참전기념탑」/새달 27일 워싱턴서 제막/주요정책 심층보도… 국민과 정부를 잇는 기획/총든 병사 동상 19개… 참전 22국 각명새격/참전용사 등 50여만 참가 “축제 한마당” 오는 7월27일 미국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광장에서는 「한국전 참전기념탑」 제막식이 거행된다. 한국전 휴전일에 맞춰 갖게 되는 이 제막식에는 김영삼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을 포함해 한국전 참전 22개국 외교사절과 참전용사등이 참여,한바탕 축제가 열린다. 이들은 이날제막식에서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영원히 기억될 승리의 전쟁」이라고 자리매김을 하고 당시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린다. 이 탑은 80년대초 한국전 참전용사의 명예를 높이고 미군전사자와 실종자를 추념하기 위해 미국재향군인회에 의해 처음 건립이 제안됐다. 미국의회는 재향군인회의 이같은 제의에 따라 지난 86년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미 한국전 참전 기념사업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의결,탑 건립사업이 시작됐다. 미국정부는 우선 한국전에 참전했던 알 데이비스 예비역해병대장을 위원장으로 선정하고 재원마련을 위한 기념주화 발행을 허용했다. 또 탑이 들어설 링컨기념관 앞 광장 주변 8천4백여평을 공원으로 지정했다. 재향군인회측은 이같은 정부결정에 따라 기념은화를 발행하는 한편 참전용사들로부터 성금을 모아 재원 1천7백만달러를 마련,92년 6월14일 당시 부시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을 가졌다. 이 탑은 49m 높이의 화강암석벽을 V자형으로 땅위에 배열한 모습인데 승리의뜻을 담고 있다. 또 V자 안쪽에는 총을 들고 걸어가는 병사들의 동상이 19개 놓이며 탑 벽면에는 한국전 참전 22개국 이름이 새겨진다. 우리나라는 이번 제막식에 맞춰 벌어지는 나흘간의 행사에 모두 참가한다. 우선 전야제인 26일에 한국전의 의의를 살펴보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는데 이어 제막식 당일에는 케네디센터등에서 사물놀이·어린이 태권도시범등 다채로운 경축행사를 갖는다. 28일에는 워너극장에서 국악·현악4중주단 연주등 한국음악제를 열고 전통한복패션쇼도 펼친다.행사 마지막날인 29일에는 우리군 의장대와 미군의장대가 함께 의사당로 15번가에서 23번가까지 퍼레이드를 벌인다.
  • 숨은 봉사로 갱생 뒷받침/제 13회 교정대상 영광의 얼굴들

    ◎교화외길 21년… 출소자 사회복귀 헌신/박철규 인천구치소 교사 ▷대상◁ 『더 열심히 일하라는 채찍으로 알겠습니다.재소자 교화에 힘을 쏟아 밝은 사회를 만드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겠습니다』 올해 교정대상을 수상한 인천구치소 박철규(49·인천시 연수구 동춘동 삼환아파트 113동 405호)교사는 지난 74년 교도관에 임용된 뒤 줄곧 인천구치소에서만 근무했다.그래서 재소자들은 박교사를 「터줏대감」이나 「선생님」으로 부른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회에서 격리된 재소자들과 함께 보낸 세월이 자그만치 21년.형기를 마친 출소자의 취업알선,소년재소자 대학진학 주선등 헌신적인 교도관상을 실천한 공로로 인천시장과 인천지검장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따뜻한 눈으로 재소자들을 대하니 그들도 닫혀 있던 마음을 열더군요.소년수들을 상담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가정형편에 쫓겨 우발적으로 저지른 범행도 많습니다.전과자로 한번 낙인찍히면 무조건 외면하는 사회풍토가 범죄를 더 부추기지요』 박 교사는 그래서 「취업이 곧 재범방지」라고 생각한다.지금까지 사회에 나가도 오갈데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출소자 35명의 보증인이 되어 인천일대 직장에 취직시켰다.소년재소자를 고시반에 편입시켜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 15명을 대학에 보내기도 했다. 『며칠전이었어요.10년전 강도상해죄로 징역4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오모씨를 이웃 가게에서 우연히 만났습니다.중·고교생들을 상대로 과외교사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기뻐 눈물이 나더군요』 오씨처럼 출소한 뒤 남못지 않게 사회인으로 떳떳하게 정착한 모습을 볼 때 박 교사는 보람을 느낀다. 그는 사회활동도 누구 못지않게 왕성히 하고 있다.8개 단체에 가입해 이름 석자 뒤에 따라붙는 호칭도 많다.헬스크럽회장,아파트자치회 회장,인천산악회 회장…. 『담 안쪽으로 한정된 테두리에서 생활하다 보면 마음도 작아지기 십상이지요.다양한 사회활동 경험을 쌓으면 자기뿐 아니라 재소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입니다.자기들이 겪어보지 못한 건전한 삶을 교도관을 통해간접체험하고 삶의 의욕을 되찾는 거지요』 말에서도 활력을 느끼게 하는 그는 91년 무의탁 소년소녀가장 돕기모임에 회원으로 가입,박봉에서도 달마다 2만원씩 후원금을 내고 있기도 하다. 2년 뒤면 정기승진 대상에 오르는 박교사는 『승진이 너무 더디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빙그레 웃기만 했다.71세의 노모를 모시며 부인 김영자(42)씨와 사이에 3녀를 두고 있다. ▷본상◁ ◎무의탁 소년범에 무료변론 주선/최종국 면려상/강릉교도소 교위 74년 5월 교도관으로 임명된 뒤 21년동안 줄곧 불우재소자의 교화와 그 가족의 뒷바라지에 힘써왔다. 작업과 직업훈련을 담당하던 84년9월부터 86년12월까지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재소자에게 머리깎는 기술 등을 가르쳐 20명이 자격증을 따게 했다. 소년재소자에게 한자교본 1백6권과 만능노트등을 지급해 한자공부를 시키고 효도편지쓰기와 독서를 권유,심성을 순화하고 교양을 쌓도록 했다. 특히 의지할 곳 없는 소년범에게 변호사의 무료변론을 주선하는등 소년재소자의 교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출소자 취업 알선… 자립기틀 마련/김재종 성실상/의정부교도소 교위 재소자 교화에 관심이 있는 지역 독지가들을 수시로 찾아 86년2월 교양도서및 학습교재 1천9백여권과 교화용 방송기자재,재소자용 악기등 1천6백여만원어치의 교육기자재를 기증받음으로써 재소자 교정교육의 효과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88년10월에는 교도소 안에서 나오는 빈상자 등 각종 재활용품을 수집,판매해 수익금 9백80만원을 무의탁재소자 38명에게 영치금으로 넣어주는가 하면 노모가 위독한데도 벌금을 내지 못한 재소자의 벌금 30만원을 대신 내줘 출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76년부터 17명의 출소자를 전자대리점·양복점 등에 취직시켜 자립갱생의 기틀을 마련해줬다. ◎명심보감 등 활용,정신교육 힘써/신현대 창의상/전주소년원 보도주사 69년부터 90년까지 광주·대전·제주소년원에 근무하면서 무의탁 소년원생 2백89명의 취업을 알선하고 독지가와 자매결연을 주선해 건전한 사회인으로 정착하는 일을 도왔다. 73년 광주소년원에 근무할 때 포크댄스·에어로빅을 특별활동 프로그램으로 도입,지도함으로써 수용생활의 딱딱한 분위기를 개선하는 한편 미술에 소질이 있는 소년원생이 퇴원한 뒤 대학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학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지난해까지 광주소년분류심사원에 근무하면서 예절교육을 위한 각종 교재를 손수 만들어 보급했으며 「명심보감」의 주요내용을 발췌해 소년원생 정신교육교재로 활용하는등 창의적 업무를 수행해왔다. ◎1백11명 검정고시 합격 밑거름/박해국 교화상/광주지방교정청 교회관 74년부터 91년까지 광주및 목포교도소에 근무하면서 상담을 통해 문제수형자 3백57명의 고충을 신속히 해결해주고 종교위원과 자매결연을 주선,심성을 순화하고 수용생활에 적응하도록 선도했다. 79년부터 재소자 3백50명을 대상으로 검정고시반을 운영하면서 문제지를 자비로 구입,개별지도를 하는등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끝에 재소자 1백11명이 고입및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벌금을 내지 못해 출소하지 못하는 재소자를 위해 벌금 75만원을 대신 납부하기도 했으며 74년부터 텔레비전·교양도서등 1천3백여만원어치의 교화기자재를 기증받아 교정교육의 기반을 적극 조성했다. ▷특별상◁ ◎「한사람 한종교갖기」운동 펴/박은규 박애상/62·청주교도소 종교위원 청주서부교회 담임목사로 법무부 전국교화협의회 공동회장을 맡고 있다.68년 청주교도소 교화위원에 위촉된 뒤 27년동안 재소자의 교화선도에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재소자를 대상으로 한사람 한종교 갖기운동을 벌여 7백80여명이 기독교신자로 귀의했고 무연고재소자 1백50여명과 자매결연을 하여 자주 교화상담을 하는 한편 5백여만원어치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해 안정된 수용생활을 도왔다. ◎198명과 결연맺고 고충상담/김수장 자비상/54·청송제2보호감호소 종교위원 보국불교 염불종 승려로 84년부터 11년동안 감호자의 신앙생활지도,무연고자 자매결연,출소자 취업알선에 힘써왔다. 특히 90년 11월부터 5회에 걸쳐 감호자 85명에게 수계식을 열어 수계증을 줌으로써 이들이 참된 불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왔다. 84년부터 법문과 교리를 지도하는 한편 재소자 독경대회를열어 삶의 바른 자세를 일깨워주고 신앙을 통한 심성순화에 기여했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운 감호자 1백98명과 자매결연을 해 개별상담지도를 하며 고충을 처리해주고 이들에게 7백50여만원상당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하기도 했다. ◎신앙생활 인도… 갱생의욕 높여/이열우 자애상/68·청주교도소 종교위원 천주교 청주교구청 교도사목회장으로서 84년부터 청주교도소 종교위원에 위촉돼 자매결연 상담,불우재소자 지원,교화기자재 기증등 재소자 교화선도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왔다. 재소자 1천8백여명에게 부활절 미사를 집전하고 1백62명을 천주교에 귀의시켜 신앙생활을 통해 갱생의욕을 높이도록 이바지했다. 88년1월 겨울철에 열린 각종 집회와 교화행사때 난방시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을 보고 온풍기를 기증했다. ◎장기수 생활용품·영치금 지원/우수정 공로상/58·대구교도소 교화위원 대한적십자사 대구지사 남달서지구협회장으로 79년5월부터 재소자 교화사업에 뛰어들어 적극 활동한 공로로 92년에는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그동안무의탁 장기수 63명과 자매결연을 하여 개별상담을 하는 한편 생활용품과 영치금 7백여만원을 지원하는등 재소자의 심성순화및 수용생활안정에 기여했다.92년에는 장기수로 복역하고 있는 재소자가 옥중결혼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주선해주기도 했다. ▷장려상◁ ◎자격증 취득 도와/서정민 안동교도소 교위 22년동안 장기 근무하면서 재소자에게 목공과 인쇄·양재 등의 기술서적을 자비로 제공하고 실습까지 시켜 83명이 1·2급 기능사자격증을 따도록 했다.자격증취득자는 일반 증소기업등에 취업시켜 재범방지에 기여했다. 88년7월부터는 교도소 직원 52명에게 컴퓨터 사용방법을 직접 교육하고 있다. ◎출소자취업 지원/이손권 부산교도소 교사) 72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뒤 78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재소자 김모씨가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자 김씨의 부인을 섬유회사에 취직시키는 한편 의지하거나 갈 곳이 없는 출소자들을 목공소등에 취업시키는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89년에는 한남교회와 자매결연을 하여 문제재소자를 신앙으로 교화시켰다. ◎환경개선에 솔선/현대환 제주교도소 교사 81년 출소자 16명을 제주자동차학원에서 무료로 운전교육을 받도록 주선,운전면허를 따게 한 뒤 자동차정비공장과 운수회사 등에 취직시켜며 재범방지에 힘을 기울였다. 86년2월에는 여직원 양모씨가 심장판막증으로 입원하자 모금운동을 벌이고 교도소 환경개선에도 솔선수범했다. ◎생필품 무상 공급/윤무현 순천교도소 교위 63년 교도관으로 들어와 31년10개월동안 재소자의 직업훈련과 취업알선 등으로 교화사업에 힘썼다. 87년3월 노동부 여수사무소 등과 협조,직업훈련 교재 2백45권을 받아 재소자의 직업훈련에 활용했으며 생필품을 지급,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벌금·영치금 대납/이대길 재송보세장치장 대표 74년 부산교도소 교화위원으로 위촉된 뒤 재소자 정신교육과 문제재소자의 개별상담및 자매결연,위안회,신앙간증집회등 재소자의 순화교육을 몸소 실천했다. 87년부터 지금까지 출소자 15명의 취직을 알선하고 불우재소자 가족 15명의 생활보조금을 지원했으며 무의탁 재소자의 벌금과 영치금을 대신 납부하는등 재소자가 안정된 수형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 ◎법회 170회 열어/정정수 천지사 주지 안양교도소 종교위원으로 15년동안 활동하면서 80년이후 6만8천여명에게 설법을 하고 1백70여차례의 정기법회를 열어 재소자의 선도에 정성을 기울였다. 86년 장기형을 마치고 출소한 우모씨등 4명이 출가해 스님의 길을 걷게 하는가 하면 전과18범 김모씨의 결혼을 주선하고 취업도 시켜 단란한 가정을 이루도록 뒷바라지하고 있다. ◎장애자 숙식 제공/유양자 삼풍화학대표 전주교도소 종교위원으로 90년 3월부터 무의탁 출소자 26명을 취업할 때까지 삼풍화학공장에 데리고 있으면서 전주 백양메리야스공장등에 취업시키는등 출소자들을 돌보왔다.장애자와 무연고 출소자등 10명을 집에서 숙식시키며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사랑을 베풀기도 했다. 87년부터 모두 15차례에 걸쳐 연예인 1백50여명을 초청,재소자들에게 줄거운 오락을 제공,수형 생활의 분위기를 명랑하게 바꾸기도 했다. ◎재소자 악단 지도/김장룡 순천시 위생단체연합회회장 순천교도소 교화협의회회장으로 재소자 위문공연,자매결연 상담,불우재소자및 가족생활 지원등 재소자를 위해 17년10개월동안 봉사했다. 재소자 이모씨등 2명의 자녀 5명이 고아원에 들어간 소식을 듣고 이 어린이들과 자매결연을 하고 재소자 악대부를 지도해오며 이모씨등 4명이 악사자격증을 획득하도록 이끌었다.
  • “엎치락 뒤치락”진짜 경선보여줬다/민자 경기지사 후보경선 이모저모

    ◎청와대·지도부 중립… 막판까지 경쟁 치열/박빙의 역전­재역전 거듭… 환호·탄식 교차 집권당 사상 첫 경선이며 민주·민정계의 한판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1일 민자당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은 민주계인 이인제의원의 승리로 끝났다. 이날 서울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실시된 투·개표는 일부 자극적 발언 말고는 별다른 시비없이 차분하게 치러졌다. ○한때 재검표도 ○…이날 낮 12시부터 투표에 들어가 하오 4시쯤 개표 집계가 시작되자 서로 『이겼다』는 양쪽 진영의 환호가 수시로 교차되는등 경선은 박빙양상이었다. 그러나 최종집계 결과,이의원의 당선이 확정되자 안양 과천 성남 부천등 민주계의 텃밭지역 대의원석에서는 일제히 환호와 기립박수가 터졌다.『투표용지 1백여장이 없어졌다』고 이의를 제기한 임후보측의 요구에 따라 재검표가 이루어졌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 의원은 『경기도를 더이상 서울의 변두리가 아니라 통일의 전진기지로 비약시키겠다』고 「본선」당선을 방불케하는 감격을 토로했다. ○대의원석 순회 호소○…이날 투표에 앞서 행사장 입구에서는 이의원이 지구당원들과 탤런트 길용우·서인석씨,가수 서유석씨등과 함께 「한표」를 호소했고 임의원도 대의원석을 돌며 지지를 호소하는등 막판 경쟁이 치열했다.그러나 자체 선거관리 규정에 따라 구호나 연호,플래카드 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치개혁 완수 다짐 ○…상오 11시쯤 연단에 올라온 이한동경기도지부장 겸 선거관리위원장은 인사말에서 『경기도가 집권여당 사상 첫 경선을 가장 먼저,가장 경선답게 치르게 됐다』고 강조한 뒤 『이제 경기도에서는 계파와 분열이라는 용어를 영원히 지워버리고 김영삼총재의 정치개혁을 앞장서 완수하자』고 단합을 호소했다. 정견발표에서 임의원은 『문민정부에서 도지사는 힘이 아니라 전문지식과 경험이 덕목』이라고 경기지사등 공직경력을 내세웠다.임후보는 『내가 당선되면 나를 지원한 공직자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후환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풍문이 유포되고 있다』고 「유언비어」를 인용,「토박이 정서」를 자극하기도 했다. 이인제의원은 『경기도를 통일한국의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힘있고 배짱있는 후보를 내야 한다』고 재선의원과 민주계 핵심으로서의 「파워」를 내세웠다. ○“열세” 예상 뒤엎어 ○…도내 31개 지구당 가운데 민주계가 위원장인 지구당은 12개.여기에다 일부 친민주계 성향의 지구당을 합쳐도 이후보는 세력분포상 열세라는 평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의원이 당선된 데 대해 손학규 의원(광명)은 『계파보다 본선에서 승리하고 지역발전을 책임질 수 있는 후보를 대의원들이 선택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충북도지사 후보를 신청했던 구천서 의원(무소속)도 『명실상부하게 깨끗한 경선으로 야당과의 본선에도 큰 힘을 얻은 것』으로 평가했다. ○…청와대 정무비서실은 이날 민자당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상황을 현장으로부터 시시각각 보고받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특히 박빙으로 이인제의원이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진짜 경선이 무엇인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뿌듯해 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완벽한 경선을 통해 공직후보를 선출했다』면서 『최근의 야당처럼 몇백명이 모여 「김심」에 의해 내정된 후보를 선출하는 주주총회식의 경선은 이번 민자당 경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경선결과는 청와대와 당지도부가 엄정중립을 지켰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으며 계파성·지역성이 극복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원 의지 모아 본선서도 승리”/이인제 경기지사후보 인터뷰/“첫 정치실험 치곤 놀라운 성과 얻었다/임후보 결과 승복… 당승리에 힘 보탤것” 『집권당 사상 첫 공직후보 경선에서 대의원들의 선택을 받아 지사후보가 된데 대해 영광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1일 민자당의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에서 도지사 출신의 임사빈의원을 접전 끝에 근소한 차로 눌러 당선된 이인제 의원(47)은 『당원들의 의지를 모아 본선에서 반드시 승리해 보답하겠다』고 말했다. ­임 의원쪽에서 경선결과에 이의를 제기해 마무리가 다소 어색해졌는데. ▲경선에 앞서 누가 되더라도 함께 손잡고 경기도의 지방자치를 성공시키자고 약속했었다.임의원의 경륜과 경험이 경기도 발전의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경선에서 이긴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야당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새시대의 도지사 상을 꾸준히 호소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당내 경선에서 근소한 차로 승리하고서도 본선에서 압도할 자신이 있는가. ▲나의 승리는 상대방의 패배를 딛고 일어선 게 아니라 어떤 후보가 야당을 꺾을 수 있는가에 대한 선택을 받은 것이다.임의원을 지지했다 해서 나를 반대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 경선을 계기로 당원 모두가 본선에서 힘을 모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앙금은 없는가. ▲공정하고 깨끗한 선거였다.유권자들에게 커피 한잔을 얻어 먹으면 먹었지 대접하지 못했다.임후보도 결과에 승복하고 우리 당의 승리와 경기도 발전에 힘을 보태줄 것이다. ­경선을 거치면서 느낀 제도의 미비점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속담이 있다.이건 거대한 정치실험이었다. 나는 처음부터 야당처럼 몇백명만의 경선은 무의미하므로 대규모 경선을 주장해 왔다.일부에서는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걱정도 해주었다.그러나 이번 경선을 통해 우리는 첫 실험치고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정당,특히 집권당은 자발적으로 참여해 주는 당원층이 아직도 빈약하다.좀 더 다양하고 자발적·헌신적인 당원들이 가능한 많이 참여하는 축제로서의 경선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 ­본선에 대한 각오는. ▲야당에서 어떤 후보를 내세우든 민주주의에 대한 우리당의 이상과 기개를 바탕으로 당당하고 깨끗하게 승부를 가려 빛나는 승리를 당에 안기겠다.
  • 조작가 문신(이 세기의 인물탐구:73)

    ◎“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예술가”/우주를 향한 기운응축… 작품마다 생명력 넘실/푸른창공·지평을 배경할때 절묘한 조화 이뤄/유별난 애향심… 지난해 마산에다 「문신미술관」건립 개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왕이며 조각가인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조각한 말없는 조상들의 세계에 파묻혀 속세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이 시대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 문신은 그의 문신미술관과 함께 그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머물러있다. 마산시 추산동 52번지,합포만이 눈앞에 내려다보이는 문신미술관에 들어서면 그가 왜 「프랑스의 영광」으로 불리게 됐는지를 한눈에 당장 알아볼수 있게 된다.10여년전 그곳에 들렀을 때만해도 주변은 황폐한 황무지에 지나지 않았다.그러나 지금은 산마다 온통 작가의 숨결과 손길이 깃들여 추산동 산기슭은 고매한 명작으로 빛나고 있다. ○추산동 기슭에 정착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광택이 나는 흑단이나 브론즈나 스테인리스스틸을 막론하고 형체외의 형체와 색채외의 색채를 구사하면서 우주의 섭리에육박하려는 의지가 강하다.수직으로 치솟은 구조는 자연스러운 시메트리를 성립하고 유성과 같은 순환의 동작은 견고한 타원형을 유지하고 있다.원과 고와 직선과 각의 대칭적 조화는 불협화음까지를 화음으로 이끄는 공간적 음률의 시각화라 할 수 있다.그래선지 그의 작품들은 푸른 창공과 바다를 배경으로한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서 있을 때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것 같다. 그의 제작노트에 보면 「인간은 엄연한 현실에 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꿈을 그리고 있다」고 쓰고 있다.그리고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은 현실의 대지에 닻을 내려 확고부동한 영토를 조성한다.예를 들어 서울 올림픽공원에 세워진 「올림픽 88」은 맴돌듯 창공을 차고 오르는 미지에 대한 희망과 설렘과 꿈의 상징일 것이다. 프랑스의 국제예술평론가인 자크 도판은 「이 예술가가 언제나 나를 감동시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독창성」이라고 지적한바 있다.그의 예술의 독창성과 세련미와 영감에 가득찬 천재성으로 인해 「문신은 미래가 기억해야할 예술가」이며 알렉산더 칼더나헨리무어 자코메디의 작품이 저마다 특성이 다르듯 문신의 작품은 그것이 「문신적인 포름」임을 명확하게 과시하고 있다고 단정한다.일찍이 근원 김용준은 「혜성같이 빛나는 문신의 개인전」이란 글에서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놓고 있다.「우주를 향해 성장하는 기운을 응축하면서 유기적인 생명을 지속시키는 예술작업에 놀랐다」는 내용이 그것이다.그는 또한 「예술가는 흉중에 고고특절한 품성」을 지녀야하며 세파와 척박한 시속기에 타협하지 않는 「문신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가」라고 찬사해 마지않았다.그는 일상생활에서도 유행이나 허명에 들뜨지 않아 반듯하게 자신의 행동을 지켜왔고 예술원 같은데서 동료작가들이 그의 영입을 권유할 때도 일별하지 않는채 작가는 오로지 작품으로 말한다는 신념을 지켰다.오죽하면 소설가 이병주씨는 그의 인생과 예술을 말하는 자리에서 「이 격렬한 인간을 말하다보니 나의 말에 빈곤을 느낀다」고 고백했을 정도다.밤낮을 통해 이미 신비의 세계를 구축해놓은 절세의 예술가를 짧은 지면에 거론하는 것은 여간 민망한 노릇이 아니라는 얘기다. ○불서 석공·목수일도 그는 파란의 굴곡이 심한 운명속에서 유목처럼 흘러버리지 않고 자신의 풍모자체를 예술로 만들어버린 천성의 예술가다.예술가가 아니고선 상상할 수 없는 고집과 정열과 기품이 융합되어 어둠속에서도 광명의 존재를 의심치 않았고 곤경에 처한 경우에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세워 망설이거나 주저하지 않는다.태어날때부터 순탄치 않았으나 예술을 하기 위해 이미 설정해논 배경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그는 당연하게 감수하여 슬기롭게 대처해 나갔다. 그는 일본 규슈의 탄광에서 일하던 문찬이(56년 작고)씨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어릴때 어머니와 헤어져 외롭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열여섯살 되던 해 혼자서 일본에 밀항,구두닦이 극장 포스터붙이기 산부인과조수 영화사잡일등 안해본 일이 없지만 결단코 궁박에 지치지도 않았다.오히려 자신이 나가야할 방향과 내부에 도사린 무수한 광맥을 예지하고 있었고 심재인 흑단을 발견하면서 줄기차게 창작을 잉태시켰다. ○24세 연하와결혼 그 시절 그가 그린 자화상은 목덜미 부분이 벌겋게 술에 취한 색깔이 나타날 정도였으나 주변에서는 이 초상화를 보고 「자신의 화업에만 열중하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풍겨나는 자기선언이며 앞날이 보장된 재능의 표출」로 해석해 주었다. 그는 일본미술학교 양화과를 졸업하고 해방과 함께 귀국, 주로 서양화·채화로 작품활동을 하다가 좀더 본격적으로 공부한다는 각오로 61년 도불, 처음 3년간은 고성의 보수 수식작업을 맡아 석공 목수 미장이로 일했고 그의 이런 기간은 곧잘 석공 목수를 거쳐 조각가가 된 로댕에 비유되기도 한다. 70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의 국제심포지엄에서 13m 높이의 거대한 목조각을 선보인 것을 계기로 그는 유럽 각지의 유수한 조각전에 초대되는등 굳건한 형태적인 조형으로 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마산에 정착한 것은 프랑스에서 영구귀국한 80년부터다.유난히 애향심이 강했던 그는 「고향은 멀리 떠나서 살면 더욱 잊을 수 없는 곳」이며 그를 낳아준 고향에 보답한다는 뜻에서 미술관건립을 계획,이거대한 작품이 고향의 번영에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57세 되던해 5월, 지금의 부인인 최성숙씨와 결혼,서울대미대출신의 그는 노래하는 이미지의 그림을 그리는 동양화가로 그들은 24세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동반자로 낙을 나누면서 미술관 건립에 힘을 합쳐왔다. 지난해 문신미술관의 화려한 개막행사와 함께 서울에서 「문신예술 50년 회고전」을 열때까지 그는 하루 10시간의 작업을 할만큼 건강체로 보였으나 실은 몇년전부터 위암을 앓아왔고 최근 다리를 다쳐 치료받는 과정에서 병이 더욱 악화되어 식이요법에만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더구나 혼신을 다한 미술관부근에 경관을 가로 막는 아파트공사로 우울할대로 우울해 있다.그리고 고향을 위해 할 수 있었던 보람찬 결실을 서로가 아끼고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이를 무참하게 훼손시킨 것에 실망감과 상실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경남대가 그의 미술관건립과 관련,「향토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마산시민들에게 예술적 토양을 제공하는데 공헌」했다는 이유로 명예문학박사학위를 주는 자리에 그는 휠체어를 타고나와 좌중을 숙연케 했다. 「흙으로 돌아가는 최후의 순간까지 예술혼을 불태우며 장엄하게 산화하고자 한다」면서 「나의 전생애가 집약된 미술관을 민족예술의 성지로 가꾸고 싶다」는 내용이 그것이다.물론 훌륭한 예술가가 품은 어떤 상념은 한낱 시류에 휩쓸려 소침해 질수는 없을 것이다. 그는 우리가 널리 자랑해 마지않는 세계적인 예술가다.따라서 그의 거대한 작품은 이미 「결정된 신전」이며 우주를 향해 예술가가 도달해야할 궁극의 목적은 「청명」일 것이다.또 그의 작품은 진흙속에 있더라도 여전히 단엄하고 간경하며 염려하고 정결하다. 자크 도판의 말이 아니더라도 그의 미술관은 「매혹적인 거대한 보석」으로 수목같은 싱그러운 숨결과 시적인 서정의 향기마저 흩뿌린다.「미래가 기억해야할 위대한 작가」인 그는 눈을 감으면 이제 우주가 보이는 경지다.결국 별빛같은 그의 작품들속에서 보이지 않는 미래의 꿈을 이룬 그는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머리위에서 눈부신 광휘로 화려하게 빛나는 존재일 것이다. □연보 ▲1922년 마산출생 ▲1938년 도쿄 일본미술학교 졸업 ▲1945년 귀국 ▲1949년 서울 개인전(동화화랑) ▲1961년 도불,파리 라버넬성 수식작업 ▲1965년 일시귀국,홍익대 교수,재도불전(신세계화랑) ▲1967년 파리정착 ▲1970∼72년 프랑스 포르­바카레스 야외미술관 국제심포지엄서 13m의 토템제작,스위스 발르 국제예술시장전,파리 현대미술관 살롱 드메,파리 크라반화랑 개막전등 살롱전 그룹전참가 ▲1974년 서독 함부르크 개인전(맨슈화랑),이탈리아에서 국제야외조각전 ▲1976년 서울 진화랑 초대전,파리 메트르알베르 화랑 개인전 ▲1979년 파리 오를리슈드 국제공항 예술화랑및 서울 현대화랑초대전 ▲1980년 부산 국제화랑 수도화랑초대전,마산문화회관 작품전 ▲1981년 서울 개인전(미화랑) ▲1983년 서울 개인전(신세계미술관) ▲1985년 현대작가초대전(국립현대미술관) ▲1986년 서울 개인전(예화랑) ▲1987년 회화작품초대전(한국화랑) ▲1988년 88서울 올림픽 예술의 올림피아드 25m「올림픽 88」제작 ▲1989년 동구라파 순회전 ▲1990∼92년 유럽순회 회고전(자그레브 프로스토박물관,부다페스트 역사박물관,파리 현대미술관,로마 뒤브로브니크), 프랑스 예술문학영주상 ▲1993년 중앙일보미술대전 운영위원 ▲1994년 문신미술관 개관 「불빛 조각축제」, 「문신미술 50년 회고전」(조선일보 미술관) ▲1995년 경남대서 명예문학박사
  • 중기사장 구천수씨 자살/법개정 밑거름 됐다

    ◎대기업 수도권 공단 입주허용 길터 통상산업부가 최근 마련한 「공장설립 등에 관한 법률시행령 개정안」 중 일부가 92년말에 자살한 중소기업인 구천수씨(한국기체공업 사장)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수도권 성장관리권역의 공업단지에는 이제까지 중소기업 공장의 신설만 가능했으나 통산부가 이번에 대기업도 부실기업을 인수하면 대체 입주할 수 있게 법령개정을 추진중인데,바로 이 부분이 구씨와 관련이 있는 것. 자동차 부품인 가스식 충격 흡수장치를 개발한 한국기체공업 구사장이 자금난으로 92년 11월 목숨을 끊자 당시 정부는 그의 죽음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고려,이 회사의 정상화 방안을 마련했다.이에 따라 93년 2월 구씨와 고려대 동창인 손모씨가 정부의 자금지원을 받아 한국기체공업을 인수,회사이름을 (주)카틱으로 바꾸고 사업장을 경기도 성남에서 반월공단으로 옮겼다. 그러나 자동차업체들이 가스식 충격흡수장치의 성능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품구입을 기피,카틱의 경영상태도 호전되지 않았다.이 회사는 자금력이 없는 손씨에게 버거운 짐이 됐고 결국 대기업에 인수의사를 타진하게 됐다.이때가 지난해 4월이다. 자동차 부품사업의 진출을 노리던 대농그룹이 마침 인수의사를 밝혔으나 반월공단 같은 성장관리권역의 공업단지에는 중소기업 공장의 신·증설만 가능해 카틱을 인수할 수 없었다.대농이 수차례 통산부에 카틱을 인수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통산부는 이를 들어주면 수도권의 공단에 대기업 대체입주를 전면 허용해야 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그러다 최근 이 기업을 살릴 수 있게 시행령을 고치기로 결정했다. 통산부 관계자는 『부실기업을 인수할 여력을 가진 기업은 대기업 밖에 없기 때문에 특정기업에 특혜를 준다는 오해를 감수하면서 시행령을 개정하게 됐다』고 했다.그러나 수도권에 대기업의 공장 신설허용을 골자로 한 이번 법령개정이 수도권 집중억제시책에 어긋난다는 견해도 적지 않아 통산부 의도대로 법령개정이 될 지 주목거리다.
  • 포장용기 제조/크로바 플라스틱(앞서가는 기업)

    ◎화공약품·생수 용기 “시장 석권”/원료 HDPE(고분자 폴리에틸렌) 90년 자립화/작년 8백만달러 수출… 세계 1위 “야심” 『위험물질은 크로바 플라스틱에서 만든 용기에 담아 주세요』 미국은 물론 대만 등 개도국의 바이어들이 한국산 화공약품을 수입할 때 계약서에 넣어달라는 요구조건이다.20년간 정밀화학제품의 포장용기사업에 몰두해 온 크로바 플라스틱사(사장 강선중)의 국제적인 위상을 말해주는 단적인 예다. 지난해에는 필리핀과 대만·인도네시아 등의 업자들이 이 회사를 방문했다.최고의 제품을 싼값에 파는 비결이 궁금하다는게 방문 이유였다. 질산과 아염산 등 화공약품을 취급하는 바이어들이 크로바의 용기를 찾는 이유는 플라스틱으로 철제보다 단단하게 용기를 만들기 때문이다.철제는 부식이 돼 내용물이 변질될 가능성이 높다.삼성종합화학과 LG화학·동양화학·금호석유에서 수출하는 화공약품은 대부분 이 회사의 용기를 쓰고 있다.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에 있는 이 회사는 플라스틱용기시장에서 세계 1위의 야심을 키우고 있다.이를 위해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을 목표로 세웠다.크로바의 네잎은 인재와 상품·기술·설비를 뜻한다. 이 회사는 90년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정밀화공 포장용기의 주원료인 고분자 폴리에틸렌(HDPE)을 개발,생산원료의 자립화에 성공했다.이 분야에 최고의 기술이 있는 독일 마우저사와 기술제휴로 용기를 찍어낼 때 플라스틱을 골고루 녹게 하는 가소화 장치와 두께를 일정하게 하는 장치도 개발했다. 이런 기술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1백20여명의 근로자가 수출 8백만달러,1백5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종업원 1인당 매출이 같은 업종보다 1백2.7%,순이익은 63.8%가 높았다.플라스틱 업종에서 드물게 고부가가치화를 실현했다.올 목표는 수출 1천만달러,매출 2백억원이다. 지난해에는 82년부터 시작한 생수용기의 생산을 늘리기 위해 1천7백평 규모의 제2공장을 세웠다.풀무원과 스파클·다이아몬드 생수 등 국내 생수업체에 10∼18.9ℓ의 대형 용기를 공급하고 있다.웬만한 회사나 관공서에 있는 생수는 대부분 이 회사용기에 담겨 있다고 보면 된다. 외국인 기술연수생이 한명도 없다는 점도 이 회사의 자랑거리다.몇푼 아끼려고 근로자간에 위화감을 만들지 않겠다는게 강사장의 경영철학이다. 근로자급여도 같은 업종보다 20%이상 높다.전체 근로자의 68%가 3년이상 장기근속자다.일좀 할만하면 대기업으로 옮겨가는 풍토에서 중소기업이 성공하기 어렵다고 판단,평생직장 만들기에 나섰다.학자금과 무이자 주택자금·결혼자금 등 근로자 복지수준은 대기업에 버금간다.기혼 근로자들은 모두 안산에 자기소유의 아파트가 있을 정도다. 복지지원을 위해 생산공정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찾아내 경비절감을 꾀했다.무리한 사업확장을 하지 않고 은행돈도 가급적 쓰지 않았다.이렇게 해서 금융비용을 포함해 경비를 다른 중소기업보다 5분의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었다. 강사장의 이같은 경영전략은 82∼83년 부도직전까지 몰렸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76년 자본금 5백만원,종업원 5명으로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매출신장이 두드러졌다.10년간 럭키에서 일한 것이 음으로 양으로 보탬이 됐다.은행돈까지 끌어 20억원짜리 기계를 수입해 투자하고 생수용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그러나 설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출이 적은 이 업종의 특수성에다 화학업의 세계적인 불황까지 겹쳐 현금이 돌지 않았다.강사장은 하루 하루 부도를 막기 위해 뛰어다닌 그때를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경제를 머리(대기업)만 크고 허리(중소기업)는 없는 기형아라고 진단한다.정부가 중소기업을 키우려면 일과성 자금지원에 그치지 말고 인력난 개선과 인재확보를 위해 장기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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