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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진청 23년만에 간판 내린다/이달 중순께 중기청으로 흡수

    ◎73년 발족… 수출입국 밑거름/초대 최종완씨 등 청장 12명 공업진흥청이 신설되는 중소기업청으로 흡수되면서 간판을 내린다.중기청의 정확한 개청일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이달 중순쯤에는 문을 열 것으로 보여 공진청은 23년1개월만에 정부조직에서 사라지게 됐다. 공진청은 지난 70년대에 경공업 중심에서 중화학공업 중심으로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추진하기 위해 73년 1월6일 발족됐다.수출입국을 위해서는 공업분야의 기술발전과 품질향상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주 업무는 산업표준,국제인증,계량,품질관리 등으로 공업기술진흥에 밑거름이 돼왔다. 청 발족당시 3천5백58종이던 공업표준화규격은 지난해말 현재 9천3백70종으로 늘어났으며 1백82개품목 2백29개공장 6백94건이던 한국공업규격 표시(KS)허가건수도 9백73개품목 4천3백26개공장 1만1백93건으로 확대됐다.이밖에 생산분임조 활동,품질관리분임조 경진대회 등을 통해 품질향상을 기했으며 공산품 품질표시제도 등을 운영,소비자보호운동에도 기여했다. 지금까지 거쳐간 청장은 초대 최종완청장을 비롯,현 청장인 김유채청장까지 모두 12명에 이른다.초대청장을 지낸 최종완씨는 73년1월부터 78년 12월까지 5년 11개월을 역임,최장수를 기록했다.최단명 청장은 지난해 연말 기술직으로는 처음으로 청장이 된 김청장으로 취임 두달만에 물러나게 됐다.
  • 유권자가 나설때(선거풍토 개혁 내 손으로:1)

    ◎「표대가」 기대심리가 타락 부채질/21세기 눈앞… 「큰정치」 씨 뿌려야 제15대 총선이 70일 앞으로 다가왔다.이번 총선은 작게는 정치권의 판도,크게는 국가의 앞날을 좌우할 중대한 정치행사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국내외적인 상황을 고려할때 특히 이번 총선은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중요하다.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도 21세기 선진국진입을 앞두고 큰 전환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과거 우리정치에서 흔히 보아왔던 후진적 선거양태가 재연된다면 정치선진국 진입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따라서 유권자들의 「바른 한표」의 행사는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유권자 한사람 한사람의 올바른 투표행태가 진정한 선거혁명의 촉매제구실을 하고 공명선거가 새로운 정치문화를 뿌리내리는 밑거름으로 활용될때 우리나라는 명실공히 선진국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공명선거를 위한 특집을 몇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15대 총선에서 3선에 도전하는 신한국당 백남치의원(서울 노원갑)은 요즘 아침부터 저녁까지 발이 닳도록 의정보고회에 다닌다.과거에는 대규모의정보고회를 열었으나 지난해 전직대통령의 비자금 파문이후 자금사정이 여의치 않다.그래서 이제는 소규모 의정보고회라도 자주 열어 당원들과 접촉하는 기회를 갖는다. 야당인 민주당의 강수림의원(서울 성동병)도 예외는 아니다.지난 연말부터 한개 동을 몇 개 지역으로 나눠 의정보고회를 잇따라 열고 있다.또 국민회의 신계륜의원(서울 성북을)도 대학생 중심의 자원봉사대를 결성,비용을 줄이는 선거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금품요구나 향응제공,매표행위 관행은 우리 정치사를 어둡게 만든 고질적인 병폐들이다.그러나 통합선거법의 출현으로 돈안드는 선거를 치를 수 있는 길이 열렸다.실제로 지난 해 6·27 지방선거에서 여야후보자들은 「입은 풀고,돈은 묶는」 통합선거법의 위력을 여실히 체험했다. 오는 4월의 총선에서 여야후보자들은 불과 4년 전과는 달리 돈안드는 선거를 치르기 위해 기발한 아이디어 짜내기에 여념이 없다.역대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떠올랐던 금품이나 향응제공 등이 최근 눈에 띄게 줄어든게 사실이다.신한국당의 박범진의원(서울 양천갑)은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과 엄격한 통합선거법,그리고 비자금파문 등으로 정치권 전반이 과거와 같은 자금동원은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제 돈봉투를 돌려 당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진 것은 확실히 큰 수확』이라고 달라진 선거분위기를 소개했다. 그러나 망국적인 지역감정이 청산될 것이라는 희망적인 전망은 별로 없는 것 같다.지난 해 6·27선거에서 전국에 휘몰아쳤던 「지역할거주의」 바람이 15대 총선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것이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여야 4당은 그래서 한석이라도 더 얻기 위해 사활을 건 공천싸움에 들어갔다.일부에서는 지역감정을 업고서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기세이다. 부산·경남권을 기반으로 한 신한국당에 맞서 호남의 국민회의,충청권의 자민련,대구·경북의 무소속 분위기 등 여야와 무소속이 지역패권을 위해 또 다시 지역감정에 불을 지피는 셈이다.반지역주의와 「3김구도 타파」를 외치는 통합민주당도 「비호남」「친영남」의 체취가 강해 지역주의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다. 김호진고려대교수(정치학)는 『지역감정의 뿌리가 워낙 강하지만 15대 총선을 통해 변화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면서 『정치지도자들이 지역구도의 프리미엄을 청산하는 대국적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유권자들이 정치적 무관심도 공명선거를 위해 극복해야 할 당면과제 중의 하나로 꼽힌다.지난 연초 한 연구기관이 유권자 1천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지당이 없다』는 무당파층이 모두 49.1%로 가장 많았다.유권자들의 정당불신 및 정치적 무관심의 정도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심한 경우 선거때 후보가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투표하기도 한다.지방선거 때는 광역·기초 단체장과 의원 등 모두 4사람에게 투표하면서 누군지도 모르고 한가지 번호에 계속해서 투표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통계도 나왔다. 15대 총선은 역사적인 과거청산작업을 마무리하고,지난 한세기를 정리해야 하는 책무를 안고 이제 성큼 다가왔다.이용필서울대교수(정치학)는 『공명선거 캠페인을 종합관리하는데 있어 이제 소득 1만달러시대에 걸맞게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부단한 계몽과 계도활동을 통해 유권자,특히 젊은이들의 정치적 무관심을 타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총선은 또 여야가 바로 97년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인식,치열한 과열현상이 우려된다.통합선거법상 엄격한 제약으로 돈과 조직을 동원한 공공연한 선거운동은 줄어들 것이다.하지만 민선지방자치단체장과 특정당의 교묘한 협조,예컨대 선거기획 자료제공,정책·예산의 특정당 편중 운용 및 홍보등에 따른 시비와 여야간 치열한 고발 및 성명전,이 과정에서의 흑색비방 등이 예상된다.중앙선관위 임좌순선거관리실장은 『선관위 등 정부당국을 통한 단속 만으로는 부족하다』면서 『시민단체 및 후보자 상호 간의 감시·고발이 상호보완적으로 이뤄져야만 공명선거가 정착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만달러시대 맞는 경제의식을(사설)

    한국은 개인소득 1만달러 경제시대를 맞았다.올해부터 우리는 1만달러를 믿거름삼아 21세기 「세계선진중심국가」로 진입하기 위한 시동을 걸어야 하겠다.오는 2010년에는 선진 7개국(G7)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각 주체는 경제의식개혁작업에 착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계선진중심국가」로 도약하려면 먼저 1만달러 달성의 원동력인 기업의 왕성한 비즈니스 마인드와 근로자의 근면성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자원과 기술이 부족한 우리가 고성장가도를 달려 1만달러의 고지를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일에 대한 열정 덕택이다. 1만달러시대를 맞아 요구되고 있는 것은 그 소득에 걸맞는 성숙된 의식과 행동양식의 정립이다.그것은 바로 21세기초 선진중심국가 진입의 필수조건이다.경제주체중에서 실질적인 생산주체인 기업은 과거 『하면된다』는 양적 개념에서 한걸음 나아가 『향상시키자』는 질적 개념으로 의식을 전환해야 하겠다. 산업사회시대 3대생산요소는 자본·노동·자원이다.그러나 정보화시대의 생산요소에는 의식이 추가된다.우리 기업가와근로자는 의식이 생산요소임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기업이 개선해야 할 의식과 행동은 상품생산에서 대충대충 끝마무리를 하거나 공기를 단축한다는 명목으로 부실시공을 하는 것 등 적당주의다. 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천민자본주의적 사고 역시 청산해야 할 구시대적 유산이다.신뢰와 신용이 자본이자 의식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기업인은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근로자는 제품생산에 철저한 책임감을 갖는 일대 의식개혁이 있어야 하겠다. 소비자는 전시적인 과소비와 퇴폐적인 향락을 지양하는 동시에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풍요를 중시하는 건전한 소비문화를 창출해나가야 하겠다.정부는 환경 등 필요한 규제 이외의 규제는 철폐하고 공정한 경쟁질서가 정착되도록 유도하는 데 행정의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96년을 기점으로 의식과 행동의 선진화를 실천하여 「세계선진중심국가」 진입의 반석을 쌓아올리자.
  • 신춘좌담/올해는 문학의 해… 발전의 길 어디에

    ◎“영상시대 문단의 능동적 대응 긴요”/「문학의 위기」 강조보다 사고의 궤적 넓혀야/젊은 작가들 상업화 영합 냉철한 반성 필요/1백년 정리 근대문학관·전문번역원 건립 계획 □참석자 서기원 유종호 신경림 활자의 발명이래 문학은 문화의 꽃으로 군림해 왔다.그러나 영상문화시대에 접어들면서 그 위상은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수없이 쏟아지는 영화,비디오,컴퓨터프로그램등 영상정보의 홍수속에서 문학은 낡은 문화형식으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또한 문화예술시장의 확대로 문학의 상품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문단은 와해되고 문인들은 무력감에 빠져들고 있다.때마침 문화체육부는 96년을 「문학의 해」로 정했다.「문학의 해」 조직위원장인 작가 서기원씨와 평론가 유종호이화여대교수,시인 신경림씨의 좌담을 통해 우리 문학의 현실을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며 「문학의 해」에 대한 기대를 들어 본다. ▲유종호씨=문학의 위기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만 갑니다.날로 확산하는 영상매체에 밀려 문학의 존재이유마저 사라질지 모른다는 겁니다.「문학의 해」를 맞아 문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도 많습니다.영상정보시대에 문학의 위치는 어떠하며,장차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자유로운 의견개진이 있으면 합니다.문단 대선배인 서선생께 먼저 부탁할까요. ▲서기원씨=TV며 CD롬,컴퓨터통신 같은 첨단매체를 통해 시청각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상태에서 문학같은 활자매체의 인기가 떨어지는 건 어찌보면 불가피하지요.여기에 문학의 상품화 현상까지 겹쳐 문인들의 창작활동이 위축되고,위기라느니 하는 말도 나오는 거지요.하지만 이런 상황을 너무 비관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누가 뭐래도 문학은 모든 문화예술의 토대 아닙니까.어떤 예술이라도 언어를 기본 매개체로 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법입니다.영화만 하더라도 시나리오라는,언어로 된 일차적 소재 없이는 성립하지 못하지요.한마디로 위기의식을 지나치게 강조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그보다는 좋은 작품을 써서 독자를 늘리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정보를 수용하는 입장인 독자쪽에서도 좋은 문학을 찾아 읽는 노력을 해야겠구요. ○독자도 좋은 작품 발굴 ▲신경림씨=문학언어의 정수는 시라고 하는데 사실 「시의 위기」라는 말이 없던 때가 없었어요.제가 문단에 나온 30년전에도 「이제 시는 끝났다」고 했지요.그래도 시는 존재해 왔고 항상 일정한 독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상대적으로 요즘처럼 시 독자가 많은 적도 없었습니다.요즘 문예창작과 출신의 취직이 잘 됩니다.출판사,광고 등 정보산업계통에 잘 팔리지요.글쓰는 사람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 것을 볼 때 아까 서선생도 말했듯이 문학은 오히려 더 길을 넓힐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됩니다. ▲유씨=두분의 낙관적 견해에 동감입니다.영화가 처음 등장하자 「소설 종말론」이 나왔지만 소설은 여전히 가장 많이 팔리는 문화상품 아닙니까.단지 경제적 풍요,사회 민주화 등에 따라 늘어난 문화인구를 문학쪽으로 많이 끌어당기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있어요.또 위기론에 반드시 뒤따르는 주장이 예술가나 시인이 현대사회에서 푸대접받고 소외된다는 겁니다.그러나 사실 많은 좋은 문학이 소외나 고독같은 결여감에서 싹터왔잖습니까.풍요롭고 번영하는 사회에서 나만 소외돼 있다는 불만스런 감정이 오히려 창작의지를 강화하는 촉매로 작용한다고 봅니다. ▲서씨=문제는 바쁜 가운데 영상매체로 손쉽게 정보를 얻는데 익숙한 젊은층입니다.영상정보에 길든 감수성은 힘든 독서를 기피하지요.요즘 부쩍 늘어난 감각적인 소설과 시엔 고민한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더군요.우리 문학에 대한 적신호입니다. ▲신씨=좋은 작품도 광고 없이는 안 팔리는가 하면 형편없는 작품도 광고만 잘하면 날개돋친듯 나가는 현상 또한 우려되는 일입니다.시인·작가들이 먼저 상업주의를 경계해 좋은 작품을 독자에게 읽히려는 노력을 해야죠. ▲유씨=독서는 능동적 행위인 데 비해 영상매체는 수동적으로 바라보게 합니다.독서주체가 수동적 자세에 익숙해진 나머지 자연 독해력이 떨어져 안이한 독서에 그칩니다.학생들을 보면 전문MC나 개그맨 뺨칠만큼 말을 잘해요.이런 게 다 어릴 때부터 개그 등 TV프로를 보고 받은영향이예요.버지니아 울프라는 영국작가가 1920년대 쓴 작품중에 「앞으론 세대차가 인종차가 될 것」이라는 말이 있는데 요즘 이 말을 실감해요.TV보고 자란 세대만도 기성세대에겐 별종같은데,PC만으로 모든 것을 불러내는 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는 어떨지 예측하기 어렵지요. ○PC세대 예측 못해 ▲서씨=소설이 영상매체와 다른 점은 몇줄만으로도 상상력을 크게 자극한다는 겁니다.독서는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가는 행위가 아니라 위대한 작가의 감수성과 사고의 궤적에 동참하는 일이지요.이에 비하면 영상세대는 상상력도,주체성도,창조성도 단연 떨어져요.감수성만 특이하게 발달하지요.이렇게 된 데는 입시위주 교육에도 책임이 커요.문학도 다른 모든 공부처럼 때가 있습니다.중·고교,대학 1∼2학년 때 집중적으로 읽은 책들이 내 문학의 밑천이예요.그 이후엔 스쳐지나갈뿐 머리에 잘 남지 않아요.하지만 지금 교육제도에서 그 중요한 시기에 문학적 교양을 쌓을 수 있습니까. ▲유씨=시는 좋아서 자연히 외워져야 하는 건데 우리 교육은 수능시험 대비라면서 소설도 다이제스트해서 읽게 하지 않습니까.문학이 점수와 직결되니 재미를 알 도리가 없어요.세칭 명문대 일류학과 입학생들에게 감명깊은 책을 물어보면 이렇다 할 게 없어요.고작 하이틴로맨스 소설이나 심지어 만화책 등을 대는 학생도 많습니다.학교 못잖게 매스컴의 역할도 중요해요.우리 매스컴은 문화면이 넓지도 않은데다 그나마 연예·TV에 다 뺏겨 문화시평 하나 찾아볼 수 없어요. ▲서씨=매스컴이 소비문화에만 쏠려 대중과 문학과의 거리를 전혀 좁혀주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예요.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가교노릇은 커녕 대중문화쪽으로만 기울어 있다는 거지요.이처럼 문학의 상업화가 갈수록 가속화하니 젊은 문인이 어떤 태도를 취할지 애를 먹고 있어요.아무튼 아주 절망해버리거나 아예 세속적으로 이에 편승하는 극단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유씨=96년이 「문학의 해」로 지정됐는데 「문학의 해」조직위원장께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서씨=먼저 문단 일각이 「문학의 해」행사 참여를 거부한 사실을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반쪽행사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참여를 유도하겠습니다.그들과도 문단 친구인만큼 대화로 얼마든지 문제를 해결해 나갈수 있다고 믿어요. ○매스컴 역할도 중요 「문학의 해」행사는 화려한 이벤트보다는 먼 장래를 내다보고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해 나갈겁니다.한국문학 1백년을 수놓은 서적과 자료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문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활용할 근대문학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문학의 해에만 그치지 않는 지속사업으로 정해 땅부터 빨리 확보하겠습니다.또 공단이나 지방도시 등 문학 소외지역에서 강연회·낭송회를 활발하게 열어 독자층을 넓히려 합니다.우리 문학의 국제화를 위한 전문 번역원도 설립할 계획입니다. ▲신씨=제 경험으로도 지방에서 강연을 해 보면 서울보다 청중이 많이 모이고 열기가 뜨거운데 놀라요.아무래도 지방에선 문화적 갈증이 큰가 봅니다.성의있는 시인과 작가라면 직접 독자를 찾아나설 줄 알아야지요. ▲서씨=문인들이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문학지도를 만들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생각해 볼만 합니다. ▲신씨=지난해 11월 「한국문학포럼」행사 참석차 프랑스에 가서 느낀 건데 우리 작가 소개 폭이 너무 좁아 몇몇 작가에게만 편중돼 있더라구요.작가의 개성과 경향이 저마다 다른데 폭넓게 소개되지 않고서야 한국문학의 실상이 제대로 전달될 리 없지요.노벨상은 여러 작가를 통해 그나라 문학이 두루 소개돼 있을 때야 주어지는 것이거든요. ○세계보편성 추구를 ▲유씨=일본은 엄청나게 많은 자국 작가 작품을 번역해 내놨어요.어지간한 작품 가운데 서구에 소개되지 않은 게 없죠.많이 번역되다 보니 독자도 늘고 노벨상도 따라오는거죠.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처음 노벨상을 받은 때는 1968년이지만 일본문화는 이미 19세기 말부터 서구사회에 폭넓게 알려졌어요.서구인이 다도·무사도·선불교를 접한 것도 일본을 통해서이죠.일본 전통연극인 「노」,전통시가 「하이쿠」 등은 1910년대 에즈라 파운드를 비롯한 영·미 이미지즘운동에도 영향을 미쳤어요.이처럼 오랜 기간을 두고 일본 문화가 서구로 하나하나 흘러들어가 분위기를 조성한데 맞춰 60년대 일본이 경제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본문학이 국제적 각광을 받게 된 것입니다. ▲서씨=노벨상에 대한 갈망은 어찌 보면 비문학적이지요.그 상을 타건 말건 우리 문학의 존재가치와는 상관이 없으니까요.그러나 한가지 참고자료는 될수 있지요.「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특수한 사회공동체의 경험이 세계적 보편성과 반드시 등식을 이루지는 않습니다.음악이나 미술에서 세계적으로 통할수 있게된 몇몇 사람들이 한국적인것의 추구보다는 방법론에서 세계적인 보편성을 앞질러 갔다는 점은 문학의 측면에서도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씨=문학의 해를 맞아 올 한해가 우리 문학의 장기적 발전에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마음을 모으면서 토론회를 마칩니다.
  • 삼풍참사기적생환 3총사의 아듀’95/“그고통은 제2삶의 밑거름”

    ◎“새해엔 대형참사 비극 없어야”/최명석­복학준비·컴퓨터공부 열중/유지환­호주유학 부푼꿈에 잠설쳐/박승현­“부모 짐 덜겠다” 취직준비 『힘들었던 날은 또다른 삶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어요.금년 한해는 정말 악몽이었지만 새해는 저기 모이를 쪼는 비둘기들의 다소곳한 몸짓만큼이나 평화스런 한해가 됐으면 해요.저희들도 모든 이들의 평화를 위해 노력할게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현장의 「생환 삼총사」 최명석(20)군과 유지환(18)·박승현(19)양은 31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도산공원에서 만나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면서 올 한해를 보내는 감회를 이같이 말했다. 「죽음의 동굴」에서 버텨야 했던 악몽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생환 때도 그랬던 것처럼 이들의 거침 없는 말과 발랄한 몸짓에선 참사의 그늘을 느낄 수 없다.그래서인지 이들의 「아듀 95년」의 소망은 더욱 값져 보인다. 『지난날에는 나만을 위해 살아왔다고도 여겨지지만 한살 더 먹는 내년에는 남을 도울 수 있는 보람있는 일을 해 보고 싶어요.그동안 남의 도움만 받아 왔잖아요』 구조되면서 마실 것을 달라던 「철부지 신세대」의 티를 벗고 의젓한 모습으로 바뀐 「철든 신세대」들의 당찬 다짐이다. 묵은 해를 마감하는 이들에게 다가올 새해의 하루하루는 어느 때보다 신나면서도 바쁠 것 같다. 2백30시간만에 생사의 갈림길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또다른 희망」을 안겨준 명석군은 요즘 복학준비에 여념이 없다.삼풍사고 이후 시작한 일본어 공부도 계속하고 컴퓨터공부도 새로 시작할 생각이다. 명석군은 『걱정을 끼친 부모님께는 열심히 공부해서 보답하고 저를 도와주신 분들의 은혜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움으로써 갚겠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뒤 전에 다니던 삼광유리에 복귀한 지환양은 「유학의 나래」를 펴고 있다.회사에서 호주로 유학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가끔씩 밤잠을 설치는 등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유학일정은 아직 잡지 않았지만 어떤 과목을 전공할 지 결정하느라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다.그러나 친구들과 어울릴 때가 가장 즐겁다.삼풍 때 잃은 친구만큼이나 새로사귄 친구들에게 쏟는 정은 지난날을 잊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지환양보다 한살 많은 승현양은 새해에는 꼭 직장을 구할 생각이다.부모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활해 가고 싶기 때문이다.남자친구를 사귀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따뜻한 마음을 가진 남자를 만나 데이트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악몽에 시달려 남모르게 고민한 적도 많았어요.특히 삼풍 사고의 보상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유가족들을 쳐다보기도 왠지 민망했어요』 일이 터지면 그때그때 때우고 넘어가는 식의 무책임 때문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또다른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세사람 모두 악몽의 95년을 망각의 늪으로 보내면서 『새해에는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의 가슴을 따스하게 녹일 수 있는 훈훈한 사회가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뉴욕시립오페라단 이현자 이사(세계속의 한국인:6·끝)

    ◎링컨 센터 각종 공연 재정적 뒷받침/「신이 내린 목소리」 신영옥·도밍고 발굴 일조/허드슨리버 뮤지엄 등 6개 단체 이사도 역임 문화예술의 꽃은 이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정성어린 손끝에서 피어난다.뉴욕이 세계적 문화예술의 도시로 숨을 쉬는데는 모든 것을 아끼지 않는 지원가들이 있기 때문이다.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기 위해 「거름」을 주는 일로 뉴욕에서 크게 주목받는 사람들 가운데는 한국인도 끼어있다. 이현자씨(61).그는 국제적인 문화예술 지원가이다.뉴욕의 문화예술상징이며 종합무대예술센터인 링컨센터내에서 1년에 5개월가량 공연하는 유명한 뉴욕시립오페라단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최근에는 한국「예술의 전당」명예이사로도 위촉받았다.올해로 창설 51주년이 된 뉴욕시립오페라단에는 30여명의 이사가 있지만 그는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족적」도 비교적 크다는게 이곳 문화예술계의 평이다.필하모니오케스트라,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링컨센터에서 그의 지원활동은남다르다.지원규모도 크지만 정성 또한 그에 못지 않다고 한다. ○「예술의 전당」 명예이사 이씨는 뉴욕시립오페라단 등 문화예술단체에 지원활동을 벌이는 한편 각종 사회단체에도 한동안 활발한 활동을 벌였다.그가 최근까지 몸담은 사회단체만해도 허드슨리버 뮤지엄,리버데일 네이버후드,뉴욕 브롱크스 경노회관등 3군데나 된다.93년 봄까지 5년동안 브롱크스 소재의 허버트 리만 대학이사도 지냈다.특히 75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허드슨리버 뮤지엄에는 이사로 12년여동안 재직하면서 박물관의 창립모토인 「미국적 생활과 역사를 보존하자」는데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많을 때는 한꺼번에 6군데의 문화예술단체나 사회단체의 이사직을 맡기도 했다. 『에너지의 분산을 막고 싶고 문화예술지원가로서의 활동이 더 적성에 맞아 아쉽지만 사회단체활동을 정리했읍니다』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만큼 바쁘게 생활해 온 이씨는 적성에 맞는 일을 하려 문화예술지원분야에 뛰어들었다고 말한다. 이씨는 문화예술지원가의 역할이란 한마디로 실질적이며 헌신적이어야 한다고 전제하고 3W(Wisdom/지혜,Wealth/부,Work/일)를 모두 바쳐야 한다고 강조한다.나름대로 확립한 문화예술지원에 대한 일종의 철학이다. 이씨는 뉴욕시립오페라단이 신인들의 발굴무대이자 젊은 아티스트들의 실험무대로 활용되는데 더욱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세계 각국에서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정통오페라만을 공연하는 것과 크게 대비된다.이씨는 「꿈나무」문화예술가들이 이곳에서 자질을 키우고 더 큰 공연세계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세월가는 것도 잊는다고 웃었다.세계적인 오페라가수 플라시도 도밍고,호제 칼레라스,세릴 밀네스,세미엘 라메이,헬렌 유,한국의 신영옥씨 등이 시립오페라단을 거쳐간 인물들이라고 자랑했다. ○지혜·부·일 「3W」 헌신 지난 8월 예술의 전당 명예이사로 뽑힌 배경에 대해 『연륜이 있고 이미 활성화된 기관인 뉴욕시립오페라단에서 쌓은 문화예술적 경험을 새로 태어난 예술의 전당에 접목시켜 달라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밝힌 이씨는 한국 문화예술의 세계화에 일조할 생각에 부풀어 있다.이씨는 문화예술이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는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좌석을 파는 방법에서부터 기금모금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청사진을 펼쳤다.한국식이 좋은 것은 더욱 발전시키고, 미국식이 좋은 것은 과감하게 도입해 완벽을 기해야 한다고 문화예술 지원가로서의 소감도 덧붙였다. 이씨는 유럽의 문화예술은 전통을 지키는 면이 강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약한 반면 미국 것은 도전을 통해 약진을 하기 때문에 이 두가지를 잘 융합시켜 「완전」을 창조하는 것이 유익하다고 설명했다.한국 문화예술의 경우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단계에 있어 그만큼 가능성이 많다면서 그 가능성이 「완전」으로 실현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그는 특히 줄리아드 음대에 다니는 학생들중 한국학생들이 상당수에 이르며 뛰어난 재능으로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한국인 예술인들이 많으면서도 한국에 이들이 설 「집」이 많지 않다는 점을 안타까워했다.자질을 발휘할 장소가 고국에적은 탓에 「집시」생활을 하는 유명 예술인들이 많은게 항상 부담이자 아쉬움이라고 했다. 지난 70년 미국에 온 이씨는 한국 국민들이나 재미 교포들이 음악 등 문화예술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늘리는데 미력이나마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그는 문화예술의 여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예술의 전당같은 문화예술기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한국의 문화예술기관이 난립하지 않고 한 구심점으로 통합됐으면 하는 희망도 제시했다. ○후원회 활성화 강조 그는 특히 한국에서 문화예술계의 후원회조직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점을 가장 큰 약점으로 들었다.링컨센터만 하더라도 멤버십이 잘 활용돼 다양한 재정적 뒷받침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했다.물론 멤버십이 제대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기금기여에 따른 이익이 내게 돌아온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한 뒤 이를 위해 한국의 조세정책 등 각종 정책이 문화예술활동을 적극 지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뉴욕의 일반 공연장만 하더라도 세금을 낸다는 생각으로 1천달러이상 기금을 내는 사람들이 수두룩해 문화예술지원자가 「만원」상태라고 소개했다.미국에는 문화예술기관 등 비영리기관을 돕는 일은 납세와 똑같다는 인식이 국민사이에 심어져 있고 그만큼 후원자층이 두터운게 부럽다고 했다.문화예술의 뿌리가 제대로 내려져 세계적 일류 오페라가수인 파파로티가 곁에 있고 도밍고같은 세계적 오페라가수들의 목소리를 시즌때마다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되물으면서 「문화예술의 혜택」을 열거했다. 이씨가 문화예술지원가가 된 계기는 76년 변호사 겸 사회사업가인 미국인 남편 허버트 에이브론즈씨와 결혼하면서 마련됐다.당초 패션디자이너였던 그는 남편의 집안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레 문화예술지원에 눈을 떴다.남편 집안은 재단을 만들어 문화예술방면,특히 링컨센터에 수십년동안 도움을 줘왔다.이씨는 결혼이후 링컨센터내에서 공연하는 시립오페라단 크리스터퍼킨 단장의 재능이 아까워 그의 오페라단을 발벗고 도와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됐다고 했다.벌써지원에 나선 지 15년이 됐고 92년부터는 이사로 선임돼 각종 행사에도 깊이 간여하게 됐다고 했다.리허설같은 작업공연을 한해 20번 넘게 보고 평가작업에도 참여하는 등 바쁘게 보내고 있다.음악가족이 되다보니 남편도 푸치니의 튜란도트 오페라에 말한마디 없는 단역 농부로 출연하기도 했다는 이씨는 요즘 문화예술지원이 인생의 전부인양 착각될 때가 많다고 했다. ▷이현자씨 신상 메모◁ ▲34년 서울출생 ▲53년 이화여대 국문과 입학(3년 중퇴) ▲70년 도미 ▲82년­95년 9월 뉴욕 브롱크스경로회관 이사 ▲83년­95년 9월 허드슨리버박물관 이사 ▲88년­93년 3월 허버트 리만 대학(뉴욕 브롱크스 소재)이사 ▲89년 9월 뉴욕 한인봉사센터 이사 ▲89년­95년 9월 뉴욕 리버데일 네이버후드 하우스 이사 ▲92년­94년 뉴욕 한인봉사센터 이사장 ▲92년­현재,링컨센터내 뉴욕시립오페라단 이사 ▲95년 8월­현재,예술의 전당 명예이사
  • 「예수 사랑」 실천… 참인술 한평생/성탄절에 타계한 장기려 박사

    ◎차남과 맨손 월남… 옷두벌만 생겨도 남에게/내집 한칸없이 가난한 환자 치료에 온종성 평생을 가난하고 병든 사람을 위해 인술을 펴며 살아온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 성탄절인 25일 새벽 「사랑과 희생」이라는 값진 가르침을 성탄선물로 남기고 눈을 감아 세인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고인은 80세가 넘어서도 하루 40여명에게 무료진료를 베푸는 등 「박애정신」을 몸소 실천했다.그에게 있어 「사랑」과 「봉사」는 이같은 삶을 걷게 한 밑거름이었다. 지난 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장박사는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영향으로청년시절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꿈꿨다. 장박사는 대학졸업후 평양 기독병원에서 일하다 51년 1.4후퇴 때 부인 김봉숙씨와 다섯남매를 고향에 둔 채 둘째 아들 가용씨와 단 둘이서 월남했다. 곧 돌아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성경과 찬송가책만을 달랑 들고 부산까지 내려온 그는 그해 7월 맨손으로 영도구에 「복음의원」이라는 「천막병원」을 차려 전쟁으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무료 시술을 해주었다.후에 외국인 선교사 말스베리의 도움으로 부산복음병원으로 확장한 이 병원을 운영하면서 68년 이 지역의 교회집사들과 함께 한국 의료보험조합의 효시인 「부산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세워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는 데 헌신했다. 장박사의 평양시절부터 교회에서 알고 지내다 부산 피난때 재회했다는 방귀자씨는 『피난 때 옷이 두벌만 생겨도 한벌은 남에게 줄 정도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적이 없었다』고 회고했다.또 동료 의사들은 『부산대 의대 교수시절 학비를 마련 못한 가난한 제자들에게 학비로 쓰라고 월급을 선뜻 내놓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추모했다. 그토록 남의 불행에만 민감하다 보니 월남후 한번도 자기집을 가져본 적이없었다. 평생 병원측이 마련해 준 사택에서 묵었으며 작고하기 전에도 부산복음병원의 후신인 고신의료원 건물 꼭대기층에 마련된 10여평 남짓한 허름한 곳에서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 76년 이 병원 원장직에서 정년퇴직 한 뒤에도 그는 『아직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거제도로 건너가 섬주민들을 위해 인술을 베풀기도했다. 장박사의 이같은 봉사정신은 해외에도 알려져 79년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부문을 수상했다. 외롭게 사는 자신에게 주위에서 재혼을 권유할 때면 그는 북에 두고 온 가족을 못잊어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과 재혼했다』고 재회의 날만을 손꼽아기다렸다. 아들 가용씨는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지난 10월 「주님을 섬기다간 사람」이라고 비문을 새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하고 『아버님의 비범한 삶이 어두운 세상에 한 줄기 빛이 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 “하루 18시간 책서 손 뗀적 없어”/인문계 남수석 허영훈군

    『서울대 경제학과를 지원,훌륭한 경제학자가 되고 싶습니다』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한 대구 능인고 3년 허영훈(18)군은 『수석을 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신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려 다행』이라고 환하게 웃는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한 것이 높은 득점의 밑거름이다.특히 영어와 수학의 경우 예·복습을 하루도 거른 적이 없다.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정치와 경제.그러나 수능 영어시험에서도 만점을 받았다. 매일 상오 6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않지만 피아노도 「체르니 30번」까지 익힌 실력을 지녔다.대구 동중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했으며 고교 2년부터 전교 수석자리를 내놓지 않았다.IQ는 1백40. 경제학을 택하려는 것은 실생활과 관계가 깊기 때문이다.『부모님은 법대에 진학하기를 원하시지만 제가 경제학을 택한다 해도 좋아하실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대구시 수성 2가동에서 나전칠기 제작업소인 영진공예사를 운영하는 허술이(47)씨와 김태선(46)씨와의 2남 중막내.
  • 뉴욕 한인상가(세계속 한인촌 탐방:4)

    ◎“연중무휴 24시간 영업” 신화창조/플러싱에 2천곳 밀집·브로드웨이 70% 장악/특유의 근명성으로 업종 다양화… 상권확대 「문화와 예술의 도시」 뉴욕.20세기 세계문화의 중심지 뉴욕은 오늘도 다양한 문화·예술행사로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그 화려함속에는 한인교포의 꿈과 도전의 역사도 용해돼 있다.하지만 대부분의 한인교포는 너무나 바쁜 생활로 예술과 만날 여유가 없다. 상점을 직접 운영하는 한인교포는 주 6일을 일하고 있으며,심지어 일주일 내내 24시간 영업하는 한인상점도 적지않다.이 때문에 뉴욕이 자랑하는 미술관·공연장·전시장에서 매일 같이 주옥 같은 문화행사가 펼쳐지지만 이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한인은 이민초기 잠안자고 할 수 있는 세탁업·청과업·생선가게등을 하나씩 「점령」하면서 특유의 근면성으로 죽어가는 「뉴욕경기」를 살리는 데 일조를 했다.맨해튼 남부 폴턴어시장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으레 한국교민이다. 한인은 뉴욕지역에 「주 7일 무휴,24시간 영업」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놓은 장본인들이다.이런 경우 부부가 12시간씩 맞교대로 가게를 지키는 경우가 많아 미국인들로부터 『이게 무슨 부부인가』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70년대 코리아타운 형성 뉴욕시 5개 보로(행정구역으로 뉴욕시속의 작은 시)중에서도 한인이 가장 밀집해 살고 있는 퀸스보로 플러싱에는 밤이 따로 없을 정도로 한인이 부지런히 일하고 있는 곳이다.현재 10만여명의 한인이 살고 한인업소 2천여개가 있는 이 지역은 확고한 「한인촌」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이 지역에 한인이 서서히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77∼78년께로 이민초기자들이 하나 둘씩 모여 지금의 코리아타운을 형성하게 됐던 것.그러나 그 때는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면 생활권이 다소 나은 지역으로 이주해 갔으나 80년대말에 들어서면서 정착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인근 롱아일랜드나 뉴저지주로 옮겨간 사람들도 주로 한인을 상대로 하는 이곳으로 다시 영업장소를 옮기는 신풍조도 생겨나고 있다.주상권은 메인스트리트,루스벨트애비뉴,유니온스트리트에 형성되고 있으나 점포임대료가 비싸지면서 노던블르바드,니틀네그등 동쪽으로 상권이 확대되고 있다. 한인이 취급하는 업종도 초기에는 주로 세탁업·야채상등이었으나 이제는 업종이 다양화되면서 의류업·미용업·부동산업등 손을 안대는 분야가 없을 정도다. ○가발도매로 자리잡아 플러싱에서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곳이 유니온 상가.상점안이나 상점밖이나 모두 한국 사람이다.마치 서울의 한복판에 서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이곳은 의류·식당·제과점·미용·보석·여행사·콜택시·운송업체·오디오점·비디오대여점·유흥업소·부동산·보험등 거의 모든 업종이 총망라돼 있다.13년전에 생긴 이곳 상가는 한인상점수가 1백20여개로 거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다.한인업계의 축소판이며 플러싱 코리아타운의 상징이다. 유니온상가는 그러나 한인사회의 불황으로 파격적인 세일상품으로 손님을 끄는 등 대책마련에 한창이다.「왕창세일」,「거꾸로 세일」등의 광고문구가 어지럽다.중국상권이 메인스트리트와 루스벨트애비뉴 서쪽을 조금 잠식했지만 유니온 상가만은 난공불락이다.이곳에서 「우정이네 집」이란 여성의류점을 운영하고 있는 김윤황(56),김한자(53)씨 부부는 『지금은 한인업소끼리 경쟁을 해야 할 정도로 한인업소 천지가 됐다』면서 『경쟁이 심하다 보니 단합이 저해되는 사례도 생겨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뉴욕시 중심지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중의 하나인 24가와 34가 사이에 늘어선 한인도매상가도 빼놓을 수 없는 한인상권지역이다.언제나 분주한 이곳은 한인 도매·무역업자들이 땀과 꿈을 거름삼아 지난 20여년간 뉴욕한인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곳이다.한인이 처음 시작한 업종은 가발도매업이다.그러나 70년대 중반부터는 가방·의류·잡화·보석 중심의 도매상가로 재편됐다.80년대 들어 이 지역 빌딩임대료가 올라가면서 상권을 잡고 있던 유태인이 물러나고 한인이 본격적으로 진출,상권의 60∼70%를 장악하게 됐다.그러나 이곳도 불황과 한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 상실로 90년부터는 한인의 뉴욕도매상권의 독점적 지위가 흔들릴 위기에 처해있다. ○한인상권에 중국계 침투 이 지역에서 20년동안 가방도매업과 스포츠라이센스업을 하고 있는 신진상사 김동빈 사장은 『중국계등이 브로드웨이 한인도매상가를 파고 들고 있지만 아직 걱정할 단계는 아니며 우리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그러나 한국상품의 국제적 신뢰성을 잃게 하는 한국 가짜상표 범람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바로 20여년전 한인이 「몸 하나를 밑천으로」유태계나 이탈리아계가 장악하던 청과업계를 점령해가던 현상이 거꾸로 한인상권에 일어나고 있지만 한인도매상인들은 뉴욕의 도매상권을 미래에도 다른 민족에게 넘겨줄 수 없다는 각오를 새기고 있다.한인상가의 불빛은 여전히 밝고 화려하게 빛나고 있다. ◎“경제안정 바탕 정치적 힘 기를때”/윤용상 퀸스보로 플러싱 한인회장/“2백∼3백명이 투표권 행사” 안타까운 일 미국사회에서 한인이 가장 밀집해 있는 뉴욕 퀸스보로 플러싱의 한인회장 윤용상(56)씨는 『이제 이민 1세는 자녀들이 미국의 중심사회로 진출할 수 있도록 갖가지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면서 『그 지름길의 하나는 정치적으로 신장하고 투표권을 갖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회장은 『이민사회에서 미국 정치인의 힘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뽑는 힘을 가져야 하는 데 아직 인식이 부족해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밝혔다.플러싱지역만해도 10만명의 한인이 살고 있으나 투표권을 가진 사람은 고작 2백∼3백명에 불과하다. 한인교포의 유권자등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윤회장은 한인교포사회의 경제적 안정을 정치적 안정으로 전환해야 할 때라고 밝히고 『최근 미 이민법이 강화될 움직임과 함께 사회복지혜택의 감소추세가 역력해지자 시민권과 투표권을 신청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윤회장은 미주사회에서는 처음으로 지난 6월 교포청소년들로 미 보이스카우트 뉴욕연맹산하의 정식 보이스카우트단을 창설했다.그는 『미국 주류사회로 파고들어 갈 수 있는 교육과 지도자양성이 시급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78년에 미국으로 이민와 최근까지 교민사회 한국방송사를 운영하기도 한 윤회장은 『이민 1세는 언어장벽과 문화갈등을 극복하며 다른 소수민족에 비해 성공했지만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진단하고 『이제는 한인교포사회를 이끌어 갈 차세대에게 책임을 지을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의 정체성 회의와 정신력부족으로 어려움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 훈감한 유자향내… 정신이 맑아진다(박갑천 칼럼)

    어느날 집에 들어서니 훈감한 유자향내가 코를 찌른다.여러해전부터 유자차를 만들어오는 아내가 유자를 사다 썰고 있기 때문이다.그 향내는 진하되 천하지 않고 품위가 느껴진다.차가워진 계절의 입김인가.고향땅 해남의 정취를 일깨우는 향수의 내음이기도 하다. 한자로는 「유자」라 쓰지만 옛전적에 나오는 「귤」도 이 유자를 가리킨다.소공이 『사람들은 등자를 유자라 하는데 그건 잘못이다』고 했듯이 등자는 아니다.그냥 「귤」이라고들 말하는 감귤(밀감)과도 물론 다르다.그러니까 가령「채근담」에 쓰여있는바 『복사꽃 오얏꽃이 아무리 고운들 저 푸른 송백의 굳고 곧음만 하리요.배와 살구가 아무리 맛이 달아도 노란 등자 푸른 귤(등황귤록)의 맑은 향기를 못 당하나니…』의「귤」도 유자를 가리킨다.등자의 원산지가 인도인데 비해 유자의 원산지는 중국이기도 하다. 『강남에 심은 귤도 강북에 옮겨심으면 탱자가 된다』(강남종귤강북위외)고 하는 말이 있다.제나라재상 안영이 했던 말이다.초나라 영왕이 그를 골리려면서 제나라출신의 도둑을 불러들여 보여준 다음『제나라엔 도둑이 많은 모양이죠?』했을때 맞받아친 말 가운데 나온다.제나라에 살때는 도둑이 뭔지 몰랐는데 초나라에 오고나서 도둑질한걸 보니 초나라풍토가 그런것 아니냐는 비아냥이었다.귤이 탱자로 되었다는 빗댐이었는데 이때의 귤 또한 유자를 가리킴이었다. 굴원도 유자(귤)는 남쪽에서만 산다고 노래했지만(「◇◇」), 조선조문신 인재 강희안은 그의 「양화소록」에서 그렇지 않다면서 경험담을 털어놓는다.임금이 준 유자를 가져다 씨를 심었더니 남쪽것과 똑같이 자라났다는 것이다.그러므로 옛사람들은 남방과 북방의 풍토가 다름을 말했을뿐 탱자가 된다는 것은 되뜬소리라는것.그러면서 고려조 이인로의 시도 어화원(궁정화원 즉개성땅) 유자나무를 노래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옛전적(「사림광기」·「열반경」등)에는 죽은 쥐를 오줌독에 담가 썩여서 위로 떠오르는 것을 유자나무 뿌리곁에 묻어주면 열매가 옹골지게 열린다고 했다(「양화소록」).또 섣달안에 똥거름을 주고 소금물로 뿌리를 적셔주고 하는것이 좋다고도 했는데 옳은 말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유자를 오래 먹으면 악취를 없앤다.답답한 기운이 가시고 정신이 맑으며 몸이 가볍고 수명이 길어진다』­「본초」.어허 티끌세상,유자향내같은 인생을 살고지고.
  • 이달의 독립운동가 조병세 선생

    ◎“을사5적 처단” 궐밖서 상소항쟁/79세 노구 이끌고 “조약체결무효” 호소/국권회복 가망없자 유서남기고 자결 국가보훈처는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충정공 조병세(1827∼1905년12월1일)선생을 선정,발표했다.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광무황제(고종)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의 무효를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린 뒤 자결,순국한 애국지사다. 서울 회동이 고향인 선생은 26세때인 1852년 관계에 나가 사간원 정언·헌납·홍문관교리 등 조선시대 대쪽 같은 선비가 거치는 삼사의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개혁파 인사가 주도한 갑신정변이 실패로 끝나고 1894년 갑오개혁이 실시되기까지 10여년간 선생은 이조·예조·공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좌의정을 역임하면서 갈수록 커지는 외세의 간섭에 맞서 부국강병을 통한 자주적 국권수호에 힘썼다. 그러나 갑오개혁과 을미사변을 거치면서 일본의 국권침탈이 더욱 심화되고 일제를 몰아내기 위한 의병항쟁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선생은 이를 좌시하지 않았다. 1896년난국을 헤쳐갈 인재의 등용과 재정안정을 골자로 하는 19개조의 차자(상소의 일종)를 올려 서정개혁을 건의했다. 그럼에도 정국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자주적 외교노선과 부국강병책을 강구하지 못했고 일본과 러시아에 각종 이권을 내주는 등 혼미를 거듭했다.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의 강압으로 1904년 한·일협정이 맺어져 일제가 추천하는 재정·외교고문관이 한국의 재무·외무관계의 모든 업무를 관장하고 다음해 2월 재외국공사들이 소환되어 한국의 외교활동이 중단되는 등 국권은 더욱 기울어갔다. 이렇게 조국이 백척간두의 어려움에 처하자 선생은 79세의 노구를 이끌고 시폐 5조의 상소를 올려 광무황제에게 개혁의 필요성을 간곡히 상소했다. 선생의 노력도 헛되이 1905년 11월17일 일제의 강권으로 황제의 윤허도 받지 않은 한국의 외부대신과 일본의 특명전권공사 사이에 을사조약이 체결됐다. 을사조약은 일본이 외무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에 대한 관계 및 사무를 감리·지휘하고 한국의 개항장과 필요한 곳에는 일본인 이사관을 두어 모든사무를 관리한다는 치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약으로 대한제국은 자주적 외교권을 상실한 것은 물론 내정조차 일본통감의 지휘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선생은 『나라가 이미 망하였으니 신하로서 따라 죽음이 마땅하다』는 비장한 각오로 신병을 무릅쓰고 상경,광무황제에게 을사5적의 처단과 조약이 무효임을 각국에 밝힐 것을 요청하는 상소를 올렸다. 그러나 일제의 압력에 눌린 황제는 선생의 상소에 미온적이었다.선생은 다시 대신을 이끌고 의분에 찬 상소를 올리는 한편 영국·독일·미국·프랑스·이탈리아등 5개국 공사에게 공한을 보내 국제공법에 따라 합동회의를 열어 조약을 부인하는 성명을 낼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일본측은 황제를 협박,이들을 궁궐에서 내쫓게 하였으나 선생은 대한문 밖에서 석고대죄하며 상소항쟁을 계속했다. 거듭된 상소에도 국난을 바로잡을 수 없음을 통분히 여긴 선생은 가마에서 극약을 마셔 자결한다. 자신의 목숨으로서 광무황제를 비롯한 국민 모두의 자각과 국가존망의위급함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선생은 자결하기 전에 써놓은 유언과 각국 공사에게 보내는 서한,국민에게 당부하는 피끓는 유서를 남기고 이날 하오6시쯤 세상을 떠나니 이때 나이 79세였다. 선생의 순국소식을 접한 조야의 수많은 인사가 국가의 장래와 더불어 선생의 죽음을 애통해 했다. 종로 네거리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유생은 물론 기생조차 참여한 수천명의 군중이 선생의 우국충정의 정신을 기렸다. 선생의 유서를 게재한 대한매일신보는 논설에서 「한마디 한글자가 사람으로 하여금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게 한다」고 선생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선생의 유서를 요약하면 이렇다. 「신이 죽은 후에는 큰 결단을 내리시어 제순·지용·근택·완용·중현 등 5적을 대역부도로 처단하시고 각국 공사에게 교섭하여 위약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국가의 명맥을 회복하신다면 신의 죽는 날이 사는 해가 되겠습니다」 그의 죽음이 곧바로 국권회복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독립운동의 큰 거름으로 1945년 광복을 일궈낸 힘이 되었다.정부는 지난 62년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순국 90주기를 맞아 선생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
  • 대동여지도(외언내언)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정밀성과 풍부한 내용으로 후세 지도제작의 밑거름이 된다.경위도와 방위표를 사용했고 도로에 10리마다 점을 찍어 실제거리를 산정할수 있게 한 점등 과학적인 제작방식을 도입하고 있다.김정호의 첫 지도인 청구도이후 실로 30년만에 완성되는 불후의 업적이다. 김정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그의 가계도 출생지도 생몰 연대도 미상으로 돼있다.그런데 그의 옥사설이 그럴듯하게 유포돼 왔다.대동여지도를 본 대원군이 크게 노하여 국가기밀 누설죄로 감옥에 가두었고 얼마 안가 옥사했다는 것이다. 국민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내용이다.그러나 최근 학자들의 연구로는 옥사설은 날조로 밝혀졌다.일제가 대원군의 무지몽매함을 과장하기 위해 「조선어독본」에 옥사설을 꾸며내 처음 실었다는 것이다.일제의 조선사 깎아내리기의 한 단면을 보게 된다. 대동여지도 목판 원판 12장이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발견됐다는 기사가 신문마다 보도됐다.목판은 원래 60여장으로 추정되나 남아있는 것은 숭실대 소장의한장뿐.인출본은 있으나 목판은 그만치 귀하다.희귀문화재의 발견이 반갑기는 하나 국립박물관 창고에서 발견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중앙박물관은 소장품의 내용도 파악하지 못한채 국으로 보관만 하고 있었다는 것인지,이해할수 없는 「발견」이었다. 이 목판의 내력은 이렇다.1923년 조선총독부 박물관에서 당시 60원에 사들였고 경성제대 지도전시회에 출품된 일이 있다.그뒤 6·25이후 망실로 처리됐다가 다시 찾아 분류목록에도 등록돼 있다.그러니까 「발견」이 아니라 「확인」이라야 옳다.전적분야의 전문가가 박물관에 없었기 때문에 빚어진 혼란이다. 대동여지도 판각이 완성된 것은 1861년.지금부터 1백34년전 일이다.그런데도 목판의 대부분은 멸실된채 행방이 묘연하다.귀중한 문화유산을 우리가 얼마나 허술하게 다뤘는가를 대동여지도는 말해준다.
  • 문민정부의 「5·18」 자리매김

    ◎김 대통령 취임직후 “자료 정리” 지시/「주도 장성」 예편·묘역 성역화·피해 보상 김영삼 대통령의 「5·18특별법 제정」방침은 하루아침에 나온 것이 아니다.김대통령은 문민정부 출범 직후부터 5·18관련 자료들을 충분히 챙겨 놓도록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에 지시해왔다고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전했다. 취임직후에는 「12·12」 혹은 「5·17」을 주도했던 군장성들을 과감하게 예편시켰다.이어 특별담화를 통해 「5·18광주항쟁」을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김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지난 93년5월13일 발표한 특별담화에는 「5·18」을 보는 김대통령의 시각이 담겨져 있다. 김대통령은 『80년 5월 광주의 유혈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으며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서 있는 민주정부』라고 규정했다.5·6공이 광주항쟁을 「탄압」함으로써 출범한 군사정부인 것에 비해 새정부는 「5·18」쪽에 서서 탄생했다는 「차별화」를 일찍부터 시도한 것이다. 김대통령은 특별담화에서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 ▲기념공원 조성및 기념탑 건립 ▲상무대 시민공원조성및 기념일 제정 ▲사망자·행방불명자·부상자에 대한 추가신고 접수 ▲연행구금·유죄판결을 받아 사면복권된 자에 대한 전과기록 말소 등을 약속했다. 망월동 묘역의 성역화를 위해 모두 1백14억원을 들여 지난해 11월 공사가 착수됐다. 사업이 끝나면 5·18관련 사망자 1백31명과 시국관련 사망자 31명 등 총1백61기가 이장된다.묘역은 진입·참배·묘역·체험공간 등으로 구성돼 「민주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5·18항쟁의 주무대였던 광주시 동구 광산동 전남도청 자리 4천11평에는 오는 98년까지 2백50억원이 투입돼 기념공원과 기념탑이 들어선다. 또 옛 상무대 자리 5만평에는 5·18시민공원을 조성하기로 하고 지난 1월 기반조성공사가 시작됐다.상무대 시민공원에는 당시 시민이 끌려가 고초를 당한 군영창과 군사법원이 옮겨져 원형 그대로 보존될 예정이다. 피해자 추가보상은 총 2천7백50명이 신청해 재심을 통해 상당수가 보상의 혜택을 받았다.명예회복 차원의 전과기록 말소도 관련 구속자 6백79명에 대한 조치가 이미 완료됐다. 광주시가 시의회에 제출한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에 관한 조례안」은 계류중이다.광주만을 대상으로 기념일을 제정할때 5·18이 자칫 「지역화」될 것을 우려,심의를 늦추고 있다. 한편 검찰은 작년 12월부터 지난 7월까지 「5·17쿠데타」와 「5·18진압」관련 인사 58명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검찰은 그때 5·17주동자의 기소는 유예했지만 5·18 당시 시위전개 상황과 게엄군의 진압과정은 상당부분 밝혀내 공표했다.
  • 국내 인사 축하메시지(서울신문 50돌 특집)

    ◎“통일의 길 밝히는 등불 되라” □초일류국가 도약의 견인차로/강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헌정수립 이후 현대사의 어려운 고비를 넘어오면서 언론문화 창달과 민주질서 확립에 끊임없이 노력해온 서울신문의 정론필봉에 대해 경의를 표합니다. 돌이켜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은 북한 공산주의자들의 불법 남침으로 인한 한국전쟁과 경제적 어려움등을 이겨내기 위해 숱한 가시밭길을 헤쳐왔습니다.반세기에 걸친 대내외적 도전들에 슬기롭게 대처해온 국민의 역량으로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4년만에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할 정도로 국력을 키워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날 선진권 진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되었습니다.이처럼 갖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궈내는 과정에서 서울신문을 비롯한 언론매체들이 끼친 영향력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세기를 마감하고 2천년대를 바라보는 문턱에 서 있습니다.다가오는 새시대에는 겨레의 숙원인 통일과업 성취는 물론 정신문화를 삼천리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꽃피워 경제력이나 생활의 질 면에서 세계 초일류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역사적 명제일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가 넘어야할 장애물과 극복해야할 시련은 산적해 있다고 봅니다.이를 극복함에 있어 우리 언론계에 지워진 사명은 어느 때보다도 중차대하다고 하겠으며,그 가운데서도 활자매체인 신문의 역할과 노력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인생 50이면 지천명이라고 한 공자의 말씀처럼 오늘 창간 50돌을 맞는 서울신문이야말로 그동안 쌓아온 원숙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 나라의 내일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기를 기원합니다.특히 우리 사회 모든 분야가 소망하는 공동선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성 회복과 민주 복지국가 건설에 보다 큰 기여를 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서울신문이 특정한 정파나 계층의 이익을 떠나 국리민복을 추구하는 정론을 펴는 고품질의 신문으로서 확고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도록 종사하는 모든 분들이 더욱분발,정진해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다시 한번 서울신문의 창간 50돌을 축하합니다. □독자 입장서 필요한 정보 제공/이영섭 전 대법원장 한 나라가 진정한 민주화가 이룩되려면 첫째로 사법권이 독립되어야 하고 둘째로 언론이 창달되어야 한다.이것이 오랫동안 문화국민들 사이에서 내려온 정설이다. 서울신문이 창간 50주년을 맞는다 하니 감회가 깊다.이 반세기를 거치는 동안에 수없이 넘고 꺾어온 쓰라린 탄압과 저항을 용케도 물리치고 오늘의 꿋꿋한 지위를 차지한 것을 생각하면 오직 감격이 앞설 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언론에 종사하는 분들은 정말 막중한 사명감을 가지고 움직여 주기 바란다.어떠한 외세에 대해서도 꿋꿋하게 항쟁할줄 아는 슬기로운 마음가짐이 필요하고,국민을 선도하고 국민을 감읍하게 하는 거룩함이 있어야 한다. 언론이 부패해서는 안된다.어떠한 유혹에도 의연하게 대처할줄 알아야 한다.신문이 쉬는 날은 허전한 삭막감 속에서 그 날을 보낸다.왜냐하면 신문이 주는 청신하고 달콤한 생명수가 끊기기 때문이다. 신문은 지면이 많다고 하여 반드시 독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아니다.오히려 지면은 적더라도 내용이 알차고 사회의 목탁이 될만한 기사를 많이 실어주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의 실정을 보면 다양한 방법으로 여러 신문들이 독자들을 이끌고 있다.이러한 피나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나름대로의 노력과 근면이 필요하겠지만 국민에게 도움을 주는 기사를 많이 실어주어야 될 것이다. 언론이 숨을 죽이면 국민들은 생기를 잃는다.춘추의 필봉으로써 사회의 부정을 척결하고 국민을 선도할 때 국민들은 뜨거운 박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언론이야말로 독재화로 가기쉬운 나라의 물줄기를 민주화의 방향으로 잡아줄 것이요,장한 민주화행렬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서운신문은 이번 창간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한층 분발하여 종전보다 몇곱 더 언론 본래의 사명에 충실하기를 빈다. 진심으로 뜨거운 축하의 말씀을 드리면서 몇마디 고언을 빠뜨리고 싶지않다. □서울신문만의 목소리 담아야/이광재 경희대 교수·언론학 지금은 변화와 개혁의 시대이다.세계화·개방화로 경쟁력이 중요시 되는 지구촌 시대이다.따라서 변화의 진행방향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사고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금 신문계에서의 큰 변화는 거세게 불어닥치고 있는 경쟁의 바람이다.과거의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의 무한경쟁이다.새롭게 등장한 케이블 TV와 지역 민방,방송시간이 연장된 지상파 방송은 물론 비디오와 같은 영상물 그리고 신문·잡지 등과 치열한 경쟁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끔 되었다. 이러한 다매체·다채널 시대에 있어서 신문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첫째는 신문환경 변화에 걸맞은 경영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경영의 효율화와 질 높은 신문제작을 위해서 구성원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이 십분 발휘될 수 있도록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위인설관 형식의 필요없는 자리는 없애고 정치·경제·사회·문화·체육과 같은 구태의연한 편집국 체제도 경쟁력 있는 방향으로 개편해야 한다.그리고 다각경영체제를 구축하여 경영의 합리화를 꾀해야 한다. 둘째는 질 높은 뉴스 생산에 주력해야 한다.질 높은 뉴스란 정확하고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을 의미한다.노 전대통령 비자금 취재 보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재벌이 경영하는 신문들이 불신을 받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는 재벌관련 기사를 취급할때 편향적인 기사를 쓰기 때문이다.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유능한 기자와 제작진이 필요하다.인력개발에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한다.전문기자도 새로 채용하고 기존 인력에도 대대적인 재충전을 해야 한다. 셋째는 색깔있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제 목소리를 내는 신문을 만들어야 한다.서울신문은 서울신문의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독자들이 신문을 구독하는 이유는 습관적인 구독도 많지만 중요한 요인은 자기가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면 그 신문은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넷째는 신문 제작의 방향을 「신문인의 입장」으로부터 「독자의 입장」으로 바꿔야 한다.신문인들은 국민(독자)의 알 권리를내세우면서 취재와 제작에 임하고 있는데 현실은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독자들이 선택할 매체와 신문이 많고 또 신문 기사 가운데서도 읽어야 할 기사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독자들이 읽기 쉽게 제작되지 않으면 독자들을 잃게 된다.한글전용,가로쓰기,활자 키우기,컬러 인쇄,기사 색인,새로운 뉴스 발굴에 각 신문들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판단된다. 지금은 신문은 춘추전국시대이다.과거의 신문들이 갖고 있던 영향력이 감소되고 있는 시대이다.신문끼리는 물론 새로운 매체들과도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시대이다.따라서 과거의 권위주의 신문의 사고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색깔이 불분명한 신문들은 오래 지탱할 수가 없게 된 시대이다. 끝으로 서울신문의 창간 50주년을 축하하며,무궁한 발전을 기원한다. □스포츠 진흥 지속적 성원 기대/김운용 대한체육회장 서울신문이 창간 반세기를 맞이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광복과 함께 창간된 서울신문은 늘 빠르고 정확한 보도로 언론의 정도를 걸어 왔습니다.50년동안 서울신문은 정부와 국민 가운데에 서서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면서 격동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명확히 분석하며 나아갈 바를 제시하여 주었습니다. 광복과 유엔창설 50주년을 맞는 올해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최선을 다한 결과 이제는 세계의 중심을 향하는 비전있는 국가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우리 체육계는 실로 엄청난 발전을 거듭했고 지금은 세계적인 스포츠 선진국의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해방후 단 한개라도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국민의 바람이었던 그때와 동·하계 올림픽 5연속 세계 10위권 진입,태권도 20 00년 시드니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86·88 양대회의 성공적인 개최,각종 국제종합대회의 줄이은 한국유치와 굵직한 국제스포츠 회의개최 등 세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지금과 비교해보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50년동안 한국스포츠의 영광과 좌절의 순간에 항상 함께 있으면서한국스포츠의 오늘이 있기까지 기여한 바 매우 큽니다. 60년대부터 70년대초까지 언론사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체육인상」을 만들어 체육인들의 사기를 높인 것을 비롯,사이클 야구 농구 배구 등 각 종목의 대회를 주관,한국 스포츠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특히 체육전문 일간지인 스포츠서울을 창간,체육 발전을 위해 선봉에 서서 체육입국을 향한 걸음을 재촉해주었습니다. 창간 50주년을 맞아 앞으로도 정론으로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 줄 것을 기대하며 세계화에 앞장서는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기원합니다. □착한 마음 옳은 사회 이끌어야/이강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장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무의미하게 되어가는 사회다.그러나 나는 여전히 착하게,옳게,아름답게 사는 사회를 원한다. 낯가림이라는 말이 있다.아이가 태어나서 엄마의 얼굴 가림을 하게 되면 낯가림을 완료했다고 한다. 무엇을 가릴 때에 반드시 관여되는 것이 있다.가림의 「대상」과 가림을 하는 「당사자」다.엄마의 얼굴이 「대상」이고 아이가 「당사자」가 된다. 가림의완료를 위해 대상과 당사자는 많은 반복적 접촉을 해야한다.그래야만 아이의 마음 속에 엄마의 얼굴 생김새가 각인된다.각인된 후에는 눈을 감아도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인간 마음 속에는 수없이 많은 다양한 대상이 각인되어 있다.하늘 땅 바다 강이 각인되어 있다.대상이 없는 각인은 없다. 착한 마음,옳은 마음,아름다운 마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갓 태어난 아이의 마음이 태어나자마자 착한 마음일 수 없다.착한 마음 역시 인간 마음 속에 어떤 형식으로이든 각인될 기회를 가질 때 생긴다.베토벤 음악이 없는데 인간 마음 안에 베토벤 음악을 가릴 마음이 생길 수 없는 것과 같다. 지금 왜 이런 말을 하는가. 「그냥 산다」와 「잘 산다」라는 말이 있다.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면서,그냥 살아가는 것을 「그냥 산다」라는 말과 상관시킨다면 「잘 산다」는 말은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와 상관될 것 같다. 나는 우리나라 사람 전부가 잘 살았으면 싶다. 잘 살려면 물질적 풍요로움으로만은 안된다.마음의 풍요로움을 얻어야 한다.마음의 풍요로움은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이 있을 때 얻어진다.그러한 마음은 그러한 마음을 가능케하는 「가림의 대상」이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 주변에 상존하고 있는 서울신문이 우리의 마음을 착한·옳은·아름다운 마음일 수 있게 하는,「가림의 대상」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착함·옳음·아름다움과 상반되는,어떠한 것을 낳게 하는 기사도 싣지 않는 신문이 되어주길 바란다는 뜻도 된다.
  • 서글픈 「괴문서 정국」/박성원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폭로」는 우리 정치·사회 발전에서 때로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해왔다. 5공의 서슬퍼런 권위주의 정권이 무너진데는 고 박종철군의 부검의가 고문흔적에 대한 소견을 편 것이 하나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6공에서 저질러진 권력과 재벌의 유착및 부패고리가 국민앞에 드러난데는 한 야당의원이 구체적인 비밀계좌를 공개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최근 노태우 전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비롯된 정치권 주변의 「소문 시리즈」는 점입가경이다. 여야의 내로라하는 중진의원들이 31명이나 거명된 출처불명의 괴문서가 나돌더니,이번에는 다시 이를 보완이라도 하듯 24명의 비자금 수수 정치인 명단이 정치권을 떠돌고 있다.검찰이 지난 93년 동화은행사건등 몇차례의 비자금사건 수사를 통해 수십여명의 정치인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을 포착해 놓았다는등 사실과 가공이 뒤섞여 있을 법한 소문도 있다. 이같은 설들이 밑거름이 되어 부정한 정경유착의 전모가 국민앞에 낱낱이 드러나고 깨끗한 정치풍토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된다면 그야말로 획기적인 정치발전을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다.또한 최근 비자금정국을 야기한 몇 건의 소문들이 과거와 달리 대부분 사실로 판명났다는 점에서 정치인 비자금 리스트가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끄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노씨 구속을 계기로 번성하고 있는 「정치인 블랙리스트」는 구체적인 혐의내용과 증거를 수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후유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특히 그 전파과정이나 경로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점에서 정치허무주의와 불신만을 야기하는 「삐라 정치」를 양산할 위험성도 없지 않다. 검찰출신의 한 의원은 『정파간의 이해득실이 개입한 흔적마저 엿보이는 이같은 소문전쟁은 오히려 진실을 덮어버리는 독약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검찰도 지난 20일 괴문서에 대한 수사에 나섰으나 결과는 미지수다.정치권을 둘러싼 「검은 소문」에 대해 정치권이 스스로 진위여부를 가릴 수 없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 정치의 슬픈 현주소일 수도 있다.그러나 정치권을 검증하는 방식도 투명해지는 「정치실명제」가 정착되지 않고는 정치권은 영영 「자정대상」 신세를 면키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 전직대통령의 구속을 보며/한시대 청산하는 대반전의 호기로(사설)

    노태우 전대통령의 구속은 국가적으로 수치스럽고 불행한 일이다.우리 정치사에 전무후무할 일대 오점이다.천문학적인 규모의 뇌물을 받고 정상인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액수를 부정축재한 혐의가 주는 배신감과 허탈함은 가늠하기 어렵다.그를 국가원수로 뽑아 국정을 맡긴 황당함과 민망함까지 겹쳐 국민이 받는 고통은 실로 크다. ○전무후무할 우리 정치사 오점 그렇다고 탄식만하고 네탓 내탓을 따지는 데만 시간과 노력을 허비할 수는 없다.어떻게 하면 이와 같은 부정부패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인가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하루속히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여 국가적인 불행을 성숙과 발전의 계기로 삼아 정진할 각오를 다져야 할 때다. 그러자면 어떻게 하여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원인분석과 진상의 정확한 규명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그런 점에서 무엇보다 노씨의 혐의사실에 대한 검찰의 철저한 수사와 엄정한 법적 처리가 필수적이다.비자금조성경위와 규모,그리고 사용처에 대한 허심탄회한 자백이 있어야 한다.여야를 막론하고 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을 준 사실여부와 내용을 소상히 밝혀야 하며 노씨의 구속은 바로 그러한 의혹의 규명과 성역 없는 사법처리라는 법치주의의 실현을 위한 것임을 강조한다. ○권위주의 구시대방식 불용 이번 사건은 정경유착의 관행이라는 한 세대간의 총체적인 부패와 부실구조의 산물이다.대통령이 기업에 특혜와 이권을 주고 뇌물과 불법자금을 모아 정치기구를 운영하고 마음대로 착복하여 개인재산화하는 권위주의적 구시대의 방식은 더이상 통용될 수 없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새 정부 들어 추진해온 금융실명제와 토지실명제,그리고 정치개혁입법이 없었다면 표면화되기 어려웠을 사건이다.더욱이 전직대통령도 불법이 있으면 성역 없이 사법처리되는 법치주의의 확립은 한편으로 민주사회의 성숙성을 반증하고 있다.그동안 문민정부가 추진해온 개혁의 정당성 및 당위성의 확인이다.21세기를 눈앞에 두고 선진의 새 시대로 가는 전환기에서 지난 반세기에 걸친 후진시대의 마지막 허물을 벗는 고통이라 할 수도 있다.그러한 역사인식을가지고 모두가 깨끗한 정치와 정의로운 사회,일류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는 과업에 나서야 한다. ○정직·깨끗한 도덕성 확립긴요 그중에서도 청렴하고 투명한 정치를 위한 제도와 풍토,의식의 개혁과 쇄신은 핵심적인 과제다.정경유착이나 담합의 관행을 단절하여 새롭게 태어나지 않고는 미래의 선진국을 이끌 수 없다.과거와 연루된 정치권이 깊은 반성과 자괴는커녕 상대의 공격에 몰두하는 것은 정치불신만 깊게 할 것이다.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를 이끌 정치지도자의 윤리와 도덕의 확립이 긴요하다.검은 돈을 받았으면 지난날의 부패관행을 국민 앞에 참회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낡은 정치인에 대해서는 지역감정에서 벗어나 표의 심판으로 퇴장시키는 국민적 결단이 있어야 민주정치의 발전이 가능하다.권위주의와 함께 구시대 유물인 지역할거주의 청산이야말로 정치개혁의 종착역이라 할수 있다. 그에 앞서 정치권은 정치관계법을 손질하여 실질적으로 돈이 덜 드는 선거와 정치가 되도록 조속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국고보조금축소등 비용을 줄여야지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정치자금을 늘리는 방향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제도개혁도 사람이 바뀌어야 전직대통령 구속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길은 부패시대를 살아온 모두가 좋든 싫든 개혁의 실천에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구호차원의 개혁이 아니라 정치와 경제·행정등 모든 분야의 새로운 틀을 짜는 프로그램이 나와야 한다.허무주의와 냉소주의를 지양하고 법치주의와 민주발전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제도개혁도 의식과 문화,즉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실효가 없다.엄청난 분노를 정화의 의지로 삭이는 현명한 국민임을 이제 세계에 보여야 한다.
  • “환경교육은 말보다 실천이 중요”/안현자 교사(발언대)

    인류의 미래는 환경보존의 승패에 그 흥망이 달려 있다.이에 발맞추어 학교교육도 환경에 대해 큰 비중을 두고 있다.우리들은 『환경을 지키는 교육은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지만 내가 먼저 실천한다는 자세에는 인색하다.보다 중요한 것은 개개인이 실천하려는 마음가짐이 소중하다고 본다.환경오염은 인간생활에서 꼭 생겨난다.그래서 인간은 환경오염의 제공자들이다.하지만 우리 인간은 아름다운 환경을 지키고 만들수 있는 열쇠를 가지고 있기도 하니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이에따라 환경교육은 자녀교육 처럼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95년도 환경주임과 환경소년단 지도를 담당하게 되었다.우리학교 실정에 맞게 쓰레기장 관리를 잘 하려고 매일 출·퇴근시 2회씩 확인하며 잘못된 것은 개선안을 내놓았다.때로는 다른 교실을 방문했을 때 분리수거가 안된 반은 허심탄회하게 충고하고 같이 실천하자고 권유 했다.처음 몇번은 귀찮다고 했지만 지금은 모두 다 한마음이 되어 학교가 깨끗해졌다고 말하고 싶다. 1회용은 쓰지않고,분리수거 잘 되고,재활용은 깨끗이,판매대금은 환경도서를 구입해 학년별 독후감쓰기 지도를 통하여 실천할수 있는 정신을 심어 주고 있다.이는 학교측의 관심과 지원이 컸다. 또 단체 활동에서는 솔선수범하는 지도자와 실천하는 모임이 상부상조할 때 어려운 일이 쉽고 알차게 수확됨을 알았고 학교에선 환경소년단의 모범적 실천으로 내집같이 산뜻해진 우리학교를 지켜보면서 자랑스러움을 느낀다. 나는 백마디 말보다 한가지 행동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또 환경에 관계되는 연수활동에 참여하여 정보를 듣고,배우려는 노력과 태도 또한 중요하다.반면에 학교의 경영자는 적극적인 관심을 쏟아 지원해주는 것이 후세의 자연사랑(흙·물·공기)의 밑거름이 될것이다.
  • 정경유착 고리끊는 계기로(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30일 노태우씨 비자금파문과 관련,『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고 금융실명제를 정착시켜 앞으로 비자금소리가 안나오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것은 부정부패의 근원인 정치권과 재계의 야합성 자금수수 관행을 뿌리뽑아 「깨끗한 정치」「경쟁력 갖춘 경제」를 시현하려는 새국가사회건설의 굳은 의지와 각오를 천명한 것으로 평가된다. 김대통령은 이미 취임초에도 『한푼의 정치자금도 안 받겠다』고 밝힘으로써 문민정부의 도덕성확립을 약속했으며 실명제의 전격시행으로 이러한 다짐의 신뢰감을 더해주게 됐다는 풀이가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비록 노씨 비자금사건이 일반국민 모두에게 엄청난 분노와 허탈감의 충격을 안겨주긴 했지만 정경유착과 비리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그릇된 지난날과 단절하고 부정·부패의 대물림을 차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준 것으로 그나마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때문에 우리는 이번 비자금사건을 계기로 특히 정치권이 앞장서서 재계와의 부패연결고리를 잘라내는 인고의 노력을 보이도록촉구한다. 여야할 것없이 모든 정치인들은 후원회비나 당비등의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공개조달함으로써 도덕성을 높이고 선거공영제 확대등으로 정치의 과소비적 요소를 없애야 할 것이다.이들은 정치권의 부패야말로 경제 사회등 각 분야를 오염시키고 병들게 함으로써 우리 국가전체를 「비싼 비용과 낮은 생산성」의 국제적인 비교 열위에 놓이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특히 부패의 중독증세가 심한 정치인들은 스스로 정계에서 물러남으로써 국가사회의 청정화에 기여토록 당부하는 바이다. 비자금조성이나 관리에 능동적으로 협력,이권과 특혜의 불법적인 반대급부를 얻어낸 재벌기업들은 철저한 조사와 탈루세금추징을 각오해야 한다.이러한 고통을 기술혁신등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어야 우리경제는 무한경쟁의 세계무대에서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 김원기 의원의 「홀로서기」/백문일 정치부 기자(오늘의 눈)

    민주당의 김원기고문이 지난 7일 정읍에서의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전북의 맹주를 자처하고 있지만 호남정서에 비춰 김대중 총재의 「후광」없는 출마는 그에게 엄청난 모험임이 분명하다. 특히 내년 총선을 97년 대선의 밑거름으로 삼겠다는 김총재와의 정면대결은 정치적 「자살행위」로까지 비쳐지는 판이다.아직까지 전북은 DJ(김총재)의 텃밭이라는 인식때문이다.그럼에도 김고문은 정읍을 고집했다.이유는 무엇일까. 김고문은 무엇보다도 「명분」을 중요시한 것 같다.김고문이 실리를 추구했다면 일찌감치 국민회의에 참여했거나 민주당에서 전국구등을 생각했을 것이다.그러나 「포스트 DJ」를 준비해 온 그로서는 생각이 달랐다.DJ와 결별한 마당에 쫓기듯 호남을 떠나기보다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하는 게 「홀로서기」에 득이 된다는 판단이 섰다. 한때 거론됐듯이 서울 등에서 출마하더라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면,자신의 아성인 정읍에서 「전사」하는 게 정치적 효과를 살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김고문 스스로도 『정치인은 자신을 키워준 지역구민에 대해 책임지는 것이 마땅하다』고 밝혔다.최소한 「비겁한 정치인」이라는 멍에는 쓰지 않겠다는 뜻이다. 특히 DJ를 직접 공격하고 나섬으로써 지역정서를 등에 업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확연히 했다.아무리 전북이 전남과 다르다지만 호남권에서 DJ를 비난한 것은 「짚단을 지고 불속에 뛰어드는」 행위다.이를 두고 정계일각에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DJ 이후를 겨냥한 고육지책」으로 보고 있다. 당내에서의 입지도 지역구 고수에 큰 영향을 미쳤다.구당파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김고문이 지역구 출마를 밝힘으로써 실세 파트너인 이기택고문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는 논리다.지역구에 신경쓰다 보면 소모적인 당권경쟁은 줄고 정개련 등 신진세력과의 통합도 쉽게 풀릴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김고문의 지역구 출마의사는 「외길」에 들어선 정치인의 마지막 몸부림일지도 모른다.「지역구도탈피」니 「민주통합」이니 하는 명분도 어쩌면 주판알에 새겨진 김고문의 속셈을 포장하는 「허울」일 수도 있다.그럼에도 김고문의결단이 신선한 청량제로 여겨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 “월드컵 유치” 국민적 성원을/배성국 체육부 차장(서울논단)

    『세계 스포츠계를 상대로 한 한국의 조용한 혁명이 일고 있다』­. 지난달 29일 구평회 월드컵축구대회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한국대표단이 「2002년 월드컵 개최 신청서」를 국제축구연맹(FIFA)에 공식 제출한 뒤 영국 데일리 텔레그라프지에 실린 특집기사 내용이다.텔레그라프지의 마이클 캘빈 특파원은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의 월드컵 개최 신청은 일본을 밀고 있는 아벨란제 FIFA회장뿐 아니라 국제스포츠의 재정및 정치구조에 대한 도전을 암시하고 있다』며 『21명의 FIFA 집행위원 가운데 개최지 투표때 한국에 찬성표를 던지는 위원은 국제스포츠의 민주화운동 지지자로 간주될 것』이라고 보도했다.지난달 28일 일본에 이어 다음날 한국이 유치신청서를 냄으로써 본격적인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유치전 성격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2002년 월드컵 개최지가 결정되는 내년 6월1일 FIFA 집행위원회때까지 한국과 일본의 자존심을 건 총력전이 이어질 유치전은 한국의 「명분」과 일본의 「경제실리」가 맞부딪치게될 전망. 유치전에서 기선을 잡은 쪽은 일본이었다.일본은 지난 89년 유치의사를 표명하고 2년뒤 유치위원회를 발족시켰으며 93년엔 15개 유치도시를 확정하고 프로축구(J리그)를 출범시켰다.또 몇해 전부터는 미쓰비시 캐논 후지쓰 등 재벌기업을 스폰서로 내세워 FIFA 재정의 상당부문을 담당하고 있으며 FIFA의 마케팅사인 ISL 지분을 49%나 차지하는등 FIFA에 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오고 있다.뿐만 아니라 월드컵을 개최할 경우 1백94개국의 FIFA회원국을 한데 묶는 인테넷 통신망을 제공하고 각 경기장에 3차원의 영상시설을 도입해 컴퓨터에 의한 TV중계를 선보이겠다고 공언한다.한마디로 요약하면 「경제대국」의 이점을 적극 활용해 월드컵 개최권을 따겠다는 전략이다.이같은 일본의 구상은 아벨란제등 「FIFA 마피아」로 불리는 인사들에게 어느정도 먹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은 「명분」과 「논리」로 정면돌파를 시도한다는 태세다. 90년 유치의사를 밝혔던 한국은 93년 11월 정부가 적극적인 유치를 결정하고 국회도 여야 만장일치로 이를 지원키로 결의,대회 유치를 국민적 사업으로 확산시켰다.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이 FIFA부회장으로 선출되면서 일본추월에 가속이 붙은 상태다. 한국은 일본이 앞선다고 주장하는 시설·조직에 대해 지난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 이미 세계로부터 제반시설 및 운영능력을 검증받았음을 들어 일축하고 있다. 또 한국은 80년 모스크바올림픽과 84년 LA올림픽이 냉전 후유증으로 반쪽대회로 전락한데 반해 88서울올림픽은 1백60개국이 참가,「탈냉전의 시대」를 열었다는 점에 힘을 싣고 있다.앞으로의 유치활동에서 세계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에서 월드컵이 열리게 되면 남북화해의 전기와 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어 축구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한다는 FIFA의 설립 취지와 맞아 떨어진다는 것을 강조할 방침이다. 이제 한국은 명문을 뒷받침하기 위해 정부와 축구협회,그리고 국민이 하나가 되어 축구사랑의 분위기를 창출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지난달 30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마라도나 공식복귀전에 앞서 아르헨티나의메넴대통령을 초청,월드컵유치의 외교를 벌였던 것과 같이 국가차원의 노력을 꾸준히 견지해 나가는 동시에 국내 정치의 활성화로 안정된 면모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남북간의 대화무드를 이끌어 부분적으로나마 남북 협조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큰 보탬이 될 듯 싶다. 정부의 이같은 노력의 바탕위에 축구협회와 축구인들은 내년에 열리는 프로리그가 활성화되도록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잦은 TV중계등 국민의 축구열기를 고취시킬 수 있도록 우선은 알찬 내용의 단기적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의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그것만이 81년 일본 나고야를 제치고 올림픽을 서울로 유치한 바덴바덴의 대역전 드라마를 재연하고 세계가 주목하는 국제 스포츠계의 「조용한 혁명」에 성공하는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또 아직도 재론의 불씨를 안고 있는 한일공동개최의 협상테이블에서 유리한 입장에 앉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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