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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 도시농부

    도전! 도시농부

    진짜 농부가 되고 싶은 ‘도시 농부’의 문제는 농사를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시골에서 자라면서 곁눈질로 보고 배운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농사에 무식하면서 유기농산물을 키우겠다는 열정은 하늘만큼 높다. 그래서 실수도 잦다. 때맞춰 씨 뿌리기나 모종을 못 하기도 하고, 땅에 거름을 주면 좋은 줄만 알고 비싼 퇴비를 사다가 마구 뿌려 땅을 과영양 상태에 빠뜨리기도 한다. 4월 둘째·셋째 주가 농부에게는 정말 중요하다. 이 시기에 제대로 못 하면 6월 수확기에 아주 속상할 수 있다. 도시 농부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서울시 농업기술센터 손형기 도시농업팀 주무관에게 들어봤다. 이미 씨 뿌릴 시기를 놓쳤다. 대부분 모종을 사다가 심어야 한다. 4월 둘째·셋째 주에는 상추, 청경채, 쑥갓, 겨자채 등 쌈야채라고 하는 것들을 모종으로 사면 된다. 감자도 씨감자로 하기에는 조금 늦어서 모종을 심는 게 좋다. 감자 1포기당 감자가 6개 안팎으로 달리는데, 장마가 오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 씨감자를 지금 심으면 감자 크기가 어른 주먹보다 작을 수 있다. 열무씨도 이때 뿌리면 된다. 열무엔 벌레가 많이 끼는데, 열무가 있으면 다른 채소에 피해가 덜하기 때문에 ‘미끼’로 사용해도 된다. 5월 첫째 주에는 고추, 토마토, 방울토마토, 가지, 호박, 오이 등 열매가 달리는 모종을 심으면 된다. 이때 거름을 듬뿍 줘야 열매가 잘 달리고 맛도 좋다. 옥수수는 열매채소보다 한주 빠르게 4월 말에 심으라. 고추나 가지 등은 검은 비닐로 바닥 덮기를 해주고, 자라면서 비와 바람에 넘어지지 않도록 지주목을 대주면 좋다. 7월 초까지 파란 고추로 잘 자라지만 장마가 오면 역병에 걸려 죽는 경우가 많다. 국거리로 아욱, 시금치, 근대 등이 있는데, 아욱이 가장 재배하기 쉽다. 근대는 오래 키워야 하고, 시금치는 더운 봄보다 쌀쌀한 가을에 더 잘 자라기 때문이다. 6월에 상추쌈 대신 들깻잎 쌈을 즐기려면 5월 말쯤 들깨씨를 뿌리면 된다. 봄이면 땅을 갈아엎고 퇴비를 뿌리는데, 1㎡에 1㎏의 퇴비가 적당하다. 다만, 채소 등을 심어 놓고서 20~30일 간격으로 웃거름을 주면 좋다. 이름처럼 밭 위에 퇴비를 올려놓으면 비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에 호미로 살짝 땅을 파고 옆에 묻어 주는 게 효과적이다. 또 최소 2~3주에 한번쯤 호미로 식물 주변을 살살 긁어 주듯 김을 매 줘야 한다. 좋은 흙은 물과 공기와 흙의 비율이 1:1:8이다. 진딧물이나 병충해에는 난황유를 만들어 뿌리면 좋다. 계란 노른자 1개에 물 20㎖, 식용유 60㎖를 믹서기로 잘 섞어서 사용하는데, 예방을 위해 10~14일에 한번, 치료할 땐 5~7일에 한번씩 분무하라.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나와 통일] 배해동 태성산업 회장 “개성공단 北근로자 수당 받는 야근 자원”

    내가 개성공단에서 북한과 사업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북한에 친·인척이 있는 것도 아니다. 화장품 용기를 만드는 우리 회사는 지금 18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2005년 당시 국내 인건비가 많이 올라 중국에 해외공장을 설립하려 했었다. 사업자등록증도 다 받아놓은 상태에서 개성공단 시범단지 분양소식을 접했다. 망설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당시 북한에서 사업한 사람 가운데 99.9%가 실패했다는 자료가 있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망하더라도 북한에서 망하면 기계, 설비는 북한에 놓고 오면 되지 않겠느냐는 심정으로 북한행을 결심한 것이었다. 지난 7년간 사업을 접을까 말까를 수백번도 더 생각했다. 합작 일본 법인은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합작을 취소했고, 북한에서 만든다는 이유로 거래를 끊은 외국 바이어도 있었다. 개성에 공장을 열었을 때야 남북관계가 좋았지만 지금처럼 3통(통행·통신·통관)문제가 해결 안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 누구도 남북 간 정치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주기업 122개 가운데 어느 한곳도 철수하지 않은 것은 그래도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은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60%가 봉제업이다. 한국에서는 봉제업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중국과 비교해서 3분의1 정도, 최대 10분의1까지도 차이가 난다. 단지 인건비만 비교할 것은 아니다. 물류가 당일 가능한 것도 장점이고 관세가 없다. 말도 잘 통하기 때문에 동남아 국가나 중국 근로자보다 숙련 속도도 훨씬 빠르다. 초창기엔 북측 사람들과 신경전도 있었다. 업무 지시를 내리면 “내가 당신 도우러 왔는 줄 아느냐. 나는 당에서 보내서 왔다.”면서 언성을 높이기 일쑤였다. 음식 문화도 상당히 달라서 미역국에 고기 대신 식용유를 넣고 끓여 나를 놀라게 했다. 지금은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도 잘하는 편이다. 나는 통일을 이루기 위한 경제인으로서의 역할을 말하고 싶다. 남과 북은 언젠가는 통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자연스럽게 이뤄져야 한다. 문화나 사상, 경제적 격차를 최대한 좁힌 다음에 통일을 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정치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하는 사람들이 먼저 자본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알려줘야 한다. 말로 알려주는 게 아니라 우리를 보면서 자연히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7년간 개성공단을 드나들면서 북한 사람들의 변화를 느끼고 있다. 북측 근로자와는 만나서 일과 관련한 회의만 하고 정치적인 얘기는 절대 안 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를 보면서 “남한 사람들이 먹을 게 없고 가난하다고 배웠는데 그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저절로 깨닫고 있다. 야간 수당이 나오는 심야근무도 서로 하려고 하는 걸 보면 굉장한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제2, 3의 개성공단도 필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개성공단 1세대로서의 책임감 같은 게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통일된 조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 세대에서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후대에서 통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작업을 하는 게 우리의 임무다. 내가 개성공단에서 기업을 일군 것이 통일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정치문제를 다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개성공단만큼은 어떤 정치적인 영향을 받지 않고 통행을 자유롭게 했으면 한다. 정치 상황이 조금만 악화되면 무 자르듯이 “폐쇄하라.”고 주장해선 안 된다. 개성공단의 가치는 매우 크다. 통일이 되면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지 모른다. 개성공단이 홍콩이나 선전처럼 경제특구가 된다면 국제 경쟁력을 갖춘 공단이 될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국민이 1억명은 되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도 남북한이 합쳐 7000만명이 되면 얼마나 힘 있는 나라가 될까 상상해 본다. 정부도 통일세 대신 차라리 북한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고 북한의 경제를 발전시켜주면 어떨까. 7000만 민족이 뭉쳐서 경제를 발전시키면 주변의 어떤 강대국과 견주어도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배해동 회장 ▲53세 ▲1992년 ㈜태성산업 설립 ▲2005년 태성하타 개성공장 준공 ▲2006년 ㈜토니모리 설립 ▲2008년 산업포장 수상(남북관계 발전 기여) ▲2010년 개성공단기업협회 회장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25)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

    영국의 역사학자 E H 카는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오래된 과거의 축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재의 삶을 돌아보는 게 곧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언술이리라. 대학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해도 우리의 살림살이에는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가 이어진다. 사람 사는 곳 어디라 해도 옛사람들의 자취는 남아있고, 그 품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선인의 향기를 오래 간직하고자 애쓰기 마련이다. 옛사람이 손수 심고 키운 나무를 세심하게 돌보는 것도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짚어 보는 역사적 상징임에 틀림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자발적으로 의병을 모아 이순신 장군을 찾아간 우리 조상이 있었어요. 오득린이라는 장군이죠. 지략이 뛰어나서, 이순신 장군이 매우 아끼며 참모로 기용한 명장이에요. 그 할아버지가 왜군의 총탄을 맞고 할 수 없이 물러나서 이곳에 들어와 마을을 일으켰어요.” ●마을을 일으킨 오득린 장군이 심어 나주 오씨 집성촌인 전남 나주 공산면 상방리 상구마을에서 태어나 살고 있는 오영선(54)씨의 이야기다. 오득린(吳得隣, 1564~1637)은 충무공의 참모로 활약하며, 노량해전에서 충무공이 전사한 뒤에도 끝까지 전투를 이끈 명장이다. 조근조근 들려주는 오씨의 이야기에는 마을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 한가득 담겼다. “마을 서쪽으로는 숲이 울창한데, 반대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서 조금 휑하게 보여요. 풍수를 보는 사람들은 좌청룡 우백호의 좌청룡이 빠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을을 일구며 오득린 할아버지는 마을의 동쪽 입구에 마을 숲이라 해도 될 만큼 많은 나무를 심으셨어요.” 원래 마을 동쪽 입구는 조릿대와 같은 낮은키 나무들이 덤불을 이루었다고 한다. 서쪽의 울창한 숲과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장군은 이곳에 느티나무, 팽나무 등 크고 오래 자라는 나무를 골라서 심었다. 장군은 마을이 평화롭고, 사람들이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이 숲을 잘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오씨는 덧붙였다. 그때 심은 나무 가운데 10여 그루가 아직 살아 있다. “마을 입구의 나무에서는 해마다 정월 그믐에 당산제를 지내요. 당산제 때는 당산나무 앞인 마을회관 마당에 100명 정도 되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제사를 올리고, 음식을 나눠먹곤 합니다. 먹고 남은 음식은 저 나무 앞에 땅을 파고 잘 묻지요.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잖아요. 나무에도 좋은 거름이 되지 않을까요?” ●천연기념물 지정된 유일한 호랑가시나무 오영선씨가 가리킨 나무는 최근 천연기념물 제516호로 지정된 나주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다. 잎 가장자리에 난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호랑이 발톱을 닮았다고 해서 호랑가시나무라고 이름 붙인 나무다. 딱딱한 잎과 억센 가시가 특징인 상록성 나무로, 호랑이가 등을 긁을 때 쓸 만하다 해서, 호랑이등긁개나무라고도 부른다. 호랑가시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에 자생하는 나무로, 전북의 변산반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군락지도 있다. 오래전부터 우리 가까운 곳에서 자란 나무인데, 홀로 서 있는 독립수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상방리 호랑가시나무가 처음이자 현재로서는 유일한 나무다. 키가 5.5m나 되는 이 나무는 호랑가시나무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나무다. 어른 허리 높이쯤에서 줄기가 둘로 나눠지면서 동그랗게 자란 나무는 사나운 이름과 달리 부드럽고 착한 생김새를 갖췄다. 나무 바로 앞에는 오득린 장군의 기념비를 세워 나무에 담긴 특별한 의미를 새겨볼 수 있게 했다. “겨울이 되면 빨갛게 맺히는 열매가 예뻐요. 꽃은 언제 피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가는데, 열매는 정말 좋아요. 열매를 맺으면 새들이 달려들어서 금세 먹어치우지요. 먹을 게 없는 겨울이라 그런지, 새들이 저 열매를 특히 좋아해서 그런지 모르겠네요.” 연한 황록색의 호랑가시나무 꽃은 모내기로 농부들이 가장 바쁜 5월쯤 피어난다. 또 잎겨드랑이에서 지름 7㎜ 밖에 안 되는 크기로 작게 피어나기 때문에 한창 모내기로 분주한 농부들의 눈에는 잘 뜨이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농사일이 줄어들어 한가해지는 겨울에는 상록성의 초록 잎 사이에 맺히는 빨간 열매가 모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굳이 농부가 아니라 해도 호랑가시나무는 열매가 인상적인 나무로, 흔히 성탄절 장식이나 카드의 그림으로 많이 쓰인다. 호랑가시나무는 은행나무처럼 암나무와 수나무가 따로 있어서 암나무에만 열매가 맺힌다. 상방리 호랑가시나무는 농한기에 농부들의 눈길을 빼앗는 암나무다. “열매 맺는 나무가 따로 있군요. 아, 그래서 마을회관 뒤에 있는 몇 그루의 호랑가시나무에서는 열매가 달리지 않는 거였군요.” 오영선씨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택시 운전을 하는 이 마을의 오생교(58)씨가 점심 식사를 하러 들어오다가 다가왔다. 영선씨와 사촌 간이라는 생교씨는 식사를 뒤로 미룬 채, 나무 이야기를 보태려고 영선씨 곁으로 바투 다가섰다. ●상여도 못 나가게 하며 지켜와 “지금도 적은 건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입구엔 나무가 많았어요. 어르신들이 얼마나 애지중지했는지 말도 못 해요. 가지를 꺾으면 몸에 큰 병이 든다고 했죠. 또 초상집에서 나가는 상여도 그랬고, 혼례를 치른 신랑 신부도 이 나무들 사이로는 지나가지 못하게 했다니까요.” 400여년 전에 마을을 일으킨 선조가 심은 호랑가시나무 앞에서 이루어진 봄날 한낮의 나무 이야기는 그러고도 계속 이어졌다. 나무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나무의 생육 정보보다는 나무를 대하는 옛사람들의 마음으로 마을을 지키는 사람들 사이의 대화와 다르지 않았다. 나무를 통해 이어간 사람살이의 작은 역사, E H 카의 이야기처럼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였다. 글 사진 나주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 “정운찬·강재섭·김태호 모두 안된다”

    “정운찬·강재섭·김태호 모두 안된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이 4·27 재·보선과 관련해 ‘정운찬·강재섭·김태호 불가론’에 다시 불을 지폈다. 홍 최고위원은 2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신정아 파동으로 정운찬 전 총리는 계륵이 됐다.”면서 “청와대에서는 어떻게 해석하는지 모르나, 선거를 해야 하는 당으로서는 (정 전 총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홍 최고위원은 분당을 예비후보인 강재섭 전 대표에 대해서도 “과거 인물이고 친이·친박 갈등을 증폭시켜 3년간 이 정부에 부담을 줬던 인물”이라며 “그런 분이 돌아온다면 내년 총선에서 동작에 서청원 전 대표도, 강남에 최병렬 전 대표도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대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또 경남 김해을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김태호 전 경남지사를 겨냥해 “박연차 사건으로 생긴 자리인데, (김 전 지사는) 박연차 사건에 연루돼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인물”이라며 “김 전 지사가 무혐의처분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것도 석연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재·보선에 실패하더라도 내년 총선과 대선의 밑거름으로 삼으면 되지, 원칙 없는 공천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친박계인 서병수 최고위원도 “당 밖에서 자꾸 공천 과정에 개입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미래지향적인 젊은 후보를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선거판만 키워 놓았다.”고 말했다. 한편 ‘정운찬 카드’에 힘이 빠지면서 한나라당 내에서는 “결국 강재섭 전 대표가 분당을 후보가 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많아졌다. 한 최고위원은 “당이 ‘강재섭 외통수’에 걸려 들었다.”면서 “이제 와서 조윤선·정옥임 등 비례대표 의원들을 출전시키기 위해 후보 재공모를 할 수도 없고, 다른 전략공천 카드를 찾기도 힘들다.”고 밝혔다. 다만 일부 친이계는 “강 전 대표가 등원하면 친박계로 돌아갈 것”이라고 보고 있고, 지난 총선 공천에서 탈락했던 일부 친박계는 “공천 학살의 장본인”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5공 인물의 귀환”이라며 비토하는 이들도 있다. 공천헌금 수수설이 불거진 것도 강 전 대표에겐 부담이다. 이에 대해 강 전 대표측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면서 “국회에 들어가면 계파 갈등을 봉합하고, 정권 재창출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떼쓰는 모습 안된다는 쓴소리에 복귀한 주민들 고맙죠”

    “떼쓰는 모습 안된다는 쓴소리에 복귀한 주민들 고맙죠”

    조윤길(61) 인천 옹진군수에게 지난해는 잊고 싶은 한해로 남았다. 백령도와 연평도에서 천안함 폭침사건, 북한군 포격사건 등이 잇따라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백령도와 연평도를 11차례나 다녀왔다. 뱃길로 총 3650㎞에 이르는 거리다. 특히 연평도 사건 때에는 주민들이 직접 피해를 입은 탓에 조 군수가 온몸으로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발품 못지않게 수습에 밑거름이 된 것은 조 군수의 직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면모. 목소리가 큰 주민대책위원회 사람들이 호통을 듣고도 순순히 뜻을 따를 만큼, 그는 주민들의 신뢰를 듬뿍 받고 있다. →최근 연평도를 둘러봤는데. -육지로 피란 갔던 주민들이 대부분 돌아와 정상화되고 있다. 보일러, 상·하수도, 창문 등에 대한 보수작업도 거의 마무리됐다. 환경정비를 위한 특별취로사업이 실시돼 하루 400∼500명의 주민이 참가하고 있다. 한·미 연합훈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바다에서는 굴 캐기 작업이 한창이다. →일부 주민들이 육지에 더 머물게 해줄 것을 요청했는데. -그런 얘기가 있었지만 섬에 하루빨리 들어가서 생업에 종사하는 것이 정상화를 앞당기고 국민의 성원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설득했다. ‘떼쓰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 ‘주민 없는 연평도는 더 이상 연평도가 아니다.’라는 쓴소리도 했다. 섭섭하게 느낀 주민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이 서둘러 복귀한 것에 대해 고마움을 느낀다. →사건을 수습하면서 아쉬웠던 점은. -주민들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고 싶었지만 위로금 형식 이외에 별도 보상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위로금으로 33억원을, 생활안정지원금으로 37억원을 지급했다. 특히 선원처럼 연평도에 거주하면서도 주민등록이 안 돼 있어 위로금마저 받지 못한 경우는 안타깝다. 다른 지역 사고를 검토한 결과 모두 주민등록자 위주로 보상이 이뤄졌기에 어쩔 수 없었다. →복구비용은 어떻게 분담하나. -국비 80%와 지방비 20%가 가이드라인으로, 국비 717억원은 이미 내려왔다. 지방비 101억원은 인천시와 옹진군이 절반씩 부담한다는 것이 시의 방침이지만 군은 부담할 능력이 없다. 시와 군이 7대3 비율로 분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정부가 제정한 ‘서해 5도 특별지원법’에는 만족하는지. -서해 5도민에게 정주수당 지급, 학자금·물류비 지원 등을 골자로 하는 특별법은 섬 주민 정주 의식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만 대형 여객선 도입, 소연평도 등 작은 섬에 거주하는 학생에 대한 특례입학 등이 배제된 것이 아쉽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순천농협 240명에 장학금

    전남 순천농협(조합장 이광하)이 올해도 억대 규모의 장학금을 마련해 지역 인재 키우기에 발벗고 나섰다. 순천농협은 최근 순천시 조례동 본점 5층 대회의실에서 조합원 자녀 240명에게 1인당 100만원씩 모두 2억 400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지역의 인재를 육성하고, 농업 및 농촌 발전의 밑거름이 될 훌륭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장학사업의 일환이다. 1997년 순천 지역 13개 농협이 합병하면서 전국 최대 단위농협으로 성장한 순천농협은 2006년부터 매년 220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100만원씩을 지급하는 등지금까지 총 21억여원을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서울플러스] 특산물 황실배 주말농장 개설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지역 특산물인 황실배(옛 서울먹골배)의 참맛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2011년 황실배 주말농장’(신내동 산 256-2)을 개설하고, 새달 말까지 주말농장 회원 40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1그루당 9만원에 임대하며, 가을에 배 수확시 15㎏ 3상자에 미달할 경우 농장주가 3상자를 보전해 준다. 회원은 인공수분, 열매솎기, 봉지씌우기, 배 수확 등 일반적인 관리만 하면 되고 거름주기, 제초작업 등은 농장주가 직접 해 준다. 지역경제과 2094-1282.
  •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 김해을 불출마

    4.27 재보선의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인사들이 잇따라 출마를 포기하면서 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경남 김해을의 유력 주자로 거론됐던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국장이 16일 불출마를 선언했다. 재·보선 단일후보 문제를 놓고 민주당과 국민참여당 간 갈등이 깊어지는 등 친노 진영의 내분을 우려한 결정으로 보인다. 김 사무국장은 이날 ‘단결과 연대의 거름이 되고 싶습니다’라는 글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에 대한 심판을 고향 김해의 시민들에게 여쭙고 싶었다.”면서도 “직접 출마해 노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싸움의 불쏘시개로 쓰이길 원했지만 그게 아닌 것 같다.”며 불출마 배경을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똘똘 뭉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면서 “나의 결심이 범야권 연대를 통한 재·보선 승리의 밑거름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국장은 지난 14일 민주당 전·현직 의원들의 봉하마을 방문 당시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회동에서 한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자 “권 여사까지 선거에 끌어들이면 안 된다.”는 안팎의 비판에 심적 고통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구혜영·강주리기자 koohy@seoul.co.kr
  • 日 “경제 넘버2 中에 ODA 라니…”

    경제규모에서 중국에 세계 2위 자리를 내준 ‘넘버 3’ 일본이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가시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초강국으로 부상한 중국에 공적개발원조(ODA)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이 장기 저리로 빌려준 차관이 중국의 고속성장에 밑거름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일본은 지난해 달러 환산 국내총생산(GDP)이 5조 4742억 달러에 그치면서 중국의 5조 8786억 달러에 뒤졌다. 일본은 1947년부터 지난 2009년까지 중국에 모두 약 3조 6412억엔(약 49조원)의 장기 저리 차관을 지원했다. 중국은 이 자금으로 철도와 발전소 등 인프라를 정비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일본은 규모를 줄이기는 했으나 2009년에도 약 46억엔(약 617억원)을 지원했다. 지난해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비슷한 규모일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은 누적돼 온 재정적자에 따라 최근 ODA 예산을 줄여 나가고 있다. 2011년도 예산안에 반영된 ODA지원액은 전년보다 7.4% 감액한 5727억엔이다. 정치권의 대중국 ODA 삭감 요구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일단 중국에 대한 ODA 지원을 지속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ODA 배분 기준은 국민 1인당 GDP인데 중국은 여전히 1인당 소득이 낮아 개발도상국 취급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외무성은 “중국의 환경 대책이나 양국의 교류가 진행되면 일본의 국익에 유리하다.”며 중국에 대한 ODA 지원 방침을 밝혔다. 다른 선진국이 중국에 대한 경제 지원을 늘리고 있는 것도 일본이 당장 원조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다. 독일이나 프랑스 등은 오히려 매년 중국에 대한 ODA자금을 늘리며 중국과 경제협력방안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도 녹색성장, 사막화방지 등 환경보호 프로그램 중심으로 매년 약 50만 달러 의 ODA자금을 중국에 지원하고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보성 목욕탕에 이어 경주서도 ‘알몸 목욕탕’ 논란

     전남 보성의 한 온천탕이 ‘알몸탕’ 논란을 빚고 있는 가운데, 경주의 한 골프장 목욕탕도 외부에서 흐릿하게 ‘알몸’이 비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고 있다.  노컷뉴스는 8일 경북 경주시 S골프장 남성 목욕탕이 건물 외벽이 대형 유리로 시설돼 해거름 무렵이면 ‘알몸’이 외부로 흐릿하게 비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 낮에는 빛이 반사돼 내부가 보이지 않지만,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밝은 목욕탕 내부가 외부로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목욕탕 내부의 온도가 낮아 수증기가 없는 날에는 더욱 선명하게 목욕탕 내부가 외부로 드러나 직원들도 당황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이 사실은 이 골프장에서 근무하는 캐디(경기보조원)들을 통해 알려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2011 동계아시안게임] 위풍당당 스피드 코리아

    [2011 동계아시안게임] 위풍당당 스피드 코리아

    “한국은 쇼트트랙 월드컵을 유치하면 되지, 무슨 동계올림픽을 하려고 나서냐.” 평창올림픽 유치에 나선 한국이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그랬다. 한국은 ‘쇼트트랙 코리아’였다. 동계 종목의 저변이 워낙에 취약했다. 한국은 신생 종목인 쇼트트랙에 야심차게 뛰어들었다. 스파르타 훈련으로 탄탄한 기술을 연마했고 영리한 작전까지 더해져 쇼트트랙 최강국에 올랐다. 동계올림픽은 곧 쇼트트랙이었다. ☞[화보]‘빙속 미녀 3총사’ 태극기 휘날리며… 2010년이 터닝포인트였다. 한국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빙상종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특히 스피드스케이팅의 이승훈(23)·모태범·이상화(이상 22·한국체대)가 나란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교롭게도(?) 쇼트트랙은 다른 나라의 추격에 밀려 주춤했다. 스피드는 금 3개(은 2)를, 쇼트트랙은 금 2개(은 4·동 2)를 땄다. 한국은 바야흐로 ‘스피드 코리아’가 됐다. 기세는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까지 이어졌다. 밴쿠버에 이어 동반 금메달을 노렸던 모태범·이상화가 부상으로 주춤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승훈을 앞세워 스피드스케이팅에서 5개의 ‘노다지’를 긁어 모았다. 은메달 6개, 동메달은 3개였다. 2관왕 노선영(22·한국체대)이 주도한 여자부의 기세도 놀라웠다. 메달 수도, 중량감도 ‘효자종목’ 쇼트트랙(금4·은4·동1)을 앞질렀다. 선두주자는 역시 ‘믿을맨’ 이승훈이었다. 금메달 3개를 목에 걸었다. 지난달 31일 남자 5000m에서 아시아신기록으로 금메달 행진을 시작하더니, 2일 매스스타트에서도 한 수 위 기량으로 두 번째 ‘골드’를 수확했다. 5일에는 지친 기색도 없이 1만m에서 ‘금빛 질주’를 이어 갔다. 2위 드미트리 바벤코(카자흐스탄)에 20초 53이나 앞선 아시아기록(13분 9초 74)이었다. 6일에는 이규혁(34·서울시청)·모태범과 짝을 이뤄 팀추월 은메달(3분 49초 21)을 추가했다. 아쉽게 4관왕은 놓쳤지만 시원한 스트로크와 폭발적 스퍼트는 다른 선수들에게 ‘신세계’를 선사했다. 탔다 하면 새 역사다. 지난해 말 “난 아직 올림픽 메달밖에(!) 없다.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또 역사를 만들겠다.”고 했던 출사표 그대로였다. 올림픽 골드메달리스트에게 아시아는 너무 좁았다.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동계아시안게임 3관왕은 이승훈이 최초다. 배기태(1990년)와 최재봉(1999년), 이규혁(2003·07년) 등 내로라하는 선배들도 2관왕이었다.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전향하며 “가진 게 체력뿐이라 (한국 주력 종목인 단거리가 아닌) 장거리를 택했다.”던 이승훈의 겸손함과 성실함은 ‘1인자’를 지킨 밑거름이 됐다. 이승훈은 “밴쿠버올림픽 이후 더 열심히 준비했다. 아직 세계적인 선수에 비해 부족한 면이 많다.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자신을 채찍질했다. 여자부에서는 노선영이 떴다. 2일 매스스타트에서 ‘깜짝 금메달’을 따낸 데 이어 6일 팀추월에서도 이주연(24·한국체대)·박도영(18·덕정고)과 짝을 이뤄 아시아기록으로 1위(3분 4초 35)에 올랐다. 4일 치러진 1500m에서도 은메달을 챙겼다. 2007년 창춘대회 때 1500m 4위, 3000m 5위로 잔잔하게(?) 활약했던 노선영은 동생 노진규(19·경기고)가 쇼트트랙 금메달을 딴 데 자극받아 거침없는 역주를 펼친 끝에 누나의 위엄(?)을 세웠다. ‘노씨 남매’는 나란히 2관왕에 오르며 한국의 종합 3위 수성에 앞장섰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열린세상] 오코노기 교수의 마지막 강의/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일본의 한반도 문제 권위자인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교수의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지막 강의가 지난 18일 게이오 대학에서 있었다. 필자도 제자 자격으로 참석했는데, 400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웠다. 재학생뿐만 아니라 일본의 내로라하는 한반도문제 전문가, 도쿄 주재 한국 특파원들을 비롯한 한·일 양국 주요 언론인, 그리고 졸업생 등이 시종 진지한 표정으로 교수의 마지막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은 차분한 목소리로 한국 연구를 시작하게 된 동기, 한국과의 인연, 그리고 그간의 연구 성과 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마치 현대한국정치사 강의를 듣고 있다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선생은 격동의 한국정치를 잘 설명하고 있었다. 선생의 인생진로가 한반도와 얽히게 된 계기는 학부생 때 한국에 대해 연구해 보라는 지도교수의 조언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당시(1960년대) 군사독재정권하에 있던 빈곤한 한국에 대해 일본사회는 극도의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그의 지인들은 한결같이 ‘한국을 공부해서 뭐하느냐.’는 만류가 대세를 이루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론이 그의 한반도 연구에 대한 의지를 꺾지 못했고, 그는 일본인 한국교환유학생 1호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강의가 무르익어 갈수록 오코노기 선생이 명성을 누리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당장 인기가 없고 미래도 없어 보이는 한국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하는 ‘인생을 건 결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개인적 결단에 대해 국가가 그냥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각종 연구지원이 잇따랐고, 그러한 지원이 한국전쟁과 관련한 1차자료 수집을 위한 장기간의 미국 워싱턴 체류를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가 인생에 있어서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했다. 이는 외로운 결단을 한 연구자에 대한 사회적 ‘보상 시스템’이 존재함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사실 일본에서는 비인기 분야에 대한 연구가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다. 예를 들어, 홋카이도 대학의 슬라브 연구소에서는 국경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매년 중국과 러시아 국경을 연구원들이 걸어서 답사하며 변경 지역의 문화, 언어, 역사, 풍습 등을 이 잡듯이 조사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국경연구가 영토분쟁 시 체계적인 논리를 펼 수 있는 밑거름을 제공함은 물론이다. 과연 우리나라에는 이러한 비인기 분야의 연구자들이 발이나 붙일 수 있는 곳이 있을까. 잘나가는 분야에만 온통 쏠리는 우리네 연구 풍토가 한국판 ‘오코노기’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 대해 끊임없는 열정을 보여 왔다는 점이다. 선생은 한국의 대표적 학자들은 물론, 정계와 관계의 주요 인물들과 광범위한 인맥을 쌓아 왔다. 이들과의 지속적인 의견 교환을 통하여 생각을 정리 분석하여 수많은 논문을 내놓았다. 선생의 취재 수첩은 깨알 같은 정보로 가득하다. 세 번째는 대학교수로서 그는 오직 한 길만 걸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학문적 업적이 쌓이고 명성을 얻으면 정계에 진출해 버리는 일부 우리 학계의 현실과는 달리 선생은 오직 자신의 영역을 고집스럽게 지켜온 것이다. 선생은 강의 말미에 자신의 지도교수가 일러준, 대학교수로서 가져야 할 교육·연구·대학행정·사회공헌·후진양성이라는 5가지 덕목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는 소위 잘나가는 ‘유명’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의 모습을 한번도 흩트린 적이 없었음을 필자는 기억한다. 필자의 서툰 일본어로 작성된 학기말 논문을 선생은 언제나 손수 빨간색 펜으로 빼곡히 수정해 돌려주었는데, 이에 긴장하고 감탄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그는 앞으로의 한·일관계는 일본이 한국 통일과정에 얼마나 공헌하는가에 달려 있다는 말을 뒤로하고 90분 강의를 마무리했다. 한반도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선생의 한·일관계 처방인 것이다. 오코노기 선생의 건승과 퇴직 후에도 보다 왕성한 연구 활동을 이어 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 SKT 스마트폰 효과 실적 ‘선방’

    SK텔레콤이 스마트폰의 무선인터넷 매출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비교적 양호한 실적을 거뒀다. SK텔레콤은 지난해 순이익이 1조 4110억원으로 전년보다 9.5% 증가했다고 25일 밝혔다. 매출은 12조 46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0%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2조 350억원으로 6.6% 줄었다. 특히 지난해 스마트폰 활성화에 힘입어 무선인터넷 매출이 3조 105억원을 기록, 13.2%의 성장세를 보였다. 이는 가입비 인하, 초당요금제 도입 등 요금인하 정책에도 불구하고 매출 성장세를 이어간 밑거름이 됐다. 영업이익은 감가상각비 증가, 단말할부채권 구조 개선에 따른 수수료의 일시적인 증가 등의 요인으로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SK텔레콤은 방송통신위원회의 마케팅 비용 규제 정책과 관련, 방통위 기준에 따른 마케팅 비용이 총 2조 9737억원으로 연간 매출액 대비 비율은 전년보다 0.5%포인트 하락한 24.2%였다고 밝혔다. 지난해 투자지출은 1조 8453억원으로 3세대(G) 네트워크 업그레이드 및 와이파이 증설에 주로 투입됐다. 누계 가입자 수는 2571만명으로 전년보다 5.9% 증가했으며, 가입비 및 접속료를 제외한 가입자당 월 평균 매출(ARPU)은 3만 6204원으로 1.5% 줄었다. 한편 지난해 4분기 매출의 경우 전년 동기 대비 2.3% 늘어난 3조 1724억원,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2.3%, 48.0% 증가한 4531억원, 3614억원에 이르렀다. 하성민 사장은 “올해는 오픈 플랫폼 기반의 플랫폼 사업을 본격화하는 원년”이라며 “3, 4세대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안동환기자 isofacto@seoul.co.kr
  • 경남, 전국 첫 습지총량제 도입

    경남도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2013년 습지총량제를 도입한다. 습지총량제는 습지가 개발 등에 의해 훼손되거나 상실될 경우 원습지를 복원토록 하거나 대체 습지를 조성하게 해 전체 습지의 면적을 유지하는 제도다. 도는 이를 위해 새달부터 11월까지 도내 179개의 내륙·산지 습지를 대상으로 식생과 지형, 지질 등을 조사하고 보전가치를 평가해 등급화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등급은 보전가치의 정도에 따라 매우 높음, 높음, 보통, 낮음, 매우 낮음 등 5단계로 나뉜다. 이에 따른 관리 방안은 절대 보전과 최소화, 개발·이용 등으로 분류된다고 도는 설명했다. 경남도는 이 조사를 토대로 2012년에 총량제 시행을 위해 습지보전 실천계획을 수립하고 습지보전 및 관리 조례와 환경영향평가 조례를 각각 개정할 예정이다. 개정 조례에는 건설업자 등이 습지 일대를 개발할 때 훼손되는 면적만큼 대체 습지를 의무적으로 조성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포함될 예정이다. 송봉호 경남도 환경정책과장은 “습지총량제 도입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움직임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이라며 “총량제는 전체 습지의 손실을 최소화할 뿐 아니라 습지의 양과 질을 체계적으로 보전하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14일 TV 하이라이트]

    ●세상사는 이야기(KBS1 오후 7시 30분) 결혼한 지 15년 만에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낳은 나정채, 김영미부부가 있다. 하루하루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는 7남매들이지만, 뛰어난 사람이 되기보다 세상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 바라는 부모의 뜻대로 천사처럼 티 없이 밝게 자라준 아이들. 함께 있어 행복한 7남매를 통해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돌아본다. ●쿵야 쿵야(KBS2 오후 3시 5분) 누가 시키지도 않은 신메뉴 개발에는 너무도 열심인 주방장 양파 쿵야. 때문에 오늘도 레스토랑에서는 119구조대가 출근하듯 출동한다. 점심 무렵 배달 갔던 완계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꼬마아이와 어른 한 사람을 데리고 온다. 그런데 이들은 따분한 궁궐생활에 싫증이 난 어린 왕자 토토와 스승인 알프레도 백작이다. ●몽땅 내 사랑(MBC 오후 7시 45분) 태수와 두준은 함께 차를 타고 가던 중 접촉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한다. 태수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금지는 두준이 입원해 있는 걸 보고 놀란다. 두준은 금지가 태수 보러 병실에 드나드는 줄은 모른 채 자기 병수발 들러 오는 걸로 알고 행복해 한다. 한편, 태수는 승아가 병문안을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당신이 궁금한 이야기(SBS 오후 8시 50분) 2011년 1월 1일 아침 8시 30분, 대구광역시. 엄마가 갑자기 구토 증세를 보이며 쓰러졌다.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진단 결과는 ‘고혈압성 뇌출혈’. 병원 네 곳을 전전하다. 결국, 수술은 집에서 불과 15분이라는 짧은 거리에 있던 병원.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식물인간이 된 한 엄마의 사연을 들어본다. ●TV 쏙 서울신문(서울신문STV 오후 7시 20분) 동물성 전염병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다. 물가 인상까지 겹쳐 민생고는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고물가와 구제역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현장을 찾아 집중 점검했다. 새터민 출신 여성 버스운전사 유금단씨의 한국생활과 스키점프 국가대표의 멋진 비상, 스마트폰으로 더 똑똑해진 아파트 등을 소개한다. ●명불허전 허영만편(OBS 오후 10시 5분) 대한민국 문화 아이콘으로 불리는 인기 만화가 허영만. ‘명불허전’에서는 이 시대, 최고의 만화가로 불리기까지 허영만 만화가가 걸어온 발자취를 돌아봤다. 특히, 1970,80년대를 주름 잡던, 이현세·이상무 만화가의 인기에 밀려 2인자로 불려야 했던, 그의 36년 만화인생 풀스토리와 차기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본다.
  •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당선소감

    [서울신문 2011 신춘문예-소설 당선작] 당선소감

    밤중에 몰래 난 덧니처럼 자라, 송곳니보다 더 날카롭게 아작아작 생의 테두리를 씹으며 살던 딱 그런 날들이었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허랑한 절벽으로 떨어질까 겁내던 차였습니다. 귀신처럼 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어지간히 화가 나던 참이었습니다. 날이 어둑해지면 스멀스멀 기어 올라와 덧니를 내보이며 거리를 배회하곤 했습니다. 실은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아리송하던 시기였습니다. 야트막한 산등성이에 묻혀 산짐승의 똥을 거름삼아 무성하게 자라나는 잡초나 뱉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정신을 약간 빼뚜름하게 놓던 날들의 연속, 또 지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당선이라니요. 얼떨떨한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암담합니다. 아앗, 나 이제 대놓고 귀신놀이 해도 되는 걸까요? 대놓고 나만의 시공을 돌아다녀도 괜찮은 걸까요?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삶의 진실을 보는 눈을 달아주신 하일지 선생님. 쓰는 자의 소명이 깃든 마음을 달아주신 김사인 선생님. 기어코 써야만 하는, 쓰고 또 쓸 손을 달아주신 윤대녕 선생님. 세 아버지들 덕분에 든든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 장정일 선생님, 배삼식 선생님, 김경주 선생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선후배님들 감사해요. 언제나 자랑스러운 06학번 동기들. 우리가 행복해하던 봄날처럼 싱그럽게 살자. 덧니처럼 빼뚤게 구는 나 안 버리고 키워줘서 고맙고 미안해요, 엄마. 무던히도 할퀴어댔던 엄마 등짝을 앞으론 직접 닦아줄게요. 전 세계에서 가장 귀여운 수연이 사랑해. 분신인 민아, 광연이. 나래 고마워. 마지막으로 내 불씨, 내 원천인 차승주씨와 Q에게 안부를. 더불어 이승에 있는 모든 타인들에게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당신들의 거죽을 빌려 입고 당신들 행세를 하며 살아갈 내 거짓된 삶을 용서해 주세요. 잠이 들지 않는 밤마다 더 단단하고 날카로워진 덧니를 드러내며 당신들의 방 창문을 두드릴 나를 기억해 주세요. ■약력 -1987년 경기도 남양주시 출생 -일산 백마고등학교 졸업 -동덕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 4학년 재학
  • 中企 “뭉치면 산다”

    중소기업 공동브랜드가 지역 경제 활성화의 윤활유 역할을 하고 있다. 품질 고급화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이끌어내 매출액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대구시에 따르면 지난해 ‘쉬메릭’의 국내 매출액은 322억 3800만원이었고 올해도 28일까지 350억원을 넘어섰다. 출범 초기인 1998년 37억 5500만원보다 10배 가까이 늘어났다. 수출액도 2006년까지 500만 달러 안팎이었으나 2007년부터 1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올해도 11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에 첫선을 보인 경북 중소기업 공동브랜드 ‘실라리안’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는 71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 전년도 620억원보다 15% 정도 증가했다. 올 들어서는 900억원의 매출액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감와인과 의류, 도자기, 화장품 등 10개 제품을 생산하는데 참여업체가 초창기 10개에서 24개로 늘었다. 지역 공동브랜드 매출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엄격한 관리를 통해 품질이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쉬메릭과 실라리안 제품은 매년 두 차례 한국의류시험연구원 등 공인기관의 품질검사를 받고, 업체들이 디자인 개발과 품질 관리에 노력하고 있다. 엄격한 퇴출기준을 적용한 것도 품질 향상의 밑거름이 되었다. 쉬메릭은 올 들어서도 5개 업체를 퇴출시켰다. 서울역과 대구 지하철 등 전국 주요 지점에 홍보물을 설치하는 등 홍보를 강화한 것도 매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소비자들이 쉬메릭과 실라리안 상표에 익숙해지면서 싸면서도 쓸 만한 제품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김현미(43·대구 달서구)씨는 “제품이 실용적이고 가격도 적당하다. 써 본 사람은 계속 쓸 것”이라고 말했다. 대구시 관계자는 “쉬메릭 매출 증대를 위해 앞으로 유명 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의 쉬메릭 입점과 함께 전용 공동매장 확보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이연정씨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우수상 이연정씨

    세라믹 디자인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은 이연정(25) 작가는 “흙을 접한 지난 시간이 참 바쁘고 빠르게 지났다.”면서 “애정을 갖고 오랜 시간에 걸쳐 완성시킨 작품인 만큼 기쁨이 더욱 크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수상작 ‘퓨전 酒器세트’는 주안상 차림을 위한 식기 디자인으로, 우리 문화의 24절기를 의미하는 24각의 형태를 응용했다. “이번 작품은 구상부터 마무리까지 제대로 된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으로 한 단계, 한 단계 일했습니다. 너무 큰 상을 받아 마음이 무겁기도 하지만 이 또한 제 작업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이제 막 세라믹 디자인을 공부하며 즐거움을 많이 느꼈다.”는 작가는 “앞으로 남은 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 [서울광장] 대북정책 강온 포트 폴리오 다시 짜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대북정책 강온 포트 폴리오 다시 짜야/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며칠 전 외신을 타고 온 한 장의 야경(夜景) 사진에 ‘필’이 꽂혔다. 미국 해군연구소가 지난 10월 말 촬영한 한반도 위성 사진이다. 중국과 일본의 환한 밤풍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남쪽 전역도 휘황한 불빛에 휩싸여 있었다. 이에 비해 북녘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아스라이 먼 은하계의 별빛처럼 평양에서만 희미한 빛이 보일 뿐이었다. 분단 65년간 남북의 궤적을 극명하게 보여준 단면도였다. 하기야 불야성(不夜城)을 이루는 남쪽 도시엔들 어디 부조리와 문젯거리가 없으랴. 하지만 대한민국 밤의 조도는 세계 11∼14위권의 국내총생산에 필적한다. 반면 낮엔 강성대국의 깃발로 뒤덮이지만, 밤엔 전등 하나 켤 여력도 없어 암흑 천지로 변하는 게 조선인민공화국의 남루한 초상화다. 사실 북한식 주체경제는 이미 파산상태다. 주민들에 대한 식량배급을 포기한 마당에 더 이상 사회주의 체제라고 하기도 민망하다. 에너지와 식량 등 중국이 놓아주는 수액주사와 남한과의 경협으로 버티고 있는 형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이를 아예 모르진 않을 게다. 오히려 그런 절망적 상황 때문에 핵개발에 매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북의 우라늄 농축시설을 시찰했던 미국의 지그프리트 헤커 박사는 최근 “북한이 당장에 핵무기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했다. 이런 북을 상대로 통일을 추구해야 하는 게 남의 비극이다. 부시행정부 때 북한을 다뤘던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북한 사람들이 이상하긴 해도 미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북 수뇌부의 입장에선 핵위협이나 대남 무력 도발도 세습체제를 지켜내기 위한, 사력을 다한 곡예일 뿐이란 얘기다. 우리의 수병 46명을 수장시킨 북의 천안함 폭침이 그런 엄연한 현실을 일깨웠다. 생때같은 젊은 해병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된 연평도 사태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대북 접근법과 통일 전략을 전면 재점검하라는 경보음이란 점에서다. 그런 맥락에서 “햇볕정책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라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언급을 주목한다. 얼떨결이었는지, 작심한 건지는 모르나 필자는 사안의 정곡을 찔렀다고 본다. 당내 지지기반을 잃을까봐 그의 측근들은 “햇볕론의 포기가 아니다.”라고 곧 물타기에 나섰지만…. 햇볕정책은 본래 이솝우화를 빗댄 수사다.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것은 찬바람이 아닌 따스한 햇볕”이란 함의는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 부분’ 주효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지난 10여년 동안 수조원을 들여 햇볕을 쪼였지만, 북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진 못했다. 북이 개혁·개방을 택해 옷을 벗긴커녕 핵·미사일 개발로 겹겹이 갑옷을 껴입고 있는 형국 아닌가. 한 북한 전문가의 지적처럼, ‘선샤인(Sunshine) 정책’이 북을 무장해제하는 게 아니라 김정일의 구두 광을 내는 ‘슈샤인(Shoeshine) 정책’이 돼선 곤란한 일이다. 이쯤에서 서독이 주도한 독일 통일의 교훈을 제대로 읽어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동서독 교류를 강조한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만을 통독의 견인차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뚜렷했다. 동방정책 이상으로, 시장경제 강화와 서방과의 결속을 통한 경제·군사력의 대 동독 우위를 추구한 아데나워 총리의 서방정책이 통일의 밑거름이었는데도 말이다. 까닭에 새로이 정립해야 할 대북 정책 패러다임도 단선적이어선 안 된다. ‘햇볕’(교류·협력)과 ‘찬바람’(힘의 우위·도발 억제), 즉 강온을 적절히 배합한 정책 포트폴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의 자산관리 때도 분산 투자하면서 민족공동체의 명운이 걸린 남북관계를 다루면서 외골수 정책으로 위험을 자초할 이유는 없다. 전쟁이 아니라면, 가용한 모든 정책을 입체적으로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대북 지원을 하되 북한정권보다는 주민에 초점을 맞춰 최대한 북한체제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주력할 때다. kby7@seoul.co.kr
  •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나눔 송년 릴레이 인터뷰] ② 27년간 기부한 류양선 할머니

    서울 지역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내려간 지난 16일 오전 11시. 칼바람이 안쪽까지 들어오는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 젓갈부의 ‘충남상회’에서 노란 옷을 겹겹이 껴입은 작은 체구의 할머니를 만났다. 37년간 젓갈장사를 하며 모은 전 재산으로 책과 장학금 기부를 이어가는 ‘젓갈 할머니’ 류양선(77)씨가 그 주인공. 할머니는 가게 한편에 있는 좁은 구들장 위에 앉아 손님맞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온기가 도는 바닥과 할머니 앞에 놓은 작은 전기난로 덕분에 그나마 따뜻한 엉덩이와 발을 제외하고는 시장 안까지 불어닥치는 찬바람에 코가 시렸다. 할머니는 전기세가 아까워 기온이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간 이틀 전에야 비로소 난로를 켜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습관이 돼 있는 까닭이다. 류 할머니는 이렇게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어’ 모은 돈을 전부 책 사고 장학금 마련하는 데 사용한다. 얼마 전 국어사전 1억여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중학교 200여곳에 기부한 것이 알려지면서 할머니의 기부 열정은 또다시 화제가 됐다. 수없이 찾아오는 인터뷰 요청이 귀찮을 법한데도 할머니는 매스컴에 노출되는 것을 흔쾌히 환영했다. 할머니의 선행이 신문과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져야 할머니를 닮은 제2, 제3의 기부 천사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젓갈이 더 많이 팔려야 더 많은 학생들에게 책을 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할머니는 가게 벽면에 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크게 뽑아 걸어뒀다. 생각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사진과 기사를 보고 나서는 할머니를 알아보고 젓갈을 구입해 가기도 한다. “장사가 잘돼야 애들 책 한권이라도 더 사줄 수 있다.”고 말하는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온통 학생들 생각뿐인 듯 보였다. 말할 때마다 입에서 김이 나오는 날씨 속에서도 두 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인터뷰가 힘들지 않았던 것은 할머니의 트레이드 마크인 노란 옷만큼이나 따뜻한 ‘기부 천사’의 마음씨 때문이었다. 100촉짜리 백열전구 7개가 환하게 비춰 아늑하게 느껴지는 9.9㎡(3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할머니와 인터뷰를 시작했다. →날씨가 추운데 장사하시느라 고생 많으시죠. -날씨가 추워서 문제지. 여기 앉아 있으면 찬바람이 슝슝 들어와. 위아래로 잔뜩 껴입었는데도 춥네.(이날 할머니는 상의로 내복, 티, 양털조끼, 노란색 바람막이, 노란색 점퍼 등 5겹을, 하의로 내복, 기모바지, 방수 재질 바지 등 3겹을 겹쳐 입고 점퍼에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여기 구들장이 있어 엉덩이는 따뜻해. 전기난로 켜놓으면 그나마 낫지. 이것도 한서대학교에서 보내준 건데 잘 틀지도 않어. 젊었을 땐 새벽 4시에도 나왔는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게 못 나와. 아침 7~8시 사이에 나와서 그래도 제일 늦게까지 장사하지. 밤 8~9시면 닫아. 그런데 어제오늘 날씨가 추워서 손님이 더 없네. →젓갈이 잘 팔려야 기부도 많이 하실 텐데요. -많이 팔아야 하는데. 올해는 완전히 적자야, 적자. 10월 20일부터 며칠 김장철에만 ‘빤짝’하고. 4월에서 9월까지는 정말 손님 없었어. 그전에 모아둔 돈 없었으면 나도 파산할 뻔했지. 임대료랑 창고 사용료 230만원 내고 나면 남는 것도 없어. 난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부할 용의가 있는데 기부도 못 하게 생겼어. →적자가 났는데도 기부는 그치지 않으셨어요. -내가 벌고 남은 돈으로 기부하는 것도 아닌데 뭘. 형편 따라 기부하나? 애들 책 사주고 하려고 적금을 미리미리 들어놓지. 1000만원짜리고 2000만원짜리고, 3년짜리 4년짜리 있어. 그거 탈 때 기부하는 거지. 이번에도 3000만원 3년짜리 그게 만기돼서 그걸로 책 산 거야. 4~5번에 걸쳐서 줄 테니까 미리 책을 보내주실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떼먹을 사람은 아니니까 보내주시더라고. 고맙지. 크는 애기들이니까 얼릉 공부해야 하잖아. 죽기 전에 최대한 많이 (기부) 해야지. 나머지는 1년에 한번씩 계속 해서 갚아야지. (할머니는 지난달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펴낸 ‘한국어대사전’ 201세트, 1억 854만원어치를 구입해 전국의 초등학교, 중학교에 보냈다. 사전 구입비로 3000만원을 내고 나머지 돈은 앞으로 5차례에 걸쳐 고려대 측에 분할 납부하기로 했다.) →처음 기부를 시작하신 건 언제인가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처음한 게 1983년도일 거야. 아, 완도. 완도초등학교 애들이 여기에 견학을 왔더라고. 그래서 걔들한테 책을 보냈지. 동화책. 그게 계기가 돼 가지고 책 기부를 시작했지. 어린 애들이 할머니가 보내준 책 잘 읽었다고 편지도 보내고 하니까 참 마음이 좋더라고. 거기도 책 여러 번 많이 보냈지. 나중에는 완도초등학교에서 애들이랑 학교가 같이 감사패도 보냈더라고. 여기서 감사패를 제일 먼저 받았는데 계속 기부하다 보니까 감사패가 나중엔 줄줄줄…지금은 한 100개는 돼. →지금껏 어느 정도 기부하셨는지 가늠하세요. -(손사래 치며) 모르지 그걸 어떻게 기억해. 무조건 주면 그만이지. 그런 걸 뭐라고 일일이 다 적어 놓나? 버는 대로 모이는 대로 족족 주는걸. →기부하시면 어떤 점에서 보람을 찾으시나요. -책 사주고 장학금 보내고 하는 그 자체가 좋아. 그러다 아이들이 고맙다고 편지라도 쓰면 그냥 엔도르핀이 팔구월에 목화송이 피듯 피지. 그런 편지 읽을 때가 제일 행복해. 이번에도 서산 국민학교 6학년 애가 편지허구 장갑허구 봉투에 같이 넣어서 보냈더라고. 할머니따라 기부 천사가 되겠다고 그렇게 썼더라고. 내가 이번에 사전을 그 동네 학교마다 쫙 보냈거든. 그걸 받은 아이가 기사에서 보고 감동을 받았다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야. →할머니 뒤를 이어 기부 천사들이 늘겠어요. -그게 제일 좋은 판단이여. 내가 자식들이 없어. 할아버지는 4년 됐나, 5년 됐나 돌아가셨고. 나 혼자 사는데 내가 준 장학금이나 책 받은 학생들이 자식처럼 손주처럼 찾아오면 반가워. 내가 준 장학금 받은 대학생들도 종종 가게로 찾아와. 젓갈도 사 가고 할머니도 뵙고 그런다고. 할머니가 기부하니께 우리도 같이 기부하는 거라고 젓갈도 더 많이 사 가고 하지. 기부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게 아녀. 자기가 스스로 허고 싶어야 허지. 자기가 받아보면 주고 싶은 마음도 더 생기는 법이야. 그래서 내가 어린 친구들한테 더 많이 나눠주려고 해. (인터뷰 도중 할머니는 기자에게 추운 날 고생한다며 간식을 이것저것 꺼내주셨다. 장사를 하다 보면 끼니 때 사이에 배가 고파져 두부, 고구마 등 새참을 드신다고 한다. 이날도 할머니는 따뜻한 김이 올라오는 흰 두부를 잘라 양념간장에 찍어 드셨다. 이 두부는 할머니가 장학금을 기부하는 대학 관계자의 친척이 감사의 표시로 자신이 운영하는 두부공장에서 직접 가져다 주는 것이라고 한다. 두부를 다 드신 할머니는 점심·저녁 밥을 지어 먹는 작은 전기밥솥에서 찐 고구마까지 꺼내 드셨다. 할머니는 “새참은 나눠 먹어야 제맛”이라시며 기자에게도 작은 밤고구마 한개를 건네셨다.) →얼마 전에는 학생들에게 또 사전을 사주셨는데 유난히 책을 많이 사주시는 이유가 있나요. -내가 사주는 건 전부 책이지 뭘. 돈으로 하면 고루고루 가간? 책으로 하면 1학년이 보고 나면 2학년, 2학년이 보고 나면 6학년 다 보잖아. 보고 나면 또 보고, 찢지만 않고 두면 대대손손 물려줄 수 있으니 책이 좋지. 돈은 그냥 쓸데없이 쓰기도 하고 쓰고 나면 없고. 그니께 책 선물이 제일 좋은 거야. 그리고 또 내가 못 배웠응께. 어렸을 때 배워야지. 나 지금도 모르는 거 무슨 소린가 하고 사전에서 찾아보고 그러면 이튿날 보면 다 없어졌어. 어렸을 때 배운 건 지금까지도 아는데. 배움에도 때가 있지. 나무도 어린 나무에 거름을 줘야지 고목나무에 거름 줘봤자 소용없어. →학생들 교육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원래 꿈은 뭐였나요. -배우고자 하는 애 가르쳐야 혀. 내가 돈 벌면 내 고향에다가 하버드 대학보다 더 좋은 놈 지어서 돈 많은 사람은 돈 받고, 돈 없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한테 받아서 주고 그렇게 하는 게 꿈이었어. 그랬는데 돈 많은 부자가 나보다 먼저 짓데. 내가 지으려고 했는데 그 사람이 선수 치네(웃음). 그런 시골은 가난하니까 이런 서울에 와서 공부 못 해. 공부 잘해서 서울대학교에 붙어도 하숙비도 없고 생활비도 없어서 올라오지도 못혀. 그게 내 최종 목표였는데 이미 서산에 대학교가 생겼네. 그래서 내가 이제 거기다가 장학금도 보태주고 땅도 보태줬지. 할머니는 1998년부터 한서대학교에 20억원대의 부동산을 기부하고 현재 한서대학교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할머니가 기증한 부동산에서 나오는 세는 이 학교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인다. 충남 서산시 해미면에 위치한 한서대학교는 1992년 개교했다.) →보통 사람들은 돈 벌면 자기 자식한테 물려주기 바쁜데 할머니는 어떠세요. -다 그렇지. 난 자식은 없어.(할머니는 28살에 결혼해 3년 정도 함께 산 남편이 두 번째 살림을 차려 집을 나간 뒤 쭉 혼자 사셨다고 한다.) 돈 많은 재벌들도 다 번 돈 자기 자식한테 주려고 하지 뭐. 그런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저 자식들은 뭐 두 손 두 발 붙들어 맸나. 저희들이 벌어서 먹고살아야지. 그러니까 자립심이 없어. →올 겨울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로 기부가 크게 줄었다던데요. -그렇다 하대. 안한다고. 그런 돈을 가져간다냐. 지가 노력해서 먹고살아야지. 아주 못 쓰는 사람들이야, 그 사람들. 그런 사람은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혀. 기부가 어그러졌어. 허먼 뭘 혀. 그런 사람들이 다 가져가는걸. 난 그래서 책으로 하지 돈으로 안 해.(이 대목에서 벽에 기대어 앉아 있던 할머니는 등을 떼고 몸을 일으키며 언성을 높였다.) →기부 계획이 더 있으신가요. -건강이 허락해서 장사를 하는 날까지는 천원짜리 하나라도 더 보태줘야지. 우선 얼마 전에 애들 사전 보내준 거, 고려대학에 남은 돈 채워넣어 줘야지. 사전값이 1억 좀 넘는데 처음에 적금 탄 돈 3000만원만 일단 주고 나머지는 차차 갚기로 했어. 장사해서 차곡차곡 돈 모아서 일단 그것부터 갚고. 그 뒤에는 또 학생들 책 사주고 대학교 장학금도 보태주고 할거야. 죽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주고 가야지. 나이는 공짜로 먹다 보니까 어느새 이렇게 많이 들었는데 얼마나 남았을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는 열심히 일해서 열심히 기부해야지. 허허.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류양선 할머니는 37년간 노량진서 젓갈장사 서산 한서대에 20억 기증 장학회 이사장으로 활동중 1933년 충남 서산읍(현재 서산시) 양대리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얼마 안 되는 땅을 가지고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 밑에서 자란 류 할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학업을 잇지 못했다. 류 할머니의 기부가 대부분 학생들을 위한 장학금과 책 마련에 쓰이는 것은 가난해서 공부를 더 할 수 없었던 본인의 아쉬움 때문이다. 어린 나이부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다 28살에 남편을 만난 류 할머니는 1972년 고향을 떠나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 먹고살 궁리를 하던 끝에 ‘장사가 안 돼 오래 두어도 썩지 않는’ 젓갈 장사를 택했다는 할머니는 그 후 지금까지 37년간 서울 노량진동 수산시장에서 ‘충남상회’를 운영하며 수익금의 대부분을 기부와 나눔에 쓰고 있다. 장사를 하면서 차곡차곡 모은 돈으로 27년 전부터 기부를 시작한 류 할머니는 고향인 충남의 양로원, 재활원, 보육원 등을 비롯해 낙도와 지방의 초등학교 등에 책과 물품을 전달해왔다. 1983년 수산시장에 견학 온 완도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동화책을 보내준 것이 기부의 시작이 됐다. 충남 서산 한서대에도 1998년부터 2008년까지 세번에 걸쳐 20억원대의 부동산(경기 광명시 소재)을 기증해, 현재 한서대 ‘류양선 장학회’ 이사장으로 장학 사업에 힘쓰고 있다. 류 할머니는 돈이 없어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고향인 서산에 대학교를 지으려 했던 꿈을 대신해 앞으로도 장학금과 책으로 기부를 이어나갈 계획이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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