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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니아]경품 타내기 의기투합한 모임 ‘프리죤’

    [마니아]경품 타내기 의기투합한 모임 ‘프리죤’

    “공짜 싫어하는 분 있나요?” 셀 수도 없이 많은 경품이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날마다 쏟아지고 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풍조라는 비판도 함께 쏟아진다. 하지만 경제난이 심각할수록 홍보엔 경품 내걸기를 뛰어넘을 만한 게 없으며, 소비자들 역시 이왕 필요한 것을 잘만 하면 공짜로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영 무관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대한민국 대표 공짜 동아리를 자처하는 모임이 있다. 그러나 사회봉사 활동도 활발해 요즘같이 인색해지기만 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리기도 한다. 공짜로 벌어 공짜로 이웃을 돕는 사람들이니 무엇보다 ‘사회 환원’ 하나만큼은 확실히 책임을 지는 셈이다. 다름 아닌 프리죤(Free-zone)이다. 타이틀도 프로들 모임에 걸맞게 ‘왕창 싹쓸이’라고 내걸었다. ●공짜, 양잿물도 마신다? 지난 1월 창립 다섯 돌을 맞은 ‘프리죤’ 회원은 현재 1만 5000여명이다.20∼30대가 주를 이루지만 살림살이에 애쓰는 주부가 많은 점이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열리는 경품 행사에 대한 정보는 이들의 손 안에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동호회 대표인 황홍식(33·회사원·서울 광진구 자양동)씨는 “아무래도 여럿이 모이다 보니 정보가 많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 경품이 걸린 행사에는 때때로 작전도 필요하다고 살짝 알려줬다. 응모한 사람이 얼마나 많으냐를 잘 따져보고 마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회원들이 일제히 참가하는 ‘벌떼 작전’은 성공 가능성을 훨씬 높인다. 마라톤의 페이스 메이커처럼 서로 힌트를 주고받으며 돕기도 하고, 엉뚱한 힌트를 내보내는 ‘방해작전’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한다. 정기 모임이 있을 때면 즉석 복권을 받아 한 사람에게 몰아주기로 끈끈한 동료애를 발휘하기도 한다. ●호박이 덩굴째 들어와요 황 회장은 “이렇게 해서 가장 큰 경품을 탄 사례로는 2002년 어느 회원이 30평대 아파트를 낚은 것을 비롯해 자동차 등 수두룩하다.”고 웃었다. 그는 “그러나 흔히 연상할 수 있듯이 아무리 같은 회원이라고 해도 일일이 밝히지는 않아 누가 무엇을 받았는지 알기는 어렵고 굳이 물어보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보통 한달에 30만원 정도 수입(?)을 올리면 고수로 불린다. 부산에서 사는 40대 회원 부부를 포함해 몇몇은 한해에 3000만원 이상 거뜬히 건진다고 귀띔했다. 주변에서 색안경을 쓰고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도 있지만, 반면엔 그 방면에 대해 공부를 하는 셈이니 당당한 실력파라 할 만하다는 게 회원들의 얘기다. 황 회장은 “가벼운 글 쓰기가 취미인데, 직장의 한 동료가 값비싼 경품을 타는 것을 보고 1999년 어느 날 ‘펜팔 테크닉 이벤트’라는 행사에 응모한 게 경품 마니아로 들어선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듬해인 2000년 1월 회원 10여명을 모아 동아리를 만들었다. ●웬만한 건 공짜 노리기 회원 가운데 고수로 손꼽히는 70여명은 거의 일주일에 3∼4개씩 경품을 택배로 받는 일이 기본적이다. 최근에 가입한 새내기 한명은 며칠 사이에 노트북을 비롯해 컬러 휴대폰, 순금 목걸이, 배낭, 티셔츠 등에 당첨됐다. 노트북을 빼고는 모두 벼룩시장에 올렸고, 순금 목걸이를 공짜로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선물했다. 한달에 한 차례 갖는 모임에는 30여명이 모인다. 영화 등 문화·공연 티켓을 경품으로 받은 회원이 공짜로 동료들에게 나눠주거나, 나아가 다함께 관람하면서 우의를 다진다. 고수들에게는 경품을 타낼 수 있다, 없다 ‘냄새’를 맡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주제를 보고 게임이면 게임, 글쓰기면 글쓰기, 방송 프로그램 등 여러 부문에 따라 실력을 발휘하는 주특기도 따로 있다. 그러나 투자하는 시간은 하루 20∼30분 정도면 충분하단다. 일부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무조건 공짜를 탐내는 것은 아니라는 자부심 아닌 자부심이 배어 있다. ●어르신들 말벗 돼드리기 “아침 10시 복지관에 왔는데 이른 시각이어서인지 아무도 안보여 먼저 2층에 올라갔습니다. 목욕 끝나신 분 옷갈아 입히고 식사 도와 드리면서 오랜만에 가슴이 뿌듯했어요.” 아이디 ‘사라제로’는 지난 6일 40회 봉사활동을 다녀온 소감을 이렇게 털어놨다.“디지털카메라, 휴대전화, 김치냉장고 등 경품시장에 나오는 생활필수품은 절대 돈을 주고 사들이는 일이 없다.”는 프로 아니랄까봐 아이디 자체에 그런 이미지를 새겨놓았다. 프리죤은 매월 첫째주 일요일이면 무조건 노인복지관을 찾아간다. 사회봉사가 의무화돼 있는 것이다. 이날도 치매를 앓는 노인들을 위해 식사 마련, 청소 등으로 바쁘게 움직였다. 2001년부터 ‘서울역 헌혈의 집’을 찾아가 헌혈한 뒤 경기도 일산에 있는 홀트복지회로 옮겨 봉사를 했는데,2003년 노인복지관으로 그 대상을 바꿨다. 좀 더 손길을 아쉬워하는 어려운 이웃이 분명 주변에 많을 것이라는 생각에 수소문한 뒤부터다. ●“경품, 사랑의 디딤돌” 홍 회장은 “봉사활동을 하리라는 데 생각이 미친 것은, 먼 얘기지만 고교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별난 학생으로 꼽혔는데 졸업하기 직전에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터에 성탄절 때 거리 캐럴 공연으로 10여만원을 모아 소년·소녀가장 돕기에 썼던 게 그나마 좋은 일을 해보게 된 인연”이라고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프리죤 회원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때도 봉사활동을 하는 일요일 하루 2∼3시간이다. 거꾸로 가장 힘든 때도 역시 봉사활동 시간인데, 참여자가 적으면 힘이 빠진다고 한다. 많게는 20여명이 참여해 정모(정기 모임) 때와 엇비슷한 숫자가 된다. 지난 6일 서울 관악구 봉천1동 동명노인복지센터에서 실시한 40회 사회봉사 활동에는 7명이 동참했다. 이날 모임에도 참여자가 적어 아쉬움이 적잖았다고 회원들은 고개를 떨군다. 강홍구(36) 봉사부장은 “뜯어보면 경품 잘 타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욕심만 챙기지 않고 사정이 좋지 않은 이웃에게 베풀수록 더 확률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한다 황 회장은 지난해 동호회를 운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 ‘디지털 인맥’이라는 책자를 펴냈다.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잘못 쓰면 독약이 되지만 잘만 활용하면 본인은 물론 사회적으로도 아주 좋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게 요지다. 다양한 업종끼리 교류가 가능해져 특정 부문 전문화에 성공하면 동호회 활동 경력이 취업난 뚫기에도 직효가 분명 나타난다는 소신을 담았다. 최근에는 동호회 운영 노하우에 대한 글로 제2탄이라 할 글들을 엮어 탈고 했다. 다음달 책으로 펴낼 예정이다. 그는 “각 지역을 돌아가며 갖는 정모 때에도 회원들이 타낸 경품을 내걸고 노래자랑 등 장기 경연대회를 여는 등 공짜를 매개로 여러 부류의 사람들과 친분을 나누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프리죤이 공짜 마니아들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하지만 공짜를 즐기는 사람들이 공짜를 많이 받기 위해 모인 이 동아리로서는 사회활동이라는 뜻깊은 일에 무게가 실렸다. 각박해져만 가는 사회 분위기에 그나마 위안을 안겨주는 셈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고수들이 말하는 당첨비법 마냥 공짜를 바라지 않고 노력해서 경품을 타낸다는 뜻으로 아이디를 ‘예술도둑’으로 붙인 프리죤 황 회장은 당첨 노하우를 이렇게 들려준다. (1)온라인에서 벌어지는 행사들은 마니아들을 악용하려는 업체들 때문에 이따금 ‘배달 사고’도 일어나고 엄청난 숫자가 달려들어 확률도 낮다. 대신 길거리 이벤트나 장기자랑에는 무조건 참여하는 게 좋다.(2)글을 쓸 때는 튀는 제목을 달아라.(3)무슨 응모든지 노력한 흔적이 잘 보이도록 한다.(4)지어낸 얘기더라도 진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상상력을 발휘해 보여준다. 고수들은 첫째, 매일매일 몇개의 상품을 지급하는 경품 행사는 자정 직후 응모할 경우 확률이 높다고 조언한다. 대개 시간대별로 상품을 지급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럴 경우 하루가 시작돼 응모자가 적고, 당첨자가 정해지지 않은 경품이 많이 남은 0시 직후를 공략하면 좋다. 둘째로 이벤트 기간이 짧은 것, 행사 기간에 비해 당첨 인원이 많은 것은 적극적으로 응모해야 한다. 특히 까다로운 문제를 내거나 유별난 조건을 내거는 이벤트의 경우 힘들다고 생각하지 말고, 기회라고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두손을 들어버리기 때문에 당첨 확률은 더 높아지는 것이다. 평범한 진리에 충실하는 것도 중요하다. 다시 말해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자기 생각을 글로 띄우거나, 자기 사진을 올려서 추천을 많이 받으면 경품을 받는 이벤트에서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최선을 다한 만큼 효과를 거두려면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이벤트를 가려내는 게 우선이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토요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 잡는다/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저녁행사를 마치고 만찬 및 뒤풀이 이후 이런저런 이야기와 함께 마지막 마무리까지 짓다 보니 거의 자정이 가까워졌다. 사찰로 돌아가는 길에 바라보는 도시의 야경이 유난함으로 닿아온다. 해만 지면 고요함으로, 그리고 삼경인 아홉시만 되면 적막함뿐인 산중과는 사뭇 다른, 그러면서도 살아있다는 것에서 오는 또 다른 정겨움이 묻어난다. 이제 사람들은 어둠까지 낮으로 만들어서 사용해야 할 만큼 분주해졌다. 아니 밤낮이 없어져 버렸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낮밤이 거꾸로 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도심에 사는 나 역시 세간의 삶과 흐름을 함께하다 보니 이 늦은 시간에 돌아와 산문을 두드리게 된다. 당일로 장거리 볼일이라도 다녀올라치면 더러 새벽 3시에 방에 도착하는 날도 있다. 이 때는 ‘늦게 들어온’ 것이 된다. 먼 나들이를 위해 새벽 3시에 일주문을 나서면 ‘일찍 나온’ 것이다. 같은 3시인데도 낮에 기준을 두느냐, 밤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표현을 하게 된다. 새벽을 전날 밤의 연장으로 보느냐, 오늘 낮의 시작으로 보느냐에 따라 그 아침은 다르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즈음은 밤을 새벽까지 확장, 연장시키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한편에선 이런 삶을 오히려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찬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게 아니다. 생체리듬에 역행하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능률저하 및 건강의 적신호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개발시대’의 삶의 패턴을 이제 다시 돌아보아야 할 시점이 된 것 같다. 밤에 반드시 집중적으로 해야 할 일이 생겼다면 역으로 일찍 자고서 이튿날 새벽에 맑은 정신으로 해보자는 또 다른 흐름이 생긴 것이다. 이른바 우리의 본래 라이프 스타일인 ‘아침형 인간’이 바야흐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에 논밭으로 김을 매러나가던 그 시절에는 아침밥을 많이 먹었다. 저녁에는 일찍 자기 때문에 가볍게 때웠다. 능엄경에 이런 말이 나온다.“새벽에는 신선들이, 오전에는 사람들이, 오후에는 짐승들이, 밤에는 귀신들이 먹는 시간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신선처럼 아침밥을 그릇 가득 넘치도록 높게 담았다. 이즈음은 짐승처럼 해가 진 이후에 고칼로리 먹을거리를 많이 접하게 된다. 결국 저녁과 밤에 활동량이 많아지니 비만과 고혈압 등 성인병이 우리의 삶을 왜곡시키고 있는 것이다.‘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는 서양의 격언도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생활을 하려면 저녁에 일찍 자야만 한다. 그렇게 되려면 저녁에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일정은 만들지 않게 된다. 따라서 저절로 절제하는 삶을 살게 되기 마련이다. 자연주기의 시간흐름에 역행하는 삶은 쉬이 지치고 피곤해질 수밖에 없다. 더 부지런한 사람은 ‘아침형 인간’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더높인 ‘새벽형 인간’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사찰수련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의 설문지를 받아보면 가장 힘든 것이 ‘새벽에 일어나는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생활습관을 갑자기 바꾼다는 게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의 연장선이긴 하지만 잠도 오지 않는데 저녁 아홉시만 되면 이부자리를 펴야 하는 일도 고역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대로 가장 감명깊은 것은 새벽여명 속에서 좌선을 하면서 새소리와 함께 동터오는 아침을 맞이하는 그순간이었노라고 했다. 명징하고 또렷한 의식으로 깨어있는 새벽은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세계를 열어 줄 것이다. 원철스님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사설] 한나라 TK투톱 거꾸로 간다

    한나라당이 새 원내대표를 선출한 데 이어 당직개편을 하는 등 체제를 정비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박근혜 당대표와 강재섭 원내대표 투톱에게 주어진 과제는 야당다운 야당으로 당을 개혁하고, 책임정당, 정책정당으로 거듭나라는 것이다. 박 대표와 강 원내대표는 이른바 TK(대구·경북) 출신이다. 선출직을 놓고 지역편중이라고 평가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지도부의 지역적 기반이 겹침으로 해서 당의 노선이 일방통행식 보수화할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드러나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상생정치를 강조하면서도 여당의 양보를 전제로 내세웠고, 쟁점법안에 대해서도 여야합의나 지금까지 수렴된 한나라당의 당론보다 후퇴한 발언을 쏟아놓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의 기본틀을 유지하는 선에서 개정해야 한다면서 대체입법은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립학교법도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했다. 국가보안법은 여야가 지난해말 대체입법쪽으로 의견이 접근했고, 사립학교법도 합의처리키로 약속한 사안이다. 벌써 이런다면 당론결정이나 여야협상에서 상생은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협상대표가 바뀌었다고 그동안의 협의나 진전을 부정하는 것은 공당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행정도시법만 해도 한나라당은 합의해 놓고 뒤늦게 나자빠지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는가. ‘개혁적 보수’라는 한나라당의 노선은 누가 봐도 어느 쪽인지 애매모호하다. 시대 흐름을 주도하지 못할 바에는 따라가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해야 할 일은 먼저 양보하면 상생하겠다는 투가 아니라, 우리는 합심해서 이런저런 정책을 밀고나가겠다고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한나라당 ‘박·강 투톱체제’가 얼마나 효율적으로 당을 대표할지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고 있다.
  • 역사소설 왜 뜨나?

    한국소설이 ‘역사’쪽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동안 소식이 뜸했던 작가들이 내놓는 신작 가운데는 역사 소재의 작품들이 부쩍 많아졌다. 물론 그 자체를 커다란 트렌드라고 흥분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침체된 문학시장의 활로를 뚫는 기제로 역할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심장한 흐름이라는 게 출판가의 중론이다. ●꾸준히 ‘발언’하는 역사소재 소설들 역사는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기있는 소설 소재였다. 하지만 근년들어 이른바 ‘역사소설’들이 문학시장에서 차지하는 가치는 사뭇 달라졌다.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군이 몇몇으로 한정됐던 예전과는 달리 젊은 인기작가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추세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세계를 새로운 각도로 그려낸 김훈의 베스트셀러 ‘칼의 노래’ 이후만 봐도 그 분위기는 감지된다. 예술을 위해 조국을 등지고 신라로 망명한 우륵의 예술혼을 다룬 김훈의 또 다른 역사소설 ‘현의 노래’에 명기 황진이를 주인공으로 불러낸 전경린의 ‘황진이’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8권으로 완간된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 여성화가 나혜석의 실제 삶에서 모티프를 따온 함정임의 ‘춘하추동’, 신라왕실을 주름잡은 요부 미실의 삶을 그린 김별아의 ‘미실’이 최근작들. 베스트셀러 ‘풍수’의 작가 김종록도 이번주 조선시대 천문학자 장영실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 ‘장영실은 하늘을 보았다’(전2권)를 내놓았다. 특정인물을 벗어나 역사 자체를 글감으로 잡은 작품들로 눈을 돌리면 사례는 더 많아진다. 장정일이 여성적 시각에서 썼다는 ‘소설 삼국지’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되는 작품이다. ●한승원도 ‘정약전 주인공’ 곧 출간 출간 ‘예약’된 작품들도 눈에 띈다. 이달 말엔 중진작가 한승원이 정약전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흑산도 하늘길’(문이당)을 내놓는다. 정약전은 조선 후기의 학자이자 천주교 선교사로 다산 정약용의 형이다.“주인공을 가상인터뷰 형식으로 정약전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삶을 복원해낼 것”이라는 게 출판사측의 설명이다. 또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주인공인 김탁환의 추리소설 ‘열녀문의 비밀’(황금가지)이 여름에 출간된다. 황금가지는 미 군정기에 암약했던 여간첩 김수임을 그린 김탁환의 또 다른 소설(제목 미정)도 겨울쯤 내놓을 계획이다. 김별아도 내친김에 조선시대가 배경인 역사소설을 잇따라 쓰고 있는 중이다. 역사소설 특히 인물을 소재로 한 역사소설 쓰기의 경향은 크게 두가지 배경에서 출발한다. 먼저 이전의 역사소설들과는 달리 최근엔 개인주의적인 서술방식으로 씌어지고 있는 추세다. 문학평론가 장은수씨는 “영웅담에 의존하는 국가주의적 서술태도나 성적 흥미를 추구하는 야사 중심에서 벗어나 요즘 작가들은 개인주의와 페미니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집단 속에서 개인을 발견하는 게 아니라 개별인물을 통해 거꾸로 집단을 발견하는 방식으로 시각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다.‘칼의 노래’,‘황진이’,‘미실’, 장정일의 ‘삼국지’ 등이 모두 그런 유형에 든다. ●일부 작가들 “아이디어 빈곤 극복 대안” 일부 작가들은 아이디어 빈곤을 극복하는 하나의 대안으로 역사소설 장르를 택하기도 한다. 김별아는 “현실의 변화속도가 너무 빨라 그 속에서 문학적 가치를 짚어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고 고백한다. 상대적이긴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 또한 역사소재 소설 쪽으로 쉽게 쏠리는 게 사실. 전경린의 ‘황진이’는 15만부나 팔렸고 ‘미실’도 출간 보름여 만에 4쇄(5만부)를 찍었다. 초쇄 3000부를 소화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국내 소설시장의 현실에서 놀라운 성적이다. 민음사 이수은 문학팀장은 “역사소재 소설은 픽션이면서 동시에 실재의 이미지를 가미할 수 있어 상업적으로 봐도 불리할 게 없다.”며 “그들의 선전은 하향 문학시장에 대한 경고이자 반동으로 읽혀야 할 것”이라고 해석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길섶에서] 장발단속/김경홍 논설위원

    도로 앙편에 경찰이 가로막고 있고, 되돌아가려 해도 역시 경찰들이 지키고 있다. 정말 재수없게 걸리고 말았다. 반항도 해보고 사정도 해 보지만 도리가 없다. 경찰관은 허리춤을 붙잡고 가위로 뒷머리를 한 움큼, 가르마 옆의 앞머리를 또 한줌 잘라낸다. 길바닥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내려다보니 한숨과 욕이 저절로 나온다. 고개를 드니 이런 광경을 보고 골목 쪽으로 후닥닥 튀는 한 떼의 무리들이 보인다. 청바지와 통기타가 청년문화였던 70년대 그 시절의 장발 단속 광경이다. 내 머리 내가 기르는데 왜 풍기문란이고 퇴폐란 말인지. 부모가 물려준 머리칼 한 올도 함부로 자르지 말라는 얘기도 있는데. 중·고교 6년 동안 답답한 교복 입고 빡빡머리를 했으면 됐지, 성인이 됐는데도 국가가 머리칼까지 관리해야 하나. 80년대 들어서서 교복 자율화가 이루어졌고, 장발 단속이라는 말도 사라졌다. 시대는 아무리 거꾸로 돌리려 해도 결국은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최근 북한 TV가 머리를 귀밑까지 기른 한 주민의 모습을 실명과 함께 방영하며 망신을 줬다는 소식에 갑자기 30년 전 장발 단속이 생각났다. 김경홍 논설위원 honk@seoul.co.kr
  • [녹색공간] 자동차 문명의 그늘/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3월은 폭설의 달인 모양이다. 강원 영동지역과 경북 동해안에 내린 폭설로 산간마을이 고립되고 일부 도로가 끊겼다고 한다. 지난해에도 폭설은 좀처럼 보기 드문 광경을 남겼다. 경칩을 전후로 게릴라성 집중 폭설이 중부권을 덮쳐 1만여 대가 넘는 자동차들이 고속도로 위에 그대로 멈춰서 버린 것이다. 차안에 갇힌 채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지옥 같은 밤을 지냈던 사람들은 정부의 무사안일과 늑장대처를 질타했었다. 30시간이 넘도록 불과 1m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당시 나는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행렬을 TV로 지켜보며 엉뚱하게도 ‘카쿤’이라는 낱말을 떠올렸다. 카쿤은 car(자동차)와 cocoon(누에고치)의 합성어다. 우리가 자동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과 처리하는 일들이 많아지면서 자동차가 우리를 감싸는 고치가 되어가고 있음을 상징한다. 자동차는 현대문명을 상징하는 물건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도 있지만 자동차에는 미치지 못한다. 첨단기능을 갖춘 자동차의 등장으로 오히려 자동차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라고 보아야 옳다. 지난해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액은 326억달러로 5대 수출품목 중 처음으로 3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총수출의 12.8%를 차지해 최대 수출산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4기통 캐딜락이 고종황제의 어차로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왔던 것이 1903년이다.1955년에는 우리 손으로 시발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정확히 50년이 지난 지금 자동차 수는 1500만대가 넘는다. 올해는 판매대수가 내수와 수출을 합해 사상 처음으로 500만대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와 같은 수치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거꾸로 우리들이 자동차를 먹여 살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도로와 주차장이 집어삼킨 거대한 공간, 한해 평균 40만명이 넘는 교통사고 사상자 수, 자동차의 거침없는 주행을 위해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는 노약자들, 위험 때문에 도로에서 쫓겨나는 아이들…. 자동차를 위해 우리가 희생하고 있는 것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자동차로부터 서자 취급을 받고 있음에도 너도나도 아우성치며 자동차에 손을 내민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포드가 ‘모든 집에 차 한 대’라는 꿈의 실현을 약속하였다면, 독일민족 구성원 모두가 자동차소유자가 되는 ‘자동차 민족공동체’의 깃발을 내걸고 아우토반을 건설한 것은 히틀러였다. 하지만 포드도 히틀러도 정말 모든 집에서 자동차를 가지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교통망을 바둑판처럼 만들겠다며 도로 건설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자동차 통행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인권침해를 줄이는 데는 인색하다. 자동차 문명의 그늘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모두가 개인적으로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사는 방식을 발전시켜 나가는 일이다. 하지만 삶의 양식을 바꾼다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다. 시간이 걸리는 일일 뿐만 아니라 공공교통수단의 확충 또한 전제되어야 한다. 자동차가 늘어나는 이유는 자동차 이용으로 지불해야 할 비용이 그 이용에 따른 편익보다 훨씬 적기 때문이다. 자동차 생산자와 이용자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져야 한다. 안병옥 시민환경연구소 부소장
  • [사설] 간통혐의 여성만 구속한 기준 뭔가

    최근 법원이 간통 혐의로 고소당한 남녀에 대해 남성은 불구속 기소하고 여성만 구속 기소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는 것은 법 집행의 공정성을 의심케 하는 일이다. 혼인생활의 보호를 위한 간통죄는 친고죄이자 쌍벌죄이기 때문에 피해자의 고소가 있으면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경우 당사자 모두를 구속 처리하는 게 관례였다. 그러나 이런 관례가 여성에게만 불리한 쪽으로 깨지는 것은 혹시라도 성윤리에 대해 남성은 괜찮고 여성은 엄격해야 한다는 식의 이중잣대가 적용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문제가 된 의사·환자 관계 남녀의 영장 심사판사는 고소인의 배우자는 구속하되 상간자, 즉 고소인의 배우자의 간통 상대방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간통했거나 가정을 심각하게 파탄시킨 경우가 아니면 영장을 기각해 왔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런 설명을 받아들인다 해도 이혼남 의사인 상간자가 영장 발부 예외 경우가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여자 연예인이 관련된 또 다른 사건의 판사는 거꾸로 상간자인 여자 연예인만을 구속했었다니 그 기준은 더욱 헛갈린다. 물론 상황이 모두 다른 다툼사례에 일률적인 잣대를 요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법집행에는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판사 개인의 성(性)인지 방식에 따라 특정 성편향적 판단이 나올 수 있는 간통사건의 경우 더욱 그렇다. 간통죄 폐지론이 대두되면서 벌금형제 전환, 불구속 수사 필요성 등이 논의되고 있지만 법의 개폐와 현행법의 형평 집행은 또 다른 문제다. 법원의 명확한 간통죄 구속기준을 요구한다.
  • ‘밥상용 배우’ 아닌 당당한 주연급 브라운관 ‘중견의 힘’

    요즘 안방극장의 지형도를 ‘중견의 반란’쯤으로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동안 10∼20대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가 범람하면서,‘얼짱’‘몸짱’을 내세운 신세대 스타들에 치어 브라운관 뒤편으로 밀려났던 중견 연기자들. 그들이 세월의 농익음에서 뿜어나오는 원숙미를 뽐내며 안방극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있다. 희화화되거나 망가지는 등 단순 감초 역할이 아닌, 작품 전체를 이끄는 당당한 주인공으로 맹활약하는 등 브라운관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에서 오락프로까지 ‘점령’ 6일 오후 10시5분 방영되는 KBS 창사 78주년 특집드라마 ‘유행가가 되리’(극본 노희경, 연출 김철규)는 최근 브라운관을 관통하고 있는 ‘중견 코드’가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 청춘을 소진하고 어느새 세상의 뒤안길로 쓸쓸히 밀려난 우리네 ‘어른’들에게 훈훈한 위로의 시간을 마련한다는 게 기획의도다. 김철규 프로듀서는 “뛰어난 연기력과 풍부한 경험, 삶에 대한 철학과 연륜까지 갖췄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구누구의 엄마·아버지’로 밀려나 젊은 스타의 배경이 돼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중견 연기자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늦바람이 든 중년의 부부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낸 ‘유행가가 되리’는 박근형·윤여정 두 주인공을 필두로 연규진, 박원숙 등 연기파 중견 연기자들이 드라마를 견인한다.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SBS 금요드라마 ‘사랑공감’‘(극본 전영실, 연출 정세호)은 중견 연기자의 매력을 톡톡히 실감할 수 있는 작품. 시청자들은 극중 주인공인 이미숙, 전광렬, 견미리, 황인성 등 중견 연기자들이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아우라’에 압도돼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다.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기 시트콤 MBC ‘안녕 프란체스카’의 주인공으로 열연중인 심혜진이나, 안방극장의 ‘지존’인 KBS2TV 대하드라마 ‘해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수종과 채시라, 김갑수도 중견 연기자의 힘을 보란 듯이 과시하고 있다. 주말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2TV ‘부모님전상서’,MBC ‘한강수 타령’의 인기도 고두심, 송재호, 김해숙, 김희애, 허준호 등 중견연기자들이 이끌고 있다. 그동안 젊은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던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중견 연기자들의 힘은 빛을 발하고 있다. 출연 빈도가 늘어난 것도 그러하지만, 활약 또한 젊은 연기자 못지않다.KBS2TV ‘해피투게더’와 ‘비타민’,MBC ‘브레인 서바이버’와 ‘전파 견문록’,SBS의 ‘야심만만’과 ‘솔로몬의 선택’ 등 간판 오락프로그램에서 강부자, 임현식, 노주현, 조형기, 김을동 등 중장년 연기자들이 특유의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젊은 연예인 못지않게 내실 있는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대 위주 제작흐름에 시청자 염증” 이렇듯 중견 연기자들이 당당하게 제몫을 담당하는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은 “시청자들이 신세대 스타 위주의 획일적인 제작 흐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방송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특히 신세대 연기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과 원숙함 등 또 다른 매력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오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중년 연기자들의 당찬 각오들은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SBS 주간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의 농익은 연기력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김수미는 “중견 연기자가 더이상 ‘밥상용 배우’(극중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에만 등장할 정도로 극 비중이 미미하다는 것을 비꼬아 부르는 표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겠다.”고 밝힌다. ‘사랑 공감’의 이미숙도 “주인공이 나이로 결정되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라면서 “중견 연기자들도 얼마든지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이를 거꾸로만 먹어 온 안방극장에 요즘 중견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세월의 힘’이 언제, 어느 정도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길섶에서]월남국수/신연숙 수석논설위원

    요즘 많이 생겨나고 있는 베트남 식당의 좋은 점은 쌀로 만든 국수를 판다는 것이다. 담백하고 상큼한 맛도 일품이지만 무엇보다 밀가루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자신있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위(胃)병이 나 밀가루음식을 먹지 말라는 의사의 권고를 받았을 때도 월남국수는 마음 놓고 분식(粉食) 기분을 낼 수 있는 음식이었다. 그런데 월남국수를 좋아해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한 환경연구가가 월남국수를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중 하나로 뽑은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태국국수를 지목한 것이지만 둘의 재료는 대동소이하여 개념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월남국수는 지속 가능한 농산물인 쌀과 숙주, 마늘, 파, 땅콩, 식물성기름을 주재료로 쓴다. 육식위주의 서구식 식생활은 지구 자원고갈과 환경오염, 성인병의 원인이 되지만 월남국수를 먹는 것은 그 자체로 환경과 건강에 매우 유익한 행동이 된다는 것이다. 음식 하나로 지구를 살린다니 놀라운 일 아닌가. 거꾸로 사소한 행동 하나가 지구를 숨막히게 할 수도 있다. 작은 실천을 일깨우는 외국 환경연구가의 지혜가 마음에 와 닿는다. 신연숙 수석논설위원 yshin@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60)

    解語花(해어화) 儒林 281에는 ‘解語花(풀 해/말씀 어/꽃 화)’가 나오는데, 이것은 ‘말을 이해하는 꽃’이란 뜻으로,美人(미인)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解’자의 원형은 본래 소(牛)의 뿔(角)을 두 손(又)으로 잡고 있는 모양이었으나 뒷날 쓰기 쉽도록 又(우)를 刀(도)로 바꿨다. 본래의 뜻인 ‘칼로 소를 찢어 가르다.’에서 ‘풀다.’‘흩어지다.’ 등의 뜻이 派生(파생)되었다.用例(용례)로 ‘解渴(해갈:갈증을 풀어 버림)’을 들 수 있다. ‘語’자는 意符(의부)인 ‘言(말씀 언)’과 音符(음부)인 ‘吾(나 오)’가 합쳐진 글자로, 본래의 뜻은 ‘辯論(변론)’이다.音符에 해당하는 吾의 ‘五’는 숫자 다섯을 나타내기 위해 고안해낸 부호이며,‘口’는 ‘입’의 상형이다.用例에는 ‘語訥(어눌:말을 더듬거림)’‘語不成說(어불성설:말이 조금도 사리에 맞지 아니함)’‘語弊(어폐:말의 결점)’ 등이 있다. ‘花’자는 풀의 상형인 ‘艸’와 ‘ (바로선 사람을 뜻함)’과 ‘匕(거꾸로 선 사람)’가 어우러진 글자이다.花는 한 송이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그린 ‘華(화)’의 俗字(속자)였으나 후에 華자는 ‘화려하다.’는 뜻으로,花자는 ‘꽃’이란 뜻으로 分化(분화)되었다.用例에는 ‘花無十日紅(화무십일홍: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는 뜻으로, 한 번 성한 것이 얼마 못 가서 반드시 쇠하여짐을 이름)’‘花田衝火(화전충화:꽃밭에 불을 지른다는 뜻으로, 행복이 있을 때에 재앙이 일어남을 비유)’ 등이 있다. 美人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判斷(판단) 基準(기준)이 다른 만큼 그 표현 또한 多樣(다양)하다. 붉은 입술과 하얀 齒牙(치아)라는 뜻의 ‘丹脣皓齒(단순호치)’, 밝은 눈동자와 흰 이라는 뜻의 ‘明眸皓齒(명모호치)’, 눈처럼 흰 살갗과 꽃처럼 고운 얼굴이라는 뜻의 ‘雪膚花容(설부화용)’, 지능이 낮은 듯하고, 단순한 표정을 지닌 사람이 풍기는 아름다움인 ‘白痴美(백치미)’ 등이 이에 속한다. 그밖에도 越(월)나라의 傾國之色(경국지색) 西施(서시)를 이르는 沈魚(침어),漢(한)나라 元帝(원제)의 후궁 王昭君(왕소군)의 미모에서 유래한 落雁(낙안),漢(한) 王允(왕윤)의 養女(양녀) 貂蟬(초선)의 빼어난 미모를 일컬은 閉月(폐월),唐(당)나라 현종이 楊玉環(양옥환:훗날의 양귀비)의 미모를 찬탄한 데서 유래한 羞花(수화)가 있다. 解語花(해어화)는 王仁裕(왕인유)가 엮은 ‘開元天寶遺事(개원천보유사)’에서 由來(유래)한 故事(고사)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長安城(장안성) 大明宮(대명궁)의 太液池(태액지)의 연꽃은 무척 아름다웠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玄宗(현종)은 楊貴妃(양귀비) 일행을 대동, 이곳에 行次(행차)하여 연꽃을 鑑賞(감상)하였다. 현종은 곁눈으로 양귀비를 바라보고는 연꽃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해 歎聲(탄성)을 連發(연발)하는 臣僚(신료)들에게 意味深長(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제아무리 연꽃이 아름답다 하나 내 말을 알아듣는 꽃(解語花)만이야 하겠는가!” 신료들은 말뜻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그 뜻을 알아차리고는 지당하신 말씀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당신은 몇 살입니까?/마이클 로이진 지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세월을 이기는 장사는 없다’. 이 때문에 한살이라도 더 젊게, 더 오래 살고자 하는 욕구는 인류의 공통된 소망이다. 세월에 따라 기계적으로 늘어나는 ‘달력 나이(Calendar Age)’는 어쩔 수 없다 해도 몸의 발달 또는 쇠퇴 정도를 나타내는 ‘생체 나이(Biological Age)’는 얼마든지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주장은 그래서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캘리포니아대 교수 출신의 의학박사인 저자가 생체 나이의 개념을 처음 떠올린 건 10년 전이었다. 그는 일정한 건강 관리를 통해 50세에 60세의 몸을 가질 수도,40세의 몸을 가질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이 생체나이를 진짜 나이(Real age)라고 부르며 예방의학에 초점을 둔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이 프로그램을 널리 알리기 위한 책을 썼다.99년에 처음 나온 이 책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베스트셀러가 됐고, 오프라 윈프리 쇼 등 TV에 소개되면서 전국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오랫동안 의료계에서는 노화가 유전자의 기록에 의해 진행된다는 유전자 예정설을 믿어왔다. 그러나 많은 연구를 통해 유전적 요소보다는 생활양식의 선택과 행동이 건강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덴마크, 핀란드, 미국, 아시아에서 이뤄진 쌍둥이의 노화에 관한 연구는 모두 노화의 25%는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고,75%는 생활양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저자에 따르면 생체나이 프로그램을 통해 남자는 달력나이보다 25세, 여자는 29세를 줄일 수 있다.60세의 남자가 35세의 건강과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자가 제시하는 방법들은 어려운 게 아니다. 일례로 매일 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면 8년 젊어질 수 있고,6개월마다 치과를 방문해 치아와 잇몸을 관리하면 6년 젊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은 미국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생체나이를 측정했을 정도로 건강혁명을 불러일으킨 초판의 발간 이후 5년 동안에 이뤄진 중요한 연구 결과들을 보완했다. 동맥의 염증 방지, 만성질환 관리, 호르몬 대체요법, 스트레스 저감 등 노화를 늦추거나 역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연구물들이 실려 있다.2만 5000원.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사설] 시청사 신축안, 청계천 복원 무색하다

    서울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본청사의 주차장과 부속건물 부지 3800평에 22층 규모의 새청사를 건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측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고, 청사가 비좁아 이전이나 새청사 건립 등 여러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는 수준이라고 밝히고 있다. 일제때 지어져 문화재로 지정된 시청사가 비좁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서울시장이 바뀔 때마다 신청사 문제는 검토과제였다. 그렇다고 해서 본청사 옆에 22층이나 되는 새청사를 짓는다는 것은 너무 뜬금없다. 지금 추진되고 있는 청계천 복원은 서울시민들에게 숨통을 틔워주는 자연친화적인 사업이기 때문에 모두들 불편을 참고 환영한 것이다. 지난해 서울시청 앞에 잔디광장이 조성됐을 때도 시민들은 도심속에서도 자그마한 자연을 느끼며 행복해 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여론과 추세와는 거꾸로 서울도심에 22층 새청사를 건립할 수도 있다는 서울시의 행정우월주의적 발상은 한심스럽다. 현재 청사가 비좁아서 업무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적당한 장소로 이전하는 것이 옳다. 용산미군기지가 이전하는 장소나, 행정도시 건설로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의 정부부처가 이전한다면 이를 활용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국가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이 얼마든지 있을 터인데 굳이 청계천 복원 등으로 자리잡아가는 도심에 고층건물을 또 지을 필요가 있는가. 현 이명박 시장의 임기내에는 서울시청의 이전이나 신청사 건립 문제를 확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이 언제가 되더라도 환경과 교통뿐 아니라 도시기능에도 반하고 시민의 행복을 빼앗는 선택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사설]선거법 개정 논란 너무 이르다

    최근 국회와 그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정치관련법 개정 움직임은 정치개혁과는 거꾸로 가는 방향이어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며칠전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정치개혁협의회의 김광웅 위원장이 기업의 후원 등 정치자금 모금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더니, 뒤이어 선거법 전문가라는 한 위원은 사전선거운동제한을 폐지하고 정당연설회와 합동연설회를 부활하자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 방지법(선거법)은 지난해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에 개정됐다. 이 선거법에 의해 치러진 17대 총선은 유례없이 깨끗하고 돈 안 드는 선거였다는 평가도 받았다. 선거법을 벌써부터 고치자고 나서는 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전선거운동을 허용한다고 유권자들의 정치에 대한 참여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은 시대착오적이다. 인터넷 시대에 정당연설회를 허용하고 사전선거운동을 늘려봤자 ‘정치인들만의 잔치’이거나 정치혼탁만 부추길 뿐이다. 유권자들은 현행 선거법이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해방감마저 느끼고 있다. 현행 선거법은 돈 안 드는 선거, 깨끗한 선거를 뒷받침하기 위해 개정된 법이다. 겨우 한차례 선거를 치러놓고 벌써부터 완화하는 방향으로 개정하자는 것은 정치개혁을 포기하자는 것이다. 더욱이 선거법위반 사건으로 몇몇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했고, 또 나머지 선거법위반 사범들이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선거법 위반사범들에 대한 재판이 마무리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그 재판의 근거법인 선거법 완화를 주장하는 것도 상식과 사법질서를 무시하는 일이다. 정개협은 기존 정치권의 이해를 대변하는 들러리 역할보다 정치개혁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 [유림 속 한자이야기] (59)

    犯房(범방) 儒林 279에는 ‘犯房(범할 범/방 방)’이 나오는데, 이 말은 ‘남녀가 성적(性的)으로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犯자는 ‘침범하다’는 뜻으로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는 ‘ (병부 절)’을 音符(음부:발음요소)로 설명하고 있으나 오늘날 音價(음가)만 놓고 본다면 納得(납득)하기 어렵다. 재미있는 것은 (절),尸(시),匕(화),人(인),大(대)가 모두 사람을 象形(상형)한 글자라는 점이다. 은 ‘꿇어앉은 사람’,尸는 ‘쪼그리고 앉은 사람’,匕(이때는 ‘화’로 발음하며, 숟가락을 나타내는 匕와는 별개의 글자임)는 ‘거꾸로 선 사람’,人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大는 ‘팔을 벌리고 선 사람’을 본뜬 것이다. 用例(용례)에는 ‘犯法(범법:법에 어긋나는 짓을 함)’‘主犯(주범:형법에서, 자기의 의사에 따라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 등이 있다. ‘房’자는 집채(正室)에 딸린 ‘작은 방’을 뜻한다. 참고로 ‘戶’는 한쪽만 열리는 문짝의 상형이며,‘門’은 통나무 세 개와 두 짝의 문으로 구성된 大門(대문)의 상형이다.用例로는 ‘暖房(난방:건물의 안이나 방안을 따뜻하게 함)’‘獨守空房(독수공방:혼자서 지내는 것)’ 등이 있다. 禮記(예기)에는 ‘어버이의 허물을 덮어 숨기는 일은 있을지언정 面前(면전)에서 허물을 지적하여 直諫(직간)하는 일(犯顔)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는 愛親(애친)이 소중하므로 아무리 어버이의 허물이 크다 하나 面前에서 犯顔하는 것은 禮(예)가 아니다. 論語(논어)에는 孔子(공자)와 葉公(섭공)이 正直(정직)에 대하여 토론한 이야기가 나온다.‘우리 고을에 대쪽같이 곧은 사람이 있어 아비가 양을 훔치자 자식이 그 사실을 관청에 고발하였다.’는 섭공의 말에 대하여 공자는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다르오. 아비는 자식의 허물을 덮어 주고, 자식은 아비의 잘못을 숨기지만 정직은 그 속에 있는 법’이라고 하였다. 아비의 죄를 暴露(폭로)하는 行爲(행위)는 정직한 일이기는 하지만 稱讚(칭찬)할 일은 못 되는 일이다. 아비는 자식의 죄를 숨겨 주고 자식은 아비의 죄를 숨기려는 것이 인간의 情理(정리)이다. 인간의 정이야말로 자기의 진정을 속이지 않는 마음이다. 중국 南宋(남송)의 大思想家(대사상가) 朱熹(주희)는 사람들이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흔히 犯하는 後悔(후회)를 열 가지로 整理(정리)하여 提示(제시)하였다.“부모에게 不孝(불효)하면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고(不孝父母死後悔), 종족 간에 화목하지 않으면 멀어지고 나서 후회하며(不親宗族疎後悔), 젊어서 열심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후회하고(少不勤學老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그르치고 나서 후회하며(安不思難敗後悔), 봄에 씨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하고(春不耕種秋後悔), 담장을 고치지 않으면 도적을 맞고 후회하며(不治垣墻盜後悔),女色(여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후회하고(色不謹愼病後悔),醉中(취중)에 망발을 하면 깨고 나서 후회하며(醉中妄言醒後悔), 손님을 잘 접대치 않으면 보내고 나서 후회하고(不接賓客去後悔), 잘살 때 儉約(검약)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富不節用貧後悔).”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한·일수교 40주년 ‘민족주의 정체성’ 심포지엄

    2005년은 여러 의미가 겹치는 해다. 한·일수교 40주년 광복 60주년 한일병합 100주년 등. 그러다 보니 올해에는 한국과 일본은 스스로를 어떻게 규정지어 왔는지를 밝히는 작업이 활발하다. 16일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 주최로 열린 ‘21세기 한국학, 어떻게 할 것인가’ 심포지엄은 한국의 정체성을 다루는 한국학이 어떤 내용이어야 하는지 논의하는 자리였다. 기조발표에 나선 한림대 한영우 특임교수는 탈민족주의자들의 국사해체론을 반박했다. 그는 국사해체론의 뿌리를 일본 식민주의 역사가에서 찾은 뒤 “배타적·국수적 민족주의는 비판돼야 하지만 민족적 특수성을 거부하거나 민족의 실체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의 새로운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학 연구의 초점은 “왕조의 장기지속성이 보여주는 사회통합력과 신뢰구조에 대한 이해”여야 하고 그 핵심에는 “선비정신이 있다.”고 정리했다. 그러나 한 특임교수의 주장이 마냥 환영받은 것만은 아니었다. 한국에만 집착해 스스로 국학으로 내려앉은 한국학의 시야를 동아시아로까지 틔워줘야 한다는 주문이 이어졌다. 한림대 사회학과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근대화를 설명하는 기존 주장을 재검토하면서 “학문을 하는데 일종의 ‘운동’ 정서를 버려야 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서구의 근대화 과정이 절대선도 아닌데 서구 근대화의 틀에 맞게 한국사를 끼워 맞추려는 조급증을 지적한 것이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에 몸담고 있는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는 더 신랄하게 기존 한국학을 비판했다. 그는 기존 한국사 연구가 무비판적으로 서양의 역사발전론인 ‘고대-중세-근대’ 구분을 인용하고 있다면서 ▲비교사의 관점 ▲동아시아사의 관점 ▲중국사에 대한 이해 등을 통한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전 교수와 미야지마 교수의 이런 비판을 거꾸로 일본에 투영한 심포지엄도 열렸다. 앞서 15일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BK21일본연구팀이 함께 주최한 ‘일본의 발명과 근대’ 심포지엄이다. 초점은 ‘일왕제의 위력’에 맞춰졌다. 근대 초입 대다수 사람들이 일왕이 누군지도 모르던 일본은 20세기 초반 절대적 일왕제가 성립했다. 일왕제 폐지를 내걸었던, 그래서 가장 이단적이었던 일본 공산당원 대부분이 전향했다는 사실에서 이는 잘 드러난다. 공산당 최고 이론가 사노 마사부는 전향 뒤 아예 일왕을 중심으로 하는 일국사회주의 건설을 내세울 정도였다. 성균관대 정혜선 교수는 만주사변에 비판보다 열광을 보내는 일본 민중과의 괴리감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이런 힘은 ‘일왕=일본역사=국가의 중심’이라는 도식에서 나온다. 이것은 아직도 연례행사 같은 ‘야스쿠니신사 참배’에서 잘 드러난다. 단순한 제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게 한양대 박규태 교수의 결론이다. 박 교수는 일본 근대화 초기 “신사는 종교가 아니”라던 ‘신사 비종교론’으로 근대국가의 정교분리 원칙을 피해나간 뒤 신사와 일왕제가 결합하면서 사실상 국가종교화됐다고 지적했다. 한국과 일본의 정체성을 둘러싼 이런 숱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왜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여전히 강한가. 경희대 허우성 교수는 아사바 미치아키의 ‘신체성’ 개념에서 그 답을 찾았다. 너무도 이기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체화된 감정, 그것이 민족주의 정체성이다. 허 교수가 비판적 연구자들에게 “매국노로 비난받을 각오”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18∼19일 한국일본학회 주최로 고려대에서 열리는 ‘한·일수교 40주년 기념세미나’는 일본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목표로 삼았다. 기획특집으로 ‘일본역사교과서와 역사인식 문제’도 다룰 예정이어서 기억에 대한 논의까지 함께 벌어질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기철의 플레이볼] 성적은 연봉순이 아니잖아요?

    프로 스포츠의 성적은 연봉순일까. 통계적으로 팀 순위와 연봉의 상관관계는 매우 높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한동안 해태 타이거스의 전성시대가 있었다. 당시 해태 선수들이 다른 구단에 비해 적은 연봉임에도 헝그리 정신 하나로 뛰어난 성적을 올린 것으로 팬들은 기억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해태의 평균 연봉은 하위권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워낙 팀 성적이 좋다보니 매년 연봉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전성기의 해태는 오히려 연봉이 성적을 좇아갔다.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뉴욕 양키스의 경우도 자유계약선수(FA) 제도가 생기기 이전까지는 연봉이 성적을 만들지 않았지만 팀과 개인 성적이 좋다보니 선수들의 연봉 총액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새로운 시즌을 준비하는 스프링캠프가 한창이지만 한국이나 미국 모두 팀 간의 극심한 연봉 격차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삼성의 연봉 총액은 최하위의 2배이다. 메이저리그는 더하다. 양키스는 오프 시즌 동안 또 거액을 쏟아부어 최하위권 구단의 10배가 되는 격차를 만들었다. 이외에도 시카고나 보스턴 등 미디어 시장이 큰 도시를 홈으로 하는 구단은 밀워키나 피츠버그 같은 소규모 도시의 그것보다 연봉 총액이 4∼5배는 높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연봉 총액이 5000만달러 수준에 머무는 구단의 팬들은 시즌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승은 커녕 포스트시즌 진출의 희망마저도 포기해 버린다. 프로스포츠에서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인 ‘성적이 연봉순’인 불행한 사태가 이미 만연된 것이다. 구단 간의 심각한 연봉 격차가 발생하는 원인은 한국과 미국이 서로 다르고, 해결 방법도 다르다. 미국은 도시간 야구시장 규모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이고, 한국은 돈이 있어도 사올 만한 선수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는 문제 해결을 위해 구단 수입의 공동 분배 제도, 고액 연봉 팀에 대한 사치세 등의 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진다. 샐러리캡 등 파격적인 개혁 없이는 치유가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선수 공급만 늘리면 해결이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선수 증원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아마야구의 활성화는 장기적 대책이다. 돈이 성적을 결정하는 것은 학교에서든 스포츠에서든 피해야 한다. 거꾸로 성적이 돈을 결정하는 현상은 사회적으로는 바람직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프로스포츠에서는 가장 좋은 상황이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20대취업 사상 최저

    20대취업 사상 최저

    ‘일하는 20대’의 수가 지난해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전체 취업자는 1년 전보다 41만 8000명 늘었다. 하지만 늘어난 일자리가 중·장년층에 집중되면서 20대 취업자는 거꾸로 1만 4000명이 줄었다. 극심한 취업난 외에 20대 인구가 급격히 줄어든 탓도 컸다. 젊은 노동력이 부족해지는 고령화사회의 어두운 단면이다. 특히 남성 취업자의 감소폭이 5만명에 육박하면서 2002년 시작된 ‘여초(女超)’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3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0대(20∼29세) 취업자 수는 432만명으로 전년(433만 4000명)보다 1만 4000명이 감소했다. 외환위기로 고통받던 1998년(440만명)보다도 낮은 것으로,16년 전인 88년(431만 3000명) 이후 최저치다. 하지만 80년대 후반은 경제규모가 커지면서 취업자 수가 가파르게 늘던 때였다는 점에서 지난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는 없다.20대 취업자 수는 96년 502만 1000명을 마지막으로 400만명대로 떨어진 뒤 줄곧 430만∼440만명대를 맴돌고 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해 20대 실업률이 99년(10.1%) 이후 가장 높은 7.5%에 달한 데다 20대 인구가 전년 720만 3000명에서 707만명으로 줄면서 취업자 수가 급감했다.”고 분석했다. 남녀간 취업자 수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 20대 남성 취업자는 전년 213만 5000명에서 208만 8000명으로 무려 5만명 가까이 줄어든 반면 여성은 219만 9000명에서 223만 3000명으로 3만 4000명이 늘었다. 이에 따라 남녀 격차가 14만 5000명에 달하면서 2002년(남자 222만 9000명, 여자 225만 7000명) 처음 역전된 이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 30대 취업자도 지난해 618만 1000명으로 전년(618만 6000명)보다 소폭 감소했다. 그러나 30대 초반(30∼34세) 취업자 수는 전년 308만 2000명에서 305만 5000명으로 2만 7000명이 줄었다.20대에 시작된 실업난이 나이를 먹어도 좀체 해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40대 이상에서는 취업자가 늘었다.40대는 전년 603만 1000명에서 620만 6000명으로 17만 5000명이 늘었고 50대는 333만 4000명으로 16만 1000명,60대 이상은 225만 7000명으로 11만 5000명이 각각 전년에 비해 증가했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올해 40만개 일자리 창출 계획을 청년층 고용을 확대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공직이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 (7)국세청 김승기 조사관

    [공직이 변해야 나라가 변한다] (7)국세청 김승기 조사관

    남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사회 구조적으로 뿌리내린 부조리로 피해를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란 더욱 그렇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지만, 그래도 남을 보고 도와주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들은 곳곳에 적지 않다. 중부지방국세청 고양세무서의 김승기(45·6급)조사관도 그런 사람이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사채업자들에게 시달려 잠도 제대로 못 잔다는 하소연을 주위에서 너무 많이 들어왔습니다. 장기를 팔아서라도 빚을 갚으라는 사채업자의 협박이나, 이를 못 이겨 부인이 가출했다는 등의 얘기를 들을 때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심정이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6월 금융결제원으로부터 매달 넘겨받는 고양지역내 면세사업자들의 결제내역을 훑어보다 눈이 확 끌렸다. 꽃집을 경영하는 사람들의 결제계좌에서 뭉칫돈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심야에 고액의 신용카드 매출이 꽃집에서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었다. 꽃집을 사채업자들의 ‘현금 또는 카드할인’(현금·카드깡)을 위한 위장업소로 만든 뒤 인터넷 등을 보고 찾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사채놀이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1977년 성북세무서를 시작으로 조사과에서만 근무해온 ‘조사베테랑’인 그가 이를 놓칠 리 없었다.“그대로 놓아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퇴근 후 변칙거래 내역을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현장 확인은 쉽지 않았다. 우선 신용카드 조기검색시스템, 국세정보시스템(TIS) 등을 이용해 관내 신용카드 불법발행 대상 업체가 밀집한 지역을 대상으로 한달 가까이 밤샘 확인을 했다. 여러 동(洞)에 걸쳐 61개 꽃집에서 혐의가 파악됐다. 꽃집 주인의 명함 뒷면에서 ‘사채 문의’ 등이 담긴 내용도 확인했다. 실물거래 없이 발행된 상당량의 신용카드매출전표도 어렵사리 확보했다. 인터넷을 통해 모집한 대출희망자를 상대로 고가의 화분을 구입한 것으로 위장해 신용카드매출전표를 발행하는 식이었다. 대출이자는 월 평균 30%를 웃돌았다. “돈의 실제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 지방청으로부터 혐의 대상자의 예금계좌에 대한 금융조사 승인을 받아 돈줄기를 캐고 들어갔죠. 이래저래 확보해둔 혐의 인물들의 상관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관련자의 호적도 일일이 떼어 보았습니다. 그렇게 몇달간 고구마줄기 캐듯 끝도 없어 파고들다 보니 깊숙이 숨어있던 전주(錢主)들의 실체가 드러나더군요. 커넥션은 주로 아들·부인·삼촌·할아버지·시동생 등 가족으로 단단히 얽혀 있었습니다.” 4개월여의 노력 덕분에 기업형과 소규모의 사채업자 61명을 적발해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이중 상당수는 사법처리됐다. 고양지역에서 자진 폐업하는 사채업자들이 줄을 잇는 효과가 나타났다. “이를 계기로 올 들어서도 전국의 세무서가 사채업자들로부터 피해를 당한 사람들을 돕는 데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무엇보다 가슴 뿌듯합니다.” 그는 “요즘 공무원 사회에서 불고있는 혁신의 바람도 남을 도우려는 ‘따뜻한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라고 덧붙였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되면 사채를 이용하려는 유혹에 끌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피해자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도 좀더 보강됐으면 하는 게 김 조사관의 소박한 바람이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아프리카로 간 시계/아오야마 쿠니히코 지음

    왜 하필이면 아프리카의 초원에 떨어지고 말았을까요. 주인이 몰던 차가 초원길을 덜컹거리는 바람에 작은 자명종 시계는 그만 난생 처음 와본 아프리카 땅에서 외돌토리가 되고 만 거지요. 보이는 건 듬성듬성 목초들, 무심한 흰 구름떼뿐. 사위는 고요하기만 한데 이젠 어떡해야 할까요. 일본의 동화작가 아오야마 쿠니히코의 그림동화 ‘아프리카로 간 시계’(방연실 옮김, 청년사 펴냄)는 이렇게 이야기를 걸어옵니다. 길을 잃어 난감해진 시계가 주인공이죠. ●시계야, 너는 도시가 좋아 아프리카가 좋아?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궁금해지기 무섭게 책은 도시 쪽으로 무대를 확 바꿉니다. 아하! 얼마전까지 시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도시에서 살았었네요. 식탁 앞에서 정신없이 바쁜 한 가족의 아침풍경이 그려집니다. 주인공 시계는 식탁 건너편 탁자에서 이런 풍경을 익숙한 듯 바라보고 있고요. 도시에선 시계도 무척이나 바빴던가봐요.“우리가 멈추면 도시도 멈춰버리고 말 거야.” 사람들로 꽉찬 지하철, 고층빌딩 사무실, 큰 도로변. 수많은 시계들도 도시사람들만큼이나 바쁩니다. 정확하게, 쉼없이 째깍째깍 째깍째깍. 아이들 그림책이라지만 구성이 무척 극적입니다. 배경은 다시 사바나 초원으로 후다닥 옮겨오지요. 풀밭에 거꾸로 처박혀 부지런히 바늘을 움직여보는 자명종 시계. 메뚜기 한마리만 무료하게 놀러와 있을 뿐이네요. 그림책이 속도를 붙이는 대목입니다. 따릉따릉 따르르릉- 코뿔소가 건드리는 통에 울리게 된 시계소리가 온 초원을 들깨웁니다. 기린 원숭이 사슴 표범 타조 얼룩말 사자…. 시계소리에 놀란 사바나 초원의 동물가족들이 풀쩍풀쩍 뜀박질을 해대고 온통 난리법석인 거죠. 나뭇가지 끝에 매달려 태엽이 끊어진 시계가 뚝 입을 닫을 즈음. 책은 마지막 장의 막을 올립니다. 아프리카 생활이 도무지 적응이 안 돼 울음보를 터뜨리는 시계는 참말 딱하네요. 아프리카를 빠져나올 수 있을런지요. ●느리게 가더라도 행복할 때가 있는거야 의인화된 시계의 감정이 재미있습니다. 하품나게 한가로운 아프리카 초원, 금방이라도 코끝에 매연이 끼쳐올 듯 정신없는 대도시 이미지가 강렬하게 대비되는 것도 인상적이고요. 큼지막한 메시지를 담은 결말이 꿈길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생각이 많은 그림책입니다. 시간을 잊고도 아름다운 질서를 이어가는 초원풍경은 잠이 올 듯 평화롭습니다. 나뭇가지의 시계가 ‘느리게 살기’의 가치를 깨닫는 순간입니다. 저녁노을에 붉은 물이 든 초원을 내려다보며 낮게 중얼거리네요.“이상하게도…지금이 몇시인지 전혀 궁금하지 않은걸.” 5세 이상.85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토종웰빙을 찾아서] 고흥 유자

    [토종웰빙을 찾아서] 고흥 유자

    ‘유자가 탱자된다.’는 말이 있다. 유자는 원산지인 중국 양쯔강을 건너 버리면 기후와 토질이 달라져 같은 종자라도 쓸모없는 열매가 달린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유자가 최상품으로 통한다. 유자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대략 신라 문성왕 때로 알려져 있다. 해상왕 장보고가 당나라에서 유자를 도포자락 속에 숨겨 몰래 들여와 심었다는 것. 유자는 샛노란 때깔에 손 안에 넣고 굴리면 코 끝에 은은한 향이 감돈다. 가을 추수가 끝난 뒤 문중에서 모시는 시제에 오르는 등 대접을 받았으나 지난 97년 이후 풍작과 함께 소비 감소로 이어져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자 성난 농민들이 유자나무를 뽑았다. 그후 수확량이 크게 줄었고 2000년 이후 유자의 인기가 다시 올라가면서 차츰 안정세에 접어들었다. 유자는 반드시 바닷바람을 맞아야 잘 자란다. 따뜻한 남녘 해안선을 따라 강우량이 많은 곳에 많다. 유자는 전남 고흥군이 최대 생산지다. 고흥을 대표하는 얼굴 상품이다. 풍양·두원면 일대에 조성된 유자밭은 제주도 감귤밭처럼 가을이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지난해 고흥군에서는 1830가구가 380㏊에서 6285t을 생산해 60억원가량 소득을 올렸다. 이는 전국 생산량과 면적 대비 25%다.2000년에는 2500여 농가에 605㏊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정신을 맑게 하는 유자 본초강목에는 ‘유자를 먹으면 답답한 기운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며 몸이 가벼워져 수명이 길어진다.’고 적었다. 사실 유자는 껍질부터 씨앗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최고 건강식품이다. 유자에는 비타민C가 레몬보다 3배나 많다. 또 구연산, 당질, 단백질이 풍부하다. 유기산 함량이 6.2%로 레몬이나 매실보다 많고 칼륨이나 칼슘, 무기질이 풍부해 피로회복에 특효가 있다. 특히 전립선 암 예방과 억제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동물실험에서 입증됐다. 또한 몸속의 노폐물을 밖으로 내보낸다.‘헤스페리딘’이 들어있어 모세혈관을 보호하고 뇌혈관 장애를 막아 동맥경화와 고지혈증에도 좋다. 집에서는 목욕할 때 유자를 그물망에 서너개 넣어 욕조에 띄우면 향이 감돌아 피로가 저절로 풀리고 피부미용과 신경통, 관절염에 적잖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피부가 건조해 가려우면 유자 껍질로 부위를 문질러도 된다. 유자 속에 든 펙틴질이 항염증 작용을 해 화상과 피부염에도 유효하다. 손발에 생긴 티눈이나 사마귀에는 유자씨를 태운 재를 쌀밥에 잘 버무려 바르면 감쪽같이 사라진다. ●감기에도 유자가 최고 한겨울에 몸이 으스스하고 감기몸살 기운이 돌 때 유자차가 제격이다. 끓는 물에다 유자를 껍질째 썰어 벌꿀에 재워 놓은 유자청을 두세 숟가락 넣어 아침 저녁으로 마시면 거짓말처럼 몸이 가뿐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또 평소에 보리차처럼 자주 마시면 손발이 찬 냉증에도 효과가 높다. 유자 특산지인 고흥에선 옛날부터 유자를 넣고 소주를 부어 만든 유자술을 기관지 천식 환자들이 널리 마셨다. 현재 유자는 유자차에 넣는 유자청이 널리 애용된다. 이밖에 유자로 만든 식초·주스·음료·분말·식혜 등이 판매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유자 생과로 소비된다. 지난 97년 처음으로 고흥 두원농협이 일본에 유차청 등을 수출했다. 이후 홍콩, 타이완 등으로 해마다 2400여t을 수출해 64억원을 벌어들인다. 서울과 인천 등 이름있는 음식점에 가면 유자즙으로 만든 샤부샤부 소스를 내놓아 반응을 얻고 있기도 한다. ●안정적인 소득원이 목표 유자는 3∼4그루만 있으면 자녀들을 대학에 보낼 만큼 고소득 작목으로, 한때는 ‘대학나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수확량이 늘면서 유자 값은 거꾸로 가고 있다. 유자는 전국 1235㏊에서 2만 4000여t이 생산되고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수요 감소와 생산량 확대로 재배농가들이 유자농사를 포기하기도 했다. 95년 10㎏ 1상자에 2만 7000여원에서,2000년에는 1만 4000원으로 절반 값으로 폭락했다.2003년부터 안정세로 돌아섰다. 일본은 유자 가공식품이 250여가지를 넘을 만큼 소비자들과 호흡을 같이한다고 한다. 고흥지역 유자농가들은 “다양한 유자 가공식품 개발로 값이 들쭉날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자식농사처럼 키울 수 있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고흥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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