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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철수연구소 청약 447대1

    보안업체 안철수연구소의 공모주청약 최종 경쟁률이 평균447.08대 1로 집계됐다. 미래에셋증권은 23일 코스닥시장 등록을 위해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공모주(공모가 2만3,000원) 청약을 지난 21∼22일실시한 결과 청약 증거금은 1조4,751억원에 달했다고 밝혔다.같은 날 공모주청약을 실시한 윤디자인연구소의 최종 경쟁률은 243.87대1이다. 문소영기자 symun@
  • 인터뷰/ 31일 개봉 영화 ‘베사메무쵸’ 제작진

    “애가 넷이니 발가락 40개를 먹여 살려야 하는 아버지,어머니의 삶의 무게를 담은 영화입니다.” 전윤수 감독은 첫 영화 ‘베사메무쵸’가 가족멜로 영화임을 강조한다.‘뜨겁게 키스해 주세요’란 뜻의 제목에서 전광렬·이미숙 주연의 진한 멜로영화를 연상하기 쉽지만,실은 어려움에 빠진 한 가족을 그린다.주인공은 결혼한지 10여년만에 갑자기 위기에 처한 부부,철수와 영희.전 감독은“관객들이 혹시 웃을까봐 주인공들의 이름을 바꿀까 생각해봤는데 철수와 영희가 워낙 보편적이고 정감있는 이름이라 떼어버릴 수 없더라구요”라고 말했다. 철수역을 맡은 전광렬은 “영화는 꿈이었습니다.방송에서어느 정도 위치를 만든 다음 꼭 영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습니다”라고 첫 영화를 찍은 소감을 밝혔다.묵직한 목소리로 인터뷰하는 전씨의 곁에서 “전광렬씨는 영화를찍을 때도 하나도 재미없고 진지하기만 해요”라고 영희역의 이미숙이 거든다.“나이가 들어 영화작업을 하면 한없이 기다리고,또 평가받아야 하는 부분이 견디기 힘든데 그 점을 오히려 매력으로 받아들이는게 눈에 보여요”라고 칭찬도 아끼지 않는다. ‘허준’이후 1년여 동안 영화에만 매달린 전광렬은 “감정을 마음껏 터뜨릴 수 있는 TV드라마에 비해,메조피아노로 감정을 유지하다 아이를 업고 가며 울먹이는 장면에서 포르테로 폭발시키기까지 절제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자신의 전공인 음악에 빗대 영화연기의 힘든 점을 설명했다. 영화는 중산층의 성의식에 대해서도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돈 1억원을 위해 배우자가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이 잘 수있겠느냐는 물음이다.이미숙은 “그런 상황을 안 만들기 위해 돈 많이 벌고 열심히 살 것”이라고 답한다.그동안 아이가 등장하는 드라마나 영화는 엄마로서의 실제 자신이 이입되는 것 같아 의도적으로 피했다는 이미숙.‘중년의 힘’을 강조하는 그녀는 영화 속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모성을 절절히 드러낸다.영화 속의 애련한 모습과 달리 인터뷰에서는 “남자가 강간당하는 건 처음 봤어”라며 거침이 없다. 영화 속에서 일방적으로 성적 유혹을 당하는 전광렬을 가리키는 말이다.옆에서 쑥스러워 하던 전씨도 “어쨌든 좋긴좋더라구요”라며 농담으로 마무리한다. 윤창수기자 geo@. ■영화 ‘베사메무쵸'는.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철수와 영희는 과연 바둑이와함께 잘 살았을까? ‘베사메무쵸’는 실직과 빚보증으로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한 한국의 보통 사람,철수와 영희의 이야기다.아이가 넷이나 되는 이들은 집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한달여 안에 1억원의 거금을 마련하려고 온갖 수단을 강구한다.결국 돈때문에 남편과 아내 모두 몸까지 팔아야 하는 극한 상황에 이른다. 영화는 적나라한 성애 장면을 제외하면 마치 TV 홈드라마같다.하지만 신인 감독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치밀하게 감정선을 조절한다.게다가 서른살의 이 미혼감독이 현미경처럼 들이대는 결혼 10년차 부부의 생활은 능청스럽기까지 하다.이미숙의 전작 ‘정사’처럼 차갑고 세련된 멜로가 아니라,부부가 잠자리에서 관리비 영수증을 걱정하는 현실적이고 생생한 가족멜로다.하지만 영희가 아들을 안은채 자신의 어머니가 낙지를 훔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과철수가아들을 업고 우는 장면은 한국인의 보편적 누선(淚腺)을 자극한다.‘허준’의 전광렬은 절제된 내면연기를 시도했고,한국 여배우의 힘을 상징하는 이미숙은 이제 어머니상(像)을 보여준다. 60년생 두 동갑내기 배우가 만든 ‘베사메무쵸’는 한국의 중년들에게 영화 속에 흐르는 김민기의 노래 ‘가을편지’처럼 나직한 여운이 담긴 ‘생각거리’를 던진다.‘은행나무침대’‘쉬리’등으로 한국영화계에 혁신을 일으킨 강제규필름이 ‘단적비연수’에 이어 내놓은 신작이다.이 영화는 전광렬과 이미숙이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 영화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가을이 느껴지는 오는 31일 개봉될 예정이다. 윤창수기자
  • 韓·日 ‘고운 情’도 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양국이 팽팽한 긴장 관계에 있는 가운데 국내 백혈병 어린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일본인들이 골수이식을 자원하고 거액의 수술비를 기탁해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19일 오후 7시 서울 용산구 원효로3가 ‘한사랑의 집’에서는 TV도쿄 등 일본인 10여명과 한국백혈병어린이재단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일본에서 모은 1억원의 기금 전달식이 열렸다.백혈병을 앓는 세살배기 김이래군(대전시 대덕구 중리동)을 위해 개설한 일본어 인터넷 사이트(user.chollian.net/∼irechan)를 통해 모은 기금 중 1차분이었다. 이래군의 어머니 김춘화(金春花·28)씨는 이 자리에서 5,000만원을 떼어내 서울,부산,대구의 어린이 백혈병 환자 가족 13명에게 200만∼1,000만원씩 건네 참석자들을 다시 한번 감동시켰다.5월 초에 개설된 이 사이트를 통해 22일까지1억 4,000여만원이 모금됐다. 김씨는 “내 아들 생명도 귀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새 삶의 기회를 놓칠 수도 있는 다른 소아암 환자와 사랑을나누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래군에게백혈병이라는 날벼락 같은 ‘선고’가 떨어진것은 첫돌을 한달 앞둔 지난해 3월.처음에는 고열을 동반한감기인 줄만 알았다가 이래군의 가슴에 멍울이 잡히면서 다니던 병원의 의사로부터 유명 의료진에게 가보라는 얘기를들었다. 서울대 의료진은 “암세포가 온몸에 펴져 회생 가능성은 5%도 안된다”는 진단을 내렸다.워낙 어린 나이여서항암치료 과정에서 장파열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래군은 독성이 심해 어른도 견디기 힘들다는 항암제 ‘아이다플래그’ 치료를 잘 견뎌내며 희망을 던져주었다.이래군 부모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언제악화될지 모르는 아들을 살리는 길은 골수를 이식받는 것뿐이었다.하지만 수술비 1억원은 너무나 큰돈이었다. 이 때 이래군의 딱한 사정을 듣고 한국 관광을 일본에 소개하는 인터넷 업체 ‘서울나비닷컴’에 근무하는 김형진(金亨珍ㆍ30)씨가 한국어와 일본어로 홈페이지를 만들어 도움을 호소하기 시작했다.그는 대학병원 경비원으로 일하는이래군의 아버지 김남일(金南一·29)씨의 특전사 시절 동료였다. 사이트가 소개되자 일본에서는 자선행사와 기부가 잇따랐다.같은 환자였던 한 프로골퍼는 자신의 투병기 출판기념회에서 골프공,가방 등의 판매 수익을 기부했다.한 환자의 유족은 100만엔의 거금을 내놓았으나 ‘정성만으로도 고맙게생각한다’는 이래군 가족의 뜻에 따라 10만엔만 기탁했다. 후지이 리카(32)라는 장애인은 휠체어를 타고 도쿄 시내를돌며 이래군 돕기 전단을 뿌렸다.골수 이식 의사를 밝힌 사람만도 일본인과 대만인 등 5명이나 됐다.한국어 사이트를통해서도 2,000만원의 성금이 기탁됐다. 어머니 김씨는 “병원비를 대는 것조차 버거운 형편이어서죽고만 싶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면서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까지 받을 사랑을 아들을 통해 한꺼번에 받고있다”고 말했다.한일의 뜨거운 사랑과 우정을 확인케 한이래군은 다음달 중순 서울대병원에서 골수이식 수술을 받는다.후원금 전달식에 취재진을 파견한 TV도쿄는 이래군 투병기를 다큐멘터리로 제작해 다음달 말 방영할 예정이다. 송한수기자 onekor@
  • “참 아름다운 동료애”

    충북 보은군 건설과 직원들이 지난 12일 첫 지급된 성과상여금 전액을 암 투병 중인 동료직원의 치료비로 선뜻 기탁해 화제다. 이들은 17일 서울 중앙병원을 찾아 식도암으로 힘겹게 투병 중인 박자현(52·토목 5급) 전 과장에게 900여 만원의거금(?)을 전달했다.이 돈은 직원 31명이 난생 처음으로 지급받은 성과 상여금을 한 푼도 빠짐없이 모은 것으로 박 전 과장의 수술비로 쓰이게 된다. 직원들은 상여금이 지급된 지난 12일 자체 회의를 열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박 전 과장 수술비로 쓰자는 데 뜻을모았다. 평소 큰 형님같이 다정다감하던 박 전 과장이 암 진단을받고 수술비가 모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다 차등 지급된 성과금이 자칫 직원 간의 화합을 해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 푼 덜 받는다는 생각으로 개별 계좌로 입금된 상여금을 고스란히 반납한 직원들은 첫 성과금을 기다리던 가족들에게 미안하지만 이 돈이 병마와 힘겹게 싸우는 박 전 과장이 건강을 되 찾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조항신(47) 건설과장 직무대리는 “한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동료들이 누구는 100%의 상여금을 받고 누구는 한 푼도못 받는 것 자체가 불합리해 상여금 전액을 박 전 과장의치료비로 기탁키로 뜻을 모았다”며 “상여금이 지급된 후분위기가 서먹서먹해진 다른 사무실과 달리 직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보은 김동진기자 kdj@
  • [사설] ‘조선족 불법체류’ 해법

    재중국 동포인 조선족 100여명이 불법체류자 집중단속과강제추방에 항의해 어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간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외국인 불법체류자 수가 20만명을 넘어서 단속을 강화해야 했으며,그 과정에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이 포함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정부의 설명을 십분 이해한다.그렇더라도 우리는 조선족 문제에는 단순히 ‘외국인불법체류’라는 범주 안에서만 처리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다고 생각한다.조선족은 엄연히 우리 동포요,우리와 역사를 일정부분 공유하기 때문이다. 지금 국내에 불법 체류중인 조선족은 대개 브로커를 통해한국돈으로 1,200만∼1,300만원의 경비를 들여 국내에 들어온다고 한다.이같은 금액은 중국에서 10년이상 쓰지 않고모아야 할 거금이기에,일단 이같은 빚을 지고 입국한 조선족은 무리를 해서라도 돈벌이에 급급하기 마련이다.따라서우리는 조선족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며 이들이 할아버지·할머니의 땅에서 노동자로서 기여도 하고 돈도 모을 수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부에게 초법적인 ‘조선족 대책’을 세우라고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다만 실현 가능한 범위내에서 조선족의 인권을 보장하고 노동 기회를 주도록 적극 나서달라는 것이다.현재 조선족이 국내에 정식 취업하는길은 산업연수생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현재 외국인 산업연수생 쿼터 8만명은 모두 소진돼 더이상 들어올 방법이 없다.정부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건의한 것처럼 쿼터를확대하고 연수생 체류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기를 바란다.또 쿼터 증대가 조선족에게 직접 혜택이 가도록 조선족 비율을 높이는 방안을 찾기를 기대한다.그들은 다른 외국인과 달리 우리 말과 문화를 공유함으로써 노동 효율성이 높으니 이같은 방안이 무리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조선족 동포에게도 간곡히 당부한다.현재 국내 체류가 허용된 연수생 가운데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5,800명 정도이고 나머지 7,400명 가량은 잠적한 상태라고 한다.이처럼 이탈률이 매우 높아 일선 기업체에서 조선족 연수생을 기피하는 풍조까지 있다니 이는 조선족의 한국 진출에 큰 장애가 될 것이다.조선족 스스로 한국에 오면 정해진 직장·기간안에 일정한 수입을 얻고 돌아간다는 자세를 가져야지,규정을 벗어나 멋대로 행동한 뒤 사회적 관용을 일방적으로 바란다면 수용되기 힘들 것이다.
  • 무명 댐런 7년만에 첫 우승

    로버트 댐런(29)이 미국 프로골프(PGA) 바이런넬슨클래식 (총상금 450만달러)에서 데뷔 7년만에 첫승을 거두는 감격을 누렸다. 94년 PGA 무대에 뛰어든 댐런은 14일 텍사스주 어빙 포시즌TPC 코튼우드밸리 골프코스(파70·7,017야드)에서 열린 마지막 4라운드에서 보기없이 버디 4개를 뽑아내며 4언더파 66타를 쳐 전날 공동선두 스콧 버플랭크와 17언더파 263타로 동타를 이룬 뒤 연장 4번째 홀에서 힘겹게 승리했다.데뷔 이후 7년 동안 통산 132번째 대회 출전만의 첫 승. 시즌 상금랭킹 126위(13만5,525달러),지난해 이룬 자신의 한시즌 최고상금이 72만4,580달러에 불과한 댐런은 이번 대회 우승으로 81만달러의 거금을 손에 쥐었다. 반면 개인통산 4승째를 노린 버플랭크는 첫번째 연장전에서 맞은 3.3m 버디퍼팅을 놓쳤고 3번째 연장전에서도 비슷한거리에서 버디를 노렸지만 볼이 컵에 미치지 못하면서 다 잡은 우승컵을 놓쳤다. 한편 마스터스 제패 이후 한달만에 복귀한 타이거 우즈는이날 7언더파 63타의 데일리베스트를 기록하며 합계 14언더파 266타로전날 공동23위에서 공동3위까지 뛰어 오르는 저력을 발휘했다.특히 우즈는 6번홀부터 6개홀 연속 버디행진을 펼치는 등 절정의 샷 감각을 보여 팬들을 열광케 했다. 이같은 중반 호조로 공동선두로 나서기도 한 우즈는 14번홀(파4)에서 유일한 보기를 기록,주춤한 뒤 선두를 달리던 댐런과 버플랭크의 버디행진에 4타차까지 밀렸다가 16번홀(파5)에서 다시 버디를 추가,데이비드 듀발,닉 프라이스와 함께3위를 차지했다. 곽영완기자 kwyoung@
  • 위성방송, 국민주 29일부터 청약

    한국디지털위성방송(약칭 위성방송)은 오는 29∼31일 총 주식의 24.72%(816억원 규모)를 국민주 형태로 청약받는다고10일 밝혔다. 발행가액은 5,500원이고,주간사는 LG투자증권이 맡는다.LG증권은 대우,삼성,미래에셋 등 4개사를 통해 1,483만여주의일반청약 공모를 접수한다.LG증권이 전체의 60%인 890만주,나머지 3개사에 공동으로 593만주가 배정됐다. 1인당 청약한도는 4만주,청약증거금률은 100%로 미배정 청약증거금은 다음달 8일 환불된다.위성방송은 올 연말 서비스를 개시할 국내 유일의 위성방송사업자로 한국통신이 1대주주,KBS MBC가 각각 2,3대 주주이며 국내 언론사들과 삼성전자 등 130여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자본금은 3,000억원. 문소영기자
  • 포커스 투데이/ 美 억만장자 데니스 티토

    인류 최초의 ‘우주 관광객’이 탄생한다. 주인공은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의 억만장자 데니스티토(60).28일 오전 11시37분(한국시간 오후 4시37분) 카자흐스칸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러시아의 소유즈-TM32를타고 우주 국제정거장인 ISS로 날아가 일주일간 꿈의 여행을 한다.지구 귀환은 오는 5월6일. 미 우주항공국(NASA) 엔지니어 출신으로 증권에 투자,돈을 번 티토에게 우주여행은 평생의 꿈.러시아측에 2,000만달러(약 280억원)를 지불하고 미르호 탑승을 기다렸으나 일이 쉽게 풀리지만은 않았다.당초 타기로 했던 미르호가 지난달 폐기되면서 러시아는 ISS에 태워주겠다고 제안했다.그러나 ISS를 공동소유한 미국 러시아 16개국 공동 컨소시엄이다른 승무원의 안전 등을 우려,티토의 승선을 반대한 것. ‘거금’을 놓치지 않으려는 러시아측과의 공방 끝에 24일 ISS 국제컨소시엄 회원국들은 NASA 대변인을 통해 티토의우주관광을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ISS에 해를 끼칠 경우에는 배상하며 비상시를 대비,잠을 잘때는 러시아 우주선에서 잠을 자기로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우주비행사 2명과 함께 ISS까지 가는 동안 티토에게주어진 임무는 무선통신과 전기장비 작동 담당.그러나 실제로는 비디오를 찍는 일 등으로 시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정주영회장 死後/ (상) 막오른 ‘夢字시대’

    왕(王)회장 없는 현대그룹은 어디로 가나.그룹을 떠받치던정신적 지주가 무너진 현대는 형제간의 그룹분할체제로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이지만,움푹 패인 공백의 후유증은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왕회장이 없는 현대그룹의 앞날을시리즈로 알아본다. 왕회장의 별세는 정씨 일가의 1세대인 ‘영(永)’자 시대가 끝나고 ‘몽(夢)자 시대가 도래했음을 말해준다.그룹의본격적인 해체와 세대교체를 알리는 신호탄이다. 왕회장이 살아 있을 때 형제간 갈등을 겪긴 했지만,그룹이 해체의 수순을 밟아온 터라 치고받는 형제간 지분다툼은 덜할 것이란 관측이다. ■사실상 분가(分家)끝 그룹은 이미 해체된 상태나 다름없다.장남인 MK(鄭夢九)는 지난해 9월 현대·기아차,현대모비스 등 10개의 계열사로 구성된 자동차소그룹으로 독립했다.MH는 건설·상선·전자·아산·택배 등 나머지 계열사를 보유,기존의 현대그룹으로 남았다.MJ는 알짜배기인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을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계열분리에 필요한 요건과 절차도 마무리된 상태여서 별다른 잡음없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다. ■세 형제,홀로서기 시험대 현대가(家)의 세 형제들 앞에놓인 장애물은 적지 않다. 우선 MK는 숙부(叔父)인 정세영(鄭世永)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현대차에다 기아차를 인수해 독자경영에 나섰지만,향후 기상도가 탄탄대로만은 아니다.지난해에는 국내외의 경기호조 등에 힘입어 무려 1조원에 가까운 수익을 냈다.그러나 올해부터 자동차경기가 침체국면인데다 수입차가 봇물처럼 밀려들 것으로 예상돼 그야말로국내 자동차업계는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할 처지에 놓였다.그동안 정 명예회장이 쏟은 연구·개발(R&D)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항간의 얘기를 불식시킬 만한 전문경영인(CEO)의 역할을 제대로 해 낼 수 있을 지가 주목된다. MH의 어깨는 MK보다 무겁다.당장 부채더미에 쌓인 현대건설과 현대전자의 정상화가 그의 과제다.왕회장이 정치력을발휘해 길을 닦아놓은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사업 등 대북사업의 성공 여부도 관심거리다. MJ는 두 형보다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향후 2∼3년간 수주물량을 확보해 둔 현대중공업은 조선업계에서 단연 세계정상의 자리에 우뚝 설 만큼 탄탄한 기반을 갖고 있다.그러나 MJ가 왕회장처럼 정치일선에 뛰어들게 될 지 여부가MJ운명에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남은 과제 왕회장이 살아있을 당시 해결되지 않은 것은형제들간의 불협화음이다.숙부와 조카들간의 마찰음도 예사롭지 않다. 현대측은 그룹내 계열사가 계열분리돼 딴 살림을 차리더라도 ‘서로 돕고 사는’ 느슨한 형태의 연합체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MK·MH의 감정의 골이 치유되지 않았으며,현대차대물림을 놓고 MK와 정 명예회장간의 앙금이 그대로 남아있어 왕회장없는 현대가(家)가 왕회장의 후광없이도 굳건히 버텨낼수 있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주병철기자 bcjoo@. *현대 北韓사업 어떻게.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사망으로 앞으로의 대북사업 전개방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간접적인’ 영향은 불가피할 것이라고내다봤다.대북사업의 ‘큰 틀’은 유지되겠지만 진행속도나 세부적인 계획에서는 변화가 없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정 전회장은 남북경협에 있어 상징적인 인물이다.금강산관광·개성공단 개발 등의 합의는 그가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직접 만나 이룬 성과다.정 전회장은 중요한 사업을 직접 챙기면서 북한 실세들과도 상당한 친분을 쌓았다.99년 9월부터 평양에 ‘정주영체육관’(농구장)이 건설중이고 이를 북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만큼 대북 친화도도 높다. 전문가들은 북한측이 김 국방위원장과 정 전회장의 단독면담을 주선할 만큼 그를 인정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을 통해 얻어졌던 대북사업의 돌파구나 역할의 공백을그의 후계자들이 메워나가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봤다. 현재 현대의 대북사업은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회장이 총괄하고 있다.특히 현대그룹이 분할되고 자금난이심화되는 가운데 수익성이 ‘불투명한’ 대북사업의 ‘총대’를 짊어질 계열사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박재규(朴在圭) 통일부장관은 정 전회장의 사망소식이 전해진 22일 “고인은 남북간 긴장완화에 기여했다”며 “정몽헌 회장이 정 전회장의 뜻을 받들어 대북사업을 더욱 발전시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다른 정부 당국자들은 “갑작스럽게 닥친 일은 아니기 때문에 현대 나름대로 준비를 해왔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대북사업에서 현대가차지하는 비중이 컸던 만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면서 대북사업의 차질을 우려했다. 고유환(高有煥) 동국대 교수는 “정주영씨의 사망이 현대그룹 전체 운명에는 적잖은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경하기자 lark3@. *왕회장 '정계 대야망' 대선 3위로 끝내 좌절. 21일 밤 숨진 현대그룹 정주영(鄭周永) 전 명예회장은 평생을 몸담아온 경제계를 잠시 떠나 외도(外道)를 한 적이있었다. 그가 ‘대망’을 향해 첫걸음을 내디딘 때는 14대 대선을불과 10개월여 앞둔 92년 2월8일.국내 최대의 재벌 총수답게 현대그룹 계열사 주식을 매각해 마련한 2,600여억원의 거금을 들여 통일국민당을 창당하면서 정치란 새로운‘업(業)’에 발을들여놓았다.경제계의 ‘왕회장’이 정계의 ‘왕회장’이 되고자 인생모험에 승부를 건 셈이었다. 초반엔 순탄한 길을 걸었다.창당 한달여 만인 ‘3·24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31석(지역구 24,전국구 7석)을획득,원내 캐스팅 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제3당의 위치를확보한 것이다. 당시 그는 7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벽 6시에 당무회의를 소집하는가 하면 헬기를 동원,전국을 돌며 총선 지원유세를 벌이는 등 지칠 줄 모르는 정력을 과시했다. 마침내 ‘대통령의 꿈’도 펼쳤다.같은 해 5월15일 전당대회를 통해 당 대선후보로 등록,후보군에 공식 가세했다. 그는 “아파트를 반값에 전국민에게 공급하겠다”,“경부고속도로를 2층으로 짓겠다”는 등 기상천외한 공약을 내세워 유권자 공략에 나섰고,특히 경쟁 후보였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을 집중적으로 겨냥,“머리가 나쁜 사람”이라는 독설을 퍼붓는 등 좌충우돌식 선거전을 벌이기도했다. 그러나 정작 92년 대선에서 388만67표(16.1%)를 얻어 3위에 그치는 고배를 들었고,패배 뒤의 후유증은 예상보다 훨신 컸다.다음 해 1월14일 검찰이 현대 비자금 문제로 소환하자 김해공항을 통해 몰래 일본행을 시도하다 잡히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검찰조사 결과 불구속 기소됐지만,2월9일 모든 것을 뒤로접고 정계은퇴를 공식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평생 ‘밑지는 장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그가 잠시 외도한 정치에서만은 손해를 본 데 대해,당시 시중에선 “경제 9단도 정치 9단보다는 한수 아래”라는 결산평이 나왔다. 이종락기자 jrlee@
  • 기로에 선 조총련(상) ‘한덕수의장 체제’ 냉전붕괴로 쇠락

    한덕수(韓德銖)의장의 사망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총연합회(朝總聯)가 ‘사느냐 죽느냐’의 갈림길에 섰다.1955년 창립 이래 46년간 한 의장의 ‘유일체제’로 지탱해온 조총련은 90년대 냉전체제의 붕괴 이후 급속한 세력약화 등으로 인해 정체성의 위기를 겪어왔다.존폐의 기로에 선 조총련의 과거와현재,그리고 앞날을 두차례로 나눠 점검한다. ◆막내린 한덕수시대 조총련의 전신은 1945년 종전 직후 일본의 좌익계 조선인을 중심으로 결성됐던 ‘조선인연맹’(朝聯)이다.조련은 일본 공산당 간부였던 김천해(金天海)가 자체 치안대까지 두고 제법 체계적으로 이끌었으나 불법행위와 폭력성 때문에 일본 공안당국에 의해 49년 9월 강제 해산됐다.이 조직의 소수파였던 한덕수는 북한 당국과 손을 잡고 1955년 5월25일 재일 조선인 보호를 목적으로 조총련을 출범시켰다. 출범 이후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도 끊임없이 해왔다.산하금융기관인 ‘조선신용조합’은 이 과정에서 자금줄의 핵심역할을 했다.‘애국상공인’이라는 칭호 아래 행해지는 대북 경제지원은 무역거래부터 공장 설립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김일성·김정일 생일이나 건국기념일(9월9일) 때는 거금의 성금을 북한에 보내는 등 90년대 중반에는연간 북한으로의 송금액이 10억달러로 추산될 만큼 막대했다. 재일 조선인의 대북 인력송출도 실시해 59년부터 84년까지25년간 10만여명을 북송선에 태워 귀국시키기도 했다.한덕수는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과 재일 조선인의 북송을 기화로 평양을 자주 드나들며 김일성 주석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으며,조총련의 1인 지배체제를 굳게 다져왔다. 조총련은 재일동포에 대한 교육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도쿄·교토·규슈 등 일본 전역 10여개 이상 도시에서 수백 곳의 유아원∼대학교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50년대 말∼60년대 중반까지 재일 조선인(종전 당시 97%가 남한 출신)의 90% 이상이 북한 국적을 취득할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다. ◆90년 이후 쇠락 가속 조총련의 쇠락이 가시화되기 시작한것은 90년대 초.동구의 자유화 바람에 이어 한-러,한-중 수교 등으로 국제적으로 이념 대립이 무너지면서부터다.특히북송 교포들을 통해 들은 북한의 실상에 실망감이 커지면서조총련을 이탈, 재일대한민국민단(民團)으로 옮기는 조직원이 수만명에 이르렀다.90년대 초반 67만여 재일동포 중 41만명이 민단계,20만여명이 조총련계로 분류됐다.65년까지 재일동포의 90% 이상을 차지했던 조총련이 30여년 동안 얼마나쇠퇴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같은 급속한 세력약화 속에 조직 안팎에서 변하지 않고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육철수기자 ycs@
  • [웰컴 투 코리아](3)加관강객 앤 번하트

    앤 번하트(20)는 동양문화에 대한 호기심 하나로 캐나다에서 배낭을메고 서울까지 날아왔다. 금발의 미녀인 그녀는 캐나다의 스테디셀러주인공 ‘빨강머리 앤’처럼 씩씩하게 서울에서 제주까지 1달 동안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밴쿠버의 브리티시 컬롬비아 대학(UBC) 임학과 3학년인 앤은 “방학이면 유럽으로 떠나던 캐나다 대학생들이 요즘에는 태국이나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로 많이 간다”고 말했다. 앤도 뉴질랜드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가기 앞서 아시아 어느 곳을여행할까 망설였다. 일본은 물가가 너무 비싸고 중국은 1달 안에 다돌아보기에는 너무 큰 나라여서 한국에 오게 됐다. ◆서울 지하철에 감탄=‘배낭족의 성경’인 여행안내서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외로운 지구)’한국편을 들고 지난해 12월 31일김포공항에 도착했다.서울시내 버스관광에 나섰지만 교통이 복잡하고‘빨리빨리’를 외치며 서두르는 운전사 때문에 찬찬히 둘러 볼 수없었다. 8개나 되는 노선을 가진 서울의 지하철은 앤에게 훌륭한 ‘발’이되어 주었다.방송과설명도 영어로 잘 돼있어 어디든 편리하게 갈 수있었다. 지하철 노선이 하나밖에 없는 밴쿠버보다 훨씬 편했다. 친구들이 서울지하철의 편리성을 믿지 않을까봐 복잡한 지하철 환승역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서울 정동극장에서 본 부채춤 공연은 인상깊었다.더욱 좋았던 것은정동극장의 알찬 팸플릿.영어·중국어·일본어·한국어 등 4개 국어로 한국전통문화와 역사를 자세히 설명해줘 동양문화에 대한 갈증을덜 수 있었다. ◆잊지 못할 한산사의 3일=1월 5일 부산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도착한 앤은 눈때문에 한라산 정상에 오를 수 없어 아쉬웠다.하지만 빙하가 흐르는 로키산맥 이웃에서 자란 앤은 “싸고 맛있는 제주도의귤을 맘껏 먹을 수 있어 마냥 행복했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부산으로 돌아가는 비싼 비행기표 값 때문에 배를 타고 갈수 있는 완도에 들렀다.완도에서 만난 한 스님이 여수의 한산사로 앤을 초대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종을 치고 불공을 드리는 스님들의 모습에 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특히 ‘정신을 따르는 차문화’에 반해경주에서 거금 8만원을 들여다기(茶器)일체를 선뜻 샀다. 스님의 친구인 김씨 아줌마와 딸 수민씨(21)는 10일 동안 앤을 부산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초대했다.설 연휴기간동안 수민씨의 집에 머물면서 떡도 먹고 DDR도 하며 보통 한국사람의 삶에 대해 궁금했던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영어 설명 부실한 경주와 안동=경주를 방문한 앤은 특이하게 생긴첨성대가 왜 지어졌는지 궁금했지만 건축물이 만들어진 목적이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없어 론리 플래닛을 보고 겨우 알았다. 경주는 빡빡한 예산사정상 둘러볼 수 있는 수단이 버스밖에 없었다. 그러나 영어로 된 안내가 하나도 없어 운전사와 손짓,발짓으로 의사소통을 하느라 무척 힘들었다. 특히 영국 여왕이 찾았다는 안동의 영어표지판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문법이나 설명이 엉망이었다. 옛 전통이 가장 잘 보존된 고장이라는 안동의 문화에 대한 설명없이‘여왕이 쓴 삽’,‘여왕이 앉은 의자’등만을 써놓은 영어게시판은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앤은 “한국은 대체로 배낭족에게 여행하기 편리한 나라지만 많은서양의 젊은이들이 일본,중국 한걸음 더 나아가 태국,싱가폴은 알아도 한국은 모른다”며 “세계를 상대로 한국을 알리는 광고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가난한 학생인 앤이 한국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유스호스텔이 하나밖에 없다는 사실이었다.현재 전국에 51개의유스호스텔이 있지만 부엌이 있는 것은 겨우 18개.배낭족에게 매 끼니를 사먹는 것은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다.부엌은 장기간의 배낭여행 기간동안 가끔씩 고국의 음식이 그립거나 낯선 음식이 맞지않을때 배낭족에게 꼭 필요하다.또한 유스호스텔 지도가 없어 찾기가 힘든 불편도 컸다. 종이지도가 너무 쉽게 떨어지는 것도 불만이었다.앤은 “배낭객에게필수적인 지도가 좀 더 튼튼하게 만들어지고 특히 버스노선 안내도를추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앤이 한국에서 33일간 여행하는데 들인 총 비용은 약 170만원.먹고자고 버스나 지하철로 이동하는데 든 돈이다. 관광지만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동양의 문화를 알고 싶었던 앤은 친절한 부산의 김씨아줌마와스님 덕에 한국을 그런대로 만족스럽게 알수 있었다. “많은 배낭족들이 절이나 가정집에서 머무르며 한국에 대해 느낄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면서 “나는 행운을 잡았다”고 밝게 웃는 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윤창수기자 geo@
  • 코스닥50 선물거래 요령

    ‘코스닥50’ 선물지수가 오는 30일부터 부산 선물거래소에 상장,거래된다. 코스닥선물의 도입으로 헤지(Hedge·투자위험 분산)수단이 마련됨에따라 코스닥투자를 주저하던 외국인과 기관의 시장참여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또 가격변동성이 크고 거래소의 코스피200 선물지수보다 적은 금액으로도 참여할 수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참여도 활발할것으로 예상된다.코스닥50선물 거래요령을 알아본다. ●코스닥50 지수란 코스닥50선물은 코스닥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주식 중 시가총액이 큰 50개 종목의 시가총액을 지수화해 이 지수를 거래하는 것이다.지수는 지난 99년 1월4일 현재 시가총액을 100으로 정해 산출된다.증시 전문가들은 구성종목중 통신주와 인터넷주의 비중이 상당히 높아 코스닥 현물시장에서 이들 업종이 테마로 형성될 경우,선물지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했다. ●거래는 어떻게 하나 거래를 시작하려면 당분간 선물회사에 계좌를개설해야 한다.증권회사를 통한 거래는 3월말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선물회사들은 대부분 지점수가 턱없이 부족한 점을 감안,30일이전까지 은행과 업무제휴를 해 전국 은행지점에서도 선물계좌를 틀수 있게 할 방침이다. 코스닥50선물 계좌를 개설하려면 먼저 250만원의 사전증거금을 내야한다. 코스닥50지수가 100을 밑돌면 사전증거금은 200만원이면 된다. 일일정산시스템인 선물거래의 특성상 ‘깡통계좌’를 방지하기 위한것이다. 거래단위는 ‘계약’으로 최소 1계약도 거래가 가능하다.코스닥50선물은 지수 1포인트에 10만원이다.이는 코스피200선물의 5분의 1 수준이다.따라서 약정금액은 코스닥50지수×10만원×계약수가 된다. 일일정산을 통해 계좌잔고가 유지증거금을 밑돌면 거래소(증권회사및 선물회사)는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게 된다.이때 투자자는 최초 개시증거금 수준인 20%까지 채워야 한다.다음날 낮 12시까지 추가로 납부하지 않으면 반대매매에 들어간다.최소가격 변동폭은 5,000원. ●유의점 전산시스템의 미비로 프로그램매매는 3월에나 가능하다.이밖에 포지션한도(미결제 약정수량한도)가 없어 초기에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김균미기자 kmkim@
  • “나 혹시 주식투자 중독증?”

    주식투자에 관심이 많은 투자자들이라면 ‘주식투자병’에 걸리지는않았는지 생각해 볼 여유를 가져봄직도 하다. 주식투자병에 걸릴 경우 후유증과 금융사고 등의 사회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SK증권 투자정보팀 박용선(朴龍鮮)팀장은 17일 “일반투자자들이 다음과 같은 주식매매를 자주 하면 주식투자병 환자로 볼 수 있다”며 ‘병적인 주식투자 행태 10가지’를 제시했다. ◆매일 주식투자를 한다 밤새 도박을 하는 것과 같다. ◆신용이나 미수금을 계속 사용한다 돈을 빌리거나 증거금률이 40%인점을 이용, 주식투자를 계속 하는 경우다.도박판에서 판돈을 자꾸 올리자고 제안하는 것과 비슷하다. ◆투자를 잠시 쉰다고 해놓고 다시 매매를 한다 주식투자는 리듬을타야 하는데,강세장이든 약세장이든 상관없이 무조건 주식투자를 해중독증으로 발전될 수 있다. ◆주식매매를 안하면 초조하고 불안하다 주식투자 중독증에 빠졌다고보면 된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불쾌한 일을 당하면 주식매매를 한다 심리적불안상태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손해보는 경우 만회하고 말겠다는 강박관념으로 매매를 한다 손해를 봤으면 냉정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가 손해를 더크게 볼 수 있다. ◆주식투자하는 것을 가족에게 숨긴다 주식투자를 했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가족에게 알리거나 대책을 상의해야 하는데,계속 주식투자를해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이밖에 박탐장은 ‘주식투자를 위해 분에넘치는 대출을 받거나 큰돈을 빌리고 때로는 공금에 손을 댄다’,‘늘 객장에 가있는 바람에 회사에서 문제직원으로 찍힌다’,‘주식을담보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린다’ 등을 주식투자병 증후군으로 꼽았다. 오승호기자 osh@
  • [오늘의 눈] 정치적 중립 훼손한 검찰

    96년 총선에서 안기부 예산을 선거자금으로 받았던 정치인들을 조사하지 않겠다는 검찰의 ‘선언’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나’하는 비판과 자조적 푸념들이 검찰 안팎에서 들려온다. “아버지에게 용돈을 타면서 어디서 난 돈이냐고 묻는 아들도 있느냐”는 것이 수사 중단의 논리다.안기부 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이 자금의 출처를 몰랐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동안 오락가락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검찰은 4억∼5억원대의 거금을 받았거나 개인 용도로 쓴 사람은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조사하겠다고 공언했었다.그러다가 갑자기 180도 태도를 바꿨다.‘죄가 있다’가 ‘죄가 없다’로 된 것이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있다.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지않는 한 돈을 받은 현역 의원을 소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또현역 의원들은 제쳐둔 채 원외 인사나 전직 의원만 조사한다면 형평성 시비가 불거질 수 있다.사건의 핵심인 강삼재(姜三載) 의원의 체포도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수감돼 있는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운영차장은 입을 여전히 열지 않고 있다. 검찰은 이같은 어려움 이외에 정치인 수사가 불러올 엄청난 파장을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검찰이 처음부터 그같은 어려움을 상정하지 못했다는 것은이해할 수 없다.수사 초기에 철저한 진상 규명 의지를 피력한 것은다 허세였다는 말인가.더욱이 여론도 안기부 예산을 회수해야 한다는쪽이 우세했다. 정치인 수사 철회가 독자적인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다.안기부 리스트에 나타나지 않은 여야 핵심 인사들의 이름이공개되지 않고 있는 것도 수사 포기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아직까지 정치인들의 명단이 들어있는 문건이 어디에서 유출됐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검찰이 이번 사건에서 보여준 것은 정치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 뿐이다.수사 철회의 뒷면에서는 정치적 타협의 냄새가 풍긴다.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독립을 훼손하는 행동을 중단하지않는 한 검찰 바로서기는 요원하다. 이상록 사회팀 기자 myzodan@
  • 금감원, 제보자 2명 첫 시상

    “미공개정보 이용이나 시세조종 등 주식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감원에 제보하면 최고 500만원을 드립니다” 금융감독원은 28일 “주식 불공정거래 제보자에 대한 포상규정에 따라 처음으로 인터넷 공모사기 혐의를 제보한 2명의 제보자를 포상했다”고 밝혔다.이들은 몇십만원씩의 포상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모씨는 지난 6월 밀레정보통신이 자본금을 가장 납입한뒤,인터넷으로 주식청약을 모집하면서 임가공업체임에도 불구하고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납품업체라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를 제보했다.금감원 이를 토대로 조사한 끝에 밀레정보통신과 정석주(鄭錫珠)사장을공모사기 및 가장납입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문모씨는 지난 7월 국제정보통신이 인터넷으로 주식청약을 모집한뒤,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회사전화도 불통되자 위법혐의가 있다고 제보했다. 이 회사는 공모기간에 부도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공모를 계속했고 김종렬사장이 청약증거금을 인출,사용한 사실이 확인돼 공모사기 및 업무상횡령 혐의로 검찰에 고발됐다. 주식불공정 거래행위는 금감원의 인터넷 증권범죄신고센터(cybercop.co.kr)나 금감원 6층 시장감시팀(3771-5563,5578)에 제보하면 된다. 제보자에 대한 신상정보는 비밀을 보장한다.포상대상은 ▲미공개정보이용 ▲시세조종 등 불공정 거래▲과징금 부과대상이 되는 공시의무위반 등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
  • [오늘의 눈] 공기업 모럴해저드 어디까지

    공기업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끝간데가 없어 보인다. 한국전력 민영화를 둘러싸고 한동안 이면합의설이 퍼져 공기업 모럴해저드가 도마위에 오르더니 엊그제는 공기업 직원들이 거액을 횡령해 도주한 사건이 일어났다. 두 사건은 사안이 다르지만 ‘민간기업에서는 도저히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전노조의 총파업 선언으로 한동안국민들이 정전대란의 우려에 떨어야 했다.결과적으로 기우(杞憂)로끝나고 말았지만….이 과정에서 국민들은 철저히 ‘농락’당했다. “한전을 분할매각할 경우 국부가 유출되고 전기료가 인상된다”는노조의 주장에 국민들은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결과는 국민들을 파업논리에 철저히 끌어들인 ‘해프닝’으로 끝났다.한전노조는파업을 철회하는 반대급부로 임금협상에서 유리한 것들을 얻어낸 것으로 전해진다.국부유출과 전기료 인상논리는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가스기공과 대한석탄공사 경리직원이 주식투자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62억원과 14억원을 횡령한일은 공기업 모럴해저드의 또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사건이다.“어떻게 그 많은 돈을…” 국민들은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다. 석탄공사는 석탄산업 사양화로 경영부실이누적돼 퇴출 0순위로 거론돼온 공기업이다. 이 공기업에서 한 직원이거금을 갖고 도주한 일은 방만한 경영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경기침체로 기업은 물론,국민 전체가 요즘 한기(寒氣)를 뼈저리게느낀다.기업들은 전에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기업퇴출까지 겹쳐 실업인구도 날로 증가추세다. 그러나 최근 공기업들에게서 벌어지는 모습들은 민간에서 느끼는 이러한 ‘한파’와는 거리가 있다.공기업 개혁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하는 까닭을 굳이 다른 곳에서 찾아야할 이유가 뭔가? 공기업 구조조정이 노사간 합의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건 한전에 앞서 여러 공기업에서도 증명됐다.좋은 게 좋다는 식의 구조조정은 곤란하다.정부는 이제라도 공기업 개혁에 흔들림없는 대원칙을 세워 추상같은 단호함을 보여야 할 때다. 전광삼 디지털팀 기자
  • ‘금감원 로비’ 실체 접근

    금융감독원 로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조만간 ‘목표지점’에 이를전망이다. 사건 초기부터 로비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던 동방금고 부회장 이경자씨가 최근 “유일반도체의 로비자금 10억원을 동방금고 유조웅사장에게 주었다”고 말문을 열었기 때문이다.이씨는 유사장이 금감원 로비를 주도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로비상대에 대해서는 모른다며발뺌하고 있다고 검찰은 밝히고 있으나 검찰의 수사 움직임을 볼 때로비의 ‘타깃’에 대해 어느 정도 진술을 확보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이씨는 미국으로 도주한 유사장에게 로비의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있으나 로비자금으로 10억원이라는 거금을 건넨 이씨가 유사장으로부터 로비의 중간보고를 받았을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로서는 로비 당사자인 유사장의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으나 이씨가 받은 ‘보고내용’과 정현준 한국디지탈라인 사장이 들었다는 ‘전문(傳文)’은 확보했을 것으로 관측된다. 검찰이 유일반도체 신주인수권부사채(BW)의 저가발행과 관련,로비의혹이 제기된 금감원 조사총괄국간부 등을 지난주말 소환해 조사하면서 ‘뇌물이 왜 필요했는지,필요하다면 어느 부분에 필요했는지를 광범위하게 조사하고 있다’고 밝힌 부분과 맥을 같이한다. 말하자면 검찰이 이·정씨의 ‘간접증거’와 금감원 간부들의 진술을 통한 ‘정황증거’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형태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게 보다 설득력 있다. 따라서 검찰은 조만간 로비대상이 된 금감원 국장급 이상 간부를 소환,이같은 증거로 완결된 모자이크를 들이대면서 항복을 종용하게 될것으로 예상된다.검찰은 이와는 별도로 ▲장래찬 금감원 전 국장이받았다는 헐값의 주식과 투자손실 보전금 명목의 돈 ▲유일반도체가민원 해결을 대가로 건넸다는 10억원 ▲정현준씨의 기업 인수·합병(M&A) 등과 관련된 로비자금 등 3종류 검은 돈의 흐름을 쫓아 실체에거의 접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경운기자 kkwoon@
  • 2000 美 대통령 선거/ 도박판 ‘부시 승리’에 셋중 둘 베팅

    미 대선을 놓고 세계의 도박꾼들이 분주하다. 이번 선거가 40년만에치열한 경합을 벌여 예측하기 어려워지자 도박꾼들이 거금을 걸면서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대선을 상대로한 도박은 미국내에서 금지돼 있다.그러나 내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호주나 영국,아일랜드 등지에서 판돈을 걸고 있다.미선거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곳은 미국내에서는 유일하게 합법화된 오하이오주 선거시장이고 국외에서는 영국의 윌리엄 힐을 비롯해 래드브록,아일랜드의 오핼로랜스,호주의 인터내셔널 올 스포츠등이다. 영국최대의 도박장인 윌리엄 힐에서는 최대 판돈이 29만달러나 되기도 했다.흥미있는 것은 승리에 민감한 이들이 대략 2대 1의 비율로부시가 이길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 [사설] 張來燦씨의 자살

    동방·대신금고 불법 대출사건의 핵심인물로 수배를 받아온 장래찬(張來燦) 전 금융감독원 국장이 잠적 8일만인 지난달 31일 서울의 한여관에서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장씨는 ‘자살입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유서에 주식 매입 경위와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 사장으로부터 주식손실 보전금을 받은 경위 등을 자세히적어놓았다.그는 옛 직장의 동료 미망인을 도와주기 위해 주식을 매입했다는것이며 물의를 빚은 사실에 대해 금감원 임직원들에게 용서를 구하는말도 남겼다고 한다. 장씨는 자신이 저지른 행위가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자이를 감내할 수 없어 자살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에게 이러저러한 말을 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겠으나 장씨의자살은 잘못된 선택이다.그는 금감원 간부 신분으로 정현준 사장의사설펀드에 1억원을 투자하고,평창정보통신 주식 3억5,900만원어치를매입했다 주가가 떨어지자 투자손실을 보전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검찰에 자수해서 사건 수사에적극 협조했어야 옳다.금감원 고위층 및 정·관계 로비의혹을 밝히기 위해서는 장씨의 진술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다.장씨가 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이 그나마 속죄의 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장씨는 영원한 침묵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그 결과 검찰이 이 사건을 아무리 철저히 수사하더라도 의혹이 남을 수밖에 없게 됐다.장씨의 자살을 두고,일부에서는 그가 검찰 조사를 받게 될 경우자신이 몸담아왔던 금감원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판단에서 ‘조직보호’를 위해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하는 마당이다.자살은 그 자체가 불행한 일이지만,이 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의혹을 말끔히 정리할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도 그의 자살은 유감스러운일이 아닐 수 없다.검찰의 수사에도 문제가 있다.검찰은 장씨가 잠적한 뒤 출국금지와 함께 장씨의 집 주변에 경찰을 잠복 배치하고 장씨 가족을 통해 자수를 권유해왔다고 해명한다.그러나 장씨에 대한 검찰의 추적이 미지근해서 ‘안 잡는 것인가,못 잡는 것인가’라는 비판이 일기도했다.검찰의 소극적인 태도가 결과적으로 장씨의 자살로 이어진 셈이다. 이번 사건은 공직사회에 준엄한 경종이 돼야 한다.금감원 간부가 동료의 미망인에게 주식정보를 누설하는가 하면,자신의 직위를 이용한편법 주식매입으로 10억대의 거금을 챙긴 것은 도대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 (10)美洲 거점 워싱턴DC·미디아市

    [필라델피아·워싱턴DC 김삼웅주필] 8월초 필라델피아시는 공화당전당대회 관계로 온 시가지가 시끌벅적하고 호텔방의 예약도 어려웠다.변두리 초라한 모텔에서 자고 오전 일찍 펜실베이니아주 미디아시에 위치한 서재필박사 기념관을 찾았다. 대지 1.5에이커, 건물 4,000평방피트의 이 건물은 서박사가 1925년에 입주하여 1951년 서거할 때까지 25년동안 조국의 독립과 근대화를염원하며 활동의 근거지로 삼아 기거했던 곳이다.이 유택은 1987년서박사기념재단이 구입하여 기념관 뿐만 아니라 한국이민 역사에 관한 도서실과 연구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서박사가 쓰던 유물 가운데 역사적 유품은 이미 한국독립기념관으로이관되었으며 그밖의 유품들은 기념관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이지영사무총장의 설명이다.유물중에는 서박사의 손떼묻은 성경책과 일기장이 전시돼 있고 192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안창호 선생과 찍은 사진도걸려있다. 정원이 한국식으로 꾸며진 것이나 한국산 대나무를 심은것 등은 서박사의 조국사랑 정신을 기리는 것이라 한다. 서박사는 김옥균·홍영식 등과 갑신정변을 일으켜 18세 나이로 병조참판이 되었으나 정변의 실패로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해 워싱턴대학 의과대학에 입학,세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미국과 인연을 맺었다.서박사는 1894년 갑오경장때 귀국하여 독립협회를 창립하고,1896년에는 ‘독립신문’을 창간해 국민의 독립정신을 드높이는한편 사대의 상징인 영은문 터에 독립문을 세웠다. 그러나 수구세력의 책동으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3·1운동 후에는 한국문제를 세계여론에 호소하는 한편 ‘한인친구회(Friends of Korean)’를 조직,재미교포들을 결속해 독립운동후원회를 만들었다.그리고 상해 임시정부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면서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필라델피아에 ‘한국통신부’를 두고 활약했다. 1922년에는 워싱턴 군축회의에 독립을 청원하는 연판장을 돌렸고 1925년에는 호놀룰루의 범태평양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일본의 야만성을 폭로했다.독립운동으로 파산상태에 이르러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강의하고 광복후 80세의 노령으로 미군정 고문으로 초빙되어귀국,노혁명가로 국민의 추앙을 받았으나 시국의 혼잡함속에서 세번째로 미국으로 건너가 여생을 마쳤다. 서박사의 미국내 독립운동 사적지로는 1914년 4월 필라델피아에서개최한 ‘한인자유인대회’의 장소와 1919년에 창설한 ‘한국통신부’건물을 들수 있다.한국통신부는 상해 임시정부 구미위원부의 산하인데도 불구하고 서박사의 노력으로 필라델피아에 본부를 두고 독자적인 조직으로 활발하게 대미선전 활동을 벌였다.1919년 한국통신부는 필라델피아 체스넛 1524번지 웨이트맨 빌딩 825호에서 ‘한국평론(Korea Review)’을 발행하면서 국제사회에 일본 식민통치의 부당성과 한국독립의 당위성을 선전했다. 서박사는 1920년 9월부터 한국통신부 바로 옆 체스넛 1537번지에 Philip Jaisohn Company라는 인쇄소와 문방구점을 운영하면서 ‘한국평론’을 발행하였다.8층 건물이었던 한국통신부 건물이 현재는 3층 건물만 남아 GAP outlet라는 의류체인점이 들어있다.인쇄소와 문방구가있던 건물도 신축되어 약품상이 입주해 있다. 서재필 이승만 조병옥 등 유학생과 임병직 선교사 등 150여명이 모여 ‘한인자유인대회’를 열었던 필라델피아 17가 리틀극장은 지금도여전히 연극 전용극장으로 이용되어 고색창연함을 보여준다.필라델피아 역사보존회가 승인한 역사보존물(제391호)로 지정돼 있다.서박사 일행은 한인자유인대회에서 임시정부 수립과 한국독립을 천명하고결의안을 채택한 다음 미국독립기념관까지 태극기 퍼레이드를 벌이고 한국통신부 설치를 결의했었다.서박사는 이 대회에서 의장으로 추대되었다. 필라델피아 미디아시 로즈 트리공원에는 서박사의 광복운동과 생애를 기리는 서재필박사 기념비가 세워져 이웃주민들의 발길을 멈추게한다. 대한제국 정부는 1880년대부터 대미외교를 중시하여 워싱턴시에 주미외교의 본산인 주미공사관을 설치했다.처음에는 박정양 공사가 워싱턴시의 스트리트 1513번지 3층 건물을 임대해 쓰다가 1891년 시 중심지인 15가 1500번지의 독립빌딩을 당시로는 거금인 2만5,000불을주고 매입, 공사관으로 사용했다. 현재 백악관에서 동북쪽으로 길게 뻗은 버먼트 에버뉴가 13 번가와교차하는 노건로타리에 위치한다.주소가 로건 15번지다.이 공사관은대한제국이 국권을 일제에 빼앗길 때까지 공관으로 사용하다가 강제합병과 함께 주미일본대사에게 넘어갔다. 대한제국 황제 이희의 명의로 등기되었던 이 건물이 1910년8월29일주미일본대사 우찌다에게 공사관 건물과 토지일체가 어떠한과정을 거쳐 넘겨졌는지는 미궁으로 남아있다. 소유권이 넘어가고 곧미국인 홀트에게 매각되어 현재는 개인소유 주택으로 사용중이다. 워싱턴 한인연합회에서는 1998년 이 건물의 매입을 시도했으나 예산부족으로 중단했다.한말 풍운과 함께 조국의 비극을 상징하는 유서깊은 이 건물을 현지 교민의 성금과 본국정부 지원으로 매입하여 사료관 등으로 사용했으면 한다.붉은 벽돌조 콘크리트건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영사관의 한미외교사료실장을 맡아 근현대 한미관계사의 사료를 수집·정리하고 있는 노령의 양기백 박사는 직접 현장을 안내하면서 이 건물의 역사를 증언한다. 워싱턴구미위원회는 1919년 상해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함께이승만이 대통령에 선임되면서 이승만이 프랑스 파리의 주 파리위원회와 필라델피아 대한민국 통신부를 통합, 워싱턴구미위원회(구미위원부)를 조직하고 김규식·이대위·임병직 등이 업무를 수행케하였다 워싱턴 구미위원회는 창설때부터 1922년까지 노스웨스트 H스트리트1314번지 콘티넬탈 드르스트 빌딩에 본부를 두고 외교활동을 벌였다. 워싱턴시 중심가에 있는 이 빌딩은 그후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1951년에 신축한 뉴욕 에버뉴 장로교회가 웅장한 모습으로 세워지면서 옛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구미위원부는 1922년에 개최된 워싱턴 국제회의를 겨냥한 외교활동에서 별 성과를 올리지 못한 뒤로는 활동이 현저하게 위축되었으며본부도 몇차례 옮겨 다녔다.1927∼1931년 구미위원회 본부였던 파크로드 1310번지의 붉은 2층 양옥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kim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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