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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영화 르네상스 이끈 거장의 작품들

    19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를 이끌었던 김수용(83) 감독의 예술 세계를 감상해 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도심에서 열린다. 중구와 중구문화원은 9월 4~10일 문화원 예문갤러리에서 ‘영화의 향기, 김수용의 예술세계’를 개최한다고 30일 밝혔다. 2012 청계천예술제의 첫 번째 기획전시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김 감독이 연출한 작품을 모아 전시와 영상전, 축제마당으로 마련된다. 현재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기도 한 김 감독은 1958년 데뷔작 ‘공처가’로 충무로에 입성한 뒤 1999년 ‘침향’까지 40년이 넘는 영화 인생 동안 ‘저 하늘에도 슬픔이’, ‘갯마을’, ‘안개’, ‘도시로 간 처녀’ 등 10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개막식인 4일에는 성우 배한성씨의 사회로 극작가 신봉승씨가 김 감독의 50년 영화인생을 소개한다. 김 감독이 만든 영화의 하이라이트만 모은 영상전도 연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기이한 해안절벽 그 섬에 가고 싶다

    기이한 해안절벽 그 섬에 가고 싶다

    우리나라에 사람이 사는 유인도는 482개나 된답니다. 국토해양부의 연안포털 사이트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몇몇 유명 섬을 제외하면 이름조차 생경한 섬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러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가볼 만한 섬도 있기 마련이겠지요. 이름값에 견줘 훨씬 빼어난 풍경을 숨겨둔 섬 말입니다. 그런 기준에서라면 전남 여수의 개도 또한 빠지지 않겠습니다. 섬을 둘러싼 해안 절벽의 자태가 빼어난 섬이지요. 개도는 찾아가는 길 자체가 여행입니다. 여수의 아름다운 해안가를 돌아, 연륙교를 타고 백야도로 넘어간 뒤, 철부선에 몸을 싣고 30분가량 들어가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다소 힘겹긴 하나, 남녘의 풍경을 샅샅이 살피며 간다고 생각한다면, 더없이 빼어난 여정이 될 겁니다. ●거인이 힘 주어 뽑아 올린 듯한 해안 절벽들 여수 시내에서 해안선을 따라 백야도로 향하는 길. 모퉁이를 한 굽이 돌 때마다 명품이라 불러도 좋을 풍경들이 차창에 매달린다. 개도에 들면 우선 배로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게 순서다. 개도를 찾고도 섬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다면, 당신은 개도가 가진 아름다움의 절반도 채 보지 못한 셈이다. 그만큼 개도는 외관이 빼어나다. 작은 섬이라 유람선은 없다. 주민들의 배를 빌려타고 돌아봐야 한다. 외딴섬답지 않게 주민들이 전복따기 체험 등과 섬 일주를 묶은 ‘패키지 상품’도 만들어 뒀다. 섬을 돌아보려면 아침부터 서둘러야 한다. 오후가 되면 남풍이 세차게 불기 때문에 자칫 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 작은 어선으로 섬을 돌아보는 길, 객의 눈에 너른 남쪽 바다가 가득 담긴다. 짭조름한 갯내음은 코를 간질인다. 어찌나 파랗던지, 하늘도 바다도 죄다 쪽물을 들인 듯하다. 멀리 흰 뭉게구름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지 않았더라면 도무지 둘을 분간하지 못했을 게다. 섬 남쪽으로 갈수록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남도에선 해안가 절벽을 ‘비렁’이라고 부른다. 배가 파도를 넘어설 때마다 코바위와 삿갓바위, 거북바위 등 개도 특유의 ‘비렁’들이 줄줄이 지나간다. 거인이 힘 줘 뽑아올린 듯, 수직으로 깎인 바위절벽이 일품이다. ‘비렁’의 크기와 높이도 대단하지만, 생김새 또한 ‘명품’ 소리를 들을 만하다. 내나라 안 대부분의 섬들이 그렇듯, 으레 이런 해안가 풍경 속엔 질펀한 해학이 하나쯤 숨겨져 있기 마련이다. 곧추 선 해안 절벽 사이에 선녀탕이 보일듯 말듯 서있다. 동행한 섬 사내들이 이 장면에서 머리만 긁적대며 쉬 설명을 잇지 못한다. 이유야 불을 보듯 뻔하다. 남성의 잘생긴 코와 선녀탕이 각각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 터. 필경 코바위와 선녀탕이 정분에 빠졌다는 등의 내용일 텐데, 밝은 대낮에 남녀상열지사와 관련된 얘기를 하려니 계면쩍은 것이다. 그리 크지 않은 섬에 이처럼 기골이 장대한 해안 절벽들이 서있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주민들이 땅을 치는 것도 바로 이 풍경 때문이다. 개도와 인접한 금오도는 어느날 갑자기 ‘스타 섬’ 반열에 들었다. 금오도의 해안 절벽을 에둘러 돌아가는 ‘비렁길’이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덕이다. 그에 견줘 개도는 금오도보다 늠름한 ‘비렁’을 두고도 이름을 알리지 못했다. 개도 정보화마을센터장을 맡고 있는 이창규씨는 “조만간 개도의 해안 절벽을 돌아가는 명품 비렁길을 조성해 선을 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외딴섬 특유의 고즈넉한 풍경들 개도는 여수시에서 남쪽으로 약 22㎞쯤 떨어져 있다. 사방 9.46㎢의 좁은 섬 안에 약 980명의 주민들이 올망졸망 살아간다. 섬은 적요하다.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놀랄 정도다. 이름도 독특하다. 한자로 덮을 개(蓋) 자를 쓴다. 이에 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개도가 주변의 작은 섬들을 아우르고 있다 해서, 혹은 섬 내 천제봉이 솥뚜껑처럼 섬을 덮고 있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민 대부분은 음차(音借) 해서 해석한다. 섬 남쪽에 우뚝 솟은 천제봉과 봉화산이 개의 두 귀를 닮아 개도라 불린다는 것이다. 섬을 찾는 관광객들의 상당수는 섬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다. 주민들이 600년 가까이 천제(天帝)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천제봉(329m)과 섬 내 최고봉인 봉화산(338m)을 오른다. 주민들은 이 등산로를 ‘소몰이길’이라 부른다. 공식 명칭인 해풍산행로보다 훨씬 정겹다. 운구지 선착장에서 출발해 봉화산과 천제봉을 돌아본 뒤, 정목이나 화산마을로 내려온다. 주민들이 새로 조성하려는 비렁길의 ‘옛 버전’인 셈이다. 산행에 4~5시간쯤 소요되는 만만찮은 길이다.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눈부신 풍광을 낱낱이 눈에 담을 수 있다. 차로 섬을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섬에 일주도로는 없다. 섬 남쪽에 높은 ‘비렁’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 내 도로가 잘 닦여 있어 구석구석을 돌아보는데 어려움은 전혀 없다. 선입견 때문인지, 개도의 지도를 보면 정말 개와 닮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개의 머리 부분에 해당되는 곳이 월항마을이다. 바다 쪽으로 난 작은 방파제로 담장을 둘렀고, 낮은 언덕 위로 몇 채의 집들이 앉아 있다. 월궁 항아가 내려와 살 것 같은 작고 어여쁜 갯마을이다. 마을을 에두른 돌담길도 정겹다. 한데 마을 주변의 갯바위는 제법 옹골차다. 불퉁하니 솟아오른 갯바위들의 모양새가 한껏 힘 준 거인의 팔뚝을 보는 듯하다. 호령마을은 작은 모래 해변이 인상적인 곳이다. 개의 ‘몸통’인 본섬에 있다. 모래 해변으로는 섬 내 유일하다. 밀가루를 다져놓은 듯한 고운 백사장과 마을 돌담길이 잘 어우러져 있다. 모전마을은 오래전 마을 전체가 띠(茅·모)로 뒤덮여 있었다 해서 이름지어졌다. 차르락 소리가 듣기 좋은 몽돌 해변에 앉아 펄쩍펄쩍 뛰노는 숭어떼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일부러 깎아놓은 듯, 갯바위들이 수직 수평으로 눕거나 서있는 청석포, 개의 ‘꼬리’로 드는 길목인 엄랑금 등도 둘러볼 만하다. ●친환경 명품섬으로 새로 태어나 2014년이면 개도가 탈바꿈한다. 행정안전부가 개도를 ‘명품섬 베스트 10’에 선정한 데 이어 개도 주변 4개 섬을 묶어 ‘친환경 명품섬’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행안부와 여수시 등에 따르면 사업의 핵심은 펜션 단지와 어촌체험장 조성, 전통술 체험 판매장 활성화이다. 펜션 단지 조성사업의 경우 벌써 부지 정리작업이 마무리 단계이고, 너른 갯벌엔 조만간 천혜의 어촌체험장이 들어설 예정이다. 개도를 중심으로 둔병도, 적금도, 송여자도를 잇는 클러스터 사업도 추진된다. ‘개도 막걸리’ 생산 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전통술 체험 공간도 조성 중이다. 개도 막걸리는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특산물로, 섬 내 천제산 자락의 암반수와 개도에서 생산된 쌀로 빚는다. 목마른 한낮, 개도 막걸리를 한 모금 들이켜면 풋사과를 깨무는 듯 청량함과 단맛이 입안을 맴돈다. 하지만 정작 개도에서 개도 막걸리를 맛보기는 쉽지 않다. 이른 아침이면 생산량 대부분이 여수 등 도회지로 출하되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개도 막걸리 체험장이 들어서면 이 같은 불편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글 사진 개도(여수)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여수에서 연륙교로 연결된 백야도가 개도 여행의 들머리다. 태평양해운 소속 카페리가 백야도에서 하루 4회 오전 7시(직행)·8시·11시 30분·오후 2시 50분 개도를 오간다. 소요시간은 30분. 686-6655. 여수 중앙동에서도 하루 세 차례 대형 페리가 개도를 오간다. 개도마을 홈페이지(www.gaedo.invil.org) 참조. →잘 곳 7가구가 민박을 하고 있다. 개도마을 홈페이지에서 예약하면 된다. 이창규 정보화마을센터장은 “섬 사람들의 인정을 느낄 수 있는 선까지 방값을 깎아 준다.”고 전했다. 690-2288. →맛집 대부분 민박집에서 식사를 제공한다. 1인 5000원 선. 음식점 메뉴에는 없지만 홍합탕은 꼭 한 번 맛보시라. 치장하지 않은 자연의 맛을 듬뿍 느낄 수 있다. 정식 메뉴가 아니어서 가격도 정해져 있지 않다. 주민들과 객 간에 얼마나 도타운 대화가 오가느냐에 달렸다. 정태식 어촌계장 010-8826-6074.
  •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전남 고흥 거금도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전남 고흥 거금도

    남도에 가서 자랑하지 말아야 할 게 몇 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고흥에서 힘자랑 말라는 겁니다. 갯바람 맞고, 갯것 먹으며 자란 고흥 사내들의 골격이 하나같이 단단하고 힘 또한 장사라는 뜻일 테지요. 여기서 ‘고흥’은 구체적으로 거금도(居島)를 뜻한다는 게 현지인들의 대체적인 인식입니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김일의 고향이기도 하지요. 건장한 사내의 너른 가슴팍을 닮은 섬, 그곳에서 마주하는 풍경 또한 거칠고 호방합니다. ●‘전설의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가 나고 자란 곳 전남 고흥이 장사의 고장으로 알려지게 된 데에는 씨름으로 명성을 얻었던 배경이 깔려 있다. 고흥은 전북 완주의 봉동읍과 더불어 씨름으로 유명했다. 특히 거금도 출신의 사내들이 곧잘 돋보이는 성적을 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인물이 1960~1970년대를 주름잡았던 ‘박치기왕’ 김일(1929~2006)이다. 184㎝의 거구였던 김일은 어렸을 때 부터 근동의 씨름판을 휩쓸었을 만큼 이름난 씨름꾼이었다고 한다. 거구의 씨름장사들이 즐비하니, 외지의 건달들이 고흥땅에서 기를 펴기도 쉽지 않았을 터. 고흥에서 힘자랑 말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을 게다. 이처럼 김일을 빼고 거금도를 말할 수는 없다. 김일의 제자인 백종호(65) 김일기념체육관장은 “전국의 섬 가운데 거금도에 가장 먼저 전기가 들어온 것도 오로지 (김일) 선생님의 공”이라고 했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반칙왕’(2000년)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선생님을 불러 ‘임자의 희망이 뭐냐’고 물었는데,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오는 것이라고 답했다.”며 “이후 ‘청와대 지령 8호’로 거금도에 전기 시설이 들어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거금도에 들면 우선 김일기념체육관에 들를 일이다. 그런데 기념관치고는 다소 옹색하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민 영웅에 대한 후세의 대접이 참 각박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김일이 누군가. 너나없이 곤궁했던 시절, 박치기 한 방으로 국민들의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줬던 인물이다. 하지만 기념체육관에서 엿볼 수 있는 그의 흔적이란 동상 하나와 낡은 사진이 전부다. 그나마 동상은 6척 장신이었던 김일을 표현하기엔 턱없이 작고, 몇 장 남지 않은 사진조차 구겨지고 변색됐다. 백 관장은 “방송사 등이 보관하고 있는 경기 장면 등을 상영하려 해도 천문학적인 저작권료 때문에 엄두도 못낸다.”고 했다. 기념관에 영상 자료 등을 기부하는 것을 자본의 논리가 아닌, 사회 공헌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아쉽기만 한 대목이다. 김일기념체육관 바로 앞엔 김일의 생가와 그가 잠든 묘, 그리고 기념비 등이 어우러진 공간이 조성돼 있다. 그런데 이곳엔 뜻밖에도 김일이 아닌, 진돗개 동상이 세워져 있다. 고흥군청의 마이수 관광기획계장은 “김일 선수가 박치기왕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 준 개”라고 했다. 사연은 이렇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 군인들의 겨울 방한복으로 흔히 개가죽이 쓰였다. 당시 김일 선수가 기르던 개도 일본 순사에 의해 공출로 끌려갔는데, 1시간여 만에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곧바로 일본 순사가 들이닥쳤고,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김일은 변변히 대항도 못하고(박치기로 일본 순사를 들이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애견을 빼앗겼다. 이때부터 그의 가슴에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 올랐고,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레슬러로 성장하는 동력이 됐다는 얘기다. 김일의 당시 심정은 그가 직접 썼다는 동상 비문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거구의 사내 가슴속에 지켜주지 못한 진돗개 한 마리가 50년 넘게 들어 있었던 게다. ●늘씬한 거금대교 따라 느릿느릿 걸어볼까 거금도는 멀다. 전남의 끝자락 고흥에서도 몇 발짝 더 내려가야 한다. 지난해 거금대교가 놓여지면서 사실상 뭍이 됐다. 그 덕에 소요시간이 상당히 줄긴 했으나, 그래도 예닐곱 시간은 족히 걸린다. 거금도에 이르는 첫 관문은 거금대교다. 소록대교와 소록도를 딛고 나면 곧바로 만난다. 개통 이후 거금도의 최고 명물 자리를 단단히 꿰찬 다리다. 거금대교는 늘씬하다. 높이 168m의 주탑 두 개가 케이블로 상판을 받친 형태를 하고 있다. 총연장은 6.67㎞. 육상 구간을 빼면 바다를 건너는 교각 구간은 2㎞ 남짓 된다. 거금대교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인도교가 따로 마련돼 있다는 거다. 다리 상판이 2층으로 돼 있는데, 차량들은 위층의 도로를 내달리고, 아래층은 보행자와 자전거가 느릿느릿 지난다. 다리를 통째로 차지하고 걷는 맛이 각별하다. 다리를 걷다 보면 양쪽의 바다가 죄다 눈에 들어 온다. 거북섬 너머로 고깃배들이 지나고, 상·하화도 앞바다엔 물비늘이 현란하다. 다리가 놓여지지 않았다면 절대 엿볼 수 없을 풍경들이다. 다리를 왕복하는 데는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를 빌려 타면 시간은 더 줄어 든다. 다리 끝자락, 그러니까 거금도 초입에서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 준다. 마이수 관광기획계장은 “현재 자전거가 30대가량 운용되고 있는데, 올 10월쯤 추가로 20대를 더 들여올 예정”이라고 전했다. ●걸개그림 같은 풍경을 내건 해안도로 거금도에 들면 먼저 섬을 한 바퀴 도는 해안일주도로에 오르는 게 순서다.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여정은 다도해의 풍광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이 구간을 현지에선 ‘고흥 해안 풍경구간’이라 부른다. 이 길에 들면 그네들 표현처럼 ‘미쳐불 만한’ 풍경이 이어진다. 굽이도는 길 따라 파란 바다와 섬 풍경이 번갈아 펼쳐진다. 구간의 들머리인 옥룡마을 버스 정류장은 반드시 들를 것. 발 아래로 너른 남쪽 바다가 풍경화처럼 매달린다. 전국의 버스 정류장 가운데 이만한 경치를 가진 곳도 드물지 싶다. 이 구간의 절정은 오천항이다. 27번 국도의 종점인 포구다. 제법 큰 갯마을과 그 앞에 떠 있는 섬들이 어우러져 넉넉한 섬 풍경을 그려낸다. 오천항 초입엔 ‘공룡알 해변’이 있다. 수박만 한 크기의 갯돌들이 뒹구는 해안이다. 둥근 갯돌을 흔히 ‘몽돌’이라 부르는데, 거금도 사람들은 이를 ‘공룡알’이라 부른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있다. 용두봉(418m)과 적대봉(592m) 사이를 지나는 지방도로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풍경 또한 ‘미쳐불’ 정도다. 파성재에서 송광암 이정표를 따라 산자락을 타고 가면 거금도와 고흥반도의 남쪽 해안, 그리고 완도의 금당도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데, 딱 걸개그림이다. 거금도 가운데 우뚝 솟은 적대봉은 최고의 풍경 전망대로 꼽힌다. 해발 592m로 제법 높지만, 주차장이 있는 파성재에서 출발하면 왕복 2시간에 돌아볼 수 있다. ‘섬 속의 섬’ 연홍도도 가볼 만하다. 거금도에서 배로 5분이면 닿는다. 글 사진 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에서 다시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순천에 내려서서 여수박람회장 이정표를 따라 가다 새로 난 영암~순천 고속도로에 올라선다. 벌교 나들목으로 나와 고흥방면으로 가다 녹동·거금대교 이정표를 따르면 된다. 다소 복잡하지만 고속도로 표지판이 잘돼 있어 찾기는 어렵지 않다. →잘 곳 거금도 한옥민박(282-5327)은 너른 바다를 마당 삼은 집. 공룡알 해변이 코앞인 하얀파도 펜션(844-1232)과 익금해변 쪽 아마존모텔(842-4117)도 깔끔한 편이다. →맛집 녹동항 내 영성횟집은 장어통탕을 잘한다. 835-5303. 도화면 중앙식당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굴을 껍질째 삶은 피굴 등 토속음식이 곁들여진다. 832-7757.
  • [길섶에서] 순천만의 역설/구본영 논설위원

    지난 주말 여수 세계박람회장 가는 길에 순천에 들렀다. 10년 만에 찾았는데, 예전과 달리 생동감이 느껴졌다. 포스코 등 산업체가 많은 여수에 비해 적막한 갯마을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선입견도 깨졌다. 순천은 내년 4월부터 열릴 국제정원박람회 준비에 부산한 모습이었다. 짱뚱어와 게들이 갈대가 우거진 갯벌을 기어 다니는 순천만의 속살을 보러 몰려든 관광객들로 붐볐다. 놀랍게도 깃발을 앞세운 중국·일본 단체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22.4㎢의 갯벌을 끼고 있는 순천은 오래전부터 제조업 대신 녹색 생태도시 조성을 발전 전략으로 선택했다. 전봇대 282개를 뽑아 철새들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식이다. 오늘의 활력은 그런 선택이 빚은 역설적 결과인 셈이다. 낙후와 가난의 상징이었던 거대한 습지가 연간 300만명이 찾는 생태관광지로 자리잡지 않았는가. 그렇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발상의 전환’을 하면 길은 열리는 게 아닐까.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의 결함마저 강점으로 승화시키려는 노력이 중요할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한·중 수교 20년] 한글간판 빼곡한 中왕징… 중국말 넘쳐나는 ‘구로 거리’

    [한·중 수교 20년] 한글간판 빼곡한 中왕징… 중국말 넘쳐나는 ‘구로 거리’

    지난달 19일 오후 중국 베이징의 국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 연회장에는 관영 중국중앙(CC)TV가 마련한 아주 특별한 무대가 설치됐다. 국내 유명 카페 체인업체의 중국사업 책임자인 이모(42·여)씨를 비롯한 중국거주 한국인 7명으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평소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면서 이국생활의 외로움과 고국에 대한 향수를 음악으로 달래왔던 이들은 이날 무대에서 조용필의 ‘꿈’을 청중들에게 선사했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슬퍼질 땐 차라리 나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1990년대 후반 남편과 함께 유학 왔다 정착한 이씨를 비롯해 이들의 중국 거주 사연은 제각각이다. 음악학원 강사로 일하는 색소포니스트 박모(42)씨는 그동안 중국인 부인과 가정을 꾸렸고, 음악학원을 운영하는 기타리스트 이모(51)씨는 한·중 문화교류의 첨병 역할을 맡고 있다. 8만명 넘는 한국인이 거주하는 왕징은 한·중 수교 20년의 살아있는 발자취다. 베이징 어디에도 이런 집단적인 외국인촌은 찾아볼 수 없다. ‘전주옥’, ‘7080카페’, ‘갯마을’, ‘장터’ 등 친숙한 우리 글 간판이 즐비하다. 중국인들도 우리 말을 곧잘 구사해 처음 중국에 온 사람들도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다. 베이징에 ‘왕징 코리아타운’이 있다면 서울에는 ‘구로 차이나타운’이 있다. “가게도 더 늘리고 교외에 뜰이 있는 이층집도 살 계획이에요.” 중국 지린성 둔화(敦化)가 고향인 탄춘펑(潭純鳳·52). 한족인 그녀는 중국인 밀집지역인 서울 대림 2동과 건국대 입구, 경기 안산 등에서 식당만 네 곳을 운영한다. 먼저 한국 국적을 취득한 남편의 초청으로 2007년 입국했다. 재료 공장까지 따로 둘 만큼 사업이 커지면서 여동생, 아들, 며느리 등 집안 식구 모두 입국해 함께 일하고 있다. 식당 본점은 지하철 2호선 대림역 주변에 있는 이른바 ‘구로 차이나타운’ 골목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어를 한마디도 못해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식당은 물론 중국인 지원센터, 중국 신문사, 취업소개소, 중국 상점, 중국어 간판으로 된 휴대전화 대리점 등이 몰려 있는 곳이다. 식당 차림표를 통해서도 이곳 사람들의 출신지를 짐작할 수 있다. 쓰촨식 마라탕(麻辣?), 산시(山西)풍의 다오샤오멘(刀削麵) 옌볜식 양꼬치 구이 등이 눈에 띈다. 조선족 동포뿐 아니라 중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는 얘기다. 중국내 코리아타운 역시 상하이의 구베이(古北), 산둥성 칭다오(靑島)의 청양(城陽) 등 한국인 밀집지역 어디에나 들어서 있다. 베이징의 ‘왕징 코리아타운’, 서울의 ‘구로 차이나타운’은 한·중 수교를 통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다. 왕징은 1990년대 후반부터 한국인이 몰리면서 베이징의 대표적인 신도심으로 개발됐고, 서울의 대림동과 구로동에는 2000년대 초부터 중국인이 모여들었다. 민간 교류 확대의 결과다. 실제 수교 20년 동안 한국과 중국은 비약적으로 교류를 넓혀왔다. 수교 첫 해 13만명에 불과했던 양국 국민 간 교류는 2011년 640여만명으로 50배 가까이 늘었다. 이들은 상대국 수도를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독특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수교 20년의 역사를 실체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서울 주현진기자 stinger@seoul.co.kr
  •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독도 바람에 풍화되고 파도에 깎여져도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있다. 대한민국 최동단의 섬, 독도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울릉도 그리고 독도 느린 시간 속에 머물다 습관처럼 뜨거운 커피 생각이 났다. 울릉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도동항을 샅샅이 뒤져도 ‘시럽 뺀 아메리카노’를 찾을 수 없었다. 허름한 다방 앞에 서서 그때서야 내 착각이 한참 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문명의 파도에 아랑곳 않고 제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은 섬 중의 섬 울릉도, 그리고 독도인 것이다. 글·사진 전은경 기자 취재협조 코레일 관광개발 섬이란 곳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 감정은 어른이 되어 처음으로 떠난 섬 여행에서 출발한다. 사실 그 섬에 대해선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과감무쌍하게 돌아가는 배가 뜨지 않길 바랐던 것만은 기억한다. 그것은 무단외박을 소망하던 어린 날의 혈기만은 아니었다. 스스로 고립된, 그리하여 찾아오는 사람마저 고립되게 만드는 ‘섬’의 특성에 매료되었던 탓이다. 이번 울릉도, 독도 여행에서 죽도竹島(울릉도의 44개 부속섬 중 가장 큰 섬)를 바라보며 그날의 기억이 문득 떠오른 것은 단지 우연이 아닌 듯했다. 울릉도의 대표 관광지이지만 실제 주민은 단 한 명뿐이며, 물이 전혀 나지 않아 빗물을 모아 사용하는 섬. 죽도는 첫 섬 여행에서 채우지 못했던 환상이 고스란히 구현된 곳이었다. 마치 외로운 두 사람이 만난 것 같은 동지애가 든든하게 차올랐다. 사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던 날, 비가 올 것이라던 일기예보와 달리 햇빛이 반짝 났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은 청명하게 갠 하늘을 보며 함박 웃었다. 파도가 제법 높긴 하지만 독도까지 가는 것도 무리가 없을 것이란다. 아마 이번 여행도 무사히, 섬에 갇히는 일 따위 없이 귀환할 것 같다. 섬에서의 일정은 내가 아닌, 하늘이 결정한다. 그래서 섬 여행은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풍경 포항을 출발한 배가 3시간을 달려 도동항에 도착했다. 사실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오는 길이 녹록치만은 않았다. KTX와 버스, 여객선을 갈아타며 반나절 내내 멀미에 시달리는가 싶더니 배에서 내리자마자 불어온 갑작스런 강풍이 끈적거리는 머리를 봉두난발 헝클어트렸다. 그러나 육지에 발을 내딛어 몇 걸음 나아가자, 더 이상 바닥이 울렁이지 않는다는 안도감에 온몸에 뭉쳐있던 긴장감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때, 어디선가 훅하고 바람이 불어왔고, 순간 여행의 세포가 온전히 돌아왔다. 그것은 비릿함이나 끈적거림이 없는 청정해안 울릉도의 상쾌한 바람이었다. 울릉도의 첫인상은 산과 돌이다. 울릉도를 여행하다보면 울릉도에 많다는 다섯 가지-돌, 바람, 물, 미인, 향나무-가 괜히 나온 말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산중으로 갈수록 풍경은 울창한 숲과 화산암벽으로 압도되고, 인적을 찾는 일은 무의미해진다. 심지어 울릉도에는 모래사장으로 이루어진 해수욕장이 단 한 곳도 없다. 모두 검은 자갈이나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사沙’자를 쓰는 사동해수욕장마저 물속으로 들어가야만 고운 모래를 볼 수 있을 정도다. 그 매끄러운 몽돌을 기념품 대신 챙겨온 것은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울릉도는 동해에 솟아난 거대한 화산암 지역이다. 섬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984m)’, 울릉도의 유일한 평야지대라고 부를 만한 화산분화구 ‘나리분지’ 등은 지질학적으로도 꼭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만하다. 그러나 울릉도는 언제 어디서나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년 중 쾌청한 날이 약 55일밖에 되지 않고 1년에 서너 차례 울릉도를 덮치고 가는 태풍이 가뜩이나 좁은 문지방을 한껏 높인다. 그러나 울릉도가 문명의 색에 완전히 물들지 않은 이유도 바로 약간 모자란 그 접근성 때문이다. ‘신비의 섬’ 울릉도는 고맙게도 우리에게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선사한다. 또한 도시와 결별하고 과거와 만나는 경험을 안겨준다. 백화점은 고사하고 5층 아파트가 최고층인 이곳에서는 프랜차이즈 식당이나 커피전문점 대신 곳곳에 소박한 밥집과 다방이 성업 중이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울릉도에서 여행자들은 오징어와 호박엿, 그리고 추억을 양 손 가득 들고 돌아온다. 작고 소박한 바닷가 마을을 가다 울릉도는 44개의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중에서 사람이 사는 곳은 고작 4개 섬에 불과하다. 마을의 개수는 25개나 되지만 인구는 고작 1만명이라 각 마을마다 옹기종기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이 작고 소박한 마을의 사람 사는 풍경을 보게 된다. 울릉도의 최대 항구 도동항이 있는 ‘도동마을’, 어업전진기지가 들어선 저동항이 있는 ‘저동마을’ 등 제법 북적이는 마을이 있는가 하면 평온한 바닷가 ‘태하마을’, 울릉도 최고의 오지 ‘천부마을’ 등도 있다. 이 외에도 겨울이면 3m씩 눈이 쌓이는 ‘나리분지’나 울릉도에서 가장 따뜻한 마을 ‘남양’, 수심 1,500m 앞바다에서 해양심층수를 생산하는 ‘현포’, 비좁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갯마을 ‘통구미’ 등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마을들이 한데 모여 오만가지 조화로운 색상으로 울릉도를 이루고 있다. 사실 이 마을들을 잇는 울릉도 일주도로는 한 바퀴 둘레가 56.5km인데, 그중 4.4km가 아직 완공되지 않아서 완전히 한 바퀴를 돌지는 못한다. 그러나 그 덕에 울릉도 최대 관광지인 나리분지 바로 옆에 관광객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고요한 ‘천부마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태하마을의 오징어 말리는 풍경 태하마을은 일명 ‘달팽이탑’이라 불리는 전망대에서 감상하는 평온한 바닷가가 인상적인 곳이다. 그러나 태하마을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해변을 따라 죽 늘어뜨린 오징어였다. 예전에는 ‘황토구미’라고 불리었던 이곳은 울릉도 다른 지역에 비해 경작여건이 좋아 한때 논농사를 지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유독 세게 불어 오징어 건조에 유리하기 때문에 뭐니뭐니 해도 오징어 말리는 풍경을 빼놓을 수가 없다. 태하마을을 방문한 시각, 때마침 불어온 바닷바람이 석양노을을 머금고 태하마을의 오징어를 한껏 무르익게 만들고 있었다. 오징어 말리는 풍경 속을 걷다 보면 그 속에서 정성스레 오징어를 돌보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었다. 오징어 한 축의 가격을 물었더니 가격보다 중요한 게 오징어 ‘고르는 법’이라 한다. 건네준 오징어에는 상표와 동네 이름이 찍혀 있다. 울릉도에서 잡은 오징어임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오징어는 살아있을 때 등이 검붉은 게 좋은 상태라는 것, 잡은 뒤 하루나 이틀 안에 건조시키지 않으면 맛과 향이 떨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반드시 ‘당일바리’ 오징어를 사야 한다는 귀띔까지. 가격은 오징어 한 축에 5만원 정도다. 예전에 비해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볼멘소리를 했더니 몇 년 전만해도 오징어배 조업일이 일 년에 120~130일 정도 됐었기 때문에 가격이 쌌지만 작년엔 오징어가 안 나서 고작 50일밖에 조업을 나가지 못한 탓이란다. 독도로 가는 배에서 멀미를 방지하기 위해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는 사람들을 제법 봤다. 사실 배멀미에는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인 울릉도 더덕이 더 좋다. 그러나 항구에서 배를 기다리며 다리 한 짝, 몸통 한 쪽 찢어가며 먹는 오징어는 울릉도를 추억하게 만드는 가장 인상적인 심심풀이 ‘오징어 땅콩’이다. 1 통구미 마을의 망망대해를 지키는 것은 한결같이 우뚝 서 있는 화산암이다 2 오징어는 마르는 동안 울릉도의 바닷바람을 머금는다 3 태하마을 황토굴 입구에서 붉은 황토 암석층을 볼 수 있다 4 울릉도 더덕은 심이 없어 부드럽고, 향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5 청정 지역인 울릉도에서 잡힌 오징어는 중금속이 함유되어 있지 않다 6 홍합밥은 홍합을 넣어 지은 밥에 각종 울릉도 자생 나물을 곁들여 먹는 음식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신비의 섬’의 비밀을 찾아서 사실 울릉도도 사람이 제법 많이 살았던 때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대략 3만명으로 최대 인구를 기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고작 1만명 정도가 모여 살 뿐이고, 그나마도 항구마을에 밀집되어 있다. 어딜 가든 한 무리의 관광객이 빠져나간 곳에는 도통 인적을 찾기가 힘들다. 그 때문일까, 울릉도 해변은 텅 빈 공간을 거북이바위, 새바위, 코끼리바위, 악어터널 등 바다 위 오롯이 솟아오른 바위들이 채우고 있다. 바다 깊숙한 곳부터 뿌리를 박은 조면암, 안산암, 직지암. 이들은 마치 오랜 세월 울릉도를 지켜 온 수호신처럼 한결같은 모습으로 이방인들을 받아들인다. 얼마 전, <론리 플래닛>은 울릉도를 ‘2011년 지구에서 가장 흥미로운 비밀의 섬 10곳’ 중 하나로 선정했다. 수심을 헤아릴 수 없는 검푸른 바다, 깎아지른 해안절벽, 그 꼭대기에 홀로 자라난 향나무를 바라보며 느끼는 경외감은 말이 필요 없는 확실한 증거이다. 그러나 그 어떤 것보다도 해안절벽을 따라 걷는 한 걸음, 원시림을 헤치고 가는 한 걸음 한 걸음에서 울릉도의 신묘한 아름다움이 온몸을 따라 아로새겨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리분지를 찾게 되나 보다. 성인봉 북쪽의 칼데라화구가 함몰하여 형성된 화산분화구. 특이한 점이라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분화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화산재로 덮여 있어 보수력이 약하기 때문에 밭농사를 할 뿐, 논농사는 불가능하다. 그런데다가 농작물의 피해가 크고 겨울에는 3m 이상의 눈이 내릴 뿐만 아니라, 흘러드는 물이 외부로 나갈 출구가 없어 집중적인 호우에는 일시적으로 호수로 변한다. 사람이 살기엔 너무나 척박한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16가구의 주민들이 여전히 이곳에 살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이러한 자연조건 속에서 빙설에 대비한 ‘너와지붕(기와 대신 얇은 나무 조각이나 돌조각을 얹은 지붕)’과 ‘우데기(옥수숫대 등으로 집 바깥을 둘러친 외벽)’라는 합리적인 가옥 구조를 만들어내고, 주로 더덕·취·삼나물 등의 산채나물과 약간의 옥수수와 감자를 재배하며 살아 왔다. 근래에는 나리분지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어나 민박이나 식당 등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관광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민속촌이 아니고서는, 이제 더 이상 울릉도 고유의 가옥인 우데기집을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울릉도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4.4km의 도로가 이어지면 자동차로만 온전히 울릉도를 일주할 수 있게 된다. 육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만에 섬에 도착하는 날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울릉도는 가본 길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많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며, 자연을 뒤엎고 세워 올린 건물보다 항구의 노점상이 더 친근한 동네다. 울릉도를 떠나는 날, 멀미약 하나를 단숨에 들이켜고 배를 기다리던 중 울릉도에 이주한 이장희씨와 마주쳤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한잔의 추억’ 등을 부르며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라기엔 무척이나 소박한 모습이었다. 자신의 보금자리에 ‘울릉 천국’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울릉도에 흠뻑 매료된 그는 꾸미지 않은 울릉도 풍경처럼 자연스레 그 속에 녹아있었다. “나 죽으면 울릉도로 보내 주오. 나 죽으면 울릉도에 묻어 주오.” 그가 최근 발표한 ‘울릉도는 나의 천국’ 노래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돈다. 신선이 사는 섬, 독도 생각하면 먹먹해지는 몇 가지가 있다. 독도를 떠올리면 한번쯤은 그런 먹먹함에 빠지게 된다. 울릉도에서 87.4km 떨어진 독도. 대한민국 최동단에 홀로 우뚝 선 이 섬은 사람이 살지 못하는 척박한 땅이다. 그래도 우리는 독도를 찾아간다. 볼거리라곤 양 옆으로 솟아난 두 개의 섬, 동도와 서도 그리고 주변에 흩어져 있는 89개의 바위섬밖에 없지만 독도에 발을 디딘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떤 여행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감정의 동요를 느낀다. 그것은 어쩌면 지켜내야 할 것을 지키지 못한 미안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돌섬. 울릉도 개척 당시 입도한 주민들이 사방이 온통 돌뿐인 이 섬을 ‘돌섬’이라 부르기 시작하였고 훗날 ‘독섬’을 거쳐 ‘독도’라 불리게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독도는 인간이 사는 섬이 아니라 신선이 사는 섬이다. 독도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을 드러내는 한편, 역설적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지 못한 섬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신선의 섬에 갈 시간이다. 울릉도 저동항에서 출발한 배가 독도에 도착하는 데 걸리는 예정시간은 1시간 30분. 배가 작아 멀미가 수반될 것이라는 안내방송이 객실에 울리자, 사람들은 재빨리 위생봉투를 챙기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사실 독도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10분, 길어도 30분뿐이다. 게다가 기상의 영향으로 일 년 동안 독도에 접안할 수 있는 날은 채 60일이 되지 않는다. 독도에 근접해서도 차마 밟아 보지 못하고 주위만 맴돌다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행의 반나절을 온전히 독도 방문에 바친다. 독도에 휘날리는 태극기를 그려보고, 독도 주민 김성도, 김신열 부부와 엄태명, 하호규 독도 등대원을 만나는 상상을 한다. 척박한 땅 독도에는 ‘우리’라는 동질감이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나무 조각 위에 돌조각을 올려 놓은 전통 가옥구조인 너와지붕 2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부드럽고 통통한 울릉도 오징어가 잡히는 시기 3 원없이 보게 되는 바다와 바위는 울릉도를 떠나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4 밤낮으로 독도를 지키는 독도수비대의 또 다른 의무는 끝없는 촬영 요청에 응하는 것일지도 5 독도의 동도. 서도보다는 작지만 비교적 꼭대기가 평탄하여 등대와 경비초소 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울릉도와 독도를 한번에! ‘독도 지킴이 여행’ 기차, 버스, 배를 꼬박 두 번 반복해서 타야 하는 울릉도행 여정. 번거로움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다면 표 예매는 물론이고 2박 3일 일정까지 알차게 잡아주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울릉도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한편, 향토음식인 홍합밥, 씨껍데기술, 산채전 등을 맛볼 수 있다. 둘째 날 우리 땅 독도를 방문하고, ‘명예독도주민증’을 받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여행상품 ‘아름다운 우리 땅 독도지킴이 수호대 여행’ 출발 방침상 독도 방문은 올 11월 중순까지만 진행되며 내년 2월에 재개된다. 요금 2박3일 29만9,000원(왕복 교통 및 여객선비, 숙식료, 관광비, 여행자 보험 포함) 문의 코레일 관광개발 www.korailtravel.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숲에 이슬을 더해 주는 바다. 가로림만(加露林灣)입니다. 예쁜 이름에 견줘 물살은 여간 사납지 않지요. 가로림만이 품은 여러 절경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충남 서산의 황금산입니다. 해거름이면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산. 비록, 체구는 작아도 바다와 만나는 해안가 절벽에 ‘국립공원급’ 절경을 숨겨두고 있지요. 황금산의 자랑은 저물녘 풍경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바닷가 절벽들이 그려내는 적벽도(赤壁圖)입니다. 저물녘 햇살에 바닷가 절벽들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이제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산정에서 저무는 해 망연히 바라보고 싶다면 황금산이 좋은 대안이 되겠습니다. 황홀한 해넘이 풍경과 만난 뒤 되짚어 올 때를 대비해 손전등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봉우리가 아닌 바다를 보러 가는 산 지도를 펴고 가로림만에 초점을 맞추면 꼭 게가 두 집게발을 치켜세운 듯한 지형이 보인다. 아래쪽 집게발은 벌천포(벌말), 위쪽 집게발은 황금산(156m)이 있는 대산읍 독곶리다. 독곶리는 서산의 오지로 꼽히는 대산에서도 끝자락에 있다. 예전엔 독곶리에서 하루 두어 번 오가는 완행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려 서산으로 나가는 것보다 인근 삼길포에서 뱃길로 인천을 오가는 게 더 편했을 정도였다. ‘독곶’이라는 이름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곶’(串·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란 의미다. 황금산은 그 외진 땅이 숨겨둔 풍경의 보고다. 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높이는 낮지만, 풍채만큼은 제법 당당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황금산 들머리는 이름조차 없는 작은 포구다. 바다 인근의 산을 오르는 길이니 갯마을을 지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일반적인 산행 기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황금산을 기준으로 한쪽은 풍요로운 가로림만 갯벌, 다른 쪽은 수많은 굴뚝이 서 있는 공업단지다. 포구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다. 바닷가 사람들 표현대로 ‘장판’을 깐 듯하다. 그러나 포구에서 조금만 나가도 물살은 곧 사나워진다. 물살이 갯바위를 찢으며 울부짖는 듯한, 딱 그 느낌이다. 산행은 대부분 황금산 주차장에서 오른쪽 산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따른다. 하지만 등산로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 먼저 황금산사(黃山祠)가 있는 정상을 오르는 편이 낫다. 원래 등산 코스를 따르면 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황금산은 능선으로 이어진 3개의 작은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다소 된비알이지만, 숨이 턱에 찰 정도는 아니다. 황금산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바로 뒤편엔 정상을 알리는 돌탑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황금산의 진수는 정상의 봉우리들이 아니라 바닷가 절경들에 있다. 일반적인 산행과 다른 점이다. 황금산을 바다를 보는 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상에서 자박자박 내려오면 길은 네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은 원래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길, 아래쪽은 금굴과 코끼리 바위 등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 곧장 가면 헬기장이다. 여기서 해안절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이 있던 산’이 ‘금쪽 같은 풍경의 산’이 되다 푹신푹신한 흙길. 게다가 힘들 것 없는 내리막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대략 유행가 두어 곡쯤 부를 시간, 두 번째 교차로와 만난다. 왼쪽은 코끼리바위, 가운데는 ‘등산로 끝’, 오른쪽은 금굴(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니 둘러보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황금산은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느끼는 게 순서다. 먼저 절벽과 똑같은 높이에서 전경을 휘휘 굽어본 뒤, 아래로 내려가 바닷가 트레킹을 즐기는 게 좋다는 얘기다. 산행의 대미인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곳은 코끼리바위가 있는 곳이다. 예서 금굴이 있는 해안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금굴은 절벽 아래 뻥 뚫린 해식동굴을 말한다. 금굴해변은 날물 때 가야 제맛이다. 김영숙(51)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물 빠진 자리에 드러난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이 산수화 같은 절경을 펼쳐낸다.”고 전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금굴 너머 끝골까지 해안트레킹을 즐겨도 좋겠다. 금굴해변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코끼리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황금산은 이곳부터 숨겨둔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기골이 장대한 절벽들이 해안을 굳건하게 감싸고, 이른바 ‘말 근육’ 같은 절벽 사이사이로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낮은 산이란 선입견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난다. 바다는 또 어떤가. 물색은 푸르고, 갯내는 없다.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차르르’ 소리를 내는데,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코끼리 바위 넘어가면 푸른바다·기암·노송이 삼중주 밧줄 타고 코끼리바위를 넘어가면 풍경은 보다 다이내믹해진다. 맑고 푸른 바다와 기암, 노송이 삼중주를 펼쳐낸다. 윽박지르는 듯 서 있는 암벽은 누런 빛깔과 옅은 자줏빛이 뒤섞였다. 해안가 돌들도 마찬가지.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다.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 곧추세우는 풍경은 해거름에야 드러난다. 저물녘, 햇살이 암벽에 부딪치며 황금빛으로 산란한다. 해안 절벽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껏 자신의 세포를 부풀리는 게다. 짜릿한 풍경이다. 이를 보는 탐승객의 세포도 소름끼치듯 반응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 황금산(黃金山)의 실체다. 예부터 금(金)이 있는 산이라 해서 황금산이라 불렸다던데, 금이 사라진 요즘엔 금쪽 같은 풍경을 캐는 산이란 뜻이겠다. ●‘용유대’(龍遊臺)엔 용의 알(?)이 있다 서산 지역 명소 가운데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용유대(龍遊臺)다.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단구자 김적이 자주 뱃놀이를 즐기던 곳. 음암면 유계리 정순왕후 생가에서 용유천변 길을 따라 몇 백m 올라가면 단구대(丹丘臺)다. 붉은 언덕이란 뜻의 너럭바위다. 용유대는 여기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갈대 무성한 용유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둥그런 바위 7~8개가 몰려 있는 희한한 풍경과 만난다. 말 그대로 용이 놀았다는 곳으로, 둥근 바위는 용의 알이란다. 어찌나 심한 풍화를 겪었던지 모난 곳 하나 없이 달걀처럼 둥글둥글하다. ‘알’들을 감싸고 있는 건 노송(松)들이다. 고아한 풍취의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데, 제법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용의 해인 새해에 여행을 계획한다면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송악 나들목→38번 국도 대산·석문 방면→지하차도(북부산업로)→가곡 교차로→대산·성구미 방면 우회전→성구미 삼거리→대산·석문방조제 방면 좌회전→대호방조제 방면 우회전→초락2로 방면 우회전→서산·대산 방면 좌회전→화곡교차로 우회전(29번 국도)→황금산 순으로 간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대산 읍내를 거쳐 독곶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맛집 해미읍성 맞은편 읍성뚝배기(688-2101)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소머리곰탕(8000원)과 사골설렁탕(700 0원)이 맛있다. 서산시청 뒤 진국집(664-4994)은 토속음식 ‘게국지’로 소문났다. 1인분 6000원. 향토(668-0040)에서는 서산의 전통음식인 우럭젓국과 꽃게장, 게국지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주변 볼거리 천수만 버드랜드에서 다양한 겨울 철새와 만날 수 있다. 간월암도 지척이다. 삼길포에선 배 위에서 갓 잡아 파는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포구 뒤 삼길산에 오르면 다도해 같은 서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보릿고개 시절의 동화같은 사건들

    사라진 것의 소중함은 되돌려질 수 없는 상실로 인해서 더 간절하다. 다시 만날 수 없고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사람과 그 사람들에 얽힌 이야기라면 간절함의 깊이는 더하게 마련이다. 산업화 이전 대다수 민초들이 겪고 넘어야 했던 이른바 보릿고개의 추억은 어찌 보면 잊어야 더 좋을 아픈 경험일 터. 그런데 많은 이들이 어려운 그 시절의 보릿고개를 자주 입에 올리는 이유는 뭘까. ‘갯마을 하진이’(박형진 지음, 보리 펴냄)는 그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으며 부대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정겹게 반추한 책이다. 고향 전북 부안군 변산 모항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50대 중반 농사꾼 시인의 유년담. 들로 산으로, 바다로 어울려 쏘다니며 울고 웃던 고향 친구들과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들을 축으로 어렵던 그때 그 시절을 수채화처럼 풀어낸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춰 구수한 호남 사투리로 끌어간, 동화 같은 사건들. 배 속의 회충 탓에 반복하던 배앓이, 명절에만 먹어보는 흰 쌀밥의 희열, 어른들의 눈을 피해 해대던 밭 서리…. 동네를 휘젓고 다니던 악동들의 천진한 놀이며 장난에 얹힌 추억들은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40대를 넘긴 세대라면 너나 없이 겪었을 배고팠던 시절의 추억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그 공유의 시간들이 간절해진다. 책은 단순한 추억 건져내기에 머물지 않은 채 묘한 페이소스를 전한다. 무난하게 읽히는 낭만과 추억의 이야기들엔 시인 특유의 앙금들이 또렷하다. 찢어지게 가난한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등진 이웃들, 벌어먹고 살 거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거나 가출한 친구들…. 편하게만 읽어도 좋을 어린시절의 추억 여행에 담긴 상실과 그리움의 메시지는 어른, 아이의 관심을 모두 잡아끄는 독특한 울림으로 살아난다. 고향을 떠나버린 친구들을 향해 저자인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집을 떠나 돈 벌어 오겠다는 동무들은 이제껏 단 한명도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는 날이면 하진이는 갯벌로 나가 바다를 바라봅니다. 그 애들도 하진이를 그리워할까요?” 95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암자서 맺은 스님과 처녀 러브 스토리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어느 미남 승려와 폐결핵 환자 아가씨와의 청순한 러브 스토리. 원효(元曉) 대선사가 요석공주와 동침하여 파계한 끝에 설총(薛聰)을 낳았다는 천년 전의 로맨스처럼 지현(知玄)스님의 로맨스는 물씬한 감동마저 준다. 지금은 환속하여 부산(釜山)에서 알뜰하게 살고 있다는 그들의 파계 장소 전남(全南) 여천(麗川)군 돌산도(突山島) 향일암(向日庵)에 얽힌 얘기-.  전남(全南) 여수(麗水)시에서 배를 타고 1시간쯤 가면 돌산(突山)섬이 나온다. 여천(麗川)군 돌산(突山)면 율촌(栗村)리에서 1km쯤 북쪽에 금오산(金鰲山)이 있고 산에는 흔들바위란 게 있다. 집채만큼 큰 바윗덩이가 사람이 밀면 흔들거린다는 기묘한 바위다. 이 흔들바위 밑에 까치집처럼 앙증맞은 향일암(向日庵)이란 암자가 있다. 하지만 이 암자의 유래는 거창하다. 신라 선덕(善德)여왕 13년(사기 639년)에 원효(元曉)대사가 창건했고 1592년 임진왜란 때는 이 곳을 본거지로 승군(僧軍)이 활약했다는 곳. 그 건 그렇고 이 일대 경치가 장관이다. 울창한 낙락장송의 솔바람 소리, 온갖 기묘한 모양의 바위, 그리고 남해바다의 장쾌한 파도가 기막힌 절경이다.  1957년이면 17년전. 키가 헌칠하고 미목수려한 스님 한분이 순천(順天) 송광사(松廣寺)로부터 향일암(向日庵)으로 왔다. 당시 나이 27살, 법명은 지현(知玄), 속명은 박영식(가명), 호는 호월(湖月).  경남 남해(南海)가 고향인 지현(知玄)스님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살에 출가, 전국 유명 사찰을 돌아다니며 10년을 목표로 수도하다가 마지막 3년을 채우기 위해 향일암(向日庵)을 찾은 것이다. 지현(知玄)스님은 절 주변을 알뜰하게 손질한 뒤 백팔염주에 사바세계 번뇌를 실어 깊은 사념의 경지를 거닐었다.  그동안 폐사처럼 버려져 있던 향일암(向日庵)에는 이로부터 여신도들이 몰려들었다. 낭랑한 목소리에 곡식 위의 제비같은 탈속(脫俗)의 지현(知玄)스님, 게다가 인물 좋고 경치마저 절경이어서 그는 인기스님이 된 것이다.  세월은 흘러 59년 봄이 되었다. 향일암(向日庵)에서 1km 떨어진 해변가 율촌(栗村)마을에 양장 차림의 미인 아가씨가 찾아들었다. 광주(光州)에 산다는 박애희(朴愛姬)양(23·가명). 폐결핵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요양차 이모가 사는 율촌(栗村)에 왔다는 그녀는 발그레한 볼의 홍보가 요정처럼 기막히게 예쁜 미인.  아열대성 식물인 동백·산죽(山竹)·비화(飛花)가 온 섬을 뒤덮고 바위 틈에 도사린 석란(石蘭)의 향기는 십리 안팎을 뒤덮어 6순 환갑이라 해도 마음 설렐 판이었다.  박(朴)양의 병은 이런 절묘한 풍경의 탓(때문)이었는지 눈에 띄게 회복되었고, 차츰 힘이 생겨 산책 코스를 넓혀갔다.  그때 그녀의 눈에 띈 남성이 바로 지현(知玄)스님. 부처님 앞에 정좌하여 청아한 목소리로 독경하는 근엄한 모습을 취한듯 응시했다.  이로부터 그녀는 2개월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일암(向日庵)을 찾았다. 그녀의 시선은 날이 갈수록 뜨거워졌고 지현(知玄)스님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잠이 들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스님은 장승. 눈길 한번 주는 법이 없었다.  가을이 되었다. 사무친 가슴 속의 사연이 맺히고 맺혀 이번엔 폐결핵이 아닌 상사병에 몸부림하다가 농약을 마셔 버렸다. 위급한 그녀를 두고 이모 되는 여인은 조카의 애절한 소원을 풀어주기 위해 지현(知玄)스님에게 달려가『그 애를 구해 달라』고 애원했다.  스님은 그 요청을 거부하고『나의 손길보다는 당장 해독시키게 녹두물이나 먹이시오』했다. 이모는 되돌아와 녹두를 갈아 먹였다. 의사 없는 갯마을에서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그녀는 신통하게도 살아났다.  59년이 저물고 새해 음력 1월14일 새벽 4시. 지현(知玄)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독경하며 새벽의 경내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뒷산에서 비통한 여인의 통곡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스님은 뒷산으로 달려갔다. 박(朴)양이 흔들바위에 맨발로 서서 바다를 향해 투신하려는 찰나였다.  혼비백산한 지현(知玄)스님. 자기로 인해 원한을 품고 죽을 여자를 생각하니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는『아가씨 소원은 뭐요? 다 들어 주겠으니 제발 뛰어내리지만 말라』고 애원했다.  그녀의 소원이란 불을 보듯이 뻔한 것.『스님과 함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망설이고 더듬거릴 나위가 없었다.『알겠으니 제발 그곳에서 내려와 달라』고 간청했다. 그 소리를 듣자 박(朴)양은 바위 위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스님은 그녀를 구출해 냈다. 암자에 누이자 비로소 정신을 차린 그녀는 스님의 품안에 안겨 몸부림치며 울었다. 난생 처음으로 싱싱한 여인의 체취와 풍만한 마찰감에 스님도 얼이 빠져 버렸다.  29년동안 막혀 있던 정열이 용솟음 치기 시작하면서 마침내 10년 수도를 1년도 못남기고 거센 폭포수 속의 물거품이 되었다. 이날 새벽부터 지현(知玄)스님의 낭랑한 독경소리는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로부터 6년의 세월이 지난 65년 여름. 대구(大邱) D사에서 참회의 수도에 전념하던 지현(知玄)스님은 어떤 모녀의 방문을 받았다.  『이 애가 스님의 딸입니다』면서 모녀는 6살 귀여운 아기를 내보였다. 스님은 가가대소, 『그렇습니다. 내 아이입니다』면서 즉시 승복을 벗고 딸을 한가슴 가득 안았다. 그는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 뒤로 스님 부부는 딸 하나에 아들 하나를 더 얻어 1남2녀를 두었다.  지난 71년 5월. 향일암(向日庵)을 중창할때 속인 지현(知玄)부부는 찬조금 5만원을 보냈다.  그들은 현재 부산 영도구 봉래동에서 미곡상을 경영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살고 있으나 찾아간 기자에게 사진찍기를 거부-.  그러나 한 여인의 억센 사랑의 집념으로 10년 수도승의 마음을 움직인「흔들바위」는 오늘도 의연하다. <麗水=金德鉉 기자> [선데이서울 73년 7월15일 제6권 28호 통권 제248호] ●이 기사는 ‘공전의 히트’를 친 연예주간지 ‘선데이서울’에 38년전 실렸던 기사 내용입니다. 당시 사회상을 지금과 비교하면서 보시면 더욱 재미있습니다.    
  • 봄물 오른 전남 고흥반도

    봄물 오른 전남 고흥반도

    봄물이 올랐습니다. 바람결엔 촉촉한 습기가 묻어납니다. 계절의 순환은 무엇도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확인합니다. 남도 끝자락, 나로도를 휘휘 돌아온 봄바람이 내륙으로 내달립니다. 봄바람이 스친 자리마다 꽃망울이 맺혀지고, 곰실거리는 봄내음에 섬 처녀의 가슴은 요동칩니다. 전남 고흥반도의 초봄 풍경입니다. 봄의 전령 매화는 아직 일러 피지 않았지만 고흥반도 앞바다엔 봄빛이 완연했습니다. ● ‘섬섬옥섬’… 다도해 풍경의 진수 고흥반도는 멀다. 수도권을 기준으로 보자면 그렇다. ‘가도가도 천리’라는 말도 그래서 나왔을 게다. 이제 많이 달라졌다.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가 열렸기 때문. 구불구불 국도를 따라 남원, 구례 등을 줄줄이 거쳐야 했던 예전과 달리 빠르고 곧게 고흥반도까지 내달릴 수 있다. 고흥반도는 득량만과 여자만을 양 옆에 두고 조롱박처럼 매달려 있다. 남북 간 길이는 약 95㎞. 거금도(居島), 내·외 나로도(老島) 등 주변 160개의 섬들이 어우러지며 고흥군을 이룬다. 고흥반도의 아름다움을 몇 마디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올곧은 기상의 나무와 숲이 있고, 먼 우주를 응시하는 최첨단의 우주센터도 있다. 섬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갯마을 풍경과 마주하고 싶다면 반도의 왼쪽을 따라 돌아보시라. 단언컨대 다도해 풍경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들물때 보다는 날물때 찾아야 한다. 볼품없이 바다위에 떠 있던 섬들이 뭍과 연결되며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고흥반도 초입에서 월정리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월정해안방풍림으로 유명한 곳. 들물에서 날물로 바뀌는 시간이면 방품림 아래 보관해 둔 뻘배 주변으로 아낙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물이 빠지고 기름진 갯벌이 드러나면 아낙들은 뻘배를 몰고 바다로 향한다. 꼬막을 잡으러 가는 길이다. 그네들이 이동하는 경로마다 주름살처럼 골이 깊게 패여 있다. 고단한 삶의 흔적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더없이 빼어난 풍경이 만들어 지고 있으니, 얼마나 역설적인가. 신망방조제와 오도일·이방조제를 줄줄이 지나면 백일리다. 20m 남짓한 백일연륙교를 통해 고흥반도와 연결돼 있다. 그런데 이 섬, 작지만 의외로 너른 풍경을 갖고 있다.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갯벌 위에서 어민들이 갯것들을 수확하느라 여념이 없다. 주변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은 풍경의 덤. 우미산 중턱의 도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가 눈부시다. 티 없이 맑은 햇살이 수면에 부딪혀 물비늘을 만들고 있다. 절반은 하늘, 또 절반은 은빛 갯벌이다. 우미산 아래는 용암마을이다. 고흥 8경 중 6경인 영남 용바위를 품었다. 하지만 정작 명소의 지위를 안겨주고 싶은 건 마을 앞 풍경이다. ‘안넢’이라 불리는 작은 섬이 어여쁜 자태를 뽐내고, 그 뒤로 매물섬이 작은 주상절리대를 펼쳐 보이고 있다. 멀리는 여수시 낭도 등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절경이다.  오가는 길에 만나는 팔영산의 웅장한 자태와 해창만수로의 아련한 정취도 빼놓을 수 없다. 갈대 사이 몸을 숨겼던 물새들이 비상하는 순간, 그대로 영화의 한 장면이 된다. 특히 해가 천등산 너머로 자취를 감출 때면 사위가 황금빛으로 물들며 장관을 펼쳐낸다. ●하늘 향해 솟아오른 나로도  고흥반도 끝자락의 나로도는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로 이루어져 있다. 두 개의 연륙교로 이어져 이제는 섬 아닌 섬이 됐다. 섬 이름이 독특하다. 신라 장보고가 해상의 패권을 쥐고 있던 시절, 외나로도 앞 바다에는 제주로 향하는 중국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했다. 당시 중국 상인들이 외나로도 ‘서답바위’(일명 부채바위)를 보고 마치 오래된 비단이 바람에 날리는 듯 아름답다며 비단 ‘라’(羅)와 늙을 ‘로’(老)를 써 나로도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나로도는 우주를 향한 전진기지답게 우주 관련 교육·체험시설이 많다. 내나로도 덕흥리엔 국립고흥청소년 우주체험센터, 외나로도 끝자락 나로우주센터에는 우주과학관이 조성돼 있다. 도양읍 용정리엔 우주천문과학관이 들어선다. 800㎜ 대형 천체망원경과 천체 투영실, 전시관 등으로 구성됐다. 조성공사는 대부분 마무리됐고 개장일만 기다리고 있다.  고흥반도를 말할 때 나무를 빼놓을 수는 없다. 봉래면 나로우주센터 초입에서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봉래산 삼나무숲이다. 일제강점기 때 시험림으로 조성됐다. 울울창창한 삼나무들이 도도한 수직세상을 펼쳐내고 있다. 피톤치드 뿜어나오는 숲길에 들면 어느 곳보다 깊은 숨을 쉴 수 있다.  동토(凍土)를 뚫고 핀 노란 복수초와 만나는 것도 봉래산이 주는 즐거움 중 하나. 삼나무숲에서 헬기장에 이르는 구간 곳곳에 무리지어 피어 있다. 삼나무 숲에 별똥별이 쏟아진 듯하다. 내나로도의 나로도학생수련원을 둘러싸고 있는 상록수림도 볼 만하다. 바로 옆 나로우주해수욕장에는 곰솔들이 제법 장한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사슴을 닮은 섬 소록도  소록(小鹿)이라 했다. 섬 생김새가 작은 사슴을 닮았다는 뜻이다. 고흥 8경 중 2경으로 꼽히는 곳. 하지만 편히 섬 풍경을 즐길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어디건 한센병 환자들의 한숨이 배어있지 않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소록도는 중앙공원 등 극히 일부 지역만 외부인들에게 개방되고 있다. 소록대교가 고흥반도 녹동항과 소록도를 이어주면서 배를 타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게 됐다. 섬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해안가와 나란한 소나무 길이다. ‘수탄장’(愁嘆場)이라 불리는 곳. 예전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한 달에 한 번, 그나마 손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그저 눈길로만 상봉하던 장소다.  소록도의 핵심은 국립소록도병원 뒤편의 중앙공원이다. 2만㎡(6000평) 규모. 반송, 백목련, 호랑가시나무, 금목서, 아기 동백꽃, 당종려나무 등이 곳곳에 심어졌다. 기대를 뛰어넘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1930년대 중반 대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과 대만에서 나무를, 완도 등지에서 기암괴석을 들여왔다. 당시 돌과 나무를 이고지며 나른 이들은 한센병 환자들이었다. 그들의 노역으로 정원이 만들어진 셈이다. 빼어난 조형미의 공원을 보면서도 아름답다고 해야 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모순으로 머리가 뒤엉킨다.  중앙공원 초입의 소록도갱생원 검시실(등록문화재 제66호)과 감금실(등록문화재 제67호)은 일제 강점기에 인권 유린이 자행되었던 곳. 환자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와 이동권을 박탈당했고, 걸핏하면 감금과 감식, 체벌을 당했다. 검시실에는 지금도 수술대와 세척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글·사진 고흥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국도 익산분기점에서 익산~포항 간 고속도로를 탄 뒤 전주나들목을 지나 새로 난 완주~순천 간 고속도로로 바꿔 탄다. 순천나들목으로 나와 순천시내를 지난 뒤 2번국도로 바꿔 타고 벌교까지 간다. 벌교에서 15번 국도를 타고 끝까지 가면 고흥반도다. ▲주변 관광지: 팔영산이 제1경이다. 여덟 봉우리가 우뚝 솟은 모습이 장하다. 등산이 어렵다면 능가사 쪽에서 보는 것도 좋다. 능가사 옆엔 국내 최대의 편백나무숲이 조성돼 있다. 소록도 아래 거금도도 예쁘다. 녹동항에서 오전 6시20분부터 오후 8시10분까지 10분~30분 간격으로 철부선이 오간다. 어른 1200원. 승용차 9000원(운전자 포함 2명 무료). 녹동매표소 843-9184. ▲맛집: 도화면 중앙식당은 한정식으로 이름났다. 굴을 껍질째 삶은 피굴 등 토속음식이 곁들여 진다. 832-7757. 진미횟집은 장어통탕이 맛있는 집. 녹동항 인근에 있다. 842-3111. ▲잘 곳:나로2대교 초입의 하얀노을모텔펜션이 조용하고 깨끗하다. 주변 풍경도 넉넉한 편. 모텔 내 레스토랑에서 돈가스와 백반 등 간단한 음식도 판다. 4만원. 833-8311~3.  
  • [홀몸노인 말벗서비스] “추억의 영화 보러 오세 요”

    [홀몸노인 말벗서비스] “추억의 영화 보러 오세 요”

    “한국 고전 영화를 보며 옛 추억에 잠겨 보세요.” 성동구는 말벗이 필요한 지역 노인들을 위해 15일부터 성동구립도서관 영화감상실에서 매주 두 차례(화·목요일) 추억의 한국 고전영화를 상영한다고 13일 밝혔다. 이 자리는 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를 보며 그때를 추억하고, 관람 뒤 해당 영화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성동구도시관리공단 산하 성동구립도서관 지하 1층에 위치한 60석 규모의 영화감상실에서 60세 이상 노인이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노인들은 영화를 기다리는 동안 도서관에 있는 책과 신문, 잡지를 읽거나 컴퓨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첫 번째로 막을 올리는 영화는 김수용 감독, 신영균·고은아 주연의 ‘갯마을’로 자연풍광을 배경으로 어촌마을 사람들의 애환을 그린 리얼리즘 계열의 수작이다. 이어 1962년 베를린영화제 특별 은곰상 수상에 빛나는 강대진 감독의 ‘마부’와 오영진 작가의 희곡을 영화화한 이용민 감독의 ‘맹진사댁 경사’, 1950년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한형모 감독의 ‘자유부인’(포스터) 등이 상영된다. 나병준 도서관장은 “영화감상실은 사람들로 북적이지 않고 여유로워 말벗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제격”이라며 “1950~70년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추억의 원로 스타들을 만나 볼 수 있어 지역 어르신들이 편안히 지난날의 추억을 되살리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는 홈페이지(www.sdlib.or.kr) 또는 전화 (02)2204-6433.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섬 돌고도는 8.5㎞ 길이 ‘비렁길’ 여수 금오도

    섬 돌고도는 8.5㎞ 길이 ‘비렁길’ 여수 금오도

    나그네가 발품 팔아 갈 수 있는 뭍의 막다른 곳에 항구가 있고, 그곳에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섬은 여행의 끝이자 시작인 거지요. 아, 그 섬의 바다는 어찌 그리 예쁜 빛깔을 갖게 됐을까요. ‘에메랄드빛’ ‘옥빛’ 등의 흔한 표현을 갖다 붙이기엔 물빛의 스펙트럼이 너무 다양하고 아름다웠습니다. 바다와 몸을 섞은 섬 자락마다 조그만 포구가 들어찼는데, 그 자태 또한 여간 서정적이지 않았습니다. 전남 여수 금오도입니다. 덜 알려진 탓에 이름조차 생소한 절경들이 섬 곳곳에 펼쳐져 있지요. 금오도에 최근 ‘비렁길’이 조성됐습니다. ‘비렁’은 벼랑의 사투리이니, 곧 ‘비렁’을 따라 섬을 에둘러 돌아가는 트레킹 코스를 일컫습니다. 군데군데 높낮이는 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먼 바다와 호흡을 함께하며 걷는다는 것, 참 새로운 경험입니다. ●작지만 풍경만큼은 거대한 금오도 뭍과 섬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곳곳에 세워지는 연륙교와 날로 빨라지는 KTX 덕이다. 울산과 경주가 수도권에서 2시간 안팎으로 당겨졌고, 거가대교는 부산과 거제를 한 몸으로 묶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한 축인 전남 여수도 마찬가지. 진행 중인 전라선 복선 전철화 공사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를 앞둔 새해 10월쯤 끝나고, KTX가 본격 투입되면 3시간 30분 만에 닿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예전 같으면 ‘1박~2일!’도 부담스러운 여행지였지만, 당일여행을 시도할 만큼 가까워지는 셈이다. 여수 앞바다에는 317개의 섬이 떠 있다. 말그대로 다도해(多島海)다. 그 중 뭍사람들의 발걸음이 잦은 섬이 금오도(鰲島)다. 금빛 자라를 닮았다는 섬. 여수에서 불과 25㎞ 정도 떨어져 있으면서도 절해고도의 풍모를 고스란히 지녔다. 금오도는 거대하다. 물리적 크기는 작지만, 풍경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여수 끝자락 돌산도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는 배로 30분 안쪽에 닿는다. 여수항 여객터미널에서 가는 배편도 있으나, 하루 두편(동절기)에 불과한 데다, 배시간도 신기항에 견줘 두세배 더 걸린다. 무엇보다 돌산도 특유의 넉넉한 풍경과 마주하지 못한다는 게 여행자로서는 ‘명백한’ 손해다. 금도오에서는 갯마을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지 않는다. 어판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 덕에 외진 섬답지 않게 정갈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천항에 내리면 우선 하얀 십자가의 교회 건물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국내 대부분의 섬에서 용왕각 등 무속신앙의 흔적을 먼저 만나는 것에 비해 이례적이다. 이처럼 ‘교회가 있는 풍경’은 섬 어디를 가건 마주한다. 한 주민의 과장 섞인 표현처럼 “주민 99%가 기독교인”이기 때문이다. 우학리교회는 무려 104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절경과 스릴이 함께 하는 비렁길 조선시대 금오도는 봉산(封山), 즉 일반인 출입금지 지역이었다. 궁궐에서 사용하는 벌목장과 사슴목장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섬이 개방된 것은 1885년. 비렁길 기획 당시 이름이 ‘봉산 임금님 둘레길’이었던 것도 그런 까닭이다. 비렁길은 함구미에서 직포까지 총 8.5㎞쯤 된다. 소요시간은 4시간 정도. 주민들이 유자밭을 일구고, 옆 동네로 마실갈 때 주로 이용했던 길이다. 원래 금오도는 섬 산행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다도해와 함께 매봉산(대부산)을 오르는 맛이 각별하다. 하지만 노약자들이 오르기엔 다소 험해, 완만한 산사면을 따라 걸으며 다도해의 풍광을 즐기라는 뜻에서 비렁길이 조성됐다. 길은 거리와 난이도에 따라 세 코스로 나뉜다. 코스마다 마을로 이어지는 하산길이 있어 시간이 없거나 체력이 달릴 경우 곧바로 내려올 수 있다. 비렁길은 금오도의 끝자락인 함구미(含九味)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이름이 독특하다. 한자 대로 풀자면, 아홉개의 맛을 지니고 있는 마을이란 뜻일 터. 그런데 이름의 연원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 멸치나 군벗, 방풍나물 등 아홉 가지 마을 특산품을 일컫는 표현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해안절벽이 9개라거나, 금광 9개가 있었다는 설도 있다. 마을에 들면 상큼한 유자 향기가 이방인을 맞는다. 다소곳한 자태로 매달려 있는 노란 유자가 짙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며 제법 장한 풍경을 펼쳐낸다. 마을 고샅길을 5분 정도 오르면 곧바로 바다를 낀 길이 시작된다. 첫 번째 만나는 풍경은 ‘미역바위’. 해안절벽의 생김새가 마치 미역이 늘어진 것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절벽의 높이가 수십 미터는 족히 된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길이 나 있는 모양새가 독특하고 웅장하다. 미역바위에서 ‘V’자 형 홈통을 지나면 ‘스달빛벼랑’이다. ‘달빛’ 앞에 ‘스’자를 붙인 까닭이 궁금했지만, 이 역시 아는 사람은 없다. 스달빛벼랑 위쪽은 절터. 옛 문헌에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 지눌이 금오도의 송광사, 순천 송광사를 오가다 돌산도 은적암에서 휴식을 취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곳을 송광사터라 믿는다. 길은 이후로도 높이 50m 내외의 해안절벽을 따라 초포를 지나 직포까지 이어진다. 아슬아슬하기로는 어느 곳에 견줘도 뒤지지 않을 정도. 길 위에서 맞는 풍경이 여간 장쾌하지 않다. 바다를 마당 삼은 너른 개활지 ‘굴등’도 있고, 전설이 깃든 ‘신선대’와 ‘용머리바위’도 나온다. 이런 장쾌한 풍경 덕에 ‘인어공주’ ‘혈의 누’ 등 다수의 영화 촬영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금오도에서 각광받는 여행 패턴 중 하나가 해안드라이브다. 26㎞의 해안도로를 달리는 동안 수항도, 횡간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줄곧 따라온다. 여수 등 인근 지역 자전거 동호회원들의 발길이 잦은 것도 그런 까닭이다. ●금오도 가면 안도는 보너스 안도는 둘레가 29㎞에 불과한 조그만 섬. 지난 2월 안도대교가 개통되면서 금오도와 한 몸이 됐다. 섬에 들면 조용하다. 걷건, 차를 몰 건 자신이 내는 소리 외에는 들리는 게 없을 정도로 적막하다. 선착장 오른쪽 야산은 발품 팔아 오를 만하다. 길이 제대로 나 있지 않으나, 오르는 데 어려움은 없다. 산정에 서면 반월형의 몽돌해수욕장 등 작고 예쁜 안도의 전경과 멀리 다도해 풍광이 잘 어우러진다. 선착장이 있는 본동마을 위에도 당산공원이 조성돼 있다. 안도 최고의 풍경 포인트를 꼽으라면 단연 백금포해수욕장이다. 모래가 곱고 수심이 얕아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기 맞춤한 데다, 물색 또한 연한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다. 물빛 곱기로 소문난 제주도 협재, 함덕해수욕장과 닮았다. 워낙 외져 찾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저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전부다. 여느 해수욕장처럼 음식점이나 상점 등이 일절 없어 깔끔하고 고적하다. 금오도의 해넘이 풍경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해거름이면 파스텔톤의 파란색 바다 위로 석양빛이 물드는데, 시간이 흐를 때마다 진노랑에서 주황색으로, 붉은빛 감도는 자주색으로 빛깔을 달리한다. 해넘이 풍경과 마주하려면 섬에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여수로 가는 마지막 배 출항 시간이 오후 5시 30분이기 때문이다. 낙조 감상 포인트는 함구미마을 위쪽. 이른 아침 망산(344m) 봉수대에 올라 장엄한 해오름 풍경과 만나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여수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돌산도 신기항에서 금오도 여천항까지 하루 7회(7:45 9:10 10:30 12:00 14:00 15:50 17:00) 페리호가 오간다. 운임은 5000원. 승용차는 운전자 1인 포함 1만 3000원, SUV 1만 5000원(이상 편도). 한림해운(666-8092) 측에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 주는 게 좋겠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로 배편이 일찍 끊길 경우, 전화로 통보해 준다. 여천항에서 면소재지 우학리까지는 남면버스(011-616-9544)나 택시(666-2651~2, 011-608-2651)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 1000원. 택시는 여천항을 기준으로 우학리 1만원, 직포 1만 2000원, 함구미와 초포 1만 5000원이다. 섬 내 주유소는 우학리 농협 한곳뿐이다. 경유만 판매한다. 뭍 보다 다소 비싸다. 영업시간 오전 9시~오후 5시. →맛집:감성돔, 군벗 등 자연산 어패류를 맛보려면 예약을 하고 가는 게 좋다. 여느 관광지와 달리 식당마다 그날 그날 어민들을 통해 필요한 만큼 물건을 받기 때문이다. 1인당 1만원부터 4만원까지 다양하다. 식당은 대부분 면사무소 주변에 몰려 있다. 여남식당(665-9546), 명가식당(665-9520) 등이 알려져 있다. →잘 곳:금오도에 명가모텔(665-9520), 안도에 안도모텔(665-3369)이 있다. 3만원선. 민박은 금오도와 안도를 합쳐 20여개가 운영되고 있다. 2만원선. 남면사무소 690-2605. →둘러볼 곳:돌산도 끝자락의 향일암은 일출 명소로 이름난 곳. 화재로 전소됐다고 알려졌으나, 대웅전과 종각 등 일부가 소실됐고 나머지 건물은 건재하다.
  • 분단선 넘어온 북녘가을 서쪽바다 붉게 물들였네

    분단선 넘어온 북녘가을 서쪽바다 붉게 물들였네

    금강산관광의 문이 닫힌 지 벌써 두해를 넘기고 있습니다. 북녘의 산하에 대한 갈증도 그만큼 깊어 갑니다. 최근 정세 변화로 북한 주민들의 삶과 접경지역의 풍경 등에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도 슬며시 생깁니다. 그래서 행장을 꾸리고 접경지역을 찾아 나섭니다. 내 나라 안에서 북녘땅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여럿 됩니다. 그중 이 계절에 가장 적당한 곳을 꼽자면 경기 김포와 인천 강화일 겁니다. 수도권 등에서의 접근성이 좋은 데다, 제법 농익은 가을 풍경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강화도의 갯마을에서는 대하 등 갯것들이 풍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갯벌에는 한해 일곱번 얼굴을 바꾼다는 칠면초(七面草)가 사방을 붉게 물들이고 있습니다. 뭍에만 단풍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갯벌의 외침이 들리는 듯도 합니다. 다만 이 지역 어디를 가건 지난 여름 폭우로 유실된 북한의 목함지뢰는 반드시 경계해야 합니다. 이 점만 잊지 않는다면, 당신은 아마 김포를 거쳐 강화에 이르는 길에서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한 가을 풍경과 만나게 될 겁니다. 글 사진 김포·강화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애기봉 전설 위로 한강 물 흐르고 애기봉(愛妓峰)엔 이름만큼 애처로운 전설이 흐른다. 1636년 병자호란 때, 당시 평양감사가 기생 ‘애기’와 함께 한양으로 피란을 가게 됐다. 이들이 한강과 인접한 개성시 판문군 조강리에 이르렀을 때, 평양감사는 청나라 군사들에 붙잡혀 다시 북쪽으로 끌려가고, 애기만 구사일생으로 한강을 건너 애기봉 왼편의 조강리에 머물게 됐다. 이후는 능히 짐작이 되는 수순이다. 애기는 날마다 이 봉우리에 올라 감사를 애타게 기다리다 병들어 죽었고,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묘를 만들어 줬다는 얘기. 그 뒤 1966년, 이 봉우리를 방문한 박정희 대통령이 애기봉이라 이름 짓고, 친필로 쓴 애기봉 비석도 세웠다. 김포에서 강화대교를 건너면 강화도다. 염하(鹽河)를 경계로 뭍과 단절된 덕에 예부터 피란처이자 호국의 보루 역할을 해 온 곳. 강화를 빙 둘러친 5개의 진과 7개의 보, 53개에 달하는 돈대가 그것을 증명한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예전엔 지역 농민이나 군인 외 출입이 통제됐던 양사면 철산리 민통선 지역에 세워졌다. 그런데 전망대가 딛고 선 봉우리 이름이 섬뜩하다. 제적봉(制赤峰)이란다. 풀어보자면 붉은 무리를 제압한다는 뜻일 터. 전쟁의 뉘앙스가 짙게 풍기는 이름에서 접경 지역에 왔음을 실감한다. 전망대 너머로는 조강(祖江)이 흐른다. 황해북도 언진산에서 발원해 황해남도 배천군과 개성시 개풍군 사이로 흘러나오는 예성강과 민족의 젖줄인 한강이 합류하는데, 이 물길을 조강, 또는 강화만이라고 부른다. 북한에서 한강 쪽으로 길게 돌출된 해창리는 인천시에서 통일에 대비해 교량 건설 계획을 세워둔 곳이다. 평화전망대에서는 어지간히 나쁜 날씨가 아니면 강 너머 북녘땅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 가장 가까운 곳의 직선거리는 1.8㎞. 망원경을 이용하면 연백군에 사는 북한주민의 생활상과 선전용 위장마을, 북한군이 물고기를 잡곤 한다는 삼달리수로, 고려시대부터 유명해진 개성인삼밭 등을 낱낱이 살필 수 있다. ●뭍만 가을이더냐, 바다도 붉게 물들더라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 위를 날 때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에 넋을 잃곤 한다. 갯벌이 온통 붉은 빛을 하고 있는데, 그 모습이 꼭 바다 위로 꽃이 핀 듯해서다. 이 붉은 꽃의 정체가 칠면초다. 갯벌 등 염분이 있는 토양에서만 자라는 염생식물로, 해마다 일곱번 빛깔을 달리한다고 해서 이처럼 고운 이름을 얻었다. 봄에 연둣빛으로 싹을 틔워 차츰 붉어지다가, 곧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은 뒤 11월이면 하얗게 말라죽는다. 육면체 모양의 열매 각 면마다 색깔이 달라 칠면초라는 설도 있다. 계절의 경계에 선 지금, 김포와 강화 갯벌에는 칠면초가 마지막 붉은 향연을 펼치고 있다. 뭍에서 갈대밭, 칠면초, 갯벌, 그리고 바다로 이어지는 풍경 위로 가을이 듬뿍 내려앉았다. 특히 강화 동검도로 들어가는 제방도로 주변은 칠면초가 군락을 이루며, 거대한 붉은 양탄자를 펼쳐 놓은 듯하다. ●북녘 산하가 한 손에 잡힐 듯 여행자들이 접경지역을 찾을 때는 북녘의 산하에 대한 기대 못지않게 우리의 반쪽인 북한 주민들을 보자는 뜻도 클 터다. 그러나 평소에는 인적이 드문 탓에 망원경으로도 북한 주민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기는 봄철 모내기 때와 가을걷이 때다. 우리와 달리 농기계 보다는 수작업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논밭 이곳저곳에서 일하는 북한 주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북한의 들녘이라고 우리와 다를까. 벼들은 샛노랗게 여물었고,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는 농부들의 손놀림은 여간 바쁘지 않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은 재잘대며 학교를 나서고, 간간이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흙길을 달린다. 식량 사정이 좋지 않다고는 하나, 최소한 이맘때쯤이라면 그네들의 식탁도 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경기 김포 월곶면 애기봉전망대는 수도권에서 가장 가깝게 북한 지역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악어 주둥이처럼 뾰족 튀어나온 황해북도 개풍군 관산포와 김포 하성면 시암리 간 직선 거리는 1300m에 불과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수영선수 박태환의 자유형 1500m 최고기록이 14분 55초 03. 그가 마음먹고 역영을 펼친다면, 불과 십여분 만에 넉넉하게 닿을 거리다. ●막힌 물길 흐르던 풍경 전망대에 서면 23㎞쯤 떨어진 개성의 송악산을 비롯해,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머리, 유도 등의 절경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특히 유도는 1996년 북한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떠내려온 ‘평화의 소’(2006년 사망)가 구출된 섬으로, 당시 온 국민의 시선이 쏠렸던 곳이다. 을씨년스러운 모습의 선전마을이며 탱크저지용 석축제방 등 북한 특유의 풍경도 여전하다. 잠시 눈을 감고 풍경의 잔상을 음미한다. 참혹했던 전쟁의 기억 위로 배를 타고 자유롭게 이곳을 오갔던 선인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 위에는 이처럼 전쟁의 역사 말고도 곳곳에 민초들의 질박한 삶의 역사가 담겨있다. 아주 오래 전, 밀물 때만 되면 서울로 가기 위해 평양과 전라도 등에서 몰려온 배들로 한강이 몸살을 앓았다고 한다. 김포 토박이 민영철(76)옹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밀물 때는 배가 엉겨다닐 정도로 많았어. 대부분 ‘작배’(동력이 없는 목선)여서 역수(逆水)를 하기 어려우니까 밀물을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몰렸던 거지. 간혹 물때를 제대로 못 맞춰 물밖으로 드러난 풀등에 좌초되는 배들도 제법 됐어. 그럴 때면 물이 썰 때까지 배 안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곤 했지.” ■여행수첩 ▲가는 길 애기봉전망대는 48번 국도를 타고 김포·강화 방면으로 달리다 하성삼거리에서 우회전한 뒤 10㎞가량 직진하면 나온다. 입장료는 없고 차 1대당 2000원의 주차비를 받는다. 입구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증을 반드시 지참해야 한다. (031)988-6128. 강화평화전망대는 48번 국도를 타고 강화대교와 강화 시내를 지난 뒤 양사면 방면으로 곧장 간다. 전망대 초입 군 초소에 신분증을 맡기면 통행증을 발급해 준다. 연중무휴. 어른 2500원, 어린이 1000원. 65세 이상 어르신, 장애인 등은 무료다. (032)930-7062. ▲주변 볼거리 김포 대명포구 뒤편에 김포함상공원이 조성돼 있다. 2000t급 운봉함이 전시돼 있다. 운봉함은 1943년 미국에서 건조돼 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에 참전하며 14년 동안 미 해군의 주력 상륙함으로 운용됐다. 그러다 1955년 대한민국 해군이 인수해 베트남전에 참전하는 등, 52년 동안 임무를 완수하고 2006년 퇴역했다. 오전 10시 문을 연다. 입장료는 없다. (031)987-4097. 강화의 특산품인 왕골 공예품과 화문석을 소개하는 강화 화문석 문화관도 들러볼 만하다. 어린이 대상 체험학습실을 운영하고 있다. 송해면 양오리에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032)932-9922. ▲맛집 강화역사관에서 광성보로 가는 해안도로변에 ‘더리미 뱀장어타운’이 조성돼 있다. 충남서산집은 꽃게탕으로 입소문 난 집. 강화 인산리에 있다. (032)937-3996. 김포 대명포구와 강화 선두포구, 창후리 선착장 등에는 대하 등 가을 해산물을 싸게 맛볼 수 있는 어시장이 조성돼 있다.
  • 바다로 간 용암, 꽃으로 피다

    바다로 간 용암, 꽃으로 피다

    “‘재돌’이 관광지가 된다 카지?” “그런다 카데. 유명한 지질학자도 오고 (경주)시에서도 조사해 갔다 아이가. 그기 그래 희한한 돌멩이가?” 얼핏 들은 경북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주민들의 대화 내용입니다. 주민들이 화제로 올린 ‘재돌’은 읍천항 주변 주상절리군(柱狀節理群) 중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를 일컫습니다. 차곡차곡 포개진 것이 기왓장을 닮았다 해서 주민들은 ‘기와돌’이라고도 부릅니다.지난 8월 초 읍천항 일대에서 주상절리군이 ‘발견’됐다고 해서 잔잔하나마 화제가 됐습니다. 사실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발견’이라 하기는 다소 쑥스럽지요. 원래 있던 ‘돌멩이’의 가치를 새삼 확인한 것이니 ‘재발견’이라 표현하는 게 온당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정작 재돌의 정체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습니다. 주상절리라는 것 외에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게다가 주민들은 재돌 앞쪽 절벽에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고 입을 모읍니다. 학술조사 등을 통해 동굴의 존재가, 또 그 동굴이 용암이 흐른 흔적이란 게 확인된다면, 어쩌면 재돌은 거대한 발견의 단초일 수도 있겠습니다. 읍천항은 깔끔하고 아늑한 갯마을입니다. 경남 통영의 동피랑마을처럼 집집마다 외벽을 예쁜 벽화로 치장하고 있지요. 주변 지역 사람들에겐 진작부터 ‘풍경의 성지’로까지 여겨지던 곳입니다. 거기에 주상절리군까지 ‘발견’됐으니, 이만하면 초가을 바닷가 여행지로 손색이 없겠습니다. ●코발트빛 바다와 몸 섞은 부채꼴 주상절리 경북 포항시와 경주시, 그리고 울산에 이르는 해안가에서는 주상절리군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그만큼 예전 이 지역에서 왕성한 화산활동이 있었을 것이란 뜻이다. 최근 주상절리군이 새롭게 확인된 곳은 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해안이다. 읍천항과 하서항 사이 1.5㎞구간에 사각형과 육각형의 검은 돌기둥으로 만들어진 주상절리가 ‘주르륵’ 펼쳐져 있다. 사실 내 나라 안 해안가 절경 중에는 군 초소가 터를 잡고 있어 출입이 통제된 경우가 적지 않다. ‘통일이 되면 전국이 관광지가 될 것’이란 우스갯소리도 그런 까닭에 나왔을 터다. 읍천항 주상절리군도 해병대 초소가 들어선 암벽 바위 아래 있다. 그동안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탓에 ‘아는 사람만 아는’ 곳이었으나 몇년 전 군 초소가 철수하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가능해졌고, 이후 이곳을 다녀간 관광객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근동에서는 제법 명소 반열에까지 올랐다. 읍천항에서 울산 방향으로 200m쯤 가면 쿠페 모텔이 나온다. 이 모텔 뒤편으로 난 소로가 주상절리로 향하는 길이다. 아직 표지판과 진입로 등이 정비되지 않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지나치기 십상이다. 군 초소 옆 숲길을 따라 몇 발짝 걸으면 곧바로 해안 절벽. 발 아래 코발트빛 바다와 몸을 섞은 검은 현무암 주상절리군이 자태를 드러낸다. 빛이라면 모조리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 바위와 짙은 코발트 빛의 바다가 절묘하게 호흡을 맞추고 있다. 주상절리는 대개 수직, 혹은 수평 기둥으로 형성된다. 용암이 흐르다 상부와 하부의 온도 차 등으로 인해 수직 형태로 굳든지, 지각의 틈새로 관입해 수평 형태로 굳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간혹 경사진 형태의 주상절리도 목격되곤 한다. 제주도와 무등산 등의 주상절리들을 떠올리면 알기 쉽다. 힘센 거인이 쑥 뽑아 올린 것처럼 곧추서 있지 않던가. 이에 견줘 읍천리 주상절리는 수직과 수평의 절리를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백미로 꼽히는 ‘재돌’은 완벽한 부채꼴 형태를 하고 있어 주상절리로는 극히 보기 드문 사례로 평가 받는다. 최근에 발견된 데다, 아직 구체적인 학술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탓에 ‘재돌’의 정체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 모두가 ‘추정’일 뿐이다. 경북대 지질학과 장윤득 교수는 “읍천항 주상절리군의 생성 시기는 신생대 3기(6500만~530만년 전)쯤으로, 암질은 현무암으로 추정된다.”며 “아이슬란드 등 여러 나라들을 돌아봤지만 부채꼴 형태의 주상절리는 처음 본다. 어떤 경위로 방사형의 주상절리가 형성됐는지 현재로선 전혀 가늠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군 초소에서 바라보면 부채꼴 모양이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현무암 절리들이 중심부를 향해 동심원을 그리고 있다. 마치 육각형 연필을 차곡차곡 쌓아 둥근 제단을 만든 듯하다. 어떤 설치미술 작가가 이처럼 빼어난 조형물을 세상에 전시할 수 있을까. ■ 육각형 연필로 쌓아올린 듯한 둥근 제단 어떤 작가가 이 같은 작품 만들 수 있나 ●거대한 발견의 단초가 될 수도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군 초소 바로 아래, 그러니까 주상절리 지역을 일컫는 ‘재방출’의 절벽 사이 움푹 파인 곳에 예전엔 큰 동굴이 있었다고 한다. “동네 어르신들이 거기서 비도 피하고, 불도 피우며 놀았다 카데. 그기서 불을 피우마 4㎞ 정도 떨어진 수렴2리 관성마을 동굴에서 연기가 나왔다 카더라꼬.” 조창래 읍천1리 이장의 말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는 동굴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주민들은 오래전 태풍 등에 밀려온 돌덩이들이 동굴 입구를 막았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장 교수는 “동굴이 있다면 용암이 흘러 만들어진 것일 수 있다. 후대에 인위적으로 막혔을 개연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남겨진 과제는 보전과 개발이다. 문화재위원이기도 한 장 교수는 재돌 등에 대한 천연기념물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현지 조사를 하는 등 절차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것. 장 교수는 “읍천항 주상절리는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도 충분하다.”며 “경주시에서 서둘러 이들에 대한 보전과 개발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평범한 어촌… 벽화 담장으로 동화 갯마을로 변신 읍천항에 들어서면 벽화로 치장된 담장들이 단박에 눈을 사로잡는다. 월성원자력본부 주최로 8월 열린 ‘그림 있는 어촌마을 벽화 공모전’ 참가자들이 그린 벽화들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52개팀 150여명의 화가들은 1㎞에 달하는 읍천항 주택 담장을 화려한 색채로 물들였다. 그 덕에 평범한 갯마을이 하루아침에 동화 속 마을로 변모했다. 벽화에 전문작가의 솜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학생들이 선생님과 함께 고사리손으로 그린 작품도 있고, 외국인이 그들의 시각으로 본 항구 풍경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들의 붓놀림에 따라 3~14m의 담벼락은 꿈꾸는 아이들과 읍천항의 저녁노을 등 다양한 주제의 그림들로 수놓아졌다. 특이하게 한복을 입은 비너스의 모습도 눈에 띈다. 조창래 이장은 “공모전 이후 개인적으로 마을을 찾는 화가들이 늘면서 현재 70여 가구 담장에 벽화가 그려져 있다.”며 “앞으로도 벽화의 수는 계속 늘 것”이라고 전했다.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 경주 나들목으로 나와 서라벌대로를 따라 울산 방면으로 직진하다 외동읍 방면으로 우회전, 읍내에서 다시 양남면 방면으로 좌회전해 곧장 간다. 대중교통은 고속버스로 경주까지 가거나, 열차로 동대구역에서 내려 고속버스로 경주까지 간 뒤 경주직행버스터미널에서 150번 좌석버스로 갈아탄다. 양남면사무소 774-2285. ▲맛집 읍천리는 전복으로 유명한 곳. 재돌 인근에서 특히 잘 나온다. 읍천횟집(744-0767) 등에서 맛볼 수 있다. 전복죽과 전복물회 각 2만원. 도톰하게 살이 오른 참가자미회는 7만~8만원. ▲잘 곳 읍천항 뒤 7번 국도 변의 쿠페모텔(774-3511~2), 스위스모텔(774-4730) 등이 비교적 깔끔하다. ▲주변 관광지 나아리 해변은 작은 몽돌로 이뤄진 것이 특징. 수렴리 관성해수욕장은 송림과 해안이 어우러져 있다. 해수욕장 앞 군함바위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다. 글 경주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 경북 울진 십이령길의 삼색 매력

    경북 울진 십이령길의 삼색 매력

    주막에서 국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운 일단의 보부상들이 ‘끙~’ 소리를 내며 ‘바지게’(다리가 없는 지게)를 지고 일어섭니다. 바지게 위에는 경북 울진 바닷가 마을에서 사들인 건어물이며 소금, 생선, 젓갈 등 내륙에 내다 팔 물산들로 가득합니다. 그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향하는 곳은 봉화(춘양), 영주, 안동 장 등입니다. 요즘에야 7번, 36번 국도가 사통팔달로 이어주지만 어디 예전에도 그랬으려고요. 갯마을에서 내륙으로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내륙에서 피륙, 비단, 곡물 등을 사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지요. 그 시절 보부상들이 발품 팔았던 그 길, 그들의 밭은 숨결 켜켜이 쌓인 그 길이 ‘십이령길’입니다. 현지인들은 ‘십이령 바지게길’이라고도 부르지요. 산림청과 울진군이 그 길을 복원해 ‘금강소나무 숲길’이란 이름으로 지난 7월 일반에 공개했습니다. 예전엔 화적 떼가 들끓던 그 길에 이젠 ‘살아 있는 화석’ 산양과 사슴, 고라니 등이 살고 있지요. 쭉쭉 뻗은 금강송들은 이들에게 버팀목이 되어 줍니다. 선인들의 숨결 오롯한 옛길을 거닐며 차분하게 가을을 맞는 건 어떨까요. 글 사진 울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옛길이 주는 감동의 시간들 옛길은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바위와 나무를 돌아 어제와 오늘을 이어 주는 옛길은 오래된 시간의 크기만큼 호젓한 시간을 내어 준다. 예전엔 십이령길과 함께 고초령길(매화장)과 구주령길(평해장) 등이 울진에서 내륙의 대처로 나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길이 십이령길이다. 바릿재, 샛재, 너삼밭재(저진치) 등 정겨운 이름의 고개를 넘는데, 울진 관내에 7령, 봉화 관내에 5령이 속해 있다. 이상을(57)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 경영토목계장에 따르면 총길이는 약 150리(약 60㎞)쯤 된다. 하지만 이는 구전에 따른 기록일 뿐 정확한 측량에 근거한 거리는 아니다. 이번에 공개된 십이령길은 그중 울진군 관내 약 21㎞ 구간을 복원한 것. 그런데 공식 이름을 보부상 옛길이나 십이령길이 아닌 금강소나무숲길로 정한 까닭은 뭘까. 이 계장은 “총 4개 구간 70㎞에 금강소나무숲길이 조성되는데, 보부상길은 그중 1구간 전체 13.5㎞를 말하는 것”이라며 “내년으로 예상하고 있는 2구간 16.7㎞ 일부에도 보부상 옛길이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보부상들은 흥부장(현 부구리)이나 죽변장, 울진장에서 미역 등 갯것들을 사 봉화 춘양장 등에 내다 판 뒤 다시 내륙에서 비단, 곡물 등을 가져와 해안 장터에 팔았다. 그들은 대개 북면 두천리 주막거리에서 하루를 묵고, 이튿날 아침 일찍 바릿재를 올랐다. 바릿재란 소에다 물건을 바리바리 싣고 다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두천리 주차장에서 맑은 내를 훌쩍 뛰어넘으면 내성행상불망비(乃城行商不忘碑)와 만난다. 보부상들이 접장(接長) 정한조 등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철비(鐵碑)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입구이자 십이령길의 출발지다. 다소 된비알의 바릿재를 숨가쁘게 넘어가면 옛 장평마을이다. 여기서부터는 임도를 따른다. 임도 초입에는 제법 큰 키의 엄나무가 탐방객들을 굽어보고 있다. 나이는 350살가량. 이윤권(54) 숲해설가는 “엄나무는 약재 등 쓰임새가 많아 대부분 다 자라기 전에 잘려지곤 하는데, 이 녀석은 못생긴 탓인지 여태 살아남았다.”며 웃었다. ●못난 소나무가 선산 지킨다더라 임도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면 곧 서들골. 시싯골과 창골 등에서 내려온 계곡물이 합류하는 곳이다. 겨울철이면 곧잘 산양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들골에 들면 옛길은 접고 잠시 쉬어갈 일이다. 빼어난 계곡이 보이지 않게 이어져 있기 때문. 계곡을 따라 10분쯤 내려가면 ‘선녀탕’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선녀 엉덩이탕’이라 즐겨 부른다. 계곡물이 암벽을 파 두 개의 둥그런 소를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여인네의 엉덩이와 닮았다 해서 이처럼 해학적인 이름이 붙었다. 필경 이곳에서 다리쉼을 했을 보부상들도 이 모습을 보며 저마다 입에 궐련을 문 채 희희덕거렸을 게다. ‘선녀 엉덩이탕’ 있는 곳에 남근석이 빠지랴. 여기서 다시 10분쯤 내려가면 길게 뻗은 바위와 소가 어우러져 있다. 당연히 이름도 ‘남근탕’이다. 서들골에서 한 시간 반쯤 걸으면 찬물내기다. 계곡물이 매우 차갑다는 뜻으로, 1구간의 중간 쉼터다. 찬물내기에서 남매처럼 다정하게 선 금강송 두 그루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면 샛재(鳥嶺·595m). 경북 문경의 ‘새재’와 똑같은 이름이다. 결국 영남 사람들이 한양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나도 버거운 ‘새재’를 두 개나 넘어야 했던 셈이다. 서어나무가 무거운 그늘을 만들고 있는 샛재에 서면 ‘조령성황사’란 편액이 내걸린 낡은 건물과 마주한다. 보부상들이 상단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지은 성황당으로,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장중한 분위기로 주변을 압도한다. 샛재 주변엔 그야말로 ‘기골이 장대한’ 금강송들이 가득하다. 저마다 둥치에 노란 페인트칠을 하고 있는데, 문화재 중수 시 베기 위한 표식이다. 이윤권 숲해설가에 따르면 4137번까지 표시돼 있다. 조령성황사 바로 옆, 어른팔로 두 아름쯤 되는 금강송이 1번. 원래 남대문 복원공사 때 베어질 뻔했으나, 둥치 위가 약간 굽어 규격에 미달된 덕에 살아남았다. ‘못난 소나무 선산 지킨다’더니 딱 그 모양새다. 샛재에서 대광천까지는 평탄한 내리막 코스. 철 따라 들꽃들이 지천으로 피고 진다. 샛재에서 10여분쯤 내려오면, 희미하게 발자국 흔적이 남아 있는 돌계단과 만난다. 이 숲해설가는 “보부상들이 오랜 기간 짚신발로 밟아서 생겨난 흔적”이라고 전했다. 너삼밭재 입구 어름에서는 보부상들이 밥을 지어 먹은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제철 송이 맛보고 오세요 ‘제8회 울진 금강송 송이축제’가 새달 1~3일 울진친환경엑스포공원 일대에서 열린다. 울진군은 축제를 통해 전국 최대 송이 생산지의 면모를 과시할 계획이다. 축제의 백미는 송이 채취 체험이다.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하루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2시 북면 구수곡자연휴양림 일대를 걸으며 송이를 딴다. 체험비 1만원을 내면 송이 1개씩 채취할 수 있다. 산림욕을 즐기며 송이를 따는 맛이 각별하다. 두 시간쯤 걸린다. 송이채취 체험 및 투어 참가자는 참가비의 절반을 울진사랑상품권(5000원)으로 되돌려 받고, 축제기간 동안 주요 관광지와 온천 입장료를 30~50% 할인받을 수 있다. 울진군산림조합 (054)782-2249. ■여행수첩(지역번호 054)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앙고속도로 풍기, 또는 영주 나들목으로 나와 36번 국도를 타고 곧장 간다. 영동고속도로→동해고속도로→7번 국도→울진 순으로 가는 방법도 있다. 두천1리에 차를 뒀을 경우 십이령길이 끝나는 소광2리 금강송 펜션 앞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되돌아오면 된다. 오후 4시20분 소광리를 출발해 5시30분 두천리에 도착한다. 두천리까지는 7000원, 울진터미널 앞(5시)까지는 5000원을 받는다. 시내버스는 울진버스터미널 앞에서 오전 6시25분, 오후 1시20분·4시15분·6시에 각각 출발한다. 2000원. ▲예약 십이령길은 1일 1회 예약제로 운영된다. 탐방 인원도 하루 80명을 넘지 않는다. 국내 최대 금강송 군락지인 데다 산양(천연기념물 제217호) 서식지를 통과하기 때문이다. 출발은 오전 9시. 산행 내내 숲해설가와 가이드가 동행한다. 숲길에 들어서면 무전기나 휴대전화가 되지 않는다. 참가비는 없다. 울진숲길(www.uljintrail.or.kr, 781-7118), 산림청 울진국유림관리소(780-3940~3). ▲잘 곳 두천리와 소광리 주민들이 민박을 운영한다. 두천리 1인 1만원. 식사 5000원. 이튿날 도시락(5000원)도 싸준다. 소광리 6만~12만원. 울진숲길을 통해 예약할 수 있다. 인근 구수곡 자연휴양림(783-2241)이나 통고산 자연휴양림(782-9007), 덕구온천관광호텔(782-0677) 등에서 자고 이튿날 두천리에서 합류해도 된다. ▲맛집 남양숯불갈비는 송이전골을 잘한다. 읍내에 있다. 782-3637. 근남면 노음리 성류식당(783-5358)은 대게칼국수, 후포항 왕돌수산(788-4959)은 홍게탕이 맛있다.
  • 서울서 두세 시간… 우리만의 피서지

    서울서 두세 시간… 우리만의 피서지

    매년 여름휴가 때면 도시민들의 대이동이 시작된다. 땡볕 아래 고속도로는 정체되기 마련이어서 더위를 피하는 게 아니라 더위를 찾아가는 셈이 된다. 이처럼 고생을 수반하는 여정보다 남들이 덜 찾는 나만의 섬 여행은 어떨까. 섬 하면 대개 명성이 자자한 남해를 떠올리지만 인천 옹진군에는 서울에서 2∼3시간이면 갈 수 있는 섬들이 널려 있다. ●‘신의 마지막 작품’ 백령도 우리나라 최북단 섬으로 서해의 해금강으로 불린다. 조선 임금 광해군이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며 감탄했다는 두무진을 비롯해 많은 볼거리와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심청이가 몸을 던졌다는 바닷가 절벽에 세워진 심청각에서는 북한 장산곶이 마주 보인다. 사곶해변은 모래사장이 도로처럼 단단해 자동차로 파도치는 바다 옆을 달릴 수 있으며 축구와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갑각류나 조개류가 대량 서식하고 있어 게와 벌이는 숨바꼭질 한판도 즐겁다. 콩돌해안은 백색, 갈색, 회색 등 형형색색의 콩만 한 돌들이 바닷가를 덮고 있다. 옛날에는 반지로 만들었다고 전해질 만큼 돌 모양이 아름답다. ●해수욕장 천국 대청도 행정안전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휴양하기 좋은 섬으로 꼽은 전국 3000개의 섬 가운데 1%에 해당되는 곳이다. 대청도는 해변 전시장이라 불러도 될 만큼 많은 해수욕장을 품고 있다. 사탄동해수욕장은 우리나라 10대 해수욕장의 하나로 고운 모래와 함께 수백그루의 적송이 뿜어내는 솔향으로 절로 발길이 느려진다. 사하라사막을 연상케 하는 모래사막을 지나 드러나는 옥죽동해수욕장, 바다낚시 최고 명소인 농여해수욕장, 푸른 잔디 뜰과 함께 모래사장이 널찍해 가족단위 피서가 제격인 답동해수욕장 등이 있다. ●청정해역 자월·승봉·이작도 이 3개 섬은 인천 근해 섬관광의 ‘트로이카’로 불린다. 경치가 뛰어난 데다 동해 못지않은 청정해역을 간직하고 있다. 게다가 인천 연안부두에서 배를 타면 1시간이면 도달할 수 있어 옹진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 중에 하나다. ●한적한 갯마을 신도·시도·모도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뱃길로 10분 거리인 신도·시도·모도는 갯마을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일단 신도에 가면 시도와 모도는 연도교로 각각 이어진다. 이들 섬은 인접한 영종도에 개발 붐이 거세게 일 때에도 ‘무풍지대’였던 곳으로 섬 특유의 경관과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숨겨진 진주, 덕적도 덕적도는 한국해운조합이 섬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가장 기억에 남는 곳’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울릉도, 홍도에 이어 3위에 오른 섬이다. ‘숨겨진 진주’란 평가를 받는다. 특히 갯벌의 질이 뛰어나고 폭과 길이가 적당해 조개잡이를 하기에 적합하다. 관광안내 http://www.ongjin.go.kr/tour 여객선안내 http://dom.icferry.or.kr 글 사진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영화단신]

    ●날카로운 시선으로 미국 사회를 응시했던 엘리아 카잔(1909~2003) 감독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특별전이 마련됐다. 새달 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낙원동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터키에서 태어난 카잔은 사실적이고 현대적인 연출 스타일을 선보이며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 영화계에 큰 영향을 준 거장이다. 반유대주의를 소재로 한 ‘신사협정’(1947), 노동자와 자본 계급 간 대립을 그린 최고 걸작 ‘워터프런트’(1954), 제임스 딘의 고독한 눈빛을 접할 수 있는 ‘에덴의 동쪽’(1955), 방황하는 청춘을 그린 ‘초원의 빛’(1961) 등이 준비됐다. ●새달 29일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의 한국 장편경쟁 및 단편경쟁 부문 본선 진출작 20편이 선정됐다. 장편경쟁 본선 진출작은 신수원 감독의 판타지 음악영화 ‘레인보우’, 박동현 감독의 ‘기이한 춤-가무’,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서세진 감독의 ‘저 달이 차기 전에’ 등 8편이다. 단편경쟁 본선 진출작은 ‘당신의 어머니’, ‘밤을 위한 춤’, ‘연인과 주말에’, ‘츄리멜로’ 등 12편이다. 부문별 우수 작품에 최고 1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한국 문예영화의 대부 김수용 감독의 회고전 ‘나의 사랑, 씨네마’가 한국영상자료원 주최로 새달 4일까지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KOFA에서 열린다. 신상옥, 유현목, 김기영 감독 등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김 감독은 무려 109편의 영화를 연출해 고영남 감독(111편)과 함께 한국 영화계 최다작 감독으로 꼽힌다. 오영수 작가의 단편소설을 스크린으로 옮긴 ‘갯마을’(1965)로 문예영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모파상 소설을 각색한 초기작 ‘돌아온 사나이’(1960)부터 가장 최근작인 ‘침향’(1999)에 이르기까지 김 감독이 직접 선정한 27편이 상영된다.
  • 거제의 숨겨진 마지막 명소 ‘공곶이’

    거제의 숨겨진 마지막 명소 ‘공곶이’

    3월 내내 늦겨울의 심술이 대단했습니다. 누구라도 한번쯤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을 외쳤을 법했지요. 그렇다고 봄이 멀리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느끼지 못했을 뿐 봄은 이르지도, 더디지도 않게 우리 곁에 찾아와 있었습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꽃이 수선화입니다. 나르시서스(Narcissus)란 학명처럼 충분히 ‘자신을 사랑할 만큼’ 아름다운 꽃이지요. 봄의 전령 산수유와 매화 뒤에 가려 제 목소리를 내지는 못했지만, 남도의 양지바른 곳이면 어김없이 피어 있었습니다. 경남 거제 공곶이에도 봄기운 가득 머금은 수선화가 샛노란 꽃잎을 활짝 열었습니다. 공곶이는 ‘거제 8경’ 중 하나로, 섬이 숨겨 놓은 마지막 명소입니다. 찻길을 내지 않아 외진 이곳은 동백터널과 수선화, 종려나무가 명물이지요. 사람의 손끝에서 자연이 얼마나 아름다워질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거제도의 봄나들이 1번지쯤 되는 곳입니다. 수선화 핀 갯마을 풍경 속으로 함께 들어가 보시지요. ●수선화 곱게 핀 갯마을 경남 거제시 예구마을 뒤편의 공곶이는 강명식(79)·지상악(75) 부부가 40년 넘는 세월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군 농원이다. 최근에야 비로소 ‘거제 8경’으로 지정된 숨은 명소. 산비탈 아래 터를 잡고 있는 탓에 가는 길이 만만찮다. 요즘 산허리까지 길을 내고는 있으나 도로폭이 좁은 데다, 올라가도 마땅히 주차할 곳이 없어 예구마을에 차를 두고 걷는 편이 수월하다. 예구마을에서 공곶이까지는 20분 남짓 발품을 팔아야 한다. 우거진 숲길은 숨을 할딱거릴 정도로 가파르다. 숲길 중턱에서 숨 한자락 내려놓으면 예구포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언덕에 올라 내려다본 한려해상국립공원 풍경 또한 장관. 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고, 바다 위로 치솟은 해금강이 아련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농원은 꽃의 바다가 된다. 샛노란 수선화와 붉은 동백, 새하얀 조팝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절경을 펼쳐낸다. 수선화가 필 때쯤 설유화도 함께 핀다. 눈꽃이라고도 불리는 꽃. 샛바람에 어린아이 새끼손톱만 한 꽃잎을 파르르 떠는 모습이 앙증맞고 애잔하다. ●노부부가 반평생 일군 바닷가 정원 공곶이는 5년 전 영화 ‘종려나무숲’의 촬영지가 되면서부터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오지였던 까닭에 알음알음 찾아오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강씨가 공곶이와 처음 마주한 것은 1956년. 처가가 있는 예구마을로 선을 보러 온 강씨가 아내 지씨와 마을 뒷산을 산책하다 공곶이를 발견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눈에서 불이 번쩍 날 정도”로 단박에 마음을 휘어잡았단다. 결혼 뒤 공곶이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10년가량 마산 등 대도시를 전전한 강씨 부부는 1969년 마침내 이곳에 터를 잡는다. 노부부는 산비탈에 계단식 밭을 일궈 꽃과 나무를 심고 가꿨다. 척박한 야산인 탓에 농기계는 이용할 엄두도 못 냈다. 대신 호미와 삽, 곡괭이로 애면글면 가꿨고, 그 덕에 자연미가 고스란히 살아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강씨의 헛간에 그대로 남아 있는 녹슨 곡괭이 10여개와 부서진 삽 등이 노부부의 신산한 삶을 증명하고 있다. 공곶이 입구는 동백터널이다. 폭 1m, 길이 200m 쯤 된다. 가파른 흙길에는 돌계단을 만들었다. 그 위로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피고 지기를 거듭하는 동백꽃이 떨어져 꽃잎 융단을 깔아 놓았다. 터널 초입, 농원 유일의 백동백도 봄볕의 유혹에 못 이겨 꽃잎을 열었다. ●동백꽃 향기의 유혹 농원 규모는 총 14만 8761㎡(4만 5000평). 경작면적은 3만 3058㎡(1만평)다. 노부부의 손길이 보듬은 나무와 꽃은 50여종. 수선화와 동백·종려나무가 주를 이루고, 천리향과 만리향·설유화 등도 각기 제 향기를 낸다. 동백터널 양쪽 산비탈은 수선화와 종려나무 군락지다. 봄기운에 물이 잔뜩 오른 종려나무가 쪽빛 바다와 어우러져 무척 이국적이다. 수선화와 더불어 조팝나무 등이 순백의 꽃을 터뜨리는 4월께면 공곶이는 그야말로 꽃대궐로 변한다. 동백터널을 나와 돌담과 종려나무숲 사이 오솔길을 따라가면 쪽빛 바다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바닷가는 동글동글한 자갈이 깔린 몽돌해변. 서이말등대를 향해 길게 뻗어 있다. 바닷가 쪽으로는 몽돌로 담을 둘렀다. 멧돼지 등을 막는 방지벽과 방풍벽 노릇을 하는 돌담이다. 영화 ‘종려나무숲’ 촬영장으로 쓰인 노 부부의 살림집 앞마당과 돌담을 둘러친 집 주변은 온통 수선화 밭이다. 수선화 재배면적 만 6600㎡(2000평). 밭고랑마다 수선화가 노란 꽃망울을 앞다퉈 터뜨리고 있다. 만개 시기는 3월 말. 예년보다 1주일 정도 늦어졌다. 애초부터 관광농원으로 조성한 외도 등과 달리 공곶이는 부부가 먹고 살기 위해 조성한 삶의 터전이다. 관광지가 아닌 까닭에 입장료가 없다. 매점도, 쉬어갈 벤치도 없다. 그저 사람의 손에 의해 다듬어진 자연만이 외지인을 반길 뿐이다. 게다가 한려해상국립공원에 속한 탓에 관광객이 쉬어갈 정자 하나 맘대로 만들지 못한다. 살림살이가 다소 팍팍하지만 노 부부의 표정은 그리 어둡지 않다. 도회지에서 살던 셋째아들 병길(47)씨가 지난해 귀농해 일을 거들고 있기 때문. 빼어난 풍경이 입소문을 타면서 찾는 이도 제법 늘었다. 매번 이들을 대하기가 귀찮을 법도 한데 노부부는 입에 미소를 달고 산다. 공곶이에서 햇볕보다 따사로운 봄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게다. 글ㆍ사진 거제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서울에서 자가용으로 갈 경우 경부고속도로→비룡분기점→대전통영간고속도로→통영 나들목→14번 국도→와현→예구마을→공곶이. 거제시청 관광과 639-3198, 공곶이 681-1520. →주변 볼거리: 거제 남단 ‘여차~홍포 해안도로’는 바다 풍광이 절경인 명품 드라이브코스. 1018번 지방도로를 따라 서부지역 해안과 내륙을 둘러볼 수 있다. 또 14번 국도를 타고 장승포동과 구조라·학동몽돌해수욕장, 해금강 입구를 거쳐 가면 동부지역 해안 절경을 샅샅이 훑을 수 있다. 거제도포로수용소유적공원, 바람의 언덕, 신선대, 산방산비원 등도 둘러볼 만하다. →먹거리: ‘봄 도다리, 가을 전어’라는 말처럼 요즘 최고의 먹거리는 도다리쑥국(1만 3000원)이다. 쑥국에 들어가는 햇도다리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로 담백하고 향긋한 맛이 일품이다. 거제도 대부분의 식당에서 맛볼 수 있지만 백만석(637-6660)이 입소문 났다. 멍게비빔밥(1만 2000원), 생멸치회(1만 5000원) 등도 별미다. 포로수용소 유적지 인근에 있다. →잘곳: 요즘 거제는 금~일요일 예약하지 않으면 방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거제삼성호텔은 거제 유일의 특급호텔. 631-2114. 최근 문을 연 ‘상상속의 집’도 정갈하다. 객실 크기나 시설 등이 특급호텔에 버금가는 수준. 모든 객실에서 해오름의 장관과 마주할 수 있다. 평일 14만원, 주말 17만원. 682-5251~2.
  • [싱글 라이프] 가볍게 떠나는 국내여행도 좋아요

    딱히 싱글들에게만 알맞는 여행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 여행을 떠나려면 교통편이나 숙소가 잘 마련돼 있어야 한다는 점만 숙지하면 된다. 여행경비를 줄이려면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것도 좋다. ●섬으로 가고 싶다면… 인천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산과 갯마을, 바다와 섬의 풍경이 조화를 이뤄 아름답고, 교통편이나 숙소도 잘 정비돼 있다. 석모도에서 유서깊은 사찰로는 보문사를 꼽을 수 있다. 파도소리를 주의 깊게 듣는 듯 미동도 하지 않는 ‘마애석불 좌상’은 강화8경으로 꼽힌다. 마애석불에서 서해바다 석양을 바라보면 근심걱정이 사라질 것이다. 석포리항에서 보문사 방향으로 가면 염전·해수욕장·포구 등에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 대중교통:강화터미널(강화도행 시외버스)~외포리선착장(마을버스)~석모도(여객선) ■ 자가용: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김포나들목~김포시(48번 국도)~강화대교~강화읍(84번 지방도)~냉정 삼거리에서 우회전~외포리 ●사색 즐기고 싶다면… 최근 한 연예프로그램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탄 경남 통영시 욕지도. ‘알고자 한다(欲知)’라는 욕지도의 이름은 불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잔잔한 바닷 물결과 푸른 산이 조화를 이루고 섬 안쪽과 바깥 어디에도 빠질 것 없는 비경이 펼쳐진다. 나지막한 천왕산을 올라가거나 덕동해수욕장에서 밤자갈밭 해안길을 걸으며 사색을 즐길 수도 있다. 낚시를 즐긴다면 갯바위 낚시를 해 보는 것이 좋다. ■ 대중교통:삼덕여객선터미널(여객선 1일 4회 운항) 또는 통영여객선터미널(여객선 1일 5회 운항) 이용. 자가용으로 섬 일주 가능. ●만약 수도권에 거주한다면… 경기 파주의 문화마을인 ‘헤이리마을’도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 미술인·작가·건축가 등 380여명의 예술인들이 참여해 집과 작업실·미술관·박물관 등을 지어 놓았다. 공연과 축제가 정기적으로 열리기 때문에 볼 것이 많다. 헤이리의 모든 건물은 3층 이하로 지어지고 주변과 조화를 이룬다. 전기차 투어에 참가하거나 자전거 여행을 다녀도 된다. 잠시 갤러리에 들러 작품들을 감상하는 묘미도 있다. 각종 체험 프로그램을 홈페이지(http://www.heyri.net)에서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 대중교통:서울 지하철 2·6호선 합정역 2번 출구(2200번 버스). 3호선 대화역(셔틀버스 하루 5회 운행) ■ 자가용:서울~자유로~성동IC~성동사거리~헤이리 ●테마 즐기고 싶다면… 전남 담양군의 청정호수 담양호를 중심으로 추월산과 금성산성을 따라 고지산 골짜기에 부채살처럼 펼쳐진 분지에 자리 잡은 ‘대나무골 테마공원’. 곧게 뻗어 올라간 대나무가 숲을 이뤄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대밭에서 죽순이 솟아올라 장관을 이룬다. 텃새들이 찾아와 알을 품는 서식지이기도 하다. 대숲에 야생 죽로차 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차 맛을 감상할 수도 있다. 각종 CF와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다. 캠핑장이 마련돼 있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도 좋다. ■ 대중교통:담양고속터미널~대나무골 테마공원(셔틀버스) ■ 자가용:담양 톨게이트~순창 방면(24번 국도)~석현교(우회전)~대나무골 테마공원 ●한국 아름다움 느끼고 싶다면… 아침고요수목원은 축령산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한국의 미를 듬뿍 담은 정원이 조화롭게 갖춰진 원예수목원이다. 울창한 잣나무숲 아래에서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금수강산을 실제 한반도지형 모양으로 조성해 꽃으로 표현한 하경정원(Sunken Garden)은 관광객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끄는 곳이다. 백두산 식물 300여종을 포함, 5000여종의 식물들을 만나볼 수 있다. ■ 대중교통:청량리역~청평역~청평버스터미널(마을버스) ■ 자가용:퇴계원~일동방면(47번국도)~서파검문소(우회전)~청평방면(37번국도)~현리~임초리상면초등학교 우측 진입로~아침고요 수목원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우리고장 최고]충남 당진 필경사

    [우리고장 최고]충남 당진 필경사

    ‘브나로드(민중속으로).’ 러시아의 이 운동을 모티브 삼아 쓴 농촌소설의 백미가 ‘상록수’이고, 이 소설은 충남 당진 송악읍 부곡리 ‘필경사(筆耕舍)’에서 탄생했다. 심훈 선생이 직접 건립하고 이름 붙인 태어난 집이다. 마을 일대는 상록수의 무대이기도 하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대교 남쪽 송악IC를 빠져나와 현대제철 방향으로 가는 길은 부곡리와 한진리를 가로 지른다. 소설 속 ‘한곡리’는 두 마을을 합쳐 이름 지은 가상의 마을로 주인공 박동혁이 열정적으로 농촌계몽운동을 펼친 곳이다. ● 마을 곳곳 소설 소재로 지금은 부곡국가산업단지로 변했지만 농촌인 부곡리와 갯마을 한진리는 아산만 갯벌과 염전을 가르는 신작로로 연결돼 있었다. ‘해변에서 새우를 잡아 말리고, 준치나 숭어 잡는 철이 되면’이란 묘사는 당시 한진리의 실제 풍경이다. 지금은 준치, 새우가 잡히지 않지만 서해대교가 한눈에 보이는 관광지로, 해맞이 명소로 인기를 끈다. 소설에 실제 지명을 넣은 ‘큰덕미’도 고대공단이 들어서면서 사라졌다. 박동혁이 농촌운동을 함께하면서 사랑을 키우던 채영신을 맞은 한진리 뒤 해변의 조그만 산이다. ‘하루 한 번 똑딱이(석유발동선)가 와닿는 조그만 포구로 주막 몇 집과 미류나무만 엉성하게 선 나루터’라고 묘사했다. 큰덕미가 아니라 한진리가 그랬다. 1970년대 초반까지 인천을 왕래하는 여객선이 드나들었고, 80년대 초까지 손님을 태우고 경기 평택을 오가는 배가 운행됐다. 심훈 선생은 경기 안산에서 농촌운동을 하다 숨진 ‘최용신’과 큰조카 ‘심재영’을 주인공 모델로 해 상록수를 썼다. 부곡리에서 마을 청년들과 공동경작회를 조직, 농촌운동을 벌였던 심씨는 1995년 작고하기 전 저술한 수필집에서 “숙부는 11살이 많았지만 나와 친구처럼 지냈다.”고 회고했다. 심훈 선생은 심씨의 권유로 1932년 서울에서 부곡리로 내려왔다. 선생은 심씨 집 사랑방에 머물다 소설 ‘직녀성’의 고료로 200여m쯤 떨어진 곳에 필경사를 짓고 가족을 데려와 살면서 상록수를 썼다. 야트막한 구릉을 뒤로하고 소나무, 대나무, 측백나무 등 상록수로 둘러싸인 초가의 필경사는 1989년 충남도문화재자료 312호로 지정됐다. 건평 60㎡ 정도에 방 2개, 다락방, 드레스룸, 거실, 주방으로 이뤄졌다. 당시로는 화장실과 목욕탕을 집 안에 둔 점이 특이하다. 필경사 옆에 심훈 선생이 직접 심은 수령 150년 된 향나무가 아직 있다. 선생의 묘도 2008년 11월 경기 안성에서 이곳으로 옮겨 왔다. 그 옆에 1993년 지어진 ‘상록수문화관’이 있다. 소설 원고의 사본과 선생이 출연한 영화 관련 신문기사 등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하루 평균 100여명의 관람객이 찾는다. 당진군은 상록문화제와 심훈추모제 등을 열고 있다. ● 상록초교 등엔 그의 발자취 마을에는 또 심씨가 세운 상록초등학교가 있다. 그가 농촌운동을 하면서 집 근처에 지은 야학당이 전신이다. 이 학교는 최근 황해경제자유구역에 포함되면서 이전설이 나와 주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필경사 관리사무소 구자원(51·당진군 문화체육과)씨는 “당진 최고의 문학 명소이자 농촌운동의 성지다운 면모를 더욱 갖추려면 진짜 육필 원고와 유품을 확보해 전시 기능을 강화하고 필경사에서 상록초교 사이 터 10만여㎡를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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