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개헌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퇴직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100세 인생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임산부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 아리랑
    2026-01-0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362
  • 혼미의 태정국 수습 실마리/아난 과도내각 출범의 의미

    ◎「5월 유혈사태」 원만처리 기대/집권 군부세력 향배가 변수로 지난 5월의 유혈시위사태이후 짙은안개에 싸였던 태국정국은 10일 문민정치를 지향하는 개헌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고 중립적인사가 위기관리정부의 수반으로 임명됨에 따라 일단 수습의 실마리를 찾게됐다. 선거내각을 구성하게될 아난 판야라춘 신임총리는 지난 91년 2월의 군사쿠데타후 수친다가 친군부정당들에 의해 총리로 지명될때까지 1년간 과도내각을 이끌어온데 이어 또다시 새로운 민선정부구성이라는 중책을 맡게됐다.위기관리의 해결사 아난전총리를 총리로 재기용한데 대해서는 그간 태국정계를 실질적으로 장악해온 군부측이나 민주세력 어느 쪽에서도 아직은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않고 있다. 이는 유혈진압,야당과 시위주동자 체포등 모든 강경책을 동원했음에도 사태장악에 실패한 군부나 압도적 물리력에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희생을 치른 야권에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태국국민들의 관심은 아난내각이 앞으로 「마주보고 달리는 두 열차」의 요구를 어떤 방향으로 수렴하고 수친다전총리의 사임과 개헌파동을 야기한 5월사태를 원만히 수습하고 정통성있는 새정부를 출범시키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일정은 아직 잡혀있지 않으나 국회해산과 총선등 아난총리가 맞닥뜨릴 난제들은 쉽게 해결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번 시위사태로 인한 수친다총리의 퇴진은 「정치의 장」에서 군부의 위상약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현군부집권세력이 쉽사리 물러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수친다사임이후 후임총리 선출과 유혈사태에 대한 책임문제를 놓고 친군부 5개여당과 군부가 기득권 고수에 집착한 나머지 솜분 라홍(전공군사령관)차트 타이당 당수를 총리후보로 내세워 기존체제 유지에 총력을 기울인데서도 이를 엿볼수있다. 반면 4개야당을 비롯한 민주세력이 시위대에 대한 발포 책임자들의 재판회부를 요구하고 있는 사안은 군부측과 쉽사리 타협을 볼수없는 향후 태국정국의 최대변수가 되고있다. 그러나 태국정정을 불안케하는 많은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10일 국회에서 의결된 개정헌법에 명시됐듯이 군이 직접권력을 장악하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5월사태는 이 나라의 점진적인 민주화를 향한 예고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태국 현대사에서 처음 맞게될 민선정부는 왕실을 정점으로 이 나라를 이끄는 군·관료·불교라는 대표적인 3대 세력에 중산층이 신진세력으로 참여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80년대들어 연간 10%의 꾸준한 경제성장으로 수도 방콕을 중심으로 성장한 중산층이 「민중의 힘」에 가세,태국군 역사상 최고의 단결력을 과시하던 군부의 기세를 꺾고 민주화를 향해 강한 목소리를 낼수있는 발판을 마련한 것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반면 군도 군복을 입은채 정치권에 직접 뛰어들기보다는 앞으로 특정정당과 연계해 그들의 대표를 정당에 투입,정치에 관여하는 새로운 정치개입을 시도할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따라서 태국의 민주화는 이번 중립 과도내각의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출발선상에 들어선 것으로 볼수있겠다.
  • 패전굴레 탈피 「대일본 영광」재현 시도/PKO법안 강행처리의 저변

    ◎국민적 욕구 업고 「정치열강」진입행보/“파병앞서 「정신대」등 「전후처리」 해결을/거대경제력 바탕,유엔등서 신질서주도꾀해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을 합법화하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안이 9일 일본 참의원 본회의를 통과했다.PKO법안이 앞으로 중의원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법으로 확정되며 자위대의 해외파병에는 걸림돌이 없게 된다.일본이 이 시점에서 PKO법안을 제정하는 저의와 역사적인 배경은 무엇인가.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에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연구위원 김태지본부대사와 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김태우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일본의 해외파병에 따른 문제점 등을 진단해본다. □대담 김태지대사 외교안보연 연구위원 김태우박사 국방연 선임연구원 ▲김태지대사=일본은 경제력이 강해짐에 따라 정치·외교적인 분야에서도 영역을 확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왔다고 봅니다.이런 가운데 냉전종식과 새로운 국제질서 구축과정에서 압도적 위치에 있었던 미국의 힘이 저하됐고 일본이 그 공백을 메울 수밖에 없다는 국제적 여론이 조성됐습니다.특히 권능이 강화된 유엔이 지역분쟁의 사전예방과 사태수습에 발벗고 나서는 이때 유엔결정을 바탕으로 한 평화유지활동참여가 가장 적절하다고 일본은 판단한 것같습니다. 때문에 일본은 유엔의 명분을 빌려 캄보디아사태등 아시아지역 분쟁문제에서부터 정치·외교력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됩니다.그러나 일본은 국내의 반대여론을 어떻게 무마시키느냐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경제력에 걸맞는 정치·외교적 역할을 위해 집권자민당이 지난해 제출한 PKO법안이 수정되는 진통을 겪은데서 잘 나타납니다. ▲김태우박사=일본이 전후 47년만에 해외파병을 합법화한 것은 경제대국·과학기술대국에서 정치·군사대국으로 변모하려는 전환점이며 국가적인 기회로 보입니다. 일본의 해외파병은 미국이라는 승전국이 씌워준 평화헌법이라는 족쇄와 굴레를 벗어나 전후 청산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창문이 열릴 때 나갈 기회를 포착하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일본은 이 기회를 오랫동안기다려왔으며 사회분위기를 성숙시켜왔습니다. 일본의 국민적인 욕구가 분출되는 계기이며 패전국의 의무에서 벗어나는 단계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김대사=일본평화헌법 9조는 「국제평화를 성실히 희구하며 국권발동으로서 전쟁과 무력에 의한 위협 또는 행사는 국제분쟁해결수단으로서도 영구히 포기한다.이 목적을 위해 육·해·공군및 기타의 전력을 보유하지 않으며 국가의 교전권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이에따라 일본은 패전후 상당기간 해외파병은 엄두도 못낼 정도로 자위대 행동에 제약을 가했습니다.그러나 최근들어 일본의 국제적 지위 격상과 함께 「국제분쟁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력을 사용할수도 있다」는 적극적인 해석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김박사=일본의 해외파병은 1947년 제정된 평화헌법에 정면으로 상충됩니다.평화헌법 제9조는 전쟁포기,전력불보유,교전권부인등을 명시하고 있으며 주권국의 자위권은 인정하고 있으나 해외파병은 무슨 명분으로도 불가능합니다.1954년 일본국회는 해외출병을 포기하는 각서를 채택,세계 각국에 천명하기도 했습니다.PKO법안의 통과로 평화헌법은 개헌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수도 있습니다.현재 자위대 병력 20여만은 대부분 장교와 하사관등 직업군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순식간에 증강시킬 수 있습니다.자위대의 장비와 예산규모는 일본이 세계3위의 군사강대국임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헌법의 해석은 자국민이 하는 것이지만 일본은 이미 평화헌법정신을 위배해서 군사력을 증강해 오고 있습니다. ▲김대사=일본은 패전이후 미국의 안보그늘아래 경제성장에만 주력해왔고 바로 이것이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가능케한 절대적인 요인이었습니다.하지만 패전이후 일본이 국제적 「봉」이 아니라 힘에 알맞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적극적 사고방식이 폭넓게 확산됐습니다.전쟁경험세대들은 일본의 옛 영광을 찾자는 쪽보다 평화헌법에 만족하고 있습니다.PKO법안은 경제력의 급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군사대국화를 목표로 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특히 유엔결의에 의한 평화유지활동이 비군사적 분야에만 한정된다면 괜찮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어 야당의 반대도 명분론에 치우친 감이 없지 않습니다.일본이 과연 지금보다 적극적인 활동에 나설지는 동북아의 지역정세와 미국의 대일군사력인식 등을 종합적인 판단근거로 삼을 것으로 봅니다. ▲김박사=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예를 들더라도 군사적인 잠재력을 가진 나라가 힘을 발휘하지 않고 사장시킨 경우는 없습니다.스페인과 영국의 해군력,프러시아와 프랑스의 육군력,최근에는 게르만민족의 과학기술력이 세계지배를 꿈꾸며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데 사용됐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경제적인 발전으로 온 국민이 윤택한 생활을 해왔습니다.과학기술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달했습니다.미국의 첨단무기도 일본의 과학기술을 응용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일본 사회를 이끌고 있는 보수 엘리트 집단은 과거 일본의 영광을 되찾자는 신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일본의 정치·경제·사회전체는 전후 47년간 우익화·국수주의화·군사대국화 길을 걸어왔습니다.패전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대일본주의↔소일본주의,민족주의↔국제주의,군사대국주의↔경제대국주의의 논쟁을 거쳐왔으나 일본의 자세는 언제나 「우향우」였습니다. ▲김대사=군사대국은 기본적으로 정의에 문제가 있습니다.일본이 군사력에 치중하더라도 세계적인 군사대국이 아니라 지역적 강국에 머무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지나치게 「군사대국」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또한 미국과의 안보관계변화및 일본이 위치한 지역의 안보정세가 커다란 가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PKO법안이 통과된 마당에 일본은 이제 가까운 이웃인 한국과의 관계개선에 진정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동북아는 물론 아시아전체로부터 깊은 신뢰감을 얻을수 있습니다. ▲김박사=일본의 군사대국화는 4단계로 추진되어 왔습니다.1단계는 전후부터 60년대말까지 안보무임승차시기,2단계는 70년부터 80년대말까지 방위영역신장기,3단계는 90년부터 전후청산기,4단계는 90년대 후반의 미일안보동맹변화에 따른 다극화단계등입니다. 일본은 앞으로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어 동북아시아지역에서 역할을 증대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은 해외에 파병하기전에 교과서문제,정신대,재일동포처우개선,사할린동포송환 등 주변국들에 대한 도덕성을 우선 회복해야합니다. 또 국내의 민족주의적인 요소와 해외의 국제주의적 요소가 조화를 이루어 주변국의 의혹을 불식시켜 지도력을 발휘한다면 국제적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균형자역할을 하면서 과학기술력을 키워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태,조기총선실기 유력/정국 안정도모 일환/내주 의회해산 전망

    【방콕 연합】 방콕의 민주화 유혈사태 이후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태국정국은 국회를 해산하고 최단시일내에 총선을 치러 정통성있는 새 정부를 구성하기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국 정계의 한 고위 소식통은 1일 수친다 전총리 퇴임이후 가장 시급한 후임총리 선출문제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으나 정계와 학계,언론계,재계,민주연합(민주세력) 등 각계의 여론이 총선실시 방향으로 집약되고 있어 늦어도 금주중에는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수친다 전총리를 지지했던 친군부 5개 여당에서 새 총리를 선출하는 것은 국민의 정서상 어렵게 됐고,현실적으로 소수 야당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것도 정국안정을 기할 수 없기 때문에 군출신이 아닌 순수한 민간인을 과도정부의 총리로 임명하여 오는 10일 개헌이 끝나는대로 국회를 해산,총선정국으로 현헌정질서의 위기를 극복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대만재야 개헌안에 반발/1백만명 서명운동 돌입

    【대북 AFP 연합】 대만의 지식인들은 국민당이 국민대회에서 개헌안을 단독으로 통과시킨데 대해 크게 반발하며 국민대회의 폐지를 요구하는 1백만명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이기로 했다고 서명운동본부의 한 소식통이 28일 밝혔다. 대만 최고 학술단체인 중앙연구원의 고 친밍 교수는 이날 『개헌안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전국의 지식인을 중심으로 개헌안 반대 서명운동을 벌일 것』이라며 오는 30일 이전까지 1백만명이 서명에 참여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헌안 반대 1백만명 서명운동은 이번 개헌안이 그동안 지식인과 학생들이 폐지를 촉구해온 국민대회의 권한을 오히려 강화했을 뿐 아니라 뚜렷한 민주개혁을 제시하지 못 했다는 반발이 있는 가운데 나와 여야간에 격돌이 예상된다.
  • 대만,야 불참속 개헌 강행/국민대회권한 오히려 강화

    ◎재야·학자들 반발… 정국불안 우려 【대북 AFP UPI 연합】 대만의 국민대회는 27일 야당인 민진당 대표들이 불참한 가운데 8개항의 헌법개정안을 통과시켰으나 야당과 학생들이 그간 폐지를 촉구해온 국민 대회의 권한을 오히려 강화하고 헌법개정을 통해 뚜렷한 민주개혁안을 제시하지 못해 비판이 고조되고 있다. 이에따라 야당등 비판세력들은 물론 국민당내 일부 인사들마저 이번 개헌안이 피상적 개혁이며 앞으로 더 많은 문제와 정치불안을 야기할 것이라고 비판하는 등 헌법개정후 정국이 다소 불안정한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국민대회가 통과시킨 헌법개정안은 국민대회에서 간접선거로 선출토록 돼 있는 총통과 국민대회 대표들의 임기를 6년에서 4년으로 줄이고 대만성장과 대만 2대 도시인 대북과 고웅시장을 94년부터 직선으로 선출토록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총통선출을 위해 6년마다 한 차례씩 또는 필요한 경우에만 특별대회를 열었던 국민대회가 앞으로 매년 대회를 열수 있도록 했으며 총통이 대회에 출석해 국정을 보고토록 규정하고 있다. 헌법개정안은 또 국민대회가 감찰원·고시원 등의 관리들에 대한 총통의 임명을 승인하는 권한을 부여해 권한이 강화됐다.감찰원은 이날 헌법개정으로 선거로 선출되는 기구에서 총통이 임명하고 국민대회가 승인하는 기구로 바뀌었다. 헌법개정안이 통과된 후 민진당과 대만독립주의자들은 성명을 발표,『앞으로 정치적 동요가 예상된다.국민대회내 국민당 대표들이 권력을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국민당이 용인한 일개 당 주도의 헌법개정이었다』고 비판했다.
  • 태 의회/군부권한 축소 개헌안 승인/새달 최종표결뒤 발효

    ◎시민들 발포책임자 기소요구 시위 의회내 군권한 축소 상원 입법권은 박탈 민선의원 총리 선출 하원에 비상권 부여 【방콕 AP 로이터 연합】 태국의회는 수친다총리 퇴진 하룻만인 25일 민선하원의원중에서 총리를 선출하고 의회내에서의 군부권한 축소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작업에 착수,제1·2 독회를 거쳐 4개항의 개헌안을 일단 승인했다. 이들 개헌안이 최종 확정돼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앞으로 제3·4 독회를 거쳐야 하는데 3·4독회는 오는 6월10일에 있을 예정이다. 의회는 이날 의회의장 및 총리를 민선하원 중에서 선출토록 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표결에 부쳐 제1독회에선 각각 찬성 5백76,반대 0,기권 5표 및 찬성 5백33,반대 0,기권 9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승인한데 이어 제2독회에서는 거수로 통과시켰다. 또 ▲군부가 지명한 상원에 심의기능만을 부여,입법표결권한은 금지하고 ▲의회에 비상권한을 부여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2개 개헌안도 제1·2독회를 거쳐 통과시켰다. 태국의회가 이같은 개헌작업을 완료하는데통상적으로 한달 이상이 소요됨에도 불구,국민들의 강력한 민주개혁요구를 감안,이날 하룻동안 두 차례의 독회절차를 서둘러 마친데 이어 최종독회도 다음달 10일에 끝마치기로 했다. 한편 수천명의 군중들은 이날 개회중인 의사당 주변에서 수친다와 카셋 로자나닐 군최고사령관,이사라퐁 육군사령관,차이나롱 1군사령관 등 유혈사태를 일으킨 발포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였다.분노한 군중들은 삽시간에 3천5백여명으로 불어나 『살인자는 어디로 갔느냐』면서 발포책임자인 군장성들을 살인혐의로 법정에 세울 것을 요구했으며 일부 군중들은 수친다가 퇴임하면서 서명한 사면령에 대해 『사면령에 동의할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의회해산을 요구하기도 했다. 앞서 야당 의원들은 회기중 조복과 검은 상장을 착용하는 한편 사면령의 의회통과를 저지하겠다고 약속하고 나서 이 문제가 태국정국의 새로운 불씨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발포책임자 처벌싸고 정정불안 여전/야도 군부입김 무시못해 민주화 “한계”(해설) 태국정정이 대혼란의 씨앗이었던 수친다총리를 도려내고도 아직 안정으로의 대국면전환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시위군중에 발포명령을 내린 군부에 대한 사면문제에 부딪쳐,수습과 안정을 향해 똑바로 전진해야 될 수친다이후 정국이 심하게 휘청거리는 것이다. 반정부시위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수친다총리의 사임이 24일 낮에 발표되었지만 태국국민들은 이를 시큰둥하게 받아들였다.수친다의 정치무대 몰락은 이틀전 친군부5개정당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개헌안을 의회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물릴 수 없는 사실이 되어버렸다.그런데 별로 신통할 것도 없는 수친다의 사임발표는 「유혈사태 관련자에 대한 사면령」을 덤으로 얹고 있었고 이것은 곧 수친다이후 정국의 거대한 혹으로 부각,전체국면을 압도하고 말았다. 수친다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사면령은 「국왕명」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태국정부의 지휘조치들이 모두 이같은 형식아래 집행되는 점을 감안할 때 수친다의 독자결정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보다 정확하게는 수친다의 배경인 태국군부의 작품으로서민주화요구 세력을 비롯한 국민 일반의 뜻과는 무관한 월권행위로 비난받고 있다.민주화세력들은 지난 18일의 무력진압에 따른 유혈충돌 발생과 함께 발포명령권자들의 사법처리를 수친다 즉각사임과 동등한 비중으로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그러나 발포책임자의 재판회부는 이번 시위의 슬로건 밑에 강렬하게 숨쉬고 있는 「군부의 정치개입 반대」를 한층 명백하게 주장하는 것으로 군부에 위협감을 주기에 충분했다.군부는 「수친다카드」를 버리면서 군부가 누려온 특권적 지위를 온존시키기 위해 수친다의 사임성명에다 사면령을 교묘하게 접착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사임발표와 함께 군부볼모설이 나돌면서 수친다가 장기판의 졸 취급을 받고 있는 사실이 이를 강조하고있다.반정부시위에 참여했거나 심적으로 동조하는 많은 국민들은 사면령 취소를 요구하고 있으나 태국정치권의 움직임은 이의 현실화와는 약간 동떨어진 모습이다.의회개회중에 내려진 사면령은 법적 효력이 없어 의회에서 무효화시키겠다는 야당지도자의 발언이 민주화세력들을 고무시키긴 하지만 군부의 「발포책임 문제화불가」 입장에 대들기 보다는 모른척 넘어가려는 게 야권일부를 포함한 정치권의 풍향이다. 친군부연합집권 여당은 수친다의 축출에 동조하긴 했지만 민주화세력의 부르짖음에 부응해서라기 보다는 대세에 수동적으로 순응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만큼 군부의 비위를 건드려가면서까지 「민주화」를 추진할성 싶지는 않다.
  • 푸미폰국왕 적극 개입/태 유혈사태 수습국면

    ◎수친다,체포자 전원 석방·사면 【방콕 외신 종합】 지난 4일간 수많은 사상자를 낸 태국의 유혈시위사태는 21일 새벽(한국시간)푸미폰국왕의 적극개입으로 수친다 크라프라윤총리가 야당지도자 잠롱 스리무앙을 석방하는 한편 개헌과 이번 시위과정에서 체포된 모든 사람들을 사면,석방할 것을 약속함으로써 수습국면에 들어섰다. 이에따라 21일 태국정부는 시위과정에서 체포된 3천여명을 석방하는 한편 방콕일원에 내려졌던 통행금지를 해제했으며 방콕시내에 들어와 있던 군병력들이 철수하기 시작했다. 푸미폰국왕은 21일 상오2시 수친다총리와 잠롱 전팔랑탐당 당수,프렘 틴술라논다전총리,산야 타마삭전총리등 4명을 왕궁으로 불러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했으며 수친다총리와 잠롱전당수는 별도의 요담을 갖고 사태수습에 노력키로 합의했다. 이날 어전4자회담은 프렘전총리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수친다총리는 이를 위해 구금중이던 잠롱전당수를 석방했다.
  • “태 정국안정의 열쇠” 수친다 퇴진/개헌협상 난항땐 혼란 재연될듯

    ◎군위상 실추,영향력쇠퇴 불가피 군의 유혈 무력진압에 대한 태국국민들의 분노는 국민들로부터 절대적 존경을 받는 푸미폰국왕의 개입으로 대폭발의 위기를 넘겼다.그러나 이들의 분노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결코 아니다.따라서 앞으로의 사태추이에 따라 언제든 다시 폭발할 불씨는 계속 남아 있는 실정이다. 21일 발표된 수친다총리와 잠롱 전방콕시장간의 합의는 ▲시위와 관련돼 체포된 모든 사람의 석방과 사면 ▲헌법개정 ▲정치에 대한 군의 영향력 축소로 요약된다.이중 가장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25일 열리는 국회에서 헌법이 어떤 방향으로 개정되느냐는 것이다.헌법개정 내용이 수친다총리의 향배를 결정짓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태국의 민주화시위는 계속적인 군의 정치개입에 대한 국민의 불만에서 비롯됐다.처음엔 평화적이었던 시위가 격화된 것은 군의 무력진압이 많은 희생자를 불렀기 때문이다.따라서 시위의 원인 제공자이며 강경진압을 명령한 사람 즉 수친다가 물러나지 않는한 시위의 명분은 그대로 살아있는 셈이며 이번 시위에서 가족과 친지를 잃은 국민들의 응어리진 마음을 풀기 어려운 형편이다.따라서 헌법개정 협상이 빠른 시일내에 결과를 얻지 못하고 시일을 오래 끌 경우 국민들의 분노가 재폭발할 수 있다.그러나 현재로선 6월말까지 헌법을 개정하고 새 헌법의 발효와 함께 수친다가 물러나야 한다는 야당측 요구가 쉽게 실현될 것같진 않다. 수친다의 사임은 곧 군의 위상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결국은 수친다가 사임하는 길밖에 없음은 피할 수 없는 결론이지만 언제 어떻게 사임하느냐를 놓고 유혈진압에 대한 책임 문제가 걸려 있는 수친다는 물론 그동안 누려온 각종 기득권을 잃어야만 하는 군부가 어떻게든 문제를 일으키려 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결국 수친다의 퇴진문제가 걸린 헌법개정안을 처리하되 개정헌법을 수친다 이후부터 적용하려는 군부와 바로 수친다부터 적용시키려는 야당세력간의 줄다리기는 이제 그 무대를 거리에서 국회안으로 옮겨 제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이번 민주화시위로 오랜 세월 유지돼온 태국정치에서의 군의 지배구조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게다가 지난 수년간의 고도경제성장기간중 정치적 자유를 갈구해온 태국국민들은 이번 시위를 통해 이같은 갈구를 보다 성숙된 정치의식으로 표출시키는데 한걸음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수친다가 물러난다고 해도 태국정국의 앞날이 밝은 것만은 아니다.우선 수친다 이후 누가 총리가 될 것인지가 당장 문제가 될 것이다.이제까지 태국정계를 장악해온 군부가 또다른 인물을 내세워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려들 가능성이 매우 크다.사실 주요 야당인사들도 대부분 육사출신으로 구성돼 있을만큼 군부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태국정계에서 갑자기 군부의 영향력을 모두 제거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일 것이다.따라서 앞으로도 정치에 대한 군부의 영향력은 어느정도 유지되겠지만 이번 민주화시위를 통해 시민혁명을 경험한 태국 국민들이 과거와 같은 군부의 독주를 더이상 허용치 않으려들 것이므로 그 영향력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 국왕중재에도 기대반·실망반/수습국면 접어든 태 이모저모

    ◎“개원전 수친다 사임” 권유설도/ADB선 58만불어치 기술원조 승인 ○…TV방송에 비친 수친다 총리와 잠롱 당수의 국왕 알현 모습은 싸움질을 하다 들킨 학생이 선생님앞에 꿇어 앉아 호된 꾸지람을 듣는 모습을 방불. 국왕 앞에 꿇어 앉은 수친다 총리는 다소 의기소침한 표정이었다. 입헌군주제하의 상징적인 군주이지만 국민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는 푸미폰국왕이 올해로 46년째를 맞는 재위기간중 시위사태 해결에 직접 개입한 것은 지난 73년의 민주화 시위 이후 이번이 두번째. 국왕은 20분간의 교시를 통해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을 뿐이다』고 개탄하면서 두 지도자의 합심협력을 신신당부. 한편 주태 한국대사관과 교민회는 이번 방콕의 소요사태에서 피해를 입은 교민은 한명도 없는 것으로 이날 상오 확인됐다고 밝혔다. ○…야간 통금령에도 불구하고 방콕 시내 람캄행 대학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학생들은 국왕 알현 장면을 방영하는 TV방송을 지켜보다 수친다 총리가 화면에 비치자 일제히 야유와 비난 구호를 퍼부었다. 이들은 푸미폰 국왕의 사태 개입에 기대감을 표시했으나 수친다 총리의 즉각 사임이 이뤄지지 않은데 실망한 듯 환호와 박수의 강도는 미온적인 편이었다. ○…수친다 총리의 사임이 확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푸미폰 국왕이 20일밤 수친다총리에게 국회에서 개헌을 하기 전이라도 이번 사태의 원만한 수습을 위해 물러나도록 권유했다는 사실 여부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유혈사태로 10억달러이상의 손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진 태국에 58만달러어치의 기술원조를 승인했다고 21일 밝혔다. 이번 원조는 ADB가 관리하는 일본특별기금에서 충당하는 것으로 1백24개 마을에 거주하는 약1백만명의 주민들에게 안전한 물공급을 하기위한 1억달러 상당의 프로젝트준비를 위한 것이다. 현재 42%의 마을만이 상수도 이용이 가능한 상태다. ○…2천여명의 재소자석방등 수습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으나,거리를 지나가던 군용트럭을 향해 시민들이 돌을 던지기도 하고 군용헬리콥터가 상공을 비행하는등 아직까지 시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또한 25일 있을 예정이던 헌법개정안에 대한 토론은 수친다총리의 요청으로 29일까지 연기됐다고 우크릿 몽골나민 하원의장이 발표했다. 한편 사망자 숫자가 1만2천명이라는 전단들이 거리에 뿌려진 가운데 야당지도자들은 정확한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기로 약속했다. ○…미국 행정부 관리들은 푸미폰 태국 국왕의 사태 개입이 현재의 정치적 위기를 평화적으로 종식시키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리처드 솔로몬 미국무부 부장관이 20일 밝혔다.
  • 「6시간 축제」 민자전당대회 이모저모

    ◎“힘모아 대선승리” 다짐과 환호와…/“후보선출” 선언에 전원 기립축하/수락연설 도중 16차례 박수받아/노 대통령,“당대회 용광로삼아 무쇠결속 이루자” 14대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민자당의 제2차전당대회가 19일 상오 전체대의원 6천8백82명중 6천7백13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려 시종 차분한 분위기속에 6시간동안 진행됐다. 이날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대통령후보 선출 행사.이종찬후보의 경선거부로 사실상 단독후보가 된 김영삼후보가 유효표 66.3%의 높은 지지율로 민자당 대통령후보로 결정됐다. ○의장 만장일치 선출 ▷대의원입장◁ 이날 대회는 당총재인 노태우대통령이 김대표와 김종필·박태준 최고위원및 당3역등 지도부와 함께 대회장에 입장하면서 시작. 이날 대회장에는 「6·29는 민주마당,5·19는 화합마당」 「뜻모아 후보선출 힘모아 정권창출」등의 대형 현수막이 나붙어 분위기를 진작. 이날 공식행사는 상오10시 사회자의 성원보고로부터 투표직전까지 1시간동안 당기입장,당약사 보고,의장단선출,총재·최고위원선출,총재치사순으로 예정된 순서에 따라 일사천리로 진행. ▷의장단선출◁ 김종필최고위원의 개회선언에 이어 임시의장으로 선임된 정석모의원은 곧바로 전당대회의장단 구성안건을 상정,대의원들의 만장일치 박수속에 박준규국회의장을 전당대회의장으로,구용상 전남 화순지구당위원장과 김장숙전국구의원을 부의장으로 하는 의장단을 선출. 박의장은 인사말에서 『2백만 당원들이 마시는 우물속에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일이 없도록 협조해달라』며 경선을 거부한 이후보 지지대의원들의 돌출행동을 사전 경계하며 김후보에 대한 압도적 지지를 유도. 대의원들은 또 노총재를 비롯,김대표와 김·박최고위원등 현수뇌부의 재선출을 결의. ▷총재연설◁ 노대통령은 총재연설을 통해 『후보의 자유경선은 당원동지 모두의 뜻이며 국민의 바람』이라고 강조하고 『바로 이것이 6·29선언의 정신을 한차원 더 높게 승화시키는 일이라 믿고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도록 최선을 다했다』고 언급. 노대통령은 그러나 『후보경선에 나섰던 동지가 대회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경선을 거부했다』고 이후보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표출한뒤 『지금 이순간 나의 심정은 침통하기 이를데 없다』며 참된 경선이 되지못한 아쉬움을 표시. ○“경선거부 납득못해” 노대통령은 또 『부동산투기를 제거하고 2백만호 주택건설을 과감히 추진,땅값과 집값을 잡은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 가장 보람있는 일』이라고 회고하면서 『이번 대회를 거대한 용광로로 삼아 우리 동지들은 무쇠와 같은 결속을 이뤄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하자』고 역설,장내는 우렁찬 박수. ▷투표진행◁ 상오11시쯤 이원경선관위원장의 투표개시선언과 함께 시작된 6천7백13명의 참석대의원들의 투표권행사는 점심시간과 겹쳐 하오1시 이후까지 진행. 노태우총재는 이선관위원장과 이춘구사무총장 등의 안내를 받으며 김영삼후보·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등과 함께 제1기표소에서 가장 먼저 투표. 이에 앞서 이선관위원장은 후보자등록결과보고와 함께 후보자 약력 및 투표절차 등을 소개. 이선관위원장은 먼저 ▲26세로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 이후 9선의 관록 ▲3선개헌반대투쟁 및 야당총재4선▲집권당 대표 경력등 화려한 김후보의 정치이력을 상세하게 소개했으나 경선거부를 선언한 이후보에 대해선 『이후보 약력이 아직까지 선관위에 도착하지 않았다』면서 『배포된 유인물을 참조해 주기 바란다』고 약력소개를 생략. 한편 이날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6천6백60명이 투표에 참가,99.2%의 높은 투표참가율을 기록했으며 나머지 53명은 일괄적으로 기권처리. 한편 이후보 선거대책본부인사들은 이날 상오 대회장부근 탄천주차장에서 이후보의 기자회견문을 비롯한 홍보유인물을 나눠줘 눈길. ▷김후보선출선언◁ 이날 하오 1시5분쯤부터 20개 투표함을 모두 개봉하고 개표에 들어간 당선관위는 개표시작 1시간 45분만인 2시50분쯤 작업을 모두 완료. 참석대의원 6천7백13명중 53명이 기권,6천6백60명이 참가한 이날 투표결과는 김후보 4천4백18표,이후보 2천2백14표,무효 28표로 공식집계. 이어 이원경선관위원장으로부터 선거개표결과를 서면으로 보고받은 박준규의장이 하오3시15분 『김영삼후보가 민자당의 14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발표했고 팡파르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전원이 일제히 기립,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당선을 축하. ○일부선 “이종찬” 연호 노총재와 김후보가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맞잡고 대의원들의 환호에 답례하자 풍선5백여개를 엮어만든 대형 당기 2개가 공중으로 떠오르면서 노총재와 김후보의 대형초상화를 병풍처럼 펼쳐 분위기를 한껏 고조. 김후보가 이어 수락연설을 하는동안 대의원들은 「대선승리」등을 강조한 대목에 이르러서는 모두 16차례의 힘찬 박수로화답하며 「김영삼」을 연호했으나 일부 대의원들은 간간이 「이종찬」을 연호하기도. ▷후보수락연설◁ 개표결과가 공식발표된뒤 김후보는 수락연설을 통해 『오늘 여러분께서 저를 민자당대통령후보로 선출해 주신데 대해 기쁨에 앞서 무거운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고 일성. 김후보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를 의식,『이 뜻깊은 자리에 우리당의 몇몇 동지가 함께 자리하지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우리모두 겸허한 자기반성으로 당의 단결과 화합을 더욱 굳건히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나가야 할것』이라고 강조. 김후보는 또 『이번 대선은 21세기 길목에서 우리민족의 장래를 결정짓는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규정짓고 『통일을 앞당기고 민주화를 완성시키며 제2의 경제도약을 이룩하느냐 못하느냐가 결판날 것』이라고 그 중요성을 거듭 역설. ▷노대통령 축하연설◁ 노대통령은 개표가 끝난 이날 하오 3시15분쯤 다시 대회장에 입장,김후보가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개표결과가 발표되자 김후보의 손을 들어주AU 단상앞으로 나가 환호하는 당원들에게 인사. 이순간 여성당원 2명이 노대통령과 김후보에게 축하꽃다발을 각각 증정. 노대통령은 김후보의 수락연설이 끝난뒤 짤막한 축하인사말을 통해 『2년전 김후보의 구국적 결단이 있었기에 민자당이 창당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당운영에서도 김후보는 3당통합정신을 구현하는데 앞장서 왔다』면서 『기필코 대통령선거를 승리로 이끌어 당원의 기대에 보답해 달라』고 당부. 노대통령은 이어 『나는 당헌 제23조에 의거 대표최고위원에 김영삼최고위원을 지명한다』고 선언. ▷이후보측반응◁ 이날 대회는 이후보의 경선거부로 비교적 분위기가 가라앉았으며 이후보측 인사들의 참석여부가 주된 관심으로 부각. 이후보 선거대책위원장인 채문식고문과 윤길중고문을 포함,박철언·김용환·장경우·오유방·김현욱·조영장의원과 박범진·박명환·박주천당선자등 대책위원들은 불참. 그러나 이후보의 경선거부에 반대한 이한동·박준병의원을 비롯,심명보선거대책본부장과 김중위·최재욱·강우혁·이진우의원 및 양창식·남재두·구천서당선자 등은 참석해 한표를 행사. ▷식전행사◁ 공식 행사에 들어가기 앞서 열린 식전행사는 연예인 박상규씨의 사회로 상오9시부터 50분간 진행. 식전행사에서는 풍물패의 풍물놀이에 이어 가수 조영남·주현미씨가 「우리는」「짝사랑」등을 열창,흥을 돋우었으며 민자당의 여성당원으로 구성된 21세기 합창단이 「선구자」를 합창. 이어 북방외교,보통사람의 시대,지방자치제 실시,3당합당등을 내용으로한 「6공화국이걸어온 길」을 멀티비전을 통해 상영.
  • 해산불응 군중에 M16 수천발 난사/방콕 유혈사태 이모저모

    ◎수친다 “퇴진불가”… 잠롱 “연금상태”/방콕포스트지,4개면 백지발행/희생자수 설만 무성… 학교·관공서 3일간 휴무 ○…군은 정부대변인의 비상사태선포 발표후 4시간여만에 병력수송용 장갑차(APC)3대를 앞세우고 트럭에 실려 시위대 집결지인 사남루앙공원 인근에 투입되기시작. M16으로 무장한 병력은 이어 군중이 에워싸고있는 독립기념탑쪽으로 이동,이들이 설치한 불탄자동차 등 바리케이드에서 1백m 떨어진 지점에서 정지해 시위대처럼 일단 연좌. 군은 이어 해산토록 최후경고했으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총격을 가하기 시작. 진압군 바로 뒤를 따랐다는 AP기자는 군중을 향해 총격이 가해졌는지 아니면 공포가 발사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당시의 긴박감을 전달. 이들 목격자는 현장에서 수천발의 총성이 들렸다면서 시위군중이 황급히 인근건물로 대피하는 등 일대혼란이 빚어졌다고 강조. ○…군발포로 인명피해가 난 것으로 전해지기는 했으나 얼마나 다쳤는지에 대해서는 설만 무성한채 확인이 어려운 상황. 발포현장에 있었다는 목격자들은총격이 시작되자마자 5명이 쓰러지는 것을 봤다면서 시위대가 수천명이었던만큼 피해도 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흥분. 당국도 비상사태 선포후 발포와 희생자발생 등에 관해 일체 함구해 갖은 억측만 난무. ○…방콕시를 비롯,18일 새벽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된 지역의 각급 학교들은 이날 새학기를 맞아 개학할 예정이었으나 이번 비상사태로 개학이 미뤄졌고 정부기관과 금융기관들도 이번 사태와 관련,3일동안 휴무에 돌입. ○…태국이 18일 새벽 방콕일원에 선포한 비상사태령은 1952년에 제정된 것으로 국가안보를 위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이 주요내용.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정부는 ▲이른 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어떠한 장소든 수색할 수 있고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어떠한 사람이든 체포할 수 있으며 ▲모든 집회를 금지시킬 수 있고 ▲국가안전이나 공공의 평화 및 질서에 위해가 된다고 생각되는 내용을 포함하는 모든 출판물을 금지하고 ▲국가안전과 관련,누구든 해외출국을 금지 할수 있는 것으로 돼있다. 이에 근거하여 18일자 방콕포스트는 2면에서 5면까지를 흰 여백으로 남긴채 신문을 발행했고 신문제작도 이로 인해 평소보다 2시간이나 지연. ○…시위의 표적이 돼온 수친다총리는 17일 상황이 급속히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가뭄 피해지역을 방문해 민주인사의 단식투쟁에 찬사를 보내는 등 「여유」를 과시. 그는 가뭄이 심각한 북부지역을 돌아보면서 수행기자들에게 국민이 「원하는」개혁을 꼭 실행하겠다고 강조함으로써 조기퇴진 불가태도를 사실상 재확인. ○…유혈사태이후 처음으로 어두운 표정으로 TV에 모습을 드러낸 수친다총리는 군의 발포가 반정부시위군중들이 파괴행위를 자행하는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변명하면서 잠롱당수가 군중들을 선동,경찰서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토록 부추겼다고 비난했다. ○…이날 0시30분 발동된 비상사태에도 불구,2만여명의 지지자들에 둘러싸여 정부청사로 통하는 팡파교 근처에서 군경과 대치중이던 잠롱 전당수는 수도방위의 최고책임자인 이사라퐁 육군사령관에 의해 아무런 부상을 입지 않은채 모처로연행돼 시위현장을 떠난것으로 목격자들이 전했다. □태국정치위기 일지 ●1973년 ▲10월14일=약40만명의 군중 타놈 키치카초른 총리의 독재 저항시위,경찰과 충돌로 1백명이상 사망. ●1976년 ▲10월6일=학생주도의 타놈 귀국반대운동과 관련,경찰과 우익계 준군사집단이 4천명 학생이 집결한 타마사트대학을 공격,46명 사망.계엄령 선포,의회와 헌법기능 정지. ●1992년 ▲3월22일=총선실시 ▲4월5일=친군부연합이 총리로 91년 쿠데타 주역인 군사령관 수친다 크라프라윤을 지지한다고 발표. ▲4월7일=수친다 총리 임명. ▲4월20일=군중 5만명 의사당 밖에서 반정부 시위. ▲5월4일=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 단식투쟁 시작. ▲5월9일=잠롱 단식중지,수친다 사임요구투쟁 계속 다짐. ▲5월10일=잠롱 시위중지,개헌안 포기하면 5월17일 반정부시위 재개선언. ▲5월13일=야당,17일 반정부 시위 결정. ▲5월17일=경찰과 시위군중 사이에 충돌발생. ▲5월18일=방콕과 그 일원에 비상사태 선포.
  • 수친다 사임번복이 도화선/태국 유혈사태 배경과 정국전망

    ◎군부,집권연장 겨냥 초강경/「민선총리」 개헌안 무산 위기 태국의 긴장정국이 결국 유혈충돌이라는 최악의 길로 치닫고 말았다.17일 저녁 20만명의 대군중이 방콕 중심가에 운집했을 때만해도 사태의 민주적인 해결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분위기였으나 18일 신새벽과 함께 시위군중들에게 전해진 것은 기대했던 집권층의 요구조건 수락성명이 아닌 군·경의 무차별총성이었다. 수친다총리의 즉각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시위는 지난 4일부터 본격화했으나 무력탄압 강행이 예상됐던 집권세력은 그동안 엄포만 놓았을 뿐 이를 행동화하지 않았었다.뿐만아니라 요구조건 수락 내지는 타협할 용의까지 비춰 11일까지 연속된 반정부시위는 피흘림없이 소기의 목적을 거둔듯 했다.그러나 이날 새벽 총성으로 군부의 절대지지를 업고있는 수친다총리의 사임거부 「본뜻」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진 것이다. 유혈충돌 발생과정을 두고 시위군중이 먼저 과격해져 무력해산을 유발했다는 주장도 없는 건 아니다.그러나 민주화시위의 핵인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의 제3불순세력 개입 주장이 보다 설득력있게 들릴 만큼 이날 군경의 무력진압은 적극적인 공세로 일관됐었다.정부의 비상사태선언은 계엄령보다는 한급 아래이지만 집회시위를 원천봉쇄하고 있어 수친다총리를 위시한 군부세력의 집권유지를 위한 강경국면 전개가 전망된다. 무력진압 반나절전 북부지방시찰중에 반정부시위에 관해 아주 유화적인 제스처를 썼던 수친다총리는 유혈사태발생과 함께 방콕으로 귀환하면서 국회를 해산할 계획을 갖고있지 않다고 말했다.비상사태 선포를 축으로 시국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이다.이같은 발언은 자신의 즉각사임의 차선책으로 거론되던 「새총선 실시를 위한 국회해산」의 타협안마저 거부하겠다는 의사로 보여진다.그러면서 수친다는 국회가 의결하면 사임하겠다고 말하고 있으나 친군부정당세력이 과반수의석을 차지하고있는 의회에서 그의 불신임결의안이 가결될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또한 민주화시위의 대안으로 채택돼 큰 기대를 모았던 총리의 민선의원 자격요건및 군부직접지명의 상원권한축소 등 개헌안논의도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높다.수친다총리는 그전부터 개헌안이 통과되더라도 차기총리부터 해당되지 자신에게 소급적용할 수 없다고 반발해왔었다. 한마디로 태국군부는 지난 32년 절대왕정 폐지이래 16번의 쿠테타를 통한 집권전통을 총칼로서 유지 보전하겠다는 의지인 것이다.경제개발과 함께 국민의식이 옛날과 사뭇 달라졌지만 태국군부에 대한 정치불개입 요구는 아직도 「시기상조」라는 태도이다.따라서 의외의 변수가 돌출되지 않는 한 민주화세력으로부터 「시대착오」의 집단으로 규정받고있는 태국군부의 집권유지 강경노선은 강화될게 뻔하다.
  • 불 개헌안 하원 통과/EC통합협정 국내비준 일환

    【파리 AP 로이터 AFP 연합】 프랑스 국회(하원)는 13일 마스트리히트 EC통합 협정의 국내 비준절차를 거치는데 필요한 헌법개정안을 압도적인 찬성으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이 개정안은 오는 6월2일 야당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상원에서 다시 표결에 들어가게 되며 상원을 통과할 경우 국민투표를 거치거나 다시 상·하 양원에 회부되어 양원 모두에서 5분의3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공식적으로 승인된다. 프랑스 국회는 이날 재적의원 5백74명중 4백75명이 출석한 가운데 개정안에 대한 찬·반 표결을 실시,찬성 3백98표 반대 77표로서 헌법개정 승인에 필요한 의결정족수인 2백38표를 훨씬 넘어서는 압도적 표차로 개정안을 승인했다.
  • 태 「총리사임개헌안」 합의/새달 중순발효… 시위 종료

    【방콕 AP UPI 연합】 군총사령관 출신인 수친다 크라프라윤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며 연 일주일째 계속된 대규모 반정부시위를 주도해온 태국 야당세력은 11일 정부측과 헌법개정안에 극적 타결을 본후 시위를 끝내기로 합의했다. 팔랑탐(진리의 힘)당 당수인 잠롱 스리무앙 전방콕시장을 비롯,4개 야당및 학생지도자들은 이날 상오 친군부 5개 여당대표들과 협상을 갖고 선출직 하원의원만 총리에 임명될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친다총리의 사임을 기정사실화한 내용의 개헌안에 합의했다.
  • 수친다 태총리 사임 거부/TV연설/야당의 개헌요구는 수용

    ◎13만 반정시위… 긴장 고조 【방콕 AFP UPI 연합】 수친다 크라프라윤 태국총리는 국민들의 사임요구 시위등으로 정국위기가 고조되고 있음에도 불구,8일밤 자신은 결코 이같은 시위압력에 밀려 물러나지않겠다고 밝혔다. 수친다 총리는 이날 하오10시 그의 사임을 요구하는 13만명 규모의 시위가 방콕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TV·라디오로 생중계된 15분간의 연설을 통해 『의회밖에서 일어나고있는 사임요구 시위에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내가 자리를 내놓게 된다면 그것은 의회절차를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친다 총리는 한편 총리자격을 의원으로 제한하자는 야당측의 헌법개정요구에대해 『헌법개정에 반대하지는 않는다』고 밝혀 사임가능성을 완전배제하지는 않았으나 『헌법개정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측통들은 수친다 총리가 헌법개정에 동의한 점을 지적,야당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하면서 결과적으로 사임하게 될지라도 체면을 유지할 수 있는 타개방안이 될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 다시 새기는 그 충절/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

    ◎서울신문사·국가보훈처 공동선정/“무력으로 독립쟁취” 만주 항일투쟁 이끌어/한일 합방직후 망명,신흥무관학교 등 설립/독립군단체 통합 주도… 임정국무령도 역임/의병활동·교육자로 평생 구국활동… “광복전 유해 옮기지 마라” 유언도 선열들의 애국·애족사상을 길이 본받기 위해 서울신문사가 마련한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역임한 이상룡선생이 선정됐다. 5월의 독립운동가 이상룡선생은 1896년 경북지역의 의병으로 활동하다 한일합방이후인 1911년 만주로 망명,그곳에 한인사회를 건설하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독립전쟁을 위한 인재양성과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다. 1926년 1월 국무령을 사임한 이 선생은 32년 5월12일 74세의 노령으로 중국 길림성에서 서거했다. 이 선생의 생애와 사상 업적을 되새겨 본다. 1925년 3월23일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은 미국의 위임통치안을 제안한 이승만대통령을 탄핵면책하고 국무총리 박은식을 대통령으로 추대했다. 박은식대통령은 임시정부헌법을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개헌하고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국무령에 만주지역에서 가장 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와 통군부를 이끌던 이상은선생을 지명했다. 1911년 만주로 이주한 이 선생은 만주에 항일독립운동기지를 만들어 청년들에게 군사교육을 시키는 한편 동포들에게 독립운동의식을 고취,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이 국무령은 만주에서 독립군을 지휘하며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서온 김좌진·오동진·김동삼 선생들을 국무위원에 임명하고 임시정부가 활발한 무장독립투쟁을 이끌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국무위원들은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창조파와 개조파,국내파와 해외파 등으로 나뉘어 임시정부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 1926년 1월 이 선생은 초대 국무령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조직인 의정부·신민주·참의부의 통협에 심혈을 기울이고 힘썼다. 윤봉길의사가 상해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투척,일본 군국주의 지도자들을 살해한 뒤 12일만인 1932년 5월12일 이 선생은 74세로 만주 길림성 소성자에서 『외세때문에 좌절하지 말고 더욱 면려하여 독립을 관철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노환으로 선거했다. 70평생중 반세기에 걸친 이 선생의 일관된 구국노력은 의병활동·민족계몽운동·독립군지도자·임시정부 정치지도자·교육자·사상가 등 당시의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다. ○32년 74세로 별세 이 선생의 깊은 학식과 큰 인품은 조국은 되찾겠다는 의지와 정열로 승화되어 민족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많은 추종자들을 낳았다. 이 선생은 1858년 11월24일 경북 안동에서 유학자 이승목씨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이 선생은 유학자로서의 학문적인 수업을 쌓다가 1896년 일자 명성왕후를 시해하자 영남지방의 의병에 참가했다. 1905년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지방유지들과 합자,가야산에 군사기지를 건설할 계획을 계획을 세웠으나 자금부족과 일본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선생은 김동삼 등 동지들과 안동에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결성,민족각성과 청소년 교육등 민족자강운동에 헌신했다. 1910년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하자 이 선생은 국내최대의 항일비밀경사 신민회에 가입했다. 신민회는 전국 13개 도의 유지들과 부호들을 규합,만주에 거대한 조선인 자치구를 설립할 목적으로 이민을 모집하고 있었다. 이시영·이회영·이동영·주진수·김창환 등 구한말의 관리와 양반·선비들은 가산을 정리하고 무인지경이던 만주로 이민을 떠났다. 1911년 4월 53세의 이 선생은 52명의 대가족을 인솔하고 만주로 이주했다. 이 선생은 만주의 땅을 매입하여 조선인 촌락을 만들고 학교와 교회를 설립,청년들을 교육시키고 무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쟁을 일으킬 목적으로 동지들과 함께 개척이민의 선두에 섰다. 이 선생은 만주에 도착하자마자 유하현 삼원포에 거류민단조직인 경학사를 설립,사장에 취임했다. 경학사는 1914년 부민단으로 발전되고 신흥학교를 설립,인재를 양성했다. 이 선생은 3·1운동직후에는 한족회를 설립,동포들에게 민족자긍심과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한인청년들을 신흥무관학교에 입교시켜 1천여명에게 군사교육을 받게 했다. 이 선생은 만주지역에서 활동하는 무장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독립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서로군정서를 설립,총재에 취임했다. 부총재에는 여준,정무청장은 이탁,참모부장은 김동삼,독립군사령관엔 지청천을 임명,일제에 항거하는 한편 국내 진공작전계획도 세웠다. ○서로군정서 총재 당시 만주에는 3·1운동이후 일제의 탄압과 만행에 시달린 조국의 열혈청년들이 대거 이주해와 2천여명을 무장킬 수 있었다. 이 선생의 서로군정서 조직은 당시 해외독립운동단체중 최대규모였다. 1919년 4월13일 이동영·이시영선생이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자 이 선생은 『한민족에 두개의 정부가 있을 수 없고 광복운동에는 단결이 가장 큰 선결조건』이라는 이유를 들어 참모들을 대동하고 임시정부 산하의 군사조직으로 들어갔다. 이 선생은 상해 임시정부에서는 외교와 내치·재정을 담당하고 만주의 항일무장세력은 단결해서 군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부하들을 설득,조선의용대를 조직하고 북만주와 시베리아에서 활동중인 홍범도·이동주 등과 항일연합전선을 펼 것을 모색했다. ○통군부 확대개편 이선생은 1920년초 북경에서 개최된 조선인 군사통일회에 참가,박용만·신숙 등과 군사기구의 통합방안을 협의하고 22년 6월에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이룬 통군부를 조직했다. 그뒤 이 선생은 통군부를 다시 확대개편하여 17개 독립운동단체로 하여금 통의부를 구성하는 등 독립군의 군세확장에 혼신의 힘을 다하였다. 전통깊은 유학자집단에서 태어나 성장한 이 선생은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외교나 교육에 치중하지 않고 일생동안 무력항일투쟁만을 주장했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일본제국주의와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수 밖에 없고 이를 위해서는 중국·소련 등과 연합해서 독립군을 조직,화력과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1925년 3월 미국에 체류하면서 위임통치를 주장하던 이승만대통령이 탄핵되자 국무령에 취임한 이 선생은 임시정부를 독립군지휘관으로 구성,활발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려고 작정했다. 그러나 이 선생의 구상은 내분으로 결실을 보지 못하고 지리멸렬하게 되자 26년 1월 국무령직을 사임하고 다시 만주로 돌아왔다. 만주에 돌아와 독립운동단체들을 통합,지도하던 이 선생은 일본이 만주국을 설립한 32년 5월12일 노령으로 별세했다. 『국토를 찾기전에는 내 유해를 고국에 싣고 가지말라』고 한 유언을 남김으로써 이 선생의 유해는 광복된지 45년만인 90년 9월 국가보훈처 주관으로 중국 흑룡강성에서 봉환,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유족으로는 증손자인 항회·범회씨가 서울에 살고 있으며 선생의 기념사업회 결성을 준비중이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역사적 평가/20년대 독립군총사로 불멸의 업적 석주 이상룡 선생은 70생을 오직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민족지도자였다. 이 선생은 1896년부터 1910년까지 향리에서는 의병의 지도자로서,민족계몽운동가 또 2세교육자로 활동했으며 1911년 만주로 이전해서는 민족의 선구자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 선생은 독립운동의 방략으로 교육·산업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병행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이를 동지들과 함께 실행에 옮겼다. 그는 만주의 한인사회에서산업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동포들의 법적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중화민죽회에 진정서를 제출하는등 외교적인 노력을 통해 한인들의 권익옹호에 앞장섰다. 이 선생은 이주한인들의 생업을 위해 벼농사를 적극 권장,지도해 만주에서 쌀을 생산했으며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된뒤 독립군을 조직했다. 그는 경학자·부민단·한족회·군정부·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 등으로 이어지는 항일 민족독립운동단체를 직접 지도해 만주지역의 민족지도자로서 불멸의 자취를 남겼다. 이 선생은 노년에는 김동삼을 위시한 여러 혁명가들을 지도함으로 써 항일대열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1923년 해외 항일독립운동단체의 책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상해의 국민대표회의에 김동삼을 파견,6개월동안 의장을 활동시켜 항일독립운동의 전략·전술을 수립하게 했다. 유학자로서,의병으로서,때로는 민족의 교육자요 지도자로서 다양한 역할을 하던 이 선생은 1932년 5월 조국광복을 보지 못하고 망명지에서 순국하고 말았다. 조국을 위해 헌신한그의 혁명가적인 행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의 귀감이 되어 남을 것으로 확신한다.
  • 옐친의 의회해산권등 불허/러시아,개헌안 승인/인민대표회의

    【모스크바 AP AFP 이타르­타스 연합】 러시아 인민대표대회는 18일 대통령의 의회해산권을 인정하지 않는 등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권한을 약화시킬 새로운 헌법안의 핵심조항들을 승인했다. 인민대표대회는 이날 러시아 최고회의가 승인한 「헌법개정안의 전체적인 개념과 러시아의 기본법 초안의 핵심조항」들을 찬성 6백64,반대 1백39,기권 72로 통과시켰다. 이에 앞서 인민대표대회는 17일 옐친대통령에게 보다 많은 권한이 주어지는 개정안을 비롯한 4개의 안이 상정됐으나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개정안만을 심의하기로 결정했었다. 이 개정안은 현재 옐친대통령이 의회의 동의없이 각료를 임명할 수 있는 조항을 개정,최고회의가 대통령이 임명한 총리와 각료들을 승인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또한 1천46명의 인민대표대회 대의원중에서 선출된 2백50명의 대의원으로 구성된 최고회의에 특별법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을 번복시킬수 있는 권한 뿐만 아니라 예산·조세및 금융제도에 관한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 러시아의회/군축등 국제조약 준수 거부

    ◎구소련 해체 부인… “사실상 헌법적 쿠데타/토지사유화 개헌안도 부결/미선 경원중단 강력 경고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러시아의 인민대표대회는 17일 구소연방의 해체를 공식 인정하기를 거부했으며 또 구체제에서 조인된 군축등 국제조약을 러시아가 준수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그러나 이같은 투표결정은 러시아 상설입법기관인 최고회의에서 이미 구소연방해체를 뜻하는 러시아의 독립국가연합 참여를 승인한 사실을 고려할 때 법적유효성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또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구소련에 의해 체결된 조약은 모두 준수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했었다. 러시아의 국호문제를 다루면서 함께 제기돼 채택된 이 두 사항은 그러나 확실한 표결수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쇼킨 부총리는 이날의 이 투표에 대해 『인민대표대회의 헌법적 쿠데타 기도』라고 말했다고 이타르타스통신은 보도했다. 이 투표는 이날 구소연방 시절에 제정된 러시아헌법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왔으며 지난 90년 선출된 공산주의자 우세의 인민대표대회 의원들은 구소연방 소속 대신 독립국가연합 구성국으로서 고쳐달라는 옐친정부의 요구를 거절한 것이다. 이와함께 대표대회는 구체제 체결 조약의 준수를 확약해달라는 미국주재 러시아대사 블라디미르 루킨의 수정안 요청마저 거절했다.이에따라 이론적으로는 구소련에 의해 조인된 군축,헬싱키인권조약및 러시아의 세계은행조약들이 영향을 받게 됐다. 한편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옐친대통령은 18일쯤 인민대표대회에 나와 최종연설을 할 것이란 전망이 나돌고 있다. 미국관리들은 대표대회의 결정이 서방이 제공하기로한 2백40억달러의 원조를 위태롭게 한다고 경고했다. 【모스크바 AFP 연합】 러시아 인민대표대회는 국민 개개인의 토지 사유권을 인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토지개혁에 관한 헌법 개정안을 과반수 이상의 반대로 17일 재차 부결시켰다. 인민대표대회는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에 대한 전면적인 권리 또는 일정기간의 사용권한이 개인과 기업,그리고 단체에 주어져야 한다』는 내용의 헌법 개정안을 지난 16일 부결시킨데 따른 개혁파 대의원들의 반발로 이날 또다시 표결에 붙인 결과 전날에 이어 과반수 이상의 반대로 폐기시켰다.
  • 옐친,경제개혁 완화 선언/총리직 곧 사임… 대폭 개헌/인민대회연설

    【모스크바 AP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연방 대통령은 10일 인민대표대회를 지배하는 구공산당원들과의 타협안으로 경제개혁을 완화하며 올해 말까지 총리직을 사임하고 내각을 대폭 개편할 것이라고 밝혔다. 피곤한 표정의 옐친 대통령은 이날 인민대표대회에서 행한 간략한 즉흥연설을 통해 이같이 밝혔는데 그는 경제 포고령을 발표할 수 있는 권한을 유지하는 대신 이같이 양보했다. 이날 인민대표대회는 찬성 5백36,반대 2백17로 옐친대통령에게 총리를 지명할것과 정부 각료들의 명단을 인민대표대회의 승인을 받기위해 제출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옐친대통령의 이같은 양보가 있은 후 옐친대통령측과 보수파 대의원들은 모두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밝혔다. 반옐친 진영의 대의원인 아만겔디 툴레예프는 『나는 대통령으로서의 옐친의 입지가 약화됐다고 본다』고 말했다.그러나 옐친대통령 보좌관인 갈리나 스타로보이토바는 옐친대통령이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계속 보유했다면서 『대통령 포고령이야말로 개혁의 핵심 도구』라고말했다. 이날 옐친대통령의 연설에 앞서 옐친대통령의 강력한 권력은 보장하나 총리직은 사임할 것과 1개월내로 후임총리를 지명할 것을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그러나 옐친 정부의 피토르 아벤 대외무역장관은 나중에 옐친이 오는 12월까지 총리직에 남아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 개헌싸고 보혁공방/옐친,회의도중 퇴장/러시아인민대회

    【모스크바 AP DPA 로이터 연합】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은 8일 국정전반에 관한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헌법개정안을 추진하는 한편 현 정부와 개혁정책에 관한 보수파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개각을 준비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옐친 대통령측은 개혁현황 점검과 신헌법안 마련을 중심의제로 지난 6일부터 회의에 들어간 인민대표대회에서 국정 전반을 관장하고 군통수권을 가지는 임기 6년의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적 헌법개정안 초안을 제의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한편 옐친대통령은 9일회의도중 강경파들로부터 고함이 터져나오자 회의장을 퇴장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