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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야, 원포인트 ‘면피국회’ 이달 열 듯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8일 “1월 중순까지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ICL) 관련법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정 대표는 여의도당사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갖고 이같이 밝힌 뒤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대학당국이 협조해 학생들의 등록시한을 연장해주면 1학기부터 시행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취업후 학자금 제도를 이번 1학기부터 시행하는 방안이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주당은 정 대표의 제안에 원론적 찬성 입장을 보이면서도 여야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와 병행해서 시행하기로 한 국·공·사립대 등록금 상한제 도입을 원포인트 국회 개회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우제창 원내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해 12월 30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합의한 등록금 상한제를 정부·여당이 정리한 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공식적으로 의사일정을 협의해 온다면 정 대표가 제안한 원포인트 국회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교과위도 오후 전체회의를 열어 취업후 상환 특별법안 및 한국장학재단 설립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한편, 정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새해를 정치개혁의 원년으로 만들겠다.”면서 “국회의원의 독립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줄세우기 구태를 없애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상향식 공천은 각 정당의 재량에 맡겨서는 실천할 수 없으므로 법에 강제조항으로 규정하자.”고 제안했다. 정 대표는 특히 “올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혁명 수준의 공천개혁을 하겠다. 공천 배심원제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편중된 권력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본격적인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올해 안에 개헌 논의를 마무리 짓는다면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행정구역개편과 선거제도개선에 대해서도 “올해 중에 매듭짓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국회 선진화와 관련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결의 원칙이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국회 내에서 폭력을 휘두른 의원은 가중처벌하고 의원직을 상실하도록 하는 강력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안처리는 이번 국회에서 하고 법안의 적용은 19대 국회부터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새해 정국 시계제로

    새해 정국 시계제로

    2010년 벽두부터 정치권에 전운(戰雲)이 감돈다. 당장 4일부터 2009년의 ‘잔여 전투’가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말 예산안과 노동 관련법이 단독 처리된 과정을 정치쟁점화하려 하고 있다.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계획이다. 예산안을 예산부수법안보다 먼저 통과시킨 점, 예결위 회의장을 여야 합의 없이 바꾼 점, 법사위 산회 후 하루가 지나지 않았는데도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한 점 등을 국회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 정국의 뇌관은 오는 11일 발표될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다. 여야가 사활을 건 승부를 다짐하고 있다. 여당은 행정중심복합도시특별법(세종시법)의 개정에 실패한다면 책임론이 제기되면서 대혼란에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 조기전당대회 불가피론이 불붙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지 않아도 ‘민본21’을 비롯한 당내 소장그룹이 조만간 조기 전대론을 재론할 태세다. 후반기 국정운영의 앞날을 가를 지방선거의 필승을 위해 지도부를 일신해야 한다는 명분이다. 여권 일각에서 “정부가 수정안을 발표하더라도, 세종시법 개정안은 6월 지방선거 이후에 처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민주당은 여권 내부의 균열을 노려, 세종시법 개정안을 무산시키는 데 총력을 다짐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야 이명박 대통령에 맞서는 ‘MB 대 반(反)MB’ 전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후 야권 후보 단일화로 지방선거 승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이 ‘단일대오’로 지방선거를 치르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4대강 예산과 노동관련법 처리 과정에서 무력감을 보였다는 자평이 늘고 있다. 당내 비주류 쪽은 3일 “지난해 말 이낙연·추미애 두 중진의원이 당론과 다른 방향으로 상임위를 이끈 것은 지도력 부재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지방선거 전에 강력한 리더십이 완성돼야 한다.”는 주장과 함께 조기전대론이 제기되고 있다. 무소속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는 지방선거 공천권을 둘러싼 지분 싸움으로 확대될 개연성이 크다. 몇 차례 고비를 넘기더라도 정치 지형을 뒤흔들 요소는 곳곳에 숨어 있다. 개헌 등 정치개혁 과제도 그 하나다. 한나라당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오는 5월 임기를 마치기 전에 성과를 내기 위해 개헌 작업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여권 일각에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동의안과 관련해 2월 임시국회 처리를 주장하는 한나라당과 이에 반대하는 야당과의 공방도 첨예해지면서 정국의 불안정성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결국 6월 지방선거로 수렴된다. 올해 정치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셈이다. 차기 총선을 앞둔 국회의원 개개인의 생존에 관한 문제이며, 차기 대선의 향배를 가늠할 예비전이기 때문이다. 분위기는 벌써 달아오르고 있다. 일부 야당 의원이 “여당의 독선적 국정운영을 견제하기 위해 반드시 지방권력을 교체해야 한다.”는 신년 음성메시지를 유권자들에게 보냈을 정도다. 이지운 이창구기자 jj@seoul.co.kr
  • [사설] 정부·정치권 새해 민심 무겁게 받들라

    질곡의 한 해를 보내고, 다시금 굳은 의지로 내일의 희망을 동여매는 새해 아침에 섰다. 밖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잔설(殘雪)을 헤쳐가야 하며, 안으로는 정파와 지역, 그리고 이념의 깊은 골을 메우고 소통과 통합을 일궈가야 할 출발점에 섰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서, 이제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한 대장정에 나서야 할 시점에 섰다.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가는 노력이 중요하겠으나 현실은 거꾸로 갈등과 분열을 키울 요소들로 가득하다. 세종시 문제가 놓여 있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난해와 같은 정파 싸움과 이념대치가 계속되는 한 올해도 분열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우리의 빈약한 정치자산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새해를 몇시간 남겨놓고까지 준예산 편성을 걱정하게 만드는, 낡은 대립의 정치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국가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다. 정치권의 대오각성과 함께 제도 개혁이 불가피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정치권은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여야간 충분한 논의를 보장하되 다수결에 의한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국회법 등 정치제도 전반을 개혁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새해 민심에도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울신문을 비롯한 다수 언론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새해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쏟아야 할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을 꼽았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육박한 반면 보수나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대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국민 다수는 지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틀을 벗어나 보다 실용적이고 민생친화적인 정책노선을 희구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심을 무겁게 받들기 바란다.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 연장한 비상경제체제의 틀 속에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자립기반을 확충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당리당략에 맞춰 민의를 재단하고 국민을 편 가르는 분열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친서민 정책 경쟁, 여기에 자신들의 살 길이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 日총리 “후텐마, 괌이전 무리”

    │도쿄 박홍기특파원│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가 26일, 내년 5월까지 결론을 내릴 예정인 오키나와현 미군의 후텐마비행장 이전에 대해 “미국령 괌으로의 이전은 무리”라며 국내 이전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민방 라디오 프로그램인 라디오닛폰에 출연해 “괌을 하나의 후보지로 검토했었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억지력 관계에서 볼 때 괌에 후텐마의 모든 기능을 이전하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했다. 하토야마 총리는 총리 취임 이후 처음으로 개헌의 필요성도 거론했다. 그는 “(헌법) 9조를 문제 삼을 게 아니라 지방과 중앙 정부의 관계를 크게 바꾸는 지역주권이라는 의미에서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헌법 9조는 전쟁을 영구히 포기하고 군사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hkpark@seoul.co.kr
  • 준예산 편성시 주택대출도 중단 가능성

    오는 31일까지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오면 정부는 ‘준(準)예산 편성’이란 비상처방을 쓸 수밖에 없다. 아직은 여야 모두 준예산 상황까지는 가지 않으리라고 보고 있다. 준예산은 전년도 예산에 따라 정부에 예산 집행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1960년 개헌 당시 내각책임제 아래 국회가 해산되는 상황을 가정해 도입됐으나 실제 편성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서민·중산층 신규사업 올스톱 헌법과 국가재정법은 ▲헌법이나 법률에 의해 설치된 기관 또는 시설의 유지·운영비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을 위한 경비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비 등을 준예산으로 집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어디까지 ‘유지·운영’에 해당하는지 등 준예산의 대상과 범위에 대한 조항은 전혀 없다. 우선 정부가 발행한 각종 국고채 이자, 전체 예산을 승인받은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지원, 국민연금, 정부의 통상적인 운영비, 방위비, 긴급재난보호비 등이 준예산 편성 대상으로 꼽힌다. 하지만 서민과 중산층 지원을 위한 모든 신규사업은 추진하기 어렵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도나 중증 장애인연금, 저소득 치매노인 약제비 지원 등이 이에 해당한다. 법적 의무지출 대상이 아닌 일자리사업 등 정책사업도 중단된다. 4대강, 희망근로, 청년인턴, 신종플루 항바이러스제 추가 비축, 보금자리 주택 확대 공급 등 새롭게 예산을 받아 시행하는 신규사업에는 제동이 걸린다. 계속비 사업 외의 사회간접자본(SOC) 사업도 지연이 불가피하다. 계속비란 계속사업 중에서도 국회가 사전에 연도별 예산지출 계획을 모두 확정해 준 예산을 말한다. 올해 SOC 예산 24조 8000억원 가운데 이미 국회의 승인을 받은 계속비 사업은 5조 2000억원 규모다. 전체 SOC 사업의 80%가량이 중단되는 셈이다. ●국민연금·고용보험은 그대로 예산에 준용해 집행되는 각종 기금도 일부 중단된다. 법적으로 지출이 의무화된 국민연금이나 고용보험, 산재보험, 기초노령연금 등은 지급된다. 하지만 국민주택기금을 통해 실시하는 주택·전세자금 대출이 중단될 수도 있다. 또 지방자치단체에 내려 보내는 국가보조금이 끊겨 복지 분야 등 재정운영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미국에서는 클린턴 행정부 때인 1995년 말에 이듬해 예산안이 통과되지 않아 연방정부가 일시 폐쇄됐고, 연방공무원도 일시 해고된 적이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미국과 달리 공공기관 대부분이 헌법과 법률에 의해 설치된 터여서 문을 닫거나 할 상황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창구 임일영기자 window2@seoul.co.kr
  • [사설] 준예산 사태로 서민 울리는 일 없어야

    이제 엿새 남았다. 엿새 안에 새해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우리는 사상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맞는다. 1960년 개헌과 함께 도입됐으나 지금껏 한번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제도다. 워낙 파장이 큰 까닭에 헌법 규정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준예산을 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묵시적 공감대 속에 관련 법령조차 변변히 마련하지 않은 비상제도다. 준예산을 짜게 되면 공무원 급여 등 정부 부문의 경상경비와 계속사업비만 올해 예산에 준해 집행할 뿐 정부의 새해 재정집행 계획 대부분이 중단된다. 국정 마비사태가 빚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 서민들이 받을 고통이 걱정스럽다. 대학생 100만여명이 혜택을 누릴 등록금 취업후 상환제는 국회의 예산심의 지연으로 이미 내년 1학기 시행이 어려워졌다. 청년인턴제와 희망근로사업 등 정부가 청년실업 완화와 영세서민 지원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사업도 중단된다. 사회복지예산 대부분이 중단되면서 그 피해가 수백만, 수천만명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이명박 대통령이 어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공무원 급여지급 중단 등 비상대책을 각 부처에 지시한 것도 준예산 사태의 파장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정부는 즉각 준예산 사태로 서민들이 받을 고통을 최소화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예산배정 절차를 최소화할 방안을 찾아 국회 통과 즉시 예산을 집행할 체제를 갖춰놓아야 한다. 여야도 대오각성하기 바란다. 4대강 예산 싸움을 이제 끝내기 바란다. 쟁점인 한국수자원공사 4대강 사업비 이자보전비용 800억원은 결코 여야가 함께 건너지 못할 강이 아니라고 본다. 한나라당이 일부 삭감 용의를 밝힌 만큼 민주당도 전액 삭감을 고집해선 안 될 것이다. 전체의 0.03%도 안 되는 돈 때문에 내년 예산을 통째로 묶어버리는 우를 우리 국회가 범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끝까지 믿고 싶다.
  • [서울광장]‘해봤어?’와 ‘생각대로’/박대출 논설위원

    [서울광장]‘해봤어?’와 ‘생각대로’/박대출 논설위원

    1993년 김영삼 정권 첫해다. 지지율은 87%까지 치솟았다. 강삼재가 교육개혁 전도사가 됐다. 한번은 교육부 장관을 불렀다. 집무실을 잠그고 다그쳤다. 욕설 섞인 거친 표현도 내뱉었다. 열정이자 몸부림이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이해찬이 나섰다. 모두 현실의 벽을 뚫지 못했다. 의욕이 앞섰다. 이명박 정부가 재도전에 나섰다. 교육만 아니다. 세종시, 4대 강, 개헌, 행정구역 개편,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등 줄줄이다. ‘해봤어?’가 도전의 원천이다. ‘해봤어?’는 정주영이 원조다. 이 대통령은 평생 체득했다. 청계천 신화는 그 산물이다. A가 세종시 계약을 맺었다. B가 승계했다. A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다. 대리인 자격이다. 원주인은 충청인이고 국민이다. B는 이 대통령이다. 뒤늦게 계약 수정을 원한다. 이유는 이렇다. “계약이 잘못됐다. 행정중심복합도시는 국정 비효율이다. 바로잡아야 한다.” 백년대계를 놓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그 논쟁으론 혼란만 배가된다. 본질은 세종시 해결이다. 세종플루란 말도 나온다. ‘심각단계’다. 여야와 보수·진보 대결에서 여여 분열, 충청과 비충청도 갈등이다. 정운찬 총리가 계약 수정을 외쳤다. 계약 당사자도 아니다. A가 받아들일 리 없다. 원주인의 양해 과정이 생략됐다. 계약이 잘못됐다며 수정 내용만 두서없이 내놨다. 계약 반대는 B의 소신이라고 한다. 하나 이행 약속은 열번도 넘는다. 반대는 그때 무효화됐다. 세종시 정국은 제로섬게임 양상이다. 비충청의 아랫돌 빼서 충청의 윗돌 괸다는 의심이 나온다. 정부는 그럴 일 없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의심은 여전하다. “준비 과정을 내부적으로 하고, 대통령께서 국민들께 진솔하게 이해를 구했다면 혼란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란 남경필 의원의 분석이 와닿는다. 정 총리는 “보완 개선안을 내놓았을 때 국민이, 또 충청인이 하자고 하면 원안대로 하겠다.”고 했다. 박 전 대표는 대리인이어서 맘대로 고칠 권한이 없다. 원주인이 양해하면 따를 뿐이다.그래서 원주인의 양해부터 구하라고 했다. 무조건 원안 고수가 아니다. 보완 개선안을 내놓고 국민이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그 반대라면 계약대로 하면 된다. 위험스러운 ‘찬반의 2분법’으로 풀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B가 나섰어야 했다. 결자가 해지하는 게 옳다. 정 총리는 결자가 아니다. 그에게 맡겼다가 혼란을 더 키웠다. 이 대통령은 95일만에 나섰다. 어제 대통령과의 대화에서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늦었지만 빠른 길이다. 어젠다 홍수를 걱정하기도 한다. 도대체 백년대계가 몇 개냐는 푸념도 들린다. 그러나 그 또한 MB스럽다. ‘해봤어?’의 도전 정신이 깔려 있다. 국민들은 역대 최대의 표차로 이 대통령을 당선시켰다. ‘해봤어?’를 ‘생각대로’ 실현시키라는 주문이자 바람이었다. 정주영은 직원들을 이끌고 현대왕국을 건설했다. 관료나 정치인들과 함께 했다면 성공했을까. 정치에는 생산적인 부분도, 비생산적인 부분도 있다. 정치의 모든 비용을 고려해야 하는 게 국정이다. 무너지는 두바이는 비용이 너무 들었다. 의욕만으론 부족하다. 세종시엔 복잡한 셈법이 깔려 있다. 진솔한 사과는 출발점이다. 충청과 비충청이 ‘윈-윈’하는 알파(α)가 필요하다. 과정에서는 ‘내 생각대로’를 최대화해야 한다. ‘내 생각대로’가 늘면 백년대계는 성공한다. ‘네 생각대로’가 많으면 ‘3년 소계’에 그친다. 박대출 논설위원 dcpark@seoul.co.kr
  • [여의도 돋보기] 고질적 계파갈등에 시달리는 現최장수 정당

    한나라당이 21일 창당 12주년을 맞았다. 한나라당은 1997년 11월 당시 집권당이던 신한국당이 조순 전 총리가 이끌던 ‘꼬마 민주당’과 합당하며 탄생했다. 조 전 총리가 지은 이름이다. 현존하는 정당 가운데 최장수의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전신인 신한국당, 민주자유당, 민주정의당 등과는 달리 12년 중에 10년을 야당으로 지냈다. 여당으로 2년을 보낸 한나라당이 집권 연장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친이-친박 대립 속 공공연히 분당설 한나라당은 1997년, 2002년 두 차례 대선에서 거푸 고배를 마시면서도 당명을 지켜내고 명맥을 이어온 점에 애착을 갖고 있다. 특히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소추로 인한 역풍,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붙은 ‘차떼기당’의 오명, ‘천막 당사’의 굴욕을 특유의 응집력으로 극복해온 자부심이 강하게 배어 있다. 하지만 고질적인 계파 갈등과 당·정간 괴리는 169석을 가진 거대 여당의 혈액순환에 장애가 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세종시 문제로 다시 불거진 친이(親李·친이명박)-친박(親朴·친박근혜)간 갈등은 ‘한지붕 두가족’의 한계를 극명히 보여준다. 친박계는 세종시 수정 추진에 반발, 이성헌 사무부총장이 사퇴한 데 이어 당내 세종시 테스크포스(TF)에도 참여하지 않고 있다. 친박계와 여권의 대립각은 야당과 정부만큼이나 첨예하다. 친이계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며 배수진을 치는 모양새다. “딴 살림을 차릴 때가 됐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돈다. 여권 일각에서는 개헌을 통한 분당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여당 답지 않은 여당’의 현실에 대한 자조도 흘러나온다. 국정과 정치 두 분야에서 공조와 협력이 이뤄져야 할 당·정 관계가 과거 집권 시절보다 크게 퇴보했다는 푸념이다. ‘대통령이 정치를 모른다.’는 투정도 쉽사리 잦아들지 않고 있다. ●권력지향 풍토에 공채 직원들 동요 이런 문제는 150여명이나 되는 사무처 직원들의 사기저하로 이어진다. 한나라당 고유의 사무처 직원 공채 제도는 당의 현재를 지탱하고 미래를 담보하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민주공화당 시절 김종필 전 총리의 제안으로 한국 정당사 최초로 도입한 사무처 공채 제도는 그동안 현 여권의 인재 풀 역할을 해왔다. 1991년 민자당 때 채용된 ‘민자 1기’로부터 최근 선발된 13기까지 통합 기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박보환·정양석·김금래·이정현 의원, 장다사로 청와대 민정1비서관, 이병용 국무총리실 정무실장 등도 모두 공채 출신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부쩍 공채 직원들의 동요가 눈에 띈다. 1996년 공채5기로 채용된 한 직원은 “야당 10년 때와 별반 달라진 게 없다.”면서 “‘권력은 누구와도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한다.”고 씁쓸해했다. 당·정간 괴리, 여권내 권력지향적 풍토에 대한 실망이다. 한 고참 당료는 “과거 3김(金) 시대의 강력한 1인 중심 체제 때와는 다른 게 현실”이라면서 “당 안팎의 세력간 권력 투쟁이 장기화되면 또다시 민심의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12주년을 자축하면서도 고질적인 계파갈등과 정치미래에 대한 갈증에 허덕이고 있는 게 현재 집권 여당의 현주소다. 홍성규 허백윤기자 cool@seoul.co.kr
  • “세종시 특임 뭐하나” 냉랭한 與

    특임장관실이 16일 1급과 2급 고위공무원 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조직 정비를 사실상 매듭지었다. 정무직 차관 1명과 특임실장 1명, 실장의 직무를 보좌하는 조정관 2명 등 정원 41명으로 구성됐다. 1급인 특임실장에는 김연광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이 내정됐고, 2급인 조정관(국장)에는 김좌열 전 대통령실 국정홍보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이 임명됐다. 나머지 조정관 1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특임장관실의 한 관계자는 이날 “나머지 조정관은 개헌이나 행정구역 통폐합 등의 현안을 감안, 관료 중에서 고르기 위해 장관이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조직 구성은 주호영 장관이 ‘9·3 개각’으로 임명장을 받은 지 48일째 만이다. 특임장관실이 지난달 13일 개청한 뒤로도 거의 한 달이 지났다. ‘특임(특별임무)’이 주어지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인원을 운영하려던 초기 계획 때문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다 ‘세종시 특임’이 발생, 이번에 인원을 대거 보충했다. 지각 출범 탓인지 특임장관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아직 냉랭하다. 한마디로 “주 장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더 높다. 특히 초·재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특임장관이 당 최고위원회의에 얼굴만 내미는 자리냐.”는 비아냥이 나온다. 한 초선 의원은 “주 장관하고 밥 한번 못 먹어 봤다.”면서 “세종시니 뭐니 말이 많은데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려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청을 높였다. 세종시와 관련한 당내 중책을 맡고 있는 한 중진 의원도 “주 장관이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나를 핫바지로 아는 것 아니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과거 김영삼 정부에서 특임장관에 해당하는 정무장관을 지낸 홍사덕 의원은 “당내 일부 불만은 특임장관의 역할을 잘못 이해한 데 따른 것”이라고 두둔했다. “잡음 없이 조용히 일을 처리하는 게 특임장관의 일”이라는 얘기다. 여권의 한 주요인사도 “특임장관의 업무 특성상 동선을 모두 공개하고 다닐 수 없는 노릇 아니냐.”고 거들었다. 친이의 한 주류 의원은 “이제 걸음마를 뗐는데 좀 더 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의원들이 청와대에 할 말이 있다면 박형준 정무수석을 통하면 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여전히 “몇몇 중진 빼고는 만나 본 사람이 없다는데, 숨어 다니며 일하느냐.”는 격한 반응이 일고 있다. ‘시장’의 불만을 어떻게 돌려놓을지 갓 활동을 본격화한 주 장관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국회 대정부질문] 4대강·미디어법도 설전

    5일 국회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는 ‘세종시’라는 거대 쟁점 말고도 이명박 정부의 핵심 추진과제인 4대강 살리기 사업과 헌법재판소의 미디어법 선고, 개헌론, 효성 비자금 수사 등이 도마에 올랐다. 4대강 사업을 놓고는 여야 간 공방이 이어졌다. 민주당 김부겸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은 ‘주력업종이 토건, 대표브랜드는 4대강’이라고 맹신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독선과 아집 때문에 혈세 수조 원이 공중으로 날아가게 됐다.”고 비판했다. 이에 한나라당 조원진 의원은 “4대강 사업은 단순한 치수가 아니라 수질개선을 통해 먹는 물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이라면서 “반드시 성공적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헌재의 미디어법 결정에 대해선 민주당 김영진 의원이 “헌재가 법안 처리과정에 위헌성이 있으니 정치권에서 다시 논의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면서 “정운찬 총리는 시행령 개정을 속도전식으로 밀어붙이는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을 적절히 통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 총리는 “정부로서는 국회에서 제정된 법률이 차질없이 시행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책무이고, 개정 방송법은 지난 1일 효력이 발생했으므로 후속 법령을 조속히 마련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 총리의 도덕성이 다시 제기되면서 ‘정운찬 청문회’가 재연되기도 했다. 김영진 의원은 “인사청문회 직후 정 총리의 서울대 교수 재직 시절 겸직위반 사실이 연일 시끄럽게 드러났다.”면서 “하나금융 경영연구소 고문, 포스코 청암재단 이사, 외국계 투자회사인 한신평 사외이사 등 10년간 소속기관장 승인 없이 줄곧 영리활동을 해 왔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는 “법을 위반하지 않았다.”며 청문회 당시와 같은 답변을 되풀이했다. 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이 대통령 사돈기업인 효성그룹 비자금 수사에 대해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혹하게 수사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네티즌도 찾아낸 해외부동산을 못 찾느냐.”고 지적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세종시 자족기능 20%는 돼야”

    정운찬 국무총리는 5일 세종시 수정 추진과 관련, “정부와 전문가 등이 여러 검토를 했지만 세종시에 대한 구체적, 확정적 대안을 (아직) 갖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초기 강력한 인구 유입과 고용 효과를 위해 행정기관 이전보다는 기업 위주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정부 부처를 먼저 옮기고 기업이 오기를 바라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포항과 울산, 광양 등을 거론하며 “기업도시를 만들어 놓으면 자족도시가 되는데 굉장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총리는 ‘수정안을 충청권 모두가 환영할 만한 대안으로 만들 자신이 있느냐.’는 질문에 “자신있다.”면서 “이미 2, 3개 대학이 오겠다고 얘기했다.”고 소개했다. 정 총리는 ‘세종시의 자족기능이 6~7%에 불과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몇 퍼센트(%)까지 올려야 한다고 보느냐.’는 한나라당 정진석 의원의 질문에 “20% 정도는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 추진이 혁신도시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세종시를 어떻게 만들든지 간에 이미 계획된 혁신도시는 제대로 만들 것이니 믿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세종시도 백지화나 무력화는 절대 없다. 원안까지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검토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정 총리는 “이명박 대통령과 몇 차례 대화를 나눴는데 ‘원안대로’라는 생각은 안 갖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세종시 건설이 수도 분할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자유선진당 박상돈 의원의 질문에는 “분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 총리는, 민주당 박병석 의원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를 설득하겠다고 한 발언이 ‘모르니까 가르쳐 주겠다.’는 뜻 같다.”고 지적하자, “용어가 잘못됐다. 취소하겠다. 사과하겠다.”고 했다. 개헌과 관련, 정 총리는 “이 대통령이 ‘개헌을 한다면 앞으로 1년 안에 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들었다.”고 전하면서 “개헌 문제는 정치일정도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총선과 대선이 가까워 오면 이해관계가 첨예하기에 합의도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대안마련前 세종시 논쟁 중단”

    “대안마련前 세종시 논쟁 중단”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3일 세종시 문제와 관련, “정부가 대안을 내놓을 때까지는 무익한 논쟁을 중단하자.”고 제안했다. 안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부가 국민과 충청도민이 동의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는다면 이를 검토하고 치열한 논쟁을 거쳐 결론을 낼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4대강 사업이 “1석7조의 다목적·다기능 사업으로, 저비용·고효율의 대표 사례가 될 것”이라면서 “4대강 사업에는 정치와 이념이 있을 수 없다.”며 야당에 협조를 요청했다. 안 원내대표는 수질 개선, 물 부족 해결, 생태계 복원, 홍수 예방, 일자리 창출, 국토 균형발전, 녹색 성장 등을 그 순기능으로 제시했다. 국회 선진화 방안으로는 상시 국정감사, 법안 자동상정 제도 도입 등을 내놓았으며 “국회 질서위반행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 이를 처벌하도록 국회법을 손질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안 원내대표는 “서민살리기와 신종 플루, 아동 성폭력, 저출산·고령화, 사교육 폐해 등 당면 민생현안 해결에 국회가 중심에 서야 한다.”며 국회가 ‘생활정치의 장(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新)중산층 육성계획’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소액서민금융재단을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확대 개편하며, 전세자금 공급을 확대하고, 카드 수수료 및 통신료를 인하하는 내용 등이 담길 예정이다. 동시에 민생 정책을 공동으로 논의하는 여야 정책위의장 회동의 상설화를 제안했다. 교육문제와 관련, 안 원내대표는 “사교육을 줄이는 방법은 공교육 정상화밖에 없다.”고 밝혔다. 논란이 되고 있는 외국어고 문제는 “급격한 변화보다는 공교육 강화, 신입생 선발 등 점진적·제도적 개선을 통해 근원적 해결책을 제시하겠다.”고 말했다. 교사에 대한 직무평가제도 도입을 적극 검토하고 영어 공교육 서비스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아동 성폭행범에는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한편, 성범죄자의 신상공개를 확대하고 전자발찌 착용기간을 연장하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범죄 예상지역에는 내년 상반기까지 폐쇄회로(CC)TV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대북 관계에서는 ‘인도적 상호주의’를 강조하며 국군포로 귀환 문제를 꺼냈다. 경제협력 역시 핵과 연계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기본 시각을 그대로 반영했다. 안 원내대표는 개헌문제도 거론했다. “여야가 참여하는 개헌특위를 구성, 내년 초부터 지방선거 때까지는 개헌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3共~유신시대 풍운아 이후락씨 별세

    박정희 시대의 실세 중 실세였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에서 뇌종양과 노환이 겹쳐 별세했다. 85세. 그는 지난 5월 이 병원에 입원했다. 이 전 부장은 1924년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졸업했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1기로 졸업해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육군 정보국 차장과 주미대사관 무관을 거쳤다. 미 중앙정보국(CIA) 연락책도 맡았다. 이 전 부장이 고(故) 박정희 대통령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61년의 5·16 군사쿠데타였다. 5·16 주체세력은 미국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당시 CIA와 가까웠던 이 전 부장을 영입했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공보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미국의 지원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았다. 1963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 이 전 부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기용됐다. 이 전 부장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 출범과 함께 권력핵심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렸다. 박 전 대통령은 1969년 3선(選) 개헌의 후폭풍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 전 부장을 주일대사로 보냈으나 1년 뒤 핵심자리인 중앙정보부장으로 발탁했다. 이 전 부장은 1971년의 대통령선거를 사실상 총지휘했다.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1971년의 대선에서 패배한 뒤 이씨에게 “나는 박정희 후보에게 진 것이 아니라 이 부장에게 졌소.”라는 말을 남겼다. 당시 관권 및 금권 선거를 총지휘한 그를 비꼰 것이다. 이 전 부장은 ‘대한민국 제1세대 대북 밀사’로도 유명하다. 1972년 5월2일 자살용 청산가리 캡슐을 몸에 감추고 3명의 수행원과 함께 채 판문점을 넘었다. 그는 3박4일간의 방북기간 중 김일성 주석(당시 직함은 노동당 총비서)을 두 차례 만나 북측으로부터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7·4 공동성명의 기본 원칙’을 받아 왔다. 북측의 김영주(김일성 주석 동생)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을 대신해 박성철 제2부총리가 그해 5월29일부터 서울을 답방, 박 전 대통령 및 이 전 부장과 수차례 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그는 공작정치의 대명사라는 말도 듣는다. DJ 납치 사건의 주범으로도 꼽힌다. 1973년 7월 일본 도쿄에서 발생한 DJ 납치사건의 주동자로 지목되면서 박 전 대통령의 신임을 잃었다. 특히 1973년 12월1일 당시 윤필용 수도경비사령관이 사석에서 “박정희의 후계자는 이후락”이라고 발언한 게 파문을 일으켜 중앙정보부장 자리에서 경질됐다. 권좌를 떠난 뒤 신변에 위협을 느낀 이 전 부장은 “조계종 회의에 참석한다.”는 이유로 그해 12월 말 극비의 정보 문서들을 챙겨 영국령 바하마로 출국했다. 사실상 망명이었다. 박 전 대통령은 망명한 이 전 부장이 자신의 치부를 폭로할 것을 우려해 귀국을 종용했다는 설이 정설로 돼 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으로부터 “모든 것을 용서한다.”는 친필 편지를 받고 1974년 2월 귀국했다. 1970년 말 국회의원을 잠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신군부 세력으로부터 부정축재자로 몰리면서 공직에서 사퇴하고 정치활동을 규제받았다. 1985년 정치활동 규제에서는 풀렸으나 외부행사에 나오지 않으며 사실상 은둔생활을 해 왔다. 이 전 부장은 입원하기 전까지 경기 하남시에 있는 별장에서 칩거하며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1녀. 빈소는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발인은 2일 오전 8시30분. (02)440-8922.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박정희 前대통령 말년 개헌 뒤 하야하려 했다”

    “박정희 前대통령 말년 개헌 뒤 하야하려 했다”

    박상범 전 청와대 경호실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집권)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박 전 경호실장은 지난 23일 ‘10·26’ 30주년을 앞두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박 전 실장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현장에 있던 경호원 중 유일한 생존자이다. 당시 박 전 실장은 경호계장이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은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 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전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한 것을 들어본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 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는 증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박 전 대통령은 1~2년 뒤에 하야하려는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박 전 실장은 “한때 경호실은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리는 조직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지금 경호실은 그렇게 권위적이지도 않다.”면서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 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전 실장은 “포항제철(현 포스코) 제2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다.”면서 “당시 박 전 대통령을 모시고 (아산)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불어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온다며 전문가들이 건의를 하자 박 전 대통령이 현지에서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국감 하이라이트] 양형委 “음주상태 성범죄 감형제외 검토”

    [국감 하이라이트] 양형委 “음주상태 성범죄 감형제외 검토”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신영철 대법관 재판개입 파문’과 ‘조두순 사건’ 등 두 사건에 대해 여야 의원들의 거센 질타가 이어졌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은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안까지 거론하면서 용퇴를 촉구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올해 서울중앙지법 등 전국 26개 법원 497명의 법관들이 참여한 판사회의에서 81.3%가 신 대법관이 부적절하다는 결론을 냈지만 대법원은 구두 경고만 했다.”면서 “신 대법관이 계속 일하는 것이 국민 신뢰에 부응하는 것이냐.”고 비난했다. 이에 대해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은 “답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 대답을 회피했다. 박 의원은 이어 “민주당에서는 신 대법관에 대한 탄핵 소추안에 대해 준비했고 여당의 찬반을 떠나 탄핵안이 국회에 안건으로 올랐을 때 국민들로부터 어떤 판단을 받게 될지 지켜보자.”고 강조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홍일표 의원은 “신 대법관에 대해 도덕적으로 지적할 수 있지만 헌법에 신분이 보장된 법관을 아무 때나 사퇴시킬 수 없다.”면서 “사법부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어 조두순 사건으로 촉발된 성범죄 양형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은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양형기준을 만든 뒤 성범죄 형량이 무거워진 것이 아니라 조두순 사건으로 국민 여론이 들끓고 난 뒤 양형이 무거워졌다.”며 양형기준위원회의 선제적 양형기준 마련이 미흡했음을 지적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도 조두순에게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이 인정돼 형이 깎였던 점과 관련해 가중처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이규홍 양형위원장은 “10월26일 임시위원회를 통해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력범죄 양형기준이 국민의 건전한 상식을 반영하고 국민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적정기준인지에 관해 다시 심도 있게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용훈 대법원장은 국감 종료 인사말을 통해 “미성년자 양형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 대법원장은 최근 개헌논의 중 헌법재판관 선출방식과 관련, “법률 제정 기관(국회)이 법률의 위헌 여부를 판단하는 재판관 모두를 선출하는 것은 입법·행정·사법부의 견해가 고루 반영되게 한 현행 헌법 정신을 살리기 힘들다.”면서 “이 제도를 버리는 것은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고 밝혔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테마 스토리 서울] (16) 등록문화재 11호 서울시의회

    [테마 스토리 서울] (16) 등록문화재 11호 서울시의회

    “이곳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시의회 건물의 역사를 듣고 깜짝 놀라곤 합니다.” 서울시의회 시설과 송정미 주임은 담담하게 건물의 생애를 풀어놨다. 1935년 옛 경성부 공연장인 ‘부민관(府民館)’으로 탄생해 광복 후 미군정 방송국, 국립극장, 국회의사당, 세종문화회관 별관, 시의회 등 차례로 옷을 갈아입고 살아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부민관은 당시 경성전기주식회사가 100만원을 기부해 지어졌다. 오늘날 화폐가치로 따지면 100억~150억원. ●35년 부민관으로 건립 식민문화 홍보 공연예술사에 한 획을 그은 무용가 최승희의 공연은 대부분 이곳에서 열렸다. 일제 식민문화의 홍보 창구로 사용되면서 친일파 예술인들이 일본에 충성을 맹세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승만 박사는 이곳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사사오입 개헌과 국가보안법 파동, 군사쿠데타에 따른 의사당 폐쇄와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까지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특히 1966년 김두한 의원이 국무위원들에게 ‘똥물’을 투척한 사건은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곳은 1975년 국회가 여의도로 이사하면서 서울시에 회수돼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활용돼 오다 1991년부터 시의회로 사용되고 있다. 일제시대 부민관은 단성사, 경성의대병원, 화신백화점과 함께 이 시기를 대표한 건축물이다. 국가지정 등록문화재 11호이기도 하다. 문민정부 때 헐린 조선총독부와 해체수순을 밟는 옛 서울시청사와 달리 일제시대를 증언할 마지막 증인으로 남을 전망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 선출한 곳 시의회 건물은 고희(古稀)를 넘겨 2015년 80세인 산수(傘壽)를 맞는다. 전형적인 철근·콘크리트 건물로, 100년은 거뜬히 버틸 모양새다. 정문 모서리의 63척(약 19m) 높이의 탑은 당시 경성 전역이 내려다보인 도심의 랜드마크였다. 송 주임은 “가공하지 않은 천연자갈과 모래, 전통 철근과 시멘트로 지어져 20~40년 주기로 재건축하는 요즘 건물보다 훨씬 단단하다.”며 “탑 위에는 일제시대 만들어진 국기 게양대 흔적이 남아 있다.”고 전했다. ●매년 7억 정도 유지보수비 소요 건물에는 비밀도 많이 숨어 있다. 시의회 건물은 애초 대지 4912㎡, 연건평 5676㎡로 지하 1층, 지상 3층 건물로 지어졌지만 개·보수를 거치며 조금 작아졌다. 1968년 태평로 확장공사 때 시의회 건물이 축소되며 정문을 동향에서 남향으로 바꿔놓았다. 송 주임은 “1800석 규모의 대강당은 시의회 대회의실로 바뀌었지만 잦은 내부공사로 현재 400석 규모의 중강당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매년 7억원 정도의 유지보수비가 소요되는 건물은 앞으로 친환경·주민친화형 건물로 꾸준히 변화될 예정이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세종시 등 사회갈등 해소가 가장 큰 임무”

    “사회적인 갈등 해소가 가장 큰 임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주호영 특임장관이 13일 오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에서 개청식과 취임식을 마친 뒤 곧바로 첫 기자간담회를 갖고 향후 업무의 범위와 추진 방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 주 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소통과 통합, 상생을 늘 염두에 두고 업무를 수행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통령에게 특별한 임무를 받았나? -아직까지 지정된 업무는 없다. 공개적으로 해야 할 일도 있겠지만 발표하기 어려워 밀행적으로 할 일도 있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소통을 강조했는데. -여당 내에도 소통 부재가 꽤 있다. 정보를 갖고 있거나 알려야 할 사람은 주위에서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모르는 경우도 많다. 소통은 의식적으로, 시스템적으로 해야 한다. 상대방은 관심이 없다는 전제로 해야 한다. →장관으로서 꼭 해결하고 싶은 현안은? -개헌, 행정구역 개편, 선거구 개편 등이다. 하나하나 최고의 난제이고 정치권에서 대타협이 필요한 사안이다. 여야가 협상하다가 막혔을 때 제3자가 훈수를 두면 풀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 역할을 할 것이다. 어느 하나라도 해결하면 상당한 보람을 느낄 것이다.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정책 현안은 무엇으로 보나? -세종시 문제와 저출산 고령화, 남북 관계 등을 꼽을 수 있다. →세종시는 어떤 차원에서 중요한가? -갈등이 노출됐기 때문에 그렇다. 원안대로 가야 한다는 사람과 가면 안 된다는 주장이 서로 대립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정리 돼야 할 현안이다. →세종시 문제는 정부와 여당 가운데 누가 먼저 해결안을 제시해야 할까? -총리가 인사청문회에서 말씀하신 것 때문에 문제가 촉발됐다. 정부 쪽에서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가 작동을 할 것이다. 또 국회나 당 쪽에서도 자연스럽게 같이 논의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운찬 총리와 함께 일 해 보니 어떤가? -경험도 많으시고, 공부도 많이 하셨으니까…. →청와대와 총리실이 의견 대립을 한다면 어느쪽 편을 들겠는가? -옳은쪽 편을 들겠다. 이도운기자 dawn@seoul.co.kr
  • “국감, 재·보선용이냐”

    “국감, 재·보선용이냐”

    여야의 시선이 오는 28일 재·보선으로 쏠리고 있다. 중반에 접어든 국정감사도 재·보선 난기류에 휩싸였다. 국회의 행정부 견제라는 취지와는 달리 여야 모두 국감을 재·보선 전략에 활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감에서 여권의 취약점을 부각시켜 선거 승리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한나라당은 ‘방어형 국감’으로 안정적인 지지세를 유지하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면서도 여야는 서로에게 “재·보선용 국감을 하고 있다.”며 비난하고 있다. ●한나라 “공약개발팀 운영” 이번 재·보선에 정치적 운명을 걸다시피 한 양당 대표는 국감 일정을 거의 제쳐두고, 선거에 몰입하고 있다. 한나라당 정몽준(얼굴 위) 대표는 정기국회가 열린 9월부터 국회보다는 지역에 더 많이 머물고 있다. 당내 지지세가 약한 정 대표로서는 재·보선에서 당 안착을 위한 계기를 만드는 게 급해 보인다. 정 대표가 “지난 10년간 여당이 재·보선에서 승리한 적이 없고, 대통령의 지지도가 60%를 넘어도 여당이 승리한 적이 별로 없다.”며 분발을 강조한 것에서도 절실함이 묻어 있다. 15일에는 최고위원회의를 재선거가 열리는 경기 수원장안에서 갖는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13일 국감 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이 국회법에 정해진 ‘9월 국감’을 거부하고 ‘10월 국감’을 주장한 저의가 드러나고 있다.”면서 “정운찬 내각이 정략적 정치공세에 흔들리지 않고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조 정책위의장은 “재·보선 공약 개발과 관리를 위해 별도 팀을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의 한 관계자는 “여당 특성상 방어적인 국감이 될 수밖에 없지만, 야당의 공세에 맥이 빠져 이젠 재·보선에 더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민주 “與 일방독주 막아야”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정세균(아래)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국감을 통해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파헤치고 동시에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대안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이런 노력이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선거에 도움이 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어 “이번 재·보선을 통해 여당의 일방 독주에 대한 견제심리를 표로 연결시키는 게 민주당의 책무”라면서 “민주당을 비롯해 진보개혁 정당과 개혁성향 무소속 등 현재 95석에 이번 5석을 더해 100석이 될 수 있도록 표를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는 국무위원 해임 건의, 개헌 저지 등이 가능한 최소 100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정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연일 재·보선 지역을 돌며 지원사격에 열중하고 있다. 14일에는 보궐선거가 열리는 충북 음성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다. 당의 한 관계자는 “이번 재·보선은 단순히 국회의원 몇명을 뽑는 선거가 아니라 민주당의 명운이 걸린 선거”라면서 “2곳 이상 이기지 못하면 정 대표가 책임론에 휩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정몽준대표 “北은 핵개발 합리적이라 판단”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는 6일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김일성·김정일 정권이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 대표는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재래식 무기로는 군사경쟁이 되지 않아서 그렇게 한 것 아니겠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정 대표는 정치 개혁과 관련, “행정구역 개편, 선거제도 개선, 개헌 등 정치개혁을 위한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개헌에 대해선 “늦은 감이 있다.”면서 “어느 제도든 과도한 권력집중을 막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정 대표는 “중·대선거구제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지만,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역을 다소 넓게 잡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행정구역 개편 방식에 대해선 “자발적 통합과 일정 수준의 가이드라인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여당 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세종시 수정 문제에는 “원안대로 하는 게 당론이며, (9부2처2청 이전은) 행정부가 할 일”이라고 원론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용산참사의 해법을 찾기 위한 정부 역할도 언급했다. “요즘 사회에서 정부가 당사자가 아닌 일이 없으며, 정부가 관심을 갖는 것으로 알고 있고 관심을 갖도록 촉구할 것”이라고 했다. ‘대권주자 가운데 누가 가장 신경 쓰이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 대표는 “박근혜 전 대표가 가장 유망한 후보”라고 말한 뒤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김문수 지사, 오세훈 시장 등을 거론했다. “ 서너 명 있는 게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준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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