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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권, 야망의 목표 아니다…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미래 보일 것”

    “대권, 야망의 목표 아니다… 열심히 걸어가다 보면 미래 보일 것”

    지난 23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안희정(49) 충남지사의 출판기념회에는 정계 거물 등 3000여명이 몰려 최근 그에게 쏠리고 있는 ‘정치적 무게’를 실감케 했다. 안 지사는 최근 충청권의 차세대 인물로 부상하면서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 회의록 논란 과정에서 문재인 의원의 정치적 입지가 축소되고 다른 경쟁 주자들이 뚜렷하게 부상하지 못하면서 민주당 내 안 지사 역할론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 만큼 그의 행보와 말에 실린 정치적 ‘함의’는 요즘 정치권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다. 안 지사는 27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차기 대선 출마 의향 등 대권과 관련해 “야망의 대상으로 가져야 할 목표는 아니다”라며 “제가 도지사가 될 줄 누가 알았나. 지금 열심히 걸어가면 나오는 것이 미래”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는 또 진보와 보수 진영으로 가르는 20세기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를 해 달라는 것이 국민의 요구”라고 강조했다. →출판기념회에 3000명이 모였다. 그 의미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지방정부 책임자로서 3년 반 동안 느낀 소회를 대한민국에 보고드리고 싶었고 제안드리고 싶었다. 긍정적으로 평가해 줘 보람을 느낀다. →현실은 냉혹하다. 충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매우 낮은데 극복할 수 있겠나. -충남 도민들이 정당 지지율과 상관없이 지지해 주시고 있다. 자기가 가진 소신만큼 열심히 하다 보면 시대의 쓰임새가 있다면 쓰일 것이고 그렇지 못하다면 또 다른 선택을 받는 것이다. 그것 이외에 다른 고려는 없다. 연임이 허용된 지자체장들은 그동안 해 왔던 일들을 계속 추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겠냐고 물어야 하는 게 의무다. 그동안 벌여놓은 일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임기의 연장성과 일을 성실히 하는 게 연임에 도전하는 목적이고 이유이기 때문에 별도의 선거 전략은 없다. →정치인 안희정의 장단점은. -모진 소리를 잘 못한다. 예전에는 그것이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나의 소신으로 삼고 있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정치 영역에서 남의 얘기를 하거나 남을 비판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국민의 합의를 얻어 내는 게 논쟁이다. →책 속에 ‘더 좋은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오는데. -지나온 역사가 악하다고 지울 수 있겠는가. 지울 수 없다. 역사는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가 과거에 대해 각자가 인정하는 것만 인정해 국가의 역사 통합성이 떨어지고 있다. 생산적 논의를 토대로 더 좋은 민주주의를 만들어 가자고 제안한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친노(친노무현)의 강경함이 얘기되는데. -그것도 너무 표피적이면서 있지도 않은 사실에 기초한 지적이다. 친노가 어디까지냐고 물으면 아무도 답을 못 한다. 민주당과 야권의 분열을 바라는 분들이 올가미식으로 지어낸 것이다. 물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멀고 가까운 사람이 있다. 모든 정치인과 국민들께서 ‘너는 누구파’라고 이름을 짓는데, 구체적인 정책과 내용으로 그룹 짓는 것이 필요하다. →친노는 폐족이라고 말했었는데. -정파의 존재로서 친노는 없다. 친노라고 하면 제가 대표적인 친노 아니겠나. 애매하다. 일부에서는 안희정은 다르다고 말한다. 폐족이라고 한 것은 마지막까지 참여정부를 지켰던 분들이 책임 있는 반성을 해야겠다는 의미였다.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개념이 아니다. 여의도에서 친노를 하나의 정파처럼, 실체처럼 이야기하는데 참여정부 이후 의미가 없다. →친노나 안희정에게 노무현이란. -그것은 너무 오래전 이야기다. 어찌 됐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다. →1987년 개헌 이후 보수 10년, 진보 10년, 보수 10년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정권 교체의 역사로 보면 그럴 수 있다. 지금까지는 모두 독재 대 반독재, 민주화 대 독재, 성장과 분배, 안정과 민주화 등 20세기 개념으로 편을 나눴다. 20세기 진보·보수로는 현실 문제를 아무것도 풀 수 없다. 조선시대 복식 논쟁이나 마찬가지다. 복식 논쟁을 한다고 해도 조선의 국운이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20세기 때의 패러다임을 가지고 싸우면 그것은 현실의 문제에 대답해 줄 수 있는 정치가 안 된다. 그래서 새 정치가 안 되는 것이다. 20세기의 잔영 속에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새 정치는. -정치의 혐오 의식을 기반으로 출발해서는 오래가지 못한다는 충고를 했을 뿐이다. 국민들이 사랑해 줘서 안철수가 있는 것이니 존중해 줘야 하고, 어떻게 힘을 모으고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지도자들이 노력해야 한다. →청와대와 여당에 대한 주문을 해 달라. -가장 쉬운 대화가 중요하다. 힘으로 제압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압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제압되는 게 아니다. 대화를 통해 여당과 집권 세력은 맏이가 돼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가보안법, 사학법 개정 때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4~5개월 데모하니까 대화를 통해서 풀어 가지 않았나. 대화를 통해 풀어야 한다. 화끈하게 멱살 잡고 끌고 가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집권 세력이 대화와 소통을 통해서 이끌어 가야 한다. 좀 더 야당과 대화하는 자세로 국정을 이끌어 줬으면 좋겠다. →충청 인구가 호남보다 늘어 의석수가 늘어야 한다고 한다. 충청권이 주목받는 데 대한 소회는. -충청도는 개방화된 지역이다. 개방성과 통합성이 특색이다. 지역주의를 극복하는 중심 지역이 될 것이다. 통합과 개방을 확대해 갈 것이다. →중앙 정치 무대에서 충청권 대망론이 나오고 있다. 안 지사도 대망론의 대상으로 거명되는데. -거론해 주시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그런데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내린 결론은 그걸 목적하고 그걸 바라고 뛸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야망의 대상으로 가져야 할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제가 도지사가 될 줄 누가 알았나. 우리 사회 구성에서 정치인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내가 가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 걸어왔고 여러 가지 이유로 도지사를 시켜도 좋다고 생각해서 된 것 아닌가. 지금 열심히 걸어가면 나오는 것이 미래다. 좋은 평가가 있지만 먼 얘기처럼 들린다. →도지사로서의 3년간을 평가해 달라. -한국의 지방자치가 아직 완성되지 못한 것이 현실임을 여실히 느낀 3년이다. 중앙정부가 기획, 설계권을 가지고 있어 지방정부의 한계가 많다. 그럼에도 민관 협치 행정이나 마을의 주민자치, 풀뿌리 지방자치 등을 열심히 실천한다고 자부한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다. -충남은 일본 구마모토현과 30년간 교류하고 있다. 올해 30년 기념식은 양측 지사가 상대 측을 방문해 도민들과 함께 했다.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데 이럴 때일수록 민간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교류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 국가 이데올로기로는 부딪치지만 아시아 지역 주민들로서는 부딪치지 않을 주제다. 일본 정치인들이 국가주의라는 낡은 이념으로 정치를 하기 때문에 국가 간 분쟁이 된다. 일본도 한국에 투자해야 하고, 한국도 마찬가지이기에 교류를 심화시켜야 한다. 일본 국가 지도자들의 잘못된 정치 신념에 대해서는 국가적으로 대응할 것은 하더라도 주민 차원의 교류는 확대해야 한다. 진행 이춘규 선임기자 홍성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이슈&논쟁] 日 ‘집단적 자위권’ 추진

    [이슈&논쟁] 日 ‘집단적 자위권’ 추진

    동맹국이 제3국으로부터 침공받았을 때 이를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해 대응할 수 있는 권리인 집단적 자위권을 일본이 행사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에 대한 우려가 높지만 세계적 기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미국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지지하고 나섰다. 우리 정부는 모호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신경을 곤두세운 채 일본의 구체적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내 여론은 북핵 위협과 한·미 동맹 등 지역 안보를 고려해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해야 한다는 찬성론과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는 반대론으로 나뉘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와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에게서 한국의 ‘선택’ 방향을 들어봤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일러스트 길종만 기자 kjman@seoul.co.kr [贊] 이강민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과 교수 “美, 한반도 유사시에 日지원 원해… 우리 반대로 저지될 문제가 아냐”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은 미국의 세계 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반대한다고 저지될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평화헌법에 위배되는 명백한 위헌인데도 아베 신조 정권이 개헌도 하지 않고 집단적 자위권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보다 미국의 강력한 희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미국이 사실상 일본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있어 일본과 같이 가겠다는 것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이다. 만약 북한의 도발에 의해 한반도에 급변 사태가 발생한다면 한국 단독으로 이를 막을 수 없다. 결국은 미국의 협조를 얻어야 한다. 미국은 중국군이 북한으로 들어오는 등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일본의 힘을 빌리기를 원하고 있다. 집단적 자위권이 우려스럽다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 고리가 너무 강하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부분들이 있지만 시간이 갈수록 한국은 양자택일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이럴 때를 대비해 전방위 외교, 등거리 외교라는 것이 필요하다. 벌써부터 어느 한쪽의 편을 든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 집단적 자위권은 유사시 일본이 한반도에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일련의 흐름은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추진돼 왔던 것이다. 1969년 닉슨·사토 공동성명(한국과 타이완 지역에서의 평화와 안전 유지가 일본의 안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 합의)이 발표됐을 때도 중국은 일본군국주의의 부활이라고 비난했었다. 이런 맥락에서 아베 정권은 미국의 집단적 자위권만을 인정한 1997년 미·일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을 개정해 지금부터 이를 쌍무적 관계로 가져가려 하고 있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대일 외교가 실종됐다는 점이다. 미·일 관계는 앞서 나가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주변국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전략적인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외교의 기본이다. 싫어도 우리가 무엇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상대국에 접근해야 하는 것이 외교다. 한국 경제는 재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삼성이 미국과 일본의 타깃이 돼 버리면 위험해진다. 중국을 무시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일본을 등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집단적 자위권을 어느 선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지를 놓고 우선 일본 정부와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시 일본 국민의 관심은 대단했다. 초기에는 박 대통령이 화면에 등장하면 시청률이 오를 정도로 관심을 가졌었다. 여성 국가 지도자란 것이 어떤 의미에서 일본보다 앞서 가는 부분이 있었고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일본인들의 향수도 자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열기가 크게 식어 버렸다. 한·일 간 역사 문제는 하루아침에 결말을 지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닌데도 우리 스스로 이 문제로 제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역사를 현실 외교에 결부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이 문제는 긴 호흡으로 대처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아베 정권이 바뀐다고 해도 그다음 정권이 더 나으리란 보장은 없다. 최근 타이완대학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일본, 중국, 타이완 학자들로부터 동아시아 공동체가 만들어진다면 그 중심은 타이완이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타이완은 중국, 일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익을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의 가교 역할이 어쩌다 타이완으로 넘어가게 됐는지 우리는 냉정하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反]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 ”日 진정성 있는 반성이 우선돼야… 한반도 관련 땐 韓 사전 승인 필요” 일본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1985년 플라자합의 이후 장기 불황에 시달려 온 일본 국민들이 강력한 리더십을 염원하는 것에 편승해 아베 정권은 국수주의적 극우정책을 펼치면서 정상국가화와 동맹국 지원을 명분 삼아 재무장과 자위대 역할 강화를 모색하고 있다. 재정 위기로 국방비를 줄여야 하는 미국은 국제 정치의 패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큰 중국을 사전에 전략적으로 포위, 압박하기 위해 우군을 찾던 차에 일본이 자천하고 나서자 이를 적극 환영하고 있다. 일본에 중국 견제의 역할을 분담시키면서 가능하면 한국도 이에 참여시켜 미국 우위의 질서를 저렴한 비용으로 관리하려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과 영토 분쟁을 겪고 있거나 중국의 영향력 강화를 우려하는 아세안과 호주도 중국 견제를 위해 이를 지지하고 있다. 급기야 중국의 전략적 동반자인 러시아마저 집단적 자위권은 유엔헌장이 인정한 모든 나라의 고유 권한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인정했다. 따라서 현재 일본 제국에 침략당하고 잔혹 행위에 최대로 시달렸던 한국과 중국만 이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있다. 우리가 압도적으로 열세이므로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이자 사실상의 군사 강국인 일본에 각국의 고유 권한인 집단적 자위권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을 소모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렵다. 그 대신 우리는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환영할 수 없는 이유를 일본에 당당하게 밝히고 미국 등 우방국들에도 분명하게 설명하면서 일본이 이로 인해 한국의 국익을 훼손하지는 못하도록 하는 동시에 우호적인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중국과의 협력도 유지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과거의 비행과 잔혹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성하고 지역 평화를 위해 적극 기여해 온 독일과 달리 민족말살정책,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 강제 징용, 식민지인 생체 실험, 대량 학살에 이르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를 반성하지 않는 데다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토욕까지 드러내고 있는 일본이 ‘정상국가’가 될 자격이 없음을 명백히 선언해야 한다. 독일처럼 진정성 있는 반성이 이뤄져야 우리도 이를 환영할 수 있다는 점을 공표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미국과 EU, 아세안이 우리가 일본의 군사력과 자위대 역할 강화에 대해 우려하는 것을 잘 납득하지 못하는 점에 주목해 대응책을 취해야 한다. 그동안 일본 지도부는 중국을 필연적으로 지역 패권을 다툴 수밖에 없는 경쟁국으로 간주해 왔고 일본보다 국력이 약한 한국은 대미 의존성이 큰 데다 분단돼 북한과 경쟁하고 있으므로 경시해도 좋은 국가로 생각하면서 사대주의적 기회주의 대외전략을 펼쳐 왔다. 한국을 무시하고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미국에는 사대주의 저자세 외교를 펼치고 EU나 아세안 국가들에는 원폭 피해국이고 평화국가이자 공적개발원조(ODA) 지원 모범국이며 예절 바른 국가로 처신해 왔다. 유대인들이 나치의 만행을 고발해 독일이 사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듯이 국제사회가 일본의 이중인격, 파렴치성과 위험성을 깨닫게 하려면 민관이 협력해 국제인권대회 개최나 영화 제작 등을 통해 일본 제국의 반인륜적 잔혹 행위와 범죄를 고발하는 적극적인 홍보를 펼쳐야 할 것이다. 특히 대미 외교가 가장 중요하다. 일본과 남한을 점령 통치했던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 시 일본의 반환 영토에서 독도를 제외해 줌으로써 한·일 간 영토 분쟁의 씨앗을 뿌렸다는 책임을 각성해야 한다. 우리는 미 행정부가 일본에 과거 비행을 진정으로 사죄하고 독도에 대한 야욕을 포기하도록 압박해 줄 것을 설득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최소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주한 미군 지원과 대북 공격 등 한반도와 관련될 경우는 한·미 동맹의 ‘부속적인 지원’에 한정돼야 하고 반드시 한국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며 독도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미·일 양국으로부터 확약받아야 할 것이다.
  • 올드보이 뭉쳤다!… ‘국민동행’ 17일 출범

    올드보이 뭉쳤다!… ‘국민동행’ 17일 출범

    권노갑·김덕룡·정대철 전 의원 등 동교동·상도동계 출신 정치인들과 시민사회 인사로 구성된 ‘민주와 평화를 위한 국민동행’(국민동행)은 1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들의 참여를 제안했다. 제안에는 권·김·정 전 의원과 인명진 목사 등 33명이 이름을 올렸다. 국민동행은 오는 17일 공식 출범한다. 현재 야권에서는 민주당과 정의당, 무소속 안철수 의원 그리고 시민사회세력의 신야권연대 태동이 꿈틀거리고 있어 국민동행이 국가기관 대선개입 등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신야권연대와 결합하게 될지 주목된다. 국민동행은 이날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수사 등을 비판하며 민주주의 회복과 한반도 평화 등을 강조해 신야권연대 중심세력의 요구와 궤를 같이했다. 국민동행의 향후 움직임과 관련, 제안자 대표인 김덕룡 전 한나라당 의원은 “정파로부터는 독립적, 중립적인 국민운동을 할 것”이라며 신야권연대와 선을 그었다. 그러나 정대철 민주당 상임고문은 “안철수 신당과 민주당이 제대로 가고 언젠가는 함께 더불어 가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 저희들이 역할”이라고 말해 향후 야권구도 재편에 영향을 미치려 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민동행에는 민주당 출신은 물론 새누리당에 뿌리가 이어진 김덕룡·김영춘 전 의원과 인명진 목사 등도 있어 지향점이 복합적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 의원 상당수도 공감하는 독점적 권력구조 개편, 즉 분권형 개헌운동을 전개하는 방안을 내세웠다. 정국 전개 상황에 따라 선택의 폭을 넓혀 놓고 있어 국민동행의 영향력은 예측불허 형국이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탁월한 지도자vs독재자…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누구?

    탁월한 지도자vs독재자…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누구?

    블라디미르 푸틴(61) 대통령은 10년째 러시아를 통치해 오고 있다. 지난 2000~2008년 1~2기 집권 후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직을 잠시 물려주고 총리로 ‘막후 실권자’ 역할을 하다가 2012년 대선을 통해 다시 크렘린궁에 복귀했다. 그 사이 개헌으로 대통령 임기가 6년으로 늘어나면서 2018년까지 권좌에 머물 수 있게 됐다. 푸틴 대통령은 집권 3기에서도 1~2기 때와 마찬가지로 개인적 카리스마에 기초한 권위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그에겐 150여 개 민족이 어우러져 사는 광대한 러시아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탁월한 지도자란 긍정적 평가와 함께 제정 러시아 시절 이반 뇌제로부터 소련의 스탈린으로 이어졌던 위험한 전제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는 독재자란 부정적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실제로 푸틴은 지난해 5월 크렘린 복귀 이후 유럽 경제 위기 와중에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러시아 경제를 꾸려가고 있다. 최근 들어 성장률이 둔화하긴 했지만 외환보유액, 재정 건전성, 실업률, 인플레율 등에서 큰 위기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2011년 12월 총선과 이듬해 3월 대선 이후 고조됐던 야권의 반정부 시위 열기가 수그러들면서 정치도 안정돼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푸틴 대통령은 3기 최대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낙후한 극동·시베리아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며 ‘신(新)동방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유럽연합(EU)과 유사한 옛 소련권 경제통합체인 ‘유라시아경제연합(EEU)’ 창설을 밀어붙이며 경제 통합을 통한 옛 소련 부활의 야망을 불태우고 있다. 또 지난해 9월 블라디보스토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올해 9월 상트페테르부르크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굵직굵직한 국제회의를 잇달아 개최하며 높아진 러시아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과시하고 있다. 내년엔 지난 1980년 모스크바 하계 올림픽 개최 이후 30여 년 만에 소치 동계 올림픽도 개최한다. 국제사회의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서방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의 현 정부를 감싼 푸틴은 시리아 해법의 주도권을 쥐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The World’s Most Powerful People)’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제치고 푸틴이 정상에 오른 것도 이같은 그의 파워를 반증한다. 그러나 푸틴의 권위주의적 통치는 여전히 국내외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 외국에서 자금 지원을 받아 정치활동을 하는 NGO들의 활동을 제한한 것이나 집회 질서 위반자에 대한 벌금을 그전보다 150배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집회 질서 위반 처벌 강화법’ 등이 그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야권 인사들에 대한 탄압도 계속되고 있다. 푸틴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도해온 대표적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는 4년 전 지방정부 고문으로 일할 당시의 횡령 혐의 등으로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가 최근에야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푸틴 3기 집권에 반대하는 시위성 공연을 펼쳤던 현지 여성 펑크 록그룹 ‘푸시 라이엇’(Pussy Riot) 단원들은 2년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지금까지는 소련 붕괴 이후의 정치·사회 혼란에 진절머리가 난 국민 다수가 안정을 갈구하는 여론이 반영돼 푸틴 대통령이 여전히 50~60%대의 지지도를 누리고 있지만 경기 침체 장기화로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민심이 급속도로 멀어질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新야권연대 출범] 무너져가는 제3세력 ‘절대 위기’

    1987년 개헌 이후 여야 양대 정당의 과점적 이권 나누기에 일정 정도 견제역을 담당해 왔다는 평을 듣는 정치권 제3세력이 무너져 내릴 위기다. 2000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 전신)이 창당된 뒤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기득권 담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던 통합진보당이 지난해 정의당 분당과 올해 이석기 의원 구속 등의 사태를 겪으며 정당해산 위기에 처한 채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신야권연대에서도 소외된 진보당은 지난 9일 서울광장에 천막을 설치한 뒤 10일에는 진보당 해산 여부를 결정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108배를 하는 등 당의 사활을 건 장외투쟁을 이어 가고 있다. 진보당은 앞으로 서울광장 천막당사를 구심점으로 본격적인 장외투쟁에 나설 것이라며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처럼 진보당이 사생결단식 투쟁 의지를 보여 주고 있지만 당 안팎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되는 분위기다. 이 의원 내란음모 사건 이후 진보당과 진보세력에 대한 여론이 여전히 싸늘한 상태인 데다 최근에는 내부 동요까지 겹치고 있어 국면 전환이 쉽지 않다는 분석이 적지 않게 나온다. 실제로 내부 동요도 일부 가시화되고 있다. 진보당 소속 천중근(57·여수 제6선거구) 전남도의원이 9일 탈당을 선언하고 안철수 무소속 의원 진영에 합류해 당내 찬반 논란이 시끄럽다. 천 의원은 “‘사람 보고 뽑았지 당을 보고 뽑은 것이 아니다’며 탈당하라는 지역 민심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열린세상] 이웃 나라를 대하는 자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이웃 나라를 대하는 자세/민병원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의 발언이 다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둘러싼 회견 도중 “아시아 국가에는 중국, 한국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발언을 한 것이 단초였다. 지난 8월에도 나치식 개헌을 운운하다가 호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요즘의 일본 지도부들의 사고방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같아 주변 국가들의 심기가 불편하다. 동아시아의 국제관계는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의 오랜 갈등과 치열한 분쟁으로 얼룩져 왔다. 북한의 호전성은 차치하더라도, 세 나라 사이의 불편한 관계는 동아시아의 역사를 오욕과 절망으로 가득 채워 왔다. 냉전이 종식된 지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곳은 여전히 위험과 불안으로 위태위태하다.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따른 교역과 인적 교류의 증가에도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관계는 가히 ‘험악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악화돼 왔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유럽을 보자. 벌써 27개 국가가 유럽연합에 가입해 있고, 회원국 수는 더 늘어날 기세다. 평화를 향한 유럽인들의 열망은 20세기 후반에 들어와 열매를 맺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지역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상태에 접어들었다. 경제위기와 지역 간 불균형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유럽에 또 다른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예측하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지구 상에서 가장 앞선 형태의 정치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영토분쟁과 민족주의의 배타성에 신음하는 동아시아 입장에서는 너무나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이후 70여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유럽과 동아시아는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두 지역 한가운데에 독일과 일본이라는 전범국가가 자리 잡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전후 처리과정에서 연합국의 군사적 지배를 받았지만 미국의 동맹국가로 거듭나면서 빠른 속도로 경제발전과 국가재건을 이루었다. 지금은 모두 국제사회의 주도적인 구성원으로 국가적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하지만 역내에서 차지하는 두 나라의 정치적 입지는 동일하지 않다. 독일은 유럽연합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주도적 역할을 맡아 왔지만, 일본은 동아시아 갈등의 핵심을 파고들고 있다. 독일과 일본의 엇갈린 역사적 궤적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운명을 크게 좌우하고 있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가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유대인 기념비 앞에서 과거사를 반성했던 일은 지구촌 사람들에게 큰 감회를 불러 일으켰다. 무릎을 꿇고 있는 독일 총리의 사진 한 장, 독일의 진정성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후 독일인들은 전범국가라는 오명을 벗고 ‘정상국가’로서 국제사회에 새롭게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활발한 논의를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21세기 접어든 지금 일본의 행보는 다른 경로를 걷고 있다. 이웃 나라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은 채 일방적으로 평화헌법 개정을 논하면서 군사 대국화를 도모한다. 그 끝은 어디인가? 유럽연합이 부흥하게 된 배경에는 독일의 진정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의 상흔을 아우름으로써 협력을 위한 상호 이해의 발판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일인들의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했다. 그래야만 이웃 나라 피해자들의 트라우마가 치유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동아시아 국가들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릎 꿇은 브란트처럼 진정한 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1885년 일본의 지식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서구와 같은 문명화를 달성하기 위해 막부체제를 종결해야 한다고 외쳤다. 유교사상에 물들어 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중국이나 한국은 ‘나쁜 이웃’이기 때문에 관계를 끊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탈아입구(脫亞入歐)론’의 핵심이었다. 이후 일본은 근대화를 거쳐 군국주의로 치달았고 서양세력에까지 도전장을 내밀다가 철퇴를 맞았다. 130여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다시 ‘나쁜 이웃’을 멀리 하면서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웃 나라를 삐딱하게 바라보았던 후쿠자와의 망령이 아소를 비롯한 일본 지도층 주위를 여전히 맴도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 연내 ‘新방위대강’ 확정뒤 개헌 계획

    일본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용인과 관련된 논의는 2006년 9월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한 이후 급물살을 탔다. 아베 총리는 취임 직후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연구 의지를 천명했다. 이후 다음 해 5월 집단적 자위권의 개별 사례를 연구하기 위해 외교·국방 전문가 13명으로 구성된 ‘안전 보장의 법적 기반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를 출범시켰다. 간담회는 2008년 6월 보고서를 내놓고 ▲미국으로 향하는 탄도미사일 요격 ▲공해상에서 미국 함선 보호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등에서 행동을 같이하는 타국 군대에 대한 경호 ▲PKO 타국 군대의 후방 지원 등 네 가지 상황에서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 안은 아베 총리가 2007년 9월 갑자기 퇴진한 데 이어 2009년 8월 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되면서 그대로 사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뒤 상황이 급변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두 달만인 지난 2월 간담회를 재가동했다. 간담회의 견해를 참고해 일본 정부는 중장기 방위정책을 담아 연내 발표할 ‘신방위대강’에 집단적 자위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은 지난 8월 4일 NHK 프로그램에 출연, “정부의 다양한 정책이 마련되면 그것으로 방위대강을 만든다는 계획에 대해 (정부 안에서) 공감대를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방위대강’과 함께 2014년 말까지 결정될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안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와 관련된 구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장기적으로는 전쟁 포기, 군대 보유 금지, 교전권 불인정 등이 명기된 헌법 9조를 바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먼저 개헌 요건을 낮추는 헌법 96조의 개정을 추진하고, 그 전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헌법 해석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아제르, 알리예프 대통령 父子가 25년간 통치

    아제르, 알리예프 대통령 父子가 25년간 통치

    일함 알리예프(52)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이 9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세 번째 연임에 성공했다. 그가 2018년까지 5년간의 임기를 마칠 경우 10년간 재임한 부친 헤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에 이어 부자가 아제르바이잔을 25년간 집권하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BBC 방송에 따르면 이날 아제르바이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10일 일함 대통령이 득표율 84.7%로 3선 연임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일함 대통령은 임기 도중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고 야권을 탄압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풍부한 석유와 가스 자원 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경제를 이끈 것이 이번 당선의 기반이 됐다. 아제르바이잔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일함 대통령 집권 초기인 2003년 850달러(약 91만 3000원)에서 지난해 7850달러(약 843만 3200원)로 대폭 늘었다. 1993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을 시작한 아버지 헤이다르 전 대통령은 2002년 8월 개헌으로 당시 아제르바이잔 국영석유회사 부사장이던 아들 일함 대통령을 2003년 8월 총리에 임명했다. 2개월 뒤 신아제르바이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일함 대통령은 득표율 76.8%로 처음 당선됐으며, 2008년에는 89%를 얻어 재선에 성공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씨줄날줄] 조어(造語)의 기술/최광숙 논설위원

    ‘오도이촌’(五都二村)이란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이틀은 농촌에서 작은 밭을 가꾸며 생활하는 것을 뜻한다. 국립국어원 홈페이지 ‘이런 말도 있어요’라는 코너에서 알게 된 신조어다. 이 코너는 국립국어원이 최근 생겨난 새로운 말에 대한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인 ‘웃프다’라는 말도 있다. 재미가 있어 웃기면서도 마음이 아프다라는 의미다. 살아 있는 언어는 시대와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요즘 유독 신조어가 대세인 것 같다.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다. 새누리당이 경제 활성화를 위한 규제 개혁을 한다며 ‘손톱 밑 가시 제거 특위’를 구성했는데 ‘손가위’로 불린다. 민주당은 약자의 편에 서서 을(乙)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한다며 ‘을지로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 정도 신조어라면 이해가 되지만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신조어들은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좀처럼 뜻을 알기가 쉽지 않다. ‘갠소’(개인 소장), ‘개드립’(순간적인 재치),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다), ‘꿀잼’(매우 재미 있음)의 뜻을 아는 기성세대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젊은 세대에게는 이런 말들이 표준어인지 몰라도 기성세대들에게는 소통의 단절을 가져다 주는 언어 파괴로 느껴질 뿐이다. 어디 신조어뿐인가. 일본어와 같은 외래어가 우리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이들이 ‘멋있다’는 뜻으로 많이 사용하는 ‘간지난다’ 같은 일본어가 그 대표적인 예다. 배탈이 났을 때 먹는 ‘정로환’의 유래는 ‘러시아 군대를 정벌하러 간 일본군을 위한 약’이라니 충격적이다. ‘출산’도 일본식 한자다. 우리말은 ‘해산’을 쓰는 게 맞다. 우리 헌법 조문 중 약 30%가 일본식 용어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은 한글날인 어제 법제처의 용어 정비 중 일본식 한자·표현·어투를 기준으로 헌법 조문을 분석한 결과 전체 130개 조문 중 29%인 37개 조문 53곳에서 일본식 용어가 있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문서에서 많이 사용하는 ‘기타’(그 밖에), ‘당해’(해당) 등은 일본식 용어다. ‘~없는 한’, ‘~한하여’도 일본어투이기에 ‘~없으면’ 등으로 바꿔 써야 한다고 했다. 헌법은 우리의 얼굴인데 많은 부분이 일본식 용어로 쓰여 있다니 부끄러울 따름이다. 개헌 작업이 쉽지 않으니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개헌 절차 없이 일본식 용어만이라도 개정하는 작업이 시급하다. 정쟁이나 일삼는 정치권이 이런 일에 열과 성을 보인다면 박수 받지 않겠나.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美·日, 中 대응문제 등에는 ‘온도차’

    지난 3일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국방장관 연석회의(2+2·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는 겉으로는 화려한 합의문을 도출했지만 중국 문제 등을 둘러싼 양국의 이해 사이에 상당한 온도차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앞으로 양국 간 세부 협의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2년 만에 열린 이번 회의의 공동성명을 보면 미국은 전후체제를 탈피, ‘보통국가’로 나아가길 원하는 아베 정권의 희망사항을 상당부분 수용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아베 신조 정권의 헌법 해석 변경 노력에 대해 미측이 ‘환영’과 ‘협력’의 뜻을 밝힌 것이다. 이번 2+2에서의 합의는 미국을 등에 업고 군사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은 일본과 군비 축소 기조 속에 동맹국인 일본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방위와 관련한 역할을 더 위임하고 싶어 하는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기에 가능했다. 이에 대해 일본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도쿄신문은 4일 사설에서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은 아베 신조 총리가 목표로 하는 개헌 및 자위대의 국방군화 움직임과 한 몸”이라고 지적했다. 미·일 양국은 중국에 대한 대응 기조를 두고도 이견을 보였다. 중국과의 갈등이 부담스러우면서도 군사적 역량 확대를 노리는 일본 측은 이번 2+2를 ‘중국 견제’의 기회로 삼고 싶었다. 하지만 세계전략상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은 그런 일본의 속내까지 마냥 지지할 수는 없었던 셈이다. 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오노데라 이쓰노리 일본 방위상은 중국과의 긴장관계를 거론한 반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중국을 직접 거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케리 장관은 기자의 질문에 “(중국이) 국제적인 기준과 가치를 따른다면 중국의 부상을 환영한다”고 답할 정도였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구본영 칼럼] 언제까지 선진 독일을 부러워만 할 건가

    내리 3선에 성공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지구촌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요즘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한국에서도 큰 관심사다. 이 수더분하게 생긴 여성에게 전 세계에서 선망의 눈길이 쏠리는 까닭은 뭘까. 어차피 침대 머리맡에 사진을 꽂아둘 만한 매력 만점의 ‘핀업걸’도 아닌데…. 메르켈 정부의 눈부신 경제적 성취보다 더 부러운 게 있다. 독일 정치의 놀라운 통합성과 안정성이다. 이번에 메르켈이 이끈 기민당·기사당 중도우파 연합이 압승했다고 하지만 과반은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니 중도좌파인 사민당이나 녹색당과 ‘적과의 동침’ 격인 대연정을 모색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럼에도 향후 독일 정정을 불안하게 보는 전문가는 없다.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정쟁 없이 절충하는 문화가 일찌감치 정착된 까닭이다. 이것이야말로 분단국 서독이 우리보다 먼저 통일을 이룩하고 선진국 클럽에서도 최우등생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원동력이 아니겠는가. 우린 어떤가. 십수년째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고 있다. 최근 대니얼 튜더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 쓴 한국 평전을 읽고 얼마간 위안은 얻었다. 10년 넘게 한국에서 살고 있는 그의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원제: Korea, the impossible country)란 책이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으로 부를 만한 경제성장과 함께 지난 25년간 군사독재에서 벗어나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라는 평가가 담겨 있었다. 이처럼 외부에선 한국을 산업화·민주화를 함께 일군 나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우리 내부는 극단의 정치적 대립으로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유신헌법이 철폐되고 5공까지 지속됐던 ‘체육관 선거’도 막을 내렸는데도 그렇다. 1987년 직선제 개헌으로 5년 단임을 못 박아 어느 대통령도 장기 독재를 하려야 할 수도 없다. 그런가 하면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으로 세계 정치사를 통틀어 소수당에 가장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다. 야당의 동의 없이는 여당이 그 어떤 안건도 맘대로 처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김한길 대표가 50일 넘게 노숙하면서 장외투쟁을 하느라 그런 대단한 권한을 스스로 내던졌다.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을 빌미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면서다. 물론 야당 입장에선 댓글이 북한의 사이버 침투와 종북세력의 준동을 막는 차원을 넘어 선거에 개입한 흔적이란 혐의를 둘 수도 있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이 몇달 동안 수백개(설령 수천개라 하더라도)의 댓글을 달았다고 선거의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줬다고 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일 듯싶다. 하루에도 좌·우, 친여·야로 갈려 지향점이 다른 수억개의 댓글이 명멸하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이다. 그 사이 민주당 지지율은 반토막 났다. 48% 대선 득표율이 20%대로 가라앉았다. 국회가 열리지 않으니, 국정원법 개정 등 개혁안인들 결실을 볼 리 만무하다. 민주당 지지율이 새누리당의 절반에다 박근혜 대통령의 3분의1 수준이란 건 뭘 말하나. 댓글 사건을 기화로 대통령의 리더십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을 불통 이미지로 낙인 찍는 데 성공했을지 모르나, 민주당도 민심을 잃었다. 승자는 없고 패자만 있는 공멸의 정치다. 이쯤 되면 후진국형 정치가 산업화-민주화에 이은 선진화의 길목에서 최대 걸림돌이 아닌가. 결국 선진국 진입의 장벽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운용하는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다. 물론 대통령과 여당이 먼저 메르켈이나 독일 여당처럼 포용력을 보여야 한다. 그러나 기초연금 공약 축소를 사과하는 대통령에게 “히틀러의 말이 생각나게 한다”고 야유하는 치졸한 야당은 정작 독일엔 없다. 야당은 대통령이 실족하기만을 바라는 것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을 순 없다. 견실한 대안을 내놓고 국민으로부터 점수를 따는 경쟁을 펴는 게 독일식 선진 정치의 요체임을 깨달았으면 좋겠다. kby7@seoul.co.kr
  • [씨줄날줄] 항명의 역사/손성진 수석논설위원

    1597년 1월 조선 선조는 이순신 장군에게 왜 적장 가토 기요마사가 한 척의 배로 바다를 건너오니 잡아오라고 명령하지만, 이순신은 함정이라며 항명(抗命)을 하고 출정하지 않았다. 왕명을 따르지 않은 이순신은 파직되어 압슬(壓膝) 등 혹독한 고문을 받은 끝에 그해 4월 1일 백의종군 명령을 받고 풀려났다. 만약 이순신이 명령을 따라 출정했다가 간계에 빠져 죽음을 당했다면 조선의 역사도 달라졌을지 모른다. 항명은 명령에 죽고 사는 군대에서 나온 말이다. 부당한 명령도 있기 때문에 항명을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 우리 정치사에도 항명 파동이 자주 있었다. ‘국민복지연구회 사건’은 1968년 당시 민주공화당 김종필 계열의 연구회가 박정희 대통령의 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3선 개헌 저지 활동을 벌이다 제명 처분을 받은 당내 항명 파동이다. 김종필은 이 파동으로 또다시 정계를 떠난다. 1971년 9월 당시 제1야당 신민당이 실미도 사건·광주대단지사건 등의 책임을 물어 오치성 내무장관 등의 해임안을 발의하자 박 대통령은 당이 결속해 부결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공화당 비주류 인사들이 신민당과 손잡고 주류인 오 장관의 해임안을 가결해 버렸다. 이에 공화당은 중대한 항명행위로 규정, 항명을 주도한 의원들을 탈당시키거나 징계하는 숙당(肅黨)을 단행했다.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검찰에서도 항명 파동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99년 대전 법조비리 사건과 관련해 향응을 받았다는 이유로 사퇴를 종용받던 심재륜 당시 대구고검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검찰 수뇌부의 동반 퇴진을 요구했다. 검찰 사상 첫 고위직 항명이다. 1964년엔 인혁당 관련자들의 기소를 거부하며 검사들이 집단 사표를 낸 일이 있었다. 이 밖에도 2005년 “한국전쟁은 북한의 통일전쟁”이라고 발언한 동국대 강정구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는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거부하고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지난해 말에는 한상대 당시 검찰총장이 최재경 대검 중수부장에 대한 감찰을 지시하고 이에 맞서 최 중수부장은 한 총장을 공개 비판해 결국 한 총장이 사퇴한 일도 있다. 항명은, 항명을 할 당시에는 불충(不忠), 불손(不遜)한 행동으로 비난을 받기 쉽다. 그러나 상관의 잘못을 잘했다고 할 수 없는 부하가 선택할 길은 항명밖에 없다. 항명이 올바른 선택인지에 대한 판단은 후세의 몫이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대통령의 사직서 반려에도 불구하고 사의를 굽히지 않아 사실상 항명을 했다. 진 장관의 행동에 대한 올바른 평가도 수십년 후면 나올 것이다. 손성진 수석논설위원 sonsj@seoul.co.kr
  • 서대문구 ‘오는 27·28일’ 독립민주 특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과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독립과 민주의 참뜻을 되새기는 행사가 열린다. 아베 신조 정권 이후 급증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외면 등 일본 우경화에 대한 비난이 커지는 가운데 열리는 행사여서 더욱 뜻깊다. 서대문구는 오는 27일부터 이틀간 ‘2013 서대문 독립민주페스티벌’을 개최한다. 행사가 열리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독립운동가와 민주 인사들이 고욕을 치르고 희생을 당했던 곳이다. 또 독립협회가 자주 독립의 결의를 나타내기 위해 국민 성금으로 제작한 ‘독립문’이 있다. 27일 오후 7시부터 가수 박완규, 서문탁, 크라잉넛 등이 출연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기 위한 착한 콘서트’가 열린다. 콘서트 주제는 ‘감사합니다. 그리고 기억하겠습니다’이다. 지역 케이블 방송을 통해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활동을 보여 주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추모관 건립’을 위한 성금도 모은다. 이어 28일에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독립운동가와 민주 인사 4명의 풋프린팅을 남기는 본 행사가 열린다. 독립운동가로는 일제강점기 학생결사체를 조직한 조성국(89) 지사, 한국광복군 제3지대 소속이었던 박찬규(85) 지사, 민주 인사로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명 서명운동과 YMCA 위장 결혼 사건을 이끈 백기완(81) 선생과 유신헌법 개헌청원서명운동에 참여했던 이규상(74) 목사가 참여한다. 풋프린팅을 기념하기 위한 ‘대학생연합 애국가 플래시몹’도 관심을 모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10월까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교수의 특별전시회가 열린다. 이 외에도 ‘통곡의 미루나무 지키기 캠페인’, 청소년 역사길 걷기, 근현대사 탐구교실, 옥사 콘서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 중간 평가·쌀시장 수호·내각제 개헌 ‘空約’… 사과·레임덕 부르기도

    중간 평가·쌀시장 수호·내각제 개헌 ‘空約’… 사과·레임덕 부르기도

    박근혜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공약 수정의 불가피성을 해명하는 수준을 넘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한 유감 표명과 함께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한편 직접적인 사과보다는 ‘임기 내 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만 주요 대선 공약을 이행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역대 대부분의 정권은 대선 때 내세웠던 주요 공약 1~2개를 임기 내 이행하지 못했고, 일부 대통령들은 이에 대해 국민들에게 직접 사과하기도 했다. 공약 파기 논란은 노태우 전 대통령 때부터 본격화됐다. 노 전 대통령은 치열한 접전이 벌어진 1987년 대선에서 “대통령 임기 중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면서 전격적으로 ‘중간평가’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중간에 국민들의 신임을 다시 묻겠다는 것으로, 다른 후보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인 약속이었고, 실제 이로 인해 많은 표를 얻어 당선됐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3월 야당과 비밀 합의를 통해 중간평가 공약을 파기했고, 국정 주도권을 잃은 노 전 대통령은 ‘물태우’라는 오명을 얻었다. 1992년 대선 때 “대통령직을 걸고 쌀시장 개방을 막겠다”고 약속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취임 후 10개월여 만에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김 전 대통령은 1993년 12월 쌀시장 개방을 위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참여로 공약 파기 상황에 놓이자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황인성 당시 국무총리가 물러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내각제 개헌 철회도 대표적인 공약 파기 사례다. 내각제 개헌은 대선 공약이자 이른바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연결고리였다. 하지만 김 전 대통령은 1999년 7월 내각제 개헌을 철회했고, 이는 2001년 DJP 연합을 파국으로 이끄는 단초가 됐다. 김 전 대통령의 ‘농가 부채 탕감’ 공약도 불발로 끝나면서 2000년 농민 시위가 전국적으로 발생하는 등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가속화됐다. 비록 헌법재판소라는 ‘제3자’의 개입에 의한 것이긴 하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도 결국 공약(空約)으로 끝났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에서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워 충청권의 지지를 이끌어냈고, 실제 취임 후 “행정수도 이전으로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에 대해 2005년 헌재는 위헌 결정을 내렸고, 공약은 사실상 폐기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 핵심 경제 공약이었던 ‘747’(연평균 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달성, 선진 7개국 진입)이 무위에 그쳤다. 여기에 2011년 3월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약 역시 경제성 부족 등을 이유로 전면 백지화되면서 집권 초기 내세웠던 ‘경제대통령’ 이미지가 추락하는 계기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대선 공약이었던 ‘한반도 대운하 건설’은 국민적 저항에 부딪쳐 좌초됐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6월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이 반대한다면 추진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뒤 ‘4대강 정비사업’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이명박 정부가 이후에도 은밀하게 대운하를 염두에 두고 4대강 사업을 추진한 것으로 드러나 ‘국민기만’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공약 중 가장 큰 관심이 쏠리는 사안은 이번에 논란이 된 노인연금 등의 복지공약과 군 복무기간 단축(21개월→18개월) 등이다. 군 복무기간 단축의 경우, 국방부가 난색을 표시해 이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태에 놓여 있다. 박 대통령이 역대 정권의 대선공약 불이행 사례와 그로 인한 국정운영 난맥상을 반면교사로 삼아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장세훈 기자 shjang@seoul.co.kr
  • 日 아사히의 소신…“집단적 자위권은 위헌”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17일 아베 신조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집단적 자위권 행사는 헌법의 근간에 관한 것’이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헌법 9조 아래 자위를 위한 필요 최소한도의 방위력만 허용된다”며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를 지키는 것은 이 선을 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또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실현되면 자위대는 보통군대에 한없이 접근한다”며 “법으로 묶는다고는 하지만 정치적 의사로 활동 범위가 제한 없이 넓어지면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설은 또 아베 정권이 당초 헌법 개정 절차를 정한 96조 개정을 목표로 했지만 좌절되자 헌법 해석을 담당하는 내각 법제국 장관을 교체하고 일부 전문가가 논의를 주도하게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해석 개헌’을 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개헌 대신 손쉬운 헌법 해석 변경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의 족쇄를 풀려는 행보를 꼬집은 셈이다. 이어 헌법 9조가 내포한 평화주의의 근간을 정부가 독단적으로 바꿀 수 있다면 “규범으로서의 헌법의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다”며 “권력에 제약을 가하는 입헌주의에 대한 부정으로 연결된다”고 지적했다. 집단적 자위권은 일본이 공격받지 않아도 동맹국 등이 공격받았다는 이유로 타국에 반격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이날 총리관저에서 ‘안전보장의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를 7개월 만에 재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했다. 아베 총리는 “어떤 헌법 해석도 국민의 생존이나 국가의 존립을 희생해서는 안 된다”며 새로운 시대에 어울리는 새 헌법 해석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담회는 연말에 집단적 자위권의 전면 행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총리에게 제출할 예정이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극과 극] (8) 단 1초 발언·48시간 최단명 의원…‘금배지들의 기네스’ 아시나요

    [극과 극] (8) 단 1초 발언·48시간 최단명 의원…‘금배지들의 기네스’ 아시나요

    올해로 국회가 문을 연지 65년이 됐다. 1948년 제헌국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회의원 법정 임기를 채운 사람만 총 2780명. 당선무효형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를 포함해 한번이라도 금배지를 달았던 사람들까지 합치면 4000명을 훌쩍 넘는다. 국회의 역사 만큼 각종 ‘진기록’도 낳았고, 기록들 속에는 굴곡진 한국의 정치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최장수 vs 최단명의 기록 제헌국회부터 19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가장 임기가 길었던 때는 9대 국회로 6년간(1973~1979년) 이어졌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대통령이 추천해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들인 ‘유신정우회’가 포함됐다. 가장 임기가 짧았던 때는 5·16 군사정변으로 해산된 5대 국회로 9개월 18일(1960년 7월 29일~1961년 5월 16일)에 불과했다. 국회의 임기가 4년으로 정해지고 제대로 마쳐지는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 구성된 1988년 5월 13대 국회부터다. 19대 국회 전반기 현재까지 배출된 국회의장은 모두 25명이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초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부터 7월 24일까지 단 55일 동안만 의장직을 맡았고, 8월 15일 정부 수립과 동시에 대통령에 취임한 ‘최단명’ 국회의장이다. 25명 가운데 최장수 국회의장은 6대와 7대에 걸쳐 의장을 지낸 이효상 의장으로 임기가 무려 7년 6개월 14일이나 된다. 이어 9대의 정일권(만 6년 재임) 의장, 3·4대의 이기붕(5년 11개월) 의장 순으로 의사봉을 오래 잡았다. 최다선 국회의원은 9선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준규 전 국회의장,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다. 김 전 대통령의 경우 만 26세에 당선돼 최연소 국회의원의 기록도 함께 갖고 있다. 박 전 의장은 8대 국회에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것을 포함해 9차례 모두 선거구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당선된 기록을 갖고 있다. 8선도 국회의원도 모두 3명(김재광·이만섭·정일형)이다. 특히 정일형 전 외무장관은 2대부터 9대까지 같은 지역구(서울 중구)에서 내리 8선을 지냈다. ●48시간 vs 5일에 엇갈린 ‘운명’ 반면 단 48시간 동안만 배지를 달았던 국회의원들도 있다. 5대 국회인 1961년 5월 13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정인소(충북 음성), 김사만(충북 괴산), 김성환(전북 정읍을), 김종길(경남 남해) 의원은 당선 이틀 뒤 일어난 5·16 쿠데타로 인해 국회가 해산되면서 의원 선서조차 하지 못하는 불운의 의원이 됐다. 5일짜리 의원도 있다. 6대 국회 말 신민당의 전국구 후보 17, 18번이던 박중한, 우갑린 의원은 같은 당 전국구 류진, 임차주 의원이 탈당으로 의원직을 상실하면서 1967년 6월 26일 승계돼 임기 말인 6월 30일까지 재임했다. 7대 국회의원 선거가 앞서 6월 8일 실시된 것을 감안하면 7대 의원들의 당선 공고 뒤에 6대 의원이 뒤늦게 탄생한 진풍경이었다. 이들은 5일동안 본회의에 한번도 출석하지 않고도 당시의 한 달 세비 20만원을 고스란히 받았다. ●금배지도 대물림…3代 국회의원까지 65년의 역사를 이어오다 보니 가족 국회의원도 여럿 탄생했다. 부자(父子) 국회의원은 이제 매우 흔한 일이 됐다. 19대 국회에만 2·3세 정치인이 17명이다. 여야 지도부에도 2세 정치인들이 포함됐다. 새누리당 지도부에서는 정우택(3선) 최고위원, 홍문종(3선) 사무총장, 유일호(재선) 대변인, 김세연(재선) 제1사무부총장 등 4명이 있고, 민주당 지도부에도 김한길(4선) 대표와 노웅래(재선) 대표비서실장, 정호준(초선) 원내대변인 등 3명이 있다. 한 가족 최다선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다 서거한 조병옥(2선) 전 내무부 장관과 아들인 조윤형(6선)·조순형(7선) 의원으로 총 15선이다. 김대중(6선) 전 대통령과 아들인 김홍일(3선)·김홍업(초선) 의원도 삼부자 의원이었다. 정일형(8선) 전 외무장관과 아들 정대철(5선) 민주당 상임고문·손자 정호준 민주당 의원은 유일한 ‘3대’ 국회의원 집안으로 총 14선이다. 여성들의 국회 진출이 늘어가면서 부녀·부부(夫婦) 국회의원도 여럿 등장했다. 최초의 부녀 의원은 2대 김동성 의원과 10대의 김옥렬 의원이었고 최초의 부부 의원은 김제원(8·9대) 의원과 서영희(9·10대) 의원이었다. 18대 자유선진당 비례대표로 배지를 달았던 이영애 의원의 경우 10대 국회의원을 지낸 아버지 이경호 의원과 15대 국회의원이었던 남편 김찬진 의원에 이어 국회의원이 되면서 부녀, 부부 국회의원의 기록을 모두 갖게 됐다. 최초의 여성 의원은 제헌국회 때 경북 안동에서 보궐선거로 당선된 임영신 전 의원이었다. ●1초 발언 vs 10시간 발언…국회 ‘말말말’ 국회는 의원들의 말의 성찬이 열리는 곳이다. 그만큼 의원들의 발언에 대한 기록들도 쏟아진다. 지금까지 국회 본회의에서 가장 짭게 발언한 의원은 3대 국회 때 하을춘 의원으로 단 1초였다. 법안심의 때 나와 “건설법안”이라고 4글자를 말하다가 국회의장이 일방적으로 일괄 통과를 선포하는 바람에 발언이 끊겼다. 3대 국회 당시 김선태 의원이 구속되자 석방요구안과 연계한 국무위원 불신임결의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이 때 김동욱 의원은 토론을 위해 단상에 선 뒤 국무위원석을 향해 “왜 잡아갔어, 왜 잡아가”라고 단 9글자를 소리치고 내려왔다. 본회의 발언 시간이 가장 길었던 사람은 1964년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 김준연 의원의 구속 동의안을 막기 위해 5시간 19분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발언을 했고, 상임위에서는 1969년 박한상 신민당 의원이 3선 개헌 국민투표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10시간 동안 반대토론을 진행한 것이 최장이었다. 이를 기록하는 데 속기사가 무려 60여명이 동원됐다고 한다. 역대 의원 중 말이 가장 빨랐던 의원은 3·4·5대 의원을 지낸 김선태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분에 468자의 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의원들의 평균 연설속도가 1분에 300자였던 것에 비하면 매우 빠른 속도다. 때문에 국회에서는 김 의원이 발언할 때가 되면 속기사를 2명씩 배치했다. 국회 본회의에서 발언을 가장 많이 한 의원은 3대 국회 때 박영종 의원으로 임기 4년 동안 총 450회나 발언을 했다. 19대 국회 1년 동안 가장 말이 많았던 의원은 누구일까. 서울신문이 국회사무처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받은 ‘19대 국회 본회의 발언 현황’ 자료에 따르면 가장 말이 많았던 의원은 민주당 정청래 의원으로 꼽혔다. 정 의원은 지난해 7월 임시국회부터 8월까지 본회의 대정부질문에 3차례, 5분 자유발언에 4차례 나서 현역 의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본회의 발언을 했다. 정 의원은 특히 국회 정보위원회와 국정원 댓글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등의 야당 간사를 맡으며 최근 대형 이슈였던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논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등의 중심에 서면서 상임위, 기자회견장에서도 활약했다. 정청래 의원에 이어 본회의 발언이 많은 의원은 5차례 발언을 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이다. 정문헌 의원은 대정부질문 4차례, 자유발언 1차례 나섰는데, 국회 정보위 여당 간사를 맡아 특히 정청래 의원과도 많은 입씨름을 해야했다. 홍익표 민주당 의원(대정부질문 3회·자유발언 2회)과 김제남 진보정의당 의원(대정부질문 2회·자유발언 3회) 등도 각각 5차례씩 발언을 하면서 본회의장 단상에 올랐다. 이밖에 김미희 통합진보당 의원, 김태흠·이장우 새누리당 의원, 박범계·최민희 민주당 의원 등이 4차례 본회의 발언으로 뒤를 이었다. 본회의장 밖에서라도 의원들의 입은 언제나 열려있다. 지난해 5월 30일 임기가 시작된 뒤 1년여 동안 의원들의 국회 기자회견장(정론관)을 3530건 이상 사용했다. 하루에 평균 9~10건꼴로 마이크를 잡는 셈이다. 지난해의 경우 19대 국회의 임기가 시작됐는데도 원 구성 문제 등으로 정식 개원이 늦어지면서 6, 7월 기자회견 횟수가 급격히 많아졌고 12월 대선을 앞두고 11월과 12월 중순까지 각 당의 대선 후보 홍보 및 상대 당 후보에 대한 검증 등에 나선 의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올해는 특히 2007년 남북정상회담의 대화록 논란을 시작으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3월 이후 꾸준히 기자회견 횟수가 많았다. ●다문화·탈북자 의원 탄생한 19대 국회 19대 국회에서는 최초로 다문화 의원이 탄생했다.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이 주인공. 필리핀 출신의 이 의원은 서울시 외국인생활지원과 주무관, 물방울나눔회 사무총장 등을 지냈다가 국회 배지를 달았다. 최초의 탈북자 의원도 19대에서 나왔다. 조명철 새누리당 의원은 평양 출신으로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탈북 공무원으로 통일교육원장을 지낸 뒤 19대 국회에 입성했다. 19대 국회의원의 최다선 의원은 7선의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고 이어 6선인 강창희 국회의장이 뒤를 잇는다. 최고령 의원은 1942년생인 송광호(새누리당)·강길부(새누리당)·박지원(민주당) 의원이다. 특히 19대 국회에서는 ‘청년 국회의원’을 각 당에서 선출해 비례대표로 지명했다. 민주당의 경우 최초로 청년 비례대표 선발제도를 열어 389명의 지원자를 물리치고 김광진 의원이 배지를 달았다. 김 의원은 1981년생으로 19대 국회의 최연소 의원이기도 하다. 19대 의원들은 각종 스포츠 분야의 협회장을 도맡아 하는 진기록도 갖고 있다. ‘조직 표’를 얻을 수 있는 협회나 연맹을 맡는 것은 역대 국회에서도 흔한 일이었지만 분야가 더욱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장(남경필 새누리당 의원), 한국e-스포츠협회장(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 등을 비롯해 대한치어리딩협회장(이이재 새누리당 의원), 전국 유·청소년축구연맹 회장(최재성 민주당 의원), 대한 컬링경기연맹 회장(김재원 새누리당 의원) 등 15개의 스포츠 협회장을 19대 의원들이 맡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고희선 새누리당 의원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서 임기 1년여 만에 운명을 달리하는 의원이 나오는 비운을 겪기도 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韓日 관계 개선을 위한 제언] “지도자 일부 개헌 주장한다고 여론이 그 방향 가는 건 아니다”

    [韓日 관계 개선을 위한 제언] “지도자 일부 개헌 주장한다고 여론이 그 방향 가는 건 아니다”

    가와무라 다케오(71) 일·한의원연맹 간사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통이다. 정치 스승인 고(故) 다나카 다쓰오 전 문부대신의 뒤를 이어 김종필(87) 전 국무총리, 김수한(85) 전 국회의장 등과 교류하는 등 꾸준히 한국 정치인들과의 교분을 이어왔다. 자민당 내에서도 실세이기 때문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대(對)한국 정책은 가와무라 의원이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음은 일문일답.→한·일 관계가 1965년 수교 이래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한국에서는 위안부 문제 등에 대한 일본의 대응이 기대 밖이었을 것이고, 일본에서는 지난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케시마(한국명 독도)에 간 것에 대해 국민들의 감정이 격해졌다. 한류 붐이 사그라졌다고 해도 일반 국민들은 NHK에서 방송되는 한국 사극 ‘동이’도 많이 보는데 양국 정부의 분위기가 냉랭한 것은 걱정이다. 2015년이 국교정상화 50주년인데 빨리 타개책을 찾아야 한다. →한국 국민들은 ‘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모임’(재특회) 등 일본 내 혐한 움직임을 우려하고 있다. -(재특회는) 부끄러운 일이다. 일본인끼리도 마찬가지지만 드러내놓고 차별을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에서도 헌법 개정, 집단적 자위권 용인 등 우경화가 이뤄지고 있지 않나. -자민당은 원래 현재의 헌법을 (연합군) 점령하의 헌법이라고 해서 자주헌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게 창당 때부터의 입장이다. 그러나 지도자 일부가 주장한다고 해서 여론이 (헌법 개정의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 →한국, 중국 등 주변국 외교는 등한시하고 중동, 아프리카 등과의 외교에 치우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일·한, 일·중 정상회담이 이뤄진다면 그것이 최우선이 되겠지만 안 될 경우에는 다른 나라와도 외교를 해가면서 일·한, 일·중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또 중국이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 진출하면서 (자원 외교가) 진행되고 있어 일본이 이를 간과하면 중국에 에너지와 관련된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점도 일본은 고려하고 있다. 일본은 과거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 폐를 끼쳤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과 잘해 가면서 최종적으로 일·한, 일·중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15년 국교 50주년을 맞아 일각에서 한·일 협정을 수정하자는 얘기도 나오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상당한 신뢰 관계가 없으면 일방적인 얘기가 될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그렇게 나오면 일본은 더욱 안 좋은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빨리 흉금을 털어놓을 기회를 만들지 않으면 좀처럼 어려울 것이다. 일본은 한·일 협정으로 모든 것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한국 절도단이 쓰시마시 관음사에서 훔친 금동관음보살좌상의 반환 문제를 둘러싼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사법부가 정부의 의향을 너무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금의 일본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지만 대화의 여지를 없애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한·일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청소년 교류를 100만명 단위로 한다. 한국과 일본도 과거의 역사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각국 어린이들의 교류부터 활발히 해야 한다. (가와무라 의원은 ‘어린이의 미래를 생각하는 의원연맹’의 위원장을 맡아 지난달 한·중·일 초등학생이 1주일간 함께 지내며 동화책을 만드는 ‘한·중·일 어린이 동화교류 2013’ 행사를 주관하는 등 민간 차원의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한국 어린이들은 일본과의 과거를 알고 있겠지만 일본 어린이들은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반성해야 할 점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이야말로 확실히 (역사를) 직시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서로 교류하면서 그런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쿄 황성기 특파원 marry04@seoul.co.kr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이집트, 무르시 법정 세우고 새 헌법서 ‘이슬람 색’ 뺀다

    지난 7월 이집트에서 발생한 대규모 반정부시위 과정에서 군부에 의해 축출된 무함마드 무르시(63) 전 대통령이 살인 교사 혐의로 법정에 설 예정이라고 로이터 통신이 현지 국영 TV방송을 인용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집트 국영TV에 따르면 현지 검찰은 무르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대통령궁 앞에서 무르시 지지자와 반대세력 간 충돌로 7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과 관련해 무슬림형제단 단원 14명과 함께 ‘폭력과 살인 교사 등의 혐의’로 형사법정에 세우기로 했다. 검찰 당국은 무르시 전 대통령이 2011년 ‘아랍의 봄’ 당시 외부 도움으로 교도소를 탈옥한 사건과 관련해서도 조사를 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무르시는 탈옥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와 공모해 교도관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 무르시의 구체적인 재판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무르시는 지난 7월 3일 권좌에서 축출된 이후 수도 카이로의 비밀장소에 억류돼 있다. 한편 이집트 과도정부는 이슬람주의자를 대부분 배제한 헌법개정 검토위원회 인사들을 임명하면서 무르시 집권기에 제정된 헌법을 뜯어고치는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고 로이터가 전했다. 정부가 이날 임명한 50여명의 위원들은 오는 8일부터 60일간 무르시 정부에서 제정된 이슬람주의적인 헌법 내용을 수정한 헌법 초안을 검토할 계획이다. 개헌안 초안에는 이슬람 국가를 강조하는 규정과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 문구가 대폭 삭제돼, 과도정부가 정권 교체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과 이슬람주의자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는 논란이 또다시 일 전망이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망언과 망국/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말은 의식과 교양의 정도에 따라 구조와 품격이 결정되기 때문에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해 몇몇 정치인들의 말은 착하기는커녕 악하다 못해 심히 망령되다 하여 양식 있는 일본인을 포함, 국제사회까지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사리에 맞지도 않고 떳떳하지도 않은 말을 해 대는 일본인들의 망언(妄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멀리는 ‘일본서기’와 같은 역사서와 ‘메이지유신’ 그리고 ‘정한론’이 망언을 담고 있으며, 가깝게는 나카소네 내각에서 문부성 장관을 지낸 후지오는 ‘한·일 병합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했고, 방위청 장관을 지낸 오쿠노는 ‘일본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싸웠고, 일본의 이상적 목표는 각국의 독립이었다’고 했다. 최근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것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를 참배하는 것과 같다”고 했고, 아소 다로 부총리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어느새 바뀌었다. … 그 수법을 배우면 어떻겠는가”라고 하면서 개헌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일본 지도층은 어찌하여 이런 망언을 아무런 역사의식이나 죄책감도 없이 내뱉고 있는 것일까. 그들에겐 쉽게 치유되지 않는 고질이 있어서 그렇다. 그 고질은 일본인의 합리적 사고와 객관적 판단 능력을 앗아 간 정신질환을 말한다. 일찍이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 문화에 대해 ‘국화’와 ‘칼’처럼 두 개의 극단적 형태를 구성 요소로 한 문화 패턴이 특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역사상 일본인들은 이웃 나라를 수없이 노략하고 침탈한 민족이었고, 진주만 기습과도 같은 국제전까지 자행한 민족이기도 하다. 특히 그들의 병사들은 칼이 잘 드는가를 실험하기 위해 포로들의 목을 쳤고,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수많은 어린 여성들까지 강제 동원, 일본군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성적 노리개로 삼음은 물론 학대까지 자행했다. 어디 그뿐인가. ‘난징 대학살’과 ‘731부대 생체실험’이라는 반문명적 잔혹성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범죄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오히려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해 온갖 억지와 부회를 마다하지 않는 것은 특유의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그 같은 문화적 배리와 도덕적 불감증이 망언을 낳고, 망언은 힘에 대한 과신으로 이어지며, 과신은 힘의 오용을 불러오는 데 있다. 힘의 오용은 또 다른 힘의 응징으로 마침내 자멸을 초래하고 만다(亡國)는 역사적 사실은 인류가 체험한 힘의 논리며 결과였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 세기 일본인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 경험을 까맣게 잊은 것 같아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도 안타까운 나머지 이번 광복절 경축사에서 전향적인 한·일 관계를 위해 일본 정치인들은 역사를 직시하고 이웃 민족에게 입힌,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용기 있는 리더십을 보이라고 촉구했다. 몇 년 전 폴란드에 갔을 때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서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그 역사를 다시 살게 마련이다”라는 경구를 보았다. 이 말이 자꾸 뇌리를 스치는 건 요즘 망언을 일삼고 있는 일본 지도층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일까. 비록 일본은 우리에겐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지만 이웃 나라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는 건 비단 나만이 아닐 것이다.
  • 무라야마 일본 前총리 “野 통합 개헌저지하자”

    무라야마 일본 前총리 “野 통합 개헌저지하자”

    일본의 식민지배와 침략을 사죄하는 ‘무라야마 담화’를 발표했던 무라야마 도미이치(89) 전 일본 총리가 아베 신조 정권의 독주를 저지하기 위해 야권의 대통합을 제안했다. 19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사민당 소속인 무라야마 전 총리는 전날 도쿄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사민당은) 이대로 가도 미래가 없다. 헌법 개정 등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과제 앞에서는 당파를 고집하지 말고 집결해 하나의 정당이 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사민당의 발전적 해산도 염두에 두고 헌법 수호와 탈원전 등을 중심으로 한 야당 재편을 도모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사민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전면에 드러나지 않고 배후에서 일해도 좋다”며 “전국의 지방 조직을 토대 삼아 그런 운동을 일으킬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같은 날 TBS 위성방송에 출연, “자민당의 일당 지배를 견제하고 다음 중의원 선거 때까지 그에 저항하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차기 중의원(하원) 선거는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고 재선거를 치르지 않는 한 2016년 12월 치러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15일 전국 전몰자 추도식 연설에서 아시아 각국에 대한 가해 책임을 직접 언급하지 않은 것에 관해서는 “침략을 부정하려는 심산이며 지난 전쟁을 성전(聖戰)으로 여기려는 마음이라고 받아들여진다”며 비판했다. 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도록 헌법 해석을 재검토하는 것에 관해서도 “이를 계기로 전쟁의 길로 들어설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주장했다. 무라야마 전 총리는 자민당 장기 집권체제 붕괴로 연립 여당이 구성된 1994년 6월부터 1996년 1월까지 총리를 지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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