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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뒷줄 끌어대기 사기꾼의 단골 수법”/정보사땅 사기 검찰수사 주변

    ◎언론에 “공개된 객관적 사실만 보도” 요청/정건중에 자금요청 변호사,사기와 무관 ○…정보사부지를 둘러싼 거액사기사건에 대한 수사결과를 오는 15일쯤 종합발표할 계획이었던 검찰은 단순한 사기사건이라는 수사결론에도 불구하고 언론보도가 계속 「배후」에 관심을 기울이자 몹시 신경이 쓰이는 눈치. ○집요한 배후설에 신경 검찰은 13일 『당초 오는 15일쯤 자금행방에 대한 의혹등 모든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김인수등 관련수배자가 아직 붙잡히지 않아 주말까지는 수사가 계속돼야할 것』이라고 발표자체를 늦출 계획임을 비추면서 『그러나 일단 은행감독원의 감사자료와 관련자진술·계좌추적등을 토대로 자금행방과 관련된 「배후의혹」을 푼다는 의미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 정리가 되는대로 중간발표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기사건 수사를 맡고있는 서울지검 특수1부 이명재부장검사는 13일 상오 기자들과의 브리핑시간에 『검찰이 지난 일요일에 수사의 손길을 놓아버렸다는 일부의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그동안의수사결과를 검토,미비점을 이번주에 집중수사하기 위해 모검사집에서 「작전회의」를 갖고 이에따라 일부검사는 일요일 검찰청사로 들어와 밤을 새워가며 조사를 벌였다』고 설명. 이부장검사는 『1주일동안의 철야수사로 일요일만이라도 청사를 탈출,기를 재충전하려는데 대해 「축소수사」운운하는것은 부당하다』고 못마땅하다는 표정. ○“일방진술 메모 유출” ○…「성무건설 정건중회장의 진술에서 현직안기부요원 민영춘씨가,정씨의 부인 원유순씨의 진술에서 청와대 K모비서관의 처제 모란엄마등이 정보사부지 불하설의 배후로 언급됐다」는 일부 보도에 대해 검찰은 13일 상오 『이들 인물들은 조사결과 모두 가공의 인물』이라고 해명. 이 관계자는 『정씨등이 김영호씨의 「뒷줄」운운한 것은 사기꾼들이 써먹는 전형적 수법』이라고 지적하고 『내부보고용으로 정씨등의 일방적 진술을 메모한 서류들이 어떻게 유출되었는지 철저히 조사,관계직원을 엄중문책하겠다』고. 이 관계자는 또 『정씨가 언급한 청와대 경제반의 K모서기관은 자체조사결과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관계기관의 통보가 있었다』고 전언. ○검사장방문 결과 청취 ○…민주당의 박상천·강철선·이협의원은 이날 상오10시 서초동 서울지검으로 전재기검사장을 방문,이번 사건에 대한 그동안의 검찰수사결과를 두시간남짓 청취. 박의원등은 이날 미리 준비한 35개항의 질의서를 전검사장에게 전달하고 설명을 요구했으며 일부에 대해서는 답변을 들은 뒤 『검찰수사는 축소은폐며 엉터리』라고 불만을 토로. ○…일부에서 정건중씨 일당이 설립하려던 중원공대 이사로서 정보사부지사기사건이 터진 직후 정씨측에 거액의 자금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진 채원식변호사는 검찰조사결과 사건과 관계없는 인물로 판명. 검찰은 『채변호사는 와병중으로 자신의 빚이 10억원에 이르러 보관중이던 많은 책을 중원공대에 기증하는 대가로 정씨일당에게 빚을 갚아달라는 요청을 했을 뿐』이라고 설명. ○추측보도 자제주문 ○…서울지검 전재기검사장은 이날 하오 이명재특수1부장실에 들러 취재차 들른 기자들에게 『언론이 추측보도를 자제해줄 것』등 언론의 협조를 간곡히 요청. 전검사장은 기자들을 보자 『언론의 도움을 얻으러 왔다』면서 『언론은 검찰조사결과 공개된 객관적 사실을 근거로 보도해달라』고 주문. 전검사장은 또 『어제 이번 사기사건과 관련된 자금추적대상을 점검해본 결과 수사종결이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늦어질 것 같다』면서 『이번 사기사건에는 50억짜리 어음이 왜 5억짜리 어음등으로 쪼개졌는지 등 논리적 근거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검찰이 의문점을 다 풀지 못했으니 언론도 인내심을 가지고 친정집같이 검찰을 도와달라』고 당부. 한편 이날 상오 모 경제신문에 원유순씨의 진술서초안이 실린 것과 관련,전검사장은 상부로부터 『보안이 생명인 검찰의 비공개 수사기록이 어떻게 언론에 유출될 수 있느냐』고 심한 질책을 받았다는 후문.
  • 새 국제질서 가이드라인 「뮌헨선언」

    ◎환경보호·개도국지원등 6원칙 제시/북한 핵개발 우려… 남북상호사찰 촉구 독일 뮌헨에서 열린 18차 서방선진공업 7개국(G­7) 정상회담 마지막날인 8일 발표된 경제선언은 전날의 정치선언 및 의장선언과 더불어 앞으로 새로운 국제질서의 가이드라인이 되는 「뮌헨선언」으로 불리게 되며 G­7의 정치·경제·군사행동의 지침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특히 G­7은 뮌헨회담에서 북한의 핵개발의혹을 우려하고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와의 제반 협약을 충실히 이행하고 남북한간 동시핵사찰을 수용할 것을 촉구함으로써 한반도문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경제선언◁ 이번 회담의 결과를 정리하고 앞으로 경제운영방향을 설정하는 핵심부분으로 세계경제부양·개발과 세계환경보호·개도국지원방안·동구지원책·러시아및 독립국가연합 경제원조·동구권 핵안전대책등 6개 분야에 걸쳐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 및 동구권 경제지원은 이들 국가들의 자생력을 부축한다는 전제아래 민주제도의 확립과 시장경제로의 개혁에 중점을 뒀다.동구권국가중에는 체코·폴란드·헝가리등의 개혁과정을 중요시 하고 있으며 장차 구동구권국가들간에도 자유무역제도가 확보되고 가트등 서구국가들의 무역장벽해체제도에 동참하길 기대했다. 서방국들은 뮌헨회담직전까지도 2백40억달러의 장기지원계획뿐만 아니라 당장의 10억달러 신용공여도 국제통화기금(IMF)의 전제조건 협약거부로 불확실한 상태였으나 미셸 캉드쉬IMF총재가 모스크바에서 회담 개막직전 뮌헨회담장으로 직행,전제조건 없는 지원을 건의 함으로써 정치적인 해결을 봐 경제선언에서 서방국들의 러시아 지원의지를 분명히 했다. 개발과 환경보호 정책으로는 종과 서식환경보호,93년까지 기후변동조약을 체결하며 각국이 이를 지키기 위한 지침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동구권 및 구소련의 핵안전조치와 관련해서는 국가간이 아닌 다국간 안전조치 프로그램을 조속히 마련해 ▲운영의 안전성 제고 ▲기술적인 단기 개선책 ▲국가통제능력의 강화등으로 나눠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원자로는 개선을 하고 위험도가 높은 것은 개체하는 방향으로 기술·자금지원을 할 필요를 강조했다. 개발국지원은 자구력을 강구하는 국가에 대한 가난극복·인구문제·교육·건강·여성과 어린이 보호에 역점을 두며 특히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의 가뭄극복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서 G7은 개도국 G24국가에 대한 5백20억달러의 차관 및 신용보증의 필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의장선언◁ 지역문제에 관한 G­7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으며 이번 회담에서 처음으로 한반도 문제를 거론해 관심을 끌었다. 11개항목중 9개항목은 카라바흐전투,발트해연안 국가분쟁,중동평화정착,이라크문제,중국정치개혁,지중해 키프러스분쟁,아프리카정세,라틴아메리카문제,한반도 핵문제등 지역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이밖에 마약과 테러대응책이 포함돼 있다. G­7은 5번째 한반도문제에 관해 「우리는 남북한이 시작한 대화가 발전되고 있는 것을 환영한다.그것은 긴장이 더욱 해소되라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우리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의혹이 있는데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치는 확실하게 이행돼야 하며 남북한간의 동시 핵사찰은 실행돼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G­7이 북한의 확실한 핵사찰을 강도높게 촉구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한반도 안정이 세계평화질서를 위해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G­7이 이번에 북한 핵문제를 주요한 지역문제로 거론함으로써 앞으로 선진공업국들의 대북한 자세가 핵문제와 연계돼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은 점에서 G­7은 이번 뮌헨회담이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문제는 남북한 동시 핵사찰 수용을 전제로 할 것으로 보인다.
  • 안전시설 미비 등 여객선 사고위험/소보원 조사

    한국소비자보호원(원장 박필수)이 최근 인천 부산 목포등 6개항만 내항여객선 37척과 소양호 충주호를 운항하는 관광유람선 10척을 대상으로 실시한 「내항여객선 및 관광유람선 안전실태조사」결과 안전시설이 미흡,사고발생시 인명피해가 우려되고 있다.6일 소보원에 따르면 조사대상 여객선의 35%가 승선정원의 15%에 불과한 구명동의를 비치하였으며,야간사고시 필요한 야광표시를 한 경우는 겨우 8척에 지나지않는 것으로 밝혀졌다.또 내항여객선 37척중 21척은 여객실 계단경사도가 법정기준 45도를 초과했다.
  • 목포공항 20년만에 다시 열어/하루 2편 서울간 왕복(단신패트롤)

    ◇전남 목포공항이 휴항 20년만인 1일 상오10시 노건일교통부장관과 지역국회의원 이효계전남지사를 비롯한 지역기관장과 주민등 4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항식을 갖고 하루 2차례의 운항을 재개했다. 교통부가 서남해안 시대를 맞아 목포지역 주민의 교통불편 해소와 서남해안 지역 관광객 교통편의를 위해 지난 87년부터 1백58억원을 들여 건설,이날 개항한 목포공항은 대한항공에서 신규도입한 1백9석의 최신 기종인 F-100기로 목포∼서울간에 하루 2편씩 왕복 운항하게 된다.
  • 문화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나(「6·29」그후 5년)

    ◎“탈이념물결”… 다양한 소재·목소리 분출/등록제실시로 출판사 3천곳 신설붐/월북작가 해금… 「해방공간」문학사 복원/사전검열 폐지따라 공연예술의 자유 만끽/TV방송 공·민영시대로… 지나친 상업주의 경계해야 문화는 자율성과 다양성의 토양위에서 꽃을 피운다.강압적 권위주의 시대에서 민주화·자유화시대로의 길을 연 6·29선언은 바로 기름진 문화의 토양을 제공했다.6·29선언 이후 지난 5년동안 우리 문화는 그동안의 편협성과 경색에서 벗어나 폭넓고 자유로운 창작활동의 꽃을 피웠다.월북작가작품 해금,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 폐지,출판활성화 조치등이 6·29선언의 정신에 따라 이루어졌고 예술가의 상상력을 억압하던 온갖 금기에서의 해방과 함께 탈이데올로기 현상을 겪으며 우리 문화는 비로소 참된 다양성을 획득해 냈다. ▷문화부기자 방담◁ 김정열차장(부장급) 이헌숙기자(차장급) 윤석규기자 김성호〃 백종국〃 김균미〃 김동선〃 ­6·29선언은 문화·예술계에도 민주화의 바람을 몰고 왔습니다.문학·출판·미술·공연·방송·영화등 각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특히 공연대본에 대한 사전심의 및 출판물납본제도 등을 통해 실질적인 사전검열이 행해져왔던 출판계와 공연예술계에 대한 영향은 대단했습니다. ­88년7월19일에 단행된 월북작가 작품 해금 조치는 그중 가장 뚜렷한 성과였습니다.6·29선언을 뒷받침하기 위한 88년 7·7선언의 후속조치로 나왔던 월북작가작품 해금조치는 박태원 이태준 임화 등 그동안 남한에서 접근과 출판이 용이하지 않았던 1백20여 월북문인들의 8·15이전 작품의 공식출판을 허용하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운동권」 예술성 회귀 ­6·29선언은 20년대 이후 해방에 이르는 한국문학사의 공백을 메워 불구의 문학사를 고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또 문화 각 부문에 만연했던 「정치적 기준」을 「문화적 기준」으로 대체하는 상징적 조치로서 이후 보다 개방적인 문화 흐름을 선도하는 이정표가 되었습니다.운동권 문학에 있어서의 문학성의 강조경향,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열기 등도 국제정치환경의 변화와 함께 6·29선언으로 인한 자유화의 진전등 국내상황변화에 크게 힘입은 사례들로 지적될 수 있습니다. ­출판계의 민주화는 먼저 출판사의 폭발적인 증가로 나타났습니다.87년10월이 지나면서 명실상부한 등록제가 된 것입니다.신고만 하면 출판사를 설립할 수 있게 된 거지요.80년이래 허가제의 내용을 갖는 이름뿐인 등록제가 자리를 잡은지 8년만의 일입니다.이를 계기로 6·29선언이 있기 전해인 86년말 2천6백여개에 그쳤던 출판사 수가 87년말 3천4개,88년말 4천3백97개,89년 5천97개로 늘었으며 현재는 2배에 가까운 6천개에 육박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88년12월 문화부는 공연법 시행령을 고쳐 20년동안 표현의 자유 시비를 불러 일으켜온 무용 및 연극대본에 대한 사전심의제도를 폐지했습니다.마침내 공연예술계가 공연소재와 표현방식 등 공연물에 대한 자율성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게 된 것입니다.이는 공연당사자들이 공연작품에 대한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고 작품을 구상·준비해 오던 때와 비교해 볼 때 한결 자유롭게 하고 싶은 작업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입니다.작업에 대한 자율성 확보와 함께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책임을 져야하는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이 비로소 적용될 수 있게 된 셈이지요.이에따라 체제비판적이거나 외설적인 내용 등을 이유로 공연이 금지됐던 「오장군의 발톱」(박조열작)「금지된 장난」(김훈작)「춤추는 인형들」(엄한얼작)등과 같은 작품들이 공연돼 공연의 다양화를 가져왔습니다. ­각 대학의 학생미술운동도 6·29선언을 계기로 활성화됐습니다.또 문예진흥원 등 관계당국은 행정적인 차원에서 과거 「민중미술」을 이끌어온 「현실과 발언」,민중미술협의회 등에 전시지원을 했습니다.6·29선언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지요. ○군·빨치산소재 등장 ­영화와 방송분야도 6·29선언의 덕을 톡톡히 누리게 됩니다만 다른 분야에 비해 두드러진 대중성 때문에 표현의 자유가 제약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출판·학술 분야의 민주화는 분명 6·29선언에서 시작되었으나 구소련 및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또는 개방까지기다려야 했습니다.출판사들의 등록이 자유로워졌고 이에따라 각종 출판물이 물밀듯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실정법 위반 시비는 당연한 것이기도 했습니다.정치적인 결단인 6·29선언에 따른 입법조치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공연예술계는 자율화의 혜택을 크게 누렸습니다.정부는 제도권 밖의 「민족극」극단의 활동에도 관용을 보였습니다.이에따라 그동안 제도권내에서 유일하게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창작극만을 공연해온 극단 연우무대가 설 자리를 잃고 새로운 위상을 모색해야 하는 재미있는 일도 벌어졌습니다.어떻든 공연여부로 화제를 모았던 극단 아리랑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와 「격정만리」등도 무난히 관객들의 앞에 올려졌습니다. ­6·29선언에서 비롯된 문화 전반의 민주화·자율화 분위기는 결국 문화의 다양화에 기여했습니다.문학·방송·미술·공연·출판·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목소리들이 분출되고 있습니다. ­문학의 경우만 해도 많은 소설가들이 그동안 금기로 되어왔던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김신의 「쫄병시대」,복거일의 「높은 땅 낮은 이야기」,고원정의 「빙벽」등 88년부터 쏟아져 나왔던 군병영을 소재로 한 소설들이 군의 비리까지도 일정부분 소설화했던 현상은 6·29선언 이전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것입니다.그리고 분단이나 빨치산을 소재로 한 문학작품에서 좌익의 시각을 과감하게 수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이밖에 운동권 문학에서도 문학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돌고 있습니다. ­6·29선언 뒤 몇년동안 북한원전과 기행문,마르크스·레닌 원전 등은 출간붐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그 결과 탈이데올로기 현상이 빚어졌고 동유럽 공산국가의 몰락으로 이념서적의 인기가 급락하고 말았습니다. ­90년대 들어 미술분야에서는 「민중작가」가 아닌 일반작가들도 통일문제를 들고나와 나름대로 이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소재로 삼는 대상이 다양해진 것이지요.이에 비해 「민중미술작가」들은 과거에 비해 그림들이 예술적으로 순화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철학적·미학적으로 자기반성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과거처럼 급진적이고 지나치게 선동적인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금기로 여겨왔던 사회고발영화와 농도짙은 성애영화가 대거 등장한 것도 이 시기입니다.5공의 비리를 핵심권부에 맞춰 그린 정치소재의 「서울무지개」(감독 김호선)와 성을 소재로 한 「매춘」(감독 유진선)이 대표적인 작품입니다.또 「전쟁과 평화」「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국두」 등 구소련과 중국영화들이 국내극장가에 처음 나붙게 됐습니다.6·29 이후 본격화된 북방정책의 결과이지요. ○특수방송 잇단 설립 ­외형적으로 공영체제가 허물어지는 흐름에서 평화방송 교통방송 불교방송 등 특수방송이 잇따라 설립됐으며 지난해 서울방송 라디오·TV개국으로 공·민영 혼합체제가 구축됐습니다.또 토론프로그램이나 코미디·드라마 등에서 비판금지대상이나 소재의 벽이 허물어져 다양한 프로그램의 제작이 가능해졌습니다. ­통일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민족동질성의 뿌리를 찾아내기 위한 당국의 배려도 이젠 많이 늘어났다고 봅니다.올상반기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북한미술전이 그 한 예입니다.북한의 화가들이 작업한 수많은 원화들을 일반인들이 여과없이 접할 수 있었다는 건 큰 변화가 아닐 수 없죠. ­공산권의 붕괴와 함께 북방과의 문화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종교계의 경우 지나친 북방선교가 문제가 될 정도로 적극적인 북방진출이 이루어졌지요. ­자율화 민주화 과정에서 지나친 상업주의에 의한 문화왜곡등 부작용도 없지 않았습니다.올해들어 방송위원회가 대폭 개정한 방송심의규정은 자율화·민주화의 한계는 과연 무엇일까 하는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이번 개정에서 오히려 내용이 강화된 것으로 ▲인권 보호 ▲방송언어의 순화 ▲광고의 국민건강을 위한 규제가 들어 있습니다. ­아무튼 6·29선언은 그 시행과정에서 많은 과제를 노정시켜왔으나 문화의 다양화 작업을 가능케했으며 탈이데올로기에 따른 한민족 문화의 뿌리 찾기등 값진 성과를 이룬 것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이같은 변혁은 바로 우리 문화의 총량을 제고하는 귀중한 계기였다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 사람은 없습니다. ◎전문가 평가/김윤식 문학평론가/자율성의 참뜻 되새길때 6·29선언이 5공화국에서 6공화국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였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8개항으로 된 이 선언을 검토해보면 한갓 시국수습안의 일종이었음이 드러난다.이점에서만 보면 그것은 시류적인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는 문건이다.그러나 좀 자세히 살펴보면 거기에는 국민대단합이라는 커다란 명제가 놓여있다.국민대단합이라는 명제를 내걸었다는 것은 그것이 당시의 제일 중요한 과제였음을 새삼 말해주는 터이다.무엇이 국민대단합을 저해하고 있었던가.8개항의 수습책이 달성되지 않는 한 국민대단합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8개항을 수습할 수 있는 기본항이랄까 원칙이란 무엇일까.이렇게 물을 때 우리는 쉽사리 그것이 자율성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각 부문별 자치와 자율의 확대는 다양하고 균형있는 사회발전을 이룩하여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해진 것은 8개 수습항목중 6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다.그러나 이 항목이 실상 6·29선언의 으뜸 항목임은 일목요연하다. 자율성의 원칙이 모든 문제해결의 기본항을 이룰 때 어떤 사회도 상당한 혼란을 면하기 어렵다.국가권력이라는 이름의 폭력에 의해 사회적 욕망분출이 조정되던 사회보다 자율성으로 그것을 해결하는 사회가 한층 바람직한 것이라면 그 바람직한 사회의 도래를 위해 상당한 기간의 혼란은 불가피한 법이다.이 원칙이 세계사의 변화라든가 후기 산업정보사회의 급속한 진전과 더불어 5년간을 두고 알게 모르게 실천되었음은 모두가 아는 일이다.이 자율성의 달성이 얼마나 소중한 과제였는가는 6·29선언에서도 지적된 물가안정이라든가 흑자경제 등 5공화국의 치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위협받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아도 알 수 있는 터이다.6·29선언이 단순한 시국수습책에 멈추지 않는,역사적인 문건으로 평가되는 참뜻이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자율성을 기반으로 하는 역사전개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가 문화(문명)쪽이라는 사실은 새삼 강조해둘 필요가 없을까.문화란 개성에 바탕을 두는 것이며 따라서 무정부주의적인 성격으로 규정된다.자율성이 조금도 억압되지 않는 사회만들기야말로 문화의 방향성이라 함은 이를 가리킴이다.이 점에서 6·29선언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지향성의 표현이었다.기업문화,정치문화,교통문화 등의 표현이 가능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그렇다면 새삼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이 후기 산업사회 속에서 얼마나 지켜질 수 있느냐에 있다.그동안의 자율성의 옹호가 문화의 특성을 유감없이 드러내었음이 사실로 인정되지만 동시에 그것에 포위되어 위기를 맞이하고 있음도 사실로 인정되는 터이다.문화창출의 자율성이 문화유통의 자율성(상업주의)에 의해 좌우될 때 문화가 도리어 위협받게 되는 것,이 이율배반 앞에 놓인 것이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6·29선언의 한가지 귀결이다.자율성,그것은 문화쪽에서 보면 해결하기 어려운 일종의 배리가 아닐 수 없다.
  • 지방의회·단체장 단계선거의 당위성(대선정국:23)

    ◎지방의회경험 축적이 지자제 활착의 길/관련제도 우선 정비… 역기능최소화 긴요/전문성 갖춘 인사 뽑힐 풍토조성도 시급 지방자치단체장선거를 연기하느냐,연내 실시하느냐에 대한 여야간 현격한 시각차이로 14대 개원국회가 「개점휴업」상태에 놓여 있다. 국회가 산적한 민생입법을 심의하기 위한 상임위조차 가동시키지 못한 채 단체장선거문제에 대한 공방전에만 매달려 있는 형국인 것이다. 단체장선거시기는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어느 당에 유리한가 하는 차원에서 결정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중론이다.왜냐하면 단체장선거를 대선전에 실시한다고 해서 야당측 주장대로 공정한 대통령선거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즉 정당추천제로 실시되는 광역단체장선거를 통해 선출된 특정정당소속 도지사·시장들이 과연 중립을 지킬수 있느냐 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이같은 측면에서 정부와 여당은 이미 치른 총선과 연말 대선 이외에 기초·광역단체장 선거 등을 한해에 실시할 경우 우리 경제에 엄청난 주름살을 안기게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이같은 여권의 단체장선거연기 논리를 차용하지 않더라도 지방자치제의 건전한 정착을 위해서는 지방의회 구성후 일정기간을 두고 단체장선거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즉 지방의회→광역단체장→기초단체장선거를 다소간 시차를 두고 실시하는 것이 선거에 따른 혼란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방자치제의 정착을 위한 제도정비와 여건조성 측면에서도 긴요하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같은 지자제의 단계적 실시론은 학계및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내무관료 출신의 한 의원은 이와관련,▲지역감정 ▲계층간·세대간 위화감 ▲돈 많이 쓰는 정치풍토 등이 시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체장선거를 전면실시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이 노정될 것이라는 진단을 하고 있다. 자치의 혼란 내지 행정의 비능률을 이유로 86년 광역단체를 해체한 영국 런던시와 같은 극단적인 사례를 들지 않더라도 선진제국에서는 대부분 지방의회 운영을 통해 충분한 지방자치 경험을쌓은후 단체장선거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다.미국 워싱턴시의 경우 의회구성후 1백16년이 지나 단체장선거를 실시했으며 일본은 광역의회 구성 56년후 단체장선거를 실시한 것이 그 실례다. 물론 우리보다 훨씬 오래전에 지방자치제를 정착시킨 이들 나라들과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으나 어느정도 지방의회 운영경험을 쌓은 후 단체장선거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것이 순조로운 지방자치제를 뿌리내리는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사실을 부인키 어렵다. 노태우대통령이 5년전 민정당대통령후보로서 행한 6·29선언의 8개항 내용에도 지방자치와 관련,일단 지방의회만을 구성하는 것을 약속하고 있다.이는 지방자치제의 단계적 발전을 위해 13대 대통령임기중 우선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하고 단체장선거는 차기대통령 임기중으로 실시시기를 넘긴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맥락에서 단체장 민선에 앞서 지방자치와 관련되는 각종 제도정비와 여건조성을 완료함으로써 지방자치제 전면실시에 따른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대신 지방자치제실시에 따른이점을 논의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이른바 「지방자치발전 중기계획」이 그것이다. 즉 지방의회구성후 단체장선거 실시 전까지 ▲국가와 자치단체간의 합리적 기능배분 ▲국세·지방세 구조의 개편과 지방재정자립도 제고 ▲지방행정조직의 합리적 개편 ▲지역이기주의의 극복과 효율적 광역행정체제의 구축 등 제도개선 방안이 완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제도개선과 함께 인격과 전문성을 고루 갖춘 인사가 단체장으로 뽑힐 수 있는 선거여건이 조성될 때 우리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다.그리고 민선단체장이 지역별로 특정지역에 편중되지 않아야만 진정한 지방자치시대가 열릴 수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감정이라는 망국병이 먼저 치유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관점에서 대선까지 6개월여 남은 기간동안을 단체장 선거라는 하나의 이슈에 국한해 놓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지나친 국력소모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 아시아민주화 고무시켰다/「6·29」5주(해외 특별기고)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과 그 주민들은 6·29선언 5주년을 맞아 노태우한국대통령에게 축하의 인사를 보내고자 할것이다.권위주의체제가 보편화되어온 이 지역에서 보다 위대한 민주화와 인권보장을 위해 싸워온 주민들에게 6·29민주화선언은 커다란 격려와 고무를 주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의 민주화욕구 분출을 무력으로 진압한다거나 아니면 간교한 속임수로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않고 대통령직선,언론자유,인권존중등 8개항에 걸친 전면적인 민주화를 천명한 6·29선언은 한국 역사에서는 민주화의 출발점으로 기념될 것이 분명하다.동시에 아시아 전역에 미친 영향도 만만치 않다. 최소한 두나라가 한국의 민주화선언이후 정부군과 주민간의 유혈충돌이라는 뼈아픈 경험을 갖고 있다.한국에서는 슬기롭게 극복된 위기가 중국과 태국에서는 결국 피를 보고 만것이다.중국의 천안문사건은 6·29선언 2년후의 일로 아직도 그 후유증이 도처에 깔려있다.수많은 중국본토인들이 요즘도 비밀리에 조용히 천안문사건을 기리고 있으나 외국에 나와있는 화교동료들은 적극적으로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태국의 중산층은 지난 5월 수친다 장군이 이끄는 정부에 반기를 들고 일어나 결국 그를 권좌에서 축출하는 데는 성공했으나 수백명이 피를 흘려야만 했다.방콕 주민들의 대규모 시위는 87년 봄과 여름에 걸친 서울에서의 시위와 별로 다른게 없지만 한쪽은 피를 본후 물러난데 반해 다른 쪽에서는 직선을 통해 정권을 맡기까지 했다. 이들 두 사건에 앞서 대만이 87년하반기부터 계엄령 해제,중국본토친족 방문 허용,다당제 도입등에 이어 총통직선등 민주화조치를 추진해가고 있는 것도 한국정치발전과 무관하다고 보기가 어렵다.지난 88년초 버마 주민들이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위를 벌이며 민주화를 부르짖은 것도 한국에서와 같은 결과를 기대한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시아주민들이 87년 서울의 경험에 고무되었다고 단정적으로 주장하는게 좀 주제넘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그들은 서울의 변화를 잘 알고 있었다.한동안의 반정부시위 결과 대통령자유선거와 언론검열해제가 나왔으며 이밖에 쏟아진각종 민주화 조치들은 한국을 동아시아의 빛나는 우등국으로 만들었던 것이다.이같은 사태발전은 아시아의 반정부운동가들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아시아 대부분 나라들에 노대통령의 6·29선언이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동북아 지역안정과 긴장완화일것이다.6·29선언의 민주화 조치만으로도 지역안정에 공이 큰것으로 인정되지만 이 선언의 연장선상에서 추진된 북방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게 사실이다.서울과 모스크바간에 외교관계가 수립되고 한중간에도 각기 상대편 수도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한후 정식 수교절차를 모색중이다. 북방정책의 효능은 지난해 북한이 남북한동시 유엔가입에 동의하고 나옴에 따라 분명히 드러났다.이는 매우 중요한 사태 진전으로 주변지역 긴장완화에 크게 공헌할 뿐 아니라 재통일을 위해서도 유리한 국면전환이라 할수 있다. 근래에 와서는 물가압력과 수출부진등 일부 경제분야의 곤경으로 6·29선언의 의미가 많이 퇴색해가고 있다는 외신보도도 있었다. 한국경제의 곤경이 갑작스런 민주화 추진으로 인한 불가피한 현상인지,아니면 급격하게 변모하는 국제경제환경에 한국정부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때문인지는 알수 없다.다만 한국인들이 참조할 사항이 있다면 아시아의 신흥공업국들중 다른 나라들도 최근의 경제상황이 과거 만큼 그렇게 신통치는 못하다는 사실이다.선진국들의 개방압력이 거세지면서 무역장벽이 자꾸 높아만 가기 때문일 것이다.이밖에 민주화의 과도기에 겪는 각종 가치관의 혼란,예를 들어 졸부들의 헤픈 씀씀이나 극렬한 노사분규,끝없는 집단이기주의 등을 겪으면서도 경제의 안정과 번영을 기대하기란 좀 지나친게 아니냐는 생각도 없지않다. ◎동북아지역 안정에 가장 큰 영향 6·29선언 이후 우리가 주목하는 것중의 하나는 최근들어 한국에서 인권문제를 둘러싼 시비가 거의 사라졌다는 점을 들지 않을 수 없다. 6·29선언을 기점으로 그동안 추진해온 민주화는 이제 어느정도 뿌리가 내린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이상 한국은 앞으로 동아시아 정세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맡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특히21세기는 아시아·태평양시대가 펼쳐지면서 이 지역이 세계정치의 지배적인 역할을 수행해 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동시에 최근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세력다툼이 이 지역에 곤혹스런 상황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이같은 상황속에서 한국이 맡을 역할은 막중할수 밖에 없다.북한과의 궁극적 통합을 위한 역할이라든가 동북아의 화평분위기 조성과 같은 막중한 임무를 차질없이 수행해야 할것이다. 어쨌든 노대통령의 5년 재임은 한국을 과거 권위주의 통치시대로부터 민주화의 장정으로 인도하는 길을 마련한 것으로 볼수 있다.역사는 노대통령을 한국민 뿐아니라 다른 주변국가 국민들에게도 과거를 깨뜨리고 희망의 빛을 제공한 한국의 지도자로 기억할 것이다.
  • 노 대통령 14대국회 개원식 연설문 요지

    ◎6개월 남은 대선 과열되지 않도록 각당 합의를 지난 3월 총선거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고 국민의 대표로 선출되어 오늘 영예로운 자리를 함께하신 국회의원 여러분께 충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6·29선언」다섯돌을 맞는 오늘 14대 국회가 개원하게 된 것은 매우 뜻깊은 일입니다.국민의 뜻을 담아 발표한 「6·29선언」은 천길 벼랑으로 치닫던 나라의 위기를 민주와 화합의 새 시대를 여는 기회로 역전시켰습니다.「6·29선언」은 우리의 정치 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남북문제·외교·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문에 걸쳐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혁명적입니다.6·29민주화의 선택은 분명히 어느 한사람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선택이었습니다.「6·29선언」에 담긴 8개항의 민주화 개혁은 모두 이행되었습니다.그러나 그것이 「6·29민주화」의 마감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6·29선언」에 담긴 우리 국민의 뜻… 민주정신,화합정신,자율과 개방,인간존중의 정신은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키고 꽃피워야 할 이념입니다. 북한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추구하겠다고 천명한 「7·7선언」은 4년간의 끈질긴 노력끝에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 공동선언」이라는 열매를 얻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남북한의 역사적인 유엔 동시가입은 매우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문제는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개발은 우리겨레의 생존과 안전은 물론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국제기구의 핵사찰은 물론,남과 북이 「비핵선언」에서 합의한 상호사찰을 지체없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민주화와 개방화·국제화에 따른 안팎의 도전을 맞아 구조조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지난 4년동안 우리 경제는 평균 9%이상의 높은 성장을 계속하여 국민총생산과 1인당 국민소득이 모두 2배이상 커졌습니다. 그러나 민주화 과정에서 한때 과격한 노사분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임금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오르고,많은 근로자들이 힘든 일을 꺼려 제조업을 떠남으로써 인력난까지 겹쳐 우리 경제는 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경제의 운영은 가능한한 시장의 원리에 맡기고,정부의 간섭과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조치는 선진경제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꼭 해야할 일입니다. 저는 올해 예정된 두차례의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연기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리고,금년 연두기자회견에서 이 선거의 시기는 새로 구성되는 14대국회에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그것은 한해에 네 차례의 선거를 치르고는 우리 경제의 발전도 사회의 안정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대다수 국민의 뜻에 따른 것입니다. 전후사정이 어떠하든 자치단체장 선거가 당초 약속한 기일안에 실시되지 못한데 대해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국회가 조속히 지방자치법 개정안을 심의하여 선거의 시기를 새로 결정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저는 국회가 당략의 차원을 떠나서 우리의 선거풍토를 일신하고 정치의 선진화를 위해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해 주기를 바랍니다.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선거운동기간의 단축도 필요할 것입니다. 아직 6개월이나 남은 대통령 선거가 일찍부터 과열되지 않도록 각 정당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이 이끌어 나갈 14대 국회의 4년은 우리겨레의 21세기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14대 국회는 바로 번영하는 통일한국을 이루어가야할 막중한 책무를 안고 출범했습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진지한 정책대결과 입법활동에 몰두하는 국회,높은 도덕성을 보여주는 청렴한 국회의원이 진정 국민이 바라는 우리 정치의 모습일 것입니다. 80년대에 한국인은 3가지 신화를 창조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경제적 기적」과 「민주정치의 기적」,그리고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올림픽을 치른 「문화국민의 기적」입니다. 90년대에 우리는 세계를 다시 놀라게 할 두개의 신화를 더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것은 7천만 한민족이 한나라로 사는 통일조국을 이루는 것이며,국민소득 2만달러를 바라보는 선진국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14대 국회가 다시 세계를 놀라게 할 한국인의 90년대 신화를 만들어 내는 산실이 되어주기를 기대합니다.
  • 국가경영전략연,「6·29」5돌 성과와 과제 심포지엄

    ◎「제도적 민주화」 걸맞는 의식선진화 시급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사장 강경식)은 29일 6·29선언 5주년을 맞아 「한국민주화의 현재까지 성과와 앞으로의 과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이날 하오 2시 여의도 중소기업회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심포지엄에는 김동환변호사가 「법과 질서」, 이동찬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능률과 형평」, 정진석외국어대교수가 「민주발전과 언론」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국가의 당면과제와 2천년대 재도약을 위한 종합전략을 제시했다. ◎법과 질서/김동환 변호사/지자제등 「자율」 크게 확대/다양한 욕구 타협적수렴 바람직 6·29특별선언이 있을 수 밖에 없었던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보면 우리 사회의 모든 관심과 노력이 정치현상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특히 5·16군사혁명이후 정치권력이 경제의 주동력이 되자 국민들의 경제생활·사회생활이 정치권력의 향배에 크게 영향을 받게 되었으며 따라서 국민의 관심이 정치상황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극도로 혼란한정치상황이 국민의 동요를 배제하기 위한 처방으로써 6·29선언이 구상되었다고 보며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 6·29선언의 본질적이며 직접적인 의의는 대통령직선제를 채택함으로써 정치상황의 안정을 도모하는데 있었다. 또한 이 선언이 정치상황의 안정에 본래적인 의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나타난 효과는 국민의 의식과 생활전반에까지 미치고 있다.특별선언이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그 효과는 사회의 모든 활동에 대해서도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특별선언 여섯째 항목에서 사회 각 부문의 자치와 자율을 보장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자제실시,대학교육의 자율화,교육의 자치 등을 예시하고 있는데 비추어보더라도 제도를 통한 자치와 자율의 확대보장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제도에 의한 자치와 자율의 확대보장은 국민적 욕구를 처리하기엔 너무나 미흡했다.쾌적한 환경을 요구하는 주장,안전한 소비생활을 요구하는 주장,적정한 책임과 인간다운 생활을 요구하는 주장,참다운 교육을 실시하고 받아야 한다는 주장,장애가 있는 사람이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주장,성별·지역별·학력별 차별을 해서는 안된다는 주장등 다양한 주장들이 알게 모르게 분출된 것이다. 정확히 말해 6·29선언이 다양한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행위를 자유롭게 허용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주장들이 개입되었으며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를 찾아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 현실이다. 정치권력에 의해 억제되고 획일화를 요구받던 다양성의 회복은 빠른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경험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다보니 현행 질서와의 충돌이 불가피했던 것도 사실이다.당면한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는 궁극적으로 손실을 초래한다는 경험을 가지게 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의 당면한 과제는 다양한 시민적 필요에 부응하는 새로운 질서의 실현이다.정리되지 않은 다양성을 정리하여 발현하는 자율적인 시민활동의 활성화를 통하여 그러한 노력은 성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새로운 제도는 사적자치의 확대강화와 공권력개입의 축소약화라는바탕위에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지방자치제의 활성화에 따라 생활법률분야를 조례에 위임하는 방안이 권장되어야 한다.자치와 자율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공공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하는 경우 문제의 그 우선순위 등에 따르는 불만은 해소될 것이다. 모든 생활법률은 규제가 아닌 인도를 기본정신으로 하여 제정되어야 한다.정부나 지방자치단체는 국민들의 생활수요를 능동적으로 발굴하여 민원에 앞서 제도화하는 적극적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건전한 시민의식은 준법생활로 부터 시작된다.법을 지키지 않으면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엄정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국민을 맡아서 처리하는 당국자들의 깊은 철학과 결연한 의지,그리고 국민모두의 인고와 호응이 있어야 제도의 정비와 의식의 정립이 이룩될 수 있다. ◎능률과 형평/이동찬 경총회장/고임금따른 역기능 표출/「경제풍향」제시할 일관정책 긴요 우리경제는 6·29이후 일대 변혁기를 맞는다.그것은 성장가도를 달리며 뒤돌아볼 틈이 없었던 우리경제가 잠시 홍역을 치를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상황에 기인하고 있다.성장의 그늘속에서 잠시 유보시켜 놓았던 문제인 분배와 균형에 관한 요구가 경제민주화 조치와 함께 자연스럽게 대두되었기 때문이다.5주년을 맞는 요즈음 다소 안정되어 가는 느낌도 있지만 그간의 문제해결에 있어 아쉬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6·29의 본래취지가 어떤면에서는 왜곡되어 너무 조급하게 변화를 바랐던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경제와 관련된 일련의 정책들도 경제발전을 위한 순기능적인 역할도 많이 했지만 일시에 많은 변화를 요구한데서 오는 역기능도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다. 88서울올림픽의 주최는 우리민족에게는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그것은 바로 경제의 힘이었다.우리경제가 세계10대 교역국으로까지 성장할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인가.기업들의 노력도 간과할수 없지만 역시 최대의 공로자는 우리 근로자였다.그러나 계속된 성장위주의 정책은 근로자복지 향상면을 다소 소홀히 하도록 하는 구실을 제공해주었다.근로자들의 쌓인 욕구불만은 결국 6·29경제민주화 조치와 함께 일시에 도출되면서 산업계는 홍역과 같은 과도기적 현상을 맞게 된다. 6·29선언은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풍미하는 가운데 잠시 잊고 있었던 문제들에 대해 되돌아 보게끔한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다.근로자들이 자신의 몫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패배감에 젖게 됐고 이 패배감은 과격한 노사분규로 이어져 기업현실이 등한시된채 과도한 임금인상의 결과를 낳고 말았다.87년이후 임금인상은 생산성 향상의 뒷받침없이 이루어졌다.사회적변화와 요구를 풀어가는 과정에 있어 너무 조급하게 처리하려고 했던 것이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음을 간과할 수 없다.근로자들의 가계수지가 사상유례없는 높은 임금인상률에도 불구하고 별로 좋아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국민소득 5천달러는 결코 잘사는 나라의 수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과소비 풍조의 만연,주택및 전·월세가격의 상승등은 결과적으로 근로자들로 하여금 상대적 빈곤감을 더해준 꼴이 된 것이다.해마다 6천개가 넘는 기업이 도산하고 있으며 과소비풍조속에 자고나면 없어지는 것은 중소제조업이고 늘어나는 것은향락산업이다.우리경제는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고있다.최근들어 경제단체및 언론이 주체가 되어 「우리경제를 되살리자」는 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6·29선언은 경제정책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주택 2백만호 건립은 주택문제해결과 부동산가격안정에 실로 큰 역할을 했다.그러나 원자재및 임금상승을 부추겼고 성장도 제조업위주에서 건설·서비스분야가 중심이 되는등 급기야 제조업경쟁력강화 문제가 대두되는등 역기능도 무시할수 없다.5·8부동산조치도 부동산가격의 상승을 잡아보겠다는 정부의 신념에 따라 많은 성과를 보인 반면 상대적으로 기업의 활동은 위축되었다.금융정책에 있어서도 계속된 긴축정책은 물가안정에 기여한 공로와 함께 기업의 활동성을 약화시킨 면도 있었다.이상 몇가지 예는 6·29이후 경제정책을 비판하는 차원이 아니라 너무 급하게 모든 것을 처리하려했던 면과 정책의 일관성이 더러는 없었다는 아쉬움때문이다. 6·29 5주년시점에서의 과제는 각자 제역할을 다해야 한다는데있다.국민은 근검절약하는 가운데 저축을 생활화해야하며 기업도 근로자에 대한 시각을 새로이 정립하여 복지향상을 통한 실질적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근로자는 경제시국에 대한 위기감을 공감하는 가운데 땀흘려 일하는 풍토를 재조성해야 한다.정부도 강력하고도 가시적인 정책을 장기적 안목에서 일관되게 시행해나가야할 줄 믿는다. ◎민주발전과 언론/정진석 외대교수/언론 급신장속 질 못따라/사이비매체 봇물… 부작용 없애야 6·29선언은 언론의 모습을 크게 변모시키는 계기가 되었다.6·29선언의 8개항목 가운데 가장 특기할 부분은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언론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하겠다는 항목이다.언론의 자유는 6·29이후 오늘까지도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6·29선언 이후에 정치상황의 변화,서울올림픽 개최등을 통해서 언론은 이전의 여러가지 통제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과거에는 금기시되었던 영역을 과감하게 보도할 수 있게 되었다.87년11월에는 언론기본법이 폐지됐고 이에앞서 8월에는 주재기자제도가 부분적으로부활됐다.6년만에 신문의 증면이 이루어졌고 기독교방송이 뉴스방송을 다시 시작했다.또 신문·잡지의 발행을 자율화함에 따라 새로운 언론매체가 대량으로 등장했다.60년 4·19직후 제2공화국이 발행의 자유를 제한없이 보장했던 이후 30여년만에 처음 나타난 현상이었다.언론사의 노조결성,언론의 민주화노력등 언론활성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6·29선언때 32종이던 일간지가 92년3월말 현재 99개로 3배이상 늘었다.88년1월과 7월에는 월북작가 1백20여명의 작품을 해금했다.88년7월7일 대통령특별선언이 나온이후 정부는 북한의 자료를 9월3일부터 제한적으로 개방했다.이때부터 북한서적이 시중서점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6·29이후 신문발행의 자유가 상당부문 회복되면서 언론계와 정부당국은 또다시 제2공화국 시절과 같은 언론기관의 난맥상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있었다.그러나 4·19직후와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90년 상반기부터는 신문이 연중무휴 발행을 실시하고 있다.석간지의 일요판과 조간지의 월요판 발행은 5·16후 군사정부의 언론정책에 따라 62년8월부터 중단됐었다.30년 가까이 지켜져왔던 금기의 벽이 무너지고 연중 쉬는날없이 신문이 발행될 수 있다는 사실도 언론자율화현상의 하나이다. 6공언론을 가장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현상은 언론노조의 결성과 기자들의 집단적인 활동이다.89년 1월까지 전국 43개 언론사에 노조가 결성되었고 조합원수가 1만4천여명에 이르렀다. 6·29선언이후 언론자유의 신장과 언론사·언론인구의 급격한 증가에 따르는 문제점도 있었다.첫째,언론사의 급격한 증가로 사이비기자와 사이비 경영인이 발호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사이비기자에 의한 피해를 막기위해서는 공보처와 신문협회·언론중재위등에 「사이비기자 고발센터」를 두기도 했으나 완전근절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둘째,기자들의 윤리와 책임의식이 언론자유의 신장에 비례해서 높아지지는 못했다.과거의 비리가 많이 시정되었으나 언론계의 자정노력은 큰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셋째,언론은 지면을 배가함으로써 전달하는 정보의 양적규모를 확대하는 것처럼보이지만 증가된 지면의 반이상을 스포츠·연예오락·광고가 차지하고 있다.균형잃은 지면배정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필요한 정보와 기본권에 관계된 정보는 상대적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넷째,과당경쟁으로 인한 센세이셔널리즘,인권및 프라이버시침해등의 사례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끝으로 발행의 자유가 허용되었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새로운 매체가 기존매체와 경쟁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기존매체는 자율화이전에 이미 대기업화하였기 때문에 새로운 매체는 기존매체에 비해 모든면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여있어 여론의 획일화현상을 심화시킬 우려도 있다.
  • 「6·29선언」 5돌을 되돌아보며(사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며 노태우대통령은 『이 선언은 나의 통치철학이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87년의 6·29선언은 당시 민주주의 관건이라고 여겨졌던 개헌시비를 일단락시키고 정치의 자유,기본권의 신장을 약속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정치적 파탄에서 구해주고 실질적인 민주화의 길을 터준 중대하고 현명한 결단이었다. 지난 5년간을 되돌아 볼때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서 자유가 크게 신장되어 정치·사회 분위기가 질적으로 달라진 사실에 대한 평가에 인색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지금 우리는 6·29이후 민주화를 위한 각계각층의 욕구가 분출하면서 새로운 많은 문제에 당면,「무엇을 할것인가」이상으로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를 심각히 생각하지 않을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우리의 당면문제는 어디까지나 우리의 정치·사회·경제및 주변상황등 현실적인 특수성을 감안,「개혁」을 부단히 추구하되 「안정」이라는 기틀에 흔들림이 없도록 신축성있는 정책이 그 어느때 보다도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 와 있다. 우리는 현재 사회 제권위의 갑작스런 붕괴등 과도기적이긴 하나 일종의 사회적 혼돈마저 경험하고 있는 속에서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스스로 이에 역행하는 행동을 취하는 자가당착적인 모순이 일부 이익집단들의 행위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목격하고 있다. 민주체제의 정착은 민주적인 법과 제도가 국민과 정치를 행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그 가치와 안정성이 현실적으로 드러날때 그 실현을 실감케 된다. 우리의 민주화는 민주와 반민주라는 구도가 정치권에서 소멸하고 재야 정치세력이 제도권으로 유입되는 상황에 이르렀고 지난 두차례의 선거에서도 탄압과 부정이라는 관권 개입에 따른 불만이 없어진 대신 금품유포나 대중동원등의 타락상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의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다.그 부정적 결과로 국가경제에 주름살을 주고 정부와 정당의 정책에 불신감을 키워주고 있는것이 오늘의 정치 현실이다.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민주화 실현이라는 기본정신 보다는 당과 정파들이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매달려 현 사회·경제적으로는 많은 「착오」와 문제점을 예견하면서도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어떤 정치행사의 당장 「시행」을 강요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주장을 우리는 듣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고 제도상의 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이 이뤄진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토착화 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며 국민들이 민주적 관행에 익숙해져야 하는 것이다.우리는 권위주의의 청산과 민주체제로의 전환이라는 단계에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고 있으나 정착의 단계에서 적지않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일부 야권에서는 지금 6·29선언중 지방자치단체장선거 연기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정치공세를 펴 국회가 국민을 대변하고 정책을 협의하며 현안을 논의,분쟁을 해소해나가야 함에도 본래 기능을 정략적으로 이용,마비시켜 놓고 있는 실정이다. 노대통령은 『작년 지방의회까지 구성 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개혁을 모두 이뤘다』고 말하면서 『그러나 6·29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더욱 폭넓게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민주화의 긴긴 도정에서 민주주의는 실천과 시도 및 시행착오속에서 정착화되고 뿌리를 내려간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면서,그러나 「시행」은 하되 「착오」는 어떻게든 줄여 나가야 할 책무는 1차적으로 정권담당자에 있다는 점을 당부해 두고자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크게 이견이 없는 상황에 있다.그러나 「어떻게 할것인가」의 문제에서는 상황과 여건을 면밀히 검토,특정 정당의 당략이나 정략을 떠나 보다 대국적인 입장에서 민생과 국가경영상의 제반문제도 폭넓게 수용하는 지혜와 도량을 가져주기를 기대한다. 어떤 의미에서든 6·29선언이 4·19와 더불어 온 국민의 호응을 받은 역사적인 결단이었으며 이 선언이 오늘의 한국 민주화의 기본틀을 세우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만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4년간 경제성장의 열매에서 더 많은 몫이 근로자에 돌아간것도 사실이요,사회가 그 어느 때보다 다원화되고 일사불란한 권위주의 체제가 거의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 점 또한 누구나 실감해가고 있다.그러나 우리는 정치권의 행동양식이나 행태에 대해서는 여전히 국민의 부정적인 시각이 강하다는 점을 정치인들은 깊이 인식해 주기를 바란다. 6·29선언이 87년 당시 국민의 시대적 요구를 수용한 노대통령의 결단이었다면 오늘의 정치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은 국민이 정치인들을 보는 시각이 어떠하며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를 세심히 살펴 당리당략을 앞세우는 정치행태를 지양하고 국민경제와 사회현실에 보다 깊은 성찰이 있기를 기대한다.이것이 바로 6·29선언의 기본정신이며 이나라에 민주화의 초석을 놓는 책임있는 정치인의 임무다.
  • 「6·29선언」 얼마나 이룩됐나

    ◎“민주·화해·자율” 정신혁명이 최대결실/자자제실시로 선언8개항 완결/역대정권의 정통성 시비 일거에 해소/북방외교 대성공… 통일시대 가시화 6·29선언은 민주화와 자율화를 골간으로 한다.권위주의체제를 청산하고 민주체제로의 이행을 약속한 것으로 함축할 수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취임이후 임기만료 8개월여를 앞둔 현시점까지 6·29선언에 담긴 약속을 착실히 실천해 왔다고 할 수 있다.노대통령의 표현대로 이는 노대통령의 통치철학이었고 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이념이 되어왔다. 6·29선언 5주년을 맞으면서 약속사항들이 어느정도 지켜졌는가를 각론적으로 따지는 것은 자칫 무의미할 수 있다.정치적 시비는 있을 수 있겠지만 지난해 지방의회선거의 실시로 6·29선언 8개항은 사실상 완료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중요한 점은 6·29선언속에 담겨있는 민주,화해·화합,자율의 정신을 국가·민족적 과업에 구현시켜 나갈 수있는 태세를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이는 번영과 통일이라는 민족적 숙원을 목표로 한다.그러나 이것은노대통령과 정부만의 과제는 아니다.국민 모두가 힘을 모아 풀어나가야만 달성할 수 있는 과제이다.6·29선언으로 시작된 우리의 민주화 대장정은 이제 국민 각자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할 만큼의 단계로까지 무르익은 것이다. 6·29선언의 8개항은 ①조속한 대통령직선제 개헌과 새헌법에 의한 평화적 정권이양 ②대통령선거법개정과 공명정대한 선거관리 ③시국관련사범의 대폭석방및 사면복권 ④인간존엄성의 존중과 기본권의 최대한 신장 ⑤언론기본법폐지등 언론자유의 창달 ⑥지방자치,대학자율화,교육자치등 사회 모든 분야의 자치와 자율보장 ⑦정당활동의 보장과 대화·타협의 정치풍토 마련 ⑧과감한 비리척결과 밝고 맑은 사회건설등이다. 이가운데 정치적 시각에서 굳이 문제를 삼을 수 있다면 단체장선거연기와 연관한 지방자치,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 정도일 것이다. 지방자치 문제는 선언당시 「지방의회」로 명시됐던만큼 사실상 위약의 소지는 없다.그러나 단체장선거의 금년 실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이 사실이었고 이는 각종 여론조사를 통해 뒷받침되었다.6·29선언을 탄생시킨 「국민의 뜻」이 단체장선거 연기에도 투영됐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타협의 정치풍토,비리척결은 노대통령 자신만의 의지로 이룩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그러나 노대통령이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을 발표한 배경에 대해 『온 나라가 위기와 긴장감에 휩싸여 나라의 운명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속에서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물론 나라의 장래를 기약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술회했다.당시 대통령직선제로의 개헌은 여권의 패배로 간주되는 상황이었다.따라서 이를 골자로한 6·29선언은 가히 「혁명적 조치」로까지 평가되었고 이를 바탕으로한 정면돌파작전은 노대통령에게 대선에서의 승리를 안겨주었다. 이렇게 출범한 6공정부는 역대 정권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던 정통성시비를 불식시킬 수 있었고 지속적인 민주화조치를 통해 우리 정치의 민주대 반민주구도를 타파할 수 있었다. 노대통령은 『지난 총선에서 민주화가 더이상 이슈화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해냈구나 하는 한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민주화가 더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는 점에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게 된 것이다.대통령이 코미디의 소재로 될 만큼 권위의 색채는 엷어졌다.공직자 모두에게 군림이 아닌 봉사의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민주화의 정착은 집권여당의 대통령후보가 자유경선에 의해 선출된 것으로도 확인된다.지난 총선을 통해 재야정치권이 해체되어 제도권 정치로 흡수된 것이나 차기대통령선거의 각당 후보가 순수민간인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의 민주화가 어느정도 진척되었는가를 보여주는 표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에 따른 한국의 대외적 위상제고는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이어졌고 결국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을 성취해 냈다.또 국제적인 화해조류에 맞춰 북한과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비핵화」선언을 발효시키는등 남북한관계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6·29선언을 실현하는데 있어 숱한 우여곡절과 함께 부정적 파급효과도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이른바 민주화의 대가이다.6·29선언으로 물꼬가 터진 민주화의 물결은 엄청난 욕구의 분출을 몰고왔다.이에따라 한동안 우리사회에는 무질서가 범람하고 탈제도로 치닫기도 했다.노대통령의 이미지도 우유부단으로 희석되기도 했다. 이는 6공정부가 추구했던 경제의 자율화,개방화와 맞물려 급격한 임금상승,근로조건 향상등에 따른 우리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켰다.그리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우리 경제에 적지않은 부담이 되고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 경제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산업구조조정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다.우리경제의 기조를 안정적이고 대외경쟁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라는 견해다. 총체적으로 6·29선언은 나라의 모습과 국제적 위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음이 틀림없다.외국의 저명학자들도 동의하듯이 노대통령은 역사발전과정에서 민주화를 이룩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을 것이다.그러나 이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아직도 극복해야 할 과제는 너무나 많다.그 주체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도 국민 각자가 져야 할 것이다.
  • 「6·29선언」 5돌… 노 대통령의 소양

    ◎“국민의 시대적요구 전폭 수용한 시민혁명”/“권위주의 통치 벗고 「보통사람의 시대」열게 노력/인내와 자제로 어려움 견디어주신 국민에 감사”/「민주화 대가」겨레발전의 소중한 자산/“87년 역사순리따라 단안… 선진국 진입·통일시대 주도할 이념으로 승화되길” 지난 5년간 6·29선언에 담긴 국민의 열망을 실천해 나가는데 헌신적으로 일해주신 당과 정부의 여러분에게 충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민주화 추진과정에서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어 주신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우리 민주화의 과업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우리 국민이 인내와 자제로 성숙한 민주시민의식을 발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5년전 당시를 회고하면 지금도 온갖 감회가 교차됩니다.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들의 함성이 거리를 메우고,온나라가 위기와 긴장감에 휩싸여 나라의 운명이 한치 앞을 내다볼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혼돈속에서 나는 민주화라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이것을 수용하지 않고는 정치와 경제의 안정은 물론 나라의 장래도 기약할수 없다는결론을 얻었습니다. 당시 나는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로서 모든 기득권을 다 버리더라도 역사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으뜸정신은 「민주」 6·29선언의 내용은 국민이 원하는 8개항의 민주화 개혁방안을 담은 것이지만 8개항의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선언에 담긴 정신입니다. 그 으뜸가는 정신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정신입니다. 국민은 나라의 주인이며 국민의 뜻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한다는 매우 당연하면서도 헌정사에 일찍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정신입니다. 6·29선언이 지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측면은 화해·화합의 정신입니다. 지역간·계층간·세대와 집단간에 패인 골을 메워 국민화합을 실현하는 것은 민주주의 뿐아니라 겨레의 앞날을 위해서도 긴요한 과제라는 인식입니다. 6·29정신은 또 국민의 자율을 존중하고 모든 것을 개방하는 정신입니다. 6·29선언에 담았던 내용과 정신이 진정한 우리 국민의 염원이라 믿었기에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후 이를 나의 통치철학,국가를 경영하는 기본이념으로 삼고 지난4년여동안 국민에게 약속한 8개항의 민주화 개혁과 선언의 정신을 구현하는데 최선을 다해왔습니다. 우리는 오랜 권위주의 통치를 청산하고 정치참여와 정치적 경쟁의 자유,사법권의 혁신,인권의 신장,지방자치제의 실시등 광범한 민주화를 추진했습니다. 경제·교육·노동등 사회 각 분야에 자유와 자율이 크게 신장되고 권위와 권력의 분산이 널리 이루어졌습니다. 6·29선언으로 우리 헌정사에 해묵은 「민주대 반민주」갈등구조가 해소되었기 때문에 여야의 노선을 같이하는 동지들이 정치안정,정치선진화를 위해 3당을 통합하여 민자당을 창당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집권여당으로서는 처음으로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아 헌정사에 새 기원을 이루고 당의 민주화에 획기적 전기를 만든 것도 큰 보람입니다. 재야 정치권이 해체되어 제도권 정치로 통합된 것도 우리의 민주화가 어디까지 진척되었나를 보여주는 좋은 이정표입니다. 이와함꼐 모든 부문에서 갈등을 풀고,상처를 치유하고,마음에 패인 골을 메우고,잃었던 명예를 회복시키고,부당한 손해를 보상하는 일이 추진되었습니다. 야당정치인의 사면복권,시국사범의 석방,민화위의 구성·운영,광주민주화운동의 명예회복과 보상등이 이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국민화합을 실현하려는 이러한 노력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광범하게 이루어졌습니다.지역간 균형발전을 위한 대대적인 서해안 개발이 그러한 노력의 하나입니다. 작년 지방의회까지 구성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 개혁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6·29의 정신을 지속적으로 승화 발전시키는 일은 앞으로도 더욱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대가를 가장 많이 치러야 했던 분야가 우리 경제였습니다. 사회의 민주화는 일시적으로 과격한 노사분규와 급격한 임금인상을 가져오고 근로분위기를 해쳐서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여기에 개방화에 따른 우리 경제는 전반적인 구조조정의 국면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나 경제운영의 원리를 시장의 원리로 복귀시키기 위한 광범위한 개혁이 이루어지고 정부의 간섭과 규제가 대폭 완화된 것은 우리 경제의 장래를 위하여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구조조정과 안정화 시책이 기업에는 견디기 어려울 때도 있고 국민들이 그 효과를 느끼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모두가 합심해서 참고 견디면서 밀고 나가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역사의 줄기 바꾸고 6·29선언은 보통 사람들의 위대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열화같은 민주화 요구는 보통사람들의 결집된 의지였으며 6·29선언의 주체는 바로 보통사람이었습니다. 취임후부터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시대」를 열기위해 국민과의 벽을 허물고자했으며 그동안 하루평균 30명,연인원 4만7천여명의 보통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보통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제운용도 많은 결실을 거두었습니다.전국민의료보험·국민연금·최저임금제가 도입되어 국민복지제도의 틀이 완성되었습니다. 국민복지분야의 예산만 보더라도 87년의 8천8백억원이 금년에는 2조9천억원으로 늘어났고 전체 예산의 비율도 5.3%에서 8.1%로 늘어 났습니다. 지난 4년간 경제성장의 열매에서 더 많은 몫이 노동자에게 돌아가게 된것도 반가운 일입니다. ○인식의 대전환 필요 6·29민주화는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화가 성공했기 때문에 서울올림픽도 성공적으로 치를수 있었고 전통적인 선진 우방과의 대등한 동반자 관계도 가능하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 민주·화합의 시대가 성공적으로 열렸기 때문에 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한 대외관계에서도 화합의 시대를 성공적으로 열어 나갈수 있었습니다. 민주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대가를 치렀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우리는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위해 더할수 없이 소중한 자산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민주화의 꽃을 활짝 피우기 위해 꼭 극복되어야할 과제중의 하나는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민주화에 대한 모순된 인식입니다. 명분상으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권위주의적 방식을 정부에 요구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의 문제는 객관적·합리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자기 문제에 대해서는 아집과 이해관계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점등이 그 대표적인 사례들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자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끊임없는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6·29선언 이후 5년, 대통령 취임후 4년4개월이 지난 지금 아직도 미진한 일,보완되어야할 부분이 많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 이자리에는 당정의 고위간부가 다 모였으니 아직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남은 임기동안 보다 투철한 사명감으로 보완·발전시켜주기를 당부합니다. 특히 내 임기안에 못다한 문제들은 후임 대통령이 훌륭히 이루어 갈 것으로 믿습니다. 나라의 민주화와 보통사람들의 시대를 여는데 앞장서온 여러분의 노고를 치하하며 지난 5년간 저를 성원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거듭 감사드립니다. □「6·29선언」 8개항 내용 1·여야합의하에 조속히 대통령직선제개헌을 하고 새헌법에 의한 대통령선거를 통해 88년2월 평화적 정부이양을 실현한다. 2·직선제 개헌이라는 제도의 변경 뿐만 아니라 이의 민주적 실천을 위해 자유로운 출마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 국민의 올바른 심판을 받을수 있도록 대통령선거법을 개정한다. 3·모든 분야에 있어서의 반목과 대결을 과감히 제거,국민적 화해와 대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김대중씨를 포함한 시국관련 사범을 대폭 사면·복권한다. 4·인간의 존엄성은 더욱 존중되어야 하며 국민 개개인의 기본적 인권은 최대한 신장되어야 한다. 5·언론자유의 창달을 위해 관련제도와 관행을 획기적으로 개선한다. 6·사회 각부문의 자치와 자율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며,이를 위해 대학의 자율화와 교육자치,지방의회 구성을 통한 지방자치를 실현한다. 7·정당의 건전한 활동을 통한 대화와 타협의 정치풍토 마련을 위해 국가는 정당의 건전한 활동을 보장한다. 8·밝고 맑은 사회건설을 위하여 과감한 사회정화 조치를 강구한다.이를 위해 폭력배를 소탕하고 강도·절도사범을 철저히 단속하는등 서민생활 침해사범을 척결하고 우리사회에 잔존하는 고질적인 비리와 모습을 과감히 시정한다.
  • 6·29선언 5돌 당정평가대회 보고내용

    ◎정치·경제·사회 민주화의 기틀 공고히/ 27일 청와대에서 열린 6·29선언 5주년 평가보고대회에서 민자당·국무총리실·법무부·공보처는 각각 해당 분야별 성과를 보고하고 남은 과제를 제시했다. 당정은 이날 6·29선언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는 기본 자유가 신장되고 권위주의가 청산됨으로써 민주화가 획기적으로 신장·확산되어 국가발전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고 평가했다.또한 앞으로 6·29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사회풍토를 조성하고 각종 부조리를 척결해야한다고 강조했다.이날 당정보고내용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자율화·사회질서의 확립/총리실 ◎지방의회 구성… 「풀뿌리 민주」 실현 ▷자치와 자율의 확대◁ 시·군·구의회와 시·도의회를 구성함으로써 다양하고 균형있는 지역개발추진등 효율적인 국가·사회발전의 토대를 구축,주민의 참여와 자율로 주변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했다.지방자치법령·지방선거법령등 자치관련 법규의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지방자치의성공적인 착근과 이의 내실있는 발전을 위한 여건조성에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하고 자치단체의 행·재정력 확충을 통한 자치능력의 보강을 이룩했다. 또 교육위원회에 심의·의결기능을 부여하고 교육청과 교육자치기관간의 독립성 유지로 교육자치의 틀을 마련하고 교육감과 교육위원도 지방자치 정신에 입각,선출하도록 제도화했다.대학도 교수와 학생이 주인이 되어 자율적으로 운영토록 국·공립대 총학장을 대학의 복수추천에 따라 임명하고 사립대의 총학장 임명승인제를 폐지했으며 교수회의 활성화와 대학평의원회 구성및 운영,학생자치기구 운영등으로 활기찬 학원분위기를 조성했다. 민간의 창의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자율적 경제체제로의 전환및 노사간 화합,행정권한의 민간위탁확대와 행정규제의 완화등으로 사회 각분야의 민주화와 자율화의 토대를 구축했다.특히 통일논의의 개방,해외여행 자율화,자유로운 창작활동 보장등 각부문의 자율영역을 확충했다. ▷밝고맑은사회건설◁ 112순찰차 확대,인원·장비보강등 범죄대응체제를 강화하고 심야퇴폐유흥업소등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제도적 보완으로 민생치안 상황이 크게 호전됐으며 불법 주정차,음주운전,노점상,등산시 취사행위 등의 금지조치를 통해 자유민주시민의식을 제고시켰다.이와함께 「새질서·새생활운동」을 전개,사치·호화·낭비및 비능률·불합리 등을 추방하고 일더하기등 「5대 더하기운동」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또 「특명사정반」「비리 수사부」운영을 통한 고위공작자등 사회지도층 비리의 예외없는 의법조치등으로 누적된 구조적·고질적 부조리에 대해 「성역없는 수술」을 전개했고 부동산투기,외화유출,금융부조리,탈세등 경제질서 문란행위에 대해서도 부단한 단속과 제도개선을 추진했다.재벌기업단체에 의한 경제력 집중억제,각종 불공정거래에 대한 규제강화로 건전한 경제질서를 확립한 것도 특기할만한 일이다.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택 2백만호건설등을 추진,전국 보유주택수의 33% 물량을 5년만에 건설했으며 2000년까지 42조원을 투입,잘사는 농어촌 기반조성을 위한 농어촌발전 종합대책을 수립,시행중이다. ▷반성과 다짐◁ 과도한 지역이기주의와 권한의 효율적 수용태세 부족으로 지방자치의 활성화가 미흡하며 중소기업의 창업과 경영등의 실제활동에 아직도 많은 간섭과 규제가 남아있다.어린이,여성대상 범죄 등에 대한 체감치안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고 일선 대민행정행태에 대한 불만도 아직은 거센 상태다. ○기본권관련 법·제도 개혁/법무부 ◎시국사범등 1만여명에 사면조치 ▷인권보장의 제도적 장치 마련◁ 헌법을 개정,집회 결사의 허가제를 폐지함으로써 자유권을 확대하고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범죄피해자구조권및 청구권과 모성보호규정을 신설했다. 국제인권규약과 국제노동기구(ILO)등 인권관련 국제규약에 가입함으로써 인권선진국을 지향했다. 헌법재판소법을 제정해 운영함으로써 인권보장의 체계를 완비하고 법원조직법과 검찰청법을 개정해 사법부와 검찰의 독립성·중립성을 강화했다. ▷보통사람들의 기본권신장◁ 대한법률구조공단을 설치해 서민들의 소송구조범위를 확대하고 민법및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 여성의 지위향상에 노력했다. 쾌적한 생활권을 보장하기 위해 환경정책기본법을 제정하고 의료수혜권을 확충했다. 근로시간의 단축,최저임금법의 시행,산재보험법의 개정등을 통해 근로자의 생활권을 향상시켰다. ▷형사법상의 기본권 강화◁ 형법상의 국가모독죄를 삭제하고 구속적부심의 확대,피해자 진술권등을 보장했다. 범죄피해자구조법을 제정해 범죄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국가부조를 의무화했다. 사회보호법을 개정,필요적 보호감호처분을 폐지했으며 보호관찰대상을 축소하고 전과관리기록도 개선했다. ▷사면·복권및 공안관계법률 정비◁ 국민화합을 위해 87년 7월 2천3백35명을 사면·복권한 것을 비롯,3차례에 걸쳐 1만7백25명에 대해 사면·복권을 단행하고 2천6백97명의 시국사범을 석방했다. 논란이 되어온 국가보안법을 개정,반국가단체의 범위를 지휘통솔체제를 갖춘 경우로 한정하고 금품수수·잠입탈출등에 대한 불고지죄 폐지,국외공산계열관련 잠입·탈출 처벌조항의 삭제를 통해 오·남용소지를 없앴다.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제정,노동쟁의조정법의 개정을 통해 쟁의행위의 제한을 완화했다. ▷민주발전을 위한 참정권신장◁ 국정감사및 조사법을 제정하고 국민투표법상의 정당의 찬반활동을 허용했다. 공명선거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사전선거운동,불법자금의 유입차단,과열및 타락방지등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적극적이고 엄정한 수사를 전개했다. ▷평가와 향후과제◁ 갈등과 반목으로 야기된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극복,국민통합을 이룩했고 각분야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크게 신장됐다. 각종 법적·제도적장치의 개혁으로 민주발전의 기반·국제적 지위의 향상과 통일기반을 조성했다.그러나 자유와 권리의 신장에 따른 책임과 의무에 대한 인식이 따르지 못해 준법·질서의식이 미흡하다.일부 잔존하고 있는 공직사회의 권위주의,부조리,공복의식의 부족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언론자유 창달·사회변화/공보처 ◎언기법 폐지… 신문·방송에 자율권 ▷언론자유보장법률·제도의 개혁◁ 언론기본법을 폐지하고 「정기간행물 등록등에 관한 법률」등 대체입법을 제정했다. 신문·통신·잡지등록을 전면 개방해 정기간행물이 6·29당시보다 3배로 증가했다.일간신문은 28종에서 92종(중앙지 18종→44종,지방지 10종→48종)으로 증가했고 총등록간행물은 6·29당시 2천2백36종에서 92년5월말 현재 6천2백16종으로 늘어났다.언론활동 제한제도및 관행의 개혁에 있어서 주재기자를 전면부활하고 프레스카드제도를 폐지했다.신문발행면수와 지가를 완전자율화했다.방송분야에서는 방송법을 제정해 공정성과 자율성을 보장하고 방송위원회기능을 대폭 강화했다.KBS·MBC의 공영방송체제를 확립하고 방송구조의 다원적 개편의 일환으로 민방인 서울방송을 신설하고 교육방송을 독립시켰다.교통방송을 신설하고 종교방송의 활성화 차원에서 기독교방송에 보도및 광고방송을 허용하고 평화방송과 불교방송을 신설했다. 뉴미디어방송시대 개척을 위해 91년말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됐고 95년 인공위성방송준비및 고화질 TV연구가 추진중이다. 출판분야에서는 출판사등록을 전면개방하고 월북작가작품 출판허용및 공산권자료 개방도 이루어졌다. ▷언론자유시대의 도래◁ 언론자유의 철저한 보장으로 보통사람들이 마음놓고 말할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언론은 국가권력과의 관계에서 간섭·성역없이 자유롭게 취재·보도했고 경영자와의 관계에서도 상당한 자유와 독립이 보장됐다.기자협회 자체의 여론조사 결과도 기자의 72.7%가 언론자유신장에 대해 긍정평가했다.IPI총회 한국언론대표 기조연설에서도 『기자들은 권력기관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는 반면,이념적인 과격주의자들을 더 무서워한다』고 했다.국제언론계에서도 한국언론의 자유실태를 신뢰하며 93년 IPI 원탁토론회및 95년 총회의 서울개최결정이 이를 반증하고 있다. ▷평가와 교훈◁ 이제 언론의 자유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공고한 기반이 구축됐다.신문지면의 획기적 증면이 이루어졌고 전국동시인쇄·전산체제구축·뉴미디어산업 개발착수등 제작기술의 혁신이 이루어졌다.신문광고는 91년 1조1백96억원으로 87년보다 3배 증가했고 방송광고는 91년 7천6백66억원으로 87년보다 1.9배 증가했다.매체종사자수도 88년 2만2천5백20명에서 91년 3만3천8백65명으로 폭발적인 증가가 있었으며 신문·방송업이 인기직종으로 부상해 입사경쟁률도 높고 고임금체제로 정착했다. 그러나 자유에 걸맞는 책임·윤리가 정착돼야 한다는 언론계내의 새로운 자성론도 대두됐다.신문의 양적팽창에 비례하는 질적향상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언론사간 무제한 경쟁양상으로 인한 언론의 과소비비판 여론이 있으며 국제화시대에 대처하는 능력배양의 중요성도 강조되고 있다. ○민주화 계승·발전의 길/민자당 ◎평화적 정권이양에 중범/“여야합의” 직선개헌… 정통성 구축 ▷민주화시대의 개막◁ 1987년 6월29일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대화와 화해의 시대를 활짝 연 역사적인 날이다.6·29 민주화 선언은 권위주의 체제를 청산,우리 정치사의 큰 흐름을 바꿔 놓았으며 비민주적이고 단절과 혁명의 과정을 겪었던 우리 헌정사를 일신했다. 정치적 경쟁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사법부의 독립성 강화와 인권의 신장,지방자치 실시 등을 통해 보통사람들의 민주시민사회를 여는 일대 전기를 마련했다. ▷직선제 개헌과 정통성 확보◁ 국민의 여망이었던 직선제 개헌이 헌정사상 처음 여야합의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해 정통성을 확보한 제6공화국이 탄생했다.또 우리 선거 역사상 가장 자유로운 경선을 실현함으로써 평화적 정권이양의 선례를 마련했다. 여야가 자유경쟁을 통한 국민의 심판을 받아 정권을 이양할 수 있도록 하고 그 선거 결과에 승복하는 전통의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의회와 정당의 활성화◁ 강력한 권한을 가진 국회는 행정부를 견제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입법권을 행사하게 되었다.국회는 진정한 정치의 무대가 됐으며 직선제에 의한 정권경쟁은 침체된 정당정치를 활성화시키는 획기적 계기를 마련했다.「거리의 정치」가 해소되고 제도권 정치의 틀이 마련됐다. ▷안정적 국정운영◁ 88년 4·26총선은 여소야대라는 새로운 정치판도를 만들어 사회가 혼란하고 민생이 불안하게 되었다. 이에 민정당과 민주당 그리고 공화당은 국민을 위한 민주화를 위해 3당합당이라는 대결단을내렸으며 그 결과 민주자유당의 창당으로 나라는 안정을 되찾고 국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지방자치의 실시와 자율성확대◁ 지자제는 5·16혁명에 의해 중단된 이후 30년만에 처음 실시되는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지난 2차례의 지방의회 선거는 선거사상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공명정대하게 실시되어 선진 선거풍토조성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한껏 드높였다. ▷향후과제◁ 6·29선언 8개항의 약속이 모두 실현됐지만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갈 부분도 없지 않다. 먼저 정치권은 국민의 의식수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관에는 여전히 권위주의가 상존해 있다.때문에 민자당은 민주화과정에서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고 경제활성화등 국민의 여망을 수용함으로써 민주화를 보다 실질적인 차원에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또한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도 정책적 배려를 강구해야 한다.
  • “6·29선언은 나의 통치철학/민주국가 기반다진 원동력”

    ◎노 대통령,「5주년 평가보고회의」서 강조/미진한부문 남은 임기중 보완/대선후보 경선은 헌정사에 새기원/자율정착위해선 발상·인식의 전환 필요 노태우대통령은 27일 『지난해에 지방의회까지 구성함으로써 6·29선언 8개항의 민주화 개혁은 모두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그러나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당과 정부에서 나의 남은 임기동안 보완,발전시켜 달라』고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청와대에서 정원식국무총리등 국무위원 전원,민자당의 김영삼대표를 비롯한 당무위원등 관계자 1백6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6·29선언 5주년 평가보고회의」를 주재하면서 이같이 말하고 『6·29선언은 정치뿐 아니라 경제·사회·문화·대외관계등 모든 부문에서 나라의 모습과 국제적 위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우리 국민중 상당수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도 문제 해결에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정부에 요구하는등 민주화에 대한 모순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서 『진정한 자유와 자율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발상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6·29선언의 내용과 정신이 진정한 우리 국민의 염원이라 믿었기에 대통령 취임 이후 이를 나의 통치철학,국가를 경영하는 기본 이념으로 삼았다』고 밝히고 『6·29민주화를 통해 경제적 기적에 이어 정치적 기적을 이뤄냄으로써 선진국으로 가는 기반을 다졌다』고 평가했다. 노대통령은 『집권여당으로는 처음으로 대통령후보를 자유경선으로 뽑아 헌정사에 새 기원을 이룬것이 큰 보람』이라고 술회하고 『그것이 6·29선언을 완결하는 일이라 믿고 결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김영삼 대표최고위원은 인사말을 통해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는 민자당을 탄생케 해 정치적 안정의 기틀을 다지게 됐으며 민주와 번영 통일을 실현할 주체세력을 형성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이날 보고회에서 민자당 황인성 정책위의장은 「민주화선언 계승·발전의 길」이라는 보고를 통해 단체장선거는 95년에 반드시 실시하여 완전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고 현행 대통령선거법도 여야합의로공명정대하게 개정토록하겠다고 밝혔다. 윤성태 총리실행조실장은 「사회 각분야의 자율화조치와 사회질서 확립」보고에서6·29선언 시책의 추진과정에서 지역이기주의로 지방자치활성화가 미흡하고 민생치안의 체감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해 실질적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주환 공보처장관은 「언론자유의 창달과 사회변화」에 관해 보고,언론과 정부간의 새로운 이해·협력관계 정립이 긴요하고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한 자율적 노력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 노 대통령 「6·25」 5돌 기자간담 내용

    ◎“「6·29」는 통치철학이자 우리의 민주장전”/남은 임기 민주화완성에 주력/「안정속 성장」기조로 예산 편성/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의혹 있을수 없어/“증시 임시처방으론 치유 어려워… 세계경제 나아지면 회복될것” 노태우대통령은 26일 낮 청와대에서 출입기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면서 6·29선언 5주년을 맞는 소회와 더불어 지방자치단체장선거연기문제등 국정현안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노대통령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6·29선언과 관련해 알려지지 않은 비화가 있으면 소개해 주십시오. ▲역사적인 대사건에 있어 숨은 에피소드라든지 야사라든지 흥미를 자아내는 얘기들이 말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 오고 갈 수 있을 것입니다.그러나 실제 당사자나 책임자에게는 궁금증을 풀만한 자료가 역사를 거슬러 보더라도 없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나로서도 크게 말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대통령으로서는 마지막으로 맞게되는 6·29에 대한 소감은 어떠신지요. ○“40년만의 성위” 보람 ▲매번 감회가 깊지만 5년째가 되는 올해도 새로운감회를 느낍니다.특히 지난번 총선에서 민주주의가 안됐으니 민주주의를 해야한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을 보고 마침내 해냈구나하는 한없는 보람을 느꼈습니다.40여년만에 민주주의를 성취했다는 보람 말입니다. 6·29선언의 주체가 누구냐는 시비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는 국민이라고 정리합니다.국민이 한결같이 바랐기에 나는 하겠다고 받아들인 것입니다.그리고 실천은 나와 국민이 함께 했습니다. 물론 정치적으로 결단을 내리기까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그러나 이 몸을 던져 희생하더라도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면 기꺼이 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6·29선언은 나의 통치철학이 되었고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이념이 되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마그나카르타를 민주주의의 황금문서라고 칭합니다.다소 과장된 얘기인지 모르지만 6·29선언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황금문서라고 감히 생각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단체장선거의 실시를 6·29선언의 완결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요. ▲내가 6·29선언을 실천해 나가면서 얻은 교훈은 최선을 추구하되 차선으로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이를 터득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를 얻을 수 없습니다. 6·29선언 8개항에는 지방의회라고 분명히 못박고 있습니다.그렇다고 단체장선거를 안한다는 것은 아닙니다.넓은 의미로는 다 포함될 수 있겠지요. 나는 금년도에 총선,대선,단체장선거 2번등 4차례의 선거를 치를 경우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경제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잦은선거 경제압박 야당에서는 단체장선거가 실시되지 않으면 대선을 공정하게 치를 수 없다고 합니다만 시장·군수등이 정당인으로 이루어졌을 때 공영·공명선거가 될 수 있겠습니까. 나로서는 오히려 해버리는 것이 좋습니다.6·29선언을 완결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테니까요.그러나 나라를 책임진 입장에서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같은 뜻을 국민들에게 알릴 생각은 없습니까. ▲연구를 해 보겠습니다.국민이 잘 모르는 사항이 있다면 알릴 필요가 있겠지요. ­25일 김영삼대표와의 주례회동에서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했는데 단체장선거실시 시기도 신축성이 있습니까. ▲95년 실시입장에 변함이 없습니다.95년은 좀 빠르고 98년이 제일 좋다는 판단이었으나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는 생각으로 95년안을 선택,국회에 제출한 것입니다.야당도 6월30일이전 실시안을 거둬들이고 연말 대선과의 동시실시 안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설득하면 되리라고 봅니다.야당이 대선의 공정성보장을 이슈화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대통령선거법의 불비한 점을 고치면 될 것입니다.그런 차원에서 협상과 타협을 촉구한 것입니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여러 경제정책을 제시,경제부처에서 안정기조가 흔들릴 것으로 우려하고 있으며 예산편성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야당이 경부고속전철 서해안고속도로 영종도신공항건설 이동통신사업 등을 4대 의혹사건으로 보고 있습니다.이에 대한 견해는 어떠신지요. ▲내년 예산편성에 국민및 정치권의 욕구가 증대,경제적 원칙을 지켜야 하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습니다.그러나 안정과 성장을 조화시키는 것이 예산편성의 기본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긴축을하자니 기업이 아우성이고 특히 대기업은 나으나 중소기업은 자제시킬 도리가 없어요.유망한 중소기업은 도산시킬 수 없으니 지원해야 하고 그러려니 재정이 소요됩니다.또 백년대계차원에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간접자본 투자를 안하면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영종도공항 고속전철 이동통신 다 마찬가지입니다.종전 안보문제로 유보해온 이동통신은 공청회 등을 통해 법까지 제정된 마당에 의혹이 있을 수 없습니다.야당 등에서 떠든다고 간접자본투자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예산이 엄청나게 들겠지만 에너지·소비성경비등 불요불급한 부문의 예산을 과감하게 절약,이 재원을 간접자본 확충에 투자하겠습니다. ­심각한 상태에 있는 증시의 회복가능성을 어떻게 보시며 부양책이 있으신지요. ▲경제규모가 커진만큼 정부의 임시조치로 치유하기는 어렵습니다.그렇다고 우리 증시가 회복불능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증시 침체는 일본 대만 등에서 우리보다 더 심각할 정도로 세계적인 현상입니다.세계경제가 나아진다면 우리도 회복될수 있을 것 입니다. ○대중수교 차정부서 ­임기중 중국과의 외교관계가 정상화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남북관계와 마찬가지로 대중국문제는 서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정식수교는 다음 정부에 물려주어도 좋은 일입니다.중국과는 공식수교만 안했을 뿐이지 교류협력 등에 있어 수교국과 별차이 없이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북방정책의 보람과 함께 현재의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적절한 시기에 여야 대통령후보들과 함께 만날 용의를 밝혔는데 국회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여야대표를 직접 만날 계획은 없습니까. ▲지난 연초에 내가 정치보다는 경제회복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한 것을 기억하지요.야권정치지도자를 청와대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그것 아니더라도 여러 경로로 뜻이 오갈수 있고 여야간의 대화도 촉구하고 있습니다.여당대표도 이뜻을 충분히 인식해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야당이 전략상 시기가 부적합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야당측이 국정의 총책임을 지닌 대통령과도 상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각도 존중합니다.그쪽 입장이 정리되면 언제든지 회담을 받아들일 용의를 갖추고 있음을 밝힙니다. ○총재이양 당결정에 ­8월쯤 민자당의 총재직을 이양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지도체제를 둘러싸고 여러가지 의견이 제기되고 있습니다.복안을 밝혀주십시오. ▲나의 후보시절을 돌이켜볼때 이 문제는 대권출마자 입장에서 무엇이 좋으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대선을 놓고 볼때 당의 지도체제가 어떤것이 좋을지를 당이 판단해 건의하면 그것에 따르는 것이 내가 가장 좋은 방법으로 도와주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영삼민자당대표와 주례회동에서 언론에 공개된 것이외에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합니다. ▲김대표는 야당의 경험은 누구보다도 많지만 여당책임자로서의 경험이 짧은 것은 사실입니다.그분이 여당지도자로서 알고 챙기고 갖추어야할 일,국가경영자로서 준비해야할 일을 내가 얘기해주고 김대표는 야당을 안해본 나에게 야당의 생리와 야당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가지 조언을 해 줍니다.피차에 공부도 되고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권위벗고 함께 책임 ­6·29선언의 실천과 관련,일부에서는 아직도 미흡하다는 의권도 있습니다.남은 과제는 무엇이라고 봅니까. ▲민주화가 되긴 됐지만 제대로 안된 것 같다는 얘기도 많이 하고 있습니다.민주화를 이룩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으면서도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겁니다. 우선 식자들간에 의식개혁이 필요합니다.말로는 「민주화」를 얘기하면서 해결은 권위주의방식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이제 대통령의 권력도 많이 이양,분산된 만큼 궐력을 나누어 행사하는 사람들이 책임도 함께 지는 자세를 갖추기를 바랍니다.나자신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완전히 노출돼 있고 많은 비판도 듣지만 이것이 민주화의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국내외 망라한 북의 「주사」추종집단/「범민련」의 정체와 목표

    ◎북측본부 윤기복·해외 윤이상이 주도/“평화통일” 내걸고 실제론 「연방제」획책 오는 8월15일 서울에서 남북한 및 해외인사가 참가하는 이른바 「제3차 범민족대회」를 갖겠다고 해 정부당국과 국민들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은 과연 어떤 단체이며 이들이 노리는 목표는 무엇일까. 「범민련」은 지난 90년11월19일부터 21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범민족대회」개최 등 이른바 「범민족통일운동」을 벌인다며 남·북한 및 해외인사 9명이 이른바 「3자회담」을 갖고 태동시킨 단체라 할수 있다. 이들의 합의에 따라 북한의 이른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부위원장 윤기복을 본부장으로 하는 「북측본부」와 재독교포 윤이상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해외본부」가 지난해 1월 결성됐으며 이들과 함께 결성하려던 「남측본부」는 이해학목사·조성우씨 등 추진세력의 핵심인사들이 구속되는 바람에 「준비위원회」만 발족시켜 문익환씨를 위원장으로 뽑았으나 문씨 또한 구속돼 강희남씨를 위원장직무대행으로 삼아 활동해오고 있다. 따라서 「범민족대회」를 위한 「범민련」의 제1추진 주체는 「베를린3자회담」을 주도한 북한 공산정권으로 볼수밖에 없다. 겉으로는 남한에 있는 친북한 세력들이 「범민족대회」등을 제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김일성이 지난 80년 10월10일 제6차 북한노동당대회에서 제시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등 북한의 대남적화전략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조직상으로도 북한의 대남적화통일전략등 대남담당정책을 총괄하는 「조평통」부위원장인 윤기복이 북측 본부장을 맡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남측본부」준비위원회도 문익환씨가 위원장,강희남씨가 위원장 직무대행이지만 구속된 이창복씨가 실행위원장을 맡고 있고 「조직소위」「재정소위」「정책소위」등의 소위원회는 사실상 재야운동권의 친북성향 인사들이 실세로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이른바 「주사파」계열에 의해 장악돼 있는 실정이다. 또다른 주체로 볼수있는 「해외본부」는 윤이상씨를 의장으로,북미주 양은식,일본 양동민,유럽 정규명,조총련 김정수,러시아 강일,중국 이철재,호주 윤석,캐나다 전충림씨 등이 각지역 의장으로 있으나 모두 반한·친북인사들로 이들은 어쩌면 「범민련」의 주체이기보다는 「추종」세력으로 볼수 있다. 이같은 친북한 인사들이 조직한 「범민련」은 올해 「제3차범민족대회」계획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겉으로는 「남북합의서 이행」등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슬로건을 내걸고 실제로는 「반전·반핵·미군철수운동」과 「연방제통일」을 위한 「민족통일정치협상회의소집」을 지지하는등 북한의 대남적화노선을 그대로 추종하고 있다. 지난 90년9월15일자 「전민련신문」에 실린 「범민족추진본부」의 「범민족대회평가서」(시안)에도 남·북한 해외를 망라한 조국통일을 위한 범민족적 단결의 사상 및 조직적 조건마련 등 5개항을 명시,김일성이 주장해온 「민족통일전선」의 추종세력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같은 활동을 통해 이들은 우리 정부의 민족대화합에 의한 평화통일을 오히려 방해하고 남북한 주민들이 서로의 현실을 정확히인식하고 남북한 사이에 필요한 호혜적 협력을 할수 있는 능력을 배양시키기 보다 혼란을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특히 이들이 추진하고 있는 불법정치집회는 남북당국자간의 대화에 악영향을 미쳐 책임있는 노력과 실천을 가로막는 「통일방해대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당국의 지적이다. 이들은 이번 8·15대회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중앙대에서 가지려는 「통일대축전」기간과 연계,실상 「전대협」세력을 앞세워 한마당 선전의 장으로 활용할 속셈을 갖고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안보분야의 한 전문가는 『「범민련」이 추진하는 「범민족대회」란 사실상 북한의 「인공기」를 다른 색깔로 바꿔단 것이나 마찬가지 행사로 평화통일을 방해하고 북한의 「연방제통일」을 추진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 김대중·정주영대표 대여공조투쟁 합의

    민주당의 김대중대표와 국민당의 정주영대표는 25일 하오 국회에서 회담을 갖고 오는 29일 소집되는 국회에 공동등원키로 하고 단체장선거의 연내실시 관철을 위해 대여공조투쟁키로 하는등 9개항에 합의했다. 두 대표는 또 개원국회에서 국회의장단 선출후 모든 의사일정에 앞서 단체장선거문제를 최우선적으로 관철키로 하고 이와 관련된 지방자치법개정안·대통령선거법개정안을 마련키로 합의했다. 이를 위해 두 대표는 가칭 「정치관계법제정및 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두 대표는 이밖에 민자당이 공작정치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개원국회에서 물가등 민생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키로 합의했다.
  • 평지풍파 부른 「전교위」 파동/정인학 사회2부(오늘의 눈)

    「전교조」파문이 잠잠해져 조용하던 교육계가 예상밖의 「전교위」 출현으로 시끌시끌하다.「전교위」는 우선 이름만 바꾼 「전교조」의 전위단체로 3년전 「전교조 파동」이라는 악몽을 떠올리게 하고 있다.더구나 「전교조」의 복원을 노린 이번 「전교위」 결성의 동기나 활동이 극히 반교육적이라는데서 교육계의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한마디로 「전교조」 해직교사들이 일선 현장의 교사들을 앞세워 학생과 학교수업을 볼모로 잡고 자신들의 독선적 주장을 관철시키려는 극히 이기적인 발상이라는 비난을 사고 있다. 한 나라의 교육은 처한 사회상황이 어려울수록 바로 그 사회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구심추구실을 해야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인들의 귀중한 가르침이었다.나폴레옹 군대에 짓밟힌 독일을 구할 수 있는 힘은 교육에 있다며 「독일국민에 고함」이란 글을 통해 교육입국을 부르짖었던 피히테의 일화는 그 단적인 예이기도 하다. 그러나 「참교육」을 부르짖는 「전교조」와 「전교위」는 어려운 시대상황을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는국면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참교육론」의 허구를 드러내고 있다.대법원등으로부터 몇차례나 불법단체로 판정을 받은 「전교조」는 다가오는 대통령선거를 자신들의 주장과 합법성을 얻어내려는 호기로 판단,전격적으로 「전교위」를 결성시켰다는게 교육관계자들의 공통된 분석이고 보면 안타깝기만 하다. 더구나 오는 7월이면 전국 교직원의 합법적인 권익단체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교육부와 이마를 맞대고 수당체계개선등 45개항에 대해 단체협상을 벌이기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전교위」는 태동 처음부터 그 명분을 잃고있는 것이다.뿐만아니라 교육부도 이미 「전교위」등에서 요구하고 있는 갖가지 교육개혁안을 마련,이미 시행했거나 추진중에 있지 않은가. 이번 「전교위」에 가담한 일선 교사 대부분은 지난 89년 「전교조」에 가담했다가 탈퇴했던 교사들로 해직된 동료 교사들의 원상 복직을 위해 이번 「전교위」에 가담했다고 가담 동기를 밝히고 있다.그러나 이같은 동기 역시 순수하지 못하다.왜냐하면 「전교조」활동으로 해직된 교사는 이제까지는 징계시한에 묶여 교단에 설 수 없었으나 오는 8월이 되면 3년이라는 징계시한이 끝나 굳이 「전교위」라는 불법단체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채용시험에 응시하는 방법등으로 교단에 설수 있는 길이 열려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교조」가 현직 동료교사들을 끌어들여 「전교위」라는 전위조직을 만든 것은 속된말로 「물귀신작전」으로밖에 설명되질 않는다. 「전교위」가담교사들이 고집을 꺾지않는다면 일선 학교는 3년전 「전교조」파동때와 똑같은 몸살을 겪게될 것은 불문가지다.더구나 지금은 한학기를 마무리하고 새학기 수업준비를 위한 여름방학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방학을 맞는 어린 제자들이 방학기간내내 새학기에 닥쳐올 「전교위」파동에 대한 두러움에 떨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 6공 「민주장정」 성공/대만지 논평

    【홍콩=최두삼특파원】 노태우 한국대통령은 6·29선언이후 5년간에 걸쳐 한국인을 자유와 민주주의의 장정으로 인도해왔다고 대만의 영자지 「더 차이나 뉴스」지가 23일 논평했다. 이 신문은 이날 「한국의 민주주의­아시아의 한 모델」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6·29선언은 대통령 직선제,반체제인사 사면복권,언론자유,인권존중 등 8개항의 약속을 담고 있다』고 밝히고 이 선언 즉시 2백81명의 정치범이 석방되었으며 현재 한국에는 단순히 정치적 이유만으로 구금된 사람은 한명도 없다고 강조했다. 급진학생들의 화염병시위를 자유의 남용으로 평가한 이 사설은 지방자치장선거를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한국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절전한만큼 법인세 공제/에너지절약대책/「1가구 2차량」 중과세

    정부는 에너지절약대책의 일환으로 대형건물에서 절전하면 절약한만큼을 법인세에서 공제해주고 1가구2승용차 가구에 중과세하는 등 각종 에너지절약시책을 적극 펴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19일 하오 13개부처 기획관리실장이 모인 가운데 「에너지소비절약종합대책」점검회의를 열고 이미 시행되는 정부청사내 에어컨사용중지·네온사인사용시간단축등 12개 에너지절약시책 외에 54개 절약시책도 강력히 추진키로 했다. 윤성태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주재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는 지난 4월30일 발표된 66개항의 절약시책 추진사항을 점검하고 앞으로 법령개정과 장기적인 조사·연구가 필요한 사항의 중점추진방안에 대해 각부처의 보고를 받았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앞으로 조세감면규제법을 개정,연4백만Kwh이상의 전력을 쓰는 전국1백18개 건물이 10%이상 절전했을때 발생한 이익만큼 세금공제혜택을 주기로 했으며 에너지절약시설에 투자한 비용의 10%도 손비처리해주기로 한 방침을 적극 추진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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