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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준, 유이 극찬 “같이 작품한 여배우 중 몸매 가장 좋아”…상류사회 어떤 내용?

    성준, 유이 극찬 “같이 작품한 여배우 중 몸매 가장 좋아”…상류사회 어떤 내용?

    성준, 유이 극찬 “같이 작품한 여배우 중 몸매 가장 좋아”…상류사회 어떤 내용? 성준 유이 배우 성준이 유이의 몸매를 극찬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3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SBS에서 열린 SBS 월화드라마 ‘상류사회’(극본 하명희, 연출 최영훈) 제작발표회에는 박형식, 성준, 유이가 참석했다. 성준은 한지민, 정유미, 김소연 등 함께 작품을 한 여배우들과 다른 유이 만의 장점에 대해 “몸매가 가장 좋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그는 “다른 분들과는 나이차가 여섯 살 이상 났는데, 유이와는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다 보니 공감대가 많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상류사회’는 황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재벌 딸(유이 분)과 황금 사다리를 오르려는 개천용(성준 분) 두 사람의 불평등한 계급간 로맨스를 통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오포 세대 청춘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멜로드라마다. 오는 8일 밤 10시 첫 방송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피아노 처음 들여온 사문진 나루터 아시나요

    대구 달성군 사문진 나루터가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달성군은 지난 20일 서울 중·고교 교감 180명이 사문진 나루터를 방문했다고 26일 밝혔다. 연수 중인 이들은 첫 번째 코스로 사문진 나루터를 선택한 것이다. 서울 수명고 전재현 교감은 “사문진 나루터의 역사와 조성 배경을 듣고 나니 학생들 수학여행지로 더없이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6일에도 전국 고위 공무원 100여명이 선진지 견학차 이곳을 들렀다. 2013년 11월 조성된 사문진 나루터는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해 주말에는 5000여명이 찾아와 북적이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한때 부산에서 낙동강을 거슬러 대구로 올라오는 유일한 뱃길이었다. 1900년 3월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인 선교사가 피아노를 들여온 나루터로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곳이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곳에선 최근 해마다 피아노 콘서트가 개최되고 있다. 사문진 나루터에는 초가형 전통주막 3채와 산책로, 실개천 등이 조성돼 있다. 군은 그늘막과 분수 등을 설치하고 어린이들이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세족대도 만들었다. 달성군 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고 있는 사문진 주막촌은 지난해 8월 매출액이 1억원을 돌파한 이후 꾸준히 증가해 지난달에는 2억 2000여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군 관계자는 “사문진 나루터와 주막촌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하겠다. 사문진 박물관을 건립하고 유람선을 띄우는 것도 현재 구상 중”이라고 밝혔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녹천역 5분… 162만㎡ 공원 연결

    녹천역 5분… 162만㎡ 공원 연결

    두산건설이 서울 노원구에 녹지로 둘러싸인 ‘숲세권’이라 불리는 ‘녹천역 두산위브’아파트(조감도)를 분양한다. 단지는 지하 2층~지상 9층 10개동, 총 326가구이며 실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은 전용면적 84㎡ 이하의 중소형 위주로 구성돼 있다. 인근 월계, 창동 지역에 10여년 만에 공급되는 신규 아파트 단지다. 지상에 차가 없는, 단지의 공원화를 추구하고 있으며 판상형 맞통풍 구조로 설계돼 있다. 자연 녹지와 접해 있으면서도 교통이 편리하다. 162만㎡ 규모 초안산 근린공원과 연결돼 산책로, 종합운동장, 생태공원 등 다양한 운동·여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다. 초안산에서 내려오는 개천을 그대로 단지 내로 흐르게 설계해 인위적인 수변시설과 차별을 뒀다. 창일초·중교, 노곡중, 서울외고 등 교육여건도 우수하다. 지하철 1호선 녹천역과는 도보 5분 거리다. 반경 1.5㎞ 내 4호선 창동역과 7호선 노원역이 있다. 시청, 왕십리 등 도심권과 30분대로 접근 가능하다. 2016년 착공 예정인 경전철 동북선(왕십리~상계역)과 도봉구 창동역 환승주차장 일대의 ‘드림박스’ 개발계획 등 미래 가치도 기대된다. 단지 반경 2㎞내 하나로마트, 이마트, 롯데백화점, 상계백병원 등 생활편의시설이 있다. (02)3441-1700.
  • [이영탁 미래와 세상] 인플레 없는 세상

    [이영탁 미래와 세상] 인플레 없는 세상

    과거 우리의 경제 개발이 한창일 때 물가 안정이 국정의 최우선 과제였던 적이 있다. 물가가 안정되어야 생산 원가가 낮아지고 기업의 수출경쟁력이 커진다는 논리였다. 부동산 투기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값이 안정되어야 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꿈이 실현될 수 있다고 믿었다. 모두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필자의 머리에는 좀 다른 생각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진짜로 물가가 안정되고 부동산투기가 사라진다면 집 없는 서민들이 언제 집 살 돈을 모을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경제가 안정되면 세상의 기존 질서가 고착되고 그렇게 되면 하위 계층이 자기 신분을 벗어나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다시 말해 개천에서 용이 날 기회가 사라지는 것 아닌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시장경제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가 과거와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바람에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금융위기 이전과 완전히 다른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이 사례가 바로 한계비용이 제로로 수렴하고 결과적으로 인플레가 사라지는 현상이다. 실제로 돈을 아무리 풀어도 구매력 증가와 물가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나라마다 유동성은 풍부하지만 금리는 내려가기만 하고 투자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오늘의 현실 아닌가. 어째서 이처럼 물가가 오르지 않고 인플레가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을까. 요즘 급격하게 대두하고 있는 사회적 현상과 관련해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온라인 서비스의 확대에 따라 세상에 공짜가 많아지고 있다. 인터넷의 보급으로 지식과 정보의 생산과 유통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과거 희소성으로 인한 가치가 대거 소멸 중이다. 실제로 정보 검색 등 다양한 서비스가 온라인을 타고 무료로 이루어지고 있다. 각종 음악도 그렇고 유명 대학의 저명 교수 강의도 돈을 내지 않고 들을 수 있다. 모바일 금융의 확산에 따라 불가피해진 핀테크도 금융서비스의 가격을 대폭 줄이는 계기를 만들어 가고 있다. 둘째, 공유경제의 확산도 소비 수요와 부담을 줄임으로써 물가하락에 기여하고 있다. 이제는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비싼 값에 사서 쓰지 않고 여럿이서 공유하거나 빌려 쓰는 세상이다. 구매 부담이 큰 자동차의 경우 카 셰어링을 하거나 아예 렌트하는 경우(집카, 우버 등)가 그것이다. 빈집 또는 빈방을 공유하기도 하고 의복, 장식품 등 고가의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대신 빌려 사용하는 것도 노동의 종말에 이어 소유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 이제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 경향에 따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상품을 직접 만들어 사용하고 있다. 프로슈머가 된 개인이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 바로 DIY(Do it yourself)다. 거기다 3D 프린터가 출현함으로써 웬만한 생활용품은 물론 식품까지도 자가 제조가 가능해졌다. 그동안 규모의 이점 때문에 대기업이 주도했다면 앞으로는 1인 기업이 대세라고 한다. 직접 만들어서 쓰고, 입고, 먹는 일이 널리 확산되고 있다. 넷째, 전통적인 물자의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도 가격상승 압력은 사라질 전망이다. 디지털 세상에 기술은 갈수록 저렴해지고 공급은 확대된다. 많은 나라에서 인구까지 늘어나지 않음으로써 수요는 정체 상태이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의 가격이 낮아져 인플레 시대가 종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물가가 오르지 않는 뉴 노멀 시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그토록 바라던 것, 물가가 내리고 부동산 투기가 없는 세상이 좋기만 할까. 그렇다고 생활비가 적게 드는 건 아니다. 외식을 더 자주 하는 등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 씀씀이는 커진다. 또 물가 안정에 따라 경제가 안정되고 나아가 사회가 안정되면 모든 사람들에게 유리할까.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줄어들어 기존에 형성된 사회질서가 굳어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계층 간 이동이 쉽지 않고 나아가 사회적 불형평의 시정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하는 인플레 없는 세상이 이처럼 많은 사람이 노리는 기회를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겠다. 이래저래 만만치 않은 세상이다.
  •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커버스토리] 萬人之上 오른 총리, 一人之下에서 463일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뒤 새로운 총리 후보자가 누가 될 것인지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총리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한 데서 보듯 혹독한 여론 검증과 인사청문회 절차가 버티고 있어 새 총리를 임명하는 게 만만치 않아 보인다. ‘권한 없는 넘버2’의 한계를 벗어나 도덕적 권위와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책임총리의 위상과 역할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높다. 1948년 정부수립 이래 명암과 영욕이 교차한 ‘대한민국 총리’를 되돌아본다. ●첫 후보자 이윤영, 네 번 지명받고도 한번 못해봐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첫 시작부터 순탄치 않은 자리였다. 1948년 당시 이윤영 총리 지명자는 이런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평북 영변군 출신 개신교 목사이자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고초를 당했던 이윤영은 해방 이후 고당 조만식과 함께 활동하다 월남한 뒤 제헌의회 의원이 됐다. 1948년 이승만 대통령이 첫 총리 지명자로 이윤영을 지명했지만 다수당이던 한국민주당의 반대로 인준표결에서 부결됐다. 결국 이 대통령은 광복군 참모장을 지냈던 이범석을 총리로 지명해 국회인준을 받았다. 당초 대한민국 제헌헌법 초안은 의원내각제를 모델로 했고 이에 따르면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그쳤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대통령중심제를 고수하면서 결국 의원내각제 기반 위에 대통령중심제를 덧붙이는 식으로 절충이 됐다. 한민당은 이에 협조하는 대신 한민당 지도자인 김성수를 총리로 지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윤영은 1950년 4월 다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지만 국회표결에서 찬성 68표, 반대 83표로 부결됐다. 1952년 4월에도 장면 총리가 사퇴하자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지만 이번에도 역시 국회에서 부결됐다. 그해 10월 장택상 총리가 사임하자 이 대통령은 4번째로 이윤영을 총리에 지명하지만 또다시 국회의 벽에 막혔다. 결과적으로 이윤영은 총리에 4번 지명받고도 한번도 국무총리가 되지 못한 유례없는 기록을 갖게 됐다.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는 개헌을 하면서 국무총리는 사실상 국가원수가 됐지만 5·16쿠데타 이후 다시 임명직 국무총리가 등장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무총리는 법적으로는 권한이 막중하지만 실제로는 인사권 자체가 전적으로 대통령 소관이어서 실권을 가질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책임총리제를 강조하며 이해찬 전 총리에게 상당한 권한을 주려고 노력한 바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한민국에서 총리는 ‘방탄총리’, ‘실권 없는 2인자’라는 논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1대 이범석 나치 연구자… ‘친일 전력’ 총리 3명 이윤영 총리안의 부결로 대한민국 초대 총리는 한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쳤던 이범석이 맡게 됐다. 15세에 중국으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를 졸업하고 홍범도 장군이 주도한 청산리전투에 참여했고 임시정부 한국광복군 참모장과 제2지대장 등을 지냈다. 그는 나치를 연구하고 히틀러 사망을 안타까워하는 등 나치를 추종했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역대 총리 가운데 3명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에 포함돼 있다. 정일권·김정렬 두 총리는 일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 소속 장교로 복무했다. 김정렬 총리는 태평양 전쟁에 조종수로 참전했고, 장면 총리는 종교계 총동원을 논의하는 시국간담회에 천주교 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43대 중 재임은 4명… 실제 총리 수 39명 이완구 총리는 43대 총리이지만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가 취임한 뒤 현재까지 국무총리로 일했던 사람은 모두 39명이다. 이 가운데 4명이 총리를 두 번 맡았다. 장면은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이승만 대통령과 갈등 끝에 사임했다. 4·19혁명 뒤에는 내각책임제 정부수반인 총리에 선출됐지만 이번에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총리에서 물러났다. 이 밖에 백두진은 이승만·박정희 정부, 김종필은 박정희·김대중 정부, 고건은 김영삼·노무현 정부에서 총리로 일했다. 이완구 총리는 63일 만의 사의표명을 기준으로 하면 총리로서 가장 단명한 총리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이 총리를 포함해 역대 총리의 평균 재임기간은 463.5일로, 1년 3개월 남짓이다. 6대 허정 총리는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던 도중 4·19혁명이 일어나고 대통령이 사임하는 등의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임시로 맡은 총리였다. 22대 노재봉 총리는 1991년 1월에 취임한 뒤 명지대 1학년이던 강경대씨가 시위 도중 경찰에게 구타당해 숨지면서 발생한 대규모 시위를 수습하는 차원에서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총리로서 재직일수가 가장 긴 총리는 9대 정일권 총리이며, 김종필 총리가 두 번째다. 정일권 총리는 재임기간이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으로 한국의 현실에서는 이례적으로 ‘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김종필 총리는 1971년부터 1975년까지, 이어 1998년부터 2000년까지 총리를 지냈지만 정일권 총리가 세운 기록을 깨지는 못했다. 민주화 이후 가장 오랫동안 재임한 사람은 김황식 총리다. 그는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약 2년 5개월간 재직했다. ●역대 총리 평균 연령 61.5세… 최고령은 74세 역대 총리 39명의 취임 당시 평균 연령은 61.5세다. 연령별로 보면 70대에 총리가 된 사람이 7명이다. 취임 당시 가장 고령이었던 총리는 24대 현승종 총리와 32대 박태준 총리로, 두 사람 모두 74세에 총리가 됐다. 19대 김정렬 총리와 39대 한승수 총리는 73세였고 34대 김석수 총리는 71세였다. 8대 최두선 총리와 42대 정홍원 총리는 70세였다. 반면 4대 백두진 총리와 11대 김종필 총리는 취임 당시 46세, 9대 정일권 총리는 47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총리가 됐다. 고향으로 살펴보면 이북 출신이 꽤 많다는 점이 눈에 띈다. 황해도 4명, 평남 5명, 평북 2명, 함남 1명으로 모두 12명이다. 노태우 정부 당시에는 강영훈(평북 창성), 정원식(황해 재령), 현승종(평남 개천) 등 총리 5명 중 3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단일 지역으로는 서울이 7명으로 가장 많다. 충남과 경남이 5명씩이고 경기와 전북이 4명을 배출했다. 정일권 총리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유일한 재외동포 출신 총리로 기록됐다. 이 밖에 37대 한명숙 총리부터 38대 한덕수 총리, 39대 한승수 총리까지 세 번 연속 청주 한(韓)씨에서 총리를 배출한 것도 특이한 기록이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충암고의 급식 망신 주기/문소영 논설위원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을 이끈 도스토옙스키는 24살에 대가의 탄생을 알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출간했다. 처녀작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구두를 끌고 다니는 남루한 차림의 하급 관리이자 노총각인 마카르가 역시 불우한 소녀 바르바라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가난 속에서 힘겹게 사랑을 피워 내려는 궁상맞기 짝이 없는 러브 스토리다. 대도시 빈민굴에서 이들은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고 애써 위안하며 주변의 조소와 모멸을 견딘다. 현실은 어떤가. 후기 자본주의인 현대사회는 자본이 벌어들이는 이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노동으로 벌어들이는 소득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비대해졌고, 농경사회처럼 ‘게을러서 가난하다’는 관행적 표현을 사용하기에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워킹푸어가 많다. 현대의 복지 개념은 부모가 가난하다고 그들의 자녀가 상처를 받거나, 기회의 평등을 얻지 못해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돌봐 주는 것이다. 개천의 용을 키워야 한다든지, 계층 상승의 사다리를 차 버려서는 안 된다는 논의가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닌, 배움의 전당인 학교에서는 빈부의 격차와 상관없는 공정한 처우를 기대해 왔다. 육성회비 미납으로 친구들 앞에서 따귀를 맞거나, 밀린 공납금을 다 낼 때까지 칠판에 이름을 적어 둬 부끄럽게 하는 일은 복지가 확대된 2000년대 이후로 사라졌다고 믿어 왔다. 서울 충암고등학교에서 지난 2일 점심 때에 급식비 미납자들을 골라 내 “밥을 먹지 마라”며 공개적인 망신을 준 일이 발생했다. 4월 1일부터 경상남도에서 무상급식이 중단돼 사회적 파문을 일으키는 가운데 발생해 충격적이다. 충암고 김모 교감은 급식비 미납자 현황이 적혀 있는 명단을 들고 나타나 급식을 기다리는 3학년 학생들의 납부 현황을 일일이 파악하고서 40분에 걸쳐 식당으로 들여보냈다고 한다. 김 교감은 공개적으로 급식비가 몇 달치가 밀렸는지 알렸고, “내일부터는 오지 마라”고 다그쳤다고 한다. 특히 장기 미납 학생들에겐 “넌 1학년 때부터 몇백만원을 안 냈어. 밥 먹지 마라”거나, “꺼져라. 너 같은 애들 때문에 전체 애들이 피해 본다” 등 폭언도 했다. 수치심에 점심을 포기한 학생들이나 이 소식을 들은 학부모가 얼마나 자괴감을 느꼈을까 깊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육복지 대상자가 4~5월에 확정돼 소급 정산된다”고 해명했다. 선별적 무상급식을 선호하는 쪽은 재원 조달을 걱정하고, 보편적 무상급식을 선호하는 쪽은 가난한 부모를 둔 학생들이 부끄러워할지도 모를 ‘낙인효과’를 우려한다. 서울·경기도 고등학생은 아직 무상급식 대상이 아니다. 충암고의 사례는 선별적 무상급식이 자칫하면 학생들에게 무차별적 수치심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 같아 씁쓸하다. 학교가 이래서야 되겠나.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구경 한번 와보세요♪ 올 뉴 화개장터

    구경 한번 와보세요♪ 올 뉴 화개장터

    3일 화개장터가 곱게 단장한 새 얼굴로 고객을 맞았다. 때맞춰 피어난 벚꽃과 함께 전국에서 3만여명의 고객들이 화개장터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구경하고 잡담을 풀어내느라 장터는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북적였다. 영·호남 화합의 상징인 화개장터는 지난 겨울 화마에 휩쓸려 겨우내 손님을 받지 못했다. 불탄 초가 장옥(場屋) 5개동은 지난 1월초부터 복원공사에 들어가 새롭게 단장을 마쳤다. 복원 공사에는 정부 교부세 5억원, 도비와 군비 각 10억원이 들었다. 4개의 장옥마다 8.1~11㎡ 크기 점포가 6개~12개 정도 설치돼 있다. 나머지 작은 장옥 1개동은 대장간 건물이다. ●38개 점포·대장간 한옥 구조로 되살려 새로 건립된 장옥 내 점포들은 약재나 농산물을 파는 가게 21곳이 영업을 재개했다. 국수, 호떡, 붕어빵, 뻥튀기 등 음식과 즉석 먹거리를 판매하는 상점이 14곳이고 3곳은 식품 등을 판매한다. 대장간 건물은 쇠를 불에 달군 뒤 두들겨 칼과 낫, 호미, 괭이 등을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어 화개장터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하지만 새로 지은 대장간은 대장장 탁수기(75)씨가 최근 몸이 불편해 아직 문을 열지 못해 이날 장터를 찾은 주민들을 아쉽게 했다. 화개장터는 하동군 화개면 탑리 19번 국도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5㎞에 이르는 십리벚꽃길 입구에 위치, 쌍계사와 벚꽃길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주변에 칠불사,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인 평사리와 최참판댁 등 볼거리도 많다. 개장식이 열리기 전인 지난달 31일부터 매일 1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장터를 방문하고 있다. 벚꽃 축제 기간인 4~5일은 휴일을 맞아 수만명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보인다. 휴게음식업을 운영하며 화개장터 번영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민(48)씨는 “갑작스런 화재로 상인들이 손해를 많이 봤지만 전국 각지 국민들의 성금이 큰 힘이 됐다”면서 “관광객들이 믿고 찾는 관광 장터가 되도록 상인들 모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에서 남편과 함께 화개장터를 구경온 김규리(52)씨는 “지난해 9월 방문했던 화개장터가 화재로 모두 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복원을 잘 해 놓아 옛 명성을 이어갈 수 있게 돼 다행이다”고 말했다. ●벚꽃철 맞아 관광객 하루 1만명 넘게 몰려 뻥튀기를 만들어 파는 ‘장터 뻥’ 주인 박효운(64)씨는 “요즘은 나들이를 하면서 먹거리를 준비해서 다니는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지 장사가 옛날만큼은 못하다”며 “그래도 맛있게 만들어서 부지런히 벌어야 한다”고 의욕을 보였다. 화개장터 가게는 일년 중 봄철에 수입을 가장 많이 올린다. 상인들은 “벚꽃철과 가을철에 반짝 벌어서 일년 동안 먹고 살아야 한다”며 반갑게 관광객을 맞았다. 명인당 약초 가게 주인 이쾌순씨는 “화개장터의 약초 상점에는 지리산 일대에서 생산되는 산나물과 약초를 고루 갖추고 있는데다 전국 각지에서 택배로 받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장터 근처에 ‘조영남 갤러리 카페’ 개설 김병수 하동군 시설운영관리담당은 “새로 건립한 화개장터 장옥은 앞서 있었던 화재를 교훈삼아 자동화재 탐지시설과 확산소화기를 설치하고 방염처리를 했으며 폐쇄회로(CC)TV 12대를 설치하는 등 화재예방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진 화개장터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726의 8 일대에 위치한 5일장이다. 지리산 계곡 화개천과 섬진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섬진강에 행상선이 다니던 때 배가 운항할 수 있는 가장 상류 지점이었다. 이 같은 지리적 여건으로 조선시대부터 오랫동안 지리산 일대 산간마을과 남해를 잇는 상업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섬진강 물길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해 경상도와 전라도 주민들이 내륙에서 생산되는 임산물과 농산물, 남해에서 생산되는 해산물 등을 화개장에서 바꾸거나 사고 팔았다. 남원과 상주 상인들까지 모여 중국 비단과 제주도 생선까지 거래하는 5일장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큰 장이었다. 6·25 전쟁이 일어난 뒤 빨치산 토벌 활동 등으로 지리산 주변 산촌이 황폐해지고 교통과 유통구조가 발달되면서 화개 5일장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동군은 화개장의 명성과 역사성, 상징성을 보전하고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2001년 화개장터에 먹거리와 특산품 등을 파는 상설 관광시장을 조성했다. 화개장터 전체 면적 가운데 3012㎡는 군 소유이고 3330㎡는 개인 소유다. 군은 개인 소유이던 부지를 사들여 초가집으로 된 장옥 4개동을 건립해 상인들에게 임대했다. 지난해 11월 27일 새벽에 전기누전으로 추정되는 불이 나 군 소유 초가로 된 장옥 4개동과 철구조 건물 2개동, 개인 소유 건물 1개동 등 7개동 건물(42개 가게)이 모두 불탔다. ●“사람들 북적이는 재래시장 정취 만끽” 화개장터가 불탔다는 소식에 전국 각지에서 성금이 이어졌다. 지난달 초까지 3억 2400여만원이 모였다. 군은 화재 피해 상인 41명에게 위로금으로 500만~700만원씩 모두 2억 3700만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윤상기 하동군수는 “화재 때 보내준 국민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화개장터가 더욱 사랑받고 볼거리 있는 곳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다. 군 소유인 장옥 가게는 임대를 희망하는 상인들이 많아 상인들끼리 3년마다 추첨을 해 입주 대상자를 선정한다. 추첨에 떨어진 상인들은 3년 뒤를 기대하며 장옥 주변에 있는 난전에서 장사를 한다. 군에서 임대하는 장옥 가게는 일년 임대료가 150만~200여만원, 난전은 그 절반 정도다. 하동군은 화개장터 복원 및 재개장에 맞춰 장터 근처에 ‘조영남 갤러리 카페’를 개설했다. 2억 4000여만원을 들여 옛 우체국 건물을 매입한 뒤 리모델링을 통해 1층은 하동특산물 야생녹차, 커피 등을 파는 카페로 만들었다. 별관 건물은 갤러리로 꾸며 조영남의 화투그림 등을 전시했다. ●“화재 때 국민 성원 고마워… 관광명소 될것” 갤러리 카페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는 오래된 삼층석탑이 눈길을 끈다. 통일신라~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경남도 유형문화제 130호로 지정돼 있다. 탑리 마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여러 탑의 몸돌과 받침대 등을 모아 조성한 것이다. 인근의 봉상사 절터에 있던 것을 1968년 우체국 자리로 옮겼다. 화개장터가 있는 마을 이름 ‘탑리’는 이 삼층석탑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조영남씨는 이날 화개장터의 복원을 기념하는 공연에 출연해 자신의 대표곡인 ‘화개장터’를 열창했다. 근사한 돌에 새겨진 그의 노래비는 화개장터 안에 세워져 있다. 한쪽에는 화개장터의 유래도 아로새겨져 있다. 화개장터가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무대였다는 것도 알려준다. 제주도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날 장터를 찾은 한 관광객은 “노래 속에 나오는 번창했던 화개장터 5일장 모습처럼 장터가 그대로 남아 있고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어 방문한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하동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50년 맞은 한얼교, ‘한얼절’ 기념행사 진행

    인도의 시성 타고르는 대한민국을 ‘동방의 등불’이라고 표현했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는 한국이 ‘고요한 아침의 나라’, ‘동방의 해 뜨는 나라’ 등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과거 ‘조선(朝鮮)’이라는 국명과 최초의 민족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의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인 개천사상에 영향이 있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 속에서도 굳건히 지켜온 민족적 독창성과 민족정신, 고유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 우수한 정신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전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특이성을 가진 민족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우주의 섭리와 대자연의 진리를 상징하는 ‘태극’과 ‘건곤감리’를 국기에 담고, 하늘이 열리는 날을 상징하는 10월 3일 개천절을 국경일로 기념해 왔다. 지역이나 인종, 이데올로기를 초월해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사상을 건국이념으로 삼아 근본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런 점이 바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며 우리 민족 고유의 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민족의 혼을 간직하고 홍익인간의 정신을 계승해 한얼정신으로 재정립한 이가 바로 신정일(1938~1999)이다. 그가 1965년 창시한 ‘한얼교’는 1967년 대한민국 정부 문화공보부의 정식인가를 받아 2015년 올해로 창교 50년을 맞이하였다. 한얼교는 특정대상을 믿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난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의 핵심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종교이다. 단군 역시 숭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를 널리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의 가치에 근본을 두고 지혜와 자비를 실천해 자신의 얼을 밝혀나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모든 종교를 존중하고 종교간의 화합을 지향한다. 실제로 교단은 한얼교의 철학과 사상을 배우면서 타 종교를 신앙할 수 있으며, 한얼교의 교인이 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그 사상을 배우는 것이 가능하도록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한얼교의 창시자 종교인 신정일(1938년~1999년)은 한주의 통일한국당 총재와 한얼그룹 前회장과 舊한온그룹 창업주를 역임했으며, 선대로부터 내려오던 사유 재산을 기증해 한얼교단을 창교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한얼교는 창교 50년을 맞아 4월 4일 강화도 마니산 아래에 위치한 한얼교 성지 한얼온궁에서 ‘한얼절(한얼교 창시자 신정일의 탄생일이자 타계한 날을 기리는 4월 4일 기념일)’행사를 가진다. 이 날 행사에서는 1999년 타계한 신정일이 남긴 사리를 공개해 공식 사리 친견식도 함께 갖는다. 또한 한얼교의 대표경전 ‘한얼말씀’의 판각전시회를 개최해 창교 50년 역사를 기념한다. 한얼교 관계자는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기존 종교의 관습과 형태를 벗어나 오로지 진리의 본질에 근본을 두고 혁신과 발전을 위해 정진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한기 50년을 맞아 단군의 홍익인간사상과 창시자의 한얼정신을 기리며 한얼교 성지 마니산 한얼온궁을 참성단과 한얼 진리를 형상화한 재건축을 통해 창교 반세기의 역시를 기념할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광장] 개천을 돌보지 않는 ‘개용남’은 필요 없다/문소영 논설위원

    [서울광장] 개천을 돌보지 않는 ‘개용남’은 필요 없다/문소영 논설위원

    인지심리학자 마크 하우저는 붉은털원숭이들에게 손잡이를 당기면 맛있는 먹이가 나온다는 학습을 시켰다. 손잡이를 당기면 먹이도 나오지만 다른 우리 안에 넣어 둔 다른 붉은털원숭이가 전기 충격을 받는 모습을 보게 했다. 붉은털원숭이들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최소 5일부터 최대 15일까지 손잡이를 당기지 않았다. 동료 원숭이에게 고통을 주느니 차라리 굶어 죽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인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모리대 심리학과 석좌교수는 침팬지 집단에서 싸움이 일어나면 일방적으로 공격당한 쪽을 위로해 주는 집단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사실로 밝혀진 것인데 이런 능력은 뇌 속의 거울신경세포라는 존재 덕분이다. 드 발 교수는 추가로 침팬지가 털 고르기와 같은 서비스를 제공해 준 친구에게 감사의 선물을 주는데, 둘 사이에 시간 차가 있다는 발견도 했다. 적자생존을 설파한 것으로 오해받는 찰스 다윈은 19세기 말에 ‘모르는 사람을 구하려고 불 속에 뛰어드는 행동은 인간의 사회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우리 중 몇몇이 이런 덕성을 귀하게 여겨 솔선수범하고 가르친다면 자손으로 번져 나가 결국 일반적인 견해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인간 사회엔 적자생존이 아닌 상생의 길이 있음을 설명한 것이다. 다윈이 간파했듯이 이타적인 공감 능력은 거울신경세포 덕분에 자연히 생기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뛰어놀면서 이른바 호혜들을 경험하면서 사회적 학습을 통해 이뤄진다. 어린 시절에 공동체로부터 도움과 위로를 받으면서 자랐다면 성인이 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위로를 건넬 가능성이 크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자폐 아동조차도 공동체의 도움으로 자폐의 수준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다양하게 입증됐다. 물론 사회적 진화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이 역방향으로도 가능하다. 혹독한 시집살이를 당한 며느리가 나중에 더 독한 시어머니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4월부터는 ‘가난을 증명해야만 무상급식을 주겠다’고 했다. 경남도의 열악한 재정을 문제 삼아 무상급식을 중단한 것이다. 자치 재정이 어렵기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가 마찬가지인데 유독 그가 강행했다. 그 결정이 당혹스러운 이유는 그는 배고픔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2009년 출간한 그의 자서전 ‘변방’에 따르면 그는 요령부득한 부모 밑에서 빈곤의 악순환을 20대까지 겪었다. 초중고생일 때는 반찬 없는 보리밥을 싸갈 수가 없었던 탓에 점심 때면 우물가와 수돗가를 찾아가 물배를 채웠다. 자존심 때문에 배고픔을 표시할 수 없는 어린이의 심리 상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물배를 채우고 뒷동산에 올라간 그를 찾아낸 여학우가 감자와 고구마를 내밀자 배앓이 중이라며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고 그는 부모의 가난을 증명하지는 않았다. 공부로 장학금을 타낸 덕분이다. 고려대 법대에 입학해 1972년 상경한 그는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모든 것을 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슴에 다가왔다”고도 했고, 가정교사 생활에 허덕이면서 “내가 공부하러 서울 왔나, 먹고살러 서울 왔나”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43년 전 한탄이 요즘 대학생들의 한탄과 똑같아 깜짝 놀랐다. 홍 도지사는 삶의 가장자리인 변방에서 중심을 꿈꾸며 지독하게 공부해 결국 중심에 도달한 인물이다. 이른바 ‘개천에서 용(성공) 난 남자’인 ‘개용남’이다. 우리 사회는 ‘개용남’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부모의 무능과 가난을 비난하지도, 어려운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이겨 낸 용기와 성실성으로 서민이 사는 개천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방’을 읽으면서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며 지독한 소외감에 시달린 ‘학생 홍준표’에게 장학금과 함께 따뜻한 밥을 후원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도움을 받았더라면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래서 무상급식의 지속이 중요하다. 공동체의 세금으로 보살핌을 받은 ‘21세기형 홍준표’는 가난이 개인의 성장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 정책을 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지 않다면 ‘가난을 증명하라’는 표독스런 정책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겠나. symun@seoul.co.kr
  • 대법 “오피러스 사고, 급발진 아닌 운전자 과실”

    5년 전 경기 포천에서 발생한 ‘오피러스’ 급발진 추정 사망 사고의 원인은 전자제어장치(ECU) 결함이 아닌 운전자 과실로 보인다는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윤모(66)씨 부부가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윤씨의 부인 김모(62)씨는 2010년 3월 신형 오피러스를 몰고 포천의 편도 1차로 오른쪽으로 굽은 내리막길을 가다가 사고를 당했다. 당시 차량은 빠른 속도로 중앙선을 넘어 반대쪽 자동차 검사소 입구로 돌진했고, 주차된 다른 차량과 담벼락에 잇달아 부딪친 뒤 폭 6m가량의 개천을 뛰어넘어 언덕에 떨어졌다. 이 사고로 김씨 등 2명이 중상을 입었고 1명이 숨졌다. 윤씨 부부는 엔진에 부착된 ECU 결함으로 차량이 급발진했다며 소송을 냈다. 1, 2심은 “ECU 결함에 따른 급발진은 검증되거나 인정된 적 없는 가설”이라며 “가속 페달을 잘못 조작해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사고 당시 시속 100∼126㎞로 달리던 차량에 브레이크등이 들어오지 않은 점, 도로에 타이어가 밀린 자국이 없는 점, 차량에서 굉음이 나지 않은 점, 운전자 신발이 가속 페달 위에서 발견된 점 등이 고려됐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특히 급발진 추정 사고의 원인으로 ECU를 꼽을 수 없다는 2011년 미국 도로교통안전국 조사 결과와 이듬해 우리나라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등을 거듭 언급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42년 만의 최악 가뭄] 실개천 된 강물… 농사 시작되는 5월이 최대 고비

    [42년 만의 최악 가뭄] 실개천 된 강물… 농사 시작되는 5월이 최대 고비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과 강원, 충청 등 중부권이 극심한 가뭄으로 말라 가고 있다. 본격적인 농사철이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댐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곳곳에서 피해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기 북부와 강원 등에는 비상급수 지역이 늘고 있다. 현재 비상급수가 이뤄지는 지역은 7개 시·군·구의 21개 마을, 2250가구, 4281명이다. 29일 한국수자원공사에 따르면 강원 횡성댐 수위는 봄철을 기준으로 2001년 댐 준공 이후 14년 만에 최저 수준인 164.76m다. 예년 평균보다 5m가량 낮다. 가둬 놓은 물의 양은 예년 평균인 3830만t보다 1400만t가량 적은 2420만t에 불과하다. 춘천 소양강댐도 수위가 평년보다 11m나 낮아지면서 강폭이 300여m에 이르던 상류 물길이 수십m에 불과한 실개천으로 변했다. 인제군에서는 계곡물이 말라 지역 주민들이 빨래를 못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다. 군청 관계자는 “농사철이 시작된 이후에도 가뭄이 계속되면 피해가 커질 수 있다”면서 “가뭄대책종합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충주댐 수위도 뚝 떨어졌다. 이날 현재 충주댐 수위는 117.88m로 1985년 충주댐 건설 이후 세 번째로 낮다. 만수위인 141m에 23m나 모자란다. 충주댐 상류인 충북 단양군 단성면 일대는 30년 전 수몰됐던 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댐 주변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민들은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충주호에서 쏘가리·장어·붕어·메기 등을 잡는 충주·제천·단양 지역 어업인 170여명은 낮은 수위로 그물이 바닥에 걸려 망가질까 봐 일손을 놓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여파로 힘겨운 날들을 보낸 내륙 관광선 업체들도 가뭄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충주호유람선 관계자는 “물에 잠겼던 곳곳이 드러나면서 경치를 망쳐 관광객들이 그냥 돌아가는 실정”이라며 “충주댐 수위가 117m 이하로 내려가면 일부 지역은 수심이 2m가 안 돼 유람선 운행조차 불가능하다”고 걱정했다. 산불도 빈발하고 있다. 올 들어 271건의 산불로 148.4㏊의 산림이 사라졌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건수는 36.9%(73건), 피해 면적은 116.9%(79.97㏊) 증가했다. 산림청은 지난 23일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발령했다. 해갈은 오는 7월 여름 장마가 시작돼야 가능할 전망이다. 김현경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4~5월은 강수량이 평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상되고, 6월은 비슷하거나 더 적을 것”이라며 “평년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가뭄이 회복되기는 어렵고, 비가 많이 내리는 7월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식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교수는 “본격적인 농업용수 수요가 많아지는 5월이 최대 고비”라며 “그때까지 비가 오지 않으면 가뭄 피해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장마가 와도 가뭄 해갈에 별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변희룡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장마철이 돼도 지난해처럼 마른장마(장마철에 비가 오지 않거나 적게 오는 것) 양상이 재연된다면 북한강, 임진강, 예성강과 수원 이북 지방, 영동 지방 등이 위험하다”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서울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곳에 가면 꽃비가 내린다

    이곳에 가면 꽃비가 내린다

    …봄바람 휘날리며/흩날리는 벚꽃잎이/울려 퍼질 이 거리를/둘이~걸어요…. 연분홍 꽃길이 우거진 거리를 걸으며 ‘벚꽃엔딩’의 감미로운 멜로디를 감상하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설렌다. 기상청은 올해 벚꽃 개화는 평년보다 1~3일 빠르고, 지난해보다는 전국적으로 6일쯤 늦을 것으로 예보했다. 지난 24일 제주 서귀포를 시작으로 남부지방은 28일~4월 4일, 중부지방은 다음달 3~12일, 경기·강원 북부와 산간지방은 다음달 12일 이후 벚꽃이 필 것으로 내다봤다. ●이달 말 제주부터 벚꽃 절정에 이르러 벚꽃은 꽃망울이 터진 뒤 만개하기까지는 일주일쯤 걸려 절정기는 서귀포에서는 오는 31일, 남부지방은 다음달 4~11일, 중부지방은 다음달 10~19일쯤이 될 전망이다. 서울은 다음달 9일 피기 시작해 16일쯤 만개하며 시민들의 발길을 유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전국 첫 벚꽃 축제는 지난 20일 대구 두류산 일대에서 개막된 별빛 벚꽃축제다. 대구 놀이공원 이월드가 주최해 다음달 17일까지 계속된다. 조명 전구 830만개로 꾸민 루미나리에를 비롯해 다양한 볼거리를 준비했다. 이월드 관계자는 “진해군항제, 여의도 벚꽃축제와 맞먹는 전국 3대 벚꽃 축제로 키울 계획”이라면서 “상춘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축제 시기를 빨리 잡았다”고 말했다. 그래도 27~29일 제주 종합경기장 일대에서 펼쳐지고 있는 ‘제주 왕벚꽃 축제’가 사실상의 올해 첫 벚꽃 축제로 꼽힌다. 왕벚꽃은 제주에서 자생하는 종으로 서귀포 시내와 중산간도로, 종합경기장 등 도내 모든 지역에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이 원산지이며 천연기념물 156호로 지정돼 있다. 주민 부이완(49)씨는 “왕벚꽃은 일본이 아닌 제주가 원산지로 인정받고 있다”고 자랑했다. ●세계 최대 벚꽃축제 진해 군항제 36만 그루 만개 봄꽃 축제의 으뜸은 누가 뭐라 해도 진해 군항제를 꼽는다. 세계 최대 벚꽃축제가 열리는 동안 36만여 그루의 벚꽃이 만개해 도시 전체를 하얗게 뒤덮는 풍경은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올해 군항제는 오는 31일 개막돼 다음달 10일까지 군항도시의 특색을 살린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진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이만한 곳도 없다. 올봄 결혼을 앞둔 성미현(30)씨는 “벚꽃 속에서의 데이트 장면을 꼭 웨딩앨범에 담고 싶다”고 말했다. 벚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여좌천, 경화역, 제황산공원, 안민고개 등 벚꽃 명소마다 경관 조명을 설치해 밤이 되면 벚꽃과 불빛이 어우러진 환상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벚꽃이 우거진 경화역 철로로 기차가 오가는 경화역 풍경과 여좌천 벚꽃 경치는 미국 CNN이 한국에서 꼭 가 봐야 할 아름다운 명소 50곳으로 선정한 곳이다. 평소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해군사관학교, 해군진해기지사령부, 미해군 진해함대지원부대 등 군 부대 안의 우거진 아름드리 벚나무에서 눈처럼 흩날리는 꽃잎 속도 산책할 수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비행기 타고 중국, 일본, 미국에서도 찾아온다. 군항제 기간에 마산역과 진해역 사이를 셔틀열차가 하루 4차례 오간다. 진해군항제는 지난해 서울신문이 주최한 지역브랜드대상 축제 부문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최고 축제로 인정받았다.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는 쌍계사 십리벚꽃길로 유명하다. 다음달 3~5일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린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지리산 계곡 맑은 화개천을 따라 5㎞에 걸쳐 있는 쌍계사 십리벚꽃길은 길 양편에 만개한 꽃송이들이 터널을 이뤄 하늘을 덮고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젊은 남녀들이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으면 사랑이 이뤄지고 백년해로한다고 해서 ‘혼례길’로도 불린다. 화개장터 벚꽃축제가 열릴 무렵 하동읍에서 구례읍을 잇는 섬진강변 100리 길도 환상적인 벚꽃터널이 돼 차량이 줄을 잇는다.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 섬진강변에서는 다음달 4~5일 섬진강변 벚꽃축제가 열려 만개한 벚꽃과 맑은 섬진강이 어우러진 절경을 눈에 담을 수 있다. ●수도권 새달 10일부터 봄꽃축제 시작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다음달 10일을 전후해 벚꽃을 즐길 수 있다.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 벚꽃축제다. 다음달 10일부터 6일간 열리는 축제 기간 동안 여의도 국회의사당 뒤편 등 여의도 일대를 연분홍색으로 물들인다. 서울의 대표 축제답게 볼거리도 다양하다. 1.7㎞에 이르는 도로 양편에 1600여 그루의 왕벚나무가 만개해 벚꽃천지가 되는 여의도 윤중로 곳곳에서 12~14일 인디밴드의 공연을 비롯해 다채로운 구경거리가 이어진다. 인천 남동구 장수동에서는 다음달 6~11일 ‘인천대공원 벚꽃축제’가 열린다. 수령 30년이 넘은 벚나무 600여 그루가 우거져 있고 호수를 비롯해 각종 광장, 동식물원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춰 상춘객의 발길을 잡는다. 권혁천(53·인천 연수구)씨는 “그리 즐거울 게 없는 세상이지만 봄이면 인천, 여의도 등 가까운 곳에서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전남 산수유·부산 유채꽃 잔치 ‘풍성’ 이에 앞서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온천관광지 일대에서는 ‘산수유 꽃축제’가 지난 21일 개막해 29일까지 열린다. 벚꽃보다 먼저 겨우내 지친 이들을 위안하는 듯하다. 경기 이천시 백사면 산수유 군락지 일대에서 다음달 3~5일 ‘이천백사 산수유꽃축제’가 이어진다. 백사면 도립1리, 송말1·2리, 경사1·2리 일대는 수령 100~500년 된 산수유나무 1만 8000여 그루가 집단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산수유꽃 노란 물결이 산과 마을을 뒤덮은 모습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축제장에는 두부 만들기를 비롯한 다양한 체험장과 자연관찰장, 산수유차· 산수유막걸리·파전·국밥 등 시골 인심을 담은 먹거리촌도 마련된다. 다채로운 공연과 관람객 참여 현장 노래자랑 등도 열린다. 경기 양평군 개군면 내리·주읍리 일대에서는 올해로 12회째 맞는 양평 산수유·한우 축제가 다음달 4~5일 개최된다. 서울과 가까워 수도권 시민들도 많이 찾는다.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76만㎡의 광활한 유채밭은 부산의 봄을 노랗게 물들인다. 이곳에서는 다음달 11~19일 ‘부산 낙동강 유채꽃축제’가 열린다. 올해 4회째다. 유채밭은 단일 면적으로 전국 최대다. 모내기, 연날리기, 수상 자전거, 한국전통 궁중 한복 체험 프로그램과 거리공연 등이 이어진다. 강원 삼척시 상맹방리 유채꽃밭에서도 다음달 10~19일 맹방유채꽃 축제가 열린다. 광주 북구청 마당에서는 다음달 6~15일 ‘봄꽃 잔치’가 열린다. 1999년부터 해마다 열고 있는 봄 행사로 리빙스턴데이지, 아네모네, 팬지 등 봄에 피는 꽃 60만 송이를 화분 형태로 전시한다. 인천 강화군 고려산에서는 진달래축제가 다음달 18~30일 개최된다. 진달래축제 기간 산 정상과 비탈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는 온 산을 붉게 물들이며 절정의 봄을 선물한다. 김춘수 시인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봄은 “꽃이 있어 진정 아름답고, 행복했노라”고 답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사설] 홍준표식 ‘복지수정’ 롤모델 삼을 만하다

    보편적 복지를 비판해 온 홍준표 경남지사가 자신의 공언대로 다음달부터 학교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기로 함에 따라 무상급식을 포함한 교육복지 전반에 대한 재검토가 불가피하게 됐다. 경남도가 무상급식을 지원하는 대신 추진하기로 한 것은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이다. 무상급식을 줄여 확보한 643억원의 예산을 바우처사업, 맞춤형 교육지원, 교육여건 개선 등에 투입해 서민계층 자녀의 교육 격차를 없애고 동등한 교육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도가 직접 교육지원 사업에 나서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전쟁’으로까지 불린 무상급식 정책의 대반전인 만큼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당장 경남교육청은 도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서민자녀 교육지원 사업은 교육청의 교육복지 사업과 겹쳐 혈세를 낭비할 뿐 아니라 일선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고 비판한다. 파급효과가 큰 중대한 사안인 만큼 도교육청·도의회와 충분히 상의하고 사업 타당성 검토도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절차적 타당성 여부를 떠나 여전히 좁혀지지 않은 보편적 무상급식에 대한 인식의 괴리를 이제는 어떻게든 해소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2009년 진보적 성향의 김상곤 후보는 무상급식 공약을 본격적으로 들고나와 경기도교육감이 됐다. 이어 곽노현 후보 또한 무상급식 공약을 걸고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저소득층 위주의 선별적 무상급식을 위한 주민투표를 강행하다 결국 시장직까지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이후 무상급식은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민감한 이슈로 정치권의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무상 복지를 실현하기 위한 곳간이 바닥을 훤히 드러내고 있다. ‘복지파탄’까지 우려되는 전면 무상급식에 대해 단안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는 궁박한 형편인 것이다. 증세 없는 복지 등 우리의 복지 현실을 둘러싼 논란이 드세다. 어떤 식으로든 복지지출에 대한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점이다. 경남도가 지자체에 힘겨운 재정적 올가미를 씌우고 있는 무상급식 지원을 중단하기로 한 것은 ‘복지의 정의’ 측면에서 적극적으로 평가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어려운 계층에 혜택이 먼저 돌아가게 하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 무상급식이 감소 추세로 돌아서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재정 여력이 딸리는 인천과 울산 동구 등 지자체에서는 무상급식 예산을 줄여 편성했다. 부산시교육감은 핵심 공약인 중학교 1학년 무상급식 추진을 1년간 유예하는 결단을 내렸다. 무상급식의 단초는 이른바 진보 성향 교육감에 의해 마련됐지만 그것은 이제 더이상 보수·진보 이념 문제에 머물 수 없다.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은 경남도가 무상급식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한 데 대해 “학교 급식은 교육의 일환이지 결코 복지가 아니다”라며 “무상급식은 교육”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급식을 포기하는 것이 과연 ‘교육 포기’를 의미하는 것일까. 포퓰리즘의 혐의가 짙다. 지금이야말로 무상급식에 대한 새로운 컨센서스를 모아 가야 할 때다.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貧&富] “막노동마저 없을 때 더 많아… 가난 대물림” “살 만한데도 아기 셋 뒀다고 보육료 주더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를 취재하면서 만난 상위 1% 부유층과 하위 9.1% 절대빈곤층은 의외로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너무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다 보니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그래서 서로를 마치 ‘딴 세상’에 사는 것처럼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에 따라 서울신문은 상위 1%와 절대빈곤층의 만남을 주선했다. 이탈리아 명품 수입업체 ‘에트로’ 대표인 이충희(60)씨는 자수성가해 상위 1%로 도약한 사업가다. 그는 6·25 전쟁 직후 태어나 가난한 윤리 교사였던 아버지 밑에서 8남매가 자란 탓에 배를 주린 날이 많았다. 대학 졸업 후 특급호텔 면세점장을 거쳐 1993년 명품 수입업을 시작해 성공한 그는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너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에 가입하는 등 활발한 기부 활동을 벌이고 있다. 독신인 김동민(45)씨는 충남 서산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무작정 상경해 노숙과 쪽방 생활을 하며 구두닦이와 신문팔이 생활을 전전했다. 현재 서울의 한 매입임대빌라에서 살면서 한 달 수입이라고는 열흘 정도 공사장에서 일용직 노동을 해 버는 80만~90만원이 전부인 전형적 절대빈곤층이다. 두 사람이 지난 16일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김상연 특별기획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서 공감과 이견 사이를 오가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자) 평소 빈부 격차 문제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김동민(이하 김) 없는 사람은 너무 없고 있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나 같은 서민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 빈곤층은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해도 올라갈 가능성은 없고 현상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떨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이충희(이하 이) 빈부 격차는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있는 문제다. 특히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빈부 격차는 필연적으로 벌어진다. 결국 빈부 격차를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노력을 통해 가난에서 벗어나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빈곤에서 탈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만약 노력을 통해 현 세대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다음 세대라도 좋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줘야 한다. 나도 어릴 때 배급쌀을 받아 먹을 만큼 형편이 어려웠지만 교사였던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을 내 주신 덕에 가난에서 벗어났다. -김 노력해서 돈을 벌고 적금도 넣고 재산을 불리면 좋다. 그런데 열심히 돈을 벌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버리니 돈을 모을 여유가 없다. 예를 들어 담뱃값만 보자. 이 대표님은 담배를 태우시나. -이 피우지 않는다. -김 나는 피운다. 담배는 서민의 기호식품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가격이 하루아침에 2500원이나 오르니 힘들다. 서민들은 “안 오르는 건 내 월급밖에 없다”고 한다. 조금씩 저금해서 돈을 모으면 물가가 그만큼 올라가 저축한 효과가 없어진다. -이 4000원 하는 커피값을 30년간 모아 복리이율을 적용하면 2억 1400만원이 된다. 4500원 하는 담뱃값을 모아도 마찬가지다. 나는 20여년 전 직장을 그만두고 통장에 있는 800만원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최대한 돈을 안 쓰려고 노력했다. 출장 갈 때는 코펠을 갖고 다니며 라면을 끓여 먹고 중국집에 가도 백반 시켜 자차이(중국식 채소 반찬)와 함께 먹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10년을 안 쓰니까 돈이 모이더라. 버는 건 내 마음대로 안 될 수 있지만 쓰는 건 의지로 조절할 수 있다. -김 나도 ‘담뱃값을 모아 볼까’ 하는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몸 쓰는 노동을 하면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다. 공사장에서 힘들 때 담배 한 대 피우며 쉬는 게 유일한 낙이다. 막노동하고 오면 너무 힘드니까 저녁에 술 한잔 하게 되고 그러면 아침에 술이 깨지 않아 일을 나가지 못하기도 한다. 그래서 여태껏 모아 둔 돈이 없다. 노후를 생각하면 저축해야 하는데 저축하는 습관도 안 돼 있고 월세, 공과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교육비가 워낙 많이 들어 빈부의 대물림이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인데. -이 사실이다. 예전에는 다들 어려웠다. 그래서 누구든 조금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 형편이 전체적으로 좋아졌고 경쟁이 심해졌다. 있는 집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해외연수를 보낸다고 하지 않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없는 사람이 부자 될 수 있는 방법은 여전히 교육밖에 없다. 공부하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긴 하지만 독서와 어학 공부는 자기 노력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내 나이가 올해 환갑인데 요즘도 오전 5시 30분이면 일어나서 7시면 출근한다. 사무실 책상과 집, 차에 각각 돋보기를 두고 한 달에 책 2~3권씩은 읽는다. 독서는 내가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정부에서 복지를 강조한다고 해도 결국 밥 굶는 사람에게 밥 한 끼 주는 수준일 뿐이다. 결국 내가 부지런해야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 -김 가난한 사람이 학력까지 떨어지면 가난에서 벗어나기가 아주 어렵다. 나처럼 배운 게 없으면 공사장에서 막일 하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다. 그마저도 꾸준히 일감이 있는 게 아니다. 겨울철에는 공사는 없는데 일하려는 사람은 많아서 일주일에 1~2일밖에 일하지 못한다. 한 달에 10번 일하면 많이 한 건데 수입은 80만원 정도밖에 안 된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정책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나. -김 한참 부족하다. 최근 지적장애인 언니를 혼자 돌보며 어렵게 살던 20대 여성이 자살한 사건도 있지 않았나. 박근혜 정부가 서민 정책을 펴겠다고 했는데 담뱃값 올리는 것만 봐도 더 이상 못 믿겠다. 없는 사람은 없어서 세금을 못 낸다. 있는 사람이 조금 더 내서 없는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이 기본적으로 복지는 확충해야 한다. 문제는 재정이 어느 정도 받쳐 줄 수 있느냐다. 없는 사람에게 복지 혜택이 집중돼야지 모두에게 무상보육이나 무상급식을 하면 실제 필요한 사람의 몫은 줄어든다. 선별적 복지로 가야 한다. 내 딸이 아기가 3명인데 매달 국가에서 보육료를 받는다고 한다. 왜 우리 딸처럼 살 만한 사람에게까지 돈을 주는지 모르겠다. →가난한 사람을 두고 ‘게으르다’고 하거나 부자에게 ‘운이 좋다’고 하는 등 부정적 고정관념도 있는데. -김 ‘게으르니까 가난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이 대표님이 새벽 5시에 일어난다고 했는데 막노동하는 사람 중에도 새벽 2~3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많다. 일감 구하러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거나 폐지를 주워야 하니까. 열심히 하면 대가가 따라와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서민은 계속 서민일 뿐이다. 부자는 그만큼 노력해서 부를 쌓았다는 생각도 들지만 돈이 돈을 낳는 것 같기도 하다. -이 부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부자가 그냥 된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재산을 물려받은 사람도 있지만 고생 끝에 부를 쌓은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 줬으면 한다. 부자를 보면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배우려고 할 필요가 있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부유층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부를 자녀에게 상속해 주고 싶은 욕구는 본능이긴 하지만 재산의 일정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부유층 사이에서 이런 인식이 점점 더 퍼질 것이라고 낙관한다. 일례로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4년 전엔 40~50명뿐이었는데 지금은 700명을 넘어섰다. -김 일부 공감한다. 그런데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부유층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요즘 ‘땅콩회항’ 등 갑질 횡포 뉴스를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빈부 격차 해소를 위해 고소득층의 세금을 더 올려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 부자들에게 과세해서 나눠 쓰자는 얘기에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아무리 부자여도 자기 돈의 5%도 못 쓰고 죽으니까. 한 끼 먹는 데 드는 비용은 다르겠지만 김 선생님이나 나나 세 끼 밥 먹는 건 똑같다. 문제는 지나친 과세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데 있다. -김 기업 운영하시는 분들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같은 저소득층도 공과금이 밀리면 통장에 몇 푼 안 되는 돈을 지급정지시켜 못 쓰게 한다. 많이 버는 분들이 세금을 더 냈으면 좋겠다. →오늘 대담을 통해 생각이 달라진 게 있나. -이 김 선생님 말씀을 들어 보니 가난을 벗어나기가 참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없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적지만 100만원이라도 벌면 반의 반 정도는 저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대근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관용 사라진 분노…사회 임금 격차 줄이고 저소득층 대입 혜택 줘야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관용 사라진 분노…사회 임금 격차 줄이고 저소득층 대입 혜택 줘야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 사회를 ‘분노사회’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정치권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교수는 참여연대 정책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어떤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나. -개인적 수준에서는 사회에 대한 불안과 분노가 증가하게 된다. 조직적 수준에서는 가족 해체나 붕괴, 나아가 생계형 범죄를 포함한 범죄가 증가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 수준에서는 사회통합이 약화된다. 개인이 사회에 갖는 소속감, 연대감이 약화되면서 사회 갈등이 증가하게 된다. 최근 한국 사회의 흐름은 ‘분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20대부터 60~70대 고령 인구까지 뭔가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 근본적 원인은 불안에 있다. 10대에는 입시 불안, 20대에는 청년 실업, 30대에는 구조조정, 40대에는 퇴출의 공포, 50대 이후부터는 노인 빈곤율이 50%대에 육박하듯 노후불안이 있다. 이런 불안은 타자에 대해 관용하거나 인내하지 못하게 한다. 곧바로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서는 잘살고, 복지도 좋아진 것 아닌가. -비교 시점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 100달러도 되지 않았던 1960년대 초반으로 둔다면 지금 분명 잘사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 시기를 외환위기 직전으로 잡는다면 달라진다. 한국 자본주의가 비교적 큰 어려움 없이 고도 성장했던 마지막 시기가 노태우 정부와 김영삼 정부 때라고 생각한다. 그후 97년 외환위기에 이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계속 닥친 것이다. 90년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명목상의 1인당 GDP는 올랐을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수준이 과연 나아졌을까’를 볼 때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민주화 세대는 오히려 외환위기 이후 삶이 갈수록 더 퍽퍽해지고 있다고 느낀다. 또 내가 언제 이 조직에서 떨려 나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고도성장의 마지막 단계인 90년대 초중반과 비교해 본다면 삶의 질은 거의 정체돼 있는 것과 다름없다. 시간이 갈수록 나아져야 하는데 정체되니 불안해지면서 옛날에는 화려했던 것 같은데 현재는 빈곤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성장률을 옛날처럼 높이는 게 힘들다면 빈부 격차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정부가 개입해 소득 재분배와 노동시장 정책을 펴야 한다. 노동시장의 경우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받는 월평균 급여가 150만~160만원이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5인 미만 사업장까지 포함하면 900만명에 가까울 것이다. 전체 경제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한다. 비정규직으로는 아이 한 명을 도저히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반값등록금보다 효율적인 대책은 노동시장 정책이다. 노동시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한편으로는 최저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비정규직 축소를 정부가 기업에 강요할 수는 없지 않은가. -국가가 강제할 수는 없지만 사회적 타협은 가능하다. 정부가 중립적 위치에서 개입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을 줄이는 것을 모색할 수 있다. →소득 재분배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한데.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는 조세부담률이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까지라도 올려야 한다. ‘증세 없이 복지 없다’는 원칙으로 접근해야 한다. →증세에는 중산층, 서민층도 포함돼야 하나. -보편적 증세가 타당하다. →하위 40% 이하는 현재 소득세를 안 내고 있는데 보편적 증세의 범위는 어디까지 돼야 하나. -하위 40%까지 세금을 걷자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 증세의 대상은 세금을 내는 60%를 말하는 것이다. 부자에게만 세금을 내라는 게 아니라 세금을 낼 역량을 갖춘 이들은 전부 다 세금을 내라는 게 보편적 증세다. 다시 말해 ‘차등 과세’나 ‘형평 과세’라고 할 수 있다. 부자들에게는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 중산층은 세금을 올리되 그 폭을 작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증세에 대한 반발이 심한데 가능할까. -정치권과 정부의 결단이 필요하다. 증세 없이 어떻게 복지가 가능한가. →빈부 격차가 과장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복지정책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소득 분배 악화 상태가 크게 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번 서울신문 ‘빈부 리포트’에서 보도됐듯 하늘과 땅 차이의 삶이 있다. 오히려 현존하는 빈부격차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상류층과 빈곤층의 삶은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된다. 언론에서 보도를 잘 안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상류층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숨어 생활하는 것처럼 살아간다. 가난한 사람들은 왜 우울한 삶만 보도하느냐고 한다. 빈부격차가 과장됐다는 지적에는 빈부격차의 실상을 보고 싶지 않은 바람이 들어 있다. →법인세 인상 주장에 대한 의견은. -이명박 정부에서 법인세 인하가 이뤄졌는데 정말 잘못된 정책이었다. 우리나라는 법인세가 OECD 국가와 비교해 낮은 편이다. 이명박 정부 때 인하한 부분만이라도 원상복구시켜야 한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다수 봉급자들의 불만도 기업들이 사내 유보금을 저렇게 많이 쌓아 놨는데 우리가 왜 증세의 대상이 돼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또 소위 고액 소득자들에 대한 훨씬 더 강력한 누진적 증세가 필요하다. →외국에서는 슈퍼리치가 스스로 자신의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기부도 많이 하는데. -의식의 문제다. 내가 번 부는 나 혼자만의 능력에서 온 것이 아니고 사회의 여러 도움 속에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에 부를 환원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 역사가 짧아서 그런지 이런 의식이 취약하다. 천민자본주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가난을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부분을 전체로 환원시키는 오류이자 기계적 형식 논리다. 물론 게을러서 가난한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몇 명 되지 않을 것이다. 다수는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려고 한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가 적어지고 있다. 부의 되물림은 필연적 추세인가. -자본주의가 구조화될수록 직업 이동, 즉 사회 이동은 제한받게 된다. 과거 우리에게는 교육이라는 기회가 열려 있었는데 그것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명문대의 강남 학생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중산층이 예전에는 교육을 통한 직업 이동의 원칙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투자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이 되면서 아이가 하나 내지 둘밖에 없으니 아이에게 집중적 투자를 하게 되고 이런 투자의 격차가 성적의 격차로 나타나는 것이다. →해법은 공교육 강화인가. -사교육으로 빚어진 격차를 공교육 강화로 완화할 수는 있지만 그 차이를 크게 줄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대학입시 제도를 바꿔 실력이 있지만 교육 혜택을 적게 받은 빈곤층 학생들이 명문대에 많이 갈 수 있도록 보장해 줘야 한다. 미국식 소수집단 우대정책을 말한다. →빈부 격차가 심화되면 사회 갈등으로 폭발할까. -폭발에 대해서는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활력을 잃어가는 것은 맞다. 한국 사회의 일본화다. 일본의 장기불황 20년과 비슷해지고 있다. ‘안정된 일자리를 가질 수 있을까’, ‘행복한 노후를 맞을 수 있을까’ 등등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못 갖고 불안해하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사회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불안과 체념과 분노가 반복되는 사회일 가능성이 높다. 어떤 형태로든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해결책은 사회적 대타협밖에 없다. 핵심적 주체인 자본, 노동, 정부 간 역사적 타협 외에는 방법이 없다. 예컨대 아일랜드에서 이뤄진 협약의 경우 노조는 임금 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은 일자리 창출 약속을 했다. 사회적 타협에서 중요한 것은 권한과 책임을 많이 갖고 있는 주체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못 배운 내가 가난을 물려준답니다

    못 배운 내가 가난을 물려준답니다

    부모의 교육·소득 수준 차이가 자녀들의 취업 뒤 임금 격차로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필선 건국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13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린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주최 제10회 한국교육고용패널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국의 세대 간 사회계층 이동성에 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최 교수는 “부모의 교육, 소득 수준이 자녀의 고교, 대학 진학뿐 아니라 노동시장 성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04년 중학교 3학년이던 2000명의 한국교육고용패널을 2013년까지 10년 동안 추적조사한 결과다. 부모의 소득 수준에 따라 고교 진학의 유형부터 달라졌다. 소득이 가장 높은 5분위의 경우 일반고와 특목고 진학률이 89.1%였지만, 1분위는 51.0%에 그쳤다. 소득 1분위 부모의 자녀 47.5%가 실업계 고교로 진학한 반면, 5분위는 10.9%에 불과했다. 부모의 소득이 낮을수록 대학 진학보다는 실업계고 진학을 통해 노동시장에 바로 진출하려는 경향이 강한 것이다. 또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고등학교 성적이 높았다. 전문대를 포함한 대졸 이상인 부모를 둔 학생의 고1 성적 1~2등급 비율은 16.2%, 3~4등급 비율은 49.3%였다. 반대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고졸 미만인 경우 1~2등급 비율이 3.3%에 그쳤다. 최 교수는 “부모의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자녀의 교육성과를 높이기 위한 투자가 많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구 소득과 4년제 대학진학률도 비례했다. 소득 5분위 가정 자녀의 4년제 대학진학률은 68.7%고, 1분위는 30.4%로 조사됐다. 부모의 교육 수준이 자녀의 대입 수학능력시험 결과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자녀의 수능성적 1~2등급 비율이 20.8%였지만, 고졸 미만인 부모의 자녀들은 1~2등급이 0.8%에 불과했다. 부모의 교육과 소득 수준이 자녀의 취업 뒤 임금에도 영향을 줬다. 소득 4~5분위 자녀의 평균임금은 163만원, 1~3분위 그룹은 150여만원이었다. 또 부모가 대졸 이상인 경우 자녀의 평균 임금은 179만원이었지만, 고졸 미만의 경우 145만원으로 조사됐다. 최 교수는 “사회 계층의 차이가 자녀의 교육에 대한 투자와 성과에 차이를 가져 오는 것”이라며 “세대 간 소득 이동성이 제약되고 사회계층이 세습화될 가능성이 커져 ‘개천에서 용이 나올’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쥐구멍 밖 볕을 찾아 나서라… 기회는 있다, 아직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 ‘富’] 쥐구멍 밖 볕을 찾아 나서라… 기회는 있다, 아직

    “몇 년 전에 눈여겨보던 학생이 있었다. 리포트에서 성실함이 묻어나는 데다 성격도 좋아 학생들이나 교수들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성적이 계속 떨어지더라. 불러다 물으니 ‘집안 형편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아르바이트가 너무 많다’고 머뭇거리며 대답하더라. 이럴 땐 선생으로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난감하다.” 50억원대 자산가인 수도권 사립대 교수 A(53)씨는 학기 초면 학생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살핀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이들 학생의 최종 학점을 추측해 본다. 학기가 끝난 뒤 실제로 학생들의 시험성적과 비교하면 60~70%는 얼추 맞아떨어진다. A씨는 “얼굴에 윤기가 나고 옷차림이 괜찮은 학생들은 대체로 좋은 성적을 받지만 옷차림이 열악하고 늘 피곤해 보이는 학생들은 성적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했다. 그는 전형적인 ‘개천에서 용 난’ 경우다. 부모 세대까지는 찢어지게 가난했다. ‘향토장학금’은 꿈도 못 꿨다. 주변의 도움과 불법과외 강사 일로 대학을 겨우 나오고, 직장 생활을 하다 운 좋게 박사까지 공부한 뒤 학교에 자리 잡았다. 처가로부터 상속받은 땅이 크게 올라 상위 1%에 편입했다. 그를 여기로 끌어올린 건 9할이 ‘꿈’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살아가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다. 운도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하지만 요즘 학생들과 세태를 보면 평생 그를 이끌어 온 믿음이 조금씩 무너지는 듯하다. 예전과 달리 ‘부의 여신’이 개인의 노력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A씨는 “내가 타고 올라간 계층 사다리가 끊어진 요즘엔 ‘가난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갈수록 커진다”면서 “어떤 식으로든 희망을 복원하는 게 우리 세대의 숙제”라고 했다. 상위 1% 부유층의 경우 빈곤을 경험한 자수성가형이든,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경우든 가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서울 논현동에 거주하는 국내 대기업 오너의 부인 B(65)씨는 사재를 털어 복지재단을 운영하는 등 빈곤층의 생활여건 개선에 관심이 많다. B씨는 가난에 대해 ‘불편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가난 때문에 자존감이 떨어지고, 교육 등의 격차로 하고자 하는 일을 하지 못하는 빈곤층을 수없이 접했기 때문이다. B씨는 “처음에는 빈곤층에 대해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들을 만난 뒤에는 ‘저렇게 살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청담동에 사는 중소기업 경영자의 부인 C(53)씨도 “‘부자가 겸손해지기도 어렵지만 빈자가 비굴해지지 않는 게 더 어렵다’고 한다”면서 “빈곤층이 (빈곤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게 가난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부유층은 빈곤을 개인의 책임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다. 자수성가형 부자일수록 이런 생각이 확고했다. 곤궁한 현실에 낙담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상류층으로 올라간 본인의 경험은 현 시점에서도 여전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중견기업 오너 D(68)씨는 “사회가 발전하면서 부익부 빈익빈은 더욱 크게 나타날 수밖에 없지만 ‘세상이 이러니 어쩔 수 없다’고만 말한다면 빈곤 상태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이어 “요즘은 과거만큼 ‘벼락부자’가 나올 확률이 줄었다고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부자가 되기는 어려웠다”면서 “사회 구조만 탓하지 않고 돈을 벌어 성공한 젊은이들을 여전히 종종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을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구멍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빈곤층이 남탓 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한다’는 시각도 있다. 외국계 기업 지사장인 E(47)씨는 “요즘 일부 젊은층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손주로 태어나지 못한 것 자체를 불평하곤 하지만 이는 우리가 탓할 수 없는 영역”이라면서 “가난한 상황을 탈피하려 하지 않고 부모나 정부, 경제 등만 탓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감 없이 위안거리만 만드는 격”이라고 했다. 상속 등으로 부를 더 받고 덜 받고는 ‘숙명’의 영역이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부유층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 강했다. C씨는 “제일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 ‘강남 여자’라는 말”이라면서 “미술이나 패션, 음악 등 우리 사회의 고급문화를 이끌어 가는 게 강남 아줌마라는 현실은 외면하고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해야 ‘훌륭한 엄마’라는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상위 1%는 자긍심이 강하다. 제조업 분야 중소기업 사장을 부친으로 둔 F(29)씨는 “(영국 고급차인) 벤틀리를 타는 사람은 무조건 존경해야 한다”면서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됐다는 뜻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D씨도 “부를 어떤 식으로 축적했느냐는 중요한 문제”라면서도 “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인 만큼 그 다음에 어떻게 살지는 부자가 된 다음에 고민해도 늦지 않다”고 했다. 상대적 빈곤과 절대적 빈곤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서울 압구정동에 사는 중견병원 원장 부인 G(51)씨는 “가난은 개인의 힘으로 의식주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이는 사회적으로 구제해야 한다”면서도 “나머지 경우까지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비현실적인 주장”이라고 했다. 이어 “빈곤층은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이라 1만원짜리 영양크림밖에 못 바른다고 생각하겠지만 인도 등 후진국에서는 부유층에 해당할 것”이라면서 “처음에는 힘들어도 10년, 20년 계속 노력해 집 한칸이라도 마련하고 상황을 개선하려는 대신 ‘나는 가난하다’는 생각에만 빠져 있는 건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빈곤층에 대한 ‘기회의 평등’이 점차 사라지는 데 대해서는 부유층들도 인정했다. F씨는 “부모님은 내가 음악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수백만원짜리 악기를 사줬고, 공부하려는 의지가 있으면 좋은 과외 선생님을 붙여 줬다”면서 “하지만 주변 친구 중에서는 부모님이 밤늦게까지 일을 하는 바람에 숙제를 봐줄 사람도 끼니를 챙겨줄 사람도 없어 지금까지도 게임에 파묻혀 사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어 “열심히 노력하지만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 악순환을 막기 위해 우리 사회가 빈곤층 교육과 보육 문제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 대치동에 사는 복지재단 이사장 H(70)씨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게 낙타가 바늘귀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성서에서 가르치는 것은 부자들이 부를 쌓는 과정에서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다른 이에게 돌아갈 돈을 더 많이 가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강남 아이들이 서울대 등 명문대에 주로 들어가는 건 기회가 이미 불평등하다는 뜻”이라면서 “빈궁한 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금전 지상주의적 세태에 부정적인 견해도 있다. B씨는 “지금의 부는 절대자가 내게 맡겨 놓은 것이지 나 혼자 소유한 채 호사를 누리라는 건 아니다”며 “후세에 (지금 누리는 부에 대해) 그만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편함과 부담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나누고자 하는 생각도 강하다”고 털어놨다. H씨는 “돈을 절대적으로 바라보다 보니 사랑이나 행복, 믿음 등의 가치가 훼손된 채 부와 가난에 대해 맹목적으로 접근하게 된다”면서 “부가 절대선이 아니듯 가난 역시 절대악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부자들이 가난한 이들을 업신여겨서는 안 되지만 가난한 이들 역시 부자들을 적대시해서도 안 된다”면서 “금전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고 했다. D씨는 “1억원만 갖고 있더라도 스스로 부자라고 여기면 부자이고 통장에 100억원이 있어도 부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부자가 아니다”라고 했다. 국내 부자들이 앞으로 ‘질적 향상’을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도 나타냈다. C씨는 “프랑스에서는 단순히 부의 소유 여부뿐 아니라 제2외국어를 구사하면서 악기 하나 정도는 다루는 동시에 상당한 수준의 문화비와 기부금을 지출하는 것을 부유층의 기준으로 삼는다”면서 “우리 사회도 앞으로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지적·문화 수준에 사회적 책임감까지 갖춘 부유층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이두걸 유대근 송수연 기자 douzirl@seoul.co.kr
  • [新국토기행] 경남 진주시

    [新국토기행] 경남 진주시

    ■ 남강변 따라 볼거리 한가득 ●김시민 장군이 왜군에 맞서 싸운 ‘진주성’ 진주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진주 8경 가운데 하나다. 진주성은 본성동과 남성동 일대 남강변을 따라 조성됐다. 언제 쌓았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토성이었던 것을 왜구들의 침입에 대비해 1379년(고려 우왕 5년) 석성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전해진다. 임진왜란 직전(1591년)에 외성을 쌓았으나 흔적이 없고 현재는 내성만 복원됐다. 내성 둘레는 1760여m, 외성 둘레는 4㎞가량이다. 임진왜란 3대 대첩 가운데 하나로 진주목사 김시민 장군이 1592년 10월 3800여명의 군사로 왜군 2만여명을 물리친 진주대첩이 벌어졌던 곳이다. 이듬해 6월 왜군과 2차 전쟁이 벌어졌을 때 민·관·군 7만여명이 끝까지 항쟁하다 순절한 아픈 역사도 서려 있다. 1972년 촉석문을 복원한 데 이어 1975년에는 허물어졌던 서쪽 외성 일부와 내성 성곽을 복원했다. 1979년 성 안팎에 있던 민가를 철거하고 2002년 공북문을 복원했다. 1963년 사적 제118호로 지정됐다. ●절벽 위 우뚝, 빼어난 절경 뽐내는 ‘촉석루’ 진주성 안 남쪽 남강변 경치가 빼어난 절벽 위에 솟아 있다. 남장대나 장원루라고도 부른다. 전쟁 때 지휘본부, 평화 시절에는 관리들의 놀이터와 과거시험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건립했다. 1241년(고종 28년)에 목사 김지대가 처음 지은 뒤 8차례 중건과 보수를 거쳤다. 1365년(공민왕 14년) 처음 건립됐다는 주장도 있다. 벼랑과 강 주변 풍경이 절경이다. 우리나라 3대 누각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북쪽에서는 평양의 부벽루, 남쪽에서는 촉석루를 꼽을 만큼 영남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이다. 1948년 국보 제276호로 지정됐으나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돼 1960년 다시 지었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누각 돌기둥은 창원시 촉석산 돌이다. 대들보는 오대산에서 벌목해 만들었다. 북쪽 현판 글씨는 영조 때 송하 조윤형이 썼다. 남쪽 글씨는 이승만 전 대통령이 쓴 것이었으나 민주당이 집권한 뒤 판을 깎고 유당 정현복의 글씨로 바꿨다. ●논개가 임진왜란 때 몸 바쳐 뛰어내린 ‘의암’ 임진왜란 때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으로 몸을 던졌던 바위다. 촉석루 아래 남강 가장자리에 있다. 윗면은 편평하며 크기는 가로 3.65m, 세로 3.3m다. 제2차 진주성전투에서 성이 함락되자 1593년 6월 29일 논개가 촉석루에서 벌어진 연회에 참석해 왜장을 이 바위로 유인한 뒤 두 팔로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들어 순국했다. 논개는 왜장을 껴안은 손가락이 풀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10개 손가락에 가락지를 꼈다고 전해진다.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지역 사람들이 이 바위를 ‘의암’(義巖)이라고 부르게 됐다. 1629년(인조 7년) 정대륭이 바위 벽에 ‘의암’이란 글씨를 새겼다. 2001년 9월 27일 경남도 기념물 제235호로 지정됐다. ●남강댐 건설 때 만들어진 인공 호수 ‘진양호’ 우리나라 다목적댐 1호인 남강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다. 진주시 판문동과 대평면, 내동면, 수곡면 등에 걸쳐 있다.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 호수를 이룬다. 1936년 착공한 뒤 제2차 세계대전 및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1970년 7월 길이 975m, 높이 21m로 완공됐다. 그 뒤 길이 1126m, 높이 34m로 보강 공사해 1999년 완공했다. 댐 유역 면적은 2293.42㎢, 둘레는 328.01㎞다. 물이 맑고 주변 경관이 좋아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호수 주변에 2000여 그루의 벚나무가 우거져 있고 물홍보전시관, 동물원, 365계단, 전망대, 소싸움장 등이 있다. ●각양각색 유등 띄워 소원 비는 ‘남강유등축제’ 해마다 10월 남강과 진주성 일대에 각양각색의 화려한 유등 조형물을 설치, 전시해 소원을 비는 유등 놀이 축제다. 물, 불, 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경관이 연출돼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몰린다. 개천예술제 행사의 하나로 열리다가 2000년부터 진주남강유등축제로 개최되고 있다. 진주 유등은 1592년 진주대첩 당시 김시민 장군을 비롯한 군사들이 남강에 유등을 띄워 왜군을 저지하는 군사 전술과 성 밖에 있는 가족들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 등으로 활용했다. 1593년 진주성이 함락돼 성을 지키던 병사와 백성 7만여명이 숨진 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유등을 띄우는 행사가 축제로 계승됐다. 역사와 정체성을 바탕으로 강과 유등을 창의적으로 결합해 성공한 축제다. 2006~2010년 5년 연속 최우수축제, 2011~2013년 3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로 선정됐다. 지난해 명예대표축제에 오른 데 이어 올해는 글로벌육성축제로 선정됐다.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 ‘국립진주박물관’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의 1만 7930.66㎡ 부지에 있는 임진왜란 전문 역사박물관이다. 한국 전통문화를 상징하는 탑의 선을 고건축 양식으로 조화시켜 현대식 2층 건물로 지었다. 1984년 11월 개관했다. 전시실은 상설(임진왜란실)과 기획(두암실)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현자총통(보물 제1233호) 등 3500여점의 소장 유물 가운데 460여점을 전시했다. 특히 국내외 여러 곳에 분산된 임진왜란 관련 전적·서화류, 도자류 등 많은 유물을 모았다. 두암실(김용두실)에는 재일교포 김용두씨가 1997년부터 3차례 기증한 유물 179점 가운데 100여점을 전시해 놨다. ●2700여종 식물과 4개 온실 갖춘 ‘경남수목원’ 진주시 이반성면 대천리 야산 58㏊에 조성됐다. 산림 학술연구와 나무 유전자 보존, 주민들의 자연 학습 및 휴식 공간을 위해 만들었다. 1993년 4월 5일 문을 열었다. 전문 수목원, 화목원, 열대식물원, 무궁화공원 등 우리나라 온대 남부 지역 수목 위주로 국내외 식물 2700여종을 수집, 보전하고 있다. 열대식물원과 난대식물원, 선인장온실, 생태온실 등 4개 온실이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산림박물관과 야생동물관찰원이 있다. 호수와 계곡, 언덕을 따라 수목원 구석구석을 둘러볼 수 있도록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숲 속에서 자연 학습을 하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녹색 휴식 공원으로 소문이 나면서 겨울철을 제외하고 평일 1000여명, 휴일에는 5000여명이 방문한다. ●진주성 북장대 아래 ‘인사동 골동품 거리’ 진주성 북장대 아래 남성동·인사동 일대 거리에 골동품을 거래하는 상점 20여곳이 늘어서 있다.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1970년대부터 형성되기 시작해 관광 명소가 됐다. 고문서를 비롯해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등 등 다양한 종류의 골동품을 사고판다. 경남 진주시는 도시 한복판에 맑은 남강이 흐르는 1000년 고도다. 임진왜란 때 온 시민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왜군에 맞서 싸웠던 구국, 충절의 고장이다. 1000년이 넘는 도시 역사만큼 명소와 사적지가 많고 문화예술도 번성했다. 1949년부터 해마다 열리는 개천예술제는 한국 향토문화예술제 가운데 가장 오래된 행사다. ■ 눈과 입이 호강하는 먹거리 ●사골국으로 밥을 지어 독특한 진주비빔밥 진주의 대표 향토음식으로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전투를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군인과 시민들이 전투 중 영양 보충을 하기 위해 소를 잡아 곰국으로 밥을 지어 먹었던 게 진주비빔밥의 시초다. 밥 위에는 육회와 숙주, 고추, 근대나물 등을 얹는다. 바지락을 다져 넣어 끓인 보탕국과 선지국이 비빔밥과 함께 나온다. 진주비빔밥의 독특한 맛의 비결은 사골국으로 밥을 짓는 데 있다. 장작불로 전통 무쇠솥에 밥을 짓는다. 밥에 얹는 나물 요리는 계절에 따라 생산되는 신선한 제철 나물로 만든다. 놋그릇에 담은 하얀 밥과 다섯 가지 나물이 어우러져 일곱 가지 색깔의 아름다운 꽃 모양을 나타낸다고 해서 꽃밥 또는 칠보화반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한양에서 정승들이 진주비빔밥을 먹기 위해 1000리나 되는 진주를 자주 찾았을 만큼 유명하다. 해마다 5월 진주성 일대에서 진주비빔밥축제도 열린다. ●조선시대 관찰사에 대접하던 진주교방음식 조선시대 중앙에서 내려온 관찰사를 비롯한 관리들을 접대하기 위해 진주교방청 연회장에서 차렸던 진주의 전통 한정식이다. 당시 연회장에는 술과 기생들의 노래, 춤이 곁들여졌다. 재료는 지리산 일대 청정한 농산물과 남해의 싱싱한 수산물을 사용한다. 술안주 위주의 음식으로 술과 함께 먹기 때문에 밥보다는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국물 음식이 많다. 갖가지 해물로 만든 해물찜과 해물전을 비롯해 조개구이, 백합탕, 갈비찜, 나물 요리 등 수십 가지 요리로 3~4차례 상을 푸짐하게 차린다. 진주냉면, 진주밀면 등 여러 가지 국물 음식과 조선잡채, 전복김치도 나온다. 겨자에 무치는 조선잡채는 발효돼 깊은 맛이 나도록 하룻밤 숙성시킨 뒤 먹는다. 음식물 보관이 어려웠던 시절에 지혜로운 요리법이었다. ●비린내 없고 담백하며 부드러운 장어구이 바다나 민물에서 나는 장어에 양념을 발라 구워 먹는 진주 지역 향토음식이다.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맛이 부드럽고 고소해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다. 진주 장어구이는 석쇠에 올려 5분쯤 노릇노릇하게 초벌구이 한 뒤 육질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대형 냉장고에 넣어 이틀 정도 급랭시킨다. 이 장어에 양념을 발라 다시 구워 내놓는다. 깻잎이나 상추에 싸서 먹는다. 양념구이는 장어 머리와 큰 멸치, 양파, 계피, 감초 등의 한약재를 넣어 푹 삶아 우려낸 육수에 간장, 고춧가루, 생강, 마늘, 참깨 등을 다져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석쇠에서 5~7분쯤 굽는다. 양념을 3~5차례 발라 장어 살 속까지 스며들게 한다. 소금구이는 육수에 참기름, 마늘, 참깨 등을 넣어 만든 양념장을 발라 굽는다. 진주성 근처 성북동 일대에 장어구이 전문 음식점들이 모여 있다. 진주 장어구이를 먹어 본 관광객들은 “독특하게 만든 양념과 장어구이가 잘 어우러져 느끼한 맛이 없고 구수하다”고 말한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富]아파트, 외제차, 상가 결혼이 선물… 개천의 용은 결사반대

    [2015 대한민국 빈부 리포트-富]아파트, 외제차, 상가 결혼이 선물… 개천의 용은 결사반대

    부산에 사는 주부 A(33)씨는 결혼 2년여 만에 시아버지로부터 ‘열쇠’를 총 3개 받았다. 첫 열쇠는 ‘속도위반’으로 아이가 생겨 결혼하면서 받은 40평대 아파트 키였다. 전망이 해변 쪽으로 탁 트인 해운대의 고층 아파트인데 매매가가 6억원 가까이 했다. 시아버지는 경상남도 지역 곳곳의 목 좋은 터에 건물·아파트 20여채를 가진 수백억원대 자산가여서 며느리 이름으로 아파트 한 채 해주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아버지의 재력 덕에 부산 시내 특급 호텔에서 1000명 가까운 하객이 모인 가운데 성대한 결혼식도 올렸다. A씨가 만삭이 되자 시아버지는 두 번째 키를 건넸다. 독일제인 7000만원짜리 고급 승용차를 선물한 것이다. 안전을 걱정해 운전기사까지 붙여 줬다. A씨는 2013년 초 건강한 딸을 낳았고 지난해에는 둘째인 아들도 순산했다. 2년 사이 손주를 둘이나 본 시아버지는 기특한 며느리에게 세 번째 열쇠를 안겼다. 부산의 100평대 상가 점포의 열쇠였다. 사실 남편이 아버지를 도와 건물 임대 사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미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운 A씨 가정이었다. 하지만 상가 임대 수익으로 매달 수백만원의 ‘용돈’을 벌 수 있게 된 A씨는 안정감이 더 커졌다. 그녀는 “시댁의 경제력이 워낙 세니 가족 계획, 육아 등에서 바라시는 걸 맞춰 드려야 할 일이 많다”면서도 “시아버지가 워낙 잘 챙겨 주셔서 불만은 없다”고 했다. 신혼집을 구하고 결혼식장을 알아보고 혼수와 예물을 준비하는 예비 신혼부부라면 집안 형편에 따라 각자 다른 출발선상에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결혼을 규정한다는 얘기다. 요즘엔 젊은 층 사이에서 직업적 성취 등을 위해 결혼을 미루는 ‘만혼 현상’이 뚜렷하다 보니 보다 못한 부유층 부모들이 며느리나 사윗감을 직접 찾아 나서기도 한다. 서울 강남에서 꽤 큰 규모의 내과 의원을 운영 중인 B(65)씨는 온갖 모임에 나갈 때마다 종이 한 장을 챙긴다. 큰딸(36)의 프로필이다. 대기업에 다니는 딸은 “커리어우먼(전문적 능력을 갖춘 직장 여성)으로 성공하고 싶다”며 연애조차 마다하고 있어 아버지 B씨가 직접 나선 것이다. 동료 의사 모임이나 지역 상공인 모임, 대학 동기 모임 등에 나갈 때면 지인들에게 딸의 프로필을 건넨 뒤 원하는 사위상(像)을 간단히 설명한다. 이미 결혼 정보업체 5~6곳에도 가입해 뒀다. B씨는 “딸이 똑똑하고 직장이 있는 데다 외모도 떨어지지 않는데 왜 결혼하지 않는지 모르겠다”면서 “내 주변에 우리 집과 경제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이 많으니까 사윗감을 직접 찾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결혼정보회사 ‘선우’의 이웅진 대표는 “부유층 자녀 중에는 ‘골드미스’(높은 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미혼 여성)가 많은데 어머니보다는 사회 생활을 해 지인이 많은 아버지가 사윗감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했다. 부유층을 상대하는 시중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도 ‘상위 1%’ 부모들 사이에서 중매쟁이 역할을 한다. ‘중매는 잘하면 술이 석 잔이고 못하면 뺨이 석 대’라는 속담처럼 결혼 상대를 소개해 주는 건 PB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거절하기 어렵다. 부유층 고객의 자녀는 잠재적 고객이기 때문이다. 고객의 부탁을 받으면 PB들이 모인 사내 온라인 대화방에 공지해 짝을 찾는다. 고객들로부터 중매 요청이 밀려들다 보니 일부 시중은행은 아예 부유층 자녀를 대상으로 한 중매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김희경 신한은행 WM사업부 커플매니징 팀장은 “일선 프라이빗뱅킹 센터에서 ‘고객이 사위·며느리를 구하고 있으니 알아봐 달라’는 요청이 오면 원하는 조건에 맞춰 소개해 준다”면서 “짝 찾아 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지 9년쯤 됐는데 매년 네 쌍의 커플 정도가 우리 소개로 결혼했다”고 전했다. 서울신문이 만난 일선 PB 10여명은 “부유층 부모들이 자녀의 배우자감으로 썩 좋아하지 않는 공통 유형이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스타일이 ‘개천에서 난 용’인 남성과 오랫동안 해외 유학하며 박사 학위를 받은 여성이다. 서울 강남 지역에서 일하는 한 여성 PB는 “부유층 부모들은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에서 열심히 노력해 판·검사, 의사가 된 남성을 사위 후보로 크게 선호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대기업 샐러리맨이 낫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집안 형편이 크게 차이 나면 딸이 시댁 때문에 마음고생을 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다. 며느리감으로는 ‘가방끈’이 너무 길거나 직장에서의 성공에 집중하는 유형에는 부담을 느끼며 교사나 공무원, 금융권이나 대기업 직장인 등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여성을 선호한다. 결혼 후에는 시부모가 며느리에게 경제적 지원을 약속하며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 키우는 데 집중하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많다. 1000억원대 재력가 C씨는 PB의 소개로 2년 전 며느리를 얻었다. 자신의 사업을 물려받을 30대 중반의 아들은 당시 중산층 집안의 여성과 연애 중이었는데 “집안 수준이 어느 정도 비슷해야 잘 살 수 있다”며 억지로 헤어지게 했다. C씨가 PB에게 “며느리감을 구해 달라”고 하면서 내건 요구 조건은 단 하나였다. 집 자산 수준이 수백억원대는 돼야 한다는 것. PB는 백방으로 수소문해 조건에 맞는 여성을 여럿 소개해 줬지만 정작 아들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며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던 C씨는 고심 끝에 조건을 낮췄다. 집안의 순자산이 우리나라 상위 ‘1%’ 수준인 40억~50억원 정도만 돼도 괜찮다고 한 것이다. 이후 중매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PB는 40억원대 자산가의 딸로 중소기업에 다니는 20대 여성을 소개해 줬다. C씨의 아들은 싹싹하고 미모까지 갖춘 이 여성이 마음에 들었고 결국 결혼식을 올렸다. 배우자감으로 판·검사 등 ‘사’(士) 자 들어가는 직업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고 하지만 결혼 시장에서 여전히 경쟁력 있는 직군이다. 30대 중반의 판사 D씨는 매달 장인으로부터 ‘용돈’을 받는다. 영남 지역의 땅부자인 장인은 판사 사위가 돈 때문에 주눅들까봐 매달 딸 부부를 만날 때마다 수백만원씩 건넨다. D씨는 10년 전 결혼 때도 장인으로부터 서울의 아파트 한 채를 선물받았다. 한 전직 법조인(70)은 “현직 대기업 임원 등을 만나면 ‘내 딸이 20대 후반인데 서울에 살 집과 혼수 등은 다 마련해 뒀으니 젊은 검사를 소개해 달라’는 사람이 많다”면서 “판·검사 사위가 결혼 때 장인으로부터 아파트 한 채 받는 건 흔한 일”이라고 말했다. 알맞는 ‘짝’을 찾은 뒤에는 결혼 준비를 위해 적지 않은 시간과 돈을 투자한다. 당장 예물만 해도 서민들은 상상 못할 가격의 고급 보석 등이 교환되기도 한다. 서울신문이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고급 예물 판매점을 직접 돌아보니 수억원대 예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자가 C명품 보석 브랜드 판매점에서 “중견기업 회장 비서실에 근무하는 비서인데 회장님 장남의 예물을 보러 왔다”고 말하자 점원은 고가의 보석을 여러 개 꺼내 놨다. “다이아몬드 세트로 하려면 최소 3억원은 생각해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곳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큰 2.45캐럿짜리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의 가격은 3억 7850만원이었고 조금 작은 2.15캐럿 반지는 3억 1000만원이었다. 상담원은 “6000만원 정도야 큰 금액 차이가 아니니 예물이라면 2.45캐럿은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권했다. 그는 “유색 보석 중에는 루비가 가장 좋은데 가격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이걸 껴 보라”며 반지를 슬쩍 건넸다. 가격을 물으니 “18억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금액에 놀라 “실제 사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팔리니까 매장에 가져다 놓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결혼식장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한 결혼정보업체 직원은 “서울의 특1급호텔 고급 홀에서 예식하면 하객 1인당 식대가 10만~20만원대인데 최대 1000명까지 온다고 보면 결혼 때 2억원은 드는 셈”이라고 했다. 결혼식 비용은 축의금으로 충당할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를 가진 부유층은 축의금을 받지 않기도 해 수억원대 예식 비용을 직접 치르는 셈이다. 서울 강남의 특1급 호텔에서 결혼한 대기업 직장인 E(34)씨는 “젊은 사람들이 꿈꾸듯 나도 정말 가까운 사람만 불러 소박하게 치르는 ‘프라이빗 웨딩’을 희망했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결혼식은 너만의 행사가 아닌 가족의 행사이니 특급 호텔에서 해야 한다’고 고집하셨다”고 했다. 부유층 자녀들은 신혼집도 서울 강남·서초구 등 부촌을 선호한다. 따라서 20평형대 아파트를 산다고 해도 5억~10억원이 든다. 유대근 이두걸 송수연 기자 dynamic@seoul.co.kr
  • [사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저소득층이 가난에서 벗어나 중산층 이상으로 신분 상승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어제 발표한 ‘2014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층이었던 사람이 중산층이나 고소득층으로 계층 이동을 한 비중(빈곤탈출률)은 22.6%에 불과했다. 저소득층 4.5명 중 1명꼴로 ‘신분이동’을 한 것으로 8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고소득층 4명 중 3명은 여전히 고소득층에 남았다. 특히 고소득층이었다가 저소득층이 된 사람은 0.4%에 그쳐 역대 조사 중 가장 낮았다. 가난한 사람은 계속 가난하고 부자인 사람은 계속 부자로 남고 있다는 뜻이다. 부(富)를 기반으로 한 신분이 계층을 넘어서서 계급이 되고 있다. 부의 양극화와 소득불평등 문제가 세계적인 고민거리로 등장한 지는 오래됐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내년부터 상위 1%가 전 세계 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나머지 99%의 재산보다 많아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도 주요 선진국 못지않게 심각하다. 김낙년 동국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48%를 차지하고 있는 반면 중하위층 40%는 전체 소득의 불과 2%를 점유하는 데 그치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데도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는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유력 집안 자제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만들고, 사법시험은 2017년 폐지할 예정으로 있는 게 대표적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를 막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무고시를 폐지하고 외교 아카데미로 바꾼 것을 놓고도 말들이 많다. 저성장이 고착화될 조짐을 보이는 상황에서 부의 쏠림 현상을 막고 성장의 과실을 공평하게 나누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는 조세제도를 대폭 손질해야 한다. 물론 지금도 고소득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는 있지만, 더 내는 쪽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세습형 부자가 넘쳐나는데도 기업을 공개했다고 가만히 앉아서 수조원, 수천억원을 챙기는 재벌 자제가 속속 생겨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연말정산을 놓고 봉급생활자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도 결국은 소득불균형과 이를 둘러싼 공정하지 못한 세제라는 판단 때문이다. 저소득층을 위한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차이를 줄이는 대책도 나와야 한다. 가난이 대물림되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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