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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평성 25년 경성중학/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열린세상] 평성 25년 경성중학/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널리 회자되는 김춘수 시인의 이 시구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일견 아름다운 상념을 자아내는 이 시구가 정치적으로는 무시무시한 발언이 된다. 알튀세는 ‘호명’이야말로 개인을 이데올로기에 예속시키는 행위로 보았고, 사이드는 ‘명명’을 제국주의가 식민지 타자를 자신의 체계에 편입시키는 방식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시인은 살벌한 세상 이치를 아름답게 표현해 냈다.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서 주인공은 외로운 섬에서 원주민 하인을 얻는다. 분명 제 이름이 있을 이 원주민에게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프라이데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단지 금요일에 데려왔다는 이유로. 로빈슨은 또 이 원주민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기독교로 개종시킨다. 명명과 언어 침탈, 개종 등. 사이드는 제국주의 전성기에 형성된 서양 고전 명작들이 이처럼 당시 타자에 대한 서양의 식민화 방식을 은연중 작품에 반영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과거에 일제는 이러한 서양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하여 우리에게 실천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한국어 말살과 일본어 강제 교육, 창씨개명, 신사참배 강요 등이 그것이고 그 후유증과 상흔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명명과 관련된 한 예로 한국의 꽃 이름과 나무 이름들을 보자. 아름답고 토착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우리의 식물 이름과는 별도로 학명에는 상당수가 ‘Nakai’(나카이)를 비롯한 일본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 그것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 식물학자에 의해 한국의 식물들이 마치 처음 출현한 양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린네의 명명법에 따라 첫 발견자인 일본인 학자의 이름이 한국의 대부분 식물 이름 안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동양학에서 이러한 현상은 심각하다. 동양학이라는 말 자체가 일본 제국학문이 만들어 낸 용어이지만 근대 이후 동양은 일본이 대변해 왔고, 일본의 동양학에 의해 동양이 설명되어 왔으며, 특히 서양의 동양학은 일본 동양학의 기초 위에 성립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양 동양학의 고전인 라이샤워· 페어뱅크의 공저 ‘동양문화사’에 일본이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이 그대로 실리고 세계의 모든 지도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어 온 것은 이런 실정을 보여주는 극히 작은 예에 불과하다. 한편 오늘의 일본 우익 정치인들은 도리어 과거 일제의 만행을 호도하고 나아가 정당화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은 태평양전쟁이 동양을 서양의 침략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한 명분 있는 전쟁이었으며, 한국 등에 대한 식민 지배가 오히려 근대화를 위해 기여했다고 강변한다. 그리하여 ‘침략’이 아니라 ‘진출’이며 위안부 강제동원은 없던 일로 삭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 후안무치한 데다가 적반하장 격인 이러한 언동을 효과적으로 징치(懲治)할 수단이 없는 우리의 현실이 딱하고 울화통이 터질 노릇이지만 최근 서울의 한복판에서 더욱 아연한 일을 겪었다. 며칠 전 우연히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경희궁을 돌아보게 되었다. 이곳은 조선의 왕궁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해체되어 일본인 학생들만 다니는 경성중학이 되었고 해방 이후 서울고등학교로 새로 태어났다가 학교가 이전하면서 예전의 왕궁 경희궁으로 복원된 곳이다. 궁 앞의 안내문을 읽다가 어이없는 구절을 발견했다. 경희궁의 연혁에서 ‘한일병합과 함께 조선총독부에 소유가 넘어가면서’ 본래의 모습을 잃었노라고 쓰여 있지만 ‘한일병합’이란 단어에서 강제 병합의 기미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고(병합이란 말 자체가 일제의 용어), 혹시나 해서 그 밑에 병기한 중국어 설명을 보았더니 실로 가관이었다. ‘한일 양국이 한일합병 조약에 서명하고 이 궁전들은 모두 조선총독부 소유가 되었다’(韓日兩國簽署韓日合倂條約, 這些宮殿都歸朝鮮總督府所有)는 것이다. 한국이 합법적으로 병합되었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의 망언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이 안내문의 작성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그곳은 경희궁이 아니라 여전히 평성(平成) 25년의 경성중학이었다. 한국이 합법적으로 병합되었다고 강변하는 일본 우익의 주장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경희궁 안내문의 작성 주체는 도대체 누구인가? 대한민국의 심장부에 위치한 그곳은 여전히 평성(平成) 25년의 경성중학이었다.
  • “한국계 캐나다인, 알제리 가스전 인질극 가담”

    “한국계 캐나다인, 알제리 가스전 인질극 가담”

    지난 1월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천연가스 시설에서 인질극을 벌인 알카에다 연계 테러범들 가운데 한국계 캐나다인이 포함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CBC방송은 한국계인 애런 윤(24)씨가 알제리 가스전 인질극에 가담한 세 번째 캐나다인으로 확인됐다고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방송은 윤씨가 고등학교 동창생 2명과 함께 북아프리카에 갔다가 인질극이 벌어지기 직전 붙잡혀 수감됐다고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윤씨의 고교 동창인 크리스 카치루바스와 알리 메들레즈는 알제리 가스전에서 인질극을 벌인 알카에다 연계 테러범 7명 중 2명이라고 이 소식통은 밝혔다. 이들은 알제리 정부군의 진압 작전 때 자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은 현재까지 윤씨가 인질극에 가담할 의도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없으며, 실제로 감금돼 있는지조차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씨의 동생은 그가 1년 이상 가족들과 연락이 없었다고 말했다. 온타리오주 런던에 거주하는 윤씨 가족은 아들이 인질극에 가담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몇 주 전에도 아들과 전화 통화를 했으며, 교도소에 수감됐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자유로운 상태인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방송에 따르면 윤씨는 독실한 가톨릭 가정에서 성장했으며 학창시절에도 줄곧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졸업을 1년 앞두고 친구들을 따라 이슬람으로 개종했고, 이후 학교에서 종종 기도와 예식을 드리기도 했다. 이 때문에 캐나다 경찰 당국이 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에서 무슬림 청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아프메드 엘투르크는 “지난해 6월 연방 경찰이 윤씨와 친구들의 근황을 물어본 적이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외무부는 윤씨의 수감 여부에 대해 “국가 안보 관련 사안이라 언급할 수 없다”며 함구했다. 알제리 정부 공식 발표에 따르면 당시 인질극으로 외국인 근로자 37명과 알제리 근로자 1명 등 38명이 사망했으며, 숨진 외국인 근로자들의 국적은 미국과 일본, 프랑스, 영국, 필리핀 등이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씨줄날줄] 투견(鬪犬)/진경호 논설위원

    쭈글쭈글한 큰 얼굴에 아래 송곳니는 입 밖으로 턱 삐져나오고, 다리는 있는 듯 없는 듯 작달막한, 그래서 못생기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개가 영국을 원산지로 둔 불독(bulldog)이다. 한데 지금은 한낱 애완견으로 전락(?)한 이 불독은 ‘황소’(bull)와 ‘개’(dog)를 합쳐놓은 이름이 말해주듯 한때 황소와 맞서 싸웠던 ‘왕년(往年)의 추억’을 지니고 있다. 중세 유럽 때 사람들이 황소와 개를 싸움 붙이고 황소에 맞서 개가 얼마나 오래 싸우는지를 놓고 돈을 걸었는데, 이 싸움판에 끌려나간 개가 불독이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불독의 습성은 이 싸움판에서 생겼다고 한다. 물었다가 자칫 놓치면 황소 뿔에 받히거나 밟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절박감이 낳은 슬픈 생존 본능인 셈이다. 황소와 맞서 싸우던 대표적인 또 하나의 개는 미국의 핏불테리어(pit bull terrier)다. 말 그대로 ‘황소를 물어뜯어 구멍을 내는 개’다. 불독과 테리어를 교배해 만든 종으로 불테리어, 스태퍼드셔테리어, 마스티프, 불리구타, 코카시안 오브차카 등과 함께 서양의 대표적 투견으로 사랑(?)받고 희생돼 왔다. 고대부터 활약했을 이 서양의 투견들은 1835년 영국의 동물보호법 제정 이후 대부분 새로운 운명을 맞는다. 투견이 불법화되면서 ‘용도폐기’될 위기에 놓였으나 숱한 교배를 통해 몸집을 줄여 애완견으로 살아남거나, 사냥개와 목축견으로 전업(?)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운명과 달리 지금도 상대를 물어뜯고 싸워 이겨야만 살아남는 운명을 진 투견도 있다. 일본의 도사견이다. 12세기 막부(幕府)체제부터 투견의 전통을 이어온 일본은 지금도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투견을 합법화하고 있는 나라다. 마스티프를 개종해 만든 도사견은 물어뜯는 힘(치악력)이 235㎏에 이를 정도로 강해 현존하는 최고의 투견으로 꼽힌다. 1970년대 서울 삼청공원 등에서 버젓이 벌어진 투견판을 도사견이 휩쓸었던 우리의 투견사만 봐도 도사견의 사나움을 알 법하다. 경찰이 투견도박사이트에 대한 수사에 나섰다. 일본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이는 투견을 매일 5~6개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리고, 여기에 네티즌들이 베팅하는 방식으로 도박이 이뤄졌다고 한다. 1만 2000년 전, 인간이 던져준 먹이를 받아먹으며 주저앉은 늑대로부터 시작된 개에게 있어서 여전히 가장 큰 재앙은 아무래도 인간이지 싶다. 제 욕망에 따라 주머니 속에 들어갈 치와와를 만들고, 성대를 잘라내고, 늑대를 죽이는 도사를 만든 인간, 개들이 흘리는 피를 보면서 돈을 걸고 따고 잃는 우리 말이다. 진경호 논설위원 jade@seoul.co.kr
  • 東과 西의 문화가 싱가포르서 만났을 때

    東과 西의 문화가 싱가포르서 만났을 때

    말레이시아의 믈라카(말라카)·페낭은 동서양 중계무역의 동남아시아 주요 요충지였다. 오랜 세월 중국과 인도, 아랍(14세기)의 영향을 받았지만, 대항해 시대가 열린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영국의 영향을 받아 서구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독특한 혼합 문화를 발전시켰다. 금보다 더 비쌌다는 후추 등 향신료의 산지로 더욱 각광을 받았다. 무역을 하는 중국·인도 등의 남성은 본국에 부인을 두고도 현지에서 말레이 여성과 혼인하고 후손을 낳았다. 말레이어로 ‘페라나칸’이라고 부르는 독특한 인종과 문화가 싹텄다. 이 중 싱가포르에서는 페라나칸들이 많고 역사도 깊어 고유 문화로 자리 잡았다. 페라나칸은 다수가 중국계이고 아랍계와 인도계, 유럽계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일~5월 19일 상설전시관 1층 특별전시실에서 ‘싱가포르의 혼합문화, 페라나칸’ 특별전을 연다. 싱가포르 국립문화유산위원회와 아시아문명박물관 소장품 230점이 소개된다. 박성혜 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페라나칸 혼합 문화를 통해 동남아의 문화적 다양성을 살펴보면서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고 있는 한국이 나아갈 방향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5부로 구성된 특별전의 시작은 혼례다. 제1부는 ‘믈라카에서 온 신랑 신부’로 꾸민다. 12일간 열리는 페라나칸 혼례의 첫날 모습을 보여 주는 코너다. 용과 봉황을 수놓은 화려한 일산 아래 중국식 복장을 한 신랑과 모란과 나비 등을 수놓은 일산 아래 자수와 구슬 공예로 장식한 화려한 예복을 입은 신부가 관람객을 맞는다. 신랑 옷은 차분한 색깔이지만 신부 옷은 분홍색 비단에 화려하다. 다이아몬드와 구슬로 장식한 신부의 머리 장식이 화려하다. 제2부 ‘페라나칸의 혼례: 중국의 영향’에서는 혼례 침실을 소개한다. 혼례 침실은 페라나칸 공예미술을 보여 준다. 구슬 장식품들이 화려하고, 침실 좌우에 아이리시 카펫을 깔아 놓은 것도 특징이다. 제3부는 ‘뇨냐의 패션: 말레이의 영향’을 정리한다. 페라나칸 여성은 말레이 전통 옷인 사롱과 케바야를 입고, 케로상이라는 보석 장신구를 더한다. 부와 신분을 자랑하기 위해 금세공한 위에 진주,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여성용 벨트와 귀걸이, 페이즐무늬 브로치 등이 눈길을 끈다. 제4부 ‘서구화된 엘리트: 유럽의 영향’에서는 유럽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했던 페라나칸의 모습을 살펴본다. 페라나칸은 영어를 배우고 서구식 복장을 했으며, 기독교로 개종하고 테니스나 크리켓 등을 즐겼다. 스스로를 영국 신민이라고 생각해 중국인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마지막 제5부는 ‘페라나칸 공예미술’을 위한 코너로, 여성들의 자수와 구슬 세공품, 신부용으로 따로 주문 제작한 도자기인 뇨냐 자기를 만난다. 뇨냐는 ‘여자’라는 뜻으로, 혼수품으로 중국 본토에서 거금을 주고 마련했다고 한다. 터키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화려한 채색 도자기들이다. 유럽에서 수입한 작은 구슬 100만개를 꿰어 만들었다는 식탁 깔개는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솜씨를 자랑하기 위해 들여야 할 노동을 생각하면 고개가 흔들린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中, 티베트에 기독교 선교 허용할 듯”

    중국 당국이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에 선택적으로 기독교 선교를 허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2일(현지시간) 티베트자치구와 인접한 칭하이(靑海)성 시닝(西寧)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해 “중국 당국의 이런 방침에는 경제적 이유와 함께 정치적 계략이 숨겨져 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10여명의 소식통과 인터뷰한 결과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고 밝혔다. 소식통에는 서닝에 거주하는 서방 선교사들이 포함됐으나 중국 관계자들의 포함 여부는 언급되지 않았다. 시닝에는 400여명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가 서방 선교사들이다. 티베트 불교가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티베트에 중국 당국이 기독교 선교를 허용하려는 것은 정치·경제적 이유에서다. 기독교계의 티베트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서방 선교사들이 가진 경제적 이점이 상당하다. 또 중국 당국이 정치적으로 서방 선교사들을 신뢰하는 점도 주요 원인이다. 선교사들은 선교 활동에 지장이 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정부의 현지 정책에 대한 공개 비판을 꺼린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티베트에 기독교가 전파돼 티베트 불교와 대립하기를 바라는 당국의 정치적 흉계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적을 이용해 다른 적을 제압하는 중국의 오랜 전략인 ‘이이제이’(以夷制夷)를 티베트 불교 통제에 적용하려 한다는 얘기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티베트 전문가 로비 바넷은 “서방 기독교 선교사들은 티베트 불교도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한다”며 “중국은 티베트 불교 자체를 파괴하려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이 줄어들기를 바라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분열된 한국교회 ‘일치·연합’으로 극복해야”

    “분열된 한국교회 ‘일치·연합’으로 극복해야”

    ‘분열된 한국교회의 위기, 일치와 연합으로 극복해야’ 그동안 복음주의에 눌려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하던 에큐메니칼 운동이 급부상하고 있다. 기독교의 교파·교회를 초월해 하나로 통합하자는 세계교회주의에 대한 관심 집중이다. 특히 이 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결집은 최근 논란을 빚은 개신교 보수, 진보 양측의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총회 성공 개최를 위한 공동선언문’과 관련한 후폭풍이 거센 가운데 일고 있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최근 교회 일치와 연합을 바탕으로 한 에큐메니칼 정신의 회복과 관련해 대사회적 선언과 천명을 하고 나선 사례는 성공회대·감신대·한신대 등 대학을 비롯해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문화신학회, 기독교장로회 생명선교연대, 한국여신학자협의회,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기장 여신도회전국연합회 등 10여 건. 이들은 한결같이 복음주의에 치우친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에 위기감을 드러낸 채 일치와 연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에큐메니칼 정신의 회복을 선언하고 나선 건 역시 최근 개신교계의 큰 논란을 몰고 온 ‘WCC 공동선언문’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김영주 총무가 합의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공동선언문의 4개 기본 조항 중 ‘종교다원주의 배격’과 ‘개종전도 금지 반대’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이번 선언문은 WCC의 역사와 전통을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한신대)/“이번 선언문은 그동안 면면이 이어져 온 에큐메니칼 신학과 전통을 심각하게 훼손했다.”(감신대)/“이 문서를 보면서 다시금 가부장적이고 차별적인 신학과 신앙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는 것 같아 비통함과 한탄을 금할 수 없다.”(에큐메니칼 기독여성들)…. 결국 이 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주장을 종합하면 공동선언문이 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가장 중시하는 WCC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정신을 기본으로 삼는 WCC 부산총회가 자칫 이 공동선언문으로 인해 좌초될 수 있다는 우려와 복음주의 보수교단의 정치적 개입에 대한 경계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신대 교수들은 호소문을 통해 “WCC는 에큐메니칼 정신을 살려 제10차 부산총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한국준비위원회를 재정비하도록 권유하고 이번 공동선언문에 대한 WCC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혀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최근 이 같은 에큐메니칼 진영의 천명과 선언이 잇따르자 NCCK 김상근 회장은 “WCC 공동선언문은 공식 문서가 아니기 때문에 NCCK와 상관 관계가 없다”며 ‘공동선언문 수용 불가’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최근 방한한 WCC 총무와 WCC총회준비위원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전도와 선교는 교회의 대사회적 섬김과 봉사를 통해 구현돼야 한다”며 “개종전도라는 온전하지 못한 방법을 통한 전도와 개종은 적절치 않다”고 말해 에큐메니칼 진영의 주장에 힘을 실어줬다. 한편 이 같은 상황에서 에큐메니칼 측은 종교 다원주의와 개종 전도, 성경 무오설 등 선언문의 핵심 내용을 정리하는 심포지엄을 오는 4일 오후 2시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다. 심포지엄을 주최한 생명평화마당 신학위원회는 “공동선언문을 둘러싼 절차적인 문제와 에큐메니칼 그룹의 정치적 문제가 제기 됐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신학적 입장에 있다”며 “성공적인 WCC총회 개최를 위해 에큐메니칼 신학의 관점에서 이 선언문에 대한 숙고와 평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레이시아-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말라카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평일 낮, 말라카 거리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로 활기에 차 있다. 우리가 경주에 가서 역사를 배우듯,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말라카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는다. 물론 수학여행 온 아이들에게는 수백년 전의 역사유적도 그저 오래된 놀이터일 뿐이지만 말이다. 말라카 강변에 펼쳐진 책 한 권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말라카에 도착한다. 지도상에서 이 도시는 말레이반도 왼편에서 인도양을 향하고 있다. 거대한 함선과 포탄을 앞세운 14세기 정복자들도 말라카를 거쳐, 말레이반도와 수마트라섬 사이 좁은 물길을 지나야만 더 깊숙한 동쪽에 닿을 수 있었다. 말라카는 그들이 처음 발을 디딘 동양의 땅이었고 동양과 서양, 거대하고 상이한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과거 수백년간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제일가는 무역항이었다. 무역량으로 따지면 수에즈 운하에 비견됐을 정도다. 하지만 지금은 수심이 너무 낮아져 항구로서의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여행객들도 간척개발이 한창인 해변보다 오래된 가옥이 늘어선 말라카 강변의 분위기를 더 선호한다. 말라카강 리버크루즈는 40여 분 동안 9km에 이르는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다. 잘 꾸민 액세서리 상점, 한적한 노천 카페들 사이사이 중국풍 홍등을 매단 집들이 보이고 화려한 원색의 벽화가 펼쳐진다. 먹음직스런 열대 과일과 음식부터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인도, 중국, 아랍계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까지, 움직이는 배 안에서 보면 그 자체가 한 권의 그림책이다. 그 뒤로 이어지는 건 나무로 지은 붉은 지붕의 전통가옥촌 ‘캄풍모텐Kampung Morten’이다. 우리나라 한옥에 해당하는 것이 캄풍인데 바닥이 지상에서 1~2m 높이에 있고, 천장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하면 비가 많이 와도 물에 잠기지 않고, 통풍이 잘돼 위생적이라고 한다. 1922년 지은 빌라 센토사Villa Sentosa는 그중 가장 오래된 집인데 말레이시아 국기를 내걸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인 가옥이지만 집주인이 평생 동안 공들여 모은 골동품과 개인 소장품을 전시해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있다. 저녁에는 불을 밝힌 노천 카페에서 분위기에 취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한차례 소나기 후, 불어난 강물이 일렁이는 모습도 여기선 한없이 매력적이다. 강변에는 맹그로브 나무가 울창하다. 운이 좋은 날에는 반딧불이나 월광욕을 하고 있는 도마뱀도 볼 수 있다. 강변의 카페와 연결되는 존커 스트리트Jonker Street와 히런 스트리트Heeren Street는 꼭 들러 보길 권한다. 존커 스트리트에는 골동품점과 작은 미술관, 특색 있는 식당들이 많다. 매주 금토일 저녁 6시부터 자정까지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존커 워크 스트리트 바로 옆 골목이 히런 스트리트다. 저렴한 호텔과 예쁜 네덜란드풍 건물이 많다. 네덜란드어로 ‘존커’는 하인을, ‘히런’은 주인을 뜻한다. 존커 거리는 히런 거리의 부자들을 위해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 보는 말라카 해협의 모습. 시가지와 항구가 한눈에 보인다 2 존커 워크 스트리트는 골동품점, 기념품점, 카페와 술집이 늘어선 전형적인 여행자들의 거리다 3 말라카 리버크루즈 는 9km에 이르는 말라카 강줄기를 따라간다. 노천카페와 전통가옥, 벽화가 말라카의 분위기를 전한다 4 비오는 늦은 밤, 조명을 밝힌 말라카 강은 한없이 매력적이다 5 재즈가 흘러나오는 존커 워크 스트리트의 라이브 카 ▶travie info 말라카 리버크루즈Melaka River Cruise 매일 오전 9시부터 저녁 11시30분까지 운항한다. 어른 기준 15RM으로 저렴한 편이며, 왕복 40분 정도 소요된다. 크루즈 선상 공연이 포함된 티켓(Bot VIP/ 매주 일요일 오후 8시~오후 1시/어른 기준 30RM), 하루 동안 자유롭게 타고 내릴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Ho-Ho Service/ 오전 9시~밤 11시30분/어른 기준 30RM)도 판매한다. 해양박물관 앞에서 승선하면 된다. www.ppspm.gov.my 메나라 타밍 사리Menara Taming Sari 전망대 80m 높이까지 올라가는 메나라 타밍 사리 전망대에서는 말라카 시가지와 항구의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360도 회전식이라 가만히 앉아 있어도 사방의 정경을 볼 수 있다. 푸른 말라카강과 붉은 지붕 가옥, 세인트 폴 언덕의 옛 유적지들로 대표되는 육지 모습과 달리 바닷가는 부산하게 변화 중이다. 연륙도에는 마리나 리조트가 들어섰고, 갯벌에는 간척공사가 한창이다. 낮은 곳에선 볼 수 없던 말라카의 현재진행형 모습이다. 개장시간 오전 10시~밤 10시 입장료 어른 기준 RM20 홈페이지 www.menaratamingsari.com 1 15세기 말라카 왕궁의 모습. 바닥이 지면에서 1~2m 떨어져 있고, 나무로만 지어진 점이 전통적인 말레이시아 건축 구조를 보여 준다 2 도시 이름의 어원이 된 말라카 나무 3 네덜란드 통치 시기 공관으로 쓰였던 스태이더스 빌딩은 현재 말라카 민족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4, 5 포르투갈의 흔적은 볼 수 있는 세인트 폴 성당. 벽채만 남은 모습에서 역사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6 말라카는 한때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동서양을 잇는 관문 역할을 했다. 당시 교역량은 수에즈 운하와 비견됐을 정도다 7 말라카에서 꼭 경험해 봐야 할 인력거 ‘트라이쇼’. 화려한 꽃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게 특징이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있는 언덕 말라카는 아시아에서 가톨릭의 세례를 받은 첫번째 도시이며, 400년간의 식민 지배 속에서도 독특한 문화를 꽃피운 생명력의 땅이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에게는 최초의 왕조가 탄생한 곳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말라카가 유명해지기 시작한 건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부터다. 말레이,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흔적이 한 덩어리를 이룬 도시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다. 여기에 이주 중국인들이 말레이 사람들과 결혼해 낳은 ‘페라나칸’의 문화까지 더해져 이색적이다. 본격적인 말라카 시간 여행은 독립기념관 앞에 있는 한 그루의 나무에서부터 시작된다. 수마트라섬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건너온 파라메시바라Paramesvara왕자가 자신의 나라를 세우기로 결심한 곳이 바로 이 나무 아래 서였다. 그는 이곳에서 궁지에 몰린 아기 사슴이 자신의 사냥개를 물리치는 것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작은 힘으로도 용맹하게 맞서면 큰 힘을 이길 수 있다는 것. 나무의 이름을 딴 말라카왕국이 건국된 것이 1402년인데, 역사학자들은 이때를 말레이시아 역사의 시작점으로 본다. 독립기념관 앞 말라카 나무 주변에는 포르투갈의 요새와 15세기 말라카왕궁The Melaka Sultanate Palace이 있어 여러모로 역사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만하다. 파라메시바라 왕의 바람대로 작은 왕국 말라카는 전세계의 큰 도시들을 상대하며 세계적인 항구도시로 성장했다. 말라카 사람들은 해상 교역 활동에 관련된 ‘말라카법’을 만들어 교역 기반을 다졌으며, 앞다퉈 이슬람교로 개종해 멀리서 온 아랍 상인들의 호감을 샀다. 하지만 말라카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건국 백여 년 만인 1511년 포르투갈에 의해 멸망했고 뒤이어 1641년 네덜란드, 1795년부터는 말라카를 포함한 말레이시아 전역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당시 황금보다 더 귀했던 향료를 독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로 왔는데,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항로를 발견한 지 겨우 9년 만의 일이다. 그들은 말라카를 시작으로 아시아 침략의 포문을 열었다. 말라카를 점령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처음 한 일은 안전한 거주지 겸 요새 ‘에이 파모사A’Famosa’를 짓는 것이었다. 원주민 노예를 동원해 술탄의 왕궁과 왕릉, 모스크를 철거하고, 성벽 두께가 3m나 되는 요새와 다양한 용도의 건물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 형체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뒤이은 네덜란드와 영국의 포화 속에 살아남은 것은 성문Porta de Santiago과 성당St.PaulChruch 한 채뿐이다. 성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로 벽채만 남은 세인트폴성당이 보인다. 이 성당은 가톨릭을 처음 포교한 성 자비에르와 관련된 일화로 유명하다. 자비에르는 말레이반도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가톨릭을 알리는 데 힘쓰다 1552년 중국 광저우에서 사망했다. 시신은 말라카에서 6개월간 안치된 후 그의 첫 해외 포교지였던 인도 고아로 가게 됐는데, 관을 열어 보니 전혀 썩지 않았다고 한다. 또 자비에르가 바다에 십자가를 던지자 사나운 풍랑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는 일화도 있다. 얼마 후 어부가 같은 자리에서 게를 건져올렸는데 신기하게도 자비에르의 십자가를 쥐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말라카에서는 등에 십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게는 성스럽게 여겨 잡지 않는다. 에이파모사 요새는 전체적으로 붉고, 거칠게 풍화된 듯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마치 녹이 슨 듯 보이는데, 철성분이 함유된 홍토 벽돌로 만들어서 그렇다. 이 벽돌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쓰인 것과 같은 종류로 수백년이 지나도 변화가 없을 정도로 단단하다. 요새 아래쪽에는 멀리서도 붉은 벽이 눈에 띄는 스태이더스The Stadthuys 빌딩이 있다. 원래 네덜란드 총독의 공관이었는데, 현재는 말라카 민족박물관이자 랜드마크로 사랑받고 있다. 말라카 이전부터 식민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과 옷차림을 전시하고 있다. 네덜란드식 거실과 당시 사용했던 생활용품들도 볼 수 있다. 베이커리에서는 갈색빵을 파는데 네덜란드 점령 당시 가난한 사람들에게 탄 빵을 나눠주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주말에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다양한 군복 코스프레도 볼 수 있다. 스태이더스와 맞붙어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는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18세기에 세워졌다. 거대한 대들보와 시계탑에서 네덜란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travie info 트라이쇼Trishaw 스태이더스 앞에는 말레이시아와 페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력거 ‘트라이쇼’가 줄지어 서 있다. 평범한 인력거가 아니다. 오디오에서는 ‘강남스타일’을 비롯해 최신 유행가가 흘러나오고, 지붕이며 좌석을 각종 꽃과 인형, 깃발로 치장하고 있다. 잘나가는 트라이쇼는 광고판까지 달고 성업 중이다. 트라이쇼를 타고 말라카의 골목골목을 돌아보다 보면, 아직 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보석 같은 장소를 발견하게 될지 모른다. 트라이쇼┃이용요금 시간당 40RM(30분 25RM), 어른 2인까지 탑승 가능 에이파모사┃입장료 무료 말라카왕궁┃개장시간 오전 9시~오후 5시30분 입장료 어른 기준 2RM 스태이더스┃개장시간 오전 9시~ 오후 3시30분(금~일요일은 오후 9시까지) 입장료 어른 기준 5R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 나라가 사는 법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레이시아에서 진한 친근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 나라에선 한국인의 영어가 유독 잘 통한다. 우리나라 콩글리시 버금가는 게 바로 말레이시아의 ‘맹글리쉬’. 다양한 민족이 어울려 사는 말레이시아에서는 한 가지 언어로 이뤄지는 완벽한 의사소통보다 다양한 언어로 이뤄지는 유연한 의사소통이 더 일반적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를 고집하기보다 여러가지를 포용한다. 가장 전통적인 것을 가장 현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하고, 감추고 싶은 역사를 가장 매력적인 역사로 소개한다.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는 이슬람 사원의 첨탑을 본떴고, 쇼핑몰을 활보하는 여자들은 검정색 대신 온갖 화려한 색깔과 무늬로 치장한 차도르를 둘렀다. 이곳에서 이슬람 전통은 속박의 족쇄가 아니라, 가장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된다. 거리를 걷다 보면 건물이나 광장 이름에서 독립을 뜻하는 ‘메르데카’라는 단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말레이시아는 195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는데 매년 8월31일 독립기념일에 성대한 축제를 치를 정도로 독립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반면 쿠알라룸푸르와 말라카 곳곳에서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식민 통치 유적들이 버젓이 관광상품화 돼 있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부러 이런 곳들을 찾기도 한다. 식민 역사에 대해 예민한 우리로서는 이런 모습이 양면적으로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양면적이지 않은지 묻자 나이 지긋한 관광가이드 노마가 적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용서에 관대한 편이예요. 아마 종교의 영향도 크겠죠. 무엇보다 우리는 이제 식민시대에 아무런 악감정도 없어요. 역사 그대로의 과거에 얽매어 있기보다 새롭게 보고, 발전시키는 게 중요한 거지요.” 오랫동안 하나의 영토를 다양한 무리의 사람들과 공유하며 살아온 역사 속에서,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포용을 배웠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종교와 다른 피부색, 다른 언어, 다른 가치관을 인정하는 데 가장 뛰어난 국민이다. 그리고 그런 관용적인 태도 속에는 다양한 삶의 어떤 형태든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강인함이 있다. “나는 10년 동안 트라이쇼 운전을 해왔어요. 운전 기술로 치면 말라카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거예요. 그거 알아요? 말라카 최고의 직업이 바로 트라이쇼 운전사라는 거. 난 매일 ‘이녀석’과 함께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새로운 곳에 대해 알아 가죠. 난 정말 이 일이 좋아요.” 적도 부근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매일 12시간씩 인력거 운전을 하는 만MAN 씨의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있었다. 말라카에서 트라이쇼를 타며 만씨와 함께한 시간은 유쾌함으로 가득했다. 처음 만나는 말라카의 신선한 풍경 때문이기도 했고, 비온 뒤 씻은 듯 갠 하늘 때문이기도 했다. 어쩌면 그 많은 자전거 운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룩한 그의 배와 넉넉한 웃음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면 화려하게 뽐낸 ‘이녀석’의 아늑한 품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자전거와 만씨 자신의 이름에서 따온 ‘베크만BECHMAN’. 그것은 어느새 만씨 자신이 돼 버린 녀석에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에디터 트래비 글 Travie writer 도선미 사진 Travie photographer 지성진 취재협조 말레이시아관광청 www.mtpb.co.kr ★MALAY FOOD & SWEET DESERT MALAY FOOD 말라카의 음식 계보는 복잡 다단하다. 인도, 포르투갈, 네덜란드, 중국의 조리법이 말레이시아 특유의 향신료와 만나 새로운 퓨전 요리로 탄생했다. 달콤한 ‘자연주의’ 디저트도 말라카에선 꼭 맛봐야 한다. 단맛을 내는 데 코코넛 우유와 팜나무 수액으로 만든 흑설탕 ‘굴라Gula’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인공적이지 않고 몸에 좋다. 입 안에 감도는 두 가지 맛 ‘뇨냐푸드NONYA FOOD’ 중국인과 말레이인이 결혼해서 낳은 2세를 남자는 바바, 여자는 뇨냐라고 한다. 뇨냐음식은 말레이시아와 중국음식의 특징을 모두 갖고 있는데, 아마 혼혈 가정 내 다양한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으리라. 주로 중국 조미료에 코코넛 우유, 말레이 향료를 함께 넣어 조리한다. 태생이 가정식 요리기 때문에 겉보기에 매우 단출하다. 레스토랑에서 먹더라도 휴대용 찬합에 담겨 나온다. 튀김요리인 바이띠Baidee, 중국식 야채볶음인 찹차이Chap Chye, 커리잎을 넣어 구운 치킨IncheKabin 등이 대표적이다. 뇨냐 음식은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말라카와 페낭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데, 말라카식은 코코넛 우유를 많이 사용해 달달한 반면, 페낭식은 태국의 영향으로 매운 고추가 사용되는 점이 다르다. 뇨냐 식당은 존커 스트리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고향에서 맛보는 원조 ‘아쌈페다스ASAM PEDAS’ 말라카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즐겨 먹는 아쌈페다스의 고향이다. 아쌈은 타마린드 열매즙을, 페다스는 ‘매운’을 뜻한다. 파인애플, 스타프루트 등 열대과일, 아쌈, 토마토, 절인 갓으로 만든 소스에 생선과 채소를 넣고 조리하는데, 겉보기엔 생선찌개에 가깝다. 맛은 전혀 비리지 않고 깔끔해 카레처럼 국물을 밥에 얹어 먹으면 맛있다. 아쌈페다스를 맛보고 싶다면 카페 루마말라카KafeRumah Melaka를 추천한다. 다양한 말레이, 말라카 전통 음식으로 유명하며, 20년 된 캄풍의 풍취도 느낄 수 있다. 영업시간 오전 8시~오후 7시, 일요일 제외(영업시간 이후는 사전 예약 필수) 홈페이지 www.keferumahmelaka.com SWEET DESERT 코코넛밀크의 감미로운 맛 ‘사고Sago’ 바바 뇨냐들이 어렸을 때부터 즐겨먹는 간식이다. 사고팜 나무에서 나오는 전분을 하루동안 물에 담그면 젤리처럼 되는데, 이걸 동그랗게 뭉쳐서 은단만한 알갱이로 만들고, 코코넛 우유에 넣어 먹는다. 여기에 과일과 팜나무 설탕인 ‘굴라Gula’를 넣으면 매우 고소하고 달콤하다. 굴라는 메이플 시럽과 같은 방법으로 팜나무에서 추출한 설탕으로, 디저트에 주로 사용된다. 말레이시아식 팥빙수 ‘첸돌Cendol’ 첸돌은 말라카의 대표적인 디저트다. 얼음에 팥을 올리는 것이 전체적으로 우리나라 팥빙수와 흡사하다. 다른 점은 연유 대신 코코넛 밀크를, 시럽 대신 굴라를 사용한 자연식이라는 것. 특히 향료의 하나인 판단잎 즙으로 만든 녹색 젤리를 짧게 채썰어서 넣는 게 특징이다. 이 젤리는 해독 성분이 있어 몸에도 좋다. 독특한 향을 지닌 두리안을 좋아하는 말레이시아 사람들은 첸돌에 두리안을 토핑해서 먹기도 한다. 존커 스트리트 입구에 있는 ‘산슈공San Shu Gong’의 첸돌이 유명하다. ▶travie info 말라카 가는 방법 인천에서 말레이시아항공, 에어아시아항공, 싱가포르항공 등을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싱가포르까지 이동한 후 현지에서 버스, 기차를 타면 편하다. 1 쿠알라룸푸르 버스터미널 TBSTerminal Bersepadu Selatan에서 말라카행 버스 이용. 1시간45분 소요되며 매일 7:00~23:00 사이 15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12.3RM. www.tbsbts.com.my 2 쿠알라룸푸르 기차역KL Central에서 싱가포르 우드랜드Woodland행 열차South Line를 이용하면 된다. 반대도 가능하다. 하지만 하루에 1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소 불편하다. 쿠알라룸푸르발 말라카행은 오전 9시 출발, 2시간 30분 소요, 23RM. 싱가포르발 말라카행은 오후 1시45분 출발, 4시간 소요, 38RM. www.ktmb.com.my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세계교회협의회 부산 총회 공동 선언 엇갈린 반응

    ‘일단 손은 잡았는데 끝까지 함께 완주할 수 있을까.’ 세계교회협의회(WCC) 부산 총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놓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지난 13일 공동 선언문을 전격 발표한 데 대해 ‘기대 반 걱정 반’의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화합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환영과 ‘신학적, 신앙적 대화 없이 급조된 이벤트’라는 걱정이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오는 10월 총회 개막까지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우선 개신교 보수·진보 진영의 합의를 환영하는 측은 “국가적, 사회적으로 큰 행사를 앞두고 더 이상 한국 교회가 갈라진 채 싸울 수 없다”며 적극 참여할 입장을 속속 밝히고 나섰다. 특히 부산 총회 개최 확정 후 WCC를 ‘이단’이니 ‘적그리스도’로까지 몰아붙이며 부산 총회를 노골적으로 반대해 온 보수 교단의 입장 변화가 두드러진다. 어차피 총회 개최가 확정된 만큼 연합과 일치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쪽으로의 극적인 반전인 셈이다. 실제 한기총과 NCCK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면서 “WCC 부산 총회 개최에 대한 보수 교단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공동 선언문을 발표한다”고 밝혀 강경 입장의 보수 교단 끌어들이는 데 공을 들였음을 보여줬다. 이 같은 환영, 기대 입장과는 달리 NCCK와 한기총의 합의를 ‘WCC 정신에 위배되는 제스처’로 보는 회의적 시각도 적지 않다. 그 우려의 바탕은 공동 선언문의 내용이다. 양측이 공표한 공동 선언문의 합의 내용은 ▲종교다원주의 배격 ▲공산주의, 인본주의, 동성 연애 등 반대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 ▲성경 66권의 무오성 천명 등 네 가지로 압축된다. 이 가운데 우려의 시각이 쏠리는 부분은 ▲종교다원주의 배격과 ▲개종 전도 금지주의 반대다. 얼핏 봐도 사회의 공동 선을 지향하고 교회 교류와 일치의 정신을 강조하는 WCC와 상충되는 조항들이다. 따라서 WCC가 기본 정신을 외면한 한국 개신교계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우려가 적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합의 내용을 놓고 근본적으로 WCC를 반대하는 일부 보수 교단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으며 17일 열린 NCCK 회의와 실행위원회에서도 ‘보수 교단을 의식한 지나친 양보’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특히 WCC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정교회와 종교 간 교류, 일치 차원에서 WCC 부산 총회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는 천주교 측의 눈길이 곱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총회 개막까지 보수 교단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이는 공동 선언의 합의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과 진정한 교회 연합을 위한 보수, 진보 양측의 노력 여하에 따라 ‘기독교계의 유엔’이라는 WCC 부산 총회의 원만한 개막과 성공 개최 여부가 갈릴 전망이다. 한편 오는 10월 30일~11월 8일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열리는 제10차 WCC 총회에는 세계 349개 교단 대표자와 선교·사역 단체 관계자 등 1만여명이 참석해 세계 평화와 지구촌 생태 환경, 여성 인권 신장 등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파티’ 끝나자 거품 꺼진 테마주

    ‘파티’ 끝나자 거품 꺼진 테마주

    ‘파티’가 끝난 테마주의 거품이 결국 꺼졌다. 올 한 해 증권시장을 달궜던 정치 관련 테마주 투기열풍이 대통령 선거 이후 빠르게 사그라지면서 주가가 최고가 대비 반토막이 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6월부터 지난 21일까지 테마주로 분류된 150개 종목의 주가를 분석한 결과, 주가가 최고가 대비 평균 52.7%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26일 밝혔다. ‘꼭짓점’에 투자해 21일 현재까지 보유했을 때 투자금의 손실을 따진 평가손실률이 가장 큰 종목은 써니전자였다. 안철수 테마주였던 써니전자는 평가손실률이 88.0%나 됐다. 최고가일 때 1억원의 주식을 샀다면 지금 손에 쥔 돈은 1200만원이라는 얘기다. 평가손실률 2위는 문재인 테마주인 바른손으로 87.1% 하락했다. 그 뒤는 일경산업개발(85.6%), 미래산업(84.2%), 우리들생명과학(84.2%) 순이었다. 정책 테마주보다 인맥 테마주의 손실이 더 컸다. 지난 3일부터 21일까지 3주간 대표적인 정치인 인맥 테마주 15종목과 정책 테마주 15종목의 주가 흐름을 살펴본 결과 인맥 테마주는 31.9% 급락한 반면, 정책 테마주는 20.9% 내리는 데 그쳤다. 차기 정부의 정책 실행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해 6월 1일 총 21조 1000억원이었던 테마주 시가총액은 올 들어 각 종목이 상종가를 치면서 한때 41조 6000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21일 현재 시총은 24조 3000억원이다. 최고가에 비하면 17조 3000억원이 사라진 셈이다.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큰 폭으로 변동하면서 테마주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도 큰 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9월 금감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테마주 35개 종목 195만 계좌에서 1조 5500억원의 손실이 났다. 주가 변동 폭도 매우 컸다. 테마주의 최저가 대비 최고가 상승률은 평균 302.3%였다. 1000%를 넘는 종목도 써니전자(3146.2%), 에스코넥(1109.7%), 우리들생명과학(1064.2%), 바른손(1044.1%) 등 4종목이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조선중기 학자 권문해 父子 14년 일기 한글로

    조선시대 백과사전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을 집필한 학자 초간(草澗) 권문해(1534~1591)와 그의 아들 권별(1589~1671)의 일기집이 나란히 우리말로 번역돼 나왔다. 한국국학진흥원은 24일 권문해가 쓴 ‘초간일기’와 그의 아들 권별의 ‘죽소부군일기’를 처음으로 우리말로 번역해 두 권의 책으로 펴냈다고 밝혔다. 권문해는 율곡 이이와 송강 정철보다는 2살이, 학봉 김성일보다는 4살, 서애 유성룡보다는 8살이 많았으니 사실 같은 시대 인물이다. 그는 1589년(선조 22년) 대구부사(大丘府使)로 있을 때 20권 20책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대동운부군옥’을 지었다. 한국과 중국 문헌을 망라해 단군 시대부터 조선 중기까지 우리나라의 지리·역사·인물·문학·식물·동물에 관한 정보를 집대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이었다. 19세기 서유구(1764∼1845)가 한국과 중국의 900종의 책을 참고해서 쓴 ‘임원경제지’(113권 52책)에 앞서는 ‘16세기 조선의 브리태니커’라고 할까. 이번에 한글로 번역된 ‘초간일기’는 권문해가 47세이던 1580년부터 임진왜란 전해인 1591년까지 12년 동안 기록한 일기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실증적, 사실적으로 글을 쓰는 권문해의 태도는 그의 일기에 그대로 나타난다.”면서 “자기 주위의 일뿐 아니라 그것에 대한 자기 생각까지 적었으며 관직생활의 구체적 내용도 일기에 담았다.”고 소개했다. ‘죽소부군일기’는 권문해의 아들인 권별이 인조반정(1623) 후 정묘호란(1627) 전인 1625~1626년에 쓴 일기다. ‘죽소부군일기’에는 조선왕실의 계보를 바로잡기 위해 중국과 벌인 외교 협상이 마무리되자 이를 축하하기 위해 지은 글인 ‘개종계사문’(改宗系赦文)과 영남 고을의 풍토와 민속을 기록한 ‘영남지지’(嶺南地誌),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국어 음을 소개한 ‘설부-동인방언(東人方言)’이 부록으로 수록돼 있다. 참고로 ‘계종계사문’은 명나라에서 지은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인 이인임(?~1388)의 아들로 기록돼 있어 이것을 바로잡은 것이다. 이 문제가 15~16세기 명나라와 조선의 핵심 외교문제였다는데, 요즘 한·중·일이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싸우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이 세 편의 글은 아버지 권문해가 정리한 것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조선시대 일기는 적지 않지만 부자(父子)가 대를 이어 기록한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고 설명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데스크 시각] 정·경 분리에 격세지감/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정·경 분리에 격세지감/김경운 산업부 전문기자

    1453년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1100년 동안 지켜주던 높이 9m의 마지막 성벽이 무너졌다. 무게 600㎏짜리 돌덩이를 쏘아대는 오스만튀르크의 신무기인 화포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한 것이다. 지중해를 에워쌀 정도로 넓은 영토를 자랑하며 가톨릭의 중심을 자부하던 대제국이 적대적인 이슬람 신흥국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지중해 쟁탈전에서 유럽 측의 빈자리는 베네치아공화국이 낚아챘다. 베네치아는 비잔틴과 달랐다. 이슬람에 그다지 적의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도리어 주변국 술탄들과 계약을 맺고 아시아의 향신료와 비단을 싼값에 넘겨받아 유럽에 비싸게 넘기며,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적을 너의 친구처럼 여기고 친구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하라.’는 자신의 격언에 충실했던 이중성이 끝내 교황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당시 유럽인들에게 무슬림과의 갈등 문제는 단순히 종교 차원이 아니라 정치·사회의 존망이 걸린 문제였다. 그런데 베네치아는 종교보다 상업을 선택해 르네상스와 ‘대항해시대’를 이끌었고, 이후 산업혁명의 초석까지 마련하면서 유럽 근대 문명의 주역이 된다. 정치·종교와 상업의 분리를 통해 국가발전에 성공한 사례는 또 있다.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해상무역로와 식민지 개척에 먼저 나섰으면서도, 후발 네덜란드에 손쉽게 동방 무역권을 빼앗겼다. 그 배경 중에는 이교도들에게 통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종교를 강요한 점도 작용했다. 개종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격하고 파괴했다. 1637년 일본의 막부는 ‘종교에 우리는 관심없다.’며 접근한 네덜란드인들에게 호의를 보였고, 앞서 온 포르투갈인들을 내쫓도록 허락했다. 네덜란드는 무역관까지 설치하고 교역권을 장악했다. 이번 대통령선거의 주요 후보들이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다. 아울러 ‘서민 복지’에도 한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대기업집단(그룹)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고치는 것이 마땅하다. 누리고 있는 혜택만큼 베풀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상생의 길을 찾는 게 옳다. 다만 재계가 이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 것은 기업을 싸잡아 ‘국민의 적’으로 몰아세우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경제를 정치의 무대에 올려 돌팔매질하려 한다는 신경질적인 쇳소리도 들린다. 그도 그럴 만한 게 기업 규제 공약과 복지 확대 공약이 오버랩되면서, 마치 부자의 돈을 빼앗아 표밭에 뿌리겠다는 것처럼 굴절돼 보이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또 있다. 남북경협 기업인들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 ▲정부와 민간사업의 분리 ▲상거래와 인도적 지원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거의 비슷한 뜻의 말을 굳이 3대 원칙이라고 강조하는 데에서 “제발”이라는 쉰 목소리가 들린다. 오죽 답답했으면 그럴까. 경제활동이 정치행위와 뒤엉켰다가, 책임을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국민의 오해만 받는 일도 있다.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서울시 SH공사는 늘 죄인처럼 거액의 만성적자를 추궁당한다. SH공사의 경우 2006년과 2009년 사이에 6조 9901억원의 부채가 늘었다. 하지만 이는 문정·은평3·강일2지구 등의 임대주택 개발 등 사업비를 미리 당겨서 쓰고, 또 투자비 회수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 서민들이 실업에 고민할 때 정치권 자신이 범국가적 재정 확대를 구호처럼 외쳤던 것을 잊었는가. 앞서라고 등을 떠밀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는가. 다시 생각해 보면, 정·경(政·經) 분리는 과거 무소불위 정권에 밀착해 특혜나 뜯어내려는 기업의 탐욕을 비판하는 원칙이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는 홀로 잘나가는 기업의 발목을 붙잡아서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려는, 기성 정치권의 못난 짓을 꾸짖는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이럴 때 어울리지 않는가. kkwoon@seoul.co.kr
  • [오바마냐 롬니냐… 美 오늘 대선] 롬니는 누구

    밋 롬니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첫 모르몬교 대통령이 된다. 롬니는 대학 시절 모르몬교 선교사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을 정도로 신앙심이 깊다. 부인 앤은 원래 성공회 신자였지만 롬니와 사귀면서 모르몬교로 개종했을 정도다. 롬니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공부도 잘했고 인물도 준수한 전형적인 ‘엄친아’형 정치인이다. 롬니의 어머니는 어릴 적 롬니를 ‘기적의 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아기를 낳으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어머니가 죽음을 무릅쓰고 출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롬니가 프랑스 선교사 시절 차량 충돌 사고로 의사의 사망 진단을 받고도 살아난 것 역시 롬니 집안에서는 기적으로 받아들인다. ●대학시절 모르몬 선교사 활동… 부인도 개종 롬니의 아버지는 아메리칸모터스 회장과 미시간주 주지사, 리처드 닉슨 정부의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을 역임한 조지 W 롬니로, 그 역시 1968년 대선 경선에 도전한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 레노어 롬니도 연방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신 바 있다. 따라서 롬니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집안의 대를 이어 온 꿈을 실현하는 셈이다. 롬니는 1975년 하버드대에서 2개 학위(법학 박사와 경영학 석사)를 동시에 땄을 정도로 머리가 좋다. 그는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1990년 베인앤드컴퍼니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그는 이 시기에 돈을 많이 벌었는데 아버지의 도움 없이 사업에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2002년엔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으면서 흑자 대회를 일궜고 그 영향으로 2003년 민주당 텃밭인 매사추세츠에서 주지사로 당선됐다. 주지사로서도 그는 주 재정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등 수완을 발휘했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에게 밀려 중도 사퇴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당내 경선에서 대세론을 구가해 왔다. ●매사추세츠 주지사시절 흑자전환 수완 발휘 롬니는 공화당에서 상대적으로 중도 성향이다. 한때 동성애자의 결혼과 낙태에 찬성했으며 오바마케어(건강보험 의료개혁안)의 모태인 의료보험 개혁을 주지사 시절 실시한 전력 때문에 공화당 보수층으로부터 노선을 의심받아 왔다. 롬니의 대북정책은 강경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지난해 김정일 사망 직후 “김정일의 죽음으로 북한 주민들의 길고 잔인한 고통이 끝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경제 전문가인 롬니가 대통령이 될 경우 외교 문제에서는 주관이 없이 측근들에게 휘둘리면서 대북정책 등에서 강경책을 불사할 것이라는 관측도 없지 않다. 일각에서는 조지 W 부시 정권 때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당선땐 ‘부자 이미지’ 불식 급선무 롬니가 당선될 경우 선거 때 내놓은 과격한 공약들을 어떻게 현실화할지가 관심사다. 그는 당장 취임 첫날 오바마케어를 백지화하고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막상 행동으로 옮길 경우 엄청난 저항과 논란이 수반될 만한 민감한 쟁점이다. 물론 실용주의적 성향인 그이기에 그럴듯한 명분으로 공약을 철회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롬니 입장에서는 당선될 경우 선거 과정에서 부각된 ‘부자 이미지’를 불식시켜야 하는 일도 과제다. 무엇보다 “미 국민의 47%가 정부에 의존하고 산다.”는 발언으로 그에게 등을 돌린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마음을 돌려놓는 것이 급선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Romney] *나이:64세 *출생: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학력:하버드대 법대, 경영대 *경력:베인 캐피털 창업,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매사추세츠 주지사 *가족:부인 앤과의 사이에 5남
  • “성경과 불경의 소통을 준비했어요”

    “성경과 불경의 소통을 준비했어요”

    다음 달 2일 서울 관악구 캠브리지하우스 2층에선 독특한 종교 단체가 개원식을 갖고 출범한다. 종교 지도자가 아닌 평신도들끼리 종교에 대해 함께 공부하고 기도하며 선한 일을 해 보자는 ‘유유녹명종교나눔터’. 종교 간 대화와 소통을 기치로 내건 이 단체를 기획하고 출범케 한 이는 지난 5월 큰 반향을 일으킨 ‘선방에서 만난 하나님’의 저자 성소은(43)씨. 순복음교회의 독실한 신도에서 성공회 신자로 옮겨 살다가 머리를 깎고 출가해 비구니로 수행 중 환속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킨 범상치 않은 종교인이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저런 모임과 교유를 통해 종교 간 화합과 소통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대화와 소통이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 단절된 구조가 갈등과 마찰의 큰 요인이 되고 있지요.” 종교가 ‘나’라는 존재의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장치로 바로 설 때 나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는 성소은씨. 그래서 나부터 바로 알고 다스릴 때 남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슴은 먹이를 발견하면 울음을 울어 다른 무리들을 불러 모은다고 해요. 나만 배불리 먹으려는 욕심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위한 공유의 울음인 셈이지요.” 유유녹명종교나눔터는 나눔과 공유의 울음 소리인 녹명(鳴)을 으뜸 가치로 삼는다. 필명이기도 한 그 ‘녹명’은 결코 범상치 않은 종교 여정 끝에 건져내고 결집한 삶의 모토다.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가 공을 들여 세상에 태어난 성씨의 본명 소은은 스님이 지어 준 이름이란다. 개종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순복음교회에 적을 두고 오랜 세월 다녔다. 하지만 심해져만 가는 영적 갈증과 존재에 대한 의문을 견딜 수 없어 성공회로 옮겨 봤지만 여전히 근원적인 답을 찾지 못했다. 방황하던 중 서점에서 불교 수행과 관련된 책을 읽고 번개처럼 머리를 치는 한 줄기 빛을 보고는 출가했다. 운문사 승가대에서 치문반 두 철을 났지만 여전히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출가한 뒤 영적 갈등은 해소됐지만 승가의 조직과 나를 가두는 승복이 너무 불편했어요. 그 승복이 나와 남을 가르는 또 다른 장벽이란 생각이 들었지요.” 선방에서 수행에 들고는 교회 다닐 때 느끼지 못했던 성경 말씀이 새록새록 가슴에 와 닿아 눈물을 흘렸다는 성씨. 자신의 오랜 종교 여정을 되돌아보면 지금 기독교 신자며 불교 신도들이 그저 성경과 불경에 얽매여 나와 남을 경계 짓고 갇혀 사는 게 너무 안타깝단다. 영국성공회 릿쿄대학에서 법학을,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한 재원. 한·일 양국 정부와 국제기구에서 일할 때 줄곧 인권과 세계평화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왠지 공허하게만 느껴졌고 그 공염불은 험한 종교 여정의 시초였다고 한다. “떠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과 떠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온 사람은 많은 차이가 있지 않을까요. 그 종교 여정에서 깨닫고 얻었던 진리와 기쁨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는 데 여생을 바치고 싶습니다.” 바로 그 나눔의 녹명이다. 혼자 공부하고 기도하면 자칫 잘못된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성씨. 그래서 ‘유유녹명종교나눔터’는 종교를 가진 보통 사람과 종교가 없는 이들이 함께 모여 공부하는 아카데미와 주부·직장인을 위한 참선방, 그리고 자원봉사를 병행한다고 한다. 당장 다음 달 12일부터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교 명예교수의 ‘세계 종교 둘러보기’ 특강을 시작하며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이 ‘지금 당장, 참사람으로 사시게’라는 주제의 강의를 이어 간다. “사람은 누구나 어마어마한 가능성을 갖고 있지요. 문제는 그 ‘내 안의 힘’을 모른 채 산다는 것입니다. 그 힘을 자각하게 만드는 게 바로 종교가 할 일이 아닐까요. 많은 이들이 사슴처럼 나누며 자유롭게 소요했으면 합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스피드’ 한국 펜싱 골리앗 되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펜싱 강국 코리아! 한국 대표팀은 2000년대 이후 유럽 일색인 펜싱계에서 ‘외톨이’였다. 중국과 일본은 프랑스, 헝가리 등에서 외국인 코치를 영입해 훈련했다. 과거 한국도 그런 식이었다. 김용율 펜싱대표팀 감독은 “당시 웬만하면 128강, 잘해야 64강이었다. 아무리 해도 4강에 들어가지 못하니 국제대회도 의미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종주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선수와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데 체격에서 밀리니 제대로 성적이 나올 리 없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퍼졌다. 김 감독은 “따라하기만 하면 죽도 밥도 안 된다. 우리 것을 해보자는 의견들이 나왔다.”고 말했다. 해서 남들이 다 유럽을 따라할 때 한국은 남들이 비웃거나 말거나 국내 선수들로 코칭 스태프를 꾸리고 우리만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관건은 스피드였다. 유럽 선수들이 한 발을 뛸 때 한국 선수들은 두 발을 뛰어 상대의 허점을 노리게 했다. 유럽 선수들이 즐겨 하는 손 공격보다 발놀림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체력 훈련이 필수였다. 혹독한 웨이트트레이닝과 기술 훈련이 이어졌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남자 플뢰레에서 김영호가 금메달, 에페에서 이상기가 동메달을 따며 물꼬를 텄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선 남현희(31·성남시청)가 은메달로 맥을 이었다. ‘한국형 펜싱’의 결실은 이번 대회에서 맺히기 시작했다. 당초 금메달 1개, 동메달 1~2개 정도를 점쳤던 한국은 ‘금메달 0순위’ 남현희가 아쉽게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숨은 진주’들의 활약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2일까지 한국은 펜싱 3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따낸 강국으로 떠올랐다. 김 감독은 “지난 4월 러시아 대표팀이 우리와 전지훈련을 함께하자고 하더라. 전에는 우리가 돈 주고 같이하자고 해도 쳐다보지도 않던 러시아”라고 뿌듯해했다. 한국 펜싱이란 다윗이 유럽이란 골리앗을 거꾸러뜨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뚝심이었다. 런던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英 알카에다 조직원 검거 올림픽전 테러소탕 ‘올인’

    런던의 올림픽 경기 시설을 드나든 알카에다 연계조직 대원 등 테러 용의자가 잇달아 검거됐다. ‘안전한 올림픽’을 공언한 영국 정부는 올림픽 개막이 20일도 남지 않은 가운데 막바지 테러세력 소탕에 몰두하고 있다. 영국 치안 당국은 법원의 명령을 무시한 채 경기장이 몰려 있는 런던 올림픽공원을 여러 차례 드나든 테러 용의자를 붙잡았다고 7일(현지시간) 영국 주간지 선데이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올림픽공원서 24세 테러 용의자 잡아 ‘CF’라는 이니셜로만 알려진 이 용의자는 24세이며, 소말리아 이민 가정 출신으로 2009년 아프가니스탄으로 가서 테러 훈련을 받고 자살폭탄테러 작전에 참가하려 한 혐의로 영국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다시 소말리아로 달아나 국제테러조직 알카에다 계열의 알 샤바브에서 무장활동을 벌였다. 이후 지난해 1월 소말리아 현지에서 체포돼 영국으로 송환됐으며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같은 해 5월 거주지와 이동, 통신 등을 제한하는 조건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CF는 이동권역을 제한한 법원의 명령을 깨고 지난 4월과 5월 런던 스트랫퍼드역까지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역은 유럽 최대 규모의 웨스트필드 쇼핑센터 옆에 있으며, 시민들은 올림픽공원에 진입하기 위해 이 쇼핑센터를 거쳐 간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CF는 전자태그를 착용한 채 움직인 바람에 위성을 통해 이동 상황이 모두 모니터링됐다. ●지난주에도 14명 체포… 경계 강화 영국 내무부는 용의자가 이전에도 이슬람 테러 활동에 관여한 적이 있음에 주목하며 현재 “테러 활동을 포기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영국 보안 당국은 앞서 지난달 동부 에섹스 주의 올림픽 카누 경기장에 대한 테러 공격을 모의한 혐의로 백인 이슬람 개종자 2명을 체포했다. 또, 지난주에는 테러 용의자 일제 단속 작전을 벌여 14명을 체포하는 등 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경계 태세를 최고 수위로 높이고 있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두 철학자의 논쟁 비하인드 스토리는?

    지난달 말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세기의 토론이 있었다. 무신론의 대가로 불리는 리처드 도킨스 옥스퍼드대 명예교수와 영국 성공회의 최고 성직자 로완 윌리엄스 대주교가 ‘신은 있는가’를 주제로 벌인 설전이다. 도킨스는 “왜 당신은 창세기를 21세기 과학에 맞춰 재해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가.”라고 공격했고, 윌리엄스 대주교는 “과학 잣대만으로 종교를 논할 수는 없다.”고 응수했다. 이 논쟁을 지켜본 외신들은 대부분 ‘오후의 다과회’처럼 차분했다고 평가했다. 자신의 신념이 무려 1시간 30분 동안 공격당했는데도 시종 정중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칼 포퍼가 봤다면 “밋밋한 논쟁 따위는 집어치워라.”고 할까, “우리도 그럴 수 있었는데.”라고 하려나. 비트겐슈타인과 포퍼는 20세기 최고의 철학자로 꼽힌다. 둘 다 오스트리아 빈 출신 유대인이고, 기독교로 개종했다. 논리실증주의(빈 학파)를 중심으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지만, 두 사람이 평생 얼굴을 마주한 시간은 1946년 10월 25일 오후 8시 30분부터 단 10분뿐이다. 이 ‘10분’은 동석했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10분’ 동안 일어난 일은 이렇다. ‘그날’ 런던경제대학 과학방법론 강사인 포퍼는 케임브리지대에 초청 연사로 방문했다. 킹스칼리지 H3호실에서 강연을 시작하자 논쟁이 격렬해졌고 비트겐슈타인은 부지깽이를 흔들다가 회의실을 나가버렸다. 이 일은 ‘부지깽이 스캔들’로 불리며 이후 철학계를 뒤흔들었지만, 사건에 대한 기억은 제각각이다. 비트겐슈타인이 부지깽이를 흔들며 고성을 질렀는지, 고성을 지르다가 부지깽이를 들었는지, 부지깽이로 포퍼를 위협했는지, 포퍼가 한 말에 옴짝달싹 못한 채 부지깽이를 내던지고 밖으로 나가버렸는지,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공통된 것은 부지깽이일 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한 데이비드 에드먼즈와 케임브리지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존 에이디노는 2001년 이 사건을 추적한 ‘비트켄슈타인의 부지깽이(Wittgenstein’s Poker)’를 내놓았다. 같은 해 말 한국에도 번역본이 나왔다. 최근 나온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김태환 옮김, 옥당 펴냄)은 2012년 버전으로, 영국 출판사 요청에 따라 내용을 조금 첨가했다. ‘기막힌 10분’은 이 짧은 해프닝으로 두 거장 철학자의 성격과 사상, 문화, 사회 분위기 전반을 두루 살핀다. 단순히 ‘대단히 천재적인 사상적 삶’을 어렵고 지루하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마치 추리소설을 읽은 듯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그려냈다. 저명한 철학자 스티븐 툴민 교수나 논리학 권위지 피터 기치 교수, 비트겐슈타인의 스승 버트런드 러셀 교수 등의 증언을 듣는 것은 마치 철학모임에 자리한 듯 생생하다. 1만 79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1930년대 모던보이 마르크스와 通하다

    1930년대 모던보이 마르크스와 通하다

    박종홍(1903~1976). 한국의 서양철학 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그런데 시각은 곱지 않다. 박정희 정권 때 대통령 특보로서 국민교육헌장을 기초하는 등 유신체제에 협력했다는 경력 때문이다. 안호상(1902∼1999) 역시 한국의 서양철학 1세대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 당시 문교부 장관을 지내면서 정권의 지도 이념인 일민(一民)주의를 내세운 학자라는 멍에를 지고 있다. 평가가 후할 수 없다. 시대에 반하는 상상을 하는 철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질렀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박치우(1909~1949)는? 안호상, 박종홍과 동시대에 활동한 서양철학 1세대다. 그의 이름은 익숙지 않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르크스주의자였기 때문이다. 박헌영의 남로당에서 활동했고 해방 공간에서 월북했다. 그 뒤 빨치산 활동을 위해 남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의 최후는 동아일보 1949년 12월 4일 자 기사에 실린 육군참모총장의 발언으로 전해질 뿐이다. “약 2주일 전 태백산 전투에서 적의 괴수 박치우를 사살하였다.” 잊혀질 수밖에 없는 존재인 셈이다. 그런 그가 한때 불쑥 재등장한 때가 있다. 1980년대다. 어떤 경위에선지는 알 수 없으나 그가 그간 써낸 논문들을 모아 1946년 냈던 ‘사상과 현실’이 1980년대 대학가를 떠돌아다닌 것이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박치우가 이 책을 써냈을 당시 상당한 호평을 이끌어냈다는 사실이다. 저자 역시 왜 박치우에게 관심을 가졌느냐는 질문에 “해방 공간에서 여러 문건과 책들이 나돌았는데, 그 가운데 그의 책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답했다. 재밌는 것은 심지어 박종홍도 한 일간지에다 이 책에 대한 서평을 썼다는 점이다. 그것도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정도(正道)를 제시한다.”는 대단한 호평이었다. ‘불화 그리고 불온한 시대의 철학-박치우의 삶과 사상’(위상복 지음, 도서출판 길 펴냄)은 바로 이 박치우를 복원한 책이다.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같은 시대를 산 철학자들의 다른 선택이다. 그들이 추구한 철학 그 자체에 이미 다른 선택이 내재됐다고 지적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서양철학이 아니라 서양철학에 대한 그들의 이해 방식에 내재됐다고 본다. 저자는 “박종홍을 두고 하이데거의 나치 참여, 헤겔의 국정철학 전개와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지나친 비교일 뿐 아니라 박종홍의 정치 권력 참여를 정당화하기 위해 하이데거나 헤겔을 끌어들이는 오류를 저지르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저자가 보기에 당시 주류였던 독일 철학을 배우면서 박치우는 “합리주의적 이성에 근거한 변증법”을 신뢰했고, 박종홍은 “비합리주의적 실존철학의 길”을 좇았다. 박치우는 일제 식민지라는 조건 때문에 이에 대한 합리주의적 변증법에 따라 당대의 제국주의, 전체주의에 대항하는 길을 택했다. 반면 박종홍은 박치우가 민족의 정도를 제시했다고 극찬해 놓고도 다른 길을 택했다. 비합리적 실존을 떨쳐낼 수 있는 방법은 결국 도약으로서의 결단이다. 이는 권력에의 복무다. 이미 한번 드러난 바도 있다. 경위와 시기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제 말 1943년쯤 박치우는 중국으로 건너간다. 더는 일제하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 즈음 박종홍은 총독부 학무국 촉탁직을 맡는다. 이후 박종홍의 도약과 결단, 실천은 “일제 말기 촉탁이 되길 선택한 길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다.” 저자는 박치우가 이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본다. 박치우가 “이론보다 실천을 강조한 것은 옳다. 그러나 다시 실천을 위한 이론으로서는 볼셰비즘과 파시즘이 있는데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진 적이 있는데 이는 사실상 박종홍을 겨냥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해방은 됐지만 “사상적으로 계속해서 파시즘이 민족주의의 이름 아래 대두될 가능성을 예견했던 것이며 바로 안호상이나 박종홍의 민족주의가 그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사상과 현실’에 실렸던 ‘연구의 발표와 자유’라는 논문에서 박치우는 아예 이렇게 못 박아 뒀다. “이렇게 보면 벌써 그는 학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상인 내지 투기업자 이외의 아무것도 못 되는 것이다. 단군론이 동조동근(同祖同根)론으로 바뀐다든지, 하이데거를 팔굉일우설과 강제 결혼을 시킨다든지 하는 종류의 것이 그것이어서 진실한 의미에서의 개종이라기보다는 변절일 것이다.” 탈민족주의 입장에서 귀가 번쩍 뜨일 지적이다. 그러나 파시즘과 볼셰비즘의 대결에서 박종홍이 파시즘의 길을 택한 것이 잘못이었다 해도 박치우가 볼셰비즘을 택한 것은 옳은 선택이었을까. 볼셰비즘이란 것도 박치우가 그토록 비판해 마지않던 전체주의의 하나였던 것으로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았던가. 저자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본다면 그런 ‘모 아니면 도’ 방식의 이분법은 다소 과격했던 것 같다.”면서도 “요즘 우리 시대에서는 공공연한 결과였지만 일제의 강압적인 통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어 가던 1930~40년대 즈음 지식인들의 풍향계가 그러했다는 점에서 참고할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비평하는 것은 평가의 문제이고, 평가 이전에 그 시절 지식인들의 분위기와 철학한다는 것의 의미를 한번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해서 이런 철학 논쟁의 가외로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1920~30년대 조선에 불어닥친 마르크스주의 광풍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이란, 눈 덮인 땅에 홀로 지게를 메고 걸어가는 가난한 소작농의 이미지가 강했던 러시아가 거대 산업 현장에서 땀 흘려 일하는 건강한 산업 노동자의 이미지가 가득한 소련으로 변하는 과정이었다. 실상이야 어쨌건 정보통신기술 사정이 열악했던 당시 제3세계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런 이미지가 강했다.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이런 분위기가 유입되게 놔둘 리 없었다. 해서 1924년 경성제대를 세웠을 때 교수진은 빵빵하게 구성하되 대개 칸트와 헤겔 전공자로 채웠다. 그런데 묘하게도 학생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열광했다. 처음 학생들이 낸 잡지로 ‘신흥’이 있는데 여기 실린 논문을 보면 칸트와 헤겔은 마르크스로 가는 징검다리쯤으로 취급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나중에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하게 되는 유진오(1906~1987)조차도 법학과에서 철학과로 전과하고 싶어 했을 정도로 변혁적 철학 이론에 관심이 많았다. 이는 요즘 근대성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일제시대에도 ‘모던 뽀이’ ‘모던 걸’이 있었노라는 얘기들에 의문부호를 붙이게 한다. 혹시 그들은 ‘막스 뽀이’ ‘엥겔스 걸’이 아니었냐는 것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그 단어가 1930년대 지식인을 표상하는 대표적 단어”라는 의미다. 4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서울플러스] 종교단체 성금 6000만원 전달

    강북구(구청장 박겸수) 지난 26일 수유1동 화계사에서 제12회 난치병어린이돕기 종교연합바자회 성금전달식을 가졌다. 화계사, 송암교회, 수유1동성당 3개종교연합 바자회를 통해 모은 성금 6000만원을 난치병 어린이 20명에게 각 300만원씩 전달했다. 문화체육과 901-6206.
  •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재보선 선거운동 첫날 서울시장 두 후보의 컨셉트

    ■나경원 ‘청취 행보’ 10·26 재·보궐선거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와 홍준표 대표의 동시 지원 사격을 받으며 유세의 첫걸음을 뗐다. 나 후보는 이날 서울 구로구 디지털산업단지와 재래시장을 오전엔 박 전 대표와, 오후엔 홍 대표와 각각 누비며 지지를 호소했다. 세 사람의 등장으로 한나라당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등 계파를 초월한 이미지를 내세워 일견 총력전을 펼쳤다. 나 후보는 오전에 박 전 대표와 함께 서울관악고용지원센터와 벤처기업협회를 잇달아 방문하며 ‘청취 유세’를 펼쳤다. 구직자들, 벤처기업인들과 간담회를 갖고 고충을 듣는 정책 행보였다. 나 후보는 오전 10시 30분쯤 감색 점퍼에 베이지색 바지 차림으로, 박 전 대표는 짙은 자주색 재킷에 검정 바지 차림으로 이보다 조금 일찍 센터에 도착했다. 센터 내 상담코너에 들어선 박 전 대표는 구직자들에게 “오늘 (나 후보와) 같이 나와 있는데 서울시 고용·복지 쪽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한 60대 구직 남성에게는 “우리 (나 후보)….”라고 말하며 손짓으로 나 후보를 소개하기도 했다. 청년실업프로그램 수강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나 후보는 “전국 실업률보다 서울의 실업률이 높은 상황”이라며 “(실업률을 낮추는) 일자리 시장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간담회가 끝난 뒤 나 후보의 경쟁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 전 대표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동안 많이 보셨잖아요. 얘기 안 해도….”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특히 장애아동에 대해 힘썼던 따뜻한 마음으로 서울시정도 이끌 것으로 본다.”고 한껏 치켜세웠다. 곧바로 인근 마리오타워에 있는 벤처기업협회로 이동한 두 사람은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 엠텍비전 이성민 회장 등 벤처기업 대표 11명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뜻밖에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에게 패하며 야권단일후보 자리를 내준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참석, 박 전 대표 및 나 후보와의 조우가 이뤄졌다. 박 의원은 두 사람에게 “제 지역구를 방문해 줘서 감사하다. 오늘 간담회 잘하고 가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어 세 사람은 두세 마디 덕담을 나눴고, 박 의원이 먼저 자리를 떴다. 박 의원은 건물 밖에서 기자들과 만나 “박 전 대표가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벤처협회장을 소개시켜 주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돌아가고 ‘ㅁ’자형으로 마련된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간담회를 시작한 나 후보와 박 전 대표는 업체 대표들의 의견을 A4 용지에 깨알같이 메모하는 모습을 보였다. 투자·인력운용 등 벤처기업 경영난에 대해 성토가 이어지자 때론 고개를 끄덕이고 때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나 후보는 “창년 창업뿐 아니라 노인창업, 벤처투자 활성화를 위한 멘토시스템에도 관심을 갖겠다.”면서 “시장으로서 할 수 없는 중앙부처 일은 박 전 대표가 잘 챙겨주실 거라 본다.”고 박 전 대표를 추어올리기도 했다. 오후 들어 나 후보는 홍 대표와 함께 구로2동 중앙시장을 찾아 재래시장 상인들에게 한 표를 호소했다. 홍 대표는 길거리 유세에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여성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자.”면서 “서울시장을 한번 만들어보고 내년에 여성 대통령도 만들 수 있을지 어떻게 알겠습니까.”라고 외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홀로 구로 디지털산업단지 일대 카메라렌즈 제조업체 등 벤처기업을 도는 일정을 소화했다. 오전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안녕하세요’라며 악수하고 얘기도 건네는 등 한층 적극적인 스킨십을 보였다. 구로기계공구산업단지조합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는 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는 고충을 듣고 “나 후보가 같이 오지는 못했지만 제가 꼭 전달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박원순 ‘토크쇼 유세’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유세는 한마디로 이색적이었다. 카페 차양을 단 듯한 유세 차량과 CF송으로 친근한 시민 참여형 유세를 선보였다. 우렁찬 유세 음악으로 주위의 관심을 끌었던 기존 선거유세 방식과는 달랐다. 범야권 단일후보답게 선대위 출정식에는 손학규 민주당·이정희 민주노동당·유시민 국민참여당 등 야당 대표들과 한명숙 전 국무총리 등 유명 야권 인사들이 총출동했다. 박 후보는 “정치에 염증 내는 대한민국 국민과 서울시민들이 함께하는 아름다운 (선거)모습에 반드시 감동할 것”이라면서 “10월 26일 기호 10번 박원순이 서울시를 바꾸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천명했다. 박 후보는 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 0시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을 찾아 상인들에게 첫 신고식을 하며 바닥 민심을 살폈다. 이어 오전 7시 30분 남대문 시장 인근의 지하철 회현역으로 나가 출근길 인사를 나눴다. 상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손 대표도 동행했다. 박 후보는 손가락 10개를 펴보이며 기호 10번임을 강조했다. 오전 9시 선대위 출정식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진행됐다. 박 후보를 비롯해 야당 의원들, 캠프 관계자, 지지자까지 150여명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현장에는 소형 트럭을 개조한 일명 ‘카페 박원순’ 유세차가 등장했다. CF송으로 유명한 가요 ‘버블버블’을 개사한 로고송도 울려 퍼졌다. 박 후보의 유세차에는 한 전 총리를 비롯해 손 대표, 이 대표, 유 대표 등 야권의 대표 인사들도 올라 박 후보를 지원 유세했다. 선거기간 대여 형식으로 동원된 49대의 유세차량은 선거운동이 끝나는 오는 25일까지 선거운동원들을 태우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빌 예정이다. 차량은 보통 선거에서 쓰는 1.5t 트럭보다 크기가 작은 ‘타우너’, ‘라보’ 차종을 개종했다. 높은 단상에서 후보자가 마이크를 들고 시끌벅적하게 유세하기보다 ‘길거리 토크쇼’를 하고 싶다는 박 후보의 뜻이 반영됐다. 연두빛 앞치마 유세복을 두른 박 후보는 “늘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왔기에 유세차도 작게 만들었다.”면서 “늘 낮은 곳에서 시민과 함께 있겠다. 모든 곳이 시장실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10년 너무나 고통을 안겨준 전시·겉치레 행정의 서울시정을 깨끗이 설거지하겠다. 이 옷을 입고 미래 서울을 요리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 유세차가 이렇게 아담하고 작을 것을 예상했느냐.”면서 “박 후보의 철학이 담긴 유세차”라며 소형 유세차를 자랑했다. 한 전 총리는 박 후보의 기호 10번을 무려 6번이나 언급하며 “박 후보가 당선되면 작은 복지가 실현된다. 손을 잡아달라.”고 지지를 호소했다. 시민들은 유세차에서 박 후보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기념 촬영을 하는 등 기존 유세장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을 연출했다. 박 후보는 유세차에서 시민들과 정책과 비전 등을 솔직히 토론한다는 계획이다. 오후 7시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들이 박 후보에게 소망을 말하는 시민유세 ‘시민의 시장이다’가 진행됐다. 박 후보는 물론 손 대표와 유 대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현장에 나타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지지를 당부했다. 문 이사장은 “선거판에서 마이크를 잡고 지원 유세를 하는 건 생전 처음”이라면서 “이번 선거는 순수하게 살아온 사람이 정직한 방법으로 정치가 가능한지 가늠하는 시험대다. 시민들이 박 후보를 지켜줘야 한다.”고 힘을 보탰다. 소셜 네트워크 효과도 극대화했다. 트위터를 통해 현장 상황을 실기간으로 올리는가 하면 ‘원순닷컴’을 통해 온라인 칭찬댓글을 달고 선거현장에서 노래를 불러줄 ‘희망합창단’, 20~30대에 직접 정책 자문을 얻기 위한 ‘희망2030정책자문단’ 등을 공개 모집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9·11 10주년] “증오범죄 희생양… 10년간 이중의 고통”

    [9·11 10주년] “증오범죄 희생양… 10년간 이중의 고통”

    “모든 미국인이 9·11테러의 희생자다. 그러나 무슬림 미국인은 보통의 미국인보다 두 배의 고통을 당했다.” 미국의 대표적 이슬람 단체인 ‘미국·이슬람 관계위원회’(CAIR)의 이브라힘 후퍼 대변인은 9·11테러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23일 워싱턴DC의 CAIR 본부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년간 미국 내 무슬림들이 당한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털어놨다. 후퍼 대변인은 유럽계 미국인이지만 20대 초반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이름도 이슬람식으로 개명했다. 현재 미국의 무슬림은 전체 인구의 0.6%를 차지한다. →9·11 10주년을 맞는 소회는. -무슬림 미국인 입장에서 9·11 기념일은 다른 미국인들이 괴로워하는 것보다 2배 이상 고통스런 감정으로 다가온다. 9·11 직후 미국에 있는 무슬림이 보복의 표적이 됐고, 수백건의 증오 범죄를 당했기 때문이다. 서부에서 2명이 무슬림으로 오인돼 총에 맞아 죽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들은 사실 시크교도였는데, 터번을 두르고 있어 무슬림이라는 오해를 받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전진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적 노선, 종교적 노선의 차이로 분열해서는 안 된다. 단합과 전진, 이 두 가지를 강조하고 싶다. →지난 10년 간 무슬림 미국인들에게 가장 괴로웠던 일은. -반(反)무슬림 감정과 적대감이 늘어난 게 고통스러웠다. 무슬림 학생은 학교에서 급우들한테 얻어맞고 무슬림 직장인들은 직장 안에서 차별받았다. 이슬람사원이 공격받아 파손됐다. 지난해 플로리다주의 이슬람사원에서 폭발사건이 일어났는데 아무도 그런 사실을 모를 것이다. 일부 지역 언론만 보도했기 때문이다. 기독교 교회나 유태교 회당에 그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언론이 대서특필했겠지만, 무슬림이 당하면 관심이 없다. 불행히도 이런 일은 항상 일어난다.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비행기 탑승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었는데. -그게 우리한테 가장 큰 이슈다. 심지어 미국 시민권자인데도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미국 입국을 정부가 거부한 사례가 있었다. 결국 법원이 미국시민은 자기 나라로 돌아올 권리가 있다고 판결함에 따라 정부가 졌다. →무슬림 입장에서 미국사회에 동화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나. -첫째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도록 다른 미국인들을 교육시키는 것, 둘째는 무슬림들이 평범한 미국인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무슬림이 버스기사나 의사, 월마트 직원 등 일상생활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편견을 갖기 힘들 것이다. 이슬람을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갖는다. →오사마 빈라덴이 사살됐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 -테러리즘의 상징인 그가 사망한 만큼 이제 페이지를 넘길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빈라덴 사망 후 2주 동안 이슬람 증오 범죄가 되레 급증했다. 상식적으로는 그 반대가 될 것 같은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무슬림을 공격하자는 분위기가 일었다. 이해할 수 없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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