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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유흥업소 집단감염, 시작은 ‘사랑제일교회’(종합)

    광주 유흥업소 집단감염, 시작은 ‘사랑제일교회’(종합)

    7월 말 합숙 예배, 8월 초 의심 증상유흥업소 집단감염 23명사랑제일교회 관련으로 재분류 방역 당국이 광주의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3차 유행’을 촉발한 유흥업소발 집단감염이 서울 사랑제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17일 코로나19 온라인 브리핑을 통해 “휴대전화 위치정보 시스템(GPS) 등 한 달여에 걸친 역학조사 결과 상무지구 유흥업소 관련 확진자 2명이 7월 말 서울 사랑제일교회 합숙 예배에 다녀온 정황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확진자는 서울에 다녀온 뒤 8월 초부터 의심 증상이 나타났다는 주변인 진술도 확보했다”며 “유흥업소발 지역감염 확산이 사랑제일교회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잠정적으로 결론지었다”고 설명했다. 시에 따르면 유흥업소에서 최초 확진자가 나온 것은 8월 12일이었지만 서울 사랑제일교회 예배에 다녀온 확진자가 그보다 먼저 증상을 보였다. 방역 당국은 유흥업소 집단감염의 첫 확진자(지표환자)도 예배 참석자인 것으로 보고 있다. 유흥업소 관련 확진자 23명은 서울 사랑제일교회 관련 확진자로 재분류됐다. 광주에서는 유흥업소 집단감염과 관련 8000명 가까운 시민이 검사를 받았으며 그 이후로 하루도 끊이지 않고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8·15 서울 도심 집회 관련한 확진자는 직접 참가자 22명, 이 중 1명이 예배에 참석한 성림침례교회 66명, n차 4명 등 모두 92명이다. 이 시장은 “부주의, 무책임, 개인주의로 수많은 시민이 검사를 받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영업을 못 하는 등 엄청난 피해가 생겼다”며 “그런데도 10월 3일 서울에서 또다시 대규모 집회가 예고됐으니 시민들은 불법 집회에 참여하지 말고 추석 연휴에 타 지역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호소했다. 8월 12일부터 광주에서 확진된 269명 중 사랑제일교회와 8·15 서울 도심 집회 관련 확진자만 115명인 셈이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교회교

    [박상익의 사진으로 세상읽기] 교회교

    감염병 예방을 위해 모임 자제가 절실히 요청되던 어느 날 대통령과 개신교계 지도자들이 만났다. 한 목사가 “정부 관계자들께서 종교단체를 영업장이나 사업장 취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교회는 사업장과 달리 거룩하니 누가 뭐라건 주일 예배는 양보하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성속이원론(聖俗二元論)의 사고다. 성(the holy)과 속(the secular)을 구분해 놓고 교회는 거룩하고 교회 밖은 비속하다고 보는 시각이다. 사제(신부)와 평신도 사이에 건널 수 없는 선을 그어 놓았던 중세 가톨릭의 주장이다. 이것을 깨부순 것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다. 그것은 서양사에서 ‘중세’를 끝내고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젖힌 거대한 혁명이었다. 종교개혁을 통해 모든 평신도는 사제를 통하지 않고도 신 앞에 단독자로 설 수 있게 됐다. 이것이 근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이념의 토대가 됐다는 것은 세계사의 상식이다. 이제 신 앞에서 평신도와 사제는 동등하게 됐다. 종교개혁의 핵심 원리인 만인사제주의(萬人司祭主義)다. 모든 사람이 사제가 되었듯이 평신도들이 행하는 모든 일, 모든 사업은 거룩한 것이 됐다. 농사를 짓건, 상품을 판매하건, 제조업에 종사하건 모든 사업장은 신에게 직결된 성스러운 곳이다. 주일(일요일)만이 거룩한 것이 아니다.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모든 날이 거룩하다. 교회만 거룩한 게 아니다. 내가 서 있는 모든 땅이 거룩하다. 하루하루의 모든 삶이 거룩하다. 주일 예배가 신앙의 중심일 수 없다. ‘삶 자체’가 예배다. 이것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정신이다. 그리고 개신교는 종교개혁의 후예다. 개신교 목사가 대통령 앞에서 한 말은 자신이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체성의 상실이다. 스스로 개신교가 아님을 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부패한 중세 말기의 가톨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이웃 사랑도 배려도 외면한 이기적인 종교 사업자가 돼 버렸다. 다음·네이버 영어 사전에 ‘교회교’(churchianity)란 단어가 나온다. ‘특정 교회의 관습이나 이익에 대한 극단적인 집착’이라고 풀이돼 있다. 교회 이익에 집착하는 목사들의 행태를 보면 ‘교회교’는 한국 실정에 부합하는 맞춤형 단어로 보인다. 청명한 가을이다. 저 맑고 깨끗한 하늘을 우러러보기가 부끄럽지 않은가. 우석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
  • [책꽂이]

    [책꽂이]

    공동체 경제학(스티븐 A 마글린 지음, 윤태경 옮김,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월가 점령시위 당시 ‘강의실 밖 강의’를 감행했던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의 저작. 대안 경제학자인 그는 개인주의와 이기심, 경험보다 합리성을 우선시하는 인간, 무한한 욕구 등 주류 경제학의 가정이 어떻게 공동체 파괴에 일조해 왔는지를 서술하고, 공동체 회복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528쪽. 2만 8000원.21세기 군주론(양선희 지음, 독서일기 펴냄) 소설가이며 언론인인 저자의 중국고전 현대화 작업 4번째 작품. 고대 중국 패왕의 스승들인 태공망 여상과 관중의 사상, 중국 제왕학의 교과서 ‘한비자’와 한비자의 사상적 근원이었던 노자, 황로학을 좇으며 고대 ‘도법가’ 사상에 기원을 둔 제왕학을 다뤘다. 194쪽. 1만 3000원.중국과 협상하기(헨리 M 폴슨 주니어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 세계적인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의 최고 경영자였으며, 미국의 재무장관을 지낸 저자가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중국과 상대했던 경험을 담은 회고록. 25년간 100차례 중국을 왕래했던 중국통인 저자는 중국식 자본주의의 탄생과 진화, 중국의 지도자들과 관계 맺는 법 등을 제시한다. 616쪽. 2만 5000원.검사의 대화법(양중진 지음, 미래의창 펴냄) 20년 경력의 베테랑 검사가 들려주는 사람들과의 대화법. 조사실에서의 대화, 대질 조사, 수사 상황을 주시하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 동료 검사들과의 토론 등을 통해 ‘직장인으로서의 검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말을 듣는지 담백하게 소개했다. 288쪽. 1만 4800원.돌팔이 의학의 역사(디아 강·네이트 페더슨 지음, 부희령 옮김, 더봄 펴냄) 위험한 약과 엉터리 치료의 세계사. 사기를 치는 의사들과 과학자, 무당들과 약장수 등이 만든 기괴하고 위험한 67가지가량의 치료법들을 소개하며 의학사의 부정적 측면을 조명한다. 책에 따르면 링컨은 수은이 들어간 두통약을 복용하다 중금속에 중독됐고, 에디슨은 코카인이 들어간 와인을 마시며 밤새워 실험했다. 432쪽. 2만 5000원.인공지능 시대, 십 대를 위한 미디어 수업(정재민 지음, 사계절 펴냄) 인공지능이 대세인 시대, 미디어를 주체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담은 미디어 리터러시 입문서. 청소년들의 미디어 편식을 염려하는 저자는 알고리즘의 선택에서 벗어나 가짜뉴스와 ‘딥페이크’(특정인의 신체 등을 합성한 편집물)를 가려내는 법에 대해 설명한다. 272쪽. 1만 4800원.
  • [여기는 중국] 복종 훈련?…中 유치원 공놀이에 획일화 교육 논쟁

    [여기는 중국] 복종 훈련?…中 유치원 공놀이에 획일화 교육 논쟁

    중국 유치원의 공놀이가 때아닌 화제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싱가포르 뉴스통신사 아시아원은 과거 중국에서 찍힌 유치원 활동 영상이 공산국가 특유의 세뇌 훈련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22일 중국 홍보 계정에 올라온 영상에는 둥글게 원을 그리고 선 유치원생들이 리듬에 맞춰 반시계방향으로 도는 모습이 담겨 있다. 어린이들은 양손으로 공을 튕기며 한 칸씩 일정하게 자리를 옮겼다. 마치 공장 자동화 기계의 공정을 보는 듯 하다. 계정 운영자는 협력을 가르치는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농구공을 활용한 훈련은 중국 유치원에서 매우 보편적이다.그러나 반응은 차가웠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중국 공산당이 자국민에게 원하는 복종과 자동화를 가르치는 세뇌 훈련”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 어린이들은 국가에 대한 영원한 충성을 맹세해야 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홍보 계정 운영자는 발끈했다. 운영자는 “수천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14억 인구와 함께 살려면 협력과 협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자유보다 질서가 더 필요하다. 개인주의보다 집단주의가 더 중요하다. 서양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더라”고 반박했다.또 “자원이 부족한 국가는 전 국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강력한 정부가 나서서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한다. 이것이 중국이 해온 일이며 잘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양 끝에 100여 명의 학생이 서서 사선으로 돌리는 줄넘기를 학생 한 명이 홀로 넘어 뛰는 또 다른 영상을 공유했다. 중국 특유의 교육 방식에 해외의 시선이 쏠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에는 중국 관영 CCTV가 주최한 오디션 프로그램 ‘어메이징 차이니즈’에 유치원생 여럿이 출전해 농구공을 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획일화, 단순화 논쟁을 일으켰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여성이 행복해야 함께 사는 남성도 행복해”

    “여성이 행복해야 함께 사는 남성도 행복해”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오래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말할 수 없다.”(이주란 작가) 32년 세월을 거슬러 다시 나타난 소설을 두고 까마득한 후배는 이렇게 썼다. 첫 출간 당시 ‘가정파괴범’, ‘과격하며 성적 대결을 조장한다’는 꼬리표가 붙었던 책은 후배 작가에게 현실, 그 자체다. 최근 나오는 페미니즘 소설들에도 비슷한 수식들이 가끔 붙지만 달라진 점은 그런 책들이 봇물처럼 쏟아진다는 거다.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 이경자(72)가 돌아왔다. 1980~1990년대, 페미니즘 1세대라 불리는 소설 두 권을 들고서. 최근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복간된 ‘절반의 실패’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는 각각 1988년과 1992년 첫 출간돼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두 책은 고부 갈등, 독박 가사와 육아, 가정 폭력, 남편의 외도, 혼인빙자간음, 성 착취, 빈민 여성 등 여성문제의 거의 대부분을 다루는 소설집이다. “제작비도 못 건지면 어쩌나 했어요. 내 나이 일흔둘에 ‘이혼을 꿈꾼다’가 뭐냐고 걱정을 했는데, 출판사 편집자들은 이게 너무 중요한 작품이고, 중요한 것에 비해서 평가받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작가의 걱정과 달리 책은 출간 전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 ‘텀블벅’을 통해 203명의 후원자로부터 670만원을 후원받았다.●“‘절반의 실패’, 결혼하지 않았으면 못 썼을 소설” 돌이켜 보면 작가에게 ‘절반의 실패’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면 나오지 않았을 소설”이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작가는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확인’이 당선돼 데뷔했다. “결혼 전에는 늘 내가 남자만큼 잘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결혼을 하면서 아무리 소설도 쓰고 잘났다고 해봤자 집에서는 남편 밑에, 시집 밑에 있는 존재라는 것에 분노를 느꼈어요. 이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 여성의 문제였고요.” 초판 머리말에 적힌 말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어머니라는 여자와 한패가 되는 것은 ‘지옥살이’가 될 거여서, 사람들을 부리고 억누르는 가장인 아버지를 선택했다. 결혼을 하고서야 옛날의 어머니와 똑같은 여자가 돼 버린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무엇이 여성의 삶을 이렇게 억누르는지를 고민했다.’(395쪽) 작가는 “이런 걸 요새는 ‘명예남자’라고 하더라”고 부연했다. 깨달음 후에는 ‘여성’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거의 모든 책을 끼고 살았다. ‘친족상속법’이라는 이름의 책을 들여다보며 성차별의 근간이 되는 당대의 법을 공부했다. 모르는 것은 취재하고, 더러 여성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고정희 시인이 이태영 박사가 있던 법률구조센터에서 일했던 때를 떠올렸다. “걔가 여자들 상담 자료 같은 거 저한테 보여주고, 그때 막 생긴 한국여성의전화에서도 자료를 줬어요. 매춘에 대해 쓰기 위해 미아리 텍사스 주위를 돌고, 경찰이 소개해 준 포주를 만나기도 했어요. 빈민 여성들 이야기를 쓰려고 식당에 위장 취업도 했고요. 그때는 이혼을 안 했기 때문에, 이혼한 여성들도 많이 만나서 얘기 들었죠.”(작가는 2003년 이혼했다.) 그렇게 나온 소설은 KBS 2TV 드라마로도 제작되고, 작가에게 여성단체협의회가 주는 올해의 여성상을 안겼다. 오늘날 ‘한국 페미니즘 소설의 시초’라는 평가도 듣지만 작가가 체감한 당시 분위기는 ‘싸늘’에 가까웠다. “그때 분위기가 그랬죠. 대꾸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조롱이 많았고요. 그러나 지금은 싸늘하지 않죠. ‘절반의 시대’가 아무렇지 않게 먹히는 시대가 된 거예요.”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들이 사회적으로 진지한 논의의 대상이 되는 오늘을 보며 그가 느끼는 격세지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 이유는 그것이 그가 생각하는 ‘문학의 밥값’이기 때문이다. “농부는 농사짓고, 기자는 취재해 기사 써서 밥값을 벌잖아요. 소설가는 사회 모순에 대해 질문하고 나름의 해답을 찾아 소설로 형상화하는 게 밥값이에요. 제가 리얼리즘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이런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까닭은 지방 출신인 탓이라고 스스로는 생각한다. 자신이 서울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다면 이런 소설을 쓰지 못했을 거라고도 했다. “강원도 양양이라는 변두리, 분단의 상처, 노동자 아버지, 화전민 할아버지·할머니에게서 성장한 어떤 원초적인 건강성이라고 해야 하나. 사회적으로 얘기하면 낮은 위치이지만 건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는 거죠. 저를 ‘참 용감한 여자다’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제가 용감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꾀가 없다고 생각해요. 꾀가 없으니 이런 소설을 쓴다….”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단체 만들기 위해 노력” 그런 그가 2018년 2월 국내 대표 문인 단체인 한국작가회의의 이사장이 됐을 때 누군가는 ‘운명’이라 했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한창 수면 위로 떠오를 때였다. 취임 후 작가는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고 ‘성차별·성폭력 처리 및 예방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문학계에서 ‘미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자들이 여성을 자기하고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거예요. 제가 등단했을 때 그야말로 ‘성희롱의 바다’ 속에 있었어요. 여성하고 함께 일해본 적도 없으니 여성은 현모양처이거나 유락의 대상이었으니까….” 소위 지식인이라고 하는 진보적인 남성도 생활 감정으로는 내려가지 않는 이론과 관념, 태도를 가진 것의 전범을 보여주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가 겪은 한국작가회의는 남성 일변도와 함께 서울대 중심이었다. 일정 파벌·세력을 갖고 있지 않은 그가 임기 내내 주지한 것은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태도”다. “저는 굉장히 평화주의자인데, 평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자기 존재감으로 서로 혼합돼서 살 수 있는 구조가 돼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독립적인 존재로 인정받아야 하고요.” 독립적인 각자가 모여 독립적인 집단을 이뤄야 한다는 게 이경자가 이끄는 한국작가회의 2년의 가장 큰 모토였다. 작가회의가 특정 정치 이념으로 대표되는 걸 원치 않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인 독립을 중요하게 여겨 특정 출판사로부터 받던 지원도 끊었다고 했다. 맨몸으로, 혹은 단체의 수장으로 살아낸 페미니즘의 세월을 그는 “내 몸에 깃들어 있는 인격에 대한 인식”으로 풀어냈다. “저를 희롱하는 것은 제 인격을 희롱하는 것이고, 자기가 희롱할 수 있는 인격과 함께 산다는 건 스스로를 모독하는 거예요. 타인을 경멸하고 학대하면서 자신이 잘나려고 하는 것은 굉장히 가학적인 거죠. 남성 중심의 가치 체계나 행동 규범, 사회 질서가 남성에게도 이롭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아야 해요. 함께 사는 여성이 행복해야 남성도 행복한 거고요.” 오늘날의 페미니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에는 “각 시대에는 그 시대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금은 서구식 개인주의, 이기주의의 영향으로 남녀 상관없이 극단적인 경쟁에 시달리고 있고, 욕망에 제한이 없어요. 요즘 시대의 의식 구조 속에는 로봇 같은 정서가 있는 것 같은데, ‘옳고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이런 시대가 만들어낸 페미니즘이고요. 이경자의 페미니즘은 농경사회의 끝자락을 말하고 있죠.” 그러면서 남녀가 함께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만의 이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요. 맞물려 있는 관계이기 때문에, 여성만을 위해서 뭔가를 하면 저항이 와요. 궁극적으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동등한 인격체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함께 찾아봐야 해요.”●“이제야 소설 쓸 수 있는 몸 됐다… 장편 3개 더 쓸 것” 작가회의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지 6개월, 그는 내년 9월이 임기인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작가회의 일을 놓고 나서야 소설을 쓸 수 있는 몸이 되었다는 그다. “정신력의 크기가 작은 사람이라서, 문학하고 조직의 장하고는 함께하지 못하는 거예요. 이제 일을 그만두니까, 내 정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거 같아요.” 매일 아침,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를 들으며 창작욕을 끌어올리는 작가는 여전히 책상 앞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장편 세 개를 더 쓰는 게 목표다. 쓸 수 있는 몸, 젊은 생각을 유지하는 비결에 대해 그는 말했다. “나는 나대로 살아야 하는데, 나를 에워싸고 있는 가짜 공식들이 있어요. 풍속, 가족제도, 남녀관계, 사회 등이요. 나를 둘러싼 잘못된 공식들에 나를 맞춰주면 생기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나는 누군가, 남존여비는 왜 생겼나, 가부장제라는 건 뭔가…. 끝없이 공부하는 수밖에 없어요.”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이은형의 밀레니얼] 심리적 안전감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이은형의 밀레니얼] 심리적 안전감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

    “밀레니얼이 성장하고 싶어한대서 제가 우리 회사 신입들에게 물어봤어요. 무슨 교육 받고 싶냐고. 아무도 대답을 안 해요. 아니 왜 그런거죠?” “회의 시간에 의견을 말하라고 아무리 독려해도 입을 닫고 있어요. 자기 표현이 강하다는 친구들이 회의 때는 왜 말을 안 할까요?” 조직의 리더들은 밀레니얼과 소통하고 싶어한다. 사실 밀레니얼도 선배들과 소통하고 싶다. 그런데 현실은 서로에게 벽을 느끼고, 대화 노력을 포기한다. 밀레니얼들의 속마음을 보면 이렇다. “사장님이 갑자기 우리를 불러모으더니 무슨 교육 받고 싶냐고 물어요. 표정도 인자하고, 정말 우릴 위해서 하시는 말씀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려도 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난번에 회의 시간에 누가 용감하게 발언했는데요. 그게 팀장님 의견을 반박하는 것처럼 들렸나봐요. 팀장님 표정이 굳더니 몇 주 동안 인사를 안 받아주셨어요. 그 뒤로는 아무도 얘기 안 해요.” 밀레니얼 세대가 아무리 자기 주장이 강하고,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도 조직의 관행을 무시하지는 못한다.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이 조금이라도 있을 것 같으면 입을 다문다.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자신을 표현하지 않는다. 수동적으로, 침묵하면서 회사에 다니거나 아니면 회사를 떠난다. 어쩌면 채용단계에서부터 자신의 솔직한 의견보다는 상대방이 듣고 싶은 답변을 준비하는 데 더 익숙할지도 모른다. “최근 S 공대 나온 지원자가 있었는데 채용을 안 했어요. 사실 뽑고 싶었죠. 그런데 우리 회사에 3년 근무하겠다는 거예요. 3년이라니…. 너무 짧잖아요.” 어느 중견 반도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가 채용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밀레니얼의 입장에서 ‘3년 근무하겠다’고 말했다면 진솔하게 자신의 최선을 다하겠다고 표현한 것이다. 밀레니얼에게 3년은 매우 긴 시간이다. 밀레니얼 지원자가 “평생직장으로 생각하겠다”고 말한다면 십중팔구는 상대방이 원하는 답변을 준비했을 뿐이다. 밀레니얼이 자신을 드러내면서 선배들과 소통하고, 실력을 키우고, 회사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면 먼저 안전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 교수가 1999년 제시한 ‘심리적 안전감’은 불확실성이 높고, 리스크가 상존하는 경영환경에서 구성원의 소통을 활성화하는 데 특히 필요하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조직의 구성원이 자신의 아이디어, 우려, 질문, 잘못을 드러냄으로써 벌을 받거나 모욕감을 느낄 가능성이 없다고 믿는 것이다. 에드먼슨 교수팀은 외과의사와 간호사로 구성된 외과수술 의료진 8개 팀을 대상으로 오류를 많이 저지르는 팀이 어떤 팀이며 원인은 무엇인가 분석하고자 했다. 성과가 좋은 팀의 오류가 적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에 임했지만 그 결과는 정반대였다. 예상과 달리 더 좋은 팀에서 더 많은 오류가 발생했다. 추가적인 관찰과 연구 끝에 에드먼슨 교수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오류를 많이 일으킨 팀은 실제로 오류를 많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오류에 대해 숨김없이 드러내고, 그 오류의 원인을 토론했고, 오류를 개선하는 방법에 대해 모색했다. 그래서 팀이 드러내는 오류의 수만큼 그 팀의 수술 성과는 지속적으로 좋아졌다. 신세대 직장인들의 커리어 엑셀러레이터이자 ‘당신은 더 좋은 회사를 다닐 자격이 있다’의 저자 김나이씨가 자신의 실수 경험담을 소개한 적이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작동시키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하루는 경황이 없어 작동버튼 누르기를 잊어버린 것이다. 상사에게 보고하면서 꾸지람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단다. 상사의 관심은 이 실수가 다시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였다. 사람에 의한 오류인가, 시스템 오류인가 판단해서 적절한 예방책을 찾고 시행했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이 ‘좋은 게 좋은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하고 힘든 것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다. 더 좋은 성과를 위해서라면 구성원들이 실수를 드러내고, 예방책을 찾아내고,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다는 것이다.
  • 남자들은 그냥 ‘배우’인데 여자 배우는 ‘노년 여배우’ 편견입니다

    남자들은 그냥 ‘배우’인데 여자 배우는 ‘노년 여배우’ 편견입니다

    노년도 살아 있는 유기체, 발전 가능해나이 많으면 박물관 문화재처럼 그려 다양한 개인에 대한 탐구 돋보여 선택편견 흔들 여지 있는 작품 언제든 출연“남자들한텐 노년이나 청년이라는 말을 잘 붙이지 않잖아요? 배우 또는 직책으로 불리죠. 그런데 저한텐 ‘노년 여성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그게 벌써 편견인 거죠.” 지난 1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예수정은 불필요한 꾸밈들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냥 ‘배우 예수정’이길 원했고 자신이 연기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그저 ‘한 인간의 삶’이길 바랐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 어디선가 늘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인데 어느 하나 같은 배역이 없었다. 엄마도 다 같은 엄마가 아니었고, 비슷한 말투나 표정에도 그가 보여 주는 여백은 다 다른 의미를 지녔다. 단순히 여성, 엄마, 중년(또는 노년)이 아닌 한 인간으로 캐릭터를 대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0일 개봉하는 영화 ‘69세’에서 2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69세 효정을 연기했다. “소재가 독특한데 소재 때문에 출연하기로 한 건 아니다”라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69세,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처량한 나이예요? 느닷없이 죄인이 돼 버렸어요. 거기다 여성이고, 돈도 없어 그냥 자기 몸으로 벌어서 먹고살았던 인물이에요.” 그런데 마냥 ‘불쌍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효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효정의 처지는 살면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소수 약자’다. 예수정은 “이 사회의 수많은 편견 속에서 고발할 것인가, 없던 일로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 효정이 자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아니야, 나는 살아 있어. 살아 있는 만큼 얘기하고 지나갈 거야’ 하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소중했다”고 말했다. 예수정은 인터뷰의 많은 부분을 들여 나이 많은 사람들을 빤하게 그려 내는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일침을 쏟아냈다. “젊은이들이 ‘저게 우리의 미래라면 살고 싶지 않다’는 실망감을 줄 만한 작품들이 많을 바에야 안 만드는 게 낫다”고 일갈했다. “청년들이 다양한 삶을 추구하고 살듯 나이 많은 사람들도 그런데 어디 박물관에 있는 문화재처럼 표현한다”면서 “하지만 노년도 살아 있는 유기체고, 사고가 열려 있고 발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식과 손주까지 키우겠느냐”고도 했다. 영화를 설명하면서 “그런 다양한 개개인에 대해 탐구하고 조명하려는 노력이 있는 작품”이라 출연을 안 할 수가 없었다면서 임선애 감독을 두고는 “기특하다”고 말했다. 다만 몇 장면은 임 감독을 설득해 바꾸고 결말도 뒤집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싶은 부분들이 있었고, 감독이 효정을 너무 감싸 주고 싶은 나머지 결혼을 시키려고 하길래 “그럼 출연 안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부연했다. “가능하면 남에게 피해를 덜 주고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게 어른의 조건이에요. 특히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져 온 효정인데 ‘남자 사람 친구’의 도움을 넘어 거기에 안착한다? 그건 아니죠.” 예수정은 최근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인 연극 ‘화전가’에서도 치열한 역사 속에서 꿋꿋이 일상을 지켜낸 ‘김씨’로 열연했다. 시네마틱 드라마 ‘SF8’에선 ‘수녀 사비나’를 맡아 독일 유학파다운 유창한 독일어 실력도 선보였다. 그는 “사실 평소 삶은 굉장히 개인주의적”이라면서 “내 앞의 머리카락이나 잘 줍자는 게 신조라 면죄부 사듯이 편견을 조금 흔들 여지가 있는 작품이면 언제든 출연하겠다”며 웃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역할 아닌 ‘삶’ 연기하는 예수정 “편견 흔들 여지 있는 작품은 언제든“

    역할 아닌 ‘삶’ 연기하는 예수정 “편견 흔들 여지 있는 작품은 언제든“

    “남자들한텐 노년이나 청년이라는 말을 잘 붙이지 않잖아요? 배우 또는 직책으로 불리죠. 그런데 저한텐 ‘노년 여성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어요. 그게 벌써 편견인 거죠.” 지난 17일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난 예수정은 불필요한 꾸밈들을 철저히 거부했다. 그냥 ‘배우 예수정’이길 원했고 자신이 연기하는 많은 캐릭터들은 그저 ‘한 인간의 삶’이길 바랐다. 그러고 보면 언제부턴가 영화나 드라마, 어디선가 늘 본 것 같은 익숙한 얼굴인데 어느 하나 같은 배역이 없었다. 엄마도 다 같은 엄마가 아니었고, 비슷한 말투나 표정에도 그가 보여 주는 여백은 다 다른 의미를 지녔다. 단순히 여성, 엄마, 중년(또는 노년)이 아닌 한 인간으로 캐릭터를 대하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20일 개봉하는 영화 ‘69세’에서 20대 간호조무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69세 효정을 연기했다. “소재가 독특한데 소재 때문에 출연하기로 한 건 아니다”라면서 설명을 이어 갔다. “69세, 대한민국에서 얼마나 처량한 나이예요? 느닷없이 죄인이 돼 버렸어요. 거기다 여성이고, 요즘 흔한 아파트 한 채, 주식 한 주 없이 그냥 자기 몸으로 늘 벌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인물이에요.” 그런데 마냥 ‘불쌍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효정이 되기로 결심했다. 그에게 효정의 처지는 살면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을 당한 ‘소수 약자’다. 예수정은 “이 사회의 수많은 편견 속에서 고발할 것인가, 없던 일로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 효정이 자기를 곰곰이 생각하며 ‘아니야, 나는 살아 있어. 살아 있는 만큼 얘기하고 지나갈 거야’ 하는 모습을 그렸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소중했다”고 말했다.예수정은 인터뷰의 많은 부분을 들여 나이 많은 사람들을 빤하게 그려 내는 수많은 작품들에 대한 일침을 쏟아냈다. “젊은이들이 ‘저게 우리의 미래라면 살고 싶지 않다’는 실망감을 줄 만한 작품들이 많을 바에야 안 만드는 게 낫다”고 일갈했다. “청년들이 다양한 삶을 추구하고 살듯 나이 많은 사람들도 그런데 어디 박물관에 있는 문화재처럼 표현한다”면서 “하지만 노년도 살아 있는 유기체고, 사고가 열려 있고 발전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식과 손주까지 키우겠느냐”고도 했다. 영화를 설명하면서 “그런 다양한 개개인에 대해 탐구하고 조명하려는 노력이 있는 작품”이라 출연을 안 할 수가 없었다면서 임선애 감독을 두고는 “기특하다”고 말했다. 다만 몇 장면은 임 감독을 설득해 바꾸고 결말도 뒤집었다. ‘나이 든 사람들은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싶은 부분들이 있었고, 감독이 효정을 너무 감싸 주고 싶은 나머지 결혼을 시키려고 하길래 “그럼 출연 안 하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부연했다. “가능하면 남에게 피해를 덜 주고 자기 삶은 자기가 책임지는 게 어른의 조건이에요. 특히 스스로를 온전히 책임져 온 효정인데 ‘남자 사람 친구’의 도움을 넘어 거기에 안착한다? 그건 아니죠.”예수정은 최근 국립극단 70주년 기념작인 연극 ‘화전가‘에서 치열한 역사 속에서 꿋꿋이 일상을 지켜낸 ‘김씨’로 열연했다. “평소 신뢰했던 이성열 예술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삼식 작가가 극을 썼다는 것과 극단 70주년인데 해외 유명 작품이 아니라 대한민국 신작을 한다는 것에 무작정 하기로 했다”면서 “그런 젊은 움직임이 정말 좋다”고 말했다. 지난 14일부터 방송된 시네마틱 드라마 ‘SF8’에선 수녀 ‘사비나’로 독일 유학파 다운 유창한 독일어를 선보이기도 했다. 여성의 시선과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여성 서사’ 작품이 많아지고 그도 그런 작품들에 잇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현상에 대해 “자연스러운 것 같다”고도 했다. “별로 피부로는 못 느꼈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말씀하셔서 ‘아,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구나’ 하고 돌아보니 다양한 여성의 역할을 다루고 있더라고요. 옛날에 못했던 역할들, 이전에는 여성에게 역할은 있었지만 삶은 없었잖아요. 엄마로 할머니로, 아내와 딸로. 역할의 비중이 너무 컸기 때문에 삶 자체가 다양할 수 없었고 다양하지 않은 삶은 사람들이 별로 궁금해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 “훨씬 다양한 삶과 개척하는 것처럼 보이고 진취적인 것처럼 보였던 남성의 삶에 많이 궁금해하다가 이제 그 궁금했던 걸 쭉 지나왔더니 ‘가만 있어봐, 뭐 다른 거 없어?’하고 컬럼버스 신대륙 발견하듯 여지껏 얘기되지 않았던 일환이 다뤄지는 것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그는 “사실 평소 삶은 굉장히 개인주의적”이라면서 “내 앞의 머리카락이나 잘 줍자는 게 신조라 면죄부 사듯이 약자에 대한 편견을 조금 흔들 여지가 있는 작품이면 언제든 출연하겠다”며 웃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나도 ‘리버스 멘토링‘을 받고 싶다/주현진 산업부장

    [데스크 시각] 나도 ‘리버스 멘토링‘을 받고 싶다/주현진 산업부장

    “꼰대 잔소리는 싫어요. 일에서도 행복한 나를 찾고 싶어요.” 국내 4대 그룹에 속하는 한 대기업은 신입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지난달부터 회사에서 마련한 리버스 멘토링(역멘토링) 프로그램을 월 1회씩 실시하고 있다. 리버스 멘토링은 상급 직원이 신입사원의 멘토로 활약하며 가르치던 관행에서 벗어나 신입사원이 임원의 멘토가 되는 것인데 반응이 나쁘지 않다. 개인주의가 강하고 자유분방한 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인 이른바 MZ세대가 주요 구성원으로 입사하는 가운데 이들 신세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기업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리버스 멘토링 프로그램에서는 멘토인 신입사원과 멘티인 임원이 수평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서로 영어 이름으로 상대를 부른다. 이태원, 성수동과 같이 신입사원인 멘토가 지정하는 ‘핫플’에서 만나 요즘 젊은이들이 가는 데이트 장소, 신입사원의 일상 등 MZ세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만남이 이뤄지는 반나절은 근무로 친다. 리버스 멘토링 실시 취지는 과장되게 말하면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라고 한다. 직원들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만큼 이를 위해 직원 개인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하기 위한 일환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주요 소비자인 젊은 세대를 알아야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점도 어린 직원들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상당수 기업들이 다면평가제를 도입함에 따라 승진을 위해 아랫사람들이 주는 점수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도 한 원인이다. 당장 ‘꼰대’라는 꼬리표가 달리면 그렇지 않아도 파리목숨인 임원은 물론 이들을 떠받치는 팀장 등 중간 간부급도 설 자리가 없는 만큼 열심히 참여할 수밖에 없다. 다만 젊은 세대를 이해하라고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문화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신세대들은 ‘가르치려 한다’, ‘답정너’, ‘상명하복 강요’, ‘경험담 이야기’ 등을 꼰대스러운 행동이라고 꼽지만 거꾸로 간부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어린 직원들의 행동도 문제가 있다. 중간 간부의 하소연을 종합해 보면 당장 자리로 오라고 부르면 “팀장님이 오면 되지 않느냐”고 답하는 직원이 있는가 하면 내일 중요한 행사를 앞두고도 퇴근 때 “내일 휴가를 쓰겠다”고 통보하거나 사수가 트림을 하는 등 더럽다는 이유로 초등학생 짝 바꿔 달라듯 소원수리 메일도 거리낌 없이 낸다. 퇴근 이후 거래처를 만나 친분도 쌓아야 하는데 ‘워라밸’을 내세우며 가버려도 강제할 방법이 없어 일하는 사람만 고생한다고 한탄한다. 문제적 행동에 지적이라도 하면 혹여 꼰대로 몰릴까봐 ‘좋은 게 좋은 것’이라며 그냥 넘어가자는 분위기가 반대급부로 생겨났다니 조직에 득이 될 리 없다. 자율출퇴근제를 하는 한 대기업 중간 간부는 옛날엔 근태가 불량했다면 역정을 내는 게 당연했지만 지금은 여러 번의 문제 사례를 모아서 “최소한의 업무시간만은 좀 지켜 달라”고 절제된 어투로 권고한다니 조직이 어떻게 돌아갈지 의문스럽다. ‘듣지 않고 몰아세우는 사람’이 꼰대라면 선배의 지적을 꼰대스럽다는 비난으로 알아서 입 다물도록 하는 것 또한 꼰대다. 조직 본연의 임무인 성과 창출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개인의 행복만 중시하는 젊은 사원들에게 후배를 이해하라는 취지의 리버스 멘토링이 되레 어린 꼰대들을 양산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나도 어린 꼰대 아닌 열심히 배우려는 젊은 직원들로부터 신세대 문화를 배우는 멘토링을 받고 싶다. jhj@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소외의 언어 386세대

    [이경우의 언파만파] 소외의 언어 386세대

    이들은 1995년 이후 태어났다. ‘엑스세대’의 아들과 딸인 이들은 핸드폰 없는 세상을 상상하기 힘들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핸드폰으로 인터넷에 접속하고 세상과 소통해 왔다.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흔히 ‘디지털 원주민’으로도 불린다. 어려서부터 집과 피시방은 물론 길거리나 놀이터에서도 인터넷을 이용했다. 이전 세대가 인터넷을 하는 데 제한을 받은 것과 달리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었다. 소셜미디어에서 ‘좋아요’는 이들에게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가 된다. 이들에게는 ‘제트(Z)세대’라는 명칭이 붙었다. 이들의 앞 세대는 ‘와이(Y)세대’다. 이들도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룬다. 역시 가상공간에서 홀로 보내기를 즐기고 개인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소비력도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1970년대 후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킨다. 이보다 앞선 ‘엑스(X)세대’는 본래 1965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들은 대중문화에 열광했고, 기성세대에 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했다. 주위의 눈치를 안 보고 자기 멋대로 튀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이 가진 별명 중에는 오렌지족이나 야타족이라는 것들도 있다. ‘엑스세대’보다 앞쪽이라 할 수 있지만, 연령층은 조금 겹치는 ‘세대’로 ‘386세대’가 있다. 엑스세대가 개인주의적이라면 이들은 집단주의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386이라는 명칭은 1980년대 이후 사용됐던 컴퓨터에서 비롯됐다. 286 컴퓨터, 386 컴퓨터 같은 방식에 빗대 ‘386세대’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386세대’는 1990년대 30대의 나이였다. 이들은 1980년대에 대학에 입학했으며, 60년대에 태어났다. 이들은 나이가 40대일 때는 ‘486세대’가 됐으며, 50대가 된 지금은 ‘586세대’로 불린다. 줄여서 ‘86세대’라고도 한다. 1980년대 대학 생활을 하면서 학생운동, 민주화운동을 주도한 1960년대생을 뜻하는 말로도 쓰인다. ‘세대’는 비슷한 연령층의 사람들을 가리킨다. 한 세대는 같은 시대를 살면서 공통의 사회 경험을 하고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공유한다. 1980년대 우리 사회의 대학 진학률은 35% 안팎이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386세대’는 당시 대학에 다닌 이들만 해당되는 말이다. ‘세대’는 ‘일부’가 아니라 ‘전체’를 뜻한다. 특정한 이들을 가리키는 ‘386’과 ‘세대’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다. ‘386’은 소외시키고 소외되는 언어다. 세대를 알리는 말로는 적절치 않다. wlee@seoul.co.kr
  • 노오력 세대 도피처 ‘밈’… “그냥 즐겨”

    노오력 세대 도피처 ‘밈’… “그냥 즐겨”

    3040의 현실 부정 욕구, B급 문화로 발현 패러디·공유로 끝없이 재생산하며 진화행복했던 과거 향수 자극 ‘옛것’ 소환도기성 미디어 등 주류 편입 땐 열기 식어 바야흐로 밈(meme·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 전성시대다. 가수 비의 ‘1일 1깡’ 열풍에 이어 십여 년간 인터넷에서 놀이의 하나로 맥을 이어 온 농심 캘로그의 ‘파맛 첵스’가 시장의 중심부로 소환됐다. 짤과 밈, 댓글로 가공된 콘텐츠를 방송과 마케팅이 확대·재생산하면서 일종의 ‘B급 문화’였던 밈 현상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다. 전문가들은 밈 문화, 루저 문화, 병맛 문화, B급 감성 등 심각하지 않고 뛰어나지 않은 ‘비주류 문화’가 화제를 모으는 현상 속에는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중반부터 2000년께 출생한 젊은이)의 ‘불운’한 시대적 배경이 자리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최신 스마트 기기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고 자존감도 높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와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다. 1998년 외환위기를 겪은 부모의 영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회 분위기를 체득했다. 부모가 마련해 준 생활수준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운 세대이기도 하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 대표는 “이 세대는 부조리를 겪을 때 연대해 투쟁하기보다 스펙 쌓기 등 개인의 ‘노력’으로 뛰어넘으려는 특징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구조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면서 “영상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현실을 잊고 싶다는 욕구가 밈 현상, 병맛 문화 등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밀레니얼 세대가 어린 시절 열광했던 가수들이 방송가에 소환되고 있는 현상에도 버겁고 힘든 현실을 부정하고 도피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고 설명했다. 30~40대에 접어든 80년대생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대중문화 시장에도 그때 그 시절을 돌아보려는 ‘레트로’ 바람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문화계의 분석이다.밈 문화에는 ‘성취와 투쟁’이 배제돼 있다. 심각하지도 훌륭하지도 않고, 웃긴다. 지루한 텍스트나 긴 영상을 참지 못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단순히 콘텐츠를 복제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더해 밈을 확장해 나간다. 풍자의 대상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쾌감도 있다. 일본에서는 ‘펀쿨섹좌(座)’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을 둘러싼 밈이 유행한다. “기후 변화에는 펀(fun), 쿨(cool), 섹시(sexy)하게 대처해야 한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요” 등 고이즈미 환경상의 모호한 유체이탈 화법을 패러디한 ‘고이즈미 신지로처럼 말하는 법’이 인터넷을 휩쓸고 있다. 주류 미디어가 다루기 시작하면 현상이 사그라지는 것도 밈의 특징이다. 경쟁을 유발하는 ‘기성사회 질서’에 편입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는다. 실제 정통 미디어가 깡을 분석하고 본격적으로 현상을 소비하기 시작하자 인터넷상의 밈 현상은 소멸 수순을 밟았다. 최항섭 국민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기성 공동체로의 편입을 거부하는 동시에 사회적 고립감에서 벗어나려고 일시적 공감대를 찾는 ‘부족주의’, 특정 취향이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유목주의’ 등이 결합된 문화 현상”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개인주의를 추구하는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상적 공동체의 조건은 단단한 결속이 아닌 느슨한 연대”라면서 “자신들이 만들어 낸 밈이 기성 미디어에 편입되는 순간 주저없이 연대를 해체하고 다음 ‘정착지’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밈은 그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성어.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썼으며, 최근에는 패러디 등을 통해 유행하는 인터넷 문화 현상을 지칭한다. 드라마나 예능, 광고 등의 웃긴 장면이나 대사를 짤이나 댓글에 사용하는 행위 등이 밈으로 분류된다. 국내에서는 최근 한 여고생이 2017년 발매된 가수 비의 표제곡 ‘깡’의 춤을 따라 춘 커버 영상이 대유행하면서 밈의 개념이 대중에 각인됐다. 비는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과 함께 ‘깡 오피셜 리믹스’를 발매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밖에도 배우 김영철의 ‘4딸라’(드라마 ‘야인시대’ 대사),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영화 ‘타짜’ 대사) 등이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즐겨라, 그게 밈(meme)이다 [아무이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즐겨라, 그게 밈(meme)이다 [아무이슈]

    바야흐로 밈(meme· 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 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 전성시대다. 가수 비의 ‘1일 1깡’ 열풍에 이어 십여 년간 인터넷에서 하나의 놀이로 맥을 이어 온 농심 캘로그의 ‘파맛 첵스’가 시장에 소환됐다. 짤과 밈, 댓글로 가공된 콘텐츠를 방송과 마케팅이 확대·재생산 하면서 일종의 ‘B급 문화’였던 밈 현상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전문가들은 밈 문화, 루저문화, 병맛 문화, B급 감성 등 심각하지 않고 뛰어나지 않은 ‘비주류 문화’가 화제를 모으는 현상 속에는 밀레니얼 세대(millennials·1980년대 중반에서 2000년께 출생한 젊은이)의 ‘불운’한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밈&밀레니얼…‘노오력’ 세대의 현실도피처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자란 밀레니얼 세대는 최신 스마트 기기에 능통하며 대학 진학률이 높고 자존감도 높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고용 감소와 일자리 질 저하 등의 어려움을 겪은 세대다. 1998년 외환위기(IMF)를 겪은 부모의 영향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사회 분위기를 체득하기도 했다. 부모가 마련해준 생활수준을 스스로 힘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세대기도 하다. 이경민 마인드루트리더십 대표는 “이 세대는 부조리를 겪을 때 연대해 투쟁하기보다 스펙 쌓기 등 개인의 ‘노력’으로 뛰어넘으려는 특징이 있는데 문제는 사회구조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이라면서 “영상을 보는 순간만큼은 다른 것을 모두 잊고 마냥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이들의 욕구가 밈 현상, 병맛 문화 등으로 발현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가 어린 시절 열광했던 가수들이 방송가에 소환되고 있는 현상도 버겁고 힘든 현실에서 도피해 현실을 부정하려는 해당 세대의 심리가 깔렸다고 설명했다. 밀레니얼 세대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이후 대중가요를 비롯해 영화, 예능 등 대중문화의 폭발적인 성장을 함께한 세대다. 이 대표는 “30~40대에 접어든 80년대생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대중문화 시장에도 그때 그 시절이라는 ‘레트로’ 바람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좌절 투성인 현실에서 도피해 행복했던 10대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콘텐츠가 꾸준히 인기”라고 말했다.개인(me)&연대(we)…주류가 되는 순간 사라진다 밈 문화에는 ‘성취와 투쟁’이 배제돼 있다. 심각하지도 않고, 훌륭하지도 않고, 일단 웃기다. 지루한 텍스트나 긴 영상을 참지 못하는 밀레니얼 세대는 단순히 콘텐츠를 복제하고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미를 더해 밈을 확장해 나간다. 풍자의 대상을 공유하면서 느끼는 쾌감도 있다. ‘펀쿨섹좌(座)’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을 둘러싼 밈이 대표적이다. “기후 문제는 펀(fun), 쿨(잘난척), 섹시(sexy)해야 한다”, “하겠습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요” 등 고이즈미 환경상의 모호한 유체이탈 화법을 패러디 한 ‘고이즈미 신지로처럼 말하는 법’이 인터넷을 휩쓸고 있다. ‘올릴 일상이 없어도 일상은 펀 쿨 섹시해야 합니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끄덕)’ 등 그의 화법을 따라하는 식이다. 주류 미디어가 다루기 시작하면 현상이 사그라지는 것도 밈의 특징이다. 경쟁을 유발하는 팍팍한 현실의 거울인 ‘기성 사회 질서’에 편입되는 순간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 정통 미디어가 깡을 분석하고 본격적으로 현상을 소비하기 시작하자 인터넷 상의 밈 현상은 소멸 수순을 밟았다. 최항섭 국민대 정보사회학 교수는 “나를 구속하는 기성 공동체의 강한 소속감을 거부하는 동시에 사회적 고독을 벗어나고자 모방을 통해 일시적으로 ‘같은 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느끼고 싶어하는 ‘부족주의’, 그리고 특정한 취향이나 방식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매는 ‘유목주의’ 등 밀레니얼 세대의 대표적인 특성이 결합한 문화 현상이 밈”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는 “개인주의가 발달한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상적인 공동체의 조건은 단단한 결속이 아닌 외로움을 달래줄 느슨한 연대”라면서 “자신들이 만들어낸 밈이 기성 미디어에 편입되는 순간 주저 없이 연대를 해체하고 다음 ‘정착지’를 찾아 떠나는 유목민적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복제&공유…끊임없이 재생산하며 진화 밈은 그리스어로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Mimesis)와 유전자(Gene)의 합쳐져 만들어진 말로 1976년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서 처음 사용한 학술 용어다. 문화 전달의 단위, 모방의 단위를 가리키는데, 지금은 인터넷상에서 패러디 등을 통해 유행으로 퍼지는 인터넷 현상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드라마나 예능, 광고 등에 나오는 웃긴 장면이나 대사를 짤이나 댓글에 사용하는 행위, 가수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 처럼 각종 챌린지도 밈으로 분류된다. 대중에게 ‘밈’이라는 단어가 확실히 각인된 것은 최근 한 여고생이 2017년 발매한 가수 비의 표제곡 ‘깡’의 춤을 따라 춘 커버 영상이 터지면서다. 비는 과자 ‘새우깡’ 모델로 발탁되는가하며 힙합 레이블 하이어뮤직과 함께 ‘깡 오피셜 리믹스’를 발매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이 밖에도 배우 김영철의 ‘4딸라’(드라마 ‘야인시대’ 대사), 김응수의 ‘묻고 더블로 가’(영화 ‘타짜’ 대사) 등이 숱한 패러디를 낳았다.■ 아무 : [관형사] 어떤 사람이나 사물 따위를 특별히 정하지 않고 이를 때 쓰는 말. 아무이슈는 서울신문 기자들이 분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사회 전반의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취재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공간입니다.
  • [배민아의 일상공감] 더불어 사는 규칙

    [배민아의 일상공감] 더불어 사는 규칙

    세면대의 물을 틀자 여자의 머리 위로 샤워기 물줄기가 쏟아진다. 샤워를 마친 남자가 세면대와 샤워기가 연결된 수전의 레버를 돌려 놓지 않은 탓이다. 치약 짜는 문제로도 갈라서는 게 결혼 생활이라는데 샤워 후에는 레버를 제자리로 돌려 놓으라는 규칙을 번번이 지키지 않아 또다시 물세례다. 함께 산다는 것은 어쩌면 규칙을 정하고 지켜 가는 것의 연속이다. 규칙을 통해 사람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안전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누구나 지켜야 하는 헌법이 대표적인 규칙이라면 도로 위에 그려진 표지판이나 부부가 함께 살며 정한 약속 또한 규칙이다. 개인주의 문화가 강하고 자유를 지향하는 서구인에 비해 정부가 정한 정책이나 규칙에 비교적 협조적인 한국인의 습성이 전염병 정국에 빛을 발한다. 그동안 선진국이라 자부했던 나라들의 민낯이 드러나고 세계의 시선이 한국으로 모이며 코리아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높아졌다. 정해 놓은 규칙은 무조건 지키는 것으로 배운 터에 쓰라는 마스크도 잘 쓰고,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은 잘 지키며, 여러 통제된 생활에도 잘 적응하고 있다. 오래도록 몸에 밴 습관이나 문화를 바꾸기가 쉽지 않음에도 바뀐 규칙에 금방 적응한 예는 십여 년 전 통행 방향을 바꿀 때도 그랬다. 최초로 자동차가 들어온 고종황제 때 보행자와 차마의 우측통행이 실시됐다가 일제강점기에 좌측통행으로 바뀐 후 “차들은 오른쪽 길, 사람들은 왼쪽 길”이라는 노래를 유치원에서 가르칠 정도로 습관처럼 지켜왔던 문화를 88년 만에 별 혼란 없이 우측통행으로 통일했다. 이쯤 되면 식민지 시대부터 군부독재 시절을 힘들게 지나온 역사가 우리를 길들인 것이 아닌가 하는 서글픈 생각도 들지만 지독히 고쳐지지 않고, 지키지 않는 규칙도 있다. 버스에서 내릴 때가 가까워지면 은근 고민되는 점이 있다. 차내 방송이나 안내판에는 분명 버스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절대 일어서지 말라고 하는데 버스가 멈춘 후에 일어서는 사람은 거의, 내가 본 바로는 한 사람도 없다. 한번은 정말 용기 내어 완전히 정차한 후 일어섰지만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고, 당황했지만 자연스럽게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 사람처럼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또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마다 한 줄 서기로 비워진 왼쪽 줄에 가만히 서 있을 용기가 없다. 안전을 위해 두 줄 서기로 탑승하라 해도 우리는 여전히 한 줄 서기가 익숙하고 왼쪽 줄은 서둘러 올라갈 사람을 위해 비워 둔다. 규칙을 잘 지키는 국민들이 규칙대로 하지 않는 배경에는 ‘상식’, ‘편리함’ 그리고 ‘배려’가 숨어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되고, 다수에게 유익하고 편리하며,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이라면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마스크를 쓰고 통행 방향도 바꾸지만 스스로 안전을 지키는 범위 내에서는 빠른 하차를 위해 정차 전에도 일어나고, 바쁜 사람을 위해 한 줄은 비워 두는 게 더불어 사는 규칙이 아닐까 싶다. 하지 말라 하고, 상대방도 원치 않고, 평화에 방해되는 행동임에도 굳이 하겠다는 사람들의 뉴스가 안팎으로 들려온다. 함께 정한 규칙이니 따르는 게 더불어 사는 매너일진대 규칙을 따르지 않을 때는 그게 상식에 맞고 다수에게 유익을 주거나 편리한 것인지 따져보는 기본이 통하는 세상이면 좋겠다. 때아닌 샤워 세례로 젖은 머리를 말리다 분노가 폭발하기 전 화장실에 갔더니 그 사이 화장실에 다녀간 남자가 올려 놓고 사용하던 변기의 변좌를 살포시 내려놓은 배려를 해놓았다. 나름 미안한 속내를 담은 무언의 사과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터진다. 비록 물 폭탄은 맞았지만 규칙을 지키지 못한 본인의 실수를 바로 인정하고 사과의 제스처를 건네니 폭풍전야 같았던 집안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다.
  • [홍석경의 문화읽기] 케이팝 팬덤이 보여 주는 언택트 시대의 연대와 운동

    [홍석경의 문화읽기] 케이팝 팬덤이 보여 주는 언택트 시대의 연대와 운동

    케이팝을 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의 주도권이 케이팝 산업과 스타들에서 케이팝 팬들에게 넘어갔다고 할 수 있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BTS가 미국 내에서 인정받는 데 미국팬들의 자발적이면서 연동된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아미를 비롯한 케이팝 팬덤은 미국 음악산업의 여러 기준을 정확히 알고 실행에 옮기는 대대적인 작업을 장기적으로 벌여 왔다. 음반 사전구매든, 스트리밍으로 음원을 듣는 일이든, 라디오 방송에서 케이팝이 울려퍼지게 한 노력이든, 모두 예상한 목표가 있는 전략적인 집단행동이다. 가장 최근에 이 능력을 보인 사례가 트럼프 대통령이 3개월 만에 조직한 오클라호마의 정치집회이다. 1만 9000석 집회장의 전체 예약석 중 6200석만 실제 입장, 집회장의 3분의2가 텅 비도록 만들어 집회의 주인공을 대로하게 만든 집단행동의 주체로 미국 언론들은 케이팝 팬들과 틱톡 사용자를 지목했다. 이 사건을 혹자는 케이팝 팬덤과 Z세대에 속하는 청소년세대가 만나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이 집단행동이 시작되도록 호수에 던져진 돌 역할을 했다는 틱톡 영상의 주인공이 청소년이 아니었던 것처럼, 단지 청소년들의 치기 어린 실력 행사로 보면 안 될 것이다. SNS를 이용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집단행동을 조직할 수 있고, 이에 오프라인의 공권력이 어떤 힘도 쓸 수 없다는 것은 SNS의 역사에서 여러 번 증명됐다.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가 일상화되기 시작했을 때, 청소년들은 인스타그램에 공개된 누군가의 생일파티를 급습한다거나 경찰이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없도록 짧고 영향력 높은 도심의 시위를 조직하면서 소셜네트워크의 용도를 익혔다. 십수 년 전 이 청소년들은 지금 삼십 대가 됐다. 이 능력을 목표가 확실한 집단행동으로 수행하는 데 활용한 것이 국내 케이팝 팬덤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차트에 올리고 유지하는 기술, 엄청난 노력으로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 주려 노력하는 아티스트의 성공을 보장하기 위해, 즉 “꽃길만 걷게” 하기 위한 여러 일을 케이팝 팬들은 SNS를 통해서 이루어 왔다. 자신의 성공이 팬의 사랑에 좌우됨을 아는 아티스트는 SNS를 통한 친밀한 정서교류로 팬들의 사랑에 답해 왔다. 케이팝이 유튜브와 같은 영상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가시화되면서, 외국의 케이팝 청취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인 것은 케이팝의 혼종적 스타일과 대단한 뮤직비디오뿐 아니라 한국의 케이팝 팬들이 스타와 맺는 이 정서적인 유대와 팬들 사이의 끈끈한 연대였다. 특히 청소년문화가 약하고 개인주의적인 서구 사회 속에서 인종적, 성적 정체성의 문제를 혼자 겪어 내야 하는 구미의 팬들에게, 케이팝은 지배적인 기성 문화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해방적인 공간으로 다가갔다. 미국의 BLM운동에 미국 케이팝 팬들이 케이팝 스타들의 지지를 요구한 것도 이런 정서적 유대와 연대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SM의 슈퍼M과 빅히트의 BTS가 전 세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유료 온라인 콘서트를 만들어 팬들에게 원격 현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 이벤트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정서적 유대에 기초한 것이다. 케이팝 팬덤이 아티스트와의 연대 및 스스로의 힘을 확인하는 집단행동의 꽃은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총공”(Chonggong)이라고 부르는, 한국 팬덤으로부터 배운 앨범차트 정상 탈환을 위한 전력동원이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본 것은 그 힘의 아주 사소한 일부일 뿐이다. 이미 자발적인 온라인 동원에 익숙한 케이팝 팬덤은 앞으로도 언택트 시대의 동원 능력을 오프라인 현장에서 실현할 것이다. 케이팝 스타들은 케이팝을 이루는 문화적 다양성만큼이나 인종이나 젠더와 관련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정치적으로 소환될 것이다. 그동안 해외 케이팝 팬덤을 시장으로만 대해 왔던 케이팝 산업 관계자들은 이러한 소환에 소신을 가지고 일관성 있게 대응할 준비가 됐을까. 스타를 곤경에 빠뜨리는 것을 원치 않는 국내 케이팝 팬덤과 이들의 연대를 원하는 해외 케이팝 팬덤 사이의 틈은 좁혀질 수 있을까. 케이팝은 이렇게 대면 접촉이 어려워진 언택트 시대에도 연대와 동원의 역사를 계속 써갈 것이다.
  •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5] 서인택 “통일돼 어떤 나라를 세울까부터 얘기해야”

    [평화로 나아가는 사람들 5] 서인택 “통일돼 어떤 나라를 세울까부터 얘기해야”

    “지금 한반도가 아주 좋지 않은 국면에 들어선 것도 사실은 우리가 통일돼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커다란 그림이 없이 경쟁적으로 북한에 선택권을 줬기 때문이다. 북의 인권을 변화시켰다든가, 핵개발을 막았다든가 아무것도 없다. 왜 이런 결과가 초래됐는지 돌아보고 교류와 대화가 방법이 아니라 목표가 됐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서인택(51) 글로벌피스재단 한국 회장은 900여 시민단체들이 참여하는 최대 통일운동 연대단체인 통일을실천하는사람들(통일천사)의 공동상임의장을 맡고 있다. 통일천사는 2012년 8월 시민이 주도하는 생활형 통일운동을 기치로 창설돼 글로벌 통일 공감대 확산 프로젝트인 원케이(One K) 글로벌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2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주택가 골목에 자리한 새소리 잘 들리는 3층 양옥집을 개조한 재단 집무실에서 90분 정도 만났는데 뼈아프고 가슴에 와 닿는 얘기가 막힘이 없었다. 문현진(51) 재단 세계 회장의 ‘코리안 드림’에 터잡은 통일 논리, 최근 한반도 상황에 대한 단상, 생활형 통일운동의 실체와 전망, 결산 등에 이르기까지 넘나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Q. 이제야 인터뷰를 하게 돼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어떻게 이런 운동을 펼치게 됐는지? A. 사실 지금까지 통일 논의는 정부 주도였고 민간의 역할이 없었다. 민족사의 가장 중요한 이슈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극히 제한적이었다. 좌우 이념과 진영의 대립이 심각하고 통일에 대한 논의는 과정과 방법론에만 천착해 있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그것이 다시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다. 어떤 통일 국가를 만들 것인가를 둘러싼 엔드 골(최종 목표)에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북한과 같은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남한이 조금 앞서 있으니 흡수 통일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면 우선 우리끼리 남한 주민들의 동의를 얻고 북한 주민의 동의도 얻고, 북쪽 엘리트 계급도 동의하고, 국제사회의 지지와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통일 비전부터 공유해야 한다. 정부가 아니라 시민사회가 주도해 하나된 입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그 목표에 대한 합의를 했을 때 모든 이들이 기여할 바를 잡아 기여하고 모두의 노력이 합쳐져 통일이 이뤄진다고 본다. 방법을 놓고 말다툼하다 날이 새는 상황이 돼선 안된다. Q. 그런 비전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 건가? A.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이상적으로 통일을 이룬 나라가 미국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전쟁으로 분단의 위기에 몰렸던 나라를 하나로 묶어내 최고의 강대국으로 키워냈다. 여러 요인이 있고 한계도 있지만 헌법정신에 특이하고도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바로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창조됐기에 그 자유와 인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정부라면 타도, 해체하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비전을 공유할 수 있었던 힘이었다.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열망 심어줘야 통일 가능” 모든 차이를 극복하고 통일을 통해 새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다는 열망을 심어줘야 통일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정부 구성의 방법론, 나중에 논의해도 될 과정의 문제를 놓고 다투고 있다. 그렇게 비전과 전망을 뚜렷이 공유하면 그것이 과정의 자잘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동력이 된다. 우리가 어떤 통일된 나라를 세울 것인가를 지금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에겐 홍익인간으로 주어져 있다고 본다. 우리 민족은 도덕적 이상주의를 실현하려는 열망이 강하다. 고려 때 불교 이상국가, 조선 때 유교 이상국가로 만들려는 실험이 대표적이다. 동학과 3·1운동, 상해 임시정부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통일된 나라를 만들 수 있는 해방의 모멘텀을 분단과 동족상잔으로 귀결했다. 미국처럼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고 좌파나 진보 진영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새로운 통일 국가를 만들자는 전망을 공유하는 것이 생활형 통일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우리 문제는 남쪽이 하나의 입장을 만들지 못한 채 자꾸 북한에 선택권을 주는 것이었다. 20년 전 6·15 선언이 나왔을 때가 좋았다고 다들 얘기하는데 그렇지 않다. 남쪽에서 경쟁하니까 북쪽에서 자기 입맛대로 골랐다. 통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다. 통일이란 결국 북한 체제의 변화가 전제되는 것인데 우리가 선택권을 갖고 북한을 우리가 선택한 방향으로 끌려오게 만들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미국도 우리와 비전을 공유하지 못한 채 중국을 닮아가는 정권이란 오해만 하고 있고, 비핵화가 목표인 것처럼 돼 있다. 그건 일부다. 북한은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데 그것만 해결하려 하니 되겠는가? 문재인 정부가 그걸 해결하겠다고 매달리는 것은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몽매함이다. 지금은 두 나라 모두 한발씩 물러나 한반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정책적 전환을 모색해야 할 때다. 북핵은 통일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게임 플랜을 다시 짜야 한다. 그리고 통일된 새로운 나라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면 미국과 중국, 러시아도 협조할 의사가 있다는 약속을 받아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정권의 이익과 성과만 보고 들어가면 막말이 오가고 개성 공동연락사무소가 폭파·해체되는 일이 반복될 것이다. 위험하면서 중요한 시기다. 이 국면만 벗어나려고 유화책으로 봉합하고 넘어가면 근본적인 해법에서 더 멀어진다. Q. 우리 민족이 여러 차례 기회를 놓쳤다. A. 그렇다. 분단이나 종전 직후는 물론이고, 1990년대 옛 소련 붕괴 때도 좋은 기회를 날려버렸다. 항상 우리는 문제를 적당한 선에서 갈무리하고 말아 버렸다. 몽골 같은 나라도 하루아침에 자유국가가 됐다. 북한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 김일성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라 갈팡질팡했다. 체제 전환에 협조하는 것으로 옛 동독 엘리트들이 생존을 보장받은 것이 통일로 이어졌다. 몽골도 독재 국가였는데 학생들의 민주화 운동에 굴복했다. 김정은은 핵무기가 생존에 절실해 갖고 있으려는 것인데 그것 없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북한 지도층이 빠져나갈 기회를 줄여나가는 것이 통일의 정석” 북한이 빠져나갈 수 있는 옵션을 줄여나가는 것이 방법이다. 미국 카우보이들이 하는 소몰이(Cattle drive) 방식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어중간하게 빠져나가게 했다. Q. 생활형 통일운동 모색을 출범 기치로 내걸었다. 8년이 됐는데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평가하는가? A. 코리안 드림의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 요체다. 해외 지부를 활발히 만들고 있다. 홍익인간의 홍(弘) 자가 중국에서 넓다는 뜻을 가진 글자 중에 가장 큰 글자라고 하더라. 중국과 일본에도 이롭고, 아시아 공동체의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 가치관의 요체는 가족이다. 서양 민주주의는 개인주의에 기반하고, 우리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기인한다. 민족주의의 요체는 대가족 문화다. 가정의 질서를 사회로 확장하는 것이 아시아 모델의 원형이다.우리는 경제개혁의 요체가 금융개혁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찾기 위해 공무원시험에 매달리고 창업이나 기업가 정신이 사라져 통일됐을 때 제대로 된 동력을 찾을 수 있겠나 위기감을 느낀다. 그래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정착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업가 정신을 키워주는 프로그램, 함께 어울려 지내보는 예행연습도 하고 있다. Q. 8년 동안 해오며 어려운 점은? A. 한 사람이 꿈을 꾸면 꿈이지만 많은 이가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같은 마음을 갖는 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먼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곧 닥칠 문제,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오히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점 때문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늘고 있다. Q. 아무래도 코로나19 확산 때문에 매년 8·15 때 여는 원케이 콘서트나 포럼 등 규모가 축소되겠다. A. 독일 통일에서도 문화의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됐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드라마를 보고 탈출을 결심했다는 얘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15년부터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를 만들어오는 것도 그 일환이다. 작곡가 김형석 등과 아이돌 그룹, 그리고 김무성과 문재인 당시 여야 대표 등이 참여해 만들어진 원드림 원코리아(One Dream One Korea)가 4·27 판문점 회담 때 피날레를 장식했다. 통일을 주제로 한 노래 만들고 8·15에 원케이 코리아 콘서트도 인순이의 ‘하나의 꿈’, 그래미 어워드를 5회 수상한 프로듀서계의 거장 지미 잼 앤 테리 루이스(Jimmy Jam and Terry Lewis)이 그룹 부활의 정동하, 피보 브라이슨 등과 함께 ‘코리안 드림’을 만들어 3·1 운동 100주년 때 공개했다. 트로트 가수 나태주가 태권도 동작과 맞춰 호흡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부르는 ‘넘버원 코리아’를 8·15 때 공개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동찬 작곡가가 굉장한 히트를 칠 것이라고 자신하더라. 매년 8·15에 해오던 국제컨퍼런스를 올해는 인터넷 화상회의 시스템인 줌을 통해 열려고 준비 중이다. 더 복잡해지고 심란해진 세계에서 우리 민족의 유일하고 궁극적인 해결책은 통일인데 한반도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큰 주제로 준비하고 있다. Q. 앞으로 계속 활동할 것인데 어떤 각오로 임하는지. A. 세상의 모든 체제 전환은 아래로부터만이 가능했다. 톱다운 방식은 한계가 있다. 시민의 힘으로 이뤄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면 전국을 돌며 활발하게 교육도 할 것이다. 시도에 그친 지부를 시군구로 확대할 계획이다. 미국도 한반도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있다. 겉보기와 다르다. 통일 말고는 우리 민족의 활로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정권이 맨날 바뀌고 그들 입맛대로 대북 정책의 좁은 시각으로만 접근하고 해결하려 한다. 정세현 전 장관 같은 경우 개성공단부터 정상화하면 된다고, 아주 쉽게 얘기한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미국은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 북한이 부분적으로 비핵화하면 미국은 제재 푼다는 건 완전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미국 조야는 완전히 매파가 됐다. 2017년 북한 정권이 어려웠을 때 우리는 싱가포르로 그들이 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그게 결정적 시기였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북한이 어쩔 수 없이 그 길 밖에는 없다고 생각할 때 통일이 이뤄진다. ‘역사의 정원에 신이 나타날 때 신의 옷자락을 잡는 것이 정치‘라는 비스마르크의 말은 완전히 옳다. 완전히 새로운 어프로치가 필요하다. 글 사진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총균쇠’의 충고… “불평등 완화 위해 재난지원금 두 배로”

    ‘총균쇠’의 충고… “불평등 완화 위해 재난지원금 두 배로”

    퓰리처상 수상작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캘리포니아대학(UCLA) 교수가 불평등 완화를 위해 재난지원금과 같은 사회안전망을 두 배 강화해야 한다고 서울시에 조언했다. 또 코로나19 방역에는 우리 국민들의 정서가 한몫을 했다고 평가했다.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미국 LA에 있는 다이아몬드 교수와 ‘CAC 글로벌 서밋 2020’ 대담을 실시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정부에 협조한 한국인 코로나 피해 적어 다이아몬드 교수는 박 시장이 “서울은 재난지원금, 자영업자 지원, 전 국민 고용보험 등을 추진 중인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지금 하는 것을 두 배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어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등의 치명률이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LA에는 폭동이 이어지고 있다. 국가 간 불평등도 있으므로 여러 측면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19에 한국이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로 한국인의 국민정서를 꼽았다. 박 시장은 “지금까지 확산 속도 조절에 성공했고 서울의 사망자는 4명에 그쳤다”며 “확진자 동선을 추적할 때는 신용카드, 휴대전화, 폐쇄회로(CC)TV 등의 정보를 분석했다”고 방역 성과와 시스템을 설명했다. 이에 대해 다이아몬드 교수는 “한국과 미국 간 중요한 차이는 (한국인들이) 정부에 협조하고 지침을 따르는 의향이 더 있었다는 점인 것 같다”면서 “미국은 호주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개인주의 성향이 높은 나라다. 지금도 LA의 많은 사람은 마스크 착용 등을 하지 않는다. 정부 지침을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대국 간 경쟁보다 협력 더 중요해질 것 다이아몬드 교수는 코로나19 이후 강대국 간의 패권 경쟁보다 협력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질서가 바뀔 것인가라는 논의도 있지만, 세계는 이미 한 몸”이라며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무의미하다는 인식을 가지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세계적인 도시집중 현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금의 (도시집중) 추세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도시에 살 때 여러 이점이 있기 때문”이라며 “다만 인구밀도가 높은 만큼 질병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2000자 인터뷰 38] 김석현 “넘어진 김에 주 4일·가을 학기제 논의를”

    [2000자 인터뷰 38] 김석현 “넘어진 김에 주 4일·가을 학기제 논의를”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해 자부심을 얻은 것은 작지 않은 성과지요. 그런데 그 과정을 찬찬히 살펴보면 엉성하고 허술한 구석이 적지 않았거든요. 다소 안정됐으니 그동안 잘 되지 않았던 것들을 추스르며 사회적 협의를 통해 사회적 담론들을 점검했으면 좋겠는데 주 4일 근무제, 9월 학기제, 재난기본소득 등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굵직한 화두들이 또 그냥 흘려 버려지는 것 같아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한 지 다섯 달이 돼 간다. 현미경으로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이 생명체가 일으킨 지구촌 전체의 창조적 파괴, 또는 파괴적 창조의 본령이 궁금해졌다. 김석현(54) 인텔리전스코리아 대표를 만나자고 한 것은 감염병 학자나 방역 전문가, 경제학자, 사회학자들과 조금 다른 면모 때문이었다. 대학에서 물리학을, 석사는 수학을, 박사 학위는 미국 노터담 대학에서 경제학, 그것도 산업 발전을 전공한 다채로운 이력 덕분이었다. 2005년 귀국하자마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에서 과학기술 혁신지표를 연구해 10년 동안 꾸준히 보고서를 썼던 이력도 더해졌다. 그런 그가 신천지발 확산 이후 코로나19 관련 데이터를 누구보다 바지런히 찾아내 요점을 정리해 페이스북에 매일 올려주니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것은 당연했다. 이런 노력을 평가받아 지난달 말 지식공작소가 발빠르게 기획해 펴낸 ‘코로나19 동향과 전망’에 이일영 한신대 교수 등 다른 전문가들과 논의하고 자신의 보고서를 싣는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의 보고서 가운데 돋보인 대목은 20세기 노르딕 국가의 교량 국가 역할을 한국이 해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었다. 다음은 일문일답.Q. 오랜 시간 국내외 자료를 꾸준히 업데이트했으니 현재의 코로나19 국면을 어떻게 보는지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A. 나도 이렇게 오랫동안, 석달 가까이나 코로나 데이터를 갖고 씨름할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심각한 감염병 문제인데 전문 교육을 받은 것도 아니어서 뭐라고 말하기가 두렵다. 그저 매일 생기는 워낙 많은 숫자와 정보들을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게이트키핑 역할을 한 건데 많은 분들이 숫자 뒤에 숨어있는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는 댓글들을 달아주셨다. 그래서 용기를 내 ‘동향과 전망’에 참여할 수 있었고, 아직 등교를 못하는 초등 2학년 딸을 집에서 돌보며 데이터들을 살펴보고 있다. 감히 지금의 국면을 정리하자면 5월 초 이태원 클럽발 감염이 확산되고 있는데 1차 파고의 여진인지, 두 번째 파고의 시작인지 헷갈렸는데 최근 데이터들을 보면 신천지발 감염증 바이러스와 유형도 다르고 5월 초 연휴 이후 생활방역으로의 전환과 맞물려 있어 두 번째 파고의 시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아직 그 파장이 어떠할지는 지켜봐야할 것 같다. Q. 책을 보면 김 박사는 한국이 코로나19 대응에 리더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메르스 때 비싼 수업료를 치른 덕이며, 자유주의적 조치를 취하면서도 선제적인 대응을 미세하게 해냈다. 절벽 앞에서 가까스로 멈춰섰다고 표현했던데? A. 국가전체의 시스템적 대응은 부족하다. 대신 확진자가 발견되면 연관자를 찾아내는 기동성은 유럽과 미국 어느 나라도 따라오지 못한다. 가령 예를 들어 5월 연휴가 시작되기 전 누구나 연휴와 학교 개학 시기가 겹치면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예상하는데도 연휴 끝나 2주가 지나기 전 개학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위험하다며 일주일 연기한 것이 예가 될 것이다. 뻔한 판단 착오를 하곤 했다. 유럽에서는 시나리오 대응을 한다. 독일은 항체 검사를 전국적으로 실시해 국민들 사이에 얼마나 면역이 진행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봉쇄를 풀면서도 나중에 이런저런 요건이 되면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미리 지방정부와 메르켈 총리가 합의해 나간다. 스웨덴은 8주 간격으로 항체 검사를 한다며 1차 검사를 했다. 스톡홀름은 16% 정도로 면역이 됐다는 것이 나타나 방역을 평가하고 이후 대응에 반영할 것으로 보인다. 질본, 지방자치단체, 보건소 등은 정말 헌신적으로 뛰어 이번 사태에 대처했는데 질본 위 정치 시스템의 결정들은 근거도 없고, 외국인 입국 통제도 한 발 늦었고, 사회적 합의와 정치권이 개학이냐 연기냐 하는 커다란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해내지 못한 점을 지적했다. Q. 그래서 많은 이들이 불안해 한다. 머리가 계획하고 팔다리가 실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아 얻어 걸린 것 같은 이 국면이 많은 이들의 불안감을 키운다고 본다. A. 영화 ‘살인의 추억’ 가운데 송강호의 대사가 떠오른다. 미 연방수사국(FBI) 과학수사 기법 그런 것 모르겠고 한국은 좁으니까 발로 열심히 쫓아다니면 잡힌다는 대사 말이다. 실행 부문에서 잘하고 역량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행 부문에 너무 의존하는 한계가 있다. 관료를 동원하기 좋은 조직을 갖고 있다. 관료를 민간의 군대라고 비유한다. 관료, 공보의, 군인 등 방역에 최적화된 조직을 갖고 있었다. 짧은 시간에 후닥닥하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안 좋게 보아왔는데 감염병 대처에서는 분명히 효과가 있었다. 방역은 전쟁이란 점을 절감했다. 민간 병원이 강한 공공성을 요구받고 있다. 싱가포르도 비슷하다. 아시아적 특성이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갈등의 여지가 있는데 감염병 대처 국면에 효율성을 인정받게 됐다. Q. 그런 연장 선상에서 아시아적 공동체를 앞세우는 것이 서구 개인주의를 물리친 사례라고 보는 시각도 있더라. 권위주의나 독재를 옹호하는 것이란 핀잔을 들을 수 있겠지만. A. 독일이 다른 유럽 국가와 다른 측면이 있더라. 전통적으로 정부의 권위와 역할이 많아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정부의 조처가 존중받는 면이 있다고 여겨진다. 개인주의에 치우치지 않는 면모들이 이번 방역의 장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자유주의에 선제적이고 효율적인 리더십이 결합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번 방역에서 그 의의가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유럽에서는 독일, 아시아에서는 한국과 대만, 홍콩 같은 나라들이 그 예를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을 보며 많은 나라들이 놀라워하는 것은 자유주의적 접근을 버리지도 않고, 일정하게 개인주의는 양보를 하면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해 오히려 전면 봉쇄로는 가지 않아 이동과 생업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 것에 있다. Q. 수축사회란 개념이 흥미롭더라. A. 이자율이 형편없이 낮아져 투자할 곳이 없고, 일자리가 늘어날 여지는 적어 보인다. 온라인 유통에 밀려 어중간한 오프라인 기업은 없어지는, 도심의 상가는 비는 등 연쇄 효과가 일어나고, 우리 경제전망이 낙관적일 수만은 없는 우려를 갖게 된다. Q. 우리는 사회적 합의를 결여한 것이 적잖이 눈에 띈다. A. 메르스 이후 방역에 유리한 쪽으로 법률이 개정됐는데 코로나19가 닥쳐서야 그런 것을 확인하게 됐다. 분명히 있어야 할 사회적 합의를 생략하고 한 것이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유럽과 미국에서 마스크를 쓰지 말자, 봉쇄를 풀자고 시위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반사회적이네 여기기 쉽지만 한편으로 그 사회는 목소리가 다양한 것이다. 저렇게 격렬한 사회적 토론이 이어지고 합의가 이뤄지면 훨씬 굳건할 것 같다. 우리는 서구의 토론과 합의 문화를 배우고 서구는 우리의 창조적인 대응 방식을 배우고, 이런 것이 코로나 시대의 교훈이라고 생각한다.Q. 지금 우리가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A. 질본에서 항체 검사를 한다고 했다. 이는 5월 말에 실시하는 연간 국민영양건강조사에 포함된다. 스웨덴은 8주 간격으로 샘플링한다. 독일은 이미 항체검사를 시작했다. 중국은 우한 시민 1100만명 전원을 진단검사해 마무리 단계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교사 50만명은 너무 많다고 했다. 10명 검체를 모으면 5만번 실시하는데 우리의 진단검사 키트 능력으로도 가능한 일이었다. 가장 위험한 의료진, 양로원, 교사 이런 사람들은 했어야 했다. 이런 기획 능력이 부족하구나. 어두운 상자 안에 손을 집어넣고 더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어떤 일이 벌어지면 즉각 대응은 하는데 시나리오를 세워 대응하는 것은 많이 부족하구나 느끼게 된다. Q. 책이 나온 지 한달이 됐는데 ‘아시아발 노르딕 국가‘란 개념이 충실히 채워지고 있나? A. 우리만 잘났다고 해선 안되니 객관적으로 개념을 들여다보려고 유럽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독일과 북구는 영국과 프랑스 모델의 개인주의보다 사회 전체의 복지를 위해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사회체계를 갖고 있더라. 우리 모델을 권위주의적이라고 폄하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시스템에 대한 장점도 알게 하고 자부심을 갖게 만든 게 코로나가 불러온 뜻밖의 성과 아닌가 한다. 대중들이 무작정 선망하던 미국과 유럽 국가가 막대한 인명 피해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적어도 방역에서는 한국이 나은 면도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자부심이 자만이 아니라 마음을 열고 배우는 자세로 이어져야 한다. 이런 격변은 이전에 비용 때문에 과감히 하지 못하는 사회적 실험을 해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홍수가 나면 리모델링하듯 말이다. 뉴질랜드는 주 4일제 근무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토하겠다고 했다. 일자리 공유 차원 만이 아니라 연성화된 사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도 한 번 토론해 볼만한 일인데 아무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또 학교 개학과 관련, 이참에 가을 학기제를 해보자는 얘기가 반짝 나오다 말았다. 전 개인적으로 해볼 수 있다고 본다. 재난기본소득도 더 근본적이고 폭넓게 논의해야 하는데 어물쩡 단기적 처방에 머무르고 말았다. 방역 뿐만아니라 사회경제적 시스템에 관한 논의로 넓히자는 것이다. 글 사진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열린세상] 뉴딜 정책의 데자뷔로 본 코로나 이후 미래설계의 방향/이은우 건양대 교수

    [열린세상] 뉴딜 정책의 데자뷔로 본 코로나 이후 미래설계의 방향/이은우 건양대 교수

    세계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보이지 않는 적을 섬멸할 무기도 없이 오직 적으로부터 격리하는 방법으로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는 어려운 형편이다. 필자도 처음으로 이번 학기 비대면 강의를 하고 있다. 많은 교수들이 그동안 외면해 오던 온라인 교육시스템에 강제적으로 적응하고 있으며 이제는 그 장점도 인식해 가고 있다. 코로나 사태의 장기화로 비대면 교육, 재택근무, 화상회의, 무관중 경기·공연·토론회, 온라인 상거래 등 언택트(비대면) 사회의 요소들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운석이 떨어져 지구상의 공룡이 멸망했듯이 코로나바이러스가 그전의 사회를 멸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어 나갈 것 같은 공포가 엄습해 온다. 현재로서는 코로나 사태로 인한 각국의 급격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휴업과 폐업, 대규모 실업이 심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난국을 타계하고 더 밝은 미래를 위한 한국형 뉴딜 정책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1918년 끝난 1차 세계대전 때까지 미국은 연합국의 보급기지 역할을 하면서 경제가 활황을 거듭하지만 전쟁 이후에도 생산설비를 줄이지 않은 탓에 상품은 과잉 생산되고 수요는 줄어들어 결국 1929년 10월 24일 ‘뉴욕 주식거래소’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이 시작된다. 개인주의와 자유방임주의를 표방하는 아메리칸드림을 신봉하던 후버 대통령은 정부 지원책은 실업자들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킬 뿐이라는 믿음이 확고했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불황기인 1933년 취임한 루스벨트는 정부가 개입해 실업자 구제, 경기부양, 경제제도개혁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소비를 창출한다는 대선 공약인 뉴딜 정책을, 라디오 방송프로 노변정담을 활용해 비난하는 국민을 설득해 가면서 성공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유일한 4선 대통령이 된 루스벨트는 과잉생산과 자유방임으로 일어났을지도 모를 물리적 혁명을 피하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공동의 선을 이루는 데까지 아메리칸드림의 의미를 확장했으며 소속 정당의 30여년 집권의 터를 닦았다. 지금의 상황이 경제적 충격 면에서는 미국의 1920년대 말 대공황 못지않을 것이라고 한다. 현재와 코로나 사태 이후의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가 성공적시켰던 뉴딜 정책의 데자뷔로 보는 한국형 뉴딜 정책의 방향을 생각해 본다. 첫 번째 방향은 과학기술기반의 복지국가를 미래 지향점으로 설정하자는 것이다. 복지에 대한 투자가 일시적 고통 완화로만 끝나게 되면 모두가 가난한 평등만 실현될 우려가 크다. 지속가능하고 건실한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복지지출이 성장에 대한 투자가 되도록 해야 한다. 과학과 의료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혁신기업이 가치를 창출하고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도록 해야 한다. 당연히 이 과정도 K방역에서 증명된 것처럼 과학기술자 등 전문가가 주도해야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코로나 사태의 충격으로 엄청나게 커진 사회적 수용성이 사라지기 전에 과감한 혁신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야가 긴급재난지원금 전 국민 지급에 합의하고 세계 각국이 경제사회 살리기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재정지출에 나서도 별 저항이 없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핵심은 신속하고도 과감한 규제혁신이다. 이전으로 되돌아가기 전에 이 막다른 골목 효과를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 이익공유와 고통분담으로 규제를 둘러싼 해묵은 사회적 갈등을 풀어 나가야 한다. 세 번째는 국민적 자긍심을 승화시켜 국민의 심리적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계기로 만들자는 것이다. 우수한 의료진과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기술(IT) 및 바이오 기술, 그리고 자발적 방역 참여자들 덕분에 국민들의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는 국민적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웃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식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마스크 쓰기에 적극 동참한 국민들이 있었기에 지역이나 도시의 봉쇄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이런 마음을 자긍심으로 승화시켜 국민적 화합과 희망찬 미래로 나가야 한다. 새로운 세계질서가 형성되어 가는 중차대한 이 시기에 우리가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존의 관념을 뛰어 넘어야 한다. 루즈벨트가 그랬듯이.
  • [금요칼럼] ‘변신합체로봇’ 한옥/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변신합체로봇’ 한옥/황두진 건축가

    ‘한옥은 소반을 놓으면 식당이 되고, 서안을 놓으면 서재가 되며, 이부자리를 깔면 침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 즉 한옥에서는 하나의 공간을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근사하게 들리지만 학생 시절 이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는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한옥 자체의 특성인가. 아파트나 일반 주택에서도 그렇게 살 수 있지 않은가. 이후 한옥을 실제 프로젝트로 다루게 되면서 현장 조사나 실측을 종종 했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집에 여러 명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북촌의 한 한옥은 면적이 15평 정도였는데 이전에는 무려 세 세대가 살았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옥이 무슨 마술 보자기처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지금의 생각은 이렇다. 한옥은 확실히 매우 유연한 삶의 그릇이다. 크기에 비해 다양한 사람의 행위를 담을 수 있다. 그런데 ‘식당이 서재가 되고 침실이 되는’ 그 유연함이 꼭 한옥 자체의 건축적 특성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알고 보면 가구와 집기의 역할이 크다. 예를 들어 지금은 보통 한 식탁에 여럿이 둘러앉아 식사하기 때문에 이를 한국인의 전통적 식사문화로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종합해 보면 한 사람이 하나의 소반을 놓고 식사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이었다. 일본인의 개인주의를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했던 일인전(一人前ㆍ이치닌마에) 못지않은 독상문화가 한국의 전통이었다. 식당이 따로 없었던 가옥 구조상 모든 방은 밥때가 되면 식당이 됐다. 식사는 소반에 놓여 각 방으로 ‘가내 배달’됐다. 들고 다닐 수 있게 만든 상이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다. 서안도 그렇고, 횟대도 그렇고, 이부자리도 그렇고, 한국의 전통 가구와 집기 중에는 가볍고 작은 것들이 많다. 요즘 용어로 하면 이동성, 즉 모빌리티 측면에서 최적화돼 있었다. 지금도 이런 가구와 집기가 있으면 한옥이 아니어도 상당히 유연하게 공간을 쓸 수 있다. 물론 한옥이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한옥은 가변성이 높은 건축이다. 일례로 문만 보아도 일반적인 여닫이나 미서기, 미닫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가지가 한 몸에 결합된 안고지기문, 혹은 들어 올리는 문에 이르기까지 공간을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수단이 잘 발달돼 있다. 좀 어렵게 이야기하면 가구와 집기의 이동성과 건축의 가변성이 더해져서 공간의 범용성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 덕분에 많은 사람이 작은 집에 사는 것도 가능했다. 즉 집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다양하게 나누어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삶의 문화가 만들어진 배경은 무엇일까. 우선 기후가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한반도에서 하나의 고정된 방식으로 일 년 내내 사는 것은 답답하고 재미도 없다. 그래서 날씨에 따라 문을 열고 닫으며 실내에서도 바깥의 기운을 느꼈다. 제사나 잔치 등 갑자기 손님을 많이 치러야 하는 상황이 자주 있던 것도 이유였을 것이다. 상업 공간이 없던 시절이라 대부분 이런 행사는 집에서 치르기 마련이었다. 항상 여유 공간을 마련해 둘 수는 없는 일, 그래서 집이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어야 했다. 안고지기문을 달면 방 몇 개를 터서 하나로 만드는 것도 가능했다. 들어 올리는 문은 집의 안과 밖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이러한 특성은 현대건축에서도 필요하다. 작지만 효율적인 공간을 시간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기술이 발달해 요즘의 가구와 집기는 이전에 비해 훨씬 가볍고 이동도 쉽다. 문과 창도 그 열고 닫는 방식이 다양해지고 성능도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변신합체로봇 한옥, 여전히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 조직 위해 개인 희생?… 2030 직장인들 부정적

    “갈등 해결하려면 프로팀 같은 회사로” ‘조직이 성장해야 내가 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희생할 수 있다’는 명제에 더이상 2030 직장인들은 동의하지 않는다. 4050세대가 이에 대한 긍정·동의 응답 비율이 높은 것과 대조적이다. 의무 중심으로 생각하는 윗세대가 맡겨진 일을 우선하는 반면 권리가 우선인 젊은 직원들은 근로계약서상 근무시간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8일 펴낸 ‘한국기업의 세대갈등과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인 63.9%가 세대차이를 느낀다고 답했다. 직장 내 세대 갈등은 야근, 회식, 업무 지시 등 여러 단면에서 간극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이런 직장 내 세대 갈등의 원인이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진 2030세대의 사회 진출과 낮은 조직 경쟁력에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세대 갈등을 해결하려면 조직의 체질을 ‘가족 같은 회사’에서 ‘프로팀 같은 회사’로 개선하라”고 제언했다. 프로팀의 운영 공식인 ‘선수가 팀을 위해 뛸 때, 팀은 선수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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