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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유행어 시추에이션

    2005 유행어 시추에이션

    2005년에도 어김없이 유행어가 탄생했다. 말 자체의 재미도 있지만, 대개 유행어는 사회 흐름을 반영하거나 풍자하기 때문에 ‘유행’된다고 한다. 대중문화 분야에서 생산돼 세간의 입을 통해 절찬리에 쓰였던 유행어를 살펴보자.‘그까이꺼 뭐, 대∼충’ 골랐다. #너나 잘하세요 :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서 이영애가 교도소를 나서며 던진 대사였다. 평소 이영애 이미지와는 다른 뉘앙스로 주목받았고, 영화 팬의 입소문을 타고 들불처럼 번졌다. 비존칭, 존칭이 혼재된 모순적인 구성이 경고성 멘트의 감칠맛을 살렸다. 비슷한 유행어로 탤런트 신구가 CF에서 내뱉었던 “너나 걱정하세요.”가 있다. #언제까지 그 따위로 살 텐가 : 정작 사극 ‘신돈’의 인기보다 이 대사가 네티즌의 사랑을 받으며 당사자인 손창민을 당황케 했다. 특히 그가 앙천대소하는 모습은 ‘하하창민’이라는 인터넷 패러디를 탄생시켰다. 부조리한 세상에 호통을 치는 시원함을 담고 있다. #근데 니, 자들하고 친구나? : 최근 2∼3년 동안 인기를 모았던 강원도 사투리가 영화 ‘웰컴투동막골’에서 활짝 꽃을 피웠다. 이 작품에서 강혜정은 “나 이쁘나.”,“배암에 물리면 마이 아파?” 등을 대량으로 시중에 유통시켰다. 순수한 ‘광녀’의 이미지와 ‘따뜻+순박’의 강원도 억양이 시너지 효과를 냈다. #초원이 다리는? 백만불짜리 다리! : 다섯 살 지능을 가진 스무 살 자폐청년이 마라톤에 도전하는 실화를 감동적으로 옮긴 영화 ‘말아톤’에서 조승우와 김미숙이 주고받았던 대사. 유행어라기보다는 명대사로 분류된다. 역시 순수함이 가득했던 ‘말아톤’은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으로 등극했다. #이거 웬 황당한 시추에이션∼ : MBC 마니아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안성댁으로 열연했던 개그우먼 박희진의 독특한 코맹맹이 억양 때문에 따라하기가 상당히 어려웠던 유행어 가운데 하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고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았을 때 즐겨 사용됐던 말이다. #그까이꺼 뭐, 대∼충 :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봉숭아학당’ 코너에서 경비원 차림의 장동민이 즐겨 썼던 말이다. 각박하고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반영했다는 평가가 있다. 사실 개그 프로그램에서는 다양한 유행어가 탄생하곤 한다.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웃찾사) ‘화상고’ 코너의 “호이짜∼!” 등 의성어나 “북경오리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떡볶이를 철근같이 씹어 먹으며 달리는 마을버스 2-1에서 뛰어내린 육봉달!”,“이 세상의 날씬한 것들은 가라. 곧 뚱뚱한 자들의 세상이 오리니.” 등 ‘개콘’의 박휘순과 김현숙의 입심이 대표적이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 올해 CF 유행어 가운데 ‘W송’이 으뜸이다. 흥겨운 폴카 리듬에 실린 복고풍 노래는 남녀노소, 시간과 장소를 막론하고 사람들을 흥얼거리게 했다. 쓰라린 현실에 부딪혔으나 인생에 달관하는 자세를 품고 있기에 인기를 끌었다는 철학적인 해석도 있다. #∼하삼 : 인기 댄스그룹 ‘NRG’의 천명훈이 방송 출연에서 귀엽게 보이려고 무심코 사용했던 말투가 유행됐다. 천명훈이 스스로도 인터넷 채팅에서 사용했던 말은 기대치 않은 폭넓은 인기를 얻으며 인터넷 채팅어의 어미를 ‘∼하삼’으로 물들였다. #됐거든∼ : 출발점은 ‘웃찾사’ ‘1학년 3반’ 코너의 박규선. 친구들을 무시하는 상황에서 나왔던 여성의 말투를 흉내 낸 유행어다.SBS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대사에서는 “∼거든”으로 변형되며 더욱 확산됐다. 혼혈스타 다니엘 헤니가 한국말을 배우는 과정에서 “됐거든∼”을 먼저 익혔다니 말 다했다. 최근 만연한 개인주의적 사고가 스며들었다는 시선도 있다. #유행어 공장장 탁재훈 : 원래 가수였다. 타고난 재치로 각종 쇼프로그램 MC로 나서며 유행어를 양산해내고 있다.“아우 머리”,“아우 배 아파∼”,“장난쳐∼”,“아우 왜∼”,“안 되겠네∼” 등등. 특별한 의미가 있기 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적절한 반응들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인터넷에는 ‘탁재훈 유행어 싱글앨범 1집’이 떠돌아다니고 있을 정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23)한국 차문화의 다양성

    눈의 향기를 맡아본 적이 있는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눈에는 아스라한 차 향기처럼 포근한 향기가 넘쳐난다. 허공을 타고 내려오는 눈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주는 한줌의 눈속에도 생멸이 있다. 멀리서 뚝뚝 끊어지는 설해목의 비명소리가 마치 눈속에 꺾여 비닐하우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하늘을 원망하는 농심(農心)소리 같다. 무너지는 눈의 산(山)이 마치 무너지는 농심 같다. 그래서 아프다. 자연은 늘 인간의 삶속에 고통을 주기도하고, 때로는 희망을 주기도 한다. 삶이란, 차의 길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현실의 삶속에서 고통스러운 여정을 다스리고 위안하고 친구처럼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속에는 희망도 있고 절망도 있고 고통스러운 아픔도 있다. 차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고통스러운 길을 가는 중생들의 위안처요 친구인 것이다. 우리곁에 차 문화는 과연 있는가. 있다면 어디까지 와있는가. 매우 궁금한 대목이다. 비공식적이지만 차 인구 700만 시대를 돌파하고 , 차 도구를 만드는 장인들의 전시회는 봇물처럼 이어지고, 차를 생산하는 농가와 다인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차를 애용하고, 차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2000년 초입 한국에는 우후죽순처럼 국적 없는 차 문화가 생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화란 원래 잡식성이 강하다. 여러 갈래와 흐름이 합쳐지고 그 합쳐짐 속에서 어떤 주도권이 생겼을 때 그것은 하나의 문화로 일상에 향유되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백가쟁명의 시대처럼 다양한 문화적 코드가 생성되고 결합되고 있다. 급속하게 변화되고 있는 디지털시대 차 문화 역시 다양한 문화적 영역과 충돌하고 하나의 문화코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 방향성이 없더라도 정신의 고전이랄 수 있는 차와 현대문화의 버전들이 급속하게 변형·결합되는 것은 너무도 반가운 현실이다. 먼저 가장 큰 변화는 몇몇 대학에 다도학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나의 학으로서 차 교과목이 개설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냥 일반과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이수할 정상적인 교과목으로서 다도학은 차가 중장년층의 문화에서 청장년층의 문화로 학습되기 시작했다는 또 하나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디지털대학의 다도학과도 풍요로울 정도로 다양하게 개설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남는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차 인구를 교육할 교육자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차교육의 핵심은 형식과 내용 그리고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인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교양의 한 방법론으로서 차 교육은 절대적으로 지향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차 교육자의 양성 역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제중 하나다. 한 사람의 차인이 교육자의 길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인격적인 성숙이 밑바탕이 되어야 한다. 일상의 차인으로 차의 형식과 내용은 한계가 있다. 결국 궁극적인 지향점은 차인으로서 정신성에 대한 담보가 얼마만큼 확보되어 있는가에 그 관건이 있는 것이다. 미래지향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디지털적인 청년들에게 차는 하나의 호사일 수가 있다. 그같은 선입견을 불식시키고 역동적인 움직임을 정적인 움직임으로 변환 시킬 수 있는 절제의 문화로 바꾸어 주어야 한다. 현대 차인들의 산실일 수 있는 차 대학원과 모임들, 즉 차인회다. 전국을 포괄하고 있는 대규모 차인회 그리고 각 지역을 담당하고 있는 차인회등 전국에는 수천개의 차인회가 존재한다. 뿐만 아니다. 차인회는 오늘 한국차를 있게 한 산증인들이자 산실들이다. 기라성 같은 차인들이 차를 교육하고 제다하고 음용하는 것이다. 이들은 척박한 한국 차문화를 한단계 성숙시킨 원동력들이다.80년대 초반 1세대 차인들의 교육을 받은 이들은 차 생산지를 돌아보고 차인들의 역사를 복원하고 차를 학습하고 교육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 그들은 1세대들과 마찬가지로 오로지 차에 대한 열정 하나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냈다. 지금 각 지역에서 차인회를 이끌고 있는 이들은 1.5세대 차인들로 불려질 만하다. 다음은 오늘의 차 문화를 이끌고 있는 하나의 힘이 있다. 바로 종교 차인회가 있다. 차의 본산이랄 수 있는 불교를 비롯, 기독교, 천주교 등에서 차회는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차는 각 종교에서 명상차원이나 교양차원에서 하나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고 많은 종교인들의 마음과 손을 사로잡고 있다. 종교차회는 차에 관심이 없는 일반인들을 깊고 깊은 차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차는 또한 문화적 변형을 과감하게 실시하고 있다. 명상, 음악, 공연, 음식 등 젊은이들의 문화적 코드와 결합돼 활발하게 변형이 이루어지고 있다. 먼저 음악분야다. 차음악은 명상음악과 함께 다악(茶樂)이란 이름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수년전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다악공연은 설치미술과 만나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이루어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도 많은 관심과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차와 음악의 결합은 아직까지 매우 실험적이다. 하나의 장르로 정착되기에는 아직은 매우 요원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많은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는 행다공연이다. 행다공연은 전국에서 교육의 장을 맡고 있는 차인회의 핵심행사 중 하나다. 접빈다례, 궁중다례, 헌공다례, 들차회 등 다양한 다례를 일반대중들에게 시현하는 것이다. 많은 차인회에서는 행다공연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자기 차회(茶會)만의 독특한 행다 아니면 전통적으로 해석된 행다 등 다양한 행다를 일반대중들을 위해 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병폐 또한 만만치 않다.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차 문화는 마치 형식만 있는 것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차인들이 행다공연을 위해 헌신한다. 오랜 시간을 걸쳐 똑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한다. 그러나 그같은 형식은 대중들의 구미를 채워주지 못한다. 행다를 공연수준으로 끌어올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내용의 보완이 절실한 것이다. 공연예술로서 행다를 하기 위해서는 무대, 조명, 음악, 시나리오 등 가장 기본적인 절차나 형식들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형식은 많은 재원과 그에 필요한 스태프들이 필요하다. 동호회나 차인회에서 행다공연은 차 문화의 성장이란 측면에서 볼때 원천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 그러나 차인회와 차인회, 아니면 차인회 내의 행다공연이나 겨루기는 장려되어야 마땅하다. 행다는 또한 차 문화의 뿌리를 갖출 수 있는 조건이란 점에서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들차회는 행다문화의 새로운 접점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의미할 수 있다. 들차회는 봄과 가을 특정날을 선택해 차인회 내에서 각기 연습한 행다 겨루기를 축제형식으로 치르는 것이다. 물론 그 차인회만 참가할 수 있는 폐쇄된 들차회가 아닌, 모든 사람들이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열린 차회로서 진행되어야 한다. 1년동안 각자 배웠던 행다를 보여주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또한 노래도 함께 부르며 내면에 쌓인 번뇌의 찌꺼기를 대중들 속으로 날려보낼 수 있는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행다문화의 새로운 풍속도로 제기되어볼 만하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초의차문화연구원의 들차회는 가을에 열린다. 돌부처님이 아름다운 곳인 운주사를 비롯해 전국의 아름다운 사찰을 찾아 들차회를 1년에 한차례씩 갖는다. 서울 광주 부산 대구 등에서 공부해오던 각 지회 차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자리를 방문한 일반관람객들과 하나가 되어 찻자리를 즐기는 것이다. 노래도 하고 시도 함께 읊고 자신들이 연마한 행다의 기량도 한껏 선보이는 계기가 된다. 열린 공간에서 열리는 차 축제인 들차회는 그런 점에서 향후 차인들의 행다 시연에 많은 시사점을 남기고 있다. 가장 빠르게 응용되고 있는 것은 차의 먹을거리화이다. 한국대중 차를 선도해온 거대기업에서 도심에 만든 차 카페는 매우 중요한 문화적 접점을 시사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거리라는 명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카페는 젊은층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차 먹을거리와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다. 반응 역시 매우 폭발적이다. 이 카페에서는 차로 만든 케이크, 차로 만든 아이스크림, 차 국수, 차 비누, 차 샴푸 등 다양한 차 관련 상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심지어 차와 우유의 만남을 통해 차라떼는 젊은이들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차의 문화적 상품화의 변형은 한발짝 더나아가고 있다. 차를 이용한 벽지, 차를 이용한 속옷 등 웰빙상품으로서 차는 다양한 영역으로 파고들고 있다. 차와 웰빙은 이제 하나의 문화상품으로서 그 변형의 끝이 어디까지랄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하게 응용되고 있다. 차는 지금 현대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파고 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의 웰빙상품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차의 기본정신은 인간의 건강한 정신적 삶의 추구를 통한 체용(體用)의 일체화다. 체용이란 정신과 육신의 건강을 함께 추구하고 일상을 건강하게 살아가는 삶의 문화적 양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차의 본질을 외면하고 하나의 건강상품으로서 차가 일반대중들에게 인식되는 것은 크게 경계해야할 일이다. 세상이 온통 눈이다. 마치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눈이 거침없이 쏟아지고 있다. 앞산도, 뒷산도, 일지암도 온통 눈에 파묻혀버렸다. 바람이 마치 칼처럼 대지를 휩쓸고 지나간다. 눈이 마치 폭풍처럼 일어났다 안개처럼 허공을 감싸며 사라진다. 시끄럽고 활활타는 세상을 식히는 듯하다. 설잠 김시습의 ‘간설’(看雪)이란 시가 생각난다. “여섯 모 가진 꽃이 공중으로부터 내리는데/ 창을 열고 누워서 보니 낮게 맴도누나/ 천상의 향기 없는 꽃을 전해줄줄 알아. 인간에 심지 않은 매화를 피워주네/ 동곽은 가난을 안고 길을 따라 돌아가고/ 자유는 흥겨워서 배를 타고 돌아오네/ 늙어가며 일이 없이 화롯가에 둘러앉아/ 도공의 차 한잔을 달여 마시네” ■ 일상화 된 차 명상 조선시대의 유명한 고승 서산 스님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스님 대여섯 사람이/내 암자 앞에 집을 지었네/새벽 종 치면 함께 일어나고/저녁 북 울리면 같이 자네/한 시냇물 속의 달 그림자 밟으며/물 길러 차 달이매 그 푸른 연기 나는데/날마다 무슨 일 의논하는가/염불과 참선일세” 차는 자신의 내면을 수행할 수 있는 보조도구로서 매우 훌륭한 도반이기도 하다. 최근들어 차 명상이 많은 대중들로부터 환영을 받고 있다. 차 명상, 이른바 선다(禪茶)는 삶을 풍요롭게 하고 참 행복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방법이다. 차 명상센터가 서울을 비롯해서 각 지방에서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차 명상은 차의 정신을 통해서 지친 마음에 휴식과 활력을 주고 정서적 평온을 체험하며 차 마시기와 주변 일상생활을 명상화하여 마음을 정화하고 올바른 삶의 자세를 가꾸어주는 일련의 정신훈련과정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다선일미’(茶禪一味),‘중정청경(中正淸境)’ ‘화경청적’(和敬淸寂) 등 차 정신을 실현함과 동시에 참 행복을 열어가는 것이 목표이다. 차 명상은 사념처 팔정도 수행을 기본으로 하여 자각력·집중력·통찰력을 계발하고 강화시키는 데 있어 일상에서 활용하기 쉽도록 차 마시기와 일상생활 속의 친숙한 행위들을 명상의 주요한 실천 도구로 이용한 명상법이다. 차를 마시는 행위는 복잡하지 않고 일정하고 체계적인 동작이기 때문에 명상의 도구로 쓰기 좋으며, 적절한 행위 변화가 지속되기 때문에 지루해지지 않고 꾸준히 명상을 이어갈 수 있다. 또한 정신적 긴장속에서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실습할 수 있으며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바탕으로 원리와 방법을 쉽게 이해하고 터득할 수 있다. 또한 일상 속에서 혹은 다른사람들과의 만남속에서도 명상을 응용할 수 있는 것이 차 명상의 장점이다. 차를 통해서 기본적으로 예와 절제를 배우고 건강을 도모할 수 있으며 동시에 명상으로서 활용하게되면 자기 이해와 발전을 가져오고 육체적·정신적 건강도 함께 도모할 수 있다. 차명상은 차와 일상생활을 통해 명상을 실현하기 때문에 따로 시간을 낼 필요가 없고 익숙한 우리의 행동양식을 활용하기 때문에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부담감을 덜 느끼게 된다. 차뿐만 아니라 커피·음료수·냉수와 같은 것들도 모두 활용되며 일상생활에서는 걷기, 서있기, 청소하기, 씻기, 누워있기, 앉아있기 등 우리가 흔히하는 행동들에서 명상을 체험하게 된다. 차 명상은 일상에서 우리를 괴롭혀온 모든 번뇌 즉, 스트레스를 일상 속에서 해소해낸다는 점에서 권해볼 만한 명상법으로 보여진다. 차뿐만 아니라 차명상 역시 참 행복으로 들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문임을 명심해볼 일이다.
  • [공교육 정상화… 지금 학교에선] (4) 혁신 모범 3인의 학교장

    [공교육 정상화… 지금 학교에선] (4) 혁신 모범 3인의 학교장

    어느 조직이든 리더십이 조직의 성패를 좌우하게 마련이다. 이는 학교도 마찬가지다. 학생들. 의 학습권 신장과 교사의 교육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 부단히 아이디어를 짜내는 학교장들이 적지 않다. 스스로 학교혁신에 나선 3명의 학교장 운영사례를 통해 학생·교사·학부모 등 학교 구성원들이 나아갈 바를 소개한다. 초·중·고 교장은 일반적으로 교사경력 28년 이상이 되어야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교장 초빙·공모제가 도입되면서 40대 교장들도 일부 있으나 대부분은 50대 후반이다. 현행 교육법상 교장은 학교운영에 있어서 많은 권한을 위임받고 있다. 초·중등교육법상 교장은 교무를 총괄하고, 소속 교직원을 지도·감독하며, 학생을 교육하도록 되어 있다. 우선 교장은 교육과정 편성을 위하여 학칙, 교육목표, 교과편제 및 수업시간(이수단위), 학년목표, 교육내용, 교육방법, 학습매체, 학습시간, 학습시기, 평가계획을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 즉, 학칙의 제정, 학생의 징계, 학생생활기록 작성·관리, 학생의 조기 진급·조기졸업 결정, 수업일수 결정, 임시휴업 결정, 수업운영방법 결정, 수업의 개시·종료 시각 결정, 체험학습·위탁교육 실시, 전·편입학 추천 및 허가, 고등학교 입학전형 방법결정,2종 도서 선정 등의 권한을 갖는다. 수학여행지 결정 권한도 학교장에게 있다. 인사권의 경우, 대부분 지역교육청이나 교육감 승인을 받아야 하나 독자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적지 않다. 교육과정 운영상 필요한 경우에 겸임교사·명예교사·시간강사를 임용할 수 있다. 초빙교사 추천권도 있다. 또 연수대상자 지정, 연수허가, 당직근무 결정 등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이들은 내년 2학기부터는 당사자들의 동의를 전제로 교원전보 유예 권한도 가질 전망이다. 교육청별로 4∼5년 주기로 실시되는 현행 순환전보가 획일적이라는 지적에 따라서다. 재정운영에 있어서는 예산편성을 자율적으로 할 수 있으며, 학교운영지원비 등의 액수를 학교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결정할 수 있다. 또 수업료·입학금의 면제·감액, 징수기일의 지정, 수업료 체납학생에 대한 출석정지·퇴학처분, 사립학교의 수업료·입학금 결정 등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김홍섭 윤중중 교장 서울 윤중중 김홍섭 교장은 점심 식사를 오전 11시45분 전에 끝낸다. 아침을 걸러서가 아니다. 이때부터 오후 1시20분까지 이어지는 학생들의 점심식사 모습을 지켜보기 위해서다. 대체로 마음맞는 친구들끼리 어울려 밥을 먹는다는 점에 착안, 평소 어울리지 않던 학생이 새로운 식사자리에 합석하는 게 보이면 학생지도 때 참고하도록 생활지도부 교사에게 연락한다. 그는 학생들의 교우관계를 훤히 꿰고 있다. 각종 경시대회에서 상받은 학생은 이름을 외웠다가 만날 때면 칭찬과 격려를 해주는 것을 잊지 않는다. 이같은 그의 세심한 학교운영 소식이 소문이라도 퍼졌는지 시설 좋은 인근의 다른 중학교를 마다하고 이 학교로 오려는 학생들이 늘었다고 한다. 김 교장은 “신체장애가 있는 여의도 초등학교 6학년생이 장애인을 위한 엘리베이터가 있는 인근의 다른 학교로 가지 않고 우리 학교로 오겠다고 하는 등 요즈음은 전출자보다 전입자가 더 많다.”고 말했다. 김 교장은 이 장애학생을 위해 영등포구청을 찾아가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 설치 공사를 해내는 열성을 보였다. 김 교장의 학교운영 혁신사례는 더 많이 있다. 이 학교는 가정통신문을 학부모 휴대전화에 문자 서비스로 보내주고 있다. 학생들에게 성적표를 전달하면 부모들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는 등 자녀의 학교생활을 학부모들이 모르는 경우가 있어 학부모 동의를 얻어 문자메시지로 보내준다고 한다. 지난 12일 임채준 한성과학교 교사 등 다른 학교 교사들을 강사로 초빙해서 실시한 영어, 수학 공부 및 논술지도 등 효율적인 학습법에 대한 강좌는 큰 인기를 끌었다. 참석했던 학부모들은 강의 내내 일일이 메모를 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학생들의 교육환경을 개선하려는 그의 노력은 학교 공원화 사업에서도 돋보인다. 김 교장 부임 이후 윤중중의 운동장 조경공간은 예전보다 훨씬 넓어졌다. 여의동로변에 있는 방음벽과 학교 담벼락 사이에 있던 시유지를 활용하기 위해 담벼락을 허물어 나무를 심었다. 비용은 구청에서 지원받았다. 관할 구청을 찾아다니며 발품을 판 성과였다. ‘신입생을 위한 길라잡이’라는 포켓용 가이드 북도 만들어 배포했다. 외국 학교의 경우, 입학에 앞서 자세한 안내책자를 만들어 설명회도 갖는 등 교육 수요자들을 배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는 매우 신선한 일이었다. 이 책자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수업내용 차이, 학년별 교실 위치, 일년간의 학교 일정 등이 일목요연하게 표시되어 있어 새로운 환경에 낯설어 하는 학생들의 심리적 부담감을 덜어준다. 고화순 연구부장은 “3월만 되면 소풍은 언제 가고 방학은 언제인지 묻는 학생들이 많아 두고 두고 볼 수 있게 책자로 만들었다. 다른 학교에서 참고할 수 있게 보내 달라는 등 반응이 좋다.”고 귀띔했다. 김 교장은 “교육은 성적을 올리는 게 아니라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과정”이라고 규정한 뒤, 사교육 시장의 폐해를 질타했다.“적지않은 학부모들이 선행학습을 위해 학원으로 자녀를 내몰고 있으나 원리를 배우는 게 아니라 결과만 배움으로써 학교교육에 대해 호기심을 상실해 버리게 만드는 소모적 교육”이라고 비판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최동환 동대문중 교장 “아예 선생님들이 학교에 못 남아 있게 학교 문을 잠가 버리든지 해야겠어요.”이같은 무시무시한(?) 말은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서울 동대문중 최동환 교장이다.“교사로서의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선생님들이 평일에도 밤 10시 퇴근을 밥먹듯하고 휴일에도 출근하는 경우가 많아 앞으로는 방과 후 아예 문을 잠가야 할 정도”라는 그의 애정어린 엄포성 발언이다. 동대문중은 2003년 9월 최 교장이 부임한 뒤 교사들의 연구력이 왕성해진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전문성 신장’은 교사들 귀가 아플 정도로 강조하고 있는 최 교장의 지론이다. 최 교장이 역설하는 교사 전문성은 경력있는 선생님들이 만든 교사학습 모임인 ‘백합회’(회장 허영혜 국어과 교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모임은 꾸준한 활동 끝에 장학사 2명을 배출했으며 승진점수 1등급을 확보한 회원도 나왔다. 다양한 교과연구 및 자기계발로 관할 동부교육청에서 관련 자료를 동부교육지원센터에 올려줄 것을 수시로 요청했을 정도다.‘불이 안꺼지는 학교’라는 허 교사를 비롯한 일반교사들의 이구동성이 낯설지 않다. 12명의 교사가 활동 중인 백합회외에 ‘TLF’(Teacher leader of future)라는 젊은 교사들의 연구모임도 있다. 효율적인 교과지도 방안을 연구하고 학생들 생활지도 요령도 선배교사들로부터 전수받는 등 교사로서 능력을 배양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실력으로 똘똘 뭉친 교사들의 교육력은 학생들에게 그대로 전수된다. 동대문중은 교육부에서 수준별 이동수업 방침을 마련하기 전에 자체적으로 영어·수학 교과에 한해 수준별 수업을 먼저 시작했다. 김군배 교감은 “중 2·3학년생을 대상으로 한 수준별 이동수업으로 교육부에서 선정한 전국 100대 우수학교에 뽑혔다.”면서 “현재 심화·보충·기본반 등 3개반을 운영하고 있으나 새해부터는 4개 반으로 더 나눠 지도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이 학교는 학부모 활동도 왕성하다.‘내 키만큼’이라는 학부모 독서클럽(회장 김계숙 어머니)회원들을 위해 학교는 복사기, 코팅처리기 등을 갖춘 학부모실을 마련해줬다. 이 곳에서 어머니 회원들은 자녀들의 독서능력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를 마련하고 있다. 2학년 딸 자녀를 둔 김 회장은 “집에 있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다양한 일들을 클럽 활동을 하면서 체험하고 있으며 최 교장 선생님 지원으로 자녀교육와 인성교육 등에 대한 전직 교장들의 특별강의도 듣는 등 시야를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 최 교장 부임 당시 이 학교는 학생들이 컨테이너 박스에서 수업하는 등 어려운 여건이었으나 지난해 말 개축을 거쳐 현재는 근사한 교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점심 값이나 수련회 경비 등을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 등 교육 여건은 여전히 열악한 실정이다. 최 교장은 “학부모와 교사들이 바자회를 열어 도서기증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도서관에 읽을 책들이 부족하다. 홍보 좀 해달라.”는 부탁을 잊지 않았다. 학부모들은 “(최 교장은)한번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꽃게’같은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새해에도 동대문중의 계속적인 변신이 기대된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김영미 서빙고초 교장 서울 서빙고 초등학교는 학부모들의 경제사정이 넉넉지 않아 다른 지역과 달리 자녀들의 영어 공부를 시킬 여력이 없다. 게다가 인근에 있던 군인아파트가 재건축을 준비하면서 주민들이 빠져나가 학생 수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이 학교 학생들의 영어 교육열기는 뜨겁기만 하다. 학교 주변에 위치한 주한미군 부대를 십분 활용하기 때문이다. 서빙고초등학교는 미8군 근무지원단과 자매결연해 재량활동 시간 중 1시간 동안 학생들이 미8군 사병 및 카투사들로부터 무료로 영어를 배운다. 또 자체 영어 평가 시험를 거친 4·5학년생 16명으로 구성된 영어 동아리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부터 1시간 동안 영어회화를 배우고 있다. 이같은 학습열기의 중심에 김영미 교장이 있다. 2년 전부터 해오던 영어교육은 한 때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김 교장이 적극 나서 지금은 별도 교재까지 마련하는 등 더 잘 이뤄지고 있다. 김 교장은 “미군들이 인원감축에다 훈련이 많아져 계속하기 어렵다는 뜻을 전달해 왔으나 계속하자고 했다.”고 소개했다. 이 학교는 이같은 영어학습 활동이 제대로 학생들의 영어실력 향상으로 이어지는지를 영어듣기 대회 및 말하기 대회를 통해 평가도 하고 있다. 외국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지난 10월 가을 운동회 때에는 주한미군들을 초청,2인 3각 달리기 등도 했다. 김 교장은 “이런 과정을 거친 덕분인지 학생들은 외국인을 보면 먼저 인사하는 등 동서양 문화적 차이에 따른 두려움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전한다. 학생들의 영어실력도 다른 학교 학생들에 비해 우수하다. 김 교장은 “졸업생들이 70여명에 불과하지만 인근에 있는 오산중·한강중 등에 진학한 우리 학교 출신 학생들이 늘 상위 10위권 이내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김 교장의 이색 교육활동에 ‘반가(班歌) 만들기’라는 게 있다. 학급마다 자신들의 학급을 돋보이게 할 만한 노래를 만드는 것이다. 김 교장이 평교사 시절 아이디어를 냈던 것인데 협동·인화단결은 물론 애반심·애교심·애향심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차숙경 교사는 “다른 학교 같으면 안전사고 발생을 걱정해 학교장 차원에서 계절운동을 게을리하는 경우도 있으나 우리는 교장 선생님이 지난 여름 수영대회 개최를 결정한데 이어 이번 겨울에는 강원도에서 스키강습도 할 예정”이라고 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학생들의 단합심,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김 교장의 교육방침이 생활화된 덕분인지 지난 10월 말 교육청이 새벽 5시30분에 기습적으로 실시한 학교 급식시설 점검에서 이 학교는 서울시내에서 가장 높은 최우수 점수를 받기도 했다. 김 교장은 젊은 교사들이 부부싸움이라도 한 날이면 다음날 교사들이 교장실을 찾아와 상담을 부탁해올 정도로 자상한 ‘덕장형’ 교장이다. 하지만 김 교장은 “꼭 지니고 가야 할 것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는 소신도 갖고 있다. 전교생들에게 바른 글쓰기를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컴퓨터 보급으로 공책과 연필 사용빈도가 뚝 떨어지고 있으나 초등학교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글쓰기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앙겔라 메르켈/게르트 랑구트 씀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모르는 여인’ 구동독의 촌부에서 독일 총리에 오른 앙겔라 메르켈의 주변 인물들이 하는 말이다. 독일 정계에서 그녀만큼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서 이렇게 높은 자리에 오른 이는 없었다. 또 그녀만큼 최초·최연소 기록을 갈아치운 이도 없었다. 통일독일의 첫 동독출신 총리, 독일 역사상 첫 여성총리라는 기록 이전에 이미 그녀는 최연소 장관, 최초의 기민당 여성 사무총장 및 당수란 기록을 세웠다. 그럼에도 앙겔라 메르켈은 여전히 스핑크스만큼이나 불가사의한 존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독일 본 대학 정치학 교수인 게르트 랑구트가 쓴 ‘앙겔라 메르켈’(이수연 등 옮김, 이레 펴냄)은 정치적으로 초고속 성장을 이룬 동인과 함께,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메르켈의 단면들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1954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메르켈은 생후 1개월만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동독 템플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열 세살부터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독립해 생활하기 시작한 그녀는 자신감 있고 차분하며,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었다. 학창 시절 서독 내각 구성원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고 있을 정도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동베를린 물리화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 1989년 동독 민주화운동 단체인 ‘민주변혁’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에 입문한다.1990년 동독 정부 부대변인에 취임하고, 독일 통일후 실시된 총선에서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된 뒤 헬무트 콜 전 총리의 발탁으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이 된다. 이후 기민당 부당수, 환경부 장관, 기민당 사무총장, 당수, 총리에 이르기까지 그의 앞엔 항상 ‘최초’,‘최연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책은 그녀의 출생부터 현재까지 성장의 흐름을 짚으면서 그 흐름 아래 잠복해 있는 그녀의 다양한 내면을 하나씩 파헤쳐나간다. 저자가 보기에 메르켈은 어느 누구보다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하다. 그녀는 탁월한 업적으로 자아를 구현하기 위해 끈질기게 모든 것을 거는 사람이고, 이룬 성과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통해 자아를 확인한다. 장관 초기시절, 헬무트 콜이 각료회의에서 퍼부었던 말에 상처를 받아 쉽게 눈물을 흘렸던 그녀이지만,‘권력’이란 마약의 효과를 맛본 그녀는 철저한 ‘정치 중독자’가 됐다. 메르켈은 또 과학자 출신인데다, 동·서독을 모두 경험한 이력 때문에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로운 만능선수로 통한다. 미래에 대한 장기적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당면한 사회의 효율적인 ‘기능’을 항상 강조한다. 저자는 그녀의 삶이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지적한다. 아버지의 다가가기 어려운 성격, 엄함, 절대성의 요구, 이중적 삶 등은 아버지의 사랑을 구하던 딸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메르켈의 현재의 삶은 구동독 체제와 깊이 얽혀 있는 그녀의 아버지로부터의 정치적 해방이라는 것. 그럼에도 그녀는 여전히 아버지에게 자신을 증명해보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개인적 사고와 국가에 대한 존중이 철저히 구분되어야 했던 동독시민으로서의 경험은 메르켈이 타인과 정서적 끈을 만들어내는 것을 어렵게 한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사실은 알려주는 것이 없다. 학술아카데미 시절의 동료로부터 전 연방장관들까지 그녀와 많은 시간을 함께했음에도 ‘인간 메르켈’에 대해선 잘 모른다. 따라서 저자는 그녀가 폭풍 속에서도 그녀를 받쳐줄 사람들을 갖지 못하고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같은 개인주의 성향으로 말미암아 메르켈은 당내에서도 소수파에 속할 때가 많으며, 마치 고향을 잃은 사람처럼 보일 때도 있다. 저자는 책을 쓰기 위해 메르켈 본인에서부터, 고교동창생, 선생님, 고향의 급우들, 대학교수, 동료 정치인 등 그녀 주변 인물 140여명을 인터뷰했다. 그들이 보기에 그녀의 성공 요인은 1등에 대한 남다른 욕망, 실용주의 노선, 뛰어난 상황판단력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마따나 ‘앙겔라 메르켈의 인생이 동서 양 독일이 함께 성장하는 과정의 살아 있는 증거’이기 때문에 독일 사람들이 그녀를 택했는지도 모른다.1만 1000원.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진단명: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 지음

    ‘사이코패스(psychopath)’. 겉은 멀쩡하면서도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반사회적인 성격장애자를 뜻한다.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이 국내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사이코패시(정신병질) 진단을 받으면서다. 사이코패시는 내부에 잠재돼 있다가 범행을 통해서만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주변에서는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당신의 인생을 한순간 지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사이코패시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브리티시컬럼비아대 심리학과 로버트 D 헤어 명예교수가 쓴 ‘진단명:사이코패스-우리 주변에 숨어 있는 이상인격자’(조은경·황정아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는 우리 사회의 안녕을 위협하는 인간유형에 대한 연구서다. 갈수록 늘어나는 강력범죄와 출소자의 높은 재범률, 가정폭력의 심각성, 각종 화이트칼라 범죄, 법적 제재가 어려운 일상생활 속의 ‘괴롭힘’행위 등의 본질을 이해하고 대책을 마련하려면 사이코패시에 대한 지식과 평가는 매우 필요하다. 저자는 이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지난 25년간 임상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사이코패시의 특징과 원인, 치료와 대책 등 전반적인 문제들을 일반인도 알기 쉽게 풀어썼다. 성격장애의 일종인 사이코패시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인성과 사회적 환경이 결합돼 나타나는 전인격적인 병리현상인 데다가, 발현 양상이 너무나 다양하고 죄질이나 피해 정도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 연쇄살인범·성폭행범 등 범죄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변호사·의사·대기업 간부 등 상류층 전문직이나 여성·청소년·어린이에게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가족, 연인, 친구, 이웃, 동반자의 가면을 쓰고 우리 인생을 위협한다. 사이코패스 중 극소수만 교도소에 있고, 대부분은 우리와 함께 정상인의 얼굴로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사이코패스와의 인터뷰, 그리고 그들에게 피해를 당한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사이코패스에 대한 평가표를 제시한다. 그들은 냉담하고 충동적이고 무책임하며 이기적이다. 또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끼친 피해를 느끼지 못해 죄책감이나 후회도 없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가표를 보면서 주변사람들 중 한두명쯤 머릿속으로 떠올릴 수 있겠지만 이들을 함부로 사이코패스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된 개인주의와 타인에 대한 무관심, 경쟁을 부추기며 승자만을 인정하는 사회 분위기는 사이코패스의 위장잠입을 수월하게 만들고, 심지어 그들을 이 사회의 최후 승자로 살아남게 만든다고 경고한다. 사이코패시는 타고나는 것으로 치료도 개선도 거의 불가능하지만 발현양상은 후천적인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안정된 보살핌을 제공하면 그들의 욕구를 법적·사회적 제재를 벗어나지 않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 사이코패스만의 맞춤형 치료법은 그들의 양심에 호소할 것이 아니라, 반사회적인 행동을 통해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 그들의 욕망을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길을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1만 3800원.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발언대] 순국선열의 날에 생각한다/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금년은 광복 60주년이 되는 해다. 일제 침략으로부터 광복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민족은 암울한 질곡의 세월 속에 살아야 했다. 그 가운데서도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국내는 물론 머나먼 타국 땅에서 풍찬노숙(風餐露宿)하며 오로지 빼앗긴 나라를 되찾겠다는 신념 하나로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으셨던 수많은 선열들의 희생이 밑거름이 되어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강탈당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항거하다 끝내 꿈에 그리던 조국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위훈을 기리고 숭고한 애국정신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1939년부터 11월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제정하였다. 그 배경은 1905년 11월17일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비분강개하여 순절하거나 의병항쟁으로 국가와 민족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던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들 중 상당수가 순국선열의 날이 있음을 알지 못할 뿐더러 순국선열이란 용어조차 낯설고 생소한 느낌을 갖고 있다. 즉 학교 조회시간이나 행사 참가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은 수없이 하고 있으나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학생이나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분을 불천위(不遷位)라 하고 그 분들에 대하여는 온 국민이 한마음으로 예우하고 존경하였다. 그 가문에서는 신위(神位)를 사당에 모시고 후손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냈다. 이들 후손은 그 조상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으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그 시대 최고의 명문가로 인정받았다. 이는 국가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인물을 영웅으로 대접하고 그런 훌륭한 인물이 탄생된 가문을 영구히 추앙하는 많은 선진국가의 제도와 유사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국민들은 선진국에 비해 국가를 위한 희생과 공헌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부족한 듯하여 부끄럽기 짝이 없다. 왜냐하면 국권회복을 위해 위국 헌신한 수많은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독립정신은 물론 조국 광복 이후에도 대한민국을 지키다 소중한 신명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피와 땀, 남겨진 유가족의 비통함을 쉽게 잊어버린 채 세대간·지역간·계층간 갈등으로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물질만능과 소비향락 주의가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국가에서는 우리 사회의 그릇된 풍조를 바로잡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을 예우하고 추모하기 위하여 매년 현충일이나 순국선열의 날 등을 정부기념일로 정하고 기념식과 추모제전을 거행하고 있다. 이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 대해 그 집안 대대로 불천위 제사를 지낸 것과 같이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는 날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날만큼은 우리 국민 모두가 경건한 마음으로 일제에 항거하다 돌아가신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애국정신을 기리고 그 분들의 고귀한 뜻을 계승·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나는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라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말씀은 조국을 위한 모든 순국선열들의 염원을 대변한 것이기도 하다.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우리 모두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수많은 순국선열들과 국가유공자들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다시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정하철 서울지방보훈청장
  •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

    한국 가톨릭 최초의 추기경

    약간 노르스름한 얼굴, 코와 입이 특징적이다. 계획을 묻자『뭘 했으면 좋을지 기자 양반 의견 좀 듣자』고, 상당히 여유있는 일면도 보인다.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나「전하」로까지 발돋움한 김수환(47) 추기경(樞機卿)을 명동성당 안의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한국 가톨릭 2백년 역사상 최초의 추기경 서품 결정 3월 28일 한국의「가톨릭」192년 최고 최대의 경사를 맞았다. 서울대교구의 김수환 대주교가「로마」교황「바오로」6세로부터 추기경(카디발)의 서품이 결정되었다. 김수환 대주교는 1946년 중국의「티엔」대주교, 53년 인도의「그라시아스」대주교, 60년「필리핀」의「산토스」대주교, 일본의「다쓰오·도이」대주교가 추기경 서품을 받은 이래 동양인으로는 다섯 번째로 추기경으로 임명된 것. 『한국의「가톨릭」도 이제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이건 나 개인의 영광이 아니라 한국과 한국 천주교의 영광이라 해야겠습니다. 너무 뜻밖의 일이라 도무지 얼떨떨하군요』 얼떨떨한 듯했으나 기쁨의 빛 또한 역력했다. 지난 해 5월 30일 사상 최연소의 대주교로 착좌(着座)한 김대주교는 착좌 10개월 만에 다시 내려진 추기경이라는 벅찬 영광이 중압스러운 듯, 크게 파안(破顔)했다. 추기경은 천주교회에 있어 교황 다음가는 성직자. 추기경 회의나「로마」교황청의 여러 성성(聖省)에 있어 교황의 고문역 또는 협력자로 교회 일반행정에 직접 참여한다. 특히 추기경은 교회 전반의 행정임무, 교황 선거권 및 피선거권 그리고 공의회(公議會)의 의결권을 가지며「로마」교황청의 여러 성성과 관청의 장관 및 구성원이 될 자격이 부여됨은 물론 교황이 특파하는 대사로도 임명될 수 있다. 추기경에는 보통「전하(His Eminention)」라는 존칭이 부여되며 외국여행 때「가톨릭」교국에서 국빈(國賓)으로, 기타 국에서는 VIP로 우대된다는 것. 김추기경의 표현을 빌면 5억의 신자를 가진「가톨릭」교회를 하나의 제국으로 가상할 때 추기경은 그 제국의 왕자이다.「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하고「사랑의 봉사」에 몸을 내던질 각오와 사명을 한층 뿌듯이 절감케 된다고 - . 3월 29일 해외여행에서 돌아온 김추기경은 30일 상오 10시 명동성당에서 일요「미사」를 집전했다. 사회과학적인 측면에서 현대 교회의 진로를 연구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항상 주장하는 그는 이날의 강론에서『오늘의 혼란된 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사랑과 믿음으로「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할 것』을 역설했다. 교회도 사회도 개인도 모두『방향감각을 잃고 있다』는 것이 김추기경의 탄식. 가난한 농군 아들로 2차대전 땐 사경(死境)겪고 김수환 추기경은 1922년 가난한 농부 김영석(金永錫)씨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할아버지 때부터 독실한 교인인「가톨릭」교도 집안. 일본 상지(上智)대학 재학시절 학병으로 끌려가 미군포로가 되는 등 젊은 날은 거듭되는 시련과 회의 속에서 보냈다. 51년 성신(聖神)대학을 졸업, 30세에 신부의 서품을 받았으며 56년엔 서독에 유학,「뮌스터」대학에서 6년 동안 신학과 사회학을 전공했다. 이름 모를 남양의 어느「정글」속에서 종전을 맞은 그는 미군포로가 되어 본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숱한 사경을 헤맸다.「라틴」어는 물론 영·독·불어에도 능통한 그의 어학 실력은 이 미군포로 시절에 다져진 것이라는 것. 『현대는 정신상실의 시대입니다. 교회가 이러한 시대 조류에 무감각할 수는 없어요. 현 시점이야말로 우리(교인)가 누구보다 먼저 자각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돼요』 추기경은 보통 홍모(紅帽)와 인의(仁衣)를 입는다. 휘장도 대주교 것보다는 훨씬 호화로운 것으로 바뀐다. 그러나 김추기경은 휘장도 옷도 그대로 지금의 것을 따르겠다고 말한다. 우리나라엔 약 76만 명의 천주교 교우가 있다. 이중 대주교는 5명, 주교는 11명이며「몬시뇰」5명, 신부 808명, 수녀 2,229명, 수사 238명의 성직자가 있다.(68년 10월 현재) 김대주교가 47세로 추기경이 된 것은「아시아」사람으론 비교적 빠른 셈이지만「이탈리아」의 어느 대주교는 35세에 추기경이 된 적도 있다. 이번에「바오로」6세에 의해 발표된 새 추기경은 모두 35명. 이로써「로마·가톨릭」교의 추기경 총수는 교회사상 가장 많은 136명으로 늘어났다. 항상 입가에 흘리는「캐치·워드」로「바울」서 26장 28절『여러분과 모든 이를 위하여』를 외는 김추기경은 무엇보다 온후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장년신사. 궐련의 자연(紫煙)을 조용히 내뿜으며 30분 동안의「인터뷰」를 달변으로 일관했다. ”가족계획 자체 반대 않아, 신앙은 개인의 자각으로” - 오늘의 신앙이 지양해야 할 궁극적인 길은? 『사회적인 신앙의 시대에서 우린 지금 인격적인 신앙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신앙은 결국 개인의 자각으로 인격적인 요소에 의해 발전해야 한다는 뜻이다. 영세 받은 신자에게 재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은 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지론이다』 - 산아제한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 『가족계획 자체를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 방법과 경향을 올바로 잡자는 것이다. 우리의 현실을 보면 부유한 집에서 오히려 산아제한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것은 곧 가정의 붕괴·도의의 퇴폐를 뜻한다. 가정이 정신적으로 퇴폐해질 때 그 사회가 정화되고 안정되길 바랄 수 없는 것이다』 -「히피」들을 어떻게 보는지? 『미국서 보았는데「히피」가운데 대다수의 아이들이 상류가정의 아이들이었다. 그들의 행위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적인 성격의 폭발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 사회문제로 자주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범죄와 이들「히피」의 행위와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인가. 현대의 성년들에게 보다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 선데이서울 69년 4/6 제2권 14호 통권 제28호 ]
  • [사설] 부실 우려되는 인구주택총조사

    통계청의 2005년 인구주택총조사가 종반으로 접어든 가운데 조사원과 주민들의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질 않는다고 한다. 조사원의 심야 방문과 불필요한 질문, 답변서 관리 소홀에 응답자의 불성실한 답변, 이혼 여부 등 조사항목에 대한 논란이 뒤엉키면서 곳곳에서 시비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정보 노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다소 문제점이 부풀려진 측면도 있겠으나 이런 논란들은 그만큼 우리 사회와 국민의식이 빠르게 변화했음을 방증한다. 개인주의 확대로 인권과 사생활 보호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기 때문인 것이다. 문제는 공공이익을 위한 참여의식은 이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인구조사에서도 답변을 거부하거나 실상과 다르게 응답하는 등 불성실한 답변이 적지 않다고 한다. 심지어 조사가 제대로 안 되다 보니 조사원이 멋대로 답변지를 작성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실상이 이렇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구조사는 국가통계의 기본이다. 조사가 부실하면 그릇된 통계를 낳게 되고, 이는 곧 국가정책의 올바른 수립과 추진에 결정적 장애로 이어진다. 통계가 정확해야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복지정책을 제대로 세울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9일 현재 조사대상의 81.6%인 1300여만 가구가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대략 95%의 응답률을 보인 과거에 견줘 대체로 순조로운 진행이다. 관건은 오는 15일까지 남은 조사기간이다. 올바른 국가통계와 국가정책 수립을 위해 아직 조사에 응하지 않은 300여만 가구의 적극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아울러 통계청 역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난 시대 변화상을 감안, 인터넷 조사를 확대하는 등 조사기법을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이근식 서울시립대교수, 이번엔 ‘상생적 자유주의’

    이근식 서울시립대교수, 이번엔 ‘상생적 자유주의’

    ‘자유주의’는 폭넓은 단어다. 그러다 보니 그냥 자유주의 하면, 그 내용물을 짐작키 어렵다. 그래서 ‘고전적’,‘신(新)’,‘질서’,‘공동체’와 같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생적’ 자유주의다.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이근식 교수가 ‘자유와 상생’(기파랑 펴냄)에서 제시한 개념이다. 상생적 자유주의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개인주의 위에 서 있는 자유주의는 사회적 공론에 소홀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보완하겠다고 나온 것이 ‘공동체적 자유주의’인데, 이 단어는 마치 양복 입고 갓 쓴 모양새입니다. 자유주의는 개인주의인데 ‘공동체’라는 단어가 어울릴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동시에 ▲공동체 자유주의는 공동체 내부의 문제는 해결하더라도 공동체간 갈등은 해결할 수 없고 ▲공동체가 사람들의 모임이다 보니 환경문제 등에도 대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래서 공동체적 자유주의의 폭을 더욱 넓힐 수 있는 ‘상생적’이라는 단어를 고안했다는 설명이다.‘상생적’은 또 다른 의미도 있다.“개인적으로 존 스튜어트 밀을 좋아하는데 그는 ‘갈등하는 영향력’을 강조합니다. 저는 그것을 상충되는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유·평등, 분배·성장, 진보·보수, 이것들이 서로 적절하게 균형을 이뤄야 둘 다 나태와 안일에 빠지지 않고 생명력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의 개념이 왜 이리 혼란스러운지 물었다. 사실 이 교수는 책에서 지금의 시대정신을 자유주의로 규정한 뒤 자유주의를 정치적 자유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로 구분하고, 정치적 자유주의에 높은 점수를 줬다. 그러나 정치적 자유주의도 모호하다. 실제 좌파 정치학자들 일부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국가의 적극적인 개입·조정과 재분배’로 해석하기도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마르크스도 정치적 자유주의자다. 이 교수는 선을 그었다.“그건 ‘자유’가 너무 좋은 단어라 그렇습니다. 대표적 좌파학자인 월러스타인은 자유주의를 ‘대중에 대한 유화주의’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사기라는 것이지요.” 이 교수는 오늘날 우리의 자유주의가 혼란스러운 이유로 두 가지를 꼽았다.“자유주의가 일본과 미국에서 들어왔는데 식민지배와 광주사태의 기억으로 어떤 거부감이나 선입관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자유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소개가 없습니다.” 이 교수가 ‘자유와 상생’을 펴낸 것도 ‘대학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자유주의를 이해하도록 하겠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덕분에 목차만 봐도 감을 잡을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체계적인데다 서술도 쉬워서 읽는 데 부담이 전혀 없다. 이 참에 ‘이근식 자유주의 총서’라는 타이틀로 내년까지 아예 5권을 내놓을 생각이다.‘자유와 상생’은 그 첫번째 결과물이고 ‘애덤 스미스’,‘존 스튜어트 밀’,‘서독의 질서 자유주의’,‘신자유주의’까지 줄줄이 예정되어 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송두율칼럼] 예술과 정치

    [송두율칼럼] 예술과 정치

    윤이상 선생의 타계 10주기를 기념하는 행사가 남과 북, 그리고 고인이 잠들고 있는 이곳 베를린에서도 있었다. 윤 선생이 영면하던 날 매섭게 몰아쳤던 그 찬 눈보라 대신에 찾아 온 결코 흔치 않은 쾌청한 늦가을 날씨는 마치 지난 10년 동안에 고인을 대하여 왔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를 대신 전해주는 것 같았다. 물론 국가 공권력의 고인에 가한 부당한 박해에 대해서 공식적인 사과나 복권조치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고인의 예술 그리고 이 예술이 고귀하게 승화시킨 그의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에 대해서 폭 넓은 이해가 그동안에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가 고인과 나눈 숱한 대화는 예술은 물론, 우리의 민족적 현실에 대한 내용이 그의 대부분을 이루었다. 물론 철학자와 예술가가 만나 민족문제를 논할 때 현실 정치인들끼리 만났을 때와는 다른 흐름이 대화의 기저에 놓여있다. 그러나 이 기저는 니체가 이야기했던 지배적 가치나 도덕체계, 나아가 현실정치의 질서를 파괴하는 철학자의 ‘지독한 귀족주의’나 안하무인격인 예술가의 ‘예술적 폭정(暴政)’은 결코 아니었다. “정치는 예술을 대신할 수 없지만, 예술은 정치를 대신할 수 있다.”는 서독의 초대 대통령 테오도르 호이스 (Th.Heuss)의 주장에 고인이나 필자도 공감했었다.‘정치의 심미화(審美化)’가 아니라 일종의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에 대한 동의라고 볼 수 있다. 일상적 체험이 아니라 새로운 전망을 열어주는 신선한 심미적인 충격이 상상력이 결여된 지루하고 지저분한 정치의 혁파로 연결되기를 기대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도 유럽에서처럼 개인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체험으로부터 빚어진 ‘충격의 미학’이었기에 우리의 대화는 민족문제를 떠날 수 없었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민족문제를 예술과 정치를 매개로 해서 제기한다는 것은 곧 나치의 ‘정치의 심미화’로 오해되는 강한 분위기가 있었기에 고인의 ‘나의 땅, 나의 민족’이나 ‘광주여 영원히’같은 교향시(交響詩)가 일종의 정치적인 ‘프로그램 음악’으로 곡해되기도 했다. 그러나 가령 스메타나의 ‘내 조국’이나 시베리우스의 ‘필란디아’도 민요, 민속춤, 설화와 같은 집단적 심미적 체험을 통해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러한 고인에 대한 평가는 순전히 편견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는 상당히 복잡하다. 나치 독일의 ‘정치의 심미화’가 여전히 대표적 부정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지만, 오늘날 미국의 대통령선거가 보여주는 정치의 상업화 내지 상징조작도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지 않다. 대량소비사회나 정보사회에서는 정치도 상품이 되어야만 하고, 정치의 내용보다는 이의 포장기술이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라는 전통적인 예술의 코드보다는 이제는 어떤 분위기에 ‘어울린다.’ 또는 ‘어울리지 않는다.’라는 새로운 코드가 더 많이 작동을 하고 있고, 또 일상적인 모든 사물이 곧 예술로서 해석될 수 있는 예술적 코드의 인플레이션 현상도 바로 이러한 ‘정치의 심미화’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고인이 지향한 ‘심미적 체험의 정치화’는 그러한 상징 조작을 의미한 것은 물론 아니었고, 또 미추(美醜)라는 예술의 전통적인 코드를 완전히 버린 전위적인 체험에 심취한 것도 아니었다. 바로 고인의 ‘더 많은 인간성’이라는 예술적 코드는 심미적 체험과 정치를 독특하게 하나로 통일시킬 수 있었다. 고인은 민족 분단으로 야기된 비인간적인 고통을 반추(反芻)하지 못하는 심미적 체험이야말로 실로 공허하고 무책임하기가 짝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불편한 몸을 이끌고서도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음악제를 열었다. 그때로부터 울려 펴진 남북의 화음은 정치적인 소음을 뚫고 아직도 우리의 귓가를 맴돌고 있다. 상상력이 메마르고 둔중(鈍重)하기만 한 우리의 정치세계에 던진 고인의 예술적 충격은 -흡사 창공에 흐르는 구름처럼 결코 똑 같은 모습을 보여 주지는 않겠지만- 앞으로도 우리를 계속 깨우쳐 줄 것이다.
  •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일본은 지금 ‘등산열기’

    [세계인-우리는 이렇게 산다] 일본은 지금 ‘등산열기’

    국토의 70%이상이 산악지형인 일본에서 등산은 단연 인기다. 등산인구가 1000만명이고, 수백m에서 3000m급 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장들이 잘 정비돼 있어 등산 애호가들을 부른다. 최근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이 이른바 ‘일본 100대 명산(名山)’을 완등하면서 단풍시즌과 맞물려 등산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다만 등산으로 인한 환경파괴가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도쿄 이춘규특파원|주말인 지난 15일 도쿄 외곽 다카오산은 등산객들로 붐볐다. 산을 오르내리는 4시간여 동안 서양인들도 눈에 자주 띄었다. 어린이들도 많았다. 간편한 복장에 등산용 지팡이를 양손에 쥐고 수시간 걸리는 코스를 따라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활기찼다. ●등산열풍에 불 붙인 왕세자 나루히토 왕세자는 일본산악회 회원으로 열렬한 등산 애호가다. 다섯살 때 아버지인 아키히토 일왕의 손을 잡고 가루이자와 하나레야마(1256m)에 오른 뒤 후지산, 나스다케, 탄자와산, 반다이산 등 유명산들을 오르고 있다. 나루히토 왕세자는 지난달 27일부터 1박2일간 2000m가 넘는 야마나시현 야쓰가다케 연봉들을 종주했다. 산장에서 자며 등산을 한 건 1992년 9월 이후 13년만이다. 왕세자는 “초기에는 산정에 도달하는 만족감을 즐겼지만 요즘은 대자연과 하나가 돼 등산일정 전체를 즐긴다.”고 등산전문지 등을 통해 밝혔다. 니가타현에 사는 초등학교 6년생인 오쿠라(12)는 1999년 어머니(41)의 권유로 아버지(42)를 따라 등산을 시작했다. 오쿠라는 본격적으로 일본 100대 명산을 오르기 시작한 지 3년만인 지난달 24일 100대 명산을 완등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200대 명산 등 새 기록에 도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도쿄인근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한 남자 직원(57)은 2003년 7월 난치병인 파킨슨씨병에 걸렸다. 그렇지만 그는 제2봉인 야마나시현의 기타다케(해발 3193m)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발병후에도 무려 27번을 올라 지난 9일 100번째 기타다케 등정에 성공했다. 그는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고 심경을 밝혔다. ●해발 2000~3000m급 외국인에 인기 제1봉인 해발 3776m의 후지산은 물론 다카오산과 닛코의 난타이산(해발 2484m) 등 도쿄에서 비교적 가까운 산은 외국인들에게도 인기다.2000∼3000m급 산에서도 외국인들은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왜 외국인들이 일본의 산을 찾을까. 지난해 여름 일본 출장길에 주말을 이용, 무박2일로 후지산을 올랐던 필립스의 마케팅 매니저 마이클 카우프만(48)은 “일본을 상징하는 후지산에 올라 보길 원하는 서양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열정적으로 일본 산을 오르는 한국인들도 많다. 도쿄의 한 40대 주재원은 “일본 산에는 사람이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유명 산같은 정체현상 없이 등산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며 일본 등산에 본격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2년동안 이른바 ‘100대 명산’중 40개를 정복했다. ●“산장에서 자려면 예약은 필수” 등산전문서적 ‘일본백명산지도장’을 보면 일본의 등산 인구는 1000만명. 등산 애호가들의 경우 연령층이 높고 수입도 안정돼 일정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10년 장기불황에도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 등산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등산전문 출판사 ‘산과 계곡’에 따르면 등산의 경우 “옥외스포츠 중에서 최근 10년 이상 애호가 숫자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어, 인기가 일과성에 끝나지 않을 것”으로 분석했다. 전국체전에 산악경기가 1946년 제1회 대회 때부터 포함된 것도 등산인구가 유지된 요인으로 꼽았다. 이런 영향으로 일본 등산의 미래를 짊어질 고교산악부 활동도 활발하다. 전국고교체육연맹에 따르면 산악부가 활동중인 고교 수는 10월 현재 1477개, 부원 수는 7663명이다.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은 역시 도쿄도 외곽의 다카오산이라고 한다. 이 산은 해발 599m에 지나지 않지만 수시간∼십여시간대의 다양한 등산코스가 갖춰져 있어 연간 250만명이 오른다. 지리산처럼 장시간 종주 등산로가 잘 정비된 도쿄인근 가나가와현 탄자와산(1567m)은 전문산악인들이 많이 찾는다.40년 산악인으로 정상의 미야마산장 주인인 이시이 기요시는 “산장에서 자고 가려면 예약은 필수”라고 말할 정도로 붐비는 산이다. ●100년의 일본 근대등산 역사 일본의 근대적인 등산역사는 올해로 100년째이다.100주년을 맞은 일본산악회는 나루히토 왕세자는 물론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 등 유명인사 다수가 회원으로 활동하며 일본의 등산문화 확산을 선도하고 있다. 일본산악회의 100주년 기념행사 열기도 뜨거웠다. 지난 8∼17일 일본 최대의 서점인 마루젠(도쿄역 앞) 4층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 도서·회화전은 연일 성황을 이루었다. 전시된 관련 전문서적들에는 유명인사들의 등산이야기도 소개됐다.1988년부터 등산을 시작한 후와 데쓰조 공산당 의장은 “산장에서 밤을 지새우며 다양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고 말했다. 한편 등산인구가 늘어나면서 명산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곳곳에 쓰레기가 쌓이고 등산로가 황폐해지고 있다. 후지산도 예외는 아니다. 매년 7∼8월만 일반에 개방하는데도 환경이 파괴되자 발족 7년째인 ‘후지산클럽’이 후지산 환경복원에 나섰다. taein@seoul.co.kr ■ 그밖의 레저인구는 일본의 등산인구는 일정 수준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는 반면 스키나 스노보드는 장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아 애호가들의 감소세가 두드러진다. 스키·스노보드를 즐기는 인구는 10년전의 절반인 760만명으로 최근 조사됐다. 이는 “스키 등은 즐기는 연령층이 비교적 젊고, 그에 따라 수입도 적은 편이어서 비용이 적게 드는 여가생활로 바꾼 것”으로 분석됐다. 낚시 애호가는 1690만명으로 주요 레저중 제일 많다. 낚시도 일부 고가의 장비가 있기는 하지만 바다와 강, 수로가 많은 일본에서 장비 비용이나 교통비가 비교적 적게 들기 때문에 남녀노소 두루 즐긴다고 한다. 이밖에 골프인구도 등산과 비슷한 978만명으로 집계됐다. 야구인구가 600만명인 것도 눈에 띈다.(‘일본백명산지도장’ 참고) ■ 창립 100주년 日산악회 히라야마 회장 |도쿄 이춘규특파원|대학시절(니혼대학) 산악부에서 활동하고 일본남극관측대원을 세차례나 지낸 일본산악회 히라야마 젠기치(71) 회장은 일본의 등산문화도 고령화 추세에 따라 변했다고 소개했다. 건축공학 전문가로 에베레스트 원정에도 나섰던 그를 도쿄시내 일본산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일본의 산악단체 현황은. -주요 단체는 5개다. 일본산악회는 회원이 6000명이다. 올해가 창립 100주년(15일 100주년 기념식)이다. 이밖에 일본산악협회(회원 4만명), 노동자산악연맹(3만 5000명), 히말라야협회(800명),HATJ(1000명) 등이 있다. ▶산악단체에 속해 있는 사람 수는. -약 10만명이다. 이들은 전문 등산기술을 배우고, 안전교육 등을 받는다. 나머지 개인 애호가들은 안전문제 등을 스스로 알아서 해결한다. 전문적인 안전 및 환경교육체계가 없어 문제다. ▶등산의 문제점은. -안전사고가 많다. 한 해 200∼300명이 등산관련 사고로 사망한다. 부상자도 매년 1000∼1300명이나 된다. 개인 등산 애호가들의 경우 조직적이지 않기 때문에 (험준한 일본산에서) 안전성 문제가 가장 크다. 환경보호도 중요한 문제다. ▶등산인구의 주류는. -중장년층이 주류다. 산악회 회원도 100년전에는 평균 27세였으나 지금은 64세다. 이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해 단체에는 가입하지 않는 분위기다. ▶한국과의 산악인 교류 현황은. -정례적으로 양국 산악인들이 교류한다. 한국, 일본, 중국의 3국 교류도 활발하다. 특히 3국 학생산악부원들의 교류등반은 기술·금전적으로 지원한다. 일본의 등산역사는 100년으로 기술적으로는 한국보다 20년정도 앞서 있다. 하지만 한국에는 8000m급 14좌 전체를 오른 사람이 3명이나 되지만 일본인은 한 명도 없다. ▶등산기술은 좋은데 일본인의 세계 유명산 등반이 적은 편인가. -기록을 의식한 등산 인구가 줄고 있다. 등산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등산 그 자체를 즐긴다. 산악회가 주도, 높은 유명산에 오르는 시대는 지나갔다. 반면 한국은 등산문화와 역사가 젊어 기록 등반을 선도하고 있다고 본다. 한국은 현재 등산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일본산악회가 역점을 두는 분야는. -환경·자연보호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도쿄 다카오산에는 산악회가 관리하는 숲이 있다. 앞으로 등산은 산에 오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을 보호·정비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등산장비 산업의 수준은. -등산 선진국들인 유럽에는 뒤져 있다.(일본인들은 등산을 할 때 장비를 잘 갖추는 편이어서, 지팡이나 산소통, 지도 등 관련산업이 발달한 편이다.) taein@seoul.co.kr
  • 儒林(45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儒林(451)-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7) 심도자의 말을 들은 양자는 다시 말하였다. “그렇다. 본래 자맥질을 배우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지, 물에 빠져죽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는데도 그 결과의 차이는 이처럼 심하다. 그러니 그대가 물었던 유가를 배운 앞의 세 형제 중에 누가 옳고 그른지 어떻게 판단할 수 있겠는가.” 그 말을 듣고 심도자는 조용히 물러나왔다. 그러자 함께 따라갔던 맹손양은 몹시 궁금해서 심도자에게 물었다. “저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또 선생님께서 자신의 것도 아닌 하찮은 양 때문에 왜 하루 종일 말도 안하시고 그처럼 근심스러운 표정이 되셨는지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심도자가 한심한 얼굴로 후배를 쳐다보며 말하였다. “아직도 선생님의 속마음을 모르겠단 말인가.”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심도자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라네. 곧 ‘큰길에는 갈림길이 많기 때문에 양을 잃어버린 것처럼 학문하는 사람들은 다방면으로 배우기 때문에 본성을 잃는다. 또 학문은 원래 근본은 하나인데, 그 말단(末端)에 와서 이처럼 달라지고만 것이다. 따라서 그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없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은 것이라네. 자네는 선생님의 문하에서 자라나 선생님의 도를 익히 접하였으면서도 어째서 아직까지 그 비유의 뜻을 깨닫지 못했는가.” 그제서야 맹손양은 양자의 속마음을 깨닫고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고 하는데, 어쨌든 이 고사에서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성어가 태어난 것. ‘다기망양’은 문자 그대로 ‘여러 갈래 길에 이르러 양을 잃었다.’는 뜻으로 달아난 양을 찾으려는데 길이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는 바람에 양을 놓치고 만다는 의미인 것이다. 원래 학문의 길은 하나인데, 너무 지엽적으로 갈라지고, 분파를 이뤄 그 본래의 진리가 다방면에 걸쳐 나뉘어져 오히려 그 말단적인 것에 구애될 수밖에 없어 학문의 목표인 진리를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맹자의 사상적 양심을 엿볼 수 있는 명장면인 것이다. 양자는 백가쟁명의 전국시대를 ‘여러 갈래의 길로 나누어진 다기(多岐)의 난세’로 보았으며, 진리를 ‘잃어버린 양’으로 비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 역시 자신을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도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으러 왔다.’고 선언하고 제자를 부를 때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겠다.’라고 비유함으로써 양자의 고사에 나오는 ‘잃어버린 양’과 ‘자맥질하는 어부’의 비유와 신기하게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이러한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양자가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혹은 쾌락주의자라는 후대의 평가는 결코 옳은 것이 아니며, 여러 갈래의 길로 사라진 잃어버린 양, 즉 학문의 진리를 찾으려고 치열하게 노력하였던 백가쟁명의 난세 속에 타오르던 또 하나의 횃불이라는 점일 것이다.
  • 儒林(44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儒林(448)-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제4부 百花齊放 제2장 性善說(24) 이는 묵자의 겸애설과 극단적인 반대사상이었다. 묵자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해주고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곧 ‘겸애’를 부르짖자 ‘양자’는 ‘남을 위해서는 터럭 하나도 뽑을 수는 없다.’고 부르짖음으로써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천명하였다. 묵자는 극단적인 ‘이타주의자’였으나 양자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였다. 묵자가 또한 집단주의자였다면 양자는 개인주의자였고, 묵자가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다면 양자는 쾌락주의자이기도 하였다. 맹자의 제2의 천적 양주. 그에 대한 기록은 그 어디에도 또렷이 남아 있지 않다. 여기저기 드문드문 남아 있는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양자는 묵자와 거의 동시대에 태어나 동시대에 죽었던 것처럼 보인다. 묵자가 BC479년 무렵 태어나 BC381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고, 양자 역시 430년에 태어나 360년경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어 정확치는 않지만 사람은 거의 동시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위(衛)나라 사람으로 양생(揚生), 혹은 양자거(揚子居)라고도 불렸다. 그는 중국의 사상사에서 철저한 개인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라는 비난을 받아왔으나 이는 맹자를 비롯한 후대의 집중적인 ‘반대 받는 표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양주는 오히려 노자가 주창한 자연주의 옹호자로서 도가철학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상가라고 말할 수 있다. ‘삶을 대하는 유일한 방식은 인위적으로 방해하거나 바꾸려 하지 말고 삶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즐겁게 사는 것이 바로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며, 이는 남이 아닌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였다. 지나친 집착과 탐닉은 지나친 자기 억제와 마찬가지로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남을 돕든 사랑하든 남의 일에 끼어드는 것은 무의미한 일로 따라서 ‘터럭 한 올을 뽑아 천하가 이롭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위아설(爲我說)’을 제창하였던 것이다. ‘여씨춘추’는 따라서 양주를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평가하고 있고, 한비자(韓非子)는 양자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위험한 성에는 들어가지 않았고, 군대에는 머무르지 않았고, 천하에는 큰 이익을 위해 자기 정강이의 털 한 올과도 바꾸지 않았다.…그는 물(物)을 가볍게 여기고, 삶을 중히 여기는 경물중생의 선비다.” 경물중생(輕物重生). 물질을 가볍게 여기고 생을 중요히 여기는 자연주의자 양주. 이러한 양주의 모습을 ‘회남자(淮南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생명을 온전하게 하여 그 진수를 보존하며 한갓 물질 때문에 누를 끼치지 않게 하는데, 이것이 양자가 수립한 학설이다.” 이러한 양자의 태도는 열자의 ‘양주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통해 설명될 수 있다. “털 한 올은 피부보다 작고, 피부는 사지 하나보다 작다. 그러나 많은 털을 모으면 피부만큼 중요하고, 많은 피부를 합하면 사지만큼 중요하다. 털 한 올도 본래 몸의 만분의 일의 하나인데, 이를 어찌 가볍게 여길 것인가.” 그리고 양주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옛사람은 털 한 올을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할 수 있다 해도 결코 하지 않았고, 온 천하를 맡긴다 해도 받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털 한 올을 뽑지 않고, 또 사람마다 천하를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하는 안정될 것이다.”
  • [토요일 아침에] 극단적인 개인주의/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미국의 청소년 상담가 마거릿 베츠는 오늘날 미국 문화의 특징을 개인주의, 소비주의, 그리고 폭력주의의 세 가지로 꼽는다. 물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들의 진취적인 정신과 관용의 정신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의 세 가지 특징 또한 미국인들의 집합적인 정체성을 대표하는 또 다른 실상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중에서도 특히 개인주의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함께 나누고 싶다. 19세기의 뛰어난 정치이론가 중의 한 사람인 알렉스 드 토크빌은 개인주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개인주의는 새로운 생각에서 나온 새로운 표현으로서 공동체의 구성원을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분리시키며, 그의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독립하게 하는 성숙되고 평온한 감정으로 자신만의 작은 세계를 형성한 후에는 스스로 사회를 존중할 수 있도록 이끈다.” 개인주의는 또한 인간의 고유한 존엄성을 강조하는 한 특성으로 이해되면서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정착에,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확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마거릿 베츠가 직시하는 미국 사회의 개인주의는 개인의 이익만을 챙기는 데 전념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이다. 마거릿 베츠가 파악하는 것처럼 “오늘날 미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에 대해 말하기를 두려워하고”, 또 “미국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이익과 욕구뿐”이라고 한다면, 과거 개척시대에 자유와 독립, 평등을 지향하면서 행동했던 미국 사람들 본연의 건전한 개인주의 정신은 다 어디 가고 그야말로 미국의 사회 조직을 와해시키는 암적 존재인 극단적 개인주의만 남게 된 것인가. 어떤 행위의 옳고 그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어떤 행위를 하는 데 있어서 윤리적 가치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이며, 오로지 내 자신의 이익만이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 개인주의의 성향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이 서로 믿을 수 없게 되며, 또한 사회공동체의 과제에 협력하지도, 그 필요성을 깨닫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회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미국의 극단적 개인주의를 강 건너 불 보듯이 말하기에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도 급박하다. 나는 그 현실을, 여성의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을 뿐 아니라 낙태가 가장 자유로운 우리 대한민국에서 보려고 한다. 우리나라 여성은 평생토록 평균 1.2명의 자녀를 출산, 세계 최저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과 사회적 삶에 대한 욕구의 증가가 출산기피 현상으로 나타나면서 과거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심각한 문제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인구의 감소, 고령화 사회 진입, 산업의 생산 잠재력 훼손에 대한 우려 외에도 노인 공경과 같은 전통적인 가정가치관의 붕괴와 그에 따르는 사회적 혼란은 가까운 미래에 매우 심각하게 닥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낙태 현실도 매우 심각하다. 지난달에 발표된 어느 대학 연구소의 낙태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미혼여성의 95%가 사회경제적 이유로, 기혼여성의 93%가 가족계획, 경제적 이유로 낙태를 했다고 한다. 이 대부분이 불법 낙태인데도 이렇게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되면 낙태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내가 편하기 위해서는 그까짓 뱃속의 생명쯤이야!’ 하는 식의 극단적 개인주의의 모습이 아닌가. 만일 사람들이 타인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자기 안에만 갇혀 지낸다면 그런 사람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이익, 공동선은 누가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을까. 개인주의가 철저한 이기주의로 전락하게 되는 원인과 그 대처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동익 가톨릭대 교수·신부
  • [실전 논술]열린사회와 닫힌사회

    [실전 논술]열린사회와 닫힌사회

    논술시험의 중요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2008학년도부터 입시제도가 바뀌면 논술시험의 비중이 더 커지고 통합형 출제로 지금보다 더 어려워진다.‘SEOUL IN’에서는 ‘영화속 수능잡기’와 논술 책 소개 연재를 마치고 논술 전문강사인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원장이 집필하는 ‘실전 논술’을 새로 연재한다. ●문제 다음 글에서는 우리가 ‘열린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현대 사회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열린 사회’가 바람직하다고 가정한다면 이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개인이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논술하시오.(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우리들 자신의 생활 방식은 여전히 금기들―음식에 대한 금기, 예절에 대한 금기, 그리고 다른 수많은 금기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우리 자신의 생활 방식에서, 한편으로는 국가의 법률과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습관적으로 지키는 금기 사이에 문제와 책임을 수반하는 개인적인 넓은 결단의 영역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 개인적 결단은 금기와 이미 금기가 아닌 정치적 법률까지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합리적인 반성의 가능성에 있다. 합리적인 반성은 어떤 점에서는 헤라클레이토스부터 시작된다. 알크메온, 파레아스, 히포다무스, 헤로도투스, 소피스트와 함께 전개된 ‘최선 체제’에 대한 요구는 어느 정도 합리적으로 논의될 수 있는 문제의 성격을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들 대부분은 새로운 입법의 필요성이나 다른 제도적 변화의 필요성에 관해 합리적인 결단을 내린다. 말하자면 가능한 결과를 평가하고, 그 결과 중 어떤 것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개인의 합리적인 책임을 인정한다. 이제부터는 마술적 사회나 부족 사회, 혹은 집단적 사회는 ‘닫힌 사회’라 부르며, 개개인이 개인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회는 ‘열린 사회’라 부르고자 한다. 전성기에 있는 ‘닫힌 사회’는 하나의 유기체에 그대로 비교될 수 있을 것이다. 소위 국가 유기체 이론이나 생물학적 이론은, 상당한 범위에까지 ‘닫힌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닫힌 사회’는 그 구성원들이 반생물학적 유대―함께 살며, 공통적인 노력과 공통적인 위험, 공통적인 기쁨과 공통적인 고통을 함께 나누는 혈족 관계―에 의해 함께 묶여 반(半)유기체적 단위로 존재하는 한 집단이나 부족과 비슷하다.‘닫힌 사회’는 여전히 구체적인 개인들의 구체적인 집단으로서, 노동의 분업이나 상품의 교환과 같은 추상적인 사회 관계에 의해서 상호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만져 보고 냄새 맡고 바라보고 하는 구체적인 육체적 관계에 의해 맺어진 사회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가 노예 제도에 의존하고 있을 때, 노예란 가축이 있다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측면이란 ‘열린 사회’에서는 대다수의 구성원들이 사회적으로 높아지기 위해 그리고 다른 사람의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투쟁한다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다. 예컨대, 이런 것은 계급 투쟁과 같은 중대한 사회적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국가적 유기체 속에는 계급 투쟁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기체의 세포나 조직―종종 국가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응한다.―은 영양분을 얻기 위해 경쟁할지는 모르겠으나, 다리가 머리가 되고자 한다든가, 몸의 어느 다른 부분이 배가 되고자 하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노력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유기체 속에는 ‘열린 사회’의 가장 중요한 특성 중의 하나인 구성원들 간의 지위 다툼에 해당되는 것이 없으므로, 소위 국가 유기체 이론은 그릇된 유추에 근거한 것이다.‘닫힌 사회’는 어느 정도 그런 경향을 지니고 있다. 계급을 포함한 ‘닫힌 사회’의 제도는 신성 불가침한 금기이다. 유기체 이론은 여기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에다 유기체 이론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거의 다 부족주의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선전의 감추어진 형식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열린 사회’는 유기체적인 특성이 없으므로 필자가 ‘추상적 사회’라 부르고자 하는 사회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열린 사회’는 구체적이거나 실제적인 인간 집단 및 그런 실제적인 집단 체제가 갖는 특성은 상당히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아무와도 대면하지 않는 사회―모든 일이 타이프된 편지와 전보로 의사 교환을 하고, 또 밀폐된 자동차로 돌아다니는 고립된 개인에 의해 처리되는 사회―를 생각해 볼 수 있다(유전자 조작은 인간적 요소가 개입되지 않는 변식까지도 허용할 것이다). 이런 허구적인 사회가 ‘완벽한 추상적 사회’나 ‘비인격적 사회’라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흥미 있는 점은 우리의 현대 사회가 그 양상의 여러 면에서 이런 완벽한 추상적 사회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비록 늘 혼자서 밀폐된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거리에서 우리를 지나쳐 걸어가는 수천의 얼굴과 대면하지만―결과는 우리가 그렇게 한 것과 거의 비슷하다. 즉, 우리는 같은 보행자들과는 대체로 아무런 개인적 관계를 만들지 않는다. 현대 사회에는 친밀한 인간적 접촉을 거의 갖지 않고, 익명과 고립 속에서, 그리고 그 결과 불행 속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사회는 비록 추상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생물학적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추상적 사회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사회적 요구를 갖고 있다. 물론 완벽한 합리적 사회가 있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추상적 사회도 없을 것이며, 있을 수도 없다. 인간은 여전히 실제적인 집단을 형성하고, 모든 종류의 인간들과의 실제적인 사회 접촉을 하며, 자신의 정서적 사회적 욕구를 가능한 한 충족시키고자 한다. 그러나 (운이 좋은 몇몇 가족 집단을 제외하고는) 현대 ‘열린 사회’의 사회 집단 대부분은 불쌍한 대용물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공동 생활을 창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 중의 대다수는 사회 생활에서 아무런 기능도 발휘하지 못한다. 논의가 여기에서 멈추고 만다면 추상화된 사회의 단점만이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단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출생과 관련된 관계를 떠나 인간은 성장하면서 자신들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간 관계를 형성한다. 그리고 이 인간 관계와 이울러 새로운 개인주의가 발생한다. 그와 유사하게 정신적 결속은 생물학적 결속이나 육체적 결속이 약화된 곳에서 그 주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장점들은 있지만, 어쨌든 간에 이러한 예들이 보다 구체적이거나 사실적인 사회 집단과 대치되는 보다 추상적인 사회가 의미하는 바를 명백하게 밝혀 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현대 ‘열린 사회’가 교환이나 협동과 같은 추상적인 관계에 의해 상당한 기능을 한다는 것도 분명하게 해 줄 것이다. -칼 R 포퍼,(열린 사회와 그 적들) ●지문의 배경 이해하기 역사는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투쟁 과정으로 볼 수 있으며, 열린 사회는 인류가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이다. 열린 사회란 사회과학 방법론에서 말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에 입각한 사회를 말하는데, 전체주의에 대립되는 개인주의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사회의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이고 부분적인 개혁을 시도하는 점진주의 사회를 말한다. 그러므로 ‘닫힌 사회’에서는 국가가 시민 사회 전체를 규율하면서 개인의 판단이나 책임은 무시하는 데 반해,‘열린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확보된 사회이며, 개인이 그의 이성에 입각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리고 책임을 지는 사회를 의미한다. 포퍼는 이러한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은 역사주의라고 규정하고, 이것을 질타한다. 그것은 첫째 역사주의가 말하는 역사 진행 법칙에 의한 예언의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예측은 과학적 탐구의 영역 밖에 있는 것이어서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확실히 알지도 못하는 그 어떤 필연의 법칙 혹은 운명에 인간을 가두어 놓음으로써 인간의 이성을 최소화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창의적인 이성의 활동을 시들어 버리게 한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역사주의라 불리는 전체론, 역사적 법칙론, 유토피아 주의에 반대하고, 이를 ‘열린 사회’의 최대의 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출제 의도 제시문에서 글쓴이는 역사를 통해 이미 존재해 온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특성을 비교하고 있으며, 닫힌 사회의 유지 원리에 대해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닫힌 사회에 대한 논리적 반박이 아니고 열린 사회의 특성과 그 실현 가능성, 그리고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해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출제자는 우선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하고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완전한 열린 사회가 아니므로, 우리 사회에서 제거해야 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또한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개인의 역할에 대해서 논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이 문제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이 논제는 먼저 지문에 대한 정확한 이해력과 분석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고, 그것을 다른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지와 추론 능력을 평가하기 위한 것이다. ●생각하기 최근의 논술 문제는 대부분 고전의 일부분을 제시하는 ‘자료 제시형’인데, 제시문의 범위상 고전 작품 전체를 보여 줄 수 없기 때문에 부분 발췌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제시문에만 집착하다 보면 글쓴이의 의도와는 다른 의미로 해석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자기가 읽은 책이나 작품이라면 전체적인 내용을 음미해 보아야 하고, 그렇지 못하다면 글쓴이의 의도와 관련지어 내용을 분석해야 한다. 대개의 출제자는 어느 한 부분을 발췌하더라도 그 책이나 작품의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선택하게 되므로, 정독하면 글쓴이의 의도를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어휘들을 간단한 도표로 정리해 보는 것도 효과적인데, 이 글의 내용을 도표를 이용하여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어떻게 쓸까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편의 글을 쓰기 위한 개요를 작성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주제는 닫힌 사회에서 열린 사회로 가기 위한 개인의 역할 정도로 정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우리 사회가 열린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 개인은 타인과의 합리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이성적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통해 열린 사회에 적합한 인간형으로 탈바꿈해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서론에서는 독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내용과 말하고자 하는 글의 방향이 제시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인류가 보다 나은 사회 여건 조성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를 토대로 개인의 욕망과 사회의 질서 사이에 마찰이 생긴다는 점과 문제 해결의 필요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하여 본론을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에서는 먼저 논의의 범위를 어느 정도 정리하기 위해 먼저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 정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면서 열린 사회와 닫힌 사회가 추구하는 목표와 존재 방식이 무엇인지 논의하면 된다. 특히 그러한 점을 현실 사회의 특성과 연관지어 논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들은 실제 닫힌 사회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토대로 하면 될 것이다. 그런 다음 논의의 핵심을 제시해야 한다. 사회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제도적인 측면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점 등을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토대로 하여 전제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제도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이성적 역량 강화를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마무리하면 된다.
  • “탈관료·친시장주의의 승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9·11 총선 압승은 관료적 국가 지배에서 시장주의와 신자유주의로 재편되고 있는 일본 경제의 ‘구조개혁’을 보다 가속화하라는 요구로 풀이된다.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은 2차대전 후 재건에 초점을 둔 준사회주의 모델의 일본이 서구식 자본주의·개인주의·현시(顯示)적 소비 중심의 경제로 변모하는 전환점을 맞았다고 12일 경제 칼럼니스트 호타 겐스케의 글을 통해 논평했다. 그는 일본 국민이 저축보다 소비를 택하고 있으며 주주 중심의 경영과 구조조정, 인수합병(M&A) 붐이 일고 있는 일본 경제의 체질 변화가 압승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제 칼럼니스트 윌리엄 페섹도 이날자 블룸버그 통신에 ‘고이즈미 총리에게 드리는 편지’를 실어 연금 개혁과 공공부채 축소, 노동시장 유연화 등에 박차를 가하라고 제언했다. 우정공사는 350조엔(약 35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에서 가장 큰 금융기관이다.2만 5000개의 지점과 26만명의 정규직을 보유, 자민당 장기집권의 기반이었다. 국민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자기희생적’ 결단에 환호했고 과거 자민당 세력과 야당을 모두 수구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한 선거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한편 자민당의 압승으로 민영화가 확실시되는 우정공사는 직원 3분의1이 옷을 벗어야 할 것으로 보이며 일본 정부의 대대적인 공무원 감축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옴부즈맨칼럼] ‘삶의 해결책’까지 주는 보도를/ 황용석 건국대 신문방송학 교수

    8·31 부동산 대책은 그동안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정책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은 규제이다. 서울신문은 경쟁지들과 비교했을 때 기사의 양이나 품질면에서 비교적 높은 점수를 받을 만했다. 분야별 정책해설과 영향에 대한 예측 등 입체적인 기획이 돋보였다. 특히,‘분야별 문답풀이’는 독자들이 복잡한 정책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준 좋은 기사다. 그러나 몇 가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서울신문이 할애한 많은 기사들은 ‘시장’과 ‘세제개편’과 같은 거시적 측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향후 부동산 가격변동 추이, 공급확대에 따른 투기억제, 그리고 보유세나 양도소득세와 같은 새로운 세제 등을 상세히 다루었다. 기사의 프레임도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해 온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이번 조치로 승리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즉, 정부와 투기세력간의 전쟁으로 틀 짓고 있다. 서울신문이 보도한 관련 기사들의 대부분은 공식적 소스(관급이나 기관)에 주로 의존하고 있는데, 이도 거시적 측면에 주목한 결과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주요 일간지나 방송사들의 보도가 천편일률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부동산 대책이 기형적인 부동산 가격을 낮추고 투기를 억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여기에 많은 비중을 두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대책이 시행되면서 나타날 수 있는 부정적 외부효과를 면밀하게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 이번 부동산 대책은 사회, 경제, 그리고 문화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정 소득이 줄어든 퇴직자 가구가 오래 전부터 살아온 8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할 경우, 이들은 연금의 3분의1에 해당하는 보유세를 물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노년인구의 증가율이 세계 최고인 반면, 이들에 대한 사회보장제도나 고용률은 매우 낮다. 핵가족화와 가족 개인주의의 확산은 점점 노인가구의 경제적 독립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발표된 부동산 대책은 노후재산관리방법도 바꾸는 것이다. 자식에 대한 부의 세습방식도 바뀔 것이다. 또한 이번 세제개편은 1가구2주택 가구에 대한 규제로 인해 독립가구의 증대를 낳아서 사회통계지표의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것은 인구학적으로 의미 있는 외부효과이다. 독립가구의 증가는 개인주의 가족문화와 서구와 같은 계약적 가족관계가 증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외에도 이번 대책이 가져올 예기치 못한 여러 변화들이 있을 수 있다. 다매체 환경에 노출된 독자들은 모두가 다루는 아이템보다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앞서 전해주는 것에 목말라 있다. 덧붙여서 부동산 대책에 따른 세제개편 내용을 상세하게 기사로 다루고 있지만, 독자 입장에서 볼 때 이 내용들은 상당히 어렵고 전문적이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너무 많다. 그렇다고 무한정 사례나 설명을 반복할 수 없는 것이 신문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 경우 인터넷을 통해 조건계산을 하도록 제공해 주면 된다. 캐나다의 벨 글로브미디어(Bell Globemedia)그룹 소속의 일간지인 ‘더 글로브 앤드 메일’은 캐나다 연방예산 개편안을 독자들이 상세히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산기와 전문가 정보, 그리고 지역간 세제 비교가 가능한 지도 등을 제공한 바 있다. 이번 부동산 대책의 경우, 서울신문에서 개인이 조건식에 맞는 값을 선택할 경우 대략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세금부담이 늘어날 것인가를 보여주는 상호작용적 뉴스서비스를 인터넷에서 제공했다면 앞서가는 신문으로 주목받았을 것이다. 이제 뉴스는 단순히 정보를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가 개인의 삶에 유용하게 적용되고 문제 해결의 단초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신문사는 ‘정보(information)´만 주는 곳이 아니라 ‘삶의 해결책(solution)´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 황용석 건국대 힌문방송학 교수
  • “공동체주의는 지배문화에 저항”

    공동체주의자 마이클 샌들 하버드대 교수가 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공동체주의를 설명했다. 샌들 교수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름을 알린 학자다. 공동체주의는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간단히 말해 개인은 원자화된 게 아니라 현실의 맥락에 터잡고(situated)있다는 주장이다. 샌들 교수는 공동체주의는 서양적인 맥락 위에 있다고 했다. 그는 “‘시장과 소비’만 내세우는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공동체주의를 내세웠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서는 이런 주장을 부담스러워하더라는 것. 이들에게 ‘공동체’는 ‘전근대적 계급사회’이거나 ‘군부독재와 같은 전체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현실의 맥락 자체가 다르다는 이해를 얻게 됐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사회의 지배적 경향에 대해 맞서겠다는 의지다. 그는 “한국 학자들이 유교적 폐습이나 연고주의에 맞서기 위해 자유주의 사상을 열심히 소개했듯, 나 역시 자유주의에 맞서 다른 사상을 꿈꾸었다.”고 말했다. 샌들 교수는 6일 프레스센터에서 줄기세포연구에 대해,8일 경북대에서 ‘연고적 자아’의 개념에 대해,9일 전북대에서 세계화시대에 대해 잇따라 강연한다.글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시각] 新유목민시대의 명암/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인류 미래의 대안을 노마드(유목민)에서 찾을 수 있을까. 프랑스의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마드적 삶의 양식에 주목한다. 그가 말하는 노마드란 물론 광활한 초원에서 소나 양떼를 키우는 소박한 의미의 유목민이 아니다. 직업이나 주거, 가정을 수시로 바꾸는 불안정한 ‘도시 유목민’ 내지 첨단 정보기술로 무장하고 사이버 세계를 떠도는 ‘디지털 노마드’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노마드적인 삶을 살고 있음에 틀림없다. 현대에 들어 노마드 혹은 노마디즘의 의미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을 고집하지 않고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바꿔가는 창조적인 행위까지 그 범주에 든다. 직업을 따라 유랑하는 잡(job) 노마드의 등장 또한 그런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세계화와 디지털화,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흐름 속에 기존의 정착생활 방식을 바꿔놓고 있는 이들은 사이버 제국의 시민이다. 사이버 공간의 분신인 복제이미지가 그들의 일상을 대신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마셜 맥루언의 지적대로 미래의 세계는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 지구 곳곳을 떠돌아다니지만 어디에도 집은 없는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가득차게 될지도 모른다. 문제는 현대판 노마드의 삶이 그 유연함만큼이나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때로는 파괴적이기까지 하다.X세대,N세대 등을 통해 이어져온 신(新)노마드족은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중시한다. 때문에 전통적인 형태의 가족 같은 것은 이들에게 별 의미가 없다. 사이버상에서 알게 된 아이와 연락을 갖는 ‘사이버아줌마’니 ‘임대아이’니 하는 말은 그런 정황을 잘 설명해 준다. 최근 새로운 사회병리 현상으로 떠오른 이른바 ‘리셋 증후군’도 노마드적 충동이란 관점에서 다룰 만하다.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기존의 일이나 인간관계를 일거에 뒤집어보려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유목민’의 부정적 양상이 아닐 수 없다. 기자는 이 지점에서 최근 몽골 여행을 통해 느낀 진정한 유목의 정신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신석기시대 이래 유목생활을 해온 몽골인들에게 유목은 운명과 같은 것이다.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그것은 견원지간인 중국인들과 벌이는 그들의 논쟁을 통해서도 어렵잖게 확인된다. 중국의 내몽골과 신장 지역 260개 현에는 4000만명의 몽골족 후손들이 대부분 정착민으로 살아가고 있다. 남쪽의 농경민(중국인)들은 유목민들을 가축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집 하나 제대로 없는 괴상한 인간들이라고 비웃는다. 반면 몽골인들은 남쪽 농경민들을 땅바닥에 늘 엎드려 하늘이 얼마나 높고 신비한지도 모르는 잡초벌레라고 조롱한다. 몽골어로 ‘계속해서 한 곳에 거주하다.’라는 뜻을 지닌 ‘코르고다크’라는 동사는 몽골인들에게는 가장 경멸적인 표현에 속한다. 그러니 몽골 정부가 역사상 처음으로 추진하고 있는 토지사유화와 정주정책에 유목민들이 저항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우리는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유목민적 덕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무엇보다 유목민 특유의 수평적 사고와 협동의식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1만년 가까이 농경 정착민으로 살아온 우리로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대목이기도 하다.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근교에는 돌궐제국을 부흥시킨 명장 톤유쿠크의 유훈이 새겨진 비문이 있다.“성을 쌓고 사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이를 오늘의 현실에 대입하면 정착민의 닫힌 사회, 수직적 사고방식으로는 새로운 시대의 격랑을 헤쳐나갈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몽골 사람들은 종종 “떼를 지은 까치는 혼자서 가는 호랑이보다 힘이 있다.”라는 속담을 들먹인다. 그 뜻 역시 곰곰 새겨볼 만하다. 휴대전화와 노트북이 사이버 유목전사들을 양산해 내는 요즘이기에 원시 노마드의 청신한 기풍은 더욱 요구된다. 몽골 초원에서 만난 유목민들은 결코 야만과 무지의 화신이 아니었다. 유목민에 대한 상(像)은 그동안 정착민적 사관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돼 왔다. 몽골 유목민은 기자에게 인류의 문명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 일종의 정면(正面)교사였다. 김종면 주말매거진WE팀 차장
  • 저출산고령화대책시민연대 출범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종교계 차원에서 풀어가기 위한 ‘저출산고령화대책시민연대’가 29일 출범했다. 불교, 개신교, 천주교가 뜻을 합쳐 설립한 저출산고령화대책시민연대는 이날 서울 중구 정동 성프란치스코 교육관에서 발족식을 겸한 기자회견을 가졌다. 시민연대는 발족 취지문에서 “국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자녀의 수)은 2003년 1.19명으로 세계 최저”라며 “국내 3대 종교계가 국민 홍보와 캠페인으로 사회인식을 변화시키고자 한다.”고 밝혔다. 시민연대는 이어 ▲높은 이혼율과 개인주의를 배격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행복한 가정문화 확산에 힘쓸 것▲낙태와 같은 생명경시문화를 배격하고 생명존중문화 확산에 힘쓸 것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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