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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아름다운 풍경 다시 볼 수 있을까

    저 아름다운 풍경 다시 볼 수 있을까

    전시 제목은 ‘하늘에서 본 지구’. 그 뒤 따라붙은 영문 제목이 더 눈길을 끈다. ‘It´s my home’. 저게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란 얘기다. ●헬기타고 150여개국 돌며 촬영 3월 15일까지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65)의 개인전이다. 베르트랑은 바로 그 우리 집의 구석구석을 찍기 위해 헬기를 타고 때론 수십m, 때론 수천m 상공을 오르내린 항공사진작가다. 해서 그의 작품에는 ‘신의 눈’이라는 이름이 따라다닌다. 20여년 동안 150여 개국을 돌아다니면서 찍은 작품 가운데 220여점을 추려냈다. 영상 편집본도 함께 전시됐다. 한국 사진도 있다. 2004년부터 4년 동안 비무장지대, 동해, 독도, 남해안을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 30여점이다. 베르트랑은 원래 영화배우였다. 부인이 사자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아프리카를 방문하는데 따라나섰다가 삶이 바뀌었다. 재미삼아 사자의 생태를 찍다 아예 사진작가로 전향했다. 이 아름다운 자연과 지구 그 자체를 기록해 보는 데 도전해 보고 싶었다. 작가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손댔던 열기구 운전에서 힌트를 얻었다. 유네스코 후원을 얻어 1994년 ‘하늘에서 본 지구’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2000년부터 그 결과물을 전시했다. 전세계 1억 50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단지 작품에 그치지 않았다. 비영리 환경예술재단 굿플래닛을 만들었고, 경이로운 생명의 탄생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생명들’ 전시를 진행했다. 이 전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은 동물 사진들이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말, 소, 돼지, 양 같은 가축들을 찍어둔 것. 우리 집에 우리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활동 덕분에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가 선정한 ‘지구를 구한 10인’ 가운데 1명으로, 또 레종 도뇌르 훈장 수여자로 결정되기도 했다. ●환경파괴 몸살 지구촌에 경고 메시지 작품 감상시 눈여겨볼 부분. 그의 항공사진에는 위도와 경도가 정확히 표기되어 있다. 환경파괴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구를 생각해 ‘지금 저 아름다운 곳을 나중에 우리가 다시 찾아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라는 질문이다. 6000~1만원. (02)2124-88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이창기 개인전 10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척 보면 동양화적 소재와 분위기가 넘쳐나는데 서양화적 기법으로 소화해냈다. 동양철학이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02)720-4353. ●안혜빈 ‘생명의 기 현존과 울림’전 20일까지 서울 청담동 줄리아니갤러리. 기운생동하는 분위기를 추상화로 표현했다. 수입은 살레시오수도회 성모상 제작비용으로 쓰인다. (02)514-4267. ●‘아티스트 위드 아라리오’전 12일부터 2월 26일까지 서울 청담동 아라리오갤러리. 중국, 인도, 필리핀, 한국 등 11명 작가들이 조각, 설치, 페인팅, 드로잉 등 30여점을 내놨다. 아시아 젊은 작가들의 현대를 훓어볼 수 있다. (02)541-5701.
  • 전쟁 후 배곯는 아이들· 핫팬츠 차림 명동女… 거장의 카메라, 날것의 한국을 담다

    전쟁 후 배곯는 아이들· 핫팬츠 차림 명동女… 거장의 카메라, 날것의 한국을 담다

    정겹기도 하지만 때론 울컥할 수도 있겠다. 별 감정 없이 툭툭 찍어 놓은 듯한 잔잔한 흑백사진 속 풍경들은 우리가 이미 잊고 지낸 옛 기억이다. 한국 사진작가 1세대로 꼽히는 임응식(1912~2001)의 대표작들을 모은 전시 ‘임응식-기록의 예술, 예술의 기록’전이다. 임응식은 ‘사진이 예술이긴 한 거냐.’는 물음표가 달려 있던 1930년대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 1세대로 꼽히는 이유는 빨리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 질문에 ‘네, 사진도 예술입니다.’라고 확실하게 대답했기 때문이다. 1952년 한국사진가협회를 창립하고 1957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사진전 ‘인간가족전’를 국내에 유치해 30만 관객을 끌어모았던 이도 그였고,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첫 사진전도 바로 그의 개인전이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종군기자 시절 전쟁 참상 목격… 리얼리즘 작가로 임응식은 원래 예술 사진으로 시작했다. 인물과 풍경을 찍되 요즘 말로 치자면 ‘간지’나게 찍었다. 포토그래피가 아닌 포토그램이라는 기법이 대표적이다. 포토그램은 사진기 없이 필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노출시켜 인화하는 기법으로, 마치 물감을 풀어 놓은 듯 피사체를 잡아낸다. 자신의 성 ‘임’을 따라 ‘림스그램’이라는 기법까지 개발해 냈다. 그러던 그가 리얼리즘으로 돌아선 결정적 계기는 6·25전쟁이다. 부산에서 살았던 그는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다 인천상륙작전 때부터 종군기자로 투입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모든 것이 파괴된 전쟁의 폐허에 서서 그는 웬 예술 놀음이냐 싶었다 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그의 대표작이다. ‘求職’(구직)이란 글자를 써서 서울 명동 미도파백화점 앞에서 목에다 걸고 있는 청년을 찍은 1953년작 ‘구직’, 폭격으로 다 타 버린 앙상한 나무 아래서 그 나무처럼 헐벗은 아이들이 있는 풍경을 잡아낸 1953년 작 ‘나목’(木) 같은 대표작이 좋은 예다. 전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부 ‘명동, 명동사람들’이다. 조선의 중심이 종로였다면 일제의 중심은 명동이었다. 이후 강남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한국의 압축적 근대화가 가장 집약된 곳이 바로 명동이었다. 임응식은 6·25전쟁 당시 종군기자로서 명동을 찍기 시작한 이래 50년간 바로 이 명동을 찍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찍었던 명동 사진을 모아 한번 전시회를 열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해서 이번 3부 코너에서는 그간 공개되지 않고 유족이 보유하고 있었던 신작들이 대거 소개된다. ●50년간 담은 명동사람들 미발표작 공개 이 가운데서도 핫팬츠, 미니스커트 등 젊은 여성들의 패션에 집중한 ‘명동의 패션’, 명동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문인, 화가, 음악가, 연극인의 초상을 기록해 둔 ‘명동의 인물’ 편은 웃음을 자아낸다. 6·25전쟁 때와는 좀 다른 이유로 ‘헐벗은’ 인물들이 나오는 ‘명동의 패션’을 보고 있노라면 ‘요새 것들’ 운운하지만 ‘옛날 것들’도 만만치 않았다 싶기도 하고, ‘명동의 인물’에서는 각 인물에 대한 소개와 특징이 설명돼 있어서 평소 이름을 들어 봤던 명사들에 대한 촌평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버지처럼 사진작가의 길을 걸었던 맏아들 임범택(73)은 아버지에 대해 “아주 정이 많으면서도 작업에서만큼은 엄격했다.”고 회고했다. 임범택은 또 “6·25전쟁 이후 부산에서 미군을 상대로 사진현상소를 하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돈으로 이후 50년을 쓰고 살았다.”면서 “덕분에 자식들에게는 한푼의 돈도 남기지 않았다.”며 웃었다. 전시는 내년 2월 12일까지 서울 중구 정동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 2000~5000원. (02)2022-06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l.co.kr
  • 자연을 닮은 의자 예술·과학을 품다

    자연을 닮은 의자 예술·과학을 품다

    의자의 틀 자체를 ‘뼈’에서 가져왔단다. 선뜻 앉기가 망설여진다. 유리구슬이나 긴 막대기 하나쯤은 쥐고 앉아야 할 것만 같다. 그런데 설명을 듣고 보니 그런 마법적인 이미지와는 오히려 정반대다. 미래 공상과학(SF)적 이미지다. 출발점은 자동차 디자인이었다. 자동차 디자인이다 보니 조건은 간단하다. 공간과 연비를 위해 날렵하고 가벼우면서도, 안전성을 위해 탄탄해야 한다. 동시에 양산을 위해 대중적인 소재를 써야 한다. 이런 조건을 적당히 배합시켜 미리 제작해 보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썼다. 작가는 이 프로그램에 흥미를 느껴 예술작품을 만들기 적당한 방식으로 고쳤다. 최소 요소로 최대 안전을 뽑아내면서, 동시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작가의 대답은 인간의 뼈대였다. 사각형 입방체를 두고 조건을 주입하면 뼈대 모양만 남기고 깎아내고 녹여내는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에 일정 조건을 투입한 뒤 거기에 나온 대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사실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따른 것이라 저도 어떤 모양이 나올지 알 수 없어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모양이 나올 때까지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컴퓨터와 제가 계속 핑퐁게임을 하는 거죠.” 자신의 작업실을 ‘스튜디오’가 아니라 랩(Lab·연구실)이라 부르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과학자, 기술자들의 작업을 조사한 뒤 그들의 실험을 디자인 언어로 전환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자동차 디자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은 앉아보면 알 수 있다. 등받이가 뒤로 누운 각도와 몸통을 잡아주는 탄탄함이, 시동을 걸면 내 몸 안의 뼈대와 내 몸 밖의 자동차 뼈대가 같이 울리는 스포츠카 같다. 후반작업도 만만치 않다. 용접 없이 일체형으로 만들기 때문에 틀에 찍어내야 한다. 재료도 “예술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해 조금 덜 대중적인 재료를 쓴다.”는 말처럼 각종 대리석, 합성수지, 텅스텐, 알루미늄 같은 것들이다. 이를 갈고 닦아 최종적으로 다듬고 광을 내려다 보니 후반 작업에만 “작품당 기본 200시간 이상 들어간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을 거쳐 처음 작품이 나온 것이 2004년. 본(Bone) 시리즈의 탄생이다. 이 작품들로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전시 등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기존 디자인 개념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이고, 실용적이면서도 미학을 느끼게 해준다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내년 1월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한국 첫 개인전을 여는 네덜란드 작가 요리스 라르만(32) 얘기다. 전시에 맞춰 내한, 기자들과 만났다. 라르만이 힘을 빌린 곳은 자동차 디자인만이 아니다. 뼈 성장에 대한 학자들의 연구논문도 참고했다. “인체의 성장에 따라 필요한 뼈는 더 강화되고 불필요한 뼈는 축소되고 사라지는 과정이 경이로웠어요.” 작가가 자신의 작업을 ‘진화론적’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최적을 찾아가는 것이 “자연적 의지의 진화과정”과 비슷하다는 얘기다. “만약 의자라는 것이 자연진화 과정을 통해 지금 시대에까지 이르렀다면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요.” 2층으로 올라서면 눈이 한결 더 상쾌해진다. 탁자들이 쭉 놓여 있다. 최근작 숲(Forest) 시리즈다. 여기서도 컴퓨터 시뮬레이션은 빠지지 않는다. 작가는 “세포분열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에서 착안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모양새가 마치 유명한 바실리 칸딘스키의 추상화작업과도 닮아 있다. 프랙털(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되는 형상)도 떠오르지만, 테이블이란 점을 감안하면 말풍선 같기도 하다. 예술에, 과학에, 인문학까지 한데 모아둔 셈이다. 탁자 밑은 더 환상적이다. 큰 나무기둥을 본떠 만들었다. 덕분에 테이블 사이를 걷노라면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된 것 같은 기분까지 맛볼 수 있다.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미술·전시

    ●백용정 ‘황금연못’전 21일부터 내년 1월 3일까지 서울 종로구 낙원동 갤러리 M. 중앙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의 여섯 번째 개인전. 오랜 시간 비단잉어를 관찰하면서 그 모양과 자태에 매료되었다는 작가는 그 느낌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옮겼다. 기포를 일으키며 위로 솟구치는 잉어, 연꽃 주변을 서서히 유영하는 잉어 등의 모습에서 우리네 인간의 삶이 느껴진다. (02)735-9500. 백용정 작가의 ‘비상’. 163×130㎝, 장지에 분채물감, 금분 2010. ●‘2012 복사세요’전 23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재동 갤러리에뽀끄. 김근중·김민수·김은진·이용애·한상윤 등의 작가들이 모란, 호랑이, 복주머니 등 민화적인 소재를 이용해 내년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02)747-2075.
  •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수상소감-대상 유의정씨

    [서울현대도예공모전] 수상소감-대상 유의정씨

    대상을 거머쥔 유의정 작가는 “저를 믿고 충고를 아끼지 않은 부모님, 은사님 등 모든 분들께 이 영광을 돌린다.”면서 “이 상을 더 열심히 하라는 말씀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유 작가의 수상작 ‘2011 수복강녕’이란 오래도록 복되고 건강하게 살라는, 옷에나 그릇에 자주 등장하던 전통 문양이다. 문양은 단순한 것 같지만, 그 시대 사람들이 좋은 것, 혹은 편안한 것이라고 생각한 요소들이 집약된 추상적인 무엇인가가 배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에서 집중적으로 봐야 할 것은 과연 현대인들에게 수복강녕이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지금 시대는 옛날과 달리 지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현대, 실재와 가상, 아날로그와 디지털 등 서로 다른 양상들이 다양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적절한 기법을 통해 도자기의 모습을 변형시키고, 기계와도 결합시키고, 화려하게 꾸밈으로써 시대성을 반영하려 했다. 작가는 “이런 작업을 통해 지역의 고유성을 가진, 민족적 상징물이기도 한 도자기가 현 시대를 대변하는 미술언어로서 충분한 가치와 매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도예유리과를 졸업한 작가는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 개인전을 연 경력이 있다.
  • 18일까지 서양화가 김충호 개인전

    서양화가 김충호가 18일까지 전남 강진군 강진아트홀 화랑에서 세 번째 개인전을 갖는다. 울부짖는 듯한 거친 구름과 싸늘한 하늘, 외로이 서 있는 섬, 잔잔한 듯 보이지만 으르렁거리는 바닷물결, 그 위에 떠 있는 폐선 등 화가가 고향 강진으로 귀향한 이후 겪었던 치열한 사색의 시간들이 수채화 화폭에 묻어난다. (061)430-5760.
  • 이야기 뺀 화폭…유정현 어번 플랜츠展

    이야기 뺀 화폭…유정현 어번 플랜츠展

    “저거 사실 흰색으로 다시 덮은 거예요. 그런데 그걸 아무도 안 알아봐 주고 안 물어봐 주더라고요. 하하하.” 흰바탕이니 으레 캔버스려니 할 수 있는데 실제로는 흰색을 덧입힌 것이란다. “안료예요. 그걸 캔버스 위에 확 뿌리고 마르기 전에 어느 정도 붓질을 한 뒤 마르면 흰색을 발라서 제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어 내는 거죠.” 그렇게 공을 들였는데 안 알아봐 줬으니, 섭섭할 법도 하다. 25일까지 서울 청담동 조현화랑에서 개인전 ‘어번 플랜츠’(Urban Plants)를 여는 유정현(38) 작가. 그림이 독특하다. 자유롭게 번진 안료와 의도적으로 정확하게 그려 놓은 동그라미들이 한데 어우려져 있는데, 안료는 무슨 현미경 확대사진 같은 느낌을 주고 동그라미들은 키치적이다. 근원 없이 불안한 느낌과 그 불안함을 의도적으로 제거한 두 가지 양식이 충돌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느낀 점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고 했다. “뭔가 증식되고 퍼져나가는 느낌”을 주고 싶었단다. 좀 추상적이다. “그 부분에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번에는 어번 플랜츠라는 제목을 붙인 거예요.” 도시와 식물, 그 충돌의 이미지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설명이다. 동시에 작가가 주목하는 대목은 질감 그 자체다. “보통, 아니 특히 한국의 작가들은 작품에 어떤 스토리를 집어넣어요. 이런저런 이야깃거리들. 그런데 전 그것보다 그림 그 자체의 질감에 집중해 보고 싶었어요.” 마음껏 흩뿌린 안료가 기기묘묘한 자태로 흩어진 모양이 두꺼우면서도 미세한 질감이어서 흥미롭단다. 작가는 홍익대 판화과를 졸업한 뒤 독일 유학 길에 올라 알렉산더 옥스 갤러리에 발탁됐다. 아시아미술에 안목이 높기로 유명한 독일 갤러리다. 첫 만남이 웃긴다. “어떤 전시를 보고 있는데, 누가 툭 말을 걸더라고요.‘당신 아티스트냐. 작업 한번 보자’고 하는 거예요.” 신발에 묻어 있는 물감을 보고 작가려니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발탁돼 2006년 ‘어두운 꽃’으로 함께 전시를 열었다. “그 경력이 저한테 이롭기는 했는데, 한국 현실과는 달라서….” 전속작가가 되면 다른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연계된 전시를 활발히 열어 주는 분위기가 한국에선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 한남동에 작업실을 짓고 있으니, 열심히 작품을 선보일 생각입니다.” (02)3443-636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겹겹이 스민 먹빛 기와

    겹겹이 스민 먹빛 기와

    “중국, 일본에도 기와가 있지만 한국의 기와는 달라요. 먹빛에 가장 가깝다고 해야 하나. 한국 기와는 수묵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깊은 빛깔을 내거든요. 그런 느낌 때문에 기와를 한번 꼭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14일까지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내 롯데갤러리 본점에서 ‘관심’(觀心)전을 여는 강미선(50) 작가는 기와 작품을 들고 나왔다. 지붕과 담 위에 얹어진, 겹쳐지고 이어지는 기와의 이미지가 두툼하니 정겹다. 자욱한 안개에 잠긴 양반마을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기와를 너무 길게 그리다 보니 가끔 작품 보신 분들이 물어보세요. 가보고 싶으니 저 곳 좀 소개해 달라고. 사실 기와가 너무 좋아서 제가 마음대로 길게 늘려서 그린 거예요. 하하하. 경복궁이나 경주 양동마을 같은 곳에 가서 기와를 볼 때마다 먹빛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거든요.” 이런 작업은 재료와도 연관이 있다. 동양화가들이 흔히 쓰는 장지를 쓰되 작가는 이를 여러 번 겹쳐서 쓴다. “한지가 닥나무로 만든 거잖아요. 식물성 섬유 소재이다 보니 옛날에는 인두를 쓰거나 하는 방식으로 종이를 붙였거든요. 그런데 그 방법을 쓸 수 없으니 저는 다리미를 써요. 뒷면을 꾹꾹 다려서 눌러붙이는 방식이죠.” 방망이로 두들겨 단단하게 다진 뒤 물 뿌리고 다리미로 붙인다. 그래서 종이가 종이 같지 않게 빳빳하게 힘 있어 보이는 데다 우둘투둘한 질감이 고스란히 살아난다. 애써 이런 밑작업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깊은 맛을 내기 위해서다. “붓질을 해 보면 종이 한 장에서 먹이 우러나오는 것과 두세 장이 붙은 바탕 위에서 우러나오는 맛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아크릴이나 유화처럼 서양화 재료들이 캔버스 위에 붙어 있는 것이라면, 수묵의 맛은 종이에 깊이 있게 한번 쓱 배어 들었다가 다시 올라오는 거거든요. 종이를 덧붙여 쓰게 되면 그 깊이감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는 거지요.” 접착제 같은 것으로 간단하게 붙일 수 있는데도 이런 방법은 피한다. 이 또한 먹이 우러나오는 맛을 접착제가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고 이렇게 종이에 공들이는 것이 꼭 깊이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미술에 들어서면서 종이는 너무 힘없고 약한 매체로 전락해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 자꾸만 관심권에서 멀어지고. 그럼에도 동양화 작가들은 자꾸만 그 안에 담긴 뜻을 보라고 말하고…. 조금 더 견고하고 지속가능한 매체에 대한 고민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번에 종이와 함께 선보이는 소재가 도자기다. 생활에서 흔히 쓰는 도자기 쟁반 뒷면에 그림을 그려넣은 것.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림을 그려넣은 뒤 함께 구워 내는 방식이다. 전시 제목에 대해 물었다. 농담 삼아 궁예 얘기를 꺼내자 파르르 웃는다. 마음을 들여다볼(觀心) 줄 안다던 김영철(드라마 ‘태조왕건’에서 궁예 역을 맡았던 배우)의 카리스마 넘치는 애꾸눈이 자꾸 떠올라서다. “아무리 치장해도 작가는 자기가 보는 시야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에서 고른 단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닌 게 아니라 기와를 제외하고는 가정집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그래서 정물화에 흔히 등장하는 과일과 그릇 같은 것이 주된 소재다. (02)726-442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주전자와 백자잔 잘 어울리는 한쌍

    주전자와 백자잔 잘 어울리는 한쌍

    금속공예가이자 전용일 국민대 금속공예과 교수의 개인전 ‘은, 차, 주전자’가 13일까지 서울 소격동 갤러리 아원에서 열린다. 전 교수는 전통판금기법을 되살려 널리 대중화하는 것은 물론 금속공예를 이론적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해 온 대표적 작가로 꼽힌다. 6년 만에 여는 개인전에서는 금속공예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주전자와 차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선보인다. 주전자는 참 쉬워 보이는 외모와 달리 전통판금기법이 모두 동원되어야 제작할 수 있는, 금속공예 분야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으로 꼽힌다. 평판을 망치로 두들겨 양감을 만들어 내고, 그 양감을 용도에 알맞은 공간구조물로 만들어 내는 작업이 바로 전통판금기법이다. 전 교수가 가장 중요한 금속공예기법으로 생각한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전시에 나온 작품 중에는 특히 판금기법으로 만든 백동 손잡이가 눈에 띈다. 반짝대는 은빛에다 무채색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조화를 꾀했다. 도예가와 협업한 백자 잔 세트도 곁들였다. 주전자와의 조화를 위해 디자인은 전 교수가 하고, 제작은 도예가에게 맡기는 방식이다. 때문에 주전자와 백자 잔들이 어떻게 어울리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02)735-3482.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통 서예를 그림으로 풀어 감동 주고 싶어요”

    “전통 서예를 그림으로 풀어 감동 주고 싶어요”

    ‘이모그래피’(Emography)란다. 낯설다. “그렇죠? 저도 처음엔 그랬는데…. 2006년 독일 전시 때 현지에서 머물고 있던 류병학 평론가가 그 말을 처음 썼어요. 저는 막연하게나마 내가 하려는 것, 하고 있는 것은 심상(心像) 서화가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그 표현을 쓰시더군요. 사물을 본뜬 관념을 문자화한 것이 아니라 감성 그 자체를 나타낸 것이라고요.” 그래서 감정(Emotion)과 서법(Calligraphy)을 합쳐 이모그래피라는 표현이 탄생했다. 순간의 감성을 응축해 글씨를 써낸다는 뜻이다. ●사람들이 쉽게 즐길 서예 기법 추구 8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붓 예술 50년, 이모그래피’전을 여는 허회태(54) 작가 얘기다. 그는 전통 서예를 현대회화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이모그래피 작업을 시도했다고 했다. 현대와 만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답답함이다. 전남 순천에서 나고 자란 작가를 서예의 길로 이끈 것은 큰아버지. 지역에서 이름깨나 날린 서예가이자 한학자였던 큰아버지는 눈여겨보던 다섯 살 조카에게 처음 붓을 쥐어 줬다. 큰아버지의 눈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작가는 어릴 적부터 이런저런 상을 휩쓸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측이 적극적으로 후원해 줘 학교 도서관에서 개인전을 열 정도였다. 이런 실력 덕분에 5만원권의 신사임당 얼굴을 그린 이종상 선생에게서 인물화를 배울 기회도 잡았다. 주변 사람 모두 박수쳐 주는 작가였으니 어깨가 으쓱거릴 법도 한데 되레 자꾸만 힘이 빠져나갔다. 세월이 변하면서 사람들 기억 속에서 한자가 잊혀져 가다 보니 어떤 글자를 이렇게 표현했을 때, 저렇게 표현했을 때 배어나오는 맛을 함께 나누기가 점점 더 어려워져만 갔다. “어릴 적부터 붓을 잡아 다양한 서법을 익히고 공부했는데, 문자 자체로만 쓰다 보면 가독성이 없어요. 예술은 공통의 언어잖아요. 심지어 한자를 하나도 모르는 서양사람들이 봐도 글자 그 자체만 보고서도 아, 하는 감탄사가 나와야 하거든요. 그게 안 되니까 답답했지요.” 그래서 그가 제일 힘주어 말하는 대목은 사람들이 쉽게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문자를 쓰면 저게 대체 무슨 뜻인가부터 생각하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글자가 아니라 그림처럼 쓱쓱 작업하니까 보시는 분들이 자신만의 글자를 상상해 보시기도 하고, 나 같으면 이렇게 표현하겠다고도 하시고, 같은 글자를 두고 서로 다른 뜻을 새기면서 비교도 해보고 그러십니다. 그런 모습들을 볼 때가 제가 보람을 느끼는 때입니다.” ●“붓끝의 상상력 관객도 발휘해 보길” 그래서 그가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내 작업을 봐줘서 감사하지만, 당신도 당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라.”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대목은 일필휘지. 한숨에, 단박에 그려 내 기운생동 그 자체를 드러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냥 하면 될 것 같지만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엄격한 구상 아래 숱한 연습을 통해 머릿속 구상, 몸과 팔의 움직임을 완벽히 맞춰야 한다. 연습과정에서 화선지 수백장 버리는 건 보통 일이다. “관객들 앞에서 그 모습 공개하는 걸 좋아해요. 그 모습 자체가 이모그래피의 일부 아니겠습니까.” 머리와 몸통과 팔이 붓끝에서 흔들려 나오는 그 힘, 관객들에게 그 힘이 주는 감동을 전해 주고 싶다는 얘기다. (02)580-13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박물관 속 ‘세월’ 엿보니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박물관 속 ‘세월’ 엿보니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스키피오의 눈물’이 떠오른다. 오랫동안 로마를 괴롭혀 온 카르타고의 한니발을 굴복시킨 명장 스키피오. 골칫거리가 두번 다시 살아나지 못하도록 카르타고를 철저히 짓밟는 광경을 바라보는 스키피오의 얼굴에는, 웃음이 아니라 눈물이 머문다. 카르타고의 최후에서 로마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최고라지만, 언젠가 로마도 한줌 재로 돌아가리라. 그렇다면 카르타고의 흔적이 복원된다면? 그래서 승자 로마가 패자 카르타고의 교훈을 잊지 않는다면? 서울 삼청로 국제갤러리에서 만나게 되는 독일 작가 칸디다 회퍼(67)의 작품들은 그런 의미에서 ‘회퍼의 미소’쯤으로 불러도 될 듯하다. ●복원된 ‘노이에스 뮤제움’ 내부 풍경 촬영 회퍼는 인물 사진에서 시작해 미술관, 극장,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의 내부를 촬영하는 것으로 유명한 작가다. 이번 한국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들은 독일 베를린의 신박물관(노이에스 뮤제움)의 내부 풍경을 찍은 사진들이다. 19세기 중반 지어진 신박물관은 2차대전으로 파괴된 뒤 60여년간 방치됐다가 1997년 복원설계 공모에 뽑힌 영국의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복원한 건물이다. 치퍼필드는 요란하고 파격적이고 멋진 건축 대신 극도로 절제된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다. 그래서 복원 작업도 ‘절대 손대지 않음’으로 일관했다. 건물에 묻어 있는 세세한 총탄 자국 하나하나까지 고스란히 다 살리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10여년에 걸친 복원작업 끝에 2009년 재개관했다지만 복원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금도 조금씩 조금씩 고쳐가고 있다. 이렇게 긴 세월, 굼뜨다 못해 어떻게 보면 갑갑할 정도로 느려터진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건물 그 자체가, 그 건물이 품고 있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역사라는 판단에 따라서다. ●건물 품고 있는 공기 자체가 하나의 역사 회퍼는 치퍼필드의 제안을 받아들여 복원작업이 진행 중인 신박물관에 들어가 다양한 사진작업을 진행했다. 이번에 공개한 작품들은 2009년 이후 작업한 최신작들이다. 박물관이다 보니 고대 이집트, 그리스, 로마, 중세 유물들을 보관해 둔 공간을 고스란히 프레임에 담았다. 크기도 마찬가지. 벽에 걸린 사진들 앞에 서면 박물관 내부에 발을 내디딘 듯 친숙해진다. 치퍼필드와 죽이 잘 맞는 걸 입증이라도 하듯, 회퍼의 사진에는 어떤 요란스러움도 없다. 조도를 일일이 측정해 가며 자연광을 고스란히 살려 내서 정직하게 있는 광경 그 자체를 촬영했다. 알록달록한 타일, 벗겨지고 긁힌 자국은 물론 모든 요소들이 생생하다. 전민경 국제갤러리 큐레이터는 “촬영 현장을 직접 방문한 적이 있다. 실제 공간에 들어서 보면 아주 낡은 건물인데 사진에서는 화사하게 빛나고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고 전했다. ●사람 흔적 없어도 그리스·로마가 생생해 홀딱 벗은 누드화인데, 색스럽다기보다 몸뚱어리 그 자체로 증언대에 선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는데 저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저벅저벅 들려오는 듯하다. 지우려야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발자국 소리가. 대한민국사를 성공의 역사로 새롭게 쓰자는 목소리가 요란한 요즘, 깊은 울림을 주는 전시다. 25일까지. (02)735-8449.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코오롱·현대백화점 양궁팀 생긴다

    오랜만에 양궁 실업팀이 생긴다. ㈜코오롱과 현대백화점은 30일 양궁팀 창단식을 1일과 14일 각각 연다고 밝혔다. 진해시청(현 창원시청)팀이 2007년 12월 출범한 지 4년 만에 새 실업팀이 만들어졌다. 코오롱은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 우승자 이창환을 포함한 남자 리커브 선수 6명으로 팀을 꾸렸다. 현대백화점은 정상급 신예 최미나와 김예슬 등 여자 리커브 선수 4명으로 시작한다. 코오롱 사령탑에는 서오석 전 전북도청 감독이 선임됐다. 현대백화점은 조은신 경희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코오롱과 현대백화점은 연고지를 각각 경기와 제주로 정했다. 이로써 실업팀은 남자팀 12개, 여자팀 16개 등 28개가 됐다. 장형우기사 zangzak@seoul.co.kr
  • 처절한 쇳덩이 문명의 응어리…작가 김종구, 세월을 깎아 He- Story를 담다

    처절한 쇳덩이 문명의 응어리…작가 김종구, 세월을 깎아 He- Story를 담다

    “제 작품에 히스토리(History)가 있어요.”라더니 아닌 게 아니라 히스토리(He-story)이긴 하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를 나와 쇳덩어리를 깎았다. 흙이나 나무, 돌처럼 조각에 흔히 쓰이는 재료는 피했다. 깎기는 훨씬 어려웠지만 만들어 두면 남다른 느낌이 나서 쇠가 좋았다. 말 그대로 “열심히, 죽어라” 깎아댔다. 1993년 첫 개인전 때는 3년 동안 깎아댄 작품 30여점을 선보였다. 그러다 1996년 영국 전시 중 일이 터졌다. 야외 전시작품 3개를 도둑맞은 것. 무한정 큰 쇳덩이를 다룰 수는 없으니 300㎏짜리 쇠봉을 재료로 썼는데, 길고 좁직하다 보니 뽑아서 몰래 들고 가기 딱 좋았던 모양이다. “보험금 덕분에 외환 위기가 몰아쳤음에도 남은 영국 체류 기간 돈 걱정 없이 편하게 살긴 했지만….” 찝찝한 기분은 내내 목에 걸렸다. ●작품 도둑맞고 흔적으로 남은 쇳가루 120㎏ 밑천 영국에서 구한 작업실은 반지하의 폐쇄된 공간. 쇠를 갈다 보니 소음과 먼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웃 주민들에게 쫓겨나지 않기 위해 가장 폐쇄적인 공간을 골랐다. 보일러실과 함께 쓰면서 아주 작은 철문 한짝만 나 있는 곳을 찾았다. 그렇게 몇 달간 작업했는데 작품은 사라지고 갈아낸 쇳가루만 남았다. 놀면 뭐하나. 3일 동안 자석으로 분류했다. 쇳가루 산과 먼지 산, 2개의 산이 탄생했다. 그 쇳가루로 바닥에 글씨나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그 쇳가루 120㎏이 지금까지의 작업 밑천이다. 1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원앤제이갤러리에서 ‘더 볼’(The Ball) 전시를 여는 김종구(48) 작가 얘기다. 해서 전시장에 들어서면 쇳가루로 만든 작품들이 즐비하다. 1층에는 벽면을 가득 채운 설치작업이 보인다. 아니, 그림 작업이기도 하다. 캔버스 혹은 천 위에 쇳가루를 마치 물감처럼 썼기 때문이다. 그림과 글자를 그려 둔 뒤 접착제로 고정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녹슬고 흘러내렸다. 그림과 글자는 뭉개져서 알아보기 어렵다. “저건 2004년부터 시작해 올해 완성한 겁니다. 7년간 제작이란 게 어떤 의미냐면, 녹슬고 뭉개지고 또 가루가 바닥에 떨어지는 것까지 모두 작품이란 뜻입니다. 바닥에 놓고 그린 뒤 세우니 쇳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더군요. 그러면서 제 속의 응어리가 한꺼번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어요. 그 느낌 때문에 지금에서야 완성됐다고 말하는 겁니다.” ●쇳덩이 갈다가 검지손가락 한 마디 잃어 여기엔 히스토리가 하나 더 있다. 2003년 미국 뉴욕에 머물 기회를 잡았다. 정부 지원은 원활하지 않았고 그 덕에 묵직한 쇳덩이를 조수와 단둘이서 다루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다 사고로 오른손 검지손가락 한 마디를 잃었다. ‘풀렸다는 응어리’는 그때의 충격을 말한다. 2층의 ‘더 볼’ 연작도 같은 생각 위에 서 있다. 쇳가루로 글씨를 쓴 뒤 그걸 다시 이리저리 하나로 뭉쳐 사진으로 찍었다. “하고 싶은 말, 들었던 생각이 하나로 뭉쳐진 팽팽한 느낌, 그게 너무 좋아서 시작한 겁니다. 뭔가 말이 터져나올 것만 같은 그 느낌 말이죠.” 2층 ‘침묵의 방’에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빈 공간에 쇳가루 글자가 돋아 있다. “벽에서부터 불거져 나오는 말의 원초적 힘 같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지금 꿈꾸고 있는 프로젝트도 쇳가루를 이용한 그라인딩 프로젝트다. “그때 가져온 120㎏ 쇳가루를 거의 다 써가거든요.” 농담과 달리 그는 철이 문명이라는 점에 착안했다. “문명의 도구를 쇳조각으로 만든 뒤 그걸 다 갈아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거죠. 시작은 삽, 곡괭이, 삼지창 같은 원시적 도구였는데 궁극적으로 탱크를 한번 갈아보고 싶습니다.” 그 육중하고 무거운 탱크를? “철이 문명인데, 무기로도 쓰이잖아요. 현대 문명에 대한 경고? 뭐 그런 걸 해보고 싶어요.” 탱크를 내주는 곳이 있으려나. ●녹슬어 흘러내리면 그 또한 7년을 담은 작품 “전 세계 전쟁 현장 가운데 한곳을 찾아가는 거죠. 거기서 전투 중에 파괴된 탱크를 하나 허가받는 겁니다. 그러고는 화이트큐브처럼 소음과 먼지를 완전히 차단하는 집을 덮어씌우고, 제가 그 안에 들어가 갈아버리는 거죠. 동영상으로 남겨 두고 쇳가루도 고스란히 남겨 둘 겁니다. 그 자체가 현대문명이 일으킨 전쟁에 대한 하나의 기념비가 되는 거지요.” 가능할까 싶은데 작가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이 작업 구상은 오래된 거고요, US스틸 같은 해외철강업체에서 돕겠다는 얘길 해요. 그런데 한국 작가가 왜 포스코를 놔두고 외국 지원을 받습니까. 포스코가 답을 안 해요. 가령 이라크 전쟁 지역 한가운데서 작업하면 얼마나 이슈가 되겠습니까.” 그대로 써도 되겠냐 했더니 “얼마든지 쓰라.” 했다고 한다. 그래도 조각인데 뭔가 형체가 있는 작품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죄다 쇳가루면 대체 뭘 보라는 거냐는 질문에 대답이 걸작이다. “쇳가루 작품들 뒤에 숨어 있는 거죠. 쇳가루 작품들 너머 어딘가에 잃어버린 채로.” 쇳가루 범벅 현대문명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렸을까. (02)745-164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대중음악 ●2011 이승기 희망 콘서트 12월 10일 오후 7시, 11일 오후 5시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배우나 MC가 아닌 노래하는 가수로서의 이승기를 만날 수 있는 콘서트. 최근 발매한 5집 앨범을 비롯해 발라드, 댄스, 록, 트로트까지 다양한 무대를 선보인다. 5만 5000~13만 2000원. 1544-1555. ●이승철 크리스마스 콘서트 ‘리퀘스트 쇼’ 12월 22~25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코엑스홀 D. 팬들의 신청곡으로 꾸며진다. 뒤쪽 관객의 시야를 위해 계단식 좌석이 설치된다. 유아놀이방도 준비돼 있다. 7만 7000~13만 2000원. 1544-4997. 클래식·국악 ●플루티스트 박지은&마타도르 기타 콰르텟 27일 오후 7시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 서울시향 플루트 수석 박지은과 한국예술종합학교 선후배(고의석, 김진택, 김현규, 박종호)로 이뤄진 4중주 실내악단 마타도르 기타 콰르텟의 협연. 4만 4000~5만 5000원. (02)6255-3270. ●안수련 해금 독주회 3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여의도 우리예술문화원 여의도소극장. 국립국악관현악단에서 해금을 맡고 있는 안수련이 지영희류 해금산조는 물론 팝송과 창작곡까지 들려준다. 5만원. (070)8827-2771. 미술·전시 ●박경선&정성원 개인전 12월 11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컨템포러리. 젊은 신진 작가들을 집중 발굴하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인간과 동물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두 작가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02)720-1020. ●정헌조 개인전 12월 3일까지 서울 청담동 유아트스페이스. 극히 단순한 도형을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냄으로써 흑과 백, 물과 불, 채움과 비움이라는 동양적 맛을 풍겨 낸다. (02)544-8585. ●김광문 개인전 12월 22일까지 서울 신사동 갤러리에스피. 다양한 화분과 식물을 정물처럼 배치해 옛 동양화에서 드러난 기명절지(器皿折枝) 느낌이 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02)546-3560. 연극 ●‘자웅이체의 시대’ 11월 30일~12월 4일 서울 혜화동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플라톤의 ‘향연’에는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인 이야기가 나온다. 신의 분노를 사서 둘로 나뉜 뒤 늘 자신의 반쪽을 갈망한다. ‘둘’이 함께 해야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작품. 2만원. 1544-1555. ●‘대학살의 신’ 12월 17일~2012년 2월 1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놀이터에서 벌어진 두 소년의 싸움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가해자 부모와 피해자 부모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코미디. 3만 5000원~5만원. 1544-1555.
  • 그렸다 뭉개버린 마오쩌둥 초상

    그렸다 뭉개버린 마오쩌둥 초상

    “저 스스로가 요즘 아주 ‘매니악’한 상태입니다. 컨디션도 최고고요. 이제 예술적 생명에 있어서 새로운 시작입니다.” 중국 현대미술계의 차세대 작가로 꼽히는 인자오양(41)의 얘기다. 그는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에 ‘매니악’(Maniac·광) 시리즈를 처음 공개했다. 무뚝뚝한 말투 속에서 자신감이 묻어 나왔다. ‘매니악하다’는 게 무슨 뜻이냐는 질문에 “하루에 비유하자면 오후일 때, 1년에 비유하자면 여름일 때”라고 답했다. “매 순간 뭘 하든지 간에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상태, 후회 없이 저지를 수 있는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마디로 절정기라는 답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10여년 전만 해도 아트페어에 어떻게든 참가하고 싶어서 주변에 이래저래 돈 빌리고 직접 자전거까지 몰며 작품을 날랐건만 단 한 작품도 못 팔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천안문’ ‘광장’ ‘정면’ 시리즈가 경매시장에서 수십억원에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경제적 부담에서는 완전히 벗어났다. 우리나라 저축은행 사태 때도 그의 작품이 거론됐다. 10월 타이완전, 이번 한국전에 이어 다음 달에는 스페인 등 전시 일정도 줄줄이 잡혀 있다. 그가 휴대전화에 담아 놓은 사진을 슬쩍 보여주었다. 베이징 인근 쑹좡에 마련한 거대한 작업실이다. 고향인 허난성에는 그의 이름을 딴 개인 미술관도 짓고 있다. 정오 같다, 여름날 같다고 할 만도 했다. 이번에 공개한 ‘매니악’ 시리즈는 인물 초상을 그린 뒤 뭉개버린 작품이다. 주변 친구, 지인들을 그린 뒤 뭉갠다. 초기작에서 최근작으로 갈수록 뭉개는 강도는 더해진다. 처음엔 원만 슬슬 돌렸다면 이제는 말 그대로 아주 짓뭉개버린다. 언뜻 프랜시스 베이컨(1909~1992)의 작품들이 연상된다. “글쎄요. 베이컨 그림에선 피카소가 보이지 않던가요. 후세대에 이전 세대의 영향이 들어가 있어 보이는 것은 당연한 듯싶습니다.” 무얼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일까. “자아를 잃어버린, 내면에 숱한 상처를 안고 사는 현대인의 모습”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절정기에 오른 모습이란 그런 모습이 아닐까라는 반문이다. 이전 대표작이랄 수 있는 ‘천안문’ ‘광장’ 시리즈도 함께 볼 수 있다. 12월 18일까지. 서울 서초동 더페이지갤러리. (02)3447-0048.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김문의 만난사람] 이중섭 55주기… 그를 추억하는 원로 시인 김광림

    가을 끝자락이다. 창덕궁의 나무들도 겨울을 맞이할 요량으로 나뭇잎마저 무겁다는 듯 후드득 털어낸다. 한 노(老)시인은 백발을 만지작거리며 실로 오랜만에 자신의 시집을 뒤적인다. 돋보기를 꺼내 들고 책장을 넘기던 노시인은 “그래 바로 이 시야, 이거!”라고 탄성을 터뜨린다. 어떤 시일까. ‘팔삭둥이 첫 아들이 죽었을 때/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그리고 있었다/저승동무 길동무로/천도 따는 애며/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학 타고 날아가는 애도/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여직 애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개구쟁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이자/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그려주었다/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동심(童心)을’ 지난 16일 오전 창덕궁 바로 옆 바움갤러리에서 원로 시인 김광림(82) 선생을 만났다. 그는 천재 화가 이중섭과의 추억을 새삼 떠올린다. ●‘시전집’에 이중섭 연작시 8편 담아 “17살 때 함경남도 원산에서 이중섭 화가를 처음 만났어요. 그의 첫애가 죽어 애도할 때였지. 하루는 이중섭의 집에서 같이 잤는데 새벽녘에 일어나 보니 온데간데없어요. 그래서 옆방에 슬쩍 가 봤더니 그림을 그리고 있었어요. 뭘 그리나 어깨너머로 봤더니 애들이 하늘에서 새를 타고 다니는 거, 천상의 복숭아를 따는 아이들, 학을 타고 날아다니는 아이들, 아버지 목에 매달려 있는 애들, 게가 아이의 아랫도리를 물고 있는 모습 등을 그리더군요.” 노시인은 잠시 창밖을 바라본다. 추억의 편린들이 가을 낙엽과 함께 머릿속을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올해가 이중섭 화가 탄생 95주년이고 작고 55주기가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노시인은 “아, 그렇게 됐나요. 나보다는 13살 위였는데….”라고 말끝을 흐린다. 얘기 도중 가끔 백발을 쓰다듬는 모습이 어쩌면 천상의 복숭아를 따러 날아가 버린 이상한(?) 새를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손바닥만 한 공간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시, 그는 시인이 부러워 시처럼 그림을 그렸지…. 은박지 그림이 생각나. 내가 군 장교로 있을 때였어. 외출을 나올 때마다 군보급품 박스에 있던 양담배 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수집해 갖다주었어요. 아주 좋아했지. 그림을 그릴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나중에 그 그림들을 죄다 불태워 달라고 했어. 참으로…. 은박지 그림만 200~300장 됐어.” 이중섭 화가는 1955년 서울 미도파백화점과 대구 미공보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자 실망과 충격으로 대구에서 만난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야.”라고 하면서 불태워 달라고 했다. 이중섭 화가는 그렇게 그림을 던지고 확 가 버렸고 김 시인은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보관했다가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친구이자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가까스로 은박지 그림을 살려냈다. 이 그림들은 지금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호가한다. 노시인은 2006년 이중섭 화가에 대한 추억의 글과 시를 모은 ‘가짜와 진짜의 틈새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 “그의 그림을 불사르지 않고 세상에 남아돌게 한 것이 지금 생각하면 잘한 일인지, 잘못한 일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중섭 작품에 대한 순수한 평가보다는 그림값을 올리려는 상업적 행태가 눈에 거슬린다는 지적을 했던 것. 노시인은 지난해 11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의 ‘김광림 시전집’을 펴냈다. ‘이중섭 생각’이라는 연작시 8편도 담았다. 여기에서 노시인은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던지며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을 더 지켜보지 않았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다하지 못한 정을 엽서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또 그려서/고통을 환희로 바꿔 찬 한 사내가/거뜬히 시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라고 그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이중섭은 시인의 마음을 가진 화가였습니다. 또 그런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다수의 시를 쓰게 됐어요. (다시 백발을 만지작거리다가) 연작시 말고 또 뭐 있더라….” 옆에 있던 딸 김상미씨가 얼른 기억을 돕는다. 노시인은 요즘 병원에 다니느라 딸 집에 기거하고 있다. “아마 ‘사막’일 겁니다. (딸이 시를 읊는다) ‘화가 이중섭은 사막으로 걸어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이적(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아버지 맞죠.” 노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기억이 잘 안나.”라며 활짝 웃는다. 화제를 바꿨다. 문단 데뷔 시절을 물었다. “전쟁 2년 전인가 그래요. 친구집에서 지내고 있을 때 새벽녘에 문득 낡은 문풍지를 보고 시를 하나 썼어. 그랬더니 친구가 ‘안양에 박두진 시인의 문하생 동인(청포도)들이 있는데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갔어.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쓴 시를 박두진 시인에게 보여줬더니 ‘10년 후면 우리나라의 시가 달라지겠네’라고 하면서 구상 시인한테 가보라고 하더군. 그때 구상 시인은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었지. 구상 시인과는 원산에서 만났던 사이였지. 어쨌든 찾아갔어.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는데 나를 아래층으로 끌고 내려가 우동 두 그릇을 시키면서 ‘배가 고플 텐데 두 그릇 다 먹으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시를 읽더니 ‘관념적이긴 하지만’이라고 말을 하더군. 그 2~3일 뒤에 ‘문풍지’라는 제목으로 시가 발표됐어. 그래서 데뷔작이 ‘문풍지’야. ●“그의 그림에서 詩 영감 많이 얻어” 이후 6·25전쟁이 끝난 1957년 전봉건, 김종삼 등과 함께 ‘전쟁과 음악과 희망과’라는 3인 시집을 내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펼쳤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시작으로 2009년 제10회 청마(靑馬)문학상을 수상한 ‘버리면 보이느니’까지 통산 18권의 개인 시집을 펴냈다. 그러는 동안 평양 출신의 박남수(1918~1994) 시인과 친하게 지냈으며 문덕수(83)·홍윤숙(86) 시인 등과 절친 문우로 교류했다. 1990년 제12차 세계시인대회 때였다. 일본의 저명한 국제적 여류 시인 시라이시 가즈코가 ‘오늘의 율리시스’라는 시를 낭독하기 직전 노시인이 “나는 북에서 온 한국의 율리시스입니다.”라고 말해 장내의 무거운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낸 일화는 지금도 문단에서 회자된다. 그는 또 한국과 일본, 타이완 등 동아시아 국가들과 문화 교류를 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6·25전쟁 때는 9사단 29연대에 배속(소위)돼 백마고지와 저격 능선 전투에 참가했다. 이때 전우의 죽음을 다룬 시 ‘진달래’가 ‘국방’지에 게재돼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으며 후에 은성화랑무공훈장을 받았다. 슬하에 김상수(사업가)·김상일(조각가)·김상호(중문학자)·김상미(주부)씨 등 3남 1녀를 두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노시인에게 시 한편을 부탁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죽음이란 걸(주제)로 병원에 있을 때 써보긴 했는데….”라는 대답이 나지막이 돌아온다. 다음은 그가 최근에 쓴 미발표작 시.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김광림은 김광림은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2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충남(忠男)이다. 원산공립중학을 거쳐 평양종합대 역사문학부 외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48년 12월 한탄강을 거쳐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해 안양에서 ‘청포도’ 동인과 어울리다가 청록파 시인 박두진을 만났고 그의 권유로 연합신문 문화부장으로 있던 구상 시인을 만난 것이 인연이 돼 ‘문풍지’라는 시를 처음 발표했다. 경기 여주군 북내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중 6·25전쟁을 만나 육군 소위로 9사단 29연대에 배속돼 전쟁에 참가했다.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으며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이듬해 두 번째 시집 ‘심상의 밝은 그림자’, 1965년 세 번째 시집 ‘오전의 투망’ 등 지금까지 18권의 시집을 내면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1983년 장안대 교수, 한양대 강사 등으로 강단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1985년 대한민국 문학상을 수상했다. 1992년 한국시인협회 회장을 맡아 아시아 시인대회 서울대회 집행위원장을 역임했다. 1999년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2001년 국가유공자증서 등을 받았다. 2009년에는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을 수상했다.
  • 송승호 작가, 22일까지 갤러리 A.P서 개인전

    송승호 작가, 22일까지 갤러리 A.P서 개인전

    송승호 작가가 오는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갤러리 A.P에서 개인전을 연다. 동양화를 전공한(세종대 동양화과) 작가답게 먹의 느낌을 잘 살린 작품을 내놓았다. 베란다에서 무심히 내다본 동네 풍경 등은 “회화의 우연적 효과는 창작에 작은 흥미를 준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02) 2269~5061.
  • 이우환 “난 그냥 작가… ‘점’ 하나에 어떤 울림을 담았지요”

    이우환 “난 그냥 작가… ‘점’ 하나에 어떤 울림을 담았지요”

    ‘그냥’ 작가 이우환(75)이 돌아왔다. 15일부터 12월 18일까지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다이얼로그’(Dialogue)전을 연다. 앞서 지난 6월 23일부터 9월 28일까지 석 달 동안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 ‘무한의 제시’(Marking Infinity)를 열었다. 하루 평균 8000명의 관람객이 몰려드는 등 큰 관심을 끌었다. 스스로 “세계적이 아니라 그냥 작가”라고 하는 이유는 겸손 때문이 아니다. “세계적이니, 동양적이니, 한국적이니 그런 말 쓰지 마세요. 그런 말은 우리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겁니다. 요즘 뜬다는 젊은 작가들이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그런 말은 곧 인류 보편과 무관하게 한국 사람들끼리 잘 논다는 걸 전제로 한 말입니다. 고약한 말이지요.” 다른 어떤 조건 없이 작가와 작품세계 그 자체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해외가 인정해야 비로소 열광하기 시작하는 기이한 한국적 풍토에 대한 일침도 녹아 있다. 보편성에 대한 그의 열망이 묻어 있기도 하다. 개인전 제목이 다이얼로그인 이유이기도 하다. 이성, 논리를 뜻하는 로고스(Logos)의 틀을 깨부순 것이 다이얼로그(Dialogue=Dia+Logos)다. “이 단어를 쓰기 시작한 게 몇 년 안 됐는데, 굳이 뜻을 밝히자면 에고(Ego)가 깨진 상태, 그 상태에서 내 안의 것과 내 밖의 것 간에 연결고리 찾기 같은 겁니다.” 너와 내가 통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데 굳이 소통(Communication) 대신 다이얼로그라는 단어를 골랐다. 소통은 공동체(Commune)를 전제로 한다는 판단에서다. 이 역시 공동체에 얽매이지 않는 보편성에 대한 열망이다. →구겐하임 전시는 어땠나. -아주 재미있는 공부였다. 본격 회고전도 처음이었고…. 일본, 유럽이 아닌 미국에서는 처음이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기도 했다. 회고전이다 보니 1960~70년대 작품을 다시 설치해야 했는데, 예전 걸 고스란히 갖다 놓을 수는 없고 지금 와서 다시 설치한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고민했다. 다행히 작가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도 즐겁고 재밌게 봤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즐거웠다. →회고전 제목에 ‘제시’라는 단어를 썼다. 예술가는 ‘창조’가 어울려 보이는데. -창조는 신만이 할 수 있는 거다. 옛 얘기 하나 하자면, 설총이 아버지 원효대사를 찾아갔을 때 마당 청소를 시킨다. 늦가을이라 낙엽이 수북했거든. 설총이 싹 치워놓으니 나중에 나와 보고는 나뭇잎 몇 개를 뿌리면서 이래야 제 맛이 나는 거 아니냐, 라고 한다. 싹 쓸어놓은 뒤 다시 살짝 뿌려두는 것, 기존에 있던 것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 그게 예술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작품 수가 의외로 적다(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의 전시 공간에 들어선 작품은 10점이다. 그나마 지하 1층엔 영상물 하나뿐이다). -1년 반 전부터 약속하고 준비해온 거다. 쉽게 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화랑으로서는 난처하겠지만, 간략함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보고 싶었다. ‘종이 울린다’고 말할 때 중요한 건 종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울림이 퍼져나갈 수 있는 여백, 그러니까 공간이나 파장 같은 것이다. 극한의 점 1개가 어떤 울림을 줄 것인가, 그걸 묻고 싶었다. 작품에는 작가의 생각, 물감이라는 물질성, 그린다는 행위성 같은 게 범벅이 된다. 그러나 그 어느 하나가 캔버스를 지배해서는 안 된다. 그 요소들끼리,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면서 하나로 뭉쳐지는 느낌을 가장 간략하게 표현해 보고 싶었다. →점과 선에서 출발했다가 다시 점이다. 어떻게 되돌아오게 됐나. -1960~70년대엔 질서정연한 무엇을 해보고 싶었다. 서구적인 영향도 있었을 게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몸이 안 따라가더라. 그릴 흥도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나온 게 ‘바람’ 시리즈다. 남들은 자유분방하다 말해 주는데, 정작 내 자신은 곤혹스러웠다. 엄격함을 벗어나 보고 싶었던 건데, 말하자면 방황한 거다. 그러다 다시 점으로 귀환했다. 점이 더 크게 확대되면서 더 넓은 공간성에 대한, 더 큰 세상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 싶었다. →말 그대로 점 하나 콕 찍어둔 작품이 있다. 어떤 의도인가. -티끌의 모습이다. 이런 건 나도 그릴 수 있겠다는 유머, 위트로 넣어둔 작품이다. 아무나 그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실은 아무나 그리진 못한다는 것, 그게 제 작품의 핵심이다. →(극도의 단순함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이나 추상적 작업에 굉장히 비판적인데, 그런 작품을 하는 작가로 받아들여진다. -제 작품이 단순한 작업이라고 생각해서 그러는 거 같다. 저는 안과 밖이 부딪치는 순간을 그려내기 위해 관계, 조응, 만남 이런 표현들을 쓴다. 추상이나 미니멀리즘이 자기 자신의 에고를 중시하는 것과 반대되는 생각이다. 문화라는 것은 결국 현실에서 에센스를 뽑아내 추상화하는 작업이기에 그렇게 비칠 여지는 있지만, 자기표현이라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다르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내 죽은 뒤를 어찌 알겠나. 다만 작가로서야 내 작품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기억되길 바란다. 시간 앞에서 모두 헛일이 되겠지만…. 여하튼 당분간은 좀 쉴 생각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는. -흔히 늙으면 인생 경험이 쌓여서 진중해지고 어쩌고 하는데, 사실 그거 다 거짓말이다. 늙으면 힘 떨어져서 젊었을 때처럼 고집 부리고 하질 못하니까 지어낸 말이다. 난 죽을 때까지 아우성쳐야 한다고 본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자연의 흙냄새 그림서 느껴요”

    “자연의 흙냄새 그림서 느껴요”

    “작가로서의 힘을 보여줘야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앞으로도 몇년 간은 대작만 할 겁니다.” 오는 11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지 작가’ 함섭(69)의 호언장담이다. 전시 제목 ‘함섭 한지 40년’만 보고 이제 좀 손을 놓고 정리를 하려는 건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작가 스스로는 힘이 넘친다. “내 생애 가장 큰 전시”라더니 확고부동하게 “아직은 보여줄 게 많다.”고 단언한다. 적어도 75살까지는 대작만 하겠단다. 언제나 오늘은 남은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이니 최선을 다해야 한단다. 이번 전시도 100호 이상만 50점을 골랐다. 지난해 3월 고향인 강원도 춘천에 ‘함섭 한지아트스튜디오’라는 작업실을 차리고 낙향한 뒤 집중해 왔던 작품들이다. 작가는 고향에 안착하니 작품도 분위기가 좀 바뀌었단다. “원래 오방색 같은 걸 써서 강렬하게 만들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자연의 색이 좋아졌어요. 고향에 오니 어릴 적 언덕에서 뛰놀던 생각이 작품에 슬슬 들어가는 거겠죠.” 노작가의 땀방울에서도 진한 흙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02)580-130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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