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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유적 관광상품 개발 바람

    종교유적 관광상품 개발 바람

    지방자치단체들이 종교문화 체험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농촌체험 등 생태와 녹색을 테마로 관광상품을 개발하던 지자체들이 종교로까지 눈을 돌린 것이다. ●충북, 종교체험관광지 충북도는 천주교와 손을 잡고 국비 등을 지원받아 진천군 백곡면 ‘배티 성지’와 음성군 감곡면 ‘매괴성당’을 종교체험관광지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18일 밝혔다. 배티 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 터와 천주교 순교자 무덤이 있는 도지정 문화재로, 한국 가톨릭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다. 도는 내년부터 5년간 총 250억원을 투입해 이곳에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피정센터, 순교박해박물관, 둘레길, 각종 편의시설 등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충북도 문화예술과 조경순씨는 “천주교가 자체적으로 배티 성지 활성화추진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배티 성지는 종교적 가치가 높은 곳”이라며 “순례성지의 국제적인 명소가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충북도는 또 2014년까지 30억원을 투입해 매괴성당 일원에 체류형 주거시설 12곳, 팔각정 등 휴게시설, 교육관 등을 건립하기로 했다. 매괴성당을 잠깐 보고 가는 곳에서 하루 이상을 묵었다 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매괴성당은 1896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해마다 20만명 이상이 찾고 있다. ●충남, 템플스테이 플러스 원 충남도는 지난해 시작된 ‘템플스테이 플러스 원’을 대표 관광상품으로 키우기로 했다. 이 상품은 사찰 체험을 하면서 인근 관광지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지난해 7300여명이 참여했다. 아울러 늘고 있는 전통사찰 체험객들을 잡기 위해 차별화된 템플스테이를 만들고 있다. 충남도는 올해 1억원을 투입, 도내 8개 사찰과 함께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보강하고 관광명소와 연계된 상품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도는 김대건 신부 탄생지인 솔뫼성지와 조선시대 말 천주교신자 3000여명이 처형된 서산 해미읍성, 1866년 병인박해 때 안토니오 주교 등이 순교한 보령 갈매못성지 등 주요 천주교유적지를 인근 관광지와 묶어 관광 코스로 개발 중이다. 논산시는 강경읍 소재 개신교 유적지 5곳과 천주교 유적지 1곳을 인근 문화유적지와 연계된 1박 2일 코스의 역사문화 탐방코스로 만들고 있다. ●관광자원 활용가치 커 지자체들이 종교자원에 관심을 갖는 것은 관광자원으로 활용가치가 있어서다. 외지인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는 종교 유적지에 시설을 확충하고 차별화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조금만 투자하면 전국적인 관광명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화부 종무2담당관실 안승섭 사무관은 “정부가 특정 종교 유적지의 관광상품화를 지시할 수는 없지만 지자체가 해당 종교와 협의해 수립한 계획이 타당하다고 판단되면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종교간 벽 허물어야 진정한 화합”

    “종교간 벽 허물어야 진정한 화합”

    사회통합위원회는 17일 기독교와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 종교 등 우리나라 7대 종단의 대표 인사들을 초청한 가운데 ‘상생을 위한 7대 종교 간 대화’ 토론회를 열었다. 현 정부 들어 각종 국책사업 추진 과정에서 종교계와의 마찰로 소통 부재의 문제가 지적돼 온 점을 감안해 사회 갈등을 해소하고 종교 간 화합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토론회에 참석한 종단 대표 인사들은 현대의 다종교 사회에서 폐쇄성과 벽을 허물어야 진정한 대화와 화합이 이뤄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길희성 서강대 명예교수는 기조 강연을 통해 “다종교 사회의 종교 간 대화는 종교 사이의 대화뿐 아니라 민주사회를 떠받치는 근본 정신과 대화가 돼야 한다.”면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 보인 몰지각한 행위는 바로 이러한 덕목이 아직 내면화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정배 감리교신학대 교수는 “백범 김구 선생은 유교인이었으나 동학의 접주가 됐고, 불교 승려로 살기도 했지만 기독교인이 돼 신학문적으로 애국의 길을 도모했다.”면서 “한 종교만 알았던 백범 당시의 지도자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지도자와 견줘 볼 때도 크기와 정당성에 있어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동국대 불교대학원 교수인 정각 스님은 최근 한 기독교 행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무릎을 꿇도록 한 것과 기독교의 ‘이슬람 채권법’ 반대를 언급하며 “종교와 정치가 밀착해 사회 통합 내지 종교 화해에 부정적 역할을 했다.”고 비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中 지하교회, 종교자유 보장 입법 촉구

    중국의 미등록 지하 가정교회 지도자 20여명이 최근 의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우방궈(吳邦國) 전인대 상무위원장에게 ‘종교자유’ 보장 입법을 촉구하는 청원서를 냈다.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집단으로 종교자유와 관련한 청원서를 전인대에 제출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13일 중국의 마이크로블로그 등을 통해 전해진 청원서는 ▲지하교회 목회활동 탄압 중지 ▲헌법 제71조 규정에 따른 전인대 상무위원회의 특별조사 개시 ▲종교자유 특별조사위원회 설립 ▲현행 종교 관련 조례의 위헌 여부 조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은 지난달 10일부터 5주째 베이징 서우왕(守望)교회의 옥외집회를 당국이 막고 신도들을 탄압하고 있는 상황을 우려하며 이번 사건이 청원서 제출의 직접적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집단으로 정부의 종교정책에 항거했다는 점에서 전례 없는 대치 국면으로 전개될지 주목된다. 이번 청원이 더욱 강력한 탄압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보장돼 있지만, 원칙적으로 개신교와 가톨릭 신자는 정부 통제하에 있는 중국기독교삼자애국운동위원회나 중국천주교애국회 소속 교회와 성당에서 열리는 예배와 미사에만 참여할 수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해체 위기’ 한기총 출구가 안 보인다

    ‘해체 위기’ 한기총 출구가 안 보인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해체냐, 사수냐.’ 대표회장 금권선거 논란으로 분란에 휩싸인 채 해체 위기에 놓인 한기총이 해체와 유지의 접점 찾기에 나서 주목된다. 10일 개신교계에 따르면 김용호 한기총 대표회장 직무대행이 지난 6일 교회개혁실천연대·기윤실·미래목회포럼 간부 등 한기총 탈퇴·해체를 요구하는 이들을 한기총 사무실로 불러 의견을 들은 데 이어 13일 한기총 산하 교단과 단체장들의 입장을 수렴할 예정이다. 김용호 직무대행은 특히 한기총 회원 교단·단체에 ‘총회 의결권 확인 요청’ 공문을 보내 오는 31일까지 교회 명부와 단체 명부를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그 결과가 주목된다. 총회 의결권 확인 요청은 한기총 회원 자격과 의결권 행사 자격을 검토하기 위한 과정인 만큼 최근 해체론이 비등하고 있는 한기총 분란을 정리하기 위한 수순이란 게 교계의 관측이다. ●교회·단체 명부 공개 공식 요구 김 직무대행이 이 같은 정지작업에 돌입한 것은 우선 법원으로부터 대표회장 직무정지 처분을 받은 길자연 목사 측이 직무대행의 월권을 주장하며 조속한 임시총회 개최를 거듭 요구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한기총 산하 48개 교단과 단체장은 지난달 7일 연석 간담회를 열어 조속한 시일 내에 임시총회를 열 것을 김 직무대행에게 요구한 데 이어 길자연 목사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김 직무대행을 다른 인물로 교체해 달라는 ‘개임(改任) 신청서’를 제출하는 등 김 직무대행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한기총 탈퇴·해체운동이 신학생에게까지 번지는 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는 흐름도 한 몫 했다고 봐야 한다. 교계에 따르면 개신교계 내 최대교단인 합동 쪽 신학교 총신대 졸업생 및 재학생 27명이 성명을 내 “한기총의 금권선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교회뿐 아니라 사회에까지 큰 물의를 일으켰다.”며 합동 교단의 한기총 탈퇴와 사건 연루 목사 처리를 촉구했다. ●신학생들도 “한기총 해체” 성명 그동안 한기총 산하 19대 단체 중 하나인 월드비전이 한기총을 탈퇴하고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교단의 경북노회가 탈퇴 헌의안을 채택하는 등 교단·단체들의 탈퇴 움직임이 있었지만 신학생들의 탈퇴운동은 폭발적인 파급효과를 갖는다는 점에서 큰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길 목사 측 직무대행 계속 압박 이 같은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김용호 직무대행을 중심으로 한 한기총 스스로의 분란 조정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법원에서 파견된 대표회장 대리인이 한기총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환부를 도려낼 수 없는 데다 직무정지된 길자연 목사 측의 입장이 완강하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지난 6일 김 직무대행을 면담한 관계자는 “김 직무대행이 한기총 개혁에 선의를 갖고 있다.”면서도 “실무적 차원에서 어려움을 느끼고 있음을 파악했다.”고 토로한 바 있다. 6일 김 직무대행과 한기총 탈퇴·해체 측 인사들의 면담이 진행 중인 사무실 바로 옆 세미나실에서 길자연 목사 지지 측인 한기총 총무모임 기도회가 열려 “길자연 목사를 지키자.”는 다짐이 성성했던 것도 그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를 비롯한 한기총 해체 운동을 벌이는 측은 그래서 한기총 외부로부터의 해체운동이 확산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길자연 목사 측이나 길 목사의 비리·파행을 들추고 나선 전임 대표회장 모두에게 한기총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인 것이다. 실제로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는 ‘목회자 100인 선언’을 비롯해 교수, 교사, 법조인 등 직능별 100인 선언을 이어갈 예정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남오성 목사는 “오는 가을 교단별로 열리는 총회에서 정할 ‘한기총 탈퇴 결의 여부’가 한기총 사태의 분기점이 될 수 있다.”며 “한기총 사태의 종결은 돈과 힘에 좌우되는 지금의 신앙행태에도 큰 변화를 몰고올 것”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문제의 씨앗은 마음에… 내면세계에 더 주의를”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한국 국민에게 봉축 메시지를 전해 왔다. ●모든 사람은 문제를 극복할 권리 지녀 달라이 라마는 6일 BTN불교TV를 통해 전달한 봉축 메시지에서 “모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원하며 그 누구도 더 많은 문제를 원하지 않는다.”면서 “모든 사람은 문제들을 극복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궁극적으로 문제는, 문제의 씨앗은, 문제를 일으키는 궁극적 요인은 마음 안에 있는 만큼 부디 내면의 세계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라.”고 당부했다. 그는 “그럼으로써 개인의 차원, 가족과 사회의 차원,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국 불자든, 한국 불자든, 티베트 불자든, 상좌부 전통을 따르는 불자든 21세기의 불자가 되어야 한다.”면서 “21세기 불자는 현대 과학 등 현대 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이 라마의 이번 봉축 메시지는 지난달 말 도쿄에서 열린 일본 대지진 희생자 천도법회에 참석한 달라이 라마와 지난달 29일 인터뷰하며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개신교 진보교단 협의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이날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NCCK는 “부처님은 이 땅에 생명, 평화, 상생의 가치를 널리 알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삶을 가르치셨다.”면서 “그 큰 뜻을 받들어 뭇 생명을 파괴하고 죽이는 곳에 자비를, 전쟁과 다툼이 있는 곳에 평화를, 갈등과 분열이 있는 곳에 상생의 기운이 넘쳐서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세상이 열리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NCCK “동체대비의 세상 열리길” 또한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이 시대에, 가까운 지척에 밝은 불 켜든 이웃 종교가 있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면서 “모든 것들을 위한 이타적 생각과 행동에 앞으로도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협력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덕담을 건넸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전주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박찬경 감독·영화평론가 이용철 만나다

    대학(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좋은 화가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돌아온 뒤 한국 근현대사, 특히 분단과 냉전을 소재로 한 설치미술과 사진은 물론 미술계를 겨냥한 날선 평론까지 보폭을 넓혔다. 일반인에게 이름이 알려진 건 형 박찬욱(48) 감독과 아이폰으로 찍은 영화 ‘파란만장’이 올해 독일 베를린영화제 단편부문 금곰상을 수상하면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상한 ‘작가’ 박찬경(46)이 주인공이다. 전주국제영화제(4월 28일~5월 6일) 한국장편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 감독의 신작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다큐와 극영화를 뒤섞은 흥미로운 작품이다. ‘비행’(2005)이나 ‘신도안’(2008) 등 영화와 설치미술의 경계가 모호한 중단편을 만들던 그가 처음으로 손댄 장편 영화다. 영화는 1988년 경기 안양 그린힐봉제공장 화재-기숙사에 감금된 채 생활하던 여공 22명이 화재로 숨진 사건-를 중심에 놓고 풀어 간다. 더불어 안양천 수재(水災)와 지방선거, 안양사(寺) 발굴과정 등 ‘안양’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한다. 지난달 30일 전주 고사동 영화의거리 카페에서 영화평론가 이용철(왼쪽)과 함께 박 감독의 복잡한 뇌 구조를 들여다봤다. 이용철 안양은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위성도시 정도의 이미지였는데 영화를 보고 나서 흥미롭고, 이야기가 많은 도시라는 걸 깨닫게 됐다. 박찬경 어느 도시나 그런 면들은 있다. 이번에 안양예술재단 측의 요청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예산은 8000만원 정도로 장편을 하기에 부족했는데 제작 기간이 3개월로 짧아 외려 가능했다. 시나리오, 콘티, 조사, 촬영, 섭외를 동시에 했다. 더 분열적인 걸 구상했는데 보는 사람도 생각해야 될 것 같아서(참았다)…. 이 영화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것도 흥미롭지만, 영화를 만드는 과정이 영화 속에 담긴 것도 참신하다. 굿하는 장면은 영화 제작 과정인 동시에 영화 속의 영화이기도 하다. 박 픽션(허구)을 왜 섞었냐 하면 내가 안양을 아는 사람도 아니고 일종의 투어리스트처럼 와서 찍는 작가이기 때문에 배우들도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이길 바랐다. 내가 (극 중 다큐 감독으로) 출연한 것도 안내하는 사람이란 걸 보여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뒷모습만 나가려고 했는데, 클로즈업까지 나갔다(웃음). 이 편집이 굉장히 신선하다. 할아버지가 수해로 딸과 손녀가 죽었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기차 소리가 난다거나 여자와 아이가 걷는 장면이 연결된다. 기성 영화인들이라면 못 했을 것 같은데. 박 글쎄…. 전에는 좋은 실험영화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실험적이거나 새로운 편집·기술, 상상력 등 아방가르드한 것들을 광고에 빼앗긴 것 같다. 예술적인 성취도를 얻었지만 많은 관객을 불러모을 만한 영화의 폭이 너무 좁다. 홍상수 감독 영화가 동원 관객 수 2만이라면 정말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영화의 폭이 넓어지면, 내 영화도 색다를 수 있지만 더이상 새로운 언어는 아니다. 이 전작 ‘신도안’(계룡산 토착 종교집단의 흥망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표현)과 ‘파란만장’에 이어 또 무속을 담았는데. 박 한국의 종교문화처럼 이상한 게 없다. 한국의 개신교는 샤머니즘을 ‘응용’하면서 성장했다. 새벽기도나 울부짖는 기도들을 생각해 보라. 개신교가 무속을 흡수했다기보다 무속이 개신교에 스며든 셈이다. 무속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적 형태인데 점쟁이로 천시하거나 ‘무릎팍도사’처럼 희화화하거나 여전히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무속의 명예회복 같은 걸 말하고 싶었다. 무속은 굉장히 정교화된 제의(祭儀) 형식을 갖춘 한편 날것의 측면도 갖춘 흥미로운 종교 문화다. 한국 근대를 바라보는 키워드인데 너무 간과됐다. 이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했는데 언제부터 다른 길에 관심을 가졌나. 박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다(웃음). 좋은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입학하자마자 학교에 너무 실망했다. 수업은 안 듣고 학내 영화서클 ‘얄라셩’(1979년 만들어진 영화연구모임. 김홍준·박광수 감독이 이곳 출신)에 들어갔다. 그런데 데모하느라고 4년 내내 영화를 한 편도 안 만들더라. 이 최근 활동을 영화감독으로 봐야 하나, 아니면 미술의 한 영역을 확장하는 것으로 봐야 하나. 박 내 미술작품의 80~90%는 영화나 미디어에 관한 것이었다. 미술을 하더라도 영화 언어를 염두에 뒀고, 영화를 할 때에도 여러 가지 예술의 레퍼런스들을 생각했다. 미술과 영화의 장르 구분이란 건 무의미하다. 이 올해에만 두 번 국제영화제(베를린·전주) 경쟁 부문에 올랐다. 영화계에서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미술 자체는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미술계는 너무 답답하다-1990년대 평론가 박찬경은 미술계를 ‘미술관료체제’(아트크라시)라고 꼬집었다-관객이 너무 없고 비평 시스템이 취약하다. 반면 영화는 관객이 새롭고 흥미롭고 궁금하다. 특히 영화제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일들은 생기를 준다. 주위에선 영화계에 더 있으면 좌절할 거라지만(웃음)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어쨌든 폐쇄적이지는 않으니까. 이 박찬경에게 박찬욱은 어떤 존재인가. 박 형이 워낙 아는 게 많다. 영화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사진도 좋아한다. 형은 영화 쪽 정보를, 나는 미술 쪽 얘기를 전해 주곤 한다. 형의 존재가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물론 가끔 곤란할 때는 있다. 못 보던 사람이 전화해서 형과 연결시켜 달라고 한다(웃음). 이 호러영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는데. 박 한국의 공포영화라는 게 대개 일본 호러물에서 온 것들이 많다. 나라마다 특수한 공포영화 화법이 있을 텐데 ‘전설의 고향’의 처녀귀신 이미지조차 일본에서 왔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만의 무서운 귀신이나 무덤 얘기를 해보고 싶다. 현재 장편 공포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인터뷰 끝자락에 박 감독은 “꼭 써 줬으면 하는 부분은 한국 영화가 너무 마초적인 데 대해 반성이 없다는 점”이라면서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페미니즘 논의가 고조되면서 남자들이 만드는 영화도 신경을 썼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 과장하면 최근 10여년 동안 깡패, 반성이 없는 폭력이 한국 영화를 먹여 살렸고 폭력의 미학으로 포장됐다.”면서 “여성적인 모티프나 그들의 삶에 관심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정리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中, 종교 가두기?

    중국 당국이 지하교회와 티베트 불교 등 종교계에 더 강력한 채찍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재스민 혁명’ 이후 반체제 인사 및 인권운동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칼날을 종교계에 들이대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중국의 종교 자유를 놓고 중국 정부와 서방 간의 날 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28일 끝난 미국과 중국 간 인권 대화에서도 주요 현안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서방 측은 중국이 최근 들어 종교인들을 더욱 거세게 탄압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반면 중국은 “종교인들도 법을 지켜야 한다.”며 위법 종교인들에 대한 단속을 탄압이라 매도하지 말라고 항변하고 있다. 중국 공안은 일요일인 지난 24일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려던 베이징의 서우왕(守望) 지하교회 신도 수십명을 연행했다. 앞서 공안은 지난 10일 베이징 중관춘(中關村) 광장에서 옥외 예배를 하려던 이 교회 신도 수십명을 연행한 바 있으며 지난 17일에도 팡샤오펑(方小峰) 목사와 신도 47명을 모처로 끌고 가는 등 사용하던 건물에서 내쫓긴 서우왕교회 신도들의 옥외 예배를 적극 저지하고 있다. 미국의 개신교 인권그룹인 ‘차이나 에이드’에 따르면 광둥성 광저우(廣州)에서도 2개의 대형 지하교회가 준비한 부활절 예배가 당국에 의해 봉쇄됐다. 티베트 불교 상황도 심상치 않다. 지난달 16일 승려의 분신 사건이 발생한 쓰촨성 북동부 아바현의 키르티 사원에서는 수백명의 승려들이 시위를 벌여 공안과 충돌이 빚어졌고, 이후 승려들에 대한 감시와 ‘정신교육’이 대폭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공안이 지난 21일 키르티 사원에 진입, 승려 300여명을 체포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분신 사태 직후부터 티베트와 쓰촨성 내 티베트인 밀집 거주 지역은 외국인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등 사실상 봉쇄된 상태다. 중국은 지하교회와 티베트 불교 상황에 대해 법에 따른 조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서우왕 교회를 ‘법적인 근거가 없는 조직’이라고 규정한 뒤 “중국은 법치국가이고 신앙의 자유가 있는 국가”라며 “그러나 동시에 중국의 헌법과 법률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키르티 사원 사건에 대해서도 “소수의 승려가 오랫동안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어 선전교육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이 이처럼 지하교회 등에 대한 적극적 대응에 나선 것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재스민 혁명에 대한 우려, 빈부격차의 확대 등으로 민심 이반 기미를 보이는 사회적 분위기 등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는 지난 25일 중국 대학 내 개신교 확산 추세를 경계해야 한다는 분석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신문은 “최근 몇 년간 대학생들 사이에 기독교, 특히 지하기독교 신도 증가 추세가 맹렬하다.”면서 “이들은 조직 동원 능력도 매우 강하게 갖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 내 기독교 신도는 2000만명 정도로 추산되지만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지하교회 신도가 6000만명에 이른다는 관측도 있다. 중국 정부는 종교 문제에 대한 내부 단속과 함께 대외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27일부터 이틀간 열린 미·중 인권 대화에서 미국 측이 종교 탄압 문제를 주요 현안으로 올려놓자 종교국 간부를 참석시켜 적극적인 방어 논리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설] 무분별 해외선교 경종 울린 샘물교회 판결

    2007년 아프가니스탄 선교활동에 나섰다가 납치·살해된 ‘샘물교회 사건’ 유가족에게 국가의 배상의무가 없다는 엊그제 법원 판결의 의미는 각별하다. 종교적 신념만을 앞세운 위험한 해외선교는 더 이상 국민이 용인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족은 국가가 재외국민 보호의무를 게을리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부가 언론매체 등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행의 위험성을 충분히 공표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도 지적했듯 ‘아프간 여행자제 요망’이라는 공항 안내문 앞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은 것을 보면 위험을 몰랐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샘물교회 사건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이슬람 무장세력으로부터 풀려나기까지 42일 동안 온 국민이 겪은 정신적 고통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 정부는 선교단을 구출하기 위해 특별기를 동원하고 수십억원의 몸값을 마련했다. 그게 다 국민세금이다. 그러니 국가에 누()를 끼치고 무슨 손해배상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 아닌가. 국가가 적극적으로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해외선교 종사자는 누구보다 이번 판결의 뜻을 곱씹어야 한다. 이슬람 국가에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은 죄악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는 자신의 종교인 이슬람 선교까지도 제재한다. 그런 마당에 복음을 전한다며 무분별한 ‘선교전쟁’을 벌이는 것은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는 올 초에도 예멘 수도 한복판에서 대학생들이 기타를 치며 선교활동을 벌이다 봉변을 당할 뻔한 일을 기억한다. 위험지역임을 알렸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선교활동을 벌이다 발생한 책임은 이제 온전히 자신의 몫이다. 차제에 개신교계는 그동안의 도발적인 해외선교 방식을 재검토해 보기 바란다. 선교는 스스로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전제돼야만 의미가 있다.
  • [생명의 窓] 종교의 권력화 국민이 막아야/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생명의 窓] 종교의 권력화 국민이 막아야/박광서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다종교 국가 중 한국만큼 비기독교인으로 사는 데 불편한 나라는 없다고 한다. 종교의 자유가 헌법에 엄연히 있음에도 개신교인을 제외한 일반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종교의 자유 체감도는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일 것이다. 다소 과장하자면 한국에 개신교의 자유는 있어도 종교의 자유는 없어 보인다. 최근 드러나는 개신교의 힘자랑을 보면 더욱 그런 듯싶다. 지난달 3일 공개적인 행사인 국가조찬기도회에서 통성기도하자는 목사의 한마디에 무릎 꿇은 대통령, 엉거주춤 함께 꿇은 야당대표, 고위관리들과 군 장성들도 모양새가 영 아니다. 국민 모두를 무릎 꿇린 것 같아서 심히 자존심이 상한다. 국민은 두렵지 않은데, 종교권력은 두려운 것일까. 더 고약한 것은 하나님을 등에 업고 대통령 위에 군림하는 목사다. 대통령을 무릎 꿇리니 통쾌할까. 기독교 국가가 된 듯해 뿌듯할까. 종교권력을 확인하고 재생산하는 전형적인 정교(政敎) 야합의 해괴한 굿판이 되어버린 국가조찬기도회는 더 이상 공익법인 자격이 없다. ‘정교분리’의 헌법수호를 위해 국가조찬기도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유있게 들리는 까닭이다.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쓰나미 같은 대형 자연재해 때마다 ‘신이 내린 징벌’이라고 독설을 퍼붓는다. 그런데 지난 2월 뉴질랜드에서, 그것도 이름마저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라는 성스러운 도시에서 지진이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고 교회까지 무너질 때는 왜 아무 말도 안 했을까. 옥석도 못 가리고 집단학살하는 무자비한 신은 상상이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것은 악마밖에 없다는 것을. 종교지도자들의 탈세도 문제다. 10억대의 연봉을 받는 목사가 세금 한푼 안 내는 엉터리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수년 전 여론조사에서 ‘성직자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의견이 89%나 되었지만, 정부는 개신교 위세에 눌려 잘못된 관행을 애써 모르는 척하고 있다. 쥐꼬리만 한 급여에 세금을 꼬박꼬박 내면서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일반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클 수밖에 없다. “이 세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처럼 소득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세금이 부과되어야 하지만, 개신교 목사들만은 이 세상과 무관한 별천지에 살고 있는 셈이다. 더 크게 짓고, 더 높게 오르고, 더 많이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 위에 지은 누각은 종교사업자의 탐욕에 불과할 뿐 진정한 종교일 수는 없다. 어느 개신교인이 스스로 “오늘의 한국 기독교 상황이 정신나간 운전사에 조는 승객들로 가득 찬 버스와도 같다.”고 우려했다지만, 일부 힘 있는 성직자들의 막된 언행과 세속적 권력화의 반작용이 거대한 쓰나미가 되어 자신들을 덮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듯해 안타깝다. 국민은 종교지도자들의 무례한 언행과 무분별한 힘자랑이 불쾌하고 피곤하다. 종교의 권력화는 국민이 나서서 막아야 한다. 정치성향이 강한 종교인은 종교계 스스로 밀어내야 한다. 종교가 사회의 부조리와 불협화음을 해소하기는커녕 불화와 갈등의 씨앗이 된 지금이야말로 결단의 시기다. 한국 개신교가 유효기간이 지난 종교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길은 “나는 기독교 신학이 인류의 커다란 재앙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던 20세기 영국의 과학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말을 화두 삼아 순수한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용기 있게 리셋(reset)하여 국민의 사랑을 다시 받기를 바란다. “종교는 무지렁이(일반대중)들에게는 진실로 여겨지고, 현자(賢者)에게는 거짓으로 여겨지며, 통치자들에게는 활용대상으로 여겨진다.”고 했던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인은 임기가 끝나면 국민이 표로 심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종교지도자는 세뇌된 신도집단이 버텨주는 한 변화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정치가 종교지도자들에게 활용대상이 된 한국사회는 그래서 더 큰 위험을 안고 있다. 종교계의 자정과 쇄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 7대 종단 지도자들 영화 ‘내 이름은 칸’ 단체관람 까닭은

    7대 종단 지도자들 영화 ‘내 이름은 칸’ 단체관람 까닭은

    5일 서울 종로3가 서울극장. 영화가 시작되기 전 스크린 앞에 선 그들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누군가는 손바닥을 모았고, 누군가는 깍지를 끼었다. 서로 다른 몸짓과 방식이었지만 기도 내용은 하나였다. 서로 함께 지낼 수 있기를, 서로 함께 평화로울 수 있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한국 사회 7대 종단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 함께하지 못하던 한국이슬람도 함께였다. 그런데 장소가 영화관이다. 이들은 ‘내 이름은 칸’을 단체 관람했다. 영화는 이슬람교도라는 이유로 테러리스트로 오해받아 고통을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중심이다. 2001년 9월 11일 미국 심장부를 강타한 ‘9·11 테러’가 직접적인 소재가 됐다. 화자(話者)는 무슬림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인도 영화다. 진정한 사랑 앞에서 남자의 정신적 장애나 종교(이슬람교)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여겼던 힌두교 여자가 막상 그 남자의 종교로 인해 아들을 잃고 나서 울부짖는 절규가 관객의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런 아내를 위해, 그런 아내가 원하기에 “나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를 미국 대통령에게 하기 위해 지난한 여정을 계속하는 무슬림 남자 ‘칸’의 커다란 눈동자는 오래오래 잔상에 남는다. 최근 ‘땅 밟기’(일부 개신교도들이 불교 사찰에 들어가 기독교식 예배를 본 사건) 등 종교 간 반목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종단 지도자들이 ‘내 이름은 칸’을 단체관람한 것은 의미가 남달라 보인다. 행사를 기획한 김영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는 “내 종교에 충실하다는 것이 다른 종교를 부정하는 오만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는지 성찰하는 기회가 됐다.”면서 “우리가 서로 (종교를 떠나)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경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주화 한국이슬람교중앙회 이맘(지도자라는 뜻)은 “코란에는 하나님이 남성과 여성, 민족과 부족을 창조한 것은 서로가 서로를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돼 있다.”면서 “우리가 서로 이해하고 한발 물러서서 나 아닌 다른 사람도 이 사회에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회장(길자연)이 직무정지 상태라 불참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위기의 개신교 종결자는/김성호 논설위원

    [서울광장] 위기의 개신교 종결자는/김성호 논설위원

    한국 개신교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선거가 발단이다.금권선거 논란이 불거지더니 급기야 새로 선출된 대표회장이 법원으로부터 ‘자격없음’ 선고를 받았다. 교회가 사회법의 제재를 받아 대표회장 자격을 박탈당한 것은 초유의 일이다. 전임 회장 측은 새 대표회장 자격 박탈에 이어 당선 무효까지 밀어붙이는 태세다. 전임·신임 대표회장 양측으로 나뉘어 벌이는 이전투구의 끝이 어디인지 가닥이 안 잡힌다. 한국 개신교의 뼈대요 몸통이라는 한기총의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져 혼돈에 빠진 것이다. 혹자는 한기총 내분을 놓고 개신교의 위기까지 들먹거리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간단치가 않다. 이번 금권선거 논란을 빚은 전임·신임 대표회장은 바로 한기총의 중심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소속이다. 전임 회장이 예장 통합 측이고 신임 대표회장은 예장 합동 측이다. 이 통합과 합동이 어떤 교단인가. 1959년 진보 성향의 세계기독교교회협의회(WCC) 가입에 대한 견해 차로 갈라선 이후 견제와 알력이 끊이지 않은 한국 개신교 최대 교단들이다. 이들 교단과 관련된 다른 교단들이 눈치를 살피는 건 당연하다. 이번 내홍이 한국 개신교의 위기로까지 해석되는 이유다. 문제의 심각성은 대표회장 선거 잡음을 넘어 한기총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개혁실천연대를 비롯한 개신교 단체들이 한기총 해체운동에 나선 데 이어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선 한기총 해체를 위한 서명운동이 진행돼 서명자가 7000명을 넘어섰다.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는 오늘부터 한기총 해체를 위한 릴레이 토론회를 갖는다고 하니 개신교 최대의 위기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다. 사태가 확산되자 내홍의 당사자를 포함한 한기총 관계자들은 개선의 목소리를 앞다투어 내고 있다. 그 무성한 개선책을 쏟아내면서도 “한기총 해체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은 단호한 것 같다. 이제 한기총의 문제를 스스로 풀 수 없는 상황인데도 교회의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더는 돈과 권력이 하나님의 나라를 대표하지 못하도록’이라는 노골적인 해체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가 보다.물량주의와 대형화에 매몰된 교회의 울타리만 높다. 지금 목소리가 드높은 한기총 해체의 명분은 말할 것도 없이 종교의 일탈이다. 상처받은 영혼을 위한 제사장이요, 난장판 속의 추상 같은 예언자여야 할 교회의 실종. 그것은 돈·정치에 물든 성역의 훼손이고 ‘자기 신앙의 확신’과 ‘타 종교에 대한 독선’도 구별하지 못하는 자가당착이기도 하다. 많은 신학자들은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누누이 강조한다.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존중하며 신앙과 삶의 근원적 권위로 인정한다는 교회의 미덕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엔 근본주의적 배타성과 종교적 오만이 난무한다. 봉은사 땅 밟기, 이슬람국가 한복판에서의 선교, 이슬람채권(수쿠크) 봉쇄…. 시쳇말로 ‘갈 데까지 갔다.’는 회의론의 근거다. 그런데도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회복하자는 곳곳의 신음과 호소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만 겉도니…. 지금 우리 교회를 향해 ‘위기는 기회다.’라고 말하면 생뚱맞을까. 해체보다 다시 짓는다면 어떨까.신학자들의 말 그대로 한국교회가 잃어선 안 될 소중한 유산을 탄탄히 다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 종결자는 누구일까. 우선 모범과 표상의 위상을 스스로 박찬 지도자들이 결자해지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타락과 오염의 극치”라는 한기총을 해체의 위기에서 건져내려면 말이다. 그 다음은 신도들의 몫이다. 신성한 교회가 ‘한국 정치판의 큰손’이 되는 데 일조한 틈은 없는 것인지, 성공은 오로지 신의 축복이라는 왜곡된 신학에 너무 빠져들지는 않았는지. ‘성전을 허물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지금보다 더 절실한 적이 있었던가…. kimus@seoul.co.kr
  • [서울광장] 침묵은 더이상 소통이 아니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침묵은 더이상 소통이 아니다/김종면 논설위원

    오수부동격(五獸不動格)이란 말이 있다. 호랑이는 코끼리를, 코끼리는 쥐를, 쥐는 고양이를, 고양이는 개를, 개는 호랑이를 서로 두려워해 아무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한다는 뜻이다. 천적관계인 다섯 짐승은 팽팽한 긴장 속에 평온을 유지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에 문제가 생기면 평온은 도미노처럼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 다음은 재앙이다. 그러니 각자 자기 세력범위 안에서 분수를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생뚱맞게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기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끊임없이 남의 영역을 탐하며 분란을 일으키는 요즘 우리 사회의 몰골이 동물 세계만도 못한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들어서다. 종교와 정치 얘기는 쉽게 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덕담으로 시작해도 결국은 싸움으로 끝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목사님의 대통령 하야 발언에 이은 국가조찬기도회 무릎 기도의 여진이 잦아들지 않고 있으니 군말이라도 좀 보태야겠다. 사실을 말하면 모두 무릎 꿇는 기도회에서 대통령이 무릎을 꿇은 것이 특별한 행동은 아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 행동으로 비쳤을 것이다. 무릎 꿇고 간구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같은 신자에게는 그대로 감동이었을 법하다. 하지만 다른 편 이들에게는 벼락처럼 섬뜩하게 다가온 전율이었을지 모른다. 갑의 약은 을의 독이다. 대통령의 ‘자의반 타의반’ 무릎 기도는 마침내 빛이자 어둠이 되고 말았다. 왜 개신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짐작할 만한 기도 현장의 변수를 헤아리지 못했을까. 대통령 무릎 기도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원조인 미국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니 예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초유의 사달이 났는데 주관자의 인도에 따랐을 뿐이라는 해명 하나로 넘어가는 것은 군색하다. 책임을 묻자는 게 아니다. 언제 또 터질지 모를 유사한 ‘종교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복기해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기도회를 이끈 목사님은 대통령을 ‘무릎 꿇린’ 일에 대해 의도한 게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무릎 기도는 ‘해프닝’이라고 했다. 대통령 하야 발언은 ‘조크’라고 평했다. 그것이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호국’ 종교인이 할 말인가. 국민을 한갓 장기판의 졸(卒)쯤으로 여기는 거침없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다. 순박한 국민도 분노할 줄 안다. 종교와 정치가 뒤엉켜 2인3각 게임하듯 기우뚱거리는 현실…. 땅의 일에는 서툰, 그래서 하늘의 일에 더욱 열심인 참한 목사님 어디 없을까. 정신의 오만은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종교의 길이 있고 정치의 길이 있다. 언제까지 서로를 활용하는 음습한 공생을 계속할 것인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은 그저 감상하라고 있는 장식품이 아니다. 이슬람채권(수쿠크)법 반대운동에서 보듯 개신교는 지금 정치 한복판에 서 있다. 수쿠크는 종교가 아니라 경제라고 아무리 외쳐도 막무가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니 소통이 될 리 없다. 한국은 ‘종교 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다종교 사회이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종교평화 모범국가다.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정말 큰 싸움 난다. 금도를 지켜야 한다. 오수부동의 지혜가 아쉽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도회에서 교회가 국민통합의 가교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대통령 스스로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신 앞에 단독자로 무릎을 꿇었듯 국민을 향해서도 늘 무릎 꿇고 있음을 현실로 보여 줘야 한다. 달인의 경지에 이른 종교적 소통의 기술을 정치로 옮겨오면 된다. 해프닝이든 국가의 일대사든 민감한 사안일수록 당당히 소신을 밝히고 설득에 나서야 한다. 그럴 힘은 대통령에게만 있다. 결단의 정치가 필요하다. 부질없는 정치셈법만 지워 버리면 된다. 무작정 미룬다고, 잊혀지길 기다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침묵은 무언의 대화이지만 최소한 지금 우리에게 그것은 더 이상 대화가 아니다. 하다 못해 대통령의 무릎은 국민의 것이라고 항변하는 이들이 안쓰러워서라도 한마디는 했어야 했다. jmkim@seoul.co.kr
  • 사상 초유 회장 직무정지 ‘한기총’ 이대로 쪼개지나

    사상 초유 회장 직무정지 ‘한기총’ 이대로 쪼개지나

    보수적 개신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이하 한기총)이 최대 위기를 맞았다. 전직·현직 회장을 중심으로 세력이 쩍 갈라진 가운데 법원의 신임 회장 직무정지 가처분 판결에 시민단체의 해체 운동까지 가세하면서 공중분해설까지 나오고 있다. 회장 직무정지는 22년 한기총 역사에서 초유의 사태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이광원 목사 등 ‘한기총 개혁 범대책위원회’ 소속 목사 16명이 길자연 목사를 상대로 낸 직무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28일 “정기총회에서 이뤄진 대표회장 인준 결의는 절차상의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판결했다. 지난 15일 임시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데 이어 이번에는 대표회장의 직무를 정지시키는 등 법원이 잇따라 ‘범대위’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재판부는 신임 회장의 임기가 1년에 불과한 만큼 우선 직무를 정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뒤 김용호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대표)를 대표회장 직무대행으로 선임했다. 김 변호사는 ‘한기총 개혁 범대위’에서 직무대행으로 추천한 인물로, 서울 서빙고동 온누리교회의 안수집사다. 문제의 불씨가 된 지난 1월 정기총회는 전임 대표회장 이광선 목사의 사회로 열렸으나 길자연 당선자의 불법 선거운동 논란이 일며 고성과 폭언, 몸싸움이 오고 갔다. 이에 이 목사가 정회를 선포하고 퇴장했지만 남아 있던 한기총 공동회장 등이 임시의장을 세워 총회를 속개한 뒤 길 목사를 대표회장으로 인준했다. 하지만 이광선 목사가 지난 2월 ‘돈 선거 양심고백’을 하고 길 목사 측이 금권 선거 사실을 시인하면서 불법 선거 논란은 더욱 뜨거워진 상태다. 길 목사는 이슬람채권(수쿠크)법 반대에 앞장서 왔으며,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무릎 꿇고 기도하게 해 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다. 이번 판결로 한기총 내분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한기총의 위기는 대표회장 직무정지 그 자체에 있지 않다.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제기된 당선 무효 소송이 예정돼 있는 등 더 큰 ‘폭탄’이 기다리고 있다. 길 목사 측은 인준 절차에 문제가 있었던 만큼 인준 절차만 다시 밟으면 된다는 입장인 반면, ‘한기총 개혁 범대위’ 측 인사들은 당선 무효 소송에 더욱 힘을 받게 됐다며 반색하고 있다. 이광원 목사는 “직무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내면서 당선 무효 소송도 함께 제기한 상태”라면서 “금권 선거의 증거가 발견된 만큼 이제는 당선 무효 소송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김운태 한기총 총무는 “법원의 결정은 인준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내용인 만큼 직무대행과 함께 임시총회를 소집해서 대표회장 인준 절차를 새로 밟아야 할 것”이라면서 “당선 무효 소송이 아직 확정되기 전인 만큼 길 대표회장이 선임한 집행부 등 조직 구성 자체는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계 시민사회단체들이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를 꾸려 벌이고 있는 한기총 탈퇴 및 해체 운동도 더욱 가속화할 전망이다. 이들은 다음 달 초 한기총 해체를 주제로 연속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실장은 “법원의 결정으로 앞으로 더욱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조만간 양쪽 갈등 당사자들에게 공개 질의를 해 책임을 물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직무대행으로 선임된 김 변호사는 29일 “어제 저녁 구두로 통보받았지만 아직 결정문을 받지 못한 상태”라면서 “재판부 면담을 통해 직무대행의 역할 범위, 취지 등을 우선 들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한기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만큼 이번 주 내에 한기총으로 출근해서 현황을 파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하) 한국 교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하) 한국 교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존 티한 미국 뉴욕 호프스트라대 종교학과 교수는 개신교건 이슬람교건 유대교건 가톨릭이건 유일신앙을 갖고 있는 종교들은 믿음의 체계 자체가 배타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에 이미 폭력적이라고 규정지었다. 그에 따르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은 일부 몰지각한 신도들의 그릇된 행동이 아니라 그 자체가 종교의 본질에 속하는 요소라는 얘기다. 가혹하다. 이러한 학술적 연구에 현실 속 부패와 타락, 세속적 권력에 대한 욕망의 이미지까지 덧대어지니 도대체 이성적 영역에서 한국 교회가 빠져나갈 탈출구가 없다. 하지만 세속적 권위가 아닌 신앙과 진리의 힘으로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종교의 몫이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을 2011년 한국에서 다시 되새겨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마르틴 루터가 독일을 근거지 삼아 로마 교황청과 한창 싸우던 즈음 스위스에서는 울리히 츠빙글리(1484~1531)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내걸고 활약했다. 루터와 같으면서도 달랐던 츠빙글리는 종교사적으로 유명한 ‘빵과 포도주의 성만찬’을 둘러싼 입장 차이로 루터와 갈라진다. 가톨릭의 화체설(化體說·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라는 주장)에 반대하는 입장은 루터나 츠빙글리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루터는 공재설(共在說·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성만찬에 예수도 함께한다는 주장)을 취했지만, 츠빙글리는 루터의 입장조차 비판했다. 츠빙글리는 1524년 ‘이것은 내 몸이다.’라는 문구에서 ‘~이다’를 ‘상징한다’로 해석하며 빵과 포도주는 예수의 살과 피를 상징한다는 ‘상징설’을 내놓았다. 스위스는 물론 독일 남서부 몇몇 도시들은 츠빙글리 주장 쪽으로 기울며 루터교로부터 이탈하려는 조짐까지 보였다.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이성으로 부정한다.’면서 루터가 펄쩍 뛰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종교개혁지 답사 일정에서 거의 마지막으로 스위스 취리히 그로스뮌스터대성당을 찾았다. 이곳은 40대 후반의 이른 나이에 종교전쟁인 카펠전쟁에서 숨지기까지 츠빙글리의 열정과 개혁 의지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던 곳이며 스위스 종교개혁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이제는 1932년 성당 내부에 만들어진 자코메티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보러 오는 이들로 붐빈다. 내부에서는 사진 한장도 찍지 못하게 하는 씁쓸한 상업성만 앞선다. 어쨌든 츠빙글리로부터 스위스의 종교개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다. 종교개혁 1세대들의 허리를 딛고 2세대의 대표주자 칼뱅이 등장한다. ●평신도 칼뱅, 스위스 종교개혁을 이끌다 장 칼뱅은 1509년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사제도, 신부도, 목사도 아니었다. 그저 인문주의를 체현하고 진지하게 인문학과 법학을 연구한 평신도였다. 하지만 가톨릭의 박해로 프랑스를 떠나 독일 등으로 옮겨 다녀야 했던 그는 종교개혁 사상가들과 교유하며 사상을 벼린다. 그리고 1536년 8월 스위스 제네바에 잠시 머문 뒤 제네바 종교개혁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고 주도하며 스스로 큰 산맥이 된다. 제네바 관광객들이 78㎞ 둘레의 레만호만큼이나 많이 찾는 곳이 제네바대학 근처 바스티옹 공원이다. 이른 아침 공원을 찾았다. 커다란 부조상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스위스의 종교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인 칼뱅을 비롯해 파렐, 베제, 녹스 4명을 조각해 놓았다. 이와 함께 1917년에 완성된 종교개혁 기념비가 있다. 칼뱅, 츠빙글리 등 10명의 종교개혁가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공원에서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 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칼뱅이 제네바 종교개혁의 근거지로 삼았던 상 피에르 교회가 있다. 제네바에서 첫 설교부터 마지막 설교까지 진행됐던 곳이다. 교황청에 대항한 루터가 종교와 세속의 분리를 바탕으로 추진했던 종교개혁은 오히려 교회의 법이 세속 사회를 이끄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는 일종의 교회 감독 법원을 만들어 시민들을 통제하며 엄격한 신앙생활과 실천을 요구했다. 시민들의 사치와 방종을 규제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제네바를 이른바 ‘하나님의 도시-성시(聖市)’로 만들겠다는 의지였지만 더욱 근본적인 것은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는 칼뱅의 신념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엄격한 신정(神政)을 추구했기에 칼뱅의 이름으로 드리워진 그늘도 짙다. 칼뱅은 제네바를 종교의 이름으로 다스리는 3~4년의 짧은 시간 동안 수십명에 이르는 사람을 오로지 종교적 이유로 교수형, 참수형, 화형시켰다. 예정설을 비난하거나 세례를 거부했다는 등의 이유였다. 종교개혁적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이들은 제네바에서 추방하기까지 했다. ●엄격한 신정 속 참형… 칼뱅주의 그림자 분쟁과 비방, 사기나 절도, 화려한 복장과 사치 등 시민들의 삶에 대해 엄격히 규제했던 만큼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어려움이었다. 또한 종교개혁의 이름으로 강요된 폭력이었다. 칼뱅은 한국 개신교의 뿌리로 볼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계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는 칼뱅주의를 받아든 스코틀랜드의 존의 녹스(1514~1572)로부터 비롯됐다. 목사, 교사, 장로, 집사로 짜인 직제에서 장로들이 목사와 함께 공동체의 질서를 관리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성직자들의 독단을 견제하며 교회 내부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제도였다. 이 탓에 한국 교회가 칼뱅이 추구했던 가치와 정신은 실종된 채 형식의 엄격함만 앙상하게 남아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이어진다. 이성덕 배재대 복지신학과 교수는 “요즘 개신교가 사회적 책임 역할을 잘 못해서 여러 비판과 함께 본래의 신앙을 망각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면서 “종교라는 것이 처음에 새롭게 시작하더라도 시간이 흘러가면 굳어지고 타락하는 게 일반적인 만큼 교회 개혁은 끝없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종교 본연의 역할이 포기된 채 세속적인 힘과 금권 등의 권력에만 탐닉하고 있다.”면서 “성직자나 교권주의자들이 스스로 자정하기는 어렵고 깨어 있는 일반 신도 등을 중심으로 한국 교회의 개혁을 시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외부의 자극을 촉구했다. 칼뱅은 평신도였다. 루터 역시 교회를 민중의 것으로 돌려줬다. 성직자들의 부패와 타락, 세속 권력과 유착이 극심할 때 나선 것은 민중이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이 한국 교회 안팎에 슬그머니 던져준 훈수다. 글 사진 제네바·취리히·루체른(스위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교회 세속화·권위주의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 봐야”

    “한국 교회 세속화·권위주의 심각하게 다시 고민해 봐야”

    “교회의 대형화로 인한 한국 교회 부패의 현실은 참교회와는 거리가 멉니다. 중세 종교개혁이 일어나던 당시의 부패상과 뭐가 다른가요?” 유럽 종교개혁지 탐방 중에 만난 신국일(56) 목사는 최근의 한국 교회 상황에 대해 안타까워하면서도 단호하게 목소리를 높였다. 신 목사는 1982년 독일로 유학을 와 마인츠대에서 공부를 마친 뒤 현지에 남아 지금까지 독일 프랑크푸르트 근처인 슈발바흐성령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기에 한국 교회에 대한 발언은 특히 조심스러웠다. 그는 “종교개혁의 핵심은 종교 본연이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지금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의미”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는 “한국 교회의 세속화, 권위주의화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오죽하면 목회자들 사이에서 대형 교회 해체 이야기까지 나오겠느냐.”며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는 한국 기독교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개별 교회에서 특정한 목사를 중심으로 교회의 외적 성장이 이뤄진 데 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신 목사는 “한국 교회는 목사의 카리스마와 설교의 흥미 등에 따라 교인들이 모이고 흩어지는 시스템을 갖췄다.”면서 “신앙 활동의 주변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 오히려 중심이 되어 있는 꼴”이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오랫동안 생활했기에 독일 교회 시스템과의 비교도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독일의 국교(國敎)는 기독교다. 그는 “독일은 국민의 80%가 거의 절반 정도로 나뉘어 가톨릭 또는 개신교를 믿는 나라지만 보통의 경우 1년에 한두번 교회를 찾는 정도”라면서 “요란스러운 성직자도, 요란스러운 신도도 없다.”고 말했다. 특히 성직자들의 급여와 교회 지원 등에 주로 쓰이는 ‘종교세’를 걷는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이 덕에 일부 목사의 수십억대 연봉 혹은 교회 확장에 혈안이 되는 모습 등과 같은 한국적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신 목사는 “500년 전 종교개혁의 정신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만큼 형식이나 제도가 아닌 정신을 현재 상황 속에서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네바(스위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한기총/김성호 논설위원

    ‘미국 다음으로 해외에 선교사를 많이 파견하는 나라’ ‘세계 최대의 단일교회 보유국’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성장’…. 세계 기독교계는 한국교회의 성장을 이렇게 부러워한다. 요즘도 대형교회의 주일예배는 어김없이 발 디딜 틈 없는 성황이다. 교회 건물이 줄줄이 헐리고 교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서방에서 볼 때 이 성황은 분명 쇼크일 것이다. 교회사에서도 드문 성장을 이룬 한국 개신교. 이 한국 개신교회를 이끄는 주축은 1989년 설립된 보수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다. 원로목사 10명이 시작, 지금은 국내 66개의 교단과 19개 단체가 뭉친 한국 최대의 교단연합체. 한국교회의 뼈대이자 몸통이라는 이 한기총은 으뜸 모토로 한국기독교의 연합과 한국의 복음화를 내세운다. 진보적 연합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역시 교회 연합을 강조하니 한국 개신교회의 큰 정신은 연합과 일치인 셈이다. 개신교 양대기구가 모두 강조하는 연합·일치의 바탕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다. 어둡고 타락한 세상을 밝히고 정화하는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한 보편의 가치. 그런데 빛과 소금의 우두머리를 자처하는 한기총이 유례 없이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연말의 새 대표회장 선임을 둘러싼 대립이 극한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전임·신임회장 측 두 패로 갈려 금권선거의 폭로전 끝에 벌이는 법정 소송이 살벌하다. 급기야 관망하던 개신교 단체들이 어제 한기총 해체운동을 선언하고 나섰다. 교회개혁실천연대를 비롯한 10개 기독교 단체들로 구성된 ‘한기총 해체를 위한 네트워크’는 연일 한기총을 향해 거침없는 말을 쏟아내고 있다. ‘정치·종교 유착으로 성장한 비정상 기구’ ‘소수 대형교회를 대표하는 기구일 뿐’ ‘더 이상 교회를 욕보이지 말고 스스로 해체하는 게 옳다’…. 일부 인사들이 맞서 자정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만 해체운동의 기세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한국교회의 뼈대며 몸통의 체면이 말이 아닌 듯하다. 법원은 일단 새 대표회장 인준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했다. 개신교계가 18일쯤 있을 대표회장 직무정지 가처분소송 판결을 겨누는 눈독이 심상치 않다. 파란의 중심에 선 한기총 새 대표회장은 이 다툼을 의식한 듯 모임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기총의 위기가 아니라 한기총을 정화하는 한 단계일 뿐이다.” ‘네 이웃의 탄식에 귀 기울이라.’는 말씀과는 먼 것 같은데. 하기야 ‘예수님 말씀만 있고 예수가 없다.’는 탄식이 어제오늘 일인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자정능력 상실 한기총 해체하라”

    한국 개신교의 분열상을 보다 못한 교계 단체들이 ‘한기총 해체’를 요구하고 나섰다. 교회개혁실천연대 등 개신교계 단체들은 16일 서울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표성이 없음에도 개신교 대표기구를 자임해온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해체되더라도 교회연합운동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그동안 기독교를 빙자해 특정 정치이념을 추구해온 데다 (이번 내홍 사태로) 자정능력마저 상실했음을 보여준 만큼 한기총은 해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의정치실천연대, 교회개혁실천연대, 교회개혁지원센터,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생명평화연대, 정의평화를위한기독인연대,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평화누리, 희년함께 등 10개 단체들로 구성된 ‘한기총 해체를 위한 기독인 네트워크’는 지난 3일 금권선거 논란과 관련해 정체성 위기에 대한 대책을 묻는 질의서를 한기총에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어 한기총 해체를 위한 탈퇴 활동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김애희 교회개혁실천연대 실장은 “예수장로교 고신총회는 이미 한기총 탈퇴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면서 “어느 한쪽에서 한기총 탈퇴가 이뤄지면 중소 교단 중심으로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앞서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국교회는 개신교 역사상 가장 타락했다.”면서 한기총 해체를 강하게 촉구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위기의 한국교회 종교개혁 현장서 길을 묻다] 500년이 지나도 살아 숨쉬는 ‘루터의 정신’

    마르틴 루터(1483~1546)의 흔적을 더듬는 여정 자체는 그다지 버거울 게 없다. 루터는 1483년 독일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나 광부로 생계를 꾸리려는 아버지를 따라 만스펠트로 옮긴다. 그리고 마그데부르크, 아이제나흐, 에르푸르트 등에서 유년과 청년기를 보내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과 토대를 착실히 닦는다. 그리고 장성한 뒤 비텐베르크, 보름스, 바르트부르크성 등에 굵직한 발자국을 찍었다. 1521년 로마 교황으로부터 마지막 파문장을 받은 보름스를 제외하면 모두 독일 동북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느 도시에서건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넉넉히 닿을 수 있는 만큼만 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넓지 않은 곳에서 그가 이뤄낸 업적과 생애를 따라가는 것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종교사, 나아가 인류 역사에 광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인 까닭이다. 몇년 전 독일 정부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인류역사에 가장 크게 기여한 인물에 대해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론의 여지 없이 압도적인 1위로 루터가 꼽혔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곽교회 문에 내건 ‘95개조 명제’는 세속 권력에 대한 욕망, 금권에 대한 부패 등으로 얼룩진 중세 교회 대변혁의 신호탄이었다. 지금껏 개신교에서 종교개혁주일로 삼고 있는 이날이 2017년이면 500주년이 된다. ●신앙·믿음·개혁을 낳은 ‘정신 문화재’ 비텐베르크는 아예 ‘루터의 도시’로 통한다. 비텐베르크 교회가 대다수 루터 관광객이 찾는 첫 방문지다. 루터가 처음으로 설교를 맡아 신도들의 동의와 지지를 얻으면서 95개조 명제를 내걸고 로마 교황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안겨준 공간이다. 500년 전 루터 생존 당시 벽보의 흔적은 화재로 없어졌다. 대신 1857년 빌헬름 황제가 부분 재건축을 하면서 새로 철문을 만들고 거기에 ‘95개조 명제’를 촘촘하게 새겨 놓았다. 세월에도 지워지지 않도록 루터의 개혁 정신을 영구히 남겨 놓은 것이다. 교회 안내자로 평생을 바친 베르나르트 그룰(75)은 “비텐베르크 교회는 종교개혁의 시작과 전개과정을 보여주며 신앙과 믿음, 개혁을 낳은 ‘정신적 문화재’”라면서 “이를 통해 오늘날 교회들은 내면적인 변화와 신앙을 향한 개선 등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마침 교회를 찾은 독일 신학자들 또한 그의 설명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교회당 안에 나란히 자리한 루터와, 종교개혁의 동료였던 멜란히톤의 무덤 등을 둘러보고 있었다. 교회에서 천천히 걸어 5분쯤 가면 시청 광장이 있다. 인구 2만의 도시에 찾아오는 연 20만명의 관광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이곳에는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이 서 있다. 또다시 도보로 10여분쯤 떨어진 곳 ‘루터의 거리’ 작은 로터리 한구석에는 이른바 ‘루터의 참나무’가 있다. 루터는 1520년 12월 10일 교황의 파문장을 불태우면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선언한다. 그로서는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감행한 곳이다. ●민중들에게 새 길을 보여준 루터 1521년 보름스 제국회의 결과 ‘사실상 사형선고’를 받은 루터는 비텐베르크로 돌아오던 도중 에르푸르트 근처 바르트부르크 성으로 피해 기사 행세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숨어 지내며 1521년 12월~1522년 2월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독일어 성경과 성만찬 포도주의 나눔은 신과 민중들의 직접 만남을 가능하게 한 일대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종교개혁의 불씨가 활활 타올랐음은 물론이다. 그의 영향을 받은 토마스 뮌처(1490~1525)는 농민전쟁의 지도자로 떠오르고 종교개혁을 뛰어넘어 사회 변혁을 추진하는 세력으로 자리잡는다. 초기에는 이들에게 동정적 입장을 갖던 루터였지만 분위기가 급격히 변해가자 그들과 단호하게 결별하며 제후들의 편에 선다. 심지어 ‘반란을 일으키는 인간보다 더 유독하고 해롭고 악마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서 자신이 이뤄놓은 결과물의 영향으로 복음서를 자유롭게 읽은 농민들에 대한 폭력 진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루터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대목이다. 로마 교황청이라는 거대한 세력에 맞서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갓 피워낸 종교개혁의 작은 싹을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동정론과, 로마 교황에서 제후들로 종교 권력이 바뀌는 ‘제후들의 종교개혁’에 불과했다는 비판이 여전히 엇갈리고 있다. ●“루터와 헤어지느니 죽는 게 낫다” 마르크스에게는 레닌이 있었고, 피델 카스트로에게는 체 게바라가 있었다. 마오쩌둥 곁에는 저우언라이가 든든히 서 있었다. 마틴 루터에게는 멜란히톤(1497~1560)이라는 최고의 조력자가 있어 개혁 반발 세력과 급진개혁 세력 사이에서 종교개혁의 깃발을 꼿꼿이 세울 수 있었다. ‘독일의 선생님’이라고 일컬어지는 멜란히톤은 빼어난 라틴어, 히브리어 실력으로 튀빙겐 대학, 비텐베르크 대학 등에서 문학, 신학, 철학, 수사학 등을 강의했다. 독일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왕자와 공작 등 귀족계급들이 오로지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몰려들어 인기를 실감케 했다. 멜란히톤이 있어 성서의 독일어 번역은 더욱 신속하고 정교해 질 수 있었다. 또한 제후들과의 갈등, 개신교 내부의 숱한 논쟁 등 주요 지점마다 루터가 거칠고 과격하며 전투적인 말과 행동으로 방향을 제시하면, 멜란히톤은 학자적인 부드러운 성격을 앞세워 조정하고 중재하며 종교개혁의 잔가지를 다듬어갔다. 그가 죽음의 공간인 무덤마저 루터와 사이좋게 나누고 있고, 기념비적인 동상 또한 루터 곁에 나란히 세워져 있는 이유다. 안타깝게도 비텐베르크 대학 바로 옆건물인 멜란히톤의 생가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사업을 준비하면서 최근 공사에 들어가 직접 둘러볼 수는 없다. ●수녀와 결혼한 애처가 루터 제후와 농민들 사이에서 평가가 엇갈렸던 루터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만큼은 여전히 따뜻하게 남아 있다. 비텐베르크 루터기념관 2층 전시관에는 글 하나가 눈에 띈다. ‘케테는 프랑스나 베네치아를 줘도 바꾸지 않겠다. 1531년’ ‘케테’(Kthe)는 전직 수녀였던 그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1499~1552)의 애칭이다. 루터는 독신의 지옥으로부터 성직자를 해방시키고, 평범한 사람들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수녀원의 수녀들을 모두 탈출시켜 결혼까지 시킨다. 그리고 1525년 마지막까지 남은 수녀였던 카타리나 폰 보라와 직접 결혼한다. 루터의 나이 42세, 보라의 나이 26세였다. 루터가 절망에 빠졌을 때 “하나님의 장례식”이라면서 장례복을 입고 나타나 루터를 깜짝 놀라게 한 뒤 “하나님이 돌아가셨기에 당신이 지금 절망하고 있지 않으냐.”고 말할 정도로, 어렸지만 당찬 여성이었기에 루터 역시 끔찍이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글·사진 비텐베르크·에르푸르트·보름스(독일)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오늘의 눈] 미국목사·한국목사/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미국 교회는 어떠할까라는 궁금증에 13일 아침 인터넷을 두드려 찾아간 곳은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커뮤니티 유나이티드 감리교회’였다. 청교도적 신성(神聖)과 고풍스러움으로 찬연한 교회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일생을 성경과 기도로 살았을 법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앉아 백발이 성성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다. 신도들 자리까지 내려와 문답식으로 설교하는 칼 리플리 목사의 모습은 종교적 권위주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윽고 단상으로 올라간 그는 설교 내용(사순절)과 관련한 ‘평범한’ 내용으로 기도를 시작했다. 그러다 ‘뜻밖에도’ 일본 지진을 언급하면서 일본인들이 속히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고는 리비아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구하는 것으로 기도를 마쳤다. 아,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무조건적 사랑은 미국의 어느 시골 교회 한 구석에서도 어김없이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흐뭇한 여운을 안고 귀가해 인터넷으로 한국을 연결했을 때 나는 경악했다. 서울 한복판 초대형 교회의 목사가 일본 지진을 두고 일본 국민이 하나님을 멀리한 데 대한 경고라는 식으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 땅에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센다이로 달려가 고통 받는 이들을 치유하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베풀까, 아니면 ‘거 봐라, 나 안 믿으니까 그런 꼴 당하지.’라고 고소해할까. 그리스도가 재림한다면 원수는커녕 이웃마저 사랑하는 데 인색한, 가진 것 많은 부자 목사의 편을 들까, 종교를 떠나 불쌍한 자들을 걱정하는 시골 목사를 귀하게 여길까. 개신교를 의미하는 프로테스탄트는 원래 ‘항의하다’(프로테스트)라는 말에서 나왔다. 성직자 마르틴 루터가 타락한 로마 가톨릭 교회에 항거한 정신에서 비롯됐다. 부패하고 비뚤어진 한국의 ‘재벌 교회’에 항거하는 일은 이교도의 몫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르겠다고 서약한 기독교인들의 책무다. carlos@seoul.co.kr
  • 조용기 목사 또 舌禍

    조용기 목사 또 舌禍

    “일본 대지진은 하나님의 경고”라는 조용기(75)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의 발언을 둘러싸고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비판 속에 조 목사는 15~1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도쿄순복음교회 창립 34돌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14일 일본으로 출국했다. 조 목사는 전날 한 개신교 인터넷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 대지진은) 일본 국민이 신앙적으로 너무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 무신론, 물질주의로 나간 것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전화위복이 돼서 이 기회에 주님께 돌아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준희 여의도순복음교회 홍보국장은 “(조 목사가) 그동안 일본 선교에 각별한 공을 들여왔는데 그만큼의 통탄스러움과 안타까움에서 나온 발언”이라면서 “계속되는 여진과 방사능 유출 위험에도 불구하고 일본에 대한 사랑과 위로의 마음으로 일본행을 강행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트위터를 통해 “이런 정신병자들이 목사질을 하고 자빠졌으니…”라면서 “더 큰 문제는 저런 헛소리를 듣고 ‘아멘, 할렐루야’ 외치는 골빈 신도들…종교가 아니라 집단 히스테리”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네티즌들도 “봉사활동에 먼저 나서야 할 목회자가 할 말이 아니다.”, “하나님 안 믿으면 죽어야 하나.”, “조 목사의 말이 맞다면 우리나라에도 대지진이 일어나겠다. 한국교회가 몽땅 하나님과 멀어졌으니…” 등 격한 반응을 쏟아냈다. 앞서 ‘대통령 하야운동’ 발언으로도 논란을 빚었던 조 목사는 17일 귀국할 예정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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