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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마당] 기록문학의 의미/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최근 과거사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특히 1세기 전부터 1970,80년대까지의 과거사가 집중 거론되고 있는 듯한데,1세기 전이라 함은 어림잡아 일제 강점기부터의 역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 시기에 대한 조명인가 하는 점은 새삼 숙고해야 한다.무엇보다도 과거사에 대한 바른 이해의 중요성은 우리 모두 인정하고 있는 만큼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실 나 자신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태무심하고 있었다.아마 대다수의 사람이 그랬다고 해도 무방하리라.당면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으니까.그런데 최근에 출간된 두 권의 책을 보면서 비로소 나름대로 사유하게 되었다. 그 책은 문학평론가 유종호의 ‘나의 해방 전후’와 일본 교포 작가 유미리의 장편소설 ‘8월의 저편’이다.유종호의 ‘나의 해방 전후’는 다음과 같은 문제적인 진술로 시작된다.그런데 이런 전제는 유미리의 ‘8월의 저편’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여러 계제에 토로한 바 있지만 자기가 살아보지 않은 시대를 상상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도 없다고 생각한다.우리의 근접 과거인 일제 시대나 해방 직후에 관해서도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심상은 너무나 실상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앞세운다면 나는 이 두 권의 책을 읽고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일제 강점기에 대한 나의 사고 내용들을 전반적으로 수정하게 되었다.그래서 나는 이 두 저자들에게 내가 체험하지 못한 시대를 제대로 사유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 크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이제 우리는 역사를 상상하되 최대한 사실에 근접해서 상상해야 하고 또 이 시기에 관한 한 그것이 가능해지는 최소한의 영역을 확보하게 되었음을 말할 수 있다.기록문학의 중요성이란 바로 이 점에서 나온다. ‘나의 해방 전후’에는 창씨개명을 둘러싼 우리들의 해묵은 오해,어린 초등학생까지 엄혹한 사역에 동원한 일제의 잔혹성,광복 이후에도 무의식적으로 일본어를 쓸 정도로 오랜 시간 가혹하게 주어졌던 내선일체의 교육 등등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다.저자는 “이 책에는 있지도 않은 일을 적었거나 사실을 변조한 허구 부분은 전무”하다고 맹세하고 있으니 믿어도 좋으리라. 정말 충격적인 것은 ‘8월의 저편’이다.한국어를 전혀 못 하는 작가가 오직 일본어 자료들만을 통해서 습득한 지식과 가족들과 주변 인물의 취재만을 통해 썼다는 이 소설에는 일제의 총동원령과 정신대의 만행 등이 차마 눈을 뜨고 책장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가차 없이 그려져 있다.일제 강점기,한 마라토너가 겪은 인생의 사계가 다큐멘터리적으로 그려져 있는데,진실과 대면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극명하게 보여준다.이것이 언제나 끝날지 기약하기 어려웠던,일제 강점기의 우리 민중의 삶이었던 것이다.작가 유미리는 이렇게 말한다.“개인과 가족의 사연을 드러냄으로써 자연스럽게 역사를 그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이러한 훌륭한 기록 문학들이 있는 한,일제 강점기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전진할 것이라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이 두 권의 책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라 할 것이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시인
  • 정기국회 언론개혁·국보법 여야대치 예고

    정기국회 언론개혁·국보법 여야대치 예고

    “날치기는 없다.”(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 “실력저지 않겠다.”(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여야의 두 대표는 넉달 전 ‘새 국회’를 다짐했다.정 의장은 ‘상생국회’를 천명했다.4·15 총선 다음날인 기자회견에서다.박 대표는 ‘표결주의’를 선언했다.그 일주일 뒤인 4월23일 대구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두 대표의 약속은 그 다음달 3일 양당 대표회담에서 공식화됐다.‘3대 원칙 5대 과제’라는 협약으로 국민 앞에 제시됐다. 하지만 이는 불과 넉달만에 물거품이 될지도 모를 처지에 놓였다.17대 첫 정기국회가 1일 개회되자 두 진영이 벌이는 기싸움에서 읽혀진다.‘네탓’ 공방만 벌이는 구태정치가 재현될 조짐이다. 열린우리당 천정배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끝까지 합의가 안 되면 표결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이에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는 “강력 저지하겠다.”고 날을 세웠다. 1일에는 양당의 대결 전략이 더욱 구체화됐다.열린우리당 임종석 대변인은 “개혁과제 추진에서는 ‘비타협 원칙’을 견지하겠다.”고 못박았다.반면 한나라당 남경필 원내수석부대표는 “여당이 과반의 힘을 앞세워 단독 표결을 시도할 경우 물리력을 동원,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맞받아쳤다. ●넉달전 ‘상생’ 다짐 뒤집어질 위기 이제 초점은 하나로 모아진다.여야가 끝내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이냐의 문제다.무엇보다 17대 첫 정기국회는 쟁점 법안이 그 어느 때보다 많다.무엇보다 여당이 ‘개혁입법 처리’를 천명하면서 야당과의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다. 이를 가늠할 최대 변수는 소속 의원들이 어느 정도로 당론을 따라주느냐에 있다.그 결속도에 따라 표결처리할 수도,중도 포기할 수도,‘최후 선택’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문법등 현안 역대 최다 수준 쟁점 법안들을 3대 유형별로 분석해보면 결속도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먼저,여야가 정면으로 맞서는 ‘대립형’이 있다.열린우리당은 신문,한나라당은 방송에 집중하는 언론개혁 관련법 등이 이 범주에 든다.소속 의원들의 결속도는 가장 높다고 할 수 있다. 둘째,여야 내부에 찬성과 반대가 엇갈리는 ‘찬반 혼재형’이 있다.국가보안법이 대표적인 법안이다.셋째,여야가 기본적인 입장에선 비슷하지만 구체적인 사항에서 엇갈리는 ‘원론 찬성,각론 반대형’이 있다.결속도는 가장 낮은 편이다. 이번 국회에서는 전체 의원 299명 중 187명,즉 62.5%에 이르는 초선 의원들이 포진해 있다.이들이 ‘거수기’라는 구태 정치를 반복할지,새로운 실험에 가세할지 주목된다. 박대출기자 dcpark@seoul.co.kr ■ 친일규명법·분양가 공개법안 등 가장 첨예한 대립 ●여야 대립형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안으론 언론관계법이 대표적으로 꼽힌다.열린우리당은 신문개혁에 비중을 두고 언론개혁국민행동과 함께 마련한 언론개혁법안을 이달 말께 제출할 계획이다.핵심 내용은 편집권독립 보장을 위해 신문사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특정 신문사의 독과점 폐해를 없애기 위해 1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20∼25%로,3개 신문사의 시장점유율을 65∼70%로 각각 제한하는 것이다.반면 한나라당은 시장경제에 위반되고 ‘언론 길들이기’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어 접점찾기가 어려울 전망이다.또 한나라당은 방송법 개정안에 집중하면서 지상파 방송의 공영성 강화를 위해 MBC 민영화 등을 주장하지만 열린우리당은 반대하고 있다. 경제 관련 법안에서도 여야가 맞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열린우리당과 정부는 연기금의 막대한 적립금을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금융시장 안정과 투자 선순환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기금관리기본법을 개정하자는 입장이다.그러나 한나라당은 이에 반대하면서 국회 심의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독자적인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친일조사규명법 개정안을 놓고도 이견이 팽팽하다.열린우리당은 친일진상규명법에 적시한 친일반민족행위 조사대상을 중좌(중령)에서 소위 이상,창씨개명 권유자,조선사편수회에서 역사왜곡에 앞장 선 사람,언론을 통해 일제침략전쟁에 협력한 사람 등으로 넓히자는 입장이다.반면 한나라당은 현행법을 시행한 뒤 개정 여부를 검토할 문제라며 고개를 내젓고 있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열린우리당은 부동산 안정화를 위해 공공택지 내 25.7평(국민주택규모) 이하의 공영·민영아파트에 원가연동제(분양원가 상한제)를 실시하되 분양 원가의 주요 항목을 공개한다는 방침이다.한나라당은 공영아파트만 분양 원가를 공개하고 민영아파트는 시장 자율에 맡기자는 입장이다.지난 2월 말 효력을 상실한 금융거래정보요구권(계좌추적권)도 핫이슈다.여당측이 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조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재도입을 추진하면서 한나라당과 맞서고 있다. 이종수기자 vielee@seoul.co.kr ■ 국회법·호주제폐지법안 등 黨內 찬반론 팽팽 ●여야 찬반 혼재형 여야 내부의 찬반 논란으로 당론 확정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법안들도 있다.국가보안법 개폐 여부,호주제 폐지 등 민법 개정안,체포동의안 기명투표 전환 등 국회법 개정안,국민연금 수수료 재조정 국민연금법 개정안 등이다. 국가보안법의 경우,열린우리당에서는 86명의 의원이 폐지 서명에 동참한 가운데 36명의 의원이 개정론을 펼치고 있다.한나라당에서도 소속의원의 90% 이상이 부분 개정 입장이지만 극소수는 폐지 또는 현행 유지쪽이다. 열린우리당은 폐지를,한나라당은 개정을 각각 당론으로 정할 것으로 예상되긴 하지만 양당 모두 당론 확정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당론 없이 표결로 갈 경우,현재로서는 폐지론자보다는 개정론자들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호주제 폐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민법 개정안 역시 각 당이 당론을 결정하는데 적잖은 부담이 따를 것 같다.호주제 폐지가 시대 흐름이기는 하지만 유림은 물론이고 일부 종친회 등의 반대 논리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경우 폐지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긴 하지만 유지론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한나라당에서는 아직 유지론이 폐지론보다 우세하다.일각에서는 현행 ‘1인 호주제’ 대신 가족 가운데 한사람이 호주 자격을 승계할 수 있는 ‘가족호주제’를 대안으로 내놓기도 한다. 국회의원 체포동의안 기명투표 등 국회법 개정안은 열린우리당이 당내 논란을 거친 끝에 사실상 당론으로 정한 가운데 한나라당 역시 논란을 벌이고 있다. 이밖에 국민연금 수수료 재조정 등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여야 모두 아직 명확한 입장을 못 정하고 있다. 반면 논란이 분분하던 간접자산투자운용업법(사모펀드) 개정안은 가장 먼저 접점을 찾았다.연기금의 사모펀드 투자허용 조항을 삭제하고,산업은행과 중소기업은행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절충안이 정기국회 첫날인 1일 재정경제위에서 의결된 것이다.경제법안이라는 점에서 다른 법안들의 처리에도 방향타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과거사법·고비처법안 등 각론 조정 맞대결 ●원론 찬성·각론 반대형 열린우리당이 1일 확정 발표한 100대 입법안 가운데 일부 법안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입법 취지에 원론적으로 찬성하고 있다.다만 방법,내용 등에서 각론적으로 반대하는 법안이 적지 않다.여야간의 협의 통과가 가능하지만 치열한 대립도 벌어질 수 있는 법안들로 분석된다. 우선 열린우리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과거사정리기본법은 ‘여공야수(與攻野守)’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에 대한 당론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하지만 공식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되 박근혜 대표 등 지도부가 조사 범위 및 기간·주체,기구의 위상 등에 대해 개인 의견을 밝히고 있는 정도다. 또한 사립학교법 개정 및 남북관계발전기본법 제정의 필요성,공직자윤리법 개정,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고비처) 신설,재래시장육성특별법의 필요성에는 여야가 큰 틀에서 공감하고 있다.이 때문에 여야간에 논란을 벌이다가 처리될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법안으로 꼽힌다. 아울러 여야간의 대립이 장기화되면서 정기국회 초반 또는 중반보다는 후반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점쳐진다. 다만 고비처의 경우 한나라당은 부패방지위 산하에 둔다는 열린우리당 방침과는 달리 특검형 고비처를 독립적으로 신설하는 법안을 추진하기로 해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의 경우 고위 공직자 백지신탁제 도입에 대해서는 여야가 필요성을 함께 하고 있지만 신탁의 대상 및 범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또한 사립학교법은 열린우리당이 이사장의 친족 관계자가 해당법인 학교장으로 취임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반면 한나라당은 사립학교를 재정 자립도와 교육여건 등을 감안해 ▲독립형 ▲의존형 ▲공영형 ▲공립전환 대상 등 4개 유형으로 분류,차별 운영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발전기본법 제정에도 여야가 공감하고 있지만,한나라당은 남북간 합의서를 체결할 때 국회의 비준 동의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을 포함시킬 것을 주장하고 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논술 비타민] 미디어가 폭력이라니?

    [논술 비타민] 미디어가 폭력이라니?

    정보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오른쪽 두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바람직한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2004 서강대 논술고사 대비 예시 문제) (1) “산업세계의 정권들,너 살덩이와 쇳덩이의 지겨운 괴물아.나는 마음(Mind)의 새 고향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왔노라.미래의 이름으로 너 과거의 망령에게 명하노니 우리를 건드리지 마라.너희는 환영받지 못한다.네게는 우리의 영토를 통치할 권한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뽑은 정부가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의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다.그래서 자유가 명하는 대로 네게 말하겠노라.우리가 건설하고 있는 전지구적인 사회 공간은 네가 우리에게 덮어 씌우려는 독재와는 무관한 것이다.너는 우리를 지배할 도덕적 권리도 없고 우리가 무서워할 만한 강제적인 방법도 갖고 있지 못하다. 정부는 시민의 동의에서 자신의 정당한 권력을 얻는다.너희는 우리의 동의를 얻지도 않았고 부름받지도 않았다.우리가 너희를 언제 초청했느냐? 너희는 우리에 대해서도 우리의 세계에 대해서도 전혀 모른다.사이버스페이스는 너의 관할권 바깥에 있다.사이버스페이스를 마치 공공 건설 사업쯤으로 생각하여 너희가 그것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너희는 만들 수 없다.사이버스페이스는 자연의 움직임이며 우리의 집단적인 행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다.너희는 우리의 위대한 대화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우리 시장의 부를 만들지도 않았다.너희는 너희의 법률이 얻는 것보다 훨씬 질서정연한 우리의 문화와 윤리,불문법에 대해 모른다. 너희는 우리에게 문제가 있으니 너희가 개입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너희는 우리 구역에 침범하기 위한 구실로 이런 주장을 사용한다.하지만 그런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진정으로 갈등이 있는 곳,문제가 있는 곳이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어 우리의 방법으로 그것을 밝히겠다.우리는 스스로 우리 자신의 사회 계약을 만들고 있다.이러한 집행은 너희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 세계의 조건에 따라 생겨날 것이다.우리 세계는 너희의 세계와 다르다. 사이버스페이스는 웹에서 이루어지는 의사소통의 물결처럼 계약과 관계 그리고 사유 그 자체로 이루어진다.우리의 세계는 모든 곳에 있으면서 아무 곳에도 없지만 우리의 육체가 거하는 곳은 아니다.우리는 인종,경제력,군사력,태어난 곳에 따른 특권과 편견이 없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우리는 비록 혼자일지라도 침묵과 동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어디에서나 그의 믿음을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고 있다.너희가 생각하는 재산,표현,정체성,운동,맥락에 관한 법적인 개념들은 우리에게 적용되지 않는다.그것들은 물질에 기반 하는데 사이버스페이스에는 아무런 물질이 없다.우리의 정체는 너희와 달리 육체가 없기 때문에 물리적 강제력으로 질서를 만들 수 없다.우리는 윤리와 개명된 자기이해,그리고 공공복지에서 우리의 정체가 나타나리라 믿는다.우리의 정체는 너희의 관할권을 건너 퍼질 수 있다.우리의 선거인 문화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법률은 황금률이다.우리는 이 근거에서 우리의 특수한 해결책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중략)… 너희의 진부한 정보산업이 미국이나 다른 곳에서 전 세계적으로 연설권을 확보한다고 주장하는 법률을 제안함으로써 자신을 존속시킬 수 있다.이들 법률은 아이디어를 쇳덩어리와 똑같이 취급하여 이것이 또 하나의 산업 생산물이라고 주장할 것이다.우리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마음이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이 복제되고 아무런 비용 없이 무한히 배분될 수 있다.사고가 전 지구적으로 퍼지는 것은 너희의 공장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날로 늘어가는 적대적이고 식민지적인 조치들은 우리로 하여금 자유를 사랑하고 스스로 결단했던 자율적인 우리의 선조처럼 먼 곳에서 온 제복의 권위를 거부하도록 만든다.비록 우리가 우리의 육체에 대한 너희의 지배를 받아들이지만 이제 너희의 지배에 견딜 수 있는 우리의 가상 주체를 선언해야 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구 전체로 퍼뜨려 아무도 우리의 생각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마음의 문명을 건설할 것이다.그것은 너희 정부가 이전에 만든 것보다 더 인간적이고 공정한 세상이 될 것이다. (존 페리 바를로,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서) (2) 1.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우리 시대의 가장 큰 오해는,기술은 생명이 없는 인공의 산물이기 때문에 아무런 치우침도 없다는 생각이다.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의도적이든 아니든 기술은 사회적,정치적,경제적 편향을 담고 있다.모든 기술적 도구들은 그 이용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특정한 틀과 다른 사람과 반응하는 방식을 제공한다.여러 기술에 깃든 편견을 고려하고,그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생각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파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2.인터넷은 혁명적이지만,유토피아를 약속하지는 않는다.인터넷은 개인과 단체,기업,정부 등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 도구다.그러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면서,인터넷의 사이버스페이스는 현실 세계를 닮아가고 있다.따라서 인터넷의 장점만큼 그것의 뒤틀어지고 악의적인 면모에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된다. 3.정부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사이버스페이스는 치외법권 지역이 아니다.물론 이곳의 새로운 규칙과 관례를 존중하고,섣불리 비효율적인 규제나 검열을 시도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그러나 기술 표준과 사생활 보호 문제 등은 정부의 개입 없이 시장 논리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차대한 사안이다. …(중략)… 6.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사이버스페이스에서도 창안자가 주도권을 갖고 자신의 지적 산물을 통제해야 한다.그를 위해 낡은 저작권법은 수정 보완돼야 한다. (www.technorealism.org). 1.사오정 올림픽 폐인되다 “눈이 왜 그렇게 빨개?” 저팔계는 사오정의 초췌한 모습에 깜짝 놀랐다.“올림픽 때문에 그렇지 뭐! 누구 말마따나 왜 그리스에서는 축구를 새벽에 하는지 모르겠어.헤헤헤!” 사오정의 우스갯소리에 저팔계도 따라 웃었다.“너도 그 방송 봤구나.어쨌거나 유럽 쪽에서 경기하면 시차 때문에 잠을 설치게 돼서 좀 그렇더라.오죽하면 ‘올림픽 폐인’이라는 소리가 나오겠냐?” “맞아.새벽까지 경기 보고 인터넷으로 관련 소식 검색하다 보면 금방 날이 샌다니까.” 사오정은 연신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싫지 않은 표정이다.“그래도 우리 선수들 너무 자랑스럽잖아.탁구만 해도 김택수 코치가 후배에게 국가대표를 양보한 거 하며,유승민 선수가 6전 전패였던 상대를 결승에서 만나 불굴의 의지로 이긴 거 하며….” 사오정은 아직도 감격을 못 잊은 듯 주먹을 불끈 쥔다.“너도 완전히 올림픽 폐인 수준이구나.금메달을 따는 장면들도 재미있지만 메달은 못 땄었어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꾸준히 노력해 세계의 강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들도 참 보기 좋더라. 이때,삼장 선생이 들어 왔다.“자,오늘도 문제를 하나 풀어볼까? 그런데 사오정 너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구나.무슨 일 있니?” 올림픽 때문에 그렇다는 얘기를 들은 삼장 선생은 혀를 차며 말했다.“시험을 앞둔 녀석이 한가하기도 하구나.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좋다마는 너무 빠지면 텔레비전의 노예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렴.” 둘은 삼장 선생이 준 문제를 열심히 풀었다. 2.삼장,논점을 설명하다 “잘들 썼구나.이 문제는 두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밝히고,바람직한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라는 것이다.어떤 내용이 포함되어야 하는지 보면,우선 각 예시문에 나타난 사이버스페이스에서의 국가의 역할에 대한 입장 차이가 정리되어야 한다.첫째 글에서는 사이버스페이스를 현실의 국가로부터 자유로운 ‘치외법권의 공간’으로 파악을 하고 있다.국가의 역할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이다.반면 둘째 글은 사이버스페이스가 무질서한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있으므로 오히려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이런 점을 제시한 후 자기의 견해를 피력하면 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세 가지 관점의 답변이 가능하다.하나는 (1)의 견해처럼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국가의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답변이고,둘째는 (2)의 입장과 같이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셋째는 양자를 절충한 답변이다.가능한 답변의 방향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각각의 입장에 관한 뒷받침을 논리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잘 표현하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 될 것이다. 사오정은 인터넷을 즐기는 ‘올림픽 폐인’답게 사이버스페이스에서 국가의 역할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인데,비교적 논리적 뒷받침을 잘 하고 있다.저팔계는 양자의 입장을 절충해야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썼는데 어설픈 중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두 답변 모두 일리가 있는 내용이다.하지만 이 문제의 경우 사이버스페이스의 발전을 위한 국가의 역할을 묻고 있으므로 국가의 역할이 불필요하다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오정의 답변보다는 양자를 합리적으로 절충해 나가야 한다는 저팔계의 답변에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구나.사실 두 제시문의 입장은 극단적인 해결 방안이기 때문이다.바람직한 발전을 위해서는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살려야 한다는 점에서 보더라도 저팔계의 답변 내용이 좀더 바람직한 면이 있다고 할 것이다.이미 저작권 보호 문제,유해한 정보의 유통 문제,개인정보의 유출 문제 등 여러 병리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가 저절로 유토피아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따라서 당장에 발생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완화시키려는 노력은 필요한 것이며,현실적으로 국가만큼 이런 역할에 적합한 경우도 드문 점을 감안하면 국가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해 줄 필요는 있다고 하겠다.다만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사이버스페이스의 최대 강점인 자유가 제한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이 이런 장점을 약화시키지 않는 선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저팔계의 답변은 이런 점을 논리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3.삼장 선생 아쉬워하다 “참! 말이 나온 김에 정보화 시대와 관련해서 미디어 문제는 꼭 한 번 정리해 두기 바란다.아까 ‘올림픽 폐인’이라는 말이 나왔는데,그것도 엄밀히 말하면 미디어의 폭력이라 할 수 있다.사오정은 올림픽을 즐겼으니 그나마 다행이지만 운동 경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든 방송이 올림픽 경기만을 중계해 주면 자기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권리를 빼앗기는 결과가 된단다.결과적으로는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을 봐라.’하고 강요하는 셈이다.사실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이런 스포츠 중계를 이용해 민감한 정치적 사안을 희석시키고 국민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들도 있었단다. 최근 소위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미디어가 국가 사회는 물론이고 개인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대표적인 경우가 지난 대통령 탄핵 사태이다.탄핵에 좌절한 의원들의 모습이 가감없이 방영됐고,이는 탄핵을 주도한 정당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정보의 전달 매체인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미디어는 그 자체로서 또 하나의 권력을 지니게 되는데,이러한 권력이 남용되거나 오용되는 경우 폭력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낳을 수밖에 없다.특히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한 뉴미디어의 출현은 여러 가지 가능성과 함께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이다.그만큼 논술 고사에서도 중요하게 취급될 소지가 높다.꼭 논술 고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미디어 폭력의 희생양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감시의 눈초리를 거둬서는 안 될 것이다.따라서 미디어의 특성이나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갖는 그 의미와 한계 등을 잘 정리해 둘 필요가 있단다.” 4.사오정,텔레비전을 끊다? “선생님,저 오늘부터 텔레비전 안 볼 생각입니다.” 사오정의 말에 삼장 선생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아니? 그럼 네가 좋아하는 올림픽은 어떡하고?” “헉!” 사오정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 올림픽은 이왕 보기 시작한 거니까 이번 올림픽까지만 보고 다음에는 안 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허허! 그래 한번 보자.정말 텔레비전을 안 보나.그리고 텔레비전의 영향력이 막강하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닌데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것을 보니 네가 미디어의 폭력성에 은연중에 물든 것 아니냐? 지나치게 자극적이니 말이다.허허허!” 사오정은 쑥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사실은 자신 없어요.텔레비전 없이 어떻게 살아요.” “네가 그러면 그렇지.아예 텔레비전하고 살아라.살아.” 삼장 선생과 저팔계는 박장대소했다. 다음 주에는 ‘그래도 인간인데?’라는 제목의 강좌가 진행됩니다. 논술과 심층면접 지상강의 내용에 대해 이해가 안 되거나 궁금한 점이 있으면 http://cafe.daum.net/seoulinseoul로 문의하면 선생님들의 조언과 설명을 들을 수 있습니다.
  • [열린세상] 친일이란 판도라상자를 열려면/이덕일 역사평론가

    ‘영산강 안개 속에 기적이 울고/ 삼학도 등대 아래 갈매기 우는/ 그리운 내 고향 목포는 항구다’로 시작하는 ‘목포는 항구’는 ‘목포의 눈물’과 함께 이난영의 대표곡으로서 목포를 넘어 전국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이 노래의 작사자 조명암(趙鳴岩,1913∼1993)은 2003년에야 시 전집이 발간되었는데,이는 그가 광복 이후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에 참여했다가 월북한 좌익 시인이기 때문이다.월북 부친 때문에 고생했을 남한의 유일한 혈육인 딸은 1992년 그가 해금되자 500여곡의 저작권을 되찾고 ‘꿈꾸는 백마강’,‘선창’ 등의 저작권자가 부친이라며 서울지법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는데,조명암의 시선집을 편저한 대학교수는 “조명암의 민족주의 성향은 만해 한용운에게서 배운 영향일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민족주의 인사로 포장되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일제시대 지은 ‘지원병의 어머니’라는 가사는 ‘민족주의’ 운운하는 평가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웅변해준다.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 눈물을 흘릴소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정거장/···/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용감한 내 아들의 충의 충성을/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 이 가사는 1941년 7월 오케레코드에서 간판급 여가수로 활동하던 장세정(張世貞,1921∼2003)의 노래로 음반 발매되었는데,음반 제목은 ‘애국가’였다.조명암이 작사한 친일 가사는 이뿐만이 아니다.1943년의 ‘혈서지원’에서는 ‘무명지 깨물어서 붉은 피를 흘려서/ 일장기 그려놓고 성수만세 부르네.’라고 노래하고 있다.친일파 조명암은 북한에서 평양가무단장,문화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부위원장,교육문화성 부상(차관) 등의 고위직을 역임하면서 죽을 때까지 김일성상(賞)계관인이란 영예스러운 칭호를 누렸는데,이는 적극적 친일파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인 ‘현실 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탁월한 능력’이 ‘친일파 하나는 확실히 청산했다.’는 북한에서도 괴력을 발휘했음을 말해준다. 시게미쓰 구니오라고 개명했던 신기남 열린우리당 전 의장의 부친 신상묵이 광복 후 경찰간부로 특채된 것은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수사했던 경력 덕분이었을 것이다.수사대상만 독립운동가에서 미 군정과 이승만 정권의 반대자로 바꾸면 되었던 그는 ‘현실권력에 따라 옷을 갈아입는 친일파의 탁월한 능력’때문인지 서남(西南)지구 전투경찰 사령관을 거쳐 자유당 시절 젊은 도경국장으로 승진한다. 신상묵이 멀쩡한 소학교 교사를 때려치우고 일본군 졸병으로 지원한 1940년,천여명 뽑는 졸병 모집에 8만여 명의 조선인이 지원했다는 ‘매일신보’의 보도는 이 무렵 친일이 권력추구 수단으로 구조화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일제가 적어도 100년은 갈 줄 알았다는 서정주의 친일의 변처럼 독립에의 전망이 부재한 시대였기 때문에 친일은 옳고 그른 윤리적 차원을 넘어 인생역전의 키워드로 구조화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후세대의 친일문제에 대한 접근이 얼마나 어렵고 전문성을 요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신기남 의원이 의장직 사퇴의 변에서 “인자함과 덕망,주변에 도움을 주며 사셨던 분을 하루아침에 일제의 앞잡이로 매도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라고 말한 것은 그가 ‘친일이라는 불행한 시대의 판도라 상자’를 열 자격이 없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 상자를 열 때 ‘가난,질병,전쟁,거짓말,고통,슬픔,미움,사기’ 등이 상대방에게만 붙으리라고 예상했다면 그 시대에 대한 공부를 한참 더 해야 한다.그런 후 판도라 상자를 열어야 상자에 마지막으로 남은,그것 때문에 모든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뚜껑을 열어야 하는 ‘미래를 향한 희망’을 우리 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덕일 역사평론가
  • [Seoulites]서울의 鎭山 삼각산 제이름 찾기 본궤도

    [Seoulites]서울의 鎭山 삼각산 제이름 찾기 본궤도

    ‘북한산’으로 불리고 있는 서울의 진산(鎭山) ‘삼각산’이 김현풍(63) 서울 강북구청장에 의해 제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초선의 김 구청장은 2002년 취임과 동시에 ‘삼각산 이름찾기’를 주장하며 차근차근,그러나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문화재청 등 관계기관에 북한산의 개명을 요구하고 있다.일제에 의해 잃어버린 우리의 문화를 찾아야 한다는 일념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고려때부터 불려오던 삼각산이란 명칭이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에 의해 잃어버렸다.”며 “산이름,지명 등을 되찾는 것은 우리 문화를 찾는 첫 걸음이다.”라고 말했다. ●인수봉,만경대,백운대는 국가 문화재로 김 구청장은 지난해 문화재청에 강북구에 위치한 북한산의 3대 봉우리인 백운대(836.5m)·인수봉(810.5m)·만경대(799.5m) 일대 27만 3000㎡를 국가지정문화재로 보호해 줄것을 요청해 명승 제10호로 지정받았다.이와 더불어 이 일대를 ‘삼각산’이란 명칭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공식화하는 데도 성공했다.따라서 종전 북한산의 3대 봉우리는 공식적으로는 ‘삼각산에 위치한 봉우리’라고 부를 수 있게 됐다. 김 구청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건설교통부,서울시 등에 북한산 전체를 원래의 이름인 삼각산으로 개명해 줄 것을 줄기차게 건의하고 있다. ●지명위원회 검토유보 김 구청장은 지난 3월11일 서울시지명위원회(위원장 원세훈 행정1부시장)에 ‘북한산 명칭을 삼각산으로 변경해줄 것’을 요청했다.10명의 심의위원들은 “파급효과가 커 신중히 검토해야 된다.”는 이유를 들어 심도있는 논의 자체를 유보했다. 만약 김구청장의 제안이 지명위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면 같은 산자락에 위치한 인근의 경기도 고양시와 협의가 필요한 만큼 시·도지사협의회에서도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이 과정을 거치면 개명작업은 건교부의 중앙지명위원회로 넘어가 최종 결정된다. 김 구청장은 개명작업이 최소 1∼2년은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자료확보 등 체계적인 준비작업을 펼치고 있다. 서울시 지명위원회는 “북한산이란 이름이 반드시 일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 수 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하지만 김 구청장은 “북한산이란 명칭이 일제시대(1912년) 행정구역을 개편하고 지명을 개정하는 와중에 생긴 출처불명의 지명인데도 광복이후 정부가 북한산국립공원이란 명칭을 사용하면서 삼각산이 북한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주장한다. ●학술대회 준비등 철저한 고증 이에 따라 김구청장은 보다 정확한 역사적 사료를 찾고 학술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조만간 ‘삼각산 학술대회(가칭)’ 개최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까지 확보된 역사적 사료에는 ‘고려사’ 서희전에 “삼각산 이북도 고구려의 옛 땅입니다.”라는 표현이 있고 조선시대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신증동국여지승람’,‘동국여지지’,‘여지도서’,‘증보문헌비고’,‘북한지’,‘대동지지’ 등 지리서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한결같이 삼각산으로 기록하고 있다. 김 구청장은 “현재에도 경동·서울고 등 서울지역 46개교의 교가에도 북한산이 아닌 삼각산으로 불리고 있다.”며 흥미로워했다. ●내부문서 등 각종 기록 삼각산으로 표기 김 구청장은 이미 지난해 10월부터 청내 내부문서나 각종 기록,주민 행사 등에 ‘삼각산’으로 표기토록 하고 있다.구민을 대상으로 ‘삼각산 부르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지난 4일부터 오는 10월27일까지 ‘삼각산 해설가 양성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지역 고유의 삼각산축제,삼각산 국제산악문화제 등 각종 축제에도 ‘삼각산’이란 명칭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삼각산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행사를 통해 전통문화를 되살리고 지역의 문화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의지다. 김 구청장은 “문화가 역사를 주도하고 경제를 생산하는 시대가 도래한다.”며 “내고장만이 간직한 고유한 역사와 전통·문화를 찾아내고 이를 계승발전시키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한국브랜드 해외서 희비 교차

    해외에서 한국 대표 브랜드들의 영욕이 교차하고 있다.세계 최대 소비시장 자리를 넘보고 있는 중국에서 삼성전자는 브랜드 인기도 상승률 1위를 차지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반면 90년대까지만 해도 김우중 대우회장의 ‘세계경영’이라는 모토 아래 ‘입술광고’로 유럽을 휩쓸었던 대우자동차는 2년전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되면서 GM대우로 브랜드의 명맥을 유지해왔으나 이제는 그마저 어렵게 됐다.GM측의 새 방침에 따라 유럽시장에서 자취를 감출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삼성전자 인기 ‘최고’ 마케팅업체인 유로 ESCG의 의뢰를 받아 마켓 프루브 인터내셔널(MPI)이 지난 2월 온라인으로 중국 소비자 2079명을 상대로 최근 2년간의 브랜드 인기도 변화율을 조사해 19일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삼성이 브랜드 인기도 상승률에서 선두를 차지했다.2위는 중국 가전업체 하이얼,3위는 중국 이동통신업체 차이나 모빌,4위는 미국의 인터넷검색엔진 구글,5위는 미국의 치약 브랜드인 크레스트가 각각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최근 2년간 브랜드 인기도가 올랐다는 응답률에서 브랜드 인기도가 하락했다는 응답률을 빼는 방식으로 인기도 변화율을 평가했다. 반면 브랜드 인기도 하락률 1위는 중국 가전업체 페오니가 차지했다.2위는 일본 비디오게임업체 세가로 조사됐고 이어 중국 음료업체 쉬리성(3위),일본 가전업체 켄우드(4위),일본 가전업체 로와(5위)가 차지했다. ●“대우의 두번째 죽음” 프랑스의 일간 르피가로는 18일 미국 자동차업체인 GM에 인수된 대우자동차 브랜드가 내년부터 유럽에서 ‘시보레’로 대체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대우의 두번째 죽음”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에서 몇주 뒤 파리에서 열리는 자동차 전시회 때까지는 브랜드 개명이 비밀에 부쳐질 것이지만 개명 방침은 확실하다고 전했다.신문은 개명 배경으로 GM대우가 지난해 서유럽에서 11만 5600대,중부 유럽에서 1만 6700대의 승용차 판매에 그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점을 들었다.이에 따라 앞으로 대우차 브랜드는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 한정돼 사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균미기자 kmkim@seoul.co.kr
  • 辛의장부친 日軍지원 독려 글 발견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의 부친 신상묵(辛相默)씨가 일본군 헌병으로 복무하면서 조선인들의 일본군 입대를 독려하는 글을 월간지 ‘삼천리’에 기고한 사실이 18일 확인됐다.신씨는 1941년 월간 ‘삼천리’ 1월호에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신상묵씨의 창씨 개명 이름)라는 이름으로 ‘지원병 일기’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신의 출신지와 이력을 소개한 뒤 “선생 노릇을 하다가 지원병이 된 것은 무슨 출세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며 “물은 얕은 데로 흘으며(흐르며)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과 같이 일본 남자인 우리들이 폐하의 군인이 되는 것은 외레이할(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자신의 일본군 입대 배경을 밝혔다.신씨는 이어 “내선일체가 되는 데 가장 먼저 할 것은 지원병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참으로 황국신민이 될 생각이 있거든 그리고 내선일체를 실행하려고 생각하거든 이 훈련소로 오시오.”라며 조선 젊은이들의 일본군 지원을 독려했다. 인천 연합
  • 고양시 개명산‘ 생태보전지역’ 추진

    경기 고양시가 개명산(해발 621.8m)의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개명산은 일산신도시를 배후로 하고 있어 성사되면 도시인접형 생태보전지 지정의 첫 사례가 된다.또 대규모 신도시·택지개발지구 등의 그린벨트 해제와 난개발 폐해를 보완하는 녹지환경보전의 바람직한 선례가 될 것으로 보여 관심을 모은다. 18일 고양시에 따르면 시는 벽제동 산1의 1 일대 개명산 일원 285만㎡를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받기 위해 조만간 환경부에 승인신청을 하기로 했다. 시는 개명산이 원시상태의 녹지자연도 7∼8등급의 숲과 수령 40년 이상된 서나무·신갈나무 군락,오목눈이 딱새와 흑두루미 등 희귀 조류,버들치 등 1급수 서식생물이 발견되는 등 자연환경보전법상 생태계보전지역 지정 요건인 ‘생태·자연도’(生態·自然圖) 1등급 지역임을 감안,보전지역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시가 이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일산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고양의 허파’ 구실을 해야 할 개명산 기슭에 골프장·납골당·아파트형 공장 등의 설치허가 신청이 잇따르는 등 개발압력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고양환경운동연합,파주환경운동연합,고양녹색소비자연대,고양 YWCA 등 10여개 시민단체와 주민들도 ‘개명산 지킴이’ 등의 단체를 만들어 생태계보전지역 지정을 위한 서명운동에 착수했다.시의회도 지난달 개명산 생태계 보전지역 지정을 건의했다. 환경부 생태보전지역으로 지정되면 야생 동·식물의 포획·채취와 건축물 신·증축,토석 채취와 출입이 금지 또는 제한되나 지역 주민들은 등산로 등 편의시설을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고양시 김경주 환경보호과장은 “보전지역 지정이 가장 확실한 생태보전 방안이나 편입 토지주 등의 반대 등 난관이 없지는 않다.”면서 “수도권 신도시 지역의 생태환경 확보를 위한 자치단체와 시민들의 노력을 환경부가 적극 지원해 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양시의 개명산 생태보전지역 예정지엔 전체의 45.7%인 130만평의 사유지가 있다. 현재 국내의 환경부 지정 생태보전지역은 낙동강 하구(철새도래지),지리산(원시림),대암산(고원습지),우포늪(원시자연늪),무제치늪(희귀 동·식물 서식 습지),섬진강 수달 서식지,전남 함평의 붉은박쥐 서식지와 동강유역 등 8곳으로 모두 도시지역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신기남의장, 부친 日헌병 복무 시인

    신기남의장, 부친 日헌병 복무 시인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이 16일 부친 신상묵씨가 일본군 헌병 오장(하사)으로 복무했다는 신동아 9월호의 보도내용을 사실로 시인함에 따라,신 의장의 거취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한나라당은 신 의장의 책임론을 거론하고 나서 정치권의 쟁점으로 부상할 전망이다. 신동아에 따르면 신상묵씨는 지난 1940년 7월25일 전남 화순군 청풍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일본군에 지원,조선총독부 국군병지원자훈련소에 입대했다는 것이다. ‘시게미쓰 구니오(重光國雄)’로 창씨 개명한 신씨는 훈련소를 수료한 직후인 같은 해 11월8일 일본군 지원병 수료생 자격으로 한 신문의 좌담회에 참석했고,이 신문은 좌담회를 같은 해 11월30일부터 8회에 걸쳐 연재했다고 신동아는 보도했다. 신동아는 또 신상묵씨의 이름이 포함된 일본군 지원병 합격자 명단,창씨개명한 기록이 실려 있는 호적자료와 함께 신씨의 이름,출신지역,출신학교,나이 등이 소개된 신문 좌담회 기사를 공개했다.당시 보도에 따르면 신씨는 좌담회에서 “나는 반다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게 되엇습니다.절대로 복종하야 되겟다는 정신수양을 하게 되엇습니다.”라고 입대 소감을 밝혔다. 신동아 보도 내용이 알려지자 신 의장은 16일 저녁 긴급 기자간담회를 갖고 “선친이 일제시대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교사생활을 하다 군에 입대한 것으로 들었다.”면서 “굳이 숨기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친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이해하지만,목숨 바쳐 싸운 독립투사와 유족에게는 아버님을 대신해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면서 “진상규명 대상이 된다면 조사에 최대한 협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나라당 임태희 대변인은 “신 의장은 해명과 함께 정치인으로서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공격했다.같은 당 전여옥 대변인도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은 과거사 조사의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부산 김준석기자 hermers@seoul.co.kr
  •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서울광장] 과거의 반성과 화해/손성진 논설위원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유신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 세상에 화해하고 용서하지 못할 일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김 전 대통령은 유신의 최대 피해자 아닌가.박 대표가 아버지의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했지만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한 쪽은 사실 김 전 대통령이었다.재임중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위한 예산을 책정한 것이다.사후 20년 동안 잠잠하던 박정희의 공과(功過)에 대한 시비가 촉발된 것은 그때였다. 역사는 과거에 대한 반성을 거쳐 앞으로 나아간다.대결과 화해의 반복으로 발전하는 것이다.이런 변증법적 절차로 역사가 진보하려면 진정한 반성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어제가 없이 내일이 찾아올 수 없듯 과거가 없는 미래는 있을 수 없다.진정한 반성이 없으면 대립에서 벗어날 수 없고 화해도 없다.과오를 인정하지 않을 때 역사는 정체되고 만다.6·25전쟁에 개입해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가로막은 최대의 적이었던 중국이 지금은 수교와 화해로 최대의 교역국이 됐다.그러나 중국은 고구려사 왜곡을 시도함으로써 한·중 관계를 뒷걸음질치게 만들고 있다.일본은 어떤가.제국주의의 망령을 버리지 못하는 일본의 반성없는 태도로 한국과 일본은 수십년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감정적 대립 상황에 놓여 있다.그것은 양국의 동반자적 관계를 해쳐서 상호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더 먼 시점에서 과거를 바라볼 후세에 올바른 과거를 정립해서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친일 문제가 그렇고 박정희와 유신이 그렇다.과거의 진실은 여전히 부정되고 있다.박정희는 일본군 소속이 아니라 만주군이었다는 한나라당 김모 의원의 주장은 해괴하다.문경보통학교 교사로 일하던 박정희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는 여덟글자를 혈서로 써내고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다.진충보국이란 물론 일본국왕에 대한 충성다짐이다. 만주군관학교를 수석졸업한 그는 이렇게 선서를 했다.“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죽겠습니다.”나구모 주이치 당시 일본 육사교장은 천황폐하에 바치는 충성심이라는 면에서 보통의 일본인보다 훨씬 일본인답다고 박정희를 평가했다.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을 했던 박정희는 더 일본인다워지려고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로 다시 이름을 바꾼다.(최상천의 ‘알몸 박정희’)만주군 제8단에 배치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작전에 들어간다고만 하면 ‘요오시(좋다),토벌이다!’하고 벽력같이 소리쳤다고 한다.(문명자의 ‘내가 본 박정희와 김대중’)만주군은 일본의 군대였고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던 일본군 장교였다.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자란 박정희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정말 일본인인양 착각했는지 모른다. 박정희의 경제적 치적은 무시될 수 없다.그러나 실정(失政)과 과오가 묻혀서는 안 된다.경제 업적에 대한 평가도 양면적이다.개발독재의 폐해는 아직도 앙금이 남아 발목을 잡고 있다.정경유착,빈부격차,경제력 집중 등 독버섯 같은 요소들은 개발독재의 산물이다.치적만 부각하는 박정희 기념관을,그것도 국가 예산으로 건립하는 것은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잘못도 함께 보여주는 ‘박정희 역사관’을 만든다면 모를까.역사를 오도할 수 있는 기념관 건립보다는 참모습을 규명해서 제대로 평가하는 것이 먼저 할 일이다.친일 경력의 왜곡이 시도되듯 시간이 흐르면 협박,사생활 추적,세무조사,고문,날조 등 그가 동원한 온갖 불법수단도 부정되고 미화될 것이다.지금도 막걸리를 마시며 농민들과 담소하는 박정희의 웃는 모습만 기억하는 국민들이 많지 않은가. 손성진 논설위원 sonsj@seoul.co.kr
  • 中서 한국어학교 11곳 운영중인 황유복 중앙민족대학 교수

    中서 한국어학교 11곳 운영중인 황유복 중앙민족대학 교수

    “중국내의 우리 동포 2,3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우리말을 모른 채 살고 있습니다.한국사를 바로 알아야 할 요즘 시기에 안타까운 일이죠.” 황유복(61·중국명 황여우푸) 중앙민족대학 민족학계(우리의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중국내 한국사 연구의 권위자로 꼽힌다.이 대학은 55개 소수민족을 연구하는 중국 최고의 대학으로 교수 2000여명에다 학생수가 1만 6000여명에 이른다.황 교수는 이 대학에 한국문화연구소까지 직접 설립할 정도로 애착이 많다.특히 그는 ‘베이징한국어학교’를 비롯,단둥·창춘·지린·내몽골·하이난 등 10곳에 분교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13일 국회의사당내의 후생관에서 그를 잠시 만났다.그는 최근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이사장 서영훈) 주최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차 방한했다가 이날 일행들과 함께 국회를 방문했던 것.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묻자 그는 지나온,한많은 이력을 먼저 언급했다. 그는 독립투사의 유복자(遺腹子)였다.경북 울진 출생인 그의 부친(황천수)은 1935년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적극 가담했다.주로 독립군에 대한 자금과 장비 조달 등 후원활동이었다.그러던 1942년 9월 일본 경찰에 붙잡혀 곧바로 독살됐다.이때 그의 부친 나이는 30대초반에 불과했다. ●독립투사의 유복자로 태어나 모친도 2살때 잃어 이듬해인 43년 2월 지린시에서 그는 태어났다.하지만 그가 두살되던 해에 모친까지 세상을 떠나 일찍 천애고아가 되는 불운을 한꺼번에 겪었다.그는 “어머니가 아버지 잃은 슬픔과 난리통에 숨어 지내는 등 여러 어려움이 겹쳐 일찍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할머니 품에 어린 시절을 의지한 그는 지린시 조선족중학 6년과정을 마친 후인 61년 베이징으로 홀로 건너가 중앙민족대학에 입학했다.5년과정을 마친 직후 그는 이 대학에서 조교생활을 했다.그러나 문화혁명으로 인해 졸지에 군(軍)농장 일과 사상교육을 받으며 전전긍긍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72년 대학이 정상화되면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이때 그는 신입생 모집의 분위기를 틈타 조선어학과 개설의 필요성이 담긴 장문의 보고서를 학교측에 제출,조선학과가 첫 탄생되는 결실을 보았다.평소 바라던 조선족 연구도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이같은 열정은 불행의 역사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픔도 많이 작용했다. ●틈틈이 모은 강의료로 첫 조선어학교 설립 논문발표도 계속됐다.84년에는 미국의 코네티컷대학에 초청을 받아 해외특강에 나섰다.이어 87년부터 1년간 하버드대 초청 교환교수로 재직하게 됐다.이때 ‘미국·중국의 한인사회와 문화 비교연구’라는 주제로 미국 여러 지역을 순회강연했다.88서울올림픽 국제학술대회때에는 중국의 조선족 학자로는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전국 10여개 대학에서 한국학생들과 만났다.89년 귀국한 그는 틈틈이 모은 강의료(10만위안)로 ‘베이징조선어학교’를 설립했다. “한·중 수교때 중국 정부는 관공서에 근무할 인력을 대부분 우리학교에서 차출할 정도로 우리 학교는 큰 역할을 했지요.사실 저는 미국이나 각국 특강때 한·중 수교를 예언했습니다.그래서 학생들에게 표준한국말을 배워야 한다고 늘 강조했지요.” 92년 졸업생 450명 중 300여명이 취직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방도시에서 분교설립을 끈질기게 요청해 왔다.그는 이 무렵 ‘조선어학교’를 ‘한국어학교’로 개명하면서 선양의 ‘세종한국어학교’ 등 지방으로 한국어교육을 확산시켰다. ●고구려사 문제 정확한 논거로 대처해야 중국정부의 최근 고구려사 역사왜곡과 관련,가급적 말을 아낀 그는 “한국사를 연구하는 중국학자들은 고구려사 (중국)편입에 동의하지 않는 편”이라면서 “(한국사를 잘 모르는)중국 동북사를 연구한 학자의 보고서에 의해 (문제가)불거진 만큼 이벤트성 행사보다는 한국학자들이 정확한 논거를 꾸준히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그는 16일 오후 귀국 예정이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오정식기자 oosing@seoul.co.kr
  • 아파트이름 바꾸니 집값이 쑥쑥

    아파트이름 바꾸니 집값이 쑥쑥

    요즘에야 덜하지만 예전엔 촌스러운 이름 때문에 개명하려는 여성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그런데 이름을 바꾸니 집값도 뛰었다는 아파트가 있어서 화제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1동 1269에 위치한 ‘수락파크빌’ 아파트는 원래 ‘은빛 5단지’ 아파트였다.서울시 도시개발공사가 지어 지난 2001년 6월 입주를 시작한 이 아파트는 도시개발 상계 2지구로 지정돼 개발된 다른 아파트들과 함께 ‘은빛’이라는 이름을 썼다. ●“임대아파트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민 임대아파트로 지어진 다른 단지와는 달리 5단지는 처음부터 일반분양 아파트로 지어졌다는 것.분양평형도 33평과 44평으로 일반 건설회사가 지은 아파트와 견줘 손색이 없었다.그럼에도 ‘은빛’이라는 이름 때문에 재개발 아파트라는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2001년 10월 동 대표회의가 구성된 직후부터 개명문제가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제1대 동대표회장으로 선출된 원제현(65)씨를 비롯,10여명의 동대표들은 아파트 이름은 그대로 두고 도색만 하는 방안과 개명하는 방안 두 가지를 놓고 고민하다 개명하는 쪽을 선택했다.여러 차례 입주자회의를 통해 대부분의 주민들이 ‘이름을 바꾸자.’는 의견을 내자 동 대표회의는 바로 개명작업에 착수했다. 개명을 하려면 아파트 소유자 전원의 동의서가 필요했다.원 회장은 “당시 절반에 가까운 입주자들이 세입자들이어서 실소유자를 수소문해 동의서를 받기가 가장 어려웠다.”며 “500여 가구 모두의 동의서를 받는 데만 꼬박 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2002년 3월 모든 가구의 등기부 등본과 주민등록등본을 받아 구청과 법원에 제출한 후 ‘은빛5단지’는 ‘수락파크빌’로 재탄생하게 됐다.개명작업에 드는 모든 비용은 아파트 내 광고수입과 부대시설 임대수입으로 충당했다. ●매매가 3000만~4000만원 올라 이름을 바꾼 후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이름을 바꾸기 전까지만 해도 미분양으로 비어있던 50여 가구가 바로 분양됐다.2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평당 100여만원씩 올라 매매가가 3000만∼4000만원 인상됐다.인근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장운용(44·노원구 상계1동)씨는 “로열층의 경우 이름을 바꾼 직후 다른 상승요인 없이 1억여원의 프리미엄이 붙었다.”고 설명했다.1억 5000만원에 분양된 33평형은 현재 두 배가 넘는 3억 6000여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입주민들이 아파트 가격 상승도 상승이지만 이미지가 달라진 것에 크게 만족해하고 있다.김순희(48·여·506동)씨는 “이름을 바꾼 뒤 멀리서 바라볼 때마다 고급 아파트에 사는 느낌이 든다.”며 흡족해했다. 고금석기자 이병숙시민기자 kskoh@seoul.co.kr
  • [창간 100주년- 학술대회·지면분석]

    서울신문이 국내 현존 언론 중 처음으로 창간 100주년을 맞았다.서울신문은 1904년 7월18일 창간된 대한매일신보의 구국독립정신을 이어받아 21세기에도 바른 보도로 공공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선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대한매일신보에서 시작되는 민족언론의 뿌리가 서울신문으로 어떻게 이어져 왔으며,이 시대에 대한매일신보가 던져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학술회의가 지난 7일 열렸다.서울신문사와 한국언론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 내용을 주제별로 정리한다. ●정리 논설위원실 1. 창간의 역사적 의의 /정진석 외대 명예교수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래 오늘날까지 100년을 이어온 발자취는 한국 현대사의 축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명암과 굴절이 많았다.이 신문이 한국의 언론사와 더불어 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이하고 중요하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직후 열강의 침탈에 국운이 기울던 시기에 창간돼 1904년부터 6년 동안 민족의 혼을 불러일으키면서 강력한 항일언론을 펼쳤다.한일병합이 강제로 체결된 후에는 매일신보로 제호가 바뀌면서 총독부의 기관지가 됐다.광복 후에는 서울신문으로 재출발했다가 한때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었고,이제 또다시 서울신문이 됐다.대한매일신보의 이같은 굴절은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비극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대한매일신보가 항일 신문으로 발행될 수 있었던 것은 발행인이자 소유주였던 배설이 영국인이었고,그가 치외법권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발행인 배설은 민간인 신분이었으나 영국인이었기에 대한제국의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었으며,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일본도 그를 추방하거나 신문의 발행을 금지할 수 없었다.대한매일신보는 항일무장 의병투쟁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고,국채보상운동을 지원하면서 강력한 항일비밀결사 신민회(新民會)의 본거지가 됐다. 한국의 민족진영은 이 신문을 열렬히 지지하고 성원했다.반면에 일본은 이 항일신문을 침략정책의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여겼다.영국의 입장에서는 영국인이 한국에서 누리고 있는 치외법권을 손상받지 않도록 하려 했다. 영국과 일본이 처음에는 다같이 배설을 한국의 법률 또는 일본의 군율 등으로 간단히 처리해 보려 했지만,결국은 영국의 법정에서 진행하는 재판에 회부하게 됐다.대한매일신보가 발행되던 한말에 있었던 재판은 다섯 차례나 됐고,한국·영국·일본의 법관이 이를 다루었으며,재판 장소도 서울과 상하이까지 걸치게 됐다.재판은 한일병합 후까지 계속됐다. 대한매일신보사는 국채보상운동의 총합소가 되기도 했고,양기탁·박은식·신채호 선생 등은 논설로써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한편으로는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해 항일독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전개했다.따라서 이 신문은 당시의 역사적 사실과 시대상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대한매일신보는 한말에 발행된 신문 가운데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최대의 민족지였다.신문의 발행부수도 당시로서는 최고였지만,국한문·한글·영문의 3종을 동시에 발행한 신문은 한국 언론 사상 처음이었다. 대한매일신보는 자주개화운동의 근본으로서 한글 사용을 주장했다.또한 지면에 실린 항일 시가(詩歌) 등은 국문학상 중요한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의 창간을 고종 또는 민족진영이 주도했다는 주장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나는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하고 경영한 주체는 배설이라는 입장을 확고히 하고 있다.고종이나 민족진영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그것이 신문발간의 계기가 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서울신문을 한말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으로 보는 것이 옳은가,과거의 역사로부터 단절시켜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사관(史觀)에 따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그것은 언론의 역사를 민족사관(民族史觀)에서 파악하는가,있었던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실증사관(實證史觀)의 입장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광복 후 1945년 11월23일 제호가 서울신문으로 바뀔 때에는 대한매일신보에서 매일신보까지의 지령을 이어받아 13738호부터 시작했다.제호는 바뀌었지만 신문의 역사는 계승한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자유당 말기였던 1959년 3월23일부터는 매일신보의 역사를 단절하고 지령을 다시 조정했다. 1998년 11월11일부터는 단절시켰던 과거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에서 제호를 대한매일로 바꾸고 지령도 새롭게 계산했다.대한매일신보를 지령에 넣되 매일신보라는 이름으로 발행된 부분은 지령에서 뺌으로써 매일신보를 건너뛰고 역사를 계승했음을 밝혔다.2004년 1월1일부터 서울신문으로 제호를 다시 환원했다.이 날짜 지령은 20095호로 역시 한말 대한매일신보 지령을 합친 것이다.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으로 역사를 이은 것이다. 2. 참여인물·언론사상/박정규 한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 발간과 운영에 참여한 인물 중 배설과 양기탁에 대해서는 완벽할 정도로 연구가 이뤄져 있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논객이었던 박은식과 신채호의 재직 기간 중 활동,지사(支社)설치 상황과 종사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또,기명이 안된 사설의 집필자에 대해서도 재검토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배설은 영문 논설이나 기사 외에 국한문판 신보에 직접 집필한 형식의 글들을 발표했다.그러나 이는 배설이 한국어로 쓴 기사라기보다 한국인 기자들이 치외법권적 지위를 가진 배설의 이름을 빌려 사회문제 등에 대해 맘껏 필봉을 휘둘렀다고 보아야 한다. 박은식은 성리학자였던 만큼 전통 한문체의 글을 썼다.1907년 박은식의 뒤를 이어 주필이 된 신채호는 가장 영향력이 컸던 논객이다.신채호는 애국사상이 담긴 특유의 선동적 문장을 통해 국민들의 국권회복 정신을 북돋우는 등 독자를 감동시켰다.양기탁의 글로 알려진 ‘학계(學界)의 화(花)’ 등 2편의 논설은 집필시점과 문체로 보아 신채호가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양기탁은 총무로서 신문 경영 외에 국채보상운동과 비밀결사인 신민회 활동의 중심인물로 활동해 논설집필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신보는 국한문판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1905년 평양,선천,장련 등 관서재방 세 곳에 최초의 지사를 설치하게 된다.장련의 지사는 백범 김구가 운영했다.1908년 평양 태극서관 지사장을 맡은 안태국은 교사이자 이 지역 신민회의 중심적 인물이었다.신보의 전국 지사 중 절반이 평안도에 집중 돼 있었던 것은 총무 양기탁이 이 지역 출신이었고 안태국과 같은 지사원의 활약에 힘입었기 때문이다.1910년 6월 전국 지사 수는 59개소,지사원은 250명에 달했는데 이들은 신민회의 지방거점,국권회복운동가들로 추정할 수 있다.회계 임치정은 양기탁이 가장 신임한 동지였다.이완용 암살미수사건,신민회사건 등으로 구속되기도 했고 신채호와도 친밀한 관계였다. 3. 국채보상운동 주도/이연 선문대 교수 차관을 이유로 조선민중을 식민지의 올가미에 옭아 매려는 일제의 획책에서 벗어나기 위한 국권회복운동이 바로 국채보상운동이다. 이 운동은 1907년 대구 광문사(廣文社·현 수창초등학교 뒤 대성사 자리)에서 시작됐다.“우리나라의 국채가 현재 1300만원인데 정부의 국고금으로는 갚을 수 없는 형편이라,국채를 갚지 못하면 장차 토지라도 주어야 할 형편이다.우리 2000만 동포가 담배를 끊고 그 대금으로 매월 1명당 20전씩 모은다면,3개월 만에 국채를 다 갚을 수 있을 것이다.”라는 게 주요 내용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일제 강점하의 물산장려운동이나 해방 후 국산품 애용운동,1998년 IMF 이후의 금모으기 운동처럼 국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애국운동으로,세계사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민운동이었다.최초 발의는 상인들에 의해 시작됐으나,한 푼 두 푼 성금을 모으는 과정에서 농민들이나 봇짐장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전 국민적으로 확산됐다. 이 운동을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승화시킨 데는 무엇보다도 대한매일신보 등 언론들이 적극적으로 민족운동을 전개한 게 동력이 됐다.이 신문들은 기사나 논설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의 의의와 당위성을 호소하면서 날마다 의연자의 명단 및 납부금액을 게재해 온 국민들의 동참을 역설했다.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나의 백 마디 말보다 신문의 한마디가 조선인을 감동케 하는 힘이 크다.”고 개탄했다고 대한매일신보가 보도했다. 조선통감부는 국채보상운동을 배일운동으로 간주하면서 갖은 탄압과 모략을 획책했다.일제는 을사 5적 중 한 사람인 이지용과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 등 친일파를 동원해 반대하는 책동을 일으키게 했다.그러나 대한매일신보 배설 사장과 양기탁 총무는 이러한 탄압과 이간책동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을 계속 전개했다.일제는 결국 이들의 언론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배설의 국외추방과 양기탁을 탄압해 제거하기에 이른다. 4.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논설/김덕모 호남대 교수 대한매일신보의 과정은 크게 4단계로 나누어 평가된다. 제1기는 창간 때부터 1905년 3월10일 일시 휴간 때까지의 시기이다.6면중 4면은 ‘The Korea Daily News’라는 제호로 영문면을 만들고,나머지 2면은 대한매일신보라는 제호로 국문면을 만들었다. 제2기는 대한매일신보를 속간하기 시작한 1905년 8월11일부터 1907년 3월말까지의 단계다.이 시기에는 ‘을사5조약’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애국계몽운동을 시작했다. 제3기는 대한매일신보가 신민회의 기관지로 전환되기 시작한 1907년 4월 초부터 대한매일신보사가 이장훈에게 팔려 양기탁 등 신민회 간부들이 대한매일신보사를 떠난 1910년 6월13일까지의 시기다. 제4기는 배설에 이어 사장직을 승계한 만함이 일제의 공작에 말려들어 회사 일체를 사원 이장훈에게 매도하고 귀국해버린 1910년 6월14일부터 일제가 한국을 완전식민지로 병합하여 대한매일신보를 폐간시켜버린 1910년 8월29일까지의 2개월 반 간의 기간이다. 제1기에는 러·일전쟁의 와중에서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여 국가의 안녕질서에 대한 모든 주제에 대해 공평한 변론을 전개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제2기는 한국인의 문명지식을 계몽하고 세계 각국에 대한 견문을 공유하기 위한 개화의 목적에 역점이 두어졌다. 제3기 이후는 우리나라의 국권회복에 초점을 맞춰 항일구국운동에 앞장섰다. 대한매일신보가 개화기 구국계몽운동의 선봉이 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발행인이 영국인이었기에 광무신문지법에 의한 일제의 탄압과 검열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있어왔다. 그러나 신용하 교수 등의 연구는 이러한 외적요인에 더하여 대한매일신보가 구국운동 단체인 신민회의 기관지가 된 이후 더욱 과감하게 국권회복을 위한 언론구국운동을 전개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평가는 논설 분석 결과로도 입증된다. 이 시기 논설은 민족의 자립정신,교육과 나라정신,산업진흥,친일언론과 단체에 대한 비판,독립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또 일본의 통감부 설치가 식민 지배를 감추기 위한 기만책임을 통렬히 비판하고,국채보상운동,헤이그 특사 파견,고종황제 퇴위,한일병합조약,동양척식회사 설립 등 역사적 사건을 맞을 때마다 과감하고 열렬한 언론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이제 오늘의 신문들은 이러한 전통을 어떻게 계승 발전시켜 나갈지 심각하게 고민할 시점이다. 5.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광고/안종묵 외대 연구원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때부터 광고를 게재했다.사기업인 대한매일신보는 신문의 안정적인 발행을 위해 광고가 중요했다. 창간 초기의 광고료는 1인치에 50전이었고 한달에 5원이었다.발행부수가 다른 신문의 3배 이상이어서 광고의 효과면에서 대단히 컸다.한글과 영문이 혼용된 6면이 발행된 시기에는 운수광고(16%),은행(14%),잡화점(9%) 등이 주요 광고주였다.광고주의 국적은 한국이 13%,외국이 43%,미상이 44%다. 1907년 5월23일부터 발행된 한글판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는 그해 하루 평균 5.26개이던 것이 1910년에는 10.25개로 두배 가까이 증가했다. 10대 광고업종은 약국,서적,사고광고 등이었다.약국 가운데 이응선의 종로 화평당약방과 이경봉의 남대문 제생당약방이 최대 광고주였다. 서적광고는 전체의 16.5%를 차지했다.애국계몽운동가인 이승훈이 운영하던 태극서관이라는 서점 광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했다.‘국한문신옥편’이라는 실용적인 서적부터 ‘서사건국지’‘애국부인전’ 등 국권회복을 자극하는 계몽적 성격의 서적들이 광고됐다. 1908년과 1909년에는 사고(社告)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명함 인쇄와 국채보상운동과 관련된 사고였다.국채보상운동 취지를 제일먼저 보도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다.흥미로운 것은 신보가 국채보상운동을 촉구하고 있을 때 일제 담배광고가 많이 광고되었던 점이다.이는 광고가 국채보상운동과는 큰 관계없이 운영되었음을 말해준다. 6.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독자 인식/김영희 서울대 강사 대한매일신보 독자들이 투고한 기서(寄書)에서 신문에 대해 가장 자주 요구한 것은 춘추필법으로 공정하게 계도하는 엄한 스승으로서의 언론의 모습이었다.다음으로 많이 주문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광범한 지식을 제공하는 문명진보 수단으로서의 역할이었다.이 두 요인 또는 인식은 지금까지 개화기 신문에 대한 대부분의 연구에서 설명된 것으로,이 시기 신문발행에 참여한 발행 주체들의 신문에 대한 인식이 일반 신문 독자들의 인식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세 번째로 자주 언급된 것으로 신문이 독립자유의 감발심(感發沈)을 격동케 하고,새로운 자각을 유발시킨다는 인식이었다.이러한 인식은 신문의 춘추필법과 지식 제공으로 자극을 받아 생성되는 기쁨,감격,분노,안타까움,흐뭇함 등의 정서적 반응이었다. 대한매일신보를 읽은 독자들이 남긴 다양한 글에서도 당시 대한매일신보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황현은 대한매일신보를 설명하면서 “각 신문사에서도 의병들을 폭도나 비류(匪類)로 칭하였지만 오직 매일신보는 의병으로 칭하며,그 논설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일본인의 악행을 게재하여 들으면 들은 대로 모두 폭로하였다.그러므로 사람들은 모두 그 신문을 구독하여 한때 품귀 상태에까지 이르렀고,1년도 못되어 매일 간행되는 신문이 7000∼8000장이나 되었다.”고 평가한 바 있다. 제주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대한매일신보를 읽었던 김윤식은 대한매일신보가 일본을 비판하는 내용은 사람으로 하여금 매우 통쾌하게 한다고 기록하였다.이러한 논의들은 신문의 공공성을 지키면서 보도와 논평 기능을 통해 환경을 감시하고,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여 국민을 개명 진보로 이끌고자 한 대한매일신보의 역할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그러한 대한매일신보의 모습을 신문의 전형으로 인식했음을 알려준다. 7. 대한매일신보 지면분석- 잡보(사회면)/채백 부산대 교수 오늘날의 사회면 기사에 해당하는 것이 ‘잡보’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 중에서는 사실보도가 전체의 76.1%를 차지했다.반면 의견이 개입된 기사,즉 사실+해설과 해설기사를 합치면 전체의 14.2%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독립신문의 분석결과와 비교해 보면 의견기사가 줄어들고 사실보도가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란에 실린 기사의 주제는 다양하지만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정부 관련 정보였다.전체의 24.5%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으로는 사회문제,유명인사 동정,관의 비리와 폐해 순서로 나타났다.사회문제 기사에서는 1907년 군대해산 이후 활발했던 의병 관련 기사나 교육 관련 기사가 포함됐다. 독립신문에서는 해외토픽류의 흥미 위주의 기사가 있었지만 대한매일신보에서는 이런 기사를 찾아볼 수 없다.반면 일식이나 태풍,자살 기사 등이 ‘사고와 흥미거리’ 기사에 포함됐다. 잡보란에 등장하는 기사들의 관련지역을 보면 한성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아 전체의 59.6%에 이른다.그밖의 지역은 전체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외국에 대해서도 많지는 않았지만 여러 나라가 등장했다.특히 일본이 가장 많았다. 잡보기사의 주인공도 다양했다.잡보 기사의 주인공으로는 지식인과 단체가 26.3%로 가장 많았고,그 다음으로 왕실과 정부가 22.3%를 차지했고,일반인이 15.6%로 그 뒤를 이었다. 잡보기사의 보도태도를 긍정,중립,비판 세가지로 분류해보면 긍적적이 6.8%,중립적이 85.8%,비판적이 7.4%의 분포를 보였다.대한매일신보의 잡보에 나타난 주요 특징은 몇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기사의 건수가 독립신문에 비해 대폭 늘었다는 점이다. 이는 지면의 판형이 커지고 단수가 늘어나는 등의 외형적 요인 외에도 신문이 정착기에 들어가면서 취재여건이 다소나마 좋아졌던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다음으로는 사실보도와 중립적 보도태도가 늘어났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이는 신문이 지향해야 할 이념으로서 중립성과 객관성을 표방하는 객관저널리즘에 좀 더 접근한 모습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사실보도 위주로 가면서 단위 기사의 분량도 점차 짧아지는 경향을 보여 주었다. 세번째로는 기사의 관련 지역이나 주인공,정보원 등에서 특정의 편향을 강하게 보였다는 점이다.지역면에서는 한성,주인공이나 정보원 측면에서는 정부나 관리에 대한 의존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 親日조사대상 박정희 포함

    친일 반민족 행위자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와 여권에 비판적인 2개 신문사를 겨냥한 정략적 의도를 지녔다며 강력 반발,법안 처리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조사대상과 관련,일본군은 소위 이상으로 정해 중위를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모든 장교를 포함시켰으나 경찰은 경시(총경급),문관은 군수 이상이어서 형평성 시비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등 민족정기의원 모임은 14일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키로 했다.법안 발의에는 김 의원과 여야 의원 132명이 서명했다.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13일 정책의총 등을 통해 당론으로 지지키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지난 3월 초 특별법 통과시 삭제된 창씨개명 주창 권유자,조선사 편수회에서 역사 왜곡에 앞장섰던 사람,일제로부터 포상이나 훈공을 받은 자,토지조사사업 등 경제수탈 종사자 등이 포함됐다.당초 일본군 계급 중좌(중령) 이상이던 조사대상도 소위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독립운동과 항일운동 탄압행위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반인도적 범죄행위 ▲문화,예술,언론,학술,교육,종교 분야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민족문화 파괴 및 우리말과 문화유산 훼손 및 반출 행위도 친일대상에 포함시켰다.이에 따라 조선·동아일보가 지면을 통해 일제와 일왕을 찬양했는지 여부와 징병,징용,일본군 성피해여성 차출 등을 독려했는지도 조사대상이 된다.이 경우 두 언론사 창업주의 행적도 조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조사대상은 현행법에서는 군인 10여명 등 소수에 불과했으나 3000명선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개정안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선정 의결 정족수를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에서 3분의2 이상으로 강화했다.친일전력이 있더라도 반일(反日)전력이 뚜렷한 사람은 위원회 전원 의결을 거쳐 구제토록 했다. 위원회 소환에 불응하는 조사 대상에게는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했으며,관련기관의 자료협조 의무를 명시하는 한편 관계부처와 해외공관의 협력 규정 신설 및 위반시 처벌을 강화토록 했다.위원회 구성과 관련,국회 추천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토록 한 것도 논란 소지를 안고 있다.위원회의 활동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이와 함께 신문,잡지,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위원회의 조사내용을 공개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의 조항을 삭제했다. 한나라당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친일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얼마 안됐는데 또 개정안을 내서 상정한다고 할 때는 분명히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이는 야당과 언론 탄압으로 정치보복의 시작”이라고 반발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 親日조사대상 박정희 포함

    親日조사대상 박정희 포함

    친일 반민족 행위자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의 친일 반민족행위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와 여권에 비판적인 2개 신문사를 겨냥한 정략적 의도를 지녔다며 강력 반발,법안 처리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된다. 특히 조사대상과 관련,일본군은 소위 이상으로 정해 중위를 지낸 박정희 전 대통령 등 모든 장교를 포함시켰으나 경찰은 경시(총경급),문관은 군수 이상이어서 형평성 시비가 일 것으로 전망된다. 열린우리당 김희선 의원 등 민족정기의원 모임은 14일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키로 했다.법안 발의에는 김 의원과 여야 의원 132명이 서명했다.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13일 정책의총 등을 통해 당론으로 지지키로 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친일 반민족 행위자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지난 3월 초 특별법 통과시 삭제된 창씨개명 주창 권유자,조선사 편수회에서 역사 왜곡에 앞장섰던 사람,일제로부터 포상이나 훈공을 받은 자,토지조사사업 등 경제수탈 종사자 등이 포함됐다.당초 일본군 계급 중좌(중령) 이상이던 조사대상도 소위 이상으로 확대했다. 또 ▲독립운동과 항일운동 탄압행위 ▲일제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반인도적 범죄행위 ▲문화,예술,언론,학술,교육,종교 분야에서 일제의 식민통치 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민족문화 파괴 및 우리말과 문화유산 훼손 및 반출 행위도 친일대상에 포함시켰다.이에 따라 조선·동아일보가 지면을 통해 일제와 일왕을 찬양했는지 여부와 징병,징용,일본군 성피해여성 차출 등을 독려했는지도 조사대상이 된다.이 경우 두 언론사 창업주의 행적도 조사대상이 될 전망이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조사대상은 현행법에서는 군인 10여명 등 소수에 불과했으나 3000명선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개정안은 친일 반민족 행위자 선정 의결 정족수를 위원회 재적위원 과반수에서 3분의2 이상으로 강화했다.친일전력이 있더라도 반일(反日)전력이 뚜렷한 사람은 위원회 전원 의결을 거쳐 구제토록 했다. 위원회 소환에 불응하는 조사 대상에게는 위원장이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도록 했으며,관련기관의 자료협조 의무를 명시하는 한편 관계부처와 해외공관의 협력 규정 신설 및 위반시 처벌을 강화토록 했다.위원회 구성과 관련,국회 추천 조항을 삭제하고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토록 한 것도 논란 소지를 안고 있다.위원회의 활동기간은 3년에서 5년으로 늘어났다.이와 함께 신문,잡지,방송,인터넷 등을 통해 위원회의 조사내용을 공개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의 조항을 삭제했다. 한나라당 박 전 대표는 이에 대해 “친일관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얼마 안됐는데 또 개정안을 내서 상정한다고 할 때는 분명히 목적이 있는 것”이라며 “이는 야당과 언론 탄압으로 정치보복의 시작”이라고 반발했다. 박현갑기자 eagleduo@seoul.co.kr
  • 백범 김구,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이었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이 서울신문의 전신인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장으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한남대 사회학부 박정규 교수는 6일 ‘대한매일신보의 참여인물과 언론사상’이라는 논문을 통해 김구 선생이 1905년 11월부터 1907년 2월까지 약 14개월 동안 황해도 장연에서 대한매일신보 지사장으로 활동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그 증거로 이 기간 중 대한매일신보의 광고란에 매일 실린 사고(社告) 내용을 제시했다.‘본사특고’란 제목의 1905년 11월28일자 사고는 평양·선천·장연 등 3곳의 지사 개설 사실을 알리며,장연의 경우 독자들은 김구(金龜)에게 구독신청하고 대금도 그에게 납부하도록 광고하고 있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백범은 초기 이름이 창암(昌巖),창수(昌洙)였다가 1900년 구(龜)로 개명했으며 1912년 다시 구(九)로 바꾸기 전까지 이 이름을 사용했다.백범은 또 이 시기 장연에서 살며 학교를 세우고 애국계몽과 교육에 힘을 쏟은 것으로 되어 있어 거주 지역도 일치한다. 1905년 진남포에서 을사늑약 소식을 들은 백범은 서울에 올라가 전덕기·이준·이동녕·최재학 등과 함께 상소를 올리고 종로에서 가두연설에 나서는 등 구국대열의 선봉에 섰으며,12월 신교육에 투신하기로 하여 장연으로 돌아와 교육과 함께 대한매일신보 보급도 함께 했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1907년 4월 초 대한매일신보의 설립자인 양기탁이 안창호와 함께 비밀 결사로서 신민회를 창립했고,백범은 신민회 황해도 총감으로서 양기탁 주도의 비밀 전국간부회의 개최 사실을 백범일지에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대한매일신보의 지사원들은 민족신문의 보급뿐만 아니라 신민회와 같은 국권회복운동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용하(한양대 석좌교수)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부설 백범학술원 원장은 “백범 선생이 대한매일신보 장연지사를 설치해서 민족신문 보급활동을 했다는 것은 종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사실”이라며 ”백범 연구는 물론,구한말 애국운동과 애국언론운동에 새로운 연구자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교수의 이 연구 논문은 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리는 서울신문·한국언론학회 공동주최 ‘대한매일신보 창간 100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된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seoul.co.kr ˝
  • 청와대 떠나면 종로구 得? 失?

    청와대를 포함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전체가 찬반논란에 휩싸였다.여기에는 반세기 넘게 청와대를 이웃으로 동거해온 종로구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청와대가 빠진 종로에 대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종로구 공무원들은 ‘공무원 신분상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청와대가 빠져 나가면 여러가지 과외일이 줄어드는 등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는 반응이다.반면 주민들은 대체로 청와대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종로공무원 ‘감정적 반대 계산적 찬성’ 각 부서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구청 공무원들의 밑바닥 정서는 청와대 이전에 반대다.반면 청와대 뒷수발을 들어야 하는 부서는 청와대 이전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신현봉 기획예산과장은 “행정부 수장이 추진하는 일을 어떻게 일개 공무원이 토를 달 수 있습니까.”라면서도 “그러나 종로가 정치1번지와 서울 제1번구라는 위치를 차지한 것은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반대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익명의 구 공무원은 “수도이전을 잘 따져 보면 종로구에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털어놨다. 종로구는 청와대 ‘뒤치다꺼리’로 해마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지난 2002년에는 무려 76억원이 청와대 주변 가꾸기에 쓰였다.2000년에는 38억원,2001년 43억,지난해에도 35억원이 사용됐으며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48억원씩 들어갔다.구 1년 예산이 1800여억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반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은 특별교부세는 모두 합해야 32억 1000만원에 불과,남는 장사가 아니다.청와대를 옮기면 이 차액이 모두 주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수 있다. 청와대 이전은 세수 기반이 취약한 종로구에게 일종의 호기인 셈이다.청와대를 비롯, 각종 국가기관과 문화재 등이 밀집한 종로구에는 비과세 토지가 전체 면적의 3분의 2에 달한다.청와대 이전과 더불어 몇 개의 국가기관이 빠져 나가고 다른 시설이 들어서면 그만큼 세금은 늘어난다. 예산절감과 세수확장 외에도 청와대가 짓누르는 업무상의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청와대 주변 관리를 책임진 공원녹지과와 토목과,청소행정과 등 관련 부서는 청와대 업무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김동훈 청소행정과장은 “권위주의 정권에 비하면 대폭 감소됐지만 여전히 청와대는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특별 대상”이라면서 “청와대를 ‘특정지역’으로 정해 청소에 만전을 기한다.”고 밝혔다.종로구의 환경미화원은 다른 자치구의 두배에 가까운 243명이나 된다. 게다가 공원녹지과와 토목과는 청와대의 접근로는 물론 인근 효자로와 삼청동길,창의문길,인왕산∼북악산길 등의 관리도 모두 떠맡고 있다. 유낙준 공원녹지과장은 “청와대 주변은 항상 깨끗하게 정돈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라면서 “청와대를 옮기면 ‘보이지 않는 압력’이 사라져 종로구가 업무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수지역 거주 ‘대가’ 심하지 않아 청와대 이전에 대해 ‘대한민국 1번지’ 주민들은 반대세가 우위를 점한다.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이나 불투명한 효과 등 일반적인 이전 반대 이유 외에도 ‘1번지 프리미엄’을 뺏기지 않으려는 속내가 있다. 청운동에서 10여년째 학생복 대리점을 하는 장병네(50·여)씨는 “청와대의 빼어난 풍수지리설상의 입지를 이전한 뒤에도 계속 이어갈지 의문”이라면서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데 엄청난 세금을 들여 새로 지은 청와대를 구태여 옮기려는 이유를 대체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처럼 검문이나 각종 규제 등 권력에 붙어 사는 대가도 심하지 않다.오히려 지역의 특수성 덕에 치안상태가 월등해져 이 일대에는 도둑이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청와대 때문에 유지되는 한적한 분위기도 이곳 주민들에게는 호재다. ●“청와대와 건축 규제는 무관” 30여년째 청와대와 총리공간 사이인 삼청동에서 거주하는 문영주(60·여)씨는 “예전에는 집을 조금만 고치려 해도 행정절차가 무척 복잡했다.”면서 “이제는 많이 바뀌었으며 건물 높이에 제한이 있지만 사실 일반 주택을 짓는데는 별 문제 없고 이마저도 점차 풀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인 삼청동과 청운동,효자동,사직동,가회동 등은 최고고도지구로 위치에 따라 건물 높이가 최고 15∼20m이내로 제한된다.또 일부 지역은 자연경관지구까지 겹쳐 최고 3층이하의 건물만 지어야 한다.하지만 이런 높이 규제는 청와대가 주변에 위치해서만은 아니다.청와대가 빠져 나가도 고도제한이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명의 종로구청 도시계획과장은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와 북한산 등 조망권 확보를 고려해 도시계획이 이뤄졌으며 이때 이미 고도 제한도 계획됐다.”면서 “해방 후에도 시의 도시계획은 이 당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청와대 프리미엄’이 걷히면 집 값도 동반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청와대와 이 일대 부동산값의 직접적인 함수 관계는 없다.하지만 청운동에 위치한 경복고에는 청와대 직원의 자녀가 꽤 많다.대개 이들의 성적은 좋은 편이며 다수가 빠져 나갈 경우 경복고의 명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다. 청운동 주민 김재근(40)씨는 “강북권이지만 경복고가 옛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재학생 가운데 청와대 직원 자녀들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경복고의 위상이 흔들리면 부동산 값도 덩달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반대의 가정도 있다.효자동에 사는 김영례(39·여)씨는 “한강변처럼 조망권을 해치는 지역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경우는 있다.”면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거나 청와대 자리에 유동인구가 몰릴 시설이 유치되면 지역경제는 살아나고 부동산값도 오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유종 김기용기자 bell@seoul.co.kr ■和寧臺·黃瓦臺도 개명 후보로 거론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는 ‘권력의 1번지’ 청와대가 근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푸른 기와 저택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건평 586평 규모의 조선 총독관저로 처음 지어졌다.‘무명’(無名)이었던 1호 관저는 정부 수립과 더불어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다.경복궁 중건 이후 이 자리에 있던 과거 시험장인 경무대에서 유래했다. 청와대 일대는 풍수지리상 길지(吉地) 가운데 최적지로 손꼽힌다.북악산을 비롯 낙산,인왕산,남산이 둘러싸며 청계천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이다.하지만 용맥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다.총독관저 위치를 물색하던 조선의 풍수사들이 고의로 자리를 비껴 정했단다.때문에 조선 총독과 청와대 주인들은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는 설(說)도 있다. 윤보선 대통령은 부패정권의 온상이라는 경무대의 이미지를 떨치려고 개명 작업에 착수했다.기와와 평화의 색과 같다는데 착안해 청와대로 결정했다.당시 개명 후보에는 화령대(和寧臺)도 있었다.이성계가 명나라에 제출한 국호에는 조선 이외에 화령도 있었다.영문으로 ‘블루 하우스’는 ‘화이트 하우스’와 대조를 이뤄 윤 대통령의 마음에 들었다.박정희 대통령 때는 황(黃)이 청(靑)보다 귀하기 때문에 ‘황와대(黃瓦臺)’로 고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1991년 완공된 청와대 본관은 연면적 2564평으로 청기와 15만장이 얹어졌다.부속 건물까지 합치면 1만 8000여평에 부지는 7만 6685평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청와대 경내 눈은 특별대접 서울에 눈이 오면 가장 신속하고 깨끗하게 제설작업이 이뤄지는 곳은 청와대와 그 주변지역이다. 청와대를 끼고 있는 종로구 청운동·효자동·삼청동 일대는 종로구 청소행정과에서 ‘제설작업 특정지역’으로 구분해 특별히 신경쓰는 곳이다. 눈이 오면 종로구는 전체 환경미화원 243명중 208명을 청와대 일대에 긴급투입해 제설작업을 펼친다.▲효자로 ▲청와대 앞길 ▲삼청동길 ▲광화문 앞길 등 청와대를 둘러싼 ‘특정지역’ 약 3.7㎞ 도로는 순식간에 깨끗해 진다. 이에 비하면 청와대 내부 제설작업은 조금 더딘 편이다. 일반 제설작업에 필요없는 청소차량이 49대나 한꺼번에 동원되는 등 특별한 방법이 사용된다. “청와대 경내 눈은 일단 밖으로 다 빼내야 해요.”종로구 청소행정과 김동훈 과장은 제설작업에 청소차량이 필요한 이유를 살짝 귀띔했다. 일반적인 제설작업의 경우 보행인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고 특별한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길가에 눈을 쌓아두는 방법을 이용한다.그러나 청와대의 경우 미관상 경내에 눈을 쌓아둘 수 없다는 것.따라서 청와대 내부의 눈은 모두 청소차량에 실어 담아 외부에 버려야 한다.청와대 눈은 청소차에 실려 버려지는 ‘특별대접’을 받게 되는 셈.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청와대 떠나면 종로구 得? 失?

    청와대 떠나면 종로구 得? 失?

    청와대를 포함한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싸고 대한민국 전체가 찬반논란에 휩싸였다.여기에는 반세기 넘게 청와대를 이웃으로 동거해온 종로구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청와대가 빠진 종로에 대해 이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종로구 공무원들은 ‘공무원 신분상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기는 어렵지만 청와대가 빠져 나가면 여러가지 과외일이 줄어드는 등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는 반응이다.반면 주민들은 대체로 청와대 이전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종로공무원 ‘감정적 반대 계산적 찬성’ 각 부서의 성격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구청 공무원들의 밑바닥 정서는 청와대 이전에 반대다.반면 청와대 뒷수발을 들어야 하는 부서는 청와대 이전을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신현봉 기획예산과장은 “행정부 수장이 추진하는 일을 어떻게 일개 공무원이 토를 달 수 있습니까.”라면서도 “그러나 종로가 정치1번지와 서울 제1번구라는 위치를 차지한 것은 청와대가 있기 때문”이라면서 반대의 뜻을 보였다. 그러나 익명의 구 공무원은 “수도이전을 잘 따져 보면 종로구에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닐 것”이라고 털어놨다. 종로구는 청와대 ‘뒤치다꺼리’로 해마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다.지난 2002년에는 무려 76억원이 청와대 주변 가꾸기에 쓰였다.2000년에는 38억원,2001년 43억,지난해에도 35억원이 사용됐으며 최근 4년 동안 연평균 48억원씩 들어갔다.구 1년 예산이 1800여억원임을 감안하면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반면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중앙정부로부터 지원받은 특별교부세는 모두 합해야 32억 1000만원에 불과,남는 장사가 아니다.청와대를 옮기면 이 차액이 모두 주민들을 위한 예산으로 쓰일 수 있다. 청와대 이전은 세수 기반이 취약한 종로구에게 일종의 호기인 셈이다.청와대를 비롯, 각종 국가기관과 문화재 등이 밀집한 종로구에는 비과세 토지가 전체 면적의 3분의 2에 달한다.청와대 이전과 더불어 몇 개의 국가기관이 빠져 나가고 다른 시설이 들어서면 그만큼 세금은 늘어난다. 예산절감과 세수확장 외에도 청와대가 짓누르는 업무상의 압박감에서 해방될 수 있다.청와대 주변 관리를 책임진 공원녹지과와 토목과,청소행정과 등 관련 부서는 청와대 업무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김동훈 청소행정과장은 “권위주의 정권에 비하면 대폭 감소됐지만 여전히 청와대는 특별히 신경써야 하는 특별 대상”이라면서 “청와대를 ‘특정지역’으로 정해 청소에 만전을 기한다.”고 밝혔다.종로구의 환경미화원은 다른 자치구의 두배에 가까운 243명이나 된다. 게다가 공원녹지과와 토목과는 청와대의 접근로는 물론 인근 효자로와 삼청동길,창의문길,인왕산∼북악산길 등의 관리도 모두 떠맡고 있다. 유낙준 공원녹지과장은 “청와대 주변은 항상 깨끗하게 정돈돼 있어야 한다는 것이 사람들에게는 상식”이라면서 “청와대를 옮기면 ‘보이지 않는 압력’이 사라져 종로구가 업무에서 상당부분 자유로워지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특수지역 거주 ‘대가’ 심하지 않아 청와대 이전에 대해 ‘대한민국 1번지’ 주민들은 반대세가 우위를 점한다.천문학적인 이전 비용이나 불투명한 효과 등 일반적인 이전 반대 이유 외에도 ‘1번지 프리미엄’을 뺏기지 않으려는 속내가 있다. 청운동에서 10여년째 학생복 대리점을 하는 장병네(50·여)씨는 “청와대의 빼어난 풍수지리설상의 입지를 이전한 뒤에도 계속 이어갈지 의문”이라면서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데 엄청난 세금을 들여 새로 지은 청와대를 구태여 옮기려는 이유를 대체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처럼 검문이나 각종 규제 등 권력에 붙어 사는 대가도 심하지 않다.오히려 지역의 특수성 덕에 치안상태가 월등해져 이 일대에는 도둑이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청와대 때문에 유지되는 한적한 분위기도 이곳 주민들에게는 호재다. ●“청와대와 건축 규제는 무관” 30여년째 청와대와 총리공간 사이인 삼청동에서 거주하는 문영주(60·여)씨는 “예전에는 집을 조금만 고치려 해도 행정절차가 무척 복잡했다.”면서 “이제는 많이 바뀌었으며 건물 높이에 제한이 있지만 사실 일반 주택을 짓는데는 별 문제 없고 이마저도 점차 풀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청와대 주변인 삼청동과 청운동,효자동,사직동,가회동 등은 최고고도지구로 위치에 따라 건물 높이가 최고 15∼20m이내로 제한된다.또 일부 지역은 자연경관지구까지 겹쳐 최고 3층이하의 건물만 지어야 한다.하지만 이런 높이 규제는 청와대가 주변에 위치해서만은 아니다.청와대가 빠져 나가도 고도제한이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명의 종로구청 도시계획과장은 “일제 강점기에 문화재와 북한산 등 조망권 확보를 고려해 도시계획이 이뤄졌으며 이때 이미 고도 제한도 계획됐다.”면서 “해방 후에도 시의 도시계획은 이 당시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게다가 ‘청와대 프리미엄’이 걷히면 집 값도 동반 하락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청와대와 이 일대 부동산값의 직접적인 함수 관계는 없다.하지만 청운동에 위치한 경복고에는 청와대 직원의 자녀가 꽤 많다.대개 이들의 성적은 좋은 편이며 다수가 빠져 나갈 경우 경복고의 명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가정이다. 청운동 주민 김재근(40)씨는 “강북권이지만 경복고가 옛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재학생 가운데 청와대 직원 자녀들이 많기 때문”이라면서 “경복고의 위상이 흔들리면 부동산 값도 덩달아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그러나 반대의 가정도 있다.효자동에 사는 김영례(39·여)씨는 “한강변처럼 조망권을 해치는 지역에도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경우는 있다.”면서 “아파트단지가 들어서거나 청와대 자리에 유동인구가 몰릴 시설이 유치되면 지역경제는 살아나고 부동산값도 오르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유종 김기용기자 bell@seoul.co.kr ■和寧臺·黃瓦臺도 개명 후보로 거론 서울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는 ‘권력의 1번지’ 청와대가 근엄한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푸른 기와 저택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건평 586평 규모의 조선 총독관저로 처음 지어졌다.‘무명’(無名)이었던 1호 관저는 정부 수립과 더불어 경무대(景武臺)로 불렸다.경복궁 중건 이후 이 자리에 있던 과거 시험장인 경무대에서 유래했다. 청와대 일대는 풍수지리상 길지(吉地) 가운데 최적지로 손꼽힌다.북악산을 비롯 낙산,인왕산,남산이 둘러싸며 청계천이 흐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이다.하지만 용맥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다.총독관저 위치를 물색하던 조선의 풍수사들이 고의로 자리를 비껴 정했단다.때문에 조선 총독과 청와대 주인들은 불우한 말년을 보냈다는 설(說)도 있다. 윤보선 대통령은 부패정권의 온상이라는 경무대의 이미지를 떨치려고 개명 작업에 착수했다.기와와 평화의 색과 같다는데 착안해 청와대로 결정했다.당시 개명 후보에는 화령대(和寧臺)도 있었다.이성계가 명나라에 제출한 국호에는 조선 이외에 화령도 있었다.영문으로 ‘블루 하우스’는 ‘화이트 하우스’와 대조를 이뤄 윤 대통령의 마음에 들었다.박정희 대통령 때는 황(黃)이 청(靑)보다 귀하기 때문에 ‘황와대(黃瓦臺)’로 고치자는 주장도 제기됐다. 1991년 완공된 청와대 본관은 연면적 2564평으로 청기와 15만장이 얹어졌다.부속 건물까지 합치면 1만 8000여평에 부지는 7만 6685평이다. 이유종기자 bell@seoul.co.kr ■청와대 경내 눈은 특별대접 서울에 눈이 오면 가장 신속하고 깨끗하게 제설작업이 이뤄지는 곳은 청와대와 그 주변지역이다. 청와대를 끼고 있는 종로구 청운동·효자동·삼청동 일대는 종로구 청소행정과에서 ‘제설작업 특정지역’으로 구분해 특별히 신경쓰는 곳이다. 눈이 오면 종로구는 전체 환경미화원 243명중 208명을 청와대 일대에 긴급투입해 제설작업을 펼친다.▲효자로 ▲청와대 앞길 ▲삼청동길 ▲광화문 앞길 등 청와대를 둘러싼 ‘특정지역’ 약 3.7㎞ 도로는 순식간에 깨끗해 진다. 이에 비하면 청와대 내부 제설작업은 조금 더딘 편이다. 일반 제설작업에 필요없는 청소차량이 49대나 한꺼번에 동원되는 등 특별한 방법이 사용된다. “청와대 경내 눈은 일단 밖으로 다 빼내야 해요.”종로구 청소행정과 김동훈 과장은 제설작업에 청소차량이 필요한 이유를 살짝 귀띔했다. 일반적인 제설작업의 경우 보행인과 차량이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고 특별한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길가에 눈을 쌓아두는 방법을 이용한다.그러나 청와대의 경우 미관상 경내에 눈을 쌓아둘 수 없다는 것.따라서 청와대 내부의 눈은 모두 청소차량에 실어 담아 외부에 버려야 한다.청와대 눈은 청소차에 실려 버려지는 ‘특별대접’을 받게 되는 셈.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1호선 부곡역, 의왕역으로 개명

    경기도 의왕시 부곡동 경부선 전철 1호선 부곡역이 25일부터 의왕역으로,이동 남부화물기지선 의왕역이 오봉역으로 각각 명칭이 변경된다. 의왕시는 24일 시 이미지 개선과 홍보를 위해 역 명칭을 이같이 변경한다고 밝혔다.시는 이에 따라 모두 1억 5000여만원을 들여 2곳의 역 간판을 새로운 간판으로 교체하고 국철 각 역에 부곡역으로 표기된 부분을 의왕역으로 변경했으며 인근 도로의 안내판도 모두 바꿨다. 의왕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경제플러스] 플레너스 ‘CJ인터넷’으로 개명

    인터넷기업인 플레너스는 11일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사명을 ‘CJ인터넷’으로 바꾸고 송지호 플레너스 전무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또 박동호 CJ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정홍균 CJ그룹 회장실 부사장,최민석 플레너스 재무담당 상무,심상민 호서대 교수 등 CJ그룹 인사 4명을 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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