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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0억대 국유지 사기극 덜미

    일제시대 일본인 소유였다가 광복 후 국가에 귀속된 땅을 자기 조상의 것으로 속여 가로채려 했던 일당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 북부지법 형사1단독 황병하 판사는 15일 구청에서 호적을 빼내 고친 뒤 법원에 소송을 내 1000억원대의 국유지를 가로채려 한 김모(59)씨등 6명에 대해 공문서 변조 등 혐의로 징역 1년에서 10년을 선고했다. 서울 종로에서 10년 가까이 부동산 중개업을 해온 김씨는 2002년 일제시대에 서울에 살았던 에가시라 운페(江頭運平)라는 일본 사람의 땅이 광복 뒤 국가에 귀속된 사실을 알게 됐다. 김씨는 누나(62), 동생(53)과 함께 구청 민원봉사실을 찾아가 호적 열람을 신청했고 아버지 기록 부분을 몰래 빼내 에가시라로 바꿔 적었다. 호적을 고친 김씨 일당은 아버지가 에가시라로 창씨개명한 것처럼 속여 2002년 국가에 귀속된 땅을 돌려달라며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다. 이들은 2003년 11월 법원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받은 뒤 지난해 8월까지 에가시라의 땅이었다가 국가에 귀속된 토지에 대해 6건의 민사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에서 패한 국가가 법원에 항소하면서 사기극이 탄로났다. 국가측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한 서울고검이 이들이 법원에 증거물로 제출한 서류가 변조된 것으로 보고 일선 지검에 수사를 지시했다. 황 판사는 “국가 소유 토지를 마치 자기 조상의 땅인 것처럼 속이려 공문서를 변조했으며 재판 승소를 위해 문서감정사까지 돈으로 매수해 범행을 저지른만큼 죄질이 극히 불량하다.”고 밝혔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더이상 포항공대는 없다… ‘포스텍’ 으로 개명

    ‘더 이상 포항공대는 없다.’ KAIST(한국과학기술원)와 함께 국내 이공계 중심대학의 ‘양대산맥’이자 포항공대로도 불리는 포항공과대학교가 기업의 CI(기업이미지 통합전략)처럼 학교 명칭 바로잡기에 나섰다. 11일 포항공과대학교에 따르면 최근 학교 공식명칭을 포스텍(POSTECH·Pohang University of Science and Technology)으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지난 1986년 11월 포항공과대학으로 문을 연 포스텍은 1994년 포항공과대학교로 명칭을 바꾼 데 이어 개교 19년 만에 세 번째 이름을 갖게 됐다. 대학 관계자는 “세계적인 연구 중심대학을 지향하는 만큼 그동안 영문명칭으로 사용해온 포스텍을 공식명칭으로 채택했다.”면서 “그러나 포항공과대학교라는 명칭을 아예 없애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난 1986년 개교 당시 이름인 포항공과대학(약칭 포항공대)은 단과대학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어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관계자는 “포스텍은 공학계열 6개 학과와 자연과학계열 4개 학과가 단과대학 구분 없이 함께 있는 이공계 중심대학이지 공학계열 학과만 있는 공대가 아니다.”면서 “내년에는 경영학대학원(MBA) 과정도 개설될 예정인 만큼 학교의 이미지를 제약할 수 있는 포항공대는 부적절한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Zoom in 서울] 산은 하나인데…

    서울 강북구가 우리나라 대표 명산 ‘북한산’의 명칭을 ‘삼각산’으로 바꾸자며 강력하게 대시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산 국립공원과 인수봉 등 3개 주봉(主峰) 영역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는 “졸속 명칭변경은 안된다.”며 제동을 걸고 있다. ●강북구 지난 2003년 북한산 백운대·인수봉·만경대 봉우리 일원 27만 3000㎡를 환경부에서 ‘삼각산 명승지’로 지정받고 산 명칭 변경을 추진해 왔다. 당시 강북구는 ‘서울 삼각산 명승지’ 지정을 희망했으나 “삼각산(북한산)이 왜 서울 산이냐.”는 고양시의 반발로 서울 명칭 삽입은 무산됐다. 강북구는 시민 서명운동과 함께 지난달 18일 북한산국립공원(78.45㎢)이 관내에 걸쳐 있는 경기도 양주·의정부·고양과 서울의 은평·종로·성북·강북·도봉 등 9개 자치단체가 참가한 포럼도 열었다. 이 포럼에서 강북구는 “북한산은 예부터 삼각산으로 불려왔다가 일제때 ‘창지개명’(創地改名)에 따라 북한산으로 바뀐 것”이라고 주장, 독도영유권 문제로 격앙된 국민정서를 업고 고양시장을 제외한 타 시·구 자치단체장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강북구가 이처럼 ‘삼각산’에 집착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이유가 배경이다. 북한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등 관광자원화해 지역개발에 활용하고, 국립공원관리공단과 지역주민들의 입장료 징수 등 마찰을 이유로 공원관리권을 장기적으로 이관받으려는 포석이다. 여타 자치단체들도 공원관리권 이관에는 강북구와 의견이 일치한다. ●고양시 ‘북한산’ 명칭이 일제의 잔재라는 강북구 주장을 부인한다. 삼국사기·삼국유사 등에도 삼국시대부터 삼각산과 북한산이 혼용돼 온 것으로 나타나고, 최근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전문위원이 서울대 규장각에서 찾아낸 조선조 숙종때의 ‘북한지’에도 북한산군(郡)이란 명칭이 나온다는 것이다. ‘북한지’는 백제 개로왕때인 서기 132년 최초로 축성된 북한산성을 1711년 재축성하고 이때 북한산과 관련한 문화·역사·지리를 상세하게 정리한 문헌이다. 정 위원은 “‘북한산’이 ‘삼각산’에 비해 산성(山城)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더 쓰인건 사실이지만 일제의 잔재는 분명 아니다.”고 말했다. 고양시는 또 북한산국립공원 영역중 고양시 땅이 가장 많고, 봉우리가 서로 삼각뿔 모양을 하고 있어 ‘삼각산’의 유래가 된 세 봉우리중 백운대·인수봉 정상이 고양땅이고 만경대는 강북구와 경계인 점을 들어 강북구의 일방적 명칭 변경을 반대한다. 삼각산 명승지 면적 27만 3000여㎡ 중 92%는 고양시에 속해 있다. 세 봉우리의 지번은 모두 ‘고양시 북한산동 1의 1’로 시의 자존심도 걸려 있다. 등산객들이 서울쪽에 입장료를 내고도 북한산 정상에 서면 고양쪽을 향해 “야호”를 외치고 쓰레기와 환경문제를 야기하면서 이름을 삼각산으로 하겠다는 건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북한산 기슭에는 서울쪽에도 주거지가 일부 있으나, 산속에서 사는 500여명은 모두 고양시 북한산동 주민들이다. 혼란을 야기할 북한산 명칭변경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고양시는 강북구의 지명 변경 시도가 다시 재연돼도 강력히 반대의견을 낸다는 입장이어서 단위면적당 등산객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아 기네스북에 오른 우리나라 대표 명산의 이름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seoul.co.kr
  •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대한제국기의 근대화’ 학술대회 김도형 연세대 사학과 교수

    4일 연세대 연희관에서는 ‘대한제국기의 근대화’와 개혁사업을 주제로 연대 국학연구원과 UCLA간 공동학술대회가 열렸다. 사학자들에게 중요한 시기로 꼽히는 대한제국기를 되돌아보기 위한 자리다. 한국의 근대화 성격을 두고 내재적 발전론과 식민지근대화론이 갈리는 지점도 여기다. 식민지근대화론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서 있기도 한 이번 공동학술대회의 좌장을 맡은 연세대 사학과 김도형 교수를 학술대회 전에 만났다. 초여름 땡볕에 땀을 흘리는 기자에서 생수 한 통을 건넨 뒤 김 교수는 “학계에서 일제시대 경제발전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럼 무엇에서 차이가 나는가.“결국 역사변혁의 주체세력이 누구냐, 또 지금 한국 사회의 과제가 무엇이냐는 문제에 대한 기본생각 자체가 다르다고 봐야 합니다.” ●소농사회론의 맹점은 민중변혁 부정 식민지근대화론은 조선에는 서구적 근대화의 계기인 ‘경영형 부농(富農)’이 없고 자급자족적인 ‘소농(小農)’만 있었다는 ‘소농사회론’을 내세우고 있다. 식민지근대화론의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소농사회는 부르주아처럼 서구적 방식의 근대화를 이끌 계층이 없어 강력한 국가권력이 개입합니다. 문제는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이 권력을 1930년대 일제 파쇼 세력으로 보고 있다는 겁니다.”이들은 또 그 이전 갑신정변 같은 개화파의 움직임이나 광무개혁 같은 고종의 근대화 작업을 모두 부정할 뿐 아니라 동학혁명과 같은 민중적 변혁의 가능성도 부인한다. 조선의 변혁가능성 자체를 봉인한다는 점에서 일제가 내세웠던 ‘조선정체론’과도 비슷하다. 이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긍정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마침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꼽히는 서울대 이영훈 교수는 지난달 29일 열린 교과서포럼 심포지엄에서 박정희 시대에 따라다니는 ‘저임금에 기반해 성장했다.’는 꼬리표를 떼버리자고 주장했다. 임금률과 한계노동생산성의 증가 추이가 비슷해 결코 저임금이 아니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 교수의 논리상 그런 주장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초기 자본주의 단계에서 수탈은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습니다. 그래야 자본이 축적되니까요. 수탈은 결국 저임금구조입니다. 이건 영국 등 수많은 국가에서 확인된 사례들입니다. 박정희 시대라면 저임금 대상은 노동자·농민이고, 식민시대라면 조선인이 되는 것이지요.”박정희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과 계급·계층간 차별을 함께 봐야 하듯, 식민시대에서도 경제성장과 동시에 일본인·한국인간 차별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식민시대를 긍정하려면 박정희 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고, 동시에 박정희 시대를 긍정하려면 식민시대를 긍정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서 나온다. 한·일 양국 우익 세력의 논리적 친화성에 대한 설명이다. ●식민시대 ‘삶의 질’·‘역동성’ 주목해야 무엇이 이런 차이를 낳았을까.“역사란 사실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사실이 당시 사람들의 ‘삶의 질’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따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식민지근대화론에서 ‘민족’ 같은 개념이 부정당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했다.“민족을 절대화하는 것은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버릴 수는 없습니다. 하다못해 개인이 쓰는 일기에도 ‘나’라는 주인공이 있지 않습니까.”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간 논쟁에 대한 대안으로 김 교수는 다양한 가능성과 그 가능성들이 빚어내는 ‘역동성’에 주목하자고 제안했다.“고종과 개화파와 농민운동 등 조선 내부에서도 근대화 움직임이 있었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일본을 비롯한 외세의 개입도 어느 정도 있었습니다. 현실은 힘의 관계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에 국면마다 이들간 역학관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 다이내믹한 상황을 봐야 합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고종 보면 근대화 파악 가능 고종은 개명군주였나, 도학군주였나, 절대군주였나. 지난해 교수신문 지상을 통해 6개월여 동안 벌어진 논쟁의 주제였다. 풀어서 말하자면 고종이 근대화를 지향했느냐, 안 했다면 전통적 유교 군주에 불과했느냐 아니면 러시아의 차르와 같은 서구적 의미의 ‘왕’을 지향했느냐다. 이 논쟁은 단순히 고종 개인에 대한 평가로 끝나지 않는다. 고종 시대가 곧 한국 근대의 뿌리였다는 점에서 궁극적으로는 근대화의 싹이 한국에 있었느냐 없었느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이 논쟁의 뿌리는 30여년 전인 1976년 광무개혁 성격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무개혁은 1897년 대한제국 수립부터 1904년 러일전쟁 때까지 고종이 추진한 근대화작업이다. 이 작업이 실체가 있었느냐를 두고 두 입장이 다퉜다. 신용하 교수 등이 주도한 쪽에서는 개화파에 무게를 뒀기에 왕권강화에 초점이 맞춰진 광무개혁에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 반면 김용섭·강만길 교수쪽은 외세에 기댄 개화파보다 동학혁명에서 엿볼 수 있는 농민의 자생적 힘을 강조하는 데 무게를 뒀다. 이 관점에서 광무개혁은 나름의 의의를 지닌다. 특히 김용섭 교수는 조선후기 농업경제를 분석, 이때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있었다는 ‘자본주의 맹아론’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이 주장은 박정희시대 국사교육 강화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 신화라는 비판도 받았다. 시간이 흐른 뒤 서울대 이태진 교수는 조금 색다른 관점을 내놨다. 김용섭·강만길 교수처럼 조선 스스로 근대화하려 했다고 보되 그 힘을 농민에게서가 아니라 고종에게서 찾은 것이다. 이 교수가 고종과 광무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최근 부상하고 있는 일군의 경제사학자들은 반대로 대한제국은 파탄 직전이었기에 굳이 살펴볼 가치를 못 느낀다는 입장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고종은 외세의 바람 앞에서도 유교 경전이나 외우던, 혹은 이미 기진맥진한 조선을 부둥켜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던 도학군주일 뿐이다. 반면 고종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동시에 과대평가하는 것 역시 근거가 빈약하다는 쪽에서는 고종이 서양의 절대군주제를 지향했다고 보는 지적도 있다. 고종의 지향점을 러시아의 차르로 보고 있는 경희대 허동현 교수가 대표적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극동방송, 미션FM으로 개명

    극동방송(사장 김장환) FM(106.9㎒)이 ‘Mission FM’이라는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다. 극동방송은 지난 2월부터 청취자를 대상으로 FM 브랜드를 공모,500여개의 응모작 중 심사를 거쳐 ‘Mission’을 새로운 브랜드로 선정했다. 극동방송은 “‘Mission’이 러시아ㆍ중국ㆍ몽골ㆍ북한 등 북방선교와 국내 전국 네트워크를 통한 선교 등 극동방송의 설립취지를 가장 잘 나타내 준다고 판단했다.”고 선정이유를 설명했다.
  • [혁신 공기업 탐방] ⑤ 김칠두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인터뷰

    [혁신 공기업 탐방] ⑤ 김칠두 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인터뷰

    반월·시화산업단지에 위치한 휴대전화 부품 제조업체 연구실. 업체 직원과 인근에 있는 공대 교수들이 6개월 동안의 연구 끝에 초현대식 휴대전화 모니터를 개발했다. 곧바로 단지내에 있는 디지털TV 제조업체의 생산라인을 활용, 제품 생산에 들어갔다. 생산라인 변경에 따른 금융지원은 단지내 입주한 은행이 맡았다. 수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를 통해 소개받은 미국 휴대전화 업체와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산단공이 추진하고 있는 혁신클러스터 사업의 장기적인 플랜이다. 김칠두 산단공 이사장은 24일 “과거의 산업단지는 제조업체들의 단순한 집합체에 불과했다.”면서 “앞으로는 산업단지내 입주업체들의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종전의 생산기능에 연구개발과 인적교류, 주거, 물류, 복지시설 등을 집합한 혁신클러스터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과 서울신문 오풍연 공공정책부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요약한다. 내부 결재단계를 대폭 줄여 화제가 되고 있다. -종전 과장, 팀장, 처장, 본부장, 부이사장·이사장으로 이어지던 결재단계를 팀장에서 부이사장·이사장으로 줄였다.5단계의 의사결정 단계를 2단계로 줄인 것이다. 권한도 대폭 이양했다. 전체 업무의 70%는 팀장이 전결로 처리한다. 직원들이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할 수 있는 자율경쟁체제를 만들었다. 사업이 정례화되면 예산집행도 팀장에게 맡길 생각이다. 조직체계도 바꿨다. 본사 조직은 슬림화시켜 ‘클러스터 추진본부’ 체제로 개편하고,5개 지역본부는 현장 중심의 ‘클러스터추진단’ 체제로 재구축했다. 본사 인력을 대거 지방으로 전진 배치한 것이 골자다. 직원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불안해하는 반응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조직이 유연해지는 것 같다. 결재단계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대(大)팀제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대팀제로 인해 지역본부가 활성화되면서 조직에 활력이 생겼다. 전에는 능력있는 직원을 발탁하고 싶어도, 최소 승진기한이 있어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은 10년 정도 근무한 3급 직원에게 작은 팀을 맡길 수 있게 됐다. 전체 팀장 가운데 3급 팀장이 9명이다. 그중 여성 팀장도 2명이나 있다. 조직이 유연해지고 탄력이 붙었다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성과관리는 어떻게 하나. -전 임직원의 성과관리를 위하여 업적평가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연도별 사업목표에 대한 부서 및 개인별 평가지표를 명확히 설정·평가해 그 결과를 보상체제에 반영하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개인별 업적을 평가하고 그에 따라 인센티브를 차등 지급하고 있다. 앞으로는 업적평가결과를 보수뿐만 아니라 승진 등 인사고과에도 반영할 예정이다. 또 기관장 경영계약, 임원 성과계약 제도를 도입하여 이사장은 물론 임원들의 책임경영체제를 더욱 강화할 예정이다. ‘칭찬카드’가 있다고 들었다. 어떤 것인가. -조직의 힘은 단순한 구성원의 합(合)이 아닌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한다. 같은 식구, 동료라는 인식을 공유하려면 자기 잘한 것만 따지면 안 된다. 조직이 건조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월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은 직원 1명을 적어낼 수 있는 칭찬카드를 전직원에게 줬다. 제일 많은 이름이 나온 직원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일종의 이달의 인기사원 같은 개념이다. 기(氣)를 살리는 직장문화를 중요시하는데, 기를 살리는 직장은 어떤 직장인가. -직원의 기를 살리는 것은 신바람나는 직장을 의미한다. 그래야 우수한 인재가 모이게 된다. 거대한(Big) 기업보다는 좋은(Good) 기업을 추구하는 것이다. 칭찬카드도 같은 맥락이다. 직무공모제를 통해 희망 부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신바람나는 직장을 만들겠다는 차원에서다. 직원간 친목과 조직활력을 높이기 위해 축구, 등산, 마라톤, 테니스 등 동호인 모임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조직내 상하·수평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격주 토요일을 ‘토마토데이’로 지정, 재미있게 토론하고 강의도 듣고 있다. 산단공의 이름도 바꾼다고 들었다. -올해 산단공이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 사업의 주관 기관으로 지정됨에 따라 제2의 창단을 한다는 각오로 회사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이름은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를 주도하는 산단공의 변화 이미지를 담기에 미흡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한국산업단지공단’을 ‘산업단지진흥원’으로 바꾸기로 했다. 이른 시일내 관련 법률 개정을 거쳐 변경하겠다.“혁신클러스터 선도기관으로서 우리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각오 아래 그동안의 권위적 이미지를 벗어나 고객 지향의 수준 높은 조직이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다만 ‘산업단지’란 명칭은 그대로 두어 기존의 정체성을 유지하여 혼선이 없도록 하였다. 또 클러스터의 의미가 국민들로서는 생소한 외래어임을 감안,‘진흥원’이란 용어를 쓰게 됐다. 클러스터 사업을 설명해달라. -제조업 위주로 개발되었던 산업단지에 연구개발과 주거, 물류, 복지시설 등 기업지원 서비스 기능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단지내 입주기업체와 다양한 관련기관들이 상호학습, 인적교류 등 네트워킹을 통한 자생적인 혁신능력을 갖도록 할 계획이다. 올해 혁신역량이 우수한 7개 산업단지를 혁신클러스터 육성 시범단지로 지정했고,4대 주요사업을 중심으로 올해부터 연구개발 기능과 기업지원 서비스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사업들을 추진하고 있다. 정리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미니 클러스터란 클러스터가 생산기능에 연구개발, 기업지원기능이 결합된 개념이라면 미니클러스터는 세부업종이나 기술별로 조직된 소규모 협의체를 말한다. 한국산업단지공단은 7개의 시범 미니클러스터를 운영하고 있다. 기계·메카트로닉스 중심의 클러스터로 지정된 창원산업단지는 공작기계·금형·운송장비 등의 미니클러스터를 조직해 운영하고 있다. 첨단 디지털전자 클러스터인 구미산업단지는 디스플레이·홈네트워크 등 10개 미니클러스터를 구성했다. 울산산업단지는 엔진모듈 등 4개, 반월·시화산업단지는 기계부품·자동차부품 등 7개, 광주첨단단지는 발광다이오드(LED)·광통신 부품 등 6개, 군산산업단지는 자동차부품 등 4개 클러스터를 구성했다. 산업단지내 입주기업의 업종과 환경 등 지역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다. 미니클러스터가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네트워크가 완벽하게 조성돼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산단공은 업종별 전문가와 대학교수, 연구원, 지원기관 전문가 등을 망라하는 전문가풀을 만들었다. 언제라도 입주기업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단공 관계자는 “클러스터가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업종별, 기술별 미니클러스터가 우선 자리를 잡아야 한다.”면서 “향후 계획대로 클러스터 사업이 추진될 경우 2013년쯤이면 국내 산업단지가 미국 실리콘밸리에 버금가는 산업단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김칠두 이사장은 김칠두씨가 지난해 10월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에 취임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다. 김 이사장이 산업자원부 차관으로 재직하면서 ‘산업단지 혁신클러스터’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고, 참여정부가 이를 중점 국정과제로 삼은 것이다. 산단공이 클러스터 사업을 진두지휘하게 됐으니 그가 이사장으로 취임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는 평이다. 지난해 그가 신임 산단공 이사장 공모에 지원했을 때 노조가 적극 반겼던 것도 전문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클러스터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는 그를 사무실에서는 보기 힘들다.30개에 달하는 관할 산업단지와 기업인들을 직접 찾아 나서는 것이 주요 일과다.2만여 산업단지 입주기업체를 대변하는 최고경영자(CEO)를 자임하고 나선 셈이다. 지난 1973년 공직에 입문한 김 이사장은 30여년 동안 줄곧 산업자원부에서만 행정경험을 쌓았다. 산자부 선배로 4년 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노정규 부이사장과 찰떡 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부산(55) ▲동래고·연세대 행정학 ▲행시14회 ▲산자부 생활산업국장·무역투자실장 ▲산업자원부 차관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충북 청산초교 원로동문 105명 일본이름대신 본명 졸업장 받아

    “나라를 잃고 이름까지 빼앗긴 60년 전의 한(恨)을 이 졸업장에 담아 위로합니다.” 충북 도내 3번째로 오래된 충북 옥천 청산초등학교(교장 임찬옥)가 3일 개교 100주년을 맞아 60여년전 일제 때 창씨개명된 원로 동문 105명(남자 86명, 여자 19명)에게 본명이 실린 졸업장을 전달했다. 이날 이 학교 시청각실에서 열린 100주년 기념식에는 동문과 가족, 주민 300여명이 참석해 칠순을 넘긴 원로 졸업생(26∼30회)들의 영광스러운 명예 졸업식을 축하했다. 감격의 졸업장을 받은 장용호(76·26회 졸업생)씨는 “‘나가노 요코(張野龍虎)’라는 낯선 일본 이름의 졸업장을 받은 지 64년만에 내 이름을 당당히 되찾아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이 행사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모교 역사를 바로잡자는 동문회(회장 안철호·65) 제의로 이뤄졌으며, 창씨개명된 600여명의 선배중 생존자 105명에게 졸업장을 받는 자리를 마련했다. 안 동문회장은 “대선배들의 빼앗긴 이름을 되찾아줘 가슴 뿌듯하다.”며 “일제에 의해 비뚤어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 학적부에 실린 창씨개명된 이름도 한글로 고쳤다.”고 말했다. 1905년 사립 ‘청산신명학교’로 설립된 이 학교는 그동안 90회에 걸쳐 9544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독립운동가 조동호(趙東祜) 선생을 비롯,3공 시절 법무부장관을 지낸 고 이봉성(李鳳成)씨와 박준병(朴俊炳), 박유재(朴有載) 전 국회의원 등이 이 학교 출신이다. 옥천 연합
  • 브레이크 고장난 일본…우경화 누가 이끄나

    |도쿄 이춘규특파원|현직 각료가 ‘독도는 일본땅’이라고 망언하고, 전직 총리가 ‘일왕은 국민통합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등 일본의 급격한 우경화가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우경화를 이끄는 일본판 ‘네오콘’의 추동세력은 누구인가. 정부와 집권 자민당에 골고루 포진해 있는 ‘전후세대’가 주축이라는 데 별 이견은 없다. 무엇보다 우경화에 제동을 걸었던 사민당 등 혁신세력이 중의원·참의원 선거에서 잇달아 참패하며 지금 일본은 브레이크 없는 페달과 같은 상태다. ●고이즈미 내각, 네오콘 전방위 포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는 2001년 4월 취임 이래 매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 한국·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킨 핵심 인물이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와 영토분쟁 중인 북방 4개섬을 직접 시찰, 분쟁을 선도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집권 4년간 몇차례 개각을 단행하면서 강경보수 매파인 ‘네오콘’을 내각과 정당에 전방위로 배치했다. 내각 서열 1위 총무상인 아소 다로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던 것”이라는 등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인물이다.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국회의원간담회’ 회장도 맡고 있다. 내각 서열 3위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두둔했다.2001년 후쇼사 교과서가 처음으로 검정을 통과할 때 문부과학상이었다. 마치무라 외상은 올 초 직업외교관 최고위직인 외무성 사무차관에 대북 강경파인 야치 쇼타로 전 관방부 장관보를 기용, 외교실무라인의 보수색채를 강화했다. 이들 강경라인이 최근의 ‘실력외교’를 실무적으로 이끌고 있다. 일본 교육을 총괄하는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은 ‘일본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모임’ 대표 출신으로 취임 후 “역사교과서에 군대위안부나 강제연행이란 말이 줄어 다행”이라는 망언을 했다. 급기야는 29일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망언을 퍼부었다. 산업정책을 맡은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상은 “종군위안부에는 강제성이 없었다.” “반일적 교과서에서 배우는 어린이들이 맡을 차세대는 괜찮은가.”라는 망언을 한 인물이기도 하다. ●네오콘의 총본산 자민당 당직자 자민당은 네오콘들의 본거지이다. 차기 총리후보 1순위로 지목되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는 ‘북한 때리기’를 통해 성장한 인물이다. 강경 네오콘의 주축이다.“자위대는 군대다. 누가 총리가 되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해야 한다.”고 호언하고 있다. 다케베 쓰토무 간사장은 “일본은 천황의 나라”라고 주장하는 인물이다. 무엇보다 30∼40대의 ‘젊은 우파의원’들은 전범국의 책임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신사참배 강행 등 일본사회의 우경화를 선도하고 있다. 이들 당정의 핵심세력은 대부분 전범국으로서의 부채의식이 없는 ‘전후세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특히 A급 전범 용의로 투옥까지 됐던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인 아베 간사장 대리, 아소 총무상, 나카가와 경제산업상 등 2∼3세 정치인들은 “선조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의 일본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고 외교소식통들은 분석했다. 아울러 고도성장기에 자라면서 ‘일본이 최고’라는 의식이 강해 경제력뿐만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아시아 일원이 아닌, 즉 140여년만에 다시 탈아(脫亞)를 외치며 ‘세계의 강국 일본’을 꿈꾸고 있다. ●뒤에서 미는 우익본류, 전전세대 한·일의원연맹 일본측 회장인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자민당의 신헌법기초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우경화의 상징인 개헌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모리 전 총리는 총리 때인 지난 2000년 9월 한·일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케시마(독도)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해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우리나라의 고유 영토”라고 망언해 물의를 빚었었다.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직접적인 표현으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입장을 밝힌 인물이다. 그는 아울러 고이즈미 총리의 친위부대 역할을 하는 강경 우파 ‘모리파’의 수장이다. 자민당 신헌법조사위원회의 전문분야 소위원장인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는 “천황은 국가원수”,“일본도 이제 보통국가가 될 때가 됐다.”,“방위군 보유” 등의 발언으로 전후세대들을 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taein@seoul.co.kr
  • 儒林(316)-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16)-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비교적 늦은 나이인 21세 때 진사였던 허찬(許瓚)의 딸과 혼인하였던 것은 퇴계의 노모 박씨의 성화 때문이었다. 퇴계는 공부에 전념하느라 세상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박씨는 아들 퇴계가 빨리 혼인하여 후손을 잇는 것을 보고 싶어 하였으며, 또한 과거를 보아 벼슬길에 오를 것을 강요했기 때문이었다. 퇴계는 비록 6년 동안밖에 함께 살지 못하였으나 첫 아내 허씨를 사랑했던 것처럼 보인다. 지금도 퇴계의 첫 부인 허씨의 무덤은 의령에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에는 퇴계가 직접 쓴 ‘가례동천(嘉禮洞天)’이란 유필이 남아 있을 정도인 것이다. 퇴계는 아내 허씨가 죽은 후에도 장모 문씨 부인을 지극히 봉양하였다.‘하루에도 열두 번씩이나 백발이신 장모님 생각 때문에 한양 벼슬길을 향해 차마 발을 못 옮긴다.’라는 말을 문집 속에 남길 정도로 처가에 대한 상념이 지극하였다. 지금도 ‘가례동천’의 기념문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새겨져 있다. “…가례동천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태두요, 동국부자(東國夫子)로 추앙 받고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유묵 금속문이며, 유서 깊은 유허지이다. 가례동은 선생의 처가가 있는 곳이다. 문무사백들과 시문 강론으로 소요하시는 한편 후진양성에 전념하신 사적과 더불어 향당의 표준이 되고, 국가문화유적으로서 소중한 곳이다.” 이러한 퇴계의 마음은 손자가 장가갈 때 보낸 퇴계의 편지 속에 자세히 드러나고 있다. “부부는 남녀가 처음 만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이룬다. 또 한편 가장 바르게 해야 하고, 가장 조심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의 도가 부부에서 발단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예와 존경함을 잊어 버리고 서로 버릇없이 칭하여 마침내 모욕하고 거만하고 인격을 멸시해 버린다. 이런 일은 서로 손님처럼 공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을 바르게 다스리려면 처음부터 조심해야 한다.” 이 편지는 퇴계의 부부간의 근본이념을 요약한 가르침이다. 부부는 지극히 친밀하기 때문에 지극히 조심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말은 부부 사이의 예절을 가리키는 말이고, 가정을 바로잡고자 하면 출발부터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근신이 치가의 법도임을 가리키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손님처럼 공경하였던 첫 번째 부인 허씨는 퇴계의 나이 27세 때 병사해 버리고 만다. 아내가 죽은 후 퇴계는 향시에 응시하여 2위에 합격하고, 진사에도 합격하는 등 승승장구하였으나 그 후 3년 동안 줄곧 광부(曠夫)로 지냈다. 3년 후 퇴계는 권씨 부인과 재혼하였는데, 이 결혼은 불행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권씨 부인과 16년간의 결혼생활을 퇴계 자신도 ‘참으로 불행했었다.’고 고백하고 있음인 것이다. 이는 권씨 부인이 칠거지악을 일삼던 악처이기 때문이 아니라 정신이 맑지 않은 실성한 여인이었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어릴 적 충격으로 인해 미쳐 버린 여인이었던 것이다. 권씨 부인은 본래 신라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런데 나말여초(羅末麗初), 안동을 지키던 김행(金行)이 후백제 왕 견훤에게 몰린 왕건을 패망의 순간에 도와 고려 건국을 튼튼히 하자 김행을 태사로 모시고 안동을 식읍으로 내렸다. 그리고 김행에게는 집권에 따라 판단을 잘하였다고 해서 권(權)씨를 성으로 쓰게 하는 사성개명(賜姓改名)을 내렸던 안동에서 대대로 살아온 명문가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 앉으나 서나 삼각산

    앉으나 서나 삼각산

    서울 강북구가 일제의 잔재인 북한산을 버리고, 옛 이름인 삼각산을 되찾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삼각산 초등학교, 삼각산 중학교, 삼각산 소방서는 삼각산 찾기의 첫 걸음이다. ‘삼각산 초등학교, 삼각산 중학교, 삼각산 소방서….’ 강북구가 북한산의 옛 이름인 삼각산(三角山) 되찾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북한산이라는 지명은 일제 시대의 잔재로 우리 민족의 뿌리를 복원하기 위해 명칭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북구는 관련 행사를 열어 삼각산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궁극적으로는 중앙지명위원회 심의를 통해 이름을 바로잡을 방침이다. ●“북한산 지명은 일제 잔재” 강북구에 따르면 삼각산은 인수봉, 백운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으로 나란히 솟아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고려 성종 무렵부터 약 1000년간 사용했던 지명이다.‘그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심훈의 그날이 오면).‘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김상헌의 시조) 등 시조와 시구에 등장하는 ‘삼각산’은 우리 민족과 나라를 상징하기도 한다. 북한산은 원래 한산(도성)의 북쪽을 가리켰던 명칭이다. 일제 시대 행정구역, 지명개편을 계기로 삼각산과 혼용되다가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공식명칭이 됐다. 실제로 환경단체인 녹색연합이 지난 1월 발표한 ‘백두대간 우리 이름 바로 찾기’라는 보고서에서 북한산은 일제 시대 때 민족의 정체성·역사성을 깎아내리기 위한 ‘창지개명(創地改名)’으로 왜곡된 이름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월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새 산맥 지도에도 삼각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신설 학교·마라톤 등에 삼각산명칭 붙여 강북구는 일단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홍보하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따라 새로 생겨나는 학교·기관 등에 ‘삼각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미 삼각산초등학교·중학교·소방파출소·보건소 분소가 생겼고 2007년 개교 예정인 고등학교 이름도 삼각산고등학교다. 인근 ‘미아 풍림아이원아파트’도 주민들의 투표를 거쳐 ‘삼각산아이원’으로 바뀌었다. 다음달 18일 강북구민회관에서 열리는 ‘2005 삼각산 국제포럼’에서는 경기도 고양·의정부시, 서울 도봉·성북구 등 삼각산에 접해 있는 자치단체장들이 모여 ‘삼각산을 잘 보존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공동선언문을 발표한다. 또 ‘자연을 활용하여 경영수익을 올리는 자치단체 사례’라는 주제로 ▲호수 시드니의 블루 마운틴 개발 ▲경기도 양평군 명달리의 녹색관광 실험 ▲프랑스 그르노블의 산이 없는 산악도시 ▲충남 당진군의 두견주 개발 등을 토론한다. 이밖에 다음달 19일 ‘덕성여대∼국립 4·19묘지 입구∼우이령’ 코스에서 ‘제1회 삼각산 우이령 마라톤 대회’를 개최한다. 현재 참가자들을 모집하고 있다.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등 각계인사도 참여한다.10월에는 단군제례, 천도제를 올리는 삼각산 축제와 산악등반, 민속놀이 등을 하는 ‘삼각산국제산악문화재’,‘삼각산 걷기대회’ 등의 행사도 열린다. ●연내 서울시 지명위에 재심의 요청 강북구는 궁극적으로 삼각산 명칭 복원 자료를 보완해서 올해 중으로 서울시 지명위원회에 재심의를 요청할 계획이다. 삼각산은 지난해 서울시지명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관련자료 연구·검토 정확한 고증보완 등을 이유로 보류됐었다. 지명이 바뀌기까지는 해당 시·군·구 지명위원회의 심의→시·도 지명위원회의 조정→국토지리정보원의 중앙지명위원회의 최종 심의를 거쳐야 한다. 삼각산의 경우 서울시 6개 자치구와 경기도 3개시에 걸쳐 있어 해당 자치단체의 지명위원회의 심의가 일일이 통과되어야 한다. 때문에 명칭이 복원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김유영기자 carilips@seoul.co.kr
  • 1920년대 조선의 민담·풍습 오롯이

    1920년대 조선의 민담·풍습 오롯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 깊은 애정을 가졌던 한 외국인의 기록을 본지가 입수, 소개한다.20세기 초 20여년간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독일인 선교사 안드레 에카르트가 독일 귀국후인 1923년에 발간한 조선어교제문전(朝鮮語交際文典·이하 문전). 건국대 명예교수인 류태영(69) 박사가 이스라엘에서 입수해 본지에 제공한 것으로, 원래는 조선인과 독일인 모두가 쓸 수 있는 어학교재용으로 만든 책이다. 그러나 지금은 독일인 눈에 비친 조선의 이런저런 민담과 풍습이 오롯이 남아 있다는 점이 더 관심을 끈다. 문전은 책 구성에서부터 조선인과 독일인 모두를 위한 어학교재라는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선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양 부분은 독일어와 한국어로 씌어져 있다. 한국어 부분 역시 물론 에카르트가 직접 쓴 것이다. 또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됴션언문(朝鮮諺文)’에서는 한글자모의 발음을 로마자(羅馬字)로 설명하는 등 문자체계에 대한 설명도 보인다. 그리고 45개의 조선어로 된 이야기들로 본문을 구성했다. 부록으로는 사서삼경 중 하나인 ‘대학’의 일부가 실려 있고 독일어 번역을 위한 짧은 연습문 45개도 있다. 책 마지막에 저자 이름으로 ‘옥락안(玉樂安)’이라는 에카르트의 한국식 이름이 표기되어 있고 ‘정가금오원’과 ‘불허복제’라는 가격과 저작권 보호 표시까지 붙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본문 내용이다. 에카르트는 서언(緖言)에서 본문의 45가지 ‘니야기’(이야기)는 “조선 13도를 통하야 방방곡곡을 천답(踐踏)하며 연구에 연구를 가한 결과”라고 밝히고 있다. 에카르트의 성실한 노력 덕분에 교재를 읽다보면 어떤 이야기들이 1920년대 당시 조선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는지 엿볼 수 있다. ●만담과 해학 산을 넘다 육혈포(권총)를 가진 도적을 만나 주인양반의 돈을 다 빼앗긴 하인이 “오늘 길에서 도적을 만났다하면 그 양반이 내 말을 곧이 아니 듣고 나를 의심하겠으니 당신 가진 육혈포로 내 옷에 구멍을 뚫어주면 그 보람으로 주인 양반에게 빙거(憑據·증거를 대다)하겠다.”고 도적에게 부탁한다. 그런데 미련한 도적은 그만 “철환(총알)이 없다.”고 대답해버렸다.‘헛총만 가진 것’을 안 하인은 빼앗긴 돈을 되찾고 도적을 흠뻑 두드려주고 간다.(세번째 이야기 ‘도적을 속인 진담’) 이처럼 문전에는 만담류의 우스갯소리가 20여개로 가장 많다. 그냥 만담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판소리풍의 걸죽한 입담 역시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땡볕에 김매는 팔자에 울상짓던 아내한테 괄시받은 한 농부는 벼슬하겠다며 서울로 훌쩍 올라간다. 이 농부 어찌어찌 벼슬얻어 풍악을 울리며 고향으로 금의환향하는데 이 풍악소리를 듣고 내뱉는 아내의 말이 감칠맛이다.“우리 양반인지 닷돈 세뭉치인지, 벼슬인지 닭의 벼슬인지, 군수인지 국수인지, 감사인지 곳감인지 한다고 시골인지 서울인지 가더니 아니오니 이 노릇을 장차 어찌하잔 말이냐.” ●조선의 풍습 조선의 풍습에 대한 글도 찾아볼 수 있다. 풍습에 대해서는 에카르트의 세심한 관찰과 묘사가 잘 드러난다.‘조선에서 혼인하는 법’에서는 에카르트가 마치 결혼식을 옆에서 지켜본 듯 신랑·신부의 행색부터 결혼식까지의 전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또 조선의 풍습을 잘 모르는 외지인과 조선사람간의 대화체로 꾸며진 ‘귀신을 위하는 이야기’에서는 성주·터주 등 전통신앙에서부터 종묘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제사 풍습에 대해 순차적으로 설명해준다. ●피할 수 없는 시대상황 어학교재인데다 각 지방의 얘기들을 채록하는 형식이다보니 정치나 사회문제 같은 민감한 소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은근슬쩍 드러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서울구경’편은 강원도 산골에 사는 김 생원이라는 사람의 서울 유람기가 담겨져 있다. 하루는 김생원이 임금 사는 곳을 보겠다며 경운궁으로 가는데 당시 경운궁에 유폐돼 있던 태황제(고종)를 두고 한 경인(京人)과 나눈 대화가 이렇다.“그러면 국사를 시방 누가 상관하오.”라고 김 생원이 묻자 “예 일본 통감부에서 모든 정사를 다 상관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다시 “그러면 그전보다 국민간에 모든 정사가 밝게 됩니까.”라고 묻자 “예 그 전보다 백성들이 참 평안히 살고 국사가 개명하게 됩니다.”라고 대답한다.‘아무 것도 모르는’ 것으로 설정된 한 촌부의 질문이 묘한 느낌을 준다. 또 임진왜란 당시 피란길에 올랐던 선조가 겪는 고초도 ‘임금이 피란함’편에 상세히 실려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에카르트 신부는 안드레 에카르트는 1909년 천주교 베네딕트선교회 선교사 자격으로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조선어를 익힌 뒤 경성제국대학에서 언어와 미술사를 강의했다.1928년 독일로 돌아간 에카르트는 20여년에 이르는 체류경험을 바탕으로 뮌헨대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조선의 언어, 미술, 음악, 무용, 문학 등 각 방면에 걸쳐 다양한 글을 남겼다. 한국인 제자도 많이 길러냈는데 비운의 천재로 불리는 전혜린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에카르트의 저작 가운데 1929년 쓴 ‘조선미술사’가 대표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조선 미술에 대한 최초의 통사 형식 서술이었고 한국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아직도 한국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책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거대하지만 실속은 없는 중국미술, 오밀조밀하지만 지나치게 형식에 얽매인 일본미술과 달리 한국 미술은 단아하고 소박한 자연미가 살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여기에다 개개의 예술작품을 통해 한국의 미를 추출해내는 접근법을 쓰고 있어 책에 실린 500여점 도판은 가치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에카르트는 그다지 기억에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조선미술사가 2003년에서야 열화당에서 번역되어 나왔다는 것이 단적인 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이스라엘 유학중 ‘…文典’ 입수한 류태영박사 국내에서 이스라엘 전문가로 손 꼽히는 류태영 박사는 이 문전을 1973년 이스라엘 유학시절 히브리대 중앙도서관 서고에서 처음 접했다. 히브리대 중앙도서관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당시에는 에카르트가 누구인지도 몰랐단다. 류 박사는 “독일 선교사인데도 또록또록한 한글로 재미있는 얘기를 너무 잘 풀어내서 ‘한국에 있었던 선교사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라며 읽었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하다 골치가 아프면 머리를 식힐 겸해서 이 책을 자주 읽다가 아예 복사본까지 마련해뒀다. 귀국한 뒤 이 내용을 주변 사람들한테 얘기해줬더니 “재미있다.”는 반응이 많아 최근에는 복사본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유 박사는 “출판사에 물어보니 펴낸 지 80년이 넘어 저작권에 문제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틈나는 대로 현대문으로 풀어내 출간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히브리 도서관에는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세계 각지에 흩어 살던 유대인들이 기증한 자료가 많다.”면서 “이 때문에 한국 관련 자료도 엄청난데 한글을 아는 사람이 없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며 아쉬워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뉴스플러스] 통계청·기상청 차관급 격상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통계청과 기상청을 차관급 기관으로 격상하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또 건설교통부를 국토교통부로 개명하고, 국방부 산하에 방위산업청을 신설하는 한편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등 4개 부처에 복수차관제를 도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日人명의 국내땅 독도의 348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소유로 넘어갔던 땅 중에서 독도 면적의 약 350배에 달하는 땅이 아직 일본인 명의로 남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이런 땅에 대해 내년 말까지 조사를 벌여 국유화할 방침이다. 21일 재정경제부 등에 따르면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하면서 소유권을 행사한 토지 가운데 아직 등기부가 정리되지 않은 ‘일본인 명의 땅’이 현재 약 6270만㎡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독도면적 18만 902㎡의 348배에 해당되는 것으로, 서울 여의도 면적 840만㎡과 비교해도 약 7.5배에 해당하는 크기다. 정부는 일본 동양척식회사 등 일본의 법인과 개인들이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대상으로 1985년부터 2003년까지 1,2차 권리보전 조치를 해 대부분을 국유화한 바 있다. 재경부는 올해에는 일제시대에 등기부상 일본인 개인 명의로 넘어간 4만 7130필지,6270만㎡을 대상으로 확인 작업을 실시해 주인이 실제 일본인으로 돼 있는 경우 곧바로 국유재산으로 귀속할 방침이다. 그러나 소유주가 창씨개명을 한 우리나라 사람일 가능성이 있는 토지에 대해서는 6개월간 공고한 뒤 권리 주장자가 없을 경우 국유화하기로 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일본의 역사왜곡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 / 일본의 역사왜곡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파문이 해결되기도 전에 일본이 한국 역사를 더욱 왜곡한 교과서를 펴낼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한·일 외교관계가 냉각되고 있다. 일본의 지배가 조선의 근대화에 기여했다고 식민 통치를 미화한 역사 교과서는 우익계열의 출판사인 후쇼샤(扶桑社)가 검정을 신청했고 결과가 다음달 초 나올 예정이다. 일본 교과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한국사를 왜곡 기술해 왔는데 이번 교과서는 더욱 개악한 내용이다. 특히 새 교과서는 독도의 전경 사진을 추가하고 ‘한국과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라는 설명을 달고 있어 독도의 영유권까지 간접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독도 문제와 더불어 국민들은 한국 정부가 일본의 역사 왜곡에 대해서 강력히 대응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정·관계 채널을 통해 우려와 유감을 표시하고 일본 정부가 정확한 역사적 인식을 갖고 검정 작업을 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왜곡 배경과 과정 일본은 패전 후 천황제를 폐지하고 입헌군주국의 형태를 갖추었으나 일부 우익 지배층은 이에 대한 불만을 품고 황국사관의 부활을 꿈꾸고 시도해 왔다. 황국사관이란 일본이 열등감에서 벗어나고 아시아 각국을 멸시하며 정복 정책을 펴 나가기 위한 바탕이 되는 사관이다. 왕이 태양신의 자손이고 일본이 신의 나라라는, 의도적으로 조성한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1955년 우익 보수 성향의 자민당이 영구적인 집권 체제를 갖춘 뒤 일본의 우익주의는 일부가 아닌 전 국민적인 일본 정권의 이념이 되었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제대로 기술하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을 갖고 있다. 처음으로 역사 교과서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1982년 교과서 파동 때다. 한국과 중국 정부를 비롯한 각국은 강력하게 항의했고 일본은 일단 후퇴했다. 그러나 일본의 지배층의 우익 성향은 사라지지 않은 채 일본 사회를 계속 이끌고 있고 패권주의와 정복욕을 버리지 않았다.1990년대 들어 우경화·국수주의화 경향은 더 강해져 일본 제국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여론 몰이를 하게 됐다. 수상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며 군국주의 부활에 앞장섰다. ●일본의 한국사 왜곡 사례 일본의 교과서에서 이미 왜곡, 기술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대 일본이 이미 한반도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날조하고 갑오 농민 봉기나 혁명도 난리 폭동으로 비하했으며 러일 전쟁의 승리가 백인에 대한 승리로 아시아 민중을 위한 것으로 부각시켰다. 특히 을사조약 강요를 완곡하게 표현했다. 또 한국 병합의 합법성을 강변했으며 한국인의 항일 투쟁을 축소 왜곡하고 일제의 징병, 징용과 조선 민족 말살 정책을 축소 은폐했다. 전범 재판의 정당성을 부인했으며 침략 전쟁을 아시아 민족 해방 전쟁으로 정당화했다. 이와 함께 침략 전쟁에서 자행한 만행인 남경 학살 같은 중대 사실의 삭제하거나 축소했다. ●후쇼사 교과서의 왜곡 내용 1. 러일전쟁=러시아가 조선 북부에 군사기지를 건설했고 극동에서 러시아의 군사력을 일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술한 부분은 일본의 단정적 주장이며 근거가 없는 잘못된 해석이다. 일본은 이번에도 러시아 위협론을 강조하며 개전의 책임을 러시아에 떠넘기고 전쟁을 시작하게 된 자국 내부 문제는 일절 거론하지 않았다. 2. 한국병합=‘병합 이후 근대화를 진행했다.’는 주체를 일본에서 조선총독부로 바꿔 구체화했다.2001년 신청본과 검정본에서 볼 수 없었던 ‘근대화’라는 단어를 사용해 조선 침략 사실을 노골적으로 미화했다. 3. 종군위안부 피해여성 =2001년판과 마찬가지로 존재 자체를 부정해 신청본에서조차 싣지 않았다. 4. 강제동원=교과서는 2001년과 마찬가지로 ‘종군 위안부’ 사실 자체를 다루지 않았다.2001년도에 비해 일제 정책들의 강제성을 언급하지도 않았다.‘여러가지 희생이나 고통을 강요하였다.’나 ‘창씨개명이 강제로 사용하게 됐다.’는 내용이 모두 빠져 있다. 5. 대방군=황해도 봉산지역에 있었다는 게 통설인 대방군을 ‘중국 왕조가 조선반도에 설치한 군으로 중심지는 현재 서울 근처’로 설명하고 있다. 한국사가 중국이 설치한 군현에서 시작됐음을 주장하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 6. 임나일본부설=‘야마토 조정의 외교정책’ 아래 ‘조선반도의 동향과 일본’이라는 제목을 ‘야마토 조정과 동아시아’로 수정하고 소항목으로 ‘백제를 도와 고구려와 싸우다.’를 설정해 일본의 임나 지배와 출병을 확실하게 서술했다. 7. 조선반도와 일본=2001년과 마찬가지로 조선을 ‘일본을 향하여 대륙으로부터 하나의 팔처럼 돌출된 반도’라고 기술했다. 또 ‘조선이 러시아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 방위가 곤란해 조선의 근대화를 원조했다.’는 기술은 전쟁 발발의 책임을 러시아로 떠넘기려는 의도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일본의 이런 왜곡에는 정부와 국민이 함께 나서야 한다. 일본 정부에 역사 왜곡 사례를 정정해주도록 강력히 요청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대일 추가 문화개방을 중단하고 진행 중인 협력 관계도 중단하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또 국제 회의를 통해 역사왜곡 사실을 알리고 세계 여론에 호소해야 한다. 학계에서는 중국이나 북한과 연계해 일본을 압박해야 한다. 나아가 국내에서는 객관적인 사실(史實)에 대한 연구에 더욱 힘쓰면서 한편으로는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3)세계지도서 사라진 이름 ‘동해’

    세계지도의 90% 이상이 동해(East Sea) 대신 일본해(Sea of Japan)로 표기하고 있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애국가를 불러왔는데 동해가 아니라 일본해란다. 어쩌다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지금 한국의 관심은 온통 독도로만 쏠려있을 뿐, 정작 동해에 관해서는 독도에 쏟는 관심의 1할도 주지 않는다. 이런 작금의 상황을 냉철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20세기 이전의 대다수 외국지도는 ‘동해’‘한국해’‘조선해’‘오리엔탈해’ 등으로 표기했다. 문제는 1929년에 발간된 국제수로기구(IHO: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의 ‘해양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에 일본해로 등재되면서 발생했다. 몇십 쪽에 불과한 얇은 책자가 동해의 운명을 바꿔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까. ●세계지도 90%이상 일본해 표기 국제수로기구는 국제간 수로 부문 협력체제를 모색하고, 수로 관계자료의 국제적 조정을 수행하는 기구. 바다 지명에 관한 건도 수로기구 관할이다.1921년 설립된 이래 74개국이 가입해 있으며 한국은 1957년, 북한은 1987년에 가입했다.‘해양의 경계’는 세계 해양지명의 표준화 교본으로 지명에 관한 한 ‘바이블’과 같다. 이 책에 기초하여 세계 각국이 자체 해도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관광지도·특수지도 등 2차 지도들을 만들어 낸다. 이 영향력은 교과서는 물론 신문·방송에까지 확대된다.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뜻과 무관하게 여기에 ‘일본해’로 등재됐고, 그 명칭이 전 세계에 유포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 전에도 16세기 이래 일본을 찾은 서구인들에 의해 일본해라는 표현이 등장하지만 한국해, 동해 등과 혼용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 쓰는 일본해 명칭은 국제기구의 공인을 받아 이전과는 격이 다른 차원에서 사용되고 있다. 식민지의 또 다른 아픔이다. 일제는 물리적인 영토 탈취에 머물지 않고 지명에까지 제국주의의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한반도 곳곳에서 창씨개명이 자행돼 마을, 도읍, 거리 이름이 모조리 바뀌어 오늘날까지 잔재를 남기고 있으니 일본해의 세계화도 제국주의 음험한 유산에 다름 아니다. ‘해양의 경계’는 1929년에 초판이 나온 이래 3판이 1953년, 그리고 거의 반백년 만인 2007년에 개정판이 나올 예정이다. 문제는 3판까지 전부 일본해로 명기되어 있다는 점. 주권을 강점한 일본이 제국의 힘으로 이를 관철시켰으며,1953년 한국전쟁의 와중에 3판을 밀어붙였다. 제국주의가 힘으로 관철시킨 명백한 과오이다. 당시 세계수로국을 지배하던 영국, 러시아,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열강의 입김이 책자 곳곳에 강하게 배어 있다. 문제는 냉엄한 국제법의 현실이다. 한국인이 한반도에서 수천년간 동해로 불러왔다고 아무리 증거물을 내밀어도 제국주의적 패권에 의해 형성되어 오늘에 이른 국제적 힘의 질서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2007년 개정판 동해 부분 ‘공란’ 고구려 호태왕 비문에 동해가 분명히 적시되어 있으니, 이것만 해도 서기 414년의 일이며, 삼국사기에는 이미 BC 37년에 동해가 등장한다. 우리 옛 지도나 외국인이 그린 옛 지도에 등장하는 무수한 증거들, 그리고 풍부한 서지학적 증거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으나 현실은 여전히 1929년의 표준화 족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제 아비를 아비라 못 부르는’ 현실이 바로 국제 해양질서다. 우리끼리야 영구히 동해로 부를 것이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일본해가 공용화되다시피 하고 있으니 ‘식민의 바다’는 아직도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통상적인 한국인들의 정서와 국제질서 사이에는 극대한 간극이 존재한다. 아직도 바다는 제1세계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동해 표기는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에서도 문제가 됐다. 한국측에서 ‘수준 낮은’ 협상단이 파견됐음에도 불구하고 논란을 빚은 끝에 각자 명칭으로 쓰기로 합의하였다. 이때에도 동해표기는 합의를 보지 못한 어정쩡한 단계로 남아 지금의 분란을 예고했다. 한국 정부는 1992년에 동해 영문표기를 ‘East Sea’로 결정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단일명칭으로 합의할 때까지 ‘동해/일본해’의 병기를 요구하고, 그 해 유엔지명표준회의 및 97년 제15차 IHO총회에서 동해 표기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2007년판 ‘해양의 경계’ 를 준비하면서 2002년에 초판본을 회람시켰는데 한·일간에 이견이 팽팽하자 동해 부분은 아예 백지인쇄를 했다. 즉, 국제법상 동해 표기문제는 아직도 미완의 장인 셈이다. 우리의 입장은 당연히 동해 단독 표기이다. 그러나 국제기구에서는 양국간에 논란이 있는 지명에 관해서는 병기를 권장한다. 가령 영국명으로만 표기되다가 프랑스에서 논란을 제기한 영국해협(English Channel)을 ‘La Manche’로 병기하여 해결한 사례도 있다. 동해 단독표기가 정답임은 분명하지만 지명 분규에 관한 양국의 협의가 이루어지기까지 잠정적으로 ‘동해/일본해’ 병기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제는 일본이다. 일본은 강력하고 체계적으로 ‘일본해’를 전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 병기는커녕 오로지 일본해 단독표기만을 고수한다. 독도의 예에서 보이는 염치 없고, 전례도 없는 후안무치한 밀어붙이기를 동해 명칭에서도 자행하는 중이다. 일본학 석학으로 지난해 영면한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 같은 이도 ‘일본’이라는 명칭 자체가 가상의 전제로부터 출발했음을 비판하면서, 일본해 따위의 명칭이 성립할 수 없음을 역설하지 않았던가. 일본해 명칭은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제작한 세계지도 ‘Mappamondo’에 처음 등장한다. 한국인들이 동일 해역을 동해라 부른 지 1600년 후에야 사용한 이름이다. 세계 지리학계에서는 ‘역사성과 대표성’을 지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그럼에도 일본은 2000년 이상을 사용해 온 동해를 밀어내고 제국주의적 힘의 논리로 밀어붙여 일본해를 세계 만방에 선전하는 중이다.17세기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일본에서도 조선해라는 명칭이 다수 쓰였다. 일인 학자 카스노의 ‘일본해연구’(1975)에 의하면 1815년 경부터 서양인들이 일본해를 많이 썼으며,19세기까지 일본서해, 타라해, 조선해 등 다양한 이름이 존재했다고 밝힌 바 있다. ●1602년 세계지도 일본해 첫 등장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국제적 외교야 외교통상부 관할이지만 동해 연구·조사자료의 축적과 실제적으로 국제수로기구를 상대하는 중추는 해수부 해양조사원이다. 이곳 곽인섭 원장은 “쉽게 해결될 싸움이 아니므로 체계 있고 일관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말한다. 국제분쟁 현장에서 뛰어온 오순복 과장도 “경험으로 미뤄 일본의 대응은 전 세계적이며 국제사회 로비도 엄청나다.”며 고개를 젓는다. 동해 표기 해도를 만들어 전 세계에 뿌리내리게 하는 이들이야말로 한·일간 새로운 영토싸움의 주역들이다. 길거리에서 고함 지르고 일장기 태운다고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이 중요한 싸움판의 예산이 얼마냐고 물으니 연간 1억원 내외란다. 고작 1억원! 세금은 제대로 쓸 데 써야하지 않을까. 독도는 그래도 어느 정도 자료축적도 돼 있고 이론적 기반도 갖춰 가지만 동해는 참으로 고난의 연속이다. 작금의 시마네현 폭거로 빚어진 독도에 대한 열정의 반의 반이라도 동해에 쏟아야 한다. 독도와 동해문제는 별개이지만 긴밀한 내적 연관성을 지니며, 일본의 해양침탈 의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니기 때문이다. 양자는 불가분이다. 동북공정이 문제되니 고구려재단을 만들고, 독도 문제가 불거졌다고 대뜸 독도특별법이니, 독도재단 만들기 따위의 단말마적 대응이 이어지는 현실을 보노라면 도대체 동네싸움을 하려는 것인지, 원대한 국가정책적 대응을 하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면 일본의 논리는 어떨까. 일본측은 일본해 명칭이 일본의 확장주의와 식민화의 결과라는 주장을 거부한다. 한국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한 사안을 두고 강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한반도를 강점한 가운데 시마네현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일본의 일처리 방식은 이렇듯 식민지배에 관한 뉘우침이나 반성 없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생의 사태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北 ‘조선해’ 주장… 남북공동대응 필요 이 문제가 불거지면 일본은 예의 1602년판 마테오리치 지도 등을 증거로 제시한다.‘일본해/동해’ 병기 주장도 세계 해양명칭의 혼란을 이유로 거부하는 그들 아닌가. 관계국의 합의를 얻을 때까지 과거의 합의를 답습해야 하므로 일본해 명칭을 계속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론은 계속된다. 동해는 한반도의 남해, 서해, 동해의 연속선상에 있는 방향 표시이므로 국제 명칭으로 부적당하다는 주장이다. 심지어는 우리가 황해를 ‘West Sea’로, 동중국해를 ‘South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일본해만 문제 삼아 ‘East Sea’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만을 고의로 ‘표적삼았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고도 말하는 그들이다. 희망은 없는가. 우리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관되게 ‘조선해’나 ‘조선 동해’를 주장해 온 북한의 줄기찬 노력도 평가해야 한다. 남북 공동대응이야말로 둘이 아니라 셋도 되고 넷도 되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민간의 힘이다. 전 세계 사이버 전장에서 동해되찾기, 독도영유권, 역사교과서 왜곡시정 등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 ‘사이버 독립군’ 반크(www.prkorea.com) 같은 존재가 유독 빛나 보인다. 일본해만 쓰던 내셔널지오그래픽이 동해 병기로 돌아선 것도 이들의 공로다. 사재를 털어 동해표기 옛 지도를 전 세계에서 수집해 온 이들의 희생도 기려야 한다. 일본의 국가팽창주의가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인다 해도 시민의 힘을 꺾을 수는 없는 일. 갈등이 심해지면서 불행하게도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국가주의의 병폐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양국의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을사늑약 100주년에 과거 반성은커녕 해묵은 갈등이 동해에서 재연되고 있으니 한·일 양국의 선량한 백성에게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이번 시마네현 폭거를 계기로 독도뿐 아니라 동해표기, 나아가서 예상되는 중국과의 갈등까지 먼 바다를 내다보는 대응책으로 해양전략의 차원을 끌어올릴 것을 국가 및 우리사회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 [누드 브리핑] 이명박 시장은 작명가?

    서울시 조직을 들여다보면 ‘푸른도시국’이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에 띈다. 서울시 공원관련업무를 비롯, 뚝섬 서울숲 조성 등 굵직굵직한 일들을 맡고 있는 부서의 이름이다. 공무원 사회의 기존 부서의 이름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푸른도시국’은 이명박 시장이 직접 이름을 지었다. 당초 조직을 확대 개편하면서 이 부서의 이름으로 ‘녹지행정국’‘자연녹지국’‘자연행정국’등이 후보로 올랐다. 그러나 이 시장이 작명한 ‘푸른도시국’으로 새 부서의 이름이 정해졌다. 시 고위 간부들은 처음엔 ‘입에 붙지 않는다.’‘조직에 권위가 없어 보인다.’며 불편한 심기를 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시장의 ‘작품’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다. 서울시에 다시 작명해야 할 일이 두가지가 생겼다. 우선 ‘교통방송(TBS)’과 최근 새로 개국한 ‘TV서울’ 운영을 맡은 ‘교통방송본부’가 그 대상이다. 이 시장은 최근 정례간부회의에서 “‘교통방송본부’가 ‘TV서울’운영까지 맡게 됐으니 기존 명칭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개명을 지시했다.‘TV서울’은 교통 관련 내용보다는 시민들을 위한 생활밀착형 정보를 주로 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서대문 병원’이다. 서대문 병원은 병원신축과 더불어 노인·치매환자 전문병원으로 기능이 확대됨에 따라 시민을 대상으로 병원명칭을 공모했다. 그 결과 ‘서부병원’이 최우수작으로 선정됐으나 같은 이름의 개인병원이 은평구에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시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서북병원’으로 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이명박 시장은 ‘서부병원’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이 시장은 “‘서부병원’이 안된다면 ‘서부시립병원’은 어떠냐.”면서 새로운 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결국 간부회의에서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기로 했다.‘교통방송본부’‘서대문병원’의 이름이 어떻게 바뀔지, 이 시장의 작명실력이 이번에도 발휘될지 궁금하다. 김기용기자 kiyong@seoul.co.kr
  • [씨줄날줄] 창지개명(創地改名)/이용원 논설위원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 무엇인가? 정확히 말하면 ‘남대문’이 아니라 ‘서울 숭례문’이다. 보물 제1호도 ‘동대문’이 아닌 ‘서울 흥인지문’이다. 문화재위원회는 1996년 11월 ‘일제 지정 문화재 재평가작업’의 하나로 남대문·동대문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까닭은, 남대문·동대문이 고유명칭이 아니라 단순히 방향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며 일제가 처음 사용했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조선시대에 원래 사용하던 이름을 되찾아 준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나 두 이름을 바꾸려면 행정 기록 200여 가지를 변경해야 하므로 전면 교체는 되지 않았다. 한반도 지형에서 꼬리 부분으로 꼽히는 경북 포항시 남구 대보면 대보리 일대는 일제강점기에는 장기갑(岬)으로,1995년부터는 장기곶으로 불리다가 2002년 들어 호미곶(虎尾串)으로 이름을 확정했다. 이 곶은 16세기 이래 남사고·김정호·최남선 등의 학자가 “한반도는 대륙을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 상으로, 백두산이 코라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라 지목한 땅이다. 일제는 한반도를 호랑이 상이 아닌 토끼 모양으로 왜곡하면서 땅 이름도 장기갑으로 고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윗대는 성을 바꾸라는 창씨개명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창씨개명만 있었던 게 아니다. 남대문과 장기갑의 예에서 보듯 우리 산하와 역사유산을 깎아내리느라 땅·건물 이름도 바꾸는 ‘창지개명(創地改名)’을 했다. 이는 일제가 통치상 편의를 위해 행정구역을 멋대로 개편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그 결과 맛깔스러운 토박이말 지명은 사라졌으며, 지금 사용하는 지명은 지역 유래와는 상관 없는 엉뚱한 것이 되어 버렸다. 녹색연합이 백두대간이 지나는 32개 시·군을 조사, 일본식으로 왜곡한 지명 22가지를 찾아내 어제 공개했다.‘임금 왕(王)’자를 제 나라 왕의 칭호인 ‘황(皇)’자로 바꾸거나,‘일(日)’과 왕(王)을 합한 ‘왕(旺)’자로 고치는 등 잔꾀가 그대로 드러나는 ‘창지개명’이다. 우리 윗대가 광복이 되자 일본식 이름을 버리고 본디 이름을 찾았듯이 땅이름도 우리 것을 되찾아야 한다. 다만 남대문·동대문의 예에서 보듯 급작스러운 지명 변경은 혼란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정부 차원의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겠다. 이용원 논설위원 ywyi@seoul.co.kr
  • 서울 교장·교감등 478명 인사

    서울시교육청은 23일 교장·교감 및 교육전문직 중에서 291명을 승진시키고 187명을 전보하는 등 478명에 대한 인사를 실시했다. 교육장에는 지역교육청 교육장 1명을 전보 인사하고, 서울시학교교육원과 서울시교육연수원에서 각각 1명씩 승진 임용했다. ■ 서울시교육청 (초등 교장·교감) ◇교장 승진 △가동초 韓學洙△갈현초 李石雨△강월초 金正三△개명초 姜丙珉△개포초 金洪泰△거원초 張信守△경인초 金亨柱△고덕초 孫泳玉△고척초 曺大鉉△공덕초 李東洙△공릉초 白珉△금북초 趙容完△금천초 辛克模△금화초 李媛康△남명초 朴福羲△남성초 張相△논현초 李光圭△답십리초 林鍾寬△당서초 崔益大△덕수초 崔廣煥△덕의초 李義良△독산초 金錫鼎△동구로초 李福三△동명초 李揆翊△동원초 崔鍾化△동일초 申東福△등서초 金榮輝△등원초 金再鳳△매동초 金文子△면목초 崔昌均△문정초 鄭一燮△반원초 具炳柱△배봉초 金明根△백운초 李章炳△봉천초 弓在範△상신초 金震△상월초 徐榮錫△서신초 金敏淑△서일초 吳利子△석계초 羅華均△석촌초 李槿宰△성내초 權章煥△송파초 趙明秀△시흥초 李世雄△신기초 柳熙昶△신봉초 潘錫基△신석초 李秉國△신암초 金政雄△신양초 吳燦琡△신우초 尹連漢△신월초 崔英哉△신화초 朱重男△양강초 閔庚銀△양화초 李相秀△언주초 金敬子△연천초 朴敦善△연촌초 金鍾郁△염동초 李連俊△영남초 申敬福△영중초 林明銑△용답초 陶春元△원묵초 姜大熙△원신초 金鍾恩△유현초 高石千△윤중초 沈誠子△은천초 李秀福△이수초 李泳怡△인수초 金雄基△일원초 李正衡△장곡초 朱明植△장위초 허주백△조원초 權赫魯△창서초 閔庚燉△창신초 韓聖敎△창천초 朴潤文△청덕초 曺壹鎬△충무초 李炯烈△태랑초 河光伯△한남초 申賢佐△한산초 朴德珍△한천초 李連伊△화일초 尹植◇교장 전보△우신초 曺奎榮△염리초 姜聲吾△위례초 朴姬暻△광장초 金鎔湳△대도초 李柱炯△대모초 丁海哲△보라매초 朴栽相△양진초 文載日△서울경운학교 南相仁◇초빙 교장△북한산초 趙載旭△상천초 梁順烈△송중초 金張會△신곡초 金鎭泰△경일초 尹起正◇교육전문직에서 교장으로 전직△신북초 鄭民杓△영도초 金東燮△중평초 李庸浩△대왕초 李相天△도곡초 李學信△마장초 金善姬△숭례초 李亨頀△영문초 安鍾仁△풍성초 崔光奎◇교감 승진△동부교육청 金榮睦 文英徹 白乙喜 安炅善 吳星煥 張孝範 鄭載林 車相萬 崔貞信△서부〃 景殷鎬 金永淑 金容碩 金柱錫 文榮惠 白琴子 徐在華 宋利道 尹炳男 李美子 池淸煥△남부〃 金城坤 李根和 李明子 林貞烈 張淳龍 張湧愛 全正順 崔庸晉 許貞淑△북부〃 金相佑 金相浩 金月奎 金仁泰 朴蘭姬 徐聖淑 宋信喆 安洗誾 梁昌植 王周漢 李成男 李允珩 李殷權 李鍾云 林錫奉 鄭秀元 韓錦淑 洪重烈△중부〃 金龍德 朴義根 魏東煥 李天熙 田大實 鄭姬△강동〃 金永東 金義卿 金正錫 朴性訓 朴後子 沈甲燮 安順子 尹炳姬 尹貞淑 李萬榮 李鍾淑 李訓默 林元奎 全良鎬 丁一燮 趙明姬 許鋌 許玉珍 黃鎬振△강서〃 金香南 白漢鍾 梁美瑛 嚴德欽 張元陽 崔殷淑△강남〃 權熙淑 柳明淑 文德心 申東翰 尹英淑 李先揆 李銀蘭 李鐘運 朱光進 崔太圭 韓信鍾 咸昌德 黃明運△동작〃 金文河 金潤姬 魯弘贊 柳熙公 朴眞淑 方明淑 劉賢根 尹順九 李在文 張敬子 鄭根澤 趙誠順 蔡鍾吉 洪春性△성동〃 金正烈 南朝玲 宋載植 李相卨 李亨雨 鄭完基 曹鮮英 車瑛鉉 洪明順△성북〃 金明雲 金明鎭 金俊會 金洪植 朴鍾錫 李鎔奇 林末淳 丁謹鎭◇교육전문직(사급)에서 교감으로 전직△서부교육청 任東讚△강서〃 安相淑△서울정진학교 申鉉武◇교감 청간 전보△서부교육청 金容禮△중부〃 梁先錫(초등 교육전문직) ◇교육전문직(관급) 승진 및 전보△동부 교육장 金柱南△남부 〃 金東來△학생교육원장 奇淸△강서 학무국장 景尙鎬△강남 〃 吳必桃△직할기관 부장 과학전시관 洪順植△본청장학관 교육정책총괄담당관 柳淵洙△〃 초등교육과 文重根 吳完淑◇교장에서 교육전문직으로 전직△직할기관 부장 학생교육원 李光陽△본청장학관 산업정보교육과 梁民鍾△지역교육청 초등과장 동부 金点玉△〃 강서 洪性姬◇교감·교장에서 교육전문직(사급)으로 전직△서울시교육청 宋征基 姜珉雨 李相卿△교육연구원 洪珠熙△동부교육청 金允淑△남부〃 李英順△강서〃 韓聖珏△동작〃 朴勝秀△성북〃 嚴龍洙◇교육전문직(사급) 전보△서울시교육청 沈今順 朴英順 任顯喆△동부 崔文煥△북부 裴昌植△강동 金長洙 金暎哲△강남 咸美愛(유치원)△장학사 전직 孟眞兒(중등 교장·교감) ◇교장 승진△마장중 朴宗華△신목중 權七善△신월중 田永煥△성서중 崔明淑△용산중 安榮淑△신구중 趙貞淑△청량중 柳炳柱△인헌중 韓昌錫△방산중 崔貴男△성산중 鄭炯朝△방화중 梁聖穆△노일중 李龍豪△인수중 申誠△성일중 朴炯吉△영원중 金占子△노원중 朴相義△당산중 黃勇△성수중 金蕙媛△신천중 李英恩△삼각산중 鄭萬珍△선린중 南日祐△성재중 朴聖喆△삼선중 金玉杞△등명중 孫成俊△구일중 李福均△성내중 朴海安△광장중 吳錦淑△대림중 金然城△구룡중 曺永權△중원중 韓奎根△난우중 朴然祚△신동중 禹鍾順△백석중 李相悳△상경중 姜熙昌△연서중 趙明春△용곡중 都憲基△오륜중 盧基哲△연신중 任文赫△개웅중 崔萬善△중평중 朴弘烈△신림중 安泰根◇교감에서 초빙교장으로 승진△영서중 朴海英△월계중 閔庚晄◇교장에서 초빙교장으로 임용△도봉정보산업고 朴魯元◇교장 중임△신현고 金貞鎬△경동고 朴熙琥△고척고 宣炯基△무학중 洪性武◇교육전문직(관급)에서 교장으로 전직△오금고 朴淳晩△청담중 安明洙△창덕여자중 金良玉△구로고 申逑泳△서초고 鄭鳳燮△청담고 朴承培△서울과학고 洪達植△개포고 柳点永◇교장 전보△선유고 李珍浩△월계고 金炯柱△불암고 朴洙煥△인헌고 安明秀△구일고 楚富美△서울여자고 金連順△경인고 崔英子△성동여자실업고 孫慶姬△강서공업고 高錫達△서초전자고 趙南守△행당중 趙明元△신수중 姜行高△문성중 李永華◇교사에서 교감으로 승진△성동교육청 金容烈△남부〃 朴榮敏△강남〃 張梧淳△동작〃 吉恩植△북부〃 丘在△동부〃 金叔衡△북부〃 金吉潤△동작〃 南炯祐 石金鍾△강남〃 千炳旭△동부〃 安奉熙△강남〃 姜榮守△성북〃 申永大△남부〃 尹錫蓮△중부〃 徐新錫△강동〃 白光洙△강서〃 崔炳潤△서부〃 柳命浩△남부〃 閔承玉△성동〃 金在燮△동부〃 趙厚默△서부〃 沈在鴻△성동〃 申仁浩△동부〃 許成日△성북〃 秋明姬△강서〃 金宗淵△서부〃 李在燁△북부〃 張萬圭△성북〃 柳濟辰△동작〃 李榮植△청량고 金應甲△남부교육청 金仁會△성북〃 孫曙奎△동부〃 金聖泰△강서〃 李熙澤△동작〃 金元鎬◇교육전문직에서 교감으로 전직△서부교육청 姜聲奉△영등포여자고 趙正順△광남고 吳永秀△중화고 黃仁△중경고 金慶子△서울체육고 全鏞東△강서교육청 李惠順△잠실고 이완석△혜화여자고 申愛顯△구정고 林溶雨△북부교육청 宣鍾福△강남교육청 金泰彬△인헌고 任昊城△경기고 閔丙官△북부교육청 李允植△구일고 羅玄洙△강남교육청 徐外順△경기여자고 吳樂鉉◇교감 전보△누원고 鄭海柱△금천고 黃龍虎△경복고 金光河△오금고 金正雄△경인고 尹興重△동부교육청 趙成泰△강동〃 李英姬△강서〃 南蓮姬△동작〃 李英愛△도봉고 李景錫△용산고 宋在旭△경기기계공업고 曺湧△선린인터넷고 梁重卜△불암고 崔秉洙△선유고 崔鎭福△월계고 李峰雨(중등 교육전문직) ◇교육전문직(사급) 승진△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책국장 金永鎰△과학전시관장 金永俊△중등교육과장 鄭夏培△교육연구원 부장 辛豪根△과학전시관 〃 鄭會台△남부교육청 金光龍◇교장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서울특별시교육청 崔相圭 李漢準△교육연수원 金龍滿◇교감에서 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직△서울시교육청 金太洙 金世辰 鄭世萬 金顯中 李時雨 安載協△성북교육청 韓益燮◇교육전문직(관급)으로 전보·전직△강남교육청 교육장 金明奎△동부교육청 학무국장 李基成△남부〃 〃 李秀煥◇교사에서 교육전문직(사급)으로 전직△교육연구원 梁賢熟 崔令圭△과학전시관 金出培 兪景植 金鍾安△동부교육청 鄭大榮 文貞姬△서부〃 朴壽和△남부〃 白壽吉 金永植△북부〃 田溶珏 韓洪烈△강동〃 趙成子 李点順△강서〃 金承燦△강남〃 李貞姬 金德中 申鉉淑△동작〃 尹建鎬△성북〃 鄭煥熙◇교육전문직(사급) 전보·전직△서울시교육청 감사담당관실 李瓘培△교육정책총괄담당관실 羅澄基△혁신복지담당관실 李元淑△중등교육과 趙榮相 李銀淑 金南訓 金年倍 李元徽 金宇炅 심현각△산업정보교육과 李夏敎△평생교육체육과 林震洙 牟相琪 이동환△교원정책과 尹昊相 李準龍 田炳華 金昌東△과학교육활성화추진단 禹一岩 金容聖△교육연구원 金善子 柳長全 尹信德 崔熒哲△교육연수원 馬熙昌 柳鍾度 洪貞愛△학생교육원 李在承△과학전시관 具滋洪 金基順△학생체육관 辛鍾鉉△북부교육청 安載弘△강서교육청 金南亨△강남〃 林國澤△성동〃 洪永鎬 辛承寅(특수 교장) ◇교감에서 교장으로 승진△서울정민학교 鄭鉛花
  • 매운맛 열풍… 전국이 ‘얼얼’

    매운맛 열풍… 전국이 ‘얼얼’

    ‘전국이 불바다?’ 매운맛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혀가 얼얼한 불닭을 시작으로 불삼겹, 불오징어, 불오뎅, 불냉면 등 음식메뉴에 온통 ‘불’자를 앞세우고 있다. 맵다는 뜻의 ‘불’자만 붙으면 아무 음식이나 잘 팔리니 너도나도 ‘불’자를 넣어 메뉴를 만들어 내고 있다. ●불닭요리가 매운 맛 주도 ‘불닭’으로 불리는 불닭요리는 지난해부터 맹위를 떨쳐 불황속 ‘대박음식’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불닭체인점인 ‘홍초불닭’,‘신촌불닭’,‘원조불닭’ 등은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3∼4개에 머물던 체인점 수가 불과 2년여 만에 40여개로 늘어났다. 붉은 고추를 상징하는 붉을 ‘홍(紅)’과 매울 ‘신(辛’),‘불’자로 구성된 이들 체인점의 명칭은 맛만큼이나 자극적이다. 홍초와 신촌·원조불닭은 그나마 나은 편.‘열불닭’이라고 이름을 붙인 체인점이 있는가 하면,‘불타는 삼국지’도 있다. 화자가 들어가는 ‘화개장터’, 홍콩영화제목을 본딴 ‘닭불지존’, 불닭을 한자어로 그럴 듯하게 표기한 ‘화라계(活火鷄)’도 있다. 여기다 ‘앞차기불닭’과 ‘꼬장불닭’까지 점입가경이다. 한 업소 종업원은 “일부 매운맛 초심자들은 불닭을 시켜놓고 매운맛에 화들짝 놀라 젓가락을 집어던지며 화를 내기도 한다.”면서 “그러나 이런 손님들이 몇번 더 먹어보고 오히려 단골이 된다.”고 말했다. ●매운맛 열풍 모든 음식으로 불닭전문점들은 고추장소스를 이용해 불닭발과 불쭈꾸미, 불오징어를 만들어 메뉴를 다양화시키고 있다. 삼겹살집들은 고추장소스에 숙성시킨 ‘불삼겹’이란 메뉴를 내놓았다. 매운 양념에 돼지삼겹살과 오징어를 함께 재운 ‘오삼불고기’도 나왔다. 오뎅전문점들은 ‘불오뎅’을, 떡볶이집들은 ‘불떡볶이’를 만들어 승부를 걸고 있다. 냉면도 ‘불냉면’이 탄생, 매운맛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족발집도 매운소스에 족발을 삶거나, 기존 족발을 매운소스에 곁들여 먹는 ‘불족발’을 선보였다. 라면은 ‘빨개떡라면’으로, 닭날개요리인 버팔로윙은 ‘불날개’로 창씨개명(?)했다. 빨간 양념으로 구워낸 ‘불꽃게구이’는 신촌일대에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소시지는 ‘불소시지’로 이름을 바꾸고 매운맛과 동거에 들어갔다. 매운맛이 유행하면서 불닭 고추장소스를 직접 만드는 비법을 알려주는 요리학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스샘플만 가지고 가면 똑같은 소스제조기법을 알려주는 곳도 있다. 매운맛 열풍에 고추만 살맛났다. 국내 고추 소비량은 한해 18만t가량. 인스턴트 음식과 식생활 변화로 1인당 소비가 줄어 한동안 걱정거리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매운맛 열풍놓고 해석 제각각 농협중앙회 식품연구소 최경근(43)팀장은 “속이 상하면 독한 소주를 삼키듯 불황속에 자극적인 음식을 찾는 것이 당연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매운맛 열풍을 반영하듯 고추장 소비도 많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김재휘(45) 중앙대학교 심리학과교수는 “매운맛도 음식의 다양화에 포함시킨다면 불황보다는 호황에 걸맞는다고 본다.”며 “그렇다면 불황이라고는 하지만 식생활수준은 과거에 비해 나아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운맛에 항암작용이 있다는 연구보고 때문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서울대와 영남대 등 일부대학 교수들은 고추의 매운 성분인 캡사이신이 암발생을 억제한다는 논문을 줄줄이 발표했다. 이는 자극적인 음식이 위점막을 손상시켜 결과적으로 위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일반적 통설을 뒤집은 것이다. 특히 캡사이신이 많이 들어 있는 고추는 체내의 불필요한 지방을 분해시키는 데 작용한다고 해 매운 음식이 다이어트식품으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고추 다이어트 열풍이 불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글 사진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朴 前대통령 日軍병적 공개…44년 소위 임관

    10·26을 다룬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상영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제 당시 병적기록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국가기록원은 2일 기록원에 보관 중이던 박 전 대통령의 ‘임시군인군속계(臨時軍人軍屬屆)’를 공개했다. 이 자료에는 일제시대 때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로 창씨개명한 박 전 대통령이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와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한 날짜와 문서 제출 당시 박 전 대통령의 소속부대 명칭 등이 기록돼 있다. 이 문서는 박 전 대통령의 큰형인 고(故) 박동희씨가 박 전 대통령의 병적사항을 알리기 위해 작성해 경북 구미 면사무소에 제출한 것으로, 그동안 국가기록원에 보관돼 왔다. 문서는 박 전 대통령이 1940년 4월1일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해 2년을 보낸 뒤 42년 10월1일에 일본육군사관학교에 입교했으며,44년 12월23일 보병 소위로 임관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 박 전 대통령의 큰형인 동희씨가 이 문서를 작성해 경북 구미면사무소에 제출한 45년 3월 박 전 대통령은 연대급 부대인 만주국 육군 보병 제8단에 근무 중인 것으로 적혀 있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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