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개명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새해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만화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AI 교육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 의성
    2026-02-20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306
  •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배트맨 “이름 함부로 짓지 마,후손들이 애 먹어”

     아이들의 이름을 잘못 지어 후회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나도 그런 축일까.하나밖에 없는 딸아이 이름을 ‘은별’이라 지었더니 “그럼 첫째는 금별이겠네요?”라고 묻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딴에는 ‘(그리운) 임은 별(같은 존재)’란 식으로 ‘문학적으로 지었다.’고 우기지만 그딴 설명이 통할 리 없다.  그래도 다음 사람들에 견주면 난,꽤 성의있게 이름을 지은 축에 들지 않을까.1일 야후 닷컴에 그레이엄 우드란 블로거가 올린 글 ‘아이 이름으로 지어선 안 될 6가지 이름’에 소개된 사례들은 정말 기가 막힐 정도다.    아이 이름으로 ‘애플’이나 ‘파일럿’을 떠올리는 건 애교로 보아 넘겨야 한다.정말로 아이가 자랄 때 어려움을 겪기 원한다면 다음 6개 리스트에서 골라 내기만 하면 된다.    1.배트맨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독창적인 민족 중 하나다.지난해 9월 베네수엘라 정부는 슈퍼맨이나 배트맨으로 아이들 이름을 짓는 이들이 하도 늘어 100가지의 스페인식 이름(예를 들어 후아티나나 미구엘 같은)을 권장하기까지 했다.그랬더니 왠걸,호치민(베트남 공산당 창건자)과 아이젠하워(미국 대통령)를 아기 이름으로 붙이는 이들이 부쩍 늘었단다.물론 히틀러란 독창적인(?) 이름을 갖고 있는 베네수엘라인은 적어도 60명이나 된다.    2.이클립스 글래시스  2001년 6월 아프리카 남부에서 완전 개기일식이 있었다.짐바브웨와 잠비아 정부는 주민들에게 태양을 맨눈으로 쳐다보지 말 것을 권장하는 캠페인을 벌였는데 이 캠페인이 참 잘도 먹혔던 것 같다.이때 출생부를 들여다 보면 이클립스 글래시스 반다,토털리티 주,애뉼라 맥홈보 같은 이름들이 수두룩하다.    3.NAAKTGEBOREN(벌거숭이)  나폴레옹이 1810년 네덜란드를 점령했을 때 현지인들은 이름 하나 만으로 살고 있었다.즉 라스트 네임이 없었다.프랑스인들 역시 수십년 전에는 이랬었다.해서 나폴레옹은 모든 네덜란드인들은 성을 갖도록 명령했고 네덜란드인들은 저항 정신을 드러낸답시고 기발한 성을 갖다붙였다.이렇게 해서 NAAKTGEBOREN(벌거숭이),SPRING INT VELD(들판에 점프),PIESTS(오줌발)란 성이 탄생했다.후손들에겐 매우 불행한 일이었지만 나폴레옹의 정책은 꽤 오래 버텼고 때문에 이들 성은 오늘날 네덜란드인에게 여전히 남아 있다.    4.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아이슬랜드 사람들은 이름을 매우 신중하게 짓기로 유명하다.절대 남의 나라 사람들의 성을 따와선 안 되기 때문이다.러시아의 거장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가 아이슬랜드에 귀화를 신청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정부는 고민 끝에 예외를 인정했고 이 이름은 아이슬랜드에서 공인된 몇 안 되는 이름에 오르게 됐다.    5.YAZID  이맘 후세인 이븐 알리는 시아파 무슬림 신도들의 추앙을 받는 인물 중 하나.7세기쯤 그는 수니파 칼리프인 야지드에 의해 참수를 당했다.그리고 이슬람 역사 최대의 음모극이 된 이 사건 이후 야지드는 수니파에게선 흔한 이름으로,시아파 사이에선 경멸스러운 이름으로 각인됐다.말하자면 스탈린이나 히틀러를 아들의 이름으로 붙이는 것과 같은 것 말이다.    6.아돌프  죽음의 수용소와 파시즘으로 상징되는 아돌프란 이름 역시 부모들이 아이들의 이름으로 금기시하던 것이었다.그러나 1949년에 한 불행한 젊은이가 그 이름을 얻었다.히틀러의 조카 윌리엄 패트릭 히틀러의 아들이었다.윌리엄 패트릭 히틀러는 1930년대 히틀러와 맞서 싸우기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인물인데 왜 그가 개명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지금 57세인 알렉산더 아돌프 히틀러를 포함한 아들 넷은 ‘총통’의 가계도를 끝내 버리기 위해 자손을 갖지 않기로 서로 약속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모진동 “화양이라 불러주오”

     광진구가 지역 주민들이 원하는대로 ‘모진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화양동’으로 바꾸기로 했다.주민들은 유래가 좋다고 여기는 동네이름을 원했다.  26일 광진구에 따르면 모진동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때 ‘모진 여인들이 모여사는 동네’라는 의미에서 유래한 동네 이름에 늘 불만을 가졌다.어감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래를 알아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모진동 주민들은 구청에 정식으로 법정동 이름 변경을 요청했다.이에 따라 구는 지난 9월부터 두달 동안 모진동의 전체 1249가구 중 설문에 응한 964가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90.6%인 874가구가 “화양동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이를 근거로 다음달 구의회 의견을 듣고 행정안전부의 법정동명 변경 승인과 조례 개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에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특히 건국대는 캠퍼스가 넓어 모진동과 구의동,자양동,화양동 등 4개 동네에 걸쳐 있으나 법정 경계를 임의로 조정해 화양동으로 단일 편입시키기로 했다.  광진구 관계자는 “동네 이름이 기분 나쁜 유래를 갖고 있다고 무조건 개명 요청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에 좋은 의미의 동네 이름이 있었고,주민들도 원하는 만큼 정부에 개명을 요청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농부의 삶은 역사가 됐다

    농부의 삶은 역사가 됐다

     평생을 땅과 함께 한 농투성이 김씨의 삶은 그렇게 역사가 됐다.  해질녘 탁배기 한 사발 걸친 뒤 흥얼거리며 끌고왔던 지친 손수레도,그 위에 실린 녹슨 쇠스랑,이빠진 낫도,딸아이의 부러지고 닳은 30년 전 18색 ‘왕자 크레파스’도,그가 드나든 노인회관의 꾹꾹 눌러쓴 금전출납부도 모두 힘겨운 역사를 구성하는 한 조각들로 남겨졌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만들어온 땅과 삶,호남평야 농부 김씨의 한평생’ 특별전이 19일 개막됐다.일제 강점기,바다를 메워 논을 만든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으로 이주한 뒤 평생을 살아온 평범한 시골 농부의 삶을 일대기로 재구성해서 담아냈다.현대사를 힘겹게 헤쳐온 민초들은 물론,세상 모든 부모들의 고단했던 삶에 바치는 자식 세대의 헌정(獻呈)이다.‘호남평야 농부 김씨’는 지금도 현지에 살고 있는 김성문(83)씨가 모델이 됐다.  특별전이 열리는 기획전시실로 들어서면 전북 김제시 광활면으로 가는 고속도로 영상이 입체감 있게 펼쳐진다.광활면 너른 들녘으로 떠나는 여행이자,부모의 지난 삶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여행이 시작된다.그리곤 곧바로 남루하고 보잘 것 없는,그러나 억척스럽게 논을 일구고 삶을 일궈낸 ‘농부 김씨’들의 땀과 흙냄새가 진하게 밴 물건들과 만나게 된다. 호남평야의 농부들은 1920,30년대 한반도를 식량전초기지화하기 위한 동진농업주식회사의 간척지 사업에 동원됐다.일제 수탈의 역사와 직접적인 첫 만남이었다.그렇게 만들어진 540만평(1800정보)의 농토에서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으로 일했지만 소출의 절반은 빼앗겼고 비료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것도 없었다.  그 부모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제는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백발 성성해진 80대 노인들은 당시 ‘진봉공립국민학교’를 다니며 일본어를 국어로 배웠고,졸업명부의 창씨개명한 일본식 이름을 살짝 지우고 원래 성씨를 쓰는 나름대로의 ‘저항’도 했다.  이들은 1952년 방조제가 무너져 마을이 온통 침수됐을 때는 당시 250억원이 들어가는 보수가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정부가 방치해버린 방조제를 스스로 다시 쌓는 억척스러움이 있었다.  또한 1970년대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농업용수를 식수로 받아써야 했다.그러다보니 콜레라로 희생되는 이들이 속출하기도 했다.그야말로 ‘밤새 안녕’의 시대를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힘겨워도 시대를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가족이다.  혼례식에 썼던 투박하게 깎은 기러기,친정 어머니의 혼수품인 버선본,8남매를 기르느라 힘겨운 며느리 생각에 전주에서 2시간을 짊어지고 왔다는 시아버지의 재봉틀 등이 전시돼 있다.또 아이들 세 발 자전거,때만 되면 늘 한바탕 소동을 벌이곤했던 초등학교의 채변봉투,생활통신표,미술에 소질 있다며 늘 자랑스레 간직해온 딸의 그림 등은 부모의 가없는 사랑을 짐작하게 해준다.  전시장 곳곳을 눈으로 보고,귀로 듣다 보면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훈훈해짐을 느낄 수 있다.부모와 자식이 함께 둘러볼 만하다.무료. 다음달 22일까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씨줄날줄] 삼각산 제이름 찾기/노주석 논설위원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병자호란 때 척화파였던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 가면서 읊었던 시조다. 그런데 당시 김상헌이 보았던 ‘삼각산’은 지금 어디에도 없다. 고려사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표기돼 있던 천년을 내려온 ‘3개의 뿔산’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공식문서와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일제 때 경성제국대학 교수 이마니시 류(今西龍)와 조선총독부의 분탕질 탓이다. 그는 1916년 총독부에 ‘북한산 유적조사 보고서’를 제출했다.‘삼각산 유적조사 보고서’를 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실수였는지, 총독부의 의도된 기획이었는지 확인할 길은 없다. 다만 ‘창씨개명’을 행한 일제의 ‘창지(創地)개명’ 그림자가 어른거릴 뿐이다. 일인 사학자를 원망할 일만도 아니다. 삼각산과 북한산으로 혼용되던 명칭은 1983년 정부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면서 북한산으로 고착화됐다. 정기 어린 이름은 그 때 사라졌다. 어디 삼각산뿐만이랴. 경복궁과 청와대의 뒷산인 북악산은 원래 백악산(白岳山)이었다.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놀이터화하면서 격하한 원남동, 원서동도 궁남동, 궁서동이었다. 일제가 대한민국의 심장부 산에 북(北)자를 즐겨 붙인 이유가 따로 있다는 어느 향토사학자의 주장도 일리있다. 북자가 북쪽 뿐아니라 달아나다, 패하다, 등지다, 분리하다란 ‘나쁜 뜻’을 두루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각산 제이름 찾기’가 삼각산이 자리한 지방자치단체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서울 강북구 김현풍 구청장이 주인공이다. 그는 1996년 강북문화원장 재임 때 삼각산 이름 회복 운동을 시작했다.2002년 구청장에 당선되자 정부에 북한산의 명칭을 변경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후 삼각산 명칭복원 서명운동, 삼각산 국제포럼, 삼각산 종합 세미나, 삼각산 제이름 찾기 범국민추진위원회 구성, 삼각산 제이름 찾기 심포지엄으로 12년째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그의 집념은 삼각산이 제이름을 찾는 그 날까지 멈추지 않을 듯싶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한국사회 오바마를 말하다] ‘코리안 드림’ 꿈꾸는 아이들

    [한국사회 오바마를 말하다] ‘코리안 드림’ 꿈꾸는 아이들

    버락 오바마가 미국 첫 흑인대통령으로 탄생하면서 국내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흑인혼혈인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의 방한 등을 계기로 다문화가정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나아지긴 했지만, 이들이 사회로부터 받는 차별은 여전하고 뛰어넘어야 할 벽은 높다. 이에 한국사회의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과 원인, 그리고 해결책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흑인 혼혈 2세로 고등학교 2학년인 김모(17)군의 성적은 반에서도 상위권에 든다. 김군의 희망은 변호사가 돼 이주노동자, 혼혈인 등을 돕는 것이지만 가정형편이 힘들어 대학 진학이 어려운 상태다. 아버지 김모(44)씨는 한국사회의 편견 때문에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을 수 없었고, 일용직 노동자로 전전했다. ●주민증 내밀때마다 “위조한 거 아냐” 의심 역시 흑인 혼혈 2세인 박모(34)씨는 중학교를 중퇴한 뒤 일용직 일자리를 전전하며 살아왔다.‘우리는 단일민족국가’라는 교과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친구들의 편견이 싫었다. 학교에서 도난사고가 발생하면 으레 자신을 의심하는 시선도 참을 수 없었다. 성인이 된 지금도 주민등록증을 내밀 때마다 ‘위조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오바마가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시민들은 “오바마를 선택한 미국인들에게서 다문화 존중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오바마를 꿈꾸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은 여전히 사회적 무관심과 편견으로 위협받고 있다. ●“엄마는 외국인” 왕따 당할까봐 개명 오바마의 승리를 지켜본 직장인 유환선(40·성남시 분당구)씨는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답다. 우리나라도 사회·문화적으로 여러 인종들이 어우러져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지영(29·여·서울시 강남구)씨도 “보수적인 미국인들이 그를 택했다는 게 놀랍고 배울 만하다.”면서 “그가 미국경제를 회복시켜 한국경제도 나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하지만 여성결혼이민자들은 한국사회는 다문화에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놀림을 받지 않도록 국적변경뿐 아니라 개명도 해야 한다. 1999년 12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혼인 이주한 성모(32)씨는 올해 초 한국이름으로 바꿨다. 초등학교 2학년인 딸 정모(8)양이 친구들에게 “엄마가 아프리카 사람이냐.”는 등의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농촌의 경우 다문화가정이 도시보다 많지만 사정은 더 열악하다. 도시와 달리 어린이집이나 학원이 없어 기초적인 한글 교육이 힘들고, 농번기에는 더욱 아이에게 신경을 쓸 수가 없다. 전남에 사는 황모(29·여·베트남)씨는 “7살된 아들의 한글실력이 또래에 비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글을 가르쳐주지 못해 늘 미안하다.”고 말했다. ●어떤 법도 편견을 없앨 수는 없다 혼혈아이를 둔 부모들은 사회적 편견은 아이의 정서에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왕모(39·여·중국)씨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아동 심리치료를 받도록 해야 했다. 외국인 아내를 둔 유모(45·조선업)씨는 “따돌림 당할 게 뻔해 학교에서 엄마가 외국인이라고 절대 말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어떤 법도 사회적 관심보다 못하다고 조언했다. 특히 한국사회는 다문화가정에 대한 홍보는 많지만 실질적인 대책은 부족하다. 배기철 국제가족총연합회장은 “교과서에서 ‘순혈주의’·‘단일민족’이라는 단어만 빠졌을 뿐 한국인들의 단일민족주의는 여전하다.”면서 “지금 한국의 오바마를 꿈꾸는 아이들이 컸을 때는 사회가 많이 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2003년 차별금지법이 생겼지만 이마저도 강제력이 없다. 사회적 편견은 이들이 변호사나 정치인 등 사회주류로 편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나마 연예계나 체육계 진출이 이들에게는 희망이다. 여성정책연구원 장미혜 연구원은 “제도나 정책보다 사회적 차별을 없애도록 다른 문화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감수성을 강화하는 시민교육이 필요한 시점”이라면서 “현재 다문화가정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교육을 일반학생과 시민들에게 확대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주 장형우기자 kdlrudwn@seoul.co.kr
  • [Seoul In]

    성북구(구청장 서찬교) 오는 22일 돈암초등학교 교육문화관에서 ‘2008 성북구 아리랑 동요제’를 연다. 경연은 유치원부 중창, 저학년부 독창과 중창, 고학년부 독창과 중창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진행한다. 지역에 거주하는 어린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구청 홈페이지를 통해 오는 14일까지 신청하면 된다. 가정복지과 920-3287. 금천구(구청장 한인수) 축하·기념일에 화환 대신 쌀을 받아 저소득층을 돕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의 일환으로 지난달 17일 신청사 준공식 때 축하선물로 쌀을 받아 20㎏들이 530포(시가 2500만원 상당)를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장애인 등에게 전달했다. 또 준공식이나 취임식에 화환 대신 쌀을 받아 전달하는 ‘꽃보다 아름다운 쌀’ 운동에 지역의 다른 관공서와 기업들이 동참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총무과 890-2311. 중랑구(구청장 문병권) 망우본동, 상봉1동, 신내1·2동은 지난 2일 망우산 망우공원에서 주민 1000여명이 참가한 ‘망우산 사랑하기 한마음 걷기대회’를 열었다. 중랑 4권역 주민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만든 자리로, 오전 8시30분부터 사색의 길, 동화천, 동락천을 순회하는 7㎞ 코스에 걸쳐 진행됐다. 망우본동주민센터 2209-6011~4. 중구(구청장 정동일) 한국효도회 중구지회가 발족한다.5일 구청 대강당에서 정동일 구청장과 나경원 국회의원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효도회 중구지회 발대식을 갖는다. 정 구청장은 각 동에서 추천받은 효행 우수자에게 효행 상패를 수여한다. 이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부모를 공양하거나 외롭고 소외받는 홀몸노인을 방문해 효를 실천했다. 사회복지과 2260-1716. 강북구(구청장 김현풍) 10일 프레스센터에서 삼각산 이름을 되찾기 위한 학술대회가 열린다.‘삼각산 제이름 찾기 범국민추진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심포지엄에서 ‘삼각산 명칭의 정통성에 대한 고찰’과 ‘삼각산 명칭에 대한 역사적 검토’를 주제로 논의가 이뤄진다. 일제에 의해 개명된 북한산의 원래 이름인 삼각산을 되찾아 주자는 취지다. 삼각산은 백운봉과 인수봉, 만경봉의 세 봉우리가 세 뿔처럼 우뚝 솟아있다고 해서 고려시대에 붙여진 이름이다. 자치행정과 901-2040. 양천구(구청장 추재엽) 골목길 클린봉사단, 학생 클린봉사단의 체험수기를 공모한다. 우수한 작품을 모아 청소체험 사례집으로 만들어 청소자율참여 분위기를 확산시켜 나갈 예정이다. 체험수기 사례 응모는 양천주민(양천 클린봉사단, 학생클린봉사단, 골목길 자율청소 참여자, 청소처리시설 체험자, 청소담당 공무원 등)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접수기간은 29일까지이다. 청소행정과 2620-3427. 도봉구(구청장 최선길) 보건소에서는 지난 1일부터 보건소를 방문하지 않고도 인터넷으로 민원 발급이 가능해졌다. 인터넷 민원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보건소 홈페이지나 공공보건포털을 접속해 회원가입한 뒤, 증명 발급이 가능하다. 단 개인 공인인증서가 있어야 한다. 보건행정과 운영팀 2289-8413.
  • ‘슈퍼히어로 이름’ 모아 개명한 英10대 화제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울버린, 헐크, 플래시를 합친 것보다 더 빠른 캡틴 판타스틱’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 광고 카피가 아니다. 최근 영국에서 화제가 된 실제 이름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온라인판은 “영국 서머셋 주에 사는 한 십대가 슈퍼히어로들의 이름을 나열한 긴 이름을 갖게 됐다.”고 3일 보도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음악학교 졸업생 죠지 가렛(19). 그는 지난주에 정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새 이름은 ‘Captain Fantastic Faster Than Superman Spiderman Batman Wolverine Hulk And The Flash Combined’.(캡틴 판타스틱 패스터 댄 슈퍼맨 스파이더맨 배트맨 울버린 헐크 앤드 더 플래쉬 컴바인드) 유명한 만화와 영화속 슈퍼히어로가 총 출동하는 특이하고 긴 이름이다. 이중 ‘캡틴 판타스틱’은 60년대 영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다. 이같은 특이한 이름을 갖게된 가렛은 “개성있게 보이고 싶어서 슈퍼히어로의 이름을 따왔다.” 고 밝혔다. 그러나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이름을 바꾼 것은 미친짓인 것 같다.”며 뒤늦게 후회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문설주 기자 spirit0104@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병자호란 다시 읽기] (95) 三學士의 최후

    인조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로 상징되는 치욕적인 항복과 함께 전쟁은 끝났다. 하지만 귀천을 막론하고 조선 사람들의 참혹한 고통은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인조를 대신해 볼모로 끌려가는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화친을 방해하여 전쟁을 불러왔다는 ‘죄목’으로 연행되는 삼학사, 경향 각지에서 청군에 붙잡힌 수십만의 포로. 그들은 청군의 엄중한 감시 속에 심양(瀋陽)을 향해 걷고 또 걸어야 했다. 그들 앞에는 과연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까? 고통 속에 끌려가는 사람이나, 슬픔을 삼키며 그들을 보내는 사람이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통곡했다. 그리고 곧바로 삼학사의 죽음 소식이 날아들었다. ●홍익한, 윤집, 오달제 삼학사 가운데 가장 연장이었던 홍익한(洪翼漢·1586~1637)은 당시 52세였다.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으로 진사 홍이성(洪以成)과 안동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 습( )이었는데 뒤에 익한으로 개명했다. 이정구(李廷龜)의 제자였던 그는 1615년 소과(小科)를 거쳐,1624년 이괄의 난이 일어났을 때 공주에서 정시(庭試)에 급제했다. 이후 언관직을 두루 역임하고 병자호란 직전 사헌부 장령(掌令)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윤집(尹集·1606~1637)은 당시 32세였다. 본관이 남원이었던 그는 현감 윤형갑(尹衡甲)과 황씨의 소생으로 일찍이 백형 윤계(尹棨)에게 수학했다.1627년 소과에 급제하고 1631년 별시(別試) 문과에 급제했던 그는 1636년 당시 홍문관 교리(校理)였다. 윤집은 김상헌의 조카딸과 결혼하여 3남을 두었는데, 후일 증손녀가 홍익한의 손자에게 출가하여 사후에 홍익한과 사돈 관계로 인연이 이어졌다. 오달제(吳達濟·1609~1637)는 당시 29세였다. 그는 해주가 본관으로 오윤해(吳允諧)의 셋째 아들이자 영의정을 지낸 오윤겸(吳允謙)의 조카였다.1627년 소과를 거쳐 1634년 별시 문과에 급제했고, 병자호란 당시 홍문관 수찬(修撰)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병자호란 당시 조정에는 삼학사 말고도 많은 척화신들이 있었다. 윤황(尹煌), 유철(兪 ), 이일상(李一相), 유계(兪棨), 정온(鄭蘊), 조경(趙絅) 등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이 세 사람이 청군에 넘겨지는 ‘희생양’으로 낙점된 까닭은 무엇일까?그것은 홍타이지의 칭제건원(稱帝建元) 사실이 알려진 직후 이들이 누구보다 격렬하게 홍타이지의 ‘참월(僭越)’을 비난하고 주화신(主和臣)들을 성토했기 때문이다. 홍익한은 1636년 2월 ‘홍타지이가 보낸 사신의 머리를 베어 명나라에 보내든가, 그것이 싫으면 나의 머리를 베라.’는 극렬한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오달제는 1636년 10월 ‘공론을 두려워하지 않고 방자하고 거리낌없이 화친을 시도하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최명길을 겨냥하여 직격탄을 날렸다. 윤집은 더 나아가 ‘명나라의 은혜를 배신하고 오랑캐와 화친을 주도하는 최명길은 진회(秦檜)보다 나쁜 자’라고 극언을 퍼부은 바 있었다. ●홍익한의 절개 청군이 철수할 때, 홍익한은 평양서윤(平壤庶尹)으로 있었다. 조정은 2월12일 증산현령(甑山縣令) 변대중(邊大中)을 시켜 홍익한을 적진으로 압송토록 했다. 변대중은 홍익한을 결박하여 심한 모욕을 주었고, 음식물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홍익한이 음식을 먹을 수 있게 결박을 풀어 달라고 호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조정은 청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그를 신속하게 압송했는데, 2월20일에 벌써 만주의 통원보(通遠堡)에 도착했다. 통원보의 청인들은 그가 끌려온 사연을 듣고 음식물을 내어 후히 대접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나만갑은 ‘병자록’에서 ‘개돼지 같은 청인들이 변대중 같은 조선 사람보다 훨씬 나았다.’고 통탄했다. 심양에 이르러서도 홍익한은 의연했다. 용골대가 그에게 ‘너의 나라 신료들 가운데 척화를 주장한 자가 퍽 많은데, 어찌 유독 너만 끌려왔는가?’라고 묻자 홍익한은 ‘작년 봄에 네가 우리나라에 왔을 때 소를 올려 너의 머리를 베자고 청한 것은 나 한 사람뿐’이라고 응수했고, 용골대는 웃으며 가버렸다고 한다. 홍타이지는 홍익한을 회유하기 위해 그를 별관에 가두고 연회도 베풀어 주려고 시도했다. 과거 수많은 명나라 이신(貳臣)들을 받아들인 경험이 있는 홍타이지의 입장에서 홍익한은 ‘전향’시켜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조선의 골수 척화파까지도 결국 홍타이지의 은덕에 감화되었다.’는 소문은 향후 조선을 제어하는 데 커다란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익한은 단호했다. 그는 글을 써서 자신을 회유하려는 홍타이지의 기도를 정면에서 반박했다.‘대명조선국(大明朝鮮國)의 잡혀온 신하 홍익한은 말을 알아듣지 못하므로 감히 글로써 밝힌다. 지난해 봄 금나라가 맹약을 어기고 황제라 칭한다는 말을 들었다. 맹약을 어겼다면 이는 패역한 형제이고, 황제라 칭했다면 이는 두 천자(天子)가 있는 것이다. 한집안에 어찌 패역한 형제가 있을 수 있으며, 천지간에 어찌 두 천자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하여 본래 예의를 숭상하고 직절(直截)을 기풍으로 삼는 언관으로서 맨 먼저 이 논의를 주장하여 예의를 지키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상소 한 장을 올림으로써 가정과 나라에 패망을 초래하였으니 만 번 도륙당한다 할지라도 진실로 달게 받을 뿐, 달리 할 말은 없다. 속히 죽여 주기를 바랄 뿐이다.’ ‘대명조선국의 신하.’이 말 속에 이미 홍익한의 의지가 오롯이 담겨 있었다.‘나는 조선의 신하이자 명의 신하이니 그대들 오랑캐와는 타협할 수 없다.’는 것이 홍익한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였다. 홍익한의 의지를 확인한 홍타이지는 곧바로 그를 처형했다. ●윤집과 오달제의 최후 윤집과 오달제는 청군 후발대에 이끌려 1637년 4월15일 심양에 도착했다. 홍타이지는 두 사람도 회유하려고 시도했다.4월19일 용골대가 두 사람을 앉혀 놓고 홍타이지의 말을 전했다.‘너희들이 척화를 외쳐 두 나라의 틈이 생기게 했으니 그 죄가 매우 중하다. 죽여야겠지만 특별히 살려주고자 하니 처자를 데려와 이곳에서 살겠는가?’ 윤집은 ‘난리 이후 처자의 생사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오달제는 ‘고통을 참고 이곳까지 온 것은 만에 하나라도 살아서 돌아가면 우리 임금과 노모를 다시 보기 위해서였다. 고국에 돌아갈 수 없다면 죽는 것만 못하다. 속히 죽여 달라.’고 응수했다. 격분한 용골대는 그들을 묶어다 심양 서문 밖에서 죽였다. 청인들은 시신을 수습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뒷날에도 뼈들이 쌓여 있는 형장에서 두 사람의 시신을 찾을 길이 없어 집안의 종들을 시켜 초혼(招魂)하여 온 것이 전부였다. 오달제에게는 노모와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심양으로 끌려갈 때 그가 남긴 시구(詩句)들은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그는 인조와 노모를 생각하면서 “외로운 신하 의리 바르니 부끄럽지 않고/임금님 깊으신 은혜에 죽음 또한 가벼워라/이생에서 가장 슬픈 일이 있다면/홀로 계신 어머님 날 기다리는 거라오”라고 읊었다. 아내에게 부치는 시도 절절하다.“부부의 은정 중한데/만난 지 두 해도 못 되었구려/이제 만리에 이별하여/백년 언약 헛되이 저버렸구료/땅 멀어 편지 부치기 어렵고/산이 첩첩하여 꿈조차 더디오/나의 살길 점칠 수 없으니/뱃속의 아이나 보호 잘하오” 윤집 집안의 사연도 처절하다. 병자호란 당시 남양부사(南陽府使)로 있던 윤집의 형 윤계 또한 전란 중에 순절했다. 그는 의병을 일으켰는데 기습을 받아 붙잡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윤계 또한 청군 앞에서 무릎 꿇기를 거부하다 혀가 잘리는 등 참혹한 죽음을 맞았다. 후손들은 왜란 당시 순절한 할아버지 윤섬(尹暹)과 윤계, 윤집의 글을 묶어 ‘삼절유고(三節遺稿)’를 펴낸 바 있다. 어쩔 수 없이 죽이기는 했지만 청조는 이후 삼학사의 절의를 인정했다. 그들은 삼학사를 기리는 사당을 짓고 비석을 세웠다. 강희제(康熙帝)는 훗날 ‘조선이 명나라 말년에도 끝까지 배신하지 않은 것은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찬양한 바 있다. 삼학사로 대표되는 조선의 ‘절의’는 청인들이 보기에도 분명 이채로웠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이봉창 의사 한때는 ‘모던보이’ 였다

    두 장의 사진이 있다.1932년1월 일본 도쿄 왕궁앞에서 히로히토 일왕 폭살을 시도하다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가, 거사를 앞두고 태극기 앞에서 폭탄을 양손에 들고 찍은 사진이다. 배경이나 구도는 똑같지만 한 장은 활짝 웃는 얼굴이고, 다른 한 장은 무표정한 얼굴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봉창 의사의 모습은 전자다. 하지만 후자가 진짜이고, 전자는 독립영웅의 결연한 이미지를 위해 누군가가 ‘창안´한 합성사진이라면? ‘기노시타 쇼조, 천황에게 폭탄을 던지다´(너머북스)의 저자 배경식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전작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에서 새로운 백범일지 분석을 시도했던 배 연구원은 이번엔 박제된 독립투사 이봉창이 아닌 식민지 시대를 살았던 인간 이봉창의 과장되거나 왜곡되지 않은 삶의 진실에 초점을 맞췄다. 기노시타 쇼조는 이봉창의 일본 이름이다. 억지로 창씨 개명한 것이 아니라 일본인으로 살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봉창이 스스로 바꾼 이름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봉창은 일본으로 떠나기 전까지 일제의 식민정책에 협조하며 근대문물의 혜택을 누린 ‘모던보이´였다. 차별에 대한 불만은 있었으나 반일 민족의식은 형성되지 않았다. 그러다 1928년 히로히토 즉위식을 보려고 오사카에서 교토로 갔다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유치장에 갇힌 뒤 자의식에 극전 반전이 일어난다. 이후 상해로 건너간 이봉창은 백범 김구를 만나면서 독립투사로 변모한다. 하지만 이봉창이 도쿄로 돌아가 폭탄을 던지기까지 20일간의 기록은 우리가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가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재구성한 이봉창의 행적에는 술마시고, 영화보고, 유곽에 드나들고, 골프를 치며 소일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저자는 “독립운동의 영웅과 식민지적 근대를 상징하는 인간형인 ‘모던보이´는 어울리지 않는 상반된 이미지 같지만 이봉창의 삶은 그 두 가지가 한 인간을 통해 복합적으로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영웅신화가 아닌 삶을 고민하는 인간의 역사로서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었고, 이봉창은 그런 문제의식을 보여 줄 수 있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콜럼버스 신대륙 발견일은 아메리카인 학살 시작된 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일은 아메리카인들에겐 학살이 시작된 날이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신대륙 발견 416주년인 12일(현지시간) 카라카스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원주민 대표 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AFP 등에 따르면 차베스는 연설에서 “베네수엘라 국민과 라틴 아메리카인들은 콜럼버스를 존경할 아무 이유가 없다.”면서 “오늘은 신대륙 발견 기념일이 아니라 원주민 저항의 날로 기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베스는 이날 “신대륙 발견일은 히틀러보다 악랄했던 외국인 정복자들이 150여년에 걸쳐 원주민 대학살을 시작한 날”이라면서 “우리는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지역에서 대략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집권 초기인 2001년 신대륙 발견 기념일인 10월12일을 ‘원주민 저항의 날´로 개명했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신대륙 발견일을 유럽 식민주의 관점 대신 원주민 노예화와 억압, 학살의 관점에서 보자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날 칠레에서는 원주민 수천명이 전통 복장을 하고 수도 산티아고에서 항의 거리 행진을 벌이기도 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관악구 동명 개정 신사동·삼성동 현장 가보니…

    관악구 동명 개정 신사동·삼성동 현장 가보니…

    서울 관악구에도 신사동과 삼성동이 생겼다. 서울 시내 대표적인 달동네 중 한 곳인 관악구 신림동이 재개발 호재를 타고 동네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강남식’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달 1일 행정동 통폐합에 따라 신림본동부터 12동까지 새로운 동명을 부여했고, 신림 4동은 신사동으로, 신림 6·10동은 삼성동으로 변경했다. 12일 찾은 관악구 신사동·삼성동에서는 동주민센터와 교통 표지판이 신사동과 삼성동으로 변경돼 있다. 신사동 거리에는 ‘주민 뜻에 따라 9월1일부터 동 명칭이 신사동(新士洞)으로 바뀝니다.’라는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주민 조모(77)씨는 “신림동 하면 ‘가난´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이것부터 해소해야 한다.”면서 “명품을 모방한 ‘짝퉁´도 명품 덕을 보듯 주민들은 강남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모(52)씨는 “삼성이라는 명칭은 삼성산 아파트 사람들의 요구로 바뀌었다.”면서 “관악구에서 잘사는 ‘상위 1%’만을 위한 개명”이라고 말했다. 인근에서 영업하는 한 공인중개사는 “신림동 일대는 재개발지역”이라면서 “2억 5000만원 정도인 83㎡ 아파트의 경우 2∼3년 뒤부터는 ‘재개발과 변경 동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4억원 이상으로 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관악구 신림동 일대에서는 2015년까지 지상 4∼33층 아파트 등 4545가구가 들어서는 ‘신림뉴타운’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에 대해 강남구는 관악구의 동명 변경에 반대하며 최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글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충주호’ 명칭갈등 충주·제천 화해 손짓

    ‘충주호’냐 ‘청풍호’냐를 놓고 극심한 갈등을 빚어온 충북 충주시와 제천시가 상호 축제참여를 계기로 화해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충주시와 제천시는 7일 각각 40여명의 공무원이 충주세계무술축제와 제천한방건강축제 현장을 교차 방문했다. 제천시 공무원은 충주세계무술축제장에서 각국 무술고수의 전통무술시연 감상과 함께 각종 무술체험 행사에 참여했고 충주시 직원은 제천한방건강축제장을 둘러보고 다양한 이벤트에 동참했다. 충주시 관계자는 “충주호 이름을 놓고 빚은 갈등을 털어내기 위해 이 같은 자리를 마련했다.”면서 “두 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축제장을 상호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박달재’를 사이에 두고 있는 양측은 지난해 9월 제천에서 청풍호 이름찾기 범시민운동본부를 구성하고 갖가지 활동을 벌이면서 갈등을 빚었다. 제천시는 충주호 담수면적(67.5㎢)의 64%가 제천에 속하고 과거 남한강을 청풍강으로 불렀다며 ‘청풍호’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충주시는 1985년 충주댐 완공시에 ‘충주호’로 정해졌고 담수호는 댐 이름과 동일하게 가는 게 관례라고 맞섰다. 지난 4월에는 제천쪽이 ‘청풍호 개명’ 자전거 행진에 나선 것을 충주쪽이 가로막으면서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충주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아이스크림 소녀’ 최아라, 8년만에 숙녀모습 공개

    ‘아이스크림 소녀’ 최아라, 8년만에 숙녀모습 공개

    8년 전 ‘아이스크림 소녀’로 광고계의 샛별로 떠오른 최아라(개명 전 최아진·16)가 연기자 데뷔를 앞두고 최근 모습을 깜짝 공개했다. 2000년 ‘배스킨라빈스 31’ 광고를 통해 “아이스크림 사세요!”를 외치며 이목을 끌었던 꼬마 최아라가 8년 만에 훌쩍 성장한 모습을 선보였다. 매거진 ‘i(아이)’를 통해 지난 6일 공개된 최아라의 모습에 독자들은 “사슴 같은 커다란 눈망울과 뽀얀 피부 등 인형 같은 외모는 꼬마 적 모습이 남아 있지만 성숙한 소녀로 훌쩍 성장한 모습이 새롭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최아라는 연예기획사 sidusHQ(사이더스 에이치큐)와 전속계약을 맺었으며 연기자로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준비가 한창이다. sidusHQ의 한 관계자는 “최아라는 8년 전 아이스크림 광고 단 한편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았을 만큼 보는 사람을 한 눈에 끌어들이는 매력을 가진 유망주”라고 계약 체결의 이유를 밝히며 “현재 중학생인 최아라는 학업과 동시에 연기 수업 및 여러 트레이닝을 성실히 받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사진 제공 = sidus HQ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사망’ 트랜스젠더 故 장채원은 누구?

    ‘사망’ 트랜스젠더 故 장채원은 누구?

    뒤늦게 자살 소식이 보도된 트랜스젠더 故 장채원(26) 씨에 대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2004년 SBS 예능 프로그램인 ‘진실게임’에 여장남자로 출연하며 예쁘장한 외모로 이목을 끌었던 장채원 씨의 본래 이름은 장정한이다. 방송 출연 후 2004년 말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 수술을 한 뒤 장채원으로 개명했다. 성전환 수술로 다시 태어난 장채원 씨는 첫 방송 출연 3년 후인 2007년 5월 29일 SBS ‘진실게임’-성형수술의 모든 것, 진짜를 찾아라 편에 다시 출연해 “3년 전 남자로 출연했다.”는 사실을 당당히 밝히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방송 후 180cm의 훤칠한 키와 서양적 이목구비, 볼륨있는 몸매를 가진 장채원 씨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장채원 씨는 이후 ‘제 2의 하리수’라는 닉네임을 얻었으나 지난 해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악플로 인해 심적 고통을 받고 있다.”고 트랜스젠더로서의 힘겨운 삶에 대한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서울 용산경찰서의 6일 발표에 따르면 장채원 씨는 지난 3일 오후 11시께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으며 타살 혐의점은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장채원 씨의 발인은 6일 오전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뤄졌으며 인천 화장장에서 화장됐다. 장채원씨는 숨을 거둔 날인 3일 오후 8시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엄마 미안해 다음에는 잘할게.”라고 마지막 글을 남겼으며 현재 장채원씨의 미니홈피에는 많은 네티즌들이 방문해 고인의 명복을 비는 추모의 메세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출처 = 故 장채원씨 미니홈피 서울신문NTN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아소 ‘극우본색’

    |도쿄 박홍기특파원|전통적인 극우 성향의 아소 다로 일본 총리가 ‘대동아전쟁’을 꺼내 들었다. 취임한 지 7일만이다. 이르면 다음달 초순에 치러질 중의원 선거를 겨냥, 전통적인 보수·우익 세력의 결속을 의식한 계산된 발언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아소 총리는 지금껏 창씨개명, 위안부, 야스쿠니신사 참배 등과 관련, 숱한 망언을 쏟아냈지만 대동아전쟁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처음이다. 아소 총리는 30일 오후 총리실에서 일본의 과거 전쟁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 질문에 “일·청, 일·러(전쟁)와 이른바 대동아전쟁, 제2차 세계대전과는 조금 종류가 다르다.”고 말했다. 또 “메이지 헌법 이래 약 120년, 일본의 역사로서 자랑할 만한 역사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역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동아전쟁 자체가 일본이 2차대전 때 군국주의를 정당화하고 미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내건 용어라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은 ‘서구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아시아가 대동 단결해 진정한 민주주의 체제를 건설한다.’고 주장했다. 2차대전 뒤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총사령부(GHQ) 측은 공문서에서 ‘대동아전쟁’이라는 표현의 사용을 금지했다. 현재 일본의 교과서에도 ‘태평양전쟁’이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사용될 뿐이다. 이종원 릿쿄대 교수는 “아소 총리의 발언이 돌출적이라고 봐 넘길 수만은 없을 것 같다.”면서 “외무상 시절, 역사적 발언에 대해서는 조심해 왔던 그”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대동아전쟁을 언급함으로써 우파적 색채를 분명히 드러내려는 속셈 같다. 이게 끝이 아닐 수 있다.”고도 했다. 아소 총리는 외무상 시절 한국과 중국의 외교 관계를 의식, 야스쿠니 신사 참배도 자제하며 실용적 외교를 펴왔던 터다. 일본의 한 외교 소식통도 “정권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에서 경기부양책으로 국민을 달래는 동시에 극우적 발언으로 보수·우파의 결속을 노리는 전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전 총리가 구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의 참배를 강행, 보수·우파들의 이탈을 막았던 정치 수단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가와무라 다케오 관방장관은 “아소 총리는 어릴 적부터 외할아버지인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로부터 교육을 받았다.2차대전을 당시 어른들은 대동아전쟁이라고 불렀다. 그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고 논란의 확산을 경계했다. 아소 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어렸을 때부터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 보수정치의 뿌리인 외조부 요시다 전 총리를 꼽고 있다. 아소 총리는 지난 25일 자신을 ‘호전적 국수주의’라고 비판한 미국 뉴욕타임스(NYT)에는 “국수주의자인지 아닌지 간에 내가 애국자라는 사실은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hkpark@seoul.co.kr ■아소 총리의 주요 망언 ▲2003년 5월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했다. 일본은 한글 보급에 공헌했다.”(도쿄대 축제) ▲2005년 10월-“우리에게 야스쿠니신사는 미국의 알링턴국립묘지와 같은 곳이다.”(영국 옥스퍼드대 강연) ▲2006년 8월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와 관련) “중국이 중단을 말하면 말할 수록 가지 않을 수 없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면 더 피우고 싶은 이치다.”(자민당 총재 선거 유세) ▲2007년 3월 “(일본의 요르단계곡 개발과 관련) 일본인은 신용이 있다. 푸른 눈에 금발이었다면 아마 안됐을 것이다.”(나가사키 강연)
  • [사설] 아소 내각, 한일 신시대에 역주행 말아야

    일본 자민당 아소 다로 총재가 어제 신임 총리로 취임했다. 한·일 관계가 극히 경색된 시점에 전임 후쿠다 총리보다 더욱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의 그를 정점으로 새 내각이 발족한 것이다. 우리가 아소 체제의 출범을 축하하기에 앞서 우려섞인 눈길로 지켜보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아소 총리의 등장으로 우리에겐 걱정거리가 더 늘어난 꼴이다. 평소 그가 “창씨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한 것”,“강제징용은 없었다.”는 둥 과거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드러낸 탓이다. 상대적으로 아시아를 중시했던 전임 후쿠다 총리 시절에도 일본의 독도 도발로 한·일 관계는 크게 꼬였다. 일본이 교과서 해설서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명기하면서다. 더군다나 현재의 불안한 자민당-공명당 연립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아소 총리는 취임 초의 대중적 인기를 지렛대 삼아 중의원 해산 후 조기 총선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선거 결과를 떠나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의 우경화 경향만 더 심화된다면 불행한 일이다. 현해탄이란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둔 한·일의 상호 의존관계는 숙명이자 업보다. 그러잖아도 북핵 6자회담 정상화와 미국발 금융위기 공동 대처 등 양국간 긴급 현안이 돌출한 시점이다. 부품·소재 산업의 기술이전, 지구온난화 등 환경 분야 협력, 나아가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미래지향적 과제도 산적해 있다. 지난 4월 한·일 신시대를 열자고 했던, 양국 정상간 다짐을 되살려야 할 이유다. 그러려면 아소 내각이 불필요하게 이웃을 자극하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일본이 주도해야만 아시아의 번영이 보장된다는 대동아공영권식 망상 대신 주변국의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궁극적으로 일본에도 이롭다는 점을 인식하란 뜻이다.
  • “관악구 보라매洞 쓸 수 있다”

    관악구와 동작구의 지자체간 싸움으로 번진 ‘보라매’전쟁 1라운드에서 법원이 관악구의 손을 들어줬다. 이번 결정으로 관악구 봉천1동은 본안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보라매동’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한승)는 동작구와 주민 10명이 관악구를 상대로 낸 조례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서 “동작구의 신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렸다.”고 22일 밝혔다. 앞서 동작구는 관악구가 지난달 조례를 변경해 9월1일부터 봉천1동 이름을 보라매동으로 바꾸기로 하자 “동작구가 보라매공원과 병원, 초등학교 등에 이미 사용하고 있어 관악구는 사용할 수 없다.”며 조례무효확인 소송 등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관악구에서 이미 개명 관련 작업을 끝내 놓은 상태로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양쪽이 다 피해가 있는 상황”이라면서 “나중에 이름을 다시 바꾸더라도 소요되는 예산이나 사람들의 혼란 같은 부분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라고 볼 수는 없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신념보다 국익… 한일관계 개선 기대

    |도쿄 박홍기특파원|22일 자민당 총재로 선출된 아소 다로 차기 총리는 전형적인 ‘보수·우파’ 성향의 정치인이다.‘매파’의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새로운 일본’을 주창했던 아베 신조 정권 때 외무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맡아 아베 총리를 뒷받침했다. 외무상 때 민주주의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이른바 ‘가치관 외교’에 치중, 중국과 서먹한 관계를 만든 적도 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때도 외무상을 맡았던 ‘외교통’이다. 아소 차기 총리의 등장으로 일본 외교는 ‘아시아 중시외교’를 표방했던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노선에서 다소 벗어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고이즈미·아베 정권의 ‘강경 우익’ 노선과 맥을 같이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미국과의 동맹 강화에는 차이가 없다. 아소 차기 총리는 일본 보수정치의 뿌리인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다. 정치적 영향을 많이 받은 까닭인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요시다 전 총리를 꼽고 있다.‘대단한 국가 일본’이라는 저서에서 요시다 전 총리가 자신에게 “일본인의 에너지는 대단하다. 일본은 반드시 잘된다.”라고 말한 점을 밝힐 정도로 ‘일본 우월주의’가 남다르다. ‘너무나 일본적인’ 아소 차기 총리인 탓에 그동안 한·일 역사와 관련,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다.“창씨 개명은 조선인이 원해서 이뤄졌다.”거나 “일본은 한글 보급에 공헌했다.”는 등의 ‘식민지 망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아소 차기 총리를 두고 현실정치 및 외교에서는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도 없지 않다. 단적인 예이지만 고이즈미 정권인 2006년 8월 외무상 시절 “신념과 국익이 부딪치면 국익이 먼저”라며 참배하지 않았다. 당시 “총리가 되면 재임 중에는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외무상 재직 전에는 두 차례나 참배했던 터다.‘신중론’이 부각되는 대목이다. 한국 징용자들의 유골 반환이나 사할린 영주귀국 확대 사업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소 차기 총리는 중국에 상당히 신경쓰고 있다. 중국에 부정적으로 비치고 있다는 인식에서다. 지난 12일 선거과정에서 “지난해 외무상 시절 엉망진창인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길을 텄다.”면서 “일·중 우호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다. 목적은 일·중 공동 이익이다.”라며 중국과의 우의를 강조했다. 또 전략적 호혜관계의 발전도 내세웠다. 반면 북한에 대한 강경론은 여전하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과 관련,“‘이상한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비틀거리고 있다.”라고 표현할 정도다. 북핵이나 납치문제에 대화와 압력의 병행론을 주장하고 있다. 기미야 다다시 도쿄대 교수는 “아소 차기 총리는 외교정책에 큰 변화를 꾀할 수 없는 처지다. 총선거의 결과를 봐야 한다. 괜히 실수라도 할 경우, 총선거에 악재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hkpark@seoul.co.kr
  • 극작가 윤영선 1주기 ‘페스티벌’

    극작가 윤영선 1주기 ‘페스티벌’

    극작가 윤영선의 1주기를 기리는 ‘윤영선 페스티벌’이 지난 18일 대학로 정보소극장에서 첫번째 작품 ‘여행’을 시작으로 막을 올렸다. 연우무대를 통해 연극에 발을 디딘 윤영선은 1994년 희곡 ‘사팔뜨기 선문답’으로 등단해 극작가 겸 연출가로 활동하다 97년 연우를 떠나 연출가 박상현, 이성열과 함께 프로젝트 그룹 ‘파티’를 결성했다. 이후 2003년 연출가 김동현이 합세해 극단 파티로 개명한 뒤 지난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활발한 창작 활동을 이어왔다. 이번 페스티벌은 극단 파티의 동인인 이성열, 김동현, 박상현 연출가가 각각 윤영선의 대표작 ‘여행’ ‘키스’ ‘임차인’을 무대에 올리기로 의기투합해 이뤄진 것이다. 이성열 연출가는 윤영선의 작품 세계에 대해 “시처럼 압축적이고, 간결한 언어 구사와 해체주의에 기반한 실험적인 형식의 시도 등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여행’(10월12일까지)은 일상에 젖어 있던 다섯명의 친구들이 한 친구의 장례식장에서 겪는 하룻밤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오랜만에 해후한 친구들간의 미묘한 질투와 엇갈린 기억들로 인한 오해 등 중년 남자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내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베스트3 등을 수상했다. ‘키스’(10월10∼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둘이 하는 키스, 혼자 하는 키스, 여럿이 하는 키스 등 다양한 모습의 키스를 통해 인간의 고독함과 외로움을 표현한 작품이다. 하나의 작품을 세 명의 연출가가 따로 연출해 한 무대에서 보여주는 형식이 독특하다. 영화 ‘왕의 남자’에 나왔던 ‘나 여기 있고 너 거기 있어.’라는 대사의 원전이기도 하다. 이번 공연에는 김동현, 남긍호, 채승훈 연출가가 참여한다. ‘임차인’(10월17일∼11월9일, 정보소극장)은 이사 온 첫날, 집주인 중년여성이 세입자 미혼여성에게 젊은 날의 꿈과 좌절에 대해 이야기하는 ‘2층집’, 택시기사가 손님에게 가족문제를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는 ‘택시 안에서’ 등 4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됐다.(02)744-730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박주영, 데뷔전서 팀승리 견인..첫 골 신고

    한동안 날개가 꺾인 듯했던 ‘천재’가 프랑스로 건너가자마자 주간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하는 등 단숨에 ‘모나코의 별’로 떠올랐다. 박주영(23)이 프랑스 프로축구 르 샹피오나 리그1 명문 클럽인 AS모나코로 이적한 지 보름 만인 14일 FC로리앙전에 전격 데뷔,1골1도움으로 2-0 승리를 이끌었다. 이러한 박주영의 활약에 프랑스 축구전문 사이트인 막시풋(www.maxifoot.fr)은 15일 “박주영 혼자 로리앙을 물리쳤다.”면서 5라운드 10경기를 통틀어 최우수선수로 뽑았다. 베스트11은 당연한 결과. 전체 시즌랭킹에서도 고작 한 경기만 뛰고서 5점을 차지,1위 라파엘 슈미츠(발렌시아)에 4점 뒤졌을 뿐이었다. 특히 승리를 홀로 책임지다시피 한 박주영의 활약은 경기 내용에서 더욱 빛났다. 전반 25분 득점 장면과 후반 26분 어시스트 장면 모두 침투 패스를 통해 이뤄졌다. 한 박자 빠른 슈팅과 패스, 그라운드 전체를 읽는 시야 등은 ‘아트 사커’의 본고장 축구 관계자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AFP통신은 “모나코가 박주영을 영입한 것은 대단한 모험으로 보였으나 박주영이 마스터키 역할을 했다.”고 상찬을 쏟아놓았다. 프랑스 방송 ‘카날+’ 한 해설자는 “위대한 데뷔전이었다.”고 평가했다. 국내 팬들도 추석날 새벽잠을 잊고 열광한 것은 마찬가지. 프랑스 리그 정식 중계가 없어 해외 인터넷을 전전하거나 문자중계 또는 지연방송을 보며 실시간으로 평가를 교환했다. 다만 일부 네티즌들은 ‘2005년 프랑스 FC메츠에서 뛰었지만 실패했던 안정환(32·부산) 역시 데뷔전에서 골을 터뜨렸다. 한 경기만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신중론을 폈다. 박주영의 두 번째 무대는 21일 오전 2시 마르세유 원정경기.3승2무로 리그 2위 마르세유와의 경기는 ‘반짝 활약´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시험대다. 한편 박주영의 유니폼에는 영문 이름이 ‘J.Y PARK’로 표기됐지만 구단과 팬사이트에는 ‘Chu-young Park’으로 달라 혼란을 줬다. 박주영이 과거 중학교 때 급하게 만든 여권상 이름이 ‘Park Chu Young’으로 돼 있어 발생한 것. 때문에 이날 경기를 중계한 ‘카날+’ 캐스터는 ‘박쉬영’으로 계속 불렀다. 박주영의 에이전트 측은 “여권 이름을 개명하는 절차를 알아보고 있으며 가능하면 서둘러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글 / 서울신문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영상 / 연합뉴스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위로